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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의 어둠 속을 상아빛의 커다란 쟈가 한 대가 곶 모서리의 맨 끝에까지 질주해 온다. 쟈가는 밤바다를 향해 오른 쪽으로 폭포수처럼 갑자기 급경사를 이루며 깎아지른 가닥 길로 들어선, 곶 남쪽에 겨드랑 밑처럼 숨겨져 있는 미미나시 만으로 향하였다. 쟈가는 아리프렉스 16밀리를 싣고 있다. 차도 촬영기도, 누구나가 J라고 부르고 있는 스물 아홉 살 먹은 청년의 것이다. J, 그의 아내, 쟈가를 운전하고 있는 J의 누이동생, 중년사내인 싱어, 이렇게 일곱 명이 쟈가를 타고, J의 별장으로 가는 길이다. J의 아내가 제작하고 있는 단편영화의 몇 가지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

재즈 싱어 아가씨는 완전히 알몸뚱이로 발가벗고 있다. 그녀는 취해서 노래를 하고 있다. 모두가 그녀의 노래를 주의 깊게 듣고 있지 않고 있어, 자기는 이 쟈가 속의 누구에게서나 경멸 당하고 있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며 언젠가 꽤나 호평을 받은 일이 있었던 노골적인 얘기를 다시 한번 꺼내보려고 한다. 도오쿄로부터 네 시간, 차로 오고 있는 동안, 운전하고 있는 J의 누이동생을 제외하곤 전원이 시종 위스키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 열여덟 살 먹은 가수가, 맨 먼저 이 한 패거리의 취객 전렬로부터 혼자서만 유독 앞으로 내빼기 시작한 거였다. 그것은 언제나 매한가지였다. 그녀는 자제심이 부족했다.

“내가 정치가들 모임에 일하러 갔을 때였어. 내가 쓰는 대기실 속엔 화장도 안 한 열여섯 살 먹은 애가, 탁구공과 파아란 비닐옷을 무릎에 놓고 앉아 있는 거였어. 그래서 우린 금방 친해진 거지. 제 차례가 되는데도 그 아이는 화장을 않더군. 그냥 발가벗을 뿐이야. 그리고, 그 파아란 비닐 슬리핑 백 같은 옷에 머리로부터 기어들어가서는, 나더러 등의 아랫부분에만 붙어 있는 쟈크를 밀어 올리게 했어. 그러고 보니까 그 파아란 옷은 개구리 의상이야. 몸뚱이째 몽땅 들어가서는, 가랑이만이 생선 주둥이 마냥 뽕 뚫려 있어. 정치가들은 그 여자아이의 성기인 파아란 개구리를 보는 셈이지. 근데 말이지, 탁구공을 그 몸뚱이 속에 넣고 있어서, 그게 춤을 출 때마다 구굴, 구굴, 개구리처럼 울고 있는 거야!”

나머지 여섯이 우울한 목소리로 시큰둥하게 웃었다. 만일 여기서 웃지 않으면, 가수가 또 울면서 한 바탕 지랄을 벌이는 걸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웃자, 신이 난 가수는 “그 아이의 개구리 춤 기술이라는 게, 보통을 훨씬 넘어. 정말 기막힌 기술이야”하곤 자랑스럽게 한 번 둘러보며, 한껏 서스펜스를 내려고 하였다.

“파티에 나온 정치가들은, 기술을 본 게 아니야. 열여섯 살 먹은 계집아이가 어느 만큼 심장에 철판을 깔았는지, 그걸 본 거지” 하고, 운전하고 있는 누이동생 곁에 아내와 나란히 앉아 있던 J가 말했다. “어떤 종류의 외설스런 쇼라도, 그 점은 변함이 없어. 기술을 보이고, 그 대신에 창피한 자기 육체는 투명하게 한다는. 그렇게는 되지가 않지. 관객이 보고 싶은 건, 창피를 모르는 육체 그 자체, 창피 그 자체니까!”

열여덟 살 먹은 재즈 싱어는 실망하고 속이 상해서 쿨쩍거리기 시작했다. J와 그 가수가 성관계를 맺고 있다는 건 J의 아내를 포함해서 누구나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점점 더 열여덟 살 먹은 계집아이는 울적한 듯이 발가벗은 어깨를 떨기까지 하면서 울었다. 만일 그게 차 속이 아니라면, 그녀는 칼이거나 깨어진 병을 갖고, 공포에 들린 고양이처럼 지랄을 했을 것이다.

“왜 또 그러는 거야. 그렇잖아도 어둠 속에 길까지 배배 꼬여 있는데 조금 조용히 해줄 수 없겠어? 움막에 닿기도 전에 죽고 싶어? 당신들 영화를 완성시키지도 못하고” 하고, 운전을 하면서 누이동생은 그녀를 나무랐다. 그녀는 자기 오빠가, 기묘하게 심리관계가 얽힌 짖궂은 장난을 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던 거였다.

그리하여 J의 누이동생과 우는 계집아이 이외에는 모두가 약간씩 싱얼싱얼 웃으며 입을 다물고, 술을 마시면서, 차의 엔진소리와 자기 내부의 소리만을 들었다. 왜 그렇게 웃고 있는지는 누구 하나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입을 다물 때는, 여유라도 있는 듯이 미소를 머금었다. 쟈가는 언덕을 내려가서, 포구 오른 쪽 날개로 들어가, 다시 왼쪽 날개를 향해 미미나시 마을의 좁은 돌길을 천천히 갔다.

“창을 닫아주지 않겠어? 썩은 생선과 그 그물 냄새가 싫어. 모두 아무렇지도 않나 봐?” 하고 J의 누이동생이 말했다.

나머지 사람 가운데 누군가 두 사람이 창을 닫았다.

“이렇게 조심조심 달려도, 내일 아침에 보면 몇 군데 긁힌 곳이 나올 거야.” 하고 J의 누이동생은, 오빠를 보고 한숨 쉬듯이 말했다.

돌이 깔린 길을 달리는 차는, 바닷물이 들어와 있는 좁은 수로를 이따금씩 건넜다. 길은 포구 바로 안쪽에 넉넉하게 구부리며 싸안은 마을의 양 가생이를 잇고 있다. 길 양쪽의 집들은, 죽은 코끼리 행렬과도 같다. 짙은 회색으로 그 자체의 내부를 향해 완전히 닫혀진 듯한 인상의 가옥군. 불빛은 수로 저편의 바다 쪽으로부터 아스라하게 이르러 오고 있다. 정박하고 있는 고깃배의 표시 불빛이다. 가옥군은 어둠 속에 있었다.

쟈가는 얌전한 바닷소리보다도 더 은밀한 소리를 내며 서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현듯, 돌층계 앞쪽의 사람들 한 떼거리를 헤드라이트가 잡았다. 운전하고 있는 아가씨가 브레이크를 밟는다. 시트에서 술병이 굴러 떨어지며 소리를 낸다. 열여덟 살 먹은 가수는 울다가 말고 욕지거리를 하려고 들다가, 끝내는 입을 다문다. 쟈가 속의 모든 사람이 호기심에 끌려 헤드라이트에 내비친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돌연, 강한 빛 속에서 소경이 된 들쥐들처럼 우물거리고 있는 서른 명 가량의 어민들, 주로 여자들이다. 몇 명의 노인들과 아이들이 그 속에 섞여 있다. 여자들은 모두가 아이누 인처럼 짙고 어두운 색깔의 두꺼운 무명옷을 입고 있고, 누구나가 비슷한 나이로 중년처럼 보인다. 앙양되고 짜증스럽고 속이 상한 중년 여인의 집단. 라이트는 사람의 얼굴을 보기 흉하게, 동물적으로, 왜소하게 보이게 한다. 사람들은 돌 깔린 길을 가득히 메운 채 한 집 앞에 웅성거리고 있다. 지금은 그 누구나 의 얼굴이 쟈가 쪽을 돌아보고 있는데 바로 조금 전까지는 그 눈들이 바로 그 집을 보고 있었다는 게 확실히 느껴진다.

“게이꼬를 숨겨. 좌석 앞에 엎드리게 해서 윗도리를 머리로부터 덮어씌워!” 하고 J의 누이동생이 말했다.

사와 게이꼬라는 게 재즈 싱어의 이름이다. 게이꼬는 얌전하게 시키는 대로 따랐다. 앞 시트 등에다 옆구리와 허리를 찰싹 붙인 채 무릎을 꿇은 그 벌거벗은 작은 몸뚱이가 윗도리나 스커트 따위로 덮여진다. 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때 넘어지지 않도록, 뒷좌석의 나머지 세 사람이 그 무릎으로 사와 게이꼬를 떠받들고 있다. 쟈가는 엉금엉금 사람들 쪽으로 기어간다. J의 누이동생이 겁먹은 소리이긴 할망정, 그러나 단호하게 오빠를 제지하며, “안 돼요. 그런 짓 하면, 차를 뒤집어 엎고 태워버려. 저이들은, 지금 자진해서 비키려고 들잖아!” 하고 말했다.

쟈가가 접근해 가자, 실제로 사람들은 조용히 순조롭게 돌이 깔린 길의 양쪽 집들 처마 밑으로 피하였다. 그때 그들은 이미, 차와 그 속에 있는 일곱 명에 대해서는 아무런 호기심도 품고 있지 않은 듯 하였다. 차라리 전혀 무관심하게 조차 보였다. 차 속의 사람들도 그대로 따르려고 하였지만, 웅숭그린 채 엎드려 있는 아가씨는 떨고 있었다. 차가 사람들 틈을 뚫고 지나갈 때 비로소, 모두가 눈길을 모으고 있는, 바닷가에 자리해 있는 그 집만이, 열려 있는 2층 창문 저편으로 불이 켜져 있고, 그것이 자갈길이나 사람들 얼굴을 부옇게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걸 알았다.

그곳을 빠져 나와 쟈가는 속도를 냈다. 처음에는 모두가 가슴이 답답한 듯이 말이 없었다. 그들은 공갈이라도 당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런 때는 노상, 침묵이나 긴장을 해소시키는 역할을 하게 마련인 중년사내 카메라맨이 호걸풍으로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일단 웃게 되면, 그는 그런 웃음밖에는 웃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쪽에서 자극하지만 않으면, 아무런 짓도 하지 않는 원주민 부락을 통과하는 탐험대 같구먼 그래? 나는 보르네오로 교육영화를 찍으러 갔을 때가 생각났어! 그리고 서부극도 생각이 났고.”

사와 게이꼬는 발가벗은 몸뚱이를 일으켜, 카메라맨의 살찐 짧은 허벅지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리곤 약간 취기가 깨어난 가라앉은 목소리로, “저이들, 인디언이야?” 라는 둥, 철부지 소리를 하고 있었다.

“저이들은 이 마을 주민이야. 사내들은 고기잡이 나갔으니까, 필경 이 마을에 남아있는 전원이 저기에 모여있던 게 아닐까? 나는 이 포구 사람들 여럿의 머리를 찰흙으로 만들었거든” 하고 J의 누이동생이 말했다. 그녀는 스물일곱 살로 조각가이며, 지난 초여름에 파리에서 돌아왔다. 그녀는 J부부가 만드는 영화의 미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차를 세우고, 내일 먹을 생선을 미리 부탁해 두는 걸 그랬지?”하고 J가 말했다.

“당신은 이 포구마을 일을 아무 것도 모르고 있어. 우리들이 피난해 와있을 때 당신은 집안에서 노상 그림만 그리고 있어서, 이 포구까지 내려오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거든. 어부 애들을 두려워했지.”

쟈가는 자갈이 깔린 길을 마을 가생이까지 와서, 낮은 방파제 저편으로 담즙처럼 거무칙칙하게 그늘진 바다 쪽을 내려다보면서 우회하였다. 쟈가는 다시금 언덕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바닷바람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관목가지가 폭력에 의해 어거지로 비틀어진 팔처럼 괴로운 형태로, 쟈가의 프런트글라스를 향해 내뻗쳐 있다. 그것들한테 두드려 맞아 쟈가는 소리를 지르고 차안의 일곱 명은 일순, 소나기 속에 갇힌 듯한 기분이 되었다.

“어부 아이는 두렵지가 않았어. 단지 우리 가족이, 산 위에 얼마만한 땅과 작은 움막 하나를 갖고 있을 뿐이어서 포구사람들에게 꺼려지는 게 싫어서, 내려가지 않았을 뿐이지. 너보다도 내 쪽이 되레 둔감하지가 않았었어” 하고 J가 말했다.

“흥분해서 깜짝 놀라 격분하고 있는 얼굴이었지. 예를 들어서, 성교하고 있는 현장을 타인에게 들킨 듯한!”하고 사와 게이꼬가 말했다.

그리하여 운전하고 있는 아가씨 이외의 여섯 명은 웃었다.

“게이꼬 같으면, 성교하고 있는 현장을 다른 사람에게 들켜도 태연하겠지? 허지만 게이꼬 관찰력은 때때로 정확해”하고 카메라맨이 말했다.

“저이들은 간통하고 있는 여자를 욕 보이려고 저러고 있었어”하고 J의 누이동생이, 제 오빠에게만 속삭이듯이 나지막하게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들이 피난해 와 있을 때도, 이런 일이 있었어요. 아까 그 집에 간통한 여자가 숨어 있는 거야. 그 집 출입구는 판자로 완전히 막혀 있을 걸. 오늘밤은 사람들에게 가려서 보이지가 않았지만 말이지.”

“한밤중에 모여들어서 어쩌려는 거야? 욕보인다고 하지만, 그게?”

“그저 가만히 집 앞에 서 있을 뿐이야, 온 동네의 계집들과 노인과 아이가! 거기다가 사내들이 있으면, 사내들까지! 그걸로 충분히 욕보이는 거 아니겠어? 가슴이 답답해져, 상상만해도.”

“그렇구먼. 나도 가슴이 답답해지는군. 아아, 싫어, 간통쯤으로!”하고 뒷좌석의 스무 살짜리 배우가 말했다.

“꼬마도, 매일 밤, 자기 아파트 앞에 온 도오꼬사람들이 몰려온다면 가슴이 답답해지긴 하겠지”하고 카메라맨이 말했다.

“정말로, 꼬마에게는 백 명쯤 되는 남편이 간통당하고 있으니까 말이지”하고 발가벗은 재즈 싱어가 배우를 연하 취급하면서 말했다.

쟈가는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올라가, 포구를 감싸고 있는 마을이 문득 바로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고대로 나와 있었다.

“잠깐 차를 세워.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던 집 2층 창에 불이 켜져 있었지. 뭐가 보이지 않나?”하고 카메라맨이 말했다.

일곱 사람은 쟈가 밖으로 나갔다. 사와 게이꼬는 시트에 깔아두었던 모포를 멕시코의 판쵸처럼 어깨에다 둘러쓰고 있었다. 카메라맨이 촬영용 렌즈를 금방 끼워 넣어 망원경을 만들었다. 그는 교육영화나 선전용 필름을 만드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데, 위인이 거칠고 품위라곤 없어, 동료들과 협조가 잘 안 되는, 기업 안의 아웃사이더이다. 회사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출세하긴 글렀다고 알자, 그는 수염을 기르고 회색 신사복 대신에 구질구질한 스웨터 나부랭이를 입고, 유행이 지난 차를 타곤, 자잘한 발명같은 것에나 열중하였다. 예를 들어, 망원경 렌즈를 끼는 일 같은 거. 또한 그는 젊은 친구들이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걸 알면, 가족이건 회사 일이건 나 몰라라 하고, 거기에만 열정을 쏟으며, 이 애매한 일에다 온 정성을 다 바쳤다. 그는 대단한 욕구불만이 있는 마흔 살 사내였다. 예리한 재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실로 착한 사람이고, 술꾼이었지만 나태하지는 않았다. 회사 일에 이제 와서는 이미 흥미를 잃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지는 않았다. 내일도 새벽녘 한 시간 촬영이 끝나면, 그는 혼자서만 차를 운전하고 도오꼬의 회사로 출근을 해야 했다.

망원경 조정이 끝나자 일곱 사람은 교대 교대로 바로 눈 아래 마을의 단지 불빛 하나만 내비치고 있는 창을 다시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여자가 엎드려 바쁜 듯이 팔을 움직이는 건 보이는데, 그 여자가 무얼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곱 사람은 꽤나 오랫동안을 내려다보았다. 여자 몸뚱이의 운동은 여전하다. 일곱 사람이 있는 위치에서는 여자의 등과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것만이 보이고, 팔 동작은 불확실하다. 어깨의 격렬한 상하 운동만은 꽤나 인상적이었지만, 그들은 참으로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곤 모두가 차라리 저들의 채워지지 않은 호기심에 지쳐버렸다.

“이젠 차로 돌아가지, 춥구먼”하고 사와 게이꼬가 기회를 잡아 말했다. 이 열여덟 살의 색정광 아가씨에게는 이런 종류의 재치가 있다. 그것은 우둔해 빠진 갑충의 촉각만이 지닌 예민함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는 그 여자가 운동하는 의미를 알아내기를 단념한 채, 쟈가로 돌아왔다. J와 그 아내와 누이동생 셋이 앞좌석에 카메라맨, 재즈 싱어, 배우, 거기에다 줄곧 말없이 위스키를 마시고 있는 젊은 시인이 뒷좌석에 앉자 쟈가는 발차를 했다.

줄곧 말없이 있는 젊은 시인은 스물다섯 살로 시집 하나를 겨우 막 자비 출판하였다. 그는 J부부의 친구라는 거여서, 이 영화에 대해 코멘트를 다는 일을 떠맡은 것이다. 그는 J의 젊은 아내와 대학의 동급생이었다. 그리고 대학의 마지막 학년 때는 꽤나 가깝게 지냈다. 같이 잔 일도 있다. 그것도 한 번뿐만 아니고, 그 무렵의 J의 아내는 가난하면서도 의기양양한 암사자와도 같은 아가씨로, 영화감독이 되고싶어 했다. 이 영화에 미쳐 있는 동급생과 그는 졸업과 동시에 헤어졌는데, 일 년 가량 지나서 그한테 아가씨로부터 결혼식 초대장이 날아왔다. 동급생의 남편 J는, 철강회사 사장 아들로, 그들 두 사람보다 네 살이 많았다. J는, 예술적인 패트런 취미에서 아리프렉스 16밀리 촬영기를 입수했고, 예술가 누이동생을 갖고, 바퀴살이 달린 하얀 타이어의 상아빛 쟈가를 갖고,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별장을 갖고, 세계일주의 팬어메리컨 티켓까지 갖고 있었다. 그는 아내가 영화 하나를 만들 자금까지도 아버지 호주머니에서 뜯어내왔다. 동급생은 J에게 흠뻑 빠져있고, 또한 영화 만들 계획에 반은 미쳐 있었다. 젊은 시인은 친구에게 부탁해서 그녀의 남편인 J에게서 비용을 빌어 시집을 출판하고 그 대신에 영화에 대한 코멘트를 쓰기로 떠맡았다. 그는 새 부부가 사는 가정의 친구라는 셈이었는데 J에 대해서는 오로지 확실하게, 소원해지는 감각을 극복할 수가 없는 거였다. 그는 그전에 같이 잔 일이 있는 동급생의 남편에 대해서 질투를 느끼고 있었는가? 동급생은 그녀 남편이 화려한 아파트에서 젊은 배우와 가수들을 모아들여서 벌인 파티에 그를 초대하였다. 그것이 그녀만의 듯이었는지, J도 그것을 바라고 있었는지, 그 점을 그로서는 알 수가 없어 일말을 불안을 남기고 있었다.

“응, 저걸 어떻게 생각해?”하고 J가 젊은 시인과 매한가지로, 줄곧 입을 다물고 있는 자기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마침 병째로 위스키를 마시고 있는 참이었다.

“쌀을 찧고 있었어요”하고 아내는 별로 생각도 않고 말했다.

그렇다, 저 간통을 하고 나서 몰릴 대로 내몰린 여자는 쌀을 찧으면서 참아내고, 저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고 모두가 느낀다. 그리하여 일곱 사람은 모두가, 위협을 받으면서 쌀을 찧고 있는 여자와, 그 집 앞에 서성이면서 떠날 줄 모르는 화가 나있는 사람들을 이리저리 생각해 보며,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당신은 꽤나 추위를 타는군. 당신이 고래잡이 배를 타고 남극까지 사진 찍으러 갔다는 게, 정말인지 모르겠군. 용케도 동사를 하지 않고 돌아왔네.”

“정말이야. 허지만 추위 타는 것과 동사하고는 관계가 없어, 게이꼬. 너도 추위를 안 탄다고 과신하고 늘 발가벗고 있어봐. 춥다고 느끼기 전에 얼어죽어버려. 하긴 남극에서는 너무 자주 카메라가 고장이 나서 나는 그야말로 수선장이 비슷했지만 말이지.”

J의 누이동생과 아내가 부엌 쪽에서 갖고 나온 자잘하게 토막낸 장작과 신문지를 난로에 쑤셔넣고 불을 붙이려고 들자, 카메라맨은 금방 그 일을 떠맡았다.

“나는 불을 붙이는 기술도 지니고 있거든. 성냥 없이 불을 붙일 수도 있어”하고 꽤나 허황하게 들리는 자랑까지 해가면서.

나머지 사람들이(나태한 J 이외에는) 난로 둘레에다 의자라는 의자를 몽땅 옮겨다가 둥글게 늘어놓았다. 그러는 김에 소파나 테이블도 난로와는 반대쪽 구석에 밀어붙였다. 춤추고 싶을 때를 미리 대비해서 또한 특별한 벽쪽으로 향하게 한 소파에서는 잠을 잘 수도 있을 것이다. 친구들로부터 귀찮지 않게.

기와 냄새가 큰 방을 메웠다. 불 곁에서 몸뚱이를 일으킨 중년인 카메라맨의 볼은, 이미 포도빛은 아니었다. 주독 낀 낯색으로 돌아와 있다. 그는 연기로 하여, 볼과 입술 주변에 한방울씩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불이 제대로 당겨주어 만족하고 있었다.

“봐요, 미쯔꼬 씨, 지옥으로의 도입부분 커트, 이 난로에다 왕창 불을 붙여서 찍자구”하고 카메라맨은 J의 아내에게 말했다.

“좋군요. 불빛만 천연색의 음화지를 만들어 합성할 수 있다면 졸을 텐데. 로제 봐딤의 흡혈귀 영화처럼. 그것은 피였지만”하고 미쯔꼬는 각자의 손에 글라스 하나씩을 건네어 주고, 거기다가 진이든가 위스키든가를 일일이 불어가며 따라주면서 열심히 대답했다.

“내가 그 시스템, 생각해볼게. 가만 나에겐 진을 주세요”하고 카메라맨은 자기 애인에게와도 같은 정겨운 목소리로 J의 아내에게 말했다. 목소리까지 약간 낮추어서.

영화 테마는 ‘지옥’이다. J와 미쯔꼬로부터, 지옥을 테마로 한 단편영화를 만들려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젊은 시인은 이질감을 느꼈다. 그가 미쯔꼬 결혼식에서 받은 인상은 지옥과는 도무지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결혼 뒤에도 쟈가나 아리플렉스라고 하는 이 세상의 천국 꽃을 얻은 미쯔꼬는 행복해 보였고, 그 남편도, 행복한 아내를 얻어, 더더욱 행복해 보였기 때문에, 어째서 J부부가 그토록 지옥에 매달려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모두가 이미 소녀취미를 낼 만한 나이도 아니었겠고. 결국, 이 영화의 코멘트를 쓰고 나서도, 시인에게는 어째서, 이 영화에 지옥이 필요한 것인지 이해할 수는 없을 거라는 예감이 미리부터 있었다. 그러나, 카메라맨이 난로불의 필름 위에서의 효과를 재보고 위해 큰 방 불을 껐을 때 일순, 시인은 그 작은 불 속에 그 자신의 개인적인 지옥의 울림을 들은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긴 했었다.

J의 누이동생인 스물일곱 살의 조각가는, 모두 둘러앉은 의자들 뒤쪽에 웅숭그리고 앉아, 낡아보이는 전축 조작을 하였다. 난로 속에 타는 불빛만이 어른거리는 방안이어서, 그곳은 마치 어두운 골짜기와도 같았다. 잠시 후 갑자기, 긴장되고 불안하고 게다가 감미로운 바하의 B장조의 파르티타가 울리기 시작했다. 꽤나 낮고도 약하여 여린 소리로, 디누 리파티의 마지막 콘서트라고 하는 한 장의 레코드다. 그들은 그들의 지옥이라는 영화음악에다 이 피아노 독주의 레코드를 쓰게 될 것이다. 리파티는 이 녹음 연주회에 거의 최악의 건강상태로 나갔다. 그리하여 끝내 이것이 마지막 연주회가 되었다. 그는 두 달 뒤, 베토벤의 F단조 4중주곡을 들으면서 죽어갔다.

“난로 위의 그림은, 미쯔꼬에게 보여준 그림과 비슷하군요”하고 젊은 배우가 말했다. 그는 일곱 사람 가운데 음악에 대해서는 가장 둔감하다. 그밖에 여섯 사람도 리파티에 송두리째 의식을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같은 화가예요, 벨기에 태생의.”

“그럼, 내가, 이렇게, 가슴만, 리본 비슷한 윗도리로 감추고, 알몸뚱이로 걸어오는 셈이군”하고 사와 게이꼬가 말했다.

“그렇지요. 이 정원에, 로마 풍의 발가벗은 석상이 두 개 있어요. 그 사이를 게이꼬가 걸어와 봤으면 해요. 꼬마는 앞쪽에 발가벗고 저편을 향해 서 있는 거야. 전체를 포커스로 찍는 거니까. 물론 꼬마도 제대로 서 있어줘야 해.”

“내 털은 이렇게 볼품이라곤 없는데”하고 솔직하게 열여덟 살의 재즈 싱어가 말했다.

그림은 쉬르 리얼리스트인 델보의 복제이다. 네모난 모를 잘라낸 형상의 영원히 조용한 풍경 속을 아름다운 음모의 망연하고도 전아한 아가씨들의 나체가 게이꼬를 부끄럽게 하고 있는 이유는, 다른 여섯 사람에게도 그대로 느껴지고 있다. 그림 속의 그녀들의 음모는 비길 데 없이 아름다운 밤색으로서 청동색으로 그늘져 있었다. 일곱 사람은(이번에는 J의 누이동생까지 포함해서) 쟈가 속에서 취했던 광경을 새삼 떠올렸다. 저녁부터 깊은 밤에 이르는 자동차 여행의 감각이 아직 허리에서부터 발에 남아 있어 그것이 취기를 가속화했다. 열여덟 살의 재즈 싱어는, 금방 난로의 열기를 더워하며 옷을 벗어버린다. 공단 옷감의 짙은 와인컬러 옷은 그녀의 발치에서 죽은 닭과도 같다. 그녀는 금새 아랫도리까지 벗어버릴 것이다. 열여덟 살 아가씨가 하나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면, 그녀를 인간답게 하고 있는 개인적 성격은 노출증이다. 누구도 사와 게이꼬가 나르시시스트(자기 도취형 인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그녀의 육체는 빈약하고 아직 덜 자랐다. 어째서 그녀가 노출증이 되었는가 하는 것에 대해 젊은 시인은, 언젠가 J가, 발가벗은 너는 옷을 입은 너보다 좋다라는 식의 말을 하지나 않았는가 하고 생각하고 있다. 모두가 말없이 난로 위의 그림만 쳐다보는 데에, 그녀는 짜증이 나서 만일 필요하다면 새앙쥐같은 가발을 아랫배에다 묶을 텐데,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더더욱 나머지 여섯 사람에게서 무시당한 기분이 되어 독한 진을 물처럼 퍼마시기 시작했다.

