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 遠藤周作

글쓴이

엔도 슈사쿠 遠藤周作

그는 192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1935년 세례를 받았다. 1950년 6월 일본 전후 첫 프랑스 유학생으로, 리옹 대학에 입학해 프랑스 가톨릭 문학을 공부했다. 1955년 발표한 <백색인>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고, <바다와 독약>으로 신초사 문학상과 마이니치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1966년 <침묵>으로 다니자키준이치로상을 수상했다. 엔도 슈사쿠는 일본의 대표적인 가톨릭 문학 작가로서 평생 동안 신과 구원이라는 문제에 천착했다.

옮긴이

맹영선

식품 화학과 환경 신학을 공부했고, 지구와 우리 자신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 공부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생태 영성>, <우주 이야기>, <지구의 꿈>이 있다.

 

 

나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나의 신앙 입문

엔도 슈사쿠  遠藤周作

 

엔도 슈사쿠 글 맹영선 옳김

 

1. 나의 신앙 입문

2. 하느님을 의심하는 것에서 희망으로

3.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4. 일본인과 그리스도교

5. 나는 왜 불교보다 그리스도교에 끌리는가 – 하나

6. 나는 왜 불교보다 그리스도교에 끌리는가 – 둘

7. 기타 여러 가지 질문에 답하여

후기

 

 

 

1 나의 신앙 입문

 

 

 

나와 그리스도교의 관계

 

Q. 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습니까? 아직도 하느님을 진정으로 믿습니까?

 

“왜 하느님을 믿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나 자신도 ‘나는 왜 하느님을 믿는 것일까?’ 하고 여러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느님을 의심한 적이 없었는가?’ 라고 물으신다면 절대 그런 일은 없었다고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 따위 잊어버리자고 생각한 적조차 가끔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이며 소설가인 베르나노스 Bernanos는 “신앙이란 90%의 의심과 10%의 희망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야 말로 내 마음을 대변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것은 특별히 나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중에서도 가톨릭인 것도 가톨릭과 개신교를 비교하여 가톨릭이 특별히 좋아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리스도교를 불교나 공산주의와 비교해 본 결과 그리스도교가 더 좋다고 생각되어 선택한 것도 아닙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부모님께서 이혼을 하셨습니다. 이혼 후 어머니는 괴로움을 종교로 채우고자 하셨지요. 이모가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어머니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형과 나는 마지못해 교회에 따라갔습니다.

정직하게 말해서, 교회는 정말 재미가 없어서 앉아서 졸기 일쑤였습니다. 같이 교리를 배우던 어린이들 모두 세계를 받기로 되어 있어서 나도 그냥 이끌려 “세례를 받겠습니다.” 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생각도 않고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으니까 열 살이나 열한 살 정도의 나이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례를 받은 저로서는 신앙 입문에 대한 사상적 思想的 동기 같은 것은 전혀 없었지요. 유아 세례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모르고 신앙에 입문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상 편력을 거친 후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사람을 무척 부러워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쪽이나 다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가 정해 준 결혼이나 자신이 선택한 결혼, 즉 연애결혼이나 마찬가지라는 심경처럼 말입니다.

그 당시 나는 교회 마당에서 야구를 하거나 다른 놀이를 하거나 신부님께 과자를 받거나 하는 것이 재미있고 즐거워서 교회에 다녔던 것 같습니다.

이런 사정이었으므로 어린 시절에 신부님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텐데도 정장 인상 깊게 남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금빛 턱수염의 예수님인가 하는 아저씨는 왜 저렇게 서양 냄새 나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속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야구가 끝난 후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어린이 중 절반은 자고 있었습니다. 나는 뒤에 앉아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잘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하곤 했습니다. 내가 졸면 옆에 앉은 형은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작은 목소리로 화를 내곤 했습니다. 형이 아무리 그래도 나는 곧 다시 잠들어 버렸지만…

가톨릭에서는 공교요리(公敎要理, 교리문답서)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신부님이 ‘삼위일체란 무엇인가’ ‘부활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써 놓은 책을 반년 또는 1년 동안 전부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최종적으로 ‘잘 알겠습니까? 하느님을 믿습니까?’ 라고 물어본 다음 ‘믿습니다.’ 라고 대답한 사람들에게 대개 세례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 꼬마에게 삼위일체나 부활 등에 대하여 아무리 이야기한다 해도 알아들을 턱이 없지요. 나는 다만 ‘빨리 끝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신부님 말씀이 인상 깊이 남았다거나 매우 감동적이었다거나 하는 일은 한 번도 없습니다. 신부님 말씀이 끝난 후에는 엄청나게 소란을 부리며 놀았습니다.

아버지가 스님인 집에서 태어나도 (일본 불교는 대처 帶妻로, 스님도 가정을 가질 수 있음) 불교 신자가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타의에 의하여 가톨릭 신자가 되었지만, 지금은 이 신앙과 그럭저럭 연결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되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경위 또는 마음의 변화가 있었는가?” 하고 묻는다면 내적으로 특별히 커다란 변화는 없었다는 것이 제 대답입니다. “엔도 씨는 한결같이 하느님을 추구해 왔습니까?” 라는 질문을 자주 받지만, 그렇게 한결같이 하느님을 추구해 오지는 않았습니다.

서양의 그리스도교 신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에 세례를 받고 평생을 신자로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에게는 대체적으로 세 종류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자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사상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에 도중에 그리스도교를 버리고 무신론자가 되거나 다른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는 습관적인 그리스도교 신자로 평생을 지내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일본에서 불교 신자이지만 특별히 부처를 믿지도 않으면서 불교 신자로 죽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세 번째는 습관적인 신자로 출발했지만 인생을 살면서 고통과 질병 등 여러 일을 겪고, 그러한 일이 있을 때마다 반복적으로 하느님을 생각하여, 습관적이던 신앙이 어느 사이에 자기 삶의 방식이 된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이 신자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마도 나 자신은 세 번째 유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 경우에는 물 흐르듯 성당에 가는 습관이 죽 계속되어 왔었지요. 그러다가 18~19세 때, 즉 게이오 대학 慶應大學 예과 시절 책을 읽기 시작한 다음부터 ‘이런 서양 종교 따위 때려치우자.’ 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나 스스로의 의지로 믿게 된 것이 아니므로 부모가 정해 준 신부와 결혼한 것과 같아서 ‘너 같은 것 필요 없으니 나가 버려.’ 하는 식으로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는 마누라처럼, 그리스도교가 내 안에 눌러 앉아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나가지.’ 하고 밖으로 나와 봤지만,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개는 짖고 주머니는 비었고.. 해서 어슬렁거리며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이런 일이 몇 번씩이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이 굉장히 격렬하다든가 심각하다든가 하지는 않았습니다.

 

 

 

몸에 맞게 다시 맞춰 지어 입은 종교

 

아마도 나는 어머니에 대한 애착 愛着 이 너무 강해서 그분이 열심히 믿으셨던 것을 딱 잘라 버린다는 것은 죄송하다는 기분이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에게 받은 것을 버린다는 것은 불효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열심히 살아오신 이 종교를 내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내가 잘 공부해 보지도 않고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버린다는 것은 어머니께 죄송한 일이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스스로 열심히 공부해서 이 종교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어딘가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께서 주신 이 양복을 내 몸에 맞게 고쳐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에게 그리스도교는 몸에 잘 맞지 않는 양복이었습니다. 나는 된장국과 단무지를 먹고 싶은데 상대방이 양식을 권하기 때문에 뿌리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이 그리스도교를 일본인의 몸에 맞게 일본 옷으로 만들어 보자, 그리고 그것이 잘되지 않을 때 ‘안녕’ 한다면 어머니께서도 허락해 주시겠지 하는 생각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나는 양복을 벗어 버려도 갈아입을 옷을 갖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마르크스주의도 조금은 뒤적거려 보았지만, 어쩐지 썩 기분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애착에서 오는 그 무엇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훌륭한 어떤 것에서 온 것이 아닌 서서히, 정말 서서히 연재와 같은 심경이 되어 갔습니다.

2차 대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프랑스로 유학을 갔습니다. 거기에서 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외국에서 병이 나면 불안해지고 정신적으로 여러 가지 고민이 생기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그리스도를 열심히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요?’ 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그 당시 ‘그리스도를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때보다는 훨씬 지나 다시 병에 걸렸을 때 나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더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유학 기간 중 병에 걸렸을 때에는 단지 빨리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기분만 강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이런 병에 걸린 것은 아마도 서양 속에 확고히 존재하는 그리스도교가 나를 매우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곳은 사방을 둘러보아도 교회나 그리스도교뿐인 세계였고, 그 때문에 나는 병에 걸린 것이고 거기서 도망치는 것이 건강을 회복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따라서 그때는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신중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소설가가 된 후 2년 반에서 3년 정도 몸져누워 지낼 때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 병에 걸렸을 때는 불안하거나 고독하거나 외롭기는 했어도 ‘죽는다.’ 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병에 걸렸을 때 수술도 실패하고 의사도 포기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지하게 인생의 매듭을 짓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병을 앓을 때의 기분은 여러 단계가 있었고 매우 복잡했습니다.

처음에는 억울한 감정이 강했습니다. 작가로서 겨우 <바다와 독약> 海と毒藥 을 완성했을 시기에 병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문예 잡지를 펴 보면 친구들의 글이 거기 실려 있었습니다. ‘건강하면 나도 글을 쓰고 있었을 텐데.’ 하는 억울한 생각뿐이었습니다.

‘1년이면 퇴원할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럴 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점점 돈도 떨어졌고, 작가란 직업은 글을 쓰지 않으면 수입이 없습니다. 지금처럼 문고판 文庫版 출판이 성행하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입원비와 가족 부양비가 필요했습니다. 한술 더 떠 ‘또 수술을 받으면 실패하겠지.’ 하는 절박한 상태였습니다.

점차 문병객도 뜸해지고 나 역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문병객이 ‘염려하지 말아요!’ 라고 말해 준다 해도 염려 없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해도 억지웃음을 짓는 것이 실어졌습니다. 그래서 구관조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요시유키 준노스케 吉行淳之介 는 내가 구관조를 기르고 있는 것을 보고 큰일이다 싶었나 봅니다. ‘구관조를 키우는 심정을 이해하니 기운 내시오.’ 라는 쪽지를 남겨 두었습니다.

나는 구관조에게 여러 가지 말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내가 죽은 후 구관조가 ‘누구는 맘에 들지 않는 놈이다.’ 라고 말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또는 장례식 때 ‘당신은 부조 扶助 가 적어.’ 등의 말을 구관조가 내 목소리를 흉내 내어 읊조리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고 혼자서 밤마다 연습을 시키곤 했습니다. 그러나 구관조는 외우지 못했습니다.

유학 당시 병에 걸렸을 때 ‘그리스도교는 굉장히 나를 압박하는 것, 죄어 매는 것’ 이라는 이미지 image 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유럽이라는 곳은 아무리 공부해도 알 수 없는 대상으로 비추어졌습니다.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나를 압박하는 것 그 안에는 그리스도교가 있었습니다. 즉 유럽적 그리스도교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 압박이 싫어서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몇 번이고 생각했습니다.

소설가가 되고 나서 두 번째 병에 걸렸을 때 그리스도교라는 것이 유럽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즉 그리스도교는 양복인 것만은 아니다. 일본 옷의 요소도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퇴원한 후 쓴 소설 <침묵> 沈默 에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밤중에 잠이 깨어

 

Q. 신앙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신심이 없는 사람은 감을 잡지 못하겠지만…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신앙을 100% 확신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베르나노스가 말하는 90%의 의심과 10%의 희망을 갖는 것이 종교적 인생이며, 인생 그 자체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100%의 확신을 가질 정도로 그렇게 강하다면 종교는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믿는 사람 중에는 강한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합니다. 나는 무교 無敎 인 사람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력 自力 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와카미 데쓰타로 河上徹太郞 가 생전에 연재하던 수필 가운데 “내가 아는 그리스도교 작가들은 가톨릭 축제라는 것을 매년 1회씩 하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들은 자기 인생의 많은 것들을 전부 하느님께 전가해 버린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자기 인생에 책임을 지는 사무라이가 되고 싶다.”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나도 <사무라이> 侍 라는 소설을 썼지만, 사무라이의 이미지는 ‘모시다, 누군가에게 몸을 맡기다, 목숨을 맡기다’ 하는 것입니다. 자력으로 자신의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종교가 필요 없다는 기분이 들겠지요 그러나 나는 자력으로 내 인생의 여러 가지를 처리할 수 없는 남자이므로 내가 쓴 <사무라이>의 주인공처럼 커다란 무엇인가에 내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위임하고 받들어 모시다(루카 복음)’ 하는 그런 기분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 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관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자력으로 처리할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 나이 정도되면 밤중에 갑자기 눈이 떠지는 일이 있습니다.

이럴 때 나는 내 인생 속을 통과해 간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내가 그 사람의 인생을 통과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본래 가야 할 길이 변해 버린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마사무네 하쿠초(정종백조)가 말했듯이,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보다는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비밀이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죽였다든가 도둑질을 했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 보면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자신의 부모 형제에게조차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 행여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진다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 하는 비밀이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습니다. 이렇게 차라리 죽는 편이 더 낫다고 하는 비밀을 한밤중에 잠이 깼을 때에 곱씹어 본 일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집안일을 돌봐 주는 사람의 물건을 악의 없이 훔친 적이 있습니다. 그녀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는데도 나는 훔치고도 ‘나는 몰라.’ 하고 내뺀 적이 있습니다. ‘나쁜 짓을 했구나!’ 하고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그 일로 인하여 오랫동안 사람을 불신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이 내 인생 속에 무수히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것을 생각하면 ‘하느님! 그 사람을 도와 주소서!’라고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이런 일들은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이 내게는 무수하게 많습니다. 나는 ‘종교는 필요 없다.’ 고 말하는 사람이 부럽습니다.

‘좀 더 건설적인 생각을 가져라.’ 할 수도 있겠지요. ‘과거의 일을 자꾸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자위적인 회한 悔恨 이다. 인류에겐 보다 큰 불행이 있지 않느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것은 정신적으로 나약 하거나 불결한 것이다. 좀 더 냉담한 기분으로 생각해라.’ 하는 시가 나오야 (1883-1971 소설가)적 발상법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이것은 사람의 천성으로 어쩔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과거의 일에 연연하는 유형의 사람은 자력으로는 어떻게 변화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천성이므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면 ‘종교적 인간과 비종교적 인간이라는 것이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지만, 나는 반드시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교라고 종교를 찾지 않는 것도 아니며, 어떤 공산주의자는 우리 이상으로 사도적 使徒的 정신에 불타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라 하는 것은 뒤집어 놓은 그리스도교입니다. 그리스도교 정신을 헤겔의 역사 철학이나 마르크스주의 이론으로 무장시키고 있기는 하지만 그 마음에 있어서는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종교적 인간과 비종교적 인간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종교적 인간을 자칭 自稱 하는 인간과 자칭하지는 않지만 사실은 종교적인 인간을 추구하는 두 부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그리스도교는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하여 대단히 엄격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20 세기 로마 교황도 그러한 구별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내가 교황을 알현했을 때 그분은 내게 불교를 공부해 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것이 매우 훌륭한 생각이라고 여겼습니다.

 

 

 

하느님의 존재를 느낄 때

 

Q. ‘하느님은 곧 작용 作用 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작용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느낍니까?

 

내가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는 것은 오늘날까지 그 무엇인가가 내 등을 밀어 주어 왔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내 과거를 뒤돌아보면 나를 사랑해 주었거나 지원해 준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움직임으로 나를 지탱해 주었다는 기분이 듭니다. 태어나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연결해 주는 끈이 있다고 한다면 그 끈에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나의 개성보다는 나를 만들어 준 것들이 더 중요해지고, 이러한 커다란 장 場 에서 내가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이것을 ‘하느님의 장’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듣고 당신이 그리스도교에 흥미를 갖게 되어 세례를 받거나 한다면 하느님은 직접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라는 인간을 통해서 당신에게 영향을 주어 응답하게 한 것입니다. 언제나 하느님은 어떤 사람이나 다른 무엇인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영향을 줍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대상 對象 으로 생각하기 일쑤지만, 하느님은 결코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그 사람 속에서 그 사람의 인생을 통해서 작용하신다.’ 라고 말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또는 뒤에서 그 사람의 등을 밀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등에 손을 대고 나를 이쪽으로 가도록 밀고 있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때 하느님의 작용을 느낍니다. 이것을 나는 <침묵> 의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을 통해 말했습니다.

다카하시 다카코 라는 소설가가 있습니다. 그녀도 <단장하라, 나의 혼이여> 라는 소설에 그와 같은 것을 썼습니다. 그녀 또한 나와 같은 불문학을 공부했고 좋아하는 작가도 나와 같았기 때문에 공부를 위해서 참고서를 빌리러 왔었습니다. 그녀가 그리스도교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을 무렵, 그녀의 남편 다카하시 카즈미 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내 소개로 이노우에 요지 신부와 만났습니다. 이노우에 신부는 다시 누군가를 그녀에게 소개했고, 그 소개로 그녀는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수도원의 소개로 그녀는 파리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보면 그녀에게 쓸데없는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연이라고 생각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작용, 즉 하느님의 작용이 거기에 있었다고 그녀 자신도 적고 있습니다. 그것을 읽고 ‘아! 나와 같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독자들은 뒤에서 밀고 있다는 것, 또는 하느님의 작용이라는 것을 알아듣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악에도 죄에도 하느님의 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 두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어떤 일에도 하느님의 손길이 작용하신다.’ 는 사실을 소설을 쓰고 있는 동안 나는 점차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존재가 아니라 작용이십니다.

 

 

 

내가 본 예수님

 

Q. 묘사하고 있는 예수님 이미지에 특색이 있네요. 그것을 이야기해 주십시오.

 

내 소설에 나오는 예수님은 매우 상냥하고 일본인에게 친밀감을 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내가 묘사한 예수님이 너무 일본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것이 내가 본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각자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내게는 나의 예수님 상 像 이었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들 나름의 예수님 상이 있다는 말입니다. 언젠가 예수님에 대한 일본인의 이미지에 관하여 글을 연재해 보고 싶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에 대하여 혁명가의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정신적으로 유다교 해방자인 동시에 사회 혁명을 시도한 사람의 이미지가 박혀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은 마음 깊은 곳에 존재 하면서 사랑의 작용을 하는 이미지입니다. 사람들 각자가 추구하는 바에 따라 예수님의 이미지가 탄생합니다. 나는 이런 이미지의 총체가 진정한 예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묘사한 것처럼 예수님은 확실히 상냥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면 그것만이 아니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성전 경내에서 양과 비둘기를 팔고 있던 상인이나 환전상들을 새끼줄로 만든 채찍으로 쫓아낸다든지 그들이 돈을 흩뿌리거나 판매대를 둘러엎는다든지 하지 않는가, 그런 과격하거나 강한 면도 있지 않는가 하는 비판도 확실히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역시 상냥한 예수님이 가장 매력적입니다. 나는 그런 예수님이 좋습니다. 그러니까 줄 곧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내게는 성전에서 분노하는 예수님은 그다지 감 感 이 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의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예수님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다른 설도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각기 다른 예수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 할 수 있겠고, 그 모든 것을 종합한 것이 진정한 예수님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2  하느님을 의심하는 것에서 희망으로

 

 

하느님의 작용

 

Q 하느님의 작용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한다면…

 

누구나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하느님은 왜 눈에 보이지 않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비합리적인 것을 왜 믿는가?’ 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겠지요. ‘여기 있는 유리병을 보는 것처럼 하느님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내게 있어서 하느님의 존재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작용에 의해서 그분을 느끼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했을 때에는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여기에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면 그 원인이 있고 또한 그 원인에 대한 원인이 있고… 그 제일의 원인이 하느님이라는 신 존재 증명법, 중세의 토마스 철학서 등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즉 하느님은 존재한다고 말하기 이전에,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자신의 마음속에서 작용하고 있는지 아닌지의 문제입니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작용이 마음 근저 根底 에 있다고 합니다. 작용이 있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무엇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이라든가 그리스도라든가 하는 것은 ‘작용이다’ 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합니다. 나는 ‘하느님이란 자기 자신 안의 작용’ 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기 마음속에서 그러한 기분이 드는 것인지, 자신의 의식을 넘어서 그렇게 되는 것인지 매우 애매한 부분이 있겠지요. 그 작용을 그리스도 혹은 부처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의 작용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이 나에게 어떻게 작용했는가 하면, 내 어머니를 통하여 또는 내 인생에 있어서 매우 관계가 깊었던 많은 사람들을 통하여 작용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버지를 통하여 또 어떤 사람에게는 친구를 통하여, 또 어쩌면 헤어진 여자를 통하여 하느님의 작용이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러한 작용에 있어서 반드시 좋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나 반대로 자신이 상처를 준 사람도 무수히 있겠지요. ‘아! 저 사람에게 나쁜 짓을 했다.’ 라고 나중에 생각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쉰 살이 지나 생각이 날 때도 있습니다. 마음 밑바닥에 그러한 커다란 작용의 집적 集積 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일이 언젠가 마음 밑바닥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때가 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시절도래 時節到來 의 때입니다.

그러면 그때가 올 때까지 그것은 어디에 있었는가 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아뢰야식 (阿賴耶識, 마음의 가장 깊은 영역) 이라는 곳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에서 영혼 혼 이라고 하며, 심층 심리학자는 무의식 無意識 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행위를 결정하는 것

 

나는 소설가이므로 소설을 쓰는 동안 사람 마음의 주름들을 불완전하게나마 보려고 합니다. 인간 심리의 그 깊은 곳에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나는 질투심에 여자를 때렸다.” 라고 글을 썼다면 질투라는 하나의 심리에 의해 때렸다는 행위가 이어지고는 있지만, 실상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할 때는 겉으로 쉽게 드러나는 하나의 심리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서로 얽혀 이루어지곤 합니다. 인간 마음의 깊은 곳에 단순히 딱 부러지게 결론짓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곤죽같이 엉켜 있어서 이것이 우리의 행위 하나하나를 결정하고 있다는 것을 소설을 써 나가는 동안 점점 깨닫게 되었습니다.

