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February 2016

out backyard daffodil

out backyard daffodil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봉숭아 꽃, 나팔꽃, 분꽃.. 어렸을 적에 나의 방 앞 뜰에 신나게 피어나던 꽃들을 잊고 산 지가 반세기가 훨씬 지나가며 인생의 황혼기에 다시 그런 ‘신비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참 신기하다.. 어떻게 ‘그런 것’들이 눈에 다시 보이게 되는 것일까?

기계적, 강제적으로 일년 사시사철 꽃을 보고 과일을 먹는 요상한 세상에 익숙해져서 더욱 봄의 꽃들은 의미가 심장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김없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것들, 아침미사 (car) drive길에 연숙의 ‘꽃에 대한 자세한 논평’을 들어야 했다. 특히 2월 달에 ‘처음’으로 선을 보이는 꽃들은 그녀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나는 옆에서 안 들을 수도 없지만 과히 나쁘지 않은 자연공부를 하게 되기도 한다.

 

봄을 알리는 1번 타자가 바로 수선화..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수선화.. 그 이름부터 신비롭다. 수선.. 수선화.. 물에 관련되었나? 그렇다. Narcissus와 나르씨시즘(자기도취)의 유래도 이 꽃이 관련되어 있지 않은가? 1960년대 초, Brothers Four의  folk hit, Seven Daffodils 같은 추억의 folk song도 회상이 되고.. 을씨년스러운 2월의 겨울 날씨에도 봄의 모습을 선을 보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 그렇게 그렇게.. 이런 삼라만상, 자연의 섭리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겸허하게 보존하고 가꾸어야 하는가는 Pope Francis의 2번째 encyclical 회칙, Laudato Si (부제: On Care For Our Common Home, 자연환경보호)  를 보면 얼마나 커다란 신학적인 명제가 곁들여 있는지.. 알 수 있다. 자연, 환경이..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다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이런 생각의 고리를 일깨워준 ‘가냘프지만, 강건하게 보이는’ 수선화.. 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내년에도 나도 너도 같은 모습으로 볼 수 있게 되기를..

 


 

Vincent Van Gogh's rendition of daffodils

Vincent Van Gogh’s rendition of daffodi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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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thers Four – Seven Daffodils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Where have all my flowers gone?

꽃밭 속에 꽃들이 한 송이도 없네.. 양희은, 김민기의 ‘젊은’ 목소리가 회상되는 노래 구절이다. 없는 꽃을 기다리는 이 곡은 분명히 정치적 angle을 내재한 것이겠지만 현재 나의 꽃밭에는 멋진 꽃들이 만발함을 있음을 느낀다. 내가 꽃밭 속에 앉아 있다는 표현은 비유적으로 여자, 여성들, 그러니까 ‘자매님’들 속에 있다는 뜻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다다르며, 지나간 세월을 돌아다보니 과연 나의 집안이 꽃밭이었다. 나 자신의 family가 생기기 전부터도 나는 100% 꽃밭 속에서 자란 셈이다. 할아버지는 물론 삼촌이나 아버지가 안 계신, 외롭기만 한 외아들(父先亡 單代獨子), 남자 친척도 거의 없이 6.25 동란 와중에 자라난 세대.. 거리에 나가 앞뒤를 보아도 확실히 남자보다 여자가 많았던 시절, 젊은 남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만고  萬古의 역적, 김일성 개xx 와 싸우다 죽고 불구자가 되고..

아버지 삼촌 오빠 등 남자가 없던 가정이 ‘거의’ 정상이던 그 시절에 자란 나의 주위는 모두 엄마, 아줌마, 누나, 게다가 가난에 시달려 시골에서 올라온 ‘무단 상경’ 식모 누나들.. 그러다 급기야는 훗날 내가 ‘만든’ 가족들 조차도 모두.. 여자들.. 와~~ 이러니 내가 꽃밭에 앉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다 보니 ‘이성 異性’으로 느끼는 어떠한 종류의 감정들도 많이 둔화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가까운 곳, 나의 가정의 이런 꽃밭과는 대조적으로 사회적으로 나의 직장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인 ‘남성적’인 engineers들의 환경들이었다. 지금은 많이 여성들에게 개방이 되어가고 1 있지만 당시에는 거의 여성을 찾을 수 없었던 그런 곳 중에 하나가 기술직이었다. 이런 대조적인 환경들을 무의식적으로 왔다갔다하며 살았지만 결국은 말년에 ‘별 수 없이’ 다시 ‘가족의 꽃밭’ 속으로 돌아오게 되어서 현재에 이른다.

