경제대왕 숙종

얼마 전에 인호형의 email을 받았다. 예의 ‘김인호 컬럼’이 아닐까 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한양대 명예교수 정기인 교수‘에 관한 것이었다. ‘국제무역 특히 상사(商事) 중재 분야의 국내전문가’라고 소개 된 이 정교수가 ‘대변신’을 해서 어떤 책을 출간한 것에 관한 소식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전공인 경제와 다른 분야인 역사를 접목하고 거기다 ‘문학’ 장르를 감싼 그야말로 대 변신이었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경제 역사소설’이라고 한다. 어떤 역사를 경제인의 눈으로 본 것이라고 하면 큰 무리가 없을까 생각을 했다.

소개된 글에 의하면 정 교수는 아마도 조선기에도 ‘경제통’이 있었을까 연구를 한 후에 그 사람이 바로 조선 19대 왕 숙종이었고, 수많은 사화를 통해 피를 뿌린 정치 뒤에는 ‘거대한 새로운 화폐 경제‘의 창출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가 바로 조선 전역에서 화폐가 보편된 때라고 한다. 화폐가 있어야 가치가 나오고 경제적 발전이 온다고 한다. 또한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그런 ‘정책’에 장희빈의 역할이 컸다고 했다.

 

 

정기인 명예교수 시사 talk 대담

 

나는 역사통도 아니고 경제통도 아니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이런 사실은 가능하다고 추측은 한다. 한가지 사건을 여러 쪽의 각도에서 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의 사극에서 본 것처럼 장희빈과 숙종의 이야기는 분명 흥미위주의 가느다란 각도로 본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의문은 이 ‘소설’이 몇 percent가 fiction인가 하는 것인데 거기에 대한 명쾌한 답은 찾을 수가 없다. 그가 출연한 TV Talk Show에서도 그것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에 그저 나는 아마도 ‘거의가’ 다 사실적, 역사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보았다.

 저자인 정기인 교수는 “과거역사에서 음모술수와 권력투쟁, 전쟁으로만 묘사된 불건전하고 부끄러웠던 역사를 완전히 씻어냈다’고 자부를 했고, “전문가”로부터 “재미: 95점, 신지식: 100점,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치: 90점“을 받았다고 했다.

 

신간: 정기인 저, 경제대왕 숙종

신간: 정기인 저, 경제대왕 숙종

이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부끄러웠던 역사를 씻어냈다”고 하는 것은 어떤 뜻일지 조금 의아해진다. 역사를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일지. 만약에 fiction으로 쓰여진 것이라면 그런 표현을 해도 되는 것인지.. 숙종의 “경제업적”을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성과와 비교하는 표현도 흥미롭기만 하다. 

 


세계 최초의 『경제 역사 대하소설』

 

경제 대왕 숙종

숙종,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멸망한 조선을 경제대국으로 만들다

 

매일경제신문사 발행

 

노벨문학상에 도전하는 세계 최초의 ‘경제역사’소설!

-이제까지 역사소설은 음모술수, 권력투쟁, 전쟁뿐이었다-

-이제까지 노벨문학상작품들은 암울한 인권만 묘사했다-

-진정한 인권은 먹는 것과 전쟁예방이다-

 

숙종은 백성의 진정한 인권은 ‘먹는 것’과 ‘전쟁예방’이라 생각했다!

왜, 역사소설들은 음모술수, 권력투쟁, 전쟁 등 불건전한 주제만 다루었을까? 이 소설은 진정한 인권은 먹고 사는 것임을 확신하고 쓴 ‘경제역사소설’이다. 소설은 숙종이 화폐경제로 저축과 투자, 생산, 고용, 외상거래라는 초기자본주의 거시경제운용을 해서 불과 30년 만에 단축성장으로 경제대국을 이뤄냈음을 발견했다.

