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September 2016

¶   드디어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래~ 전의 유행어) 그 첫 big ‘sudden’ dip이 거의 도둑처럼 밤새 찾아왔다. 거의 20도가 하루아침에 떨어진 것이고, 그것이 거의 3일째 계속되어서, 아침에 거의 3개월 만에 ‘긴 팔’ shirts를  입게 되니 그렇게 기분이 날라갈 것만 같다. ‘긴 팔’ shirts를 가 딱 좋아서가 아니라 그 지긋지긋하던 2016년 여름이 결국은 물러갔다는 그것이 그렇게 기쁜 것이다. ‘긴 팔’을 입으면서 문득 태고 적, 중고등학교 다닐 때, 10월 1일에 하복에서 동복으로 ‘일제히’ 바뀌던 그 때가 생각이 난다. 그러면 당시의 서울의 사계가 이곳 지역과 비슷한 것일까.. 물론 이곳의 평균기온이 높지만 사계가 뚜렷한 것은 거의 비슷하다.

아침 9시 Holy Family CC 평일 미사엘 가니 우리보다 나이가 더 드신 ‘어르신들, 특히 할머님들’은 숫제 ‘오바 overcoat’를 입고 목도리로 단단히 무장을 한 것이 보인다. 체감온도에 따라 각양각색의  이곳의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 의복문화’가 더 뚜렷이 느껴지는 계절이 온 것이다.

Full time으로 돌아가던 에어컨이 갑자기 ‘조용~’ 해 지니 조금은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럴 새가 없다. 분명히 10일~20일 사이에 첫 central heating이 ‘점화’될 것이기에.. 또 crawl-space로 ‘기어들어가’, 거미줄을 헤치고 gas heater pilot- thermocouple을 ‘점화’하는 고역을 치러야 한다. 문제는 이때 문제가 발견되면.. 또 하루 이틀 고생을 할 것이다. 에어컨은 올해의 oppressive, brutal Summer heat를 잘 견디어 내었지만 올 겨울 central heating 특히 아래층 것이 항상 마음이 조린다. 위 층의 heater는 우리가 이사 온 후에 바꾼 것이라 아마도 ok일 것이다. 올해의 더위로 electric bill은 보기가 무섭지만 그것에 비해서 natural gas는 훨씬 ‘저렴’해서 겨울 몇 개월 동안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저 적당히 춥기만, 적당히.. 적당히..

 

¶  2 feral Kittens: 지난 5월 쯤 우리 집 backyard shed에서 태어난 kittens들, 4마리였다. 그 동안 우리 집을 ‘거점’으로 들락날락하더니 결국은 모두 떠나고 kitten 두 마리가 우리 집 뒷마당에 정착을 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엄마와 다른 2마리는 완전히 떠난 셈이다. 하지만 가끔 엄마는 찾아와서 밥만 먹고 떠나곤 한다. 우리가 control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저 그들의 ‘행태’를 관망하며 먹이만 잘 챙기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조그맣던 것들이 잘 먹어서 그런지 꽤 크게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을 보며 이제는 우리 집도 그들에게 정이 들고 있다. 그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먹이를 우리 집 뒤 deck에 놓아주고 하루 두 번씩 먹이를 주며 서로 얼굴을 익히며 사귀고 있는데 지금은 우리를 하나도 겁내지 않고 먹이를 가지고 나가면 발 밑에서 맴돌 정도까지 되었다.

집안에 이미 개 Tobey와 고양이 Izzie가 있지만 이 두 마리는 행동이 100% 자유스러운 feral cats들로써 앞으로 ‘불임수술’을 해야 하는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원하면 언제라도 우리 집을 떠날 수도 있기에 이것은 반드시 우리가 service해야 할 부담이 되었다. 작은 딸 ‘나라니’가 county humane society에서 ‘거의’ 무료로 수술을 해 주는 방법을 찾고 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다.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롱이'와 '다롱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롱이’와 ‘다롱이’

