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삶, 치유 그리고 사랑이야기

그대 만난 뒤 삶에 눈떴네

레이첼 나오미 레멘 지음 | 류해욱 옮김

 

 


Rachael-Remen

 

 

레이첼 나오미 레멘 Rachel Naomi Remen

 레이첼 나오미 레멘 박사는 마음과 몸의 조화를 이루는 건강법 분야에서 선구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지닌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접근방식을 개발시키고 의사들에게 그것의 필요성을 교육시키는 일에 투신하고 있는 선두 주자다. 빌 모이어가 진행하는 PBS 방송의 특집 ‘치유와 정신’ 에서 소개된 바 있는 ‘암 환자 복리증진 프로그램’ 의 공동창설자이기도 하며 의과 분야 책임자다. 또한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교의 임상 교수이기도 하다.

 

 

 옮긴이 류해욱

 1955년 충북 제천 출생.
예수회 신부, 서강대학교 교목실장.
예수회 피정집 ‘말씀의 집’ 원장 등을 역임.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 빈센트 병원 원목 사제.

 저서로 시집 <그대 안에 사랑이 머물고>,
사진 묵상집 <자연: 산, 들, 호수, 그리고 하늘>,
기도서, <성서를 통한 십자가의 길>,
<성모님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 등이 있고,

역서로 시집 <햇살처럼 비껴오시는 당신>,
영성서 <오늘날의 아냐시오의 영성>,
<일상 삶 안에서의 영신수련> 등이 있다.

 역자는 병원 사목을 마치고 영혼이 지친 사람들을
위한 ‘작은 쉼터’ 를 마련하여 마치 저자 레이첼
레멘처럼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소망을 지니고 있다.

 


 

 

이 책을 여러분들에게 추천하면서…

영혼의 선물

 

장영희 서강대 교수

 

미국의 선교사 일행이 아프리카에서 겪은 일입니다. 한참 길을 가던 원주민 짐꾼들이 왠지 갑자기 길가에 주저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았답니다. 달래도 보고 돈을 더 주겠다고 흥정도 해보았지만 묵묵부답이던 그들 중 한 사람이 마침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 백인들을 기쁘게 해 주려고 너무 속도를 냈어요. 이제는 우리 혼이 우리의 몸을 따라잡도록 기다려야 해요.”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시간에 쫓기며 뒤도 안 돌아보고 자꾸 앞으로 나갑니다. 우리의 혼이 어디쯤 오는지, 아니 아예 따라오든 말든 아랑곳 하지 않고 그저 아등바등 뛰기만 합니다. 정신 없이 뛰다 보면 영혼은 저만치서 따라오지 못하고, 다그칠 대로 다그친 몸은 고장이 나기 일쑤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학생들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이 제 본업인데 그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욕심 사납게 다른 일도 마구 맡아 하면서 몸을 함부로 굴렸습니다. ‘장영희’ 라는 이름이 이곳 저곳에 보이는 것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많은 일을 맡고, 이런저런 원고의 마감 일자를 대느라고 제대로 잠잘 시간도 없는 빡빡한 스케줄에 가만히 앉아서 저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주변에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시간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를 따라오지 못한 영혼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몸은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그래서 몹쓸 병에 결렸습니다. 척추암 이라고 했습니다. 지독한 통증과 삶에 대한 회의, 전이에 대한 공포, 물론 죽음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제껏 제가 잘못 살아왔는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었습니다. 진정 삶에서 귀중한 것이 무엇이고,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제 영혼의 소리를 듣지 않고 왁자지껄 이 세상의 소리만 듣고 그 소리가 원하는 대로 뒤도 안 돌아보고 뛰었습니다. 남이 인정해 주는 장영희가 되기 위해 정신 없이 살았을 뿐, 제 영혼을 돌보며 마음이 평화롭고 기쁜 장영희는 이미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척추암 선고를 받기 일주일 전 쯤 출판사 ‘이루파’ 로부터 The Kitchen Table Wisdom 의 번역제의를 받았었습니다. 작가 레이첼 나오미 레멘이 의사이자 상담가로서 환자들 (대부분은 암이나 난치병) 과 면담하나 사례를 담은 이 책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번역가로서 꼭 우리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이기는 했지만, 제 전공인 문학서적도 아닐 뿐더러 이미 다른 작품을 번역하고 있던 터라 망설여졌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류해욱 신부님이 생각났습니다. 신부님은 시인이자 탁월한 문필가일 뿐만 아니라 번역에도 경험이 많고, 금상첨화로 마침 병원 원목 사제를 담당하고 계시니 정말 저보다 훨씬 더 적임자였습니다. 바쁜 스케줄 때문에 신부님도 어렵다고 하시더니 나중에 제가 병에 결린 사실을 알고 난 후에 번역을 승낙하셨습니다.

그리고 류 신부님은 제가 두 달 가까이 입원해 있는 동안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하나씩 번역하여 저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도합 52개의 글을 하루하루 읽으면서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레멘 박사가 말하는 자신의 이야기, 그녀가 만나는 환우들의 얘기는 하나같이 바로 저의 얘기였습니다. 이 책의 지명도는 익히 알고 있었고 무심히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어도, 제가 정작 환자가 되어 하나씩 마음으로 소화하면서 읽는 그 이야기들은 정말 하나하나가 제 하룻동안 생각의 양식거리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병과 죽음 앞에서 가장 정직해집니다.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고통의 표정이야말로 인간의 얼굴에서 가장 진실한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병 앞에서는 모든 위선의 가면을 벗고 진정한 나, 발가벗은 채로의 나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도 제 이름에 늘 따라다니던 ‘교수’, ‘박사’ 등등의 사회적 허울을 벗고, 팔목에 번호가 적힌 종이 팔찌를 하고 수액 줄을 달고 누워 있는 ’26호실 환자’ 였습니다. ‘왜 하필이면 내가,’ 하는 원망에 찌들고, ‘내가 잘못 살았나 보다’ 하는 죄의식과 자괴감에 빠지고, 한밤중에 문득 눈을 뜨면 나만 두고 저 멀리 가버리는 세상이 두려워서 공포에 휩싸이는, 병든 몸만큼 마음까지도 병든 환자였습니다.

그러나 아침마다 이 책의 이야기를 하나씩 일어가면서 제 마음은 조금씩 평화를 찾았습니다. 레멘 박사가 자기 스스로 만성병 크론병의 환자로서 그리고 의사로서 환자들과 나누는 생생한 에피소드들을 읽어 가면서 점점 그 속에 빠져 들어갔고, 신기하게도 저도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제 속내를 털어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느낌, 저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제가 지금 처함 고통은 분명 끝이 있으며 그리고 지금 외롭고 고립된 환자로서의 삶도 분명 의미가 있다는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저는 휴식할 수 있을 뿐, 제 영혼이 저를 따라잡는 시간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레멘 박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던 사람들” 에게 헌정한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우리가 무엇을 성취했는지가 아니라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누구와 함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마음의 치유에 도움이 된다” 고 말합니다. 즉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서 내 삶을 통해 무엇과 싸우고 무엇에 의지했고, 내 생각과 두려움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이 무언가를 얘기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치유의 기본이라는 것입니다.

레멘 박사는 자기 스스로와 환자들 자신의 가족과 친지들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짤막한 이야기 하나하나가 사랑과 나눔의 신비에 관한 진실한 이야기이고, 읽고 나면 한숨 한 번 쉬고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그녀 자신이 의사일 뿐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크론이라는 만성병을 앓아온 환자로서 병을 가진 사람이 느끼는 상실감과 고립감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삶에 대한 의지가 더욱 강해졌고, 삶의 소중함과 축복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결국 이 책은 삶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마음을 열고 어떻게 삶을 더욱 충만하고 의미 있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의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레멘 박사는 우리 모두가 삶을 축복으로 만들 수 잇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즉 그녀는 의사로서 ‘치료’ 에 대해 말하지 않고, 인생 상담가로서의 ‘치유’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류신부님이 이 책에 붙인 제목 – ‘그대 만난 뒤 삶에 눈떴네’ – 은 아주 적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제가 다른 곳에 쓴 글에서 땄다고는 하지만, 사실 이 책의 주된 메시지는 어떤 형태로든 병과 고통을 겪으면서 결국 삶에 눈을 뜨고 다시 더욱 당당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책이 모든 의학도들의 필독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갖가지 병으로 평생 병원을 들락거리는 단골 환자로서 저는 늘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태도의 중요성을 생각하곤 합니다. 환자는 단지 증상의 모집체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입니다. 단지 의사의 한마디 말에 매달려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인간일 뿐입니다. 현대의학은 나날이 기적과 같은 발전을 보이지만 동시에 한계도 만만치 않습니다. 레멘 박사는 진정한 치유는 전공분야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환자의 마음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누군가 ‘유명한 의사’ 가 되는 것은 쉽지만 ‘좋은 의사’ 가 되는 것을 무척 어렵다고 한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나라처럼 의사 한 사람이 돌보아야 할 환자가 많은 상황에서 환자에게 인간적으로 가깝게 가는 일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삶의 신비와 진실을 이해하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진정한 연민으로 다가가는 이야말로 ‘좋은 의사’의 자격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책은 단지 의사나 환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책은 결국 마음을 치유하는 이야기들을 모든 책이고 이 세상에 어떤 방식으로든 삶에 상처받지 않은 이는 없습니다. 이 책은 모든 상처받은 이에게 위로와 희망을 줍니다. 삶의 템포를 한 발자국 늦추고 우리의 영혼을 기다려 맞이하게 하고,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내적 세계에 눈뜨게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사람과 사람, 개인과 사회 사이의 진정한 사랑과 교류를 얘기하고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 영혼적 웰빙을 원하는 사람들의 필독서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저의 병원 생활 2개월 동안 어두운 병실을 밝히는 촛불과 같았고, 앞으로도 외롭고 슬픈 사람들에게 빛을 주리라 믿습니다. 독자들에게 순수하고 따뜻한 영혼의 선물을 준 작가에게 찬사를 보내고, 그리고 이 아름다운 책을 아름답고 유려한 문체로 번역해서 소개해 주신 류해욱 신부님께도 깊이 감사 드립니다.

 

 

 

옮기고 나서

‘그대’ 와 더불어 따뜻한 차를 나누며

 

9월 초, 서강 대학교 선배이자 동료 교수였던 장영희 교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원래는 본인에게 청탁이 들어온 책이 있는데 대신 한번 번역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의였다. 본인보다는 원목사제로서 환자들을 만나고 위로를 주는 일을 하는 내게 더욱 걸맞은 책이라는 것이었다. 워낙 바쁜 스케줄에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를 낼 자신이 없어서 나는 “글쎄요, 감사하지만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해 보지요.” 라고 정중하게 거절을 했었다.

그러고 나서 불과 나흘 후에 나는 장 교수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척추암이라고 했다. 병문안을 하러 갔다가 다시 그 책의 번역 이야기가 나왔다. 장 교수는 워낙 책 내용이 좋아서 누가 번역을 하든지 꼭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소개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의사인 저자가 주로 암 환자들과 상담을 하면서 체험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환자들과 의사들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번역을 하면 본인이 발문을 써 주겠다고 했다. 미국에서 장기간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아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평소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는 장 교수의 글을 자주 접한 나는 발문까지 써 주겠다고 하며 그토록 강력하게 추천하기에 점점 더 책에 대한 호기심이 났다. 고통스러운 병상에서도 밝은 얼굴로 책 이야기를 하는 장 교수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결국 번역을 수락했고, 바쁜 일과 사이사이 짬을 내서 하루에 이야기 하나 씩 번역해 나갔다. 처음에는 내심 장 교수를 위해 내가 ‘희생’ 한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으나, 점차 이 책이 지닌 묘한 매력을 느끼면서 번역하는 재미에 빠져들게 되었다. 저자가 들려 주는 이야기들은 때로는 슬프고 안타깝고, 또 때로는 위트와 기지에 가득 차 있지만 한결같이 모두 감동스럽게 마음에 공명을 남겼다.

 

Kitchen Table Wisdom, Book

Kitchen Table Wisdom

이 책의 원제는 ‘Kitchen Table Wisdom‘ 이다. 저자가 서문에 쓰고 있는 대로 예전에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그것은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니라 서로 삶에서 얻은 지혜들을 나누는 길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옛날처럼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제목을 붙였다고 말한다. 제목을 그대로 직역한다면 ‘식탁의 지혜’ 가 될 것이고 우리 정서와 연결시킨다고 하면 ‘사랑방 지혜’ 정도가 되겠지만, 둘 다 그렇게 선뜻 마음에 와 닿는 제목들이 아니라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지난 여름 읽었던 장 교수의 글 하나가 떠올랐다.

장 교수는 모 일간지의 문하칼럼인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을 시작하면서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생일’ 이라는 시를 소개했고, 자신의 감상 글에 ‘그대 만난 뒤에야 내 삶은 눈떴네’ 라는 제목을 붙였다. 처음 이 제목을 보면서 나는 피식 웃었다. 누구를 만난 뒤에야 비로소 삶에 눈을 뜨게 되다니, 그런 낭만이 아직 이 세상에 존재한단 말인가? 라고 혼자 생각하면서 웃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번역해 나가면서 나는 그것이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가 들려 주는 많은 이야기 속에 나오는 환자들은 자신들이 병을 만난 뒤에야 비로소 삶에 새롭게 눈뜨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장 교수가 떴던 “그대 만난 뒤에 내 삶은 눈떴네” 라는 제목에서 ‘그대’ 는 사람뿐만 아니라 병이나 고통 등의 삶의 체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의 내용과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장 교수의 허락을 얻고 이 책의 제목으로 ‘그대 만난 뒤 삶에 눈 떴네’ 로 장하게 되었다. 장 교수는 책의 내용을 좀더 직접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부제를 달았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해 주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번역해 나가면서 ‘삶을 산다’ 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장 교수는 위 글에서 “영어에서 live와 love는 철자 하나 차이이고, 우리말에서도 ‘사랑하다’ 와 ‘살다’ 의 어원을 좇아가면 결국 같은 말에서 유래한다고 말한다. ‘사람’ 의 뾰족한 네모 받침을 부드러운 동그라미로 만들면 ‘사랑’이 된다. 결국 우리가 매일 쓰는 사람, 사랑, 삶이라는 말들은 모습도 소리도 다 비슷한데, 우리는 제각기 그저 삶 따로 사랑 따로 살아가고 있다” 라고 쓰고 있다.

그렇다. 사랑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은 이미 삶을 산다고 할 수 없을 거이다. 치 책은 결국 제대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게끔 도와주는 사랑 이야기이다. 여기에 의사로서 환자들을 도와 주면서 경험한 육체적, 정신적 치유 이야기가 함께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부제는 ‘삶, 치유, 그리고 사랑 이야기’ 로 붙였다.

 

시인 조지훈은 ‘병에게’ 라는 시에서 병을 친구라고 부르면서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리 다시 인생을 얘기해 보세 그려.” 라고 읊었다. 확실히 병이라는 묘한 친구는 우리에게 삶에 대해, 사랑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준다. 아니, 꼭 육체적 병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겪는 마음의 고통도 어쩌면 삶과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새롭게 가르쳐 주는 스승인지도 모른다.

이 책의 저자 레이첼 나오미 레멘 선생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지만, 삶은 곧 사랑이라는 깨달음을 주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녀는 자기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와 더불어 의사로서, 또는 상담가로서 환자들을 만나면서 들은 이야기들이라는 구슬들을 꿰 메어 보배로 만드는 탁월한 재주를 지녔다. 그래서 이 책은 영롱한 진주와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목걸이다. 다만, 역자가 우리 한국 사람의 체형에 맞는 목걸이를 만들기 위해서 나름대로 진주 몇 알을 빼기도 하고, 다이아몬드의 세공을 조금은 변형시키기도 했음을 고백하며 저자와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부디 이 아름다운 목걸이를 단지 장식물로 보석함에 보관만 하지 말고 인생이라는 연회에서 성장을 차려 입는 데 요기하게 사용하기 바란다. 이 책을 만날 기회를 준 장 교수에게 감사하고, 무엇보다 이 책이 장 교수를 비롯하여 많은 환우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과 의학도들이 새롭게 삶과 사랑에 대해 생각할 수 잇는 계기가 된다면, 나의 작은 노고가 큰 보람을 얻는 셈이다. 장 교수처럼 새 생명을 위해 투병하고 있는 많은 환자들이 삶에 새롭게 눈뜨기를 바라며 이 번역을 드린다. 보잘것없는 졸역에 도움과 격려를 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 드린다.

 

류해욱

 

 

 

 

 

 

 

들어가는 말

 진리를 찾아 탐구하는 나에게 할아버지는 소크라테스 같은 스승이었다. 인격적으로 내재한 하느님으로 가득 찬 그의 세계는 다른 세계와 더불어 나의 어린 시절에 꿈을 키울 수 있는 터전이 되었다. 그는 신비 유대이즘의 고문서들을 연구하는 데 거의 일생을 헌신하신 분으로 내가 태어날 즈음에 이미 유대교의 학자이며 원로로서 존경 받는 랍비였다. 할아버지가 러시아에서 가져온 책들은 모두 얇은 종이에 히브리어로 쓰인 고분서들이었다. 어렸을 때 나는 할아버지가 연구하고 있는 책상 아래에 앉아서 할아버지가 신고 계신 자주색 슬리퍼를 만지작거리며 공상에 잠기곤 했다.

어린 시절에 접했던 다른 세계는 의사나 의학에 관한 세계였다. 할아버지에 이어서 두 세대에 걸친 우리 가족에는 3명의 간호사와 9명의 의사가 있어서 어렸을 때부터 나는 당연히 의사가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다른 답은 없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산 중에 얼마는 내가 의과대학에 갈 학비로 사용하도록 유언을 남기셨다. 그때 나는 겨우 여덟 살이었다.

내가 성장하면서 이런 가족의 기대가 점점 무거운 짐으로 느껴졌다. 삼촌들과 사촌 형제들 대부분이 의사였고 모두가 과학적이고 지적이었으며 또한 세상의 기준에도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존경했지만 할아버지를 더 흠모했고, 그가 바라보던 삶의 방식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랍비가 되고 싶었다. 열 두 살이 되던 해, 나와 가까웠던 사촌 오빠와 나는 모두 랍비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나중에 우리는 둘 다 의사가 되었다.

 

열세 살 때 ‘비티니아로 가는 여정’ 이라는 성 루가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책을 읽고 다시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성 루가가 의사였다는 것을 몰랐었다. 처음에는 그 책이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루가 복음 사가에 대한 내용이라고 해서 읽게 되었다. 프랑크 슬로터라는 의사가 쓴 책이었는데 의사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전개한 소설이었다. 나는 네 번이나 이 소설을 읽었고 이 책을 통해 할아버지가 세상을 이해하던 방법으로도 의사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기뻐했었다. 의사가 되는 것이 삶을 보다 잘 이해하고 남에게 더 잘 봉사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의대생이 되었던 첫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버지는 짐을 의과대학 기숙사의 내 방에 옮겨 주셨고, 어머니는 가방들을 풀어서 옷장과 서랍에다 정리하셨다. 조금 더 나와 함께 머물고 싶어 하는 부모님을 빨리 가시도록 내몰다시피 했다. 그때 나는 21세였고 새로운 시작을 혼자 맞이하고 싶었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책상과 책꽂이와 아주 좁은 침대 하나를 바라보며 어제까지의 따뜻한 침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 방이 낯설게 느껴졌다. 여학생의 침실이라기보다 수녀원의 독방처럼 보였다. 앞으로 4년을 이 방에서 머물러야 했다.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 생각은 내가 의사가 되려는 생각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어서 도중에 포기하여 의사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한 나는 코넬대학교 의과대학에 가까스로 입학할 수 있었다. 나를 면접했던 교수는 면접 서류 중에서 우등이었던 철학 전공의 학부 졸업증명서를 보더니 의학을 공부하기에는 적절한 과정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자긴 전공인 유전학에 대해 질문을 했고 열띤 토론을 벌였지만, 역시 나는 과학도가 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그 교수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과학은 마치 이 방처럼 색깔이 없고 딱딱한 모서리의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달래면서 밖을 내다 보았다. 이미 언뜻 보고서 알고 있었지만 거리의 모습이 삭막한 회색의 도시임을 새삼스럽게 의식했다. 늦는 밤이었다. 마주보는 거리 건너편에 병원 정문이 있었고 불빛이 번쩍였다. 병원 정문에는 차가 들어왔다가 나갈 수 잇는 반원의 자동차 주행도로가 나 있었고 끊임없이 차가 들어와선 환자들을 내려놓고 다시 빠져 나가고 있었다. 이미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라 ‘곧 불이 꺼지겠지’ 추측하며 불이 꺼질 때까지만 내다보기로 하고 창문 가까이 다가섰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자정이 되기 조금 전에 흰옷을 입은 꽤 많은 직원들이 도착하였고 자정이 조금 지나자 많은 직원들이 나오더니 각자 자기 차를 세워 놓은 주차장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그때서야 직원들의 근무교대가 이루어졌음을 알았다. 자동차, 앰뷸런스, 택시, 경찰차 등이 계속해서 오고 갔다. 여러 번 자다 깨다 하면서 밖을 내다보았지만 바뀌는 것은 전혀 없었다. 새벽 4시가 되어서야 병원은 밤새도록 불이 켜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병원에는 항상 위기에 처해 있거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나도 그곳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차츰 실감하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랍비로 계시던 회당에는 늘 등불이 하나 켜져 있었다. 모든 회당에는 늘 등불을 하나씩 켜 둔다. 그 등불은 하느님이 항상 그곳에 계시다는 상징이다. 첫날 나는 그렇게 밖을 내다보았지만, 그 후 4년 동안 내가 다시 창 밖을 내다본 기억이 없다. 그럴 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전혀 없는 생활이었다.

의과대학 과정은 마치 치열한 전쟁터와 같았다. 일주일 내내 쉬는 날이 따로 없었다. 대부분의 일과가 36시간을 계속 일하고 12시간을 쉬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쉴 때는 물론 잠자는 것 이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충분히 잠자고 편안한 여유를 갖는 시간은 고사하고 식사를 제대로 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스케쥴이 꽉 짜여 있었다. 그래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의 생활 방식이었다. 우리가 일하거나 연구를 하는 대부분의 방들은 창문이 없었다. 무슨 요일인지, 시간이 몇 시인지를 모를 때가 많았다. 날마다 간호사들의 교대를 바라보며 아침 근무 간호사인 해리슨이 출근을 하면 다시 아침이 되었음을 알았다. 인턴 시절에 어머니가 찾아오셨다가 내 방 옷장에 겨울 코트가 없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셨다. “네 코트는 어디 있냐?” 고 물으셨을 때 나는 그때가 겨울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나는 병원 밖을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코트가 필요하지 않았다.

아주 드문 일이었지만 어느 여름날 오후에 부모님을 뵈러 집에 가는 지하철을 탔던 일을 기억한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옆에 앉은 사람의 반소매 아래에 드러난 팔의 정맥을 바라보며 과연 내가 이 사람에게서 제대로 피를 뽑을 수 있을지를 가늠하고 있었다. 의과대학에서 수련을 받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사물을 보는 시선이나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이전에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던 일들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이 분야에 관한 일만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면서 인정받기 위해 그것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정말 중요한 많은 일들을 잊었다.

 

지금부터 35년 전만 해도 나는 의과 대학에서 몇 안 되는 여성 중의 하나였다. 남성 동료들은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환자들을 정서적으로 대해야 할 때 더 편안하게 대하고 또 그 방면에서는 기술적으로도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사실이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여러 면에서 매일 함께 일하는 동료 남성보다도 정서적으로 더 어려움을 겪었다. 의과대학 4년 과정에서 나는 다른 남학생들과의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의과대학의 문화에서 가장 인정받는 결단력과 객관성, 판단 능력, 분석력 등에서 결코 뒤지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당시 이런 능력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뒤떨어질 것이라는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이었다.

다른 때에는 자기들과 똑같이 대하는 동료 남성들이 곤란한 상황에선 나를 부르곤 했다. 각자의 진찰실이나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을 때, 가끔 누군가가 노크를 해서 문을 열면, 동료 의사가 안절부절 못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내 환자가 울고 있는데 좀 와 줄 수 있겠어?”

나도 사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니지만 내가 여의사라는 이유로 으레 내 몫이려니 하고 가서 환자를 달래 주곤 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걱정과 근심에 관심을 기울여 주었다.

처음에는 같은 병을 지닌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서로 다른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지 적잖이 놀랐지만 나중에는 점점 사람들 저마다의 이야기에 진한 감동을 받게 되었다. 병이라는 걸림돌에서 발견한 의미와, 강한 투병 의지를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 병을 계기로 사랑의 깊이를 이해하게 되고 삶에 더 투신하게 되었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들은 내가 공부하고 매일 다루고 있는 병리학에서 시작하여 다양하고 풍부한 인간의 이야기로 찌인 커다란 자수 그림이었다.

점점 이 이야기들이 병의 경과보다도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실제로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올바르게 병을 진단하는 것 못지 않게 그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면서 인간성이 풍부해짐을 느끼고 내가 인간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이 이야기들은 내 안에 감추어진 것을 바라보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나는 15세 때부터 크론병이라는 만성위장병을 앓았다. 환자들의 이야기는 내가 지닌 외로움을 달래 주었다. 이것은 다른 동료 의사들과 즐기는 가벼운 농담이나 허물없이 나누는 우정과는 다른 것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포탄을 피하는 대피소에 있거나, 서서히 다가오는 적의 포위망 아래에 있거나, 어디에나 공통으로 보게 되는 위기의 상황에서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나는 고통을 겪고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지문만큼이나 다른 그들의 고유한 상황에 맞추어서 답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영감을 주기도 하고 감동을 주기도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이야기 속에 담긴 진리가 오히려 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다. 이제는 거의 그렇게 하지 않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사람들이 부엌의 식탁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닌 서로의 지혜를 나누는 길이었다. 그 안에 살아가면서 얻은 많은 지혜들이 담겨 있었다. 오늘날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의 시대를 살면서도 여전히 인간으로서 제대로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옛날처럼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리라.

오늘날 우리가 듣는 많은 이야기들은 작가나 방송작가들의 글을 배우나 탤런트들이 연기한 시작과 끝이 있는 허구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서로에게 나누는 이야기들은 시작과 끝이 없다. 그 이야기들은 실제 체험에서 일어나는 삶의 터에서 길어 올린 생수다. 비록 삶의 체험이 다르고 시간과 장소가 다른 곳의 이야기일지라도 그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깊은 공감을 느끼게 된다. 어떤 면에서는 그 이야기들이 다시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살아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진실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이야기에 잠시 머물거나, 반추해 보거나, 음미하거나, 놀라움에 넋을 잃기도 한다. 인생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길을 가라고 재촉하지만, 우리에게는 멈추어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평소에 멈추어 서서 삶을 되돌아볼 만큼 여유를 지닌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예를 들어 갑자기 병이 찾아왔거나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인생이라는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갖게 된다.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도 된다. 그리고 진짜 세상은 그런 이야기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던 일들이 일어나서 우리가 가던 길을 멈추어 서기 전까지는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뒤에다 버려두고 못 본 척하며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데 몰두한다. 멈추어 선 후에야 비로소 그런 삶의 문제는 살아있는 한 계속 남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삶의 과정에서 계속 많은 문제와 사건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얻게 되며 그때마다 인생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었음을 아는 지혜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서 듣지 않을 때, 우리는 전문가에게 의지하려 한다. 식탁에 앉아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점점 책이나 텔레비전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러나 그것은 서로 마주하면서 듣게 되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를 잊어버린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 속에 담긴 삶의 사건에 대한 의미를 발견하고 음미하는 법을 잊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점점 외톨이가 되어 함께 마음을 나누기보다는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이라는 바보상자 앞에 멍하니 앉아 있게 되었다.

 

식탁은 마치 공정한 경기를 치르는 운동장과 같다.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다. 가장 좋은 교육을 받고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의 이야기에 담긴 지혜가 반드시 어린아이의 이야기에 담긴 지혜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어린아이의 삶이 성자의 삶보다도 우리에게 더 많은 가르침을 줄 수 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들려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가 누구이며, 누구에게 속한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 많은 부모들이 경험을 통해 그것을 알고 있다. 식탁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바로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

대개의 이야기 안에는 감추어진 비밀이 들어 있어 깊이 귀를 기울이면 그 비밀의 문이 살며시 열린다. 이 이야기 안에는 진정 우리가 누구인지, 왜 우리가 여기에 살고 있는지, 삶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아는 비밀이 담겨 있다. 식탁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어느 식탁이거나 거의 비슷한 삶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가진 것과 얻은 것과 잃은 것, 사랑과 힘과 고통, 어떻게 상처받았고, 어떨 때 용기를 얻게 되었는지, 어떤 희망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치유의 과정을 겪었는지를 나누는 이야기들이다. 거기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가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청하면, 살아오면서 어떻게 성공을 했고, 어떤 일을 이루었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의 진짜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무엇을 했고, 어떤 것을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중요하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겪으면서 어떻게 느꼈고,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두려움을 지녔는지, 그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사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진짜 이야기고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다.

 

우리의 이야기는 모두 진실하다. 가끔 어떤 환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그것을 함께 듣고 있던 가족 중의 한 사람이 항의를 한다. “그게 아니잖아. 그 일은 사실 이런 거야.”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경험이 쌓여 가면서 서로 다르게 이야기하는 두 이야기가 모두 진실이고 순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비디오 카메라가 어떤 사건을 정확히 기록하듯이 우리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기계적으로 묘사할 수는 없다. 이야기는 그들이 체험한 삶의 사건에 대한 나름의 이해이지 그것이 사건 자체는 아니다. 우리는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하기에 같은 사건도 다르게 체험한다.

우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우리가 체험한 사건보다도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 사건에 우리가 그 나름의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며 그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삶을 새로운 눈으로 다시 바라보게 되며 그 순간에 누군가의 삶에 초대되어 인생의 스승과 함께 나란히 식탁에 앉게 된다.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의미는 그 사람이 지닌 의미와 다를 수도 있지만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실’은 우리에게 지식을 전달하지만 이야기는 우리를 지혜로 이끈다.

 

나는 한때 소아과 의사였지만,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을 돌보는 의사가 아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상담가로서 암 환자나 다른 치명적인 병을 지닌 환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들로부터 나는 일상의 삶 안에서 일어나는 아주 사소한 일을 즐기는 법을 배웠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의 감미로움, 곁에 있는 친구의 의미, 고통 없이 보낼 수 있는 단 한 시간이 주는 축복에 관한 일이다. 그런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의 경험이 바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드는 소재들이다. 우리가 만약 자신의 삶은 너무나 평범해서 이야기 거리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기의 삶에 대해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심오한 의미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저마다 언젠가 들었거나 자기가 직접 체험한 이야기를 기억의 창고 안에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 이야기의 대부분을 꺼내지 않은 채,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어느 정도 그것을 나눌 준비가 되었거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을 때, 그것을 나누고는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야기의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되고 경이로움에 놀라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혜의 조각들이 하나 둘씩 기억의 창고에 쌓인 것이다.

 

어머니는 많은 이야기 창고를 가진 분이셨다. 가정의학 간호사였던 어머니는 많은 가정을 방문하여 그들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는 여든다섯 살이나 되는 나이였지만 생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기꺼이 심장 수술을 받기로 하셨다. 수술이 성공하여 다시 살아나실 수 있는 확률은 60%밖에 되지 않았지만 모험을 받아들이기로 하셨다. 어머니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위험을 감수하시면서 평생을 그렇게 사셨기에 60%의 확률은 어머니에게는 위험을 감수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수술을 받는 날 아침에 나는 예정된 수술 시간보다 두 시간 전에 병원으로 갔다. 그런데 갑자기 수술이 앞당겨졌다. 그래도 다행히 수술실로 옮겨지기 전에 겨우 입맞춤을 해 드릴 수 있었다. 수술을 받으러 가시는 어머니의 얼굴은 평화로웠고 빛이 느껴졌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래! 네가 왔구나!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네가 이것을 분명히 알기를 바란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나는 만족하고 있단다. 너도 네가 만족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기를 바란다.”

어머니는 내게 아주 밝고 고운 미소를 보이며 수술실로 들어가셨다. 그것이 내게 하신 마지막 말씀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려고 노력했다. 어머니는 생전에 많은 일을 이루어 놓으셨지만 죽을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편안하게 만족한다고 하신 것은 당신이 이루어 놓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점차 이런 만족감에 도달하는 열쇠는 많은 이야기와 기억들로 가득 차 있는 내면의 세계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만족감과 평화는 외적인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삶을 체험하고 그 내면의 체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풍요로움에서 오는 것이다.

나는 생명을 위협하는 지병을 앓은 지 40년이 되었고, 의사로서 살아 온지도 35년이 되었다. 이제 나도 어머니처럼 많은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내가 체험한 이야기와 들은 이야기가 많다. 부모님의 딸로, 할아버지의 손녀로, 많은 지인들의 친구로서의 이야기도 있고, 병을 앓은 환자로서의 이야기와 환자들을 돌본 의사로서의 이야기가 있고 다른 의사들과 환자들이 들려 준 이야기도 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있다. 만약에 다른 가정의들이 그렇게 하듯이, 당신의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다. 여기 있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이야기 하나 하나는 내가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었다.

 

 

I 겨울매화…

 

겨울 매화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동양의 운치가 있는 가구를 구입하려는 친구와 함께 일본 가구점엘 갔었다. 가구점에는 기모노를 단정히 입은 일본 여인이 혼자 있었고, 그녀와 친구가 가구와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다른 쪽을 둘러보며 친구를 기다렸다. 어느새 이야기를 마친 일본 여인이 다가와서는 나의 팔을 붙들고 “이쪽으로 오셔요. 보여드릴 게 있답니다.”라고 다정히 말하며 가게 뒤편의 방으로 이끌었다. 얼떨결에 그녀를 따라가며 친구에게도 어서 오라는 눈짓을 보냈고, 친구는 예기치 못한 그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눈웃음으로 대꾸했다.

그녀가 우리를 데리고 간 방에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박물관에 전시되어도 손색없을 만큼의 아주 훌륭한 그림이 그려진 병풍이 놓여 있었다. 병풍에는 사계절을 나타내는 네 개의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들이 쭉 이어져 있었다.