프로이트 Freud 나 융 C. G. Jung 의 작품을 읽는 동안 프로이트 로부터 리비도 libido 등을 배워 심리 깊은 곳에 무의식이 있다는 것을 배웠으며, 그 무의식이 꿈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신화 神話 가 되어 나오기도 하고 동화 童話 가 되어 나오기도 한다는 것을 융에게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소설을 쓰고 있는 동안 무의식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교의 유식론 唯識論 에서는 이 무의식을 아뢰야식 이라 하여 실로 훌륭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무의식 깊은 곳에 또 무엇인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영혼 魂, 하느님이 작용하는 곳으로 인간이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어느 시기부터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부처가 작용하거나 그리스도가 작용하는 것은 의식의 세계가 아니라 이러한 마음의 깊은 바닥이구나, 작용하는 장소는 이곳이구나 하고 느껴 왔습니다. 의식보다도 무의식의 어딘가에서 하느님이나 부처님은 인간을 붙드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고니시 유키나가 를 위시하여 여러 사람의 전기를 썼지만, 그럴 때 자료 資料 를 이용합니다. 자료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본 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자료에는 그 사람이 한 행위가 쓰여 있지만, 그것을 일고 ‘이 사람은 아마도 이러한 인간이겠지.’ 하고 판정하는 것은 나입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고니시 는 나의 눈을 통한 고니시 입니다. 그것은 본인이 아니라 타인의 눈을 통한 어떤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다타카 다로 라는 사람이 죽었다고 가정합시다. 장례식 때 ‘다나카 는 마음에들지 않는 인간이었다.’ 라고 한 사람이 말하면, 다른 사람은 ‘의외로 괜찮은 사람이었다.’ 라고, 또 다른 사람은 ‘굉장히 성실한 사람이었지만 몰래 홍등가에 드나들었다.’는 등의 여러 가지 말들이 나올 수 있겠지요. 이러한 여러 사람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겹쳐져 ‘다나카 다로전’ 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나카 다로가 이 말을 관 속에서 듣는다면 관 뚜껑을 삐끗 열고서 ‘내게 그런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지.’ 라고 부르짖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이 본 다나카 다로의 이미지를 전부 지워 버리고 남는 것을 X라고 할 때, 그 최후에 남은 X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다나카 자신도 알 수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알고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알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곳이 부처가 작용하기도 하고 그리스도가 작용하기도 하는 영혼 또는 아뢰야식 이라고 하는 장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뒤에서 미는 것

 

Q. 과연 하느님은 작용이라는 말씀이군요.

 

지금은 이렇게 간단히 말할 수 있지만, 이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침묵>이라는 소설을 쓸 때까지 상당한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침묵>의 마지막 부분에 “네 인생을 통하여 내가 말해 왔으므로 나는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라고 쓴 것도 지금 말한 X 안의 하느님의 작용을 내가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한 줄이 내게는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불교에서는 ‘누구에게나 불성 佛性 이 있다’ 고 말합니다. 가엾은 사람을 동정한다든가 도와주고 싶다는 기분이 충동적으로 일어난다든가 하는 것이 불성이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것이 아닌 지금 말한 X 안에서 자기 자신도 잘 알지 못하면서 어떤 행위를 해 버리는 것, 어떤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것이 불성이 아닐까요? 최후의 죽는 순간 ‘아앗!’ 하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노우에 신부는 이 불성이 작용했을 때 그 사람은 구원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이노우에 신부는 히틀러 일지라도 진정으로 참회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하느님을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재떨이가 항상 눈앞에 있듯이 ‘그곳에 하느님이 있다는 식으로 하느님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라는 사실입니다. 여러 부류의 사람을 통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힘으로 내 등 뒤에서 내 인생을 밀어 주어 오늘날의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뒤에서 등을 밀고 있었던 것은 아마도 하느님일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나 자신의 인생은 독자적인 나 자신만의 인생이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시한 여러 사람을 합한 종합체로서의 ‘장’ 場 에 나 자신이 성립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의 생애> 를 쓸 수 있었던 것도 엔도 슈사쿠 라는 개인보다는 그 배후의 여러 사람 덕분이었다고 <침묵>을 쓴 이후 점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어머니를 비롯하여 나에게 영향을 준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가 읽은 책의 저자 등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뒤에서 밀고 있는 것과 나를 존립시키는 장 場 이라는 이 두 가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역시 ‘하느님이 작용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을 형성함에 있어 하느님 따위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단정 짓는 사람들은 내가 말한 ‘장’ 이라는 것을 부정할 것입니다. 또한 뒤에서 밀고 있다고 하는 것도 뒤에서 하느님에 의하여 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의사로 해 왔던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나의 의사 意思 에 다른 하나, 즉 X 라고 하는 것이 더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많은 선택이 가능했는데 결국 여기에 이르렀고, 내가 이것을 선택한 것을 보면 내 의지 이외에 다른 것을 선택하지 못하게 한 무의식의 어떤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본능적으로 이쪽이 좋겠구나 하고 생각하여 선택한 것일지라도 본능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만들어 준 것이 이 장 場 이라고 생각하므로 어쩔 수 없이 장과의 연관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작용이라 하는 것이며, 이 작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도 상관없지 않는가? 왜 하필 그리스도교인가? 이런 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라 이름 짓는 것이 싫다면 ‘양파’ 라는 이름 또는 ‘X’ 라는 부호를 정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X 라고 하는 것이 내 경우에는 그리스도교라는 형태를 띠고 나타났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부처라는 형태로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내 어머니가 내 어머니였던 가장 큰 이유는 그녀 안의 그리스도가 나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잊어버리기 어려운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 속에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나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신앙으로 나에게 여러모로 친절히 대해 주거나 좋은 일을 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불교와는 연결되지 않았는지도 모르고 마호메트교(이슬람교)와도 연결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불교적으로 말한다면 이것은 전생으로부터의 인연일지도 모릅니다. 인연이 깊은 그리스도 안에서 오늘날까지 살아왔으니까 내가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이 내가 지금 신앙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문예비평> 文藝批評 등에 “엔도는 한결같이 신을 추구한 적이 있는가?” 라고 쓴 사람이 있었습니다. ‘마르크스를 매우 열심히 공부해서 겨우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는 식으로 한결같이 고뇌하며 고통을 겪은 뒤 결국 하느님의 마음을 붙잡았다는, 옛날 종교인들과 같은 면모가 엔도에게는 없지 않는가? 따라서 엔도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다.’ 라고 한다면 ‘그렇습니까?’ 라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종교를 믿는다는 것이 그런 식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나처럼 확실히 하느님을 믿을 장 場 이 설정되어 있어서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어가는 것도 하느님의 작용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정한 약혼자가 있어서 그녀와 결혼을 했고 도중에 쫓아내고자 시도했던 적도 몇 번이나 있었지만 그녀가 버티고 눌러 앉아 버린 것 같은 신앙을 갖고 있는 것이 나의 실태입니다.

한결같다고 하는 것은 많은 여자들 가운데 간신히 어떤 여자를 발견해 열심히 그 사람이 있는 곳을 드나들고 설득하며 관심을 끌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한 후 결국 성공했다는 식의 결혼이 되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연대결혼만이 결혼의 모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처럼 부모가 정해 준 사람과의 결혼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문단에서는 연애결혼이 아니면 마치 결혼이 아닌 양 생각하니 이상한 일입니다.

나의 그리스도교 신앙 입문은 미우라 슈몬 이나 시나 린조 처럼 연애결혼 같은 식이 아닙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부모가 정해 준 결혼이라고 곧잘 인용하지만, 그 의미를 잘 알아주지 않습니다. 부모가 정해 준 결혼은 그 나름의 필연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뒤에서 밀어 주셨기 도 하고, 장 場 을 만들어 주시기도 하신 것입니다.  거기서 벗어나는 편이 편하다고 생각해서 편한 곳으로 가려 해도 또 다시 돌아와 버립니다. 이것이 나의 신앙입니다.

 

 

 

종교를 버리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Q.  신앙을 버리고자 생각했던 적이 있겠지요?

 

전에도 말했듯이 신앙을 버렸으면 했던 적도 몇 번인가 있습니다. 청년 시절에는 예수님께 몇 번이나 떠나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은 떠나라고 말할 기분이 아닙니다. 현재 나는 그리스도교를 독실하게 믿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과연 그런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예전보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생각할 기회가 많아진 것은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깊이 믿게 되면서 나쁜 짓을 하는 일이 줄어들었는가 하고 물을 수도 있겠는데,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나는 삶의 최후까지 나쁜 짓을 하면서 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를 믿어서 여자를 담담한 눈으로 보게 되었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합니다. 여자와 접촉하고 싶다는 기분은 그냥 남아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은 생리적인 작용이므로 신앙과는 관계가 없는 듯 생각됩니다.

하느님을 믿게 됨으로써 어딘가 사람이 변했을 것이라고 묻는다 해도 ‘모르겠다.’ 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간단히 사람이 바뀔 수는 없겠지요. 지옥과 극락이 있기 때문에 죽음은 더욱 두려워지고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부럽게 생각된 적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의심하다

 

Q.  그렇다면 하느님을 의심한 적은 있었군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겠습니까?

 

앞에서 신앙이란 90%의 의심과 10%의 희망이라고 말했는데, 나는 아직 그 정도의 신앙밖에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도 동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의심할 만한 사건이 일어나면 의심하는 기분이 듭니다. 그러나 또한 10%의 희망에 매달리게 됩니다. 어째서 매달리게 되느냐고 묻는다면 나 자신도 모릅니다. 어쩌면 타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공포일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공포나 타성만은 아니고 그밖에 X, 즉 무엇인가가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나는 인생에서 커다란 충격을 받은 적이 몇 번인가 있었습니다. 병으로 입원해 있을 때 거기에 입원해 있는 아이를 보고서는 나 자신의 일도 아닌데도 하느님을 의심했습니다. 손과 팔이 없이 태어난 아이였는데, 목숨은 삼 개월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어째서 이런 고통을 죄도 없는 갓난아이에게 주는 것일까 하고 내 나름대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때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했고, 그것은  <침묵> 에 배어 나왔습니다.

그 후 나는 근대 성서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이라는 것이 각 복음서의 작가가 자기가 속한 그룹의 신앙을 토대로, 구약 성경 이야기나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민간에 전해 오는 이야기를 사용하여 썼다는 것을 알고 지금까지 믿어 왔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때 역시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쓰여 있는 예수님의 행동 가운데 과연 확실한 것은 얼마나 되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라고 쓰인 것을 읽는다면 신자로서 충격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것을 극복하는 데 3년 정도 걸렸습니다. <예수의 생애>, <사해 부근에서>, <그리스도의 탄생> 을 완료했을 때 나는 겨우 그 충격을 극복했습니다. 그 무렵이 내 신앙의 위기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신앙의 위기가 많았습니다.

신안은 경마 競馬 와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초심자는 잘 맞추지만 말에 대하여 공부하기 시작하면 잘 맞추지 못하게 됩니다.

어머니께서 준 것이기 때문에 딱 잘라 버려서는 안 된다, 열심히 공부해도 믿어지지 않으면 그때 가서 버리자고 생각했던 것이 나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를 공부하면서 더욱 믿어지지 않던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친한 신부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해 줄 거야?’ 라며 강짜를 놓기도 했습니다. ‘너는 하느님을 이용하여 책을 쓰는 것이 아니냐?’ 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었습니다. 나는 소위 신앙 고백이라는 것이 너무 싫고 겸연쩍기도 하지만, 내가 신앙 고백을 한다면 3, 4일 정도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마지막까지 동요되면서 지속되는 것이 아닐까요?

90%의 의심과 10%의 믿음이라고 할 때 그 10%가 보다 강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10%의 믿음이라는 것은 무의식의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식 면에서는 의심할 부분이 많이 있지만 불교의 아뢰야식, 즉 무의식 깊은 곳에 믿도록 하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무의식의 신앙이야말로 진짜가 아닐까?

 

Q. 의식적으로는 신을 의심해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믿고 있다는 말인데, 그 마음의 깊은 곳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흔히 심층 심리학자들은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것들이 꿈이나 신화나 동화로 표현된다고 말하지요. 또한 그 꿈을 꾸는 일 또는 꿈에서 본 욕망이 당신의 진짜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생각에 어떤 공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무의식이나 그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나의 신앙심의 근간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지요. 머리로는 종교를 알아도 관념으로는 종교를 이해해도, 또 성서학 책을 아무리 읽어도 (사실 이러한 노력을 나도 종종 하고 있지만)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지식이나 관념이 아닙니다. 무의식 깊은 곳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의식은 어떻게 하여 만들어졌는가 하면, 소년 시기에 단지 타성적으로 세례를 받았던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은 관념이 아니라 어머니께서 교회에 가는 모습이나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동안에 완성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무의식에 있는 신앙은 내 주위에 있던 어른들의 기도하는 모습이나 성탄절 때 놀던 것이나 병을 얻어 고통스러웠을 때 하느님을 의지하면서 열심히 기원했던 소년 시기의 일이나, 그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긴 생활 속에서 나 스스로 등 뒤에서 하느님을 느끼는, 절실할 때 누군가 나를 밀어 주고 있다는 그 무엇 X, 무엇인가가 나를 어떤 방향으로 데려다 주고 있다는 느낌, 그러한 것들이 공부에서 얻은 지식이나 관념에서 얻은 종교 이해와 함께 나에게 더욱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몇 번이나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지만 작용을 느끼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눈앞에 두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눈 앞에 두고 대상으로서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등 뒤에서 누군가 밀어 주고 있다는 감지 感知 방법으로 포착할 수는 있습니다. 또한 무의식적으로 하느님이 작용하고 있다는 식으로 포착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도 아니고 불교 신자도 아닌 사람들도 자신의 과거를 쭉 돌이켜 생각해 볼 때 분명히 “아! 얼마나 행운이었던가!” 라든가 “어째서 나는 인생의 이쪽 방향으로 오게 되었을까?” 라는 식으로 뒤에서 밀고 있는 느낌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뒤에서 밀어 주고 있는 힘을 X라고 한다면 그 X를 하느님이라 이름하여도 좋을 것이며, 부처의 작용 또는 그리스도의 작용, 아니 이러한 용어가 싫다면 양파든 감자든 어떻게 불러도 좋습니다. 인생에 그 양파가 얼마나 눈에 보이지 않게 가만히 작용하고 있었던가를 어느 날엔가 생각하는 일이 있겠지요. 내가 말하는 10%의 무의식에서 믿고 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느님은 더러움 속에서도 반응하신다

 

인간의 모든 것이 그 자신의 무의식에서 작용하고 혼의 작용과 결부되어 있으므로 인간의 깨끗한 부분만을 쓰면 된다는 것은 문학이 될 수 없습니다. 더러운 곳에 작용하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작용에 대해서 쓸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쓴다면 호교 護敎 소설 이랄지 그리스도교를 지키는 듯한 소설이 되어 문학으로 승화되지 못합니다. 추잡스러운 것을 쓴다 하더라도 쓰지 않는 부분에 하느님의 작용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내 마음속 어딘가에 있습니다.

가메이 가쓰이치로 는 문학의 대립에 대하여 많은 것을 썼습니다. 나도 젊은 시절 종교와 문학의 대립이라는 것을 평론에서 논한 일이 많았지요. 지금은 그 대립의 문제가 조금씩 풀리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 인간의 깨끗한 부분만이 아닌 인간의 교향악에 대하여 반응을 보이는 종교가 아니라면, 즉 좋은 것은 물론 추잡한 것에도 반응을 보이는 종교가 아니라면 그 종교는 진정한 종교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인간의 좋은 부분이나 깨끗한 부분만을 인정하는 것은 진정한 종교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인간의 모든 것에 대하여, 즉 교향악의 악기들과 같이 여러 가지 악기가 인간의 내부에 있습니다. 그 모든 것에 대하여 반응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 진정한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깨끗한 부분에 대해서만 반응을 보이는 종교인가 아니면 인간의 미추선악 美醜善惡 그 모든 거에 대하여 반응을 보이는 종교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소설을 쓰는 동안 종교는 모든 것에 대하여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들게 되었습니다.

 

 

 

 

 

 

3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재미없는 성경을 한 번 더 읽는 방법

 

Q. 성경을 읽으려고 펼쳤지만, 정말 재미가 없습니다. 그 재미없는 책을 어떻게 읽었습니까? 성경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문제없이 읽는다 해도 재미는 없겠지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생애를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쓴 책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쓴 것이라고 할지라도 성경은 ‘문학’이기도 합니다. 즉 현실의 소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쓰는 사람의 이념에 의해 감쪽같이 변화될 수 있는 것을 문학이라고 한다면, 초대 그리스도교 저자들에 의하여 어떤 의미에서 소재를 변용시켜 창작한 것이 성경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학생 시절 나도 성경을 읽으면서 재미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성경이 재미없는 이유가 예수님을 중심으로 읽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수님을 둘러싼 사람을 중심으로 읽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달라붙어 ‘선생님과 함께 죽겠습니다.’ 라고 말했던 제자들도 최후에 로마군이 왔을 때는 거미 새끼가 흩어지듯 사방으로 달아났습니다. 제자 중의 우두머리인 베드로마저도 예수님의 예언대로 닭이 울기 전 세 번이나 ‘나는 그런 사람(예수님) 모른다.’ 고 말했지요. ‘아, 이 정도라면 나와 별로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때의 베드로에게서 나 자신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분명히 말해서 예수님의 사도들은 모두 유다였습니다. 성경에는 유다만 배신자로 되어 있지만 모두 유다와 같은 점이 있었습니다.

복음서가 쓰인 순서는 마르코 복음서가 제일 오래 되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마태오, 루카 순입니다. 시대가 내려갈수록 예루살렘 그리스도교의 중심인물이던 베드로의 배신은 점점 희석되고 있습니다. 즉 수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읽다 보면 상당한 재미가 느껴집니다. 제일 오래된 마르코 복음서에는 예수님을 배신한 것이 분명히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배신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초대 교회를 세우고 마지막에는 모두 순교합니다. 이와 같이 그분을 배신할 정도의 겁쟁이들이 어떻게 용감한 인간이 되었을까요? 용감한 인간이라는 말이 좀 이상하지만, 비유를 굳이 사용한다면 겁쟁이가 어떻게 용감한 인간으로 바뀌었는가 하는 것이 내게는 성경에서 재미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약한 인간 인간을 강한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그 무엇 X, 무엇인가가 거기에 작용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읽다 보니 ‘글쎄?’ 하는 하나의 분명한 주제 theme 가 발생했습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겁쟁이가 용감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가 말입니다.

이와 같이 나는 스스로를 그들과 겹쳐 봄으로써 성경을 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성경에 커다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성경은 있는 그대로 예수님의 생애를 묘사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 그분의 말씀에 대한 전승 傳承 을 담당한 공동체 共同體 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예수님의 말을 수집한 ‘예수 어록’ 語錄 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었던 듯합니다. 이 예수 어록(학자들은 이것을 Q라고 합니다)과 전승을 조합하고 여기에 그 공동체의 신앙 이념을 투입하여 쓴 것이 마르코 복음입니다. 마르코 복음을 참고로 하면서 Q 자료와 그밖에 따로 있었던 M 자료를 참조하여 역시 자기 공동체의 신앙 이념으로 쓴 것이 루카 복음과 마태오 복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에 진짜로 예수님의 생애와 말씀이 반드시 그대로 쓰여 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즉 초대 교회의 공통된 기원을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집어넣고 있는 것입니다. 근대에 들어와서 예수님의 진짜 말씀이나 행동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신약 新約 성경 연구가 실시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람어를 사용했습니다. 우리 손에 들어온 최초의 성경은 그리스어로 된 번역판이었으므로 그 중에서 아람어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끄집어내고, 또한 문맥 등에서 그것이 예수 어록에 있던 것이겠지 또는 이 부분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신격화하고 있으니 초대 교회의 이념에 의하여 쓰인 것이겠지 하는 식으로 분석했습니다. 이런 작업에서 학자들은 초대 교회의 이념을 발견하고, 또한 배후에 있는 예수님의 진짜 생각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도 추정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더 분명히 말해 그들의 시점에서 성경을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므로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신약 성경에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쓰여 있으므로 예수님의 탄생지를 베들레헴으로 가져온 것은 아닐까 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해부해 나가면서 학자들은 진짜를 찾아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지 않았다는 확증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12월 25일에 탄생했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12월설, 3월설, 또는 8월설까지 있었습니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나자렛에서 자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자렛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은 전국을 여행하며 떠도는 순회 巡廻 노동자였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예수님에게 형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형제는 사촌이었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동정녀’ 라는 동정녀 잉태설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신교에서는 형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사촌까지도 전부 형제라고 부르기 때문에 어느 쪽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추리 소설같이 성경을 읽는 것에서 출발하면 흥미가 배가 됩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현대 성서학자가 쓴 책을 상당량 읽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나 개인의 성경읽기

 

성경에는 그리스도가 곧 죽는다고 몇 번이나 예고하고 예고대로 되었는데도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실제적인 생애를 써 놓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초대 교회의 사고방식을 투영(이를 케리그마 Kerygma, 즉 신앙 고백이라고 합니다) 한 신앙 고백을 쓴 것으로 창작이라고 생각해도 좋은 정도입니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가 과연 있었는지 없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지 않고 돌아가신 것일지도 모릅니다. 알면서 돌아가셨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제자에게 과연 알렸었는지 어쨌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예고해 놓고 나중에 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라고 했는가 묻는다면 나는 곤란해집니다.

옛날 일부 성직자들 중에는 이것을 억지로 짜 맞추듯이 설명하는 신부도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어서 교회를 떠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모릅니다.’ 라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내가 그곳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예수님의 진짜 심리를 알 수도 없습니다.

더욱이 마르코 복음, 마태오 복음, 루카 복음에 전부 똑같이 이야기가 쓰여 있다면 모를까, 같은 이야기인데도 서로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 수난의 날은 날짜마저도 서로 다릅니다. 또한 요한 복음에는 앞의 세 복음에 나와 있지도 않은 내용이 불쑥불쑥 나오기도 합니다. 어는 것이 진짜 정확한 것인지조차 알지 못한다는 것은 이용한 자료가 공통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초대 그리스도 교회는 갈릴래아 파 라든가 예루살렘 파 라든가 기타 셀 수 없이 많은 그룹이 있었고, 이들 각각은 자신들의 신앙 고백을 예수님 상 像 에 반영시켰다고 합니다.  마르코 복음은 갈릴래아 파 신앙의 반영입니다. 또한 예루살렘 파가 있었으며, 이들의 신앙은 루카 복음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서학의 발전과 함께 정확한 예수님 전 傳 은 점점 더 쓰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너무 놀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이것이 진짜라고 생각해 왔던 예수님을 다시 생각해야 했으니까요.

아카이와 사카에 라고 하는 유명한 목사는 시나 린조(1911~1973 소설가)에게 세례를 주었던 분입니다. 아카이와 목사는 이와 같은 근대의 성경 연구를 알게 된 후 <그리스도교 탈출기> 라는 책을 쓰고는 그리스도교를 버렸습니다. 그 정도로 충격이 컸던 것입니다. 내가 그러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소설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Q. 성경이 예수님의 생애나 말씀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 충격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지금 말한 대로 그것은 내가 소설가였기 때문입니다. 소설가로서 나는 실재의 사실을 사용하여 사실을 초월 超越 하는 세계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초월하는 세계는 인간에게 사실보다 더 진실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확신을 갖지 못했다면 작가일 수 없었겠지요. 성경을 읽었을 때도 그와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19세기 이후의 성서학자들의 노력에 의하여 우리는 성경이 반드시 사실 그대로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은 내 소설과 같이 성경 저자들 (마르코, 마태오, 루카, 요한) 이 자기들의 신앙 이념에 근거하여 사실을 재구성한 것이고, 사실이 아닐지라도 인간들의 꿈을 불어넣어 (그들이 수집하여 성경에 삽입한 예수님 전승은 사람들의 기원이나 꿈이기도 했다고 생각되므로) 사실들을 나열한 것 이상으로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그 불어넣은 생명에 소설가로서 흥미를 가졌던 것입니다.

 

 

 

Q.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구체적으로 말입니까? 예를 들어 예수님이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12월 25일에 태어났는지 아닌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많은 성서학자들은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했지요. 유다인들은 구세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는 전설을 오랫동안 믿어 왔으며, 그것이 구약에 쓰여 있으니까 그것을 신약 성경에 사용했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설을 인정함과 동시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탄생시키고자 원했던 그 기원 쪽에 보다 무게를 둡니다. 예수님 탄생의 바람직한 이미지라고 할까? 예수님 탄생일에는 정설이 없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겨울로 정했습니다. 성탄절의 이미지는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성탄절 이미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 구세주가 마구간에서 말똥으로 더러워진 장소에서 탄생했다는 이미지입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자기 마음속 마구간처럼 더러운 장소에서 예수님을 찾았다’는 내밀한 우리 욕망의 표현이지 않을까요? 우리 마음속 마구간과 같이 더러운 장소, 그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아뢰야식이 아닐까요? 아뢰야식은 꺼림칙한 우리 욕망이 가득 차 있으며 말똥으로 더럽혀진 냄새 가득한 무명 無明 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순진한 어린아이가 태어난다고, 예수님이 태어난다고, 그리고 그 냄새 나는 무명의 장소를 정화해 준다는 바람이 성탄절 전설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이미지는 성탄절을 눈 내리는 12월 25일로 한 것입니다. 눈은 더럽혀진 것을 순화시키고 순백으로 만듭니다.

