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 1월 (1596년 1월)

 

1월 초1일 [양력 1월 29일]<무진> 맑다.

밤 한 시쯤에 어머니 앞에 들어가 뵈었다. 저녁나절에 남양 아저씨와 신 사과(오위의 정6품의 군사직이며 부사직의 다음 벼슬)가 와서 이야기했다. 저녁에 어머니께 하직하고 본영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하도 어지러워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

 

1월 초2일 [양력 1월 30일]<기사> 맑다.

일찍 나가 병기를 점검했다. 이 날은 나라제삿날(명종 인순왕후 심씨의 제사)이다. 부장(부장) 이계(이계)가 비변사의 공문을 가지고 왔다.

 

1월 초3일 [양력 1월 31일]<경오> 맑다.

새벽에 바다로 내려가니 아우 여필과 여러 조카들이 모두 배 위 에 타 있었다. 날이 밝을 무렵에 출항하여 서로 작별하였다. 오정 에 곡포(남해군 이동면 화계리)바다 가운데에 이르니, 샛바람이 약간 불었다. 상주포(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앞바다에 이르니 바람이 잤다. 노를 재촉하였더니, 자정에 사량에 이르러 잤다.

 

1월 4일 [양력 2월 1일]<신미> 맑다.

밤 두시쯤에 첫 나발을 불었다. 먼동이 틀 때에 출항하는데 이 여염이 와서 봤다. 진중의 소식을 물으니, 모두 이전대로라고 했 다. 오후 네시쯤에 가랑비가 세차게 뿌렸다. 걸망포(거망포)에 이르니, 경상수사가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나와 기다렸다. 우 후는 먼저 배 위로 왔으나, 몹시 취하여 인사불성이여서 곧 그 배로 갔다고 했다. 송한련(송한련)·송한(송한) 등이 말하기를, 청어(청어) 천 여 마 리를 잡아다 대강 늘었는데, 내가 나간 동안에 천팔백

여 마리를 잡았다고 했다. 비가 많이 와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장수들이 어두울 무렵에 떠났는데, 길이 질어서 자빠진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기효근(기효근)과 김축(김축)이 휴가를 받아 갔다.

 

1월 5일 [양력 2월 2일]<임신> 종일 비가 내렸다.

먼동이 틀 때에 우후와 방답첨사·사도첨사가 와서 문안했다. 나 는 서둘러 세수하고 방밖으로 나가 그들을 불러들여 지난 일을 물었다. 저녁나절에 첨사 성윤문(성윤문)·우후 이정충(이정충) ·웅천현감 이운룡(이운룡)·거제현령 안위(안위)·안골포만호 우 수(우수)·옥포만호 이담(이담)이 왔다가 캄캄해진 뒤에 돌아갔 다. 이몽상(이몽상)도 경상수사 권준(권준)의 심부름으로 와서 문안하고 돌아갔다.

 

1월 6일 [양력 2월 3일]<계유> 비가 내렸다.

오수(오수)는 청어(청어) 천삼백열 마리를, 박춘양(박춘양)은 칠 백여든 일곱 마리를 바쳤는데, 하천수(하천수)가 받아다가 말렸 다. 황득중(황득중)은 이백두 두름을 바쳤다. 종일 비가 내렸다. 사도첨사가 술을 가지고 왔다. 군량 오백 여 섬을 마련해 놓았다고 했다.

 

1월 7일 [양력 2월 4일]<갑술> 맑다.

이른 아침에 이영남(이영남)과 좋아 지내는 여인이 와서 말하기를, 권숙(권삽)이 제 욕심을 채우려고 하기에 피해 왔는데,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했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 권준(권준)·우후 ·사도첨사·방답첨사가 오고 권숙(권삽)도 왔다. 낮 두 시쯤에 견내량의 복병장과 삼천포권관이 달려와서 “투항한 왜놈 다섯 명 이 애산(애산)에서 왔다고 하므로 안골포만호 우수(우수)·공 태원(공태원)을 뽑아 보냈다. 날씨가 몹시 춥고 하늬바람이 매섭게 불

었다.

 

1월 8일 [양력 2월 5일]<을해> 맑다.

입춘인 데도 날씨가 몹시 추워 마치 한겨울 처럼 매섭다. 아침에 우우후와 방답을 불러 약밥을 같이 먹었다. 일찍 투항한 왜놈 다섯 명이 들어왔다. 그래서 그 온 까닭을 물으니, 저희네 장수가 성질이 모질고 일을 또 많이 시키므로 도망하여 와서 투항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가진 크고 작은 칼을 거두어 수루 위에 감추어 뒀다. 그러나 실은 부산에 있던 왜놈이 아니고 가덕도의 심안돈(심안둔:도진의홍)의 부하라는 것이다.

 

1월 9일 [양력 2월 6일]<병자> 흐리고, 추워서 살을 에는 것 같다.

오수(오수)가 청어(청어) 삼백예순 마리를 잡은 것을 하천수(하 천수)가 싣고 갔다. 각처에 공문을 써 나누어 보냈다. 저물 무렵에 경상수사가 와서 방어대책을 논의했다. 하늬바람이 불어 종일 배가 바다로 나가지 못햇다.

 

1월 10일 [양력 2월 7일]<정축> 맑으나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이른 아침에 적이 다시 나올지를 점쳤더니, 수레에 바퀴가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다시 점쳤더니, 임금을 보고 모두들 기뻐하는 것과 같다는 좋은 괘였다. 식사를 한 뒤에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봤다. 우우후가 어란포에 서 와서 봤다. 사도첨사도 왔다. 체찰사가 여러가지 물건을 나누어 주도록 세 위장에게 분부하였다. 웅천현감·곡포권관·삼천 포권관·적량만호가 아울러 와서 봤다.

 

1월 11일 [양력 2월 8일]<무인> 맑다.

하늬바람이 밤새도록 세게 불어 한겨울보다 갑절이나 더 춥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저녁나절에 거제현령이 와서 봤다. 그 도 수 사의 옳지 못한 일을 낱낱이 말했다. 광양현감이 들어왔다.

 

1월 12일 [양력 2월 9일]<기묘> 맑으나,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추위가 갑절이나 된다. 밤 두시쯤의 꿈에, 어느 한 곳에 이르러 영의정과 같이 한시간이 넘게 이야기하다가 의관을 다 벗어 놓고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나라를 걱정하는 생각을 서로 털어 놓다가 끝내는 가슴에 메인 것까지 쏟아 놓았다. 한참을 지나니 비바람 이 억세게 퍼부었는데도 흩어지지 않았다. 조용히 이야기하는 동 안 서쪽의 적이 급히 들어오고 남쪽의 적도 덤비게 된다면, 임금 이 어디로 가시겠는가 하고 걱정만 되뇌이며 할 말을 알지 못했 다. 일찍 듣건대, 영의정이 담천으로 몸이 몹시 편찮다고 했는데, 나았는지 모르겠다. 글자점을 던져 보았더니, 바람이 물결을 일으 키는 것과 같다고 했고, 또 오늘 중에 길흉이 어떤지를 점쳤더니,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은 것과 같다고 했다. 이 괘는 매우 좋 다. 엊저녁에 종 금을 본영으로 보냈는데 바람이 몹시 사납게 불어 염려가 된다. 저녁나절에 나가서 각처의 공문을 처리하여 보 냈다. 낙안이 들어왔다. 웅천현감이 보고한 내용에, “왜적선 열네 척이 와서 거제 금이 포(금이포)에 정박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경상수사에게 삼도의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가 보게 했다.

 

1월 13일 [양력 2월 10일]<경진> 맑다.

아침에 경상수사가 와서 보고하고 배를 타고 견내량으로 갔다.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가 공문을 처리하여 보냈다. 체찰사에게 올리는 공문을 내 보냈다. 성균관의 종은, 선비들이 성균관의 학 문을 다시 세운다는 글을 가지고 온 자인데 아뢰고 돌아갔다. 이 날 바람이 자고 날씨가 따사했다. 이 날 저녁에 달빛은 낮과 같고, 바람 한 점 없다. 홀로 앉아 있 으니, 마음이 어지러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신홍수(신홍수)를 불러 휘파람을 불게 했다. 밤 열시쯤에 잠들었다.

 

1월 14일 [양력 2월 11일]<신사>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저녁나절에야 바람이 자며 날씨는 따뜻한 것 같다. 흥양현감이 들어왔다. 정사립(정사립)·김대복(김대복)이 들어왔다. 조기(조 기)·김숙(김 )도 같이 왔다. 이 날 그 편에 연안옥(연안옥)의 외조모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밤 늦도록 이야기했다.

 

1월 15일 [양력 2월 12일]<임오> 맑고 따뜻하다.

밤 세시에 망궐례를 행했다. 아침에 낙안·흥양을 불러 같이 일찍 밥을 먹었다. 저녁나절 대청으로 나가 공문을 써 나누 어 보냈다. 이어서 투항해온 왜놈에게 술과 음식을 먹였다. 낙 안과 흥양의 전선·병기·부속물 및 사부와 격군들을 점고하니 낙안의 것이 가장 엉성하다고 했다. 이 날 저녁에 달빛이 몹시 맑으니 풍년이 듦직하다.

 

1월 16일 [양력 2월 13일]<계미> 맑다.

서리가 눈처럼 내렸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가장 늦게 경상수사·우우후 등이 와서 봤다. 웅천쳔감도 와서 취하여 돌아갔다.

 

1월 17일 [양력 2월 14일]<갑신> 맑다.

방답첨사가 휴가를 받고서 변존서(변존서)·조카 분(분)·김숙(김 ) 등과 같은 배로 나갔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오정에 나가 공무를 봤다. 우후를 불러 활을 쏠 적에 성윤문(성윤문)과 변익성 (변익성)이 와서 보고느 같이 활을 쏘고서 돌아갔다. 어둘 무렵 강대수(강대수) 등이 편지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종 금이(김) 16 일에 본영에 이르렀다.”고 했다. 종 경(경)은 돌아와서 말하기를 ” 아들 회( )가 오늘 은진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1월 18일 [양력 2월 15일]<을유> 맑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군복을 마름질했다. 저녁나절에 곤양군수 (이수일)·사천현감(기직남)이 왔다. 동래현감(정광좌)가 달려와서 보고하는데, “왜놈들이 많이 반역하는 눈치가 보이고, 유격 심유 경(심유경)(심유경)이 행장(소서행장)과 함께 1월 16일에 먼저 일 본으로 갔다.”고 했다.

 

1월 19일 [양력 2월 16일]<병술>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사도첨사와 여도만호가 왔다. 우후 ·곤양군수도 왔다. 경상수사가 왔다. 우우후를 불러 왔다. 곤양군수가 술을 차려서 내므로 조용히 이야기했다. 부산에 들 여 넣은 사람 네 명이 와서 전하기를, “심유경(심유경)과 소서행장(소서행장)· 현소(현소)· 정성(사택정성)· 소서비(소서비 :내등 여안)와 함께 1월 16일 새벽에 바다를 건너갔다”는 소식이다. 그래서 양식 서 말을 주어 보냈다. 이 날 저녁에 박자방(박자방) 이 서 순찰사가 진에 온다는 말과 여러 가지 물건을 가지러 본영으로 갔다. 오늘 메주를 쑤었다.

 

1월 20일 [양력 2월 17일]<정해> 종일 비가 내렸다.

몸이 몹시 피곤하여 낮잠을 반 시간을 잤다. 오후 두시쯤에 메주 쑤는 것을 마치고 굴뚝에 넣었다. 낙안군수가 와서, “둔전에서 거둔 벼를 실어왔다.”고 보고했다.

 

1월 21일 [양력 2월 18일]<무자> 맑다.

아침에 나가 공무를 봤다. 체찰사에게 보낼 순천 공문을 작성했 다. 밥을 먹은 뒤에 미조항첨사 및 흥양현감이 와서 보기에 술을 먹여 보냈다. 미조항첨사는 휴가를 신청했다. 저녁나절에 대 청으로 나가니 사도첨사·여도만호·사천현감·광양현감·곡포권 관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곤양군수도 왔다. 활 열 순을 쏘았다.

 

1월 22일 [양력 2월 19일]<기축> 맑다.

몹시 춥고 바람도 몹시 험하여 종일 나가지 않았다. 저녁나절 에 경상우후가 와서 그의 수사(권준)의 경솔한 짓을 전했다. 이 날 밤은 바람이 차고도 매우니 아이들이 들어오기가 고생스러울 것이 걱정된다.

 

1월 23일 [양력 2월 20일]<경인> 맑다.

작은 형님의 제삿날이라 나가지 않았다. 마음이 몹시 어지럽다. 아침에 헐벗은 군사 열일곱 명에게 옷을 주었다. 또 옷 한 벌을 주었다. 종일 바람이 험했다. 저녁에 가덕에서 나온 김인복(김 인복)이 와서 현신하므로 적의 정세를 물어 보았다. 밤 열시쯤에 아들 면( )·조카 완(완) 및 최대성(최대성)·신여윤(신여윤)·박 자방(박자방)이 본영에서 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는 편지 를 받아 보니 기쁘기 그지 없다. 종 경(경)도 왔다. 종 금(김)은 애수(애수) 및 금곡에 사는 종 한성(한성)·공석(공석) 등과 같이 왔다. 한밤에야 잠들었다. 눈이 두 치나 내렸다. 근래에 없던 일이라고 한다. 이 날 밤 몸이 몹시 불편하다.

 

1월 24일 [양력 2월 21일]<신묘> 맑다.

된바람이 세게 불어 눈보라를 치며 모래까지 휘날리니 사람이 감 히 걸어 다닐 수가 없고 배도 운항할 수가 없었다. 새벽에 견내 량 복병장이 보고하기를, “어제 왜놈 한 명이 복병한 곳에 와 서 투항하며 들어오기를 빌었다”고 하므로 보내라고 회답했다. 저녁나절에 우우후 및 사도첨사가 와서 봤다.

 

1월 25일 [양력 2월 22일]<임진> 맑다.

1월 26일 [양력 2월 23일]<계사> 맑으나 바람이 고르지 못했다.

나가 공무를 보고 활을 쏘았다.

 

1월 27일 [양력 2월 24일]<갑오> 맑고 따사하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장흥(배흥립)의 죄를 심의 한 뒤에 흥양과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나절에 경상우도 순찰사 (서성)가 들어왔다. 그래서 오후 네시쯤에 우수사의 진으로 가서 보고, 한밤에 돌아왔다. 사도의 진무(진무)가 화약을 훔쳤다가 붙잡혔다.

 

1월 28일 [양력 2월 25일]<을미> 맑다.

늦게 나가 공무를 봤다. 오정 때에 순찰사가 왔다. 활을 쏘고 같이 이야기했다. 순찰사가 나하고 활쏘기를 맞서서 겨루다가 일 곱 푼을 졌는데 섭섭한 빛이 없지 않았다. 혼자 웃었다. 군관 세 사람도 다 졌다. 밤이 든 뒤에 취하여 돌아갔다.

 

1월 29일 [양력 2월 26일]<병신> 종일 비가 내렸다.

일찍 식사를 한 뒤에 경상도 진으로 가서 순찰사와 같이 조용 히 이야기했다. 오후에 활을 쏘았는데, 순찰사가 아홉 푼을 졌다. 김대복(김대복)이 홀로 즐겁게 활을 쏘았다. 피리 소리를 듣다 가 한밤 자정에야 헤어져 진으로 돌아왔다. 저물 무렵에 사도에서 화약 훔친 자가 도주하였다.

 

1월 30일 [양력 2월 27일]<정유> 비오다가 저녁나절에야 개었다.

나가서 공무를 보고 군관이 활을 쏘았다. 천성보만호(윤홍년)· 여도만호(김인영)·적량만호(고여우)가 와서 보고서 돌아갔다. 이 날 저녁에 청주의 이희남(이희남)이 종 네 명과 준복(준복) 이 들어왔다.

 

(** 1596년(병신) 1월 1일의 바로 앞에 한 장으로 다섯 줄에 걸쳐 적혀 있는 글이다.)

도양장(고흥군 도양면)의 농사일에 부리는 소가 7 마리인데, 보성 림정로(임정로) 1 마리, 박사명(박사명) 1 마리를 바치지 않았다. 정명열(정명열)은 바로 길다란 서화첩(장첩)을 받아 갔다. 이는 정 경달(정경달)의 아들이다. 갑사 송한(송한). 1월 3일에 배 위에서 이번에는 환도 4 자루, 왜놈칼 2 자루를 만 들었다. 아들 회가 가지고 가던 중에(이 뒤에 없음)

 

병신년 1월 (1596년 1월)

 

1월 초1일 [양력 1월 29일]<무진> 맑다.

밤 한 시쯤에 어머니 앞에 들어가 뵈었다. 저녁나절에 남양 아저씨와 신 사과(오위의 정6품의 군사직이며 부사직의 다음 벼슬)가 와서 이야기했다. 저녁에 어머니께 하직하고 본영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하도 어지러워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

 

1월 초2일 [양력 1월 30일]<기사> 맑다.

일찍 나가 병기를 점검했다. 이 날은 나라제삿날(명종 인순왕후 심씨의 제사)이다. 부장(부장) 이계(이계)가 비변사의 공문을 가지고 왔다.

 

1월 초3일 [양력 1월 31일]<경오> 맑다.

새벽에 바다로 내려가니 아우 여필과 여러 조카들이 모두 배 위 에 타 있었다. 날이 밝을 무렵에 출항하여 서로 작별하였다. 오정 에 곡포(남해군 이동면 화계리)바다 가운데에 이르니, 샛바람이 약간 불었다. 상주포(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앞바다에 이르니 바람이 잤다. 노를 재촉하였더니, 자정에 사량에 이르러 잤다.

 

1월 4일 [양력 2월 1일]<신미> 맑다.

밤 두시쯤에 첫 나발을 불었다. 먼동이 틀 때에 출항하는데 이 여염이 와서 봤다. 진중의 소식을 물으니, 모두 이전대로라고 했 다. 오후 네시쯤에 가랑비가 세차게 뿌렸다. 걸망포(거망포)에 이르니, 경상수사가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나와 기다렸다. 우 후는 먼저 배 위로 왔으나, 몹시 취하여 인사불성이여서 곧 그 배로 갔다고 했다. 송한련(송한련)·송한(송한) 등이 말하기를, 청어(청어) 천 여 마 리를 잡아다 대강 늘었는데, 내가 나간 동안에 천팔백

여 마리를 잡았다고 했다. 비가 많이 와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장수들이 어두울 무렵에 떠났는데, 길이 질어서 자빠진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기효근(기효근)과 김축(김축)이 휴가를 받아 갔다.

 

1월 5일 [양력 2월 2일]<임신> 종일 비가 내렸다.

먼동이 틀 때에 우후와 방답첨사·사도첨사가 와서 문안했다. 나 는 서둘러 세수하고 방밖으로 나가 그들을 불러들여 지난 일을 물었다. 저녁나절에 첨사 성윤문(성윤문)·우후 이정충(이정충) ·웅천현감 이운룡(이운룡)·거제현령 안위(안위)·안골포만호 우 수(우수)·옥포만호 이담(이담)이 왔다가 캄캄해진 뒤에 돌아갔 다. 이몽상(이몽상)도 경상수사 권준(권준)의 심부름으로 와서 문안하고 돌아갔다.

 

1월 6일 [양력 2월 3일]<계유> 비가 내렸다.

오수(오수)는 청어(청어) 천삼백열 마리를, 박춘양(박춘양)은 칠 백여든 일곱 마리를 바쳤는데, 하천수(하천수)가 받아다가 말렸 다. 황득중(황득중)은 이백두 두름을 바쳤다. 종일 비가 내렸다. 사도첨사가 술을 가지고 왔다. 군량 오백 여 섬을 마련해 놓았다고 했다.

 

1월 7일 [양력 2월 4일]<갑술> 맑다.

이른 아침에 이영남(이영남)과 좋아 지내는 여인이 와서 말하기를, 권숙(권삽)이 제 욕심을 채우려고 하기에 피해 왔는데,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했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 권준(권준)·우후 ·사도첨사·방답첨사가 오고 권숙(권삽)도 왔다. 낮 두 시쯤에 견내량의 복병장과 삼천포권관이 달려와서 “투항한 왜놈 다섯 명 이 애산(애산)에서 왔다고 하므로 안골포만호 우수(우수)·공 태원(공태원)을 뽑아 보냈다. 날씨가 몹시 춥고 하늬바람이 매섭게 불

었다.

 

1월 8일 [양력 2월 5일]<을해> 맑다.

입춘인 데도 날씨가 몹시 추워 마치 한겨울 처럼 매섭다. 아침에 우우후와 방답을 불러 약밥을 같이 먹었다. 일찍 투항한 왜놈 다섯 명이 들어왔다. 그래서 그 온 까닭을 물으니, 저희네 장수가 성질이 모질고 일을 또 많이 시키므로 도망하여 와서 투항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가진 크고 작은 칼을 거두어 수루 위에 감추어 뒀다. 그러나 실은 부산에 있던 왜놈이 아니고 가덕도의 심안돈(심안둔:도진의홍)의 부하라는 것이다.

 

1월 9일 [양력 2월 6일]<병자> 흐리고, 추워서 살을 에는 것 같다.

오수(오수)가 청어(청어) 삼백예순 마리를 잡은 것을 하천수(하 천수)가 싣고 갔다. 각처에 공문을 써 나누어 보냈다. 저물 무렵에 경상수사가 와서 방어대책을 논의했다. 하늬바람이 불어 종일 배가 바다로 나가지 못햇다.

 

1월 10일 [양력 2월 7일]<정축> 맑으나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이른 아침에 적이 다시 나올지를 점쳤더니, 수레에 바퀴가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다시 점쳤더니, 임금을 보고 모두들 기뻐하는 것과 같다는 좋은 괘였다. 식사를 한 뒤에 대청으로 나가 공무를 봤다. 우우후가 어란포에 서 와서 봤다. 사도첨사도 왔다. 체찰사가 여러가지 물건을 나누어 주도록 세 위장에게 분부하였다. 웅천현감·곡포권관·삼천 포권관·적량만호가 아울러 와서 봤다.

 

1월 11일 [양력 2월 8일]<무인> 맑다.

하늬바람이 밤새도록 세게 불어 한겨울보다 갑절이나 더 춥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저녁나절에 거제현령이 와서 봤다. 그 도 수 사의 옳지 못한 일을 낱낱이 말했다. 광양현감이 들어왔다.

 

1월 12일 [양력 2월 9일]<기묘> 맑으나,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추위가 갑절이나 된다. 밤 두시쯤의 꿈에, 어느 한 곳에 이르러 영의정과 같이 한시간이 넘게 이야기하다가 의관을 다 벗어 놓고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나라를 걱정하는 생각을 서로 털어 놓다가 끝내는 가슴에 메인 것까지 쏟아 놓았다. 한참을 지나니 비바람 이 억세게 퍼부었는데도 흩어지지 않았다. 조용히 이야기하는 동 안 서쪽의 적이 급히 들어오고 남쪽의 적도 덤비게 된다면, 임금 이 어디로 가시겠는가 하고 걱정만 되뇌이며 할 말을 알지 못했 다. 일찍 듣건대, 영의정이 담천으로 몸이 몹시 편찮다고 했는데, 나았는지 모르겠다. 글자점을 던져 보았더니, 바람이 물결을 일으 키는 것과 같다고 했고, 또 오늘 중에 길흉이 어떤지를 점쳤더니,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은 것과 같다고 했다. 이 괘는 매우 좋 다. 엊저녁에 종 금을 본영으로 보냈는데 바람이 몹시 사납게 불어 염려가 된다. 저녁나절에 나가서 각처의 공문을 처리하여 보 냈다. 낙안이 들어왔다. 웅천현감이 보고한 내용에, “왜적선 열네 척이 와서 거제 금이 포(금이포)에 정박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경상수사에게 삼도의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가 보게 했다.

 

1월 13일 [양력 2월 10일]<경진> 맑다.

아침에 경상수사가 와서 보고하고 배를 타고 견내량으로 갔다.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가 공문을 처리하여 보냈다. 체찰사에게 올리는 공문을 내 보냈다. 성균관의 종은, 선비들이 성균관의 학 문을 다시 세운다는 글을 가지고 온 자인데 아뢰고 돌아갔다. 이 날 바람이 자고 날씨가 따사했다. 이 날 저녁에 달빛은 낮과 같고, 바람 한 점 없다. 홀로 앉아 있 으니, 마음이 어지러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신홍수(신홍수)를 불러 휘파람을 불게 했다. 밤 열시쯤에 잠들었다.

 

1월 14일 [양력 2월 11일]<신사>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저녁나절에야 바람이 자며 날씨는 따뜻한 것 같다. 흥양현감이 들어왔다. 정사립(정사립)·김대복(김대복)이 들어왔다. 조기(조 기)·김숙(김 )도 같이 왔다. 이 날 그 편에 연안옥(연안옥)의 외조모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밤 늦도록 이야기했다.

 

1월 15일 [양력 2월 12일]<임오> 맑고 따뜻하다.

밤 세시에 망궐례를 행했다. 아침에 낙안·흥양을 불러 같이 일찍 밥을 먹었다. 저녁나절 대청으로 나가 공문을 써 나누 어 보냈다. 이어서 투항해온 왜놈에게 술과 음식을 먹였다. 낙 안과 흥양의 전선·병기·부속물 및 사부와 격군들을 점고하니 낙안의 것이 가장 엉성하다고 했다. 이 날 저녁에 달빛이 몹시 맑으니 풍년이 듦직하다.

 

1월 16일 [양력 2월 13일]<계미> 맑다.

서리가 눈처럼 내렸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가장 늦게 경상수사·우우후 등이 와서 봤다. 웅천쳔감도 와서 취하여 돌아갔다.

 

1월 17일 [양력 2월 14일]<갑신> 맑다.

방답첨사가 휴가를 받고서 변존서(변존서)·조카 분(분)·김숙(김 ) 등과 같은 배로 나갔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오정에 나가 공무를 봤다. 우후를 불러 활을 쏠 적에 성윤문(성윤문)과 변익성 (변익성)이 와서 보고느 같이 활을 쏘고서 돌아갔다. 어둘 무렵 강대수(강대수) 등이 편지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종 금이(김) 16 일에 본영에 이르렀다.”고 했다. 종 경(경)은 돌아와서 말하기를 ” 아들 회( )가 오늘 은진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1월 18일 [양력 2월 15일]<을유> 맑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군복을 마름질했다. 저녁나절에 곤양군수 (이수일)·사천현감(기직남)이 왔다. 동래현감(정광좌)가 달려와서 보고하는데, “왜놈들이 많이 반역하는 눈치가 보이고, 유격 심유 경(심유경)(심유경)이 행장(소서행장)과 함께 1월 16일에 먼저 일 본으로 갔다.”고 했다.

 

1월 19일 [양력 2월 16일]<병술>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사도첨사와 여도만호가 왔다. 우후 ·곤양군수도 왔다. 경상수사가 왔다. 우우후를 불러 왔다. 곤양군수가 술을 차려서 내므로 조용히 이야기했다. 부산에 들 여 넣은 사람 네 명이 와서 전하기를, “심유경(심유경)과 소서행장(소서행장)· 현소(현소)· 정성(사택정성)· 소서비(소서비 :내등 여안)와 함께 1월 16일 새벽에 바다를 건너갔다”는 소식이다. 그래서 양식 서 말을 주어 보냈다. 이 날 저녁에 박자방(박자방) 이 서 순찰사가 진에 온다는 말과 여러 가지 물건을 가지러 본영으로 갔다. 오늘 메주를 쑤었다.

 

1월 20일 [양력 2월 17일]<정해> 종일 비가 내렸다.

몸이 몹시 피곤하여 낮잠을 반 시간을 잤다. 오후 두시쯤에 메주 쑤는 것을 마치고 굴뚝에 넣었다. 낙안군수가 와서, “둔전에서 거둔 벼를 실어왔다.”고 보고했다.

 

1월 21일 [양력 2월 18일]<무자> 맑다.

아침에 나가 공무를 봤다. 체찰사에게 보낼 순천 공문을 작성했 다. 밥을 먹은 뒤에 미조항첨사 및 흥양현감이 와서 보기에 술을 먹여 보냈다. 미조항첨사는 휴가를 신청했다. 저녁나절에 대 청으로 나가니 사도첨사·여도만호·사천현감·광양현감·곡포권 관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곤양군수도 왔다. 활 열 순을 쏘았다.

 

1월 22일 [양력 2월 19일]<기축> 맑다.

몹시 춥고 바람도 몹시 험하여 종일 나가지 않았다. 저녁나절 에 경상우후가 와서 그의 수사(권준)의 경솔한 짓을 전했다. 이 날 밤은 바람이 차고도 매우니 아이들이 들어오기가 고생스러울 것이 걱정된다.

 

1월 23일 [양력 2월 20일]<경인> 맑다.

작은 형님의 제삿날이라 나가지 않았다. 마음이 몹시 어지럽다. 아침에 헐벗은 군사 열일곱 명에게 옷을 주었다. 또 옷 한 벌을 주었다. 종일 바람이 험했다. 저녁에 가덕에서 나온 김인복(김 인복)이 와서 현신하므로 적의 정세를 물어 보았다. 밤 열시쯤에 아들 면( )·조카 완(완) 및 최대성(최대성)·신여윤(신여윤)·박 자방(박자방)이 본영에서 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는 편지 를 받아 보니 기쁘기 그지 없다. 종 경(경)도 왔다. 종 금(김)은 애수(애수) 및 금곡에 사는 종 한성(한성)·공석(공석) 등과 같이 왔다. 한밤에야 잠들었다. 눈이 두 치나 내렸다. 근래에 없던 일이라고 한다. 이 날 밤 몸이 몹시 불편하다.

 

1월 24일 [양력 2월 21일]<신묘> 맑다.

된바람이 세게 불어 눈보라를 치며 모래까지 휘날리니 사람이 감 히 걸어 다닐 수가 없고 배도 운항할 수가 없었다. 새벽에 견내 량 복병장이 보고하기를, “어제 왜놈 한 명이 복병한 곳에 와 서 투항하며 들어오기를 빌었다”고 하므로 보내라고 회답했다. 저녁나절에 우우후 및 사도첨사가 와서 봤다.

 

1월 25일 [양력 2월 22일]<임진> 맑다.

1월 26일 [양력 2월 23일]<계사> 맑으나 바람이 고르지 못했다.나가 공무를 보고 활을 쏘았다.

 

1월 27일 [양력 2월 24일]<갑오> 맑고 따사하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장흥(배흥립)의 죄를 심의 한 뒤에 흥양과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나절에 경상우도 순찰사 (서성)가 들어왔다. 그래서 오후 네시쯤에 우수사의 진으로 가서 보고, 한밤에 돌아왔다. 사도의 진무(진무)가 화약을 훔쳤다가 붙잡혔다.

 

1월 28일 [양력 2월 25일]<을미> 맑다.

늦게 나가 공무를 봤다. 오정 때에 순찰사가 왔다. 활을 쏘고 같이 이야기했다. 순찰사가 나

하고 활쏘기를 맞서서 겨루다가 일 곱 푼을 졌는데 섭섭한 빛이 없지 않았다. 혼자 웃었다.

군관 세 사람도 다 졌다. 밤이 든 뒤에 취하여 돌아갔다.

 

1월 29일 [양력 2월 26일]<병신> 종일 비가 내렸다.

일찍 식사를 한 뒤에 경상도 진으로 가서 순찰사와 같이 조용 히 이야기했다. 오후에 활을 쏘았는데, 순찰사가 아홉 푼을 졌다. 김대복(김대복)이 홀로 즐겁게 활을 쏘았다. 피리 소리를 듣다 가 한밤 자정에야 헤어져 진으로 돌아왔다. 저물 무렵에 사도에서 화약 훔친 자가 도주하였다.

 

1월 30일 [양력 2월 27일]<정유> 비오다가 저녁나절에야 개었다.

나가서 공무를 보고 군관이 활을 쏘았다. 천성보만호(윤홍년)· 여도만호(김인영)·적량만호(고여우)가 와서 보고서 돌아갔다. 이 날 저녁에 청주의 이희남(이희남)이 종 네 명과 준복(준복) 이 들어왔다.

 

병신년 2월 (1596년 2월)

 

2월 초1일 [양력 2월 28일]<무술> 아침에 흐리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여러 장수들과 함께 활을 쏘았다. 권숙(권삽)이 이곳에 왔다가 취해서 갔다.

 

2월 초2일 [양력 2월 29일]<기해> 맑고 따뜻하다.

울(울)과 조기(조기)가 같은 배로 나갔다. 우후도 갔다. 저녁에 사 도첨사가 와서 어사의 장계에 따라 파면되었다고 전했다. 그래서 곧 장계를 초잡았다.

 

2월 초3일 [양력 3월 1일]<경자> 맑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혼자 앉아서 자식의 떠난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아침에 장계를 수정했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그 편에 적량만 호 고여우(고여우)가 장담년(장담년)에게 소송을 당하여 순찰사가 장계를 올려 파면시키려 한다는 글을 보았다. 어둘 무렵 어란만 호가 견내량 복병한 곳에서 보고하기를, “부산의 왜놈 세 명이 성주에서 투항해 온 사람들을 데리고 복병한 곳에 이르러 장사하 겠다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곧 장흥부사에게 전령하여 내일 새 벽에 가서 타일러 보라고 시켰다. 이런 왜적들이 어찌 장사를 하고자 하겠는가. 우리의 허실의 정형(정형)을 엿보려는 것이다.

 

2월 초4일 [양력 3월 2일]<신축> 맑다.

아침에 장계를 봉하여 사도 사람 진무성(진무성)에게 부쳤다. 영의정과 신식(신식) 두 집에 문안 편지도 부쳤다. 저녁나절에 흥 양현감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오후에 활 열 순을 쏘았다. 여도만호· 거제현령·당포만호·옥포만호도 왔다. 저녁에 장흥부사가 복병한 곳에서 돌아와 왜놈들이 도로 들어갔다고 전했다.

 

2월 초5일 [양력 3월 3일]<임인> 아침에 흐리다가 저녁나절에야 개었다.

사도첨사·장흥부사가 일찍 왔다. 그래서 같이 아침밥을 먹었다. 권숙(권삽)이 와서 돌아가겠다고 하므로 종이·먹 두 개와 대 검(패도)을 주어 보냈다. 저녁나절에 삼도의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위로하는 음식을 먹이고, 겸하여 활을 쏘고 풍악을 잡히다 가 취하여 헤어졌다. 웅천현감(이운룡)이 손인갑(손인갑)의 애인을 데리고 왔다. 그래서 여러 장수들과 함께 가야금을 몇 곡조 들었다. 저녁에 김기실 (김기실)이 순천에서 돌아왔다. 그 편에 안부를 물었더니 평안하시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쁘고도 다행이다. 우수사의 편지가 왔는데 기한을 늦추자고 하니 우습고도 한탄스럽다.

 

2월 초6일 [양력 3월 4일]<계묘> 흐렸다.

새벽에 자귀쟁이(이장목수) 열 명을 거제로 보내어 배를 만드는 일을 시켰다. 이 날 침방에 천장 흙이 떨어진 곳이 있어서 수리 했다. 사도첨사 김완(김완)은 조도어사의 장계로써 파면되었다 는 기별이 또 이르렀다. 본디의 포구(골사도)로 내어 보냈다. 순천별감 유(유)와 군관 장응진(장응진) 등을 처벌하고 곧 수루로 들어갔다. 송한련(송한련)이 숭어를 잡아서 왔기에 여도·낙안· 흥양을 불러 같이 찢어 먹었다. 적량 고여우(고여우)가 큰 매를 가지고 왔으나 오른쪽 발가락이 다 얼어서 무지러졌으니 어찌하랴! 초저녁에 잠깐 땀이흘렀다.

 

2월 초7일 [양력 3월 5일]<갑진> 아침에 흐리다가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몸이 좋지 않다. 저녁나절에 나가 군사들에게 음식을 먹였다. 장흥부사· 우후· 낙안군수· 흥양현감을 불러 이야기하다가 날이 저 물어서야 헤어졌다.

 

2월 초8일 [양력 3월 6일]<을사> 맑다.

이른 아침에 녹도만호가 와서 봤다. 아침에 벚나무 껍질을 마 름질했다. 저녁나절에 손인갑의 애인이 들어와 한참을 있었다. 오 철(오철)·현응원을 불러 군사에 대한 일을 물었다. 저녁에 군량 에 대한 장부를 만들었다. 흥양현감이 둔전의 벼 삼백쉰두 섬 을 바쳤다. 하늬바람이 세게 불어 배를 다니게 할 수가 없었다. 류황을 내보내려 했는데 떠나지 못했다.

 

2월 초9일 [양력 3월 7일]<병오> 맑다.

하늬바람이 세게 불어 배가 다니지 못했다. 저녁나절에 경상수 사 권준(권준)이 와서 이야기하고 활 열 순을 쏘았다. 저녁에 바 람이 잤다. 견내량과 부산의 왜적선 두 척이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웅천현감 및우후를 탐색하러 보냈다.

 

2월 10일 [양력 3월 8일]<정미> 맑고 따사했다.

이 날 일찌기 박춘양(박춘양)이 대를 실어 왔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고 태구생의 죄를 다스렸다. 저녁에 몸소 곳집 짓는 곳을 보았다. 아침에 웅천·우우후가 견내량에서 돌아와 서, 왜놈들이 겁에 질려 두려워하는 모양을 보고했다. 어두울 무 렵 창녕사람이 술을 가져왔다.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2월 11일 [양력 3월 9일]<무신> 맑다.

아침에 체찰사에게 공문을 만들어 보냈다. 보성의 계향유사(군 량보급 책임자) 림찬(임찬)이 소금 쉰 섬을 실어 갔다. 임달영(임 달영)이 논산(논산)에서 돌아왔다. 논산(논산)의 편지와 박종 백(박종백)·김응수(김응수)의 편지도 가지고 왔다. 장흥부사와 우우후가 왔다. 또 낙안군수와 흥양현감을 불러 활을 쏘았다. 막 해떨어질 무렵 영등포만호가 그 소실을 데리고 술을 들고 와서 권했다. 나이 젊은 계집도 왔는데 놔두고 돌아갔다. 땀을 흘렸다.

 

2월 12일 [양력 3월 10일]<기유> 맑다.

일찌기 창녕사람이 웅천 별장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살대(전 죽) 쉰 개를 경상수사에게 보냈다. 저녁나절에 수사가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활을 쏘았다. 장흥부사·흥양현감도 같이 쏘 다가 어둘 무렵에 헤어졌다. 나이 젊은 계집은 초저녁에 돌아갔다.

 

2월 13일 [양력 3월 11일]<경술> 맑다.

