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Monthly Archives: April 2018

¶ 2018년 4월이 저문다. 올해 4월은 예년과 달리 옛날 옛적의 4월에 얽힌 것들을 별로 회상할 기회가 없었다. 예를 들면 ‘목련 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박목월 님의 멋진 시와 가곡, 1960년 4월 19일의 광경들, 아니면 1970년 4월 용현이, 창희와 지리산 종주등반 같은 것들.. 이런 것들은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도 많았다. 이런 저런 ‘옛날 것’들을 올해는 거의 잊고 살았던 것이다.

그 대신 나는 거의 ‘현재’를 순간순간 열심히 살았던 4월을 보낸 것 같고 그것이 나를 흐뭇하게 한다. 과거의 사나이에서 조금은 현재의 사나이로 돌아온 것인지.. 하지만 희망은 아름다운 지난날과 건강한 현재를 반 반 정도 섞어서 사는 매일이 되는 것이다. 결국 2018년의 4월은 진정한 나의 ‘부활시기 4월 달’이 되었다.

 

¶ 목요회 Blues: 4월의 목요회 멤버들이 거의 5주 만에 다시 모였다. 매월 마지막 목요일 밤에 모이는 조금은 별난 모임, 벌써 8번째다. 예상을 벗어나 한번도 거른 적 없이 성실하게 모여 지나간 ‘힘들었던’ 한 달의 이야기를 나누는 조금은 ‘청승맞게 보이는’ 우리 목요회, 어떨까, 언제까지 이 모임이 계속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지나간 7개월 동은 그런대로 서로의 지나간 이야기를 나눈 셈이지만 사실 아직도 궁금한 것들 투성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지나간 이야기가 그렇게 중요한가, 현재가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써비스가 엉망인 어떤 Chinese buffet 에서 만난 자리에서  S 형제가 모임 줄곧 침묵으로 일관을 해서 우리의 신경을 쓰게 했는데, 이런 태도는 이번이 처음이라서 아마도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인생이란 것, 특히 우리들의 삶, 결코 즐겁지만은, 쉽지만은 않은 것 알기에 이런 자리에서 서로 고민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시간이 더 걸려야 됨을 알게 되었다. 사실 S형제는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될 정도로 고민이 많은 듯하지만 현재로써는  ‘기도나 관심’ 이외에 별로 option이 없다. 다음 모임에는 조금은 웃는, 말을 다시 많이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지만, 어떨까..

 

¶ Days with Sherlock: 며칠 간 ‘탐정 미스테리’의 원조 격인 영국 코난 도일 Conan Doyle  원작의 셜록 홈즈 Sherlock Holms 영화를 찾아 (물론 Youtube) 보게 되었다. 대부분 1940년대의 흑백영화인데 download 한 결과 놀랍게도 아주 영상의 질이 요새말로 720p 정도의 ‘보물’들이었다. 어렸을 때 만화로 즐겨 보았던 탐정 미스테리 이야기는 주로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 것들 역시 거의 모두 이 셜록 홈즈 Sherlock Holms 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영국 문화의 영향인지, 모든 스토리나 scene들이 너무나 ‘고상하고 신사적’, 비록 범죄가 주제지만 눈을 감지 않아도 되는, ‘안심하고’ 볼 수 있기에 Film Noir와 더불어 요새 즐겨서 보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관심을 갖고 접하게 된 Christian Writer의 대가인 C. S. Lewis 를 통해서 1940년대 영국의 여러 모습을 보며 또 다른 유명인, Sherlock Holms, 그리고 그의 sidekick 격인 Dr. Watson을  다시 찾게 되었다.

 

Sherlock Holms & Dr. Watson

 

¶ West Bank, again?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때도 있나? 같은 달에, 그것도 2주일에 걸쳐서 같은 park로 두 번 picnic을 갔다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희귀한 happening에 속한다. 첫 번째 picnic은 성당 등대회에서 간 것이고 다음 것은 역시 같은 성당의 레지오 야외행사로 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같은 West Bank park 이었을까? 아마도 이 즈음에 이곳이 제일 경치도 좋고 가기도 좋은 곳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첫 번째 갔을 때는 날씨가 거의 비가 오락가락 하던 때였지만 두 번째는 날씨가 기가 막히게 화창해서 West Bank park의 멋진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다만, 레지오에서 간 것은 거의 ‘의무적’으로 간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이곳으로부터 마음이 떠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성모님께 드린 맹세가 있기에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out of question이지만 세상사가 어찌 그렇게 예상대로만 되랴.. 그래도 이 화창한 날, 레지오 야회행사에는 장기유고 중인 ‘크리스’ 자매가 오랜 만에 모습을 들어내어 참석을 해서 반가웠다.

 

West Bank park under Spring Sun

 

 

또 하나의 연도와 장례미사:  지난 26일에 선종하신 ‘어떤’ 형제님을 위한 성당연도와 장례미사가 28일 토요일에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있었다. 몇 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선종하신 ‘야고보 James’ 형제님, 요새 세상에서는 ‘young’ senior에 속하는 60대 중반도 채 안 된 분이셔서 내내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우리 성당 공동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이어서 그런지 이날 조문객 弔問客 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그에 비해서 정성이 더 실린 조용한 연도와 장례미사를 치를 수 있었다.

성당 사무실로부터 이런 ‘연령’ 행사가 ‘공지 公知’가 되면 우리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우리의 기본적인 자세는, 순교자 성당의 ‘연도와 장례미사’는 ‘가는 것을 원칙 原則’으로 했고, 또한 ‘쓸쓸한 영혼’일 수록 더 노력을 해서 참례하기로 했다. 물론 예외도 꽤 있었지만, 지나간 8년간1 우리의 이 원칙은 그런대로 잘 지켜졌고, 현재도 이런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제 와서 생각을 다시 해 보면, 이런 우리의 이 작은  봉사 service, 활동, 그러니까 사적인 연령활동이 우리의 신앙여정 중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높고 값진 활동임을 계속 깨닫고, 실제로 우리의 조그만 노력에 비해서 되돌려 받는 안 보이는 ‘그 무엇’은 글로 표현하기 힘들다.