그런 생각들에 이르면, 나는 왜 사람들이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예수님 탄생시킨 이야기를 만들어 냈는지 절실하게 알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 영혼의 염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영혼의 염원을 나타내는 동시에 사실을 기록하는 것보다 더욱 인간적인 진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믿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안다는 것과 다르지요. 소설가로서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때문에 아카이와 처럼 그리스도교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 역시 위기는 있었지요. 그 위기는 <사해 부근에서> 라는 내 소설에 농도 짙게 배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생애>와 <그리스도의 탄생> 을 쓰면서 겨우 그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Q. <예수의 생애>는 일본적 종교 감각이랄 지 정토진종 淨土眞宗 적이랄 지 예수님을 왜곡했다는 비평이 있는데 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런 질문을 반드시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나의 예수님 상은 내가 생각하는 일본적 종교 의식(서구의 부성적 종교의식과는 다른 모성적 종교 의식) 으로 포착한 예수님 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예수님을 왜곡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요. 그럼 진짜 예수님 상을 어떻게 붙들 수 있을까요. 전에 말씀 드린 대로 현대의 신약 성서학에서는 많은 연구 결과, 성경에는 있는 그대로의 예수님 상이 쓰여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초대 교회에도 각 그룹에 따라 각각의 예수님 상과 예수론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최근에 판명되었습니다. 각 그룹은 각각의 신앙 형태로 예수님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마르코 복음이나 요한 복음이 된 갓이라는 사실은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형대에도 여러 가지 예수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의 성서학을 근간으로 일본에서도 야기 세이이치 나 아라이 사사구, 다가와 겐조 등의 뛰어난 학자들도 예수론을 섰습니다. 아마 그분들도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예수님 상’ 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들 역시 자신의 마음의 문제에 예수님을 끌어 붙여서 예수님 상을 만들어 놓았다는 점에서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 있어서 나의 경우도 같습니다. 야기는 에고이즘을 버린 통합 의 장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했습니다. 아라이 는 트로크메 E. Trocme나 타이센 G. Theissen 등과 같이 문화 사회학 연구를 거쳐 예수님을 당신의 유다교가 돌보지 않은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했던 해방론자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인 나는 작가로서의 문제로 예수님 상을 그렸습니다. 작가로서의 나의 문제의식이 일본인의 종교 의식으로 예수님을 포착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생각하기 위하여 일본인 소설가인 내가 당연히 하지 않으면 안 될 내 개인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신학과 요한 신학의 차이

 

Q. 일본적 종교 의식과 지금까지의 그리스도교와는 거리감이 있습니까?

 

예를 들면 예수님이 희생 제물이 되어 인간의 죄를 짊어지셨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희생 제물이라는 이 사고 思考 를 이해하기 조금 어렵습니다. 내 생애에서 정말로 내 죄를 보상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는 예수님이 대신해서 속죄해 주고자 했다는 뜻을 잘 알겠지만, 어쨌든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를 위한 희생양이라는 것이 잘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속죄설 贖罪說 이라는 것 역시 양을 치는 민족이나 유다교의 사고방식인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오로에게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요한의 경우에는 상대가 그리스인이었으므로, 이러한 유다교적 관념은 엷어지고 하느님의 사랑이 강조되었습니다. 일본인인 나에게는 요한의 사랑이 가까이 하기 쉽습니다. 그러니까 나와 같은 일본인에게는 요한의 신학 쪽이 더 중시되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근래의 내 생각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유럽에서 들어온 일본의 그리스도교는 너무 예수님의 속죄에 중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설파한 요한의 신학은 동방 교회 쪽으로 갔습니다. 따라서 동방 교회에는 일본인에게 맞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유럽 교회도 동방 신학을 다시 보자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유럽의 그리스도교 신학인 바오로 신학 쪽에 중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요한 신학 쪽이 더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쪽이 옳다거나 진짜라는 문제가 아니라 감각의 문제입니다. 바오로 신학과 요한 신학은 기본은 같지만 표현 방법이나 기타 부수적인 것들이 다르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그리스도교를 알 수 있습니까?

 

Q. 그럼 성경만 읽으면 그리스도교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성경을 읽으면 그리스도교를 잘 알 수 있다고 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성경을 읽으면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아무런 매력도 느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지만 성경을 읽어 본다 해도 대부분의 일본 사람에게는 별 재미가 없습니다. 먼 중근동의 갈색 수염이 난 사람들이 쓴 것이고 예언자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런 것을 읽고 그리스도에 감동했다고 한다면 종교적 천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괴로움이 있어서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아 그때부터 공부를 해 볼까 하는 마음에서 출발하여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다는 사람은 제법 있지요. 예를 들면 병에 걸려 괴로워할 때 성경에 감동하여 회복된 후 교회에 가서 강론을 듣거나 하는 것은 가능하겠지요.

그렇지만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 예수님의 매력을 느끼고자 해 봐도 대개의 일본인은 그렇게 되지 못합니다. 더욱이 일본의 구어 번역 口語譯 성경은 번역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내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길로 들어선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었습니다. 따라서 미우라 나 다른 그리스도교 작가와 같이 성경을 일거나 신부의 강론을 듣고 성경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성경은 나의 신앙을 강하게 해 주었지만, 그런 의식적인 것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단지 내 친구인 이노우에 요지 신부도 나와 공통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생각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여러 신부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 그런 것인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읽어도 재미가 없어 ‘나는 하느님과는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내 책을 읽어 보세요. 농담이지만, 이노우에 신부 말이 내 책을 읽고 그리스도교에 흥미를 갖게 된 일본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대개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인생의 고통도 모르면서 법화경을 읽고 불교 신가 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요. 나는 코란을 읽은 적이 없지만 아마 코란도 읽기만 해서는 재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에는 인생의 증명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구약 성경을 읽는 방법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구약 성격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화내시는 하느님, 벌 주시는 하느님, 심판하시는 하느님)은 너무 엄하고 무서워서 그다지 좋아지지 않습니다. 또한 그 안에 쓰여 있는 유다교의 생활이나 풍습, 메시아 신앙 등의 감각은 산 너머 강 건너 먼 동방에 사는 일본 사람인 나에게는 잘 알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잡지나 신문 등에서 흔히 ‘필독서는?’ 이라고 질문하면 문화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구약 성경이라고 답하는 일이 간혹 있지요. 이것에 나는 언제나 의문을 갖습니다. 나 자신도 전문가인 신부 옆에서 구약을 공부해 본 결과, 구약 성경은 전문가의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를 들면 편찬할 때의 잘못이나 무엇인가로 인해서 어떤 쪽에서 전혀 관계없는 쪽으로 연결되어 버린 것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즉 구약 성서학자에게 이 단어로부터 이곳으로 연결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받아 그와 같이 읽음으로 해서 비로소 의미가 통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니 혼자서 아무리 열심히 읽어 보아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구약 성경을 자기 혼자 읽은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도 없이 전부를 쭉 읽고 잘 알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천재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유다교의 너무나 유다적인 구약 성경은 읽어 보아도 신약만큼 재미있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 아마도 보통 일본인의 심리가 아닐까요?

신약 성경에는 무언가 대단히 몰입할 부분이 있거나 감동을 받거나 하는 등의 이야기들이 있지요. 예를 들면 병을 앓고 있는 여자에게는 오랫동안 하혈을 앓고 있는 여자 이야기가 마음에 저며 오겠지요. 성경은 어떤 동기가 있음으로 해서 조금씩 읽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로부터 점차로 흥미를 갖게 되는 것이지요.

신약 성경도 그러한데, 구약 성경이 재미있다는 말은 매우 의심스러워 보입니다. 하긴 역사적인 면에서 재미있는 구성이 있기는 있습니다. 다윗의 이야기라든가 삼손과 들릴라 등은 미국 영화로도 볼 수 있는 내용이니까요. 그러나 이것은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속에서 종교를 읽어 내고자 하는 것은 일본인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욥의 하느님을 과연 일본인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욥기는 일본인에게 상당한 거리감이 있는 유다교라는 종교밖에 없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것은 유다교라는 사막 종교이고, 사막 종교는 일본인에게 가장 힘든 종교입니다.

다만 구약을 읽어 두면 신약을 읽을 때 대단히 도움이 됩니다. 하나의 예로, 구약의 메시아는 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온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그것과 관련해 예수님이 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왔다는 식입니다. 신약에 예수님이 베들레헴 태생으로 나온 것도 ‘유다인을 구원할 사람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 고 한 예언자의 말이 구약에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베들레헴 전설이 만들어 진 것이 아닐까 하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구약에 쓰여 있는 예언을 예수님이 그대로 성취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또한 신약의 수난 이야기는 구약에도 많이 있던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구약의 예언에서 따와 창작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구약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신약만큼은 아닙니다.

예언자 預言者 라는 말이 나와서 조금 첨가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면 예언자를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할 소지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예언이란 예언 豫言 이 아니라 예언 預言 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위탁 委託 받아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

 

일본, 특히 지식인층에서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를 지나친 절망의 소리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것은 원래 시편 22편의 구절이며, 31편의 “제 목숨을 당신 손에 맡기니…”와 연결됩니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이 시편 기도를 외친 것임에도, 전체를 무시하고 한 구절만을 임종의 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이며, 그렇게 말하고 숨을 거두신 것입니다.

당신 사람들은 회당 synagogue 에서 기도 말씀을 끊임없이 소리 내어 읽었으므로 시편 한 구절만으로도 어느 부분의 기도라는 것을 금방 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시편의 이 구절, 즉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다음을 쓰지 않았어도 그 다음 기도를 전부 말했다는 것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 맡깁니다.” 가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점을 무시하고 글로 써진 것에만 정신을 빼앗겨 버린다면 틀린 해석을 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최후에 모든 것을 맡기고 돌아가신 것이지 절망하면서 죽음을 맞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심리적으로 말한다면 정말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라는 심리가 예수님 안에서 작용하고 있었다 해도 결코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윽고 마지막에는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이지만, 그 전에 괴롭고 절망적인 심리가 작용한다는 것, 인간으로서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절망하며 괴로워하셨지만, 그것을 초월하여 아버지 손에 맡긴다고 하셨고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라고 말하며 용서를 청하셨습니다. 이 두 말씀이 가장 예수님다운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손바닥에 구멍이 뚫리면 아프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인간이니까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해도 예수님께 흠을 내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가 없었으면 종교는 시작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예를 들면 어린이가 백혈병으로 죽어 가고 있을 때 부모는 열심히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죽습니다. 이때 아이가 죽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신흥 종교입니다. 신흥 종교에서는 암도 낫게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아이는 아마도 죽을 것입니다. 이때 하느님도 부처님도 없는가 하는 것이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입니다. 여기서부터 진짜 종교가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하느님도 부처님도 없는가 하는 시점에서부터 진짜 종교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적이란

 

Q.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켰다고 쓰여 있는데,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믿습니까?

 

성경에는 예수님이 많은 기적을 일으켰다고 쓰여 있습니다. 기적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오해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기적 이야기는 성경 이전부터 오랜 전승으로 이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치료한 것은 확실합니다.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일본인은 고보대사 가 어떻게 하니까 이렇게 됐다더라 하는 식의 이야기를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살던 간사이 關西 의 니가와 仁川 부근에도 고보대사가 지팡이로 땅을 치니 연못이 생기고, 그 땅이 붕 하고 날아가 가부토야마 甲山 이라는 산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식의 기적은 구약 성경에도 나옵니다. 비과학적이지만, 나는 기적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루르드 등에 가 보면 기적처럼 정말로 병이 나은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죽은 콜베 M. M. Kolbe 신부는 성인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사후 그 사람이 기적을 일으켰다는 증언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유학했던 리옹 대학 의과대학 교수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알렉시스 카렐 A. Carrel 의 <인간 – 이 미지 未知 의 존재> 에는 기적 따위 믿지 않던 그가 루르드에서의 사실을 보고 생각을 고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습니다.

소고 아야코 는 콜베 신부의 이야기를 담은 <奇蹟>(기적) 이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소노는 실제로 콜베 신부의 기적을 조사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이었는지 스위스 사람이었는지는 잊었지만, 의사가 포기한 환자를 콜베 신부에게 기도하기 시작하자 병이 치유되었다는 기적이 쓰여 있습니다. 기적을 일으킨 사실이 로마 교황청에 보고되고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모두 조사된 끝에 정말로 이것은 기적이라는 말을 듣지 못하면 성이인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슬프게도 현실적으로 기적이 일어나 그것을 보지 않는 한 기적이라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나는 기적을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작용하여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아우슈비츠에 가서 수용소를 보았는데, 2백만 명쯤 죽였을 가스실과 고문실이 도처에 있었습니다. 탈주하는 사람이 있으면 본보기로 탈주자 한 명당 10명 정도의 사람을 죽였다고 합니다.

14호 동이라고 하는 블록으로 만든 건물 안에는 4 평 정도 되는 방 두 개가 지금도 보존되어 있는데, 그 하나는 아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질식실입니다. 질식실에는 창문을 비롯해 어떤 출구도 전혀 없습니다. 그 안에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집어 넣고 문을 꼭 닫은 채로 두면 많은 사람의 호흡에 의해 산소는 점점 희박해지고 결국에는 전부 질식해서 죽도록 방치되었기 때문에 벽에는 고통에 못 이겨 손톱으로 긁은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옆이 콜베 신부가 죽은 아사실입니다. 그곳에 유다인들을 가두고 물 한 방울도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문에 작고 둥그런 구멍이 있고 그곳을 통해 간수가 매일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한 사람의 탈주자가 생기면 그로 인해 10명을 임의로 골라내 아사실로 보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의 남자가 울기 시작하자 줄 가운데에서 콜베 신부가 나왔습니다. 콜베 신부는 “나는 신부라서 내게는 아내와 어린애도 없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처자식이 있으니 나를 대신 아사실로 보내 주시오.” 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 남자를 대신해서 콜베 신부가 아사실로 들어갔습니다. 콜베 신부는 일본에 와 있을 때도 결핵에 걸려 있었지만, 그래도 비교적 마지막까지 살아 있었습니다. 아사실에서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석탄산을 주사하여 살해 했습니다.

콜베 신부와 같은 행위는 나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며 생각만으로도 무서워집니다. 사람을 대신 해서 죽는다는 것은 우리처럼 보통 사람은 도저히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랑의 행위를 콜베 신부는 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기적이란 범인 凡人 이 할 수 없는 사랑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은 것보다 더 큰 사람은 없다.’ 는 요한 복음의 사랑을 콜베 신부는 실천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일 고통스럽고 잔혹한 형벌로 죽어 간 것입니다.

이런 것을 나는 기적이라고 합니다. 이런 일이 현실에 있는 이상, 그것은 신앙 대문에 가능한 것이며, 그것이 가능했다는 것은 병을 치료하는 일보다 더 큰 기적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기적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자를 치료했다는 기적도 그리고 치료해 주고 싶다는 것도 사랑입니다. 사랑의 힘으로 치료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의 힘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이 죽는 것도 기적입니다.

이런 식의 기적이라면 이해가 되겠지요. 나는 예수님의 기적도 그런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다인들이 행하지 않았던 것들, 즉 유다 사회에서 격리되어 멸시당하고 거부당하고 있던 병자나 창녀들 사이로 몸을 던져 그들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옹호했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나 병자에게 손을 대자 살아났다든가, 병이 나았다고 해도 믿지 못하겠지요.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본 적이 없으므로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콜베 신부 같은 사람이 있으므로 인간이 그토록 변할 수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이것은 이 말세에 아직 인간을 신뢰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기적입니다.  사랑에 불타는 사람은 그렇게 변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신앙을 점차 깊게 하여 전부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나는 이렇게 말 할 것입니다. “아닙니다. 나는 죽은 사람에게 손을 대어 그 사람이 살아나서 뚜벅뚜벅 걷게 된다면 무서워서 싫습니다. 그런 기적을 일으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당신들은 표징만을 생각하고 있다.’ 고 한탄했습니다. 표징이란 기적을 말합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액운을 제거하는 대사라든가 어딘가에 가서 기원하여 재난을 피하고자 합니다. 병이 낫다는 말에, 나 자신도 아사쿠사에 있는 세소지  에 갔을 때  온몸에 연기를 쐬었습니다 (본전 앞에 있는 향로의 연기를 쐬면 건강해진다는 믿음이 있다. – 편집자 주) 가와사키 대사를 만나니 액운을 씻어 낸 듯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속으로는 ‘종교는 이런 것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정한 종교라는 것은 하느님도 부처님도 없는 것인가 하고 생각 했을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했습니다.

내게 아이가 있고 이 아이가 암에 걸렸을 때 ‘하느님! 부탁합니다. 구해 주십시오!’ 라고 부모는 당연히 기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죽어 버렸다면 기적도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느님도 부처님도 없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겠지요. 그렇지만 바로 그 시점에서 진정으로 종교라는 것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요.

 

 

 

위로 이야기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기적 이야기들은 내 마음에 미치는 힘이 그다지 없습니다. 그것보다는 위로 이야기, 즉 예수님이 위로했다는 부분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예를 들면 창녀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을 때 ‘알겠다. 괴로웠지.’ 하고 예수님은 위로합니다. ‘네 슬픈 심정을 잘 알겠다.’ 는 위로 이야기는 굉장한 박력이 있습니다.

위로 이야기는 기적 이야기와 서로 섞여 있고, 그 형태는 유다 지역이 아닌 헬레니즘 문학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예수님이 병자를 치료하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면서 돌아다녔다는 사실은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너무 열심이었기에 나중에 그것을 기적 이야기로 만들어 버렸는지도 모르겠고, 진짜 기적이 일어났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역시 위로 이야기 쪽이 기적 이야기보다는 사실성 reality이 있다는 느낌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병을 낫게 했다든가 죽은 자를 회생시켰다든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분이 그것을 사랑으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것은 예수님의 기적이 아닙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사랑의 힘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기적입니다.

 

 

 

 

 

부활이라고 하는 것

 

Q.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부활은 황당무계해서 믿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부활을 믿는 것입니까?

 

부활 復活 과 소생 蘇生을 혼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교의 부활은 소생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부활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 사도들의 마음속에서 그분은 그리스도(구세주)라는 형태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본질, 그리스도서의 본질이 사도들의 마음속에 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현실의 예수님보다 진리의 예수님으로서 살기 시작했다는 것, 이것이 부활의 첫째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그분이 위대한 생명 속으로 돌아갔다는 것의 확인입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라는 커다란 생명 속에서 살아 있을 때보다도 더 힘차게 숨 쉬며 다음 세상까지 살아가는 것, 그것이 부활인 것입니다.   

부활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말은 아닙니다. 내 생각이기도 하지만, 이노우에 효지 신부의 생각이기도 하고 다른 신부들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나는 부활에 대한 이런 사고방식에 동감하고 있습니다. 오늘까지 내가 어머니나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그리스도교에 연결된 것은, 예수님이 어머니나 그들의 인생을 통해서 나를 붙들어 맨 것이라는 느낌이 들면서 예수님은 역시 그들 속에 살아 계시고 부활해 계시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부활에 대한 내 생각은 그러합니다.

 

 

 

예수와 그리스도

 

Q. 예수와 그리스도는 어떻게 다릅니까? 흔히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데, 이것은 성과 이름 같은 것입니까?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다른 것에 대하여 먼저 말해야겠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하느님을 믿는 것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인가, 어느 쪽인가 하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적이 있지만, 밀교 (密敎, 대승 불교의 한 종파 – 편집자 주)의 이상 이상으로 대일여래 大日如來 가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 앞에서는 인간적인 부처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리스도교의 경우에 대일여래에 해당하는 것이 하느님 God 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하느님의 이상이 인간 형태로 나타난 것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밀교의 사고방식과 비슷하니까 일본인에게도 잘 이해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옛날 기리시탄(1338-1573년의 무로마치 후기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등에 의해서 일본에 전해진 로마 가톨릭교회를 일컬음 – 편집자 주) 이 일본에 도입되던 시기에는 신도 수가 약 45만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무엇에 유추하여 이해했을까 생각해 보면, 아마도 불교였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를 들어 불교의 법신 法身 과 응화신(應化身,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 따라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출현하는 역사성을 지닌 부처) 에 대한 생각이 토대가 되었고, 그 사고방식을 그리스도교에 실어 생각한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즉 오랜 기간 마음에 가꾸어 온 신도 神道 나 불교가 밑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것은 관념적으로 종교를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실제적이었습니다. 또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생각할 때는 일본인이 좋아하는 기슈류리탄(젊은 신이나 영웅이 타향을 방황하면서 시련을 극복한 결과, 귀한 존재가 된다고 하는 일본 설화의 한 유형)이나 고통 받는 하느님의 이미지가 매우 도움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불교의 사고방식과 그리스도교의 사고방식이 상반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경을 읽다 보면 성경과 같은 것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하고 생각하는 일조차 있습니다. 물론 하느님을 절대신 絶對神 하나로 바라보는 가 아니면 많은 부처님으로 삼는가 하는 차이는 있습니다. 조용히 열반한 석가의 죽음과 십자가형이라는 고통 속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죽음을 생각할 때, 죽음과 재생에 대한 생각 image도 달라집니다. 불교는 고 苦 를 생각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죄 罪 를 생각합니다. 이런 차이는 그 밖에도 있습니다. 종교적 발상법에서 일본 사람들이 불교를 이용해 그리스도교를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우선 예수 그리스도를 응화신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불교에서는 대일여래의 이념을 살린 다른 어떤 것이 나타나지요. 그와 같이 하느님의 이념을 참으로 살린 것이 예수님이라는 식으로 생각한 다음 예수님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인간으로서의 고통을 모두 맛보았으며, 그 속에서 하느님의 이념을 보여 주고자 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상을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보여 준 것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구체적인 존재라면 그리스도는 추상적 개념입니다. ‘예수’ 라는 이름은 그 지방에서는 아주 흔한 이름으로 팔레스타인에는 ‘예수’라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원래 갈릴래아 지방에서는 ‘예슈” 라고 발음했다고 하는데, 일본식으로 말하면 가즈오 一夫 나 미노루 처럼 흔한 이름으로, 슈몬 朱門 이나 준노스케 淳之介 처럼 특별한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33세의 생애를 사셨습니다. 그리고 죽어서 제자들에 의하여 그리스도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구원자라는 뜻인 그리스도 칭호를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은 엔도 슈사쿠 나 다나카 다로 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보통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구세주의 칭호라고 생각하십시오.

 

 

 

예수님의 부활

 

당시에 팔레스타인 상황을 모르는 우리는 매우 이해하기 어렵지만, 유다라는 나라는 몇 번이나 여러 나라에 의하여 점령되었지요. 당시는 로마에 점령된 시기로 유다교에는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라는 두 개의 주류파가 있었습니다. 점령군의 지배를 받던 전후 일본과 마찬가지로 로마의 속령과 같은 형태였기 때문에 로마와 타협하며 살자고 생각한 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파, 로마로부터 빨리 독립하고자 한 바리사이의 일파, 그  외에 에세네파, 열혈당원과 기타 작은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유다에서는 다른 나라에 점령될 때마다 하느님이 우리를 독립시켜 주신다, 민족의 자부심을 되찾아 주기 위하여 메시아(구세주)를 보내 주신다는 이상이 사람들의 마음에 박혀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메시아를 자칭하는 수많은 가짜 메시아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나타났습니다. 나자렛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여행과 수행을 하는 동안 그 인기는 점점 높아져 제자들 중에도 그를 정치적, 현실적으로 유다를 구원해 주는 메시아로 생각하는 사람이 생겨났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분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메시아라는 것은 유다 민족을 구원해 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그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그분의 신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로마 점령군과 결탁하고 있던 사두가이파가 예수님을 정치적 반란자라며 죽여 버립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그토록 충실해 보이던 제자들은 모두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음 직전에 자기들을 저주하는 말을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어째서 저런 비참한 방법으로 죽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하느님도 부처님도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깊은 의혹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임종 시 사랑의 말고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의 말을 외쳤습니다. 그것을 알았을 때 제자들은 아연해졌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진짜 모습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그제야 깨달은 것입니다. 이 부분을 자세히 알고 싶으면 <예수의 생애> 와 <그리스도의 탄생>을 읽어 보십시오. 그 제자들이 모여 원시 그리스도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이상은 이처럼 제자들 안에 남아 있었고, 그리하여 예수님은 다시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 부활의 한 형태입니다. 당시의 생각으로는 부활이란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 속으로 돌아가는 것, 그 이상이 누군가에게 이어져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에 대하여 제자들은 “죽은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틀림없다.” 고 말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이상이 예수님 안에 체득되어 그분 안에 살아 있기 때문에 부활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당신의 상징적인 이야기 방식으로 부활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과 소생과는 다릅니다. 소생은 죽었던 육체가 다시 숨을 쉬는 것이지만, 그것은 부활이 아닙니다.

 

 

 

 

메시아와 그리스도의 차이

 

예수님은 돌아가신 뒤 모두의 마음속에서 점차 그리스도가 되어 갔습니다. 부활해 있었습니다. 지상의 구원자가 아닌 영혼의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메시아가 아니라 그리스도로서 말입니다. 예수님은 사후에 그리스도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생전에 당신 스스로를 그리스도라고 했는지 어쨌는지는 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엇갈립니다.

대개 메시아를 구세주라고 해석하지만, 메시아는 세상을 구원하는 자가 아니라 유다인을 구원하는 자를 말합니다. 유다인이 아닌 다른 밈족은 메시아와 관계가 없습니다. 유다에 지상의 복권 復權 을 가져다 주는 자가 당시에 말하던 메시아의 이미지입니다. 지상에서 학대 받고 있는 유다인에게 자랑과 영광을 가져다 주는 자, 그분을 메시아라고 했던 것입니다. 또한 다른 종교가 아닌 야훼의 신앙을 확실히 수립시킬 수 있는 자를 구세주 메시아라고 했던 것입니다.

