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성월 오월을 보내며…

성모성월의 끝자락에 내린 비, Tobey가 더욱 그리워지는 날..

 

¶  성모성월, Fatima의 성모님, 어머니날, 우리들의 어머니, 그녀들의 은은한 향기로 가득했던 2020년의 5월….이라는 광경을 그리워하며  한 달을 지낸 듯하다. 올 5월은 예년과는 너무나 달랐다. 작년의 기억만 해도 그렇다. 그야말로 꽃 향기로 가득했던 성모의 밤 행사를 비롯해서 집을 떠난 레지오 피정은 물론이고, 주일미사, 평일미사, 레지오 주회합, 봉성체, 양로원 방문 봉사… 등등.  정말 이제는 그런 것들이 너무나 멀리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비록 얼마 전부터 조금씩 정상의 느낌이 조금씩 들긴 하지만 언제 완전히 ‘평범한’ 그런 세상이 될지는 미지수다. 그런 때가 오면 올해의 봄, 여름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비록 제일 중요한 성사 聖事생활에는 치명타를 입었지만, 조그만 위안은 이것이다. 갑자기 남아도는 시간을 적절히 쓰는 것, 그것도 오랜 세월 미루어 왔거나 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시 찾아서 끝낼 수 있는 것들…  이것은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에 속한다. 이런 것들조차 없었다면 이런 시기는 정말 괴로운 세월로 기억이 될 것이다.

 여름이 가까이 오면서 에어컨에 신경이 쓰였지만, 결과적으로 이번에 재점검과 중요한 수리를 한 것이 되어서 아무리 지독한 더위가 닥치더라도 심리적, 육체적으로 편안한 여름을 보내게 되었다.  또한 거의 잊고 살았던 ‘납세자의 의무’ Tax Return을 끝냈고, 이것을 통해서 우리의  financial picture를 보게 된 것도 다행이었다. 이것을 근거로 앞으로의 big budget을 세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실은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것, 우리 부부의 향후 5년 정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무언가’를 시작하였다. 이것은 개인적인 비밀에 속한 것이지만 이렇게 반공개적인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이래서 올해 5월도 평균적으로 A 아니면 B+ 정도의 성적은 되지 않을까?

 

Nine year old Sharkbite connection

 

¶  Trauma Buster:  5월의 마지막 날에 지난 9년 동안 나의 머리 속 깊은 곳에 trauma로 남아서 나를 괴롭혔던 것의 결말을 보게 되었다.  남들이 보면 ‘뭐 그런 것 가지고 trauma씩이나..’ 할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글자 그대로 trauma였다. 날짜도 잊지 않는다. 2011년 7월 4일, 하필이면 Independency Day가 아닌가? 거의 12시간 동안 나는 악몽 속에서 헤맸다. 그 당시의 기억이 두 posts 이곳이곳 에 뚜렷이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데 어떻게 내가 손수 water heater tank를 손수 설치를 했는가? $500을 절약하려는 것과 나의 ‘자신감’ 이 문제였다. 하지만 tank자체는 거의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의외로 plumbing에 도사리고 있었다. Copper pipe plumbing의 soldering (납땜)이 내가 생각한 바와 아주 달랐다. Electronic soldering 의 그것과 아주 달랐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완전히 참담한 실패로 끝났고,  최악의 사태 당분간 더운물 쓰는 것은 물론이고 집안의 상수도를 못쓸 수도 있었는데, 그런 위기의 순간에 혜성처럼 나의 눈에 띤 것이 Sharkbite™ plumbing product…  극단적인 표현으로, 아이들도 만질 수 있을 정도로 쉽게 pipe를 연결시키는 것, 그것으로 납땜을 할 필요가 없이 순식간에 일이 끝났던 것이다.  물이 새는 것을 걱정했는데 정말 거짓말 처럼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다.

 

Brand new Sharkbite shutoff valve sleeve

 

당시에  일이 끝났을 때, 너무나 피곤해서 물을 잠그는 Shutoff valve를 다시 설치하는 것을 포기하였고 그런 상태로 9년 동안 숙제로 남아 있었던 것을 이번에 다시 Sharkbite™로 깨끗이 처리한 것이다. 이 valve가 없어서 그 동안 water heater tank를 flush할 수도 없었는데 이번에 시원하게 청소를 했는데, 생각보다 물의 상태가 괜찮아서 이 water heater는 앞으로 5년 이상은 더 쓸 수 있을 듯하게 보였다.

 

Almost child play, Sharkbite connection

 

Sharkbite™는 설치하는 것이 너무나 쉽고, 여간 해서는 물이 안 새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좌우지간, 기분이 후련~하다. 덕분에 water tank flush도 했기에 더욱 기분이 날라갈 듯하다. Now, it’s another Yuengling Time!

 

Another Yuengling Time!

 

성령강림 Pentecost Sunday

성령 강림

 

5월의 마지막 날인 동시에 마지막 주일인 5월 31일은 가톨릭 교회에서 그리스도 교회가 탄생한 날로 기념하는 성령강림 대축일 Pentecost Sunday 이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성령이 사도들에게 불꽃모양으로 내려오는 것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오순절이 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잇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사도 2:1-4]

 

이날을 왜 그리스도교회가 탄생한 날로 정했는가를 보면, 이 성령의 힘으로 사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선교활동을 시작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수님의 명령을 이들이 담대히 전세계에 퍼뜨리기 시작한 것, 그것이 그리스도교회의 근본적인 사명이었고 그것이 교회공동체, 가톨릭 교회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이날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미사가 정지되었던 이후, 처음으로 아틀란타 한국순교자 성당이 공식적으로 공개 미사를 드리는 주일이기도 해서 관심을 가지고 online미사에 참례하였다.

미국 성당들도 하나 둘씩 미사를 재개했지만, 이곳 저곳 모두 미사참례 조건이 비교적 자세하고 까다로웠다.  100명으로 제한, 마스크 착용 등은 기본이지만 미사 이외의 모든 활동은 전면 금지였다. 게다가 권고사항으로 65세 이상은 당분간 자제하라는 것이다. 이것도 현명한 선택 분별을 해야 하는 것으로, 솔직히 귀찮고 골치까지 아픈 것이 아닌가? 결국 우리는 당분간 지켜보기로 하는 것으로 정했다.

이날 미사광경을 보니, 미사 참석인원이 30명 정도에 불과했고, 대부분이 비교적 나이가 있는 교우들로 보였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비교적 젊은 교우들로 100명 가까이 올 줄 알았는데 이것은 조금은 뜻밖이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평소에 열심히 참석하던 열성교우들이 역시 이날도 자리를 채운 것이다. 신부님도 이것이 조금은 뜻밖인 듯한 인상을 보였는데, 30여명 정도면 일단 ‘수칙준수’에 대한 안심은 되겠지만, 적은 숫자에 실망도 하셨을 듯… 하지만 이것은 첫날이니까 다음 주에는 분명히 훨씬 더 많은 교우들이 ‘몰려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공식미사 재개 첫날

 

이날의 강론의 주제 역시 성령의 역할에 대한 것이었는데, 나로서는 이 강론을 들으며 묵상할 자료들이 참으로 많았다. 개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신학적인 것까지…

평화란 무엇인가? 나에게 평화와 이기적인 평화. 모두가 갖는 평화를 위해서는 싸워라. 그렇게 못하는 것은 용기가 없는 탓. 이 용기는 성령의 선물이고 가장 중요한 성령의 은사다. 이 용기의 은사가 결여되면 다른 은사들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

 

강론, 이영석 세례자 요한 주임신부님

 

나와 우리들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르는 이 강론으로 얼마나 ‘용기의 은사’가 중요한 지를 느낀다. 개인적으로 나도 체험을 했지만, 사실 선택의 용기와 실천의 용기가 없었던 삶은 사실 죽은 삶에 가까운 것이다. 선택과 결단을 미루며 산 것도 용기의 결여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힘만으로는 이 용기란 놈이 그렇게 쉽게 얻어지질 않는다. 역시 높은 곳, 성령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Ronan San이 오던 날

¶  태어난 지 거의 100일에 가까워 오는,  우리의 첫 손주 사내  ‘Ronan, 산’ 을 데리고 나라니 부부가 첫 외할아버지, 할머니 집을 찾아왔다. 물론 그 동안 우리들은 손주의 집을 가기도 했지만 COVID-19 Pandemic 탓으로 나는 자주 못 갔고 연숙이 애를 보아주러 가곤 했었다. 오랜 세월 주위의 사람들이 ‘애 보아 주는 것’에 대해 경고를 하곤 했었는데 결국은 우리들이 그 주인공이 된 듯하다.

