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Monthly Archives: February 2018

¶  싸늘한 2월의 마지막 날:  28일이 되었고, 결국은 2018년 2월도 서서히 저물어간다. 을씨년스럽게 싸늘한 가랑비가 하루 종일 오락가락 하던 날, 지난 며칠 동안은 이른 봄의 기분을 한껏 느끼게 해 주더니 ‘아직 진정한 봄이 온 것이 아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라고 mother nature 는 일깨워 준다. 그래도, 그 동안 ‘갑자기’ 주위가 봄소식을 알리는 각종 식물들의 색깔로 채워져 가고 있었는데, 얼어 붓는 추위가 없는 한 그것들은 우리 둘에게 즐거운 화제가 될 것이고,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할 것이다.

얼마 전 이마위로 ‘재의 십자가’가 그어졌던 Ash Wednesday가 어느새  2주 전으로 멀어지고 있는가? 왜 이렇게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는가? 지나간 2주 간의 사순절은 나에게 어떤 시간들이었는가? 새로 태어나는 삶을 향한 어렵고 고통스러워야 할 ‘광야의 40일’ 간의 시간을 나는 과연 올바르게 보내고 있는가? 나의 daily journal을 살펴보면 별로 큰 변화가 없는 비교적 ‘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듯… 싫다, 그런 나날들.. 하루하루 새로운 하루를 보내고 싶다.

 

¶  Cramming… 오래 전 학교에 다닐 때 심심치 않게 겪었던 습관들, 그야말로 ‘당일치기’ 비슷한 것.. 학교를 떠나며 이런 괴로운 ‘시험 보는 것과 당일치기’ 가 없어지는 줄로 알고 쾌재를 불렀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학교시험과 비슷한 인생시험의 연속, 그곳에도 당일치기가 수없이 많았다. 당일치기 cramming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동시에 괴로운 것이다.

요사이 나는 잊고 살던 ‘당일치기’를 하고 있다. 2월 초에 우연히 찾아간 Coursera, 그곳에 나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피난처’를 찾았고 곧 ‘공부’가 시작 되었지만… 역시 제대로 매일의 study schedule을 따르지 않았기에 밀리기 시작하고, 오랜 만에 당일치기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A Stanford online course,  ‘Understanding Einstein: The Special Theory of Relativity‘ 였다. 두 달 정도 (8주) 계속되는 ‘미적분 이상의 수학이 필요 없는 특수 상대성 이론’, 목표는 다음과 같다.

Our goal will be to go behind the myth-making and beyond the popularized presentations of relativity in order to gain a deeper understanding of both Einstein the person and the concepts, predictions, and strange paradoxes of his theory.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 [미적분 이전의]이 필요한 이 course, 처음으로 특수상대성이론의 ‘배경, 구조, 그리고 의미’를 파악하게 되었다. 일 평생 거의 ‘만화, 상상과학 수준’ 정도의 매력에 빠지곤 했지만 (4차원의 신비), 이번에 그것의 ‘실체’를 접하게 된 것이다. 몇 년 전 Harvard online course에서는 수학을 거의 쓰지 않았기에 편하기는 했지만 사실 특수 상대성 이론의 ‘실체’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Stanford대학의  top-class Instructor Dr. Lagerstrom, 지나친 전문학술용어를 최대한 간결하게 사용하며,  ‘피부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이론’으로 서서히 우리를 인도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어려운’ 과학이론을 가르치는 모범 case가 아닐까 나는 계속 놀라며 박수를 친다.

 

 

이 course를 통해서 내가 얻으려는 것은, 요사이 절제 없이 좁아진 인간관계를 보는 관점으로부터 벗어나, 내가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닌 것이라는 ‘실체적 진리’, 바로 그것이다.

 

¶  레지오 간부교육:  지난 주말에 도라빌 순교자 성당, KMCC 꾸리아 주관 레지오 간부교육이 있었다. 내가 레지오 간부[서기]가 된 것이 2012년 정도였으니 이제는 꽤 익숙한 경험이다. 모든 신심단체는 그런대로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사람들로 특정한 신심 조직에 대해서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것은 기본일 것이지만, 실제로 그런가? 물론 그것은 거의 이상에 불과하다.

그 동안 간부를 맡으며 지내온 동안 계속 느끼는 것은 나도 정말 부족하지만 어떻게 저런 자세로 단원 선서를 했을까.. 하는 놀라움이다. (성모님께 바치는) 선서란 것이 그렇게 형식적이었던 것일까? 실제로 하는 활동의 양도 중요하지만 단원으로써의 자세는 더욱 중요한데.. 암만 레지오 조직의 rule에 대해서 열을 올리며 토의를 해도, 왜 우리가 이런 것을 하고 있는지는 거의 잊고 사는 듯 하다.

 

레지오 간부교육 전 기도와 미사봉헌

 

기도와 활동이 균형적으로 적절히 강조되는 것에 대해서 레지오 간부들 조차 ‘해괴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왜 (묵주)기도하는 것을 발표를 하느냐.. (뛰는)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못해서 아예 레지오 교본을 완전히 잊고 열을 올리니.. 그런 사람들은 아마도 사회봉사단체인 ‘한인봉사센터’에 가지 왜 레지오에 들어와 고생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미국 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주임신부 Fr. Miguel이 제일 강조하는 것이 바로: 기도하지 않는 봉사활동의 허구성인데 바로 이런 꼴을 이곳에서 목격을 하니.. 이런 교본적인 것에 대한 교육이 거의 없는 곳, 이제는 거의 “무명무실 무감한 님‘의  노래 가사가 떠오르게 되었다.

 

¶  Cursing! 마귀 성토 聲討:   아녜스 자매님 부부와 오랜 만에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한때 자주 보며 지냈던 이 부부, 이즈음 들어서 자주 못 보았기에 아주 반가운 모임이 되었다. 아녜스 자매님은 레지오를 통해서도 알았지만 형제님은  몇 년 전 내가 교리반 staff으로 있을 때 교리 공부하고 세례를 받았던 인연이 있었다. 하지만 자매님이 레지오를 떠나면서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근래에 어떤 ‘성당 마귀’에게 잘못 걸려 지독히 고생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동병상련 同病相憐’ 의 심정으로 이날 ‘마귀성토’를 속 시원히 하게 되었다.

