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다 가게키(志茂田景樹)

 

1940년생, 1976년 단편 <햇병아리 탐정>으로 잡지 <소설 현대>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데뷔 했습니다. 1980년에 <누런 이빨>로 나오키 상을 수상함으로써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그 후 소설가 겸 탤런트로 활동영역을 넓혔는데 머리카락을 색색으로 물들이고, 개성 있는 옷차림을 하는 등 독특한 패션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1998년부터 어린이를 위한 동화 낭독 모임을 시작하여, 지금은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한 해 100회 이상 ‘꿈의 잔치’를 베푸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이 책에서는 자신이 직접 실천해온 건강 생활습관을 공개하면서 여자들보다 평균수명이 짧은 남성들에게 ‘건강하게! 오래! 행복하게!’ 살 것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남성독신보감

나이보다 젊게 사는 다섯 가지 유쾌한 생활습관

시모다 가게키 지음 | 조양욱 옮김

 

위즈덤하우스

 

 

추천의 말

“당신, 혼자 살 자신 있어?”

 

한국남자들이 여자에 비해 얼마나 경쟁력이 떨어지는가는 일단 평균수명만 따져봐도 분명해진다. 2007년 한국남자의 평균수명은 74.4세로 세계 30위이며 여자는 81.8세로 세계 18위로 나타났다. 한국남자와 한국여자의 평균수명은 무려 7.4년의 차이가 난다. 일본의 사정도 한국과 비슷하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보면 2004년도 일본인의 평균 수명은 남자 78.6세, 여자 85.6세 라고 한다. 일본도 약 7년의 차이가 난다. 이런 차이는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다. 남자와 여자의 평균수명의 생물학적 차이라고 봐도 좋은 세계 평균은 4.4.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남자나 일본남자들의 생물학적 차이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일찍 죽는 것일까?

우주의 질서와 세계평화를 지키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모여 앉으면 정치이야기,경제이야기뿐이다. 자신의 존재 이유는 우주의 침략자와 맞서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온통 국가와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한 일념뿐이다 보니, 걷다가 자빠져도 좌충우돌하는 대통령과 무능력한 정치가들 때문이란다. 아무도 부여하지 않은 이 엄청난 의무를 감당하다 보니, 정작 자신의 행복을 챙기는 데는 너무 무지하고 무능력하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주말에 정말 맛있는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고 하자. 정말 고생한 나를 위로하며, 우아한 호텔 레스토랑에 혼자 앉아 고급 스테이크와 레드와인을 시켜 맛있게 먹을 자신이 있는가? 못한다. 왜?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볼까 봐 무서운 것이다. 음악회는 혼자 갈 수 있는가? 예술의 전당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쇼팽의 피아노협주곡을 백건우가 연주한다고 하자.혼자 가서 그 벅찬 감동을 즐길 수 있는가? 힘들다. 왜? 역시 남들이 사회부적응자로 볼까 봐 무서운 거다. 음악은 원래 혼자 듣는 거다. 그런데도 꼭 누군가와 함께 가야 한다.

그런데 한번 잘 생각해보자. 내가 혼자 와서 고기 먹는 것, 혼자 음악회 온 것에 대해 도대체 누가 관심을 갖겠는가. 그런데도 혼자 쑥스럽고, 부끄러워한다. 정상이 아니다. 세계는 평화를 지키는 데는 술상을 뒤엎을 만큼 흥분도 하지만, 정작 자기의 행복을 챙기는 데는 너무나 비겁한 그 모습은 한국남자나 일본남자나 별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남성독신보감>의 저자 시모다 가게키 는 속이 텅 비어 있는, 이 허탈한 남자들의 세계를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질문으로 베고 후벼댄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당신, 혼자서도 재미있게 살 수 있어?”

가슴이 철렁한다. 옆에서 챙겨주는 이 없는 혼자만의 삶을 기뻐하며 음미할 자신이 있느냐는 것이다. 누구나 언젠가는 혼자가 되기 때문이다. 설령 아내나 친구와 함께 언제까지나 함께 산다고 해도, 혼자만의 삶을 즐길 수 없는 이는 곁에 있는 이에게 그저 부담스럽고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일본의 중년부인들에게는 남편이 은퇴해서 집에 있게 된다는 사실만 떠올려도 두드러기가 돋는다는 ‘은퇴남편증후군’ 까지 나타난다고 한다. 남의 일이 아니다. 당신은 어떤가? 당신이 오랜만에 집에서 쉴 때, 당신의 아내는 당신의 존재를 기뻐해주는가? 당신의 자녀는 당신의 무릎 근처에서 뒹굴며 당신의 존재감을 느끼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하는가?

행복은 가볍고도 사소한 기쁨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일상의 가슴 설레는 기대감, 사랑 받는 느낌, 가벼운 흥분 등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고 행복심리학의 세계적인 대가들은 한결같이 주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일상의 기쁨을 만들어 내고, 즐기는 훈련에 대해 무척 자세하고 재미있게 설명해주고 있다.

여전히 자유, 민주,평화만이 궁극의 가치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한국의 남자들은 이런 류의 친절한 책에 코웃음 칠 수도 있다. 허나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행복과 재미다. 또 스스로 행복할 수 있을 때, 타인의 행복을 위한 자유, 민주, 평화를 논할 수 있는 법이다. 나 스스로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어찌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가 불행한 이유는 혼자서는 절대 행복하게 살 수 없어 보이는 이들이 국가와 민족의 행복을 위하겠다며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난 그들에게 이 책의 목차를 들이대며 묻고 싶다.

“당신, 혼자서도 정말 재미있게 살 수 있어?”

 

김정운(명지대학교 대학원, 여가경영학과 교수)

 

 

작가의 말

나이보다 젊게 사는 유쾌한 생활습관

 

 

남자들은 속이 상하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오래 사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대체적으로 남자는 힘(완력만 가리키는 게 아니다)이 세고, 돈을 잘 번다. 키가 크고, 인내력이 있으며, 이성적이기도 하다. 검소한 옷차림에다 화장품을 쓰지 않으니 절약가 이기까지 하다. 이런 따위의 사례를 들추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런데 어째서 여자들이 더 장수한단 말인가? 이야말로 불공평한 일이 아닌가!

2004년도 ‘후생노동성’ 발표에 따르면 일본인의 평균 수명은 남자 78.6세, 여자 85.6세다. 여자가 두어 살쯤 더 산다면 모르겠지만, 일곱 살이나 차이가 벌어져서야 불합리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같은 나이에 결혼한 부부의 경우, 남편이 죽은 뒤 아내가 7년이나 더 산다는 계산이다. 남편의 7주기 제삿날에도 아내는 멀쩡하게 살아 있는 셈이다.

이런 격차를 없애려면 남자가 일곱 살 연상인 여자와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개의 경우 남자들은 연하의 여자에게 눈독을 들인다.

그러다 보니 주위를 둘러보면 아내를 잃은 남자보다 남편을 잃은 여자들이 훨씬 많이 눈에 띈다. 게다가 그런 여자들의 대다수는 슬픔에 빠져 있기보다는 하루하루를 생기 있게 보내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천국으로 간 남편들로서야 기분 나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노래방에 가보면 남편을 먼저 보낸 여성들이 유쾌하게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백화점에서 주최하는 문화강좌에서도 남편을 먼저 보낸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무엇인가를 배우고 있는 걸 흔히 볼 수 있다. 사교댄스 모임이나 여행 클럽에도 남편을 여읜 아내들이 생기 넘치게 오간다. 대관절 그들은 어째서 그토록 즐기게 지낼 수 있는 것일까?

예전에 일본에서는 ‘세 끼에 낮잠 가능’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건강하면서도 집 잘 비우는 남편이 좋다’는 말도 있었지 아마! 아내와 자녀들은 돌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청춘을 불사른 남편은 이제 ‘분리수거 쓰레기’ 신세가 되고 만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바깥에서라도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못하다. 그저 온종일 빈둥거릴 뿐이니 이래서야 남편이 먼저 죽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리라. 남겨진 아내는 보살펴야 하는 남편마저 사라졌으니 홀가분하게 여생을 보내게 된다.

그렇다면 거꾸로 아내를 먼저 보낸 남편의 경우는 어떨까.

당연히 남편을 잃은 여성에 비해 수적으로는 적지만, 우리 곁에서 이따금 발견되곤 한다. 5,60대에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거나 사고로 먼저 떠난 경우가 더러 있는 것이다.

그렇게 아내를 떠나 보낸 불행한 남자들의 모습은 어떨까? 그들은 순식간에 확 늙어버리거나, 옷차림이 너저분해지면서 생활 자체가 엉망진창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직업이 있을 때는 그나마 낫지만, 퇴직하고 나면 흡사 살아갈 희망이 사라진 듯이 무기력해지기 일쑤다. 그리고 건강과는 한참 동떨어진 상태로 인생의 막을 내리고 마는 이들이 적지 않다. 드물게 아내를 먼저 보내고도 씩씩하고 건강하게 장수를 누리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건 아주 드문 경우이다.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늘 걸까. 아니 그보다도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여성과, 아내가 먼저 세상을 뜬 남자들이 그 이후의 커다란 차이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 책은 그걸 밝히고, 아내를 잃기 전에 남성이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여 세상의 남편 족들 에게 제안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쓰였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아내보다 먼저 죽는 남성을 크게 줄여 부부가 함께 백년해로하는 방법을 이 책을 통해 알려주고자 한다. 또한 결혼을 마다하고 독신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반드시 읽어 고단한 삶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contents

 

추천의 말 “당신, 혼자 살 자신 있어?”

작가의 말 나이보다 젊게 사는 유쾌한 생활습관

 

요람기

다섯 가지 즐거움을 배우자

프롤로그

요리하는 즐거움

혼자서도 잘 사는 남자가 되기 위해 알아야 할 첫 번째 즐거움, 요리하는 즐거움을 발견하자. 홀로 남더라도 아무 걱정이 없으며, 균형 잡힌 식생활을 하게 되어 건강이 따라온다.

 

집안일을 돌보는 즐거움

건강하게 오래 사는 비결은 자기 일을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운동하는 즐거움

시간, 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 걷기 운동은 탁월한 운동 효과를 내며, 세상을 보는 감수성까지 키워준다.

 

홀로 여행하는 즐거움

혼자서 길을 떠나 세상에 하나뿐인 나를 찾고 남들은 모르는 나를 발견하자.

 

나에게 몰두하는 즐거움

나를 칭찬하고 나 혼자만의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사회 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독립을 실감할 수 있는 값진 경험이다

 

성장기

다섯 가지 즐거움을 누리자

 

요리는 창조다

즐거운 마음으로 요리를 하자. 다양한 재료와 조리법들을 시도하다 보면 상상력과 창의력까지 길러진다.

 

청결한 생활이 깨끗한 나를 만든다

생활공간을 깨끗이 하면 내 마음도 정화된다. 마음이 깨끗하면 옷차림도 말쑥해진다. 세월이 지나면 연륜까지 더해진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근육 운동이 몸의 노화를 막는다

부지런히 움직이자. 즐거운 마음으로 다리와 허리를 단련하면 부상을 예방하는 것은 물론 마음까지 신선하게 만든다.

 

여유로운 여행이 감수성을 풍부하게 한다.

여로의 묘미는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시시각각 바뀌는 풍경, 공기, 인정, 아름다운 자연 등을 오감으로 느끼는 데 있다. 인생이라는 여행에서도 다채로운 여정을 경험하자.

 

내 진짜 모습을 사랑한다

솔직한 나를 발견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즐거운 일상을 만든다. 스스로 나르시시스트가 되면서도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폭 넓은 인간이 되자.

 

 

성숙기

다섯 가지 즐거움에 통달한 당신, 무병장수의 길이 보인다.

 

아내와 함께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자

아내는 라이벌이다

이따금 헤어져서 지내자

아내의 사진을 신주단지처럼 모셔라

홈 파티를 열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

예순에도 배우고 일흔에도 배우자

꿈은 이루어진다

 

맺는 말 독신생활을 위한 명심보감

옮긴이의 말 괴짜 작가가 선사하는 웃음, 그리고 건강한 삶

 

 

 

요람기
다섯가지 즐거움을 배우자

 

프롤로그

 

지금부터 내가 제안할 다섯 가지 즐거움을 이 세상의 남편들이 정년퇴직 10년 전부터 실천하여 정년을 맞을 때쯤 완벽하게 익힌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아내를 홀로 두고 서둘러 먼저 떠나는 남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라는 사실을 내 감히 장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섯 가지 즐거움은 홀로된 아내에게 건강과 장수를 안겨주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섯 가지 즐거움의 대부분은 아내들이 남편을 먼저 보내기 훨씬 이전부터 실천해온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다섯 가지를 실천하여 즐기는 것이야말로 아내보다 먼저 저승길로 향하지 않는 비결이다. 게다가 남편들이 활기차게 장수하는 자름 길이 되리라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바꿔 말해 설령 아내를 잃더라도, 남편을 여윈 대다수 여성들이 무병장수를 누리듯이 남성들 역시 그렇게 살 수 있음을 뜻한다. 그러노라면 결국 부부가 더불어 무병장수를 이룰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다섯 가지 즐거움을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은 그리 쉬운 노릇이 아니다.

나는 40대 초반 무렵 음식에 관해 몹시 무신경했다. 당시 내가 곧잘 만나던 60대 중반의 나이든 지인이 있었다. 대형 유통업체에 다니다 정년 퇴직하여 자회사의 중역을 맡고 있던 그는 당시 아주 건강했다. 단정한 차림새에 패션 감각도 여간 뛰어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그 사람과 마음이 맞았던 이유는 그가 술자리에서도 깍듯이 예의를 지켰으며 더불어 요리에 관해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령 니쿠자가(육류와 감자를 함께 볶은 음식, 옮긴이)를 젓가락으로 쿡쿡 찌르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육류는 이처럼 요리에 가미되는 하나의 재료로서 먹어야 해요. 그래야 육류의 과다 섭취를 막을 수 있어요.”

그는 자녀들이 분가하여 부인과 단 둘이서 산다고 했다. 부인과도 한 번 함께 자리한 적이 있었는데, 남편이 입고 있던 재킷의 깃을 바로잡아주거나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는 등 아주 자상하고 바지런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자신의 아내에게 막말을 하는 등 함부로 대했다. 나는 내심 ‘이 양반, 요즘에 보기 드문 독불장군 같은 남편이로구먼’ 하고 의외로 여겼다. 그런데 얼마 후 그의 부인이 느닷없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졌고 미처 손쓸 틈도 없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 후 그 사람은 순식간에 변해갔다. 장례를 치른 지 1년 가량 지난 뒤 그를 만났는데 예전의 깔끔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안색이 나쁘고 수염이 더부룩하게 자란 모습이었다. 넥타이도 매지 않은 채 잔뜩 구겨진 양복을 입고 있었으며, 구두는 생전 닦은 적이 없는 것처럼 더러웠다. 술버릇도 예전 같이 않았을 뿐 아니라 먹고 마시는 태도가 너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말투 역시 거칠었고, 온통 불평불만만 늘어놓고 있었다. 그 사람은 먹고 사는 데 쫓길 만큼 형편이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내를 사랑한 나머지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그 사람은 이제껏 식사에서부터 청소, 세탁에 이르기까지 생활의 모든 면을 아내에게 기대고 살아왔다. 그런데 생활의 버팀목이었던 아내가 갑자기 사라지고 나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직장도 그만 두었다고 했다. 하는 일이 없으니 심심풀이 도박을 하거나, 공원벤치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었다. 식사는 아침부터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때우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평소 어떤 식생활을 하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그로부터 다시 1년이 지난 뒤 그를 만난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골 노인처럼 그의 허리가 상당히 굽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대신 2년쯤 세월이 흐른 뒤 우연히 들렀던 술집에서 그의 부하 직원이었던 사람을 만나 그가 이 세상을 떠났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듣게 되었다. 내가 아내를 먼저 보낸 남자들을 유심히 관찰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그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던 같다.

여자들은 남편과 사별하더라도 그 슬픔을 잘 이겨내고 그 후에도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대다수의 남자들은 노화에 가속도가 붙은 양 삶의 의욕이 사라져간다.

그리고 그런 유형의 남자는 거의 90%가 평소 폭군 남편이자, 가정을 돌보지 않는 일 중독자들이다. 그들은 세세한 신변 정리의 하나부터 열까지 아내의 보살핌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그 중 가장 비참한 경우는 정년퇴직을 하거나 명퇴 당하여 직장에서 밀려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마저 잃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순식간에 생명력 자체를 상실하고, 심신이 급격하게 노화되어 간다.

홀로된 뒤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의식주(衣食住) 전반에 걸쳐 스스로가 적절한 ‘관리’가 가능한지 아닌지에 달려있다. 아내에게 의식주를 몽땅 맡겨두고 살아온 남자는 홀로되는 순간 건강한 생활을 계속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의(衣)’만 해도 그렇다. 양복이나 코트야 세탁소에 맡긴다고 해도, 내의나 양말 등은 매일 직접 빨아야 한다. 스스로 빨 수 있는 것은 빨아야 하며, 그것도 여름용과 겨울용 등 계절별로 잘 구분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이불 역시, 가끔씩 햇볕에 말리지 않으면 세균소굴로 변할지 모른다. 베개 커버도 제때 갈아주지 않으면 색깔까지 거무튀튀해지고 말 것이다.

‘주(住)’ 문제도 마찬가지다. 매일 청소기 전원을 켜고, 걸레질을 해야 할 곳은 걸레질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폐가처럼 변해 버린다. 쓰레기 버리는 것에는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

언젠가 단골 술집에서 두어 번 함께 술잔을 나눈 적이 있는 중년 남자와 길거리에서 마주쳤다. 그런데 그가 “제 집이 이 근처입니다. 차라도 한 잔 들고 가시죠” 하고 내 소매를 끌었다.

그 사람은 아내와 사별한 게 아니라 아내가 가출하는 바람에 독신으로 살고 있는 경우였다. 왠지 찝찝한 예감이 들긴 했지만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뒤따랐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의 집 현관으로 들어선 순간 마치 재래식 화장실에 들어선 것 같은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음식물이 썩는 시큼한 냄새가 집안에 가득 떠돌고 있었다. 방구석에는 신문과 잡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는데,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습기로 인해 악취를 풍겼다. 언제 청소를 했는지 방바닥은 온통 어지럽혀진 채였다. 싱크대에는 쓰던 찻잔과 접시 따위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으이크!’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던 것은 먹다 남은 컵라면 용기가 눈에 띄었을 때였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여러 개가 방 한쪽 구석에 쌓여 있었는데, 바퀴벌레가 들락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그 사람이 끓여 온 커피를 억지로 몇 모금 마시는 척하다가 허둥지둥 도망쳐 나왔다.

의식주 가운데 아내를 먼저 보낸 남자들이 가장 중시해야 할 것은 ‘식(食)’ 이리라. 건강을 유지하고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영양이 골고루 들어간 먹을 거리 확보가 절대 조건이다. 그래서 다섯 가지 즐거움 중에 으뜸은 ‘요리하는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요리하는 즐거움

숨은 요리사였던 초등학생

 

편의점에서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레토르트 식품과, 그냥 그대로 반찬으로 먹는 가공식품을 고르고 있는 중*노년 남성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노라면 불쌍한 심정을 금할 길 없다. 특히 즉석 밥을 망설이지 않고 집어 드는 모습을 보면 “이봐요, 밥 정도는 직접 지어 먹는 게 어때요!” 하고 나무라고 싶어진다.

애당초 독신으로 살아온 사내들은 물건을 요모조모 잘 살피고, 무엇보다 가격을 확인한 다음에야 장바구니에 담는다. 게다가 야채나 날것 등 조리할 필요가 있는 음식 재료에도 곧잘 손길을 뻗친다. 그러나 별안간 스스로 식사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가 된 유부남은 다르다. 그들은 균형 잡힌 영양 섭취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레토르트 식품이나, 뚜껑만 따면 바로 젓가락질 할 수 있는 가공식품 따위를 선호한다.

불행하게도 아내를 먼저 보냈거나 혹은 이혼한 중년 남자는 모처럼 아내가 집을 비워 손수 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 중년 남자와 아주 흡사한 물건을 고르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한 가지 크게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전자(前者)가 된장, 간장 등의 장 류도 조금씩 사는 데 비해 후자(後者)는 거의 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자기 집 부엌에 언제나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내를 잃은 사내가 편의점에서 물건 고르는 뒷모습을 보노라면 처량함에 때로는 눈길마저 돌리고 싶어진다. 그 처량함은 요리하는 즐거움을 끝내 모른 채 아내를 먼저 보내고, 날마다 대하는 식탁에서는 엊그제까지의 풍성함과 윤기가 말끔히 사라져 버렸으리라는 짐작에서 오는 것이다. 균형이 잡히지 않은 식단은 거의 한 가지 유형, 그러니까 ‘그 나물에 그 밥’일 뿐이다. 이따금 즐기는 외식이라고 해 보았자 균형 잡힌 건강식이 아닐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슬금슬금 밀려드는 생활습관 병의 기색이 아내를 먼저 보낸 중년 남성의 뒷모습을 더욱 더 초라하게 만든다. 그런 사실을 감안할 때 ‘요리하는 즐거움’은 아내를 먼저 보내기 전에 반드시 익혀야 할 첫 번째 즐거움임이 확실하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 부엌에 가서 어머니가 음식을 만드는 곁에 서서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종종 어머니를 거드는 경우도 생기곤 했다. 우동을 뺄 때 반죽이 눌어붙지 않도록 가루를 뿌리거나 된장국에 쓸 완두 껍질을 벗기기도 했고, 유부를 5밀리미터 정도의 두께로 길쭉하게 자르는 작업도 맡았다. 홀로 집을 지키다가 배가 고파지면 어깨 너머로 익힌 실력으로 볶음밥을 만들어 먹기도 했고, 냉장고 안에 있는 온갖 야채들을 꺼내 잘게 썬 다음 밀가루 반죽을 하여 프라이팬에 구워 부침개를 부쳐 먹기도 했다. 하지만 혼자 집에서 가스 불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들통 나면 어머니가 몹시 야단을 쳤던 지라 항상 깔끔하게 뒷정리를 하여 음식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아마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칼과 양파를 자르다가 ‘아차’ 하는 순간 왼손 가운데 손가락을 꽤 깊숙이 베이고 말았다. 붕대를 감고 모른 척 시치미 뗄 정도의 단순한 상처가 아니었다. 이후로 어머니는 내가 부엌을 기웃거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사건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나는 소설가보다 요리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40대 중반을 지나 현미를 주식으로 삼게 되고, 수십 년의 공백을 뛰어넘어 다시 부엌에 서게 된 것은 초등학교 시절 남 몰래 요리에 몰입한 경험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던 덕택일 것이다. 그러나 나를 부엌에 서게 만든 진짜 동기는 그보다 훨씬 뿌리 깊은 곳에 있었다.

나는 중학생 무렵부터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현미와 야채 식사법에 관한 책이 눈에 띄면 그 자리에 서서 대충 훑어보기도 했고, 마침 용돈이 남아 있을 때에는 서슴없이 사오기도 했다. 필경 그 당시 이미 식사와 건강의 관련에 관해 잠재적인 흥미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숨어서 요리를 만들어 먹던 초등 생 시절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어느 잡지에서 계란껍질에 칼슘이 듬뿍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안 뒤로는 계란껍질을 나무 방망이로 다져서 가루로 낸 다음 노른자에 섞어 휘휘 저어서 먹을 정도였다.

까까머리 중학생 주제에 어찌 그리 먹을 거리의 질과 영양가에 집착했는지 곰곰 돌이켜 보면 짐작 가는 구석이 없지는 않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나는 폐렴에 걸려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왕진 온 의사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이대로 두면 2, 3일 내에 죽어요. 페니실린이 있으면 살릴 수 있으련만…..” 하고 혀를 끌끌 찼던 모양이다.

그때가 1947년, 일본은 전쟁에 패하여 온통 폐허로 변해 있었다. 그 바람에 큰 병원이건 동네의 조그만 의원이건 페니실린이 있을 리 만무했다. 설령 구입할 수 있다 해도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비쌌다. 아버지는 빚까지 얻어, 암시장에서 대여섯 시간을 헤매고 다닌 끝에 간신히 페니실린을 구했다고 한다. 페니실린의 효과는 탁월해서 열이 금방 내렸고, 사흘 만에 나는 거의 정상으로 되돌아 왔다.

“이제 다 나았어요. 체력을 보충해야 하니까 밥은 현미로 끓여 먹이고, 야채를 충분히 섭취하도록 하세요!”

그 말이 내 뇌리에 강하게 각인되었다. 미군 점령 시절이어서 육류와 버터, 우유를 권하는 의사는 수두룩했으나, 현미와 야채를 추천하는 의사는 드물었다. 그래서 더욱 강한 인상이 남았는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어린 마음에도 신체를 건강하게 단련하려면 무엇을 먹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내 현미식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고 본격적으로 현미를 먹게 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우리 집은 비교적 야채를 즐기는 가정이었다. 그 전까지 나는 야채를 아주 싫어하여 식사를 할 때마다 어머니로부터 꾸중을 들었다. 특히 당근을 싫어해서 카레라이스나 된장국에 당근이 들어 있는 걸 보면 하나도 남김없이 다 골라내곤 했다.

그런 내가 폐렴에서 회복되자마자 입에 대지도 않던 당근을 포함하여 걸신들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야채를 먹어 치웠으니 가족들이 깜짝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제 고작 8, 9세 된 어린아이가 현미식에 관심을 갖고, 야채를 충분히 섭취하려 애쓰는 따위는 아무래도 어린이답지 않았다. 나 역시 어린아이답게 단 음식에는 군침을 흘렸고, 양갱이니 찹쌀떡으로 군것질하기를 즐겼다. 그런데 이따금 나는 어머니가 양갱 써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내 것은 좀 얇게 썰어줘요” 하고 부탁했다. 단 음심을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나쁘다는 사실을 나도 모르게 깨달았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평소 입에 달고 살던 단 음식을 멀리하기 시작했으니 아무래도 나는 이상한 아이였던 모양이다.

 

 

주당(酒黨) 친구들의 잇단 전사(戰死)

 

내 나이 37, 38세 되던 무렵,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의 모임이 있었다. 오랜만에 모였는데 다른 반 친구들까지 합세했던 지라 참석자는 백 명이 넘었다.

당시 총무를 맡아 대활약 했던 H는 학창 시절부터 매사 솔선수범하는 성격 좋은 친구였다. 그는 럭비부 선수로 뛰었고, 다부진 체격에다 식욕이 왕성했다. 특히 육류에는 사족을 못 쓸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유형은 운동을 그만두면 이내 살이 찐다. H 역시 사회에 나온 후로는 점점 체중이 불어났다. 반창회를 했던 그 무렵에는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워 보일 만큼 뚱뚱했다. 게다가 간이라도 나쁜지 안색도 좋지 않았다.

“열심히 잘 해보라고, 시모다! 난 영원한 자네 팬이니까….”

나는 그 한두 해 전, 어느 소설 전문잡지로부터 신인상을 받았다. 그야말로 햇병아리 작가였던 나를 H가 싱글벙글 웃음 띤 얼굴로 격려해주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두 해가 흐른 뒤 H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문상을 마치고 빗속을 걸어서 몇몇 동창생들과 돌아오면서 우리의 마음은 너나없이 착잡하기만 했다. 결국 우리는 근처 술집의 문을 밀고 들어섰다. 다들 연거푸 술잔만 기울였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럭비부 주장을 맡은 적이 있었던 나는 합숙 훈련을 할 때 게걸스럽게 육류만 골라 먹어 치우던 대식한(大食漢) H의 모습이 새삼 떠올랐다.

고교 동창생 H가 한창 나이에 암으로 죽은 그 무렵, 나는 ‘골든가Golden街’ 로 불리는 신주쿠(新宿)의 술집 밀집지역에서 날마다 2차니 3차니 하고 옮겨 다니며 술로 밤을 지샜다. 골든가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들락거렸으므로 어느 술집에 가건 낯익은 술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주당 친구들 가운데 몇 명이 H가 죽은 그 해에 잇달아 유명을 달리했다.

한때 철학 청년이었던 R은 당시 공사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었다. 그도 하혈을 하면서 길바닥에 쓰러져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간 지 일주일 만에 눈을 감았다. 직장암이었는데 암세포가 이미 여기저기 전이된 모양이었다. 전위 연극에 몰입하던 O는 간경화로 죽었다. 골든가의 명물, 여장(女裝)남자이자 가게 마담이기도 했던 N은 폐암으로 이 세상을 하직했다. R은 30대였고, O와 N은 40대였다.