지금 이야기한 것처럼 일본에서는 메시아를 ‘구세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일본어로 무엇이라고 번역할까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일본어로 번역하지 않고 그냥 그리스도라고 하겠습니다. 굳이 번역한다면 영혼을 구원하는 자라고 번역할 수 있을까요.

당시의 유다에서도 그리스도란 말이 영혼의 구원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을까요? 유다교에서 주로 사용되던 말은 메시아였으며 그리스도라는 말은 그다지 사용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양쪽 모두 같은 의미로 유다인들에게 사용된 적도 있었습니다. 이것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를 영혼의 구세주로 만든 것이 그리스도교인 것은 확실합니다.

 

 

 

배신한 사도들

 

Q.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그분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의 본질에 대하여 제자들은 잘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유다만이 악한 인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도 (12사도였는지는 15사도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실은 더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마음 속으로는 유다와 마찬가지로 비겁한 인간들이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들어왔을 때 군중들은 대환영을 했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자 돌연 태도가 바뀌어 버렸습니다. 이런 현상은 전쟁 중과 전쟁 후의 군중 심리를 알고 있는 나에게 이해가 잘 됩니다. 대중이란 것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요.

예루살렘 바로 옆에 베타니아라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마리아와 마르타라고 불리던 자매와 죽음에서 부활했다고 일컬어지는 라자로의 집이 있었습니다. 여기서의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들 형제의 친구였기 때문에 그곳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잡혔을 때 제자들은 아마도 그곳으로 도망 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과 한 무리였으므로 그분과 똑같이 관헌들에게 끌려가게 되었겠지요.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군중들에게 돌팔매를 당할 위험성이 있었으니 도망가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스승을 배신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는 후회하고 있었겠지요. 더욱이 여자 제자들은 예루살렘 시내로 숨어 들어가 붙잡힌 예수님이 어디로 끌려갔는지 등을 차례로 전해 왔을 것이므로 제자들은 후회막급 하면서 정보를 들었을 것입니다. 맏형 격인 베드로 역시 예수님이 마음에 걸려 나가 보았습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성경에는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 세 번씩이나 ‘나는 그런 사람 모른다.’ 고 예수님을 부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대사제의 하녀가 “당신도 저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이지요?” 라고 묻자 베드로는 “나는 몰라요. 그런 사람 몰라요.” 하며 도망칩니다. 이 장면은 정말로 굉장합니다. 베드로는 그곳에서 붙잡혀 가는 예수님과 얼굴이 마주쳤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성경의 이와 같은 장면 묘사는 사실과 다를지도 모르지만 내용은 똑같지 않았나 하고 나는 생각합니다. 예수님과 얼굴을 마주쳤을 때 베드로는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을까요? ‘나는 배신자’ 라고 자학하는 마음이 얼마나 컸겠는지 그 기분이 충분히 전달됩니다.

도시 성벽 밖에 있는 골고타라고 하는 동산에 끌려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최후 말씀이 성격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마태오 복음과 마르코 복음의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입니다. 루카 복음에는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로 되어 있지만, 그전에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라는 말 속에는 당신을 체포한 자들 외에 당신을 배신한 자들도 용서해 주십사 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당신을 버린 자기들을 원망하고 있겠거니, 하느님께 그 놈들을 벌하여 주십사 청하고 있겠거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벌하여 주십사 청하는 대신에 그들을 용서해 달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굉장한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것이 최초의 충격이 되었고, 제자들은 ‘예수님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하고 다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그들은 그분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을 지지 해 로마를 몰아내고 유다인의 세상을 만들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열혈당원이라 불리던 사람도 열두 사도 중에는 있었습니다. 시몬 이라는 제자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생각이나 사상을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왔기 때문에, 정작 예수님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던 것이 결국은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을 마지막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몸으로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이 몸부림치며 ‘사랑’을 베풀고자 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제자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윽고 제자들 속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이 지상의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분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던가?’ 하고 생각하는 일이 그들의 마음속에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조금씩 그리스도화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마지막 순간 당신의 참뜻을, 생애를 걸어 온 것을 죽음 이후 제자들에게 전부 심어 주었습니다. 겁쟁이였던 사도들은 용감한 사람들로 변화되어 거꾸로 매달려 죽임을 당했으며, 그 굳은 신념을 그리스도교로 확립시켰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최종적인, 가장 큰 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여자들

 

Q. 화제를 좀 바꾸어, 성경에 나오는 여자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구약 성경은 물론 신약 성경에도 많은 여성이 나옵니다. 여기서는 구약의 여성을 제외하고, 신약 성경에 나오는 여성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나는 전에 <성경에 나오는 여성들> 이라는 책을 쓴 일이 있습니다. 나는 성경을 읽을 때 여성이 나오는 부분을 호기심을 가지고 열심히 읽었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여성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신약 성격에 등장하는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여성뿐만 아니라 좋지 않게 생각되는 여성들도 모두 대단히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점입니다. 개성이 있다고 할까 대단히 강한 여자라고 말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성경에는 그러한 강한 여성이 상당히 많이 등장합니다.

두 번째는 남자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그다지 잘 알지 못한 반면 여자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남자 제자들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쳐 버렸지만, 여자 제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분 곁을 떠나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나는 이 두 가지 특징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두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하나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입니다. 내 기억으로는 막달라 마리아는 성경에 두 번 정도 나옵니다. 도대체 어떤 여자인지 전혀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디 출신인지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잘 모르지만, 예수님이 활동하며 다녔던 갈릴래아 지방의 갈릴래아 호수에는 막달라라는 장소가 지금도 있습니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 마을의 흔적조차 없어졌지만 아마도 옛날에는 그곳에 어촌이 있었겠지요. 티베리아스 라는 로마화한 마을의 바로 옆이었으니까, 호화로운 생활을 했던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아마도 막달라 마리아라는 사람은 그 이름으로 보건대 그곳 출신인 듯합니다.

어떤 여자였는지 요한 복음을 살펴보면, 남성 편력이 있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진짜로 그랬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남자를 전전했다는 느낌입니다. 학자 중에는 성경에 나오는 창녀를 막달라 마리아와 동일 인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님의 친구였던 라자로의 자매, 유명한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라자로의 자매인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를 구별하여 생각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도 ‘마리아’, 막달라의 마리아도 ‘마리아’, 베타니아에 살고 있던 마리아도 ‘마리아’ 였습니다. 이것은 구별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만, 또한 매우 상징적인 것으로 이들 마리아를 전부 합인 것이 ‘성모 마리아’ 라고 생각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막달라 마리아는 남자들을 전전했던 편력을 가지 여자였습니다. 남자들을 편력했다 하면 음탕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꼭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을 열심히 추구하는 여자가 있어서 자신이 굶주리고 있던 사랑을 채우고자 A라는 남자와 동거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남자는 이기적이고 소심하고 발뺌을 하려고 합니다. 남자들은 그와 같은 격정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여자에게는 발뺌하고자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런 일은 많은 남성들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열렬한 사랑을 받은 남자는 그만 귀찮기도 하고 곤란하기도 하여 보통은 적당한 시기에 타협을 하게 됩니다. 결혼 상태가 지속은 되지만, 당신의 사랑이 부족하다거나 나는 이렇게 격정적으로 당신을 사랑하는데 등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고, 남자는 지나치게 사랑 받는 것이 무거운 짐이 되어 도망가고 싶은 기분이 들 것이고, 사랑이란 것은 점점 힘들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남자가 도망갔거나 남자에게 버림을 받았거나 또는 반대로 그녀가 그렇게 했겠지요. 애욕이라 하는 것은 결국 언제나 한계가 있으므로, 그녀는 거기서도 충족하지 못하고 또 다시 C라고 하는 남자에게로 갑니다.

그녀는 진짜 물이 필요했는데, 마시고 있었던 것은 콜라였다는 것입니다. 물의 대용품 정도밖에 안 되었다는 말입니다. 요한 복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가 건네준 물을 마시면서 그녀에게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 남자란 이런 물의 대용품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그래서 만족할 수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윽고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 애욕이 아닌 참사랑을 알게 됩니다. 정열이 아닌 애정을 알게 됩니다. 그녀가 에로스가 아닌 아가페를 알게 되는 것으로 비로소 갈증이 해소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 배후에는 사랑을 격렬하게 추구한 한 사람의 여성 막달라 마리아를 통하여 떠오르겠지요. 이러한 여성들이 신약 성격에 여러 사람 나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계속해 보겠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나서 그분의 뒤를 따라다니며 예수님이 붙잡히고 열두 사도들이 도망가버린 후에도 십자가 곁까지 따라갑니다. 이 사실은 성경에 분명히 쓰여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다른 여자들과 함께 십자가 옆까지 따라가 예수님이 숨을 거둘 때까지 골고타 언덕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다음 날 아침 묘지에 혼자 가서 그분의 무덤을 들여다보고 시체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먼저 발견한 사람도 바로 이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그 후 그녀의 연락으로 베드로와 다른 한 사람의 제자(그를 요한이라고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가 묘지에 가서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제일 먼저 알았던 것이 막달라 마리아라는 것은 성경이 이 격정적인 여자를 얼마나 크게 인정하고 있었는가에 대한 증거가 되겠지요.

그런데 이 격렬함이라고 하는 것이 이와 같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추구하는 형태로도 나타나지만, 이것이 뒤바뀌었을 때는 헤로디아 나 살로메 가 됩니다. 그녀들 또한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 격정적인 여자들이었습니다. 살로메가 세례자 요한을 죽였는지 어쨌는지는 성경 이외에는 나오지 않으니까, 그것이 사실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아마도 그것이 전승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어즐리 A. V. Beardsley의 그림이나 오스카 와일드 O. Wilde의 희곡, 슈트라우스 Richard G. Strauss의 오페라 등을 통하여 살로메 이야기와 그 배경은 잘 알려져 있지요. 간단하게 살로메 사건을 설명하자면, 세자 洗者 요한인지 세례자 洗禮者 요한인지로 불리는 예수님의 선생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의 거리에 유다의 광야라고 하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황무지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지금도 예리코 Jericho라는 세계 최고 最古 의 도시가 남아 잇습니다.  그 부근의 요르단 강가에서 당시 세례자 요한은 짐승의 가죽옷을 입고 음식으로는 꿀과 메뚜기를 먹고 살면서 자못 고행승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경고를 했습니다. 이 ‘회개하라’는 경고에는 ‘한편으로는 로마처럼 되어 가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다른 한편으로는 본래의 이스라엘의 모습에 대하여 눈을 떠라!’ 하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즉 로마와 타협하고 있는 사두가이나 바리사이 일부를 비난, 공격하는 의미도 있었으므로 민족주의 유다인들의 공감을 크게 샀습니다.

이때 헤로데 대왕의 아들인 헤로데 안티파스 라는 갈릴래아 지방의 왕은 이것에 대하여 대단한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는 로마의 세력을 배경으로 갈릴래아 지방의 왕이 된 남자입니다. 그는 로마에 갔을 때, 자기 형제의 아내인 헤로디아라는 여자와 매우 격정적인 연애를 했습니다. 매우 격정적인 연애라고 쓰여 있지는 않지만, 헤로디아가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그를 따라 로마의 변경 지대인 유다에 와서 그 남자와 함께 살았을 정도이니 사랑의 도피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헤로디아라는 여자 또한 사랑에 죽고 사는 격정적인 성격의 여자였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격적으로는 막달라 마리아와 마찬가지로 격렬합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이것을 비난했습니다. 유다 율법으로는 이혼은 인정되었지만 형제의 아내를 아내로서 맞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율법을 위반했다 하여 세례자 요한이 비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격렬한 사랑에 불타 변경까지 온 헤로디아가 자기들의 사랑에 상처를 입히는 발언을 한 인간을 용서할 리 없습니다.

그래서 헤로디아는 남편을 선동 煽動 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요한을 잡아 감옥에 처넣으세요! 우리들을 모욕했으니까.’ 라고. 그러나 남편은 인기가 있는 세례자 요한을 체포하면 유다인의 봉기가 일어나거나 반란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여 잠시 동안은 주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결국 아내의 말대로 요한을 체포하여 감옥에 넣었습니다. 성경에는 헤로데 왕은 요한의 말을 듣고 깊이 느낀 바 있어 그를 죽이기 망설였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 말은 엉터리입니다. 헤로데 왕은 사실 요한의 지지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자기가 로마로부터의 지지를 잃는 것을 두려워 했겠지요.

그러나 결국은 세례자 요한을 처형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을 처형한 사실은 당신의 유다인 역사가였던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Josephus가 기록하고 있으니까 확실하겠지요. 다만 살로메가 헤로데 안티파스 왕의 생일에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어 왕을 기쁘게 한 뒤 상으로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주겠다는 약속에 의하여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 주십시오.” 라고 말했다는 것이 신약 성경에만 나와 있습니다. 플라비우스는 이것을 기록하지 않았으므로 이것은 전승이겠지요. 그러나 그때 헤로디아가 개입하고 있었던 것은 확실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살로메가 정말로 그 당시 춤을 춘 상으로 목을 받았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을 읽음으로서 살로메가 어떤 여자였는지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살로메는 세례자 요한을 사랑했고 사랑하는 남자를 다른 여자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서는 죽이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죽여 버리면 절대로 다른 여자가 차지할 염려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워서 죽인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죽였다는 것이 살로메에 대한 해석이며 오스카 와일드 희곡의 주제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살로메는 막달라 마리아와 같거나 막달라 마리아보다도 더욱 격렬한 여자라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의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격정적인 여자가 예수님을 향해 돌아서게 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신약 성경에 헤로디아나 살로메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는 쓰여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헤로데 궁정에 있던 몇 사람의 여자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격렬하게 세상을 살던 여자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점이 성경에서 대단히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성경에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묵시 3.16)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인생을 미적지근하게 사는 인간은 하느님을 모른다.’ 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격렬하게 하느님을 사랑하든가 격렬하게 하느님을 미워하든가 그 어느 쪽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짜 무신론자라면 하느님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따위는 있어도 없어도 상관 없다는 사람은 영구히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격정적인 여자가 하느님이나 사랑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마리아와 마르타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라자로의 여동생, 마리아와 마르타의 유명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도보로 3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진짜로 촌스러운 베타니아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나는 여기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선교할 때의 발판이 되었던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곳에 예수님의 친구인 라자로의 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거기에서 숙식을 하곤 했겠지요. 또한 예수님이 체포되었을 때 제자들이 숨어 있던 곳도 아마 베타니아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닭이 여유 있게 ‘꼬끼오’ 하고 울 것 같은 마을입니다.

유명한 성경 이야기에서 마리아는 빨려 들듯이 열심히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가사일 따위는 접어두고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한편 마르타는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르타보다 마리아를 칭찬했습니다.

나는 처음 이것을 읽었을 때 ‘얼마나 가엾은 일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마르타는 음식을 준비하는데 열중해 있었으니까. 나의 인상과는 별도로 모든 것을 차치하고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는 마리아의 성격의 격렬함을 성경이 보다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점, 역시 주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이 격정적인 여자들과 함께 괴로워하는 여자들이 많이 나옵니다. 여자로서의 슬픔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괴로워하고 있는 여자에 대하여 예수님은 굉장히 민감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성경에는 두 종류의 이야기, 즉 위로 이야기와 기적 이야기가 쓰여 있습니다. 성경의 위로 이야기에 나오는 여성들은 실로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그 하나의 예로 오랫동안 하혈로 고민하고 있는 여자가 많은 의사들을 만나 보았지만 병은 낫지 않고 돈만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런 여자가 있었고, 그녀는 특별히 예수님을 존경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그 여자는 갈릴래아 호수 근처에 살고 있었겠지요. 그녀는 예수님이 여기저기에서 병을 고쳐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그분이 배를 타고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에 오기를 기다렸다가 배에서 내린 그분의 뒤를 쫓아가 군중에 섞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생각하고 살짝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뒤를 돌아보며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묻자, 제자들은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나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나는 안다.” 하고 말하다가 등 뒤에 서 있던 오랫동안 하혈을 앓고 있던 여자를 발견합니다. 이 장면은 위로 이야기에서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고통에 대하여 얼마나 민감했는지 손가락 끝으로 살짝 만진 것만으로도 그 손가락을 통하여 그 여자기 오랫동안 앓고 있던 고통과 그에 따르는 여자로서의 슬픔을 예수님은 느꼈던 것입니다. 그녀는 필시 오랫동안 하혈을 하고 있었으므로 결혼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아이도 낳을 수 없었을 것이며 남자한테 사랑 받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설령 남자를 사랑하려 해도 병 때문에 자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여자로서의 모든 슬픔이 단지 머뭇머뭇 만지는 것만으로, 모두 예수님에게 전달되는 장면…

또한 바리사이 한 사람과 함께 예수님이 식사를 하고 있을 때 창녀 하나가 예수님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 들어옵니다. 제자들은 그녀를 막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저지합니다. 여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그저 예수님의 발 밑에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립니다. 예수님은 그저 ‘알았다’고 합니다.

나는 소설가이기 때문에 잘 알 수 있는데 이 장면은 정말 간결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평범한 소설가라면 이런 창녀의 슬픔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쓰겠지만, 성경에는 단지 눈물로 발을 적셨다고만 쓰여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그 여자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여자는 창녀이기 때문에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들에게 안겨 얼마나 고통스러워해 왔는지를 흘리는 눈물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을 업 業 이 깊은 여자, 죄 많은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신 것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지저분하게 묘사하지 않은 것만큼 효과적입니다. 예수님은 ‘알았다’ 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인생의 동반자로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위로 이야기’는 그분이 인간의 고통에 매우 민감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굉장히 격정적인 여자로, 그 격렬함을 통하여 예수님에게 접근하는 이들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통하여 예수님에게 접근하는 여자들입니다.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어느 것이나 번뇌 煩惱 와 집착 執着 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번뇌와 집착이 그녀들을 하느님께 접근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커다란 차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번뇌를 버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번뇌 속에 하느님의 작용이 있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경우에 그녀를 예수님에게 향하게 한 것은 남성 편력입니다. 창녀를 예수에게 인도한 것은 지은 죄입니다. 하혈을 오래 앓던 여자가 예수님과 만난 것은 병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그녀의 집념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집착이라는 것이 역으로 사람들을 예수님에게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 내가 그리스도교에 글리는 까닭입니다.

나는 이러한 여자들이 점차 종합되고 순화된 것이 바로 성모 마리아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어 보면 성모 마리아 역시 호기심이 강한 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카나의 기적 이야기에서는 어떤 사람 집의 결혼식에서 술이 부족하자 부엌까지 살펴보러 갔을 정도이니 그저 보통 여자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친척들이 그분을 금치산자처럼 취급했는데도 이를 말리지 않은 것을 보면, 약한 어머니의 요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마리아가 반드시 완벽한 여성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도 점점 성모 聖母 로 성장해 갔던 것입니다. 나는 성모 마리아가 출발점부터 반드시 완벽한 어머니였던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벗어나 성모 마리아에게도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요소도 있었겠고, 하혈로 고통 받는 여자의 요소도 있었겠지요. 마리아에게는 이러한 성경에 나오는 여러 여자들뿐만 아니라 마리아와 마르타의 요소 등도 많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을 통하여 지양되거나 고양되거나 하여 탄생된 것이 성모 마리아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4  일본인과 그리스도교

 

 

 

전시 戰時 의 교회

 

Q.  < 여자의 일생> 에서 일본의 교회나 신자의 기개 없음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심입니까?

 

별로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전쟁 중 일본 교회는 나에게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는 것이 하느님의 가르침입니다. 교회에서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신자들이 징병으로 입대할 때마다 모두가 ‘만세!’를 외치며 전송했습니다. 비록 나는 아직 중학생이었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 신자 중에는 징병을 거부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의문에 대하여 당시 교회는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교 신자인데 그리스도교 신자인 미국인과 서로 총부리를 들이대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쪽에도 신부는 있겠지요. 당시 나는 신부님께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잘 모른다.’ 고 말해 주었다면 조금은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괴롭습니다. 될 수 있으면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오십시오.’ 라고 말해 주었다면 나는 틀림없이 진정으로 감동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당시 신부님의 기분도 알 것 같습니다. 그 입장의 괴로움도 알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는 추궁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전쟁 중에는 그리스도교 신자는 누구나 괴로웠습니다.

경찰이 와서 “하느님께 예배하는 것이냐 천황에게 예배하는 것이냐 대답해 보라.” 고 자주 물었습니다. 학교에 가면 우익 학생이나 군사 교련 교관들이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러니까 전시는 거의 기리시탄 시대와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하느님과 천황 중에 어느 쪽이냐고 물을 때 나는 “둘 다 존경하고 있습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내가 다니던 성당의 신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도 간첩혐의로 붙잡혀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작은 기리시탄 박해 시대를 약간은 맛보았던 것입니다.

그 이후 ‘나는 약한 인간, 잘못된 인간이다.’ 하고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중학생이라고는 하지만, 이중생활자라는 의식이 매우 강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중생활자로서 앞에서는 복종하고 뒤에서 배신하는 고니시 유키나가 小西行長 를 소설로 썼던 것은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의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 에게 기리시탄을 버리라는 명을 받고 ‘버리겠다’ 고 대답했지만 사실은 몰래 믿었다든가,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을 기도하여 조선에 출병했을 때 가토 기요마사 加藤淸正 를 배신하고 화평 공작을 했다든가 하는 이중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친숙해지지 않는 분위기

 

Q.  그리스도교라고 하면 좌우간 서양풍의 (버터 냄새 나는) 종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교회에 서너 번 가 본 적이 있는데, 일본인이라면 부끄러워해야 할 언너를 사용하거나 행동을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말씀대로 그리스도교가 일본인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첫째 일본의 그리스도 관계자들이 일본인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나도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노동 문제를 일본의 그리스도교 학자가 알기 쉽게 소화해서 쓴 것은 없습니다. 그런 에세이도 없습니다. 어떤 일본인 그리스도교 신자가 회사에 입사했는데 동료들의 “터키탕에 놀러 가자.” 는 권유에 “나는 그리스도교 신자니까 못 가. 이해해 줘.” 라고 대답했다고 합시다. 동료들에게 “그래, 너 대단하구나.” 라는 말은 듣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녀석은 사교성이 부족한 놈이다.”는 말을 듣기 십상입니다. 회사에서 단체로 여행을 갔을 때 “누드쇼를 보러 가자.” 는 권유에 “나는 종교적인 문제가 있어서 좀 그래 (갈 수 없어).” 하는 식으로 대답하면 다른 동료들이 싫어할 것은 틀림없습니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이러한 때 일본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하여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는 것을 같이 생각하게끔 하는 그리스도교 서적이 전혀 없습니다. 결국 일본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타협하면서…

내가 긴자의 술집에서 화장실에 들렀을 때 어떤 신사가 들어와 내 얼굴을 보더니 “엔도 씨, 사실은 나도 그리스도교 신자입니다.” 라고 슬쩍 말한 적이 있습니다. 즉 자신도 그리스도교 신자인데 이런 곳에서 술을 마시고 나쁜 짓을 하고 있음을 은근히 고백하는 투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술 좀 마시기로서니 상관없지 않습니까?”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자의 할 일이므로 지나치게 점잔을 빼는 것 보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두 가지 정도 해서 호스티스가 즐거워하면 좋기 않겠느냐고요. 일본의 그리스도교 신자들 중에 이 사람처럼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것을 가장 강하게 느꼈던 것이 앞에서도 말했듯이 전쟁 때였습니다. 일본 사회에서 생활하는 그리스도교 신자의 문제에는 아직 미해결인 것이 많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일본 교회에서  내가 섭섭하게 느끼는 점은 전쟁 중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고뇌하던 청년들의 피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하여 일본 교회가 아무런 대답도 해 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교회의 그 자세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교회는 생각해야 한다

 

면목 없게도 나는 일본 가톨릭교회의 조직이라든가 계급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습니다. 교회의 계급(주교, 대주교의 존재) 따위는 일본이나 일본인의 마음속에서는 ‘관심 없음’ 입니다. 일본 교회의 조직이나 고위 성직자들이 일본인의 고민이나 문제점과 대결하는 것을 피하고 있는 한, 교회는 일본인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좁은 일본 땅에 이만큼 인구가 넘쳐 나고, 작은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이를 자구 낳게 되면 월급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고 자녀 교육도 시킬 수 없습니다. 이럴 때는 일본인의 문제를 열심히 생각해서 산아 제한을 당당하게 발표하는 것이 교회의 할 일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아멘’ (그렇다)이라고 하는 말조차 일본인에게는 낯설게 비춰집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리스도교를 ‘아멘, 소멘(서면), 냉소멘’ 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교를 아직도 낯설게 생각하는 일본 사회에서 어떻게 일본인들에게 그리스도교를 흡수시킬까 생각해 보는 것이 일본 교회의 당면 문제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서양에서 배워 온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의 신학 이론만을 줄기차게 전달하는 성직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직자 중에는 물론 존경할 만한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같이 유학을 했던 이노우에 신부 같은 사람이 그렇습니다. 신주쿠에서 술집을 열고 있는 유명한 네란 신부도 내가 존경하는 신부입니다. 또한 나는 불교와 그리스도교와의 관계를 공부하고 있는 신부들도 존경하고 있습니다. 제노 수사나 콜베 신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음… 사실 고위 성직자보다는 열심히 병자들을 간병해 온 수녀라든가 제노 수사 쪽이 그리스도교 교회나 일본인을 위해서나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인이 갖고 있는 그리스도교 이미지

 

Q.  일본인의 감각으로 그리스도교를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유럽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일본인에게 강요해도 일본인은 좀처럼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 들어온 그리스도교는 미국 개신교입니다. 또한 많은 일본인이 러시아 문학을 통해서 그리스도교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톨스토이의 금욕주의(육욕 肉慾 은 죄라는 사고방식)로 그리스도교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많은 일본인이 그리스도교는 굉장히 좁은 문을 가진 종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그리스도교가 심판의 종교, 항상 죄를 강조하는 종교, 엄격하고 어두운 종교라는 이미지가 겹쳐져 아무래도 성가시고 음울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성가심을 극복하고 믿게 된 사람은 대단한 괴짜거나 훌륭한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가난한 사람들 속에 섞여 일을 하거나 자선 병원을 짓는 등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이미지가 되어 버렸고, 그것이 언제부터인가 일본인의 머릿속에 고정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엄격한 면과 관대한 면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양친의 종교’라는 말을 곧잘 합니다. 즉 그리스도교는 무서운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의 면모 양쪽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불행히도 우치무라 간조 內村鑑三 라는 사람이 엄격한 아버지라는 이미지의 그리스도교를 일본의 지식층에 소개했습니다. 그래서 마사무네 하쿠초 正宗白鳥 등도 한때는 그리스도교에서 도망간 적이 있었습니다. 하쿠초는 정토진종 淨土眞宗 의 부드러움이 그리스도교보다 자신과 맞는다고 썼습니다.

