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November 2016

Finally, it came, finally!  이번에는 일기 예보를 하기가 조금은 쉬웠던 모양이다 내가 느끼고 보아도 이번에는 비가 올 듯하였다. 역시 역시 기다리고 기다리던 하늘의 물방울들이 제법 세차게 밤새 창문과 뒤 뜰이 깊고 깊이, 마르고 마른 낙엽들에 사정없이 쏟아졌다. 잠결에 연숙의 ‘비가 온다..’라는 comment를 들었다. 얼마나 기다렸으면.. 하는 탄성이 나의 머리 속에도 맴돌며 편안한 잠을 계속한 밤, 이건 가을비는 가을비인데 아주 늦가을비가 아닌가? ‘가을비 우산 속에’ 같은 감상적 기대감이 거의 희미하게 된 이 시점 가을비의 느낌은 어떤 것인가? 역시… 좋~ 구나, 좋~ 다~..

깊은 가을비가 지난 밤부터 촉촉히 나리는 backyard

괴롭기만 했던 11월의 나날들.. 기억 속으로 넘겨버리고 싶지만 아주 진한 고통의 느낌은 아마도 오래 남을 듯하다. 어두운 밤을 보낸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아마도 지금은 조금 먼 동이 트이는 새벽의 빛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이 ‘복음성가’의 가사가 어쩌면 그렇게 나의 귓전을 맴도는 것인가. 벌써 4년 전이 되었나? 태양처럼 떠오르던 ‘새롭고 신기하던 느낌들’에 도취되어서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에서 어떤 형제님과 악을 쓰며 불렀던 이 복음성가.. 누가 곡을 쓰고 가사를 썼는지.. 참 기가 막힌 노래임을 새삼 느낀다. 그 때의 그 떠오르던 태양의 느낌을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연숙이 ‘고만고만하게’ 기침감기로 고생한 거의 한 달 반 동안 ‘거의’ 쉬었던 YMCA workout이 서서히 다시 시작이 되었다. 연숙은 swimming, 나는 weight lifting을 주로 하는데, 수영은 잘 모르지만 ‘역기’는 조금만 쉬어도 문제가 생긴다. 전에 고통 없이 오르내리던 120 파운드가 지금은 200 파운드로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 알면 된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리라.. 태양은 다시 뜨고, 내일은 오늘과 다른 새로운 날이라는 사실을..

 

Thanksgiving Song – Mary Chapin Carpenter

 

서기, 주후 主後 2016년 11월 24일.. 11월 24일이란 말의 느낌은 확실히 미국의 ‘추수감사절’임을 느끼게 하는 것.. 그렇다. 죽을 때까지 타향일 수밖에 없는 이곳 미국에서 숨을 쉬면 산 세월, 연륜이 결코 만만치 않은 45년에 가까워짐을 실감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착잡 錯雜 한 바로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 비’ 구경 한지가 2달이 가까워 오는,  매일 매일이 화창한 깊고 푸른 하늘의 가을, 기온은 빙점까지 떨어지는 것, 비만 빼고는 지극히 보통, 정상적인 2016년의 가을의 끝 자락에서 지나간 일년을 감사하는 날 ‘추수감사절’, 바로 오늘이다. 며칠 싸늘하던 날씨가 포근하게 바뀌고 굳게 닫혀 있던 창문을 모조리 열고 신선한 공기를 느끼며 오랜 만에 편한 오후를 맞이한다.