야고보 형제님, 비록 조문객은 많지 않았어도 신부님의 ‘각별한 관심’을 듬뿍 받으시며 편안히 귀천하셨으리라 믿는다. 이 형제님이 5년 전 교리반의 인연으로 알게 된 자매님의 아버님임을 알아서 더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에 상관없이 레지오 단원의 제 역할을 했다는 것, 현재 더 많은 성모님의 관심이 필요한 우리 레지오 ‘자비의 모후’에도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믿고 싶다.

 

  1. 2010년 말, 우리가 레지오 활동을 같이 시작했던 때부터

 

 

Peace’s flowing like a river: 지나간 2주간은 한마디로 이 오래된 추억의 성가 가사와 같은 느낌이었다. 

 

Peace is flowing like a river,

flowing out through you and me,

flowing out into the desert,

setting all the captives free…

 

오래 전 우리가 가톨릭 세례(당시에는 영세라고 했음)를 받았던, 1980년대 초 Columbus, Ohio (오하이오, 콜럼버스) 한인 가톨릭 공동체, 이곳에서의 추억에서 이 곡이 빠질 수 없다. 성령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 채 성령대회, 성령 세미나 등엘 가면 이 곡은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그때 느낌에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분’이 성령 이시라는 것 이었다.

성령이건 아니건 그것은 현재 상관이 없다. 나는, 아니 우리는 ‘강물처럼 흐르는 평화’ 를 최소한 지난 2주 이상 경험하고 있다. 물론 예전에도 ‘가끔’ 이것과 비슷한 때를 경험했겠지만 이번은 아주 다른 것이다. 간단하게 나는 이것을 ‘초월적 평화 transcendental peace’ 라고 부르고 싶다. 평화를 주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물론 이것 저것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가 힘들기에 이것은 ‘초월적’인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높은 곳’에 그 원인이 있음을 안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면, 날라갈 듯한 느낌을 주는 나의 몸, 5 파운드나 빠졌던 체중이 원상 복귀가 된 것, ‘지난 해 겪었던 레지오 미친년 사건’의 기억이 조금은 희미해지고 있는 것, 얘기가 통하는 사람들과 가끔 어울리게 된 것, 1970/80년대 TV drama ‘Paper Chase‘ video를 찾은 것,  연숙이 대한민국 문인화 대전에서 두 점이나 입선을 한 것 등등이 있지만 역시 이것만으로는 현재 느끼는 ‘평화의 강물’을 설명하기가 힘들다.

이런 것, 한 마디로 unsustainable 한 것으로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가 없지만 상관없다. 이런 것 오래오래 기억하며 사는 것도 다른 종류의 평화다.

 

quiet, drizzly, chilly and serene..

 

4th Sunday of Easter, 부활 제4주일 일요일.. 올 부활시기 사월은 예년에 비해 싸늘해서 새벽녘에는 ‘난방’이 필요할 정도다. 요즈음의 일기예보 정말 놀랄 정도로 잘 맞는다. 일기 변화의 시간이 거의 정확하다. 지난 일요일 하루 종일 비가 온 것도 맞아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야외미사가 모두 취소가 되었었다. 이번에는 거의 일주일 전부터 예보한대로 그렇게 청명하던 날씨가 이른 아침부터 기울기 시작하며 부슬부슬 싸늘한 비가 내리기 시작한 오늘은 성당의 60/70 친교모임, 등대회의 Spring picnic 봄 소풍이 있던 날이기도 했는데 다행히 행사는 취소되지 않았다.

별로 집에서 멀리 떠나는 기회가 적었던 우리에게 이런 야외행사는 가급적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의견을 모았기에 주저 없이, 기꺼이, 즐겁게 이날을 맞았다. 비가 부슬 거리며 오락가락 했지만 shelter를 빌렸기에 문제가 없었다. 작년 11월 초에 있었던 picnic 경험이 있어서 생소하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많은 회원들이 모였다. 연숙에게 불편한 ‘인간’도 왔기에 신경이 쓰였지만 큰 ‘사고’는 없었다. 어쩌다 성당 내 거의 모든 단체들에는 꼭 피하고 싶은 인간들이 하나씩 있는지.. 한심한 노릇이다. 피할 것인가, 아닌가..

봄이 한창 무르익는 4월 말, Lake Lanier 호숫가  park는 날씨 탓으로 거의 텅텅 비어있었다. 싸늘하고 궂은 하늘아래 무섭게 조용한 public park의 분위기,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거의 동년배의 형제, 자매들이 모인 것이니 편하기만 하고, 지나간 ‘인생의 자취’를 서로 나누는 것, 나에게는 다른 인생공부라고 생각되었다.

2014년 교리반의 인연으로 알게 된 한 아녜스 자매가 부군을 데리고 나와 너무나 반가웠다. 아직 입교를 하지 않은 상태라 가볍게 입교권면은 했지만, 이런 일이 그렇게 쉬울까.. 하지만 레지오 정신으로 ‘달릴 곳은 끝까지 달리자‘ 라는 ‘구호’만 되뇌었다. 날씨 탓에 집에서 coffee만 축 내며 시간을 죽일 수도 있던 날, 우리는 맛있는 음식과, 많은 ‘편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p.s., rainy park 하면 반드시 생각나는 추억의 old harmony가 있다.

