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August 2017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을 한지 벌써 7년에 가까워 오면서 한번도 퇴단이나 전입 같은 것은 물론이고 제명이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말처럼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7년이란 세월의 횡포는 별수 없이 나도 처음으로 관심을 갖고 자세히 알아보게 되었다.

 

퇴단은 그 동안 많이 보아왔던 것들이고 그것은 물론 ‘자진 퇴단’이었다. 개인적인 사유로 quit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퇴단은 무엇인가? 강제 퇴단도 있었던가? 레지오 교본에서 명시하는 퇴단은 분명히 단장의 직권으로 본인이 원하건 말건 퇴단을 시키는 case였다. 게다가 퇴단을 시킬 때 ‘설명도 필요 없다’고 나와 있다. 조금 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강제 퇴단과 제명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제명.. 이것은 알고 보면 최악의 case가 되는데, 퇴단의 경우 ‘사유가 없어지면’ 다시 입단이 가능한 반면 제명의 case에는 재 입단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교회법의 ‘파문, excommunication’인 셈이다.

 

최근에 일어난 한 단원의 ‘상상을 초월한’ 불미스러운, 해괴한 폭력적 난동사태를 보면서 이것은 어떤 case가 될까 생각을 한다. 현재로는 ‘자진퇴단’으로 처리가 되고 있지만 내 생각에는 이것은 절대로 제명, 파문의 case라고 굳게 믿는다. 그 정도로 그 단원의 죄는 심각한 것이었고 후유증은 아마도 꽤 오래 갈 것이기 때문에 레지오가 입은 피해는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다.

좋은 것이 좋은 것, 심지어는 ‘보복이 무서워서’ 쉬쉬하며 조용히 처리하려는 것, 한마디로 관련 간부들의 직무유기에 가깝다. 다시는 조직 근처에 못 오게 하려면 제명을 하여야 하는데 그 절차는 어떤 것인가? 아무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그런 case, 전례가 거의 없기 때문인가? 레지오 교본에 그 절차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고, 다른 행동지침 같은 곳에도 없다. 아마도 정부관리의 탄핵 같은 절차가 아닐까? 그만큼 심각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한다.. 이 문제의 단원을 제명시키려는 case를 만들려면 어떤 ‘자원 resources’이 필요한가? 나의 결심을 점점 굳어지고 있다. 이 탄핵, 제명 case를 내가 한번 시도해 보겠다는 생각이다. 절대로 이 case는 쉬쉬하며 덮어둘 것이 아님을 성모님께 맹세하고 싶기 때문이다.

 

서울 ‘무염시태’ Senatus의 website에 다음과 같은 ‘강제’ 퇴단, 제명에 관한 규정이 있고 아마도 그것이 case를 만드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제명의 사유는 내 생각에: 제명대상 3번과 5번일 듯하다.

 

 

퇴단:

  1. 쁘레시디움 단장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다른 간부들과 의논하여 단원을 퇴단 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그러나 그와 같은 자신의 결정에 대하여 쁘레시디움에 설명할 필요는 없다. (교본 138쪽)

이 말은 쁘레시디움에 피해를 끼치는 단원의 거취를 결정하는 단장의 권한이 그만큼 확실하게 유효함을 드러내는 말로 이해해야 하며 결코 단장 독단으로 쁘레시디움을 이끌어 가라는 가르침은 아니다.

 

  1. 퇴단의 경우에는, 퇴단의 사유가 소멸되고 본인이 원할 때 다시 입단할 수 있다. 다만, 3개월의 수련 기간과 선서 과정은 반드시 다시 거쳐야 한다.

 

제명:

  1. 단원 제명의 결정권은 쁘레시디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꾸리아(직속 상급 평의회)에 있다. 제명된 단원은 레지오 단원으로서의 모든 자격을 잃게 되며, 차후 어떠한 경우라도 레지오에 다시 입단할 수 없다. 그러므로 꾸리아(직속 상급 평의회) 단장은 제명 결정을 내릴 때 다른 간부들과의 사전 협의는 물론, 반드시 영적 지도자와 의논하여 결정을 내려야 한다.

