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sary Relay, FS woe, another ‘Nearer my..’, Ozz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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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ary Relay..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레지오 꾸리아 (Curia)에서 드디어 ‘묵주고리기도’ 의 ‘지령’이 하달 되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끊임 없이’ 5분 간격으로 묵주기도rosary가 계속 바쳐지는 recite 것이다. 물론 이런 기도는 확실한 ‘지향 intention‘ 을 가진다. 2년 전쯤인가.. 본당 주임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을 위한 ‘고리기도’를 경험했었다. 나에게는 처음이라서 너무나 ‘신기하게’ 느껴진 경험이었다. 생각만 해도.. 멋진 idea가 아닌가? 한 영혼을 위해서 쉬지 않고 끊임없이 어디선가 기도가 바쳐진다는 사실이..

이번에는 주임신부님 (이재욱 요한 신부님)은 물론이고 보좌신부님 (한민 토마스 신부님)까지 포함되어서 그분들의 ‘영유간의 건강’을 위한 묵주고리기도가 바쳐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 (특히 레지오)에게 가장 중요한 영혼들인 것이다. 6월 24일부터 12월 24일까지 계속되는 이번의 rosary relay, 우리 부부는 오후 9시를 넘은 slot인데.. 너무 편리한 시간을 차지했나 하는 미안한 심정도 든다. 이런 rosary relay같은 것이야 말로 우리 가톨릭만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빛나는 유산이요 영적인 무기임을 개신교 신자들은 알기나 할까..  

 

Near-death File Server.. 우리 집 computer system (networked) 에서 file server pc가 결국 하루 아침에 quit (a.k.a. dead) 하고 말았다. 이름도 역시 ‘FS’ (file server)인 10년이 넘은 ‘고물 clunker’ Windows PC가 4~5 hard drive로 우리 집 home network에 24시간 file을 serve하고 있는데.. 물론, 거의 99% 내가 쓰는 file들이지만 가끔 연숙과도 share하는 것들이 있어서 이것은 편리하기도 하지만 꼭 필요한 ‘물건’ 이었다. 거의 5 TB의 ‘역사적’인 data들이 많고, 그 대부분은 video file들이 차지한다. 물론 local (pc) drive를 쓰면 이런 거추장스러운 것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home ‘cloud’ system의 매력은 무시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 (안전함)에서 ‘항상’ data를 필요할 때마다 받아 쓸 수 있음은 역시 편리하고 안전하고 ‘멋진’ idea인 것이다. 이런 server system은 virtual machine을 remote desktop으로 desktop pc로 쓰게 되면 필수적이다. 

나는 현재 Proxmox VE (virtual environment)란 virtual server를 쓰고 있는데, 한때는 10 virtual machines (대부분 test machine, sandbox platform, internet PBX등으로) 까지 쓰기도 했지만 이제는 조금 김이 빠진 상태로 현재는 4개의 virtual machines (Windows, Ubuntu, Asterisk pbx etc.)만 유지하고 있다. 이런 ‘headless‘ virtual machine들은 필수적으로 file server가 필요하기에 이번에 ‘죽은’ file server ‘FS’ 는 결사적으로 되 살려놓아야 할 입장이었다. ‘죽은 시체’를 열어 보니 10년이 넘은 motherboard가 제일 의심스러워서 완전 폐기하려는 순간.. not so fast moment인가.. 실제로 죽은 것은 motherboard가 아니었고 power supply (PS)였음을 알게 되었다. 버리기 직전에 발견한 것이다. 다른 것으로 교체를 하여서 결국은 FS는 다시 작동을 하게 되었다. 우리 집의 computer (network) system은 거의 25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런 것들과 ‘장난하는 것’이 나의 시간을 죽이는 최고의 취미였지만.. 솔직히 이제는 조금 피곤한 기분이 든다. 멋진 system을 꿈꾸며 살기도 했지만.. 이제는.. 간단한 것, 단순한 것을 찾게 되니.. 역시 나이는 무시할 수 없는 모양이다.