식사를 한 뒤에 공무를 봤다. 강진현감(이극신)이 기일 어긴 죄를 처벌했다. 가리포첨사는 보고하고 늦게 왔으므로 타일러 내보냈 다. 영암군수(박홍장)를 파면시킬 장계를 초잡았다.

저녁에 어란포만호가 돌아갔다. 임달영(임달영)도 돌아갔다. 제주목 사(이경록)에게 청어(청어)·대구(대구)·화살대(전죽)·곶감 (건시)·삼색부채를 봉하여 보냈다.

 

2월 14일 [양력 3월 12일]<신해>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고 장계 초잡은 것을 수정했다. 동복 (동복)의 계향유사 김덕린(김덕린)이 와서 인사했다. 경상수사 가 쑥떡과 초 한 쌍을 보내 왔다. 새로 지은 곳집에 지붕을 이 었다. 낙안군수·녹도만호 등을 불러서 떡을 먹었다. 조금 있으 니 강진현감이 와서 인사하므로 위로하고 술을 먹였다. 저녁에 물을 부엌가로 끌여들이는데 물 긷는 수고를 편하게 했다. 이 날 밤 바다의 달빛은 대낮 같고 물결은 비단결 같은데 홀로 높은 수루에 기대어 있으니 마음이 무척 어지럽다. 밤이 깊어서야 잠 자리에 들었다. 흥양의 계향유사 송상문(송상문)이 와서 쌀과 벼를 합해 일곱 섬 을 바쳤다.

 

2월 15일 [양력 3월 13일]<임자>

새벽에 망궐례를 하려 했으나, 비가 몹시 내려 마당이 젖었기 때 문에 거행하지 않았다. 어두울 무렵 전라우도의 투항해 온 왜 놈과 경상도의 투항해 온 왜놈이 같이 짜고 도망갈 꾀를 낸다고 들었다. 그래서 전령을 내어 알렸다. 아침에 화살대를 가려내어 큰 살대 백열한 개와 그 다음 대 백쉰 네 개를 옥지(옥지)에게 주었다. 아침에 장계 초잡은 것을 수정 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는데, 웅천현감·거제현령·당포 만호·옥포만호·우우후·경상우후가 아울러 와서 보고 돌아갔 다. 순천 둔전에서 거둔 벼를 내가 직접 보는 앞에서 받아들이게 했다. 동복의 계향유사 김덕린(김덕린)·흥양의 계향유사 송상 문(송상문) 등이 돌아갔다. 저녁에 사슴 한 마리, 노루 두 마리를 사냥하여 왔다. 이 날 밤 달빛은 대낮 같고 물결은 비단결 같아 자려 해도 잠잘 수가 없었 다. 아랫사람들은 밤새도록 술마시고 노래했다.

 

2월 16일 [양력 3월 14일]<계축> 맑다.

아침에 장계 초잡은 것을 수정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장흥부사·우우후·가리포첨사가 와서 같이 활을 쏘았다. 군관들은 지난날 승부내기에서 진 편이 한턱 내었는데 몹시 취하여 헤어졌다. 이 날 밤은 너무 취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앉았다 누었다 하다가 새벽이 되었다. 봄철 노곤한 기운이 벌써 이렇구나.

 

2월 17일 [양력 3월 15일]<갑인> 흐렸다.

나라제삿날(세종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식사를 한 뒤에 아들 면( )이 본영으로 갔다. 박춘양(박춘양)과 오수(오수)가 조 기 잡는 곳으로 갔다가 어제의 취기가 아직도 심하니 불안했다. 저녁에 흥양현감이 와서 이야기하다가 저녁 식사를 같이 했 다. 미조항첨사 성윤문(성윤문)의 문안 편지가 왔는데, “방금 관 찰사(방백)의 공문을 받고 진주성(진성)으로 부임하게 되어 나아 가 인사드리지 못한다. 자기 대신으로 황언실이 되었다”고 했다. 웅천현감의 답장이 왔다. 임금의 유서(유서)는 아직 받지 못했다 고 했다. 이 날 어두울 무렵에 하늬바람이 세게 불어 밤새도록 그치지 않는다. 아들이 떠나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을 걷잡을 수 가 없다. 아픈 가슴을 말할 수 없다. 봄철 기운이 사람을 괴롭혀 몹시 노곤하다.

 

2월 18일 [양력 3월 16일]<을묘>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저녁 나절에 체찰사의 비밀 공문이 세 통 왔다. 그 하나는 제주목에 게 계속하여 후원하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등포만호 조계종(조 계종)을 심문하는 일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도 전선(전 선)을 아직은 독촉하여 모으지 말라는 것이었다. 저녁에 김국(김 국)이 서울에서 들어와서 비밀 공문 두 통과 역서(역서) 한 건 을 가지고 왔다. 승정원의 기별도 왔다. 황득중(황득중)은 쇠를 싣고 와서 바쳤다. 절(절)이 술을 가지고 왔다. 땀이 온몸을 적셨다.

 

2월 19일 [양력 3월 17일]<병진> 맑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들 면( )이 잘 갔는지 못 갔는지 몰라서 밤새도록 무척 걱정 했다. 이 날 저녁 소문에 낙안의 군량선이 바람에 막혀 사량에 대었다가 바람이 자야 떠날 것이라고 했다. 이 날 새벽에 경상 도의 진(진)에 남아 있는 투항한 왜놈을 이곳에 있는 왜놈 난에 몬(난여문 :남여문) 등을 시켜 묶어 와서 목을 베게 했다. 경상수 사 권준(권준)이 왔다. 장흥부사·웅천현감·낙안군수·흥양현감 ·우우후·사천현감 등과 같이 부안에서 온 술을 끝까지 다마셔 없앴다. 황득중(황득중)이 가져온 총통 만들 쇠를 저울로 달아 서 보관했다.

 

2월 20일 [양력 3월 18일]<정사> 맑다.

일찌기 조계종(조계종)이 현풍수군 손풍련(손풍련)에게서 소송을 당했으므로 서로 마주하여 공술하려고 여기에 왔다가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고 공문을 적어 나누어 보냈다. 손만세(손만세)가 사사로이 입대(입대)에 관한 공문을 만들었기에 그 죄를 처벌했다.

오후에 활 열 순을 쏘았다. 낙안군수·녹도만 호가 같이 왔다. 비가 올 것만 같다. 새벽에 기운이 노곤했다.

 

2월 21일 [양력 3월 19일]<무오>

궂은비가 새벽부터 세차게 오더니 저녁나절에야 그쳤다. 그래서 나가지 않고 혼자 앉아 있었다.

 

2월 22일 [양력 3월 20일]<기미> 맑고 바람이 없다.

일찌기 식사를 하고 나가 앉아 있으니, 웅천현감·흥양현감이 와서 봤다. 흥양현감은 몸이 불편하여 먼저 돌아갔다. 우우후·장흥부사·낙안군수·남도포만호·가리포첨사·여도만호 ·녹도만호가 와서 활을 쏘았다. 나도 활을 쏘았다. 손현평(손현 평)도 와서 몹시 취하여 헤어졌다. 이 날 밤 땀을 흘렸다. 봄철 기운이 사람을 노곤하게 한다. 강소작지(강소작지)가 그물을 가지러 본영으로 갔다. 충청수사가 화살대를 와서 바쳤다.

 

2월 23일 [양력 3월 21일]<경신> 맑다.

일찍 식사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둔전의 벼를 다시 되어 세 곳간에 백예순일곱 섬을 쌓았다. 없어진 것이 마흔여덟 섬이다. 저녁나절에 거제현령·고성현감·하동현감·강진현감·회령포 만호가 와서 봤다. 하천수(하천수)·이진(이진)도 왔다. 방답첨사가 들어왔다.

 

2월 24일 [양력 3월 22일]<신유> 맑다.

일찍 식사를 하고 나가 앉아서, 둔전의 벼를 다시 되는 것을 감 독했다. 우수사가 들어왔다.

오후 네시쯤에 비바람이 세게 일었 다. 둔전의 벼를 다시 된 수량 백일흔 섬을 곳간에 넣었다. 없 어진 것이 서른 섬이다. 낙안군수(선의경)가 갈렸다는 기별이 왔다. 방답첨사·흥양현감이 와서 모였다. 배를 본영으로 보낼려 할 적에 비바람 때문에 그만뒀다. 밤내내 바람이 그치지 않았다. 오래도록 노곤하다.

 

2월 25일 [양력 3월 23일]<임술> 비가 오다가 오정 때에 개었다.

장계 초잡은 것을 수정했다. 저녁나절에 우수사가 왔다. 나주판관도 왔다. 장흥부사가 와서, “수군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관 찰사가 방해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이진(이진)이 둔전으로 돌아갔다. 춘절(춘절)·춘복(춘복)·사화(사화)가 본영으로 돌아갔다.

 

2월 26일 [양력 3월 24일]<계해> 아침에 맑았는데 저물 무렵에는 비가 왔다.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갔다. 여도만호·흥양현감이 와서 영리들 이 백성을 점점 움켜잡는 폐단을 말했다. 극히 해괴한 일이다. 양 정언(양정언)과 영리 강기경(강기경)·이득종(이득종)·박취(박취) 등을 중죄로 다스리고 곧 경상·전라수사가 있는 영리를 잡아들 이라고 전령을 내렸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조금있으니, 견내량 복병이 달려와서 보고 하기를, “왜적선 한 척이 견내량을 거쳐 들어와 해평장에 이를 적에 머물지 못하게 했다”고 하였다. 둔전에서 거둬들인 벼 이백 서른 섬을 고쳐 일백아흔여덟 섬으로 바로 잡아 서른두 섬이 줄 었다고 했다. 낙안에게 이별 술을 대접해 보냈다.

 

2월 27일 [양력 3월 25일]<갑자> 흐리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이 날 녹도만호 등과 함께 활을 쏘았다. 흥양현감이 휴가를 받 아 돌아갔다. 둔전에서 거둬들인 벼 이백스무 섬을 고쳐서 바로 잡으니 줄은 것이 여러 섬이었다.

 

2월 28일 [양력 3월 26일]<을축> 맑다.

일찍 침을 맞았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 있으니 장흥부사와 체찰사의 군관이 이곳에 이르렀는데, 장흥부사는 종사관이 발행 한 전령으로 자기를 잡아러 온 일 때문에 왔다고 했다.

또 전라도 수군 안에서 우도의 수군이 전라좌·우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제주와 진도를 성원한다고 했다. 우습다. 조정에서 꾀하는 정책이 이럴 수가 있나! 체찰사가 꾀를 내는 것이 이렇게도 알맹이가 없단 말인가! 나라의 일이 이러하 니 어찌할꼬! 어찌할꼬! 저녁에 거제현령을 불러 와서 일을 물어보고 나서 돌려 보냈다.

 

2월 29일 [양력 3월 27일]<병인> 맑다.

아침에 공문 초잡은 것을 수정했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앉아 있으니, 우수사 및 경상수사·장흥부사·체찰사의 군관이 왔다. 경상우도 순찰사의 군관이 편지를 가지고 왔다.

 

2월 30일 [양력 3월 28일]<정묘> 맑다.

아침에 정사립(정사립)으로 하여금 보고문을 써서 체찰사에게 보 냈다. 장흥부사도 체찰사에게 갔다. 해가 뉘엿할 때 우수사가 보 고하는데, “벌써 바람이 따뜻해졌으니 협동작전할 계획이 시급하 여 소속 부하를 거느리고 본도(전라우도)로 가고자 한다”는 것이 었다. 그 마음 가짐이 몹시도 해괴하여 그의 군관 및 도훈도에게 곤장 일흔 대를 때렸다. 저녁에 송희립(송희립)·노윤발(노윤발) ·이원룡(이원룡) 등이 들어왔다. 희립은 또 술을 가지고 왔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밤새도록 식은 땀을 흘렸다.

 

 

 

병신년 3월 (1596년 3월)

 

3월 초1일 [양력 3월 29일]<무진>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아침에 경상수사가 와서 이야기하고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해남현감 류형(유형)·임치첨사 홍견(홍견) ·목포만호 방수경(방수경)에게 기일을 어긴 죄로 처벌했다. 해남현감은 새로 부임해 왔으므로 곤장을 치지는 않았다.

 

3월 초2일 [양력 3월 30일]<기사> 맑다.

아침에 장계 초잡은 것을 수정했다. 보성군수가 들어왔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공무를 보지 않았다. 몸이 노곤하고 땀이 배니, 이건 병이 날 원인이다.

 

3월 3일 [양력 3월 31일]<경오> 맑다.

이원룡(이원룡)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반관해(반관해) 가 왔다. 정사립(정사립) 등을 시켜 장계를 썼다. 이 날은 명절(삼 짇날)이라 방답첨사·여도만호·녹도만호 및 남도포만호 등을 불러 술과 떡을 먹였다. 일찌기 송희립(송희립)을 우수사에게 보 내어 뉘우치는 뜻을 전하니, 은근하게 대답하더라고 했다. 땀이 배었다.

 

3월 4일 [양력 4월 1일]<신미> 맑다.

아침에 장계를 봉했다. 느지막이 보성군수 안홍국을 기일을 어긴 죄로 처벌했다. 오정 때에 출항하여 곧바로 소근포 끝으로 돌아 경상우수사가 있는 곳에 이르니, 좌수사 이운룡(이운룡)도 왔다. 조용히 이야기하고서 그대로 자리도(좌리도:진해시 웅천동) 바다 가운데서 같이 잤다. 덧없이 땀이 흘렀다.

 

3월 5일 [양력 4월 2일]<임신> 맑다가 구름이 끼었다.

새벽 세 시에 출항하여 해가 뜰 무렵에 견내량의 우수사가 복병 한 곳에 이르니, 마침 아침먹을 때였다. 그래서 밥을 먹고 난 뒤에 서로 보고서 다시 잘못된 것을 말하니 우수사(이억기)는 사 과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일로 술을 마련하여 잔뜩 취하여 돌아왔다. 그 길에 이정충(이정충)의 장막으로 들어가 조 용히 이야기하는데 취하여 엎어지는 줄도 깨닫지 못했다. 비가 많이 쏟아지므로 먼저 배로 내려가니, 우수사는 취하여 누 워서 정신을 못차리므로 말을 못하고 왔다. 우습다. 배에 이르니, 회·해·면·울(울) 및 수원(수원) 등이 함께 와 있었다. 비를 맞으며 진 안으로 돌아오니, 김혼(김혼)도 왔다. 같이 이야기하다가 자정이 되어 잤다. 계집종 덕금(덕금)·한대 (한대)· 효대(효대)와 은진(은진)의 계집종이 왔다.

 

3월 6일 [양력 4월 3일]<계유>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새벽에 한대(한대)를 불러 까닭을 물었다. 아침에 몸이 불편했 다. 식사를 한 뒤에 하동현감(신진)·고성현령(조응도)·함평현감 (손경지)·해남현감(류형)이 아뢰고 돌아갔다. 남도포만호(강응표) 도 돌아갔는데, 기일을 5월 10일로 정했다. 우우후와 강진현감(이 극신)에게는 8일이 지난 뒤에 나가도록 일렀다. 함평현감(손경지)·남해현감(박대남)·다경포만호(윤승남) 등이 칼을 썼다. 땀이 이토록 흘렀다. 사슴 세 마리를 사냥해 왔다.

 

3월 7일 [양력 4월 4일]<갑술> 맑다.

새벽에 땀이 흘렀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봤다. 가리포첨사 ·여도만호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머리카락을 오랫동안 빗었다. 녹도만호가 노루 두마리를 (사냥해 왔다.)

 

3월 8일 [양력 4월 5일]<을해> 맑다.

아침에 안골포만호(우수)·가리포첨사(이응표)가 각각으로 큰 사슴 한 마리씩을 보내 왔다.

가리포첨사도 보내 왔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앉아 있으니, 우수사· 경상수사· 좌수사· 가리포첨사· 방답첨사· 평산포만호· 여도만호· 우우후· 경상우후·강진 현감 등이 와서 같이 종일 몹시 취하여서 헤어졌다. 저녁에 비가 잠시 왔다.

 

3월 9일 [양력 4월 6일]<병자> 아침에 맑다가 저물 때에 비가 내렸다.

우우후 및 강진현감이 돌아가겠다고 하므로 술을 먹였더니 몹시 취했다. 우우후는 취하여 쓰러져 돌아가지 못했다. 저녁에 좌수사 가 왔기에 작별의 술잔을 나누었더니 취하여 대청에서 엎어져 잤 다. 개(개? 계집종의 이름인 듯)와 같이 잤다.

 

3월 10일 [양력 4월 7일]<정축> 비가 내렸다.

아침에 다시 좌수사를 청했더니 와서 작별의 술잔을 나누니 온종 일 무척 취하여 나가지 못했다. 덧없이 땀이 흘렀다.

 

3월 11일 [양력 4월 8일]<무인> 흐렸다.

해·회·완(완) 및 수원(수원)은 계집종 세 사람과 더불어 나갔다. 이 날 저녁에 방답첨사(장린)가 성낼 일도 아닌데 공연히 성을 내어 상선(상선)의 물긷는 기전자(전자)에게 곤장 을 쳤다니, 참으로 놀랄 일이다. 곧 군관과 이방(이방)을 불러 군관에게는 스무 대, 이방(이방)에게는 쉰 대를 매로 볼기쳤다. 저녁나절에 구 천성보만호가 하직하고 돌아가고, 새 천성보만호는 체찰사의 공문으로 병사에게 잡혀 갔다. 나주판관도 왔기에 술을 먹여서 보냈다.

 

3월 12일 [양력 4월 9일]<기묘> 맑다.

아침 밥을 먹은 뒤에 몸이 노곤하여 잠깐 잠을 잤더니 처음으로 피로가 가신 듯하다. 경상수사가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여도 만호·금갑도만호·나주판관도 왔다. 군관들이 술을 내었다. 저녁에 소국진(소국진)이 체찰사에게서 돌아왔는데, 그 회답에 우도의 수군을 합하여 본도로 보내라는 것은 본의가 아니라고 하 였다. 우습다. 그 편에 들으니 원흉(원균)은 곤장 마흔 대를, 장흥 부사는 스무 대를 맞았다고 했다.

 

3월 13일 [양력 4월 10일]<경진> 종일 비가 내렸다.

저녁에 견내량 복병이 달려와 아뢰기를, “왜적선이 연이어 나 오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여도만호·금갑도만호 등을 뽑아 보냈다. 봄비가 오는 가운데 몸이 노곤하여 누워서 앓았다.

 

3월 14일 [양력 4월 11일]<신사> 궂은비가 걷히지 않는다.

새벽에 삼도에서 급한 보고가 왔는데, “견내량 근처의 거제땅 세 포(사등면 성포리)에 왜적선 다섯 척과 고성땅에 다섯 척이 정박 하여 뭍에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삼도의 여러 장수들에게 배 다 섯 척을 더 뽑아 보내도록 전령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 고 각 처에 공문을 처리하여 보냈다. 아침에 군량 회계하는 것을 마쳤다. 방답첨사·녹도만호가 와서 봤다. 체찰사에게 공문을 보낼려고 서류를 만들었다. 봄철 노곤함이 이에 이르니 밤새도 록 땀

이 흘렀다.

 

3월 15일 [양력 4월 12일]<임오>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가리포첨사·방답첨사·녹도만호가 와 서 참례했는데, 우수사와 다른 사람은 오지 않았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함께 술에 취하여 가면서 덕(덕)과 아랫방에서 수군거렸다고 했다. 이 날 저물 무렵 바다에 달빛이 어슴푸레 밝았다.

몸이 노곤하여 축 갈아 앉는다. 밤새도록 식 은 땀이 흘렀다. 한밤에 비가 몹시 왔다. 낮에는 노곤하여 머리를 빗었는데 덧없이 땀이 흘렀다.

 

3월 16일 [양력 4월 13일]<계미> 비가 퍼붓듯이 내리며 종일 그치지 않았다.

오전 여덟 시쯤에 시마바람이 세게 불어 지붕이 뒤집힌 곳이 많고 문과 창이 깨지고 창호지도 찢어져 비가 방안으로 새어 들어 와서 사람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오정 때에야 바람이 잤다. 저녁에 군관을 불러 와서 술을 먹였다. 한밤 한 시쯤에 비가 잠깐 그쳤다. 흐르는 땀이 어제와 마찬가지다.

 

3월 17일 [양력 4월 14일]<갑신> 종일 가랑비가 내리더니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저녁나절에 나주판관이 와서 봤다. 그래서 취하게 하여 보냈다. 어둘 무렵에 박자방(박자방)이 들어왔다. 이 날 밤에 식은 땀이 등에까지 흘러 두겹 옷이 흠뻑 다 젖고, 자는 이부자리도 젖었다. 몸이 불편하다.

 

3월 18일 [양력 4월 15일]<을유> 맑다.

샛바람이 종일 불고 날씨는 몹시 싸늘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서 솟장을 처리해 주었다.

방답첨사·금갑도만호·회령포만 호·옥포만호 등이 와서 봤다. 활 열 순을 쏘았다. 이날 밤 바다의 달빛이 어슴푸레 비치고 밤기운이 몹시 차다. 자려해도 잠을 이룰 수 없어 앉았다 누었다 하기도 불편하고 다시 몸이 불편 해졌다.

 

3월 19일 [양력 4월 16일]<병술> 맑다.

샛바람이 세게 불고 날씨는 몹시도 싸늘했다. 아침에 새로 만든 가야금에 줄을 매었다. 저녁나절에 보성군수가 부침하는 것을 살펴볼 일로 휴가를 받았다. 김혼(김혼)이 같은 배로 나갔다. 종 경(경)도 같이 돌아갔다. 정량(정량)은 볼일이 있어 여기 왔다 가 돌아갔다. 저녁에 가리포첨사·나주반자가 와서 봤다. 술을 취 하도록 먹여서 보냈다. 어두울 무렵부터 바람이 몹시 사나왔다.

 

3월 20일 [양력 4월 17일]<정해> 종일 바람불고 비가 내렸다.

바람이 사납게 불고 비가 와서 종일 나가지 않았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바람막이를 두 개를 만들어서 걸었다. 밤새도록 비가 왔다. 땀이 옷과 이불을 적셨다.

 

3월 21일 [양력 4월 18일]<무자> 종일 큰 비가 내렸다.

초저녁에 도와리를 만나 구토를 한 시간이나 했는데, 자정이 되 니 조금 가라앉았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앉았다 누웠다 하 며 괜스레 일을 저지르는 것 같아 한스럽기 그지없다.

이 날은 너무 심심해서 군관 송희립(송희립)·김대복(김대복)·오철(오 철) 등을 불러 종정도(종정도)를 내기했다. 바람막이 세 개를 만들어 걸었는데, 이언량(이언량)과 김응겸(김응겸)이 감독했다. 한 밤이 지나서 비가 잠깐 그쳤다. 밤 세시에 이지러진 달빛이 비치어 방 밖으로 나가 거닐었다. 그래도 몸은 몹시 노곤했다.

 

3월 22일 [양력 4월 19일]<기축> 맑다.

아침에 종 금이(금)를 시켜서 머리를 빗게 했다. 저녁나절에 우수사는 경상수사와 같이 와서 보므로 술을 먹여 보냈다. 그 편에 들으니 작은 고래가 섬위로 떠밀려와서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박자방(박자방)을 보냈다. 이 날 어두울 무렵에 땀이 예사롭지 않게 흘렀다.

 

3월 23일 [양력 4월 20일]<경인> 맑다.

새벽에 정사립(정사립)이 와서 물고기 기름을 많이 짜서 가져 왔다고 했다. 새벽 세시에 몸이 불편하여 금이(금)를 불러 머리를 긁게 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서 각 곳의 공문을 처리하여 나누어 주었다. 활 열 순을 쏘았다. 조방장 김완(김완) 및 충청수 군의 배 여덟 척이 들어오고 우후도 왔다. 종 금이(금)가 편지를 가져 왔는데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했다.

초저녁이 지나 영등포만호가 그의 어린 계집을 데리고 술을 가져 왔다고 했다. 나는 거들떠 보지 않았다. 밤 열시쯤이 지나서 되돌아갔다. 이 날에 비로소 미역을 땄다. 한밤에 잠이 들었다. 땀이 흘러 옷을 적셨다. 그래서 옷을 갈아 입고 잤다.

 

3월 24일 [양력 4월 21일]<신묘> 맑다.

아침에 미역을 따러 나갔다. 헌 활집은 베로 만든 게 여덟 장, 솜 으로 만든 게 두 장인데, 활집 한 장은 고쳐서 만들려고 감을 내어 주었다. 아침 식사를 한 뒤에 나가 앉아서, 마량첨사 김응황 (김응황)·파지도권관 송세응(송세응)·결성현감 손안국(손안 국) 등을 처벌했다.

저녁나절에 우후가 가져온 술을 방답첨사·평 산포만호·여도만호·녹도만호·목포만호 등과 같이 마셨다. 나주판관 어운급(어운급)에게는 4월 15일로 기한으로 휴가를 주었다. 몸이 몹시 노곤하여 흐르는 땀이 예사롭지 않다. 이 날도 비가 올것 같다.

 

3월 25일 [양력 4월 22일]<임진>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종일 퍼부어 잠시도 비가 끊이지 않았다. 수루에 기대어 저녁 까지 보내니 마음이 언짢았다.

머리를 한참동안 빗었다. 낮에 땀이 옷을 적셨다. 밤에는 두겹 옷이 젖고 방 구들막까지 젖

었 다.

 

3월 26일 [양력 4월 23일]<계사> 맑고 마파람이 불었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 있으니, 조방장 및 방답첨사·녹도만호가 와서 활을 쏘았다. 경상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체찰사의 전령 이 왔는데, “전일(12일)에 우도의 수군을 돌려 보내라고 한 것은 회계(회계)를 잘못 본 탓이다.”고 하였다. 우습다.

 

3월 27일 [양력 4월 24일]<갑오> 맑다. 마파람이 불었다.

저녁나절에 나가 활을 쏘았다. 우후·방답첨사도 왔다. 충청도 마량첨사· 임치첨사· 결성현감· 파지도권관이 함께 왔다. 술을 먹여서 보냈다. 저녁에 신 사과와 아우 여필이 들어왔다. 그 편에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는 말을 들으니 기쁘고 다행하기 이를 데 없다.

 

3월 28일 [양력 4월 25일]<을미> 궂은비가 몹시 내리며 종일 개지 않았다.

나가 앉아서 공문을 만들어 나누어 보냈다. 충청도 뱃사람들이 다시 울짱을 설치하여 방비

했다.

 

3월 29일 [양력 4월 26일]<병신> 궂은비가 걷히지 않았다.

저녁나절에 부찰사(한효순)의 통지문이 먼저 이곳에 왔는데, 성주에서 진으로 온다고 했다.

 

병신년 4월 (1596년 4월)

 

4월 초1일 [양력 4월 27일]<정유> 비가 많이 내렸다.

신사과와 함께 이야기했다. 종일 비가 내렸다.

 

4월 초2일 [양력 4월 28일]<무술> 저녁나절에 개었다.

저물녘에 경상수사가 부찰사를 마중하는 일로 나갔다. 신사과는 같은 배로 갔다. 이 날 밤 몸이 몹시 불편했다.

 

4월 초3일 [양력 4월 29일]<기해> 맑고 마파람에 종일 불었다.

어제 저녁에 견내량 복병이 긴급보고한 내용에, “왜놈 네 명이 부산에서 장사하며 이익을 늘리려 나왔다가 바람에 표류되었다.” 고 했다. 그래서 새벽에 녹도만호 송여종(송여종)을 보내어 그렇게 된 까닭을 묻고 빼내오려고 보냈는데 그 정형(정적)을 살펴 보니, 정탐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을 목을 베었다. 우수사에게 가 볼려고 하다가 몸이 불편하여 못 갔다.

 

4월 초4일 [양력 4월 30일]<경자> 흐렸다.

아침에 오철(오철)이 나갔다. 종 금이(금이)도 같이 갔다. 아침에 체찰사의 공문에 도장을 찍어 벽에 붙였다. 여러 장수가 표신을 고쳤다. 우수사에게 가 보고는 취하여 이야기하고서 돌아왔다. 충청도의 군대에 울짱(목책)을 쳤다. 초저녁이 지나서 저녁밥을 먹었다. 속이 덥고 땀이 났다. 밤 열시쯤에 잠깐 비가 그쳤다.

 

4월 초5일 [양력 5월 1일]<신축> 맑다.

부찰사(한효순)가 들어왔다.

 

4월 초6일 [양력 5월 2일]<임인>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부찰사가 활쏘기를 시험했다. 저녁에 나는 우수사 등과 들어가 앉아서 군사들에게 같이 마주하여 음식을 먹였다.

 

4월 7일 [양력 5월 3일]<계묘> 맑다.

부찰사가 나가 앉아서 상을 나누어 주었다. 새벽에 부산 사 람이 들어왔는데, “명나라 사신(이종성)이 달아났다.”고 하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부찰사가 입봉(입봉)에 올라갔다. 점심을 먹은 뒤에 두 수사와 더불어 같이 이야기했다.

 

4월 8일 [양력 5월 4일]<갑진> 종일 비가 내렸다.

저녁나절에 들어가 마주 앉아 부찰사와 같이 마주하여 술을 마 시니 몹시 취하였다. 초파일이라 등불을 켜 달고 헤어졌다.

 

4월 9일 [양력 5월 5일]<을사> 맑다.

이른 아침에 부찰사가 나갔다. 그래서 배를 타고 포구로 나 가 같이 배에서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4월 10일 [양력 5월 6일]<병오> 맑다.

아침에 들으니 암행어사가 들어온다고 했다. 그래서 수사 이 하 포구로 나가 암행어사를 기다렸다. 조붕(조붕)이 와서 봤다. 그 모습을 보니 학질을 오래 앓아 주린 모습이 무척 야위었다. 참으로 딱했다. 저녁나절에 암행어사가 들어 와서 같이 내려가 앉아서이야기했 다. 촛불을 밝혀주고 헤어졌다.

 

4월 11일 [양력 5월 7일]<정미> 맑다.

아침을 먹고 어사와 같이 마주하여 조용히 이야기했다. 저녁나 절에 장병들에게 음식을 먹였다. 활 열 순을 쏘았다.

 

4월 12일 [양력 5월 8일]<무신> 맑다.

아침을 먹고 난 뒤에 어사가 밥을 지어 군사들에게 먹이게 한 뒤에 활 열 순을 쏘고 종일 이야기했다.

 

4월 13일 [양력 5월 9일]<기유> 맑다.

아침을 먹고 어사와 함께 마주해 있다가 느지막이 포구로 나갔더니, 마파람이 세게 불어 출항하지 못했다. 선인암(선인암)으로 가서 종일 이야기하고 저물어질 때 서로 헤어졌다. 저물어서야 거망포(거망초)에 이르렀는데 잘 갔는지 모르겠다.

 

4월 14일 [양력 5월 10일]<경술> 흐렸다가 종일 비가 내렸다.

아침을 먹고 나가 앉아서 홍주판관(박륜)·당진만호(조효열)가 교서에 숙배한 뒤에 충청우후 원유남(원유남)에게 곤장 마흔 대를 쳤다. 당진포만호도 같은 벌을 받았다.

 

4월 15일 [양력 5월 11일]<신해> 맑다.

단오절의 진상품을 봉해서 곽언수(곽언수)에게 받아다 내보냈다. 영의정(류성룡)·영부사 정탁(정탁)·판서 김명원(김명원)· 지사 윤자신(윤자신)·조사척·신식(신식)·남이공(남이공)에게 편지를 썼다.

 

4월 16일 [양력 5월 12일]<임자> 맑다.

아침을 먹고나서 나가 앉아서, 난에몬 등을 불러다가 불지른 왜 놈 세 놈이 누구누구인지를 물어본 뒤에 붙들어다가 죽여버렸다. 우수사·경상수사도 같이 앉아서 아우 여필이 가져온 술로 취 했다. 가리포첨사·방답첨사가 같이 마셨는데, 밤이 되어서야 헤어졌다. 이 날 밤바다에는 달빛이 차겁게 비치고 잔 물결 한 점 일지 않았다. 다시 땀을 흘렸다.

 

4월 17일 [양력 5월 13일]<계축> 맑다.

아침밥을 먹고 나서 아우 여필 및 아들 면( )이 종을 데리고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각 공문을 처리하여 나누어 주었다. 이 날 저녁에 울(울)이 안위(안위)에게 가서 보고 왔다.

 

4월 18일 [양력 5월 14일]<갑인> 맑다.

식사하기 전에 각 고을과 포구에 공문 및 솟장을 처리해 주었다. 체찰사에게 갈 공문을 내보냈다. 저녁나절에 충청우후·경상우후·방답첨사·조방장 김완(김완)과 더불어 활 스무 순을 쏘았다. 마도(마도)의 군관이 복병한 곳에서 투항해 온 왜놈 한 명 을 잡아 왔다.

 

4월 19일 [양력 5월 15일]<을묘> 맑다.

습열(습열: 습기로 일어나는 열)로 침 스무 여 곳을 맞았다. 몸 에 번열(번열:열이 나고 가슴이 답답함)이 나는 것 같아 종일 방 에서 나가지 않았다. 어두울 무렵 영등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종 목년(목년)과 금화(금화)·풍진(풍진) 등이 와서 인사했다. 이 날 아침에 난에몬(남여문) 편에 풍신수길이 죽었다는 말을 들 었다. 뛸 것 처럼 기쁘지만 믿을 수는 없다. 이 말은 진작부터 퍼졌었지만 아직은 확실한 기별이 온 것은 아니다.

 

4월 20일 [양력 5월 16일]<병진> 맑다.

경상수사가 와서 내일 만나자고 청했다. 활 열 순을 쏘고 헤어졌다.

 

4월 21일 [양력 5월 17일]<정사>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경상도의 진으로 가는 길에 우수사의 진에 들러 같이 갔다. 경상수사를 맞아 주며 종일 활을 쏘았다. 잔뜩 취해서 돌아왔다. 조방장 신호(신호)는 병으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영인(?영인)이 왔다.

 

4월 22일 [양력 5월 18일]<무오>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나가 앉아 있으니, 부산 허낸만(허내은만) 이 보낸 편지(고목)에 이르기를, 명나라 사신(이종성)이 달아 나고 부사(부사:양방형)는 여전히 왜놈의 진영에 있는데, 4월 초8일에 달아난 까닭을 상부에 아뢰었다고 했다. 김 조방장이 와 서 아뢰기를, 노천기(노천기)가 술을 먹고 주책없이 굴다가 본영 진무 황인수(황인수)·성복(성복) 등에게서 욕을 먹었다고 했다. 그래서 곤장 서른 대를 때렸다. 활 열 순을 쏘았다.

 

4월 23일 [양력 5월 19일]<기미> 흐렸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아침에 첨지 김경록(김경록)이 들어왔다. 일찍 아침밥을 먹고 나가 앉아 같이 술을 마셨다.

저녁나절에 군사들 중에서 힘센 자 들을 뽑아 씨름을 시켰더니, 성복(성복)이란 자가 판을 독차지 하였다. 그래서 상으로 쌀 말을 주었다. 활 열 순을 쏘았다. 충청우후 원유남(원유남)· 마량첨사(김응황)· 당진만호(조효열)· 홍주판관(박윤)· 결성현감(손안국)· 파지도권관(송세응)· 옥포만호(이담) 등과 같이 쏘았다. 한밤에 영인(영인)이 돌아갔다.

 

4월 24일 [양력 5월 20일]<경신>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목욕을 하고 나와 여러 장수들과 함께 이야기했다.

 

4월 25일 [양력 5월 21일]<신유> 맑다.

마파람이 세게 불었다. 일찌기 목욕하러 들어갔다가 한참 있었다. 저녁에 우수사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또 목욕탕에 들어갔 는데 물이 너무 뜨거워 오래 있지 못하고 도로 나왔다.

 

4월 26일 [양력 5월 22일]<임술> 맑다.

아침에 체찰사의 군관이 경상도로 갔다는 말을 들었다. 밥을 먹 은 뒤에 목욕했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체찰사의 군관 오(오)도왔다. 김양간(김량간)이 소를 싣고 올 일로 본영으로 갔다.

 

4월 27일 [양력 5월 23일]<계해> 맑다.

저녁에 한 번 목욕했다. 체찰사의 공문 회답이 왔다.

 

4월 28일 [양력 5월 24일]<갑자> 맑다.

아침·저녁으로 두 번 목욕했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와서 봤다. 경상수사는 뜸뜨느라고 오지 않았다.

 

4월 29일 [양력 5월 25일]<을축> 맑다.

저녁에 한 번 목욕했다. 투항해온 왜놈 사고에몬(사고여문)을 난에몬(남여문)에게 시켜 목을 베었다.

 

4월 30일 [양력 5월 26일]<병인> 맑다.

저녁에 한번 목욕했다. 우수사가 와서 봤다. 충청우후가 봐서 보고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부산의 허낸만(허내은만)의 편지 (고목)가 왔는데, 소서행장(소서행장)이 군사를 철수할 뜻이 있 는 것 같다. 김경록(김경록)이 돌아갔다. 어머니께서 무사하다는 편지가 왔다.

 

병신년 5월 (1596년 5월)

 

5월 초1일 [양력 5월 27일]<정묘>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경상수사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한 번 목욕했다.

 

5월 2일 [양력 5월 28일]<무진> 맑다.

일찍 목욕하고 진으로 돌아왔다. 총통 두 자루를 부어 만들었다. 조방장 김완(김완) 및 조계종(조계종)이 와서 봤다. 우수사가 김인복(김인복)의 목을 베어 효시했다. 이 날은 공무를 보지 않았 다.

 

5월 3일 [양력 5월 29일]<기사> 맑다.

가뭄이 너무 심하다. 근심되고 괴로운 맘을 어찌 다 말하랴! 공무를 보지 않았다. 경상우후가 와서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저물어서 들어왔다. 총통 두 자루를 녹여 만들었다.

 

5월 4일 [양력 5월 30일]<경오> 맑다.

이 날은 어머니 생신인데 헌수하는 술 한 잔도 올려 드리지 못하여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나가지 않았다. 오후에 우수사가 사무보는 집에서 불이 나서 다 탔다. 이 날 저녁에 문충공(문촌 공)이 부요(부요)에서 왔다. 조종(조종)의 편지를 가져 왔는데, 조 정(조정)이 4월 초하루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슬프고도 애달프다. 우후가 앞산마루에서 여귀(제사 못받은 귀신)에게 제사지냈다.

 

5월 5일 [양력 5월 31일]<신미> 맑다.

