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관의 공포, 알제리아 결사대..

반세기만에 다시 찾아 본 ‘영국’ 영화, ‘흑사관의 공포’, 핏빛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무시무시한 기억들..

 

결국은 찾아내고야 말았다. 아마도 55년 전쯤 ‘오돌오돌 떨며 본  공포 영화’, 당시의 영화 제목, ‘흑사관의 공포 恐怖’, 흑사관의 공포.. 이 ‘외국영화’ 의 영어제목은 Horrors of the Black Museum으로 이번에 기적과 같이 찾고,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흑사관’의 한자어를 모른다. 흑사관.. ‘흑’자와 ‘관’자는 알 듯한데.. ‘사’자의 한자가 오리무중이다. 흑 黑 , 관 館. 하지만 black museum을 흑사관 이라고 했으니까 아마도 사 자는 死, 아니면 事  가 아닐까?

어렸을 적, 대강 국민학교, 중학교 시절에 서울에서 본 영화들, 특히 외국영화들.. 참 많았는데 거의 모두 미국에 온 이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70-80년대에는 거의 TV에서, 그 이후 근래에는 video tape,  Youtube의 streaming video 로, 최근에는 재수가 좋으면 download를 해서 computer에 넣어두고 찾아 볼 수도 있게 되었다.

인생의 황혼기로 본격적으로 들어가며 stupid nostalgia 때문인지 오래 된 영화일 수록 더욱 잊고 싶지 않게 되었는데, 가끔 분명히 머리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영화의 장면들, 하지만 다시 볼 수가 없었던 것들이 더욱 간절하게 보고 싶어진다. 그 중에 끈질기게 기억이 확실한 영화 2개가 있다. 하나는 ‘흑사관의 공포’, 다른 것은 ‘알제리아 결사대’ 라는 것이다.

Internet과 Google의 등장으로 찾기가 불가능 하거나 힘든 것들을 쉽게 찾게 되었지만, 이 두 편의 영화는 나의 눈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문제는, 오래 전에 본 그 영화들의 제목이 한글로 되어있고 그 나마 일본 제목을 그대로 따른 것들, 어떻게 그런 것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까? 영화가 아닌 책의 경우가 그렇다. 중학교 시절 보았던 ’15소년 표류기’라는 것, 일본식 제목인 것 영어로 된 원래의 책을 찾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것, 결국은 찾아 냈지만 그것은 거의 흥신소나 탐정의 일과 비슷한 것이었다.

이번에 55년 만에 찾게 된 ‘흑사관의 공포’는 재수가 좋았다. 우연히 찾게 된 것이다. Youtube에서 오래 전 영화 특히 50~60년대 공포영화를 찾는데, ‘black’이란 단어가 나온 것이다. 흑사관 의 흑 자가 black일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았고 그것을 download해서 보니.. 와~~ BINGO! 그 영화의 몇 ‘무시무시한 장면들’ 이 그곳에 고스란히 있었다. 이 영화는 1958~9년 경 영국영화로 밝혀졌으니까 내가 본 것은 아마도 1960년대 초 쯤이었을 것이다. 당시에 외국영화는 거의 미국 Hollywood 산이지만 가끔 이렇게 유럽 영화도 있었다. 당시에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었지만 지금 다시 보니 역시 미국 냄새가 아니고 유럽, 특히 영국의 색갈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이 영화를 확실히 언제, 어느 극장에서 보았는지 애석하게도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1960년 전후에 나온 영화니까 분명히 중앙중학교 시절에 보았을 것인데.. 그 당시는 주로 우미관에서 외화를 보았으니까.. 그곳에서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이 ‘공포영화’를 중학생신분으로 보았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에 ‘공포영화’는 거의 다  ‘학생입장환영’이었으니까..  학생입장불가는 99%가 모두 요새 말하는 ‘성인영화’였다.

나의 기억에 남는 세 장면: (1) 여자가 쌍안경을 볼 때 lens에서 못이 나와 눈을 찌르는 ‘끔찍한’ 장면, (2) 사람을 죽인 후에 액체로 가득 찬 통 속에 넣은 후에 해골로 되어 꺼내는 모습, (3) monster로 변한 범인 (주인공 범인의 조수) 이 amusement park의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은 장면.. 그것을 56년 만에 찾아서 다시 본 것이다. 이 영화는 비록 이렇게 끔찍한 것들이 나오지만 일반적인 배경은 ‘깨끗한’ 느낌을 주는 영국의 London 이어서 징그럽거나 불쾌한 그런 인상은 받지 않았다. 그 이후로 Dracula같은 ‘더 무서운’ 영화 때문에 이 영화는 기억에서 거의 사라져 갔지만, 그 이후로 가끔 생각이 나곤 했는데 이번에 기적과 같이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쌍안경에서 튀어나온 굵은 못에 찔린 여자, 끔찍한 느낌이 지금까지 기억 속에..

비명소리가 끝나자 마자 곧바로 쌍안경으로부터 튀어 나온 굵직한 못, 피가 떨어지는 끔찍한 closeup

영화를 본 이후 나를 꿈에서도 괴롭혔던 장면은 이것, 멀쩡했던사람이 몇 분만에 해골로 변한 모습이었다

영화의 climax는 범인의 조수가 monster로 변해서 범인을 고발하며 뛰어 내려 칼로 그를 죽이는 것, amusement park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와 비슷한 case로 ‘알제리아 결사대 決死隊’라는 ‘외국’ 영화가 있었다. 솔직히 외국영화기는 했지만 Hollywood 인지 아니면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군소업자’들이 만든 것인지는 전혀 모른다. 그저 ‘외국인’들이 출연을 했다는 정도다. 아깝게도 이 영화는 ‘아직도’ 찾지를 못했다.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못 찾을 가능성도 있다. 이 영화는 확실히 국민학교, 우미관 시절 때 본 것인데 영화제목도 확실히 알제리아 결사대였고, 이 영화를 본 이후로 이 ‘결사대’들의 모습을 흉내 내며 ‘전쟁놀이’를 미친 듯이 하기도 했다.

알제리아 결사대와 비슷한 영화

오래 전에 미국에 왔을 때 혹시 이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며 TV를 밤 늦게까지 보기도 하며 희망을 했지만 비슷한 것은 찾았지만 내가 본 그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비슷한 것은: Gary Cooper가 나오는 Beau Geste란 영화, 알제리아에 파견된 프랑스 외인부대들 이야기인데.. 사하라 사막 한 가운데 홀로 서있는 수비방어 성城 에서 거의 모두 죽을 때까지 싸우지만 단 한 명의 군인이 탈출하는 내용.. 내가 본 ‘알제리아 결사대’와 배경이 비슷하지만 암만 기억을 해도 그것은 아니었다. 이 나이까지 못 찾을 것을 보면 다시 볼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게 느껴진다.

내 나이 또래 중에서 나와 같이 추억의 영화를 다시 찾는 ‘동지’들이 있다면.. 혹시 알제리아 결사대 라는 영화를 기억하고 있다면.. 나아가 그 영화의 진짜 원어 제목을 알았다면..  희망에 나에게 알려 줄 수 있다면.. 아~ 내가 또 꿈을 꾸고 있구나… 아~ 그 옛날이여!

 

 

another day in the life

인생의 황혼기에 아주 길지 않을 것 같은 이 시간들은 초록빛이 하늘을 덮었던 지나간 시절들에 비해서 일초 일초가 너무나 귀중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과연 이 귀중한 시간을 귀중하게 아끼고 있는 것일까? 어제, 오늘 찬물을 뒤집어 쓴 기분으로 일초 일초의 의미를 되 찾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무슨 깊은 함정에 빠졌다는 기분은 떨칠 수가 없다. 이것도 그저 며칠이 지나면 또 a day in the life가 될 것이지만 그래도 아깝기만 한 일초일초.. 시간은 거침없이 지나간다.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의 기복과 인간관계에 의한 놀라움, 잘잘못을 떠나서 전혀 예측할 수도 없고 방지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함정 중의 함정, 예방책이 그렇게 효과적이 아님으로 사후 대책에 안간힘을 쓰지만, 이것은 최소한의 냉각기 같은 시간이 필요함을, 오랜 인생의 경험에서 체득한 바다. 그저 .. let it be, let it pass, let’s wait and see.. 같은 값싼 말만 되 뇌일 뿐이다. 청명하고 빠삭.. 한 깊은 가을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지나가라.. 지나가라..

Sudden death, black day, blow-up day 같은 간단한 단어들이 나의 journal 에 적힐 뿐 다른 활동은 거의 없는 이런 며칠을 어떻게 보낼까.. 이런 지혜는 성경의 어느 구절에 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inspirational books같은 것은 없는 것인가? 결국 며칠 동안 실감하는 것은 이것이다. 인간은 비록 사회적 동물일 수 밖에 없지만 때에 따라서는 절대적으로 고독한 ‘홀로 존재’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결국은 인간은 혼자인 것이다. 그래도 여기에 위로는 있다. 절대로 혼자인 인간은  놀라운 transcendent nature 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오감과 경험에 의한 것들에서 초월한 것들, 감성적이 아닌 이성적인 믿음을 향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결국은 나는 ‘며칠 동안’ 이곳으로 몸과 마음을 의탁하며 Robert Spitzer의 글1을 다시 묵상해 본다.

 

The dark side of life can sometimes be quite daunting, but the love of Christ, prayer, the Church Community, the Holy Spirit, the Holy Eucharist, and the Word of God can bring light into the darkness. This gives rise to a great mystery that most people of faith will well recognize – that challenge oftentimes turns into opportunity, suffering into new viewpoints and ways of life, dejection into strengthened hope, fear into trust in God, weakness into spiritual strength, temptation into strengthened virtue, and confrontation with evil into the triumph of love.

 

  1. Robert Spitzer, S.J., Ph.D. 2016.  God So Loved The World.  San Francisco: Ignatius Press, p. 340

이제 며칠 남았나..