“이것 좀 보세요. 2월인데도 꽃이 피었지요, 아름답지요?”

그녀가 말한 병풍의 그림에는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는 오래 된 매화나무 가지에 작은 분홍빛 매화가 피어 있었다.

“매화는 고통을 겪고 난 후에야 피는 꽃이랍니다. 겨울 추위가 한창인 2월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우지요.”

뜨거운 열정 가득한 목소리의 그녀는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림 속의 매화 가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눈빛을 빛냈다.

“매화는 생명의 시작을 나타내지요. 마치 우리 일본 여인들처럼 부드럽고 다정하고 매혹적입니다. 그리고 매화는 오래 살아 남는답니다. 생명은 참으로 신비로워요.”

그 일이 있은 후, ‘오래 살아 남는다’는 말의 의미를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나는 살아남는 문제, 즉 생명에 관한 일에 종사하고 있으므로 오래 살아남는다는 의미를 나름대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는 살아남는다는 것은 ‘신비’의 문제가 아니라 의학적 전문성과 기술, 능력과 지식의 문제였다. 이런 나에게 그녀의 이야기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무엇이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계속 머리에서 맴돌았고 결국은 잊었던 기억 한 부분을 들추어내었다. 매화처럼 나도 너무 일찍 세상에 나왔다. 어머닌 나를 출산할 무렵에 병을 앓고 있어서 정상적인 분만이 어려웠다. 응급으로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고, 나는 정상적인 아기보다 아주 작은 미숙아로 태어났다. 1938년 2월의 일이었다. 그 누구도 내가 살아남아서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인큐베이터가 발명된 덕분에 살아 남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는 자연스럽게 생명을 유지시켜준 의학기술에 감사하게 되었고, 의사가 되었으며 더 발전된 의학기술을 익히고 사용하면서 미숙아들을 위한 특별한 치료와 연구에 힘썼다.

그 일본 여인의 말은 생각하면 할수록 경이로웠고 내게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였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단순한 첨단 의료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타고난 어떤 것, 작은 분홍 매화가 지닌 생명력과 미숙아였던 내가 지닌 천성적인 생명의 힘이라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여태껏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매화 그림을 보다가 열네 살이었던 어느 봄날이 떠올랐다. 그 당시의 난 뉴욕의 5번가를 걷고 있었는데 연한 초록빛의 가냘픈 두 개의 풀잎이 두꺼운 보도블록 사이를 뚫고 삐죽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무척 놀랐었다.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과 부딪쳤지만 가던 길을 멈추고 앉아서 그 작은 생명을 한참 동안 경이롭게 쳐다보았다. 그때의 그 풀잎은 어린 나에게는 하나의 기적 같았고 오랫동안 기억되었다. 그 당시 나는 지식, 부유함, 권력과 법의 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것들과는 다른 그 무엇의 힘 – 두꺼운 보도블록 사이를 뚫고 자라는 여린 풀잎의 생명력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사고나 자연재해로 불행을 겪은 사람들은 인생의 무상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경험상 인생은 갑자기 변할 수도 있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끝을 맺게 될 수도 있지만 결코 무상한 것은 아니다. 영원하지 않다는 것과 무상하다는 것은 분명 다른 의미다. 집요한 병마로 엄청난 고통과 몇 번에 걸친 대수술을 받으면서도 끝내 회복한 사람들은 살아남고자 하는 육체의 힘에 대해 깊은 경외심을 지니게 된다. 생명은 참으로 신비롭다.

살아남고자 하는 놀라운 힘은 때로는 의학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생명의 신비다. 생에 대한 강한 의욕은 아기에게서도 발견된다. 인턴시절 함께 회진을 하던 교수님 한 분이 아기의 볼을 어루만지다가 아기에게 손가락이 물렸는데 아기의 빠는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아기침대 한쪽이 그대로 들려 올려지는 것을 목격했다.

생에 대한 의지는 죽는 순간까지 줄어듦 없이 지속적으로 신비롭게 작용한다. 살아남는다는 것, 즉 생명에 대한 문제는 단순한 의학기술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우리 안에 내재한 놀라운 힘에 달려있다.

 

깨어진 꽃병, 그 틈새의 빛

 화는 삶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게 하려는 마음이 보내는 어떤 신호다. 화가 난다는 것은 삶의 갖가지 일들에 대한 반응이며 강한 느낌의 표출이다. 사람이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 중의 하나인 화는 분명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환자들을 상담하는 경험을 통해 화에도 건강한 측면, 긍정적인 힘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많은 환자들은 자신의 병에 대해 화를 낸다. 아마도 화는 자신의 몸과 삶을 바꾸어 놓은 병에 대한 나름대로의 거부의사이며, 그것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화는 변화하고자 하는 삶의 욕구이며 어떤 일이 다르게 바뀌기를 원하는 열망이기도 하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였지만 화는 삶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는 첫 번째 표현일 수 있다. 화가 단지 분노의 표출 그 단계에서 머물고 만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건강을 위한 좋은 신호가 될 수도 있다.

 

상담환자 중에 오른쪽 다리에 골육종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고 화가 많이 난 청년이 있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뛰어난 운동선수였던 그는 돈과 명예와 미인들이 보내는 미혹적인 미소에 흡족한 삶을 만끽하던 능력 있는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오른쪽 다리를 무릎까지 절단하는 수술을 받게 된 것이었다. 이 수술로 생명은 구했지만 운동선수로서의 삶은 끝이 났다. 그에게 돈과 명예와 쾌락을 안겨준 – 인생의 전부라고 여겼던 운동선수로서의 삶은, 더 이상 불가능했다.

화를 가슴에 품은 그 젊은 친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을까?

그는 학교를 그만두었고 폭음을 하고 마약도 했으며 자동차 사고를 내기도 하는 등의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였다. 그런 그를 안타까워한 그의 운동선수 시절의 코치가 전화를 걸어 그 청년과의 면담을 요청해왔다.

그는 건장한 미남이었지만 자기중심적이고 사고가 아주 고립되어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폭발할 것 같은 분노,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과 자기연민과 건강한 이들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그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기를 바라면서 그에게 자신의 몸을 그림으로 그려보라며 스케치북을 건넸다. 아주 굵은 선으로 외형이 거친 꽃병을 그리더니 갑자기 꽃병 가운데에 검정색으로 굵은 금을 그리기 시작했다. 깨어진 꽃병이었다. 그는 어금니를 악물더니 그 그림을 스케치북에서 찢어냈다. 눈에는 눈물이 – 분노로 가득 찬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 그림은 그가 지닌 고통과 다리의 절단으로 잃게 된 그의 삶에 대한 강력한 감정을 보여주었다. 깨어진 꽃병은 꽃병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다.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무척 아팠다. 그가 방을 나간 후 나는 그 그림을 접어서 보관했다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고 왠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화는 조금씩 미묘한 변화를 보였다. 그는 한 젊은이가 오토바이 사고로 두 다리를 잃게 되었다는 지방신문의 기사를 오려 와서는 그 젊은이를 치료하는 의사들의 의견을 읽어주며 말했다.

“그 멍청이들은 그것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몰라요.”

계속해서 만날 때마다 이런 내용의 기사를 가지고 왔다. 화재로 화상을 심하게 입은 소녀, 화학 실험 중에 일어난 폭발사고로 손을 심하게 다친 소년의 기사도 있었다. 그런 신문기사에 대한 그의 반응은 언제나 그들 부모나 담당 의사들에 대한 호된 비판이었다. 그는 점점 다른 청소년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화를 토로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누구도 그들을 이해하지도 도와주지도 못하고 있으며 도와주고 싶어도 어떻게 도와야 할지를 모른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분노하고 있었지만 그가 지닌 화의 밑바닥에는 그들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이 커가고 있었다. 그들을 도와주고 싶은 것인지를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는 펄쩍 뛰며 아니라고 말했지만, 방을 나가기 전에 자기처럼 고통 중에 있는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는지를 슬며시 물었다. 분명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면서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병원에는 각지에서 수많은 환자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그가 원하는 젊은 환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서 그 일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고, 그는 그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청소년 환자들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들을 방문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을 만난 것을 매우 기뻐하였다. 실제로 그만의 특별한 재능으로 그 청소년들을 도와주었으며 그들의 부모나 가족들에게 그 청소년들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해 주었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많은 의사들이 그가 이룬 결과에 기쁨과 놀라움을 나타내며 더 많은 환자들을 만날 수 있게 주선했다.

어떤 의사들은 그와 가벼운 공놀이를 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그도 조금씩 의사들을 이해하면서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에게서 화가 조금씩 사라지면서 남을 돕는 기쁨은 점점 커 가고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는 아주 더운 여름날, 유방암으로 가슴 절제 수술을 받은 21세의 미혼여성을 방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짧은 셔츠에 의족이 다 드러난 차림으로 그녀를 방문했는데 깊은 절망에 빠진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려고 농담을 하기도 달래 보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를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때 마침 라디오에서 록 음악이 흘렀고 그는 의족을 풀어서 바닥에 큰 소리가 나도록 일부러 떨어뜨렸다. 그제야 그녀는 놀라서 눈을 뜨고 처음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용기를 얻은 그는 음악에 맞추어 손가락을 튕기면서 춤을 추었다. 크게 웃으며 의족 없이 한쪽 발로 춤을 추며 방을 뛰어 다녔다. 잠시 후 그녀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춤을 출 수 있다면 나는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거예요.”

그와 마지막 면담에서 우리는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았다. 처음 마음을 열지 않았던 시기와 마음을 열기 시작한 동기를 살펴보았다. 나는 차트에서 2년 전 그가 그렸던 깨진 꽃병 그림을 찾아내어 그것을 보여 주면서 그 그림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그 그림을 들고 한참을 쳐다보던 그가 “선생님, 이 그림은 아직 미완성이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놀라며 얼른 크레파스를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노란색 크레파스를 잡은 그는 꽃병의 깨어진 선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모습의 굵은 노란 선을 도화지가 가득 차도록 채워 넣었다. 내가 의아하게 그림을 바라보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깨어진 선에 손가락을 짚으며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이곳이 바로 빛이 나오는 곳이지요.”

 

고통을 승화시켜 선 善으로 이끄는 힘은 그리스도교분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서 발견된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과 상실감을 겪는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20년을 일한 경험을 통해 그 힘은 단순히 종교적인 신념의 문제만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 즉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느님이 만드신 자연의 질서를 조심스럽게 관찰하다 보면 자연스레 터득하게 되는 것이리라.

고통은 때로는 화로, 때로는 비난이나 자기 연민으로 나타나지만 어느 순간 불쑥 찾아온 은총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타인을 사랑하고 섬기며 사는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과정이 되리라.

 

흐르는 강물과 댐

나는 고통과 한계에 대해 상당히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했다. 나는 열다섯 살에 심한 병을 앓았고 그 이후에는 아주 사소한 일들도 병과 관련하여 어떤 일을 결정해야 했다. 예를 들면 좋아하는 치즈를 먹어도 괜찮은지, 계단은 어느 정도까지 걸어 올라갈 수 있는지, 영화를 보다가 복통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일일이 의사에게 물어보고 조언을 구해야 했다. 아직도 일상의 선택에 있어 제한된 삶을 살고 있지만 어느 정도는 이제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

그 당신의 나는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소녀였으니 갑자기 찾아온 병에 대한 분노는 당연했다. 건강한 사람들이 괜히 미웠고 병의 유전자를 물려준 가계의 혈통이 저주스러웠다. 병을 지닌 내 몸을 혐오하며 거의 십여 년 동안 분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지냈다.

그러던 중 삶의 극적인 전환을 맞게 되었다. 최고 시설을 갖춘 아주 좋은 병원에서 수련의로서 마지막인 4년 차 레지던트로 일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그 제의를 수락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만큼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것은 내 오랜 꿈이었지만 막상 그 꿈이 실현되려고 할 때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그날 오후 내가 일하는 병원 별장으로 차를 몰았다. 병원 직원들을 위한 별장이 바닷가에 있었다. 분노와 격정으로 끓어오르는 마음을 지닌 채 바닷가를 따라 걸었다. 거벼운 파도가 발목을 적시고 있었지만 옷이 젖는 것에는 개의치 않고 계속 걸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였다. 내 또래의 젊은이들과 나를 비교해 보았다.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약한 내 모습이 고통스러웠다.

그때까지 병이 나에게서 젊음의 활력을 빼앗아갔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반대로 병이 나에게 가져다 준 것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고통스러운 상념에 잠기다 보니 갑자기 강한 분노가 다시 덮쳐왔다. 수없이 경험했던 분노였다. 그러나 그 분노의 파도에 휩싸이지 않고 오히려 그 분노의 파도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밀려왔던 파도가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내 안의 어떤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정말 네게 생명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니?” 넌 병에 걸려 있어 몸이 약할 뿐이지 생명력이 없는 것은 아니야.”

놀라운 일이었다. 그 목소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분명 그 속삭임을 들었다.

나는 그 속삭임에서 분노가 삶에 대한 욕구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았다. 분노와 삶의 의지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 같은 것이어서 생명에 대한 갈망은 분노만큼이나 강렬했음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내 안에 강한 생명력이 꿈틀대는 것은 분명히 느꼈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대해 어렴풋이 답을 얻은 것 같았다. 내면의 깊은 곳에는 삶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열망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수 있게 도우면서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의 욕구가 있었다.

내 안의 열망이 커질 수 있었던 것은 병으로 인한 한계 때문이었다. 댐이 흐르는 강물을 막아 엄청난 양의 물을 모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 물을 흘려 보내는 것처럼 나에게는 병으로 인한 한계가 바로 삶의 열망과 에너지를 담고 있는 댐이었다. 이 놀라운 힘이 분노의 모습으로 내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분노는 내가 살아남을 수 있게 도와 주웠고 병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 동안 나는 분노에 갇혀서 내가 가진 힘을 충만한 삶을 사는 데 쏟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분노에 머물 필요가 없었다. 내가 아픈 것은 그 누구의 탓도 세상의 탓도 아니라는 마음의 자유를 체험하였다.

꿈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최고 시설을 갖춘 병원에서 레지던트 일을 하기로 하였다. 일이 힘들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예전에는 도움을 청하는 일이 너무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해는 내 생에 잊지 못할 중요한 해였다.

 

아직도 가끔 화를 내지만 그것은 일상의 일에 대한 가벼운 반응일 뿐, 젊은 날의 그 분노는 아니다. 젊은 날의 분노는 내 병의 한계에 대해 ‘아니야’ 라고 거부하도록 도와 주었다. 그러나 삶에 대해 ‘그래, 바로 그거야’ 라고 말해 줄 다른 무엇인가가 내게 필요했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강한 욕구였다. 댐이 흐르고 강물을 담고 있듯이 병으로 인한 나의 한계 안에는 무한한 생명력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바로 병이라는 그 한계가 충만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준 은총이었다.

 

 외로움에 입맞춤을!

 우리는 어릴 때부터 고통은 가능한 한 피하고 어쩔 수 없이 겪게 될지라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고 배웠다. 고통을 드러내는 것은 약한 모습이라고 여겼기에 고통이 와도 고통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고통이나 힘든 상황은 되도록 남들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어떤 문화권에서는 고통이나 어려움은 가까운 이들과 함께 나누면서 혼자 외로워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바른 예의이기도 하다. 고통이나 어려움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를 더 상처받게 만들며 도움을 청했다면 겪지 않아도 될 다른 고통까지도 동반한다.

 

새로운 상담 환자가 예약 시간에는 오지 않고 며칠 후에 찾아와서는 예약 시간을 지키지 못했음을 사과했다. 응급실에 있었기 때문에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고 했다. 무슨 일로 응급실에 갔었는지 묻자 그녀는 장폐쇄증 때문이라며, 몇 년 전에 암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았는데 그 후유증으로 생긴 일시적인 장폐쇄로 통증이 너무 심해서 응급실에 갔었다고 하면서 그날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복통이 시작되자 직감적으로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입원에 필요한 가방을 꾸려서 40km를 직접 운전해서 병원 응급실로 갔다.

나도 여러 번 장폐쇄증으로 고통을 겪어 보았기 때문에 통증이 얼마나 심한지를 알고 있었다. 놀라면서 그런 상태로 어떻게 운전을 할 수 있었는지 물었다. 그녀는 통증이 너무 심하면 도로 한쪽 옆에 잠시 차를 세우고 통증이 완화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운전을 했기 때문에 응급실에 도착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녀는 이전 경험의 덕분으로 토할 그릇과 수건을 준비했고 실제로 차 안에서 여러 번 토했다고 했다. 나는 연민의 마음이 들어서, 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혼자 직접 운전을 해서 병원에 갔었냐고 물었다.

그녀는 말했다.

“왜 도움을 청해야 하지요?” 제가 아는 사람들은 장폐쇄증 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들이 제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겠어요?”

“그럼 저에게라도 전화를 하지 그랬어요?” 안타까운 마음에 말했다.

“선생님의 전문 분야가 아니어서요.” 그녀의 대답이었다.

“제시, 어린 아이도 넘어지면 울면서 다른 사람에게 달려가지 않나요?”라고 다정히 말하자 그녀는 짜증이 묻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무슨 소용이지요? 상처에 입맞춤을 한다고 아픈 것이 줄어들기라도 하는 건가요?”

그녀의 대꾸에 내심 놀랐지만 진심으로 위로하면서 말했다.

“맞아요. 상처에 입맞춤한다고 통증을 없애주지는 못해요. 하지만 외로움은 덜어주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통을 겪을 때 제시처럼 행동한다. 제시는 자신의 고통은 전문가만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시의 어머니가 제시를 낳다가 죽었고 외로움 속에서 자란 그녀는 고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때 외로움이라는 병도 어느 정도 치유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고통이나 슬픔, 병이나 약함 등은 절대로 혼자만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짐이 아니다. 고통이나 약함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배우게 된다. 우리는 고통과 슬픔을 나누면서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려고 할 때 외로움은 더 깊어진다. 고통을 겪거나 아프거나 힘들 때 도움을 청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용기 있는 행동이다.

 

 

침묵 속의 만남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동안 한 양로원에서 노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노인들을 위한 간호시설이 잘 갖추어진 양로원으로, 일을 시작하기 2주 전 노인들과 대화하는 방법에 대해 집중적인 교육을 받았다. 여름 방학을 보람되게 보내고 싶어 선택한 일이었지만 연수는 예상보다 많이 힘들었다. 각종 암기 사항들과 습득해야 할 대화 기술과 방법이 상당히 많았으며 그 각각의 교육에 대해 담당 간호부에서 평가를 받아야 했다. 그렇게 2주 동안 강도 높은 연수를 받았지만 막상 노인들과의 첫 만남에서는 너무 긴장이 되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처음 만난 노인은 1년여 침묵 속에서 지내고 계신 95세의 할머니였다. ‘노인성 치매’ 라는 진단을 받은 이 할머니는 약물처치 등의 치료에도 전혀 반응이 없는 분으로 담당 간호사들은 내가 그 할머니와 대화를 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고 단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도움 되는 어떤 놀이를 해 주기를 원했다. 다양한 크기와 색깔의 유리 구슬이 가득 담긴 큰 바구니를 하나 주면서 할머니와 구슬을 꿰어서 목걸이를 만들어 보라고 했다. 한 시간 동안 할머니와 함께 하고 나서 그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솔직히 나는 이 할머니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95세라는 엄청난 나이와 ‘노인성 치매’ 라는 병명이 주는 선입견에 겁이 났다. 두려운 마음으로 할머니 방을 노크했다. 아무런 기척이 없어 가만히 방문을 열어 보니 작은 방의 창문 앞에는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고 햇빛이 쏟아지는 창문 앞의 의자에 앉은 할머니는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내가 방에 들어온 것을 할머니가 알아보기만을 기다렸지만, 할머니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빈 의자에 앉았고 유리구슬이 든 바구니를 무릎에 올려놓은 채 나도 가만히 침묵 속에 있었다.

그 당시의 나는 수줍음이 많은 소녀였다. 부모님은 이런 나의 수줍음을 극복해 주기 위해 그 일을 권해 주셨다. 말을 건넨다는 것이 무례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적만이 가득했지만, 나는 어떻게든 첫 번째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싶었다. 어떤 방법도 지금 이 할머니에겐 소용이 없을 것 같아 잠시 고민하다가 연수 때 배운 대화 방법들을 모두 무시하기로 했다. 할머니는 계속 창 밖을 내다보고 있어서 겨우 옆모습만 볼 수 있었다. 할머니와의 대화를 완전히 포기하고 유리 구슬 바구니를 내려 놓고는 나도 그 옆에 가만히 앉아서 한 시간을 보냈다.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오전 면담이 끝났음을 알리는 작은 종소리가 정적을 깨고 나는 바구니를 챙겨서 떠날 준비를 했다. 그때 나는 호기심이 많은 열다섯 살이었다.

“할머니 무엇을 그렇게 바라보세요?”

할머니에게 질문하다가 그것이 실수임을 깨닫고는 얼굴이 붉어졌다. 환자의 개인 생활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은 엄격한 금지사항이었던 것이다. 나는 할머니가 못 알아들었기를 바랐다. 그러나 할머니는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기쁨에 넘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애야, 나는 지금 빛을 바라보고 있단다.”

할머니의 그 얼굴은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 듯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나 소아과 의사가 된 나는 그 할머니와 같이 넋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빛을 바라보는 모습을 가끔 신생아들에게서 보았다. 그때의 아기들은 마치 신비로운 어떤 소리를 듣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95세였던 할머니는 어쩌면 뇌가 손상되어 말을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신이상으로 말을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할머니는 이미 삶과 죽음의 공간을 물러나서 다가올 어떤 세계에 대한 관상을 하면서 그곳으로 향하는 빛을 따라가기 위한 여정을 인내로 이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할머니와의 만남은 우연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큰 은총으로 여겨진다. 만약 내가 나중에 훌륭한 의사가 되어서 그 할머니를 만났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지를 자주 생각했다. 아마도 그때와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할머니와 침묵 안에서 처음으로 침묵의 소중함과 삶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어렴풋이 배웠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계속해서 그것에 대해 배워가며 살고 있다.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

 벌써 10년이 지난 일이다. 오래 전에 할머니와 사별을 한 85세의 할아버지가 폐암을 선고 받고는 수술을 받아야 할 것인지를 의논하기 위해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가 워낙 고령이어서 수술에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솔직히 말씀 드렸고 수술 후 치유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자세히 이야기해 주면서 본인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씀 드렸다. 그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다가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수술을 받기로 결정을 내렸다. 결정을 내린 그의 모습은 아주 평온해 보였다. 그는 수술 후에 좀더 회복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고 나는 그에게 운동과 식이요법과 한약과 침술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 주면서 궁금했던 것을 가만히 여쭈었다.

“할아버지, 어떻게 이런 어려운 결정을 하셨어요?”

그는 수술을 받기로 결정하기 전날 당신이 꾸었던 꿈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할아버지는 저녁에 안락의자에 앉아서 신문을 읽다가 꾸벅 꾸벅 졸았는데 꿈결에 언뜻 죽은 아내가 자신 곁에 와서 앉는 것을 보았다. 아내는 마치 생전에 그렇게 했던 것처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았고, 사랑 가득한 눈빛의 아내를 보니 함께 사랑하면서 살아왔던 오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깊은 감정이 일었다. 아내와 함께 나란히 소파에 앉아 있으니 수술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씩 사라졌다. 조금 후에는 가장 친했던 친구가 방으로 들어와서 맞은 편 소파에 앉아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친구의 얼굴도 오랜 친구로서의 진한 우정이 담겨있는 사랑으로 빛나는 얼굴이었다. 그 친구에게 미소를 보낼 때, 자신의 형도 그 친구 곁에 서서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씩 살아오는 동안 서로 친분을 지니고 사랑하면서 살았던 사람들 –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과 다른 가족들, 친구와 스승과 제자들 – 이 방으로 들어와서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과 사랑의 만남을 가졌다. 줄잡아 50~60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그 사람들은 방을 가득 채우고도 넘쳐서 거실과 현관까지 채우고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그는 문득 자기의 삶이 이 사람들에게 의미 있었다는 것과 아직도 여전히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그는 혼자가 아니었고 그 순간 두려움이 사라졌다. 수술을 받은 것이 옳은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을 받다가 설령 잘못된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며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눈물이 흘렀다. 사랑 가득한 노인을 바라보면서 그이 삶이 그와 함께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정말 잘 결정하셨어요. 참 아름다운 삶을 살고 계시네요.”

“그런가요? 그런데,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지요.” 놀라는 나에게 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한 번 받은 것은 무엇이든 영원히 남는다고 생각해요. 더구나 사랑은 영원히 남는 것이지요.” 그는 마치 자신에게 말하듯이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많은 사람들과 어떤 사람은 비교적 적은 사람들과 사랑하면서 살아가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고 적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살아가는 데 사랑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단 한 사람일지라도 진정으로 사랑을 주고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이 세상을 살아 갈 것인가? 나는 상담을 하러 오는 환자들에게 자주 이런 질문을 한다.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사랑의 힘을 누구에게서 받고 있습니까?”

 

황혼의 아름다움

사람들은 나이가 든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성형수술로 주름살을 제거하고 얼굴을 고친다. 나이라는 적과 힘겨운 투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눈물겹다.

 

나의 상담 환자였던 조안을 처음 나와 만났을 때 그런 방식으로 나이와 투쟁을 하는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궁암에 걸려 자궁절제수술을 받았는데 이미 수술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35세 생일을 지낸 후부터 나이와의 전쟁을 시작하여 늘 성형외과 의사를 달고 살았다. 쌍꺼풀 수술은 물론이고 얼굴, 턱, 가슴과 엉덩이까지 조금이라도 젊게 보일 수 있는 부분은 전부 고쳐가면서 나이라는 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저지하고자 노력했다. 성형수술뿐만 아니라 피부관리나 비만관리와 지속적인 운동과 다이어트 등으로 젊은 몸맵시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여성이었다. 나와 동갑내기인데 나보다 15년은 더 젊어 보였다. 그녀는 말했다.

“누구도 늙어야 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늙도록 방치하거나 젊음의 유지를 위해 노력을 하거나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지요.”

그녀가 이제 나이와의 전쟁이 아니라 삶과의 투쟁을 시작한 것은 암이 재발하여 항암 치료를 받기 시작한 이후였다. 거의 일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병행했다. 항암치료를 받게 되었을 때 그녀는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사실에 심한 절망감을 가졌다. 그녀에게는 힘든 한 해였지만 치료를 잘 받았고 암을 극복할 수 있었다. 항암 치료가 다 끝난 후에도 우리는 6개월 동안 더 상담을 했다. 그때 그녀의 머리카락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여러 해가 지난 뒤였다. 대형마트에서 시장을 보고 있는데 어느 반백의 여인이 나를 보고 다가와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나는 낯선 사람이 아는 척하는 거이 이상하여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가 자기를 못 알아보자 박장대소를 하면서 말했다.

“저, 조안이에요, 선생님.”

정말 나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너무나 우아하고 멋진 여성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가 계속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말했다.

“저 많이 늙었지요. 이렇게 늙어 가고 주름살이 생기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제가 깨닫게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한 해가 봄과 여름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사계절 각기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이 하느님이 만드신 오묘한 자연의 순리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인간이 자연의 순리를 거를 수는 없다. 늙어 가는 것이 축복이라고 한 조안의 말이 잔잔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II 의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 …

 

의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

 몇 년 전, 미국 여성의사협회가 주최한 어느 지방의 여성의사들의 세미나에서 암 환자들과의 상담에 관한 강의를 했다. 강의가 끝난 후 토론으로 이어졌는데 한 내과 의사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자신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암 환자들 중 많은 환자들은 결국은 죽게 될 것이고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보는 것은 무척 화가 나기 때문에 자신은 암환자들을 피한다고 이야기했다.

“어떤 치료 방법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싫답니다. 더 이상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그 사실에 굉장히 화가 납니다.”

그녀의 고백은 솔직했고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던 다른 여러 의사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그들에게 맨 처음 그런 마음을 느낀 게 언제였는지 물어 보았고, 대다수가 의학을 공부하기 이전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말에 놀랐다. 점점 대화가 진지해질수록 환자에 대한 그런 불편한 마음은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의사로서 느끼는 감정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 인간으로서 우리는 비록 암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그 무엇을 해 줄 수는 없더라도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됨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의사가 되어 전문인으로서의 역할을 맡은 이후에는 자신들의 능력 밖에 있는 그 상황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졌던 것이다. 의사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여성은 그들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삶의 전환기에 늘 함께 있어 위로를 주기도 하고 때론 동반자가 되기도 했다.

 

어느 의사는 19세 때 임종을 앞두고 있는 어머니를 돌본 이야기를 했다. 자신도 그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놀랍다고 했다. 어머니가 아프시자 직접 운전을 하여 병원 치료를 다녔고 시장을 보고 밥을 하고 집안 청소를 하고 어머니가 식사를 마치면 곁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책을 읽어 드렸다. 어머니가 의식 불명 상태가 되었을 때는 침대 시트도 직접 갈았으며 목욕을 시켜드리고 등에 로션도 발라 드렸다. 항상 어머니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었고 그것은 본능적이었다.

“마지막에는 그냥 어머니를 안고서 노래를 불러 드렸어요.”

 

그녀의 이야기에 누구도 무슨 말을 할 수 없었다. 모두 깊이 생각에 잠겨 한참 동안이나 침묵이 이어졌다. 나이 지긋한 한 의사도 아무런 치료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런 상황을 피하려 했고 무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의학적으로는 더 이상 할 것이 없더라도 여전히 해야 할 중요한 그 무엇이 – 의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환자들을 도울 수 있는 –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의사로 살면서 잊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렸다. 나는 좀더 가까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지금까지 늘 자신만만함으로 굽힐 줄 몰랐던 62세 외과의사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얼마나 놀라운 은총인가.

 

 뽀뽀와 프로정신

 인턴 때는 주로 소아과의 어린이 병동에서 일했다. 다른 의사들 몰래 아이들에게 뽀뽀를 해 주곤 했는데, 환자에게 의사의 개인적인 감정 표현은 금기 사항이었기에 그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굉장히 조심했다. 늦은 밤 드레싱을 갈아 주거나 링거를 체크하는 등의 일을 하며 혼자 병동을 돌 때마다 아이들에게 잘 자라라고 뽀뽀해 주기를 좋아했다. 흩어진 장난감을 챙겨 놓고 담요를 덮어 주기도 하고 자지 않고 우는 아이가 있으면 자장가를 불러 주기도 했다. 내가 이런 방식으로 아이들을 돌본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대부분이 남자 의사였기에 그 사실을 알면 여자인 나를 프로 정신이 부족한 의사로 여길 것 같았다.

어느 날 저녁, 복도 한쪽 구석에서 보호자 한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그 보호자 어깨 너머로 선배 레지던트인 스턴이 허리를 굽혀 백혈병을 앓고 있는 여자 아이의 이마에 뽀뽀를 해 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른 의사들도 금기 사항에 매이지 않고 나름의 인간적인 감정을 표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이에게 뽀뽀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된 일을 계기로 스턴과 허심탄회하게 이런 일에 대해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내심 기뻤다. 금기 사항이라 남모르게 하고 있는 그 일을 서로 나눌 수 있다면 커다란 힘이 될 것 같았다.

마침 어느 날 밤에 스턴과 나는 수술 대기실에 앉아 호출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언젠가 아이에게 뽀뽀해 주는 것을 보았으며 그것은 내게 중요한 의미라고 말했다. 그런데 스턴은 펄쩍 뛰며 자기는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고 완강하게 부인했다.

더 이상 이야기할 여지가 없었다. 한 해 같이 일하는 동안 우리는 친한 친구가 되었고 때로는 함께 바에 가서 술잔을 나눌 정도로 가까웠지만 그 뽀뽀에 대해서 다시는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스턴의 성실함은 모두가 감탄할 정도였다. 실험 데이터를 조금이라도 과장한다거나 세미나에서 읽지 않은 논문을 읽은 것처럼 하는 일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을 만큼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의사의 프로 정신에 대한 잘못된 교육으로 아이에게 뽀뽀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슬픈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의사의 그런 행동은 용납될 수 없는 금기 사항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조금 상황이 달라졌지만.

 

우리는 비인간적인 것이 오히려 프로 정신인 것처럼 여기는 잘못된 교육을 받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여러 가지 면에서 의사를 양성하는 교육에 고질적인 병이 있는 것 같다. 많은 의사들이 그 병을 치유 받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름표 인생

이름표는 우리의 ‘인생’이 쓰고 있는 하나의 가면이다. 이름표는 어떤 대상의 표시나 구분을 위한 것이므로 자칫 우리의 참 모습을 가면 속에 감추어 버리기도 한다.

 

우리의 삶에 언제나 따라 다니는 이름표 – 예를 들어, ‘좋음’ ‘나쁨’ ‘성공’ ‘실패’ 등은 마치 누구는 당뇨병 환자, 누구는 간질병 환자, 누구는 조울증 환자라고 구분 짓는 것처럼 타인을 대할 때 어느 한 면만을 고집하게 만든다. 그러한 이름표는 사람이나 사물을 대하는 마음에 선입견을 가지게 하여,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없게 시야를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듯 이름표가 주는 선입견은 새롭고 경이로운 어떤 것들도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것으로 바꾸어 버린다. 사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알게 될 때, 그 사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조건 없이 받아들이기보다는 그에게 붙여진 여러 종류의 이름표에 대한 기대치와 관계를 맺는다.

 

우리가 어떤 질병에 걸렸을 경우, 정말 고통스러운 것은 그 질병 자체로 인한 아픔보다는 그 질병에 대한 고정관념 – 그 선입견이 주는 공포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우리의 마음을 어둠의 구덩이에 빠뜨리기도 하고 빛의 자유를 누리게 하기도 한다.

사람과 사물에 붙인 ‘이름표’ 에 대해 – 설령, 그것이 그 분야의 전문가 말일지라도 – 우리가 너무 구속 받을 필요는 없다.

 

몇 년 전, ‘암의 자연 치유에 대한 연구’를 주제로 논문을 작성한 어느 의사의 박사학위 논문을 심사한 적이 있다. 그 의사의 사례 연구 대상 중에는 예후가 상당히 안 좋은 암에 걸린 사람이 있었는데, 기적과 같이 그는 암을 이겨냈다. 그는 농부였다. 그 놀라운 결과에 대해 그 의사는 그 농부가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암을 이겨낸 요인이라고 했다.