현재까지 이 두 마리를 보면서 생각한다. 이들도 하느님의 생명들이라는 것, 사람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생명들이 아닌가? 최대한 그들도 태어난 의미를 찾아 주어야 하는 것, 우리가 할 수 잇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이름이 필요했는데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던 차에 연숙이 ‘아롱, 다롱‘은 어떠냐고 해서 그렇게 불리고 있다. 분명히 순 한글이름이지만 만약 영어로 쓰면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니 오래 전 고국에서 보았던 불란서 영화의 간판 배우 아랑 드롱 이름이 떠오른다. 우리 집 backyard가 그런대로 넓은 편이니까 아마도 그들은 우리 집만 떠나지 않는다면 Born Free의 사자 lion, Elsa처럼 자유스럽고 먹이 걱정하지 않고 ‘일생’을 사는 그런 삶으로 만들고 싶다. 당장 해야 할 일은 갑자기 떨어진 날씨를 상기하며 겨울을 날 조그만 shelter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  오늘은 일주일 전에 계획했던 것, 우리 집에서 거의 30 마일 떨어져 있는 Duluth, GA 에 있는 St. Monica성당을 방문하는 날이 되었다. 얼마 전 부터 아틀란타 대교구 본당들에는 최근에 성녀 품에 오르신 마더 데레사 성녀 (St. Mother Teresa)를 기념하는 조그만 순회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는 거의 대부분 데레사 성녀의 일대기가 실려있는 기록사진 panels 들이라 다른 source에서 (Internet같은 곳)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본론이 아니고 성녀의 relic (유물)이 함께 전시된다는 사실이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성인들의 relic은 신체의 부분을 포함해서 개인 용품들도 있는데 오늘 이곳에서 우리가 본 것은 성녀 데레사가 입고 있던 sari (파란 색의 사리 옷)의 일부분이었다. 그 색깔은 분명히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이 입고 있던 연한 파란 색, 바로 그 옷의 일부였었다. 한가한 시간이라 사람이 없어서 그랬는지 처음에는 그 relic이 치워져 있어서 사무실에 문의를 해서 특별히 조그만 방에 임시로 보관 된 그 relic을 볼 수가 있었다. 이미 사진전시로 성녀의 일대기를 다 본 이후에 그것을 다시 보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Media를 통해서 이미 잘 알려진 수녀님의 모습과 그 파란 색의 옷, 바로 그것이 수녀님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날 30여 마일을 온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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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1st class relic이 전시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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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 color panels: 성녀의 일대기가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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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Monica 성당 내부

¶  Audrey’s ‘Miracle: 최근 몇 년 동안 거의 가뭄처럼 느껴지는 ‘작은 기적’들, 이제는 잊고 살게 된 이런 ‘가뭄 끝의 단비’ 같은 소식은 우리를 너무나 겸허하고 감사하게 만든다. 큰 딸 새로니를 통해서 알게 된 어린 소녀 오드리 양, 불과 10살 정도의 ‘국민학생’ 5살 부터 소아암으로 투병생활을 한 ‘용감한 여자아이’였다. 본인도 그렇지만 그 가족들의 간병노력은 더욱 대단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쪽이지만 그들이 쏟는 노력은 돈과는 큰 상관이 없이 헌신적인 것이고 특히 그들이 school (Westminster) community를 통해서 보여준 ‘소아암, 희귀병’에 대한 일깨움도 유난했던 것.

Cancer's gone!

Cancer’s gone!

새로니가 맡고 있는 반 학생이기에 그 동안 (거의 1년이 되어가나..) 소식을 전해 듣고 몇 개월 전에는 우리 자비의 모후 레지오 단원들도 기도에 동참을 하였다. 하지만 경과가 ‘아슬아슬’해서 항상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재발을 했던 case에다가, 거의 사경을 헤매던 순간도 있기에 ‘어떤’ 소식이 오면 우선 불안했다. 그러다가 그 순간이 ‘갑자기’ 왔다. 얼마 전 New York city로 치료 차 갔었는데 모든 증상, 병의 징조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소식이었다. NED (No Evidence of Disease) 라고 진단이 나온 것이다. 암 세포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 믿을 수 없는… 그러니까 ‘기적’에 속하지 않을까? 과학적인 배경은 잘 모르지만.. 통계적으로 보아도 ‘거의’ 기적에 속할 듯.. 기도를 계속하고 있었던 우리 레지오 단원 자매님들… 뛸 듯이 감사하고 기뻐하고.. 아마도 눈물까지 흘린 사람도 있었을 듯하다. 나는 우선 그렇게 전구를 청했던 ‘어머니’ Virgin Mother의 얼굴을 떠 올린다. 이 세상은 그렇게 예상대로 ‘굴러가는’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그야말로.. Audrey, congrat!

