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Monthly Archives: December 2018

서기 2018 이천십팔 년이 서서히 저물고 있다. 나의 나이 70세의 거의 전부도 저물어 간다. 얼마 안 있으면 71세가 된다. 그렇게 70이란 숫자의 나이를 들먹이던 것도 이제는 큰 의미가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2018의 숫자로 가끔 생각했던 것은 10년 전, 20년 전.. 등등으로 나의 옛 시절의 추억들이다.

제일 멋진 숫자가 50이다. 그러니까 50년, 50년 전, 더 멋지게 ‘반세기 전’..  이제는 완전히 나는 반세기인을 20년이나 덤으로 산 것..  그때가 50년 전, 1968년이었다. 이 해는 나의 뇌리에서 가장 많은 추억을 만들었던 때, 나의 blog 에서도 가장 융숭한 대접을 받았던 해로 남는다. 나이 20 이었으니 얼마나 즐거웠던 때였을까?

40년 전, 1978년은 어떠한가?  나이 30,  바로 지나간 20대에 필요이상으로 왕성하던 남성 호르몬도 조용해지고, 본격적으로 인생을 살 채비를 갖추던 시절.. 하지만 당시에 나에게 ‘북극성’은 없었다. 코 앞에 보이는 골목 길만 따라  남들이 하는 대로 걷기만 했다.

이렇게 나이 40, 50, 60을 따라가다가 70에 도달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세월이 나이에 따라 더 빨리 흐르는 듯 느껴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주위의 변화는 없는 듯했다.  물론 60, 70의 전통적 상징성은 무시 못하겠지만 그것조차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18년을 뒤돌아 보니 다음과 같은 일(나의 10대 뉴스)들이 생각난다.

  1. garage door spring accident
  2. 칠순 생일 맞이
  3. Hyundai Elantra gone
  4. Roswell Nursing Home
  5. Tobey to heaven
  6. furnace, a/c replaced
  7. 구역장 피선, 본격적 본당 활동 시작, 연수회, 본당의 날
  8. 목요회 모임 1년 이후
  9. 레지오 단장 임기시작
  10. Total burnout begins..  totally ruined holidays

 

이런 저런 나의 시대 관을 배경으로, 2018년은 나에게 무엇이며 어떤 때였는가.. 사소한 것부터 지각변동적인 큰 사건들도 있었고, 신변에 아주 위험한 때도 있었다.

  1. 작년 1월 6일, garage door의 ‘위험한’ spring을 교체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지면서 그 육중한 문에 깔렸던 사고.  그 당시에 집에 아무도 없어서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상황이어서 최악의 경우 나는 그 문에 깔려 질식사할 수도 있었으나 큰 상처 없이 빠져 나왔다.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상체근육의 도움에 의한 것이었다.
  2. 나이 칠십세! 우아… 이거 말이 되나.. 내가 70살이라니..
  3. 나의 ‘통근전용 승용차’ 로 정이 많이 들었던 이 고물차가 드디어 donation형식으로 나를 떠났다.
  4. 집과 비교적 가까운 이 ‘양로원’에서 치매 등으로 고생하는 ‘동포’ 형제 자매들을 돌보게 되었다.
  5. 나의 ‘분신’ Tobey가 비교적 큰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났다. Tobey야, 나중에 다시 보는 거다!
  6. 여름만 되면 조마조마 하던 이 ‘고물’이 드디어 수명을 다하고 최신형 model로 교체되어서 이제부터는 다리를 쭉 뻗고 잘 수 있게 되었다.
  7. 나이 70에 ‘마지막 임무’라 생각하며, 그 동안 진 빚을 갚은 자세로 겸허하게 수락한 이 ‘장’자리, 나에게는 생소한 job이지만 열심히 저돌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 했지만 나의 tactic 은 순진한 것이었다. Marathoner의 자세를 취해야 했지만 바보같이 sprinter 흉내를 낸 탓에 결국은 total burnout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그래도 빚을 조금은 갚은 시원한 기분이다.
  8. 매달 마지막 목요일 밤에 모이는 이 ‘이상한’ 그룹,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노력을 했지만 성과는 의문 부호일 뿐이다. 하지만 최근에 조금 좋은 결과를 목격하며 ‘어머님’의 신비한 손길을 느끼게 되었다.
  9. 비록 레지오 ‘분대장’일 지라도 ‘장’은 ‘장’이다. 문제는 분대의 규모가 너무나 약하다는 것, 심지어는 분대의 운명이 불분명하다는 것, 나는 이런 것을 극복할 경험과 능력이 아직은 부족하다. 게다가 이 직책을 맡으며 꼭 하고 싶었던 과제 (우리를 괴롭혔던 두 명의 미친 년들의 처벌문제)는 현재 허공에 떠있는 상태다. 아마도 이 문제는 priority가 더 낮아질 듯하다.
  10. 대림절이 시작되면서 나는 결국 모든 문제들이 일시로 뭉치면서 이런 total burnout의 상태로 치닫게 되었고 결과는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어두운 성탄, 연말’을 보내게 되었다.