나는 정확히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어 다시 물었다.

“그 농부가 자기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이야긴가요?”

그 의사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 농부는 자신에게 암이라고 진단하고 나서 들려준 암의 예후에 대한 의사의 이야기를 곧이 곧 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농부는 마치 자기 땅의 토질을 분석하러 나온 정부기관 소속 토양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처럼 의사의 말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토양 전문가는 그 분야의 전문 교육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농부는 존경심을 가지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전문가는 토양의 성분을 분석하고 난 후 그의 땅은 옥수수가 자랄 수 없는 땅이라고 했다. 그러나 농부는 땅의 성분을 분석하지 않고도 옥수수가 잘 자란다는 사실을 자신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농부는 토양 전문가의 견해를 ‘하나의 의견’으로만 받아들였다. 농부가 그 의사에게 말했다.

“전문가가 그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제 밭에서 옥수수가 잘 자란답니다.”

나의 경험을 통해서도 의사의 진단은 하나의 견해이지 예언은 아니다.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 우리가 그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의사들의 진단이나 병의 예후에 대해서도 (마치 전문가의 의견과 다르게 옥수수가 잘 자라는 농부의 땅처럼) 그렇게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비록 암으로 진단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농부의 경우처럼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처음의 예측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의사의 임상적 진단과 마찬가지로 이름표라는 것은 불확실한 것을 통제하고 나름대로의 편리를 위한 시도일 뿐이다. 임상 진단을 받거나 붙여진 이름표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보다 신중히 생각하지 못한 채 그 상황에다 서둘러 마침표를 찍으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에 마침표는 없다. 죽음도 인생의 끝이 아니다. 인생은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의 연속이며 오묘한 신비다. 인생은 오직 변화와 미지의 세계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자에게만 조금씩 그 신비의 문을 열어 보이는 모험 가득 찬 길이다.

 

숨겨진 보석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현재의 자신의 삶 또한 사랑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삶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사는 동안 겪게 되는 많은 체험 중에는 인정하고 싶은 부분도 있고 부정하고 싶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 부정하고픈 체험 속에 실로 엄청난 보석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고통은 피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마음은 서로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는 깊은 만남을 어렵게 한다. 살면서 겪게 되는 갖가지 변화와 위험과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은 진실을 갈망하는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도 하고, 우리가 지닌 진정한 힘을 느끼지도 못하게 한다. 또한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믿지 못하게 만든다.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을, 힘들고 어려운 것보다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이 지닌 본능이고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본능이 언제나 현명한 판단을 해 주지는 않는다. 어느 한 면만을 선호하는 편견은 삶이 주는 많은 선물들을 일어버리게 한다. 오히려 편안함보다 어려움을 선택했을 때, 은혜로움과 신비로움 그리고 모험 가득 찬 인생 여정을 경험하게 된다. 진정한 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삶에 대한 잘못된 고정 관념들을 과감히 버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살면서 겪게 되는 무수한 어려움들은 우리가 정서적, 영적인 내적 일치를 상실했기 때문이라 생각되며 고통은 내적인 일치의 길을 제시해 주기도 하고 많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잠재적인 힘이 되어 주기도 한다.

 

심장병의 일종인 협심증을 앓았던 한 여성 환자는 수술을 받기 전에는 자주 가슴에 통증을 느꼈었다. 통증을 다스리기 위해 몇 년 동안 적당한 다이어트와 명상을 했고 그것을 통해 어느 정도 통증을 통제하기는 하였지만 결국은 심장병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가슴의 통증은 사라졌다. 그런데 대신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잃어버린 그 무엇의 정체를 찾아내기 위해 주변을 살펴보던 중 자신이 내적 일치를 이루지 못할 때나 진실하지 못한 행동을 하려고 했을 때마다 어김없이 가슴에 통증이 찾아 왔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옳지 않은 일임에도 남편이 듣기 싫어할까 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을 때, 잘못된 일인지 분명히 알면서도 타인의 마음이 불편할까 봐 그냥 모른 척했을 때 등의 대개 사소한 일이었지만 양심의 눈을 감을 때마다 그녀는 가슴의 통증을 느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가슴에 통증이 먼저 찾아 온 이후에 그런 일들이 생기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체험으로 그녀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이제 육체적 병으로부터는 치유가 되었지만 자신의 내면에 존재했던 삶의 바른 방향을 가리켜 주던 나침반은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녀의 체험이 새삼스럽게 놀랄 만한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가 우리 신체의 가장 약한 부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당뇨병 환자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혈당이 증가하고, 편두통이 있는 사람은 즉시 두통이 일어나고, 위궤양이 있는 사람은 복통을 호소하게 된다. 이 환자의 이야기와 다른 환자들의 상담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스트레스는 단순히 외적인 강박관념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의 문제만이 아니라 내적인 일치와 그것이 삶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이해하기 힘들 만큼 큰 시련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런데 그 시련은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거나 알기 두려워하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신호일 수 있다. 시련은 내적 일치를 이룰 수 있게 하고 소홀했던 대상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한다. 우리가 소홀히 했던 바로 그것이 – 설령 삶을 창조적으로 흐르도록 이끄는 강물을 가로막는다고 생각되는 부정하고 싶은 경험일지라도 – 우리를 일깨우는 중요한 부분이다.

부정했던 삶의 체험들을 되돌아보고 거기에 숨겨진 보석을 찾지 못한다면, 진정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도 없고 내면의 상처도 치유 받지 못할 것이다.

사도행전은 “이 예수는 집 짓는 사람들 곧 여러분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입니다” (사도 4,11)라는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 준다. 때때로 보석을 돌멩이로 잘못 알고 그냥 버리기도 하지만, 나중에야 그것이 우리 삶을 빛나게 해 줄 보석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는 너무 늦지 않을까… .

 

 

완벽주의의 허상

 완벽함을 떠나서 인간은 하느님의 오묘한 작품이다. 인간은 완벽을 추구하지만 완벽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 완벽하다는 것은 관념이고 허상이다. 전문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특히 의사들에게 완벽주의는 마치 그것이 인생의 목표처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완벽주의라는 병에 걸려서 자신의 마음뿐만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다치게 하며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완벽주의자들은 인생을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이 그림에서 잘못된 것을 찾아보세요’ 라는 제목의 숨은 그림 찾기라고 생각한다. 그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책상 다리가 셋이거나 방문에 손잡이가 없는 등 잘못되어 있다. 나는 어렸을 때는 이런 놀이를 좋아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잘못된 것을 찾아내고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완벽주의는 이 시대의 심각한 중독 증세다. 우리는 모든 일에 완벽하도록 교육 받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완벽주의는 후천적인 중독 증상이지 선천적인 것은 아니어서 완벽주의라는 병은 치유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나도 그 병을 심하게 앓고 난 후 이제 서서히 회복되는 중이다. 내가 그 병에 걸려 있을 때는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조금은 모자란 듯이 보였고 하고 있는 일도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대나 자신의 눈높이에 맞추기보다는 내가 임의로 설정해 놓은 높은 기준에서 어떤 판단을 했기 대문에 모든 것이 못마땅했다. 완벽주의자는 늘 부족한 무엇을 찾아내어 끝없이 불평을 한다.

완벽주의자의 부모도 대부분 완벽주의자들이다. 그 부모들은 자녀들이 이룬 성과나 업적에 따라 그들을 인정한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존재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어떤 일의 성과에 따라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완벽주의적인 부모들은 자녀들이 좋은 성과를 얻어도 조금 더 노력했다면 더 나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녀들은 부모의 인정과 사랑을 얻기 위해 끝없는 투쟁을 하며 살게 된다. 물론 사랑은 투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마음과 마음을 서로 나누는 은총이다. 투쟁으로 얻어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인정 認定이다.

완벽주의자들은 사랑과 인정의 차이점을 모른다. 우리 문화권에는 완벽주의가 너무나 만연해 있어 사랑이라는 낱말을 대신할 다른 말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조건 없는 사랑’ 이라는 말이 있다. ‘사랑’ 이란 말에는 이미 조건이 없다는 의미를 포함하므로 그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조건 있는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며 그것은 인정에 가깝다.

모든 전문직업은 완벽주의를 추구한다. 나는 의과 대학에 들어가기 오래 전에 이미 아버지에게서 완벽주의자가 되도록 교육을 받았다. 초등 학교 시절부터 학교 시험에서 98점을 받아오면 언제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머지 2점은 어디에다 잃어버리고 왔니?”

나는 아버지를 존경하기에 아버지에게 인정 받고 싶었다. 그래서 잃어버린 2점을 찾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았다. 20대가 될 무렵 나는 아버지 못지않은 완벽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나머지 2점에 대해 물을 필요가 없어졌지만, 나는 나머지 점수가 정말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완벽함이 인생을 가치 있는 소중한 것으로 만들지는 못한다는 것을 예전에는 미처 모르고 있었다. 완벽해야만 사랑 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님을 나는 정말 모르고 있었다.

살아가면서 여러 스승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내 인생의 참 스승이 되었던 사람 중 한 사람은 데이비드였다. 그는 예술가였고 나의 첫사랑이었다. 서로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끼리 끌린다는 말은 우리 두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 듯 우린 서로 너무 달랐다. 그와 사귀고 있을 때 운전면허증 갱신을 위해 시험을 치러야 했고 나는 시험에 필요한 교재를 구입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데이비드는 내가 시험에 백 점을 받기 위해 온갖 교통법규에 대한 내용을 암기하는 대신에 자기와 함께 산책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파티에 가는 등의 데이트를 원했고 때론 그냥 같이 있기를 원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나는 운전면허 시험에서 백 점을 받아야 하니까. 물론, 난 백 점을 받았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난 그의 작업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백 점을 받았노라고 말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는 연민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래, 근데 왜 운전면허 시험에서 백점 을 받아야만 하는 거지?”

그것은 내가 기대한 반응이 아니었다. 그의 반응에 순간 깨달은 것은 내가 너무 바보 같은 일을 했다는 것이다. 백점을 받기 위해 너무 큰 희생을 감수했던 것이다. 70점이면 합격이고 합격만 하면 되는 운전면허 시험이었다. 나의 완벽주의를 충족시킨 것 외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백점을 받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데이비드 와 함께 있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아무 소용도 없는 백점을 받기 위해서 며칠 밤을 새워 공부하느라 그의 데이트를 거절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이전에는 몰랐던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지난 날의 내 모습들이 떠올랐다. 백점을 받아야만 아버지가 나를 인정해 준다고 생각했었다. 어느새 나는 모든 것에서 백점을 받아야만 자신을 인정했다는 사실도 알았다. 나는 백점 짜리 인생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이다. 모든 중독 환자들이 그렇듯 거의 통제가 불가능하였다.

 

이 이야기는 운전면허 시험이나 백점이라는 점수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그 완벽함이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다행히 데이비드는 완벽주의자들이 정해 놓은 규칙을 따르지 않았다. 아니 그는 그런 규칙이 있는 줄도 몰랐다. 나는 그로 인해 더 이상 그런 게임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내 생에 데이비드와 같은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크나큰 은총이었다.

 

춤추는 신

의사들은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과학적 객관성’ 을 지니는 것이라고 훈련 받는다. 또한 어려운 일을 하면서 겪게 되는 마음의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환자들과 어느 정도의 정신적인 거리가 필요하다고 배운다. 하지만 환자에게 연민을 가지거나 인간적으로 대할 때보다도 객관적인 거리감으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객관성을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주변 사람들을 인간으로보다는 하나의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그런 자신에 대해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많은 의사들이 객관성을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읽어버리기도 한다.

객관성이 최선은 아니다. 객관적으로 모든 것을 인식한다면 누구도 자신의 내적 힘을 끌어낼 수 없다. 울 수도 위로 받을 수도 의미를 찾거나 기도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객관성을 최선으로 보는 사람은 자기 앞에 펼쳐지는 삶의 파노라마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현대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윌리엄 오스카 경은 “객관성은 의사가 지녀야 할 본질적인 덕성이다” 라고 말했다. 많은 의사들이 이 말을 인용하지만 오스카 경이 말한 ‘객관성’ 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오스카 경의 ‘객관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객관성과는 다른 훨씬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객관성’ 이라고 번역되는 ‘애퀘니마타스’ 라는 라틴어에서 인용했다. 라틴어로 애퀘니마타스의 어원적인 의미는 마음의 고요나 내적인 평화다. 오스카 경이 한 말은 의사들이 환자와 일정한 마음의 거리를 두라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환자들을 만나면서 늘 마음의 고요 안에서 내적인 평화를 유지하라는 의미다. 내적인 평화는 환자와 거리를 두고 이성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겪는 이들을 만나면서 어떤 내적인 태도를 지닐 것인가와 고통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그것은 정신적인 면보다는 영성적 인 면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몇 년 전, 의사들의 워크숍에서 요셉 캠벨은 ‘신성한 체험’을 주제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다양한 시대와 장소에서 만들어진 많은 성화와 성스러운 석상, 도자기, 태피스트리, 스테인드 글라스 등 많은 슬라이드 필름을 보여 주었다. 그 중 취리히의 리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춤추는 시바’ 라는 청동상을 지금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한다. 시바는 인도의 남성 신이다. 인도에는 그런 청동상이 흔하다고 했지만 우리 중에는 아무도 그런 아름다운 청동상을 본 적이 없었다. 화염에 싸인 듯 가장자리에 불꽃모양의 아름다운 장식이 있고 그 가운데에서 시바가 춤추고 있는 모습이었다. 시바의 여러 개 달린 손들은 영적인 삶의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춤추는 시바의 한쪽 다리는 높이 들어올려져 있고 다른 쪽 다리는 옷을 벗은 작은 남자의 등 위에 놓여 있었다. 작은 남자는 몸을 구부린 채 두 손으로 나뭇잎을 잡고 있었고 시선은 오로지 그 나뭇잎만 보고 있었다.

의사들은 관찰력이 뛰어나다. 춤추는 시바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우리는 나뭇잎만 잡고 있는 작은 남자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주의 깊게 살펴보면서 그가 누구인지 요셉 캠벨에게 물었다. 캠벨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그 남자는 자신의 등 위에서 신이 춤을 추고 있을지도 모른 채 물질 세계의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때 캠벨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캠벨은 우리 의사들이 바로 그 작은 남자와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우리도 시선을 들어 위를 바라볼 수 있다면 신이 춤추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운다. 진정한 배움은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서보다는 삶의 경험을 통해서 얻는다. 의식을 잃고 죽음 가까이 갔다가 깨어난 사람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어떤 신비한 통찰력을 얻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삶의 근원적인 가르침에 대한 통찰력이다.

우리의 공통된 목적은 우리 안의 지혜가 커져서 사랑하는 법을 보다 더 잘 배우는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무엇을 얻어야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잃음으로써 배우기도 한다. 성공을 통해서도 배우지만 실패를 통해서도 배우게 된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고 삶이 가르쳐 주는 지혜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춤추는 하느님의 손

자신의 등 위에서 시바 신이 춤추고 있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채 나뭇잎에 몰두하고 있는 작은 남자처럼 나도 연구에만 몰두하느라 내 등 위에서 하느님이 신비롭게 춤추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일을 또렷이 기억한다.

소아과 수련의로서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내가 담당한 환자 중에 재생 불량성 빈혈을 앓고 있는 카로스 라는 이름의 12세 된 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에 잠을 깬 카로스는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는데 다음날에는 아예 잠에서 깨어나질 못했다. 중환자실로 옮겨서 검사를 해보니 헤모글로빈 수치가 정상치의 삼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5’ 였다. 원인 불명인 채로 갑자기 골수에서 적혈구 생산을 멈춘 상태로 그 당시에는 거의 치명적이었다.

카로스가 입원했을 때 나는 그의 담당 의사가 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는 환자였지만 정말 아름다운 사춘기 소년이었고, 능란한 마술사이기도 했다. 그는 재미난 마술로 의사들과 병동에 있는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특히 의사들을 잘 골려 주었는데 갑자기 의사들의 귓속에서 카드의 스페이드 에이스를 꺼내거나 손에 쥐고 있는 동전이 없어지게 하는 등의 마술을 해서 우리가 당황해 하는 모습을 보고 낄낄거리며 즐거워했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천사였다. 그가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견디기 힘든 슬픔이 밀려왔다.

그나마 다행히도 불과 몇 개월 전에 재생 불량성 빈혈에 대한 새로운 치료의 실험 결과가 나온 것을 알게 되어 한 가닥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 치료 방법은 다량의 남성 호르몬을 투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실험 결과를 믿고 그 방법으로 치료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남성 호르몬의 과다로 인해 온 몸에 털이 나고 얼굴은 여드름투성이고 목소리는 굵고 거칠어지는 등 외모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다. 그의 아름답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졌고 더 이상 마술도 하지 않았고 쉽게 짜증을 내고 참을성도 없어졌다. 그러나 생명이 달린 문제였기 때문에 치료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일단 퇴원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통원 치료를 하기로 했다. 매주 그 아이를 보는 것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의사 중에는 아무도 그 아이를 담당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결국 내가 다시 맡게 되었다. 나는 이 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찾아 읽어 보았지만 희망적인 내용은 단 한 건도 발견할 수 없었다. 카로스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했다. 결국 카로스는 죽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헤모글로빈 테스트를 하면서 전에 했던 치료 방법을 선택했고 그 실험 결과의 오차 범위는 0.2였다. 자세히 설명하면, 헤모글로빈 수치가 6으로 나오면 그 환자의 헤모글로빈 수치는 5.8과 6.2 사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0.2보다 더 큰 수치변화가 있으면 골수가 다시 적혈구를 생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0.2까지는 아무런 진전이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나는 이 모든 내용을 카로스와 그의 가족들에게 설명했다.

퇴원 후 외래에서 처음 검사한 헤모글로빈의 수치는 입원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6이었다. 희망을 찾는 카로스 엄마의 눈을 바라보면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다음 주에도 6이었다. 2주 후에는 6.2로 나왔지만 오차 범위여서 별 의미가 없었다. 계속 6주를 치료하는 동안 별다른 수치의 변화가 없었다. 치료 방법이 효과가 없다는 것이 분명했고 이제 그의 생명은 시간문제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7주째에 그의 수치가 6.4로 나왔다. 그러나 그 전 주의 6.2와 비교할 때 이 수치 역시 오차 범위였다. 나는 그 수치를 보면서 다시 한 번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카로스의 엄마에게 고개를 저으며 “실험 오차 범위 이내인 6.4입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카로스가 죽게 될 것이라는 확신에 그냥 마지못해 검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 그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매주 계속 검사를 했지만 여전히 오차 범위를 넘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수치가 7.4였다. 그런데 그 수치도 전 주의 수치인 7.2에 비해 오차 범위였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다시 카로스의 엄마에게 고개를 저으면서 수치를 알려주었다. 그녀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서 내 팔을 살며시 잡고는 말했다.

“선생님, 제 아이가 회복되고 있어요. 다시 건강을 되찾고 있어요.”

아! 나는 보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 수치가 오차 범위 이내라는 사실만을 보았지, 수치가 처음보다 상당히 높아졌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죽을 것이라는 잘못된 확신 때문에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대해 미리 단정하고 그 일을 바라보면 시야가 완전히 가려질 수 있음을 그때 확실하게 깨달았다. 내가 검사 결과로 나타난 수치의 오차 범위 이내라는 한 가지 사실에만 매달려 있는 동안, 내 등 위에서 하느님이 춤추고 계신 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사건 이후에는 어떤 것도 미리 단정하지 않는다. 의사는 병의 경과에 대해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삶과 죽음의 신비한 영역은 온전히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다.

 

 

III 이브와 하느님의 지혜…

 

진정한 영웅

 나의 외삼촌은 영웅이다. 어머니의 다른 형제들처럼 외삼촌도 평범한 의사였다. 그런 그가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무공훈장을 받고서 영웅이 되었다.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면, 그 전투에서 우리 외삼촌은 군의관이었고 그의 부대가 앞 능선에는 적이 없다는 잘못된 정보를 받고 진군을 하다가 벙커에 숨어 있던 적군의 공격으로 전선은 사상자들로 아비규환이 되어버렸다. 빗발치는 총격 속에서 외삼촌은 군의관 표시를 두르고 낮은 포복으로 뛰어다니면서 부상병들의 응급조치와 필요한 치료를 했다. 죽어가는 병사들의 유언을 수첩에 지니고 있던 시진 뒤에 적어 두기도 하고, 원하는 병사들에게는 대세를 주기도 하고, 전사자들의 마지막 임종을 지키면서 동분서주했다. 아군의 반격으로 무려 12시간 더 지나서야 사태가 진정되었고 그 포탄이 퍼붓는 전선에서 외삼촌이 구한 생명은 수십 명이 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생명을 건 용감한 행동으로 정부가 주는 무공훈장을 받은 외삼촌은 지역신문인 ‘뉴욕 데일리 미러’ 에 사진과 함께 기사가 대서특필되면서 일약 영웅이 되었다. 그 당시 일곱 살이었던 나는 영웅이 된 외삼촌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그런 영웅이 유가를 받아서 우리 집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너무 흥분되어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사실 외삼촌이 영웅이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해 보지 않았기에 외삼촌의 영웅적인 행동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속으로 무척 놀랐었다. 외삼촌은 대머리에 안경을 쓴 왜소한 체격에다 배도 조금 불룩하게 나온 모습으로 영웅과는 거리가 있는 외모였다. 어린 마음에 영웅이 된 외삼촌은 외모도 달라졌을 것이라 상상하며 기다렸는데 집에 온 외삼촌의 모습은 예전의 그대로였다. 이웃 사람들이 몰려와 외삼촌과 악수를 나누면서 무공훈장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자 그는 수줍어하면서 준비된 환영 행사를 검연쩍어했다.

이웃 사람들이 다 돌아가고 난 후, 나는 외삼촌의 무릎에 앉아 외삼촌은 영웅이니까 전선에서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이 용감하게 행동했을 것 같다는 내 생각을 말했다.

외삼촌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았어. 오히려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단다.”

외삼촌의 대답에 굉장히 실망한 나는 볼멘소리로 물었다.

“그럼 왜 나라에선 외삼촌에게 무공훈장을 주었어요?”

전투가 벌어지는 그런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바보임에 틀림없고 나라에서는 그런 바보 같은 사람에게는 절대 훈장을 주지 않을 것이며, 용감하다는 것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무릅쓰고라도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자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외삼촌의 이 말씀은 내가 살아오면서 배운 용기에 대한 많은 가르침 중에서 첫째가 되었다. 그 말은 큰 교훈으로 남았고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당시 나는 어둠을 무서워했고 수줍음이 심해서 남들과 이야기를 잘할 수 없는 사신에게 실망하곤 했었다. 그런데 외삼촌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어떤 억압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을 느꼈으며 큰 힘과 위로를 얻었다. 영웅인 나의 외삼촌도 두려움을 느낀다면 꼬마인 내가 어둠을 무서워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외삼촌은 뛰어난 카리스마를 지닌 영웅이 아니라 위험한 상황에서도 남을 돌보고자 했던 인간미 넘치는 보통의 사람이었다.그도 나와 같이 두려움을 느끼는 보통의 사람이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은 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상황 속에서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영웅이다.

 진정한 영웅이란 두려움 가득한 인생의 터널을 지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해야 할 일을 하며 함께 가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눠 주는 사람이다.

 

이브와 하느님의 지혜

 어릴 적 할아버지가 들려준 많은 옛날이야기 중에는 자신들의 실수나 잘못을 통해서 삶의 중요한 무엇을 배웠던 여인들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았다. 아브라함의 아내였던 사라, 야곱의 아내 라헬, 여왕이었던 에스더 등에 관한 이야기였다. 정통 유대교의 랍비이면서 학자였던 할아버지는 구약성서의 이야기를 각색하여 들려주곤 하셨는데 그때는 그 이야기가 성성의 내용인지 몰랐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성서의 이야기를 통해 당신의 어린 손녀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자 했음을 알게 되었다.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는 이브와 뱀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당시에는 이야기의 뜻을 잘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 이야기는 내면의 삶에 대한 중요함을 일러준 말씀이었다.

이브는 어린 소녀로, 하느님은 이브의 아버지로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세상의 여느 아버지처럼 이브의 아버지도 이브에게 삶에 필요한 의식주를 제공해 주고 온갖 위험에서부터 보호해 주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 순종했듯이 이브 또한 하느님 아버지에게 순종했다.

에덴 동산의 하루하루는 평화롭고 복된 나날이었다. 이브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온갖 동물과 식물과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동산 한가운데에는 ‘하느님의 지혜’ 라는 아주 아름다운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하느님은 동산의 나무열매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따먹을 수 있게 하셨지만 그 열매만은 절대 따먹지 못하게 했다. 이브는 하느님의 그 말씀을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느님의 지혜’ 라는 열매를 먹으면 지혜가 커지고 삶이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이브에게 아버지의 말씀은 절대적이었기에 그 말씀을 거역한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은 흘러갔고 동산은 변함없었지만 이브는 나날이 성장하여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어느 날 이브가 그 아름다운 ‘하느님의 지혜’ 나무 곁을 지나고 있는데 나뭇가지 위에 있던 뱀이 유혹했다.

“이브야, 이 나무 열매 먹어보지 않을래?”

이 대목에서 할아버지의 자상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 뱀은 진짜 뱀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지혜에 대한 갈망과 미지의 세계의 신비로움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욕망을 상징한다고 하셨다. 이 뱀은 지식을 전해 준 최초의 선생으로 그는 더 이상 어린 소녀가 아닌 탐구자인 이브에게 가르침을 전해 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브는 아버지 하느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분명 그 열매는 금단의 열매였다. 하지만 이브는 사춘기 소녀가 아닌가! 호기심 왕성한 대부분의 그 또래 소녀들처럼 이브도 그랬다. 금단의 열매가 지닌 마력에 끌려 열매를 따서는 한입 깨물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일부가 되어 우리 안으로 스며들게 된다.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 열매는 다른 열매와 별로 다르지 않았단다.”

그런데 이브가 그 열매를 먹었을 때 하느님의 지혜가 그녀 내면으로 스며들어 그녀와 한 부분을 이루었다. 그녀는 거룩한 지혜를 갖게 되었다. 하느님의 목소리가 내면으로 들어와서 나침반처럼 늘 삶의 방향을 지시해 주었다. 우리도 이브의 후손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도 우리의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하느님의 목소리가 있는 것이다.

금단의 열매를 먹은 이브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그녀의 내면에는 하느님이 존재하셨기에 안전한 동산의 보호를 벗어나 자유롭게 떠날 수 있었다.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으며, 어른으로서 모험과 책임과 변화 가득 찬 복잡한 세상에 나갈 자유를 얻었다. 그 열매를 먹고 나서 그녀는 어른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 왜 하느님은 이브에게 그 열매를 따먹지 못하게 했어요? 실제로 그 열매를 먹고 나선 지혜가 생겼잖아요.”

“나오미야, 정말 어려운 질문이구나. 그 문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야 하지. 성서 속의 하느님은 여러 가지 모습들로 가득 차 있단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사랑 가득한 하느님이시지. 그런가 하면, 하느님은 때론 화를 내시기도 하고 질투를 하기도 하고, 땅 위를 걸어 다니거나 물 위에 입김을 넣어서 물길을 가르기도 하시지. 어떤 곳에선 불기둥이 되기도 하시지만 하느님은 이 중의 어떤 모습도 아니란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하느님의 모습들이란다. 진정으로 하느님을 알기 원한다면 모든 것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져 보아야 한단다.”

할아버지는 어린 내 질문에 대해 대충 얼버무리지 않고 친구나 랍비에게 이야기하듯 진지하게 말씀해주셨다.

갑자기 이브가 불쌍해졌다. 내면에 존재하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따른다는 것은 내가 아빠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 것 같았다. 단순히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자신을 성찰하면서 하느님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묻고 알아내야 할 것 같았다.

현실은 너무나 복잡하기에 내면의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책임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한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할아버지는 죄인이 아닌 어른으로서의 이브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셨으며, 이 이야기를 들은 후 몇 년이 지나서야 성서 속의 이브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각색하여 들려준 이브 이야기에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우리는 전문가들과 권위 있는 사람들 – 의사나 교육자, 정치가, 기술자, 랍비나 사제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고 믿으며 기대하고 존경한다. 물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귀 기울여서 들어야 할 목소리는 우리 마음 안에 있고 지금은 그 내면에 존재한 은총의 장소를 발견해야 할 때다.

 

운명은 외출 중

 어릴 때 우리 집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늘 힘들게 일하셨다. 그런데 아버지는 집에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고개를 저으며 “레멘의 집안은 지독히 운도 없지” 라고 말씀 하셨다. 파산 선고를 받았을 때나, 외동딸인 내가 병에 걸렸을 때와 같이 큰일을 당했을 경우만이 아니라 주차를 하려는데 다른 사람이 먼저 주차를 했다거나 하는 사소한 경우에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레멘 집안의 운이 행운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종교가 없던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그 어떤 것도 믿지 않으셨다. 아버진 삶에는 아무 때고 불운이 닥쳐 올 수 있다고 믿었기에 한 번도 삶을 편안하게 살지 못했다. 레멘 집안의 운이 별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일이 계속 일어났고 나도 우리는 정말 운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믿었다.

1971년, 아버지는 뉴욕 주가 발행하는 복권에 당첨되었다. 운명을 바꿀 만큼의 엄청난 금액은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평생 만져본 돈 중 가장 큰 금액이었다. 아버지에게는 뜻밖의 횡재였으며, 그 후에 일어난 일 때문에 나에게도 아주 큰 선물이 되었다.

복권에 당첨되었을 때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서 양성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었다. 그는 복권을 가슴에 꼭 품고는 아무에게도 그 복권 교환을 맡길 수 없다고 하셨다. 가족에게도 친한 친구에게도 심지어는 어머니에게도 맡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복권 교환 날짜를 잊어버리거나 복권 자체를 잃어버리거나 아니면 복권을 교환해 주는 사람이 잘못 기록할 수 있는 등 분명 일이 잘못될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복권교환 마감일이 가까워지자 아버지는 나와 어머니에게 몇 번이나 복권에 대해 비밀을 지킬 것을 당부하시고는 당신이 직접 가셔 복권을 당첨금과 교환하였고 그 돈은 절대 사용하지 않으셨다. 다른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불운이 조금씩 우리 가족들 주변에 맴도는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나는 그 사건을 계기로 행운의 선물을 얻었다. 그 선물이란 다름이 아니라 행운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아버지에게는 이 세상에서 행운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란 없었다. 5만 달러라는 복권 당첨금마저도 불행으로 만드신 분이셨다. 복권 당첨금이 오히려 불안과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복권 당첨 사건으로 우리 집안이 운이 없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고, 그 깨달음은 복권 당첨 사건을 통해 내가 얻은 선물이었다. 내 삶을 비추는 햇살을 가리고 있던 잿빛 구름이 걷히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 나는 복권이 가져다 준 선물을 지니고 산다. ‘은총’ 이라는 선물을.

나는 아버지를 통해서 아버지가 얻은 금전적인 횡재와는 다른 얻음과 잃음에 대한 보배 같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누구든지 무엇을 잃어버리는 상실의 체험을 경험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상실에 대해 배우기 시작한다. 내가 그랬듯이 상실에 대한 태도는 주로 가족에게서 배운다. 상실의 의미는 삶에서 아주 중요하다. 상실의 아픔을 체험할 때 그것을 이웃과 나누는 지혜가 필요하지만 우린 상실에 대해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할아버지를 따라 이민을 왔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힘든 일을 해야 했고 어른이 되어선 늘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셨다. 어린 시절의 내 기억으론, 아버지는 밤에 대화를 나누기 힘들 만큼 늘 지쳐 있었다.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근 채 의자에 앉아서 잠들곤 하셨다. 우리는 뉴욕 맨해튼 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훗날 정원이 있는 아담한 집을 마련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 미래의 우리 집에 대해 거실을 녹색으로 칠할지 크림색으로 칠할지 등에 대해 언쟁을 벌이기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크림색을 좋아했지만 아버지는 크림색은 너무 고풍스럽다고 주장하셨다.

내가 스무 살이 되어서야 우리 가족은 롱아일랜드에 조그만 집을 마련했고 아버지는 직장에서 퇴직하였다. 드디어 아버지의 작은 꿈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다. 새 집을 마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에 잠시 들렀더니 아버지는 예전과 같이 의자 앉은 채 잠들어 계셨다. 아버진 다른 일자리를 구해서 일을 하고 계신다고 어머니가 일러 주셨다. 상황이 나아진 것이 별로 없었다.

다음에 집에 갔을 때도 똑같았다. 아버지는 훨씬 더 피곤해 보이셨다. 어머니 말씀이 아버지는 집에 도둑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여 보안장치를 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한다고 하셨다. 나는 제발 휴가라도 좀 다녀오시라고 말씀 드렸다. 아버지는 “올해는 안 된다. 집을 비워두고 떠날 수는 없다” 고 하셨고 나는 집을 봐 줄 사람을 구하라고 했지만 아버진 펄쩍 뛰셨다.

“너는 사람들이 어떻다는 걸 모르니? 친구라 하더라도 절대 물건을 맡겨서는 안 된다. 집은 더구나 안 되지.”

결국 두 분이 집을 비우고 함께 나가는 일은 없었다. 영화를 보러 가는 일조차 없었다. 집을 비운 사이 불이 날 수도 있고 다른 재난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집을 마련하셨지만 결국은 그 집이 지금껏 아버지를 고용했던 어떤 고용주보다도 더 아버지를 꼼짝 못하게 재배한 셈이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면 오히려 그 소유물이 우리를 소유하게 된다는 것을 아버지의 삶을 통해서 배웠다.

 

깊고 푸른 시선

 누군가의 진심 어린 시선을 느낄 때,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그렇게 마음의 눈으로 바라봐 주는 사람에 의해, 자신의 고유성을 알게 되고 자신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게 된다. 깊고 그윽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처음으로 경험한 것은 불과 서너 살밖에 되지 않은 아주 어릴 때였다.