 

하지만, 거의 기적적으로, 비록 천천히 진행이 되긴 했지만, 나의 coming home (to church & faith), 신앙적인 귀향은 뜻밖으로 ‘다른 종류’의 꽃밭을 선사해 주었다. 건전한 신앙적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하며 또한 그렇게 살아가는 ‘멋진’ 자매님들의 꽃밭이었고2 그것은 너무나 신선하게 내 인생 마지막으로 異性적 여성을 재발견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현재 나의 꽃밭에 있는 꽃들은:

  1. 거의 다수가 나보다는 인생을 덜 살았지만 충분한 경험을 가진 나이이고..
  2. 대부분 그들의 신앙심의 깊이나 경험, 경륜은 훨씬 선배들이고..
  3. 절대 소수 minority인 나를 거의 차별하지 않은 듯 하고..
  4. 나를 opposite-gender 의 angle로 보는 듯 하지도 않는 듯..

 

결론적으로 그들, 꽃들은: 비슷한 세계관, 내세관, 가치관을 가진 ‘진정한 친구’로 나를 대한다는 사실을 5년 정도의 intensive한 경험을 통해서 터득하게 되었다.

내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것들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우선 참 인생이란 것.. 예측하게 힘든 숨은 즐거움이, 찾으려고 노력만 하며 어디엔 가에 숨어 있다는 놀라운 사실. 꽃들과의 스스럼없는 친교와 대화가 이렇게 쉽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놀라게 한다. ‘성숙한 나이’ 탓도 있겠지만 사실은 ‘비슷한 생각, 습관, 나아가 가치관’을 가졌고 가지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이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믿고 싶다.

 


 

 
Best Rendition: Kingston Trio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1. 어떤 것들은 조금 웃기는 현상이지만..
  2. 이 post의 직접적인 동기는, 어제와 오늘 계속 함께했던 ‘꽃’들과 가졌던 impromptu dining 에 있었다.

돈키호테 점심식사Atlanta Metro, 도라빌 Buford Highway Korea town,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Don Quixote 돈키호테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곳은 원래 잘 알려진 일본식 분식점이었고 전통적인 돈카츠를 위시한 일본식 경양식 전문이었지만 지금은 owner가 바뀌어서 주문형 도시락을 전문으로 하는 ‘가벼운’ 한식점으로 바뀌었다.

위치가 별로 맘에 들지 않아서1 우리는 전혀 근처에도 가 본적이 없었는데 얼마 전에 바로 그곳에 가서 점심을 먹게 된 것이고, 그것도 이(요한) 주임신부님과 함께였다.

이날 늦은 아침에 우리(부부)는 L 바울라 자매님의 요청으로 이 신부님을 모시고 아틀란타 공항 서쪽에 위치한 어떤 깨끗한 suburban house로 한 시간여를 drive해서 S 안나 자매님 (할머님) 병자성사를 주러 갔었고 성당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이곳에 들려 같이 점심식사를 하게 된 사연이다.

‘비상적인’ 성사 (sacramental emergency)를 철저히 챙기시는 우리 주임신부님, 사실 확인여부를 떠나서 요청이 들어오면 거의 무조건 나서시는데.. 그 중 99%는 정말로 비상일 텐데.. 이번의 case는 나머지 1%에 속한 것으로 ‘다급한 비상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다. ‘물어 물어’ 찾아간 곳.. 우리가 미리 들은 바에 의해서 예상한 것은:  “거의 죽음을 앞에 놓고, 아무도 정성껏 챙겨주는 사람이 없는..외로운 삶을 마감하는..” 등등의 scenario를 무언중에 생각하고 갔지만 놀랍게도 우리가 본 것은 그런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는 것: 반짝이고 널찍한 저택에 ‘어떤 할머니들’보다 더 수려하고 건강하게 보이시는 분이 우리를 맞아준 것이다. 중간에 서서 ‘병자성사’를 주선하신 자매님.. 겉 표정은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당황하셨으리라.. 곧 숨이 넘을 듯한 절박감과는 서울과 부산 정도로 거리가 멀었다.