 

the rain the park & other things – The Cowsills – 1967

 

Roswell Nursing & Rehab Center

 

도대체 얼마 만인가? 지난 해 ‘레지오 미친년 사건’ 이후 거의 잊고 지냈던 Roswell Nursing (& Rehab) Center에 계시는 박안나 자매님. 중증 치매를 앓고 계시는 ‘할머니’ 자매님을 정말 오랜 만에 방문했다. 식구들은 많지만 집에서 간병하는 것,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일까.. 그래서 이런 ‘시설’들이 필요하고 생긴 것이고 프로 간호인들의 간병을 받는 것인데 문제는 시설마다 service의 질이 다르고 어찌 가족이 있는 집과 그 환경이 같을 수 있을까.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나의 머리 속의 혼란한 생각은 이런 것이다. 전혀 현실을 인식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기의 주변, 환경을 어떻게 인식을 할까.. 분명한 것은 현실과 전혀 다른 세계로 보고 대응을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 ‘젊은 할머님’, 이날 본 모습은 더욱 나빠진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방문할 때는 그런대로 우리를 알아 보시는 듯 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이날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전에 같이 방을 쓰셨던 2명의 할머님들 그 동안 모두 타계를 하셨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 이곳은 그 정도로 중환자들이 계셨던 곳이었다. 모두 ‘치매성’ 환자들이었지만 신체상으로 큰 병은 없었던 분들이었는데 퇴보하는 두뇌도 생각보다 더 치명적인 것이었다.

이 안나 자매님, 전에 뵈었을 때는 활발하게 주위를 돌아다니셨는데 지금은 거동이 완전히 어려워져서 어둠침침하게만 보이는 방 안의 침대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가족들이 할머니, 어머니의 이런 모습을 모를 리가 없겠고, 그렇다고 다른 방법도 없으니.. 침울한 심정으로 그곳을 나올 때, ‘저 자매님이 만약 나의 어머님, 누님이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하는 괴로운 생각이 나의 머리 속을 하루 종일 맴돌았다.

2004년 12월 생, 2005년 1월부터 우리의 식구가 되어 희로애락을 같이하며 살아온 mixed Cocker Spaniel pet dog, Tobey 의 사진을 다시 본다. 근래에 들어서 귀도 잘 안 들리는 듯 하고 움직임도 느려졌음을 실감한다. 그렇구나 이 녀석도 이제 나이가.. 14살이 넘었다. 사람의 나이로 보면 나보다 더 늙은 셈이고 언제 영원히 잠들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 녀석은 조금 사나운 성질이 있어서 우리 식구들에게 그렇게 사랑을 더 받지 못하고 산 것이 나는 못내 안쓰럽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무조건 사랑’을 베풀며 살아왔고 그 결과 Tobey는 나를 거의 ‘하느님’같은 존재로 따른다. 그러다 보니 슬슬 걱정이 되는 것이.. 이 녀석이 오늘이라도 세상을 떠나면 나의 심정은 어떨까.. 거꾸로 내가 죽으면 이 녀석의 심정이 어떨까.. 하는 조금은 과장된 우려가 생긴다.

자는 시간 빼고 나를 거의 하루 종일 감시하며 따라다니는 Tobey.. 어쩌면 그렇게 나를 좋아하는 것일까?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 이와 비슷한 것일까? 그야말로 조건이 없는 사랑을 나는 오늘도 하루 종일 몸으로 느낀다.

뒤치다꺼리는 적지 않겠지만 pet animal과 같이 사는 senior people들의 정신건강과 수명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서 월등 좋다는 기사도 읽은 기억이 있는데 나는 200% 공감하고 동감한다. 사랑을 주고 받는 그 행위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건강한 삶의 원동력임은 나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두 장의 사진, 억수같이 쏟아지는 봄비를 유심히 바라보는 녀석의 모습이 완연히 나와 비슷한 할아버지의 모습이고, 나의 study에서 ‘마음 놓고’ 기묘한 자세로 오수 午睡 를 즐기는 모습을 보는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그저 건강하게 살아다오..

 

억수같이 쏟아지는 봄비를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이런 자세로 자는 모습, 너무나 평화스럽게 보인다

 

 

Me and you and a dog named Boo – Lobo – 1971

 

꿈이냐 생시냐? 요새도 이런 ‘관용구’ 쓸까? 하도 한국산 ‘드라마’를 안보고 사니 ‘현대 한국어’ 중에는 내가 모르는 것도 있을 것이고 1973년 경의 한국어를 아직도 쓰고 있는 나에게 당시에 쓰던 말 중에 없어진 것도 있을 것을 짐작하는 것 어렵지 않다. 어제 내가 경험한 case가 바로 ‘꿈이냐 생시냐’ 바로 그것이었다. 기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나로서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이라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다.

이미 전에 나의 blog post에서 ‘언급, 불평’을 했듯이, 70세 생일이 지나면서  ‘갑자기’ 몸에 모든 힘이 빠지고, 쑤시고, 한마디로 평소에 하던 일들을 하는 것이 갑자기 힘이 들었다. 그 중에서 제일 고역이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때, 거의 침실을 기어나올 정도로 기운이 빠지고 몸 전체가 통증으로 쑤시곤 했다. 자연히 기분도 쳐지고.. 그 때의 결론이 ‘아하… 이것이 70세가 넘으면 나타나는 증상’이로구나 하는 좌절감이었다.

며칠 전부터 날씨가 갑자기 화창해지면서 드디어 ‘의무적’으로 육체적 노동을 해야 할 때가 왔다. 겨울 내내 쌓였던 낙엽이 그대로 있고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bush, hedge trimming이 나의 육체를 절실히 기다리고 있었으나 사실 내일 아침 못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화창한 날씨에 취해서 모든 일을 다 끝내고 다음 날 아침에 못 일어날 것을 예상했다.

 

back-breaking hedge trimming

 

놀랍게도 다음날 아침,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완전하게 산뜻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너무 놀라서 그날은 전날보다 더 많은 일을 했는데 그 다음날에도 마찬가지.. 완전히 나의 몸은 몇 달 전, 70세 이전의 condition으로 돌아와 있었다. 왜 그랬을까? 이것은 작은 기적이 아닌가? 모든 피로감이 지치도록 일을 한 후에 깨끗이 가셨다는 것, 한마디로 mystery에 가깝다. 과학적으로 보아도 정 반대 현상이 난 것이다.

