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글, 글의 精粹

 

“이번에 글을 쓰면서 나는 이런 것을 생각해 봤읍니다. 즉 하나의 글은 한 인간을 이루고 있는 인격과 비슷하다는 것 말입니다. 나는 글의 내용을 글의 생명으로 보았고, 그 내용을 이루고 있는 사건들을 글의 몸에 비교해 보았읍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을 문장화하는 표현을 한 인간의 옷에 비유했었고, 또 그 표현의 테크닉을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삶의 멋이라고 말할 수 없을까를 생각해 봤읍니다. 남에게 호감을 주고 또 존경 받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훌륭한 인격과 좋은 몸매와 단정한 옷차림과 명랑하되 고상한 삶의 멋을 적절하게 가져야만 하듯이, 글이란 것도 그래야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고마태오 신부, ‘영원의 방랑객’ 312쪽

 

어젯밤 거의 우연히 나의 손에 ‘잡힌’ 책, ‘존경하는’ 고 마태오 신부님의 장편 서사시적 실화소설 ‘영원의 방랑객’ 을 ‘난독’하며 나의 눈에 들어온 ‘글에 대한’ 글이다.

 

“트렁블레 신부가 술잔을 들자 나도 술잔을 들어 축배를 나누었다. 그리고 우리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날 밤 나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나는 감격해 있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학교라고는 왜정 시대 소학교밖에 다니지 못한 내가 프랑스어로 글을 쓰고, 그것이 곧 책으로 출판된다니 도무지 꿈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실감하고 있을 때 내 마음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고마태오 신부, ‘영원의 방랑객’, 313쪽

 

국민학교 출신, 문학적 수업은 물론 국어교육조차 제대로 못 받았던 이 ‘전설적’인 고 (종옥)마태오 신부님이 한국어도 아닌 프랑스어로 책을 쓰시고 출판1하기 전에 밝힌 ‘글이란 무엇인가?’, 한 문단으로 집약된 신부님의 ‘글의 정수 精粹’ 론 論이다.

‘진짜 글’은 ‘한 인간의 인격’이다. 내용은 생명이고, 내용 중의 사건들은 몸, 문장화 된 표현은 옷, 표현의 기교는 삶의 멋..  이것이 신부님이 생각한 글의 모습이다. 간단히 말해서 글이 글다운 멋을 지니려면 그 저자도 함께 멋이 있어야 한다는 그런 것이 아닐까? ‘못된 인간’이 쓴 글은 어쩔 수 없이 ‘못된 글’이라는 비교적 자명한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는데, 이 고 마태오 신부님의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자세는 그가 쓴 글에도 100% 그대로 남아있어서 가끔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이것을 읽고 생각하며, ‘나의 글’을 되돌아 보게 된다. 지나간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사적, 공적인 나의 글 (개인 일기 diary 와 블로그 public blog)을 가끔 읽게 되는데, 어떨 때는 ‘내가 어떻게 이런 글을 썼을까?’ 하고 부끄러운 감탄을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좀 더 솔직히, 자세히..’ 라는 아쉬움도 많다. 특히 ‘자기 도취, 자기 연민’이 대부분인데, 한마디로 ‘삶의 사연들, 그것도 감동적인..’ 이 절대로 결여되어 있다. 이래서 글의 본질에 내용을 이루는 ‘사건’들을 잘 창조하고 이끌어 나가는 저자의 삶이 절대로 중요함을 느끼고, 위의 고 마태오 신부님은 그런 면에서 거의 신화에 가까운 ‘감동적 삶의 연속’을 경험하셨기에 ‘글의 정수’의 표본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이 아닐까?

열대성 기후가 아직도 섞여있는 2018년 초가을, 날씨 탓도 있지만 이렇게 나의 머리가 정리되지 못한 혼탁한 상태에서 우연히 다시 손에 ‘걸린’ 이 책 속의 ‘인간애의 표본’ 고 마태오 신부님.. 아직도 살아 계셨으면 당장 비행기라도 타고 가서 뵙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간단하지만 어려운 말을 그대로 일생을 통해 실천하신 고 마태오 신부님, 영원히 사랑합니다. ‘글로 표현이 되지 못한 생각은 진정한 생각이 아니다’ 라는 명언을 생각하며, 나도 좀 더 솔직하고 꾸밈없고 용기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을 기다리며, 습기가 사라진 진정한 가을하늘을 기다려본다.

  1. 프랑스어 제목: ‘모든 길을 신에게로’, 후에 출판된 한국어판 제목: ‘예수 없는 십자가

Autumn too far..

¶  가을은 도대체 언제, 어디에? 올해의 9월 초순은 유별나게 더운 느낌이고 사실 실제로도 그렇다. 하지만 나의 불평은 햇살 따가운 그런 것이 아니라 장마 뒤의 끈끈한 그런 날씨의 연속이라는 사실이다. 거의 매년 날씨의 느낌을 개인 일기로 남긴 탓에 나는 계속 작년 이맘때와 일일이 비교를 하는 ‘함정’에 빠진다. 작년의 9월은 Nine-Eleven (2001년 9월 11일)의 그때와 거의 비슷하게 바짝 마른 시퍼런 하늘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런 9월 초순을 기대하였는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정 반대가 되었다.

