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Monthly Archives: April 2018

¶ 2018년 4월이 저문다. 올해 4월은 예년과 달리 옛날 옛적의 4월에 얽힌 것들을 별로 회상할 기회가 없었다. 예를 들면 ‘목련 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박목월 님의 멋진 시와 가곡, 1960년 4월 19일의 광경들, 아니면 1970년 4월 용현이, 창희와 지리산 종주등반 같은 것들.. 이런 것들은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도 많았다. 이런 저런 ‘옛날 것’들을 올해는 거의 잊고 살았던 것이다.

그 대신 나는 거의 ‘현재’를 순간순간 열심히 살았던 4월을 보낸 것 같고 그것이 나를 흐뭇하게 한다. 과거의 사나이에서 조금은 현재의 사나이로 돌아온 것인지.. 하지만 희망은 아름다운 지난날과 건강한 현재를 반 반 정도 섞어서 사는 매일이 되는 것이다. 결국 2018년의 4월은 진정한 나의 ‘부활시기 4월 달’이 되었다.

 

¶ 목요회 Blues: 4월의 목요회 멤버들이 거의 5주 만에 다시 모였다. 매월 마지막 목요일 밤에 모이는 조금은 별난 모임, 벌써 8번째다. 예상을 벗어나 한번도 거른 적 없이 성실하게 모여 지나간 ‘힘들었던’ 한 달의 이야기를 나누는 조금은 ‘청승맞게 보이는’ 우리 목요회, 어떨까, 언제까지 이 모임이 계속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지나간 7개월 동은 그런대로 서로의 지나간 이야기를 나눈 셈이지만 사실 아직도 궁금한 것들 투성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지나간 이야기가 그렇게 중요한가, 현재가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써비스가 엉망인 어떤 Chinese buffet 에서 만난 자리에서  S 형제가 모임 줄곧 침묵으로 일관을 해서 우리의 신경을 쓰게 했는데, 이런 태도는 이번이 처음이라서 아마도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인생이란 것, 특히 우리들의 삶, 결코 즐겁지만은, 쉽지만은 않은 것 알기에 이런 자리에서 서로 고민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시간이 더 걸려야 됨을 알게 되었다. 사실 S형제는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될 정도로 고민이 많은 듯하지만 현재로써는  ‘기도나 관심’ 이외에 별로 option이 없다. 다음 모임에는 조금은 웃는, 말을 다시 많이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지만, 어떨까..

 

¶ Days with Sherlock: 며칠 간 ‘탐정 미스테리’의 원조 격인 영국 코난 도일 Conan Doyle  원작의 셜록 홈즈 Sherlock Holms 영화를 찾아 (물론 Youtube) 보게 되었다. 대부분 1940년대의 흑백영화인데 download 한 결과 놀랍게도 아주 영상의 질이 요새말로 720p 정도의 ‘보물’들이었다. 어렸을 때 만화로 즐겨 보았던 탐정 미스테리 이야기는 주로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 것들 역시 거의 모두 이 셜록 홈즈 Sherlock Holms 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영국 문화의 영향인지, 모든 스토리나 scene들이 너무나 ‘고상하고 신사적’, 비록 범죄가 주제지만 눈을 감지 않아도 되는, ‘안심하고’ 볼 수 있기에 Film Noir와 더불어 요새 즐겨서 보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관심을 갖고 접하게 된 Christian Writer의 대가인 C. S. Lewis 를 통해서 1940년대 영국의 여러 모습을 보며 또 다른 유명인, Sherlock Holms, 그리고 그의 sidekick 격인 Dr. Watson을  다시 찾게 되었다.

