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Monthly Archives: January 2022

오랜만에 ’10년 묵은 체증이 시원하게 풀리는 Washington Post의 기사를 보았다.  아~ 씨원하다~ 라는 탄성이 입에서 나온다.  세상에서 제일 증오, 혐오하는 인간 부류는 물론 “나는 개XX다, 문제 있냐?” 하는 부류 [DONALD 개XX를 포함]일 것이고, 다음으로는 오늘 신문기사에 나오는 ‘노약자를 등치는 교활한 사기꾼들 scammers‘ 이다. 전에는 ‘약자 (나를 포함한)를 등치는 깡패들’도 있었는데 요새는 세상이 바빠져서 그런지  깡패들은 영화나 책에서나 보게 되었다.

사기꾼들, 정말 싫다. 특히 노약자를 등쳐먹는 것은 firing line까지 상상을 할 정도다. 이 쓰레기 인간들이 판을 치는 데는 ‘비교적 느긋한 법’ 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오늘 신문 기사 이야기의 73세 Jean이라는 ‘젊은 할머니’는 아예 자신이 손수  쓰레기 사기꾼을 집으로 유도해서 법으로 넘긴 정말 용감한 여인이어서, 존경할 만하다. 이 기사 내용을 요약 하면, 이 “재수없는” 사기꾼은 자기가 할머니 손자의 변호사라고 하며 당신의 손자가 경찰에 잡혔는데 수천 불의 보석금이 필요하다며 접근한 case인데 이 용감한 여인은 집으로 돈을 가지러 오라고 유인을 하고 경찰들을 불러 집에서 대기시킨 것… 와~ 정말 10년 묵은 체증이 1초 만에 풀리는 듯하다. 감사합니다, 나보다 한 살이나 젊은 아줌마여~~~ 나도 그런 용기를 본받고 싶습니다~~

 

Tax Return Amendment, 허~  올해 처음으로 이것이 무엇인가 알게 되는 기회를 맞았다. 며칠 전에 끝난 올해 Tax Return, 이것을 너무 부지런히 일찍 하는 것도 조금 문제가 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모든 tax form document가 안전하게 다 도착한 이후에 하는 것을 깜빡 간과한 것이다. 최근 새로니가 가르쳐 준online bank에 open했던 savings account 를 깜빡 잊은 것이다. 이미 tax filing은 했으니.. 이런 적이 없어서 조금 당황도 했지만 오늘 알고 보니 늦게라도 고치는 것이 비교적 간단한 일이었다. 원래는 post mail로 1040-X form을 보내야 하지만 최근부터는 이것도 electronic filing이 가능.. 아~ 정말 편한 세상이 되었다. 심각한 correction은 아니었어도 새로운 것 하나 배운 것이다. 이것은 2월 중순부터 가능하다고 하니, 느긋이 기다리면 되겠지…

 

아~ 춥다~ 라는 기억이 각인된 2022년 정월의 마지막 날, 하지만 이것이 평균 기온이라고 하니, 확실히 나도 이제는 ‘늙음의 포근함’을 찾는 연령대가 된 모양이다. 확실히, 추운 것, 귀찮기만 하다. 특히 어두움 속에서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지는 두꺼운 옷을 찾아 들고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며 쓰러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나 자신에게 화를 내는 불쌍한 꼴, 모습이 싫은 것이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안간힘을 다해서 조금은 포근한 날들을 기다리는 수밖에…

오늘은 모처럼 아침에 부산하게 움직이며 외출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되었다. 지난 주에는 나의 목표대로 4번이나 아침에 외출을 할 수 있었다. 조금은 가슴이 설레는 쾌거라고 할까… 주일미사, 요한복음 영성독서회, 그리도 2번의 Holy Family 동네 본당  매일미사~~ 그래, 잘하는 ‘짓’이다! 더 노력을 해서 5번 외출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난 밤, ear plug의 도움으로  잠은 설치지는 않았지만 모처럼 꾼 꿈이 나를 조용하게, 생각하게, 숙연하게 만들었다. 나의 ‘전통을 자랑하는’ trauma에 가까운 기억, 추억들, 그 중에는 ‘동창, 동문회’에 연관 된 꿈들이 있다. 이번에는 대학동창[회]에 관한 것, 이것은 조금 드문 것인데… 아니~ 처음인가? 거의 잊혀져 가는 대학동창들의 모습과 기억들…  나는 꿈 속에서는 그들 앞에서 ‘설치고’ 다녔다. 내가 99% 그들에게 잊혀지고 사라진 보잘 것 없는 한 동창회원이라는 사실이 꿈속에서 복수라도 하는 듯한 나의 모습으로 변하게 했을까?  이 나이에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도덕적, 윤리적 진퇴양난 딜레마 moral dilemma… 지난 2년 간 Pandemic의 세상을 살면서 겪는 것 중에 정말 협상하기가 힘든 것 중에는 이런 case가 있다. 각종 상식적, 보편적, 과학적, 이성적,  의학적, 법적 권고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심지어는 자랑스럽게]  백신 접종을 거부하고 있다가 COVID로 인해 감염, 주위에 퍼뜨리며, 최악의 경우 아예 자신이 사망하는 것.  더욱 웃기는 것은 의외로 이 사실을 주위에 알리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접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나의 경우에는 일단 이렇게 말하고 생각한다. ‘쌤 통이다, 이 병신아!‘ 하지만 분명히 다른 머리 속에는  ‘그러면 안 되지, 안 돼..’  하며 제동을 거는 그 무엇이 있다. 아마도 대다수가 그렇지 않을까? 쌤 통까지는 너무 하더라도, ‘죽으면 너나 죽지 왜 다른 사람들까지..’ 하는 것이 다음의 단계인데, 나도 마찬가지다. 너 자신만 생각하며 사는 것, 그것은 틀린 것 아닌가? 자신 고유의 자유라고? 그래, 그러면 너만 죽으라고~~~ 동굴에 들어가서 혼자 살면 되지!  성인 군자, 교황 정도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도 그런 바보들을 동정하지는 않을 듯하다. 죽음 자체는 애도할 지는 몰라도…  교황님도 백신을 맞는 것이 사랑의 정신이라고 할 정도니…[물론 예외는 있을 수 있다, 비 정치적으로 의학적, 신앙적 등]

최근에 내가 본 한 case는, 브라질 대통령이라는  ‘극우, 빠가, Bolsonaro‘ 란 인간에 관한 것이 있다.  만고의 개XX DONALD를 흉내 내는 것이 특기인 그 인간은 국민들에게 아예 ‘자기처럼’ 백신을 맞지 말라고 할 정도였는데, 그의 뒤에서 그런 정책을 ‘이론적’으로 영향을 준 [아니면 조종을 한] 인물이 백신을 맞지 않은 채 COVID로 죽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때 나는 솔직히 ‘만세, 만세, 만만세!‘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이것은 속으로 생각한 것이다. 어쩔 수가 없었다. 거의 반사적인 반응인 것을 어찌하랴? 그의 가족들이나 인간적인 측면을 생각하면 한마디로 불쌍한 인간이 아닌가? 하지만 나도 피가 아직도 끓는 살아있는 인간일 것을 어찌하겠는가? 이런 딜레마는 이미 사회정신분석으로 연구가 되었던 것이고, 일종의 증후군이라고나 할까…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 심리현상임을 알게 되었다.

이것과 관련되어 NYT [New York Times] 최근 issue에서 내가 좋아하는 미국 예수회 저명한 spiritual author,  James Martin 신부의 guest essay를 보게 되었다. 예수회 신부니까 당연히 가톨릭의 시각도 없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은 사회심리학의 눈으로 평을 해 놓았다. 한마디로 오늘 새로 알게 된 전문용어 Schedenfreude, 쉐덴프로이데, 물론 독일어, 그 민족들은 원래부터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는지…  이제는 보통명사 schedenfreude 로 쓰일 정도로 인기 시사용어가 된 모양이다.

이 말은 간단히 말하면: 남의 불행을 즐기는 현상, 사람 정도가 아닐지.