 

지난 일주일의 대부분을 조금은 심하게 우울한 기분에 시달리다 timing 좋게 그 수렁에서 빠르게 벗어남을 느낀다. 왜 그런 less-than-mild depression에 빠졌고 왜 재빨리 빠져 나오지 못했나 아직도 ‘분석’ 중이다. 앞으로 이런 푹~ 쳐지는 감정에 다시 빠져도 별 도리 없이 이번처럼 그대로 시간만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정말 싫지만, 아직도 뾰족한 대책을 찾지를 못한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4명 가족이 다 모이지 못해서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만든다. 오직 4명의 식구가 똘똘 뭉쳐 살던 시절들이 이제는 다 지나갔는가? 한 가족의 궁극적인 진화라고는 하지만 쓸쓸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 올해는 작은 딸이 빠졌다. 새로 사귄 boyfriend 의 ‘저택’에 초청을 받았다고 하지만 우리로써는 섭섭한 마음, 많지도 않은 가족인데.. 그래도 남은 3명이 turkey를 제외한 풍성한 음식을 즐겼다.

 

올해는 어떤 Thanks를 give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서 조금 이것이 힘든 것을 보면 아마도 그렇게 spectacular 하게 감사할 것이 없는지.. 하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그것이 절대로 아님을 알게 되었다. 오늘 Thanksgiving day Mass에서 Father Miguel의 강론이 그것을 일깨워 주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지 우리는 모르고 지낸다고..

 

작년에 우리가 받았던 메가톤 급의 ‘은총’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그대로 4식구가 건강한 삶을 살았다는 것, 감사를 드린다. 비록 나이는 더 먹어가지만 나이에 비해서 건강함을 유지했던 덕분에 그런대로 매일 미사, 충실히 참례했던 사실, 장기간 봉성체를 하며 돌보았던 ‘보나’ 자매님을 ‘안전하게’ 하느님 품으로 보낼 수 있었던 때, 우리가 속한 자비의 모후 레지오, 위기를 넘기며 탄탄하게 견디며 현재 아주 건강한 힘으로 활동을 하게 된 사실, 우리의 미국본당에 ‘결혼사제’가 부임을 해서 걱정도 많이 했지만 의외로 좋은 결과를 낳게 된 것, 예산에도 없던 에어컨 고장을 brute-force로 고쳤던 사실, 수십 년간 녹슬었던 나의 guitar 실력을 guitar club에 관여하여 되 살릴 수 있었던 기회, 레지오 전 단원 바울라 자매의 부군 조 이시도르 형제님을 안전하게 하느님 품에 안기게 했던 은총, Atlanta History Center에서 즐겁지 않은 직장생활을 했던 작은 딸 Vonnie, 더 좋은 장래성이 있는 곳으로 옮겨간 사실, Science & Religion 분야 중 최근에 개발된 이론들을 총 망라한 저서와 저자, Father Robert Spitzer를 찾고 알게 된 사실: 별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것들 모두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들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다리고기다리’) 11월 그것도 중순을 지나가는 그야말로 ‘멋져야 할’ 깊어가는 가을, deep November 가 되었다. 하지만, 올 가을의 최고의 놀라움,  big surprise는 ‘가을비 우산 속’ moment가 ‘전혀’ 없었다는 비극적인 사실이다. 최근의 기억 속에 이렇게 ‘맑은 하늘의 연속’은 처음인 듯 하다. 간단히 말해서 ‘지독한 가뭄’인 것이다. 그렇게 가을 비가 잦았던 지난 해들이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숫제 ‘비가 올 때의 느낌’까지 잊어버릴 정도다. 마지막으로 비가 온 것이 그러니까.. 9월 중순 경.. 와.. 2개월 이상 한번도 비는커녕 흐린 날도 별로 없었으니.. 기록적인 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한 여름에 그래도 곧 다가올 ‘가을 비’만 연상해도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고 romantic 한 기분까지 예상을 했었는데.