 

Sherlock Holms & Dr. Watson

 

¶ West Bank, again?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때도 있나? 같은 달에, 그것도 2주일에 걸쳐서 같은 park로 두 번 picnic을 갔다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희귀한 happening에 속한다. 첫 번째 picnic은 성당 등대회에서 간 것이고 다음 것은 역시 같은 성당의 레지오 야외행사로 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같은 West Bank park 이었을까? 아마도 이 즈음에 이곳이 제일 경치도 좋고 가기도 좋은 곳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첫 번째 갔을 때는 날씨가 거의 비가 오락가락 하던 때였지만 두 번째는 날씨가 기가 막히게 화창해서 West Bank park의 멋진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다만, 레지오에서 간 것은 거의 ‘의무적’으로 간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이곳으로부터 마음이 떠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성모님께 드린 맹세가 있기에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out of question이지만 세상사가 어찌 그렇게 예상대로만 되랴.. 그래도 이 화창한 날, 레지오 야회행사에는 장기유고 중인 ‘크리스’ 자매가 오랜 만에 모습을 들어내어 참석을 해서 반가웠다.

 

West Bank park under Spring Sun

 

 

또 하나의 연도와 장례미사:  지난 26일에 선종하신 ‘어떤’ 형제님을 위한 성당연도와 장례미사가 28일 토요일에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있었다. 몇 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선종하신 ‘야고보 James’ 형제님, 요새 세상에서는 ‘young’ senior에 속하는 60대 중반도 채 안 된 분이셔서 내내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우리 성당 공동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이어서 그런지 이날 조문객 弔問客 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그에 비해서 정성이 더 실린 조용한 연도와 장례미사를 치를 수 있었다.

성당 사무실로부터 이런 ‘연령’ 행사가 ‘공지 公知’가 되면 우리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우리의 기본적인 자세는, 순교자 성당의 ‘연도와 장례미사’는 ‘가는 것을 원칙 原則’으로 했고, 또한 ‘쓸쓸한 영혼’일 수록 더 노력을 해서 참례하기로 했다. 물론 예외도 꽤 있었지만, 지나간 8년간1 우리의 이 원칙은 그런대로 잘 지켜졌고, 현재도 이런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제 와서 생각을 다시 해 보면, 이런 우리의 이 작은  봉사 service, 활동, 그러니까 사적인 연령활동이 우리의 신앙여정 중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높고 값진 활동임을 계속 깨닫고, 실제로 우리의 조그만 노력에 비해서 되돌려 받는 안 보이는 ‘그 무엇’은 글로 표현하기 힘들다.

야고보 형제님, 비록 조문객은 많지 않았어도 신부님의 ‘각별한 관심’을 듬뿍 받으시며 편안히 귀천하셨으리라 믿는다. 이 형제님이 5년 전 교리반의 인연으로 알게 된 자매님의 아버님임을 알아서 더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에 상관없이 레지오 단원의 제 역할을 했다는 것, 현재 더 많은 성모님의 관심이 필요한 우리 레지오 ‘자비의 모후’에도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믿고 싶다.

 

  1. 2010년 말, 우리가 레지오 활동을 같이 시작했던 때부터

 

 

Peace’s flowing like a river: 지나간 2주간은 한마디로 이 오래된 추억의 성가 가사와 같은 느낌이었다. 

 

Peace is flowing like a river,

flowing out through you and me,

flowing out into the desert,

setting all the captives free…

 

오래 전 우리가 가톨릭 세례(당시에는 영세라고 했음)를 받았던, 1980년대 초 Columbus, Ohio (오하이오, 콜럼버스) 한인 가톨릭 공동체, 이곳에서의 추억에서 이 곡이 빠질 수 없다. 성령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 채 성령대회, 성령 세미나 등엘 가면 이 곡은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그때 느낌에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분’이 성령 이시라는 것 이었다.