바울라 자매님 왈.. 이 자매님과 전화만 하면 ‘너무 외로워서 오래 못 살 것 같다.. 신부님 좀 모시고 와라..’ 고 하신다니..  신부님 표정은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예상 밖인 상황에 조금은 ‘실망 아닌 실망’일까.. 말이 별로 없으시다. 하지만 기왕 간 김에 전대사를 위시한 병자성사를 확실하게 주시고 오게 되었으니.. 그 S 안나 자매님 안심하시고 하루하루 보내시게 되었다. 사실 우리도 중간에 서서, 진실 확인 여부를 떠나서 조금은 바쁘신 신부님 시간을 빼앗은 결과에 잘잘못을 떠나서 점심식사가 생각보다 덜 맛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럴 때.. 우리가 배울 것은 무엇인가.. 하나도 없다.. 누가 ‘신부님이 필요하다’고 하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모시고 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것이니까.

  1. 바로 근처에 adult entertainment shop이 도사리고 있는..
My favorite moment in cold, damp Winter February

My favorite moment in cold, damp Winter February

지난 12월 초에 12살이 된 우리 집 강아지, 내 ‘아들’ Tobey녀석.. 이제는 나보다 더 늙은 나이가 되었지만 비교적 건강하고 보기에는 아직도 어렸을 때의 모습.. 강아지, 바둑이 정도로 보인다. 다시 물끄러미 서로를 바라본다.

하루 종일 사사건건 이곳 저곳, 심지어 화장실까지 따라오는 나의 그림자다. 자는 시간을 빼고는 그 녀석의 눈은 나의 눈에 고정이 되어있다. 처음에는 아주 귀찮았고, 성가셨지만 고칠 수 없는 버릇임을 알고 그대로 지낸 지가 몇 년이 되어가나? 생각한다. 만약 이 녀석이 없어진다면.. 생각하기도 싫지만 12살이라는 나이가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의 장례식은 이제 익숙해졌다고 볼 수 있지만 나의 분신 같은 ‘말 못하는 동물’과의 영원한 이별의 준비가 덜 된 것을 절감하며, 괴롭기까지 하다. 요새 주위에서 오래 정든 pet animal (주로 개와 고양이들) 들을 떠나 보내며 겪는 stress와 ‘의외적인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듣고 나는 그들의 심정을 나의 것처럼 실감 한다. 아마도 pet과 인연이 없는 조금은 ‘냉정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정말 이런 것들을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 pet들의 인간들에 대한 정과 사랑을 조금이라도 보고 느끼면 조금은 이해할 것인가?

평균 수명의 경고를 생각하며 오늘도 이 ‘귀찮은 녀석’과 우리는 어제까지 눈을 맞출 수 있을까.. 나에게 soul이 있다면 이 녀석의 soul은 어떤가.. 그 soul도 육체를 초월하는 transcendent state가 있을까.. 이 녀석과의 작별은 absolute한 것일까, 아니면.. 춥기만 한 2월의 한 때, 따뜻한 체온을 포근하게 느낄 수 있는 오후…

 

thank you freetaxusa, nice job!

thank you freetaxusa, nice job!