Martin 신부의 이 essay는 근래에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정치 이념의 관계를 지적하는데, 사실 나에게는 이것이 문제의 중심에 있다고 본다. 정치적 욕망으로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자비와 사랑 능력을 모조리 포기한 ‘개XX DONALD’의 반인류적 범죄는 두고 두고 후세에 교훈으로 남아야 하지 않을까? 이 가증스러운 범죄자는 단지 정치적 이유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백신을 많은 사람들로부터 기회를 빼앗았으며 자기는 ‘몰래, 숨어서’ 맞는 가증스럽고 한심한 작태를 보여 주었으니…  이런 부류의 인간이 만약 감염으로 고생하거나 사망했다고 하면 인간 본성적 자비, 사랑의 감정보다는 쾌감을 느끼는 것이 반사적, 본성적,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그래, 그래 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 하지만 이 원수는 그렇게 오랜 동안 관용, 자세, 권고 를 모조리 무시하고 남까지 피해를 주며 자랑스럽게 사는 데… 어떻게 더 사랑을 하란 말인가?   하지만 Martin신부의 결론은 역시, ‘용서하라’ 쪽이고 그길 밖에 정당하고 이성적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역시 이것도 ‘용서의 어려움’ 문제로 귀결이 된다. 이래서 현재 세상을 사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어두운 밖을 보니 하얀 색깔이 보인다. 아~ 어제 잠깐 들었던 snow flurry가 오긴 왔구나. 지붕과 lawn deck rail등도 거의 얼어붙은 흰색의 모습들, 아주 조금 내린 듯하지만 그렇게 을씨년스럽고 냉혹하게 느껴질 수가 없구나. 어제는 2014년의 기록적인 대설 기념일이었으니, 더욱 싸늘하고 춥게 느껴진다. TV를 보니 미국 동부전체는 모조리 WIND CHILL란 글자로 덮여있고, NYC는 현재 눈이 ‘펄펄’ 내리고 온통 하얗게 보인다. 이곳은 오늘이 아마도 이번 겨울 들어서 제일 춥고 싸늘한 날이 될 것이다. 그러면.. 2월… 아~ 참 어떻게 세월은 이렇게도 끊임없이 흐르는 것일까, 좀 쉬었다 가면 안 될까?
유난히도 쓸쓸한 아침을 달래려 TV도 보며 세상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지만 하나도 나아지질 않는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쓸쓸, 황량, 을씨년스러움, 고독하게 느끼게 하는 것일까? 감정의 계곡을 가는 것인지, 왜 나는 이런 변화에 완전히 무력감을 느끼는 것일까? 깊은 한겨울의 고독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을 정도로… 고독, 외로움, 쓸쓸함, 싸늘함, 심지어 삶의 귀찮음… 싫지만 할 수가 없는 것들, 아니 필요한 삶의 여정의 모습일지도…

나라니 부부가 Historic Roswell 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로난을 돌보았다. 돌본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그저 데리고 있었던 것이지만 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가고 나니 생각보다 안도감과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딸 부부들과의 특별한 관계 때문은 아닐까, 아직도 나는 그들을 지척에서 몇 시간을 편하게 보내는 것이 힘든 것일까? 둘 다 맞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나라니와는 아직도 서먹서먹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고 Luke와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라는 나의 선입견 때문은 아닐지… 참 이것은 어려운 문제지만 세월이 자연히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다. 그들 가족이 건강한 삶을 계속해서 산다면…

본격적으로 송봉모 신부의 ‘요한복음산책 2권 비참과 자비의 만남’을 읽고 있다. 다음 주에 공부할 내용이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놀라는 것, 꽤 많다. 아니~ 계속 놀란다. 어떻게 이런 배경들이 복음의 글귀 뒤에 숨어있었단 말인가? 본문 자체도 그렇지만 이 한 신부의 해석까지 얼마나 믿어야 한단 말인가? 그야말로 신빙성 문제인데…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것을 내 것으로 건강하게 소화하려면 100% benefit of doubt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다. 건강한 의심은 분명히 있어야 하지만 이 공부에는 가능한 한 자제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이렇게 자세를 낮추고 겸손하게 이 책을 소화하면… 희망이 보인다. 나도 복음을 제대로 믿고 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그 멀게만 느껴지던 ‘복음의 신비성’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리라는… 희망… 오소서 성령님, 저에게 빛을 보는 은총을 주소서…

 

2주 만에 ‘동네성당’ 행이 재개된다. 희망에는 최소한 일주일에 2번으로 시작하려 했는데 역시 오래된 게으름의 관성인가, 그것조차 쉽지 않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첫 번째의 목표 2회를 향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그것과 함께 Goodwill trip도 자주 할 수 있다는 좋은 동기까지 발견했으니 이런 노력은 분명히 성공할 것이다. 특히 얼마 전부터 시작한 Goodwill donation은 우리에게는 거의 구세주와 같다. 현재 car garage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잡동사니’들, 버리기에는 아깝고 친지에게 주기도 망설여지는 것들인데 이렇게 편하게 기부를 할 수 있고, 그것들이 결국은 local community 를 도울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의 전형이 아닐까?

2주 만에 다시 돌아온 10년 지기 知己의 정든 고향, 동네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 역시 고향의 느낌이다. 그 동안 정든 얼굴들이 거의 그곳에 건강하게 미사를 보고 있었으니까… 마치 우리가 ‘탕자의 귀향’의 주인공인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미사 전 ‘묵주기도’를 하던 부부의 건강한 목소리에서 이 성당은 아주 건재함을 느꼈고, 앞으로 계속 우리는 단단한 영적 고향의 존재를 느끼며 살 것을 생각하니 정말 다행으로 여겨진다. 2012년 시작했던 매일미사의 10년 기념일이 올해 3월 1일, 어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을까? 우리는 다시 Lemon Grass[Thai Restaurant]에서 Broccoli Tofu, Shingha beer로 건배를 할 꿈을 가진다. 아~ 성모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제 밤 늦게 교성이의 카톡의 내용은 나를 은근히, 아니 꽤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어제 김 다니엘 형제의 ‘예의’ 극우파 정치론을 교성이와 나누고 싶어서 보낸 데 대한 답신인데… 의외로 녀석은 흔히 말하는 진보파인 것이다. 나의 주위에 득실거리는 우리 또래의 대다수 의견이 아닌 것이다. 어찌된 일일까? 극단적인지 아닌지는 조금 더 글을 분석을 해야 알듯한데…  그러면 나의 의견은 과연 무엇인가? 그저 ‘나는 몰라’만 앵무새처럼 중얼거리기만 할 것인가? 문제의 핵심을 알아야 하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이것을 넘어서 우리의 세계관, 가치관에 나는 더 관심을 가지고 싶다. 그것들이 결국은 우리의 사상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교성이 카톡을 다시 본다. ‘사회주의, 좌파’에 심취했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어떻게 우리또래 친구라고 하는 사람이 이렇게 다른 정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한번 교성이의 변모에 대해 생각을 한다. 그러면 나는 어떤가? 모른다, 그것이 비극이다… 교성이의 얘기는:

 

나는 기본적으로 시회주의자,즉 좌퍄사상에 심취해 있다. 문재인이  정권 잡았을 때 박수 많이 쳤다. 그 후 2-3년간 기득권 세력과 소위 elite들의 결사항전에 문정부의 개혁시도가 지연, 무산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더욱이 네가 보낸 글쓴이와 같이 지식인들이 앞장서 소위 배웠다는 자들의 “무식한” 극한적 시각으로, 편향적인 시각으로 논평하는 학자들, 나는 그들을 혐오한다

이전부터 보수정권은 부패해서 몰락하여, 좌파정권은 무능해서 망하여 쳇바퀴 도는 것이 정치의 세계 가 아닌가,,,,부자들, 지식인들, 힘 가진 고위공직자들,,,,,좌파정부 앞으로, 5번 더 나와야, 그자들의 저항을 어느 정도 부술 것 같다

그래도 문정부는 무능하였으나, 기존 기득권세력의 큰 돌덩어리의 조그만 돌들을 부셔놓고, 처음으로  저항을 시도한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 한마디 한마디에 모두 의미가 있다면… 첫 부분의 말이 제일 놀랍고 또한 위협적이다. ‘사회주의[자], 좌파사상에 심취’… 참 우리세대로써 이런 말하는 것 자체부터가 파격적이 아닌가? 좌우의 구별조차 못하고 살았던 우리들의 교육, 환경 등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어서 된 대화에서 나는 그가 우리 세대에서는 ‘극소수’층에 속한다고 했는데 반응은 그런 이야기 처음 듣는다는 말투였다. 나도 과장된 표현이었지만 그 역시도 흡사 ‘동굴  속’에서 있다가 나온 사람의 반응처럼 들렸다. 최근 추세가 모두 extreme polarization의 추태를 보이는 것을 감안하면 이런 나의 놀람도 크게 놀랄 것은 못 된다. 결국 이런 ‘화약고 같은’ 화제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건강과 우정을 지키는 길임을 재확인하는 기회가 된 것이다.