성령이건 아니건 그것은 현재 상관이 없다. 나는, 아니 우리는 ‘강물처럼 흐르는 평화’ 를 최소한 지난 2주 이상 경험하고 있다. 물론 예전에도 ‘가끔’ 이것과 비슷한 때를 경험했겠지만 이번은 아주 다른 것이다. 간단하게 나는 이것을 ‘초월적 평화 transcendental peace’ 라고 부르고 싶다. 평화를 주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물론 이것 저것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가 힘들기에 이것은 ‘초월적’인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높은 곳’에 그 원인이 있음을 안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면, 날라갈 듯한 느낌을 주는 나의 몸, 5 파운드나 빠졌던 체중이 원상 복귀가 된 것, ‘지난 해 겪었던 레지오 미친년 사건’의 기억이 조금은 희미해지고 있는 것, 얘기가 통하는 사람들과 가끔 어울리게 된 것, 1970/80년대 TV drama ‘Paper Chase‘ video를 찾은 것,  연숙이 대한민국 문인화 대전에서 두 점이나 입선을 한 것 등등이 있지만 역시 이것만으로는 현재 느끼는 ‘평화의 강물’을 설명하기가 힘들다.

이런 것, 한 마디로 unsustainable 한 것으로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가 없지만 상관없다. 이런 것 오래오래 기억하며 사는 것도 다른 종류의 평화다.

 

quiet, drizzly, chilly and serene..

 

4th Sunday of Easter, 부활 제4주일 일요일.. 올 부활시기 사월은 예년에 비해 싸늘해서 새벽녘에는 ‘난방’이 필요할 정도다. 요즈음의 일기예보 정말 놀랄 정도로 잘 맞는다. 일기 변화의 시간이 거의 정확하다. 지난 일요일 하루 종일 비가 온 것도 맞아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야외미사가 모두 취소가 되었었다. 이번에는 거의 일주일 전부터 예보한대로 그렇게 청명하던 날씨가 이른 아침부터 기울기 시작하며 부슬부슬 싸늘한 비가 내리기 시작한 오늘은 성당의 60/70 친교모임, 등대회의 Spring picnic 봄 소풍이 있던 날이기도 했는데 다행히 행사는 취소되지 않았다.

별로 집에서 멀리 떠나는 기회가 적었던 우리에게 이런 야외행사는 가급적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의견을 모았기에 주저 없이, 기꺼이, 즐겁게 이날을 맞았다. 비가 부슬 거리며 오락가락 했지만 shelter를 빌렸기에 문제가 없었다. 작년 11월 초에 있었던 picnic 경험이 있어서 생소하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많은 회원들이 모였다. 연숙에게 불편한 ‘인간’도 왔기에 신경이 쓰였지만 큰 ‘사고’는 없었다. 어쩌다 성당 내 거의 모든 단체들에는 꼭 피하고 싶은 인간들이 하나씩 있는지.. 한심한 노릇이다. 피할 것인가, 아닌가..

봄이 한창 무르익는 4월 말, Lake Lanier 호숫가  park는 날씨 탓으로 거의 텅텅 비어있었다. 싸늘하고 궂은 하늘아래 무섭게 조용한 public park의 분위기,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거의 동년배의 형제, 자매들이 모인 것이니 편하기만 하고, 지나간 ‘인생의 자취’를 서로 나누는 것, 나에게는 다른 인생공부라고 생각되었다.

2014년 교리반의 인연으로 알게 된 한 아녜스 자매가 부군을 데리고 나와 너무나 반가웠다. 아직 입교를 하지 않은 상태라 가볍게 입교권면은 했지만, 이런 일이 그렇게 쉬울까.. 하지만 레지오 정신으로 ‘달릴 곳은 끝까지 달리자‘ 라는 ‘구호’만 되뇌었다. 날씨 탓에 집에서 coffee만 축 내며 시간을 죽일 수도 있던 날, 우리는 맛있는 음식과, 많은 ‘편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p.s., rainy park 하면 반드시 생각나는 추억의 old harmony가 있다.