2월 17일에 Federal Income Tax Return을 끝내 버렸다. 아마도 기억에 이렇게 일찍 한 것은 처음이 아닐까? 대개 3월 중순이 지나고, 심지어는 4월 14일 저녁 (그러니까 마지막 순간)에 집 근처 post office (before Internet era)에서 줄을 서서 tax party의 분위기를 구경한 적도 있었으니.. 참 그 동안 나도 부지런해진 것인가? 하지만 이렇게 간단히 쉽게 끝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financial situation이 그 정도로 간단해진 것을 뜻하기에 내가 더 부지런해진 것과는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 동안 비록 우리는 ‘진짜’ business는 안 했어도 연숙의 1099 type tax return 때문에 이 맘 때면 골치를 썩히곤 하기도 했다. 그 때에는 내가 비록 tax pro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tax document를 꼼꼼히 읽고 해서 나름대로 ‘감’을 잡고 있었지만  요새는 web-based tax return을 하게 되면서 거의 ‘자동화’가 되어 버려서 ‘글자만 잘 읽으면’ 모든 것이 큰 문제없이 끝난다. 지난 5년 동안 나는 freetaxUSA.com으로 return file을 하는데 다른 곳과 비교는 안 해보았지만 내가 쓰는 데는 거의 문제가 없었다. 우체국 갈 필요도 없고, return check 같은 것도 mailbox에서 도난 당할 염려도 없다. 모든 것이 online인 것이다.  

ObamaCare가 들어오면서 조금 더 복잡하게 되기도 했지만 그것도 더 시간이 들지는 않았다. 이렇게 간단한 이유는 딱 한가지.. 우리의 (taxable) Income situation이 최소한으로 간단해졌다는 것.. 좋은 것인지.. 불쌍한 것인지.. 솔직히 우리들도 잘 모른다. 내년은 어떨까.. 아마도 조금은 더 복잡한 situation이 되지 않을까.. major capital spending이 필요하게 될지 모르는.. 그것도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는 듯하니..

 

HarvardX, Einstein Revolution

HarvardX, Einstein Revolution

Einstein 시대적 배경은 뽀앵카레 (프랑스 수학자) 의 지도로 부터 시작된다.

Einstein 시대적 배경은 뽀앵카레 (프랑스 수학자) 의 map으로 부터 시작된다

 

2월 16일은 기다리던 HarvardX  online course, EMC2x @edX,  MOOC1  The Einstein Revolution이 시작되는 날이다. 미리 preview를 보긴 했지만 그래도 호기심 가득한 어린이 같은 심정으로 기대한 것이다. 이 course 는 Einstein의 상대성이론에 관한 것이지만 절대로 이 이론의 science 자체를 다룬 것이 아니고 이 ‘신비에 가까운 혁명적’인 idea의 역사적 의미와 인류사에 미치는 영향을 철학적,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폭 넓게 다루는 course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역사적 배경으로 본 Einstein, 철학적인 시대적 접근은 흔히 접하기 힘든 분야이다. 예전 같으면 이런 ‘심각한 과학적 이론’을 알려면 수학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거의 불가능했었다. 수학을 떠나서 설명을 하면 잘못하면 완전히 ‘신화’같은 결과를 얻기도 했었던 이론이기에, 나도 어렸을 때 상대성 이론에 대한 많은 공상과학적 만화 같은 이야기로 잠을 설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순진하던 시절 이후 인생, 삶의 십자가를 지면서 이런 언뜻 보기에 irrelevant 한 것은 관심에서 사라지고 조금 삶의 십자가가 가벼워질 무렵에 이것은 나의 관심을 다시 받게 되면서 이렇게 ‘쉽게 공부할 수 있는’ format으로 나에게 다가온 것이다.

몇 년 동안 꽤 많은 MOOC course를 ‘청강’했지만 결과는 항상 불만.. 언제나 course schedule을 따르지 못하는.. 내 탓이지만.. 하지만 이번 것은 어떨까? 지금 시작된 사순절의 깊은 의미와 배경은 Quantum Mechanic 과 더불어 이 상대성 이론의 진정한 의미와 혹시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둘 다 infinite (무한)에 도전하는 인간의 도전과 발상이므로 관계가 있음은 자명한 것이 아닐까? 그것이 나의 요새 나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1. Massive Online Open Courses

¶ 장례미사 2월 12일, 금요일에 정말 난데없는 날 벼락 같은 장례미사를 참례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날 벼락일 듯 하다. 레지오에서 낯 익은 얼굴, A 자매님의 조카,  40세가 갓 넘은 ‘건강하게 보이는’ 젊은 형제가 급사를 한 것이다. 밤에 자다가 심장마비.. 와.. 이것이 날벼락이 아닌가? 놀란 것은 그 나이에.. 어떻게.. 알고 보니 평소에 심장에 지병이 있긴 한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나이에 유언도 없이 간다는 사실은.. 무섭지 않은가? 사회적으로 잘 나가던 청년이 혼자 객지에 사는 것, 멋지게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류의 dark side도 있을 것이다.

