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느 날

 

“안녕하십니까?”

 

굵지만 어두운 그리고 귀에 익지 않은 음성이 대문을 들어섰을 때, 내게는 문득, 검고 차디차고 눅눅한 땀만 흘리며 보낸 지난 몇 달이 그 소리가 나는 순간에 종지부를 찍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종지부가 아니면 적어도 휴지부쯤은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요즈음도 이따금 생각해 보는 바이지만 어떤 근거로 그런 느낌이 들었던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나 자신에게도 설명해 줄 도리가 전연 없었다. 그 음성에 듣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어떤 매력이 있었던 것일가? 토정 비결 속엔 ‘남방의 귀인’이니 ‘서방의 귀인’이니 하는 따위의 반가운 도깨비들이 곧잘 나오지만, 그 도깨비들이 내는 음성의 빛깔이야말로 바로 내가 들은 그 음성의 빛깔이었다는 것일까?

 

고개를 돌려 보니, 괴상하게 생긴 녀석이 대문을 벌써 들어서서 나를 향하여 마당을 건너질러 오고 있었다.  두꺼비가 안경을 쓴 꼴을 상상하면 틀림없이 그 녀석의 얼굴이었다.

 

“어떻게 오셨…”

 

나의 말꼬리가 목구멍 속에서 미처 다 나오기도 전에,

 

“꼬깍시야, 야아, 너 정말 오래간만이구나!”

 

말하며, 안경 쓴 두꺼비는 크고 두툼한 손부터 저만큼서 내밀고 내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누구…”

“영일이다. 나, 영일이야”

 

그러면서 두꺼비는 악수를 하겠다고 한 손을 내밀었다. 우선 나는 묽은 흙으로 범벅이 된 내 손을 들어 보였다. 그는 안경 속에서 커다란 눈으로 호오! 하는 표정을 짓고 나서 그냥 거두어 버리기에는 멋쩍었던지 내밀고 있던 손을 그대로 올려서 내 어깨를 툭툭 두그리며,

 

“몰라보겠니? 중학교 때 친구 장열일이다.”

 

영일이라? 영일이? 혼해빠진 이름이 영일이니 참, 내가 아는 영일이만 하더라고 대여섯 명은 될 거다. 중학교 때 친구라고 했것다? 그러고 보면 그가 ‘꼬깍시야-.’ 하던 건 중학교 시절의 내 별명인 ‘꽃각시’를 말함이었던 모양이었다. 이제는 아무도 그 별명으로 나를 불러 주지 않고 나 역시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별명이었다.

 

중학교 때 친구 장영일 선생이랍신다? 그런 친구가 있었던가? 제기랄, 하여튼 웃어 보일 수밖에. 나는 ‘그래?’ 하는 표정으로 웃음을 띠어 보였다.

 

“헤에, 이 친구, 날 영 잊어버린 모양이군.”

 

그는 한심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나는 윗니로 아랫입술을 살그머니 누르고 웃음을 띤 채 두 눈을 깜박이며 기억나지 않으니 미안하다,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거다, 하는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러니까 두꺼비는,

 

“날씨가 사람을 찌는군 쪄.”

 

하며 일본 제국 군인식으로 허리끈에 차고 있던 타월을 꺼내 목덜미의 땀을 닦고 나서, 그 역시 안경 속에서 커다란 눈믈 끔벅이며 오냐 오냐 잘 생각 바라, 오오 네가 장영일이구나 할 때까지 기다려 주마, 하는 식으로 나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 나오는 대면이지만, 정작 그때는 비록 얼굴에 사람 좋은 웃음을 띠고 있긴 했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 이따위 두꺼비같이 생긴 중학교 때의 친구는 없었기 때문에 은근히 어리둥절했다.

 

여드름도 가실 나이가 되는데 그의 턱과 이마와 볼에는, 그러니까 온 얼굴에는 조개 껍질로 박박 긁어 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굵은 여드름이 번성하고 있었다. 그가 펑퍼짐한 코에 걸고 있는 안경이란 것도 가만히 살펴보니 도수 없는, 다시 말하면 의젓하게 보이기 위한 장식품인 것 같았다.

 

내가 자기의 안경을 살피고 있는 걸 알아챘는지, 그래서 문득 깨달았다는 것인지, 두꺼비는 얼른 안경을 벗으며,

 

“참, 내가 안경을 쓰고 있어서 몰라본 모양이구나. 그땐 안 썼으니까. 자, 인젠 알아보시겠니?”

 

그래도 여전히 낯선 얼굴이었다. 그러자 나는 문득 기분 나쁜 추측에 젖어들었다. 사람을 잘못 찬은 게 아닐까? 그렇지만 내 중학교 시절의 별명을 알고 있는 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 듯한데… 하기야 그까짓 어렸을 때의 별명쯤 알아보려면 얼마든지 알 수 있겠지.

 

요오 엉큼한 두꺼비, 너 같은 놈이 바로 진짜 시가꾼이구나. 서울에서 댁의 아드님과 함께 하숙을 하는 아무갭니다. 댁의 아드님께서 제가 고향에 다녀온다고 하니까, 수고스럽지만 우리 집에 들러서 돈 얼마만 달라고 하여 가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어쩌구 하며 어수룩한 시골 노인네들을 등쳐 먹고 사는 놈이 바로 너 같은 놈이었구나.

 

넌 좀 전엔 내 어렸을 적의 별명을 알고 있는 체했지만 그러나 그뿐만 아니겠지. 내 등에 검은 사마귀가 딱 한 개 있다는 것도 알고, 그 사마귀 복판에 검은 털이 딱 한 가 안테나처럼 솟아 나와 있다는 것도 알고, 내가 울 때면 웃는 건지 우는 건지 구별하기 힘든 소리를 낸다는 것도 알고, 그리고 깊고 캄캄한 밤의 밑바닥에서 지난날의 부끄러운 기억이 나를 엄습하면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몸을 비틀며 으응 으응 신음을 울리다가 울리다가 견디지 못하여 벌떡 상반신을 일으켜 앉아 어둠을 향하여 고개를 저어 댄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잘 알고 게시겠지, 이 두꺼비처럼 생긴 사기꾼아.

 

내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져 가는 걸 스스로 느끼면서 나는 내 앞에 눈을 꿈벅이며 서 있는 여드름쟁이를 시선으로 훑어보았다. 파란 줄무늬가 있는 반소매 셔츠는 가난한 사기꾼답게 땀과 때에 절어 세계 지도 같은 얼룩이 져 있고, 카키색 바지도 가난한 사기꾼답게 무릎이 튀어 나왔고 땀과 먼지투성이였고, 구두는, 구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시선을 조금 전과는 반대로 밑에서 위로 치올리면 훑어보다가 나는 뜻밖의 물건을 발견하고 가슴이 쿵 울렸다. 분명히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만일 내 가슴이 북이었더라면 여간 큰 소리가 나지 않으리라. 그리고 북소리도 ‘비, 애, 장, 중, 희, 열…’ 식으로 분류한다면 그때의 내 북 소리는 ‘희’나 ‘열’이었다. 그 두꺼비의 가슴에 뜻밖에도 서울 대학교의 저 은빛 배지가 귀여운 생물의 눈동자처럼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신, 서울 대학 다니시오?”

 

나는 좀 얼이 빠졌던 모양이다. 뭔가 감탄한 듯한 음성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던 것이다.

 

“하, 나 참. 야, 창수야, 너 정말 날 몰라보는 모양이구나.”

 

그는 불쌍하다는 듯한 투로, 그러나 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어이, 이 사기꾼, 내 이름도 안다아,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마치 처음 보기라도 하듯이 여전히 넋을 던져 버리고, 책과 펜과 횃불이 월계수 옆에 둘러싸여 있는 거룩한 서울 대학교 배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배지에는 ‘법대’라는 파란 글씨가 앙증스럽게도 버티고 있었다.

 

“당신, 법대 다니시오?”

“이창수 선생, 이러지 맙시다”

 

그는 이젠 더 못 견디다는 듯이 주먹을 폈다 오므렸다 하며,

 

“가만 있자, 좋은 수가 없나? 가만 있자, 날 알아볼 도리가 있을 텐데, 가만 있자, 이거 목이 마른데. 야, 우선 냉수나 좀 얻어먹자 야.”

 

말하고 나서, 그는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그늘진 마루로 성큼성큼 걸어가 걸터앉으며 셔츠의 앞단추를 풀어 헤치고 타월로 가슴의 땀을 닦았다. 런닝셔츠를 입고 있지 않은 가슴에도 울긋불긋한 여드름이 한창 봄이었다.

 

나는 힐끔힐끔 그를 돌아보며 뒤꼍의 우물로 물 뜨러 갔다.내게 냉수를 떠오라는 심부름을 시킨 건 바로 저 거룩하신 배지인 듯한 착각에 나는사로잡혀 있었다.

벽 밑의 쥐구멍들을 막기 위해서 흙을 만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러워진 손을 깨끗이 씻고, 내가 사기 그릇에 햇볕이 아롱거리는 맑은 물을 떠 가지고 돌아오자 장영일씨는 물그릇을 받는 둥 마는 둥하며,

 

“응,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너 중학교 때 앨범 있지? 아니 졸업 앨범이 아니고 그, 하여튼 중학교 때 찍은 사진을 다 내와 봐.”

 

자못 의기 양양했다.

나도 어느새 의기 양양해져 있었다.

 

설령 캐 보고 캐 본 결과를 그가 내 어릴적의 친구가 아니라고 해도 좋다. 그가 저 배지를 가슴에 차고 있다는 것만으로써도 그는 나의 친구이니까. 비록 그가 좀 전까지는 한 번도 나와 만난 일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적어도 내가 학교를 휴학하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지난 이월 이전까지는, 그는 구름다리 저편의 법대에서 그리고 나는 그 이편의 문리대에서 얼굴 모르는 친구로 지냈으니까 말이었다.

 

“앨범? 앨범이라면 있을 거야.”

나는 어느새 반말을 해 대며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우리는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서 중학교 때 찍은 사진을 들추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 시큼한 땀 냄새가 풍겨 왔다. 이놈을 끌고 냇물로 목욕을 가야지, 생각하며,

“지금 몇 학년이니?” 하고 물었다.

그는 사진 뒤지는 테만 열중해 있는지 코를 연방 킁킁거리며 내 말에 대답이 없다가,

“으와 이거다 이거.” 하며 대형관 사진 한 장을 앞으로 내밀었다.

중학교 이학년 때의 담임 선생 송별 기념 사진이었다. 우리 학급 전체가 마치 달려오는 기차를 막으려는 듯이 철로 위에 키 순대로 겹을 이루고 찍은 것이었다.

“이 맹꽁아, 이게 바로 나야, 나.”

그는 맨 앞줄의 중간쯤에 쭈그리고 있는 꼬맹이 하나를 가리키며 다른 손으로 내 머리를 툭툭 두들겼다.

나는 햇볕의 시달린 눈에 온몸의 힘을 모아 가지고 이젠 퇴색해 가고 있는 사진 속의 얼굴을 노려봤다.

눈이 크고 이쁘장하고, 그런데 한쪽 볼이 이상스럽게 좀…

“오오, 너 ‘비틀이’로구나. 그래, 그래, 네 이름이 장영일이었지!”

내가 소리치니까 그는 이제야 알겠느냐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한쪽 손으로 그의 한쪽 볼을 쓰다듬었다.

“얼굴 모습이 그렇게 달라질 수가 있어? 너 참 이쁘장했었는데. 여드름 같은 건 나지 않을 것 같았고. 흠이라면 한쪽 볼이 홀쭉해서 얼굴이 비틀어져 보였다는 정도였는데…”

내가, 넌 이학년만 마치고 너의 아버지가 전근하는 바람에 다른 지방으로 전학을 갔었지 하고 말하려는데, 그는 내 말을 가로채서,

“그, 그 얘긴데 말야, 몇 년 후에야 난 내 한쪽 볼이 비틀어졌던 이유를 알았어. 한쪽 어금니 한 개가 충치였거든. 그래서 밥을 다른 쪽으로만 씹어 대니까 그쪽만 발달했던 거야. 나 참 분해서…”

뭐가 분했다는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고,

“그래, 이젠 날 알아보겠니?”

그는 나를 쳐다보며 또 두 눈을 끔벅거렸다. 그러자 나는 다시 그가 낯선 사람이 돼 버리는 걸 느꼈다. 나는 그의 가슴에 붙어 있는 고 앙증스러운 것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니까 그를 좀 알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다시 들었다.

“참, 너 휴학하고 있다지?”

그가 말했다.

“글세, 휴학인데 어째 계속할 것 같지가 않아.”

말하고 나니까 갑자기 설움 같은 것이 목을 뿌듯이 메웠다.

“지금 어디 살고 있니?”

내가 물었다.

“집이 서울이야. 서울, 아버지가 출세를 했거든.”

“여긴 어떻게 놀러 왔니?”

“늬들도 만나 볼 겸 놀러 왔다. 고신가 지랄인가 준비하느라고 절에만 있었더니 영 못 견디겠더라. 역에서 내리자마자 인수 있지? 겔 만나서 네 얘길 듣고 곧장 찾아오는 길이야. 그런데 짜아식.”

내 머리를 툭툭 한 번 치며,

“사람을 그렇게 몰라볼 수가 있어?”

“임마, 너하고 안 만난 지가 벌써 몇 년인데?”

“허긴 그래, 벌써 팔 년도 넘었지?”

“자라날 때의 칠 년은 보통 칠 년이 아니란 말야.”

“허긴 그래. 너도 퍽 변했다. 그래도 대문에 들어서니까 금방 널 알아보겠던 걸.”

“난 문리대니까 그 동안 가끔 만났을 법도 한데?”

“허긴 그래. 아냐, 내가 고신가 지랄인가 땜에 죽 절에 가 있었거든.”

고신가 지랄인가도 좋지만 법대에서는 강의도 안 하던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렇지만 무슨 상관이람. 배지는 그 물건 자체만으로써도 그와 나 사이를 비끄러매 주는 자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뚱뚱보는 다른 뚱뚱보에게 포마드는 다른 포마드에게, 철모는 다른 철모에게, 개는 개에게 친밀감을 느끼듯이 말이었다.

그러나 그 베지를 사랑할 자격이 나에게 있었던 것일까? 없었다. 나는 학교에서 쫓겨난 거나 마찬가지 신세였다. 먼 남쪽 시골에 쳐박혀서 서울행 기차만 보면 가슴이 터질 듯이 슬프기만 한 신세였다.

 

 

나의 겨울

 

내가 다섯번째의 등록을 해야 할 시기에 학교를 그만두고 시골로 도망와 버린 내력을 얘기하려면 아아, 얘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몸이 뒤틀리고, 주먹 쥔 손바닥에서는 진땀이 배어 나오고, 이빨 틈으로는 승냥이의 울음 같은 신음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새어 나온다. 부끄러워서 너무 부끄러워서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이창수군, 자아 얘기를 해보자.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말하고 싶은 건, 나는 저 서울 대학교 학생들 대부분이 앓고 있는 정신 분열증에 대해서 눈문이라도 한 편 쓰고 싶다는 것이다. 얘기는 간단하다.

그들은 거의 모두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자라나면서 어른들의 사랑을 충분히 받아 온 동물들이다. 여기서 동물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동물은사랑만 받고 자라면 자기가 제일 잘난 줄로 착각하게 되고, 한편 작은 꾸지람에도 샐죽해지며 작은 비난에도 깊고 험악한 절망의 회오리바람 소리를 들어 버리는 법이니까.

서울 대학생들 쳐 놓고 전국 방방곡곡 어느 작은 귀퉁이에서라도 어렸을 적부터 반장 한 번 안 해 보거나 일등 한 번 안 해 본 양반은 없다. 따라서 어른들의 사랑과 기대를 받아 보지 않은 녀석이 없다는 말씀이다.

그런 결과로는 자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사람에게는 멍청할 정도로 고개를 숙이면서 머리를 내밀고, 자기의 뺨을 갈기는 사람에게는 곡괭이로 그 사람 그림자의 대가리라도 짓부숴야 속이 시원해하는 성미를 가진, 어린애로서의 상태를 유지하는 어르신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얘기하고 싶은 것은, 요컨대 내로라 하는 친구들만으로써 법석대고 있는 곳이 저 거룩한 대학교라는 얘기다. 그래서 나의 문제는 생겼다.

둘러보니 모두 똑똑하기만 한 친구들뿐, 아무도 나보다 성적이 덜어져 줄 부처님은 아닌 것 같고, 게다가 나처럼 말이나 약간 더듬는 버릇이 있고 보면, 여자들에겐 순진한 남자로 보여서 편리할 때가 있을는진 모르지만, 잔디밭 위에서 벌어지는 토론에선 번번이 얻어맞다가, 천당이 금방이라도 보이는 듯 보이는 듯, 얼얼해져 버린다.

그리하여 한 학년이 지나고 두 학년이 지나고 하는 사이에 교수님들의 사랑을 차지하게 되는 몇 명을 제외하곤 모두가 과거엔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던 열등생이 되어 버리고, 그렇지만 예민한 두뇌는 살아다는 것인지 차츰 괴상한 포즈를 꾸미고 학교에 나타남으로써 자기 존재의 영원 부동한 위치를 확보하려 하는 것이다.

하기야 괴상한 포즈를 짓는 축은 그런 대로 구제받을 요소가, 즉 뻔뻔스럽기라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셈이다. 그러지도 못하는 축들은 학교 울타리 밖을 빙빙 돌며 이따금 울타리 안으로 고래르 쑥 디밀곤 몇 시간 전에 다녀온 창신동 싸구려 갈보에 대한 얘기를 몇 마디 지껄이다가, 친구들이 이젠 그 얘기도 싫증났다는 표정으로 외면하면 다시 창백한 고개를 숙이고 울타리 밖을 빙빙 둘기 시작한다.

과장된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종류의 정신 분열증을 그들은 누구나 조금씩이나마 지니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왜 여전히 우등생인 소수의 몇 사람 축에 끼이지 못했느냐고 물으면 사실 할말이 없어져 버린다. 그런 환자가 되어

버린 원인을 보면 물론 아무에게도 항의할 도리가 없는 것이 거의 전부이다.

그런데 나야말로 그 환자들 중의 가장 대표적인 환자였다. 물론 가장 형편없는 원인으로써 그런 환자가 되어 버렸다는 점에서 있어서도 대표적이란 말씀이다.

나를 정신 분열증 환자로 만든 원인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를 습격했던가? 그거야 한 마디로 말할 수 없다. 기어이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역시 나는 저 학우들, 도처에서 일등이나 반장만 해먹고 들어온 친구들을 너무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놈이 재즈만 그럴 듯하게 불러 대도 시골 출신인 나는 그를 두려워했고, 어느 놈이 내가 모르는 외국어 단어만 하나 더 알아도 나는 그를 두려워했고, 어느 놈이 내가 아직 듣지 못한 외국 학자의 이름을 대기나 학설의 대강을 얘기하기만 해도 그가 두려워서 소름이 쭉쭉 끼쳤다.

우스운 얘기지만, 설상가상으로 나는 도서관의 그 옻칠한 긴 책상 앞에만 없으면 졸리기 시작하는 병에 걸려 버렸고, 그런가 하면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가 거의 하루 종일 입에서 토해 내는 저 앙칼지기만 한 서울내기 중년 부인들 특유의 음성에 신경이 곧잘 프로해져 버리는 병에 걸렸고, 그리고 항상 돈이 좀 있어야겠는데 돈이 좀, 하고 중얼거리는 병에 걸려 버렸다.

그런 원인들 때문에 내가 학교에 가는 것을 기피하게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정신 분열증이 심해졌다고 하면, 정말 나는 나의 병에 대해서 어디 대고 호소할 길이 없다. 호소할 길이 없다는 점을 좀더 강조하는 입장에서, 얘길 하자면, 어럽쇼, 나는 그만 연애라는 것을 해 버리게 됐다는 말씀이다.

그 연애란 것에 대해서 긴 얘기가 필요할까? 필요 없다. 토요일에 만나서 다방에 가고 차 한 잔씩 마시고 음악을 듣다가 지껄이다가 하는 식의 단순한 행위의 반복, 그러면서도 마음만은 어떠한 파란 많은 사람들의 사랑 얘기보다도 더 불탄다는 식의, 즉 서울의 대학생들 식의 연애, 그렇고 그런 연애였으니까.

그러나 그 연애야말로 바로 내가 학교로부터 얻는 좌절감을 보상받는 도피처였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내가 학교로부터 쫓겨난 이유의 전부였다고나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오해가 있은 뒤에 다시 화해하기 위해서 여자와 만난 어느 날, 여자는,

“간단한 편지 연락이라도 할 수 있었잖아요?”

“사 원이 없어서 편지를 못 했습니다.”

“거짓말 마세요. 사 원이 없으면 남한테 빌려서라도 편지쯤 해 줄 성의가 없었다고 정직하게 얘기하세요.”

“…그럴지도 모르죠. 허지만 자기에게 단돈 사 원도 없었다는 걸 발견했을 때 그 사람은 도대체 성의니 사랑이니 하는 걸 생각할 배짱이 있을까요? 맥이 빠져 버렸다고 표현하기란 쉬운 것이죠. 그러나 실제로 맥이 빠지고 보면… 관둡시다.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으신 모양이니.”

“알았어요. 당신같이 징그러운 분은 처음이에요.”

말하고 나서, 여자 대학생 마님은 싹 돌아서서 가 버렸다. 그걸로서 진짜 영 그만이었다.

그날 저녁, 하숙방으로 들어와서 옷을 입은 채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 생각하니 생각할수록 나는 무언가 괜히 억울해서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면서 한편, 그 애를 한 번쯤 멋진 곳에 데려다 주고 싶었고, 언젠가 내가 가진 구하기 힘든 책을 자기에게 양도하라던 친구에게 그 책을 주고 싶었고, 또 수상한 녀석이라는 눈짓으로 나를 대하는 교수님을 붙들고 한바탕 울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또, 언젠가 친구들이 내게 들려주던 얘기와 그 얘기를 할 때의 친구들의 빈정거리는 표정도 생각나서 마음이 벽들이 음산한 소리를 내며 찢기는 듯했다.

그 친구드른 기찻간에서 우연히 내 고등 학교 시절의 담임 선생님과 한자리에 앉아 말을 주고받게 됐던 모양이었다.

담인 선생니께서는 나에 대한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하셨던 모양이었다. 고등 학교 때도 우등생이었으니 물론 대학에서도 우등생이리라는 확고한 자신을 가지고 말이다.

아아 촌뜨기 선생님 촌뜨기 선생님.

그날 저녁 내내 나는 망할 놈의 사 원과, 또 사 원이 없어서 맥이 빠졌느니, 사랑할 능력이 상실되는 듯하더라느니 따위의 말을 잘도 나불걸니 내 혓바닥을 저주하며 세웠다.

다음날은 눈이 내렸다. 도서관에 가기 위해서 학교엘 갔더니 박학중이기 때문에 교정엔 사람이 드물고 눈만이 교정의 나무들 위에 탐스럽게 쌓이고 있었다.

나는 문득 교정과 강의실인 우중충한 건물들에 대하여 맹렬한 사랑을 느꼈다. 학생들이 없는 학교. 그거야말로 진실로 나의 학교였다. 깨닫고 보니 항상 방학을 기다리며 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나 자신을 발견했다.

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래야 경쟁자를 의식하지 않고 공부하기 위해서 방학중인 학교야말로 나의 학교였다.

내가 도서관 건물의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내가 학교를 쫓겨나야 할 이유가 거기서 가디리고 있었다.

과 주임 교수님이 도서관 정문의 게단을 내려오다가 나를 발견하자,

“자네 지금 바쁜가?”

“바쁘지 않습니다.”

“수고스럽지만, 심부름 좀 해 주겠나? 나, 지금 연구실에 손님이 몇 분 와계셔서 말인데…”

“네.”

다름이 아니고. 여기 가서 나한테서 왔다고 얘기하면 알 테니까 좀 받아다 주겠나?”

그러면서 교수님은 뒷면에 어떤 출판사의 약도가 그려진 당신의 명함을 내게 주었다.

짐작했던 대로 출판사에서는 교수님의 저서에 대한 인세라는 돈을 주었다. 이만 원이었다. 내게 그런 심부름을 시킨 교수님도 운이 나빴지만, 전날 저녁을 앓고 새운 나도 운이 나빴다. 그 돈을 받아 들자 나는 학교로, 포근히 눈이

쌓여 있고 겨울 방학의 단 두어 달 동안이나마 오로지 나를 위하여 존재하는 듯한 학교로 가는 대신 그 괜히 복잡하면서도 실은 황막하기만 해 보이는 서울의, 그의 하늘이 때를 벗겨 뿌리는 듯한, 눈이 뿌리고 있는 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저녁에는 돈이 다 없어져 버렸지만 가슴이 별로 두근거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기쁘지도 않았고 조금 섭섭하기만 했다.

다음 다음날, 짐을 싸 들고 고향인 무진으로 내려왔다.

그래서, 아직 뜯지 않은 담배 한 갑이 나를 기쁘게 해 주고 묽은 흙으로 때워도 때워도 벽의 어딘가에 기어이 통로를 만들고 마는 쥐들과의 경쟁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가로 9센티미터, 세로 6센티미터의 비닐로 포장한 종이, ‘학생증이 사람은 본교 학생임을 증명함 본적 주소 성명 서기 19××년 월 일생 유효기간 자 서기 1964년 3월 1일 지 서기 1965년 4월 30일 취급자인(도장 쾅 서기 1964년 3월 1일 서울대학교 학생차장 심상황(도장 쾅)’을, 이젠 유효 기간도 지나 버린 학생증을 방바닥에 놓고 멀거니 그걸 내려다보며 몇 시간이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 나날이 시작된 것이었다.

국민 학생들이 쓰는 색종이 한 장에 스스로를 위한 비명을 써서 벽에 붙여 놓고 그걸 즐겼다. 왈, 안타까이 죽음을 기다리다가 가노라, 이젠 생존에 역시 안타까운 미련을 남기면서.

그러나 진짜 죽음을 엄숙하게 기다리고 있는 분은 내 할머니였다.

벽촌의 국민 학교 교장 선생님이신 아버지는 그곳에서 소풍 가는 날 교단 위에 서서, ‘에에또, 오늘 날씨는 맑고 하늘엔 구름 한 점도…’ 하시다가, 하늘을 둘러보니, ‘있고’ 하는 정도의 실수나 저지르시며 사시고, 어머니 역시 거기 계시기 때문에 나는 무진의 본가에서 다른 방들은 모두 세내어 주고 할머니와 한방에 거처하고 있었다.

방에서는 할머니의 육체가 썩어 가며 내는 악취가 온 방에 스며들다가, 더 스며들 데가 없다는 듯이 허공을 감돌고 있었다.

얼마 동안은 그 냄새 때문에 매일 변소에 가서 몰래 토하곤 했지만 이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때도 봄이 온 들과 냇가를 쏘다니다가 돌아온 날이면 그 죽음의 냄새는 새삼스럽게 나를 박대했다.

밤중에 잠이 깨어 보면, 대개 그때마다 할머니는 방안의 윗목에 놓인 요강 위에 금방 앞으로 고꾸라지실 듯이 위태스럽게 흔들흔들 걸터앉아서 죽음 바로 그것인 듯싶은 냄새를 풍기며 뒤를 보고 계시곤 했다.

딸기가 나기 시작한 무렵에, 벽촌의 교장 선생님이신 아버지가 그곳에서도 귀하다는 박달나무로 할머니의 관을 짜 가지고 오셨다. 할머님은 이가 모두 빠져서 호물호물하는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하시며 여간 기뻐하시지 않으셨다.

좋은 나무로 짠 관을 미리미리 준비해 두는 거야말로 할머니가 늘 바라시던 바였다.

그 관을 머리맡에 두시고 할머니는 일어나실 때도 한 번, 앉으실 때도 한 번

이라는 식으로 쓰다듬으시며 엄숙한 표정을 지으시곤 했다.

나는 햇볕이 들었다가 물러가는 마루 끝에 앉아서 마치 햇볕과 마루가 간통을 하는 것을 보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며, 하루에도 몇 번식 마음 속으로 교수님에게 편지를 썼다.

용서해주시겠어요? 용서해 주시겠어요? 저요? 글쎄요, 또 그런 경우가 닥치면 안 그러리라는 장담은 못 하겠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괴로워요. 용서해 주시겠어요? 용서해 주시겠어요?

그러나 실제로 펜을 들고 종이에 쓴 것을 딱 한 번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서울 대학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써 놓고 보니 하도 바보 같은 편지였다.

‘선생님은 세상을 어떻게 보십니까?’라는 내용의 질문이나 별다른 게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쪽에서 좋다고 본다고 딱 잘라서 말해 버리면 난 정말 올 테 갈 데가 없이 부끄러울 뿐이어서 부치지는 않았다.

밤이 오면 나는 옆집까지 와 있는 전선에다가 그 집의 묵인 밑에 낮으로는 감춰 두었던, 끝에 구리 갈고리가 달린 전선을 붙여서 죽음의 냄새로 가득 찬 우리 방을 밝혀 놓고 동화라는 걸 쓰곤 했다.

옛날에 옛날에 하느님 밑에는 ‘꿈’이라는 이름을 가진 장사가 있었다. 힘은 무척 세었지만 성미가 너무 급해서 가끔 큰 실수를 저지르곤 했다.

그리고 교만스러워서, 자기보다 더 힘센 것에 대해서는 항상 적의를 품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눈 내리는 날 ‘꿈’은 정말 무시무시한 죄를 짓고 말았다.

하느님은 그에게 큰 벌을 주기로 하셨다. 그 벌이란 인간 세상에 내려가서 모든 인간들의 이마를 한 번씩 다 짚어 보고 돌아오면 벌이 끝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말씀하시기를 내 얼굴이 너무 흉측하니 밝은 낮에 나타나면 인간들이 놀라 자빠질 게 틀림없다. 그러므로 밤으로만 너는 네 길을 재촉하여 인간들의 이마를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한 번씩 짚어 보고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꿈’은 하계로 내려갔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탄생하므로 꿈의 형벌 역시 영원히 계속되고 만다. 말하자면 ‘꿈’은 영원히 인간 세게에 귀양을 오고 만 것이었다.

이따위 동화 나부랭이나 끄적거리고 있는데 장영일이라는 친구가 나타난 것이었다.

우리는 사기꾼 시큼한 땀 냄새를 풍겨 내며 넉살 좋게, 나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우리의 어린 시절 얘기를 하고 있는 영일이가 오로지 그가 가슴에 달고 있는 은빛 배지 때문에 내게는 전연 남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지난 학기 등록금은 얼마였니?”

나도 모르게 무언가 향수에 젖은 듯한 음성으로 물었다.

“까짓 거, 내 알 배 뭐야. 난 전액 면제를 받거든.”

절에만 들어박혀 ‘고신가 지랄인가’만 준비한다는 녀석이 장학금을 받는다는 건 좀 납득이 안 갔다.

“휴학하고 있으면서 널 뭘 하고 있니?”

그가 나에게 물었다.

“그저 그렇지 뭐. 거창하게 죽음이란 것이나 생각하고 지내지 뭘, 히히.”

“헤? 너 철학과 다니니? 자살을 생각하고 있단 말이지?”

“이 찬구야, 철학과 다니면서까지 자살을 생각하는 놈이 어디 있어?”

“천만에, 그거 참 좋은 거다. 도스토예프스키에 의하면 말이다. 법학도가 아는 체해서 안됐다만, 자살은 의무입니다, 했거든.”

나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이 친구가 의외로, 비록 서로 오랫동안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결국은 나와 흡사한 인간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문득 유쾌해졌다. 철 없을 때 해어졌던 친구가 어느 날 나와 똑같은 사고 방식과 감정 방식을 가진 어른이 되어 자기 앞에 나타난다는 건 무척 즐거운 일 일일 것 같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풍부한 나라인가? 별로 신기할 것도 없는 듯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쨌든 나는 유쾌해졌다.

“야, 너 목욕한 지가 며칠이나 되니?”

나는 손으로 코를 싸 쥐는 시늉을 했다.

“며칠이 뭐야? 바로 어저께 한강에서 수영했는데…”

내게는 까마득한 곳에 있는 한상을 이웃집 얘 이름 부르듯 하는 그가 묘하게 부럽다고 느끼면서,

“우리 냇물에 목욕이나 갈까?”

“목욕? 냇물에! 으와 그거 좋다. 철교 밑 거기 아직도 목욕터니?”

그는 입으로는 좋아 죽겠다는 시늉을 하면서도, 내가 팔을 잡아 끌 때까지 마루에서 일어설 생각을 안 했다. 일어설 때 그는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좀

비뚤어져 있는 배지를 손가락으로 비벼 바로잡았다.

사람의 왕래도 드물고 별로 깊지 않은 냇물에 목만 내놓고 들어앉아서 덤벙대며 그는,”난 세상에서 가장 오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런데 참, 너 우리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게 무언지 아니?”

“대통령이겠지 뭘.”

“이짜식아, 3·1절하고 6·26야, 6·25. 아무리 생각해도 그만큼 유명해지긴 틀린 것 같아.”

하다가, 엉뚱하게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를 부르다가 했다.

여름 오후의 뜨거운 태양이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었고 물이끼 낀 자갈이 발바닥을 간지럽혔다. 문득 처음으로 나에게 여름이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슨 근거로써 이러는 것일까?

물 속에 오래 앉아 있었기 때문에 덜덜 떨려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근처 논에서 김을 매다가 점심을 먹으로 집으로 들어가는 농부들이 차츰 방죽에 많아졌기 때문에 우리는 뜨겁게 달아 있는 자갈밭으로 나와서 팬티만 입고 앉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담배를 입에 문 체 영일이는, 나로 하여금 그를 가난한 사기꾼으로 보게 했었던 자기 바지의 호주머니를 부시럭부시럭 뒤지더니 필림 갑 같은 것을 꺼내었다. 필름 갑 속에서 이번엔 드롭스철머 은종이로 싼, 길고 둥그란 것을 꺼냈다. 드롭스를 싸고 있는 은종이를 벗겨 내니까 불에 녹고 있는 촛동강이처럼 흐물흐물한 물건이 나왔다.

이상하게 생긴 과자도 있고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는 좀 멋쩍게 하이 웃으면서 그것을 고무끈을 들추고 팬티 속으로 가져갔다. 한참 동안 눈을 찌푸리고 움지럭움지럭하더니 팬티 속에서 빈 손을 꺼내 담배를 입에서 떼며,”고신가 지랄인가 땜에 치질이 걸렸거든.”

또 ‘고신가 지랄인가’였다.

적어도 삼십 분쯤은 탈 만큼 커 보이던 그 촛동강이 같은 게 치질약이었떤 모양이다. 녀석의 항문 속에서 홀홀 불꽃을 날리며 양초가 녹고 있는 것을

상상했더니 웃음이 터졌다.

“치질 걸리면 아프니?”

“뭐?”

그는 가슴패기에 만발한 여드름의 감촉을 즐기듯 손바닥으로 슬슬 어루만지며,

“너 아직 그것도 안 걸려 봤구나. 한번 걸려 보라구, 재밌다구.”

그는 마치, 이거 먹어봐, 맛있단 말야, 하는 투로 말했다.

“쓰리고 피가 나고 한다던데?”

“문제는 거기 있는게 아냐. 무슨 병이든지 그렇지만 말야, 병에 걸리지 않아?

그러면 참 많은 걸 알게 된단 말야, 예를 들면 그 병을 치교하기 위해서는 무슨 약 무슨 약이 있고, 이러저러한 처방이 있고, 아무개는 어떻게 해서 나았고,

아무개는 어떻게 잘못해서 죽어 버렸고, 그때 이렇게만 했더라면 살았을텐데 하는 식으로 말야, 굉장히 많은 것을 알게 된단 말야. 그리구 혹시 너 이해 못 할지는 모르겠다만, 영혼이란 건 참 우스운 물건이어서, 아니 물건은 아니고 그 뭐랄까, 하여튼 그런 건데 말야야. 이게 어디가 아파야 슬쩍 나타나는

물건이거든. 평소에는 어디가 있는지 숨어 있다가 꼭 어디가 아파야 나타난단 말야. 그런데 말야, 너 혹시 아직 영혼이란 걸 보지 못했는지 모르지만, 그게 영 비참한 낯짝을 하고 있단 말야. 너 내 말 알아듣겠니. 영 비참한 낯짝을 하고 있단말야.”

말을 중단하고 그는, 이 속물라, 너 내 말 어렵지, 하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야 야, 더러운 치질 좀 걸려 가지고 영혼이니 뭐니 수작 피우지 마.”

“호오, 좀 이해가 되는 모양이구나. 그런데 너, 아직 치질 가지고도 영혼의 그 비참한 낯짝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구나. 허기야 암에 걸려도 그걸 보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한 세상이지… 오, 암… 정말이지 난 그거 한번 걸려 봤으면 좋겠어. 내 영호니 얼마나 비참한 낯짝을 하게 될지 좀 보구 싶단 말야.

너 혹시 성병 걸려 봤니? 그것도 참 묘한 것이란 말씀이야….”

살다가 보니까 참 별 자랑도 다 들어 본다. 성병에 걸려 본 것이 자랑이라도 되는 듯한 말투로 영일이는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게 걸리지 않아? 그럼 어떤 증상이 나타나느냐 하면 말씀인데, 아냐 아냐, 내가 하는 얘기는 여혼의 낯짝에 나타나는 증상인데 말야. 우선 깨끗한 것에

대한 외경심이 생겨. 예를 들면 길에 지나가는 모든 다른 사람들, 특히 틀림없이 처녀로 보이는 깨끗한 여자들을 보기만 해도 그들은 밝고 따뜻하고 뭐랄까 안전한 곳에서 살고 있는데, 자기는 어둡고 춥고 살벌한 곳에 갇혀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나타나게 된단 말야. 그래서 또 어떤 증세가 나타나느냐, 내 경우 얘기하지. 허기야 내 경우밖에 얘기할 것도 없지만 말야. 내 경우엔 이런 느낌이 잇따라서 나타난단 말씀야. 만일 내가 다시 한 번만 저들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깨끗한 것, 예를 들면 처녀 같은 것을 아껴야겠다. 그 깨끗한 것들이 엉뚱한 침해를 받게 될 경우엔 내가 온몸을 던져서라도 막아 내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병 걸린 자들의 괴로움을, 병이 걸리면 어떤 병이건 초기 증세는 괴로운 거니깐 마량, 그 괴로움 한 번 겪음으로써 그 세계를 알고 있는 나는 그 환자들을 경멸해 버리는 대신 그들이 저지르는 어지간한 잘못쯤은 용서하겠다, 이런 느낌이 든단 말야. 말하자면 중재자가 되도 싶어 진단 말야. 중재자, 오 중재자야말로 참다운 인간이거든.”

“뭐가 참다운 인간이라고?”

나는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다.

“얘기하잖았어? 중재자 말야.”

“어떤 게 중재잔데?”

“여태까지 무슨 애길 들었니? 항상 자기의 영혼을 보는 자, 영혼의 끊임없이 변하는 표정을 살피는 자, 비참한 영혼과 턱없이 깨끗한 영혼의 사이에 서서 그

둘을 서로 용서하도록 권하는 영혼을 가진 자, 그게 중재자야. 참다운 인간이란 말야.”

“놀랬는데! 너 어디서 그런 기막힌 생각을 배웠니? 어느 교회에 다녔지?”

“소년원에 있을 때 해낸 생각이다. 왜? 트릿하니?”

“소년원?”

“부질없는 호기심은 자신을 위해 삼가라 — 공자”

그는 얼렁뚱땅 내 입을 막아 놓고,

“요컨대, 병이란 그렇게도 좋은 거야. 난 많은 병에 걸리고 싶어. 이번 여름엔 적어도 다섯 가지 이상 병에 걸려 보고 싶어. 그럴 계획이야.”

그는 마치, 이번 여름에 열심히 연습해서 유도 초단은 따야겠어, 하는 투로 어금니를 악물듯이 결의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혹시 너 쇼에서 사회자 노릇 한 적 있니?”

내가 물었다.

“뭐라구?”

“아냐. 그런데, 이건 쓸데없는 호기심이 아니고 난 너를, 아니, 참 네 영혼을 잘 알고 있을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기 때문에 묻는 건데 말이지.

너… 소년원엔 왜 들어갔었지?”

“아아, 부질없는 호기심은…”

“오, 필요하겠지, 필요하겠지.”

엄살을 떠는 시늉으로 말하면서 그는 콧등에 잔뜩 주름을 잡고 한동안 흐르는 물만 바라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난 이렇게 생각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사소한 사건이라도 말야, 그것을 남에게 자세히 얘기해 두려면 결국엔 나는 어떤 경로로 태어났느냐,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느냐를 모조리 얘기해야만 비로소 그 사소한 사건이 진짜 모습으로써 상대방에게 전달될 거란 말씀이야. 그렇데 사실은 그게

거의 불가능하거든. 오히려 어떤 사건이건 동기와 결과아 있는 법인데 말씀야, 내가 깨닫기엔 결과가 먼저고 동기가 그 뒤에 생겨나는 법이란 말씀이거든.

아니 그런 방식으로 얘기하면 정확히 남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한단 말씀야.

내가 왜 소년원엘 들어가게 됫는지를 얘기하란 말이지? 그래, 얘기하자. 우선 난 소년원에 갇혀 버렸다. 거기서는 주로 채소를 가꿨지. 왜 소년원엘 들어갔느냐? 좋아하던 여자애를 강간했기 때문이야.

아직 불두덩에 털도 안 난 나이에 어쩌자고 그런 짓을 했던지 나도 참 괘씸하단 말야.

왜 강간을 했던가? 이렇게 되면 동기를 얘기해야 할 판인데, 아마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되어 있었겠지. 역사적인 원인. 사회적인 원인. 물리적인 원인.

화학적인 원인. 미학적인 원인, 지리적인 원인 등등 말야. 그런데 사람들을 대개 그 모든 원인들을 몽땅 꾸려서 간단히 심리적인 원인이나 도덕적인 원인으로 가져가 버리거든. 그런 관점으로써만 얘기하라면 우선 이거야.

첫째, 난 그 짓이 하고 싶었지. 둘째, 여자가 노 했단 말야. 그런데 난 어떤 책에서 ‘여자의 노는 진짜 노가 아니다.’란 멋있는 귀절을 읽은 적이 있었거든.

그래서, 옳지 옳지, 니가 입으로는 노 노 하지만 속으론 예스 하렷다. 옳지 옳지 옳지 옳지 하면서 그만 그 짓을 해 버렸단 말야. 그런데 웬걸, 글쎄 그게 진짜

노였네 그래…”

그의 진짠지 가짠지 모를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얘기도 참 여러 가지 스타일로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저 두꺼비 같은 낯짝이 뻘개져 가지고 씩시대었을 꼴을 상상하니 창자에서 신트림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게 도대체 몇 살 때 일이야?”

내가 물었다.

“열 여섯 살 때야. 아직도 털도 안 날 때 얘기라니까. 아니 솜털이 부시시 나긴했지. 에에, 그리고 셋째 원인은 이거야말로 결과가 있은 후에 생각해 본 심리적인 동기인데 난 굉장히 초초해 있었거든. 넌 모르겠지만, 난 아버지 덕택에 여기저기 전학 다니느라고 공부를 제대로 못해서 고등 학교를 한 번 떨어지고 일 년 놀고 있었거든. 그러니까 굉장히 초조했지.