지난 일이 주일간 나는 조심스러운 곡예를 시작하기 시작하였다. 오랜 동안, 거의 반년 이상 완전히 피해오고 있던 New York Times website를 조금씩 흘끔흘끔 훔쳐 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아마도 지난해가 저물던 그때였나.. 완전히 major news outlet, TV network news를 피하기 시작한 때가. 이유는 물론 간단하다. 양아치, 또라이 Trump의 쌍통 보는 것을 피하기 위한 나의 유치하고 웃기는 결단이었다.

 

세찬 바람 부는 새벽

깜깜한 이른 새벽 녘, 5시가 조금 넘었을까…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깨버렸다. 바람 부는 소리가 분명했다. 잠재적으로 바람에 날라갈 만한 것이 집 주변에 없을까, 아니면 혹시 ‘거대한’ 나무 같은 것이 쓰러지지는 않을까..  이런 바람소리로 나는 반드시 the end of the world, the bad moon rising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도 있다. 세상의 종말, 과연 그것은 어떤 것인가? another eschatological fantasy..

 

Indian Summer, X-10 total victory

¶  Indian Summer 3 days:  거의 2주 이상이나 ‘기가 막히게 멋진’ 가을 맛을 보여주더니 역시 올 것이 왔다. 10월 중순 경 꼭 찾아오는 Indian Summer, 올해는 3일 정도나 머물려나.. 진짜 여름과 완연히 다른 맛의 이 ‘여름’은 건조한 것이 특징이다. 낮에 암만 더워 봤자 그늘은 시원하고 저녁이 되면서 ‘무섭게’ 기온이 깊은 가을로 변한다.

이런 때의 낮잠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맛난 것이다. 어제 오늘 오랜만에 backyard에서 ‘육체적인 일’을 한 후 잠깐 즐긴 낮잠은 두고두고 기억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암만 자기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인생여정이지만 이런 ‘자연의 조화’ 도움으로 ‘여기에 물이 있다’ 라는 말을 되새기며 십자가 길의  다음 고개를 넘는 것이다. 아~ 은총의 계절이여!

re-engineering X-10 home light control systems, finally succeeded..

 

¶  Unexpected, total victory: 오랜 만에 깨끗하게 이룩한 승리의 성취감을 만끽하는 아침이 되었다. 남들이 들으면 그렇게 ‘쪼잔한 것 가지고 유세를 떨지 마라’ 하고 핀잔할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쪼잔한’ 것도 며칠 동안 나를 기쁘게 할 수도 있는 ‘위대한’ 것이다.

우리 ‘피곤한’ 집의 home lighting 을 거의 20년 이상 보이지 않게 뒤에서 automatic control을 해 주던 system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즈음 ‘벼락부자가 된 젖 먹이같은 젊은 engineer’ 들이 겁도 없이 자기 집을 smartphone으로 control한다며 home thermostat를 $300 이상 받아 먹고 있는데.. 참으로 세상이 Trump같은 개로 변하고 있는가..

그것에 비하면 나의 favorite는 역시 3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lowly X-10 technology인 것이다. 아마도 이것처럼 값싸게 light control하는 것은 아직도 없을 듯 하다. 문제는 old tech의 보편적인 문제..  shelf life, lifespan 의 끝인가 support 가 거의 사라지고 replacement part가 사기가 힘들고.. 고민 끝에 내가 손수 support를 하기로 하고 googling에 매달리니 이곳 저곳에 내 신세와 비슷한 old timer들이 수두룩 닥상.. 결과적으로 우리 집의 X-10 light control system은 거의 무기한 수명이 연장이 된 듯하다..  이런 것이 unexpected, total victory가 아니고 무엇인가?

 

추억들, 잊고 싶은..

돌이킬 수 없이 그런대로 깊어가는 가을, 비록 쓸쓸하게 주룩주룩 내리는 낭만성 비는 없어도 마르고 마른 낙엽이 바람에 휘날리는 멋진 모습이 하루하루 다르게 자주 눈에 뜨인다.  요새 들어 멋진 꿈을 꾸는 횟수가 거의 제로에 가깝게 되고, 아련하고 결사적으로 잊고 싶지 않은 보물 같은 추억들도 머리에서 맴돌지 않는, 조금은 올해 이곳 날씨처럼 마른 생각 속에 사는 나, 그런 것이 조금 불만으로 쌓여간다.

추억들, 물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분명히 잊고 싶은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잊고 싶다고 깨끗이 잊어질까? 6년 전쯤 이 blog을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 추억들을 이곳에 남기려는 소박한 동기로 시작을 하였다. 누가 보건 안 보건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내 자신이 글로 옮겨서 어딘가 남기려는.. 그것이 전부였다. 제일 기억하고 싶은 것부터 하나 둘씩 글로 옮기는 것, 처음에는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었고 그것이 나에게 주는 만족감은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시간적으로 노력이 꽤 들어가는 나의 blog의 존재는 충분한 노력의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잊고 싶지 않은 추억들은.. 하나 둘씩 이곳에, 1973년에 정지된 ‘고교생 수준의 한글 솜씨’로 남게 되었다. 물론 아주 일 부분에 불과하지만.. 하지만 잊고 싶은 추억들은 어찌할 것인가? 그것도 남겨야 하는 것일까?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잊고 싶은 추억들이 사실 조심스럽게 기억해보니 적지 않았다. 나이별로 연대별로 따져보기도 했고, 어떤 것들은 일기 형식으로 아직도 남아 있는 것도 있었다. 비밀에 가까운 것도 꽤 있는데.. 이제는 사실 그런 것들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 그렇게 부끄럽거나 우려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 인데 어쩌란 말인가? 나의 하느님은 나의 개인적인 비밀을 100% 알고 있다고 이제는 믿기에 잊고 싶은 추억들도 조금씩 남겨 보려는 생각에 잠긴다.

 

3rd sick day, 올해의 연총은..

¶  Sick day, 3rd.. 우리는 정말 오랜 만에 편히 쉬는 기분을 느낀다. 역시 쉬는 것은 아플 때 더 그 진가 眞價 를 느끼는 것인가? 적당히 몸이 아픈 것은 마라톤 같은 기나긴 인생여정에서 필요한 윤활유역할이 되기도 한다. 며칠 째 ‘기침, 몸살감기’로 고생하는 연숙 ‘덕분’에 정말 오랜 만에 모든 ‘정상적 일정’을 쉰다. 그야말로 ‘뜻밖의 휴가’같이 되었다.

매일 아침의 rule이었던 9시 미사가 우리의 하루에서 빠지는 것 때문에 더욱 멀리 떠나온 여행 같은 느낌을 주는지도 모른다. 2012년 부활절 때부터 시작된 이것, 벌써 4년 반이 된 아침의 ritual, 우리 DNA 의 일부가 된, 하루(그리고 인생)를 건전하게 사는 활력소 (빵과 피)가 되었기에 이것이 빠진 하루는 조금 허전하기도 하다.

아침 9시 미사에서 매일 보게 되는 regular Irish, Hispanic ‘아줌마’들,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거의 예외 없이 같은 자리를 지키던 우리가 안 보이니.. 아마도 ‘드문 여행’ 아니면 누가 아플 것이라고 속으로 기도까지 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도 누가 안 보이면 그랬으니까..

이번 주일날에는 일년에 한번씩 있는 ‘레지오 간부교육‘이 있는 날이라 순교자 성당엘 가야 하는 날인데, 만약 그때까지 이 감기, 몸살이 깨끗이 낫지 않으면.. 조금은 골치가 아프게 될 것 같은데, 최악의 경우 빠질 수도 있겠지만 ‘공식적인 일정, 의무’가 있는 연숙은 큰 문제일 것이다. 예비신자 교리반도 그렇고, 레지오 간부교육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있는 중병이나 terminal illness로 고생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이것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해야 하는가.. 하지만 이럴 때에 비로소 ‘아픈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절감, 실감하게 되는 좋은 때가 되기도 하니까 시간 낭비만은 아닐 듯하다.

 

¶  2016년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줄여서 ‘연총‘)가 이제 한달 반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참 세월이 어찌도 이렇게 빠른가.. 작년, 재작년 때 연총을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벌써 또 한 해가 간단 말인가? 레지오 조직에는 참 좋은, 의미 있는 ‘단체 행사’가 있고, 대부분은 군대의 훈련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이 연총은 쉽게 말해서 한 해를 보내며 ‘즐겁게 노는’ 쪽이다.

6년 전 레지오를 시작하면서 이 행사는 나에게 제일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기억에 남는 것이 되고 있다. 매년 12월 8일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의무 대 축일이고, 그날을 전후로 연총이 열리게 되어있지만, 사실은 세속적인 분위기에 곁들여 ‘성탄’의 분위기가 조금씩 느껴지는 시점으로 이 행사는 조금 들뜬 분위기일 수밖에 없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꾸리아 소속 모든 쁘레시디움의 행동단원, 협조단원들이 참가하는 올해의 연총, 12월 4일 일요일 오후에 성당 친교실을 떠들썩하게 할 것이다. 이때에는 ‘드물게’ 모든 레지오 단원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되고 그들이 준비한 talent show를 즐기게 된다. 기억에 남는 ‘제일 신명 나던 때’는 역시 4년 전, 2013년 연총이 아니었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때가 나의 ‘레지오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뭔가 잘 모르며 ‘레지오의 매력’을 한껏 느끼던 그런 때.. 돼지띠 동갑 전요셉 형제와 한껏 의기투합이 되던 때, 새로 배운 ‘엽전냄새가 흠뻑 밴’ 둔탁한 저음의 난타 큰북 리듬..  ‘희귀동물’ 남자 단원들과 함께 악을 쓰며 부르던 ‘통기타 노래들’.. 참, 그때가 그립다.

그 이후부터는 사실 나로써는 조금은 김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왜 그런지 사실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것이 ‘경험에 젖어가는 정상적인 것’이 아닐까.. 그 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았지만 작년에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고통, guess what?’으로 부득이 talent show에서는 빠지게 되었지만 조금 만 참고 참가를 할 걸 그랬나.. 하지만 무리무리 무리였다.. 그 때 해야 했던 것은 ‘탈춤’이었으니.. 몸 전체를 요란하게 움직이는 것, 절대로 무리였다.