R은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였다. 그는 맥주 반 잔이면 벌써 취하여 해롱거렸다. O는 항상 ‘온 더 락’으로 마셨다. 물과 얼음에 탄 위스키 한 잔을 들고 홀짝거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얼굴은 다소 흙빛이었으나 술을 한 모금씩 마실수록 검붉은 색으로 변했다. 원래 술에 약했거나 소화기 계통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는 안주로 치즈나 비엔나소시지만 먹었다. N은 야채를 싫어해서 육류만 먹는다는 말을 곧잘 했다. 실제로 N이 가게에서 먹는 음식을 곁눈질해 보면 항상 편육이나 햄, 소시지 류였다.

나는 남들이 술을 마시는 스타일이나, 안주로 무얼 즐기는지 무심코 관찰하는 버릇이 있다. 그런 점으로 미뤄볼 때 당시부터 음식과 건강의 관련성에 대해 나도 모르게 흥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모르긴 해도 정보를 수집한다는 생각까지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로부터 내린 결론은, 평소 야채를 잘 먹지 않으면서 음주 벽이 있는 사람은 내장에 병이 생기기 쉽다는 것이었다. 즉 그들은 생활습관 병에 걸릴 위험이 아주 높았다.

또한 과음이란 마시는 술의 양과는 무관하다. 다시 말해 체질적으로 술에 약한 사람은 술이 센 사람이 볼 때 대수롭지 않은 양의 술이라도 과음이 되고 만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과음하는 사람이 지나치게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을 섭취하는 경우, 간이 쉬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 시기에 주량을 줄이지는 않았지만, 전에는 그날그날 기분과 상대에 따라 닥치는 대로 아무 술이나 가리지 않고 마셨던 것을 그 이후부터는 소주, 그 중에서도 쌀로 담근 독한 오키나와 지방의 특산 소주만 찾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골든가에 날마다 출몰하는 주당들 가운데 전날 꽤 취하고도 다음날 멀쩡하게 나타나는 친구들의 대다수가 소주파였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소주는 지금까지 변함없는 나의 술 취향이 되었다.

 

독신이어도 멋지게!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가장 살이 찌고, 내 신념과 거리가 먼 식사를 하던 시기는 나오키상(直木賞)을 수상한 후 몇 년간이었다. 내 나이 마흔을 넘긴 무렵이었다.

술과 담배에 찌든 무절제한 생활을 하면서 현미식이니 야채식이니 하는 것들이 아득히 먼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멀어지고 말았다. 상을 받자마자 순식간에 유명작가 대열에 오른 나는 주지육림(酒池肉林: 술로 연못을 이루고 고기로 숲을 이룬다는 뜻으로, 호사스러운 술잔치를 이르는 말)의 불야성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거의 매일 밤 긴자(銀座), 아카사카(赤坂), 록폰기(六本木)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불빛 아래를 휘젓고 다니곤 했다. 그 생활이 계속 이어졌다면 내가 제아무리 튼튼한 간을 가졌더라도 어느 시점에서는 건강을 망치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시기에 내 몸무게는 학창시절부터 유지해온 62킬로그램 전후를 훌쩍 뛰어넘어 68킬로그램을 기록했다. 원인은 한 달의 절반가량을 접대 받느라 흥청망청했던 탓이었다. 대부분의 향응은 내 작품을 원하는 출판사나 신문사가 제공했다. 접대하는 측으로서야 당연히 일류 레스토랑이나 요릿집으로 나를 끌고 갔다.

‘어제는 중화요리였는데… 그럼, 오늘은 프랑스 요리로 할까? 이래서야 날이면 날마다 기름에 절어서 사는 꼴이니 여간 낭패가 아니로군!’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도 워낙 먹성이 좋아서인지 미식(美食)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열량이 많은 음식에는 손대지 말라고 내심 외치면서도 ‘다음부터 그러지 뭐!’ 하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면서 걸신들린 사람처럼 먹어댔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내 몸무게는 이미 6킬로그램이나 불어나 있었다. ‘이거 큰일 났군!’ 더럭 겁이 난 나는 누가 유혹해오면 “난 초밥을 굉장히 좋아해요” 라거나, “어디 허름한 곳에 가서 입맛에 맞는 안주 몇 개 시켜놓고 한잔 하면 어때요?” 하고 슬슬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에 나는 광고 회사에서 일하는 Y와 업무 때문에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협의를 하느라 서너 번 술자리를 같이 한 다음에는 연하장이나 주고받는 사이였다.

당시 그는 이미 50대 중반이었으나 은빛 머리카락이 무척 아름다웠고, 몸매도 나이에 걸맞지 않게 늘씬했다. 주말마다 테니스를 즐긴다고 했다. Y를 따라서 가본 식당은 어디나 분위기가 멋있는 작고 깔끔한 곳이었다. 나는 속으로 ‘먼젓번 거기도 훌륭했는데, 여긴 또 여기대로 정말 멋지군!’ 하고 탄복하곤 했다.

Y가 나처럼 소주파라는 사실도 여간 반갑지 않았다. 그보다 더 기뻤던 것은 내가 은근히 바라는 안주를 일일이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알아서 척척 주문한다는 사실이었다. 채로 쳐서 무친 참마, 전갱이 튀김, 연뿌리, 당근, 우엉, 찐 유부… , 하지만 그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걸 알고 주문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본인이 즐기는 음식을 시키는 것뿐이었다. 그가 메뉴를 들여다보면서 잠시 궁리하는 모습은, 그날 아침과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 따져 봐서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고자 하는 표정 그 자체였다.

바로 그 Y와 5,6년 전 우연히 재회했다. 요즈음 나는 이른 아침이 아니면 저녁에 걷기를 즐긴다. 날씨가 아주 나쁘지 않은 한 1시간에서 1시간 반 가량 걷는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나는 아자부주반(麻布十番)에 있는 사무실을 나와 큰길을 따라 계속 걷다가 아리스가와노미야(有栖川宮) 기념공원 앞에 있는 외국인 쇼핑객이 많은 슈퍼마켓에 들어갔다. 우리 집에서는 미리 계약을 맺은 농가로부터 매주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야채를 구입하고 있지만, 꼭 필요한 것이 빠질 때도 가끔 있었다. 그래서 그날도 모자라는 야채를 사려고 했던 것이다.

내가 야채를 고르고 있으려니까 Y가 야채 따위가 가득 담긴 쇼핑바구니를 들고 다가왔다. ‘아니!’ 하고 깜짝 놀란 나는 “부인과 함께 오셨나요?” 하고 물으려다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두 해 전 연말에 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엽서를 받은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래서 얼른 “이런 곳에서 만날 줄 몰랐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더니 Y는 홀로된 뒤 그 근처로 이사해 왔노라고 대답했다.

“저녁에 보르시치(당근을 주재료로 하여 고기, 채소 따위를 넣고 끓인 러시아식 수프)를 해먹을까 하고요.”

Y는 장바구니를 톡톡 치면서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아주 혈색이 좋았으며, 몸매도 예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멋진 손목시계를 차고 화사한 표범 무늬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제 거의 일흔 살이 되었을 텐데도 여간 젊은 분위기를 풍기는 게 아니었다.

“아직 테니스를 즐기시나요?”

“아뇨, 요즈음은 사교댄스에 푹 빠져 있답니다.”

“요리는 부인께서 돌아가선 다음부터 직접 하시는 모양이군요?”

당시 나는 현미 채식을 식사의 기본으로 삼아 아내가 먹을 양까지 2인분을 함께 조리하는 즐거움에 젖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Y의 대답을 웬만큼 예상하면서 물어보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예전부터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직접 만들어 먹곤 했어요.”

Y의 대답은 내 예상 그대로였다. 나는 Y의 무병장수를 확신했다. 나아가 음식을 손수 만들어 먹으며 즐거움을 느끼는 내 생활 스타일이 옳다는 사실을Y가 증명해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몹시 유쾌한 기분으로 Y와 헤어졌다.

자질구레한 일상용품을 비롯하여 생활 전반에 걸쳐 아내에게만 의지하던 사내, 그런 사내가 먼저 아내를 보낸 뒤 자신의 건강 유지를 위하여 빠짐없이 식사를 챙겨먹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편의점에서 파는 도시락, 데우기만 하면 되는 레토르트 식품, 컵라면 따위가 고작이리라.

내가 동물성 단백질을 가급적 멀리하고 현미를 위시하여 콩, 야채 등을 가까이 하기 시작한 지 어언 12,3년이 되었다. 이쯤 되니 설령 홀아비 신세가 되더라도 허둥거리지 않고 살아갈 자신이 생겼다.

물론 현미식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본인이 좋다고 생각한 것을 서둘러 실행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다소 똑똑한 남편과 다소 어리석은 아내

 

공포가 인간 의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안겨주는 경우가 있다.

대다수 남편들이 아내보다 자신이 몇 년 먼저 죽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내에 비해 나이가 많은 남편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런 생각이 바로 남자보다 여자가 몇 해 더 산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증거다. 통계로 따지자면 그건 분명 옳은 말이지만 일반적인 통계보다는 자신과 자신의 아내라는, 대개의 경우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유지해갈 관계 속에서 냉철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떠오르는 개념으로 예측하고 판단하는 쪽이 훨씬 소중하고, 또 올바른 법이다.

여기 다소 똑똑한 56세의 남편이 있고, 다소 어리석은 49세의 아내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다소 어리석은 아내는 자신이 남편보다 일곱 살 연하이고, 여자는 남자보다 일곱 살 더 산다니까 자신이 남편보다 14년이나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단순한 계산인가! 그렇게 약간 어리석은데다가 뻔뻔함마저 살짝 가미되면 과연 어떻게 될까?

“남편은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쌓이지, 날마다 술자리를 피할 수 없지, 잠도 6시간밖에 못 자는데 그에 비해 나는 마음이 편하지, 낮잠도 즐기지,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지…., 그러니 남편보다 20년쯤 더 오래 살지도 모르는 일이야! 하고 착각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다소 어리석은 아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기름진 프랑스 요리와 이탈리안 요리, 점심은 레스토랑으로 달려가 친한 주부들끼리 실컷 만끽한다. 맛있는 케이크 전문점이 새로 문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리면 재빨리 움직인다. 여러 종류의 케이크를 골라 커피에 설탕을 듬뿍 넣어 함께 즐긴다. 집에서 점심을 먹는 경우에도 툭하면 기름을 아낌없이 사용한 레토르트 식품을 반찬으로 애용한다. 게다가 그런 주부들은 바깥에서나 안에서나 틈틈이 주전부리를 즐긴다. 그들은 정말이지 아랫배가 나오건 말건 개의치 않고 기름투성이인 달착지근한 간식에 사족을 못 쓴다.

한편 다소 똑똑한 남편은 어떤가.

제법 식사에 신경을 쏟는다.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식사는 기본적으로 밥과 된장국, 그리고 남편이 반드시 찾는 낫또(삶은 메주콩을 띄워서 만든 일본인의 대중음식, 옮긴이)이다. 여기에다 아내가 좋아하는 레토르트 식품인 찐 게살이나 유일하게 직접 조리한 베이컨과 계란 부침이 곁들여진다.

남편은 식탁을 힐끗 살핀 다음 낫또에 섞어 먹기 위해 파를 낫또와 비슷한 양으로 썰고 간밤에 미리 준비해둔 시금치 절임을 냉장고에서 꺼낸다. 그리고 된장국에 무엇이 들었는지 젓가락으로 휘저어본 뒤 자신이 고급 슈퍼마켓에서 사온 가늘게 썬 다시마를 넣는다. 그런 후에야 유유히 식사를 시작하는데, 게살이나 베이컨과 계란 부침에는 아예 젓가락을 대지도 않는다. 아침식사를 마치면 종종걸음으로 집을 나서서 가장 가까운 역을 지나쳐 그 다음 역까지 걸어가 전철을 탄다.

낮에는 회사에서 걸어서 10분 가량 떨어진 식당으로 간다. 식당 벽에는 각종 반찬의 이름이 적힌 쪽지가 마치 합격자 명단처럼 붙어 있다. 남편은 여기서 점심식사 메뉴를 선택하는데, 밥과 된장국에다 두 가지 야채요리, 그리고 육류나 생선 반찬 한 가지다.

가령 저녁식사를 집에서 할 경우, 반찬으로 레토르트 식품인 비프스튜와 반찬가게에서 산 튀김, 연어 구이, 그리고 토마토와 양상추, 양파 등을 버무린 야채샐러드가 상 위에 차려진다.

약간 똑똑하고 음식을 가려먹는 남편은 연어와 야채샐러드 쪽으로 젓가락이 간다. 단지 야채샐러드는 자신의 앞 접시에 옮긴 뒤 천연 소금을 살짝 쳐서 먹는다. 그에 비해 약간 어리석은 아내는 마요네즈를 왕창 뿌려 먹는다. 약간 현명한 남편은 튀김 가운데 당근튀김 하나만 골라 입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한 잔의 반주를 위한 안주로 풋콩을 선택한다. 레토르트 식품인 비프스튜에는 눈길조차 던지지 않는다. 식성이 까다로운 남편은 지방분과 당분, 염분이 많은 레토르트 식품에는 흥미가 없다. 동물성 단백질이 풍부한 반찬은 생선이나 조개류 중심이어서 육류는 가급적 피한다. 예컨대 육류를 먹을 경우 감자와 함께 볶은 걸 택하거나, 육류가 든 야채복음을 고른다.

이 다소 똑똑한 남편을 이런 식으로 식사에 신경을 쓰는데다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은 마시긴 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조금씩 미신다. 운동 부족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남편은 체지방 수치가 15를 넘은 적이 없으며, 직장 건강진단에서 아직까지 한 번도 주의를 받지 않았다.

아마 이 부부의 경우 불의를 사고에 직면하지 않는 한 남편이 더 오래 살 것임이 분명하다.

40대 중반 무렵부터였을까? 아내를 먼저 보내고 홀아비가 된 남자들의 꼴사납고 비참한 모습을 목격하거나 소문으로 들으면서, 나는 이루 말로 표현하지 못할 공포를 느껴야 했다. 그 공포는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데도 나 역시 아내를 먼저 보낸 뒤 그런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이쯤 이야기하면 독자들도 눈치를 챘겠지만, 나는 아내보다 내가 먼저 죽는 건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홀로 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공포를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리고 그런 공포가 내 의식에 가치 있는 커다란 변혁을 몰로 왔다.

그렇다면 건강유지에 효과적이고, 장수와 직결되는 식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스스로 음식 재료를 음미하여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 요리하면 되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노후를 아무 걱정 없이 살도록 한 힘이 되었다.

 

 

아내가 주방을 떠났다

 

나에게 있어 요리의 즐거움은 현미로 밥을 짓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사무실에서 밤을 지새우는 날이 잦다. 아침이 되면 간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 씻어서 안쳐두었던 현미를 불 위에 올린다. 밥이 다 될 때까지 좋아하는 유행가를 흥얼거리거나 자작(自作) 동화를 암송한다. 청소와 목욕은 미리 해둔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았다. 현미밥을 자유자재로 지을 수 있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다. 시작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현미로 밥을 지을 때에는 일반 백미보다 물을 많이 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귀동냥하여 알고 있었지만, 그게 결코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어떤 때는 죽이 되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눌어붙어 누룽지가 되기도 했다. 술에 취해 돌아와 “옳지, 내일 아침은 현미밥이야!” 하고 부랴부랴 쌀을 씻어 불 위에 올려놓은 것 까지는 좋았는데, 밥이 되기를 기다리다가 소파에서 잠이 들고 만 적도 있었다. 그 다음 상황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기로 한다.

하지만 지금은 능수능란해졌다. 약간 찰지게 할 줄도 알고, 점심때 볶음밥이 당기는 날이면 약간 꼬들꼬들하게 하기도 한다. 물의 양뿐만 아니라 불의 강약을 조절함으로써 미묘하게 변화를 줄 수도 있다. 밥을 지어서 맛있게 먹는 것만이 아니라 그 과정을 즐기기 위해 나는 반드시 돌솥을 이용한다. 그러나 그게 성가시게 여겨지는 사람이라면 다기능 밥솥을 써도 상관없다. 최근에 선보인 전기밥솥들은 현미까지도 꽤 맛있게 지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현미밥은 도무지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지레짐작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건 착각도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니다. 현미밥을 먹다 보면 오히려 흰 쌀밥이 훨씬 맛이 없어진다. 시험 삼아 반찬 없이 흰 쌀밥만 한 번 먹어보시라. 얼마나 맛이 떨어지는지 이내 알아차릴 수 있다. 쌀의 맛은 겨 부분에 있다. 야채도 마찬가지다. 뛰어난 맛과 영양은 껍질, 혹은 껍질에 가까운 부분에 포함되어 있다.

이런 말을 하는 나 역시 처음 현미밥을 먹을 때는 ‘맛은 없지만 내 건강을 지켜준다니 고맙게 생각하자’ 하면서 마치 쓴 약을 먹듯이 먹은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고맙다는 마음가짐으로 계속 먹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이거, 정말 맛있잖아!” 하고 깨닫기에 이르렀다. 현미는 겉겨를 벗겨냈을 뿐이니까 딱딱하다. 그러니 저절로 꼭꼭 씹어 먹게 되고, 씹는 동안 맛이 배어 나온다. 그것이 무어라고 표현하기 힘든 아련한 감미(甘味)다.

현미는 야채와 찰떡궁합이다. 야채를 절이거나 삶거나 볶은 것, 그 어느 요리와도 현미밥이 기가 막히게 잘 들어맞으니 불가사의할 지경이다. 된장국이나 낫또, 두부와 같은 콩 식품과도 아주 잘 어울린다. 그런가 하면 생선과도 멋지게 어울리는데, 특히 생선조림과 함께 먹으면 그만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소고기나 돼지고기와 같은 육류와도 어긋날 리가 없을 터인즉, 육류를 즐기는 사람들도 한 번 시도해보면 어떨까?

현미식에다 야채를 많이 먹게 되자 지질(脂質), 당질(糖質)의 섭취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 덕에 끈기와 집중력, 그리고 도전정신이 두드러지게 강해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고 특히 피곤함을 모르는 튼튼한 체력이 길러졌다.

그런데 낮에 내가 직접 된장국을 끓이고 두어 가지 반찬을 만들게 되자 아내는 아침에도 내 식사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먼저 사무실로 출근해버린다. 아내의 핑계는 ‘당신이 실컷 즐기도록 배려하는 것’ 이라지만 사실은 내가 만드는 야채 요리가 얼마나 몸에 좋은지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딱 한 가지 못마땅한 점은, 내가 그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현미가 좋다고 노래를 불러도 아내는 들은 척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내가 사무실에서 현미밥을 지어 먹는 걸 알고 아내가 집에서 흰밥을 싸오는 데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어쨌든 사무실에 있을 때뿐 아니라 집에서도 내가 요리의 주도권을 쥐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내가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가면 아내가 “여보, 오늘 저녁은 무얼 맛보게 해줄 거예요?” 하며 태연하게 묻는 황당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뭐, 모자라는 게 있으면 말해요. 내가 사올 테니까…”

다시 말해서 아내는 주방에서 철수하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아내가 주방을 떠난다는 것은 이 책의 주제와 깊은 연관이 있으므로 거기에 관해 설명하기로 한다.

 

 

주방에서 찾는 네 가지 기쁨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여러 명의 여성들에게 주제와 내용을 들려주고 의견을 구했다.

어느 독신의 전문직 여성은 “결혼할 마음은 없었지만 만약 결혼한다면 내가 먼저 죽은 다음의 일까지 챙기는 속 깊은 남자와 하고 싶다” 고 털어놓았다.

그 말을 들으니 아무래도 이 책의 주제가 여성의 관점에서 봐도 흥미로운 모양이다.

아니지, 그러면 곤란하다. 여간 낭패가 아니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현재 생기발랄하게 살고 있는 아내를 가진 남편에게 주는 복음서니까 말이다. 세상의 남편들이여,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오. 꾀죄죄하게 말년을 보내기 싫으면 부디 이 책을 통해 복음의 은혜를 누리시라!

그래서 더 많은 남편들이 대오 각성하여 싱크대 앞에 선다고 가정하자. 불과 4, 5일, 아니 그것은 어렵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노라면 이윽고 아내들이 주방에서 철수하기 시작할 것이다.

다시 말해 아내들은 부엌데기에서 벗어나 마침내 마나님으로 격상된다. 어쩌면 그 중에는 산신처럼 구름 위에서 노는 아내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야말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이 아닌가! 당신은 그 시점에서 비로소 이 책의 숨은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고 흡사 마약과 같이 이 책의 포로가 될 것이다.

요리하는 게 너무나 즐거워서 남편과 자녀들은 물론이거니와, 친척 친구들에다 심지어는 이웃사람들에게까지 자신이 만든 음식을 나누어주고 싶어 하는 아내, 그리고 그런 행위에서 무상의 희열을 느끼는 아내가 100명 가운데 한 명쯤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불과 100명 중의 한 명일 뿐이다. 나머지 대다수의 아내들은 남편과 자녀를 위해 식사 준비하는 것을 하나의 의무로 여겨 싫어도 억지로 할 따름이다. 기분 나쁘게 들린 지 모르나 당신의 아내도 분명 그럴 것이다. 당신이 폭군 같은 남편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봐! 밥 아직 멀었어?”

“뭐야 이게! 너무 달착지근하잖아! 날더러 성인병에 걸려 빨리 죽으라는 거야?”

“이건 또 왜 이래! 너무 짜잖아! 내 혈압 올릴 일 있어?”

폭군 남편일수록 잔소리가 심하다. 어쩌다 자신의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아내가 만들어주면 당연하다는 듯이 잠자코 넘어가기 일쑤다. 결코 맛있다는 칭찬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아내는 그런 폭군 남편을 상대하려니까 절대로 말대꾸하지 않는다. 그러나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사실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아내는 언젠가 반드시 앙갚음하리라 다짐도 하고, 또 형편이 피어 상다리가 부러지게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식도락에 빠지는 상상을 하면서 스스로를 달랜다.

사정이 그러니 남편이 주방으로 들어서기 시작하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닐까 하고 더럭 겁을 낸다. 하지만 그런 날이 되풀이되면 아내는 슬금슬금 주방에서 뒷걸음치게 될 것이다.

“여보, 혹시 야채가 모자라면 이야기해주세요. 내가 가서 얼른 사 올 테니까요.”

이런 말이 아내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폭군 남편이었던 당신은 내심 쾌재를 불러도 좋다.

심술궂은 나는 이웃 부인네들을 시험해보느라 곧잘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요리하는 즐거움의 첫 번째는 무엇을 만들까 궁리하는 일, 즉 기획하는 즐거움이지요. 두 번째는 기획하여 머릿속으로 떠올린 조리법을 실천하는 즐거움, 즉 만드는 과정을 즐기는 일입니다. 세 번째는 설거지하는 즐거움이고, 네 번째는 설거지에 앞서서 행하는 일, 즉 먹는 즐거움이랍니다.”

이런 내 말에 3분의 2가량의 아내들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설거지가 싫어서 음식 찌꺼기로 더럽혀진 식기를 싱크대에 잔뜩 쌓아놓고 있는 주부, 설령 자동 식기세척기가 있어도 설거지를 귀찮아하는 주부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런 주부일수록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는 요리에만 이골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쨌든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음식을 만드는 참된 즐거움을 알라는 것이다.

요리는 창작의 영역에 속한다. 나는 요리책에 소개되어 있는 것을 포함하여 남들이 작성한 조리법으로 요리를 만든 적이 거의 없다. 물론 드물게 내 눈길을 끄는 조리법이 발견되면 흥미진진하게 살피곤 한다. 그런 경우에는 쓰윽 한 번 훑어만 보아도 음식 재료가 머리에 떠올라 즉각 처리에 들어간다. 삶을 것, 구울 것, 데칠 것, 볶을 것…, 그러는 사이에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고, 먹음직스런 양념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완성한 요리를 한입 맛보면서 “음, 역시 입에 착 붙는 게 진미야, 진미!” 하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릴 때도 있다.

바꿔 말해 재미있는 소설에 독자의 감정이 이입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리법이 상상력을 불러일으켜 준다고 나 할까. 그리고 유난히 마음에 드는 조리법이 눈에 띄면 마친 명화(名畵)를 모사하듯이, 혹은 명작 단편이나 시를 그대로 원고지에 옮겨 적듯이 베끼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일종의 공부나 마찬가지다.

좋아서 만드는 요리, 그것은 평소 창작하는 마음가짐으로 만드는 요리를 뜻한다. 그러므로 똑같은 재료를 사용하여 똑같은 요리를 만들더라도 만들 때마다 그 맛이 서로 다른 법이다.

삶고 끓이는 시간도 다를 것이고, 불의 강약 역시 다를 것이며, 조미료 사용 또한 미묘한 차이가 날 것임이 분명하다. 나는 자연소금 외에는 사용하지 않지만, 그 소금 하나만 하더라도 어느 지방에서 생산됐는지를 따라 음식 맛이 달라진다. 조미료의 양도 대개 눈대중으로 조절을 한다. 잘못 가늠하여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는 등 실패를 거듭하는 사이에 요령이 생긴다. 그리고 이만큼 쓰면 이런 맛이 난다는 식의 상상력이 정확하게 몸에 배게 된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조리법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으면 요리를 만들었다는 기분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요리하는 즐거움을 확실하게 배우겠노라고 결심한 당신이라면 처음에는 도리 없이 스푼으로 숫자를 세고 눈금이 새겨진 컵 등 요리용 계량기에 의지하더라도, 익숙해지면 그런 것들을 반드시 멀리 치워버려야 한다. 원고지를 앞에 둔 소설가가 되었다는 기분으로 창조력과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기 바란다.

어떤 요리를 만들어 어떤 요리와 함께 먹으면 영양의 균형이 맞을까 하는 식으로 이리저리 구상해본다. 그래서 정리가 되면 바로 착수한다. 요리를 만들어 천천히 맛본 다음 설거지에 들어간다.

거듭 말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설거지를 성가시게 여긴다. 하지만 그건 당치도 않다! 설거지만큼 마음의 영양분이 되는 것도 드물다. 접시를 닦으면서 “고마워요, 이렇게 해서 오늘도 건강을 유지하게 해주시니 인생을 즐길 수 있답니다” 하고 감사하는 순간, 손수 요리한 즐거움이 갑절로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날 맛본 음식에 만족하면서 그릇을 깨끗이 씻은 뒤 “내일도 잘 부탁해요!” 하고 인사하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이야 말로 얼마나 황홀한 시간인가!

 

 

집안일을 돌보는 즐거움

 

소크라테스의 악처

 

소크라테스의 아내는 도대체 얼마나 악처였을까? 소크라테스는 얼마나 속을 썩였을까? 그에 관한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어서 그걸 근거로 한 권의 책을 낸다면 틀림없이 베스트셀러가 되리라.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에게 “하여튼 결혼하라” 고 권한다. “만약 자네가 좋은 아내를 얻는다면 자네는 아주 행복해질 걸세. 만약 자네가 나쁜 아내와 만난다면 자네는 철학자가 될 것이네.”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악처를 갖는 것이 반드시 불행하지만은 않은 셈이다.

우연히 1917년 2월 14일에 발간된 <주부의 벗> 3월호 복간 본이 손에 들어왔다. 호기심에 페이지를 넘기다가 ‘하이칼라(High collar)사모님의 하루’ 라는 제목이 달린 네 컷 만화가 눈에 띄었다. 칸마다 아래와 같은 설명문이 붙어 있었다.

 

• 첫 번째 컷: 아침에 세 시간은 화장에 정신이 팔림. 남편이 외출을 하건 어린아이가 울건 내 상관할 바 아니라는 태도.

• 두 번째 컷: 유행하는 의상, 유행하는 구두, 유행하는 헤어스타일, 죄다 한창 유행하는 것 투성이, 양장점에 날마다 들름.

• 세 번째 컷: 외출에서 돌아오면 난로를 끼고 앉아 소설책 탐독, 어린아이가 배가 고프다며 울고불고 난리 쳐도 일절 무관심.

• 네 번째 컷: 저녁이 되면 남편이 귀가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어린아이를 가사 도우미에게 맡긴 채 외출, 단골 다방을 기웃거리거나 활동사진을 보러 감.

 

이 잡지가 발간된 해는 1914년에 터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한 해 전으로, 독일의 패색이 짙던 때였다. 일본은 영.일 동맹을 방패로 삼아 독일에 선전포고했고, 독일령이었던 남양군도와 독일의 중국 근거지였던 칭다오(靑島)를 점령하는 등 크게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또한 군수품 수요가 증가하면서 오랫동안 이어온 일본의 불경기가 단숨에 해소되고, 중화학 공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세상살이 역시 화사한 빛깔에 휩싸였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민주주의의 커다란 물결이 밀려들었으며,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급격히 고양되었다. ‘참신하고 깔끔하며 멋지다’ 는 뜻으로 사용된 일본식 영어 ‘하이칼라’ 는 이 세대에 생겨났다.