문제의 발단이 된 김다니엘 형제가 보내 준 어떤 ‘지식인의 고함소리’는 과연 어떤 것인가? 과격하고 비 이성적으로까지 들리는 이 내용 중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항들이 적지 않게 있어서, 나는 역시 현 대한민국의 정치판도를 거의 모르고 사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고 나는 생각했지만, 과연 그럴까? 나의 정치관, 색깔을 굳이 말하라고 하면 moderate progressive정도일 듯하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가톨릭의 social justice  가르침에 궁극적인 판단을 맡길 수 밖에 없다.

 

2017년 겨울 한때 ‘신기하게’ 보았던 K-POP video들을 다시 본다. 이것도 거의 binge watching에 가깝다. 세월의 마력을 느끼려면 이것이 나에게는 최상급이기 때문일 거다. 참, 세월의 마력, 횡포, 매력… 50년 만에 세상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여자 애들의 비명, 괴성들이 향하는 곳이 Cliff Richard, Tom Jones, Beatles, Elvis 였던 시대에서 이제는 그것이 아시아의 조그만 반도,  대한민국, 일명 ‘우리나라’의 국적불명 유행가수’들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그것이 나는 너무나 신기한 것이고 아직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도 상품수출이긴 하지만 ‘무형문화 상품’이 아닌가? 우리의 세대, 시대는 이제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일까? 믿고 싶지 않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신 대한민국’의 저력, 국력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우리 세대의 숙명의 적, 숙적 일본을 누르는 느낌도 드니… 이런 선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래, 그것이 반세기 세월의 선물이라고, 선물이라고…

거의 한달 만에 아가다 자매님 그룹과 ‘하얀풍차’ bakery에서 coffee, 도넛, 그리고 수다를 즐길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 따님 안나 자매가 지난 성탄절 다음날 큰 차 사고를 겪었다는 것, 잊고 살았다. 일요일 밤에 일을 하러 가다가 집 근처에서 어떤 다른 한국인 아줌마가 멀쩡하게 서 있는 차를 뒤에서 들이박아서 완전히 total이 되었다는 놀랍고 믿을 수 없는 사고였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라고나 할까… 다행히 큰 상처는 없었지만 그래도 누가 알랴? 차가 없어진 것도 너무나 골치가 아프고, 변호사, 보험회사 등과 상담을 하는 것 등… 내가 생각해도 아찔한 일이었다. 최소한 큰 후유증은 없는 듯하지만 그래도 Chiropractor 에 매주 간다고 하니… 이래서 인생은 알 수가 없는 거다. 나도, 너도, 우리집도 다 마찬가지…. 내일은 알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거의 안심이 되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오늘을 살자, 어제와 내일보다는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 Today while the blossoms still cling to the vine…

안나 자매의 남편이냐시오 형제가 전에 말했던 대로 책 한 권을 보내왔다. 알고 보니 역시 ‘주식 stock’에 관한 책이라 조금은 아쉬움을 느꼈다. 나보고 지금 주식을 하라고… 허~ 우리를 잘 모르는 모양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 책은 다행히도 만화였다. 주식의 고수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허영만이라는 사람이 만화를 그린 것이다. 아마도 주식에 대해서 문외한인 나를 고려해서 가볍게 주식을 배우라는 뜻인지도… 그것이 맞을 듯하다.

 

Shrimp Cocktail의 추억~~~  오늘 집에 오는 길에 Kroger에 들려서 처방약 [콜레스테롤]과 몇 가지 ‘생필식품’을 사면서 우연히 조그만 shrimp cocktail package가 보여서 거의 생각도 없이 집어 들었는데… 흐르는 생각에 잠긴다. 이것에 얽힌 추억이 머리 속 깊은 곳에서 느껴졌기 때문일 거다. 1989년 여름, 매디슨 위스컨신에서 아틀란타로 이사준비 차 방문할 당시, 비행장에서 이것을 사서 먹었던 기억이다. 두 명이 먹기에는 너무도 작은 양이어서 그랬는지 너무도 맛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이후에 차를 타고 이사를 내려올 때는 아주 많은 양의 shrimp 를 사가지고 임시로 묵었던 hotel에서 전기 밥솥으로 ‘복수라도 하듯이’  원 없이 많이 만들어서 먹었던 것.. . 오늘도 Kroger에서 그것을 보면서도 사지 않고, 기억을 더듬어 집에 와서 많은 양의 새우를 먹으며 33년 전의 ‘가난했던 추억’을 나누며 웃는 시간을 가졌다. 아~ 30여 년의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세월이여~~

찬란한 태양을 비웃듯이 바깥 공기는 놀랄 정도로 매섭다. 이런 날이 나는 제일 싫은데… 이런 날에 쓰레기 cart를 밖에 내 놓아야 하는 것은 더 싫었지만 놔두고 들어올 때는 완전히 기분이 바뀌었다. Mailbox에 조금 의외의 flat envelope 두 개가 있었다. 아하~ COVID-TEST-KIT가 벌써 왔구나~~ 하지만 너무나 가볍고 얇구나.. 하며 열어보니… 완전히 예상을 깨고 ‘아기다리고기다리’ 던 서류가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는가?  기쁨과 놀라움…  성모님 감사합니다, 당신이 약속하신 거의 마지막 산봉우리를 넘고 있습니다!

올 겨울 들어서 평균기온이 가장 낮은 한겨울의 날씨.. 비록 찬란한 해는 떴지만 그것을 놀리는 듯 공기는 냉장고와 비슷하고, 싸늘한 바람은 더욱 괴롭기만 하다. 마지막 1월의 주일은 매일 이런 식, 하지만 섭섭할 것 하나도 없다. 이것이 정상적인 날씨니까… 이상기후 같은 것이 없는 것만 해도 얼마나 안심이 되는가?

 

아침 일찍 아이들이 보내준 두 마리 강아지, 견공 犬公들의 모습을 [text] message로 보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나온다. 역시 이 녀석들과도 정이 이미 흠뻑 들었구나… 우선 이렇게 나를 반겨주는 ‘생명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의 생일은 행복하다. 그래, 나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 생명들이 있다는 것이 74세 생일의 제일 큰 선물이 아닐까? 더 이상 무엇을 바라고 싶은가, 없다 없어…

견공 Senate, 작은 딸 집 

견공 Ozzie, 큰 딸 집

어제 오후부터 불현듯, 갑자기 찾아온 Screwtape friends 들 탓에 어제 오후는 완전히 포기한 날이 되었고 여파로 오늘의 예정된 것들도 ‘일방적’으로 취소를 하는 등.. 나는 역시 악마에게는 아주 탐스런 상대인 모양이다. 날씨와 아픈 허리는 거의 핑계일 수 있고, 잘못 찾은 나의 선택들, 보아서 이득이 될 것 거의 없는 film, documentary video들이나 보고…. 나의 잘못은 이런 사소한 것들에서 출발을 한다. 이것은 정말 100% 우연일까, 아니면… 지나친 relax의 결과인지도… 오늘부터는 정말 이런 사소한 결정, 선택에 조금 더 주의를 하자..

오늘은 연숙이 거의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외식대신에 집에서 만들어준 생일 음식을 먹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는 모르지만 74세까지 나는 이런 것들을 그렇게 감사하며 살지 못한 것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다. 이것 말고 나는 나의 생일이 그렇게 즐겁지 못한 것,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느려지고 변하는 나 자신의 자화상 때문일 듯한데, 이것에 대한 처방책은 나에게 없다. 그것이 나를 오늘 이렇게 조금은 처지게 하는 것, 누가 모르랴.   하지만 또 나는 이것을 극복하고 일어나 다시 즐겁게, 기쁘게, 보람 있게 다음 생일 75세를  맞이할 것이다.

