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그녀가 경험한 졸업식은 하나같이 추웠었다. 그녀 자신의 졸업식을 비론해서 아들딸의 각급 학교 졸업식의 공통점은 혹독한 추위였다. 그러나 가장 추운 졸업식은 교장 관사의 따뜻한 아랫목에서 목소리로만 듣던 시골  초등학교 졸업식이었다. 시골 공기는  도시보다 보통 3,4도는 더 춥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도시 아이들보다 입성이 부실한 시골 아이들이  얼마나 추울까 하는 최소한도의 배려조차 없이 교장의 졸업식사는 장장  반시간 이상 계속됐다. 해마다 같은 소리였다. 짖어대듯 정열없는 고성도 변함이 없었다.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녀는 자신의 분노를 보태어 실의까지도 감지할  수 있었다. 귀를 틀어막아도 보고,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어보아도 그 소리를 참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언 발이 결국은 무감각해지듯이 들끓는 분노가 체념으로 잦아들 무렵에나 교장의 식사는 끝났다. 그녀는 남편 직장과 겨우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고 있다는데  절망적인 염증을 느꼈다. 교장선생님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후기 졸업식은 처음이었다. 후기 졸업식을 코스모스  졸업식이라고도 한다는 소리를 어디선지 들은 것 같지만 그 가냘픈 꽃들이 피어나게 할 산들바람이 스며들 여지가 있을 것  같지 않게 늦더위는 견고하고도 끈끈했다. ‘파바로티’라는 밝고 넓은 찻집 안은 별천지처럼 냉방이 잘돼 있었다. 갑작스러운 냉기가  데친 토마토처럼 농익은 신열을  알팍하게 개칠해서 그녀의 감각을 헷갈리게 했다. 종업원들은 다들 타이츠처럼 몸에  착 달라붙는 검정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몸매는 청년이라기보다는 소년처럼 군더더기 없이 청순하고 깡말라 보였다. 저런 걸 유니섹스라고 하는 걸까. 여자인지 남자인지 도저히 분간이 안되는 젊은이들이었다. 하나같이 화장기 없이도 얼굴은 희고 곱살하고, 정결한 생머리를 짧게 커트한 애도 있고 뒤로 묶은 애도 있었다. 바지에 비해  다소 헐렁한 윗도리를 걸친 가슴은 아무렇지도 않게 빈약했다. 그녀는 그애들의 중성적인  엉덩이나 넓적다리를 슬쩍 만져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그 곳은 아이스바처럼 단단하고도 시릴 것 같았다. 그애가 만일 남자라면 그 짓은 성추행이 될 것이다. 온몸 도처에서  개칠한 냉기를 뚫고 열꽃처럼 피어나는 열망에 그녀는 으스스 전율했다.

   이런 요상한 느낌은 얼마 만인가. 난생 처음인 듯도 했다. 대학가 커피숍은 나이  지긋한 이들이 갈 데가 아니라는 소리는 여러번 들어서 나름대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은밀하거나 퇴폐적이지 않을 뿐더러 음악이  옆사람 말귀를 못 알아듣도록  시끄럽지도 않았다. 나무랄데 없이 건강하고 정결하고 쾌적한 분위기였다. 음악도 첼로인 듯싶은 음색이 파스텔 조로 은은하게 실내에 번져들도록 있는 듯 낮춰놓고 있었다.  튀는 점이 있다면 종업원들의 검정 유니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오기도 전인 남편의 촌티에 자꾸 신경이 써질 만큼 그녀가 보기에 이 커피숍의 세련미는 완벽했다.

  남편과 만날 장소를 파바로티로 정해준 것은 딸 채정이었다. 채정이 졸업식 때도 그들 부부는 별거중이었다. 시골서 당일로 올라오는 남편과는 졸업식장 근처에  있는 초대 총장 동상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  대학에는 그 동상말고도 동상이 너무  많았다. 남편은 누구 동상이라는 것은 확인해보지 않고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동상 앞에 마냥 죽치고 앉아 있었으니 식구들하고 만나질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날은 채정이가 오랫동안 연애하던 남자친구네 부모하고 처음으로 상견례를 치르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식이 다 끝난 후까지 찾아헤맨 끝에 가까스로 만나긴 했지만 그날 촌스럽고  변변치 못한 남편 때문에 속상하고  초조했던 일은 나중에 생각해도 새록새록 울화가  치밀었다. 사돈 될 집에 비해  내세울 거라곤 없는 집안이라는 자격지심 때문에 그날의 조바심은 더욱 피를 말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객들이 반 이상 빠져나간 후에 겨우 만나진 남편은 차라리 안 만나니만 못했다. 그 추운 날 오버도 없이 세탁을 잘못해 모양이 망가진 누비 파카에다 색 바랜 껑뚱한 면바지를 입은 모습은 사돈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해도  못 봐주게 추비했다.  채정이가 울상을 하고  엄마 귓전에다 ‘난 몰라, 아빤 우리들이 미워서 일부러 거지처럼 하고 왔나봐’라고 속삭일 정도였다.  평소에도 마음에 안 드는 건 뭐든지 거지에다 빗대는 건 채정이의 아주 나쁜 버릇이었지만 그때는 듣기 싫지도 않았다. 그쪽 식구들 앞만 아니라면 더 심한 말도 해두고 싶었다.