이 날 새벽에 여귀에게 제사를 지냈다. 일찌기 아침밥을 먹고 나가 앉아 있고, 회령포만호가 교서에 숙배한 뒤에 여러 장수 들이 와서 모였다. 그대로 들어가 앉아서 위로하고 술을 네 순 배를 돌렸다. 경상수사가 술이 거나하게 취했으므로 씨름을 시켰더니, 낙안군수 림계형(임계형)이 으뜸이다. 밤이 깊도록 이들로 하여금 즐겁게 마시고 뛰놀게 한 것은 내 스스로에게 즐겁고자 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생한 장병들의 노고를 풀어 주고자 한 것이었다.

 

5월 6일 [양력 6월 1일]<임신> 아침에 흐렸다가 저녁나절에 큰 비가 왔다.

농민의 소망을 흡족하게 채워주니 기쁘고 다행한 마음을 이루 말 할 수 없다. 비가 오기 전에 활 대여섯 순을 쏘았다. 비가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땅거미질 무렵 총통 만들 때에 쓰는 숯을 쌓아두는 창고에 불이 일어나 홀랑 다 타버렸다. 이는 감독관(감 관) 놈들이 삼가지 않은 탓이다. 새로 받아들인 숯에 묵은 불이 있는지 살피지 않아 이런 재난을 보게 된 것이다. 참으로 한탄스럽다. 울(울)과 김대복(김대복)이 같은 배로 나갔다. 비가 엄청 나게 쏟아져 잘 갔는지 못 갔는지 모르겠다. 밤새도록 앉아서 걱정했다.

 

5월 7일 [양력 6월 2일]<계유> 비가 내렸다. 저녁나절에 개었다.

이 날 걱정한 것은 울(울)이 가다가 잘 도착했는지 아닌지 였다. 앉아서 밤새도록 걱정하고 있을 적에 사람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 가 나기에 열고서 물어보니, 이영남(이영남)이 들어왔다. 불러 들여 조용히 지난 일을 이야기했다.

 

5월 8일 [양력 6얼 3일]<갑술> 맑다.

아침에 이영남(이영남)과 함께 이야기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봤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활 열 순을 쏘았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두 번이나 구토했다. 이 날 영산 이중(이중)의 무덤을 파낸다는 말을 들었다. 저녁에 조카 완(완)이 들어왔다. 김효성 (김효성)도 왔다. 비인현감(신경징)이 들어왔다.

 

5월 9일 [양력 6월 4일]<을해> 맑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이영남과 함께 서관(서관: 황해도와 평안도) 의 일을 이야기했다. 초저녁에 비가 뿌리더니 새벽까지 왔다. 부안 전선에서 불이 났으나, 심하게 타지 않았다니 다행이다.

 

5월 10일 [양력 6월 5일]<병자> 맑다.

나라제삿날(태종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몸도 불편하여 종일 끙끙 앓았다.

 

5월 11일 [양력 6월 6일]<정축> 맑다.

새벽에 앉아서 이정(이정)과 함께 이야기했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비인현감 신경징(신경징)에게 기일을 어긴 죄 로 곤장 스무 대를 쳤다. 또 순천 격군과 감관 조명(조명)의 죄 를 곤장쳤다. 몸이 불편하여 일찍 들어와 끙끙 앓았다. 거제현령 ·영등포만호는 이영남(이영남)과 같이 잤다.

 

5월 12일 [양력 6월 7일]<무인> 맑다.

이영남(이영남)이 돌아갔다. 몸이 불편하여 종일 신음했다. 김해 부사(백사림)의 긴급보고가 왔는데 “부산에서 왜놈에게 붙었던 김필동(김필동)의 편지(고목)도 온 것에도 풍신수길이 비록 정 사(정사)는 없다지만 부사(부사)가 그대로 있으니, 곧 화친하고 군사를 철수하려고 한

다”고 했다.

 

5월 13일 [양력 6월 8일]<기묘> 맑다.

부산의 허낸만(허내은만)의 편지(고목)가 왔는데, 가등청정이란 놈이 벌써 초10일에 그의 군사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갔고, 각 진의 왜놈들도 장차 철수해 갈 것이요, 부산의 왜놈은 명나라 사신을 모시고 바다를 건너 가려고 아직 그대로 머물고 있다고 했다. 이 날 활 아홉 순을 쏘았다.

 

5월 14일 [양력 6월 9일]<경진> 맑다.

김해부사 김사림(백사림)의 긴급 보고 내용에도 허낸만(허내은 만)의 편지(고목)와 같다. 그래서 순천부사에게 통보하여 그 로 하여금 차례로 통보하게 했다. 활 열 순을 쏘았다. 결성현감 손안국(손안국)이 나갔다.

 

5월 15일 [양력 6월 10일]<신사>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우수사는 오지 않았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서 앉아 있다가 들으니 한산도 뒷산 마루로 달려 올라 가 다섯 섬과 대마도를 바라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혼자 말을 타고 올라가서 이를 보니 과연 다섯 섬과 대마도가 보였다. 저녁나절에 작은 개울가로 돌아왔다. 조방장· 거제현령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날이 저물어서야 진으로 돌아왔다. 어두워서 따뜻한 물에 목욕하고서 잤다. 밤바다에 달은 밝고 바람 한 점 없다.

 

5월 16일 [양력 6월 11일]<임오> 맑다.

아침에 송한련(송한련)의 형제가 물고기를 잡아 왔다. 충청우후 (원유남)· 홍주판관(박륜)· 비인현감(신경징)·파지도권관(송세응) 등이 왔다. 우수사(이억기)도 와서 보고 돌아갔다. 이날 밤 비가 많이 올 것 같더니 한밤에 비가 왔다. 이 날 밤 정화수(정화 수)를 마시고 싶었다.

 

5월 17일 [양력 6월 12일]<계미> 종일 비가 내렸다.

농사에 아주 흡족하다. 점을 쳐보니, 풍년이 들것 같다. 저녁나 절에 영등만호 조계종(조계

종)이 들어와 봤다. 혼자 읊조리며 수루에 기대어 있었다.

 

5월 18일 [양력 6월 13일]<갑신> 비가 잠깐 개긴 했으나, 바다의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체찰사의 공문이 들어왔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나가 앉았다가 활을 쏘았다. 저녁에 탐후선이 들어와서 어머 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했다. 그러나 진지를 전보다 줄어들었다고 하니 걱정되어 눈물이 난다. 봄철 누비옷을 가지고왔다.

 

5월 19일 [양력 6월 14일]<을유> 맑다.

방답첨사(장린)가 모친상(모상)을 입었다는 말을 듣고 우후를 가 장(가장)으로 정하여 보냈다. 활을 열 순을 쏘았다. 땀이 온 몸을 적셨다.

 

5월 20일 [양력 6월 15일]<병술> 맑고 바람도 없다.

대청 앞에 기둥을 세웠다. 자녁나절에 나가니 웅천현감 김충민 (김충민)이 와서 봤다. 양식이 떨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벼 두 휘(스무 말)을 체지(영수증)로 써 주었다. 사도첨사가 돌아왔다.

 

5월 21일 [양력 6월 16일]<정해> 맑다.

나가 앉았다가 우후 등과 함께 활을 쏘았다.

 

5월 22일 [양력 6월 17일]<무자> 맑다.

충청우후 원유남(원유남)·좌우후 이몽구(이몽구)·홍주판관 박륜(박륜) 등과 함께 활을 쏘았다. 홍우(홍우)가 장계를 가지고 감사(감사)에게 갔다.

 

5월 23일 [양력 6월 18일]<기축>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충청우후 등과 함께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아침에 미조항첨사 장의현(장의현)이 교서에 숙배한 뒤에 장흥으로 부임했다. 춘절 (춘절)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이 날 밤 열시쯤에 땀이 예사롭지 않게 흘렀다. 이 날 저녁 새 수루의 지붕을 다 잇지 못했다.

 

5월 24일 [양력 6월 19일]<경인> 아침에 찌푸린 걸 보니 비가 많이 올 것 같다.

나라제삿날(문종의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저녁에 나가 활 열 순을 쏘았다. 부산 허낸만(허내은만)의 편지(고목)가 들어왔다. 좌도의 각 진의 왜놈들이 몽땅 철수하고, 다만 부산에만 머물러 있다고 했다. 명나라 수석 사신이 갈려서 새로 정해진 사람이 온다는 기별이 22일 부사에게 왔다고 한다. 허낸만(허내은만)은 술쌀 열 말, 소금 열 말을 주고서 맘껏 정보를 잘 탐지하라고 했다. 어두워서 비가 오더니 밤새도록 퍼부었다. 박옥(박옥)· 옥지(옥지)·무재(무재) 등이 화살대 백쉰 개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5월 25일 [양력 6월 20일]<신묘> 종일 비가 내렸다.

홀로 다락 위에 앉아 있으니, 온 갖 생각이 다 일어난다. 우리나 라 역사를 읽어 보니 개탄할 생각이 많이 난다. 무재(무재) 등에 게 흰 굽으로 활을 바룬 것이 천 개, 흰 굽 그대로 인 것 팔백일 흔 개

 

5월 26일 [양력 6월 21일]<임진> 짙은 안개가 걷히지 않는다.

마파람이 세게 불었다. 저녁나절에 나가 안장 있다가 충청우후 및 우후 등과 함께 활을 쏠 적에 경상수사도 와서 같이 활 열 순 을 쏘았다. 이 날 어두울 무렵 날씨가 찌는 듯했다. 땀이 줄줄 흘렀다.

 

5월 27일 [양력 6월 22일]<계사> 가랑비 종일 그치지 않았다.

충청우후·좌우후가 이곳에 와서 종정도를 내기했다. 이 날 어두 울 무렵에도 찌는 듯하여 답답했다. 땀이 온 몸을 적셨다.

 

5월 28일 [양력 6월 23일]<갑오> 궂은비가 걷히지 않았다.

전라감사(홍세공)가 파면되어 갈렸다고 한 말을 들었다. 가등청정 (가등청정)이 부산으로 도로 왔다고 한다. 모두 믿을 수 없다.

 

5월 29일 [양력 6월 24일]<을미> 궂은비가 저녁 내 내렸다.

장모의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고성현령·거제현령이 와서 보고는 돌아갔다.

 

5월 30일 [양력 6월 25일]<병신> 흐렸다.

곽언수(곽언수)가 들어왔다. 영의정(류성룡) 및 상장군·우참찬 판부사정탁·지사 윤자신(윤자신)· 조사척· 신식(신식)· 남이공(남이공)의 편지가 왔다. 저녁나절에 우수사에게 가서 보고 종일 무척 즐기다가 돌아왔다.

 

병신년 6월 (1596년 6월)

 

6월 초1일 [양력 6월 26일]<정유> 종일 궂은비 내렸다.

저녁나절에 충청우후(원유남) 및 본영우후(이몽구)·(홍주판관)박륜(박륜)· (비인현감)신경징(신경징)을 불러 와서 술 마시며 이야기했다. 윤련(윤련)이 자기 포구로 간다고 했다. 그래서 도양장의 콩 씨앗이 모자라거든 김덕록(김덕록)에게서 콩 씨앗을 가져 가라고 체지(영수증)을 써 주었다. 남해현령이 도임장을 가지고 와서 바쳤다.

 

6월 초2일 [양력 6월 27일]<무술> 비가 그치지 않았다.

아침에 우후가 방답첨사에게 갔다. 비인현감 신경징(신경징)이 나갔다. 이 날 아랫도리 속옷을 벗겨서 아래에다 넣었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았다가 활 열 순을 쏘았다. 편지를 써서 본영으로 보냈다.

 

6월 초3일 [양력 6월 28일]<기해> 흐렸다.

아침에 제포만호 성천유(성천유)가 교서에 숙배했다. 김량간(김량 간)이 농사짓는 소를 싣고 나갔다. 새벽 꿈에 어린 아이가 태어난 지 겨우 대여섯 달인데 몸소 안았다가 도로 내려 놓았다. 금갑 도만호가 와서 봤다.

 

6월 4일 [양력 6월 29일]<경자> 맑다.

식사를 한 뒤에 나가 앉았는데, 가리포첨사·임치첨사·목포만호·남도포만호·충청우후 및 홍주판관 등이 왔다. 활 일곱 순을 쏘았다. 우수사가 와서 다시 과녁을 그리고 활 열두 순을 쏘았다. 술에 취하여 헤어졌다.

 

6월 5일 [양력 6월 30일]<신축> 흐렸다.

아침에 박옥(박옥)·무재(무재)·옥지(옥지)) 등이 연습용 화살 백쉰 개를 만들어 바쳤다. 나가 앉았다가 활 열 순을 쏘았다. 경상우도 감사의 군관이 편지를 가져 왔는데, 감사는 혼사가 있어 서울로 올라 갔다고 했다.

 

6월 6일 [양력 7월 1일]<임인> 맑다.

사도(사도)의 여러 장수들이 모두 모여 활을 쏘고 술과 음식을 먹였다. 또 활쏘기 내기를 하

여 승부를 가리고서 헤어졌다.

 

6월 7일 [양력 7월 2일]<계묘> 아침에 흐리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저녁나절에 나가 충청우후 등과 함께 활 열 순을 쏘았다. 이 날 왜놈의 조총값을 주었다.

 

6월 8일 [양력 7월 3일]<갑진> 맑다.

일찍 나가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남도포만호의 본포 첩이 허씨 집으로 뛰어 들어가서 강짜 싸움을 했다고 한다.

 

6월 9일 [양력 7월 4일]<을사> 맑다.

일찍 나가 충청우후·당진만호·여도만호·녹도만호 등이 활 을 쏠 때에 경상수사가 와서 같이 활 스무 순을 쏘았다. 경상 수사가 잘 맞혔다. 이 날 일찌기 종 금이(김이)가 본영으로 갔다. 옥지(옥지)도 갔다.이 날 어두울 무렵 몹시 열이 나고 땀이 예사롭지않게 흘렀다.

 

6월 초10일 [양력 7월 5일]<병오> 비가 종일 쏟아지듯이 내렸다.

오정 때에 부산에서 편지가 와서 바치는데, 평의지(평의지)가 초9일에 대마도로 들어갔다고 했다.

 

6월 11일 [양력 7월 6일]<정미> 비오다가 저녁나절에 맑게 개었다.

활 열 순을 쏘았다.

 

6월 12일 [양력 7월 7일]<무신> 맑다.

심한 더위가 찌는 것 같다. 충청우후 등을 불러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남해현감의 편지가

왔다.

 

6월 13일 [<양력 7월 8일]<기유> 맑으며, 몹시 더웠다.

경상수사가 술을 가지고 왔다.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경상수사가 잘 맞혔는데 김대복(김대복)이 으뜸이었다.

 

6월 14일 [양력 7월 9일]<경술> 맑다.

일찍 나가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아침에 아들 회와 이수원 (이수원)이 같이 왔다.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했다.

 

6월 15일 [양력 7월 10일]<신해>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우수사·가리포첨사·나주판관 등은 배 탈이 났는지 병으로 말미를 청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았다가 충청우후·우후·조방장 김완(김완) 등 여러 장수들을 불러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이 날 일찌기 부산 허낸만(허내은만)이 와서 왜놈의 정보를 전하기에 군량을 주어서 돌려 보냈다.

 

6월 16일 [양력 7월 11일]<임자> 맑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나가 앉았다가 활 열 순을 쏘았다. 저녁에 김붕만(김붕만)· 배승련(배승련) 등이 자리를 사가지고 진에 왔다.

 

6월 17일 [양력 7월 12일]<계축> 맑다.

저녁나절에 우수사가 왔다. 활 열다섯 순을 쏘고 헤어졌다. 수 사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충청수사는 그 아버지의 제삿날이라 아뢰고 거망포(거망포: 걸망포)로 갔다.

 

6월 18일 [양력 7월 13일]<갑인>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6월 19일 [양력 7월 14일]<을묘> 맑다.

체찰사에게 공문을 써 보냈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았다가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이설(이설)에게서 황정록(황정록)의 형편없는 말과 발포 보리밭에서 스무여섯 섬이 났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6월 20일 [양력 7월 15일]<병진> 맑다.

어제 아침 곡포권관 장후완(장후완)이 교서에 숙배한 뒤에 평산 포만호에게 진작 진에 도착하지 않은 까닭을 문책할 적에, 기 일을 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50여 일이나 물리게 된 것이라고 답했다. 그 해괴하기 짝이 없어 곤장 서른 대를 쳤다. 바로 이 날 오정에 남해현령이 들어와서 숙배한 뒤에 이야기하고 서 활을 쏘았다. 충청우후도 왔다. 열다섯 순을 쏘고 안으로 들 어가 남해현감 박대남(박대남)와 자세히 이야기하다가 밤이 깊어 서야 헤어졌다.

임달영(임달영)도 왔는데, 소를 무역한 발기(견적 서)와 제주목사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6월 21일 [양력 7월 16일]<정사>

내일이 제삿날이므로 공무를 보지 않았다. 아침에 남해현령을 불러 같이 아침 식사를 하고서 남해현령은 경상수사에게 갔다가 저녁에 되돌아와서 이야기했다.

 

6월 22일 [양력 7월 17일]<무오> 맑다.

할머니의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남해현령과 종일 이야기했다.

 

6월 23일 [양력 7월 18일]<기미> 밤 두시쯤부터 종일 비가 내렸다.

남해현령과 이야기했다. 저녁나절에 남해현령은 경상수사에게 갔다.조 방장 및 충청우후· 여도만호· 사도첨사 등을 불러 술과 고기를 먹였다. 곤양군수 이극일(이극일)도 와서 봤다.

저녁에 남해현감이 경상수사에게서 왔다. 술에 취하여 인사불성이다. 하동현감도 왔는데 본현으로 도로 보냈다.

 

6월 24일 [양력 7월 19일]<경신> 초복이다. 맑다.

아침에 나가 충청우후와 함께 활 열 다섯 순을 쏘았다. 경상수사 도 와서 같이 쏘았다. 남해현감은 자기 고을로 돌아갔다. 투항 해 온 왜놈 야에몬(야여문) 등이 그의 또래 신시로(신시로: 신 차랑)를 죽이자고 청했다. 그래서 죽이라고 명령했다. 남원의 김 굉이 군량을 축낸 데 대해 증빙자료를 얻으러 여기 왔다.

 

6월 25일 [양력 7월 20일]<신유> 맑다.

일찍 나가서 서류를 처리해 보내고서 조방장 및 충청우후·임치첨사· 목포만호· 마량첨사· 녹도만호· 당포만호·회령포만호 ·파지도권관 등이 왔다. 철전(철전) 다섯 순, 편전(편전) 세 순, 활 다섯 순을 쏘았다. 남원의 김굉이 아뢰고 돌아갔다. 이 날 어두울 무렵에 몹시 더워 땀을 흘렸다.

 

6월 26일 [양력 7월 21일]<임술> 바람이 세게 불고 잠시 비왔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았다가, 철전(철전) 및 편전(편전)을 각 다섯 순씩 쏘았다. 왜놈 난에몬(난여문) 등이 말하는 자귀쟁이(이장목 수)의 아내에게 곤장을 쳤다. 이 날 낮에 망아지 두 필에 떨어진 편자 네 개를 갈아 박았다.

 

6월 27일 [양력 7월 22일]<계해> 맑다.

나가 앉았다가, 조방장 김완(김완)·충청우후·가리포첨사·당진 포만호·안골포만호 등과 함께 철전(철전) 다섯 순, 편전(편 전) 세 순, 활 일곱 순을 쏘았다. 이 날 저녁에 송술(송술)을 가두었다.

 

6월 28일 [양력 7월 23일]<갑자> 맑다.

명종의 나라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아침에 고성현령 이 달려 와서 보고하기를, “순찰사의 행차가 어제 벌써 사천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러니 오늘은 응당 소비포에 이를 것이다. 수원(수원)이 돌아갔다.

 

6월 29일 [양력 7월 24일]<을축> 아침에 흐리다가 저녁나절에는 개었다.

주선(주선)이 받아갔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서 공무를 본 뒤에 조방장·충청우후·나주통판과 함께 철전(철전)·편전(편전)· 활(후)을 아울러 열여덟 순을 쏘았다. 무더위가 찌는 듯하다. 초저녁에 땀이 줄줄 흘렀다. 남해현감의 편지가 왔다. 야에몬(야여문)은 돌아갔다.

 

병신년 7월 (1596년 7월)

 

7월 초1일 [양력 7월 25일]<병인> 맑다.

인종의 나라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경상우순찰사(서 성)가 진에 이르렀으나, 이 날은 서로 만나지 않았다. 그의 군관 라굉이 그의 장수의 말을 전하러 이곳에 왔다.

 

7월 초2일 [양력 7월 26일]<정묘> 맑다.

아침밥을 일찍 먹은 뒤에 경상순찰사영의 진으로 가서 순찰사와 함께 같이 이야기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 새 정자로 올라가 앉 았다. 편을 갈라 활을 쏘았는데, 경상순찰사 편이 진 것이 백예 순두 점(획)이다. 종일 몹시 즐거웠다. 등잔불을 밝히고서 돌아왔다.

 

7월 초3일 [양력 7월 27일]<무진> 맑다.

아침밥을 일찍 먹은 뒤에 순찰사와 도사(도사)가 이 영에 와서 활을 쏘았다. 순찰사 편이 또 진 것이 아흔여섯 점이다. 밤이 깊 어서야 돌아갔다. 아침에 체찰사의 공문이 왔다.

 

7월 4일 [양력 7월 28일]<기사> 맑다.

아침밥을 일찍 먹은 뒤에 경상도 영으로 가서 순찰사와 서로 만 나 이야기했다. 조금 있다가 배로 내려가 같이 타고 포구로 나가 니, 여러 배들이 밖으로 줄지어 있었다. 종일 이야기하고 선암(선 암) 앞바다에 이르러 닻을 걷고 출항하여 나뉘어 가면서 바라 보며 서로 읍했다. 그 길로 우수사·경상수사와 함께 같은 배로 들어왔다.

 

7월 5일 [양력 7월 29일]<경오>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활을 쏘았다. 충청우후도 와서 같이 쏘았다.

 

7월 6일 [양력 7월 30일]<신미> 맑다.

일찍 나가 각 처의 공문을 처리하여 나누어 주었다. 저물 무렵 에 거제현령·웅천현감·삼천포권관이 와서 봤다. 이곤변(이곤 변)의 편지도 왔다. 그 사연 속에는 입석(입석)의 잘못을 많이 말했다. 우습다.

 

7월 7일 [양력 7월 31일]<임신> 맑다.

경상우수사 및 우수사와 여러 장수들이 아울러 와서 잠깐 활 세 쾌(관)를 쏘았다. 종일 비는 오지 않았다. 활장이 지이(지이)· 춘복(춘복)이 저녁에 본영으로 돌아갔다.

 

7월 8일 [양력 8월 1일]<계유> 맑다.

충청우후와 함께 활 열 순을 쏘았다. 체찰사의 비밀 표험(표험?) 을 받으러 갔다고 한다.

 

7월 9일 [양력 8월 2일]<갑술> 맑다.

아침에 체찰사에게 갈 여러 공문에 관인을 찍어서 이전(이전)이 받아 갔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가 이곳에 와서 통신사가 탈 배에 풍석(풍석: 돛만드는 돗자리)이 마련하기 어렵다고 여러번 말했다. 빌려 쓰고자 하는 뜻이 그 말하는 속에 보였다. 박자방 (박자방)을 물을 끌어들일 대나무와 서울가는 사람이 요구하는 부채만들 대나무를 얻어 올 일로 남해로 보냈다. 오후에 활 열 순을 쏘았다.

 

7월 10일 [양력 8월 3일]<을해> 맑다.

새벽 꿈에, 어떤 사람이 멀리 화살을 쏘았고, 어떤 사람은 갓을 발로 차서 부수었다. 스스로 이것을 점쳐 보니, 멀리 활쏘는 것은 적들이 멀리 도망하는 것이요, 삭을 차서 부누는 것은 갓은 머리 위에 있는데 발길에 차 보이는 것으로서 이는 적의 괴수를 모조 리 잡아 없앨 징조라 하겠다. 저녁나절에 체찰사의 전령에, “첨지 황신이 이제 명나라 사신을 따라가는 정사(정사)가 되고, 권황 이부사(부사)가 되어 가까운 시일에 바다를 건너 갈 것이니, 타고 갈 배 세 척을 정비하여 부산에다 대어 놓아라.”고 했다. 경상우후가 여기 와서 흰 무늬 돗자리 백쉰 닢을 빌려 갔다. 충청우후· 사량만호· 지세포만호· 옥포만호· 홍주판관·전 적도만호 고여우(고여우) 등이 와서 봤다. 경상수사가 달려와서 보고 하기를, “춘원도(통영시 광도면)의 왜선 한 척이 도착하여 정박하 였다.”고 했다. 그래서 여러 장수들을 뽑아 보내어 샅샅이 찾아내라고 전령했다.

 

7월 11일 [양력 8월 4일]<병자> 맑다.

아침에 체찰사에게 행정선(통문선) 일로 공문을 써 관인을 찍 어보냈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가 와서 바다를 건너 갈 격군과 뒤 따라 갈 것을 의논했다. 바다를 건너갈 양식이 스무세 섬인데, 새로 찧으니 스무한 섬이라 두 섬 한 말이 줄었다. 나가 앉았다가 몸소 활 세 쾌를 쏘는 것을 보았다.

 

7월 12일 [양력 8월 5일]<정축> 새벽에 비가 잠시 뿌리다가 곧 그치고 무지개 가 한참이나 서 있었다.

저녁나절에 경상우후 이의득(이의득)이와서 뜸 열다섯 번을 빌려 갔다. 부산으로 실어 보낼 군량 흰쌀 스무 섬·중쌀(중미) 마흔 섬을 차사원 변익성(변익성)과 수사(수사)의 군관 정존극(정존극) 이 받아갔다. 조방장이 오고, 충청우후도 와서 활을 쏘았다. 같은 해에 과거에 급제한 남치온(남치온)도 왔다.

 

7월 13일 [양력 8월 6일]<무인> 맑다.

명나라 사신을 따라 갈 우리나라 사신들이 탈 배 세 척을 정비하 여 낮 열 시쯤에 떠나 보냈다. 저녁나절에 활 열세 순을 쏘았 다. 어두울 무렵 항복해온 왜놈들이 광대놀이를 차렸다. 장수된 사람으로서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만, 붙좇은 왜놈 들이 놀이를 간절히 바라기에 못하게 하지 않았다.

 

7월 14일 [양력 8월 7일]<기묘> 새벽에 비가 뿌렸다.

이 날도 벌써 보름날이다. 저녁에 고성현령 조응도(조응도)가 와서 이야기했다.

 

7월 15일 [양력 8월 8일]<경진> 새벽에 비가 뿌렸다.

망궐례를 행하지 못했다. 저녁나절에 활짝 개었다. 경상수사· 전라우수사가 함께 모여 활을 쏘고서 헤어졌다.

 

7월 16일 [양력 8월 9일]<신사> 새벽에 비오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북쪽에 툇마루 세 칸을 만들었다. 이 날 충청도 홍주 격군으로 신평에 사는 사삿집 종 엇복(어질복)이 도망가다 붙잡혔으므로 목베어 내다 걸었다. 하동현감·사천현감이 왔다. 저녁나절에 활 세 쾌를 쏘았다. 이 날 어두울 무렵 바닷달이 너무도 밝아서 혼자 수루 위에 기대었다. 밤 열 시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7월 17일 [양력 8월 10일]<임오> 새벽에 비가 뿌렸다가 곧 그쳤다.

충청도 홍산에서 큰 도둑들이 일어나서 홍산현감 윤영현(윤영현) 이 잡히고, 서천군수 박진국(박진국)도 잡혀갔다고 한다. 바깥 도 둑도 없애지 못한 이 마당에 나라 안의 도둑들이 이러하니, 참으 로 놀랍고도 놀라운 일이다. 남치온(남치온) 및 고성현령·사천 현감이 나갔다.

 

7월 18일 [양력 8월 11일]<계미> 맑다.

각 곳에 공문을 처리하여 나누어 보냈다. 충청우후 및 홍주 반자가 충청도 도둑들의 일을 듣고 와서 아뢰었다. 저녁에 투항 해 온 왜놈 레나기(연은기)·야이(여이)·야몬(여문) 등이 난야몬 (남여문)을 해치려고 흉모를 꾸미고 있다고 하였다.

 

7월 19일 [양력 8월 12일]<갑신> 맑으나 종일 바람이 세게 불었다.

난야몬(남여문)이 레나기(연은기)·야이(여이)·야몬(여문) 등을 목베었다. 우수사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경상우후 이의득(이의득) 및 충청우후(원유남)·다경포만호 윤승남(윤승남)이 왔다.

 

7월 20일 [양력 8월 13일]<을유> 맑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본영 탐후선이 들어왔다. 어머니께서 편 안하시다니 기쁘고 다행이다. 그 편에 충청도 토적(이몽학)이 이 시발(이시발)(순안어사)의 포수에게 총맞아 즉사했다고 한다. 다행이다.

 

7월 21일 [양력 8월 14일]<병술> 맑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 있으니, 거제현령·나주판관·홍주판관과 옥포만호·웅천현감·당진포만호가 왔다. 옥포에는 배 만드는데 쓸 양식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체찰사에 관계된 군량 스무 말을 주고, 웅천·당진포에는 배 만들 쇠 열다섯 근을 함께 주었다. 이 날 아들 회가 방자 수(수)에게 곤장쳤다고 했다. 그래서 아들 을 붙들어다가 뜰 아래에서 잘 타일렀다. 밤 열 시쯤에 땀이 줄 줄 흘렀다. 통신사가 청하는 표범 가죽을 가지고 올려고 배를 본영으로

보냈다.

 

7월 22일 [양력 8월 15일]<정해>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종일 나가지 않았다. 홀로 수루 위에 앉아 있었다. 종 효대(효대) ·팽수(팽수)가 나가서 흥양의 군량선을 탔다. 저녁에 순천 관 리의 통지문(문장)에, “충청도 도둑들이 홍산에서 일어난 것을 곧 죽였다고 하는데, 홍주 등 세 고을이 포위를 당했다가 간신히 면했다”고 했다.

참으로 한심타. 한밤에 비가 많이 왔다. 낙안의 교대할 배가 들어왔다.

 

7월 23일 [양력 8월 16일]<무자> 큰 비가 내렸다.

오전 열 시쯤에 맑았다가 이따금 쏟아졌다. 저녁나절에 홍주판 관 박륜(박륜)이 휴가를 얻어서 나갔다.

 

7월 24일 [양력 8월 17일]<기축> 맑다.

현덕왕후(현덕왕후:문종의 왕후 권씨의 제사) 나라제삿날이다. 이 날 우물을 고쳐 파는데로 갔다. 경상수사도 왔다. 거제현령· 금갑도만호·다경포만호가 뒤따라 왔다. 샘줄기가 깊이 들어가 있고 물의 근원도 길다. 점심을 먹은 뒤에 돌아와 활 세 쾌(관) 를 쏘았다. 어두울 무렵 곽언수(곽언수)가 표범가죽을 가지고 들어왔다. 이 날 밤 마음이 답답하여 잠이 오지 않았다. 인기척은 고요하여 앉 았다 누웠다 하다가 밤이 깊어서야 잠들었다.

 

7월 25일 [양력 8월 18일]<경인> 맑다.

아침에 공리(공리)가 사냥한 것을 헤아리니 뿔이 열 개라 창고에 넣게 했다. 표범 가죽 및 꽃돗자리를 통신사에게 보냈다.

 

7월 26일 [양력 8월 19일]<신묘> 맑다.

이전(이전)이 체찰사에게서 와서 표험(표험) 세 벌을 가지고 왔다. 하나는 경상수사에게 보내고, 하나는 전라우수사에게 보냈다. 의금부의 나장이 윤승남(윤승남)(다경포만호)을 잡아 갈 일로 내려왔다.

 

7월 27일 [양력 8월 20일]<임진> 맑다.

저녁나절에 활터로 달려가서 길 닦는 일을 녹도만호에게 일러 주 었다. 종 경(경)이 아팠다.

다경포만호 윤승남(윤승남)이 잡혀 갔다.

 

7월 28일 [양력 8월 21일]<계사> 맑다.

종 무학(무학)·무화(무화)·박수매(박수매)·우롬금(우로음금) 등 이 스무엿새 날에 여기 왔다가 오늘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충청우후와 더불어 활 세 쾌를 같이 쏘았다. 철전 서른여섯 푼, 편전 예순 푼, 보통 화살 스무여섯 푼 모두 백스무 세 푼(계산 착오인 듯. 합이 백스무둘임)이었다. 종 경이 많이 앓 았다고 한다.무척 걱정이 된다. 고향 아산으로 한가위 제물을 보낼 때에 홍·윤·이 등 네 군데에 편지를 부쳤다. 밤 열시쯤에 꿈속에서까지 땀을 흘렸다.

 

7월 29일 [양력 8월 22일]<갑오> 맑다.

경상수사 및 우후가 와서 봤다. 충청우후도 아울러 와서 활 세 쾌를 쏘았는데, 내가 쏘던 활은 고자가 들떠서 곧 수리하라 고 하였다. 체찰사에게서 과거보는 자리를 설치한다는 공문이 와 닿았다. 저녁에 점장이의 집을 맡아 지키던 아이가 세간을 몽땅 훔쳐 달아나버렸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7월 30일 [양력 8월 23일]<을미> 맑다.

새벽에 갈몰(갈몰)이 들어왔다. 밤 꿈에 영의정과 같이 조용히 이야기했다. 아침에 이진(이진)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춘화(춘화) 등도 돌아갔다. 김대인(김대인)은 담제( 제)를 지낸다고 휴가를 받아갔다. 저녁나절에 조방장이 와서 활을 쏘았다. 저녁에 탐후선이 들어왔다.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한다. 임금의 분부가 두 통이 내려 오고 싸움에 쓸 말과 면의 말도 들어왔다. 지이(지이)와 무재(무재)가 함께 왔다.)

 

 

병신년 8월 (1596년 8월)

 

8월 초1일 [양력 8월 24일]<병신> 맑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충청우후·금갑도만호·목포만호·사도 첨사·녹도만호가 와서 참례했다. 저녁나절에 파지도권관 송세응(송세응)이 돌아갔다. 오후에 활터로 가서 말을 달리다가 저물어서 돌아왔다. 부산에 갔던 곽언수(곽언수)가 돌아와서 통신사의 회답 편지를 전했다. 어두울 무렵 비올 징후가 많았다. 그래서비오기 전에 장만할 것들을 시켜놨다.

 

8월 초2일 [양력 8월 25일]<정유> 아침에 비가 몹시 왔다.

지이(지이) 등에게 새로 만든 활을 폈다가 굽혔다가 하게 했다. 저녁나절에 광풍이 세게 일어 빗줄기는 삼대 같아서 대청 마루에 걸어 둔 바람막이가 날라가 방 마루 바람막이에 부딪쳐 한꺼번에 두 바람막이가 깨어져 조가조각 나버렸다. 아까웠다.

 

8월 초3일 [양력 8월 26일]<무술> 맑다가 이따금 비가 뿌렸다.

지이(지이)에게 새로 만든 활을 펴게 했다. 조방장·충청우후가 와서 보기에 그대로 나가 활을 쏘았다. 아들들이 육냥궁(육양궁)을 쏘았다. 이 날 저녁나절에 송희립(송희립)과 아들들이 이름이 적힌 황득중(황득중)·김응겸(김응겸)의 통행을 허락하는 증명서를 써서 주게 했다. 초저녁에 비가 오다가 밤 두 시쯤에야 그쳤다.

 

8월 초4일 [양력 8월 27일]<기해> 맑다.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들 회·면·조카 완(완) 등이 아내의 생일술을 올리려고 나갔다.

정선도 나갔다. 정사립(정사립)이 휴가를 받아서 갔다. 저녁나절에 수루에 앉아서 아이들을 보내는 것을 보느라고 술잔이 시어지는 줄도 몰랐다.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가 활 두어 순을 쏘았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활 쏘는 것을 멈추고 안으로 들어갔다. 몸은 얼어 터지는듯 떨려 곧 옷을 두껍게 입고 땀을 냈다. 저물 무렵 경상수사가 와서 문병하고 갔다. 밤에는 낮보다 갑절이나 아팠다. 끙끙 앓으며 밤을 지냈다.

 

8월 초5일 [양력 8월 28일]<경자> 맑다.

몸이 불편하여 나가지 않고 앉아 있었다. 이의득(이의득) 가리 포첨사가 와서 봤다.

 

8월 초6일 [양력 8월 29일]<신축>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아침에 조방장 김완(김완)·충청우후·경상우후 등이 문병을 왔 다. 당포만호는 그 어머니의 병환이 심하다고 와서 알렸다. 경 상수사 및 우수사 등이 와서 봤다. 조방장 배흥립(배흥립)이 들어왔다. 날이 저물어서 돌아갔다. 밤에 비가 많이 왔다.

 

8월 초7일 [양력 8월 30일]<임인> 비오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몸이 불편하여 공무를 보지 않았다. 서울에 편지를 썼다. 이 날 밤 땀이 위·아래 두 옷을 적셨다.

 

8월 초8일 [양력 8월 31일]<계묘>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박담동(박담동)이 서울로 올라가는데 혼수를 승지 서성(서 )에게 보냈다. 저녁나절에 강희로(강희로)가 이곳에 와서 남해현령의 병이 차즘 나아진다고 했다. 그와 함께 밤이 되도록 이야기했다. 중 의능(의능)이 날삼(생마) 백스무 근을 가져와서 바쳤다.

 

8월 9일 [양력 9월 1일]<갑진>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아침에 중 수인(수인)에게서 날삼(생마) 삼백서른 근을 받아들였다. 하동현감이 종이를 다시 두드려 만든다고 도련지 스무 권, 주 지 서른두 권, 장지 서른한 권을 김응겸(김응겸)· 곽언수(곽언수) 등에게 주어 보냈다. 마량첨사 김응황(김응황)이 직무평가에서 하등급(거하)을 맞고 나갔다. 저녁나절에 나가 앉아서 공문을 처리하여 나누어 주었다. 활 열 순을 쏘았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밤 열 시쯤 되니 땀이 흘렀다.

 

8월 초10일 [양력 9월 2일]<을사> 맑다.

아침에 충청우후가 문병을 왔다가 그대로 조방장과 함께 같이 아 침식사를 했다. 아침에 송한련(송한련)에게 날삼(생마) 마흔 근을 그물을 만들도록 주어서 보냈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한참동안 이나 베개를 베고 누워 있었다. 저녁나절에 두 조방장 및 충청우 후를 불러다가 상화(상화)를 만는데 이를 같이 했다. 저녁에 체 찰사에게 보낼 공문에 관인을 찍었다.