 

the rain the park & other things – The Cowsills – 1967

 

Roswell Nursing & Rehab Center

 

도대체 얼마 만인가? 지난 해 ‘레지오 미친년 사건’ 이후 거의 잊고 지냈던 Roswell Nursing (& Rehab) Center에 계시는 박안나 자매님. 중증 치매를 앓고 계시는 ‘할머니’ 자매님을 정말 오랜 만에 방문했다. 식구들은 많지만 집에서 간병하는 것,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일까.. 그래서 이런 ‘시설’들이 필요하고 생긴 것이고 프로 간호인들의 간병을 받는 것인데 문제는 시설마다 service의 질이 다르고 어찌 가족이 있는 집과 그 환경이 같을 수 있을까.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나의 머리 속의 혼란한 생각은 이런 것이다. 전혀 현실을 인식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기의 주변, 환경을 어떻게 인식을 할까.. 분명한 것은 현실과 전혀 다른 세계로 보고 대응을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 ‘젊은 할머님’, 이날 본 모습은 더욱 나빠진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방문할 때는 그런대로 우리를 알아 보시는 듯 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이날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전에 같이 방을 쓰셨던 2명의 할머님들 그 동안 모두 타계를 하셨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 이곳은 그 정도로 중환자들이 계셨던 곳이었다. 모두 ‘치매성’ 환자들이었지만 신체상으로 큰 병은 없었던 분들이었는데 퇴보하는 두뇌도 생각보다 더 치명적인 것이었다.

이 안나 자매님, 전에 뵈었을 때는 활발하게 주위를 돌아다니셨는데 지금은 거동이 완전히 어려워져서 어둠침침하게만 보이는 방 안의 침대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가족들이 할머니, 어머니의 이런 모습을 모를 리가 없겠고, 그렇다고 다른 방법도 없으니.. 침울한 심정으로 그곳을 나올 때, ‘저 자매님이 만약 나의 어머님, 누님이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하는 괴로운 생각이 나의 머리 속을 하루 종일 맴돌았다.

Transforming Depression into Joy, ‘우울증, 기쁨으로 바꾸기‘, 문종원 지음. 2008년 문종원 지음. 약 한 달 전쯤 성당에서 대출한 이 책의 ‘필사’가 일주일 전쯤 끝났다. ‘영적 성장을 위한 감성 수련’ series  중의 하나로 이 책은 우울증을 영성적인 각도로 조명한 책이지만 실용적인 치료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문종원 지음’ 이라고 해서 처음에는 ‘우울증 전문가, 의사’ 정도로 짐작했지만 나중에 보니 ‘저자 문종원’은  사실 1992년 서울 대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은 ‘신부님’ 임을 어렵사리 알게 되었다. 왜 ‘문종원 신부’라고 밝히지 않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가톨릭 사제로서 ‘세례명, 본명’도 생략한 것은 무슨 선택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신부님의 간단한 profile을 보면: 미국 로욜라 대학에서 사목학을 공부 (Chicago 로욜라 인지 California 로욜라 인지 확실치 않음), 평화방송 라디오 주간, 현재 성령쇄신 운동을 지도하고 있고, 부정적 감정들 (우울증, 걱정, 두려움, 분노, 상실감 같은) 다스리는 프로그램 기획, 개발, 강의를 하고 있음, 다수의 저서와 번역서가 있음.. 으로 나와있다.

이 책의 제목이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우울증’이란 단어 때문이었다. 한 때 나 자신의 우울증을 의심했던 적도 있었고, 현재는 아주 가까운 주위에서 ‘분명한’ 우울증, 조울증을 목격하고 있기에 무심코 손이 그 책을 집어 들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조금 더 체계적으로 우울증을 ‘과학적, 영성적’으로 접근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필사를 끝내고 예의 ‘한정판’을 이곳에 올려놓았다.

 

목차, 차례를 보면 대강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짐작할 수 있다.

 

1. 우울증이란?

2. 우울증의 여러 모습

3. 우울증이 영향을 미치는 영역

4. 우울증의 자가 진단

5. 우울증은 언제 찾아오는가?