 

지나간 몇 년간 unthinkable becomes realities.. 경험을 꽤 했고 그런 것을 경험하는 이유 중에는 나의 나이 탓도 있으리라 나를 위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살고 있기에 이런 ‘희귀한 일들’을 경험한다는 것이 조금은 납득이 가지를 않고 조금은 겁이 나는 것을 숨길 수가 없다. Eschatology (종말론) 를 들먹이지 않고 싶지만, 꽤 많은 ‘이성적인 사람들’도 이런 것을 언급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조금 누그러진 기분이 되었지만 Park(GH) & Trump shock는  이 ‘연속적 종말론’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하게 되었다. 이제는 다 끝난 것인가? Impact는 완화되고 있지만 여파는 아마도 아마도 생각보다 오래 갈 것이다. Praying Rosary가 더욱 더 필요한 ‘더러운 세상’을 살고 있는 나, 우리들..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것인지, 지나간 ‘good ole days’가 다 지나가고 있는 것인지..

 

오랜 동안 기침감기로 고생을 하던 연숙, 이제 ‘지독한 기침’은 거의 끝났다고 생각되지만.. 정말 이렇게 오래 가는 것 처음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이 flu shot을 맞으라고 그렇게 보챘지만 우리는 그 shot의 효과를 기본적으로 과신하지 않기에 거절했지만 혹시 그것을 맞았으면 덜 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이럴 때 우연히 ‘재발견’ 한 것, 바로 film noir.. 1940년 후반부터 1950년 후반까지 미국 영화계를 주름잡던 B급 영화들.. 오래 전 누나와 서울에서 AFKN을 통해서 보았던 미국영화들.. 대부분이 이 class에 속한다. 한마디로 극장까지 가서 볼 만한 영화는 아니고, 비 오는 음산한 날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서 ‘조그만 흑백 TV’로 보는 것이 제격인 ‘유치찬란’한 영화들이다. 그것들을 YouTube에서 ‘왕창’ 발견한 것이다. 올해 11월에는 이것들이나 왕창 copy해서 두고두고 볼까나..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든다.

 

반세기만에 다시 찾아 본 ‘영국’ 영화, ‘흑사관의 공포’, 핏빛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무시무시한 기억들..

결국은 찾아내고야 말았다. 아마도 55년 전쯤 ‘오돌오돌 떨며 본  공포 영화’, 당시의 영화 제목, ‘흑사관의 공포 恐怖’, 흑사관의 공포.. 이 ‘외국영화’ 의 영어제목은 Horrors of the Black Museum으로 이번에 기적과 같이 찾고,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흑사관’의 한자어를 모른다. 흑사관.. ‘흑’자와 ‘관’자는 알 듯한데.. ‘사’자의 한자가 오리무중이다. 흑 黑 , 관 館. 하지만 black museum을 흑사관 이라고 했으니까 아마도 사 자는 死, 아니면 事  가 아닐까?

 

어렸을 적, 대강 국민학교, 중학교 시절에 서울에서 본 영화들, 특히 외국영화들.. 참 많았는데 거의 모두 미국에 온 이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70-80년대에는 거의 TV에서, 그 이후 근래에는 video tape,  Youtube의 streaming video 로, 최근에는 재수가 좋으면 download를 해서 computer에 넣어두고 찾아 볼 수도 있게 되었다.

 

인생의 황혼기로 본격적으로 들어가며 stupid nostalgia 때문인지 오래 된 영화일 수록 더욱 잊고 싶지 않게 되었는데, 가끔 분명히 머리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영화의 장면들, 하지만 다시 볼 수가 없었던 것들이 더욱 간절하게 보고 싶어진다. 그 중에 끈질기게 기억이 확실한 영화 2개가 있다. 하나는 ‘흑사관의 공포’, 다른 것은 ‘알제리아 결사대’ 라는 것이다.

 

Internet과 Google의 등장으로 찾기가 불가능 하거나 힘든 것들을 쉽게 찾게 되었지만, 이 두 편의 영화는 나의 눈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문제는, 오래 전에 본 그 영화들의 제목이 한글로 되어있고 그 나마 일본 제목을 그대로 따른 것들, 어떻게 그런 것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까? 영화가 아닌 책의 경우가 그렇다. 중학교 시절 보았던 ’15소년 표류기’라는 것, 일본식 제목인 것 영어로 된 원래의 책을 찾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것, 결국은 찾아 냈지만 그것은 거의 흥신소나 탐정의 일과 비슷한 것이었다.