“이 계절에는 햇님이 어느 근처에서 솟는가 몰라, J”하고 카메라맨이 말했다.

“글세, 어떨까.” J는 아무 것도 모른다.

“아무튼 바다에서 오르겠지, 그러니까 왼 쪽에 햇볕을 받으면서 걸어오는 거야. 그림자를 엇비슷이 오른 쪽 뒤로 길게 끌면서. 꼬마의 머리와 어깨와 옆구리에 햇살이 비쳐서, 옆 얼굴은 꽤나 검게 보이지. 카메라는 꼬마의 1미터 뒤에 놓이게 되거든.”

“그렇게 된다면”하고 카메라맨이 미쯔꼬에게 말했다. “아침에 아직 해가 이 위치보다 낮은 곳에 있는 느낌일 때 찍고 싶으니까 여섯 시에는 대강 일을 끝내고 싶군.”

“게이꼬, 또 웃는다든지 하지 말아줘, 맨발이 못 견디게 가렵더라도 포커 페이스로 있어줬으면 좋겠어. 가장 중요한 장면이니까!”

열여덟 살의 재즈 싱어는 대답하려 들지 않았다. 엎드려 아랫도리를 잡는다. 그리고는 진과 레몬과 설탕 컵을 다람쥐가 호두를 잡듯이 꽉 두 손바닥으로 받들어 잡고, 의자에 무릎을 세워 고쳐 앉는다. 이젠 그녀에게 정상적인 말을 걸어본들 소용이 없다는 걸 모두가 깨달았다. 그녀 의자는 맨 오른 쪽 J가 앉은 의자의 안 쪽이다. 매한가지로 취기와 졸음 때문에 애매한 대답 밖에 하지 않는 J와 그녀는, 일곱 사람 가운데서 외떨어졌다. 나머지 다섯 사람이 미쯔꼬를 중심으로 영화에 관해 계속 떠들고 있는 동안에, 사와 게이꼬의 발가벗은 몸뚱이는 차츰 J쪽을 향해 오른 쪽으로 비틀리며 기울어져 간다. 결국, 그 벌거숭이의 여윈 등과 엉덩이를 장벽으로 해서 그녀는 자기와 J를 친구들의 단란한 분위기에서 잘라내버린다. 그 두 개의 의자만이, 다른 다섯 개의 의자보다 얼마간 떨어져 있는 것은, 누군가가 의식적으로 그렇게 했는지도 모른다. J와 재즈 싱어가 거기 앉는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조각들 사이를 벌거숭이 아가씨가 걸어오는 장면이, 지옥 소의 풍경이라는 게 되는 건가?”하고 젊은 시인이 미쯔꼬에게 물었다. 그로서는 코멘트를 쓸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니면 지옥으로 떨어지기 직전?”

“지옥 속의 커트예요. 그야 말할 것도 없이 그 이외의 광경은 없으니까! 벌써 몇 번이나 얘기하지 않았어?”

“조각들 사이를 벌거숭이 아가씨가 아름다운 털을 햇볕 속에서 드러내고 시원시원하게 걸어온다는 건, 지옥의 풍경은 아닌데.”

“당신은, 단지 욕구불만이야.”

젊은 시인은 원망스러운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이 돈 많은 부부의 머리 속 지옥 같은 건 어찌됐든 상관없다 라고 그는 혼자 생각하면서 자신을 달랬다.

난로 속의 장작이 눈에 뜨이게 적어졌다. 카메라맨이 술 컵을 든 채, 잔뜩 엎드려 난로 속에 부지깽이를 찔러 넣고 휘저었으나 효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방안은 화끈화끈 더웠으나, 모두가 난로 속의 타오르는 불꽃을 이를테면 기분적으로 필요로 했다.

“미쯔꼬 씨, 이제 장작은 없는가?”하고 카메라맨이, 난로 불기운과 답답한 자세 때문에 핏발이 선 눈으로 적동처럼 보기 흉한 낯색의 크고 둥근 얼굴을 잔뜩 젖히고 물었다.

“있어요. 바로 바깥에 쌓여 있을 건데. 만일 포구 마을 사람들에게 도둑만 맞지 않았으면, 있어요.”

“그 도둑 맞는다는 건 미쯔꼬 씨의 강박관념이라고! 요전번에 화집이 없어졌을 때도 내가 훔친 게 틀림없다고 했는데 그것도 강박관념에서 미쯔꼬 씨는 그랬었거든.”하고 젊은 배우가 말했다.

“그렇진 않아. 꼬마가, 우리 집에서 여러 가지 물건을 훔쳐내서 팔아버리고 있는 건 J도 알고 있어. 단지, 꼬마에게 도벽이 있더라도 그런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우리는 꼬마를 집에 들여놓고 있지 않아? 만일 우리 집에서 훔치지 않으면, 꼬마는 용돈을 어디서 구하지?”

젊은 배우는 격분해서 온통 얼굴을 복숭아 빛으로 물들이고 눈물이 그득해지며 입술을 떨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가장 특유한 연기여서, 다른 누구도 새삼스럽게 마음이 움직여지지는 않았다.

“뭐야! 골 아파. 정말 미쯔꼬 씨는 무슨 말이든, 말이면 다하는 줄 알아?”하고 배우는 울먹거리는 소리로 중얼거리곤 갑자기 일어서서 전축있는 데로 갔다.

리파티의 레코드는 이미 끝나 있었는데도, 모두 그걸 뻔히 알면서도 그냥 내버려두고 있었다. 픽업이 무의미한 숨찬 소리를 내는 걸 바람소리 같은 것으로 들으면서. 배우는 자켓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다른 레코드를 걸었다. 그것은 딕실랜드였다.

“춤 춰, 미쯔꼬 씨!”하고 애걸하듯이 젊은 배우는 말했다. 이런 식의 미련 많은 불안정한 감정을 지니고 있는 소년인 것이다.

“싫어, 꼬마!”하고 미쯔꼬는 사납게 말했다. 그래서 J의 누이동생인 조각가가 보다못해 일어서서 다가갔다.

젊은 배우와 조각가는 찰스턴의 스타일로 춤추기 시작했다. 스무 살 치고는 너무 어려 보이는 배우 얼굴은 금방 행복으로 빛난다. 그의 볼에 남아 있는 눈물자국을 스물일곱 살 먹은 아가씨가 춤을 추면서 손바닥으로 훔쳐준다. 배우는 그 팔을 잡아, 자기 목을 휘감게 하곤 아가씨를 바싹 끌어안아 버린다. 그로부터는 다른 스타일의 춤이었다.

“춤, 그만 추고, 장작을 가져오는 게 어때?”하고 미쯔꼬가 말한다.

“싫어, 미쯔꼬 씨”하고 배우는 미워죽겠다는 듯이 대답하여 두팔 속의 아가씨를 웃긴다.

“내가 가져올게. 부엌에서 바깥은 열쇠 없이도 나갈 수 있나?”하고 젊은 시인이 말했다.

“열쇠는 열쇠구멍에 박혀 있을 거야”

젊은 시인은, J와 재즈 싱어가 서로 어깨를 붙인 채 죽은 듯이 꼼짝 않고 있는 곁을 지나서, 춤추고 있는 젊은 배우와 아가씨 주위를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아, 취해서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난로 불이 불안정한 그림자를 만들어, 그의 평형에 대한 감각을 더욱 혼란 시킨다. 자기자신의 흔들거리는 그림자를 밟으며 여전히 비틀거리면서 그는 걸어간다. 벽을 향해 있는 소파 곁에서 그는, 필경은 여기 누구와 누군가가 성교를 할 것이다. 이놈들 파티라는 건 노상 그런 거니까, 하고 일순 생각한다. 그리곤 소파가 닿아져 있는 벽의 바다 쪽 구석 도어를 바깥쪽으로 밀어 열고 나갔다. 이곳은 그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던 현관 입구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층층다리도, 변소 붙은 욕실에다 부엌으로 들어가는 도어도 거기에 함께 있었다. 그는 부엌 도어 곁의 스위치를 눌러, 도어를 열었다.

여름 한밤 중 차갑고도 거칠은 감촉의, 그러면서도 달콤한 공기가 단번에 그를 둘러쌌다. 부엌으로부터 정원으로 나가는 도어가 열려 있고, 한밤중의 바람에 약간 흔들이고 있다. 그는 그때 아무 것도 의심하진 않았다. 수도 구멍에서 조금씩 나오고 있는 물을 충분히 마시고, 그리곤 맨발 채로 정원의 잔디를 향해 발을 뻗는다. 잔디가 무성하게 자라 있어서 지면의 진짜 높이를 눈어림으로 재기는 어렵다. 젊은 시인은 일순 깊은 공포의 울부짖음 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엎어지듯 넘어졌다. 그는 바다를 향해 깎아지른 낭떠러지 기억을 문득 떠올리면서 울부짖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안전하게 무성한 잔디 속에 두 볼을 파묻고, 볼이고 목이고, 이슬 젖은 잔디에서 헤엄이라도 한바탕 치고 난 뒤처럼 흠뻑 적셔가지곤, 빙긋이 웃고 – 난 꽤나 취해 있다 – 하고 생각하며 그대로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 다음, 그는 천천히 무릎을 짚고 일어나자 오줌을 누고, 한 아름 가득히 장작을 안고 큰 방으로 돌아갔다.

젊은 배우와 아가씨는 배를 맞비비며 끌어안고, 키스를 하면서 춤추고 있었다. 레코드는 다시 찰과음밖에 내지 않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걸 별로 개의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J와 벌거숭이 아가씨는, 뒤쪽에서 보는 한에서는 아까와 똑같은 자세 그대로다. 카메라맨과 미쯔꼬는 난로 앞에 무릎을 대고 마주 앉아서 콘티를 검토하고 있었다. 젊은 시인은 그들 곁에다가 장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카메라맨이 새로 불을 일으키고 있는 동안에, 그는 미쯔꼬로부터 새 술잔을 받으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당신, 볼이 긁히지 않았어? 피가 맺혀 있는 걸”하고 그의 옆자리에 앉으며, 미쯔꼬가 말했다.

“응응, 넘어져서 말이지. 허지만 어떻게 해서 긁혔을까?”

“가엾게도! 기억도 나지 않아?”

“부엌의 도어가 밖으로 열려 있었어.”

“그럴 리가 없는데”하고 미쯔꼬가 말했다. 그리고 꽤나 길어 보이는 목을 뻗쳐, 그의 볼에 내돋은 피를 더운 혓바닥으로 핥아 버린다. 그는 술냄새와 혐오감과 돌발적인 욕망을 느꼈다. J쪽을 살펴보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는 것은, 그 욕망 탓이다. 그는 낭패해 하고 있었다.

재즈 싱어는 젊은 시인에게 벌거숭이 등을 돌려, 머리와 어깨를 J에게 송두리째 내맡기고 있었다. 그리고 오른 손을 J의 엉덩이 밑에, 왼 손은 J의 넓적다리가 시작되는 부분에 놓여져 있다. 왼 손의 손가락 끝은 J의 바지를 불룩 솟아오르게 하고 있는 딱딱해진 성기 위에 뻗쳐, 그대로 가만히 있다. J는 반은 자고 반은 미소하고 있다. 확실히 둘만의 상관 관계 뿐인 외딴 방에 갇혀져 있었다. 그러자 문득 벌거숭이 아가씨의 성기 냄새가 난로 속에서 막 불이 당겨지고 있는 새 장작 냄새 속에 돋아 오른다. 젊은 시인은, J의 아내가 그 눈치를 채지 않기를, 이를테면 공황에 맞닥뜨리기라도 한 듯이 격렬하고도 수선스럽게 바라고, 재즈 싱어인 열여덟 살 아가씨의 둔감을 노엽게 느꼈다. 당연히 그는 또한 J를 증오하고 있었다.

“이 젖은 장작을 모두 불 주위에 놓고 말리지. 자, 도와줘”하고 카메라맨이 말했다. 그리하여 미쯔꼬와 젊은 시인도 고양이처럼 마루에 무릎을 대고 앉아 도와주기 시작한다.

바로 그때, 등 뒤에서 벌거숭이 아가씨와 J가 팔짱을 낀 채 일어서서 그대로 큰 방을 천천히 가로질러 2층으로 올라갔다. 젊은 시인은 J의 아내 얼굴을 보는 걸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단지 젊은 시인만이 여기에 익숙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하긴 카메라맨도 결코 거기에 익숙해져 있는 건 아닐 터이다. 그는 새로운 놀이를 제안했다.

“참, 미쯔꼬 씨, 저 테이프를 들어보지 않을래? 게이꼬가 있으면 화를 내서 말이지. 지금 딱 됐지?”

“좋아요. 허지만 게이꼬는 영화 효과음으로 저걸 쓰는 걸 싫어하지는 않아요”하고 취해서, 눈이 충혈되고, 볼을 불룩하게 한 미쯔꼬가 지나칠 만큼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카메라맨이 쟈가로부터 가져온 포터블 녹음기와 테이프를 조작했다. 그는 어떤 경우이거나 자기의 엔지니어로서의 기능을 과장해서 행동한다. 그런 식으로, 그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바람직한 존재로서의 자기자신을 확인하곤 하는 것이었다. 난로 속의 새 장작이 피어나는 불꽃 속에서 테이프가 조용히 돌아간다. 처음 한동안은 어떤 소리도 재생되지 않는다. 젊은 배우와 아가씨는 아랫배를 찰싹 붙이고, 끌어안은 채, 어느덧 키스도 그만두고, 각자가 열심히 테이프를 쳐다보았다. 테이프가 소리를 내지 않는 동안, 스물일곱 살인 여류 조각가의 거친 숨소리만이 방안에 기포처럼 연신 솟아오르고 있다. 2층에서, 무겁고도 부드러운 것이 약간 이동하는 소리가 났다. 그 다음, 소리는 애매해져 버렸다.

문득, 젊은 아가씨 목소리가 보들레르의 번역된 시를 낭독하기 시작한다. ‘여행에의 유혹’ 약간 소리의 질이 달라져 있지만, 그것이 사와 게이꼬의 목소리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노래할 때의 목소리보다 말할 때의 목소리에 가깝고, 더구나 흥분해 떠들 경우의 열여덟 살 아가씨 목소리에 가깝다. 단조로운 낭독이 발음 연습 때처럼 되풀이된다. 똑같은 시의 되풀이되는 낭독, 그것이 십분간 쯤 이어진다.

언제나 낭독되는 내용은 똑같은 시의 똑같은 번역인데, 차츰 아가씨 목소리의 저 속 깊이 스며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취해있는가? 하고 젊은 시인은 담백하게 의심한다. 아무튼 재즈 싱어 아가씨는 거의 항상 취해 있는 상태이니까. 그러다가 문득 시인은, 낭독자가 성적으로 흥분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다. 열을 띠고, 메마르고, 여리게 떠는 듯하고, 옥타브가 높아지며, 가늘고 차츰 불안정하게 속도를 더해가는 목소리. 이따금씩 어색하게 멎어 있기도 하고, 아가씨는 열심히 참아내며 낭독을 계속하려고 한다. 그녀는 내부로부터의 저항과 싸우면서 소리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했다. 화를 내면서 거역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일순 그것은 감동적이다. 그리고 의미 없는 소리가, 시 낭독 속에 섞여 들기 시작한다. 노래하면서 달리고 있는 장거리 주자의 소리. 그녀는 헐떡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전히 감당해 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아아, 아아, 하고 목소리는 테이프에서 흘러나온다. 아아, 아아, 저기에는, 그저 질서와 아름다움과 사치, 고요함과 쾌락 이외에는 무엇 한가지도 없다. 아아, 아아! 쾌락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아아! 아아! 아무 것도 없다. 아아!

그것은 홍수에 견디며 물 속에 잠겨 들면서도 강하게 휘어져서 떨고 있는 보잘것없는 나무와도 같은 감각이다. 목소리는 전혀 절망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그리고 돌연, 급류 속에 나무는 삼켜져, 그 자체가 홍수 같은 힘의 동기로 변한다. 아아. 아아! 하고 녹초가 된 아가씨는 울부짖고 문득 흐느껴 운다. 아아, 질서와 아름다움과, 아아! 그것은 참으로 집요한 최후의 안간힘이다. 젊은 시인은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런데 목소리는 거칠게 폭발적으로 높아진다. 아아, 아아. 오오! J! 아아, J, J!

젊은 시인은 충격을 받고 미쯔꼬를 보았다. 테이프는 푸석푸석 소리를 내면서 혼자서 돌고 있다. 미쯔꼬가 웅숭그리고 정지 버튼을 누른다. 모든 소리가 애매한 침묵 속에 파묻혔다. 이젠 2층도 쥐 죽은 듯 조용하다. 그 다음 스무 살 먹은 배우가 키들키들 웃기 시작했다.

“테이프 조연자는 J가 아니고 나야!”하고 킬킬 웃는 소리 사이사이로 배우는 말했다.

“그래요. 물론!”하고 얼굴을 쳐든 미쯔꼬가, 그녀를 보고 있는 동급생을 향해 대답하듯이 말했다.

“J가 아니야, 나야!”하고 의기양양해서 여전히 배우는 끌어안은 채인 조각가에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가만히 자극을 주었었거든!”

“이 악한, 이 악당!”하고 얼굴이 온통 시뻘개지며 입술을 커다랗게 벌리고 웃으면서 스물일곱 살의 아가씨는 말하고 있었다. 빨간 목안이 보인다.

“이 마지막 3분 가량을 영화의 타이틀 백으로 쓰고 싶어”하고 미쯔꼬가 말했다.

“응응”하고 젊은 시인은 묘하게 맥이 빠진 기분으로 말하자, 의자의 꼿꼿한 등받이에다 등을 대고 눈을 감았다.

“저 포구로 내려가는 긴 언덕에서 말이지”하고 미쯔꼬가 카메라맨과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와 카메라맨에게 있어, 이미 그 테이프는 그다지 자극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둘은 녹음하는 자리에 입회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저쪽, 이쪽?”

“이쪽 편, 그 언덕에서 J가 어릴 때, 개를 데리고 있던 노인이 트럭에 배가 깔려서 죽는 걸 보았다는군. 그런데 그 몸에서 흐르는 피를 개가 미친 듯이 좋아서 마시더라는 거야.”

“미친 듯이 슬퍼서?”하고 카메라맨이 중년 사내다운 분별을 차려서 물었다.

“미친 듯이 좋아서.”

“어떤 갠데?”

“도벨만 새끼.”

“으응, 으응.”

“난 그게 아이 적의 J의 공상에 지나지 않지나 않을까 하고 생각해. 체코 동화에 역시 개가 피를 핥는 얘기가 있으니까, 그걸 J가 읽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

“어떤 건데?”

“예수님이 죽었을 때 개가 그 피를 빨아서, 그래서 개도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는 얘기.”

“개도 천국으로 가지 못하게 됐다?”하고 카메라맨이 물었다.

“개도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

“그럼, 이 영화에는 쓸 수가 없구먼.”

“그런 거지”하고 미쯔꼬가 말했다.

“배 고프지 않아? 갖고온 닭을 먹자구. 그러구 난 조금 자겠어.”

J의 아내는 아리프렉스 16밀리와 같이 쌓아둔 짐 보따리 속에서 베이크드 치킨의 기름종이 꾸러미와 소스 병을 꺼내왔다. 소스는 J의 누이동생이 레몬과 마늘로 그날 오후 내내 걸려 만든 거였다.

“꼬마도, 닭 먹을래?”

“으응, 먹고 말고”하고 저편 벽 쪽 소파에서 젊은 배우 목소리가 되받았다.

“나도 먹겠어”하고 J의 누이동생도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당돌하게도 비명과도 같은 웃음소리가 터져오른다.

“나도 먹겠어”하고 젊은 시인도 눈을 뜨고 난로의 거의 스러져가는 불빛을 눈부셔 하면서 말했다. 결국 아래 층 누구나가 배고파 있는 것이었다.

난로 앞에 다섯 사람이 모여 통닭을 먹기 시작했을 때, 소파 위에서 하던 얘기는 꼬마나 J의 누이동생까지 포함해서 다른 누구나가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고집스럽게 의심을 하고 있었다.

“열아홉 살의 성불능 같은 건 없어.”

“그게 있다니까. 진짜로 있었는 걸. 내 영국인 친구가 그랬었으니까”하고 J의 누이동생은 또 목안을 보이면서 웃고 있었다. 그것은 빨갛게 무서운 어두움이다.

“그건 성도착?”

“아니.”

“그럼, 그 여자가 꽤나 지독했군. 동정이 가는데.”

“그 여자라는 게 나야”하고 조각가는 즐거운 듯이 말했다. “꼬마, 아직 발기한 채 그대로 있는 거 아냐? 그 여자와 같이 있어 가지고.”

모두가 젊은 배우를 보고 웃었다. 그는 늘 그런 식으로 가학적인 귀염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그 자신부터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내 프랑스인 여자친구 하나가 상담에 응해줬어. 그래서 셋이서 얘길 나누었지. 그 프랑스인 여자친구는, 내 애인의 성기까지 살펴봐 주었다니까. 젊은 시절의 루이 16세 같지나 않는가 의심해서 말이지!”

“거짓말! 루이 16세라든지 하는 그런 소리 말아. 나는 역사에 약하니까!”

“그래도 이상 없음이었거든. 그러자 내 여자친구가 이렇게 말했어. 내 애인의 성불능은 그 영국 청년만의 책임이 아니다. 결국 그것은, 두 사람간의 성교는, 서로를 흥분시키는 범위에 한해서다, 하는 수학적인 사실에 관계된다. 세 사람 이상의 성교라는 건 훨씬 더 흥분되지가 않을까? 이렇게 말했어.”

모두가 웃었다. 그리고 J의 누이동생이 최초로 웃음을 그치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그 프랑스인 여자친구도 침대에 들어와서 셋이 같이 잤는데, 역시 열아홉 살이야, 거뜬히 제대로 되질 않았겠어. 축하, 축하!”

“허지만 당신은 즐겁지가 않았지?”

“왜?”하고 스물일곱 살의 조각가는 극히 냉냉하게 경멸하듯이 말하곤, 젊은 배우를 침묵시켰다.

그때 재즈 싱어가 큰 방으로 돌아왔다. 사와 게이꼬는 가슴으로부터 아랫배에 걸쳐 여름 모포를 휘감고 있었다. 홀랑 벗었을 때의 그녀보다도 모포를 휘감고 있는 그녀 쪽이 사람들 눈을 외면시켰다. 그건 과연 노골적으로 J와 게이꼬 사이에서 그때까지 행해졌던 일을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그런 심리작용에는 상관 않고.

“너무 하는군. 저들만, 닭 먹고!”하고 불만인 듯이 말했다.

“아직 얼마든지 있어”하고 미쯔꼬가 말했다.

“J가 당신이 와주었으면 해.”

“왜?”하고 태연하게 미쯔꼬는 말했다.

“누군가가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대, 2층에서는! J도 나도 그런 느낌이 들던 걸. 더구나 난 작은 두 개의 눈이 도어 쪽에 보였어. 그래서 J는 안 돼, 아무리 애써도 안 되던데.”

“나도 작은 두 개의 눈이 부엌 쪽으로 가는 도어 그늘에서, 우릴 보고 있는 걸 보았어! 그렇지 조금 아까 그렇게 말했지?”하고 젊은 배우가 울부짖었다.

“거짓말, 나는 안 보았어”하고 J의 누이동생은 또 빨간 목안을 가득 열어 보이면서 웃었다.

“나도 아까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 게이꼬가 테이프를 듣고 있을 때”하고 카메라맨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젊은 시인도 역시 그의 등뒤로부터 엿보고 있는 눈을 줄곧 의식해온 듯한 느낌이 비로소 들었다. 그리고 그는 장작을 가지러 갔을 때 부엌 도어가 바깥쪽으로 열려 있던 일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는 그때는 아직, 그 일에 관해 깊이 의심해 본다든가 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도, 지금 그의 의식 속에서는 2층에서 아내를 기다리고 있는 J가 꽤나 위협적으로 비대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결국 인간이 누구에겐가 보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언제라도 그 인간을 보고 있는 망령을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인간의 의식이라는 건 그런 식으로 되어있는 게 아냐? 그건 말하자면 신의 눈이라든지, 악귀의 눈이라든지 그런 거야. 나는 히스테리를 일으키면 칠흑 어둠 속에서도, 그런 종류의 눈을 봐”하고 여류 조각가가 말했다.

“나까지 히스테리?”하고 중년사내 카메라맨이 말했다.

“내가 소르본느에서 철학강의를 받을 때–.”

“이제 됐어, 그만해 둬, 철학얘기는!”하고 젊은 배우가 말했다. 그리고 그 느닷없는 난폭한 어투에도, 조각가가 반발을 않고 있어, 나머지 사람들은 조금 아까 소파 위에서 J의 누이동생과 배우 사이에 벌어졌던 애무의 성질에 관해서 막연히 알 수 있었다.

“그럼, 난 닭이나 먹겠어. 히스테리의 눈에 관해서는 잠시 잊고”하고 재즈 싱어가 말하며 큰 닭다리 하나를 들어 뜯어먹기 시작했다. 벌거숭이 가슴에 마늘 소스가 튕겨서 얼룩졌다.

“응, J에게로 가줘, 나하고는 아무리 애써도 안 돼. 난 지쳤어”하고 커다란 닭살을 하얀 이로 문 채 재즈 싱어는 재촉을 했다.

미쯔꼬는 애매하게 끄덕이곤 아무 맥락도 없는 가엾게 여기는 듯한 젖은 고양이와도 같은 눈으로, 젊은 시인을 보았다. 젊은 시인도 그 눈을 쳐다보았다. 취기로 해서 덥고 둔하고 완만한 그의 내부에 하나의 핵, 거기에만 명확하게 욕망이 번쩍이고 있는 열정의 핵이 뭉뚱그려졌다. 만일 미쯔꼬가 J에게로 가지 않는다면, 나는 미쯔꼬를 꾀어서 어딘가로 숨어야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미쯔꼬가 J에게로 올라가지 않기를, 하고 그는 열망했다. 하지만 어디에 숨는다는 말인가? 이 네 사람의 주정뱅이들이 문득 모두 잠이나 들어버렸으면 좋겠는데–.