  그녀가 두고두고 채정이 졸업식날을 악몽처럼 기억하는 건 남편의 무신경한 옷차림  때문인데 채정이는 하마터면 아빠를 못 찾을뻔했던게 더 기억에  남는 모양이었다. 동생 채훈이의 졸업식을 앞두고도 또 아빠 못 만나면 어떡하냐고 그  걱정부터 하더니, 제가 미리 학교 앞을 답사하고 와서 제일 찾기 쉽고 노인네들도  눈치보지 않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며 정해준 곳이 파바로티였다. 딸이 시키는 대로 따르기는 하면서도  후기 졸업식에는 그닥 사람들이 많을 것 같지 않아 괜한 일이다 싶었다.

  채정이는 부모가 서로 못 만날까봐 보다는 따로따로 오는 걸 보고 싶지 않은 게 아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집가서 제 자식 낳고 살면서 겉보기에도 안정되고 철들어가니 그럴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딸 때하고 달라서  사돈한테 그닥 신경이 써지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아들이 좋다 싶은 게, 사돈한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 거였다. 사돈한테 죄지은 거 없이 저자세로 굴지 않아도 된다는  게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결혼식까지 치른 후가 아닌가. 흉잡혀 봤댔자였다. 확실하게 칼자루를 쥐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들하고 대학동기인 며느리가 아들이 군대가  있는 동안 마음 변치 않고 조신하게 기다려준게 기특하긴 해도 꼭 그래 줬으면 하고 바란 것은 아니었다. 특이하게 여기는 마음보다도 여자로서는 한물간 동갑내기라는 걸 서운해하는 마음을 더 드러내 보이고 싶은게 시에미의 꼬부장한 심정이었다. 지금 처가살이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도 사돈한테 면목없을게 없었다. 식 올린 지 한 달도 안됐고, 곧 둘이 같이 유학을 떠나기로 예정돼 있었다. 그동안 시집살이를 안 시킨걸 그쪽이 고마워할 일이지 이쪽에서 미안해 할 일은 아니었다.

  까만 타이츠의 소년, 어쩌면 소녀가 유리컵에 얼음물을 갖다 놓고 잠시 그녀 앞에서 지체했다. 뭔가 시키기를 바라는 몸짓이었다. 그녀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뭘로  하실거냐고 묻는 건 주문을 재촉하는 걸로 여길까봐 삼가고 싶은  듯, 나이에 맞지 않는 너그러운 미소를 짓고는 가버렸다. 졸업식까지는 한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아빠는 분명히 일찍  오실 테니 엄마도 늦지 말라고 당부한 것은 채정이었다. 딸의 아버지에 대한 그런 확신은 애정이나 믿음보다는 촌사람 취급 쪽이 더 강했을 거라고, 그녀는 여기고 있었다.

  기다린다기보다는 방심한 시선으로 문 쪽을 보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오고 있었다. 불그죽죽한 넥타이로 목을 잔뜩 졸라맨 정장 차림이었다. 그녀가 일어서서 여기예요 여기,  하면서 손짓을 하려는데 먼저 그의 메마른 고성이 넓은 홀 안에 고루 퍼졌다. “여기가 페스타롯치 다방 맞소?”

  종업원들은 물론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렸다. 손님의 대부분은 고등학생 티가 가시지 않은 젊은이들이었다. 웬 페스타롯치? 하면서  여기저기서 킬킬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여기라고 외치는 대신 황급히 그에게로 다가가 소매를 끌었다. 마누라를 보자 안심한 듯 그의 목소리가  한결 누그러졌다. “내가 그래도  옳게 찾아왔구먼. 많이 기다렸는가?”