이때 생각난 것이 homeopathy란 ‘비과학적 의학용어’ 였다. 어떤 책에서 본 듯한데, 간단히 말하면 ‘독은 독으로 치료’한다는 식이다. 비록 비과학적인 idea이지만, 이번 내가 경험한 것이 정확하게 그런 case가 아닐까? 온몸의 피로감과 통증을 ‘통증을 유발하는’ 그런 노동으로 치료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claim은 나도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우연일까, 아니면 혹시 며칠간 따스한 햇빛, 햇볕과 청명한 공기를 마음껏 마신 것 때문일까? 연숙의 지론에 의하면 햇빛과 맑은 공기가 나를 낫게 했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상관이 없다. 나의 칠순의 몸은 완전히 예전 같은, 정상으로 돌아왔으니까..

 

 

John 3:16, 요한 복음 3장 16절. 가톨릭 전례력에서 오늘 복음말씀은 요한복음 3장 16절부터 21절까지다. 영어로 간단히 John Three Sixteen으로 불리는 이 복음말씀은 아마도 culture (세속, 비세속 막론하고) 안에서 제일 잘 알려진, 유명한, 인용이 잘 되는 복음 말씀 구절중의 하나일 듯하다. 하도 유명해서 그런지 sports game같은 곳에서도 자주 보이고 거의 comic한 수준의 모습 (예를 들면 rainbow ‘wig’ man 같은)들도 있다. 왜 이 구절이 그렇게 널리 알려지고 유명한 것일까? 새삼스럽게 오늘 그런 의문을 제기해 보았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begotten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이 유명한 요한복음 구절을 예전 (최소한 15여 년 전)에 나는 어떻게 해석하고 느꼈는지 나 자신도 궁금하다. 이런 기억은 남는다. 간혹 자동차 bumper sticker에 John 3:16을 본 것. 야구경기나 football 경기 TV 중계를 보면 먼 곳에 이것을 흔들고 서있는 사람들.. 그 당시에 이것이 성경구절이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정말 조금이라도 그 뜻을 헤아려보는 여유나 신심이 거의 없었다. 그저 ‘이 말이 정말 심각한 의미나 가치가 있는가?’ 하는 정도였다.

Fast forward 15+ years… 이제는 이 요한복음 3:16을 완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글귀야 말로 왜 ‘복음’이라는 말, good news란 말이 생겼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이 말씀이 ‘진짜’라면, 심각하게 진실이라면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이해하는 것이며, 이 우주의 허공은 이미 의미 없는 차가운 허공이 아니고 사랑이 가득 찬 ‘사랑의 공간’임을 깨닫게 되며 나에게 남은 세상은 ‘절대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John 3:16이 나에게 주는 message라고 믿는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쉽게 공감이 갈 수 있는 제목을 가진 2013년경에 출간된 이 책의 ‘필사’1가 얼마 전에 끝났다. 이 책은 두께에 비해서 쪽수는 읽기에 편할 정도인 230여 쪽 정도, 내용도 비교적 가벼운 것이라 읽는 데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았고, 저자가 살아온 경험에 따른 시대적 에피소드 중심의 글의 구성이 ‘계속’ 흥미로운 것이어서 거의 쉼이 없이 2~3주 정도 편하게 읽으며 ‘필사’를 무사히 끝내서 serony.com의 K-Gutenberg page에 ‘한정판’으로 올려 놓았다.

이 책을 읽으며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저자인 안득수 (가톨릭 세례명 마리오)  (의학) 박사님, ‘마리오 형제님2‘의 본성적 성품이 얼마 전에 읽었던 고종옥 마태오 신부님과 닮은 점이 많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간혹 듣기에 불편할 정도로’ 솔직한 성격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그렇지 못해서 그런지 나는 이런 분들의 직선적이고 솔직한 성격을 아주 좋아한다. 사실 지나치게 겸손해서 거의 ‘내숭’의 수준에 도달한 ‘겸손한 사람들’이 이제는 더 경계가 되고 피하고 싶을 지경이다.

 

안득수 (의학박사) 마리오 형제님

 

하지만 그것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가톨릭 신앙에 따르는 ‘지칠 줄 모르는 불굴의 신심’ 또한 비슷한 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머지 나의 생애에서의 role model을 찾았다는 안도감이 느낄 정도였다. 흔한 말로 ‘겸손, 순명, 부드러움, 사랑’을 알맞은 비율로 골고루 갖춘 분이 바로 이 책의 저자 마리오 형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 이외에도 ‘청빈’의 모습까지 보이고3, ‘공허한 말보다 행동’, ‘명석하지만 겸손한 박학다식함’… 이 정도면 나의 role model이 되시기에 절대로 부족함이 없다.

이런 책을 적절히 재편집해서 성당 공동체에서 ‘교과서’로 쓰면, 아니 독서클럽 같은 곳에서 ‘연구, 토론’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위에 말한 ‘모범적인 덕목’들을 이런 ‘수기’를 통해서 배우는 것, 얼마나 효과적일까? 이런 분과 같은 사람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나이 먹은 사람들’ 중에 ‘하나라도’ 있었으면 하는 ‘개꿈’을 꾼다. 솔직히, 내가 아는 ‘늙은이’들(나를 포함해서) 중에는 눈을 씻고 보아도 이런 분을 연상시키는 사람은 정말 하나도 없었고 현재도 없다. 모두 모두 실망스런 영혼들 뿐이다.