자랑스럽던 아들을 그렇게 보낸 부모의 심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알고 보니 이 부모님은 2년 전에 우리가 교리반 교사로 있을 때, 통신반 교리로 세례를 받은 분들이었다. 그의 아드님, LA 지역에 있는 큰 은행 지점의 부사장, 40세에.. 그러면 크게 성공한 아들이었다고 보아야 할 텐데.. 얼마나 자랑스러웠을 텐데.. 모든 조문객들 그런 생각 속에 잠겨있었을 것이고 우리도 마찬가지.. 만약 우리 두 딸이 ‘잘 나가는 직위, 직업’으로 $$을 억수로 벌면서 객지에서 ‘건강을 챙기지 못하고’ 살다가.. 이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에 느껴지는 것이다. 무엇이 과연 잘 사는 인생일까? 40세면 별로 인생의 의미를 느낄 나이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먼저 살아가는 우리들이 그것을 일깨워 주어야 할 것인데.. 그러니까, true-north principle을 알면서도 그것을 따라가는, 그것이 쉽지 않구나.

 

¶ 선발식 Cobb Galleria Centre, 2016년 아틀란타 대교구 주관 예비자 선발식이란 것이 열렸다. 2년 전에는 다른 곳에서 한 이 행사에 나는 ‘교리반 교사 도우미‘로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것이 작년부터 집에서 훨씬 가까운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의 예비자 수가 너무나 단출해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들의 꾸준히 신앙을 지킨다면 크게 상관이 없을 듯하다. 미사 중에 파견식을 하고 연숙은 그들과 먼저 성당을 떠나고 나는 꾸리아 월례회의에 단장 없이 참석을 하고 집에 먼저 왔다. 그리고 예비자 선발식이 끝날 무렵에 Cobb Galleria Centre로 가서 연숙을 데리고 왔다. 웃기는 것은.. 그곳을 찾느라 촌놈 행세를 했다는 사실.. 미리 지도를 공부한 것이 우습게 되었다. 한 번도 그곳엘 가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과한 나의 실수.. 또 잊었다.. GPS가 있건 없건 이놈의 동네는 절대로 처음 찾아가는 곳은 장담하지 말라는.. 경험에 의한 교훈을..

 

Ashes-20162월 10일, Ash Wednesday 2016 올해 재의 수요일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예년처럼 Holy Family CC 아침 9시 미사엘 가서 이마 위에 재의 십자가를 받고 왔다. 올해는 느낌이 사람이 예년에 비해서 더 많아진 듯 했다. 느낌인가.. 사실인가.. 무언가 가톨릭 교회의 근래 움직임이 활발해 진 것은 아닐까? 냉담자를 교회로 돌아오게 하려는 대교구의 운동, 물론 바티칸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지만.. 전 같지 않게 나는 이런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내가 변했다는 증거 중에 하나일 것이다.

올해의 40일은 어떻게 보내나.. 매년 생각하는 것들.. coffee를 줄이자.. 잠을 줄이자.. 같은 것은 이제 ‘촌스럽게’만 보인다. 더 깊은 것을 찾고 싶다. 눈에 안 보이는 것, 나의 깊은 속 마음을 들여다 보고 싶고, 더 높은 것으로 바꾸고 싶고.. 어떻게? 2년 전의 사순절, 1년 전의 사순절과 비교하기도 한다. 2년 전.. 다급하지만 무언가 이루어 질 것, 성모님의 손이 나를 꼭 잡았다는 느낌 같은 것.. 결국은 그 해 9월에 모든 일들이 시작되었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들은 사순절에 시작되었다고 봐야 한다. 작년도 마찬가지.. 비록 첫 산은 넘었지만 두 번째의 미지의 산을 기다리던 사순절이었다. 다급한 것은 큰 차이가 없었다. 올해는 어떤가? 성모님의 손에 끌려 (낯 가려운 표현이지만..) 두 번째의 산을 다치지 않고 넘었다. ‘그것’과 ‘저것’ basics들이 정말 그림같이 해결이 된.. 그런 기적의 성탄을 맞게 해 주셨다. 이것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홍해바다를 건넌 심정을 잊으면 안 된다. 올해의 사순절은 이런 배경으로 묵상을 해야 한다. 우리의 앞에 있는 산은 무엇이며, 그것을 맞는 의미와 사명은 무엇인가? 무엇을 하며 ‘그날까지’ 하느님 앞으로 갈 것인가?