 

Max Planck, father of Quantum Physics

 

요새 나는 온통 이 흔해빠진 단어, ‘consciousness,  의식 意識’의 홍수에서 헤매며 사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곳, 저곳, 그곳.. 나의 눈이 가는 곳마다 이 consciousness란 말이 보이는 것일까? 하기야 이것은 우문현답 愚問賢答 식으로 말하면 ‘나의 눈이 가는 곳마다 (대부분 책들) 그것이 보이니까, 아니 내가 그런 것을 내가 의식적으로 읽거나, 보거나 생각하고 있으니까’  정도가 아닐까?

무슨 큰 진리나 발견한 듯한 쾌감이 따라오는 이 최근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나는 ‘절망 뒤에는 반드시 다시 태양이 떠오르는’ 그런 ‘작은 은총’을 느낀다. 죽으란 법은 없는가.. 요사이 나의 ‘독서 관심’을 이쪽으로 이끌어주는 것, 나의 의식적 의지만은 아님을 어찌 내가 모르랴..

과학과 종교, 인간과 하느님, 보이는 현실과 초자연 세계를 연결해 주는 고리, 그것이 바로 consciousness라는 놀랍지만 생소한 idea가 이제는 ‘말이 된다’라는 경지까지 온 것, 그것이 나는 아직도 놀랍기만 하다.

20세기 초의 Quantum theory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한 string theory, multiverse등이나 NDE (Near-Death Experiences)를 통해서 지나간 반세기 동안 그 동안 taboo처럼 취급되던 것들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드디어 big convergence (science & religion) 가 시작된 것인지는 몰라도 가히 흥미로운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끈질긴 materialistic mindset을 가지고 자란 나에게 종교적 신비적인 경험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영역이었지만 근래에 들어서 ‘가슴을 열고’ 본 ‘새로운 현실’은 아주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온 우주가 의식적, 의식으로 가득 찬, 사랑의 시공간이라는 놀라움. 우리의 두뇌에 갇혀있는 포로로 알던 ‘의식’은 그 자체가 자체라는 사실 등등은 아무리 ‘영혼의 밤’ 속에서도 밝은 빛으로 나를 살려준다.

이런 모든 것들은 가히 ‘복음적’이 아닐 수 없다. 태어나면 죽어서 잊혀져야 하는 존재가 실제로는 ‘영원한 존재’라는 조심스러운 나의 희망적 염원이 서서히 실감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한 예수님의 복음 중 제일 큰 복음이 아닐까?

필사1로 읽는 책 중에 노장여류화가 천경자 화백의 ‘사람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란 제목의 수필집이 있다.  소싯적에는 이분의 책은 물론이고,  이분 자체도 잘 몰랐고 관심 밖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림자체는 내가 문외한이니 자신이 없지만 수필체의 글은 정말 마음에 든다. 아마도 내가 지난 10년간 남기고 있는 blog을 통한 ‘글’, 특히 수필체 글에 대한 생각 때문일 것이다. 멋있는 표현보다, ‘감정에 솔직함’이 나에게는 거의 전부다. 여사의 글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닌지..