 

Vivid Virgin's imprint

Vivid Virgin’s imprint

Guadalupe, 과달루페 성모님, Mexico City에 있는 그 성모님 (영상)이 내가 사는 마리에타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물론 그 성모님의 ‘상본’은 나의 main desk옆 벽에도 걸려있어서 커다랗게 잘 보인다. 하지만 이건 완전히 다른 것이다. 지난 7월 초 내가 속한 레지오는 과달루페로 ‘피정’순례를 간 바 있지만 우리는 가지를 못했기에 (lousy timing)  이번의 과달루페 성모님 소식은 참으로 새로운 것이었다. 그런데 조금 웃기는 것은 이번에 우리가 ‘발견’한 성모님은 사실 지난 해 2015년 12월 12일에 나타난 것이라는 사실.. 우리는 무척 늦게 알게 된 것이다. 주위에 물어보니 거의 모두 그 소식을 알고 있는 듯 했다.

 

Transfiguration Catholic Church

Transfiguration Catholic Church

이번의 Guadalupe story는 이렇게 진행이 되었다. 최근 우리와 자주 보게 되는 Holy Family CC near-regular Chris 자매님, 아침 daily mass가 끝나고 coffee break시간에 우연히 우리에게 ‘마리에타 성모님’ 이 찍힌 사진을 보여주었다. 마리에타의 ‘어떤’ 성당 Transfiguration CC(Catholic Church) (The Catholic Church of Transfiguration) 의 ‘창’에 성모님 모습이 보였고 그것은 과달루페 성모님과 비슷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 모습은 video로 찍혔는데 정말 가까이 찍은 것을 보니 아닌 게 아니라 그것은 ‘성모님’의 자태에 분명했다. 언제 이 ‘창문의 성모님’이 나타나셨냐고 물으니 ‘꽤 지나간 일’ 이라고, 아마도 지난 5월 쯤이 아닌가.. 하였다. 집에 와서 부지런히 googling을 해 보며 우리는 놀라기만 했다. 나타난 때가 지난 해 12월 12일.. 그것은 바로 멕시코 과달루페 성모님이 발현하신 바로 그날이었다. 주임신부님이 Facebook에 ‘공표’를 하고 ‘세상’에 이미 알려진 지가 거의 9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우리는 알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창문에 image가 새겨졌다.

바로 이 창문에 image가 새겨졌다.

그러면.. 왜 그 성당에 과달루페 성모님이? 그 성당은 ‘아마도’ Hispanic community가 상당히 있었을 듯 하고 주임신부도 Columbia출신이기에.. 요새 ‘빠가 중의 빠가, 양아치 중의 양아치, Trump의 주둥이 으름장’ 때문에 고생하는’ 그들을 위로하시려 나타나신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It’s not too late, it’s now or never를 되뇌며 우리 (3명)은 이틀 뒤, 오늘 아침 미사 후 McDonald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곧바로 그곳을 찾아갔다.  그 성당이 있는 동네는 사실 typical Hispanic의 인상과는 거리가 있는 깨끗한 전형적인 Northeast Cobb County, middle-class neighborhood, 성당도 우리 Holy Family CC 보다 더 깨끗하고 웅장하였다. 그 문제의 창문은 parish center로 쓰이는 커다란 강당 같은 곳에 있었고 밖에서는 어렴풋이 ‘흑백의 그림자’같은 것만 보였는데, 들어가보니.. 와~~~ ‘총천연색’이 분명한 ‘아직도’ 뚜렷이 과달루페 성모님의 자태가 남아있었다. 나는 살아 생전이 이런 supernatural한 원인으로 남아있는 것을 처음 육안으로 목격하는 셈이 된다. 

 

이번에 나는 매일 묵주기도로 가까운 성모님이 생각보다 우리와 더 가까이 계심을 느끼게 되었다. 비록 메주고리예처럼 살아있는 모습의 발현이 아니더라도 이런 간접적인 ‘계시’라도 그 의미와 목적을 생각하면 깊은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던 ‘깊은 감명’을 숨길 수 없는 뜻있는 하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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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 모습이 새겨진 곳이 가운데 창문이다. 이곳은 multi-purpose parish center 중 제일 큰 ‘강당’ 인 듯하다.