근데 그게 병이란 말씀이야. 병인 정도가 아니라 초조해한다는 건 바로 큰 죄악이지.

옛날 일본놈들 ‘꼬봉’ 노릇을 하면서 같은 민족을 고문해 댄 놈들도 사실은 이것 때문이야. 동료들이야 흰 눈으로 보건 뻘건 눈으로 보건 윗사람만 나타나면 히히헤헤 바지의 먼지를 털어 드린다, 손수건으로 구두를 닦아 드린다 하는 녀석들도 이것 때문이야. 미군 부대 철조망을 뚫고 들어가는 놈이나, 이웃집 아주머니를 겁탈하는 놈이나, 여하튼 못된 짓은 모두 이 감정이 시키는 거란 말야. 그래서 난 결코 초조해아지 않기로 했어. 왜 내가 해? 해서 좋을 게 뭐 있어?”

내 입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도덕 군자나 목사님 같은 소리만 하고 있는 영일이라는, 자칭 내 엣친구라는 놈이 새삼스러베 사기꾼처럼 보였다.

버러벗고 냇물 속에 들어앉아서 농탕을 치고, 이렇게 팬티만 걸치고 냇가의 뜨거운 자갈밭에 앉아서 한담을 나눈다는 행위 자체가 잠깐 나로 하여금,

사기꾼일래면 사기꾼이라지, 무슨 상관이야, 나에겐 남에게 배앗길 게 아예 없을터이고— 있다고 해야 몇 끼니 밥이겠지.

한편 보아하니 참 재미있는 놈이다. 뭔가 시원시원한 데가 있다. 게다가 거기서 내쫓겼거나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서울 대학교를, 자기 가슴에

그은 빛 배지를 달고 음으로써 나로 하여근 다시 그곳에 속해 있는 듯한 느낌을 느끼게 해 준 친구, 낯설지만 반가운 친구, 하는 생각을 하게 하였는데 웬걸 해대는 이야기가 점점 설교조, 비분 강개조, 인간 개조론조, 정신주의조 또 그런 말이 있다면 툭 트인조, 거기다가 고뇌를 추가하라는가 하면 초조해야지

말고 여유 있게 살라는 게 범벅된 횡설수설조였다.

하지만 내가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갑자기 새삼스럽게 그가 사기꾼처럼 보인것은 그 얘기들의 내용 때문은 아니었다. 어떤 경험의 범위 안에서는 가장

옳은 견해일 수도, 비록 모순되는 점이 잇다고 하더라도 그것까지 포함해서 가장 유용한 견해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자들을 위해서는 싸구려 위장약,

간장약보다 우선 이걸, 하는 식으로 듣기엔 권해 보고 싶은 얘기들이기도 했다.

내가 그를 사기꾼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그런 그의 얘기 때문에 결코 아니라 그런 엄숙하고 자중하고 심각하고 날카로운 듯한 얘기를 하려고 애쓰는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식의 화제를 그런 식의 화법으로 했을 때, 그 얘기를 듣는 상대에 따라서는 굉장한 효과를 거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말하자면 상대방이 순진하고, 또는 멍청하고 격정적이고, 또는 미친개 같은 사람일 경우엔 그런 설교조의 얘기를 비분 강개의 형식으로써 하는 것이 상상이상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 효과란 뭔가? 내 얘기를 듣고 있던 멍청이가, 또는 미친개가 그만 나를 존경해 버리고, 또는 나한테 반해 버린다는 것이다.

멍청이가 미친개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항상 ‘위대한 영도자’가 나오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말하자면 영일이란 놈은 내 앞에서 위대한 영도자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어림없다. 나 역시 그 녀석과 똑같은 방식으로 얘기를 짖어 댄 경험이

있었으니까.

지금 너는 나를 속이려다가 실패를 했지만 그러나 난 멋지게 성공한 적이 있단 말야.

지난 이월, 서울로부터 하향하는 기차 안에서였다. 고등 학교 동창 두 명을 만났다. 군복을 입고 있었고, 휴가를 얻어 집에 내려가는 길이라고 하며

무척반겼다. 고등 학교 때, 공부는 엉망들이었지만, 운동은 별의별 것을 다 해보는 친구들이었다. 지금은 군대에서 태권도 교관으로 있다고들 했다. 바로

그 친구들을 앞에 놓고 내가 사기를 친 것이다.

우리 민족은 세계에 내놓고 보면 IQ가 백 사십은 되는 민족이다. 뭉치자 뭉쳐, 너도 뭉치고 나도 뭉치자에서 시작하여 너희들 제대하고 나 대학 졸업하면 우리 모두 고향으로 가서 고향을 재건하자. 고향으로 가서 고향을 재건하자. 고향은 너무 황폐해 버렸다. 숲도 만들고 농장도 만들자, 어쩌구저쩌구.

교수님 돈을 슬쩍 해 가지고 도망가는 놈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 친구들은, 역시 너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들의 모범이었어, 어쩌구 하며 부푼 가슴으로

나를 존경한다는 것이었다. 나 참.

크건 작건 누구에게든지 그런 경험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기야 그렇게 해서 존경이라는 말은 유지되고 존경이란 말이 있어야 세상의 질서가

유지되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렇지만 영일이나는 이 홍두깨 같은 친구, 두꺼비, 여드름쟁이가 나에게서 존경을 받을 생각을 하다니, 자기의 영혼을

혹사하라고? 초조해하지 말라고? 초조야말로 가장 나쁜 죄악이라고? 옳은 얘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의 처지를 알기 때문에 충고하느라고 한

얘기였을까? 천만의 말씀이었다. 나를 홀려서 자기 부하를 만들려고 한 수작일 따름에 틀림없었다. 만일 그가 물리학을 공부했더라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어떻고 미·소의 원자력 개발 상황의 차이점은 어떻고 하면서 나를 홀리려 들었을 거고, 만일 그가 의학도였더라면 감기 몸살 하면 될 얘기도

아무개씩의 ××에 대한×적 ××설 따위의 수작을 부렸을 거고, 만일 그가…그렇게 생각해 가니까, 녀석이 그렇게도 신나서 떠들어대던 얘기들에서 조금도 법학생 냄새가 나지 않았던 것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법대 애들은 농담을 하더라고 법률 용어를 동원해서 한다. 교가조차도 ‘…고등 고시 미끼삼아 연얘를 하고…’ 식으로 바꿔서 부를 만큼 무언가 자기들

주변에서 별로 떠나서 얘기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녀석은 시종 신학생 학생, 그것도 대단히 한국전인 신학생 같은 소리만 하고 있다. 나는 그가 가짜 학생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되어서 견딜 수 없게 되 버렸다.

‘고등 고시 미끼삼아’, 어라, 틀림없다. 시골에서는 아직도 고등 고시라면 마패를 타는 시험 제도인 줄로 알고 있다. 고등 고시의 ‘고’자만 공부하는 젊은이가 있으면 서로 딸을 주려고 한다. 옳거니, 네놈이 시골의 그런 어수룩한 언식을 슬쩍 이요해 보려고 하는 것이겠지… 의심하기 시작하니까 끝이 없었다.

학생증을 보자고 하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하여 낯 붉어지는 일이었다.

내가 좀 시무룩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그래서 그는 좀 불안했던지 벗어 놓았던 안경을 집어 들고 자기의 땟국에 담갔다가 내놓은 듯한 셔츠에

유리알을 닦으면서,”우리 무슨 말 하다가 얘기가 이렇게 길어졌지? 오, 내 치질 때문이군. 치질 얘기만 나오면 난 항상 신이 난단 말야.”

안경을 쓰고 나서 마치 이제야 세상이 잘 보인다는 듯이 얼굴을 하늘로 향했다가 땅으로 향했다가 했다.

나는 말없이 옷을 주워 입었다. 생각만 같아서는 획 돌아서며 학생증 좀 보자, 하고 싶었으나,

“목욕을 한데다가 좀 떠드니 배가 몹시 고픈걸.”

하며, 나를 놓치면 밥을 못 얻어먹을세라, 부지런히 걸레를 팔다리에 꿰고 있는, 그러면서도 입은 살았다고 두꺼비 같은 얼굴을 넙죽거리고 있는 녀석을

보고 있노라니까, 그만 나도 모르게 입술이 삐죽이 열리며 웃음소리가 킬킬 새어 나왔다.

아무려면 어떤가. 내가 속았다, 또는 속고 있다는 것밖에 더 무엇이 있느냐.

그것도 나를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해서일 뿜 인데. 속여라, 그래, 날 실컷 속여라, 넌 날 속였다고 생각하고 좋아하고 있으면 되고, 난 사실은 속지 않으니까, 그래서 기분이 나쁘지 않고, 그러나 제발 그 영혼이 어쩌구저쩌구는 그만뒀으면 좋겠구나.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디 그런 일뿐일 것인가. 돌이켜보면 얼른 기억나는 일만도 수두룩하다.

국민 학교 때였다고 기억한다.

어느 날 아침밥을 먹고 나서 가방을 드는데 어쩐 까닭인지 그날만은 영 학교에 가기가 싫었다. 아마 학교에 취미를 못 붙이다가 죽은 아이의 귀신이라도 씌웠던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아버지에게 오늘 학교 가기 싫어, 할 수는 없었다.

그런 턱없는 생각이야말로 이웃집 만식이나 성준이가 할 것인지 모범생 중의 모범생인 내 머리에는 도저히 나와서는 안 될 것이었다. 하지만 당장 누가

죽인다고 하더라도 학교에 가기 싫다는 느낌이 나를 놓아 줄 것 같진 않았다.

머리 좋은 학생답게 나는 곧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아버지, 어머니,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오오냐.”

마루에 앉아서 아직도 식사를 끝내지 않고 계시는 어른들께 넓죽 절하고 나서 나는 가방을 들고 천연스레 대문을 향하여 걸어나갔다. 대문턱을 넘어설

때 나는 갑자기 비틀비틀 그러다가 대문 밖 골목으로 픽 멋들어지게 쓰러졌다.

어른들이 벗은 발로 뛰어나와서 나를 안아다가 안방에 뉠 때까지 나는 눈을 힘껏 감고 있었다.

“왜 그러니? 왜?”

“어지러워서… 별안간 눈앞이 노래지면서… 어지러워….”

“아이구, 내 자식, 공부 너무 하더니 그만…”

내가 공부를 너무 했었던지 어땠었던 지는 기억에 없다. 있는 것은 다만 내가 저지른 쇼에 대하여 문득 맹렬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나는 감은 눈을 차마

뜰수가 없었다는 정도이다.

누구에게나 이 비슷한 기억이 있으리라.

그런데 얼핏 생각하기에 하잘것없이 보이는 이런 성질의 기억들이 그러나 쌓이고 쌓여서 결국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는 놈’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일도 있었다.

대학에 합격하여 서울에 처음으로 자취방을 얻으려고 할 때였다.

신학기라서 셋방 얻기가 힘들 거라는 선배의 얘기만 곧이듣고, 나는 복덩방의 소개로 방 하나를 얻게 되자마자 별로 방안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대뜸 보증금부터 주인 할머니에게 줘 놓고 보았다. 그런데 다음날, 이사를 해놓고 보니 빗물과 쥐 오줌으로 세계 지도가 그려진 천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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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그림표 식으로

축 늘어져 있고 장판이란 것도 러시아엔가 있다는 초원 모양 퍼렇게 곰팡이로 한 꺼풀 덮여 있었다. 요컨대 맘에 들지 않는 방이었다는 얘기다.

머리가 맘에 들지 않게 깎여졌을 때나, 예상했던 솜씨로써가 아니게 만들어진 음식을 사 먹고 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맘에 들지 않는 셋방에 들기란 세상에 침을 뱉고 싶을 정도로 싫은 법이다. 하고많은 서울의 방들 중에서 하필 벌레도 들기 싫어할 듯한 방이 내 차지가 된 데 대하여 나는 나의 창창한 앞날조차도 의구심을 가지고 생각해 볼 만큼 비관했다. 당연한 생각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나는 그 방에서 나오고 싶었다.

그러나 모범생으로서만 자라난 청년답게 순진하기 짝이 없었던—사실은 이것이 더 엄청난 짓을 곧잘 저지른다는 것을 나는 곧 알게 되지만—나로서는

차마 야박스러워서 주인 할머니에게 보증금을 돌려 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낯선 고장에서 혼자만 버림받은 듯이 안타까운 하룻밤을 그 방에서 새운 다음날, 나는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다.

주인 할머니는 옛날에 집에 화재가 나서 집안이 망한, 어서 말하자면 불에 대하여 노이로제가 걸려 있는 분이었다.

복덕방 영감을 앞장 세우고 방을 얻으러 왔을 때만 해도 주인으로서 나에게 묻는 첫마디가,

“담배 피우시우?”

“아직 못 배웠습니다.”

“앞으로 배울 작정이슈?”

“뭘 말씀이십니까?”

“담배 말이우. 우린 담배 피우는 사람한테 방을 내놓지 않는다우.”

“아, 안 피웁니다. 이제 겨우 대학교 일학년인걸요.”

“앞으로도 담배는 배우지 마슈.”

그러면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부주의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어서 아직도 불이 꺼지지 않는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기 때문에 불낼 염려가 많다는 것이

었다.

그날 밤, 서울 공부하러 가는 아들을 위하여 어머니가 새 솜을 넣어 깨끗이

깨끗이 꾸며 주신 이불이 더렵혀질까 보아, 러시아의 초원을 연상할 만큼 시퍼렇게 곰팡이가 깔린 방바닥에 이불도 펴지 아낳고 옷 입은 채로 웅크리고

앉아서 천장에서 열리고 있는 쥐들의 대운동회를 귀로 구경하며 나는 어떻게 하면 주인 할머니의 손에 들어가 버린 보증금의 돈을 그 분이 쥐었다 놓친 듯한 섭섭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며 돌려받을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문득 저 담배 얘기를 생각해 냈던 것이다.

다음날 나는 친구들을 모을 수 있는데까지 모아 가지고 방으로 데리고 와서 주인 할머니께 대한 명목은 ‘이사턱’이라 하여 술을 마신다, 합창을 한다,

그리고 억지 담배를 피운다, 방문을 벌컥 열고 불 끄지 않는 담배 꽁초를 마당으로 휙 던진다, 보시옵소서 주인 할머님 제발 좀 보시옵소서, 우리는

이렇게 담배를 잘 피웁니다. 어쩌면 우리는 담뱃불로써 이 집을 홀랑 태워 버릴는지도 모릅니다, 식으로 꽁초를 휙휙 던진다 하며 떠들썩하게 놀기 시작했다. 나의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여 협력해 준 친구들의 덕택으로 예상했던 효과는 몇 시간조 지나지 않아서 나타났다. 나는 보증금과 함께 고마운 퇴거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주인 할머니로 하여금 나를 내쫓도록 일을 꾸밈으로써 나의 미묘한 동정심을 만족시키려 했던 나느 사기꾼이 나리 것인가?

‘우리 방이 나빠서 저녀석이 나가는 게 아니라 저녀석이 나쁨 놈이기 때문에 나는 저녀석을 우리 방에서 내쫓는 것이다. 우린 방은 좋은 방이다.’ 라고 주인 할머니가 생각해 주기를 바라면서 그 방을 나오던 내 행위와, 그 행위의 동기야말로 얼른 보기엔 겸손과 희생 정신과 이타 정신의 극치인 것 같지만

그러나 그 행위를 통하여 무엇이 남았을까? 그리고 그것은 대단한 듯이 착각하고 있던 자기 집의 방 하나가 시골뜨기 애송이로부터 간단히 거절당할 만큼 더러운 방이었다는 것을 깨닷게 되었을 때 받을 섭섭합보다도 더욱 나쁜 것이 아닐 것인가?

대체로 우리들 젊은이들은, 아니 나에게 ‘우리들 젊은이들’을 대변할 자격은 없겠지, 대체로 나라는 젊은이는 학교에서 배운 미덕—요즘 말로 고치면,

서비스 정신과 자신의 욕구의 틈바구니에 끼여서 하룻밤 끙끙 고민하고는 살아가지만, 그러나 자기는 최고라고 생각할 그 방법 때문에 얼마나 세상의 한

귀퉁이를 무너지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상상도 못 하는 게 아닐 까?

차라리 ‘난 이 방이 싫소. 보증금 돌려 주시오.’ 하는 쪽이 미덕을 발휘하는 행위 였을 것만 같다.

요컨대 우리들… 아니 나는 사기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란 얘기다.

사기꾼치고는 좀 겁 많은 사기꾼이라고나 할까?

어차피, 즉 겁이 없느냐 있느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사기꾼들이라고 생각하니, 나는 나를 비롯하여도 영일이도, 그리고 어딘가 있을 것만 같은 날 닮은 많은 절믓나이들도 모두 딱하다는 느낌이 들어 우울해졌다.

“혹시 너, 나 밥 먹여 줄 일 때문에 우울해하는 거 아니니? 그렇지만 그런거

걱정 말아라.”

목욕하느라고 헝클어진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어 넘기며 내 옆에 바짝 붙어서 걷던 영일이가 두꺼비처럼 생긴 낯짝과는 다르게 자기도 제법 눈치가 있다는 투로 은근히 물어 왔다.

“야야, 그것도 걱정이지만 말야…”

“허여, 넌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도 모르는 모양이다만, 어쨌든 내 밥 걱정은 말아라.”

무슨 아프리가 말인가 했더니,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되게 유식한 놈이라고 생각하면서,

“넌 우리들이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말야, 저어, 엄격한 의미에서 우리는 사기꾼이 되도록 태어난…”

“헤, 너무 유식하게 얘기하지 말아야.”

내가 사기꾼 어쩌구 하니까 찔끔한 모양인지, 녀석은 도리어 날 무식한 유식꾼으로 몰아세우면서 능청을 떨었다.

“방금 네가 한 말투 같은 게 바로 사기꾼들의 전형적인 말솜씬데 말이지…”

하고 나서, 그에게 주인 할머니의 불에 대한 노이로제를 이용하여 셋방을 빠져 나온 얘기를 들려 줬다.

“그래서?”

그래 흥미있다는 눈초리로 물었다.

“얘기는 그거야. 거기에 결론을 덧붙인다면 난 사기꾼이라는 얘기야.”

내가 대답했다.

“그게 왜 사기야?”

그는 무척 어리둥절하다는 듯이 고개까지 기웃거렸다.

“난 사기라고 생각해. 상대편의 정신적 타격을 충분히 막아 내면서 나의 욕구를 관철시키겠다는 건데 말야, ‘지식은 힘이다.’ 라는 교육을 받아 온 우리는 대부분 그 정도에서 그 ‘힘’ 자랑을 하고 이는 셈인데 말야, 이제 결과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게 된단 말이거든. 자기를 기만하는 저온면 괜찮게? 결과 적으로 상대편으로 하여금 이 세계를 비판하도록 만드는 범인 노릇도 어느새 한 셈이란 말야.”

“좋아, 좋아.”

녀석은 인심이나 쓰는 투로 말하고 나서,

“가만히 듣자니까, 넌 ‘정신적’이니 ‘결과적이니’이니 ‘시기꾼’이니, 하는 말을 되게 좋아하시는 모양인데 말야, 좋아 좋아, 나도 영혼이란 말을 되게 좋아하니까, 좋아 좋아…”

손가락을 비비 딱딱 소리를 내기까지 하며, ‘좋아 좋아!’를 연발하다가, “하지만 난 정지하고 있는 영혼을 좋아한다는 얘기가 아냐, 움직이는 거, 발전하는 거, 발전하는 영호.나 알아들어? 그걸 난 좋아한단 말씀이야. 그런 입장에서 네가 사기라고 딱지 붙여 놓고 고민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엔 대부분이 다 지혜라는 말씀이야, 지혜. 지혜가 뭔지 알어? 우리 한국 사람들은 정말 그걸 모른단 말슴이야. 모르면 물어 봐야지. 누구한테? 르네상스 시대의 이태리 사람들에게 그럼 뭐가 지혜냐? 간단해. 자기 남편을 근사하게 속여 넘겨서 다른 남자와 간통하는 재주. 자기를 골탕 먹인 사람에게 통쾌하게 같은 정도로 골탕 먹여 주는 방법. 인색한 자를 바보로 만들면서 동시에 돈 주머니를 손수 끄르게 하는 재주, 요컨대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방법, 그런데 그 방법들이야말로, 동시에 영혼의 명암을 뚜렷이 구별해 주는 조명이란

말씀이거든. 내 말 알아듣겠어?”

그는 자못 의기 양양하게 말했다.

“가만 있어 봐. 좀 어리둥절한데…”

말하면서 나는, 영혼의 낯짝의 변화를 보기 위해서 금년 여름엔 다섯 가지 이상의 병에 걸려 보고 싶다던 녀석과 자기 남편을 속여서 다른 남자와 간통을

하는 데 성공하는 여자야말로 지혜 있는 사람인 듯이 얘기한 녀석을 가늠해 보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어리둥절했다.

“네 설교대로 하면 지혜란 건 좀 수상한 건데 말이지, 양심은 어떻게 처리하지?”

내가 물었다.

“양심? 어느 시대의 양심말야?”

“양심에도 시대가 있나?”

“있구말구. 북쪽의 양심도 있구 남쪽의 양심도 있는걸. 그걸 성명하자면 해골이 복잡해질 테니까, 우선 네 말대로 영원 불변하고 순수한 양심이란 물건이있다고 하자. 그렇지만 그것만큼이나 영원 불변하고 순수한 투쟁이라는 게 있단 말야. 그러면 넌 이렇게 묻고 싶겠지? 그 투쟁은 양심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아니냐고.”

“그럴 거 아냐? 싸우기 위해서 싸우는 놈은 없을 테니까.”

“물론이지. 그런데 누가 누구와 싸우는 거지” 양심이 돌멩이와 싸우나”

천만에. 양심을 유지싶려고 애쓰는 사람이 똑같은 이유를 가진 다른 사람과 싸우는 거야. 싸우면 어느 한쪽은 지는 거야. 진 사람은 그럼 모두 자살하란

말인가? 우리 나라는 거의 항상 졌으니까 그럼 ‘자, 일동 자살!’ 하고 죽으란 말인가? 괜히 민족 대 민족을 끌여들여서 거창하게 널 위협한다고 생각하진

말아. 개인 대 개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야. 이 정도로 얘기하면 내가 어떤 사람의 양심을 얘기하는 건지 알겠지? 진 사람들의 양심이야. 진 사람들의 멍들고 찢어져서 피가 나는 양심이야. 그런데 우리는 모두가 진 사람들이거든.

우리들의 양심은 네가 생각하는만큼 영원 불변하고 순결 무구한 양심이 이미 아니란 말야. 적어도 저항력이 약해진 양심이란 말야. 아무래도 결국엔 나의

식으로 말한 건지 모르지만 요컨대 네가 생각하듯이 양심이란 게 우리의 몸 속에 있는 허파나 밥통처럼 우리에게 필수적으로 붙어 있는 어떤 고귀한 물건이라 해도 그런 결과란 말씀이야. 그런데 난 처음부터 그게 아니야. 아니야, 양심이란 것에 대한 너의 생각이 결과된 그 자리에서 양심에 대한 나의 생각이

출발한 것인지도 몰라. 아마 그런가 봐. 난 이렇게 생각하거든. 양심이란 만들어 가져야 하는 거라고 말야. 어떻게 만드는가 묻고 싶겠지. 대답은 이거야. 나의 영혼을 소나 말 부리듯이 막 부려먹음으로써 만드는 거라고 말야. 나는 인생을 사랑해. 그러기 때문에 나는 내 영혼을 모든 경우에 갖다 놓고 시달림을 받아 보게 하고 싶어. 그러면 결국 나의 영혼 속에 무언가 찌꺼기가 남을 거야. 난 그걸 양심이라고 하고 싶어. 난 우리 모두가 그래 줬으면 좋겠어. 그러면

무언가 우리 시대가 정리됐을 때엔 우리 시대의 양심이 남겨질 거야.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양심이라면 그땐 그걸 지키기 위해서 정말 강력한 투쟁도 우린 피하진 않을 거야. 그런데 가만히 보면 우린 거의 모두가 주어진 인생을 그저 무사히 통과하려고만 해. 자기 집 식구들의 손에 의해서 무사히 수의가

입혀지기만 기다리고 있는 꼴이란 말야. 그런 태도로 뒤에 남겨 줄 만한 양심이 만들어질까? 우리가 있는 힘을 다하여 지켜야 할 만한 양심을 물려 받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말야. 가만히 보면 회초리를 들고 ‘여러분, 조용히 조용히!’ 하는 선생님 같은 경찰들 눈치만 슬슬 보고 사는 꼴이란 말야. 순한 양들이지. 순한 양들은 항상 주인이 있어야 해. 자기가 자기의 주인 노릇은 못 하는 법야.”

“네 말대로 생각하면 도둑놈, 사기꾼, 강간자, 폭력배 들이야말로 양심의 제조를 위한 위대한 기사들 같은데?”

내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위대하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들은 희생자들이야. 희생이 아름다운 것이라면 따라서 그들은 아름다운 사람들이지.”

“헤에?”

“놀랄 건 없어.”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가진 능력 중에서 가장 훌륭한 능력을 들라고 하면 말야, 이걸 들겠어. 몸소 체험하지 않고서도 체험한 것과 마찬가지로 느낄 수 있는 능력 말야. 나는 그 능력을 믿어. 그러기 때문에 저 흉악한 범죄자들의 존재를 긍정하는 거야. 누군가가 몸소 체험해 줘야 해.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한꺼번에

그 범죄를 저질러 버릴지도 몰라. 모두가 한꺼번에 하게 되면, 그건 이미 범죄가 아닌 듯이 착가하는 게 사람이란 말야, 난 모든 경우를 모든 경우의 범죄라고 얘기하지 않겠어. 모든 경우를 우리는 체험해야 해. 그리고 자기의 영혼이 어떻게 그 체험을 통하여 견뎌 냈는가 또는 망가졌는가를 큰 소리로 얘기해야해. 우리 시대는 좀더 북적북적하고 좀더 와글와글해야 한단 말야.”

“그런 사고 방식으로 네 말마따나 고신가 지랄인가 공부하기는 다 틀렸구나.

범죄자가 아름다운 희생자로 보인다니 판검사 노릇은 다했다는 게 분명해지는 데. 차라리 목사가 되면 어때?”

살인 강도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런 미친 녀석이 하는 얘기를 비록 내게 귀가 있다고 해서 다 들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하며 내가

이죽거렸더니, 그는 분통이 터져 못 견디겠다는 표정으로,

“나는, 나는…”

무언가 말하려다가 그만두는 것이었다.

“나는 법대생이 아니야.” 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두는 것만 같았다.

:좋아, 좋아, 좋아…”

나는 그의 말투를 흉내내서,

“다 좋은데, 너 혹시 네 영혼과 뭔가가 어떤 낯짝을 하나 보려고 설마

시험삼아 날 죽이지는 않겠지?”

하고 말했다.

“어쩌면 그럴는지도 모르지.”

그는 시치미 뚝 떼는 표정으로 말하고 나서,

“이새끼야, 어텨까지 무슨 얘길 들었어? 난 인생을 사랑한단 말야. 몰라?

인생 말야? 인생을 살아야 한단 말야. 그런 내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용서할 것 같아?”

“어럽쇼? 그런, 네가 말한 그 영혼인가 지랄인가는 여태까지 지구 위에 있었니? 난 천당에 가 있는 줄 알았더니.”

“괴로운 영혼은 천당에서 위로받을 거란 말이지? 그거야 기독교에서 하는 얘기지. 이래봬도 난 크리스천이 아니란 말야.”

마치 크리스천이 아닌 게 자랑이라도 되는 듯이 엉둥한 소리를 해 놓고 나서,”괴로워하는 영혼은 그 자체로서 지구 위에 존재하는 거야. 그리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지. 내가 문제로 하는 것은 어떤 일을 해 놓고도 괴로워하지 않는 영혼이란 말야. 솔직히 고백할까? 아직까지 난 진짜로 내 영혼이 괴로워하는 것을 못 봤어. 좀 보고 싶은데두 말이지. 무슨 병에 걸려 있는 건지도 몰라.”

“뭐?”

나는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무어라 확실히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대체로 이런 느낌, 즉 논리를 사랑하는 자가 논리 없이 중얼거리고 있는 자의 얘기를 듣고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불쾌감이 치밀어 음을 느꼈다.

“너, 그럼 여태까지 내 앞에서 쇼했구나.”

“쇼는 아냐.”

녀석은 힘찬 음성으로 내 말을 부정했다.

“쇼는 이런게 쇼야. 먼저 슬픈 노래로 청중을 슬프게 했다가 다음 번엔

즐거운 노래로 청중을 즐거베 하는 게 쇼지. 순서가 뒤바뀔 수도 있어.

그렇지만 내가 했던 얘기는 쇼처럼 그렇게 흐리멍덩한 게 아냐. 난 분명한 얘기를 했더근. 인생을 질기자, 무엇이 인생을 즐기는 것인가? 그건 아직 잘 모르겠으나 인생을 가장 많이 즐긴 자가 누군지는 안다. 그럼 그건 누구냐?

가장 괴로운 영혼을 가지는 자다…”

“요컨대 인생은 괴로운 것이란 말쓰이시군?”

“인생이 괴롭다고 했나? 인생이 괴로운지 아닌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런 말을 하는 놈이 있다면 건방진 놈이라고 난 생각해. 그게 아니고, 자기의 영혼이 괴롭느냐 아니냐야.”

“이상한데? 평안한 영혼이 아니고?”

“넌 내 얘기를 동서 고금과 미리에까지도 통할 수 있는 진리쯤으로 생각하며들은 모양인데, 난 자꾸 ‘우리’라는 걸 강조했어. ‘우리’.”

우리? 우리는 한동안 입을 다물고 방죽길을 걸어갔다.

녀석이 한 얘기들이 어떤 뜻이야 있건 말건, 그저 녀석이 뭔가 생각하며 살아가는 놈이라는 걸 알게 된 것만도 괜히 고마웠다.

그러나 얼마 후 몇 명의 농부들과 비켜 지나가게 되었을 때 문득 나는 영혼이니 뭐니 떠들어댄 우리가 비현실의 장막 속에서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슬슬 우스워졌다.

나의 그런 느낌을 떨구어 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영일이 녀석이 입을 열었다.

“야, 너 날 따라서 여행하지 않겠니?”

“여행? 어디로?”

“아무 데루나. 난 미리 계획하구서 여행 다니는 몸이 아니란 말야.”

“좋아. 그렇지만 돈이…”

“돈? 돈 좋아하네. 벌어 가며 여행하는 거야.”

그의 말이 하도 자신에 넘쳐 있었으므로 나는 다시 한 번 좋아, 했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너, 저 농부들의 영혼에 대해서 한 마디 해라.”

“농부들의 영혼? 이 멍청아. 농부들의 영혼이 따로 있어? 지금 우리 나라에서 가장 평등한 게 사람드의 영혼이 위치하고 있는 상태야. 대부분 도무지 자기 영혼 같은 건 관심이 없거든. 자기의 인생에 관심이 없다는 얘기지.”

라고, 엄숙하게 녀석은 대답하였다.

지선풍견그날 밤, 영일이는 기어이 우리 집에서 자고 말았다. 온 방안에 스며 있는 할머니가 풍겨 내는 죽음의 그 구역질 나는 냄새 때문에—내 코엔 이미 익숙해 있었지만 영일이 녀석은 코를 싸 쥐고, 곁에 누워 계시는 내 할머니가 들으시면 노하실까 봐 소곤소곤,

“히이야, 지독한 냄센데. 느이 할머니한테서 나는 냄새지?”

나 역시 소곤소곤,

“어떻게 할머니한테서 나는 냄샌지 알어?”

“맡아 본 적이 있거든. 소년원에 있을 때 빨래도 해 주고 밥도 지어 주던 할머니가 한 분 계셨댔지. 내가 들어갔을 때는 너무 늙고 병들어서 가만히 누워 계시기만 했지만 무척 외롭게 살아오신 분이야. 그 할머니가 난 어쩐지 내 할머니같이 여겨져서 똥오줌을 내가 받아 냈지. 결국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서너 달 전부터 지금 이런 냄새를 피우시는 거야.”

“뭐야? 그럼 우리 할머니도 목숨이 얼마 남지 않으셨다는 건가?”

“아니지이. 이런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다는 얘기라니까. 근데 왜 이렇게 모기가 많니이?”

녀석은 한 손으론 코를 싸 쥐고 다른 한 손으로 정강이에 달려드는 모기를 때려 잡으며 소곤거렸다. 그리고 코를 싸 쥔 시늉을 한 채 잠이 들었다.

나는 모기도 모기려니와 그보다도 내일 아침 일찍 떠나기로 녀석과 약속한 여행에 대한 불안 때문에 얼른 잠이 오지 않았다. 여행을 앞둔 저녁의 설레는 가슴. 그 설렘의 대부분은 기쁨의 설렘이리라.

그러나 그날 밤 내 가슴이 파도에 흔들리는 해초처럼 불안스럽게 움직이던 이유는 첫째 돈 때문이었고, 둘째 그 여행이 지나치게 목적 없는 여행이 되리라는 점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여행이 성립될 수 없는 조건 두 가지를 들라.’는 문제가 있다면 거기에 가장 정확한 대답이 될 두 가지 조건만 가지고 여행을 떠나겠다는 우리가 딱하다는 것도 지나쳐 괘씸하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너무 걱정 말라는 것이었다.

첫재 돈은 벌면되고, 둘째 여행 목적은, 목적 없는 여행자들을 위해서 지어진 편리한 말, 즉 ‘관광’이라는 말을 슬쩍 하자는 것이었다. 어떤 양반들은 아무 목적 없이도 미국이나 불란서까지 여행 가는데 기껏 남해안 한바퀴를 도는데 자신 없이 할 건 뭐냐는 것이었다.

딴은 그렇다. 그러고 보면 남은 건 돈 문젠데, 그건 ‘돈 있는 곳에 꽤 생긴다. 즉 내게는 돈 냄새를 맡으면 저절로 그것을 내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꾀가 생기는 능력이 있단 말야.’ 하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녀석의 말에 기대를 걸어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쓰리꾼 아니고서는 감히 할 수 없는 그따위 말이 믿음직스러워 보일 만큼 그 무렵의 나는 중유처럼 번들거리고 굽어치는 파도와 눈부신 태양과 여행에서만 얻어 볼 수 있는 자유가 탐났던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늦잠을 자 버렸기 때문에 할머니께서 비척거리시며 지어 놓으신 아침밥도 먹지 않고 역을 향하여 달려갔다. 기차 시간에 대어 역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택시를 잡아 탔으면 좋겠으나 택시 탈 돈도 없으려니와 택시도 이 시골엔 없었다. 시골에서 가장 빠른 교통 수단은 아직까지도 두 다리다. 그 두 다리를 있는 힘을 다하여 놀리며 우리는 역을 향하여 뛰었다.

영일이 녀석은 내 몇 발짝 뒤떨어져 달리며, 숨이 차서 견디기 힘든 표정으로, 그러나 입만은 살았다는 것인지,

“얘얘, 헉헉, 어른이 되어, 헉헉, 이렇게, 헉헉, 달려 보기도, 헉헉, 첨인 거

같애, 헉헉, 굉장히, 헉헉, 기분 존데 헉헉, 달린다는 덴, 헉헉, 역시, 헉헉,

원시적인, 헉헉, 쾌감이, 헉헉, 있어, 헉헉, 서울선, 헉헉, 뜀박질로, 헉헉 거리를,

헉헉 달리는, 헉헉 어른은, 헉헉, 날치기와, 헉헉, 쫓아가는 순경과, 헉헉 만원

합승, 헉헉, 타려는 사람, 헉헉 들뿐이야, 헉헉, 유쾌한, 헉헉 이 운동이, 헉헉,

나쁘게만, 헉헉, 쓰이니까, 헉헉, 그레셤, 헉헉, 법칙, 헉헉, 그레셤, 헉헉, 법칙,

헉헉…”

나 역시 숨이 차서,

“잔소리는 헉헉, 뒷다 하고, 헉헉, 빨리빨리, 헉헉…”

그런 식으로 달리고 달려 역에 도착했다. 여수행 기차는 마악 뜨려는 참이었다. 우리는 개찰구를 지키고 서서 표에 구멍을 내 주고 서 있는 역원을 떼밀고 품 안으로 돌진했다. 기차표 살 시간 여유가 없었다. 우선 차나타고 나서 표를 사든지 말든지 해야 했다. 움직이기 시작해서 벌써 5미터쯤 앞으로 내닫고 있는 기차에 아슬아슬하게 뛰어올랐다.

팬티는 말할 것도 없고 얇은 나일론 양말까지 물에 담갔다가 지금 꺼낸 꼴이었다. 여행을 내내 이런 식으로 땀을 쏟고 다니다가는 틀림없이 어느 낯선 마을에서 병들어 죽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으스스해졌다.

‘하기야 병에 걸리면 영혼이 보인다지?’ 하고, 영일이 녀석이 하던 말을 생각하고 그렇게 자위를 했더니 정말 놀랍게도 병에 대하여 배짱 비슷한 게 생기는 것이었다.

우리는 승강구에서 서서 시뻘개진 얼굴을 바람에 식히며,

“이렇게 달려올 필요가 있었을까?”

“암, 있지.”

요란한 음성으로 말하고 나서 마주 보며 신나게 한바탕 소리내어 웃었다.

웃기는 웃지만 그러나 그 웃음 속에는 여행에 대한 불안을 감추려는 허세가 끼여들어 있었다. 그야 어떻든 좋은 기분이었다. 어제까지 내가 보아 온 풍경들이 흑백이라면 달리는 기차의 승강구에 서서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며 바라보는 풍경들은 총천역색하고도 시네마스코프라고나 할까. 휙휙 지나가는 철로 연빈의 작고 찌들어진 농가들도 아름다워 보였고, 솜 같은 뭉게구름을 이고 있는 푸르스름한 먼 산들은 여행을 시작하고 있는 나를 부러워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여행자의 마음은 변덕스럽다고나 할가, 그렇게도 어두워 보이고 답답하고 빠져 나오고 싶어했던 내 할머니의 방과 어제까지의 내가, 무언가 그런대로 생활이라는 무겁지만 동시에 튼튼한 대지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느낌이, 기차가 속력을 더하며 달릴수록 그리움처럼 가슴 한 곳을 두드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땅으로부터 1미터 가량 허공에 떠럿 나를 기다려 주는 아무것도 없는 곳을 향하여 가고 있는 내 행위가 어찌나 허황스럽고 무가치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지 점점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자칭 내 옛친구라는 영일이 녀석도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놈. 나는 문득 그녀석에게 유괴당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유괴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고 여수에 도착한 후 ‘넌 그만 집으로 돌아가 봐.’ 한다면 녀석한테 차비를 구걸해야 할 판이니…

더구나 그때 문득, 전깃줄에 대해서 할머니께 아무 설명도 해 드리지 애고 떠나왔다는 사실이 깨달아지자 나는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을 만큼 걱정이 되었다.

할머니와 나는, 전기세 한 등 값이라도 덜 물기 위해서 세를 준 다른 방들에만 전기를 들이고 우리 방에는 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전기세를 내지 않겠다는 것과 방이 어두워서 불편하니 전기를 달긴 달아야겠다는 것, 그 두 가지 욕심은 동시에 이씁띵 수 있는 것이고, 한편 그 두 가지 욕심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요컨대 한 끝에는 소켓이 달리고 다른 한 끝에는 갈고리 모양의 구리줄이 달린 전선을, 낮엔 거두어다가 벽장속에 숨겨 두고 밤엔 내어다가 갈고리 모양의 구리줄을 처마의 전선에다 슬쩍 걸어 놓으면 되는 것이다.

대단히 과학적으로 설명하니까 이렇지 간단히 설명하면 도전이다. 전기회사 사람들에게 들키는 날엔 갈 데없이 처벌받을 일이니까 스릴을 느끼고 싶은 사람은 해볼 만하다. 물론 나느 스릴을 맛보기 위해서 매일 밤 그 짓을 한 건 아니었지만 구리 갈고리를 전선에 걸 때마다 푸지직거리며 튀어나는 파란 불똥이 내게는 마치 ‘여보소, 전기 회사 나라들! 도둑이요오! 도둑!’ 하고 전기가 외치는 것 같아서 할수없이 분에 넘치게도 스릴을 맛보곤 하는 것이었다.

형벌에 대해 무식한 할머니께서는,

“거, 돈 안내고 전기 쓰는 방법이 다 있구나.”

하시며, 역시 대학까지 다니는 놈은 다르다는 투로 자못 감탄하시었다.

그러한 할머님이시니 내가 없는 동안엔 의자를 가져다 놓고 발돋움을 하셔서라도 매일 밤 구리 갈고리를 전선에 거실 게 틀림없었다. 이 줄을 저 줄에 걸기만 하면 그저 전등불아 가켜지는 줄로만 알고 계시지 음양이니 감전을 아실 턱이 없으실 터이니 생각하면 할수록 야단날 일이었다.

나는 감전이 되어 전신을 푸들푸들 떨리며 돌아가시도 있는 할머니를 상상하자 총천역색 어쩌구 하며 바라보던 풍경들도 시커멓고 푸들푸들 떨고만 있는 것 같았다.

“좋은 인스피레이션이라도 떠올랐니? 왜 그렇게 멍한 표정이니?”

호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며 영일이가 말했다.

녀석의 둔한 말소리를 듣자 감전되어 푸들푸들 떠실 할머니에 대한 생각 때문에 생긴 불안이 녀석에 대한 여겆아으로 금방 바뀌어 나는,

“난 돌아가야겠다.”

퉁명스럽게 말했다.

“집으로? 왜?”

그는 도수 없음에 틀림없는 안경알 너머에서 원래 튀어나온 눈을 끔벅이며 나를 힐끗 보고 나서,

“제기랄, 땀에 젖어서 한 대도 피울 만한 게 없군.”

‘아리랑’을 갑째 꾸겨서 기차 밖으로 휙 내던지며 꽥꽥거렸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아무런 양해도 얻지 않고 대뜸 손을 뻗쳐서 내 셔츠 호주머니에 들어있던 내 ‘아리랑’을 꺼내는 것이었다. 그 작은 행위에서도, 나느 만일 이녀석과 함께 여행을 끝까지 계속한다면 여행 도중 내내 나는 녀석에게 당하기만 할 듯한 느낌이 문득 들었다.

통쾌하게도 내 ‘아리랑’ 역시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런데 녀석은 으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아까처럼 담뱃갑을 꾸겨서 밖으로 내던졌다.

그러고 나서 갑자기 무얼 깊이 궁리하는 표정으로 족므 전까지 담배그 들어있었던 내 셔츠 호주머니를 빤히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한참 동안 보고 있더니 그는,”배지가 없으면 아무래도 불편하단 말야.”

입을 쩝쩝 다시는 듯이 중얼거리면서 손을 재빨리 놀려 자기 가죽 허리띠를 끌렀다.

보니, 동그랗고 납작하고 반짝이는 금속이 여러 개 보석처럼 가죽띠에 박혀있었다. 좀더 자세히 보니 그게 모두 서울 대학교의 배지였다.

“아니 그거, 그거 모두 배지 아냐?”

나는 놀랍다기보다 차라리 신기해서 외쳤다.