그때 2층에서 J의 큰 소리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짜증나고 절박한 듯한 목소리가 되풀이 미쯔꼬를 부르고 있었다. 젊은 배우는 과장 섞어 풀석 웃어버린다. 미쯔꼬가 천천히 일어난다. 젊은 시인에게 눈길을 꼬나박은 채 그래서 그도 일어서서 미쯔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천천히 큰 방을 가로질러 같이 걸어 같다. 뒤로 도어를 닫고, 부엌과 욕실과 층층다리 틈에 나 있는 좁은 장소에서 일순 두 사람의 옛날 동급생은 서로 끌어안았다. 그의 손바닥은 J 아내의 스커트 밑, 작은 벌거숭이 맨살에 바쳐졌다. 그의 손가락이 젖어있는 뜨거운 눈에 닿는다. J 아내는 바지 위로 그의 화가 나서 요동치는 새를 꽉 잡았다.

“어디가 숨자, 어디가 숨어”하고 젊은 시인은 욕망에 겨워 속삭였다.

“어디로?”하고 똑같이 욕망에 사로잡혀서 쉰 목소리가 대답했다. “어디에 숨지?”

젊은 시인은 쫓기는 기분으로 이리저리 생각해 봤다. 하지만 어디에 숨을 데가 있다는 말인가? 2층에서는 J가 조바심이 나서 기다리고 있고, 부엌에는 목이 탄 누군가가 교대 교대로 들며 나며 물을 마시러 올 것이고 욕실에는 십 분마다 누군가가 오줌을 누러 온다는 식이다–.

“쟈가 속은?”하고 돌연 생각이 나서 희망에 찬 예감에 사로잡힌 젊은 시인이 말했다. “쟈가 속에 숨자.”

“쟈가 열쇠는 J 누이동생이 갖고 있어”하고 미쯔꼬가 대번에 그 희망의 싹을 문질러버렸다.

“이 산장에서 밖으로 내빼자. 널 J에게서 구출해 줄게. 나가자!”

“우린 단지 취해 있어요. 사랑으로가 아니라 욕망으로, 어딘가에 숨어버리려 하고 있는 거예요”하고 미쯔꼬가 말했다. 그리고 그의 성기를 잡고있던 미쯔꼬의 손바닥은 바지 허벅지 쪽으로 벌렁 누워버렸다

J가 2층에서 다시 부르고 있었다. 미쯔꼬는, 젊은 시인의 팔에서 몸을 비비적거리며 빠져나와 층층다리를 달려 올라간다. 그 파르스름한 추한 옆얼굴을 보내고 나서 그는 자기의 말이 미쯔꼬를 겁먹게 한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 자신도 겁먹었다. 영화를 만든다는 희망을 잃어버린 미쯔꼬와의 괴로운 내일의 생활이라는 이미지가 그를 겁먹게 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들은 단지 취해 있는 거다. 사랑으로가 아니라 욕망에서, 어딘가 숨어버리려고 했던 거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하여 욕실 도어를 열고 비틀거리면서 들어갔다. 발을 벌리고 방뇨하면서 문득 머리를 숙이자 그때까지 눈에 고여있던 눈물이 굴러 떨어져 부풀어 커진 성기를 적셨다. 그는 그것을 우스꽝스럽게 여기며 비죽이 웃었다. 그리고 그는 미쯔꼬와는 전혀 관계없는 고독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는 취기에서 오는 극도의 무감각 밑자락에 오르가즘에의 약간의 가능성을 더듬듯이 구하며 집요하게 용두질을 했다. 드디어 피와도 같은 정액이 눈물과 오줌의 맥주 비슷한 거품 속에 녹은 눈덩이처럼 떨어진다. 그는 쾌락도 없이 신음했다. 그는 이미 미쯔꼬에 대해서보다도, J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J에게 우정을 느꼈다. 그가 미쯔꼬 속에 환기시킨 욕망을 J가 잿물로 환원시켜 버릴 테지. 그는 J 누이동생 회상 속의 3자 성교의 이미지에다가 막연히 J, 미쯔꼬, 그리고 자기자신을 연결시켜 그 공상을 꽤나 조화있게 만족스럽게 느꼈다. 그는 비로소 J의 영역에어 자기자신을 마음 편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재즈 싱어나 젊은 배우처럼 강대한 J에게 굴복한 것을 느꼈는데 굴욕감은 지니지 않았다. 그는 급하게 시들기 시작하는 성기를 바지 속에다 집어넣고,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채 그대로 옆 욕조에 걸터앉아 가만히 있었다. 참을 수 없도록 졸음이 왔다. 그는 물이 들어 있지 않은 욕조에 벌렁 누워버렸다. 그렇게 잠들기 시작했는데, 그 일순 앞서 자기를 관속의 행복한 시체라고 느끼며, 이 걸 시로 쓰리라고 생각했다. 또한 욕조 밑바닥의 자기를, 이제 열려진 도어 저편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듯이 생각되는 맑은 두 개의 눈에 관해서도 거기에 써넣자고 생각했다. 그리곤 젊은 시인은 잠들어버렸다–.

미쯔꼬는 어두움 속에서, J가 겨우 사정에의 언덕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하는 걸 느끼고 J의 항문을 애무하며 그리고 사내아이처럼 강한 신음소리를 내서 J를 격려했다. 물 속에 잠겨 들어 발랑 위를 쳐다보고 햇볕에 빛나는 수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릴 적 골짜기 웅덩이에서 물장구치며 놀던 맑디맑은 냉정한 기분으로 털끝만큼의 쾌락도 없이. J가 약간 부끄러운 듯한 소리를 내며 경련한다. 미쯔꼬는 J의 몸뚱이가 대뜸 후줄근하게 땀 투성이가 되며 무게가 더해오는 걸, 간호부처럼 냉정하게 참아냈다. 게이꼬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는 건 J의 사정시간이 긴 것으로서도 확실했다. 게다가 미쯔꼬는, J가 게이꼬와의 성교를 특별히 즐기고 있지 않는 걸 알고 있었다. J는 또 그녀 자신과의 성교에도 하나의 가짜 열중밖에는 나타내지 않는다. 그 사정에 관해서도 미쯔꼬는 느끼고 있었다. 그건 반대로 미쯔꼬 자신이 J와 성교하는 동안 항상 가짜 흥분을 연기해 가고 있는 걸 정당화시키는 듯이 생각되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J가 집요하게 게이꼬와 미쯔꼬에 대해 성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속에 숨어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미쯔꼬는 드물게 더러는 그 점에 관해 생각해 보려고 한 일도 있지만 결코 문제의 속 깊이까지 내려가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막연한 공포의 해답을 예감하면서 스스로 물러설 뿐이다. 그녀는 J가 여자를 요구하는 태도 속에 본질적으로 거짓이 있지 않은가 하고 느끼고 있었다. J는 조용히 미쯔꼬 곁에 무너지듯, 그 어둠 속에 미쯔꼬와 마찬가지로 천장을 향해 발랑 누웠다. J와 미쯔꼬는 어둠 속에서 벌거숭이 채로 나란히 누워, 서로의 고른 숨소리를 듣고, 둘이 다 어둠 속에 두 눈을 뜨고 있었다. 땀이 몸뚱이를 차갑게 하기 시작하자 둘의 벌거벗은 맨발이 협력해서, 모포를 당겨 올려 각각의 몸뚱이를 덮었다. 그사이도 둘은 말이 없었다. 아래층에서 게이꼬, 배우, 그리고 J 누이동생의 떠들썩하게 웃는 소리가 울려온다. 카메라맨과 젊은 시인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너는 가짜 오르가즘이 아니고 진짜 오르가즘에 이르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니?”하고 J가 문득 물었다.

“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내 진짜 오르가즘은 영화예요”하고 미쯔꼬는 말했다. 그건 이미 백 번째라고도 느껴지는 부부간의 대화다.

“허지만, 오늘밤 넌, 처음에는 진짜 오르가즘을 향해 나가고 있었어.”

“거짓말이에요. 있을 수 없어요!”하고 놀라며 거의 공포에 휘감겨서 미쯔꼬는 강하게 부정했다. 그녀는 불감증을 자유로운 존재의 가장 중요한 거점으로 믿고 있었다.

“허지만, 넌 흥분하고 있었어.”

“거짓말, 있을 수 없어요!”

“그럼 좋아, 난 자겠어”하고 J는 말했다. 그리곤 말이 없었다.

미쯔꼬는 불안해지고 있었다. 맞다. 확실히 J 말대로 나는 흥분해 있었다. 하고 미쯔꼬는 생각했다. 성교섭을 가진 일이 있는 옛날 동급생 시인이 도어 밖에서 미쯔꼬를 끌어안았을 때, 돌연 미쯔꼬는 오르가즘에의 궤도를 타고 있는 새로운 자기를 발견한 것이었다. J가 미쯔꼬를 끌어안을 때 아무리 교묘하게 미쯔꼬 쪽에서 J를 유혹해도 J의 손가락이 저 시인의 일순간의 손가락 움직임을 모방할 수 없을 것이다. 시인의 손가락이 극히 일순간의 주저도 없이 단번에 그녀 성기에 닿았을 때, 미쯔꼬가 막연히 느낀 것은 이것은 거짓이 아니라 진짜로 여자를 바라는 타입의 인간 동작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J와는 반대다. 그때 미쯔꼬는 자기가 영화제작을 포기하고, 그전 애인인 젊은 시인과 같이 산장 밖 어둠 속으로 달아날 것처럼 느껴져서 깊은 두려움 속에 빠졌었다. 그리하여 미쯔꼬는 자기 내부의 오르가즘에 이르는 멸망의 길을 거부하고 그리고 젊은 시인을 거부, 그녀의 오로지 하나 뿐인 정렬인 영화 쪽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그리하여 파르스름하게 떨면서 층층다리를 돌라갔던 거였다. 재즈 싱어의 몸뚱이 냄새가 스며있는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 따뜻한 침대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편과 성교를 시작했을 때, 그녀는 저 일순의 동요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느끼고 있었다.

미쯔꼬에게 있어 J는 이상적인 남편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한 온갖 것을 주고 게다가 그녀가 항상 자기자신의 내부에 머물러 있는 걸 양해해 준다. 그녀는 참으로 해방된 여성 예술가가 되려고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로 하여금 여성적인 것 안에 속박시키려고 드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녀의 견고한 내부를 불안하고 질척거리는 죽 같은 것으로 바꿔 버릴 위험이 있는 모든 유혹을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성으로서의 오르가즘은 그녀의 영화작가로서의 반여성적인 기본권을 붕괴시킬 것이다. 미쯔꼬는 그런 함정에 떨어지지 않으리라고 결심하고 있었다. 또한 여성적인 질투의 독으로부터도 자유로워 지려고 애써, 나름대로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 젊은 시인의 일순간의 애무로 이 지경으로 자기가 동요되고 있다면, 대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좋을까? 미쯔꼬는 금방 옆에서 잠들어버린 남편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온 몸을 긴장시켜서 약간 흐느껴 울었다. J는 성교를 하면서 몇 번이나 머리를 비틀며 어디선가로부터 두 개의 눈이 보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천만에 아무도 보고 있진 않아요, J, 기분 좋지요, 빨리 안심하고 마음 푹 놓고, 아무도 보고 있진 않으니까요 하고 J를 달래었다. 하지만, 나도 누군가가 우리들 일을 보고 있었던 듯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바보 여자들처럼, 암캐도 느끼는 오르가즘을 느끼고, 전위영화를 만든다고 하는 굉장한 일에 쏟는 정열을 더러운 성본능에 치환시키는, 나의 패배하는 순간을 엿보려고 든, 악령의 눈일 것인가? 흐느껴 울면서 미쯔꼬는 잠들었다–.

J는 해방되었다. 아내가 흐느껴 우는 동안, J는 곰을 만난 나그네 마냥 두려움과 책략에서, 죽은 시늉을 내며 벌거벗은 채 발랑 누워, 겨우 숨을 쉬고 있었던 것이다. 가능하다면 아가미 호흡으로 바꾸고 싶다고 바라면서. 2년 전 J는 어릴 때부터 친구인 카메라맨에게 그 교육영화 제작소에서 임시로 일하고 있는 영화감독 지망인 젊은 아가씨를 소개받았던 거였다. 진 팬티를 입고, 기름때 투성이 머리카락을 당겨 고무줄로 묶고, 열광적인 눈을 지닌 초라한 젊은이 같은 아가씨로, 방금 대학을 졸업했다고 했다. 아가씨는 성적으로 꽤나 자유분방하면서도 정작 불감증이어서, 성교를 그다지 중요시하지는 않고, 오로지 영화제작에만 온 정열을 쏟고 있었다. 1년이 지나, J와 아가씨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J의 원대하고도 뿌리 깊은 음습한 계획이 시작되었다. J는 자기를 핵으로 한 자기류의 작은 성의 세계를 만들고 싶다고 바라고 있었다. J는 스캔들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가족이 속해있는 사회의 피와도 같은 것이다. 거기다가 또 J는, 지나칠 정도로 용감한 누이동생과는 반대로 실로 민감하게 공포에 반응하는 겁 많은 토끼간을 지니고 있었다. 전처가 죽은 이후, 그는 현실세계에 대해 무엇 한가지 작용을 해낼 수 없는 사내가 되어 버렸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는 자기류의 작은 성의 세계를 만들어내자는 것에만은, 굴이 바위에 악착스럽게 들러붙듯이 끝내 고집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한 평생의 오로지 하나 뿐인 의미에로의 통로라고 느끼면서.

J는 결혼 후 1년도 채 안 되는 동안에 이미 미쯔꼬에게 그 자신이 흔히 있는 정상적인 성교섭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인간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쯔꼬는 그의 레몬 윗부분처럼 뾰족한 항문과 그의 오르가즘과의 관련을 느껴, 그 부분에 대한 애무에 버릇 들여져 있었다. 미쯔꼬는 또, J가 그들 부부의 서의 세계에 재즈 싱어 아가씨를 끌어들인 일에 대해서도 납득을 했다. 그것이 그 들의 또 한가지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교중인 J에게 결락의 감각이 있다는 것을 미쯔꼬는 이해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꽤나 곤란한 일이 될 것이다.

조만간에 나의 성의 세계는 완전히 채워질까 하고 막연한 불안과 불가능이라는 감각의 안개에 휘감겨서 J는 생각했다. 그는 수 없는 밤을 이 피로감에 지친 숨막히는 안개 속에 젖어서, 잠들어 암흑으로 들어서기 직전의 몇 분 동안을 지내곤 했었다. 그것은 그의 성의 그 곤란한 세계가 완결될 때까지 개운하게 갠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안개일 것이다. 젊은 배우를, 그와 아내의 성의 세계에다 재즈 싱어 대신에 끌어들이는 일이, 그 마지막 한 발작이었다. 그의 아내가 열여덟 살 아가씨의 참가에 대해 특별히 충격 없이 승인한 것처럼, 저 스무 살의 청년이 그들 침대 속으로 들어온 일에도 아내가 충격을 받지 않는다는 일이 과연 있을 수 있는 걸까? J는 아내가 차츰차츰 호모 섹슈얼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와 지도록 이끌어왔다. 아내는 이미 남색가를 파티에 불러도 특별히 이상스런 반응을 보이는 일도 없다. 허지만 제 남편이 또 다른 한 사내와 성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침대 속에서, 자기도 또 같은 성관계에 들어선다는 것은, 그것은 극히 길고 깊은 파열구로 점프해 들어가는 것임에 틀림없다. 아는 아내에게, 그녀 자신의 불감증으로부터 벗어나오기 위해서는, 이 커다란 점프를 행하는 길 밖에는 없다, 라고 하는 환영을 끝내 심어 줄 수가 있는 것일까? 하고 J는 생각했다. 그것이 이루어지는 먼 날까지, 아내가 어떤 손쉬운 오르가즘과도 상관없이, 영화에만 오로지 정열을 쏟아주기만 한다면, 희망은 J에게 남아있는 셈이다. 아내는 괴로운 듯이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었다. J는 전처가 자살해 버린 그 어느 겨울의 꼭두새벽 일을 떠올렸다. 그때 J는 아내와 한 침대에 자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아내의 잠든 숨소리가 이상한 걸 느꼈다. J의 아내는, 남편이 사촌 누이동생의 교사인 외국인과 호모 섹슈얼의 관계를 계속해 가고 있다는 걸 어느새 알고 있었던 것이다. J는 그 겨울 꼭두새벽의 침대 속에서의 깊은 공포감으로부터 완전히 헤어나올 수 있는 날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두 번째 아내가, 그의 작은 성의 세계를 승인할 때 비로소, 그는 죽어버린 전처로부터 자기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젠 무언가로 갚을 길이 없는 이상, 그는 역으로 자기자신 속의 죄의 감각을 정통적인 자기 주장의 감각으로 전화시켜서, 자기 마음의 평안을 되찾는 길밖에 없었으니까.

J는 도깨비처럼 시커먼 마음으로 잠들어갔다. 콜타르와도 같은 암흑의 잠 속으로, 물론 그는 자신이 쫓기고 내몰린 끝에 바른 자세를 취한 범죄자와 다르지 않다는 걸 모르지는 않고 있었다. 그리하여 잠든 꼴은 웅덩이 속에 그는 조금 아까 본 듯이 느낀, 그를 고발하는 두 개의 눈이 번쩍임을 다시 보아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마음속으로부터 위협을 받으며 불안한 잠을 잤다.

큰 방에서는 카메라맨이 난로 앞에서 잠들어 있었다. 깨어나 모두와 섞여있는 때에 비해, 그는 지금 훨씬 늙어 있고 불쾌하게 고립돼 있는 인상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 모두를 거부하고 자고 있었다. 그는 회사 속에서만 비협조적인 고독한 인간은 아닐 것이다.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동안 끝내는 협조적으로 사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거기 가만히 잠들어 있는 짐승처럼 자기 폐쇄적인 마흔 살 사내를 보고 있노라면, 어째서 그가 이곳에 젊은 사내들, 젊은 아가씨들에게 둘러싸여서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카메라 맨 곁에서 역시 맨 마루 바닥에 그냥 앉아 벌거숭이 무릎을 두 팔로 끌어안은 열여덟 살의 재즈 싱어는 진 토닉의 마지 막 한 방울을 마저 마시려고 들었다. J와의 만족스럽지 못한 성교가 그녀의 몸뚱이 속에 굳은 저항체를 만들어놓고 있었다. 그것은 불유쾌하다. 그녀는 그것을 녹여내서 배설해 버리고 싶다. 그래서 강한 알콜 음료를 줄곧 마시고 있을 터이다. 이미 너무 과하게 마시고 있다. 취기와 졸음이 열여덟 살 아가씨의 작은 머리속에 새빨갛고도 우스꽝스러운 소용돌이 무늬의 성운을 빙글빙글 돌게 하였다. 그녀 손바닥에서 컵이 모래처럼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녀는 일부러 선하품하듯 하며 일어서려고 하였다. 좀처럼 일어설 수가 없다. 그녀는 자기 발에 대해 분격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비치적거리면서, 여전히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썼다.

“외국인과 나와 어느 쪽이 좋았어?”하고 벽 쪽 소파에서는 졸음이 오면서도 기분 좋고 달콤한 꼬마의 목소리가 낮게 집요하게 되풀이되고 있었다. “응, 외국인과 나와 어느 쪽이 좋았어?”

“외국에선 말이지, 임신하면 어쩔까 하고 그게 죽는 것만큼이나 무서웠을 뿐이야. 나는 아직 애송이였고”하고 역시 졸음에 겨운 조각가 목소리가 받았다.

“응, 외국인과 나와 어느 쪽이 좋았어?”하고 스무 살의 배우는 노래라도 하듯이 같은 소리만 되풀이했다.

재즈 싱어는 천천히 도어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녀가 소파 곁을 지나칠 때 이미 소파 위의 두 사람은 잠들어버렸다. 그녀는 도어를 열고 도어를 닫았다. 그리고 겨우겨우 욕실 도어와 부엌 도어를 판별하며, 욕실 쪽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흑인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것은 벌의 윙윙거리는 날개 소리 같은 것으로 밖에 자기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변기에 걸터앉아, 재즈 싱어는 반은 자면서 시원치 않게 오줌을 눈다. 몸뚱이 주위에 오줌과 알콜 냄새가 더운 샤워의 김처럼 피어 올랐다.

그때 새 그림자가 흘낏 스치듯이 일순 무언가 조그마한 운동체가 재즈 싱어의 감은 눈동자 저편을 어둡게 하였다. 열여덟 살 의 아가씨는 아직 오줌을 누면서 방긋이 눈을 뜬다. 바로 앞에 그 자그마한 존재는 매달린 듯이 정지해서, 번쩍이는 두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아 당신이었군! 그 눈은! 하고 그녀는 목소리를 내지도 않고 목 속으로 울부짖는다. 눈은 대번에 자기 자신의 배후로 민첩하게 날아갔다. 재즈 싱어는 너무너무 취해 있었고 새끼원숭이와도 같고 자그마한 신과도 같았다. 결국 아가씨는 오줌을 마저 누고, 변기에서 천천히 일어설 때까지는, 그 침입자의 일은 깡그리 잊어먹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큰 방의 정원을 향한 유리문은 밝아오기 시작하고 있다. 난로 불은 완전히 꺼져 있다. 이젠 누구 하나 깨어있는 사람은 없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포구 안 마을의 몇 마리 닭소리를 날려올리고 있다. 잠든 자들이 잠든 채로 새벽녘의 추위에 몸을 들썩인다–.

오전 네 시, 카메라맨이 층층다리 밑 어둠 속에 박쥐처럼 벽에 들러붙은 채 잠들어 있는 열 살 가량의 어린 침입자를 보았다. 그는 발소리를 죽여 욕실로 들어가 여자처럼 꿇어앉아 소리를 내지 않도록 오줌을 누고는 되돌아와서 그 아이를 잡았다. 아이는 눈을 뜨자 단번에 죽을 둥 살 둥 저항하기 시작했다. 카메라맨은 당황하여 큰 소리를 질러 동료들을 깨웠다. 우선 욕조 속에서 자고 있던 젊은 시인, 소파에 겹쳐져서 자고 있던 스물일곱 살의 여류작가와 젊은 배우, 그리고 재즈 싱어가 쭝얼거리면서도 아무튼 호기심에서라도 일어나 나왔다. 잠시 후, J와 그 아내도 층층다리를 내려와서 잡힌 아이를 둘러쌌다. 카메라맨이 아이의 두 팔을 잡고, 그 카메라맨을 물어뜯으려고 하는 아이의 머리를, 젊은 배우가 두 손으로 누르고, 둘 다 잡힌 아이에게 연신 발길질을 당하면서 겨우겨우 아이를 큰 방으로 잡아들였다. 나머지 다른 사람도 그걸 에워싸듯이 흥분해서 이동을 했다. 조그마한 악귀와도 같은 아이다. 젊은 시인이 엎드려 굽혀 그 아이의 발을 눌렀는데 금방 무릎에 얼굴을 차여서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세 사람의 악센 사내에 잡혔으면서도, 아이는 완강하게 말이라곤 없이 뱀장어처럼 요동질을 했다. 배우는 손가락을 깨물려서 울분과 아픔이 뒤섞인 울부짖는 소리를 냈다. 카메라맨의 볼에서도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이는 화가 나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공포에 질려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케냐의 동물영화에서 본 야생의 작은 동물을 포획하는 정경 같기도 했다. 그대로 버둥질치게 하면 이 작은 동물은 심장발작을 일으켜 뻗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일곱 사람의 참을 수 없게 화난 기분이 차츰 고조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를 잡아서 어쩌자는 것인가? 그러자 문득 그 작은 몸뚱아리 속에서 강철로 된 용수철이 튕겨져 꺾이듯이 부자연스럽게 아이는 모든 저항을 그쳤다. 그리고 아이는 증오의 독으로 엉겨있는 기묘한 소리로, “난 봤어”하고 울부짖었다. 가무잡잡한 작은 얼굴을 눈물로 흠뻑 적시며 뱀처럼 굳고 예리한 혀를 연신 입천장에다 붙였다 떼었다 하면서–.

일곱의 포획자들은 멍해져 버렸다. 다음 순간, 아이는 지난 밤, 재즈 싱어가 본 원숭이인지 조그마한 신인지 알 수 없던 그 민첩한 운동체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는 세 사람의 팔을 일거에 뿌리치고 여자들을 자빠뜨리며 뚫고 나가자, 닫힌 채로 있는 널 따란 유리문을 향해 돌진해 갔다. 세계의 끝장이 온 듯한 소리가 큰 방을 메웠다. 일곱 사람은 하나같이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그들은 부서진 유리문 저 편을, 아직도 어두운 정원의 소용돌이치는 깊은 안개 속을 울부짖으면서 (아마도 맨발을 예리한 유리조각을 잔뜩 밟으며 이슬에 젖은 잔디를 피로 물들이면서) 달려가고 있는 아이의 참으로 자그마한 검정빛 등을 본 것이었다. 금방 날이 샐 즈음이어서, 그 짧은 동안에도 안개는 계속 물려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일곱 사람은 고기를 놓친 뒤 파문이 잦아드는 해면을 보듯이 안개로 소용돌이치는 뜨락을 흥분해서 원망하듯이 쳐다보며 가만히 있었다. 부서진 유리문의 커다란 구멍으로부터 안개방울을 품은 새벽의 공기가 일제히 불어 들어와 큰 방에다가 거센 대류를 빚어냈다. 누구나가 머리는 덥고 아랫도리는 추워졌다. 실내 공기에는 짠 내음이 차츰 명확해졌다. 일곱 사람 누구나가, 소년이 도망해나간 순간 그대로의 자세로 머리만을 새벽녘 가까운 정원으로 비틀어 꼬곤, 의연하게 안개 바다 속으로 사라져간 그 잔상을 쫓고 있었다. 그들의 운동을 기록해 온 필름이 거기에서 갑자기 정지하여, 수은등은 한 장의 스틸을 공허하게 연방 번쩍거리게 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재즈싱어 혼자서만, 스틸로부터 빠져나와서, 바쁘게 방안으로 달려갔다. 방안은 다시 밤 속으로 가라앉고, 이제 누구나가 서로의 얼굴을 미라의 검은 얼굴인 듯이 보고 있을 뿐이다. 부서진 것도 그렇지 않는 것도 유리문은 단번에 허여스름한 빛을 더하여, 안개 속 뜨락으로부터, 방안의 밤을 격리시키기 위해 벽처럼 거기에 존재하는 인상으로 변했다. 재즈 싱어 이외에는 모두가, 방이 너무나도 어두워서, 그녀가 다시 불을 켜려니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 동이 터온 것이려니 하고 믿었을 테지. 그러나 스위치 바로 위의 벽에 머리를 박은 재즈 싱어는 꼼짝 않고 있다.