어두워지니 달빛은 비단같고, 나그네 회포는 만갈래여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밤 열 시쯤에 방에 들어갔다.

 

8월 11일 [양력 9월 3일]<병오> 맑으나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침에 체찰사에게 갈 여러 공문에 관인을 찍어 내보냈다. 조 방장 배흥립(배흥립)과 함께 같이 아침 식사를 하고 저녁나절에 그와 같이 활터(사장)에 가서 말달리는 것을 구경하고서 저 물 무렵에 영으로 돌아왔다. 초저녁에 거제현령이 달려와서 보 고한 내용에, “왜적서 한 척이 등산(등산: 마산시 합포구 진동 면)에서 송미포(송미포:거제시 장목면 송진포)로 들어온다.”고 했다. 밤 열 시쯤에 또 보고하기를, “아자포(아자포)로 옮겨 대었 다.”고 했다. 배를 정하여내어 보낼 즈음에 또 보고하여 말하기를, “견내량을 넘어갔다.”고 했다. 그래서 복병장이 찾아서 잡았다.

 

8월 12일 [양력 9월 4일]<정미> 맑다.

샛바람이 세게 불어 동쪽으로 가는 배는 도저히 오갈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어머니의 안부를 알지를 못했으니, 몹시도 답답하 다. 우수사가 와서 봤다. 땀이 두겹 옷을 적셨다.

 

8월 13일 [양력 9월 5일]<무신> 맑다가 흐리며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충청우후와 함께 활을 쏘았다. 이 날 밤 땀이 흘러 등을 적시었다. 아침에 우(우)씨가 곤장에 맞아 죽었다는 말을 듣고 장사지낼 물건을 약간 보냈다.

 

8월 14일 [양력 9월 6일]<기유>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샛바람이 계속 불어 벼가 상했다고 한다. 조방장 배흥립(배흥립) 과 충청우후와 같이 이야기를 중지시켰는데 땀나지는 않았다.

 

8월 15일 [양력 9월 7일]<경술> 새벽에 비가 내렸다.

망궐례를 못했다. 저녁나절에 우수사·경상수사 및 두 조방 장과 충청우후· 경상우후· 가리포첨사· 평산포만호 등 열아홉 명의 여러 장수들이 모여서 이야기했다. 비가 종일 그치지 않았다. 초저녁이 지나니 마파람이 불면서 비가 많이 왔다. 밤 두 시 쯤까지 세 번이나 땀을 흘렸다.

 

8월 16일 [양력 9월 8일]<신해> 잠깐 맑다가 마파람이 세게 불었다.

강희로(강희로)가 남해로 돌아갔다. 몸이 불편하여 종일 누워 끙끙 앓았다. 저녁에 체찰사가 진주성(진성)에 왔다는 공문이 왔다. 다시 비 갠 뒤의 달빛이 너무 밝아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밤 열 시쯤에 누워서 가랑비가 또 내리다가 잠시후에 그치는 걸 봤다. 땀이 흘렀다.

 

8월 17일 [양력 9월 9일]<임자> 맑고 흐림이 서로 섞여서 개기도 하고 비가 오기도 했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충청우후·거제현령이 아울러 와서 봤다. 이 날 샛바람이 그치지 않았다. 체찰사 앞으로 사람을 찾으러 내 보내었다.

 

8월 18일 [양력 9월 10일]<계축> 비가 오락가락 했다.

한밤 자정에 죄인에게 특사를 내리는 조칙문을 가지고 온 차사원 구례현감(이원춘)이 들어왔다. 땀을 흘리는게 예삿 일이 아니다.

 

8월 19일 [양력 9월 11일]<갑인> 흐리다가 맑다가 했다.

새벽에 우수사와 여러 장수들과 함께 죄인에게 특사내리는 조 칙문에 숙배하고 그대로 그들과 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구례현 감이 아뢰고 돌아갔다. 송의련(송의련)이 본영에서 아들 울(울)의 편지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했다. 다 행이다. 저녁나절에 거제현령과 금갑도만호가 이곳에 와서 이야 기했다. 초저녁부터 한밤까지 땀에 젖었다.

어두울 무렵 자귀쟁이 (이장) 옥지(옥지)가 재목에 치어서 중상을 입었다고 보고 받았다.

 

8월 20일 [양력 9월 12일]<을묘> 샛바람이 세게 불다.

새벽에 전선(전선)을 만들 재목을 끌어내리는 일로 우도군사 삼 백 명, 경상도군사 백 명, 충청도군사 삼백 명, 전라좌도군사 삼 백아흔 명을 송희립(송희립)이 거느리고 갔다. 늦은 아침에 조카 봉·해와 아들 회·면·조카 완(완)과 최대성(최 대성)·윤덕종(윤덕종)·정선 등이 들어왔다.

 

8월 21일 [양력 9월 13일]<병진> 맑다.

식사를 한 뒤에 활터 정자에 가서 아들들에게 화살 쏘는 연습 과 말달리며 활을 쏘는 것을 시켰다. 조방장 배흥립(배흥립)·조 방장 김완(김완)과 충청우후가 아울러 왔다. 같이 점심을 먹고 저물어서 돌아갔다.

 

8월 22일 [양력 9월 14일]<정사> 맑다.

외조모의 제삿날이라 나가지 않았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8월 23일 [양력 9월 15일]<무오> 맑다.

활터에 가 보았다. 경상수사도 와서 같이 보았다.

 

8월 24일 [양력 9월 16일]<기미> 맑다.

8월 25일 [양력 9월 17일]<경신> 맑다.

우수사·경상수사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8월 26일 [양력 9월 18일]<신유> 맑다.

새벽에 출항하여 사천에 이르러 머물러 잤다. 충청우후와 함께 종일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8월 27일 [양력 9월 19일]<임술> 맑다.

일찍 길을 떠나 사천현에 이르렀다. 점심을 먹은 뒤에 그대로 진주성(진성)으로 가서 체찰사(이원익)를 뵙고 종일 의논했다. 저물 무렵에 진주목사(나정언)의 처소로 돌아와서 잤다. 김응서도 왔다가 곧 돌아갔다. 이 날 어두울 무렵 이용제(이용제) 가 들어왔는데, 역적 도당의 편지를 지녔었다.

 

8월 28일 [양력 9월 20일]<계해> 맑다.

이른 아침에 체찰사 앞으로 가서 종일 여쭙고 의논하여 결정하 고, 초저녁이 지나서 진주목사의 처소로 돌아왔다. 진주목사와 함 께 밤이 깊도록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청생(청생)도 왔다.

 

8월 29일 [양력 9월 21일]<갑자> 맑다.

일찍 떠나 사천현에 이르러 아침밥을 먹은 뒤에 그대로 가서 선 소리(사천시 용남면 선진리)에 이르렀다. 고성현령(조응도)도 왔 다. 삼천포권관과 이곤변(이곤변)이 술을 가지고 뒤따라 도착했 다. 밤들도록 같이 이야기하고 구라량(구라량)에서 잤다.

 

 

병신년 윤8월 (1596년 윤8월)

 

윤8월 초1일 [양력 9월 22일]<을축> 맑다.

일식(일식)을 했다. 이른 아침에 비망(비망) 밑에 이르러 이곤변 (이곤변) 등과 함께 같이 아침식사를 하고 서로 헤어졌다. 저물어 서 진중에 이르니, 우수사·경상수사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수사와는 서로 만나서 이야기했다.

 

윤8월 2일 [양력 9월 23일]<병인> 맑다.

여러 장수들이 와서 봤다. 저녁나절에 경상수사·우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경상수사와 함께 활터 정자 마루로 갔다.

 

윤8월 3일 [양력 9월 24일]<정묘> 맑다.

윤8월 4일 [양력 9월 25일]<무진> 비가 내렸다.

이 날 밤 열 시쯤에 땀을 흘렸다.

 

윤8월 5일 [양력 9월 26일]<기사> 맑다.

활터 마루에 가서 아이들(아들들을 말함)이 말달리고 활쏘는 것 을 구경했다. 하천수(하천수)가 체찰사 앞으로 갔다.

 

윤8월 6일 [양력 9월 27일]<경오>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경상수사 및 우수사와 함께 활터 마루로 가서 말달리고 활쏘는 것을 구경하고 저물어서 돌아왔다. 이 날 밤 잠시 땀을 흘렸다. 방답첨사가 진에 이르렀다.

 

윤8월 7일 [양력 9월 28일]<신미> 맑다.

아침에 아산의 종놈 상시(향시)가 들어왔다. 가을보리는 소출이 마흔석 섬이고, 봄보리는 서른다섯 섬이며, 물고기로 바꾼 쌀은 모두 열두 섬 네 말인데, 또 일곱 섬 열 말이 나고, 또 네 섬이 났다고 했다. 이 날 저녁나절에 나가 공무를 보고 솟장을 처리하여 나누어 주었다.

 

윤8월 8일 [양력 9월 29일]<임신> 맑다.

식사를 한 뒤에 활터 마루로 가서 말달리고 활쏘는 것을 구경했다. 광양현감·고성현령이 시험관으로서 들어왔다. 하천수(하천 수)가 진주에서 왔다. 수하에 부리는 병졸 림정로(임정로)가 휴가를 받아 나갔다. 이 날 밤 땀을 내었다.

 

윤8월 9일 [양력 9월 30일]<계유> 맑다.

아침에 광양현감이 교서(교서)에 숙배했다. 조카 봉( )·아들 회 ( ) 및 김대복(김대복)이 교지(관교)에 숙배하고서 그대로 이 들과 함께 이야기했다. 이 날 밤에 우수사·경상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윤8월 10일 [양력 10월 1일]<갑술> 맑다.

이 날 새벽에 과거 초시(초시)를 보였다. 저녁나절에 면( )이 쏜 것은 모두 쉰다섯 보이고, 봉()이 쏜 것은 모두 서른다섯 보이고, 해( )가 쏜 것은 모두 서른 보이고, 회( )가 쏜 것은 모두 서른다섯 보이고, 완(완)이 쏜 것은 스무다섯 보라고 했다. 진무 성(진무성)이 쏜 것은 모두 쉰다섯 보여서 합격하였다. 어두울 무렵 우수사·경상수사·조방장 배흥립(배흥립)이 같이 와서 밤 열 시쯤에 헤어져 돌아갔다.

 

윤8월 11일 [양력 10월 2일]<을해> 맑다.

체찰사를 기다릴 일로 출항하여 당포에 이르니, 초저녁에 체찰사 에게 문안 갔던 사람이 돌아와서, “14일에 떠난다.”고 하였다.

 

윤8월 12일 [양력 10월 3일]<병자> 맑다.

종일 노를 바삐 저어 밤 열 시쯤에 어머니 앞에 이르니, 흰머리 카락이 에부수수하신데, 나를 보고는 놀라 일어나셨다. 기력은 숨 이 곧 끊어질 듯하여 아침 저녁을 보전하시기 어렵겠다. 눈물 을 머금고 서로 붙들고 밤새도록 위안하며 기쁘게 해 드리면서 그 마음을 풀어 드렸다.

 

윤8월 13일 [양력 10월 4일]<정축> 맑다.

아침 식사를 곁에서 모시고 드시게 하니 대단히 기뻐하시는 빛이다. 저녁나절에 하직인사를 여쭙고 본영으로 왔다. 오후 여섯 시 쯤 작은 배를 타고 밤새도록 노를 바삐 저었다.

 

윤8월 14일 [양력 10월 5일]<무인> 맑다.

새벽에 두치(두치:하동읍 두곡리)에 이르니, 체찰사와 부찰사가 어제 벌써 도착하여 잤다고 한다. 뒤미처 점검하는 곳으로 가서 소촌찰방을 만나고 일찍 광양현에 이르렀다. 지나온 지역이 한결 같이 쑥대밭이 다 되어 그 참상은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었다. 임시로나마 전선 정비하는 것을 면제해 주어 군사와 백성들의 마 음을 풀어 주어야겠다.

 

윤8월 15일 [양력 10월 6일]<기묘> 맑다.

일찍 떠나 순천에 이르니 체찰사 일행이 순천부 청사에 들어갔다 고 했다. 그래서 나는 정사준(정사준)의 집에서 묵었다. 순찰사도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아들들이 참시관이 되었다고 들었다.

 

윤8월 16일 [양력 10월 7일]<경진> 맑다.

이 날은 그대로 거기서 머물렀다.

 

윤8월 17일 [양력 10월 8일]<신사> 맑다.

저녁나절에 낙안으로 향하여 그 군에 이르니 이호문(이호문) ·이지남(이지남) 등이 와서 보고 고치기가 어려운 폐단이 오로지 수군에 있다고 진술했다. 종사관 김용(김용)가 서울로 올라갔다.

 

윤8월 18일 [양력 10월 9일]<임오> 맑다.

일찍 떠나 양강역(양강역)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나서 산성(고 흥군 남양면 대곡리)으로 올라가 멀리 바라보며 각 포구와 여러 섬들을 손가락으로 짚어 주었다. 그 길로 흥양(고흥읍)으로 향했 다. 저물 무렵에 흥양현에 이르러 향소청(향소청)에서 잤다. 어두 워서 이지화(이지화)가 제 물건을 뽐내려고 거문고를 가지고 왔다. 영(영)도 와서보고 밤새도록 이야기했다.

 

윤8월 19일 [양력 10월 10일]<계미> 맑다.

떠나서 녹도(고흥군 도양면 녹도)로 가는 길에 도양(도덕면 도덕리)의 둔전을 살펴 보았다.

체찰사는 매우 기뻐하는 빛이 많았다. 녹도에서 잤다.

 

윤8월 20일 [양력 10월 11일]<갑신> 맑다.

일찍 떠나 배를 타고 체찰사와 부찰사와 함께 같이 앉아 종일 군사 일을 이야기했다. 저녁나절에 백사정에 이르러 점심을 먹은 뒤에 그 길로 장흥부에 이르렀다. 나는 관청의 동헌에서 잤다. 김응남(김응남)이 와서 봤다.

 

윤8월 21일 [양력 10월 12일]<을유> 맑다.

그대로 머물러 자는데 정경달(정경달)이 와서 봤다.

 

윤8월 22일 [양력 10월 13일]<병술> 맑다.

저녁나절에 병영(해남군 병영면 성남리 병영)에 몸을 던져 원균과 서로 만나 보고 밤이 깊도록 이야기했다.

 

윤8월 23일 [양력 10월 14일]<정해> 맑다.

윤8월 24일 [양력 10월 15일]<무자>

나는 부찰사(한효순)와 같이 가리포(완도군 완도읍 군내리)로 갔 더니, 우우후 이정충(이정충)도 먼저 와 있었다. 남쪽 망대(남망봉 해발 150m)로 같이 올라가니, 좌우에는 적들이 다니는 길과 여러 섬들을 역력히 헤아릴 수 있었다. 참으로 한 도(일도)의 요충지이 다. 그러나 형세가 외롭고 위태롭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이진(해 남군 북평면 이진리)으로 옮겨 합치기로 했다. 병영에 이르러서는 원균의 흉한 행동을 적지 않았다.

 

윤8월 25일 [양력 10월 16일]<기축>

일찍 떠나 이진에 이르러 점심을 먹은 뒤에 곧 해남으로 갔다. 도중에 김경록(김경록)이 술을 차고 와서 봤다. 어느 결에 날이 저물어 횃불을 밝히고 가니, 밤 열 시께에야 해남현에 이르렀다.

 

윤8월 26일 [양력 10월 17일]<경인> 맑다.

일찍 떠나 우수영(해남군 문내면)에 이르렀다. 나는 곧 태평정(태평정)에서 자고서 우후와 함께 이야기했다.

 

윤8월 27일 [양력 10월 18일]<신묘> 맑다.

체찰사가 진도에서 영(우수영)으로 들어왔다.

 

윤8월 28일 [양력 10월 19일]<임진> 비가 조금 내렸다.

바로 고쳐 놨다.

 

윤8월 29일 [양력 10월 20일]<계사> 비가 조금 내렸다.

이른 아침에 남여역(남녀역:해남군 황산면 남리리)에 이르렀다. 점심을 먹은 뒤에 해남현에 이르렀다. 소국진(소국진)을 본영(전라좌수영)으로 보냈다.

 

 

병신년 9월 (1596년 9월)

 

9월 초1일 [양력 10월 21일]<갑오> 비가 뿌렸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일찍 떠나 석제원(강진군 성전면 성전리)에 이르렀다. 점심을 먹은 뒤에 영암에 이르러 향사당(향사 당)에서 잤다. 정랑 조팽년(조팽년)이 와서 봤다. 최숙남(최숙남) 도와서 봤다.

 

9월 초2일 [양력 10월 22일]<을미> 맑다.

영암에서 머물렀다.

 

9월 3일 [양력 10월 23일]<병신> 맑다.

아침에 떠나 나주의 신원에 이르렀다. 점심을 먹고 나서 나주판 관을 불러다가 고을의 일들을 물었다. 저물 무렵에 나주에 이르 렀다. 별관의 종 억만(억만)이 와서 신원(신원)에서 알현했다.

 

9월 4일 [양력 10월 24일]<정유> 맑다.

나주에서 머물렀다. 어두울 무렵 목사(이복남)가 술을 가지고 와서 권했다. 일추(일추)도 술잔을 가져 왔다. 이 날 아침에 체찰사와 함께 문묘에 절했다.

 

9월 5일 [양력 10월 25일]<무술> 맑다.

나주에서 머물렀다.

 

9월 6일 [양력 10월 26일]<기해> 맑다.

먼저 무안의 일로 가겠다고 체찰사에게 보고하고 일을 떠났다. 고막원(고막원:나주시 다시면 고막리)에 이르러 점심을 먹었다. 나주감목관 나덕준(나덕준)이 뒤쫓아와서 서로 만났다. 이야기 하는 중에 강개한 일이 많았다. 그래서 그와 함께 오랬동안 이야 기하다가 저물어서 무안에 이르러 잤다.

 

9월 7일 [양력 10월 27일]<경자> 맑다.

감목관 나덕준(나준) 및 무안현감(남언상) 함께 민폐에 관한 이야 기했다. 한참 있다가 정대청(정대청)이 들어왔다고 했다. 그래 서 그를 청하여 앉아 이야기했다. 저녁나절에 떠나 다경포(무안군 운남면 성내리)에 이르러, 영광군수와 함께 밤 열 시쯤이나 되게 이야기했다.

 

9월 8일 [양력 10월 28일]<신축> 맑다.

나라제삿날(세조의 제사)인데도 오늘 새벽에 조반(조반)에 고기를 올려 놓았다. 그래서 나는 먹지도 않고 도로 내놓았다. 아 침밥을 먹은 뒤에 길을 나서서 감목관에 이르니 감목관과 영광군 수는 같이 있었다. 국화 떨기 가운데로 들어가서 술 두어 잔을 마셨다. 저물어서 동산원(동산원:무안군 현경면 옹산원;옹산원) 에 이르러 말을 먹였다. 말을 재촉하여 임치진(해제면 임수리)에 이르니, 이공헌(이공헌)의 딸 여덟 살짜리 아이와 그 사촌의 계집종 수경(수경)이 같이 와서 알현했다. 이공헌(이공헌)을 곰곰히 생각하니 참혹한 마음을 이길 수가 없었다. 수경(수경)은 곧 이염(이염)의 집에서 내다 버렸는데,(이공헌이) 얻어다가 기른 아이이

다.

 

9월 9일 [양력 10월 29일]<임인> 맑다.

일찍 일어나서 임치첨사 홍견(홍견)을 불러 방비책을 물었다. 아침 식사를 한 뒤에 뒷성(후성)으로 올라가 형세를 살펴보고 동 산원으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은 뒤에 함평현에 이르렀다. 도중 에 한여경(한여경)을 만났으나, 말위에서는 만나 보기가 어려우므 로 타일러서 함평으로 들어갔다. 함평현감은 경차관을 마중하 러 나갔다고 했다. 김억창(김억창)도 같이 함평에 왔다.

 

9월 10일 [양력 10월 30일]<계묘> 맑다.

몸도 노곤하고 말도 힘들 것 같아서 함평에 머물러 잤다. 아침 식사를하기 전에 무안의 정대청이 와서 함께 이야기했다. 고을 유생도 많이 들어와 폐단된 일을 진술했다. 저녁에 도사(도사) 가 들어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밤 열 시쯤에 헤어져 나갔다.

 

9월 11일 [양력 10월 31일]<갑진> 맑다.

아침식사를 하고나서 영광으로 갔다. 도중에 신경덕(신경덕)을 만나 잠깐 이야기하고 영광에 이르니, 영광군수가 교서에 숙배한 뒤에 들어와 같이 이야기했다. 이 때 산월(산월)도 와서 보고 술마시며 이야기하다가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누명을 벗길 수 없었다.

 

9월 12일 [양력 11월 1일]<을사> 바람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저녁나절에 길을 떠나 십리쯤 되는 냇가에 이르니, 이광보(이광 보)와 한여경(한여경)이 술을 가지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서 말에서 내려서 같이 이야기하는데 비바람이 그치지 않았다. 안세희(안세희)도 왔다. 저물 무렵에 무장(무장)에 이르렀다. 여진 (여진)과 잤다.

 

9월 13일 [양력 11월 2일]<병오> 맑다.

이중익(이중익) 및 이광축(이광축)도 와서 같이 이야기했다. 이중익(이중익)이 말을 많이 하다가 막히어서 급하게 되니 옷을 벗고서 그에게 관여하며 종일 이야기했다.

 

9월 14일 [양력 11월 3일]<정미> 맑다.

하루 더 묵었다. 여진(여진)과 두번 관계했다.

 

9월 15일 [양력 11월 4일]<무신> 맑다.

체찰사가 현(무장현)에 이르렀다고 하므로 들러가 절하고 대책을 의논했다. 여진(여진)과 세번 관계했다.

 

9월 16일 [양력 11월 5일]<기유> 맑다.

체찰사 일행이 고창에 이르러 점심을 먹은 뒤에 장성에 이르러서야 잤다.

 

9월 17일 [양력 11월 6일]<경술> 맑다.

체찰사와 부찰사는 입암산성(입암산성:정주시 입암면 임암산 해발 655m)으로 가고, 나는 혼자 진원현(장성군 진원면 석전리 진원)에 이르러 진원현감과 같이 이야기했다. 종사관도 왔다. 저물어서 관청 안으로 들어가니 두 조카딸이 나와 앉아 있었다. 오랫동안 못보았던 감회를 풀고 도로 작은 정자로 나가 진원현감 및 여러 조카들과 밤들도록 같이 이야기했다.

 

9월 18일 [양력 11월 7일]<신해> 비가 조금 내렸다.

식사를 한 뒤에 광주에 이르러 광주목사(최철견)와 이야기했다. 비가 많이 오더니, 한밤에는 달빛이 대낮 같았다. 밤 두 시쯤에 비바람이 세게 일었다. 영의정

 

9월 19일 [양력 11월 8일]<임자> 바람이 세게 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아침에 행적(행적)이 와서 봤다. 진원(진원)에 있는 종사관의 편지와 윤간(윤간)·봉( )·해( )의 문안 편지도 왔다. 이 날 아침 광주목사(최철견)가 와서 같이 아침 식사를 했다. 이어서 술이 나와 밤을 먹지 않아서 취해버렸다. 광주목사의 별실에 들어가 종일 몹시 취했다. 오후에 능성현령(이계령)이 들어와서 곳 간을 봉하고 광주목사를 체찰사가 파면시켰다고 했다. 최철견의 딸 최귀지(최귀지)가 와서 잤다.

 

9월 20일 [양력 11월 9일]<계축> 비가 많이 내렸다.

아침에 각가지 사무보는 색리들의 죄를 논란했다. 저녁나절에 광주목사를 보고 길을 떠나려 할 즈음에 명나라 사람 두 명이 이 야기 하자고 청하므로 술을 먹였다. 길을 떠났으나 종일 비가 내려 멀리 갈 수가 없어 화순에 이르러 잤다.

 

9월 21일 [양력 11월 10일]<갑인> 개다가 비오다가 했다.

일찍 능성(화순군 능주면)에 이르러 최경루(최경루)에 올라가 연 주산(연주산)을 바라보았다. 이 고을 원이 술을 청했다. 그래서 잠깐 취하고서 헤어졌다.

 

9월 22일 [양력 11월 11일]<을묘> 맑다.

아침에 각가지의 죄를 논란했다. 저녁나절에 나가 이양원(화순 군 이양면 이양리)에 이르니, 해운판관(해운판관)이 먼저 와 있었 다. 내가 가는 것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청하므로 그와 함께 이야 기했다. 저물어서 보성군에 이르니 몸이 몹시 고단하여 잤다.

 

9월 23일 [양력 11월 12일]<병진> 맑다.

머물렀다. 나라제삿날(태조의 신의왕후 한씨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9월 24일 [양력 11월 13일]<정사> 맑다.

일찍 떠나 병사 선거이(선거이)의 집에 이르니, 선거이의 병이 매 우 중태였다. 염려된다. 저물어서 낙안에 이르러 잤다.

 

9월 25일 [양력 11월 14일]<무오> 맑다.

색리 및 선중립(선중립)의 죄를 논란했다. 순천에 이르러 순천 부사와 함께 같이 이야기했다.

 

9월 26일 [양력 11월 15일]<기미> 맑다.

일이 있어 더 머물렀다. 저녁에 순천부의 사람들이 소고기와 술을 차려 놓고 나오기를 청했

다. 굳이 사양했으나 부사(부사)의 간청으로 잠깐 나가 마시고서 헤어졌다.

 

9월 27일 [양력 11월 16일]<경신> 맑다.

일찍 떠나 가서 어머니를 뵈었다.

 

9월 28일 [양력 11월 17일]<신유> 맑다.

남양 아저씨의 생신이라 본영으로 왔다.

 

9월 29일 [양력 11월 18일]<임술>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동헌으로 나가 공문에 관인을 찍었다. 종일 앉아서 사무를 봤다.

 

9월 30일 [양력 11월 19일]<계해> 맑다.

옷 담아 둔 농을 꺼 내어 둘은 곰내로 보내고, 하나만 본영(여수) 에 남겨 두었다. 저녁에 선유사(선유사)의 군관 신탁(신생)이 와서 군사들을 위하여 위로연을 베풀 날짜를 말하였다.

 

 

병신년 10월 (1596년 10월)

 

10월 초1일 [양력 11월 20일]<갑자> 비가 오고 바람이 세게 불다.

새벽에 망궐례를 행하고 식사를 한 뒤에 어머니를 뵈러 가는 길에 신 사과(사과)가 임시로 살고있는 집에 들어가서 몹시 취하여서 돌아왔다.

 

10월 초2일 [양력 11월 21일]<을축>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배를 다니게 할 수가 없었다. 청어 잡은 배가 들어왔다.

 

10월 3일 [양력 11월 22일]<병인> 맑다.

배를 돌려 어머니를 모시고 일행과 더불어 배를 타고 본영(여 수)으로 돌아와 종일토록 즐거이 뫼시었다. 이 날도 다 갔는데, 흥양현감이 술을 가지고 왔다.

 

10월 4일 [양력 11월 23일]<정묘> 맑다.

식사를 한 뒤에 객사 동헌에 앉았다가 일어나 종일 공무를 봤 다. 저녁에 남해현령이 오면서 그 첩을 데리고 왔다.

 

10월 5일 [양력 11월 24일]<무진> 흐렸다.

남양 아저씨 집안에 제사라 일찍 부르기에 갔다가 왔다. 남해 현령과 함께 이야기했다. 비 올 징조가 많다. 순천부사는 석보창 (여천시 석창)에서 잤다.

 

10월 6일 [양력 11월 25일]<기사> 바람 불고 비가 많이 내렸다.

이 날은 잔치를 차리지 못하고 이튿날로 물리었다. 저녁나절에 흥양현감·순천부사가 들어왔다.

 

10월 7일 [양력 11월 26일]<경오> 맑고 따사했다.

일찍 수연을 베풀고 종일토록 즐기니 참으로 다행이다. 남해현감 은 그 선대의 제삿날이어서 먼저 돌아갔다.

 

10월 8일 [양력 11월 27일]<신미> 맑다.

어머니께서 몸이 편안하시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순천부사와 작 별의 잔을 나누고 보냈다.

 

10월 9일 [양력 11월 28일]<임신> 맑다.

공문을 처리해 보냈다. 종일 어머니를 모셨다. 내일 진중(한산 도?)으로 들어갈 일로 어머니께서는 많이 서운한 빛이었다.

 

10월 10일 [양력 11월 29일]<계유> 맑다.

어머니께 절하고 하직했다. 한밤 한 시쯤에 뒷방으로 갔다가 밤 두 시쯤에 수루의 방으로 돌아왔다. 정오에 아뢰고 나갔다. 오후 두 시쯤에 배를 타고 바람따라 돛을 달고 항해하면서 밤새도록 노를 재촉하여 왔다.

 

10월 11일 [양력 11월 30일]<갑술> 맑다.

(** 1596년(병신) 10월 11일 뒷 장에 7장에 걸쳐 나와 있는 자료이다.)

10월 초9일 진무성(진무성)이 청어 4300 두름을 싣고 왔다. 1596년(병신) 9월 29일 을미(임진년 기간에 9월 29일의 간지가 을 미인 날이 없음)에 대를 베어서 다시 계산하니 91부가 창고안에 들 어 있었다. 1596년(병신) 5월 23일에 상품의 큰 대 30개, 다음 대 60개, 중치 대 60개 모두 150개를 박옥·옥지·무재 등이 받아다 만들어 바쳤 다. 계납할 물건 안에 기름 먹인 종이 비옷 100자, 기름 먹인 종이 20자, 만장할 종이 100자, 보통 종이 15권, 흰종이 2권. 1596년(병신) 3월 초6일에는 육냥궁(육양궁) 6장에서 뽕나무로 만 든 활 6장에서 1장은 울궁(울궁)이고 세궁(세궁)이 2장이다. 1596년(병신) 9월(일은 월의 오기인 듯) 30일(일이 없음) 온전한 것 안에서 공히 109이고 쓸만한 것이 50으로 모두 3통 29이다. 2월 26일 큰대,중치 대로 상품이 57개이다. 고기를 잡아서 양식을 대는 데, 임달영(임달영)은 제주의 농사짓는 소를, 송한련(송한련) ·갑사 송한(송한)· 송성(송성)· 이종호(이종호)· 황득중(황득중)· 오수(오수)· 박춘양(박춘양)· 류세충(유세충)· 강소작지(강소작지)· 강구지(강구지)에게 아울러 포상하였다. 계향유사로 곡식바치는 참봉(종9품) 조응복(조응복)·벼슬하지 않은 선비 하응문(하응문)· 류기룡(유기룡)이 같이 힘을 썼고, 정(정) 김덕린(김덕린), 대구훈 정 김계신(김계신), 창신도 감목.

 

11월기록에없음

12월기록에없음

 

정유년

1월2월3월기록에없음

 

정유년 4월 (1597년 4월)

 

4월 초1일 [양력 5월 16일]<신유> 맑음

옥문을 나왔다. 남문(숭례문) 밖 윤간의 종의 집에 이르니, 조카 봉·분(분)과 아들 울(울)이 윤사행(윤사행)·원경(원경)과 더 불어 한 대청에 같이 앉아 오래도록 이야기했다. 지사 윤자신 (윤자신)이 와서 위로하고 비변랑 이순지(이순지)가 와서 봤다. 더해지는 슬픈 마음을 이길 길이 없다. 지사가 돌아갔다가 저녁 밥을 먹은 뒤에 술을 가지고 다시 왔다. 윤기헌(윤기헌)도 왔다. 정으로 권하며 위로하기로 사양할 수 없어 억지로 마시고서 몹시 취했다. 이순신(이순신)이 술병 채로 가지고 와서 함께 취하 며 위로해 주었다. 영의정(류성룡)이 종을 보내고 판부사 정탁 (정탁)·판서 심희수(심희수)·우의정 김명원(김명원)·참판 이 정형(이정형)·대사헌 노직(노직)·동지 최원(최원)·동지 곽영 (곽영)이 사람을 보내어 문안했다. 취하여 땀이 몸을 적셨다.

 

4월 2일 [양력 5월 17일]<임술> 종일 비가 내렸다.

여러 조카들과 이야기했다. 방업(방업)이 음식을 매우 풍성하게 차려 왔다. 필공을 불러 붓을 매게 했다. 어두울 무렵 성으로 들어가 영의정과 밤 깊도록 이야기하다가 헤어져 나왔다.

 

4월 3일 [양력 5월 18일]<계해> 맑다.

일찍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금오랑 이사빈(이사윤)·서리 이수영 (이수영)·나장 한언향(한언향)은 먼저 수원부에 이르렀다. 나는 인덕원(의왕시 인덕원)에서 말을 쉬게 하고 조용히 누워서 쉬 었다. 저물어서 수원에 들어가서, 경기 체찰사의 수하에서 심부 름하는 병졸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집에서 잤다. 신복룡(신복룡) 은 나의 임시로 사는 집에 이르러 내 지나가는 걸 보고는 술을 준비해 가지고 와서 나를 위로했다. 순천부사 류영건(유영건)이 나와서

봤다.

 

4월 4일 [양력 5월 19일]<갑자> 맑다.

일찍 길을 떠나, 독성(수원시 태안읍 양산리)아래에 이르니, 반자 (판자) 조발(조발)이 술을 준비해 놓고 막을 치고 기다리고 있 었다. 취하도록 마시고 길을 떠나 바로 진위구로(평택군 진위 면 봉남리)를 거쳐 냇가에서 말을 쉬게 했다. 오산에 이르러 황 천상(황천상)의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황천상(황천상)이라는 사람은 내 짐이 무겁다고 말을 내어 실어 보내니, 고마울 뿐이 다. 수탄을 거쳐 평택현 이낸손(이내은손)의 집에 투숙했는데, 주 인이라는

사람이 대접이 매우 은근했다. 자는 방이 몹시 좁은 데 따뜻하게 불까지 때어 땀이 흘렀다.

 

4월 5일 [양력 5월 20일]<을축> 맑다.

해가 뜨자, 길을 떠나 바로 선산(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에 이르렀다. 나무들은 두번이나 들불이 나서 불에 탄 꼴을 차마 볼 수 없 었다. 무덤 아래에서 절하며 곡하는데 한참동안 일어나지 않았 다. 저녁이 되어 내려와 외가에 와서 사당에 절했다. 그 길로 조카 뇌의 집에 이르러, 조상의 사당에 곡하며 절 했다. 남양 아저씨가 별세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저물 무렵 우리집에 이르러 장인·장모님의 신위 앞에 절하고 곧 작은 형님 (요신)과 여필(우신)의 처 제수의 사당에 다녀 와서 잠자리에 들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4월 6일 [양력 5월 21일]<병인> 맑다.

멀고 가까운 친구들이 모두 와서 모였다. 오랫동안 막혔던 정 을 푹 풀고 갔다.

 

4월 7일 [양력 5월 22일]<정묘> 맑다.

금오랑(이사빈)이 아산현에서 오므로, 나는 나가 그윽히 대접했다. 홍찰방· 이별좌· 윤효원(윤효원)이 와서 봤다. 금오랑은 변흥백(변흥백)의 집에서 잤다.

 

4월 8일 [양력 5월 23일]<무진> 맑다.

아침에 자리를 깔고 남양 아저씨를 곡하고 상복을 입었다. 저 녁나절에 변흥백(변흥백)의 집에 가서 이야기했다. 강설장(강설 장)이 세상을 떠났다고 하므로 나는 가서 문상했다. 그 길로 홍석 견(홍석견)을 집에 들렀다. 저녁나절에 변흥백(변흥백)의 집에 이르러 금부도사에게

접대했다.

 

4월 9일 [양력 5월 24일]<기사> 맑다.

동네 사람들이 술병 채로 가지고 와서 멀리 가는 길을 위로해 주므로 정의상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 마시니, 매우 취하여서 헤어 졌다. 홍군우(홍군우)는 노래부르고 이별좌도 노래불렀다. 나는 노래를 들어도 쬐끔도 즐겁지 않았다. 금부도사는 잘 마시면서도 실수함이 없었다.

 

4월 10일 [양력 5월 25일]<경오>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변흥백(변흥백)의 집에 이르러 도사와 함께 이야기했다. 저녁나절에 홍찰방·이별좌 형제·윤효원(윤효원) 형제가 와서 봤다. 이언길(이언길)·허제(허제)가 술을 가지고 왔다.

 

4월 11일 [양력 5월 26일]<신미> 맑다.

새벽 꿈이 매우 번거로워 다 말할 수가 없다. 덕(덕)이를 불러서 대충 말하고 또 아들 울(울)에게 이야기했다. 마음이 몹시 불안 하다. 취한 듯 미친 듯 마음을 걷잡을 수 없으니, 이 무슨 징조인 가! 병드신 어머니를 생각하니, 눈물이 흐르는 줄도 몰랐다. 종을 보내어 소식을 듣고 오게 했다. 금부도사는 온양으로 돌아 갔다.

 

4월 12일 [양력 5월 27일]<임신> 맑다.

종 태문(태문)이 안흥량에서 들어와 편지를 전하는데, “어머니께 서는 숨이 곧 끊어질 듯해도 초9일에 위·아래 모든 사람이 모두 무사히 안흥량(서산시 근흥면 안흥)에 도착하였다.”고 했다. 법성포(영광군 법성면 법성리)에 이르러 배를 대어 잘 적에 닻이 끌려 떠내려 가서 배에 머물며 엿새나 서로 떨어졌다가 탈없이 만났다고 했다. 아들 울(울)을 먼저 바닷가로 보냈다.

 

4월 13일 [양력 5월 28일]<계해> 맑다.

일찍 아침을 먹은 뒤에 어머니를 마중가려고 바닷가로 가는 길에 흥찰방집에 잠깐 들러 이야기하는 동안 아들 울(울)이 종 애수 (애수)를 보내면서 “아직 배오는 소식이 없다.”고 하였다. 또 들으니, “황천상(황천상)이 술병을 들고 변흥백(변흥백)의 집에 왔다.”고 한다. 흥찰방과 작별하고 변흥백(변흥백)의 집에 이르렀다. 조금 있으니, 종 순화(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니의 부고를 전했다. 뛰쳐나가 가슴치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하늘이 캄캄했다. 곧 갯바위(아산시 염치읍 해암리)로 달려가니, 배는 벌써 와 있었다. 애통함을 다 적을 수가 없다. 뒷날에 대강 적다.

 

4월 14일 [양력 5월 29일]<갑술> 맑다.

홍찰방·이별좌가 들어와 곡하고 관을 장만했다. 관의 재목은 본 영에서 마련해 가지고 온 것인데, 조금도 흠난 곳이 없다고 했다.

 

4월 15일 [양력 5월 30일]<을해> 맑다.

