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sary Relay, FS woe, another ‘Nearer my..’, Ozz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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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ary Relay..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레지오 꾸리아 (Curia)에서 드디어 ‘묵주고리기도’ 의 ‘지령’이 하달 되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끊임 없이’ 5분 간격으로 묵주기도rosary가 계속 바쳐지는 recite 것이다. 물론 이런 기도는 확실한 ‘지향 intention‘ 을 가진다. 2년 전쯤인가.. 본당 주임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을 위한 ‘고리기도’를 경험했었다. 나에게는 처음이라서 너무나 ‘신기하게’ 느껴진 경험이었다. 생각만 해도.. 멋진 idea가 아닌가? 한 영혼을 위해서 쉬지 않고 끊임없이 어디선가 기도가 바쳐진다는 사실이..

이번에는 주임신부님 (이재욱 요한 신부님)은 물론이고 보좌신부님 (한민 토마스 신부님)까지 포함되어서 그분들의 ‘영유간의 건강’을 위한 묵주고리기도가 바쳐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 (특히 레지오)에게 가장 중요한 영혼들인 것이다. 6월 24일부터 12월 24일까지 계속되는 이번의 rosary relay, 우리 부부는 오후 9시를 넘은 slot인데.. 너무 편리한 시간을 차지했나 하는 미안한 심정도 든다. 이런 rosary relay같은 것이야 말로 우리 가톨릭만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빛나는 유산이요 영적인 무기임을 개신교 신자들은 알기나 할까..  

 

Near-death File Server.. 우리 집 computer system (networked) 에서 file server pc가 결국 하루 아침에 quit (a.k.a. dead) 하고 말았다. 이름도 역시 ‘FS’ (file server)인 10년이 넘은 ‘고물 clunker’ Windows PC가 4~5 hard drive로 우리 집 home network에 24시간 file을 serve하고 있는데.. 물론, 거의 99% 내가 쓰는 file들이지만 가끔 연숙과도 share하는 것들이 있어서 이것은 편리하기도 하지만 꼭 필요한 ‘물건’ 이었다. 거의 5 TB의 ‘역사적’인 data들이 많고, 그 대부분은 video file들이 차지한다. 물론 local (pc) drive를 쓰면 이런 거추장스러운 것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home ‘cloud’ system의 매력은 무시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 (안전함)에서 ‘항상’ data를 필요할 때마다 받아 쓸 수 있음은 역시 편리하고 안전하고 ‘멋진’ idea인 것이다. 이런 server system은 virtual machine을 remote desktop으로 desktop pc로 쓰게 되면 필수적이다. 

나는 현재 Proxmox VE (virtual environment)란 virtual server를 쓰고 있는데, 한때는 10 virtual machines (대부분 test machine, sandbox platform, internet PBX등으로) 까지 쓰기도 했지만 이제는 조금 김이 빠진 상태로 현재는 4개의 virtual machines (Windows, Ubuntu, Asterisk pbx etc.)만 유지하고 있다. 이런 ‘headless‘ virtual machine들은 필수적으로 file server가 필요하기에 이번에 ‘죽은’ file server ‘FS’ 는 결사적으로 되 살려놓아야 할 입장이었다. ‘죽은 시체’를 열어 보니 10년이 넘은 motherboard가 제일 의심스러워서 완전 폐기하려는 순간.. not so fast moment인가.. 실제로 죽은 것은 motherboard가 아니었고 power supply (PS)였음을 알게 되었다. 버리기 직전에 발견한 것이다. 다른 것으로 교체를 하여서 결국은 FS는 다시 작동을 하게 되었다. 우리 집의 computer (network) system은 거의 25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런 것들과 ‘장난하는 것’이 나의 시간을 죽이는 최고의 취미였지만.. 솔직히 이제는 조금 피곤한 기분이 든다. 멋진 system을 꿈꾸며 살기도 했지만.. 이제는.. 간단한 것, 단순한 것을 찾게 되니.. 역시 나이는 무시할 수 없는 모양이다.

 

 Nearer My God..  5월 초에 P 베로니카 자매님과, 개신교 신자였던 K 자매님을 연속으로 하늘나라로 보낸 지 불과 2개월도 지나지 않았지만 사람의 운명이란 것이 편리하게 예측을 할 수가 있을까? 지난 2개월 그런대로 편히 쉬는 기분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사신 死神’들이 가까이에서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제일 급한 것은, 몇 년 전부터 열심히 기도하던 Y 막달레나 자매님.. 이 자매님, 참 외롭게 투병을 하시던 교우였지만 최근에 아주 상태가 악화되는 소식을 들었다. 특히 내가 개인기도를 많이 바치던 자매님인데.. 성모님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지경으로.. 더욱 안타까운 소식은 ‘혼자’인 몸으로 투병을 하는 것으로.. 가족들과는 어떤 관계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는 사실이다. 나도 외롭지만 나보다 더 외로운 영혼들도 있다는 사실에 나는 은근히 놀란다. 비록 하느님께 간다고 하지만 인간적인 마음으로 어찌 가족을 생각 안 할 수가 있을까?

설상가상으로 우리 레지오 단원 자매님의 부군께서 ‘중병’으로 고생을 하시게 되었고 결국 그 자매님은 간병을 위해 레지오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연세로 보아서 힘든 투병을 하시는 이 형제님.. 하느님께 더욱 의지하기를 희망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라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Y 막달레나 자매님의 선종기도를 하고 있는 상태고 형제님은 환자기도를 하고 있지만.. 인간능력의 한계는 너무나 분명하기에 더 높은 곳의 ‘능력’을 믿어야 하는 시간들이 온 듯하다. 

 

Ozzie, I Love You.. 지난 며칠간 우리 집에 어떤 guest가 며칠 묵고 갔다. 오래 전, 거의 6년 전에도 이맘때에도 (헉헉거리는 무더웠던 여름) 어떤 guest가 와서 몇 주일을 묵고 간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guest가 사람이었고 (오랜 전에 알았던 집의 젊은 아들) 이번에는 2발이 아닌 4발 달린 pet dog 이었다. 그 오래 전의, 사람이 손님이었을 때, 한마디로 짜증나는 더위 속에서  ‘서로’ 고생을 했던 기억만 남은 듯 했지만 이번의 4발 달린 ‘동물’ 손님은 비록 며칠 간이었지만 너무나 즐거운 기억을 남겼다.

이 ‘4발’ 손님은 다름이 아닌 새로니의 ‘adopted’ pet dog, Ozzie였다. 3살이 조금 넘었지만 덩치가, 10살이 넘은 우리 집의 Tobey보다 훨씬 큰 편이다. 동생 나라니와 같이 거의 2년 전쯤 어떤 animal shelter에 같이 가서 데려 왔다고 했는데, 마지막으로 고른 사람이 나라니였다고 했다. 그 이후 가끔 우리 집에 데려온 적이 몇 번 있었고 이미 주인인 Tobey와도 구면인 셈이다. Ozzie는 한 마디로 nice dog이라고 할까.. 어쩌면 그렇게 순~ 한지.. Tobey에 비해서 너무도 착한 아들 같다고 할까. Breed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긴 다리를 가지고 splinter같이 뛰는 모습을 보면 입이 벌어질 정도다. Tennis ball로 fetch를 하면 어떨 때는 ball보다 더 빨리 뛰어가 기다릴 때도 있으니까..

새로니가 출장을 갈 때 이 Ozzie를 pet motel에 맡기고 갔었던 모양인데, 아무래도 Ozzie에게 미안 했던지 우리에게 ‘살살’ 부탁을 해서 이렇게 우리 집이 pet motel역할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금 귀찮은 생각도 들었지만.. 가족이 이럴 때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순순히 3일 간의 pet sitting을 해 보았는데,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의외로 Ozzie가 잘 적응을 하며 아주 happy하게 보여서 우리도 기쁜 마음으로 돌보아 주게 되었다. 남자만 보면 짖어대던 그 녀석이 (전에 남자에 대한 trauma가 있었지 않았을까..) 이제는 나에게도 정답게 접근하고 심지어는 만져달라고 머리를 들이대곤 해서 아주 정이 흠뻑 들게 되었다. 다른 편으로는 이렇게 정이 들면… 곤란한데.. 하는 우려 아닌 우려까지 들었다. 그 만큼 정을 준다는 것.. 나중에 정을 거두어들일 때도 생각을 안 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만날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도 있으니까 너무 정을 주지 말자고 다짐을 하지만..

 

Unthinkable comes true

The Destruction of Sodom and Gomorrah, John Martin, 1852

The Destruction of Sodom and Gomorrah, John Martin, 1852

 

오늘이야말로 67년을 살았다는 것이 정말 오래 살았음을 실감하는 날이 되었다. 아니 내가 ‘너무 오래 살았다’ 고 하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미국의 마지막 방패인 대법원.. 그들의 판결: 5:4로 ‘믿을 수 없는 일’ 앞에서, 나는 ‘실망에서 분노’를 거쳐서 이제는 웃음이 나올 지경이 되었다. 내가 알고 있었던 ‘전통보수의 마지막 보루’ 미국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어떻게 ‘보통사람’들이 이런 해괴한 생각에 동조를 하는 것일까? 어떻게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결혼을 한단 말인가? 남자와 여자가 신체적, 사회적인 역할까지 뒤 바뀌는 이 세상에 어떻게 ‘보통 사람’들이 잠을 편하게 잘까? 나는 그것이 의아스러운 것이다. 이것은 나의 ‘세계관, 신앙’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나의 ‘직감과 상식’에서 느끼는 것이다. 여기에 현재 ‘개발되고 있는’ 나의 신앙까지 겹치면 걷잡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이들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 무엇부터 잘못 되었던 것일까.. 나는 알고 싶다. 현재 나의 생각은 이것이다.. 이 해괴한 집단, 부류의 인간들은 ‘역사에서 정말 용서받지 못할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인간의 ‘자유’를 찾아서.. ‘사랑하는’ 가족끼리 결혼하는 것은 어떨까? 더 나아가면, 나의 사랑하는 pet animals들은 어떤가? 가당치도 않게 들리는, 비약적인 생각이 비약이 아닌 이 세상이 참 ‘괴로운’ 세상인 것이다. 아마도 ‘초자연적인 어떤 개입’이 마지막 치료제가 되는 날이 더 빨리 오는지도..