일본에서 엄격한 아버지가 심판한다는 이미지의 그리스도교는 뿌리내릴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자상한 어머니라는 이미지의 그리스도교가 오히려 일본인의 감각에 맞습니다. 그렇다면 자상한 어머니의 이미지가 그리스도교에 없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신약 성경 곳곳에 자상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지닌 하느님이 등장합니다.

한편 무서운 아버지의 이미지를 지닌 하느님은 구약 성경에 많이 등장합니다. 구약 성경은 그리스도교의 성경이라기보다는 유다교 성경입니다. 이것을 뒤집어 자상한 어머니의 종교로 바꾼 것이 예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는 엄격한 아버지 하느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성전이라는 신성한 장소에서 물건을 파는 것은 안 된다고 하며 장사꾼을 엄하게 꾸짖는 장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에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모습이 훨씬 더 많이 쓰여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에는 이렇듯 양면이 있지만, 일본에 전해졌을 때는 엄격한 면만 강조되었던 것입니다. 왜 그랬는가 하면, 개신교 중에는 구원받기 위해 하느님의 은총과 본인의 엄청난 노력이 요구되는 일파가 있습니다. 이 개신교는 금욕을 엄격하게 강요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교가 일본에 들어와 그리스도교 전체를 좁은 문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여기에 톨스토이가 있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일본인에게 애독되었으므로…

그리스도교는 여러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음에도 시대에 따라 한 면만 강조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사회 혁명이 왕성하고 빈번하게 요구되는 시대에는 성경에서 사회 혁명가로서의 예수님을 찾아내고자 합니다. 그리스도는 부자, 풍요로운 계급과는 절대로 사귀지 않는다는 점이 강조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가 열심히 선교한 갈릴래아 호수가 있는데, 거기에는 티베리아스 라는 화려한 도시가 있습니다. 헤로데 대왕이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아부하여 그 이름을 따서 만든 도시입니다. 예수님은 그곳에 간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대신에 코라진 이나 카프르나움 이라는 가난한 어부들이 사는 곳에 자주 가서 선교를 했습니다. 또한 한센병(나병) 환자기 있는 장소에도 예수님은 갔습니다. 당시 유다 사회는 버림받은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유다교의 내부 혁명을 목표로 이 버려진 사람들의 복권을 위해 노력했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이것을 더욱 발전시켜 예수님은 학대 받는 사람들을 이끌어 혁명을 일으키려 했는데, 그것도 정신적 혁명이 아닌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한 무력 투쟁을 생각했으며, 반란을 일으키려다 살해당하고 말았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현대의 문제점들을 계급과  정치에 중점을 두고, 성경을 그것과 결부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처럼 시대 또는 사람들에 의해 성경을 읽는 방법이 달라져 버립니다. 또한 나라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거울처럼 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어떻게 읽는지 그 방식을 살펴보는 것에 따라 그 시대 유럽 정신을 알 수 있습니다. 읽는 방법에 그 시대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역사를 조사한다는 것은 동시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유럽 정신사를 조사한다는 의미도 욉니다. 따라서 나는 일본인을 위해서 성경에서 어머니 하느님의 부분을 강조해도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늘어나지 않는 일본의 그리스도교 신자

 

Q.  일본의 그리스도교 신자 수가 매우 적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1549년 일본에 그리스도교가 도입된 이래 400년 이상이 지났습니다. 선교도 매우 적극적으로 실시되어 메이지 시대부터는 종교의 자유가 허가되었고, 문학가나 사회 혁명가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그리스도교 신자가 그다지 늘어나지 않는 이유는 일본인과 그리스도교는 무엇인가 잘 맞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도 그러게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가 일본에 도입된 지 400년 이상이나 되었지만, 진정으로 그리스도교를 선교해도 좋았던 시기는 전국 시대의 극히 짧았던 시기뿐이었지요. 히데요시 시대에 와서는 이미 선교는 불가능했습니다. 그 후 선교는 메이지 (明治, 1868-1912) 에서 소화(昭和, 1926-1989)에 걸친 시대와 전후 戰後 에만 이루어졌습니다. 도쿠가와 시대 300년 동안 선교는 전혀 허가되지 않았으니까, 일본에서의 진짜 선교기간은 그다지 긴 기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외의 기간은 그리스도교를 박해하거나 금지했으므로 선교가 허가된 것은 불과 150년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유럽의 역사를 볼 때 그리스도가 태어나 로마 제국의 종교로 공인되기까지의 기간을 비교해 보면 일본이 훨씬 짧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간적인 문제가 아니라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감성, 사물에 대한 사고방식과 발상법 또는 여러 가지 사상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유럽에서 만들어진 그리스도교와는 어쨌든 친숙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수학이나 화학 등 하나의 보편적 방식 같은 것은 어디든 통용되는 곳이라면 자연스럽게 들어가 그 나라의 문명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종교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흡수되는 것이 아니지요. 그리스도교 이외의 사상들도 일본인의 마음에 스며들어 정착한 사상들은 아마도 메이지 시대 이후에나 있지 않을까요?

일본에 마르크스주의가 뿌리를 내린 듯 보이지만, 지금 상태라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멀리하고 싶은 사상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전쟁 후 한때 유행했던 실존주의 등도 지금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중국이나 한국을 거쳐 일본에 들어 온 불교는 다르지만, 유럽의 것으로 일본에 정착한 것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 일본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어찌 그리스도교뿐이겠습니까?

그리스도교는 외국에서 들어온 다른 종교보다 훨씬 서양적 사고의 에센스가 응축 凝縮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그것은 하느님이라고 하는, 현대에 보면 고리타분한 것이기 때문에 근대 사상들보다 더욱 일본에 흡수되기 어려운 핸디캡이 있는 듯이 여겨집니다. 더욱이 외국인의 생각 그대로 그리스도교를 일본에 선교했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이 극히 적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일본인에게는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이 있습니다. 우선 익숙한 일본 옷이 아닙니다. 어쩐지 입기 거북한 양복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에 대하여 난생 처음 먹어 본 양식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볼 필요가 있는 동방 교회

 

일본에 도입된 그리스도교는 아리스토텔레스 에 의한 유럽의 사고방식 속에서 자라난 그리스도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중에서도 비유럽적 사고인 것, 플라톤 적인 것과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동양적 사고 속에 만들어진 동방 교회 東方敎會 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그리스도교의 본류에서는 도외시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중에는 그노시스 (Gnosis, 초대 교회 시대의 일파)나 그리스정교회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최근에 들어와 동방 교회의 사고방식을 다시 보고자 하는 움직임이 유럽에서도 점차 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교라는 것은 유럽에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본인들이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동방 교회라는 우리 감각에 그런대로 맞는 그리스도교가 별도의 커다란 세력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일본에도 일본 땅에 맞는 그리스도교가 있어도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로마 가톨릭교회만이 진정한 그리스도교이고, 그 외의 그리스도교 사고방식은 이단이라 하였습니다. 지금 일본인은 로마 가톨릭교회와 루터 등의 개신교 교회만을 그리스도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일본에 들어오지 않은 많은 그리스도교가 동방 교회 중에 있습니다. 이러한 사물에 대한 사고방식의 차이는 각 풍토와 사고의 차이에 의해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적인 사고로 그리스도교를 맛본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습니까? 근본 원칙은 같지만 일본인의 감각에 맞는 그리스도교라는 것이 있어도 무방한 까닭입니다. 일본인의 감각에 맞는 그리스도교가 만들어진다면 그리스도교 신자가 될 일본인이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 나는 일본의 가톨릭교회가 지금의 선교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예를 들면 길을 걷고 있는데 ‘고뇌하는 자여, 오라!’ 따위의 간판을 본다면 마음속에 고뇌가 있다 한들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겠습니까? 또한 교회에 갔을 때 ‘자, 그러면 다나카 다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같은 말을 여자 같은 목소리로 듣는다면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겠지요. 따라서 이러한 것들을 좀 더 일본인의 감각에 맞게끔 미적인 형태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그리스도교라는 것도 꽤 괜찮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날지도 모릅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리스도 교회는 이런 것들을 좀처럼 시행하지 않습니다. 믿고자 하는 사람이 눈앞에까지 왔는데도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것들 때문에 멀리 도망가게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종교 속 정치

 

Q.  전에 베르메르슈 신부 사건이 있었지요. 일본인 승무원의 살해 용의자로 벨기에 신부가 의심을 받았습니다. 혐의가 짙었는데 가톨릭교회는 그 신부를 일본에서 외국으로 빼돌렸습니다. 그로 인해 비난이 많았는데, 그 사건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정말 난처하고, 대답하기 참 곤란하네요. 하지만 나는 가톨릭 신자여서 베르메르슈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베르메르슈 신부가 정말로 죄가 없다면 당연히 일본에 머물러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면 좋았을 것을… 당시 그가 속해 있던 수도회의 외국인 선교사나 일본의 교회 간계자가 그를 벨기에로 도망가게 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그리스도교를 신용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의 가톨릭 신자들이 합심한 듯 놓아 주었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서 그 일은 일부 일본 가톨릭교회의 대응 방식이었습니다.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그 사건에 대한 대응법이 가톨릭에 대하여 굉장한 마이너스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일은 전후 미군 점령 시대에 있었던 사건이었고, 그러한 조치가 일본인 가톨릭 신자들의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혔던 것은 사실입니다.

나 개인적으로도 신부가 결백하다면 일본의 조사에 따르면 된다고 도쿄 신문에 썼기 때문에 가톨릭교회의 어떤 분에게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와 같은 생각을 가졌던 가톨릭 신자는 상당히 많았습니다. 죄를 범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죄가 없다면 당연히 일본에 머물러 경찰 조사에 응했어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신부가 젊은 여성을 희롱한 뒤 죽였다는 사실이 일본인들에게 알려지면 가톨릭교회가 큰 오해를 받게 된다는 걱정에 일부 선교사들이 베르메르슈 신부를 도망치게 했겠지만, 나는 그런 생각에는 반대합니다.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교 신자는 같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자가 다른 것처럼… 공산주의자가 잘못을 범했다고 해서 반드시 공산주의의 본질이 잘못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교 신자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침략 전쟁 같은 짓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되지는 않습니다. 사실 16~17세기에는 그리스도교 국가들이 식민지 정책으로 그리스도교를 선교한다 어쩐다 하면서 아메리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점령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일은 분명히 그리스도교 신자의 잘못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그리스도의 사랑의 가르침은 아닙니다. 일본의 기리시탄 시대에도 일부 선교사들이 일본 점령 계획이라는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요즘 발혀졌습니다. 그러한 자료 문서가 게이오 대학의 다카세 高瀨 선생에 의해 발표되었습니다. 또한 그러한 사실을 밝히는 일은 좋지 않다고 하는 교회 관계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자일지라도 인간이기 때문에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잘못도 범하겠지요. 그렇긴 해도 그 잘못을 후회하고 다시 일어섰다가 넘어지고 또 다시 일어나곤 했던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신자의 역사입니다. 최종적으로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행하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선교를 위하여 일본에 온 베르메르슈 신부도 결백했다면 뼈를 묻을 결심으로 일본에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했어야 했습니다. 살인을 했다면 인간이니까 그러한 일도 있을 수 있다 하고 심판을 받아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쨌든 일본의 가톨릭 신자들도 그 사건 때문에 일부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실망하고 환멸을 느낀 것은 확실합니다. 성경에 있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라는 말에 완전히 위배되었던 것입니다. 즉 황제는 일본이라는 나라이므로 일본의 심판에 따르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하는 식으로 행했다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베르메르슈 사건은 사건 그 자체보다도 전후 일부 가톨릭교회 관계자들이 그 사건에 대한 조처를 잘못 처리한 것이 과오였습니다. 그 때문에 일본인들이 그리스도교와 가톨릭에 대하여 매우 나쁜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정말 유감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소설 <침묵>에서 내가 일본 가톨릭 교회로부터 가장 비난과 공격을 받은 점은, 소설 속에 신부의 위엄을 떨어뜨리는 장면을 넣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조직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어떤 조직에서도 조직을 지키기 위해서 이러한 잘못은 있겠지요. 그러나 어쩐지 그리스도교에서만은 이러한 잘못이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이미지를 일본인은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5  나는 왜 불교보다도 그리스도교에 끌리는가 – 하나

 

 

 

집착을 버릴 것인가 넘을 것인가

 

Q.  왜 불교가 아닌 그리스도교를 계속 믿고 있습니까?

 

우선 나는 불교에 대하여 전혀 모른다는 것이 그 첫째 이유겠지요. 그리고 앞에서 몇 번 말했듯이 내 가족이 그리스도교와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의지할 것이 없다,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서로 의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인 공 空 이라는 사고 방식이겠지요. 의지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버리고 번뇌나 집착, 욕망 – 오온악성 五蘊惡性 이라고 하는 모든 집착을 버리고 부처님께 의지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현세의 일에 호기심이 강하고 무명 無明 의 세계에 대해서조차 호기심을 버릴 수 없습니다. 나는 인간이 좋습니다. 집착을 모두 버리지 않으면 부처님이 구원해 주지 않는다는 생각은 나처럼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게다가 나는 집착을 버리고자 하면 할수록 더 그것을 의식하는 성격입니다. 물론 불교에도 무명 안에 부처가 있다는 생각도 있지만, 근본 원칙은 집착을 버리라는 것이고, 그것은 내게 무리입니다.

그리스도교의 경우에는 집착을 전부 버리라는 사고방식이 아니라, 네게 지금 마시고 있는 물은 대용품이라는 사고가 훨씬 강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요한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제자와 함께 갔는데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제자가 장을 보러 가고, 예수님은 우물 옆에서 쉬고 있다가 물을 길러 온 여자에게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부탁하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를 향하여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욕망이 전부 환영이므로 버리라고 가르치지만, 그리스도교에서는 그 욕망은 여자가 사랑을 구하든 돈을 구하든 진짜의 대용품일 뿐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의 대용품인가 하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을 구하는 마음의 대용품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카나의 기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래아의 카나 마을에서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을 때의 일입니다. 술이 부족해지자 어머니인 마리아가 와서 술이 부족하니까 어떻게 좀 해 달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물을 술로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상징적인 이야기입니다. 즉 내가 지금 열심히 집착하여 마시고 있는 것이 진짜 술이 아니라 물일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느 때인가 예수님이 술로 바꾸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도 집착하고 있는 것을 통하여 구원이 온다는 사고방식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불교에서도 안고 있던 여자가 갑자기 부처가 되었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있듯이, 불성은 번뇌 가운데서 작용한다는 사고가 불교에도 있습니다. ‘일체 중생의 모든 번뇌 속에 여래 如來 의 지 智, 눈 眼, 몸 身 이 있는 것으로 결가부좌하여 엄연하게 부동하도록’ 이라고 여래장경 如來藏經 에 쓰여 있으니까요. 그러나 집착을 버리라는 것이 불교의 근본 원칙이지요.

집착을 모두 버리는 것이 종교라고 한다면 나처럼 종교를 추구하여 소설을 쓰는 인간은 소설을 쓸 수 없게 됩니다. 그리스도교 소설가로서 20세기의 작가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간이 집착하고 있는 것에서 신을 믿는 마음으로 바뀌는 변화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작가에게는 물을 쓰는데 어느새 술이 되어 간다는 식의 글쓰기 수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모리악  F. Mauriac이 그렇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집착하고 있는 것, 그것이 거꾸로 네 구원의 씨앗이라는 그리스도교의 사고방식입니다. 집착하는 것, 즉 재물, 돈, 권력, 여자 등을 통하여 인간의 구원이 오는 것입니다.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매우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불교는 어머니에게 집착하는 것은 번뇌하는 것, 그러므로 버리라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모성에 집착하는 일이 어느새 마리아를 향한 동경이나 동반자인 그리스도에 대한 갈망으로 변해 간다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리악이 잘 설명했듯이, 애욕에는 만족이 없습니다. ‘여자를 안아 보면 잘 알겠지만 아무리 여자와 애욕에 빠지더라도 뭔가 부족하지 않은가? 최종적으로 충만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은가? 이것은 여자를 통하여 인간은 더욱 무한한 것을 구한다.’ 라고 모리악은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자에게 반했을 때는 애욕의 늪에 빠져 여자를 위해서 재산이고 뭐고 필요 없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자기가 감기 걸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만나고 싶고 보고 싶은 마음에 자동차로 달려가는 일이 있지 않은가? 이럴 때는 쉽게 자기희생이 가능하지 않은가? 자기를 버릴 수 있지 않은가? 이것은 신앙의 심리와 매우 닮아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하고 모리악은 말합니다.

모리악은 여자에 대한 애욕의 심리를 쓰면서 하느님을 찾는 실리를 이중형 二重型 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모리악의 수법이고, 또한 다른 그리스도교 작가의 수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외국의 그리스도교 소설에 보석 상자 같은 것이 나오면 나는 ‘이것이 곧 하느님을 구하는 마음으로 변하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역시 변합니다. 그 사고방식은 나와 같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불가능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매우 감사한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집착까지 버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는 어머니를 향한 집착이 다른 세상으로 이끌어 준다고 하는 사고방식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므로 즉 빼는 것, 마이너스는 더하는 것, 플러스와 같다는 사고 방식입니다.

그리스도는 나쁜 사람 안에도 있고 좋은 사람 안에도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타인 속의 그리스도를 언제나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 매우 편합니다.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싶은 산 속으로 숨어 버린다는 것이 도저히 안 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오온악성 속에서 살고 있으므로 악성 속에서 나쁜 것을 전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온악성이 곧 구원인 그리스도교가 내게는 맞는 것입니다. 불교의 경우에 무엇인가를 버린다면 그것에 대하여 그다지 관심이 없어지게 되므로, 인간의 추잡한 구석을 추구하는 일은 없어져 버리겠지요. 그리스도교의 경우, 특히 가톨릭 교회의 경우에는 무엇인가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그 안에 구원이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추잡스러운 것이라도 애욕이라도 무엇이든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 작가의 경우에는 추잡스러운 것은 버리지 않으면 안 되니까 흥미가 없겠지요. 우리에게 있어서는 애욕 속에 구원의 원형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탐색하고 싶은 기분은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중에서도 청교도 Puritan 는 애욕과 같은 욕망은 버리는 편입니다. 따라서 청교도는 탐색하고 싶은 욕망이 없겠지요. 일반적으로 개신교 작가는 가톨릭 작가에 비하여 그 수가 적습니다. 대략적으로 말해서, 비교적 가톨릭 작가가 많은 것은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 것입니다. 청교도주의는 욕망을 버리라고 하지만, 가톨릭은 똥 속에도 된장이 있다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소설가로서 이러한 점이 불교보다는 그리스도교 족이 고마운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중에서도 개신교 보다는 가톨릭 쪽이 또한 고마운 것입니다.

 

 

 

 

예수님과 석가모니의 최후

 

또한 나는 다른 점에서도 그리스도교에 마음이 끌립니다. 하나는 예수님과 석가모니의 죽음 방식의 차이입니다. 아시다시피 석가모니는 많은 수행을 하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의 길을 가르치고, 후에 나이가 많이 들어 바라나시 에서 그리 멀지 않은 쿠시나가라 라는 곳에서 열반했습니다. 그 죽음은 적멸 寂滅 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진실로 조용한 깨달음을 얻은 분에게 어울리는 죽음 방식입니다. 아마도 석가모니가 죽은 후 그의 소멸을 한때는 슬퍼했을지라도, 그 죽음에서 비극을 발견한 제자나 신자는 없지 않았을까 하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에 비하여 성경에 쓰여 있는 내용에 근거하면 예수님의 죽음은 석가모니의 죽음과는 전혀 다릅니다. 정치범으로서 처형되는 무참한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때 죽음이 지닌 가장 끔찍한 것과 대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나는 죽을 때 석가모니처럼 깨달음을 얻고 조용히 죽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자신이 전혀 없습니다. 나는 지금도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서 한밤중에 잠을 깨고는 다시 잠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약한 인간에게 석가모니의 죽음은 이상적이지만 아마도 그 이상은 실현 불가능하겠지요.

어떻게 하면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은 누구라도 생각하는 일이겠지요. 가마쿠라 시대(1185-1333년)에 정토교 淨土敎 사상을 선양했던 겐신 源信 의 <왕생요집 往生要集> 등을 읽어 보아도 극적인 고통스러운 죽음에 대한 것은 없습니다. 극락의 아름다움 상황을 떠올리고, 그곳에 갈 수 있는 것을 즐거워하며 죽어 간다는 것이 <왕생요집>의 가르침입니다. 석가모니의 죽음이 깨달음을 얻는 죽음 방식이라면 <왕생요집>의 죽음에 대한 권장은 아름다운 것으로 죽음의 추한 모습, 무참한 모습, 무서운 모습 등을 속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결국은 나도 죽겠지만, 그때 깨달음을 얻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죽음에 대한 공포 끝에 극락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둔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역시 그때에도 예수님의 죽음을 생각하게 될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이만큼 죽음의 고통을 받았고, 이만큼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것은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생각하겠지요. 그리고 예수님의 모습에 스스로를 겹쳐 보겠지요.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었으므로 내 마음을 그분의 마음에 겹쳐 보는 것은 죽음을 맞는 내게 하나의 의지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내가 불교 신자라면 석가모니와 같이 죽을 수도 없을 것이고, <왕생요집>에서처럼 자신을 속이는 일도 하지 못하고 죽어 갈지 모릅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리스도교는 ‘죽음에서 눈길을 돌리지 마라! 죽음을 직시하라!’ 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요즘 통과 의례 通過儀禮 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립니다. 아프리카나 어떤 지역에서는 소년이 한 사람의 성인 남자가 될 때 일련의 시련을 치르는 규칙이 있습니다. 어느 지역에서는 사자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또 어떤 곳에서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 작은 집에 갇혀 홀로 숲의 영 靈 에 대한 공포와 고통을 견디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공포와 고통의 의례를 통과하여 소년은 어른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나는 죽음이라는 것을 이 세계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들어가는 통과 의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통과의례이므로 그것은 시련이며 공포가 있고 고통이 뒤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통과 의례로 여기지 않습니다. 죽음에 대해서 지나치게 깔끔한 말투를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내가 불교에 근본적으로 몸을 맡길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사랑과 자비의 문제입니다. 흔히 불교는 자비, 그리스도교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자기 탐구를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불교의 자비는 본래 깨달은 사람이 깨달음을 찾지 않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구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그리스도교의 사랑은 이것과는 다릅니다. 사랑이란 우선 타인을 위해서 자신의 이기주의를 버리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미움을 전제로 했을 때 성립한다. 그러나 자비라는 것은 미움을 전혀 전제로 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 대하여 깨달음을 얻게 하는 배려를 가지며 자상함을 갖는 것이 자비이다.’ 이와 같이 자비와 사랑을 구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을 꼭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기주의의 하나인 미움이 처음에 있었고, 거기서 그것을 넘어서 사랑이 생겨난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를 당한 유다인 여행자를 구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마리아인과 유다인 사이에 서로 미움의 감정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잘 이해할 수 없겠지요.