오늘 필사한 것은 제목이 ‘서울의 엘레지’란 수필인데,  이것을 읽으며 갑자기 ‘나의 서울, 나의 서울 엘레지’란 것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이 ‘엘레지’는 1980년대까지의 서울의 모습에 얽힌 ‘단상’들인데 나의 것은 그보다 10여 년 전인 1970년대 초까지일 것이다.  그때까지 나의 모든 존재는 그곳, 조선조, 일정시대, 해방과 6.25  직후의 서울 ‘강북’ 이란 ‘좁은 곳’, 그러니까 북악 남쪽 한강 위쪽에 국한 되었다.

이곳에 얽힌 나의 ‘서울 엘레지’를 쓰라면 비록 ‘엘레지’를 논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어도 그 나이에 걸 맞는 ‘유치한 엘리지’는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다. 그 엘레지는 이제는 99.9%  변해버린 ‘토지’위의 모습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 다 사라져 버린 그곳은 오로지 꿈 속에만 존재한다. 그것이 나의 ‘서울 엘레지’일 듯…

그래서 그런지, 솔직히 말해서 나는 ‘현재의 서울의 모습’은 100% 매력이 없다. 천경자 화백의 수필도 아마 그런 각도로 본 엘레지가 아니었을까? 과거, 옛날을 그리는 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인간의 이상향이 아닐까? 아련한 추억을 모조지 쫓아내버린 ‘메트로 서울’의 모습 속에서 나만이 가지고 있는 추억의 서울을 꿈 속에서 찾는 것이 이제는 길지 않은 여생의 ‘취미’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저 세상’에 가면, 수정처럼 깨끗한 모습의 ‘작고 소박한 그곳’의 모습을 볼 수 있지는 않을까?

 

서울 시청, 국회의사당, 시민회관, 반도호텔.. 서울의 1962경, 아담했던 모습들

꿈 속에서나 볼 수 있는 1962년 경 서울의 모습, ‘중앙청, USOM, 세종로’

 


 

서울의 엘레지 – 천경자

 

거리의 체증을 뚫고 택시가 어렵게 3호 터널을 빠져 나오자 남 서울의 풍경이 환히 펼쳐지기 시작했다. 후유 – 한숨이 터진다. 거대한 라이터가 무수히 치솟은 듯한 고층아파트들의 원경은 흡사 뉴욕의 허드슨 강에서 바라보는 한쪽 도시를 연상시켜 준다. 서울이 이토록 발전한 데에 경탄은 하지만 한편 메마르고 살벌한 시야에서 막연한 불안감마저 느낀다.

창 밖을 스치는 실버들 가로수를 보며 시각을 통해서나마 쩍쩍 금이 간 가슴에다 촉촉한 푸르름을 흡수해 보려고 깊은 호흡을 하는 것도 일상사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차가 한강다리를 달릴 때의 기분은 잠시나마 상쾌하다. 그 지점에서 나는 동남쪽 강변에 솟은 반원형의 고층건물을 유심히 바라본다. 우리 가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가정이라는 따스함도 고령의 노모가 살아 계실 동안만 지속된다는 걸 알고 있고 언젠가는 다가올 엄숙한 붕괴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차창에서 보이는 그 아파트는 고대 로마시대에 기공되어 지금은 허물어져 동그랗게 반원형만 남아 있는 콜로세오를 방불케 했다.

영화 <쿼바디스>에서 생사를 걸고 장절한 검투를 벌였던 검사(劍士)의 모습들마저 상기되어왔다.  한 인간이 두뇌와 붓을 쥐고 오른팔 하나로 살아가는 생(生) 역시 검사와 다를 것 없이 처절하고 또한 스릴과 쾌락이 있다.

띵똥, 초인종 소리에 문 열어 주는 가족이 있고 비로소 아늑한 우리 집의 작은 세계가 얼어붙은 가슴을 녹여 준다. 미완성 화판에 그려진 사람들과 뭇 생물들, 그 친구들이 나를 외롭지 않게 맞아 주고 어머니의 신음에 가까운 숨소리가 쇤 기침소리까지 고소한 누룽지 같은 정감이 되어 나를 살게 해 주는 값진 생명수가 되어 준다. 그러나 우리 모녀는 사소한 일, 전라도 사투리로 꼬막(고막) 껍질로 하나도 못 되는 일들로 잘 다투며 살아왔고 지금도 여전하다.