Father’s day 斷想 2015

Father's day smoke from
Father’s day smoke from …

오늘은 2015년 여름의 시작하지 summer solstice 와 아버지 날 Father’s Day가 겹친 날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시작된 여름의 위용을 과시하려는 듯 찌는듯한 습기와 열기가 함께한 전형적인 lazy but comforting Summer day였다. 이 ‘아버지 날’이라는 것, 수십 년 전 미국에 처음 오며 느낀 것 아직도 기억한다. ‘어머니 날’을 제외한 364일이 아버지 날이었던, 당시의 대한민국의 정서를 생각하니 왜 이런 날이 필요한 것일까 했던 것.. 하지만 역시 ‘드센 여자들이 많은 미국’  사람들 선견지명이 있었나 보다. 세월이 갈수록 여자들, 특히  ‘엄마’들의 power가 하늘로 치솟게 되며, 이 Father’s Day의 중요함이 더 돋보이고 필요하게 된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성당이건 교회건, 학교건 어디건 간에.. 상대적으로 늘어진 ‘주문진 오징어’ 같이 쳐지고, 피곤한 아빠들을 위로하는 ‘미사여구 美辭麗句’를 듣느라 바쁘다. 이런 ‘세속적인 흐름’에 겹쳐서 수세에 몰리는 듯한 종교계 특히 천주교의 사제, 그들도 Father, 영적인 아버지인데 이 Father’s Day에 그들도 같이 축하를 받게 되었다. 역시 선견지명 先見之明 있는 미국인들이었다.

2015-06-21 17.50.28-1이날이 되면 물론 나도 아버지이니까 나를 아버지로 부르는 ‘아이들’ 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 점검해 보는 기회도 되지만 나는 사실 나의 아버지를 더 생각하는 편이다. 문제는.. 나는 아버지를 본 ‘기억’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2살 때 6.25 사변이 시작되면서 납북, 행방불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식인이었던 관계로 살아서 북으로 갔을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서 우리는 ‘돌아가신 아버지’로 생각하며 자랐다. 아버지 없는 설움은 피부로 못 느끼며 자랐지만 남들의 눈에 그렇게 보였을까. 우리 아버지는 2살짜리 아들을 두고 어떻게 가셨을까? 3살 위였던 누나는 아버지를 어렴풋이 기억한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거의 nobody가 되었다. 아버지.. 어떻게 그런 불운한 세월을 사셨습니까? 누구의 책임입니까? 나는 딱 한 인간.. 김일성 개XX (그리고 그 자식XX들)를 증오한다.

올해의 Father’s Day, 그래도 아이들이 나를 잊지 않고 찾아주어서 단출한 우리 4식구 집에서 grilled hamburger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아이들, 같은 town에서 살기에 이런 ‘행운’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멋진 casual shoes와 gym bag을 선물로 받기도 했는데, 특히 신발이 나의 발 size에 기가 막히게도 잘 맞아서 다행이었고, 15년 가까이 써서 거의 ‘가루가 묻어 나오는’ old YMCA gym bag를 대신 할 것이 생겨서 아주 practical 한 선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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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아버지일까.. 가끔 생각한다. 십대가 지나가며 완전히 놓친듯한 두 딸들.. 아직도 그 후유증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30살이 넘어가는 완전히 커 버린 ‘애 들’.. 10대처럼 아직도 나는 거북스럽기만 하다. 그런 아빠는 그 애들에게 어떻게 비쳐지는 것일까?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어떠한 아버지 legacy를 남기고 갈 것인가.. 아버지를 겪어 보지 못한 나로써는 그렇게 쉬운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first summer harvest.. tomatoes

Season's first batch, tomatoes harvest

Season’s first batch, tomatoes harvest

 

은근히 기다리던 올 여름 첫 vegetable harvest 가 우리와 첫 대면을 하게 되었다. 먹음직한 도마도 첫 수확.. 언제부터 이것을 따 먹게 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도 작년 이맘때였을 것이다. 작년의 수확 tomatoes ‘도마도’는 색깔도 그렇지만 그 맛이 정말 놀랄 정도로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연숙이 그렇게 고생하며 가꾸던 것.. 옆에서 보기만 한 정도였고 가끔 물을 주는 정도로 나의 관심사의 저편에 있었지만 그 때 그것을 보고, 먹고 한 이후에 조금 나의 관심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작년의 ‘알짜 수확’은 당시 친지들이 모일 때 가지고 가서 그곳에서 아주 멋진 Italian 요리에 쓰이기도 했는데 모두들 그 맛에 감탄을 하였다. 그 정도로 supermarket에서 ‘강제로 만든’ 것과 차이가 나니까.. 태고 적, supermarket이 생기기 전,  그 원색으로 울긋불긋했던 ‘벌레 먹기도 한’ 과일, 야채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어쩌다가 요새의 과일 야채들이 그렇게 커지고 맛이 없는 것일까? ‘인간의 욕심..’ 자연을 거역하고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강제로 익히고, 강제로 사육하고, 강제로 주사를 놓고’ 벼라 별 짓을 다하는 인간들 탓일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이제는 ‘우리의 야채,과일’을 더 많이 수확하는 생각에 관심이 조금 가기도 한다.

 

먼 곳에 보이는 Yonsook's 'victory' edible garden

먼 곳에 보이는 연숙의  ‘victory’ edible garden

 

Carolina High & Einstein Bros.

Mid-June full blasting heat-index

Mid-June full blasting heat-index

 

¶ 하루 아침에 갑자기 ‘한’ 여름이 시작되었다. 하루 아침은 조금 과장된 표현이고 며칠을 거치며 build-up된 Carolina High (Pressure).. 그러니까 조지아 Georgia 의 northeast쪽으로 펼쳐진 Carolina (North & South), mid Atlantic 상공에 요지부동으로 자리를 잡은 ‘고기압’이 모든 바람을 차단하며 여과 없이 쏟아지는 태양열이 대지의 기온을 치솟게 한다. 위층은 물론, 아래층의 a/c 가 full-blasting, 6월 중순이면 이런 heat wave의 맛을 한번은 보여준다. 문제는 과연 ‘몇 도’까지 치솟을까.. 하는 것이다. Magic Number, 100도는 어떨까, 사양하고 싶은 숫자가 아닐까.

다른 문제는 공기 중의 Ozone level 인데, 이것이 치솟으면 호흡기에 좋지 않다. 오늘이 그런 날로 Code Orange warning 이 나왔다. 움직이지 않는 공기에 의한 ‘불쾌’하게 높은 온도와 더불어 그야말로 double whammy라고 할까. 이럴 때 유일한 대책은 밖에 나가지 않고, 실내에서 그야말로 take it easy하는 것이다. 이럴 때, YMCA와 같은 실내 track, swimming pool은 우리에게 거의 필수적인 시설이 된다.

근래에 100도를 넘은 기억이 없기에 이번에는 조금 뉴스 감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날씨, 나는 짜증이 나긴 하지만 조금 생각을 고쳐서, 여름은 더워야 ‘자연적’이라고 위안을 삼으니 훨씬 부드럽다. 이것도 ‘나이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그저 조그만 희망이 있다면 오후 늦게 ‘씨원하게’ 쏟아지는 예기치 않은 소낙비가 아닐까.. 그야말로 Johnny Rivers 의 60’s  oldie ‘Summer Rain‘ 이 귓가에 들리는 듯, 그 당시를 회상만 해도 벌써 시원하고 포근해 진다.

 

 
Summer RainJohnny Rivers –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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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오늘 우리는 Holy Family ‘sisters’ 들과  아침 미사를 마치고 예정에 없던 breakfast를 Johnson Ferry road에 있는 Einstein Bros Bagels(EBB) 에서 하게 되었다. 뜻하지 않게, 시원한 곳에서 향기로운 Hazelnut coffee, Signature bagel: SPINACH, MUSHROOM & SWISS를 즐기는 이런 시간은 비록 가끔 오는 것이지만 정말 즐거운 시간이다.

오늘은 근래 자주 보게 되는 크리스티나 자매가 ‘한 턱’을 낸 것이 되었고, 레지오 단원 카타리나 자매님이 함께 해서 오랜 만에 ‘lady’s talk’ 을 즐겼다.  화제야 대부분 신앙과 교회에 중심을 두고 있지만 가끔 gossip같은 이야기도 나눈다. 이런 것은 ‘새겨서’ 들으면 되고,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하고, 친교를 이루게 하는 역할도 한다. 자기만이 최고인 듯 착각하며 사는 수많은 동지 ‘남자 형제들’ 보다 이 세련되고 자상한 lady들이 대화를 나누기에 훨씬 더 편하고 즐겁다. 덕분에 YMCA workout은 2시간 지연이 되었지만.. no problem!

Sacred Heart 聖心

Sacred Heart of Jesus by Pompeo Batoni, 1767
Sacred Heart of Jesus by Pompeo Batoni, 1767

The Most Sacred Heart of Jesus.. 예수(의) 성심. 오늘은 The Pentecost (성령강림 대축일)로부터 19일째인 예수성심 대축일이었다. 미국 우리지역 province 은 의무 축일이 아니기에 아주 특별한 미사는 아니었고 평소 ‘매일 미사’보다 ‘조금’ 격상된 정도라고 할까.. 