블로그 site의 admin page에 오늘은 약간 신경을 쓰게 하는 message가 보인다. PHP version을 update하라고… 현재 website의 backend engine은 물론 PHP 인데 이것이 고물이 되었다면… 자세히 보니 아주 급한 것은 아니지만 newer version의 이점들이 구미를 당긴다. More security & speed…허~ 이 정도면 두말 없이 upgrade할 이유가 생긴 것이고 아예 7.X 에서 8로 quantum jump를 해 버렸다. 한 동안은 이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하! Not So Fast!  나중에 보니 serony.com은 얌전히 ‘죽어’ 버렸다. 분명히 현재 wordpress와 PHP8이 ‘충돌’한 모양… 다시 PHP7.x로 ‘강등’을 해서 겨우 살아났다. Googling Time! 아마도 현재의 모든 plug-in들의 compatibility를 알아야 하는 괴로운 작업이 필요… no thanks, for now, maybe later

 

Anne Frank, 얼마 전 news [Youtube나 websites, TV] 에서 Ann Frank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자세히 읽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밀고자1 에 대한 새로운 소식은 아니었는지…했는데 오늘 우연히 CBS 60 Minutes program에서 비교적 자세한 것을 알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거의 확실한 범인은 같은 지역에 살고 있던 ‘동포 유대인들’이라는 놀라운 사실. 그 동기는 100%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도 밀고의 대가로 그들은 강제송환 대상에서 제외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범행동기로서도 충분히 이해, 수긍이 간다. 일제시대 때에도 독립투사, 애국지사들을 밀고한 것도 동포들이 아니었던가?
이것으로 Anne Frank의 아버지인 Otto Frank가 갑자기 범인 찾는 것을 중단했었다는 것도 설명이 되는 것이다. 그는 동포들의 밀고사실을 덮어두고 싶었던 것 아닐까?

CSI, AI 가 총동원 된 FBI style 재수사

이 새로운 news가 흥미로운 것은 이 75년 전의 한 유대인 가족의 불행이 시효도 없이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 안 그렇겠는가? 역사적 부조리 중이 부조리를 남긴 나치 괴물들에 대한 범인류적 증오의식은 아마도 75년 이후에도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이번 ‘재수사’에 전 FBI 베테란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도 흥미로운데 그들의 수사방식은 거의 최첨단 CSI technique을 방불케 하는 멋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알려진 새로운 사실은, 모든 증거들이 ‘과학적’이 아닌 역사적 증거라는 사실이기에  현재의 기준으로는 100% 확실한 것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세상에 100% 확실한 것이 어디 있을까… [세금과 죽는 것을 빼고..]

 

작년 8월 영구 귀국한 조시몬 형제, 그가 이곳에 살 때 기르던 아주 예쁜 고양이 Penny 를 고생 고생하며 데리고 가서 우리들이 그 녀석 lucky 라고 부러워했는데 오늘 소식에 녀석이 당뇨병에 걸려서 치료생활을 한다고… 당뇨병이니 사람과 마찬가지로 계속 인슐린 주입과 특별 diet로 살아야 한다고 걱정이다. 일년 $6,000 비용도 그렇고 주인이 계속 돌보아 주어야 한다니… 이 사랑이 충만한 형제님, 자연수명이 다할 때까지 보살피겠다며 운동을 더 시키기 위해 다른 친구 고양이를 입양할 생각도 한다. 아~ 예전 같으면 자연사하는 것을 기다리겠지만 지금은 애완동물도 거의 사람과 같은 처우, 사랑을 받는 세상이니…  분명한 것은 수명이 다 할 때가지 얼마나 사랑으로 보살피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도 집 고양이 Izzie 의 나이가 만만치 않아서 사실 서서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나의 생각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똑 같은 하느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 그에 상응하는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 형제님, 다행히 경제력이 충분히 뒷받침은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랑의 능력을 가진, 성 요셉 같은 의로운 사람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Long Live, Penny!

 

  1. Anne 식구들이 숨어있던 다락층 Annex의 위치를 Nazi Gestapo 에 알린

Biden의 대통령 취임 일주년 즈음이라는 것을 왜 내가 모르겠는가… 2021년 Jan 6 사태 악몽의 뒤로 또 다른 Biden의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옴을 며칠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Biden의 [거의 바보 같은] 변신과 현재의 암담한 처지에 놀랄 뿐이다. 어떻게 일년 전 그렇게 희망의 상징이 이제는 ‘세기적 실망’의 상징이 되었을까?  설상가상으로 그의 어깨 넘어 등뒤에는 ‘DONALD 개XX’의 징그러운 미소가 나를 비웃고 있다. 그 더러운 입만 열면 99%가 새빨간 거짓말 투성이… 아~ 세상이 어쩌면 이렇게 불공평할까? 그런 개XX가 왜 이렇게도 아직도 우리를… 아~ 성모님, 좀 이것 너무하지 않습니까?

 

TablePress,  WordPress blog에서 table structure 를 삽입하는 것, 이제까지는 Microsoft Office OneNoteWord 의 HTML code를 그대로 copy 를 하며 가끔 쓰곤 했는데, 그 code를 보면 한마디로 가관이다. 보이는 것과 뒤에 가려진 것이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 정말 ‘더럽고, 잡스럽게’ 보이는 것. 뒤에 가려진 code를 무시하면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것은 너무한 듯하다. 그래서 혹시 자동적으로 비교적 깨끗한 table code를 generate하는 것이 없나 .. Googling을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없을 리가 있겠는가?  독일의 어떤 대학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이 만든 ‘무료’ TablePress란 것, 아직 써 보지는 않았지만 documentation만으로도 OK, pass로 판단. 이것으로 test run해 보니, 역시 OK.

TablePress generated example table

 

완전하지는 않지만 우리 둘 오늘은 어제보다는 조금 나아진 듯하다. 최소한 나의 허리는 견딜만하니까.. 연숙도 어제 밤에 Theraflu Night Time을 마시고 일찍 자더니 오늘은 훨씬 생기가 돌아온 듯 보인다. 아마도 내일부터는 regular daily routine으로 복귀할 듯하다. 내일은 우선 top priority는 동네성당 아침 미사엘 가는 것이고 가능하면 요새 재미 들린 듯 가는 Goodwill에 donation할 것을 가지고 가는 것인데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헌 물건들을 가지고 나가면 그런대로 garage나 집이 조금은 가벼워지고 깨끗해지지 않을까? 일찍부터 이곳에 기부를 했으면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았던 것 아니었을까? 이것은 100%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

지난 며칠 나의 머리를 사로잡고 있었던 VIZIO HDMI display 노력은 거의 실망으로 끝나고 있다. 결국은 다시 VGA mode로 돌아온 것이다. 그것이 최소한 현재의 display상에서는 보기가 좋은 것, 너무나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현실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앞으로 VIZIO HDMI 는 Raspberry PI 같은 것에서나 다시 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의 이런 일들이 절대로 시간 낭비는 아니라는 것만 기억하자.

 

어제 밤에 ‘연속상영’으로 보게 된 Narnia의 저자,  C.S. Lewis의 1993년 자전적 drama film1, Shadowlands 로 나는 인간에 대한 조그만 희망이 되살아남을 느꼈다. 순수하고 지성적, 고전적 사랑의 위력! 영화의 주인공 Jack Lewis는 비록 견디기 어려운 간병과 사별의 고통을 겪었지만 그것이 보여준 진정한 사랑, 그것도 세속적으로 비쳐진 인간상과 영성적, 내면적인 모습이 100% 일치했던 C. S. “Jack” Lewis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운 교훈이고 모습이었다. 늦은 감은 있지만 그런 것을 배우고, 실천하고 남기고 싶다. 신앙적으로 언행이 일치하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인간상, 요즈음에 흔치 않은 것이다.