어쨌든 추운 겨울날 폭풍우 속을 헤매다가 아늑한 찻집을 발견한다거나 밤중에 타기 힘든 빈 택시를 만난듯한 안도감 같은 것이랄까 촛불 같은 광명과 훈훈한 온기가 있다. 태어나서 오랜 세월을 나는 태반에서 탯줄을 빨듯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묘한 인생이다. 젊은 시절에 해결할 수 없던 인생의 고통이랄 지 일해도 일을 해도 넉넉지 못했던 살림살이가 지겨워 무척이나 더디게 가는 것 같은 시간을 원망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데 어느새 세월은 흘러, 지금 이 나이가 되어버린 자신을 돌이켜 볼 때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어머니가 요안나로 세례를 받던 날의 기념사진을 보면 장미꽃 조화뭉치가 달린 면사포를 두른 어머니의 표정은 어색했던 때문인지 수줍은 표정이었지만 참 아름다웠다. 그분의 회갑이나 또 고희(古稀)조차 이런저런 이유로 충분한 잔치를 못해 드렸다. 고인이 된 명창 박초월씨를 초청하여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5월의 창경원의 푸르름, 나뭇잎만 보아도 쪼르륵 엽록소가 오관에 흡수되어와 뭇 작품에의 구상이 떠올랐지만 미숙해서 충분히 소화를 하지 못해 아쉬웠다.

그런데 지금 막 자신이 생길 만 하니까 나는 살아온 과거보다 훨씬 짧은 시간을 상아야 하는 소위 인생을 관조하는 나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옛날과 변함이 없는데 남들이 그렇게들 봐 주고 있는 것 같다.

정말 인생이란 번개같다.

지금 이 시점에서 생각해 볼 때 나의 지나친 생업에의 집념 때문에 역설일는지 모르지만 어떤 때는 차라리 평범한 촌부로 태어났으면 싶은 때도 있다. 어중간히 풍부한 감성의 소용돌이가 거추장스럽게 때문이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젊은 시절에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노틀담의 꼽추> 를 읽고 그의 비극적 운명을 테마로 한 사상에 감명을 받았고 지금도 그렇다. 영혼은 반드시 있고 그 어느 영혼이 누구의 모체엔가 들어가 혈육이 되지 않는가 싶다. 결국 윤회전생설(輪廻轉生說)을 긍정하는 뜻이 되겠지만 한 세상 살다 보면 반드시 악연선연(惡緣善緣)이 있고 설령 상대가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연이 없으면 악연이 될 수도 있어 전생래세(前生來世)에까지 어려운 문제로 뻗쳐지게 되지만 살아오다 보니까 인연설에 한해서만은 인생에 절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걸 환상이 아닌 실감으로 느끼게 될 때가 많았었다.

나는 둘째 딸을 참 아기자기 예쁘게 길렀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사는 그는 어려서부터 나의 그림 모델이 되어 주기도 했다.

그가 스무 살이 넘고 스물네 살이 되던 해에 나는 공연히 안절부절 불안했고 스물다섯 살이 되자 비로소 마음이 놓이던 이유는 일란성 쌍동녀 같았던 여동생이 그 스물넷에 죽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생전에 다정했던 여동생의 외로운 영혼이 나의 모체에 들려 전생한 것이 아닐까 했던 부질없는 기우 때문이었다.

그 이전 나의 소위 세계일주 스케치 여행 때 나는 마지막으로 이태리의 피렌체에 들려 위지미술관에서 보티첼리의 <뷔너스의 탄생>등 작품을 보고 참 행복했었다.

또 그의 대표작인 <봄의 탄생>은 내가 좋아하는 그림 중의 하나였다. 맨 앞에 현세의 히피같이 꽃에 둘러싸인 모습의 신비로운 미소를 띄운 주인공 같은 여자에게 반했었다. 훗날 책에서 읽고 안 일이지만 그 모델의 주인공은 시모네타라는 이름의 당시 성주의 딸이었다는데 일찍 죽었다고 했다. 나는 또 전생의 여동생 문제가 해결되다 보니까 딸이 시모네타의 전생이 아닌가 하고 막연한 불안을 느끼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의 지나친 사랑에서 해방된 그녀는 미국에서 잘 살고 있다. 딸과 나와의 인연이 끊기다시피 되어 어떤 동화에 나오는 마술사에게 어린 딸을 빼앗긴 것 같아 시모네타의 환상이 현실화 되었음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죽지 않고 잘 살고 있으니 다행이다.