요새 부활시기를 완전히 뒤로한 한가한 느낌의 6월 초여름의 ‘연중’ 시기에는 부활절을 치르느라 피곤하다는’ 본당 주임, 사제들은 꼭 자리를 비워야 ‘멋이 있는지’ 대부분 방문신부님들이 자주 찾아 오신다. 속으로 나는 ‘꼭 그렇게들 쉬어야 하나..’ 하는 짜증이 난다. 무엇을 그렇게 바쁘고 피곤하다는 것인지 나의 머리로는 쉽게 이해가 안 간다. 근래에는 땀을 흘리며 뛰는 신부들을 별로 본 기억이 나질 않아서.. 요새 신부들은 어떤 생각으로 사목을 하시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우리 Holy Family 성당의 경우, 보좌신부님, 박사학위를 받고 완전히 떠나신 Africa출신 상당히 지적인 신부님이었다. 비록 처음에는 영어 발음에 짜증이 조금은 났지만 주임신부의 ‘애 같은’ 강론수준과 하늘과 땅의 차이라 은근히 좋아하기 시작했더니만.. 그만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그런 판국에 Irish 출신 주임신부라는 목자는 어떻게 편히 쉬실 수 있는가? 드디어 며칠 전부터는 본당의 브라질 공동체 신부님이 임시로 매일 미사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이건 완전히 disaster에 가깝다. 그의 영어 발음은 99.9% 알아 먹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찌 Portuguese와 English가 그렇게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완전히 ‘꼬이는’ 발음은 Jesus란 말 정도나 들릴 정도다. 하지만 공평한 것은.. 이 신부님 너무나 ‘진솔하고 착한 미소 띤 얼굴’ .. 이것으로 완전히 balanced-out이 되고 있다. Universal한 미사 자체야 Latin말로 하던 때도 있었으니까.. 못 알아 먹어도 90% 이상은 다 추측이 가능하니까..

 성심.. 예수성심.. 성모성심.. 참 오래 전부터 들었던 단어였다. 성심 聖心 .. 하지만 확실한 뜻은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저 ‘성스러운 마음’ 정도는 한자로 짐작이 가능할 정도였다. 어렸을 때, ‘성심’이 붙은 학교들이 있었고, 대부분 ‘멋지고 부자’들이 가는 학교라는 인상도 남았다. 서울의 성심여학교가 그랬다. 교복도 그렇게 멋졌다. 박정희 대통령의 큰 딸 박근혜 (현 대한민국 대통령.. 허.. 세월의 장난이..) ‘양’ 이 아마도 그 학교에 다녔을 것이다. 그것 뿐인가.. 성심병원, 성심 여대까지 있으니까.. 이것은 이곳 미국도 예외는 아닐 듯 싶다. 문제는 이 ‘성심’이란 말이 보통명사인가 고유명사인가 하는 것이다.

조금만 research하면 ‘정답’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예수성심은 글자 그대로다. 예수님의 ‘육체적인 심장’ (마음이라기 보다는), 그 육신적인 심장이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불이 타는 듯이 타오르는 모습이 바로 예수성심인 것이다. ‘성스러운 마음’ 아닌 예수님의 사랑으로 불타는 심장.. 오랜 세월, 나의 ‘무지’가 부끄럽다. 그러니까 예수성심은 이 ‘심장’에 대한 인간들의 신심 devotion 인 셈이다. 이것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이것은 역시 ‘인간’ 역사 중의 하나다.

1673년부터 1675년까지 프랑스 수녀 St. Margaret Mary Alacoque (성녀 알라콕)에게 나타나신 일련의 예수발현으로 비롯되었다. 이 발현 중에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신심이었다. 계시 revelation 중의 계시가 이런 것이 아닐까? 역사적인 배경과 근대에 들어와서 성심의 발전 양상을 예수회의 ‘예수성심의 역사’ 라는 DVD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레지오 단원 자매에게서 빌린 DVD를 감히 ripping해서 이곳에 올려 놓았다. copyright는 분명히 문제가 되겠지만.. please.

 

예수성심의 역사

Francis on Medjugorje

Pope Francis, 사라예보 방문 후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기자회견
Pope Francis, 사라예보 방문 후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기자회견

요새 ‘우리’ 교황님, 참 뉴스에서 많이 뵙는다. 99.9% 거의 모두 positive한 것이라 안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런 기사들을 대한다. ‘어쩌다가’ 이런 멋진 교황님이 탄생을 하셨는가.. 그러니까 ‘전’ 명예 교황님 Benedict XVI 이 깊은 생각과 교회의 당면한 숙제들을 생각하고 ‘조기 퇴진’을 하신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현 시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목자를 탄생시키셨다. 모든 교인들과 마찬가지로 나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다행스러운 교회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교황님 사라예보 Sarajevo, Bosnia & Herzegovina 를 방문하시고 바티칸 로마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의 사라예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비공식’ 성모 발현지 메주고리예 Medjugorje 에 대한 짧은 언급이 나의 (아마도 많은 사람들) 눈길을 끌었다. 그 ‘짧은 언급’은 다음과 같이 보도 되었다.

It’s almost decision time…  6/6/2015  on PAPAL FLIGHT

사라예보의 짧은 방문을 끝내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보즈니아 (사라예보와 메주고리예가 위치한 나라) 출신 기자의 메주고리예 성모발현에 대한 바티칸의 공식적인 입장 해명의 질문에 대해서 교황님은 다음과 같이 답변을 하셨다.

“메주고리예에 대한 결정의 시기가 거의 다가왔습니다. 결정이 되면 발표가 될 것입니다.”

교황은 이에 관련되어서 전임 교황 베네틱트 16세가 메주고리예 성모 발현 ‘설’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위한 위원회를 발족 시켰음을 상기시켰다. 이 위원회는 메주고리예 ‘현상’을 교리적, 교회법등에 비추어 연구, 조사를 끝내고 교황님께 보고를 드렸다고 덧붙였다.

 이 결정은 곧 이루어질 것이고 그에 따라 모든 일선의 주교들에게 guideline이 시달 될 것이라고 한다.

이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모든 교회는 메주고리예에서 성모발현의 진실성을 당연시 하는 모임, 회의, 집회 등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 기사가 나오고 나서 3일 후에 이에 관련된 기사가 다시 보도 되었다. 이것은 그러니까.. ‘damage control’ 정도가 될는지…

 

Day after Medjugorje comment, Pope downplays predictable visions:

 아마도.. 교황님의 6월 6일 기자회견에서 메주고리예의 공식입장 결정이 다가왔다는 말이 주는 뉴앙스가 너무나 positive했던 것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려는 것이었을 것이다.

6월 9일 바티칸의 성 마르타 guesthouse에서의 매일미사에서 교황님은 ‘조금 초현실적인 믿음’에 의존하려는 신자는 현대판 gnostics(무관심론자)라며 결국 믿음의 종착역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고 조심을 시켰다. 성모님께서 ‘이런 것, 저런 것’을 하라고 말하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그리스도교인의 본 모습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두 가지 뉴스에 접하며 생각을 해본다. 우선 이런 교황님의 스타일은 이제 익숙한 편이다. 우선 issue를 거론하고, 반응에 의해서 필요하면 곧 수정하는 style..  이런 방식은 분명히 issue를 forward시킨다. 무언가 결과가 제 시간에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일을 처리해 나가는 교황님의 agenda는 도대체 얼마나 있을까?

메주고리예의 성모님 발현은 교회사, 세계역사를 통 털어서 전무후무 前無後無 한 것이다. 30년 이상 거의 매일 같은 지역에서 발현한다는 것.. 이것에 대한 과학적, 이성적인 반론은 어떤 것일까? 한마디로 ’30년 이상의 사기극’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사기극’을 벌인다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쉽다. 메주고리예가 나에게 준 자극과 영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높고, 심각한 것이라 나는 여기에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다. 30년 이상 인간에게 거의 매일 나타나시는 ‘하느님의 어머니, 원죄 없으신’ 마리아의 의미는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는 진짜 인류의 어머니라는 것, 너무나 자상하고 사랑하시는 어머니가 ‘나쁜 길’로 가려는 자식들을 애타게 기다리신다는 것.. 조금만 생각해도 수긍이 가는 말이다.

 

Corpus Christi 2015

Scan10143-1¶  Corpus Christi 오늘은 가톨릭 전례력으로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이다. The Most Holy Body and Blood of Christ.. 그러니까 Corpus Christi 주일이었다. 성체성사, 그러니까 예수의 몸과 피가 성찬례에서 빵과 피로 형상화 되는 Eucharist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는 날인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수교, 특히 천주교에서 이 ‘교리’는 진정한 핵심 중의 핵심일 듯 하다. 매일미사를 몇 년간 경험하며 느끼는 것은 ‘아직도’ 이 교리는 가슴으로 느껴질 듯 말듯 한 그야말로 신비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100% 확신하며 영성체를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실 우리는 이 축일을 지난 4년 동안 한번도 제 날짜에 지켜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아틀란타 대교구 주관 성체대회에 참가하면서 그날 그러니까 토요일 저녁의 마감미사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러니까 특전미사여서 일요일을 편히 쉬었기 때문이었다. 올해는 4년 만에 처음으로 성체대회를 불참하게 되었는데.. 이유가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다. keynote speaker로 예정되어 있던 Father Robert Barron이 갑자기 불참하게 되어서 조금 화가 난 상태로 일종의 protest로 불참하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일들을 그 모양을 했을까? 성체대회도 이제 조금은 ‘늙었나’ 하는 실망감도 들고.. 그래도 참가했어야 했던 것이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다.

 

¶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은 예정에 없었던 일들로 도라빌 순교자 성당엘 가게 되었다. 물론 매주 화요일에는 레지오 주회합, 정오 미사, 그리고 봉성체 등으로 그곳엘 가지만 이번 주에는 무려 사흘 이나 그곳엘 가게 된 것이다. 목요일은 ‘물론’ 예정에 없었던 장례미사 때문이었고 금요일은 신임 이재욱 요한 신부님을 모시고 우리가 하는 봉성체 환자 방문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목요일의 연도, 장례미사.. 노 데레사 89세 천수를 하신 교우 할머님의 연도와 장례미사를 우리는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조금은 주저하기도 했다. 사실 우리는 그 분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조문객들이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느낌’에 아마도 별로 많지 않을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사실 우리에게 ‘평상’ 목요일은 YMCA에 가서 workout을 하는 날이고 집안의 밀린 일도 하는 reserved day라서 망 서린 것이다.