영일이는 두꺼비 같은 낯짝을 실룩실룩할 뿐 대답은 없이 열심히 나사를 돌려 그 많은, 아마 열 개도 넘어 보이는 배지들 중에서 하나를 빼내었다.

그리고 빼낸 그것을 내 셔츠 호주머니 위로 가져오며,

“이거 달아라!”

틀림없는 명령조로 말했다.

하 어처구니가 없어서 내가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니까 그는 그것을 손수 달아 주며,

“현대는 신분을 가져야 세상에 존재하는 걸로 인정되는 시대야.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어. 미래엔 더욱…”

“난 법대생이 아니야.”

나는 자신이 생각해도 바보스러운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잘 봐. 이게 왜 법대 배지야?”

그가 시키는 대로, 벌써 가슴에 붙어 버린 배지를 꼬집어 들고 내려다보았더니, 허, 문리대 배지였다. 그러고 보면 가죽 허리띠에 붙어 있던 그 많은 배지들은 서울 대학교 각 단과대학의 이름을 표시한 말하자면 내용은 각각 다른 것들임에 틀림없었다. 틀림없다, 녀석은 필요에 따라서 그때그때 배지를 바꿔 달며 사기 행각을 하고 다니는 놈임에 틀림없다.

“너 가짜 대학생이지?”

나는 이것저것 한꺼번에 몰아 때려서 분통을 터뜨려 버리고 싶다는 생각과는 반대로 은근히 마치 그가 그렇다고 하면 어깨를 두두리며 칭찬이라도 해 줄 듯한 투로 말하고 있었다.

“허, 나 참.”

금방 녀석은 기가 차서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이 되어 말하고 나서,

“나, 이럴가 봐서 배지를 안 주려고 했더니…”

“이봐, 이봐…”

“너 가짜 대학생이지?”

“갑자기 녹음기가 됐나? 아니다, 왜?”

“학생증 좀 보여!”

“어렵쇼!”

“보여!”

“혹시 내가 간첩으로 안 보이니?”

“왜 못 보여? 없는 거지?”

그러자 그는 입이 쓰다는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그리고 잠깐 무얼 궁리하는 듯하더니 느릿느릿 혁대를 끌어 바지 허리에서 쑥 빼어 그것을 나에게 건넸다.

얼결에 나는 그 혁대를 두 손에 받쳐 들고 있었고, 한편 그는 한 손으론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의춤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론 혁대에 줄지어 붙어 있는 배지들을 가리켰다.

‘공대’ ‘농대’ ‘사대’ ‘음대’ ‘미대’…

“날 의심하는 이유를 겨우 알아냈어. 이것 때문이시겠지? 짐작하신 대로 모두 다른 것들이야. 그런데 너 혹시, 왜 별이 밤에만 빛나는지 아니?”

“뭐?”

“별이 왜 밤에만 빛나는지 아느냐 말야?”

“…낮엔 태양이 너무 밝아서겠지. 그런데…”

“맞았어.”

말하고 나서, 넓죽 웃기만 할 뿐 묵묵히 그는 내 손에서 혁대를 도로 빼앗아 바지 허리에 궤기 시작했다.

나는 굉장히 어리둥절해져 버렸다. 그의 방글방글 웃는 폼이 아마도 굉장히 의미 심장한 말을 그는 했던 모양인데 나로서는 그게 무얼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이 나의 주의를 슬쩍 딴 가로 돌려 놓으려는 수작이었음을 깨달은 것은 그가 ‘이제 그만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나 잡고 앉아 보자.’ 하며 도어를 열고 객실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녀석이 얼렁뚱땅해 가지고 내 질문의 초점을 피해 버리는 수작이 나는 불쾌해서 견딜 수 없었다. 초점을 피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개끗히 내 질문을 묵살해 버린 것이었다. 불쾌한 대로 하람나 당장 녀석을 기차 밖으로 담뱃갑처럼 내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나 그때는 이미 녀석은,

“여기서 기다리겠니? 자리 있나 보구 올게.”

하고 나서, 객실 안으로 사라진 뒤였다.

그가 사라지고 막상 승강구에 나 혼자 남고 보니 괜히 헤실헤실 웃음이 나왔다.

‘너 가짜 학생이지?’라느니 ‘학생증 좀 보여.’ 따위의 얘기를 지껄여 댄 나자신도 그녀석 못지 않게 엉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께서 전기 도둑질을 하시다가 그만 감전되어 푸들푸들 떨며 시커멓게 시체로 변해지는 경우를 상상하니까 눈앞이 아찔해진 걸 가지고 나는 어둥하게도 영일이에게 괜한 분노를 터뜨린 것이었다. 녀석이 가짜 대학생이고 거기에 사기성이 농후하다는 건 이미 은연중에라도 나는 인정하고 함께 기차를 탔던게 아닌가. 그래도 어쩌면 나는 그의 요설과 그의 주장하는 바 법대생이라는 것을 믿고 싶었던 건지 몰랐었다. 그러니까 허리띠에 숨겨 가지고 다니는 그 많은 서울 대학교 배지를 보자 그만 울화가 치민 게 아닐까?

그나저나 그가 가짜 학생이란 건 이제 분명해졌다. 적어도 나에게는 녀석이 입이 천 개 만 개 있더라고 할말이 없을 터였다. 자아, 이제부터 생각해보자,

녀석과 함께 여행을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물론 어서 집으로 돌아가서 전기에 대하여 무식한 할머니의 목숨을 구해 내야겠다는 절박한 느낌 때문이었다.

한편, 다행이 그 의구심이 어떤 확실한 보장으로 해결되어 녀석과 함께 여행을 계속하려면? 솔직히 말하자면, 여행 그 자체를 나는 무척 탐내고 있었던 것인데, 만약 여행을 그대로 밀고 나가려면 녀서이 앞으로 어던 사기를 치더라도 나는 그걸 즐겨야만 되리라.

나는 녀석이 내 가슴에 붙여 준 문리대 배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그게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나에겐 조금도 낯설어 보이지 않고 너무나 당연해 보이기만 했다. 대학 앞을 흐르는 지저분한 개천, 그 위에 걸려 있는 다리, 그 다리를 건너 캠퍼스 안으로 들어가면 곱게 갈린 잔디, 그늘이 시원한 마로니에 밑 벤치, 그 위에 앉아서 다음 강의 시간을 기다리며 담배를 피우던 나… 그러한 것들이 가슴 위의 배지를 통하여 또다시 나의 생활이 된 듯했다.

“자리가 있어. 들어가 타”

영일이고 도어를 열고 얼굴을 내민 채 소리쳤다. 배지를 들여다보고 있는 골을 녀석에게 들킨 게 부끄러워졌다. 혹시 내 얼굴에 미소라도 떠올랐었던가 어쨌었던가 걱정이 되었다. 아무려면 어때, 나 자신에게 타이르고 나는 녀석을 따라 객실 안으로 들어갔다.

후텁지근한 공기가 실내에 차고 넘치고 있었고 시골 사람의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들, 민족은 영원히 부동하다는 듯한 표정이라고나 해석해야 겨우 남득이 가는 얼굴들이 좌석을 메우고 있었다.

영일이가 가리키는 대로 빈 좌석 하나에 앉고 보니 내 맞은편 자리에는 부동중의 부동, 무표정 중의 무표정은 혼자 다 차지한 듯한 고추처럼 작고 호박처럼 넓적한 그러니까 꼭 긴장에 절임할 때 쓰는 양파처럼 생긴 처녀가 앉아 있었다.

“난 저쪽이야.”

영일이는 내게서 몇 칸 떨어진 좌석에 보이는 빈자리를 가리키며,

“차표 검사할 땐 내가 해결할 테니깐 넌 그저 나만 가리키며 나한테 차표가 있다구 해.”

안경 속에서 한 눈을 찡긋하며 윙크를 보내더니 자기 자리로 가 버렸다.

자기에게 그토록 욕설을—그게 욕설이 아니고 무엇인가—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조차도 싸악 묵살해 버리는 것이 신통했다.

할머니에 대한 걱정도 이녀석에게 얘기하면 무슨 수가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개를 기웃거려 녀석 쪽을 보았더니 녀석은 어느 틈에 사귀었는지 날쌔게도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이쁜 아가씨와 큰 소리로 말을 주고받으며 웃고 있었다. 그러는가 했더니 이번엔 그 여대생 차림으로 보이는 아가씨 곁에 앉아 있는 중년 사내로부터 종이컵을 받아 들고 있었다.중년 신사는 무어라 말하고 나서 낄낄거리며 사이다를 컵에 부어 주었다.

보아하니 그 동네는 호화판이었다.

자리를 찾아보겠다고 하며 승강구에서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서 나를 데리고 들어온 지가 불과 오 분 안팎이었을 텐데, 도대체 녀석은 무슨 얘기로써 곁에 앉은 사람들을 흘린 것일까?

나중에 물어 보았더니 녀석의 대답은 간단했다.

아가씨가 이화 여대 배지를 달고 있기에 자기가 그 이름만 알고 있는 어느 이대 교수를 아느냐고 물어 본 것뿐으로써 담소의 꽃이 필 거고 그 사이다 참 시워하겠습니다는 말 한 마디로써 대뜸 컴을 손에 쥘 수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사기란 알고 보면 단순한 거다.

그야 어떻든, 녀석에게 내 걱정을 피력하러 갈 생각은 단념하고 나도 슬슬 내 옆과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첫눈에 어쩐지 양파처럼 생긴 내 앞의 아가씨는 꼴이 말씀이 아니었다. 아마 기찻간에서 하룻밤을 새웠는지 얼굴에 누런 기름이 배어 나와 그 위에 디젤 엔진에서 나온 검은 가루가 묻어 차마 미안해서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뭐 과히 이쁜 얼굴은 아니었다. 얼굴 전체이 비해서 코가 작으니 팔자가 드세겠고 입과 눈은 엉뚱하게도 크니 그것도 크겠고 식으로 관찰하는데, 아가씨는 피로해서 충혈된 눈으로 날 한 번 힐끗 올려다보고 귀찮다는 듯이 눈을 감고 자는 체해 버렸다. 끽해야 스무 살이나 됐을가. 때묻고 구겨진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옷 무늬로 미루어 보아 과히 고상한 인품은 아닌 듯. 그러나 손에 든 부채만은 검은 비단으로 만든 고급품이었다.

그 아가씨 옆의 시삽대로 보이는 사나이는 틀림없이 생선 장수 차림인데 내가 자리에 앉을 때도 창턱에 머리를 기대고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고 있었다.

턱과 볼이 온통 잔디밭인 듯 수염이 짙었는데, 그 잔디밭이 꿈틀꿈틀 실룩실룩 하더니 입가로 멀건 치믓띵 주르르 한 줄기 내리며 갑자기 눈을 떴다.

생선 장수임에 틀리없이 뵈는 그 사내는 잠이 부족해 뵈는 핏발선 눈으로 나를 멀거니 건너다보고 있더니 싱겁게 씩 한 번 웃고 나서 다시 잠을 청해 보겠다는 투로 창문턱에 팔을 괴고 머리를 갖다 대며 눈을 감았다.

내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은 영감이었다. 딸네집에라도 다녀오는지 제법 개끗한 모시 바지저고리를 입고 있었으나 수십 년 동안을 돌처럼 햇볕에 그을린 듯 한 검붉은 얼굴은 주름살이 많아서인지 조금도 넉넉해 뵈지는 않았다.

그 영감의 얼굴이야말로 저 오천 년의 역사가 담긴 듯이 부동하고 그러면서도 피로해보이는 것이었다.

영감은 아마 차에 오를 때 달이 손에 쥐어 주었음직한 정종 한 되들이 병을 무릎과 무릎 사이에 기고 앉아서 멀거니 창 밖을 내다보다가 한 모금 꿀꺽, 우리 옆좌석에서 이제 막 벌어지기 시작하는 말다툼을 엿듣다가 한 모금 꿀꺽, 내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아가씨의 약간 드러난 허벅지를 피하려고 애는 쓰나, 잘 안된 다는 듯이 슬쩍 곁눈질하고 자기 자신에게인 듯 혀를 끌끌 한 번 차며 또 꿀꺽하곤 했다.

우리 옆좌석에서 말다툼을 시작한 패는 아마 부부인 모양이었다. 마치 참외처럼 시골에서 여름철이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평범하고 꾀죄죄한 삼십대의 부부였다.

남자가 눈이 흐려 보일 정도로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있는데 코가 유난히 납작한 것이 안경과 어울리니까 만화척럼 보이는 게 시골에서는 좀 구경하기 힘든 얼굴이라고나 할가.

부부 싸움이란 으레 여자가 시작하는 거라는데, 이 패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여튼 앞으로는 당신이 알아서 해요.”

여자는 한쪽 발을 의자 위로 올려 놓으며 나직이 중엉거렸다.

남자는 눈을 감았다.

기찻간이니까 내가 참아 준다는 표정이었다.

“취직을 하든지 말든지 원, 이제부터 내 앞에서 취직 얘기를 꺼니개만 해 봐라 그저…”

“그저 어쩔래?”

남자가 눈을 감은 채 뼈 있가 한 마디 하셨다.

“어쩌긴 어째. 죽여 삐리지.”

“흥.”

“흥응? 제 입으로 웃었겠다. 세상 살 자신이 없으면 살아 보겠다는 사람 방해라고 놓지 말라고.”

“아가리 닥쳐. 방해는 누가 방해했단 말인가?”

“방해가 아니면 뭐여? 말해 봐. 뭐여? 월남을 그저 아무나 가는 줄 알어?

자기 아니라도 그까짓 손재주 가진 살은 멸치새끼보다도 혼타고. 그래 점심대접 안 하고도 월남 가게 될 줄 알았어?”

“점심 대접 했으니께 이렇게 미역국 먹었구나?”

“오매! 무슨 소리여? 그 사람 데리고 중국집에 가서 점심 대접한다고 누굴 화냥년 취급한 건 그래 누군데 그 소리여?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머리털을 감아 쥐고 ‘월남 안 가도 좋다. 이년! 돈 안 벌어도 좋다. 이년!’ 하며 별험한 욕을 한 건 누군데 그래 그따위 소리여? 참!”

“아가리 닥쳐!”

남자는 괴롭다는 듯이 눈 감은 얼굴을 돌리며 이마를 찡그리고 나직이 말했다.아마 취직하러 갔다가 사람들 앞에서 부부 싸움만 한바탕 하고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그저 여편데 궁둥이만 보고 있으면 밥이 나오나?’

여자는 중얼거리며 찔끔찔끔 울기 시작했고 그 말에 주위 사람들이 와 우었다. 남편은 눈을 좀더 꾹 감는 것 같았다.

싸우는 이유를 부인의 입에서 나온 몇 마디로 추측해 보건대 우리들 구경꾼들로서는 미소나 띠고 한바탕 활극이 벌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는데, 그만 남편이 그 반투명체로 보일 만큼 도수 높은 안경 속에서 눈을 꾹 감고만 있음으로써 우리의 기대를 저버렸음으로 그 기술자 부부에게서 이젠 귀를 거둬들일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쑥 빼어 살펴보니, 영일이 녀석은 자기 맞은편 앉아 있는 여대생차람의 여자를 아마 열심히 녹이고 있는 중인 모양이다.

아마 그 여대생의 것인 듯싶은 챙 넓은 밀짚모자를 머리 위에 얹었다가 또 그걸 부채삼아서 활활 흔들다가 하며 그녀석은 열심히 지껄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대생의 얼굴은 비교적 잘 보였는데 영일이의 침이 얼굴에 튀기기라도 하는지 이따금 손을 들어 얼굴을 닦곤 하며 한편 자기의 모자가 망가질까 봐서인지 울상이었다. 영일이의 노력은, 녀석이 정말 지금 노력중이라고 한다면, 수포로 돌아갈 게 뻔했다.

나는 웃음이 터지려는 거승띵 참고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아가씨에게 눈을 돌렸다.문득 영일이 녀서고가 내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수에 도착할 때가지 넌 네 앞의 아기씨를, 난 내앞의 아가씨를 꾀어서, 꾀어서… 하여튼 꾀는 데 누가 성공하든지 어디 한번 내기를 해 볼까?

그런 생각으로 나는 내 앞의 아가씨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 아가씨는 기름과 철매로 더러워진 얼굴을 감추겠다는 건지 눈을 스르르 감아 버렸다. 귀찮다는 표정이 분명했다.

그런 표정을 보니 나는 어쩐지 영일이 녀석과의 내기에서 내가 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어떻든 영일이의 아가씨는 녀석의 얘기에 귀는 빌려 주고 있는 게 아니냐.

그런데 내 아가씨는 아에 말도 붙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영일이의 아가씨는 대화가 통하는, 적어도 추상적인 얘기를 들려 주면 오줌을 질금질금 흘릴만큼 좋아하는 여대생인 모양인데 내 아가씨는, 내 짐작이 틀림없다면, 나는 당신과 비슷한 신분에 있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멸치 넣은 시래깃국이고요. 참 이미자가 부르는 ‘울어아 열풍아’ 좋죠? 그 노래만 들으면 난 미칠 것 같답니다. 참 내일 친구한테서 카메라 빌려 가지고 우리 사진 찍으러 갈가요? 식으로나 얘기하지 않으면 이쪽을 경계하여 말도 못 붙이게 할 게 틀림없이 보이는 신분의 여자였다.

내 아가씨는 좀처럼 눈을 뜰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잠이 들어 있는 건 아닌 게 아가씨는 어울리지 않게 사치스럼 검은 부채를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펴서 부치지는 않고 접은 채 그걸 만지작거리고만 있는 건 아마 그 부채가 닮아질까 염려해서인 듯했다.

“실례지만…”

나는 용기를 내어 몸을 좀 앞으로 내밀며 아가씨에게 말했다.

아가씨가 놀랐는지 눈을 번적 떴다.

“실례지만, 혹시 그 부채 부치지 않으시면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내 깐엔 은근히 말했는데 아가씨는 대답 대신 놀란 눈으로 자기 옆에 앉아 있는 생선 장수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아가씨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생선 장수가 좀 징그러운 얼굴을 빙글거리고 있었다.

이크, 부부였구나, 난 죽었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슬슬 영일이 쪽으로 도망갈까 어쩔까 생각중인데 생선 장수가 너털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내 여동생인데, 형씨, 생각 있으시다면 드리지.”

혓바닥 한번 잘못 놀렸다가 봉변을 당하는구나 싶어 온몸에 힘이 빠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생선 장수의 엉뚱한 말에 나는 어리둥절해 버렸다.

빙글빙글 웃는 폼이 어쩐지 싱거워 보여서, 나를 곯려 먹다가 한바탕 쳐들어 오겠다는 뜻은 아닌 듯했다. 그래서 우선 맘을 놓고 보니 그 사람 말에서 좀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저어, 부채를 제게 주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내가 조심조심 그렇게 말하니까 아가씨는 비단 부채를 힘을 주어 꼬옥 움켜쥐는 것이었고 아가씨의 오빠라는 생선 장수는 여전히 빙글거리며,

“내 여동생을 통째 가져가란 말씀이여.”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저씨, 원 농담두…”

나는 머리를 긁는 시늉을 하며 슬쩍 아가씨를 살펴봤다.

독기 서린 눈으로, 아가씨는 자기 오빠를 잔뜩 흘겨보고 나서 오빠와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저 부채가 저래봬도 우리 나라 일류 배우한테서 선물받은 거라는디, 나 참.”

말하면서, 생선 장수는 너털웃음을 웃어 댔다.

아가씨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나 미련하게 생긴 푼수와는 다르게 재빠른 솜씨로 생선 장수는 아가씨의 원피스 허릿자락을 낚아 도로 자리에 앉혔다.

낚아채는 바람에 아가씨의 겨드랑이께가 북 찢어졌다.

아가씨가 얼른 가렸지만 땀에 젖어 있는 노란 겨드랑이 털을 나는 보고야 말았다. 그걸 보니까 나는 아가씨에 대한 정욕과 동정심이 동시에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오빠라고 하는 난폭한 생선 장수와, 아마 아가씨의 겨드랑이를 봤는지 괜히 ‘흠, 흠’ 헛기침을 하며 정종병을 들고 한 모금 꿀꺽 마시는 내 옆의 영감을 한 대씩 발길로 차 줬으면 시원할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생선 장수는 여동생의 옷이야 찢어지든 말든 난 상관없다는 태도로,

“형씨, 세상에 이런 미친년 본 일 있소?”

자못 하소연하는 조로 말을 꺼냈다.

아가씨가 다시 자리르 박차고 일어섰다.

이번엔 생선 장수도 내버려 두겠다는 표정이었다.

아가시가 겨드랑이를 한 손으로 가리고 승강구 쪽으로 나갓다.

나는 그 뒤를 쫓아가고 싶었으나 생선 장수의 계속되는 얘기에 눌러앉고 말았다.

자기들은 ‘돌산’이라는 섬에 산다고 했다.

지난봄에 아가씨가 친구들과 어울려서 여수에 나갔다가 돌아오더니 그 다음부터는 집안일 할 생각은 않고 걸핏하면 여수에 행차하시더라는 것이었다.

살살 거짓말로 이 집, 저 집에서 돈을 꾸기도 하더니 나중엔 자기 집 장독까지 담보로 잡히고 돈을 빌려서 여수엘 다니더라는 것이었다.

처음엔 까맣게 몰랐다가 두어 달 지난 후에야 친구들의 귀띔으로 알고 나서, 아마 여수에 놈팡이라도 하나 생긴 게지 싶어 여객선에 있는 친구에게 몇 차례 뒤를 밟아 보라고 했더니 그냥 극장에만 들어갔다가 나오더라는 것이었다.

영화에 환장했나 싶어 그 정도로 알고, 자기 몰래 돈 꾸어 쓴 일만 가지고 나무랐더니, 웬걸, 이 미친년이 울면서 한다는 소리가,

“오빠 오빠, 나 그 남자 없으면 못살겠어요. 그 남자 품에 한 번만이라도 안겨 봤으면…”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 남자가 누구냐고 했더니 제 주제에 가당찮게도 신성일인가 뭔가 하는 배우라 대답하더라는 것이었다.

“하, 나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데. 글세, 제가 뭐라고 헌다는 배우를 넘보냐 말여?”

어느새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생선 장수의 얘기가 흥미있다는 듯이 슬금슬금 눈길을 우리 쪽으로 보내 오고 있었다.

그러니까 생선 장수는 더욱 신이 나서,

“아, 그러더니 어느 날 집안에서 값 나갈 만한 건 죄다 싸 들고 뺑소니를 친거라, 이년이.”

아가씨가 옆에 있었떠라면 이 대목에서 틀림없이 한 대 쥐어 박혔으리라.

“나, 하도 기가 차서 그때 요 미친 것이 써 놓고 간 편지 버리지 않고 갖고 있구마.”

말하며, 생선 장수는 비닐로 만든 지갑에서 땀에 절고 해진 쪽지를 한 장 꺼내 나에게 건네는 것이었다.

쪽지에는 제법 조촐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빠, 용서하세요. 하지만 여자의 길은 사랑하는 분을 찾아 그분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것이랍니다. 저는 제 갈 길을 가오니 저를 찾지 말아 주세요.

숙자올림

 

“글시를 이쁘게 쓰는군요.”

나는 쪽찌를 돌려주며 말했다. 쪽지는 생선 장수의 손에 닿기도 저에 뒷자석에서 뻗어 온 손에 들어가 버렸다. 나느 문득 그 아가씨의 처녀성이 유린당하기라도 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불쾌했으나 내 감정과는 아랑곳없이 쪽지는 좌석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이년이 그래봬도 국민 학교 다닐 때는 쭉 일등만 해 온 년이란 말여. 머리야 좋지.”

그 판국에서도 누이동생 칭찬을 해 주니까 기분은 좋은지 떠벌리고 나서 생선 장수는,”글쎄, 저것만 남겨 놓고는 온다간다 말 한 마디 없이 꺼진 거라. 보나마나 서울로 간 거니. 서울이 어떤 바닥이라고, 아 누군 서울 안 가봤간디? 그 바닥이 촌년을 가만 두는 바닥이간디? 사시미 해 먹고 볶아 먹고 지져 먹는 바닥인디. 하여튼 그 바닥으로 낭군 만나러 간 거라. 그저 미운 생각 같아서는 지야 똥갈보가 되든 양갈보가 되든 내버려 두려고 했지만, 어디 또 그럴 수 있어야지. 서해에 조기 잡으로 가는 배도 안 타고 부랴부랴 서울로 쫓아간 거라. 하지만 서울 넓은 바닥에서 이년이 어디 숨었는지 알 게 뭐여. 그저 지가 신성일인가 무너가 하는 악당 안 찾아갔으면 어딜까 싶어, 물어서 물어서 그놈 집을 안찾아갔드라고?”

“그 집에 있던가요?”

내 뒷자석의 여자가 고개를 이쪽으로 내밀고 깊은 관심을 숨기지 못한 음성으로 물었다.

“있을 게 뭐여? 사실은 나도 대문도 못 두드려 보고 돌아섰지만, 그 집에서 이 촌년을 만나 주기나 할 거여? 돌아서는데 참 막막하더만. 가시내 동생 하나 길러서 영락없이 갈보고 만들었구나 싶으니 눈앞이 캄캄한데.”

“그래서 어디서 만났어요?”

뒷자석의 여자가 안달이었다.

“꼬박 열흘 만에 남대문 경찰서 보호실에서 찾았지. 갈 데 없는 미친년인 거라. 내려가자 해도 안 간다 버티는 거라. 그러면서 그 놈팡이가 주더라고 부채만 하나 들고는 이 부채만 있므녀 지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갈 자신이 있으니 나만 내려가라는 거라…”

생선 장수가 신이 나서 얘길 하고 있는데 영일이 녀석이 있는 쪽에서 요란하게 다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보니, 영일이와 차장이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차표 때문에 다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차장은 더 다투기나 귀찮다는 표정으로 자기 뒤를 따라오는 다른 승무원에게 눈짓을 보내고 차표 검사를 계속하기 시작했다.

영일이를 인계받은 승무원은 별말도 없이 아직도 무어라 앙앙대고 있는 영일이를 일으켜 세우더니 앞세우고 이쪽으로 점점 가까이 오는 것이었다.

나는 눈앞이 캄캄해져서 생선 장수가 짖고 있는 얘기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말이지 나한테 도정 한 푼 없었다.

영일이 녀석이 여대생 앞에서 망신을 당하면서까지 승무원에게 끌려 나오는 걸 보면 녀석에게도 차비가 없음이 분명한 것이었다.

단단히 믿고 믿었떤 녀석에게 돈이 없다면? 혹시 녀석은 나에게 돈이 얼마쯤 있으리라 믿고 있는 건 아닐가? 그런 생각을 하니 나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의자 밑을 눈여거 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내 몸뚱이가 들어가 숨기에는 너무 비좁을 듯했다.

차장은 점점 가까워 오고 있었다.

영일이는 승무원에게 몰이꾸넹게 몰리는 짐승처럼 몰리어 오면서도 나에게는 시선을 보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한 번쯤 나에게 이거 딱하게 됐다는 눈짓이라도 보낼 법한데 아예 그러지를 않는 것이었다.

나는 도망가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창피를 당하더라도 사람이 없는 곳에서 당하겠다는 생각에선지 자신도 확실히 구별할 수 없는 충동으로써변소에라도 가는 체하고 슬금슬금 승강구를 향하여 나갔다. 승강구로 통하는 도어를 열면서 흘깃 돌아보니 영일이는 ‘이 배신자!’ 하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주춤주춤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내가 도망가면 어딜 가겠니? 그저 이삼 분 후면 너나 나나 따기가를 한대씩 얻어맞고 있을 게다.’ 하는 표정으로 후딱 지어 보이고 냉큼 승강구로

나왔다.

나오긴 나왔찌만 더 도망갈 데도 없었다. 다음 찻간으로 가봤댔자 거기서 기차표가 공짜로 생길 리도 없을 터였다 무전 여행하는 학생인 체하고 승강구에 가만히 서 있다가 차장 나리의 처분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나는 도어의 흐린 유리창을 통하여 다가오고 있는 차장 일행을 살펴보앗다. 오줌이 마려울 만큼 초조하고 애가 타는 순간이었다.

그때,

“차표가 없지요?” 하는 속삭이는 듯한 여자의 음성이 등뒤에서 들려 왔다.

깜짝 놀라서 오줌을 질끔 한 방울 흘리며 돌아보았더니 신성일이를 사모한다는 내 앞에 앉아 있던 아가씨가 무표정하게 말하며 서 있었다. 얼른 아가씨의 겨드랑이를 보았더니 찢어진 부분은 머리핀으로 대강 아물어져 있었다.

그러나 틈은 아무래도 좀 보였고 그 틈으로 겨드랑이의 노랏고 긴 털이 몇 가닥 밖으로 비쭉 나와 있었다. 주책없이 나는 웃음을 흘렸다. 내가 웃는 것을 아가씨는 아마 내가 차표가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걸로 알았던지—사실이 그랬지만—무언가 잠깐 생각하는 표정을 짓고 나서 역시 무표정하게 옆구리의 지퍼를 내리고 그 안에 손을 넣었다가 빼어 그 손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보니, 기차표가 그 손에 쥐어져 있었다.

“이걸 받으세요.”

아가씨는 기름이 내배이고 철매가 잔뜩 코 언저리에 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나는 얼결에 차표를 받아 들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얼른 아가씨를 부등켜안았다.

부등켜안는 순간 나는 아가씨가 헉하고 숨을 내뿜는 소리를 들었다. 부등켜 안은 채로 나는 아가씨가 내 품에서 빠져 나가 기차 밖으로 뛰어내리기 위해서 요동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천만 뜻바껭도 고추처럼 작고 호박처럼 넓적한 아가씨는 내 포옹을 즐기는지 어쩌는지 조용한 것이었다.

나는 슬슬 팔을 풀고, 그러나 아가씨가 앗 하는 순간에 뛰어내릴 걸 예상하여 팔에서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아가씨의 얼굴을 사펴봤다. 기분 나쁘게도 자살하려고 했던 것 같아 뵈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마치 나에게서 뜻밖의 포옹을 받고 사지에서 맥이 빠져 버렸다는 듯이 입을 붕어철머 벌리고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며 서 있는 것이었다.

눈동자가 고정되어 있는 걸 보면, 아가씨는 틀림없이 내가 자기를 겁탈하려는 줄로 알고 좀 겁이 났던 것 같았다. 겁이 났다기보다도, 겁은 나지만 한편저항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요것 봐라. 다는 어처구니가 없고 우습고 그리고 아가씨가 틀림없이 자살할 각오로 자기 차표를 나에게 준 걸로 생각한 나의 짐작이 부끄러워졌다.

“미안합니다. 전, 기차 밖으로 뛰어내리시려는 줄 알고…”

나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고개를 숙여 절했다. 고개를 드는데 차표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게 얼핏 눈에 띄었다. 아가씨를 부등켜안을 때 내손에서 떨어진 모양이었다. 나는 차표를 주었다.

“어떻게 하시려고 차표를 절 주십니까?”

그러나 아가씨는 여전히 맹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기만 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전 아가씨가 자살하시려는 줄로만 알고 그랬다니까요.”

나는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이 차표를 받아야 할 것인가 어쩔 것인가 생각했다. 나는 도어의 유리를 통하여 객실 안을 살펴봤다. 영일이를 체포한 차장 일행이 지금 막 안쪽 도어를 열고 이쪽으로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더워서가 아닌 다른 땀이 등줄기를 흘러내림을 느꼈다.

“차표 검사를 하고 있어요.”

나는 차표 쥔 손을 아가씨에게 슬그머니 내밀었다. 어떻게 할 계획이 있어서 그랫떤 건 아니라, 아마 포옹 소동 때문에 차표를 가지지 않음으로써 생긴 불안이 좀 덜해졌거나 아니면 아가씨가 분명히 차표를 내게 준 건지 아닌지 다시 한 번 확인해 두고 싶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나는 등뒤의 도어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차장 일행이 나오려는 순간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무의식중에 차표를 얼른 손바닥을 넣고 주먹을 쥐어 버리며,

“자살하려고 했지요?”

얼결에 큰 소리로 물었다. 마치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으면 기차 박으로 내던지고 말 테다 하듯이 위협적인 말투였다. 말하고 나니까 나 자신에게도 우습기 짝이 없이 들리는 말이었는데 엉뚱하게도 아가씨는 여태까지 날

쳐다보던 그 맹한 눈길을 기차 밖으로 돌리며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고갯짓이, 나에게서 동정을 받기 위한 거짓 고갯짓임을 금방 나는 눈치챘다.

그때,

“차표 좀 보여 주십시오.” 하는, 차장의 엄숙한 목소리가 내 등을 두드렸다.

나는 다리가 와들아거리는 거 띵느끼면서 돌아섰다. 그리고 말했다.

“아이쿠, 잘 오셨습니다.”

나는 얼른 차표를 쥐지 않은 다른 손으로 아가씨의 팔을 잡으며 소리쳤다.

“이 아가씨가 자살을 하려고 했어요.”

영일이가 눈을 끔벅이며 이상스럽다는 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아마 내 표정이 괴상했던 모양이었다.

“차표를…”

무정한 차장은 냉랑하게 말했다.

나는 차표를 얼른 내밀면서 말했다.

“이건 이 아가씨의 차표예요.”

“당신 것은?”

“없습니다.”

“자, 받으세요.”

나는 차표를 아가씨에게 내밀려 말했다.

차장과 막상 부딪치고 보니, 차표가 아벗다고 설마 죽이기야 하겠느냐는 식의 배짱이 생기기도 했지만 하마터면 아가씨가 내게 준 차표를 가지고, 이게 내 차표요 하며 내밀 뻔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왜 그게 제 겁니까?”

아가씨가 차 밖으로 시선을 둔 채 다부진 음성으로 말했다.

“왜 이러십니까? 자, 받으세요.”

나느 아가씨의 손을 잡아당겨서 그 손에 차표를 쥐어 주려고 했다. 그러나 아가씨는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왜 그게 제 겁니까?’를 되풀이 했다.

나는 묘가 기분이 되어 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차표를 가지지 않았던 것은 아가씨고 직므 내가 아가씨에게 인심을 쓰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니, 그런 기분이라기보다 차장 나리께 그렇게 보이고 있을 것 같아서 잡혀 가더라도 나는 의기 양양하게 잡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이 누굴 놀리나? 누구 거야 도대체?”

차장이 내 손에 들린 차표를 낚에채어 구멍을 뚫으며 소리쳤다.

“이 여자 겁니다”

“당신 거요?”

차장이 아가씨의 어깨를 잡아 몸을 돌려 세우며 소리쳤다.

아가씨는 기가 질린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얼른 미소를 만들어 보이며 어서 받으라는 시늉을 했다. 마치 내것을 주기라도 하듯이.

“둘 다 데리고 와. 이상한데”

차장이 다른 승무워에게 말하며 다른 객실로 통하는 도어를 열었다.

그때,

“어떻게 된 거야?”

영일이가 몹시 궁금했는지 내게 말을 걸였다. 도어를 열려다 말고 돌아서며 차장이,

“일행이오?”

나를 가리키며 영일이에게 물었다.

“네.”

영일이의 대답이 틀렸는지 맞았는지 모르게싼.

내 귀에서 앵하고 모기 우는 소리가 났다.

승무원이 내귀뺨을 후려갈긴 것이었다.

“이새끼, 난 또 자기 표를 인심 쓰는 줄 알았지.”

성질이 급하게 생긴 승무원이 약이 잔뜩 오른 얼굴로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이거, 사람을 치시면서 얘기하면 곤란한데요.”

영일이가 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승무원의 한쪽 팔을 잡으며 위협적인 말투로 말했다. 승무원은 잠시 당황한 듯했다.

차장이 내게서 압수하고 있던 차표를 아가씨에게 내밀었다. 아가씨는 슬그머니 받아 들었다.

“둘만 데리고 와.”

영일이와 나를 가리키며 차장이 승무원에게 말했다.

무작정 나를 한 대 후려쳤다는 것을 후회하고 있는지, 승무원은 어딘지 움츠러들어 고분고분한 태도로 나의 등을 떼밀었다.

“저 여자를 자기 자리고 돌려보내 주세요. 여기 혼자 두면 큰일납니다.”

떼밀려 가면서 차장에게 나는 외쳤다.

아가씨가 자살하려고 했던 걸로 우겨대고 있는 내가 어쩐지 몹시 초라해 보였으나 사람이 위급해지면 괜히 한 가지 짓만 되풀이하는 꼴로, 나는 그 말을 자꾸 되풀이하며 아가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기조차 했다.

나는 아가씨가 울먹이는 눈초리로 나를 돌아보며 돌아보며 차장에 의해 객실 안으로 들여지는 것을 보고 나서, 이제야 안심이다는 시늉을 과장되게 해보였다.

 

 

묘한 구직

승무원이 내 뺨 한 대를 후려갈긴 일을 마치 내게 전기 고문이라도 했던 듯이 과장하여, 인권이 어쩌구 폭력이 어쩌구 하며 승무원에게 대든 영일이의 서슬과, 그리고 ‘그 여자 괜찮을까? 신성일이를 만나러 집에서 도망 나왔다가 오빠한테 잡혀서 억지로 끌려가는 여잔데 말야, 죽지 않을까?’ 어쩌구 하며, 한 여자의 목숨을 구해 낸 듯이 엄숙하게 중얼거린 나의 엄살 덕택으로 나중엔 승무원에게서 술까지 얻어 마셔 가며 우리는 그럭저럭 여수역에 도착했다.

“형씨들 하여튼 배짱 하나는 좋습니다. 무일푼으로 기차를 타고도 오히려 우리한테 대드니 어지간하시군요. 배지를 보니 서울 대학을 다니는 모양인데 서울 대학에서는 무임 승차하는 기술만 가르치나요?”

승무원이 우리를 귀엽게 보아 주겠다는 듯이 빙글거리며 말했다.

급한 성미 때문에 뺨 한 대 때린 잘못으로 교통부에 들어갈 수입을 얼마간 줄여 버린 승무원도 딱했지만, 가짜 학생들 덕분으로 욕을 얻어먹는 서울 대학교도 딱했다.

“죄송합니다. 사실은 기차비가 있었는데 그만 엊저녁에 술을 다 마셔 버렸거든요.”

영일이가 제법 부끄럼을 잘 타는 청년인 체 비죽비죽 웃으며 엉큼한

거짓말을 했다. ‘사나이 대 사나이’ 주량, 음담 패설, 대개 이런 것들이면 한국에서는 처음 보는 사내들끼리도 뭐 굉장히 서로들 잘 알고 있는 듯이 얘기를 나눌 수가 있는 것이다.

영일이가 예상했던 대로 승무원은,

“주량이 얼마나 되요?”

“대포는 두어 되, 소주는 한 병 정도, 약합니다.”

또 한 번 부끄럽다는 듯히 고개를 꾸벅,

“쳇, 그걸 가지고…”

“공부를 하느라면 배에서 기름이 빠지거든요.”

“공부 열심히 할 것 같잖은데?”

“이래봬도 공부랑은 꽤 세거든요. 술로 치면 한 백 되 될 겁니다.”:

“백 되?”

“하루 저녁에 책 백 페이지는 독파한단 말입니다.”

차장은 못내 우리를 괘씸한 눈짓으로 보았지만 성미만 급했지 마음은 약한 승무원 덕택으로 우리는 무사히 폼 박까지 나왔다.

헤어질 때 승무원은,

“기차는 공짜로 탔지만, 여수 처녀들까지 공짜로 탈 생각은 아예 마슈.” 하며 손을 저어 보였다.

역앞 광장에 서 있는 느티나무 그늘에 잠깐 서서 우리는 감개 무량한 표정을 짓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먼지가 풀썩이고 햇볕이 모든 색채를 빨아들여 버린 듯한 하얀 거리 저편으로 아아, 그지없이 아름답고 자유스러운 초록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오, 오줌 냄새!”

영일이가 코를 벌름거리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뭐? 오줌 냄새?”

“오존이야, 오존, 이 멍청아.”

오존이건 오줌이건 바다에서 풍겨 오는 그 독특한 향기를 무어라 이름을 붙여 가며 감상할 것은 또 우너가.나느 퍼뜩 생각이 나서 역 밖으로 나오고 있는 사람들을 살펴봤다. 없었다.

벌써 나온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거기 저쪽을 보았더니, 내 못생긴 아가씨가 우악스럽게 생긴 자기 오빠를 따라 힘없는 발길을 옮겨 놓고 있는 중이었다.

차에서 내린 많은 사람들 틈에 끼여서 걸어가는 그 고추와 호박이 결혼해서 만들어 놓은 듯한 아가씨는 불쌍할 만큼 초라해 보였다. 한 손에는, 자기 말에 의하면 신성일이가 선물했다는 부채를 꼭 쥐고 있는 게 보였다.

“잘 자거라, 섬 아가씨야. 신성일이도 오늘 밤엔 네 꿈을 꾸어 주겠지.”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 오긴 왔는디 어쩔 거이여?”

영일이 녀석은 입으로만 걱정을 하면서 그 두꺼비 같은 눈깔을 내게로 돌렸다.

아닌게아니라 ‘오긴 왔는디’였다. 차표 소동에서 영일이나 나나 무일푼이라는 건 드러난 셈이고, 게다가 이 여수 바닥에 찾아가서 밥 한 끼 신세질 만한 친구나 친척조차 없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노라니 갑자기 배가 고팠다.

아침도 먹지 않고 지금까지 이 일 저 일로 땀만 쏟은데다가 수시간 안으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보장조차 없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빈손으로 어느 도시에 들어섰을 때, 그 사람은 그 도시 전체와 한 몸으로 대결해야 하는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혹시 그 도시에 친척이 한 사람일다가 살고 있다면 그때는 그 친척이 즉 그 돗시가 되는 법이다. 또는 치구가 살고 있다면, 친구가 그 도시가 되는 법이다.

사람들은 어느 도시에 여행하여 친척을 만나면 흔히 ‘참 지저분하구나. 왜 이렇게 지저분하지?’ ‘여기서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지…’ 등등 마치 그 친척은 ‘이 길은 최근에 포장 공사를 했지.’ ‘바로 여기서 그 살인 사건이 났는데 그땐 굉장했어.’ 등등 그 역시 자기를 찾아온 사람에게 도시의 대표라도 되는 투로 얘기하게 되는 이유도 여행자가 그 친척을 통하여 이 도시를 상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럴 경우의 여행자에게는 친척에 대한 친밀의 정도에 의하여 그 도시도 친밀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아무런 연고도 없이 빈손으로 그 도시에 들어선 사람은 어느 곳을 통하여 그 도시를 상대하기가 힘든 것이다. 만일 여행자에게 돈이 많다고 하면 얘기는 다르다. 사람들은 모두 돈의 친척이기 때무엔, 따라서 처음 와 보는 그 도시도 여행자에게는 조금도 낯설어 보이지 않을 터이다.

나는 영일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시가지로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도시 전체가 나에게 저항해 오는 듯한 느낌을 막아 낼 수 없었다.

길가의 아이스크림 장수와 그의 양철통도, 가게에 쌓여 있는 수박과 토마토들도, 창고 틈으로 보이는 오동도도, 수건 쓴 아주머니들이 손에 들고 가는 양철통과 거기에 묻어 있는 생선 비늘과 거기서 풍겨 나오는 생선 비린내도, 멀리서 들리는 뱃고동 소리도, 만성리 해수욕장으로 가는 합승과 그 속에 타고 있는 선글라서 쓴 청춘들도… 심지어 햇볕까지도 여기서는 나의 편을 들어주는 것 같지 않았다.