  그러나 마주앉자 두 사람은 할말이 없었다. 졸업식까지 아직 시간은 넉넉했다. 그가  꾀죄죄한 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반들반들 구겨진 구릿빛  정수리에서 샘솟듯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교장선생이었을 때의 별명이 놋 요강이었다. 그는  워낙 땀이 많았다. 그러나 처음부터 대머리였던 건 아니다. 검은 머리가 뻣뻣하게 곤두서 약간은 사납게 보이던  젊은날, 아아, 덥다고 비명을 지르면서 들입다 한번 머리를 흔들면  땀방울이 샤워처럼 사방으로 튀곤 했었다. 그땐 그를 사랑했었나? 그녀는 생각날 듯 날 듯 감질나는 옛 기억을 붙잡으려는 시늉으로 양미간을 모았다. 한때 있었던 것의 사라짐. 그게 사랑이든 삼단 같은  머리칼이든 간에, 그 뒤엔 일말의 우수라도 남아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나 그게 될 것 같지 않았다.

  우린 부딪치면 안돼. 피차 보호막이 없이 부딪친다는 건 잔인한 일이야. 그녀가 밑도 끝도 없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충분히 땀을 들이고 난 남편은 큰 소리로 주문을 했다. “여기 뜨거운 코피 두 잔 다고. 생각 같아서는 비싼 냉코피를  팔아주고 싶다만 이렇게 춥게 해놨으니 어떻게 찬 걸 먹냐?”

  구석구석까지 잘 울려퍼지는 예의 건조한 고성에 그녀는 허를 찔린 듯이 질겁을 했다. 페스타롯치에 웃던 젊은이들이 여기저기서 킬킬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  어련히 주문을 받으러 올라구요.”“여기서 뭣하러 마냥 앉았나. 얼른 자릿값이나 하고 가봐야지.”

“아직 시간 많아요. 여기 좀 좋아요? 시원하고 요새 애들 구경도 실컷 하고…”“기름 한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백주에 놀고먹는 아녀석들을 위해서 전력을 이렇게 낭비를 하다니, 내 원 한심해서.”

  입만 열었다 하면 옛날 고렷적 도덕책 같은 소리만 하는 남편을 외면하면서 그녀는 아무래도 안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 마음을 누군가가 읽고 안되겠는 게 뭐냐고 묻는다 해도 아마 대답을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은 그렇게 두서가  없고 애매했다. 커피가 왔다. 남편은 나도 요새 블랙인가 원가에 맛을 들였는지, 괜찮더라고  하면서 육개장 국물 들이마시는 소리를 냈다. “언제 떠난대? 갸아들은.”“미국  학기 시작할 때 대가야 한다니까  일간 떠나겠죠 뭐.”“떠날 때까지 데리고 있지 그랬어? 새며느리 말야. 아들 가진 쪽에서 그 정도는 본때를 보여야 하는 거 아냐? 적어두.”“아들 좋아하시네.”그녀는 울컥 치미는  반감 때문에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내가 뭐 틀린 말 했는감?” 당신이 언제 틀린 말 한 적 있수, 하고 되받으려다 말고 그냥 픽 웃고 말았다. 70년대 말까지 남편은 평교사였다. 남편은 교감, 교장이 된 후에도 그때를 한창 날릴 때였다고 회상하곤 했는데 시골 소학교 선생이  날릴 일이 뭐가 있겠는가. 교감이나 교장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 그러니까 그나마 출셋길이 열려 있던 시절이란 뜻이었을까. 새마을 정신이 어린이들 의식까지 짓누른 유신시대였다. 그녀는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숨이 막혔다. 그가 담임 맡은 반은 온통 국민교육헌장으로 도배를 했고, 한 아이도  빠짐없이, 지진아까지 그걸 달달달 외우는 반으로 유명했다. 그걸 입술로만 외우는 게  아니라 뜻을 충분히 새겼다는 걸 알아보려는 경시대회가 군내에서 있었는데 그의 반은 거기서도 일등을 먹었다.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된 것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거치면서였는데 그의 교장실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 사진이 가장 높은 정면에 으리으리하게 걸렸다. 그건 시골학교라서가 아니라 장관실이라 해도 아마 사정은 비슷했을 것이다. 문제는 갈등없는 추종이었다. 마치 주인니 바뀐 노예처럼 주인의 이름이나 인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주인이라는 게 중요할 뿐이었다. 사진이 바뀌고  나면 그의 표정과 말투도 사진을 닮아  달라졌다. 조회 설 때마다 늘어놓는 장광설의 내용도 물론 그 최고 권력자의 어록에서 따왔을 것이다. 그가 만일 출세지향적인 권력의 측근자였다면 그런 언동을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알아서 기는 교육공무원의 소심증이었다고 해도 아내에게만이라도 그걸 더럽고 치사하게  여기면서 참아내기 어려워하는 기색을 보였다면 그녀도 어떡하든 위로해주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가부장의 고독한 책무는 어쩌면  정의감 이상으로 비장해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남편은 위로가 필요없는 사람이었다. 위로가 필요없는 인간처럼 참을  수 없는 인격이 또 있을까. 그의 체제순응은 강요된 것도 의도적인 것도 아닌 체질적인 거였다. 그의  매력없음의 본질 같은 거였다. 그와 다시  합친다는 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생각하기가  싫어서였다. 그러나 오늘은 표면적인 별거의 이유가 완전히 소멸되는 날이다.