일단 읽고 필사는 끝났지만 진짜 일은 이제부터다. 다시 한번 읽으며 정리하고 ‘성경 읽듯이’ 이분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을 요약하며 다른 blog post로 남기고 싶은 것이다. 오래 전에 내가 좋아했던 ‘팔방미인 극작가,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 이진섭 선생의 책4을 그런 식으로 남겼는데, 두고 두고 다시 내가 보아도 만족스러웠기에 다시 한번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이다. 다시 한번… 안득수 마리오 형제님, 감사합니다!

 

  1.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고 computer typing으로 softcopy를 만드는 것
  2. 가톨릭 공동체에 서 평신도의 최고 존칭은 ‘형제, 자매님’ 이다.
  3. 의학박사, 약사 부인, 국립대학 병원장 등을 역임한 분의 공개된 재산을 보면 가히 짐작이 간다.
  4. 1983년 간행된 부인 박기원 여사의 ‘이진섭’ 회고록: ‘하늘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

¶  교동학교 형제  Birthday Party Hangover: 새로 사귄 형제친구, 서울에서 아래 윗동네에 위치한 두 국민학교를 같은 시기에 다니던 동갑을 만난다는 것은 나의 경험으로 참 희귀한 일 중에 하나다. 몇 년 전에 성당에서 우연히 돼지띠 동갑도 만났던 즐거운 경험이 있었지만 곧 헤어지게 되어서 너무 아쉽기만 했다. 왜 이렇게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이 없을까 의아했는데 의문이 풀렸다. 알고 보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공동체 이곳 저곳에 적지 않게 그들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였다. 내가 그들을 못 찾은 것이고, 대부분은 신심단체가 아닌 친교단체에 속해 있었기에 그 동안 그들이 ‘숨어 보였던’ 것이다.

사람은 왜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나이고하 高下 를 막론하고 잘도 어울리던데, 나는 그것이 체질적으로 불편한 것.. 자라난 환경 때문인가?  작년에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고 ‘입회’를 한 60+ group 등대회, 나에게는 한마디로 awakening 같은 것이었다. ‘다른 세계’를 보는 듯한 그 느낌, 아직도 계속되는 것이며 나는 사실 ‘즐거운 우려’의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

동갑류 형제, 자매들을 ‘무더기’로 만나게 된 것은 나에게 timing이 아주 좋았다. 명색이 신심단체라는 곳에서 ugly하고 극단적인 위선을 통째로 경험을 했기에 아예 내숭떠는 모습이 훨씬 적은 친교단체에 신선함을 느끼게 되어서 그런가?

서울 종로구의 노른자위에 위치했던 국민학교, 교동학교 출신, 그것도 동갑의 형제님을 이곳에서 만난 것,  오랜만에 가물에 단비가 내린 듯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내가 다니던 재동국민학교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같은 때, 비록 짧았던 시절이었지만 같이 뛰고 놀고 했다는 그 사실만으로 나의 얼굴은 환한 웃음으로 뒤 덮인다.

교동국민학교는 나의 원서동 죽마고우 유지호와 ‘시자 누나’가 다녔고,  천도교 건물, 덕성여대, 우리들의 ‘문화전당’, 문화극장이 바로 앞에 있어서 사실 그 시절 그 주변의 광경들은 꿈에서도 나타날 정도로 익숙한 곳이었다.

나는 나이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꼭 ‘어느 국민학교 나왔느냐’ 는 실례가 될 수도 있는 질문을 하곤 해서 어떤 사람들은 웃기도 한다. 중 고교나 대학교를 묻는 것은 당시의 ‘입시지옥’ 풍토를 생각하면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국민학교는 전혀 문제가 없는1 순진한 화제가 아닐까?

이렇게 새로 만난 ‘교동형제님’ 의 칠순 생일 party에서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푸짐한 음식, 술, 얘기를 즐겼는데.. 문제는 남자들만 앉았던 table에서 ‘예의 정치, 시사토론의 함정’에 빠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술을 평소보다 더 마셨던지, 그 다음날은 하루 종일 멍~한 기분으로 ‘반성, 자숙’의 날로 보냈다. 피곤하긴 했지만, 동갑류 모임의 즐거움은 아직도 잔잔히 남고, 무척 오랜만에 느끼는 것, fraternity 형제애, 남자들만이 나눌 수 있는 정은 여자들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기억하고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또 오면 적극적으로 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  Only God & Time:  지난 목요일은 4월 첫 목요일,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저녁 미사 후에 성시간이 있는 날이었고 연도가 있던 날이었다. 전날 ‘음주’의 여파로 꼼짝하기 싫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나가라, 나가라..’ 하는 음성이 계속 들리는 듯했다. 생각해 보면 사실 이날은 빠질 수가 없었다. 미사나 성시간을 그렇다 치고 연도는 빠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날 연도는 20대 중반의 한창 나이에 ‘요절 夭折’을 한 청년을 위한 것이었다. 그 젊은 나이로 잠자는 중에 사망을 했다는 사실이 사실은 정말 믿기 힘든 것이었다. 사연이야 어떻다 치고 그 부모들의 심정은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사고, 사고 하지만 이런 사고는 부모로써 정말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다. 나의 딸이 이런 일을 당했다는 끔찍한 상상은 사실 상상을 하기도 벅찬데..

이 부모님들은 사실 우리가 아틀란타로 내려오기 전에 잠깐 살았던 Madison (Wisconsin)에 사셨다고 해서 반가웠다. 물론 우리가 그곳을 떠난 후부터 그곳에 사셨고, 같은 한인성당에도 다녀서 우리가 알고 지내던 분들을 많이 알고 계셨던 인연이 있다.

작년 이맘때에도 비슷한 사고로 아드님을 잃었던 자매님이 있어서 연도를 했지만 사실 어떤 말로도 위로를 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 연도의 위력은 참 대단한 것인가.. 그렇게 우리에게도 위로가 되지만 유족들도 마찬가지라 생각 되었다. 그저 생각한다… 왜 그런 고통이.. 그래서 하느님만이 ‘왜?’ 에 대한 답을 가지고 계실 것이라는 것, 또한 하느님의 선물인 ‘시간’이라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  참, 사는 것이 이렇게도 힘든 것인가?