<주부의 벗> 은 당시 중류 샐러리맨의 아내들이 주된 독자였다. 이 무렵의 전형적인 샐러리맨은 시내 한복판에 사무실이 있고, 대개는 집이 가까워 통근시간이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후 5시에 퇴근하여 늦어도 6시에는 한 가족이 단란하게 저녁 식탁에 둘러앉을 수 있었다. 이 계층의 대부분은 요즈음 말하는 가사 도우미를 두고 있기도 했다. 만화에 등장하는 하이칼라 사모님은 자녀들 뒷바라지도 변변히 하지 않고, 남편이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연극이나 영화를 보러 가자며 등을 떠미니 악처의 부류에 속하리라.

가사 도우미가 있었으므로 남편이 하이칼라 아내가 팽개친 가사를 대신 돌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의 다른 남편들에 비하자면 육아와 청소, 세탁 따위 집안일에도 조금은 더 신경을 썼을 것이다.

같은 잡지에 현상금이 걸린 투고란이 있었는데, 어느 주부가 쓴 글이 실려 있었다.

그 글에 따르면 이 주부와 아주 가까이 지내던 한 주부가 있었는데 남편과 무남독녀 외동딸을 남겨놓고 세상을 떴다고 한다. 남편이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느라 옷장을 치우다 보니 아내 것이라고는 외출복 한 벌과 평상복 두세 벌이 전부였다는 것이다.

‘그 댁 바깥양반은 그다지 월급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직업상 교제의 폭이 넓은 분이었습니다. 그 바람에 옷차림에도 꽤 돈이 드는 모양이었습니다. 그 댁의 살림살이 형편을 웬만큼 짐작하는 이들은 누구나 ‘무슨 수로 한결같이 저토록 깔끔하게 차려 입고 다닐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바깥양반의 차림새는 항상 반듯했습니다. 그러니 바깥양반이야 어디를 가건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고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어느 모임에서나 자신의 지위를 단단하게 다지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스스로를 희생하여 남편을 출세시키려 무진 애를 썼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야마노우치 가즈토요(내선일풍: 아내 치요의 내조 덕분에 영주 자리에까지 오른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옮긴이)의 아내보다 훌륭하지 않은가! ‘하이칼라 사모님의 하루’에 등장하는 하이칼라 사모님에게 그 주부의 발치라도 따라가라고 나무라고 싶다.

 

하지만, 잠깐! 하이칼라 사모님의 남편은 아내가 먼저 죽더라도 하등 낭패 당할 일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내 뇌리를 스친다. 그에 견주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남편을 출세시키느라 애쓴 아내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 남편은 이만저만 낭패가 아니다. 결국에는 점점 풀이 죽고 의기소침해져 갈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악처 쪽이 긴 안목에서 보자면 남편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아닌가!

 

그래서 새삼 앞에서 설명한 요리하는 즐거움과, 이번 주제인 집안일을 하는 즐거움이 갖는 의미가 더욱 절실하게 피부에 와 닿으리라 믿는다. 사실 이런 즐거움 들은 오랜 세월 동안 아내들의 특권(?) 혹은 의무로 여겨져 왔다. 그것을 아내들이 건재할 때 되도록 많이 빼앗아야 한다. 그래야 아내가 먼저 떠나든, 당신이 먼저 요단강을 건너든, 또는 부부가 함께 이 세상을 하직하든(동반자살 이외에는 그다지 예를 찾기 어려운 경우이긴 하지만), 당신의 행복, 나아가서는 부부 모두의 행복과 연결될 수 있다.

 

요리를 아주 좋아하고, 솜씨 역시 보통이 아닌 아내로부터 요리하는 즐거움을 박탈하면 몹시 기분이 나빠질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항목의 주제인 집안일을 돌보는 즐거움을 빼앗겼다고 해서 기분이 상할 아내는 있을 리 없다.

 

단 아내가 너무 좋아해도 곤란하니까 절반쯤만 빼앗는 게 낫다. 그것만으로도 아내는 한결 수월해졌다면서 당신에게 감사할 게 분명하다. 나머지 절반은 아내가 저 세상으로 떠난 다음에 빼앗아도 늦지 않다. 또 만약 당신이 먼저 가버리게 되더라도 빼앗은 절반은 저절로 다시 아내에게 돌아가니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독신생활을 상상하자

 

내 사무실 근처에 빵 가게가 있다. 거기서는 산 빵을 즉석에서 맛볼 수 있도록 차를 파는 코너도 함께 마련해 놓았다.

매일 그렇게 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아침식사 후 스포츠 신문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이 빵 가게에 가서 토마토주스를 마신다. 그럴 때마다 남편과 사별한 여성들이 모여드는 광경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그들은 달콤한 맛이 나는 여러 종류의 빵을 즐겼다. 이런 곳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주부들은 거의가 남편이 타계한 뒤 요리에서 손을 뗀 사람들이다.

생전의 폭군 남편으로부터 “내일 아침은 반찬이 뭐야? 낫또를 빼먹지 말라구. 된장국에는 미역을 듬뿍 넣어야 해!” 라는 투로 늘 잔소리만 들어왔다. 그래서 내심 성가시게 여기면서도 시키는 대로 식사준비를 해왔다. 그런 남편이 사라지고 나자 해방감을 누리느라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것조차 귀찮아지고 말았다. 처음에는 저녁식사만 제대로 챙기면 된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마저 싫어졌다. 이러면 이제 만사 끝장이다. 폭군 남편을 잃은 아내는 어지간히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한 절반이 이런 전철을 밟는다.

먹는 것에 여간 까다롭지 않았던 덕택으로 남편은 79세까지 살 수 있었는지 모른다. 아내는 그런 남편의 은혜를 입어 덩달아 건강이 넘쳐흘렀다. 하지만 그것은 흘러간 꿈일 뿐, 지금은 홀가분한 심정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아 아침부터 외식이 아니면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고 말았다. 이래서야 몸이 망가진다. 그 바람에 이론상으로는 17년을 더 살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죽은 남편만큼도 살지 못하는 여성이 꼬리를 문다.

아니, 청소와 세탁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어째서 여전히 먹는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렇다. 폭군 남편이 죽은 다음 요리에서 손을 땐 여성은 청소와 세탁도 하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서랍이나 책장의 먼지를 손가락으로 훑어내면서 “이봐, 여기 청소를 한 거야 만 거야!” 하고 야단치는 폭군 남편도 한둘이 아니다. 정말 정나미 떨어지는 사내들이다. 그런 남편이 죽고 나자 청소와 세탁에 점점 더 게을러지고, 쓰레기 배출마저 “나중에 하지 뭐!” 하고 미루기 십상이니 바퀴벌레 천국이 되지 않을 리 없다.

하기야 그런 여성 뺨치는 사람은, 아내가 살아 있을 때나 죽은 다음이나 주방에는 얼씬거리려고도 하지 않는 남성이다. 이런 치들은 당연히 청소나 세탁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가사 도우미를 쓸 수 있는 처지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렇지만 연금 생활자나, 몇 번씩 직장에서 밀려나는 바람에 월급봉투가 얄팍해진 처지로서야 그림의 떡이다. 그래서 하기 싫고 성가신 일을 미뤄둔 채 한꺼번에 처리하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 귀찮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경향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다. 그러나 그들 중 대다수는 귀찮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막판에 몰리면 한꺼번에 정리를 한다.

문제는 끝까지 버티는 사내들이다. 집은 온통 먼지에 쓰레기투성이다. 싱크대에는 음식찌꺼기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수도관이 막혀 물조차 내려가지 않는다. 마치 쓰레기 하치장에 온 것처럼 악취가 풍겨난다. 그런데도 정작 당사자는 신경이 무디어져 이상한 낌새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런 부류의 남성은 아내를 먼저 보낸 홀아비가 아니더라도 홀로 사는 독신들 가운데 많이 있으리라. 예전에 나에게도 독신으로 사는 친구가 있었다. 나야 물론 결혼한 다음이었으나 한때 그와 어울려 곤드레만드레 취하여 곧잘 유흥가를 헤매고 다녔다.

그는 항상 주름이 잘 잡힌 양복에 은은한 향수 내음을 풍기는 멋쟁이였다. 그러데 어느 날 전철 막차가 끊겨 녀석의 집으로 가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방안으로 들어서자 시체 썩는 냄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역겨운 악취가 풍겨 깜짝 놀랐다. 또 방구석에서는 희미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친구가 전등을 켜자 이제까지 반상회라도 하고 있었던 듯한 바퀴벌레들이 사방팔방으로 쏜살같이 흩어져 달아났다. 잠시 뒤 방안의 정경을 죄다 파악한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흡사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참상이라니! 나는 심야 택시비가 아까웠지만 두말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향수를 뿌리고 다닌 이유는 냄새가 난다는 핀잔을 들은 탓이었다. 본인으로서야 알아차리지 못했을 방안의 악취가 직장 동료들로 하여금 코를 싸매게 만들었으리라.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그 친구가 하루에도 두서너 번 청소기를 돌린다고 자랑했다. 반신반의하면서 그의 방을 보러 간 나는 깜짝 놀랐다. 그토록 깨끗이 정리정돈이 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인이 생겨 집으로 데려왔더니 냄새가 너무 지독하다고 인상을 찌푸리더니 그냥 그대로 나가버리지 뭐야. 퇴짜를 맞은 거야.”

그가 변한 것은 모처럼 집으로 데려온 여자가 선 걸음에 달아나 버린 영향이었다. 그 후부터 그는 열심히 청소도 하고 세탁도 했다. 그 생활이 버릇이 되자 방바닥에 티끌 하나만 떨어져도 청소기를 돌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성격이 되었다고 한다. 녀석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쓰고 있노라니 인간이란 강렬한 어떤 계기만 주어지면 확 달라지는 존재란 생각이 다시금 든다.

그러면 누구에게나 강렬한 계기가 찾아오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언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그런 계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무엇이건 척척 알아서 해주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래서 지금은 아무 불편 없이 생활하고 있더라도, 나중에 홀로 남더라도 청결함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자신을 상상해 보는 게 한결 낫지 않을까. 그리고 이왕이면 독신이 되었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스스로 훈련해 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집안일은 습관이다

도쿄 올림픽이 막을 내린 후 2년 뒤인 1966년, 내 나이 스물여섯에 나는 어느 섬유 의류 회사에 취직했다. 그런데 입사 일주일 만에 사장으로부터 오사카(大阪) 지점으로 가서 근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경기가 살아나 일본경제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해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컬러텔레비전, 자동차, 에어컨이 새로운 ‘3종의 신기’로 불리며 붐을 이루던 무렵이었다. NHK방송의 아침 드라마 시청률이 65%에 달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사원이 불과 십여 명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기업이었으나 가죽 코트의 통신판매가 성공한 덕에 분위기가 좋았다. 고객은 주로 고도 경제성장 덕분에 급료를 넉넉하게 받던 직장 여성들이었다.

나는 ‘한동안 오사카에서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지’ 하는 심정으로 신칸센에 올라탔다. 신칸센 역시 올림픽이 열리던 그 해 가을에 막 개통했었다. 도쿄에서 물건이 잘 나가니까 오사카에서도 틀림없이 먹힐 것이라고 해서 두 달 전에 문을 연 오사카 지점이었다. 사무실이 오사카 번화가인 도톤보리(道頓堀)에 있었던 지라 놀기에 안성맞춤으로 여겨졌다. 오사카에서는 연립주택을 문화주택이라 불렀는데, 회사 사택으로 그 문화주택을 빌려주었다. 다다미가 깔린 방 두 개가 있었고, 부엌과 화장실이 떨려 있었다. 당시의 싸구려 연립주택은 욕탕이 없었으므로 동네 목욕탕을 이용해야 했다.

가구는 하나씩 갖추어 나가기로 하고 우선은 이부자리 한 채, 빗자루, 먼지떨이, 쓰레받기, 그리고 냄비와 주전자, 도마, 부엌칼을 각각 하나씩, 젓가락 두 벌, 포크, 스푼 등을 사들였다. 게다가 밥그릇 국그릇, 접시도 갖추었다. 주중에는 아침식사만 했으나 공휴일에는 저녁식사까지 집에서 해 먹었다. 전기밥솥이니 냉장고니 하는 것은 보너스를 받으면 사기로 했다. 냄비만 하나 있으면 밥도 짓고, 삶거나 볶는 음식까지 만들 수 있었다.

청소는 여간 피곤하지 않는 한 아침마다 거르지 않았다. 저녁에 귀가한 다음에도 했다. 청소하는 것도 버릇이다. 티끌 하나 떨어져 있어도 마음속에 티끌이 떨어진 것처럼 안절부절 못하여 즉시 빗자루에 손이 가곤 했다.

세탁도 매일 했다. 와이셔츠는 세탁소에 맡겼지만, 그 외의 셔츠 류와 내복, 양말 따위는 직접 빨았다. 세탁기가 없었으므로 조그만 빨래판을 사와서 주물럭주물럭 문질렀다.

어느 일요일, 빨래하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나도 몰래 움찔 놀랐다. 도쿄의 집에서 지낼 때에는 대개 어머니나 누나들이 시시콜콜한 것까지 죄다 챙겨주었던 지라 나는 거의 양반집 도련님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가 홀로 생활하게 되자 이토록 변하다니! 그것도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콧노래가 나올 만큼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 그런 내가 아주 대견스러웠다.

청소나 세탁을 깨끗하게 하는 행위는 자신의 심신을 깨끗하게 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그런 생활을 2,3년만 더 계속했더라면 결혼하더라도 요리와 세탁, 청소를 희희낙락하게 하는 사나이로 바뀌어 있었으리라. 그런 세상살이, 언제나 뜻대로 되지는 않는가 보다.

내가 발령 난지 두어 달이 지났을 무렵 오사카 지점으로 채권자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본사의 경영이 엉망진창이 되면서 여기저기 채권자들이 제대로 잘 굴러가는 오사카 지점으로 벌떼같이 달려들었던 것이다. 불과 몇 명에 지나지 않았던 오사카 지점의 직원들은 채권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가운데 잔무 정리에 매달려야 했다. 그 작업이 해를 넘기고서야 간신히 마무리되자 나는 허둥지둥 도쿄로 도망쳐 왔다.

그리고는 또 다신 양반집 도련님 생활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아직 다섯 가지 즐거움이 충분하게 몸에 배지 않았던 무렵, 이 짧디 짧았던 오사카 생활을 떠올리면서 자신을 달래곤 했다. 오사카 시절 내가 충실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강렬한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필요에 내몰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천천히 나이 들기

나는 겨울철을 빼고는 새벽 5시가 조금 지나면 걷기운동을 하러 나간다. 이 시간대에는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다.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는 중년 남자, 건강을 위해 조깅하는 연금생활 노인, 허탕 친 도둑처럼 생긴 사내 등….

보통은 시속 5킬로미터로 걷는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시속 6킬로미터 정도로 기분 좋게 내딛던 내 발걸음이 느닷없이 시속 2킬로미터쯤으로 떨어졌다.

타임머신을 타고 수십 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나도 모르게 들 만큼 몹시 복고적인 행동을 취하는 인물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거리를 거도 있노라면 커다란 대나무 바구니를 등에 지고 손에는 집게를 든 노인과 곧잘 마주치곤 했다. 넝마주이로 불리던 그들은 땅바닥에 떨어진 신문지나 고물 따위를 솜씨 좋게 집게로 낚아채 등에 진 대나무 바구니에 집어넣었다.

요새 표현으로는 재활용품 수집이라고 해야 할까. 그날 새벽에 마주친 인물의 행동은 바로 저 옛날 넝마주이의 그것과 똑같았다. 다른 것이라면 대나무 바구니 대신에 커다랗게 벌어진 숄더백을 걸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노인은 길바닥과 남의 집 담벼락 아래 쪽을 이리저리 재빨리 훑으면서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는 숄더백에 가득 담긴 빈 깡통이 말해주었다. 나는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고 잠시 지켜보았다. 노인은 횡단보도 옆에 세워져 있는 재떨이 위에 누군가 올려놓은 빈 맥주병을 잽싸게 손에 쥐더니 숄더백 속으로 쑥 집어넣었다. 옷차림이 말쑥했으며, 나이는 70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나는 이내 고개가 주억거려졌다. 아내가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났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청소와 세탁을 즐기는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다 보니 길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빈 깡통이 신경에 거슬려 줍기 시작했으리라. 문득 그 사람이 고고한 자원봉사 노인으로 여겨졌다.

시속 2킬로미터 그대로 발걸음을 떼어 놓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지금 나는 60대 중반이라는 실제 나이보다 더 젊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 혈압도 정상이고 혈당치도 낮다. 간 수치 역시 정상이다. 요통을 겪은 경험이 아직 단 한 번도 없노라고 고교 동창회에서 자랑했더니 “자넨 너무 둔해서 그래!” 라는 핀잔만 돌아왔다.

굳이 불안하다면 환갑을 지나서도 노안의 낌새가 전혀 없었는데, 요즈음 들어 영어사전의 글씨가 군데군데 잘 보이지 않는 정도라고나 할까. 그러나 10년 후, 20년 후의 내 모습이 어떨지 상상하면 이따금 불안에 휩싸이기도 한다. 과연 지금처럼 아내와 더불어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을까?

요리하는 즐거움도, 집안일을 돌보는 즐거움도 여전히 누릴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나 자신을 문득 깨달을 때가 있다. 이미 습관으로 굳어져 있으므로 요리나 청소, 세탁도 계속하고 있기야 하겠지만, 여전히 즐거움을 느낄까? 혹시 어쩔 도리 없이 하고 있지는 않을까. 조금 전에 마주친 인물처럼 자원봉사라는 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지만 오로지 습관에만 의존하여 행동을 취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어두운 생각에 휘말리는 것은, 지금은 건강해도 더 늙어 몸놀림이 부자유스러워지면 어쩌나 하는 공포가 있기 때문이리라. 나이를 먹을수록 개인차야 있더라도 누구나 조금씩 체력을 잃어가게 마련이다. 즉 늙어가는 것이다.

이처럼 ‘나이 드는 것’에 대해, 거기에 지지 않겠노라고 큰소리 떵떵 치면서 맞받아쳐 나가자는 게 아니다. 또한 나이를 먹는 것이니 달리 무슨 수가 있겠느냐며 포기하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자는 것도 아니다. 있는 그대로 순순히 받아들이고 싶다.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상태에 맞추어 무리하지 말고 생활습관을 바꿔나간다. 그럼으로써 나이를 깊이 의식하지 않고 여유를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지금은 소주 다섯 잔이 나에게 가장 적당한 주량이다. 하지만 내일 아침 일어났을 때 아직 몸에 술기운이 남아 있다면 넉 잔으로 줄인다. 이렇게 나이에 따라 석 잔, 두 잔으로 줄여나가면 언제나 기분 좋게 술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돌솥에 현미밥을 하는 게 성가시면 전기밥솥으로 바꾸면 그만이다. 손으로 주물럭거리면서 빠는 빨래가 힘들면 세탁기를 이용하면 그뿐이다.

항상 자신의 리듬에 맞춰서 일을 처리해나가야 한다. 순순히, 무리 없이, 나이와 타협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곧 노화를 느긋하게 즐기는 걸 뜻한다. 그렇게 하면 노화도 서서히 진행된다고 나는 믿는다. 지금 당장 요리하는 즐거움, 집안일을 돌보는 즐거움을 습관화해 두면 가까운 장래에 내 나이와 보다 바람직한 형태로 타협을 지어 나이 들어가는 것이 결국 즐거움이 될 것이다.

노인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늙더라도 저렇게 되어야지’ 하고 다짐했다. 그리고 노인의 행동이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도 참고가 되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날 아침의 마지막 코스인 운하 연변 길로 접어들었다. 운하에 면한 조그만 공원에는 푸른색 텐트가 쳐져 있었다. 텐트 곁에는 널어놓은 세탁물이 바람에 나부기는 게 보였다. 그 바로 옆에서 아까 빈 깡통을 줍던 말쑥한 차림새의 노인이 발로 빈 깡통을 하나하나 찌그러뜨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거야, 윈. 내가 졌군!’ 그는 아내를 먼저 떠나 보낸 게 아니라 ‘세상’을 먼저 떠나 보내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감수성이 풍부한 백 살 노인

남녀를 가리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 중에는 요리와 청소, 세탁을 스스로 하는 이들이 많다. 나는 1998년 가을부터 동화 낭독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혼자서 시작했으나 아내도 이내 가세하여 2인3각이 되었다. 그러다가 한 사람 또 한 사람씩 동료가 늘어나 이듬해 여름 열명을 넘게 되자 정식으로 모임을 결성했다.

그 이래 해마다 120-130차례의 낭독회를 전국 각지에서 행해왔다. 낭독회에 나이나 신분을 가리지 않고 지역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도록 하자 어린이는 물론이거니와 건강한 고령자들도 자주 얼굴을 내민다. 그들은 유쾌한 장면에서는 큰소리로 웃고, 슬픈 장면에서는 아주 안타까운 표정을 짓거나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정말이지 어린이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나는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들은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확신을 품게 되었다. 그 바람에 백 살이 넘은 장수자를 취재해보자는 시도를 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은 이미 장수사회에 접어들었다. 백 살 이상의 장수자가 2만 5천 명을 넘었고,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러나 이렇게 늘어난 백 살 이상 된 장수자 가운데 건강을 유지하면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유감스럽게도 그들 대부분은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놓여 있다. 그렇지만 놀랄 만큼 활기찬 장수자도 일부 있는 게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생활습관을 지니고 있을까?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을까? 취미와 생활신조는 무엇일까? 어떤 종류의 건강법을 실천해왔을까? 이런 등등을 상세히 물어보아 건강하게 오래 사는 지름길을 찾아보자며 내가 실제로 취재에 뛰어든 것이 2000년 봄이었다.

다행히 대상이 되는 장수자를 찾아내는 일은 낭독회 활동으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님으로써 쉽게 해결되었다. 그 지역 주최자에게 물어보면 “아, 그런 분이라면 어디에 사는 누구 할머니가 딱 들어맞지요. 올해 102세가 되는데도 아직 매일같이 밭에 나가 일을 한다니까요” 하는 식으로 금방 반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해서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시점에서 약 오십 명의 남녀 장수자 취재를 끝냈다. 열 명, 스무 명 취재 대상이 늘어나는 동안 알게 된 사실은 그들이 예외 없이 왕성한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머리카락을 분홍과 초록, 노랑 등 몇 가지 색깔로 물들이고 있는데, 내 질문이 잠시 끊어질라치면 즉각 그들이 입에서 이런 질문들이 튀어나왔다.

“당신은 왜 무지개 같은 머리를 하고 있나요?”

“그런 색깔로 물들인 이유가 달리 있나요?”

그들이 거꾸로 나를 향해 질문의 화살을 날리는 것이었다.

“마당에도 화단이 있는 편이 없는 것보다 낫겠지요? 인간에게 있어서 머리는 화단이랍니다. 까만색이나 희색 일색인 것보다는 예쁘게 꾸미는 편이 마음도 훨씬 넉넉해지지 않겠어요?”

내가 이런 투로 입에 발린 대답을 해주어도 그들은 환하게 웃으며 들어주었다. 여하튼 이 사람들은 흥미를 가지면 이내 반응을 보여 새로운 정보를 얻고 싶어 했다. 바꿔 말하자면 감수성이 대단히 풍부한 이들이었다.

취재한 사람들 가운데 몇 명을 빼고는 다들 가족과 동거하고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공통적인 현상은 자신의 일을 가족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모조리 스스로 해낸다는 사실이었다. 여성은 요리와 청소, 세탁을 적극적으로 맡고 있었다. 남성들 가운데에도 그런 경향은 다르지 않았다. 99세에 자동차 운전면허를 갱신하여 저마다 바쁜 가족을 대신하여 매일 자동차로 식료품을 구입하러 나가는 이도 있었다. 음식 만들기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날마다 요리를 만들어서 가족들에게 맛이 어떤지 성가시게(?) 묻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이와 같은 건강한 장수자들은 예외 없이 곧이곧대로 인생을 살아왔다. 풍부한 감수성이 뒷받침하는 멋진 삶을 주변 사람들에게 유감없이 뽐낸다고 나 할까.

 

운동하는 즐거움

변신에 성공한 아내

변해가는 것이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한다. 내 주변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부모님이 뜰에 깔아둔 디딤돌 정도일까?

내 주변에서 가장 많이 변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미쓰코’ 님의 이름을 대리라. 어느 백화점 이름처럼 들릴지 모르나 미쓰코는 내 ‘마나님’이다.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 내 키는 178센티미터, 아내는 163센티미터였다. 우리는 둘 다 당시로서는 꽤 키가 큰 편이었다. 체중은 내가 62킬로그램, 아내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나 46킬로그램이 아니면 47킬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당시 내 나이 스물여섯 살이었는데, 성인식을 맞았던 스무 살 때와 몸무게가 똑같았다. 아내는 열여덟 살이었다. 이제 막 고교를 졸업했던 무렵인지라 체형이 고교 시절 그대로여서 상당히 날씬했다. 다리는 산양처럼 낭창낭창하고 가늘었지 아마!

그로부터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 키는 일반적으로 줄어드는 모양이지만 난 아직 177센티미터를 기록한다. 몸무게는 63킬로그램. 1킬로그램 가량 늘어난 셈이다. 몇 해 전부터 본격적으로 걷기를 시작했고, 가벼운 웨이트 트레이닝과 복근 운동을 일과처럼 하게 되었으므로 근육이 약간 비대해진 결과인 듯 하다.

22,3년쯤 전, 아무 생각 없이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던 폭음폭식 상태에서는 순식간에 67,8킬로그램까지 몸무게가 불어났던 경험은 앞서서 밝힌 그대로다. 당시에는 벌거벗은 내 몸을 거울에 비쳐보고 너무나 추악하여 경악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뒤룩뒤룩 살이 찐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내 미의식의 문제인데, 그 기준에서 따질 때 상당히 도를 넘어서 있었다는 뜻이다.

나는 당시 유행하던 재즈 댄스클럽에 열심히 다니면서 한두 시간씩 땀을 흘렸다. 거기에 덧붙여 식사량을 줄이자 석 달 만에 원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었다. 그때 몸무게가 61킬로그램까지 줄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 참! 내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고 아내에 관한 사항을 빠뜨렸다. 오, 정말이지 40년 세월은 ‘마나님’에게 기적과도 같은 변모를 안겨주었다.

옛날의 아내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변모 치고도 대 변모라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산양의 각선미를 뽐내던 다리가 어느새 코끼리 다리까지는 아니더라도 한창 먹음직한 야채가게의 무처럼 돌변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 정도야 약과인 모양이다. 아내의 친구 중에는 코끼리 다리 급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아내더러 “넌 참 좋겠어! 그리 날씬하니까 말이야” 하고 진짜 부러운 듯이 말하는 친구가 있다나 어쨌다나. 그러니 아마 아내 역시 자신이 날씬하다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

내 ‘마나님’은 30이라는 숫자를 경계로 일희일우(一喜一憂)한다. 체지방 수치다. 아내는 내가 조직한 동화 낭독회의 매니저 역할을 맡고 있어서 잦을 때에는 한 달의 절반 이상을 출장으로 보낼 때도 있다. 지방에 가면 아무래도 많이 먹지 않을 도리가 없다. 주최자가 마련한 뒤풀이 자리에서는 권하는 대로 사양하지 않고 식탐을 낸다. 그런 다음 도쿄로 돌아와서는 “아이쿠, 또 30이 되어버렸잖아!” 하고 탄식을 터뜨린다.

그러다 며칠 도쿄에서 지내노라면 점심은 내가 사무실에서 만드는 건강 요리, 지질(脂質)과 당질(糖質)을 줄이고 야채를 듬뿍 넣은 음식을 먹게 되니까 이내 체지방이 줄어든다.

“여보, 당신 덕택에 27이 되었어요!”

아내가 기뻐서 손뼉을 친다. 하지만 나는 내심 새로운 걱정이 생겨난다.

‘내일부터 오이타(大分)로 출장가야 해! 그 동네는 특산 전갱이와 고등어에다 토종 쇠고기도 얼마나 맛있다고. 도로아미타불, 또 30으로 오를 거야!’

그러던 아내가 내게서 어떻게 운동하는 즐거움을 배우게 되었는지 이제부터 밝히기로 한다.

 

기괴한 체조와 걷기 운동

아내는 라디오 체조를 빼먹지 않는다. 사무실이 아닌 집에서 아침을 맞는 날이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께 식사준비를 위해 주방으로 들어선다. 반찬은 서로 나누어 만드는데, 아내가 된장국을 맡는 경우에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진다. 어찌 된 영문인지 라디오 체조는 한창 된장국을 끓이는 도중에 시작되기 일쑤였다. 라디오에서 구령과 더불어 음악이 흘러나오면 ‘마나님’은 된장을 떠 넣어야 할 타이밍 따위는 아랑곳없이 죄다 내동댕이친 채 거실 한 모퉁이에서 라디오 체조를 따라 하기 시작한다.