올해는 어떨까? 항상 희귀한 남자단원, 사치스럽게 더 찾기 어려운  동갑내기 형제님, 모두 사라지고 다시 지극히 정상적인 ‘꽃밭 속’으로 들어가야 하나..  올해에는 어떤 talent를 보여주나.. 하는 것, 쉽지 않은 것인데.. 올해는 아주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었다. 레지오 옆 ‘동네’, ‘은총의 모후‘ 자매님들과 guitar lesson을 하였던 관계로 그 자매님 그룹과 다시 뭉치기로 한 것이다. Guitar를 같이 칠 수 있다는 공통점을 잘 써서 chorus를 하기로 하고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Someone is praying for you‘, 와 ‘개똥 벌레‘라는 두 곡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듯하다. 합창과 율동이 곁들여진 이것, 이제는 연습을 시작만 하면 되고.. 시간만 지나면.. 이 모든 것도 다 지나가리라..

 

Spitzers’ Quartet

 

God and Science” by Fr. Robert J. Spitzer, S.J.

 

한번에 3권의 책FINDING TRUE HAPPINESS, THE SOUL’S UPWARD YEARNING, FIVE PILLARS OF THE SPIRITUAL LIFE 그것도 동일한 저자의 책을 order한 것, 오랜 만이 아니라 처음이 아닐까? 예전에 이렇게 여러 권의 책을 샀으면 아마도 꽤 $$이 들었을 것이다. 그 때는 거의 모두 technical한  책들이라 최소한 한 권에 $30~$40 이상은 되었을 것이니까.. 하지만 요사이 나의 관심을 끄는 science & religion분야의  책 들은, 하느님이 도우사 그렇게 내가 못 살 정도로 비싼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책들은 그렇게 인기가 많은 것이 아니라는 뜻일 수도 있기에 조금은 mixed feeling일 수도 있겠지만.. 상관이 전혀 없다. 내가 필요한 내용들이고 나의 호기심에 대한 해답을 충분히 줄 수 있는 것이니까 일반 독자에게 인기가 있건 없건 ‘전혀’ 상관이 없다.

The Spitzer’s Quartet

 

우연히 알게 된  가톨릭 예수회사제인 하와이 태생, Father Robert Spitzer, 이 신부님의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이것이 내가 오랫동안 알고 싶던 것에 대한 답이다!’ 라는 감탄과 흥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니까.. 오랫동안 나에게 의문이 되었던 것이지만 ‘물어도, 찾아도 해답을 찾기 쉽지 않았던’ 그런 것, 분야들, 그것들도 이 신부님의 주관심사였기에, 이것이야말로 ‘아다리’가 딱 맞은 기분이다. 이분은 materialistic science, scientism 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이론정연 하게, 이성적으로, ‘수리분석, 과학적으로’, 영성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에 접근을 하는데.. 바로 나를 염두에 두고 쓴 것 같은 착각을 받을 정도다. 이런 분의 책이 30년 전에 이세상에 나왔으면 나의 인생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영성적인 것은 물론이고 ‘학술적, 지성적, 과학적’인 이 신부님의 apologetics는 가히 ‘호교론’의 초 현대판 교과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수회는 전통적으로 progressive, scientific한 분위기지만 이런 ‘초현대적인 접근’은 요새같이 smartphone이 과학기술의 전부로 착각하는 ‘덜 성숙한’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이고 아마도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holy bible의 ‘글자글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개신교적 creationism의 ‘분명한 오류’를 수정하는 Francis Collins의 BioLogos 개념과 더불어 이러한 ‘깨우친 신진 영성, 과학자’들이 최근 20~30년 간 활발하게 전개하는 new apologetics는 정말 가려운 곳을 알맞게 긁어주는 효자손 같은 느낌을 받는다.

 

 

 

 

Autumn of my life, Chilly & gloomy..

 

Bobby GoldsboroAutumn of My Life – 1968  

 

¶  3번째 계절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3/4분기 계절로 접어들었다. 4계절이 뚜렷한 이곳의 날씨, 비록 여름에 조금 길고 덥지만.. 나는 이 four seasons의 고마움을 항상 느끼며 산다.

 blog-front-1오늘 blog site의 front page의 그림이 가을 것으로 바뀌었다. Tobey와 깊은 가을 산책길에 떨어지는 낙엽을 올려다 보면 찍은 사진.. 오래 전 OhioWisconsin의 기나긴 겨울과 아주 짧은 봄, 가을의 날씨들에 비해서 이곳은 4계절이 너무나 뚜렷하다. 특히 봄과 가을이 북쪽에 비해서 긴 편이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올해의 가을은 어떻게 보면 ‘가을의 진수’를 한껏 맛볼 것 같은 희망도 든다. 파랗다 못해 검푸른 깊고 높은 하늘, 주변이 하늘처럼 높은 고목들에 둘러 쌓인 그 멋진 모습이 사진에도 많이 담겼다. 비록 ‘가을비 우산 속‘ 의 낭만은 없지만 이것은 다른 맛의 낭만이 아닐까? 언제까지 이 모습을 유지할 것인가?

아~~ 앞으로 최소한 두 달 정도는 깊어가는 진한 색깔의 고엽, 낙엽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감상에 젖게 하는 싸늘한 가을 비가 덜 와도 상관이 없다. 낙엽이 타는 냄새 같은 진한 coffee와 Tobey와 즐기는 늦은 오후의 낮잠은 나에게는 바랄 수 없는 보약이요 영양제가 되니까… 어머니시여, 자연의 의미와 비밀을 이렇게 계속 보여주소서… 우리는 아마도.. 아마도.. 지금 인생의 가을, 그것도 깊은 가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남은 것은 이제 겨울밖에 없는가.. 

 

¶  이른 새벽, 요란한  연숙의 고통스런 기침소리에 잠을 깼다. 며칠 동안 기침감기, 아니면 독감 증상에도 불구하고 normal daily routine은 고집하며 낫기만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번 것은 아마도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은 자괴감에 젖는다. 어제의 레지오 주 회합에서는 드물게 서기인 나보고 묵주기도 주송을 시키며 목청을 아끼고, 오후에는 Tylenol덕분에 많이  좋아졌다고 했지만,  열이 없는 ‘악질성 기침’이 유별난 것이 특이한 이번 감기,  별일 없듯이 목청을 아끼지 않고 전화까지 하며 지내더니 결국은 이렇게 시간을 끄는 것은 아닌가.. 목소리를 쓰는 전화를 거의 안 쓰는 나에 비해서 장시간 전화로 목소리를 쓰는 것, 이런 기침감기에는 아주 치명타가 아닌가..

하지만 오늘 새벽의 기침은 이유가 다른 데도 있었다. 조금씩 떨어지던 새벽 기온.. 결국은 빙점 가까이.. 40도 대로 떨어진 것이다. 아마도 다른 집 같았으면 central heating의 더운 바람 소리가 들렸을 것이지만 68도에 맞추어놓은 우리 집, 온도가 내려갈 대로 내려간 것이고 몸의 allergy성 반응으로 지독한 기침이 난 것이 아닐까.. 그래도 이틀 전에 아래층 gas furnace의 pilot light 를 다시 켜 놓았기에 오늘 ‘강제로’ 70도 manual setting으로  central heating을 가동 시켜 보았다. 너무나 오랜 만에 듣는 그 잔잔하고 둔탁한 gas flame나오는 소리가 반갑고, ‘휴~’ 하는 안도감, ‘아직 이 고물이 돌긴 도는구나..’하는.. 

2주 전까지만 해도 heating 같은 것은 상상도 못했는데 그 동안 어쩌면 그렇게 추위가 느껴지게 날씨가 변했던가.. 매년 10월 중순 경에 첫 central heating 의 blower motor 소리가 들리던 것, 결국은 올해도 평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거시적으로 보면 거의 변화가 없는 자연의 섭리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오늘 아침의 경험은 글자 그대로 chilly & gloomy.. 오늘의 normal daily routine을 완전히 쉬기로 결정을 해 버렸다. 지나가는 주간에는 내가 아픈 잇몸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가 조금 나아지는 때에 이제는 다른 편이 아프니.. 이럴 때, ‘부부’가 같이 사는 ‘편리함’ 다시금 느낀다. 그저.. 이 늦은 나이에, 둘이 아프더라도 같은 때에 아프지 않으면 된다.

 

진짜 가을, retarded Donald, Korean

¶  갑자기 여름에서 늦가을 같은, 아침 저녁이 시원한 것을 넘어서 아예 추울 정도의 진정으로 멋진 가을이 접어든 10월 초, 한마디로 glorious, cool days가 연일 이어졌다. 한낮은 알맞게 따뜻한, 믿을 수가 없는 ‘은혜로운’ 자연의 조화가 아닌가? 이런 날씨는 아마도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지만 일 주일을 넘게 변치 않게 써늘한 한 가을 같은 이 느낌이 ‘아마도’ 가을이 그냥 자리를 잡은 것은 아닌지 조심스런 낙관을 해 본다.

그렇다면.. 거의 4개월 동안 우리 집 backyard에서 완전히 방치 되었던 것들을 슬슬 찾아내어서 비지땀 걱정을 하지 않고 ‘고치고 정돈하고’, ‘월동준비’를 하는 즐거운 순간이 온 것인가.. 믿을 수가 없다.

우선 우리 집에 정차하고 있는 두 마리의 아기 고양이들의 shelter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 아무리 outdoor에서 태어나고 자란 애들이지만 우리의 느낌은 다르다. 우리가 춥고 축축하면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추측이 앞으로 10일 이내에 반드시 찾아올 central heating moment, 위층은 electronic system이라 상관이 없지만 아래 층의 ‘고물’ 은 전통을 자랑하는 pilot light 를 다시 켜 주어야 한다. 예년에는 그냥 켜두고 여름을 보냈지만 올 여름부터는 gas energy 도 절약하고 thermocouple도 보호할 겸 꺼 두었기에 귀찮지만 ‘기어들어가서’ 다시 그 pilot light를 켜 두어야 한다. 귀찮지만.. 할 수 없지 않은가? 올 겨울은 어떨까.. 여름이 ‘잔인’했으니.. 이것도 아마 다르게(추운 쪽으로) 잔인한 것은 아닐까.. 봐 주세요..