하지만 레지오를 하면서 성모님께 약속을 한 것이 그곳으로 가게 하였다. 교우 장례식에 가는 것을 rule로 약속을 한 것이다. 가끔 exception이 있다면, 아플 때나 우리가 못 가더라도 조문객이 많다고 생각 될 때다. 그래서 이제는 연도와 장례미사에 아주 익숙해졌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곳을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우는 곳으로 생각하며 참석을 한다. 인간의 숙명인 죽음은 배우고 배워도 알 수 없는 신비이기 때문이다.

다음날 금요일에는 새로 부임하신 이재욱 세례자 요한 신부님을 모시고 우리들의 봉성체 교우들 (환자) 3명을 찾는 ‘레지오 활동’으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미국본당의 평일미사를 거르고 대신 순교자 성당 정오 미사를 참례하고 곧 바로 신부님을 3군데 교우님들이 계신 곳을 모두 찾아갔다. 이것도 전형적인 레지오 활동에 속하기에 우리는 기꺼이 일을 하였지만, 우리들이 조금 놀란 것은 신부님의 일반적인 태도, 행동이었다. 사실 이번 활동은 신부님이 먼저 요청을 하신 것이었기 때문에 조금은 ‘감명’을 받기도 했던 것이다. 여독도 별로 풀지 못하고 이렇게 사목에 나선 신부님이 조금 존경스럽게 보인 것이다. 교우 환자를 일일이 찾으며 성체를 영해 주시고, 참으로 자상스럽게 대화도 나누시는 모습이 ‘연세’에 걸맞지 않게 너무나 성숙해 보였기에 비록 예정에 없었던 하루를 밖에서 보냈지만 우리는 너무나 기쁘고 보람이 있었다.

$13 toothpaste

supherb

 

몇 주전에 Duluth Korea Town 어떤 supermarket에 갔을 때 그곳에서 ‘요란하게 진열된’ 한국계 신문들을 보게 되었다. 나는 거의 이 신문들을 볼 기회가 없이 살았기에 아직도 이런 것들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새까만 옛날에 미국에서 ‘고향 신문’을 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고 모두 여행자들이 직접 들고 온 것들을 두고두고 본 기억도 있다. 뉴스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글로 된 신문이기에 신기해서 보는 것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그것도 급팽창한 아틀란타 지역에서는 고국의 굵직한 대 신문들이 모두 ‘지사’형태로 생겨서 고국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지역성을 살려 현지 광고들과 지역뉴스들이 가미되는 차이는 있다. 참 세상이 많이 변했다.

가끔 보게 되는 이 신문들.. 솔직히 고국사정에 어두운 탓인지.. 과장된 표현으로.. ‘하나도 읽을 것이 없다’는 한숨만 나온다. 모조리 광고에다가.. 고국 뉴스는 나에게 relevant한 것은 거의 없고, 현지 지역 뉴스는 original한 것은 거의 없고 그저 출처도 불분명한 곳에서 ‘기계적’으로 번역을 한 것들이고, opinion, editorial이란  것도 거의 마찬가지 수준으로 보인다. 그저 제일 practical한 것은 ‘광고’ 들 뿐인가.

그 광고 중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SupHerb 란 상표의 ‘치약 toothpaste’ 였다. 언뜻 보기에 ‘사기성 과대광고’의 모습을 띄어서 지나쳤지만 이번에는 조금 자세히 보게 되었다. 그 치약의 용도가 ‘약용’이란 것이고, 증상들이 내가 가끔 겪는 것들이었다. 나는 traumatic 한 ‘치과’ 경험들이 있어서 그곳에 가는 것은 최후의 방법으로 여기기에 이 광고가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통상적인 chemical toothpaste가 아니고 natural한 toothgel이란 것인데, 바로 약초 herb와 aloe란 진통제가 가미된 것이라 만약 이런 성분이 진짜 광고대로 라면 속는 셈치고 try해 볼만 한 것이었다. $13의 가격이 일생일대 썼던 치약 중에 제일 비싼 것이긴 하지만, 일반 치약과 어찌 비교를 하랴.

자꾸 약해져 가는 잇몸에는 외과적인 방법보다 자연적인, 부드러운 방법이 필요하다는데 공감이 간다. 광고를 보면 사용한 사람들의 testimonial들이 있는데 한결같이 잇몸이 건강해 졌다는 것이지만 그것을 어찌 다 믿으랴. 하지만 10%만 믿어도 한번 써 볼만 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나답지 않게 $13 거금을 주고 이것을 사서 현재 쓰고 있는데, 아직은 큰 변화는 없지만 잇몸 신경이 조금은 둔화되는 느낌도 들기도 한다. 이것을 전부 다 쓰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지 모르지만 다 쓰게 되면 무언가를 알게 될 듯 하다.

Rainy Night in Georgia

 
Rainy Night in GeorgiaBrook Benton –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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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 front over Georgia

¶ Rainy Night in Georgia: California의 기록적인 가뭄을 생각하면 이곳 지역 특히 Georgia는 정말 lucky하다고 할까.. ‘진짜’ 여름이 한 달이나 남은 5월 말에 이곳은 거의 매일 ‘장마’ 같은 비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내린다. 중년이 넘으며 비를 ‘기본적으로’ 좋아하게 된 나는 물론 대환영이다. 기온까지 시원해서 밤에 창문을 열고 잘 때 들리는 빗소리는 흡사 Brook Benton의 1970 hit oldie, Rainy Night in Georgia를 연상케 하는 짜릿하고, 아련한 감정까지 일게 한다. 이 oldie는 옛날부터 들을 때마다 ‘밤에 내리는 비에 젖은 한과 서글픔’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 어머니, 성모님의 5월, 촉촉한 비에 젖어 다음날의 싱그러움을 예고하며 서서히 사라진다.

이곳도 사실은 얼마 전까지 가뭄으로 식수제한 까지는 아니어도 잔디나 garden등에 물을 주는 것을 격일제로 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이후로 갑자기 거짓말처럼 ‘하루아침’에 가뭄을 사라지게 하는 충분한 비가 내려 주었다. 주로 겨울과 봄에 많이 내렸고 특히 봄비는 꽃가루 pollen를 적당히 control해 주어서 앨러지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해 주었다. 지금 이곳의 weather system은 사실 Texas 지역 에서 오는 것인데, 그곳은 완전히 홍수가 되어 많은 피해를 보고 있지만, 이곳은 이런 ‘기분 좋고, 혜택이 많은’ 늦봄 비를 누가 마다하랴..

 

Our 'master', Tobey cookie

Our ‘master’, Tobey cookie

 

¶ 어제는 Tobey의 annual ‘medical’ checkup 으로 5 mile 떨어진 animal medical clinic 에 일년 만에 다녀왔다. 일년에 한번씩 맞는 vaccine shot (rabbi 같은) 은 의무적이지만 그것과 더불어 다른 문제가 있는지 general checkup을 받는다. 우리가 가는 곳은.. Tobey가 태어나고 몇 달 후부터 그러니까 2005년부터 다녔던 East Cobb Animal Medical Center인데 그러니까 10년째 다니고 있는 곳이다. 그곳의 Dr. Heard는 구수한 인상의 중년이 넘은 ‘전통적인 수의사’ 모습으로 참 pet 들을 잘 다룬다. 특히 Tobey는 이 수의사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모두들 웃는다. 그러니까 Tobey는 주로 여자보다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결론이다. 한번 visit에서 대강 $250 정도 charge를 예상하지만 가끔 예외가 발생하기도 했다. 올해가 그런 예외로.. 무려 2배 이상을 예상하게 되었다.

대부분 Tobey는 건강하다고 진단을 받았는데, 피부의 이상과 귀의 이상.. 모두 bacterial skin & ear  infection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귀 속에 염증과 피부의 가려움, 염증.. 어쩐지 근래에 지독히도 scratch를 하더라니.. 나는 그저 flea때문일 것이라고만 생각하였다. 현미경으로 귀의 액체 fluid sample을 보니.. bacteria가 우글우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귀를 청소, 소독하고 항생제를 맞고.. 그러니까 vaccine shot은 하나도 못하고 급한 이것부터 치료해야 하게 된 것이다. 일주일 후에 recheck을 할 때 annual vaccine shot을 맞게 되었다.

이런 저런 것을 보며 생각한다. 주위 pet을 가진 사람들에서 정들었던 식구 같은 pet들이 ‘늙거나 병들어’ 죽을 때의 모습들이다. Pet들을 거의 사람 식구들처럼 간호를 하고 슬퍼한다. 옛날에 내가 그런 사람들을 비웃었던 것 기억을 한다. 지금은 물론 그런 내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말 못하는 이런 pet들의 고통을 누가 알랴? 같이 오래 살았던 pet.. 사실 식구나 다를 것 하나도 없다, 아니 어떨 때는 사람보다 더 민감하고 자상하다. 10살을 넘은 우리 Tobey도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 하는데 (누가 먼저 갈지는 모르지만..) 생각만 해도 코가 찡~ 해진다.

What were they thinking? 2 episodes

green green grassy Ireland - sick surprise

green green grassy Ireland – sick surprise

 

¶ Irish Disaster 어떻게 이런 일이.. 그 동안 나를 괴롭히던 우려가 드디어 현실이 되었다. 이런 종류의 ‘믿기지 않는 현실화’는 근래에 꽤 있었다. 그저 이럴 때 내가 고작 되뇌는 말은 What are they thinking? 정도다. 서유럽에서 가장 ‘종교적, 보수적’인 초록색 ‘초원’의 나라, Lady of Knock성모님의 나라, 레지오 마리애 의 본고장 Ireland.. 어떻게 그들은 ‘국민투표’까지 해가며 남자끼리, 여자끼리 를 결혼 시킬 만용이 생겼을까? 그것이 fair하고 common sense인가? 그들은 St. Patrick을 완전히 잊었는가? 이제는 right is wrong, wrong is right의 세상이 되었는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악인가.. 어떻게 남자와 남자가 결혼을, 여자와 여자가 결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자식들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2명(이상)의 아버지나 2명(이상)의 엄마를 둔 자식들은 어떻게 세상을 볼 것인가? 이것은 종교적인 것을 완전히 초월한 ‘인간 자연 본능’을 완전히 거스르는 것임을 그 많은 사람들이 잊었을까? 어떻게 이런 일이.. 탄식하기 전에 나는 그저 놀라운 세상을 사는 내 신세를 탓한다.