“야, 불을 켜라. 뭐 하고 있어?”하고 J가 너무 불쾌하여 겁먹은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모두 J가 그렇게도 큰 소리를 지른 걸 처음 듣는다고 생각했을 지경이었다.

“싫어, 싫어, 그냥 어둡게 해두지 않으면!”하고 열여덟 살 아가씨는 거세게 말했다. 그리고 저 쪽을 향한 채 어깨를 떨면서 흐느껴 울고, 히스테리 증상으로 언덕을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찌해 볼 수 없도록 튕기면서, 아아, 아아! 하고 아가씨는 몸을 뒤틀면서 울었다. 아아. 아아! 살해당한다. 포구 사람들에게 살해당한다. 저 아이의 말을 듣고 온 패거리들에게 살해당한다! 고작 간통 정도였을 뿐인 사람을 그 지경으로 해대던 사람들에게–.

나머지 여섯은 히스테리로부터 멀리 자신들을 감당해 내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 심야의 돌 깔린 길을 하나 가득히 메우고 침묵의 위협을 하고 있던 어민들의 무거운 이미지로부터 자유로와 지기는 이미 불가능하였다–.

“쟈가로 달아나요. 응 쟈가를 타고 달아나자구요! 저놈들이 오기 전에, 응!”하고 재즈 싱어는 울었다.

“안돼. 만일 네 말대로, 저놈들이 우리들 일에 화를 내서 무슨 짓을 하려고 든다면, 이미 포구 쪽 길에 모조리 나와서 우리 퇴로를 막을 거야!”하고 J가 거부하였다.

“그럼 어떻게, 그럼 어쩌지?”하고 히스테리 아가씨는 흐느껴 울었다.

“우선 불을 켜는 거야. 그리고 천천히 조반 걱정이라도 하자”하고 J는 말했다. 그 다음, 그는 재즈 싱어에게로 걸어가서, 왼손으로 스위치를 누르면서 오른손을 아가씨 목덜미에 대자, 아가씨는 혐오감에 떨며 울부짖음과 함께 그 손을 뿌리치며 도로 엎디고 말았다. 살갗이 벗겨져 버리지나 않았을까 걱정될 만큼 벽에다 강하게 이마를 찧은 채–.

불빛 속에서 재즈 싱어를 제외한 여섯 사람은 평안하지 못한 쑥스러운 기분으로 서로의 얼굴로부터 눈길을 돌리고 웅성거리며, 자기가 앉아 있는 의자라든가, 자기가 기대고 싶은 벽같은 걸 더듬어 찾았다. 젊은 시인은 입술로부터 턱에 걸쳐 코피로 심하게 얼룩져 있었고, 배우는 물려서 피멍이 든 손가락을 입안에 넣고 있었다. 카메라맨도 또한 손바닥으로 볼에 붙은 피를 비벼 대며 웅얼거렸다. 피를 흘리고 있는 세 사람만큼 심하지는 않았지만, 화장이 지워진 채인 여자들 얼굴은 환한 빛 속에서 혐오감 없이는 쳐다볼 얼굴이 아니었다. 그리고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수면과 작취미성으로, 녹초가 되어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더욱 더 가속적으로 모두가 불쾌하고 불안해졌다.

“어째서 그 아이를 그런 식으로 취급을 했을까. 만년필이든 뭐든 줘서 행복한 기분으로 평화적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는가?”하고 원망스러운 듯이 J가 카메라맨에게 말했다.

“정신이 들었을 땐 벌써 그놈은 내 팔 속에서 발광하고 있었어”하고 카메라맨은 변명을 했다. 그리고 주저를 섞어 덧붙였다. “게다가, 저놈은, 난 봤어 하더구먼. 그런 식으로 될 수밖엔 없었던 거 아냐?”

이때까지의 침묵보다 더욱 견디기 힘든, 더욱 함정에 찬 기분 나쁜 침묵이 다시 비행기 그림자처럼 그들 머리 위를 뒤덮었다. 그렇다 그놈은 모든 걸보고 있었어, 하고 누구나가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그들 일곱 사람 그룹 속에서, 누구 하나도 서로 다른 사람을 마주보고 않고 있었다. 차라리 자기자신조차 보지 않았음을 모두 비로소 깨달았다.

J의 누이동생은 소년이 물 속으로 다이빙하듯이 부순 유리문 곁에 서서 약간의 피가 거기 떨어져 있는 걸보고 있었다. 핏자국은 발코니에서 잔디가 시작되는 곳까지 이어져 있었다. 적지 않은 피가 여름 잔디의 무성한 풀을 얼룩지게 하여, 그야말로 무의미하게 흩어져 있었다. 그 자그마한 아이의 몸뚱이에 낭비해도 좋은 피가 얼마 가량이나 있다는 것일까?

J의 누이동생은 돌아서서 J를 지그시 보았다. 그리고는 J가 얼굴을 들고 당혹한 미소를 띠우려고 하는데 대해 선고하듯이 이렇게 말했다.

“만일 저 아이가 절벽에서 몸을 날려 죽게라도 된다면, 당신은 두 사람 째 아무 죄도 없는 순진한 인간을 죽이는 거예요, J”

“어째서 누이는 그런 소릴 하지?”하고 미쯔꼬가 말했다. 일순 도망한 아이 일은 잊어먹을 만큼 동요되고 가엾은 목소리였다.

“왜냐하면, 또 한 사람을, 이미 J가 아무 죄도 없는 순진한 인간을 자살시켰기 때문이야.”

“전처 말이에요? 그이는 노이로제로 자살하지 않았나요? 그게 J 책임?”하고 미쯔꼬는 J를 향해 말했다.

“내 책임이야”하고 J는 말했다. 그리고 누구나가 침묵했다. 재즈 싱어는 혼자 저 쪽으로 그냥 엎딘 채 여전히 흐느껴 울고 있었다. 그것은 교실에서 항상 고립되어 있는 지능지수가 낮은 학생과도 같다. 그 간절하고도 보기 흉한 흐느껴 우는소리가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고 화나게 했다.

“왜”하고 미쯔꼬가 말했다.

“어쩐지 복잡한 얘기야.”

“그 사람 자신의 탓으로?”하고 미쯔꼬가 말했다. 극히 약간이나마 희망의 조짐이 번득거리는 걸 보며.

“아니, 그것 뿐은 아니야.”

미쯔꼬의 절망은 회복되고, 더욱 깊어질 뿐이었다. 그녀는, 어떤 식으로, 하고 거듭 남편에게 물었다.

“넌 내 전처가 자살한 걸 알면서 나하고 결혼했지? 너와는 관계가 없어”하고 J는 아내와 매한가지로 깊은 절망에 빠지면서 에고이스틱한 껍질 속으로 급하게 들어가려고 했다.

“관계 있어요. 당신이 다시 똑같은 짓을 되풀이하려고 드니까”하고 J의 누이동생이 단호하게 말했다. “당장 지금, 저 아이가 절벽에서 상처투성이 주머니처럼 되어서 바다에 떨어지고 있다면 벌써 당신은 똑같은 짓을 되풀이했어.”

“나뿐이야? 그 아이가 본 것은, 내가 더러운 성교를 해치우는 것뿐인가? 너도 충분히 그 아이에게 보여지지 않았을까? 나와 마찬가지 정도로 더러운 너희들의 성교를?”

“뻔뻔하기가!”하고 스물일곱 살인 조각가 아가씨는 떨고 있는 딱딱한 새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게다가 꽤나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충혈이 되어서 눈꼽이 낀 금방 무너져 내릴 듯한 눈에 눈물이 가득 채워졌다. 그녀는 오빠를 노려본 채, 소리 없이 울었다.

“당신은 무얼 했어? 어떻게 해서 당신 전처를 자살시켰지?”하고 어깨를 떨면서 여전히 오열에 잠겨 있는 시누이를 무시한 채 미쯔꼬는 남편에게 따지고 들었다.

“때가 되면 얘기할게.”

“지금 듣고 싶어요”하고 미쯔꼬는 말했다.

“들어서는 어쩔래? 결국 그게 너한테 어떻게 관계되는 거야? 너는 단지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나하고 결혼한 것이 아니었나? 너는 지금 너의 우스꽝스러운 지옥 이미지의 전위영화를 만들고 있어, 그 이외에, 무얼 나에게 바랄 것이 있나?”하고 J는 항변했다. 하지만 그 소리는 그다지 설득적이지 못했다. 차라리 J자신이 자기 목소리에 혐오를 느낄 정도였다.

“J, 속이고 드는 건 안 좋아”하고 그때, 문득 창백한 낯빛의 중년 사내 카메라맨이 개입해 들어와, J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J와 카메라맨과는 이미 십 년 가까운 동안의 친구였는데, 그 긴 기간 동안, 항상 J는 카메라맨에게 군림하고 있었다. 카메라맨이 J에게 거역을 한 일 같은 건 한번도 없다. J는 그 카메라맨에게 지금 새삼스럽게 타인 그 자체를 발견하고, 꽤나 위협을 받은 기분이 되어버렸다.

“난 오로지–.”하고 J는 얼굴을 보기 딱할 정도로 붉히면서 타협점을 모색하려고 하였다. 카메라맨에게 십 년 동안 가신의 위치를 새삼 확인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제 J는 에고이스틱한, 기가 약한 아이처럼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J의 그전 아주머니가 자살한 것은 J가 결혼 뒤에도, 추한 외국인 남색가 하고, 대낮부터 침대에 들어가곤 해서였다. J는 그 진짜로 순진한 아주머니에게 그걸 고백하지도 않았으면서, 보여지지 않도록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았어. J, 자네는, 결혼 한 첫날부터, 그 아주머니가 자살하길 바라고 있었어. 자네는 아주머니가 수면제를 백 알이나 먹은 것을 미리 알았으면서도 잠든 시늉을 하며 아주머니가 죽어가는 걸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어. J, 언제까지 말 않고 속이려는가?”

J가 의자에서 튕겨 일어나듯이 서서 카메라맨 쪽으로 다가갔다. J가 카메라맨의 볼을 후려치는 걸, 카메라맨은 더욱 더 파래지면서, 입술에서 피를 흘리면서 말없이 무저항으로 견디고 있었다. 그는 지금 극도로 지쳐 있는 중년 사내이다. 고통의 소리조차 낼 수 없다. J는 결국 의무처럼 계속 후려치는 것이었다.

“J를 말려, 어서 J를 말려, J가 때려죽이겠어”하고 자기가 매를 맞는 듯한 노여움과 고통에 휘말려들며, 비명처럼 날카롭게 미쯔꼬가 소리를 질렀다.

젊은 시인이 일어나서 J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J의 주먹을 쥔 오른팔과 왼쪽 어깨가, 시인의 손에 닿자 대번에 힘을 잃고 갓난아기의 그것처럼 말랑말랑해졌다. 젊은 시인은 J가 넘어지는가 하고 일순 의심했다. 허나 J는 넘어지지 않았다. 거친 숨을 쉬고 얼굴을 시뻘겋게 붉힌 채 가만히 무저항으로 젊은 시인에게 잡힌 채로 있다. 그리곤, 자기가 녹초가 되어서 뻗기라도 할 듯 이 음울한 소리로, “놓아줘, 이젠 되겠지”하고 뒤쪽 시인에게 말했다.

시인이 J의 몸뚱이에 걸쳤던 팔을 덜렁 내리자, J는 시인에게서 얼굴을 돌린 채 자기 의자로 돌아갔다. 젊은 시인은 미쯔꼬 의자에 수호자처럼 선 채, J를 노려보고 있었다. J는 두 손바닥에다 얼굴을 묻고 가만히 있었다. 그도 또 오열을 터뜨리기 시작하는가 하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는 굴복한 채로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일순, 열을 띠어 붉은 원숭이와도 같은 얼굴을 쳐들자 젊은 시인을 노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네가 미쯔꼬와 잤었다는 걸 알고 있고, 지금도 이따금씩 자네가 내 아내에게 욕망을 느끼고 있는 걸 알고 있어. 자네는 그런 일 모두를, 자네의 그 양순해 뵈는 침묵과 미소로 덮어 싸고, 나한테 와있는 거니까, 어쩌면 자네에겐, 나를 규탄하는 심문관 비슷한 눈길을 하고는 있더라도, 내심으로 걸리는 구석은 있지 않을까?”

가슴이 막힐 듯한 거센 증오에 찬 침묵이 J, 미쯔꼬, 여류조각가, 젊은 시인, 카메라맨 작자를 짐승우리처럼 감쌌다. 그들은 꼼짝달싹도 않고 노여움과 불신과, 우정의 상실감의 먹물에다 몸뚱이 안 쪽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지난 밤 그들을 긴밀하게 이어주고 있었던 가공의 우정이라는 코일조각을 허망하게도 두 손바닥에다 올려놓고, 그 조각 자체도 단번에 서리처럼 녹아 스러지지 않을까 하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는 보잘 것 없고, 외톨이고 버림받은 듯이 느끼고 있었다. 재즈싱어의 훌쩍이는 소리는 그들 모두의 증오로 상처 입은 목안에서 나는 소리인 듯이 생각되었다.

오직 혼자만이 히스테리로부터도 증오의 사슬로부터도 자유로운, 스무 살 먹은 배우도 또한, 하나의 이상을 자기 내부 속에 발견하고 있었다. 그는 상상력이 부족하고 판단력이 약하고 둔감한 억센 사나이의 아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가 느끼고 있는 육체적인 불편함, 불쾌감의 저 안쪽에, 무언가 깊이 그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숨어있는 걸 예감하지 않고서는 못 배겼다. 그래서 그는 골이 아프다.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 기괴한 것의 싹을 극히 하찮은 구체적인 대상으로 바꾸어놓고, 그것을 극복하고 싶다. 그는 침착하게 있지 못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를 살폈다. 그리곤 문득 하나의 착상을 얻었다. 그는 당돌하게도 이런 말로 침묵을 휘저었다.

“아아, 나는 샤워를 하고 싶어. 목욕탕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싶다니까. 난 기분이 나빠. 난 여자하고 그 짓 한 다음 날 아침엔 늘 목욕탕으로 들어가서 샤워를 하는데 말이지! 자기의 정액이나 여자의 바르토린 선의 똥 같은 게, 내 페니스를 풀칠한 것 같아서 말이지. 아아, 난 기분이 나빠!”

젊은 배우를 포함해서 여기 사람 누구나가 프로판 가스가 많이 있지 않고선 욕실도 사용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 자신의 피부가 더럽혀져 있다는 불쾌한 가려움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증오감의 사슬이 육체적인 자기 혐오로 물들여져서 이중으로 되었다. 배우는 어릿광대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응, 나는 기분 나빠. 몸뚱이째로 냄새가 나! 혼자서 페니스와 바기나를 갖고 있어. 게다가 두 가지다 굉장히 냄새나는 놈을 갖고 있는 기분이야!”

물론 나머지 여섯은 웃지 않았다. 젊은 배우는 점점 더 불쾌하고 구슬픈 기분이 되었다. 칭얼거리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기분. 그래서 그는 일부러 의자를 넘어뜨릴 만큼 거칠게 얼어나자, 유리문을 향해 걸어갔다. 부서진 유리문 조각을 밟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극히 양식화된 고전극의 도둑이나 밀통자와도 같은 발걸음으로. 그리고 돌연 그는, 비연극적인 목소리로 돌아가 울부짖었다. 어린 겁쟁이 아이와도 같은 목소리로, “야! 저놈들이 왔어, 보라구!”

모두가 유리문 저편의 밝아오는 정원을 돌아보았다. 완전히 안개는 개어 오르고, 아름다운 여름의 새벽녘이었다. 무성하게 자란 잔디 언덕이 모조리 유리문 박을 메우고 있었다. 바다도 안 보인다. 수목도 안 보인다. 손질이 조잡한, 그러나 꽤나 짙게 자라 있는 잔디밭 곳곳에 잔디보다도 강인한 들풀이, 잔디의 초록보다도 더 짙은 초록빛의 키 높은 덩어리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두 개의 조상. 앞의 것은, 아폴론이다. 손목이 없는 왼팔을 왼 쪽 앞으로 내뻗치고, 단정한 청년의 머리도 그쪽 방향을 쳐다보고 있다. 부드럽게 발굽을 쳐든 왼 쪽 다리의 이완된 근육 덩어리는, 아침 이슬에 젖어 햇볕의 직사광선이 채 이르기 전의 새벽녘 평온하고도 조용한 빛 속에, 무겁디 무겁게 살짝 살짝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포도잎과 두 개의 넓적다리 안 쪽 접점만이 검정색 짙은 조각은 제우스에 틀림없다. 수염과 같은 양식의 머리카락으로 에워싸여진 노인의 얼굴에, 눈은 공허한 두 개의 퀭하게 뚫린 구멍으로 열려 있다. 그것은 새벽녘의 미광에 미치지 않는 것 없이 드러내어진 초록빛 정원 속에 남은, 밤의 약간의 찌꺼기이다.

큰 방의 안 쪽 의자에 앉고 혹은 그 주위에 둘러서서 기다리고 있던 자들의 눈에 어민들은 불시에 두 개의 조각 사이로 나타났다. 그것을 본 누구나가 부르르 떨었다. 그 작은 떼거리는, 지난밤에 미미나시 만의 마을, 돌 깔린 좁은 길을 점거했던 사람들이었다. 중년 여인네들, 노인들, 아이들, 그들 얼굴은 새벽빛 속에서, 헤드라이트 빛에 떠오른 때보다도, 더 넓적하게, 더 동물 적으로, 그리고 또 점점 작게 움츠러드는 듯이 보였다. 그들은 돌 깔린 길에서 불면의 밤을 지낸 것일까? 저 남 모르게 고독한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있던 간통한 여자를 위협하고 욕되게 하던 침묵의 집회는 새벽녘까지도 계속되었던 것일까? 고기잡이 나간 자를 빼고는 나머지 모든 어민이, 밤새 분격해서 길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면, 미미나시 만의 마을은 증오를 위해서는 모든 일상 생활이 붕괴하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 무서운 사람들의 마을인가? 방안의 일곱 사람은 공통된 두려움의 연줄로 다시 이어졌다. 지난밤까지 애매한 친화력으로 하여 그들을 하나의 떠들썩한 파티에 대해 연대 책임을 취하게 했듯이, 지금은 새로이 시작되는 공포와 폭력의 파티에로 협동시키고 있었다. 침묵한 채로 마흔 명 가량의 어민들은 가까이 다가왔다. 그들은 발코니 앞에까지 왔다. 방안의 일곱 사람은 모두가, 떼거리 앞쪽에 풍성한 머리카락과 가무잡잡한 피부를 지닌 인디언 비슷한 중년의 여자와, 두 볼이 피로 더럽혀져 있는 소년이 밀려오듯이 다가오는 걸 보았다. 모두가 막바지에 이른 기분이었다. 방안을 들여다보고 멈춰선 어민들이, 지난 밤, 저 볼품 사납게 압박 받던 여자 집앞에서와 마찬가지로 가혹한 눈길을 하고 있고, 똑같은 잔인한 정념을 그 밑바닥에 숨기고 있는 것은 이미 확실하다. 스무 살의 배우도 기가 죽어, 동료들 의자 사이로 후퇴하였다. 바깥의 사람들은 울부짖으며 난입해서 마음껏 폭력을 휘두를 것인가? 그전엔 방안의 위협받는 일곱 사람은 할 일 없이, 그저 대기하고, 깊은 잔디에 복사뼈를 묻고 장딴지까지 이슬에 적신 미미나시 만 사람들은 당장 습격해 들어오려고 태세를 정비하였다–.

그때, J의 누이동생이 의자에서 일어나 나갔다. 유리조각을 실내화로 지근지근 밟으면서, 부서진 유리문의 위험한 구멍 속을 조심스럽게 뚫고, 혼자서만 발코니로 나가서 용감하게도 사람들과 맞섰다. 방안에서 보고 있는 여섯 사람 눈에, 미미나시 만 사람들이 참으로 깊이 동요하는 게 느껴졌다.

“그 아이가 절벽에서 떨어져서 죽지나 않는가 하고 걱정하고 있었어요. 밤새 여기에 숨어 있다가는, 유리문을 부수고 도망쳐 버려서 말이죠. 많이 다치지는 않은 것 같군요?”하고 J의 누이동생은 뻔뻔할 정도로 오만하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필사의 각오로 반격에 나선 것이다. 그녀의 정치적인 함정은 사람들을 휘어잡을까? 그 권모술수에 미미나시 만의 어민들은 벌써 거짓냄새를 맡고 그 거짓의 작은 구멍을 실마리로 잡아 J의 누이동생을 단번에 붕괴시켜버릴까? 배후의 여섯 사람은 격렬하고도 불안한 의혹에 휘감겼다.

침묵, 승부가 갈리는 미묘하게 절박한 감각. 저 소년은 울부짖는 소리를 내며 J의 누이동생의 그 기만을 뭉개버리지나 않을까? 일순, J의 누이동생은 승리를 했다. 인디언처럼 생긴 그 중년 여인은 그 키다리의 두터운 허리 왼쪽 곁에 바싹 웅크리고 있는 소년의 머리를 꽉 왼손으로 움켜잡았다. 그리곤 오른손을 크게 휘둘러 갈겼다. 철썩 하고 예리한 소리가 울렸다. 발코니 위의 아가씨도 방안의 여섯 사람도 모두가 욕지기의 떨림에 휘감겨 들었다. 소년은 잔디 속에 엎어지듯 넘어졌다. 그 엉덩이를 아낙의 완강한 발이 걷어찼다. 소년은 잔디 위를 짐승새끼처럼 벌벌 기어서 도망치려고 서둘러 일어서자 울부짖으면서 뛰어갔다. “난 보았어! 난 봤어!”하고 눈물에 잠긴 억울한 울부짖음 소리를 질러대면서.

“저 바보새끼가 도깨비를 보았다고 해서, 도깨비가 사람 죽이는 걸 보았다고 해서는! 저 바보 거짓말쟁이 새끼 꼴을 못 봐!”하고 아낙은 매우 부끄러워하는, 비열하고도 자잘한 웃음을 볼에 띤 채 말했다. 아낙 주위의 모든 얼굴이 이완되고, 선량한 듯 무의미한 비개성적인 것으로 변했다. 모두가 애매한 수치심의 포로가 되어서 곤혹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우리같은 건 괜찮아요. 옛날처럼 생선을 가져다 줄래요? 영화를 찍으러 왔어요. 일곱이나 되니까, 꽤나 많이 필요한데, 좋겠오?”

“영화를!”라고 하는 소리를 저마다 한마디씩 하여, 술렁거렸다. 미미나시 만 사람들은 이젠 완전히 J의 누이동생이 부리는 권모술수 영향 밑에 있었다.

“어젯밤도 그랬고, 오늘 아침에도 이렇게 빨리 무엇 때문에 나다니고 있지요? 축제날도 아니겠고!”하고 그녀는 힐난하듯이 추궁을 하였다. 그녀는 이제자신이 만만해서 기승한 듯이도 보였다.

아낙들, 노인들이 변명을 했다. 지금 미미나시 만 마을로부터 고기잡이 나간 배들은 하나같이 안 잡혀서 괴로워하고 있다. 그래서 이 마을에 남은 사람들은, 이 포구에서 흉어의 씨앗이 됨직한 악령의 적발과 그 추방에 나서고 있다는 거였다. 저 간통한 여자도 자기 죄를 몽땅 털어놓고 모든 사람 앞에서 용서를 구할 때까지는 계속 감시를 당할 것이다. 저 여자가 굴복했을 때 악령 하나는 추방되는 것이다. 이밖에도 아직 가지가지 악령이 적발되지 않으면 안 된다–.

미미나시 만 사람들이 말없이 다시 한 떼거리가 되어 조각 사이를 빠져 내려가자, J의 누이동생은 발코니로부터 유리가 깨어 진 구멍을 조심스럽게 거쳐 다시 방안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얼굴은 정원을 조심스럽게 거쳐 다시 방안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얼굴은 정원을 등져서 새까맣고 그 솜털이 남아 있는 윤곽만이 초록빛으로 번쩍였다. 어민들에 대한 꽤나 당당하고 위압적이었던 그녀는, 방안으로 돌아오자 늙은 여자처럼 불안정하고 지치고 우울한 듯 차라리 멍해져 있었다. 그녀는 여섯 사람을 향해 목 쉰 소리로, “나는 잠시 자겠어, 이제 나에게 다급한 용무는 없겠지?”하고 자조적으로, 또한 대어들 듯이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그대로 의자 곁을 빠져 큰 방으로 가로질러서 도어를 열고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J가 자던 방과는 다른 방의 문 열리는 소리가 이층으로부터 들려왔다. 모두 말없이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J의 누이동생이 문을 닫고 필경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눕는 묵직한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층으로부터는 이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카메라를 조립해야지. 이제 촬영준비를 하지 않으면 해가 올라와 버려”하고 카메라맨이 역시 퉁명스럽게, 그러나 꽤나 확실하게 조금 전의 얘기로 서로 파괴됐던 것을 만회하고 싶은 듯이 말했다. 그리고 혼자 일어서자, 아리프렉스 케이스 곁에 웅크리고 작업을 시작했다. 말없이, 여전히 화나 있는 듯이 거칠게, 그러면서도 어딘가 유유자적하게.

그래도 카메라맨의 그 제안이 언제나와 같이 다른 사람들을 구제한 것이다. 미쯔꼬는 히스테리 발작의 여운 속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해 있는 창백한 재즈 싱어를 달래어, 일에 끼어들게끔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시인은 조각의 사진효과를 높이기 위해 양동이에 물을 떠다가 잔디밭을 걸어가서, 아폴론 상의 살갗을 씻었다. 항상 나태하여 육체노동을 수반한 일에는 결코 끼어들지 않는 J가, 그 날은 제우스의 조각을 씻었다. 젊은 배우는 수선스럽게 훌렁훌렁 윗도리를 벗고 상반신만 벌거숭이가 되자, 두들겨 맞은 소년이 넘어졌던 근처에 구부리고, 잔디에 피가 붙어있는지 어떤지를 살폈다. 이미 한여름에 알맞게 직절한 기온의 상승이 시작되어 있었고, 뜨락은 춥지가 않았다. 잠시 후 미쯔꼬에게 설득 당한 재즈 싱어가 완전히 벌거벗고 잔디로 내려가, 조각을 향해 비칠거리며 가까이 다가간다. 열여덟 살 아가씨의 얼룩진 작고 어린 얼굴은 검푸르게 꽤나 추했는데, 그 날씬한 벌거숭이 몸뚱이 자체는 제법 색정적이고 은밀하였다. 그것은 쉬르 리얼리스트의 나부 이미지를 필름 속에 충분히 환기시킬 것이다. 카메라맨이 촬영기를 조정하고 있는 곁에서 역시 창백하게 못생긴 미쯔꼬가 콘티를 쳐다보고 있었다. 훨씬 아래쪽 바다 는 이미 햇살에 타서 반사의 빛을 내고 있었다. 뜨락은 완전히 번쩍이는 여름 아침 한가운데에 자리해 있었다.