 

 Nearer My God..  5월 초에 P 베로니카 자매님과, 개신교 신자였던 K 자매님을 연속으로 하늘나라로 보낸 지 불과 2개월도 지나지 않았지만 사람의 운명이란 것이 편리하게 예측을 할 수가 있을까? 지난 2개월 그런대로 편히 쉬는 기분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사신 死神’들이 가까이에서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제일 급한 것은, 몇 년 전부터 열심히 기도하던 Y 막달레나 자매님.. 이 자매님, 참 외롭게 투병을 하시던 교우였지만 최근에 아주 상태가 악화되는 소식을 들었다. 특히 내가 개인기도를 많이 바치던 자매님인데.. 성모님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지경으로.. 더욱 안타까운 소식은 ‘혼자’인 몸으로 투병을 하는 것으로.. 가족들과는 어떤 관계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도 외롭지만 나보다 더 외로운 영혼들도 있다는 사실에 나는 은근히 놀란다. 비록 하느님께 간다고 하지만 인간적인 마음으로 어찌 가족을 생각 안 할 수가 있을까?

설상가상으로 우리 레지오 단원 자매님의 부군께서 ‘중병’으로 고생을 하시게 되었고 결국 그 자매님은 간병을 위해 레지오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연세로 보아서 힘든 투병을 하시는 이 형제님.. 하느님께 더욱 의지하기를 희망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라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Y 막달레나 자매님의 선종기도를 하고 있는 상태고 형제님은 환자기도를 하고 있지만.. 인간능력의 한계는 너무나 분명하기에 더 높은 곳의 ‘능력’을 믿어야 하는 시간들이 온 듯하다. 

 

Ozzie, I Love You.. 지난 며칠간 우리 집에 어떤 guest가 며칠 묵고 갔다. 오래 전, 거의 6년 전에도 이맘때에도 (헉헉거리는 무더웠던 여름) 어떤 guest가 와서 몇 주일을 묵고 간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guest가 사람이었고 (오랜 전에 알았던 집의 젊은 아들) 이번에는 2발이 아닌 4발 달린 pet dog 이었다. 그 오래 전의, 사람이 손님이었을 때, 한마디로 짜증나는 더위 속에서  ‘서로’ 고생을 했던 기억만 남은 듯 했지만 이번의 4발 달린 ‘동물’ 손님은 비록 며칠 간이었지만 너무나 즐거운 기억을 남겼다.

이 ‘4발’ 손님은 다름이 아닌 새로니의 ‘adopted’ pet dog, Ozzie였다. 3살이 조금 넘었지만 덩치가, 10살이 넘은 우리 집의 Tobey보다 훨씬 큰 편이다. 동생 나라니와 같이 거의 2년 전쯤 어떤 animal shelter에 같이 가서 데려 왔다고 했는데, 마지막으로 고른 사람이 나라니였다고 했다. 그 이후 가끔 우리 집에 데려온 적이 몇 번 있었고 이미 주인인 Tobey와도 구면인 셈이다. Ozzie는 한 마디로 nice dog이라고 할까.. 어쩌면 그렇게 순~ 한지.. Tobey에 비해서 너무도 착한 아들 같다고 할까. Breed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긴 다리를 가지고 splinter같이 뛰는 모습을 보면 입이 벌어질 정도다. Tennis ball로 fetch를 하면 어떨 때는 ball보다 더 빨리 뛰어가 기다릴 때도 있으니까..

새로니가 출장을 갈 때 이 Ozzie를 pet motel에 맡기고 갔었던 모양인데, 아무래도 Ozzie에게 미안 했던지 우리에게 ‘살살’ 부탁을 해서 이렇게 우리 집이 pet motel역할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금 귀찮은 생각도 들었지만.. 가족이 이럴 때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순순히 3일 간의 pet sitting을 해 보았는데,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의외로 Ozzie가 잘 적응을 하며 아주 happy하게 보여서 우리도 기쁜 마음으로 돌보아 주게 되었다. 남자만 보면 짖어대던 그 녀석이 (전에 남자에 대한 trauma가 있었지 않았을까..) 이제는 나에게도 정답게 접근하고 심지어는 만져달라고 머리를 들이대곤 해서 아주 정이 흠뻑 들게 되었다. 다른 편으로는 이렇게 정이 들면… 곤란한데.. 하는 우려 아닌 우려까지 들었다. 그 만큼 정을 준다는 것.. 나중에 정을 거두어들일 때도 생각을 안 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만날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도 있으니까 너무 정을 주지 말자고 다짐을 하지만..