언제였던가, 조간신문을 훑어보고 있노라니까 가스레인지 쪽에서 ‘쉬익 쉬익’ 하면서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보았더니 냄비에서 수증기 분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나님은 태연하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리듬에 맞추어 두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하기야 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로는 된장국 끓이는 걸 내동댕이칠 때는 가스레인지를 반드시 끄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음식을 끓이는 도중에 불을 꼈다가 나중에 다시 켜보았자 맛있는 된장국이 만들어질 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불을 끄지 말라고 말렸다. 그러나 마나님은 라디오 체조가 시작되기만 하면 나 몰라라 하고 부리나케 자신만의 라디오 체조 코너로 달려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냄비로부터 멀어지는 순간 먹잇감을 발견한 매처럼 잽싸게 냄비 쪽으로 돌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번은 주방과 거실이 나뉘는 지점에서 마나님과 이마를 부딪치는 바람에 둘 다 엉덩방아를 찧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라디오 체조가 아닌 체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날, 마나님이 기괴한 체조를 시작했다. 두 손을 위를 향해 똑바로 들고 허리를 낮춘다. 그때 꾹 눌러 참는 듯한, 목구멍에 가래가 걸린 듯한 신음소리 같기도 하고 누굴 부르는 것 같기도 한 소리를 냈다. 순간적으로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요상한 종교집단에 들어가 신 내림 의식이라도 받는 게 아닐까? 그도 아니면 신종 태극권을 배우기 시작한 것일까?

내 표정을 보았는지 마나님은 기괴한 체조를 멈출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나를 쳐다보면서 히죽 히죽, 아니 씽긋 웃었다.

“이건 말이에요, 여배우 M씨가 하는 체조라고요. 요통과 어깨가 결리는 데 효과 만점이고 젊음까지 유지할 수 있다나 봐요.”

그 나이 든 여배우라면 나도 잘 안다. 나이에 비해서 굉장히 젊게 보인다는 소문이 자자한 여성이었다.

“젊다는 말을 들으려면 그만큼 노력을 해야 돼. 필경 그 여배우는 그런 노력을 즐기고 있을 거야!”

나는 아내의 노력이 결실을 맺도록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아는 척 한마디 거들었다.

그런데 아내가 체조하는 모습이 사라질 무렵부터 내가 하는 걷기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오늘도 산책하러 나가세요?”

어느 날 아내가 이렇게 물었다.

“산책이 아니야, 걷기운동이라니까!”

나는 산책과 걷기운동의 차이를 아내에게 설명해주었다.

“천천히 걷는 산책은 유산소 운동이 되지 않아. 겨울에도 땀을 빼는 걷기가 아니면 운동효과가 나지 않는 법이야.”

나는 유산소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지방에 갔을 때, 호텔에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걷기운동을 하러 나서는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아내가 “다녀와요!” 하고 반쯤 잠든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러나 땀투성이가 되어 걷기를 마치고 돌아온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자 아내는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새까만 물새를 봤어. 오리의 일종 같았는데, 떼 지어 저수지에서 놀고 있더군!”

“나뭇가지에 매미가 막 허물을 벗고 있었어. 껍질을 벗고 나오는 데 몸 색깔이 차츰 차츰 변하는 거야. 생명의 탄생이란 정말 감동적이더군 그래!”

조그만 일에도 곧잘 감동하는 아내가 내 이야기에 자극을 받은 모양이었다. 자신도 걷기운동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본격적으로 갖기 시작한 것이다.

도쿄로 돌아와 2, 3일이 지난 그날도 나는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잠을 잤다. 아침에 사무실로 나온 아내가 해맑은 얼굴로 혼잣말을 하듯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한 2킬로미터 가량 걸으니 좋긴 좋군 그래요.”

내가 얼른 물어보았다.

“몇 분이나 걸렸어?”

“25분!”

대략 시속 5킬로미터니까 처음 시작한 사람치고는 성적이 괜찮은 편이었다. 그때부터 마나님은 나에게 오늘은 어디에서 어디까지 몇 킬로미터 정도를 얼마의 시간 동안에 걸었다는 식으로 시시콜콜 일러주기에 이르렀다. 거리나 속도로 따질 때 나와 견줄 수준은 아니건만 아무래도 나로 하여금 라이벌 의식을 품게 만들려는 속셈인 듯했다.

“오늘은 20분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걷기운동을 시작한 첫 날과 똑같은 코스를 불과 열흘 만에 5분이나 단축하여 주파한 셈이었다. 아내는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언제였던가, 내 오른쪽 발목에 습진이 생기는 바람에 며칠 동안 걷기를 쉰 적이 있었다. 그러자 마나님이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이렇게 투덜거렸다.

“빨리 나아야 운동을 할 거 아니에요! 당신이 하지 않으니까 나도 할 마음이 나지 않는단 말이에요!”

‘아니, 실망은 내가 해야지!’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려고 했지만, 이제 아내의 걷기운동도 좋은 습관으로 뿌리 내렸다는 사실에 더 기분이 좋았다.

나의 운동하는 즐거움에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먼저 감화를 받아 함께 무병장수하는 길을 걷는다. 이보다 더 멋들어진 일이 어디 또 있을까 보냐!

 

걸어 다니면서 세상을 보는 기쁨

내 사무실이 위치한 아지부주반(麻布十番)을 중심으로 걷기운동을 하다 보니 걸어서 반경 20분 이내에 대관절 웬 다리와 언덕이 이리도 많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백 개를 헤아리는 그 다리들을 걸어 다니면서 모조리 답파했다. 다리를 건너노라면 온갖 다양한 새들을 목격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오리, 참새, 참비둘기, 까마귀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살았다. 할미새도 보았다. 최근 2년 사이에 흰 할미새와 등이 검은 할미새, 두 종류를 목격했다. 지그재그로 놀고 있는 물떼새도 무척 반가웠다. 다리에서 잠깐 쉬는 동안에도 수많은 생명의 약동을 느낄 수 있어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다.

반면, 정말이지 눈살 찌푸려지고 가슴 아픈 것은 불법 투기물들이 눈에 띌 때다. 어째서 자전거나 유모차 따위를 아무렇게나 내다 버리는 것일까?

다리보다 휠씬 많은 것이 언덕이다.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그 수많은 언덕을 도대체 앞으로 몇 년이 더 지나야 죄다 답파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벌써 아득한 기분이 든다. 표지판이 달린 언덕 외에도 이름 모를 언덕까지 포함하자면 반경 2킬로미터 이내에 자그마치 수백 개는 꼽을 수 있다. 내가 오르내린 곳은 이제 고작 절반가량이나 될까?

걷기운동을 하기 시작한 다음 문득 깨달은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루에 피우는 담배 양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세 갑에서 네 갑, 그랬는데 어느 날 곰곰 떠져보았더니 하루에 불과 세 개비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한 달에 세 개비로 더 줄었다. 그 정도라면 아예 끊는 게 어떠냐고 권하는 이들도 있지만, 열흘에 한 개비 피우는 순간의 행복을 무엇에 견주랴. 지복(至福)의 한 개비라고 말할 만하다. 옛날의 내 사무실은 담배연기가 자욱하여 천정이 흐릿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내가 출근하자마자 ‘야아, 이 사무실이 어찌 이리도 맑을까? 사무실에 들어서면 마음마저 깨끗해진다니까!” 하면서 ‘우리들의 천국’을 구가할 지경이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으나, 남편이 운동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면 아내가 더 기뻐하는 법이다. 기뻐하는 것에만 그치면 남편보다 먼저 이승을 하직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도 운동의 효과를 알아차리고 운동하는 즐거움에 빠지게 되면, 남편으로서 과연 즐거워할 수만 있는 노릇일까? 비뚤어진 애처가를 자인하는 나로서도 답은 하나다. “즐겁고 말고!”

어떤 운동에서 즐거움을 이끌어낼까 하는 것은 저마다의 취향에 달린 문제다. 그 중에도 걷기는 내가 적극 추천하고 싶은 운동이다. 즐거움도 다른 운동에 견줄 바가 아니다.

무엇보다 운동복이니 운동도구니 하는 게 일절 필요 없다. 입고 있던 평상복에다 평소에 신고 다니는 운동화 하나면 충분하다. 편리한 사간, 빈 시간이면 언제든 할 수 있다. 게다가 장소는 어디라도 상관없다. 세상의 육지란 육지는 몽땅 걷기를 위한 운동장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 때마다 마음대로 코스를 정할 수 있으며, 미지의 길로 들어서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도 여간 좋지 않다.

전혀 무리하지 않고서도 할 수 있는데다가 운동효과마저 탁월하다. 어떻게 탁월한가 하는 것은 걷기 입문서 등에 다 나와 있으니 이 자리에서는 생략하겠다. 다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효과 하나를 말하자면 바로 감수성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길 양쪽에 벚나무가 줄지어 늘어서서 봄이면 활짝 핀 벚꽃으로 꽃 터널이 만들어지는 코스가 있다. 벚나무 외에도 가는 곳마다 느티나무, 단풍나무 등의 낙엽수와 떡갈나무나 잣나무와 같은 상록수도 보인다. 한 달에 한 번, 이 가로수 사이를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초목과 조류, 곤충 등 생명 있는 것들의 활발한 삶이 전해져 온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실감이 솟구친다.

비교적 짧은 코스에 있는 작은 공원 안에서 열심히 재활 훈련에 몰두하는 중학생인 듯한 소년을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5, 6미터 걷는 데 3, 4분이 걸렸다. 걷다 말고 나는 줄곧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일주일 뒤 또 그 소년을 보았다. 이번에는 반대쪽 길을 손에 든 지팡이에는 거의 의지하지 않고 보통의 걸음걸이로 걷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 가량 지나서 학교로 가는 그 학생을 발견했다. 부상을 당했다는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내가 지신을 관찰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나 나는 그 학생에게서 인간 생명력의 강인함을 배운 셈이었다. 그만큼 커다란 격려가 어디 또 있을까?

걷는 즐거움은 미지의 세계와 마주쳐서 감동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방랑하는 즐거움과 이웃사촌이 아닐까 싶다. 오래 산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미지의 세계를 접한다는 뜻이고, 나이 들어가는 것을 즐긴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가정을 거느리고 사회로부터 은혜를 입으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의 처지에서는 모든 걸 훌훌 벗어 던지고 무작정 방랑 길에 나설 수야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흉내만이라도 내어 그 세계를 살짝 맛보는 방법은 없을까?

대답은 이렇다.

“가출했다는 기분으로 홀로 여행을 즐겨라!”

 

홀로 여행하는 즐거움

 

나를 찾아 떠나는 길

걷기는 반드시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바로 그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날을 며칠 늦추면 혼자만의 여행이 된다. 그것이야말로 감수성이 되살아나는 나그넷길이 되리라.

자녀가 독립한 뒤 부부 둘만의 여행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자작나무 숲을 헤지고 들어가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본다? 아니,잠깐!

그것은 완전히 삶의 황혼에 접어든 다음이 일이다. 아직 힘이 펄펄 넘치는 나로서야 일 년 365일 아내와 얼굴을 마주보고 산다면 필경 정신병에 걸리고 말지도 모른다. 은혜로운 태양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루 종일 머리 위에서 오락가락한다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밤이 오면 자취를 감추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그렇지만 허구한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자태를 드러내는 건 또 어떨까? ‘제발, 해님이시여!’ 하고 외치고 싶어지리라. 그런데 또 비 오는 날, 눈 내리는 날, 흐린 날에는 슬그머니 모습을 감추어주니, 태양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10대 후반 무렵부터 방랑하는 삶에 선망의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결혼하여 슬하에 자녀를 두었고, 가정이라는 틀 속에 갇혀 살고 있었다. 그것을 진심으로 후회한 적은 없었으나 풍선처럼 훨훨 날아 어딘가로 가봤으면 하는 충동을 수시로 느꼈다. 하지만 나와 가정이라는 무거운 돌 사이를 눈에 보이지 않는 실이 꽁꽁 얽어 매고 있는 것 같았다. 훨훨 나는가 싶다가도 이내 팽팽하게 당겨져 그 이상은 도무지 어쩔 방도가 없었다.

그런데 나는 40대가 되어 진짜로 가출한 적이 있었다. 실이 툭 끊어져 버렸는지, 꽤 오랜 기간 가정을 내팽개쳤었다. 가정을 거느린 남자로서는 비합법적인 가출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런 가출은 자신의 마음이나 상대의 마음에나 혼란만 불러일으키게 마련이어서 좀체 질리지 않는 나도 넌더리가 났다.

그렇다면 합법적인 가출은 전혀 불가능한 일일런가? 힌트는 있었다.

나는 젊었을 때 어렵사리 입학해 놓고도 대학 캠퍼스에는 가지 않았다. 대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역에 내려 기분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쏘다녔다. 배가 고파지면 빵 가게에서 빵을 사거나, 지갑에 약간 여유가 있을라치면 싸구려 술집에 들어가 먹고 마셨다. 밤이 되면 가까운 역까지 걸어가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날이 종종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런 사실을 눈곱만큼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열심히 학교에 다니는 줄 착각했다. 그렇게 부모의 허를 찌른 것에 나는 묘한 쾌감을 느끼곤 했다.

자, 이제 합법적인 가출 이야기로 돌아가자.

역시 가정을 팽개치지 않는 가출이라면,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다른 누구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는 것인데 그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발 물러나 아내도 내가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대충 파악하는 ‘나 홀로 여행’ 이라면 몇 해 전부터 일 년에 한 번 꼴로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 지구상에는 60여 억 명의 인간이 사니까 나와 기질이나 스타일이 흡사한 인간도 적잖이 있으리라. 그러나 나와 완전히 똑같은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인간이라는 사실이 유쾌하고 재미있다. 저마다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개성을 지닌 인간에게 있어 궁극적인 즐거움은 자신을 찾는 일이리라. 그냥 찾는 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자신을 많이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와 같은 자기 탐색은 남이 해줄 리가 없으므로 스스로 찾아 나서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지름길이 바로 홀로 만의 여로에 나서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이 들수록 살기 힘든 세상

어느 해 정월 초이튿날 아침, 도카이도(東海道: 도쿄에서 옛 도읍지 교토(京都)에 이르기까지 태평양 연안을 따라 난 길. 옮긴이)를 걸어보자며 배낭을 메고 훌쩍 집을 나섰다. 신칸센을 타고 점심 무렵 미시마(三島)에서 내린 나는 대략 40여 리를 걸어서 요시와라(吉原)까지 갈 요량이었다. 급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으나 지도를 가지고 오지 않았던 탓에 엉뚱한 길로 잘못 들어서는 등 공연히 더 시간만 낭비하고 말았다. 목적지를 3분의 1가량 걷자니 멀리 오른쪽으로 후지산(富士山)이 보였다. 예로부터 여기가 ‘걸어가면서 후지산을 바라보는 가장 좋은 길’로 통했다.

길거리 초밥가게에서 초밥으로 점심 끼니를 때우면서 반주로 소주 두 잔을 마셨다. 홀로 나선 나그네 여로의 한낮 소주는 맛이 기가 막히게 달콤했다. 나는 스스로 도취한 나머지 그냥 이대로 행방을 감추었으면 하는 충동에 휩싸였다. 밤이 되어 이윽고 요시와라로 접어들었다. 혼자 떠난 여행의 즐거움 중에 하나는 잘 곳을 미리 정해두지 않는 것이다. 묵을 곳이 정해져 있다면 돌아갈 집이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만큼 안심은 되겠지만 방랑 기분이 저절로 사라지고 만다. 방랑의 흥취는 막연한 불안과 근거 없는 긴장감이 끊임없이 감도는 대목에서 찾아야 한다.

하지만 매사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는 법. 그날 나는 요시와라에서 방을 잡지 못한 채 산칸센 신후지(新富士)역가지 더 걸어간 다음에야 간신히 비즈니스 호텔에 묵을 수 있었다. 목욕을 하고 침대에 드러눕자 홀로 하는 여행은 나 자신을 되찾게 해준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그것도 반드시 걸어서 하는 여로에 한해서…

걸어서 혼자 여행을 한다고 해서 사냥을 하거나 고기를 낚거나 나무 열매를 따먹는 것은 아니다. 길을 가다가 눈에 띄는 가게에서 배를 채우고, 잠은 이렇게 호텔에서 자는 식으로 여전히 ‘사회생활’을 한다.

사실 사회와 담을 쌓고 사는 것처럼 보이는 노숙자들도 사회생활의 범위 내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건 마찬가지다. 노숙자 중에는 수집한 것을 그냥 그대로 소비하는 경우도 있지만, 수집한 것을 돈으로 바꿔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 사람도 있다. 다시 말해 재생산의 말단을 맡아 여봐란 듯이 경제에 관여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무실 근처에 내가 단골로 가는 가라오케 스낵(노래방을 겸한 간이 술집. 옮긴이) 에는 이따금 K라는 이름의 노숙자가 온다. K와는 동네 공원에서 마주친 적도 있으며, 그가 길에서 종이 상자나 빈 깡통을 줍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아마도 인근 노숙자 사이에서는 ‘보스’로 통하는 모양이었다.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나는 단골 가라오케 스낵에서 그와 만나는 날이면 짤막하게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덕분에 가끔은 이런 곳에서 노래를 즐길 수 있지요.”

구김살 없는 그의 말에 부러운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이제껏 나는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깊은 산속에 들어가 사회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고, 원시적인 채집과 수렵생활을 하는 노숙자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즉 극단적으로 홀로 생활하는 것처럼 보이는 노숙자들도 사회를 벗어나서는 살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평소 사회생활의 틀 안에 갇혀 꼼짝도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이 불과 며칠 동안 가출 기분으로 홀로 여행함으로써 과연 무엇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일까?

그 답의 열쇠는 노숙자의 대다수가 남성이며, 더구나 중, 노년 층이라는 사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월급쟁이를 예로 들어 따져보기로 하자. 독신 남성은 세상살이의 얽매임에서 아직은 다소 자유로울 것이다.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감이나 의무감에 짓눌려 살아가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윗사람에게 야단을 맞아도 면종복배(面從腹背: 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면서 뒤에서는 헐뜯고 욕함), 겉으로 고개야 숙이지만 내심 혀를 쏙 내밀고 있으면 그만이다. 동료와의 출세 경쟁으로 처절하게 싸우는 이야기도 먼 다른 나라의 일처럼 여긴다. 용돈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 좀 더 날씬한 애인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따위의 꿈은 꾼다. 하지만 함께 살거나 혹은 시골에 있는 부모와 형제들에게 이번 상여금이 나오면 몽땅 보내겠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하지 않으리라.

그런데 가정이 있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남자들은 어떨까? 가정을 가치 척도의 첫 번째에 두는 사람이 제법 있지 않을까?

그런 부류 중에는 20대가 가기 전에 자신의 집을 마련하거나, 노후 설계를 빈틈없이 세우는 이들이 많다. 회사 업무에서 삶의 보람을 얻거나, 입사 동기생들에게 경쟁심을 불태우는 자가 늘어나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모든 생활이 직장과 가정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30대 후반 무렵부터 양상이 돌변한다. 입사 동기생과 직책에서 차이가 벌어지는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출세한 녀석을 시기하고 질투한다. 귀가하면 또 반항기를 맞은 자녀 때문에 아내로부터 ‘의논’을 빙자한 잔소리를 실컷 들어야 한다.

회사에서의 출세를 깨끗하게 단념하고 가정의 평온함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며, 아내도 거기에 동조해주기만 한다면, 가족이 단란하게 둘러앉은 저녁 식탁 위에 차려진 고등어 찜이 얼마나 맛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아내들은 그런 작은 행복에 절대로 만족하지 않는다. 남편의 뒷전에서 불륜을 저지르거나, 이혼을 소리 높여 선언하기도 한다. 그토록 가정이 위기에 빠진 상황에 더해 회사에서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지방 근무 발령이 나기라도 한다면 설령 자살을 택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보다 한결 나은 선택이 숫제 양복을 벗어 던지고 노숙자가 되는 것일 수 있다. 소문에 의하면 노숙자 중에는 과거에 자영업자였거나 엘리트 공무원, 잘 나가던 샐러리맨이었던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렇지, 자영업을 하는 사람에게 죽음과도 같은 고통은 쪼들리는 형편에서도 사업자금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게 문을 닫는다고 해서 해결되지도 않는다. 빚쟁이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테니까 말이다. 그들에게 편안한 세상은 일반인들로서야 범접하지 못할 노숙자 사회뿐이리라.

엘리트 직장인이 별안간 회사를 떠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적도 많을 터이므로 느닷없는 기습 공격에 순풍에 돛을 단 듯 잘 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고 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뇌물 사건에 연루되어 낙마한 엘리트가 10년 가량 세월이 흐른 뒤 노숙자가 되어 있더라는 식의 이야기도 들었다. 사랑하는 처자식을 교통사고로 잃은 엘리트가 너무나 절망한 나머지 퇴직하더니 한동안 이런 저런 일을 경험한 끝에 노숙자가 되었다는 실화를 잡지에서 읽은 기억도 난다.

엘리트는 역경에 약한가? 이 모진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어지간한 상처를 입어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중, 노년층 남성들에게 한 순간이나마 혼자만의 여행을 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분리수거 쓰레기가 된 남편

정초에 길을 나섰던 도카이도 여행 이야기로 돌아가자. 첫날을 비즈니스 호텔에서 묵은 나는 이튿날 저녁에는 엣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간바라(浦原)의 여관에 여장을 풀었다. 그래서인지 길거리를 거닐 때에는 진짜로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년부터 1867년까지의 도쿠가와 막부 시절을 가리킴. 옮긴이)의 나그네가 된 기분이 들었다.

아아, 그 시절 나는 그야말로 천애 고독의 몸이었지. 정말이지 좋았어! 나쁜 스트레스는 차츰차츰 빠져나가 파아란 하늘에 녹아 들고 말았어. 남은 것이라고는 상쾌함과, 낯선 동네를 여행하면서 생겨난 적당한 긴장감, 즉 심신에 보탬이 되는 스트레스뿐이었다.

한창 일할 시기의 중년 남성들이여! 은퇴하기 전에 부지런히 여가를 만들어 노숙자 기분으로 홀로 여행길에 나서라. 어차피 휴일에 집에 있어보았자 분리수거 쓰레기 취급만 당할 따름이지 않은가. 아니 분리수거 쓰레기라면 차라리 버려져 가정이라는 멍에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건만, 당신은 버려지지도 않는다.

여하튼 휴일 이외에는 생산에 종사하여 그 보수를 집으로 가져다 준다. 아내로서야 남편이 항상 자리를 지키면서 무언가의 생산에 종사해주는 편이 가장 낫다. 빗대어 말하자면 당신은 마구간의 말, 집은 마구간, 아내는 마부인 셈이다. 자녀들이 어릴 때에는 그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야 한다는 대명제가 있으니까 말이건 무엇이건 상관이 없다. 하지만 자녀들이 사회인이 되어 분가한 뒤에도 여전히 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예사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자신이 말의 처지인지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마부가 시키는 대로 끌려 다닌다면 이야말로 영락없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을 게 뻔하다.

퇴직하고 나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매일 집에만 있으면 아내가 보기에 당신은 움직이는 분리수거 쓰레기여서 진짜 쓰레기보다 처치하기 어렵다. 원래 부부는 생판 남이었으므로 움직이는 분리수거 쓰레기가 된 당신을 날마다 쳐다보노라면 아내의 눈은 차츰차츰 타인의 눈이 되어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법이다.

내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일해왔지? 내 일생은 대관절 무엇이었던 거야? 이렇게 처절하게 항변하면 할수록 당신은 나이보다 더 늙어버린다. 그럴수록 당신의 아내는 당신을 남처럼 대하는 것뿐 아니라, 움직이는 분리수거 쓰레기가 된 당신에게서 정기(精氣)마저 빼앗아간다.

다시 말해 아내는 당신이 하기에 따라 악처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 당신이 움직이는 분리수거 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 아내를 악처로 만들지 않기 위해, 거침없이 일에 매달릴 수 있는 지금부터 슬그머니 집을 버리고, 처자식을 잊어버리고, 노숙자 기분으로 혼자만의 여로에 나서자. 이 느긋한 세상은 당신에게 풍족함을 안겨줄 것이다. 즉 당신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줄 만남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생기를 잃지 않는 당신은 정년이 지나도 좋은 일자리를 얻어 활발하게 일하게 되리라. 설령 퇴직하더라도 아내보다 젊고 의욕 넘치는 나날을 보낼 수 있다. 그리고 퇴직한 다음부터 진짜 가출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혼자만의 여행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홀로 즐기는 여행의 맛을 깨달은 남편에 대해 아내는 어떤 태도를 보일까? 또 아내 자신은 어떻게 변화할까?

어쨌든 보다 많은 기회를 포착하여 끊임없이 혼자만의 여행을 해나가자. 그럴 때마다 원기왕성해지는 당신을 보고 아내가 깜짝 놀랄 것이다. 애당초 혼자서 여행에 나서는 당신을 보고 갈피를 잡지 못하던 아내나, 혹은 아무 반응조차 없던 아내라도 새삼스런 눈초리로 당신을 바라보며 자신도 혼자만의 여행을 궁리하게 되리라. 그래서 혼자만의 여행에서 얻은 감동을 서로 이야기하고, 그 감동을 나눠 갖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이윽고 깨닫게 된다. 그런 다음에는 몇 년에 한 번 정도는 둘이 함께 손을 잡고 여로에 나서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각자 홀로 여행을 하노라면 점점 아내는 남편이 그리워지고, 남편은 아내의 가치를 알아차린다. 이야말로 바람직한 부부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여행을 즐기자

다시 정초 여행 이야기로 돌아가자. 오키쓰(興津)는 참으로 마음에 드는 동네였다. 에도시대였더라면 여관에서 해안선이 내려다보이고, 나그네는 저녁노을에 물든 바다를 바라보면서 한잔 술의 취흥에 젖었을 것임이 틀림없었다. 지금은 제방에 가로막혀 수평선 쪽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잿빛 하늘과 구름뿐이었다. 그렇지만 창문을 여니 갯내음이 진하게 밀려들어 왔다.

안주로 모듬회를 시켜 놓고 한 잔 두 잔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이에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흥얼거리다가 문득 이게 무슨 곡조인가 궁금증이 생겼다. 나도 모르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무얼까, 이 노래는 … ‘반짝반짝 저녁 해가 진다’ 그래, 그랬다. 그것은 어린 시절 부르던 동요였다. 이미 오래 전에 내 기억의 용량에서 넘쳐 나갔지만, 잠재의식이 기억의 맨 아래에서 그것을 다시 끌어올린 것이 분명했다. 이 또한 혼자만의 여행이 안겨주는 효용이리라. 홀로 떠난 여행이 감수성을 자극하여 까맣게 잊어버렸던 기억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었다. 그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흥얼흥얼 콧노래로 살아났다. 이런 현상을 무엇이라고 정의할까? 그렇지, 뇌세포가 모두 열렸다. 모든 상황이 좋다! 나는 기세 좋게 콧노래를 계속했다.

이튿날 시미즈(淸水) 항구 근처를 지나 시즈오카(靜岡)에 도착한 수간 느닷없이 ‘마나님’의 거룩한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얼른 역 매점에서 말린 새우 두 봉지를 선물로 샀다. 집으로 돌아가서 메밀국수를 삶기로 했다. 국수 위에 양념과 함께 살짝 새우를 올려놓고 마나님과 마주 않아 한잔 기울이고 싶어졌다.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돌아와 짧았던 혼자만의 여로를 마감했다. 어쩐지 몇 살쯤 젊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중년의 부부 여행, 노년의 부부 여행도 멋지리라. 하지만 부부만의 여행은 무엇보다 서로 위하고 양보하는 마음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위하고 양보하는 행위는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억지로 그랬다간 나중에 정신적인 피로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 여길 때에는 아내 역시 마찬가지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아내를 위할 수 있고, 아내에게 양보할 수 있으려면 거듭 강조하지만 우선 혼자만의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해야 한다. 그렇게 마음에 여유를 차곡차곡 쌓아두지 않으면 부부 둘만의 즐거운 여행은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아내에게도 혼자만의 여행이 얼마나 즐거운지 알려주어야 한다. 그런 다음 아내가 홀로 길을 나서도록 적극 등을 떠밀어 보자.

어느 회사의 영업 담당 중견 간부인 H씨. 그는 오사카(大阪) 지사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가족은 도쿄에 남겨두고 혼자 오사카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나는 그와 술자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내가 혼자 지방 근무를 하게 되니까 마누라가 더 좋아 난리랍니다.”