 

¶  Retarded Korean: 오랜 이국생활에서 고국에서 오는 소식들,  예전에는 그런대로 관심이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아주 옛날에는 가끔 날라오는 신문들, 세월이 지나면서 거의 모든 것이 Internet으로 직접 볼 수도 있게 되었다. 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희귀함과 호기심 같은 것은 거의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정보라는 것은 어렵게 구하는 것이 가치가 높다는 것, 자명한 진리다.

이제는 과거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던 옛날의 영화나 드라마도 무료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1980년대부터  ‘한반도의 느낌’을 완전히 잊으려는 노력을 하게 되면서 한국말 TV program은 따라서 완전히 잊고 살게 되었지만 연숙은 간간히 한국 grocery에서 빌려주는VHS tape를 통해서 고국의 인기 프로그램은 본 모양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난 2개월 동안 YouTube를 통해서 1980년대 장수 농촌드라마였다는 ‘전원일기 田園日記’ drama를 간간히 보게 되었는데.. 이것을 보면서 고국의 1980년대의 분위기, 특히 농촌의 ‘발전상’을 보게 되었다.  나의 시대  TV talent는 딱 두 명, 최불암김혜자.. 나머지는 그저 얼굴만 본 정도의 ‘후세’ 사람들이다.

James Dean
James Dean

사실 이런 배경이 본론이 아니고.. 나를 ‘한 시간’ 동안 배를 잡고 웃기던 ‘장면’, 그것이 본론이다. 처음에는 이것이 무엇인가.. 했는데, 그것은, 이 ‘전원일기’ 화면에 조그만 ‘뿌연’ 점 같은 것이 계속 움직이는 것이 보이며 눈을 거슬렸는데.. 자세히 보니.. 최불암이 담배를 필 때마다 그 담배를 쫓아가며 그 것을 ‘감추려고’ 춤을 추는 것이었다.

하도 믿을 수 없고 어처구니없는 이것을 보며.. 처음에는 이 video를 ‘올려 놓은 upload 사람’의 일시적인 장난으로 생각을 했는데.. 그런 ‘screen doctoring‘은 다른 한국 비디오에도 보였다. 이것은 무엇일까? 담배를 증오하는 미친놈의 장난일까.. 아니면 ‘혹시’ 대한민국 판 political correctness 중에 하나일까, 벼라 별 생각이 다 든다.

고국을 방문하는 우리 같은 ‘담배세대’는 한결같이 ‘지나친, 불쾌한’ 담배에 대한 경험을 들려준다. 한국과 일본이 어쩌면 그렇게 다른 ‘담배 정책’을 가지고 있는가도 알려준다. 그렇다면.. 혹시 이것도 무슨 ‘빨갱이 담배 법‘ 같은 것 때문은 아니었을까?  한마디로 이것은 political 한 것인 모양이다. 나의 결론은 some retarded Korean policy  로 끝났다. 정말 정말 이것도 오래 살다 보니 목격하게 된 세기적 희극에 속한다. 수 십 년 전 drama video의 ‘담배 모습’을 열심히 쫓아다니며 policing을 하는 그 예산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면 어떨까? 정말 그들은 retarded Korean 이다.

 

¶  “오래 살다 보니” department:  내가 오래 살았다고 느끼게 하는 ‘것’들, 주로 뉴스에서 찾는데 요새는 이것을 찾을 필요가 없이 살고 있다. 바로 그’놈’ 때문이다. 아니 심하게, 그 ‘새끼’라고 말하자. 양아치중의 양아치, 망종 중의 망종.. 말세 중의 말세.. ugly 중의 ugly.. (I truly love to hate this ‘thing’) 이름을 쓰기도 싫고 말하기도 싫고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의 ‘말세적 인간 retarded Donald Duck‘.. 어떻게 제 정신을 가진 이성적이어야 하는 ‘대국의 대 정당 republican‘이 이런 역사적 과오를 범하게 된 것인지..

이 인간을 따라다니는 인간들은 한마디로 ‘쓰레기 중의 쓰레기’일 것이다. 교훈 중의 교훈은 많지만 나의 등골을 계속 서늘하게 하는 것 중에는 1930년대의 ‘불만의 독일 정국’이다. 민중, 민의가 민주주의의 근간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만약에 ‘틀린 것’이라고 하면 Hitler같은 monster는 언제고 부활할 수 있는 것, 지난 일년간 실감을 하면 산다. 한심한 ‘우매한 white trash’ 들, 그들이 바로 1930년대 독일에서 Jewish business들을 몰아내던 바로 그 ‘우매한 민의’인 것, 역사는 돌고 돈다.

내가 이곳에서 살며 느끼며 보아온 미국, 지난 40년 간 많이 변한 것, 부정할 수가 없다. 자연법을 거스르는 지나치게 ‘개인적 자유’를 요구하는 progressive들, 장기적으로 그것은 절대적으로 progressive가 아니고 degenerative한 것, 역사를 보면 잘 안다. 이렇게 북극성이 안 보이는 ‘난세’에는 어떤 ‘망종’도 쉽게 출현할 수 있는 것, 어찌 잊겠는가.. 이쪽이나 저쪽이나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역사는 변하지만 안 변하는 것, ‘불변의 진리’를 기대고 사는 것이 이런 난세의 지혜중의 지혜다.

 

Big dip, 9월이여 안녕..

¶   드디어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래~ 전의 유행어) 그 첫 big ‘sudden’ dip이 거의 도둑처럼 밤새 찾아왔다. 거의 20도가 하루아침에 떨어진 것이고, 그것이 거의 3일째 계속되어서, 아침에 거의 3개월 만에 ‘긴 팔’ shirts를  입게 되니 그렇게 기분이 날라갈 것만 같다. ‘긴 팔’ shirts를 가 딱 좋아서가 아니라 그 지긋지긋하던 2016년 여름이 결국은 물러갔다는 그것이 그렇게 기쁜 것이다. ‘긴 팔’을 입으면서 문득 태고 적, 중고등학교 다닐 때, 10월 1일에 하복에서 동복으로 ‘일제히’ 바뀌던 그 때가 생각이 난다. 그러면 당시의 서울의 사계가 이곳 지역과 비슷한 것일까.. 물론 이곳의 평균기온이 높지만 사계가 뚜렷한 것은 거의 비슷하다.

아침 9시 Holy Family CC 평일 미사엘 가니 우리보다 나이가 더 드신 ‘어르신들, 특히 할머님들’은 숫제 ‘오바 overcoat’를 입고 목도리로 단단히 무장을 한 것이 보인다. 체감온도에 따라 각양각색의  이곳의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 의복문화’가 더 뚜렷이 느껴지는 계절이 온 것이다.

Full time으로 돌아가던 에어컨이 갑자기 ‘조용~’ 해 지니 조금은 섭섭하기도 하지만 그럴 새가 없다. 분명히 10일~20일 사이에 첫 central heating이 ‘점화’될 것이기에.. 또 crawl-space로 ‘기어들어가’, 거미줄을 헤치고 gas heater pilot- thermocouple을 ‘점화’하는 고역을 치러야 한다. 문제는 이때 문제가 발견되면.. 또 하루 이틀 고생을 할 것이다. 에어컨은 올해의 oppressive, brutal Summer heat를 잘 견디어 내었지만 올 겨울 central heating 특히 아래층 것이 항상 마음이 조린다. 위 층의 heater는 우리가 이사 온 후에 바꾼 것이라 아마도 ok일 것이다. 올해의 더위로 electric bill은 보기가 무섭지만 그것에 비해서 natural gas는 훨씬 ‘저렴’해서 겨울 몇 개월 동안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저 적당히 춥기만, 적당히.. 적당히..

 

¶  2 feral Kittens: 지난 5월 쯤 우리 집 backyard shed에서 태어난 kittens들, 4마리였다. 그 동안 우리 집을 ‘거점’으로 들락날락하더니 결국은 모두 떠나고 kitten 두 마리가 우리 집 뒷마당에 정착을 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엄마와 다른 2마리는 완전히 떠난 셈이다. 하지만 가끔 엄마는 찾아와서 밥만 먹고 떠나곤 한다. 우리가 control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저 그들의 ‘행태’를 관망하며 먹이만 잘 챙기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조그맣던 것들이 잘 먹어서 그런지 꽤 크게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을 보며 이제는 우리 집도 그들에게 정이 들고 있다. 그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먹이를 우리 집 뒤 deck에 놓아주고 하루 두 번씩 먹이를 주며 서로 얼굴을 익히며 사귀고 있는데 지금은 우리를 하나도 겁내지 않고 먹이를 가지고 나가면 발 밑에서 맴돌 정도까지 되었다.