  그녀가 교장관사에다 남편을 혼자 남겨놓고 남매를 데리고 서울로 온 것은 채정이가 대학에 붙고 나서였다. 채정이가 다닌 시골 고등학교에서 서울의  웬만한 대학에 합격자를 내기는 채정이가 처음이어서 학교 정문에다 크게 플래카드를 내걸  정도로 영광스러워 했다. 부모가 우쭐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녀의 뒷바라지는 유난스럽고도 고달픈 거였지만 자신의 학부모 노릇에 자신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드디어 딸이 떳떳하게 그 시골 구석을 벗어나게 됐다는 데 그녀는 터질 듯한  기쁨을 느꼈다. 채정이 밑으로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채훈이가 남아 있었다. 아들은 딸 보다 더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은 그녀의 욕심과, 과년한 딸을 혼자 객지로 내돌릴 수 없다는 남편의 생각이 맞아떨어져서 그들은 남 보기에도 그들끼리도 조금도 무리없는 별거상태로 들어갔다. 그녀가 처음 자리잡은 서울의 지하 셋방은 위층에서 오줌 누는 소리, 입맛 다시는 소리까지 다 들렸다. 그래도 그런 소리를 들으며 교장관사를 벗어난 게 꿈이 아니라 생시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건 실로 황홀한 기쁨이었다. 조회 설 때마다 판에 박은 듯 만날 똑같은 교장의 훈시에 귀가 다  먹먹해지고, 언제나 저 놋요강 두들기는 소리 안 듣나 하고 지겨워하는 아이들의 수군거림까지 들릴 듯한 교장관사 생활은 고문의 기억처럼 진저리가 쳐졌다.

  아이들 뒷바라지는 핑계일 뿐 그녀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 오랫동안 꿈꾸어오던 것은 교장 사모님 노릇을 안하는 거였다는 걸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별거에 들어간 후에도 남편의 봉급은 다달이 거의 다 그녀의 통장으로 입금됐다. 아무리 혼자라도 어떻게 그 나머지로 살까 싶게 남편이 떼어낸 액수는 미미했다. 그러나 서울생활  역시 그 봉급으로는 빠듯했으므로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얼마 안 살고 나서 채훈이 과외공부를 시키기 위해 그녀도 돈벌이를 하게 됐다. 아파트를 낀 상가의 화장품  할인매장을 하는 친구를 도와주다가 그 가게를 아주 인수하게 됐고, 국산 화장품 외에도  외제 소품을 겸함으로써 수입을 늘려나갔다. 자신이 생각해도 돈버는 수완이 있었고, 운도 따랐다. 아이들 복인지도 몰랐다. 둘의 학비가 한창 들 때 그녀의 수입도 피크에 다다랐다가 근처에 대형 백화점이 생기면서 조그만 상가가 사양길에 들어서자 학비 걱정도 줄어들다가 아주  안하게 됐으니 말이다. 돈을 못 벌때는 세 식구가 전적으로 남편 수입에 의지해야 했으므로 남편 사정을 볼 여유가 없었고, 돈을 넉넉히 벌게 되자 상대적으로 남편 송금이 하도  쩨쩨해 보여서 또한 남편 걱정을 안하고 말았다. 그렇게 역대 정권에 충성을 다하던 남편도 어찌  된 일인지 정년을 한참 남겨놓고 명예퇴직을 당했다.