저녁나절에 입관했다. 오종수(오종수)가 점심으로 호상해 주니, 뼈가 가루로 될지언정 잊지 못하겠다. 관에 따른 것에는 아무런 유감이 없으니 이것만은 다행이다. 천안군수가 들어와 치행해 주고 전경복씨가 연일 마음을 다하여 상복 만드는 일 등을 돌보 아 주니, 고마운 말을 어찌 다 하랴!

 

4월 16일 [양력 5월 31일]<병자> 궂은 비 오다.

배를 끌어 중방포 앞으로 옮겨 대고, 영구를 상여에 올려 싣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마을을 바라보니, 찢어지는 듯 아픈 마음이야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집에 와서 빈소를 차렸다.

비는 퍼붓고, 나는 맥이 다 빠진데다가 남쪽으로 갈 날은 다가오니, 호곡하며 다만 어서 죽었으면 할 따름이다. 천안군수가 돌아갔다.

 

4월 17일 [양력 6월 1일]<정축> 맑다.

금오랑의 서리 이수영(이수영)이 공주에서 와서 가자고 다그친다.

 

4월 18일 [양력 6월 2일]<무인> 종일 비가 내렸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머리를 내놓지 못하고, 다만 빈소 앞에서 곡만 하다가 종 금수(금수)의 집으로 물러 나왔다. 저녁나절에 계 원들 중에서 나 있은 곳에 모여 와서 곗일을 논의하고서 헤어졌다.

 

4월 19일 [양력 6월 3일]<기묘> 맑다.

일찍 길을 떠나며 어머니 영전에 하직을 고하며 울부짖었다. 천지에 나 같은 사정이 어디 또 있으랴! 일찍 죽느니만 못하다. 조카 뇌의 집에 이르러 조상의 사당 앞에서 아뢰었다. 금 곡(연기군 광덕면 대덕리)의 강 선전의 집앞에 이르니 강정(강정) ·강영수(강영수)씨를 만나 말에서 내려 곡했다. 그 길로 보산 원(연기군 광덕면 보산원리)에 이르니, 천안군수가 먼저 냇가에 와서 말에서 내려 쉬었다 갔다. 임천군수 한술(한술)은 중시(중시)보러 서울로 가던 중에 앞 길 을 지나다가 내가 간다는 말을 듣고 들어와 조문하고 갔다. 아 들 회·면·울(울), 조카 해·분(분)·완(완)과 주부 변존서(변존서)가 함께 천안까지 따라 왔다. 원인남(원인남)도 와 서 보고 작별한 뒤에 말에 올랐다. 일신역(공주시 장기면 신관리) 에 이르러 잤다. 저녁에 비가 뿌렸다.

 

4월 20일 [양력 6월 4일]<경진> 맑다.

아침에 공주 정천동에서 밤을 먹고, 저녁에 니산(공주시 노성 면 읍내리)에 가니, 이 고을 원이 극진하다. 군청 동헌에서 잤다. 김덕장(김덕장)이 나의 임시로 거처하는 집에 왔다가 서로 만났다. 금부도사가 와서 봤다.

 

4월 21일 [양력 6월 5일]<신사> 맑다.

일찍 떠나 은원(논산 은진면 연서리)에 이르니, 김익(김익)이 우 연히 오게 되었다고 한다.

임달영(임달영)이 곡식을 사러 배로 은진포(은진포)에 왔다고 하는데, 그 꼴이 몹시 궤휼하다. 저녁에 여산(익산군 여산면 여산리) 관노의 집에서 자는데, 한밤 에 홀로 앉았으니, 비통한 생각에 견딜 수가 없다.

 

4월 22일 [양력 6월 6일]<임오> 맑다.

오전에 삼례역(완주군 삼례읍 삼례리)의 역장과 역리의 집에 이르렀다. 저녁에 전주 남문밖 이의신(이의신)의 집에서 잤다. 판관 박근(박근)이 와서 봤다. 부윤(부윤)도 후하게 접대했다. 판 관이 비올 때 쓰는 기름 먹인 두꺼운 종이·생강 등을 보내 왔 다.

 

4월 23일 [양력 6월 7일]<계미> 맑다.

일찍 떠나 오원역(임실군 관천면 선천리)에 이르러 아침밥을 먹었다. 저물어서 임실현에서 잤다. 임실현감이 예에 따라 대우했다. 현감은 홍순각(홍순각)이다.

 

4월 24일 [양력 6월 8일]<갑신> 맑다.

일찍 떠나 남원 시오리 쯤에서 정철(정철) 등을 만나서 남원부 오리 안까지 이르러 우리 일행과는 헤어지고 곧바로 십리 바깥 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이희경(이희경)의 종의 집에 이르렀다. 슬픈 회포를 어찌하랴! 어찌하랴!

 

4월 25일 [양력 6월 9일]<을유> 비가 많이 올 모양이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길을 떠나 운봉(남원군 운봉면)의 박롱(박 ) 의 집에 들어가니, 비가 많이 퍼부어 출두할 수가 없다. 여기서 들으니, 원수(권율)가 벌써 순천으로 떠났다고 한다. 곧 사람을 금오랑 있는 곳으로 보내어 머물게 했다. 운봉현감(남한)은 병으로 나오지 않았다.

 

4월 26일 [양력 6월 10일]<병술> 흐리고 개지 않았다.

일찍 아침밥을 먹고 길을 떠나 구레현 금부 도사가 먼저 와 있었다. (손인필의 집)으로 내려가니 손인필(손인필)의 집에 이르니, 구례현감(이원춘)이 급히 나와 보고는 대접하는 것이 매우 은근 하다. 금부도사(이사빈)도 와서 봤다. 나는 금부도사에게 술을 권하라고 원에게 청했더니 원이 아주 대접을 잘했다고 한다. 밤에 앉았으니 비통함을 어찌 다 말하랴!

 

4월 27일 [양력 6월 11일]<정해> 맑다.

일찍 떠나, 송치(송치; 순천시 서면 학구리 바랑산 해발 619m)밑 에 이르니 구례현감이 사람을 보내어 점심을 지어 보냈다. 순 천 송원(송원:순천시 서면 학구리 신촌)에 이르니, 이득종(이득종) ·정선(정선)이 와서 기다렸다. 저녁에 정원명(정원명)의 집에 이르니, 원수(권율)는 내가 온 것을 알고, 군관 권승경(권승경)을 보내어 조문하고, 또 안부도 묻는데, 그 위로하는 말이 못내 간곡 하다. 저녁에 순천부사가 와서 봤다. 정사준(정사준)도 와서 원균

(원균)의 망녕되고 전도된 상황을 많이 말했다.

 

4월 28일 [양력 6월 12일]<무자> 맑다.

아침에 원수가 또 군관 권승경(권승경)을 보내어 문안하고서 말 하기를, “상중에 몸이 피곤할 것이니, 기운이 회복되는 대로 나 오라”고 전했다. 또 말하기를, “통제사와 친한 군관이 있다 하니, 편지와 공문을 보내어 나오게 하여 데리고 가서 돌보라”고 하 는 편지와 공문을 만들어 왔다. 부사의 소실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4월 29일 [양력 6월 13일]<기축> 맑다.

사과(사과) 신씨와 방응원(방응원)이 와서 봤다. 병마사(이복남)도 원수와 의논할 일이 있다고 하여 순천부로 들어왔다고 한다. 신 사과와 함께 이야기했다.

 

4월 30일 [양력 6월 14일]<경인> 아침에 흐리고 저물 무렵에 비가 내렸다.

아침 밥을 먹은 뒤에 신 사과와 함께 이야기하였다. 병마사에게 남아서 술을 마셨다고 했다.

병마사 이복남(이복남)이 아침밥 먹기도 전에 와서 보며, 원균(원균)에 대한 일을 많이 말했다. 감사도 원수에게 왔다고 군관을 보내여 편지로 안부를 물었다.

 

 

정유년 5월 (1597년 5월)

 

5월 초1일 [양력 6월 15일]<신묘> 비가 내렸다.

사과 신씨가 머물러서 이야기하였다. 순찰사와 병마사는 원수가 머물고 있는 정사준(정사준)의 집에 같이 모여 술을 마시며 무척 즐겁게 논다고 하였다.

 

5월 2일 [양력 6월 16일]<임진> 저녁나절에 비내렸다.

원수(권율)는 보성으로 가고, 병마사(이복남)는 본영으로 갔다. 순찰사(박흥로)는 담양으로 가는 길에 와서 보고는 돌아갔다. 순 천부사(우치적)가 와서 봤다. 진흥국(진흥국)이 좌영에서 와서 눈 물을 뚝뚝 흘리면서 원균(원균)의 일을 말했다. 이형복(이형복)· 신홍수(신홍수)도 왔다. 남원의 종 끝돌이가 아산에서 와서 어머니 영연이 평안하다고 한다. 또 변유헌(유헌)은 식구를 데리고 무사히 금곡에 도착하였다고 했다. 홀로 빈 동헌에 앉아 있으니, 비

통함을 어찌 참으랴!

 

5월 3일 [양력 6월 17일]<계사> 맑다.

열 신 사과·응원(응원)·진흥국(진흥국)이 돌아갔다. 이기남(이기 남)이 와서 봤다. 아침에 차남 울(울)을 열(하)로 이름 고쳤다. ” 열”자는 소리는 “기쁠 열(열)”과 같고 뜻은 “움이 돋아나다, 초목 이 무성하게 자란다”는 것으로 매우 좋은 글자이다. 저녁나절에 강소작지이 와 보고서 곡했다. 오후 네 시쯤에 비가 뿌렸다. 저녁에 부사가 와서 봤다.

 

5월 4일 [양력 6월 18일]<갑오> 비가 내렸다.

오늘은 어머니 생신날이다. 슬프고 애통함을 어찌 참으랴! 닭이 울 때 일어나 눈물만 흘릴 뿐이다. 오후에 비가 많이 내렸다. 정 사준(정사준)이 오고, 이수원(이수원)도 왔다.

 

5월 5일 [양력 6월 19일]<을미> 맑다.

새벽 꿈이 몹시 어수선했다. 아침에 부사가 와서 봤다. 저녁나절에 충청우후 원유남(원유남)이 한산도에서 원균(원균)의 못된 짓 을 많이 전하고, 또 진중의 장병들이 군무이탈하여 반역질을 하니, 장차 일이 어찌 될지 헤아리지 못하겠다고 한다. 오늘은 단오절인데, 멀리와 천리나 되는 땅의 끝 모퉁이에서 종군하느라고 어머니 영전에 예를 못하고 곡하며 우는 것도 내 뜻대로 못 하니 무슨 죄로 이런 보답을 받는고! 나 같은 사정은 고금을 통하여도 짝이 없을 것이다. 가슴이 갈갈이 찢어지누나! 다만 때를 못만난 것을 한탄할 따름이다.

 

5월 6일 [양력 6월 20일]<병신> 맑다.

꿈에 돌아가신 두 분 형님을 만났는데, 서로 붙들고 우시면서 하는 말씀이 “장사를 지내기 전에 천리 밖으로 떠나와 군무에 종사하고 있으니, 대체 모든 일을 누가 주장해서 한단 말이냐. 통곡 한들 어찌하리!”라 하셨다. 이것은 두 형님의 혼령이 천리 밖까지 따라 와서 근심하고 애달파함을 이렇게까지 한 것이니 비통할 따름이다. 또 남원의 추수를 감독하는 일을 염려하시는데, 그것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연일 꿈자리가 어지러운 것도 아마 형님 들의 혼령이 그윽히 걱정하여 주는 탓이라 슬픔이 한결 더하다. 아침저녁으로 그립고 설운 마음에 눈물이 엉기어 피가 되건마는 아득한 저 하늘은 어째서 내 사정을 살펴주지 못하는고!

왜 어서 죽지 않는지. 저녁나절에 능성현령 이계명(이계명)도 상제의 몸으로 기용된 사 람인데, 와서 보고 돌아갔다. 흥양의 종 우롬금(우로음금)·박수매(박수매)·조택(조택)과 순화(순화)의 처가 와서 인사했다. 이기 윤(이기윤)과 몽생(몽생)이 왔다. 송정립(송정립)·송득운(송득운) 도 왔다가 곧 돌아갔다. 저녁에 정원명(정원명)이 한산도에서 돌아와 흉물(원균?)의 하 는 꼴을 많이 말했다. 또 부찰사(한효순)가 좌영으로 나와서 병 이라 하여 조리한다고 했다.우수사(이억기)가 편지를 보내 와 조문했다.

 

5월 7일 [양력 6월 21일]<정유> 맑다.

아침에 정혜사의 중 덕수(덕수)가 와서 미투리를 바쳤다. 거절하며 받지 않으니, 재삼 간절히 받으라고 하므로 값을 주어서 보냈다. 미투리를 곧 정원명(정원명)에게 주었다. 저녁나절에 송대기(송대기)· 류몽길(유몽길)이 와서 봤다. 서산군수 안괄(안괄) 도 한산도에서 왔다.

음흉한 자(원균)의 일을 많이 말했다. 저 녁에 이기남(이기남)이 또 왔다. 이원룡(이원룡)은 수영에서 돌아왔다. 안괄(안괄)이 구례에 갔을 때 조사겸(조사겸)의 수절녀를 사통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놀랄 일이다.

 

5월 8일 [양력 6월 22일]<무술> 맑다.

아침에 승장(승장) 수인(수인)이 밥지을 중 두우(두우)를 데리 고 왔다. 종 한경(한경)이 일이 있어서 보성에 보냈다. 흥양의 종 세충(세충)이 녹도에서 망아지를 끌고 왔다. 활장이 이지(이 지)가 돌아갔다. 이 날 새벽꿈에 사나운 범을 때려 잡아서 가죽 을 벗기고 휘둘렀다.

이건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조종(조종) 이 이름을 연(연)으로 고치고는 와서 봤다. 조덕수(조덕수)도 왔 다. 낮에 망아지에 안장을 얹어서 정상명(정상명)이 타고 갔다. 음흉한 원(원)이 편지를 보내어 조문한다. 이는 곧 원수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이경신(이경신)이 한산도에서 와서 원균(원 균)의 흉악한 일을 많이 말했다. 또 그가 데리고 온 서리를 곡 식을 사오라는 구실로 육지로 보내놓고 그 아내를 사통하려 했 다. 그러나 그가 기를 써도 따라주지 않고 밖으로 뛰처나가 고 래고래 소리쳤다고 했다. 원(원)이란 자는 온갖 꾀로써 나를 모 함하려하니 이 또한 운수로다. 말에 실어 보내는 짐이 서울길 에 잇닿았으며, 그렇게 해서 나를 헐뜯는 것이 날이 갈수록 심하 니, 그저 때를 못 만났난 것을 한탄할 따름이다.

 

5월 9일 [양력 6월 23일]<기해> 흐리다.

아침에 이형립(이형립)이 와서 봤다. 곧 돌아갔다. 이수원(이수원) 이 광양에서 돌아왔다. 순천급제 강승훈(강승훈)이 응모해 왔 다. 순천부사가 좌수영에서 돌아왔다. 종 경(경)이 보성에서 말을 끌고 왔다.

 

5월 10일 [양력 6월 24일]<경자> 궂은 비 내렸다.

오늘은 태종(태종)의 제삿날이다. 옛날부터 이 날에는 비가 온다 더니, 저녁나절에는 많은 비가 왔다. 박줄생(박주질생)이 와서 인사했다. 주인이 보리밥을 지어서 들여왔다. 장님 임춘경(임춘 경)이 운수를 봐 가지고 왔다. 부찰사도 조문하는 글을 보냈다. 녹도만호 송여종(송여종)은 겸하여 삼 종이(마지) 두 가지를 부의로 보내 오고, 전라순찰사는 흰쌀·중간 쌀 각 열 말과 콩과 소금도 얻어서 군관을 시켜서 보 낸다고 말했다.

 

5월 11일 [양력 6월 25일]<신축> 맑다.

김효성(김효성)이 낙안에서 왔다가 곧 돌아갔다. 전 광양현감 김성(김성)이 체찰사의 군관이 되었다. 화살대를 구하러 순천 에 왔던 길에 왔다가 봤다. 소문을 많이 전하는데, 소문이란 것은 모두 흉물이 일이었다. 부찰사가 온다는 통지문이 먼저 왔다. 장 위(장위)가 편지를 보냈다. 정원명(정원명)이 보리밥을 지어서 내 었다. 장님 임춘경(임춘경)이 와서 운수 본 것을 말했다. 부찰 사가 순천부에 도착했다. 정사립(정사립)과 양정언(양정언)이 전 하기를 “부찰사가 와서 만나 보자”고 하는데, 내 몸이 불편하여 만나 보는 것을 거절했다.

 

5월 12일 [양력 6월 26일]<임인> 맑다.

이원룡(이원룡)이 보내어 부찰사에게 문안했다. 부찰사는 또 김덕 린(김덕 )을 보내어 문안했다. 저녁나절에 이기남(이기남)·기윤 (기윤)이 와서 보고는 아뢰고 도양장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아침 에 아들 열을 부찰사에게로 보냈다. 신홍수(신홍수)가 와서 보고 원영감(원균)의 점을 쳤는데, 첫 괘가 수뢰둔(상괘 감,하괘 진:널 리 형통하지만 기운은 최악으로 험난함)변하여 천풍구(상괘 건,하 괘 손:여자가 지나치게 거센 괘로서 흉사를 만나는 확률이 열에 아홉임)가 되니 이 쓰임은 본체를 이기는 것이라 크게 흉하다. 남 해 원이 조문 편지를 보내고, 또 여러 가지 물건 – 쌀 둘, 참기름 둘, 꿀 다섯, 조 하나, 미역 둘 저녁에 향사당으로 가서 부찰사와 함께 이야기하고, 자정에야 숙소로 돌아왔다. 정사립(정사립)·양정언(양정언) 등이 왔다가 닭이 운 뒤에 돌아갔다.

 

5월 13일 [양력 6월 27일]<계묘> 맑다.

어젯밤에 부찰사의 말이 “상사가 보낸 편지에 영감에 대한 일을 많이 탄식했더라”고 한다. 저녁나절에 정사준(정사준)이 떡을 만 들어 왔다. 순천부사(우치적)가 노자를 보내왔다. 너무 미안하다.

 

5월 14일 [양력 6월 28일]<갑진> 맑다.

아침에 순천부사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부찰사는 부유(순천시 주 암면 창촌리)로 향했다.

정사준(정사준)·정사립(정사립)·양정언 (양정언)이 와서 모시고 가겠다고 한다. 아침밥을 일찍 먹고 길을 떠나 송치(솔티:순천시 서면 학구리 바랑산) 밑에 이르러 말을 쉬 게 했다.

혼자 바위 위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곤하게 잤다. 운 봉의 박롱(박 )이 왔다. 저물 무렵 찬수강(순천시 환전면과 구례 사이의 강)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걸어서 건넜다. 구례현의 손인 필(손인필)의 집에 이르니, 현감(이원춘)이 와서 봤다.

 

5월 15일 [양력 6월 29일]<을사> 개이다 비오다 하다.

주인 집이 너무 낮고 더러워 파리떼가 벌처럼 모여 사람이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동헌의 띠풀로 엮은 정자로 옮겨 왔더니 마파람이 바로 들어왔다. 구례현감과 함께 종일 이야기했다. 거기서 그대로 잤다.

 

5월 16일 [양력 6월 30일]<병오> 맑다.

현감과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남원의 탐후인이 돌아와서 고하되, “체찰사가 내일 곡성을 거쳐 이 구례현에 들어와 며칠 묵은 뒤에 전주로 갈 것이다.”고 했다. 원이 주물상을 무척 융숭하게 차렸다. 몹시 미안했다. 저녁에 정상명(정상명)이 왔다.

 

5월 17일 [양력 7월 1일]<정미> 맑다.

현감과 같이 이야기했다. 저녁에 남원 탐후인이 돌아와서 전하 여 말하기를, “원수(권율)가 운봉 길로 가지 않고 명나라 총병 양원(양원)을 영접하는 일로 완산(전주)으로 달려갔다.”고 했다. 내 여기 온 것이 헛걸음이라 민망스럽다.

 

5월 18일 [양력 7월 2일]<무신> 맑고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저녁에 김종려(김종려) 영감이 남원에서 곧바로 와서 봤다. 충청수영 영리 이엽(이엽)이 한산도에서 왔기로 집안에 편지를 부쳤다. 그러나 아침 술에 취해 미친듯 날뛰니 얄밉기만 하다.

 

5월 19일 [양력 7월 3일]<기유> 맑다.

체찰사가 이 구례현에 들어올 것이다. 성 안에 머물고 있기가 미 안해서 동문 바깥 장세호(장세호)의 집으로 옮겨 나갔다. 명협정 에 앉았는데 구례현감(이원준)이 와서 봤다. 저녁에 체찰사가 현으로 들어왔다. 오후 네 시쯤에 소나기가 쏟아지더니 오후 여 섯 시에 개었다.

 

5월 20일 [양력 7월 4일]<경술> 맑다.

저녁에 첨지 김경로(김경로)가 와서 봤다. 또 말하기를 무주 장 박지리의 농토가 아주 좋다고 했다. 옥천에 사는 권치중(권치중) 은 첨지 김경로(김경로)의 서처남(서처남)인데 옥천 양산창 근처 에 있다고 했다. 체찰사(이원익)이 내가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공생(공생)을 보내고 또 군관 이지각(이지각)을 보내 더니 조금 있다가 또 군관을 보내어 조문하기를, “일찍 상을 당 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가 이제야 비로소 듣고 놀라 애도한 다.”고 하고, 저녁에 만날 수 있는가를 물었다. 나는 대답하기를 “저녁에 마땅히 가서 뵙겠다.”고 했다. 어둘 무렵에 가서 뵈오니, 체찰사는 소복을 입고 접대한다. 조용 히 일을 의논하고 체찰사가 개탄해 마지 않았다. 밤이 깊도록 이 야기하는 중에 일찌기 임금의 분부가 있었는데 미안하다는 말이 많이 있었다는 바, 그 뜻을 알지 못하겠다고 하며, 또 흉물의 하 는 짓이 몹시도 그럴 듯하게 속이고 있음에도 하늘이 이를 살피 지 못하니 나랏일을 어찌할꼬! 나올 때에 남 종사(남종사)가 사람을 보내어 문안했다. 나는 밤이 깊어서 나가 인사하지 못한다고 대답해 보냈다.

 

5월 21일 [양력 7월 5일]<신해> 맑다.

박천 류해(유해)가 서울에서 내려와서는 한산도로 가서 공을 세 우겠다고 한다. 또 말하기를, 은진현(논산군 은진면 연서리)에 이르니, 은진 원이 뱃길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고 했다. 해가 또 말하기를, 죄수의 우두머리 이덕룡(이덕룡)을 고소한 사람이 옥 에 갇히어 세 차례나 형장을 맞고 다 죽게 될 판이라고 했다. 놀 랍고도 놀랍다. 또 과천의 좌수 안홍제(안홍제) 등이 이상공(이상 공)에게 말과 스무살짜리 계집종을 바치고 풀려 나오는 것을 보 고 나갔다고 했다. 안홍제(안홍제)는 본시 죽을 죄도 아닌데도 여 러번 맞아 거의 죽게 되었다가 물건을 바치고서 석방이 되었다 는 것이다. 안팎이 모두 바치는 물건의 많고 적음에 따라 죄의 경중이 달려있다고 하니, 이러다가는 결말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 다. 이야말로 돈만 있으면죽은 사람의 넋도 찾아온다는 것인가.

 

5월 22일 [양력 7월 6일]<임자> 맑다. 마파람이 세게 불었다.

아침에 손인필(손인필)의 부자가 와서 봤다. 박천 류해(유해)가 승평으로 가서 그 길로 한산도로 간다 하므로, 전라·경상 두 수 사에게 와 가리포 첨사 등에게 문안 편지를 써 보냈다.

늦게 체 찰사의 종사관 김광엽이 진주에서 이 구례현으로 들어오고 배흥 립(배흥립) 영감도 온다는 개인적인 편지도 왔다. 그 동안의 정 회를 풀 수 있겠다. 다행이다. 혼자 앉았으니 비통하여 견디기가 너무 어렵다. 어두울 무렵 배흥립(배흥립) 동지와 이 구례현감 이원춘(이원춘)이 와서 봤다.

 

5월 23일 [양력 7월 7일]<계축>

아침에 정사룡(정사룡)·이사순(이사순)이 와서 봤다. 원공의 일 을 많이 전했다. 저녁나절에 동지 배흥립(배흥립)이 한산도로 돌아갔다. 체찰사가 사람을 보내어 부르므로 가서 뵙고 조용히 의논하는데, 시국의 그릇된 일에 대하여 많이 분개하고 다만 죽 을 날만 기다린다고 했다. 내일 초계로 간다고 하면서, 체찰사가 영수증을 주면서 이대백(이대백)이 모은 쌀 두 섬을 모아서 이를 성밖 주인 장세휘(장세휘)의 집으로 보냈다.

 

5월 24일 [양력 7월 8일]<갑인> 맑다. 샛바람이 종일 세게 불었다.

아침에 광양의 고응명(고응명)의 아들 고언선(고언선)이 와서 봤다. 한산도의 일을 많이 전한다. 체찰사가 군관 이지각(이지각) 을 보내어 안부를 묻고, 경상우도의 연해안 지도를 그리고 싶으 나 도리가 없으니, 본 대로 지도를 그려 보내주면 고맙겠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거절할 수가 없어서 지도를 대강 그려서 보냈다. 저녁에 비가 많이 왔다.

 

5월 25일 [양력 7월 9일]<을묘> 비가 내렸다.

아침에 길을 떠나려 하려다가 비에 막혀 가지 않다. 혼자 시골집 에 기대어 있으니 회포가 그지없다. 슬프고 그리운 생각을 어찌 하랴!

 

5월 26일 [양력 7월 10일]<병진> 종일 많은 비가 내렸다.

비를 무릅쓰고 길을 막 떠나려 하려는데, 사량만호 변익성(변익 성)이 문초받을 일로 체찰사 앞으로 왔는데 이종호(이종호)가 잡 아 왔다. 잠시 서로 마주 보고는 그 길로 석주관(구례군 토지 면 송정리)에 이르니, 비가 퍼 붓듯이 쏟아진다. 말을 쉬게 했지 만, 엎어지고 자빠지며 간신히 악양(하동군 악양면 정서리) 이 정란(이정란)의 집에 이르렀으나, 문을 닫고 거절당했다. 김덕령 (김덕령)의 아우 김덕린(김덕 )이 빌려 쓰는 집이다. 나는 아들 열로 하여금 억지를 대고서 들어가 잤다. 행장이 흠뻑 다 젖었다 .

 

5월 27일 [양력 7월 11일]<정사> 흐렸다가 개이다.

아침에 젖은 옷을 바람에 걸어 말렸다. 저녁나절에 떠나 두치 최춘룡(최춘룡)의 집에 이르렀다. 류기룡(유기룡)이 와서 봤다. 사량만호 이종호(이종호)가 먼저 왔었다. 변익성(변익성)은 곤장 스무 대를 맞아 꼼짝도 못한다고 했다.

 

5월 28일 [양력 7월 12일]<무오>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저녁나절에 길을 떠나 하동에 이르니, 하동현감(신진)이 서로 만나 보는 것을 기뻐하며 성 안 별채로 맞아들여 매우 간곡한 정을 베푼다. 또 원(원균)의 하는 짓이 엄청 미쳤다고 말했다. 날이 저물도록 이야기했다. 변익성(변익성)도 왔다.

 

5월 29일 [양력 7월 13일]<기미> 흐리다.

몸이 너무 불편하여 길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머물러서 몸조리했다. 하동현감(신진)이 정다운 이야기를 많이 했다. 황 생원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이가 일흔 살인데 하동에 왔는 데, 일찌기 서울에 있었으나 지금은 떠돌아 다닌다고 했다. 나는 만나지 않았다.

 

 

정유년 5월 (1597년 6월)

 

6월 초1일 [양력 7월 14일]<경신> 비 비가 내렸다.

일찍 떠나 청수역(하동군 옥종면 정수리) 시냇가 정자에 이르러 말을 쉬었다. 저물녁에 단성땅과 진주 접경지역에 있는 박호원 (박호원)이라는 농사짓는 종의 집에 투숙하려는데, 주인이 기꺼이 접대하기는 하나 잠잘 방이 좋지 못하여 겨우 겨우 밤을 지냈 다. 비가 밤새도록 내렸다. 유둔 하나, 장지 둘, 백미 하나, 참 깨 다섯, 들깨 셋, 꿀 다섯, 소금 다섯과 미지 다섯은 모두 하동 에서 보낸 것이다.

 

6월 2일 [양력 7월 15일]<신유> 비오다 개이다 한다.

일찍 떠나 단계 시냇가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저녁나절에 삼가에 이르니, 삼가현감이 산성으로 이미 가버려 빈 관사에서 잤다. 고을 심부름꾼이 밥을 지어 먹어라고 한 것을 먹지 말라고 종들 에게 타일렀다. 삼가현 오 리 밖에 홰나무 정자가 있어 거기 앉아 있는데, 근처에 사는 노순일(노순일) 형제가 와서 봤다.

 

6월 3일 [양력 7월 16일]<임술> 비가 내렸다.

아침에 떠나려다가 비가 이토록 오니 웅크리고 앉아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을 적에 도원수의 군관 류홍(유홍)이 흥양에서 왔다. 그와 같이 길 사정을 이야기했다. 비로 길을 떠날 수가 없어 그대로 묵었다. 아침에 고을 사람에게 밥을 얻어 먹었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종들에게 매를 때리고 밥쌀을 도로 주었다.

 

6월 4일 [양력 7월 17일]<계해> 맑다.

일찍 떠나려는 데, 삼가현감(신효업)이 문안의 글을 보내면서 노자까지 보내왔다. 낮에 합천땅에 이르러 고을에서 십 리쯤 떨 어진 홰나무 정자가 있는 곳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너무 더워서 한참 동안 말을 쉬게 하고, 오 리쯤 가니, 길이 쌍갈래이다. 한 길은 곧바로 합천군으로 들어가는 길이요, 또 한길은 초계로 가는 길이다. 그래서, 강을 건너지 않고 가다가, 거의 십리(4Km) 쯤 가니, 원수(권율)의 진이 바라 보였다. 문보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가 잤다. 고개를 끼고 넘어 오는데, 기암절벽이 천 길이나 되고, 강물은 굽이 돌며 깊고, 길은 험하고, 다리는 위험하다. 만일 이 험한 곳을 눌러 지킨다면, 만명의 군사라도 지나가지 못하 겠다. 모여곡이다.

 

6월 5일 [양력 7월 18일]<갑자> 맑다.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침에 초계군수가 급히 달려왔다. 곧 그를 불러 이야기했다. 식 사를 한 뒤에, 중군 이덕필(이덕필)도 달려 왔으므로 옛 이야기를 했다. 조금 있으니, 심준(심준)이 와서 보았다. 같이 점심을 먹고 잠자는 방을 도배했다. 저녁에 이승서(이승서)가 와서 파수병과 복병이 도피했던 일을 말했다. 이 날 아침에 구례 사람과 하동현 감이 보내온 종과 말을 아울러 되돌려 보냈다.

 

6월 6일 [양력 7월 19일]<을축> 맑다.

잠자는 방을 다시 발랐다. 군관이 쉴 마루 두 칸을 만들었다. 저 녁나절에 모여곡 주인 집의 이웃에 사는 윤감(윤감)·문익신 (문익신)이 와서 봤다. 종 경(경)을 이대백(이대백)에게 보냈더니 담당 아전이 나가고 없어서 받지 못하고 그냥 왔다고 한다. 어두워서 집에 들어갔는데 과부는 다른 집으로 옮겨 갔다.

 

6월 7일 [양력 7월 20일]<병인> 맑다. 몹시 더웠다.

원수(권율)의 군관 박응사(박응사)와 류홍(유홍) 등이 와서 봤다. 원수의 종사관 황여일(황여일)이 사람을 보내어 문안하므로 곧 사례하는 답장을 보냈다. 안방으로 들어가 잤다.

 

6월 8일 [양력 7월 21일]<정묘> 맑다.

아침에 정상명(정상명)을 보내어 황 종사관에게 안부를 물었다. 저녁나절에 이덕필(이덕필)과 심준(심준)이 와서 봤다. 고을 원과 그 아우가 와서 봤다. 원수를 마중 갔는데 원수 일행 여나믄 명 도 와서 봤다. 점심을 먹은 뒤에 오후에 원수(권율)가 진에 오 므로 나도 나가 보았다. 종사관은 원수 앞에 있었고 원수와 함께 이야기했다. 한 시간쯤 지나서 원수가 박성(박성)이 써 올린 사직서 초고를 보여 주는데, 박성(박성)이 원수의 처사가 소탈 하다고 진술하니, 원수가 스스로 편안하지가 않아 체찰사(이원익) 에게 글을 올렸다. 또 복병에 관한 일들을 낱낱이 아뢴 것을 보았다. 저물어서야 돌아왔다. 몸이 매우 불편하므로, 저녁밥을 먹지 않았다.

 

6월 9일 [양력 7월 22일]<무진> 개이지 않았다.

저녁나절에 정상명(정상명)을 원수에게 보내어 문안했다. 다음에 종사관에게 문안했다. 처음으로 노마료(보수)를 받았다. 숫돌을 캐어 왔는데 질이 연일석(경북 영일에 나는 고운 돌)보다 좋다고 했다. 윤감(윤감)·문익신(문익신)·문보 등이 와서 봤다. 이 날은 여필의 생일인데 혼자 수루터에 앉아 있으니 회포가 어떻겠노!

 

6월 10일 [양력 7월 23일]<기사> 맑다.

아침에 가라말·가라워라말·간자짐말·유짐말 등의 네 편자가 떨어진 것을 갈아 박았다.

원수의 종사관이 삼척의 홍연해(홍 연해)를 보내어 문안하면서 좀 늦게 와서 보겠다고 한다.

홍연해 (홍련해)는 홍견(홍견)의 삼촌 조카이다. 어려서 죽마고우 서철 (서철)이 합천 땅 동면 율진에 사는 데,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와서 봤다. 아이 때 이름은 서갈박지(서갈박지)인데 밥을 먹여 보냈다. 저녁에 원수의 종사관 황여일(황여일)이 와서 보고, 조용히 말하는 사이에 임진년에 왜적을 무찌른 일을 칭찬하지 않 는 것이 없고, 또 산성에 험고한 요새를 쌓지 않은데 대한 한 탄과 당면한 토벌·방비에 관한 대책이 허술한 것 등을 말하는 데,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돌아갈 것을 잊고서 이야기했다. 또 말하기를 내일은 원수가 산성을 살펴보러 간다고 했다.

 

6월 11일 [양력 7월 24일]<경오> 맑다.

중복날이라 쇠를 녹이고 구슬을 녹일 것처럼 땅이 찌는 듯하다. 저녁나절에 명나라 차관 경략군문(당차관군략군문) 이문경(이 문경)이 와서 보므로, 부채를 선물로 보냈다. 엊저녁에 종사관과 이야기 할 때, 변홍백이 집안 편지를 가지고 와서 전하므로 어머 니의 영연이 편한 줄은 알겠으나, 쓰라린 회포를 어찌 다 말하 랴! 다만, 변흥백(변흥백)이 나를 만나볼 일로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청도로 갔다고 하니, 참으로 한이 된다. 이 날 아침에 편 지를 써

서 변흥백(변흥백)에게 보냈다. 아들 열이 토사로 밤새도 록 신음했다. 지짐 굽듯 말할 수 없이 답답하다. 닭이 울어서야 조금 덜하여 잠이 들었다. 이 날 아침에 한산도 여러 곳에 갈 편지 열네 장을썼다. 경의 모친이 편지를 보냈는데 지내기가 몹시 어렵다고 했다. 도둑이 또 일어났다고 했다. 작은 워라말이 먹지 않으니 이것은 더위를 먹은 것이다.

 

6월 12일 [양력 7월 25일]<신미> 맑다.

종 경(경)과 종 인(인)을 한산도 진으로 보냈다. 전라우수사(이억기)· 충청수사(최호)· 경상수사(배설)· 가리포첨사(이응표)· 녹도만호(송여종)· 여도만호(김인영)· 사도첨사(황세득)· 동지 배흥립 (배흥립)· 조방장 김완(김완)· 거제현령(안위)· 영등포만호(조계종)· 남해현감(박대남)· 하동현감(신진)· 순천부사(우치적)에게 편지를 했다. 저녁나절에 승장 처영(처영)이 와서 보고 부채와 미투리를 바치 므로, 물건으로써 갚아 보냈다. 또 적의 사정을 말하고 또 원공 (원균)의 일도 말했다. 낮에 중군장(이덕필)이 군사를 거느리고 적에게 갔다고 한다. 어떤 일인지 몰랐는데, 원수(권율)에게 가 보니, 우병사(김응서)의 보고에, “부산의 적은 창원 등지로 떠나려 하고, 서생포의 적은 경주로 진을 옮긴다.”고 했다. 복병군 을 보내어 길을 막고 적에게 위세를 뽐내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병사의 우후 김자헌(김자헌)이 일이 있어 원수에게 뵈러 왔다. 나도 원수를 보았다. 새벽 일찌기 돌아왔다.

 

6월 13일 [양력 7월 26일]<임신> 맑다.저녁나절에 가랑비가 뿌리다가 그쳤다.

저녁나절에 병마사의 우후 김자헌(김자헌)이 와서 봤다. 한 시간이나 넘도록 서로 이야기했다. 점심을 먹여서 보냈다. 이 날 낮에 왕골을 쪄서 말렸다. 어두울 무렵 청주의 이희남(이희남)의 종 이 들어와서, 주인이 우병사의 부대에 들어갔기 때문에 지금 원수의 진 근처에까지 왔는데 날이 저물어서 묵고 있다고 했다.

 

6월 14일 [양력 7월 27일]<계유>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이른 아침에 이희남(이희남)이 들어와서 아산의 어머니 영연과 위·아랫사람들이 두루두루 무사하다고 한다. 쓰리고 그리운 마음을 어이 다 말하랴! 아침밥을 먹은 뒤에 이희남(이희남)이 편지를 가지고 우병사(김응서)에게 갔다.

 

6월 15일 [양력 7월 28일]<갑술> 맑고 흐리기가 반반이다.

오늘은 보름인데, 군중에 있으니, 어머니 영전에 잔을 올리어 곡하지 못하니, 그리운 마음을 어이다 말하랴! 초계 원이 떡을 마련하여 보냈다. 원수의 종사관 황여일(황여일)이 군관을 보내 어 말하기를, “원수가 산성으로 가려고 한다.”고 전했다. 나도 뒤를 따라 가서 큰 냇가에 이르렀다가 혹시 다른 계획이 있을까 염려되어 냇가에 앉은 채로 정상명(정상명)을 보내어 병이라고 아뢰게 하고서 그대로 돌아왔다.

