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일, 부활주일은..

Truly, Mystery of Universe

 

¶  성삼일 부활주일:  아직도 무언가 잔잔한 폭풍이 지나간, 아니 아직도 지나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 2018년 부활 8일, the Octave of Easter 를 보내고 있다. 나에게 2018년 부활절은 어떤 것을 남겨주었으며 어떤 의미를 주었을까 곰곰이 생각한다. 지나간 수 년간 사순,부활 시기는 분명히 나에게 매년 각각 특징이 있는 것들을 기억하게 해 준 무엇들이 있었다. 2012년 이후 매년 사순,부활시기에 나는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웠고, 느꼈고, 받았다. 예를 들면 2013/14년, 당시 주임신부셨던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의 ‘어떤’ 강론, 의사가 체험한 ‘Proof of Heaven‘,  C.S. Lewis의 주옥 같은 저서들, Scientific philosopher Jesuit Fr. Spitzer의 ‘Science & Religion’ theme trilogy  모두 그때 듣고, 찾았고, 읽었던 것들인데, 지금은 모두 나에게 궁극적 진리의 안내자로 굳게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올해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작년에 받았던 깊은 마음의 상처1, 역시 지금까지 걸림돌이 되었고, 현재는 ‘세월의 처방’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서,  아주 소극적인 자세로 이번 부활절을 맞이한 것이다.

미리부터 ‘피곤할 것이라는’ 겁을 먹고 맞이한 성삼일 부활절,그래도 ‘의지와 은총의 도움’으로 성공적인 4일간의 여정을 무사히 마쳤다. 자세한 것에 상관할 것 없이, 그저 ‘전부 몰입적 immersion‘ 으로 임 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성경과 영화 속의 부활, 예수가 아닌 나의 옆에 있는 ‘사람 예수’의 고통과 부활을 느끼던 순간순간들이 신비스러운 경험으로 남게 되었다. 1년 만에 맞이한 성목요일 밤 세족례 미사가 끝난 후, 어둠 고요 속의 대성전과 수난감실 성체조배, 성금요일 ‘성찬례 없는 밤의 십자가의 길과 십자가 경배, 성토요일 밤 어둠 속에서 Lumen Christi 그리스도의 빛,  외침과 서서히 켜지는 촛불 속의 파스카 성야..  모든 것들, 가톨릭 상징성의 극치를 이룬 3일이었다.  이런 성스러움 중의 성스러운 ‘예수부활의 신비’를 올해도 ‘무사히’ 경험하고 나니 비록 피곤하긴 했지만 내 존재의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신비스런 환희를 어떻게 나의 원시적인 글로 표현을 할 수 있으랴?

파스카 성야, 성토요일 밤 미사는 사실 Easter Vigil 미사였기에 일요일 부활절 미사와 같은 것이지만 우리는 일요일 미사에 가야만 했다. 그날 부활절 일요일에는 새 신자 세례, 견진성사가 있었고 교리반 director로 모든  행사의 책임자인 연숙이 빠질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나도 새 신자(세례,견진) 환영식 party를 조금 도와주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일요일 오후에 모든 것들이 끝났지만 솔직히 연숙은 물론이고 나도 긴장이 풀어지는 듯한 피로감이 엄습했던 부활절 일요일 오후, 모든 것이 ‘무사히’ 끝났다고 감사를 드리던 부활 첫날이 되었다. 덧붙이면, 이 4일간의 경험은 사실 너무나 강렬해서 일년 두고 두고 묵상 默想, 단상 斷想, 관상 觀想 의 제목이 된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2018년 부활절 세례, 견진성사식 후

이어진 새 세례, 견진 신자 환영 축하식에서

이날 축하식이 있던 소성당은 어렵사리 며칠 간 petty politics 로 골치를 썪힌 후에나 쓸 수가 있었다.

 

¶  교리반 봉사자의 고뇌: 올해 신영세자 교리 반을 담당하던 연숙의 옆 모습이 너무나 힘들고 안쓰럽게 보였다. 나이 덕에 육체적으로 힘이 작년보다 더 드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사실 원인은 ‘피곤한 사람에 의한’ 피곤함이었다. 2014년 당시에는 나도 봉사자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 짐작을 하려고 했지만 당시에 ‘교리반 예비자들’은 하나같이 진지했고 온순했던 기억이라서 상상이 안 되는 것이다. 이번 학기 catechumen, candidate 학생들, 너무도 힘든 상대들이었다고 그 동안 간간히 듣긴 했지만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는 불미스러운 ‘사고’들까지 난 것을 보고 나도 그 심각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이제부터는 교리반 학생들 받을 때, ‘입학 인터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comment를 했다.  세례를 받겠다는 사람들의 기본적이고 기본적인 ‘인성 人性’들이 문제였다. 최소한의 예의와 인성교육이 철저히 결여된 학생들, 교리공부 이전에 받을 교육을 못 받은 사람들에게 ‘세례’란 것이 가당한 것인지 두고두고 생각하는 ‘첫 경험’으로 우리에게 남게 되었다. 이런 저런 traumatic한 경험으로 연숙에게 다음 학기 교리반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예감도 들었다.

얼마 전에 교리반이 모이는 112호실에 아침에 들렸을 때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았다. 간단한 snack이 정결하게 놓고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알아보니 세례,견진성사 후보자, 대부대모 ‘교육’ 모임이 있다고 했다. 문득 스쳐가는 생각은, 바쁠 대로 바쁜 봉사자 자매님들 시간을 쪼개어 이렇게 뒤에서 일사분란 하게 땀을 흘리는 사실을 ‘봉사 수혜자’들은 알기나 할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조용히 뒤에서 일하는 일꾼들, 이들이 진정한 사도정신을 가진 분들이라는 것, 다시 한번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112호 실, 조용한 봉사의 현장

 

  1. 2017년 8월 말에 일어난 ‘레지오 미친년 괴물 난동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