거의 3개월 만에 손주 아기가 우리 집에 처음 온 것은 그 동안 코로나 사태로 나가는 것을 자제한 것이 큰 이유였다. 아기가 평균치보다 훨씬 무겁고 커서 오랫동안 안아주는 것 쉽지는 않지만 비교적 순해서 아주 편하게 안아주며 즐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남들 할아버지들처럼 그렇게 흥분되거나, 기쁘거나 한 것이 아니어서 나도 이상할 지경이다. 어떨 때는 내가 거의 ‘연극’을 하는 듯 느껴지는데, 아마도 조금 더 시간이 가면 나아지지 않을까? 나는 정말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애기의 얼굴을 보면서, Caucasian과 Asian의 인종 사이에서 어떤 부분이 어떤 쪽인지 그것에 큰 관심이 간다. 눈은 분명히 brown쪽이지만 나머지는 거의 Caucasian으로 보인다. 이럴 때, 나는 다시 깊은 생각에 빠지곤 한다.  비록 white중의 white guy 인 사위지만 이제는 서로 익숙해져서 피상적인 대화에 큰 문제는 없다. 특히 그가 gourmet , local beer를 좋아해서 그것도 도움이 되고, 화제도 협조적이어서 세대 차를 넘어서 나와 같은 ‘꼰대’들의 주장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은 보기가 좋았다.

다음 주말에는 나라니가 push를 해서 조금이라도 외가 쪽 나라의 문화를 심어주기 위해서,  100일 잔치를 하기로 결정을 하고 양가 부모들과 함께 모이기로 했는데, 글쎄 그들이 우리들의 100일 잔치의 의미나 알 것인지…  Racism이 hot button issue인 요새, 참 나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  며칠 전에 겪은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기쁜 놀라움이다. 화장실에서 그런대로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날 때 허리를 ‘삐끗’하며 다쳤다. 이런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한번 일어나면 때에 따라서 며칠 동안 고생을 할 적도 있었다. 심한 case (눈을 치우다가)에는 일주일을 누워서 고생한 적도 있었다.  이런 때는 주로 massage를 하며 기다리는데 나는 그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그냥 꼼짝 안 하며 기다리는 참을성으로 지내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거의 직감적으로 산책을 나간 것이다. 물론 허리를 꾸부리고 고통스러운 자세로 남들이 볼까 봐 둘러보면 조심조심 걸었던 것이다.

직감에, 이렇게 하면 빨리 나을 듯 했던 것이다. 결과는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동네 산책길 30분이 끝나고 나는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이것은 아마도  Chiropractor 만이 의학적, 과학적으로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나는 기필코 산책을 하러 기어나갈 것이다. 처음의 ‘잠깐 고통’이,  두고 두고 편안함의 기쁨을 주는 비결, 방법 이것을 누가 이것을 마다하랴?

 

구약 舊約의 고통, 칠 성사 聖事

 

¶   5개월에 가까운 매일 성경통독, 신약과 시편을 넘어서 성경의 처음으로 돌아가, 구약이 시작되어 이제는 여호수아기를 읽기 시작하며 ‘거대한 살육제전’이 매일 매일 계속되는 것을 읽으며 솔직히 사랑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주 하느님’의 싫은 모습을 본다. 하느님=사랑? 그 일말의 사랑의 손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것은 도대체 어떤 시각, 배경으로 읽으란 말인가? 신약의 사랑이 구약에서는 무참한 살육의 하느님이었으니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가?  구약성경에 ‘쳐죽였다’ 라는 말이 도대체 몇 번이나 언급되는지…  죄 없는 어린아이, 여인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무참히 몰살했다는 것이 하도 많이 나와서 이제는 무감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솔직히 이곳에서 빨리 떠나고 싶다.

20세기에는 그들 자신들,  육백만 명이 학살된 그들, 유대인들의 기본적 사상이 이런 ‘잔혹한 하느님’으로 출발했고, 아직도 그곳에 머물고 있단 말인가?  신약의 하느님은 어떻게 그렇게 사랑으로 바뀌었는가? 괴롭다. 매일 읽는 것조차 괴롭다. 남는 의문은 이것이다. 이 ‘읽기조차 괴로운’ 구약의 시대를 어떻게 해석하며 읽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조금 더 공부를 하면 될지도 모르지만, 현재로는 난감한 과제다.

 

¶  WOF (Word On Fire), Bishop Robert Barron의 new video series, Seven Sacraments,  첫 번째의 video를 보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손가락이 가는 곳으로 하루의 분위기가 결정될 때가 많다. 이 video를 보면서, 참 역쉬~~ 이 머리 좋은 ‘젊게만 보이는’ 주교님, 대단한 선물을 보내 주셨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굳힌다. 현재와 같은 가톨릭 교회의 최대위기 속에 어떻게 이런 예기치 못한 ‘예언자’가 나왔는가? 특히 새로 성장하는 ‘세속 문화’ 속에 물들었던 젊은 세대들을 이 예언자가 구원의 영역으로 인도할 것인가, 나는 손에 땀을 쥐기도 한다.

이 video를 보면서, 비록 영상도 중요하지만 그의 음성 메시지가 더 중요하기에 이것의 음성만이라도 녹음하는데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것이 되면 필요할 때마다  편하게 듣고 듣고 또 들을 수 있게 되겠고, 이것도 나의 아주 모래알처럼 작은 선교활동의 일부가 되면 좋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레지오 활동을 전혀 못하는 마당에 이런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Seven Sacraments, 소위 웃기는 말로 ‘칠성 사이다‘ 그러니까 칠성사.  七聖事…  예비자 시절 교리 공부 때나 후에 교리 봉사자 시절, 수녀님과 함께 이 재미있는 말에 모두들 편하게 웃었던 기억도 난다. 칠성사가 칠성사이다, 요새도 있나… 허~~

가톨릭 교의, 교리의 정수 精髓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 graces 이라는 것, 그것이 성사 Sacrament, 우리는 그저 온전한, 성실한 가톨릭 신자가 되려면 대부분 거쳐야 하는 관문들, 의식 정도로 생각하지만 이 amazing  Barron 주교의 첫 강론을 들으면 그 뒤에는 무궁무진한 의미심장한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강론 두고 두고 읽으면 우리의 성사생활에 더욱 깊은 뿌리를 내려 줄 것으로 믿는다.

  1. 세례성사,Baptism
  2. 견진성사, Confirmation
  3. 성체성사, Eucharist
  4. 고백성사, Penance, Reconciliation
  5. 병자성사, Anointing of the Sick
  6. 혼인성사, Matrimony
  7. 신품성사, Holy Orders

이 7 성사 중에서 내가 거치지 못한 것은 아마도 병자성사, 신품성사가 아닐까? 그러니까 5가지의 성사는 이미 받았거나 계속 받고 있는 것들이다. 내가 받지 못한 병자성사는 아마도 ‘언젠가’는 받을 것이다. 신품성사, 원래 사제,수도생활은 꿈도 못 꾸어보았지만, 나이 들고 눈이 떠지면서 조금 혹시 나에게 다른 성소라는 것은 어떤가 했지만, 그것도 너무 앞서간 나이 탓으로 물 건너갔다.

이 성사를 왜 개신교에서는 배척을 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도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정수 精髓’를 버린 것이 아닌가 나는 의심을 한다. 하기야 ‘의식, 전례’를 지독히도 혐오하니까 이해는 가지만…

 

Memorial Day, No Barbecue…

 

¶  Memorial Day, No Barbecue… ‘비공식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5월 마지막 월요일 Memorial Day를 조용히 맞는다. 아직도 코로나 사태의 무게를 느끼며 맞는 여름시작의 휴일.  가족 이외의 그룹이 모이는 것도 조심스러운 상태. 기억으로 이날은 가족끼리 아니면 우리 둘이라도 deck에서 barbecue grill을 하고 beer를 마시던 추억들이 남지만, 올해는 아무런 계획 없이 let it be 하는 심정으로 이날을 맞는다.