 

Unthinkable comes true

The Destruction of Sodom and Gomorrah, John Martin, 1852

The Destruction of Sodom and Gomorrah, John Martin, 1852

 

오늘이야말로 67년을 살았다는 것이 정말 오래 살았음을 실감하는 날이 되었다. 아니 내가 ‘너무 오래 살았다’ 고 하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미국의 마지막 방패인 대법원.. 그들의 판결: 5:4로 ‘믿을 수 없는 일’ 앞에서, 나는 ‘실망에서 분노’를 거쳐서 이제는 웃음이 나올 지경이 되었다. 내가 알고 있었던 ‘전통보수의 마지막 보루’ 미국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어떻게 ‘보통사람’들이 이런 해괴한 생각에 동조를 하는 것일까? 어떻게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결혼을 한단 말인가? 남자와 여자가 신체적, 사회적인 역할까지 뒤 바뀌는 이 세상에 어떻게 ‘보통 사람’들이 잠을 편하게 잘까? 나는 그것이 의아스러운 것이다. 이것은 나의 ‘세계관, 신앙’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나의 ‘직감과 상식’에서 느끼는 것이다. 여기에 현재 ‘개발되고 있는’ 나의 신앙까지 겹치면 걷잡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이들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 무엇부터 잘못 되었던 것일까.. 나는 알고 싶다. 현재 나의 생각은 이것이다.. 이 해괴한 집단, 부류의 인간들은 ‘역사에서 정말 용서받지 못할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인간의 ‘자유’를 찾아서.. ‘사랑하는’ 가족끼리 결혼하는 것은 어떨까? 더 나아가면, 나의 사랑하는 pet animals들은 어떤가? 가당치도 않게 들리는, 비약적인 생각이 비약이 아닌 이 세상이 참 ‘괴로운’ 세상인 것이다. 아마도 ‘초자연적인 어떤 개입’이 마지막 치료제가 되는 날이 더 빨리 오는지도..

Father’s day 斷想 2015

Father's day smoke from
Father’s day smoke from …

오늘은 2015년 여름의 시작하지 summer solstice 와 아버지 날 Father’s Day가 겹친 날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시작된 여름의 위용을 과시하려는 듯 찌는듯한 습기와 열기가 함께한 전형적인 lazy but comforting Summer day였다. 이 ‘아버지 날’이라는 것, 수십 년 전 미국에 처음 오며 느낀 것 아직도 기억한다. ‘어머니 날’을 제외한 364일이 아버지 날이었던, 당시의 대한민국의 정서를 생각하니 왜 이런 날이 필요한 것일까 했던 것.. 하지만 역시 ‘드센 여자들이 많은 미국’  사람들 선견지명이 있었나 보다. 세월이 갈수록 여자들, 특히  ‘엄마’들의 power가 하늘로 치솟게 되며, 이 Father’s Day의 중요함이 더 돋보이고 필요하게 된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성당이건 교회건, 학교건 어디건 간에.. 상대적으로 늘어진 ‘주문진 오징어’ 같이 쳐지고, 피곤한 아빠들을 위로하는 ‘미사여구 美辭麗句’를 듣느라 바쁘다. 이런 ‘세속적인 흐름’에 겹쳐서 수세에 몰리는 듯한 종교계 특히 천주교의 사제, 그들도 Father, 영적인 아버지인데 이 Father’s Day에 그들도 같이 축하를 받게 되었다. 역시 선견지명 先見之明 있는 미국인들이었다.

2015-06-21 17.50.28-1이날이 되면 물론 나도 아버지이니까 나를 아버지로 부르는 ‘아이들’ 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 점검해 보는 기회도 되지만 나는 사실 나의 아버지를 더 생각하는 편이다. 문제는.. 나는 아버지를 본 ‘기억’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2살 때 6.25 사변이 시작되면서 납북, 행방불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식인이었던 관계로 살아서 북으로 갔을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서 우리는 ‘돌아가신 아버지’로 생각하며 자랐다. 아버지 없는 설움은 피부로 못 느끼며 자랐지만 남들의 눈에 그렇게 보였을까. 우리 아버지는 2살짜리 아들을 두고 어떻게 가셨을까? 3살 위였던 누나는 아버지를 어렴풋이 기억한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거의 nobody가 되었다. 아버지.. 어떻게 그런 불운한 세월을 사셨습니까? 누구의 책임입니까? 나는 딱 한 인간.. 김일성 개XX (그리고 그 자식XX들)를 증오한다.