 

6월 16일 [양력 7월 29일]<을해> 맑다.

혼자 앉아 있었는데 아무도 들여다보는 이가 없었다. 아들 열 과 이원룡(이원룡)을 불러 책을 만들어 변씨 족보를 쓰게 했다. 저녁에 이희남(이희남)이 편지를 보내어 말하기를, “병마사는 보내지 않았다”고 했다. 변광조(변광조)가 와서 봤다. 아들 열 은 정상명(정상명)과 함께 큰 내로 가서 전마를 씻고 왔다.

 

6월 17일 [양력 7월 30일]<병자>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서늘한 기운이 쓸쓸하다. 밤 경치는 한없이 넓기만 한데 새벽에 앉았으니 쓰라린 그리움을 어찌 다 말하랴! 아침밥을 먹은 뒤 에 원수(권율)에게로 가니, 원균(원균)의 정직하지 못한 짓을 많 이 말했다. 또 비변사에서 내려 온 공문을 보이는데, 원균(원균) 의 장계에 수군과 육군이 함께 나가서 먼저 안골포의 적을 무찌 른 연후에 수군이 부산 등지로 진군하겠다고 하니, 안골포의 적 을 먼저 칠 수 없겠는가 하였다. 또 원수의 장계에는 `통제사 원 (원)이라는 사람은 전진하려고는 아니하고 오직 안골포만 먼저 쳐야 한다.’고 하였다. 수군의 여러 장수들이 대개 딴 마음을 품 고 있을 뿐더러 원(원)이라는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 나가지 않 으니, 절대로 여러 장수들과 대책을 합의하지 못할 것이라 일을 망쳐버릴 것이 뻔하다는 것이었다. 원수에게 이희남(이희남)과 변 존서(변존서)· 윤선각(윤선각) 등에게 공문을 띄워 독촉하여 오게 했다. 올 때에 종사관 황여일(황여일)이 머물고 있는 곳에 들어가 앉아서 한 시간이 넘게 이야기하다가 나의 임시로 사는 집 에 와서 곧 이희남(이희남)의 종을 의령산성으로 보내고, 청도에는 파발로 공문을 보냈다. 초계 원을 보았더니 이른바 양심이 없다고 할만하다.

 

6월 18일 [양력 7월 31일]<정축>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아침에 종사관 황여일(황여일)이 종을 보내어 문안했다. 저녁나 절에 윤감(윤감)이 떡을 만들어서 왔다. 명나라 사람 섭위(섭 위)가 초계에서 와서 말하기를, “명나라 사람 주언룡이 일찌기 일본에 사로잡혔다가 이번에야 비로소 나왔는 데, 적병 십만 명 이 벌써 사자마(사자마)나 대마도에 이르렀을 것이며, 소서행장은 의령을 거쳐 곧장 전라도를 침범할 것이요, 가등청정은 경주 ·대구 등지로 옮겨 안동 등지로 갈 것이다.”고 했다. 저물무렵 원수가 “사

천에 갈 일이 있다.”고 알려 왔다. 그래서 사복 정상명 (정상명)을 보내어 물어보게 하였더니, 원수가 “수군에 관한 일 때문에 사천으로 간다.”고 하였다.

 

6월 19일 [양력 8월 1일]<무인>

새벽에 닭이 세 번 울 때 문을 나서서 원수의 진에 이르를 즈음에 동트는 빛이 벌써 밝았다. 진에 이르니 원수와 종사관 황 여일(황여일)이 나와서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가 뵈었더니 원수는 원균(원균)에 관한 일을 내게 말하는 데, 통제사(원균)의 하는 일이 말이 아니다.

흉물은 조정에 청하여 안골포와 가덕 도의 적을 모조리 무찌른 뒤에 수군이 나아가 토벌해야 한다고 한다. 이게 무슨 무슨 뜻이겠소? 질질 끌고 나아가지 않으려는 뜻이다. 그래서 내가 사천으로 가서 세 수사에게독촉하겠다. 통 제사(원균)는 이를 지휘할 것이 없다고 했다고 했다. 나는 또 조정에서 내려온 유지를 보니, “안골포의 적은 가벼이 들어가 칠 것이 못 된다”고 하였다. 원수가 간 뒤에 황 종사관과 이야기했다. 조금 있으니 초계 원이 왔다. 작별하면서 초계 원에게 하는 말이 진찬순(진찬순)에게 심부름시키지 말라고 했더니 원수부의 병방 군관과 원이 모두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내가 돌아올 때 사 로잡혔다가 도망해 되돌아온 사람이 나를 따라 왔다. 이 날은 땅 이 찌는 듯했다. 저녁에 작은 워라말 풀을 적게 먹었다. 낮에 군사 변덕기(변덕기)· 변덕장(덕장)· 변경완(변경완)· 변경남(변경남)이 와서 봤다. 진사 이일장(이일장)도 와서 봤다. 밤에 소나기가 많이 쏟아져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6월 20일 [양력 8월 2일]<기묘> 종일 비오더니 밤에는 많이 내렸다.

늦은 아침 늦게 서철(서철)이 와서 봤다. 윤감(윤감)·문익신 (문익신)·문보 등이 와서 봤다. 변유(변유)가 와서 봤다. 오후에 종과 말의 보수를 받아 왔다. 병들었던 말이 조금 나아졌다.

 

6월 21일 [양력 8월 3일]<경진> 비가 오락가락 하다.

새벽 꿈에 덕과 율온과 대가 꿈에 보였는데, 다들 나를 보고 좋 아하고 뵙고자 하는 기색이 많았다. 아침에 영덕현령 권진경 (권진경)이 원수께 뵈러 왔다가 원수가 이미 사천으로 갔으므 로 나에게 와서 보고 좌도의 일을 많이 전했다. 좌병사 군관이 편지를 가져왔다. 곧 회답편지를 써서 보냈다. 종사관 황여일 (황여일)이 문안을 보냈다. 저녁에 변주부(변주부)·윤선각(윤 선각)이 여기와서 들어와서 밤까지 이야기했다.

 

6월 22일 [양력 8월 4일]<신사> 비가 오락가락 하다.

아침에 초계군수가 연포국(무우·두부·다시마·고기를 맑은 장 에 끓인 국)을 마련하여 와서 권하기는 했지만 오만한 빛이 많이 있었다. 그 처사가 체모 없음을 말하여 뭣하랴! 저녁나절에 이 희남(이희남)이 들어왔다. 우병사의 편지를 전했다. 낮에 정순신 (정순신)·정사겸(정사겸)·윤감(윤감)·문익신(문익신)·문보 등 이 와서 봤다. 이선손(이선손)이 와서 봤

다.

 

6월 23일 [양력 8월 5일]<임오> 비오다가 개다가 하였다.

아침에 대전(대전)을 다시 다듬었다. 저녁나절에 우병마사(김 응서)에게 편지를 보내고, 겸하여 환도(환도)의 크고 작은 것을 보냈다. 그러나 가지고 오는 사람이 물에 빠뜨려 장식과 칼집 이 결딴나버렸으니 아깝도다. 아침에 나굉(나굉)의 아들 나재 흥(나재흥)이 그 아버지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 봤다. 또 쪼들리는 데도 노자까지 보내어 주니 미안스럽다.

 

6월 24일 [양력 8월 6일]<계미> 이 날은 입추이다.

새벽에 안개가 사방에 자욱했다. 골짜기를 분간할 수 없었다. 아 침에 수사 권언경(권언경)의 종 세공(세공)·종 감손(감손)이 와 서 무우밭에 관한 일을 아뢰었다. 무우밭을 갈고 씨부침하는 일의 감독관으로 이원룡(이원룡)·이희남(이희남)·정상명(정상 명)·문임수(문림수) 등을 정하여 보냈다. 생원 안극가(안극가)가 와서 보고 시국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오후에 합천군수가 조언형(조언형)을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더위가 찌는 듯했다.

 

6월 25일 [양력 8월 7일]<갑신> 맑다.

다시 무우씨를 부침하도록 시켰다. 아침을 먹기 전에 종사관 황여일(황여일)이 와서 보고는 해전에 관한 일을 많이 말하고, 또 원수가 오늘 내일 진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군사를 토론 하다가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저녁에 종 경(경)이 한 산도에서 돌아왔다. 보성군수 안홍국(안홍국)이 적탄에 맞아 죽었다고 들었다. 놀라워 슬픔을 이길 수가 없다. 놀랍고도 애석 하며 놀라와 탄식했다. 한 놈의 적도 잡지 못하고 먼저 두 장 수를 잃었으니 통탄하고 한탄할 일이다. 거제도 사람을 보내어 미역을 실어왔다.

 

6월 26일 [양력 8월 8일]<을유> 맑다.

새벽에 순천의 종 윤복(윤복)이 현신하기에 곧 곤장을 쉰 대 때 렸다. 거제에서 온 사람이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중군장 이덕필(이덕필)과 변홍달(변홍달)·심준(심준) 등이 와서 봤다.

종 사관 황여일(황여일)이 개벼루 강가의 정자로 갔다가 돌아갔다. 어응린(어응 )과 박몽삼(박몽삼) 등이 와서 봤다. 아산 종 평세(평세)가 들어와서 어머니 영연이 평안하고, 집집이 위·아랫 사람들이 다 평안하다고 했다. 다만 석달이나 가물어서 농사는 틀려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 장삿날은 7월 27일이나 또는 8 월 4일중에서 날잡는다고 했다. 그리운 생각에 슬픈 정회를 어 찌 다 말하랴! 저녁에 우병마사(김응서)가 체찰사(이원익) 에게, “아산의 이방(이방)과 청주의 이희남(이희남)이 복병하기 싫어서 원수(권율)의 진영 곁으로 피해 있다.”고 말하여, 체찰사 가 원수에게 공문을 보내니, 원수는 무척 성내어 공문을 다시 작 성하여 보냈다. 이 날에 작은 워라말이 죽어서 내다버렸다.

 

6월 27일 [양력 8월 9일]<병술> 맑다.

아침에 어응린(어응 )·박몽삼(박몽삼) 등이 돌아갔다. 이 희남(이희남)과 이방(이방)이 체찰사의 행차가 도착하는 곳으로 갔다. 저녁나절에 황여일(황여일)이 와서 보고 한참동안 이야기하 였다. 오후 세시에 소나기가 많이 쏟아져 잠깐 사이에 물이 흘러 넘쳤다고 했다.

 

6월 28일 [양력 8월 10일]<정해> 맑다.

저녁나절에 황해도 백천에 사는 별장 조신옥(조신옥)·홍대방 (홍대방) 등이 와서 봤다. 초계 아전의 편지에, “원수가 내일 남원으로 간다.”고 하였다. 이 날 새벽 꿈이 몹시도 뒤숭숭하였다. 종 경(경)이 물건을 사러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6월 29일 [양력 8월 11일]<무자> 맑다.

변주부가 마흘방으로 갔다. 종 경(경)이 돌아왔다. 이희남(이희 남)·이방(이방) 등이 돌아왔다. 중군장 이덕필(이덕필)과 심준 (심준)이 와서 유격 심유경(심유경)을 잡아가는 데, 총병관 양 원(양원)이 삼가에 이르러 꽁꽁 묶어 보내더라고 전했다. 문림 수(문림수)가 의령에서 와서 전하기를 체찰사가 벌써 초계역에 이르렀다고 한다. 새로 급제한 량간(양간)이 황천상(황천상)의 편 지를 가지고 왔다. 변주부가 마흘방에서 돌아왔다.

 

6월 30일 [양력 8월 12일]<기축> 맑다.

새벽에 정상명(정상명)을 시켜 체찰사에게 문안했다. 이 날 몹시 더워 땅이 찌는 듯했다. 저녁에 흥양의 신여량(신여량)·신제 운(신제운) 등이 와서, 연해의 땅은 비가 알맞게 왔다고 전했다.

 

 

정유년 7월 (1597년 7월)

 

7월 초1일 [양력 8월 13일]<경인> 새벽에 비오다가 저녁나절에 개이다.

명나라 사람 세 명이 왔다가 부산으로 간다고 했다. 송대립(송대 입)과 송득운(송득운)이함께 왔다. 안각(안각)도 와서 봤다. 저녁에 서철(서철) 및 방덕수(방덕수)와 그 아들이 와서 잤다. 이 날 밤 가을 기운이 몹시 서늘하여 슬프고 그리움을 어찌하랴! 그대로 송득운(송득운)은 원수의 진에 갔다가 왔는데, 종사관 황여일(황여일)이 큰 냇가에서 피리를 불렀다고 하니 놀랍고 놀랄 일이다. 오늘은 인종의 제삿날이기 때문이다.

 

7월 2일 [양력 8월 14일]<신사> 맑다.

아침에 변덕수(변덕수)가 돌아왔다. 저녁나절에 신제운(신제운)과 평해에 사는 정인서(정인서)가 종사관의 심부름으로 문안하러 여기 왔다. 오늘이 곧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일인데, 멀리 천리 밖에 와서 군복을 입고 있으니 사람의 일이 어찌 이러냐!

 

7월 3일 [양력 8월 15일]<임오> 맑다.

새벽에 앉아 있으니 싸늘한 기운이 뼈속으로 스민다. 비통한 마음이 한층 더했다. 제사에 쓸 유과와 밀가루를 장만했다. 저녁나절에 정읍의 군사 이량(이량)·최언환(최언환)·건손(건손) 등 세 사람을 심부름 시키라고 보내왔다. 저녁나절에 장준완(장준 완)이 남해에서 와서 보고 남해 원의 병이 중하다고 전하였다. 몹시 민망하다. 조금 있으니 합천군수 오운(오운)이 와서 보고, 산성의 일을 많이 말했다. 점심을 먹은 뒤에 원수의 진으로 가니, 황종사관과 이야기했다. 종사관은 전적(전적) 박안의(박안의) 와 활을 쐈다. 이때 좌병마사의 군관이 항복한 왜놈 두 명을 잡아 왔는데, 가등청정의 부하라고 하였다. 날이 저물어서 돌아 왔다. 그 때 고령 원이 성주에 갇혔다는 말을 들었다.

 

7월 4일 [양력 8월 16일]<계미> 맑다.

종사관 황여일(황여일)이 정인서(정인서)를 보내어 문안했다. 저녁나절에 이방(이방)과 류황(유황)이 스스로 군사를 모집하러 왔다. 흥양의 량점(양점)·찬(찬)·기(기) 등이 왔다. 변여량(변여량)· 변회보(변회보)· 황언기(황언기) 등이 모두 벼슬했다고 와서 봤다. 변사증(변사증)과 변대성(변대성) 등도 와서 봤다. 점심을 먹은 뒤에 비가 뿌렸다. 아침밥을 먹을 때 안극가(안극가)가 와서 봤다. 어두어서 비가 많이 내리더니 밤새도록 그치지 않았다.

 

7월 5일 [양력 8월 17일]<갑신> 비가 내렸다.

이른 아침에 초계원이 체찰사의 종사관 남이공(남이공)이 경내를 지나간다고 하면서 산성에서부터 영문을 지나갔다. 저녁나절에 변덕수(변덕수)가 왔다. 변존서(변존서)가 마흘방(마흘방)으로 갔다.

 

7월 6일 [양력 8월 18일]<을유> 맑다.

꿈에 윤삼빙(윤삼빙)을 보았는데 나주로 귀양간다고 했다. 저녁나 절에 이방이 와서 봤다.

홀로 빈방에 앉았으니 그리움과 비통함을 어찌 말로 다하랴! 저녁에 바깥채에 나가 앉았다.

변존서 (변존서)가 마흘방에서 돌아왔다. 그래서 안으로 들어갔다. 안각(안각) 형제도 변흥백(변흥백)을 따라 왔다. 이 날 제사에 쓸 중배끼 다섯 말을 꿀에다 반죽하여 시렁에 얹었다.

 

7월 7일 [양력 8월 19일]<병술> 맑다.

오늘은 칠석이다. 슬픔과 그리움을 어찌하랴! 꿈에 원균(원균)과 같이 모였다. 내가 원균(원균)의 윗자리에 앉아 음식상을 받자 원균(원균)이 기쁜 빛이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징조인지 알 수가 없다. 박영남(박영남)이 한산에서 와서 그 주장의 잘못으로 대신 죄 받으러 원수에게 잡혔다고 했다. 초계 현감이 햇물건을 마련하여 보내왔다. 아침에 안각(안각) 형제가 와서 봤다. 저물어서 흥양의 박응사(박응사)가 와서 봤다. 심준(심준) 등이 와서 봤다. 의령현감 김전(김전)이 고령에서 와서 병마사의 잘못된 일을 많이 말했다.

 

7월 8일 [양력 8월 20일]<정해> 맑다.

아침에 이방(이방)이 왔기에 밥을 먹여 보냈다. 그에게서 들으니, 원수가 구례에서 이미 곤양에 이르렀다고 했다. 저녁나절에 집 주인 이어해(이어해)와 최태보(최태보)가 와서 봤다.

변덕수 (변덕수)가 또 왔다. 저녁에 송대립(송대립)·류홍(유홍)·박영 남(박영남)이 왔다.

송과 류 두 사람은 밤이 깊어서야 돌아갔다.

 

7월 9일 [양력 8월 21일]<무자> 맑다.

내일 아들 열을 아산으로 내려 보내고자 한다. 제사에 쓸 과일을 봉하는 것을 살펴봤다. 저녁나절에 윤감(윤감)·문보 등이 술을 가지고 와서 열과주부 변존서(변존서) 등에게 전별하고 돌아 갔다. 이 날 밤 달빛이 대낮 같았다. 어버이를 생각하니, 슬퍼서 울면서 밤늦도록 잠을 못잤다.

 

7월 10일 [양력 8월 22일]<기축> 맑다.

열과 변존서(변존서)를 보내려고 앉아서 날새기를 기다렸다가 일찌기 아침밥을 먹는데 정회를 스스로 억누르지 못해 통곡하며 보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구례에서 온 말을 타고 가니 더욱 걱정이 된다. 열 등이 막 떠나자 종사 관 황여일(황여일)도 와서 한 시간이 넘게 이야기했다. 저녁나절에 서철(서철)이 와서 봤다. 정상명(정상명)이 싸움터에 나가 살아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의를 종이로써 만들기를 마쳤다. 저녁에 홀로 빈 집에 앉았으니, 마음이 끓어 올라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도록 뒤척거렸다.

 

7월 11일 [양력 8월 23일]<경인> 맑다.

열이 어떻게 갔는지 생각하고 있으니 견딜 수 없다. 더위가 너무도 심하여 걱정 뿐이다. 저녁나절에 변홍달(변홍달)·신제운(신 제운)·림중형(임중형)이 와서 봤다. 홀로 빈 대청에 앉았으니 그리움을 어찌하랴! 너무도 비통하다. 종 태문(태문)과 종이가 순천으로 갔다.

 

7월 12일 [양력 8월 24일]<신묘> 맑다.

아침에 합천이 햅쌀과 수박을 보냈다. 점심밥을 지을 적에 방응원(방응원)· 현응진(현응진)· 홍우공(홍우공)· 림영립(임영립) 등이 박명현(박명현)이 있는 곳에서 와서 같이 밥을 먹었다. 종평세(평세)는 열을 따라갔다가 돌아왔다. 잘 갔다고 하니 다행이다. 그러나 슬퍼서 탄식함을 어찌 말로써 하랴! 이희남(이희남)이 사철쑥(더위지기,생당쑥; 입추때에 베어 말려 냉, 황달,습열,간장염 등의 한약재로 씀)백 묶음을 베어 왔다.

 

7월 13일 [양력 8월 25일]<임진> 맑다.

아침에 남해현령이 편지를 보내고, 음식물도 많이 보냈다고 하고, 또 싸움말(전마)을 몰고 가라고 하였다. 저녁나절에 이태수 (이태수)·조신옥(조신옥)·홍대방(홍대방)이 와서 보고, 또 적을 토벌할 일을 말하였다. 송대립(송대립)·장득홍(장득홍)도 왔다. 장득홍은 스스로 마련한 것이라고 아뢰었다. 그래서 양식 두 말을 내주었다. 이 날 칡을 캐어 왔다. 이방도 와서 봤다. 남해 아전과 심부름꾼 두 명이 왔다.

 

7월 14일 [양력 8월 26일]<계사> 맑다.

이른 아침에 정상명(정상명)과 종 평세(평세)·종 귀인(귀인)이 짐말 두 필을 남해로 보냈다. 정(상명)은 싸움말(전마)을 끌고 올 일로 보낸 것이다. 새벽 꿈에 나는 체찰사와 같이 어느 곳에 이르니, 송장들이 쫙 깔려 있었는데 혹은 밟기도 하고 혹은 목을 베게도 했다. 아침밥을 먹을 때 문인수가 와가채(모시조개 음식)와 동아선(동아를 기름에 볶아 잣가루를 묻혀 겨자를 찍어 먹는 술안주)을가져 왔다. 방응원(방응원)· 윤선각(윤선각)· 현응진(현응진)· 홍우공(홍 우공) 등과 함께 이야기했다. 홍이라는 사람은 제 아버지의 병으로 종군하고 싶지 않아 팔이 아프다고 핑계하니 엄청 놀랍다. 오전 열시쯤에 종사관 황여일(황여일)은 정인서(정인서)를 보내어 문안했다. 또 김해 사람으로 왜놈에게 부역했던 김억(김억)의 편지를 보이는 데, “초7일 왜선 오백 여 척이 부산에서 나오고, 초9일 왜선 천 척이 합세하여 우리 수군과 절영도(부산시 영도구 영도) 앞 바다에서 싸웠는데, 우리 전선 다섯 척이 표류하여 두모포에 닿았고, 또 일곱 척은 간 곳이 없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곧 종사관 황여일(황여일) 이 군사 점호하는 곳으로 달려 나가서 황 종사관과 상의하였다. 그대로 앉아서 활 쏘는 것을 구경했다. 조금있으니 내가 타고 간 말을 홍대방(홍대방)더러 달려보라고 했더니 잘 달렸다. 날씨가 비올 것 같아 돌아와 집에 이르자마자 비가 마구 쏟아졌다. 밤 열시 쯤에야 맑게 개이니 달빛이 낮보다 훨씬 더 밝았다. 쌓이는 그리움을 말할 수 없다.

 

7월 15일 [양력 8월 27일]<갑오> 비가 오락가락 하다.

저녁나절에 조신옥(조신옥)·홍대방(홍대방) 등과 여기 있는 윤선각(윤선각)까지 아홉 명을 불러 떡을 차려 먹었다. 가장 늦게 중군 이덕필(이덕필)이 왔다. 저물어서 돌아갔다. 그에게서 우리 수군 스무 여 척이 적에게 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참으로 분통이 터진다. 한스럽기 짝이 없는 것은 왜적을 막아낼 방책이 없다는 것이다. 어두워서 비가 많이 내렸다.

 

7월 16일 [양력 8월 28일]<을미> 비오다 걷혔다 하면서 종일 흐리고 맑지 않았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손응남(손응남)을 중군(이덕필)에게 보내어 수군의 소식을 알아보게 했더니 돌아와서 중군의 말을 전하는데, 좌병사의 긴급보고로 보아 불리한 일이 많다고 하면서 갖추 다 말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탄식할 일이다. 저녁나절에 변의정(변 의정)이란 사람이 수박 두 덩이를 가지고 왔다. 그 꼬락서니가 어리석고도 용렬하다. 두멧골에 묻혀 사는 사람인지라 배우지 못하고 가난하다보니 저절로 그렇게 되는가 보다. 이 역시 거짓없고 인정이 두터운 태도이다. 이 날 낮에 이희남(이희남)에게 칼을 갈게 했더니, 너무 잘들어 괴수 맨머리로 깎을만 했다. 소나기가 갑자기 쏟아졌다. 아들 열이 가는 길을 많이 생각하니 씁쓰레하다. 마음 속으로만 빌 뿐이다. 저녁에 영암군 송진면에 사는 사삿집 종 세남(세남)이 서생포에서 알몸으로 왔다. 그 까닭을 물으니, 7월 초4일에 전 병마사의 우후가 탄 배의 격군이 되어 초5일에 칠천도에 이르러 정박하고, 6일 옥포에 들어왔다가, 7일에는 날이 밝기 전에 말곶을 거쳐 다대포에 이르니, 왜선 여덟 척이 정박하고 있었다. 우리의 여러 배들이 곧장 돌격하려는데, 왜놈들은 몽땅 뭍으로 올라 가고 빈 배만 걸려 있어, 우리 수군이 그것들을 끌어 내어 불질러 버리고, 그 길로 부산 절영도 바깥 바다로 향하다가, 마침 적선 일천 여 척이 대마도에서 건너 와서 서로 맞아 싸우려는 데, 왜선이 흩어져 달아나서 끝까지 섬멸할 수가 없었다. 세남 (세남)이 탔던 배와 다른 배 여섯 척은 배를 제어할 수가 없어 표류되어 서생포 앞바다에 이르러 상륙하려다가 모두 모두 살륙 당하였다. 요행히 세남(세남)만은 혼자 숲속으로 기어 들어가 간신히 목숨을 보존하여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듣고 보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우리 나라에서 미더운 것은 오직 수군 뿐인데, 수군마저 이와같이 희망이 없게 되었으니, 거듭 생각할수록 분하여 간담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선장 이엽(이엽)이 왜적에게 묶여 갔다고 하니, 더더욱 원통하다. 손응남(손응남)이 집으로 돌아갔다.

 

7월 17일 [양력 8월 29일]<병신> 가끔 비가 내렸다.

아침에 이희남(이희남)을 종사관 황여일(황여일)에게 보내어 세남(세남)의 말을 전했다. 저녁나절에 초계원이 벽견산성에서 와서 보고 돌아갔다. 송대립(송대립)· 류황(유황)· 류홍(유홍)· 장득홍(장득홍) 등이 와서 보고 날이 저물어서 돌아갔다. 변대헌(변대헌)·정운룡(정운룡)· 득룡(득룡)·구종(구종) 등은 초계 아전인데 어머니 쪽의 같은 파 사람들로서 와서 봤다. 큰비가 종일 내렸다. 이름을 적지 않은 사령장을 신여길이 바다 가운데서 잃어버린 일로 심문받으러 갔다. 경상순변사가 그 기록을 가져 갔다.

 

7월 18일 [양력 8월 30일]<정유> 맑다.

새벽에 이덕필(이덕필)·변홍달(변홍달)이 전하여 말하기를, “16일 새벽에 수군이 몰래 기습공격을 받아 통제사 원균(원 균)·전라우수사 이억기(이억기)·충청수사(최호) 및 여러 장수 와 많은 사람들이 해를 입었고, 수군이 대패했다.”고 했다. 듣자하니 통곡함을 참지 못했다.

조금 있으니, 원수(권율)가 와서 말하되, “일이 이 지경으로 된 이상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오전 열 시가 되어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직접 연해안 지방으로 가서 보고 듣고난 뒤에 이를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는가?”라고 말하니, 원수가 기뻐하여 마지 않았다. 나는 송대립(송대립)·류황(유황)·윤선각(윤선각)· 방응원(방응원)· 현응진(현응진)· 림영립(임영립)· 이원룡(이원룡)· 이희남(이희남)· 홍우공(홍우공)과 함께 길을 떠나 삼가현에 이르니, 삼가현감이 새로 부임하여 나를 기다렸다. 한치겸(한치겸) 도 왔다.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7월 19일 [양력 8월 31일]<무술> 종일 비가 내렸다.

오는 길에 단성의 동산 산성에 올라가 형세를 살펴보니, 매우 험하여 적이 엿볼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대로 단성현에서 잤다.

 

7월 20일 [양력 9월 1일]<기해> 종일 비가 내렸다.

아침에 권문임(권문임)의 조카 권이청(권이청)이 와서 봤다. 단성현감도 와서 봤다. 오정때에 진주 정개산성(정개산성) 아래 강정에 이르니, 진주목사가 와서 봤다. 굴동(옥종면 문암리)의 이희만(이희만)의 집에서 잤다.

 

7월 21일 [양력 9월 2일]<경자> 맑다.

일찍 떠나 곤양군에 이르니, 군수 이천추(이천추)가 군에 있고, 백성들도 많이 본업에 힘써, 혹 이른 곡식을 거두어 들이기도 하고, 혹 보리밭을 갈기도 하였다. 낮에 점심을 먹은 뒤에 노량에 이르니, 거제현령 안위(안위)·영등포만호 조계종(조계종) 등 여나믄 명이 와서 통곡하였으며, 피하여 나온 군사와 백성들이 울부짖지 않는 이가 없었다. 경상수사(배설)는 도망가 보이지 않고, 우후 이의득(이의득)이 와서 보므로 패하던 정황을 물었더니, 사람들이 모

두 울면서 말하되, “대장 원균(원균)이 적을 보고 먼저 뭍으로 달아났다. 여러 장수들도 힘써 뭍으로 가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대장의 잘못을 말한 것인데 입으로는 형용할 수가 없고 그 살점이라도 씹어 먹고 싶다고들 하였다. 거제 배 위에서 자면서 거제현령 안위(안위)와 함께 이 야기했다. 밤 세 시(사갱)가 되어도 조금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그 바람에 눈병이 생겼다.

 

7월 22일 [양력 9월 3일]<신축> 맑다.

아침에 경상수사 배설(배설)이 와서 보고, 원균(원균)의 패망하던 일을 많이 말했다. 식사를 한 뒤에 남해현감 박대남(박대남)이 있는 곳에 이르니, 병세가 거의 구할 수 없게 되었다.

싸움말을 서로 바꿀 일을 다시 이야기했다. 종 평세(평세)와 군사 한 명을 데리고 왔다고 했다. 오후에 곤양에 이르니, 몸이 불편하므로 잤다.

 

7월 23일 [양력 9월 4일]<임인> 비가 오락가락 하다.

아침에 노량에서 했던 공문을 송대립(송대립)에게 부쳐 먼저 원수부에 갖다 주게 하고, 곧 뒤따라 떠나 십오리원(곤명면 봉계 리)에 이르니, 백기 배흥립(배흥립)의 부인이 먼저 와 있었다. 말에서 내려 잠깐 쉬었다. 진주 굴동의 전에 묵었던 곳에 이르러 잤다. 백기 배흥립(배흥립)도 와서 잤다.

 

7월 24일 [양력 9월 5일]<계묘> 비가 그침없이 내렸다.

한치겸(한치겸)·이안인(이안인)이 부찰사에게로 돌아갔다. 정씨의 종 예손과 손씨의 종이 같이 돌아갔다. 식사를 한 뒤에 이 홍훈(이홍훈)의 집으로 옮겼다. 방응원(방응원)이 정개산성에서 와서, “종사관 황여일(황여일)이 정개산성에 이르렀다”고 전하고, 연해안 사정을 듣고 본대로 전하더라는 것이다. 군량 스무 말, 말 먹이 콩 스무 말, 말 대갈 일곱 벌을 가져 왔다. 이 날 저녁에 조방장 배경남(배경남)이 와서 보기에 술로써 위로했다.

 

7월 25일 [양력 9월 6일]<갑진> 저녁나절에야 맑다.

종사관 황여일(황여일)이 편지를 보내어 문안했다. 조방장 김 언공이 와서 보고서는 그 길로 원수부로 갔다. 배수립(배수립) 이 와서 보고, 이곳 주인 이홍훈(이홍훈)이 와서 봤다. 남해현 령 박대남(박대남)이 자기의 종 용산(용산)을 보내어 내일 들 어오겠다고 전했다. 저녁에 가서 백기 배흥립(배흥립)의 병을 보니, 고통이 극도로 심했다. 걱정이다. 송득운(송득운)을 보내어 황종사관에게 문안했다.

 

7월 26일 [양력 9월 7일]<을사> 비가 오락가락 하다.

일찍 밥을 먹고 정개산성 아래에 있는 송정 아래로 가서 종사관 황여일(황여일)과 진주목사와 함께 이야기했다. 날이 늦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7월 27일 [양력 9월 8일]<병오> 종일 비가 내렸다.

이른 아침에 정개산성 건너편 손경례(손경례)의 집으로 옮겨 가서 머물렀다.저녁나절에 동지 이천(이천)과 판관 정제(정제)가 체찰사에게서 와서 전령을 전했다. 같이 저녁밥을 먹었다.

이 동지는 배 조방장에게 가서 잤다.

 

7월 28일 [양력 9월 9일]<정미> 비가 내렸다.

이희량(이희량)이 와서 봤다. 초저녁에 동지 이천(이천) 및 진주목사와 소촌찰방 이시경(이시경)이 와서 왜적과 맞싸울 대책을 논의했다. 밤에 이야기하다가 자정이 지나서 돌아갔다.

의논한 것은 모두 계책을 돕는 일이었다.

 

7월 29일 [양력 9월 10일]<무신> 비가 오락가락 하다.

아침에 이군거(이군거:천의 자) 영감과 함께 밥을 먹고 체찰사 앞으로 보냈다. 저녁나절에 냇가로 나가 군사를 점검하고, 말을 달리는데, 원수가 보낸 자들은 모두 말도 없고 또 활과 화살도 없으니, 아무 쓸 데가 없으니, 참으로 탄식할 일이다. 저녁에 돌아올 때 배 동지와 남해현령 박대남(박대남)에게 들려 봤다. 밤 내내 큰비가 왔다. 찰방 이시경(이시경)에게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정유년 8월 (1597년 8월)

 

8월 초1일 [양력 9월 11일]<기유> 큰비가 와서 물이 넘쳤다.

저녁나절에 소촌찰방 이시경(이시경)이 와서 봤다. 조신옥(조 신옥)·홍대방(홍대방) 등이 와서 봤다.

 

8월 초2일 [양력 9월 12일]<경술> 잠시 개었다.

홀로 수루의 마루에 앉았으니 그리움을 어찌하랴! 비통할 따름이다. 이날 밤 꿈에 임금의 명령을 받을 징조가 있었다.

 

8월 3일 [양력 9월 13일]<신해> 맑다.

이른 아침에 선전관 양호(양호)가 뜻밖에 교유서를 가지고 왔다. 명령은 곧 겸 삼도수군통제사의 임명이다. 숙배를 한 뒤에 다만 받들어 받았다는 글월을 써서 봉하고, 곧 떠나 두치(두치)로 가는 길로 곧 바로 갔다. 초저녁에 행보역(하동군 횡천면 여의리)에 이르러 말을 쉬고, 한밤 12시에 길을 떠나 두치에 이르니, 날이 새려했다. 남해현령 박대남(박대남)은 길을 잘못 들어 강정(강정: 하동읍 서해량 홍수통제소 서쪽 섬진강가)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말에서 내려 기다렸다가 불러와서, 쌍계동에 이르니, 길에 돌이 어지러이 솟아있고, 비가 와 물이 넘쳐 흘러 간신히 건넜다. 석주관(구례군 토지면 송정리)에 이르니, 이원춘(이원춘)과 류해가 복병하여 지키다가 나를 보고 적을 토벌할 일을 많이 말했다. 저물어서 구례현에 이르니, 일대가 온통 쓸쓸하다. 성 북문(구례 읍 북봉리) 밖에 전날의 주인 집으로 가서 잤는데, 주인은 이미 산골로 피난 갔다고 했다. 손인필(손인필)은 바로 와서 볼겸하여 곡식까지 가져 왔다. 손응남(손응남)은 올감(조시)을 바쳤다.

 

8월 4일 [양력 9월 14일]<임술> 맑다.

□□을 보내 왔다. 다시 들어와 관청을 보았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압록강원(곡성군 오곡면 압록리)에 이르러 점심밥을 짓고 말의 병을 고쳤다. 고산현감 최진강(최진강)이 군인을 교체 할 일로 와서 수군의 일을 많이 말했다. 낮에 곡성(곡성군 곡성읍 읍내리 713-2번지)에 이르니, 관 청(곡성현감:최충검)과 여염집이 한결같이 비어 있고, 사람사는 기척이 끊어졌다.

이 일대에는 온통 비어있고 말 먹일 풀도 구하기 어려웠다. 그 현청에서 잤다. 남해현령 박대남(박대남)은 곧장 남원으로 갔다.

 

8월 5일 [양력 9월 15일]<계해> 맑다.

거느리고 온 군사를 인계할 곳이 없다고 하면서 이제 이원에 이르러 병마사가 경솔히 물러난 것을 원망하는 것이었다. 아침을 먹은 뒤에 옥과(곡성군 옥과읍)땅에 이르니, 피난민이 길에 가득 찼다. 남자와 여자가 부축하고 걸어가는 것이 차마 볼 수 없었다. 울면서 말하기를 `사또가 다시 오셨으니 우리들은 이제야 살았다’고 했다. 길가에 큰 홰나무 정자가 있기에 말에서 내려 타일렀다. 옥과현에 들어갈 때, 순천에서 이기남(이기남)의 부자를 만나 함께 현에 이르니, 정사준(정사준)· 정사립(정사립)이 와서 마중 했다. 옥과현감(홍요좌)은 병을 핑계 삼아 나오지 않았다. 잡아다 죄주려 하니 그제야 나와서 봤다.

 

8월 6일 [양력 9월 16일]<갑자> 맑다.

이 날은 옥과에서 머물렀다. 초저녁에 송대립(송대립)이 적을 정탐하고 왔다.

 

8월 7일 [양력 9월 17일]<을축> 맑다.

일찍 길을 떠나 곧장 순천으로 갔다. 고을에서 십리쯤 되는 길에서 선전관 원집(원집)을 만나 임금의 분부를 받았다. 길 옆에 앉아서 읽어보니 병마사가 거느렸던 군사들이 모두 패하여 돌아가는 길이 줄을 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 세 필과 활과 살을 약간 빼앗아 왔다.

곡성현 석곡 강정 (석곡면 능파2구 능암리 3490번지 일대)에서 잤다.