연숙이 조금 피곤한 듯, 오늘은 나 혼자서 걸었다. 코로나사태 이후로 이 산책 길에서 새로운 얼굴들, 특히 비교적 젊은 가족들을 많이 새로 보게 된다. 우리 동네가 훨씬 젊은 느낌을 주는 듯해서 반갑지만, 다른 쪽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해서 우리 같은 ’60/70/80 세대’는 서서히 사라져가는 느낌, 그야말로 never die, just fade away..의 심정인 것이다.

 

¶  顯忠 斷想  성조기 Stars & Stripes 가 유난히 많이 눈에 띄는 subdivision 산책길을 가면서, ‘현충 顯忠’이란 의미를 생각한다.  현충, ‘두드러진 충렬 忠烈, 충렬을 높이 드러냄’. 구체적인 의미로 이것은  국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숨진 사람들의 충렬을 기리는’것이다. 미국의 현충일이 바로 오늘 Memorial Day인데, 날짜가 5월 말에 있어서 더운 여름의 기후와 맞물린 휴일이고 보니, 바람직한 엄숙함보다는 휴일의 한가함이 더욱 드러나는 그런 날이기도 하다.

나라를 위해 싸운다면 전쟁을 겪은 군인들이 제일 먼저 손꼽힌다.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났지만 애석하게도 군대나 군인의 근처에도 못 가 보았다. 호적상의 이유로 그렇게 되긴 했고, 그 젊었던 시절에는 하나의 ‘공짜, 혜택’으로 받아 들였다. 당시의 사회적 여건으로 보아서 군대 안 가거나 못 가는 것, 그렇게 흠이 될 것이 아니어서 두 번 다시 생각을 안하며 살았지만, 사실은 주변에 흔히 보는 재향군인들을 보면 부끄러워진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그들은 나라에 제일 중요한 충성을 한 것임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이와 연관되어서, 두 나라에 충성을 하는 것, 언제나 머릿속 깊은 곳에서 나의 의식을 건드린다. 이곳의 또래들이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데 너무 열을 올리다 보면 반드시 이 문제가 걸린다. 미국과 한국의 이해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 장래에는 더욱 그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이럴 때 어떻게 ‘충성의 선택’을 할 것인가? 간단치 않다.

 

¶  주일미사 미사강론과 공지:  어제는 그리스도교회가 탄생된 ‘성령강림 대축일 Pentecost Sunday‘ 일주 전으로 ‘주님승천 대축일 The Ascension of the Lord‘이었다. 부활주간이 서서히 물러가며 4번의 대 축일이 이어진다. 교회 전례력에서 일년 중 가장 중요한 축일들이 시작된 것이다. 올해는 예외 중의 예외로 모든 것들이 비공식적 전례로 바뀐 것이다. 어떻게 그 놈의 ‘우한바이러스’는 이런 때에 이곳에 들어온 것인가? 우연일 듯도 하고 아닐 듯도 한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글자 그대로 보면,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갔다’ 고 나온다. 이것을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석을 할 것인가? 어떤 영화를 보면 글자 그대로 구름 속으로 둥둥 떠오르는 것을 묘사한 것도 있었다. 소위 깨었다는, 이성적, 과학적이라는 인간들은 그런 것들을 ‘고대적 신화’라고 재미있게 조롱하곤 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과연 그럴까? 과연…  정말 확실히 그 묘사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그 ‘과학적 방법’으로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가? 의심의 여지는 없는가? 이것이 믿음의 관건이다.

이날 공지사항에서는 대교구의 ‘대교구 미사 제한적 재개’ 방침이 알려졌고 순교자 성당도 5월 30일 토요일 특전미사부터 공식 재개가 된다고 했다. 하지만 제한조건이 꽤 심각한 것으로, 관건은 이 조치를 보조할 ‘(자원)봉사자’들이 확보되는 것이었다. 매 미사 때마다 봉사자가 점검이 되고 안 되면 미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골자였다. 미사 참례인원 100명 이내로, 모든 미사 외의 모든 활동 중지… 미사 중 신자들은 소리를 낼 수가 없다… 등등.. 이것이 소위 말하는 제1단계 미사재개의 모습이다.

이제 우리는 선택을 할 때가 온 듯하다. 우선은 6월 달 동안은 온라인 미사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고, 예외적으로 가끔 성당엘 가는 것은 OK, 정도로 의견을 모았다.

 

¶  HP P1102W: Saved by the bell:   얼마 전에 갑자기 ‘죽어버린’ 우리 집의 main laser printer HP P1102W, 근래에 들어서 hard copy print를 할 일이 거의 없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불편할 수 있는 노릇이 아닌가? Backup printer로 Color Inkjet printer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Ink값이 장난이 아니라서 또한 불편하다.  이런 기회에 종이의 양면을 자동적으로 print 할 수 있는 Automatic Duplexer가 있는 것을 장만하면 어떨까 하고 Brother Printer를 Amazon에서 사게 되었다. 값이 상당히 저렴해서 자세히 보니 역시 reconditioned 인 것, 그러니까 return된 것을 다시 test해서 파는 것이었다. 물론 나에게 그런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printer를 받아보니… 이럴 수가? Toner cartridge를  printer에 넣으려니 들어가지를 않는 것이었다. 혹시나 맞지 않는 toner를 보냈나 하고 자세히 보았지만 그것은 맞는 toner였다. 그렇다면? Printer를 자세히 살펴보니… 와~ 해체를 했다가 다시 조립한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한마디로, ‘찌그러진’ 상태로 조립을 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이제는 대 大 Amazon의 quality control도 못 믿게 되었다. 이런 적은 아마도 나의 기억에 한 번도 없었다. Toner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엉망으로 재조립을 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놀랍기만 하다. 당장 return process를 시작하고 UPS에 갖다 주면 끝나지만 Amazon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진 것은 분명하다.

 

버려지기 일보 직전에 구출된 정든 printer

 

다시 printer를 order하려는 와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Not So Fast… 갑자기 죽어버린 printer가 왜 ‘갑자기, 조용히’ 죽었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거의 쓰레기통에 들어가기 전에 분해를 하려고 애를 썼는데… 이것, 유난히도 어려워서 포기하였고, 마지막으로 한번 다시 전원을 켰는데…..  이 사실도 믿을 수가 없다. 그 printer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완전한 상태로… 내가 죽었다고 판정을 내린 것이 시기상조가 아니었을까? 한마디로 그것은 ‘가사상태, 죽은 듯이 보인 것’ 뿐이었다. Power system도 요새는 많이 digital circuitry화 되어서 어느 정도 ‘기억’을 하기에 만의 일의 사태에 이렇게 완전히 power system이 lockup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의 불찰은, 그것을 좀 더 오래 두고 보아야 했다.

결과적으로 괜히 돈을 쓸 필요는 없어졌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던 Automatic Duplex printer는 물 건너가게 되었다. 또한 한때 죽은 것처럼 보였던 정든 printer가 생명체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니까 죽지도 않은 사람을 관속에 묻기 일보 직전에 살아있음을 알고 구해내는 것, 이것이 바로 Saved by the bell의 그림이 아닌가?

오래 전만 해도 의학기술의 미비로 사람이 죽었다고 판정을 내리는 것,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때, 가사 假死 comatose 상태의 사람을 생매장 했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나중에 관을 열어보았을 때 어떤 관 속에는 나오려는 흔적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중에는 관 안에서 밖으로 연결된 종을 달아놓고 의식이 돌아오면 그것으로 ‘살려줘!’ 하고 알렸다는 얘기, 그것이 바로 Saved by the bell… 이번에 나의 정든 오래된 printer가 바로 그런 case였다. 미안하다, 나의 정든 printer야!  너의 수명이 진정으로 다 할 때까지 사랑으로 돌보아 주고 마지막 예우를 다해 줄게… 

다른 한편으로,  이말 Saved by the bell 은 1969년 Bee Gees에서 solo가 되어 부른  Robin Gibbs의 single hit song이기도 했다.  잠시 그 당시 이 노래에 심취했던 ‘황금의 청춘’ 시절을 회상할 기회가 되었다.