올해의 Father’s Day, 그래도 아이들이 나를 잊지 않고 찾아주어서 단출한 우리 4식구 집에서 grilled hamburger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아이들, 같은 town에서 살기에 이런 ‘행운’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멋진 casual shoes와 gym bag을 선물로 받기도 했는데, 특히 신발이 나의 발 size에 기가 막히게도 잘 맞아서 다행이었고, 15년 가까이 써서 거의 ‘가루가 묻어 나오는’ old YMCA gym bag를 대신 할 것이 생겨서 아주 practical 한 선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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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아버지일까.. 가끔 생각한다. 십대가 지나가며 완전히 놓친듯한 두 딸들.. 아직도 그 후유증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30살이 넘어가는 완전히 커 버린 ‘애 들’.. 10대처럼 아직도 나는 거북스럽기만 하다. 그런 아빠는 그 애들에게 어떻게 비쳐지는 것일까?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어떠한 아버지 legacy를 남기고 갈 것인가.. 아버지를 겪어 보지 못한 나로써는 그렇게 쉬운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first summer harvest.. tomatoes

Season's first batch, tomatoes harvest

Season’s first batch, tomatoes harvest

 

은근히 기다리던 올 여름 첫 vegetable harvest 가 우리와 첫 대면을 하게 되었다. 먹음직한 도마도 첫 수확.. 언제부터 이것을 따 먹게 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도 작년 이맘때였을 것이다. 작년의 수확 tomatoes ‘도마도’는 색깔도 그렇지만 그 맛이 정말 놀랄 정도로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연숙이 그렇게 고생하며 가꾸던 것.. 옆에서 보기만 한 정도였고 가끔 물을 주는 정도로 나의 관심사의 저편에 있었지만 그 때 그것을 보고, 먹고 한 이후에 조금 나의 관심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작년의 ‘알짜 수확’은 당시 친지들이 모일 때 가지고 가서 그곳에서 아주 멋진 Italian 요리에 쓰이기도 했는데 모두들 그 맛에 감탄을 하였다. 그 정도로 supermarket에서 ‘강제로 만든’ 것과 차이가 나니까.. 태고 적, supermarket이 생기기 전,  그 원색으로 울긋불긋했던 ‘벌레 먹기도 한’ 과일, 야채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어쩌다가 요새의 과일 야채들이 그렇게 커지고 맛이 없는 것일까? ‘인간의 욕심..’ 자연을 거역하고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강제로 익히고, 강제로 사육하고, 강제로 주사를 놓고’ 벼라 별 짓을 다하는 인간들 탓일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이제는 ‘우리의 야채,과일’을 더 많이 수확하는 생각에 관심이 조금 가기도 한다.

 

먼 곳에 보이는 Yonsook's 'victory' edible garden

먼 곳에 보이는 연숙의  ‘victory’ edible garden

 

Carolina High & Einstein Bros.

Mid-June full blasting heat-index

Mid-June full blasting heat-index

 

¶ 하루 아침에 갑자기 ‘한’ 여름이 시작되었다. 하루 아침은 조금 과장된 표현이고 며칠을 거치며 build-up된 Carolina High (Pressure).. 그러니까 조지아 Georgia 의 northeast쪽으로 펼쳐진 Carolina (North & South), mid Atlantic 상공에 요지부동으로 자리를 잡은 ‘고기압’이 모든 바람을 차단하며 여과 없이 쏟아지는 태양열이 대지의 기온을 치솟게 한다. 위층은 물론, 아래층의 a/c 가 full-blasting, 6월 중순이면 이런 heat wave의 맛을 한번은 보여준다. 문제는 과연 ‘몇 도’까지 치솟을까.. 하는 것이다. Magic Number, 100도는 어떨까, 사양하고 싶은 숫자가 아닐까.

다른 문제는 공기 중의 Ozone level 인데, 이것이 치솟으면 호흡기에 좋지 않다. 오늘이 그런 날로 Code Orange warning 이 나왔다. 움직이지 않는 공기에 의한 ‘불쾌’하게 높은 온도와 더불어 그야말로 double whammy라고 할까. 이럴 때 유일한 대책은 밖에 나가지 않고, 실내에서 그야말로 take it easy하는 것이다. 이럴 때, YMCA와 같은 실내 track, swimming pool은 우리에게 거의 필수적인 시설이 된다.