오직 바다만이 ‘나는 이곳에 있다고 하여 이곳 사람들의 편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나를 그리워하여 먼 곳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의 편이다.’는 듯이 발고 너그럽게 펼쳐 있을 뿐이었다.

“배가 고픈다…”

나는 영일이를 향하여 중얼거렸다.

“주접떨지 마.”

영일이는 무엇을 궁리하는지 거리 풍경엔 별로 눈을 쓰지 않고 타월로 땀만 닦으며 한 걸음 한 걸음으로 정성스럽게 옮겨 놓고 있는 것이었다.

“배가 고프단 말야.”

“나한테 떠들면 뭐 해. 그러지 말고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생각을 해, 생각을.”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그 섬 아가씨나 쫓아갈 걸 그랬지?”

투덜대고 있는데 영일이 녀석이 좋은 수라도 생겼는지 싱긋이 웃고 나를 쳐다봤다.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른 듯 영일이를 보니까 나는 괜히 안심이 되었다.

나도 덩달아 미소를 지으며 녀석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떠니,

“너도 여기 아는 사람 없지?”

말하고 나서, 으레 그런 거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슬그머니 가슴의 배지를 바로잡았다.

나는 미안하다는 표정이 되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녀석은 그러는 내가 초라해 보였던지, 날 달래 주는 듯한 미소를 띠며,

“하여튼 가 보는 수밖에.”

“어디로?”

“물결치는 대로 발마 부는 대로…”

무언가 자신이 있어 보여서 좋았다.

이젠 한산해져 버린 역 앞 광장을 떠나서 우리는 시가지 안으로 들어서서 걷기 시작했다. 걸음을 떼놓기만 기다렸다는 듯이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곳의 태양은 아무래도 씨가 다른 모양이었다. 코 먹는 듯하고 나긋나긋한 사투리로 얘기하며 느릿느릿 걸어가는 사람들도 외국인처럼 생각되었다. 다른 곳과는 다르게 이곳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양철이었다. 양철 지붕들이 많고 아주머니들이 양철동이를 많이 들고 다니고 있었고 길가에서 많이 눈에 띄는, 손으로 회전시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통도 양철이었다.

그리고 햇볕이 그 양철들 위에서 반사되어 공간의 색채를 바꿔 놓는 것이었다. 햇볕이 그 자체로서 덩어리가 되어 공간 속을 번쩍이며 뛰어다니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햇볕들을 떼지은 웃음소리 같았다. 지붕 위에서, 양철동이 위에서, 아스팔티 길 위에서, 플라타너스 잎 위에서, 바다위에서… 찬란하다고나 할까.

생을 뜨거운 숨결로써 느끼고 자연과 얽혀 뒹굴며 우리의 터전이 결코 먼지와 종이로 샅인 헛간 속은 아니라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느낌을 사양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배가 고프지 않을 때이리라.

이곳에 내게 밥을 먹여 줄 사람이 있을 때이리라. 그리고 싫어지면 언제든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여비가 내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어야 할 때이리라.

이십여 세 돼 보이는 남녀가 행인들의 눈을 슬금슬금 피하여 ‘오동’인가 뭔가 하는 여관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들어가기 직전에 여자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부딪쳤는데, 그러자 여자는 눈길을 얼른 숙이며 새빨갛게 되어 뛰듯 한 걸음걸이로 여관 안으로 사내 뒤를 따라 사라져 버렸다. 차림으로 보아하니 거기서 사람들이 매달려 하고 있는 일들은, 우리 같은 서방님들에게는 할 엄두도 나지 않고 또 하겠다고 달려들어도 끼워 주지 않을 것 같았다.

“여기가 좋을 것 같다.”

영일이의 이상하게 긴장된 음성을 듣고 돌아봤떠니 녀석은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얼굴로 ‘풍선’이라는 다방을 눈짓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의 교두보야.”

말하고 나서, 영일이는 다방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차만 안 마시면 되지 하는 생각을 하며 나도 녀석의 뒤를 쫓아 들어갔다.

다방 안은 한산했다. 천장에 붙은 대형 선풍기가 빙빙 돌아가고 있었고 선풍기가 내는 바람에 파초잎이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시원했다. 일본색이 농후한 경음악이 녹작지근하게 실내를 흐르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다가온 레지에게 영일이가 대뜸 수작을 붙이기 시작했다.

레지는 어쩌자는 것인지 안경을 쓰고 있었다. 턱이 복숭아처럼 동그랗고 발그슬므하고 솜털까지 갖추고 있어서 이쁘다기보다는 청결하다는 느낌을 주는 아가씨였는데, 어쩌자고 커다란 검은테 안경으로 얼굴을 죽여 버렸는지 안타까웠다.

샌들은 신은 발도 오동통하고 물수건을 우리 앞에 놓아 주는 손도 오동통하고 원피스를 입은 몸메 전체가 오동통했다.

퍽 육감적으로 생겼는데 영일이 녀석에겐 그런 먹음직스런 레지 아가씨의 몸이 보이지도 않는지 어운아한 얘기로 수작을 붙인 것이었다.

“이렇게 더워서는 원 바싹 말라 버리겠어요.”

물수건으로 기차에서 더렵혀진 얼굴을 열심히 닦으면서 녀석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돈도 없는 주제라 차마 물수건에 손을 가져가지 못한 채였다.

“서울에서 오셨군요.”

레지 아가씨는 안경 속에서 유난히 까만 눈을 깜박이며 우리를 반기는 듯했다.

사투리의 억양도 제대로 갖췄찌만 그렇다고 서울 말이 아니라고 하기에도 좀 곤란한 말씨였다.

영일이는 한 손으로는 물수건을 움겨쥐고 여방 목덜미며 귓구멍을 닦아 내면서,

“서울에 게셨댔어요?”

그러자 레지 아가씨는 부끄러운 듯 두손으로 입을 가리고 고개를 돌리며,

“호오…”

웃었다.

영일이는 이때를 놓칠세라는 태도로,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셨군요? 그렇죠?”

아니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윽박지르듯 말했다.

아가씨는 입장이 그만 곤란하게 돼 버렸는지 또 한 번 ‘호오…’ 만 했다.

그리고 궁여지책인 듯,

“차 뭘 드시겠어요?”

“요즘 읽으신 책 중에서 뭐가 가장 인상에 남았어요?”

영일이는 차 주문 같은 건 난 듣지도 않았다는 태도로 물었다.

“책요? 책 말이죠? 무슨 책 말씀이세요? 전 이것저것… 막 읽거든요.”

레지 아가씨는 흥미있다는 듯이 반응해 왔다.

“말하자면… 음, 소설 같은거…”

영일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십오시 아세요? ’25 시’ 말예요. 그걸 다섯번째 읽었어요. 볼 때마다 가슴 아픈 책이에요.”

영일이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입을 벌여, ‘야, 난 엄청난 가시내 봐라.’는 듯이 나를 돌아보았다.

아닌게아니라 배고프고 따믓띵 쏟아 버려서 힘없는 몸도 욕정을 일으킬 만큼 육감적으로 보이는 아가씨에게서 나온 대답으로서는 기껏해야 해적판 일본 소설 제목이나 나오다가 말다가할 줄 알았는데, 너우 의외였다.

“왜 놀라세요?”

아가씨는 생글거리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나는 이유도 모르게 괜히 어떤 자신 같은 게 생겨서 여태까지 집지 않고 탁자 위에 놓아 둔 채였던 물수건을 집어 들어 서서히 이마부터 문지르기 시작했다.

“재미있겠는데 여기 앉아서 얘기나 좀 하십시다. 바쁘시지 않죠?”

영일이가 본격적으로 나왔다.

손님도 없는데 그것도 괜찮다는 듯이 레지가 영일이의 맞은편, 그러니까 내 옆에 살짝 엉덩이를 내렸다. 두드려 보고 싶은 엉덩이였다.

“다방엔 왜 계십니까? 공부를 계속해야 하실 분 같아 뵈는데…”

영일이가 이건 진짠지 가짠지 구별하기 힘든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레지 아가씨는 대답 대신 또 한 번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호오…’ 웃고 카운터 쪽을 돌아보았다.

레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카운터 뒤에 회사하고 제법 고상한 한복을 입은 사십대 아주머니가 역시 고상한 미소를 띠며 대관절 무얼 승낙한다는 것인지 우리들의 레지 아가씨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 있었다. 한데 기가 막힌 것은 그 아주머니까지 안경을 쓰고 있는 사실이었다. 테가 금은 것이 아가씨의 플라스틱 안경테와는 달랐지만,나는 무언가 깨달아져서 다방의 장식을 대강 살펴봤다. 벽 장식이며 가구들이 어딘지 고상하려고 애쓰고 있는 듯했다. 이 레지나 마담 중의 누군가가 만졌을 듯 싶은 꽃꽃이가 카운터 위를 비롯하여 몇 군데 작은 홀에 비해서는 좀 지나치게 많이 놓여 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우신 모양이시군요.”

그렇다고 하면 금방 돈 다발이라도 몇 개 꺼내 줄 듯한 음성으로 영일이가 레지에게 말햇다.

“동생이 있어요.”

그것이 무슨 대답이 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하여튼 귀엽고 고상한 레지 아가씨의 대답이었다.영일이는 그저 레지가 마주 앉아서 말 상대만 해 줘도 고마운지,

“동생은 뭐 하고 계십니까?

“진리 탐구에 매진하고 있어요.”

나는 레지가 농담을 하는 중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표정으로 봐선 농담이 아닌 듯했다.

“서울 말씨를 쓰시는 걸 보니까 고향이 여기가 아니신 모양이군요?”

영일이 녀석은 그저 눈 딱 감고 아가씨의 허영심만 만족시키고 보겠다는 배짱인 눈치였다. 그렇지 아낳고서야 어디 아가씨의 말씨가 서울 말씨란 말인가.

그러나 더욱 묘한 것은 아가씨의 대답이었다.

“현대인들은 실향민들예요. 고향은 묻지 마세요.”

나 참, 기가 막혀 웃음도 안나왔다.

영일이는 웃음을 참느라고 그러는지 아니면 진짜 감격하여 그러는지, 어금니를 꽉 물고 안경 속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끄덕끄덕. 나도 어금니를 꽉 물고 창 밖으로 시선을 비켰다.

나의 경우는 웃음을 참기 위해서였다. 창 밖으로 부두가 저만큼 보였다.

고등어인 듯싶은 생선을 담은 상자가 트럭에 실리고 있었다. 상자들마다에서 얼음이 햇볕을 반사하며 반짝이고 이썽싶다. 저놈을 한 마리만 불에 구워 먹었으면…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났다. 레지가 들었을까 봐 후딱 고개를 돌려봤더니 아니나다를까 영일이와 무언가 얘기를 하면서 레지가 그 얘기 내용과는 관계없는 웃음을 킥킥 웃고 있었다.

“아아, 배고파.”

나는 쇼는 더 이상 못 하겠다는 듯이 표정을 하머가어뜨리고 기지개를 길게 켜며 말해 버렸다. 내가 그럴 수 있었떤 것을 오로지 레지 아가씨가 조성해 준 자유스러운 분위기 덕분이었다.

“사실은 우리, 찻값도 없어요.”

나는 기지개를 켜느라고 올린 손을 구부려 뒤통수에서 깍지를 끼며 ‘용용 죽겠지!’ 하는 식으로 얼굴을 구겨 가지고 아가씨에게 말했다.

“벌써 눈치챘어요.”

아가씨는 그런 건 벌써 다 알고 있으니 새삼스럽게 얘기를 꺼내서 진지한 얘기를 방홰하지 말라는 것인지 슬쩍 한 마디 던지고 나서 영일이가 하던 얘기나 어서 계속하라는 표정으로 영일이의 입을 열심히 건너다보고 있었다.

녀석은 마치 배고프고 찻값 없는 건 저놈이지 내가 아니다는 듯이 태연하게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이죠, 난 ’25시’야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가장 짧게 그러면서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오매! (이건 분명히 사투리였다) 그분도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굉장히 학구적인 레지 아가씨가 감격해서 숨도 못 쉬겠는지 낮게 중얼거렸다.

“그분 누군데요?”

영일이가 이름만 들으면 그 사람을 존경하겠다는 듯히 호들갑을 떨며 물었다.

그때 상인들로 보이는 중년 사내들 몇 명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다방 안으로 들어섰다. 레지 아가씨는 ‘대답은 이따가’ 하는 듯이 영일이에게 웃음을 지어 보이고 역시 그 오동통한 엉덩이를 들고 저쪽으로 갔다.

나는 영일이 녀석에게 질투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지만 하여튼 그 비슷한 느낌을 느꼈다. 육감적인 레지 아가씨가 두꺼비처럼 생긴 영일이 녀석에게만 온통 반해 있는 눈치였기 때문이었다. 설마 저깐 녀석에게 반하기야 했을라구. 그나저나, 여기서 이러고만 앉아 있으면 저 레지가 밥을 먹여 준대?

기왕 무전 여행이 돼 버린 거, 어디 가서 밥부터 얻어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영일이 녀석은 건너다보았더니 녀석도 걱정은 되는지 팔목 시계를 지그시 내려다보며 무언가 궁리하고 있는 자세였다.

어쩔 샘인가 말을 붙여 보려는데 녀석은 창 밖과 팔목 시계를 두어 번 번갈아 보았다. 얼핏 짚이는 게 있어서 영일이의 시선 방향에서 창 밖을 보았더니 역시 ‘전당포’라는 붉은 글시의 간판이 구세주의 명함인 듯 어느 함석 지붕 위에 높이 높이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영일이 입장에서 보면 야속하겠지만 나는 참을 수 없이 환한 미소가 내 입술에 찰싹찰싹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으응, 너 아까 그래서 싱긋 웃었구나?”

나는 내 미소를 변명하기 위해서 영일이의 미소를 트집잡았다.

“언제?”

“아까 역에서 싱긋 웃었잖아? 무슨 좋은 수라도 난 듯이 말야.”

“헤, 그건, 헤…”

그는 정말 싱겁게 웃고 나서,

“어저께 내가 어던 심경으로 널 찾아갔었던지 오늘은 너도 잘 알아 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웃은 거지.”

아차 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저께 나를 찾아왔을 때… 녀석은 배가 고팠었겠구나. 그런데 나는 녀석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냇물로 그를 끌고 가지 않았던가.

만일 지금 내가 이곳 여수의 어느 친구를 찾아왔따고 하자. 그 친구가 밥을 주는 대신 나를 끌고 해수욕장엘 간다면? 억지로 기운을 내어 헤엄이라도 하는 시늉을 낼 게고 그러다가 너무 기운이 없으니까 장딴지에 쥐가 올라 푸들푸들 허우적허우적 바다 밑으로…

영일이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녀석이 팔목 시계라도 가지고 있는 동안은 녀석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할 나 자신이 눈앞에 훤히 보이는 듯하여 우울해졌다.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앉아 있는데 어느새 팔목 시계를 풀어 탁자 밑으로 내밀며 녀석이 속삭였다.

“야, 미안하지만 너 이거 좀 잡혀 놓구 와. 난 좀 버티고 앉아서 저 아가시를 녹여야겠다. 이거 천 원은 받을 수 있어. 자, 빨리.”

나도 얼결에 시계를 탁자 밑에서 받자마자 바지 호주머니에 집어 넣으며,

“그래.” 하고 속삭였다.

“팍목에 차고 전당포엘 들어가야 해. 그렇잖으면 도둑 물건인 줄 안단 말야.”

“그래.”

대답하고 나서, 나는 시치미 뚝 떼고 진지하게 고독하게 앉아 있는 녀석을 남겨 두고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어디 가세요?”

레지 아가시가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았더니 보기만 해도 시원한 파인 주스 두잔을 쟁반에 받쳐 들고 우리 좌석 쪽으로 가며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아, 잠깐 밖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대답하고 보니, 너무 큰 소리로 너무 즐겁게 말한 듯하여 찔끔해서 카운터의 마담을 훔쳐보았다.

마담은 아무렇지 않은 듯 오로지 고상한 미소만 짓고 부채질을 하고 앉아 있었다. 나는 파인 주스를 그리운 듯 돌아보며 밖으로 뛰어나갔다.

거리엔 수상하게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남쪽 하늘을 보았더니 과연 먹장구름이 하늘을 침식해 오고 있었다. 소나기가 쏟아지겠지. 돈 한 푼 없이 타향에 여행와서 구질구질하게 비까지 만난다면… 상상만 해도 한심스러웠다. 비도 자기 집 안방에 이부자리나 깔고 누워서 구경해야만 시원할 수도 있고 구슬플 수도 있고 아름다울 수도 있고 푸근할 수도 있는 법이지, 타향의 추녀 밑에서 서서 본다면, 세상도 그만 이걸로 끝장이 났으면 하는 하염없는 생각밖에 나지 않을 것 같앗다.

나는 괜한 비에 대한 상상 때문에 온몸이 젖은 걸레철머 구질구질해지는 것을 느기고 등허리에 소름이 돋는 것을 견디어 낼 수 없었지만 그러나 실은 아직 쨍쨍한 햇볕 속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전당포를 향하여 걸어가며 나는 또 한 번 남쪽 하늘을 돌아보았다. 아직까지는 먼 하늘가만 검푸르게 변해 있었다.

영일이 녀석이 알으켜 준 대로 나는 바지 호주머니에 받아 넣었던 시계를 꺼내 팔뚝에 찼다. 땀방울이 솟은 팔목에 닿는 시곗줄의 감촉이 섬뜩할 만큼 기분에 맞지 않았다. 뱀 새끼가 감기는 것 같다고나 할가. 적어도 여드름투성이의 푸르뎅뎅한 영일이 살결이 와 닿는 듯하여서라도 기분에 맞지 않았다. 그렇지만 생각하면 시게가 불쌍했다. 한여름철에 냄새나는 땀을 둘려쓰며 여기저기 끌려다가다가, 먼 남쪽 항구의 시꺼먼 전당포에 처박히는 시계의 팔자도 기구하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쓸데없는 탄식을 해 가면서 나는 전당포로 들어갔다. 전당포 주인이라면 으레 코에 안경을 걸치고 쥐새끼처럼 생긴 영감이리라 상상했는데 엉뚱하게도 금년이나 작년에 대학을 갓 졸업했을 듯한 청년이었다. 양순하게 생긴데다가 말씨도 나긋나긋했다. 그러나 그렇게 보고 쉽게 달려든 게 잘못이었다.

영일이가 일러 준 대로 천 원만 달라고 했더라면 또 몰랐을 텐데 주인이란게 하 만만하게 보여서 천 이백 원을 불렀더니 묘하게 슬픈 눈으로 나를 보면서 시계를 창구 밖으로 도로 내미는 것이었다.

그럼 얼마 줄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칠백 원” 하고 나서 여전히 슬픈 눈으로 나를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로 버티어 버리는 것이었다.

결국은 내가 지고 말았다. 천 원쯤으로 생각하고 있을 영일이를 생각하며 일단 돌아가서 전당포측의 의견을 전해 볼까도 생각했으나 전당포의 생리야 아무래도 영일이가 잘 알 테니 양해하겠지 싶어 칠백 원을 호주머니에 받아 넣고 말았던 것이다.

묘한 눈짓을 가진 녀석도 다 있다고 생각하며 전당포 밖으로 나왔더니 십 미터쯤 전방에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젊은 전당포 주인 녀석의 눈짓보다 더 묘한 짓을 날씨가 하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쪽은 아직도 쨍쨍한 햇볕 속인데 바로 십여 미터 앞의 저족으로는 온통 시커먼 빗줄기 속이었다.

그쪽의 길바닥은 검게 젖어 윤을 내고 있었고 이쪽의 길바닥은 하얗게 먼지를 풀썩이고 있었다. 쨍쨍한 허공과 젖은 공기의 대비가 숨막히도록 들뜨는 기분을 안겨 주는 것이었다. 더구나 저쪽의 젖어 있고 유쾌한 소리를 내닌 대기가 빠르게 이족을 범하며 들어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겨드랑이가 간지러워질 만큼 참을 수 없는, 그러나 유쾌한 긴장을 느꼈다.

유박해 오는 비를 미리 피하느라고 길가 추녀 미틔로 뛰어가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나는 길 한복판 그리고 젖어서 움직이는 대기의 바싹 앞으로 달려갔다.

굵은 빗방울에 얻어맞아 튀어 오르는 마른 흙을 나는 보았다. 젖고 유쾌한 대기를 안내하는 듯한 시늉으로 나는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며 뒷걸음질하기 시작했다. 비의 행렬은 예상보다 빨랐다. 따라서 나의 뒷걸음질 속도를 올려야 했다. 그래도 내가 느렸다. 돌아서서 비를 등지고 달릴 수밖에 없었지만 그리기는 싫었다. 순식간에 그 상쾌하고 많은 음률을 퉁기는 비의 질주 속에 나는 섞여 버렸다. 뒤꿈치가 돌에 걸려 나는 나동그라졌다.

육중하고 통쾌한 대기가 쓰러져 있는 나를 짓밟고 요란하게 지나가고 있는 소리에 나는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눈을 들어 보니 저 멀리 하얗게 빛나는 대기가 쫓겨가고 있는 게 빗줄기를 통하여 보였다. 아름다웠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아름다웠다.

나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다방으로 돌아갔다. 추녀 밑에 서서 소나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서 있던 행인들이, 비에 취하여 하는 내 행위를 웃고 있었다는 것을 다방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을 때 나는 알아싼.

그러나 조금도 창피하지 않았다. 빗속에서 햇볕나는 곳을 보았을 때 내가 본 그 아름다움을 당신들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빗방울이 울리는 무거우나 명랑한 발소리, 휘파람 소리, 손 흔드는 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단 말인가.

다방 입구의 처마 밑에 서서 나는 다방 안의 어둠 때무에 거울과 같은 역을 하고 있는 유리창에 내 꼴을 비춰 봤다. 머리털은 이마에 찰싹 달라붙어 있고 땀에 찌들어 있던 그 머리털에서 빗물이 흘러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눈이 쓰렸다. 내 하얀 셔츠도 몸에 찰싹 붙어 피부의 빛깔을 군데군데 새어 나오게 하고 있었다. 역시 물에 흠씬 젖어 있는 바지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시계 잡힌 돈을 꺼내 보았다. 그것 역시 물에 젖어서 저희들끼리 꼭 붙어 있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비에 섞여 하늘에서 내 앞에 툭 떨어지더니 팔딱팔딱 뛰었다. 나는 하능르 올려다보았다. 검푸른 비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움직이고 있었다.

어디서 보고 있었던지 아이 하나가 달려 나와 아직도 흙물을 퉁기며 팔딱거리고 있는 물고기를 재빨리 집어 가지고 달아나 버렸다. 코가 간질간질하더니 재채기가 크게 한 번 났다. 감기에 걸리겠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몸이 으슬으슬 해졌다.

젖은 옷을 입고 들어가면, 시트가 더렵혀질까 봐, 당장에 내쫓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염치 불구하고 나는 다방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이 여름철에 양복을 정식으로 입고 안경을 쓴 신사한 분이 꾸부정하게 아낮아서 영일아와 무언가 열심히 얘기하고 있었다.

오동통한 레지아가씨는 다른 좌석의 손님들에게 아양을 떨고 있다가 험악한 꼴을 하고 들어서는 내 꼴을 보자 잠깐 눈살을 찌푸리며 카운터 뒤에 여전히 부채질을 하며 앉아 있는 마담을 돌아보더니, 마담이 여전히 모나리자처럼 미소 띠고 고개를 끄덕이자 이쪽으로 걸어왔다.

다가간 나를 보자마자 영일이는 무슨 뜻으로선지 혀를 끌끌 찼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돈을 내밀었다. 아무 말 없이 젖은 돈을 받아 호주머니에 넣으면서 영일이는 내 자리를 빼앗은 신사를 가리키며,

“인사 올려, 우리 선배님이시야.”

그리고 그 선배라는 신사에게 나를 가리키미가,

“제 친굽니다. 이창수라고 합니다. 미술 대학 응용 미술과에 다닙니다.”

미술 대학 응용 미술과는 또 웬 수작인가 생각하며 하여튼 나는 선배라는 양반에게 꾸벅 절했다.

“이창숩니다.”

“아, 앉지 앉지!”

선배님은 영일이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흠뻑 젖으셨네요.”

레지가 다가와 상냥하게 말하며 물수건을 내밀었다.

받아서 얼굴을 닦으며, 탁자 위를 살펴보니 내 몫으로 남아 있어야 할 파인 주스는 빈 잔도 없이 자취를 감춰 버렸다.

“차 들지, 응?”

선배님이 시원시원하게 말해:싶다.

“쌍화탕!”

나 역시 시원시원하게 주문해 버렸다. 선배님이라! 이제 밥은 먹었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문리대 아냐!”

안경 쓰고 뾰족한 얼굴을 내 앞으로 바싹 내밀어 내 배지를 보며 선배님이 이상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하하, 그건 가짭니다.”

영일이 녀석이 도대체 무슨 수자인지 그렇게 대답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영일이와 선배님 사이에 무슨 수작이 있었떤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수작은 영일이 녀석의 거짓말로 시작된 수작임에 틀림없었다. 내가 미수 띵대학 응용 미술과 학생이라? ‘문리대 아냐?’ 하는 선배님의 어리둥절한 표정, 거기에 재빠르게 나서서 ‘그건 가짭니다.’ 하는 영일이의 자신 있는 대답. 나는 그런 것들을 연결시켜 생각해 보려 했으나 도대체 무슨 꿍꿍이속인지 알 수 없었다.

“이 친구 말이죠, 자기 집에서 문리대 다니는 줄 알고 있거든요. 이 친구 미술 공부를 하는 게 인생의 목표였는데 집에서는 호나쟁이 노릇 하면 밥 굶는다고 절대 반대였거든요. 그래서 집에다가는 무리학 공부를 한다고 해 놓고 사실은 미술 대학엘 다니고 있죠.”

영일이의 청산 유수 같은 해명이었다.

“그렇겠지, 그렇겠지. 시골의 무지렁이 부모들은 예술이란 걸 도대체 무시하니까.”

선배님께서는 고개까지 끄덕여 가며 영일이의 거짓말에 넘어가고 있었다.

“그럼요. 요즘 부모들은 자식들이 그저 과학 공부를 한다 하면 괜히 좋아하거든요. 우리 나라 과학이 뒤떨어졌으니 그 방면으로 좀 애써 보자는 듯에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과학 공부를 해 놓으면 나중엔 끼니마다 쇠고기를 먹게 될 줄로 알고 좋아한단 말씀이에요. 그렇지만 진짜 과학자야  극장 간판 그리는 살마보다 더 배고픈 거지요.”

“그럼, 그럼.”

그럼 가는 수작들이 자못 진지했다.

나는 꼼짝할 수 없이 미술학도가 돼 버렸고 덤으로 무지 몽매한 부모들도 둔탓으로 동정까지 받고 있었다. 잘한다, 잘해.

나는 비에 젖은 옷 때문에 견딜 수 없이 눅적지근한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다. 활활 옷을 벗어 버리고 시원한 물 속에 몸을 풍덩 담그고 싶었다.

다방 안의 더운 온도도 때문인지 바지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있는 게 보였다.

갑자기 영일이가 감이 오르고 있는 내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너, 카바레 실내 장식 할 수 있지?”

“카바레?”

“아아, 별거 아니잖아? 너 서울서 다방 실내 장식들 해 주던 솜씨로 하면 돼

(내 무릎을 슬그머니 꼬집으면서). 다방과 좀 다르다면… 아니 그건 네가 잘 알 거야. 다행인 것은 말야, 주인이 천한 견식을 가진 사람은 아니란 거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말하자면 고상할수록 좋다는 거지.”

“주인 영감은 무식한 편이지. 허지만 그 아들, 내 친구가 보는 눈이 있거든. 영감도 그 아들 말이라면 검은 것도 희다 하면 믿는 사람이니까, 자네 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 거야.”

선배님께서도 이 가짜 응용 미술학도를 격려해 주고 있다.

나는 사태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선배님의 친구가 카바레를 경영하고 있다. 실내를 새롭게 단장해 보려 했다.

응용 미술학도인 내가 그걸 맡는다. 영일이 녀석이 어디 일자리를 구해 달라고 한 것이겠지. 그리고 선배님께서는, ‘미술학도라면..’ 했던 것이겠지.

나는 잠깐 생각해 봤다. 제기랄 닥치면 되겠지. 바닷가의 바위를 한 개 들여다 놓고, ‘이거야말로 추상파 조각이요.’ 하고 들이대더라도 못 할 거야

없지.

“힘껏 해 보겠습니다.”

겸손한 채, 나는 머리를 숙여 가며 대답했다.

“그럼, 그 친구를 불어야겠군.”

선배님은 전화를 하겠다고 하며 카운터를 향하여 갔다.

“저 사람 누구야?”

선배님이 자리를 뜬 사이에 내가 영일이에게 물었다.

“사범 대학 출신이라는데 레지의 애인인 모양이야. 어려운 얘기로 레지를 흘려 놓는 모양이야.”

“으응, 너랑 비슷한 놈이로구나.”

“뭐라구?”

“어떻게 되는 판국이야?”

나는 카바레 실내 장식이 뭐니 하는 게 아무래도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되긴?”

영일이 녀석은 태연했다.

“미술 성적은 항상 70점 정도였단 말야.”

“그럼 됐어. 카바레 주인도 모르긴 하지만 그 이상은 안 됐을 거야.”

녀석아늬 여전히 태연했다. 녀석의 자신 있는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실내 장식이란 게 과히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미리 눈이라도 훈련해 두기 다위해서 새삼스럽게 우리가 들어앉아 있는 다방을 둘러보았다.

무슨 재로를 어떻게 써서 만든 건지 몰라도 꽤 솜씨를 들인 벽이며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광택나는 나무며, 카운터 근처의 돌로 장식된 벽이며, 알록알록한 대리석을 깐 바닥이며, 카운터 뒷벽을 장식한 사슴이 수 놓인 벽걸이며…

처음 다방에 들어왔을 때는 고상하려고 애쓰는 듯해 보이던 그런 것들도 이제는 우러러보였다.

“암담해?”

영일이가 비죽이 웃으며 물었다.

“임마, 남의 일처럼 얘기하지 마.”

나는 영일이에게 쏘아붙였다.

“너무 떨 건 없어. 실내 장식도 미술이야. 미술은 내면을 붓을 통하여

나타내는 거구…”

“힝, 입으로는 무얼 못해?”

“못 할 게 뭐 있어? 이 다방을 두고 봐.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저건 목수를 시키면 되는 거구, 저건 미장이를 시키면 되는 거구, 그리고 저건, 음, 저건…”

“우리가 해야겠지?”

“남의 돈 먹기가 쉬운 줄 알아?”

그러고 있는데 선배님이 자리로 돌아오고 있는 게 보였다.

영일이가 빠른 솜씨로 혁대에서 미술 대학 배지를 돌려 빼더니 눈짓으로 어서 바꿔 달라는 시늉을 하며 내게 내밀었다. 나는 별수없이 그걸 받아서 그러나 바꿔 달지는 않고 손받가 안에 쥐고 있었다.

자리에 앉으면서 선배님은,

“이 다방도 그 친구 거지.”

“누구 말씀이죠?”

영일이가 물었다.

“아 곧 올 거야. 똑똑한 친구지. 정력적이로 혁명적인 성격의 소유자야.”

아무리 무시무시한 사나이가 나타나려는 모양이었다.

“대강 얘기했더니 반가운 모양이야. 여긴 아무래도 촌구석이라서 정식으로 실내 장식을 공부한 사람이 없거든.”

나는 속으로 혀를 내밀며,

“너무 기대하시면 곤란합니다.”

“겸손의 말씀. 우리 학교 출신들은 다른 건 몰라도 능력은 가졌거든.”

우리 학교란 게 어느 학교인가 했더니 서울 대학교를 가리키는 모양이었다.

“사범 대학 나오셨으면… 교편을 잡고 계시나요?”

내가 물었다.

“선생질하러 이런 시골 구석에 박혀 있겠나?”

아찔한 대답이었다. 선생질이라니, 이런 시골 구석이라니, 한편 이 더운 여름철에 감색 양복을 정식으로 입고 다니는 거라느니, 새삼스럽게 살펴보니, 좀 곤란한 인간임에 틀림없었다.사내 하가가 급한 걸음걸이로 다방을 들어서더니 사방을 둘러보았다.

카운터의 마담이 사내에게 우리를 손짓으로 가리켰다.

사내가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턱이 완강해 보이고 키가 크고 좀 뚱뚱한 삼십대의 사내였다. 굵은 눈썹이 아닌게아니라 정력적으로 생겼다.

여름 잠바 차림의 사내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걸 보고 우리의 곤란한 선배님은 마치 장교를 본 사병철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차렷 자세를 했다.

잠바는 무표정하고 완강한 얼굴로 우리를 훑어보며 선배님 옆에 선 채 다짜고짜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강동웁니다.”

“강동웁니다.”

오나강하고 정력적으로 생긴 사내는 우리와 번갈아 악수를 하면서 굵은 음성으로 말했다.

용모와 나타나자마자 대뜸 커다란 손을 내미는 태도와 그리고 우리가 아니, 내가 바야흐로 가짜 미술 대학생이 되어 속여야 할 상대가 바로 이 사람이구나 하는 점 등등으로 우리는 아니, 나는 좀 기가 질려버렸다.

강동우씨의 손아귀 속에 들어갔다 나오자마자 내 손은 푸르르 경련했다.

그만큼 내 손엔 힘이 없었고 강동우씨의 손은 억셌다.

그러나 영일이는 자못 유쾌하다는 표정으로,

“장영일이라구 불러 주십시오. 잘 부탁하겠습니다.”

말하고 나서, 당신을 좀더 잘 봐야겠다는 듯이 안경을 벗어서 옷섶에 닦고 있었다.

그런데 강동우씨의 출현으로 기가 질린 사람이 또 하나 있었다.

선배님이었다. 조금 전까지도 강동우씨와 피차 못 할 소리가 없는 친구 사이인 듯한 태도로 우리에게 강동우씨에 대하여 얘기하던 선배님이 막상 강동우씨가 나타나는 순간부터는 선생님 앞에 선 국민 학생처럼 긴장한 얼굴로 강동우씨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것이었다.

“전화를 얘기 들었습니다. 어느 분이 그림 그리시는 분입니까?”

강동우씨는 의자에 안자마자 나와 영일이를 번갈아 봤다.

내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억누르려고 애쓰고 있는데 영일이는 유들 유들하게도,”말씀 낮추십시오. 이 친구가 서울 대학교 미술 대학 응용 미술과엘 다니고 있습니다. 다방 실내 장식은 경험이 많습니다만 카바레는 첨이랍니다. 그렇지만 맡겨 주신다며 재주 있는 껏 해 보이겠다고 합니다.”

겸손한 체 그럼으로써 더욱 자신이 있는 체해 대었다.

강동우시는 굵은 눈썹을 모아서 심각한 태도로 나를 살피고 있더니 빙긋 웃으며,

“비를 맞으셨군.”

눈길을 어디에 둘지 모르고 있떤 나는 얼결에,

“예.”

“오올 라잇.”

제법 미국 사람처럼 발음을 하고 나서 강동우씨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가 보실까?”

그럼 지금부터 일하러 가자는 뜻인 듯했다.

나와 영일이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이번만큼은 영일이 녀석도 속이 편치 않은 표정이었다.

얼핏 보니 선배님도 이질이라도 걸린 듯한 표정을 하고 멀뚱멀뚱 앉아 있었다. 그러나 선배님의 그런 표정의 내용은 우리의 그것과는 다름에 틀림없었다.

강동우씨가 후배들 앞에서 자기를 무시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가 우물쭈물하고 있는 게 이상했던지 강동우씨는 다시 의자에 앉으며, “아, 보수 문제 말이오? 그건 가서 일의 분량을 보시고 의논해 봅시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생각해 둔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으니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겁니다. 하여튼 현황을 보고 나서 커뮤니케이션해 봅시다.”

말하고 나서, 자 어떻게 할 테냐 빨리빨리 얘기하라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강동우씨의 시선이 나를 비실비실 의자에서 일으켜 세웠다.

영일이도 나를 따라 비실비실 일어났다.

“자넨 여기 있겠나?”

강동우씨가 선배님에게 말했다.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러나 선배님은 어색한 미소를 띠고 일어서며,

“나도 도울 일이 있을까?”

강동우씨는 따라오겠으면 오라는 듯이 앞장서서 다방 밖으로 향하였다.

우리는 우중충한 걸음걸이로 그 뒤를 따라싼. 문득 찻값에 대한 걱정이 생겼으나 아무도 내려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받으려는 사람도 없었고 레지 아가씨가 선풍기를 조절하고 있다가 돌아본 나에게 방긋 웃어 보였을 뿐이다.

거리는 활짝 개 있었다. 햇볕은 눈을 찔렀다. 우리는 소란한 시장이 가까운 어느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골목의 끝에 우리의 읠터가 도살장처럼 버티고 있는게 보였다.

 

 

새로운 계급

시장 안의 음식점들에서 나는 냄새가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골목 안까지 풍겨 오고 있었다. 걸으면서 돌아봤떠니 골목에서 마주 보이는 한갈의 저켠에 생선 튀김을 만드는 가게가 있었다. 갈색으로 튀겨진 생선들이 솥에서 건져내어지고 있는 게 보였다.

“여시부터 듣어고쳐야 해.”

강동우씨가 카바레 건물의 정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 낡은 건물을 가리기 위해서였던 듯, 마치 무대의 세트처럼 검은 널빤지를 이어 붙여 거기에 ‘Cabaret’라는 영자를 초서(?)로 갈겨쓴 네온사인이 장치되어 피어 있을 뿐이, 여닫이문이나 썩어 가는 나무 계단이나가 모두 촌스러워 보였다.

어떻게 고치겠느냐고 하면 당장 할말이 없겠지만 어데든 고치긴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가짜 응용 미술학도인 나에게도 들었다. 카바레의 제목은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건물이든지 입구란, 사람의 몸에 비하면 얼굴인데 말야, 요따윌 해놓고 손님이 오기를 기다렸으니 망할 수밖에.”

강동우씨는 누구에겐지는 알 수 없었으나 잔뜩 경멸하는 말투로 투덜거리며 문을 벌컥 밀었다.

“그럼, 그럼. 쇼펜하우어도 첫인상을 중요시하라고 했단 말일세.”

선배님이 강동우씨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며 하신 말씀이었다. 포마드

바른머리, 양복 넥타이, 번쩍거리는 구두 등… 어쩐지 쇼펜하우어와는 별로 인연이 없이 보이는 양반이 말씀이다.

카바레 안은 대낮인데도 캄캄했다.

강동우씨가 현관 벽에 붙은 스위치를 누르자 전등들이 켜졌다.

꽤 넓은 홀이었다. 그러나 더럽고 음침한 창고 같았다. 나무로 된 마룻바닥에서는 우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먼지가 풀썩풀썩 일어났다.

빗물로써 얼룩진 천장은 살펴보니 마대로 되어 있었다.

백회를 바른 벽은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 벽돌이 뼈처럼 드러나 보였다.

홀의 한쪽 구석에 등이 높은 의자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고 안쪽에는 밴드와 가수를 위한 스테이지가 있었다. 스테이지의 앞은 여객선의 선채를 흉내내어 오려지고 그려진 합판으로 가려져 있었다. 스테이지 뒷벽엔 물론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푸른 바다가 페인트로 그려져 있었다. 아마 악사들은 마도로스 복장을 하고 있었겠지.

“어떻습니까?”

강동우씨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런 엉터리 홀을 구경한 적이 있느냐,

가소롭지? 하는 뜻에 동의하라는 듯한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얼결에 웃음을 짓고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마치 이건 너무한데요, 하는 듯이,

“이렇게 해 놓고 손님들의 호주머니를 엿보다니, 순 도둑놈 배짱이지.”

혀까지 끌끌 차며 강동우씨가 또 한 번 누군가를 욕했다.

짐작컨대, 이 카바레의 전 주인이 지금 욕사발을 뒤집어 쓰고 있는 중인 모양이었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나?”

선배님이 나에게 은근히 물었다. 어서 멋진 아이딜어를 말해서 이 선배님의 체통을 세워 달라는 듯이,

어렸을 때 탱크나 군인을 벽에 그려 봤다. 역시 어렸을 때 색종이를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여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 책상 위에 놓고 즐긴 적이 있다. 좀 자라서는 아버지를 거들어 방 도배를 한 적이 있다. 최근엔 흙을 물에 개어 벽의 쥐구멍을 막은 적이 있다. 대강 그런 것들이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해 본 실내 장식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뭐가 카바레의 실내 장식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대학에 입할했을 때, 사회에 나가서 돈 좀 모았다는 고등 학교 선배 하나가 카바레 구경을 시켜 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나마 기억나는 것은 밴드 박스와 스테이지를 제외하곤 그저 곁에 앉은 사람의 얼굴이 보일 듯 말 가삥이 실내가 어둡더라는 것 정도였다. 오라, 카바레의 벽은 아무런 장식이 필요 없겠구가, 카바레의 실내 장식은 전기 기구상회에서나 맡아 할 일이겠구나.

나는 강동우씨와 선배님에게 할말이 생겨서 기뻤다.

“카바레란 다방과는 용도가 다른 것이기 때문에…”

데커레이션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는 거요?”

강동우씨가 앞질라 말했다.

“그러… 그렇습니다. 술 마시고 춤추러 오는 사람들의 눈에 장식이 보일 리가 없죠. 조명이나 밝다면 또 모르지만…”

“노오우!”

강동우씨의 그야말로 벽력 같은 고함 소리에 내 무릎 관절이 한 번 획 꺾였다.

“그걸 연구해 보자는 거요. 카바레는 왜 어두운가? 무드, 무드를 살리기 위해서요. 그렇다면 캄캄한 창고 속에도 무드가 있는가? 노우. 어둡긴 어둡지만 그 어둠에 적당한 조명, 적당한 멜로디, 적당한 냄새가 어울려야만 우리가 바라는 무드가 생기는 거요. 그리고 생각해 보시오. 흰 벽에 붉은 조명이 비쳐졌을 때와 검은 벽에 붉은 조명이 비쳐졌을 때와…”

등등

강동우씨는 먼지가 풀썩이는 창소 속에 같은 홀 복판에 서서 그 우람스런 몸을 흔들어 가며 한참 동안 떠들었다.

먼지가 그 양반의 입 속을 들락날락하는 게 보였다. 미국에 가서 아마 데커레이션을 공부해 가지고 돌아온 모양이었다. 나는 일이고 밥이고 다 내던져 버리고 여비만 있다면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까지 뒤에 서서자기는 제삼자인 듯 멀뚱멀뚱 실내를 돌아보고만 있던 영일이가 느닷없이,

“앞으로 세 시간만 여유를 주십시오. 계획서를 만들어서 브리핑해

올리겠습니다.”

제법 사업가나 되는 듯한 말투로 강동우씨에게 말했다. 강동우씨는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영일이를 내려다보고 있더니,

“…성이…”

“장영일이라고…”

“아, 미스터 장, 미스터 장이 할 대답은 아니잖을까?”

“아, 참, 그렇군요.”

영일이는 실수를 인정한다는 듯이 손을 뒤통수로 가져가며 나를 보았다.

별수없이 나는 우물쭈물 대답하고 말았다.

“세 시간 안으로…”

“오올 라잇.”