 

 

Saved by the bell, Robin Gibbs, 1969

 

 

Reopening, Phase One…

Online Vigil Mass, Holy Family CC.  May 16, 2020

 

며칠 전부터 간간히 들려오던 아틀란타 대교구의 ‘공식미사재개’ 소문이 현실화 되었다.  소문이라고 할 것도 없이 사실은 5월 말까지 대교구의 모든 성당 미사를 정지되었기에 6월 초까지는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 예정이었다.

만약 이 지역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피해가 심해서 모든 사회적 기능이 정지된 상태가 지속되었으면 문제는 아주 간단했을 것이다. 미사 정지를 무기한 연기를 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의외로 예상만큼 피해가 심하지 않았고, 경제적 피해를 의식한 조지아 주지사는 미국에서 제일 먼저 경제활동 제한 조치를 풀어가기 시작했기에, 대교구도 이제는 중대한 선택을 할 순간이 온 것이었다.

지난 월요일 5월 18일에, 예상한 대로 대교구는 5월 31일 ‘그리스도교회가 탄생한’ 성령강림대축일 Pentecost Sunday를 기해서 일단 공적인 미사재개를  결정을 했고,  각 본당은 그런 방침에 따른 ‘자세한 행동수칙’을 정하여서 공고를 하게 되었다.

문제는, 어떤 절차와 과정으로 문을 여는 가, 어느 정도 여는가.. 이것은 ‘본당차원 단체’의 골칫거리일 듯하다. 위에서 내리는 결정이야  어떻게 보면 간단하지만 진짜 문제는 ‘자세한 행동 수칙 결정 사항’에 있지 않은가?

오늘 ‘갑자기’ 받은 아틀란타 순교자 (우리 한국본당) 성당의 공지사항에 의하면 대교구의 결정사항을 충실히 따른 것으로 보이는데 역시 자세한 절차나 과정은 본당 차원의 문제니까, 그것으로 주임 신부님을 비롯한 사목회에서 ‘골머리’ 를 썩었을 듯하다.

이 미사재개의 세부 수칙을 읽으면서, 우리는 당분간 이곳에 ‘물리적 참여’는 힘들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100명으로 제한 된 것 등을 비롯한 많은 수칙으로, 미사에 참여하는 자체가 거의 특권처럼 느껴진다. 정말로 영성체를 원하거나 교우들과 친교를 원한다면 위험부담을 무릅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현명하고 숙고된 결정일까?

우리가 코로나 Pandemic 전까지 평일에 가는 동네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website에 가보니 역시 이곳에서도 대교구의 방침에 따라 ‘제한적’으로 미사재개를 한다고 공지가 나와있다.  이곳에서도 한국본당처럼 대교구의 미사재개 절차가 공지가 되어있는데 물론 두 곳이 거의 비슷한 제한절차, 조건들이 자세히 나와있다.

이번 조치는 Phase One, 그러니까 제1단계인데, 제한 조건 중에 우리에게 ‘치명적’인 것이 65세 이상은 당분간 ‘쉬시라’는 것, 참… 그렇구나.. 우리도 65세가 넘었지.. 한마디로 6월까지는 ‘푹 쉬시라’는 말이었다. 전에는 store나 restaurant에 가면 senior discount등으로 우대를 하더니, 이번엔 쉬시라는 우대(?) 를 받게 되니, 참 기분이 묘하다.

 

 

제일 나의 큰 관심사는 다름이 아닌 레지오 활동 재개 여부였다. 은근히 미사 재개와 함께 성당 중요 신심 소단체들은 모임이 가능할까 하는 희망이 없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 미사재개 방침에는 아주 확실하게, 미사 이외의 모든 활동은 계속해서 6월 말까지 정지, 라는 방침이었다. 미사도 중요하지만 나에게는 레지오 ‘봉사활동’도 중요한 것이었다. 이 활동은 사실 ‘주임신부님의 강론 말씀’처럼 나에게 살아있다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선물이었기에 더욱 그런 것이다.

참, 세상이 변하긴 변했다. 그렇게 항상 당연시 되던 것들이 이제는 특별한 것이 되었으니…  3월 중순부터 시작된 이 ‘사회적 실험’기간, 사실 이제 조금은 익숙해 지긴 했다. 하지만, 가슴 속 깊이, 이것 언제까지.. 언제까지.. 하는 소리는 막을 수가 없다. 인간이 인간을 피하며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가? 보기 좋던 보기 싫던 간에,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생명의 에너지를 음양으로 받는다. 이것이 고갈되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제1단계 미사참례 행동 수칙

부활 6주 수요일에..

¶  아침, Talmud 필사로 시작한다. 요새 읽기 시작한 순교자 성당의 일년 성경통독 중의 모세 오경과 맞물려 혹시 큰 수확이 있지는 않을까? 크리스천 성경 중에서 가장 유태교적인 부분이 이곳이고 이것이 유대교 믿음의 전승인 탈무드를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오래 전부터 우리 집 서가에 꽂혀있던 ‘탈무드의 지혜’란 ‘초라한’ 책, 이것을 요새 우연히 발견하고 ‘필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저자도 궁금하고 탈무드의 배경을 알기 위해 시간을 쓴 결과, 역시 Google의 힘으로 Talmud와 이 책의 저자로 나와있는 Rabi Marvin Tokayer 의 jackpot을 찾았다.

이 노력의 결과로, 한국과 이 토케이어 Tokayer의 저서, ‘탈무드의 지혜’는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나의 기존의 생각이 확인되기도 했다. 한국인과 유태인의 관계라고 할까?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보나… 하지만 종교적, 신앙적으로는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미 내가 모르는 사이에 대한민국에서 이 특정한 책의 영향력이 미친 모습을 보며, 조금 내가 늦었구나 하는 아쉬움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다행일 것이다.

How the Talmud Became a Best-Seller in South Korea, 2015년 The New Yorker Magazine,   Ross Abes의 기사를 읽으며 완전히 ‘감’을 잡게 되었다. 각가지 의문들이 풀리는 것이다. 왜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이 특정된 탈무드에 관한 Marvin Tokayer의 책이 그렇게 ‘성경’ 처럼 많이 팔리고 유명해 진 과정과 이유들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이 괴기한, 의아한 현상은 알고 보니 그렇게 오랜 된 것이 아니고 주로 2010년대에 일어난 것, 문득 고 故 차동엽 노베르또 신부님의 얼굴과 강론이 떠오른다. 그의 강연에서 수없이 들었던 화제들이 아닌가? 나는 사실 이런 현상, 특히 유태인과 관련된 것들 깊이 관심을 가졌던 적이 없었다. 요새 성경통독으로 두 번째 읽게 된 구약, 특히 모세오경을 통해서 조금씩 관심이 발동했던 것, 그리고 우연히 눈에 들어온 ‘탈무드’라는 글자의 책, 그것뿐이다.

내가 현재 읽고 필사하며 공부하는 이 특정한 책 ‘탈무드의 지혜’는 이상한 책으로, 발행연도 (대강 1980년대?) 나 출판사의 연락처, 책의 가격도 없는 ‘해적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나의 추측에 일본책을 100% 그대로 조잡하게 번역하여 판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책의 원저자라도 밝혔으면 어땠을까?

 

¶  며칠 전에는,  아침식사 후면 곧바로 하던 대한민국 평화방송 CPBC 매일미사를 나중으로 미루고, ‘내가’ drive를 하여 Holy Family 동네 성당까지 가서 food  pantry donation할 것을  굳게 잠긴 출입구 앞에 놓아두고, 멀리서 얘기하고 있던 주임신부를 보고 차 안에서 손을 흔들고 떠났다. 성당이 굳게 잠긴 것, 도라빌 한국성당과는 대조적이지만 그 이유는 짐작이 갔다. 한국본당과 달리 이곳은 대부분 연로자들이 평일에 오갔기 때문에 그들이 혹시라도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이 될까 봐 ‘과잉책’을 쓰는 듯했다. 그래도 성당 문을 닫은 것은 좀 지나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돌아올 때 집 가까이 있는 Kroger에 잠깐 들려서 나는 차에 머물고 연숙이 모든 수고를 해 주었다. 내가 감사하지 않으면 나는 한마디로 ‘개새끼’일 것이다. 오자마자 가벼운 마음으로 동네를 비가 쏟아질 듯한 염려 속에서 걸었다. 걷다가 또 Tobey와 100% 닮은 잘 생긴 개를 만나 그들과 인사를 하였다. 어쩌면 그렇게 Tobey를 연상시킬까..(2년 전에 떠난) Tobey야, I miss you dearly!