나의 대부님(역주: 세례를 받을 때 신앙의 후견인으로 미국에서는 대부, 대모를 함께 세운다)은 내가 유아세례를 받고 난 후에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셨기에 나는 대부님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가 몸이 편찮으시고 임종이 가까워 왔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대부님을 방문하러 가게 되었다. 나는 아직 너무 어려서 대부님이 곧 돌아가시게 되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채, 차를 타고 멀리 여행을 한다는 사실만 마냥 좋았다. 며칠 동안 설레면서 그 여행을 기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아주 어렸지만 그때의 대부님과의 만남을 아주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분이 누워 계시던 침대의 모습과 침실의 분위기가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커다란 방에 아름다움 부조가 새겨져 있는 짙은 밤색의 아주 크고 높은 나무 침대가 놓여 있었다. 내가 서서도 그분의 모습을 볼 수 없자 엄마는 나를 대부님 바로 곁에, 대부님과 벽 사이의 침대 공간에 올려놓았다. 대부님은 베개를 베고 눈을 감고 누워 계셨다. 아주 고요한 모습이었고 너무나 야위어서 덮고 있는 이불이 그냥 바닥에 평평하게 깔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는 내게 조용히 무슨 말씀을 하셨지만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대부님의 모습만 바라보았다. 그런 모습으로 계시는 분은 처음 보았기 때문에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침 부엌에서 엄마를 불렀고 엄마는 부엌일을 도와주러 잠시 방을 나가셨다. 바로 그 순간에 대부님이 눈을 뜨고는 나를 바라보셨다.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그분의 눈은 깊고 푸른 따뜻한 눈이었다. 마치 휘파람을 불듯이 조그맣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셨다. 내게 무엇인가를 말씀하시려는 듯이 보였다. 나는 어렸지만 그분의 속삭임은 어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것임을 알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얼굴을 그분 귀에 가까이 대었다. 그분은 아주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너를 만나기를 오랫동안 기다렸단다.”

나의 가족들은 모두가 너무나 지적이고 예의가 바른 사람들이라서 드러내놓고 애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부님은 달랐다. 미소를 짓고 있는 그분의 눈에는 깊은 사랑과 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이고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분은 두 손을 이불 위에 올려 놓고 계셨는데 여전히 미소를 지으시며 한쪽 손을 나에게 내미셨다. 그런데 갑자기 다시 눈을 감으셨다. 깊은 숨을 한 번 몰아 쉬더니 아주 고요해졌다. 나는 그대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조금 전에 내게 지으시던 미소를 떠올리며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한참 후에 엄마가 들어오셨다. 엄마는 대부님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더니 갑자기 나를 침대에서 낚아채다시피 안고는 거실로 달려 나갔다. 대부님은 돌아가셨던 것이다.

부모님은 대부님이 돌아가시는 순간에 내가 혼자 그분 곁에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으셨고 몹시 걱정하셨다. 부모님은 내가 혹시라도 정신적인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염려하여 아동심리학자의 상담까지 받으셨다. 부모님은 내가 좋지 않은 영향을 받았을까 봐 걱정하셨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나는 내 생애 처음으로 누군가가 깊은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아주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그 느낌은 내가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사랑 받고 있다는 따뜻함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부모님에게 그날의 일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내 삶에 얼마나 중요한 체험이었는지를 말씀드릴 수 있었다.

 

그림 조각 맞추기

인생은 여러 조각들이 모여서 완성되는 하나의 그림 조각 맞추기 게임과 같다. 그림 조각 중에 어둡고 밝지 않은 색깔이나 예쁘지 않은 모양의 조각이라고 해서 그것을 빼버린다면 절대 그 그림은 완성되지 않는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 거실에는 매우 큰 테이블이 있었고 거기에 그림 조각을 맞추는 커다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이 놀이는 아버지가 먼저 시작하셨는데 그림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놀이를 시작해야 하므로 완성된 그림이 그려져 있는 상자의 뚜껑은 늘 감추어 두셨다. 친척들이나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오면, 이 놀이를 즐겨 했다. 어떤 사람들은 불과 몇 분만 하다가 그만두었고 어떤 사람들은 30분에서 1시간 정도만 이 놀이를 했기 때문에 하나의 큰 그림 조각이 완성되는 데는 한 달이 넘게 걸린 적도 있다.

몇 년 동안에 걸쳐 우리 집 식구들은 아마 수십 개도 넘는 그림 조각을 완성했을 것이다. 나도 크면서 이 놀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점점 나는 이 놀이에 두각을 드러내었다. 조각이 서로 들어맞는 것이 재미있었고, 다른 식구들이 못 찾고 있을 때 내가 먼저 찾게 되면 신이 났다. 특히 처음으로 숨겨져 있던 그림의 윤곽이 드러나는 조각을 찾았을 때 맛보는 희열이란..

그림 조각 상자가 놓여 있던 큰 테이블은 순전히 그 놀이를 하기 위한 테이블로 아버지가 어머니의 생일 선물로 사 주신 것이었다. 나는 세 살인가 네 살쯤 되던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그 테이블과 조각 그림 상자를 사 가지고 오신 날을 기억한다. 아버지는 테이블 위에다 상자에서 꺼낸 많은 조각들을 펼쳐 놓으시고 아주 즐거워하셨다. 어머니도 무척 좋아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당시 아주 어렸기 때문에 두 분이 왜 그런 종이 조각을 보고 좋아하셨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아직 그 놀이를 함께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생각하셨는지 부모님은 그 놀이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 놀이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서도 단순히 호기심으로 그 놀이에 함께하고 싶었다.

어느 날 아침, 혼자 거실에 있게 되자 나는 의자를 갖다 놓고 그 테이블로 올라가서는 널리 있는 그림 조각들을 보았다. 조각들은 상당히 작았다. 어떤 것은 밝고 아름다운 색깔이고 어떤 것은 어둡고 칙칙한 색깔이었다. 그것들은 거미나 벌레처럼 보기 싫고 좀 무섭기까지 했다. 그런 보기 싫은 조각이 거기 있다는 것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어둡고 칙칙한 색깔을 지닌 조각 몇 개를 가지고 내려와 소파의 쿠션 밑에 몰래 감추었다. 몇 주 동안에 내가 집에 혼자 있게 될 때마다 나는 테이블로 올라가서 어둡고 보기 싫은 모습의 조각들을 가지고 내려와서 소파의 쿠션이나 침대 밑에 숨겨 놓았다.

그래서 가족들이 아주 오랫동안 노력해도 그림 조각을 완성하지 못했다. 마침내 이상하게 생각한 어머니는 그림 조각의 수를 다 세어보고는 거의 백 개도 넘는 조각들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그 조각들을 보았는지 물어 보았고 나는 보기 싫은 조각들을 감추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감추었던 조각들을 모두 찾아내어 드디어 그림 조각을 모두 맞추셨다. 나는 어머니가 그림 조각을 맞추던 모습을 기억한다. 감추었던 어둡고 칙칙한 색깔의 조각들을 비어 있던 자리에 맞추어 넣자 완성된 그림이 나타났다. 나는 너무 놀랐다. 나는 그 놀이가 조각을 맞추어서 그림을 완성하는 것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 그림은 아주 평화롭고 아름다운 바닷가의 풍경이었다. 내가 감추었던 조각들 없이는 그런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될 수는 없었다. 처음에는 어둡고 칙칙한 색깔이어서 보기 싫었는데 그런 조각 모두가 합쳐져야만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될 수 있음을 알았다.

 

인생도 그림 조각 맞추기와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가 인생이라는 그림 조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어둡고 칙칙한 그림 조각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생은 많은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인생의 어떤 조각들은 받아들이고 어떤 조각들은 거부하거나 무시한다면, 예를 들어 성공의 기쁨이나 축제의 시간만을 인정하고, 고통스러운 시간들과 실패와 좌절을 체험했던 순간들은 거부하며 어두운 구석에 감추어 둔다면, 인생의 어느 한 부분만을 볼 뿐이지 결코 전체적인 모습은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림 조각 놀이에서 어두운 색깔의 조각처럼 나에게 찾아왔던 고통이나 슬픈 사건들도 내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추고 싶은 마지막 한 조각까지도 삶의 선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마지막 한 조각으로 마침내 그림이 완성되니까.

우리는 완성된 그림이 어떤 모습인지 모르고 그림 조각 맞추기 놀이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고통이나 슬픔이라는 삶의 조각을 가지고 그들의 아름다운 삶의 그림을 완성시키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 삶의 조각들은 전체 인생이라는 그림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결국 그 조각들이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수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아름다움은 삶의 조각들을 – 그것이 비록 어둡고 칙칙한 색깔이라고 하더라도 – 부정하는 사람들은 결코 발견할 수 없다. 고통이나 슬픔이라는 삶의 조각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종의 커다란 힘이다. 고통이나 슬픔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지혜를 배우면서 우리의 삶을 완성시켜 나가야 하리라.

 

어머니의 선택

 어머니의 팔순 생신을 앞두고 나는 어머니께 생신 날 무엇을 하고 싶으신지 여쭈어 보았다. 뜻밖에도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자유의 여신상에 올라가고 싶다. 네가 같이 올라가겠니?”

“거기 엘리베이터가 있어요. 엘리베이터로 올라가겠다는 말씀이지요?”

“아니다. 나는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고 싶구나.”

어머니는 거의 80년 가까운 세월을 뉴욕에 사셨지만 한 번도 자유의 여신상을 걸어서 올라가신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다섯 살 때 러시아에서 배를 타고 뉴욕 항을 통해 이민을 오셨다. 어머니는 처음 뉴욕 항에 배를 타고 들어오셨을 때 우뚝 서 있던 자유의 여신상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이제 심장이 좋지 않으셔서 약을 복용하고 계신다. 자유의 여신상 꼭대기까지는 높은 계단이 342개나 된다. 그러나 우리 모녀는 용감했다. 한 번에 서너 개의 계단을 올라간 다음 쉬고 다시 서너 개씩 올라가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가 복용하는 약과 물을 준비한다면 하루 종일 걸리더라도 결국 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 드리자 어머니는 무척 기뻐하셨다.

여섯 시간 동안 자유의 여신상의 계단을 올라가면서 나는 몇 번이고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를 했다. 어휴! 내가 어쩌다가 심장병이 있는 팔순 노인을 데리고 342개나 되는 계단을 밟으며 자유의 여신상에 올라가는 정신 나간 짓을 하고 있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바로 이것이 어머니가 원하신 일이었다는 생각 하나로 계속해서 한 계단씩 오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비록 협심증을 앓고 있지만 강철 같은 의지를 지닌 분이셨다.

마침내 이제 정상까지는 불과 몇 개의 계단만을 남겨 놓고 쉬면서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왜 우리가 진작 여기를 올라와 볼 생각을 못했지?”

어머니는 정말 힘이 드셔서 마지막 몇 개의 계단을 원망스럽게 바라보셨지만, 이제 당신이 원하시던 일을 해내시게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셨다.

어머니와 함께 자유의 여신상을 올라갔던 이 획기적인 사건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내 삶을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후회 없이 살았는지를 반성하게 되었다. 때로는 힘들게 올라가야 하는 인생의 높은 계단에 대해 화가 나기도 했지만 결국은 그 높은 계단도 내가 한 걸음씩 올라갔어야 했음을 진작 깨달았으면 좀더 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인생을 살면서 낡은 방식을 버리고 자유롭게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스타일이나 자기 기대나 남들의 시선에 매이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비록 한 번에 서너 계단씩밖에 오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진실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이 우리에게 주는 참 은총이다.

 

레이첼로 불러 주기

 나의 원래 이름은 레이첼 이다. 외할머니의 이름을 받았다. 그런데 50세가 될 때까지도 사람들은 나오미라고 불렀다. 40대 중반이었을 때 당시 85세였던 어머니가 그 당시 아주 어렵고 성공률이 낮은 특별한 심장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 후 처음 며칠 동안은 의식불명 상태였다가 나중에서야 조금 의식이 돌아왔지만 호흡 보조기에 의존해서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의식을 되찾았다고 하지만 완전한 것은 아니어서 외동딸인 나도 잘 알아보지 못했다. 환각 상태가 있어서 침대에 벌레가 기어 올라오는 것을 보거나 등 뒤로 물이 흐르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내 이름조차도 잘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주로 과거의 아주 긴 이야기를 늘어놓으시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당신의 어머니에 대해 말씀하셨다. 외할머니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성녀로 생각했을 정도로 좋은 분이셨다는 것과 겸손하고 상냥한 분이셨다고 말씀하셨다. 러시아에서 가난한 시절을 보낼 때 가족들이 당했던 멸시와 모욕에도 당신의 어머니는 언제나 그들을 연민의 마음으로 대하셨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은 조금씩 회복되었지만 정신은 여전히 오락가락했다. 간호사들은 어머니가 자기들을 다른 사람으로 잘못 알아볼 때마다 정정해 주었다. 어머니는 새가 병실에서 울면서 날고 있다고 하면, 간호사들은 여기에 새는 없다고 했다. 간호사들은 나에게도 계속 어머니에게 정정시켜 드리라고 하면서 그렇게 해야 현실 세계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중환자실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만났던 날을 기억하고 있다. 그날 나는 인사를 드리며 나를 기억하는지를 여쭈었다. 따뜻한 목소리로.

“물론이지. 너는 나의 사랑스러운 딸이지” 라고 말씀하셨다.

안심을 하면서 침대 곁에 놓여 있던 빈 의자에 앉으려고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애야, 거기는 앉지 마라.”

의자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면서 물었다.

“왜 그러세요?”

“응, 내 어머니께서 앉아 계신단다.”

놀라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내가 볼 수 없는 어떤 것을 보고 계시는 것이 분명했다. 계속 잘못 말씀하시는 것을 정정시켜 주면서 어머니를 돌보아온 간호사가 못마땅해 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얼른 다른 의자를 가지고 와서 앉았다. 어머니는 나를 바라보다가 아주 다정한 눈빛으로 빈 의자를 바라보셨다. 어머닌 처음으로 나의 원래 이름인 ‘레이첼’로 나를 부르더니 당신의 어머니에게 나를 소개했다.

“어머니, 얘가 어머니의 이름을 딴 레이첼이에요.”

어머니는 당신의 어머니에게 나에 대해 말씀을 시작하셨다. 실제로 외할머니가 거기에 앉아 계시는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나는 왜 그분을 눈으로 볼 수 없는지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였다. 감동적이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멈추고는 당신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계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당신이 어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를 내게 들려주셨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이름을 따서 나에게 이름을 지어 준 이유는 내가 당신의 어머니처럼 마음이 따뜻하고 상냥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이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런데 아버지가 나를 ‘나오미’ 라는 이름으로 부르신 거에 대해 미안하다고 하셨다.

오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지쳤던 어머니는 눈을 감으셨다가 잠이 든 것 같았다. 그런데 다시 눈을 뜨고는 나와 빈 의자를 바라보더니 말씀하셨다.

“어머니와 레이첼이 여기 함께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 이어서 말씀하셨다.

“두 레이첼 중 한 사람이 저를 집으로 데려 가겠지요.”

다시 눈을 감고는 안심하신 듯이 잠으로 빠져드셨다.

당시에는 이 경험이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어머니에게는 깊은 위로가 되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 아주 여러 번 이 장면을 회상했다. 나는 1950년대에 여성으로는 드물게 의과 대학에 들어갔고, 60년대에는 스탠퍼드 대학교 의과 대학의 교수가 된 몇 안 되는 여성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한계와 도전을 다루는 전문가가 되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성공은 외할머니의 따뜻한 마음과 상냥함을 통해 이룬 것이 아니었다.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성공에도 불구하고 진정 중요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살았다는 느낌이다. 50세가 되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이제 나를 ‘나오미’ 가 아닌 ‘레이첼’ 로 불러 주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나는 성공한 의사 ‘나오미’가 아니라 마음이 따뜻한 인간 ‘레이첼’ 로 살기를 원한다.

 

 

IV 새옹지마…

 

새옹지마

 위기의 상황이나 새로운 발견이나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다. 그 순간에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기도 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해 가기도 한다.

 헬렌 은 목 척추 암에서 회복된 지 벌써 8년째다. 암 치료 중에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났는데 치료가 끝난 후에도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자주 찾아왔다. 헬렌은 외모에 무척 신경을 쓰는 아름다운 여성이다. 항암치료 중에도 손톱을 다듬고 멋진 가발을 쓰고 다녔다. 소녀였을 때부터 화장을 했으며 결혼을 한 후에는 항상 남편보다 30분 먼저 일어나서 화장을 하고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난 후에 남편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여성이었다.

어느 스트레스에 관한 연구 결과를 보면 실직했을 때와 승진했을 때의 스트레스 지수가 같고, 결혼했을 때와 이혼했을 때의 지수도 같다고 했다. 아마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것을 잃고 얻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변화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헬렌은 약혼을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나를 찾아왔다. 그녀의 약혼자는 성실하고 지적이고 유머도 있는 아주 괜찮은 남자라고 했다. 사업에도 성공한 능력 있는 사람이어서 결혼 상대로는 거의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만 열정이 없는 것, 그 한 가지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즐겁지만 가끔 엉뚱한 말로 분위기를 깨기도 하고 입맞춤을 할 때조차 자신에게 해도 괜찮은지 묻는다고 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정말 자신이 원하는 사람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며 조언을 구하러 왔었는데 불과 며칠 후에 내가 조언을 해 주지 않아도 되는 일이 벌어졌다.

1989년 10월 17일에 발생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의 지진이 그녀의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그날 오후 그녀는 혼자 샌프란시스코의 시내에 있는 백화점에서 약혼자와 함께 갈 파티에서 입을 드레스를 고르고 있었다. 핑크색 실크 드레스를 고르고, 입어보기 위해 드레싱 룸으로 갔다. 고급 백화점이어서 각 드레싱 룸은 개인 옷장처럼 열쇠가 있어서 그녀는 자신의 물건을 그곳에 두고는 드레스를 입은 채 드레스와 어울리는 구두를 사기 위해 7층에 있는 구두 코너에 갔고 구두를 골라 신어 보는 순간에 지진이 일어났다.

갑자기 정전이 되었고 백화점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건물이 심하게 흔들려 그녀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어둠 속에서 창문이 깨어지고 진열장들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지진이 어느 정도 멈추고 나서야 겨우 백화점 정문 앞까지 내려 올 수 있었다. 사방으로 깨어진 유리 파편들이 널려 있어 도저히 물건을 찾으러 다시 백화점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지갑과 차 열쇠는 드레싱 룸에 두고 온 핸드백 안에 있었다. 공중 전화도 고장이었다.

헬렌은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 본 적이 없었다. 잠시 도움을 청할까 망설였지만 그냥 약혼자의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그이 집은 샌프란시스코 북쪽 산 라파엘에 있었다. 10km 정도의 먼 길인 데다 조금 전 고른 하이힐을 신고 걷다가 발이 아파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자 신발을 벗어 던져 버렸다. 건물들이 무너지고 소방관들이 뿌린 물이 고여서 더러워진 거리를 벽돌 조각들과 유리 파편을 헤치며 걸었다. 스타킹은 찢어지고 발에서는 피가 흘렀다. 거의 일곱 시간이 걸려 자정이 지나서야 집에 도착하였다. 온 몸은 땀으로 젖어 먼지투성이였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문을 두드리자 약혼자가 나왔다. 그는 지금까지 그녀의 빗지 않은 머리를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자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안고 거실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입맞춤을 해도 되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에 키스를 퍼부었다. 그들은 그 모습 그대로 거실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헬렌은 자기의 연인이 그런 열정을 지닌 남자인지를 몰랐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 이유는 자신도 몰랐다. 그런 열정이 있으면서 왜 입맞춤을 할 때도 일일이 물어보았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짙게 칠한 립스틱이 지워질까 봐 겁나서였지.”

그녀는 자신이 예전처럼 완벽주의자가 되려고 하면 그날 문을 열어준 약혼자의 눈을 떠올리게 된다고 했다. 그 눈은 사랑으로 가득 찬 눈빛이었다. 그 눈 속에 담긴 그 사랑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과 진정으로 가까워지기를 원한다면 상처받기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면 상대방이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다름 사람과 마음으로 가까워지고 친밀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불완전한 모습이나 약점을 보여 줄 때다. 때로는 우리의 약한 모습인 병이나 또 다른 고통을 통해 더 깊은 인간 관계가 이루어진다.

한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게 되는 것은 크나큰 은총 안에서 이루어진다. 은총이 없이는 자신의 결점까지도 상대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용기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사랑은 그런 용기를 지닌 사람의 특권이다.

 

어둠을 뚫고 날아오른 새

생존을 위한 일과 인간다운 참 삶을 위한 일은 다르다. 암 전문 상담가인 나는 환자들이 이 둘의 차이를 인식하게 하여 더 이상 생존의 굴레에서 허덕이지 않고 인간다운 참 삶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상담을 통해서 알게 된 뛰어난 미모와 세련미를 지닌 베트남 여인 애나는 생존을 위한 삶에서 인간다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만난 환자들 중에서 가장 극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녀와 함께하는 동안 결코 치유될 수 없을 것 같은 영혼의 아픔도 은총으로 치유될 수 있음을 체험하였다.

당시 그녀는 난소암으로 항암 치료를 받기 시작했을 때였지만, 우리가 처음 만나 나눈 이야기는 그녀의 ‘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자신은 아주 나쁜 사람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 그녀는, 자신은 억세고 거칠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고 이기적이며 사랑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침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자신에 대해 최악의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론, 진짜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이 이기적인지조차 모르며 오히려 자신이 최고인 줄 착각한다. 자신을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절대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그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수치심 가득 찬 목소리로 애나는 자기에게는 사랑의 마음이라곤 전혀 없으며, 사업에 성공한 것은 자신이 얼마나 몰인정한 인간이지를 잘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안타까운 것은 그녀가 암에 걸린 것은 과거 자신의 나쁜 행동 때문이며, 낫게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믿는 것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이곳을 찾은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 뒤 내가 말했다.

“애나,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처음부터 이야기해 주지 않겠어요?”

그녀의 이야기를 다 듣는 데는 무려 여덟 달이 걸렸다. 베트남에서 태어나 고아가 된 그녀는 11세에 미국의 좋은 가정에 입양되었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잘 알지 못하는 양부모님과 미국에서 새 삶을 시작했지만 과거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고 했다.

아주 작고 낮은 목소리로 베트남 전쟁 동안에 살아온 어린 시절 – 부모님들이 베트콩에서 살해당한 시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그녀가 네 살 때 베트콩들이 집에 들이닥쳤고 그녀의 부모는 잽싸게 그녀를 부엌의 쌀통에 숨겼다. 베트콩들이 가고 나서 쌀통에서 나왔을 때 그녀는 가족들의 목이 잘려 있는 주검을 보았다고 했다. 나는 듣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휩싸였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자비와 인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야만의 시기였다. 처음 말문을 열 때 주저하던 모습은 이야기를 할수록 점점 아주 솔직해졌다. 그녀는 혼자였고 굶주렸고 살아남기 위해 마치 들짐승처럼 변해 갔다. 가족을 잃은 아이들 패거리에 휩쓸려 도둑질을 했고 적에게 사람을 팔아 넘기기도 했고 심지어는 살인에도 가담했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많은 일들을 겪었다. 그런 일들은 생존을 위해 모습을 바꾸는 식물의 포자처럼 그녀를 바꾸어 놓았다.

몇 주 동안 계속된 만남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에게 한마디도 해 줄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자신은 ‘어둠의 아이’ 였다고 자학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그녀의 분노와 번민을 덜어 주고 위로하고 싶었지만 연민의 마음으로 들어 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두려움에 휩싸이곤 했다. 때론 침묵의 긴 시간이 흐르기도 하면서 그녀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고 그 이야기들은 너무나 절망스럽고 최악의 것이었다.

어느 날 그녀에게 물었다.

“이제 절망스러웠던 과거의 벽을 부수어 버리고 나올 수 있겠어요?”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정말 모르겠다고 했다. 나 역시 도대체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 가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한쪽 발은 잔잔한 호수에 담그고 있지만 다른 쪽 발은 극심한 격랑의 폭포 속에 휘둘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고아가 되어본 적도, 생명의 위험 속에 쫓겨 본 적도, 굶주려 본 적도, 구타를 당해 본 적도 없지만 그녀의 이야기에서 나의 내면이 어둠을 들추는 낮은 휘파람 소리를 들었고 내 안에도 어떤 ‘어둠’ 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감지했다. 나는 그 느낌의 정확한 정체를 알고 싶었다. 그것을 알게 된다면 그녀를 좀더 가까이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어둠’을 부둥켜 안고 위로해 주고 싶었고 진정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지만, 내가 그것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지만 처음 그녀의 고백을 들은 사람으로서 그녀의 과거로의 여정에 동행은 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그녀는 이야기 도중 “제 안에는 그런 어둠이 자리하고 있어요” 하면서 자주 울음을 터뜨렸다. 어쩌면 그녀에게 찾아온 암은 그녀를 어두운 과거에서 해방시켜 진정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 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암은 그녀가 두려움 중에서도 내심 은근히 기다려온 죄에 대한 고백과 보속의 시간이라고 생각되며, 지금껏 두려움과 죄의식에 갇혀 살아온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해주는 하느님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이야기 한 대목이 끝날 때마다 나는 어떻게 그런 기억을 품고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참으로 놀랍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많은 위로가 되는군요. 이제는… 덜 외로워요.”

그녀가 대답했고,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은 그녀에게 경이로움을 느꼈다. 고통 중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녀와 같은 엄청난 고통을 지닌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덫에 걸린 짐승이 이빨로 자신의 다리를 물어뜯고 탈출하듯이 그녀도 그렇게 살아남았다.

이제 그녀의 이야기는 과거에서 현재로 옮겨왔다. 몰인정하게 사업을 경영한 이야기와 자신의 만족을 위해 어떻게 남을 이용했는지를 말했다. 남을 경멸하고 화를 잘 냈으며 불친절했고 신뢰하지 않았고 끝없이 경쟁했다고 했다. 지금도 그녀는 혼자였고 과거에 비해 별로 달라져 보이지 않았으며 아직까지도 참 삶을 사로 있다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녀와의 상담을 마친 어느 날,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나 역시 참 삶을 살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면서 살아온 나날이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늘 고심하면서도 참다운 삶을 사는 것에 대해선 늘 뒷전으로 미뤄 두지는 않았을까?

내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 나는 정작 소중한 무엇을 희생하면서 살아 왔다는 생각과 더불어 많은 경우에 자신을 방어하기에만 급급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와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지만 생존을 위해 싸워 왔다는 그 부분은 같았다. 오히려 그녀가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다음 그녀를 만났을 때, “애나, 당신은 이제까지는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었어요. 이제는 더 이상 생존을 위해 싸울 필요가 없어요” 라는 나의 말에, 무슨 뜻인지 의아해 하는 그녀에게 나는 달리 더 이상 해 줄 말은 없었다.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저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어요.”

“이제 과거에서 자유로워졌나요?”

“아뇨… 전 지금 텅 비어 버린 것 같아요.”

“무슨 뜻인지 자세히 말해 주겠어요?”

“이제는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 그래서 두려워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는 웃고 있었다.

“당신이 해 준 이야기는 결코 잊지 않을 거예요. 두렵지만 이제 생존을 위한 삶을 그만두고 제대로 된 참 삶을 살 거예요.”

그 다음 만남에서는 그녀의 첫 꿈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고 거울은 자신의 내면을 꿰뚫고 있었다. 그 거울을 통해 자신의 움직임을 보았으며 거울을 통과하여 내면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다. 점점 더 깊이 자기의 어둠을 행해 나아갔고 그 길은 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멀리서 아주 작은 점 같은 것이 보였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장미였다. 싱싱한 줄기의 갓 피어난 장미꽃.

여덟 달 만에 처음으로 그녀는 고통 없는 울음을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장미였어요. 분명하게 볼 수 있었어요. 잎과 가시가 돋은 싱싱한 줄기에 꽃이 막 피어난 모습이었어요.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분홍빛 장미였어요.”

나는 그 꿈이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그 장미는 바로 저예요. 그 꽃은 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아직 거기 그대로 있었어요.”

장미는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마음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상징이다. 그리스도교 문화와 힌두교 문화와 여러 나라의 신화나 동화에서 그런 의미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애나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면서 자기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랜 시간 동안 애나는 과거의 어둠 속에 있었고 어둠을 통해 자기 방어를 했고 그 어둠을 자기와 동일시했다. 마침내 기억한 꿈속의 장미는 바로 그녀가 지닌 본래의 모습이었다. 잠재 의식 속에 숨겨진 자기의 본래 모습이 꿈을 통해 기억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 동안 부정했지만 무의식 속에 간직해온 ‘자신’이었다. 이제 그녀는 순수한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쏟아지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이제 그녀가 과거의 기억에서 자유로워졌음을 알았다.

 

경험 그 자체보다 그 경험이 주는 잘못된 생각이 우리를 어둠의 감옥에 가두어 버린다. 그러나 어둠이 아무리 깊이 자리하고 있을지라도 은총의 빛 앞에 마음을 열 수 있다면 어둠은 사라진다.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은 없다. ‘기적으로의 여정’ 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나를 용서하고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해 낼 때, 나는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 내가 보는 모든 사물들을 축복할 수 있다.”

마음을 열 수 있다면 자유를 얻게 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또 하나의 분홍빛 장미

 이체크 도 또 다른 살아남은 사람이다. 그는 1945년 어린 나이에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았고, 그 후 미국으로 건너와 열심히 공부해서 지금은 아주 존경 받는 물리학자가 된 사람이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의 말에서 들려오는 슬라브 계통의 액센트에서 우리 집안의 몇몇 어른들이 생각나서 굉장히 정겹게 들렸다.

2년 전에 그는 암 진단을 받았고 최근에는 암환자들을 위한 피정(역주: 피세정념 (避世靜念)의 준말로 세속의 번잡함을 떠나 조용한 곳에서 기도와 쉼의 시간을 갖는 가톨릭교회에서 쓰는 용어)에도 참여했다. 그 피정은 환자가 암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을 지녔는지를 알아보고, 환자가 암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과 신뢰를 갖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피정은 커밍웰이라는 곳에 있는 아주 조용하고 편안한 피정의 집에서 진행되었다. 그 피정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는데 이체크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피정을 하게 된 것을 몹시 당황스러워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어요? 낯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그는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을 몹시 불편해 했다. 탁월한 물리학자이지만 혼자 연구만 했고 학생들은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서로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하고 인사를 나누는 데 기꺼이 참여했고 그들과 서로 가벼운 포옹을 하기도 했다.

피정 기간은 7박 8일이었다. 매일 침묵 속에서 일과가 이루어진다. 나흘 정도 지나면 침묵을 통해서 서서히 내적인 고요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매일 하는 요가의 맛도 조금씩 알게 되고, 문득 어떤 깨달음이나 통찰이 오기도 한다. 이런 내적인 고요를 통해서 어떤 사람들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기도 한다.

나흘째 되던 날, 이체크는 오전에 있었던 묵상 시간에 어떤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눈을 감고 있었는데 아주 아름답고 부드러운 짙은 분홍색의 빛을 보았다. 그 빛이 자기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신비로운 그 빛은 바로 자신의 가슴에서 나오고 있었다. 나중에 그것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할 때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장미의 속 같았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에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나는 그 장미가 바로 그 자신을 상징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성은 폴란드 말로 ‘작은 장미’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그 빛이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빛은 마치 큰 출혈처럼 그의 가슴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그는 실제로 몸에서 출혈이 되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이체크는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 그 후에 낯선 나라인 미국으로 왔고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그는 매우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지만 어린 시절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때문에 대인 공포증이 있었다. 결코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질 못했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방법을 알지 못한 채 가족들만 사랑했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었지만 불안했다. 그러나 그 동안 다른 사람들과 친교를 맺지 못하면서 사는 것이 왠지 모르게 불안했었다는 것을 이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는 그것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피정을 도와주던 나와 다른 지도자들은 이체크가 불편하게 느끼는 것에 대해 우리가 늘 하는 방식으로 그를 도와주었다. 우리는 그에게 불편하게 느끼지 말라고 말해 주지도 않았고, 그가 했던 체험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거나 해석해 주지도 않았다. 그렇게 하는 대신에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들어주면서 다만 이체크 자신이 그것의 의미를 헤아려 보고, 깨달아 가도록 기다려 주고 격려해 주었다. 며칠이 지나자 그의 모습이 훨씬 편안해 보였고 마음을 많이 열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피정 마지막 날에 나는 마무리를 지으려고 이체크와 개인 면담을 했다. 나는 그가 피정 나흘째의 체험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지금은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그러면서 그 전날 해변을 걸으며 마음속으로 하느님과 나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느님께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여쭈어 보았고 그분에게 어떤 대답을 들은 것처럼 느꼈고 커다란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나는 놀라며 물었다.

“하느님이 무슨 대답을 해 주셨는데요?”

그는 다시 웃었다.

“아, 제가 하느님께 물었지요. ‘하느님, 제가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괜찮은가요?’ 그러자, 하느님이 말씀하셨지요. ‘괜찮고말고. 이체크야, 세상에 낯선 사람이란 없단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뿐이지. 나는 사람을 지을 때 낯선 사람으로 짓지 않았단다.”

 

치유에는 어떤 기준이나 경계선도 없다. 은총은 소리 없이 다가온다.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며, 하느님께서 우리의 내면 깊은 곳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면서 치유가 일어난다. 애나가 베트남에서 겪었던 체험을 통해 마음의 문을 닫았던 것처럼 이체크도 똑같이 강제 수용소에서 겪었던 아픈 경험 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았었다. 이제 그가 마음의 문을 열면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터득했듯이 그의 몸에 찾아온 암이라는 병도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그에게 찾아온 암을 이겨 내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살면서 나름대로 익혀왔던 전략은 버리고 새롭게 적응해 나가야 하리라.

생명을 위협하는 암이라는 병은 어쩌면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보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친구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진정 자유로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어둠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 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 (창세 1,2)

 

빛은 치유의 힘을 상징한다. 자연 치유에 관한 많은 책들을 읽어보면, 대개 치유를 위한 명상과 상상의 이미지로 태양을 언급한다. 이런 책들을 읽은 환자들은 빛이 치유의 원천으로 자신에게 상징화되기를 기대하지만 모든 일이 항상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신비롭게 우리에게 다가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스티브는 자신이 암에 걸렸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치료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그이 담당 의사가 나에게 그와 상담해 줄 것을 의뢰했다. 그는 개복 수술을 받은 지 며칠 되지 않았음에도 일부러 무거운 상자를 들기도 하고, 여행을 떠나면서 약을 가져가지 않거나 하는 등의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했다. 그래서 꼭 필요한 치료가 계속 지연되었고 그는 필요 이상의 큰 고통을 겪었다.