예전에 우리 눈에 별로 안 띄던 ‘진짜 여자 마귀’들의 존재를 실제로 ‘당하고, 보고, 듣고’ 하면서… 이 세상은 역시 ‘불완전한, 악이 상존하는’ 그런 곳임을 절감하게 된다. 우리가 겪었던 ‘레지오 미친년 마귀’나 이 자매님이 겪었던 다른 ‘마귀’나 근본적으로 같은 부류의 불쌍한 인간들임을 실감할 때, 분노 이전에 슬픈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이 두 case모두 진정한 용서는 out of question이다. 하지만 형식적, 휴전적인 용서는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한마디로 그것은 tall order…. 힘들겠지만 그저 잊고 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  등대회, Computer/Tech Talks: 매달 마지막 주일에 모이는 60+대 성당친교단체 등대회, 이곳에 참석한 것이 이제 몇 달째가 되어가나.. 지난 해 9월 무렵에 가입을 했지만 아직도 나는 ‘신입’에 속하는 느낌을 금할 수가 없다. Regular 들(자주 참석하는) 대부분은 이제야 조금 익숙해진 듯하지만 ‘안 보이는’ 사람들은 내가 알 길이 없다. 이 모임의 성격은 알듯 하기도 하고 확실치 않을 때도 없지 않다. 100% 친교? 그러면 교회 밖의 모임과는 무엇이 다른가? 설립목적, 아니면 mission statement같은 것을 본 적이 없지만 보통의 생각으로도 몇 가지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할 ‘사명과 목적’은 있을 것인데.. 그 중에 ‘간단한 봉사’ 같은 것도 있음직도 해서 어렵사리 제안을 했지만 ‘그런 것 이곳에서는 안 맞는다’ 라는 여론이다.

그러면 다음은 무엇인가? 성당 공동체 다음으로 모든 회원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서로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누자는 idea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무엇을 할 지는 문제일 것이다. 예전에 보험, 의학 정보 presentation  같은 것이 있었다고 해서 그렇게 ‘배우는 program’ 을 계속하자는 idea가 나왔고 스테파노 형제가 일반적인 computer technology 에 대한 것을 나에게 제안을 해서… 큰 생각 없이 ok 를 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이것도 생각만큼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Computer technology라면 덩치가 너무나 큰 것이라 접근하기에 따라 무척 복잡한 것 아닌가? 한 달이라는 시간은 있지만 아무래도 다음 달 말이면 ‘성주간’인데… 약간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해 보자!’, Don’t think twice, it’s alright!

 

¶  Home Wi-Fi Infra Upgrade, Finally!

 

TP-Link AC1200 Wireless Wi-Fi Access Point – Supports 802.3AF PoE, Dual Band, 802.11AC, Ceiling Mount, 2×2 MIMO Technology (EAP225)

1200Mbps Wireless USB Wifi Adapter, FayTun USB Wifi Adapter,
AC1200 Dual Band 2.4GHz/300Mbps+5GHz/867Mbps,
802.11 ac/a/b/g/n High Gain Antenna

Wi-Fi, 아마도 이 말은 반세기전 home audio system의 표준이었던 HiFi (High Fidelity) audio  에서 유래되었을 듯 하다. 이제 이 말은 wireless Ethernet standard로서 ‘wired Ethernet’ 의 extension을 뜻하게 되었다. 처음  device들이 나왔을 때는 사실 거의 실용 불가능에 가까운, 느리고 연결이 끊어지곤 하던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임시’로나 쓸 수 있을 정도였다.

벽 속으로 Ethernet wire (CAT5,6 cabling)를 설치하는 것, 아마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괴로운 작업일 것이지만 우리 집은 1990년대 말에 이미 coax cabling (before CAT5 cabling standard)을 설치해서 쓰고 있었고 나중에는 모두 CAT5/6 로 바꾸었다. 그러니까 3000 sf (square feet)크기의 우리 집은 아래 위층에 있는 desktop computer들이 모두 network이 되었던 셈이고 Wi-Fi infra의 필요성이 거의 없었다.

그 이후에 Wi-Fi device들이 필요한 때가 도래했다. 바로 mobile device (laptop, mobile, Smartphone같은)들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1st generation Wi-Fi  (access point, router)를 설치해서 간간히 쓰고 있었는데… 문제는 mobile device들이 network speed가 점점 빨라지면서 (특히 요새 나오는 Smartphone들) 우리 집의 Wi-Fi system이 따라가지를 못했던 것,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는 Smartphone에서 streaming video가 거의 필수가 되었지 않은가?

우리는 집에서 smartphone으로 video를 안 보기에 몰랐는데… 큰딸 새로니가 가끔 집에 놀러 오면 불평이 대단했다. 자기의 iPhone에서 Internet video를 볼 수가 없다는 것… 그래서 생각해 보니 우리 집에서 마지막으로 Wi-Fi router를 설치한 것이 아마도 거의 7~8년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예전의 Wi-Fi system, 느리고 문제가 많았기에 거들떠도 안 보았는데…

할 수 없이 요새의 system을 찾고 샀고 설치를 했고… 결과는… shocked! 완전히 놀람의 연속이었다. 그 동안 wireless technology는 경이적인 발전.. 특히 MIMO (multiple antenna) technology의 효과는 놀랄 정도.. 우리 집의 모든 mobile device들 완벽하게 network에 연결되고 안정되고 표시된 최대의 speed, 게다가 device들의 값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reasonable 했다. 그 중에서 내가 제일 놀란 것은 우리 wired network (file server, Internet access) 에 연결된 내가 매일 쓰고 있는 workhorse desktop pc (Windows 10 box)가 이제는 100% Wi-Fi로 쓰고 있는데, ‘한번도’ hiccup 조차 한 적이 없다는 사실.. 놀라고 놀라고 있다.

 

 

¶  우수 雨水: 그렇게 ‘한결같이’ 추웠던 올 겨울도 이제는 서서히 물러가고 있는가? 지난 주부터 바깥 풍경들에 색깔들이 섞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기다리던 수선화들, 얼마나 반가운 모습이었던가? 그런 soft object들이 나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 아니 이제는 그것들이 무엇들인가를 알게 되고 화제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솔직히 반갑다. 나도 ‘목석’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기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나간 월요일 2월 19일, 이날의 ‘레지오 수첩‘을 보니 ‘우수‘라고 적혀 있었다.  무엇인가 푸근한 고향냄새가 풍겨 나옴을 느낀다. 우수… 우수수가 아니고 우수, 한자로는 분명히 雨水, 그러니까 빗물인가? 이날 하루 가느다란 가랑비가 왔다 갔다 하면서 ‘빗물’을 내려 주었다. 그와 동시에 어렸을 때, 원서동 시절 비원 담 옆 개천가에 같이 살았던, 재동국민학교에 같이 다니던 한완수의 형 ‘한우수‘란 이름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도 나는 이 절기 이름인 우수란 단어를 보면 이 ‘한우수'(형兄)의 이름을 떠올리곤 했다. 어린 마음의 유치함은 이런 것도 그렇게 재미가 있었고 연상을 통한 기억력에 감사하기도 했다. 재동학교 한완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고 그의 형 한우수 형은 어떤 인생들을 살았을까? 이날 하루 나는 ‘빗물의 날, 우수’ 란 단어에 의한 전설 같은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  Sick Day: hump day 하루가 갑자기 sick day로 변해 버렸다. 이런 것, 예기치 못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런 것이 a day in the life, 지극히 정상적인 인생의 한 snapshot일 지도 모른다. 하루 일과의 시작인 아침미사가 갑자기 cancel 되었다. 이유는 역시 연숙의  insomnia일 수 밖에 없다. 왜 그렇게 수면습관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병적인 불면증’인 것인지 누구도 확신할 수가 없다. 그저 죽는 병이 아니라는 것에서만 위안을 얻는다. 다행히 꼭 나가야 할 절대적인 의무가 없으니 망정이지… 만약 직장 같은 것이 있어서 ‘출근’같은 것을 해야 했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닌 심각한 병으로 간주되어야만 했지 않았을까?