 

8월 8일 [양력 9월 18일]<병인>

곧바로 부유창으로 가다가 중도에서 이형립(이형립)을 병마사에게로 보냈다. 새벽에 떠나 부유창(순천시 주암면 창촌리)에서 아침밥을 먹는데, 이곳은 병마사 이복남(이복남)이 이미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불을 질렀다. 다만 타다 남은 재만 있어 보기에도 처참하였다. 광양현감 구덕령(구덕령)·나주판관 원종의 (원종의)·옥구 원(홍요좌) 등이 창고바닥에 숨어 있다가 내가 왔단 말을 듣고 배경남(배경남)과 함께 구치(구치: 순천시 주 암면 행정리 접치 마을)로 급히 달아났다. 내가 말에서 내려 곧 전령을 내렸더니, 한꺼번에 와서 절을 하였다. 나는 피해 돌아 다니는 것을 들추어서 꾸짖었더니, 다들 그 죄를 병사 이복남 (이복남)에게로 돌리었다. 곧 길을 떠나 순천에 이르니, 성 안팎에 사람 발자취가 하나도 없어 적막했다. 오직

절에 있는 중 혜희(혜희)가 와서 알현하므로 의병장의 사령장을 주었다. 저물어서 순천에 이르니 관사와 곳간의 곡식 및 군기 등 물건은 옛날과 같다. 병마사가 처치하지 않은 채 달아났다. 참으로 놀랄 일이었다. 총통같은 것은 옮겨 묻고, 장전(장전)과 편전(편전)은 군관들이 져 나르게 하고, 총통과 운반하기 어려운 것들은 깊이 묻고 표를 세웠다. 그대로 순천부사가 있는 방에서 머물러 잤다.

 

8월 9일 [양력 9월 19일]<정묘> 맑다.

일찍 떠나 낙안군에 이르니, 오리까지나 사람들이 많이 나와 환영하였다. 백성들이 달아나고 흩어진 까닭을 물으니, 모두 하는 말이, “병마사가 적이 쳐들어 온다고 퍼뜨리며 창고에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 그 때문에 이와같이 백성들도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다. 관청에 들어가니 적막하여 사람의 소리가 없었다. 순천부사 우치적(우치적)·김제군수 고봉상(고봉상) 등이 와서, 산골에서 내려와서, 병마사의 처사가 뒤죽박죽 이었다고 말하면서 하는 짓을 짐작했다고 하니, 패망한 것을 알만하다. 관청과 창고가 모두 다 타버리고 관리와 마을 사람들이 흐르는 눈물을 가누지 못하고서 말하였다. 점심을 먹은 뒤에 길을 떠나 십리쯤 오니, 길가에 동네 어 른들이 늘어서서 술병을 다투어 바치는 데, 받지 않으면 울면서 억지로 권했다. 저녁에 보성군 조양창(조성면 조성리)에 이르니, 사람은 하나도 없고, 창고에는 곡식이 묶여진 채 그대로였다. 그래서, 군관 네 명을 시켜 지키게 하고, 나는 김안도(김안도)의 집에서 잤다. 그 집 주인은 벌써 피난나가 버렸다.

 

8월 10일 [양력 9월 20일]<무진> 맑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그대로 김안도(김안도)의 집에 머물렀다. 동지 배흥립(배흥립)도 같이 머물렀다.

 

8월 11일 [양력 9월 21일]<기사> 맑다.

아침에 박곡(박곡) 양상원(양산원)의 집으로 옮겼다. 이 집 주인도 벌써 바다로 피란갔고 곡식은 가득 쌓여 있었다. 저녁 나절에 송희립(송희립)·최대성(최대성)이 와서 봤다.

 

8월 12일 [양력 9월 22일]<경오> 맑다.

아침에 장계를 초잡고 그대로 머물렀다. 저녁나절에 거제현령(안위)·발포만호(소계남)가 들어와 명령을 들었다. 그들 편에 경상수사 배설(배설)의 겁내던 꼴을 들으니, 더욱 한탄 스러움을 이길 길이 없다. 권세 있는 집안에 아첨이나 하여 감당해내지도 못할 지위에까지 올라 나랏일을 크게 그릇치건마는 조정에서 살피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하랴, 어찌하랴. 보성군수가 왔다.

 

8월 13일 [양력 9월 23일]<신미> 맑다.

거제현령 안위(안위) 및 발포만호 소계남(소계남)가 와서 인사하고 돌아갔다. 수사(배설)와 여러 장수 및 피해 나온 사람들이 머무는 곳을 들었다. 우후 이몽구(이몽구)가 전령을 받고 들어 왔는 데, 본영의 군기를 하나도 옮겨 실어 오지 않은 죄로 곤장 여든 대를 쳐서 보냈다. 하동현감 신진(신 )이 와서, “초3일에 내가 떠난 뒤에 진주 정개산성과 벽견산성도 풀어 흩어지니 병마사가 바깥 진(외진)을 제 손으로 불을 질렀다.”고 전하였다. 참으로 통탄할 일

이다.

 

8월 14일 [양력 9월 24일]<임신>

아침에 각각으로 장계 일곱 통을 봉하여 윤선각(윤선각)으로 하여금 지니고 가게 했다. 저녁에 어사 임몽정(임몽정)을 만나러 보성에 갔다가 열선루에서 잤다. 밤에 큰비가 쏟아지듯 내렸다.

 

8월 15일 [양력 9월 25일]<계유> 비 오다가 저녁나절에 맑게 개었다.

식사를 하고 난 뒤에 열선루 위에 앉아 있으니, 선전관 박천봉(박천봉)이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8월 7일에 만들어진 공문이었다. 영의정은 경기 지방으로 나가 순시중이라고 했다. 곧 잘 받들어 받았다는 장계를 썼다. 보성의 군기를 검열하여 네 말에 나누어 실었다. 저녁에 밝은 달이 수루 위를 비추니 심회가 편치 않았다. 술을 너무많이 마셔 잠을 자지 못했다.

 

8월 16일 [양력 9월 26일]<갑술> 맑다.

아침에 보성군수와 군관 등을 굴암으로 보내어 도피한 관리들을 찾아 오게 했다. 선전관 박천봉(박천봉)이 돌아갔다. 그래서 나주 목사와 어사 임몽정에게 답장을 부쳤다. 박사명(박사명)의 집에 심부름꾼을 보냈더니, 박사명의 집은 이미 비어 있었다고 한다. 오후에 활장이 지이(지이)와 태귀생(태귀생)· 선의(선의)· 대남(대남) 등이 들어왔다. 김희방(김희방)·김붕만(김붕 만)이 뒤따라 왔다.

 

8월 17일 [양력 9월 27일]<을해> 맑다.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장흥땅 백사정(장흥읍 원도리)에 이르러 말을 먹였다. 점심을 먹은 뒤에 군영구미(장흥군 안양면 해창리)에 이르니, 일대가 모두 무인지경이 되어 버렸다. 수사배설(배설)은 내가 탈 배를 보내지 않았다. 장흥의 군량감관과 색리가 군량을 맘대로 모조리 훔쳐 나누어 갈 적에 마침 그 때 이르러 잡아다가 호되게 곤장을 쳤다. 거기서 잤다. 배설(배설)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 괘씸하다.

 

8월 18일 [양력 9월 28일]<병자> 맑다.

늦은 아침에 곧바로 회령포에 갔더니, 경상수사 배설(배설)이 멀미를 핑계를 대므로 보지 않았다. 다른 장수는 보았다. 회령포 관사에서 잤다.

 

8얼 19일 [양력 9월 29일]<정축> 맑다.

여러 장수들이 교서에 숙배를 하는 데, 경상수사 배설(배설)은 받들어 숙배하지 않았다. 그 업신 여기고 잘난 체 하는 꼴을 말로 다 나타낼 수 없다. 너무도 놀랍다. 이방(이방)과 그 영리(영 이)에게 곤장쳤다. 회령포만호 민정붕(민정붕)이 그 전선(전선)에서 받은 물건을 사사로이 피란인 위덕의(위덕의) 등에게 준 죄로 곤장 스무 대를 쳤다.

 

8월 20일 [양력 9월 30일]<무인> 맑다.

앞 포구가 몹시 좁아서 진을 이진(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으로 옮겼다. 창고로 내려가니 몸이 몹시 불편하여 음식도 먹지 않고 앓았다.

 

8월 21일 [양력 10월 1일]<기묘> 맑다.

날이 채 새기 전에 도와리가 일어나 몹시 앓았다. 몸을 차게 해서 그런가 싶어 소주를 마셨더니 한참동안 인사불성이 되었다. 하마트면 깨어나지 못할 뻔했다. 토하기를 10여 차례나 하고 밤을 앉아서 새웠다.

 

8월 22일 [양력 10월 2일]<경진> 맑다.

도와리가 점점 심하여 일어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8월 23일 [양력 10월 3일]<신사> 맑다.

병세가 무척 심해져서 정박하여 배에서 지내기가 불편하므로 배타는 것을 포기하고 바다에서 나와서 (뭍에서) 잤다.

 

8월 24일 [양력 10월 4일]<임오> 맑다.

아침에 도괘땅(도괘포)에 이르러 아침밥을 먹었다. 낮에 어란 앞바다에 이르니, 가는 곳마다 텅텅 비었다. 바다 위에서 잤다.

 

8월 25일 [양력 10월 5일]<계미> 맑다.

그대로 어란포에서 머룰렀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당포의 보자기가 놓아둔 소를 훔쳐 끌고 가면서 “적이 쳐들어 왔다. 적이 쳐들어 왔다.”고 헛소문을 내었다. 나는 이미 그것이 거짓말일줄 알고 헛소문을 낸 두 사람을 잡아다가 곧 목을 베어 효시하니, 군중 인심이 크게 안정되었다.

 

8월 26일 [양력 10월 6일]<갑신> 맑다.

그대로 어란 바다에 머물렀다. 저녁나절에 임준영(임준영)이 말을 타고 와서 급히 보고하는 데, “적선(적선)이 이진(이 진)에 이르렀다”고 했다. 전라우수사가 왔다. 배의 격군과 기구를 갖추지 못했으니 그 꼬락서니가 놀랍다.

 

8월 27일 [양력 10월 7일]<을유> 맑다.

그대로 어란 바다 가운데 있었다. 경상우수사 배설(배설)이 와서 보는 데, 많이 두려워하는 눈치다. 나는 불쑥 “수사는 어디로 피해 갔던게 아니오!”라고 말하였다.

 

8월 28일 [양력 10월 8일]<병술> 맑다.

새벽 여섯시 쯤에 적선 여덟 척이 뜻하지도 않았는 데 들어왔다. 여러 배들이 두려워 겁을 먹고, 경상수사(배설)는 피하여 물러나려 하였다. 나는 꼼짝하지 않고 적선이 바짝 다가오자 호각을 불고 깃발을 휘드르며 따라 잡도록 명령하니, 적선이 물러갔다. 뒤쫓아 갈두(갈두: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적선이 멀리 도망하기에 더 뒤쫓지 않았다. 뒤따르는 배는 쉰여 척이라 고 했다. 저녁에 진을 장도(노루섬)로 옮겼다.

 

8월 29일 [양력 10월 9일]<정해> 맑다.

아침에 건너왔다. 벽파진(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대었다.

 

8월 30일 [양력 10월 10일]<무자> 맑다.

그대로 벽파진에서 머물렀다. 정탐꾼을 나누어 보냈다. 저녁나절에 배설(배설)은 적이 많이 올 것을 염려하여 달아나려고 했으나, 그 관할 아래의 장수들이 찾기도 하고, 나도 그 속뜻을 알고 있지만, 딱 드러나지 않은 것을 먼저 발설하는 것은 장수로서 할 도리가 아니므로 참고 있을 즈음에, 배설(배설)이 제 종을 시켜 솟장을 냈는데, 병세가 몹시 중하여 몸조리 좀 해야 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뭍으로 내려 몸조리하고 오라고 공문을 써 보냈더니, 배설(배설)은 우수영에서 뭍으로 내렸다.

 

 

정유년 9월 (1597년 9월)

 

9월 초1일 [양력 10월 11일]<기축> 맑다.

그대로 벽파진에 머물렀다. 나는 내려가 벽파정위에 앉았는데, 점세(점세)가 탐라에서 나와서 소 다섯 마리를 싣고 와서 바쳤다.

 

9월 2일 [양력 10월 12일]<경인> 맑다.

오늘 새벽에 경상수사 배설(배설)이 도망갔다.

 

9월 3일 [양력 10월 13일]<신묘> 아침에 맑았다가 저녁에 비가 뿌렸다.

밤에는 된바람이 불었다. 봉창아래에서 머리를 웅크리고 있으니 그 심사가 어떠하랴!

 

9월 4일 [양력 10월 14일]<임진> 맑은데, 된바람이 세게 불었다.

배가 가만히 있지 못해서 각 배들을 겨우 보전했다. 천행이다.

 

9월 5일 [양력 10월 15일]<계사> 된바람이 세게 불었다.

각 배를 서로 보전할 수가 없었다.

 

9월 6일 [양력 10월 16일]<갑오>

바람은 조금 자는 듯 했으나, 물결은 가라앉지 앉았다. 추위가 엄습하니 격군들 때문에 걱정이다.

 

9월 7일 [양력 10월 17일]<을미> 맑다. 바람이 비로소 그쳤다.

탐망군관 림중형(임중형)이 와서 보고하기를, “적선 쉰다섯 척 가운데 열세 척이 이미 어란 앞바다에 도착했다. 그 뜻이 우리 수군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각 배들에게 엄중히 일러 경계하였다. 오후 네 시쯤에 적선 열세 척이 곧장 진치고 있는 곳으로우리 배로 향해 왔다. 우리 배들도 닻을 올려 바다로 나가 맞서서 공격하여 급히 나아가니, 적들이 배를 돌려 달아나 버렸다. 뒤 쫓아 먼 바다에까지 갔지만, 바람과 조수가 모두 거슬러 흘러(역류)

항해할 수가 없어 복병선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더 쫓아가지 않고 벽파진으로 돌아왔다. 이 날 밤에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며 말하기를, 오늘 밤에는 반드시 아무래도 적의 야습이 있을 것 같아, 여러 장수 들은 미리 알아서 준비할 것이며,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는 일이 있으면 군법대로 시행할 것이라고 재삼 타일러 분명히 하고서 헤어졌다. 밤 열 시쯤에 적선이 포를 쏘며 기습으로 공격해 왔다. 우리의 여러 배들이 겁을 집어 먹는 것 같아 다시금 엄명을 내리고,내가 탄 배가 곧장 적선 앞으로 가서 지자포를 쏘니 강산이 진동했다. 그랬더니 적의 무리는 당해 내지 못하고 네 번이나 나왔다 물러났다 하면서 포를 쏘아댔다.

밤 한시가 되니 아주 물러 갔다. 이들은 전에 한산도에서 승리를 얻은 자들이다.

 

9월 8일 [양력 10월 18일]<병신> 맑다.

적선이 오지 않았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대책을 논의했다. 우수사 김억추(김억추)는 겨우 만호깜이나 맞을까 대장으로 쓰일 재목은 못되는 데도 좌의정 김응남(김응남)이 서로 친밀한 사이라고 해서 억지로 임명하여 보냈다. 이러고서야 조정에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다만 때를 못 만난 것을 한탄할 뿐이다.

 

9월 9일 [양력 10월 19일]<정유> 맑다.

오늘이 곧 9일(중양절)이다. 군대 전부에게도 좋은 명절이다. 나는 복재기(상제)이지만 여러 장병들에게야 먹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제주에서 나온 소 다섯 마리를 녹도와 안골포 두 만호에게 주어서 장병들에게 음식을 먹이고 있는 데, 저녁나절에 적선 두 척이 어란포에서 바로 감보도(진도군 고군면)로 들어와 우리 배의 많은지 적은지를 정탐했다. 영등포만호 조계종이 끝까지 따라 갔더니, 적들은 어리둥절하여 배에 실었던 물건을 몽땅 바다 가운데로 던져버리고 달아났다.

 

9월 10일 [양력 10월 20일]<무술> 맑다.

적선들이 멀리 달아났다.

 

9월 11일 [양력 10월 21일]<기해> 흐리고 비가 올 것 같다.

홀로 배 위에 앉았으니, 그리운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세상에 어찌 나같은 사람이 있겠는가! 아들 회는 내 심정을 알고 심히 언짢아 하였다.

 

9월 12일 [양력 10월 22일]<경자> 종일 비가 뿌렸다.

봉창 아래서 심회를 걷잡을 수가 없었다.

 

9월 13일 [양력 10월 23일]<신축> 맑은데 된바람이 세게 불었다.

배가 가만 있지를 못했다. 꿈이 이상하다. 임진년에 대첩했을 때와 얼추 같다. 이 징조를 모르겠다.

 

9월 14일 [양력 10월 24일]<임인> 맑다.

벽파정 맞은편에서 연기가 오르기에 배를 보내어 싣고 오니 바로 임준영(임준영)이 육지를 정탐하고 와서 말하기를, “적선 이백 여 척 가운데 쉰다섯 척이 이미 어란 앞바다에 들어왔다.”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적에게 사로잡혔던 김중걸(김중 걸)이 전하는 데, 이 달 6일에 달마산으로 피난갔다가 왜놈에게 붙잡혀 묶여서는 왜선에 실렸습니다. 김해에 사는 이름 모르는 한 사람이 왜장에게 빌어서 묶인 것을 풀어 주었습니다. 그 날 밤에 김해 사람이 김중걸(김중걸)의 귀에다 대고 말하기를, 왜놈들이 모여 의논하는 말이, `조선 수군 열 여 척이 왜선을 추격하여 사살하고 불태웠으므로 할 수 없이 보복해야 하겠다. 극히 통분하다. 각 처의 배를 불러 모아 조선 수군들을 모조리 죽인 뒤에 한강으로 올라 가겠다.’고 하였습니다.”는 것 이었다. 이 말은 비록 모두 믿기는 어려우나, 그럴 수도 없지 않으므로, 전령선을 우수영으로 보내어 피난민들을 타일러 곧 뭍으로 올라 가라고 하였다.

 

9월 15일 [양력 10월 25일]<계묘> 맑다.

조수를 타고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겼다. 벽파정 뒤에는 울돌목이 있는데 수가 적은 수군으로써 명량을 등지고 진을 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면서 이르되,”병법에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죽는다’고 했으며,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이라도 두렵게 한다’고 했음은 지금 우리를 두고 한 말이다. 너희 여러 장수들이 살려는 생각은 하지 마라.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면 군법으로 다스릴 것이다. 조금이라도 너그럽게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하고 재삼 엄중히 약속 했다. 이 날 밤 신인(신인)이 꿈에 나타나,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지게 된다”고 일러 주었다.

 

9월 16일 [양력 10월 26일]<갑진> 맑다.

아침에 별망군이 나와서 보고하는 데, 적선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울돌목을 거쳐 곧바로 진치고 있는 곳으로 곧장 온다고 했다. 곧 여러 배에 명령하여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가니, 적선 백서른세 척이 우리의 여러 배를 에워쌌다. 대장선이 홀로 적진 속으르 들어가 포탄과 화살을 비바람같이 쏘아대건만 여러 배들은 관망만 하고 진군하지 않아 사태가 장차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 여러 장수들이 적은 군사로써 많은 적을 맞아 싸우는 형세임을 알고 돌아서 피할 궁리만 했다. 우수사 김억추(김억추)가 탄 배는 물러나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 나는 노를 바삐 저어 앞으로 돌진하여 지자총통·현자총통 등 각 종 총통을 어지러이 쏘아대니, 마치 나가는 게 바람같기도 하고 우레 같기도 하였다. 군관들이 배 위에 빽빽히 서서 빗발치듯이 쏘아대니, 적의 무리가 감히 대들지 못하고 나왔다 물러갔다 하곤 했다. 그러나 적에게 몇겹으로 둘러 싸여 앞으로 어찌 될지 한 가진들 알 수가 없었다. 배마다의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며 얼굴빛을 잃었다. 나는 침착하게 타이러면서, “적이 비록 천 척이라도 우리 배에게는 감히 곧바로 덤벼들지 못할 것이다. 일체 마음을 동요치 말고 힘을 다하여 적선에게 쏴라.”고 하고서, 여러 장수들을 돌아보니, 물러나 먼 바다에 있었다. 나는 배를 돌려 군령을 내리자니 적들이 더 대어들 것 같아 나아 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할 형편이었다.

호각을 불어서 중군에게 명령하는 깃발을 내리고 또 초요기를 돛대에 올리니, 중군장미 조항첨사 김응함(김응 )의 배가 차차로 내 배에 가까이 오고, 거제현령 안위(안위)의 배가 먼저 왔다. 나는 배 위에 서서 몸소 안위(안위)를 불러 이르되, “안위(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너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해서 어디 가서 살것 같으냐? 고 하니, 안위(안위)가 황급히 적선 속으로 돌입했다. 또 김응함(김응 )을 불러 이르되, “너는 중군장으로서 멀리 피하고 대장을 구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찌 면할 것이냐? 당장 처형할 것이로되, 적세 또한 급하므로 우선 공을 세우게 한다.” 고 하니, 두 배가 곧장 쳐들어가 싸우려 할 때, 적장이 그 휘하의 배 두 척을 지휘하여 한꺼번에 개미 붙듯이 안위(안위)의 배로 매달려 서로 먼저 올라 가려고 다투었다. 안위(안위)와 그 배에 탔던 사람들이 죽을 힘을 다하여 몽둥이로 치기도 하고, 긴창으로 찌르기도 하고, 수마석 덩어리로 무수히 어지러이 싸우니 배 위의 사람들은 기진맥진하게 된데다가, 안위(안위)의 격군 일여덟 명이 물에 뛰어들어 헤엄치는데 거의 구하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배를 돌려 곧장 쳐들어가 빗발치듯 어지러이 쏘아대니, 적선 세 척이 얼추 엎어지고 자빠지는데 녹도만호 송여종 (송여종)·평산포대장 정응두(정응두)의 배가 줄이어 와서 합력하 여적을 쏘아 한 놈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항복해온 왜놈 준사(준사)란 놈은 안골포의 적진에서 투항해온 자이다. 내 배위에서 내려다 보며, “저 무늬 있는 붉은 비단옷을 입은 놈이 적장 `마다시’다”고 하였다. 나는 김돌손(김돌손)으로 하여금 갈구리를 던져 이물로 끌어 올렸다. 그러니 준사는 펄쩍 뛰며, “이게 마다시다”고 하였다. 그래서, 곧 명령하여 토막으로 자르게 하니, 적의 기운이 크게 꺾여 버렸다.

이 때 우리의 여러 배들은 적이 다시는 침범해오지 못할 것을 알고 일제히 북을 치며 나아가면서 지자총통·현자총통 등을 쏘고, 또 화살을 빗발처럼 쏘니, 그 소리가 바다와 산을 뒤흔들었다. 우리를 에워 싼 적선 서른 척을 쳐 부수자, 적선들은 물러나 달아나 버리고 다시는 우리 수군에 감히 가까이 오지 못했다. 그곳에 머무르려 했으나 물살이 무척 험하고 형세도 또한 외롭고 위태로워 건너편 포구로 새벽에 진을 옮겼다가, 당사도(무안군 암태면)로 진을 옮기어 밤을 지냈다. 이 것은 참으로 천행이다.

 

9월 17일 [양력 10월 27일]<을사> 맑다.

어외도(어외도:무안군 지도면)에 이르니, 피난선이 무려 삼백 여 척이 먼저 와 있었다. 임치첨사는 배에 격군이 없어 나오지 못한다고 했다. 나주진사 림선(임 )·림환(임 )·림업(임 ) 등이 와서 봤다. 우리 수군이 대첩한 것을 알고 서로 앞다투어 치하하고, 또 많은 양식을 가져 와 군사들에게 주었다.

 

9월 18일 [양력 10월 28일]<병오> 맑다.

그대로 어외도에서 머물렀다. 임치첨사가 왔다. 내 배에서 는 순천감목관 김탁과 본영의 종 계생(계생)이 탄환에 맞아 죽고, 박영남(박영남)과 봉학(봉학) 및 강진현감 이극신(이극신)도 탄환 에 맞았으나, 중상에 이르지는 않았다.

 

9월 19일 [양력 10월 30일]<정미> 맑다.

일찍 떠나 출항했다. 바람도 순하고 물살도 순조를 타 무사히 칠산(칠산: 영광군 낙월면) 바다를 건넜다. 저녁에 법성포(영 광군 법성면) 선창에 이르니, 흉악한 적들이 육지로 해서 들어 와 사람사는 집과 창고에 불을 질렀다. 해질 무렵에 홍농(홍 농: 영광군 홍농면) 앞에 이르러, 배를 정박시키고 잤다.

 

9월 20일 [양력 10월 30일]<무신> 맑고 바람도 순조로왔다.

새벽에 출항하여 곧장 위도(위도: 영광군 위도면)에 이르니, 피난선이 많이 정박해 있었다.

황득중(황득중)과 종 금이 (김이) 등을 보내어 종 윤금(윤김)을 찾아서 잡아오라고 했더니, 과연 위도 밖에 있었다. 그래서 묶어다가 배 안에 실었다. 이 광축(이광축)·이광보(광보)가 와서 봤다. 이지화(이지화) 부자가 또 와서 봤다. 날이 저물어서 잤다.

 

9월 21일 [양력 10월 31일]<기유> 맑다.

일찍 떠나 고군산도(옥구군 미면 선유도)에 이르니, 호남순찰사가 내가 왔다는 말을 듣고 배를 타고 급히 옥구로 갔다고 하였다. 저녁나절에 광풍이 세게 불었다.

 

9월 22일 [양력 11월 1일]<경술> 맑은데, 된바람이 세게 불었다.

그대로 머물렀다. 나주목사 배응경(배응 )·무장현감 이람(이람)이 와서 봤다.

 

9월 23일 [양력 11월 2일]<신해> 맑다.

승첩한 장계의 초본을 수정했다. 정희열(정희열)이 와서 봤다.

 

9월 24일 [양력 11월 3일]<임자> 맑다.

몸이 불편하여 신음했다. 김홍원(김홍원)이 와서 봤다.

 

9월 25일 [양력 11월 4일]<계축> 맑다.

이 날 밤에 몸이 몹시 불편하고, 식은 땀이 온 몸을 적셨다.

 

9월 26일 [양력 11월 5일]<갑인> 맑다.

몸이 불편하여 종일 나가지 않았다. 이 날 밤에는 식은 땀이 온몸을 적셨다.

 

9월 27일 [양력 11월 6일]<을묘> 맑다.

송한(송한)·김국(김국)·배세춘(배세춘) 등이 승첩장계를 가지고 뱃길로 올라 갔다. 정제(정제)는 충청수사에게 부찰사로 보낼 공문을 가지고 같이 같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밤내내 아팠다.

 

9월 28일 [양력 11월 7일]<병진> 맑다.

송한(송한)과 정제(정제)가 바람에 막혀 되돌아 왔다.

 

9월 29일 [양력 11월 8일]<정사> 맑다.

송한(송한) 등 계본(계본)·장달(장달)(을 가진 사람) 및 판관 정제(정제)는 바람이 순조로와 도로 올라갔다.

 

정유년 10월 (1597년 10월)

 

10월 초1일 [양력 11월 9일]<무오> 맑다.

아들 회( )를 보내서 제 어미를 보고 여러 집안의 생사(생사)를 알아 오게 하였다. 심회가 몹시 안달나서 편지를 쓸 수 없었다. 병조(병조)의 역꾼이 공문을 가지고 내려 왔는 데, “아산 고향의 한 집안이 이미 적에게 불타 잿더미가 되어 남은 게 없다.”고 한다.

 

10월 2일 [양력 11월 10일]<기미> 맑다.

아들 회가 집안 사람들의 생사를 알아볼 일로 배를 타고 올 라 갔으나, 잘 갔는지 못 갔는지 알 수가 없다. 내 심정을 어찌 다 말하랴. 홀로 배 위에 앉았으니 심회가 만 갈래였다.

 

10월 3일 [양력 11월 11일]<경신> 맑다.

새벽에 출항하여 변산을 거쳐 곧바로 법성포로 되돌아 가는데 바람은 부드러워 따뜻하기가 봄날 같았다. 저물어서 법성포 선창 앞에 이르렀다.

 

10월 4일 [양력 11월 12일]<신유> 맑다.

그대로 머물러 잤다. 림선(임 )·업 등이 사로잡혔다가 적에게 빌어 임치로 돌아와서 편지를 보내왔다.

 

10월 5일 [양력 11월 13일]<임술> 맑다.

그대로 머물면서 마을집 아래로 내려가 잤다.

 

10월 6일 [양력 11월 14일]<계해> 흐렸다가 비가 뿌렸다.

눈비가 세차게 왔다.

 

10월 7일 [양력 11월 15일]<갑자> 바람이 고르지 않고 비가 오락가락한다.

소문에 호남 안팎에는 적선이 없다고 한다.

 

10월 8일 [양력 11월 16일]<을축> 맑으며, 바람이 살랑거렸다.

출항하여 어외도에 이르러 잤다.

 

10월 9일 [양력 11월 17일]<병인> 맑다.

일찍 출항하여 우수영에 이르니, 성 밖에는 집에 사람이 살지 않 고, 인적(인적)이 하나도 없다. 보이는 것은 참혹 뿐이었다. 그 러나 저녁에 “해남에서 흉악한 적들이 진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초저녁에 김종려(김종려)·정조(정조)·백진남(백진남) 등이 와서 봤다.

 

10월 10일 [양력 11월 18일]<정묘> 비가 뿌리고 된바람이 세게 불었다.

항해할 수가 없어 그대로 머물렀다. 밤 열 시쯤(이경)에 중군장 김응함(김응 )이 와서 전하는 데, 해남에 있던 적들이 많이 물러 간 모양입니다. 이희급(이희급)의 부친이 적에게 사로잡혔다가 빌 어서 놓여 왔습니다고 했다.고 한다. 마음이 언짢아서 앉았다 누웠다 하다가 새벽이 되었다. 우우후 이정충(이정충)이 왔는 데, 배가 보이지 않은 것은 바깥 섬으로 달아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10월 11일 [양력 11월 19일]<무진> 맑다.

밤 두 시쯤에 바람이 자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닻을 올려 바다 가운데에 이르러, 정탐인 이순(이순)· 박담동(박담동)· 박수환(박수 환)· 태귀생(태귀생)을 해남으로 보냈다. 해남에는 연기가 하늘을 찌른다고 한다. 이는 반드시 적의 무리들이 달아나면서 불을 지른 것이다. 오정에 안편· 발음도(안편발음도= 안창도·팔금도)에 이르니, 바람도 좋고 날씨도 화창하다.

육상에 내려 산마루로 올라 가서 배 감출 곳을 찾아보니, 동쪽에는 앞에 섬이 있어 멀리 바라볼 수는 없고, 북쪽으로는 나주와 영암 월출산으로 뚫렸으며, 서쪽에 는 비금도로 통하여 눈앞이 툭 터였다. 잠깐 있으니, 중군장과 우치적(우치적)이 올라 오고, 조효남(조효 남)·안위(안위)·우수(우수)가 잇따라 왔다. 날이 저물어 산봉우리에서 내려와 언덕에 앉았으니, 조계종(조계 종)이 와서 왜적의 사실 형편을 말하고, 또 왜놈들이 우리 수군을 몹시 싫어한다고 했다. 이희급(이희급)의 부친이 와서 알현하 고 또 사로잡혔던 경위를 말하는데, 아픈 마음을 견딜 수가 없었다. 저녁에는 따뜻하기가 봄 같아 아지랑이가 하늘에 아른 거려 비올 징조가 많았다. 초저녁에 달빛이 비단결 같아 홀로 봉창에 앉았으니 심사가 만 갈래였다. 밤 열시쯤에 식은 땀이 몸을 적셨다. 한밤에 비가 왔다. 이 날 우수사가 군량선에 있는 사람에게 장단지를 몹시 때렸다고 했다. 놀랄 일이다.

 

10월 12일 [양력 11월 20일]<기사> 비가 내렸다.

오후 한시에 맑게 개었다. 아침에 우수사가 와서 절하기에 하인 의 장단지를 때린 죄를 용서했다. 가리포첨사(이응표)·장흥부 사(전봉) 등 여러 장수들이 와서 절하고 종일 이야기했다. 탐후 선이 나흘이 지나도 오지 않으니 걱정이 된다. 아마 생각건대, 흉악한 적들이 멀리 도망가기에, 그 뒤를 쫓아가 느라 돌아오지 않는 것이리라. 그대로 발음도에 머물렀다.

 

10월 13일 [양력 11월 21일]<경오> 맑다.

아침에 조방장 배흥립(배흥립)과 경상우후(이의득)가 와서 봤다. 조금 있으니, 탐망선이 임준영(임준영)을 싣고 왔다. 그 편에 적의 소식을 들으니, “해남에 들어와 웅거해 있던 적들은 7 일에 우리 수군이 내려 오는 것을 보고, 11일에 몽땅 도망가버렸는 데, 해남의 향리 송언봉·신용 등이 적속으로 들어가 왜놈 들을 꾀어 내어 선비들을 죽였다.”고 했다. 통분함을 이길 길이 없다. 곧 순천부사 우치적(우치적)·금갑도만호 이정표(이정표) ·제포만호 주의수(주의수)·당포만호 안이명(안이명)·조라포만 호 정공청(정공청) 및 군관 림계형(임계형)·정상명(정상명)·봉 좌(봉좌)·태귀생(태귀생)·박수환(박수환) 등을 해남으로 보냈 다.

저녁나절에 내려가 언덕에 앉아 윗자리에서 조방장 배흥 립(배흥립)·장흥부사 전봉(전봉) 등과 함께 이야기했다. 이 날 우우후 이정충(이정충)이 뒤떨어진 죄를 다스렸다. 우수사의 군관 배영수(배영수)가 와서 아뢰기를, 수사의 부친이 외해에서 살아서 돌아왔다고 했다. 이 날 새벽 꿈에 우의정을 만나 조용히 이야기했다. 낮에 선전관 네 명이 법성포에 이르러 내려 왔다는 말을 들었다. 저녁에 김응함(김응 )에게서 섬 안에 알지 못하 는 어떤 사람이 산골에 깊숙히 숨어서 소와 말을 잡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황득중(황득중)·오수(오수) 등을 보내어 염탐케 하였다. 이 날 밤 달빛은 비단결 같고 잔잔한 바람도 일지 않았다. 홀로 뱃전에 앉았으니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할 따름이다.

 

10월 14일 [양력 11월 22일]<신미> 맑다.

밤 두 시쯤 꿈에,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로 가는 데, 말이 발을 헛디디어 냇물 가운데로 떨어졌으나, 쓸어지지는 않고, 막내 아들 면이 끌어안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이었는데 깨었다.

이것은 무슨 징조인지 모르겠다. 저녁나절에 배 조방장과 우후 이의득(이 의득)이 와서 봤다. 배 조방장의 종이 영남에서 와서 적의 형세를 전했다. 황득중(황득중) 등은 와시 아뢰기를 내수사의 종 강막지 (강막지)라는 자가 소를 많이 기르기 때문에 열두 마리를 끌고 갔다고 했다.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했다. 봉한 것 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아찔하고 어지러 웠다. 대충 겉봉을 뜯고 열(둘째 아들)의 편지를 보니, 겉에 통곡 두 글자가 씌어 있어 면이 전사했음을 짐작했다. 어느새 간담 이 떨어져 목놓아 통곡,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 하지 못하는고!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너 가 사는 것이 이치가 마땅하거늘, 너가 죽고 내가 사니, 이런 어 그러진 이치가 어디 있는가!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 빛이 변했 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남달리 영 특하여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 두지 않은 것이냐? 내 지은 죄 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내 이제 세상에 살아 있어본들 앞으로 누구에게 의지할꼬! 너를 따라 같이 죽어 지하에서 같이 지내고 같이 울고 싶건마는 네 형·네 누이·네 어머니가 의지할 곳이 없으니, 아직은 참으며 연명이야 한다마는 마음은 죽고 형상만 남아 있어 울부짖을 따름이다. 울부짖을 따름이다. 하룻밤 지내기가 일년 같구나. 이 날 밤 열시쯤에 비가 왔다.

 

10월 15일 [양력 11월 23일]<임신> 비바람이 종일 불었다.

누웠다 앉았다 하면서 종일 이리뒤척 저리뒤척 했다. 여러 장수 들이 와서 문안하니 얼굴을 들고 어찌 맞으랴! 림홍(임 )· 림중형(임중형)·박신(박신)이 적을 정탐하려고 작은 배를 타고, 흥양·순천 등지의 바다로 나갔다.

 

10월 16일 [양력 11월 24일]<계유> 맑다.

우수사와 미조항첨사를 해남으로 보냈다. 해남현감도 보냈다. 나는 내일이 막내 아들의 죽음을 들은지 나흘째가 된다. 마음 놓고 통곡할 수도 없으므로, 영 안에 있는 강막지(강막지) 집으로 갔다. 밤 열 시쯤에 순천부사·우후 이정충(이정충)·금갑도만호·제포 만호 등이 해남에서 돌아왔다. 왜놈 열세 명과 투항했던 송원봉 (송원봉) 등을 목베고서 왔다.

 

10월 17일 [양력 11월 25일]<갑술> 맑은 날씨인 데 바람도 종일 세게 불었다.

새벽에 향을 피우고 곡을 하는데, 하얀 띠를 두르고 있으니, 비통함을 정말 참을 수가 없다. 우수사가 와서 봤다.

 

10월 18일 [양력 11월 26일]<을해> 맑다.

바람이 자는 것 같았으나 우수사는 배를 출항할 수 없어 바깥바다에서 잤다. 강막지(강막지)가 와서 알현했다. 림계형(임계형) ·임준영(임준영)이 들어왔다.

 

10월 19일 [양력 11월 27일]<병자> 맑다.

새벽 꿈에, 고향집의 종 진(진)이 내려왔기에 나는 죽은 아들을 생각하여 통곡하였다. 저녁나절에 조방장과 경상우후가 와서 봤다. 백 진사가 와서 봤다. 림계형(임계형)은 와서 알현했다. 김신 웅(김신웅)의 아내·이인세(이인세)·정억부(정억부)를 붙잡아 왔다. 거제· 안골· 녹도· 웅천· 제포· 조라포· 당포·우우후가 와 서 봤다. 적을 잡은 공문을 와서 바쳤다. 윤건(윤건) 등의 형제가 왜적에게 붙었던 두 명을 잡아 왔다. 어두울 무렵 코피를 되 남짓이나 흘렸다. 밤에 앉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어찌 다 말하랴! 이승에서의 영령이라 마침내 불효가 여기까지 이를 줄을 이찌 아랴! 비통한 마음 찢어지는 듯하여 억누를 수

가 없다.

 

10월 20일 [양력 11월 28일]<정축> 맑고 바람도 잤다.

이른 아침에 미조항첨사·해남현감·강진현감이 해남현의 군량을 운반할려고 여쭙고 돌아갔다. 안골포만호 우수(우수)도 여 쭙고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김종려(김종려)· 정수(정수)· 백진남(백진남)이 와서 보고, 또 윤지눌(윤지눌)의 못된 짓을 말하였다. 김종려(김종려)를 소음도(소음도) 등 열세 곳 섬의 염전의 감자도감검(감자도감검: 감독관)으로 정하여 보냈다.