집안에 이미 개 Tobey와 고양이 Izzie가 있지만 이 두 마리는 행동이 100% 자유스러운 feral cats들로써 앞으로 ‘불임수술’을 해야 하는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원하면 언제라도 우리 집을 떠날 수도 있기에 이것은 반드시 우리가 service해야 할 부담이 되었다. 작은 딸 ‘나라니’가 county humane society에서 ‘거의’ 무료로 수술을 해 주는 방법을 찾고 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다.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롱이'와 '다롱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아롱이’와 ‘다롱이’

 

현재까지 이 두 마리를 보면서 생각한다. 이들도 하느님의 생명들이라는 것, 사람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생명들이 아닌가? 최대한 그들도 태어난 의미를 찾아 주어야 하는 것, 우리가 할 수 잇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이름이 필요했는데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던 차에 연숙이 ‘아롱, 다롱‘은 어떠냐고 해서 그렇게 불리고 있다. 분명히 순 한글이름이지만 만약 영어로 쓰면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니 오래 전 고국에서 보았던 불란서 영화의 간판 배우 아랑 드롱 이름이 떠오른다. 우리 집 backyard가 그런대로 넓은 편이니까 아마도 그들은 우리 집만 떠나지 않는다면 Born Free의 사자 lion, Elsa처럼 자유스럽고 먹이 걱정하지 않고 ‘일생’을 사는 그런 삶으로 만들고 싶다. 당장 해야 할 일은 갑자기 떨어진 날씨를 상기하며 겨울을 날 조그만 shelter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  오늘은 일주일 전에 계획했던 것, 우리 집에서 거의 30 마일 떨어져 있는 Duluth, GA 에 있는 St. Monica성당을 방문하는 날이 되었다. 얼마 전 부터 아틀란타 대교구 본당들에는 최근에 성녀 품에 오르신 마더 데레사 성녀 (St. Mother Teresa)를 기념하는 조그만 순회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는 거의 대부분 데레사 성녀의 일대기가 실려있는 기록사진 panels 들이라 다른 source에서 (Internet같은 곳)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본론이 아니고 성녀의 relic (유물)이 함께 전시된다는 사실이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성인들의 relic은 신체의 부분을 포함해서 개인 용품들도 있는데 오늘 이곳에서 우리가 본 것은 성녀 데레사가 입고 있던 sari (파란 색의 사리 옷)의 일부분이었다. 그 색깔은 분명히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이 입고 있던 연한 파란 색, 바로 그 옷의 일부였었다. 한가한 시간이라 사람이 없어서 그랬는지 처음에는 그 relic이 치워져 있어서 사무실에 문의를 해서 특별히 조그만 방에 임시로 보관 된 그 relic을 볼 수가 있었다. 이미 사진전시로 성녀의 일대기를 다 본 이후에 그것을 다시 보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Media를 통해서 이미 잘 알려진 수녀님의 모습과 그 파란 색의 옷, 바로 그것이 수녀님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날 30여 마일을 온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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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1st class relic이 전시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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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 color panels: 성녀의 일대기가 이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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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Monica 성당 내부

 

Cancer’s gone, miracle..

¶  Audrey’s ‘Miracle: 최근 몇 년 동안 거의 가뭄처럼 느껴지는 ‘작은 기적’들, 이제는 잊고 살게 된 이런 ‘가뭄 끝의 단비’ 같은 소식은 우리를 너무나 겸허하고 감사하게 만든다. 큰 딸 새로니를 통해서 알게 된 어린 소녀 오드리 양, 불과 10살 정도의 ‘국민학생’ 5살 부터 소아암으로 투병생활을 한 ‘용감한 여자아이’였다. 본인도 그렇지만 그 가족들의 간병노력은 더욱 대단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쪽이지만 그들이 쏟는 노력은 돈과는 큰 상관이 없이 헌신적인 것이고 특히 그들이 school (Westminster) community를 통해서 보여준 ‘소아암, 희귀병’에 대한 일깨움도 유난했던 것.

Cancer's gone!
Cancer’s gone!

새로니가 맡고 있는 반 학생이기에 그 동안 (거의 1년이 되어가나..) 소식을 전해 듣고 몇 개월 전에는 우리 자비의 모후 레지오 단원들도 기도에 동참을 하였다. 하지만 경과가 ‘아슬아슬’해서 항상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재발을 했던 case에다가, 거의 사경을 헤매던 순간도 있기에 ‘어떤’ 소식이 오면 우선 불안했다. 그러다가 그 순간이 ‘갑자기’ 왔다. 얼마 전 New York city로 치료 차 갔었는데 모든 증상, 병의 징조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소식이었다. NED (No Evidence of Disease) 라고 진단이 나온 것이다. 암 세포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 믿을 수 없는… 그러니까 ‘기적’에 속하지 않을까? 과학적인 배경은 잘 모르지만.. 통계적으로 보아도 ‘거의’ 기적에 속할 듯.. 기도를 계속하고 있었던 우리 레지오 단원 자매님들… 뛸 듯이 감사하고 기뻐하고.. 아마도 눈물까지 흘린 사람도 있었을 듯하다. 나는 우선 그렇게 전구를 청했던 ‘어머니’ Virgin Mother의 얼굴을 떠 올린다. 이 세상은 그렇게 예상대로 ‘굴러가는’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그야말로.. Audrey, congrat!

 

Guadalupe Virgin’s in Marietta

Vivid Virgin's imprint

Vivid Virgin’s imprint

 

Guadalupe, 과달루페 성모님, Mexico City에 있는 그 성모님 (영상)이 내가 사는 마리에타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물론 그 성모님의 ‘상본’은 나의 main desk옆 벽에도 걸려있어서 커다랗게 잘 보인다. 하지만 이건 완전히 다른 것이다. 지난 7월 초 내가 속한 레지오는 과달루페로 ‘피정’순례를 간 바 있지만 우리는 가지를 못했기에 (lousy timing)  이번의 과달루페 성모님 소식은 참으로 새로운 것이었다. 그런데 조금 웃기는 것은 이번에 우리가 ‘발견’한 성모님은 사실 지난 해 2015년 12월 12일에 나타난 것이라는 사실.. 우리는 무척 늦게 알게 된 것이다. 주위에 물어보니 거의 모두 그 소식을 알고 있는 듯 했다.

Transfiguration Catholic Church
Transfiguration Catholic Church

이번의 Guadalupe story는 이렇게 진행이 되었다. 최근 우리와 자주 보게 되는 Holy Family CC near-regular Chris 자매님, 아침 daily mass가 끝나고 coffee break시간에 우연히 우리에게 ‘마리에타 성모님’ 이 찍힌 사진을 보여주었다. 마리에타의 ‘어떤’ 성당 Transfiguration CC(Catholic Church) (The Catholic Church of Transfiguration) 의 ‘창’에 성모님 모습이 보였고 그것은 과달루페 성모님과 비슷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 모습은 video로 찍혔는데 정말 가까이 찍은 것을 보니 아닌 게 아니라 그것은 ‘성모님’의 자태에 분명했다. 언제 이 ‘창문의 성모님’이 나타나셨냐고 물으니 ‘꽤 지나간 일’ 이라고, 아마도 지난 5월 쯤이 아닌가.. 하였다. 집에 와서 부지런히 googling을 해 보며 우리는 놀라기만 했다. 나타난 때가 지난 해 12월 12일.. 그것은 바로 멕시코 과달루페 성모님이 발현하신 바로 그날이었다. 주임신부님이 Facebook에 ‘공표’를 하고 ‘세상’에 이미 알려진 지가 거의 9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우리는 알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창문에 image가 새겨졌다.
바로 이 창문에 image가 새겨졌다.

그러면.. 왜 그 성당에 과달루페 성모님이? 그 성당은 ‘아마도’ Hispanic community가 상당히 있었을 듯 하고 주임신부도 Columbia출신이기에.. 요새 ‘빠가 중의 빠가, 양아치 중의 양아치, Trump의 주둥이 으름장’ 때문에 고생하는’ 그들을 위로하시려 나타나신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It’s not too late, it’s now or never를 되뇌며 우리 (3명)은 이틀 뒤, 오늘 아침 미사 후 McDonald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곧바로 그곳을 찾아갔다.  그 성당이 있는 동네는 사실 typical Hispanic의 인상과는 거리가 있는 깨끗한 전형적인 Northeast Cobb County, middle-class neighborhood, 성당도 우리 Holy Family CC 보다 더 깨끗하고 웅장하였다. 그 문제의 창문은 parish center로 쓰이는 커다란 강당 같은 곳에 있었고 밖에서는 어렴풋이 ‘흑백의 그림자’같은 것만 보였는데, 들어가보니.. 와~~~ ‘총천연색’이 분명한 ‘아직도’ 뚜렷이 과달루페 성모님의 자태가 남아있었다. 나는 살아 생전이 이런 supernatural한 원인으로 남아있는 것을 처음 육안으로 목격하는 셈이 된다. 

이번에 나는 매일 묵주기도로 가까운 성모님이 생각보다 우리와 더 가까이 계심을 느끼게 되었다. 비록 메주고리예처럼 살아있는 모습의 발현이 아니더라도 이런 간접적인 ‘계시’라도 그 의미와 목적을 생각하면 깊은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던 ‘깊은 감명’을 숨길 수 없는 뜻있는 하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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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 모습이 새겨진 곳이 가운데 창문이다. 이곳은 multi-purpose parish center 중 제일 큰 ‘강당’ 인 듯하다.

 

 

 

SSF phase out, prognosis..

¶  SSF phasing out: 순교자 성당 Guitar group, Six-String Friends의  guitar lesson session,  지난 화요일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3주 만에 다시 모였다. 원칙적으로 매달 첫째 셋째 주 두 번 모이는 것인데 9월에는 레지오 단원들이 대부분인 관계로 scheduling 에 문제가 있어서 한 번 겨우 모인 것이다. 9월 초순 경에는 쁘레시디움 별로 친목회를 가지도록 ‘규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날은 regular lesson session이었지만 lesson 대신에 이 모임의 ‘운명’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기약 없이’ 물 흐르듯 정처 없이 가는 것, 아무래도 건강하고 효과적인 lesson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렇게 ‘찬물’을 부은 것이다.

이제까지 7번 정도 모여서 guitar를 ‘열심히’ 배웠지만 나의 원래 예상보다 진도가 거북이걸음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세대적’인 문제인가.. ‘학생 세대’가 아닌 것인가, 이 guitar에 온 energy를 쏟을 수 없는, 모두들 다른 것 하느라 바쁜 것이다. 음악에 대한 절대적 기초가 약한 member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최소한 필요한 노력을 안 하는 것으로 보였다. 또한 실력과 노력이 비슷한 최소 인원의 안정된 core group이 형성되지를 못한 것도 도움이 되지를 않았다.

