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Monthly Archives: March 2020

 

지난 해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신 주임, 이재욱 요한 신부님께 안부, 특히 코로나바이러스를 어떻게 극복하며 지내시는지 알아보고자 연락을 드렸더니, ‘기도문’을 보내 주셨다.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너무 말초신경만 건드리는 값싼 뉴스에 정신이 팔려서, 사실 기도라는 것을 거의 잊을 정도였는데 이렇게 ‘공식인준 기도문’을 받고 보니 생각이 많이 정리되는 듯 느낀다. 맞다, 역시 이럴 때 기도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와 가까이 계시는 성모 마리아께 의지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역시 교황님께서도 우리들과 같은 생각이었는지 특별히 성모님께 드리는 청원기도를 발표하셨다.

 

 

코로나19 극복을 청하는 기도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기도문

천주교 서울대교구청 인준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

‘코로나 19’ 확산으로 혼란과 불안 속에 있는

저희와 함께하여 주십시오.

어려움 속에서도 내적 평화를 잃지 않고

기도하도록 지켜주시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십시오.

 

‘코로나19’ 감염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치유의 은총을 내려주시고,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고 있는

의료진들과 가족들을 축복하여 주십시오.

또한 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분들의 영혼을 받아주시고,

유족들의 슬픔을 위로하여 주십시오.

 

국가 지도자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더해주시고,

현장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투신하고 있는 관계자들을 보호해주십시오.

특별히 이런 상황에서 더 큰 위험에 노출되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을

저희가 더 잘 돌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어려운 시기를 이겨서고자 애쓰는 저희 모두가

생명과 이웃의 존엄,

사랑과 연대의 중요성을 더 깊이 깨닫게 하시고

배려와 돌봄으로 희망을 나누는 공동체로

거듭나는 은총 내려주시길 간구합니다.

 

우리의 도움이신 성모님과 함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우리와 가까이 계시는 성모 마리아께 의지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역시 교황님께서도 우리들과 같은 생각이었는지 특별히 성모님께 드리는 청원기도를 발표하셨다.

 

 

O Mary,

you always shine on our path

as a sign of salvation and of hope.

We entrust ourselves to you, Health of the Sick,

who at the cross took part in Jesus’ pain, keeping your faith firm.

You, Salvation of the Roman People,

know what we need,

and we are sure you will provide

so that, as in Cana of Galilee,

we may return to joy and to feasting

after this time of trial.

Help us, Mother of Divine Love,

to conform to the will of the Father

and to do as we are told by Jesus,

who has taken upon himself our sufferings

and carried our sorrows

to lead us, through the cross,

to the joy of the resurrection. Amen.

 

Under your protection, we seek refuge, Holy Mother of God. Do not disdain the entreaties of we who are in trial, but deliver us from every danger, O glorious and blessed Virgin.

 

 

拙譯

 

언제나 구원과 희망의 표징으로

우리의 앞길을 밝혀주시는 성모 마리아님.

굳건한 믿음으로 예수님 십자가의 고통을

함께하신, 병자들의 건강이신 당신께 의탁하나이다.

로마인들의 구원이신 당신은

카나의 기적 처럼 이 모든 시련이 끝날 때까지

저희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심을 아나이다.

천상의 사랑이신 어머님,  저희가 하느님아버지와

우리의 고통과 슬픔을 지고 가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며,

십자가를 향해 부활의 기쁨으로 이끌어 주소서.

 

거룩하신 하느님의 어머니, 당신 아래

피난처를 찾나이다.

영광스러운,  복되신 동정녀시여.

시련 속에 있는 저희의 간청을 물리치지 마시고

저희를 위험에서 보호해 주소서.

 

 

Where else? from CHINA, stupid!

 

Pandemic!!!!   먼데서 난 불구경을 하듯이 몇 주일이 지나면서 오늘은 드디어 한 나라, 바티칸이 있는 이태리, 가 완전히 비상사태에 들어갔음을 보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치사율은 그리 높지 않지만 감염률이 장난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폐렴의 일종이기에, 우리들 senior 부류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인터넷, 특히 YouTube를 통해서 피할 수 없게 들어오는 ‘가짜, 과장 뉴스’들은 심리적으로 더욱 몸을 도사리게 한다. 설상가상, ‘비과학적 또라이’ 트럼프는 연상, 걱정 없는 표정으로 일관한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pandemic의 양상이 아닐까…