H씨의 이 말에 의아해진 내가 그 이유를 물었다.

짐작컨대 가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혼자만의 여행과 연관이 있으리라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H씨의 아내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오사카로 내려와 4, 5일 가량 묵고 간다고 했다. 그리고 그 동안 오사카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교토(京都), 오쓰(大津), 고베(神戶) 등지를 쏘다니는 모양이었다. 도시락을 싸가니까 비용은 왕복 교통비밖에 들지 않으며, 돌아올 때는 더 활기가 넘친다고 했다.

집에서만 틀어박혀 사는 아내들로서는 며칠 동안 집을 비우는 것 자체가 벌써 무언지 모를 불안과 긴장감을 안겨주어 가출 기분을 맛보게 만든다. 그러니 이야말로 혼자만의 여행의 즐거움을 아내가 먼저 만끽 한다 고나 할까.

하기야 H씨 역시 홀로 지방 근무를 하는 중년 남성의 적적함을 이용하여 밤이면 밤마다 불야성의 번화가를 휘젓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그 또한 가출 기분이 나는 혼자만의 여행이나 다름없으리라.

남자 홀로 하는 여행에서는 짓궂은 장난기가 발동하게 마련인데, 그것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행과 상관없이 평소 짓궂게 굴면서 즐거움을 찾는 것도 중년기에 들어서면 해볼 만한 일로 여겨진다.

 

나에게 몰두하는 즐거움

 

장난을 궁리하자

세상살이가 한가로웠던 옛날과 달라 이제는 짓궂은 장난에 대한 너그러움과 관용이 사라졌다. 그래서 악의 없는 장난조차 치기 어려워졌다고 할까, 아니면 그렇게 장난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악의 없는 장난은 사실 한계가 있다. 그 역시 사람들이 주목하거나, 감동하거나, 폭소를 터뜨리거나 그도 아니면 펄펄 화를 내는 따위의 반응이 없으면 시시하다.

나는 젊은 시절에 술기운을 빌어 그런 장난을 치고 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악의가 없었노라고 잘라 말하기도 무엇 하다.

한 예를 들자면 버스 정류장의 표지판을 백 미터쯤 옮겨놓은 적이 있었다. 예전의 표지판은 콘크리트로 된 받침대에다 정류소 이름을 적은 간판 같은 것을 세워둔 모양새였다. 나는 술에 취한 김에 그 무거운 표지판을 끙끙 용을 쓰며 다른 장소로 끌어다 놓았다. 아침이 되어 출근하느라 정류장에 나온 사람들은 필경 어리둥절했으리라. 멀찌감치 숨어서 사람들이 허둥대는 모습을 엿보고 싶었지만 간밤에 얼마나 용을 썼던지 온몸의 근육이 쑤셔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오후에 그곳으로 나가보았더니 표지판은 원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악의 있는 장난임이 틀림없었다.

아무래도 장난에 관한 한 어린아이들이 천부적인 소질을 지닌 듯하니까 그 아이들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아야겠다.

2004년 10월 발생한 니가타 인근의 대지진 당시, 큰 피해를 당하여 피난생활을 하고 있던 야마코시무라(山古志村) 마을 사람들을 위문하러 간 적이 있었다. 지진이 발생한 날, 내가 결성한 동화 낭독회 회원 세 명이 니가타 지역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런 인연도 있고 하여 피난민들에게 동화를 들려주어 조금이나마 위안을 해주고 싶었다. 특히 어린이들의 상처 난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다. 하지만 야마코시무라의 어린이들은 예상 외로 대단히 활기가 넘쳤다.

피난 장소인 그 지역 고등학교에는 크고 작은 체육관 두 개가 있었다. 그 중 규모가 작은 체육관으로 들어가자 어린이들이 여기저기서 왁자하게 놀고 있었다. 제일 시끌벅적한 쪽으로 눈길을 던지니 바퀴가 달린 조그만 리어카와 같은 운반용구 위에 아이들이 포도송이 열리듯 다닥다닥 올라탄 채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자원봉사를 하러 온 대학생이 그걸 밀고 있었는데 숫자를 세어보니 모두 여덟 명이나 타고 있었다. 나는 장난꾸러기들의 기막힌 아이디어에 내심 탄복했다.

어린이들은 우리가 들어서자 장난을 멈추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음악을 담당하는 회원이 음향을 조율하고 있으려니까 대형 체육관 쪽에서 노인들을 포함한 어른들까지 모여들어 금세 자리가 찼다. 어른들도 어린이들 못지 않게 동화의 세계에 빨려 든 듯 아주 반응이 좋았다.

낭독회가 끝나고 그림책을 나눠주고 있으려니까 누군가가 등 뒤에서 내 엉덩이를 톡톡 쳤다. 뒤돌아보니 다섯 살 가량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웃음을 머금고 서 있었다.

“여기, 뭐가 들었어요?”

여자아이는 내가 허리에 차고 있던 가방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러더니 곁에 있던 사내아이가 얼른 내 가방 속을 들여다본 다음 “아니, 아니! 반지도 들어 있잖아!” 하고 기뻐하면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로 하여금 이처럼 활기가 넘치고 장난을 즐기도록 만드는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피난 생활을 하는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근심을 찾을 길이 없었다. 오로지 미래를 향해 꿈을 꾸는 듯한 밝은 표정들이었다.

그래, 그렇군! 아이들은 자신이 처한 현재 상황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도 미래에 대한 장밋빛 꿈을 꿀 줄 아는 존재다. 나는 문득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어른들의 희망은 바로 이 어린이들의 건강함이리라.

나로서는 어린이들에게서 너무나 부러운 것이 또 하나 있었다. 장난기를 마음 깊숙이 감추어 놓은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던 이이들의 그 눈동자가 바로 그것이었다. 참된 장난기는 동심의 세계에만 존재하리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악의는 없지만 남이 화들짝 놀랄 짓궂은 장난. 그런 장난은 치는 쪽에도 동심이 필요하며, 그 것을 받아들이는 상대 역시 동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점잖은 어른이 장난을 즐기려면 그에 상응하는 지성과 윤리의식이 없으면 곤란하다. 신칸센 차내에 돌멩이를 가득 넣은 가방을 감춰두고 폭파 협박 전화를 거는 따위는 장난이 아니라 범죄행위 그 자체다. 그런 악질적인 장난이 요즈음 세상에는 너무 흔하다. 점점 지성과 윤리가 결여된 인간이 늘어나기만 하는 것 같다.

자, 그럼 어떤 장난이 지성과 윤리에 어긋나지 않을까? 여간 어려운 질문이 아니다.

중학교에 다닐 때는 참 장난을 많이 쳤다. 고전적인 장난 중에 하나는 분필가루가 잔뜩 묻은 칠판 지우개를 교실 출입문 위에 끼워두는 것이었다. 선생님들도 문이 살짝 열려 있으면 ‘내가 이 따위 수법에 넘어갈까 보냐’ 며 위를 올려다보며 쉬 걸려들지 않는다. 그래도 간혹 부주의하여 걸려든 선생님 중에는 참지 못하고 벌컥 화를 내는 분도 계셨다. 그런가 하면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다른 친구의 도시락을 먹어 치운 뒤 그 속에 도마뱀을 넣어두는 녀석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린이 세계에서도 상대를 화나게 하거나 놀라게 만드는 장난은 규칙 위반이다. 어딘가 멋있고, 재미가 있으며, 처음에는 다소 놀랐다가도 저절로 웃음꽃을 피우게 되는 장난이라야 한다.

경마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말은 겁이 많아 제 방귀소리에 깜짝 놀란다고 한다. 그래서 누가 뀐 거냐고 따지기라도 하듯 이리저리 둘러보며 꼬리를 흔든다는 것이다.

“네가 뀐 거야, 이 녀석아! 하면서 목덜미를 토닥거려주지요. 그래야 겨우 안정을 찾으니까 정말이지 간이 생기다 만 동물이에요.”

나는 그 이야기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앞서 말한 대로 나는 현미밥에다 야채를 많이 먹는다. 그 때문인지 이따금 냄새는 나지 않으나 소리가 큰 방귀가 나오는데 나는 가끔 사람들로 혼잡한 곳에서 후련하게 방귀 한 방을 날린 다음 뒤돌아본다. 그러면 다들 어안이 벙벙해져 나를 쳐다본다. 내 장난은 이런 정도다.

요즈음 세상에서는 상상 속에서만 이런 스스럼없는 장난이 허락되는 듯 하다.

나는 종종 <고동 부는 남작의 모험> 이나 <80일 간의 세계일주>의 세계를 빌어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곤 한다. 둘 다 다양한 장난이 수없이 포함되어 있는지라 얼마든지 상상이 가능하다. <괴도 루팡> 시리즈 역시 경탄을 금치 못할 장난기의 집대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느 날, 내가 루팡이 되어 국제 우주정거장을 화성 궤도에 올리는 엄청난 장난을 상상하다가 느닷없이 “여보, 왜 그래요?” 하는 아내의 말에 현실로 되돌아왔다.

마나님이 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새삼스럽게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리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어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겼어요?”

“아니야, 아니! 잠깐 동화에 관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뿐이야.”

퇴직했으나 아직 힘이 넘치는 분, 혹은 이제 곧 퇴직해야 할 분은 어디 한번 상상이나 공상을 통하여 터무니없는 장난을 쳐서 주위를 놀라게 해보시라. 무엇을 상상할 것인지는 저마다의 성격이나 기호에 따라 알아서 정하면 된다. 다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상상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울렁대는 장난기가 반드시 당신을 활력 넘치게 해줄 거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당신을 보며 아내는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리겠지만 차츰 내 남편에게 무시하지 못할 활력이 잠재해 있음을 알아차리고 남편을 다시 보며 존경하기에 이를 것이다.

이야말로 짓궂은 장난이 안겨주는 최대의 효과이다.

 

 

자화자찬하라

아직 얼마든지 더 일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하여 어쩔 도리 없이 직장을 떠나야 하는 60세 전후의 사람들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은 옷차림 따위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꼭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 스포츠신문을 손에 들고 편의점을 나서고 있었다. 위에는 셔츠만 달랑 걸치고 바짓가랑이가 접힌 바지를 입었으며, 질질 끌다시피 샌들을 신고 가는 스타일. 여러분도 그런 모습의 인간을 더러 목격했으리라. 그런 사람들은 몸도 마음도 옷차림도 점점 초라해져 간다. 아무렇게나 자라난 수염은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고, 머리엔 비듬투성이다. 대머리의 경우에는 두피 전체에 검버섯이 핀 것처럼 보이거나, 그도 아니면 흡사 양파 껍질을 붙여놓은 것 같은 상태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틀림없이 평소에 거울도 제대로 보지 않을 게 뻔하다. 인간이란 나이에 상관없이 조금이라도 남의 눈이나 외모에 신경 쓰는 동안에는 걸핏하면 거울을 들여다보게 마련이다. 헤어스타일과 목덜미, 양복 깃은 헝클어지지 않았는지, 안색과 표정이 어둡지는 않은지 등을 꼼꼼히 체크한다.

다시 말해 거울을 들여다보는 횟수가 잦을 때에는 아직 안심해도 괜찮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거울 속의 자신과 마주하는 것은 하루에 불과 몇 차례 밖에 되지 않으니까 거울 속의 자신을 볼 때마다 칭찬을 해주는 건 어떨까.

“자네가 오늘 아침에는 6킬로미터를 한 시간에 걸었어! 나이 예순다섯에 정말 훌륭했다고!”

“아까 길거리에서 신문 배달하는 소년에게 ‘수고 많군!’ 하고 격려해 주었지? 자넨 아주 인정이 넘치는 사람이야!”

부끄러워하지 말고, 실제로 있었던 일은 무엇이든 좋으니 살짝 칭찬해주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칭찬하기를 반년가량 의식적으로 해야 한다. 의식적으로 하지 않으면 어느 결에 잊어버리고 만다. 그 대신 반년쯤 거울 속의 자신과 대면할 때마다 칭찬 해주면 그 뒤에는 거의 반사적으로 저절로 칭찬의 말이 입 밖으로 나오게 마련이다.

즉 조건반사적인 습관이 되어 어느 장소이든 거울 속의 자신과 마주치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칭찬을 하게 된다. 인간이란 자꾸 추켜 세워주면 기분이 좋아 자신감이 생겨나고, 적극적이 되며, 기대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 거울 속의 자신을 욕하거나 미워하거나 지겨워 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단지 백 번 가운데 한 번쯤은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면서 반성할 점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솔직히 말해 여기까지는 인간이 품는 기분이나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기 위해 썼다. 거울 속의 자신을 이용함으로써 자신의 기분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훈련이 될 수 있으니까 명퇴 등으로 기운을 잃은 이들은 꼭 실행해보기 바란다.

자, 거울 속의 자신을 칭찬하는 데 익숙해지면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보자. 자신의 방도 좋고, 방이 없으면 조용한 거실도 상관없다. 거기서 천천히 거울 속의 자신과 대면한다. 당신은 아내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거나, 아니면 스스로 압박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런 갖가지 압박에서 해방되어 하고 싶은 일을 마음 내키는 대로 실컷 해보기로 하자.

거울 속에 방의 문이 비친다. 당신은 거울 속의 자신을 대신하여 거울 속으로 들어가 보라. 그리고 문 쪽으로 걸어가 그 문을 기세 등등하게 활짝 열어라.

문 바깥은 당신이 알고 있는 세상이 아니다. 당신에게는 미지의, 가슴이 두근거리고 울렁거리는 세상이 펼쳐진다.

자, 저쪽 세상으로 한바탕 사자 후를 터뜨리면서 뛰어들어 가자.

 

공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드나든다

거울 속의 자신을 대신하여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당신은 어릴 적에 읽었거나 누가 읽어준 동화를 떠 올렸으리라. 그렇다. 루이스 캐롤이 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다. 아니, <거울 나라의 앨리스>라고 해야 맞겠지.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즐거움, 그것은 한마디로 공상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재빨리 공상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이야기를 빌어서 그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하는 게 첩경이다.

그렇지만 이 경우 이야기 선택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현대 사회의 냉혹한 단면이나 불가사의한 심연을 예리하게 파헤치거나, 일상생활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을 테마로 한 이야기, 즉 현실을 배경으로 한 범죄소설, 연애소설, 자전소설, 추리소설 따위는 피해야 한다. 그런 소설은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을 하면 할수록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아 가슴이 답답해지고 만다. 읽고 난 뒤 설령 어둡고 심각한 감동을 받게 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지는 것 같은 카타르시스를 얻지 못한다.

카타르시스라는 단어가 튀어나왔으니 말인데 혼자만의 세계에 들어가는 즐거움이란 바꿔 말하자면 크고 깊은 카타르시스를 얻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빌어서 그걸 얻고자 한다면 호랑이에 날개가 달린 것처럼 천하무적의 통쾌함, 기상천외, 황당무계한 이야기일수록 좋다. 즉 비현실적인 세계로 뛰어들어 마음껏 활약하고 모험을 펼친 뒤 되돌아오면 상쾌하기 이를 데 없어진다. 몸도 마음도 젊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세계를 빌어오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자유롭게 카타르시스를 얻으려면 공상력을 기를 필요가 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대신한다는 것 역시 공상력을 기르는 훈련이다.

이제 거울 속의 세계로 들어간 당신은 문을 열고 함성을 외치면서 뛰쳐나간다. 그곳은 어떤 세계일까? 공룡들이 약육강식을 연출하는 수억 년도 더 전의 지구일까? 그렇지 않으면 스타워즈와 같은 먼 미래의 세계일까? 그도 아니면 땅속 깊숙한 곳에 자리한 지하 도시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곳이 어떤 세계든 거기에서는 당신이 최강의 슈퍼맨, 제왕,유일 절대적인 존재라는 사실이다. 실수하여 티라노사우루스에게 쫓기다가 잡혀 먹혀서는 곤란하다 대신 티라노사우루스에게 두 발차기와 박치기 맛을 보여주어 쓰러뜨려야 한다.

실존했던 인물로 둔갑하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다. 가령 한반도를 거처 중국대륙으로 건너가 다음 몽골에서 칭기즈칸이 되어 대제국을 건설하는 꿈을 공상의 세계에서 체험해보는 것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

공상 속에서는 전혀 미안해 하거나 겸손할 필요도 없다. 파괴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면 그것을 충분히 만족시킨 다음 현실로 되돌아오면 그만이다. 울적한 기분이 사라지고 속이 후련해지리라.

그렇다면 공상을 하는 것과 짓궂게 장난치는 즐거움이 어떻게 다른가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둘은 닮은 점도 있으나 크게 다르다. 장난치는 즐거움은 제3자가 그걸 알고 반응하는 것이 포인트이며, 그 반응을 미리 예측하고 싱글벙글 웃는 것이 유쾌하다. 하지만 혼자만의 세계에 들어가는 즐거움은 객관적, 평론가적인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내가 행동하는 곳에 내가 있으리니!’ 로 족하다.

혼자만의 세계가 갖는 또 다른 강점은 제3자는 그 세계를 엿보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이 혼자만의 세계로 달아나는 것은 아니다.

혼자만의 세계로 빠질 때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될 점이 바로 이와 같은 현실 도피로 잘못 이용할 경우이다. 그래서야 혼자의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 머릿속에 가득 차 잇던 고민이, 현실 세계로 되돌아 나왔을 때 그냥 그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럴 바에는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는 편이 차리리 낫다.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제법 에너지를 소비하는 행위, 즉 사고(思考)이기 때문이다. 만약 아무 소득이 없으면 그 에너지만 아까워진다. 현실로 되돌아올 때에는 반드시 얻는 것이 있다는 강한 믿음을 지니고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가기 바란다.

머지않아 직장에서 퇴직할 당신에게 이제 곧 나이 서른이 될 아들이 있다고 치자. 마땅한 직업마저 없이 늘 집안에서 뒹굴기만 하는 그 아들은 두고두고 골칫거리다.

자, 이런 골칫거리를 없애기 위해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당신은 저 옛날 주류 도매상 주인으로 변신한다. 당신에게는 외동아들이 있다. 슬슬 며느리를 봐도 충분할 나이이건만 아들은 가업조차 변변히 익히지 못했다. 걸핏하면 제 어머니나 할머니에게 쫓아가 기댄다. 어머니와 할머니가 너무 외아들, 외손자를 귀여워한 나머지 그런 약골로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당신은 아주 먼 지방에 사는 동업자에게 아들을 보낼 테니 일을 가르쳐 줄 것을 부탁한다. 아들이 떠나는 날, 당신은 아들을 불러 앉혀놓고 차갑게 통고한다.

“잘 들어라! 설사 나와 네 어미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도 꼼짝하지 말거라. 7년 동안 하늘이 두 쪽 나는 일이 생겨도 너는 거기서 일만 배워야 한다. 도중에 돌아왔다가는 바로 부자의 인연을 끊고 내쫓아버리겠다!”

당신은 그로부터 몇 해가 흘러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 사실을 아들에게 알리자 않았다. 7년이 지나자 아들은 여 봐란 듯이 훌륭하게 성장하여 돌아왔다. 얼마나 솜씨가 좋았던지 동업자가 아들을 붙잡아 두려고 안간힘을 쓸 정도였다. 당신은 아들을 동업자에게 보내면서 만약 제대로 일을 배우지도 못하고 돌아오면 속 빈 강정으로 여겨 모든 것을 포기하리라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다. 기대를 걸지 않으면 고민할 필요도 없다고나 할까.

현실로 되돌아온 당신은 외동아들을 속 빈 강정이 아니면 겨울잠을 자는 괴상한 동물쯤으로 여겨 더 이상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하루 세 끼를 먹이고, 낮잠도 재우면서 살아갈 수 있는 처지라면 아무런 기대나 바람을 갖지 않는 편이 낫다. 아무 기대가 없다면 두통거리가 되지도 않는다.

사실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자녀들의 대다수는 마치 부모에게 어리광 부리듯이 엉뚱한 떼를 쓰려고만 든다.

“부모가 잘못 기르는 바람에 내가 이렇게 되었어. 어쩔 거야, 이제!’

“내가 언제 날 낳아달라고 부탁했어?”

말하자면 책임전가에 이골이 난 녀석들이 태반이다. 거기에 휘둘려서는 낭패다. 무시하고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 그것이 최대, 최고의 처방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부모가 그런 신념을 가지면 제아무리 골칫덩어리 자녀도 머지않아 정신을 차리게 되어있다. 많은 부모들이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하니까 “아이구 골치야!” 하고 머리를 싸매면서도 어리광에 넘어가고 만다.

그럼 이제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가 스스로 세뇌하기로 하자.

 

린드버그의 단독비행

두 해 잇달아 섣달 그믐날 사무실에서 집까지 걸어서 돌아왔다.

직선거리로 따지면 16, 7킬로미터 정도이지만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따라 걸으면 최단거리라도 20킬로미터는 족히 된다. 처음에는 그 최단거리가 아니라 이쪽 길을 갔다가 저쪽 길로 가는 등 방향만 맞으면 무조건 걸었다. 더구나 착각하여 길을 잘못 들기도 했으니까 22, 3킬로미터는 걸었을 것이다. 소요 시간은 대략 여섯 시간, 점심시간과 두 번의 휴식시간을 빼면 실제로 걸은 시간은 약 네 시간 반, 시속 약 5킬로미터로 주파한 꼴이다.

걷는 동안 나는 혼자만의 세계를 여행하는 듯이 기분이 좋았다. 도중에 황태자의 거처인 동궁(東宮)이 바라보이자 마크 트웨인의의 세계로 들어선 것 같이 마음이 설렜다. 잰 걸음으로 걷고 있는 내가 궁전 울타리 너머에서 나와 아주 닮은 노숙자와 마주친다. 얼른 서로 옷을 바꿔 입고 노숙자는 궁전 안으로, 나는 바깥에 있는 미지의 세계로 걸어 나간다.

나는 한동안 실제로 그런 상상을 하면서 걸었다. 국립경기장 앞을 지나갈 떼에는 종전의 세계기록을 순식간에 깨뜨리는 경이적인 속도로 골인 지점을 향해 질주해 가는 마라톤 선수를 떠올렸다.

요요기(代代木) 역 근처에서 간식으로 먹은 메밀국수는 정말 맛있었다. 극히 평범한 국수가게였고, 유별나게 맛이 일었을 리 없었건만, 임금님 수라상에 오른 음식을 먹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 나카노(中野) 역 부근의 카레 전문점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마침 적당히 시장기가 돌던 참에 먹은 카레 요리는 기가 막히도록 내 위장을 기쁘게 만들었다. 보는 것, 듣는 것, 먹는 것 모두가 최고였다. 이 모두 내가 그렇게 착각하도록 만들어준 세계에 들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일정한 보폭과 속도를 유지하면서 걸어가다가 복고풍 분위기를 풍기는 카페를 발견하고 그 주위를 떠도는 향기로운 커피 향기에 이끌려 문을 밀고 들어섰다. 오스만 터기의 술탄이 된 기분으로 마셔서인지 내가 그 해 마신 커피 가운데 가장 맛이 뛰어났다. 30분 가량 커피 향에 빠져 있다가 가게를 나와 마지막 코스에 접어들었다.

“다녀오셨어요? 피곤하죠?”

집 현관에 도착하여 아내의 목소리를 듣자 나는 퍼뜩 현실로 돌아왔다. 몸과 마음이 너무 가뿐했다. 나는 43도짜리 소주를 마시면서 제법 근엄한 표정으로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다.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데에는 시간, 장소, 상황은 전혀 상관이 없다. 경제적인 부담도 필요 없다. 단 한 가지, 남이 방해하지 않을 시간을 가질 필요는 있다. 인간은 본래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와 깊은 연관을 맺음으로써 비로소 살아갈 수가 있다. 그러니까 더욱더 사회생활 속에서 개인으로서의 자유와 독립을 실감하고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이 바로 그런 의미다.

뉴욕과 파리 사이를 논스톱으로 비행하여 대서양 무착륙 횡단비행에 처음으로 성공한 린드버그는 틀림없이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가 마음을 비운 채 계속 하늘을 날아다녔으리라.

“날개여, 저것이 파리의 불빛이다!” 하고 외치는 순간 현실 세계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그때 영광이니 명성이니 하는 단어가 번쩍 그의 뇌리를 스쳤을지도 모른다.

작가로서도 잘 알려진 린드버그 부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혼자가 된다는 것, 일 년이나 일주일, 혹은 하루의 어느 부분을 홀로 지내는 것, 그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 않을까요?”

린드버그야말로 비행하던 33시간 30분 동안을 오로지 혼자서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어느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시간이었다.

동화 낭독회 활동을 펼치면서 동화를 읽거나 듣는 순간이 되면 나는 이야기의 세계로 뛰어들고 만다. 그럴 때면 그 자리에 수많은 어린이들이 있다는 사실도, 그 어린이들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다.

그렇지만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이 멋진 이야기의 세계는, 그 시간 그 자리에 함께 모인 사람들과 더불어 펼쳐나간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 그러므로 끝난 다음 서로 감동을 공유할 수 있었다고 감격하게 되는 것이다. 감동을 나누어 가졌다는 만족감이 모두의 가슴을 가득 채운다고 할까.

린드버그 역시 좁디 좁은 조종석에서 자기 혼자만의 세계를 펼치고 있을 때, 성공하기만 하면 획기적인 쾌거가 될 이 도전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으리라, 함께 꿈을 펼치고 있으리라는 의식을 간직했을 것이다. 그래서 파리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을 때, 기다리고 있던 여러 사람들과 다 함께 감동을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즐거움에는 그와 같은 커다란 의미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

이제 당신은 틀림없이 날마다 새로워져 가는 자신을 상쾌하게 여기게 되리라. 그리고 그럴 즈음 새로운 무대가 당신 눈앞에 펼쳐진다. 그것이 바로 다음 장에서부터 시작할 이야기이다.

 

성장기
다섯 가지 즐거움을 누리자

나만의 맛을 만들어내자

참 이상한 일이다. 부엌칼로 야채를 잽싸게 써는 솜씨는 도저히 마나님을 쫓아가지 못한다.

‘쓱쓱쓱…..’

1초에 서너 차례 소리가 난다. 그에 비해 나는 여전히 시계 초침의 리듬 그대로다.

‘쓰윽 쓰윽 쓰윽….’

하지만 비록 속도는 뒤져도 ‘확실성’에서는 이미 마나님을 넘어 섰노라고 내심 우쭐해 한다. 확실성이란 가령 무를 2밀리미터 두께로 썰 때 일정한 두께로 확실하게 써느냐 하는 문제다.

그런데 요리만큼 서로의 견해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는 건 없다. 나는 유기농 채소를 쓰니까 되도록 껍질을 벗기지 않고 요리한다. 대체로 근채(根采)는 껍질이나 껍질에 아주 가까운 부분에 맛과 영양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나 순 무를 조려서 먹을 경우에는 맛이 잘 배도록 껍질을 벗겨야 한다. 물론 부엌칼로 벗긴다. 예전에 아내는 내가 무 껍질을 벗기는 걸 보고 너무 두껍다고 잔소리를 했다. 얇게 벗기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만 무 껍질을 얇게 벗기면 어떻게 되는가? 껍질 여기저기 있는 움푹 팬 곳과 잔뿌리가 그냥 그대로 남게 된다. 실제로 마나님이 벗긴 무를 보면 그런 것이 군데군데 남아있어서 나로서는 여간 거슬리지 않는다. 그런 부분이 남지 않도록 깨끗하게 하려면 아무래도 두껍게 벗겨야만 하는데 마나님에게는 두껍게 벗기는 것이 솜씨가 서툰 증거로 비치는 모양이다.

내 마음과 몸을 만족시키고 납득시키느라 아내 모르게 사무실에서 살짝 ‘요리’하는 것을 시작한 게 벌써 어언 십여 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마나님의 요리법을 흉내 내느라 사전 준비와 요리하는 순서 등을 어깨 너머로 훔쳐본 뒤 나중에 그대로 따라 했다.

그렇지만 두서너 해 지나자 아내의 요리법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예컨대 국수를 삶을 때 마나님은 부글부글 끓는 물에 국수를 다발째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젓가락으로 저어주는데 그래서야 잘 풀리지 않는다. 국수끼리 달라붙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국수를 집어넣을 때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면서 방사선 형태로 미리 나눠야 한다. 그래야 면이 서로 달라붙지 않고 골고루 잘 삶긴다. 이 정도는 국수가게에 갔을 때 주방 안에서 전문가들이 조리하는 모습을 잘 관찰하기만 해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여자들은, 아니 우리 집 마나님은 외식을 하면 그저 먹는 것과 떠드는 데에만 정신이 팔리기 일쑤다.

마나님은 얇게 썬 가다랭이포로 국물을 우려낼 때 펄펄 끓는 물에 가다랭이를 집어넣고 한참 동안 삶아버린다. 이렇게 하면 가다랭이의 씁쓸한 뒷맛이 그대로 남아 절대로 맛있는 국물을 만들 수 없다.