창문 밑에 마련 된 mini shrine, 성모님께 드리는 note들도 있다

창문 밑에 마련 된 mini shrine, 성모님께 드리는 message note들도 있다

¶  SSF phasing out: 순교자 성당 Guitar group, Six-String Friends의  guitar lesson session,  지난 화요일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3주 만에 다시 모였다. 원칙적으로 매달 첫째 셋째 주 두 번 모이는 것인데 9월에는 레지오 단원들이 대부분인 관계로 scheduling 에 문제가 있어서 한 번 겨우 모인 것이다. 9월 초순 경에는 쁘레시디움 별로 친목회를 가지도록 ‘규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날은 regular lesson session이었지만 lesson 대신에 이 모임의 ‘운명’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기약 없이’ 물 흐르듯 정처 없이 가는 것, 아무래도 건강하고 효과적인 lesson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렇게 ‘찬물’을 부은 것이다.

이제까지 7번 정도 모여서 guitar를 ‘열심히’ 배웠지만 나의 원래 예상보다 진도가 거북이걸음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세대적’인 문제인가.. ‘학생 세대’가 아닌 것인가, 이 guitar에 온 energy를 쏟을 수 없는, 모두들 다른 것 하느라 바쁜 것이다. 음악에 대한 절대적 기초가 약한 member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최소한 필요한 노력을 안 하는 것으로 보였다. 또한 실력과 노력이 비슷한 최소 인원의 안정된 core group이 형성되지를 못한 것도 도움이 되지를 않았다.

나의 ‘무리한, 비현실적인 기대’에 문제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구체적이고 가까운 goal이 없이 흐르는 것, 별로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가 내린 것이다. 결론적으로 12월 초에 있는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를 기점으로 일단 phase-out을 하기로 하였다. 이런 결정은 member들에게도 큰 자극이 되리라는 것, 모두들 동의했기에 아마도 나머지 기간에 더욱 열심히 노력하리라 기대를 해 본다.

 

¶  Prognosis, not good: 최근 친구처럼 가깝게 자주 보는 C 자매님의 우울한 뉴스를 접하고 우리는 땅이 꺼지는 기분이 되었다. 최근의 (정밀 신체)검사결과가 그렇게 희망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둘, 이런 소식을 듣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나간 4~5년간 이런 상황을 많이 겪었어도 이런 투병 story는 모두가 case by case다. 하나도 같은 case가 없는 듯한 것이다. 각자 각자가 다 다르고 살아온 인생도 다르고, 본인이 대처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니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근래 가까이 지내던 ‘친구’의 심적 고통, 걱정을 우리의 피부로 안 느낄 수가 없다. 멋진 위로의 말은 못해도 같이 고통에 동참하며 느끼는 것, 그것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중에는 ‘강력한 기도군단’이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것, 바로 그것이다. 가까운 우리의 보호자 duo, 성령님과 그리고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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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주일 2016

¶  오늘은 Catechism, 천주교 교리교육, 교리반, 교리교사 등에 관련이 된 Catechetical Sunday, 한국어로는 교리주일 정도가 될 듯하다. 오늘 주보를 보고 오늘이 바로 교리주일임을 알았다. 2주 만에 우리의 ‘동네 본당’ Holy Family에서 주일 미사 참례를 하였다. 10시 미사에서 낯익은 반가운 얼굴들이 이곳 저곳에 보이고 인사를 나눈다. 세월이 무언지.. 이들 전혀 얼굴, 문화, 나이 다른 교우들, 특히 Irish쪽의 푸른 눈의 수려한 모습의 ‘아줌마, 아저씨, 할머님’들, 어쩌면 그렇게 정이 들었을까? 이름도 성도 잘 모르지만 이웃 친척처럼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잠시 안 보이면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근래 평일미사에서 너무나 자주 만나는 Father Joseph Morris, 예의 극적인 언어로 마이크 필요 없는 우렁찬 목소리가 일요일 아침을 압도한다. 이 신부님은 모습 자체가 liberal 한 분이지만 60을 훨씬 넘는 나이에 그런 성향은 드물지 않을까? 모습자체가 나이에 비해서 훨씬 젊은 이 신부님, 아마도 ’60년대의 아이들 baby boomer‘ 일지도 모른다. 오늘 강론은 생각할 기회를 많이 준 주제다. ‘하느님을 사기 칠 수 있는가?’ 하기야 오늘의 복음말씀(Luke 16:1-13, 루까복음)은 처음에 이해가 전혀 되지를 않았다. ‘사기치는’ 시종이 주인으로부터 ‘사기 쳤다고’ 칭찬을 받는 모습… 신부님 말씀이 이 대목은 성서학자들도 골머리를 썩는다고 했다. 예의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 반대가 되는 이 색다른 논리를 어떻게? 이 liberal한 사제 Joseph의 해석이 뒤따랐는데, 나는 그 뜻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의 제1독서는 Amos예언자가 ‘사기꾼’들을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복음말씀에서는 사기꾼 시종이 칭찬을 받는 내용이 나왔을까? 이것이 신비가 아닐까? 인간의 논리와 하느님의 논리는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 것인가? Joseph신부는 여기 나오는 시종이 예수님이고 주인이 하느님이라고 하는 묵상주제를 제시하였다. 처음에는 너무나 혼란스러웠지만 조금씩 정리가 되는 듯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대조적으로 매일 인터넷으로 받아보는 복음 묵상 글에서 신부 기경호 프란치스코 라는 분은 아예 이 사기치는 행위를 평하기를  ‘하느님의 빚을 받는 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에 슬기롭게 대처하듯이 슬기롭고 민첩하며 능동적으로 주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고 해석을 하고 있다. 분명히 ‘사기치는 것’이 ‘치열하게 세상을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동감이 안 간다. 글쎄요.. 더욱 혼란스럽습니다.