나에게 상담을 하러 오기 직전에는 약물 중독이 되어서 오른팔을 거의 쓸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의사가 처방해준 약은 전혀 먹지 않고 엉뚱하게 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다른 약을 사흘 동안이나 과다 복용했던 것이다. 스티브가 자꾸 물건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알게 된 그의 아내가 담당의사에게 전화를 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담당 의사가 잘못하면 팔에 있는 신경이 모두 마비되어 팔을 다시는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을 때에야 놀라서 나에게 상담을 받기로 했다.

첫 번째 상담에서 그는 자신의 암을 이렇게 표현했다.

“갑자기 내 삶의 한가운데 있는 블랙홀이 계속해서 저를 끌어 당기고 있어요.”

일반적인 대화에서 하나의 이미지가 나타난다는 것은 무심히 듣고 넘길 수 없는, 그 사람의 무의식 속에 잠재하고 있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꿈의 내용이 그 사람의 깊은 내면의 태도나 신념 등을 반영하는 것처럼 어떤 이미지를 연상하는 것은 무의식의 세계를 나타내 주는 표현이다.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꿈의 어떤 신비한 존재가 우리의 비밀을 다른 사람들에게 낮게 속삭이기도 한다.

스티브가 말하는 끌어당기는 그 힘은, 말하자면 그의 삶에 갑자기 찾아온 암이라는 병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 필사적인 저항을 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에게는 병의 징후를 받아들이거나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는 것은 자기를 끌어당기고 있는 그 힘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했던 말을 이미지화하여 주의를 집중하게 하면서 그것이 그의 삶의 아주 중요한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항하는 데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기 때문에 살아 갈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보였다. 나는 그 블랙홀 안에 무엇이 있는지 물었다. 그가 말했다.

“어둠뿐이에요.”

나는 그에게 상상 속에서 함께 그 블랙홀을 탐험해 보자고 초대했다. 그 홀 안에 무엇이 있고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기 위해서 이번에는 저항하지 말고 그냥 블랙홀에 끌려 들어가도록 맡겨보자고 했다.

스티브는 한참 동안 망설이더니 드디어 눈을 감고 그의 상상 속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따라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깊은 어둠에 싸여 있는 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상했다. 점점 깊은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다음은 한 마디를 하고 몇 분의 침묵이 흐른 후에 다시 한 마디씩 했던 말들을 노트에 적어둔 것이다.

 

어둠입니다. 아주 지독한 어둠입니다. 제가 어둠 위를 떠다니고 있습니다. 어둠은 아주 부드럽고.. 포근합니다.. 어둠이 저를 지탱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네요..(한숨)

저는 지쳤어요.

저는 이제 쉬고 있습니다… 완전히 쉬고 있습니다.

세포 하나하나 모두 쉬고 있어요.

세포 하나하나가 열리고 저는 채워지고 있습니다.

삶이 가득 차오르고 있습니다.

닫혀 있었기에 채울 수도 없었지요.. 이제 손에서 놓을게요.

저는 어둠 속에서 열 수 있습니다.

주위에 삶이 가득해요.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도 괜찮을 거예요.

 

암에 걸려서 치료를 받게 된 것에 대해 분노로 가득 찬 또 다른 상담 환자가 있었다.

“당신의 치유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라는 질문에 그는 아주 거칠게 “없어요” 라고 대답했다. 나는 “없어요” 라는 말의 구체적인 의미를 표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끝없는 어둠’ 이라고 했다. 나는 어둠이 지닌 긍정적인 힘에 대해 설명해 주면서 눈을 감고 그 어둠을 느껴보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의 얼굴이 점점 편안해지자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를 물었다. 그도 역시 한 마디 말을 하고는 한참 동안 말없이 있다가 다시 한 마디씩 했고 나는 그 내용을 노트에 적어 두었다.

 

어둠에 싸여 있어요.

추락하지 않아요. 어둠이 저를 받쳐주고 있어요. 저는 어둠 속에 있어요.

어둠 속에 감싸여 있어요.

부드러운 .. 어둠을 .. 느낄 수 있어요 (한숨)

여기는 안전해요.

저는 안전한 곳이 필요해요.

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이래 편안한 적이 없었어요. (다시 한숨)

이제는 좀 쉬어야겠어요. 저는 지쳤거든요.

여기서는 고통이 없네요. 배고픔도 없고요. 필요한 것도 없어요.

 

 

나는 그에게 긴장을 완전히 풀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는 무아지경의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고 나는 가벼운 담요를 덮어주었다. 잠시 후 잠에서 깨어난 그는 커다란 심장 박동 같은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것은 깊은 위로의 체험이었다. 나는 좀더 편안하게 머물러 보라고 격려했다. 조금 지나자 그는 “엄마, 엄마”를 부르며 낮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다른 여자 혼자는 자기의 꿈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아주 익숙한 거리의 모퉁이를 막 돌아서는 데 갑자기 검은 망토를 두른 어떤 형체가 나타났다고 했다. 노트에 적어둔 그녀의 말은 다음과 같다.

 

도와달라고 소리쳐 보지만 아무도 없다.

이 어둠의 형제 앞에 나 혼자 있다. 내가 도망치려고 돌아서면, 어둠의 망토가 나를 덮친다.

벗어나려고 몸부림쳐 보지만 아무도 없고 어둠만이 감싸고 있을 뿐이다.

검은 색이다. 아주 짙은 검은 색이지만 나는 볼 수 있다…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어둠이 영원히 계속 이어진다. 아주 조용하고.. 완전히 정적에 싸여 있다.

마치 벨벳의 촉감처럼 부드럽다. 나는 추락하지 않는다.

나는 끝없이 어둠 속에서 떠다니고 있다.

떠다니면서… 나는 자유롭다.

마치 중력이 없는 것 같다.

몸은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오랫동안 침묵 후에)

어둠은 사랑과 같다. 여기서는 어둠이 편안하다.

어둠이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고, 어떤 판단도 하지 않는다.

나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나는 그냥 나일 뿐.

 

 

내가 예로 든 위의 환자들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체험을 한 또 다른 많은 환자들이 상상 속에서 갖는 이미지와 그 형상들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우리는 대개 건강과 병을 선과 악이라는 양 극단에 놓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언어들이 양자가 마치 동일한 것처럼 표현한다.

우리가 아플 때는 “나는 지금 상태가 나빠요” 라고 하고 병에서 회복이 되면 “나는 이제 좋아졌어요” 라고 말한다. 어둠과 빛도 이와 같은 양 극단의 연장선에 있다. 좋은 기능으로서의 치유는 빛과 연관되고, 나쁜 기능으로서의 병은 어둠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오랜 세월 동안 어둠은 주로 나쁜 이미지로 여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유의 이미지가 이렇게 어둠 안에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연금술의 비법에 따르면 어둠은 정화와 변형을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한다. 연금술사들은 밀봉된 용기 안에 불순물이 들어 있는 광성을 넣고 그것을 순수한 금으로 바꾸기 위해서 완전한 어둠을 만들어 놓고 기다린다고 한다.

빛이 남성적인 에너지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표상이라면, 어둠은 여성적인 에너지를 대변한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치유의 경험은 어쩌면 어둠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리라. 어둠은 최초의 상태다.

창조를 보면 처음에는 단지 어둠만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다. 모든 창조는 어둠에서 시작되었다. 어둠 속에서 “빛이 있어라” 고 말씀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우리의 몸도 처음에 어둠으로부터 형성된다. 작은 씨로서 어둠 속에서 자라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의 상상 속에서 어머니 자궁의 깊은 어둠 속의 생명의 시작을 기억함으로써 치유를 경험한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존재한다. 하느님은 빛으로 이루어진 낯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어둠으로 이루어진 밤은 새로운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이고 치유의 시간이기도 하다.

 

선물

의사이면서 암에 걸린 환자 한 사람이 상기된 얼굴로 찾아왔다. 내가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그는 아주 근사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며 인도의 아름다운 신화를 들려주었다.

 

힌두교의 부부 신인 시바와 사크티는 하늘의 신전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며 인간들이 겪는 삶의 미묘함과 도전과 피할 수 없는 고통 등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남루한 옷차림에 다 낡아 떨어져 끈으로 묶은 신발을 신고 길을 가가 있는 한 불쌍한 남자를 보게 된 여신 사크니는 연민이 생겨 남편인 시바에게 그 남자에게 금을 조금 줄 것을 청하였다. 한참 동안 그 남자를 바라보던 시바가 말했다.

“사랑하는 사크티, 나는 저 남자에게 금을 줄 수 없다오.”

놀란 사크티가 물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우주의 신인 당신께서 간단한 그 일을 할 수 없다니요?”

시바가 말했다.

“그는 아직 금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오.”

“그냥 그가 가는 길에 금 한 덩이만 놓아주세요.” 화가 난 사크티의 말이었다.

“그건 간단하지만 그에게 별 의미 없는 일이오.”

사정을 하는 아내의 말을 들어 주기로 한 시바는 그 남자가 가고 있는 길 앞에 금 한 자루를 떨어뜨려 놓았다.

‘오늘은 어디서 끼니를 해결하지? 저녁은 또 굶어야 하는가?’ 하는 상념에 빠져 길을 걷던 그는 막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무엇인가가 들어 있는 자루를 보았다.

“제법 큰 돌이 놓여 있네. 다행이구나. 보지 못했으면 신발이 완전히 못 신게 될 뻔했군.”

그는 조심스럽게 금이 든 자루를 피해서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신은 우리가 가는 길에 금이 든 자루를 떨어뜨려 놓곤 한다. 하지만 그 금 자루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에게 물었다.

“신이 당신에게 던져 준 금 자루를 알아보고는 그것을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한 적이 있어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예, 있지요. 그것은 바로 나에게 찾아온 ‘암’ 입니다. 선생님은 이미 아시면서 묻고 계시지요?”

그렇다. 나는 그 물음을 던지면서 그에게 찾아온 암은 어쩌면 그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금 자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암은 그에게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신의 선물이었다.

 

가로 놓인 산

우리는 너무 쉽게 소중한 것을 잃으면서 살아간다. 환자 한 사람은 자신이 암에 걸리기 전에 아들과 함께 보낸 시간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함께 등산을 하기를 좋아했지요. 때로는 아주 어려운 암벽 등반도 함께 했어요. 서로 말 한마디 없이 오직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서 온 신경을 집중해서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지요. 정상에 오른 후, 내려 올 때는 각자 다른 길로 내려와서 각자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어요. 우리는 여러 번 함께 등산을 했어요. 생각해 보니 등산이나 암벽 등반에 대한 기억들은 많이 떠오르는데 함께 등산을 하면서 아들이 내게 했던 말이나 내가 아들에게 했던 말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억이 없어요. 함께 산을 올랐지만 실은 그냥 각자 등산에만 몰두했던 셈이었지요.”

그의 이야기는 아동 심리학에서는 소위, ‘평행선 놀이’ 라고 한다. 이것은 3~4세 아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놀이다. 이 나이의 아이들은 같은 모래 상자나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만, 함께 노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혼자서 논다. 한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그가 끝나기를 기다려서 다른 아이가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서로 함께 같이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서로 평행선을 달리듯이 상대의 놀이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자기 차례에 자기 놀이에만 집중한다.

나의 환자도 전에는 이들과의 관계가 마치 아이들의 ‘평생선 놀이’처럼 함께 등산을 갔지만 실제로는 별다른 유대감 없이 각자 등산이라는 활동에만 몰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들과의 관계가 전혀 달라졌다고 한다.

“저는 이제 많은 활동을 할 수가 없지요. 물론 등산도 못하고요. 그래서 그냥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지요. 저는 아들에게 그의 생활에 대해 묻고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를 묻기도 하지요. 저는 처음으로 아들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어요. 아들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할 때 삶에서 힘을 얻게 되는지 등을 말이에요. 아들도 저에게 질문을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지요. 저의 삶과 삶에 대해 느끼는 점을 말해 주기도 한답니다. 이제야 제가 아들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과 아들이 저와 이야기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원한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요. 전에는 정말 몰랐어요. 저는 제가 필요하니까 저와 등산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하거나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아무 것도 함께 활동 할 없지만 그가 그냥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가 함께 산을 오를 때에는 우리 사이에 놓여 있어 서로를 가리고 있던 산을 보지 못했던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은 그가 암에 걸리기 전의 아들과의 관계처럼 그런 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가족으로서 같은 집에서 숙식하고, 동료로서 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하지만, 서로 인간적인 별 유대감 없이 그냥 각자의 삶을 산다. 심지어는 부부도 함께 살지만 타인처럼 낯설게 느껴져서 외로움에 빠지기도 한다.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어떤가? 나란히 함께 가야 하는 밀접한 관계이지만 환자의 병에만 관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환자가 지닌 병의 증세가 어떤지,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 것인지 등에만 관심을 둘 뿐이다.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서로의 삶이 어떤지, 병 이외의 다른 삶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서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병’은 두 사람 사이에 산처럼 가로놓여 있어 각자 서로 완전히 혼자로 존재할 뿐이다.

 

 

V 마음을 열고 바라보는 세상…

 

마음을 열고 바라보는 세상

 상담을 하기 위해 나를 찾아온 많은 환자들은 자신들이 앓고 있는 암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의 대부분의 결론은 자신들이 심한 외로움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인간은 근원적으로 외로운 존재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그 자체로서의 누구인가 보다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능력에 따라 타인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고 느낀다.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 또한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신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갖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인과 관계를 맺고 가족을 형성하고 이웃과 더불어 살며 함께 일을 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들은 주변 사람들을 진정으로 알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며, 심지어는 가족까지도 서로 깊이 알고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그들의 주변 사람들 역시 자기를 제대로 알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그들이 이런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대부분 암에 걸리고 난 이후다.

역설적이게도 병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철저히 고립되는 체험을 하고 난 이후에야 서서히 이 ‘외로움’에서 치유가 시작된다. 이런 치유는 아주 서서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어떤 심사숙고가 있었다거나 이와 관련된 좋은 책을 읽었다거나 기도나 명상과 같은 특별한 수행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그들이 겪는 엄청난 고통의 체험을 통해 타인과 자신은 깊이 연관되어 있고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아는 감각이 생겨난다. 그런 감각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대해 진정 어린 이해를 하게 되면서 서서히 내적인 치유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느 날, 한 여인이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힘겹게 무릎으로 기어가고 있었는데 한 순간 마음이 열리더니 진정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보였다고 했다. 그녀는 골수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심한 화와 분노를 견딜 수가 없었다. 깊은 자기 연민과 외로움에 자살의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아프기 전에는 이렇게까지 격한 감정에 휩싸여 보지 않았기에 두려움과 커다란 고통 앞에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어두움 속에서 그 고통의 터널을 빠져 나오기 위해 힘겹게 몸부림을 치다가 그녀는 문득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자신을 타인으로부터 소회시킨 주범은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놀랍게도 바로 그 순간 다른 사람들과 깊이 연결되어 있는 자신을 느꼈다. 극심한 고통과 무력감의 한가운데서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이 바로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과 같으며, 다른 사람들의 기쁨 역시 자신의 기쁨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깨달음을 통해 그녀는 내적인 변화를 체험했다. 이제 그녀는 단지 자기의 고통만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깊은 관심과 사랑을 지니게 되었다.

이런 체험을 한 여러 사람들과 만나면서 나는 인간이 지닌 마음의 고유한 영역에 대해 깊은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마음은 단순히 사랑의 연가만을 부르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마음은 사랑의 감정을 뛰어넘어 진정한 삶을 체험하는 길이며, 사람과 사람을 서로 깊이 연결하여 서로 깊은 일치감을 이룰 수 있도록 해 주는 통로다. 이 여인과 같이, 마음을 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단순한 느낌보다도 더 심오한 차원이다. 그것은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의 상처까지도 치유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이다. 이런 차원에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체험하는 연대감으로 인해 보다 쉽게 서로를 용서하고 서로에 대해 연민을 지니고 서로 사랑하고 섬길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환자였던 그녀가 했던 말이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 있다.

“제가 솔직하게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 저는 제가 알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과 깊은 유대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만약 우리가 자신들이 겪는 고통과 기쁨 안에서 인간은 서로 서로가 뗄 수 없는 깊은 유대감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는 바뀌게 되고 우리는 더 이상 외로움 속에 혼자 머물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일의 의미를 발견하는 기쁨

 응급의학 전문의인 해리가 들려준 이야기다. 어느 날 그가 근무하는 복잡한 응급실에 막 출산을 앞두고 진통을 하는 산모가 실려 왔다. 간호사들은 서둘러서 산모를 응급실 베드에 옮기고 그를 호출했다. 그가 급히 응급실로 들어갔을 때 간호사들은 산부인과 의사를 호출하는 중이었는데 산부인과 전문의가 지금 이 병동에 있지 않다며, 호출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음을 알았다. 해리는 즉시 아기 받을 준비를 했다. 그는 아기를 받는 것을 아주 좋아했고, 언제나 그 일이 즐거웠다. 간호사들이 응급실에 딸린 분만 실에 분만 준비를 하고 그녀의 남편도 들어오게 하여 이내의 출산을 지켜보게 했다. 간호사들이 산모의 양쪽 다리를 붙들고 분만을 도왔다. 아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분만이 되었다. 해리는 아직 아이의 탯줄을 끊기 전에 왼쪽 팔로 아기를 안았다. 왼쪽 손으로 아기의 머리를 받친 채로 오른 손에 흡입 밸브를 들고 이기의 입과 코에 붙은 점액을 깨끗이 닦아 주는데 갑자기 아기가 눈을 뜨더니 자기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순간 해리는 전문의로서의 지식을 뛰어넘어 아주 단순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서 본 첫 번째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뜨거운 감동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지닌 사랑의 마음을 담아 그 아기를 환영하는 인사를 했다.

해리는 지금까지 수백 명의 아기를 받았다. 그는 언제나 아기를 받는 일을 기꺼이 했으며 신속히 결정하고 처리하는 자기의 탁월한 능력에 대해 자부심을 지니면서 그 일을 즐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전에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의 참 의미를 체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그 여자 아기가 자신이 진짜로 받은 첫 아기인 것 같았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아기를 받으면서도 분만에 관한 기술적인 측면, 즉 어떻게 분만해야 효과적인지를 판단하고, 일어날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하는 등의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에 몰두하느라고 아기가 눈을 뜨고 자기를 쳐다본 적이 있었는지 의식한 적이 없었고 더구나 아기의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는 의사로서 거기 있으면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지, 한 인간으로서 진정으로 그 자리에 함께 동참하지는 않았었다. 이제는 단지 의사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함께 동참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해리는 이제까지 인간으로서 깊은 유대를 맺을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을 얼마나 많이 놓쳤을까를 생각하면 커다란 아쉬움이 생긴다고 했다.

 

어떤 일이 갖는 개인적인 의미를 깨닫는다면, 일이나 인간관계나 심지어는 삶 자체의 체험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다. 빅터 프랭크는 자신의 강제 수용소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뛰어난 저서인 ‘의미에 대한 탐구’ 에서 말한다.

“생존 자체가 바로 의미를 추구하고 발견하는 데 달려 있다. 강제 수용소에서 그들이 겪고 있는 박해와 잔혹한 행위로 이어진 고난에 대해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추구하고자 애쓴 사람들이 그렇지 못했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의미를 추구하는 일은 매일 어려운 일을 하거나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실제적인 문제다. 의미야말로 진정한 힘이다. 의사들은 보통 뛰어난 능력에서 자기의 힘을 추구한다. 실제로 능력과 전문성이 의료계뿐만이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가장 중시되는 자질이다. 능력과 전문성이 중요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참 인간이 되는 데에는 충분하디 않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로버트 아싸지올리 는 재미있는 비유를 하나 만들었다. 어떤 사람이 14세기의 대성당을 짓고 있는 세 사람의 석공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첫 번째 석공에게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모면 모르겠냐는 듯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로 50cm, 세로 30cm의 돌을 자르고 있지 않소.” 아주 삶에 지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는 몇 년 동안 이 일을 해왔고 앞으로도 아마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게 될 것이오.”

두 번째 사람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두 번째 사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다르게 대답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돌을 직사각형으로 자르고 있지요. 나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지요. 내가 힘들게 일하지만 덕분에 내 가족은 그럭저럭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고 저는 아내와 자식들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꾸려 나가지요.”

세 번째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이 사람의 대답은 또 달랐고 우리는 이 사람의 대답에서 잠시 머물려 생각하게 된다. 그는 기쁜 표정으로 자랑스럽게 말했다. “저는 천 년 동안 거룩한 빛을 발하게 될 대성당을 짓는 데 참여할 영광을 받았지요.”

 

이 비유 이야기는 세 명의 전문 석공은 모두 똑같이 돌을 자르는 반복적이고 힘든 일을 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 자체보다는 그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진다. 해리도 똑같이 매일 아기를 분만시키는 일을 해왔다. 그러나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깨달았을 때 그는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능력을 지녔다는 것은 분명히 우리에게 성취감이나 만족감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의 의미를 발견한다면 단순히 성취감 이상의 어떤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내면의 기쁨을 누리며 깊은 감사를 느끼게 될 것이다.

 

마음의 등불

내가 살고 있는 나라, 미국은 흔히 꿈과 자유 그리고 기회의 나라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의사소통이 자유롭고 감옥에 있지 않는 한 아무런 제재 없이 만남이 자유로운 나라다. 그러나 의사소통이 자유롭다고 해서 반드시 인간적인 유대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우디 앨런의 한 영화를 기억한다. 뉴욕에 사는 외로운 남자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동시에 서로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정신병자처럼 상대방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한다. 침을 튀기면서 상대방이 자신의 야기를 들을 수 있게 고함에 가까운 큰 소리를 질러댄다. 상대의 말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서 오직 자신의 이야기만 하면서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기만 원하며 고함을 지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이 장면을 보며 관객들은 웃었지만 나는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현대 도시인들의 삶이 바로 이 장면과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의 도시인들은 상대방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열심이다. 그렇게 서로에게 섬이 되어 사는 것이 삶의 방식이 되어 버렸다. 나는 남태평양에 있는 피지라는 섬에 일주일 동안 휴가를 다녀왔다. 피지에 다녀오기 전에는 내가 도시에서 혼자 고립되어 살고 있다고는 의식하지 못한 채 모두가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려니 하면서 살았다.

 

밤에 피지에 도착하여 호텔 방에 짐을 풀고는 소파에 앉아 이국의 야경을 바라보는 이런 한가로움이 꿈만 같았다. 마침 탁자에는 이 섬나라의 문화와 여행에 관한 안내로 ‘다양한 문화의 차이’ 라는 제목이 붙은 소책자가 놓여 있었다. 피지 섬의 여행객들을 위한 기본 지침서였다. 일주일 동안 머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읽어보다가 다음과 같은 내용에 놀랐다.

‘거리에서 사람을 만나면 전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서로 아는 사람처럼 인사를 건네는 것이 예의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척하며 인사를 해도 당황할 필요가 없다. 되도록이면 당신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면 좋겠다. 인사를 하지 않으면 당신을 무례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상세하게도 인사 방법까지 적어 두었다.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의 눈을 보면서 가볍게 고개를 숙이거나 눈웃음을 지으면서 ‘불라’ 라고 말하라는 것이다. 내가 사는 뉴욕 시내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에그 그렇게 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이런 생각에 혼자 웃으며 내일은 책에서 읽은 대로 시도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다음날 호텔과 서너 블록 떨어져 있는 우체국에 그림 엽서에 붙일 우표를 사러 갔다. 가는 도중 만난 서너 명의 낯선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거나 눈웃음을 지으며 ‘불라’ 라고 말했다.

그들도 똑같은 인사를 건넸다. 우표를 사는 시간은 몇 분도 채 걸리지 않았고 다시 호텔로 돌아오면서 조금 전에 만났던 사람을 또 만났다. 바로 조금 전에 인사를 했지만 다시 같은 인사를 했다. 처음에는 너무 이상하고 쑥스러웠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아주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하고 지낸 것같이 익숙했다.

 

일주일의 휴가를 끝내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집의 냉장고가 텅 비어 있어 우선 장을 보러 거리에 나섰다. 복잡한 거리에 서니 다시 혼자였다. 아무도 나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더구나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무표정하며 미소 짓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이 사람들을 보니 마치 자신은 상대방을 볼 수 있지만 상대방은 자신을 보지 못하는 투명인간을 대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무표정한 거리에 너무나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지금껏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 여기가 바로 내가 살고 있는 나라, 미국이다.

피지의 사람들은 기본적인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함께 사는 존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 이라고 했다.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마주치는 현실이 또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그냥 우연히 만나는 거이 아니다. 내가 만났던 피지 사람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사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신은 우리 인간을 처음에는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곳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점점 서로가 섬이 되어 살고 있다. 모두가 밤에는 닻을 내리고 불을 끄고 정박한 배처럼 홀로 서있다.

꺼져버린 우리 마음의 등불을 켜게 할 자 그 누구인가?

 

잃어버린 반지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시작 없는 끝이 있을 수 없고 또한 끝은 모든 것의 종착지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거기에서 다시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진다. 시작과 끝은 항상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어떤 것을 잃는다는 것은 그것으로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서 새로운 것을 얻게 된다. 나는 35세가 되어서야 겨우 이런 자연의 진리를 깨달았다.

 

당시 나는 에살렌 이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밀러 연구 재단의 부설 기관인 ‘인간중심 의학연구학회’ 의 회원으로서 학회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 학회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했고 나는 취미로 보석 디자인을 배우고 있었다. 나는 그 일에 취미 이상의 열정을 갖게 되면서 이 분야에 특별한 재능이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은으로 반지를 만들었다. 장식 부분은 긴 머리칼의 여자 머리 모양으로 디자인하고 별 모양으로 손가락을 감도록 하여 마무리한 반지였다. 세공 하기가 아주 까다로운 작품이었다. 나는 내가 그런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약간의 자만심도 있었다. 주말에 있는 학회 모임에서 그 반지를 손에 끼고 나의 디자인을 선 보이려고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였다. 모임에서 그 반지를 본 사람들은 진심 어린 찬사를 보냈다. 당시 에살렌은 일종의 예술가들의 도시로 전문 공예가들이 많이 살았고 보석 갤러리도 많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반지를 밀러 연구 재단 건물에서 불과 몇 마일 떨어져 있는 1번 해안도로변에 있는 유명한 갤러리의 보석 전문가에게 보여 주라고 제안했다.

그날 아무래도 비가 올 것 같았지만 집에 가는 길에 그 갤러리에 들러서 그 보석 전문가를 만나 보기로 했다. 보석 전문가는 점잖은 신사였고 뛰어난 안목을 지닌 예술가였다. 그와 함께 한 시간 정도 차를 마시면서 즐거운 오후를 보냈다. 우리는 예술의 순수가 얼마나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 사람들이 지닌 영혼에게 어떤 좋은 영향을 주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젊은 의학도에게는 좀 어려운 대화였지만 나름대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곳을 나오기 전에 그가 내 반지의 디자인으로 여러 개의 반지를 만들어서 팔 수 있도록 반지를 그에게 맡겼다. 다시 1번 해안도로를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고 바람이 세게 불어서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밤새도록 겨울의 거센 폭풍이 몰아쳤다. 폭풍은 특히 해안 지방을 강타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우리 집에도 전기와 가스가 모두 나갔다. 뉴스를 들으니 도로가 두절되고 마을이 고립되었고 해안 도로의 일부가 완전히 파괴되어 그곳에 있던 집들도 모두 바다로 떠내려갔다고 했다. 폭풍이 지나간 뒤의 하늘은 거짓말처럼 맑았다. 나는 차를 몰아 1번 도로로 향했다. 도로가 차단이 되어서 더 갈 수 없는 곳에 차를 세웠다. 해안 도로변에 집들이 휩쓸려 내려간 흔적이 보였다. 집들의 기초자리와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들만 남아있었다. 내가 반지를 맡겼던 갤러리도 그 중의 하나였으며 갤러리와 함께 나의 반지도 수장이 되었다.

멀리서 그곳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반지를 잃어버린 것에 대해 비난을 하고 있는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장 큰소리를 내면서 말씀하시는 분은 아버지였다.

“참, 너는 내가 그렇게 이야기해도 말을 듣지 않더니, 그것 봐라. 낯선 사람에게 물건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했었지? 그런데 그 사람에게 네 디자인으로 반지를 만들어 팔도록 했단 말이지? 그렇게 어리석을 수가… 네가 정말 의사 맞니?”

다음으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하고는! 쯧쯧, 너는 어쩌면 항상 그렇게 잃어버리기만 하냐?”

그러다가 어제까지 내 손가락에 끼어 있던 반지가 없는 빈 손가락을 보면서 내가 자신에게 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거기 분명히 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어디에 있니?”

차를 길가에 세워놓고 조금 언덕으로 올라가서 파도가 몰아치고 있는 태평양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견딜 만했다. 저 아래 어디쯤에 내 반지가 있을 것 같았다. 한참 동안 파도가 해안 절벽을 부딪치면서 하얗게 부서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문득 나에게 일어났던 일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겨우 반지 하나를 잃지 않았는가! 내 자만심의 상징일 수 있는 반지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고 그것에 대해 여러 가지 비난의 소리를 퍼붓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대지의 일부가 바다 속으로 잠긴 것이다. 몇 백만 년 동안 그런 일들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 일들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이 일어나고 수백만 년 동안 끊임없이 계속되는 자연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한 과정일 뿐이다. 처음으로 내가 잃어버린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하나의 깨달음이었다.

나의 빈 손가락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다른 반지를 하나 더 만들까? 아님 다른 반지를 하나 살까? 어떤 백마를 탄 기사가 나타나 사랑을 고백하면서 반지를 끼워 줄 것을 기다릴까? 아니, 그 모두가 다 부질없는 일임을 안다. 나는 그 반지를 잃음으로써 하나의 일이 끝나면 다른 일이 시작되듯 인생도 하나를 잃으면서 다른 더 소중한 것을 얻게 된다는 아주 큰 가르침을 얻었다.

나는 서른다섯 살이었지만 그때까지도 진정으로 나의 삶에 대해 온전한 신뢰를 준 적이 없었다. 삶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모르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처럼 빈 공간은 그냥 두면 빈 채로 남아있기 때문에 무엇인가로 채워야 한다고 믿어왔다. 내 삶은 언제나 얻은 것을 지켜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의사가 되는 교육 과정은 언제나 어떤 값을 치르고서라도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는 마음 아파하면서 그것을 되찾거나 다른 것으로라도 보상받기 위해서 노심초사했었다.

반지가 있는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이제 아픈 마음이 아니었다. 나는 서른다섯의 나이에 처음으로 나의 빈자리를 아픈 마음이 아니,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물 속에 반지와 함께 내가 가진 자만심을 수장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은총이리라. 나에게 나의 것이라고 꼭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았는가? 내가 디자인한 반지였지만 그것 또한 온전히 나의 것은 아니다. 잠시 나에게 와서 머물다 인연이 다하여 떠나버린 것이다.

 

탁월한 선택

여러 달 동안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나와 상담을 하던 환자 한 사람이 마지막 치료를 받던 날, 치료를 마치는 것을 자축하기 위해서 남편과 함께 몇 시간이나 운전을 해서 샌프란시스코에 가기로 했다. 그녀의 치료를 맡았던 담당 의사는 이 사실을 알고 깜작 놀라면서 제발 그렇게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매우 현실적인 그 담당의사는 이제 막 치료가 끝난 약한 몸을 이끌고 화려하고 낭만적인 도시에 가서 구경을 하거나 쇼핑을 하거나 레스토랑에 가는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그녀는 아직 제대로 구경이나 쇼핑 따위를 잘할 수 없는 상황에서 멀리까지 가야 할 아무런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다. 멀리까지 가는 것이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무모함으로 보였다. 그래서 좀더 회복이 될 때까지 한 6개월 정도 기다리도록 만류했다. 그런데 담당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남편과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매우 전망이 좋은 호텔에 묵었다.

그들이 샌프란시스코를 다녀 온 후에 다시 만났을 때 나는 그 여행이 좋았는지를 물었다. 그녀는 말했다.

“좋은 정도가 아니었어요. 아주 환상적이었지요.” 그녀는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우리는 호텔에 룸서비스를 통해 음식을 주문했지요. 고급 소재의 좋은 식탁보가 깔린 식탁에 과일, 포도주, 식사 등을 가져왔는데 정말 놀라웠어요. 제가 얼마 만에 정찬을 했는지 몰라요. 포도주잔과 그릇에는 예쁜 꽃들이 그려져 있었어요. 음식도 깔끔하고 맛있었지요. 창문 밖에 공원도 내려다 보였어요. 포도주 잔을 나누며 맛있게 식사를 하고 우리는 사랑을 했어요. 그리고 커다란 욕조에 더운 물을 가득 담고 오랫동안 뜨거운 목욕도 했고요, 온 몸을 다 감쌀 수 있을 만큼 큰 타월이 12개가 있었는데 남김없이 다 써버렸지요. 작은 병에 향수가 있었는데 그것도 몽땅 사용했지요. 냉장고에 있던 음료수와 맥주를 마시면서 테라스에 앉아 둥근 달이 도시 위로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았어요. 옷장에 있던 여분의 베개까지 몽땅 가져와 여덟 개의 베개를 번갈아 베면서 킹 사이즈 침대에서 뒹굴다 잠이 들었어요. 아침에는 눈부시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았지요. 환상적이었어요.”

 

얼마나 탁월하고 멋진 선택인가? 나도 학회 참석 등으로 여러 번 좋은 호텔에 머문 경험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호텔을 잠자기 위해서 머무는 곳 이상으로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인생에서 상식을 뛰어넘어 그 순간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모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티베트 여의사의 희망

30년 전, 뉴욕에서 수련의로 있을 때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티베트라는 생소한 나라의 어느 여의사에 관한 영화였는데 티베트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도 전혀 없었고 시간적 여유도 없던 수련의 시절이라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었다.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의 청을 거절할 수 없어서 함께 간 것이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영화는 잊혀지지 않은 영화로 남아있다. 그런데 내가 그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는 무려 30년의 긴 시간이 걸렸다.