지금 이 순간 눈을 감지 않는데도 내 방에 있는 뭇 사물과 함께 노오란 기생(妓生) 코스모스라든가 썬세트(노을빛 코스모스), 라이락, 호박잎, 몇 그루의 상록수들 사이로 우리 개 꽃순이가 뛰어 놀던 서교동 집뜰 정경이 오버랩 해와 좁은 시야가 무척 번거롭기만 하다. 우리는 몇 달 전만 해도 그 집에서 살았고 결코 행복했다고 할 수 없는 그 시절이었지만 뜰이 있고 개도 있고 꽃도 피고 가족들도 많았던 그 시절엔 생활의 리듬이 있었다. 그런데 모든 사랑의 대상들이 차례차례 나에게서 떨어져나갔고 나는 노모와 함께 이 아파트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그 후둑후둑 맥박이 뛰듯한 희비극이 소용돌이치던 서교동 생활을 청산하고 보니 이곳은 외부의 냉냉하고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너무나도 고요하기만 하다. 또 대인 공포증으로 사람이 싫어진 나로서는 안성맞춤의 환경 속에 들어앉아 버려 다행한 일인지 모르나 한편 서글퍼진다.

강변도로를 연해 솟은 도신의 현대식 건물들, 그리고 멀리 엷은 빛으로 펼쳐진 산들은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강변로에는 쉴 사이 없이 움직이는 자동차의 행렬이 있다.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 버스요 승용차들일까. 그 사이에 또 어디서 오고 있는지 하얀 전동차가 평화롭게 지나간다. 유선형으로 된 머리부분과 까만 점 같은 차창들이 꼭 누에같이 생겼다.

윤회 전생한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보이지는 않지만 각기 정해진 칸에 수용되어 저런 열차를 타고 언젠가는 종점에 닿아 일생을 마치는 것이 아닌지.

우등열차에 오른 인생, 그리고 정감서린 좋은 동승자들과 어울려 앉은 요행의 인생은 보다 쾌적한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는 신고(辛苦)끝에 좌절되고 더러는 이겨내서 그 체험 때문에 깊고 완숙된 정신적 승리자가 될 것이다.

나는 어떤 열차를 탔을까, 가슴에 손을 얹어 생각해본다. 전자도 후자도 아닌 퍽 어정쩡한 완행열차를 타고 있고 어느덧 종점이 다가오는 시간을 달리고 있는 것만 같다. 그 짧다면 아쉽고 길다면 어차피 지나가 버린 사연들은 다시 붙잡고 싶지도 않는 미련 없는 과거일 뿐 이상하게도 담담한 기분이다.

그러나 ‘나’ 어떡하란 말인가. 무척이나 보고 싶은 얼굴들을 많이 잃었었다. 나는 사람은 죽으면 저승에 머무르는 동안 사랑하는 혈육이나 보고 싶은 얼굴을 만날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 학자 점술가의 말에 의하면 팔만대장경에 쓰여 있는 구절인데  저승의 시간대가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오백 년이 걸려도 만날까 말까라고 쓰여 있다고 했다. 정말 어떡하란 말인가…

궂은 일, 때로는 좋은 일들로 수다한 사연들을 안고 후려치는 바람막이 하느라 정신 차릴 수 없던 사이에 세월은 흘러갔고 살아 있는 혈육들마저도 뿔뿔이 너무나 먼 곳으로 흩어져 나가 있는 고독을 새삼스럽게 의식하게 된다. 저렇게 바라다 보이는 강 건너 수묵화같이 희미하게 보인 곳으로 말이다.

내가 타고 있는 인생열차의 칸에는 낯 설은 타인들로 꽉 차 있는 것만 같다. 그 속에서 내가 먼저 콜라나 담배를 권하며 친해 보려고 말 붙임 해 보려는 외로움…

그런데 어느 간이역에 열차가 잠시 멈췄을 때,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들인지 딸인지 누군가 다른 칸에서 뭣을 들고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엄마, 도시락 먹어. 엄마가 이 기차에 탄줄 몰랐네. 나는 쩌어기 앞칸에 타고 있었는데..’