미사가 끝날 무렵 본당의 모든 교리반 staff들(주로 catechist 교사들)이 불려나가서 신부님의 강복을 받았다. 연숙은 현재 한국본당 순교자 성당 교리반 director를 맡고 있어서 느낌이 아주 달랐을 것이다. 어째서 같은 대교구 소속인 이곳에서는 교리반 교사들이 공적으로 강복을 받고 한국 순교자 성당에서는 아예 교리반 주일이란 말조차 없으니.. 일을 맡은 이상 헌신적으로 일하는 그녀지만 가끔 맥 빠지게 하는 일들이 있는 모양이다.  이곳 미사가 끝나자마자 그곳 본당 교리반 때문에 부리나케 혼자 순교자 성당으로 떠난 연숙의 뒷모습이 조금은 쳐져 보인다.

 

¶  오랜 만에 guitar를 손에 잡았다. 아니 3주 만에 case에서 꺼내본 셈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이렇게 몇 주 동안이나 기타 코드를 안 잡았던 것이 처음이었나.. 손가락 끝의 굳은 살이 벌써 얇아졌나.. 어찌나 손가락이 아프던지 불편하고 불쾌하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3주 정도면 암만 굳었던 손끝 살갗도 다시 원상복구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것으로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3주 이상 기타 치는 것을 쉰 적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기억에 이 정도로 손가락이 아팠던 기억이 없으니까..  요새 느낌으로 3주란 것은 시간이란 축에도 끼지 못하는 찰라 같은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나의 육신의 일부인 왼손가락 끝은 짧지 않은 시간을 느낀 것인가?

이 시점에서 지난 3개월 정도 group coaching을 하며 관계를 맺게 된 Six String Friends 기타 동호회를 다시 생각한다. 내가 guitar coaching을 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주었고, 덕분에 오랜 역사를 가진 내 ‘알량한’ guitar ‘실력’을 재점검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7번 정도 lesson과 coaching을 하면서 느낀 것은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의 커다란 차이’ 였다. 나의 현재 기타실력은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남과 비교를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엄청난 세월 동안 그런대로 꾸준히 기타가 나의 옆에 있었다는 사실, 때에 따라 꾸준히 즐겼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시도한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아는 것 가르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렵게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어휴~’ 소리만 나온다. 우선 배우는 사람들의 실력이 각양각색으로 3/4, 4/4 조차 구별할 수가 없는가 하면 4/4 는 숫제 5/4, 6/4로 리듬 감각, tempo감각이 예외적으로 둔한 사람도 있었다.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리 노래’ 실력들에도 각양각색이고.. 50~60대이므로 70/80 style의 곡들에는 큰 무리가 없었지만 문제는 어린 학생들이 아니어서 배우는 과정이 느리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몇 주나 몇 달을 예정하고 시작한 것이 아니고 open end로 ‘무작정’ 진행된다는 사실도 문제로, 그렇게 조급하게 배우려는 자세도 결여가 된 듯 보였다. 그래서 일단 지금이 중간 정도의 단계 mid-term정도로 보고 지금까지의 정도를 더 coaching을 하고 일단 phase out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래야 조금은 조급하게 열심히 노력을 할 듯 보인다.