근래에 100도를 넘은 기억이 없기에 이번에는 조금 뉴스 감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날씨, 나는 짜증이 나긴 하지만 조금 생각을 고쳐서, 여름은 더워야 ‘자연적’이라고 위안을 삼으니 훨씬 부드럽다. 이것도 ‘나이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그저 조그만 희망이 있다면 오후 늦게 ‘씨원하게’ 쏟아지는 예기치 않은 소낙비가 아닐까.. 그야말로 Johnny Rivers 의 60’s  oldie ‘Summer Rain‘ 이 귓가에 들리는 듯, 그 당시를 회상만 해도 벌써 시원하고 포근해 진다.

 

 
Summer RainJohnny Rivers –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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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오늘 우리는 Holy Family ‘sisters’ 들과  아침 미사를 마치고 예정에 없던 breakfast를 Johnson Ferry road에 있는 Einstein Bros Bagels(EBB) 에서 하게 되었다. 뜻하지 않게, 시원한 곳에서 향기로운 Hazelnut coffee, Signature bagel: SPINACH, MUSHROOM & SWISS를 즐기는 이런 시간은 비록 가끔 오는 것이지만 정말 즐거운 시간이다.

오늘은 근래 자주 보게 되는 크리스티나 자매가 ‘한 턱’을 낸 것이 되었고, 레지오 단원 카타리나 자매님이 함께 해서 오랜 만에 ‘lady’s talk’ 을 즐겼다.  화제야 대부분 신앙과 교회에 중심을 두고 있지만 가끔 gossip같은 이야기도 나눈다. 이런 것은 ‘새겨서’ 들으면 되고,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하고, 친교를 이루게 하는 역할도 한다. 자기만이 최고인 듯 착각하며 사는 수많은 동지 ‘남자 형제들’ 보다 이 세련되고 자상한 lady들이 대화를 나누기에 훨씬 더 편하고 즐겁다. 덕분에 YMCA workout은 2시간 지연이 되었지만.. no problem!

Sacred Heart 聖心

Sacred Heart of Jesus by Pompeo Batoni, 1767
Sacred Heart of Jesus by Pompeo Batoni, 1767

The Most Sacred Heart of Jesus.. 예수(의) 성심. 오늘은 The Pentecost (성령강림 대축일)로부터 19일째인 예수성심 대축일이었다. 미국 우리지역 province 은 의무 축일이 아니기에 아주 특별한 미사는 아니었고 평소 ‘매일 미사’보다 ‘조금’ 격상된 정도라고 할까.. 

요새 부활시기를 완전히 뒤로한 한가한 느낌의 6월 초여름의 ‘연중’ 시기에는 부활절을 치르느라 피곤하다는’ 본당 주임, 사제들은 꼭 자리를 비워야 ‘멋이 있는지’ 대부분 방문신부님들이 자주 찾아 오신다. 속으로 나는 ‘꼭 그렇게들 쉬어야 하나..’ 하는 짜증이 난다. 무엇을 그렇게 바쁘고 피곤하다는 것인지 나의 머리로는 쉽게 이해가 안 간다. 근래에는 땀을 흘리며 뛰는 신부들을 별로 본 기억이 나질 않아서.. 요새 신부들은 어떤 생각으로 사목을 하시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우리 Holy Family 성당의 경우, 보좌신부님, 박사학위를 받고 완전히 떠나신 Africa출신 상당히 지적인 신부님이었다. 비록 처음에는 영어 발음에 짜증이 조금은 났지만 주임신부의 ‘애 같은’ 강론수준과 하늘과 땅의 차이라 은근히 좋아하기 시작했더니만.. 그만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그런 판국에 Irish 출신 주임신부라는 목자는 어떻게 편히 쉬실 수 있는가? 드디어 며칠 전부터는 본당의 브라질 공동체 신부님이 임시로 매일 미사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이건 완전히 disaster에 가깝다. 그의 영어 발음은 99.9% 알아 먹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찌 Portuguese와 English가 그렇게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완전히 ‘꼬이는’ 발음은 Jesus란 말 정도나 들릴 정도다. 하지만 공평한 것은.. 이 신부님 너무나 ‘진솔하고 착한 미소 띤 얼굴’ .. 이것으로 완전히 balanced-out이 되고 있다. Universal한 미사 자체야 Latin말로 하던 때도 있었으니까.. 못 알아 먹어도 90% 이상은 다 추측이 가능하니까..