나는 운명적으로 함께 나란히 앉은 든든한 자식은 없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비록 칸은 달라도 같은 방향을 가고 있는 자식 하나가 꼭 있다고 믿고 있다.

창 밖 저어 아래서 강변의 버들가지가 바람에 하늘거린다.

오늘따라 유난히 친근감이 더 느껴지는 버드나무, 내 친구.

아무튼 종착역까지 가는 시간까지 끈질기게 일하고 먼 후세에까지 평화롭게 누에 같은 자동차가 달리고 있을 수 있는 복된 세상이 무궁하게 지속되길 빈다.

요즈음 와서는 금요일이 기다려진다. 금요일 다음엔 토요일이 오기 때문이다.

금요일엔 장에 가서 이것 저것 골라 찬거리를 사온다. 토요일에는 기다려지는 혈육이 오기 때문이다. 며느리가 손자놈을 데리고 오면 나는 그놈을 안고 강 위를 훨훨 나르는 하얀 물세를 보여 준다.

무척 신난다는 표정의 그를 볼 때마다 ‘대부’의 돈 클레오네가 만년에 뜰에서 손자와 놀고 있는 장면이 떠올라 한없이 애수에 잠기기도 한다.

토요일엔 또 군복무가 얼마 남지 않은 막내가 오는 날이다. 그리고 일요일엔 부대로 돌아가 버린다. 워낙 친구들을 좋아해 불려나가 버리니 무정하게도 나와 대화를 나눌 시간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나는 그를 기다린다.

노모는 아침을 들지 않고 나는 저녁을 먹지 않기 때문에 서로 시간대가 뒤틀려 우리 식구들이 함께 식탁에 앉아 보기는 거의 없는 생활이다. 결국 제각기 혼자서 밥상을 받게 된다. 우리 집의 가정적인 고독은 여기에 그 근원이 있는 것 같다.

일각일각, 목각에다 칼집을 하듯 시간은 깎여 내려가는데 나는 커튼을 걷어 창 밖 경치를 바라본다. 휘황찬란한 강북(江北) 불빛 그림자가 물에 비치지 않는 것은 추위에 한강이 꽁꽁 언 탓인가 보다.

멀리 줄이어 달리는 자동차 불빛은 호박넝쿨 위를 나르는 뽀얀 반딧불같이 아름답다. 나는 이곳에서 사는 동안 무엇이든지 아름답게 나름대로 느끼며 답답하면 춘하추동 변하는 강물, 눈 오고 비 오고 때때로 안개 자욱한 강변풍경을 바라보면서 생업에 미쳐 살  길밖에 없다.

칠흙 같은 하늘에서 눈보라가 휘날리기 시작한다.

나는 갑자기 에밀리 브론테처럼 의젓한 자세로  창 밖을 응시한다.

브론테의 시야엔 공동묘지와 멀리 은백색으로 펼쳐진 폭풍의 언덕이 보였을 것이다.

내 시야엔 역시 어둠과 하얀 눈이 엉켜 은회색 하늘과 닿아 버린듯한 강건너 도시의 뿌우연 불빛 띠가 그지없이 묘하게 보인다. 눈 아래 강변로를 끊임없이 달리는 자동차 불빛 띠 역시 희한하다.

이런 상황은 나를 에밀리 브론테로 만들고 어떤 시대가 돼도 상관없는 어느 성주의 미망인으로도 만들어 버린다.

환상은 꼬리를 물어 먼 태고와 미지의 미래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꿈같은 풍물이 보이는 듯해 앞으로의 작품을 위해 찰칵찰칵 가슴 속에 든 사진기 셔터를 눌러재킨다.

하염없는 환상을 깨듯, 어머니 방, 텔레비젼에서 흘러간 가수가 부르는 노래 ‘아, 아, 아 황혼의 엘~레~지…. ‘가 새어 나오고 있다.

 

  1. 나의 필사 筆寫는,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고 PC keyboardtyping하는 것을 뜻함.