 

  1. 일단 제명을 통보 받은 단원은 해당 꾸리아(직속 상급 평의회) 바로 위의 상급 평의회에 제소할 수 있으며, 그 상급 평의회의 결정은 최종적인 것이 된다.(교본 138쪽)

 

 

제명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1. 레지오 조직을 분열시키는 단원
  2. 개인적인 목적을 위하여 레지오 조직을 이용하는 단원(선거 운동이나 상행위에 단원들을 이용하거나 단원들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
  3. 레지오 조직에 상처를 입히는 단원
  4. 교본에 명시된 규율·규칙을 존중하지 않고, 편의대로 변칙 운영을 일삼는 단원
  5.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동료 단원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과도하게 표출하는 단원(이러한 사람은 다른 훌륭한 단원들이 레지오를 떠나게 만든다.)
  6. 조직이나 동료 단원에게 의도적으로 금전상의 손해를 끼친 단원

 

A dark day afternoon.. 대신, dog day afternoon 으로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탄식이 나오는 날의 오후가 되었다. 물은 이미 엎질러진 것이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훨씬 넘어선 것을 보며 7년에 가까운 짧지 않았던 세월을 회상한다.

 

이런 꼴 다시 보지 않으려면 떠나자, 떠나자.. 란 말만 나온다. 어제는 한 마디로 darkest day 였다. Solar eclipse도 아닌 날에 태양이 사라진 것이다. 며칠 전까지 존댓말을 쓰던 ‘불쌍한 영혼’ 한 레지오 단원이, 식당 회식자리에서 ‘청천벽력’ 으로 단장 (a.k.a my wife)에게 반말로  삿대질을 하며 큰 소리로 각종 욕설을 퍼붓는 광경에 나는 외계인처럼 한 마디 말도 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불과 몇 분도 안 되는 시간이 수십 년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그 당시 나에게는 어떤 option이 있는가? 별로 많지 않았다. 식당에서 많은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같이 맞서서 싸우는 것은 나에게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왜냐하면 갑자기 monster로 돌변한 이 ‘인간’은 이미 상식적, 통상적인 차원을 훨씬 넘어 섰기 때문이었다. 비이성적이고 미친 듯한 인간을 대하는 방법은 그런 상황을 빨리 피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나의 머리 속은 sick & tired, sick & tired, sick & tired of …’Legion of Mary’  로 가득 차고, 서서히 demonic rage가 나의 머리를 사로 잡았다. 이제는 내가 demon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사로잡은 demon은 나도 겁이 날 만한 무서운 욕설로 그 인간을 괴롭히고 있었다. 지옥의 끝까지 쫓아가리라.. 그리고, Nuclear Option이란  생각까지 다다르자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이것은 분명히 생시였다. 일어난 일, 엎질러진 물, 다시 되돌일 수, 담을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처음으로 Love to Hate (a human being) 란 말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아주 오랜만에 겪는 darkest day를 나는 지금 맞고 있는 것이다. 이때, 평소 나를 인자하신 눈으로 내려보시던 성모님의 존재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떠난 것인가?

 

 

일주일 여의 준비 끝에 지난 8월 17일에 시작된 This Old House의 2층 flooring renovation job 중에서 guest room 2개의 flooring & trimming job이 비오 듯 등으로 쏟아지는 땀 내음 속에 끝을 맺었다. 비록 ‘작은 방’에 속하지만 closet과 closet furniture (cloth hanger & chest)까지 포함되고 아주 복잡한 door jam 주변의 cutting geometry는 한마디로 굳어져가는 나의 머리가 마비될 정도였다. 육체적인 노동의 정도도 만만치 않았다. 무릎으로 기어 다니고, 수시로 plank cutting을 해야 하는 단조로움까지 골고루 ‘괴롭히는’ 것들과 싸우고 나면 한마디로 ‘녹초’가 된다. 이 나이에 이것과 싸우는 것,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을 많이 쓰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불쌍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나이 70에 가까운 몸으로 이런 simple labor를 한다는 것, 하지만 나는 너무나 자랑스럽다. 나는 아직도 건재하다는 의미이고 우리 집의 value는 그만큼 올라간 것.. 왜 이것이 그렇게 힘들다고만 할 것인가?