나의 ‘무리한, 비현실적인 기대’에 문제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구체적이고 가까운 goal이 없이 흐르는 것, 별로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가 내린 것이다. 결론적으로 12월 초에 있는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를 기점으로 일단 phase-out을 하기로 하였다. 이런 결정은 member들에게도 큰 자극이 되리라는 것, 모두들 동의했기에 아마도 나머지 기간에 더욱 열심히 노력하리라 기대를 해 본다.

 

¶  Prognosis, not good: 최근 친구처럼 가깝게 자주 보는 C 자매님의 우울한 뉴스를 접하고 우리는 땅이 꺼지는 기분이 되었다. 최근의 (정밀 신체)검사결과가 그렇게 희망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둘, 이런 소식을 듣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나간 4~5년간 이런 상황을 많이 겪었어도 이런 투병 story는 모두가 case by case다. 하나도 같은 case가 없는 듯한 것이다. 각자 각자가 다 다르고 살아온 인생도 다르고, 본인이 대처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니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근래 가까이 지내던 ‘친구’의 심적 고통, 걱정을 우리의 피부로 안 느낄 수가 없다. 멋진 위로의 말은 못해도 같이 고통에 동참하며 느끼는 것, 그것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중에는 ‘강력한 기도군단’이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것, 바로 그것이다. 가까운 우리의 보호자 duo, 성령님과 그리고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Catechetical Sunday, 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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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주일 2016

¶  오늘은 Catechism, 천주교 교리교육, 교리반, 교리교사 등에 관련이 된 Catechetical Sunday, 한국어로는 교리주일 정도가 될 듯하다. 오늘 주보를 보고 오늘이 바로 교리주일임을 알았다. 2주 만에 우리의 ‘동네 본당’ Holy Family에서 주일 미사 참례를 하였다. 10시 미사에서 낯익은 반가운 얼굴들이 이곳 저곳에 보이고 인사를 나눈다. 세월이 무언지.. 이들 전혀 얼굴, 문화, 나이 다른 교우들, 특히 Irish쪽의 푸른 눈의 수려한 모습의 ‘아줌마, 아저씨, 할머님’들, 어쩌면 그렇게 정이 들었을까? 이름도 성도 잘 모르지만 이웃 친척처럼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잠시 안 보이면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근래 평일미사에서 너무나 자주 만나는 Father Joseph Morris, 예의 극적인 언어로 마이크 필요 없는 우렁찬 목소리가 일요일 아침을 압도한다. 이 신부님은 모습 자체가 liberal 한 분이지만 60을 훨씬 넘는 나이에 그런 성향은 드물지 않을까? 모습자체가 나이에 비해서 훨씬 젊은 이 신부님, 아마도 ’60년대의 아이들 baby boomer‘ 일지도 모른다. 오늘 강론은 생각할 기회를 많이 준 주제다. ‘하느님을 사기 칠 수 있는가?’ 하기야 오늘의 복음말씀(Luke 16:1-13, 루까복음)은 처음에 이해가 전혀 되지를 않았다. ‘사기치는’ 시종이 주인으로부터 ‘사기 쳤다고’ 칭찬을 받는 모습… 신부님 말씀이 이 대목은 성서학자들도 골머리를 썩는다고 했다. 예의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 반대가 되는 이 색다른 논리를 어떻게? 이 liberal한 사제 Joseph의 해석이 뒤따랐는데, 나는 그 뜻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의 제1독서는 Amos예언자가 ‘사기꾼’들을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복음말씀에서는 사기꾼 시종이 칭찬을 받는 내용이 나왔을까? 이것이 신비가 아닐까? 인간의 논리와 하느님의 논리는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 것인가? Joseph신부는 여기 나오는 시종이 예수님이고 주인이 하느님이라고 하는 묵상주제를 제시하였다. 처음에는 너무나 혼란스러웠지만 조금씩 정리가 되는 듯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대조적으로 매일 인터넷으로 받아보는 복음 묵상 글에서 신부 기경호 프란치스코 라는 분은 아예 이 사기치는 행위를 평하기를  ‘하느님의 빚을 받는 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에 슬기롭게 대처하듯이 슬기롭고 민첩하며 능동적으로 주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고 해석을 하고 있다. 분명히 ‘사기치는 것’이 ‘치열하게 세상을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동감이 안 간다. 글쎄요.. 더욱 혼란스럽습니다.

미사가 끝날 무렵 본당의 모든 교리반 staff들(주로 catechist 교사들)이 불려나가서 신부님의 강복을 받았다. 연숙은 현재 한국본당 순교자 성당 교리반 director를 맡고 있어서 느낌이 아주 달랐을 것이다. 어째서 같은 대교구 소속인 이곳에서는 교리반 교사들이 공적으로 강복을 받고 한국 순교자 성당에서는 아예 교리반 주일이란 말조차 없으니.. 일을 맡은 이상 헌신적으로 일하는 그녀지만 가끔 맥 빠지게 하는 일들이 있는 모양이다.  이곳 미사가 끝나자마자 그곳 본당 교리반 때문에 부리나케 혼자 순교자 성당으로 떠난 연숙의 뒷모습이 조금은 쳐져 보인다.

 

¶  오랜 만에 guitar를 손에 잡았다. 아니 3주 만에 case에서 꺼내본 셈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이렇게 몇 주 동안이나 기타 코드를 안 잡았던 것이 처음이었나.. 손가락 끝의 굳은 살이 벌써 얇아졌나.. 어찌나 손가락이 아프던지 불편하고 불쾌하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3주 정도면 암만 굳었던 손끝 살갗도 다시 원상복구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것으로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3주 이상 기타 치는 것을 쉰 적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기억에 이 정도로 손가락이 아팠던 기억이 없으니까..  요새 느낌으로 3주란 것은 시간이란 축에도 끼지 못하는 찰라 같은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나의 육신의 일부인 왼손가락 끝은 짧지 않은 시간을 느낀 것인가?

이 시점에서 지난 3개월 정도 group coaching을 하며 관계를 맺게 된 Six String Friends 기타 동호회를 다시 생각한다. 내가 guitar coaching을 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주었고, 덕분에 오랜 역사를 가진 내 ‘알량한’ guitar ‘실력’을 재점검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7번 정도 lesson과 coaching을 하면서 느낀 것은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의 커다란 차이’ 였다. 나의 현재 기타실력은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남과 비교를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엄청난 세월 동안 그런대로 꾸준히 기타가 나의 옆에 있었다는 사실, 때에 따라 꾸준히 즐겼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시도한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아는 것 가르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렵게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어휴~’ 소리만 나온다. 우선 배우는 사람들의 실력이 각양각색으로 3/4, 4/4 조차 구별할 수가 없는가 하면 4/4 는 숫제 5/4, 6/4로 리듬 감각, tempo감각이 예외적으로 둔한 사람도 있었다.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리 노래’ 실력들에도 각양각색이고.. 50~60대이므로 70/80 style의 곡들에는 큰 무리가 없었지만 문제는 어린 학생들이 아니어서 배우는 과정이 느리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몇 주나 몇 달을 예정하고 시작한 것이 아니고 open end로 ‘무작정’ 진행된다는 사실도 문제로, 그렇게 조급하게 배우려는 자세도 결여가 된 듯 보였다. 그래서 일단 지금이 중간 정도의 단계 mid-term정도로 보고 지금까지의 정도를 더 coaching을 하고 일단 phase out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래야 조금은 조급하게 열심히 노력을 할 듯 보인다.

 

2016-09-18-16-22-19-1

 

¶  Rain Shower, rare sight: 이것이 무엇이냐?: 오늘 아침에 새벽에 일어나서 backyard의 deck로 어둠을 헤치고 맨발로 걸어나가 보니 느낌이 이상했다. 그 동안 완전히 잊고 살았던 그 느낌.. deck 바닥이 질척거리는 것.. 그것은 ‘물’이었다. 마르고 말라 수축을 거듭하던 deck floor가 아마도 놀랐을 것이다. 그것은 ‘잔잔히 내리는’ 이슬비였다. 한마디로 ‘이것이 웬 떡이냐!’ moment가 되었지만 오후에는 숫제 정말 오랜만에 보고 듣게 된 ‘소나기’가 쏟아졌다. 올 여름의 그 모든 더위가 한 순간에 싹~ 사라지는 순간이 되었다.

살인적인 맹더위도 놀랍지만 올해의 여름은 그야말로 double whammy였다. 맹더위에 겹친 가뭄, 아마도 기록을 깼을지도 모를 일이다. 9월 중순이 지나가는 이 시점의 느낌이 ‘이것은 가을이 아니다’ 라는 것.. 올해 이 지역 농작물들 모르긴 몰라도 피해가 컸을 듯 하고 우리 집도 마찬가지.. 연숙의 희망에 찼던 edible garden (victory garden), 정말 수확이 초라하기만 했고 나중에는 거의 포기한 상태.. 지나간 몇 해는 참 Mother Nature가 그렇게 인자롭기만 했는데 어찌 올해는 그렇게 심술궂은 모양을 했을까? Mother (Nature)를 인간들이 너무나 괴롭힌 것에 대한 보복이었을까?

우선 소음덩어리 에어컨 소리가 안 나는 것만도 날라갈 듯한 기분이다. 올해 에어컨 compressor fan을 교체하면서 소음의 강도가 높아져서 언제라도 에어컨이 꺼지는 아침에 손을 보려고 벼르던 것이 이제는 여름이 완전히 가고 있다. 그렇게 잔인하던 올 여름, 혹시 ‘평균기온을 채우려’ 올 겨울은 또 다른 살인적인 추위가 오는 것은 아닐지.. 올 여름의 electric bill은 보기도 무섭지만 그래도 이제는 ‘거의’ 끝이 나고 있음을 느끼기에 오늘 아침의 가랑비는 나에게는 너무나 달콤한 자연의 선물이 되었다.