Joy[Debra Winger]의 불치병이 밝혀진 후 결혼식을 결심하는 Jack[Anthony Hopkins]

아내의 임종을 함께…

 

 

오늘 아침부터는 역시 전에 보았던 또 다른 인간상, ‘메주고리예의 Artie Boyle 기적’,  A Time for Miracles을 다시 보고 있다. 이 ‘영화’는 2000년대 초 성모발현지 메주고리예 에서 일어난 실화의 documentary film이다.  주인공인 Artie[Arthur], 전통적 ‘준 냉담적’인 가톨릭 집안의 가장으로 폐종양으로 위기를 맞는다.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서 친구의 권유로 3명이 메주고리예를 찾고, 십자가 정상에서 기적적, 순간적인 치유를 받는 것, 현재까지 아무런 후유증이나 재발이 없는 전형적인 기적체험을 한 것이다. 나에게는 희망의 자극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도전적 시기를 가고 있기에 이 이야기는 아주 timing이 좋다. 기적, 그것도 초자연적인 기적의 이야기와 증언이 나에게 크게 도움이 된다. 이것도 공동체에서 멀어지지 않으려는 나의 노력의 하나라고 본다. 나는 현재 그렇게 ‘심각한 도전’을 겪으며 살고 있는 것이다.

Medjugorje 에서 친구들과 함께, 가운데가 Artie

The Cross Mountain

위의 두 가지 ‘시각적 활동’의 도움으로 놀랍게도 안정감을 되 찾으며,  내친 김에 순교자 성당 ‘본당 봉사자를 위한 영적독서회’를 염두에 두며 ‘신비스런’ 요한복음을 읽게 되었다. 몇 년 전에 Holy Family 성당에서 거주사제였던 ‘젊지만 중후한’ 멋진 아틀란타 대교구 소속 법관 신부님 Fr. Dan Ketter가 열심히 권해주었던 주해 신약성경까지 동원해서 드디어 요한복음을 정성스레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 몇 가지 ‘간단한’ 선택으로 최소한 오늘 하루는 평화의 기쁨을 맛보다니… 정말 간단한 선택이었는데…  부수입으로 어제부터 아팠던 허리의 통증까지 조금은 나아가는 듯 느껴지고…

 

며칠 째 계속 먹었던 ‘쌀밥, vegetable stir-fry 아침’, 조금 지겹다는 불평이 들리는 듯. 오늘은 일상적인 ‘양식’ 아침메뉴로 돌아왔다. 역시 아무리 맛이 있어도 계속 먹으면 별 수가 없는가…  별볼일 없게 보이던 이 ‘양식’ 이 이렇게 새로운 맛인지는…

 

 

1월 중순 쯤이 되면 kitchen TV에는 반드시 이런 멋진 모습의 ambient music 이 Youtube screen에 뜬다. 크리스마스 이후에는 눈 내리는 설경이 창 밖으로 보이는 coffee shop, 이런 것들이 있어서 고민이 있는 하루도 그렇게 괴롭지만은 아닌 걸 거다, 그래… 몸 대신 마음이라도 이런 곳에 갔다고 상상하는 것도 한겨울의 별미다. 비록 작은 화면이라도 상관없다. 머리 속의 화면만 충분히 크다면

어제 아침부터 등쪽 허리부분이 아파오던 것이 점점 아파지기 시작해서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는 것조차 힘이 든다. 이것 또 며칠을 갈 것인가 은근히 걱정이 된다. 어깻죽지 부분이 아니고 허리아랫부분인 것은 나에게는 아주 드문 것인데, 허리를 구부리는 것이 때에 따라서 비명을 지를 정도로 아프니… 이것이 연숙이 주로 아픈 부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것의 특징은 산보를 해도 별 효과가 없는 것이고, 유일한 처방은 허리를 안 구부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비교적 빨리 허리가 아픈 것이 조금 나아지고 있지만 이번에는 연숙에게 감기가 찾아오는 듯싶다. 혹시… 하지만 설마… 그래 오늘 저녁과 내일까지 조금 편하게 쉬면 이런 ‘노인성 불편함’일지도 모르는 것들 현명하게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내일까지 천천히 쉬고 나면 나의 생일이니… 그날 미역국을 제대로 즐기려면 내일까지 연숙이 나아야 할 터인데… 웃긴다, 미역국 때문에 빨리 완쾌가 되라고… 나도 지독한 인간인가?

 

  1. Youtube에서 볼 수 있음.

일주일 만에 성당 요한복음 성서공부반에 갔다. 참가인원은 이제 안정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카톡중심의 참가자들의 반응이 의외로 조용해서 신부님이 오늘은 ‘제발 좀 느낌 글들 좀 올리라’는 요청까지 하신다. 아마도 이것은 강의로 느끼는 참가자들의 반응이 현재의 여건 탓인지 너무나 조용한 것이고 신부님도 마찬가지로 느꼈을 듯하다. 문제는 카톡방의 적지 않은 member들을 ‘교통정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완전히 그때 그때 자연적인 대화의 흐름에 맡기는 것인데 심리적으로 반갑게 대화를 유도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이다. 어떤 사람이라도 먼저 lead를 하면 좋은데 실질적 지도자인 신부님이나 교육분과장이 우선은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도 먼저 ‘총대’를 잡을 위치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며, 누구도 바보 같은 comment나 질문은 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문제다.  현재까지는 나를 포함해서… 문제는 카톡이라는 극히 제한된 대화의 창 에서 그것을 어떻게 글로 보이는 것인가.. 그것이 우선의 문제다. 대답이 없는 메아리를 몇 번 경험하면 자신이 생길 수가 없다. 어떤 누가 조직적, 능동적으로 인도를 해야 효과적인 것이다.

아침에 Ozzie를 새로니 집에 데려다 줄 때 유난히도 흥분하던 녀석의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집이 그렇게 그리워서 그랬을까? 새로니가 그렇게 보고 싶었을까? 나로서는 조금 섭섭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이제 이 녀석 돌이킬 수 없는 우리 전체가족의 일원이 되었다는 증거가 아닐지…  이로서 우리는 새로니 가족을 조금은 도와 주었던 지난 주말과 어제는 나라니 집을 도와 준 하루를 보낸 셈이다. 보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침 시간을 잠깐이나마 한눈을 팔았다. 며칠 째 계속 PC HDMI display의 후유증에 지나친 관심을 쓰는 나의 모습이 즐겁지 않다. 오늘은 갑자기 모든 글자들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 또 무엇이 문제인가? HDMI와 VGA의 차이인가 아니면 VIZIO의 setting 문제인가… 이런 쪼잔한 것들에 빠지면 나는 허우적거린다. 하지만 필요한 것, 해야 할 것들이니 별 수가 없다. 최소한 시간낭비는 아닌 것만 알면 된다.

 

대한 大寒 추위와 나의 생일 등의 모습이 느껴지며 어제 시작된 겨울추위는 역시 겨울다운 겨울의 기쁨일 수도 있다. 오늘은 숫제 하루 종일 기온이 빙점에서 맴돌고, 설상가상으로 매서운 시베리아 바람까지… 그래, 좋다… 로난이 오면 산책을 할 수가 없을지는 몰라도 나는 Ozzie와 또 둘이서 Sope Creek의 ‘설경 잔해’를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어제 우리는 연숙과 셋이서, 나+연숙+Ozzie, 눈을 맞으며 눈을 발 아래 보고 느끼며 걸었지 않았던가? 기막힌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오랫동안…
1시간 45분 정도의 산책, 오늘은 시베리아 급 싸늘한 바람이 부는 날이라서 목도리와 장갑으로 무장을 하며 걸었다. 일단 걷기 시작하면 아무리 춥더라도 견딜 만 하지만 얼굴과 귀만은 조금 문제다. 하루 종일 40도에도 못 미치는 기온에다 햇살이 전혀 없고 바람이 부는 오늘은 사실 따뜻한 집에서 늘어지면 좋겠지만 오늘은 그런 사치를 부릴 수가 없구나. 나라니가 집에 와서 일을 하게 되었기에 어는 정도 로난은 봐 주어야 하니… 

며칠 동안 독서삼매경을 잊고 살았다. 어제 눈보라를 뚫고 배달된 또 하나의 ‘필독서’ Philosophy, Science and Religion, <요한복음산책>과 더불어 나의 눈과 머리를 즐겁게 한다. 비록 깊이 읽지는 못해도 그것이 큰 문제인가, 손끝으로 느껴지는 책장의 느낌과 박학다식한 저자들의 학식, 진리를 보기만 해도…  하지만 우선은 내일로 돌아온 요한복음산책 강해, 그것이 우선이다. 내일 공부할 것 예습독서를 못했다. 그것을 오늘 로난을 보아주면서 읽을 수 있을지…

 

빗소리보다는 바람소리와 central heating소리가 점점 커지는 새벽이 되었다. Ozzie와 깜깜한 바깥을 나가려니 비바람소리가 왔다 갔다 하며 소리를 치고 있다. 다행히 비는 심하지 않아서 Ozzie에게는 다행인가..  일기예보로 상상하던 모습은 분명히 아닌 듯, 바람이 비를 누르고 주인공으로 show를 하는가.  일단 오늘 성당 외출은 안 하기로 했기에 일어날 필요는 없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지나친 결정이었나 하는 후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숙의 말대로 바람이 더 우려가 되는 것이기에 우리 나이에는 이것이 현명한 생각일 것이 분명하다.