그날은 그것으로 얌전히 끝나지 않았다. ‘우리식구’ Tobey(pet dog)가 갑자기 조용한 것이다. 보니… 전혀 움직이질 않는다. 눈도 거의 감고 있고, 숨소리도 약하다. 이것은 무엇인가? 짐작에 전에 겪었던 ‘신경통’이 재발된 것으로 보였다. 전에도 ‘죽음을 준비했던’ 경험이 있었다. 알고 보니 신경통으로 몹시 고통을 느끼는 것이고 전혀 움직이지를 못했다. ‘기적의 약’을 먹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경험을 갖고 있지만 이번에도 ‘죽음의 그림자’를 느낄 정도로 움직이지를 못한다.

이 녀석의 ‘인간나이’가 나와 비슷하거나 더 많을 듯해서 ‘누가 먼저 이세상을 떠날까’ 하는 방정맞은 묵상을 하기도 한다. 들은 얘기로 죽음이 임박한 동물들이 자기가 ‘누울 곳’을 찾는다고 한다. 동물들은 죽음이란 것을 어떻게 ‘생각’할지.. 물론 그들의 생각은 인간과 같은 ‘철학적’인 것은 아닐 것이지만 그들만의 본능적인 예감, 경험은 가지고 있을 것 같다.

개나 고양이와 가깝게 되면서 나는 오랜 동안 느끼지 못했던 ‘그들만의 기쁨과 고통’을 실감하게 되었고 특히 그들의 고통은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느끼는 나만의 고통이 되었다. Narnia  book 저자로 유명한 C. S. Lewis의, 1940년 간행된 The Problem of Pain의 마지막 chapter는 Animal Pain 으로 할애되어 있어서 동물들의 고통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려고 했고, 나도 Lewis와 거의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아마도 그 동안 나의 ‘동물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에 대한 질타와 교훈이 아닐까… 이 뜻밖의 sick day에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고 갔다.

 

Billy Graham, 1966

 

¶  R.I.P: Billy Graham (1918~2018): 표준 한글표기법으로 어떻게 쓰나… 빌리 그래함? 빌리 그레이엄? 아무래도 좋다. 이분 한마디로 개신교의 거목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우리 세상을 떠났다. 2월 21일에 돌아가셨는데, 오랜 동안 예상은 했지만 막상 이런 뉴스를 접하니 다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이분은 나에게 어떤 분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 어머님보다 한 살이 많다는 것, 우리 부모 세대의 미국인 목사, 전도사, 부흥사.. 이런 표현들 모두 부족하다. 이분은 그런 표현을 모두 초월하는 위치를 가진, 사실은 ‘미국의 생각’에  막강한 영향력을 주었던, 종교인으로서는 드물게 보는 독보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아마도 믿음이 있건 없건, 직업에 상관 없이, 거의 모든 미국들을 포함한 전세계적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인물일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으로 이분의 설교를 ‘들었던’ 것은 1950년대 서울에 있었던 ‘기독교방송국’에서 정기적으로 방송하던 Hour of Decision이란 영어 program이었을 것이다. 그때 사실 나는 그 방송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우렁차게 나오는 그 ‘영어’가 어떻게 그렇게 멋지게 들렸는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멋진 영어는 Billy Graham목사의 목소리였다. 그렇게 ‘멋진 영어’의 주인공은 각종 잡지, news매체를 통해서 익히 알게 되었고 1970년대 초에 내한, 여의도 광장에서는 거대한 집회가 열렸고, 그 이후 미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TV에서 보기도 했다. 당시 신앙이나 믿음이 없었던 관계를 그저 유명인사의 강연 정도로 들었지만 아마도 그런 설교가 전혀 나에게 영향이 없지는 않았으리라 믿고 있다. 년 전에 YouTube에서 그분의 TV crusade를 다시 보니, 이제는 그 설교의 대부분이 이해가 된다. 천주교, 개신교의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멋지고 공평한 설교들이었다. 개인적으로 거의 scandal 없는 기적을 낳기도 한 이 거목의 ‘시대를 초월한 가르침’을 이제는 들을 수 없다는 것, 무언가 허전하고 사실은 조금 불안해지기도 한다.

 

¶  Spring at Home Depot: 거의 80도의 ‘봄기운’이 예보된 날 목요일 아침, YMCA routine을 마치고 모처럼 Johnson Ferry Road쪽으로 차를 돌려서 Trader Joe’sHome Depot엘 들렸다. 나에게는 싸지만 그런대로 좋은 (white) wine 이 주목적이었고, 봄기운에 들떠있는 연숙에게는 composted cow manure 같은 ‘토양 영양제’ 가 목적이었다. 춥고 기나긴 겨울을 지낸 garden center, 이번에 가보니 완전히 봄이었다. 각종 꽃나무들, 화분 꽃들이 찬란하게 그곳에 있었다. 물론 다시 한번 빙점을 오르내리는 추위는 다시 올지라도 봄의 기운을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할 듯하다.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며 어찌 이런 것들이 우연히 생겨난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Thursday’s Friends: 매달 마지막 목요일 밤에 3명의 남자들이 모이는 우리들의 ‘목요회’ 만남이 2월에는 거의 일주일이나 빠르게 왔다. 2월이 28일인데다가 마지막 날인 28일이 수요일인 관계로 그렇게 된 것이다. 1월에 만난 것이 엊그제 같아 지난 번 모임의 기억이 그렇게 희미하지는 않지만, 이번의 새로운 만남은 나중에 어떻게 기억이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우리 3명은 실제적으로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것들이 너무도 많기에 털어 놓을 것, 나눌 것 들이 절대로 부족하지 않다. 다만, 그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상처를 건들이지 않고’ 나눌 수 있을까… 그것이 이 모임의 성패를 좌우할 관건이다.