6. 중년기 우울증

7. 우울증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이 책은 대한민국 가톨릭서적 출판사 ‘바오로의 딸’ 에서 간행한 것으로 분명히 영성적으로 근본문제를 접근하는 것, 하나도 이상할 것 없다. 하지만 자연과학적, 의학적인 접근에 소홀 하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 책은 두 접근 방법을 적절한 균형으로 다룬 듯 하고, 의학적인 ‘화학요법’과 더불어 영적인 치료를 통해 우울증을 앓는 신앙인들을 주 대상으로 삼고 있는 듯 하다.

양창순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서두 추천글에서 ‘이 책에서 내가 가장 감명을 받은 것은 신앙을 통한 치유다’ 라고 밝혔듯이 우울증이 당뇨나 고혈압 같은 신체적(특히 두뇌)인 병 이상의 그 무엇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내 자신이 한때 겪었던 가벼운 우울증 (아니면 비슷한 것), 현재 만나는 어떤 사람에서 실제로 목격하고 있는 심한 우울증(사실은 조울증)의 case들을 조금 더 체계적으로 분석하며 이 책을 다시 정독하는 것도 good idea라는 생각도 들고, 그것을 ‘독후감’으로 남기면 좋을 것 같다.

2004년 12월 생, 2005년 1월부터 우리의 식구가 되어 희로애락을 같이하며 살아온 mixed Cocker Spaniel pet dog, Tobey 의 사진을 다시 본다. 근래에 들어서 귀도 잘 안 들리는 듯 하고 움직임도 느려졌음을 실감한다. 그렇구나 이 녀석도 이제 나이가.. 14살이 넘었다. 사람의 나이로 보면 나보다 더 늙은 셈이고 언제 영원히 잠들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 녀석은 조금 사나운 성질이 있어서 우리 식구들에게 그렇게 사랑을 더 받지 못하고 산 것이 나는 못내 안쓰럽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무조건 사랑’을 베풀며 살아왔고 그 결과 Tobey는 나를 거의 ‘하느님’같은 존재로 따른다. 그러다 보니 슬슬 걱정이 되는 것이.. 이 녀석이 오늘이라도 세상을 떠나면 나의 심정은 어떨까.. 거꾸로 내가 죽으면 이 녀석의 심정이 어떨까.. 하는 조금은 과장된 우려가 생긴다.

자는 시간 빼고 나를 거의 하루 종일 감시하며 따라다니는 Tobey.. 어쩌면 그렇게 나를 좋아하는 것일까?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 이와 비슷한 것일까? 그야말로 조건이 없는 사랑을 나는 오늘도 하루 종일 몸으로 느낀다.

뒤치다꺼리는 적지 않겠지만 pet animal과 같이 사는 senior people들의 정신건강과 수명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서 월등 좋다는 기사도 읽은 기억이 있는데 나는 200% 공감하고 동감한다. 사랑을 주고 받는 그 행위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건강한 삶의 원동력임은 나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두 장의 사진, 억수같이 쏟아지는 봄비를 유심히 바라보는 녀석의 모습이 완연히 나와 비슷한 할아버지의 모습이고, 나의 study에서 ‘마음 놓고’ 기묘한 자세로 오수 午睡 를 즐기는 모습을 보는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그저 건강하게 살아다오..

 

억수같이 쏟아지는 봄비를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이런 자세로 자는 모습, 너무나 평화스럽게 보인다

 

 

Me and you and a dog named Boo – Lobo – 1971

 

꿈이냐 생시냐? 요새도 이런 ‘관용구’ 쓸까? 하도 한국산 ‘드라마’를 안보고 사니 ‘현대 한국어’ 중에는 내가 모르는 것도 있을 것이고 1973년 경의 한국어를 아직도 쓰고 있는 나에게 당시에 쓰던 말 중에 없어진 것도 있을 것을 짐작하는 것 어렵지 않다. 어제 내가 경험한 case가 바로 ‘꿈이냐 생시냐’ 바로 그것이었다. 기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나로서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이라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다.