아내가 나의 요리 실력을 인정해준 것이 몇 년째 쯤이었을까?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내는 내가 끓이는 된장국 맛이 마음에 들어 거꾸로 내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이거 아무리 해도 당신이 끓인 된장국 맛이 나지 않아요!”

이런 탄식이 어느 날 아내의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을 때, 나는 몹시 기뻤다.. 이후로는 마나님이 걸핏하면 나에게 가르침을 청하게 되었다.

아무리 사정이 변했을망정 요리 경력 수십 년의 마나님이 나를 의지하게 되었으니 어찌 된 영문인지 갈피를 잡기 힘들다. 그것은 요리하는 방법을 모르면 만들지 못하는 사람과, 요리는 픽션이니까 만들 때마다 새로운 요소를 궁리하는 사람의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조리법은 꼼꼼하게 살핀다. 그러나 그 조리법을 따라 그대로 요리를 만들지는 않는다. 조미료도 눈대중으로 집어넣는다. 티스푼으로 하나니, 큰 숟갈로 절반이니 하는 식으로 조리법에 적힌 대로 따라 만들다가는 영원히 요리를 익히지 못하게 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자신만의 맛을 영원히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제아무리 조리법 그대로 만들어도 그것은 복사판이니 그 조리법을 쓴 사람의 솜씨를 뛰어넘지 못한다. 요리는 창작이며, 픽션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때 비로소 매일같이 창작요리를 즐길 수 있게 된다.

픽션이므로 주인공도 필요하고 조연도 필요하다. 복선도 깔아야 흥미로우며, 대 반전을 궁리하는 것도 즐겁다.

가령 카레라이스를 만든다고 해보라.

“이봐, 오늘 주인공은 바로 너, 새우야. 잘 부탁해!”

도마 위에 놓인 새우에게 이렇게 말을 걸면 정말 맛있는 카레라이스가 완성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감자가 한창 수확되는 계절이 되면 육류나 어패류를 슬그머니 밀어둔다.

“이봐, 햇감자! 오늘은 제가 주인공을 맡아주어야겠어!”

별안간 발탁된 재료로 만들어진 카레라이스에서는 햇감자 맛이 훨씬 더 코끝을 간질이리라.

어패류 카레에서 새우나 오징어가 주인공인 것처럼 했다가 다 만들어질 즈음 따로 간을 맞추어 살짝 튀겨낸 가리비를 얹어 국면의 대 반전을 즐긴다.

그러고 보니 요리만큼 상상력을 높여주는 것도 없다. 물론 창조력을 높여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어쨌거나 당신은 즐거운 마음으로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도중에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퍼뜩 정신을 차려보면 주방에서 물 만난 물고기마냥 자유자재로 헤엄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래, 그럴 즈음이면 당신은 의도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아내로부터 요리하는 권리를 획득할 수 있다. 그것도 선양(禪讓)이라는 최고의 수법으로 말이다.

 

 

청결한 생활이 깨끗한 나를 만든다

마음이 깨끗하면 몸과 옷차림도 말쑥해진다.

 

젊은이들이 고령자들에게서 떠올리는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우선 ‘오랜 세월 사회에 이바지 해온 사람’은 아니리라. ‘지식을 축적하여 깊은 교양을 지닌 사람’도 아닐 것이다. ‘현모양처와 같이 주위에 대한 배려가 깊은 사람’으로 간주하지도 않을 것이며 ‘쓴맛 단맛 세상 물정을 다 아는 인생의 달인’ 일 리도 없다.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기 어렵고 무서우리만치 위엄을 부리는 사람’으로 착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두어 해 전부터 젊은 사람들을 술자리에 불러놓고 그들이 품고 있는 고령자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보곤 했다. 술집이나 홈 파티 등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던 까닭은 그렇게 해야 진심을 털어놓기가 수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고령자, 그리고 나처럼 슬슬 고령자의 대열에 들어설 나이가 된 사람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꼴이 되고 말았다.

‘일반적으로는 고령자라고 하면 사회에 공헌하고 다음 세대를 육성했으며 모두가 잘 살 수 있도록 한평생을 바쳐 애쓴 사람들이다. 따라서 존경하고 소중히 모셔야 한다’고 우등생 특유의 모범답안을 댈 것 같은 신중하고 양식 있는 이들조차 술이 들어가면 사뭇 신랄한 말투로 돌변한다.

“지나치게 욕심들이 많지 않습니까?”

“너무 뻔뻔한 것 같아요.”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니까 응석이 심한 게 아닐까요?”

청년들은 다소 겸연쩍은 표정으로 살짝 미소를 띠거나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하게 입을 여니까 그나마 낫다. 하지만 젊은 여성들의 반응은 정말이지 맵디매웠다.

“여간 심술궂지 않아요.”

어찌 된 영문인지 심술궂다는 말을 입에 올리는 이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젊은 여성들로부터 가장 따갑게 들은 단어는 ‘더럽다’는 것이었다. 성격이 그렇다는 뜻이 아니었다. 외모와 첫인상이 더럽다고 했다. ‘불결하다’는 표현도 서너 차례 들었다.

“잿더미에서 뒹군 사람들 같아요.”

이런 표현을 쓴 여성은 전문대학 학생이었다.

신데렐라는 영어식 표기지만 프랑스어로 읽자면 샹드리옹, 원래의 뜻은 ‘재를 뒤집어쓴 사람’. 그런 사실을 알고 한 말로는 여겨지지 않았으므로 그 학생이 고령자에 대해 품어온 이미지 자체였으리라.

본래 노인과 젊은이는 예로부터 서로 맞지 않은 존재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로부터 늙은이들은 곧잘 “요즈음 젊은 것들은…” 하며 젊은이의 말과 행동에 눈쌀을 찌푸리기 일쑤였다.

젊은이가 고령자에게 대해 품고 있는 진짜 이미지는 어쩌면 고령자가 젊은이에게 품고 있는 솔직한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전철을 타고 갈 때 자리가 비어있어도 앉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손잡이를 붙잡지 않을 때도 많다. 균형감각을 변함없이 유지하려면 달리는 전철 내에서 손잡이를 잡지 않고 서서 가는 연습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허리를 튼튼하게 해주는 효과도 엄청나다.

하지만 젊은데도 불구하고 전철 내에서 곧잘 두 다리를 벌리고 노약자석에 버티고 앉은 녀석이 눈에 띄곤 한다. 녀석이야말로 욕심꾸러기에 얼굴이 두껍고, 응석받이에 심술궂기 짝이 없어 보인다. 그런가 하면 녀석의 건너편에는 커다란 가방을 옆자리에 턱 놓고, 거울을 꺼내 제 얼굴을 토닥토닥 두드리면서 화장에 열중인 스무 살 전후의 처녀도 있다. 노약자석을 두 자리나 차지하고 제아무리 비싼 화장품을 쓴들, 여드름투성이 얼굴이 감추어질 리 없으니 이런 젊은이들은 필시 성격마저 더러울 것 같았다.

그러나 젊은이가 고령자에 대해 품는 이미지에는 머지않은 장래에 고령자가 될 내가 생각해도 납득이 가는 구석이 있다.

지나치게 몸가짐에 신경을 쓰지 않아 스쳐 지나갈 때 불결한 느낌을 안겨주는 고령자가 의외로 많은 것이다. 한 발자국 걸음을 옮길 때마다 비듬이 떨어지고, 눈에는 눈곱이 끼어 있고, 콧구멍에서는 길고 흰 코털이 비어져 나와 바람에 나부낀다. 그런 노인을 보면 겉으로는 ‘긴 인생살이에 얼마나 피곤하십니까? 부디 건강하게 오래 사시기를…’ 하고 안쓰러운 시선을 보낸다. 그렇지만 진심은 이와 판이하게 마련이다.

‘더럽고 불결해요. 나는 절대 당신처럼 살지는 않을 거요. 내 한 몸 깨끗이 못할 지경이라면 난 차라리 산속에 들어가 남몰래 조용히 죽음을 택하겠소!’

진심은 이런 것이다.

옷차림도 노숙자의 더러움과는 다르다. 무어라고 할까. 정신의 황폐함이 옷차림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해야 할 형편 없는 차림새랄까.

생활공간을 청결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그것을 실천해가면, 자신의 마음까지 정화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또 그렇게 자신의 마음이 정화된 상태가 되면 저절로 몸을 깨끗이 하게 되어 옷차림도 말쑥해진다. 이것이 중요하다. 고령화 사회에 돌입하여 주변의 다른 고령자와 달라지려면 마음의 정화를 빠뜨려선 안 된다.

게다가 고령자로 불리기에는 아직 한참 멀었다고 자부하는 바로 그 시점에 고령자 이후를 대비하지 않으면 이미 늦다. 시집 <풀잎>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민중시인 휘트먼이 멋진 말을 남겼다.

“젊은이는 아름답다. 하지만 늙은이는 젊은이보다 더 아름답다.”

젊은이가 아름다운 것은 인생의 봄을 살아가므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세월이 흐르면 사라진다. 거꾸로 긴 세월에 걸쳐 닦고 축적해온 늙은이의 아름다움은 늘어나기만 할 따름이니까 더욱 아름다운 법이다.

그렇지만 그런 아름다움은 몸가짐이나 옷차림에 상관없이 욕심 많고 심술궂으며 남의 신세만 지고 살아가는 사람과는 전혀 무관한 아름다움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부부에게 있어 집의 의미를 되새기자.

 

어느 중앙 일간지가 발행하는 주간지에서 ’50대 아내의 진심 – 남편의 이런 점에 화가 난다’ 는 타이틀의 여섯 페이지짜리 특집을 게재한 적이 있었다. 50대 아내를 둔 남편은, 여간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한 정년 퇴직한 지 2, 3년 지난 세대가 아니면 앞으로 몇 년 이내에 정년을 맞을 사람들로 여겨진다. 이 책을 열심히 읽어줄 독자들과도 겹치는 세대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문제의 특집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전문가의 말이 실려 있었다.

“여자들은 지금까지 집에서 자유롭게 살아왔는데 정년 퇴직한 남편이 집안에서 버티게 되면 그 즐거움이 깨어지리라는 불안을 느끼겠지요. 아내들이 남편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라는 증거로 비쳐집니다.”

아내가 남편을 분리수거 쓰레기처럼 여기고, 성가신 존재로 여기는 원인의 하나를 이 문장이 정확하게 지적했다.

다시 말해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집을 지킨다는 예로부터의 전형적인 가정, 즉 남편은 직장생활로 돈을 벌고 아내는 가사를 돌본다는 의식이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 사회에서 아내로서의 몫을 다해온 당신의 마나님은 무의식 중에 가정을 자신의 영역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니까 당신의 ‘우리 집’은 아내의 ‘성(城)’이다. 당신은 밤이 되면 일터라고 하는 당신의 ‘성’에서 아내의 성으로 돌아왔다가, 날이 밝으면 다시 자신의 성으로 돌아가는 존재나 마찬가지다.

그런 관점에서 아내가 있는 집을 보자면 당신은 그야말로 하숙생이나 다를 바 없다. 물론 아내들로서도 이따금 남편과 하루 종일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할 것이고, 낮에 남자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집안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휴일이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나 유럽을 비롯한 서양의 가정도 동양과 다를 바 없다는 반론이 나올 만하다. 하기야 미국에서도 남편이 일하러 가고 아내는 집을 지키면서 가사를 돌보고 육아에 전념하는 가정이 더 많긴 아니까. 그러나 서양에서의 남편과 아내의 역할은 좋은 의미에서의 개인주의가 뿌리내린 사회에서의 역할 분담으로, 서로의 역할을 충분히 인정함으로써 성립되었다. 서로 인정하니까 그쪽 남편들은 저녁에 귀가해서도 아내의 역할인 요리와 육아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에 부부가 똑같이 기뻐한다. 그로 인해 가정의 기반이 더 단단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일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미국에서 이혼이 흔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서로를 충분히 인정하여 역할 분담을 존중할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 결혼의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남편들은 전업주부인 아내의 역할 분담을 충분히 인정하고 존중하고 경의를 표하고 있을까?

아무래도 이 언저리에서 일본의 남편들, 특히 중, 노년층 남편들의 남존여비 의식이 슬며시 드러난다. 즉 남자들은 아내가 명확한 역할 분담에 의거하여 전업주부의 소임을 다한다고 생각하는 의식이 부족하다. 남자는 배짱, 여자는 애교라는 투로 남편은 밖에서 돈을 벌어 처자식을 먹여 살리고, 아내는 가사와 육아에 매달려 집을 지킨다는 낡고 고약한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명확한 역할 분담에 의거하여 아내가 전업주부의 몫을 맡고 있다는 의식이 있다면, 가정에서 무언가를 행할 때 우선권이 아내에게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리 없다. 전업으로 주부를 하는 것이니까 그 일터인 가정에서 아내를 우선시하는 게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남편이 많은 탓에 부부싸움이 벌어질라치면 “누가 먹여 살리는지 알기나 해!”라는 대사가 튀어나온다. 전업주부 가정의 경우 남편이 가져오는 수입의 절반은 아내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올바른 계산일 텐데도 말이다.

대다수 일본의 아내들은 속셈을 겉으로 드러내는 대신 그런 남편의 폭언에도 오로지 참고 살아왔다.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집이 자신만의 ‘성’이라는 의식이 강하여 낮의 대부분을 남편이 짐작할 리 없는 시간으로 사용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년퇴직 후 남편이 칠칠치 못한 꼬락서니로 대낮부터 빈둥거리기 시작했다면? 게다가 남편 쪽에서는 여태 먹여주었고, 또한 지금도 연금을 타서 먹여 살리고 있으니까 집안에서 뒹굴기로서니 무엇이 나쁘냐는 태도를 취한다면?

이 대목에서 아내는 참지 못한다. 귀찮기만 한 존재, 분리수거 쓰레기만도 못한 존재. 아내는 내심 이혼해버릴까 하는 유혹에 사로잡힌다. 어서 정신을 차리시라, 중, 노년 남편들이여!

앞서 예로 든 특집기사에는 아래와 같은 50대 아내의 말도 있었다.

“…하다못해 남편이 식사 정도는 스스로 준비하거나, 부부의 대화에 성실하게 응한다면 아내의 스트레스도 줄어들 텐데, 그런 것은 퇴직한 뒤 갑자기 실행하자니 어려울 수밖에 없겠지요.”

분명 그렇다. 정년 퇴직한 다음에는 늦으니까 이 책에서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나로 말하자면 내 사무실을 나만의 ‘성’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지라 사무실에서 자는 날이 더 많고, 아침저녁 혼자서 지낼 때마다 청소를 게을리 하지 않아 생활공간을 청결하게 유지한다. 깨끗하게 청소를 마친 다음 혼자서 동화를 낭독하거나 한껏 꿈을 펼치노라면 한없는 행복을 느끼게 된다. 홀로 마시는 소주가 마치 감로(甘露)처럼 달다.

하지만 지방에서 지내야 하는 날이 한 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시기에는 2, 3주 간격으로 아내의 ‘성’인 집으로 귀가한다.

그럴 때의 아내의 신선함, 집안의 좋은 분위기는 이루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당신에게 있어서 집이란 무엇인지 곰곰이 따져보라. 그리고 깨닫게 되면 당신은 분리수거 쓰레기 신세를 면할 수 있다.

 

 

근육 운동이 몸의 노화를 막는다

소 잃기 전에 외양간 고치기

 

3년쯤 전의 일이다. 이른 아침 걷기운동을 하는데 30미터쯤 앞에서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가는 사림이 있었다. 천천히 걸어간다고 했지만 실상은 꾸물꾸물 꿈틀거리며 필사적으로 지팡이에 의지하여 걷는다는 표현이 더 적합했다. 나는 그가 R씨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챘다. 그 순간 시속 5킬로미터로 걷던 내 발걸음이 시속 0.5킬로미터 정도로 떨어지고 말았다.

추월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R씨는 분명 나보다 한두 살 어렸으니까 당시 예순 살 가량이었다. R씨는 나의 단골 술집에서 종종 마주치는 인연으로 10여 년 전부터 알고 지냈다. 우연히 카운터에 나란히 앉게 되는 날이면 세상살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R씨는 냉동기기 회사에서 영업 담당자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서로 알게 된 초기에 그는 동료와 부하 직원들을 데리고 와 호쾌하게 술을 마셨다. 겉보기에도 대장부 기질이 그대로 드러났으며, 필경 업무에서도 실력이 이만저만 아닐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한번은 몇 살 어려 보이는 부인과 단 둘이서 술을 마시러 온 적이 있었다. 사이 좋게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부인이 “바깥에서 먹을 때는 좀 더 음식에 신경을 쓰세요” 하고 주의를 주었다. R씨의 테이블에 놓인 요리를 슬쩍 훔쳐보았더니 기름진 육류 요리에다 생선요리 등 평소 그가 즐기는 음식이 줄지어 있었다. 그런데 R씨는 부인을 향해 냅다 고함을 질렀다.

“또 잔소리야!”

그러자 부인은 입을 꼭 다물고 더 이상 참견하려 들지 않았다. R씨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전형적인 독불장군 남편 스타일이었다. 술집을 나갈 때도 자신의 지갑을 꺼내 계산하는 것을 봐서 가계 역시 좌지우지하는 듯 했다.

누가 봐도 활력이 넘치고 자신만만했던 R씨가 뇌 경색으로 쓰러진 것은 정년퇴직이 코앞에 닥쳤을 무렵이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재활훈련에 열중이라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런 R씨의 처참한 뒷모습을 처음으로 목격한 나는 돌아서버리고 말았다. 지나쳐가면서 “오랜만이네요” 하고 인사를 건넬 수도 있었지만, R씨의 평소 성격으로 미뤄보자면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내게 보이고 싶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만약 형편없는 몰골이었더라면 서로 안심할 수 있었겠지만, 그와 반대로 나의 생기 넘치는 모습이 그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 게 뻔했다.

내가 일부러 R씨의 사연을 소개하는 이유는 건강과 식사 내용이 얼마나 깊은 연관이 있는지를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남녀의 평균 수명 차이를 그대로 동년배 부부에 적용하자면 아내는 남편보다 7년 이상 더 살게 된다. 아내가 다섯 살 어리다면 아내는 남편보다 12년이나 더 산다. 그런 계산은 남편보다 아내 쪽이 더 열심히 한다. 그러면 그런 아내들의 노후에 대한 불안, 혹은 공포는 무엇일까?

그것은 중풍을 비롯한 병으로 남편이 쓰러져 수족을 못 가누는 날이 올지 않을까 하는 공포다. 반신불수가 된 남편을 수발하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부르르 온몸이 떨린다.

아직 건강한 당신은 ‘설매 내가 …’ 하고 도리질할지도 모른다. ‘돼먹지 않은 소리!’ 하고 벌컥 화를 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중, 노년층 아내들이 셋만 한자리에 모여도 그것이 화제가 된다는 사실을 당신은 꿈에도 모르리라. 그만큼 우리 주변에는 중풍이나 치매에 걸린 가족을 둔 경우가 많다.

사실은 그 반대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남녀의 평균 수명 차이가 선입견으로 작용하여 아내들은 반대의 경우는 상상하려 들지 않는다.

동네 슈퍼마켓에 갔다가 남편 수발에 곤욕을 치르는 당사자와 우연히 마주쳤다고 해보자. 미주알고주알 상황을 캐물은 다음 어떨 때는 영웅시하고, 또 어떨 때는 무한한 동정을 보낸다. 그러면서 자신은 절대로 그런 험한 꼴을 당하지 않겠노라고 주먹을 움켜쥐고 다짐한다.

이제야 당신 아내가 느끼는 노후 공포에 대해 납득이 가는가?

현명한 독자들이라면 ‘운동하는 즐거움’이 ‘소 잃기 전 외양간 고치기’ 라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대충 시늉만 내고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효과가 날 만한 양의 운동을 빈틈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계속하면, 나이가 들수록 저하되는 근육 기능을 문제없이 유지할 수 있다. 적어도 하강 곡선을 아주 느릿느릿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골절 따위의 부상을 입을 염려도 훨씬 줄어든다. 근력이 쇠퇴하면 곧잘 계단에서 넘어져 별 큰 충격이 아닌데도 뼈가 부러지기 쉽다. 그게 원인이 되어 반신불수가 되고 만 경우도 여럿 보았다.

운동은 근육의 유지와 강화뿐 아니라 지구력, 반사 신경 등 운동능력의 총체적 유지와 강화로 이어지므로 반드시 지속적으로 하기 바란다.

우리 집 마나님은 나에게 자극 받아 걷기 운동을 시작한 뒤 그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너무 간식을 즐기는 것이 옥에 티다. 그러면서도 체지방 수치에 신경이 쓰이는 듯 날마다 재고 있다. 얼마 전에는 수치를 재자마자 너무 높다고 외치면서 거실로 뛰쳐나왔다. 그때부터 아내는 지나치리 만큼 복근운동을 거듭하더니 다시 체지방 수치를 재는 눈치였다.

“아, 잘 됐어. 하나가 내려갔잖아!”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토록 열심히 운동을 했건만 고작 ‘1’ 밖에 내려가지 않는단 말인가? 체지방 수치라는 것이 엉터리가 아닐까? 그러나 어린아이마냥 들뜬 마나님을 목격하게 되자 “그럼 됐지 뭐!” 하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 ‘부창부수(夫唱婦隨: 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이에 따름. 부부의 화합하는 도리를 뜻하는 말)’ 라는 말을 떠올린 이가 만약 있다면, 그는 대단한 상상력의 소유자다. 이 말은 사실 폭군 남편의 이미지가 강하다. 남편의 말과 행동에 거역하지 않고 따른다는 봉건사상의 잔재가 남아 있다. 하지만 남편은 묵묵히 실천하고, 그 행동의 결과에 아내가 감동하여 자연스럽게 따른다는 뜻으로 이해한다면, 이것이야말로 21세기의 올바른 부부상이 아닌가! 물론 그 반대의 경우라도 좋다. 다시 말해 서로를 인정할 수 있다면야 어느 쪽이 남편이고 아내이든 상관없는 일이다.

 

 

10분 운동이 인생을 바꾼다

 

최근에 와서 이른 아침 걷기운동을 하면서 자꾸 위화감을 느낀다. 강변이 아닌데도 할미새가 길 위에서 모이를 쪼아 먹는 광경이 자주 눈에 띄기 때문이다.

할미새는 원래 물가에 살면서 작은 곤충을 잡아먹으며 산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동차가 뻔질나게 오가는 도로에 내려앉아 아찔한 순간을 연출하는 것이다. 며칠 전 조그만 공원을 가로질러 걷는 데 참비둘기 떼에 섞여 누가 뿌려주었는지 곡물류를 쪼아 먹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 나는 비로소 할미새가 물가를 벗어나 도로 위에까지 올라온 까닭을 알 수 있었다. 할미새는 참새처럼 잡식성 습관에 점점 길들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도쿄처럼 대도시에서 생겨난 것일까? 아니면 전국적으로 할미새의 참새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한 가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환경이 파괴되고 오염이 심해지면서 대도시의 하천에 할미새의 먹이인 곤충의 숫자가 예전에 비해 훨씬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멀리 떨어진 강으로 먹이 사냥을 가보지만 어디나 사정은 비슷하여 신천지를 찾아 뭍으로 올라오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뭍에는 물가가 아니더라도 숲으로 가면 아직 더러 곤충이 남아 있다. 처음에는 그런 이유로 할미새가 뭍으로 진출했을 듯 하다. 그러나 뭍으로 올라와 주변을 살펴보니 참새와 비둘기, 까마귀들이 살아 있는 먹이는 아니지만 평소 인간들이 버리거나 뿌려준 것을 포식하는 게 아닌가. 배가 고픈 나머지 슬그머니 쪼아 먹어보니 그런대로 맛이 괜찮아 할미새에게도 잡식성 습관이 길러진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에 불과하다.

할미새에게 생겨난 변화는 편한 길을 택한 결과로 여겨진다. 작은 곤충을 잡아먹는 것보다 잡식 쪽이 훨씬 편하게 먹이를 구할 수 있다. 할미새는 원래 커다란 바위틈이나 나뭇가지 사이를 누비며 먹이를 잡는 새이다. 때로는 깎아지른 것 같은 절벽을 멋진 포즈로 쏜살같이 비행하기도 한다. 그러던 것이 편하게 배를 채울 수 있게 되자 반사능력, 순발력, 날개와 다리의 근력이 차츰차츰 떨어졌으리라.

여기까지 글을 쓰고 나니 어찌된 영문인지 걸핏하면 계단이나 땅바닥에 주저앉은 젊은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은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하는 걸까? 그렇게 하는 편이 편하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허리의 근력이 약해져서 엉덩방아를 찧는 듯한 자세를 취하지 않고서는 오래 버티지 못하는 탓이다. 걷는 게 귀찮아서 얼마 되지 않는 거리도 자동차를 탄다. 그 바람에 다리와 허리가 허약해지고, 편한 자세를 취하자니 어쩔 수 없이 자꾸만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계단을 올라가는 젊은 이들을 뒤에서 쳐다보면 무슨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것처럼 다리를 든다. 끙끙대는 신음소리마저 들려오는 듯하다. 운동선수나 평소 몸 관리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닌 한, 이것이 요즘 대다수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당신이 중, 노년이고, 낯선 곳을 찾아가면서 가장 가까운 역에서 내렸다고 가정하자. 역 앞에서 물어보니 당신이 방문할 곳은 걸어서 1킬로미터를 더 가야 한단다. 그 말을 듣고 이내 택시를 타거나 두리번거리며 버스 정류장을 찾는 사람은 비실비실한 젊은이들과 같다. 편의점 앞이나 동네 공원에서 털석 주저앉지는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필경 역 플랫폼에서도 불과 2, 3분이면 열차가 도착할 터인데도 벤치에 앉으려고 할 것이다. 전철을 타고서도 한두 역만 더 가면 내릴 텐데도 어디 빈자리가 없나 하고 이리저리 둘러보느라 경황이 없을 것이다.

이런 상태의 중, 노년층의 사람들은 문득 정신이 들면 본인 스스로 깜짝 놀랄 정도로 다리와 허리가 약해졌음을 알아차린다. 그러니 툭하면 발을 헛디뎌 자빠지기 일쑤고, 운 나쁘면 뼈까지 부러지고 만다. 하기야 더 심한 경우에는 그 길로 자리에 드러누워 여생을 보내는 이들도 나타난다. 이건 결코 겁주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님을 알아주기 바란다. 나는 실제로 이제 60대의 나이인데도 길을 가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반신불수의 몸이 된 이를 알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그런 사례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나중에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는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부디 즐거운 마음가짐으로 다리와 허리를 단련하는 운동에 나시길 빈다. 그 효과는 부상을 예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음까지 신선하게 만들어 인생의 행복을 만끽하게 할 것이다.

자, 이제 이 항목은 끝이니까 책을 덮고 바깥으로 나서자. 30분이면 충분하므로 속보로 걸어보자. 아니, 지금 무어라고 했나요? 그럴 시간이 없다 구요!? 그렇다면 10분만 시간을 내시구려. 근육운동이라도 합시다. 그 10분을 아깝게 여길 것인가, 귀중하게 여길 것인가? 단 10분의 운동을 성가시게 여길 것인가? 즐겁게 여길 것인가? 하는 태도에 따라서 앞으로의 당신 인생에 엄청난 간극이 생겨나리라.

 

 

여유로운 여행이 감수성을 풍부하게 한다

멋들어진 나그네길

 

여행의 진수는 어디에 있을까? 관광이건 출장이건 출발지에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다양한 만남이 있으면, 견문이 있다. 즉 여로 자체에 묘미가 있다. 무엇과 마주칠지 모르며,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으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런 설렘이 얼마나 즐거운가. 물론 목적지에 도착한 다음에도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만남이 기다리고 있고, 기대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을 보고 듣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골인지점에 닿았다는 안도감이 더 크게 마련이어서 여로에서의 만남이나 견문에 비해 설렘의 진폭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나는 동화 낭독회를 시작한 후로 두메산골 마을이나 외진 동네를 찾아가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 곳에서 묵을 때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5, 6킬로미터 가량을 걷는 운동이다. 산골마을에서 그 정도 걷노라면 도중에 골짜기를 지나고 가파른 벼랑을 내려다보기도 한다. 야생 원숭이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고, 사슴도 목격했다. 숲에서는 조류도감에서나 보았던 피리새 와 물총새도 만날 수 있었다. 덤불을 헤치고 슈욱! 하는 소리를 내면서 잽싸게 몸을 감추는 산무애뱀(머리에서 발끝까지 네 개의 줄무늬가 있는 뱀과의 하나)과 맞닥뜨렸을 때에는 감격한 나머지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내가 야생 산무애뱀을 존 것은 실로 50여 년 만의 일이었다.