 

Old carpet 대신에 반짝반짝 ‘딱딱한’ 바닥의 느낌은 사실은 mixed feeling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2층은 조금 안락한 느낌이 필요한데, 비록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은 주지만 carpet의 포근함은 완전히 사라졌다. 문제는 오래된 carpet의 지저분함 또한 장난이 아니었기에 비록 area rug을 사더라도 hardwood flooring으로 간 것이다.

Carpet에 오랫동안 적응되었던 우리 집 pet, 특히 Torbey의 얼굴을 보니 괴롭고 신경질적인 모습이다. 재빨리 뛰어 갈 수가 없고 자꾸만 미끄러지니..  미안해 Tobey… 시간이 약이란다.

 

2층 floor를 모조리 바꾸려면 아마도 2~3주가 더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 때가 되면 가을바람이 솔솔 불 것이고, 일하는 것, 지금같이 땀으로 목욕하는 괴로움은  덜 할 듯 하다. 게다가 끝나고 나면 ‘완전히 변한 느낌’을 주는 방들은 우리에게 가을 같은 신선함을 주지 않을까?

 


AFTER

I’M SO SORRY, TOBEY…


BEFORE

2017년 8월 15일, 나를 낳아준 조국 대한민국은 치욕적인 36년간의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날, 광복절이지만 오늘 나에게는 다른 의미로 ‘빛을 다시 보는’ 그런 날이 되었다. 33일 간의 ‘성모 마리아께 봉헌’하는 여정이 끝나고 그 봉헌식이 오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정오 미사 중에 있었고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작년 이맘때에도 나는 그 더웠던 삼복더위 중에 33일간의 긴 여정과 함께 했지만, 33일에서 3일 모자란 30일째 포기하는 불상사를 겪었다. 물론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믿는다. 무언가 나를 유혹한 것임을 알기에 올해 광복절을 향한 여정은 각별히 신경을 쓰고 조심을 하였다.  하지만 거짓말같이 올해도 3일 정도를 앞두고 다른 형태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지만 결사적으로 나는 빠져 나왔다. 이것은 아주 감미로운 경험이 되었다.

작년에 경험했던 것을 journal로 남겼기에 나는 그것을 기억하며 다시 journal을 남겨 두어서 이곳에 남기기로 하였다. 아직은 기억이 생생한 편이지만 아마도 수년 후에 다시 보면 감회가 새롭고 내가 그 동안 어떤 변화를 했는지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록이 되리라 믿는다.

 

나에게는 금메달 같이 소중한 스카풀라와 봉헌초


매일 드리는 기도문

 

성령송가

 

오소서 성령님, 당신의 빛살을 하늘에서 내리소서.

가난한 아버지, 은총의 주님 오시어 마음에 빛을 주소서.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 생기 돋워주소서.

일할 때에 휴식을, 무더울 바람을, 슬플 때에 위로를.

지복 빛이시여, 우리 깊은 곳을 가득히 채우소서.

주님 도움 없으면 우리 모든 이로운 없으리.

허물을 씻어주고 마른 주시고 병든 고치소서.

굳은 풀어주고 마음 데우시고 바른길 이끄소서.

성령님을 믿으며 의지하는 이에게 칠은 베푸소서.

공덕을 쌓게 하고 구원의 문을 넘어 영복을 얻게 하소서.

 

 

 

 

묵상 기도

 

죄에 물듦이 없으신 성령의 짝이 시요, 예수님의 어머니시며

저의 어머니 시요, 주인이시며, 모후이신 마리아님,

저를 온전히 당신께 드리며

당신을 통해 예수님께 온전히 속하여 있기를 원하오니

성령으로부터 제게 영광과 힘을 간구하여 주시고

세속 정신으로부터 저를 깨끗하게 해주소서.

오소서, 성령님!

저의 마음을 당신으로 채워주시고

안에 세속적인 정신을 없애주소서.


아멘.

 

 

 

바다의

 

바다의 별이요, 하느님의 어머니시여

평생 동정이시며, 하늘의 문이시여, 하례하나이다.

죄인의 사슬 풀고, 선을 구해주소서.

기묘하신 동정녀요, 가장 양선 하신 이여.

저희를 죄에서 구해, 착하고 조찰케 하소서.