티베트에 있는 여의사의 하루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도심의 큰 빌딩 1층에 있는 내 진찰실과는 달리 티베트 여의사의 병원은 험하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야 하는 높은 산 중턱에 있었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는 대략 5~6 미터마다 손으로 회전이 가능한 나무 기둥이 서 있고 그 기둥에는 기도문이 적혀 있었다. 사람들은 지나다니면서 그 회전 나무 기둥을 잡고 힘껏 돌린 후 기도문을 외웠다. 축복을 기원하는 기도 소리는 향 냄새가 스며들듯 아침의 고요한 산속으로 퍼져나갔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시작으로, 진찰실에 혼자 있던 젊은 여의사는 아침 기도를 마친 후 병원 일을 시작한다는 표시로 커다란 등잔에 불을 밝힌다. 병원 식당에서 커피 한 잔과 스위트 롤빵 한조각을 먹으면서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급히 각자의 진찰실에 가서 같은 시간에 진료를 시작하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티베트 여의사와는 도저히 서로 닿을 수 없는 어떤 거리감을 느꼈다.

장면이 바뀌어, 활짝 열린 병원으로 사람들이 밀물처럼 들어오고 있었다. 노인도 있었고, 다인 사람도 있었고, 생명이 위독한 사람도 있었다. 환자 보호자의 얼굴에도 희망이 있는가 하면 불안과 근심이 가득 찬 얼굴도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우리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의 모습과 별 다르지 않았다. 티베트 여의사는 내가 매일 병원에서 하는 일과 같은 일을 하고 있었으며, 그런 모습은 세계 어느 곳의 의사들도 같을 것이다.

그런데 티베트 여의사의 치료 방법은 우리와는 전혀 달랐다. 나는 점점 영화에 압도되어 갔다. 그녀는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진찰을 하고 검사를 하고 진단을 내리고 치료를 했다. 희망이 있는 환자에게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고 희망이 없는 환자에게는 위로를 해 주었다. 그 모습들은 내게는 아주 익숙한 장면이었음에도 일반적으로 우리가 환자들과 나누는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말을 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해가 지고 병원 문을 닫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났다. 그 무렵이면 나와 다른 의사들은 책상에 앉아 환자 차트를 정리할 시간이다. 그러나 티베트 여의사는 우리와는 아주 달랐다. 산 위에는 해가 지고 환자들은 모두 돌아가고 다시 정적이 감돌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젊은 조수들도 급히 병원을 나와 기도문이 쓰여있는 나무 기둥들을 치면서 뛰어 내려갔다. 모두들 돌아가고 어둠이 내리는 가운데 혼자 방에 앉은 여의사는 조용히 티베트말로 기도를 드렸다. 조용히 노래 부르듯이, 기도 소리는 물방울이 떨어지듯 산 아래 계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기도가 끝나고 침묵 속에서 그녀는 등잔을 껐다.

마지막 자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녀는 모든 고통의 마감, 모든 생명체의 해방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나는 그 자막의 뜻이 이해되지 않아 당혹스러웠다.

해방이라니! 환자들의 죽음을 위해 기도를 한다는 말인가? 아픈 이들의 치유를 위해 헌신해야 할 의사가 그런 기도를 하다니! 만약 그들의 죽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면 해방이란 무슨 의미일까? 그녀의 기도는 진정 무엇을 위함인가?

당시에는 해방의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은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치유와 자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임을.

 

어떤 때에는 육체적 치유보다 영적인 치유가 더 필요할 수도 있다. 병을 치유한다는 것은 병의 난 부분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영육에 관한 일이다. 병이 난 사람이 병이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여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육체적 치료만이 아니라 영혼의 상처에 대한 영적인 치유가 일어난다. 영적인 치유가 가능할 때에 우리의 영혼은 해방과 자유를 누리게 된다. 물론, 죽음을 통해 영원한 해방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세상 속에서도 영적인 치유를 통해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의술은 모든 사람들에게 영육의 자유를 구할 수 있는 희망을 위해 베풀어져야 한다. 그 명화를 본 지 30년이 지나서야 티베트 여의사가 행했던 의술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희망을 나누었던 것이다. 나도 의사로서 이 희망을 환자들에게 나누고자 한다.

 

문화적 유산의 힘

대화의 단절은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잃게도 하고 과거에 대해서도 소홀하게 하여 소중한 무엇인가를 놓쳐버리게도 한다.

 

어느 날 오후에 의사이며 독실한 불교신자인 티베트 출신의 친구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의 스승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2500년 동안 석가모니로부터 계속 전수되어 온 지혜를 통해 오늘날에도 큰 가르침을 받고 있으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전통과 문화적 유산을 잘 인식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나는 불교의 지혜와 문화유산이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느낀다는 그의 말에 큰 감동을 받았다. 특히 그가 마지막에 했던 말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레이첼, 우리의 문화 유산이 바로 우리의 진정한 힘이야.”

나는 의사로서 살아오면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보지 못했다. 의사로서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 진단과 치료에서의 새롭게 개발된 놀라운 의료기술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의료 수준은 원시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서 거기서 배울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소위, 컴퓨터 시대가 열리면서 하루 밤 사이에도 신기술이 개발되고 어제의 것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어 버렸다.

다음 날 의과 대학에서 강의가 있었다. 의과 대학은 캠퍼스 언덕 위에 세워진 초현대식 빌딩 숲을 이루고 있었다. 강의도중 ‘의학의 미래’ 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이 있었다. 새로운 선산화 시스템으로 의료 정보가 유출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불안, 질 좋은 의료 서비스와 이에 따르는 재정적인 문제, 정부의 참여와 대기업들의 의료 사업 진출에 대한 문제점 들을 토론하였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제 티베트 출신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났고 문화 유산에 대한 그이 생각을 학생들과 이야기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나의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 친구의 체험에 대해 말했다. 그 친구는 중국 공산주의에 의해 티베트의 불교 문화가 파괴되면서 얼마나 소중한 것을 많이 잃어버렸는지 모르며, 이 혼돈과 위기의 시대에 문화 유산이 얼마나 중요하고 커다란 힘인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학생들이 간과하고 있던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즉, 우리의 의과 대학에서 의료 전문 지식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환자들에게 의료 혜택을 베푸는 모든 것이 바로 의학의 아버지인 에스클레피오스의 신정으로부터 이어져 온 문화 유산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첫 번째 의료 기관이었던 에스클레피오스 신전도 언덕 위에 세워졌고, 치료의 비법을 연구하고 전수하고 베풀어 주기 위해 각지에서 수많은 의학도들이 모여 들었다. 물론 그 당시의 의료 기술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나 기록들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이 첫 의료 기관이었던 신전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 키케로의 저술에 남아있다. 키케로는 그 신전 뜰의 중앙에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 상이 서 있었다고 전해 준다. 여기에는 상징적인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전문적인 의료 기술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의학은 단지 기술적인 사업만이 아니다. 의술을 베푼다는 것은 바로 특별한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면면히 이어져 온 문화 유산과 지혜가 바로 우리의 진정한 힘이 될 수 있다. 거기에 진정한 치유의 힘이 있다고 나는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위대한 유산

거대한 삼나무 숲을 본 적이 있는가?

하늘 높이 치솟은 나무들은 하늘 꼭대기에서 서로 마주보며 햇볕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그 나무 아래에서는 다른 작은 식물들이 자랄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나무들 사이의 어두운 그늘에도 식물들은 각자 저마다의 고유한 잎을 펼치며 서 있다. 커다란 클로버 잎 같은 괭이밥 풀이나, 갖가지 이름 모를 작은 식물들이 어두운 그늘에서도 그들만의 고유한 삶의 비법을 터득하고서 당당히 자라고 있다. 비교적 큰 식물 중에서 어떤 것들은 접시처럼 큰 잎을 지면과 평행이 되게 나란히 펼치고 있다. 그늘이 깊어지면 식물들은 생존을 위해서 잎을 위로 뻗는다.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두운 그늘에서도 그들 나름의 고유한 방법으로 그들의 잎을 당당히 펼치고 있는 많은 환자들을 만났다.

 

몇 년 동안 환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게 된 인간 영혼의 특성은 고유함이었다. 우리는 고유한 특성을 지닌 창조물이다. 인류 역사에 자신과 똑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전립선암에서 회복중인 어느 자동차 회사의 중역도 이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나의 권유로 아침마다 명상을 하다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나는 나다.”

그 깨달음이 들자 깊은 평화가 찾아왔고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열렸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단지 나임을 알고는 깜짝 놀랐어요. 연민, 친절, 삶에 대한 신뢰, 신비 등 모든 것을 이해하는 열쇠도 바로 이 깨달음이라고 생각해요. 참으로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지요. 지금까지는 내 삶의 전부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느라고 소비했어요. 그들의 능력은 나보다 뛰어난가? 그들의 위치가 더 영향력이 있는가? 그들이 더 똑똑한가? 더 멋있어 보이는가? 나는 언제나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남과 비교하면서 나를 보았지요. 나는 우리 회사가 생산하는 여러 종류의 자동차 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무엇에 비유를 하자면 난 수공예품이지요. 최첨단 기술로 생산할 수 있는 것보다 덜 완벽하겠지만 인간의 기술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작품이지요. 이 점에서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고유한 ‘자신’ 이고 각자의 특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어떤 통찰은 직관적이다. 경험을 통해서 어떤 것을 알게 되고, 그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듯 이런 직관적인 통찰에 의해서도 우리는 변화된다. 이제 이 사람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사물이나 사람들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말을 존중하며 경청하게 될 것이고, 사람마다 지니고 있는 고유한 가치를 알고 싶어할 것이다. 이렇게 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과거에는 어느 수준에 미치지 않는다고 실망하던 것들도 나름의 고유함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감사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그는 지난 날에는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지닌 고유한 가치들을 발견하면서 기뻐했다. 그는 더 이상 다름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데 인생을 소비하지 않았다. 이제 다른 사람들도 그를 다르게 대했다.

 

또 다른 나의 환자는 다른 방법으로 비슷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아주 실리적이고 매사에 정확하고 계산적인 통계학자였다. 그는 매일 받는 방사선 치료를 위해 병원의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거기 한 사람이 먼저 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문득 그에게 이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는 것이 우연이었을까? 서로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지 않았는가? 주차장에서 주차 공간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면,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빨리 걸을 수 있었지만 만약 비가 왔더라면, 바로 주차 공간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신문을 사기 위해서 가게에 들렀더라면, 우리는 서로 만나지 않았을 것이고,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때 그의 생각이 계속 이어졌다.

“만약 내가 예일 대학교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곳에서 통계학자가 되라고 격려해 준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삶이 어떻게 되었을까?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되었을 것이고, 이곳에서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직장에서 나를 채용할 때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 채용시험을 보았더라면, 나는 지금 이곳 캘리포니아에 살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가계의 족보는 상상할 수 없이 먼 과거까지 올라갈 것이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조금만 다른 방향으로 삶의 포물선을 바꾸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 저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 저 사람과 한 엘리베이터 안에 있다는 것도 우연일 수 없다.”

통계학자로서 낯선 사람과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게 된 이 사건이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에 압도당한 그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그 사람에게 “12층 좀 눌러 주시겠어요?” 라고 말을 건네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 사람이 보냈던 미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통계학자는 이 체험을 한 이후에 삶이 달라졌다. 삶 안에 감추어져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늘 자신을 열어 놓으려고 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이 감사하게 되었다. 일어나는 사건이나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어떤 의미나 배워야 할 교훈이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살펴 보게 되었다. 그가 말했다.

“마치 어떤 존재가 제 어깨를 잡고 흔들며 ‘깨어나라. 삶에는 네가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있단다’ 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어요.”

 

회사의 중역이나 통계학자 두 사람, 모두 다 자기들의 체험을 영적인 것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그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창조물이라는 신비에 대한 영적이고 실제적인 체험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명상이나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조금씩 명상을 해 나가면서 인생은 영적인 수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매일 일상의 수행이 결국 우리 인간됨의 특성을 순수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커다란 영적인 실재에 대한 깨달음은 특별한 체험을 통해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을 돌보거나, 직장에서 일을 하거나, 우정을 나누거나, 병을 앓거나,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를 만나거나 하는 아주 평범한 일상의 체험들을 통해 일어난다.

세상이 거룩하고, 일상의 평범하고 작은 일들 안에 신성함이 담겨 있다는 깨달음은 생명을 위협하는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 뿐만 아니라 그들과 가까운 친구들, 가족들, 때로는 그들을 치료하는 의사들에게도 이들을 통해 문득 찾아온다. 이것은 오히려 환자들이 그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하나의 길이다. 비록 때가 되어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바로 그들이 세상에 남겨 놓은 위대한 유산이 된다.

 

 

VI 더 중요한 것…

 

더 중요한 것

 앞의 글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 에서 85세의 할아버지가 수술을 받기로 어려운 결정을 내린 이야기를 했었다. 그것은 분명히 용기 있는 결정이었지만 때로는 수술을 받지 않는 것도 용기 있는 결정일 수 있다. 어떤 결정을 하는 그 자체보다도 결정을 하기까지의 과정이나 결정을 하고 난 뒤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

 

수련의 시절 때, 우리 병원에 나이가 많은 할머니 한 분이 턱 옆에 혹이 생겨서 진찰을 받으러 왔다. 우리 병원은 특히 암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다. 정밀 검사를 통해 그 혹은 암으로 판명되었고, 아래 턱 전체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고, 수술 후에는 계속 항암 치료를 해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우리 의료팀의 팀장 의사가 검사 결과에 대해 설명을 하고 수술 날짜를 잡기 위해 환자와 가족들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그는 화가 많이 나서 돌아왔다. 그 할머니는 수술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고 다른 가족들도 할머니의 결정에 동의했다는 것이었다. 팀장은 수술을 하지 않으면 얼마 살지 못한다는 것과 수술 과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을 하고 수술을 받으면 살 수 있는 확률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그의 설명을 다 듣고 난 할머니는 그가 보여준 관심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러나 수술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팀장이 아무리 설득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설득하기를 단념한 팀장은 병원과 의료팀이 할머니 병의 결과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서류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고 할머니는 조용히 가족들을 바라보고는 서류에 서명했다. 다른 의사들도 몇 번이나 다시 가서 할머니와 가족을 만나서는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도록 강요하다시피 말해 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조용히 병원을 떠났고 다시는 병원에 오지 않았다.

할머니를 도와주려는 우리들의 권고는 무시되고 거부당했다는 사실에 우리 의료팀은 모두 며칠 동안이나 화가 나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할머니의 생명을 존중하여 강력하게 수술을 받도록 권했지만, 할머니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를 택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도 존중하지 않았다. 그 할머니는 아주 고매한 인격을 지닌 분 같았고 당신 가족들을 무척 사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좋으신 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당시에는 할머니와 가족들이 참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할머니의 결정 뒤에는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고 무엇이 할머니를 평온한 마음으로 그런 어려운 결정을 할 수 있게 했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그러나 35년이 지난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그 할머니를 이해하고 그분의 결정을 존중한다. 나뿐만 아니라 의료계도 많이 변했다. 최근에 나는 이 이야기를 내 수업 시간에 토론의 주제로 삼았다.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토론했다. 한 학생이 먼저 이런 말을 했다. 문제는 당시 의사들이 그 할머니의 병에 대해서만 알았지 그 할머니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것이다. 그 할머니는 누구인가? 의사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 할머니는 나이가 많고 암에 걸렸다는 사실뿐이다. 할머니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을까?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병과 죽음을 거부하고 싸우기 위해서 수술을 받았어야 했다는 의견과 그 할머니의 결정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반반으로 팽팽하게 나뉘어졌다. 학생들은 매우 진지하게 여러 가지 어려운 질문들을 제기했다. 우리가 어떻게 생명을 존중할 것인가? 진실로 생명을 존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과연 우리가 ‘가장 좋은 최선의 것’ 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가? 아니면 단지 병을 다루는데 필요한 기술적인 최선의 방법을 알고 있는가? 한 사람의 육체적인 건강은 증진시키면서 반대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수도 있지는 않는가? 등등.

수업이 계속 되는 동안 점점 더 다른 여러 의견들이 있을 수 있음이 분명해졌다. 많은 학생들이 마치 오래 전 나의 동료 의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흥분하고, 판단하고, 화를 냈다. 그러나 다른 많은 학생들은 당시 의사들이 진단을 옳게 했을지 모르지만 진정으로 한 사람을 이해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들은 의사들이 생명만 연장시키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녀가 지니고 있는 삶의 가치관에 따라 남은 삶을 편안히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사람에 따라서 어떤 경우는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중요하고, 어떤 경우는 수술이나 항암 치료를 받지 않고 남은 삶을 잘 사는 것이 더 나은 결정일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한쪽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35년 전의 나의 선생님들과 동료 의사들은 이런 의견을 받아 들일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우리는 암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치료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무엇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이라도 그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다시 나에게 왔다는 것이다.

 

집착과 투신

 35년 전, 내가 근무하던 병원에 젊은 남자 환자가 한 시골 병원에서 이송되어 왔다. 그는 친구들과 스키를 겸한 겨울 등반을 하다가 조난이 되어 사흘이나 영하의 날씨의 눈 속에 갇혀 있다 구조된 젊은이였다. 시골 병원에서 몇 주 동안 입원해 있다가 동상으로 살이 썩어가는 괴저병이 심해져서 뉴욕에 있는 우리 병원으로 옮겨왔다. 시골 병원의 의사는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환자가 다리 절단을 거부해서 혹시라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우리 병원의 의료팀에게 다른 치유 방법이 있을까 해서 환자를 이송한 것이다.

그는 이미 초기 수술을 받았는데 왼쪽 다리는 호전되고 있었지만 오른쪽 다리는 점점 상태가 악화되어 결과가 좋지 않았다. 우리 병원에서도 다리를 절단하는 방법 이외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환자는 절대로 다리를 절단하지 않겠다고 했다. 동상을 입은 상처의 독이 점점 온 몸으로 퍼지고 있어서 더 늦어지면 다리를 절단하는 시기를 놓칠 수도 있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설득하려고 애썼지만 그는 차라리 죽음을 택할망정 오른쪽 다리를 잃을 수는 없다고 하면서 다리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어느 날 늦은 저녁 회진 중에 우리 의료팀은 그와 가족들에게 여러 가지 검사 결과와 점점 악화되고 있는 그의 오른쪽 발의 상태에 대해 설명하면서 절단 수술의 불가피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커다란 충격을 받은 그의 약혼녀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면서 그의 발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가 자기의 약혼반지를 그의 검게 부어 오른 오른 쪽 발의 새끼발가락에 끼우고는 흐느끼며 말했다.

“나는 이 저주스러운 발이 미워요. 당신이 이 발을 그렇게 원한다면 차라리 이 발과 결혼하지 그래요? 나는 이 발 중 하나를 선택해야지 둘 다 가질 수는 없어요.”

우리는 돌발적인 상황에 당화하면서도 검게 썩어가고 있는 그의 발가락에 놓인 반지를 보았다. 형광등 아래에서도 그 다이아몬드 반지는 아름다운 광채를 발하며 빛나고 있었다. 그 젊은 환자는 아무 말 없이 그 반지를 바라보더니 괴로워하며 눈을 감아버렸다. 우리도 마음이 아팠지만 회진 중이어서 다음 병실로 이동했다. 다음날 그 젊은 환자가 절단 수술을 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가 절단수술 후에 의족을 하고 시간이 가면서 의족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 해가 다 지날 즈음 그는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조금 절룩거리는 것 이외에는 그가 다리를 절단했는지도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건강해졌다. 결혼식을 2주 앞두고 의료팀과의 마지막 만남이 있었다. 그때 나는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그렇게 거부하던 절단수술을 어떻게 받기로 결심했냐고 물었다. 그는 말했다.

“발가락에 있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약혼녀 제니의 말이 맞았어요. 저는 제 발과 결혼을 하려고 했어요. 그때 저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모르고 있었어요.”

약혼녀의 돌발적인 행동을 보면서 그는 처음으로 자기가 무엇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약혼녀와 함께 살아야 할 삶에 대한 투신하기보다는 자신의 썩은 다리에 집착하고 있었다. 눈 속에서 3일 혼자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앞에 펼쳐질 삶에 대한 약속이었다. 바로 그 삶에 자신을 투신해야 함에도 그것을 잊고는 썩어 가는 다리에만 집착했었다.

 

집착은 불교의 용어로는 진리를 알지 못하는 ‘무명(無明)’에 서 비롯되는 ‘욕망’에 해당한다. 내 생각으론, 집착은 개인의 성향에서 오는 것인 반면에 투신은 영혼으로부터 온다. 사람과의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삶에서도 집착은 바른 선택의 기회를 가로막는 반면에 투신은 진정한 삶의 선택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점점 진실한 삶에 투신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부차적인 것들에 집착하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삶에 대한 투신과 집착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집착은 벗어날 수 없는 덫으로 우리를 몰아가지만 투신은 (때로는 받아들이기가 힘들기도 하지만) 우리를 더 큰 자유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이 둘은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 받아들일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의 선택의 길에 선 우리를 시험한다.

이 둘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우리를 점점 자유롭게 할 것인지 구속할 것인지를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집착과 투신을 구별할 수 있을 거이다. 집착은 우리의 내면 깊은 고에 자리하고 있는 선함을 반영하지 못하는 단순히 본능적인 반응이다. 반면에 투신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면서 삶에 대한 의지와 결부된 우리의 지속적인 선택이다. 때론, 생명을 위협하는 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생명 그 자체 이외에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과자와 인생

환자 중에 상당히 성공한 사업가가 있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암에 걸리기 전에는 모든 일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에게 행복은 마치 ‘과자를 갖는 것’ 과 같아서 좋아하는 과자를 가지고 있을 때의 인생은 장밋빛이지만 과자가 없으면 인생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과자는 계속 다른 것으로 바뀌어 갔다. 돈일 때도 있고, 권력일 때도 있고, 섹스일 때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최고급 자동차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경우는 사업에서의 중대한 계약일 수도 있고, 특별하게 청중들 앞의 훌륭한 강연이 되기도 한다.

전립선암 진단을 받은 지 일년 반이 지난 어느 날, 그는 상담을 하기 위해서 앉아 있었는데 비통해 하며 머리를 가로저었다.

“저는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 같아요. 제 아이에게 과자를 주면 아이는 아주 좋아하지요. 과자를 뺏거나 부스러뜨리면 운답니다. 아이는 세 살, 저는 마흔셋입니다. 과자가 궁극적인 행복이 아님을 아는 데 43년이 걸렸습니다. 과자를 가지게 되는 그 순간부터 혹시 이 과자가 부서질까, 또는 누군가에게 과자를 빼앗길까 봐 걱정하지요. 그런 일이 없도록 과자를 간수하려면 다른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지요. 과자를 잃어버리지 않으려 애쓰다 보면 정작 그 과자를 먹을 시간마저도 없지요.”

처음에 비통한 마음으로 머리를 가로 젓던 그가 이번에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암이 모든 것을 다르게 만들어 주었지요.”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참다운 행복을 느낀다고 했다. 이제는 사업이 잘 되든지 말든지, 골프에서 이기든 지든 그렇게 크게 마음에 두지 않는다고 했다.

“열년 반 전에도 이미 암이 알려주었지요. ‘괜찮아, 중요한 것이 무엇이니?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명이 아니니? 그래. 생명이야. 다행히 생명은 걸질 수 있다고 하잖아. 그런데 과자가 있는 삶이냐, 과자가 없는 삶이냐? 그것이 문제란 말이지? 어떤 사람들은 행복은 과자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하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 과연 그럴 수 있을까를 잠시 생각하다가 저는 암에게 말했습니다. ‘젠장, 그래도 인생은 역시 과자야. 과자 없이 어떻게 살지?'”

 

일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암과 더불어 지내면서 그의 삶은 모든 것이 바뀌어 갔다. 과자가 자신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차츰 알아갔다. 이제 그는 암을 통해 삶 그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배웠다.

 

그대여, 삶을 택하라!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너의 앞에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내놓는다. 너희나 너의 후손이 잘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여라.” (신명 30, 19)

 

잃어버린 사람과 사물에 너무 집착을 하게 되면 장님처럼 앞에 놓여 있는 것은 바라보지 못하고, 과거라는 뒤만 돌아볼 뿐이다. 자기도 모르게 생명이 아닌 죽음을 택하는 어리석음이다. 성서에서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기에 소금 기둥이 되었다. 우리들 중에도 과거라는 덫에 갇혀 소금 기둥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지나가 버린 시간에만 매달린다면 삶이 부르는 손짓을 볼 수도 없고 그곳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우리는 단순히 죽음 대신 생명을 택해야 할 때가 있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댄은 기침과 온 몸의 심한 통증으로 병원에 갔다. 그런데 난데없이 췌장암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7개월 만에 세상과 작별하였다. 너무도 젊고 건강하던 그가 갑자기 죽자, 그의 친구들은 너무 놀랐고 큰 슬픔에 잠겼다. 특히 그의 연인이었던 제인은 엄청난 충격으로 정신이 나간 듯이 보였다. 그녀는 몇 시간씩 그의 방에 멍하니 앉아 있었고, 댄이 입던 옷만 입었고, 매일 댄의 무덤가에 가서 누워 있다 돌아왔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완전히 고립된 생활을 했다.

슬픔을 나타내는 표현 방식으로는 확실히 도를 넘게 되고 몇 달이 지나도 계속 같은 행동을 보이자, 걱정이 된 가족들이 나와의 상담을 주선했다. 내가 제인을 처음 만난 것은 댄이 죽은 지 일년이 되어갈 즈음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슬픔은 마치 댄이 어제 죽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지만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의 모든 기능은 마비된 것 같았다. 매일 직장에 출근은 하지만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기에 해고되기 직전이었고 직장을 잃는 것에도 무관심했다.

그녀의 무력감과 멈추어버린 듯한 삶의 태도는 마치 전염성을 지닌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나도 그녀와 함께 앉아 있으니 감염된 것처럼 마음이 무겁고 무기력해져서 어떤 질문을 하거나 무슨 생각을 하기가 귀찮아졌다. 그녀는 나와 상담을 하러 오기 전에 이미 능력 있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 의사는 그녀의 무력감에 대해 ‘반응 우울증’ 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점차적으로 강한 항우울증 약물 치료를 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연인이 세상과 작별을 한 순간부터 그녀의 삶은 그대로 멈추어 버린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멈춤’ 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 내면에 대해 설명해 주기를 부탁했고 그녀는 여러 번에 걸쳐 내적 체험의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이야기했다.

“지프차가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어요. 아, 아직도 돌고 있어요.”

어떤 때에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삼켜 버렸다고 했다. 내가 종이와 크레파스를 주면서 그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해 보라고 하자, 커다란 뱀이 자기의 꼬리를 삼키는 모습을 그렸다.

그녀와 상담이 끝난 저녁에 그 이미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다. 그 이미지는 그녀의 모든 상황을 풀어줄 로제타 비석(역주, 로제타 비석: 이집트 나일 강 하구의 로제타라는 마을에서 발견된 비석으로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열쇠가 되었기 때문에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는 뜻으로 사용됨) 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이미지가 낯설지 않고 익숙했지만 어디서 보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유명한 요셉 캠벨의 신화에 관한 저서들을 뒤적거리다가 그것이 생존과 관계되는 이미지라는 것을 찾아냈다.

캠벨의 이론에 따르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등과 같이 너무 큰 충격을 받게 되면 우리는 정신적인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삶의 에너지를 자신의 녀면 깊숙한 곳에 묻어 둔다. 따라서 겨우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데 관심을 둘 뿐, 주변의 다른 사람과 사물에 대해 유대감을 가지거나 진취적인 에너지는 상실하게 된다고 한다. 어쩌면 제인이 바로 이런 상태에 빠진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본인 이외의 누구도 그녀를 도와서 다시 활력을 되찾아 줄 수는 없다. 굉장히 유능한 정신과 의사라도 그녀의 그런 상태를 약물 치료로 치유할 수는 없다. 닫힌 마음을 열 수 있는 열쇠는 그녀의 내면에 있고 오직 그녀만이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비밀의 방을 열 수 있는 것이다.

다음 상담에서는 이 생존의 이미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녀에게 댄이 없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고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이렇게 묻고 말았다.

“당신은 댄이 없는 세상을 살고 싶으세요?”

그녀는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처음으로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난 후에 그녀는 자신의 잃어버린 꿈에 대해, 잃어버린 인생의 동반자에 대해, 그 무엇으로도 다시 채울 수 없을 것 같은 텅 빈 자신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댄 없이는 살고 싶지 않았다는 것과 자기의 약함과 부끄러움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사실은 자기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댄이 그렇게도 살고 싶어 한 삶이었는데 어떻게 자신이 그 삶을 원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그녀는 처음으로 모든 것이 멈춘 그 정지 상태의 벽을 뚫고 나올 수 있었다. 그녀는 무척 고통스러워했지만 그것이 치유의 시작이었다. 그 다음 몇 번의 상담에서는 그녀가 자신에게마저 감추었던 고통의 소리를 들었다.

찬물에 뛰어들면 순간적으로 얼마 동안은 숨이 자동적으로 멈추는 것처럼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그녀도 삶의 에너지라는 숨을 잠시 멈추었던 것이라고 그녀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녀에게 선택의 힘이 있음을 그녀가 아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처럼 지프차로 계속 원을 그리며 제자리걸음을 선택할 수도 있고, 미래를 향해 앞으로 발을 내딛는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2주 후의 그녀는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약간 흥분하면서 꿈 이야기를 했다. 꿈에서 그녀는 나이든 인디언 원로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중요한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부족 회의처럼 원로들은 그녀의 삶의 에너지를 멈추게 된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원로들은 그녀에게 댄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되, 말로서가 아니라 마음 안에 있는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했다. 그녀는 그림으로 자기의 이야기를 했다.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이 내적으로 어떠했는지를 표현하는 동안 원로들은 완전히 그녀와 하나가 된 듯이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그림으로 표현하는 이야기의 한 대목 대목마다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온 마음으로 그녀와 동행하고 있었다. 혼자서는 표현할 수 없었던 것도 그들이 함께 동행해주고 있음을 느끼면서 표현이 가능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멈추어 버린 바로 그 순간은 장의사들에 의해 댄의 시신이 자기의 곁을 지나 집을 나서던 그 순간이었음을 알았다.

인디언 원로들은 그녀와 함께 침묵 속에서 이 사건에 대해 꽤 오랫동안 깊이 관상을 하면서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장의사들이 자기에게서 댄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했고, 그 순간 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삶의 에너지를 멈추었음을 침묵 속에서 깨달았다. 그녀는 이제 자기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댄을 잃지 않기 위해서 삶의 에너지마저 멈출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그를 떠나 보내는 것도 또 하나의 선택이리라. 그녀는 다시 삶을 살 수 있을 만큼 강해졌고 이제는 그를 떠나 보내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다음의 꿈에서 그녀는 댄의 시신을 안고 높은 산기슭을 따라 걷고 있었다. 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댄의 시신을 아주 오랫동안 안고 걸었다. 산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시신이 날아가도록 하늘로 번쩍 들어올렸다. 댄의 시신은 갑자기 살아있는 한 마리의 새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사라졌다. 그 순간 그녀에게 커다란 자유가 찾아왔다.

 

우리가 삶을 억압하려고 하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잊지 않고 기억하되 떠나 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 떠나 보낼 수 있다면 또 다른 방식으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운명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영혼은 자유롭다. 그 자유는 슬퍼하지 않는 것과는 다른 의미다. 정말 중요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을 택하는 것이다.

그대여, 삶을 택하라!

 

제대로 살아간다는 것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특히 감정이나 정서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더욱 그렇다. 화나 슬픔을 제대로 조절하고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랑이나 기쁨에 대해서도 받아들임과 표현함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은 켜면 불이 환하게 들어오고 끄면 캄캄해지는 극과 극의 전원 스위치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내가 만난 여러 환자들의 살아가는 능력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인생의 의미와 깊이를 깨닫고 평범한 일상에서도 놀라움을 발견하면서 건강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충만한 삶을 산다. 아마도 그들의 삶이 충만한 것은 살면서 생기는 일들을 보다 깊이 있게, 때론 더 높이, 어떤 경우에는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수 있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삶을 도적적으로 받아들이는 많은 환자들을 만났다. 그들 중에 난소암에 걸렸던 60대 초반의 길리안은 정말 대단한 열정을 지닌 여인이었다. 엄청난 열정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면서 놀라운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한번은 학교에 다녀햐 할 아이들 셋을 데리고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마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희랍인 조르바’ 에서 나오는 주인공 조르바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의 삶에 불쑥 찾아온 암은 정말이지 그녀가 지닌 놀라운 정신력이 아니었다면 이겨 내기 어려운 상대였다.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모두 빠졌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커다란 귀걸이를 하고는 마치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고안한 것처럼 당당하게 웃으면서 나의 상담실로 왔다. 나중에 힘든 치료 과정 때문에 거의 눈도 뜰 수 없을 만큼 몸이 너무나 약해졌을 때는 내가 그녀의 병실을 찾았다.

이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는 동안 그녀는 ‘항암 음악’ 이라고 이름 붙인 워크맨을 달고 살았다. 처음에는 항암 치료를 받을 때만 음악을 들었는데 나중에는 헤드폰을 내내 머리에 쓰고 있었다. 암과의 투쟁은 여태껏 겪었던 어떤 것과도 달랐다. 그녀는 이렇게 표현했다.

“처음에 저는 스키장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의 정상에 서 있는 것 같았어요. 지옥 코스였지요. 그런데 그 코스를 제가 무릎으로 기어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몰랐어요.”

지금까지 지니고 있던 건강한 신체의 힘에 의지해 오던 모든 것을 빼앗겨 버리고 이제는 내면에 감추어져 있던 더 큰 놀라운 힘에 의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살아남았다.