 

 

2016-09-18-16-22-19-1

¶  Rain Shower, rare sight: 이것이 무엇이냐?: 오늘 아침에 새벽에 일어나서 backyard의 deck로 어둠을 헤치고 맨발로 걸어나가 보니 느낌이 이상했다. 그 동안 완전히 잊고 살았던 그 느낌.. deck 바닥이 질척거리는 것.. 그것은 ‘물’이었다. 마르고 말라 수축을 거듭하던 deck floor가 아마도 놀랐을 것이다. 그것은 ‘잔잔히 내리는’ 이슬비였다. 한마디로 ‘이것이 웬 떡이냐!’ moment가 되었지만 오후에는 숫제 정말 오랜만에 보고 듣게 된 ‘소나기’가 쏟아졌다. 올 여름의 그 모든 더위가 한 순간에 싹~ 사라지는 순간이 되었다.

살인적인 맹더위도 놀랍지만 올해의 여름은 그야말로 double whammy였다. 맹더위에 겹친 가뭄, 아마도 기록을 깼을지도 모를 일이다. 9월 중순이 지나가는 이 시점의 느낌이 ‘이것은 가을이 아니다’ 라는 것.. 올해 이 지역 농작물들 모르긴 몰라도 피해가 컸을 듯 하고 우리 집도 마찬가지.. 연숙의 희망에 찼던 edible garden (victory garden), 정말 수확이 초라하기만 했고 나중에는 거의 포기한 상태.. 지나간 몇 해는 참 Mother Nature가 그렇게 인자롭기만 했는데 어찌 올해는 그렇게 심술궂은 모양을 했을까? Mother (Nature)를 인간들이 너무나 괴롭힌 것에 대한 보복이었을까?

우선 소음덩어리 에어컨 소리가 안 나는 것만도 날라갈 듯한 기분이다. 올해 에어컨 compressor fan을 교체하면서 소음의 강도가 높아져서 언제라도 에어컨이 꺼지는 아침에 손을 보려고 벼르던 것이 이제는 여름이 완전히 가고 있다. 그렇게 잔인하던 올 여름, 혹시 ‘평균기온을 채우려’ 올 겨울은 또 다른 살인적인 추위가 오는 것은 아닐지.. 올 여름의 electric bill은 보기도 무섭지만 그래도 이제는 ‘거의’ 끝이 나고 있음을 느끼기에 오늘 아침의 가랑비는 나에게는 너무나 달콤한 자연의 선물이 되었다.

 

 

¶  동갑내기, 동갑님네: 말만 들어도 가슴이 찌릿해온다. 최근 몇 주일 동안  YouTube로 간간히 즐겨 보아왔던 고국의 80년대 장수 長壽 농촌드라마였던 ‘전원일기 田園日記’의 한 episode에 ‘동갑님네’란 것이 나왔다. 어떨까.. 왜 나의 가슴이 찌릿한 것이었나? 동갑, 동갑이란 말, 요새도 쓰기나 하나.. 우리 때는 참 정겹던 말이었다. 특히 음력으로 계산한 띠 동갑은 더 정이 가는 말이었고 나와 같은 ‘돼지띠 동갑‘은 그 중에서 제일 나를 즐겁게 한다. 나를 이렇게까지 제일 반갑고 즐겁게 하던 이 말 동갑, 이국생활에서 이것은 사치중의 사치스런 말이 되었다. 이것을 별로 크게 신경 안 쓰고 모르는 척하며 하도 오래 살아서 그렇지.. 조그만 이렇게 생각을 하면 너무나 쓸쓸하고 심지어 괴롭기까지 하다.

고국에서 살았으면 동갑내기가 동창을 비롯해서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그렇게까지 동갑내기의 값어치가 높지 않을지도 모른다. 동갑이란 것, 무엇인가.. 같은 해 태어나서 같은 때 학교를 다니고 거의 같은 역사를 산 동류가 아닌가? 그러니까 거의 같은 시대관을 가진 값진 ‘친구’들이 아닐까? 특히 이곳에서는 동갑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 같이 어려워서 아주 가끔 돼지띠 동갑을 찾으면 그렇게 뛸 듯이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것도 근래에 나는 2명을 찾은 경험이 있었고 한 명인 현재도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행운을 맛보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돼지띠는 여성이라서 조금 거리감이 있다. 다른 남자 돼지띠는 나와 큰 인연이 없는지 몇 년 전에 영구 귀국을 해버려서 그 쓸쓸함은 생각보다 컸다. 70을 곧 바라보는 돼지띠 동갑들.. 6.25 민족비극은 직접 겪지 못했지만 그 여파의 피해를 톡톡히 보며 앞만 보고 달렸던 세대… 참 파란만장한 ‘인생 십자가’를 진 세대였다.