‘정치와 종교’에 대한 의견이나 경험은 가급적 피하자는 나의 생각은 그런대로 현재까지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날의 모임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 화제인가를 보여주는 testy한 대화가 나오긴 했다. 요새 돌아가는 정국이나 세태가 양극화 polarization 되어가고 있어서 우리들도 이런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다. 그 중에 제일 심각한 쟁점은 역시 ‘대한민국의 정세’에 관한 것이다. 이것에 대한 우리 세대의 여론은 실감적으로 알고 있지만 문제는 대화가 거의 안 될 정도로 ‘비이성적’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우리 모임도 이것에 대해서는 거의 무방비 상태임을 잘 알기에 가급적 피하고 싶지만 언젠가는 허심탄회 虛心坦懷 하게 ‘자기 입장’을 나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전까지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서 부드러운 사랑의 분위기를 쌓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희망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있으면 무엇이 문제랴… 늦은 밤 맛있는, 영양가 듬뿍한 알찌개와 소주 한 주전자가 있는 모임에서 우리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달 모임은 성목요일 문제로 한 주일 앞당겨 ‘예외적’으로 우리 집에서 모일 계획을 생각하고 있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가 된다.

 

¶  마리에타 사랑반 모임:  지난 17일 봄처럼 푸근한 토요일에 모처럼 (도라빌 순교자 성당) 사랑반 구역모임엘 갔다. 이번에는 도미나 구역장님 댁에서 모였는데, 무엇인가 나로써는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이유는 이 댁을 처음 가보는 것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이렇게 가정집에서 모이는 구역모임에 마지막으로 가본 것이 몇 년 전이었기 때문이다. 안 나간 이유는 물론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지만 그저 게으름 때문만은 절대로 아니었다.

확실한 이유를 가지고 ‘일부러’ 안 나간 것인데 이제는 그 이유들이 없어지거나 ‘타협’이 되어서 다시 한번 ‘세월과 성모님의 도우심’을 떠올린다. 어떨 때는 ‘그저 기다리면’ 된다는 세월과 시간의 은총이 분명히 있다. 나에게는 비교적 젊은 형제, 자매님들과 어울리는 것, 비록 내가 제일 연장자의 위치로 밀려 오르긴 했지만, 약간의 술 기운과 더불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완전한 OB (old boy)의 위치에서 말 조심을 하려고 애를 쓰지만, 그저 common sense만 지키면 큰 문제가 없으리라.. 

 

¶  고 마태오 신부님:  일요일에 오랜만에 성당 도서실에 들렸다. 빌렸던 고 마태오 신부님의 ‘이세상의 이방인‘을 반환하고 다른 책들을 둘러 보았다. 이곳의 진열된 책은 거의 random하게 배치가 되어 있어서 조직적으로 특정한 책을 고를 길이 없다. 그저 random browsing 을 하다가 ‘재수가 좋으면’ 원하는 것을 찾는 정도다.

그 동안 고 마태오 신부님의 책을 3권이나 다 보았기에 혹시 그 이후에 나온  고 신부님의 책이 과연 있을까 하며 어떤 책을 훑어 보다가 그 책의 ‘추천사’ 끝의 이름이 ‘이경우‘라는 글자가 보였다. 그것도 놀랄 지경인데 그 이름의 끝에는 ‘신부’라고 되어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이경우’란 신부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옛날 옛적에는 ‘이경우 농구선수’가 있었고 재동학교 시절, 나보다 5년 아래의 ‘이경우’란 여자 학생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 이름이 그렇게 희귀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 책의 바로 옆을 가만히 보니… 이것도 우연일까.. ‘영원의 방랑객, 고 마태오 지음‘이란 글자가 있는 책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바로 내가 읽었던 3권의 책 후에 나온 것이고 캐나다로 오신 후에 그곳에서의 이야기기 실린 바로 그 책이었다. 이번에는 기다리지 않고 이곳, 저곳을 난독하며 전체의 줄거리를 짐작하게 되었다. ‘쟌느 수녀, 숙과의 재회‘ 같은 것이 있었는데, 고 신부님과 여성들과의 인연들을 보며 부러운 질투 같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 책은 깨알 같은 글자로 거의 500페이지가 되어서 완독(필사 포함)을 하려면 아마도 수개월은 필요할 듯하다.

 

¶  Pay-as-you-go: 내가 쓰는 mobile phone의 plan에 큰 변화가 있었다. 우리 집 모두가 T-mobile의 family plan을 쓴 지가 몇 년째인가.. 그러다가 얼마 전에 새로니가 iPhone을 등산을 하다가 잃어 버린 후에 새로운 plan을 찾게 되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사실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지금 우리 family plan이 너무나 비싸다는 사실. 문제는 바로 나였다. 내가 너무나 ‘조금 쓴다는’ 사실이고 억울하다는 것이다. 한 달에 30분도 못 쓴다는 사실이 나는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그것이 아닌 모양이다.

나는 주로 가끔 전화를 받는 것 이외에는 이것을 쓸 이유가 없었다. 집 landline 이 Internet voip으로 바뀌고 나서 사실 전화비용은 거의 zero에 가까운데 유독 나만, 거의 쓰지도 않는 데에 $30 이상을 쓴다는 것은 낭비였다. 궁리를 한 끝에 나만 따로 새 plan으로 바꾸었는데 그것이 바로 pay-as-you-go 였고 알고 보니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안성맞춤 plan이었다. 한 달에 $3/30 분, 물론 mobile data는 없다.

Call Minute는 그런대로 문제가 없는데, No Mobile Data는 조금 신경이 쓰이는데… Wifi 가 없는 곳에서 Internet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gmail, map, streaming media같은 것들인데… 알고 보면 이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듯 하다. 내가 언제 애들처럼 ‘밖에 나가서’ 그런 Internet service가 필요한 것인가? 정 필요하면 Wifi가 있는 hotspot을 찾으면 될 것이다. 이런 저런 사연으로 한 달에 $30이상 save가 될 것을 예상해서 한 달에 한번 ‘외식’을 한번 더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웃었다.

 

 

¶  Tuesday’s Flower: 지난 해 ‘레지오 미친년 사건’ 이후 계속 느끼는 ‘Tuesday stress’,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 정도로 나의 ‘야수처럼 이글거리는 분노’는 꺼지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레지오 주회합에서 우리를 지켜보시는 성모님의 모습이 더욱 어머니처럼 느껴진다. 이분만은 우리를 지켜주시리라는 염원, 이날 주회합의 성모님 옆에는 우리 집에 봄소식을 전해준 수선화를 꽂아 놓았다. 봄소식과 함께 우리를 더욱 인자로 히 지켜 주시라는 간절한 전구를 잊지 않았다.