 

 

¶  5.16이 지나고 5.18을 맞는다. 나에게 거의 느낌이 없는 날이 바로 5.18인데… 나도 이제 역사관을 조금 더 확고하게 세워야겠다는 생각 오래 전부터 들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생각만큼 간단치를 않으니, 나이 탓도 있고 세월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남는 한 나는 ‘역사의 진실’을 더 알고 싶다. 그러고 나서 나의 생각을 정하면 어떨까? 언제나 이것은 나에게 짐으로 남아있다.

이렇게 과거의 민감한 역사는 나같이 비정치적인 인간에게는 큰 골치거리일 수밖에 없다. 소위 말해서 진보, 보수 어느 쪽에도 동조를 하려고 하지 않으니 아마도 ‘비겁자’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확고한 입장은 딱 한가지다. ‘김일성 민족반역자’의 역사적 재판, 그것 하나밖에 없다. 그 후에 이승만, 박정희, 등등 모두 그들 나름대로의 애국관이 있을 것이고, 보는 시각에 따라 한 가지 역사적 사실도 완전히 다른 것으로 해석될 것이다. 그것이 사실 ‘정상’이다. 사람의 생각과 머리는 컴퓨터의 두뇌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실을 더 깊이 알려고 노력을 할 뿐, 100% 흑백논리로 ‘좋은 놈, 나쁜 놈’을 가리고 싶지는 않고, 결국은 차원을 높여서 ‘하느님’이 보시기에 어떨까 하는 쪽으로 갈 수 밖에 없다. 

 

¶  요새 다시 microcontrollers [BeagleBone Black, Arduino, Raspberry PI, NodeMCE ESP32, Sparkfun ESP32 Things, Particle’s Photon, ZigBee Xbee etc.]  들을 건드리며 만지작거리는데 연숙이 신기한 눈초리로, 그것이 뭐냐고 묻는다. 얼떨결에… ‘발명 좀 해보려고..’ 하고 얼버무렸는데.. 글쎄  연숙의 반응이 나를 놀라게 했다. 순간적으로 ‘뭘 그런 장난감으로 시간을…’ 할 줄 알았는데, 나 같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나… 와우! 반가운 칭찬인가, 아니 실제로 그렇게 나를 평가하고 있는지도… 그렇다면, 한번 우리들 같은 ‘senior citizen을 위한 gadget’을 발명해 볼까? WHY NOT?

 

¶  Muggy feeling이 계속되었던 지난 며칠, 반가운 열대성 폭우도 맛 보았고, 이제는 편하게 느껴지는 우리 집 위층의 잔잔한 에어컨의 소음, 작년에 경험했던 90+ 의 일주일 이상의 날씨들, 모두 머리 속에서 맴돈다. 또다시 기울어가는 성모성월의 한달, 현재까지 해야 할 것들은 거의 하며 살았다. 제일 큰 것, a/c service와 Tax Return 도 했고, 그렇게 궁금하던 우리의 Fidelity IRA account의 실상도 알게 되고…  지난 해 stock market이 꽤 활발했던 듯했다. 올해는 좀 달라질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게 그렇게 우리는 잘 하고, 살고 있다. 이영석 주임신부님의 말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들을 좀 칭찬을 해 보자…

열흘 정도 남은 5월을 어떻게 현명하게 보낼 것인가?  ‘서류정리’, 이것부터 머리를 친다. 사실은 2014년 이후, 특히 2017년 아래층으로 office를 옮긴 후 나는 모든 서류들을 잊고 살았다.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다. 귀찮다는 유혹만 계속 물리치면 되는 것 아닌가? 이제는 그렇게 ‘무서운 것’이 숨어 있지 않을 듯하니까, 걱정하지 말자.

 

¶  오랜만에 Bishop Robert BarronWord On Fire video 를 본다. 요새 나의 머리를 잠시 떠난 나의 등대 불이 이렇게 쉽게 나에게 다가왔다. 한 순간, 한 순간 나의 관심과 손끝이 어디로 가는지 조심해야 한다. 잘못 ‘고르면’ 완전히 하루를 망칠 수가 있는 것이다. 높은 것을 보고 높을 것을 찾고, 높은 것을 만지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  궁중비사 조선편 마지막 7편을 필사, 수정하게 되었다.  야사 野史 형식이라 각가지 음담패설류의 상상적인 것들도 있지만 이것을 읽으며 그 때, 그러니까 대원군, 민비 등과 일본의 접근한 때의 이야기들, 어렸을 때 만화로 많이 보던 것도 생각이 나고, 그 당시의 역사가 다시 새로워 진 것도 한 몫을 했다. 다시 보게 된, 식민주의 시대의 일본제국 모습을 조금 더 우리의 눈으로 보는 것은 아마도 두고두고 유익할 듯 하다.

일본과 조선의 역사가 1860년대부터 한쪽은 고종, 다른 쪽은 명치유신으로 시작되는데, 결과가 참으로 보기가 민망하다. 대원군, 민비의 치열한 이기주의적 ‘당파’ 싸움과 절대 무력한 고종, 이들이 향후 50년간 이루어 놓은 역사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다. 한 나라를 말아먹으려면 이렇게 하면 된다… 라는 교훈중의 교훈이라고 할까.

 

¶  ‘먹을 것’을 사러 연숙이 조금 전에 Doraville H-mart로 떠났다. 참, 부지런한 사람이다. 특히 먹을 것을 챙기는 것은 너무도 솔직한가? 안 먹고 살 수 있는 ‘항우장사’는 없다고 하는 말, 재미있지 않은가? 그래, 할 것은 해야 한다. 나처럼 이런 것에서 내숭을 떠는 것 그렇게 보기 아름답지 않다.

 

요새 한창 즐겨보는 Youtube video는 vegetable garden 에 관한 것들, 정말 pro들은 다르다!

신록의 계절, 알맞은 비와 기온으로 더욱 푸르러진 backyard

Pandemic 덕분에 나와 더 가까워진 우리집 lucky 터주대감 Izzie

부활 여섯째 주일에..

지난 2주일은 그야말로 화살이 나의 눈앞을 쌩! 하고 날라가는 듯한 느낌, 게다가 귀가 멍~할 정도로 외롭고 고립된 느낌들, 이것은 코로나사태의 영향일 듯하다. 둘이서 그렇게 규칙적인, 정상적으로 살려고 노력을 했는데도 이것은 역시 ‘비 정상적’인 생활이 아닌가? 역시 물을 떠난 고기와 같은 그런 꼴일 것이다. 서서히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듯하니 지긋이 기다려 보자. 오늘부터는 명심하고, 미완성인 것들, 자질구레한 서류정리, 겨울 옷 정리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머리 청소도 되고 집도 깨끗해지고, 얼마나 좋은가?

 

우연히 손이 간 곳에 책 ‘탈무드 Talmud 의 지혜’가 있었다. 역시 오래된 아주 연약하게 정장이 낡은 책, ‘탈무드의 지혜’였다. 오래 전부터 나의 눈에 가끔 뜨이던 책이지만 한번도 심각하게 읽은 적이 없었다. 그것으로 나의 손이 간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요새 성경통독의 일환으로 모세 오경을 매일 읽으며 다시 나의 눈에 들어온 글들, 유태인들에 관한 것이다. 한번 필사를 시작해 보는 것은? 그래 책의 분량이 그렇게 무섭게 거창하지 않아서 우선 안심이다. 이것도 나의 online library에 큰 무게를 더할지도 모른다. 해보자!

 

이번 코로나 사태 중에 나에게 조금 마음의 여유와 즐거움을 주었던 것들, electronics, IoT, microcontroller etc etc, 지금까지 거의 완전히 손을 놓은 상태가 되었다. 어떻게 다시 시동을 걸 수는 없을까? 이것에 어느 정도 길들여지게 되면 앞으로 두고 두고 시간, 정신 활용에 도움이 될 것인데.