비가 눈으로 바뀌는 신기한 모습들…

 

뜻밖으로 [건주 wife] 인희씨가 카톡 소식을 주었다. 정말 기대를 안 하더라니… 생일을 잘 지냈다고… 허~ 놀란 것보다 허탈감이라고나 할까… 이래서 문자대화는 문제가 있구나. 그 동안 소식이 없었던 것으로 최악의 상상을 시작한 것이 나의 오판이었구나… 좋은 소식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렇다면 ‘녀석’ 문제가 없었구나… 그래, 그러면 됐다. 하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왜 조금 더 친절하고 자세한 근황을 알려주지 못하는 것일까? 저쪽 사정을 볼 수는 없지만 글자 20자에 덧붙여 40자를 쓰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일까? 이제는 교성이가 조금 신경이 쓰이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서 조금 지긋하고 신중하게 기다리며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하면 좋겠다. 좋은 쪽으로, 좋은 쪽을, 낙관적으로, 희망의 존재를 느끼며.. 희망, 희망… 희망…

결국 올해 ‘흰 색의 물’이 하늘에서 맹렬하게 내려오는 장관을 목격하게 되었다. 나의 생일 5일 전, 대한 4일 전… 세찬 바람 속을 뚫고 쏟아지던 비가 결국은 진눈깨비로 변하기 시작한다. 과연 이것이 100% 눈으로 변할 것인가.. 흥미진진.. 지금이 오전 10시경이니까 아마도 오후에는 주변의 모습이 완전히 변할지도 모른다. 외출했던 사람들, 아마도 이제부터 조금씩 조바심들이 날 것이다. 우리는 2014년에 이미 최악의 사태를 경험을 했지만 그들 중에는 아직도 ‘설마~’ 하는 불쌍한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니…

 

오늘 나의 main desktop PC 의 screen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VIZIO monitor  INPUT으로 오랜 세월 쓰던 venerable VGA가 일단 retire를 하고 그런대로 ‘최신식’인 HDMI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늦은 것이지만 그 동안 VGA 를 쓰는 것에 큰 문제가 없었기에 if it aint’s broke, don’t fix it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바꾼 계기는 Raspberry PI를 desktop mode로 같은 VIZIO를 쓰는데 이것은 그런대로 근래의 것이라 그런지 아예 모든 것이 HDMI video만 support를 하는데 있었다. HDMI의 장점은 video audio모두 digital mode이기에 결국 모든 것이 digital인 셈이다.
PC와 Raspberry PI의 linux를 같이 desk에서 쓰려면 HDMI가 적절해서 Display Port만 있는 나의 ‘고물’ PC에서는 adapter를 써야 하고 그것이 오늘 도착해서 곧바로 test를 하기시작… 큰 문제는 없지만 역시 culture shock의 순간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나에게 필수적인 Windows application Microsoft OneNote,  의외로 이것이 screen에서 선명하지 않게 보이는 것이다. 유일한 길은  screen resolution을 native 로 바꾸어야 하는데… 와~ 역시 모든 object들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 예상은 했지만 이것에 적응이 과연 될지… 정 적응을 못하면 최후의 방법은 역시 전에 오랜 기간 문제없이 써 오던 VGA로 돌아가야 할지도… 아~ 왜 이렇게 사는 것이 복잡하단 말인가? 일단 하루 정도 trial시간을 주기로 했다…
세상이 그렇게 예측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위의 OneNote blurry problem, 그것이 오늘 모든 고뇌의 시작이었지만 기쁨으로 끝나게 하는 요인도 되었다. 알고 보니 OneNote는 HDMI mode에서도 선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Windows reboot이후에 다시 선명한 OneNote의 모습! 아~ 감사합니다. 다시 원래의 125% resolution,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Cul-de-Sac, Dusting Starts…

 

오늘의 화두 話頭는 역시 눈, 그것이 아닐까? 눈은 한때 맹렬히 쏟아지듯이 내리기도 하고 함박눈 비슷하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은 잔잔히 서서히 가늘게 가랑비처럼 내려오는 눈의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장시간 끊임없이 내리긴 했지만 양으로 보면 그저 눈의 맛을 보여준 듯하다.  이 지역에서 눈 내리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없는 것이다.
커다란 후유증 없이 멋있게 눈의 장관을 보여준 일요일, 나는 감사한다. 최근에 느낀 어떤 예감이 맞은 것도 고맙고 생일 전에 이런 따뜻한 선물을 보내준 어머님 자연, Mother Nature가 고맙구나… 한두 번 더 보게 되었으면 더 좋겠지만 그것은 너무 큰 요구인가.

이런 Snowy day에서도 Amazon delivery system은 건재한 모양, 놀랍게도 mailbox에는 오늘 온다던 package가 얌전히 들어 있었다. 하나는 DisplayPort to HDMI adapter, 그리고 며칠 전부터 수강, 청강하게 된 University of Edinburgh Coursera ‘Philosophy, Science and Religion’ 의 교재다. 이것은 textbook format이라기보다는 관계 석학들의 essay 를 나열한 것으로, 깊이가 있는 논문집들로 보인다. 하지만 도전할만한 것이라 기대가 크다.

 

Wintry Mix, 드디어 winter weather advisory 가 이곳 저곳에 보인다. 2개 중, 하나는 freezing rain이고 나머지는 strong wind… 이 정도면 거의 준準 비상 급이 아닌가? 첫 눈이 오는 것은 내심 은근히 기다리고 있던 것이지만 피해가 생기게 되면 문제다. 하지만 느낌에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오늘 저녁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고 내일 아침에는 북서풍 강풍을 동반한 비, 서서히 눈으로… 얼기 시작하면… 와~ 운전하는 것 문제다. 결국 우리 둘은 내일 아틀란타 순교자성당 미사 차 20+ 마일 freeway 외출하는 것을 자제하기로 결정할 수밖에… 그래 안전한 것이 우선이다. Online mass에 이제는 익숙해졌으니까…

밤새 유나의 울음소리가 간간히 들렸지만 그래도 긴 울음이 아니라서 우리가 자는 것은 거의 문제가 없었다. 얼마나 감사한지… 최악의 경우 밤을 꼬박 샐 것도 상상을 했는데… 이 정도면 양반이다.  이렇게 해서 유나도 자기 집이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서 자는 경험을 만든 것, 우리는 물론이지만 새로니에게도 조금은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다.

오늘 1월 15일은 친구 양건주의 74세 생일… 언제부터 이날을 기억하며 사는 것인지… 이제는 완전히 기억을 하며 살 수 있게 되었다. 나보다 며칠 위 형 뻘이지만 지금은 도저히 생사여부조차 알 수가 없으니… 왜 인희씨는 한마디 소식이라도 전해주지 못하는 것일까? 그저 큰 문제만 없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건주야~ 네가 오래오래 도사처럼 우리에게 삶과 건강의 모범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니?

 

Sope Creek Crossing

Ozzie와 둘이서 거의 2시간가까이 걸었다. 오늘은 Sope Creek Apt trail East 쪽을 정말 오랜만에 들러보았다. 하지만 오늘의 산책 뉴스는 뜻밖으로  historical landmark를 발견한 사실이다. Sope Creek 상류를 처음 발견했을 때 그 위치와 연관되는 것, 바로 옆 Roswll Road에 세워져 있었던 다른 landmark 를 오래 전에 본 기억이 나는 것이다. 그것을 읽어본 기억에 Civil War 당시Lincoln의  Union Army [북군]가 바로 이 근처, 이곳을 거쳐서 Atlanta로 진격을 했다는 것.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서있었던 Sope Creek 개울가에 돌다리가 있었고 그곳을 거쳐서 Union Army가 Atlanta 최후의 Chattahoochee River 방어선을 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곳, Sope Creek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Sope Creek Crossing의 역사적 사실이었다. 이런 사실을 안 이상 앞으로 이곳에 산책을 올 때마다 Kennesaw Mountain 격전 후 1864년 7월 초 이곳을 넘나들던 Union Army의 ghosts 말발굽, 군화 소리를 상상하는 것도 뜻이 있는 것 아닐까? 오늘 보게 된 Sope Creek Crossing historical landmark plaque는 이렇게 증언을 하고 있다.