 

봄의 소식, 다시 돌아온 수선화.. 황폐한 겨울의 낙엽 속에서

 

¶  아.. 수선화… 며칠 동안  backyard에서 갑자기 포근한 날씨를 맞아 부지런히 지난 겨울에 남은 낙엽을 치우며, 땅을 어루만지던 연숙, 나에게 올해 첫 수선화 daffodils 가 피었다고 알려주었다. 옆집 담장을 따라 조그맣게 줄을 서서 어렵사리 고개를 든 진한 노란 색의 꽃, 사순절 lent 의 백합 lily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수선화의 청초한 모습으로.. 사순절은 본격적으로 진행 될 수 있게 되었다. 2주 전 groundhog day에서 아주 추운 겨울이 계속될 것이라는 예고를 받았던 올 2월의 남은 겨울, 결국은 mother nature에게는 순순히 고개를 숙이는 것인가.. 아니다. 오랜 세월의 기억에 의하면 20여 년 전, 3월 중순에 피부로 경험했던 (WINTER) storm of the century를 잊을 수 있으랴… 그래도.. 가끔 이렇게 진정한 봄을 느끼게 해 주는 자연의 자비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Welcome (back), daffodils!

 

동네를 걸으며 playground의 bench에 누워 보이는 하늘은..

 

¶  Walk around neighborhood:  얼마만인가? 이렇게 우리동네를 Tobey를 데리고 걷는 것이.. 지나가고 있는 겨울이 걷기에는 너무나 추웠고 얼마 전 13살이 된 pet dog Tobey도 예전과 같이 ‘신나게’ 걷는 것 같지 않은 것 같아서 그 동안 거의 걷지 못했다. 우리 neighborhood는 아주 커다란 circle 처럼 되어 있고 경치도 괜찮아서 걷기에 안전하고 적당한 운동도 된다.

2007년부터 거의 정기적으로 Tobey와 걷기는 했지만 사실 나는 YMCA의 indoor track에서 운동으로 거의 45분간 걷기에 이것은 어디까지나 extra라고 볼 수 있다. 거기다가 따로 lower body workout(주로 weight training) 도 하기에 하체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 문제는 연숙이다. 하체 운동을 따로 하지도 않고 나와 같이 동네를 걷지도 않고 유일한 운동인 수영 만으로는 하체 운동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주위로 부터 나이가 진행되면 하체근육의 중요성이 심각하다고 들었다. 주로 ‘넘어지면서’ 생기는 사고에 관한 것인데, 이것은 결국 따로 하체운동을 하는 것이 거의 ‘필수’라는 것을 뜻할 것이다. 유별나게 앉고 일어나는 것이 불편하게 보이는 연숙에게 하체운동을 권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나와 같이 동네를 걷기로 약속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 너무너무 오랜만에 Tobey와 우리 둘, 동네를 걸었다.

이제 문제는 이것을 ‘습관’으로 만드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나의 경험으로 이것은 충분히 가능할 듯 하다. 본격적으로 봄이 오기 시작하면 동네 주변의 ‘앗찔한’ 경치를 마다할 리가 없을 것이다.

 

거의 반년이 넘도록 한 달에 한번씩 있는 이날이 이제는 지겹다 못해서 꾀병으로라도 피하고 싶은 그런 날이 되어가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이제는 한숨조차 나오질 않는다. 어떤 때는 왜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는가 나에게 물을 때도 있고 그에 대한 뾰족하고 명쾌한 답이 없다. 그것이 나를 괴롭게 한다. 그래서, 심지어는 슬프기도 한 그날은..  다름이 아닌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천상은총의 모후) 꾸리아 월례회의.. 한 마디로 밥맛, 입맛이 떨어지는, bad taste  monthly 가 되어가고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내가 이곳엘 나가기 시작한 것이 거의 6년이 넘어가고 있는데 암만 생각해도 처음엔 그렇지 않았고, 세월이 지나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썩어 들어가는 그런 식이 아니었을까? 하루 아침에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라서 아마도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감지 感知 를 못했을 듯하다. 천천히 뜨거워지는 물 속에 잠긴 개구리, 바로 우리가 그런 꼴이 아닐까.

나의 밥맛을 완전히 떨어뜨리는 두 인간이 그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내가 너무도 잘 알기에 오늘도 병이 날 정도로 가기가 싫었다. 그저 그 두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조금만 조용히 얌전히 앉아 있어 주기만 기대하며 그곳엘 들어갔지만, 역시 어디를 가나.. 돼지 멱따는 소리로 말도 안 되는 소리만 지껄이는 인간과 뱀 같은 얼굴로 자기도취에 빠진, 언제라도 monster로 돌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인간 (아!  이 역시, 모두 ugly한 아줌마, 여자들이다)…  가뜩이나 쳐지는 몸이 더 쳐지는 오늘, 지독히도 맛 없는 ‘설날 떡국’ 과 함께 잊고 싶은 ‘주일’이 되었다. 최후의 희망은, 영적 신부님이라도 제발 조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그것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큰 기대는 할 수가 없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남은 것들은 unthinkable 한 option 들 뿐이다.

 

¶  Filet-O-Fish:  언제부터였을까… 금요일을 no-meat-day 로 삼고 ‘가급적’ 그날 하루 고기 meat 먹는 것을 피하기 시작했던 것이.. 물론 확실한 때는 기억이 안 나지만 대강 내가 본격적으로 ‘회심1‘을 하기 시작했던 그 무렵이었음은 분명하다.  추측에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이 금요일이라 조금은 절제 abstinence 하라는 의미에서 그런 전통이 생겼을 것이지만 나는 그 무렵 ‘추호의 의심, 반론’ 없이 교회의 가르침을 수용할 ‘열린 가슴’이 있었기에 큰 어려움 없이 고기를 피하고 대신 생선으로 단백질을 보충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생긴 것이 금요일에 McDonaldFilet-O-Fish sandwich를 즐기는 전통이었다.

이것은 McDonald 아침 menu에 없기에 우리는 아침에 YMCA gym에서 workout 이 끝난 후에 가서 먹곤 하고, 저녁식사를 거의 하지 않기에 이것이 사실 그날 마지막 음식이 된다. 요새 이곳에 들어가는 fish fillet 는 Alaskan Pollack(명태)를 쓰기에 우리에게는 익숙한 생선 맛이다.  비교적 작은 size의 sandwich라서 비록 단식은 아니지만 비슷한 abstinence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오늘, 금요일도 그런 fish Friday였다.

이 역사 깊은 sandwich는 거의 45년 전, 1973년 미국에 처음 왔을 당시 너무나 맛있게 먹었던 기억2 이 남는다. 값도 Big Mac보다 쌌고 크기도 아주 적당하게 작았다. 이것의 역사를 찾아보면 (물론 Wikipedia) 아주 재미있다. 역시 나의 짐작대로 가톨릭 전통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천주교인들이 금요일에 고기 중심의 hamburger를 피하는 것을 보고 idea를 얻은 것이다. Cincinnati (Ohio)의 한 McDonald franchise 주인이 처음 착안, 만들어서 팔았는데 이것을 본사에서 받아들여서 전국적으로 퍼진 것이다. 그것이 1960대 중반이었다고 한다. 이 sandwich의 년 매상 1/4이 팔리는 시기도 역시 천주교 전례력의 사순 四旬 시기(Lent)라고 하니, 역사적 배경을 알고 먹으니 더욱 ‘숨은’ 의미를 느끼게 된다.