 

Agony & Ecstasy of Microcontrollers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부활 제 6주일 online 미사

강론중인 이영석 세례자 요한 주임 신부님

 

오늘,  순교자 성당 online 주일미사, 역시 좋았다. 이영석 신부님 어쩌면 그렇게 기억에 남을만한 그런 강론을 하는 것일까? 오늘 말씀도 참 좋았다. 비록 우리보다 한참 어린 것은 분명하지만 이 신부님도 나름대로의 연륜의 빛을 발하는 것일까? 불교철학을 통한 폭넓은 인생 안목이 더해져서 그런 것일까?  근래에 우리는 정말 ‘신부님 복’이 많다고 생각하며 산다. 이것도 우리의 운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윗동네 형제성당의 볼품, 예의, 매력 없는 신부와 비교하여 생각하면 더 그렇다. 분명히 그 신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이영석 주임신부님 복음, 미사 강론 – 2020년 5월 17일 online 미사 중

 

정말 오랜만에 비가, 그것도 늦은 저녁에 내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이거 정말 오랜만이 아닌가, 거의 잊고 살았던 느낌이 든다. 맞다 지난 주 한번도 온 적이 없었다. 그렇다. 5월이 들어서 처음 보는 비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비! 반갑다… 새로 단장한 tool shed에 비 챙, 이런 말도 있나… 그러니까… awning, 이제는 shed 근처에 조금 더 비를 피할 공간이 생긴 것이 흐뭇하다. 이제 더 정리를 하고 나면 밀렸던 tool shed를 정리하는 일들을 하자.

 

에어컨 woe, adventure..

지나간 며칠은 나의 머리 속이 온통 에어컨으로 가득한 나날들이었다. 갑자기 치솟는 더위가 주말로 예보가 된 가운데, 우리 집 위층의 에어컨의 gas가 다시 모두 샜다는 사실을 알고 비상사태가 선포된 것이다. 우리 집의 에어컨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다가 2년 전 여름에 모두 새것으로 교체한 터였다. 하지만 작년 여름에 위층의 에어컨 gas가 모두 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당시에 어느 곳에서 새는 지 찾지를 못하고 gas만 채운 채로 여름은 그런대로 보냈다.

 

gas, mostly nitrogen, pressure test

 

하지만 올해 아무래도 미심쩍어서 내가 값싼 gas pressure gauge (manifold gauge set)을 사서 직접 pressure check를 해 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완전히 샌 것, system 속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어딘가 system이 새고 있는 것이다.

에어컨을 설치한 사람들이 다시 와서 철저한 system check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거의 행운이 필요한 것인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걸리는 지루한 작업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거의 3일이나 걸려서 찾아냈기는 했지만, 원인은 에어컨 제조회사 Carrier 의 사소한 실수로 들어났다. 하지만 설치한 사람들도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유능한 사람들이었으면 사실 그런 결과는 안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3일 동안 온갖 노력을 한 것은 분명하고 그것은 정당한 labor cost였다. 그들도 자기들의 책임을 인식하고 모든 labor cost를 반반씩 부담하는 것으로 끝났다. 깐깐한 사람 같았으면 싸우면서라도 책임추궁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3일 동안이나 거의 torture test에 가까운 각종 pressure test를 한 결과 이 system은 이번에 완전한 점검을 당한 것이기에 나는 만족하고 있다. 이제는 두 다리 쭉~ 뻗고 다가올 여름을 맞이할 수 있으니까…

 

Oldest beer in America (from Germany), Yuelingling!

 

이제는 Miller Time, 아니 Yuengling Moment!   값싼 미제  ‘삐루’ 한잔 마시며 오래된 한국 TV 장수 드라마 ‘전원일기 田園日記’를 보는 그런 맛, 하늘아래 누가 더 부러우랴…  정말 멋진 순간을 보내는 2020년 5월 중순, 허~ 제발 이런 순간들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구나…

 

Mother’s Day, 오월 둘째 일요일

 

¶  나는 5월 달이  ‘성모성월’ 임을 올해 거의 잊고 살고 있다.  내 탓이지만, ‘빨갱이 짱깨’들의 ‘선물’인 일명 ‘우한바이러스’ 탓도 없지 않다. 온통 그곳에 신경이 쓰였으니 아무리 날짜가 5월 중순을 향하고 있지만 어머니의 냄새가 안 나는 것이다. 게다가, 어머니의 냄새와 함께 5월 13일은 Fatima, Portugal에서 1917년 성모님께서 3명의 목동들에게 발현하신 날이기도 하다. 어떻게 머리 속에서 그런 것들이 희미해 졌단 말인가?

새로니와 Richard 그리고 정든 개 Ozzie가 Mother’s Day날 집으로 찾아왔다. 아마도 어머니 날 이라 일부러 온 것일 듯하다. 오랜만에 Ozzie를 만났다. 이 녀석을 보는 것은 좋은데, 2년 전에 저 세상으로 간 나의 개, Tobey생각이 나곤 해서 우울해지기도 한다. Ozzie가 새로니에게 너무나 가깝게 붙어 산다고 Richard가 불평 비슷한 언급하니…  불현듯, 또, 나중에 일어날 그날, Ozzie가 떠나는 날, 을 생각하니 미리 슬퍼진다. 그래 그것이 우리 모두, 피조물들의 운명이 아닌가? 그런 것 미리 걱정하는 것, 별로 안 좋다.  가지고 온, 오랜만에 보는 doughnut을 보니 군침이 흘렀다.  Backyard lawn mowing을 오랜만에 했더니 너무나 멋진 모습을 드러낸다. 다음엔 front yard를 할 차례이다.

올해는 사실 외식도 못하고, 선물도 없고, 그야말로 완전히 다른 모습의 Mother’s Day가 되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신경을 써서 이렇게 어려운 방문도 하고 나라니는 특별히 주문한 ‘팻말’을 선물로 주었다.  하도 garden을 좋아해서 아예 ‘Yonsook’s Garden‘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다.

 

¶  지난 밤에는 Tylenol PM 두 알 먹은 탓인지 잠에 쫓겨서 10시도 되지 않아서 잠자리에 쫓겨 들어갔다. 반갑지 않은 치통으로 기분도 저하되고 무언가 손에 잡히지 않았고, 오랜만에 backyard mowing이 생각보다 힘이 들었나 보다. 모든 것이 서로 합쳐져서 그랬던 것, 묵주기도도 모두 생략하고… 별로 자랑스러운 것이 없다. 개인묵주기도와 가족저녁기도는 필수적으로 해야 전체적으로 하루를 보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 정신력, 성령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나보자.

 

¶  Tax Return을 시작하였다. SSA income은 작년과 거의 같을 것인데, 문제의 Fidelity IRA는 사실 조금 걱정이었는데… 의외로 stock market이 작년보다 꽤 오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것으로 또라이 트럼프가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생색을 내곤 했구나… 피식 비웃음이 나온다. Tax Return, 끝냈다. $300+ refund 란 것, 빛깔 좋은 개살구인가… 이것은 IRA withhold 된 것이라 사실 원래가 우리의 돈이 1년 동안 무이자로 돌아온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나고 기분 좋게 tax form의 hardcopy print를 하려고 보니…. 어~~ HP Laser Printer가 죽어버렸다. 전혀 깜깜… 추측에 어젯밤이 power가 나간 모양이었던데 그때 power surge, spike로 무엇이 타버린 것 아닐까? 이것 시간을 두고 고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피곤하다. 이번 기회에 새것을 하나 사는 좋은 구실이 될지도..  생각난 김에 곧바로 printer하나를 찾아 order 하였다. 물론 기준은 good enough, just barely good… 찾은 것은:

Brother HLL2370DW  Black & White Laser, Automatic Duplexer, Wireless: 내가 원하는 모든 기능이 있다. 제일 싸기도 한 것, 죽어버린 printer와 비슷하지만 이것은 종이 양면을 자동적으로 printer하는 automatic duplexer가 있다.