항암 치료가 끝나고 일년 후, 건강과 멋진 머리카락과 몸무게와 웃음을 되찾은 그녀는 투병 기간 동안 자기에게 도움을 주고 힘이 되어 준 사람들을 위해 파티를 열고 그들 모두를 초대했다. 거의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녀의 집에 초대되었다. 그들은 모두 함께 음식과 술잔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나갈 무렵 그녀는 사람들에게 잠시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여 줄 것을 청하고는 거실에 있는 의자에 올라서서 지난 2년 동안 그녀가 겪었던 고통과 상실감과 절망과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초대 받은 우리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함께 있어 주고 도움을 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반짝였다. 그녀는 테이프 하나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는 카세트에 넣었다. 나는 즉시 그 테이프는 그녀가 치료 중 늘 듣던 ‘항암 음악’ 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고통을 겪는 동안에 계속해서 듣고 또 들었던 음악이라고 했고 이제 우리들을 위해 들려 주겠다고 했다.

처음 음악이 막 시작되었을 때는 나는 그 음악이 어떤 것인지를 몰랐다. 그녀가 볼륨을 조금 높였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에 아주 감정이 풍부한 목소리의 성가가 집안 가득히 울려 나왔다.

‘형제자매들이여! 하느님께 찬미를 드려라… .’

갑자기 그곳에 있던 백 여명의 사람들이 함께 그 성가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이웃들, 아들과 딸들, 미용사, 채소 가게 점원, 마사지 치료사, 요가 선생님, 간호사, 요리사, 청소하는 아주머닌 등 그들 모두 하나가 되어 춤을 추는 광경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이날의 파티는 내가 체험한 파티 중 가장 아름다운 생명의 축제였다.

 

의사로서 나는 늘 중립을 지키도록 교육 받았다. 병의 예후에 대해서 환자에게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며, 터무니없이 희망을 갖게 하는 너무 긍정적인 이야기도 하지 말며 저울추처럼 중심에 서서 객관적으로 환자를 대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그런 입장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고 어떤 때는 그런 입장 때문에 중요한 많은 것을 잃어버릴 때도 있었다.

수련의였을 때, 나는 원로 교수 한 분의 은퇴 기념 만찬에 참석했다. 그분은 뛰어난 연구 성과와 의학계에 기여한 공로로 여러 가지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의사였고 또한 의사로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분이셨다. 그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만찬에 참석했다. 기념할 만한 저녁이었다.

그가 했던 짤막한 연설도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그는 의사로서 50년의 세월 동안 의학계의 발전과 의학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해 회고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미래의 의학의 진로에 대해서도 탁월한 안목으로 좋은 방향을 제시했다. 한마디로 그는 명연설을 했고, 거기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저녁 만찬이 끝난 후에 우리 몇몇 젊은 수련의들이 그에게 축하와 존경의 인사를 전하러 갔다가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우리 중의 한 사람이, 의사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우리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 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그는 좀 망설이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지금은 의사로서 성공했고 명성을 얻었지만 처음 의사가 되었던 그때보다 삶에 대해선 더 잘 알고 있지 못한다고 했다. 그렇게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은 수줍은 듯 조금은 슬픈 듯 보였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했다.

“삶이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 버렸어.”

우리 중에 아무도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그이 말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겸손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어떤 사람은 그분이 나이가 드셔서 약간의 치매가 있는 것으로 의심하기도 했다. 35년이 지난 이제야 나는 그분의 말씀이 이해되는 것 같다. 의사로서 성공하고 명성을 얻은 것과 제대로 삶을 살았다고 느끼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제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성공이나 명성도 그것을 보증해 주지는 않는다.

 

인생의 좌우명

소위 ‘만성 피로 증후군’ 을 앓고 있는 한 상담자가 있었다. 그녀는 매일 자기에게 일어나는 아주 작은 신체적 이상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일기장에 적어 놓는 사람이었다. 이 의사에게서 저 의사에게로 옮겨 다니면서 자기의 증상에 대해 상의하고 치유를 받으려고 애썼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전에는 인생을 즐기거나 아이를 낳거나 사랑을 하거나 심지어는 극장에 가는 것까지도 피로라는 증상이 없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완전한 건강을 가진 사람만이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제안한 명상을 하다가 그녀는 병의 증상 때문에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병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단정 내린 잘못된 생각이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없게 만들었다. 몸이 피곤하거나 설령 아프다 하더라도 그것이 극장에 못 갈 이유는 아니다. 몸이 피곤하면 극장에서 좌석 번호를 찾아 자리에 앉는 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는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다가 몸이 정 안 좋으면 도중에라도 일어나서 나오면 된다. 인생의 결말은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것인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놓친들 어떠랴? 그런데 지금껏 아프기 때문에 영화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극장에 가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완전한 건강을 찾기 위해서 여기 저기 온갖 치유 방법을 찾아 다니는 일을 그만두었다. 대신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명상과 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돌본다. 일주일에 몇 명이나 되는 유명하다는 의사들을 만나는 일을 그만두고 심하게 아플 때만 주치의를 만난다. 어떤 결과에 대해 그렇게 크게 구속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실제로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인생의 좌우명을 바꿨다고 말했다. 예전의 좌우명은 ‘인생은 오로지 건강에 달려 있다’ 였지만 새로운 좌우명은 ‘어떤 것이라도 할 가치가 있는 것은 서툴고 더디지만 충분히 행할 가치가 있다’ 이다.

 

이름 없는 숲

영국의 수학자 겸 작가 L.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에서 앨리스는 이름을 잊어버리게 하는 ‘이름 없는 숲’ 으로 들어가서 새끼 사슴과 만나게 된다. 앨리스도 사슴도 자기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거기서는 이름 같은 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그들은 동무가 되어 함께 숲길을 따라 걷는다. 숲이 끝나는 곳까지 오는 동안에 앨리스는 새끼 사슴이 비단같이 부드러운 목에 사랑스럽게 팔을 감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숲을 벗어나게 되자 갑자기 새끼 사슴이 자기의 이름을 기억해 내고는 두려운 눈으로 앨리스를 바라본다.

“아니, 이런! 나는 사슴이고, 너는 인간이잖아!”

사슴은 놀라며 숲 속으로 달아난다.

어린 시절에 나는 여름이 되면 롱아일랜드의 해변에서 혼자 조개 껍질을 주워 모으기도 하고 모래를 파서 게를 잡기도 하면서 보냈다. 도시 생활과는 아주 다른 경험이었다. 날마다 눈앞에 펼쳐진 자연을 내밀하게 바라보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까지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데 뉴욕이라는 도시에 살면서는 모르는 사람에게는 눈을 마주치지도 이야기를 건네지도 않는다.

여름에 해변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늘 평화로웠고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아도 자연과 더불어 있었기에 혼자라는 느낌은 없었다. 그 시절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아침마다 밀려왔던 파도는 새로운 보물들을 실어다 주었다. 파손된 배에서 나온 나무, 비단처럼 보드라워진 유리 조각 등이 널려 있었고, 어떤 날은 불가사리들이 해변을 메울 때도 있었다. 한번은 한쪽 유리가 빠진 안경을 줍기도 했다. 이런 풍경들과 함께 계속 내 머리 위를 날던 아름다운 흰 새에 대한 기억을 빼놓을 수 없다. 태양을 향해 바라보는 흰 새는 마치 천사가 날고 있는 것처럼 투명한 광채로 빛났다. 아름다운 흰 새를 동경하면서 나도 저런 날개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른이 된 후에 그 해변을 거닐 기회가 있었다. 너무나 실망이 컸다. 해변을 따라 해초더미와 쓰레기들이 널려 있었고 어디에나 갈매기들이 꽥꽥거리며 쓰레기나 파도가 밀어다 준 죽은 물고기들을 차지하려고 싸우면서 시끄럽게 울어댔다.

모처럼 오랜만에 해변을 찾았다가 오히려 기분이 상해서 돌아왔다. 그런데 문득 어린 시절의 그 아름답던 흰 새가 바로 갈매기였다는 것을 알았다. 해변이 변한 거이 아니었다. 다만 내가 더 이상 ‘이름 없는 숲’ 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름이나 판단을 잊어버리는 ‘이름 없는 숲’ 에 들어설 때만이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이 거룩해진다.

 

삶의 접근방식

병원은 치유의 환경을 갖춘 곳이라고 늘 생각했다. 나는 의사로서 20년 동안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아 왔다. 미국의 여러 주에 있는 병원에서 일을 하고 난 뒤 수련의 과정을 마쳤다. 병원에 들어서면 우리가 어떤 주의 어느 병원에 왔는지 구별이 되지 않을 만큼 미국의 병원은 어디를 가도 모양과 분위기, 심지어는 냄새까지도 똑같았다. 나는 이것을 최고의 시설과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실례라고 잘못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병원 환경과 자연 환경이 단절되어 서로 아무런 연결이 없어졌기 때문이고 그 단절은 사람을 더 약하게 만들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의사로서가 아니라 환자로 입원해 마지막 수술을 받은 해는 1988년이었다. 사람들이 병문안을 오면서 화분에 담긴 화초를 선물했다. 그런데 화초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하나씩 시들어 갔다. 매일 화초가 시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걱정이 되었다. 화초가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라면, 과연 내가 살아남기에 적절한 곳인가? 나는 의사로서 자연 환경과는 무관하게 일했기 때문에 병원이 자연 환경과 단절되어 있음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다가 환자가 되어 병원에 입원하고 보니 자연 환경에 대해 새롭게 인식했다.

 

나는 올해 초에 지방의 한 병원에서 개최한 정신과 의사들의 세미나에 강사로 초대되었다. 세미나에서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두 접근 방식의 극단성이 논쟁의 초점이 되었다. 하나는 전통적인 정신 의학적인 접근 방식으로 약물 치료나 감정 전이와 같은 전문성을 강조하는 의학모델이고, 다른 한 가지는 내가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논쟁의 초점으로 삼은 것으로 암 환자들과 만나면서 얻은 사실적인 경험을 바탕에 둔 접근 방식이었다. ‘상처받은 치유자’ 로서의 나의 경험이 바탕이 된 이 접근 방식은 환자들의 고통을 그들의 정서와 연결해서 문제들을 이해하면서 도움을 주고자 하는 방식이다.

세미나가 끝나고 나는 14명의 젊은 정신과 의사들과 두 시간에 걸쳐 진지한 토론을 하였다. 그들은 암 환자들에게 정서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내 접근 방식은 의과 대학에서 배운 감정 전이에 관한 규칙에 어긋난다고 했다. 나는 환자들의 손도 잡아 주고 때로는 가벼운 포옹도 해 주며 나의 개인적인 일들도 이야기해준다. 그들은 내가 앓았던 병과 나의 약점과 내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알고 있다.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고 함께 껴안고 울기도 한다. 이런 접근 방식은 젊은 의사들이 의과 대학에서 배웠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의사와 환자는 서로 인간적인 만남보다는 어느 정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환자를 위한 의사의 필수 조건이라고 배웠다.

감정 전이에 대한 젊은 의사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정확히 계산되고 절제된 말고 행동으로 개인적인 것은 환자에게 드러나기 않도록 훈련을 받으며 그것이 환자를 위하는 것이라고 믿으면서 어떤 실수를 해서 환자에게 해를 끼치게 될까 봐 두려워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경험에 의하면 모든 인간 관계는 자연스럽게 감정과 정서가 교류하면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나는 그것을 ‘자연스러운 시적 가치’ 라고 이름 붙였다.

대화의 주제가 감정 전이에서 우리의 근무 환경으로 바뀌게 되었다. 어느 여성 레지던트가 자기가 일하는 진료실의 환경에 대해 말했다. 다른 레지던트들의 방과 마찬가지로 창문이 없는 답답한 방이었다. 몇 주를 그냥 지내다가 방에 생기를 주려고 화분을 하나 갖다 놓았다. 화분의 화초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실망하지 않고 다른 화분을 가져왔고 정성껏 잘 돌본 덕분에 화초는 아주 잘 자랐다. 잘 자란 화분의 화초를 다른 화분에다 포기 나누어서 옮겨 심어서 두 개의 화분을 만들었다. 그렇게 몇 번 나누어 옮겨 심었더니 나중에는 화분이 여러 개가 되었다.

이렇게 잘 기른 화초가 환자들에게 뜻밖의 효과와 영향을 주었다. 처음부터 환자들은 화분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첫 번째 화초가 얼마 못 가 시들자 어떤 환자는 상당히 기분 나빠하며 더 우울해졌다. 그런데 새로 가져온 화초가 잘 자라자 환자들은 의자에 앉으면서 화초를 먼저 바라보았다. 그 중에 어떤 환자는 어떻게 해서 화초가 그렇게 잘 자랐는지 묻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자 어떤 환자들은 의자에 앉기 전에 화초의 잎을 만져 보기도 하고 흙을 느껴 보기도 했다. 그런 모습에 용기를 얻은 그녀는 조그만 정원장비를 구입해서 환자를 진료하기 전에 몇 분 동안 환자와 함께 화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함께 화초를 돌보기도 했다.

화초들이 잘 자라서 그녀의 진료실은 작은 식물원이 되었다. 이것을 보고 많은 환자들이 기뻐하고 고마워했다. 어떤 사람은 화초를 조금 나누어 줄 수 있는지 물어서 처음에는 잘 키울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어 망설였지만, 그들의 정성에 신뢰를 보내며 기꺼이 나누어 주었다. 화초를 가져간 환자들은 집에서 잘 자라고 있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이런 일은 정신과 의사들이 하는 평범한 일은 아니지만, 그녀는 조금씩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정신 의학의 전통적인 원칙에서 보자면 그녀의 방법은 기본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이고 상당히 파격적이기도 하지만, 내가 언급한 시적이고 은유적인 접근 방식과 일치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다른 의사들을 쭉 둘러보았는데, 안타깝게도 아무도 이 여자 레지던트의 접근 방식이 지닌 놀라운 힘에 대해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하는 눈치였다.

정신과 병동의 환자들은 모두 정신적인 성장을 어렵게 만드는 어떤 환경 때문에 입원하고 있다. 정서적으로 표현한다면, 그들은 창문이 없는 방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찾으려고 나름의 노력을 한다. 환자들은 ‘과연 의사들이 자신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똑같은 의문과 희망을 동시에 가지고서 의사들을 만나기 때문에 환자가 의사에게 전적인 신뢰를 가지기는 어렵다.

그녀가 감정 전이의 제한을 없애려는 나름의 노력과 취지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감정 전이가 이루어진 것이다. 환자들은 식물이 자라기에 적합하지 않은 장소에서도 정성껏 돌보아 주면 잘 자라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날마다 식물의 성장을 지켜보며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그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화초를 보면서 수많은 어려움과 갖가지 한계 상황에서도 삶을 돌보는 방법과 삶을 성장시키는 방법에 대해 희망을 품었으리라. 환자들은 자기들을 도와줄 수 있는 의사는 그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환자들은 점점 그녀에 대해 신뢰를 보이기 시작했다.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녀가 삶의 내면으로 들어와서 도와주는 것을 허락했다. 그들은 조금씩 정신 건강에서 차도를 보였다. 여러 가지 치료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험 삼아 그녀가 제시하는 방법을 따라서 자신을 돌보기 시작하다가 점점 그녀에게서 배운 것을 집에 가서도 실행하였다. 점차 어떻게 삶을 돌봐야 하는지를 알게 되면서 정신적인 치유가 이루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이 젊은 여자 레지던트가 나누어 주었던 이야기 안에 담긴 지혜에 크게 감동받았다. 아직 젊은 레지던트인 그녀가 학교에서 배운 전통적인 접근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나름의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던 지혜는 어디에서 얻었을까? 열려있는 마음 자세와 진정으로 생명을 사랑하고 돌보고자 하는 열정 때문이리라. 기존의 삶의 틀을 깰 필요가 있다. 그 틀이 깨어질 때 진정 우리는 자유로운 새로운 눈을 뜨게 되리라.

 

 

VII 거룩한 체험…

 

 거룩한 체험

 이 이야기는 남부에 있는 어느 대학 병원이 신생아 소아과 과장이며 유능한 신생아 전문의로 알려져 있는 여의사의 체험담이다. 의사로서 환자들을 치유하면서 거룩하다고 느낄 만큼 깊은 인상의 순간들을 되돌아보는 초대 모임에서 그녀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우리 모두는 그 이야기가 전해주는 어떤 신성함에 경의를 표했다.

 

그녀의 이야기 속의 환자는 미숙아로 태어난 아주 조그만 아기였다.

그녀는 새로 고안된 최첨단 의술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집중적인 치료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죽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가망이 없자 아기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기와의 작별을 준비하도록 전했다. 아기의 엄마는 아기가 몇 주가 지나도 살아날 가능성이 없자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아 몇 주 전부터는 아예 아기를 보러 오지 못했다. 아기 아빠는 혼자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수화기를 내려 놓고는 유난히 크게 들리는 모니터와 다른 기계들의 삐삐거리는 기계음이 혼란스러워 아기의 아빠가 도착할 때까지 혼자 조용한 장소에서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서 병원에서 유일하게 조용한 장소인 소성당으로 갔다. 성당에 조용히 머물면서 아기의 아빠에게 아기를 잃게 되는 이야기를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15분 정도 소성당에 머물다가 아기 아빠가 기다리고 있는 보호자 대기실로 가는 도중 문득 다른 주사약을 한번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주사약은 신생아에게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 약이었고, 그녀는 원칙을 벗어난 일은 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깜짝 놀랐다. 즉시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지만 이상하게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녀는 아기의 아빠를 만나서 상황을 설명했다. 가능한 모든 치료 방법을 다 시도했지만 가망이 없게 되었다고, 같이 집중 치료실로 가서 아기에게 작별 인사를 하자고 말했다. 그 이야기에 아기의 아빠는 침통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담긴 슬픔을 바라보며 그녀는 자신에게 속삭였다. ‘결국… 아기는 가망 없이 죽어 가는데 그 약을 한번 사용해 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자 그녀는 아기의 아빠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일반적으로 신생아에게는 사용하지 않는 약이지만 한 번 마지막으로 시도해 보고 싶은데 아빠의 동의를 얻고 싶다고, 아기 아빠는 즉시 그렇게 해 달라고 했고, 함께 집중 치료실로 갔다.

아기는 죽어가고 있었다. 간호사들에게 자신의 처방을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 좀 주저되어서 그녀는 자신이 직접 약을 준비해서 주사를 했다. 그녀와 아기 아빠는 각각 아기 침대의 양쪽에 서서 숨을 헐떡거리면서 파랗게 변한 아기의 얼굴을 지켜보며 결과를 기다렸다.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아기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순간을 그들 단 둘만이 있을 수 있게 시간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또 몇 가지 서류를 정리할 겸해서 집중 치료실을 나왔다.

몇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집중 치료실에 들렀다가 아직도 아기의 아빠가 거기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녀는 아기가 누워있는 보육기에 다가갔다. 아기의 가슴 맥박이 느려졌고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자기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아기를 바라보고 있는 아기 아빠를 보았다.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 순간이 자신에게는 굉장히 거룩한 순간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최근에 그의 부모가 건강한 모습으로 12세가 된 그 아이를 데리고 그녀를 찾아왔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 의사들은 잠시 이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그런 다음에 그녀는 기적 같은 그 일을 어떻게 감당했는지 설명했다. 자기는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아주 실용적인 사람이었기에 이 일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정당화시켜 줄 무엇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녀는 틀림없이 언젠가 어느 의학 전문잡지에서 그 주사약을 신생아에게 사용해서 효과를 본 연구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점점 자신에게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라는 다짐을 주었고, 차차 그것에 대한 확신을 지니게 되었다. 만약에 연구 보고서를 읽지 않았다면, 어느 학회에서 발표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잡지에서 읽었는지, 잡지 이름도 생각나지 않고 발표를 들은 학회도 기억할 수 없었지만 틀림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이 일을 잊어버렸다.

그런데 2년이 지난 후에 심한 호흡장애를 일으킨 신생아에게 이 약을 투여하여 치유가 되었다는 연구 보고서를 읽게 되었다. 신비가 밝혀진 셈이었다. 그녀는 기뻐서 그 연구 보고서를 쓴 연구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 보고서가 언제 출판으로 공표되었는지, 연구가 어느 정도 진전된 것인지를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이제까지는 이것에 대한 연구 보고서가 발표된 적은 없으며 이번에 처음으로 발표한 것이라고 했다. 그들의 말을 듣고 그녀는 너무나 놀랐다. 언젠가 읽거나 들었을 것이라는 믿음은 자신을 합리화 하기 위한 자기 최면이었다. 그녀는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이 너무나 이상했지만 그들에게 사실대로 말해 줄 수는 없어서 그 연구 결과를 뒷받침할 사례가 하나 있다고만 했다.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에 우리 의사들은 경의를 표했다. 그녀는 상식에 어긋난 치료 방법이 아니었다고 자신을 합리화하기에만 급급해서 자기를 이끌어 주었던 신비한 힘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또한 그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놀라운 선물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녀가 15분 동안 소성당에서 조용히 머무르는 시간을 갖지 않았다면, 과연 그녀에게 그런 생각이 떠오를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은총은 신비롭게 찾아온다. 하지만 그런 은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조용히 머무는 시간이 필요하다. 조용히 머무르는 그 시간 또한 은총이다.

 

기도

나의 상담 환자 중 한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다. 그의 담당 의사는 그에게 병원에서는 더 이상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이제는 조용히 기도를 하면서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 의사는 기도를 더 이상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 없고, 개인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아무런 방법이 없을 때 환자에게 권유하는 마지막 시도 내지는 마지막 휴식처로 여기는 것 같다. 환자의 마지막 치유자는 하느님이라는 의미에서는 타당한 말이지만, 기도는 텔레비전의 자동 리모컨처럼 원하는 채널을 맞추면 원하는 화면을 볼 수 있게 우리가 조절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무엇인가를 얻고 바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버리는 일이다. 기도는 욕심으로 생기는 괴로움을 이겨 내도록 도와 주며,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마저도 내맡길 수 있게 해 준다. 기도는 자연의 순리와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며 단순히 지적인 차원이 아니라 심오한 경험을 통해서 세상과 삶을 이해하도록 이끌어 준다. 기도를 한다고 해서 세상이나 어떤 상황이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변화되는 것은 오히려 바로 자신이다. 기도를 통해서 개인적이고 독선적인 사고는 전체적이고 포괄적으로 변화되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 준다.

그렇게 되면, 기도를 해서 ‘건강이 좋아졌는가? 또는 병이 나았는가?’ 등의 질문에 기도가 ‘효과가 있었는가?’ 하는 효험성의 문제가 아니라 신비에로의 열려 있음이며 이것은 아주 다른 차원의 물음이 된다. 깊은 차원에서 기도는 우리의 삶과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자세다. 기도를 향해 손을 내민다는 것은 내가 지닌 오만과 남의 도움을 거부하는 자존심과 독선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 삶을 통제하겠다는 생강은 버리고 삶에 우리를 맡겨야 한다. 기도는 겸손을 배우고 은총을 체험하는 기회다.

 

때로는 단순한 기도가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오래 전,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 위에 누워 마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 한 분이 내 손을 잡고는 내게 수술 팀의 의사들과 함께 기도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놀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수술에 참여하는 수술 팀 모두를 수술대 주위에 둘러서게 하고 잠시 침묵한 다음, “주님, 자희가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최선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고, 행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했다.

이 짧은 기도는 인디언들의 전통적인 기도문에서 따온 것이다. 이 기도는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긴다는 가장 단순한 기도인데 이 단순한 기도가 우리의 불안을 없애 주는 가장 좋은 위로가 된다. 바로 이 기도를 통해서 나는 수술방 안에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 의사의 기도는 나에게 커다란 위안을 주었다. 나는 수술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모든 나쁜 결과에 대해 가졌던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마취 주사를 맞고 평화롭게 깊은 잠 속에 빠졌다. 모든 기도가 그렇듯이 이 기도 역시 삶 속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기도는 삶을 통제하려는 욕구에서 벗어나 신비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준다. 나는 내 환자들을 위해 늘 기도해 왔고 요즈음에는 나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때론 보다 더 큰 사랑과 연민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지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처럼 위대한 영적인 특성을 지닌 인간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를 더 자주 하게 된다. 인간으로서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가 될 것인지, 도움이 될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나는 감히 그것을 알아 볼 수 있는 안목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가 비록 그런 안목을 갖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분의 보다 거룩한 목적에 미약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나는 환자를 만나기 전에 이렇게 기도한다.

“주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은 저의 몫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치유가 일어나는지 아는 것도 제 몫이 아닙니다. 저는 다만 이 순간 이 자리에 있습니다.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십시오.”

 

어느 랍비의 스승

내가 스탠퍼드 의과 대학교 부속 병원에서 젊은 소아과 의사로 일할 때, 뉴욕에서 온 12세의 쇼샤나 를 만났다. 쇼샤나는 홉킨스 병이라고 불리는 림프절 암에 걸려서 방사선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정통 유대고 랍비인 쇼샤나의 아버지는 모든 의식과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아주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정통 유대교에서 일년 중에 가장 거룩한 날은 ‘욤 키퍼’ 라고 부르는 ‘속죄하는 날’인데 마치 안식일에 법으로 금지된 사항이 많은 것처럼 이 ‘속죄의 날’ 에도 율법으로 금하는 행위가 많았고 특히 몇 가지는 절대 금기 사항이었다. 예를 들면 돈을 다루거나 거래해서는 안 되고, 가죽으로 된 어떤 것도 입거나 신어서도 안 되고, 차를 타거나 전기를 사용해서도 안 된다.

쇼샤나가 여덟 번째 방사선 치료를 받는 날은 공교롭게도 ‘속죄의 날’ 이었다.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병원까지 아픈 아이가 걸어서 오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그래서 이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 쇼샤나의 아버지가 찾아 왔다. 그는 욤 키퍼, ‘속죄의 날’ 에 지켜야 할 사항의 중요함에 대해 설명하고는 그날은 쇼샤나가 치료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 특수한 방사선 치료는 규칙적으로 정확한 시간에 치료를 받는 것이 병의 회복에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쇼샤나의 아버지는 몹시 화를 내면서 절대 그날 오지 않겠다고 했다. 하느님의 법이 어떤 인간의 법보다 더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가 막혀서 소리쳤다.

“지금 저에게 하느님의 법이 아이의 치료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도대체 어떤 하느님이 이런 터무니없는 것을 요구하십니까?”

그는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려고 아브라함과 외아들 이삭마저도 제물로 바치려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미 알고 있는 감동적인 이야기이지만 당시의 상황에서는 별 설득력이 없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뉴욕에 있는 더 권위 있는 자가의 스승 랍비에게 물어보고 결정하겠다며 진료실을 나갔다.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욤 키퍼 날 아침, 쇼샤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치료를 받기로 예정된 정시에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내가 놀라며 말을 건넸다.

“랍비님, 오늘 여기서 뵙게 되어 기쁘네요.”

“뉴욕에 계시는 스승 랍비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그는 내게 말했다.

“제가 딸의 상황을 설명하는 내용의 편지를 드렸지요. 그랬더니 스승님께서 직접 전화를 주셨어요.”

스승인 랍비는 그에게 욤 키퍼 날 택시를 불러서 함께 병원에 가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아내도 동반하고 딸과 함께 택시를 타고 병원에 온 것이다. 사실 그는 스승이 그렇게 말했을 때, 그러면 욤 키퍼 날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지 않느냐고 항의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스승은 반드시 딸을 데리고 함께 병원에 가라고 했다. “왜 그렇습니까?” 라고 그가 묻자, 그의 스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승인 랍비는 그의 딸이 이 세상에서 가장 경건하고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기 아빠도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속죄의 날에 차를 타는 것이 허락된다는 것을 딸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고 했다. 비록 율법을 있는 그대로 지키지는 않았지만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만약에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병의 치유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그의 스승 랍비에게 깊은 존경심을 가졌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시자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율법에 어떻게 하라고 하였느냐?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라고 하였느냐? 악한 일을 하라고 하였느냐? 사람을 살리라고 하였느냐? 죽이라고 하였느냐? (루가 6,9)

 

하느님이 잠시 한눈을 파신다면?

초등 학생이었을 때에는 학교에서도 자주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날 전교생이 모인 조회 시간에 성서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근본주의자였던 여교장 선생님은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된다는 내용의 아이들에게는 무척 무섭게 들리는 말씀을 하셨다. 그분은 손으로 성서를 드시더니 어느 한 구절을 뽑아 읽은 뒤 말씀하셨다.

“우리가 여기 있음은 하느님이 아시도록 매일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라.”

회고해 보면 교장 선생님이 많은 말씀으로 겁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나는 그분의 말씀에 상당히 큰 두려움을 느꼈다.

교장 선생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시길 하느님이 우리를 외면하면 우리는 가을 낙엽처럼 말라 비틀어져서 죽게 될 거라며(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녀는 실제로 말라 비틀어진 커다란 낙엽 한 잎을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보여 주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겨우 초등 학교 1학년이었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이 우리를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 만약 우리가 이 기도에 실패를 하면 어떻게 되지? 하느님은 나를 바라보시는 것 이외에도 할 일이 많으실 텐데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고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기도를 하지 않고 있는 동안에는 나를 쳐다보시지 않을 텐데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정말 거무칙칙한 낙엽처럼 말라 비틀어지게 될까? 나는 그 생각만으로도 공포와 전율에 휩싸였다.

‘하느님이 한눈을 파신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물음에 너무 압도되어서 나는 제대로 잠들지도 못하였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생각하는 젊은 사회주의자였던 부모님께는 이런 의문을 여쭈어 볼 수도 없었고 오직 유대교의 랍비였던 할아버지만이 현실 세계보다 더 큰 어떤 실체에 대해 가르쳐 줄 유일한 통로였다. 그때 나는 하느님은 할아버지의 친구인 줄 알았다. 아버지의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와서 아버지와 함께 담배를 피우며 카드놀이를 하는 것처럼 하느님도 할아버지를 찾아오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나의 두려움을 이야기하기 위해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기만을 기다렸다.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오셨지만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린 것 같았다. 아마 지금의 어른들은 여섯 살짜리 꼬마가 느꼈던 두려움과 소외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드디어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시자 나는 교장 선생님에게서 들은 모든 이야기와 나의 두려움에 대해 말씀 드렸다.

“할아버지, 하느님이 한눈을 팔면 저는 어떻게 되는 거지요?”

그 말을 하고 나자 그 물음이 지닌 두려움에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 어깨에 기대어 울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나의 어깨를 안고는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나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물으셨다. 할아버지의 손길은 따뜻했지만 좀 우울해 보였고 화가 나신 것처럼 느껴졌다.

“나오메레야, (나는 할아버지가 나를 ‘나오메레’ 라고 부르실 때, 그냥 단순히 내 이름에 대한 애칭으로 ‘나의 귀여운 나오미야’ 라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나오메레는 작은 영혼이라는 뜻이었다) 네가 한밤중에 잠이 깨었다고 하자. 엄마와 아빠가 너를 집에 혼자 두고 어디를 가버리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지?”

나는 울면서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할아버지가 물으셨다.

“어떻게 알지? 네가 엄마 아빠 곁에 있거나 부모님 방에 가서 계시는지 확인하였기에 알 수 있는 거니?”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두 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니?”

“아뇨.”

“두 분을 만져 보고서 알 수 있었니?”

“아뇨.”

어느새 나는 울음을 그치고 할아버지의 물음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고 그것은 그냥 아는 것인데 왜 그런 질문을 할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것은 그냥 아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기뻐하면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그래! 바로 그거야. 그렇게 하느님께서는 네가 거기 있다는 것을 그냥 아는 거란다. 네가 거기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너를 찾아보거나 만져 볼 필요가 없단다. 그분은 그냥 아시지. 똑같이 너도 하느님이 거기 계시다는 것을 그렇게 아는 거지. 하느님이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이 방에는 우리 둘만이 아니란다.”

 

하느님이 이 방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은 내면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체험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변함없이 언제나 내 가슴에 남아 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다. 우리가 꼭 하느님의 시선을 받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분은 늘 그렇게 거기 계신다. 하늘과 땅이 영원히 존재하듯이 그렇게 무한한 존재로서 우리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중력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살지만 항상 중력은 작용하고 있다. 만약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즉시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힘이 바로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안내자이며 늘 살펴보아야 할 삶의 나침반이다. 보이지 않아도 하느님과 연결된 그 힘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중력의 영향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엄청난 것처럼 그렇게 굉장히 크고 깊다.

다른 어떤 것보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은 삶에서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병과, 죽음 앞에서 내가 그들 곁에 함께 있을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혼자가 아니라 그분과 함께 있다는 믿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크나큰 은총이었다.

 

화두

“얘들아,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단다. 하나는 겉으로 드러난 그럴 듯한 보기 좋은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내적으로 그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 진짜 이유란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멀린스 선생님이 우리 꼬마들에게 들려준 말씀이다. 깐깐하셨던 선생님의 다소 냉소적인 이 말은 어린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웠고, 선생님의 말씀이 뭔가 중요한 것 같기는 한데 잘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그냥 선생님의 말씀을 노트에 적어두곤 했다. 20년이 지난 후에 나는 우연히 그 노트를 다시 보게 되었다. 당시 나는 꽤 냉소적인 젊은 의사였고, 멀린스 선생님의 말씀 중에서 하나는 틀린 것이라고 단언했었지만 거의 50년이 지난 지금은 모두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신비로움이 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난 이유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짜 이유와 다를 수 있다. 어떤 사건에 대한 첫인상은 나중에 드러나는 결과와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에는 오묘한 신비가 들어있고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깊은 의미를 찾고 알아내는 능력은 무엇보다도 인생이 지니고 있는 역설을 이해하고 모순처럼 보이는 많은 것들을 어떻게 포용하는가에 달려있다. 인생의 신비로움을 감지할 수 있다면, 인생은 ‘이것 아니면 저것’ 이라는 양자 택일의 의미가 아니라 ‘이것과 더불어 저것’ 이라는 양자가 공존하는 의미다. 이점에서 멀린스 선생님은 지혜로운 분이셨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겉으로 드러난 그럴 듯한 보기 좋은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내적으로 그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 진짜 이유이다.