 성심.. 예수성심.. 성모성심.. 참 오래 전부터 들었던 단어였다. 성심 聖心 .. 하지만 확실한 뜻은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저 ‘성스러운 마음’ 정도는 한자로 짐작이 가능할 정도였다. 어렸을 때, ‘성심’이 붙은 학교들이 있었고, 대부분 ‘멋지고 부자’들이 가는 학교라는 인상도 남았다. 서울의 성심여학교가 그랬다. 교복도 그렇게 멋졌다. 박정희 대통령의 큰 딸 박근혜 (현 대한민국 대통령.. 허.. 세월의 장난이..) ‘양’ 이 아마도 그 학교에 다녔을 것이다. 그것 뿐인가.. 성심병원, 성심 여대까지 있으니까.. 이것은 이곳 미국도 예외는 아닐 듯 싶다. 문제는 이 ‘성심’이란 말이 보통명사인가 고유명사인가 하는 것이다.

조금만 research하면 ‘정답’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예수성심은 글자 그대로다. 예수님의 ‘육체적인 심장’ (마음이라기 보다는), 그 육신적인 심장이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불이 타는 듯이 타오르는 모습이 바로 예수성심인 것이다. ‘성스러운 마음’ 아닌 예수님의 사랑으로 불타는 심장.. 오랜 세월, 나의 ‘무지’가 부끄럽다. 그러니까 예수성심은 이 ‘심장’에 대한 인간들의 신심 devotion 인 셈이다. 이것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이것은 역시 ‘인간’ 역사 중의 하나다.

1673년부터 1675년까지 프랑스 수녀 St. Margaret Mary Alacoque (성녀 알라콕)에게 나타나신 일련의 예수발현으로 비롯되었다. 이 발현 중에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신심이었다. 계시 revelation 중의 계시가 이런 것이 아닐까? 역사적인 배경과 근대에 들어와서 성심의 발전 양상을 예수회의 ‘예수성심의 역사’ 라는 DVD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레지오 단원 자매에게서 빌린 DVD를 감히 ripping해서 이곳에 올려 놓았다. copyright는 분명히 문제가 되겠지만.. please.

 

예수성심의 역사

Francis on Medjugorje

Pope Francis, 사라예보 방문 후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기자회견
Pope Francis, 사라예보 방문 후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기자회견

요새 ‘우리’ 교황님, 참 뉴스에서 많이 뵙는다. 99.9% 거의 모두 positive한 것이라 안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런 기사들을 대한다. ‘어쩌다가’ 이런 멋진 교황님이 탄생을 하셨는가.. 그러니까 ‘전’ 명예 교황님 Benedict XVI 이 깊은 생각과 교회의 당면한 숙제들을 생각하고 ‘조기 퇴진’을 하신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현 시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목자를 탄생시키셨다. 모든 교인들과 마찬가지로 나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다행스러운 교회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교황님 사라예보 Sarajevo, Bosnia & Herzegovina 를 방문하시고 바티칸 로마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의 사라예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비공식’ 성모 발현지 메주고리예 Medjugorje 에 대한 짧은 언급이 나의 (아마도 많은 사람들) 눈길을 끌었다. 그 ‘짧은 언급’은 다음과 같이 보도 되었다.

It’s almost decision time…  6/6/2015  on PAPAL FLIGHT

사라예보의 짧은 방문을 끝내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보즈니아 (사라예보와 메주고리예가 위치한 나라) 출신 기자의 메주고리예 성모발현에 대한 바티칸의 공식적인 입장 해명의 질문에 대해서 교황님은 다음과 같이 답변을 하셨다.

“메주고리예에 대한 결정의 시기가 거의 다가왔습니다. 결정이 되면 발표가 될 것입니다.”

교황은 이에 관련되어서 전임 교황 베네틱트 16세가 메주고리예 성모 발현 ‘설’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위한 위원회를 발족 시켰음을 상기시켰다. 이 위원회는 메주고리예 ‘현상’을 교리적, 교회법등에 비추어 연구, 조사를 끝내고 교황님께 보고를 드렸다고 덧붙였다.

 이 결정은 곧 이루어질 것이고 그에 따라 모든 일선의 주교들에게 guideline이 시달 될 것이라고 한다.

이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모든 교회는 메주고리예에서 성모발현의 진실성을 당연시 하는 모임, 회의, 집회 등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기사가 나오고 나서 3일 후에 이에 관련된 기사가 다시 보도 되었다. 이것은 그러니까.. ‘damage control’ 정도가 될는지…

 

Day after Medjugorje comment, Pope downplays predictable visions:

 아마도.. 교황님의 6월 6일 기자회견에서 메주고리예의 공식입장 결정이 다가왔다는 말이 주는 뉴앙스가 너무나 positive했던 것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려는 것이었을 것이다.