대도시의 밀집구역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직장에 나가야 하는 것도 아닌데도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우리의 ‘직업’인 레지오 활동에 지장이 오는 것, 또한 밖으로 나가며 사회적인 접촉을 못하게 되는 우려, 이유가 너무나 사치스러운가 미안하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큰딸 새로니는 학교 근무를 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아픈 아이들’이 생길까 봐 신경을 많이 쓰는 모양인데, 아직도 휴교의 뉴스가 없는 모양이다. 나라니와 Luke는 다행히 장기 출산휴가 덕분에 집에 있으니 큰 문제는 없는 듯.  어쩌다 세상이 이러게 돌아가는 것일까, 생각하면 할 수록 ‘중국 공산당’에 대한 증오심을 누를 길이 없다. 내가 이제까지 생각해온 그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이 적나라 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 갑자기 오래 오래 전, 1665년 영국 런던을 휩쓸던 Great Plague를 피해서 시골로 도망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Isaac Newton의 얼굴이 떠오르니…

 

현재 진행중인 정말 ‘거짓말’ 같은 소설, 연극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이야기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거의 피부로 조금씩 느끼면서, 오랜 세월 동안 나의 잠재의식 속에 쌓이고 쌓였던 숨은, 부정적 감정들과 나의 숨은 치부 恥部가 잠재의식의 보호벽을 뚫고 나온다.

이것은 간단히 말하면, 나의 부정적인 중국관 中國觀 에 관한 것이고, 특히 ‘공산당 중국’을 너무나 혐오하기에 감정적 bigotry trap 함정에 쉽게 빠지곤 한다. 한마디로 이 중공의  ‘해괴한 공산당 체제’는 인류사의 관점에서 보아도 ‘필요 없는, 아니 해로운’ 존재라고 굳게 믿는다.

20세기 세계적 골치거리, 우리에게는 영구분단, 자기 ‘인민’ 수백만을 굶어 죽이는 정권욕의 괴수, 이런 ‘해로운 존재’의 문제를 크게 못 느끼고 살았지만 문제는 이들에게 ‘돈’이라는 무기를 가지게 되면서다. 그들의 무신론적 유물론과 인류보편 도덕성이 결여된 비인간적 집단에서 이런 이상한 병균이 이제까지 안 나온 것도 기적이다. 시간문제였던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사태에 책임을 질 것인가?  한가지 생각나는 것, 이들에게 일말의 책임감을 느낄 ‘도덕의식’ 이 있다면 이 ‘인재, 人災’에 대한 구체적인 국제적 보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안 되면 피해에 대한 법적 소송은 어떤가? 아마도 ‘법의 정신’이 전혀 없는 그들에겐 ‘소牛 귀耳에 경經 읽기’ 정도밖에는 안 될 것이다.

 

¶  Spring Forward!   지나가는 주중에 줄기차게 내리던 비, 그친 지 며칠 째이지만 하도 많이 내려서 마르는데 시간이 꽤 걸렸지만 오늘로서 완전히 빠삭빠삭한 땅과 하늘의 느낌을 맞게 되었다.

어느새 그 귀찮은 일, 집안의 모든 시계들을 한 시간 앞 forward 으로 돌리는 날이 되었다. 왜 이렇게 귀찮은 법을 만들었지 어떨 때는 은근히 화가 나기도 하지만 나의 힘으로 이것을 바꿀 능력은 전혀 없다. 하기야 이 법에도 의도하는 이로운 목적이 있으니까. 갑자기 저녁 시간이 밝아 진 것 daylight saving 은 사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bonus일 것이기도 하니까.  이것을 ‘정상’의 시간으로 바꾸는 fall back,  늦가을.. 이제는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세월은 점점 빨라지고 있으니까. 다만, 다음 시계를 바꾸는 그날까지 우리는 어떤 ‘모양새’의 세월을 보낼 까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  주일미사, 고해성사 깜:  지난 주일 미사에 이어서 이번 주일미사도 사정상 거르게 되었다. 비록 매일미사 참례를 한다고 해도 주일미사는 미사중의 꽃인데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가 우리도 한심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이 탓’을 안 할 수 없는 그런 처지에 우리가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다. ‘그 날’까지 마라톤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상식에 의거한 현명한 판단을 우리는 매일 아침에 해야 하는 것이다. 요즈음 문제의 주범은 연숙의 불면증이지만 그것 외에도 앞으로 나이에 따른 문제가 없을 리가 없다. 이제 우리의 사회생활은 물론, 모든 신심활동이나 신앙생활도 거의 우리의 건강상태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기도 한다. 우리들의 비교적 건강함도 무한정 지속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평화롭게 이성적, 상식적으로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보내는 것, 그것이 관건이다.

 

이 사진과 신천지는 무슨 관계?