 

¶ 몇 달 만에 마리에타 two 구역 모임에 갔다. long Holiday weekend라서 마음의 여유도 조금 생겼고, 몇 달 동안 완전히 이 ‘동네’ 모임을 잊고 살아서 조금은 가고 싶은 마음도 생긴 것이다. 더군다나 나의 ‘유일한’ 레지오 협조단원 K형제 댁에서 모이는 것이기에, 가는 마음이 조금은 더 가벼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 동안 레지오 ‘협조단원 돌봄’에서 최선을 다 못하고 있어서, 항상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도 나를 ‘두말없이’ 참석하게 하였다.

 그 동안 자주 못 보았던 반가운 형제, 자매님들, 특히 평소 가족과 떨어진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P 형제를  다시 이곳에서 보게 되어서 아주 반가웠고, 이번 부활절에 세례를 받았고 Holy Family C.C.  평일미사에서 요사이 자주 보는 K Francesco 형제도 반갑게 다시 만났다. 하지만 나중에 일찍 구역모임을 떠날 때의 나의 심정은 ‘역시’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왜 ‘또’ 내가 이곳엘 왔었는가.. 심지어, 그곳에서 도망가고 싶은 심정도 들 정도였는데..

 거의 40년 동안 ‘전혀’ 못 들어보았던 ‘심하고 원색적 vulgar, obscene 욕설과 위협적인 언사’를 바로 코 앞에서 목격을 한 후에 나는 밥맛이 완전히 떨어져서 식사도 거의 안 하고, 독한 술 몇 잔 들이키고 ‘what were they (2 guys) thinking?‘ 만 되뇌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것은 분명히 verbal violence 였고 옆에 있던 우리들은 collateral victim이 된 것이다 . 대부분 자매님들과 아이들이 있었던 그 자리에서 우리들은 맛있는 음식을 접시에 덜고 있었다가 그런 일을 어처구니 없게 목격을 한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처음에는 관련 당사자 2명의 ‘싸움’이 100% practical joke인 줄 알았지만.. 자세히 얼굴을 보니 그것이 전혀 아니었고, 그것은 완전한 threatening curse 였고,.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욕 자체라기 보다는 ‘증오에 가득 찬 언동 hateful demeanor’ 이었다. 이것이 과연 ‘사랑, 평화’의 천주교우 모임인가.. 그 동안 이 구역모임의 ‘인구의 증가’에 의한 ‘질의 변화나 진화 (or 퇴화)’를 예상 못한 것은 아니나 이것은 완전한 disaster 였다. 바로 옆 구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었다는 이야기를 전에 듣고 나는 사실 믿지를 않았지만, 이제는 조금 믿어진다.

 코 앞에서 이런 광경을 목격하며 솔직히 ‘육체적인 위협’까지 느껴질 정도여서 앞으로 장기간 이런 광경은 나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식사 전, 매일 복음 ‘성령과 평화’를 이야기 한 후에 생긴 이런 믿기지 않는 happening은 ‘아마도’ 이 sprawling group 의 ‘쉽지만은 않은’ 앞 날을 예고하는 신호가 아닐까? 아마도 이 group 은  현재 critical mass 에 도달했을지도 모르고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조금 더 현명한 선택이 필요할 것 같다. 이것은 왜 본당 공동체에 구역모임이란 것이 ‘존재’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a ‘written’ mission statement would help)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을 것 같지만.. 우선은  foreseeable future 까지 그저 잊고 살고 싶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Memorial 주말 2015

Graves at Arlington on Memorial Day.JPG
Arlington National Cemetery

¶ 2015년 Memorial weekend가 성큼 우리에게 다가왔다. 올해의 5월 마지막 월요일이 다른 해에 비해서 가장 이른 월요일이어서 휴일이 끝나고도 일주일이 지나야 6월이 된다. 이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지는 않지만 그대로 5월이 계속된다는 사실이 조금은 편안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5월 말에 있는 나의 어머님 기일과 더불어 올해는 더 의미를 갖는다고 할까. 성조기가 더 돋보이는 시기이고, 태고 적 고국의 ‘현충일’ (아직도 6월 6일일까?) 과도 겹치는 복합적인 감상에 젖는다. 한 나라를 위해서 바칠 수 있는 유일한 목숨을 바친 영혼들의 국적을 따지는 것에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나 저곳에서도 그런 ‘궁극적인 애국’을 못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 5월 초부터 시작된 약간 열대성 습한 더위가 완전히 물러가고 초가을을 연상케 하는 ‘기가 막히게, gorgeous’ 한 날씨를 맞는 휴일을 맞는 주말, 우리의 daily routine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다만 teacher들의 특권인 긴 여름방학을 맞는 새로니가 친구와 Destin, Florida로 2박 3일 여행을 가며 우리 집에 자기의 강아지 Ozzie 덩치가 큰 1살짜리,  를 맡기고 가서 조금 색다른 신경을 쓰는 일이 생겼다. 이런 일을 대비해서 철저히 계획적인 새로니는 이미 전에 예행연습을 한 바가 있어서 사실 우리 집에 3마리, (2 dogs & 1 cat)의 pet이 며칠 사는 것은 큰 문제가 없을 듯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귀찮은 일이다. 같은 town에 사는 한 식구들은 이럴 때 조금은 편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다.

 

¶ 우리들이 봉성체, home Eucharistic communion service를 하는 환자  H 자매님이 지난 화요일 ‘비상 뇌수술’을 받았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많은 병으로 고생을 하는 이 자매님.. 갑자기 반신 마비까지 왔는데, 아마도 항암치료제의 부작용으로 뇌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는 비상 진단으로 수술을 받아서 속으로 꽤나 우려가 되었고 ‘집중 화살 기도’를 며칠 동안 바치기도 했다. 그런 ‘탓’인가.. 결과가 의외였다. 신체에 마비가 온 이유가 뇌의 문제는 맞는데.. 의외로 뇌 내부가 아니고 외부였기에.. 수술이 아주 위험한 것도 아니고 비교적 간단히 끝냈다고 하는 희소식이었다. 이럴 때 우리는 다시 ‘기도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환자가 그것을 믿기에 가능한 것이다. 퇴원 한 후 그 동안 마비가 온 신체를 재활치료 하러 Rehab center에 입원을 하고 재활 치료를 시작했는데, 방문을 해 보니 H 자매, 아주 얼굴도 밝고, 기분도 좋은 듯 했다. 특히 남편을 위시한 가족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간호를 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가족 사랑의 힘을 느끼기도 했다. 원래의 병들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참고 견디면 낳거나 호전 되지 않을까 희망을 버릴 수 없다.

 

David Janssen in The Fugitive

 ¶ Series Binge! 오랜만에 TV (broadcast)를 보았다. 그 동안 가끔 보는 network morning, nightly news (주로 NBC)나 PBS Knowledge channel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떠났던 이곳에서 50년 전에 즐겨 보았던 TV series (situation drama)를 Channel 69-2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모두 1960년대 미국의 TV program들, 우리들은 물론 한국어로 dubbing된 것을 서울에서 보던 것들이다. 1960년대 서울에서 당시 미국의 TV program을 보려면 위와 같이 dubbing 된 것 (분명히 일본 업자들을 통해서 수입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서울 미군 TV 였던 AFKN을 통해서 ‘원어’로 듣고 보아야 했다. 요새 내가 여기서 다시 보는 것은 Rod SerlingThe Twilight ZoneDavid Janssen주역의 The Fugitive (도망자)인데.. 이 program들의 제목이 재미있다. Series Binge! 그러니까 당시의 연속 드라마를 ‘하루 종일’ nonstop으로 방영하는 것이다. The Fugitive는 도망자 (일본 아이들의 번역제목)로 당시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었고, The Twilight Zone은 당시에 한국 TV에서는 보여주지 않고 AFKN에서만 방영을 했다. 그러니까.. 영어 듣는 것에 문제가 있으면 이것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반세기 만에 다시 보는 이런 것들을 보면 반갑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시대는 이제 ‘완전히’ 가는구나 하는 조금은 슬픈 감정이 일기도 한다.

 

희망천사 hotdog sale 시작하며..
희망천사 hotdog sale 시작하며..

¶ 희망천사 도우미, 나는 솔직히 이런 말을 처음 들어 보았다. 희망천사가 무엇인가? 지난 주인가.. 다른 레지오 C 단장님으로부터 희망천사 도우미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 레지오에서 나까지 3명이 돕기로 하고 나갔다. 배경 설명을 간단히 들었지만 굳어진 머리로 처음에는 잘 이해를 못했다. 가서 자세히 들어보니.. 우리 순교자 성당의 장애우 N 자매가 여름camp에 가는데 특수 camp라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그것을 옆에서 돕는 것이 골자였다. 이런 사회봉사 program은 뉴스 같은 데서 보곤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 접하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N자매를 고용하고 있는 A supermarket의 특별한 배려로 hotdog sale을 해서 비용을 마련하는 것인데.. 참 현명한 방법을 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cash’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고 sales를 통한 스스로의 도움..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가? 비록 덜 한가한 금요일 오전 시간이었지만 몇 명의 열심한 ‘예쁜’ 자매님들의 ‘미인계’로 오전 목표액은 달성했으리라 추측을 하며 shift를 인계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나는 별로 한 것은 없었어도, 그런 광경을 코앞에서 보는 것으로 흐뭇하고 시원한 holiday weekend 시작을 맞게 되었다.