  그 소식은, 남편이 근무하던 고장과는 얼토당토 않게 휴전선하고 가까운 시골에다 헌집하고 거기 딸린 약간의 땅을 사놓은 게 있는데, 거기 가서 살기로 정했단 소리하고 동시에 들었기 때문에 은퇴 후 같이 살게 되면 어쩌나 하는 근심 같은 건 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마이크 대고 연설하고 싶은 걸 어떻게 참고 살까 싶어 피식 웃음이 났을 뿐이었다. 은퇴 후에도 연금은 꼬박꼬박 그녀의 통장으로 입금돼왔다. 아이들은 가끔  그 시골집에 다니러 가는 모양이었다. 조금만 더 참으시라고 위로하고 왔다는 소리를 들으면 아이들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전원생활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그녀에게도 조금만 더 참으란 소리를 자주했다. 엄마가 저희들 때문에 아빠와 떨어져 사는 걸 늘 미안해했다. 혹시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저희들이 결혼 후까지도 부모에게 신경을 쓰거나 책임을 지게 될까봐 그걸 미연에 방지하고 싶어할 수도 있으리라. 엄마 아빠를 붙여놓는  거야말로 완전히 상쇄시키는 최상의 방법이고, 그럼으로써 저희들은 완전히 자유로워지고 싶은 속셈이 있을 지라도 어쩌겠는가.

  그녀는 일부러 한번도 남편의 전원생활을 가 보지 않았다.  남편에 대한 자신의 무관심을 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고 싶었다. 또 남편이 그녀에게 한마디 의논도 없이 그 정도로 착실하게 혼자 살 궁리를 해온 걸 보면, 별거상태를 고정시키고  싶은 건 남편도 그녀와 다름이 없다고 봐야 한다는 자존심 대결 같은 것도 있었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인데 그가 어떻게 살든 뭣하러 아는 척을 하겠는가. 초가집이 썩고 썩어 주저앉듯 고요한 파탄이었다.  한지붕 밑에 사는 자식들 귀에도 안  들리는. “그 양복밖에 없으시우? 오늘은  딴 양복을 입으시지 않구.” 그녀는 마직이라 구김이 많이 난 남편의 바짓가랑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윗도리 깃에는 김칫국물 자국인 듯한 얼룩도 보였다.

  “왜 이 양복이 어때서? 최고급이라면서.” “아무리 최고급이라도  그렇죠. 며늘네한테 예단 받은 양복 아니우? 예단 받은 건 결혼식날 하루 입었으면 됐지 줄창 입으면 그 집에서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줄창 입긴, 결혼식날 입고 오늘 처음 입었소.  여름에 넥타이 매는 양복은 누가 억만금을 준대도 줄창은 못 입겠습디다.”

  “사돈 보기에 줄창이란 소리예요. 결혼식날 보고 오늘이 처음 보는 거 아뉴.  조금 신경을 쓰시지 그랬어요.” “예서 어떻게 더 신경을 쓰나?  채정이년은 며칠 전부터 꼭 정장하고 오라고 전화질이지. 넥타이 매는 양복은 이거 한벌밖에 없는 걸 낸들 어떡허란 말요.” “아이고 알았어요. 알았으니 그만 둡시다.” 더 길게 말하단 밑천도 못 건질 것 같았다.

  “양복보다 더 중요한 건 사돈  보기에 우리가 보통 부부 사이로  보이는 걸 거요, 아마“ 남편은 한결 가라앉은 소리로 그렇게 말하면서 일어서더니 찻값을  내러 갔다. 그녀는 남편의 짧은 눈길에서 연민 같은 걸  읽고 당황했다. 내가 저를 불쌍해하면 했지  왜 저가 나를 불쌍해한담, 아니꼽게스리. 시계를 보니 졸업식에 대가기 맞춤한 시간이었다.

  후기 졸업식은 졸업생이 적어서 그런지 식장이 야외가 아니고 대강당이었다. 사돈 내외를 비롯해서 채훈이 처남, 처형, 동서 등 처가 식구가 열 명도 넘게 식장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채정이는 보이지 않았다. 자리를 잡아놓으러 미리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채정이 덕에 양쪽 사돈이 가장 좋은 자리에 나란히 앉고 다른 식구들도 흩어지지 않고 모여앉았다. 안사돈끼리 가운데 붙어 앉고, 바깥사돈들은 각각 자기 마누라 옆에 앉게 되었는데 식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채훈이 장모는 그녀의 귓전에다 대고 야죽야죽 잘도 소곤거렸다. 하긴 한 달 가까이나 사위를 데리고 있었으니 할 얘기도 많을 것이다.  주로 두 내외가 얼마나 금실이 좋은가 하는 얘긴데 흉보는 것 같으면서도 자랑이요, 어려웠던 것 같으면서도 재미본 얘기였다.