¶  개신교와 신천지:  요새는 우리 집의 ‘한국소식통’인 연숙을 통해서 그쪽의 소식을 가끔 듣곤 한다. 내가 워낙 그쪽에서 오는 소식을 피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알기에 별로 자세한 소식은 모르지만 요새는 조금 예외에 속한다.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다. 왜 하필이면 그곳이 뉴스의 가운데에 나온 것인가? 그런데 알고 보니 참 기기 막히는 소식은 나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 바로 ‘신천지’인지 구천지인지 하는 걸맞지 않은 이름을 가진 ‘개신교’ [가톨릭이 아니면 일단 개신교라고 생각하고] 사교집단에 관한 것이다.

자세히는 잘 모르지만 그 집단 신도들에 의해서 그 바이러스가 퍼졌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러니 갑자기 뉴스에 나온 것이다.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이번 한국 바이러스 유포의 일등 ‘공범’이 된 셈이다. 하필이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런 나쁜 뉴스에 연루가 되었는지 한심하기도 하지만, 역시 ‘사필귀정 事必歸正’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신천지, 이름도 촌스러운 이것에 대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2013년 경이 아닐까?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 하태수 미카엘 주임신부님 재직시절 예비신자 교리반의 [teaching] staff으로 ‘레지오 활동’을 할 때였다. 부활절을 향한 교리반이 과정의 끝머리 즈음에 하 신부님이 특별강의 시간 하나를 추가해서 강론을 하셨는데 그 주제가 바로 ‘사교집단 신천지의 정체’ 였다.

그러니까 이 집단은 새로 등장한 것이 아니었고 꽤 역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예비신자들에게 이들의 정체를 알게 하고 경계심을 일깨워주려는 것이 신부님의 목적이었다.  이들의 특징 중에는 대부분 ‘잘 나가는, 지식적이고 말쑥한’ 젊은이들이 이곳으로 흡수가 되며 이들의 포섭공작이 아주 조직적이라는 것도 있었다. 특히 ‘성경공부’ 같이 하자면서 접근하는 젊은이들은 십중팔구 그들이라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우리 같이 ‘한 물 간 부류’는 사실 그들의 안중에도 없기에 걱정이 전혀 없다. 하지만 교리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문제다. 그들의 언변과 성경지식은 절대로 못 따라가니까. 그렇다. 이것이 바로 개신교의 고민일 것이다. 거의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를 하는 그들, 이제 조금은 자체적으로  ‘교통정리’를 해야 할 때가 안 되었나?  전통과 초대교계를 완전히 버리고 그저 ‘성경유일’로 ‘자기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  문제없는 교황님: 오늘 지난 주일에 이어 다시 교황청 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일요일에 정오에 있는 교황님 주도의 삼종기도의 모습을 보려는 것이다. 이곳에서 교황의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고, 그 바티칸 주변에 모인 순례객들의 동정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지난 주일보다 순례자들의 수는 훨씬 줄어들었지만 아무도 마스크를 착용하지는 않아 보였다. 아마도 바티칸 주변 로마는 그렇게 바이러스가 심하지 않은 모양인가?

하지만 교황의 동정은 지난 주와 달랐다. 삼종기도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video를 통해서 밖으로 방송을 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평상적으로 교황이 군중들을 내려다 보는 것, 바이러스와 큰 상관이 있을까? 하지만 모든 메시지 방송이 끝난 후에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창문으로 나와서 군중들을 축복하는 짧은 시간이 있어서 크게 아쉬움은 없었다.

문제는 이제부터가 아닐까? 분명히 로마 주변에도 감염자 숫자가 늘어날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바티칸의 모든 ‘성사’는 취소가 되는 것은 아닐까? 수요일의 교황님 주재 일반군중과의 만남 시간도 취소가 되었으니, 나머지 행사도 축소가 될 듯..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줄기차게 며칠 째 밤낮으로 쏟아지는 ‘사랑하는’ 비…

 