강동우씨는 시원시원하게 내 말을 받고 나서 밖을 향하여 걸으며,

영일에게,

“미스터 장은 서울 법대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강동우씨는 영일이의 어깨에 한 손을 턱 올려 놓으며,

“나 좀 도와 주시겠죠?”

“별로 그림 재주는 없습니다만…”

“아, 그게 아니오. 천천히 얘기합니다.”

나는 그들의 몇 발짝 뒤에서 선배님과 나란히 걸으며,

“저분, 미국에서 무슨 공부하고 오셨습니까?”

“경제학 박사는 따지 못했지만…”

선배님이 속삭이듯이 대답했다.

현고나의 한쪽 벽에, 들어올 때는 눈에 뜨이지 않았지만 문이 있었다.

강동우씨가 그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선배님은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동우, 동우”

부르며, 얼른 강동우씨의 잠바 자락을 붙잡았다.

“난 가 봐야겠어.”

선배님이 볼일이라도 있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표정은 아무리 봐도, 강동우씨가 ‘그러지 말고 따라와서 복숭아 화채라도 한 그릇 들고 가게.’ 하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강동우씨는 밀던 문에 손을 댄 체 고개만 선배님 쪽으로 돌려 무정하게도,

“그래?”

말하며, 그럼 가 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시선을 우리에게 돌려,

“들어들 와요.” 하고 나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마 안집으로 통하는 모양이었다.

선배님은 뭔가 무안한 듯한 표정을 감추려고 애쓰며, 영일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 그 다방에 자주 나가니까 응? 급한 일 있으면 그 다방으로 응? 아니,

내가 가끔 여길 들러보지. 참 점심들 아직 안 했겠군. 배고프지? 가만 있자…”

“아닙니다, 선배님, 바쁘실 텐데 가 보세요.”

“아냐, 바쁘긴 뭘. 가만 있자, 배가 고플 텐데, 가만 있자…”

호주머니를 뒤지더니 백 원짜리 두 장을 꺼내었다.

영일이가 얼른 바지 호주머니에서 시계 잡힌 젖은 돈을 꺼내 보이며,

“있습니다. 이러헤 있다니까요.”

호들갑을 떨며 선배의 돈 든 손을 밀었다.

그때 다시 안집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강동우씨가 얼굴을 내밀고,

“들어들 와요.”

영일이와 나에게 재촉하다가, 손에 돈들을 들고 승강이하고 있는 게 이상하다는 얼굴을 지었다.

선배님은 얼른 자기 돈을 호주머니로 집어 넣으며 강동우씨에게 불필요하게 큰 소리로,

“이 친구들, 아직 점심을 안했으니까…”

“알았어, 알았어.”

강동우씨는 거만하게 말했다.

인정 많은 선배님 역시 이번에는 질 수 없다는 것인지 다소 거드름을

빼며 우리에게 ‘자, 또보지.’ 하고 근사하게 싹 돌아서서, 우리가 ‘선배님 감사합니다.’ 할 틈도 주지 않고 카바레의 정문을 밀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안집은 의외로 넓고 깨끗했다. 이 남쪽 지방엔 흔한 일본식 주택이었다.

제법 정원수도 가꾸어져 있고 시장 근처에 있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집 안이 조용했다. 어느 방에선지 전축에 걸린 음악 소리가 조용히 새어 나오고 있었다. 골목이 무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요컨대 고상했다.

강동우씨는 우리를 응접실로 데리고 갔다. 예상보다는 과히 화려하지도 깨끗하지도 않았다.

“어떻게 하겠소? 점심부터 하겠소? 목욕부터 하겠소?”

강동우씨는 비에 젖어 있는 내 옷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해야 할 대답은 빤했다.

영일이와 나는 강동우씨의 뒤를 따라 길고 좁은 복도를 지나 복도의 끝에 있는 목욕실로 갔다. 어떤 방 앞을 지날 때 젊은 여자들이 조심조심 떠들고 있는 소리가 들려 나왔다. 전축 소리도 그 방에서 들려 나오고 있었다.

강동우씨가 가 버리자 영일이와 나만 꽤 넓은 목욕실 안에 뎅그머니 남았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영일이가 먼저 옷을 벗기 시작하며, 이것도 재미있다는 듯이 빙글빙글 웃었다.

“점심이나 얻어먹고 도망가자.”

내가 속삭였다.

점심이나 얻어먹고 도망해 버리자는 내 의견에 영일이는 옷을 벗다 말고 그 도수 없는 안경 속에서 눈을 엄격하게 해 가지고,

“네 기분은 알겠어. 그렇지만 이게 용서하제 않는단 말야, 이게.”

벗어서 목에 걸어 놓은 제 옷의 배지를 손가락질하며 호통쳤다. 그러고 나서 제법 타이르는 조로,

“점심 얻어먹고 도망가는 건 쉬운 일이야. 그렇지만 우리가 그럼으로써

선배님의 체면은 어떻게 되겠어? 그리고 강동운지 깡다구닌지 하는 이 집

주인의 서울 대학생에 대한 인식은 얼마나 나빠질 것인가 그 말야.”

가짜 서울 대학생이 아아쭈 학교의 체면을 세워 주고 있는 게 우습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였다.

“가짜 미술 대학생이란 게 탄로나는 건 시간 문제란 말야.”

나는 골이 난 표정으로 그를 외면하며 투덜댔다. 그러니까 그는 내 셔츠의 단추를 끌러 주며,

“하여튼 목욕이나 하구 봐. 난 널 믿어. 넌 상상력이 풍부하거든. 지금 제트기를 갖다 주면서 조종하라고 해서 넌 할 수 있는 사람야.”

녀석이 비행기를 태워 줘서는 아니지만, 어떻든 나는 슬슬 옷을 벗기 시작했다. 우리는 가마에 채워져 있는 냉수를 바가지로 퍼내어 몸에 끼얹기 시작했다.

“물건 존데!”

하면서, 녀석이 냉수를 갑자기 내 등에 끼얹었다. 그걸 비롯해서 우리는

좀 명랑해졌다.

“사타구니의 묵은 때는 바닷물에 씻으면 깨끗이 벗겨진다는 걸 아니?

해묵은 무좀도 바닷물에 담갔다가 뜨거운 모래에 지지면 나아 버린다는 걸

아니?”

녀석은 내 등을 열심히 밀어 주면서 시시덕거렸다.

“암마, 이건 수돗물이라고.”

“바다가 이십여 미터 전방에 있다는 걸 잊지 말라구. 자, 내 등 좀 밀어.”

녀석이 돌아앉아 들이대는 등을 이번엔 내가 밀기 시작했다. 등에도 여드름이 무성했다. 울긋불긋한 등을 나한테 맡겨 놓고 흔들거리며 녀석은 무언가 궁리하는 눈치였다.

나는 나대로, 이것저것 생각하는 게 많았다.

오늘 밤에 할머니는 돌아가실지도 모른다. 섬 아가씨는 어데게 됐을까?

생선 튀김을 먹어야지. 그나저나 이놈의 카바레 벽은 뭘로 메운담. 영일이에게 떠 맡겨 놓고 슬쩍 도망해 버릴까? 그런데 돈이 한 푼도 없으니 야단이지. 영일이의 호주머니에서 몇백 원만 슬쩍 할가? 아니 달라고 해 볼까? 그럴 게 아니라 선배님을 찾아가서 사실대로 얘기하고 돈을 얻을까?

그따위 시시한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녀석이 벌떡 일어나더니 문으로 다가서서 문틈에 눈을 붙이는 것이었다. 문 밖의 복도에서 젊은 여자들의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문틈에 눈을 붙인 채 영일이가 이리 와 보라는 손짓을 했다. 배고프다는 것도 거짓말이었던지 나는 후다닥 힘차게 일어나서 영일이 곁에 나란히 서서 다른 틈을 찾아 눈을 갖다 대었다.

전축 소리가 나는 방의 미닫이문이 열러 있고 문지방을 딛고 선 예쁜 쳐너가 보였다. 처녀는 웃음을 참는지 한 손으론 입을 가리고 한 손으로 방안에 대고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아마 방안에 있는 자기 친구들에게 무언가 몰래 보러 가자고 꾀고 있고, 그런데 방안의 친구들은 킥킥거리기만 할 뿐 얼른 따라 나서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 추측을 하며 처녀의 얼굴을 좀더 자세히 보려고 좀더 큰 문틈을 찾다가 나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몰래 구경하자는게 바로 우리가 목욕하는 장면이 아닐까? 틀림없이 그런 것 같았다. 갑자기 영일이가 몸을 돌리더니 얼른 바닥에 주저앉자 바가지의 물을 등에 끼얹으며 목욕하고 있는 시늉을 하면서 나에게 너도 얼른 이리 와 앉으라는 눈짓을 했다.

얼른 문틈에 눈을 대 봤더니 처녀는 보이지 않고 강동우씨가 옷을 한 아름 안고 목욕탕을 향하여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놀랐는데. 기차에서 만났떤 그 여대생이야.”

황급히 자리로 돌아와 앉은 나에게 영일이가 토끼눈을 해 가지고 속삭였다.

사내들이 목욕하고 있는 장면을 엿보려고 했던 얌전치 못한 쳐녀가 바로 기찻간에서 영일이의 맞은쪽에 앉아 콧등에 이슬땀이 맺힐 만큼 진지하게 영일이의 유식한 말씀을 경청하던 그 여대생이란 건 얼른 납득이 가지 않았다. 처음부터 나는 그 여대생의 얼굴을 멀리서만 봤을 뿐, 모르모르 영일이가 기다고하면 긴가 보다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긴 했지만, 작은 문틈으로 그나마 안경도 쓰지 아낳고 엿보고서 그 두 여자가 도일인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너무나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 영일이의 말이 정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이 자기의 안경이 도수가 없다는 것만 인정한다면 말이었다.

“이게 그 여대생의 집일까?”

영일이는 뭔가 신에게 감사라도 하는 듯이 감격에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고 강동우씨의 굵고 우람한 목소리가 문 밖에서 말했다.

“미스터 리, 여기 내가 입던 옷 한 벌 가져다 놨소. 젖은 옷하고 바꿔 입으시오. 빨래를 시킬 테니 호주머니 속에 든 건 내놓고…”

말하고 나서, 나에게 무슨 대답을 기다리는지 잠자코 문 밖에 서 있는 눈치였다.

나와 영일이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마주 보았다. 나는 정말 당황해져 버렸다. 우리가 죽은 듯이 꼼짝하지 않고 있으니까 걱정이 되었던지 강동우씨는 또 한 번 문을 노크하며,

“미스터 리!”

“네네, 감사합니다. 젖은 옷은 여기 벗어 두겠습니다.”

허둥지둥 나는 내 입이 지껄이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식사 준비가 다 된 모양인데 목욕 아직 멀었소?”

“네네, 다 됐습니다.”

“끝나면 아까 그 방으로 오시오.”

자상스럽게도 일러 두고 나서 강동우씨의 발소리는 멀어졌다.

발소리가 멀어짐에 따라 맑은 정신도 멀어져 가 버렸다. 야단났꾸나 싶었다. 점심이나 얻어먹고 도망가 버릴 작정이었던 게 틀려져 버렸다.

내 옷이 빨아져서 말려져서 다리어질 때까진, 아무리 여름 햇볕이라고 할지라도 세 시간 이상이 걸릴 터이고, 그런데 세 시간 안으로 나는 카바레의 실내 장식에 대한 브리필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걱정 때문에 맥이 쑥 빠져 버린 나와는 거꾸로, 영일이 녀석은 입가에 묘한 미소를 띄고,

“옳다, 깡따구니(이건 강동우씨에게 어느새 영일이가 붙인 별명이다)의 여동생이 틀림없어. 아까 그 아가씨 말야. 분명히 강 아무개라고 했거든.”

신이 나는 모양이었다.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채워 가지고 치질이 걸려 있다는 궁둥이를 거기에 푹 담그고 앉아서 영일이 녀석은 또 이렇게 말했다.

“깡따구니 얘긴데 말야, 묘한 사람이란 느낌이 들지 않니? 굉장히 거만하고 차가운 듯한데 네게 옷을 가져다 주는 거라든지 보면 퍽 섬세한 인정이 있구 말야.”

“인정이구 나발이구 난 망했다.”

“아냐 틀림없이 고독한 사람일 거야.”

“고독 좋아하네. 지금 고독한 건 바로 나란 말야, 나.”

나를 냉수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쓰면서 웅얼댔다.

옷은 나에게 너무 컸다. 누가 보더라도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이 분명하리라는 것도 지나쳐 아예 서커스의 피에로 같았다.

그러나 그 옷에 영일이가 조르는 대로 미대 배지조차 달고 어슬렁어슬렁 응접실로 돌아갔더니 강동우씨는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 열심히 쓰고

있다가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데리고 뜰로 내려섰다.

여대생의 방에서는 이젠 역시 고상한 음악 소리만 들릴 뿐 조용했다.

뜰 한쪽에 작은 집이 한 채 서 있었다. 집 한 채라기보다는 방 두 개가 있었다.

그 중의 하나의 방문이 열려 있엇고 방안에는 김이 오르는 갈치 찌개 냄비조차 놓인 밥상이 의젓하게 놓여 있었다. 강동우씨가 응접실로 돌아가자마자 우리는 그야말로 퍼넣기 시작했다. 묘하게 슬퍼지고 자신이 초라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숟가락질이 늦춰지진 않았다.

문득 돌아봤더니 뜰 저편 응접실 안에서 무언가 열심히 쓰고 있는 강동우씨가 보였다.

“멋쟁이지?”

강동우씨의 어쩐지 고독해 보이는 자세를 힐끔힐끔 곁눈질하며 내가 밥을 퍼넣고 있는데 영일이가 풋고추를 된장에 푹 찍어 입을 넣고 우물거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글세, 저런 사람이 멋쟁일까 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몸집이 큰 사내가 별로 웃을 줄도 모르고 무언가 잎거부하는 듯이 냉랭한 표정으로 얼굴이 굳어져 있고, 그런데 하는 짓을 보면 여자보다 더 섬세하고 자상하고… 그런 사람이 멋쟁이로 보일 수도 있겠지. 다만 자기와 아무런 이해 관계 없이 그저 동물원의 호랑이나 사자를 감상하듯이 보기만 한다면.

그러나 들판에서 호랑이나 사자를 상대로 하여 그놈을 속여 넘겨서 그놈의 호주머니의 돈을 얻어 내어야 할 경우에도 호랑이의 얼룩무늬나 그 점잖은 상판을 ‘야! 멋쟁이구나.’ 하고 감탄하고만 있을 겨를이 잇단 말인가.

영일이에게는 강동우씨가 동물원의 호랑이로 보였는진 모르지만 나에겐 골목에서 마주진 호랑이 같기만 했다. 기어이 도망하겠다면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조금쯤은 아직까지 나에게 있으니까 강동우씨가 고독해 보인다느니 따위의 한가한 생각도 드는 것이겠지만, 생각하면 선배님에게 대하는 태도라든가, 지금 응접실의 책상 앞에 앉아서 무언가 열심히 쓰고 있는 태도라든지 그리고 젖은 옷과 바꿔 입으라고 자기 옷을 가져다 주는 그런 자상스런 태도에 이르기까지 무섭고 무서운 사람이었다.

만일 이족의 약점이 들어나는 날엔 호랑이의 이빨보다 더 날카롭게 내 약점을 물어 듣을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를 화초처럼 감상해 달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터이고, 잘 웃는 사람도 잘 웃지 않는 사람도 모두 제 나름으로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다툼에서 이겨 나가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을터인데, 말하자면 강동우씨의 그 진지하고 쌀쌀하고 자상한, 한 마디로 복합적인 태도 역시 살아오는 도안 자기 나름으로 얻은, 새상을 경제적으로 살아 나가기 위한 방법일 터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멋모르고

‘야, 멋쟁이지?’ 따위의 한가한 소리나 지걸이며 튤립이나 보듯이 그 사람을

보고 있기만 하다간 이쪽의 약점을 드러날 대로 나고, 그리고 그때에야 그 약점을 무자비하게 물어 뜯는 튤립을 발견하고 뒤로 벌렁 넘어져 버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영일이의 눈에는 아무래도 강동우씨가 멋쟁이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존경하고 싶기조차 한 모양이었다.

그러는 녀석은, 내 생각엔 아무래도 기차에서 영일이가 수작을 붙이던 그 여대생, 우리의 목욕 장면을 엿보려던 처녀, 아마 강동우씨의 여동생임에

틀림없는 그 아가씨 때문에 그러는 것만 같았다. 녀석에게 밥상을 물리자마자 도망가자가 꾀기도 틀려 버렸다는 것을 직감했다.

어떻든 잘 먹었다. 밥이 좀더 있었으면 했지만, 이럴 때를 위해서 ‘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때 숟가락을 놓아라.’ 라는 소화에 대한 격언이 있겠지,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몸집이 땅달막한 곰보 아주머니가 냉수 그릇을 가져다 놓고 밥상을 들고 가 버렸다.

“묵긴 묵었는디…”

나는 팔베개를 하고 뒤로 벌렁 누우며 중얼거렸다.

영일이 녀석은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더니,

“치질약도 사야겠고, 아니 우선 담배가 급하군…”

어쩌구저쩌구 하며 꿍얼꿍얼하고 있었다.

“그게 급해?”

나는 누운 채 영일이에게 소아댔다.

영일이는 천연스럽게 나를 돌아다보았다.

“그렇지 참. 소하가 더 급하군. 밥 먹은 뒤엔 반드시 일곱 걸음 이상은 걸으라는 말이 있었지. 자, 산보다 가자.”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엉터리 대답에 역장이 치밀었으나 밖으로 나가자는 말은 그저 반가웠다.

영일이와 나는 들로 내려섰다. 신을 막 신고 있는데 닫혀 있던 옆방의 문이 조심조심 빼꼼히 열렸다. 으레 빈방이려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들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리가 하던 얘기를 다 엿들었겠구나 싶어 가슴이 내려앉는 걸 느끼며 빼꼼히 열려진 문틈으로 다가오다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얼른 물러났다.

이윽고 문이 역시 조심조심 도로 닫혀 버렸다. 조심조심이라고 나는 생각했지만, 어쩌면 워낙 힘이 없으니까 그렇게 문이 열린 모야이었다.

그리고 이 뜨거운 여름날에 방문을 꼭 닫고 있는 이유도 문을 열고 닫고 할힘이 없으니까 그런 모양이었다. 그거야 어떻든, 마치 연탄이나 쌓아 두기 위해서 지어 놓은 듯이 함부로 지은 이 딴채의 협소한 방에, 아마 강동우씨의 할머니가 틀림없이 뵈는 노파가 기거하고 있다는 것에 묘한 충격을 나는 받았다. 그건 기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갇혀 있는 것 또는 버려져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노파를 그렇게대우하고 있는 이 집 사람들이 한 마디로 쌍놈의 새끼들 같았다.

영일이가 신을 신다 말고 내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밀며,

“뭐야?” 했다.

“파파 할머니가 감금되어 있어.”

“넌 오나가나 할머니 복이 많구나.”

영일이의 말을 듣고 보니 또다시 내 할머니 생각이 났다.

도전과 감전과 죽음.

 

 

잊어버리기 위해서 나는 눈을 있는 힘을 다하여 감았다.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머리를 흔들고 있는데 강동우씨의 우람한 목소리가 바로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왜들 나오시오?”

“데커레이션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아야 할 게 아닙니까?”

영일이가 얼른 대답했다.

“그거야 미스터 리가 많은 일이고, 미스터 장은 나하고 음모를 하나 꾸며 줬으면 고맙겠는데…”

“음모라구요?”

영일이는 신이 난 듯이 외쳤다.

“야, 신나는데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음모라 음모…”

한 손으로 주먹을 쥐고 다른 손 손바닥을 두드리며 영일이는 법석을 떨었다.

내가 알기엔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말은 ‘영혼’이었는데 이번엔 음모였다.

“숙소, 정한 곳이 있소?”

강동우씨가 물었다.

“아직…”

“그럼 이 방을 쓰도록 하시오. 페이에서 방값을 떼지는 않을 테니 안심하시고. 자 그럼, 미스터 리는 어떻게, 홀을 다시 한 번 봐야겠소? 그럼 미스터 리는 글고 가시고 미스터 장은 나하고 얘기 좀 합시다. 그런데 미스터 리, 일 주일 안으로 마칠 수 있도록 계획을 면밀히 짜 주기 부탁바랍니다. 자, 그럼…”

말하고 나서, 강동우씨는 앞장서서 응접실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앞이 캄캄해져서 영일이의 얼굴을 우두커니 쳐다봤다. 카바레 실내 장식은 이렇게 되면 오나전히 나 혼자에게 떠맡겨지는 셈이었다.

영일이는 역시 딱하게 됐다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떠니 좋은 생각이 난 듯,

“헌책방에 찾아가서 외국 잡지들을 뒤져 봐. 다른 카바레가 있나 찾아봐서 있으면

자세히 보아 두고… 넌 할 수 있어. 해봐, 트라이 트라이!”

재빠르게 속삭이고 나서, 강동우씨의 뒤를 따라가려다 멈칫하더니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몽땅 내 손에 쥐어 주고, 이미 응접실 앞의 마루로 오르고 있는 강동우씨의 뒤를 쫓아가 버렸다.

별수없었다. 영일이의 그만한 충고라도 나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어슬렁어슬렁 카바레의 홀로 갔다. 스위치를 올리고 나서 홀 복판에 나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여긴 남해안이 아니라고 난 생각했다. 태양 대신에 전등이, 갯바람 대신에 먼지뿐이었다.

그때 나는 영일이가 쥐어 준 돈에 문득 생각이 미쳤다.

칠백 원이라.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무엇을 일컬어 자유라고 하는지 처음으로 안 것 같았다. 전등불이 공허하게 휘황한 홀이 아까보다 더욱 나를 숨막히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달리고 싶었다. 만일 내가 내 눈으로 볼 수 있었다면 어둠 속에서 빛나는 고양이 눈 한 쌍을 보았으리라. 나는 안집에서 누가 나와서 밖으로 나가는 나를 보고 강동우씨에게 일러 바칠까 봐, 그리고 영일이가 느닷밑없이 나와서 나의 표정을 보고 눈치챌까 봐 조심조심 밖으로 나왔다.

카바레 밖의 골목을 급히 걷다가 문득 전등불을 끄지 않고 나온 것이 깨달아졌다.

어렸을 때부터 이따금 보아 온 ‘전기를 절약합시다.’ 라는 표어가 어느 틈에 내 속에 깊이 들어와 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잠깐 망설였으나 용기를 내기로 작정했다. 전기여 바이바이. 강동우씨네의 전기세가 이번 달엔 몇백원 오른다는 사실밖엔 변한 게 하나도 없겠지.

골목을 빠져 나왔다. 돌아올 때 보면서 침을 삼키던 생선 튀김도 우스워 보였다.

어디선지 여인들이 한바탕 싸우고 있는 소리가 들려 왔다. 싸워라, 싸워.

영일이에게 미안했다. 음모라니 무슨 음모를 하고 있는 것일가?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겠지.

내가 도망가 버린 줄 알았을 때 녀석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의 영혼이 도망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괴로웠따는 것을 이해해 주겠지. 제기랄, 나의 돈 가지고 도망하는 덴 타고난 소질이 있다보다. 교수님의 인세를 가지고 도망했고 이번엔 치구의 시계 잡힌 돈을 가지고 도망한다.

나는 갑자기 귀뺨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걸음조차 느려지고 있었다. 시장의 지저분한 길을 나는 걷고 있었다. 생선 비린내와 시장의 소음이 코와 귀로 쏟아져 들어왔다. 뱃고동 소리가 밝은 하늘 저편을 조용히 흔들고 있었다.

역으로 가야 한다, 기차를 타야 한다, 집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부두 쪽으로 걷고 있었다. ‘그렇지만 실내 장식 같은 건 할 줄 모른단 말야.’ 하는 생각과 도망할 때마다 나의 괴로움으로써 그 죄를 깨끗이 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엉터리없는 계산에 대한 부끄러움이 뒤범벅이 되어 나는 혼란되어 버렸다. 나는

없어지고 싶었다. 죽은 것도 아니고, 그래, 그냥 없어지고 싶엇다. 그러나 나는 없어지지 않았다. 나와 부딪힐 뻔한 행인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힐끔힐끔 보며 길을 비켜 갈 때마다 문득문득 나는 아직도 내가 없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들이 내 눈에 보이듯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내가 보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문득 신기한 생각이 들엇다.

내 눈으로 나 자신을 보고 싶었다.

마침 약방의 유리창 문이 내 옆에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유리창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고 있었다. 목욕을 한 머리는 제멋대로 흐트러져 있고 빌어 입은 강동우씨의 옷은 마치 환자나 포로나 죄수의 모습으로 나를 꾸며 놓고 있었다. 나의

얼굴은 영원히 웃지 않을 듯이 굳어져 있었다. 없어질 수가 없다면 이 모습 이대로 석상이 되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상의 제목은 ‘죄인’.깨닫고 보니 약방 안에서 늙수그레한 아주머니가 수상한 듯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급히 그 자리를 뜨고 싶었으나 엉뚱하게도 나는 약방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엉뚱한 약을 사고 있었다.

“치질약 있습니까? 넣는 걸루요?”

“이게 괜찮습니다.”

아주머니는 ‘포타날’이라는 약을 내주었다. 백 오십 원이 달아나 버렸다.

약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밖으로 나섰다. 영일이 녀석, 기뻐하겠지. 마음이 가벼워졌다. 강동우씨에겐 가짜 미대생이라고실토를 하자. 좀더 가벼워졌다.

우연하게도 약방 옆이 헌책점이었다. 나는 영일이가 일러 주던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이젠 강동우씨를 속이기 위해선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안으로 들어서서 나는 책을 이것저것 뒤져 보기 시작했다.

미군 부대에서 쓰레기 취급되어 나온 듯한 헌책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포켓판 탐정 소설류도 많았다.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잡지들도 많았다. 모두가 영어로 되어 있으므로 살 만한 건 없었다.

나는 ‘헌책점에 가서 외국 잡지를 뒤져 봐. 재미나는 아이디어가 나올거야.’ 하던 영일이의 충고 때문에 그저 기계적으로 이 책 저 책 뒤적여 보고 있었다.

사지도 않으면서 책만 벌려 놓는다고 생각했더닝, 이 여름철에 검정물 들인 작업복을 입고 있는 젊은 주인이,

“무슨 책을 찾고 계십니까?” 하고, 듣기에 거스리지 않게 조용히 물었다.

첫눈에도 몇 년 동안 내내 대학 입시 준비만 하고 있는 타입의 젊은이였다. 내 가슴에 붙어 있는 서울 대학 배지를 힐끔힐끔 부러운 듯이 보고 있었다.

“뭐, 실내 장식에 관한 책이나 잡지 같은 거 없습니까?”

가짜 미술 대학생이 말했다. 강동우씨에게 사실대로 털어놓고 ‘전 자격이 없습니다.

베풀어 주신 친절에 대해서는 잊지 않겠습니다.’고 말하기로 이미 작정했던 바지만, 절믓나 헌책점 주인이 보아하니 전연 경기가 좋지 않은 듯하여 나는 괜히 책만 있으면 사 주겠다는 투로 말했다.

“글쎄요…”

젊은이는 가지런한 이빨을 드러내고 웃으며 뒤통수를 긁음으로써 없다는 대답을 대신하고 나서, 책꽂이를 한참 동안 뒤지더니 사륙 배판 크기의 책 한 권을 꺼내 손바닥으로 책의 먼지를 터고 나서 조심조심 내밀며,

“이건 어떻습니까?”

보니, 가짜 미술 대학생으로서는 이름도 못 들어본 미국 현대 화가들의 작품집이었다. 울긋불긋한 괴상한 그림들이 인쇄되어 있고 나무인지 돌인지 철인지 모를 괴상한 재료로 만든 괴상한 조각들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카바레의 실내 장식과는 관계가 없겠지만, 그냥 한 권쯤 집에 두고 가끔 들춰 보더라도 심심찮을 책 같앗다. 호주머니만 사정을 봐 준다면 이 대학 입시 준비생을 위해서라도 사 주고 싶었다.

“얼맙니까?”

“이백 원… 백 오십 원만 주십시오.”

미안해 못 견디겠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눈을 부릅뜨고 ‘공짜로 줘.’ 하면 공짜로라도 줄듯 했다. 나는 이백 원을 주고 밖으로 가왔다. 무언가 말을 나누고 싶은 눈치를 보이는 수험생에게 서울대학생들 식으로 거만한 태도를 과시하며 착 돌아서 나온 것이었다. 나 자신이 얄미워 보였다.

카바레로 돌아갈까 생각하며 그 방향으로 발걸음을 떼어 놓는데 내 등뒤 쪽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뿌우응 들려 왔다. 먼 곳에는 신비한 세계가 있다는 듯한 여름날 오후의 나른함을 더욱 돋우어 주는, 마음을 한없이 헝클어 놓는, 사랑하는 여자를 갖고 싶어지고 사랑하는 여자의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칼은 만져주고 싶어지는 저 항구의 무겁게 은은한 뱃고동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가 먼 하늘로 사라져 버리기 전에 부잡으려는 듯이 빠른 걸음으로 부두를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건물들에 가려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초조해져서 나는 좀더 걸음을 빨리했다. 사람들이 안에서 법석대고 있는 창고 같은 건물의 모퉁이를 돌아서자 마자, 문득 짙은 초록 물결로 가득한 바다와 하얀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지고 바다 이까가 붙어서 추상화의 화폭 같아 뵈는 배들이 유쾌한 기적처럼 몇 발짝 저편에 있었다.

괜히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을 얻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바닷가로 가기를 권한다.

사람이 하는 일들이 그다지도 절대적으로 보이고, 남이란 것이 그다지도 뚫고 넘어갈 수 없는 성벽처럼 생각될 때는 바닷가로 가기를 권한다.

나는 부두의 포장된 길을 느릿느릿 걸어가면서 좁은 해협은 좁은 대로 충만해 있고 먼 외해는 눈부시게 넓은 대로 내가 흔히 사용하던 계산의 단위와는 다른 계산 단위의 무한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 강렬하긴 하지만 인간의 감각으로써는 공허밖엔 아무것도 붙잡아 둘 수 없는 듯한 바다의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바닷가에서 자란 사람들이 그다지도 눈물을 사랑하고사람에 대하여 너그러우려고 하는 이유를 안 것 같았다.

만일 우리 선조들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에서 자라난 사람들의 지도자로서 대부분 모시어 온 대신에, 바닷가에 큰 도시를 꾸미려고 애쓰고 바닷가에서 자라난 사람들을 많이 지도자로 모셔 왓었더라면 오늘의 우리 나라는 좀더 좋게 달라져 있으리라는 엉뚱한 생각조차 했다. 무한 그리고 절대 그것을 머리로써가 아니라

피부로써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만 사람들은 사람의 어리석음을 감추기에 앞서 노출시켜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절대는 인간이 아니라 따로 있는 것이기에…

문득 바다가 나에게는 그토록 가까이 있으면서도 그토록 멀어 보였고 그토록 좁아 보이면서도 그토록 넓어 보였던 것이었다.

어디로 가는 배인지 여객선이 사람들을 가득 주워 담고 허어연 물거품을 꼬리처럼 끌며 부두를 떠나가고 있었다. 배와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나에겐 좀 크고 무시무시한 장난감으로밖엔 보이지 않는 선구와 어로 도구들을 팔고 있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있는 게 보였다. 바다와는 가장 가까이 있는 물은 바다와는 반대로 소란하고 덥고 작은 사물을 벌여 놓고 아웅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즐거운 기분으로 그것들을 대하고 보면 그것들조차도 바다만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인 것 같았다.

나는 강동우씨의 모든 것을 솔직히 얘기할 때 내가 지나치게 움츠러들거나 또는 강동우씨의 눈에 내 모습이 비열해 보이지 않기를 바라면서 터벅터벅 강동우씨네 집으로 돌아갔다. 내 기분으로서 열 시간도 넘게 머나먼 곳을 여행하고 돌아온 듯한데, 강동우씨와 영일이는 아직도 응접실에 앉아서 백지를 탁자 위에 올려 놓고 뭔가 열심히 적어 가며 얘기하고 있었다. 슬그머니 응접실로 들어서는 나를 보고,”어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소?”

강동우씨가 미소하며 나에게 말했다.

미소하는 강동우씨의 표정으로 봐서 아마 영일이가 그동안 강동우씨의 맘에 드는 말만 자기의 사전에서 골라 내는 데 성공했던 눈치였다.

“저어…”

나는, 영일이의 옆에 앉으며, 만일 내 결심이 깨어질까 봐, 그리고 영일이가 만류할까 봐 대뜸 강동우씨의 얼굴만 노려보다시피 응시하며 말을 꺼냈다.

그러나 강동우씨는 나에게 손을 내저으며,

“좋습니다. 그 얘긴 이따가 합시다.”

말하고 나서, 영일이에게,

“그러니까 미스터 장이 연설할 차례는 몇번째죠?”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확인하듯 한 말투로 물었다.

“제가…두번째죠?”

영일이가 강동우씨에게 물었다.

“오우 케이. 지금부터 한 시간 안으로 연설문을 작성하시오. 칠 분 내지 십 분 동안 할 걸로. 나의 체크를 한번 받아 주시오.”

영일이가 상관의 명령을 받은 사병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그럼…”

하자, 강동우씨는 얼른 손으로 다시 앉으라는 시늉을 하고 나서 탁자 옆에 붙은 벨을 눌렀다.

벨을 누르고 나서 자세를 편히 가지며 나를 향하였다.

“자, 말씀하시오.”

아마 내가 카바레 실내 장식에 관하여 브리필을 하려는 줄로 아는 모양이었다.

나는 침을 삼켰다. 영일이는 힐끔 보았더니 녀석 역시 내가 브리핑할 걸 준비해 온 줄로 아는지, 그러면서 내 입에서 무슨 엉터리 같은 계획이 나올 것인지 조마조마하다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문득 생각이 나서 나는 바지 호주머니에서 ‘포타날’이란 치질약을 꺼내 녀석에게 슬그머니 주었다. 받으면서 녀석은,

“담배니?”

하다가, 그게 치질약인 줄 알아차리고 얼른 호주머니 속으로 쑤셔 박으며 저도 창피한 건 아는지 불그스름해지며 싱긋 웃었다.

강동우씨가 수상하다는 얼굴을 지었다.

영일이가,

“제 약입니다.”

강동우씨를 향하며 해명하자,

“어디 아프시오?”

강동우씨가 영일이에게 물었다. 마치 사랑하는 제자에게 건강 여부를 묻듯이 근심스런 얼굴로.

“아닙니다. 저어…”

“으흥, 여드름 없어지는 약인 모양이군.”

강동우씨와 영일이는 유쾌한 듯 소리 높이 웃었다. 고독해 보일 만큼 쌀쌀하가 차가워 보이는 강동우씨 입에서 농담이 나온 것이 신기하긴 했지만 나는 고백해야 할 내 입장에 서로잡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생각하니 나를 이런 궁지로 몰아 넣은 것이 바로 영일이 녀석이었다.

그런데 녀석은 무슨 진지한 음모를 같이 했는지 모르지만 단박 강동우씨와 친해져서 히히덕거리고 있는 것이다.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았다. 왜 도망해 버리지 않고 돌아왔던가 하는 후회조차 되었다.

나는 사실대로 털어놓아 버리기로 새삼 굳게 작정했다.

우린 돈이 없었다, 다방에서 우연히 선배님을 만났다, 카바레 실내 장식이라면 일자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영일이가 얼른 나를 미술 대학생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증거로 영일이의 허리띠에 붙어 있는 배지들을 보아라, 나는 미술은 미자도 모르는 사람이다, 목욕을 시켜 주고 밥을 먹여 주고 옷을 빨아 준 것에 대해서는 고맙다고.

그리고 영일이에게 말해 줄 작정이었다. 나는 여행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집으로 돌아간다, 돈 없이 여행하는 게 바로 지옥 구경이란 걸 알았다, 넌 다행히 강동우씨의 눈에 든 모양이니 네가 시계 잡힌 돈을 내가 여비로 좀 쓰겠다, 네가 여행이 끝나서 서울로 돌아갈 때 우리 집에 들르면 갚아 주마고.

그런 뜻의 말을 털어놓으려고 하는데 식모 아주머니, 우리에게 점심을 갖다주던 땅딸막한 아주머니가 쟁반 위에 얼음과 설탕을 잰 수박을 한 개 가지고 들어왔다.

“자, 이거 먹고 얘기합시다.”

나는 또 한 번 고백할 기회를 놓쳐 버렸다.

강동우씨와 영일이는 맛있게 수박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후엔 떠나야 할 나로서는 숟가락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강동우씨의 독촉에 몇 숟갈 뜨는 둥 마는 둥하자 수박은 빈 요강 꼴이 되어 버렸다. 숟가락을 놓자마자 강동우씨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홀로 가서 차근차근 얘기해 주시오.”

말하고 나서, 성큼성큼 앞장서 뜰로 내려섰다. 나는 당황했다.

“어떻게 됐지? 자신 있어?”

영일이가 근심스런 얼굴로 속삭였으나 나는 화난 얼굴로 대답 없이 강동우씨의 뒤롤 쫓아갔다.

우리가 막 홀 안으로 들어서는데 우리 뒤에서 정력적으로 생긴 영감과 국민학생 두 명이 우리 뒤를 따라 들어왔다.

안경을 쓴 꼬마들이란 국민 학교 육학년쯤 되어 보이는 계집애와 사학년쯤 되어 보이는 사내애였다.

할아버지로 보이는, 정력적으로 생긴 영감의 한 손을 하나씩 잡고 우리 뒤를 따라 홀 안으로 들어서며 육학년짜리가 ‘삼촌!’ 하고 강동우씨를 불렀다. 아마 강동우씨의 형님의 자식들인 듯했다.

강동우씨는 힐끗 돌아보았다.

으레 꼬마들에 대하여 삼촌들이 하듯이 천진스러운 듯한 몸짓을 지으며 반색을 하리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강동우씨는 이웃집 강아지나 보듯이 냉랭한 얼굴로 고개만 한 번 까딱해 줄 뿐이었다.

꼬마들도 뭐 그 이상은 이 건방지고 쌀쌀한 삼촌에게선 아예 바라지도 않았다는 표정으로 전등불에 안경을 번쩍이고 있었다. 사내애 쪽에서 들고 있던 잠자리를 삼촌에게 들어 보였을 뿐이었다.

영감님은 얼굴 생김이나 몸 생김까지도 강동우씨를 그대로 닮았다. 아니 강동우씨가 영감님을 닮은 것이겠지. 아마 아버지쯤 되는 모양이었다. 좀 달라 보이는 게 있다면, 강동우씨에게서 풍기는 정력의 냄새는 청결하고 세련되어 있는 것이지만 영감님에게서 풍기는 정력 냄새는 좀 지저분하고 막되어 먹은 것같다는 점이었다.

“부산 일은 잘됐다.”

영감님은 우리를 이상한 눈초리로 슬쩍 곁눈질하고 나서 강동우씨에게 말했다.

눈치로 보아 영감님이 부산에 갔다가 지금막 도착한 것 같은데 부자간에 잘다녀오셨느냐, 오냐 잘 다녀왔다는 따위의 인사말은 아예 없었다.

“지금 다방에 들러서 늬 에미한테도 얘기했다며,나 이번 일에서, 너하고 늬 에미가 동순이를 잘 타일러야 시끄럽게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그 얘긴 저녁에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하십시다.”

강동우씨는 영감님의 말을 중단시켜 놓고 나서 나와 영일이를 차례차례 영감님에게 소개시켰다.

“이쪽은 미스터 리라고, 여기 장식을 맡아 줄 분입니다. 이쪽은 미스터 장, 제가 생각하고 있는 일을 도와 줄 분입니다. (우리에게) 내 아버님이시야, 인사드리지.”

우리가 구부렸던 허리를 펴자 영감님은 일일이 악수를 하며 입가에 장사꾼들 특유의 웃음을 띠고,

“잘 부탁합니다.” 했다.

그러나 영감니 천해 보인다기보다 어쩐 까닭인지 두려워 보였다.

우리가 마음 속에서 영감님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평하고 있을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강동우씨는 영감님에게,

“들어가 누워 계세요.”

나를 향하여,

“자, 시작합니다.” 했다.

나는 갑자기 온몸에서 힘이 빠져 버리고 눈앞이 어찔어찔해지며 토하고 싶었다.

내가 비틀거렸던 모양인지, 영일이가 얼른 내 어깨를 잡으며,

“얘, 왜 이러니? 응? 왜 이래?”

다급한 음성으로 말했다.

강동우씨는 얼굴을 묘하게 찡그려 가지고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참을 수 없이 토하고 싶었다. 내가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윽’ 하고 내 목구멍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걸 보고 놀랐는지 안경 쓴 꼬마들이 번쩍이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자기 할아버지 뒤로 몸을 숨겨 가지고 얼굴만 삐죽 내밀어 나를 올려다봤다.

전등불빛에 번쩍이는 커다란 안경을 쓴 꼬마들이 톨스토이 작품 속에 나오는 마귀 새끼들 가탄고 느기면서 나는 더 참지 못하고 내 입을 틀어막은 내 손바닥 안에 우선 한 상 차려 놓기 시작했다. 무얼 그렇게 먹었던지 목구멍은 계속해서 펌프질을 했다.

“변소가 어딥니까? 변소?”

영일이의 급한 외침.

“더위를 먹은 게로군.”

영감님.

“수박에 체한 모양입니다.”

강동우씨.

어지러운 내 머리속에 그런 얘기들이 들려 왔다. 어떤든 고맙다, 구토여. 어쩌면 이 토록 알맞은 때 나를 구해 주느냐!

더위를 먹었든지 수박에 체했든지 아무래도 좋았다. 고백 할 수도 없고 안 할수도 없는 그야말로 진퇴 유곡의 처지에 빠져 있는 나를 구토가 구해 준 것이었다. 먹은 걸 토할 뿐 아니라 욕심대로라면 코피까지 주르륵 한 줄기 흘렸으면 얼마나 근사했을까!

어떻든 나는 먼지가 풀썩이는 마룻바닥에 한 상 잘 차려 놓았다. 변소에고 어디고 나갈 틈도 없었다. 쭈그리고 앉아서 웩웩거리고 있는 내 등을 영일이 녀석이 투닥투닥 두드려 주고 있었다.

보나마나 영일이는 입장 곤란해 죽겠다는 얼굴로 거의 울상을 지어 강동우씨와 강 영감의 눈치를 흘낏흘낏 살피고 있을 터이고 강 영감과 강동우씨는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으리라.

톨스토이의 마귀 새끼들 같은 안경 쓴 꼬마들이 ‘오매, 더러워라’ ‘카악, 튕!’ 하고 침을 뱉고 있는 앙증스러운 음성들이 들려 왔다.

“안 되겠는데, 방으로 데리고 가서 좀 눕히지 응?”

강동우씨가 영일이에게 말하며 내 한쪽 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쇼가 아니라 진짜로 어지러워서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우리가 점심을 먹던 방, 노파가 갇혀 있는 방의 옆방에 뉘어졌다. 영일이가 냉수를 떠 가지고 와서 입을 씻게 해 주고 잠시 후에 강동우씨가 구론산과 알약을 가지고 와서 먹으라고 했다. 토하고 나니까 정신은 좀 맑아지는 것 같았지만 이번엔 온몸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하며 맥이 빠져 버렸다.