 

¶  부활 제6주일 미사, 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온라인 미사는 이제 벌써 2개월에 가까운 new normal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9시 반이면 Doraville로 drive를 하곤 했던 것이 이제는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집에 갇히게 된 이후 처음에는 이상하긴 했지만 편한 점도 없지는 않았다. 나이 탓도 있었겠지만, 어떨 때는 정말 일요일 아침을 한가하게 보내고 싶었던 적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가톨릭 미사의 정점 頂点인 ‘물리적’ 영성체가 빠진 것은 ‘ 천주교 교리적 결함’이 있음도 인정을 하지만, 어쩔 수가 없지 않은가? 그것 빼놓고 긍정적인 점 중에는, 미사와 강론 등에 예전보다 더 정신을 집중할 수 있다는 것,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안 보아도 되는 것 등도 있다. 

오늘 미사 강론을 들으며, 신부님의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나 어머니로 부르나 똑 같다는 생각. 어떨 때는 하느님을 어머니의 이미지로 투영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 어머님의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이고, 하느님은 전능한 것이 아니고 무한한 사랑이란 것 등등…  사랑에는 고통이 필연적으로 따른다는 사실, 고통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는 생각. 어머니도 고통이 따른 사랑을 한다. 모든 사랑의 행위에는 고통이 필연적으로 따른 다는 사실, 고통과 괴로움은 다르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는 명강론이었다.  

 

이영석 세례자 요한 주임 신부님

미사 강론,  19분

A Day in May, Marian Month

 

¶  이것이 5월 초 느낌의 모습이다. 창문을 다 열고 잔 후 아침에 싸늘한 느낌으로 긴 바지를 찾아 입고 계단을 내려오는… 그런 5월 초, 아련한 추억 속의 ‘어린이날’, 3일 뒤에 꼭 찾아오던 내시절의  ‘어머니날’, 모두 모두 포근하고 아련한 느낌들, 역시 나쁘진 않다. 각 계절, 절기, 달, 날에 대해서 70년 이상 쌓여온 추억과 날씨에 대한 느낌들, 내가 좀 심했는가, 확실히 나는 ‘감 感’을 잡고 있다. 아~ 오래 살았다. 그곳에서도, 이곳 지역에서도 익숙한 날씨와 추억들이여…

 

¶  요사이 읽던, 성경말씀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2, 46) 이 구절을 비롯한 많은 성경(구약, 신약) 말씀에서 빛이란 말이 자주 언급된다. 예전에 ‘빛의 신비‘라는 묵주기도 중의 주제를 가지고 blog post를 했었다. 그때부터 빛의 다른 초월적 의미에 대해 주목을 하기 시작했는데, 100% 상징적, 철학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양자역학 quantum physics 에서의 빛, 100%  기계적인 자연과학의 입장까지 모든 것을 알게 되며, 이것은 전혀 우연의 일치가 아님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급속히 밝혀지고 바뀌고 있는 최첨단 물리학이 이제는 거꾸로 초월적인, 상징적으로 보였던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 단계로 와서 ‘신학자를 도와주는’ 경지에 온 것을 보며, 정말 세상은 조금이라도 오래 살고 볼 것이다.

 

¶  오랜만에 조시몬 형제로부터 ‘음성’ 전화가 왔다. 사랑하는 고양이 Penny가 소변을 안 보고, 신음소리를 낸다고…  참, 이 형제님 정말 마음에 든다. 어쩌면 그렇게 모든 피조물 creature들에 대한 공감과 동정심과 사랑이 많을 것일까? 나는 부럽다. 그것이…  우리 작은 딸,  자칭 고양이 박사, 나라니에 의하면 UTI (urinary track infection, 요도염)일 것이라고, 의사에게 갈 필요 없이, 항생제만 먹여도 된다고 해서 그렇게 알려주었다. 이런 도움말 덕분에 몇 백 불을 절약할 수 있었다고 나중에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참, 세상은 이렇게 고마운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사니,  이 세상에 희망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  오늘도 2~3시간 정도 tool shed의 awning frame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것의 그렇게 시간을 잡아먹는 것인지 몰랐다. Frame은 달렸지만 panel이 문제다. 자재가 없는 것이다. 원래로라면 plastic roof 를 사서 달면 되겠지만 $100까지 예상해야 하는데, 어쩔 것인가? 제일 싼 방법은 보기에 별로지만 [사실은 흉하다]  blue tarp 를 쓰는 것인데, 그것은 이미 사놓은 것이 있으니까, 궁상맞지만 한번 시도해 보자. 덜 필요한 것을 사서 집에 들고 오는  것, 하나라도 버려야 할 나이와 처지에 그런 것은 가급적 자제하려는 생각, 이미 집안에 어딘가에 있는 것을 찾아서 쓰면 된다.

 

¶  새로니, 그리고 나라니,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 감동을 조금씩 느낀다. 우리를 진정으로 걱정해주고 생각해주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원래 그런 애 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철이 든 지도 모르고… 요새 shopping문제와 관련이 되어 우리에게 ‘베푸는’ service에 우리, 특히 나는 감동을 받는다. 이래서 가족이고, 식구인가….  하지만, 우리 어머님은 그런 잔 정을 못 받고, 못 느끼시며 사셔야 했는데, 어찌 내가 이런 것으로 만족을 할 수 있단 말인가?

 

¶  거의 15년 만에 위층 full bathroom의 shower door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원래 목적은 ‘꾀 죄죄’ 한 shower door 와 frame을 ‘새 것으로’ 만들고 싶은 충동 때문이었다. 알루미늄 frame과 glass door 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듯 보였다. 문제는 frame을 뜯어 내는 것, 이것은 100% physical work이 필요한 것, 별 도리가 없다. 현재까지 이것 접착제로 붙인 것, 떨어지지를 않는다. 그야말로 ‘시간문제’이길 바란다.

 

¶  우리를 ‘먹이기’ 위해서 연숙이 또 혼자서 Sam’s Club으로 용감하게 drive하여 나갔다. 나는 기분이 사실, 묘한 것이 무슨 왕자님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런 것도 큰 대접을 받는 것 아닌가, 하지만 ‘나이 대접’을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려면 상관이 있나. 둘 다 사실일 뿐이다. 나이 대접을 받는 것, 조금 그런 느낌을 떨칠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 ‘인생을 살아온 보람’으로 여기면 좋지 않겠는가.

 

¶  며칠 전부터 ‘오래~ 전’  내가 list를 만들고 즐겨 들었던 Pop Song들로 만든,  Whispering Hope album 1, 2를 아예 <repeat all>로 하루 종일 듣는다. 20여 년 전쯤일까… 그 때의 기억은 사실 거의 잊고 살았던 때, 요새 새삼스레 1990, 2000년 대의 기억이 되살아 나온다. 하지만 사실, 내가 피하고 싶은 때이기도 한데, 언제까지나 그렇게 방치할 수는 없다. 그 당시는 사실 모든 것이 ‘영혼의 밤’이었기에 잊고 싶은 세월들이었다.  하지만, 모든 시대의 추억들, 모두 나의 것이고 값진 것이다. 모두 차별을 두지 말고 기억하고 간직하자.

오월 첫 월요일의 느낌은…

5월 초의 특유한 느낌, 냄새, 기분… 모두 겪는 이른 아침에 뒷마당을 편하게 거닐고, 갑자기 활기를 띈 나의 tool shed,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즐겼다. 어제 피곤으로 ‘고꾸라진’ 연숙, 아직도 깊은 잠에 빠진 모양, 그래 성질 좀 적당히 control하면 누가 때린다냐?

 

하루 하루 변하는 나의 자랑, Tool Shed…

 

예의 월요일의 느낌이 희미해지는 요즈음이다. 일요일에 ‘주일 외출’이 없어졌고 화요일의 ‘레지오 외출’이 없다는 것, 처음에는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조금씩 ‘불안한 예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시선을 느껴야’하는 의무감 같은 것을 오래 전에 알았기 때문이다. 가상적virtual한 만남과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최소한 5월 말까지는 이렇게 되니, 기왕이면 ‘즐기는 마음’을 갖도록 하자.

다시 레지오 주회합, 활동… 생각하니 먼~ 나라를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언제 마지막으로 레지오 회합, 활동을 했었던가… 아득~ 하기만 하다. 그래도 간신히 묵주기도 routine은 시작했지만 레지오의 느낌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다. 우선 성당 공동체의 느낌조차 멀어지고 있다. 비록 주일미사를 통해서 간신히 신부님의 기억은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것도 한 달이 지나면 더욱 희미해지지 않을까? 최소한 나의 방어선은 이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공동체, 성당, 레지오’에서 떨어져 나가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만은 절대로 잊지 말자. 움직일 수 있는 한 그래야 한다.