하느님 아버지께 찬양과

그리스도께 영광과

삼위이신 성령께 같은 존경 있어 지이다.

 

 

33일 매일 실천 사항

 

  1. 하느님과 성모님의 현존을 의식하면서 그날의 주어진 내용들을 주의 깊게 읽고 그날의 주제에 따라 묵상하도록 한다.
  2. 그날의 주제에 따른 자기 성찰을 철저히 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덕을 닦도록 노력하고 하느님의 도움을 청한다.
  3. 해당 주간에 매일 드릴 기도 중 ‘성령송가’와 ‘바다의 별’을 제외하고는 매일 드리지 않아도 된다.
  4. 대죄는 물론이고 아무리 사소한 잘못이라도 범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한다.
  5. 될 수 있는 한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영성체를 하도록 한다.
  6. 묵주기도를 매일 바친다.
  7. 적어도 하루에 1시간은 이 봉헌 준비에 할애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아침에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거나 텔레비전 등을 보는 시간을 줄이고 봉헌 준비에 필요한 기도와 묵상시간을 마련하는 확고한 결심을 해야 한다.
  8. 그날의 묵상 내용이나 성찰한 것들과 결심사항 등을 노트에 옮겨 적는 습관을 들이도록 한다.
  9. 자신의 영성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끊고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도록 노력한다 (TV를 비롯한 매스미디어의 절제, 흡연과 음주의 절제,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장소의 출입을 삼가 함).

 

 


 

2017년 7월 12일 저녁, 이것이 나에게 조용히 하루 전에 다가왔다. 우연 반, 필연 반.. 왜 성모님은 나에게 이것을 권하시는 것일까? 왜 이곳으로 부르시는 것일까? 성모님, 저는 이미 이 길이 하느님께 가는 최선의 방법이란 것을 배웠고 실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봉헌을 하게 되면 2번째 봉헌갱신을 하게 된다. 작년 같은 때에 시도한 것, 정말 순조로웠지만 기가 막히게도 마지막 3일을 남기고 포기를 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지금 기억을 하려고 해도 자세한 상황이 가물거린다.. 나의 자제력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사실 후회도 안 했던 기억까지 나니.. 성모님, 무슨 악이 나를 덮쳤습니까?

 

올해는 사실 별로 큰 생각을 안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이것을 해야겠다, 아니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다시 봉헌을 위한 노력을 하면 또 다른 진리를 찾을 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도 생긴다. 귀찮은 생각이 없을 리는 없지만 그래.. 이번 2017년 복더위를 이 루도비코 ‘마리아’ 성인이 찾아낸 마리아의 진리를 찾으며 이겨보자!

 

 

 


 

첫째 시기 12일: 세속 정신을 끊음

 

 

첫 12일 동안 자신 안에 있는 세속 정신을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 매일 매일 자신을 성찰하고, 세속에 대한 인식을 구하고, 세속을 지겨워 하며, 자기부정, 가난을 사랑, 침묵, 은둔, 겸손, 순결, 정직, 절제, 순명의 을 실천하도록 노력한다.

 

 

 


제 1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당신 제자로 부르심

2017년 7월 13일 (목요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가장 완전하고 빠른 길은 성모님에게 우리가 온전히 봉헌되는 것이다.

 

 

독서: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마태 16, 24)

 

  1.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제자?

예수를 따르는 누구나 를 당신의 제자라고 부른다면, 나도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십자가의 신비를 깨달아야..

용기와 결단성 있는 영웅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모든 일을 참아 받기로 결심한 사람..

이러한 결심이 없는 사람은 십자가의 벗 가운데 있을 자격이 없다

 

  1. 자기를 버리고

 

가난과 십자가의 굴욕과 고통만을 영광으로 여기고 자신을 끊어 버려야 한다.

교만, 지식과 재능, 위대한 철인, 자유사상가 모두 멀리해야 한다

거만한 신심가나 세속주의자, 모두 쫓아내야 한다.

 

 

  1. 십자가를 지고

 

나 만에게 맞추어진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

나만의 십자가에서

무게는: 매일 겪어야 하는 물질적 손해, 굴욕, 고통, 질병 정신적 고통 등이다.