 

희망의 천사 hotdog sale 첫 customers

희망의 천사 hotdog sale 첫 customers

 

rogue nation, fake nation

Korea: rogue & fake.. 어쩌다 나를 낳아준 조국이 국제 양아치, 깡패 아니면 겉치레, 허구, 허상, 성형의 나라로 불리게 되었나? ‘양코배기’ 식민주의를 원숭이처럼 닮으려던 ‘원숭이 쪽발이’ 천황 군국주의 일본과 그 보다 더 무서운 소비에트 스탈린의 빨갱이 공산주의의 ‘완전한’ 희생물이 되었던 불쌍한 ‘대한 제국’, 두 동강이 나고  70년 후.. 한쪽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거지, 양아치, 고아, 깡패’ rogue nation 국가로 전락하고.. 다른 쪽은: ‘남들에게 보이는 것만이 유일한 가치요, 진리’라는 희한한 종교, 철학을 신봉하는 나라 fake nation 으로 전락..  도대체 내가 고향을 떠난 수십 년 후 무슨 일들이 그곳에선 있었던 것일까?

나의 이런 판단은 물론 극단적 중의 극단에 속한다. 하지만 이 극단도 사실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 당혹스럽기만 하다. 40년 넘게 떠나온 조국을 나는 ‘너무나 잊고 싶어서’ 사실 잘 알지 못한다. 박정희 유신 체제가 들어설 때부터 나에게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현장감이 사라지고 그저 ‘밖에서, 멀리서’ 바라보는 정도의 방관자적인 의견만 명맥을 유지하였다. 망향이나 향수적인 것에만 치중하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현실적인 것, 사실적인 것.. 나에게는 멀게만 보이고 느껴지던 것들이었다.

그래도 그래도 각종 역경을 이기고 어렵사리 ‘민주주의’란 것의 뿌리를 내린 것과 경제적으로 부유해 진 것은 누가 보아도 대견하다. 문제는 그것에 비해서 너무나 다른 것들이 희생을 한 것이 아닌가..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하는 풍조, 못 사는 사람을 무시하는 풍조,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풍조, 소리만 크게 내면 이긴다는 풍조..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들 중의 대표적인 것, 언제나 없어질까.. 꿈에서나 없어질 것이다.

30 seconds with Pope Francis

Pope Francis coming to America?

Pope Francis coming to America?

우연히 미국 예수회 America magazine website에서 ‘교황 프란치스코를 30초간 볼 기회가 있다면..’ 이라는 주제의 Youtube 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기에 이런 street interview를 한 것인가 의아 했지만 곧 의문이 풀렸다. 올해 9월 미국을 방문하는 교황에 대한 것이었다.

 

America Media asks:
“If you had 30 seconds with Pope Francis, what would you say?”

May 13 2015 – 10:19am

 

가톨릭 신자로서 교황의 위치와 의미는 잘 알려진 것이지만, 교황도 ‘겸손한’ 인간이기에 각 재위 교황마다 한결같이 다른 굴곡1 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내가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교황들은 주로 John Paul II (요한 바오로 2세) 로 부터 시작이 되었고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오랜 냉담 시절에는 교황의 위치를 하찮게 보기도 했었는데 나는 그 이후 그런 나의 ‘바보 같은’ 경솔함을 정말 후회하고 있다.

2년 전인가.. 당시 교황 Pope Benedict XI (베네딕트 16세) 이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며 퇴임하고 급작스레 선출 된 분이 현 교황 Francis (프란치스코)인데 최초로 남미출신(Argentina)인데다가 교황청과는 outsider 에 속해서 어떻게 재위를 할지 미지수였다. 전임 교황들, 요한 바오로 2세 같은 분의 뒤를 이으며 그분들이 닦아 놓은 업적을 유지, 계승, 향상 시키려면 그분의 어깨는 정말 무거웠으리라. 그 후의 경과, 결과는 어떤가?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 요한 바오로 2세를 능가하는 인기와 명성을 구가하게 된 것이다. 전임 같은 ‘두뇌’ 보다는 ‘인정, 솔직’함으로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은 의심 많은 초현대의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비 신자들을 매료한다. 그러한 인기를 잘 활용해서 드디어 세계 정치에도 서서히 관여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누가 뭐래도 변화 무쌍한 인류 가치관에 그는 변함없는 진리, 그리스도 가치관을 너무나 부드럽게 포용시킨다.

용감하게 유럽을 no longer fertile and vibrant, weary and becoming irrelevant 라고 가차없이 질타하고, 의혹 많기로 유명한 바티칸의 ‘재정비밀’을 투명하게 만드는 노력을 하는가 하면, 가톨릭 교리를 ‘요지부동’의 인상 보다는 ‘자비’를 강조하는 묘기도 보인다. 예수님의 기본 철학, ‘부자보다는 가난함을 사랑하는’ 실천적으로 가르치기도 하는데, 이런 모든 것들 소위 말하는 populism으로 보일 정도가 되었다. ‘부자 사제’는 척결하고 본인은 ‘소형차, 시민 아파트’를 택했다. 이런 배경으로 그의 agenda를 밀어 부치는 교황, 어떨까.. 퇴임 시에는 아마도 요한 바오로 2세의 인기를 능가하지 않을까?

이런 배경으로, 작년에 아틀란타 대주교에도 불똥이 튀겨, ‘공짜로 받은’ 주교관 mansion을 반납해야 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일반 신도들이 대담하게 교황의 모범을 무기로 항의를 했던 것이다. 어떨까.. 이런 와중에 한국출신 교포사목 동남부 사제단인가 (아틀란타 순교자성당, 김대건 성당도 포함) 하는 곳에서는 작년에 멕시코의 칸쿤 Cancun 에서 사제단 회의를 하였다. 그것도 자랑스럽게 말씀하던 신부님.. 속으로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왜 하필 세속사회의 상징인 멕시코 관광도시 칸쿤에서 비싸게 모여야 했을까? 누군가 설명을 해 주면 어떨까? 그들의 최고 통수권자 교황님의 행적을 그들은 전혀 몰랐던가, 무시했던가?

이 교황을 보려면 제일 직접적인 방법인 바티칸을 가야하고 그곳에서도 사실 가까이 보는 것은 운이 좋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 중에 이번 9월에 미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혹시.. 우리도 그곳에 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 실험’을 하게 되었다. 크게 무리는 아닐 듯..  World Meeting of Families convention을 계기로 Philadelphia 대회에 참석하고, Washington DC, White House, Congress, New York을 방문 하다고 하니 교황을 비교적 가까이 보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내가 교황과 30초간 함께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 이런 질문이 이제 100% 공상이 아닌 것이다.

  1. 현대 한국어에서 이런 말을 아직도 쓰는지..

C. S. Lewis, Mere Christi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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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Lewis.. Clive Staples Lewis or Jack Lewis.. 불과 1년 전만 해도 내 관심의 radar ‘위’에는 없었던 이름이었지만 사실은 ‘radar의 밑’ 에서 전부터 분명히 있었던 이름이다. 2005년에 나온 children’s fantasy movie였고 우리들이 ‘아이들’ 에게 ‘억지로 끌려가서’ 보았던 big screen blockbuster move.. 바로 The Chronicle of Narnia1, 의 첫 편,  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 가 C. S. Lewis의 1950년대 초 작품이었던 것.. 이 영화를 볼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이 C. S. Lewis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었다. 그저.. ‘영국계통’의 ‘영감, 꼰대2 같이 생긴 영문학 교수, 문필, 소설가’ 정도로만 알고 지나갔었다. 이 영화를 같이 볼 당시, 큰 딸 새로니의 설명에 의하면 학교 elementary school  다닐 당시 이 책은 ‘필독’의 대상이었다고 했는데 나의 귀에 남았던 것은  ‘아마도 이 책의 발상은 기독교 성경이 아닐까’ 하는 뜻밖의 말이었다. 그 예로 lion king이었던 Aslan이 예수의 전형 model이었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 전부였다, 최소한 그 당시에는..

그 후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 우습게도 나도 ‘꼰대’가 된 이 시점에서, 이 ‘꼰대, 영감’에게 완전히 매료가 된 상태가 되었다. 그런 이유 중에 제일 돋보이는 것이 바로 그의 1950년대의 classic , Mere Christianity라고 할 수 있다. 그는 Oxford 대학의 대표적 영문학교수였지만 그의 관심은 이것을 뛰어넘어 (Christian) apologetics 에 후대에 더 그의 명성을 날리게 하는 영향력 있는 글을 남겼다. 쉽게 말하면… 좀 ‘배운 사람’에게 종교 (주로 그리스도교)를 알리는데 논리적으로 설명하는데 타의 주종을 불허하는 설득력을 가진 그 자신이 지식인 중의 지식인인 그런 사람이랄까.. 다른 말로.. 대부분 전통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안 믿어지면 ‘무조건 믿어라’ 라는 식의 전교를 큰 효과가 없으니까, 그들의 수준에 맞게 ‘논리, 이성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 그것이 그가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의 apologetics에 남긴 빛나는 유산인 것이다.

  1. C. S. Lewis가 1949년부터 1954년 까지 발표한 children’s fantasy series: 41가지 언어로 전 세계적으로 1억을 넘는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저자의 가장 인기 있던 작품
  2. 아주 옛날에 유행하던 비어, 그저 별볼일 없이 보이는 영감탱이를 뜻했다.