 

upscale Japanese buffet Nori Nori

 

¶  노리 노리 Nori Nori: 어제는 뜻밖의 점심 외식 초대를 받아서 우리는 Nori Nori 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고급 일식 upscale Japanese buffet 엘 갔었다. 우리 집에서 drive로 30분 가량 걸리는 곳, Sandy Springs (Roswell Rd @Abernathy)에 있는 이 all-you-can-eat sushi buffet  우리는 처음 가본 곳이다. 그저 이런 식의 buffet 라면 대강 Chinese 위주의 ‘서민 풍’의 그런 곳으로 상상이 되지만 이곳은 달랐다. 그야말로 upscale, 한 마디로 ‘비싼 곳’으로 모든 것들이 느낌이 달랐다. 요사이 가깝게 지내기 시작한 스테파노 형제 댁의 초대였는데 아마도 지난 년 말 우리의 초대로 외식을 한 것에 대한 응답이었던 추측도 들었다. 한 마디로 즐겁고 편한 대화와 깨끗하고, 감칠 맛 나는, 고급 스러운 음식들로 나중에 우리 식구들도 한번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급스러운 것은 한마디로 lunch menu들 치고 상당히 pricey, 거의 $20 에 가까워서, 우리의 수준으로는 자주 찾기는 불편한 느낌도 들었다. 보통 점심 때 Buffet에 흔히 보이는 ‘노가다’ 류 (정말 끊임없이 먹어대는) 가 이곳에는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역시 pricey 한 upscale buffet 였다.

 

  1. 성당에 규칙적으로 나가기 시작했을..
  2. 여행 중, Pittsburgh, PA 에 살던 연세대 선배 위재성 형에게 들렸을 때

이른 아침에 가느다란 빗소리에 깨어 오랜만에 7시 전에 일어났다. 요사이 들어서 나는 아침 일찍, 그러니까 6시 대 帶 에 일어나는 것이 갑자기 버겁고 힘듦을 느끼며, ‘억세게’ 싸늘한 공기에 질려서 따뜻한 곳에서 나오기가 싫었다. 이것도 70세가 된 증후군의 한 가지인가? 이러한 잠재의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 오늘은 용감하게 6시 대에 일어났다. 느껴지는 공기가 예전과 조금 다른데.. 아하.. 그렇게 싸늘한 느낌이 아닌 포근한 것, mild한 공기의 느낌.. 올 들어 자주 못 느끼는 그런 따뜻함이 나를 침대에서 나오게 한 것을 도와 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올 겨울은 삼한사온 三寒四溫 의 자연스러운 날씨의 묘미가 거의 없었다. 강추위도 가끔 있었지만 그것보다 나를 은근히 놀라게 한 것은… 거의 매일 추웠다는 느낌.. 아마도 기후통계도 나의 느낌과 거의 일치할 것이다. 변함없이 거의 매일 ‘춥다’ 라는 것, 이것이 이번 겨울의 ‘이상 異常’ 일지도 모른다. 비록 global cooling까지는 아니더라도 뉴스에 의하면 이것도 global한 것이다. global warming 이 덜 느껴지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무언가 ‘수상’한 느낌은 떨칠 수 없다.

 

올 겨울 몇 년 전처럼 Midwest에 살 때 입었던 각종 ‘겨울 옷’들이 대거 등장하였고,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sweater들, 거의 매일 입게 되었다. coat류가 거의 필요 없던 이곳에서 이제는 필수품이 되었다. 춥고, 음산하고, 젖은 듯한 날씨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이제는 조금은 포근한 (하지만 덥지 않은) 그런 느낌을 찾는 나를 보면 역시… 역시.. 70이라는 숫자가 다시 한번 나의 현주소를 일깨운다.

포근한 공기를 몰고 온 폭풍우가 아침 우리 집을 온통 때린다. 겨울 내내 쌓였던 roof gutter의 낙엽들 덕분에 빗물이 폭포수처럼 창문으로 흘러 내린다. 올 겨울에 나는 ‘정신적 피곤함’을 핑계로 gutter cleaning을 거른 탓에 정직한 빗물은 gutter를 넘치며 벽을 타고 흘러 내린 것,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  하지만 그 물들, 덕분에 우리 집 벽돌담을 깨끗이 씻어주고 먼지 낀 창문들도 따라서 깨끗이 청소해 주고 있다. 언제나 모든 것은 양면성이 있기에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다.

 

Thundering shower, Saybrook style

 

어젯밤 chronic insomnia로 고생하는,  또 잠을 설쳤을 연숙, 아침 제 시간에 아침 미사에 맞추어 일어나긴 했지만 거의 ‘인사불성 人事不省’의 얼굴이다. 우리는 sprinter가 아니고 marathoner라는 motto를 다시 한번 일깨우며 오늘 미사는 쉬기로 결정한다. 음산한 날씨와 불면증은 거의 toxic mix 이기에 이것이 현명한 결정인 것이다. 이런 ‘지혜’ 덕분에 우리는 지난 6 년 동안 ‘매일미사’의 전통을 이어가게 된 것, 역시 advance 한 (지긋한) 나이 탓일 것이다. 아마도 (car) drive를 할 수 있는 한 이런 전통은 지속될 것이고 그렇게 희망하고 있다.

2nd cup (of coffee)가 끝나니 새카만 하늘에서는 드디어 천둥소리가 요란하다. Electrical energy가 가득한 하늘은 기온이 그 만큼 포근해 졌다는 뜻이다. 2월 초, 아주 짧은 (하기야 입춘이 지났으니..) 순간에 느끼는 봄기운이 상상되는 뒷마당.. 비록 모습은 아직도 황량하지만 거의 매일 연숙은 그곳을 거닐고 땅을 들추어내며 올해의 ‘텃밭’ 계획을 상상하는 모습을 요새 며칠 본다. 형체가 사라지고 있는 vegetable garden의 fence를 올해는 반드시 새로 만들려고 나도 생각을 하는데.. house work project가 너무나 많이 밀려 있어서 어떤 것부터 시작할지 난감하다.

우선 해야 할 것은 (income) tax return, 우리의 income structure가 조금씩 변하고 있어서 그 동안 ‘무미건조’했던 이 yearly paperwork이 조금씩 흥미로워 지고 ‘공부’해야 할 것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런 것들도 ‘치매, 망각증’ 방지에 큰 도움이 될 것이고, 우리의 financial 에도 도움이 될 것이니.. 이것도 win-win 한 것이 아닐까? 아마도 오늘 오후 편한 시간에 우리를 몇 년 동안 도와주던 (tax site) freetaxusa 를 찾아 매년 느려져 가는 머리를 굴려볼까…

 

Help me, Albert!