On July 8, 1864 General Sherman sent a contingent of troops to cross the Chattahoochee only a few miles from this site. That crossing was successful in penetrating the Confederate defenses, the final stronghold in front of the fortifications around Atlanta. From the 9th to the 13th of July an estimated 30,000 Union soldiers under the command of McPherson, Howard, and Logan passed over Sope Creek on their way to the eastern flank of Sherman’s advance. Many of these soldiers traveled down Old Roswell Road and crossed Sope Creek at a classic plank and stone-covered bridge located where this overlook now stands. As Sherman’s troops moved through Sope Creek Crossing, Atlanta waited restlessly under the shadow of an impending attack. War’s dark clouds were gathering for the storm that would destroy the South’s grandest city.

1864년 Atlanta Campaign 직전 외곽지대에 도착한 Gen. Sherman

지금은 예전의 가교는 없어졌지만 이런 landmark와 전망대가 그 당시를 기억하게 한다. 우리 동네를 휘휘 감으며 졸졸거리는 Sope Creek을 따라 내려가면 커다란 강줄기 Chattahoochee River가 나온다. 그러니까 아틀란타 최후의 격전지였던 Kennesaw Mountain과 ‘패전 도시’ Atlanta사이에 있는 이곳 ‘우리동네’  Marietta는 향후 미국역사를 판가름하는 그 길에 있었던 것이다. 가끔 상상을 빼놓지 않는다. 만약 이 전투에서 Lincoln이 졌다면… 아니 최소한 휴전으로 끝났다면 미국이란 나라는, 아니 전 세계의 역사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쉽게 말하면 소위 말하는 ‘미국식 자유자본민주주의’의 모습은 기대할 수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상상에 따라서 ‘아찔’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밤이 깊어오면서 예보대로 차가운 빗발이 뿌리기 시작, 비와 눈이 강풍과 함께 내일 올 것을 머리로 그린다. 비가 눈으로 바뀌면 우리는 Ozzie를 데리고 산책을 시도하고 Sope Creek쪽으로 가서 그곳의 겨울풍경을 만끽하고 싶다. 그것이 과연 실현이 될 것인가? 나의 흐릿했던 상상력, 올해는 눈 비슷한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가급적 내 생일 전에 ‘대한 추위와 함박눈’의 선물을 기대하는 것, 너무나 유치한 바램일까?

 

소한과 대한 사이에서… 절기가 나와있는 달력이 가까운 곳에 없다.  한겨울과 한여름에 나는 제일 춥고 더운 절기를 확인하며 산다. 겨울에는 소한과 대한, 여름에는 삼복[이것은 절기는 아니지만].. 이것도 전통의 즐거움 중에 하나다. 소한은 모르겠지만 대한은 추억 중의 추억이다. 나의 생일과 연관이 된 절기이기 때문이다. 어머님, 나의 생일이면 ‘반드시, 반드시’ 언급하던 절기가 바로 ‘대한 추억’… 지금은 소한과 대한 사이를 지나고 있다. 올해는 ‘눈 雪의 반가움’이 있을까, 복권추첨 하는 기분으로 말하던 것이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일요일의 눈 예보가 그것인데… 과연 어떨까? 하지만 기다리는 즐거움을 나는 좋아하니까… 포근한 느낌이다.

싸늘하지만 잔잔한 바람이 부는 오전에 걸었다. 오늘은 ‘등산로’를 택했고 개천보다 훨씬 넓고 깊은 Sope Creek을 따라 걸으며 아마도 일요일에 예보된 ‘겨울의 멋, 얼어붙는 비, 진눈깨비, 아니면 눈, 함박눈’ 등을 마음껏 펼쳐지는 광경에 상상으로 그리며 즐거워했다. 그래, 아무리 노인 같지 느껴지지 않는 노인이지만 이런 동심은 노심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래, 머리가 돌아가는 한 나는 어리게 살다 갈 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늙은 욕심, 추한 욕심은 절대로 배격을 하다 갈 것이다.

며칠 만인가? 조심스럽게… NYT morning newsletter를 먼저 보고 나서 TV를 본다. 나를 괴롭히는 뉴스는 없는 듯하다. 아, 그렇구나. 일주일에 한번씩 TV를 보는 것도 괜찮구나… 이곳에서는 피하고 싶은 뉴스가 전부가 아니지 않는가? Ed Sullivan Show가 있구나~ 60년대로 돌아가는 행복이 이곳에 있으니까…

내일 아침에는 Holy Family 성당 9시 미사에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나는 조금 불편한 것, 숨길 수가 없다.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지 나도 알 수가 없다.  도망가듯이 미사를 중지했던 그곳, 꿈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곳, 2012년부터 매일미사를 갔던 곳, 매일 아침 우리를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하던 곳… 이제는 신비스럽게도 느껴지는 그곳, Pandemic동안 몇 번 찾아갔을 때, 어쩐지 우리를 환영해 주지 않는 듯한 인상을 받았던 곳… 어떤 것들이 나로 하여금 이곳에 가는 것을 망설이게 하는가? 

 

오늘은 새로니 39살 생일이로구나… 감상에 젖고 싶다. 내년 40살에는 더 그렇겠지만 상관없다. 1983년 1월 5일로 돌아가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까… 1983년… 아~ 참 오래 살았다는 생각만 머리를 맴도니.. 첫 생명, 새로니 생각보다는 나와 우리부부의 만남부터 grandparents 까지의 인생역정이 더 먼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우리의 만남, 결혼은 시작이었지만 아이들의 그것들은 최근 몇 년 전까지도 완전 미지수였기에, 황혼의 인생도 반드시 밋밋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1980년대와 2020년대의 차이는 계량조차 쉽지 않은 엄청나게 다른 세상인데…  새로운 두 가정이 우리로부터 시작 된 우리들의 인생역마차는 이제 서서히 다음의 정거장에서는 완전히 쉬어도 되는 것인가…

 

Leader of the Band – Dan Fogelberg – 1983

 

오늘 로난 모자 母子가 아침에 와서 같이 먹게 될 breakfast에 생각이 미치면서… 아~ 무엇을 먹을까 고민이 든다. 매일 우리가 먹던 것에 신물이 났는가? 침이 나올만한 것은 없는가… 매주 금요일마다 먹는 pancake을 오늘? Pancake은 가급적 금육재 禁肉齋로 meat종류를 피하려는 노력인데, 그것을 수요일에 먹는 것도 괜찮을 듯. 또 다른 것은 없는가?  삶거나 fried한 eggs, 이것도 조금 지겹고… 아하~~ 그렇다, scrambled egg! 그것이 있었지! 재료는 같아도 맛과 기분이 전혀 다른 이것을 오늘 만들면… Googling에서 cooking website, LOVE & LEMONS 라는 곳에서 멋진 모습의 scrambled egg ‘recipe tip’을 찾았는데… 이것 너무나 간단하지 않은가? 이래도 맛이 있을까? 그것이 scrambled egg 의 매력이라는데.. 흉내를 내 보았지만 pro들이 만든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모른다.

 

새벽 5시의 신비, 얼마만인가? 5시에 일어난 것이? 이렇게 일찍 눈이 떠지면 대부분은 다시 자려고 애를 쓰기도 하는데 오늘은 그러기에는 머리가 너무나 맑았다. 사방이 깜깜하고 아주 싸늘한 공기를 헤치며 나오니 elderly cat,  Izzie조차 나 발아래 없다. 얼굴을 보니 자다가 나를 보고 깨어난 듯하다. 그러니 더욱 새벽이 쓸쓸하게만 느껴진다. 승려들이 사는 절간은 새벽 3시에 하루가 시작된다고 하는데 나는 5시에도 이렇게 죽은 듯하니… 그들이 부럽기조차 하구나… 하지만 부엌의 blind를 열어보니 일찍 일어나시는 B선생댁도 창문의 불빛이 희미하니… 아직 안 일어나셨나… 모처럼 이른 새벽의 분위기를 마음껏 느낄 수 있어서 반갑기만 하다….