“어, 이것 봐. 그 아이의 부러진 이가 여기 덜어져 있군. 이것봐!”하고 젊은 배우가 낭낭하게 부르짖었다. 그는 오른손에 작은 물건 하나를 들고 있고, 햇살 속에 벌거숭이 상체를 장미빛으로 빛내면서 미소하고 있었다. “그놈은 꽤나 아팠겠군! 볼의 아픔이, 그놈 마음의 아픔을 저리 비키라고 하겠어!”

J도, 그 아내도, 재즈 싱어도, 카메라맨도, 젊은 시인도, 문득 움직임을 잃었다. 그들은 가만히 비난의 눈길을 젊은 배우에 게 돌렸다.

“응? 그놈은 도깨비 본 걸 잊어버렸다니까, 이렇게 피를 흘려서 아픈 상처를 참는 동안에, 그렇지?”하고 젊은 배우는 소리 질렀다.

모두가 말없이, 어이없이 멈춰 서 있었다. 젊은 배우는 짜증스럽게 계속 소리지르고 있었다.

“응? 모두 어떻게 된 거야? 미라가 된 사람처럼! 어떻게 된 거야? 시간이 멎어버린 듯이!”

누구 하나 대답하지 않았다. 의연하게, 멈춰 선 채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돌연, 젊은 배우는 오른손에 그 아이의 이를 움켜잡은 채, 피로 얼룩진 잔디 위에 두 무릎을 대며 엎드려서 몸을 뒤틀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아아, 하고 흐느껴 울면서 스무 살 먹은 배우는 중얼거렸다. “아아, 난 싫어, 이런 곳에서, 이런 알몸으로, 이런 일이나 하고 있는 게, 난 조금도 즐겁지가 않아! 아아, 난 싫어, 진짜로 나다운 즐거운 일이 틀림없이 있을 텐데. 아아, 그건 다른 젊은 놈이 하고 있어–.”

 

 

 

2

국회의사당 앞 역을, 지하철의 혼잡한 차량이 발차한 후 1분이 지났을 때였다. J와 노인이 동시에 열여덟 살 쯤 된 소년에게 눈길이 멎었다. 그것은 장식 단추나 꼬리 버클이 너저분하게 붙어 있는, 흔히 젊은이들이 입는 영국제 트렌치 코트 차림의 덩치 큰 소년이었다. 트렌치 코트의 깃 틈으로 들여다보이는 목과 얼굴은 땀에 흠뻑 젖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밀집된 사람 몸뚱이로 빽빽한 속을 크게 한 발짝 내딛으며 가는 소년의 한쪽 발이 보였다. 그것은 사슴가죽 부츠를 신은 발로서, 일순 장딴지와 무릎이 그대로 드러나보였다. 소년은 야윈 듯한 느낌이었지만, 턱으로부터 머리에 걸친 포동포동한 살집으로 미루어, 70킬로는 실히 넘을 것으로 보였다. 아마도 트렌치 코트와 부츠 외에는 전혀 알몸이어서 야윈 듯이 보이는 것이다.

지하철 전차는 겨울 새벽의 늦게 나온 신문배달부처럼 좌우로 떨면서 급하게 내달리고 있었다. 소년은 생선 알과도 같은 땀방울을 이마에 가득 매달고 또 한발 앞으로 나갔다. 소년의 몸뚱이는, 지금 한 아가씨의 등과 엉덩이에 찰싹 들어 붙어 있다. 도깨비처럼 이마에 혹살 하나가 있고 거만하게 코를 위로 쳐들고 있는 작달막한 아가씨의 등뒤에서. 아마도 무쇠와도 같은 자제심을 발휘해서일 것이다. 소년은 조용히 소리도 없이 한숨을 내쉬고, 그의 주위에 대해 경계의 눈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시궁창의 쥐를 쫓을 수도 없는 병에 걸린 개와도 같은 눈이다. 약간 교활한 듯한 생기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완전히 열에 들떠있다. 소년의 잔뜩 벌려질 대로 벌려져서 무언가 색다른 냄새를 맡아내려고 하는 콧방울은, 영낙없는 몽고인 계의 생김새다. 그를 포함해서 모든 승객들 머리의 약 5미터 가량 위에는 초겨울의 황량한 저녁 녘 대도회지의 풍경이 퍼져 있고, 거기에는 1천만의 사람이 생활하고 있는데, 누구 하나 이 고독한 소년이 벌이는 작업에 협력자는 없다 라는 것을, 소년은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덩치 큰 그 소년은 땀에 후줄근히 젖은 채, 마음 놓고, 이 세계 전체를 오만하게도 자기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면서, 바로 그 순간, 죽을 둥 살 둥 흥분하였다. 트렌치 코트의 비밀 포키트의 한 조그마한 창문으로, 딱딱한 무기 하나를 내밀고, 그걸 아가씨의 오린지 색 코트의 엉덩이 부분에다 사랑스러운 듯 울적한 듯, 열심히 비벼대기 시작했다. 성자와도 같은 위생무해의 미소를, 쾌감으로 말려 올라가는 입술을 중심으로 차츰 온 얼굴에 띠어가면서–.

J와 그의 친구인 몸집 큰 노인이 어깨를 붙인 채 그 정경을 보고 있었다. 둘 다, 긴장을 도저히 견뎌내지 못하고 눈을 감고 싶을 정도이다. 특히 노인은 심장발작이 두려웠을 것이다. 전차가 역으로 들어가 정차하고, 사람들을 토해내고, 새로운 사람을 안으로 빨아들이고, 다시 발차했다. 소년이 이미 사라져 있길 바라면서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그 쪽을 쳐다보고, 아까보다는 약 간 승객이 빠져나간 인간의 정글 속에, 그 소년이 아직 활동 중인 것을 발견했다. 더구나 지금 소년에게는, 죽음처럼 피할 수 없는 오르가즘이 엄습해 오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순간, J 일행 두 사람뿐만 아니라 전차 속의 모든 타인들의 수 없는 눈이, 모조리 맹렬한 기세로 열려져서, 소년에게 주목할 듯 하였다. 소년은 타인들의 눈의 홍수 속에서 오르가즘에 이르렀다. 그때, 소년을 지켜보고 있던 청년과 노인 곁에서, 굳센 중년 사내 하나가 뛰쳐나와서 소년의 트렌치 코트 깃을 휘어잡았다. 단번에 트렌치 코트가 훌렁 벗겨지지나 않는가 싶어, 청년과 노인은 침을 삼키면서 더운 숨을 내뿜었다.

“저 놈은, 과했어요”하고 청년은, 노인의 식물과도 같은 귀에다 대고 소곤거렸다.

지금 저 소년의 허리 속에서는 쾌감의 물웅덩이가 치욕감과 공포의 잉크로 탁해지기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 절망이 오르가즘의 마지막 하나의 맥동과 더불어 저놈으로 하여금 아스라하게 신음을 토하게 할 것이며, 몸을 떨게 할 것이라고, 심장을 이상 항진시킨 고동에 밟히며, 두 사람은 구슬프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절대감각이 저놈의 젊디 젊은 내장 전체를 새끼줄처럼 꼬이게 할 것이다. 저놈은 트렌치 코트를 벗기우고 알몸뚱이로 작은 주름이 잡힌 눈과, 축 늘어진 페니스로부터 끈끈이 방울을 떨구며, 용두질한 침팬지와도 같은 꼬락서니로 경찰에 끌려가는 자신을 예감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허벅지에는 이미 굳어 있는 눈물과도 같은 색깔의 정액 젤리를 묻혀가지고, 수 없는 적의를 지닌 눈앞에서.

“저, 모험가를 구해 주지 않으렵니까?”하고 노인은 받았다. 그리고 둘은 트렌치 코트 소년을 잡고 있는 사내 쪽으로 나란히 다가갔다. 흥분으로 창백해지면서 차라리 자기 자신이 구조 당하는 입장이기라도 한 듯이 느끼면서.

“우리가 경찰에 넘기지요. 참말로 이런 치한이 있겠나”하고 노인이 소년을 잡고 격앙되어서 딱딱해 지려는 볼에다가, 힘든 노력 끝에 겨우 약간의 미소를 유지할 수가 있었다. 매와 같이 수지빛을 띠고 날카롭게 빛나는 눈에는 가장 느슨한 표정을 띠우려고 하고, 그리고 그 굴강한 소방단원과도 같은 중년 사내에 비하더라도 당당하게 떨어지지 않은 몸집으로, 부드럽게 그러나 완강하게 위압을 주면서. J는 항상 이 노인의 육체적인 위엄에 매혹되곤 했다. 그리고 이 노인이 30대 무렵에 지니고 있었을 것인 근육다발에 대해서는 막연한 질투를 느끼는 것이다. 이 늙은 들소의 내부에, 불안한 불만족의 가시가 가득 돋아나서, 항상 물이끼의 촉수처럼 떨고 있는 것을, J 이외에 누가 꿰뚫어 볼 수가 있었을까?

“이런 치한은 두들겨 패어줘도 괜찮아요.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가씨에게, 저런 짓을 하다니 원!”하고 중년사내는 이젠 분격을 지나치게 연기해내기까지 하면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노인이 일순, 거센 고독한 노여움에 사로잡혀서, 눈 가장자리의 수 없는 고엽색 주름에 덮인 피부를 붉게 물들였다. 그러나 중년 사내는, 그 자신의 치한에 대한 분격에 노인이 동조해서 화를 낸 것으로 오해하고, 착한 사람처럼 끄덕이는 것이었다. J는, 노여움으로 붉어지는 노인의 얼굴이, 고든 진의 레테르에 취한 승냥이 비슷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J가 노인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발견하고 있는 유사점이었다.

“아무튼 우리가 경찰에 넘기지요. 당신의 명함 한 장을 주시면 진짜로 이놈을 잡은 것이 당신이라는 걸 서장님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하고 J는 노인이 중년 사내를 매도하기 시작하기 전에 재빨리 끼어들었다.

“유쾌하군요. 정의파 동료를 만날 수 있어서. 내가 시간이 있으면 같이 경찰로 갈 것인데, 이 치한 놈같으니라구!”하고 중년 사내는 속주머니 지갑에서 주둥이가 부러진 낡은 명함 한 장을 빼내어 그걸 J에게 건네었다.

노인과 J는 양쪽에서 트렌치 코트 소년의 몸뚱이를 붙잡았다. 그들의 옆구리와 허리에 잡힌 소년의 몸뚱이가 떨고 있는 게 전해져 왔다. 울지마, 바보 같은 비명이나 애원하는 소릴 내지 마, 하고 J는 말없이 수그린 채 계속 떨고 있는 소년에게 저 목안에서만 울리는 은밀한 소리로 속삭이려고 들었다. 중년 사내는 오린지 색 코트의 엉덩이에 얼굴을 내어, 쿨적이면서 울고 있는 그 아가씨를 위로하려 들었다. 그는 쥐색 손수건으로 정액을 깨끗이 훔쳐주려다가 다시 한번 아가씨에게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다 . 주위에 모여 있던 승객들은 기분이 좋아 흥분해서들 웃고 있었다. 이마에 도깨비와도 같은 혹살을 지닌 그 아가씨는 새파랗게 질려 금방이라도 싯누런 위액을 토해낼 것 같았다. 상처가 있고 추하게 생긴 아가씨의 인상만이 J로 하여금, 그 원인을 만든 치한 소년에 대해 약간의 혐오를 느끼게 하였다. 하필이면 이렇게도 역겹고도 못생긴, 게다가 겁까지 많은 아가씨에게 어째서 페니스를 비벼댔다는 말인가, 하고 J는 불만스럽게 여긴 것이다.

“아가씨, 이런 일로는 임신되지 않아. 그러구 당신은 처녀를 잃지도 않았어. 순결하다구!”하고 더욱 더 신이 난 중년 사내는 아가씨에게 소근거려서, 주위 승객들을 다시 한번 웃겼다. 그때서야 노인도 J도 그 사내가 술냄새를 풍기고 있는 걸 눈치챘다.

다음 역에서 노인과 J는 소년의 두 팔을 옆으로 잡은 채 플랫폼에 내렸다. 도어가 닫쳤을 때, 중년사내는 싯누런 옥수수 알과도 같은 이빨을 원숭이처럼 드러내며 웃고 손을 흔들었다. J는 사내로부터 받은 명함을 찢어서 버리고 사내를 향해 제법 진지하게 엿 먹어라는 식을 해보였다. 중년 사내가 어떤 반응을 하건 관심도 없이 J와 노인은 소년의 팔을 잡은 채(이젠 나이가 각각 다른 유쾌한 3인조이기라도 한 듯이) 플랫폼 층층다리를 향해 걸어가면서 소년에게 각각 이런 주의를 주었다.

“네가 하는 짓은 너무너무 엉망진창이야. 그래 가지곤 안 잡히는 게 이상하지. 왜 좀 더 조심성 있게 못 하나?”

“더 좀 승객이 많은 때를 잡아서 해야지. 그런 모험을 할 셈이면, 만원 전차 속이어야 한다구.”

그리고 노인과 J는 동시에 소년의 팔을 놓아, 그냥 그 자리에 서서 소년을 풀어주었다. 그들은 소년을 구해 내는데 성공한 셈이다. 소년은 자유로워졌음에도, 여전히 두 사람으로부터 속박을 받고 있다는 듯이 두세 발짝 같은 자세로 앞으로 나가다가, 갑자기 서서 돌아다보면서, 이상하다는 듯이 노인과 J를 쳐다보았다. 그의 콧방울은 이제 부풀어 있지가 않았고 눈도 앓은 개 같진 않았다. 오르가즘 뒤의 선량한 육체적 진정이 소년의 큼지막한 얼굴에 이를테면 천사같은 인상을 부여하고 있다. 그는 수난 뒤의 빈사상태에 있는 순교자와도 같았고, 고난 뒤의 성자와도 같았다.

“당신들은 나를?”하고 쨍한 목소리로 소년은 물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내빼려는 자세를 취하면서도 의아해 있었다.

“우린 너를 경찰에 넘기려던 게 아니야. 그건 괜한 농담일 뿐이었어”하고 J가 말하기 거북한 듯이 입 속으로 웅얼거리면서 말했다. 소년이 너무나도 진지하여 구해 낸 쪽은 스스로를 약간 부끄럽게 조차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난 오늘 잡혀서 혼나게 되는 걸 미리 고려에 놓고 있었단 말요. 나는 결심하고 이 짓이 갈 수 있는 한계점까지 나갔었어”하고 소년은 대어들 듯이 말했다.

J와 노인은 서로 멍하게 마주보았다. 그리고 J는 노인이 겨우 미소하는 걸보고 자기도 씁쓰레하게 웃었다. 약한 곳에 정확한 한방을 먹고 깜짝 놀라서 비로소 상대방의 펀치력을 평가하고 있는 관대한 복서의 미소를. 그리하여 J와 노인은 새로운 호기심에 자극되어서 소년을 더욱 주의 깊게 보았다. 소년은 짜증이 나고 분하고 그리고 또한 슬퍼보였다. 그를 양순한 성자와도 같이 보이게 했던 조금 전의 오르가즘 직후의 고요한 인상은 당장에 벗겨져 버리고 그 대신 극히 예리한 불만의 그림자가 짙게 떠올라 있었다.

“난 이 코트와 부츠 이외엔 아무 것도 입지 않고 있는데, 이 차림으로 거리에 나올 결심을 하기까지, 난 꽤나 번민했어. 그리고 누구나가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 쾌감의 마지막 건널목을 훌쩍 뛰어 넘는다는 건, 사실은 시속 80킬로로 내달리고 있는 오토바이 위에서, 눈을 감고 손을 놓는 모험만큼이나 두려웠던 거야. 그 결사대원과도 같이 진지한 나를 당신들은 한낮 게임 도구로 취급하나?”

그리고 소년은 충혈된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갑자기 J를 향해 후려치려고 들었다. J는 대학의 여름방학 때 연습했던 권투 기술을 써서 거칠고도 가혹하게 소년의 앞을 가로막았다. 소년은 아파서 신음하며 두 팔을 덜렁 내려뜨리고, 찔끔 눈물을 흘렸다.

“뭣하면, 너를 철도 공안관이나 경찰에 잡아 넘기겠어”하고 J는 숨이 차서 붉게 물들여져 있는 손목을 비비면서 소년을 노려보고 위협했다.

“그럴 필요는 없어”하고 소년은 눈물이 가득한 눈에 일순 다시 공포의 기색을 드러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J는 소년이 수면제를 마시고 잠들기 직전의 흥분과 심리적 불균형 상태에 있는 듯한 것을 느꼈다. 그것은 어쩌면 J가 모르는 그 어떤 특별한 마약에 의한 흥분이었는지도 모르는데, J는 몇 년 전 자기가 그 중독증상을 좀처럼 극복할 수 없었던 독일제 수면제의 가공할 정도로 매혹적인 하얀 정제를 떠올렸다. J는 단지 공허하게 앙양되고 그리하여 문득 공포에 찬 무의식의 밑바닥으로 떨어져 갔다–.

J는 회고적인 기분이 되어서, 소년이 그에게 갑자기 달려든 일로 상했던 감정으로부터 헤어나왔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경찰에 자진해서 가기 전에, 우리들 단골 술집에 가지 않겠어? 우네비 조오의 호텔 바야.”

“당신들이 남색가가 아니면 가겠어. 아무튼 난 남색가를 위한 지겨운 닭은 아니니까”하고 소년은 조소적으로 말했다.

J는 대답하질 않았다. 그는 이미 오랫동안 동성의 애인과 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젊은 사내의 나체나 남근 감촉에의 갈망이 이따금씩 그를 혼란시키는 일은 있었다. 나는 이제 결코 저런 종류의 자극적인 성관계를 갖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고 그는 이를테면 자기 징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하긴 J는 남색가적 본질이란 게 태어날 때부터 한 인간에게 내재적으로 존재해서 그 인간으로 하여금 평생동안 남색가로 결정지어놓는다, 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형은 아니었다.

“우린 남색가가 아니야. 그리고 우릴 보고 당신 당신하고 부르지 말아!”하고 노인이 말했다.

노인과 J와 소년은 겨울 저녁 녘의 거리로 나섰다. 약간의 눈이 간헐적인 바람을 타고 집요하게 되풀이되어 내리고 있었다. 소년은 몸을 떨면서 몇 번이나 우스꽝스러운 딸꾹질을 했다. 노인과 J는 우선 소년을 양품점으로 데리고 들어가 바지 하나를 사주고, 소년에게 그걸 변소에 가서 입고 나오도록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너무나 추워서 입술을 오디처럼 검푸르게 부풀리고 있던 소년은 택시에 타자 금방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J는 소년이 역시 수면제에 취해 있었다는 걸 알았다. 택시가 눈 내리는 저녁 때의 위험한 길을 무네비 조오로 향해 질주해 가는 동안 소년은 그냥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씩 작게 하 품을 하면서 뭐라뭐라 잠꼬대를 했다. J는 그 말의 뜻을 알 수 없었지만, 드디어 노인은 그것을 알아냈다.

“이 아이는, 꿈속에서 그 무슨 괴물과 만나고 있는가 봐. 무섭다고 무섭다고 그러는구먼”하고 노인은 말했다.

“트렌치 코트와 부츠만 신은 알몸뚱이 맨 몸으로 지하철에 타는 건 두려운 체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꿈속의 괴물은 어쩜 치한이 된 자기자신이겠죠. 그런 나이이기도 하고”

“그런 나이라니?”

“네, 자기 자신 속에서 괴물이 생겨나는 듯이 느끼는 공포의 감각 말입니다. 열여덟 살에서 스물 한두 살까지는.”

“자네 나이와 이 소년 나이에 나는 그다지 깊은 골짜기가 파여져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나는 예순 살이어서–.”하고 노인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일단 입을 다물자 노인에겐 어찌해 볼 수 없이 견고하고 폐쇄된 인상이 머리로부터 몸뚱이 전체에 완전히 뒤집어쓴 갑옷처럼 나타나는 것이었다. 게다가 노인은 이따금씩 얘기 도중에 입을 다물었다. 노화해서 쑥돌 같은 이빨이기는 할망정 일단 그것으로 악물어버린 말의 맹수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노인은 입술을 꽉 물고, 매와 같은 눈을 자기 몸 둘레로 돌리면서 침묵하는 것이었다. 이런 노인을 볼 때마다 J는 노인이 어떤 경력을 거쳐온 인간인가 하는 걸 가지가지로 공상했다. J와 노인과는 ‘포도 위의 친구’였다. J는 노인에 관해 그 과거도 현재의 사회적 위치도 무엇 한가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반사회적 접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J편에서도 자기가 어떤 인간이냐 하는 걸 노인에게 말한 일이 없었다. 하긴 J는 자기자신을 향해서도 현재의 자기가 어떤 인간이냐 하는 걸 얘기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지만. J는 노인이 어느 나라엔가 외교관으로 나갔던 일이 있고, 또한 정치가로서 일한 일도 있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노인이 J와 이따금씩 외무성이나 국회의사당 곁에서 약속해서 만났는데, 그런 때 노인은 관리들이나 의원들에게 번번이 깍듯한 인사를 받으며 금방 기골 있는 대화를 나눈 듯한 모습으로 나오는 등등, 대강 그런 사정에서의 짐작이었다. 요즘도 여전히 정치에 관계하고 있는 듯한 치기 같은 건 이제 노인에게서 찾아볼 수 없지만, 그날도 국회 의사당 앞 지하철 승강구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J를 보자, 노인은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해방감을 온 얼굴에 띠면서 J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J는 마치 못생긴 노파에게 인사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나는 예순 살이어서–, 하고 노인이 막 입을 올렸던 말의 후반을 J는 생각했다. 그것은 필경 노인과 죽음과 상관된 말일 것이다. 노인은 암이라든지, 심근경색이라든지 생생하고도 주체적으로 그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 죽음의 공포에 대해 이따금씩 J에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예순 살이어서, 죽음이라는 괴물이 자기 속에서 급속하게 생겨나는 공포의 감각을 맛보고 있어, 하고 노인은 말할 작정이었을까? J는 노인이 당장 심장의 동맥경화를 앓고 있고 또 수술을 한들 이미 소용없는 암을 제 몸뚱아리 어디엔가 마치 귀한 포도주를 술 곳간에 저장해 두듯이 간직하고 있는 듯 하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노인이 직접 말은 않았지만–.

“이 소년은 진짜로 치한일까요? 치한일 수밖에 없는 인간일까요?”하고 J는 웃으면서 노인에게 말했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야. 게다가 오늘 이 소년이 하는 짓은 매우 독특했어. 치한에 대한 씨름 비평가 같은 말을 한다면, 실로 독특한 방법이었어.”

“네, 확실히 독특했어요. 자기자신의 퇴로를 끊으면서 공격하고 있는 듯한, 위험한 자살 지향성이 있는, 지나치게 용맹한 병사 비슷한 구석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이런 애숭이로서, 아마 열여덟 살일 겁니다. 자신이 치한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 소년은 연인도 가질 수 없고 수음으로도 만족하거나, 단지 돈이 없어서 창부를 살 수도 없는 욕구불만 자일까요?”

“아니, 더 의식적인 치한일 걸”하고 노인은 주의 깊게 소년의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J는 그와 마찬가지로 노인도, 이 소년에게 차츰 호감을 갖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때까지 J는 노상 노인의 구체적인 인간혐오가 격렬한 데에 충격을 받아 왔었다. J는 노인이, 이렇듯 낯도 코도 모르는 생판 타인에게 관대한 것을 노인과 ‘포도 위의 친구’가 된 후로는 처음 보는 일이었다. J는 자기가 이 소년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노인이 말한 대로 오늘 이 소년의 치한으로서의 행동법이 실로 독특했던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이 소년은 고독하고 공포감으로 차 있고 비장한 치한이었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이 소년이 항의하면서 한 말은, 결코 아무렇게나 한 말은 아니었던 것 같아. 아무튼 재미난 소년이야”하고 노인이 말했다.

무네비 조오의 호텔 현관 양쪽에는 더럽혀진 눈이 흙덩어리처럼 높이 쌓여져 있었다. 노인과 J가 소년을 흔들어 깨우자, 소년은 더러운 눈더미를 보고 추워서 부들부들 떨며, 눈 가장자리에서 눈물이 눈곱처럼 붙어 있었다.

“걷겠니?”하고 J가 물었다.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하고 미간을 찡그리며 J를 돌아보면서 소년은 핀잔주듯이 말했다.

그들 셋을 보고 호텔의 현관 도어를 연 제복의 보이는 짙은 초록색 윗도리에도, 금실로 꼰 테두리 장식에도, 엷은 하늘색 바지에도 알맞지 않은 어색하게 큰 오버슈즈를 추 마냥 질질 끌고 있었다. 눈이 그를 기죽게 한 것일까. 세 사람은 몸을 떨면서 1층 프런트의 바까지 곧장 걸어갔다. 거기에는 난방이 있어서 모두 마음을 놓았다. 노인과 J는 자연스레 소년을 감시하듯이 소년이 앉은 의자를 향해 부채꼴로 두 의자를 나란히 놓고 앉았다. 소년은 반발하듯이, “난 졸리니까 위스키를 마시겠어”하고 오버슈즈를 신은 채 있는 보이에게 맨 먼저 주문을 했다. J도 노인도 소년을 따랐다. 그들은 우선 말없이 한 잔씩 마셨다. 소년은 대번에 생기를 되찾는 듯 하였다. 세 사람은 다시 한 잔씩 위스키를 주문했다. 수고를 덜려고 보이는 위스키 병을 테이블까지 곧장 날라왔다.

“나한테 무얼 듣고 싶어? 아니면 나더러 잘못했다고 빌라는 거야?”하고 소년은 여전히 대들 듯이 말했다. “나한테 무슨 나쁜 짓을 하려는 거야?”

“물론, 너는 그렇게 젊은데, 어째서 치한이냐고 묻고 싶은 거야. 여자아이의 엉덩이가 어느 정도나 딱딱한지 알고 싶었나? 그렇다면 너 자신의 엉덩이를 만져보면 좋았을 텐데”하고 J는 소년의 도발에 대해 되받았다.