  “딸자식은 소용없단 소리가 무슨 소린가 했더니  이제야 알겠다니까요. 큰딸은 미리 그러려니 하고 길러서 몰랐는데, 막내는 우리집 양반이 유난히 애지중지하셨거들랑요. 저도 덩달아서 무슨 낙을 보겠다고 설거지 한번을 안 시키고 떠받들어  길렀더니 , 글쎄 시집가고 나더니 당장 부엌에 나와 제 신랑 먹을 거 먼저 챙기느라고 어찌나 법석을 떠는지. 그뿐인 줄 아세요? 즈이 아버지가 아침마다 드시는 녹즙까지 즈이 신랑은 왜 안 주냐고 따지더니 아침엔 저보다 먼저 나와서 제  손으로 녹즙을 짜가지고 이층으로 살짝  올라 간다니까요. 이왕 짜는 길에 즈이 아버지 것도 한잔 더 만들면  어때서 글쎄 딱 한잔 제 신랑 거만  해가지고 가는 걸 보면 나는 얄미워 죽겠는데 우리집 양반은 속도 없이 뭐라는 줄 아세요? 이제야 철났다고 기특해하는 거 있죠. 아무튼 막내사위라면 예뻐서 그저 이래도 허허허, 저래도  허허허, 입을 못 다무신다니까요. 우리 수정이도 시집 잘 갔지만 정서방이 장가 하나는 정말  잘 갔어요. 안 그렇습니까?” “아무려면요.” 마지못해 그렇게 맞장구를 치면서도 이 여자가 누구 약을 올리기로 작정을 했나 싶어서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신혼의  딸 내외를 꽃 본 듯이 어르면서 옥시글옥시글 즐거워할 그 집안과 대비되어 떠오르는 것이 자신의 옹색한  샅림살이가 아니라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남편의 시골집인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외딴집 홀아비 살림의 썰렁함, 스산함,그런 것들이 옛날 영화처럼 구질하게  떠올랐다.  “그래도 사위는 백년손이라던데 어려움이 많으시죠. 저희 집으로  보내셔도 좋은데… 그녀는 인사성으로  그렇게 말해놓고는 말끝을 흐렸다.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화도 났다. 안사돈끼리의  이런 미묘한 심리전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 앉은 남편은 고개를 길게 빼고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졸업식을 열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고,아니에요. 정서방이 얼마나 소탈하고 붙임성이 좋다고요.  하긴 저희 집에 드나든 지가 어디 일이년입니까. 신입생 시절부터 서로  단짝 친구였으니, 사위 될 줄 모를  적부터 아들처럼 얘, 쟤 이름 부르고 먹던 밥상에 숟갈 하나 더 놓고 같이 먹고 했으니까,  정이 들 대로 든걸요 뭐. 그래도 막상 사위가  되고 나니 어찌나 든든하고 귀여운지. 우리집  양반은 더해요. 며칠 전에 즈희 시아버님 제사였잖습니까. 우리 큰애네는 미국 가 있으니까 제사 참예 못 한 지가 오래됐지만 작은아들이 엄연히 있는데 글쎄 턱하니 아들 제쳐놓고 막내사위 먼저 잔을 올리게 하지 뭡니까. 조상님한테 새 사람을 먼저 인사시켜야 한다나요. 우리집 양반이 워낙 소탈해서 제사에도 격식이 없어요. 영정만 모시고 지방은 안 써요. 제수도 격식보다는 생전에 좋아하시던 걸 자주 하죠. 지방을 안 쓰는 대신 우리집 양반은 마치 살아 있는 어른들한테 하듯이 자상하게 요새 사는 얘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잘 봐달라고 조르기도 한다니까요. 이번에 새사위를 생면시키면서도 어찌나 웃기시는지 제사가 엄숙하기는 커녕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졌다니까요.”

  안사돈은 지금 생각해도 다시 한번 즐겁다는 듯이 호호거렸다.  새사람이라니, 아무리 세상이 두서없이 바뀌었다고 해도 수정이가 우리집 새사람이 되면 됐지 왜 우리 채훈이가 자기 집 새사람이란 말인가. 격식을 안 차리기로는 이쪽이 사돈집보다  한술 더 뜨는 집 안이었다. 그녀가 시댁 제사에 참예해본 지가 언젯적인지도 생각이 안 날 정도였다. 남편이 지차고 큰댁이 외진 산골이라 새댁 적 빼고는 남편 혼자  다녀오곤 했다. 남편도 다음날 아이들 가르치는 데 지장이 있을 것 같으면 돈만 부치고 안 가기도  했고, 그 버릇은 그런 신경 안 써도 되는 교장이 된 후까지도 계속됐다. 제사에 채훈이를 데리고 가본 것도 아마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안될 것 이다. 제사는 자기가 보고  기억히는 조상에 한해서만 지내면 된다는 것이 남편의 주장이었다.