며칠 만인가, 다시 ‘독서 삼매경 기분’을 느끼는 것이…역시 좋아하는 주제의 글이나 책을 읽는 시간이 나에게는 제일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때가 되었다. 이런 시간에는 로난이 나의 서재에서 시끄럽게 놀고 있는 것, 거의 방해나 구애를 안 받는 것도 또한 신기하다. 생각에 집중하는데 그런 잡음이 크게 방해를 못하는 때도 있음은 반가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거의 예외에 불과하고 나머지들의 경우는 대부분 잡념들과 싸울 때가 많다.  또한 나의 독서습관인 ‘잡독, 난독’으로 읽기에 언제 완독을 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 또한 나를 편하게, 가볍게, 즐겁게 하는 습관이다. 아마 ‘정독’으로 시작하라면 시작조차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현재 나를 기쁘게 하는 책들: The Hours of the Universe, Life on the Edge, Living in a Mindful Universe, Learning to Pray, JESUS, The Jesuit Guide 등인데..  오늘 한가지가 첨가되었다. 오래 전 출판된 ‘한국천주교회 2백주년 기념’ 신약성서[요한복음]주해집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서가에서 먼지를 털며 꺼냈다. 지난 12월에 시작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봉사자를 위한 성서 영적독서’ 에 늦게 참여를 한 바람에 교재 [송봉모 신부님 저 요한복음강해?] 1권을 거의 놓치고 말았기에 이 옛날 책이라도 도움이 될 듯하다. 이것으로 한번 ‘신비의 요한복음’에 도전을 해 보고 싶다. 게다가 이번 신부님의 독서강해는 예수회의 관점이 많이 도입이 되는 듯해서 나에게 더욱 흥미를 끈다. 예수회 James Martin신부의 책들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론’에 도전하게 되는 것인지… 조금 흥분까지 된다.

예정대로 오늘 로난 일행이 baby-sitting 도움을 받으러 왔다. 다음 주부터는 Daycare Center가 개학을 하니까 애 보는 것은 문제가 없겠지. 이제 이 녀석도 조금 컸다고 행동하는 것도 조금은 성숙해 보이고 천상 개구쟁이가 되어간다. 앞으로 우리와 어떠한 관계로 살아갈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지 bi-culture문제는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궁금한 것 투성이지만 어쩔 것인가? 그저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고 필요할 때마다 오늘처럼 도와 주면 되는 것 아닌가? 우리가 적극적으로 교육을 시키는 입장도 아니고.. 이것도 선택인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두 문화, 두 언어 교육에 개입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제 우리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내일은 그 악몽의 9/11 terror attack 에 버금가는 1/6 사태 1주년을 맞는 날이다. 물론 나는 내일 ‘조용히’ 모든 media에서 눈을 돌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연극’을 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건강에도 좋고 평화를 조금이라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당시나 지금이나 나는 너무나 생생한 살기 殺氣[정말 그 DONALD 개XX  일당들을 ‘라이파이의 살인광선으로‘ 날려버리고 싶은 것…]를 나는 아직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다.

 

올해가 호랑이 해라는 사실을 카톡으로 날라오는 각종 새해인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임인壬寅년이라고 한다. 오래 전에는 어느 정도 흥미와 추억으로 이런 것들을 보았지만 그것조차 희미해지는 듯하니.. 나이인가 지리적 문화적 차이인가… 오래 전의 얼어붙은 흰색의 서울, 새해의 모습조차 가물거린다. 하지만 눈물겹게 그리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제 밤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12시까지 둘이서 ‘청승맞게’ Time Square의 3-2-1 Happy New Year! 를 기다리고 정시에 Champaign 터뜨렸다. 이것에 도대체 몇 년째인가? 아이들이 집에 살 때 나는 이런 ‘짓’을 하지 않았기에 아이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이번에는 병마개를 열기 전에 조금 흔들렸는지 완전히 폭포수, 폭우처럼 나의 머리위로 쏟아져 Happy New Year를 외칠 시간을 잊고 말았다. 이런 것도 추억이 될 수도 있겠지…

10시면 잠자리에 드는 습관 탓인지 오늘은 7시가 훨씬 지나서야 묵직한 기분으로 간신히 일어났다. 날씨는 완전히 봄을 연상시키는 희한한 것, 연숙이는 각종 화초들이 모조리 올라온다고 아우성, 그것은 불쌍하다는 뜻일 거다. 조금 있으면 모조리 얼게 될 것이라는 냉혹한 자연의 섭리를 말하는 것. 매년 매년 그렇게 똑같은 자연관찰을 하는 그녀를 나는 계속 비웃어 주는데… 유머러스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우거지 상으로~ 조금 웃으며 농담처럼 받으면 안 되는 것일까? 그것이 그렇게도 힘들단 말인가?

뒤끝이 묵직~하고 심지어 괴로운 시간을 어제 저녁부터 새해를 맞이할 때까지 계속 보낸다. 이제야 깨닫게 되는 것, 아하~ 치질기가 발동했구나~ 너무나 오랜만에 겪는 것이라 잊고 살았나? 그제 변비로 인해서 고생 한 것이 그대로~~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그런데 갑자기 왜 변비가 되었을까? 이렇게 냄새 나는 화제는 싫어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피할 것도 아닌 솔직한 인간상이 아닐까?

아~ 새해의 고민, 달력이 없다~ 웃긴다. 어떤 해는 너무나 많아서 귀찮았는데, 어떻게 올해는 하나도? 벽 달력은 장식용에 가까우니 문제가 없는데 탁상용은 문제다. 1월 달 것은 print해 놓은 것을 쓰면 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Holy Family CC에서 주는 ‘간단한 Catholic Calendar’그것이 나는 필요한데… 과연 우리는 그곳으로 불원간 복귀를 할 수 있을까?

치질기를 핑계로 오늘 하루의 요리 전부는 연숙이 하게 되었다. 덕분에 아침을 편하게 푸짐히 먹을 수는 있지만 역시 몸에 고통의 그림자를 느낀다는 것은 괴롭다.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 아닐까? 하지만 병에도 차이가 엄청 많으니… 나는 사실 그렇게 불평할 처지가 못 된다. 나와 비교도 안 되게 고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이것은 응석 중의 응석인 것이다.

현재부터 소급해서 2000년대 후반[2007년] 까지 되돌아보는 나의 블로그  upgrade 작업[WEB 2.0],  기술적인 문제들은 모두 해결이 되었지만, 작업 자체가 기분이 별로 상쾌하지 않고 오히려 싫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복잡하다~ 왜 그런지… 피하고 싶기도 한 시대와 장소로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아하~ 그렇다. 사실 잊고 싶은 작은 상처와 고민들이 몰려 있었던  10여 년의 세월 2000년 대… 나는 정리하기가 무서워서 덮어 두었던 때였다. 2000년 대… 9/11부터 어머님들의 타계, 내 자존감의 급작스런 변화, 경제적 압박.. 아이들의 변신과 변모… 냉담적 신앙의 인생무상… 그때를 나는 조금 다시 정리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그때를 볼 수가 없을 듯하다. 어쩔 것인가? 그에 비하면 1990년대는 거의 천국에 가까울 정도다…아~ 어쩔 것인가?  나는 크게 오산을 하고 있었다. 과연 ‘엄청난’ 양의 이야기들이 그곳에 있었던 것… 처음에는 시각적[photo]인 것에 모든 정력을 쏟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내용에 치중하게 되었다. 사진, 그림 등이 서서히 사라지고 ‘고통의 절규’다운 글들, 이것들은 시각적인 것이 아니고 머리로 생각하고 회고해야 하는 것들이라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하지만 결국 일단 끝이 났다. 도대체 며칠이나 걸렸나? 그 동안 각종 독서활동은  완전히 정지가 되고 연말 단상, 묵상, 기도 등에 좋지 않은 상처를 남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필요한 것, 그것이 아닐까? 앞으로 이런 기회는 자주 없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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