숙종은 박정희대통령에 300년 앞서 조국근대화와 경제개발에 성공한 경제대왕이었다. 왜란과 호란으로 멸망한 조선을 거시경제운용으로 성장동력을 일으켜 영조와 정조의 부강한 왕조를 열어주었다. 박대통령이 한국에 세계10대 경제대국의 길을 열어준 것과 비슷했다. 숙종 뒤에는 무역 장사꾼이었던 장옥정의 내조가 있었다. 이 소설에는 그 과정이 매우 재미있고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추천사>

“이 책은 경제역사대하소설이다. 300년 전에도 배곯는 백성을 위해 경제개발에 성공한 임금이 있었음을 알고 자긍심이 생겼다. 나는 한국경제의 개발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한 사람으로서 이 어려운 시기에 대학생과 직장인, 공무원, 군인, 정치가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서강대학교 전 총장 손병두

 

 

줄거리 요약

이제까지의 역사소설들은 권력투쟁, 음모술수, 전쟁 등 불건전한 주제만 다루었다. 과거의 국가통치자들도 富國强兵을 첫째로 삼았었을 텐데도 ‘富國’은 전혀 다룬 소설이 없었다. 저자는 300년 전에 숙종이 화폐경제로 저축과 투자, 생산, 고용, 외상거래라는 초기자본주의 거시경제운용을 해서 경제대국을 이뤄냈음을 발견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대국을 이룬 것보다 더 처절하고 리얼하다.

 

숙종 당시의 사회경제상황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의 폐해는 숙종 때까지 전해졌다.

선조실록에 의하면 “기근이 극심하여 사람고기를 먹기에 이르렀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 괴이함을 알지 못하더라. 길바닥에 굶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메어 먹어 완전히 살이 붙어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산사람을 도살하여 장과 위, 뇌의 골도 함께 씹어 먹는다”고 씌어 있고, “백성들은 굶다 못해 부모와 자식, 형제간에도 잡아먹었다”고 전하고 있다.

농토는 양란으로 170만결이 40만 결로 축소되었고 경상도는 6분지 1로 축소되어 충청도에 전세를 대신 내도록 명령하자 충청도 농민들은 야반도주했다.

그럼에도 사대부과 아문들은 권력을 이용해 농민과 상인들을 다시 수탈하기 위해 고문과 횡포를 자행한 지옥 같은 상이었다.

숙종은 자본과 교통, 통신, 항만 등 산업인프라와 학교, 병원 등 생활 인프라가 제로인 상태에서 경제적 성공을 이룩한 것이다.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다.

 

숙종의 거시경제운용과 단축성장 성공

저자는 과거 왕조들의 경제문제를 파고들다가 조선시대에 뛰어난 경제대왕이 있었음을 발견하였다. 조선 제19대 왕 숙종은 화폐경제와 거시경제운용으로 조국근대화에 착수해 국토개발과 과학기술개발, 자주국방의 시대를 이룩했다.

숙종의 화폐경제 정립은 경제학적으로 큰 업적이었다. 국가경제는 부가가치창출이 핵심으로 저축(투자)과 소득(소비·고용)에서 나온다. 저축은 화폐가 유통돼야 한다. 위대한 세종대왕이 경제대왕이 못된 것은 저축이 없었기 때문이다.

①화폐(상평통보)유통으로 저축과 투자, 교환, 손익계산, 대부 및 외상거래가 가능한 상업시대를 열었다. ②이로 인해 노동의 상품화가 이뤄지고 인신의 지배예속이라는 중세적 신분제도는 서서히 변화되었다. ③민간부문이 살아나고 공공부문도 숨쉬기 시작했다. 공사의 구분 및 기업과 가계의 분리가 이뤄지며 성장동력이 생겼다.

 

장희빈의 경제적 역할과 성과

숙종 뒤에는 칠패시장(현 남대문시장)에서 무역업을 한 장사꾼 장옥정(장희빈)이 있었다는 우리가 몰랐던 사실이 밝혀졌다.

장옥정은 장현의 조카로 칠패시장(현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와 무역을 했다. 장현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심양에 볼모로 있을 때 6년을 모신 역관이었다.