Mother’s Day at the Garden

어제는 모처럼 우리 4식구가 함께 일주일 늦은 Mother’s Day를 조금은 특별한 곳에서 보냈다. 이제는 머리들이 다 커 질대로 커진 두 딸, 생각보다 바쁜 생활 일정에 정신 없이 ‘삶’을 사는 그 애들.. 어릴 때 퇴근 후에 집에 오면 그 애들을 침대 위에서 번쩍 들어서 ‘flying!’을 외치며 내 던지던 때가 조금 과장해서 엊그제 같은데.. 어릴 때부터 holiday나 Mother, Father day를 귀찮을 정도로 챙기던 애들.. 이제는 그런 good ole days 순진하고 포근했던 시절은 다 간 모양이다. 그런 애들.. 너무나 바빠서 올해는 제대로 제 날짜에 Mother’s Day 를 못 챙기고 지냈지만 그래도 일주일 연기해서 모인 것이다.

pretty but moderate home-made lunch
pretty but moderate home-made lunch

몇 년 전부터는 집에 모여서 특별한 음식을 자기들끼리 준비, 요리해서 먹곤 feast 했는데, 올해는 먹는 것만은 재미가 없다고 해서 나라니의 idea로 Atlanta Botanical Garden: the Garden 을 구경하고 Garden근처에 있는 새로니 midtown condo에 가서 음식을 준비해서 먹게 되었다. 2009년 경에 우리는 그곳 the Garden 에 갈 기회가 있어서 사실 그곳은 생소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 때는 저녁때 잠깐 본 정도라 기억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지만 이번에는 낮에 제대로 보게 되었고 시간이 충분해서 아주 찬찬히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볼 것은 많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것 중에는: Canopy Walk, Earth Goddess statue, Fuqua Conservatory & Orchid Center, 그리고 특별 전시 중인 Bruce Munro의 cool light show 가 있다. Canopy Walk, 이것은 Garden forest의 skywalk 라고나 할까.. 숲 위의 고가 보행로인데 이곳을 걸으며 Garden 숲 전체를 ‘하늘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 Canopy Walk는 몇 년 전 공사 중에 대형사고(structure collapsing)가 나서 수 명이 사망했던 뉴스로 본 기억이 있었다. 그만큼 이것은 Garden전체에서 중요한 attraction이 되었는데, 사실 느낌은 전체 거리가 짧다는 것이고 ‘고가 도로’라고 하지만 그렇게 ‘고가’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 그것에 비해서 structure 자체는 아주 정교하고 세련된 것이었다

비록 일주일 늦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바쁜 와중에 이렇게 저희들끼리 경제적으로 기억에 남는 날을 만들어 준 것 우리는 감사하게 느꼈고, 이런 날들이 앞으로 얼마나 우리들에게 남았을까를 생각하니 한시 한시가 귀중하고 기억과 추억에 남기고 싶은 순간들임을 절감하게 되기도 한 멋진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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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Munro light art

아틀란타 성모의 밤 2015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2015년 성모의 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2015년 성모의 밤

 

Scan10139-15월의 절반이 지나가며, 나를 낳아준 조국,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원조’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하게 하는 오일육 군사혁명 기념일, 5.16 도 지나가는 이 시점에서 나는 다시 예수님의 어머니 Jesus’ Mother, ‘하느님의 어머니 Mother of God‘,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Immaculate Mary를 생각하는 날들을 맞는다. 5월 달 전체가 사실 성모 마리아를 기리는 달이고 그 중에서도 성모의 밤은 그 절정에 해당한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나의 ‘한국어’ 본당 도라빌 소재 순교자 성당에서 2015년 성모의 밤이 ‘신선하고, 뜻 깊게’ 열렸고, 우리도 참가를 하여 ‘humanity’s 어머니 마리아’를 기렸다.

이 행사에 내가 참가하기 시작한 것은 레지오 입단 다음 해인 2012년 부터 였으니까.. 4년 째 가 되어가나.. 처음에는 익숙지 않아서 약간의 거부감도 없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나는 이 행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성모 마리아의 가톨릭에서의 위치를 알려면 가톨릭 ‘마리아 4대 교의’를 상기하기도 하지만 그런 ‘무거운’ 것이 이날에 그렇게 중요할까.. ‘어머니의 자애’.. 하나만 생각하며 모든 생각이 필요가 없지 않을까?

올해 ‘성모의 밤’ 행사 자체도 예년과 ‘아주’ 다르게 ‘정중함’이 풍기는 완전한 절차 임도 알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이제까지 내가 겪었던 것들은 모두 레지오 마리애 주최의 ‘약식’ 행사였었다. 하지만, 올해는 새로 부임한 ‘신입 보좌신부’ (정말 ‘어리게 보이는’) 와 전례부가 합작을 해서 ‘정식’으로 승격을 시켰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도 되었다. 왜 갑자기 ‘약식 전통’을 바꾸었을까?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주임신부의 이임과 상관이 있었을지 않았을까.. 나의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임 신부님의 ‘마리아 신심’은 우리들의 기대에 ‘항상’ 못 미치기에 새로 부임한 ‘이 요한’ 주임신부의 그것은 어떨까 궁금하기만 하다.

 

 

언제나 웃으시는 마리아

 

제 사랑이 풍요로워 지도록

당신의 웃음을 곁들여 주십시오.

 

당신의 웃음을 닮아

저도 맑은 웃음을 웃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려는 저를 도와주시어

당신처럼 웃음 띤 얼굴로

기쁘게 주님을 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걱정과 고뇌를 잊고

이웃과 기쁨을 함께 나누게 해주십시오.

 

밝게 웃는 얼굴로 이웃에게 다가가

친절과 위로를 나눠주게 해주십시오.

 

제 웃음에 비웃음이 섞이지 않고

언제나 성실하고도 참된 호의로

가득 채워 주시고

괴로울 때에도

웃음 짓은 것을 잃지 않게 해주십시오.

 

이웃을 사랑하는 기쁨을

마음 깊이 보존하게 해주시고

이 기쁨이 언제나 웃음으로 피어나게 해주십시오.

 

생각과 감정이 다를 지라도

언제나 웃음 띤 얼굴로 대하게 해주십시오.

 

호의를 가득 담은 얼굴로

이웃을 하느님께 이끄는데

저도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게 해주십시오.

 

< J. 갈로 >

5월 16일, 2015년..

무언가 쓰고 싶고, 남기고 싶은 조금은 우울한 듯한 마음을 달래려 pen을 다시 잡는다. 잔잔한 강박감에 밀려 쓰는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 쓰고 나면 조금은 기분이 솟는 듯 하다. 오일육, 5월 16일, 2015년.. 박정희의 얼굴이 보이고 당시의 서울 장안 냄새와 모습이 느껴지고 보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나는 과연 무엇일까? 나는 누구일까?

나의 정체성, identity는 과연 무엇인가? 이경우란 인간은 어디에 소속이 된 생명체일까? 왜 나는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일까?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닌 듯 한 심정은 왜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나를 당혹하게 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들이 나를 지독히도 우울하게 한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 중에는 ‘서울, 대한민국, 우리 누나네 식구들, 나의 죽마고우’들과 다시 맞대면 하는 것이다. 성모님이 나를 진흙탕 골에서 이끌어 주시는 모습을 나는 자주 그려왔다. 나의 손목을 잡으시고 구덩이 속에서 이끄시는 성모님의 옷이 진흙탕에 묻어서 더러워졌음도 나는 그린다. 조금은 서광이 비치는 듯한 나의 머리 위에는 다른 ‘고통’이 보인다.. 그것이 바로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바위인 것이다. 진흙탕 구렁텅이가 아니고 거대한 높은 바위.. 언젠가는 그곳을 넘어야 한다는 압력.. 거의 일생의 전부를 피하며 살아왔던 그곳..이 바로 나의 조국 대한민국인 것이다. 모순중의 모순.. 그렇게 몽매 그리워하는 곳을 나는 피하고 무서워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고향이 ‘아주’ 없어졌을 것이라는 확신이 나를 정말 우울하게 한다. 통근하듯 고국 행 비행기를 자주 타는 주위의 인간들.. 모두 부럽다 못해 밉기까지 한 사람들이다. 꿈속에서 가끔 보는 ‘상상의 나라’ 나의 없어진 고향을 나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일까? 나의 ‘위치’를 과연 어디에 맞추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어떻게 나의 ‘정체성’을 정리해야 하는가? 나의 어머니를 어찌 다시 뵐 것인가? 멀어지기만 한 누나의 가족들은.. 나를 완전히 잊었을 듯한 친구들은.. 그들이 ‘잘 사는’ 모습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것이 나를 기다리는 다음의 monster일까? 성모님이 어떻게 나로 하여금 그 ‘거대한 바위’를 넘게 하실 것인가? 성모님이시여.. 저를 위해 빌어주소서..

아틀란타 성체대회: a p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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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behold, I am with you always, until the end of the age.” (Matthew 28:20)

 

“(보라, 세상이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오 28:20) 위와 같은 올해의 thematic verse를 배경으로, 아틀란타 대교구 주관 2015년 미국 동남부 성체대회 Eucharistic Congress 가 6월 초(6월 5일, 6일)로 다가왔다. 나에게 일년이란 세월이 67마일의 속도로 느껴짐은 작년 성체대회의 기억을 더듬으면 알 수 있다. ‘엊그제’ 같은 느낌이니까..

올해 성체대회의 theme은 ‘I will be with you always‘.. 마태오 Matthew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until the end of age.. ‘세상이 끝날 때가지’ 가 생략된 비교적 귀에 익은 표현이다. 하지만 조금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나에게는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예수님이 항상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라는 ‘하느님의 의지’.. 이 말씀이야 말로 ‘복음 중의 복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로 어느덧 20주년을 맞게 되어서 누가 보아도 이제 이 연례 대회는 완전히 자리를 굳건히 잡은 듯 하다. 아틀란타가 1996년 올림픽을 주최하며 호경기와 급성장을 예상하던 때, 당시의 선견지명을 가진 Francis Donohue 대주교님의 용단으로 조촐하게 시작 되었지만, 급팽창하는 대교구를 함께 모이게 하고 ‘성소 난’에 봉착한 교회에 돌파구를 제시하는 뚜렷한 목적을 유지하며 건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한때 재정난 (eg. subprime mortgage crisis, housing bubble)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대교구 여론의 도움이었던가, 난관을 극복하고 예전의 열기를 그대로 간직한 모습으로 건강한 장래를 내다 보게 되었다.