Backyard 시야를 가리는 태고의 눈발..눈발..

Backyard 시야를 가리는 태고의 눈발..눈발..

드디어 올 겨울에 와야 할 것이 드디어 두 번째로 아틀란타 지역에 찾아왔다. 지난 몇 년간 이것 때문에 고생한 것은 작은 개인역사에 남게 되었고 은근히 이것을 걱정하게도 되었지만.. 사람 심리는 묘해서.. 이것이 올 때쯤에 실제로 안 오니까.. 조금은 기다리게도 되었다. wintry mix.. ice storm같은 것들은 말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하게 되었어도 제 때에 못 보니까 조금은 섭섭한 것이다. 이것 사실 전형적인 ‘어린이 심리’가 아닐까? 이런 것으로 ‘비상사태’가 와서 내일 아침에 학교에 안 가게 되는 꿈.. 같은 기대감. 학교에 안 가도 되고, 직장에 안 가도 되는… 인생의 황혼기에 이런 것들은 간단히 말해서 깊이 쌓여가는 경험에 의한 향수 같은 것이다.

 

오늘 화요일, 도라빌 소재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레지오 주회합이 있는 날.. ‘죽었다 깨어나도 빠질 수 없는‘ 모임이라 이날의 겨울 날씨는 항상 신경(차의 트렁크에는 비상도구를 가지고 다닌다)이 쓰이는데.. 왜 하필 이날 일기예보가 그렇게 애매한 것일까? 분명히.. wintry mix가 예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stay home하라는 말이 전혀 없으니까. 학교도 그렇고 직장도 그렇고.. Closing이란 말이 전혀 없다. 무언가 wintry mix가 내리는 것이 시간적으로 퇴근 후로 나와서 그럴 것이다.

 

집을 떠날 때부터 눈발이 나리기 시작했고, 우리와 비슷한 거리를 운전을 해야 하는 단원 실비아 자매, 무서워서 못 나오겠다고 연락이 왔지만 나중에 회합이 시작되자마자 ‘용감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우리를 기쁘게 했다. 올해, 오늘의 일기예보는 정확하였고, 우리가 다시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2년 전의 악몽이 서려있는 I-285 West를 달려서 집에 무사히 왔고, 거의 즉시로 다시 눈발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와~~ 이번의 예보 정확하구나.. 시간 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때, 문제가 안 되는 양 정도 내린 셈이다. 집에 goal-in을 하고 푸근한 마음으로 창 밖을 보니.. 아름답게만 보이는 white stuff들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한 때의 폭설에 대한 악몽을 제치고 잠깐이나마 시야를 완전히 가린 하아~얀 눈발은 1950년대 어린 시절, 서울 원서동에서 보던 그런 포근하기만 한 눈발을 다시 보는듯한 착각에 빠진 시간이 되었다.