  채훈이도 그런 환경에서 자랐으니 제사를 그닥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렇지, 제 처를 제 조상 제사에 참예시키기도 전에  제가 먼저 처가 제사에서 꾸벅꾸벅 절을 했을 생각을 하니까 기분이 영 고약했다. 아유, 못난 녀석, 더리쩍은 자식… 생각할수록 치가 떨리게 분했다. 그녀는 야죽거리는 안사돈에 대한 적의를, 스스로 아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증폭시키고 있는지도 몰랐다. 당장 졸업식장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그녀는 옆에  앉은 남편의 손을 잡았다. 손잡고 나갈 사람이 필요했다. 남편은 손을 잡힌 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단상에서 진행되는 일에 온 신경을 모으고 있었다. 마치 이제나 저제나 자기가 상 받으러 나갈 차례를 기다리는 모범생처럼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슬그머니 손을 거둬들이고 말았다.

  남편에게 단상이 뭐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단상을 좋아했다. 단상에만  올라가면 저절로 목소리에 권위적인 억양이 붙고, 아무도 흠잡을 수 없는 지당한 소리만 줄줄이 나왔다. 아무리 조그만 집단에서도 단상은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는 단상에 있을 때, 단하에 있는 단 한사람이라도 자기를 주목하지 않는 걸 참지 못했다. 주목만이 아니었다. 그가 단상에서 단하에 요구한 것은 경배였을 것이다. 단상에 있을 때 단상의 권위에 충실했던 것처럼 단하에서는 단하의 의무에 충실코자 하는 걸 누가 말리랴.

  그런 그가 집안 식구에 대해서는 전혀 권위적이지 않았던 것은 자상하거나  가족적이어서라기보다는 월급봉투만 축내지 않으면 가장의 권위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심없이 받아들인 후에도 그랬고, 은퇴 후까지도 월급이나 연금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조금 축내고 전액 식구들한테로 가게 하려는 그의 노력은 거의 집념에 가까웠다. 요새는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뭐 해먹고  사는 것일까? 그녀는 조금 전에 잡았던 남편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톱 밑에 때가 낀 투박한 손이었다. 그녀는 직접  잡아보았을 적에도 못 느낀 이물감에 허방을 밟은 것처럼 움찔했다.