불교의 선(禪)에 화두라는 말이 있다. 화두는 선의 스승인 선사가 제자에게 제기한 물음이나 풀어야 할 문제를 말한다. 제자는 그 화두를 붙들고 선을 수행한다. 화두는 이성이나 합리적인 사고로는 풀 수 없는 하나의 딜레마이며 신비이다. 보통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다가 좌절과 혼돈을 체험하고는 다시 새롭게 시작하다가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사고의 전환이 화두를 푸는 열쇠이다. 문제를 다른 눈으로,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화두를 제시하면서 스승은 그 제자만이 지닌 고유한 방법으로 신비를 꿰뚫어 보기를 바라며, 제자는 화두를 붙잡고 씨름하면서 아주 오랫동안 괴로워하기도 한다. 우리가 힘든 삶의 문제에 부딪쳤을 때, 그 삶에 대해 당황하고 좌절하고, 자존심 상해하고, 억울해하고, 부당하다고 느끼듯, 화두를 받은 제자는 화두를 던지 스승에 대해 분노하고 좌절하고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조금씩 그 신비에 다가간다. 그러나 그 신비의 문으로 들어서게 되는 계기는 그 모든 혼돈과 좌절을 체험하고 난 이후에 찾게 되는 새로운 시작이다. 습관적인 모든 방법이 소용없다는 것과 자신의 무지를 인식한 뒤에 화두를 대할 때에 문득 어떤 깨달음이 온다. 선(禪)에서는 이 깨달음을 ‘새로운 시작의 정신’ 이라고 부른다.

 

지극히 평범한 속에 신비가 들어있다. 나는 이것을 깨닫지 못했다. 내가 상담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주 특별한 개성을 지닌 한 여성이 찾아왔다. 천부적인 재능의 조각가이지만 알코올 중독자였던 그녀는 몇 년 전에 최악의 상태에서 네 자녀를 어머니에게 맡기고 치료를 시작했다. 그녀는 상당히 오래 걸리는 치유의 기간을 잘 견뎌 냈고 이제는 새로운 봉사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50대 초반인 그녀는 다시 예술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고, 아담한 아파트도 마련했다. 나와 상담을 시작한 지 여러 달이 지났을 때 그녀는 더 열린 마음으로 삶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 안에서 치유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마음을 여는 방법으로 명상을 배우고 있었고 그녀에게도 이 명상법을 가르쳐 주었다. 명상은 매일 빠지지 않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그녀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일주일 후에 다시 상담을 했을 때, 별 진전이 느껴지지 않아 명상을 했는지를 물어 보았더니 그녀는 한 번만 했다고 대답했다. 다음 상담에서는 아주 불안하고 상심한 모습이었다. 다시 명상을 했는지를 묻자, 자신은 지금 명상에는 관심이 없고 다른 문제 때문에 괴롭다는 것이다.

갈라진 목소리로 그녀는 내게 그 괴로움을 털어놓았다. 지난 몇 주 동안 쥐 한 마리가 아파트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녀는 그 더러운 쥐새끼가 병균을 퍼뜨리면서 애써 아름답게 가꾸어 놓은 보금자리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 것에 대해 분개했다. 이것이 분명히 그녀에게는 아주 중요하고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나는 좀 당화했다. 당시 나는 마음을 여는 명상에 대해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명상을 통해 마음을 여는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 쥐가 훼방을 놓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숨을 내쉬었다.

“좀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세요.”

그녀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점점 더 화를 냈다. 그녀는 직접 쥐덫을 놓을 수가 없어서 아들에게 부탁을 했고, 아들인 쥐덫을 사다 놓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매일 밤 쥐는 다시 나타났다. 이웃 집 사람이 차고에 쥐가 들어왔을 때 사용한 쥐약을 가져왔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아파트 관리인에게 부탁해서 쥐가 들어올 가능성 있는 모든 출구를 봉쇄했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다. 이런 말을 할 때쯤에는 그녀는 거의 공포 상태였다. 나는 그만 눈치도 없이 이렇게 불쑥 말을 던졌다.

“그 쥐를 없애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 말고 당신은 어떤 일을 했어요?”

실제로 그녀가 한 일은 음식물을 치우는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이렇게 꼬집어서 말했다.

“그것은 바로 당신 쥐잖아요. 제 생각에 당신이 직접 어떤 조치를 취할 때까지 그 쥐는 계속 그냥 있을 거예요.”

나는 이 말을 하고 곧 후회했다. 이것은 너무 가혹한 지적이고 판단이었다.

일주일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상대에 대한 배려나 연민의 마음 없이 나의 관심사인 명상으로 마음 여는 일에만 몰입해 있었고, 그것을 쥐가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에 과민 반응이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다음 상담에 왔을 때 그녀는 다소 상기되어 있는 듯했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다시 명상을 했는지를 물었다. 그녀는 명상은 전혀 생각지도 않았고 대신 더 많은 일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녀는 지난 번 상담을 마치고 나갈 때는 너무 화가 나서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며칠 동안이나 화가 났었는데 갑자기 내가 했던 말에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가 직접 쥐덫을 사려고 철물점에 갔다가 때마침 새로운 좋은 쥐덫이 있어서 사 가지고 왔다. 그러나 쥐덫을 사용하기에는 그녀의 마음이 너무 어렸다. 정말 이 쥐를 내가 없애야 한다면 내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녀는 고양이를 한 마리 사 왔다 그 이후 쥐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5세 이후에 처음으로 갖는 애완동물이라고 했다. 5세 때 아버지가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를 사오셨다. 그녀는 그 강아지를 아주 예뻐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강아지를 잘 돌볼 수 있으면 키우는 것을 허락한다고 했지만 겨우 5세인 그녀는 강아지를 키우기에는 너무 어렸다. 어머니는 아주 괴팍한 분이었는데 술을 마시면 더욱 심했다. 하루는 강아지가 계속 짖고 끙끙댔는데 원인을 알 수 없었던 그녀는 강아지를 조용하게 할 수가 없었다. 화가 난 그녀의 어머니는 강아지를 욕실로 데려가 물에 빠뜨려 죽였다.

나는 경악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강아지가 그렇게 죽은 것은 강아지를 충분히 사랑해 주고 잘 돌보지 못한 자기 탓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의 고양이는 아주 잘 자라고 있다고 했다. 매일 그녀가 집에 돌아오면 반갑게 달려들어 다리를 비비고 안긴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녀가 말했다.

“고양이가 정말 잘 자라고 있어요. 이제는 제 사랑이 충분한가 봐요.”

이 이야기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가 있겠지만 분명한 건 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의 사랑을 한 번도 신뢰하지 못했던 여인이 이제 그 사랑의 힘을 체험한 이야기다. 나는 이 이야기를 궁극적으로는 인과 관계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그녀의 삶 안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던 치유의 핵심인 그녀가 겪고 있는 삶을 바라보지 못하고는 엉뚱하게 그녀의 마음을 열기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에 만 매달렸었다. 대개는 삶 안에서 치유가 일어나는 길은 신비롭게 일어나기 때문에 발견하지 못한다. 신비에 마음을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화두를 풀기 위해서는 신비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때가 되면 화두에 대한 답을 얻게 되리라는 믿음이기도 하다. 깊은 내면으로 고요히 물러서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기대했던 대로 화두가 풀리지 않기 때문에 좌절하지만, 다시 조용히 귀 기울이고, 비록 금방 이해되지 않지만 포용하려는 열려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해답과 해답을 찾고자 하는 이가 서로를 해야 열린 마음이 되면 해답은 슬며시 신비의 문을 연다. 화두의 열쇠는 단순하고 가까운 곳에 있다. 화두를 푸는 내내 살며시 얼굴을 내밀어 주지만 우리가 보지 못했을 뿐이다. 일단 화두를 풀게 되면 그렇게 쉬운 것을 미처 몰랐다는 것이 믿기 어려워진다. 새로운 시각으로 화두를 풀게 되면,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마음이 된다. 묵은 것은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

인생이 우리 앞에 내어놓는 많은 문제들은 마치 선사들이 제자들에게 던져주는 화두와 같다. 그러나 화두의 묘책이 어느 순간에 떠오르듯 삶이 담고 있는 의미와 지혜도 불현듯 나타난다. 삶의 의미를 기다리는 것은 마치 아기의 탄생을 기다리는 것처럼 신비롭다. 한 삶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 삶의 의미를 잉태하게 된다. 때로는 그 임신의 기간이 몇 주에 불과할 때도 있지만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하나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어 간직하면 더 많은 의미를 잉태하게 된다. 그 의미들은 전에 잉태했던 것보다 더 깊고 넓어진다.

분명히 살면서 겪는 고통이나 병은 인생의 화두다. 사실은 삶 자체가 호두다. 삶에서 마주치는 고통이나 병을 마치 선의 제자들이 선사가 던지 화두를 받아들이듯,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도 고통을 함께 나누며 영적인 여정을 따라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 만남 안에서 육신의 치유가 일어나고 사랑 가득한 영혼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귀 기울여 들어주기

우리는 서로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치유의 도구나 전략은 타고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로지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우리들은 내면에 주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면의 힘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태초부터 사람들은 서로를 치유해 왔다. 외과 의사나 내과 의사나 암 전문 의사나 심리 학자 등이 있기 훨씬 이전부터, 우리는 서로를 위해 치유의 역할을 담당했다. 상처 받고 있는 것에서 치유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치유의 힘을 인식하고 신뢰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로를 끌어안아 주는 힘이라든가, 용서해 주는 축복이라든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데서 오는 놀라운 은총이라든가, 자기 안에 생각하지 않았던 선(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등의 가장 단순한 인간관계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치유의 힘이 담겨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고통을 겪지만 고통의 체험과 상처로부터 얻은 지혜로 그 고통을 치유하기도 한다. 내면에 존재하는 치유의 힘을 기억하고 신뢰하는 것이 치료 전문가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전문성이 상처의 치료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처 입은 사람은 상처를 경험한 사람들에게서 가장 좋은 치유를 얻는다. 상처를 경험해 본 사람만이 진정으로 그 상처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처의 치유는 전문성이 아니라 진심으로 공감해 주는 연민의 마음이다.

내가 스탠퍼드 대학교 의학 대학의 젊은 교수로 있을 때였다. 인간 중심의 정신 치료라는 분야의 개척자로 알려진 칼 로저스박사를 세미나에 초청했다. 당시 나는 젊은 나이에 이미 전문가로서 의과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는 자부심과 나름의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었다.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관심’ 이라고 불리는 그의 치유 방법은 전문적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형편없는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그의 치유 방법이 마술처럼 놀라운 효과를 나타낸다는 소문을 듣고 호기심에서 그 세미나에 참석했다.

로저스는 아주 뛰어난 직관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환자들과 어떻게 상담을 하는지를 들려 주면서, 그가 환자들에게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했던 것을 우리에게 설명하기 위해 자주 말을 중단하곤 했다. 내가 의대생 시절부터 늘 익숙했던 논리 정연하고 막힘 없이 이론을 전개하는 정통적인 강의 방법과는 아주 달랐다. 겉으로 볼 때, 저렇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전문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강의를 듣고 있었다. 그에게서 들은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관심’ 이라는 접근 방식은 단지 침묵 안에 고요히 앉아서 환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아무런 판단이나 해석을 하지 않고 그냥 들어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환자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마침내 로저스는 우리에게 자기의 접근 방식을 실제로 보여주겠다고 했다.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던 의사 한 사람이 자기가 상담 환자의 역할을 하겠다고 자원했고, 로저스와 그 의사는 상담자와 내담자로서 마주 보고 의자에 앉았다. 로저스는 이 시범을 보이기 전에 잠시 나를 포함해서 전문가들인 우리 참석자들을 생각에 잠긴 듯이 바라보았고 나는 흐르는 침묵이 몹시 불편했다. 한참 뜸을 들이던 그가 드디어 말을 시작했다.

“상담을 할 때마다 저는 먼저 저의 인간됨을 성찰해 보는 시간을 잠시 갖습니다. 저와 상담을 하는 사람과는 못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두려움도 없고 관심을 기울이지 못할 고통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같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받은 상처가 아무리 깊고 큰 것이라고 하더라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도 상처받기 쉬운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들을 도와 주기에 충분합니다. 아무리 무거운 이야기라도 그는 더 이상 혼자 짊어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 그에게는 치유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어진 상담은 너무나 훌륭했다. 로저스는 말 한마디 없이 상담을 진행했다. 그의 대담자에게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받아주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서 상담을 이끌었다. 내담자의 역할을 자원했던 의사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그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담은 일반적인 상담 기술보다 훨씬 더 심오하게 진행되었다. 내담자 역할의 의사는 로저스가 자신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신뢰가 생기자, 자기의 가면을 벗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많이 망설이더니 점점 쉽게 가면을 벗고 자신의 내면을 솔직히 열어 보였다. 하나의 가면이 벗겨질 때마다 로저스는 무조건적으로 그의 가면 뒤에 숨어 있던 모습을 진심으로 환영해 주고 받아 주었다. 결국 우리는 내담자가 지니고 있는 벌거벗은 순수한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었다. 그 내담자 자신도 보지 못했을 아름다움을!

그 순간 함께 있던 우리 모두도 자신의 가면을 벗고 순수한 모습이 될 수 있었고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기회를 갖게 된 그 의사를 부러워하면서 내가 자원하지 못한 것을 애석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대부님과 만났던 짧은 순간 이외에는 내가 누구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환영 받았던 기억이 없었다.

나는 항상 내가 옳고 또한 모든 면에서 뛰어남을 인정 받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며 살았다. 무엇을 읽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어떻게 살 것인지, 심지어는 어떤 말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준도 그 점에 두었다. 사실 충분히 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다. 나는 살아오면서 완벽하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로저스의 말이 틀리지 않다면 완벽은 얼간이에게나 수여되는 상이다. 정말 필요한 것은 그저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나도 인간이었지만 지금까지는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로저스가 지적한 것은 아주 지혜로운 치유의 기본적인 원칙이다. 우리가 어떤 전문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전문성이 아니라 우리의 인간성이다.

가만히 들어 주는 것은 가장 오래된 강력한 치유의 도구다. 주변 사람들을 면화시키고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지혜로운 말이 아니라 잘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이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은 그 삶에서 치유가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우리가 상대의 말을 온 마음으로 들어준다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내면의 어떤 방황이 쉬면서 치유를 받을 수 있게 거룩한 장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여기서 어떤 방황이란 거부되었거나, 사랑 받지 못했거나, 자타에게 무시되고 인정받지 못했던 내면의 감추어져 있던 상처를 말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영혼과 마음이 자주 집을 잃고 방황한다. 들어준다는 것은 거룩한 침묵을 낳는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관대하게 귀 기울이면, 자신의 지닌 진실의 소리도 듣게 될 것이다. 어쩌면, 처음으로 그 진실의 소리를 드는 것일 수도 있다. 침묵 안에서 귀 기울여 듣다 보면, 그 사람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도 있고 우리 모두에게 속삭이는 아름다운 노래 소리도 듣게 된다.

 

얼마 전에 내가 태어난 뉴욕 시내를 빗속에서 걷고 있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푸른 들이 있는 캘리포니아의 전원도시를 떠올리면서 그곳에 모든 생명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음을 감사했다. 모든 생명체들이 잘 자랄 수 있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환경이나 공간에 있는 것은 아니다. 구질구질하게 내리는 비 때문에 시멘트와 벽돌로 이루어진 회색의 도시가 새삼스럽게 낯설게 느껴진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을 훼손하여 변형시킨 인간의 능력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거리를 한참 걸었지만 내리는 비에 환호성을 지르며 응답하는 생명체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비가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명이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은 가장 삭막해 보이는 장소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들어 준다는 것은 마치 황무지에 내리는 빗줄기 같은 것이 아닐까… 내린 비에 황무지는 다시 생명이 자랄 것이고, 어떤 이는 잃어버린 무엇을 다시 찾게 될 것이다.

 

신비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어머니를 찾아 뵈려고 서둘렀지만 조금 늦게 도착하여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했다. 그날 나는 이른 새벽에 출근하여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지친 몸으로 퇴근길의 정체가 극심한 도로를 운전했다. 저녁 7시경에 어머니께 꽃을 사다 드리려고 화원에 잠시 들렀다. 그 화원에는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보라색 아이리스가 없었고 마음에 드는 다른 꽃도 없었지만 다른 화원으로 갈 시간적인 여유 또한 없어서 실망하고 있자, 꽃가게 주인이 아직 꽃봉오리가 채 피지 않은 보라색 아이리스를 아이스박스에서 꺼내며 이것이라도 사겠느냐고 하면서 몇 시간만 지나면 피기 시작할 거라고 말했다. 나는 꽃가게 주인이 초록색 종이에 아이리스를 포장하는 동아 시간이 없으니 빨리 해주기를 재촉하면서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보라색 꽃을 초록색 종이로 포장해 놓으니 아주 이상하게 보이는 꽃다발이 되었다. 서둘러서 어머니가 입원해 계시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꽃다발을 들고 병동의 무거운 문을 밀고 들어서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간호사가 짤막하게 말했다.

“선생님, 어머니께서 조금 전에 운명하셨습니다. 위로를 드립니다.”

충격이었다. 겨우 간호사를 따라 어머니의 병실로 갔다. 어머니는 주무시는 것처럼 침대에 누워 계셨고 손은 아직 따뜻했다. 간호사가 내게 지금 곡 알려드려야 할 사람들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가까운 친척들과 친구들의 전화번호를 몇 개 주고, 어머니 침대 곁에 앉아서 기다렸다. 병실은 평화롭고 조용했다. 조금 지나자 연락을 받은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람씩 오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캘리포니아에서 돌아가셨지만 고향인 뉴욕으로 모시기로 했다. 나흘이 지난 후에야 나는 장례 절차와 무덤 준비 등이 전화로 부탁한 대로 잘 되었는지 궁금해 하면서 3000마일을 날아서 뉴욕에 갔다. 아직 봄이었지만 이상 기온으로 무더웠고 불쾌 지수가 아주 높은 데다 심한 도시의 소음과 매연으로 뉴욕은 거의 최악의 상태였다.

장례를 주관했던 사람은 매우 섬세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전화로 이미 이야기했던 것이지만 장례에 대한 모든 사항들과 어머니가 남기신 유언 등을 다시 하나씩 확인해 주었다. 그는 이야기 도중에 잠시 생각이 난 듯이 말했다.

“어머니 시신을 모셔 올 때, 같이 온 것이 있는데 보시겠습니까?”

우리는 함께 복도를 따라 어머니의 관이 놓여 있는 시신 안치소로 갔다. 어머니는 좋은 나무 관 위에 평화로운 모습으로 고요히 누워 계셨다. 그 관 위에 내가 별실로 가져갔던 보라색 아이리스 다발이 초록색 종이에 싸인 채로 놓여 있었다. 분명히 그날의 그 꽃으로 이제 활짝 핀 모습이었다. 지금도 그 꽃의 모습이 생생하다. 송이마다 보라색 아이리스는 정말 크고 아름답고 싱싱한 그대로였다. 방 안이 보랏빛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나흘 동안이나 물이 없이 그렇게 싱싱하게 활짝 필 수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런 체험은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믿기 힘든 것들을 부정하고 마음을 닫기보다 마음을 열어 신비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순간 우리는 그 신비의 경이로움 앞에 가만히 손을 모으게 될 것이다. 삶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큰 신비로움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어머니는 내가 마지막으로 선물한 그 꽃을 다시 내게 선물로 주신 것인지도 모른다.

 

하느님을 안다는 것

인간은 기대나 후회, 야심과 당황, 두려움과 걱정이 없는 아주 순수한 상태로 태어난다. 숲 속에 안개가 퍼지듯, 평화가 흐르는 은총의 내밀한 지점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심리학자들은 이 지점을 ‘정신’이라고 부르고 신학자들은 ‘영혼’이라고 한다. 융은 이 지점을 ‘무의식의 자리’ 라고 불렀다. 힌두교도들은 ‘아트만(대아)’이라고 했으면, 불교에서는 ‘카르마(법)’ 라고 이름 붙였다. 릴케는 ‘내면’ 이라고 표현했고, 이슬람의 수피들은 ‘퀠브(혼)’ 라고 했으며, 예수는 그것을 ‘사랑의 중심’ 이라고 했다.

이 내면의 지점을 안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다. 이는 외적인 신분에 의해서도 아니고, 어디에서 일하고, 어떤 모습이며, 남들에게 어떻게 불리기를 바라는 마음도 아니다. 절대자에 의해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과 그 안에 머물러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은 일생을 두고 계속 이루어야 할 어려운 과제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존재는 끊임없이 비본질적인 것을 침식시키고 본질적인 것을 향하도록 만들어졌음에도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태어날 때 만났던 바로 그 순수한 지점으로부터 계속 멀어져 가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둘의 갈등 사이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결국은 우리의 가장 내밀한 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은총의 지점을 향해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이다

— 마크 네포 —

 

 

고대 샤머니즘의 주술사들은 병을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 우리 안에 또는 우리 주변에 있는 신성함을 잃어버렸을 때 겪는 고통이라고 보았다. 거룩함의 체험은 주관적이고 직관적이다. 형대 문화 속에서 자란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 현실적인가’ 라는 편협한 사고를 계발시키고 거기에 빠져든다. 그것이 아무리 일상의 체험일지라도 만질 수 없거나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은 평범한 일상에서다. 하느님은 우리의 가장 평범한 하루하루의 일상 안에, 아주 사소한 일처럼 보이는 그 안에 함께 계신다. 그것을 제대로 알 수 있다면 우리 삶은 거룩할 수밖에 없다. 현실적인 표현은 어렵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는 이 놀라운 현실을 체험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중요하다. 어쩌면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이런 현실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을 유지시켜 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근의 많은 의학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고립되면 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은 환자는 생존율이 훨씬 높아진다고 한다. 어떤 의학 잡지의 논문에 따르면, 전이유방암과 같은 신체적인 위협의 상황에서도 서로 사랑하고 돌보아 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훨씬 빨리 회복된다고 한다. 영적인 친교는 치유를 낳는다. 치유의 관계에서는 인간적인 친교 못지 않게 영적인 친교도 중요하다.

치명적일 수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되면, 우리는 바로 주관적인 세계 안으로 빠져들곤 한다. 치유의 방법을 찾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내면은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한다. 그 내면의 깊은 곳에서 자신을 중요하지 않고, 아주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영혼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것이다. 누구의 영혼이든지, 그 영혼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 우리는 깊은 치유가 시작되었음을 알려 주는 ‘은총의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잃어버린 양

한 사람의 죽음을 보면 그가 누구였는지를 알게 된다. 누군가의 죽음에서 우리는 그가 처함 상황들, 시간이나 장소, 환경 등 아주 구체적인 모습을 보게 되면서 문득 그의 감추어졌던 치유의 경이로움과 그기 평생을 고민하였던 어떤 문제의 해답을 찾게 되는 놀라운 체험을 한다. 예로부터 죽음을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고 여겼다. 어쩌면 동시에 가장 위대한 치유자 일지도 모른다. 교육(education)이라는 말의 어원은 라틴어로 educare에서 왔는데, 한 사람의 내적인 완전함과 일치를 이루도록 이끌어 준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한다는 의미는 내적인 일치를 이루도록 치유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인도 철학과 불교에서의 카르마(법)의 이론에 따르면, 인생 그 자체는 본질적으로 교육과 치유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가 삶에서 겪는 도전과 경험들을 통해 인간성 안에서 전체를 향한 내적인 일치가 일어나고 더욱 분명해지고 강해진다. 모든 인간의 삶은 궁극적으로 영혼을 향한 여정일 것이다. 우리 삶에서 죽음은 삶의 경험들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마무리하는 여정의 마지막 지점이다.

 

토마스 할아버지는 이미 70대 중반을 넘어선 경험이 풍부한 의사였다. 거의 50년을 혼자서 가정의로 지냈다. 그가 맡았던 가정에서는 할아버지에서부터 손자들에 이르기까지 아플 때나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에게 도움을 청하였고 그와 의논했다. 가정의로서뿐만 아니라 그들의 친구이기도 했다.

내가 토마스 할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폐암 말기였다. 더 이상 가망이 없어 퇴원하고 집에서 조용히 쉬면서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까지 거의 휴가도 없이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던 사람이었다. 이제 죽음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죽음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도움을 받으려고 나를 찾아왔다. 그는 상담 때마다 자기 인생 여정을 조금씩 이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최근 몇 년 동안에도 그는 자기를 되돌아보는 일을 해왔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삶 전체를 되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토마스 할아버지는 자기의 죽음을 부당하게 느끼고 있었다.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에 어떤 이유로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혼돈스러운 삶을 이해하는 수단으로 과학을 신봉하게 되었다. 사는 동안에 비록 과학이 그를 실망시키지는 않았지만, 삶에는 여전히 풀지 못하는 많은 신비들이 놓여 있었다. 그는 삶은 가치 있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진정으로 자신의 삶이 어떤 것이었고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싶어했다.

나는 남을 위해 봉사하는 데 헌신적이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 경외심을 지니고 있고 인간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감탄할 줄 아는 토마스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종교나 영적인 신념을 지니지 않은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는 진심으로 의아해 하며 어떻게 해서 교회를 떠나게 되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자기 삶의 다른 여러 가지 세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아주 개방적이고 솔직하였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상할 만큼 침묵을 지켰다. 다만 그가 열여섯 살에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는 것만 들었을 뿐 그 이유는 결국 알지 못했다.

토마스 할아버지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평생 동안 외로운 사람이었다. 한 번도 결혼한 적도 없이 수도자처럼 독심을 지키며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예술, 시, 음악, 발레, 문학 등 다방면에 뛰어난 감각을 지닌 예술가였으며 그의 서가에는 천여 권이 넘는 장서가 있었다. 그러나 토마스의 가장 큰 공헌은 물론 의사로서 많은 가정의 건강을 돌보고 그들의 필요와 희망과 꿈을 이루어 주는 데 기여한 것이었다. 그는 참으로 헌신적인 가정의였다.

그와 대화를 나누다가, 나는 그에게 환자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내 진료실에 걸려 있는 목자가 양을 돌보고 있는 그림을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저 그림에 있는 모습과 같아요.”

우리는 몇 주에 걸쳐 그가 의사로서 했던 일의 성격과 그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목자가 양떼를 돌보듯이 그는 환자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좋은 영양분을 찾도록 도와주고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는 데 조언을 해 주었으며 길 잃은 양들을 찾아 어미 양에게 데려다 주는 역할도 했다.

토마스 할아버지는 자기 양들을 돌보면서 경험한 많은 이야기들과 자기 양들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함께 이 이야기들을 심사숙고 해 보고 의견을 나누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되돌아보면서 그는 자기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고,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 같았다. 대화 도중에 그는 이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빅토리야 풍의 고어(古語)가 된 단어를 사용했다. 예를 들어, 그들이 그 안에서 ‘장막’을 쳤다’ 고 표현했다. 그 말의 뜻은 그가 그들에게 은신처였고 쉼터였으며 지지자였고 친구였다는 의미다.

우리는 함께 음(陰)과 양(陽)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자가 양들을 거두어 주고 영양분을 제공해 주는 여성으로서의 음의 역할과, 지켜 주고 보호해주는 남성으로서의 양의 역할을 어떻게 모두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것의 이미지는 조화였다.

그는 조금씩 병이 악화되면서 이제 숨을 쉬기도 힘들어졌다. 나는 그가 혼자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려고 조금 도적적인 말을 꺼냈다.

“이제는 할아버지도 다른 분 안에서 ‘장막을 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할아버지가 양들의 목자였다면 목자의 목자는 누구이겠어요?”

고통스럽게 그가 말했다.

“아무도 없어요.”

그가 영원히 장막을 쳐야 할 장소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비록 그가 전문의로서 다른 사람들의 목자가 되어 주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점점 양떼들로부터 멀어졌고 혼자 고립되어 오히려 자신이 잃어버린 양이 되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는 그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에 대해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다. 그는 그 양은 너무나 오랫동안 혼자 잃어버려진 채 있었기 때문에 다른 양떼가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혼자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자기를 잡아먹을 수 있는 강한 육식 동물이 오면 숨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먹이를 찾는 방법을 터득했다. 나는 물었다.

“그 양은 목자가 자기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그는 아니라고 하면서 말했다.

“그 양은 아주 나쁜 일을 했기 때문에 목자는 그를 잊어버렸어요.”

“당신은 목자로서 나쁜 일을 한 양떼는 돌보지 않나요?”

나의 질문에 그는 좀 당황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서 그가 잃어버린 양들을 돌본 사례를 상기시켜 주었다. 청소년 법정에 선 한 여자 아이의 보호자가 되어 돌보아 주었고 결 국 대학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일을 예로 들면서 왜 그렇게 해 주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그 아이는 제 양이었으니까요.”

내가 말했다.

“맞아요. 그렇지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런 후에 이야기의 주제를 다른 것으로 바꾸었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내면 깊은 곳에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양과 목자 사이의 유대 관계는 잘못을 탓하거나 판단하는 것을 넘어서서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그기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다는 것에 감동을 받은 것에 틀림없었다.

그는 계속 건강이 악화되어서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담당 의사는 할 수 있는 모든 치료 방법을 다 써보았고 그냥 조금이라도 편하게 쉬도록 해 주는 것이 전부였다. 더 이상 상담을 하러 올 수 없게 되어서 내가 그를 찾아갔다. 나는 그의 침상 곁에 앉아서 손을 잡아 주었다. 때로는 책을 읽어 주거나 시를 읊어 주기도 했다. 결국 임종을 도와 줄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겼다.

그는 잘 견뎌 냈다. 그가 견뎌 내는 것을 보고 호스피스 봉사자가 무척 놀랐다. 그를 당당하던 간호사가 나에게 말했다.

“그는 마치 누군가를 아니면,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느껴져요.”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 가 없었다. 그의 동생이 작별 인사를 하려고 멀리 동부에서 왔고, 이미 많은 그의 환자들이 다녀갔고, 그들의 사랑과 감사를 나타내는 카드를 보내 왔지만 그는 그런 것이 아닌 다른 무엇이거나 누구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탄 전야였다. 나는 토마스 할아버지의 담당 간호사에게 그가 하루 종일 혼수 상태에 있었고 이제 숨쉬기도 곤란한 것 같다는 전화를 받았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달려갔다. 그를 보자 이제 임종의 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숨을 아주 가늘게 쉬다가 거의 끊어졌다가 다시 조금씩 쉬고 있었다. 그의 담당 간호사는 아직 젊고 경험이 많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내가 토마스 할아버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 그냥 함께 곁에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같이 시트를 갈아 주고 앉아서 기다렸다. 결국 할아버지는 숨을 거두셨다. 나는 토마스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잠시 더 머물다가 그를 위해 기도해 주고 떠났다.

병원을 나서자 밖은 몹시 어두웠고 추웠다. 나는 코트의 옷깃을 세우고 자동차 열쇠를 주머니 속에 쥔 채로 종종걸음으로 주차장을 향해 가고 있었다. 차가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교회의 종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잠시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멈추어 섰다. 이것이 토마스 할아버지를 위해서 울리는 종소리인가? 순간 오늘이 성탄 전야라는 것을 깨달았다. 성탄 전야의 자정이었다. 목자가 오신 것이다. 이제 그분이 토마스 할아버지를 영원한 장막으로 데려 가실 것이다.

 

 

에필로그

무엇이든 그것이 현실이라면 거기에는 시작도 끝도 있을 수 없다. 여러분의 삶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나 나의 삶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식탁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이전처럼 언젠가 다시 식탁에 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간혹 어린 시절의 어느 일요일 오후를 떠올리면 아주 기분이 좋아진다. 점심을 먹은 후에 가족들이 거실에 둘러앉아 세상 돌아가는 일, 정치 이야기 등을 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와 나는 슬그머니 부엌으로 들어가 식탁에 앉아서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현대를 살고 있음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부모님은 하느님을 그저 미신보다는 조금 낫지만 인생살이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로 생각하셨다.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과학 밖에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내가 할아버지에게서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것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았다.

거실에서 다른 식구들이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이 옳다거니 그르다거니 뜨거운 논쟁을 벌이거나 신문에 난 처칠의 연설을 큰 소리로 읽으면서 찬사를 보내고 있을 때, 할아버지와 나는 식탁에 앉아서 하느님과 세상과 삶의 신비로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할아버지는 하느님이 이 세상을 축복하시기 때문에 삶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 주셨다. 항상 주머니에 지니고 다니는 성서를 꺼내 한 구절을 뽑아 읽어주시기도 했다. 때로 어느 구절들은 암송하도록 하셨다. 주로 시편과 잠언 등에서 뽑은 내용이었는데 아주 아름다웠고 암송하기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이 성서 말씀들 속의 낱말 하나하나까지 사랑하고, 특별한 경외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도 말씀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고 마음으로부터 배우려고 노력했다. 할아버지는 성서 이외의 유대교 전통 금언집에서도 좋은 구절을 읽어주시고 암송하라고 하셨다. 거기 담겨 있던 내용은 어린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철학적인 내용이었다.

내가 주의를 집중하지 않고 암송에 게으름을 피우면 할아버지는 냉장고 뒤에 숨겨 놓았던 마니슈비츠사에서 나오는 세크레맨털 콩코드라는 이름의 포도주를 조금 맛보게 해 주셨다. 말하자면, 할아버지가 나에게 슬쩍 주시는 뇌물이었다. 나는 어렸지만 포도주를 아주 좋아했다.

내가 암송했던 금언 중의 하나를 지금도 기억한다.

 

내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위해 존재할 것인가? 내가 나만을 위해 존재한다면, 나는 도대체 어떤 존재란 말인가? 그리고 지금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언제 다시 하겠는가?

 

나는 이런 말씀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할아버지께서 이해시키려고 여러 가지로 설명해 주셨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떤 때는 너무나 혼란스러워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할아버지, 무슨 말인지 정말 모르겠어요.”

“그러니, 나오미야, 그러면 그냥 암송하기만 하고 기다리려무나. 언젠가 네가 그것을 알 필요가 있을 날이 올 것이고, 그때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다가 불현듯 어쩌면 언젠가 할아버지가 더 이상 나와 함께 계시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깜짝 놀랐다. 처음으로 할아버지도 이제 늙으셨다는 것을 알았다. 항상 내 곁에 계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어 주실 수는 없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면 나는 혼자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설움이 복받쳐 올랐고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마니슈비츠사는 70년이 넘도록 똑같은 각진 모양의 병에 담긴 포도주를 만든다. 나는 가게에서 이 포도주 병을 볼 때마다 그때의 추억에 잠기곤 한다. 어쩌면 지혜란 기다림에 달려있고, 치유란 시간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한 번 일어났던 좋은 추억은 마음 속에서 영원히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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