걷는다는 행위는 ‘내가 자연 속에서 살아간다, 삶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게 해주어서 마음이 깨끗해진다. 무엇이 귀한 것인지 깨닫게 해준다.

그러나 최근의 여행에서는 어쩐지 여로의 의미가 퇴색하고 말았다는 인상을 진하게 받는다. 하기야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에 여로라는 표현이 어울리기나 할까. 그것은 육지와 바다에서 아득하게 먼 공중을 밀폐용기 속에 갇혀서 이동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고속열차 여행도 다를 바 없다. 이 또한 밀폐용기 안에 앉아 고속으로 이동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옛날의 기차 여행은 그래도 여로가 있었다. 날씨가 좋은 시기라면 차창을 올린 채 흘러가는 풍경을 유유히 즐길 수 있었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면서 어린 시절 들판을 쏘다니던 기억을 되살리기도 했다. 기차가 역에 멈추어 서면 도시락이나 아이스크림을 파는 행상들이 올라와 떠들썩해졌다. 메뚜기와 매미가 차 안으로 날아들기도 했다. 완행열차가 시골 간이역에 서자 열어둔 차창으로 정신 없는 참새가 날아들었다가 화들짝 놀라 반대편 창문으로 달아난 적도 있었다.

선박 여행도 나름대로 여로가 있었다. 돌고래들이 떼 지어 노니는 광경을 목격하는가 하면, 운이 좋은 날이면 흑고래나 향유고래의 늠름한 점프와 다이빙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별들이 온통 밤하늘을 수놓은 갑판에서 바닷바람을 낮으며 사랑을 속삭이는 것도 최고의 여정(旅情)이리라. 밀폐용기인 제트 여객기나 고속열차 안에서 무슨 수로 로맨틱한 사랑을 나눌 수 있으리오.

여로의 묘미는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시시각각 바뀌는 마을의 서로 다른 공기, 냄새, 인정 등을 오감으로 느끼는 데 있다. 대다수 현대인들은 출발점과 목적지를 고속으로 달리는 밀폐용기로 오가는 것이 여행이라고 믿는 듯하다. 여로에서 축적할 수 있는 즐거움이나 넉넉함을 상실한 여행은 혼이 담겨 있지 않은 불상(佛像)과도 같은 게 아닐까?

예를 들어 당신이 나이아가라 폭포 구경이 핵심인 단체여행에 참가했다고 가정하자. 비행기를 타고 가서 버스로 이동하여 거대하게 펼쳐진 폭포 앞에 섰다. 물론 감동이야 있을지 모르나 그 빡빡하기 짝이 없는 일정에 압도되어 당신은 말문이 막히고 말 것이다. 그러니 10년 세월이 흐른 뒤 당신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떠올릴 수는 있어도 그때의 감동을 있는 그대로 되살리기는 어렵다. 여정을 축적하여 얻은 감동이 아니었던 탓이다. 비행기는커녕 기차와 버스도 없던 시절, 나이아가라 폭포에 관한 소문을 듣고 긴 여로에 나선 이가 있었다고 가정해볼 때, 그가 온갖 다채로운 체험을 하며 마침내 거대한 폭포 앞에 선 순간의 감동, 그 감동과는 비교조차 무색한 일임이 분명하다.

여로에서 이런저런 경험을 쌓는 즐거움을 잃어버린 현대인은 자연이 베푸는 혜택에서 벗어나 있다. 그런 상태로 넉넉하게 마음을 채우지도 못한 채 어딘지 모르게 허둥대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살아가는 듯한 느낌만 든다. 필경 인생이라는 여행에서도 여로를 잃어버리고 헤매는 게 아닐까?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유유자적한 여행을 시작하자. 이미 시작한 이들은 여로에서 축적한 멋진 체험에다 또 다른 다양한 체험을 쌓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게 된 당신은 훌륭한 감수성을 지녔음이 분명하다.

 

공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드나든다

 

 

최근 들어 우리 집 마나님의 걷기 솜씨가 무척 향상되었다는 인상을 받곤 한다. 아니, 솜씨라기보다 걷기의 즐거움에 크게 눈을 떴다고 해야 할까. 속보로 고작 3, 4킬로미터 정도 걷는 모양이지만, 도중에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오기까지 한다.

‘지금 공원 벤치에서 쉬고 있어요. 나무에 새싹이 많이 돋아나있네요. 마음이 다 신선해져요.’

‘당신에게서 자극 받아 더 멀리까지 걸었어요. 당신 덕택에 걷는 것이 수월해져 아주 즐거워요. 고마워요.’

아직 나를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지만, 이따금은 아내의 발걸음에 맞추어 함께 걷기라도 해야 할까 보다.

“이봐요, 걸어서 여행을 해보면 어때요? 그런 여행이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감수성도 풍부해질 테고…”

예전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아내의 입에서 이런 말을 끌어낼 수 없었다.

다자이 오사무(大宰治: 20세기 중반에 활동한 소설가. 옮긴이)는 1944년 봄, 3주 동안 아마도 그의 생애에서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가장 충실한 여행을 경험했다. 출판사가 의뢰한 향토 기행을 집필하기 위해서 고향 쓰가루(津輕)를 방문하게 된 것이었다. 이 여행으로 탄생한 작품이 <쓰가루>다. <쓰가루>는 물기 오른 싱싱한 필치로 그려졌으며, 전체적으로 감정이 잘 억제된 작품이다. 그로 인해 다자이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나로서는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호감이 간다. 읽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듯이 이 작품의 절정은 30년 만에 유모였던 다케와 재회하는 대목이다. 다케는 만남의 기쁨을 호들갑스럽게 표현하지 않는다. 만면에 웃음을 머금지도 않는다. 그저 평상시나 다름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자이와 운동회를 구경한다. 마침 그 시간에 다케의 집 근처 초등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다자이가 찾아갔을 때 다케는 학교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운동회를 구경하던 참이었다.

보통이라면 30년 만의 재회니까 그 동안 쌓인 이야기를 나누느라 운동회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케는 전혀 어색함이 없이 자연스레 운동장에서 뜀박질하는 아이들에게 눈길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렇지만 다자이는 그런 다케의 모습에 안도한다.

‘그래도 나로서는 아무 불만이 없다. 그래, 오히려 너무 안심이 된다. 다리를 쭉 뻗고 앉아 무심코 운동회를 구경하면서 가슴속은 그저 평온하기만 했다. 이제 무엇이 어떻게 되어도 전혀 상관없는, 무념무상의 상태였다. 평화란 이런 기분을 일컫는 말일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이때 난생처음 마음의 평화를 체험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솔직한 문체로 써내려 간 이 장면을 나는 몇 번씩이나 되풀이해서 읽었다.

이 작품 전체에 떠도는 유유자적한 여로의 이미지는 내게 너무 부럽고 매력적인 것이다. 특히 다케와 재회하기 전 쓰가루 서해안 여행은 곳곳에 에메랄드 빛 눈부신 반짝임이 가득 차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령 쓰가루 서해안 남쪽 항구인 후카우라(深浦)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다자이는 현지 사람들로부터 ‘관음보살’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절에 참배한 뒤 이렇게 쓴 대목이 나온다.

‘나는 절에 가서 참배하고 나자 이제 후카우라를 벗어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완성되어 있는 동네는 나그네에게 서글픈 느낌만 안겨줄 뿐이다. 나는 해변으로 내려가 바위에 걸터앉아 어떻게 해야 옳은지 몹시 망설였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도쿄의 누옥에 있는 아이가 얼른 떠올랐다. 되도록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으나 마음이 공허한 큼을 비집고 아이의 얼굴이 불쑥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동네 우체국으로 갔다. 엽서 한 장을 사서 집으로 짤막한 소식을 전했다. 아이는 백일해를 앓고 있었다. 게다가 그 어미는 이제 곧 둘째 아이를 낳게 된다. 가슴이 답답해져 도저히 참지 못한 나는 처음 마주친 여관으로 들어갔다. 종업원이 안내해준 더러운 방으로 들어가 각반(脚絆: 걸음을 걸을 때 발목 부분을 거뜬하게 하기 위하여 발목에서부터 무릎 아래까지 돌려 감거나 싸는 띠)을 풀면서 ‘술 좀 가져와요!’ 하고 부탁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시간의 흐름에 완전히 녹아 들고 만 것 같은 느린 여행. 다자이는 구태여 의식한 것 같지도 않으면서 거기에 도취해 있었다. 이야말로 여로의 묘미를 그대로 드러내는 묘사가 아닌가. 나에게 <쓰가루>는 유유자적한 여로를 보여주는 훌륭한 지침서이다.

 

 

내 진짜 모습을 사랑한다

예의 바른 나 vs 솔직한 나

 

양면성을 지니는 것에 대해 오해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겉으로는 번듯한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뒤로는 범죄에 발을 담그고 있다거나, 양처럼 순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실제로는 교활하기 짝이 없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평소 가지고 있는 자신의 얼굴에 더하여 자타가 함께 즐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얼굴을 갖자는 뜻이다.

자, 당신이 그런 양면성을 이미 갖고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당신 아내의 양면성이 무엇인지 한 번 찾아보기로 하자.

당신의 아내는 일단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이는 미인이다. 더구나 예의범절이 바르다. 그런데 집에서 모임이라도 있으면 당신이 있건 없건 흥청망청한다. 양면성을 지니는 즐거움을 알아차린 당신은 자신의 서재로 들어간 다음 문에 귀를 바짝 대고 거실에 있는 아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거실에서 들여온 것은 아내의 목소리가 아니라 아내가 거침없이 터뜨린 방귀 소리뿐이었다. 그것이 아내의 또 하나의 면모인 셈이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보태자면, 아내가 말하거나 터뜨리는 방귀 소리를 남몰래 엿듣는 당신의 행위는 당신의 또 다른 일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처럼 두 사람의 또 다른 면모는 즐겁기는 해도 잔인한 행위라고 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아무래도 인간은 무의식 중에 양면성을 드러내어 정신의 균형을 맞추는 능력이 있는 듯하다.

어느 평일의 이른 아침, 내가 좋아하는 걷기 코스에서 애완견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서로 상대의 애완견을 칭찬해주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얘는 항상 털에 윤기가 나지만 오늘은 더 그런 것 같아요. 반짝 반짝거리잖아요!”

칭찬해준 개를 보니 그다지 윤기가 있지도 않았다. 입에 발린 소리였던 셈이다. 그런데 칭찬 받은 애완견 주인은 한 술 더 떴다.

“댁의 개야말로 눈이 똥글똥글하고 콧날이 오뚝한 게 순종 중의 순종이로군요.”

정작 칭찬 받고 있는 개들은 처음에는 서로 냄새를 맡으며 관심을 보였으나 이제는 모른 척 하품을 하기도 했고, 어서 산책이나 계속하고 싶다는 듯이 주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두 개의 주인은 헤어져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 중 한 사람이 내 방향과 같았으므로 곁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바로 그 순간 그 삶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곱이 낀 꼬락서니 하고는! 얘, 저 녀석은 네 발언저리에도 쫓아오지 못하는 잡종이야, 잡종!”

그것으로 됐다. 당사자인 개야 어찌 되었든 개 주인 쪽은 확실하게 스트레스가 해소되었으니까. 혹시 이때의 중얼거림이 시기심이나 질투, 원망으로 들렸다면 스트레스 해소는커녕 개 주인의 마음의 균형을 무너뜨렸을 것이다. 하지만 내 귀에 들려온 그 중얼거림은 너무나 밝고 꾸밈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솔직한 나’를 드러내어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모습인 것이다.

그건 그렇고, 어느 날 우리 마나님이 아주 들뜬 표정으로 싱글벙글 거리면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여보, 여보! 체지방 수치가 25로 내려갔어요. 정말 잘 됐지 뭐예요!”

흡사 로또복권 2등에라도 당첨된 사람처럼 기뻐했다. 항상 30을 가운데 놓고 올랐다가 내렸다가 공방을 주고받으면서 웃음을 머금기도 하고 울상을 짓기도 했으니, 단숨에 수치가 5나 내려갔다니 기뻐서 펄쩍펄쩍 뛸 만도 하다.

그러나 나는 덩달아 기뻐해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복잡한 심경이었다. 왜냐하면 아내는 불과 이틀 전까지 나와 함께 동화 낭독회를 하느라 3박 4일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이제 막 돌아왔기 때문이다. 출발한 당일부터 강연이 있었는가 하면, 멀리 떨어진 두 섬을 배로 오가야 했다. 그 바람에 우리 마나님은 섬에서 하룻밤을 지내자마자 몸 상태가 나빠져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먹은 음식을 토하는가 하면 설사 증세까지 나타났었다. 섬의 병원에서 바이러스 감염이란 진단이 내려져 두 시간 동안 링거 주사를 맞고 약을 타서 숙소로 돌아왔다. 식욕이 거의 없었다. 그런 상태로 예정된 스케줄을 강행했다. 도쿄로 돌아와 이튿날을 푹 쉬었으나 음식은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런 몸으로 체지방을 체크했으니 그 수치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었다.

어찌 되었든 아내는 즐거운 표정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그러더니 아니나 다를까, 오후 3시가 지나자 케이크와 과자를 잔뜩 사와 간식으로 먹더니 오후 5시경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서는 저녁식사를 하고 밤이 이슥해지면 재가 출출해졌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또 무언가를 먹으리라. 안 돼, 이래서야 이틀만 지나면 “다시 30으로 올라가버렸네!” 하면서 얼굴이 새파래질 게 분명했다. 나로서는 아침에 막 사무실로 나온 아내와, 오후에 눈이 번쩍이면서 간식을 찾는 아내가 전혀 다른 사람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아내가 돌아간 뒤 나는 체지방 수치가 30이 아니라 40, 50, 60이 된 아내를 떠올리곤 나도 몰래 ‘으하하하하’ 하고, 무시무시하고 악마적인 뉘앙스가 잔뜩 밴 웃음을 터뜨렸다.

엇, 이것이 나의 또 다른 일면인가? 그렇다면 영락없이 스트레스가 해소되었잖아!

 

하루 한 번 나르시시스트가 되자.

 

당신은 하루 한 번쯤은 나르시시스트가 되는가? 벌써 습관화된지 오래라면 남들로부터 “참 젊으시군요!” 하는 인사를 자주 들을 것이다.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지요?”

이런 질문이 나오면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대답한다. 대답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상대는 “훨씬 젊게 보이시는데요!” 하고 짐짓 놀란 표정을 짓는다면 당신은 훌륭한 나르시시스트로 등극한 셈이다.

당신은 분명 하루에 몇 번이고 거울 속의 자신을 향해 ‘역시 나는 젊어! 그러니까 만나는 사람마다 이구동성으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고 야단들이지!’ 라고 혼잣말을 던지리라. 그러면 더욱 더 당신은 나르시시스트가 되어 계속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당신 요사이 더 젊어졌어요!”

당신 아내가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감탄한다면 당신은 나르시시스트의 최고봉에 올랐다고 자부해도 좋다.

그런데 당신 아내가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인다면 이제 당신이 나서서 아내를 나르시시스트로 만들어줄 의무가 있다.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전혀 힘든 일이 아니다. 무엇이든 상관없으니까 아내를 칭찬해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젊다느니 아름답다느니 하면서 너무 직설적으로 칭찬하면 도리어 아내가 부끄러워할 가능성이 크다. 은근슬쩍 옆구리를 찌르는 식으로 칭찬해야 효과가 난다. 예컨대 요리 솜씨를 추켜세운다.

“당신이 만드는 요리는 정말이지 맛이 특별해!”

대다수 아내들은 평소 자신의 요리 솜씨가 뛰어나다고 다소 우쭐하는 편이니까 이런 칭찬을 내심 아주 반긴다.

“당신은 감수성이 여간 풍부하지 않아!”

이런 칭찬은 아내가 무언가를 보면서 감탄을 터뜨릴 때 즉시 해 주어야 한다. 아내의 자존심이 한껏 부풀어 오를 것이다. 이처럼 아내가 즐거워할 칭찬을 거듭한다. 인간은 반드시 칭찬에 반응한다. 그것은 사실 착각에 지나지 않지만 ‘바람직한’ 착각이니 아무 염려 없다.

이로써 아내는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자신 있는 행동을 취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실제로 요리가 더 맛있어지고, 감수성도 더 풍부해진다. 칭찬해준 사항뿐 아니라 온몸이 젊어지면서 생기발랄해진다. 인간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만약 당신이 여태 나르시시스트가 되지 못하고, 남들로부터 젊어 보인다는 소리를 한 번도 들은 적 없다면, 그것은 영락없이 노력 부족 탓이다. 제대로 특별훈련을 받기로 하자. 하루 한 번, 되도록 시간을 들여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고 무슨 말이든 좋으니 자꾸 칭찬을 해준다. 낯이 간지러워 그걸 어떻게 하느냐고 주저한다면 당신은 점점 추하게 늙어갈 따름이다. 감수성도 메말라 버려 아내보다 10년, 15년 먼저 훌쩍 저 세상으로 떠날지 모른다.

자,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모든 것이 당신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감을 잃고, ‘난 틀려먹었어!’ 하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중, 노년층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또한 그렇게 자신을 비하하는 사람은 곧잘 남까지 시기하고 질투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에 비해 하루 한 차례 습관적으로 나르시시스트가 되는 사람은 분명히 자신의 아픔을 잘 이해한다. 그리고 그것을 긍정적인 요인으로 바꿔가려는 의식이 저절로 작동하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과 가까운 이들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회생활을 함으로써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자기 자신도 다른 누군가를 밀어주고 있을지 모르나, 그 역시 다른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자각을 한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나르시시스트가 된다는 것이 주변에 폐를 끼치든 말든 제 마음대로 행동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제발 착각하지 말기 바란다.

나르시시스트의 습관이 몸에 배면 아름다운 것, 소중한 것, 뛰어난 것 등에 감정이입하기가 수월해진다. 골목길을 가다가 어느 집 정원에 핀 아름다운 꽃을 보고 걸음을 멈춘다. 이때 아름다운 그 꽃에 감정이입하기도 한다.

‘나라고 하는 꽃의 생명은 짧으나 이렇게 지나가는 사람에게 감동을 안겨주고 그의 마음을 깨끗이 씻어준다. 그것만 해도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이런 식으로 감정이입 하는 것 만으로도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 진심으로 감상하며 즐길 수 있다. 한걸음 나아가 지금까지 예사로 보아 넘겼던 것들 가운데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소중하게 여기게도 된다. 물론 그것은 꽃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인다.

 

진짜 내 모습을 사랑하려면 나를 긍정하고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것뿐만 아니라 나의 부정적인 면도 알고 고쳐나가야 한다.

멋지게 변해가고 있는 당신을 보며 당신의 아내는 요즘 내심 이런 생각을 하지나 않을까?

‘저 양반, 요즈음 너무 겸손하고 아량이 넓어졌어. 왠지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그저 모든 것을 용납한다는 너그러운 눈빛을 하고 있잖아!’

예전의 당신은 어땠는가?

동료가 “자네는 지나치게 비협조적이야!” 라고 나무랐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당신은 벌컥 화가 치밀어 “부하의 의견에도 귀 기울이고, 좋은 아이디어는 즉시 받아들이고 있어. 자네야말로 비협조적이잖아!” 하고 맞받아쳤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식으로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함께 직장생활을 한 응어리가 남는다.

사실 따지나마나 양쪽 다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아마도 동료는 언젠가 당신이 비협조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봤고 그 일만 기억하여 비난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의식적으로 부하들의 의견을 듣고 받아들이고자 신경을 써왔고, 당연히 동료의 비난이 얼토당토않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제3자가 봐서 비협조적으로 비친 자신의 행동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물론 거꾸로 당신을 비난하여 마음에 상처를 입힌 동료 역시 당신의 협조적인 태도를 제대로 관찰하지는 못했다.

인간이란 남의 결점만 찾으려 든다. 스스로 자신이 없으니까 남의 흠을 찾아내어 우월감을 갖거나 안심하면서 자신을 달랜다. 반대쪽 입장에서는 남이 자신의 흠을 들추니까 엄청나게 화가 치밀어 허둥지둥 반격에 나선다. 이것을 두고 속이 좁다고 한다. 당신이 속 좁은 사람이라면 당신의 아내가 당신에게 겸손한 태도를 위하거나 관대해질 리 없다.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당신은 이제 예전의 당신이 아니다. 지금 당신은 아무리 오해와 편견에 가득 찬 험담을 들어도 이렇게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아, 그렇군. 저 사람은 내 얼굴만 보고 그런 말을 하는군. 하긴 나로서야 미처 몰랐지만 분명 나에게 그런 면이 있을지 몰라.’

그렇다. 남들은 당신의 어느 한 부분만 들추어 성급한 결론을 내리려 든다. 거기에 일일이 화를 낸다면 스트레스만 쌓인다. 현명한 대처법은 오히려 험담을 역전시키는 것이다.

‘그렇군, 그래! 다들 날카로운 지적을 해주었어. 얼마나 다행이야? 그런 지적을 받을 때마다 기꺼운 마음으로 듣고 나 자신을 반성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는 거야!’

스스로 인정함으로써 부정적 요인이 긍정적 요인으로 전환된다. 이 정도면 당신도 나의 진의를 어렴풋이나마 알아차렸으리라고 믿는다.

당신은 이제 인간관계의 폭이 대단히 넓고, 모든 것을 감싸 안을 수 있을 만큼 넓은 도량의 소유자가 되었다. 자, 그런 당신을 기다리는 앞으로의 인생은 한없이 풍요로우므로 보폭을 크게 넓혀 걸어보자. 당신 곁에는 어느새 당신의 아내가 달려와 팔짱을 끼고 있다. 남들이 아무리 결점을 찾아내려고 눈에 불을 켜보았자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아내의 얼굴이 행복감에 번쩍번쩍 빛나고 있으리라.

 

 

 

성숙기
다섯가지 즐거움에 통달한 당신, 무병장수의 길이 보인다

 

아내와 함께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자

 

자, 이제 여기까지 온 당신에게는 무병장수로 향하는 빛나는 길의 입구가 보일 것이다.

아내는 점점 젊어지는 당신의 변화에 선망과 존경의 마음을 품고 항상 당신을 지켜볼 것이다. 마음이 느긋해진 당신은 아내와 더불어 열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어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우리 함께 해봅시다”며 손을 내밀게 되지 않을까? 무병장수의 길을 함께 손잡고 걸어가기 위하여…

당신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듯이 예전의 당신이라면 이런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시절 당신을 아내는 어떻게 여겼을까? 앞서 인용한 적이 있는 어느 주간지의 특집기사를 이 자리에서 다신 인용하기로 하자. 그것은 그 잡지가 특집을 위해 실시했던 설문 조사의 해설 부분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누구와 결혼하고 싶은가’ 하는 물음에 ‘다른 상대’ ‘가능하다면 다른 상대’를 고른 여성이 거의 절반인 45.5%에 달했다. 그에 비해 남성은 43.9%에 불과했다. 거꾸로 현재의 상대를 다시 고른 비율은 여성이 26%, 남성은 38%였다. 또한 정년퇴직 후 상대에게 바라는 것으로 아내의 37%가 ‘아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지 말 것’이라고 답한 데 비해 ‘남편에게만 매달리지 말 것’이라고 답한 남편은 고적 9.3%에 지나지 않았다. 의식의 차이가 이토록 뚜렷하게 드러났다.

참고로 이 조상의 대상은 50대 기혼 남녀 510명이었다. 남성들의 경우 거의가 아직 정년이 먼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여성의 입장에서는 아직 남편이 집으로 자신의 수입을 가져오는 존재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상대’ ‘가능하다면 다른 상대’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50대 아내가 거의 절반에 육박했다니. 남편들로서는 비수로 가슴이 찔린 것이나 다름없는 결과였다. 또한 냉정하게 50대 아내들의 본심을 읽을 수 있다는 결과이기도 하다.

만일 이미 정년 퇴직한 60대 남편이 있는 아내만 골라 똑같은 질문을 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모르긴 해도 그 수가 수직 상승할 것이다. 한편 50대 남편의 대다수가 정년 후에 비애를 느끼고 가슴앓이를 하리란 점도 명백해졌다. 그것은 정년 퇴직한 다음 ‘남편에게만 매달리지 말 것’을 희망한 남편이 불과 9.3%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어쨌든 50대 남편과 아내 사이에 이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왜 심각한가?

결혼은 저마다 다른 궤도를 달려온 남녀가 만나 하나의 궤도로 합쳐지는 것이라고 전제하자. 둘 사이가 뜨거운 시기에는 영원히 두 사람의 궤도가 하나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리라. 하지만 원래부터 자라난 환경과 성격, 가치관이 다 다른 완전한 남끼리 하나의 궤도에 오른 것이니, 사실은 신혼기에서부터 둘 사이가 슬슬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신혼 때는 서로 사랑이 넘쳐 눈을 가려버리는지라 둘 다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던 것이 차츰차츰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서로 차이를 의식하기에 이른다.

이 시기에 ‘타협’ 이라는 것이 생겨나고, 그 결과로 가정 내에서의 역할 분담이 성립된다. 여러 가지 역할 분담을 상상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일반적인 경우로 남편은 직업에 투철하고, 아내는 전업주부의 길을 택한다고 하자. 자녀가 태어나면 아내는 육아에 전념하게 되고 남편 역시 아내의 부담을 줄이고자 가사를 돕는다. 휴일이면 행락을 즐기느라 희희낙락하며 자동차의 운전대를 쥐리라. 그러니 이런 유형의 남편은 자녀의 성장에 보람을 느끼면서 한층 더 일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 처자식을 제대로 부양하겠다는 책임감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부부 사이의 틈이 더 벌어져 있음에도 역할 분담이 원만하게 이뤄지는지라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바꿔 말하자면 역할 분담으로 각자에게 맡겨진 일을 해내느라 바쁜 나머지 다른 것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맞벌이 부부는 약간 다르다. 역할 분담에 문제가 생기면 둘 사이의 틈이 즉각 표출되어 이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혼은 하나의 궤도를 달리던 가정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고장 나 멈추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이나 아내가,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둘 중 누군가가 자녀를 데리고 전차에서 내리는 사태를 뜻한다. 이시기를 무사히 넘긴 부부일지라도 자녀가 성장하여 분가한 다음 서로의 갈등이 깊어져 마찰을 빚는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이런 시기야말로 부부 사이의 틈을 메워줄 ‘함께 열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일 중독에 빠진 남편은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일에 파묻혀 지낸다. 아내는 아내대로 역할 분담의 상당 부분이 사라짐에 따라 남편과는 관계없이 이런저런 즐거움을 스스로 찾아내게 된다. 이렇게 해서 부부의 틈이 메워지지 않는 채 일종의 각 방 쓰기 혹은 한 지붕 두 살림과 같은 어정쩡한 상활 아래 놓이고 만다. 이런 상황을 똑같은 궤도를 두 량의 전차가 달리는 것에 비유해보자.

두 량의 전차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앞쪽 전차는 아내의 터전인 가정이다. 뒤쪽 전차는 남편의 일터, 혹은 직장이라고 해두자. 남편은 낮이면 열심히 직장에서 일한 뒤 저녁이 되어서야 가정에 돌아온다. 이튿날 아침이면 이내 가정을 나가서 직장으로 들어간다. 이처럼 구분이 잘 되어 있을 때에는 문제가 없다. 남편이 명퇴 하거나 잘린 다음이 낭패다. 다시 말해 두 쪽 전차가 잘려나가 남편이 하루 종일 앞쪽 전차에 아내와 함께 타고 있게 된 것이다. 서로의 심리적 갈등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한계점에 도달하면 일촉즉발의 상태에 빠진다.

이번에는 두 량의 전차가 부부의 심장에 비유하기로 하자. 두 사람의 심장은 처음에는 실로 단단히 묶여져 있었다. 그렇다고 하나의 심장이 된 것은 아니다. 두 심장이 실로 묶여졌을 따름이다. 그 실이 점점 느슨해져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끊어져 있다. 아내의 심장은 속도가 붙어 자꾸 앞으로 달려가는데, 남편의 심장은 제자리걸음이다. 이렇게 되고 나면 만사 끝장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매력적인 중,노년이 되기 위한 열쇠를 제공하고자 한다.

당신이 즐겁게 노력해나가면 당신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길도 변하지 않을 리 없다. 두 사람의 심장은 단단히 묶인 그대로이며, 그 실을 타고 언제나 따뜻한 정이 오갈 것이다. 부부는 일심동체다. 그러니 두 사람의 심장을 자유롭게 오가도록 만드는 것, 즉 서로 마음이 통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당신 아내는 다시 태어나더라도 또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 할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몰입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당신이 등산을 즐기고 아내는 산나물 캐기를 좋아한다면 지도를 들고 방방곡곡 산을 찾아 다니도록 하라. 산나물의 종류는 깜짝 놀랄 만큼 많다. 당신은 처음 가본 산을 오르면서 등산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아내는 지천으로 널린 산나물을 채취하여 집으로 돌아와 식물도감을 펼쳐 놓고 일일이 이름을 확인하며 탄성을 지른다.