이게 무슨 꼴이야? 얘얘, 정신 좀 차려, 하는 영일이의 불평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이 들어 버렸다.

요란한 소리 때문에 퍼뜩 잠이 깨었다. 잠은 깼으나 나는 내가 어디 누워 있는지 잠시 동안 알 수 없었다. 몸이 흔들리는 듯하는 게 마치 기차를 타고 있는 듯했다.

슬그머니 눈을 떠 봤더니 뜰의 나무 그림자들이 길게 길게 누워 있는 게 보였다.

서늘한 바람이 방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영일이가 종이를 한 장 들고 서서 방안을 서성거리며 무언가 요란한 소리를 토하고 있었다.

“…어디에 자존심이 있었단 말입니까? 여러분, 어디에 자존심이 잇었단 말입니까?

자존심이 없으니 수치심도 없습니다. 어려분, 어디에 수치심이 잇었단 말입니까…”

아마 연설할 걸 연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수치심도 좋지만 좀 조용히 해라.”

나는 푸시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영일이는 읽던 것을 그치고 내 옆에 앉으며,

“좀 괜찮니?”

제법 은근한 손길로 내 이마를 짚어 주었다. 이젠 머리도 아프지 않고 어지럽지도 않고 메시껍지도 않았지만 소갈머리 없게도 슬그머니 배가 고팠다. 나는 비닐로 만든 베개를 배에 깔고 엎드리며,

“어떻게 됐니?”

“뭐가 어데게 됐어?”

“내가 토해 논 것들 말야.”

그러자 영일이는 내 뒤통수를 느닷없이 군밤을 한 대 먹이며,”혼났다, 혼났어. 내가 다 치웠잖아? 미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먹긴 되게 처먹었더군.”

“히히.”

염치가 없어서 웃고 나서 나는,

“토해 놓은 것들 속에서 이런 거 보지 못했니?

“뭐 말야?”

“나는 가짜 미대생입니다. 카바레 실내 장식은 할 능력이 없습니다. 나는 도망갈까 합니다.”

“으흥.”

영일이 녀석은 묘환 콧소리로 알겠다는 표시를 하더니 내 이마에 손을 댄 채 잠시 동안 묵묵히 앉아 있었다.

“영 자신 없니?”

한동안 묵묵히 앉아 있던 영일이가 물었다.

녀석의 음성이 하 진지했으므로 나는 차마 소리로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녀석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무리 그렇대도 토할 거까지야 없지 않아?”

나무라듯이 말하고 나서 헌책점에서 내가 사 온 미국 현대 화가 작품집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뒤적이다 말고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듯 너 이 책 어서 샀니? 잡지 나부랭이들도 팔더냐? 묻고 나서, ‘<플레이보이>에 재미있는 그림이 있었는데, 서양놈들이 생각하는 무릉 도원을 색채로 그려 놓는 게 있었어. 언제 치더라?’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더니,

“그 책점 어디 있니?”

“바로 요 근처야. 시장 거리를 쭉 걸어 나가면 약방이 있고 약방 옆인 데…”

“너 돈 좀 남았니?”

나는 바지 호주머니에서 내 여비로 슬쩍하려던 돈을 꺼내 주었다.

그러자 녀석은, 좀 누워 있어, 말하자마자 밖으로 뛰어나갔다.

잠시 후에 강동우씨가 뜰을 가로질러 이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나는 얼른 어깨를 움츠리고 누우며, 들릴 듯 말 듯 신음 소리를 냈다. 강동우씨가 방안으로 고개를기웃 들이미는 기척을 나는 느꼈다.

“좀 어떻소?”

죽는 시늉을 하고 있는 보람도 없이 강동우씨는 마치 성한 사람에게 안부를 묻듯 한 음성으로 말했다. 더 이상 죽는 시늉을 할 수 없가서 푸시시 일어나 앉으며,

“괜찮습니다.”

“안색이 나쁘군. 체했던 모양이지?”

“글쎄요.”

“어떻소, 슬슬 일 좀 해 보지 않겠소?”

또 아찔해졌다. 그렇지만 이젠 내 뱃속에 토할 게 남아 있지 않았다. 토해 놓을 만한 게 있다면 나는 가짜 미대생입니다, 하는 말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동안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만일 내가 가짜라는 걸 고백하면 영일이 녀석도 가짜라는 게 탄로될 터이고 그렇게 되면 영일이로서는, 모르긴 하지만 강동우씨로부터 겨우 얻어 놓은 신뢰와 어떤 일자리를 놓쳐 버리는 경우를 당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일이 일까지 방해 놓을 필요는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기회를 봐서 조용히 도망해 버리면 내게도 영일이에게도 후환은 없으리라.

내가 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게 못마땅했는지 얼굴을 찌푸리며 강동우씨는,”미술 하는 사람에게도 역시 건강은 중요한 거요. 우리 나라 화가들을 보면 괜히 파이프나 물고 머리나 기르고 빼빼하면 그걸로 벌써 자기가 화가의 자격을 얻은 줄 생각하지만, 그 찐득찐득한 물감을 백 호 이백 호 캔버스에 들입다 바르고 돌을 쪼개고 하려면 재능 이전에 건강이야 건강. 피카소를 보시오. 그 건강에서 그 예술이 나온 거요.”

한바탕 훈시를 하셨다.

죽은 채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떠니,

“자, 나와서 나하고 일 좀 합시다.”

못 하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

강동우씨는 나를 다시 카바레의 홀로 데리고 갔다.

식모 아주머니가 청소 도구를 들고 홀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홀 안은 오늘 저녁에 무도회라도 열 듯이 말끔히 청소되어 있었다.

“의자들을 좀 늘어놔 주시오. 집회할 수 있도록.”

강동우씨는 손짓으로 의자의 배열 형태를 가르쳐 주고 나서 바쁜 듯이 밖으로 나갔다.

이거라도 시켜서 밥값은 빼자는 수작인가? 투덜거리며 등이 높은 의자를 늘어놓고 있는데 영일이가 책 한 권을 말야 쥐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됐다!”

내 앞에 펼쳐 놓은 책을 보니 <플레이보이>라는 미국의 좀 야단스런 잡이였다.

“봐.”

영일이는 <플레이보이>의 한 페이지를 내게 보였다.

비트족에 속하는 듯, 턱수염을 기르고 줄무늬 있는 속셔츠를 입은 만화를 그린 상상의 도서였다. 날개 달린 사람들이 이 집 창문에서 저 집창문으로 날아다니고 따라서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간통에만 골몰해 있는 듯한 좀 야단스런 그림이었지만 빛깔도 예쁘고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꽤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 주는 좋은 점도 가진 그림이었다.

“이걸 저 벽에 옮겨 그리는 거야.”

영일이가 홀의 한쪽 벽을 손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럴 듯했다. 우선 옮겨 배끼는 거라면 자신 있었다. 자라나면서 내가 받은 교육은 옮겨 배끼는 훈련이었으니까, 이까짓 만화쯤은 백 개라도 옮겨 베낄 자신이 있었다. 벽에 옮겨진 그 그림을 상상해 봤떠니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카바레의 분위기는, 서투른 꽃무늬나 물결무늬의 장식을 한 벽을 가졌을 때보다

훨씬 몽환적이고 선정적일 것 같았다.

“좋은데. 그런데 이쪽 벽은?”

나는 다른 한쪽 벽을 가리키며 영일에게 물었다.

“그쪽은 까맣게 칠해 버리는 거야. 그리고 천장은 온통 거울을 붙이자고 해 봐.”

“겨울을?”

“하여튼 강동우씨에겐 그런 식으로 브리핑을 해 보는 거야. 돈이 너무 많이 들겠다고 하면… 하여튼 네 임무는 우선 그걸로 마치는 거 아냐?”

내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더니 그 그림의 페이지만 쭉 찢어서 나에게 주며 보관해 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는 책의 중간쯤에 끼여 있는 긴 의자의 나체 사진을 찢어 내여 몇 겁으로 접어 바지 호주머니에 보관하며 나를 도와 의자를 배열하기 시작했다.

“너 이게 왜 이렇게 늘어놓는지 아니?”

영일이가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오늘 저녁에 집회를 하겠다던데? 참 무슨 집횔까?”

“거기서 내가 연설하기로 돼 있어.”

영일이는 싱긋 우스며 말하고 나서 얼른 표정을 바꾸어 무언가 궁리하듯이,

“이 집 말야, 이 강동우씨네 가정은 말야, 좀 연구해 보고 싶다는 생가이 들었어.

뭔가 이상한 걸 느끼지 않았니? 강동우씨만 두고 보더라도 재미난 데가 있어. 오늘 저녁에 가질 집회라는 것도 강동우씨가 내게 말해 준 대로 말하면 이런 거야. 이 크지 않은 도시에도 별의별 사람이 다 모여 있다는 거지. 직업이 다르고 사고 방식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또 뭐가 다르고 뭐가 다르고… 그런데 공토왼 점은 딱 두 가지가 있다는 거야. 하나는 돈을 모으기 위해서 별의별 짓도 다 하겠다는 자세와 또 하나는 다른 작업에 대한 무고나심 내지는 경멸이란 점이라는 거야. 그런 식의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반드시 갈등이 많이 생기는 법이고 그 갈등은 아무런 해결도 얻지 못한 채 피차의 파멸밖엔 초래하는 게 없다는 거야. 그래서 강동우씨는 한 가지 뜻을 세우고 그 뜻을 널리 펴기 위해서 오늘 저녁 집회를 가지기로 했다는 거야.

거창하지?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데?”

“시장, 경찰서장, 병원장들, 어업 조합 이사들, 푸줏간 주인, 식당의 주인, 여관 업자, 학교 교관… 하여튼 높은 사람들과 낮은 사람들을 몽땅 끌어 모을 작정인 모양이야.”

“이 좁은 데에?”

“모여 봐야 알겠지만 재미있을 거 같지 않니? 그렇지만 그것보다도…”

그때, 강동우씨가 홀 안으로 들어왔다.

강동우씨는 영일이와 내가 배열해 놓은 의자들을 둘러보고 나서 만족했다는 표정으로,

“저녁 준비가 됐는데 식사들 먼저 하시고…”

말하고 나서, 손에 들고 옥 백지와 붓과 먹물을 내 앞 의자 위에 놓으며,

“내가 부르는 대로 좀 써 주시오.” 했다.

붓글씨는 자신 없다고 햇더니,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쓰는 글시가 있찌 않느냐고 하며,

“붓글씨로 말하면 대서소 서기를 능가할 수는 없지. 아예 화가들이 쓰는

글씨체로 써 놓으면, 시골 사람들은 뭐나 도니 줄 안단 말야.”

말하고 나서, 좀 부끄러운 듯이 씨익 웃었다.

“그림 불러 보세요.”

나는 붓에 먹물을 찍으며 말했다.

손재형씨 흉낼 낼까, 김기승시 흉낼 낼까 생각했으나 둘 다 나로서는 흉내도 못 낼 진짜 글씨들이라는 데 생각이 미쳐 얼른 단념하고 이응(아)자를 크게 쓰고 아(가)자를 짧게 쓰는 식의, 언젠가 본 어느 화가의 개인전 포스터 글시를 기억해 내려고 나는 애썼다.

‘모임·내 고장의 발전을 위하여’와 이 골목으로 들어오시오라는 뜻의 화살표 하나가 내가 강동우씨의 지시에 따라 써 놓은 글이었다. 내가 보이에도 제법 잘 그 화가의 흉내를 내 놓은 듯했다.

나와 영일이는 골목 입구의 담벽에 그걸 붙이러 나가고 강동우씨는,

“지금부터 가족 회의가 있어서 난 먼저 들어가오. 저녁 식사는 그 방에 차려 놓았으니까 드시고.. 그리고… 미스터 장은 연설할 걸 완벽하게 외 두기 바라고…

미스터 리는… 아직도 속이 불편하오?”

“이제 괜찮습니다.”

“오우 케이, 미스터 리는 집회가 끝난 뒤에 만납시다.”

말하고 나서, 안으로 휭 들어가 버렸다.

시멘트 블록으로 쌓은 담벽에 우리는 오 원짜리 깡통 풀을 있는 대로 잔뜩 바르고 써 온 종리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때 낭랑한 여성의 음성이,

“수고들 하십니다.” 하고, 영일이와 나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돌아봤더니, 강동우씨의 여동생이요, 영일이가 기찻간에서 유혹해 보려고 했던 여대생이요, 우리의 목욕 장면을 엿보려고 했던 장난꾸러기 아가씨가 집에서 입는 옷차림을 한 채 우리 뒤에서 생긋 웃고 있었다.

“차표가 없이도 용케 오셨네요?”

아가씨가 영일이에게 아는 체 했다.

인연이 있는 모양입니다.”

영일이는 자못 감격했는지 음성조차 낮고 떨리게 말했다.

“이 넓은 여수에서 하필 미스 강의 집에 무리가 머슴살이로 들어오게 되다니… 하,

이거, 정말 인연인 모양입니다.”

“호호호호, 머슴살이라니요? 오빠한테서 아까 얘길 들었어요. 머슴살이, 호호호호,

하여튼 우리 작은오빠한테 걸리셨으니 큰일나셨어요.”

“왜요?”

“미국에서 무슨 약을 먹고 왔는지 잠시도 쉴새없이 일을 하거든요.”

말하면서 나를 힐끗 보았다.

동글동글한 게 제법 귀엽게 생긴 얼굴이었다.

그때 헌책점의 주인인 대학 입시 준비생이 곁을 지나치면서 미스 강에게 아는 체했다. 미스 가 역시 목레를 해 주었는데, 내가 잘못 봤는지 모르지만 어쩐지 얼굴에 수심의 그림자가 스쳐 가는 것 같았다.

입시 준비생은 나와 영일이를 힐끗힐끗 돌아보며 멀어져 갔다.

“누굽니까?”

영일이가 질투라고 하듯이 물었다.

“제 아는 분의 동생에요. 참 얌전하고 건실한 사람예요.”

우리는 광고지를 담벽에다 붙였다. 헌책점 주인이요 대학 입시 준비생인 작업복 청년이 자기가 아는 분의 동생이며 참 얌전하고 건설하다는 미스 강의 말에서 뭔가 짚이는 게 있는 듯, 영일이는 질투라도 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 아는 분이라는 분이 혹시 애인은 아니신지?”

미스 강은 어색한 듯 웃기만 했는데 아마 영일이의 짐작이 들어맞았는 모양이었다.

용용, 나는 영일이에게 혀를 내밀어 놀려 주고 싶었다. 내가 놀리지 않았는데도 영일이는 얼굴이 불그레해졌다. 녀석, 참 안됐다, 그렇지만 임자 없는 여자가 어디 흔하겠느냐, 가로채는 게 또한 남자의 할 일이지.

“우리 인사합니다. 전 이창수라고 합니다.”

나는 쾌할한 사나인 체, 그래서 경박한 사나인 체 미스 강을 향하여 절까지 꾸벅해 가며 말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쾌할한 사람을 경박하게 보는 버릇이 있고 그런데 내가 경박하게 보임으로써 비교적으로 영일이가 무겁고 침착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나이로 보일 수 있게 하고 싶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미스 강이 영일이의 애인이 되어 줬으면

하고 나는 생각했다.

“강동순예요. 미술 대학 다니신다죠?”

미스 강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뭐, 헤헤…”

나는 머리를 긁고 나서,

“이대 다니세요?”

“아아뇨.”

“그럼?”

“시시한 데예요.”

“이대 아니면 모두 시시한가요?”

아아쭈, 엄숙한 체 나무라고 나서 나는 미스 강을 기분 좋게 하느라고 이화여대

욕을 실컷 했다.

이대는 덩지만 컷지 실속이 없다. 이대생들은 제가 뭐나 된 것처럼 콧대만 높다.

미스 강이 이대에 가지 아낳은 것은 천번 만번 다행한 일이다. 천번 만번…

그런데 정작 미스 강은 ‘어머, 안그래요. 이화 여대를 잘못 보셨어요. 진짜 안 그렇다구요.’ 하는 식으로 울상까지지으며 자기가 그 학교 학생이나 되는 듯이 극구 변명을 했다.

“가족 회의를 하신다는 것 같은데 참석 안 하세요?”

미스 강과 나사이에 오가는 허튼 수작을 영일이가 점잖게 가로막고 나섰다.

“전 이집 가족이 아녜요.”

미스 강은 이상하게도 뾰롱통한 소리로 대답했다.

죄 없는 이화 여대를 들고 나와 승강이를 한 여세로써, 뾰롱통하게 말했는지 어쩐지 나는 알 수 없엇다.

그러나 미스 강은 자기가 내지른 소리 때문에 우리가 줘무하고 있는 걸 보고는 미안했는지 얼른 생긋 웃으며 명랑하게,

“우리 집 가족 회의하시는 거 구경하시겠어요? 참 우스워요.”

말하고 나서, 앞장서 깡충깡충 뛰어가면서 우리에게 따라오로나는 손짓을 했다.

천진스러워 보였다.

영일이와 나는 얼굴을 한 번 마주 보고 나서 강 토끼의 뒤를 따랐다.앞장서 가던 토끼가 우리에게 발소리를 죽이라는 손짓을 했다. 우리는 도둑놈들처럼 살금살금 어떤 방의 창 밑으로 다가갔다. 다가가서 벽에 몸을 붙이자마자 나는 강 영감의 높은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신은 반대란 말이요?”

화난 듯한 음성인데 아마 자기 부인이요, ‘풍선’이란 다방에서 지저분한 우리를 보고도 고개만 조용히 끄덕이며 웃을 뿐 말없이 카운터 뒤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에게 하는 말인 듯했다.

“지금 말한 사람은 우리 아버지예요.”

강 토끼가 속삭였다.

“반대라는 게 아니라 억지로 그러다가 혹시…”

“우리 어머니예요. 우리 어머니 참 좋은 사람이에요.”

“혹시라니? 뭐요? 동순이가 자살이라도 한단 말요?”

안에서 들려 온 강 영감의 얘기로 미루어 봐서 가족 회의의 의제는 강동순에 대한 어떤 문제인 듯했다.

나와 영일이는 미스 강의 얼구을 살펴봤다.

그러자 미스 강 잠깐 시무룩해지다가 얼른 명랑한 표정을 지으며,

“제 결혼 문제예요.” 하고 속삭였다.

그때 강동우씨의 음성이 들려 왔다.

“이번 문제에 잇어서는 아버지에게도 잘못이 있고, 동순이에게도 잘못이 잇습니다.

아버지가 잘못하신 건 뭔가 하면, 마치 부산 이씨 댁과 사돈이 되면 덕을 보실 수 있다는 듯이, 말하자면 오로지 그 이유만으로 동순이를 그 집으로 시집보내자는 듯이 그 동안 아버지가 태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설령 진짜로 아버지를 비롯한 우리들의 뜻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동순이에게만은 동순이 저의 행복을 위해서 그 집응로 시집보내려 한다는 것을 납득시켜야 했습니다.”

그러자 누구의 음성인지는 모르겠으나 커다란 소리로,

“함, 저 좋으라고 다 그러는 거지, 누가 지까짓 겉띵 잡아 묵나 삶아 묵나?”

하고 말하는 게 들렸다.

미스 강은 왁살스런 소리 때문인지 킥킥 웃고 나서,

“우리 가운데오빠예요. 단순하고 뒤가 깨긋한 분예요.”

“직업은 뭡니까?”

영일이가 속삭여 물었다.

“청과 조합 조합장…”

말하는데, 다시 방안에서 강동우씨의, 수런거리는 좌중을 누르는 듯이, 좀 노픈 소리의 얘기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순이가 잘못했다는 건 뭔가 하면, 세상을 살아가려면 사랑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그 애가 아직 모른다는 점입니다. 남편이란 첫재 경제적인 능력, 둘째 애정이란 판단 기준으로 골라야 한다는 걸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나이가 어리고 아직도 대학생 기분 속에서 사고 있으니까 그렇겠지만, 그것보다도 처음 알게 된 남자가 제일 훌륭한 남자처럼 보이는 저 처녀들의 착각에 아직도 사로잡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스 강은 눈살을 찌푸리며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강동우씨의 얘기는 게속되고 있었다.

“…많은 남자와 교제를 해 봤어야 했을 겁니다. 그리고 어떤 남자가 자기에게 가장 적합한 남자인가를 알았어야 했을 겁니다.”

“야 야.”

강 영감의 거세고 갈라진 음성이 강동우씨의 말을 가로막았다.

“너 얘기를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 부산 이씨 댁에 시집보내자고 모인자리에서…”

그러자 처음 듣는 음성이 강 영감의 말을 끊으면서 튀어 올랐다.

“고 형진이란 놈 새끼, 내가 아주 모가지를 부러드려 놓나 안 놓다 두고 봐라!”

“흥!”

미스 강이 나지막이 코웃음쳤다.

“방금 그 사람은 누구죠?”

내가 물었다.

“우리 큰오빠예요. 아버지하고 똑같아요. 병신! 한번은 서울에 다녀오더니 공부에 시달려서 눈이 나빠진 국민 학생들이 안경을 쓰고 다니는 걸 보고 그게 부러웠던 모양이죠. 돌아오자마자 자기 아들한테 도수도 없는 수박만한 안경을 씌웠어요.”

경멸에 가득 찬 음성으로 입을 삐죽삐죽 해 가며 얘기하는 미스 강의 표정이 우스워서 나는 입을 틀어막고 킥킥 웃었다.

그런데 영일이가 가슴 뜨끔한 바 있었떤지 얼른 자기 안경을 만져 보고 나서,

“형진이란 사람은 누굽니까? 미스 강의 애인인 모양인데?”

하고 궁금해 죽겠다는 음성으로 물었다.

영일이의 질문에는 대답도 없이 미스 강은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방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방안에서는 강 영감의 단호한 음성이 들려 오고 있었다.

“형진이란 놈은 동우가 맡아서 잘 일러라. 무산 이씨 댁하구는 일 주일 안으로 약혼식을 하고 시월 중에는 결혼하자고 얘기했으니까 다들 그렇게 알아라. 만일 동순이가…”

“당신도 참.”

미스 강의 어머니의 음성이 강 영감의 기세 등등한 음성을 가로 막았다.

“가만 좀 있어. 얘기가 끝난 뒤에 하면 어때? 만일 동순이가…”

“당신도 참.”

“뭐요? 도채체.”

“이게 겨우 대학교 삼학년이 아니오? 학교나 마치고 보내면 어때서?”

“모르는 소리. 대학교 아니라 대학교 할아버지를 졸업하더라도 그만한 자리가 쉬운 줄 알아? 그쪽에서도 대학 졸업장 보고 며느리 삼자는 건 아니라고 했으니께. 하여튼 동순이가 만일 정 야료를 부리걸랑… 야료를 부리걸랑… 야료를 부리걸랑…”

야료를 부리걸랑 뭐 그래도 별수없는 모양이었다.

방안은 잠시 잠잠했다. 야료를 부릴 경우에, 어떠헤 할 것인가를 궁리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자 잠시 후 강영감은 다른 화제를 꺼냈다.

“하여튼 동순이 결혼 문제는 그 정도로 알아 두고 일을 추진시키고, 동우야, 오늘 저녁 일은 준비가 잘 되는지?”

강동우씨의 ‘예!’ 하는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앞장서서 걸어가는 강동순양의 뒤를 우리는 근심스런 걸음걸이로 따라갔다.

걸으면서 영일이가 나의 귀에대고,

“정략 결혼을 시킬 모양이지?” 하고 속삭였다.

우리를 뜰로 나왔다.

강동순양은 아까까지의 명량하던 기색은 온데 간데 없이 풀이 죽은 얼굴로

단풍나무 밑에 놓은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우리 방에 밥상이 놓여 있고 밥상 위의 밥 주발에 파리가 새까맣게 앉아 있는 걸 보았다. 나는 영일이의 옆구리르 쿡쿡 찔러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를 되어 있는 밥상을 가리켰다.

영일이가 피식 웃었다. 그러나 곧 웃음을 거두고,

“웃을 때가 아니란 말야.”

웃긴 자기가 웃어 놓고 나무라기는 날 나무랐다.

영일이가 강동순양의 옆에 조용히 앉으며 머리라도 쓰다듬을 듯한 태도로 부드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잠깐 엿들은 얘기로써 정확한 사태를 아는 체하기는 안됐습니다만, 아마 미스

강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부모들은 자신들의 이해 관계에 의해서 미스 강을 시집보내려고 하시는 모양입니다.”

“부모들이 아녜요. 아버지와 큰오빠, 작은오빠가 그러는 거예요.”

강동순양은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전 어떡하면 좋죠?”

강동순양이 매달리는 듯한 소리에 영일이는 갑자기 소크라테스라도 된 듯이 심각한 얼굴로 뭔가 궁리하기 시작했다.

나도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애인이 어떤 분이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애인과 함께 끈으로 허리를 칭칭 동여매고 바닷속으로 풍덩 들어가십시오.”

“네? 자살하란 말씀이세요?”

강동순양은 그 방법도 고려해 보겠다는 듯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고래로 이런 경우엔 세 가지 해결책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살, 하나는 사랑 도피 행각,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이게 가장 간단한 방법입니다만, 부모들이 정해 주는 곳으로 시집가는 것입니다.”

나는 만고의 진리라도 설파하듯이 의기 양양하게 말했다.

“농담할 때가 아니야.”

내가 경박하게 수선떠는 게 마땅찮다는 듯이 영일이가 쏘아붙였다. 그리고 나서 다시 깊이 궁리하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강동순양으로 말하자면, 세상이 무너지는 듯이 사막한 표정인데 한편 나나 영일이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자기를 구해 줄 수도 있고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듯이 우리의 입을 열심히 살피기도 하였다.

나는 입을 다물고 생각해 봤다. 흔하고 흔한 얘기다. 그리고현실 속에서는 이런 경우 항상 부모의 판단이 옳았다는 결과로 나타난다. 사랑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다분히 물질적인 것이다. 가령, 긴 기차 여행을 하게 된 남녀가 있다. 서로 전연 모르는 사이지만 자리를 잡고 보니 마주 앉게 된 것이다. 기차를 오래 타노라니까 다리가 아프다.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남자가 다리를 뻗어 여자가 앉아 있는 맞은편 좌석의 틈에 밀어 넣는다.

그런데 기차의 진동 대문에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난다. 즉 남자는 발로써 여자 엉덩이의 탈력을 즐기게 되고 또 여자는 엉덩이에 부딪치는 남자 발의 압력을 즐기게 된다. 그러는 동안에 양쪽이 비슷한 정도로 성적 충동을 느끼게 된다. 만일 이 단계에서 두 사람이 아무 의사 표시 없이 자기의 목적지에서 각각 기차를 내려 버린다면 얘기는 성적 충동을 느꼈다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지만 만일 어느 쪽에서든지 모종의 의사 표시를 하게 되어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관계가 성립된다면 그 관계를 일컬어, 그 두 사람이 미혼일 경우엔 ‘연애’라고 하고, 기혼자일 경우엔 ‘간통’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나 간통의 좀 쑥스러운 어감을 감추기 위해서 ‘사랑’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얘기가 그러하니 부모들이 ‘선 경제력, 후 애정’이라는 슬로건으로써 자기 딸의 의사를 무시하고 억지 시집을 보낼 자신이 있는 법이다.

울며불며 시집간 딸이 남편과 신혼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입이 함박만해지는 꼴을 너무나 많이 봤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연애 결혼을 했으면서도 막상 자기 딸에겐 중매 결혼을 강요하는 부모들도 사실은 사랑이라는 것이 성욕의 미명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인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생각했다. 예술가들이 턱없이 에찬해 온 저 사랑이라는 것이 사실 굉장한 에너지를 낼 수 있는 것임엔 틀림없으리라. 사랑이란 건 본느이고 본능은 큰 힘을 가졌으니까.

그리하여 사랑하는 두 남녀가 부모들의 반대에 항의하기 위하여 집을 뛰쳐나갔다고 하자.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곧 벽에 부딪히고 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지금 이 사회에는 젊은이들의 사랑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여건이 조금도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자리가 많다는 미국이나 일본이라면 얘기는 다르리라.

그러나 우리 나라 어른들은 옛날부터 젊은이들의 사랑을 보호해 주려 한다는 점에서는 악마보다도 더 잔인싼.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하니, 강동순양 당신의 앞일은 불을 보듯이 환한 일이요, 형진이라는 애인에겐 뜨거운 키스나 한 번 해 주고 그러고 나서 부모가 시키는 대로 가 보시드라고!

갑자기 강동우씨가 우리들 앞에 불쑥 나타났다.

나와 영일이와 강동순양은 벤치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수상하다는 눈초리로 우리를 쓱 훑어보고 나서 강동우씨는 손에 들고 온 종이 뭉치를 내게 내밀며,

“미안하지만 집회에 모이는 사라들에게 프린트 좀 배부해 주시고…”

영일이에겐,

“홀로 가서 준비합시다. 저녁들은 먹었소?”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우리는 아직 저녁을 안 먹은 채였다. 돌아봤더니 방안에 우두커니 놓여 있는 밥상은 여수의 파리들이 다 모인 듯이 파리 떼로 시커멓게 뒤덮여 있었다.

나는 카바레 정문 앞에 책상을 내놓고 그 위에 강동우씨가 준 유인물을 쌓아 놓고 앉아서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유인들의 내용을 쓱 훑어보았더니 다음과 같았다.

먼저 강동우씨의 인사말이 있었다.

첫째, 자기는 어떤 정치적인 야심이나 경제적인 게략이 있어서 이런 집회를 가지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명백히 하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둘째, 자기에게 야심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고장을 진정으로 우리들의 고장으로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무슨 뜻인고 하니, 지난날 역사적인 파동 대문에 세상을 산다는것에 대하여,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떤 한 지방에서 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들은 참으로 무책임하고 즉흥적이고 비관적으로 대했다는 것이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고 하니, 그저 우리 가족이 굶어 죽기 않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고 했고 세상을 산다는 것은 남에게 해약을 끼쳐서라도 그저 돈을 모으는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만 했다는 것이다.

이건 또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는 세상에, 그리고 이 고장에 잠시놀러 온 소객들처럼 먼 앞일은 고려하지 않고 쓰레기나 오물을 아무데나 함부로 버린 생활을 우리는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부터 우리는 이렇게 살자 말자는 것이었다. 돈을 버는 게 인생의 목적이라고 하더라도(그것만이 목적일 수는 결코 없다고 한편으로 강조하면서) 우리가 과거의 생활 방식으로써는 결코 그 목적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생활 방식으로써는 우리는 범죄자밖에 아무것도 될 수 없다고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생활해야 할 것이냐. 특히 이 여수의 지도자적 입방에 계시는 여러분들과 그 점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눠보려는 데 이 집회의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이야말로 여러분의 아낌을 받으면서 자라난 이 여수의 청년 강동우의 야심입니다는 것이었다.

그런 인사말이 있고 식순이 있었다. 신숙은 간단했다. 여수 지역 사회 문제 연구소장 강동우씨의 강연이 있고, 그 다음에 서울 법과 대학 삼학년 장영일씨의 강연이 있고, 그 다음에 여수 지역 사회 문제 연구소에 근무하는 남형진씨의 강연이 있은 다음 만세 삼창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의 흥미를 끈 것은 남형진이라는 이름이었다. 강동순양의 애인이고, 강동순양의 큰오빠요 이 강씨 집안의 맏아들인 사내가 외치던 소리가 틀림없이 실현된다면 머지않아서 모가지뼈가 부러질 사람이 바로 남형진인 것이었다.

그 불행한 사내는 누굴까, 나는 궁금했다.

집회 시간인 일곱 시 반이 가까워 오는데도 이 골목으로 들어서는 사람은 통없었다. 시장 안에서 장사를 하는 듯한 차림의 여인 하나가 몸뻬의 고의춤을 움켜쥐고 허둥지둥 골목 안으로 들어오다가 책상을 버티어 놓고 앉아 있는 나를 보자 이크 하는 표정을 짓고 달아나 버렸을 뿐이었다.

“일곱 시 이십 분인데…”

하며, 강동우씨가 약간 초조한 걸음으로 밖으로 나왔다.

그때 골목 입구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우리를 강동우씨에게 소개해 준 선배님이었다. 반가워서 나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웃으며 다가온 선배님에게 유인물 한 장을 얼른 내밀었다.

“좀 빨리 오잖구…”

강동우씨가 나무라듯이 중얼거렸다.

“아직 아무도 안 왔나?”

내가 내민 유인물을 받으며 선배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 사람이 오더라도 제 시간에 시작하는 거야.”

중얼거리며, 강동우시는 선배님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골목 입구에 한 떼의 젊은이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나타났다.

젊은이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다가오는 것을 보자 나는 슬며시 겁이 났다.

내가 알기로는 이 여수의 지도자적인 인물들, 그러니까 나이 많은 사람들만이 이 집회에 오기로 돼 있는데 뜻밖의 얼굴들이 서커멓고 옷차림들이 별로 단정치 못한 젊은이들이 오륙 명 떼를 지어서 오는 게 괜히 불안한 것이었다.

떼를 진 젊은이들이란 우리에겐 항상 불안한 존재이다.

그러나 맨 앞에 서서 다가오는 젊은이를 보자 나는 안심이 되었다. 헌책점의 주인인 수험 준비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젊은이들 중엔 또 하나 알 만한 얼굴이 있었다.

전당포 주인, 묘하게 슬픈 눈으로 고객의 기를 죽여 버리는 그 청년이 었었던 것이다.

내가 식순을 나눠 줄 때, 헌책점 주인은 얌전한 말씨로,

“수고하십니다.”

고 말했고, 전당포 주인은 내 얼굴을 슬쩍슬쩍 곁눈질했다.

젊은이들이 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골목 입구에는 끊일 새 없이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의사인 듯한 사람, 교사인 듯한 사람, 배를 몇 척 가지고 있는 듯한 사람, 세관 직원인 듯한 사람, 순경, 식당 중인인 듯한 사람, 청과 조합이란 글씨를 박아 넣은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 밀수업자의 하수인인 듯한 사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직업이란 직업은 모두 모여드는 것 같았다.

홀 안에서 요란한 박수 소리가 들려 왔다.

식순이 인쇄된 종이를 받고 있던 사람들이 허둥지둥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사람들은 오고 있는데 안에서는 정한 시간에 집회를 시작해 버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강동우씨의 실력에 은근히 놀라고 있었다. 굿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는 오로지 이 고장에서 강동우씨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들이 이젠 더 이상 오지 않으리라고 생각되자 나는 책상과 의자를 카바레의 현관 안으로 들여놓고 홀 안으로 들어갔다. 홀은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강단으로 쓰고 있는 스테이지 위에서는 영일이가 전등불빛에 안경을 번쩍이며, 얼굴이 뻘개 가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청중들은 좀 어리둥절하고 놀란 표정으로 영일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뭐가 있었단 말입니까? 도대체 우리 나라엔 뭐가 있었단 말입니까?”

영일이 녀석은 기가 나서 팔딱팔딱 뛰듯이 소리지르고 있었다.

“제가 보기엔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저는 철저하게 오만한 사람도 못 보았습니다. 거리를 지나가난 GI 졸병 하나만큼 오만한 자도 못 보았습니다. 귀족도 없었떤 것 같습니다. 돈 많은 사람이 귀족이었다면 그런 의미에서라면 물론 있었겠죠. 그러나 자존심을 가진 귀족이 어디 있습니까? 자존심이 없었기 때문에 따라서 수치심도 없습니다. 수치심이 없으니 발길로 채여가면서도 시장 바닥에 코를 박고 꼬리를 뒷다리 사이에 끼고 비실비실 돌아다니는 개와 다를 바 없습니다. 수치심이 없는 인간이 어디 인간일 수 있습니까? 굶어 죽으면서라도 자기를 지킬 수 있는 수치심을 길러야겠어요. 수치심을 가져야 우리는 명예롭게 살려고 애쓸 것이며 명예롭게 살아야만 우리는 정말 잘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수치심을 기릅시다라는 운동이라도 해야 되겠단 말예요…”

영일이는 소리를 지르고 나서 책상을 쾅 내리쳤다.

그런데 무안하게도 박수가 통 나오지 않았다. 다만 내 곁에서 누군지가,

“수치심이란 게 무슨 말이오?”

하고, 자기 곁에 있는 사람에게 소곤소곤 물어 보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 왔을 뿐이었다.

청중의 반응이 냉랑한 것을 보니까 나는 마치 내가 영일이 자신이나 된 것처럼 얼굴이 후꾼 달아오르고 이마에 진땀이 내배었다. 그리고 갑자기, 홀은 메우고 있는 사람들이 쏟아 내고 있는 땀 냄새와 진한 숨결이 견디기 힘들다는 느낌으로써 나를 압박했다.

그러나 강단 위에 서 있는 영일이 본인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먼발치에서 보니까 두꺼비 같은 녀석의 인상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데, 사람들이 박수를 치지 않은 게 이상해 못 견디겠는지 뚜릿뚜릿 청중을 둘러보고 나서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옛날 얘기나 하나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도를 깨우치고 싶어서 유명한 중을 찾아갔습니다. ‘대사님, 도를 깨우치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제발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래애? 그러나 도란 그렇게 쉽게 알 수 있는 게 아니여.’ ‘대사님, 무슨 고생이라도 참고 견디겠습니다. 제발 좀…’ ‘그래애? 그럼 저 벽을 보고 앉아서 참선을 해야지. 저 벽에서 금송아지가 튀어 나올 때까지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꼼짝 말고 앉아서 벽만 보고 있어야 해.’ ‘금송아지라니요, 대사님?’ ‘금으로 된 송아지란 말이여.’

‘예예, 알겠습니다, 대사님.’ 그날부터 그 사람은 벽을 마주 보고 앉아서 벽에서 금송아지가 튀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삼 년 동안을 그렇게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삼 년이 다 가는 날, 문득 그 사람은 깨달았습니다. ‘아차, 벽에서 금송아지가 튀어 나올 리가 없지.’ 바로 도를 깨우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와 웃었다. 그 얘기가 무얼 뜻하는진 몰라도 하여튼 사람들이 웃어주니까 나는 고마움을 느낄 지경으로 기뻤다. 그런데 영일이 녀석은 두꺼비 같은 얼굴을 무표정하게 꾸민 채 뚜릿뚜릿 청중을 둘러보아싼. 그게 더 우수운지 사람들은 좀더 소리 높이 웃었다.

웃음이 가라앉자 영일이는 말했다.

“오늘 제 얘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요란하게 박수했다.

나는 처음부터 듣지 않아서 모르긴 하지만 아까의 심각한 얘기엔 꿈쩍하지 않던 사람듣이 그토록 요란한 박수를 친 것은 마지막의 옛날 얘기 때문인 것 같아싼.

그렇지만 나로서는 그 마지막 얘기는 왜 했는지 이따가 영일이에게 물어 보고 싶을 만큼 무의미한 것이었다.

영일이가 단을 내려가자 이어서 나는 처음 보는 얼굴인 사회자가 올라왔다.

“다음엔 여수 지역 사회 연구소에 계시는 남형진씨로부터 강연이 있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쪽 구석에서 처량한 박수 소리가 외롭게 났다.

누군가가 혼자만 박수를 짝짝짝 하다가 쏙 들어간 버린 것이었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을 따라 보았떠니, 에게게, ‘풍선’ 다방의 오동통한 레지 가씨가 박수를 치던 손으로 얼굴을 푹 싸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앞좌석에서 한 사람이 손에 노트를 한 권 들고 연단 위로 올라섰다. 남형진씨란 다름아닌 바로 선배님이었다.

그러고 보면 강동순양의 비극적인 애인이요, 헌잭점 주인인 청년의 형이요, 강동우씨가 벌여 놓고 있는 ‘여수 지역 사회 문제 연구소’인가 뭔가 하는 곳에서 강동우씨를 위에 모시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저 선배님이었다.

뭔가 좀 착잡한 기분으로 선배님이 사람들에게 꾸벅 절하고 나서 노트를 펼치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누가 내 등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돌아보았더니 강동순양이었다.

“저분한테 이거 좀 전해 주세요. 부탁합니다.”

접은 쪽지를 내밀며 애원하듯 한 표정으로 강동순양은 내게 속삭였다.

나는 쪽지와 강동순양과 선배님을 번갈아 보았다.

“부탁합니다. 도와 주세요. 일이 급하게 됐어요.”

나는 쪽지를 빼앗듯이 받아 들고 연단을 향하여 허리를 구부리고 가기 시작했다.

사람들 틈을 헤치고 연단 앞으로 다가가면서 나는 선배님이 안경을 고쳐 쓰고 강연을 시작하는 것을 보았으나 무슨 말을 하는지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많은 눈들을 의식하며 연단에 바싹 다가가서 쪽지 편지를 전해 줄 일이 걱정됐을 뿐이었다. 나는 겨우 맨 앞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곳까지 같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주춤했다. 맨 앞줄을 차지하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니, 몇몇 이 지방의 유지로 보이는 어른들을 제외하고 온통 강동우씨네 식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 앞을 통과해서 연사에게 가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강동순양이 식구들 몰래 자기 애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그 사람들이 내 손에서 빼앗아 볼 것만 같은 착각이 얼핏 들었기 때문이었다.

“방금 간단히 살펴본 바와 마찬가지로 우리 여수의 식구들은 유난히 변동이 심했습니다. 지금 사십대 이상으로서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과부들인데 여순 바란 사건, 6·25 등의 역사적인 사건에 자기 남편들을 바쳐 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을 두고 보드라도…”

선배님이 무언가 따지듯이 차근차근 말하고 있는 것을 듣다 말고 나는 불쑥 용기를 내어 허리를 잔득 구부리고 빠르게 걸어서 선배님 곁에 다가갔다. 다가가자마자 던지듯이 책상 위에 쪽지를 전해 주고 강동우씨가 흘겨보고 있기라도 할까 봐 땅바닥만 보면서 물러났다.

연사의 강연이 중단되고 있는 것을 나는 알았다.

얼른 사람들 틈으로 숨자마자 나는 선배니을 돌아보았다.

벌써 편지를 읽은 듯한 선배님은 시선을 홀의 뒤편으로 보내어 무언가 열심히 찾더니드디어 강동순양을 발견했는지 히죽 웃었다. 연사가 뒤를 보고 웃는 바람에 사람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강동우씨네 식구들이 의아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는 것과 강동순양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여 얼른 현관과 홀을 나누는 칸막이 뒤로 숨어 버리를 것을 거의 동시에 보았다.

선배님은 당황한 듯 얼른 강연을 계속했다.

나는 사람들을 헤집고 강동순양이 몸을 숨깃 곳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칸막이 뒤엔 강동순양이 없었다. 안집으로 통하는 문을 밀고 고개를 디밀었더니 강동순양은 거기 정원의 장식을 위한 괴석 위에 앉아서 고래를 숙이고 있었다.

“무사히 전했습니다.”

곁으로 다가가서 나는 공주의 비밀한 명령을 완수하고 돌아온 기사처럼 자랑스럽게 말했다.

“고마워요.”

강동순양은 잠깐 눈을 치켜 떠서 나를 보면서 간단히 말하고 나서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나는 그 여자의 옆 다른 괴석 위에 앉으며,

“일이 급하게 되셨다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아, 별거 아녜요.”

“말씀해 보세요. 곤란한 경우엔 누군가가 한 마디만 해 줘도 큰 힘을 될 수 있는 법이니까요.”