6월 9일 바티칸의 성 마르타 guesthouse에서의 매일미사에서 교황님은 ‘조금 초현실적인 믿음’에 의존하려는 신자는 현대판 gnostics(무관심론자)라며 결국 믿음의 종착역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고 조심을 시켰다. 성모님께서 ‘이런 것, 저런 것’을 하라고 말하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그리스도교인의 본 모습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두 가지 뉴스에 접하며 생각을 해본다. 우선 이런 교황님의 스타일은 이제 익숙한 편이다. 우선 issue를 거론하고, 반응에 의해서 필요하면 곧 수정하는 style..  이런 방식은 분명히 issue를 forward시킨다. 무언가 결과가 제 시간에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일을 처리해 나가는 교황님의 agenda는 도대체 얼마나 있을까?

메주고리예의 성모님 발현은 교회사, 세계역사를 통 털어서 전무후무 前無後無 한 것이다. 30년 이상 거의 매일 같은 지역에서 발현한다는 것.. 이것에 대한 과학적, 이성적인 반론은 어떤 것일까? 한마디로 ’30년 이상의 사기극’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사기극’을 벌인다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쉽다. 메주고리예가 나에게 준 자극과 영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높고, 심각한 것이라 나는 여기에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다. 30년 이상 인간에게 거의 매일 나타나시는 ‘하느님의 어머니, 원죄 없으신’ 마리아의 의미는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는 진짜 인류의 어머니라는 것, 너무나 자상하고 사랑하시는 어머니가 ‘나쁜 길’로 가려는 자식들을 애타게 기다리신다는 것.. 조금만 생각해도 수긍이 가는 말이다.

 

Corpus Christi 2015

Scan10143-1¶  Corpus Christi 오늘은 가톨릭 전례력으로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이다. The Most Holy Body and Blood of Christ.. 그러니까 Corpus Christi 주일이었다. 성체성사, 그러니까 예수의 몸과 피가 성찬례에서 빵과 피로 형상화 되는 Eucharist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는 날인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수교, 특히 천주교에서 이 ‘교리’는 진정한 핵심 중의 핵심일 듯 하다. 매일미사를 몇 년간 경험하며 느끼는 것은 ‘아직도’ 이 교리는 가슴으로 느껴질 듯 말듯 한 그야말로 신비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100% 확신하며 영성체를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실 우리는 이 축일을 지난 4년 동안 한번도 제 날짜에 지켜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아틀란타 대교구 주관 성체대회에 참가하면서 그날 그러니까 토요일 저녁의 마감미사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러니까 특전미사여서 일요일을 편히 쉬었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4년 만에 처음으로 성체대회를 불참하게 되었는데.. 이유가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다. keynote speaker로 예정되어 있던 Father Robert Barron이 갑자기 불참하게 되어서 조금 화가 난 상태로 일종의 protest로 불참하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일들을 그 모양을 했을까? 성체대회도 이제 조금은 ‘늙었나’ 하는 실망감도 들고.. 그래도 참가했어야 했던 것이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다.

 

¶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은 예정에 없었던 일들로 도라빌 순교자 성당엘 가게 되었다. 물론 매주 화요일에는 레지오 주회합, 정오 미사, 그리고 봉성체 등으로 그곳엘 가지만 이번 주에는 무려 사흘 이나 그곳엘 가게 된 것이다. 목요일은 ‘물론’ 예정에 없었던 장례미사 때문이었고 금요일은 신임 이재욱 요한 신부님을 모시고 우리가 하는 봉성체 환자 방문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목요일의 연도, 장례미사.. 노 데레사 89세 천수를 하신 교우 할머님의 연도와 장례미사를 우리는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조금은 주저하기도 했다. 사실 우리는 그 분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조문객들이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느낌’에 아마도 별로 많지 않을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사실 우리에게 ‘평상’ 목요일은 YMCA에 가서 workout을 하는 날이고 집안의 밀린 일도 하는 reserved day라서 망 서린 것이다.

하지만 레지오를 하면서 성모님께 약속을 한 것이 그곳으로 가게 하였다. 교우 장례식에 가는 것을 rule로 약속을 한 것이다. 가끔 exception이 있다면, 아플 때나 우리가 못 가더라도 조문객이 많다고 생각 될 때다. 그래서 이제는 연도와 장례미사에 아주 익숙해졌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곳을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우는 곳으로 생각하며 참석을 한다. 인간의 숙명인 죽음은 배우고 배워도 알 수 없는 신비이기 때문이다.