“한 판 할래?”하고 소년은 코브라를 본 망구스마냥 전신을 격분으로 물결치게 하면서 거친 소리로 말했다.

“화내지마. 우린 네가 어째서 치한이 됐는지, 치한인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던 거야. 너처럼 젊은 치한은 이때까지 본 일이 없었어”하고 J는 말했다.

“나는 시인이야”하고 소년은 으쓱하며 말했다.

“시인?”

“오래 걸려서 하나의 굉장한 시를 쓰려 하고 있어. 그건 ‘엄숙한 줄타기’라는 시야”하고 소년은 열정을 넣어 말했다. “그건 치한을 주제로 한 폭풍우와도 같은 시야. 그리고 이를테면 그 시와 치한인 나 자신과는, 닭과 계란의 관계야. 난 더 어릴 때부터 치한이어서, 그 치한의 시를 쓰고 싶다고 바라게 되었고, 그 시를 더욱 근사하게 하기 위해, 나는 가장 용감하고 절망적인 치한이 되어주려고 하고 있어.”

J는 그가 알고 있는 또 한 사람의 젊은 시인을 생각해냈다. 그 젊은 시인은 그의 후처의 옛 애인이었다. 아내가 첫 단편영화를 만들고 있는 동안, 시인은 항상 그의 아파트나 별장, 또는 그의 쟈가 속에서, 타버리지 않은 욕망의 안개 속에 가라앉아 있는 원망에 찬 눈으로, J와 그 아내를 집요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끝내, 젊은 시인은 J의 아내와 다시는 성관계를 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저 굶주린 고양이와도 같은 눈을 지닌 무저항주의자는, 문득 J 주위에서 모습을 감추었는데, 지금은 무얼 하고 있는지? 지금도 여전히 나약하고 폐쇄적인 시를 써서, J의 아내에 대한 욕구불만이라는 암을 무너뜨리듯이 해소하려 하고 있는 걸까? 아무튼, 그보다도 이 소년에게 시인으로서 더욱 풍부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라고 J는 생각했다. 적어도, 저 양순하고 가엾어 뵈는 젊은 시인에 비해 이 소년에게는 인간적으로 격렬한 인상이 있다. 알몸뚱이고, 단지 트렌치 코트와 부츠만 걸친 채, 지하철의 타인들 한가운데서 사정을 하는 사내니까!

“어떤 시야? 이제 몇 행 정도는 썼을 것 아닌가”하고 노인도 호기심이 생긴 듯이 열심히 묻고 있었다.

“몇 행 정도는 썼느냐 라고, 시는 그런 식으로 써지는 게 아냐. 적어도 내 시는 말이지. 필경, 난 어느 날, 그 시를 쓸 준비가 이제 됐다고 본능으로 느끼는 거지. 그리고 1초에 한 단어의 비율로, 꽤나 긴 시간, 쓰고 또 쓰고, 그렇게 완성될 거야”하고 소년은 거만하게 말했다.

“허지만, 노트같은 건 있을 테지? 기억 속의 노트라도?”하고 J는 말했다.

“으응, 그건 있어. 그걸 만들기 위해서 난 꽤나 괴로운 일을 참아왔으니까. 결국 난 체험적으로 시를 쓰고 싶어.”

그리고 더욱 더 취한 듯이 끊임없이 웅변이라도 하듯이 소년은 그 시의 구상이라는 것을 떠들어댔다. 치한들, 이 도오꼬에 수 만 명을 헤아리면서, 극히 고독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 가난하고 공허하고도 위험스러운 열정에 찬 일상생활의 투우사, 엄숙하기 짝이 없는 줄타기를–.

그들은 구슬플 정도의 엄숙한 얼굴로 절실하고도 우스꽝스럽게 지위나 명예나 때로는 생명까지도 노골적인 위험 속에 드러낸 채 그야말로 적수공권으로 극히 작고도 하찮은 쾌락을 위해 활동을 한다. 애초에 현대는, 모험가들에게 있어 은총받은 시대는 아닐 것이다. 우주 로케트에 탄 이후, 미터를 모두 자기류로 움직여버린다고 하는 끔찍스러운 용기를 지닌 사내 이외에는. 인간들은 2천년 내내 걸려서 오로지 힘을 합쳐 이 세계를 몽땅 고무로 한겹싸는 육아실로 맹수의 정글로 바꿀 수가 있다. 기도의 의식 마냥, 예를 들어 어린 계집아이의 허벅지에 손가락을 1초 가량 대어본다는 한 동작만으로도 그는 그때까지의 생애에 이룬 모든 것을 위험 속에 드러내는 것이다.

치한들은, 발견되고 처벌되는 걸 꽤나 두려워하곤 있지만 동시에 그 위험의 감각 없이는, 그의 쾌락은 엷어지고 애매해지고 쇠약하고, 결국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금기가 줄타기 임자로 하여금 그 모험의 쾌락을 보장한다. 그리고 치한들이 안전하게 그의 시도가 이뤄지면 그 순간 안전한 종말이, 서스펜스 속의 전체 과정의 혁명적인 의미를 간단히 날려버리고 만다. 결국, 아무런 위험도 없었기 때문에, 이때까지 자기 쾌락의 숨은 동기였던 위험의 감각은 가짜에 지나지 않았으며, 즉 방금 맛본 쾌락 그 자체가 가짜 쾌락이었다고 치한들은 느낀다. 그리하여, 다시 그는 이 불모의 줄타기를 시작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조만간 그들이 잡히고 그의 생애가 위기에 떨어지고 그때까지의 가짜 시도가 몽땅 진실된 쾌락의 과실로 익기까지–.

치한들은, 대개가 말없이 행동하고 있다. 그들은 떠들면 그들의 행동이나 요설이나가 우스꽝스럽게 겉돌 뿐이다. 치한들은 서커스의 줄타기와 매한가지로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 잡혀서 타인들의 적의의 눈에 의해 치한으로서의 인식표가 주어지고, 치한의 본질이 확정되면 치한들 속에는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자기 신전을 하기 시작하는 자가 있다. 전후 일본의 가장 거세던 정치적 동요가 있던 때에, 국회를 에워싼 10만 명의 데모 군중 속에서 한 치한이 잡혔다. 그가 경관에게 고백한 말, “지금 10만 명의 노한 정치적 인간이, 지금은 그때가 아니라고 포기하고 있는 10만 명분의 성적 흥분이, 그들 속의 하찮은 아가씨 엉덩이를 노리고 있는 나 혼자만의 특권적인 손가락에 집중해 오는 것 같아서, 내 손가락은 굉장한 지복의 열로 타올랐습니다. 더구나 무장한 제 4 기동대의 방대한 경찰들 앞에서 그 짓을 해냈으니까!”그들은 매일 매일이 엄숙한 줄타기이다–.

“괜찮아, 너는 그 시를 써야 해. 만일 출판비용이 필요하다면 내가 내줄께”하고 노인이 말했다. 그것은 J가 하려던 말이기도 했다. 자기가 쓰려고 하는 폭풍우와도 같은 시를 위해 트렌치 코트를 알몸뚱이에 걸치고, 이 겨울 저녁 녘에 지하철에 올라타서 저 모험을 해낸 소년, 게다가 적지 않게 번민한 뒤에 죽음을 걸 듯이 못생긴 아가씨의 털외투 엉덩이를 더럽히며 사정한 소년, 그건 역시 독특한 소년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허지만 아직까지는, 내 머리 속에서 형태를 취하고 있는 시는 조금도 격해지지가 않아서 말이지”하고 소년은 언짢은 듯이 말했다. “너무 관찰적이야.”

“관찰적이어서 나쁠 건 없잖아?”하고 J가 말했다.

“관찰적이기만 해서는, 시는 폭풍우처럼 거세지지는 않아”하고 소년은 제법 시에 들어서는 베테랑이기라도 한 듯이 깊이 생각하면서 말했다.

“그럼 넌 오늘, 자기의 시 세계에 꽤 깊이 들어가 있었나?”하고 J가 말했다. “적어도 제 3자적 관찰을 넘어서 있었으니까.”

“안돼. 구조되어서 말야! 그래서 내 공포심도 영웅적인 용기도, 모두 가짜가 되어버렸어. 왜냐하면 난, 당신들이라고 하는 구명 보트의 출현을 근거도 없이 예상했던 것 같군. 오늘은”하고 소년은 말했다.

“우리가 나타난 걸 보고나서, 너는 자기가 그걸 예상하고 있었던 듯한 기분이 난 것이야. 저 공덕심이라는 도깨비에 잡혔을 때, 너는 당장이라도 심장이 뭉개질 것 같은 모습이었어”하고 J는 반은 조롱하듯이 위로해 주었다.

“아니, 지금 와선 그렇지도 않아. 나 자신이 구조되고 나서 그렇지 않다고 느끼기 시작하고 있으니까 이젠 글렀어”하고 소년은 꽤나 지친 듯이 슬프게 중얼거렸다. 지금, 그의 어린 얼굴은 힘없이 암울하였다.

J와 노인은 할 말을 잃고 소년을 안스럽게 지켜볼 뿐이었다. 이 소년을, 치한이라고 하는 빠져나갈 구멍이라곤 없는 곳으로부터,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는 없는 것일까? 이 소년은 치한을 둘러싸고 세찬 시를 쓰려고 열망하고 있으니까, 어쩌면 J 와 노인은 이 소년을, 저 징그럽던 뚱뚱보 도덕가의 팔과 공명심의 속박 속에 그냥 처박아 두어야 했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소년은 지금쯤 어느 경찰서 유치장에서 추위와 치욕감에 떨면서 ‘엄숙한 줄타기’에 관한 그 자신감이 찰 만큼 세찬 시를 일거에 써내고 있지나 않을까, 1초 동안에 한 단어의 속도로 끝없이 긴 동안을–.

“너는 내일이라도 또 저 자살행위와도 같은, 달아날 구멍이라곤 없는 모험을 계속할 셈이야? 이젠 우리와 같은 구조자가 안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고?”하고 J는 말했다.

“내일? 도저히 안돼. 지금 난 지쳐 있고 또 다음 모험을 결심하기까지는 꽤나 긴 시간 번민할 걸로 생각해. 아아, 나는 자살할 셈이었는데, 강 밑바닥에서 끌어올려져서 겨우 숨을 드내쉬는 멍청이같은 기분이야. 구조자는, 그 멍청이가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맛본 가지가지 쓰디쓴 시련은 생각해 주지도 않으니까, 미소하면서 유쾌한 듯이 구조해 줄뿐이니까. 그렇군, 이 세상의 지옥의 불덩이 속으로 되돌려 놓았으니 말야. 휴머니즘이라는 부지깽이로–.”

“하지만 넌 어째서 체포당할 것을 그렇게도 고집을 하지? 체포당하는 것의 의미를 너무 중요시하고 있는 건 아냐? 네가 무사히 달아나더라도 그건 결코 치한으로서 행동한 네 모험의 의미를 손상 당하는 건 아니지 않아?”하고 노인이 말했다.

“치한에도 결국 여러 가지 형이 있겠지요. 나는 시인이니까. 치한들의 샘플상자에서 가장 위험한 형의 치한 행동법을 채용했어”하고 소년은 노인을 여유있게 얼버무리면서 말했다.

노인과 J는 한 대 맞은 듯이 소년을 보았다. 소년은 확실히 가장 위험한 긴장을 안고 폭발에 이르려고 하는 불행한 열정가와도 같았다. 그것은 매력적이었다. 소년은 유아기를 빠져나온 뒤, 오랜 추한 나이를 막 빠져나온 듯도 보였다. 그는 더욱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보다도 소년의 가증스러운 오만함에 그 나이 특유의 번쩍임이 있어 그것이 J와 노인을 사로잡았다.

“네가 그 도덕가에게 습격 당했을 때, 나는 네가 심장발작이라도 일으켜서 즉사하지 않도록 캄플주사를 놓아주고 싶다고 생각했어. 가장 위험한 방법을 택해서 치한이 된 용사치고는 너무 너무 겁먹고 있지 않았어?”하고 잠시 뜸을 들였다가 J는 소년에게 말했다.

“진짜로 내가 그렇게나 겁먹고 있던가? 그렇다면 난 조금씩 진짜 치한에 가까와져가고 있어. 내 머리가 짜내서 구석구석 설계한 대로의 의식적인 치한이 아니라, 내 머리를 넘어서 실재하는 타자적인 치한으로. 내 속의 뜻하지 않은 타인으로서의 치한에 가까워져 가고 있는 셈이지”하고 소년은 말했다. 그는 J의 조롱을 개의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요설에만 정열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J는 이런 종류의 나르시시스트가 좋았다. 따라서 J는 미소를 잃는 일없이 이를테면 호의적인 조롱을 계속할 수가 있는 셈이다.

“자기 속의 타인이 되고 싶다, 라는 욕구는 나도 너만한 나이 때는 얼마든지 갖고 있었어. 그건 단순히 말하면 어른이 되고 싶다는 어린애다운 열망이야”하고 J는 소년을 마치 아이 취급하듯이 말했다. “발돋움하려다가 넘어질 것 같은 아이를 본 어른이 손을 뻗쳐서 받쳐주고 싶듯이, 우리도 너를 구조해 주고 싶었어. 이 어른만의 세상에서, 아무리 자기 머리 속의 치한에 가까워지려고 한들, 너는 그때마다 주위 어른들에게 구조되어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거야. 너는 시지프스 주니어의 치한이야. 가엾게도!”

“그런지도 모르겠어.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다음 기회까지 절대로 최소 불가능한, 어른들이 구조하려고 해도 손을 쓸 수 없는, 치명적인 치한행위의 나다운 패턴을 발명하지 않으면 안되겠어. 세상 어른들이 나의 전도를 막아주기는커녕, 모두가 합쳐서 나를 물구나무 세워서 짓밟는 것 같아”하고 소년은 그 졸리운 듯한 어린 눈을 다시 어둡고 참담한 피로감으로 푸르스름하게 물들이면서 애처롭게 말했다. 폭풍우와도 같은 세찬 시를 써낼 인간이라기보다는 시험에 실패하고 암담해져 있는 열등생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하여 J는 소년을 지나치게 조롱한 것을 뉘우쳤다. J가 자신을 부끄럽게 느끼면서 노인을 보자, 노인도 또한 도무지 쑥스러운 듯한 모습으로 지긋이 그를 쳐다보았다. J는 노인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으려니 하였다. 자기들은 이 소년의 솔직하기 짝이 없는 자기표백에 비해 너무나도 자기 방위적이어서 역겹지 않은가? 환자를 앞에 둔 두 사람의 정신분석 의사처럼 자기들만을 지키고 있지 않는가? 그리하여 J는 노인에게 끄덕이면서 이런 식으로 제안했다. “자, 이 소년에게 우리 일을 털어놓아버리는 게 어떨까요?”

“우리들은, 안전을 존중하는 쪽의 샘플을 선택한 치한이다. 하지만 물론, 치한인 것이 완전히 안전하다는 건 아니지만, 둘이서 공동방위하고 있어서 말이지”하고 노인이 말했다.

“뭐야. 이 술집이 치한 클럽이야?”하고 소년은 지나치게 재미난다는 듯이 울부짖었다. “당신들이 나를 구조하고, 집요하게 나에게 흥미를 지닌 이유를 이제 알겠군. 하지만 어째서, 당신들은 외톨박이 치한인 대신에 치한 클럽같은 걸 만들었지?”

“그건 치한이야말로 그들의 클럽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야. 만일 그것을 클럽이라고 부른다면”하고 노인이 말했다. “호모 섹슈얼의 패거리를 보라구. 그들은 특이한 새로운 흑인처럼 지금 집단을 만들고 저항하고 있어. 어쩌면 21세기에는 저들 종족의 나라를 만들어 독립하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라. 적어도 그들을 위한 의원 몇 명쯤은 각각의 나라에서 뽑아낼는지도 모르지. 나같이 조만간 죽을 사람은 짐작밖에 할 수가 없지만, 너는 반드시 21세기까지 살게 될 것이니까, 네 눈으로 그걸 보게 돼. 그야말로 타자적인 존재로서. 그들 의원은 우수하고 강력할 것이 틀림없어. 헌데, 치한은 호모 섹슈얼이 범죄로 되지 않는 날은 그다지 멀지 않지만, 치한은 범죄자임을 면하게 되는 때를 언제 언제까지 그냥 맞아들이지는 않아. 너처럼 체포당하고 벌받는 일 그 자체를, 치한으로서의 근본조건으로 삼고있는 형조차 있으니까! 하지만 치한들도 얼마간의 자위수단은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들은, 둘이서 상호 부조하는 작은 기관을 만든 셈이지. 그리고 오늘 너를 구한 것처럼 서로서로 궁지로부터 구출돼 왔어.”

이번에는 소년이 J와 노인을 주의 깊게 쳐다보았다. 그는 깊이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러자, 그는 이때까지의 그의 언동에 전혀 없던 일종의 경의(상대방 존재에 어떤 독자성을 인정하는 태도)를 표정으로 드러내면 이렇게 물었다.

“이 치한 클럽의 회원은 꽤 불어났나요?”

“아니, 현재도 우리 둘뿐인데, 그래도 외톨박이 치한밖에 활동하고 있지 않는 현재에는 하나의 발명이고 장족의 진보야. 당장에 나도 이 청년도, 체포 당하는 일만은 피해 올 수 있었거든”하고 노인은 살짝 웃으면서 받았다. “어때, 너도 가입하지 않겠어?”

“난 구조 받는 건 싫어. 하지만 당신들 둘에 대한 구조 전문계로서 가입하겠어. 아직, 지금 당장은 나의 다음 행동계획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심심하기도 하니까. 게다가 나는, 자신보다 다른 치한이 하는 짓도 보아두고 싶고 말야. 내 강렬한 시의 히어로는 물론 나같은 형의 위험한 치한이지만, 더 좀 안전하고 흔해빠진 치한들을 보조역으로 등장시키는 것도 시의 구조를 복잡하게 해서 효과적일 것이니까!”

“그럼 거리에 나오면 이 술집에 들러달라구. 그리고 우리들과 만나서 같이 지하철이든지 전차든지 버스를 타자구. 물론 너는 그 새로운 자기 파괴계획을 개발할 때까지는 우리를 구조하는 역할만을 줄곧 맡아내는 셈일 테지만 말이지. 그건 결국 네 희망일 테니까”하고 J가 말했다.

“으응, 내 희망이야”하고 소년은 즐거운 듯이 말했다. 이미 그의 눈은 검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있지는 않았다. 차라리 싱싱한 호기심으로 타오를 지경이었다. 그리고 소년은 위스키 잔을 테이블에다 도로 놓자, 소파에 깊숙이 몸뚱이를 파묻고는 조심성이라곤 없이 하품을 하고 주먹으로 눈을 문지르며 부신 듯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난 안심이 돼 졸리는군. 진짜 졸려. 난 당신들을 남색가로 의심하고 잠들지 않으리라고 했었는데, 당신들이 치한 동지로서 나한테 관심을 보였으니, 당신들 둘은 어떤 계기로 치한 클럽을 만들게 되었지? 아니면, 혹시, 당신들은 부자는 아니야? 설마 부자는 아니겠지?”

“으응. 부자도 아니고 형제도 아니야”하고 노인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처음에 어느 편이 어느 편에게 치한으로서의 자기 소개를 하고, 그러구 치한 클럽을 만들자고 꾀었을까? 그러자고 들기까진, 꽤나 용기가 필요했을 것인데”하고 민감하게 짐작을 하면서 소년은 말했다. 그는 이젠 아까보다 훨씬 더 가깝게 J와 노인에게 심리적으로 다가온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렇듯 무방비 상태로 호기심을 드러내는 소년에겐 실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유치한 인상이 있었다.

“그야, 용기가 필요했지. 치한이라는 것은 호모 섹슈얼 패거리처럼 냄새로 맡아지는 특징 같은 건 갖고 있질 않거든. 그야 우리들이 만난 건, 오늘 너와 만났듯이, 우연히 행운이 작용하고 있었던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서로 말을 걸지도 못 했을 것이야!”노인은 J를 쳐다보면서 미소하며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 날 아침 문득 J는 치한이 될 것을 정했던 것이었다. 그때 그는 극히 성의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를테면 반성적인 자기징계 욕구에 휘감겨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J는 거센 갈망과도 같은, 성적인 흥분 조짐에도 휘말려 들어 있었다. 하지만 J는 그 최초의 회심에 있어, 치한으로서의 그 자신 안에 성의 쌍두 괴물을 명확히 의식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는 단지 불면의 밤을 지샌 뒤의 어느 초겨울 오전 아홉 시경 침대 속에서, 나는 치한이 되자, 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침실에서 아내가 작업을 하고 있는 큰 방으로 나가, 새 영화의 콘티를 카메라맨 상대로 검토하고 있는 아내를 향해, 쟈가를 마음대로 써도 좋다, 난 전차를 타고 외출할 테니까, 하고 말했다. 어디로 가지요? 하고 아내와 카메라맨이 물었다. J는 단지 전차에 타기만 하 면 된다, 라고 말했다. 그렇게 돼서 J의 매일 매일 거리를 돌아다니는 습관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아파트를 출발하였다. 그리고 밤늦게 그 아파트로 돌아왔다. 아내는 대개 작업장 소파에서 모포를 가슴까지 덮고 피로에 지쳐 잠들어 있곤 했다. J와 아내가 거의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고 며칠을 그냥 지내는 일도 있게 되었다.

지금 아내와 중년 사내인 카메라맨은 완전히 새로운 계획에 열중해 있었다. 아내의 첫 영화는 완성하긴 하였지만, 제작에 관여한 자들만이 몇 번의 시사를 보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영화는 어떤 영화회사에 2백만 엔에 팔려 그대로 소각 당했다. 처음 아내는 이 제안에 거세게 저항을 했지만 끝내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엔 풍경과 수목밖에 등장하지 않는 영화를 찍으려고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2백만 엔을 기금으로 해서, 천연색으로. 어쩌다가 그런 결과가 됐느냐 하면, 모두가 꼬마로 불렀던 그 스무살 먹은 배우 때문이었다. 그가 모든 혼란과 불운의 원인이었다. 첫 영화의 촬영이 끝나고 오랫동안에 걸쳐 참을성 있게 그 긴 편집을 아내가 하고 있는 사이에, 젊은 배우는 텔레비젼 연속 드라마에 출연해서 돌연 요란스러운 스타가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그가 한 영화회사에 픽업되어 첫 번째 주연 영화를 찍기로 정해졌을 무렵에, J의 아내는 그 첫 단편영화의 편집이 막 끝나 있었던 것이다. 젊은 배우는 자기가 완전히 발가벗은 알몸뚱이로, 지옥의 일상생활을 지내고 있는 영화가 공개되는 경우에 일어날 스캔들을 두려워 시작했다. 그 두려움은 프로듀서에게 토로되고, 영화회사 수뇌부까지 알게 되었다. 이로부터 곤란한 실랑이가 벌어져 결국은 J의 아내가 굴복했다. J는 스타가 되고 난 후의 젊은 배우를 텔레비젼 인터뷰에서 딱 한번 보았는데, 그 모습은 저 불안정하고 예민하고 성적으로 자유로왔던 스무 살의 부초와도 같은 청년이 아니라, 든든하게 안정되고 둔중할 뿐 아니라, 시민 도덕 속의 가장 왜소하게 한정된 성밖에는 믿지 않고 있는 순응주의자라는 인상이었다. J는, 자기가 그 인간과 같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자기가 지니고 있었을 것인 정열은 다시 되돌이키기도 불가능한 듯이 느껴졌다. J는 파리로 돌아간 여류조각가 누이동생에게 긴 편지로 이 한 사람의 스타가 탄생된 사연을 써보냈다. 그것은 우스꽝스럽고도 유쾌한 편지가 되어서 파리의 누이동생을 충분히 기쁘게 해주었던 것 같았다. 젊은 배우의 주연 영화는 호평을 받았는데, 카메라맨은 J의 아내의 단편영화와 비교해 보면, 꼬마의 아름다움이 비교가 안될 정도로 우리 쪽이 좋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젊은 배우는 이제 J의 아파트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노출광인 재즈 싱어도 또한 J의 아파트로부터 멀어져 갔다. 단지 그녀는 순응주의자로 탈바꿈한 것은 아니고 더욱 더 반역적인 인간이 되어서 제멋대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어느 콜걸 조직과의 관계가 스캔들 기사로 폭로되어서 나이트 클럽에서의 가수 일을 집어치웠다. 그리하여 그녀는 동남아로부터 정치교섭을 위해서 온 여행자들과 같이 국내를 돌기도 하고, 미국인 바이어와 함께 호텔에 체재하는 새로운 생활로 들어섰다. J는 요즘도 이따금씩 이 고급창부가 된 재즈 싱어로부터 전화연락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재즈 싱어가 J의 아파트에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새 영화에 여자배우는 필요가 없었고, 이젠 그 어떤 파티도 J의 아파트에서 열리는 일은 없었으니까.

J가 매일매일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는 동안, J의 아파트에 틀어박혀서 외롭고도 울적하게 새 영화의 콘티를 만들고 있는 것은 J의 아내와 중년 카메라맨 두 사람뿐이었다. J조차, 이젠 이 두 사람이 일하는 큰 방으로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결국 미미나시 만을 바라보는 산장에서 있었던 그날 아침을 마지막으로, J의 기분 좋고 쾌락적인 살롱은 무너져버린 것이었다. 그이래, 도리어 결속이 굳어진 J의 아내와 카메라맨보다도 여느 사람들이 외톨박이로 고독해져버리고, 각자가 독자적인 행동법을 골라서 생활하기 시작한 것이다. J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의 아내와 오랜 친구인 카메라맨 2인조도 어슷비슷하게 꽤나 고독하고 폐쇄적인 인상이었다. 둘은 지나칠 정도로 열중해서 새로운 영화계획을 세우면서, 정작 그 일을 특별히 즐기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J는 거의 항상 아파트에서 나와,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기 때문에, 아내와 카메라맨 두 사람일을 관찰하는 시간도 더러, 우연히, 이따금씩 부딪치는데 불과했지만. J의 쟈가는 아내와 카메라맨을 위해 차고에 처박혀져 있었는데 영화는 아직 야외 로케이션 단계에 이르지 않고 있어, 쟈가는 운행되는 일이 그다지 없었다. 그 상아빛 몸체는 먼지에 싸여서 윤기를 잃고 있었다.

어째서 스스로 치한이기를 선택했는가? 라는 점에 관해서는 J는 특별히 집중시켜서 생각한 일은 없었다. 그것은 그의 마음 구석에 항상 아직 자기는 진정한 치한은 아니라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다른 한편으론 자기는 폭력적인 타인의 팔에 꼼짝 못하게 잡혀서 수 없는 치욕을 받을 때에, 자기가 결정적으로 그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괴로운 예감을 품고 있는 탓이기도 했다. 다만, 이따금씩, 그 자신, 저 속에서의 자기가 치한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섬광이, 의식의 표면에 번쩍이면서 떠오르는 순간은 있었다. 돌연한 집행유예 정지처럼.