우리가 이곳에 참가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5년 밖에 되지 않지만, 이것도 우리에게는 ‘금자탑’에 속한다. 예상 밖으로 우리에게 이 행사는 큰 은총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의 3만 명이 ‘운집’하는 이곳엘 가면 ‘천주교’가 절대로 ‘소수 종교, 방어적 종교’라는 의심을 말끔히 씻어 버릴 수 있다. 성체 신심이라는 말조차 생소하게 들리던 나에게 이런 대회는 ‘모조리 배울 것 투성이’ 인 기회라서 ‘절대로 참가하자’라는 결심을 하였기에 ‘죽을 정도로 아프지’ 않은 한 이 날을 달력에서 비워 두고 산다.

작년까지는 ‘두말 없이’ 우리의 한국본당 순교자 성당에 ‘묻어서’ 참가하는 것이 ‘규칙’이었지만, 올해부터는 ‘예외’로 바꾸어서.. 단체 행동에서 벗어나 우리들 만의 ‘개인 참가’ 하기로 하였다. 교통편 때문에 가급적 성당 car-pooling이나 bus를 타면 좋겠지만 그것이 실제로 문제가 없지 않았다. 아침에 가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올 때가 문제임을 작년에 bus가 ‘예고도 없이’ 끊어진 바람에 당황한 기억으로 Never Again! 을 되 뇌이며 ‘우리 차’로 자유롭게 가기로 한 것이다. 대부분 교우들이 성체대회의 절정인 closing vigil mass를 기다리지 않고 ‘점심을 먹은 후’ 일찌감치 돌아가는 것이 문제였다. 올해부터는 우리에게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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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congress program을 언뜻 들여다 보니.. 작년과 같은 Hollywood celebrity 급 keynote speaker는 보이질 않는다. 생각하면 이것이 ‘정상’일 듯 하다. 성체대회가 무슨 show나 entertainment는 아니니까.. 하지만.. Not so fast! 다른 의미의 celebrity급 speaker의 모습과 이름이 보였다. 바로.. Father Robert ‘Bob’ Barron!  우아~~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 Hollywood star급 보다 brainy하고, 현재 미국 가톨릭 계의  ‘급상승’하는 56세 신부님, 바로 Father Barron이 오는 것이다.

월남 신자들은 규모가 커서 자기들 만의 모임이 있지만 우리들은 어차피 English Track에 속한다. 그러니까.. 언어에 상관없이 ‘영어권’의 인물들에 익숙해야 하는데.. 얼마나 많은 한국어 신자들이 이 keynote speaker들을 알고 있을까? 결국은 부지런히 ‘예습’을 하는 수 밖에 없다. 다른 speaker 중에는 Teresa Tomeo, Kerri Caviesel이 포함되어 있는데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Father Barron처럼 익숙한 이름은 아닐 듯 하다. 그래서 올해는 집중적으로 Father Robert Barron에게 관심을 두고 지켜보기로 했다.

Robert ‘Bob’ Barron, 1959 년 시카고 출생 (56세), 시카고 대교구 신부님, Mundelein 신학교 총장, author, scholar and Catholic evangelist.. 나이에 비해서 화려한 직함을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가톨릭 신학대가 Thomas Aquinas 토마스 아퀴나스 에 매료되었고 결국 1986년에 신부 서품을 받았다.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Washington DC)에서 Master 학위를 받았고, 1992년에는 프랑스 파리의 Institut Catholique de Paris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외국어로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라틴어에 능통하다고 한다. 얼마 전에 암으로 서거한 시카고 프란시스 조지 추기경은 그를 one of the Church’s best messengers라고 했듯이 그는  초현대 디지탈 미디어를 이용한 많은 저서, video, website, blog, newsletter, podcasts등을 발행하고 있고, 전 세계를 순회하며 인기 있는 강연, 강의를 하고 세속적인 media를 적극적으로 포용하여 가톨릭 교리, 핵심을 전파하고 있다. 그 중에서 2011년에 출시된 10 편 documentary series:  The Catholicism Project 는 미국을 위시한 16 개국 대중적 TV를 통해서 방영이 되었다. 그의 TV program은 1950년대의 Fulton Sheen 대주교 이후에 처음으로 ‘상업적 TV’에서 방영이 된 case가 된다고 한다.

이런 그의 resume를 떠나서, 나는 이 ‘젊고 handsome’하고 머리 좋은 신부님을 언제쯤 알았던가? 아마도 위에 언급된 TV program, Catholicism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program을 본 적이 없다. 얘기만 들었을 뿐이다. DVD를 사기에는 비싼 것들이기도 했고, 그 것이 나올 당시만 해도 나는 별로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Keynote Speaker: Father Robert Barron

Keynote Speaker: Father Robert Barron

그러다가 그의 website: Word On Fire 를 정기적으로 subscribe하면서 그를 거의 정기적으로 접하게 되었고 크리스마스나 사순절 쯤이면 그의 newsletter를 받아 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최소한 그의 style은 조금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그를 ‘가까이서’ 본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Postscript: May 30, 2015

Never Mind!  오늘 성체대회 website를 우연히 보니.. 이것이 웬일인가? Keynote Speakers 명단에서 Father Robert Barron 이름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완전한 disaster.. 하도 실망을 해서 이곳엘 갈까 말까 생각을 할 정도다. 하기는.. 올해의 여러 가지 느낌이.. 20년 주년 기념적인 이 성체대회에 김이 빠진 듯 한 그런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실망.. 실망..

Mother’s Day 2015

창고처럼 겨울을 난 back porch, 청소 뒤, 때 빼고 광낸 모습..

창고처럼 겨울을 난 back porch, 청소 뒤, 때 빼고 광낸 모습..

 

¶  뜨겁고, 피곤한 big cleanup:  이틀 간 집안 대 청소를 하며 먼지를 꽤나 많이 먹었다. 아마도 몇 년 동안 쌓였던 먼지일 것이다. 또한 무겁기만 한 stuff들을 옮기며 생긴 심한 근육통과 육체적, 정신적인 피로감이, 느닷없이 갑자기 찾아온 early heat-wave와 겹쳐서 나를 더 쳐지게 만든다. Mother’s Day 아침, 며칠 째, 거의 90도에 가까운 ‘고열’로 모든 것들이 따끈하게 달구어 진 느낌이고 이번의 더위는 5월 특유의 dry heat가 아니고 조금은 습한 더위라서 밤에도 더웠다. 처음에는 창문을 그냥 열어놓고 견딜까 했지만 그것이 아니다. 낮에 너무나 근육을 쓰는 일을 했던지 나의 몸이 빨리 식지를 않는 것이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이렇게 일찍 a/c(air conditioner)를 가동했는지.. 우리의 ‘고물, clunker’ 수명을 넘긴 듯한 a/c, 올해도 수고를 많이 해 주어야 하는데.. 과연 올해를 넘길지 궁금하다. 이것은 capital spending에 가까운 ‘거액’을 요구할 터인데.. 이래 저래 ‘피곤하다…’

 

¶  어버이날과 어머니날:  어머니 날.. 나는 어떤 어머니를 생각해야 하나… 나의 어머니, 우리 집 아이들의 어머니, 주변에서 돌아가신 어머니.. 살아계신 어머니.. 오늘 어머니 날 주일 미사에서 ‘이태리 유학’ 하 신부님, 몇 년째 미국사목에도 불구하고 heavy accent로 ‘머더스 데이’를 말하신다. 한국식 ‘어버이’날에 익숙하신지 아버지까지 함께 언급을 하시지만 이곳에는 따로 아버지 날이 있는지 알고 계신지 궁금하다. 비록 부모님을 함께 기리는 ‘어버이 날’의 의도는 좋았을지는 몰라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고유한 차이를 무시한 것 같은 ‘어버이 날’ 은 아직까지 생각해도 별로 좋은 idea가 아닌 듯 싶다. 항상 머리 속에 있는 것 같은 우리 어머님을 다시 깊이 생각해 보니, 불현듯 다시 보고 싶다. 비록 하늘나라엘 가면 볼 수는 있을 터이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 옆에서 보고 싶은 것이다. 어머님을 제대로 떠나 보내지 못한 후회와 슬픔은 분명히 나의 남은 여생에서 십자가일진대 어떻게 그런 사치스런 바램을 논할 수 있을까. 그저 그저 사랑합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 저를 용서하세요.. 라는 넋두리만 내 입가에서 맴돈다.

 

우리시절의 ‘어머님 은혜‘, 1950년대 동요

 

¶ P 베로니카 아드님들:  오늘 여름 같은 Mother’s Day에 지난 주에 돌아가시고 장례미사를 치른 P 베로니카 자매.. 그 자매님의 두 ‘미혼’ 아들이 ‘감사와 인사’를 하러 난생 처음 순교자 성당에서 미사에 우리와 같이 ‘참여’를 하였다. 분명히 우리 옆에서 미사에 동참을 했지만, 어리둥절하고 확실히 무슨 뜻의 미사인지는 잘 몰랐을 것이다. 그래도 열심히 주위를 따라 일어났다 앉았다.. 심지어는 무릎을 꿇는 등 최선을 보여 주었다. 아마도 아무도 그들이 성당에 처음 나온 사람들인 것을 몰랐을 것이다. 작년 이즈음에는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며칠 전에는 어머니까지 떠나 보낸 후, 처음 어머니 날을 맞는 그들 두 형제를 보니 가슴이 메이지는 슬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미사가 끝나고 나서 마침 우리가 속한 마리에타 2구역이 마련한 ‘맛 있는’ 미역국 점심을 하며 생소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대로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는 등 coming out같은 느낌의 시간을 보냈는데, 우리의 바램은 큰 형이 언젠가 우리 가톨릭 공동체에 합류해서 신앙의 눈을 뜨는 것인데, 쉽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레지오의 정신, 성모님의 도움으로 불가능한 것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