 

¶  동갑내기, 동갑님네: 말만 들어도 가슴이 찌릿해온다. 최근 몇 주일 동안  YouTube로 간간히 즐겨 보아왔던 고국의 80년대 장수 長壽 농촌드라마였던 ‘전원일기 田園日記’의 한 episode에 ‘동갑님네’란 것이 나왔다. 어떨까.. 왜 나의 가슴이 찌릿한 것이었나? 동갑, 동갑이란 말, 요새도 쓰기나 하나.. 우리 때는 참 정겹던 말이었다. 특히 음력으로 계산한 띠 동갑은 더 정이 가는 말이었고 나와 같은 ‘돼지띠 동갑‘은 그 중에서 제일 나를 즐겁게 한다. 나를 이렇게까지 제일 반갑고 즐겁게 하던 이 말 동갑, 이국생활에서 이것은 사치중의 사치스런 말이 되었다. 이것을 별로 크게 신경 안 쓰고 모르는 척하며 하도 오래 살아서 그렇지.. 조그만 이렇게 생각을 하면 너무나 쓸쓸하고 심지어 괴롭기까지 하다.

고국에서 살았으면 동갑내기가 동창을 비롯해서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그렇게까지 동갑내기의 값어치가 높지 않을지도 모른다. 동갑이란 것, 무엇인가.. 같은 해 태어나서 같은 때 학교를 다니고 거의 같은 역사를 산 동류가 아닌가? 그러니까 거의 같은 시대관을 가진 값진 ‘친구’들이 아닐까? 특히 이곳에서는 동갑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 같이 어려워서 아주 가끔 돼지띠 동갑을 찾으면 그렇게 뛸 듯이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것도 근래에 나는 2명을 찾은 경험이 있었고 한 명인 현재도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행운을 맛보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돼지띠는 여성이라서 조금 거리감이 있다. 다른 남자 돼지띠는 나와 큰 인연이 없는지 몇 년 전에 영구 귀국을 해버려서 그 쓸쓸함은 생각보다 컸다. 70을 곧 바라보는 돼지띠 동갑들.. 6.25 민족비극은 직접 겪지 못했지만 그 여파의 피해를 톡톡히 보며 앞만 보고 달렸던 세대… 참 파란만장한 ‘인생 십자가’를 진 세대였다.

 

9/11, V3000, 꾸리아 Hijacked

nine-eleven-1¶  Nine Eleven 2016, 9/11/2016… 이제는 희미해진 느낌의 이 말들.. 세월은 무섭다. 그런 것이 이렇게 큰 충격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역시 세월의 효과일 것이다. 그저 매년 매년 이 맘 때면 아 2001년이었지.. 한 정도였지만 2011년과 2016년은 조금은 더 의미를 둔다고 할까, 5년, 10년, 15년, 20년.. 이 조금은 더 기념하기가 쉽다. 올해가 바로 15년 전.. 그날이었다.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던 것이..

나에게는 어떠했는가? 그 동안 아이들 모조리 학교 시절을 벗어나 졸업 직장인, 30대로 들어갈 정도로 변했고, 우리는 60대를 거의 지나가는 ‘신 고령’의 세대로 변했다. 나는 corporate USA 인생을 완전히 떠나서 하루 종일 거의 한국말을 쓰는 시대를 맞게 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완전한 retirement, 하지만 거꾸로 사회적으로는 예전에 비해서 훨씬 의미 있고 바쁜 생활이 되었다.

처음 십 년의 암흑의 세월 동안 나의 전부였던 어머님이 먼저 가셨다. Twin Towers의 시커먼 불 연기 속에 pure evil의 얼굴을 뒤로 하고 세상은 무섭게 변하며 나의 암흑은 더욱 어두워지고.. 아마도 이 기간을 나는 나의 암흑시기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그렇게 ‘우연의 연속’만이 아님을 잘 안다. 아니 거의 모든 세상사는 우연보다는 필연의 연속이고 모든 것에 의미가 있음도 너무나 늦게 깨닫게도 되었다. 그것이 지난 15년이 나에게 준 제일 큰 선물이 되었다.

 

2016-09-19-12-32-10

 

¶  Saving V3000:  작년에 아는 사람으로부터 그가 사업체와 집에서 쓰던 ‘고물’ computer들을 인계 받았다. 꽤 많은 것들.. 거의 모두 2000년대 초 중반의 desktop, laptop  PC들, 그러니까 모두 Windows XP  정도를 무리 없이 돌릴 정도의 것들이다. 하지만 거의 모두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어떤 것은 거의 dead on arrival 인 것도 있었다.  내가 이것을 인계 받은 것은 고칠 것은 고쳐서 가급적 필요한 곳에 donation을 하는 그런 목적도 있었다.

나에게는 이런 일들이 비록 시간은 들더라도 그 자체가 기쁨이다. 폐기품으로 간단히 landfill로 보내는 것이 나는 제일 싫기에 이것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큰 보람이기도 하다. 만약 재수 좋게 완전히 고치게 되면 비록 ‘고물급’이지만 최소한 Microsoft Word 정도만 쓰게 되어도 비영리단체에서는 쓸 수가 있지 않을까?

이 중에 내가 제일 심혈을 기울이고 시간을 많이 들인 것이 2006 쯤 나온 HP Compaq Presario V3000 Notebook 이다. 이것은 dead on arrival (DOA) 로 이미 죽어버린 듯 보인 것이다. 하지만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비교적 작은 screen을 가진 가볍고 예쁘고 삐가번쩍 하게 흠이 하나도 없는 거의 새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2006 년 급의 CPU (~2Ghz) 였지만  Youtube같은 Internet streaming video는 무난히 handle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가지고 씨름을 한 과정은 참 긴 고생길이었다. Hard disk에 문제가 있는 듯한 증상을 보여서 (blue screen 같은) 다른 disk로 Windows XP를 reinstall 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random하게 reset, reboot를 하는 심각한 ‘병’이었다. disk가 문제가 아니라면.. motherboard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얘기는 끝인 것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는 이것이다. motherboard에 이상이 없다면 회생의 가능성은 있지만 얼마나 $$을 들여야 하는가.. 하는 ‘경제적’인 것이다. 가령 문제점을 발견 그것이 hardware part에 있고 그것을 사는데 너무나 $$이 많이 들면 포기해야 할 것이다.

우여곡절, 희비쌍곡선 등을 골고루 거치며 결과적으로 총 $60 정도의 part (RAM, Battery, Hard Disk)의 도움으로 완전한 것으로 탈바꿈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은 분명히 science 중의 science인 ‘명확한’ 일이지만 그것에는 분명히 luck이란 것도 포함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결과는, 멀쩡한 것 쓰레기로 안 버리게 되고 앞으로 2~3년 정도 안심하고 쓸 수 있는 ‘번쩍번쩍’하고 귀여운 laptop notebook PC를 가지게 되었다.

 

¶  Curia Monthly, Hijacked : 9/11, 15주년이 되는 날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레지오 꾸리아 월례회의 때문에 그곳으로 주일미사를 가게 되었다. 한번도 빠진 적이 없었던 이 꾸리아 월례 회의를 나는 지난 달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빠지고 말았다. 나로서는 아주 예외적인 일이어서 사실 나도 기분이 계속 찜찜했던 터였다. 이런 정기모임,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절대로 ‘레지오 군대수칙’을 지키자던 나와 ‘어머니’의 약속이 지난 5년 동안 참 신통하게 효과를 발휘하였는데 이렇게 예외적이나마 깨고 보니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더욱 ‘정신 상태’에 신경을 쓰고 참석을 한 것이다.

9/11, 15주년이라 조금 기분이 쳐진 상태였고, 거의 2달 만에 순교자 성당의 주일미사를 참례를 하게 되어서 모든 것이 생소하게 느껴지고, 조금은 외로운 기분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잇몸까지 반란을 일으켜 나는 사실 집에 빨리 돌아갈 생각이 가득한 터에… 이날의 본론인  꾸리아 월례회의까지 나를 실망시키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이 회의가 hijack이 된 느낌이었다. 9/11의 hijacker들의 괴물 같은 모습과 겹쳐진 이날의 happening은 글자 그대로 happening.. 꾸리아 연례 회계감사보고, 예로 10분 정도 ‘형식적’으로 끝나는 관례를 깨고.. 이번 것은 거의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한 예행연습을 거친 듯.. 3명이 나와서 복음말씀으로 시작해서 묵상말씀이 곁들인 정말 bizarre.. bizarre.. 모든 것이 끝나고 나오면서 나는 이 월례회의, 9/11을 기념하듯 완전히 hijack 된 느낌 밖에 없었고 그저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 car key를 찾기에 바빴다.

 

When you’re sixty-four..

 

The Beatles – When I’m Sixty-Four

 

휴~ 이제 다 끝이 난 모양이다.  연숙의 생일 ‘먹기’. 1월 달에는 나와 큰 딸, 9월 달엔 엄마와 작은 딸의 생일이 같은 날짜 차이로 있다. 그래서 1월도 조금 바쁘고 9월 달도 마찬가지다. 올해 연숙의 생일은 조금 지나치게 보낸 것은 아닐까? 생일 전날에 Thai restaurant Lemongrass에서 ‘간단히’ 둘이 ‘먹었고’, 생일 날엔 아이들이 와서 Marietta Square에 있는 gourmet hamburger restaurant Stockyard 란 곳에서 ‘무지막지’하게 큰 hamburger와 local microbrewery 산 draft beer sampler로 배가 터지게 먹었고, 마지막으로는 우리 레지오 단원들과 같이 한 생일회식이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그러니까.. 무려 3번 생일축하를 한 셈이다. 조금 지나친 감도 없지 않았으나.. 생각을 해 보니 올해 생일이 육십사세 란 것이 귀에 익은 숫자였다. 내가 4년 전에 1월에 친구 양건주와 나의 생일을 자축한 Beatles classic, When I’m sixty four..  생각이 나는 것이다.  4~5 년 뒤로 나를 따라오는 연숙이 64세라는 것이 조금은 실감이 안 간다. 부모세대의 64세를 생각하며, 손주들이 주렁주렁한 할머니의 모습들.. 암만 봐도 그 때의 그 모습들이 없다. 한 세대가 흐른 시점에서 세대 차를 느끼지만 그것은 모두 ‘겉 모습’에 관한 것 들이다. 아마도 세월에 의한 경험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그 옛날 60년대.. 이 Beatles의 When I’m sixty four를 들었을 당시.. 기억에, 와~ 그 나이까지 살면 어떻게 하나.. 하고 은근히 기분이 쳐지는 느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 부부는 ‘완전히’ 그 magic number를 모두 넘어선 것이다. 참 정직하다, 세월은.. 어김없이 일초 일초..흐른다.