그날 저녁 녘에, J는 중앙선의 쾌속 전차에 타고 있었다. 그의 바로 앞에는 그와 동년배의 아가씨 하나가, 그와는 직각으로 그리고 그의 가슴, 배, 넓적다리의 모서리에 그 몸뚱이를 찰싹 붙이고 서 있었다. J는 아가씨를 애무하고 있었다. 오른 손은 아가씨의 엉덩이 틈 움푹 패인 곳에서 그 속을 향해, 왼손은 아가씨의 봉긋한 하복부로부터 패인 웅덩이를 향해서. 그리고 J의 쓸데없이 발기한 남근은 여자의 넓적다리 바깥쪽에 닿아 있었다. J와 아가씨의 키는 거의 비슷했다. J가 내쉬는 숨은 장미빛으로 상기되어 있는 아가씨 귓바퀴의 솜털을 살랑거리게 했다. 처음 한동안, J는 두려움에 떨고 숨결도 거칠었다. 아가씨는 울부짖지나 않을까? 그 자유로운 두 개의 팔로 J의 팔을 잡고 주위 사람들에게 살려달라고 하지나 않을까? 가장 격렬한 두려움에 휘말려 있을 때 J의 성기는 가장 딱딱해져서 아가씨 넓적다리를 향해 꽉 짓눌려져 있었다. J는 아가씨의 일정한 옆 얼굴을 바로 코앞에 보면서 깊은 공포 속에서 헤맨다. 주름은 없지만 짧은 이마, 짧게 위를 향해 솟아 있는 콧날, 코피 빛 솜털이 난 피부 밑의 두툼한 입술, 분명한 턱, 게다가 색소가 너무 짙은 탓으로 전체적으로 검게 흐려 보이는 훌륭한 눈, 그건 거의 깜박거리는 일이 없다. J는 깔깔한 털 스커트 너머로 계속 애무하면서, 문득 까물어칠 것 같다. 만일 지금 아가씨가 혐오라든가 공포의 울부짖음 소리를 지른다면 자기는 오르가즘에 이를 것이라고 느낀다. 그는 두려움처럼 혹은 열망처럼, 그 공상을 고집한다. 그러나 아가씨는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입술을 굳게 다물어진 채 있다. 그리고 무대의 막이 내리듯이 눈꺼풀이 꽉 닫쳐진다. 그 순간, J의 두 손은 엉덩이와 넓적다리의 거부로부터 자유로와진다. 부드러워진 엉덩이 틈을 더듬어 오른손은 그 속에 닫는다. 넓혀진 넓적다리 사이를 왼손은 정확하게 웅덩이에 가 닿는다.

그리고 J는 공포감에서 헤어난다. 동시에 그 자신의 욕망도 없어진다. 이미 그의 성기는 시들어지기 시작하고 있다.

그는 지금 의무감, 혹은 호기심에만 이끌려서 집요한 애무를 계속해 갈 뿐이다. 그때 J는 아아 언제나와 마찬가지다, 이런 식으로 모든 게 용인되고, 이 상태를 넘어선 하나의 핵심에 이르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라는 걸 차가와 오는 머리로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거기까지는 그가 치한이 될 것을 결심한 날로부터 몇 번이나 되풀이되었다. 같은 양식의 한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잠시 후 J는 자기의 두 개의 손가락에 그 낯도 코도 모르는 타인의 고독한 오르가즘을 느꼈다.

그 직후였다. 전차는 요란한 소리와 더불어 신쥬꾸 역에 들어서고 있었다. J는 굳게 닫혀진 아가씨의 눈꺼풀 틈에서 비어져나 온 번쩍거리는 눈물방울이 울컥울컥 솟아나와서 볼을 타고 흐르는 걸 보았다. 입술은 시어빠진 매실을 씹고난 뒤처럼 생채기와도 같은 깊은 주름을 가득 지은 채 잔뜩 당겨져 있었다. 그러나 그때 전차 도어가 열리고 J는 당장에 인파에 떠밀려 아가씨에게서 떨어져 플랫폼에 내려서 버리고 말았다. 전차가 떠난 후 J는 플랫폼에 선 채, 그 아가씨는 한 순간이나마 자기를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곤 자기를 꽤나 고독하게 느끼면서 눈물을 머금었다. J는 그의 전처가 수면제를 먹고 자살하던 날 밤의 압도적으로 몰려오던 고독과 공포를 되씹은 것이었다. 그와 아내는 볼을 맞대고 잠자고 있었는데, 아내는 수면제로 비롯된 깊은 잠에서 디릉디릉 코를 골면서도 그 닫힌 눈으로는 눈물을 연방 쏟고 있던 것이었다. 그 눈물이 J를 깨워놓은 것이었다. 우스운 애기지만 J는, 만일 자기가 다시 그 아가씨를 만나게 되면 애원을 해서라도 결혼을 해서 같이 살고 싶다고 생각하며, 그로부터 몇 주일 동안에 걸쳐 같은 저녁시간이면 도오꼬 역에 가 있곤 했다. 그러나 그는 아가씨 용모에 대해서는 이미 명료한 기억을 잃고 있었다. 단지, 눈물의 형태와 색과 번쩍임과 그 운동에 대해서만은 꽤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 아가씨와의 단 한 번뿐인 해후는 치한으로서 J의 가장 행복한 추억이었다. 어둡고 불행한 추억거리는 셀 수도 없다. 그가 치한이 되기로 결의한 첫 무렵엔 매일 매일을 전차 속에서, 버스 속에서, 백화점 엘리베이터 속에서 그는 오직 열망에 불타서 파랗게 질리며 땀을 흘렸고, 온몸을 딱딱하게 하고 서있었을 뿐이었다. 아침 일찍 아파트를 나서서 밤늦게까지 이리저리 돌아가는 네덜란드 사람처럼 도오꼬 안을 끊임없이 방황하면서, 다만 한 순간이나마, 타인의 육체를 향해 자기 손바닥을 내밀 수가 없는 나날이 몇 주일 동안이나 계속되었었다. 치한으로서의 그는, 실로 가지가지 복병을, 금기를, 외부사회로부터의 적의에 찬 제지신호를 발견했다. 태어나서 그때까지 J는 외부세계가 그렇게도 시끄럽게 자기 주장적으로 그를 향해 다가오는 인상을 받은 일이 없었다. J는 반사회적인 행동가로서의 치한이 된 날에, 사회의 존재에 대해서 가장 민감해진 셈이다. 이 시기에, 포도 위의 J를 본 사람들은 J에 대해서 비할 수도 없이 견고한 도덕가라고 믿었을 게 틀림없다. 치한에의 회심을 막 행했을 뿐인 괴로운 도제 수업기간의 J를–.

J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귀신 쫓는 부적’은, 예를 들어 전차의 천장으로부터 드리워져 있는 가운데의 광고도 그 하나였다. 그 광고 한 장에 8천만 명을 위한 백과사전을 애용하는 8천만명의 타인들에게 공격을 가하고 있는 고독한 무장의 기분이 들면서 부르르 떤다. 그때 한꺼번에 흔들리고 있는 전차의 밀크 색 손잡이는, 모두가 J의 목을 비틀어 죄기 위한 처형기구 처럼 느껴진다. J는 땀을 흘리며 눈을 힘주어 감는다.

이러한 암흑주간이 지나가고, J가 치한으로서 자유롭게 거동할 수 있게 된 뒤에도, J는 결코 항상 행복했던 건 아니었다. 낯도 코도 모르는 타인들 속으로 들어가서, 그 타인들 속의 생판 모르는 한 사람의 성기에 가만히 닿고, 그리고 다시 타인들 틈으로부터 안전하게 탈출해서 혼자가 된다. 그러한 이상적인 형의 치한행위가 행해지고 완성되는 것은 불가능하게 여겨질 지경이었다. J는 짐승들이 우글거리는 숲 속에 들어선 사냥꾼이 한 마리 사슴을 넘어뜨리곤, 그 죽은 짐승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 금욕적이며 남성적인 기분을 맛보면서 지쳐 돌아오는 광경을 꿈꾸고 있었다. 만원 전차의 타인들 숲에서 싸우고, 거기서 퇴각하는 자기에게 J는 그 사냥꾼의 기분밖에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거의 늘, 어쩔 수 없는 혐오감에 겨워, 끝없이 갈 데까지 가든가 하는 것이었다–.

어느 저녁 녘, J는 시부야발 대형 버스의 가운데쯤에 서있었다. 오른 손은 가죽 손잡이를, 왼 손은 한 덩치 큰 여자의 스타킹과 코르셋 사이의 맨살 피부에다 손등 쪽으로 찰싹 붙인 채 그의 눈 10센티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여자의 우람한 머리의 풍요하고도 무거워 보이는 머리카락을 보고 그 냄새를 맡으면서, 목안을 긴장과 흥분으로 파삭파삭해질 정도로 건조시킨 채. 여자의 말려 올라간 두꺼운 울 옷감 스커트를 덮어 감추기 위해, 말 탄 사람처럼 양 무릎을 앞으로 잔뜩 내밀고 서 있는 J에게 있어서, 그 왼손을 여자의 맨살 넓적다리에 붙이는 일이란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었다. 조마조마한 고통으로 왼편 어깨로부터 손가락 끝까지 시들어버리는 느낌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J는 그대로 가만히 참았다. 그러자 문득, 여자가 약간 앞쪽으로 허리를 낮추었고 J의 불안정한 왼손에 무게를 더했다. J는 몸의 균형을 잃고 그 이마를 여자의 어깨에다 얹었다. 그리고 J가 몸을 바로 세웠을 때 J의 왼손은 이미 여자의 두툼한 손바닥 속에 꽉 잡혀져 있었던 것이었다. J는 망연자실해서 공포감의 홍수 속을 빙글빙글 돌면서 가라앉기 시작했다. 다음 정거장에 버스가 섰을 때 J는 창백해져 땀방울을 온 몸에 흘리면서 여자 손에 여전히 이끌려서 사람틈을 빠져 버스를 내렸다. J는 그때 자기의 공포와 절망감으로 뒤섞여 있는 마음 저 밑바닥에 하나의 예정조화 냄새를 맡았던 것 같았다. 그때 비로소 그는 치한으로서 자기 쾌락에의 열망 뒷 쪽에 자기 징계의 욕구도 부수되어 있는 걸 실감한 셈이다. 달아나려고 하기 전에, J는 모친의 보호를 받고 있는 어린아기처럼 그 여자를 따라서 걸어갔다. 어딘가 가장 조롱이 심하고 가혹한 경찰로, 그러나 여자가 J를 끌고 간 곳은 경찰은 아니었다. 그것도 벽도 천장도 마루도 온통 방음장치의 두꺼운 종이로 몇 겹이나 둘러쳐진 싸구려 호텔의 한 방이었다. 그리하여 J는 되도록 빨리 성적 천민과도 같은 고역스런 봉사를 마치려고 애썼는데, 아무리 애쓴들 불능이었다. 여자는 벌 새끼마냥 싯누런 지방질에 한 겹 덧쌓인 벌거숭이를 더러운 형광등 불 밑에 가로 눕히고 괴로운 듯이 눈을 감고는 도무지 한마디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J는 여자 곁에 벌거숭이 알몸으로 무릎을 꿇고 맥없이 넘어져서 절망하였다. 방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건 여자와 J의 벌거벗은 냄새뿐인 듯이 느껴졌다. 드디어 J도 눈을 감고, 그대로 가만히 오그라들어서, 그 지옥의 백 년간이 어서 지나가기를 저항 없이 기다렸다. 여자도 또한 급속하게 부패하고 있기라도 하다는 듯이 언제까지나 꼼짝 않고 있어, 죽은 시늉을 내는 여우 같았다.

붐비는 속에서의 극히 한 순간, 그 아랫도리 너머로 성기에 닿는 일에 자기 존재의 모든 것을 걸 정도로 앙양되면서도, 정작 그 성기의 소유자와 서로 발가숭이로 몸뚱이째 들이대자, 자기의 성적 열정 전체가 그 여자를 거부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걸 J는 이와같은 쓰디쓴 체험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는 항상 욕구불만이었는데, 이미 몇 개월 동안이나 아내와도 성교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곤 극히 작은 성적 접촉의 기회만을 꽤나 탐욕스럽게 구하면서 J는 매일처럼 아침부터 밤늦을 때까지 대도회지의 타인들이 붐비는 속으로 들어가고 방황을 계속했다. 그 노인과 만나게 되기까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일찍이 체험한 일이라곤 없을 정도의 깊이까지 철저히 고독하게. 만일 이 노인과 만나지 못했다면, J는 이미 폭발적으로 위험한 치한으로 행동해서 체포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J는 노인과 자기와의 사이의 상호부조 관계의 사상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J는 야마데 선을 타고 도오꾜를 한 바퀴 돌려고 하고 있었다. 겨울의 엷은 햇살이 비치는 아침 끝머리에 J가 탄 칸 의 좌석은 거의 승객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아직 서 있는 사람은 없었다. 맨 바닥은 흑회색 쥐 등줄기와도 같이 말라서, 약간의 흙먼지를 햇볕 속에 그냥 저냥 뿜어 올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지치고, 그러나 지나치게 피로해 있다든지 하는지 않은 채, 주위에 다 눈을 굴리며 앉아 있다. 치한에게는 마의 시간이다.

하지만 전차가 우에노 역의 플랫폼에 들어서자 사정이 달라졌다. 필경 교사 인솔하에 박물관의 미라나 승문식 토기 쯤 견학하러 오는 길일 것이다. 신명이 나있는 여고생들 스무 명 가량의 떼거리가 J의 차칸으로 올라탄 것이다. J는 즉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붐비는 아가씨들 틈으로 끼어들어가, 치한으로서 가장 적당한 위치를 차지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그러기보다도 먼저, 덩치 큰 노인 하나가 실로 민첩하게 아무런 시늉도 없이 그 좌석에서 일어서는 것을 보았다. J는 그 어떤 예감에서 가슴을 울렁이며 방관자 편으로 돌았다. 노인은 보기에도 굴강하게 생기고 큰 몸집이었다. 여자 고교생의 던적스러운 머리가 떼거리져 있는 속에 노인의 호화스러운 낙타 외투에 감긴 넓은 어깨와 두툼한 가슴이 솟아 있었다. 노인은 굵은 목에 하얀 명주 목도리를 감고 머리에는 소프트를 깊이 쓰고 있었다. 얼굴 피부가 고엽색의 주름에 온통 덮여져 있는 것과, 맹수와도 같은 너무너무 날카로운 눈을 제외하면, 노인은 강장제 광고에 골프채를 잡고 등장하는 이상적인 노인상 그것이었다. 그것은 그냥 보고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자기의 노년에 환상을 품게 해주는 것 같다. 여자 고교생들은 몇몇 비어 있는 좌석을 보면서도 가서 앉으려고 않고, 사자에게 습격 당한 얼룩말이나 잔뜩 겁먹은 병아리들처럼 한 군데 서로 붙어 서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전차의 굉음을 넘어서 차량 속을 채우고 있다.

노인의 머리와 상체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미동도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 노인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졸음에 저항하면서, 동시에 그만 거기에 굴복해 버리는 유아처럼 천천히 눈을 감는 것이었다. J는 노인의 감겨진 눈꺼풀 주변의 주름이 접힌 피부가 차츰 복숭아 빛으로 물들어오는 걸 보았다. 그러자 문득 J는 그 여자 고교생들이 일제히 입을 다문 것을 눈치챘다. 이젠 전차 달리는 굉음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여자 고교생들은 모두가 겁먹은 추한 표정으로 변해가고 있다. 공포의, 추위로 얼어 있는 아직 채 발육이 안 된 거칠은 얼굴의 소녀들. 그래도 눈을 감은 노인만은 황홀하게 행복한 듯이 눈 가장자리를 복숭아 빛으로 물들인 채 서있을 뿐이다. J는 자기 일처럼 공포에 휘감겼다. 이제 1분만 지나면 소녀들은 울면서 고함을 지르기 시작하고, 노인은 치한으로 잡힐 것이다.

전차는 닛보리역의 플랫폼을 따라 정거하고, 막 문이 열리고 있었다. J는 와락 달려나가, 여자고교생들을 헤치고 노인 앞으로 나가자, 그 낙타 외투를 입은 팔을 잡고 힘껏 플랫폼에 끌어내렸다. 그들이 전차를 내리자 금방 등뒤에서 문이 닫혔다. J는 돌아보고, 유리 너머로 그와 노인을 노려보고 있는 여자고교생들을 쳐다보았다. 필경 노인은, 저 소녀의 가슴에 손바닥을 댄다든가 하는 짓으로 고독한 성적 앙양에다 몸을 내맡기고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너무 조심성이 없어서”하고 J는 노인 가슴에서 자기 팔을 풀면서, 그때서야 비로소 약간 낭패하고 자기혐오까지 느끼면서 변명을 했다.

“고맙소, 만일 구조해 주지 않았다면 나는 어디까지든지 갔을 것이오”하고 노인은 극히 솔직하게 고마워했다.

이리하여 J와 노인은 ‘포도 위의 친구’가 되고, 같이 무네비 조오의 술집으로 가서 한잔 마신 것이었다.

J와 노인에게 소년까지 끼어들어서, 무네비 조오의 술집에서 만나, 거리의 붐빔 속으로 나서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소년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채 진학도 취직도 않고, 오직 한가지, 치한에 관해 폭풍우와도 같은 시를 쓰기만 열망하고 있었다. J도 노인도, 소년으로부터 그 이상 자세한 신상 얘기를 들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건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들 세 사람은 서로 상대방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거의 매일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때로는 한밤중까지, 셋이 가지런히 지하철을 타고 전차 속을 배회하고, 버스에 흔들리며 신바시, 시부야 사이를 몇 번이나 왕복하면서 친목을 도모한 것이었다. 그들은 서로가 가장 충실한 ‘포도 위의 친구들’이었다. 소년은 그 영국제 트렌치 코트를 비롯해서 (하긴 한 겨울에는 그것들은 어울리지 않았지만) 신사복도, 셔츠도, 넥타이도, 신도, 최고품을 걸치고 있어서, 그 나이치고는 너무 사치해 보일 지경이었지만, 정작 포켓 속에는 동전 몇 푼밖에 없는 날이 많았다. 노인과 J는 이따금씩 소년의 트렌치 코트 포켓에다 몇 푼의 돈을 디밀어 넣어주곤 했다. 소년은 그 점에 있어서는 전혀 자유로와서, 구애 받는 일이 없이 그날 중으로 그 돈을 모두 내던져서 보기에도 호화로운 장식 투성이의 스키용 가죽장갑을 산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만일 그걸 낀 채로 여자 엉덩이에 닿았다면 여자는 소년에게 장난질을 당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소형 탱크에 엉덩이를 깔렸다고 오해했을는지도 모르는, 그 정도로 비실용적인 장식 과다의 손장갑이었다.

J와 노인과 소년이 붐빔 속으로 나간다고 하지만, 소년이 끼어 들고 부터는 치한으로 행동하는 것은 거의 노인뿐이고, J와 소년은 그 보안계 일만 맡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것은 소년이 처음부터, 그 일만 떠맡겠다는 뜻을 명확히 밝히고 있었기 때문에, J도 어쩌다가 소년 쪽으로 서버린 탓이었다. J의 변화에 대해 노인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종전과 마찬가지로 베테랑 치한으로만 행동을 계속했다. 그 열중도는 광적이라고 할 정도여서, J는 물론이려니와 소년도 이 늙은 괴물 치한에게는 한 몫 단단히 놓고 있는 것 같았다.

노인의 활동을 차량의 여느 구석에서 지켜보면서, J와 소년은 이따금씩 치한의 의미를 둘러싸고 토론을 하곤 했다. 소년은, 치한을 노래하는 폭풍우와도 같은 시만을 밤낮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얘기가 치한에 관한 것이면, 언제 어느 장소에서든지 열심히 떠들어댔다. 그리고 결국 소년은, 위험에 대해 미리 예방조치를 취하고 있는 치한을, 원칙적으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노인에 대해 차츰 외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음을 고백은 하면서도 소년도 또한 광적인 구석이 있는 인간이었다. 그는 안전한 치한에도 또 한 매력이 있다 라는 식으로는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의 폭풍우와도 같은 시의 히어로인 가장 위험한 치한 이미지가 혼탁 되는 걸 그는 늘 거부해온 셈이다.

“넌들, 전혀 위험이 없는 장소에서 위험이 없는 치한 행위를 한다 치더라도 그게 자신을 흥분시키리라고는 믿지 않겠지? 이 치한끼리의 상호 돕는 일도 안전율이 백 퍼센트는 아니니까 거기서 약간이나마 흥분될 수가 있는 게 아닐까? 우리들이 무네비 조오에서처럼 만나서 얘기하던 밤에, 저 노인도 그렇게 말했지. 완전하게 안전한 것은 아니라고. 치한은 맹수 사냥하는 사냥꾼과 마찬가지야, 사자도 코뿔소도 전혀 얌전해져서 목이나 그르렁거리면서 모여 앉아 있는 대초원 같은 데서는 대개의 사냥꾼은 지루해서 노이로제가 될 거야!”라는 식의 말을 소년은 했다.

그리고 J는 소년과의 토론에 흥미를 잃는 일이 없었다. 그것은 J 자신, 자기가 치한이 되기로 정한 선택의 의미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응, 안전한 치한이라는 건 곤란하지 않는가?”하고 소년은 되풀이 말했다.

“곤란하지, 그건 그래. 허지만 언젠가 잡혀서 결정적으로 욕을 당하고, 최대의 위험을 맛보게 되는 것이 치한으로서의 숙명 비슷한 것이라면, 특별히 그걸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 그건 죽음에 대해서도 매한가지야, 조만간 죽을 것이니까 특별히 서둘 것 은 없겠지.”

“아냐, 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틀렸다고 생각해. 죽음이 삶의 의미를 입증한 유일한 것이라면, 난 되도록 빨리 죽고 싶어. 체포 당하는 위험이 치한의 내부를 결정하는 요소의 하나라면, 역시 그 요소를 제외한 치한은 진짜배기 결정하는 요소의 하나라면, 역시 그 요소를 제외한 치한은 진짜배기 치한은 아니야. 가짜 치한이야. 그런 치한은 결국 아무 것도 아니야, 금방 지루해서 지쳐버릴 걸. 내 시의 영웅적인 치한은 그런 좀생이 녀석은 아니야! 단지 나로서 아직 알 수 없는 것은, 저 노인이 우리들 보호를 받으면서도, 전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고독하고 진짜 위험 속에 내팽개쳐진 적나라한 치한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점이야!”하고 소년은 말했다. 만원 버스 속에서 눈을 감고 눈꺼풀을 복숭아 빛으로 물들인 채 그 자신의 세계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노인을 바라보면서.

그리하여 J는 소년에게 노인의 그 굴강한 몸뚱이 속에 이미 암이 터잡고 있는 모양이라는 것, 또한 심장 증상에도 깊은 불안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는 그의 추측을 털어놓았다. 그리하여 소년은 노인에 대해서 더욱 헌신적으로 애쓰게 되었다. 소년은 그 폭풍우와도 같은 시의 보조역으로서, 빈사 상태의 치한을 등장시킬 셈이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소년은, 실로 이따금씩 그의 다음 번, 결정적인 치한행위 계획의 시안을 J에게 털어놓곤 하여, J를 공갈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성범죄라고 불려 질 계획이어서, 만일 일단 그것들 가운데 어느 한가지를 소년이 실행했다고 한다면, 그땐 확실히 J와 노인으로서는 소년을 살려내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치한의 행동범위를 넘어서서 성적인 흉악 범죄라는 영역에 이르러 있는 계획인 것이었다.

“안 돼, 너는 너 자신을 위해서도 그런 짓을 해선 안 돼. 만일 그런 짓을 하게 되면, 너는 폭풍우와도 같은 시를 쓰기 전에, 이 사회로부터 말살당할 것이야. 어째서 그렇게 해서까지 너는 그런 격한 시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가?”

“아니, 생각해 보니까, 시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진짜로 필요할는지도 몰라”하고 신비롭게 윤색을 하면서 소년은 말했다.

하긴 J는 소년의 몽상을 특별히 믿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J는 차츰 소년에 대해서 깊은 우정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몽상으로라도 소년을 해방시켜주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J의 무의식과 비추어본다면 다음과 같은 형의 심리작용이 있는지도 모른다. J는 자기 자신, 위험한 가시가 돋아 있는 성게같은 치한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고, 그걸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소년의 위험한 가시를 제거해 줌으로써 차라리 자기 방어를 하려는 것이다.

어느 날, 무네비 조오의 호텔 바에서 J와 노인 두 사람만 있던 심야에 J는 그 점에 관해 노인에게 의견을 구하면서 말했다.

“저 소년을, 내가 그전부터 잘 알고 있는 반 창녀 같은 아가씨에게 데려가 보려고 생각하는데요. 어쩌면, 치한을 영웅화하려는 시로부터, 육체적인 사랑을 노래한 서정시로 저 소년의 시적 관심이 옮기게 되면, 그런 편이 저 소년을 위해서는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그렇게 해봐줘, 꼭. 치한이 되자고 만 한다면, 예순 살이 되더라도 충분히 늦는다는 일 없이 전신할 수도 있는 거니까”하고 노인은 약간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하여 J는 재즈 싱어가 있는 곳에 전화를 걸어, 소년을 그곳으로 데리고 갔던 것이었다. 재즈 싱어는 신바시의 호텔 안에 줄곧 묵고 있었다. J는 재즈 싱어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그리고 소년에겐, 극히 정상적인 성관계를 한 번 쯤은 시도해 볼만한 것이 라고 설득했다. 소년은 애매하게 웃으면서 J의 주장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J에게, 어쩐지 불안하니까 호텔 바에서 기다려주지 않겠느냐고 부탁했다. 소년의 말은, 경솔한 재즈 싱어로 하여금 자기만족에 겨웁도록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바에서 기다리고 있던 J에게 전화를 걸어, 거의 고함 지르듯이 울면서, 이 괴물을 어서 데리고 가달라고 울부짖은 것은 재즈 싱어 쪽이고 이때 J는 한잔의 베르노 술을 막 마신 참이었다. J가 재즈 싱어 방으로 올라가자, 소년은 벌써 넥타이까지 단정하게 매고,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느슨하게 의자에 걸터앉아 있었다. 재즈 싱어는 욕실에서 정신이 갑자기 돌기라도 한 듯이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샤워를 하고 있었다. J가 욕실로 머리를 디밀고, 소년을 데리고 가겠다고 하자, J쪽을 돌아본 재즈 싱어는 샤워 물이 차가운 탓도 있었겠지만, 완전히 창백해져 있었다. 그리고, 이젠 J하고도 절교라고 소리를 질렀다. J는 다시 도어를 닫으면서 욕조 곁의 타일 바닥에 피가 몇 방울 떨어져 있는 걸 보았다. 소년은 이렇다 저렇다 도무지 말이라곤 없었고, J도 묻지 않았다. 소년은 그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을 저지른 것 같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는 J도 노인도, 소년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심을 시도하는 일은 극력 피했다. 그리하여 다시 J와 소년과 노인의 ‘포도 위의 친구들’로서의 거리 배회 습관이 평탄하게 이어졌다. 그러나, 소년은 역시 J와 노인 곁에 오래 머물러 있으려고 찾아온 새로운 정주자는 못되었다. 그는 그저, 두 번째 결정적인 치한행위로 향해 나서기까지, J와 노인의 비호 하에 자 기자신의 처형을 연기한 데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체재의 여행자였던 것이다.