사교댄스를 함께 배워도 좋다. 아내에게 당신은 이미 빛나는 존재로 각인되었으므로 무엇을 함께하든 아내가 기꺼이 따라오리라. 이런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당신은 골인 지점 앞으로 멋지게 다가선 것이다.

 

아내는 라이벌이다.

 

혹시 당신의 아내가 상당히 고상한 취미를 갖고 있는 건 아닌가? 문학, 그림, 꽃꽂이, 다도, 서예, 바이올린, 피아노… 또는 스키, 테니스, 수영 같은 스포츠.. 그도 아니면 장기나 바둑, 체스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회사에 나가고 없는 동안 아내는 얼마든지 솜씨를 연마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무언지 확인하여 당신이 한번 도전해보면 어떨까?

“당신이 늘 하는 게 참 재미있어 보이는걸! 나도 해보고 싶은데 좀 가르쳐줘요.”

예전 같았으면 당신의 이런 부탁에 아내는 노골적으로 눈살을 찌푸렸으리라. 그것은 당신이 없는 세계에서 유유히 해방감을 맛보면서 몰두해온 취미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반색하며 도움의 손질을 뻗쳐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걸음 늦게 아내의 취미 영역에 발을 디딘 당신이지만, 날로 솜씨가 늘어간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내를 경쟁자로 여기기에 이른다. 그런 사실을 아내도 눈치채고 당신에게 경쟁의식을 품게 된다. 이와 같은 경쟁 관계는 모든 면에서 훌륭한 결과를 초래한다. 호적수가 됨으로써 서로 상대를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당신은 아내를 경쟁 상대로 여겨본 적이 없지 않았을까?

은퇴한 후 인생에서 가장 바람직한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상대는 바로 아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은퇴 후의 인생이 결코 여생(餘生), 즉 ‘남은 인생’ 이 아님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것은 오히려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는 멋진 인생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가 제2의 자기 자신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친구 이상으로 아내가 제2의 자기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을 때 아내 역시 ‘남편은 제2의 나 자신’ 이라고 맞장구 치게 된다. 당신과 당신의 아내는 어느 한쪽의 고집대로 쏠리지 않고 공평무사하게 인생을 장식해나갈 것이다.

 

이따금 헤어져 지내자

 

얼마 전 걷기운동을 하며 강변 길을 지나치다가 자전거를 세워두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일흔 살 전후의 어떤 부인이 눈에 들어왔다. 혼잣말치고는 목소리가 너무 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춰졌다. 자전거 옆 1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흰색과 갈색이 섞인 얼룩 고양이가 소시지 비슷한 걸 정신 없이 먹고 있었다.

“넌 매운 음식을 무척 좋아하는구나! 그거, 괘 비싼 거야.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먹어야 한단 말이야!”

그 부인은 매일인지 아니지는 모르나 여하튼 수시로 얼룩 고양이를 만나러 와서 음식을 던져주는 모양이었다. 이미 저녁 8시가 지난 때였다. 그 얼룩 고양이가 강변 숲에 사는 들 고양이라는 사실은 쉬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중에 물도 먹어야 해! 그 소시지는 맵다니까. 자, 그럼 잘 자! 또 올게.”

그 나이든 부인은 근처에 사는 게 아니라 꽤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것 같았다. 얼룩 고양이가 소시지를 다 먹어 치우기 전에 작별 인사를 던지더니 자전거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다시 걷기 시작하면서 생각했다. 저 부인은 틀림없이 홀로 살고 있으리라.

부인과 얼룩 고양이가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하루에 한 번, 혹은 며칠에 한 번 대하는 짧은 만남에도 둘 사이에는 남들이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강한 유대감이 생겨났다. 만나는 시간에 견주어 헤어져 있는 시간이 훨씬 길더라도 얼룩 고양이가 항상 그 부인의 마음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존재임이 분명하리라. 얼룩 고양이가 평소 그 부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말 못하는 동물의 경우인지라 이 자리에서 따지지 말기로 하자.

그런데 그 부인이 진짜로 홀로 산다고 가정하고, 만약 얼룩 고양이와 아예 한집에서 지낸다면 어떨까? 자전거를 타고 만나러 와서 얼룩 고양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던져주면서 대단히 만족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부인. 그녀가 얼룩 고양이와 동거를 해도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필경 얼룩 고양이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고, 지겨워서 쳐다보기조차 싫을 때도 생겨날 것이다. 그러다가 숫제 내쫓아버릴지도 모른다. 만약 부인과 얼룩 고양이를 부부 사이로 치면 어떻게 될까?

부부니까 대개의 경우 참고 견디리라. 물론 “참기는 무얼 참아, 이혼해버리지!” 하는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나는 이혼할 만큼 명백한 갈등이 없는 대다수 부부의 경우를 예로 드는 것이다. 부부니까 참는다. 그렇지만 꾹 참고 마음속으로 억압의 뚜껑을 다음으로써 불완전 연소와 같이 그을림이 뭉친 응어리가 생겨난다. 그런 상태에서 무슨 수로 상대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일 수 있겠는가?

여기가 중요하다. 설령 이 책에 적힌 대로 스스로 개혁해온 당신이 아내의 눈에 멋진 존재로 부각되었다고 하자. 아내는 새삼 당신에게 반할 게 확실하다. 그러나 하루 24시간, 일 년 열두 달을 함께 뒹구노라면 제아무리 멋진 존재라도 이윽고 지겨워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렇게 되기 전에 이틀이라도 좋고 사흘이라도 좋다. 아니, 일주일이건 한 달이건 상관없다. 헤어져 지내보라.

“간만에 온천이라 하러 갈까!”

이렇게 한마디 툭 던지고 당신이 먼저 훌쩍 집을 나서는 편이 낫다. 온천으로 달려가 일주일가량 자취생활을 해보라. 심신이 편안하고 감수성이 풍부해질 것이다.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노천온천에 몸을 담근 당신은 극락이나 천국에 있는 기분이 들리라. 온천 주위로 빨갛게 물든 단풍이 환상적인 색조를 자아낸다. 그건 바로 당신의 마음이 빚어내는 색깔이다.

바로 그 마음에서 아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멋지고 빛나는 모습일 것이다. 바로 그때 아내 역시 마음속으로 멋진 당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으리라.

그렇다. 이따금 헤어져 지내는 것은 서로의 가치를 새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선사한다.

 

아내의 사진을 신주단지처럼 모셔라

 

자, 이제 당신이 아내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가기 전에 익혀야 할 일을 다 익혔다고 하자. 그래서 당신이 매력적인 중, 노년 생활을 시작했고, 그 결과 아내를 먼저 보내기는커녕 더불어 무병장수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전제 아래 이야기를 풀어나가자.

이제 당신은 아주 마음이 넓고 통 큰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제 아무리 마음이 넓다고 해도 당신은 부처님이 아니요 예수님도 아니다.

인지상정으로, 아니 부부상정(夫婦常情)으로 서로 마음이 다르며 몸도 각각 다르다. 그게 참모습인지라 부부는 일심동체니 어쩌니 하면서 고상한 말을 늘어놓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부부일수록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안다. 당신은 필경 일주일이면 아내에 대한 불만과 울분이 쌓인다. 그럴 리 없다고 펄쩍 뛴다면 그것이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래도 거짓말이 아니라고 우긴다면 당신의 인지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아내에 대한 불만과 울분이 쌓여도 당신은 너른 마음으로 참고 견딘다. 사실은 이것이 심리적 리듬을 깨뜨린다.

자, 그런 불행을 사전에 방지하기로 하자. 우선 당신은 가장 마음에 드는 아내의 사진을 골라 서재의 책상 위에 잘 모신다. 가장 당신 마음에 드는 사진이니까 당신의 아내는 틀림없이 1억 달러짜리 미소를 띠고, 1천 억 달러짜리 포즈를 취하면서 당신을 매혹시키고 있으리라. 아내는 자신의 사진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싱글벙글 거리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아유, 닭살 돋게시리!” 라든가 “창피하니까 빨리 치워요!” 하면서 투덜거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심 결코 기분이 나쁠 리 없다.

자, 일주일쯤 지나서 아내에 대한 불만이나 울분이 쌓이면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 아내의 사진을 향해 실컷 불만과 울분을 퍼붓기로 하자.

“대관절 그 꼬락서니가 뭐야! 분수도 모르고 그런 옷을 입다니 명품 브랜드가 아깝다, 아까워!”

“당신처럼 심술궂은 여자가 이 세상에 또 있을 줄 알아? 내 솔직히 당신과 같은 이부자리에서 잠자는 것조차 이제 지긋지긋 하다구! 코는 또 왜 그리 심하게 골아? 이거야 원, 천둥소리보다 더 하니 내 차라리 외양간의 소와 함께 자는 편이 훨씬 낫겠어!”

한바탕 마음껏 퍼부어라. 단 반드시 명심할 것이 있다. 당신은 항상 어른스러운 마음을 지니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절대 진심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농담하는 기분으로 행해야 한다. 그러니까 실컷 퍼부은 다음에는 “미안! 용서해요!” 하고 비는 것도 괜찮으리라.

이런 식으로 일주일에 한 번, 아내의 사진을 향해 2, 30분 가량 험담을 퍼부어 불만과 울분을 삭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훌륭한 마인드 컨트롤을 이행한 셈이 된다. 그 과정에서 불현듯 무언가를 깨닫기도 한다. 그렇게 온갖 흉을 다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음식 맛이 없다거나, 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거나, 빨래가 잔뜩 쌓였다는 따위의 불만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스스로 요리와 청소, 세탁을 하고 있기 대문이다. 아내는 곁에서 거들기만 한다. 그러니 당신 마음속에 그에 관한 불만이 생길 리 없다.

이쯤 해서 책을 덮고 한 번 실행에 옮겨보자. 뭐라구요? 아무리 애를 써도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험담이 아니고 칭찬뿐이라고? 큰일 났군, 아무래도 당신의 인지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도리가 없군요!

 

 

홈 파티를 열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

 

걷기운동을 하노라면 내 마음마저 위축되는 음험하고 공허한 분위기를 풍기는 집을 가끔 보게 된다.

그렇다고 귀신이 나올 것처럼 드넓고 황폐한 집은 아니다. 물론 빈집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괴이쩍은 공기가 감돈다. 외판원이나 신문배달부나, 우편배달부 외에는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집이다. 다시 말해 놀러 오는 손님의 발길이 끊어진 집인 셈이다. 그런 집은 대개 나이 든 부부단둘이 아니면 어느 한쪽이 홀로 사는 집일 경우가 많다. 원래 조용한 생활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은퇴하여 매사 수동적으로 사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조용한 생활은 생활을 방어한다는 좋은 의미에서의 수세이지 결코 나쁜 게 아니다. 하지만 정신이 만사에 걸쳐 수세적이 되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이보다 빨리 정신이 늙어버린다. 이것은 인간의 숙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계속 수세를 취하다 보면 사는 집 자체가 점점 음기에 휩싸이고 만다. 그런 집을 찾아갈 기분이 나는 사림이 있을 리 없다. 나이에 상관없이 꿈을 그리는 건전한 정신이 있어야 집도 빛난다. 그런 정신을 유지해나가고 싶고, 그렇게 빛나는 집으로 만들고 싶다면 자꾸자꾸 사람들을 불러들여야 한다.

한꺼번에 여러 손님을 초대하고 싶으면 일주일에 한 번 홈 파티를 열어보자. 당신이 솔선하여 즐거운 호스트가 되는 것이다. 뿌듯한 심정으로 홈 파티를 여는 동안 당신은 멋지게 변모한다. 좌중의 화제를 유연하게 이끌어 나갈 수도 있다. 모여든 손님들에게 작은 부분까지 신경을 쓰면서 대접하는 당신, 그런 당신을 본다면 당신의 아내도 기꺼이 힘을 보태게 된다. 아니, 당신이 먼저 아내를 돕고 나서지 않을까? 그런 것이야 아무렴 어떠랴. 이미 단신과 당신의 아내는 손님 쪽에 보자면 굉장히 멋진 호스트이다.

손님을 초대하는 홈 파티가 어째서 좋은가?

우선 홈 파티에서는 당신과 당신 아내가 모르던 정보가 쏟아진다. 그것은 당신들에게 좋은 자극을 줄 것이고 더불어 당신들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또한 홈 파티는 정신적인 의미에서 당신이 남자라는 사실, 당신의 아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뚜렷하게 의식하게 해준다. 몇 사람의 이성 손님이 있으면 그 가운데 한 명에게 당신은 저절로 끌리게 된다. 건전한 정신적 여자 친구가 나타난다고 나 할까. 당신과 마찬가지로 당신의 아내 역시 이성 손님 가운데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낀다. 당신이나 당신의 아내나 그 순간 무척 빛나는 존재가 된다. 서로 새삼 바라보게 되고, 자랑스럽게 여기게 된다. 이 또한 홈 파티의 뛰어난 효용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손님이 다들 선물을 두고 간다는 사실이 홈 파티의 최고 덕목이다. 손님들이 저마다 들고 오는 와인이나 음식, 케이크 따위의 선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손님들이 반드시 두고 가는 선물, 그것은 손님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생겨나는 활기와 생기다. 당신 부부는 얼마든지 그것을 만끽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당신이 사는 집도 덩달아 활기와 생기가 넘치게 되는 것이다.

홈 파티는 초대 받는 쪽보다 초대하는 쪽이 낫다. 물론 가끔은 초대에 응해야 하겠지만…. 홈 파티로 누리는 장점들은 일일이 다 손꼽기도 어렵다.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당신이 아니면 맛보지 못할 효용을 찾아내기 바란다.

 

 

예순에도 배우고 일흔에도 배우자

 

며칠 전 신문에 백 살을 넘긴 할머니 화가가 연 전시회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분은 아무래도 복된 반생을 살아왔으며, 무엇 하나 불편할 게 없는 노후생활을 보내기 시작한 듯 했다. 그런데 나이 일흔 셋이 되었을 때 큰아들로부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세월을 보내면 치매에 걸릴지 몰라요!”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그 길로 화실로 달려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라면 흔히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 할머니의 훌륭함은 단순히 치매 방지를 위해서 그림을 그린 것을 뛰어넘어 새로운 유채화의 세계에 도전했다는 점에 있다. 결국 아흔 살이 넘어 미술 대선에서 상까지 타기에 이르렀다. 할머니로서야 상을 받는 것이 목표일 리 없었다. 그저 자신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던 것이고, 상은 그 과정에서 우연히 얻게 된 ‘평가’ 에 지나지 않으리라. 그러므로 백 살을 넘기고도 도전하는 에너지는 줄어들지 않았다. 도리어 새로운 작품에 대한 투지를 불태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 역시 환갑을 넘긴 다음 그림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동화 낭독회 활동을 펼치면서 동화 집필에도 손을 댔는데, 그러다 보니 동화의 삽화까지 직접 그리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늙은 고래>라는 제목의 민화 같은 이야기를 머릿속에 떠 올리면서 그림도 손수 그릴 마음을 먹게 되었다. 표지화를 비롯하여 스물세 장의 그림을 다 그린 다음에는 황홀 감이 솟구쳤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잘 그려야겠다고 욕심 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욕심을 낸다고 해서 잘 그려질 리도 없었다. 오직 내 가슴속에 있는 이미지를 종이에 마음껏 그려보자는 생각만 가득했다. 과연 생각대로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 그리고 나자 드디어 해냈다는 만족감, 성취감에 사로잡혔다. 막상 책으로 만들어지고 나니까 그림이 이만저만 서툴지 않다는 부끄러움 탓에 고개를 못들 지경이었지만…

그래서 유치원의 꼬마 녀석이 그 그림책을 들고 “와, 멋지다!”하고 탄성을 터뜨렸을 땐 천 명의 어른이 들려준 겉치레 칭찬보다 천 배, 만 배나 기뻤다. 그런 격려에 힘을 얻어 한 작품, 한 작품 그리는 사이에 내가 그린 그림 동화책이 벌써 네 권을 헤아리게 되었다.

나는 요즈음 새로운 꿈에 부풀어 있다. 언젠가는 나도 버젓이 캔버스를 세워놓고 본격적인 유화에 도전하고 싶은 것이다. 그때는 그림 동화책이 아니라 캔버스 속에 나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 정말 그럴 실력이 있느냐는 망설임을 떨치고, 그냥 그려보는 것이다. 그리지 않는 꿈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늙은 고래>의 그림을 그리느라 무아지경에 빠진 나를 곁눈질하면서 아내는 내가 또 터무니없는 짓을 한다는 눈초리를 보냈다. 그런데 한 장 그리고, 또 한 장 그려서 어느 결에 일곱 장쯤 그리자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우리 집 양반, 대단한 그림을 그렸다니까!” 라면서 침을 튀겨가며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말을 곁에서 듣는 나로서야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서툴기 짝이 없는 내 그림에서 아내가 무언가를 느꼈으리라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았다.

나와 거의 나이가 비슷한 사내들이 곧잘 입에 올리는 말이 있다.

“이 나이에 무얼 하겠어!”

“나이도 먹을 만치 먹었으니 이제 됐잖아?”

정년 퇴직한 남자들, 또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남자들 대다수가 저지르는 잘못은 나이를 탓하며 스스로 움츠러드는 것이다. 60대와 70대에 자신을 수세로 몰아가는 인간은 내가 아는 한 불과 일년 사이에 2, 3년은 더 늙어간다.

어느 날 아침, 일흔한 살 먹은 한 할아버지가 요트 무기항(無寄港) 단돈 세계일주 항해에 도전하여 234일 만에 출항했던 항구로 무사히 돌아왔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단돈 무기항 세계일주로는 최고령이 쾌거를 이룬 사람, 사이토 미노루(齊藤實)씨의 한마디를 여기 소개하기로 한다.

“맥주 한잔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 세계 기록인 180일을 깨지 못해서 아쉽다.”

이 말 속에 그의 차마 버리지 못하는 꿈이 상큼하게 떠오르지 않는가!

자, 당신이 아직 해본 적이 없으나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덤벼보라.

나이 예순에도 배우고 일흔에도 배우는 것이야말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한 첫걸음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만 60세, 환갑을 맞는 시점에서 나는 새로 태어났다. 그래서 올해 고작 다섯 살, 서서히 새로운 자아(自我)도 싹트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나이를 계산하고부터 어느 결에 의식 역시 뒤따르기에 이르렀다. 이게 중요하다.

얼마 전 일반적인 나이 계산법으로 하자면 나와 동갑내기인 65세의 어떤 사람과 술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새로운 열 살, 그러니까 일흔이 되기까지 이루고 싶은 꿈은 뭡니까?”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진 내 질문에 그 사람은 눈을 끔뻑거리더니 맥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이 나이가 되어 새삼스럽게 꿈이라니 당치도 않아요.”

나도 질긴 편에 속한지라 그 정도에서 호락호락 물러나지 않았다. 목소리를 은근히 낮추어 다시 물었다.

“그러면 하고 싶은 일은 있나요?”

“물론 신변정리만은 그때까지 꼭 해두고 싶군요. 그렇게만 하면 그 다음은 언제 죽더라도 염려할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죠.”

그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자신이 떠난 뒤 남을 사람의 일을 염려하는 걸 보면… 하지만 잠깐! 이야말로 자기 인생이 막을 내린다는 체념에만 사로잡혀 있는 셈이 아닌가?

“자, 그래서 언제 죽더라도 아무 걱정이 없게 된 다음에는 무얼 하고 싶은가요?”

“글쎄, 그건…”

그 사람은 자신이 바둑의 고수라도 되는 양 긴 생각에 빠져들었다. 한참 뒤 그가 털어놓은 대답은 이랬다.

“아내도 온천을 좋아하니까 몸만 따라준다면 함께 여기저기 온천이나 돌아다니고 싶군요. 지금도 일 년에 한 벌 꼴로 다니고 있긴 합니다만…”

듣자 하니 언제 죽어도 염려가 없게 된 다음부터 할 일이라는 것이 단순한 시간 때우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마음을 먹고 있으니까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 때우기가 끝나면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인생을 마감하리라.

그것이 나쁘다고 단정하지는 않겠다. 언제였더라, 매일 마침 내의만큼은 새것으로 갈아입는다는 사림이 있었다.

“만에 하나 교통사고로 죽게 될 때, 아무리 빨았다고 해도 헌 내의를 입고 있으면 천추의 한으로 남을 테니까 말이에요.”

죽고 나면 다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핀잔을 주고 싶지도 않다. 매일 아침 새 내의를 꺼내 입는 사람은 상당한 재력가일 테고, 그런 마음가짐이야 그르지 않다고 칭찬하기로 하자. 마찬가지로 만에 하나를 염려하여 매일 새것은 아니라도 깨끗한 내의로 갈아입는 사람도 더러 있다.

단지 ‘인생의 종막을 예상한 만에 하나’와 ‘이루지 못한 꿈을 좇는 만에 하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기 바란다.

나는 새롭게 태어났을 때, 아니 원래 나이로 헤아려 환갑을 맞았을 때, 일흔이 되기 전에 ‘동화 낭독 드림호’를 갖기로 작정했다. ‘동화 낭독 드림호’는 차체에 화사하고 멋들어진 페인트칠이 되어 있는 소형 버스로 좋은 그림책을 구비하여 몇 명의 자원봉사자를 태운 뒤 전국 방방곡곡으로 돌아다닐 것이다. 물론 가는 곳마다 어린이들은 불러 모아 동화를 읽어주기 위해서다.

그리고 일흔 살이 되면 여든 살이 될 때까지 목표로 삼고 있는 ‘그림책 낭독 도서관’ 설립을 꾀한다. 그곳에 가기만 하면 항상 누군가 즐겁게 동화를 낭독한다. 우리 동화, 외국 동화를 가리지 않고 좋은 그림이 곁들여진 동화책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찾아온 꼬마들이 그림 동화의 세계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돌아다닌다. 나도 이따금 들러 아이들에게 즐거운 동화를 들려준다. 여든 살이 될 때까지 꼭 실현하고 싶다. 아니, 실현하고 말리라.

나는 요즈음 삽화를 많이 그리는 편이다. 이제 슬슬 아크릴화도 시작해볼까 한다. 그리고 충분히 실력을 다진 다음 여든 살부터는 유화에 도전할 계획이다. 그래서 85세에는 개인전을 열고, 아흔 살이 될 때까지 국전에 출품하여 입상을 노릴 것이다. 그리하여 백 살이 될 때까지 후세에 오래도록 남을 유화를 한 점 이상은 반드시 남기고 말겠다.

내가 지금 털어놓는 꿈의 절반가량은 우리 마나님도 알고 있다. 그리고 아내는 아내 나름대로 커다란 꿈을 불태운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아내는 교회 건립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것도 단순한 교회가 아닌 모양이다. 내가 여든 살까지 이루고자 하는 ‘그림책 낭독 도서관’을 아우르는 교회라고 한다.

아내는 나와 더불어 무병장수의 길을 걷는다. 우리는 지금 그 길고 꿈이 넘치는 길을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 무병장수의 길을 당신과 당신의 아내에게 하루라도 빨리 걷게 하고 싶다. 어쩌면 그 길은 나와 내 아내가 걷는 길과는 닮았으되 닮지 않은, 오직 당신만의 길일 수도 있다.

부디 즐거운 인생길이 되기를…..

 

 

맺는 말

독신생활을 위한 명심보감

 

중, 노년층 남성들이 공통적으로 품고 있는 생각은 무엇일까? 그들은 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에 곧잘 등장하는 말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어차피 마누라가 더 오래 살 테니까!”

그래, 바로 이것이 정답이다. 세상의 대다수 남성들은 자신보다 아내가 더 오래 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할까?

그것은 모든 나라에서 남자보다 여자의 평균수명이 더 길기 때문이다. 게다가 또 한 가지, 대개의 경우 남편이 아내보다 몇 살은 더 나이가 많은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낸 아내가 우리 주변에 많이 눈에 띈다. 하지만 아내를 먼저 보내고 홀아비 생활을 하는 남성이 적지 않게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의외로 현실주의자인 나는 ‘어차피 아내가 더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아내가 먼저 저승으로 가리라고 믿지도 않는다. 내가 먼저 갈 수도 잇고, 아내가 먼저 갈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래 전부터 만약 나를 두고 아내가 먼저 이 세상을 하직할 경우를 감안하여 여러 대책을 강구해왔다. 그 대책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결과적으로 아내와 더불어 건강하게 장수하는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이 책은 원래 중, 노년층 부부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차근차근 분석함으로써 얻은 결과의 산물이다. 그러나 독신으로 지내왔거나 혹은 독신으로 살아갈 결심을 굳힌 이들에게도 하나의 명심보감이 되리라 믿는다.

 

옮긴이의 말

괴짜 작가가 선사하는 웃음, 그리고 건강한 삶

 

이 책의 저자 시모다 가게키 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괴짜다. 일본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 예순을 넘긴 양반이 생김새와 옷차림부터 유별나다. 머리카락을 알록달록, 노랑과 분홍으로 물들였다. 180센티미터의 키에 61킬로그램의 날씬한 몸매. 그런데 너무나 패셔너블 하여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입성만으로는 도저히 남녀 분간조차 가지 않는다. 그런 그렇다 치고, 홈페이지에 스스로 올려놓은 자기 소개를 살짝 엿보자.

 

>>나이

‘새로 여섯 살’ (2006년 현재)

— 뚱딴지 같이 이게 무슨 소린가? 토가 달려 있다.

“2000년 3월 25일에 흔히 말하는 환갑을 맞았으나 나는 그날 새롭게 태어났다.”

 

>>변함없이 하는 네 가지

90% 현미 채식, 과격 패션, 그림책 낭독 활동, 웹 그림책 인터넷 제작.

 

>>명함에 적힌 직책 두 개

주식회사 시모다 가게키 대표, 시즈오카 현 관광대사.

 

>>명함에 적지 않은 직책들

그림책 작가, 아동도서 작가, 소설가, 탤런트, 일본 문예가 클럽 이사장, 스마일 대사.

 

 

이쯤 하면 괴짜도 보통 괴짜가 아님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는 30대 중반에 문예지<소설 현대>의 신인상을 받으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마흔이 된 1980년에는 소설 <누런 이빨>로 나오키 상(直木賞)을 수상했다. 문단에 나온 지 4년 만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것이다. 이후 그의 돌출 행각이 벌어진다.

나오키 상을 받은 이듬해 패션쇼의 모델로 무대에 올라 온통 화제를 뿌렸다. 또 자신의 작품<제패(制覇)>가 영화화되자 배우로 깜짝 출연했다. 잇달아 텔레비전 드라마에 등장하는가 했더니 급기야 광고 모델로 발탁되었다. 일반적인 잣대로서야 유명작가의 외도로 비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가 본업인 글쓰기를 멈춘 것은 아니었다. 소설을 포함, 지금까지 출간한 책이 5백 권을 넘는다.

1998년 늦가을, 그는 일본 남쪽 후쿠오카의 한 서점에서 책 읽기 행사를 가졌다. 이로부터 ‘착한 어린이를 위한 낭독대’ 라는 조직을 결성하여 전국을 돌면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좋은 작품을 들려 주고 낭독하게 한다. 지난해 가을에 1천 회 공연을 돌파했단다. 지금의 기세대로라면 그는 그만의 독특한 셈법으로 따져 ‘새로 환갑’을 맞을 때가지 일본사회에 즐거움과 웃음을 선사하려 들지 않을까?

그렇다. 이 책은 바로 글 ‘즐거움’과 ‘웃음’ 으로 건강하게 홀로 살아가는 길을 일러준다. 슬며시 부풀리자면, <명심보감>에 빗댈 괴짜 작가의 <건강보감>이다. 비록 독신남성을 겨냥하여 썼다지만, 여성에게도 고스란히 해당될 건강 인생의 비방으로도 결코 모자람이 없다. 아니, 이 참에 한국의 누군가가 나서서 이 책에 필적할 <여성독신보감>을 내놓는다면 더욱 볼 만하리라

 

 

2007년 여름, 조양욱

 

 

옮긴이 조양욱

한국외국어대 일본어과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일본 <교도통신> 기자,<조선일보> 문화부 기자,<국민일보>도쿄특파원과 문화부장을 거쳐 현재 일본문화연구소장이다. 지은 책으로 <일본, 키워드 99>, <열 명의 일본인, 한국에 빠지다>, <일본을 묻는다>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천국의 책방>, <인물 일본사>, <거미줄>, <퓨티풀 네임>, <아프리카에서 온 그림엽서>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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