이미 전에 나의 blog post에서 ‘언급, 불평’을 했듯이, 70세 생일이 지나면서  ‘갑자기’ 몸에 모든 힘이 빠지고, 쑤시고, 한마디로 평소에 하던 일들을 하는 것이 갑자기 힘이 들었다. 그 중에서 제일 고역이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때, 거의 침실을 기어나올 정도로 기운이 빠지고 몸 전체가 통증으로 쑤시곤 했다. 자연히 기분도 쳐지고.. 그 때의 결론이 ‘아하… 이것이 70세가 넘으면 나타나는 증상’이로구나 하는 좌절감이었다.

며칠 전부터 날씨가 갑자기 화창해지면서 드디어 ‘의무적’으로 육체적 노동을 해야 할 때가 왔다. 겨울 내내 쌓였던 낙엽이 그대로 있고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bush, hedge trimming이 나의 육체를 절실히 기다리고 있었으나 사실 내일 아침 못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화창한 날씨에 취해서 모든 일을 다 끝내고 다음 날 아침에 못 일어날 것을 예상했다.

 

back-breaking hedge trimming

 

놀랍게도 다음날 아침,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완전하게 산뜻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너무 놀라서 그날은 전날보다 더 많은 일을 했는데 그 다음날에도 마찬가지.. 완전히 나의 몸은 몇 달 전, 70세 이전의 condition으로 돌아와 있었다. 왜 그랬을까? 이것은 작은 기적이 아닌가? 모든 피로감이 지치도록 일을 한 후에 깨끗이 가셨다는 것, 한마디로 mystery에 가깝다. 과학적으로 보아도 정 반대 현상이 난 것이다.

이때 생각난 것이 homeopathy란 ‘비과학적 의학용어’ 였다. 어떤 책에서 본 듯한데, 간단히 말하면 ‘독은 독으로 치료’한다는 식이다. 비록 비과학적인 idea이지만, 이번 내가 경험한 것이 정확하게 그런 case가 아닐까? 온몸의 피로감과 통증을 ‘통증을 유발하는’ 그런 노동으로 치료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claim은 나도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우연일까, 아니면 혹시 며칠간 따스한 햇빛, 햇볕과 청명한 공기를 마음껏 마신 것 때문일까? 연숙의 지론에 의하면 햇빛과 맑은 공기가 나를 낫게 했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상관이 없다. 나의 칠순의 몸은 완전히 예전 같은, 정상으로 돌아왔으니까..

 

 

John 3:16, 요한 복음 3장 16절. 가톨릭 전례력에서 오늘 복음말씀은 요한복음 3장 16절부터 21절까지다. 영어로 간단히 John Three Sixteen으로 불리는 이 복음말씀은 아마도 culture (세속, 비세속 막론하고) 안에서 제일 잘 알려진, 유명한, 인용이 잘 되는 복음 말씀 구절중의 하나일 듯하다. 하도 유명해서 그런지 sports game같은 곳에서도 자주 보이고 거의 comic한 수준의 모습 (예를 들면 rainbow ‘wig’ man 같은)들도 있다. 왜 이 구절이 그렇게 널리 알려지고 유명한 것일까? 새삼스럽게 오늘 그런 의문을 제기해 보았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begotten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이 유명한 요한복음 구절을 예전 (최소한 15여 년 전)에 나는 어떻게 해석하고 느꼈는지 나 자신도 궁금하다. 이런 기억은 남는다. 간혹 자동차 bumper sticker에 John 3:16을 본 것. 야구경기나 football 경기 TV 중계를 보면 먼 곳에 이것을 흔들고 서있는 사람들.. 그 당시에 이것이 성경구절이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정말 조금이라도 그 뜻을 헤아려보는 여유나 신심이 거의 없었다. 그저 ‘이 말이 정말 심각한 의미나 가치가 있는가?’ 하는 정도였다.