 

이번에 55년 만에 찾게 된 ‘흑사관의 공포’는 재수가 좋았다. 우연히 찾게 된 것이다. Youtube에서 오래 전 영화 특히 50~60년대 공포영화를 찾는데, ‘black’이란 단어가 나온 것이다. 흑사관 의 흑 자가 black일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았고 그것을 download해서 보니.. 와~~ BINGO! 그 영화의 몇 ‘무시무시한 장면들’ 이 그곳에 고스란히 있었다. 이 영화는 1958~9년 경 영국영화로 밝혀졌으니까 내가 본 것은 아마도 1960년대 초 쯤이었을 것이다. 당시에 외국영화는 거의 미국 Hollywood 산이지만 가끔 이렇게 유럽 영화도 있었다. 당시에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었지만 지금 다시 보니 역시 미국 냄새가 아니고 유럽, 특히 영국의 색갈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이 영화를 확실히 언제, 어느 극장에서 보았는지 애석하게도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1960년 전후에 나온 영화니까 분명히 중앙중학교 시절에 보았을 것인데.. 그 당시는 주로 우미관에서 외화를 보았으니까.. 그곳에서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이 ‘공포영화’를 중학생신분으로 보았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에 ‘공포영화’는 거의 다  ‘학생입장환영’이었으니까..  학생입장불가는 99%가 모두 요새 말하는 ‘성인영화’였다.

 

나의 기억에 남는 세 장면: (1) 여자가 쌍안경을 볼 때 lens에서 못이 나와 눈을 찌르는 ‘끔찍한’ 장면, (2) 사람을 죽인 후에 액체로 가득 찬 통 속에 넣은 후에 해골로 되어 꺼내는 모습, (3) monster로 변한 범인 (주인공 범인의 조수) 이 amusement park의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은 장면.. 그것을 56년 만에 찾아서 다시 본 것이다. 이 영화는 비록 이렇게 끔찍한 것들이 나오지만 일반적인 배경은 ‘깨끗한’ 느낌을 주는 영국의 London 이어서 징그럽거나 불쾌한 그런 인상은 받지 않았다. 그 이후로 Dracula같은 ‘더 무서운’ 영화 때문에 이 영화는 기억에서 거의 사라져 갔지만, 그 이후로 가끔 생각이 나곤 했는데 이번에 기적과 같이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쌍안경에서 튀어나온 굵은 못에 찔린 여자, 끔찍한 느낌이 지금까지 기억 속에..

비명소리가 끝나자 마자 곧바로 쌍안경으로부터 튀어 나온 굵직한 못, 피가 떨어지는 끔찍한 closeup

영화를 본 이후 나를 꿈에서도 괴롭혔던 장면은 이것, 멀쩡했던사람이 몇 분만에 해골로 변한 모습이었다

영화의 climax는 범인의 조수가 monster로 변해서 범인을 고발하며 뛰어 내려 칼로 그를 죽이는 것, amusement park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와 비슷한 case로 ‘알제리아 결사대 決死隊’라는 ‘외국’ 영화가 있었다. 솔직히 외국영화기는 했지만 Hollywood 인지 아니면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군소업자’들이 만든 것인지는 전혀 모른다. 그저 ‘외국인’들이 출연을 했다는 정도다. 아깝게도 이 영화는 ‘아직도’ 찾지를 못했다.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못 찾을 가능성도 있다. 이 영화는 확실히 국민학교, 우미관 시절 때 본 것인데 영화제목도 확실히 알제리아 결사대였고, 이 영화를 본 이후로 이 ‘결사대’들의 모습을 흉내 내며 ‘전쟁놀이’를 미친 듯이 하기도 했다.