nine-eleven-1¶  Nine Eleven 2016, 9/11/2016… 이제는 희미해진 느낌의 이 말들.. 세월은 무섭다. 그런 것이 이렇게 큰 충격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역시 세월의 효과일 것이다. 그저 매년 매년 이 맘 때면 아 2001년이었지.. 한 정도였지만 2011년과 2016년은 조금은 더 의미를 둔다고 할까, 5년, 10년, 15년, 20년.. 이 조금은 더 기념하기가 쉽다. 올해가 바로 15년 전.. 그날이었다.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던 것이..

나에게는 어떠했는가? 그 동안 아이들 모조리 학교 시절을 벗어나 졸업 직장인, 30대로 들어갈 정도로 변했고, 우리는 60대를 거의 지나가는 ‘신 고령’의 세대로 변했다. 나는 corporate USA 인생을 완전히 떠나서 하루 종일 거의 한국말을 쓰는 시대를 맞게 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완전한 retirement, 하지만 거꾸로 사회적으로는 예전에 비해서 훨씬 의미 있고 바쁜 생활이 되었다.

처음 십 년의 암흑의 세월 동안 나의 전부였던 어머님이 먼저 가셨다. Twin Towers의 시커먼 불 연기 속에 pure evil의 얼굴을 뒤로 하고 세상은 무섭게 변하며 나의 암흑은 더욱 어두워지고.. 아마도 이 기간을 나는 나의 암흑시기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그렇게 ‘우연의 연속’만이 아님을 잘 안다. 아니 거의 모든 세상사는 우연보다는 필연의 연속이고 모든 것에 의미가 있음도 너무나 늦게 깨닫게도 되었다. 그것이 지난 15년이 나에게 준 제일 큰 선물이 되었다.

 

2016-09-19-12-32-10

¶  Saving V3000:  작년에 아는 사람으로부터 그가 사업체와 집에서 쓰던 ‘고물’ computer들을 인계 받았다. 꽤 많은 것들.. 거의 모두 2000년대 초 중반의 desktop, laptop  PC들, 그러니까 모두 Windows XP  정도를 무리 없이 돌릴 정도의 것들이다. 하지만 거의 모두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어떤 것은 거의 dead on arrival 인 것도 있었다.  내가 이것을 인계 받은 것은 고칠 것은 고쳐서 가급적 필요한 곳에 donation을 하는 그런 목적도 있었다.

나에게는 이런 일들이 비록 시간은 들더라도 그 자체가 기쁨이다. 폐기품으로 간단히 landfill로 보내는 것이 나는 제일 싫기에 이것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큰 보람이기도 하다. 만약 재수 좋게 완전히 고치게 되면 비록 ‘고물급’이지만 최소한 Microsoft Word 정도만 쓰게 되어도 비영리단체에서는 쓸 수가 있지 않을까?

이 중에 내가 제일 심혈을 기울이고 시간을 많이 들인 것이 2006 쯤 나온 HP Compaq Presario V3000 Notebook 이다. 이것은 dead on arrival (DOA) 로 이미 죽어버린 듯 보인 것이다. 하지만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비교적 작은 screen을 가진 가볍고 예쁘고 삐가번쩍 하게 흠이 하나도 없는 거의 새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2006 년 급의 CPU (~2Ghz) 였지만  Youtube같은 Internet streaming video는 무난히 handle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가지고 씨름을 한 과정은 참 긴 고생길이었다. Hard disk에 문제가 있는 듯한 증상을 보여서 (blue screen 같은) 다른 disk로 Windows XP를 reinstall 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random하게 reset, reboot를 하는 심각한 ‘병’이었다. disk가 문제가 아니라면.. motherboard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얘기는 끝인 것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는 이것이다. motherboard에 이상이 없다면 회생의 가능성은 있지만 얼마나 $$을 들여야 하는가.. 하는 ‘경제적’인 것이다. 가령 문제점을 발견 그것이 hardware part에 있고 그것을 사는데 너무나 $$이 많이 들면 포기해야 할 것이다.