이런 때, 즉 여름 같은 느낌의 9월을 느끼게 되면, 빠지지 않고 잊지 않고 떠오르는 9월의 날씨는 1968년의 9월 서울에 살 때의 기억이다.  연세대 2학년 2학기가 시작 되었던 때, 그렇게 재미있던 학교공부가 갑자기 시시하게 느껴지고 연세대 입구에 즐비한 다방에 앉아서 pop song에 심취되고, 그 당시에 시작된 어떤 학생 클럽(남과 여)에 거의 모든 시간을 ‘낭비’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철없는 듯 하지만 절대로 후회를 할 수 없다. 그 때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없는 가장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는 때’ 였으니까.. 신촌 로터리에서 이대 쪽으로 가는 언덕길에서 ‘클럽 뉴스’를 등사 service 하는 집에 부탁하고 시내버스를 기다리던 때, 9월 중순 무렵, 엄청 더웠다. 바로 지금 내가 겪는 그런 날씨였다. 그 이후 나는 ‘더운 9월’을 맞이하면 그때 그 길에 있었던 ‘등사 service’1하던 집을 회상하곤 한다. 아마도 지금 같았으면 집에서 Microsoft Word로 편집을 해서 집에서 print하거나 email로 회원들에게 보냈을 것이지만.. 50년 전에는 이렇게 모든 것이 ‘느리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그런 시절이었다.

오랜 만에 들어보는 단어 hurricane, 이것도 꽤 기억에서 희미해 진 것이다. Global warming 과 함께 익숙했던 이것, 이것이 올해는 생각보다 가까이 왔다. 바로 옆에 위치한 Carolina (주로 North)로 들이 닥친 것이다. Hurricane Florence.. 여자의 이름, 줄여서 Flo라고 했던가. Carolina 사람들은 무섭고 귀찮겠지만 안전한 거리에 있는 이곳 (Metro Atlanta) 에서는 그저 ‘시원한 북쪽의 공기’를 이곳으로 보내주고 시원하고 잔잔한 비나 좀 많이 뿌려주기를 바랄 정도다.

 

¶  2018년 9월 8일, 끈끈한 구름 속으로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가 대단한 9월 초, 올해의 9월은 작년의 그것과 이렇게 다른가… 작년의 daily (personal)  journal을 보면 습기가 완전히 빠져나간 파란 초가을의 풍경이 생각이 나는데.. 비까지 그친 날씨 아래 흙먼지가 뽀얗게 일어나는 올해의 backyard는 그렇게 예쁜 모습이 아니다.

오늘은 사실 교회력으로 ‘성모님의 탄생축일’인데도 불구하고 아침미사를 거르게 되었다. 큰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귀중한 아침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싶다는 유혹을 이기지 못했던 것 뿐이다. 사실 이런 아주 작은 유혹들에게 넘어가면 결과는 예측불허다. 경험을 통해서 어찌 모르랴… 관건은 이 작은 유혹에서 더 이상 후퇴를 안 하는 것이다.

달력을 앞뒤로 보니 내주 화요일이 9월 11일… 2001년 9월 11일… 나인원원… 갑자기 몸이 움츠려 든다. 기분이 갑자기 나빠지고 쳐진다. 어느 누군가 안 그럴까? ‘그 당시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라는 질문이 나에게 떨어질 듯한 기분을 느낀다. ‘악의 실재’를 처음으로 체험한 날을 어찌 누가 잊겠는가? 기분이 또 쳐진다.

  1. 당시에 print물을 copy하려면 거의 등사란 것을 해야 했다. 복사기(copier) 가 없거나 너무나 비쌌기 때문이다.

‘자비의 모후’ 단장으로..

9월 4일, 내가 8년 동안 몸담고, 나름대로는 헌신적으로 봉사했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소속 레지오 쁘레시디움1 ‘자비의 모후’ 의 단장이 되었다. 2011년 초 입단선서 이후 거의 8년 동안 회계 2년, 서기 6년을 맡았는데 그것들의 임기가 모두 다 끝난 것이다. 그 동안 세월이 그렇게 흐른 것에 놀랐다.

물론 나의 다음 일은 ‘피할 수 없는 운명’, 단장직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고, 지난 8년 동안 ‘그저 하라는 것은 묻지도 말고 따르자’ 하는 순명의 자세로 임하면 된다고 생각을 하며 이 시점을 맞았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묘한 timing’ 이 아주 신경이 쓰였다. 예상치도 않게 지난 7월부터 성당 구역장이 된 것, 생각보다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거의 모두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그 동안 조용하게 살았던 생활방식이 송두리 채 바뀌고 있는 바로 그런 시점에 또 다른 ‘장 長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어떤 장 長 자리가 더 중요한 것인가? 왜 칠순이 넘은 나이에 이런 일들이 나에게 온 것인가? 하지만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 정도로 몸과 마음이 바빠진 것이다.

단장의 임무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레지오의 운명, 발전과 성패는 단장에게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는 말로 임무의 중요성은 알겠지만 문제는 이런 중차대한 임무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닐까? 서기직을 6년 동안 하면서 대강 단장의 일을 옆에서 보아 왔기에 익숙해 졌다고 생각은 하지만 일단 맡고 시작을 해보니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일단 ‘성모님의 부탁’을 받았으니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3년을 마칠 각오는 되어있지만 우선 처리해야 할 중차대한 안건이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 동안 우리를 괴롭히고 분열시키려고 했던 ‘두 명의 독소 毒素 적 현, 전 단원’을 징계하고 탄핵하는 일, 바로 그것이다.

  1. 레지오 마리애 조직, 군대의 분대 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