COVID-19, Pandemic, 이것이 과연 앞으로의 모든 사회적, 정치적.. 심지어 신앙적은 환경을 바꾸어 놓을 것인가? 나도 분석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가 적당한 것인가? 분명하거나, 예상이 쉬운 것들도 있지만 그 이외의 것들은 불필요한 우려나 자아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요새 자주 보는 Dr. Michael Convington같은 Christian Scientist는 내가 깊게 참고를 해도 좋을 듯하다.

 

월요일 아침의 menu는 내가 ‘눈을 감고도’ 만들 수 있는 pancake 이었다.

이것도 Pandemic project중의 하나, lab bench가 달라지는 것…

부활 네 번째 주일에..

¶  5월의 성경통독 일정표:  지난 4개월 하루도 빠짐없이 참여했던 아틀란타 순교자성당 전신자 성경통독 일정표가 나왔다.  이번 달 일정을 보니, 민수기가 끝난 다음 ‘신명기’를 제치고’ 여호수아기’로 넘어간다. 이것의 이유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시편이 모두 끝나게 되어있다. 처음 시작할 때도 그랬지만 코로나 사태를 거쳐가며,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자 마자 읽는 이것은 나에게 하루를 사는데 큰 힘이 되었다. 이제까지 매일 성경말씀을 단편적으로 듣고 묵상하다가, 이렇게 ‘전체의 문맥’을 접하니 정말 커다란 놀라움을 만나게 되었다. 일년 동안 이런 식으로 ‘놀라움’이 있다면 순교자 성당이 바라는 목적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  부활 제4주일, 2020년 부활절 Easter은 벌써 3주가 지나고 있지만 부활 season은 아직도 3주가 남았다. 이 부활 시즌이 끝나는 날, 5월 24일부터는 무려 4 가지의 ‘대축일’이 계속 이어진다.   5월 24일 ‘주님승천대축일 THE ASCENSION OF THE LORD‘, 5월 31일  ‘성령강림대축일, PENTECOST SUNDAY‘, 6월 7일 ‘삼위일체 대축일 THE MOST HOLY TRINITY‘, 6월 14일 ‘성체성혈 대축일, THE MOST HOLY BODY AND BLOOD OF CHRIST‘. 

가톨릭 전례력에서 이렇게 무려 4번이나 대축일이 연속으로 나타나는 때가 끝나면 제일 중요한 시기가 끝나고,  비로소 ‘연중시기, ORDINARY TIME’가 시작된다. 따라서 아직도  ‘부활 축제 분위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시기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완전히 중단된 것이다. 이것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제일 당혹스러웠던 곳은 바로 가톨릭의 정점, 중심인 로마 교황청 VATICAN, 그리고 교황님이었을 것이다. 신자들이 물리적으로 모이지 않으면 미사가 불가능하니, 차선책으로 가상적, 영상적, 원력적으로 미사를 해야 하는 것, 이천 년 역사의 교회에 이런 적이 있었을까? 미사와 친교가 중심인 교회생활이 없으면 사실 믿음의 생활에는 치명적인 영향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기에 걱정도 되지만 물론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밖에 없다.

 

¶  천경자 화백의 수필집을 필사하며 그분만의 독특한 수필체를 배운다. 말의 힘, 단어의 힘, 의성어의 힘… 그리고 ‘욕의 힘’ 등등… 그러다가 이 분의 생년월일을 보고 나는 아연..실색… 1924년! 그러면 거의 100세? 그러면 지금은 살아있나… 하다고 연숙에게 물어보니 단번에 ‘언제 죽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는 철퇴를 맞는다. 아~ 내가 또 세월의 횡포를 맛보는 구나… 아, 세월이여…

 

¶  오랜만에 backyard에 나가서 묵주기도 5단을 바치며 주위를 돌아본다. 보통 desk에서 하던 것인데 이렇게 시원하고 흐린 하늘을 보며 바치니 기분이 새롭다. Tool shed가 조금씩 변하는 것에 내가 흥분을 했는지, 기분이 새로워지는지, 다시 내가 우리 집의 ‘흉물’인 siding, 이 siding work을 내가 손수 해보는 생각을 굴린다. 과연 이것은 나의 꿈에 지나지 않을까? 아니다, 아니다!

 

¶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된 YouTube 로 보는 주일미사, 오늘도 예외 없이 10분 전부터 기다리다가 참례를 하였다. 우리들이 본당내의 광경과 소리를 접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신부님은 사실 허공을 향해서 수많은 정든 교우들의 모습들을 머리로 그리면서 집전하는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찡~ 해진다.

얼마 전 뉴스에서 미국의 어느 본당에서는 성전 내 텅 빈 신자석에 일일이 교우들의 사진을 배열해 놓고 신부님이 미사를 봉헌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런 식으로 하는 미사는 집전 신부님에게는 조금 도움이 될 듯하다.

오늘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영상 미사, 계속되는 주일미사의 강론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아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신부님께는 조금 미안하지만 음성으로나마 남기고 싶어서 녹음을 해 보았다. 나중에 또 듣고 싶은 것이다.

이날의 강론은 신부님의 지난 시절에 대한 솔직하고 고백적인 회상이었다. 너무나 솔직한 개인적인 듯했지만 복음 주제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명 강론이었다. 계속 되는 즐거운 놀람이 이것이다. 어떻게 우리 성당은 이렇게 신부님 복이 많은가? 내가 겪은 3명의 예수회 신부님들, 정말 우리들에게 과분한 박학다식한  사제들이었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 복음과 미사강론 – 이영석 세례자 요한 신부님 – 2020년 5월 3일

 

First of May, again..

원서동 죽마고우들, 또 일 년이 흘렀구나..

 

용현아, 창희야~ 또 일년이 흘러갔다. 나이에 정비례해서 흐르는 세월 흐름의 느낌으로 현재 우리들은 시속 70+ 마일로 질주하는 인생열차를 타고 ‘그곳’을 향해서 꾸준히 가고 있는 중일 거다.  관심사는 각자가 탄 열차가 언제까지 갈까 하는 것. 이것은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운명과 우리들의 삶에 대한 생각과, 의지에 달려 있지 않을까? 아마도 창희는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더 잘 알 거야. 

어렸을 적에 생각했던 중년, 노년의 삶이란 것, 그저 세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모든 것들이 점점 조용해지는 듯한 수도자 같은 삶을 연상하기도 했지.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지.  자연의 아름다움도 그대로, 옛날에 이성을 볼 때의 감정 지금도 전혀 다름이 없고, 선과 악은 존재도 전혀 변함이 없고… 하지만 의아했던 것은 우리보다 젊고 멋지게 보이는 사람들이 세월이 갈수록 많아지는 사실만은 어쩔 수가 없었지.

우리들, 우리 세대들은 분명히 부모님 세대보다는  조금 더 잘 먹고 자라서 그들보다 건강하고 오래 살 것은 분명하지만, 나머지는 그때나 별로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과 마찬가지로 6.25 나 4.19같은 민족의 격동기를 다른 의미로 고스란히 겪었고, 우리를 낳아준 조국, 대한민국의 변치 않는 정체성도 같은 시각으로 보았지. 하지만 우리가 보는 앞에서 우리들 자식세대들이 서서히 우리와 생각을 달리함을 보는 것이 이제는 그다지 이상하지 않게 되었구나.  국가관, 정치적인 idea를 떠나서 과연 진정한 민주주의란 것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할 때가 아닐까?  나무만 보지 말고 숲, 산, 우주를 보는 조금 더 넓은 ‘나이 듦의 아량’을 자식세대에게 보여주면 얼마나 좋을까.

친구들, 올해 나는 드디어 할아버지가 되었다. 너희들의 소식은 전혀 알 길이 없지만 분명히 벌써 잘하면 증손주까지 보았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 또래에서는 그렇게 이상하지 않으니까. 코로나 바이러스로 우리 또래들이 초비상이지만 모두들 조심하며 충분히 오래 살다 가면 좋겠다. 원서동 죽마고우들, 내년 May Day에 또 만나자…

 

지리산 정상, 천왕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