당시 유다에서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같은 팔레스타인에 살면서도 유다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 증오의 감정과 대립이 있었습니다. 그 증오의 감정을 갖고 있던 유다인에게 사마리아인이 약을 주고 상처를 돌봐 주었다고 하는 것이 예수님이 말한 ‘사랑’ 이야기라고 한다면, 확실히 이기주의의 표출인 미움을 전제로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우리는 상대에 관심이 있으니까 미워하는 것이 아닐까요? 관심이 없는 사람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자비의 경우에 미움이 없다고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말은 바로 무관심입니다. 불교에는 무관심 無關心 과 자비심 慈悲心 이라는 대립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인간의 고통에 무관심한 사람은 아마도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무관심으로 일관할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죽음이나 고통에 아무렇지 않게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은 병원에 가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일생을 통하여 사람들의 고통에 무감동할지도 모릅니다. 무관심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하여 흥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집착이 없기 때문입니다. 집착이 있음으로 해서 미워하는 것이 아닐까요? 배신한 애인을 미워하는 감정을 떠올려 보십시오. 집착이 있음으로 해서 미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욕망을 버리라고 하는 불교에서는 그렇게 하면 무관심에 빠지게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 무관심을 초월한 자비라고 하는 것, 그것이 아마도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의 의미가 아닐까요? 인도에는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엄격한 계급 제도가 있어서 자기보다 아래 계급의 사람에 대한 무관심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자비를 설교한 것은 아닐까요? 너무나도 많은 비참함이 있기 때문에, 그 비참함에 무관심하게 되어 버린 인간에게 관심을 갖는 일을 자비라고 부른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무관심이나 미움 가운데 어느 쪽이든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인간으로서 아직은 미움 쪽에 끌립니다. 미움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관심을 의미하고 사랑으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미워하던 사람이 깊은 신앙심을 갖게 되는 일은 흔히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무관심한 사람은 언제까지나 무관심합니다. 일본의 무신론자들 대부분이 하느님을 미워해서 무신론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 대부분은 하느님께 무관심한 무신론자들입니다. 어느 쪽이든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하느님을 미워하는 무신론자가 되겠습니다. 하느님을 미워하는 무신론자는 그 미움에 의해 사는 충실감을 지니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비교했을 때 나는 역시 아직은 그리스도교에 마음이 끌립니다. 물론 지금의 이유는 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혹시 불교 신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냐! 그렇지 않아. 엔도는 불교를 오해하고 있어!’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쨌든 불교를 잘 모르니까 부디 가르침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6  나는 왜 불교보다도 그리스도교에 끌리는가 –

 

 

 

죄에 대한 사고방식의 차이

 

역시 누가 뭘 해도 나의 경우는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자랐고, 더욱이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사람이 그리스도교 신자였다는 사실이 오늘까지 나를 이렇듯 좀처럼 그리스도교에서 멀어지지 않게 한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와 형제와 그밖에 나에게 정신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 사람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작용하고 계셨다는 강한 기분이 내 마음에는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존재가 아닌 작용이다’는 기분이 강하게 내 마음속에는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등 뒤에 하느님께서 계셔서 나의 어머니나 형제 또는 아는 사람 등을 통하여 내 등을 밀어 주었다는 느낌을 언제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한다 해도 ‘그것은 너 개인의 문제이지 특별히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자라지도 않았고, 그리스도교에 인연이 없는 일본인인 내게는 특별히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요.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교에 인연이 없는 사람들과 그리스도교의 관계를 여기서 조금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첫째 그리스도교는 일본인의 마음과 모순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생각하게 된 동기는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나 자신이 이 문제로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인 나의 육체에 그리스도교라는 양복이 입혀졌을 때의 편안하지 못함, 그 거북한 느낌에 오랜 기간 괴로워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내 소설을 한마디로 말하면, 이 양복을 일본인인 내 육체에 맞는 일본 옷으로 고쳐 보고자 노력한 흔적일 뿐입니다.

이러한 점은 내 소설의 출발점이 <백색인>이나 <황색인>과 같은 제목의 작품에서 시작되는 것에서도 추측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리스도교라는 양복이 일본인인 내 몸에 맞지 않는다고 오랫동안 생각하고 고민해 왔는가 하면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내 개인적인 이유는 생략하고(독자와 관계도 없고 흥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일본인의 일반적인 문제로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나는 오랫동안 일본인에게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죄의식’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하여 고민했습니다. 이 문제는 <바다와 독약>이라는 소설을 읽은 분들은 분명하게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기 소설을 해설하는 것은 좀 촌스럽게 생각되므로 피하겠지만, 내 생각을 짧게나마 이야기하겠습니다.

일본인의 도덕관념에서 ‘죄'(罪, sin)의 이미지는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죄가 아니고 더러움이라든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고통 苦痛 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죄는 간단히 말하면 자신이 하느님이 된다든가 하느님에 의한 구원에 절망하는 일입니다. 두 가지 다 자신은 하느님에 의해 구원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죄입니다. 물론 사회적 도덕의 위반, 즉 훔치면 안 된다든가 다른 사람의 아내를 넘보면 안 된다든가 하는 것도 죄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종교적인 윤리와 사회적은 도덕은 다릅니다. 사회적 도덕 같은 것은 시대에 따라 변하게 마련입니다. 알기 쉽게 말하면 평화 시에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지만, 전시에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잘한 일로 여기지 않습니까? 일본에서는 일부일처제를 취하고 있지만, 어느 시대의 중국과 아랍에서는 일부다처제가 전혀 죄로 간주되지 않았습니다. 사회적 도덕이라는 것은 시대와 국가, 집단에 의해서 정해진 사회적 질서를 지키기 위한 약속이며, 이것은 종교적 윤리가 아닙니다.

종교적 윤리는 사회적 도덕을 넘어선 인간과 초월자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초월자로부터 오는 구원에 대하여 인간이 완전히 절망해 버리는 것, 그것을 나는 종교적인 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도덕이 아닌 종교적 윤리가 여기에서 질문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고대 일본인의 ‘죄’는 더러움이었습니다. 질병 또한 ‘죄’ 였습니다. 질병은 신체를 더럽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죄의 반대인 선 善 은 더러움의 반대, 즉 청정 淸淨 이었습니다. 이 청정이 후에는 결백 潔白 이라는 말로 변합니다. 죄는 더러움이며 선은 청정이라는 것이 일본인의 선악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여기에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윤리와 일본인의 죄악감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게 죄는 사람을 죽이거나 물건을 훔치거나 하는 일을 말합니다. 이것은 사회적 도덕을 위반하고 있다는 의미가 중요한 부분을 차이하고 있으며, 물건을 훔치는 일이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고려될 일은 거의 없습니다.

선, 곧 청정한 것이란 예를 들어 신도 神道 에서 목욕재계를 한다거나 신사 神社 또는 신성한 장소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서양의 교회는 사람들의 구두로 더럽혀지고 비둘기 똥으로 더럽혀져 있습니다. 즉 그곳에 인간 냄새가 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인정합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이세진구 伊勢神宮 나 이즈모타이샤 出雲大社(일본 신도의 대표적 신사 – 편집자 주) 모두 지극히 청정하며, 무엇보다 청정한 곳을 신성한 장소로 생각합니다. 선한 것은 청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구원에 대한 인간의 절망 같은 관념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불교의 신성하다거나 거룩하다든가 하는 것은 소위 그리스도교의 죄에서 해방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더러움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일본 불교의 신불습합(神佛習合 일본 고유 종교인 신도와 불교의 융합)의 관념 속에도 침투해 있습니다.

불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일본의 불교가 구하는 것은 자기 정체성 identify, 즉 자신과 자신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도겐(道元, 선종의 일파인 일본 조동종을 세운 승려 – 편집자 주)의 말에 “불교를 안다는 것은 자기를 아는 것이고 자기를 아는 것은 자기를 버리는 것이다.” 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번뇌, 욕망, 인생에 대한 집착에서의 의식의 모든 것을 버리고 공백이 되는 것, 즉 청정 그 자체가 되는 것이겠지요. 좌선을 한다는 것은 이처럼 모든 집착을 버린다는 뜻입니다. 집착을 버리고 명경지수 明鏡止水, 청정하고 파도 하나 일지 않는 무심의 상태에 이르는 것,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 얽매인다는 것은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 되므로, 그 더러움을 일체 없애고 마음이 청정하게 되는 것, 바로 그것이 선 禪 의 깨달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자시 탐구의 불교에서 조라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죄가 아니고, 개인이 살아가는 가운데 겪는 고 苦 를 죄로 삼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이미 앞에서도 말한 바 있습니다.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거나 죽음을 무서워하거나 병을 두려워하거나 어떤 것에 집착하고 번뇌하는 등의 상태를 무명 無明의 세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무명의 ‘명’ 明 이란 어떠한 것일까요? ‘명’은 “밝다”는 뜻입니다. 그 반대는 “어둡다”는 말입니다. 지혜가 없으니까 어둡다, 깨달음이 없으니까 어둡다, 그 깨달음이 없는 상태를 ‘고’라 하고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란쇼닌(일본 정토진종의 창시자)은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죄업 罪業 이 깊다고 말했는데, 여기서 죄업이란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다른 것과의 관계에서의 죄가 아니라 어떻게 해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 것을 ‘죄업이 깊다’고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깨달음’ 이라는 말을 외국어로 번역한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깨달음이 “눈을 뜸” 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어로는 ‘eveil’라고 하는데, 잠에서 깨어남을 뜻합니다. 이는 곧 집착과 번뇌라는 잠에서 깨어난다는 것이고, 이를 구원이라는 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종교는 전통 신앙인 신도나 불교처럼 그 근저에는 자신을 청정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죄란 이 청정을 흩뜨리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그리스도교에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리스도교의 원죄와 구원의 의미와 생각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일본인의 종교관에서는 자신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종교의 목적입니다. 자신을 청정히 함으로써 번뇌에서 벗어난다, 괴로움에서 해방된다 하는 것을 일본에서는 구원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속죄 贖罪, 즉 죄를 보상한다는 생각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보상한다는 말은, 흔히 거래를 할 때는 상대방에게 손해를 끼쳤으므로 변상하는 것이지만, 종교에서는 하느님의 노여움, 죄의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어떤 대가를 지불하는 것(보속) 입니다. 유다교에서는 속죄하기 위해 자신의 귀중한 재산인 양을 잡아 제사 때 바쳤습니다.

그러나 이 속죄한다는 생각이 일본인의 정신사 精神史 속에는 별로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보속하는 대신에 진정시킨다는 생각이 고대로부터 있지 않았나 하는 느낌입니다.

<만요슈>(萬葉集, 일본에서 가장 오래 된 시가집)에 방카(挽歌,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나 가사 즉 만가) 라는 것이 있는데, 방황하는 영혼을 정착시키는 노래, 혼을 진정시키기 위한 노래라고 합니다.

일본의 고대 신들은 때때로 앙화 殃禍 를 입히기도 했습니다. 불교가 일본에 들어오기 전에는 이 앙화에 대해, 살아 있는 것을 바쳐 보속하지 않고 노여움을 진정시키기 위한 수단을 취하거나 앙화가 자신의 경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샤머니즘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으로, 화를 부르는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을 입구의 무엇인가를 나뭇가지나 풀로 묶어 둡니다. 점차 그것이 금 줄 등으로 변합니다. 이는 곧 거기서부터 나쁜 것을 마을 안으로 들이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자기 마음속에 죄악감이 있어 그것을 보속하겠다는 관념은 희박했습니다.

오토타치바나히메 는 남편을 구하기 위하여 물로 들어가는데, 이것은 속죄의 개념보다는 신의 노여움을 진정시킨다는 것에 중점을 둔다는 느낌입니다. 이와 같이 죄를 보속한다는 감각이 별로 없는 일본인에게 그리스도교의 본질인 속죄의 관념은 받아들이기 매우 어렵습니다.

이는 지금까지의 그리스도교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인간의 죄를 하느님께 대신 보속함과 동시에 하느님께서는 아들을 희생하여 당신 자신의 노여움을 가라앉히신다는 이중의 사고로 성립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이 속죄감 贖罪感 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과연 어느 정도 실감하고 있을지 가 내게는 아직까지도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니이나메사이(11월 23일 천황이 햇곡식을 천지의 신에게 바치고 친히 이것을 먹기도 하는 궁중 제사, 지금은 이날을 ‘근로감사의 날’로 지낸다 – 옮긴이 주) 때 신에게 햅쌀을 바치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치는 것은 같으나, 보속하기 위함이 아니라 감사 또는 대접하기 위함입니다.

일본인의 종교심은 ‘나는 무엇 무엇을 하지 않는다.’라는 데에서부터 성립합니다. 그리스도교처럼 ‘해서는 안 된다.’ 위에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이 근본적인 일본인의 죄와 그리스도교의 죄의 커다란 차이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것을 다시 정리해 봅시다. 일본인은 청정하지 않은 것과 존재의 괴로움을 ‘죄’ 罪 나 ‘죄업’ 罪業 이라고 불렀습니다. 두 번째로 산 제물이라는 생각은 있어도, 속죄라는 관념은 일본인에게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일본인에게 종교란 자신과 자신의 관계이지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가 아닙니다. 이러한 점은 예를 들어 타력본원 他力本願 과 같은 그리스도교를 많이 닮은 정토진명의 사상 속에서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아미타불에 의지하여 구원을 얻고자 하는 타력본원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결국 아미타불이 번뇌의 세계에서 자신을 일깨워 준다는, 즉 자기 스스로 깨우치지 못하니까 아미타불이 일깨워 준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아미타불에 의존하여 자신의 존재를 순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자기순화 自己純化 의 욕망은 있지만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자기성화 自己聖化 의 작용은 없습니다.

내 생각에 그리스도교의 구원은 자신의 존재를 순화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서 또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자신을 성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 聖 이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일본인과 서양인이 다르다는 점에서도 말할 수 있겠지요.

일본에서는 ‘성’ 성 을 ‘히지리’ 라고 말합니다. 히지리 란 불 火 을 담당하는 것이며 날짜를 알고 있는 것, 즉 달력 曆 을 알고 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어떤 날에 씨를 뿌리면 좋은지, 고대 사람들에게는 언제 씨를 뿌리고 언제 모내기를 하면 좋은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을 테니까요. 이러한 것을 아는 사람을 ‘히지리’ 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는 행사에 관한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을 ‘히지리’ 라고 했습니다. 즉 안다는 것이 히지리, 성 聖 이고, 성인 聖人 입니다. 안다는 것의 의미가 확대되어 무명의 세계에서 탈출하는 지혜를 알게 된 부처를 성 聖 이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00 성인이라 하는 것은 00을 아는 사람, 즉 깨달은 사람,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성인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성인이란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화 聖化 된 사람입니다. 거룩한 세계까지 높이 이른 사람을 성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나는 일본인이므로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일본인으로서의 육체가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거리감을 갖고 있으며, 모순되는 것을 일상생활 가운데 언제나 느끼고 있었습니다. 관념적으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무의식적인 행동이나 일상적인 행동 속에서 나는 앞에서 예를 든 것과 같은 일본인의 감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나의 고뇌와 고통이 있었던 것입니다.

 

 

 

 

왜 불교 신자가 되지 못할까

 

불교에서는 모든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집착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이 나와 그리스도교의 연결을 끈을 수 없게 했던 것입니다. 나는 먹는 것을 싫어하지 않으며, 왁자지껄하게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합니다. 모든 집착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존재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머니를 향한 집착도 버릴 수 없으니까요. 나는 소설가라서 어머니에 대한 이 집착을 쓰지 않으면 내 소설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죄에 대한 사고는 불교와는 다르다는 말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불교계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으면 좋겠지만…, 어쨌든 불교에서는 죄보다는 인간 쪽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닐까요? 그리스도교가 타인에게 지은 죄 쪽에 중점을 두는 데 비해, 불교는 살기 위해서 겪는 자기 자신의 여러 가지 고 苦에 중점을 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욕망이 있고 번뇌가 있으므로 고 苦가 생긴다.’는 데 중점이 놓여 있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죄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 않다고 느껴집니다. 이에 대해서 ‘불교에서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죄를 생각하고 있다.’ 는 불교 학자의 설명을 몇 번이나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내게는 불교가 ‘인간의 고 苦=죄업 罪業’을 가장 우선시한다는 기분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아뢰야식의 인연이나 업 業이라고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명의 세계를 헤매는 것도 업에 의한 것이고, 전생에서의 인연, 특히 업에 의한 것이다.’ 라고 합니다. ‘과거에 자신이 범한 행위가 번뇌를 낳고 깨달음을 방해하여 미혹한 세계 속에 있게 하니 괴로운 것이다.’ 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컨대 불교에서는 자신만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으며, 그 다음에 자신과 타인의 관계라는 문제를 생각하는 느낌이 듭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죄업이라는 말도, 자신이 타인에게 무엇을 했는가 하는 것도, 그것은 업의 결과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자신의 의식, 즉 ‘엔도’라면 ‘엔도’ 개인의 의식이나 기분 등의 문제는 취급되지 않은 느낌입니다.

신란쇼닌은 ‘네가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은 네 마음이 좋아서(선해서) 죽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의 숙업(宿業, 지난 세상에서 지은 여러 가지 선악의 업)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죽이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도 숙업 쪽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이런 말투는 절대 사용하지 않지요. 이런 점에 있어서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살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노라면 나 자신도 내적으로 외적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업 業을 느낍니다. 어떤 운명을 느낍니다. 내가 전에 행했던 무엇인가가 지금과 같은 결과를 가져왔구나 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업에 의한 인과 因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업과 인과만으로 나의 행위가 모두 정리된다는 것에 어떤 불안을 느낍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힌다면 그것은 나의 행위에 의하여 상처를 받는 것이므로, 이것이 나의 업에 의한 것만도 아니고 현재의 내 의지에 의해서만 그렇게 되었다고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업만의 탓으로 돌리겠다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습니다. 또한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나이가 들면서부터 생각하게 되었고, 상처받은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면 죄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떠올리게 됩니다.

아마도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불교 신자에게 지금까지 힐책을 받아 왔던 것처럼 이후에도 계속 이 점 때문에 힐책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과거의 일본인이라면 업이나 인과라는 것으로 자신의 행위를 생각할 수도 있으며, 삶의 고 苦만으로도 무명의 세계라는 것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근대의 일본인들에게 있어서는 타인이나 세계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죄라는 것을 문제 삼지 않고 고 苦만으로 인간의 행위를 다룬다는 것은 아마도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고苦도 있겠지요. 그러나 거기에 더하여 고를 넘어선 어떤 것, 예를 들면 도스토예프스키 의 <죄와 벌>에서의 라스코리니코프 의 행위나 <악령>에서의 소녀를 자실시키는 스타브로긴 의 행위와 같은 죄를 고에 가산하지 않으면 문학을 비롯한 여러 가지 것을 거쳐 온 근대인들은 자신의 행위를 생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나도 ‘산 제물’ 등의 점에서 서구의 그리스도교를 따라갈 수 없어서 불교에 마음이 많이 끌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교의 고苦만으로 인간의 모든 행위를 생각하는 점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일본인인 내 마음에 불교의 감각은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그대 사람으로서 나는 불교에 어떤 불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령 내가 불교 신자가 되었다 해도 불교에서 죄의 문제를 크게 취급하지 않는 한, 아마도 살아가는 내내 불안감이 항상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고, 따라서 그리스도교를 부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원의 문제

 

더욱이 불교에서는 구원이 무명의 세계에서 무엇이 깨달음인지 알지 못하던 사람이 깨닫는다고 할까 깨닫게 된다고 할까, 즉 자각하거나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선종 禪宗 은 자신의 세계가 공 空 이라고 하는 것,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 의지할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또한 공 空 은 문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의식에서 추구한다 해도 무의미할 뿐, 의식을 넘어선 곳에 진정한 고苦의 세계가 펼쳐진다고 하는, 따라서 그 공을 자각하는 것이 곧 구원이라는 사상이지요. 다시 말해, 존재의 상대적인 진짜 모습을 아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구원이겠지요.

또한 신란쇼닌 의 생각에 의하면, 우리들 범부 凡夫 는 도저히 깨달을 능력도 힘도 없으며 수행도 못하고 수행을 하면 할수록 무명의 세계가 덮쳐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나중에 다시 말하겠지만, 이것은 성 바오로가 체험한 유다교에서의 고통과도 같기 때문에 신란의 감각을 범부인 나는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란의 경우에 ‘너의 힘에 의해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너를 구원해 주는 것이 아미타불이다.’ 라는 생각이지요 이때 ‘구원해 주다’ 가 무슨 말인가 생각해 보면, ‘너 자신은 도저히 자각할 수 없고 자각할 능력도 없으니까 대신에 아미타불이 너를 자각시켜 주신다. 그러니 무엇이든 아미타불께 맡겨라.’ 하는 것입니다. 즉, 아미타불이 이 세계가 공이라는 사실을 자각시켜 준다는 것이 신란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처음의 출발점은 같아도 성 바오로나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구원과는 역시 다르다는 느낌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것은, 소생 蘇生 이 아니라 하느님의 크나큰 생명 속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기에 참가한다는 것입니다.

이점에 대해서 나는 명확히 말할 수 없으므로 불교 족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공의 세계와 영원의 생명은 그 본질이 다른 것처럼 여겨집니다. 공의 세계는 그것이 아무리 큰 달마(法)라 할지라도 나는 부정적인 것밖에는 느낄 수 없습니다. 즉 여기에서는 생명의 약동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생명이 윤회변전 輪廻變轉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구원은 창조적인 생명에 참여하는 것으로 크게 약동하고 있습니다. 창조, 진화 하는 생명 속으로 참여하는 것이므로 시간도 없고 無時間 언제나 한결같은 공 空 을 넘어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뛰어난 현대의 그리스도교 사상가인 테야르 드 샤르댕 P. Teilhard de Chardin이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만 나는 불교의 공과 생명의 관계에 대해서 공부가 부족하므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라는 것은 결국 적멸 寂滅 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적멸이라는 것은 물론 사라진다(멸하다)는 것이 아니라 번뇌를 비롯한 모든 것을 없애고 윤회의 세계를 벗어나 해탈의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알고는 있지만, 거기에서 그리스도교에서처럼 생명의 약동이라는 것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생명의 약동이 느껴지는 것은 그리스도 자신이 죽음으로써 생명을 쟁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생명을 쟁취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죽음으로써 생명을 쟁취했다는 감각이나 이미지가 없습니다. 나는 이 차이점에 아직 구애 받고 있습니다. 나는 원래 게으름뱅이지만, 이 점에서만은 묘하게 구애를 받습니다. 그래서 불교에 의탁할 수 없는지도 모릅니다.

 

 

 

 

 

 

7  기타 여러 가지 질문에 답하여

 

 

 

삼위일체란

 

Q.  그리스도교에는 무언가 일본인에게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용어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령이 있는데 이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십시오.

 

 

어렸을 때 교회에서 설명을 들어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던 것 중 하나인 삼위일체 三位一體 의 ‘삼위’는 하느님 아버지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말하며, ‘삼위일체’는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이 일체, 즉 하나라는 뜻입니다. 이 가운데 성령 聖靈 이 보통 일본인에게 잘 이해가 안 가는 것 같습니다. 알기 쉽게 말하면 성령이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힘이라고나 할까, 불교에서 말하면 ‘부처님 힘의 도움을 받아’ 라는 식으로 생각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리스도교 용어가 불교의 언어와 흡사하면 일본인에게는 그만큼 이해하기 쉬울 테니까요. 즉 우리 인간이 구원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여기에 부처님의 힘이 더해져 죄업 罪業 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겠지요. 혹은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 자아를 버리고 벌거숭이 상태로 부처님께 몸(자신)을 맡긴다.’ 즉 부처님의 힘에 의하여 구원된다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성령이라는 것도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어 주시는 힘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성령이라고 하면 알기 어려운데, 하느님의 힘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성스러운 힘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작용하여 교류하는 성스러운 힘이 성령입니다.