지나간 주, 주일날 대림특강이란 것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있었다. 대림절 the Advent 이면 거의 예외 없이 있는 이 ‘특강’ 에서는 , 몇 년 전까지 이곳의 보좌신부님으로 수고하시고 귀국한  ‘애 같이 해맑은‘ 한민 토마스 신부님이 강론을 하셨는데 역시 ‘예의’ 강론 내용과 스타일은 전혀 전과 변함이 없었다. 일상에서, 특히 가족관계에서 몸소 겪었던 것들에서 어쩌면 그렇게 주옥 같은 영성 소재들을 찾고, 실감나게 전하는지, 이것은 이 신부님만의 ‘특기’인 듯 싶었다.

재미도 있지만 깊이 있는 강론 끝에 ‘예수회 후원회’ 간담회가 있었는데 어쩌다가 우리도 참석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책 한 권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 제목이 너무도 평범한 느낌의 ‘하느님 나라 이야기’였다. 특강을 마치며 이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었는데 물론 ‘저자’에 관한 것이었다. 저자 ‘김우중’ 수사,  이것 또한 너무나 세속적 이름이 아닌가… 큰 관심을 가지기에 역부족인 듯 했지만 저자에 관한 ‘개인적인 사연’을 간단히 들었기에 관심을 갖고 그 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대한민국 대학원 출신, 자동차회사 연구원 생활 이후에 길고도 험난한 사제의 길을 택한 수사님이라면 예사롭지 않은 경험의 소유자임은 분명하다.

책, book 이라기 보다는 ‘소책자’, booklet에 가까운 ‘사진과 글’이 적당히 얽힌, 편한 소파 에 누워 읽기에 안성맞춤인 책.. 이 ‘젊은 수사’가 과연 얼마나 오래 살았기에 이런 ‘경험적 영성’을 말할 수 있는지 부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거의 모두 나에게는 친근한 느낌으로 글과 사진들이 다가옴은, 나와 ‘파장, 화학’이 맞는다 고나 할까..  결국, 대림절과 대림 특강과 잘 어울리는 선물이 되었다.

예수회 한민 토마스 신부님, 조금 더 ‘어른이 되어’ 우리 성당의 주임신부님으로 오시길 기도합니다.

 

이 소책자의 많은 글 중에서 다음의 사진과 글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김우중

 

빛과 어둠

 

빛이 강하면 어둠 또한 강합니다.

한 여름의 강한 태양빛은 더욱 짙은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지난 시간 유난히도 짙은 어둠 속에 사셨다면,

그만큼 강한 빛을 받으며 사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몰랐던 것은

빛을 등지고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빛을 보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다만 빛을 향해 돌아서기만 하면 됩니다.

 

고통과 괴로움에 묶여있던 시선이 빛을 향하는 순간,

하느님의 은총이 매우 강렬한 빛처럼

늘 나에게 쏟아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새로운 태양은 늘 떠오릅니다.

이제는 빛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나아갑시다.

 

빛의 근원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더욱 강한 빛 안에 살게 될 것입니다.

 

 

이 글과 사진을 읽고 보며 생각에 잠긴다.

시각이 정상인 사람이라면 너무도 당연한 것이 ‘빛’이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당연한 것일까? 빛을 물리적으로 보는 것과 그것을 ‘초월한 것’으로 보면 너무나 느낌이 다르다. 빛이 있음과 없음은 시각이 있으면 쉽게 알 수 있지만 영혼이 느끼는 빛이 없는 것은 눈을 감고 있는 것과 너무나 다르다. 그야말로 ‘지옥’이 바로 그 빛이 없는 곳이 아닐까?

따라서 빛과 ‘절대적 존재, 하느님’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현대 인간이 그렇게 자랑하는 ‘물질적 과학주의 materialistic scientism‘에 의하면 빛과 ‘에너지’는 같은 종류이다. 한마디로 에너지가 있으면 ‘존재’이고 에너지가 없으면 ‘허공’ 그 자체인 것이다.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한때 ‘고립감, 허탈함, 고독, 우울증’ 등으로 고생하던 시절에 나는 분명히 ‘빛’을 싫어한 경험을 했다. 보이는 것이 다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 ‘지옥’에서 서서히 벗어나며 느끼는 것 역시 ‘빛의 존재’ 였다. 나는 분명히 주위를 밝히고 싶었다. 그것이 ‘악으로부터의 탈출’ 의 시작이었다. 밝음, 빛, 그것이 전부였다. 그 빛은 누가 시초에 생기고, 만든 것인가… 이제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빛을 향해 돌아서는 것, 그것이 시작이었다.