Fast forward 15+ years… 이제는 이 요한복음 3:16을 완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글귀야 말로 왜 ‘복음’이라는 말, good news란 말이 생겼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이 말씀이 ‘진짜’라면, 심각하게 진실이라면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이해하는 것이며, 이 우주의 허공은 이미 의미 없는 차가운 허공이 아니고 사랑이 가득 찬 ‘사랑의 공간’임을 깨닫게 되며 나에게 남은 세상은 ‘절대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이 John 3:16이 나에게 주는 message라고 믿는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쉽게 공감이 갈 수 있는 제목을 가진 2013년경에 출간된 이 책의 ‘필사’1가 얼마 전에 끝났다. 이 책은 두께에 비해서 쪽수는 읽기에 편할 정도인 230여 쪽 정도, 내용도 비교적 가벼운 것이라 읽는 데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았고, 저자가 살아온 경험에 따른 시대적 에피소드 중심의 글의 구성이 ‘계속’ 흥미로운 것이어서 거의 쉼이 없이 2~3주 정도 편하게 읽으며 ‘필사’를 무사히 끝내서 serony.com의 K-Gutenberg page에 ‘한정판’으로 올려 놓았다.

이 책을 읽으며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저자인 안득수 (가톨릭 세례명 마리오)  (의학) 박사님, ‘마리오 형제님2‘의 본성적 성품이 얼마 전에 읽었던 고종옥 마태오 신부님과 닮은 점이 많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간혹 듣기에 불편할 정도로’ 솔직한 성격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그렇지 못해서 그런지 나는 이런 분들의 직선적이고 솔직한 성격을 아주 좋아한다. 사실 지나치게 겸손해서 거의 ‘내숭’의 수준에 도달한 ‘겸손한 사람들’이 이제는 더 경계가 되고 피하고 싶을 지경이다.

 

안득수 (의학박사) 마리오 형제님

 

하지만 그것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가톨릭 신앙에 따르는 ‘지칠 줄 모르는 불굴의 신심’ 또한 비슷한 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머지 나의 생애에서의 role model을 찾았다는 안도감이 느낄 정도였다. 흔한 말로 ‘겸손, 순명, 부드러움, 사랑’을 알맞은 비율로 골고루 갖춘 분이 바로 이 책의 저자 마리오 형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 이외에도 ‘청빈’의 모습까지 보이고3, ‘공허한 말보다 행동’, ‘명석하지만 겸손한 박학다식함’… 이 정도면 나의 role model이 되시기에 절대로 부족함이 없다.

이런 책을 적절히 재편집해서 성당 공동체에서 ‘교과서’로 쓰면, 아니 독서클럽 같은 곳에서 ‘연구, 토론’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위에 말한 ‘모범적인 덕목’들을 이런 ‘수기’를 통해서 배우는 것, 얼마나 효과적일까? 이런 분과 같은 사람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나이 먹은 사람들’ 중에 ‘하나라도’ 있었으면 하는 ‘개꿈’을 꾼다. 솔직히, 내가 아는 ‘늙은이’들(나를 포함해서) 중에는 눈을 씻고 보아도 이런 분을 연상시키는 사람은 정말 하나도 없었고 현재도 없다. 모두 모두 실망스런 영혼들 뿐이다.

일단 읽고 필사는 끝났지만 진짜 일은 이제부터다. 다시 한번 읽으며 정리하고 ‘성경 읽듯이’ 이분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을 요약하며 다른 blog post로 남기고 싶은 것이다. 오래 전에 내가 좋아했던 ‘팔방미인 극작가,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 이진섭 선생의 책4을 그런 식으로 남겼는데, 두고 두고 다시 내가 보아도 만족스러웠기에 다시 한번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이다. 다시 한번… 안득수 마리오 형제님, 감사합니다!

 

  1.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고 computer typing으로 softcopy를 만드는 것
  2. 가톨릭 공동체에 서 평신도의 최고 존칭은 ‘형제, 자매님’ 이다.
  3. 의학박사, 약사 부인, 국립대학 병원장 등을 역임한 분의 공개된 재산을 보면 가히 짐작이 간다.
  4. 1983년 간행된 부인 박기원 여사의 ‘이진섭’ 회고록: ‘하늘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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