다음날 금요일에는 새로 부임하신 이재욱 세례자 요한 신부님을 모시고 우리들의 봉성체 교우들 (환자) 3명을 찾는 ‘레지오 활동’으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미국본당의 평일미사를 거르고 대신 순교자 성당 정오 미사를 참례하고 곧 바로 신부님을 3군데 교우님들이 계신 곳을 모두 찾아갔다. 이것도 전형적인 레지오 활동에 속하기에 우리는 기꺼이 일을 하였지만, 우리들이 조금 놀란 것은 신부님의 일반적인 태도, 행동이었다. 사실 이번 활동은 신부님이 먼저 요청을 하신 것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감명’을 받기도 했던 것이다. 여독도 별로 풀지 못하고 이렇게 사목에 나선 신부님이 조금 존경스럽게 보인 것이다. 교우 환자를 일일이 찾으며 성체를 영해 주시고, 참으로 자상스럽게 대화도 나누시는 모습이 ‘연세’에 걸맞지 않게 너무나 성숙해 보였기에 비록 예정에 없었던 하루를 밖에서 보냈지만 우리는 너무나 기쁘고 보람이 있었다.

$13 toothpas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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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전에 Duluth Korea Town 어떤 supermarket에 갔을 때 그곳에서 ‘요란하게 진열된’ 한국계 신문들을 보게 되었다. 나는 거의 이 신문들을 볼 기회가 없이 살았기에 아직도 이런 것들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새까만 옛날에 미국에서 ‘고향 신문’을 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고 모두 여행자들이 직접 들고 온 것들을 두고두고 본 기억도 있다. 뉴스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글로 된 신문이기에 신기해서 보는 것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그것도 급팽창한 아틀란타 지역에서는 고국의 굵직한 대 신문들이 모두 ‘지사’형태로 생겨서 고국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지역성을 살려 현지 광고들과 지역뉴스들이 가미되는 차이는 있다. 참 세상이 많이 변했다.

가끔 보게 되는 이 신문들.. 솔직히 고국사정에 어두운 탓인지.. 과장된 표현으로.. ‘하나도 읽을 것이 없다’는 한숨만 나온다. 모조리 광고에다가.. 고국 뉴스는 나에게 relevant한 것은 거의 없고, 현지 지역 뉴스는 original한 것은 거의 없고 그저 출처도 불분명한 곳에서 ‘기계적’으로 번역을 한 것들이고, opinion, editorial이란  것도 거의 마찬가지 수준으로 보인다. 그저 제일 practical한 것은 ‘광고’ 들 뿐인가.

그 광고 중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SupHerb 란 상표의 ‘치약 toothpaste’ 였다. 언뜻 보기에 ‘사기성 과대광고’의 모습을 띄어서 지나쳤지만 이번에는 조금 자세히 보게 되었다. 그 치약의 용도가 ‘약용’이란 것이고, 증상들이 내가 가끔 겪는 것들이었다. 나는 traumatic 한 ‘치과’ 경험들이 있어서 그곳에 가는 것은 최후의 방법으로 여기기에 이 광고가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통상적인 chemical toothpaste가 아니고 natural한 toothgel이란 것인데, 바로 약초 herb와 aloe란 진통제가 가미된 것이라 만약 이런 성분이 진짜 광고대로 라면 속는 셈치고 try해 볼만 한 것이었다. $13의 가격이 일생일대 썼던 치약 중에 제일 비싼 것이긴 하지만, 일반 치약과 어찌 비교를 하랴.

자꾸 약해져 가는 잇몸에는 외과적인 방법보다 자연적인, 부드러운 방법이 필요하다는데 공감이 간다. 광고를 보면 사용한 사람들의 testimonial들이 있는데 한결같이 잇몸이 건강해 졌다는 것이지만 그것을 어찌 다 믿으랴. 하지만 10%만 믿어도 한번 써 볼만 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나답지 않게 $13 거금을 주고 이것을 사서 현재 쓰고 있는데, 아직은 큰 변화는 없지만 잇몸 신경이 조금은 둔화되는 느낌도 들기도 한다. 이것을 전부 다 쓰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지 모르지만 다 쓰게 되면 무언가를 알게 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