 

¶  동지:  2018년 12월 19일 수요일, 이틀 뒤인 21일이 책상 위의 달력에 ‘Winter begins‘라고 쓰여 있다. 아하.. 바로 Winter Solstice, the Longest Night, Midwinter.. 고추장 냄새가 나는 우리 말 ‘동지 冬至’.. 이제는 동지란 말이 왜 그리 생소하고 심지어 우습게까지 들리는지 조금은 슬퍼진다. 그렇다. 나는 ‘동지’란 말을 들으면 내가 본향 本鄕 으로부터 얼마나 오래, 멀리 떨어져 살아왔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모양이다.

 

긴 밤 지새우고 나면 ‘진짜’ 겨울이 시작되는 날..

 

일년 중 밤이 제일 긴 날, 공식적 겨울이 시작되는 날은 이틀, 성탄은 6일, 2018년의 마지막 날은 열 이틀 정도 앞둔 날..  2018년의 남은 날들을 어떻게 지낼 것인지.. 의무행사는 등대회 망년회,  구역점심봉사, 본당 구역 송년잔치가 있지만 ‘등대회’를 제외하고는 글자 그대로 ‘의무적’인 것으로, 솔직히 ‘할 것을 해야 하는, It’s now or never의 심정’으로 별로 신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것들은 나의 관심 대상이 아닌 것들이고 해야 되었어도 나는 ‘안 했을’ 그런 것들이다. 내가 변신을 한 것인지 누가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

그래도 송년에 포근한 느낌을 주는 것이 있다면 60~70대 성당친교단체인 ‘어둠을 비추는’ 등대회, 같은 세대를 살았다는 인연은 믿음의 색깔도 초월하는, 생각보다 진하고 포근하다는 나의 ‘지론 至論’ 에는 아직도 변화가 없다.

 

¶  망각의 나날들:  거의 한달 만에 내 마음의 위안처, 쉼터 ‘retro‘ blog posting 을 준비한다. Blog draft들은 그 동안 많이 남겨져 있었지만 그것을 posting할 시간과 에너지가 거의 없었다. 무언가 나를 지독하게 피곤하고 심지어 쳐지게 했던 그런 지나간 한 달..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주로 (Microsoft Office) OneNote에 남겨진 나의 단편적 기억과 사건들을 다시 모으고 엮으며 달 간의 역사를 재구성해는 작업, 쉽지 않지만 해를 보내며 꼭 해야 할 일이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이제는 기억력이 예전과 조금 다른 것을 희미하게나마 느끼고 있다.

 

¶  Sorry, Holy Family Catholic..  오늘 아침 9시 미사엘 가니 정말 모처럼 Father Dan Ketter 가 오셨다. 도대체 몇 개월만인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랜 만이다. 재능과 젊은 에너지가 철철 흐르는 이 신부님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례를 하면 우리도 젊어지는 느낌이 들 뿐만 아니라 ‘바티칸 신학’ 강의를 듣는 기분까지 든다. 게다가 ‘목소리’가 알아 듣기에 거의 완벽한 정도의 pitch를 가졌기에 강론이 나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지만 99.99%를 알아듣는 행운까지 얻는다.

이렇게 우리는 차로 15분 거리의 이 ‘동네 성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와 거의 20여 년의 가족적 인연을 맺고, 6년이 넘는 매일미사의 은총을 주고 있다.  문제는 ‘미사의 꽃’인 주일미사를 이곳으로 못 가게 되어서 주일 헌금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나를 구해준 곳’의 은혜를 저버린 듯한 느낌도 드는 것이다.

작년부터 도라빌의 한국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로 가는 횟수가 점점 늘어난 것은 나에게 주일날 그곳에 갈 일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급기야는 올 들어서 모든 주일에 무엇인가 할 일들이 나를 기다리게 되었다. 한마디로 안 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내가 꼭 이런 것을 바라고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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