우여곡절, 희비쌍곡선 등을 골고루 거치며 결과적으로 총 $60 정도의 part (RAM, Battery, Hard Disk)의 도움으로 완전한 것으로 탈바꿈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은 분명히 science 중의 science인 ‘명확한’ 일이지만 그것에는 분명히 luck이란 것도 포함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결과는, 멀쩡한 것 쓰레기로 안 버리게 되고 앞으로 2~3년 정도 안심하고 쓸 수 있는 ‘번쩍번쩍’하고 귀여운 laptop notebook PC를 가지게 되었다.

 

¶  Curia Monthly, Hijacked : 9/11, 15주년이 되는 날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레지오 꾸리아 월례회의 때문에 그곳으로 주일미사를 가게 되었다. 한번도 빠진 적이 없었던 이 꾸리아 월례 회의를 나는 지난 달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빠지고 말았다. 나로서는 아주 예외적인 일이어서 사실 나도 기분이 계속 찜찜했던 터였다. 이런 정기모임,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절대로 ‘레지오 군대수칙’을 지키자던 나와 ‘어머니’의 약속이 지난 5년 동안 참 신통하게 효과를 발휘하였는데 이렇게 예외적이나마 깨고 보니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더욱 ‘정신 상태’에 신경을 쓰고 참석을 한 것이다.

9/11, 15주년이라 조금 기분이 쳐진 상태였고, 거의 2달 만에 순교자 성당의 주일미사를 참례를 하게 되어서 모든 것이 생소하게 느껴지고, 조금은 외로운 기분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잇몸까지 반란을 일으켜 나는 사실 집에 빨리 돌아갈 생각이 가득한 터에… 이날의 본론인  꾸리아 월례회의까지 나를 실망시키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이 회의가 hijack이 된 느낌이었다. 9/11의 hijacker들의 괴물 같은 모습과 겹쳐진 이날의 happening은 글자 그대로 happening.. 꾸리아 연례 회계감사보고, 예로 10분 정도 ‘형식적’으로 끝나는 관례를 깨고.. 이번 것은 거의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한 예행연습을 거친 듯.. 3명이 나와서 복음말씀으로 시작해서 묵상말씀이 곁들인 정말 bizarre.. bizarre.. 모든 것이 끝나고 나오면서 나는 이 월례회의, 9/11을 기념하듯 완전히 hijack 된 느낌 밖에 없었고 그저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 car key를 찾기에 바빴다.

 

 

The Beatles – When I’m Sixty-Four

 

휴~ 이제 다 끝이 난 모양이다.  연숙의 생일 ‘먹기’. 1월 달에는 나와 큰 딸, 9월 달엔 엄마와 작은 딸의 생일이 같은 날짜 차이로 있다. 그래서 1월도 조금 바쁘고 9월 달도 마찬가지다. 올해 연숙의 생일은 조금 지나치게 보낸 것은 아닐까? 생일 전날에 Thai restaurant Lemongrass에서 ‘간단히’ 둘이 ‘먹었고’, 생일 날엔 아이들이 와서 Marietta Square에 있는 gourmet hamburger restaurant Stockyard 란 곳에서 ‘무지막지’하게 큰 hamburger와 local microbrewery 산 draft beer sampler로 배가 터지게 먹었고, 마지막으로는 우리 레지오 단원들과 같이 한 생일회식이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그러니까.. 무려 3번 생일축하를 한 셈이다. 조금 지나친 감도 없지 않았으나.. 생각을 해 보니 올해 생일이 육십사세 란 것이 귀에 익은 숫자였다. 내가 4년 전에 1월에 친구 양건주와 나의 생일을 자축한 Beatles classic, When I’m sixty four..  생각이 나는 것이다.  4~5 년 뒤로 나를 따라오는 연숙이 64세라는 것이 조금은 실감이 안 간다. 부모세대의 64세를 생각하며, 손주들이 주렁주렁한 할머니의 모습들.. 암만 봐도 그 때의 그 모습들이 없다. 한 세대가 흐른 시점에서 세대 차를 느끼지만 그것은 모두 ‘겉 모습’에 관한 것 들이다. 아마도 세월에 의한 경험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그 옛날 60년대.. 이 Beatles의 When I’m sixty four를 들었을 당시.. 기억에, 와~ 그 나이까지 살면 어떻게 하나.. 하고 은근히 기분이 쳐지는 느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 부부는 ‘완전히’ 그 magic number를 모두 넘어선 것이다. 참 정직하다, 세월은.. 어김없이 일초 일초..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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