영의 둔덕에서 일하는 사화(사 화)의 모친이 배 안에서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곧 묻어버릴 일로 군관에게 시켰다. 남도포·여도 두 만호가 와서 알현하고서 돌아 갔다.

 

10월 21일 [양력 11월 29일]<무인> 밤 두시쯤에 비오다 눈오다 했다.

바람이 몹시 추웠다. 뱃사공이 추워 얼까 걱정이 되어 마음을 잡지 못했다. 오전 여덟시부터 바람이 불고 눈이 펑펑 내렸다. 정 상명(정상명)이 와서 아뢰기를 무안현감 남언상(남언상)이 들어 왔다고 했다. 남언상은 원래 수군에 소속된 관리인 데, 사사로 이 목숨만 보존할 꾀를 부려 수군에 오지 않고, 산골에 숨어서 달포쯤 관망하다가, 적이 물러간 뒤에는 무거운 형벌을 받을까 두려워 비로소 이제야 나타나니, 그 하는 꼬락서니가 참으로 꽤 씸하다. 저녁나절에 가리포 및 배 조방장과 우후가 와서 절했다. 바람불고 눈이 종일 내렸다. 장흥부사가 와서 잤다.

 

10월 22일 [양력 11월 30일]<기묘> 아침에 눈오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장흥과 같이 식사를 했다. 오후에 군기사장(군기사장) 선기룡 (선기룡) 등 세 사람이 임금의 분부와 의정부의 방문을 가지고 왔다. 해남현감(유형)이 적에게 붙었던 윤해(윤해)·김언경 (김언경)을 묶어서 올려 보내 왔다. 그래서 나장이 있는 곳에 단단히 가두었다. 무안현감 남언상(남언상)은 가리포의 전선에 가 두었다. 우수사가 황원에서 와서 말하기를, 김득남(김득남)이 처 형되었다고 했다. 진사 백진남(백진남)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10월 23일 [양력 12월 1일]<경진> 맑다.

저녁나절에 김종려(김종려)·정수(정수)가 와서 봤다. 배 조방장 과 우후·우수사우후도 와서 봤다. 적량·영등포만호가 잇따라 왔다가 저녁에 돌아갔다. 이 날 낮에 윤해(윤해)·김언경(김언경)을 처형했다. 대장장이 허막동(허막동)을 나주로 보낼려고 밤 아홉시에 종을 시켜 불렀 더니 배가 아프다고 했다. 싸움말의 떨어진 편자를 갈았다.

 

10월 24일 [양력 12월 2일]<신사> 맑다.

해남에 있던 왜의 군량 삼백스무두 섬을 실어왔다. 초저녁에 선 전관 하응서(하응서)가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우 후 이몽구(이몽구)를 처형하라”는 것이었다. 그 편에 들으니, “명 나라 수군이 강화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밤 열시쯤에 병을 다스 리려고 땀을 내니 등을 적시고 밤 한시에야 그쳤다. 밤 세 시 에 또 선전관과 금오랑이 왔다고 한다. 날이 밝자 들어오는데, 선전관은 권길(권길)이요, 금오랑(의금부도사 주부) 홍지수(홍지 수)였다. 무안현감(남언상)·목포만호(방수경)·다경포만호(윤승 남)를 잡으러 여기 왔다.

 

10월 25일 [양력 12월 3일]<임오> 맑다.

몸이 몹시 불편했다. 윤련(윤련)이 부안에서 왔다. 종 순화(순화) 는 아산에서 배를 타고 왔다. 집안의 편지를 받아 보니 심회가 불편하여 이리뒤척 저리뒤척이다가 혼자 앉아 있었다.

초저녁에 선전관 박희무(박희무)가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명나라 수군이 배를 정박하기에 알맞은 곳을 골라서 장계 하라는 것이었다. 량희우(양희우)가 장계를 가지고 서울로 갔다 가 되돌아왔다. 충청우후가 편지를 보내고 또 홍시 한접을 보내 왔다.

 

10월 26일 [양력 12월 4일]<계미> 새벽에 비를 부렸다.

조방장 등이 와서 봤다. 김종려(김종려)·백진남(백진남)·정수 (정수) 등이 와서 봤다. 이 날 밤 열시에 자는데 식은 땀이 나서 몸을 적시었다. 온돌이 너무 따뜻한 탓이었다.

 

10월 27일 [양력 12월 5일]<갑신> 맑다.

영광군수(전협)의 아들 전득우(전득우)가 군관이 되어 알현했다. 곧 그 부친이 있는 곳으로 돌려 보냈더니 홍시 백 개를 가지고 왔다. 밤에 비가 뿌렸다.

 

10월 28일 [양력 12월 6일]<을유> 맑다.

아침에 여러 가지 장계를 봉하여 피은세(피은세)에게 주어서 보 냈다. 저녁나절에 강막지(강막지)의 집에서 대장선으로 옮겨 탔 다. 저녁에 소금밭의 서원 도걸산(도거질산)이 큰 사슴을 잡아 바 쳤다. 그래서 군관 등에게 주어 나누어 먹게 했다. 이 날 밤에는 잔잔한 바람도 일지 않았다.

 

10월 29일 [양력 12월 7일]<병술> 맑다.

밤 두 시쯤에 첫 나발을 불고 출항하여 목포로 향하는데 벌써 부터 비와 우박이 섞여 내리고 샛바람이 살살 불었다. 목포에 이 르러 보화도(목포시 고하도)로 옮겨 정박하니, 된하늬바람을 막을 만하고 배를 감추기에 아주 알맞다. 그래서 뭍에 내려 섬 안을 둘러 보니, 형세가 매우 좋으므로, (보 화도에서) 진을 치고 집 지을 계획을 했다.

 

10월 30일 [양력 12월 8일]<정해> 맑으나 샛바람이 불고, 꼭 비올 것 같다.

아침에 집지을 곳으로 내려가 앉았으니, 여러 장수들이 와서 알 현했다. 해남현감 류형(유형)도 와서 적에게 붙었던 사람들의 소 행을 전했다. 일찍 황득중(황득중)으로 하여금 자귀장이를 데리고 섬 북쪽 봉우리로 가서 집 지을 재목을 베어 오게 했다. 저녁나절에 해남에 있던 적에게 붙었던 정은부(정은부) 및 김신 웅(김신웅)의 부인이 왜놈에게 지시하여 우리나라 사람을 죽인 자 두 명과, 선비 집 처녀를 강간한 김애남(김애남)을 아울러 목 베어 효시하였다. 저녁에 량밀이 도양장의 벌레 먹은 곡식을 멋대로 나누어 준 일로 곤장 예순 대를 쳤다.

 

(** 다음은 날짜는 적혀 있지 않으나, 1597년(정유)(Ⅰ) 10월 8일(을축) 뒷 장부터 모두 3 장

으로 적혀 있는데 그 앞의 한 장은 「독송사」 이다.)

어허 이 때가 어느 때인데, 저 강(강)은 가려고 하는가. 가면 또 어디로 가려는가. 무릇 신하된 자로서 임금을 섬김에는 죽음이 있을 뿐이요, 다른 길은 없다. 그 때야말로 종사의 위태함이 마치 터럭 한 가닥으로 천만 근을 달아 올림과 같아 정히 신하된 자는 몸을 버려 나라의 은혜를 갚을 때인데 이어서 간다는 말은 진실 로 마음에 생각도 내지 못할 말이거늘, 하물며 어찌 입 밖으로 낼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면 내가 강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까. 몸을 헐어 피로써 울며, 간담을 열어 젖히고서 사세가 여기까지 왔으니 화친할 수 없음을 밝혀서 말할 것이요, 아무리 말하여도 그대로 되지 않는다면 거기 이어 죽을 것이요, 또 그렇지도 못한 다면, 짐짓 화친하려는 계획을 따라 몸을 그 속에 던져 온갖 일 에 낱낱이 꾸려가며,죽음 속에서 살 길을 구한다면, 혹시 만에 하나라도 나라를 건질 도리가 있게 될 것이어늘, 강의 계획은 이 런데서 내지 않고 그저 가려고만 했으니, 이것이 어찌 신하된 자로서 몸을 던져 임금을 섬기는 의리라 할 수 있겠는가.

 

(** 다음은 위의 「독송사(독송사)」가 적힌 그 다음 장에 두 장으로 적혀 있는 것이다.)

새로 급제한 원경전(원경전)·한치겸(한치겸)·정복례(정복례)는 우병사의 진에, 남엽(남엽)· 정재순(정재순)· 조형(조형)· 조완(조 완)은 진주 운곡에, 이홍훈(이홍훈) 주인집은 송곡에, 창노의 우두 머리 봉환(봉환)·석운(석운)·뢰손(뇌손)은 백천 별장에, 훈련정 조신옥(조신옥)· 홍대방(홍대방)은 쌀 14·콩 18·파초 4·콩2 및 10, 대오미 2를, 흥양 정병 김득상(김득상)은 화살쏘기로, 김덕방 (김덕방)·김윤복(김윤복)은 처음 벼슬에 나왔고, 처음 벼슬에 나온 조언해(조언해)·주부 송상보(송상보)는 말이 없고, 순천 이진 (이진)과 아산에서 처음 벼슬한 박윤희(박윤희)는 지금 충청도 방어사의 진중에 있는데 싸움말이 있어 적을

죽일 수 있다고 한다.

 

 

정유년 11월 (1597년 11월)

 

11월 초1일 [양력 12월 9일]<무자> 비가 내렸다.

아침에 얇은 사슴 가죽 두 장이 물에 떠내려 왔다. 그래서 명나라 장수에게 보내주기로 했다. 기이한 일이다. 오후 두 시에 비는 개었으나 된바람이 몹시 불었다. 뱃사람들은 추위에 괴로워하며, 나는 선실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으니, 마음이 무척 불편했다. 하 루를 보내는 것이 일년 같았다. 비통함을 말할 수 없다. 저녁에 된바람이 세게 불어 밤새도록 배가 흔들리어 사람이 제대로 안정시킬 수가 없었다. 땀이 나서 몸을 적셨다.

 

11월 초2일 [양력 12월 10일]<기축> 흐렸는데 비는 오지 않았다.

일찍 우수사의 전선이 바람에 표류되어 암초에 걸려 깨졌다고 한 말을 들었다. 참으로 통분하다. 병선의 군관 당언량(당언량)에게 곤장 여든 대를 쳤다. 선창에 내려가 앉아서 다리 놓는 일을 감독했다. 그 길로 새 집 짓는 곳으로 올라갔다가 어두워서야 배로 내려왔다.

 

11월 3일 [양력 12월 11일]<경인> 맑다.

일찍 새 집 짓는 곳으로 올라가 선전관 이길원(이길원)이 배설 (배설)을 처단할 일로 들어왔다. 배설(배설)은 벌써 성주 본집으 로 갔는데, 그곳으로 가지 않고 곧장 본가로 왔다. 그 사정을 보 아주는 (이길원의) 죄가 더 크다. 녹도의 배에 보냈다.

 

11월 4일 [양력 12월 12일]<신묘> 맑다.

일찍 새 집 지어 세우는 곳으로 올라갔다. 이길원(이길원)이 머물 렀다. 진도군수 선의문(선의문)이 왔다.

 

11월 5일 [양력 12월 13일]<임진> 맑다.

따뜻하기가 봄날 같다. 새 집 짓는 곳으로 올라갔다가, 날이 저 물어서 배로 내려왔다. 영암군수 이종성(이종성)이 밥을 서른 말이나 지어 일꾼들에게 먹이고, 또 말하되, “군량미 이백 섬을 준비하고, 중간벼 칠백 섬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이 날 보성 군수와 흥양현감으로 하여금 군량창고 짓는 것을 보살피게 했다.

 

11월 6일 [양력 12월 14일]<계사> 맑다.

일찍 새 집 짓는 곳으로 올라가 종일 어설렁거리니 해가 저무는 것도 몰랐다. 새 집에 이엉으로 지붕을 이었다. 군량 곳간도 지었 다. 전라우우후가 나무 베어 올 일로 황원장으로 갔다.

 

11월 7일 [양력 12월 15일]<갑오> 맑도 따뜻하다.

해남 의병이 왜놈의 머리 하나와 환도 한 자루를 가지고 와서 바쳤다. 이종호(이종호)와 당언국(당언국)을 잡아왔다. 그래서 거제의 배에 가두었다. 저녁나절에 전 홍산현감 윤영현(윤영현)· 생원 최집(최집)이 와서 보고, 또 군량에 쓸 벼 마흔 섬과 쌀 여 덟 섬을 부쳐 왔다. 며칠 동안의 양식으로 도움이 될만하다. 본영의 박주생(박주생)이 왜놈의 머리 두 개를 베어 왔다. 전 현령 김응인(김응인)이 와서 봤다. 이대진(이대진)의 아들 순생(순생)이 윤영현(윤영현)을 따라왔다. 저녁에 새 집의 마루를 다 놓았다. 수사마다 와서 봤다. 이 날 밤 자정에 꿈에 면( )이 죽는 것을 보고 구슬프게 울었다. 진도군수가 돌아갔다.

 

11월 8일 [양력 12월 16일]<을미> 맑다.

밤 두시쯤 꿈에 물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았다. 이 날은 따뜻하 고 바람도 없다. 새방 벽에 흙을 발랐다. 이지화(이지화) 부 자가 와서 봤다. 마루를 만들었다.

 

11월 9일 [양력 12월 17일]<병신> 맑다.

따뜻하기가 봄날 같다. 우수사가 와서 봤다. 강진현감이 현으로 돌아갔다.

 

11월 10일 [양력 12월 18일]<정유> 눈과 비가 섞여 오다.

된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간신히 배를 구호했다. 이정충(이정 충)이 와서 말하기를, “장흥의 적들이 달아났다.”고 했다.

 

11월 11일 [양력 12월 19일]<무술> 맑으나 바람기는 약간 있었다.

식사를 한 뒤에 새 집 짓는 곳으로 올라갔다. 평산포의 새 만호가 도임장(부임 명령서)을 바쳤다. 그는 하동현감(신진) 의 형 신훤(신훤)이다. 전하는 말이 숭정으로 가자하는 것이 이미 발행되었다고 한다. 장흥부사와 배 조방장이 와서 봤다. 저녁에 우후 이정충(이정충)이 왔다가 초저녁에 돌아갔다.

 

11월 12일 [양력 12월 20일]<기해> 맑다.

이 날 저녁나절에 영암·나주 사람에게 배메기를 못하게 했다 고 하여 묶어서 왔다. 그래서 그 중 주모자를 가려서 처형하고 나머지 네 명을 각 배에 가두었다.

 

11월 13일 [양력 12월 21일]<경자> 맑다.

11월 14일 [양력 12월 22일]<신축> 맑다.

남해현감 류형(유형)이 와서 윤단중(윤단중)의 무리한 일을 많이 전했다. 또 말하기를, 해남의 아전이 법성포로 피란갔다가 돌아올 때 바람을 만나 배가 뒤집어지는데, 바다가운데서 만나도 구조하 기는 커녕 도리어 배안의 물건을 빼앗아 갔다고 했다. 그래서 중군선에 가두었다. 김인수(김인수)를 경상도 수영의 배에 가두었다. 내일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삿날이라 나들이는 하지 않아야 겠다.

 

11월 15일 [양력 12월 23일]<임인> 맑다.

따뜻하기가 봄날 같다. 새 집으로 올라갔다. 저녁나절에 림환 (임 )과 윤영현(윤영현)이 와서 봤다. 저녁에 송한(송한)이 서울 에서 들어왔다.

 

11월 16일 [양력 12월 24일]<계묘> 맑다.

아침에 조방장·장흥부사 및 진중에 있는 여러 장수가 아울러 와서 봤다. 군공마련기(군공마련기: 개인별 전공 조사 기록)를 하 나씩 점고했더니 거제현령 안위(안위)가 통정대부(정3품의 당 상관)가 되고, 나머지도 차례차례 벼슬을 받고, 은 스무 냥을 내 게로 보냈다. 명나라 장수 경리양호(양호)는 붉은 비단 한 필을 보내면서, “배에 이 붉은 비단을 걸어 주고 싶으나, 멀어서 할 수 없다.”고 했다. 영의정의 회답편지도 왔다.

 

11월 17일 [양력 12월 25일]<갑진> 비가 내렸다.

경리 양호(양호)의 차관이 초유문(초유문: 적이나 적에게 붙었던 자들을 너그러운 조건으로 포용한다는 포고문)과 면사첩(면사첩: 사형을 적용하지 않을 것을 보증하는 증서)을 가지고 왔다.

 

11월 18일 [양력 12월 26일]<을사> 맑다.

따뜻하기가 봄날 같다. 윤영현(윤영현)이 와서 봤다. 정한기(정한 기)도 왔다. 땀이 났다.

 

11월 19일 [양력 12월 27일]<병오> 흐렸다.

조방장 배흥립(배흥립)과 장흥부사가 와서 봤다.

 

11월 20일 [양력 12월 28일]<정미>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임준영(임준영)이 와서, “완도를 정탐하니 적들이 없습니다.”고 전했다.

 

11월 21일 [양력 12월 29일]<무신> 맑다.

송응기(송응기) 등이 산의 일꾼을 거느리고 해남에 소나무 있는 데로 갔다. 이 날 저녁에 순생(순생)이 와서 잤다.

 

11월 22일 [양력 12월 30일]<기유> 흐렸다가 개다가 했다.

저녁에 김애(김애)가 아산에서 돌아왔다.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왔는데, 이 달 초열흘 날에 아산에 들러 편지를 가져 왔다. 밤에 비가 오고 눈이 내렸으며 바람이 세게 불었다. 장흥에 있던 적들이 20일에 달아났다는 보고가 왔다.

 

11월 23일 [양력 12월 31일]<경술> 바람이 세고 눈이 많이 왔다.

이 날 승첩한 장계를 썼다. 저녁에 얼음이 얼었다고 했다. 아산의 집으로 편지를 쓰자니 죽은 아들 생각에 눈물이 흘러 거둘 수가 없었다.

 

11월 24일 [양력 1598년 1월 1일]<신해> 눈과 비가 내렸다.

된하늬바람이 계속 불었다.

 

11월 25일 [양력 1월 2일]<임자> 눈이 내렸다.

11월 26일 [양력 1월 3일]<계축> 비와 눈이 내렸다.

얼어서 막힌 게 갑절이나 혹독했다.

 

11월 27일 [양력 1월 4일]<갑인> 맑다.

장흥의 승첩계본을 수정했다.

 

11월 28일 [양력 1월 5일]<을묘> 맑다.

장계를 봉했다. 무안에 사는 진사 김덕수(김덕수)가 군량에 쓸 벼 열다섯 섬을 가져와 바치었다.

 

11월 29일 [양력 1월 6일]<병진> 맑다.

유격 마귀(마귀)의 차관 왕재(왕재)가, “물길을 따라 명나라 군사가 내려 온다”고 했다. 전희광(전희광)·정황수(정황수)가 왔다. 무안현감도 왔다.

 

 

정유년 12월 (1597년 12월)

 

12월 초1일 [양력 1월 7일]<정사> 맑다.

맑고 따뜻했다. 아침에 경상수사 입부 이순신(이순신)이 진에 왔 다. 나는 배가 아파서 저녁나절에야 수사를 보고, 그와 종일 이야기하며 대책을 의논했다.

 

12월 2일 [양력 1월 8일]<무오> 맑다.

날씨가 너무 따뜻하여 봄날 같다. 영암의 향병장 류장춘(유장춘) 이 적을 토벌한 사유를 보고하지 않았으므로, 곤장 쉰 대를 쳤다. 홍산현감 윤영현(윤영현)·김종려(김종려)·백진남(백진남)·정수 (정수) 등이 와서 봤다. 밤 열시쯤에 땀이 배어 젖었다. 된바람이 몹시 불었다.

 

12월 3일 [양력 1월 9일]<기미> 맑다.

바람이 세게 불렀다. 몸이 불편하다.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12월 4일 [양력 1월 10일]<경신> 맑다.

몹시 추웠다. 저녁나절에 김윤명(김윤명)에게 곤장 마흔 대를 쳤다. 장흥 교생 기업(기업)이 군량을 훔쳐 실은 죄로 곤장 세 대를 쳤다. 거제현령 및 금갑도만호·천성보만호는 배메기하는 데서 돌아왔다. 무안현감 및 전희광(전희광) 등이 돌아갔다.

 

12월 5일 [양력 1월 11일]<신유> 맑다.

아침에 공로를 세운 여러 장수들에게 상품과 직첩을 나누어 주었다. 봉제(봉 )가 김돌손(김돌손)을 데리고 함평 땅으로 갔다. 보자기를 수색하는 정응남(정응남)이 점세(점세)를 데리고 진도로 갔다. 배를 새로 만들 때 나쁜 일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볼 일 로 아울러 나갔다. 해남의 독동(독동)을 처형했다. 전익산군수 고 종후(고종후)가 왔다. 김억창(김억창)이 왔다. 광주의 박자(박 자)가 왔다. 무안의 나덕명(나덕명)이 왔다. 도원수의 군관이 임금의 분부를 가지고 왔는데, “이번 선전관 편에 들으니, 통제사 이순신(이순신)이 아직도 상제라 하여 방편을 따르지 않아 여러 장수들이 민망히 여긴다고 한다. 사정이야 비록 간절하지만, 나라 일이 한창 바쁘다. 옛사람의 말에도 `전쟁에 나아가 용맹이 없으 면, 효가 아니다.’고 하였다. 전쟁할 때의 용감이란 소찬으로 기운 이 없는 자는 해낼 수 없는 것이다. 예기에도 `원칙과 방편’이 있으니, 꼭 원칙대로만 지킬 수는 없는 것이다. 경은 내 뜻을 짐 작하여 소찬에 더하여 방편을 쫓도록 하라.”고 하면서 고기반찬 을 하사하셨으니, 더욱 비통했다. 해남의 강간·약탈한 죄인을 함평에서 자세히 다스렸다.

 

12월 6일 [양력 1월 12일]<임술>

나덕준(나덕준)·정대청(정대청)의 아우 정응청(정응청)이 와서 봤다.

 

12월 7일 [양력 1월 13일]<계해> 맑다.

12월 8일 [양력 1월 14일]<갑자> 맑다.

12월 9일 [양력 1월 15일]<을축> 맑다.

종 목년(목년)이 들어왔다.

 

12월 10일 [양력 1월 16일]<병인> 맑다.

조카 해·아들 열 및 진원(진원)이 윤간(윤간)·이언량(이언 양)과 함께 들어왔다.

 

12월 11일 [양력 1월 17일]<정묘> 맑다.

경상수사와 조방장이 와서 봤다. 우수사도 와서 봤다.

 

12월 12일 [양력 1월 18일]<무진> 맑다.

12월 13일 [양력 1월 19일]<기사> 가끔 눈오다.

12월 14일 [양력 1월 20일]<경오> 맑다.

12월 15일 [양력 1월 21일]<신미> 맑다.

12월 16일 [양력 1월 22일]<임신> 맑다. 저녁나절에 눈오다.

12월 17일 [양력 1월 23일]<계유> 눈바람이 몹시 섞여치다.

조카 해와 헤어졌다.

 

12월 18일 [양력 1월 24일]<갑술> 눈오다.

새벽에 해는 어제 취한 술이 깨지 않았는데도 오늘 새벽에 출항했다.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12월 19일 [양력 1월 25일]<을해> 종일 눈이 내리다.

12월 20일 [양력 1월 26일]<병자>

진원(진원)의 어머니와 윤간(윤간)이 올라갔다. 우후가 교서에 숙 배했다.

 

12월 21일 [양력 1월 27일]<정축> 눈오다.

아침에 윤홍산이 목포에서 와서 봤다. 저녁나절에 배 조방장과 경상수사가 와서 보고 몹시

취하여 돌아갔다.

 

12월 22일 [양력 1월 28일]<무인> 눈비가 섞여 내리다.

함평현감(손경지)이 들어왔다.

 

12월 23일 [양력 1월 29일]<기묘> 눈이 세 치나 내렸다.

순찰사가 진에 온다는 기별이 먼저 왔다.

 

12월 24일 [양력 1월 30일]<경진> 눈이 오다 개이다 하다.

아침에 이종호(이종호)를 순찰사에게 보내어 문안했다. 오늘 밤 나덕명이 와서 이야기하는데, 머무르고 있는 걸 싫어한다는 것을 모르니 한심하다. 밤 열시에 집에 편지를 썼다.

 

12월 25일 [양력 1월 31일]<신사> 눈오다.

아침에 열이 돌아갔다. 제 어머니 병 때문이었다. 저녁나절에 경 상수사·배 조방장이 와서 봤다. 오후 여섯시에 순찰사가 진에 왔으므로, 함께 군사에 관한 일을 의논하고, 연해안 열아홉 고을을 수군에 전속하게 하였다. 저녁에 방안으로 들어가 편안하게 이야기했다.

 

12월 26일 [양력 2월 1일]<임오> 눈오다.

방백과 함께 방에 앉아서 은밀히 군사 대책을 논의했다. 저녁 나절에 경상수사(이순신)와 조방장 배흥립(배흥립)이 와서 봤다.

 

12월 27일 [양력 2월 2일]<계미> 눈오다.

아침을 먹은 뒤에 순찰사가 돌아갔다.

 

12월 28일 [양력 2월 3일]<갑신> 맑다.

경상수사와 조방장 배흥립(배흥립)이 와서 봤다. 비로소 경상수사가 지니고 있던 물건이 왔다는 말을 들었다.

 

12월 29일 [양력 2월 4일]<을유> 맑다.

김인수(김인수)를 놓아 보냈다. 윤□□에게 곤장 서른 대를 치고서 놓아 보냈다. 영암좌수(좌수)는 문초를 받고 놓아 주었다. 두우(두우)가 종이감으로 백지·상지를 아울러 쉰(장…이 아래 글자 가 지워져서 알아볼 수가 없음)을 가져왔다. 초저녁에 다섯 사람 이 뱃머리에 왔다고 했다. 그래서 종을 보냈다.(이 아래 글자가 지워져 알 수 없음) 그것이 무슨 듯인지 알 수가 없다. 거제의 망령됨을 알만도 하다.(이 아래 글자가 지워져 알 수 없음) 다친 팔과 손가락을 물로 씻었다고 했다.

 

12월 30일 [양력 2월 5일]<병술> 입춘. 눈보라가 몹시 휘날렸다.

□□□배 조방장이 와서 봤다. 여러 장수들이 와서 봤다. 평산 포만호·영등포만호는 오지 않았다. 부찰사의 군관이 편지를 가 지고 왔다. 오늘밤이 일년의 마지막 날이 되는 그믐밤이라 비통한 생각이 한결 더 하다.

 

 

무술년 1월 (1598년 1월)

 

1월 초1일 [양력 2월 5일]<정해> 맑다.

저녁나절에 비기 잠깐 내렸다. 경상수사·조방장 및 여러 장수들이 다와서 모였다.

 

1월 초2일 [양력 2월 6일]<무자> 맑다.

나라제삿날(명종 인순왕후 심씨 제일)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새로 만든 배의 진수식을 했다. 해남현감(류형)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송대립(송대립)·송득운(송득운)·김붕만(김붕만)이 각 고을로 나갔다. 진도군수(선의경)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1월 3일 [양력 2월 7일]<기축> 맑다.

이언량(이언량)·송응기(송응기) 등이 산□□□ (□□□은 떨어져서 알아볼 수 없음)

 

1월 4일 [양력 2월 8일]<경인> 맑다.

무안현감(남언상)에게 곤장을 쳤다. □수사에게 □□했더니, 우수사가 □□□ 왔다.(□□□은

떨어져서 알아볼 수 없음.)

 

(**날짜 없음)

명나라 계(계김) 유격장(유격장)에게서 받은 물건은 4월 26일인데, 청운비단(청운견) 1단, 남운비단(남운견) 1단, 비단버선(능말) 1쌍, 구름무늬 신(운리) 1쌍, 향기(향기) 1부, 향패(향패) 1부, 절 명(절명) 이근(36냥쭝), 향춘(향춘) 2근(36냥쭝), 사청차(사청다) 사발 10개, 산닭(생계) 4마리이고, 강인약(강린약) 천총(천총)에게 서 받은 물건은 춘명(춘명) 1봉, 화합(화합) 1개, 등부채(등선) 1 발, 복리(복리) 1쌍이고, 주 천총(주천총)에게서 받은 것은 술잔 (주잔) 6개, 주사잔( 전) 2장, 소합(소합) 1개, 찻잎(다엽) 1봉, 신 선로(신선로) 1, 응애(응애) 2이고, 정문린(정문린) 천총(천총)에게 서 받은 것은 여름양말(서말) 1켤레, 영견(영견) 1모, 양차(양다) 1봉, 호추(호초) 1봉이며, 진자수(진자수) 파총(파총)에게서 받은 것은 수보(수보) 1부 등받이이다, 시쓴 부채(시선) 1발, 향선(향 선) 10가닥이며, 육경(육경)에게서 받은 것은 꽃수건(화 ) 1조, 허(허) 파총(파총)에게서 받은 것은 청포와 홍포(청포홍포) 각 1, 금부채(김선) 2, 꽃수건(화 ) 2이다. 10월 4일에는 복일승(복일 승) 유격(유격)에게서 받은 것은 청포(청포) 1단, 남포(남포) 1단, 금부채(김선) 4자루, 젓가락(항 ) 2모, 산닭(생계) 2마리, 양(함 양) 1마리, 왕원주(왕원주) 유격(유격)에게서 받은 것은 금띠(김 대) 1, 양감도서갑( 감도서갑) 1,

향합(향합) 1, 경대(경가) 1, 금 부채(김선) 2, 비단실(사선) 1봉, 찻항아리(다호) 1, 빗(소소) 2개, 오유림(오유림) 천총(천총)에게서 받은 것은 양대( 대) 1개, 배첩 (배첩) 20장이며, 진국경(진국경) 파총(파총)에게서 받은 것은 꽃 차(화다) 1봉, 꽃무늬술잔(화주배) 1대, 구리찻숟갈(동다시) 2부, 찻숟갈(세다시) 1부, 홍례(홍례첩) 1개, 전간첩(전간첩) 5장, 서간 첩(서간첩) 10장, 길절간(길절간) 8장, 붉은 주사 젓가락( 홍 ) 10쌍이며, 계영천(계영 )에게서 받은 것은 금부채(진김선) 1발, 땀수건(한건) 1모, 부들채(포선) 1자루, 수건(조 ) 2장, 왕명(왕 명) 기패(기패)에게서 받은 것은 남포(남포) 1단, 베개(침두화) 1 부, 푸른비단실(청견선) 약간, 공진( 진) 파총(파총)에게서 받은 것은 붉은 종이(홍지) 1부, 절차(절다) 1봉, 차숟갈(다시) 6개, 바 늘(소침) 1포, 왕계자(왕계자) 중군(중군)에게서 받은 것은 남띠 (남대) 1개, 빗(소대세) 2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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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9월 (1598년 9월)

 

9월 15일 [양력 10월 14일]<정유> 맑다.

명나라 도독 진린(진린)과 함께 일제히 항해하여 나로도에 이르러서야 잤다.

 

9월 16일 [양력 10월 15일]<무술> 맑다.

나로도에 머물었다. 도독과 함께 술을 마셨다.

 

9월 17일 [양력 10월 16일]<기해> 맑다.

나로도에 머물었다. 진(진)과 함께 술을 마셨다.

 

9월 18일 [양력 10월 17일]<경자> 맑다.

낮 두 시에 행군하여 방답진(여천군 돌산읍 군내리)에 이르러 잤다.

 

9월 19일 [양력 10월 18일]<신축> 맑다.

아침에 좌수영 앞바다에 옮겨 대니, 눈앞의 전경이 참담하다. 한 밤에 달빛을 타고 하개도(하개도:남해군 남면 대정리 목도?)로 옮겨 대었다가, 채 밝기도 전에 출항했다.

 

9월 20일 [양력 10월 19일]<임인> 맑다.

오전 여덟 시쯤에 유도(여천군 율촌면 여흥리 송도)에 이르니, 명 나라 제독 유정(유정)이 벌써 진군했다. 수륙으로 모두 조여드니, 적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많이 겁내는 빛이다. 수군이 드나들며 대포를 쏘아댔다.

 

9월 21일 [양력 10월 20일]<계묘> 맑다.

아침에 진군하여 화살을 쏘기도 하고 화포를 쏘기도 하여 종일 싸웠으나, 물이 밀려나가 매우 얕아 진격해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남해의 적이 가벼운 배를 타고서 들어와 정탐하려 할 즈음 허사 인(허사인) 등이 추격하니, 왜적들은 뭍으로 올라가 산으로 도망 갔다. 그리하여왜놈들의 배와 여러 잡된 물건을 빼앗아 도독(유 정)에게 바쳤다.

 

9월 22일 [양력 10월 21일]<갑진> 맑다.

아침에 진군하여 나갔다 들어갔다 하면서 싸웠는데, 유격(마귀) 이 어깨에 적탄을 맞았으나, 중상은 아니었다. 명나라 군사 열한 명이 적탄에 맞아 죽고, 지세포만호·옥포만호가 적탄에 맞았다.

 

9월 23일 [양력 10월 22일]<을사> 맑다.

도독이 화를 냈다. 서천만호 및 홍주대장·한산대장 등에게 각각 곤장 일곱 대를 쳤다. 금갑도만호·제포만호·회령포만호에게도 아울러 곤장 열다섯 대씩 때렸다.

 

9월 24일 [양력 10월 23일]<병오> 맑다.

진대강(진대강)이 돌아갔다. 원수 군관이 공문을 가지고 왔다. 충 청병사의 군관 김정현(김정현)이 왔다. 남해 사람 김득유(김득유) 등 다섯 사람이 다녀 와서, 그 고을 적정을 전하였다.

 

9월 25일 [양력 10월 24일]<정미> 맑다.

진대강(진대강)이 도로 와서 제독 유정(유정)의 편지를 전했다. 이 날 육군은 비록 공격을 하려고 하나 기구가 완전치 못하였다. 김정현(김정현)이 와서 봤다.

 

9월 26일 [양력 10월 25일]<무신> 맑다.

육군의 기구가 갖추어지지 않았다. 저녁에 정응룡(정응룡)이 와서 북도의 일을 말했다.

 

9월 27일 [양력 10월 26일]<기유> 아침에 잠시 비를 뿌리더니 히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아침에 명나라 군문 형개(형 )가 글을 보내어 수군이 재빨리 진군한 것을 가상히 여긴다. 식사를 한 뒤에 도독 진린(진린)을 보고 조용히 이야기했다. 종일 바람이 세게 불었다. 저녁에 신호의(신호의)가 와서 보고 잤다.

 

9월 28일 [양력 10월 27일]<경술> 맑다.

하늬바람이 세게 불어 크고 작은 배들이 드나들 수가 없었다.

 

9월 29일 [양력 10월 28일]<신해> 맑다.

9월 30일 [양력 10월 29일]<임자> 맑다.

오늘 저녁 명나라 유격 왕원주(왕원주)·유격 복승(복승)·파총 이천상(이천상)이 백 여 척을 거느리고 진으로 왔다. 이 날 밤 등불을 밝히니, 휘황찬란하여 적도들은 간담이 써늘했을 것이다.

무술년 10월 (1598년 10월)

 

10월 초1일 [양력 10월 30일]<계축> 맑다.

도독(진린)이 새벽에 제독 유정(유정)에게 가서 잠깐 서로 이야기 했다.

 

10월 초2일 [양력 10월 31일]<갑인> 맑다.

아침 여섯 시쯤에 진군했는데, 우리 수군이 먼저 나가 정오까지 싸워 적을 많이 죽였다. 사도첨사(황세득)가 적탄에 맞아 전사하고, 이청일(이청일)도 죽었다. 제포만호 주의수(주의수)· 사량만호 김성옥(김성옥)· 해남현감 류형(유형)· 진도(군수) 선의문(선의문)·강진(현감) 송상보(송상보)가 적탄에 맞았으나 죽지는 않았다.

 

10월 초3일 [양력 11월 1일]<을묘> 맑다.

도독(진린)이 제독 유정(유정)의 비밀 서신에 따라 초저녁에 진군하여 자정에 이르기까지 사선(사선) 열아홉 척, 호선(호선) 스무 여 척에 불을 지르니, 도독의 엎어지고 자빠지는 꼴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안골포만호 우수(우수)는 적탄에 맞았다.

 

10월 초4일 [양력 11월 2일]<병진> 맑다.

아침에 출항하여 적을 공격하는데 종일 싸우니 적들은 허둥지둥 달아났다.

 

10월 초5일 [양력 11월 3일]<정사> 맑다.

하늬바람이 세게 불어, 배들을 간신히 구호하고 날을 보냈다.

 

10월 초6일 [양력 11월 4일]<무오> 맑다.

하늬바람이 세게 불었다. 도원수(권율)가 군관을 보내어 편지를 전하는데, “제독 유정(유정)이 달아나려 했다.”고 하니, 참으로 통분할 일이다. 나랏일이 앞으로 어찌 될 것인지!

 

10월 초7일 [양력 11월 5일]<기미> 맑다.

아침에 송한련(송한련)이 군량 넷·조 하나·기름 다섯 되·꿀 석되를 바쳤다. 김태정(김태정)은 쌀 두 섬 한 말을 바쳤다.

 

(** 날짜 없음)

군사에 관한 일. 이 달(10월) 3일 오늘밤이 조류가 이로워 싸움을 하겠다고 총병 유정(유정)에게 서신으로 허가를 받았다. 주되는 일, 즉 각 장수를 통솔하여 전함을 전진시키는 것은 각 고을의 군사가 있는 힘을 다하여, 제몸을 돌보지 않고서 곧장 왜적선에 쳐 들어가 불태웠다. 10여 척을 끌어내는데, 왜적은 산성 위에서 총포를 쏘았다. 한창 격렬히 벌어진 싸움을 생각하니, 마침 조수(조수)가 막 빠져 나가는 것을 보고는 주되는 일이 곧장 손짓하여 병사들을 거두는 것이 마땅하므로, 앞에 있는 배들은 고함소리를 질러 하늘에까지 시끄럽도록 하였지만, 포성(포성)은 우레 같아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여 사선(사선) 19 척 병사를 □□ □, 무서운 것은 왜놈들에게 빼앗기는 것인데, 장수가 탈 배와 아울러 화약(화약)으로 스스로 불을 내어 불타버렸다. 해당진에서는 왜적을 사로잡기도 하고, 진에서 눈을 잃은 병사를 빼고는 훤히 조사하여 보고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사선(사선) 25척, 호선(호선) 77척, 비해선(비해선) 17척, 잔선( 선) 9척 (모두 126척)

 

여기 까지가 기록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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