 

Adieu, August 2016

서기 2016년 8월이 역사의 한 chapter로 사라지는 날이 되었다. 올해 8월을 어떻게 보냈고 나중에 어떻게 기억하게 될 것인가? 날씨로 말하면.. oppressive month라고 할까.. 정말 잔인하게 땅을 말리는 더위도 그렇지만.. 나를 괴롭힌 것은 그것보다는 ‘매일 매일이 거의 carbon copy 같은’ 그런 정말 세월이 정지된 듯한 모습의 날씨가 거의 30일간 계속된 것.. 이것도 아마 기록에 남을 듯 하다.

날씨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수확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수확은커녕 기대를 한 것이 유산이 되는 실망도 있었다. ‘거창하게’ 출범을 했던 ‘봉헌을 위한 33일’이 골인 3일을 남겨두고 무릎을 꿇은 것이다. 비록 앞으로 기회가 또 있다고 하지만 나의 ‘자존감’에는 분명히 피해를 주었을 듯 하다. 교훈은 무엇인가.. control your temper..가 될 듯하다.

지난 수년간 바쁘기만 했던 한 여름의 ‘레지오 활동’들.. 올해는 거짓말처럼 조용해진 것.. 솔직히 불안하다. 활동거리가 없다는 사실 자체는 축하할 일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활동거리를 찾는 활동이 약해졌음을 어찌 모르랴.. 활동거리를 proactive하게 찾는 활동.. 바로 그것이 최근 들어서 slow down된 것은 분명한 현실인 것이다.

그런 것에 비해서 나, 아니 우리의 ‘세속적’인 활동이 시간적으로 늘어난 것도 관심의 대상이 된다. 오랜 동안 잊고 살았던 social activities에 서서히 조금씩 관련이 되는 것, 어떻게 봐야 할지 솔직히 지금은 잘 모른다. 시간이 조금 지나가 봐야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 중에 시간적으로 제일 ‘부담’이 된 것이 guitar coaching 인데, 이 새로운 활동을 조금 더 비판적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을 보면 조만간 scale down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조금은 바깥일을 할 수 있는 ‘멋진 가을 하늘’, 그것이 9월인데.. 집안에 갇혀 지내니 ugly backyard stuffs들이 나의 손길을 기다린다. 그러고 보니 정말 우리 집은 손을 볼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모조리 모조리 나의 muscle과 money를 요구하는 것들이다. 이럴 때 근육이 적당한 ‘동갑내기 죽마고우  竹馬故友’가 나의 옆집에 살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갑자기 평화스러운 낮잠에서 꾸는 나의 이루어질 수 없는 꿈.. 바로 그것이었다.

 

'날이 좋아'..허.. 이런 것이 요새의 소주인가? 하지만 평화스런 오후의 기분과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진다.. 연숙의 깜짝 선물 (from H-mart)

‘날이 좋아’..허.. 이런 것이 요새의 소주인가? 하지만 평화스런 오후의 기분과 너무나 잘 맞아 떨어진다.. 연숙의 깜짝 선물 (from H-mart)

5마리 식구가 2마리로.. 엄마를 포함한 3식구가 떠난 나머지 2마리가 똘똘 뭉쳐서 우리집 뒷뜰에 안주하기 시작하나..

5마리 식구가 2마리로.. 엄마를 포함한 3식구가 떠난 나머지 2마리가 똘똘 뭉쳐서 우리집 뒷뜰에 안주하기 시작하나..

 

처서 處暑… waning Summer

올 여름들어 두번째 쏟아진 오후 소나기

올 여름 들어 두 번째 쏟아진 오후 소나기

 

올해는 유별나게 절기의 이름이 눈에 잘 들어온다. 이것도 나이 탓인지.. 지난 번에는 말복이란 것으로 계절의 변화를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처서.. 란 것. 거의 칠십에 가까운 장구한 세월을 살면서 올해처럼 이런 절기의 이름이 눈과 머리에 들어오는 적은 처음일 것이다.

처서.. 유난히 지겹게도 덥게 느껴지던 올해의 여름 내내 꿈 속에도 보였던 말이 ‘써늘한 아침바람’ 이었다. 거의 3개월 동안 내내 내가 느꼈던 새벽 6시 경의 느낌은 끈끈함 그 자체였었다. 간혹 바람이란 것이 있었어도 그것은 물기가 잔뜩 섞여있는 거의 ‘열대성’ 그 것이었다.

지난 3년 간 여름철에 그렇게도 자주 내려주던 오후의 소낙비, 올해는 거의 없었고 그 느낌조차 잊을 정도였다. 7월 초에 딱 한번 내렸던 것은 반가운 기록으로 나의 blog에 남을 정도의 역사가 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 그 반가운 오후의 소나기가 사정없이 쏟아졌다. 올 여름의 2번째 귀중한 소나기가 된 것이다.

처서.. 왜 이름이 처서 處暑일까? ‘곳’ 處, ‘더울’ 暑.. 이것이 무슨 뜻인가? 물론 전체의 뜻 자체는 ‘여름이 지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 한다고’ 하는 뜻이다. 그렇다. 이제는 더워도 그 더위가 별볼일 없다는 뜻일 것이다. 수그러드는 더위, 그러니까.. 아마 waning Summer 정도가 될 듯하다.

아침부터 해가 안 보이는 구름들, 그렇게 해가 안 보이는 것이 반가울 수가 없다. 올해처럼 아침에 뜨는 시뻘건 태양의 느낌이 싫었던 때도 없었던 만큼 잔뜩 흐린 아침이 그렇게 반가웠다. 바로 오늘이 그런 날이 되었다. 기분이 갑자기 홀가분해지고 날라갈 듯하다. 아~~ 가을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올해 구경도 못 했던 쓸쓸한 해변가.. 파도소리 들리는..

올해 구경도 못 했던 쓸쓸한 해변가.. 파도소리 들리는..

올 가을은 또다시 쓸쓸한 해변가로 오려는가..

올 가을은 또다시 쓸쓸한 해변가로 오려는가..

 

지나간 몇 해의 여름에 비해서 올해는 참 한가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지나간 해, 유난히도 병고로 고생하던 분들이 많았고 그 중에는 세상을 떠난 영혼들도 있었다. 그 영혼들과 보낸 세월도 짧지 않았고, 덕분에 날씨의 느낌에도 둔하게 될 수도 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올해는 그렇게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지만 따라서 우리들이 할 ‘일’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었다. 여가 시간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이제는 이 ‘귀중한 남는 시간‘을 어떻게 ‘멋지고 뜻 깊게’ 쓸 것인가.. 그것이 이 시원한 늦여름의 작은 즐거운 과제가 되었다.

 

말복 末伏 … 2016

2016년 8월 16일, 레지오 수첩을 보니 ‘말복’이라고 쓰여있다. 결국은 그날이 지나가는구나..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왜 그럴까.. 지독히도 끈적거리게 덥던 올해의 여름이 그렇게 고맙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말복은 복날 중 마지막으로 삼복 더위가 일단 끝나는 때인데, 이 초복, 중복, 말복의 삼복은 절기에 속하지 않는다고 한글 Wikipedia에 나와있다.  이것은 나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다른 것들은 내가 잘 못 알고 있었던 것도 있었다. 복 날의 복 자가 나는 이제까지 개 와 연관이 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알고 보니 이것은 실제로 직접 상관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복 더위하고 개 하고는 원래 상관이 없었던 것. 미국에서 제일 더운 때 여름철을 Dog Days 라고 부르는 것에서 생긴 나의 오해였는지도..

말복이 지나감에도 더위는 조금도 수그러지지 않지만 그래도 이날을 나는 기쁘게 맞이하는 것은, 이제 여름의 무더위는 ‘시간문제’임을 오래 산 경험을 통해서 알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말복이 지나고 열흘 뒤쯤에 비로소 아침 기온이 떨어지고 첫 시원한 공기를 느낀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야말로 이제는 ‘시간 문제’인 것인가..

그러면 이 복, 삼복이란 것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절기에 속하지도 않는 그저 일년 중 제일 더운 때의 3일, 삼복날.. 이것도 Wikipedia에서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알게 되었다. 역시 짱 깨 들의 유산인가.. 중국 사기에 의하면 진 나라의 ‘덕공(德公) 2년’ (연호인가?) 에 시작되었다고 나와있다. 무척 역사가 깊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더위를 이기느라 ‘고기류’를 먹는 관습이 생겼다고 한다. 이것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자랑인 ‘개고기’ 먹는 해괴한 전통도 생겼나.. 

집을 완전히 떠나는 휴가가 없었던 올해의 무척 더운 여름, 비교적 건강하고 차분하고 규칙적인 나날을 만들려 안간 힘을 썼다. 하지만 2년 전의 경험했던 것 처럼 나는 올해도 mild burnout 이후 3일간의 big reset의 풍랑을 겪어야 했다. 그것으로 인해 야심 차게 시작하고 열심히 해 왔던 ‘성모님께 대한 33일 봉헌’ 과정의 끝을 맺지 못하는 불상사를 남기게 되었다. 모두들 아깝다고 comment를 했지만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보였던 disaster였다.  지금도 big reset의 과정이 다 지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훨씬 맑은 정신으로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불찰이었다. 내가 나를 너무나 push했던 탓도 있었다. 인간의 기본적인 physical-mental-spiritual  balance가 완전히 깨진 것을, 나는 거의 무시하며 강행군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겹게 덥기만 하던 올 여름에 얻은 귀중한 교훈.. 이것도 남은 생을 통해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귀중한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