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사랑, 추억, 소년..

 

본격적인 ‘깊은’ 가을의 모습이 나의 두 눈과 귀, 그리고 뇌리 속으로 무섭게 다가오고 있다. 정말 멋지고 멋진 가을 모습, 느낌의 정수精髓를 나는 만끽하고 있다.  가을 중에도 ‘추운 쪽’의 가을은 정말 멋지고 고요하다. 모든 만물들이 하나하나 막을 내리듯 가라앉는 것들, 바로 ‘낙엽과 단풍’들… 그와 함께 나의 살결에도 주름이 몇 개난 더 생겨났는가…

박인환 朴寅煥 시인의 명시, ‘歲月이 가면’,  거의 자동적으로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그 보다 조금 덜 ‘속 된’ 느낌을 주는 ‘추억의 샘’을 발견하였다.  8.15의 감격을 며칠 앞두고 이국의 형무소에서 선종한 윤동주 시인,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 듯한 ‘소년의 사랑 고백’이었다.

이 ‘少年’이란 짧은 시를 읽으며 우리, 아니 나의 소년시절 추억을 넘길 수가 있는가. 소년이 느끼는 어렴풋한 사랑의 감정… 소년이란 몇 살부터 시작되고 몇 살에 끝나는지 확실치 않지만, 나의 추억은 확실한 ‘소년적인 감정’이고 추억이다. 가을, 사랑, 추억..의 모습이 겹치며 보이는 것은 한마디로 ‘아련함’, 바로 그것이다.

10대 초, 서울 가회동  집 골목에서 경험했던 어렴풋한 사랑의 감정, 아이에게도 이성 異性에 대한 감정은 있었지 않았을까?  윤동주 시인의 소년은 ‘순이’에게 느끼는 감정이 있었고 나에게도 아직 기억에 남는 ‘소년의 느낌’이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긴 세월 뒤에 그런 기억이 사진처럼 남는 것인가… 올해 가을이 나에게 일깨워 준 ‘추억의 힘’이었다.

 

 

少年

尹東柱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 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씻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 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람처럼 슬픈 얼골

아름다운 순이 順伊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어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골

– 아름다운 순이 順伊의 얼골은 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