 

나는 현재의 집 saybrook court에서 오랫동안, 25년 이상, 살면서 비록 나만의 공간, home office, study는 항상 가지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tinkering 용 lab-bench 같은 것은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lab 역할을 하는 것은 그저 아무 곳에나 있는 work space, extra desk, table이 전부였다. 사실 lab역할을 할 만한 bench가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는 것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현재 우리가 사는 집은 so called, traditional house이기에 더욱 그렇다. 모든 것이 ‘전원적, 아늑하고 조그마한’ 느낌을 주는 분위기와 방들.. 그 이후의 유행은 the bigger, the better 가 판을 치면서 지어진 집들은 전체 크기에 상관이 없이 모든 공간이 서로 연결이 되고 트여진 그런 구조가 standard가 되었다. 한마디로 ‘미친 듯이’ monster처럼 커진 공간으로 사람의 존재가 보잘것없게 보일 정도로.. excess of excess가 판을 치던 bubble craze 시대가 도래하고, 내가 그런 부류의 인간이었으면 아마도 그러한 널찍한 공간에 monster workbench를 놓아도 무방했을 듯하다.

poor man's personal electronics work bench

poor man’s personal electronics work bench

 

운명적으로 나는 현재의 ‘작은’ 공간에 만족하는 인간이었고, 현재도 그렇다. full-retirement 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책이 주로 있는 나만의 아늑한 공간에 어떻게 ‘고철이 즐비한’  lab-style 공간을 만들 것인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아주 우연한 순간에 자그마한 lab-style work ‘bench’ idea를 얻었고 ‘순식간’에 만들게 되었다. 우리 부부의 bedroom에 쓰던 옛날 ‘고리짝’ 서랍장 drawer chest와, 이제는 모두 집을 떠나간 아이들이 어렸을 때 쓰던 desk hutch를 다시 recycle한 것이다. 크기가 정확히 도 잘 맞아 떨어지고 현재 나의 home office의 구석에 놓으니 크게 방이 작아 보이지도 않는다.

Basic setup, 시작은 간단했지만 진짜 문제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electronic gadget stuffs junks 를 찾아서 버릴 것은 버리고 ‘남은 여생’에서 쓸 만한 것들을 정리해서 이곳에서 ‘갖고 놀 수 있게’ 만들어 놓는 작업.. 장난이 아니다. 한 달이 훨씬 넘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junk들이 계속 나오니.. 언제나 끝이 날지도 모르고, 언제 ‘본격적’인 joy of tinkering & making 을 할 것인지 미지수지만 솔직히 말해서 너무 크게 ‘즐거움’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남아있는 세월과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오늘 토요일은 그 옛날 어릴 적 느끼던 토요일의 기분과 느낌과 견줄 수 있는 ‘기분 좋고 평화로운’ 그런 날이 되었다. 이번 주말의 schedule로 보면 무언가 stressful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기에 별로 기대를 안 해서 그런가.. 결과적으로 기대치보다 훨씬 낫게 토요일을 마감하게 된 것인데 거기다 잔잔한 평안과 평화로움까지 선물로 받았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백마고지를 점령한 '괴뢰군' Izzie

백마고지를 점령한 ‘괴뢰군’ Izzie

 

우리 집에서 고양이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양양이’로 불렸는데 지난 10년간 우리 집의 양양이는 Izzie라고 불리는 ‘집 고양이’다. 우리 집의 터줏대감 pet dog 은 물론 12살이 지난 수컷 강아지(Dachshund, 덩치가 작아서) Tobey이지만 5년 전부터는 무슨 천생의 연분인지 이 두 마리가 같이 우리와 살게 되었고 현재까지 ‘무사히’ 동거하고 있다.

처음에는 양양이의 천성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완전히 ‘고양이 항상 victim’ 라는 선입견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면 (TobeyIzzie를 공격하는 듯한 장면이 목격되면), 무조건 Tobey만 벌을 받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정은 거꾸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야말로 provoking하는 쪽이 ‘양양이’ 였던 것이고, 아마도 그것이 고양이의 천성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한다.

육체적인 덩치로 보아도 고양이는 개에게 못 당할 듯 보이지만 그것도 아닐지도 모르는 것이, 서있는 위치에 따라서 개가 고양이에게 완전히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반대인 경우도 있지만. 오늘도 Tobey의 보금자리인 나의 office에 쳐들어온 양양이 Izzie, 당당하게 열어 놓았던 창문 틀에 올라가 주인을 농락하는 모습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이런 것이 pet animal 들과 함께 사는 즐거움 중에 하나가 아닐까?

Februar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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