 

¶  Spring roll & wine,  Impromptu style: 어제는 성당 휴무관계로 연기된 레지오 주회합이 있던 날이었다. 화요일에서 금요일로 바뀐 것은 이미 전에 경험을 해서 별로 다른 느낌이 없는 것인데, 어제는 조금 달랐다. 정오 미사 후 맛있고 푸짐한 점심2 생각을 하며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오는 대신, 다른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는 아주 희귀한 것이다. 저녁 초대를 받기는 해도 평일에 점심초대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성당에 부부신자는 많지만 항상 같이 다니는 case는 사실 그렇게 많지 않은데 이 couple이 그 중에 하나다. 우리보다 나이는 한참 밑이지만, 그 동안 우리와 그런대로 ‘웃는 모습’으로 대하던 부부, 요새 보면 전 보다 더 사이가 좋아 좋아 보여서 보기에도 좋았다. 자매님은 본당의 각종 일에 헌신적으로 봉사를 하고, 신심은 참 부러울 정도다.

 

 

전에는 성당 근처에 살았지만 년 전쯤 비교적 먼 곳으로 이사를 갔는데도 불구하고 자주 보는 부부, wife끼리 우연히, 그야말로 impromptu, 지나가는 말로 같이 점심을 먹자고, 그것도 자기의 집에서.. 이런 것도 사는 재미가 아닌가? 거창하게 계획 만들지 않고 스쳐가는 생각으로 마음이 맞는 사람과 식사 하는 것.  비교적 drive 하는데 시간을 좀 걸렸지만 멋진 country club 내에 있는 예쁜 집에서 한가하게 Spring roll 과 wine으로 시간을 보낸 것, 두고 두고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 될 것이다.

 

  1. 하기야 이곳도 그 후에 사립국민학교가 나타나며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2. 우리는 평소에 저녁을 안 먹기 때문에 점심이 제일 양이 많고 푸짐하다.

Truly, Mystery of Universe

 

¶  성삼일 부활주일:  아직도 무언가 잔잔한 폭풍이 지나간, 아니 아직도 지나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 2018년 부활 8일, the Octave of Easter 를 보내고 있다. 나에게 2018년 부활절은 어떤 것을 남겨주었으며 어떤 의미를 주었을까 곰곰이 생각한다. 지나간 수 년간 사순,부활 시기는 분명히 나에게 매년 각각 특징이 있는 것들을 기억하게 해 준 무엇들이 있었다. 2012년 이후 매년 사순,부활시기에 나는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웠고, 느꼈고, 받았다. 예를 들면 2013/14년, 당시 주임신부셨던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의 ‘어떤’ 강론, 의사가 체험한 ‘Proof of Heaven‘,  C.S. Lewis의 주옥 같은 저서들, Scientific philosopher Jesuit Fr. Spitzer의 ‘Science & Religion’ theme trilogy  모두 그때 듣고, 찾았고, 읽었던 것들인데, 지금은 모두 나에게 궁극적 진리의 안내자로 굳게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올해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작년에 받았던 깊은 마음의 상처1, 역시 지금까지 걸림돌이 되었고, 현재는 ‘세월의 처방’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서,  아주 소극적인 자세로 이번 부활절을 맞이한 것이다.

미리부터 ‘피곤할 것이라는’ 겁을 먹고 맞이한 성삼일 부활절,그래도 ‘의지와 은총의 도움’으로 성공적인 4일간의 여정을 무사히 마쳤다. 자세한 것에 상관할 것 없이, 그저 ‘전부 몰입적 immersion‘ 으로 임 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성경과 영화 속의 부활, 예수가 아닌 나의 옆에 있는 ‘사람 예수’의 고통과 부활을 느끼던 순간순간들이 신비스러운 경험으로 남게 되었다. 1년 만에 맞이한 성목요일 밤 세족례 미사가 끝난 후, 어둠 고요 속의 대성전과 수난감실 성체조배, 성금요일 ‘성찬례 없는 밤의 십자가의 길과 십자가 경배, 성토요일 밤 어둠 속에서 Lumen Christi 그리스도의 빛,  외침과 서서히 켜지는 촛불 속의 파스카 성야..  모든 것들, 가톨릭 상징성의 극치를 이룬 3일이었다.  이런 성스러움 중의 성스러운 ‘예수부활의 신비’를 올해도 ‘무사히’ 경험하고 나니 비록 피곤하긴 했지만 내 존재의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신비스런 환희를 어떻게 나의 원시적인 글로 표현을 할 수 있으랴?

파스카 성야, 성토요일 밤 미사는 사실 Easter Vigil 미사였기에 일요일 부활절 미사와 같은 것이지만 우리는 일요일 미사에 가야만 했다. 그날 부활절 일요일에는 새 신자 세례, 견진성사가 있었고 교리반 director로 모든  행사의 책임자인 연숙이 빠질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나도 새 신자(세례,견진) 환영식 party를 조금 도와주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일요일 오후에 모든 것들이 끝났지만 솔직히 연숙은 물론이고 나도 긴장이 풀어지는 듯한 피로감이 엄습했던 부활절 일요일 오후, 모든 것이 ‘무사히’ 끝났다고 감사를 드리던 부활 첫날이 되었다. 덧붙이면, 이 4일간의 경험은 사실 너무나 강렬해서 일년 두고 두고 묵상 默想, 단상 斷想, 관상 觀想 의 제목이 된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2018년 부활절 세례, 견진성사식 후

이어진 새 세례, 견진 신자 환영 축하식에서

이날 축하식이 있던 소성당은 어렵사리 며칠 간 petty politics 로 골치를 썪힌 후에나 쓸 수가 있었다.