겨울은 벌써 끝나가고 있었다. 심야에 천둥이 하늘을 달리고 간헐적으로 비가 내리고, 아침 일찍부터 햇살은 고양이 배처럼 따뜻하게 열을 띠었다. J의 아내는 중년사내인 카메라맨과 야외 로케이션의 일정표를 만들어서 작업장 벽에다 붙였다. 그녀는 봄부터 초여름에 걸쳐 새 영화의 필름을 촬영하게 될 것이다. 어느 날 아침, J는 노인과 약속장소에서 만나 둘이 무네비 조오의 술집으로 갔다. 그 며칠 동안, 소년은 그들 앞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소년은 우울증에 걸려 있는 듯 하였다. 지금 와선 J도 노인도 소년이 나타나지 않으면, 붐비는 인파 속으로 들어갈 때에도 갈망이 식어오는 걸 느꼈다. 그리하여 그날 아침 무네비 조오의 호텔 술집에서 오랜만에 그들은 기다리고 있는 소년을 발견했을 때는, J도 노인도 뜨거운 미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J는 그때 막연하나마, 아직 J와 노인의 2인조였던 무렵 J가 나타나는 걸 보면 노인의 얼굴이 반가움으로 추하게 보일 만큼 빛나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의 J처럼 소년은, J와 노인에게 혐오감을 느끼고 있기라도 한 듯이, 참으로 노골적으로 불쾌해 하는 낯 색이었다. 그의 의자 앞의 낮은 탁자에는 수면제 병과 위스키 큰 병이 놓여져 있었다. J와 노인은 소년의 눈치를 보면서도, 그쪽으로 비난 섞어 일별하였다. 그러나 결국 J도 노인도 소년이 아침부터 독한 술과 수면제를 먹는데 대해서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소년을 향해 앉아 말없이 각각 나름대로 편안해 지려고 의자 속에서 쉼 없이 몸을 움직거리면서 연방 미소하고 있었다.

“난 이미 두 번째 준비기간을 끝냈어. 난 할 작정이야”하고 소년이 말했다.

노인과 J는 소년을 보고, 즉시 미소하고 있던 볼과 입술을 딱딱하게 굳혔다. 소년은 수면제와 위스키로 머리 속이 뜨거워져 오는 모양이었다. 소년은 노인과 J가 처음 그를 만났던 그날 밤처럼 홀랑 발가벗은 몸뚱이에 부츠를 신고 트렌치 코트만을 입었던 그 몹시 절망적인 모험가다운 모습을 알알이 되 생각나게 하는 날카로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눈은 충혈이 되어서 부풀어올라 있는 것 같고, 얼굴 피부는 귀밑까지 완전히 파랗게 보일 정도로 엉망이다. 게다가 목소리는 신경질적으로 떨고 있어서, 화가 나서 못 견디는 아이와도 같은 목소리다.

“하지만 넌 오늘 신사복도 입고 있고 바지도 입고 있지 않나? 이제부터 화장실에라도 들어가서 트렌치 코트와 부츠뿐인 경장 차림으로 변하나?”하고 노인이 마치 불안을 얼버무리자는 듯이 약간 쑥스러워하면서 조롱섞인 어투로 소년에게 말했다.

“아니, 난 그전과 같은 짓은 안 해. 당신들에게 방해 당했을 때도 그렇게 말했잖아”하고 소년은 말했다. J는 소년이 구조되었다고 하지 않고 방해 당했다고 한 데에, 자기자신이 소년에 대해 지니고 있었던 우정의 얼마 정도가 짓밟힌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네가 나한테 말했듯이, 전차 속에서의 강간이라든지, 지하철 속에서의 늙은 여자 찔러 죽이기라든지, 그런 잔혹한, 꿈과도 같은 이야기를 진짜로 실현시켜 보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잖아?”하고 J는 애써 냉냉하게 말했다.

“난 이젠 내 계획을 그 누구에게도 안 털어놓아. 털어놓은 순간에, 신기루처럼 내 프로그램을 사라져버리니까 말야. 아무튼, 이젠 나를 이대로 내버려두지 않겠어? 나는 단지 치한 클럽의 구조 전문계에 속해서 당신들 일에 참가한다는 약속이었지? 이제부터는 아무쪼록 나를 내버려둬!”하고 소년은 말했다.

“그럼, 넌 어째서, 우리들에게, 지금 네가 준비기간을 끝내고 두 번째의 큰 모험을 할 작정이라든 등, 일부러 지껄였지? 우리들에게 알리지 않고, 어느 먼 곳에서 혼자 외톨박이로 그걸 결행했으면 좋았을 것인데?”

“난 단지 작별을 고하려고 왔어. 어쨌거나 친구였으니까”하고 소년은, J와 노인을 동요시킬 정도로 노골적으로 솔직하게 우정을 드러내면서 말했다. 그리고 금방 눈물이 어리고 충혈되어 부신 듯한 눈으로 두 사람을 보자, 난폭한 아이처럼 거칠게 일어섰다. “날 방해하지 마. 난 정말 죽는 일만큼이나 괴로워하면서 어렵게 어렵게 겨우 이번 일을 결행하기로 결심했으니까. 난 진짜로 희생을 치르려고 결심했으니까. 이젠 방해하지 마. 난 당신들과 같은 안전위주의, 장난 반으로 하는 치한에겐 사실 참을 수 가 없어. 만일 당신들이 나를 방해할 생각이면, 난 당신들이야말로 치한이라고 밀고를 할테야!”

그리고 소년은 거의 달리듯이 호텔 현관을 빠져나갔다. 노인과 J는 술값을 치르고 뒤를 쫓았다. 이젠 눈이라곤 흔적조차 없는 메마른 포도로 금방 앞으로 넘어지듯이 큰 발걸음으로 부리부리하게 화가 난 것처럼 걸어가는 소년을, J와 노인은 숨을 헐떡이면서 쫓아갔다. 소년은 국전의 무네비 조오 역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소년은 문득 교활하게도 머리를 돌려, J와 노인을 보자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다는 몸짓을 해보이며 그들을 노려 본 채 그냥 멈춰 섰다. J와 노인은 망설이면서도 그 소년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당신들은 왜 나를 쫓아오고 있지?”하고 소년은 소리를 질렀다. 그의 심리의 균형은, 수면제와 위스키의 공격을 받아서 파탄되어 있었다. 육체적으로도 소년은 이미 정상은 아니었다. 소년의 덩치 큰 상체는 천천히 옆으로 기울어지다가는, 갑자기 꼿꼿한 자세로 되돌아가고, 다시 옆으로 기울어지곤 했다.

“넌 머리가 돌아 있어. 돌아가서 자라. 우리가 택시를 태워줄 테니까.”

“당신들은 왜 쫓아오느냔 말이야? 어째서 남의 일에 간섭을 하느냔 말이야? 지금 난 천금 같은 때란 말이다!”하고 소년은 위협하듯이 팔을 내두르며 소리를 질렀다. 그곳은 번화한 상점가였다. 대뜸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좋아, 우린 너한테 간섭하지 않을게. 하지만 우리들이 너의 그 모험을 방관하는 것만은, 너도 말리지 않겠지? 우리는 네가 위험형의 치한이 되는 현장을 보고 싶단 말이야. 왜냐하면, 네가 모험을 결행한 뒤에, 너한테 단연 폭풍우와도 같은 시를 쓸 자유가 있게 될 것으로는 생각되지가 않아서야. 자아, 마음대로, 자기하고 싶은 짓을 하라구. 우리는 이제 절대로 구조도 방해도 않을 테니까. 네가 지금 공포를 느끼고 있다면, 그건 진짜배기 공포일 거다”하고 J는 차츰 짜증이 나서 끝내는 증오를 섞어 말했다.

소년은 극히 일순, 깜짝 놀라듯이 담백한 표정으로 돌아가, J를 보았다. 그러나 금방 돌아서자,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젠 돌아보는 법도 없이 J와 노인을 완전히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이 자기자신 속에만 열중했다. J와 노인은 30미터 가량 떨어져서, 서로 침묵한 채, 소년을 미행했다.

소년은 무네비 조오 역 안으로 들어갔다. J와 노인은 소년이 개찰구를 지나쳐 간 다음에 차표 파는 곳까지 가서, 약간 뜸을 들여 표를 샀다. 그리하여 그들이 개찰구를 통화했을 때는, 소년은 이미 행동을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간다 방면과 이께부꾸로 방면의 두 개 플랫품이 부채꼴로 갈려지는 그 두 층층다리 틈의 매점 곁에 소년은 서 있었다. 그의 오른손은 한 어린 계집아이의 손을 잡고 있고, 그의 왼손은 전지로 움직이는 새빨간 원숭이 장난감을 그 어린 계집아이 눈앞에 흔들어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소년은 얼마간 앞으로 숙여서 그 어린 계집아이에게 말을 걸고, 끝내는 그 원숭이 장난감을 주고 둘이 나란히 간다 방면으로 가는 플랫폼 층층다리를 오르고 있었다. 마치 오누이와도 같이. 그야말로 그 은밀한 친밀도의 인상으로 보아서는 그들을 지켜보는 타인들 누구에게서나 저도 모를 미소를 띠우게 하면서. J와 노인만이 달랐다. 그들은 소년이 그 어린 계집아이를 유괴할 작정인 듯 한 것을 눈앞에 보면서도, 그 사실을 믿는다는데 들어서는 공포를 느끼며, 멍하게 서 있었던 것이다.

소년들이 층층다리를 다 올라가 보이지 않게 됐을 때, 매점 속 화장실 도어를 밀고 젊은 여자가 나왔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낮게 겁먹은 듯한 목소리로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 다음, 공포에 휘감긴 듯이,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께부꾸로 방면으로 가는 플랫폼 층층다리를 몇 번이나 넘어질 듯 하면서, 그러나 재빨리 올라갔다. 노인과 J는 동시에 한발짝 앞으로 나가, 여자를 불러 세우고, 그쪽과는 반대되는 층층다리를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귀띔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둘 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내뻗쳤던 손을 그냥 드리우며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소년이 하던 말의 마법에라도 걸려들어 있었던 것일까?

잠시 뒤, 머리 위로부터 여자의 항의하는 듯한 비명이 소리개와도 같이 급강하해 왔다. J는 노인을 돌아볼 틈도 없이, 소년과 어린 계집아이가 사라져간 층층다리를 몇 단씩 건너뛰면서 올라갔다. 그리고 J는 그 애처롭고도 비장한 광경을 본 것이다. 플랫폼을 따라, 온 천지가 떠나가듯이 야마데 선 전차가 막 들어서려 하고 있다. 반대 편 플랫폼에는 젊은 여자가 팔을 내뻗쳐 당장이라도 선로를 향해 곤두박질치려 하고 있다. 빨간 원숭이를 잡은 어린 계집아이는 양쪽 선로 틈의 무쇠빛 자갈 웅덩이 속에 넘어져서 바들작 거리고 있다. 그리고 소년은 전차가 달려오고 있는 선로에 두 무릎을 짚고 넘어진 말처럼 상체만이 하늘을 우러르며 금방이라도 울부짖을 것 같다. 어린 계집아이를 안전한 웅덩이 속으로 던진 뒤, 비어있는 두 팔은 가슴 근처에다 굽힌 채 눈을 감기 직전에 J는, 전차의 머리 부분이 소년의 피로 일순 진홍색으로 물드는 것을 기괴한 환영처럼 보았다. J는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렸다.

한 시간 후, J와 노인은 무네비 조오의 호텔 바 소파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서. 서로가 상대방 손바닥에 놓인 술잔이 와들와들 떨리고 있는 걸 보면서 가만히 있었다. J는 어린 계집아이를 가슴에 껴안은 젊은 어머니가 오열에 잠긴 채 주위를 에워 싼 군중에게 거듭거듭 뇌이고 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저이는 하느님입니다. 내 아이가 나를 보고 플랫폼에서 선로로 뛰쳐나왔을 때, 이젠 누구 눈에나, 내 아이는 죽어버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겁니다. 저도 그랬지요! 그걸 하느님인 저이가 구해준 겁니다. 그러구 가엾게도, 아아.”

“그 소년은 역시 치한으로 밖에 살길이라곤 없는 인간이었어. 그렇게 생각하면, 나도 약간은 참혹한 평안이 들어앉는구먼” 하고, 노인이 말했다. “그리고 치한은, 저 소년처럼 죽음을 걸고서라도 치한일 수밖에 없는 위험한 인간이라고 생각해. 우리들처럼 안전을 염두에 둔 치한 클럽은 엷게 탄 독을 마시는 기관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아.”

“네, 나는 그 소년으로부터 몇 번이나 그런 식으로 핀잔을 들었지요”하고 J는 말했다.

“역시 우리에겐 거짓이 있었어. 결국 우리는, 저 소년처럼 위험한 치한이 되느냐, 치한이기를 그만 두느냐, 그 어느 한 쪽밖에는 길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하고 노인은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난 이제 이 술집엔 오지 않겠고, 당신을 만나는 일도 없을 겁니다”하고 J는 깊이 슬퍼하면서 말했다.

“넌 치한이기를 그만 두겠지. 그러구 난 더 위험한 치한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지하철 사람들 틈에서 체포되어서 심근경색증을 일으켜 죽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확실한 예감이 들어.”

J는 일어섰다. 노인은 소파에 걸터앉은 채 J를 올려다보고, 머리를 저었다. 노인은 노여움이 북받치거나 성적으로 앙양된다 든 지 할 때 노상 그러듯이 고든 진의 상표에 붙은 취한 늑대처럼 눈 가장자리를 붉히고 가엾은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눈에는 하얀 눈물안개가 걸려 있고. 그건 J가 본 가장 평화스러운 노인의 눈이었다. J도 다시 눈물을 글썽이고, 노인과 마찬가지로 약간 웃으면서 머리를 저으며 말없이 술집을 빠져나가 호텔 현관으로 나섰다. 그는 등뒤에서 노인이 그를 지쳐보고 있는 동안에 빈혈로 쓰러지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호텔 보이가 불러준 택시 속에서 J는 절망하면서 흐느껴 울었다. J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좋은 두 사람의 친구를 막 잃은 것이었다.

그로부터 몇 주일 동안, J는 아파트에만 틀어박혀서 살았다. 그렇게 지나는 동안 그는, 아내에게 있어 J가 전혀 외출을 안 하게 된 것이 부담스럽고 고통인 듯하다는 점을 느끼게 되었다. 이 점은 아내뿐만 아니라, 작업장으로 영화제작 준비 때문에 노상 다니고 있는 카메라맨 역시 J의 존재에 대해 나타내는 비슷한 반응이라는 걸 그는 눈치채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J는 매일 매일, 그 소년과 노인에 관해서만 노상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깊이, 아내와 카메라맨의 반응의 의미를 추적해 본다는 일은 없었다. 그는 이제 유아처럼 둔감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끝내는 어느 날 늦은 아침에 J의 침실로 들어온 카메라맨이 J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을 때도, 아직 J는 그것이 영화제작비나 쟈가의 사용권과 관계된 것이겠거니 하고 예측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카메라맨은 그게 아니고, 자기가 J의 아내와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것, 그 결과로 J의 아내는 임신하고 있다는 것을 털어놓은 것이었다. J는 고래 대가리처럼 커다랗게 둥그스름하고 가무잡잡한 얼굴에 우스꽝스러운 수염을 세운 채, 핏발선 눈을 뒤룩거리며 그를 쳐다보고 있는 중년사내를 잠시 의아한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특별히 가혹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감정은 일어나지는 않는 걸 꽤나 당연한 듯이 느끼었다. 대체 어찌 되었다는 것일까, 이 열정적인 아웃사이더, 정밀 기구편애가인 중년 사내와 영화제작밖에는 흥미를 지니지 않는, 야위어빠지고 사내아이 같은 육체를 지닌 아내와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대체 어떻게 된 심판인가, 하고 J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더더구나 저 반여성적인 허리를 지닌 아내가, 임신할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니. 아내는 출산을 하다가 죽게 되지나 않을까.

“J, 자네가 충격을 받고 있는 건 알겠어. 자네는, 가장 오랜 친구에게 배반을 당했으니까. 그렇지 J”하고 카메라맨은 J를 위로하듯이 말했다. 가장 오랜 친구? 하고 J는 깜짝 놀라며 반발했다. 지금 그에게 있어 친구라는 말이 제대로 환기시키는 실체는, 죽은 소년과, 지금도 여전히 붐빔 속을 고독한 치한으로서 방황하고 있을 터인 노인뿐인 듯이 생각되었다.

“그래서, 언제부터?” J는 얼빠진 듯이 이렇게 반문하며 스스로도 자기 말이 무의미한 데에 얼굴을 붉혔다. 언제부터 자기가 배반당했는지 그런 걸 확인해서는 대체 어쩌자는 건가? 허지만 카메라맨은 곧이 곧 대로, “자네가 집을 비워놓기 시작하면서부터였어, J”하고 받았다.

“낮에 임신시켰나?” J는 약간 조롱하듯이 말했다.

카메라맨은, 일순 커다랗게 둥그런 가무잡잡한 얼굴을 온통 구리빛으로 붉히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했다.

“J, 자네는 성도착이야, 미쯔꼬 씨에게 듣자 하니, 자네는 자기 아내를 성적으로도 남색상대 소년의 대행처럼 취급하는 게 확실해. 확실히 말하거니와, 성도착인 사내가 아내를 지니고 있을 때는, 다른 사내가 그 아내와 육체관계를 가져야 할 것이야. 그건 다른 사내의 의무야.”

J는 카메라맨과 아내가 자기의 성적인 버릇에 대해 이러고 저러고 지껄이고 있는 광경을 떠올리며 비로소 격렬한 노여움에 사로잡혔다. 카메라맨도 J가 두드려 패는 것을 무방비상태로 참기로 작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J는 결국 카메라맨에게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그 대신에 J는, 미미나시 만을 내려다보는 산장에서 카메라맨을 때린 이래, 마음 한 구석에 꺼림칙하게 남아 있었던 자기 혐오의 육종 하나가 스르르 해소되는 걸 느낀 것이었다.

“그래 어쩔 작정이야?”하고 J는 그전부터 익숙해온 카메라맨의 그 핏발선, 안정감이라곤 없는 눈을 들여다보면서 그야말로 어버이처럼 물었다.

“미쯔꼬 씨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겠어. 만일 J가 이혼을 승낙해 준다면!”하고 카메라맨은 흥분하면서 말했다.

“자네 마누라나 애들은 어떻게 되고?”

“결국 생활비는 보태주어야겠지. 하긴 가능하다면, 아이는 떠맡고 싶지만.”

“이제부터가 큰일이군”하고 J는 말했다.

“그럼, 야단이야. 영화도 완성시키지 않으면 안 되겠고”하고 카메라맨은 말했다. 그러나 그의 중년 사내 같은 둔하고 교정 적인 표정은, 차츰 자랑스러운 자신으로 하여, 안쪽으로부터 빛나오는 듯 하였다. 이 부계사회의 족장과도 비슷한 무지막지한 중년 사내 때문에, 이제부터 대체 얼마만한 인간이 이 현실사회의 갖은 쓰라림을 맛보아야 하는 것일까, 하고 J는 동정과 연민을 느끼면서 생각했다.

“되도록 빨리 이혼수속을 취하지”하고 J는 말했다. “그래 미쯔꼬를 데려갈 장소는 이미 정해져 있나?”

“아니, 아직은.”

“그럼, 내 편에서 잠시 아버지 댁에라도 가 있지”하고 J는 말했다.

“그래서 영화 얘기인데–.”

“아리프렉스 16밀리는 너희들에게 증정하겠어. 그리고, 그전 영화를 판 돈을 미쯔꼬가 자기 명의로 예금을 하고 있으니까 말야. 우리 아버지가 투자한 몫 같은 건 이제 생각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어.”

“J, 고마워”하고 감동하면서 불현듯 여자처럼 나긋나긋해 지면서, 온몸의 긴장을 풀고 텁석부리 카메라맨은 말했다. 그리고 목 안으로 아이처럼 흐느껴 우는 소리를 내면서 작업장으로 돌아갔다.

J는 침대에 벌렁 누워서 잠시 꼼짝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작업장에서 아내와 카메라맨이 소근거리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왔다. 그러자 J는 옷과 간단한 소지품만을 트렁크에 넣어 아내와는 맞대면을 않고, 부엌 층층다리로 해서 차고로 내려가자 몇 개월 만에 쟈가에 올라탔다. 그 길로, 그는 마루노우찌 철강회사 본사 빌딩으로 사장인 부친을 찾아갔다. J는 아버지에게 이혼한 경위를 포함해서 그날부터 아버지 집에 머물러야 할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구했다. 아버지는 시종 부드러운 미소를 띠운 채 J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J에게 너는 이제 몇 살이냐고 물었다. 서른 살입니다, 라고 J는 대답했다. 서른 살이라고 하는 말소리가 그 자신의 귀에도 일종의 특수한 반향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J는 까닭도 없이 언짢은 느낌이 들었다. 서른 살? 이젠 어린 나이는 아니다.

“넌 전처가 자살하고 나서, 이를테면 은자처럼 도피생활을 해왔는데, 이번 두 번째 처가 간통을 해서 너를 버린 이상 이제 반반이 아니냐? 어때 이제 너도 서른 살이면, 평범한 생활로 돌아올 좋은 기회가 아니겠니? 우리 회사에서 이번에 혁명적인 아말감 공장을 짓는데, 그 준비 때문에 나는 조만간 미국 제휴회사로 시찰을 갈 예정이다. 내 비소로 미국에 가보지 않겠니, 그러구, 이 새 아말감 공장에서 한번 주요한 자리를 맡아볼 생각이 없니? 이제 너에게 그 아말감만으로 지어진 40층 짜리 빌딩의 슬라이드 사진을 보여주마. 그건 진짜 사람을 흥분시킨다. 제법 물건이라니까. 너는 필경, 내 제안을 받아들이고 새 생활로 들어서고 싶어질 거다!”

J는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컬러 슬라이드를 보면서, 아버지 제안에 대해 생각했다. 오랜 친구들과 아내가 그로부터 떠나고 새 친구 하나는 사고로 죽고, 또 한 사람이 동경의 1천만 군중 속으로 사라져간 이상, J는 이제 완전히 외톨박이였다. 그건 확실히 그전 같은 순응주의자로서의 현실생활로 되돌아갈 기회가 아닐까? J는 물론 전처의 자살에 대한 그의 책임과 죄의 감각을 후처의 강간으로 상쇄하려고 든다는 것이 설령 기분으로라도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한 자기기만을 승인하는 것이야말로, 순응주의자로서의 현실생활을 복귀하기 위한 첫 걸음이 되지 않을까?

J는 자기가 이제부터 수 없는 자기 기만을 거듭한 끝에 지금 자기 곁에서 불만스러운 짐승처럼 씩씩거리며 카메라 슬라이드를 지켜보고 있는 늙은 괴물과 흡사하게 닮은 노인이 되는 것이다, 하는 걸 예감했다. 그것은 체념의 감정 같기도 하고, 오랜 표류 끝에 구조받은 자의 감각 같기도 하였다. 비록 적의 배에 의한 구조이기는 할망정.

결국 J는 아버지에게 굴복했고 그 제안을 승낙했다. 출발은 3주일 뒤였다. 그의 일상생활은 돌연 풀 가동을 시작한 것이다. J는 사장실로 나와서 긴 복도를 걸어가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 동안 줄곧 J는, 40년 뒤의 자기 이미지로서, 방금 헤어지고 나온 아버지의 풍모를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의 아버지나 40년 뒤의 자기나 암에 걸리고 심근경색증의 위협에 당하더라도, 전혀 태연하게 순응주의자인 저 늙은 괴물의 포커 페이스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곤 없을 것이다. 자아, 자기기만의 순응주의자로서의 새 생활이 막 시작된 참이다. J는 다망하고 유능한 샐러리맨처럼 절도있게 어깨를 흔들며 걸어가 빌딩 자동 도어를 빠져나가자, 지하철 승강구 곁에 주차시켜둔 쟈가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득 J는, 금방 실신할 정도로 극도로 흥분하여 쟈가를 그냥 지나쳐서, 지하철 층층다리를 마구 건너뛰듯이 달려 내려갔다.

J는 지하철의 혼잡한 차량 속으로 올라타자, 사람들이 밀고 밀리는 몸뚱이 틈을 아무런 주저도 없이 헤치고 나가 약속이라도 해두었던 듯이 한 아가씨 뒤에 닿아,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젠 이미 전차의 굉음도 사람들의 술렁거림도, 그의 귀속에서 왕왕 울리고 있는 더운 피의 소리에 빨려 들어 있었다. 그는 눈을 힘주어 감고, 장끼처럼 살이 통통 져서 꽤나 저항감이 있는 아가씨 엉덩이 틈의 귀엽고도 따뜻한 웅덩이에다 맨 성기를 되풀이 비벼댔다. 대번에 그는 더 이상 후퇴가 불능한 첫걸음을 내디디려고 하는 자신을 느꼈다.

새 생활, 자기 기만이 없는 새 생활, 그는 시뻘겋게 타오르는 머리 속으로 잘게 신음소리를 토하며 그대로 오르가즘에 이르렀다. 외부의 모든 술렁거림이 다시 의식되었다. 그의 정액은 이제 지울 수 없이 확실하게 아가씨 외투를 얼룩지게 하고 하나의 증거로서 실재하고 있었다.

순간, 1천만 명의 타인들이 J를 적의의 눈길로 노려보며, J! 하고 울부짖는 듯 하였다. 지복감과 바로 이웃해 있던 공포감의 물결이 한없이 팽창해서 J를 휩싸버렸다. 몇 사람의 팔이 J를 꽉 잡고 있었다. J는 너무 너무 공포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이 눈물은 자살한 전처가 그날 밤 내내 흘렸던 눈물을 보상하는 눈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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