 

알제리아 결사대와 비슷한 영화

오래 전에 미국에 왔을 때 혹시 이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며 TV를 밤 늦게까지 보기도 하며 희망을 했지만 비슷한 것은 찾았지만 내가 본 그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비슷한 것은: Gary Cooper가 나오는 Beau Geste란 영화, 알제리아에 파견된 프랑스 외인부대들 이야기인데.. 사하라 사막 한 가운데 홀로 서있는 수비방어 성城 에서 거의 모두 죽을 때까지 싸우지만 단 한 명의 군인이 탈출하는 내용.. 내가 본 ‘알제리아 결사대’와 배경이 비슷하지만 암만 기억을 해도 그것은 아니었다. 이 나이까지 못 찾을 것을 보면 다시 볼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게 느껴진다.

 

내 나이 또래 중에서 나와 같이 추억의 영화를 다시 찾는 ‘동지’들이 있다면.. 혹시 알제리아 결사대 라는 영화를 기억하고 있다면.. 나아가 그 영화의 진짜 원어 제목을 알았다면..  희망에 나에게 알려 줄 수 있다면.. 아~ 내가 또 꿈을 꾸고 있구나… 아~ 그 옛날이여!

인생의 황혼기에 아주 길지 않을 것 같은 이 시간들은 초록빛이 하늘을 덮었던 지나간 시절들에 비해서 일초 일초가 너무나 귀중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과연 이 귀중한 시간을 귀중하게 아끼고 있는 것일까? 어제, 오늘 찬물을 뒤집어 쓴 기분으로 일초 일초의 의미를 되 찾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무슨 깊은 함정에 빠졌다는 기분은 떨칠 수가 없다. 이것도 그저 며칠이 지나면 또 a day in the life가 될 것이지만 그래도 아깝기만 한 일초일초.. 시간은 거침없이 지나간다.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의 기복과 인간관계에 의한 놀라움, 잘잘못을 떠나서 전혀 예측할 수도 없고 방지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함정 중의 함정, 예방책이 그렇게 효과적이 아님으로 사후 대책에 안간힘을 쓰지만, 이것은 최소한의 냉각기 같은 시간이 필요함을, 오랜 인생의 경험에서 체득한 바다. 그저 .. let it be, let it pass, let’s wait and see.. 같은 값싼 말만 되 뇌일 뿐이다. 청명하고 빠삭.. 한 깊은 가을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지나가라.. 지나가라..

 

Sudden death, black day, blow-up day 같은 간단한 단어들이 나의 journal 에 적힐 뿐 다른 활동은 거의 없는 이런 며칠을 어떻게 보낼까.. 이런 지혜는 성경의 어느 구절에 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inspirational books같은 것은 없는 것인가? 결국 며칠 동안 실감하는 것은 이것이다. 인간은 비록 사회적 동물일 수 밖에 없지만 때에 따라서는 절대적으로 고독한 ‘홀로 존재’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결국은 인간은 혼자인 것이다. 그래도 여기에 위로는 있다. 절대로 혼자인 인간은  놀라운 transcendent nature 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오감과 경험에 의한 것들에서 초월한 것들, 감성적이 아닌 이성적인 믿음을 향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결국은 나는 ‘며칠 동안’ 이곳으로 몸과 마음을 의탁하며 Robert Spitzer의 글1을 다시 묵상해 본다.

 

The dark side of life can sometimes be quite daunting, but the love of Christ, prayer, the Church Community, the Holy Spirit, the Holy Eucharist, and the Word of God can bring light into the darkness. This gives rise to a great mystery that most people of faith will well recognize – that challenge oftentimes turns into opportunity, suffering into new viewpoints and ways of life, dejection into strengthened hope, fear into trust in God, weakness into spiritual strength, temptation into strengthened virtue, and confrontation with evil into the triumph of love.

 

  1. Robert Spitzer, S.J., Ph.D. 2016.  God So Loved The World.  San Francisco: Ignatius Press, p. 340
November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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