 

¶  교리반 봉사자의 고뇌: 올해 신영세자 교리 반을 담당하던 연숙의 옆 모습이 너무나 힘들고 안쓰럽게 보였다. 나이 덕에 육체적으로 힘이 작년보다 더 드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사실 원인은 ‘피곤한 사람에 의한’ 피곤함이었다. 2014년 당시에는 나도 봉사자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 짐작을 하려고 했지만 당시에 ‘교리반 예비자들’은 하나같이 진지했고 온순했던 기억이라서 상상이 안 되는 것이다. 이번 학기 catechumen, candidate 학생들, 너무도 힘든 상대들이었다고 그 동안 간간히 듣긴 했지만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는 불미스러운 ‘사고’들까지 난 것을 보고 나도 그 심각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이제부터는 교리반 학생들 받을 때, ‘입학 인터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comment를 했다.  세례를 받겠다는 사람들의 기본적이고 기본적인 ‘인성 人性’들이 문제였다. 최소한의 예의와 인성교육이 철저히 결여된 학생들, 교리공부 이전에 받을 교육을 못 받은 사람들에게 ‘세례’란 것이 가당한 것인지 두고두고 생각하는 ‘첫 경험’으로 우리에게 남게 되었다. 이런 저런 traumatic한 경험으로 연숙에게 다음 학기 교리반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예감도 들었다.

얼마 전에 교리반이 모이는 112호실에 아침에 들렸을 때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았다. 간단한 snack이 정결하게 놓고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알아보니 세례,견진성사 후보자, 대부대모 ‘교육’ 모임이 있다고 했다. 문득 스쳐가는 생각은, 바쁠 대로 바쁜 봉사자 자매님들 시간을 쪼개어 이렇게 뒤에서 일사분란 하게 땀을 흘리는 사실을 ‘봉사 수혜자’들은 알기나 할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조용히 뒤에서 일하는 일꾼들, 이들이 진정한 사도정신을 가진 분들이라는 것, 다시 한번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112호 실, 조용한 봉사의 현장

 

  1. 2017년 8월 말에 일어난 ‘레지오 미친년 괴물 난동 사건

4월, 四月, April.. 사월이 되었다. 4월은 나에게 어떤 것인가? 70년 동안 쌓인 기나긴 추억을 통해서 올해 4월은.. 태곳 太古 적의 원시적 온돌방에서 화롯불과  이불로 견디던 서울의 겨울을 벗어나 만나는 반가운 손님처럼 느껴졌던, 그것이 바로 4월이었다.

다시 골목으로 나와 하루 종일 놀 수 있었던 찬란한 봄의 시작이 1950~60 년대의 가회동과 삼청동의 4월의 봄이었고, 자그마했던 ‘강북’ 서울이 10~20대의 함성과 카빈총소리로 요란 했던 찬란한 계절이기도 했다.

희미해져 가는 당시의 4월과 봄의 느낌들, 우연히 찾은 김남조 시인의 에세이 집 중의 ‘사월의 연가’ 가 현재 나의 심정과 어찌 그렇게 비슷한가. 어머님이 계시던 곳으로 이제는 편지를 보낼 수 없는 불효자의 심정과 공해 없이 맑던 당시의 ‘시원 始原 의 냇물’의 순수함.. 이제는 도저히 꿈 속에서조차 희미해지는 것들, 김남조 시인의 글 덕분에 조금은 되살아나는 것들.  느낌인가.. 아니면 바램인가.. . 아 사월이여, 사랑하는 사월이여..

 

 

사월의 연가 – 김남조

 

사월의 보석을 캐러 나오세요.

눈과 얼음이 얹히던 인동 忍冬 의 나무 살갗에 억 천만 만의 더운 손바닥들이 명주 피륙을 감아 훈훈히 속살마저 덥혀냄을 보러 나오세요.

봄을 맞는 나무 옆에 서서, 봄의 기운이 정수리까지 뻗치는 나무 옆에 서서 생명의 축복을 나누어 가지세요.

이슬을 보세요.

올해의 첫 이슬이 태초의 순수 그대로 영롱히 반짝임을 보세요. 다치지 않게 그 한두 방울을 손 안에 담아 보세요. 문득 새파란 하늘을 우러러 보세요. 옛날옛적 동심의 눈물 방울이 거짓말처럼 우리들 눈시울에 다시 치받아 어이없이 후두둑 떨어지는군요.

사월의 수분을 생각하세요.

겨우내 사람의 속 마음이 너무나 메말라 있었다고 여기던 터에 사월의 수증기를 생각하세요. 훈훈하게 축여질 알맞은 습도를 생각하세요.

사월의 아름다움을 누리세요.

단지 화사한 아름다움이 아니고 눈과 얼음에서 뽑아 올린 장한 아름다움을 누리세요. 광야의 기도사같이 인내와 신앙의 승리를 나누어 가지세요.

꽃을 보러 나오세요.

열 가지, 백 가지의 꽃을 보러 나오세요. 모든 꽃이 이 세상 유일한 꽃의 의미로 피어나는 절대의 숭고와 충실을 배우러 나오세요. 그 환희를 배우러 나오세요. 위로 위로 솟구치는 소망을 배우러 나오세요.

꽃을 보러 나오세요.

꽃의 언니들인 보리밭을 보러 나오세요. 삼월엔 땅 속에 벌여 놓던 초록빛 잔칫상을 오늘은 땅 위로 들고 나왔군요. 2월엔 어둠 속의 진통을 견뎌낸 그 갸륵한 것, 설한 雪寒 섣달엔 희미한 꿈이었던 그 눈물겨운 것.

보리밭을 보러 나오세요.

빛과 대기 속에 펼쳐지는 신록의 성찬식 聖餐式 에 참석하세요. 보리가 펴 놓게 될 순서들을 살펴보세요. 영글어서 곡식이 되고 타작마당을 거쳐 나와선 백설 같은 가루로 빻아져 떡과 술과 온갖 것이 되어서 많은 이를 먹이게 될 그 차례들을.