“아이, 별게 아니라니까요.”

“동포에 좀 발위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강동순양은 호호 웃었다. 웃고 나서,

“사실 그 편지 속엔…”

말하려다 말고 쑥스러운지 다시 호호 웃으며 말을 계속하지 않았다.

“아, 편지 내용을 듣자는 게 아니라…”

“사랑하고 있다고 딱 한 마디 썼어요. 호호호호… 그런 시시한 편지를 전하느라고 애를 쓰신 게 억울하시죠? 호호호호…”

“그분에 대한 애정이 흔들리고 있는 모양이군요?”

나의 말에 그 여자는 웃음을 거두고 고개를 숙인 채 잠잠히 앉아 있었다.

한참 후에 강동순양은 묘한 음색으로 듣기에 좀 지루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저기서 벌어지고 있는 집회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강동순양은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잠깐 구경해서 뭐가 뭔진 잘 모르겠지만, 오빠께서 퍽 의욕적인 일을 하고 계시는 것 같더군요.”

내가 대답하니가, 강동순양은 어디에 그런 분노가 숨어 있었던지, 아마 유관순 누나가 연설을 할 때는 그랬으리라고 생각될 만큼 격렬한 말투로,

“의욕적이라구요? 쇼 구경을 하면 ‘아, 이건 굉장히 의욕적인 쇼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가요?”

“그게 쇼일까요? 보기 드문…”

“바로 그거예요. 보기 드문 쇼예요.”

“아니, 제 얘긴 보기 드문…”

“그래요.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쇼의 하나예요. 필요 이상으로 돈을 많이 들인 쇼죠.

우리 동우 오빠가 말하자면 후라이보이고 우리 아빠가 흥행사인 셈예요. 전 우리 집안 식구들이 하는 일을 보고 있으면 참 재미있어요. 전 중학교는 여기서 다녔지만 고등 학교는 서울서 다녔거든요. 경기 여고 아시죠? 우리 나라에선 제일 수재들만 모인다는 여학교 말예요. 돈을 어마어마하게 기부하고 일학년 이학기 때 그 학교에 편입했어요.

여기선 돈 좀 있는 사람들끼리 이상한 경쟁을 하며 그 경쟁을 즐기고 있어요.

자식들을 서울에 있는 일류 중고등 학교에 보내는 일로 경쟁하는 거에요. 덕택에 저와 동우 오빠는 서울의 일류 고등 학교 구경을 한 거죠. 동우 오빤 경기고예요.

제가 무슨 얘길 하려고 했죠? 아참, 제가 다니던 경기 여고엔 말이죠, 손님들이 자주 왔어요. 무슨 모범 학교로 지정돼 있었나 봐요. 외국의 뭐좀 한다는 할머니가 오거나, 대통령의 부인이 오거나, 하여튼 거물급들을 비롯하여 장학사니 뭐니 하는 사람들의 방문이 잦았어요. 손님이 온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학교는 한바탕 법석을 떨기 시작해요. 커튼을 갈아 낀다. 더러워진 마룻 바닥을 윤을 낸다, 아무렇게나 팽개쳐 두었던 화병을 깨긋이 씻고 꽃을 사다 꽃는다, 뭐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거죠. 그런 소동을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지시하면 학생들은 기꺼이 공모하는 거예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전 항상 이상한 기분에 빠지곤 했어요. 꼭 나쁜 일을 숨어서 하는데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공모하는 걸 보아 버린 듯한 느낌이 들곤 했거든요.

고등 학교 때 그런 일을 보고 났는데, 가만히 보자니까 우리 집도 바로 그러지 않겠어요? 제가 태어났을 때 우리 아빠가 마악 부자가 되기 시작하려고 할 때였대요.

그래서 우리 집 식구들은 절 ‘복딸아, 복딸아.’ 하고 부르곤 했어요. 제가 이 집에 복을 가져다 주었다는 뜻도 되고제가 좋은 때에 세상에 태어났다는 뜻도 되죠.

하여튼 우리 아빠는 옛날엔 상말로 뒤가 찢어지게 가난하고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를 만큼 무식했대요. 엿 목판을 메고 섬으로 돌아다니다가 엿 도갓집 막내딸인 우리 엄마와 배가 맞아, 호호호 미안해요, 상소리를 마구 해서. 우리 큰오빠를 낳고 나서 엿 도갓집 주인 영감인 우리 외할아버지의 체념으로 결혼을 했다나 봐요.

외할아버지가 작은 주막을 차려 주었는데 두 부부는 열심히 술을 팔아서 돈을 좀 모았다나 봐요. 얼마나 열심히 술을 팔았느냐 하면 그 섬, 여기서 뱃길로 오십 리쯤 되는 남해라는 섬인데요, 그 섬마을의 꼬마들에게까지 조금씩 조금씩 기술적으로 술맛을 알게 하여 하여튼 꼬마들이 집안에서 쌀을 퍼다가 술을 사먹을 정도가 되도록까지 했다니까요. 하여튼 외할아버지네 엿이 안 팔릴 정도 였다니까 알 만하죠.

결국 섬마을의 뜻 있는 청년들, 일보넹서 대학을 다니다가 방학이 되어 고향이 돌아온 청년들한테 한바탕 얻어맞고 그 마을을 쫓겨났다나봐요.”

강동순양의 좀 지루한 얘기는 계속되었다.

“섬에서 쫓겨나게 되자 두 부부는 모아 뒀던 돈을 가지고 부산으로 나갔어요.

부산에서도 술장수를 했는데 잘 안 되었던 모양예요. 어느 일본인한테서 큰돈을 빌려 가지고 다른 사업을 해 보려고 햇으나 암만 생각해도 그 사업이 성공할 것 같지 않으니까 어머니도 내버려 둔 채 그 돈만 가지고 아빠는 만주로 뺑소니쳐 버렸대요.

아빠는 만주에서 별의별 고생을 다 했대요. 그렇지만 어머니의 고생이 더 심했어요.

돈을 빌려 준 일본 사람이 어머니를 경찰서에 가두어 버렸거든요. 경찰서에선 별 고문을 다 당했대요. 한때 장님이 되어 버릴 정도로 고문에 지쳐 버렸어요. 지금 우리 집에서 정말 눈이 나빠서 안경을 쓰는 사람은 어머니뿐예요. 외할아버지가 딸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빚을 갚고 어머니를 섬으로 데려갔어요. 한편 아버지는 만주 중국 등지를 돌아다니며 별의별 고생을 다 하게 되니까 자연히 드는 생각이라곤, 고향에서 자기를 쫓아낸 그 청년들에 대한 미운 생각뿐이었죠. 그렁저렁하는 사이에 해방이 되자 아버지는 얼른 부산으로 내려왔어요. 빚쟁이가 되어 도망쳤던 아버지는 행방 덕분으로 도리어 빚이라도 받을 게 있다는 듯이 부산의 그 일본인 집에 들이닥쳤어요. 만주에 가서 마치 독립 운동이라도 하다가 돌아온 듯이 굴며, 어머니를 경찰서에서 고문당하게 했던 제국주의자를 반 죽여 놓다시피 했다지 뭐예요. 그리고 그 일본인이 가지고 있던 금은 등 꽤 많은 재산을 강탈하다시피 빼앗아 가지고 섬으로 돌아왔어요. 어머니는 어저면 지금까지도 그 재산이 아버지가 만주에서 벌어 가지고 온 건 줄로 알고 게실 거에요.”

“미스 강은 어떻게 그런 사실들을 알고 있죠?”

“동우 오바가 들려줬어요. 외할아버지한테서 들었대요. 외할아버지는 지금은 돌아가시었지만 참 점잖은 분이었어요. 외할아버지가 그런 얘기를 자세히 해준 것은 동우 오빠한테뿐이었나 봐요. 나머지 다른 식구들이 알고 잇는 우리 집의 역사는 아버지가 조작한 역사예요. 동우 오빠와 저 외에는 모두 아버지가 조작한 역사를 믿고 있죠.”

“얘기를 계속하세요.”

“어디까지 햇죠? 아참, 그래서 아버지는 어머니와 오빠들을 데리고 여수로 나왔어요. 전 여수에 나와서 태어났어요. 그때 여수 순천 반란 사건이 일어났어요.

그리고 아버지를 고향에서 내쫑았던 옛날의 그 청년들, 일본에 유학했던 청년들이 모두 그 반란 사건에서 지도적인 인물들로서 활약했다거든요. 아버지는 옳다구나 싶어, 진압군이 들어와거 빨갱이들을 처형하기 시작하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대활약을 하려 그 옛날의 원수둘을 모조리 잡아 죽였어요. 그 덕분에 아버지는 열렬한 반공주의자로 자처하시고 세상에 알려지게 됐어요. 당신 자신도 반공주의는 위치까지 올라가게 됐죠. 그 후의 우리 집안은 순풍에 돛 달았다는 바로 그런 식으로 재산을 보아가게 됐어요. 그런데 아버지에게는 은근히 마음 썩이는 일이 하나 잇었어요.”

“마음 썩이는 일이라니요?”

마치 자기 아버지를 고발하듯 한 말투로 얘기하고 있는 강동순양에게 존경 비슷한 느낌을 받으며 나는 얘기를 재촉했다.

“그렇다고 해서 제 아버지는 인생에서 무슨 위대한 것을 차지하려는 꿈 같은 건 없는 분예요.”

강동순양이 말했다.

“위대한 꿈이라는 것도 여러 가지겠지요.”

내가 말했다.

“제가 말하는 위대한 꿈이란 운하를 판다든가, 남극을 탐험한다든가, 독립 운동을 한다든가 하는, 그 있짇아요? 남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려고 하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강동순양은 그런 일이 변소에서 파리나 잡는 일인 듯이 쉽게 얘기하고 나서, “하여튼 우리 아버지가 마음을 썩이난 일이란 이 고장에서 유지는 됐지만, 유지란 별게 아니라 무슨 행사 때마다 기부금을 잘 내는 사람을 가리키는 거예요. 유지는 됐지만 남들이 존경을 해 주지는 않는다는 거였어요. 사람들이란 공적인 생각과 사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아요. 동멩이 하나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말예요.

공적으로는, 아버지는 반공주이의자고, 기부금 잘 내는 호인이고, 사업을 잘 하는 능력가이고, 하지만 사적으로는 무식하고 과거가 수상하고 걸핏마녀 돈으로 해결 하는 겁쟁이였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굽히지 않고, 사람들의 당신에 대한 생각에서 공적인 부분이나마 유지시키려고 애썼지요.

그래서 큰 오빠와 작은오빠도 그럭저럭 고등 학교만 졸업시키고 장사를 하게했어요. 덕분에 그 오빠들도 아버지하고 또같은 사람들이 됐죠. 돈을 벌었는데 무식한 사람 말예요. 그러자 마버지는 이제야 작으나마 꿈이 생기셨어요. 그 꿈이란 것도 별게 아니라 무식해 가지고 작은 돈을 벌어도 큰돈은 못 번다, 그리고 돈을 들여 돈을 버는 것보다는 돈을 들이지 않고 돈을 버는 것이 진자 경제적이다. 그런데 돈을 들이지 않고 돈을 버는 방법이란 집안 전체가 다른 사람들에게 대해서 권위를 가지는 것이다. 권위를 가지러면 어떻게 해야 되는냐? 우리 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순박해서 학자라든가, 하여튼 문화를 아는 점안은 존경해 줄 줄을 알고 있다.

그러니 이제부터 우리 집안도, 남들이 은방울 자매의 노래에 반해 있으면 우리는 마리아 앤더슨에 심취해 있는 듯이 하고, 남들이 유식해 체하고 일본말을 섞어 지껄이면 우리는 영어나, 아니 불란서말이나 독일어를 섞어 지껄이고, 남들이 포도주를 담아 먹으면 우리는 국확주를 담가 먹고… 말하자면 문화란 별게 아니라 될수록 오래된 것, 될수록 먼 데 있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런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사람들이 공적으로 우습게 여길지 모르지만, 사적으로는 은근히 존경해 준다는 것을 아버지는 안 것이죠. 말하자면 아버지의 사관이 바궈졌다고나 할까요? 역사란 공적인 부분에서 발적하는 게 아니라 사적인 부분이 발전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예요…”

“글세요. 역사란 역시 댁의 아버님께서 처음 생각하셨던 대로 공적인 부분이 확대되는 것이겠죠.”

“네, 결국 그 말씀이 그 말슴인데, 즉 아버지가 저에게 음악 공부를 시키고 동우 오빠를 미국에 보내서 경제학 박사가 되어 돌아와 대학 교수님이 되기를 바랐던 것도 결국은 집안에 문화로써 권위를 붙여 좀더 큰돈을 벌자는 게 목적이었으니까요.

말하자면 국물을 먹어야 일을 빨리 봐 줄 관리들도 일단 아버지가 우리 지방에서 나온 박사요, 대학 교수인 강동우씨의 아버지라는 걸로 돈들이지 않고도 일을 서둘러 줄 거라는 거죠.”

“그렇지만 강동우씨는 미국에서 박사를 따 오지 못했다는 걸로…”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강동순양은 냉큼 말을 방아서,

“바로 그거에요. 제가 동우 오빠에게 대하여 딱하게 생객하는 점은 바로 그거예요.

아버지와 큰오빠들이 온통 동우 오빠에게 기대를 걸었거든요. 박사만 되어라. 대학 교수만 되어라. 그렇게 되기 위해서 필요한 돈은 모두 우리가 대마는 것이었죠.

처음엔 동우 오빠도 거기에 장단을 잘 맞춰어요. 정말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기 위해서만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러나 그 다음엔 생각이 바꿔졌어요. 가족의 기대를 이용하여 진자 공부나 열심히 하자는 거로 말이죠. 그리고 미국엘 갔어요. 미국에서 어떻게 공부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굉장히 열심히 공배했다는 설도 있고 놀러다니기만 했다는 설도 있고, 하여튼 학서들이 구구 해요, 호호호호… 요컨대 집에서 기대하던 박사도 교수도 되지 못한 걸 보면 놀러다니기만 했다는 설이 맞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공부를 열심히 했을 거 가아요. 단, 다른 공부를 말예요.”

“무슨 공부 말이죠?”

“그건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미국에 다녀온 뒤로 동우 오빠는 굉장히 유식해 졌거든요. 유식하다는 것도 어떤 한 분야에 대해서가 아니라 골고루 말예요. 그러나 어데든 가족들을 실망시킨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어요. 제가 가족들을 실망시킨 건 벌써구요. 서울 대학교 음악 대학이나 이화 여대 음악 대학에 들어가기를 기대하는 가족들이 너무 꼴보기 싫어서 아예 입학 원서도 내지 않았는걸요. 전 말괄량이가 되려구 노력했어요. 호호, 이건 말괄량이가 된 데 대한 변명이구요. 하여튼 동우 오빠는 돌아와서는 더욱 얼른들을 실망시켰어요. 교수가 못 되면 고급 관리라도 되기를 어른들은 기대했는데 그것이 아니고 나도 장사를 해 보겠다, 카바레는 내가 운영하겠다, 운수 회사도 내가 운영하겠다, 그리고 여수 지역 사회 연구소를 말들겠으니 거기 비용을 아버지가 대라는 거였죠. 카바레 운영이니 운수 회사 운영이니 하는 얘기는 형들을 실망시켰고 무슨 연구소니 하는 건 아버지를 실망히켰어요.

그러나 아버지는 곧 생각이 바꿔졌죠. 연구소라는 것도 문화 냄새가 난다, 잘만 하면 몇 년 후엔 집안에서 국회 의원이 하나 생길 거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동우 오빠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죠. 하지만 동우 오빠의 속셈은 알 수가 없어요. 제가 알기로는, 집안의 기대와 그것에 보답할 수 없는 자신 사이에서 점점 말이 없어지고 가끔 엉뚱한 일을 잘 하고 우리 모르는 사생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어 간다는 거뿐예요.”

그때, 마치 강동순양의 얘기에 보내라기도 하듯이 홀로부터 요란한 박수 소리가 들려 왔다. 이어서 웅성웅성하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발소리가 집 밖의 골목길을 메우기 시작했고 카바레에서 안집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강동순양의 어머니를 비롯한 한 떼의 여자들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나는 강동순양에게 몇 가지 묻고 싶은 얘기가 있었지만, 그 어머니에게서 오해라도 받을까 봐 얼른 일어나싼. 그리고 홀로 향하여 갔다.

홀 안엔 아직도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한편에선 여러 사람들이 의자들을 다른 모양으로 배열하고 있었다. 선배님과 영일이도 의자들을 배열하고 있는 사람들 속에 끼여 있었다.

“둥글게, 네네, 좌담회하기에 좋도록 둥글게 놓아 두십시오.”

강동우씨아 의자를 배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높은 소리로 지시하고 있었다.

야 광 층

의자가 둥그런 형태로 놓여지자, 공동우씨와 선배님의 안내로 사람들의 의자에 앉기 시작했다. 아아쭈, 이 집회의 지도자나 되는 듯이 안경을 치켜 올리며 점잖게 의자를 턱 하나 차지하고 앉아 있는 영일이 곁으로 나는 다가갔다.

영일이 옆에 강동우씨가 앉아 그 옆으로 강 영감, 그 옆으로 사장님쯤 되어 보이는 사람… 그리고 영일이의 맞은편엔 헌책점 주인과 전당포 주인을 비롯한 청년들이 죽 앉아 있었다. 좌석을 둘러보니 대부분이 청년들이었다. 사람들, 특히 나이 많은 사람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서 선배님이 영일이의 옆 빈자리로 돌아왔다.

영일이 등뒤에 서 있는 나에게 선배님이 그 빈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했다.

나는 사양했다. 그러나 선배님은 저쪽 구석에 밀어붙여 놓은 빈 의자들 중에서 하나를 들고 와, 영일이 뒤에 놓으며 나에게 앉기를 권하고 나서, 영일이 옆의 빈자리로 가서 앉았다. 날 돌아보지도 않고 가끔 도수 없는 안경을 치켜 올리며 음음 헛기침을 하고 앉아 있는 영일이가 나는 우습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였다.

강동우씨가 선배님에게 눈짓을 하자 선배님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좌중을 둘러보며 최대한 얌전함 음성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끝까지 본연구소의 모임에 차마석해 주신 여러분께 우선 감사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자유 토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러나 워낙 많은 분들이 게시기 때문에, 두 가지 주제를 내걸고 가능한 대로 그 범위 안에서 얘기를 진행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첫째 주제는 우리 여수가 어떻게 발전했으면 좋겠는가 하는 것을 얘기해 보자는 것이고, 둘째 주제는 앞으로 우리는 어떠한 태도로 사회 속에서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둘 다 좀 막연한 주제입니다만, 앞의 것은 각자가 자기 나름으로, 여수가 이런 여수가 됐으면 하는 꿈을 구체적으로 얘기해 가는 가운데 문제점을 찾아내어 토론해 보자는 것이고, 둘째 것은 특히 직업 문제로서, 말하자면 서로 다른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우리들이 어떻게 상부 상조하여 모두가 자기 직업에 불만 없이 그리고 다른 직업을 경멸하는 일이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얘기해 보자는 것입니다. 제가 특별히 누구를 지목하거나 하지 않겠으니, 자유로이 토론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 말문을 여는 뜻에서 부시장님께서 먼저 말씀이 있겠습니다.”

선배님이 자리에 안자 강 영감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의젓하게 일어섰다.일어나려다 말고 강 영감이 점잖게 내민는 손을 잡고 악수했다.

“음흠.”

부시장님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나서,

“우리 대한 민국은 오랜 역사와 빛나는 전통을 가진 국가로서 예로부터 흰옷을 즐겨했습니다…”

서두가 거창했다. 거창한 서두가 어째 수상하다 했더니, 부시장님은 끝내 이 집회가 3·1절 기념식인 줄로 착각하신 듯한 일장의 경축하 비슷한 것을 십여분이나 토하시고 앉으셨다.

강 영감은 감격한 듯 또 한 번 악수를 청하고 나서 두 사람의 손이 중풍이 거린 게 아닌가 생가될 만큼 오랫동안 흔들고 있었다.

부시장님의 연설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입구에 서 있던 한 떼의 여인들이 쟁반에 받쳐 든 토마토 주스를 한 컵씩 사람들에게 배급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토마토 주스를 가져다 준 여자는 강동우씨의 어머님이었다. 상냥하게 웃으며 나에게 컵을 주고 다음엔 영일이에게, 다음엔 선배님에게 주었다.

선배님에게 컵을 줄 때, 마담은 선배님의 귀에 대고 심각한 얼굴로 무어라 재빨리 속삭였다.

선배님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여인들의 발소리와 컵들의 달그락 소리가 좀 가라앉자마자, 우리의 맞은쪽에 앉아 있는 헌책점 주인과 전당포 주인이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입을 열었다.

“한 마디 하겠습니다.”

“저어…”

이런 식의 말을 동시에 꺼낸 헌책점 주인과 전당포 주인은 잠깐 당황하여 서로에게 먼저 말하라고 양보했다. 결국 전동파 주인인 청년이 양보를 수리하기로 한 듯 입을 열었다.

“저는 직업에 대한 얘기가 좀 하고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아버지께서 하시던 전당포를 물려 받아 운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시다시피 전당포란 어디가지나 공익 사업의 일종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제가 전공한 것은 식물학이었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지금 저는 전당포 주인입니다.”

얼굴이 새뻘개져 가지고 아시다시피를 연발하는 전당포 주인이 우스워서 사람들은 와 웃었다. 강 영감의 웃음소리가 제일 큰 것 같았다.

웃음소리 때문인지 ‘아시다시피’ 군은 아시다시피란 말이 섞여 들지 않도록 조심하며 말을 게속했다.

“저도 물론 제가 전공한 방면으로 나가고 싶었습니다만, 우리 나라에선 식물학이 배추나 무 재배하는 법인 줄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식물학 공부를 한 사람들이 들어가 일할 자리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할수없이 전당포를 경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친구들이나 어른들은 새파란 것이 돈밖에 모른다고 날 가지고 흉을 봅니다. 우리 서로 직업을 가지고 흉보거나 하지 맙시다.”

박수 소리와 웃음소리와 옳소 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장내를 흔들었다.

박수 소리가 잠잠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헌책점 주인이요 선배님의 아우요, 강동순양의 건실한 청년이라 평한 친구가 일어섰다. 그러나 의자에 앉은 채 얘기하기로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다시 의자에 앉아서 약간 부들부들 떨리는 소시로,

“아시다시피란 말이 나왔으니까 말이지…”

떨리는 소리로써도 제법 익살을 부려 보려는 노력을 보이고 나서,

“아시다시피 저는 남들이 다 가는 대학에도 못 가고 헌책점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꿈은 큰 서점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화가가 되려는 것입니다. 저는 이곳 여수에 태어난 것을 하느니껨 감사하며바다를 열심히 그려 보려 합니다. 그래서 세게에서 바다는 제일 잘 그리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유명한 화가가 되어 저는 우리 여수를 빛내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직업에 종사하고 게시는 여러분들께서는 화가도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시어 존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표현이 무척 서툴렀지만 그 진지한 태도에 감동했는지 요란한 박수 소리가 났다.

두 젊은이의 얘기가 끝나자 장내는 한동안 조용해 졌다.

서로서로 누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눈치였다. 그러자 강동우씨가 얼른 얘기를 했다.

“이런 얘기를 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겠어요? 앞날의 여수를 공상해 보는 것두 말입니다. 예를 들면, 오동도에서 남해가지 가교, 다리 말입니다. 다리고 놓아진 여수를 상상한다든가…”

그러자 어업 조합 이사쯤으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입을 헤벌리고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러면 오죽이나 좋을라고!”

말하는 바람에 장내가 웃음 바다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공상 얘기가 나오자 갑자기 장내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르 소리가 나고 미소 띤 얼굴들이 여기저기서 끄덕거려지고 있었다.

그대 어느 틈에 들어왔는지 강 영감의 우락부락한 면만 빼닮은 사십대의 건장한 사내가 선배님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형진이, 나하고 얘기 좀 하세.”

심상찮은 투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마 강동순양의 큰오빠로 보이는 사십대의 건장한 사내의 심상치 않은 말소리에 선배님은 마치 그 말을 못 들은 듯 앞만 보고 잠시 동안 꿈쩍하지 않았다.

“나 좀 보자니까.”

사내의 좀더 위협적인 말에 선배님은 무언가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그리고 앞장서서 홀 밖으로 나가는 사내의 뒤를 무거운 걸음걸이로 따라 나갔다.

사내와 선배님 사이에 오고 간 심상찮은 분위글 깨달은 것은 나뿐이었다.

장내는 여수의 빛나는 미래를 공상하는 지 좀 흥분하고 있는 듯했고 좀 소란스러웠다. 누군지가 ‘난 말입니다…’ 하고 얘기를 시작했으나 그 얘기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나는 밖으로 끌려 나간 선배님이 걱정되기만 했다. 아니, 선배님보다는 더욱 강동순양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것만 같았다.

나는 강 영감을 돌아보았다.

강 영감은 지금 한창 자기의 공상을 신나게 떠들고 있는 젊은 친구의 얘기에 흥미가 있다는 얼굴로 가끔 고래가 끄덕여 가며 점잖에 앉아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강동우씨를 보았다. 손으로 턱을 괴고 고개를 약간 숙이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나는 밖으로 나가볼까 생각했다. 어쩐지 선배님과 강동순양의 사랑을 지켜 줘야 할 사람은 나밖에 없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은 얼마 전에 강동순양으로부터 자기 가정의 비밀을 들음으로써 나는 내가 강동순양으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인듯 했다.

그러나 내 주제로 어떻게 그 두사람의 사랑을 지켜 줘야 할 것인가.

나는 영일이와 의논해 보고 싶었다. 내가 마악 영일이의 어깨를 두들기려고 하는데 느닷없이 영일이가 놀랄 만큼 높은 소리라 말을 꺼냈다.

“저는 여수 사람이 아니어서 재미있는 얘기들을 하시는 데 혹시 방해가 될까봐 듣고 있으려고만 했습니다만, 그러나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한 마디 참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여기 앉아 게시는 강동우씨께서 오늘 밤 이자리에서 얘기를 한 마디 하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한편 두려우면서도 한편 기뻤습니다. 두려웠던 것은 물론 좋은 얘기를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고, 기뻤던 것은 이 여수의 청년드로가 얘기를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임을 마련하신 강동우 선생께 진심으로 존경의 뜻을 표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이런 귀중한 모임에 귀중한 시간에 여러분들은 공상이나 하시고 계시는지 참으로 유감입니다. 당면한 문제도 많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시고 전연 실현성이 없는 공상이나 지껄이면서 시간을 허비하는지, 같은 젊은이의 입장에서 걱정이 됩니다. 공상이란 아주 나쁜 도피처입니다. 저는 이 모임에서 여러분들께서 자신들이 처한 현실로부터 과감하게 문제를 끄렁 내어 얘기하시는 것을고 싶었고 거기서 배우는 바 많기를 기대했습니다.”

영일이의 말이 끝나자 나는 강 영감이 못마땅한 시선으로 영일이를 보는 것을 보았다. ‘여수 놈도 아닌 자식이 입만 살아서’ 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강동우씨가 입을 열었다.

“미스터 장은 우리 여수 사람들의 처해 있는 현실 속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죠?”

“전 오늘 낮에 여숙역에 내린 사람입니다. 저로서는 무엇이 이곳의 문제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실현성 없는 공상이나 하는 게 아려분의 당면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공상하는 거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요.”

강동우씨가 청중들의 동의를 구하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전연 예상하지 않았던 싸움이 강동우씨와 영일이 사이에 시작되었다.

좌중을 둘러보니 얼핏 보기에도 사람들은 영일이를 못마땅해하는 게 분명했다.

영일이가 아무리 옳은 소리를 지껄이더라도, 건방진 녀석, 이 여수 사람들을 뭘로 보는 거야 하는 눈치가 분명한 것이었다.

영일이는 그런 눈치도 못 차렸는지 더욱 팔팔 뛰었다.

“공상을 하는 게 가장 시급한 문제라구요? 희망에 찬 앞날을 공상해 봄으로써 지금의 고통을 잊으려 한다는 거야말로 정신병자들이 하는 짓이죠. 왜 강 선생님은 사람들을 정신병자로 만드시려고 합니까? 대답 좀 해 보세요. 왜 정신병자로 만드시려 합니까?”

“자네가 무얼 안다구 그래?”

강동우씨가 놀랄 만큼 큰 소리로 외쳤다. 다만 글에도 몇 사람이 짝짝짝 박수했다.

“아무도 현실의 다면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단 말요. 먹고 사는 문제 외엔 더 다른 문제가 없는 것같이 생각하고 있단 말요. 무슨 문제든지 그것이 문제이러면 해답을 요구해야 하는 거요. 우리가 바라는 것의 해답이지 문제 자체는 아니란 걸 명십하시오. 그러면 해답은 어디 있을까?

우리는 미래가 바로 해답인 거요. 그렇게 되어야 할 미래,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미래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해답이오. 우리에겐 먼저 해답이 있어야 하오. 그 뒤에 문제가 따른 것이오.”

“해답이 먼저고 문제가 나중이라구요? 으음… 그건 어떤 점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렇지만…”

“어떤 점에 있어서만이 아니오.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면 우리에겐 여러 문제를 만들어 낼 커다란 해답이 없다는 거요.”

“공상이, 엉뚱한 꿈이 그럼 해답 노릇을 할 수 있단 말이십니까?

오동도에서 남해까지 다리를 놓는다느니, 남해안의 그 많은 섬과 섬을 방파제로 연결해서 그 내해를 양어장으로 한다느니, 여수에서 일본까지 그리고 제주도까지 해저 철도를 놓는다느니… 그따위 어린애들 만화에 나오는 얘기를 해답으로 하고 그 해답을 내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현재의 문제로 삼자는 게 말이나 됩니까?”

“답답한 친구로군.”

강동우씨는 입맛이 쓴 듯, 또는 무언가 자신이 있는 듯 또는 영일이와의 대화를 사람들로 하여금 듣게 함으로써 무식한 사람들이 무언가 조금씩 알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듯, 음성을 부드럽게 태도에 여유를 주면서 말했다.

“미스터 장이 이해하고 있는 건 어느 정도까지는 정확하고. 그렇소.

우리가 바라는 해답을 내고자 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을 현재의 문제로 삼는 거요. 그 해답이란 말을 우리의 이상이라고 바꿔 말해도 마찬가지요.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우리가 바라는 미래가 다시 말해사 해답이오. 이상의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이오. 알겠소?”

“알겠습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찬동할 수 있는 얘깁니다. 그렇지만 어째서 해저 철도를 놓고 방파제를 쌓고 다리를 놓는 것만이 여러분의 이상이 되었을까요? 그리고…”

“누가 그것만이 우리의 이상이라고 했소? 우리는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오.”

강동우씨가 영일이의 입에 못을 박아 버렸다.

그러자 영일이는 기가 죽은 음성으로 더듬거리며,

“그거 아니었습니다. 뭔가… 분위기가… 하여튼 그런 것이 좀 이상했습니다. 뭔가, 아편 주사를 놓으시려는 것 같았습니다.”

우물쭈물 말하고 나서 자신이 얘기해 놓고도 너무 애매했던지 고개를 기웃거렸다.

사람들이 조롱하듯이 와 웃었다.

바로 그때, 온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사내 하나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홀안으로 구르듯이 뛰어들었다.

“동우야, 이러기냐? 동우야, 정말 이러기냐?”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피범벅이 된 얼굴로 굴러 들어오는 사내는 다름아닌 바로 선배님이었다.

사람들이 우당탕 자리에서 일어섰고 선배님의 동생인 헌책점 주인이 달려 나가 자기 형을 부축하며 선배님 못지 않게 울먹이는 높은 소리로,

“누구예요? 누가 이랬어요?”

외쳤다.

선배님은 피가래를 마룻바닥에 퉤 뱉고 나서 강동우씨에게 외치기 시작했다.

“동우야, 너한테 얘기하는 거다. 잘 들어. 네 아비는 빈대새끼다. 네 형들은 깡패다.”

강 영감을 손가락질하며 사람들에게,

“여러분, 저 빈대새끼를 보시오. 하, 나 더러워서. 여러분은 속고 있는 거요, 저 빈대 같은 영감이 언제 우리들 좋아라고 한 일이 하나라도 있소?

오늘 저녁 여기서 여러분들을 모아서 얘기하게 한 것도 정말 이 여수의 발전을 위해서 한 일인 줄 아십니까? 저 빈대 같은 영감이…”

“남형진!”

강동우씨가 분노에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왜? 내가 틀린 말 했어? 누구보다도 네가 잘 알 게 아니냐? 늬 애비가 어떤 동물이라는 건 누구보다도…”

“저 빨갱이놈의 새끼, 아가리를 찢어 줄 기다.”

강 영감이 사납게 외치며 이를 갈고 주먹을 쥐고 선배님에게 돌진하려 했으나 강동우씨가 붙드는 바람에 더 나아가지 못하고 분에 못 이겨 기절이라고 할듯이 펄펄 뛰며 그 우렁우렁하고 정력이 넘치는 음성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너 이 빨갱이놈의 자식, 뭐 처먹고 싶어서 이 행패냐, 말해라, 뭐 처먹고 싶어서 이 행패여?”

“아버지!”

강동우씨가 강 영감을 억지로 끌어당겨 의자에 앉히며 나무라듯이 말했다.

한편, 뭐가 어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싸움은 말려 놓고 봐야 한다는 듯이 한 떼의 사람들이 선배님을 둘러싸고,

“자네 왜 이러나 응?”

“자네 돌았는 모양이네.”

“형님, 나갑시다 나가요.”

나무라며 달래며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아버지를 좀 진성시켜 주십시오.”

강동우씨는 이제까지도 어리둥절하여 서 있는 부시장님께 강 영감을 부탁하고 나서 홀을 뚜벅뚜벅 가로질러 선배님에게 다가갔다. 강동우씨가 다가오는 걸 보자 선배님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길을 비켜 줬다.

자기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는 사람들과 승강이를 하느라고 지쳤는지 선배님은 숨을 씨근거리며 어지러운 듯 비틀거렸다.

헌책점 주인이 완전히 울상이 된 얼굴로 자기 형의 팔을 붙들고 서서 다가오는 강동우씨를 보고 있었다.

선배님의 앞에 서자마자 강동우씨는 느닷없이 선배님의 뺨을 한 대 올려 붙였다.

선배님은 흥분 때문에 초점을 잃은 눈을 번쩍 들었고 그의 동생이 자기 형 대신으로,

“왜 때려요?”

악에 받친 음성을 빽 내 질렀다.

“정신차려. 넌 지금 네 정신이 아냐.”

강동우씨가 침착하게 그러는 높은 소리로 말했다.

뺨을 얻어맞고도 잠시 동안 강동우씨를 씨근거리며 응시하고 있던 선배님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강동우씨를 얼싸안았다.

사내가 운다는 것은 어떤 경우에서든 우스꽝스러운 모양이다. 선배님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악에 받친 소리를 지르며 뛰어들어올 때엔 그를 좀 두려운 눈길로 바라보며 그의 편이 되어 주려고 하던 사람들도, 선배님이 갑자기 강동우씨를 얼싸안으며 울음을 터뜨리는 걸 보자, 아아 그 정도였던가? 뭐 별게 아닌 모양이군, 하는 식으로 김이 빠져 버렸다는 얼굴들로 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선배님이 울음을 터뜨리는 걸 보자 문득 강동순양의 신상에 무슨 일이 일너난 게 틀림없다는 염려가 생겼다. 아마 선배님은 강동우씨의 큰형이 되는 사람에게서, 동순이를 부산 이씨 댁으로 시집보낼 테니 그리 알고 사나이답게 깨끗이 단념하라는 뜻의 요구를 받았겠지.

그때 선배님은 무어라 앙탈을 했겠지. 선배님을 앙탈하는 말 속에 강동우씨 큰형의 비위를 건드리는 말이 있었겠지. 선배님을 두들겨 팼겠지.

선배님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됐겠지. 강동우씨네 식구가 모두 원망스럽고 미워져서 울부짖으며 뛰어온 것이겠지. 대강 그런 식으로 사태를 생각하고 있던 나로서는, 선배님의 느닷없는 통곡이 분명히 강동순양의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강동우씨가 울고 있는 선배님의 등에 한 손을 얹어 놓은 채 웅성거리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돌아서싼.

“여러분, 갑작스러운 일로 오늘의 모임을 여기서 끝마쳐야 하게 되었음을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오늘 미처 못다 한 얘기들을 다음 모임에서 계속하기로 합시다. 그러면…”

강동우씨의 폐회사 비슷한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강동우시의 가음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선배님이 고개를 번쩍 들고 눈물에 분노가 씻겨 버린 듯이 침착한 음성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추태를 부려서 죄송합니다. 더구나 저 때문에 이 모임의 좋은 분위기가 깨진 데 대해서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여러분, 그렇지만 제 얘기를 잠깐 듣고 돌아가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 부탁합니다.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여러분 부탁합니다.”

부탁합니다를 연발하면서, 아직도 코에서 흐르는 피를 벌써 시.뻘개진 손수건으로 닦으면서 선배님은 서 있는 사람들을 자리에 앉히려 돌어다녔다.

사람들이 자리에 앉고 장내가 조용해지자, 선배님은 비칠비칠 걸어서 강 영감을 마주 보는 자리고 가서 섰다. 그리고 얻어맞아 부르튼 입술 때문에 맹료하지 못한 발음으로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는 현명하신 여러분들 앞에서 한 가지 고백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강상호 선생님(아마 강 영감을 가리키는 듯)을 비롯한 그분 일가족에게 한 가지 부탁을 올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무슨 얘기부터 꺼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무슨 얘기부터 꺼내야 좋을지 모르는지 잠시 동안 고개를 숙인 채 피거품만 보글보글 내뿜고 있었다. 이윽고 고개를 들고) 얘기를 하자면 길어집니다만, 요컨대 저는 저기 앉아 게시는 강상호 선생님의 따님인 강동순양과 사랑하는 사입니다. 어떻게 알게 되어 어떻게 사랑이 깊어졌는가는 생략하겠습니다만, 동순양과 저는 감히 말씀드린다면 상대방 그 자체만을 잃어버리지 않고 소유하고 싶다는 순결하고 뭐랄까요, 진실한 사랑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럴까? 하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러분, 미혼인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은 결혼을 요구합니다. 누가 무어라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남녕의 결혼만이 진정한 가치를 가지는 결혼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저는 몇 가지 점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여기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계시니까, 남의 일 같지 않게 들어주시리라 믿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만…(또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여러분, 저는 아까 강상호 선생님의 말마따나 빨갱이의 아들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의 아버지는 공산주의자였단 말입니다…”

자기는 공산주의자의 아들이라는 선배님의 말에 나는 긴장했다. 여수가 저 유명한 반란 사건을 겪었던 곳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고, 동시에 지금 우리 나라 형편이 그런 말을 공공연히 떠들어도 좋은 형편에 있는지 어떤지에 대한 의심이 와락 들어서 선배님의 신변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선배님의 얘기 각도는 달랐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 앞에 고백합니다. 나는 빨갱이의 아들이라는 생각때문에, 사실은 아직까지 아무도 저에게 무어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필요 이상으로 비뚤어져 있었습니다.

비뚤어져 있었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사실 이상으로 저는 부잣집의 철없는 막내아들이나 하고 다닐 일과 말씨를 쓰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제 설명이 너무 부족해서 무슨 얘긴지 잘 모르시겠는 모양이군요. 가령 이런 겁니다. 누가 저에게 ‘사범 대학 나와 가지고도 왜 교사를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전 이 렇게 대답했던 것입니다. ‘그까짓 선생질 해 봐야 월급이 몇 푼 되어야지.’ 또 누가 ‘넌 사회에 대한 고나심이 없고 얄팍한 소설 나부랭이나 읽고 지내면서 실존이 어쩌지 허무거 어쩌니 하고 지낸다.

도대체 우리 나라 사람들에겐 빵이 더 급하단 말야, 빵이…’ 하고 저를 나무라면, 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넌 버러지가 아니면 빨갱이다.’ 제가 머리에 항상 기름칠을 하여 반들반들하게 해가지고 다니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옷에 항상 다리미질을 하여 깨끗이 입고 다니고, 구두를 항상 닦아 두고 넥타이를 매일 바꿔 매고 다니는 것을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이 안경, 이 안경은 도수가 없는 안경입니다.”

말하고 나서 손에 들고 있던 안경을 마룻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나는 선배님의 안경보다도 영일이의 안경에 흥미가 끌려 영일이 쪽을 봤더니, 과연 영일이 녀석은 질리는 바 있는지 손을 슬쩍 안경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선배님의 고백(?)은 계속되고 있었다.

“말씀드리자면 저는 제 나름으로 생각한 부르주아지를 흉내내려고 무척 애썼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저지른 과오에 대한 속죄 행위로서 그랫따고는 결코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요컨대 저는 ‘무언지’ 무서웠습니다. 저보다 더 빨간색을 싫어한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스페인 투우장의 검은 소도, 그리고 이승만 박사도 저보다는 덜 빨간색을 싫어했을 겁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중에도 어쩌면 불행히 공산주의자였던 아버지를 가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리고 그런 분들은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해 주실 줄 믿습니다만, 저는 항상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지내야 했습니다. 에를 들면, 길가에 나붙은 ‘방첩’ 포스터나 ‘이러이러한 조건을 가진 자는 우선 간첩이라고 의심하여 보라.’는, 저와는 아무 관계 없는 포스터만 보아도, 아이쿠 혹시 나를 간첩이라고 몰아댄다면 어쩔까, 아니라고 변명할 수도 없을 것 같다는 식으로 피해 망상증에 빠지게 되고,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이 정말 간첩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어서 자기 자신을 못 믿게 되고, 말하자면 항상자기 자신을 범죄자가 아닌가 의심하여 지내 왔고, 그래서 더욱 아니라는 확신을 자신에게 주기 위해 포마드를 머리에 더 두껍게 바르고 했단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포마드로써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을 씻을 수 있다면, 저는 조리 장수 쌈짓돈을 빚 얻어서라도 포마드 공장을 차리겠습니다.

넥타이로써 그럴 수 있다면 전 넥타이 공장을 차리겠습니다. 그따위로써는 결코 저의 제 자신에 대한 불신은 씻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전향 발표인지 뭔지 알쏭달송한 선배님의 연설은 계속되었다.

“그래서 여러분, 저는 얼마나 무기력하고 자기 불신에 가득 찬 세월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저는 지금 이 시간을 살고 있으면서도 항상 과거에, 다시 말씀드리자면 제 아버지의 아들로서, 그리고 아버지를 원망이나 하는 어린애로서 살고 있엇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강동순양을 사랑하게 되고 강동순양의 사랑을 받게 됐습니다. 그것과 앞에 얘기한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여러분들은 물으시겠죠? 큰 관계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큰

의미가 있엇단 말입니다. 한 여자에게서 사랑을 받음으로써 저는 비로소 어른이 되었던 것입니다.