개신교에서도 삼위일체에 대한 것은 가톨릭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은 님프 즉, 요정이나 애니미즘의 정령 숭배 精靈 崇拜 등의 그 정령과 혼동하는 일이 많은데, 정령이라는 번역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것일까요? 나는 성령은 성스러운 힘이라고 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을 느끼는 힘, 하느님을 느끼게 해 주는 것도 성령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누구라도 살아 있는 동안에 몇 번쯤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도움을 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 부처님께 기도를 드렸더니 병이 나았다 하는 일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현세 이익적인 것보다는 보다 근본적으로 정말로 나는 하느님의 도움을 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인간에게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을 성령이라고 하면 좋겠지요? 그것을 성력 聖力 이라고 해도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번역이 성령으로 된 것이지요. 그것은 보통 우리가 말하는 힘, 즉 육체적인 힘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므로 영 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병에 걸려 낫게 해 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느님의 은총으로 나았다든가, 파산해서 빚쟁이들을 어떻게 좀 해 달라고 빌었더니 하느님 부처님의 가호가 있어서 빚쟁이들이 돌아갔다든가 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성령은 보다 정신적인 차원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게 해 주는 힘입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랑의 하느님을 압니다. 그리고 인생길에서 종종 자신의 등 뒤로 하느님을 느끼는 일이 있지요. 하느님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성령이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있고 그 가르침 깊은 곳에 하느님께서 계십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이라고 하는 이미지가 완성됩니다. 그러니까 이들 중 어느 한 가지가 빠지면 하느님에 대해 불완전한 느낌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있어 하느님이라는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것을 전문적인 신학자가 말한다면 어려운 논의가 되겠지만,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이런 식으로 삼위일체를 설명합니다.

신학적으로는 하느님의 속성에 대해서라든가 중세의 신학이나 철학을 꺼내거나 하면 여러 가지로 복잡해지겠지요. 우리 보통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 머리가 아프고 추상적인 논의가 되므로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싫어집니다. 불교의 유식론 唯識論 에도 이러한 골치 아픈 논의가 있지 않습니까?

앞서 3장에서 ‘겁쟁이 제자가 용감한 사도가 되었다.’ 고 했습니다. 겁쟁이가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묻는다면 성령에 의해 하느님의 존재를 깨달아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에게는 그것이 마법에 걸렸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히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아도, 불교 신자에게도 물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와 불교 신자에게도 물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비교하는 책 등을 읽어 보아도, 인생의 벼랑에 내몰려 자신을 버리려고 해도 도저히 버려지지 않고, 번뇌 따위 떨쳐 버리려고 해도 뜻대로 안 되고, 이제 아무래도 좋다고 무심하게 되었을 때 무엇이라 말할 수 없는 힘을 느끼고 깨달음에 가까운 경지 또는 감각 상태가 되었다는 말이 책에도 적혀 있고, 그런 말을 듣기도 합니다. 나는 그 힘이 성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은 프랑스어로 ‘생 에스프리’ Saint Espritt라고 합니다. 흔히 ‘저 사람은 에스프리가 있다.’ 고 말하지요. 영혼을 움직이는 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에스프리라고 합니다. 다만 그것이 통속적으로는 기지가 풍부하다는 표현이 됩니다.

‘영’ 靈 은 적절한 일본어가 업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냥 그대로 부릅니다. 그러나 유령의 ‘령'(영)과 혼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영은 정말로 마음이나 전신 全身 의 근저 根底 를 움직이는 힘, 전신을 변화시키는 듯한 힘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작용하는 곳은 거듭 말하지만, 무의식의 장(불교에서 말하는 아뢰야식) 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님의 힘이 작용하여 깨달음을 얻었다든가 무 無 의 경지에 이르렀다든가 하는 것은 아닐까요? 종교적 자각, 즉 인간 생명의 심수 心髓 에 닿은 듯한 자각을 일으키는 것, 그것을 성령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말하면 초대 교회 시대에 바오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앞에서도 나왔지만, 바오로는 유다교의 율법을 열심히 지킨 사람입니다. 유다교 율법이란 인간이 수행하기 위해서 주 하느님을 받드는 일을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많은 규칙들입니다. 하지만 율법을 따른다고 해서, 예를 들어 육욕 肉慾 을 버리자 하면 오히려 그것을 의식하게 됩니다. ‘여자를 안으면 안 돼!’ 하고 생각하면 오히려 더 여자를 의식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성 바오로는 율법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거기에 사로잡혀 어찌 할 바를 모르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율법을 전부 집어치우고 커다란 무엇인가에 자신을 맡기고자 했을 때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는 그 율법을 초월한 무엇, 바로 그리스도를 맞닥뜨린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읽어 보면, 바오로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에 눈을 찌를 듯한 빛에 자기도 모르게 엎어졌고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쓰여 있는데,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상징적으로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오로는 율법이라고 할까 의식적인 신앙을 전부 부리고 벌거숭이가 되었을 때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분별 지식의 세계를 버렸을 때 깨달음에 이른다고 하지요. 이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바오로는 ‘나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있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기사구명 己事究明, 곧 자신을 구명하여 자아 번뇌를 척척 버려 나아가면 최후에 자아 自我 가 아닌 진아 眞我 라는 것에 맞닥뜨리게 되며, 거기에 부처님의 마음이 작용하고 있음을 자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정신의 기저가 되는 곳을 불교에서는 아뢰야식 이라고 합니다. 마음 활동의 근원이 되는 이 아뢰야식에는 인과 법칙과 함께 부처님의 힘도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면, 이것은 바오로가 유다교 율법의 굴레에서 탈출하여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과 같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이것을 뛰어난 성서학자인 야기 세이이치 에게서 배웠습니다. 따라서 그곳에 작용하는 힘을 생 에스프리 혹은 성령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서의 성령

 

일본인은 성령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는 바람에 제가 너무 장황하게 설명한 것 같습니다. 나의 경우를 이야기한다면, 앞에서 말한 대로 어머님이 이혼하신 후 가톨릭 신자가 되었고, 그 때문에 자식인 나도 가톨릭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몸에 맞지 않아서 벗어 버리고자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적어도 한 번쯤은 열심히 공부해 보고 안 된다면 그때 가서 버리자고 생각했고, 지금에 와서는 가톨릭 신자로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내가 이렇게 살아온 것은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나의 인생이 어머니부터 여러 사람들, 친구나 이웃, 많은 사람들과의 어떤 연결(유대)로 오늘까지 이어져 온 것을 압니다. 그래서 나는 자립이나 개성 같은 것은 점점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의 문학 작업이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물론 문학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여러 가지로 받았습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여러 사람들이 나를 여기까지 밀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배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있어서,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면 프랑스에 가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프랑스에서도 보통은 만나지 못했을 사람과 만났습니다. 또한 3년 동안 큰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하느님을 생각하는 <침묵> 같은 소설은 쓰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내 경우에 성령의 작용입니다. 그리고 내 인생을 커다란 바다라고 생각한다면 그 바다 안에서 나는 무엇인가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감싸 안아 주었던 것이 하느님이었다는 느낌이 내게는 있습니다. 나에게 성령이라는 것은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사람에 따라서 성령의 작용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성령의 작용은 예수님에 대하여 눈을 뜨는 것이었습니다. 성 바오로에게는 율법이라는 것이 있었으며, 그것을 넘어서자 그리스도가 그이 내부로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법신이 아미타불이나 변천 弁天 또는 권현 權現 이라는 응화신 應化身 이 되어 한 사람 한 사람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법신이 응화신으로 되는 힘을 부처님의 힘이라고 말하지요. 이것을 성령이라고 한다면 나에게 작용했던 성령의 형태와 다른 사람에게 작용하는 성령의 형태와 바오로에게 작용하는 성령의 형태는 그 본질은 같지만 형태는 다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원죄

 

Q.  원죄 原罪 를 말하는 그리스도교는 성악설 性惡說 처럼 생각되는데 어떻습니까?

 

그런 신학적인 질문은 신부나 목사에게 하는 편이 좋겠군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그리스도교가 성악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악설에 어떻게 해도 인간 구원은 불가능하다는 것과 구원은 가능하다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하면, 그리스도교는 인간에게 원죄는 있으나 구원은 가능하다는 성악설이겠지요. 예를 들면 세간에서 비난을 받는 창녀라도 예수님 앞에서 진정으로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면 구원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님은 유다교에서 구원받을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 즉 차별당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나병 환자, 창녀, 악령 들린 사람들이 있는 곳을 주로 찾습니다. 이러한 환자나 창녀나 세리에게 구원을 받는다고 했으며, 이것은 당시 구원에 관하여 차별을 두고 있던 유다교에 있어서 일종의 혁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죄를 범하기 쉽다는 사실을 인정은 하지만, 하느님은 그것을 구원할 의지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그리스도교는 성악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성악설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우리는 죽음의 공포에 떨거나 불안에 고통 받거나 다른 인간적인 한계에 끊임없이 부딪힙니다. 완전하지 않은 것, 그것을 원죄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도둑질을 한다거나 사람을 죽인다거나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것을 포함해서 원죄를 느낍니다. 불교에도 같은 생각이 있지 않을까요?

어쨌든 그리스도교의 원죄에는 불교와 같은 숙명적인 사고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교는 희망이 있는 인간의 성악설, 또는 거꾸로 성선설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종교 윤리와 사회도덕

 

Q.  인간은 도덕을 지키면 그것으로 족하므로, 특별히 종교를 믿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종교 윤리와 사회도덕은 다릅니다. 도덕은 사회적 도덕 moral으로 사회의 약속입니다. 따라서 시대와 국가에 따라 다르지 않습니까? 도덕은 상대적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다교 사회에서는 안식일에 무엇인가 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도 ‘안식일을 위해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안식일이 있다.’ 고 말했습니다. 즉 예수님은 사회도덕보다 더 높은 무엇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종교 윤리란 이러한 사회적 도덕과는 다른 차원의 하느님과 인간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관계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당시의 사마리아인과 유다인은 종교 문제로 서로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유다인은 사마리아인의 사회도덕을 매우 싫어했으므로, 사마리아인을 미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도적에게 당해 쓰러져 있는 유다인에게 사마리아인이 약을 주어 구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좋아하거나 도와주거나 하는 사회도덕이 아니라 사마리아인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생겨난 사랑의 윤리 이야기인 것입니다. 사회도덕에서는 더러운 것, 흥을 깨는 것, 불쾌한 것을 버리고자 하지만 종교 윤리는 그와 같은 것들을 사랑하고자 합니다.

또한 종교 윤리에서 보면 사회도덕을 지키는 사람의 마음에는 더러운 자기만족, 위선, 타인을 심판함 등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우리들은 흔히 이 더러운 것들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빛 안에서 그것들은 분명히 드러나지요.

예수님은 유다인의 사회도덕이 된 율법보다 사랑을 우선했습니다. 사랑에 더 무게를 두었습니다. 사회적 도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지 않느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악마

 

Q.  악마 惡魔에 흥미가 있습니다. 오컬트 영화에 나오는 악마 같은 것을 정말로 믿으십니까?

 

아마도 악마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악마는 어떠한 것인가 하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합니다. 악마는 오컬트 영화에 나오는 것과 같이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또한 악마라는 것은 분명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악마는 먼지 같은 것입니다. 앙드레 지드가 말했는데, 악마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악마의 첫 번째 계략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가 어느 사이엔가 뭉쳐져서 방을 더럽히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속에 사랑을 잃게 하는 것이 점점 커지는 것을 악마의 작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악마를 영화 ‘엑소시스트’ 에 나오는 귀신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악마는 비존재라는 생각입니다. 존재는 하느님, 존재가 없는 것이 악마라고 하는 생각입니다. 존재와 선은 결부되어 있으며 존재가 없으니 선이 없는 것이고 선이 없으니 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절망하고 있는 상태를 악마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화 속에 나타나는 악마는 음, 악령 惡靈 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교 신자는 모두 경건한가

 

Q.  그리스도교 신자라고 하면, 어쩐지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 벽창호랄까 위선자랄까 하는 기분이 들어 멀리하고 마는데, 어떻습니까?

 

일본인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미지는 당신 생각과 같이 우선 굉장히 엄격합니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미지는 교직에 대한 이미지와 같습니다. 즉 어떤 교사가 직원 여행으로 아타미(熱海, 온천 관광 도시)에 가서 술을 마시고 난잡하게 놀았다면 학부형들은 곧 그 교사가 교직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항의를 합니다. 그러나 나는 교사라 할지라도 도를 넘지 않는다면 술도 마시고 모래도 부르고 알몸으로 춤을 추어도 관계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그렇게 훌륭하다면 한 번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어 보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보통 사람이니까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종교에 기대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완전무결한 사람들이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완전무결한 사람은 예수님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인 주제에 많은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그리스도교를 비난한다면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인이 외국에 가서 노상 방뇨를 하고 그것을 본 사람들이 일본인 한 명이 노상 방뇨를 한 것으로 보지 않고 ‘일본인은 모두 노상 방뇨를 한다.’ 고 생각한다면 그 일본인은 ‘내가 큰일 날 일을 했구나.’ 하고 생각하겠지요. 그래서 그리스도교 신자는 이중생활자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또한 그리스도교 신자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길을 걷다 보면 만나는 ‘고뇌하는 자여 오라, 하느님은 영원히…’ 따위의 커다란 글씨로 쓴 간판은 일본인에게는 왠지 신경에 거슬려 기분이 나빠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12월이 되면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자선냄비를 들고 길거리에 서 있곤 하지요. 그 행위 자체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구태여 그러한 모양을 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즉 그리스도교 신자들 중에는 보통 일본 사람들의 미적 의식에 거슬리는 짓을 하거나 ‘나는 언제나 고행을 하고 있습니다.’ 하는 얼굴을 짓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승무원 살해에 얽혀 있는 베르메르슈 신부의 사건보다도 그리스도교에 더 마이너스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도 보통 인간이다,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같이 놀 수도 있는 인간이다 하고 말하는 편이 일본에서는 훨씬 그리스도교에 플러스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언제나 고행을 하고 있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안 보이는 데서는 괜찮지만 그러한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어 사람들에게 보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할 때도 이상한 여자 같은 목소리를 내서 국영 방송인 NHK의 아나운서처럼 말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모임에 가면 그리스도교 신자인 나도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러니 그러한 것만이 그리스도교라고 생각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엔도 같은 놈은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신흥 종교를 믿으면 인텔리들이 비웃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는 일본에서 새로운 종교인데, 그리스도교 신자에게는 관사처럼 ‘경건한’이라는 말이 붙습니다.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가 경건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일본인이 아주 많습니다. 불교 국가인 일본에는 ‘파계를 예사로 하는 중’ 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리스도교 신자는 경건한 신자밖에 없다.’ 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리스도교에도 파계승이 있습니다. 커다란 조직에 많은 사람이 있다 보니 사과나무에 썩은 사과도 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에 ‘경건한’은 메이지 시대에 심어진 이미지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치무라 간조 나 우에무라 마사히사 등이 살던 시대의 이미지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문명이라는 것, 즉 영어 학교나 자선 병원 등이 그리스도교의 이미지와 겹쳐 있습니다.

여기에 특히 개신교 가운데 청교도주의, 즉 금욕주의 이미지가 겹쳐 있습니다. 그렇지만 개신교에도 여러 파가 있다는 것을 일본인도 이제는 알아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인 주제에 어째서 술을 마시는 것이냐고 나에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술을 사랑하는 좋은 신부도 있습니다. 가톨릭에는 청교도주의가 없으며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습니다. 내가 술을 마실 때 “너는 그리스도교 신자인 주제에 술을 마시는구나. 말고 행동이 다르지 않느냐.” 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참 곤란한 일이었지요.

 

 

 

 

고해성사의 효용

 

Q.  영화 같은 데서 보면 교회에서 죄를 고백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은 하느님에게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신부에게 하는 것입니까?

 

고해성사란 가톨릭 신자가 신부에게 죄를 고백하는 비밀스런 행동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신주가 아니라 하느님께 하는 것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고해성사를 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톨릭 교회에는 어디나 공중전화 박스 같은 것이 있으며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커튼으로 가려져 있습니다. 그 안에 들어서면 신부가 맞은편에 앉아 있고 이쪽은 무릎을 꿇는 형상이 됩니다. 신부와의 사이에는 철망이 쳐져 있습니다. 그 철망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신부는 절대로 신자들이 고백한 죄를 타인에게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이 고해의 내용은 나이에 따라 점차 달라집니다. 소년일 때의 죄는 어머니 지갑에서 돈을 훔쳐 사탕을 사 먹었다 등과 같은 것입니다.

아내와 함께 둘이 고해하러 갈 때에는 ‘얼마 전에 부부 싸움한 건 말하면 안 돼. 하느님께도 말해서 좋을 것이 있고 말해서 안 되는 것이 있으니까.’라며 못을 박고 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과 아내가 말하는 것이 서로 맞지 않으면 곤란하니까.

고해성사를 볼 때 기도 문구 중에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그 ‘알아내지 못한 죄’라는 것에 힘을 주어 말하는 것입니다. 부부 싸움 따위는 전부 알아내지 못한 죄 쪽으로 몰아 버립니다.

환자에게 자기 마음속에 쌓여 있던 것을 정신 의학자에게 말하여 병을 낫게 하는 정신 요법이 있지요. 그것은 가톨릭교회의 고해성사와 닮았습니다. 고해성사를 본 뒤에는 비할 수 없는 기쁨과 해방감이 있습니다.

내가 고백한 일을 용서하는 것은 하느님이지 신부가 아닙니다. 그러나 평소에 알고 지내던 신부가 눈 앞에 앉아 있으니까 그 신부에게 죄를 고백할 때 굴욕감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죄에도 굴욕감이 없는 죄 또는 말하기 매우 부끄러운 죄가 있지요. 이 굴욕감을 견딘다는 것이 사실은 상당히 괴롭습니다.

그러니까 외국에 갔을 때 모르는 교회에 들어가 모르는 신부에게 고해를 해 버리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상대 신부는 내가 엔도인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동양 어딘가에서 온 사람이겠지 정도로 생각할 테니까요. 그 편이 편하니까 전부 모아 두었다가 한꺼번에 고해할 때도 있습니다.

미우라 슈몬 三浦朱門 이 가톨릭 신자가 되었을 때 나는 미우라에게 규슈나 다른 어디 먼 시골 교회에 가서 고해성사를 보면 좋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도쿄에 고해성사를 보면 미우라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더라고 누설되지는 않겠지만, 잘 아는 신부가 앞에 있으면 싫을 테니까. 물론 신부는 절대로 타인에게 신자들의 고해 내용을 발설할 수 없습니다. 신부는 설사 살인범이 살인 사실을 고해해도 그것을 경찰에 신고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보속으로 00 기도 10번 바치세요.” 죄를 고백하면 이런 답(가톨릭교회에는 일정한 기도들이 있으니까)을 듣는데, 처음에 나는 이 정도의 죄를 범했는데 단지 기도 10번으로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범한 죄를 말할 때는 사실 말하는 내용에 대한 부끄러움이 지은 죄보다 훨씬 괴롭습니다. 그러나 그 후 해방감 덕분에 다시 한 번 죄 짓기 전 상태로 돌아갔다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알아낸 죄와 알아내지 못한 죄

 

앞에서 가톨릭 신자는 알아낸 죄와 알아내지 못한 죄, 두 가지에 대하여 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나쁜 짓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죄를 범하는 일은 누구라도 있지요. 이것이 알아낸 죄입니다. 알아내지 못한 죄라는 것은 선의를 가지고 누군가를 위하여 열심히 일을 해 주었는데, 그 선의를 상대방이 짐스러워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범하는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좋은 일을 행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저지른 이러한 죄는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지요. 좋은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 중에는 동시에 죄를 범하는 일도 있습니다. 서머싯 몸 의 소설 <비>(W. S. Maugham, Rain, 1932)에는 이러한 죄에 빠져드는 성직자의 운명이 실로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고해성사 때 알아낸 죄는 범했다는 인식이 있으니까 입으로 회개할 수 있지만, 알아내지 못한 죄는 그에 대한 의식이 없으므로 고해성사의 대상이 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알아낸 죄와 알아내지 못한 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자각하지 못하고 범한 모든 죄도 용서해 주십사 하는 내용이 기도 중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죄를 용서해 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죄를 범하고 있는지 모르니까 회개할 방도도 없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인업(因業, 내세 과보의 원인이 되는 업)과 같은 것은 아닐까요?무의식으로 범하는 죄, 그것을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므로 하느님 앞에서 고백하자는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알아낸 죄가 적어지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적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로 더욱 많아지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그 사람이 우리들 이상으로 자신의 마음에 민감해지기 때문이겠지요. 그렇다면 신앙이 깊어진다 한들 효과가 없지 않은가 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돼.’ ‘저런 짓을 해서는 안 돼.’ 하고 생각하며 할수록 오히려 더 의식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육욕을 이겨 내야 해.’ 하고 집착하니까 보통 사람보다 더 여자의 나신 裸身 이 머리에 떠오른다는 말입니다. 의식하지 않았을 때보다 더 망상이 깊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한 일을 자각하여 그만두자 한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느냐 하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 것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바오로는 이상적 유다교도가 되고자 율법을 지키고 수행했는데,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의식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율법의 굴레에 더욱 구속당하게 되었지요. 고통 끝에 이제 아무래도 좋다는 심경에 도달했을 때 그는 율법을 넘어선 더욱 큰 것에 몸을 맡기고자 했고, 거기에서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바오로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짓을 하면 안 돼, 저런 짓을 하면 안 돼’ 등을 지킨다면 자기만족도 있고 자신이 수행하고 있다는 허영심도 생기게 됩니다. 또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더욱더 의식하게 됩니다. 때로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경멸하기도 하고 기타 여러 가지 불필요한 요소가 끼어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우에 불교에서 말하는 ‘자아’ 我 는 복잡하게 얽히게 됩니다. 따라서 불교에서도 그러한 아집 我 에 집착하지 말고 버리라고 말합니다. 도겐 道元 도 수행하고 있다는 집착을 버리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곳으로부터 공 공 이 나온다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부처에게 맡기자 하듯이, 그리스도에게 맡기자 하는 부분도 있는 것입니다.

 

 

 

 

 

순교에 대하여

 

Q.  그리스도교도들은 유사시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시마바라 의 난 (島原 의 난, 에도 시대 1637년부터 이듬해까지 규슈 북부의 시마바라에서 막부의 천주교 탄압과 영주의 학정에 천주교 농민들이 일으킨 봉기 – 편집자 주) 때 그처럼 저항했으므로 순교자가 많았다는 사실도 그리스도교 이미지 만들기에 관련한 것 같습니다. 니치렌종 日蓮宗 도 탄압을 당했을 때에는 저항했고, 정토종 淨土宗 도 히데요시 나 노부나가 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에는 끈질기게 저항했습니다. 모두 심리 형태에 있어서는 같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일본인에게는 기리시탄 시대의 탄압 이야기가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탓인지, 그리스도교 하면 순교를 연관해서 떠올리는 사람이 비교적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 열두 사도는 대부분 천수를 누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즉 순교했던 것입니다. 이것도 전승되는 이야기지만, 열두 사도들 대부분이 살해된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바타렌(伴天連, 그리스도교 선교사) 금지의 시기에 후미에(에도 시대에 그리스도교 신자를 판별하기 위하여 밟게 한 그리스도와 마리아 상을 새긴 널조각 또는 그 행위 – 옮긴이 주)를 밟게 했습니다. 후미에를 밟지 않아 처형된 사람들은 순교자로 사도들의 죽음과 같은 일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순교자들을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순교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 있어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침묵>을 쓰고자 했을 때 나가사키에 가서 후미에를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발가락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이 마음에 걸려, 어떤 사람이 밟았을까 어떤 기분으로 밟았을까 하고 떠올려 봤습니다. 마지막에는 ‘네가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밟을 것인가?’ 를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소설을 쓸 때 작자는 어디에 초점을 둘까 어디에 시점을 둘까를 생각하고, 이것이 결정되어야 소설 쓰기가 시작됩니다. <침묵>은 시점을 후미에를 밟지 않은 사람에게 둘까 밟은 사람에게 둘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카미 준 高見順 같은 작가라면 탯줄이 연결된 곳에 소설의 시점을 두겠지만, 나는 나 스스로도 분명히 밟을 가능성이 있는 인간이므로 밟은 사람 편에 시점을 두기로 했습니다.