풀잎들을 보아 두세요.

얼음을 뚫어내고, 돌과 아스팔트마저 뚫어내고, 송곳처럼 디밀어 오르는 무시무시한 모가지들을. 어떻게 그 단단한 것을 뚫어내고 땅 위에까지 나올 수 있었나요.

당신은 믿고 계시겠지요.

도시의 봄 경치 속에서도 새싹들이 얼음과 돌과 아스팔트를 뚫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믿으시겠지요. 해빙의 낙수물이 기왓골을 타고 흐르며 그러한 몇 십 몇 백 년의 세월 사이에 마침내 동그맣게 섬돌이 패이고 있는 그 사실을.

 

사월의 보석을 캐러 나오세요.

꽃을 불러내는 바람을 만나러 나오세요. 피리 구멍으로 숨결을 디밀어 넣어 구슬 울리는 오묘한 가락을 뽑아내는 바람은 마술사랍니다. 사월의 바람을 만나러 나오세요.

사월이다, 사월이다라고 외쳐 보세요.

자신의 내부에 굳게 닫아 두었던 문들을 열고 존재의 골짜기들을 향해 사월이다 사월이다라고 외쳐 보세요. 사월이다 사월이다라고 산울림 돌아 나오게 해 보세요.

사월의 함성을 들어 보세요.

눈 감고 귀 기울이면 영혼이 율연 慄然 해지도록 아름답고 장한 사월의 함성이 들릴 거예요. 이 세상에서 제일로 깨끗한 젊은이의 함성이 뜨겁고 끈적끈적한 피에 섞여 와아~ 와아~ 울려옴을 들을 거예요.

당신은 견뎌낼 수가 있을는지.

목청껏 울어 버리지 않고 참아낼 수가 있을는지. 이십 년 전의 우리 젊은이들이 외치던 4.19 의 함성, 3.1 만세처럼 폐부 속에서 터져 나왔던 정의의 함성, 인권의 함성이 펄펄 끓는 열탕으로 지금도 와아~ 와아~  울려옴을 들을 거예요.

사월의 강가에 나오세요.

아직도 위판은 살얼음인데 그 밑을 흐르는 물 소리를 들어 보세요.

졸, 졸, 졸, 실타래 풀리듯이 끊이지 않는 봄 시냇물 소리를 들어 보세요. 서럽게 허전하던 모든 날에 꼭 들리던 그 개울물 소리가 아닌가요.

물의 시원 始原 을 생각하세요. 삼국유사 때부터, 단군신화 때부터 흐르던 물 소리. 선사시대 때부터 흐르던 물 소리. 조상의 조상처럼 늙고 지혜로운 물을 생각하세요.

불을 생각하세요.

태초의 날, 처음으로 일궈지던 성화 聖火 를 생각하세요. 지존하신 여왕을 사모하여 그 몸을 불태운 지귀 至貴 의 불과, 불타서 새하얗게 잿가루가 되어 버린 열 아홉 살의 쟌다르크를 생각하세요.

불을 생각하세요.

불의 상징인 온갖 신성한 것, 온갖 진실한 것, 순애 殉愛 와 순국 殉國 을 생각하세요. 육체를 불사르어 영혼에 기름 따르던 이 나라의 순교사를 생각하세요.

 

사월의 보석을 캐러 나오세요.

바위 살갗에 눈 트는 이끼, 진홍과 순백의 꽃들, 햇솜처럼 깔리는 봄 아지랑이, 꿈꾸는 연분홍의 조가비들을 생각하세요. 먼 데서 날아오는 새떼를 생각하세요. 훨 훨 훨 날아오는 빛부신 날개짓을 생각하세요.

땅 속에 뿌려지는 곡식들, 채소와 과일, 꽃씨며 갖가지 구근들…

사월엔 노동하세요.

심고 가꾸고 땀 흘리는 영광을 맛보세요.

나무 옆에 서세요. 주루룩 주루룩 속의 땀처럼 하얀 수액이 흘러 내리는 나무의 생리를 느껴 보세요. 사람의 몸 속에 피가 순환하듯이 나무들의 몸 속에도 수액이 돌아 퍼짐을 느껴 보세요.

거친 나무 등걸에 귀를 대면 똑딱 똑딱 시계 초침 소리를 내는 생명의 맥동, 생명의 울림을 들으세요.

사월엔 편지를 쓰세요.

두고 온 고향에도 편지를 날려 보내세요. 객지의 봄이 찬란하다 해도 어머니의 품과는 다른 점을 말해 보내세요.

사월에 편지를 쓰세요. 말할 기회를 미루기만 했던 사랑의 고백을 적어 보내세요.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이후에도 언제까지나 사랑하리라고 말하세요.

사랑만은 뉘우칠 수 없다고, 그 한 마디 말해 버리세요. 재회의 약속, 방문의 일정을 적어 보내세요. 아아 사월엔 사랑의 편지를 쓰세요.

사월의 보석을 캐러 나오세요.

사월의 보석더미 옆에 서세요.

바라봄으로써만 기꺼운 일, 그렇게 욕심 없는 우리들의 꿈, 소박한 소유.

 

사월의 찬미가를 부르세요.

그리고 사월엔 교회를 찾으세요. 제단엔 성촉 聖燭 을 밝히고 신도들이 기도하고 있으리니.

사월엔 교회에 나가세요.

하나님이 땅에 내려와 사람 손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다시 하늘에 오르시는 예수 부활에 참여하세요.

부활절의 기도를 드리세요. 복받치는 통곡으로 당신도 크게 한번 울음 우세요. 영생의 증거를 눈으로 보면서 주의 기적을 심령의 전부로 신앙하세요.

기뻐하세요. 기뻐하세요. 기뻐하세요.

사월의 보석을 캐러 나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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