Relentless Rain:  올 들어 늦겨울을 통해서 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아니 엄청 쏟아진다. 홍수경보는 이제 눈에 너무나 익은 듯하다. 지난 오랜 기간 겨울은 사실 통계적으로 가뭄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그야말로 끝임 없이 비가 오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비, 비, “비가 오도다.. 비가 오도다”… 그 옛날 서울 재동 국민학교 시절에 귀따갑게 들었던 가수 남해 씨의 히트 가요의 제목. 그 당시 특히 비가 올 때 그 노래를 들으면, 참 싫은 노래라고 느꼈다. 그 어린 시절에 누가 비를 좋아하겠는가? 요새라면 아이들, 집 밖보다 집안에서 시간 보내는 것 문제가 없지만 그 옛날에는 집안에서 ‘재미없는 책을 읽는 것’ 이외에는 할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까지도 비는 귀찮은 것, 담배연기 가득 찬 시내버스 속으로 우산을 접고 들어가는 꾀죄죄함, 특히 등산 같은 것을 할 때는 더욱 싫기만 했다. 그것이 나이가 훨씬 들어가면서 ‘세상에서 제일 멋진 것’으로 변해 버렸다.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나는 비가 ‘내려’ 오는 모습을 사랑하게 되었다. 한때는 그 이유를 생각하기도 했다. 왜 그렇게 남달리 비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애석하게도 확실히 그것이 아리송한 것이다. ‘그저, 그저’ 좋은 것이다. 굳이 찾으라면, 아마도 비를 맞지 않고 사는, 그러니까 실내 생활을 더 즐기게 되었다는 것, 그런 것은 아닐까?

 

I don’t like rain! Ozzie의 모습이 바로 그런 표정일 듯…

 

그런 것에도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두 딸애들의 ‘강아지’ 두 마리를 잠시 맡고 있을 때, 비가오면 산책을 하는 것이 조금 불편한 것, 그 두마리들을 비를 맞으며 ‘bathroom‘ backyard 로 내보내야 하는 일, 근래에 와서 자주 조금씩 새는 지붕 등등.. 하지만 그래도 나는 비를 너무나 사랑한다. 나의 장례식 때에도 비를 맞으며 운구를 하는 모습까지…

 

¶ 우리들의 삼일절:  올해도 어김없이 3월 1일을 맞이했다. 하지만 평상의 3.1절이 아닌 우리들만의 3.1 을 생각한다. 공교롭게도 유관순 누나의 삼일절보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더 중요한 것이 되었다. 3월 1일에 연관되는 우리가족, 특히 부부에게 너무나 뜻 깊은 날이 되었기에 몇 년 전부터 이날을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것 보다 더 의미를 두며 지내게 되었다. 얽힌 사연들이 비밀까지는 아니지만,  아직도 나는 극히 ‘사적’인 것으로 생각하기에 얽힌 뒤 배경 스토리를 밝히는 것은 자제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을 가지고 밝히고 싶은 것 중에는 현재 우리가 사는 집으로 이사온 날,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매일미사’ 의 역사가 이날로 올해 9년째로 접어 든다는 사실, 이것은 당당하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2012년 사순절 3.1일에 첫 매일미사를 시작하게 된 것인데, 솔직히 이 ‘과업’은 우리 둘 다 생각할 수록 놀라는 사실이다. 아마도 우리들이 ‘운전’을 할 수 있는 한 계속될 듯하다. 100% 장담은 물론 못하지만 의지는 있다.  이 비교적 ‘사고적’으로 시작된 결정이 우리 생활을 얼마나 바꾸어 놓았는지, 특히 나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것도 ‘선택’이라면 선택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간단하게 결론은 못 내린다.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 것을 이제야 믿기에 더욱 그렇다.

‘우리들의 삼일절’은 집 근처에 있는 Thai restaurant, Lemon Grass 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것이 반드시 곁들여져야 하는데, 문제는 이 식당이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이 식당은 거의 20여 년의 역사로 지역 사람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정말 주인부부 꾸준히 성실하게 service를 하는 것, 우리에게도 참으로 인상적인 쾌거가 아닐 수 없다.

Welcome, It’s a Boy balloon, at Tucker mailbox post

 

우리의 첫 손자, 새 생명이 태어나는 작은 드라마의 순간들이 며칠 만에 지나가고,  10 파운드짜리  ‘건강한 남자아기’를 안고 아기의 부모가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친정 쪽인 우리 부부는 미리 집에 가서 그들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It’s a Boy!‘ 를 외치는 풍선을 그들의 mailbox post에 달아 놓고서야, 큰 일이 끝났다~ 는 편안한 안도의 심정을 느꼈다. 갓난 아기가 신기하고 예쁘면서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는 엄마, 아빠를 보며 우리도 저랬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연숙은 비교적 침착하게 첫 애를 다루었지만 나는 ‘어벙벙’ 그 자체였던 희미한 기억이 있다.

산모의 부모로서 우리가 할 일을 제대로 했을까? 우리가 할 일이란 무엇인가?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서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 외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시댁은 전형적인 Caucasian 이어서 돕는 방식도 그들의 전통을 따르겠지만, 우리는 그것이 아니다. 주위에서 듣는 소문에 의한 ‘한국식 도움 방식’은 암만 생각해도 너무 지나친 것이었다. 숫제 시설의 도움을 받는가 하면 아예 full-time으로 professional helper 흉내를 내는 case도 보았다. 다행히 산모와 애기 아빠가 충분한 출산휴가를 받았기에 큰 문제는 없을 듯하지만, 연숙은 언제라도 20 mile (car) drive를 할 준비가 되어있는 모양이다. 