 

Einstein’s back (to the rescue!)… 아인슈타인(독일어), 아이스타인(영어).. 한 동안 잊고 살았던 환상적 상대성 이론(물리) 과학자, 20세기 최고의 평화적, 심지어 영웅적 인물로 꼽혔던 물리학자가 요사이 나를 구하러 다시 나타났다. 나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한다는 (그리스도교적) 진리들, 특히 (성서적) 말씀들과 그것을 전해주는  인간들이 요즘 들어서 조금씩 ‘지겹고,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 한마디로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들이었다. 또한 근래에 나의 주변에 갑자기 나타난 ‘쓰레기 같은 인간’들에게 시달리면서 잡스럽고, 괴로운 시간을 낭비하는 나 자신이 정말 싫어진다. 어떻게 이런 slump 침체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납득할만한 (상대적인 것도 포함하는) 절대적, 나아가서 (자연) 과학적 진리를 포함한.. 무언가를 애타게 찾는다. 때때로 완전히 사라지는 하느님 현존의 느낌들, 그것을 해결하는 나만의 방법은 무엇인가?

(분명히 존재해야 하는) 절대 진리 를 신학적, 철학적, 형이상학 적, 심지어는 신화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googling으로 거의 모든 답을 찾았다고 착각하는 요새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인생의 끝부분이 서서히 보이는 우리들에게도 무리무리..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 (세속적) 세상,  ‘만져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5감을 통한 현상, 현실 reality’ 의 관점에서 본 진리, 그것이 바로 ‘자연철학 natural philosophy’, 요새 말로는 ‘자연과학 natural science, 간단히 과학 science’ 이라면  17세기 천재 ‘자연철학자’ Isaac Newton 뉴턴 은 하느님이 전혀 필요 없는, 삼라만상이 ‘저절로’ 생기고 돌아가는 ‘시계 같은 기계적 세계관, 우주관’ 을 우리들에게 주었다.

내가 평생을 통해 알고 있던 세상은 사실 뉴턴의 시계처럼 돌아가는 그런 모습들이었다.  모든 것이 ‘원자 atom’ 로 보이는 것, 느낄 수 있는 것들,  ‘물질적’인 것이 물리적인 법칙에 의해서 돌아가는 세상과 우주. 이런 차가운 공간에 과연 사람의 의식이나 의지가 공존할 수 있을까?  인간의 의식은 이런 거대한 기계적인 우주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의 의식도 ‘원자’로 만들어진 것인가? 이런 물음에 ‘비과학적’으로 대답을 하면 점점 바보 취급을 당하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초초 超超 현대는 바로 scientism, 그러니까 materialistic science가 사람들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진리일까?

이런 의미에서 초현대의 자연(물질)과학은 흥미롭기만 하다. 초월적 존재인 전지전능한 창조원인인 하느님, 믿고 안 믿고는 개개인의 자유이겠지만, 무섭게 바뀌는 ‘과학이론’을 어떻게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가? 이런 의미에서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큰 교훈이 될 것이다. 17세기 이래 ‘인간 지혜의 승리’로 등장했던 뉴턴의 100% 기계적 사상, 3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상대성이론에 압도를 당했고, 같은 시기에 출현한 양자역학 또한 모든 기존의 이론을 앞지르게 되었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떨 것인가? 지금의 ‘발전 추세’를 감안하면 아마도 1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또 다른 이론이 등장할 것이다. 이것은 절대로 ‘절대’가 아닌 것이다. 계속 변하는 것.. 지금은 실용적으로 믿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그것이 ‘현재의 진리’일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인슈타인 ‘사상’을 조명하면 한마디로 우리, 피조물들은 절대로 ‘겸허’해 지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다시 아인슈타인에 접근을 하며 그의 일반상대성 general theory of relativity 적 우주론 cosmology를 접하면 원자보다 더 작은 지구 상에서 복닥거리며 싸우는 인간들의 의미는 한마디로 웃기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나는 깊은 winter slump에서 서서히 벗어난다. 그것이 아인슈타인의 매력이다.

 

극동방송, 평화신문.. 이 두 잘 알려진 mass media company 들, 하나는 천주교 print media인 평화신문, 그리고 개신교 쪽의 극동방송은 broadcast media service하는데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내가 현재 그들의 service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대한민국 산 産’의 매체들은 얼마 전까지 관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정기적’으로 접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평화신문은 도라빌 순교자 성당 사무실에 archive해 놓은 것을 몇 번 훑어 본 적은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 당시의 인상은 이런 기사들로 ‘장사’가 되나.. 하는 유치한 생각 뿐이었다.

극동방송,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귀로 듣는 방송매체이고 이것도 그 동안은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정도의 관심으로 살았다. 하기야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로, 미국에 살던 어떤 유명한 한인 목사 (김장환 목사)가 대한민국으로 돌아가서 세운 개신교 선교 방송국이라는 것은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정도였다. 이것도 현재 자주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정기적으로 듣는 입장이 되었다.

이 극동방송 (FEBC) 은 분명히 ‘대한민국 발 發 생방송’이고, free version TapinRadio  (Windows, Android client apps) 를 써서 인터넷 으로 real-time  생방송을 듣게 되었는데, 사실 처음 이 ‘생’방송을 들었을 때 나는 한 동안 느껴지는 격정, 감정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Every hour on the hour, 3-2-1 count down beep!!, 오랜 전 고국의 방송들, 매 시간마다 삡삡삡..삡~ 하며 정시를 알려주던 것, 거의 반세기 동안 못 들었던 것. 그 오랜 세월 동안에도 이 service는 안 변했구나 하는 감회가 일었다.

이 극동방송 format도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하는 것들, 한마디로 그 옛날 ‘라디오’만 가지고 있는 ‘듣는 즐거움’에 맞게 그렇게 아기자기하게 program들을 꾸며 놓은 것도 이 방송에서 느끼게 하는 ‘오래~ 전’ 라디오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단 한가지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이 방송은 역시 ‘개신교, 마틴 루터’의 대변인 이라는 사실, 하지만 알고 보면 큰 문제는 없었다. 역사적 사실을 알고 들으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나와는 의견이 다른 형제들이라는 사실만 알면 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이곳에서 ‘고은정’ 성우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1950년대 KBS ‘라디오 전성시대’부터 우리의 친근한 국민 성우로 활약했던 고은정, 그 고은정이 이 방송에 ‘매일’ 나오시는 것이 아닌가? 라디오 시대의 personality들은 목소리만 들었지 ‘모습’을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여서 어딘가 신비감까지 들었던 분들이고 특히 이 고은정 씨는 더욱 그랬다. 비록 옛날의 낭랑한 목소리는 아니더라도 목소리의 기억은 아직도 뚜렷하다. 1950년대 KBS시절 참 ‘기라성’같은 성우들이 많았다. 나는 비록 코흘리개 애청자였지만 그들의 목소리 느낌 들 아직도 기억한다. 