남들은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왔던 것이고 일찍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것을 저는 강동순양을 사랑하면서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오늘은 어디까지나 나의 오늘이고 미래 역시 내가 개척해야 할 미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웃으시겠지만 저에게는 엄숙한 깨달음이었습니다.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남자의 입장에서는 그 여자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동시에 자기와 전세게에 대하여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저는 깨달았습니다. 책임 있게 살려면 때로는 남에게 요구해야 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 발벗고 나서서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깨달았습니다. 책임지기 위해서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흔히들 자유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만 제 경우엔 ‘책임지고 싶으니까 우선 자유를’이었습니다. 제가 욕망하던 자유란 제가 가지고 있던 강박 관념 또는 피해 망상증으로부터의 자유였습니다. 강박 관념 자체는 책임이 아닙니다. 가령, 책임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저으 책임은 아닙니다.

우선 저에게는 자유가 있어야겠고 그 다음에 진정한 나의 책임이 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강동순양이 저를 해방시켜 주었단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의 가장 훌륭한 증인이요, 변호사요, 가장 공정한 검사이며 판사인 것입니다. 저에게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강한 사람들은 아마 그 네 가지 역할을 모두 자기 자신에게 맡기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저는 그다지 강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저에게는 강동순양이 피룡했습니다. 아니, 어떤 여자이건 진실로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말하고 나서, 선배님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는 도대체 선배님의 얘기를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몇 사람이나 알아듣고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박학 다식한 강동우씨는 알아듣겠지만 그 아버지는 못 알아들을 것이고, 영일이는 알겟지만 그 옆에 앉아 있는 눈이 부리부리한 세관 직원은? 글쎄.사람들은 오로지 선배님의 기세에 눌려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내게는 생각되었다. 선배님이 다시 짖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런 강동순양을 지금 저는 빼앗기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빼앗아 가는 사람은 저기 앉아 게시는 강상호씹니다. 저분은 사회에 영향력이 큰 처지에 있는 사람입니다.

한 인간을 구원해 주는 사랑을 보호해 주어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분은 당신의 영향력을 더 확대하기 위해서 당신 정도의 규모를 가진 다른 사람과 손잡기 위해서 당신의 딸을 제물로 바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앞으로 우리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강동우씨조차 자기 아버지 편이 되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입나디가. 여러분, 여러분의 힘으로 저와 저의 사랑을 지켜 주십시오. 그리고 강 선생님, 자신의 위치가 어딘가를 뭉거운 마음으로 생각해 주십시오.”

애끊는 호소를 하고 나서 선배님은 비틀거렸다. 나와 선배님의 동생인 헌책점 주인이 얼른 선배님을 부축하며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성님, 이거 무슨 챙피에요, 나 참.”

골목을 나오면서 선배님의 동생이 울상이 되어 중얼거렸다.

“형님을 원망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형님께선 지금 뭔가 괴로워하고 있는 거예요.”

말해 놓고 보니 유치한 소리가 되어 버렸지만, 하여튼 내 기분은 그런 말이라도 해서 울부짖던 선배님을 위로하고 싶었다.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됨으로써 자기 불신을 씻을 수 있었다느니 하는 따위의 얘기는 나로서는 결코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러나 자기 자신을 범죄지라고 생각하며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의 그 은밀한 고통을 나는 이애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은 필요 없는 데에 정력을 많이 쏟아 버리고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일을 해야 할 때엔 지쳐 버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남의 심부름에는 자기 일처럼 열심히 쫓아다녀 주지만, 그리고 남에게는 항상 웃는 얼굴을 보여 주지만 자신의 일은 등한히 하고 자신에겐 항상 화난 얼굴을 보여 주지만 자신의 일은 등한히 하고 자신에겐 항상 화난 얼굴을 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겐 가장 즐거운 시간은 새벽이다. 새벽에 문득 잠이 깻을 때이다. 그 시간엔 그 사람은 자기의 웃음을 받았다. 모든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것이다.

칼로 얼굴을 찢어 주자, 내 웃음을 받으며 거만하게 흔들던 그 얼굴을 도끼로, 그 손을 짓이겨 주자. 알뜰히 나를 생각이나 해 주는 것처럼 내 등을 투닥투닥 두드려 주던 그 손을. 그 혓바닥을 뽑아 주자, 나의 작은 허물을 흉보고 비난하던 그 혓바닥을…

그러나 그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공상에 부로가한 것이다. 새벽의 맑은 빛이 자기에겐 잠깐 불러일으켜 준 자기에 대한 사랑 때문에 생긴 공상에 불과한 것이다.

골목 밖 한길은 흥청대고 있었다. 러닝셔츠 차림의 사내들과 원피스 차림의 여자들이 대부분 샌들을 신고 한 손에 부채를 들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며, 상점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빛을 받으며 한갈보게 오고 가고 있었다. 가까운 상점에서 과일 향기가 매울 만큼 진하게 풍겨 오고 있었다.

항구의 이 흥청대는 열므밤의 거리야말로 진정한 삶이며 진정한 자유 같았다. 얼마 전까지 내가 들어 잇었던 곳, 홀 안의 토론회면 강씨 집안 사람들의 표정을 살벌하기 짝이 없는 감옥 같기만 했다.

“성님, 어디로 갈까요?”

선배님의 동생이 선배님에게 물었다.

“어딜 가시든지 얼굴을 좀 닦으셔야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참, 서로 인사하지. 이건 내 동생이고, 여긴 미술 대학 다니는…”

선배님은 어둔한 음성으로 나와 자기 동생을 소개하는 얘기를 가로채서 나는,

“미술 대학이 아닙니다. 문리댑니다. 그나마 지금은 휴학중입니다. 아니 중퇴해 버렸습니다.”

라고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할 만큼 술술 말했다. 선배님의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으나 내버려 두고 나는 그의 동생에게 선배님의 몸을 사이에 둔 채 손을 내밀며,

“아창수라고 합니다.” 했다.

“남형돕니다.”

선배님의 동생이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형도가 근처 아이스케이크 상점에 가서 물수건 하나를 얻어 와다. 그걸로 선배님의 얼굴을 대강 닦고 우리는 선배님의 집으로 갔다. 선배님의 집은 산비탈에 빽빽이 들어차 있는 초라한 집들 중의 하나였다.

“선배님, 빨리 준비하십시오. 강동순씨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일이가 다급한 소리로 말했다.

“준비라니?”

앓는 소리조차 내며 누워 있던 선배님이 벌떡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영일이가 가져온 보고는 다음과 같았다.

선배님이 일장 연설을 마치고 나와 자기 동생에게 부축되어 밖으로 나가자마자 잠시 동안 어리둥절하여 앉아 있던 강 영감이 강동우씨엑 이렇게 묻더라는 것이었다.

“그자식이 나한테 애원을 한 거냐, 아니면 내 욕한 거냐?”

그러니까 강동우씨의 대답이,

“애원한 겁니다, 아버지.”

부시장 역시,

“강 선생한테 봐 달라고 부탁하는 얘기 같던데요.”

그러니까 강 영감은 우쭐해서,

“미련한 자식, 어렸을 때부터 애가 얌전해서 영자한테 중매해 주려고 했더니, 엉뚱하게 동순이를 건드려 가지고 얻어맞고 지랄이람.”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자가 누구죠, 하고 묻는 영일이의 말에 형도는,

“풍성 다방의 레진데, 그 영감이 다른 여자를 봐 가지고 낳은 딸이라는 소문이 있어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선배님은 상처투성이 얼굴을 끄덕이며,

“맞는 소문이야. 불쌍한 애지.”

하고 말했다. 영일이와 나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 유식한 체하던, 그리고 오동통한 게 참 육감적으로 보이던, 그리고 눈치로 보아 선배님을 짜가사랑하는 듯해 보이던 바로 그 아가씨라니.

그거야 어떻든 영잉띵이의 보고는 계속되었다.

강 영감이 그런 말을 하며, 부시장님을 비롯한 몇몇 유지들에게,

“이것 참, 죄송합니다, 흥이 깨져서. 다음 모임에도 꼭 참석해 주십시오.”

어쩌구 하며 한 사람 한사람에게 작별의 악수를 하고 있는데, 한칸에서 나가지 않고 웅성거리며 자기네끼리 무언가 가기하고 있던 한 떼의 젊은이들 중에서 전당포 주인이 앞으로 썩 나서며 강 영감을 부르더라는 것이엇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었다.

“조금 전 남형진시의 건에 대해서 한 마디쯤 변명이 있어야 하실 게

아닙니까? 아시다시피 저희들은 자신을 위해서도 의심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첫째, 저희들은 자기들의 사랑을 보호해 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것일가요? 둘째, 코피가 나도록 얻어맞고도 우리는 연설이나 한 번 하고는 사과 말 한 마디 듣지 않고 슬그머니 분을 참아야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까? 아시다시피, 이 자리엔 폭력을 비난할 수 있고 응정해야 할 어른들이 한두 분만 게시는 게 아닌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린 사람에 대한 얘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군요.

우리 젊은이들은 그 두 가지 점에 대해서 해명이나 변명을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강영감은 좀 질린 표정으로 하고 강동우씨가 자기 아버지 대신 무어라 입을 열려고 하는데 그보다 먼저 인상이 고약한 사나이가 나서서 ‘잔소리 말아, 건방진 자식들. 데모를 할 작정이야? 썩 가지 못해.’ 하고 소리를 꽥 질렀어.”

“그래서?”

“그 호통을 기세 등등하던 젊은이들이 그만 기가 꽉 질려서 조용히 물러나 버렸지.”

“병신 새끼들!”

형도가 분통이 터지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여튼 자세한 얘기는 가면서 하기로 하고 한 달쯤 여행할 계획으로 빨리 준비하세요.”

영일이가 선배님을 재촉햇다.

“여행?”

“한 달쯤?”

선배님과 형도와 내가 거의 동시에 외쳤다.

“신혼 여행이에요. 아니, 사랑의 도피 행각이죠. 강동순씨가 굉장한 결심을 했단 말입니다. 빨리, 빨리. 돈은 자기가 갖고 있다더군요.”

선배님은 멍해져 버린 모양이었다.

“가면 어디까지 가겟다구…”

멍한, 아니 침통한, 아니 감격에 찬 얼굴로 선배님이 중얼거렸다.

“빨리요, 빨리. 제기랄. 준비할 것도 없는 모양인데 부랄 두 쪽만 가지고

가는 거예요. 자 빨리.”

잠시 후 우리는 어느 으슥한 길가에 자리잡고 있는 아이스케이크 상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커다란 여행 가방을 옆에 놓고 강동순양이 팥비수를 먹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스케이크 상점의 문을 들어서면서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는 강동순양이 눈에 뜨이자마자 나는 먼빛에서도 우선 그 여자의 표정부터 살폈는데, 예상했던 불안한 빛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팥빙수를 즐기려고 잠깐 산보 나온 기숙사의 여학생같이 밝아 보였다. 우리가 다가서서 자리에 앉을 때도 역시 강동순양은 재미나는 놀이를 하기 위한 개구쟁이 친구들을 맞이하듯 했다.

“왜 그리 심각한 얼굴들을 하고 계세요? 덥지도 않은데 땀들을 뻘뻘

흘리시구…”

농을 하고 나서 강동순양은 자기 옆자리에 앉은 선배님의 얼굴을 돌아보더니 얻어맞아 부르트고 생채기가 난 얼굴을 손가락을 가지런히 하여 그 끝으로 마치 장난이 물건을 더듬듯이 쓸어 보였다. 그러는 강동순양에게 선배님은 강아지처럼 얌전히 자기 얼굴을 내맡기고 이썼다.

울컥 부러운 느낌이 들었다. 애인에 대한 자기의 감정을 다른 사람들이 있더라도 감추지 않는 것이 요렇게 멋지게 보이더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두사람이 우리 앞에서 키스를 했다고 하더라도 근사해 보이기만 했을 것 같았다.

강동순양이 짐을 뛰쳐나오게 된 과정은 간단했다. 짐을 싸 들고 저금 통장을 가지고 영일이에게 자기 결심의 대강을 얘기해서 선배님을 데려오라는 심부름을 시키고, 그래서 여기 와 앉아 있는 것이었다.

여기 오는 도중에 선배님은,

“이형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오?” 하고 나에게 물었다.

“무슨 일 말쓰이시죠?”

“유행가 식으로 말해서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데리고 도망가는 일

말이요.”

“…그거야… 선배님 자신의 가치 기준에 물어 볼 일이 아닐까요?”

내가 그런 대답을 하는데 영일이가 화를 발칵 내며,

“물어 보고 자시고 할 게 없어요. 이런 일은 우선 저질러 놓고 그 다음에 생각해 보시는 거예요. 아는 체하고 자꾸 생각만 하는 사람들에게 이 일을 의논해 보세요. 대답은 뻔합니다. 18세기도 아닌데 오늘의 세상에서 도망가면 어디까지 가겠느냐느니 도망가더라도 정말 불행해지지 않으리라고 자신하느냐느니 따위의 대답밖엔 안 나올 거란 말예요. 인간이

있는 한 지구 위엔 1세기도 있고 18세기도 있고 20세기도 있는 법예요.

지금 당장에도 말예요. 어떻게 그 18세기를 찾아서 그 구멍 속에 들어가 숨느냐가 문제죠. 그리고 불행해지느니 않느니 하는 것도 어떤 경우든지 확률은 이분지 일이거든요. 우선 단행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수습하는 거예요. 성공했던 모든 혁명은 그랬어요.”

혁명이란 말에 내가 웃으니까,

“왜 웃어? 지금 남 선배님한테는 강동순씨가 대통령 자리와 다를 게 없단 말야. 구원이냐 파멸이냐, 이 국면이란 말야.”

한편 선배님의 동생인 형도는 오는 동안 내내 말이 없었다.

“어디로 가실 계획이십니까?”

영일이가 강동순양에게 물었다.

“그런 건 물으실 권리가 없어요. 지금 우리는 누구의 질문도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아도 이젠 물러가 주시겠어요?”

강동순양의 표정은 부드러웠으나 쌀살맞은 얘기를 영일이와 나에게 했다.

“아냐, 동순이, 얘기를 좀…”

선배님이 말하려고 하자 강동순양은 자기 손을 얼른 선배님의 입 앞에 갖다 세우며,

“그건 우리끼리죠.” 했다.

나와 영일이와 형도는 그 연인들만을 남겨 놓고 다른 좌석으로 옮겨 앉았다. 강동순양의 태도에서 나는 묘하게도 그 두사람에 대하여, 아니 전세계에 있는 연인들에 대하여 부러움과 질투와 열등감이 뒤섞인 복접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우리 탁자 앞으로 다가와서,

“무얼 드시겠어요?” 하는 여자 종업원의 얼굴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신성일이를 짝사랑하여 서울로 갔다가 자기 오빠한테 끌려서 고향으로 돌아간다던 기찻간에서 만났던 저 왜호박 같은 섬 아가씨였기 때문이었다.

“웬일이세요?”

나는 반갑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여 왜호박 같은 큰 소리로 말했다.

왜호박 아가씨는, 내가 이 상점에 들어올 때부터 봐서 알고 있었던지 뜻밖이라는 표정은 아니고, 그 대신 내가 좀 지나치게 반가워해 주는 것이 부끄러웠던지 영일이부터 뒤로 배며 입을 손으로 가져가 해죽 웃었다.기차에서는 한 번도 못 본 웃는 얼굴이 지금 보니 꽤 깨끗하고 귀여웠다.

“아니 이 아가씨, 구면이신데?”

영일이가 고개를 내밀어 아가씨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하니까, 왜호박 아가씨는 더욱 수줍어했다.

“여긴 어떻게? 취직하셨군요?”

내가 묻자 여전히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해죽해죽 웃기만 하다가 겨우 입을 떼어,

“이모 집예요.”

“오오.”

“어떻게 나오셨어요?”

한 번 입이 벌어지니까 말이 곧잘 나오는 모양이었다.

“아이스크림 먹으러 왔쬡.”

“아이 참… 기차에서 표도 없이…”

차표도 없이 어떻게 승무원들은 손아귀에서 빠져 나왔느냐는 얘긴 모양이라고 생각하는데 영일이가 얼른,

“다 수가 있어요, 수가…”

“오빠는 어디, 집으로 돌아가셨어요?”

내가 물었다.

“예.”

그러고 나니까 더 할말이 없엇다.

나는 그 여자의 겨드랑이를 살펴봤다. 그러나 겨드랑이가 찢어진 원피스 대신 아가씨는 점무늬 있는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 여자보다 몸집이 훨씬 큰 여자를 위하여 지어졌었던 옷인 듯, 그 여자에게는 헐렁헐렁한 자루 같은 게, 아니 도무지 유니폼이라는 게 그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촌스럼울 더욱 돋워 줄 뿐이었다.할말이 없어지니까 그 여자와 나는 백치들처럼 괜히 빙긋빙긋 웃기만 했다.

주문을 받기 위해서라기보다 반가운 사람 곁을 떠나기가 싫은 듯한 태도로 아가씨는 우리 탁자 곁에 서 있었다.영일이가 아이스크림 셋을 시키니까 그제야 아가씨는 냉동기 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제법 색을 쓰는데.”

영일이가 달려가는 아가씨의 뒷모습을 보며 이죽거리는 게 나는 어쩐지 싫었다. 싫다는 감정이 금방 얼굴에 나타났는지, 영일이는 어디서 배워 왔는지, 영구 해적들처럼,

“핫 핫 핫 하.” 하고 웃고 나서,

“네 기분 알겠어. 지금 내 기분도 그렇거든.”

무엇이 네 기분이고 무엇이 내 기분인지 알 수 없었다.

형도는 자기 형과 강동순양의 좌석 쪽만 심각한 표정으로 주시하며

묵묵히 앉아 있었다.

“형과 강동순씨가 하려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형도에게 물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형도가 대답했다.

“형이 계셔야만 생활비를…”

“그거 괜찮아요. 언제라도 자기가 돈 벌어 온 적은 없으니까요.

어머니하고 제가 식구들을 먹여 살렸죠. 그런 점은 상관없는데…”

“그럼 다른 게 염려되시는 모양이군요.”

“아니 염려라기보다…. 오늘 저녁은 어쩐지 다들 미쳐 있는 거 같아요.

세계에서 바다를 가장 잘 그리겠다고 떠들어댄 제 자신도 말입니다.”

“미치다니요?”

영일이가 괘씸한 듯이 말했다.

하긴 형도의 말대로라면 영일이가 제일 심하게 미쳤으렷다.

“남형, 이게 정상적인 겁니다. 정상적인 말예요…”

영일이가 형도에게 타이르듯이 말하고 있는데, 얘기가 잘 됐는지 여행 가방을 든 강동순양과 선배님이, 그리고 다른 쪽에선 아이스크림을 세 개 든 왜호박 아가씨가 동시에 우리 좌석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가오는 선배님과 강동순양의 얼굴을 살펴보니 거사를 앞둔 혁명 분자들의 그것처럼 비장한 표정인 게 아마 두 사람간에 얘기가 잘 된 모양이었다.

“나갈까?”

다가온 선배님이 말하는데 왜호박 아가씨가(이름이 뭐더라?) 아이스크림 세 개를 우리 탁자 위에 놓으며 나에게만 살짝 미소를 보이고 나서 돌아갔다.

“뭐 도울 일이 없겠어요?”

날라 온 아이스크림 때문에 우리 좌석에 눌러앉는 선배님에게 영일이가 말했다.

선배님과 강동순양 어느 쪽에서도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여수 지역 사회 문제 연구소’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영일이가 또 선배님에게 말했다.

역시 대답이 없었다.

“전, 그 연구소에 대해서 참 좋게 생각하고 있거든요. 참, 강동순시, 강동우씨에 대해서 얘기 좀 해 주실 수 있겠어요?”

“무슨 얘길 말이죠?”

“아무 얘기라도 좋습니다. 전 그분에게 참 흥미가 있거든요. 전

그분에게서…”

“전 장영일씨에게 흥미를 느껴요. 시간만 넉넉하다면 현미경 밑에 놓고 관찰을 좀 했으면 좋겠어요.”

강동순양이 말했다.

“제게 흥미가? 하아, 선배님이 질투하시겠어요.”

“영리한 가난뱅이. 그렇죠?”

“제가요? 어떤 뜻일까요?”

“별로 깊은 뜻은 없어요. 가난하기 때문에 불쌍하게도 책으 많이 읽으셨죠. 책을 많이 읽으셨으니까 불쌍하게도 스물 두서너 살에 벌써 늙어 버리셨죠. 늙어 버렸으니까 불쌍하게도 남에겐 관대하고 자신에겐 엄격하죠. 불쌍한 불쌍하신 늙은이…”

“도대체 누가 그 불쌍한 늙은이라는 거죠?”

영일이가 모욕당했다는 붉어진 얼굴로 물었다.

“장영일시 말예요. 절 도와 주신 분에게 감사의 뜻으로 드리는 충고예요.

동우 오빠를 좋게 생각하고 계시죠?”

“…”

“이제 우리와 헤어지고 나면 곧장 우리 집으로 가시겠죠?”

“…”

“가셔선 동우 오빠에게 저와 남형진씨가 도망갔다고 알리시겠죠? 그리고 그들이 도망간 것에 대해서 찬성 내지 방관하라고 설득하시려고 하셨겠죠?…”

“잘 아시는군요.”

영일이가 투덜댔다.

그럭저럭하는 사이에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다 먹었다. 그리고 앞장서서 나가는 선배님의 뒤를 따라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나올 때 게산은 강동순양이 했는데 왜호박 아가씨가 눈물을 머금은 듯 야릇한 눈으로 나에게 미소하며,

“또 오세요.” 했다.

어쩌자는 것인지 그 상점을 나오는 내 발은 무거웠다.

상점 밖으로 나왔을 때 강동순양이 나와 영일이를 향하여 돌아서며,”우리 집으로 가시겠어요?”

“사실은 거기밖에 잘 데가 없거든요. 내일부턴 아마 제 엉터리 그림 솜씨로 카바레 실내 장식을 해야 할 모양입니다.”

내가 대답했다.

“실내 장시 건도, 자신이 없으면 아예 그만두는 게 나을 거야. 동우가 그릴 줄은 몰라도 보는 눈은 높거든.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 가서 형도하고 며칠 지내다가 돌아가는 게 어떨까?”

선배님이 말하고 형도도 그러라고 우리에게 권했다.

나는 살아난 듯 기뻤다.

그래서 내가 마악 오케이 하려는 데 영일이가 무슨 생각이 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두 분의 행복을 빕니다. (형도에게) 어쩌면 이따가

재워 달라고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오세요, 오세요.”

“안녕히”

“안녕히 가십시오.”

“안녕.”

그들은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갔고 나와 영일이만 뎅그머니 남았다.

우리는 배들이 닻과 불빛을 바다에 내리우고 조용히 잠들어 있는 부두로 갔다.

부두는 예상보다 한적했다. 가마니 뜯은 것을 돗자리 대신 깔아 놓고 앉아서 바람을 쐬고 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드문드문 보이고 배 위에서 전등을 내어 걸고 정비 작업을 하고 있는 뱃사람들이 보였다. 어디선가 서투른 기타 반주에 맞춰 부르는 사내들의 노래소리가 들려 왔다. 축대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이 항구의 깊어 가는 밤을 더욱 조용하게 해 주는 것 같았다. 나와 영일이는 약간 비탈진 축대에 앉았다.

“어디 아프니?”

이 말 많은 친구가 선배님 일행과 헤어져서 여기가지 오는 동안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게 이상해서 내가 물었더니,

“좀 생각해 볼 게 있어.” 하고, 영일이는 대답했다.

하긴 나도 생각할 건 많았다. 아니다, 나의 경우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게 너무나 많았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리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속이 뒤틀리고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져서 황급히,

“야, 실컷 뛰고놀 데 없을까, 가자 가.”

말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지만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동안에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은 벌써 내 머리털을 움켜쥐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떻게 됐을까?’ 제기랄, 돌아가셨든지 살아 계시든지 결판은 나 버렸을 게 아닌가. 전등은 초저녁에 켜는 것이니가. ‘강동우씨네 집에 들어가야만 할 것인가?”

“야, 그 집에 들어갈 거니?”

내가 영일이에게 물었다.

“그건 네가 결정해, 네가 실내 장식을 해야만 우리는 그 집에서 밥을 얻어 먹을 수가 있는 거니까. 난 덤으로지만 말야.”

말하고 나서 영일이는 다시 아까 하던 생각을 계속하는 듯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나는 해초가 버석거리는 축대에 벌렁 누워 버렸다.

별들이 쏟아질 듯이 하늘 가득히 반짝이고 있었다.

문득 나느 살벌하고 외롭게 느껴져야 할 이곳이 어쩐지 다스하게 느껴지는 것을 깨달았고 그리고 그것은 얼마 전에 아이스케이크 상점에서 다시 만난 왜호박 같은 아가씨 때문인 것을 깨달았다.

“난 말야…”

난 영일이게만이라도 그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남십자성을 발견했어.” 하며 손으로 남쪽 하늘을 가리켰다.

“이봐, 이봐. 여긴 북반구란 말야.”

영일이가 유식한 체 말했다.

두꺼비 같은 자식, 내가 남십자성을 발견했다는데 잔말이 많긴.

두꺼비야, 두꺼비야 난 남십자성을 발견했단 말야. 나는 미소하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영일이가 이상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넌 생각하고 있어라. 나 다녀올 데가 좀 있으니까.”

나는 영일이에게 말하면서 일어섰다. 그리고 축대의 비탈을 내려가서 바다에대고 거창하고 물줄기를 뽑았다.

“여기서 기다려어!”

축대 밑에 선 채 영일이에게 외치고 나서 나는 어둠 속에 영일이를 남겨 둔 채 뛰기 시작했다.

극장이 파했는지 와글거리는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고 밀려가고 있었다.

아이스케이크 상점 앞에서 헐떡이는 가슴을 달래며 멈춰서 보니 왜호박 아가씨가 오늘 장사가 끝났는지 나무로 된 덧문을 문틀에 끼워 넣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 나서 슬금슬금 다가갓다.

다가서면서 나는 이 아가씨의 이름을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다가가서 이름을 부른다면 아가씨는 얼마나 좋아할 것인가! 빚쟁이와 경찰 외의 누군가에 의해서 이름을 불리운다는 건 항상 기쁜 일이다. 얼마나 좋아할 것인가! 그리고, 아니 얼마나 좋아할 것인가에서 그치자. 아무리 애:써도 그 여자의 이름은 생각나지 아낳았다. 이 여자가 섬에서 서울로 도망가면서 자기 오빠에게 써 놓은 편지를 나는 보았었고, 거기에 이 여자의 이름이 있었떤 건 생각나지만 그러나 그 이름이 무엇이었던지는 생각나지 아낳았다. 생각나지 않은 채 나는 아가씨의 곁으로 다가갔다.

상점 안에서는 다른 종업원 아가씨 두 명이 탁자를 정리하고 청소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일이 끝났어요?”

갑자기 등뒤에서 들려오는 사내의 말소리에 깜짝 놀란 얼굴로 돌아보다가 아가씨는 반가운 듯 미소를 크게 지었다. 그러나 미소는 잠깐 곧 불안한 얼굴이 되더니 상점 안을 살폈다. 불안한 얼굴로 누가 우리를 보지 않나 하고 상점안을 살피는 걸 보자, 나는 내가 지껄여야 할 많은 말이 절약되어 버리는 걸 느꼈다. 말하자면, 아가씨는 나에게 벌써 유혹당해 버린 것이었으니까.

“저기, 저 전봇대 밑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말하고 나서 나는 붉어진 얼굴로 무어라 입을 떼려는 아가씨를 내버려 두고 얼른 그 자리를 떠났다.

상점이 멀리 보이는 전봇대 밑에서 나는 발을 멈추었다. 담배가 피우고 싶었다. 그러자 나는 오늘 오후 내내 한 대도 피우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강동우씨에게, 담배도 피우지 안 피워 모두 착실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전매청에 폭탄을 안고 달려가겠다.

혹시 꽁초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 호주머니를 뒤졌지만 겨우 깨닫고 보니, 내가 입고 있는 옷은 몸에 너무 큰 강동우씨의 옷이었다. 바지 호주머니에서 영일이의 시계 잡힌 돈을 발견한 건 전연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었기 때문에 정말 기뻤다.

꺼내어 세어 보니 거금 삼백 원하고도 오십 원이 있었다.

우선 담배부터 한 갑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주위를 돌아보는데 내 등뒤에 영일이가 바싹 다가오며 어둠 속에서 안경을 번쩍이며 서 있었다. 나는 처음엔 깜짝 놀랐고 다음에 무안해져서 히죽 웃었다.

“너무 늦었어.” 하고 영일이가 말했다.

하긴 곧 통행 금지 시간이 될 게다. 그러나 어딘가인가가 보이지 않는 바닷까지만 간다면 나와 나의 아가씨는 아무에게도 들킬 리가 없을 게다.

아니 호주머니에서 돈을 발견한 이상, 계획을 바꾸어도 좋지 않을까? 가령 부두에 흔하게 널려저 있는 여인숙에라도 숨는다면?

“괜찮아.”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보자. 강동우씨한테는 적당히 얘기해 줄게.”

영일이가 발길을 돌리며 말했다.

그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자 나는 그와 함께 집으로 들어갈 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쇼를 하고 물러가 버린 텅 빈 무대에서 이제부터는 나 혼자만의 쇼가 시작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거짓말하고 나왔어요.”

아가씨의 쌔근대는 속삭임이 등뒤에서 들려 왔다.

흠쳐라, 여름을”곧 들어가야 해요. 배가 아파서 약 좀 사 가지고 오겠다고 말하고 나왔어요.”

아가씨는 나를 따라 걷긴 걷지만, 불안해 못 견디겠다는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갑자기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싶은 생각이 달아나 버렸다.

매끈매끈한 말을 여자의 귀에 속삭일 재주도 없었지만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아무 말 하지 않더라도 여자는 내가 바라는 것을 미리 잘 알아서 나에게 줄 것 같았고, 또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한편, 여자가 오랫동안 사랑해 온 남자에게 둘만의 비밀을 의논하듯 한 태도로 나에게 대해 오는 것이 예상했던 것보다는 그다지 재미나지 않았다. 내가 한 시간 전에 강동순과 선배님 사이에 오가는 눈짓과 말과 분위기에서 세상에 있는 못 연인들에 대하여 질투를 느꼈던 것도, 막상 연인들 자신이 느끼는 것은, 지금 내가 이 아가씨에게서 느끼는 바와 같이 심심한 것이라면 별로 부러워할 것도 아닌 것 같았다. 하기야 우리는 아직 연인은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 이 여자는 애인이 아직 아니다. 여자 편에서도 마찬가지겠지. 그 여자의 애인은 신성일이다. 말하자면 신성일이로서 대표되는 남성의 신기루이다. 용모도 예쁘지 않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가난한 시골 처녀—우리 나라 대부분의 처녀들이 이러하다—들에게도 감수성이 배당되어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문득 기이하게 시작되었다. 마치 원자 물리학을 연구하는 흑인 학자를 보았을 때 느낄 수 있을 듯한 기이함이었다.

몇십 년 후, 이 쳐녀가 감수성 때문에 저지른 짓의 결과만을 흉터의 딱지처럼 온몸에 붙이고, 그러나 감수성 그 자체는 이미 잃어버린 나이가 됐을 때, 오늘 밤을 무어라고 할까.

기차에서 우연히 한 대학생과 마주 앉게 됐다. 별로 말을 주고받지도 않고 헤어졌는데 다시 우연히 만났다. 곧 통행 금지 시간이 되어가는 늦은 밤에 나를 불러냈다. 그리고 사내는 야수처럼 달려들었다. 난 당했다. 아마 이런 식의 삭막한 사실만이 그 여자의 기억의 책상 위에 나열되겠지.

그러나 어쨌든 지금 이 여자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마치 그 둔한 짐승처럼 생긴 흑인에게도 고도의 수학적인 계산을 할 수 있는 두뇌가 있듯이, 이 별로 잘생기지 못한 용모와 낮은 교육 수준에도 불구하고 신이 배급해 준, 세상 어느 곳에나 살고 있는 어떠한 여자들과 마찬가지고 배급받은 감수성이라고 나는 생각했고 나의 생각이 맞기를 바랐다. 다만 어쩐 여자들은 그것을 펜이나 붓이나 음성이나 손가락이나 발이나 눈으로써 표현하지만, 이 여자는 그것을 자긍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나는 나와 함께 보낸 이 밤이 그 여자에겐 자기의 일생 중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은 밤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얼마나 독선적인 바람일까? 나는 이제부터 그 여자에게서 뜨거운 태양을, 기름처럼 무겁고 번쩍이고 맑은 파도 이제부터 그 여자에게서 뜨거운 태양을, 기름처럼 무겁고 번쩍이고 맑은 파도를, 숨찬 갯바람을, 여름을 짜낼 작정인 것이다.

마치 레몬을 짜듯이 짜낼 작정인 것이다. 내가 바라야 할 것은, 그러므로 차라리 이 여자가 싱싱한 레몬이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여긴 처음이세요?”

내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쳤는지 아가씨가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고 대답하려다가 나는 내가 왜 이 아가씨와 얘기를 나누려고 하지 않는가 하는 이유를 비로소 깨달았다. 말이란 어차피 두뇌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두뇌란 거의 항상 나와 남 사이에서 이간지릉띵 잘 하는 소문쟁이, 훼방꾼, 목사님인 것이다.

한편, 지금 나는 물이 가득 찬 컵을 한쪽 손바닥에 받치고 가듯이, 여자를 조심조심 어떤 한 곳으로 몰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는 데 가장 방해를 할 염려가 있는 존재야말로 바로 나의 두뇌이며 나의 말인 것이다.

왜 두뇌의 신경 한 올 한 올까지도 모두 나의 이 뜨거운 욕망에 가담하여 주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주지 않는’ 게 아니라 ‘주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발뒤꿈치처럼 두뇌의 일부분은 ‘무엇’엔가 부대끼고 부대껴서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모두들 자기의 그 굳어진 부분들 때문에, 한 방향으로 나란히 걷다가도 돌아서기도 하며 쓰다듬던 상대방의 볼에 주먹질을 하기도 하는 것이리라.

“화나신 것 같네요.”

아가씨가 제법 여자답게 물어 왔다. 나는 미소를 크게 지어 가지고 고개를 저었다. 저울의 한쪽에 이 아가씨의 말이 있다면 다른 한쪽에

놓아야 할 것은 나의 침묵, 그리고 고갯짓, 그리고 미소지어야 한다고 나는 게산했던 모양이다. 그래야만 저울은 수평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계산했던 모양이다.

어디서 야경꾼의 딱딱이 소리가 들려 왔다.

“저건 무슨 소리예요?”

섬에서만 자란 아가씨에겐 귀에 익지 않은 소리였던 모양이다.

“야경꾼이 치는 딱딱이 소리…”

“오매, 집에 들어가야겠네요.”

우리는 걸음을 멈췄다.

폐선인지 수리중인지 배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커먼 덩지가 해안을 따라 난 길가에 그 용머리를 올려 놓고 있는 게 보였다.

반딧불이 아가씨의 머리 위를 스칠 듯이 날아갔다. 갯바람이 팔뚝에 소름을 돋게 했다. 해안의 축대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소란했다.

나는 물끄러미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뚜렷이 보이는 그 못난 얼굴, 짤막짤막한 몸짓, 이건 결코 물이 가득한 컵도 아니고 뜨거운 태양도 출렁이는 파도도 아니라는 느낌이 문득 들었다.

“밤이 샐 때까지 걸어 보지 않겠어요?”

내가 말했다.

그러자 여자는 갑자기 감동해 버린 눈치였다. 나는 자신은 아무런 분위기도 느낄 수 없는 나의 얘기에서 무언가 감동할 만한 것을 찾아낸 아가씨의 감수성을 나는 새삼스럽게 신뢰하고 싶었다.

나는 아가씨의 어깨를 한 손으로 감싸 안고 걷기 시작했다.

어깨에 손을 얹는 순간부터 떨리기 시작한 아가씨의 몸은 근처의 여인숙 문턱을 넘어서 시큼한 땀내로 가득 찬 작은 방으로 들어가 옷을 벗길 때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그 방의 어두운 밑바닥에서 여자와 나는 걷기 시작했다.

나의 여름이 내 팔을 베개삼아 베고 쿨쩍쿨쩍 울기 시작했다. 얇은 칸막이로 나누어진 방들이었기 때문에, 여인숙 안은 온통 과즙처럼 끈적끈적하고 촌충처럼 마디지면서 긴 소리들로 낮게 소란스러웠다.

내 못생긴 여름이 숨죽여 우는 것을 나는 말릴 생가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시원한 게 먹고 싶을 뿐이었다. 예를 들면 배나 오이나 사과나, 아니 냉수라도… 한 팔은 내 여름의 땀내나는 머리가 차지하고 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자유로운 다른 팔은 물주전자에 손이 닿지 않았다.

아가씨의 울음이 끝나기를 나는 마른 목구멍에 물 대신 바람을 보내 주며 조용히 기다렸다.

이것이 여름일까? 그래 이것은 여름이다. 비치 파라솔, 눈부신 백사장, 검푸르고 부드러운 파도, 빨간 수영복, 풍만한 아가씨의 웃는 얼굴, 하얗고 가지런한 이빨, 짧기 때문에 유쾌한 자유, 그것들은 남의 여름이다. 나의 여름은, 차표 없이 불안한 기차 여행, 신분을 속여 맡는 일거리, 땀내음에 찌든 아가씨, 겁탈 같은 유혹, 비린내 나는 여인숙에서의 정사, 그러고 나면 기다리고 있는 괴로운 휴식과의 만남일 뿐이다.

“이젠 그만 울어.”

아가씨의 뺨을 가볍게 토닥이며 내가 말했다.

“울지 않으려고 했어요. 이럴 땐 대개 울지 않거든요…”

나는 아가씨가 무슨 얘길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지만 너무 아파서…”

우리는 한동안 조용히 누워 있었다.

아가씨가 싫을 만큼 뜨거운 숨결을 내 귀뺨에 내쉬며 속삭이기 시작했다.

“이젠 이름을 알으켜 주세요.”

“아…”

“제가 묻기도 전에 미리 이름을 말해 버리실까 봐 조마조마했어요. 이젠 제 이름도 물어 주세요.”

나는 잠깐 동안 어리둥절 했다.

그러자 제기랄 이 냄새 나는 여름이 어느 영화 장면을 흉내를 내자는 것을 나는 알아차렸다.

“이름은 헤어질 때 물어 보는 거야. 그러기로 돼 있거든.”

나는 팔에서 여자의 머리를 내리고 일어나 앉아서 물주전자를 집어 들며 말했다.

“…그럼…”

여자가 무언가 말하는 것을 머뭇거렸다. 물은 찝찔하고 미적지근했다.

“응?”

“그럼, 헤어질 게 아닌가요?”

나는 누운 채 어둠을 통하여 내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는 여자의 작고 동그란 얼굴을 오랫동안 내려다보았다. 나는 다시 여자에게 내 한쪽 팔을 빌려 주었다.

여자는 그 이상 묻지 않았다.

우리 얼굴의 맞은편 벽에 액자가 걸려 있는 게 밖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빛덕분으로 보였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는 식별할 수 없었다. 내게는 과일을 그린 그림 같았다.

“저 그림, 무얼 그린 것 같지?”

“어떤 거요?”

“저거.”

“먼저 말해 보세요.”

“난…과일 같아.”

“…전 꽃 같아요.”

일어나서 불을 켜고 보니 장미꽃이 다섯 송이였다.

여자가 잠이 드는 것을 보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사환을 깨워 대문의 자물쇠를 열라고 하여 나는 밖으로 나왔다.

문 밖은 한길, 한길의 저쪽은 허무 같은 바다였다. 멀리 외등 밑으로 이 깊은 밤에 창녀인 듯한 여자를 하나씩 낀 젊은이 둘이 술에 취한 걸음걸이로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먼 눈에도 하나는 영일이 같았고, 하나는 선배님 같았다.

비틀거리며 가까워 오는 오밤중의 취한들은 분명히 영일이와 선배님이었다. 사라으이 도피 행각이 실패한 게 틀림없었다. 술집 작부들임에 틀림없어 뵈는 여자들이 재미난 듯, 깔깔거리며 영일이와 선배님을 하나씩 맡아 부축하여 오고 있었다.

영일이는 고래고래 외치며 오고 있었다.

“병을 달란 말야, 병을. 이봐요, 색시.”

“이봐요, 총각.”

작부가 영일이의 흉내를 냈다.

“요게.”

작부의 머리에 군밤을 주더니,

“이봐, 색시.”

“넷.”

“암 가졌어? 암. 가졌으면 나한테 좀 떼 달란 말야.”

“암이 뭐예요?”

“힝. 니까짓 게 암을 가졌을 리 없지. 끽해야, 임질이나 매독이겠지.

임마, 그런 건 나도 가졌어. 난 건강하고 싶어, 건강하고 싶단 말야. 오, 내가 암을 가졌다면, 난 그 영감을 죽일 수 있단 말야. 이봐요, 선배님!”

“왜애?”

선배님은 정신이 오락가락한 모양이었다.

“죽일 수 있다니가. 그 영감을 죽일 수 있단 말예요.”

“찌랄허네.”

“찌랄이 아니라니까.”

꽥 소리 지르고 나서 취한 사람 같지 않게 또렷하고 차분한 음성으로,

“하지만 두고 보세요. 강동우, 강동우가 죽이겠죠. 자기 애비를 서서히 죽일 거란 말요. 목을 졸라서 이렇게 서서히… 서서히…”

그러자 영일이 몫의 작부가 깔깔대며 영일이의 목을 조르는 시늉을 했다.

“요렇게 요렇게 요렇게…”

듯 없이 영일이의 말을 흉내내기도 했다.

영일이가 허리를 구부리는가 했더니 벌써 토하기 시작해가다. 작부가 영일이를 한길의 가, 바다가 시작되는 축대 위로 끌고 갔다.

선배님 패는,

‘토하는구나, 토하는구나.’ 읊조리며 영일이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축대

밑으로 다리를 내려뜨리고 앉아서 ‘바람 찬 돛대머리 갈매기 슬피 울어…”

어쩌구 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영일이는 괴로운지 ‘욱, 욱, 하… 욱, 욱, 욱, 하…’ 하고 있었다.

나는 문득, 소리밖에 가지지 않는 이 밤 바다가 영일이가 토해 내는 오물과 선배님과 그의 작부가 부르는 유행가 소리에 더럽혀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 토했는지, 네 사람은 다시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선배님과 그의 작부는 노래를 계속하고 있었고 영일이는 잠잠했다.

나는 어두운 바다를 향하여 돌아섰다. 그들이 내 등뒤를 지나기를 나는 기다렸다.

이 시간에, 나의 여름이 여인숙의 비린내 나는 방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고, 태양도 형태도 빛깔도 다 잃어버리고 오직 소리만, 저 괴로운 신음 같은 소리만 가지고 버둥거리고 있는 바다야말로 비로소 내 몫의 바다인 듯이 생각되어 놓쳐 버리고 싶지 않은 이 시간에 나는 영일이와 선배님을 그냥 보내고 싶었다. 그들은 내가 아는 한, 날이 밝으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얼마든지 어디서든지 만날 수 있고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나로서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내 연인이 잠들어 있는 여인숙의 대문을 두드리고, 그리고 빈방이 없다는 사환의 졸린 음성을 듣고, 그리고 거리의 저쪽으로 멀어져 갈 때, 내가 영일이를 잠깐 붙들고 싶었던 것은 ‘강동우씨가 화가 나 있지는 않더냐? 내일 실내 장식을 하겠다고 찾아가면 받아 주지 않을 눈치는 아니더냐?’고 묻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어둠 속에 오래 묻혀 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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