길이는 중상모략에 시달리고, 병으로 눕고, 동냥할 처지가 되고 유혹과 냉담과 마음의 권태, 정신적 고통으로 신음하는 나날의 연속.

넓이는: 친구들, 가족들, 친척들로부터 받는 냉대와 괴로움.

깊이는: 주님이 주신, 누구에게도 위로를 받을 수 없는 내적 괴로움.

 

  1. 따라야 한다.”

 

십자가를 지고 그것을 정복자의 무기와 왕의 지팡이로 삼아야 한다.

십자가를 지는 것 보다 더 필수적이고 유익하면서도 감미로운 것이 없고 영광스러운 것이 없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 (요한 8, 12)

그리스도의 생활과 행실을 본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힘쓸 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묵상함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충분히 알아듣고 맛들이고자 하는 사람은 그 일생을 그리스도와 맞추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묵상과 생활실천:

 

나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고통을 따르라는 첫 날의 주제는 사실 매력적인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영광을 위한 현세의 고통, 하지만 현재도 중요하지 않을까? 세상 것을 미워하라는 말을 해석하는 것, 나는 아직도 거부감이 드는 것, 부정할 수가 없다. 세속적인 것을 전부 버리라는 것도 그렇다. 그만큼 나는 세속적이기에 그런 충격적인 느낌을 받는 것일까?

아하! 이 고통이란 바로 세속적인, 쾌락적인, 달콤한 것들을 멀리하는 데에서 오는 고통일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고통이다. 세상사 만이 고통이 아니다. 이것이 고통이다. 아니 고통처럼 보이고 느껴지는 것이다.

나를 조금이라도 세속적인 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실질적인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현재 하고 있는 일상적인 신심활동 이외에 더 활동을 늘리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대로 친교를 이루거나, 여흥을 하거나 놀러 다니거나 (그런 것이 거의 없는 우리들은?) 하는 것들을 더 줄이라는 것인가? 예수님, 성모님, 과연 무엇입니까?

 

 

 


제 2일, 양 진영

2017년 7월 14일 (금요일)

 

그리스도의 진영, 선 善 과 루치펠의 진영, 악 惡 중에서 나는 어느 진영에 서있는가?

 

 

독서:

 

구원의 문은 좁고 들어가려는 사람은 많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우리의 적은 권세, 세력의 악신들, 암흑세계의 지배자들, 하늘의 악령 들이다. 이에 진리와 정의로 무장, 복음과 믿음의 방패를 잡고, 성령의 칼을 쥐어야 하며, 언제나 기도하며 하느님의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편과 세상의 편:

나의 잔치, 천국의 월계관, 에 자리를 같이 하겠다는 벗들은 많으나 내 십자가, 고통과 굴욕, 와 함께 하겠다는 벗은 적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은 순수하여야 하며, 한번도 위안을 못 받는다고 하여도 항상 예수님을 찬미하고 항상 감사하여라.

 

 

묵상과 생활실천:

 

선과 악의 세계, 분명히 알고, 보이고 존재하는 것들.. 이런 이원론적인 생각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그 중간은 없나? 9/11 직후 Bush의 경고: Either You’re with us or against us.. 이 말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는데..

오늘도 오늘의 말씀들도 어제의 것들과 거의 같은 것인가. 쾌락적, 육감적 같은 세속적인 것들을 피하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영생의 길인 것인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면 충족한 것인가? 분위기에 휩쓸려 감상에 젖고 그것을 즐기는 것도 세속적인 것인가?

하느님의 현존을 믿고, 말씀을 믿으며 실천하고, 영생의 희망 속에 살아가는 것, 나는 이제 조금은 자신이 있다. 과학적이거나 철학적이거나 나는 모두 믿으며 아니.. 믿고 싶다. 1%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나는 하느님의 ‘물리적 현존’ 과 역사적, 신학적인 예수님의 존재를 믿으며 믿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나를 세속적인 인간으로부터 믿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 나의 최후의 노력인 것이다.

 

 


제 3일, 결단

2017년 7월 15일 (토요일)

Read the rest of this entry »

August 2017
M T W T F S S
« Jul   Sep »
 123456
78910111213
14151617181920
21222324252627
28293031  
Categories
Arch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