이 두 그리스도교 매체들과 접하기 시작한 것도 이제는 어느덧 1년이 넘어가고 있고 그 동안 느꼈던 것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신문… 나는 이 신문과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 결론은 곧 다가오는 구독갱신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구독료에 상응하는 service를 나는 거의 못 받고 있고, 반대로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인정하고 싶은 것이다. 미주 판이라는 added service가 있는가.. 나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타성에 젖은 듯한 편집태도도 그렇다. 예를 들어서 일년이 가깝도록 ‘매번 등장하는 백영희 칼럼’, 도대체 이 ‘백’여인이란 사람은 누구인가? 그분의 신변잡기까지는 그렇다 치고,  누구의 신변잡기란 말인가.. 왜 이 사람의 잡기를 읽어야 하는지.. 한 번도 이 분에 대한 1줄의 배경설명이 없기에.. 물론 googling을 하면 무언가를 알 수는 있겠지만.. 솔직히 그런 정도의 관심까지 두기가 싫은 것이다. 이것은 편집태도의 타성에 의한 나태에 가까운 것 아닐까?

그것만이 아니다. 이 신문을 구독하게 된 과정을 기억하면 ‘레지오 미친년 난동사건‘을 안 떠올릴 수가 없다. 그것만으로 평화신문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감정의 동물인 나로써는 ‘아직도’ 어쩔 수가 없다. 이 신문이 배달되는 그 순간 나는 그 ‘미친년, 살모사 뱀의 얼굴’이 떠오르니 어쩔 것인가? 이래 저래 나와 평화신문은 ‘악연’에 가깝다는 결론이고.. 그 결과는 뻔한 것이 아닌가?

 

정말 오랜만에 머리가 띵~ 한 하루, 그것도 멀쩡하게 아침 미사까지 빼먹고 보내는 하루가 되었다. 사순절 시작이 2주 앞으로 다가온,  2월첫 날 아침부터 이것은 절대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원인은 어제 저녁에 있었던 마리에타 사랑반 구역미사 후 회식에서 아차~ 하고 ‘조금’ 마셨던 술의 여파 hangover 때문이었다. 그렇게 취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drive를 연숙에게 맡긴 것을 보면, 그리고 조금은 꼬부라진 혀끝의 감각을 기억하면 분명히 조금 over한 것을 인정해야 할 듯하다.

이날은 사실 구역미사엘 안 가려고 미리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세상사가 항상 나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어찌 모르랴.. 가기 싫었던 이유는 물론 여기서 밝힐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런 이유는 궁극적으로 올바른 변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마음 속 깊이 알고 있었기에 이런 ‘끌려가는 듯한’ 사태가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미사는 미사지만 본당신부님의 일반적인 사목적 자세는 한마디로 well-rounded한 것, 그 복잡한 사목방침을 항상 ‘중용’의 자세로, 타협점을 구하는, 공정 중간적 입장, 모든 사람을 편견 없이 보려는 자세, 알맞은 강도의 강론, 겸손한 demeanor.. 나에게는 absolutely positively NO problem.. 아니, 좋아하는 쪽이다. 하지만 세상사에 downside, dark-side가 없을 수는 없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것이 사목성패의 관건이다.

이날  pikapika 한 술들 (jumbo-size whisky, upscale wine & beer), 이 앞에서 우리 신부님도 술을 즐기는 쪽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기야 이것은 news가 아니고 이미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이날 그것을 조금은 직접 확인한 셈이다. 담배를 ‘즐기는’ 것은 만천하가 하는 사실이지만 가끔 밖에서 ‘쓸쓸히’ 끽연을 하시는 것을 보고 나는 동참한다는 이유로 ‘얻어’ 피우기도 했다. 신부님들의 일상 ‘기호’ 생활도 사실 일반인들이나 큰 차이가 없는 모양이지만 그 유혹은 더 심할 것 같아 보여서 조금은 공감을 하기도 한다.

남자들 모여서 ‘정치, 종교’ 이야기는 가급적 삼가 하라는 불문율이 깨어진 채 이날은 마구잡이로 사정없이 종교+정치 이야기가 난무했는데… 전에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우리 신부님은 ‘진보성향’이 농후함을 알게 되었다. 진보+보수의 갈등, 신세대+구세대의 갈등, 특히 고향 대한민국의 현 실정을 배경으로 그것은 잘못하면 화약고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교회나 사제들이 얼마나 정치에 관심을 두느냐 하는 것은 김수환 추기경 시절에 익힐 들어서 알기에 함부로 ‘심판, 단죄’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이 70으로 진입하는 마당에, 분명히 나는 보수중의 보수 세대에 속하지만 나 자신은 거의 ‘중립, 관망’하는 입장이기에 신부님의 ‘고견’을 많이 듣고 싶었다. 문제는 ‘역사적, 사실적’인 것과 ‘주관적, 편협적’인 주장과 의견이 완전히 ‘짬뽕’이 되어서 왜 그런 논쟁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지경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암만 관망, 중립을 지켜도 지켜야 될 마지노 선 (Ligne Maginot)Maginot Line 은 분명이 존재한다. ‘김씨 왕조’를 두둔하거나 비방하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나의 마지노 선이다. 그것을 무시하거나 넘기면 그때는 진보, 보수가 없다. 그것은 역사왜곡, 양심 포기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6.25 전범 김일성 세습정권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이날 신부님 발언 중에는 나의 간담을 조금 써늘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남북통일을 반대하는 음모세력’ 그것이 미국이라는 간접적인 논리였다. 몇 마디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귀를 의심할 정도로 나는 놀랐다. 어떻게 미국 ‘제국주의적 음모론’을 믿는 것일까? 정구사(정의구현사제협의회?) 정당성을 예전부터 주장하셨던 신부님의 입장을 나는 그저 benefit of doubt 으로 넘어가곤 했지만.. 이런 신부단, 교회의 입장 때문에 극우세력, 극보수 세력이 열을 올리는지 모른다. 수십 년 동안 실패한 햇볕인가 무시긴가 하는 것으로 장난감 폭탄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미국 하와이가 비상사태에 돌입했던 희극을 생각하면.. 도대체 어떤 바보들이 그런 애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인지… 이런 저런 혼란했던 머리 속에 whisky, wine, beer가 모조리 섞였던 나의 몸은 완전히 쳐지고… 결국은 오늘을 small holiday로 보낸 것, 술이 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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