운젠 雲仙 지옥 계곡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열탕의 온도는 섭씨 100도 나 200도 나 되어서 삶은 달걀 장수 아주머니가 날달걀을 담그면 확 노란색으로 변하면서 삶은 달걀이 됩니다. 그런데 이 연못의 안쪽에 작은 십자가가 있습니다. 후미에를 밟지 않은 사람들을 이곳으로 끌고 와 칼로 등에 상처를 내고 구멍이 있는 국자로 그 뜨거운 물을 떠서 상처 자리에 조금씩 똑똑 흘려 넣었습니다. 이곳의 열탕은 지독해서 닿자마자 살이 녹아 버려 뼈가 보일 정도였습니다. 배교하지 않으면 약을 발라 치료한 다음, 나으면 다시 뜨거운 물을 흘렸습니다. 이런 과정을 되풀이했다고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나는 그 지옥 계곡에 미우라와 이노우에 신부와 함께 갔습니다. 그리고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그때 여기서 그랬던 것처럼 할 테다. 몇 분이나 버티겠어?’ 하고 두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미우라는 “나, 1분이나 버틸 수 있을까?” 라고 말했습니다. 이노우에 신부는 “그런 건 알 턱이 없지!” 라며 화를 냈습니다. “넌 어때?” 라고 미우라가 묻기에 “난 기절했겠지.”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본심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때에 이미 <침묵>의 초점을 어디에 두고 쓰는 게 좋을까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침묵>의 주인공 기치지로 가 바로 나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후미에 앞으로 끌려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침묵>에 왜 기치지로 가 나오는지 아시겠지요.” 라는 말로 답을 대신합니다.

<침묵> 마지막 부분에 있는 관리의 일기는 대부분 진짜로 남아 있는 자료를 옮겨 적은 것인데, 군데군데 바꾸어 놓은 곳이 있습니다. 기치지로 가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 로드리고 라는 주인공이 “나는 역시 그리스도교를 믿습니다.” 라고 말해서 고문을 당하고 신앙을 버렸다는 증서를 쓰도록 강요를 받습니다. 이것이 잘못 영역되어 ‘write a book’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런 뜻이 아니라 신앙을 버렸다는 증서를 썼다는 말입니다. 이 로드리고 라는 남자는 감옥으로 돌아가자 다시 그리스도교 신자로 돌아갔다는 것을 일기를 통해서 모두에게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기치지로 라는 비겁자도 전향하여 출옥했으면 도망가 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다시 뻔뻔스레 감옥에 들어와 어정대고 있습니다.

소노 아야코 도 전에 후미에 앞에 끌려간다면 고문 당할 것이 무서워서 그 즉시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나 역시도 배교했다가 다시 믿고 또 후미에를 밟고 하는 연속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역시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훌륭한 신앙이라고는 여기지 않지만, 나의 신앙이라는 것은 그 정도입니다.

 

 

 

 

 

종교의 조직

 

Q.  종교는 그 교조 敎祖 는 훌륭하지만 교회라는 조직이 되고 나면 부패하거나 분규가 발생하거나 하지요. 그 점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리스도교 중에도 내부 개혁을 한다 하여 조직의 타락, 부패를 문제 삼은 사람들이 개신교 쪽에 있었습니다. 개신교는 교회를 통한 하느님의 관계보다는 개인과 하느님의 관계가 가톨릭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지요. 개신교에도 약점은 있습니다. 개신교는 무엇이라 해도 개인 신앙이 되기 쉽기 때문에, 그에 따른 외로움이나 고독감이 어딘가에 따라 붙어 있습니다. 가톨릭은 일종의 정신 공동체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고뇌를 메워 주는 요소가 많습니다.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불교도 마찬가지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정토진종은 동본원사, 서본원사로 나뉘어 정권 약탈 전쟁을 했지요. 니치렌종의 종파 싸움은 지금까지도 존재합니다.

다케다 다이준(武田泰淳, 1912-1976 소설가) 도 말했지만, 종교라는 것은 하나의 조직이 되면 골치 아픈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개인 종교가 되면 어쩐지 불안하고 외로워지며 아무리 해도 자력본원 自力本願 이 되어 버립니다. 신앙에는 타력본원 他力本願 의 부분도 있으므로 이 점을 어떻게 하는가가 문제입니다. 따라서 조직 안에는 끊임없는 내부 혁명이 있어서 조직을 죄고 다잡아 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선교를 향한 의지

 

Q.  선교를 위해서 소설을 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내 소설을 읽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게끔 그리스도를 다정하게, 그리스도교를 일본인 취향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나 자신은 그럴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나는 보통의 소설가와 같습니다. 배경을 기리시탄 시대로 잡은 것은 그 시대가 나 자신을 반영하기 제일 쉬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리스도교 신자로 키워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자료를 취하면 나 자신의 고뇌나 고통을 투영하기 쉽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좌익 작가가 농민이나 노동자의 세계를 쓰는 일이 자기의 사상을 반영하기 쉬우니까 그렇게 쓰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내가 소설에 기리시탄 시대를 이용하는 일이 많은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소설에 의한 그리스도교의 보급을 도모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내 소설을 일고 교회에 가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런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편지를 받으면 내심 ‘곤란하다’는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신부님에게 가 보세요.” 하고 곧바로 답장을 씁니다. 또 교회에 가 보니 그리스도교가 싫어졌다며 돌아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엔도의 글과 다르다고 하면서. 지금의 가톨릭교회 신부 중에는 엔도의 책을 일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신부도 있습니다. 어쨌든 나는 소설이나 에세이를 통하여, 즉 문학을 통하여 그리스도교를 믿게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단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사람이 암에 걸렸을 때, ‘나는 이러한 기분으로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고 이야기할 때, 마음속으로 이 사람이 내가 믿고 있는 것에 의탁해서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은 확실합니다.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의지하고 싶어 신자가 되고 싶다고 의논을 해 올 때는 ‘이러이러한 교회에 가시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답변을 보낸 일은 있습니다.

옛날에는 선교를 위해서 진정한 인간의 마음, 즉 인간의 싫은 면이라든가 추함, 냄새 나는 것에는 뚜껑을 덮어라 하는 식으로 감추어서 쓰는 것이 그리스도교 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결핵을 앓고 있는 그리스도교 신자 처녀가 있는데, 무신론자 약혼자가 죽음을 맞이하는 그녀의 훌륭한 태도를 보고 감동하여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식의 소설을 그리스도교 소설이라고 했습니다. 가톨릭계 미션 스쿨의 학생들이나 읽을 듯한 소설입니다. 그러한 것은 인간 심리로 볼 때 뻔한 거짓말이 아닙니까? 그러한 일은 현실 세계에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약혼자가 다른 여자와 자지는 않았을까 하고 병든 여자가 질투하는 편이 훨씬 진짜에 가깝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인 작가라도 작가로서 거짓말을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거짓말을 써 가면서가지 무리하게 그리스도교를 증명하는 쪽으로 가져가는 호교 護敎 소설은 진정한 그리스도교 작가가 쓸 것이 못됩니다. 인간을 있는 그대로 써서 그 울림에 그리스도교가 응답한다면, 그리스도교라는 것이 진짜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아름다운 면만이 아니라, 더럽고 추한 것도 서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인간의 어떠한 더러운 부분을 써도 괜찮다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들게 되었습니다. 성직자라 해도 깨끗한 것만 생각하고 있을 턱이 없습니다. 그들도 육욕이 있을 것이며 권력욕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감추고 깨끗한 것만을 써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인간 전체의 목소리에 오케스트라를 울리는 종교라면 진정한 종교겠지요.

내 소설을 읽고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교에 매력을 느꼈다면 나로서도 좋지만, 구태여 어때요 아름답지요 훌륭하지요 묻는 것은 문학을 왜곡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을 문제 삼지 않아도 하느님은 당신을 문제 삼는다

 

Q.  선교하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습니까?

 

처음부터 나는 선교를 위해서 소설을 썼던 것이 아닙니다. 나의 그리스도교가 일본인 취향이라고 하는데, 내 생각과 동떨어지게 일부러 일본인 취향으로 꾸며서 쓴 것은 아닙니다. 일본인인 나 자신에 맞는 그리스도교를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를 선교하겠다고 작정하지 않아도, 이 좋은 것을, 예를 들면 어떤 가게의 튀김이 맛있어서 같이 먹으로 가자고 권하는 것처럼, 튀김 요리보다 더 중대한 마음의 문제인 종교이니까 다른 사람에게 권하고자 하는 기분은 있을 것이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튀김 요리는 미각이 뛰어난 사람과 둔한 사람 정도의 차이밖에는 없지만, 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튀김은 미각이 뛰어난 사람이 맛있다고 느끼면 미각이 둔한 사람도 틀림없이 맛있다고 할 것입니다. 미각이 둔한 사람이 맛있다고 하면 미각이 뛰어난 사람도 조금은 그렇게 느낄 테니까 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나 사상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처지나 생활 체험 등을 통하여 오는 것이므로 좋다라는 것만으로는 진정으로 자기 것으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종교는 젊은 시절에 물든 실존주의나 마르크스주의와 다릅니다. 실존주의나 마르크스주의는 튀김 요리와 같습니다. 자기 치아로 씹어서 확보한 종교나 사상은 자기 것이 될지라도 처지도 성장 환경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른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종교를 권하기 보다는 하느님을 신뢰합니다. 나에게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처럼 다나카 다로에게도 야마다 하나코 에게도 하느님은 형태를 바꾸어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곧잘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는 하느님을 문제 삼지 않을지 몰라도 하느님은 그대를 문제 삼고 있다네. 문제 삼고 있는 이상 형태를 바꾸어 여러 가지 일을 해 주신다네.” 하느님은 만사를 좋은 쪽으로 향하여 주신다는 일종의 신뢰감을 나는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 나의 신앙을 강제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물론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고 싶다며 나를 찾아온다면 나는 기쁘게 신부를 소개해 줄 것입니다. 다카하지 다카코 나 오하라 도미에 에게 그렇게 이노우에 신부를 소개했고 두 사람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미우라 에게도 네란 신부라는 친구를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사람을 내 쪽에서 끌고 간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습니다.

아내도 가톨릭 신자인데, 처가는 불교입니다. 그것도 굉장히 열심인 불교 신자로, 부처님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무종교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종교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가톨릭 신자가 된 것은 나를 항상 곁에서 보면서 ‘아, 어쩌면 저렇게 훌륭한 사람일까!’ 하고 감동받아서라고 말하고 싶지만,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이런 형편없는 남자도 신자라면 내 쪽이 훨씬 나은 그리스도교 신자가 될 수 있겠다.’ 고 느낀 듯 세례성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좋지 않습니까?

 

 

 

 

 

비종교적 인간의 구원

 

Q.  저 스스로를 비종교적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런 인간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종료를 믿는 데는 각자의 동기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연애를 하거나 병에 걸리거나 해서 성경 한두 구절에 갑자기 깨닫기도 하고, 옛날에 읽은 것을 생각해 내거나 하는 등의 계기로 성경에 진실성이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아닐까요? 불교 서적도 전부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는 그런대로 건강하여 병에 걸리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궁핍하지 않으니까 종교와는 별 인연이 없다고 하는 사람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활면에서 종교에 인연이 없다 하더라도 실제 인생살이 면에서는 어떤 인연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내 책은 소설이니까 그리스도교에 대해 쓴 종교 서적보다는 읽기 쉽고 재미있겠지요. 그런데 그것을 계기로 그리스도교에 흥미를 갖게 되어 성경을 차분히 읽고 그 뜻을 음미했으나 조금도 재미있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에 의해서는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는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이 있으니까 어떤 사람이라도 반드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고자 일부러 교회에 갔으나 오히려 더 싫어 졌다는 생각만을 갖게 되고 가지 않은 편이 더 나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내 책을 읽고 편지를 보낸 사람에게 신부나 목사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답장을 하면, 교회에 가 봤더니 오히려 그리스도교가 싫어졌다, 그렇게 냉랭하고 거드름만 피우는 세계는 싫다고 답장을 보내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인간에게 하느님을 구하는 마음이 있으면 우선 그대로 있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은 작용이라고 말했지만, 그 사람이 그리스도(또는 부처)를 문제 삼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리스도나 부처는 그 사람을 문제로 하고 있으니까 걱정이 없습니다. 그대로 두어도 좋은 것입니다. 그 까닭은 불교에 시절도래 時節到來 라는 좋은 말이 있듯이, 인간이 하느님이나 신앙에 눈뜨는 시절은 인생의 어느 때인가는 도래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때가 죽기 직전일지도 모르겠으나 죽기 직전일지라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지 않더라도 그리스도교는 나를 구원해 줄 것인가 하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구원해 줍니다.

다만 구원받고자 하는 기대감만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해 주실 테니까 나는 안달복달하지 않아.’ 한다면 그것으로 좋지 않습니까? 구원해 주거나 말거나 내 알 바 아니다 하는 식에 비하면 구원받고자 하는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은 확실히 한 걸음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종교와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과거나 인생을 돌이켜 생각해 봤더니, 나 같은 ‘장’ 場 이 주어져 뒤에서 민다고 한 것과 같은 일이 있었다고 짐작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누구의 마음에나 불교에서 말하는 아뢰야식이 있으며 누구나 마음속 깊은 곳에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영혼이 있다면 그곳에서 작용하는 X를 느끼느냐 느끼지 않느냐 하는 것이 바로 신앙의 출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믿고 있냐고 질문을 받으면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고, 나라는 존재를 넘어선 X라도 좋고, 양파라도 좋습니다. 그 단계에 있어서는 특별히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어 보니 자신에게 꼭 맞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불경을 읽어 보았더니 꼭 맞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 그랬구나!’ 하고 자신의 마음 깊은 곳, 무의식적인 아뢰야식 안에 인과가 작용하는 무명의 세계가 있고 그것을 구하는 것이 부처인가 하고 느끼게 되면 불교로 가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바오로는 율법을 버렸습니다. 육법은 의식이므로 의식의 세계를 버렸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면 분별의 세계를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를 의지하고 믿는 것인데, 바오로는 그리스도에게 의지한 것입니다. 그 점에서는 그리스도교도 불교도 완전히 서로 겹치는 면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교와 불교 사이에는 서로 닮은 점도 확실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을 갖고자 할 때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사람마다 제각각 입니다. 어릴 때 정혼한 사람과 결혼하거나 연애결혼을 하거나 … 연애결혼 보다는 맞선을 보고 결혼하는 사람 쪽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처, 그리스도, 마호메트와 세 번 맞선을 보고 자기 체질이나 처지에 가장 잘 맞는 종교를 선택한다면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이 우선 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선 마음 깊은 곳, 아뢰야식에 있는 자기 자신을 잘 살펴보는 것이 출발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후 세계

 

Q. 사후 세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가톨릭 신자는 사후 세계를 어떻게 생각할까? 사람이 죽으면 그리스도가 들어가신 영원의 세계로 돌아 간다고 봅니다. 그것을 천국, 하느님 나라라고 하는데, 요컨대 하느님 생명의 세계인 것입니다. 돌아간다는 것은 그곳이 본거지이니까 그곳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직 본 적이 없는 곳이지만 고향에 돌아간다고 하는 의미로 돌아간다고 표현했지만 그냥 간다고 해도 좋습니다. 가톨릭 신자는 하느님 생명의 세계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불교에서는 태어나기 전의 세계를 생각하지만, 가톨릭에서는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는 생명이 없었으므로 하느님의 생명 안으로 갈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합니다.

내 경우에는 거기에 여러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든가 형님을 만날 수 있다든가 일본인이니까 불교적인 감각도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라고 불교적인 감각이 있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형님도 거기에 가 있고 어머니도 거기에 계십니다. 친한 사람들도 거기에 있으며 거기에서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이 나에게 있습니다.

나라고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죽음을 생각할 때 무섭지 않을 리 없습니다. 시나 린조 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이제 나도 괴로워 몸부림치며 죽을 수 있다.’ 고 했습니다. 그것은 시나 식의 표현 방법이지만 그 느낌은 나도 알 것 같습니다.

원칙적, 근본적으로는 하느님의 생명체 안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개인 인생의 여러 가지 경험으로 사후의 세계에 대한 불교적인 것, 신도 神道적인 것도  섞여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대수로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후 세계는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후 세계를 믿을 수 있는 것이 종교를 믿어서 얻을 수 있는 구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위안은 됩니다. 내 경우에는 그리스도교를 믿으니까 사후 세계를 믿는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를 향한 애착이나 프랑스에서 신세를 진 아저씨, 아주머니 이런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는 장소가 있다는 느낌은 억지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으니까 점점 그런 세계가 실감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그리스도교 하느님의 생명이라는 생각이 들어와 어느새 자연스럽게 사후 세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소원하는 바가 어느 틈엔가 그렇게 된 부분도 있습니다.

 

 

 

히틀러라도 뉘우친다면

 

그리스도교에서는 최후의 심판에 따라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유다교적인 생각입니다. 사람은 99.9% 가 천국에 갑니다. 그럼 0.1% 는 지옥으로 가는 사람도 있느냐 하는데, 구원에 대해 절망하지 않는 한 모두 천국에 갑니다. 히틀러는 지옥에 가는 것이냐고 이노우에 신부에게 물었더니, 히틀러가 한 순간이라도 아우슈비츠 를 비롯한 기타 행위들에 대해서 진정으로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하느님은 결코 버리지 않는다고 이노우에 신부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못하지만, 예를 들면 어린이를 살해한 사람이 정말로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몸과 마음으로 그 어린이를 죽인 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역시 그 사람은 구원받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스도교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은, 예를 들면 히틀러도 그리스도교 신자라고 말합니다. 히틀러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했습니다. 가톨릭교회를 탄압했습니다. 그리스도교 관계자를 아우슈비츠에 많이 보냈습니다. 얼마 전에 성인이 된 콜베 신부도 가톨릭입니다. 개신교인 본회퍼 D. Bonhoeffer 목사도 처형되었으며, 히틀러에게 그리스도교는 상당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히틀러는 단지 독일적인 그리스도교 신앙 운동인가 하는 우파 연합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듯합니다. 일본이 한 묶음으로 불교 국가라고 하는 의미에서는 히틀러도 그리스도교 국가의 사람이겠지만, 진짜 그리스도교 신자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싫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좋아했다면 대체 어떻게 그런 사살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히틀러가 잠시라도 최대한으로 마음속 깊이 뉘우친다면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이노우에 신부는 말했습니다. 어떤 인간도 최후의 죽음의 순간까지 구원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뼈에 사무치게 후회한다면 히틀러라도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 곧 최후에 회개하면 되니까 나쁜 짓을 해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쁜 짓을 해도 된다는 사람이 최후에 회개할지 어떨지는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는 시늉만 해 두는 것은 회개가 될 수 없습니다.

 

 

 

최후의 심판

 

최후의 심판은 유다교에 있는 것인데, 그리스도교에도 있기는 합니다. 루카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 일흔두 명을 파견하실 때 심판의 날에는 이 고을보다 소돔이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판의 날이란 최후의 심판을 말하는 것으로 요한 묵시록에 나와 있습니다. 일본인으로서 외국의 그리스도교에 관한 것을 읽자면 그 역사관에는 친숙해지지 못하는 것을 느낍니다. 마르크스 주의에서는 세상이 최후에는 프롤레타리아의 세계가 된다는 역사관이 있지요. 그리스도교 학자나 유럽 사람들은 그 종말 의식으로 묵시록을 생각하고, 역사는 그곳을 향하고 있다는 사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 개인은 그러한 역사 감각이 별로 없습니다. 다른 일본인들 역시 그러한 역사 감각이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게다가 최후에 심판을 받는다는 무서운 일이 내게는 맞지 않아 나 자신도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그보다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테야르 드 샤르댕 신부는 인간은 잘못을 범하지만 조금씩 보다 나은 X라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으며, 그 X를 그리스도라 부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그 생각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역사의 시간이라든가 방향성이 있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와 그리스도교 뿐이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최후의 심판 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고 관념적으로 얼마든지 책에도 쓰여 있지만 내게는 현실감 있게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기사구명(己事究明,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규명하는 일) 쪽이 중요합니다. 일본인은 불교의 영향을 받아 사고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이전에 예루살렘은 로마의 침입으로 엉망이 되고 유다인들은 절망적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구원해 줄 하느님은 기다려도 오지 않는 상황 속에서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자 이것이 세상의 종말인가 하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헤이안(平安, 794-1185년) 시대에도 말세 末世 라는 사고방식이 있었는데, ‘그보다 더 무서운 말세가 있어, 그러한 상황 아래 묵시록에 있는 것처럼 세계의 종말이 와서 최후의 심판이 행해질 것이다.’ 고 하는 발상이 생겨난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시대 배경 속에서 탄생한 것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갖다 붙여서 역사 감각이라든가 뭐라든가 말하는데, 그러한 역사 감각이 있는 서양인이라면 모르지만 나처럼 에고이스트에게는 천 년, 2천 년 후의 말세라는 것은 들어도 잘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등에 흥미를 갖는 젊은이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와는 인연이 멉니다.

물론 최후의 심판은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매우 중요한 관념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현재 우리의 역사적인 행위 안에는 하느님의 의사가 작용한다는 것, 즉 우리 마음속에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함과 동시에 역사 속에서도 하느님의 의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을 향하여 줄곧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역사 관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나 그리스도교 서적을 읽다 보면 반드시 종말 의식이라고 하는 문제가 나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세례를 받은 소위 제1차 전후파 작가들은 이것을 문제시하겠지만, 나는 제3차 신인 新人으로 불리는 작가로서 전후파와 문제의식이 다르므로 그것이 확연히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서양의 그리스도교 학자는 역사에서의 하느님의 작용을 흔히 말합니다. 그 경우에 요한 묵시록 등을 들고 나옵니다. 앞서 이야기한 그리스도교 신학자이자 고고학자로 유명한 테야르 드 샤르댕 신부는 20세기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친 진화론자였습니다. 그는 인간이 정신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동시에 인간이 보다 좋은 것을 향하고 있으며 그것을 휴머니즘의 진화라고 했습니다. 역사의 관점에서 그리스도교를 파악하고자 하는 사람이 그리스도교 안에도 있는 것입니다.

나는 역사의 관념보다 개인의 의식 내부 쪽이 아직 중요하다고 생각하므로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최후의 심판을 여러 번 언급하십니다. 나쁜 짓을 하면 종말의 날이나 심판의 날에 벌을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비그리스도인에게 심판은 위협 같은 것으로, 최후의 심판 날이 오므로 신앙을 굳건히 하라든가 좋은 일을 행하라는 뜻으로 여겨지는 듯합니다.

마르코 복음 첫 부분을 보면 낙타털로 만든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른, 이상하고 야만스러운 모습의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모두에게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회개하라고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노한다, 하느님은 벌한다, 하느님은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자렛 목수의 집에서 튀어나와 그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제자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분노의 신도 아니고 심판의 신도 아닌 사랑의 신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세례자 요한의 무리에게 나와 자신의 공동체를 조금씩 만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심판하거나 벌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사랑해 주는 하느님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에게 신뢰감을 갖고 계셨습니다. 성경의 심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그분이 돌아가신 다음, 초대 교회의 의식을 반영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번 말했듯이 예수님은 그러한 하느님이 아니라, 사랑하는 하느님, 용서하는 하느님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은 과거에 무엇을 했다 하더라도 최후에 진정으로 회개하는 사람을 구원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후기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대로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믿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다. ‘도대체 하느님 따위를 정말로 믿고 있는가?’ ‘당신에게 하느님이란 무엇인가?’ 등등.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정리하여 나 나름대로 생각을 되도록 알기 쉽게 이야기하고, 그것을 글로 쓴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알기 쉽게 답했지만, 진지하게 답을 했다.

돌이켜 보니 나의 신앙은 읽는 것과 이해하는 것이었고, 그 무엇보다 ‘무리 無理 하지 않기’, ‘허세 虛勢 부리지 않기’ 위에 성립한 것이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물론 나는 성직자가 아니므로, 내가 독자들에게 만족할 만한 답을 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전문적인 것은 피해야 했다. 다만 방황 방황 에 대한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작가로서의 기분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독자들이 직접 자신의 종교를 생각해 볼 때 이 책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엔도 슈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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