이번에 산모의 부부가 병원에 머물 때 그 집의 강아지 Senate 는 우리와 함께 큰 딸의 개 Ozzie와 함께 있게 되었는데, 둘의 사이가 아주 좋은 편이어서 우리가 크게 보살 필 부담은 적었고 거꾸로 나는 그 둘과 동네를 걷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런 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도움이 아니었을까 희망해본다.

 

good friends, Senate & Ozzie at Saybrook Home

 

아득한 세월 전 우리들의 첫 생명이 태어났을 때의 모습이 엇갈리는 기분을 느꼈다. 특히  1983년 1월초, 새로니, 그 갓난 ‘어설픈’ 생명체를 꼭 가슴에 품어 안고  제왕절개 수술, 1주일 만에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추억이 안 떠오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번 딸애의 출산 드라마를 겪으며 우리 둘이 100% 공감한 것이 있다. ‘모조리 잊어 버렸다!’ 라는 탄성.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둘이서’ 그 생명의 드라마 느낌과 경험을 모조리 잊어 버린 것일까? 진화론자들이 즐겨 주장하는 바로 그  ‘세월의 횡포’일지도 모른다. 사실적 기억은 물론이고, 느낌조차 그렇게 희미해졌단 말인가? 유일하게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며 물리적 기억인 ‘사진들’ 밖에 없다.  당시의 사진들 몇 장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렇다. 조금은 그 신비로운 느낌들과 ‘어벙벙’ 하고 초라했던 나의 자화상들이 조금씩 떠 오른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더니, 정말 그 당시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모르고’ 경험한 인생중대사였다. 그러니까 별로 큰 고통과 고민과 고생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그 젊음이었다. 젊음이 주는 ‘무식의 용기’를 마음껏 가지고 있었던 그 시절들이었다.

 

첫 애 새로니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생후 11일 째, Buckeye Village Mahoning Court.

아무 것도 모르고 주위 도움 없이 키우기 시작했던 때, 1983년 2월 초

 

세대는 이렇게 흐르며 현 세대가 때를 마치고 떠나면 다음 세대가 등장,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아간다. 지극히 순리적인 진리인 것을 잊고 살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새 생명이 태어나는 ‘출산 드라마’를 가까이서 보고 느끼면, 다시금 모든 생명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생각 안 할 수가 없다.

St. Peter’s Square에서 교황님의 삼종기도를 기다리며 운집한 die-hard 순례자들..

예전같이 평상적인 모습으로 기다리는 순례자, face mask가 하나도 안 보인다.

 

Vatican Angelus, 바티칸 삼종기도:   지나간 주에 일어난 딸애의 출산 같은 큰 일들을 때문인지, 모처럼 주일미사를 빠지기로 결정한 ‘우리들의 삼일절’ 일요일 오후에 Vatican Youtube 를 보니까 오랜만에 보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삼종기도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얼마 전에 ‘교황님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 이라며 기도를 하자는 text message를 본 직후에,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까지 알게 되었기에 사실 여부가 궁금하기도 했다. 매주 일요일의 바티칸 삼종기도에 교황님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과연 그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과연 삼종기도 시간에 맞추어 교황님이 창문으로 나타나셨고,  close-up 된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조금 피곤한 것 이외에는 전혀 병색이 없었다. 또한 성베드로 광장에 운집한 순례객은 숫자는 비록 적었어도 얼굴 마스크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태리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율이 아주 높다고 들었는데, 그 지역이 다른 쪽인 모양이다. 하지만 로마나 바티칸도 시간 문제가 아닐까 하는 우려는 떨칠 수 없었다.

 

평소와 같이 창문으로 등장하신 교황님, 코로나 바이러스는 헛소문..

역쉬… fake rumor 전혀 병색이 없는 교황님, 평소처럼 삼종기도, 메시지를 바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사율은 생각보다 크지 않은 듯하다. 그러니까.. 과장해서 말하면 심한 flu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문제는 (1) 이 바이러스의 정체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점, (2) 감염률이 높은 듯한 점, (3) 경제, 사회적, 심지어 정치적인 파급적인 불안감, (4) 결국은 사회적인 약자에게 미칠 지나친 피해… 등등을 생각하면 조금은 미리 피곤해진다. 왜 하필이면 성스럽기만 한 사순절에 이런 ‘중국발 대형사고’가 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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