장현은 효종의 비호아래 칠패시장에서 인삼무역, 비단무역, 무기무역으로 국중거부가 되었다. 장옥정은 외국어를 잘 해서 무역과 장사를 총괄했다.

장옥정은 1680년 22세의 늦은 나이에 장현의 권력야욕으로 궁녀가 되었으나 그녀의 뇌는 시장마인드와 정글법칙에 염색돼 성리학의 사대부들과 충돌한다.

성리학은 송시열을 필두로 선비는 장사나 농사를 해선 안 되며 오직 학문에 정진해야 한다고 주장해 인적자원 낭비의 주범이었다.

숙종 당시 인구는 680만 명인데 선비가 대략 10만 명인 경우 1인당 연간 생산액(GNP)을 30냥(쌀 30석)이라고 어림잡아도 연간 3백만냥의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는 셈이었다.

장옥정은 숙종에게 사농공상의 신분차별을 타파하고 선비들도 장사와 농사를 하도록 하여 국가의 인적 낭비를 없애도록 권고하였다.

장옥정은 화초처럼 자란 숙종에게 경제마인드를 심어주었으며, 화폐유통 등 경제혁신을 반대하는 노론의 지주인 송시열을 사사하도록 하는 등으로 방해자를 제거해 경제개발에 성공을 이뤄냈다.

그 결과 1,000여개의 장시가 생기고 3백만 명이라는 놀라운 고용이 창출돼 숙종은 불과 30년 만에 단축성장을 이뤄내 영조와 정조에게 부강한 문예부흥시대를 열어주었다.

 

숙종과 장희빈의 자주국방 노력

숙종은 자주국방을 위해 강소대국의 국방전략을 세웠다. 군인의 숫자보다 강력한 폭탄을 개발해서 국방을 강화하려 했다. 요즘으로 치면 핵을 보유해 국방을 강화하려는 것과 유사했다.

장옥정은 숙종의 자주국방에 대한 염원을 이루기 위해 화란의 폭탄전문가를 초청해 비밀리에 폭탄개발에 성공했다.

폭탄개발의 성공을 알게 된 청국은 병자호란 항복강화조약(기축약정) 제8항의 위반이라고 폭탄을 해체할 것을 강력히 압박함(요즘 핵개발을 금지하는 것과 유사)

청국은 이 폭탄이 청국에 대한 공격용인 동시에 외몽골과 위구르에 전달돼 위협이 된다며 폭탄의 해체와 숙종과 장희빈을 북경으로 입조하라고 압박한다.

이 기회를 이용해 노론은 청국과 힘을 합쳐 장희빈을 사사하도록 해서 숙종은 압력에 못 이겨 그녀를 사사한다.

 

장희빈에 대한 노론의 저주와 악담조작

장희빈은 노론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만 그들에 의해 지금까지도 악의적으로 비하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인현왕후전』과 『수문록』, 『숙종실록』(편집책임자: 인현왕후 오빠 민진원), 『사씨남정기(노론 김만중)』등이 노론의 대표적 허위기록들이다. 한 예로, 수문록은 노론의 사림학자들이 썼다고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저급하다.

“장희빈은 사약을 먹지 않기 위해 발악했고, 아들의 하초를 잡아당겨 고자로 만드는 패악을 부리다 억지로 사약이 부어졌다. 드디어 장녀가 죽으니 하늘의 천벌을 받아 시체가 순식간에 썩어 냄새가 궐내를 진동하는지라 즉시 궁밖에 내다버렸다.”

 

숙종 사후 조선의 몰락

경제대왕 숙종의 경제적 업적 역시 폄훼된 것은 정조가 독살 된 후 정순왕후와 노론의 세도 정치가들이 상인들의 재산을 탈취하고 경제행위를 억압함으로써 성장동력을 말살한 때문이다.

그 결과 경제적 쇠퇴와 자주국방이 불가능해져 일본에게 나라를 바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