  박사, 석사 학위 수여식이 끝나고 학사 학위를 수여할 차례였다. 그녀는 아들이 학위 받는 걸 똑똑히 봐두고 싶었다. 사진은 채정이가 찍기로 돼 있었다. 채정이뿐 아니라 그쪽 식구들 중에서도 서너명이나 카메라를 들고 나가는  것 같았다. 졸업생보다도 더  많은 사진사들이 무대를 가려 서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안사돈이 다시 조근조근 이야기를 시작했다.  장내의 웅성거림 때문인지 귓불에 숨결이 닿을 듯 안사돈의  속삭임은 친근했다.  “보려고 애쓰지 마세요. 사진이나 잘 나오면 되죠 뭐. 무슨 행사든지 사진밖에 남는 게 뭐 있나요.  참, 아이들 결혼사진 잘 나왔죠? 사진사가 찍은 것말고도 카메라 사진까지 다 챙겨서 보내드렸는데.” “예, 잘 받았습니다. 카메라 사진은 저희들한테도 꽤 있는데, 웬 걸 그렇게 많이 꼼꼼하게 정리를 해서 보내셨어요?” “저희는 아이들 자라는 모습뿐 아니라  걔들한테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사진으로 남겨놓는게 큰 낙이랍니다. 취미도 되고요. 상이나 임명장 받는 사진도 안 빠뜨렸는데 혼인이야 인륜지대산걸요. 이렇게 꼭 기록을 남기다보니, 기록 때문에라도 할 건 다 하고 살아야지 대충 넘어가면  안되겠더라고요. 사진첩을 정리하다보니 신혼여행 못 보낸게 그렇게 서운하더라고요.” “못 보내다니요? 저희가 안 가겠다고 우겨서 그렇게 된 게 아니던가요?” 그녀는 계속해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정색을 하고 따졌다. 결혼식을 마침 바깡스 시즌에 치렀을 뿐 아니라, 유학갈 날을 한 달 남짓 남겨놓은 시점이라 채훈이는 채훈이대로 수정이는 수정이대로 각각 일이 많았다. 비자도 새로 내야 하고, 짐도 배로 미리 부쳐야 하고, 운전면허도 갱신해야 하고, 이런저런 해결 안된 일 때문에 마음들이 한갓지지 않아 신혼여행은 미국 가는 길에 하와이에 들러서 며칠 쉬다 가는 걸로 대신하겠다고 저희끼리 합의하고 양쪽 부모는 통고만 받았는데 지금 와서  웬 트집인가 싶었다.  “그러문요, 그러문요. 그래도 부모 마음은 그게 아니더라구요. 더군다나 양가가 다 언제 또 해볼 것도 아닌 마지막 자식 경사가 아닙니까.  남하는 대로 다 해주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말인데요, 졸업식 끝나는 대로 제주도로  삼박사일 정도 여행을 다녀오도록 예약을  해놓았습니다. 아직 걔네들은 모르고 있어요. 놀래켜주려구요.  까다로운 절차도 다 끝나고 모처럼  여유가 생겼으니 좋아할 거예요. 여행 다녀오자마자 다시 비행기 타야  하는 게 안됐지만 사나흘이라도 하릴없이 서울에서 빈둥대면 뭘 합니까? 술친구한테  끌려나가기가 십상이죠. 안 그렇습니까?” “그렇겠군요.” 그녀는 자신  속의 참을성이 한계에  다다른 걸 위태롭게 느끼면서 쓰겁게 대답한다. 안사돈은 무슨 요량인지 핸드백에서 흰 봉투에 든 걸 꺼내서 그 내용물을 살짝 보여주었다. 왕복 항공권과 하얏트 호텔을 이용할 수 있는 쿠폰이었다. 보여주고  나서 그걸 가볍게 그녀의 무릎 위에다 놓아주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이따가 사부인께서 아이들한테 주세요.” “왜요?” 그녀는 당장  귀밑이 달아오르게 놀라면서 물었다  “아, 아무나 주면 어떻습니까? 거기다 명토를 박아놓은 것도 아니고, 사부인께서  주시면 아이들이 더 좋아할 거예요. 저희 쪽에선 따로 여비나 쥐여주면 자연스럽지  않겠습니까?”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하면서도 속셈을 드러내지 않는 이 여자의 진의는 뭘까? 잘못한 것도 없이 사람을 남루하고 비굴하게 만드는 안사돈의 수법에 걸려넘어진 것처럼  그녀는 무참해지고 말았다. 혼란스러워 허둥대는 손길로 무릎 위의 봉투를 사돈 쪽으로 거칠게 밀어놓았다. 그러나 미처 어째볼 틈도 없이 그 하얀 봉투는  이번에는 그녀 핸드백의 사이드 포켓  속에 꽂혔다. 민첩하고도 우아한 손놀림이었다. 분노인지 수치심인지 스스로도 분간  못할 감정이 모닥불처럼 그녀의 표정을 달구었다. 하필 그때 졸업식이 끝나고 하객들은 서로  먼저 빠져나가려고 우르르 몰리기 시작했다. 안 넘어지려고 버팅기면서, 정신없이 사람들한테 밀리며 밖으로 나오니 오후의 열기가 지글지글한 엿물처럼 엉겨붙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지겹다는 소리를  몇번이나 연발했다. 녹아내리듯이 조금씩 흐느적대는 인파 속애서 남편도,  채정이 내외도, 사돈집 식구들도 찾아질 것 같지 않았다 그녀가 되는대로 인파에 밀려난 자리엔 한 뼘 그늘도 없어서 그녀는 마치 고문을 당하는 것처럼 자포자기하게 서 있었다.

  그래도 제일 먼저 그녀를 찾아준 것은 남편이었다. 남편은 저만치 큰 느티나무 아래 모여 있는 하객들을 가리키며 여기서 뭐하고 있느냐고 큰 소리로  나무라기부터 했다. 그녀는 남편을 보자마자 아직도 검정 핸드백에, 웨이터 주머니에 꽂힌 풀먹인 손수건처럼 삼각형으로 빳빳하게 꽂힌 봉투가 갑자기 생각나 얼른 안으로 보이지 않게 밀어넣었다. 남편을 따라 느티나무 아래로 갔다. 거기 다 모여 있었다. 채정이 내외만 겨우 아는 척을 하고  딴사람들은 채훈이를 둘러싸고 번갈아가며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채훈이는 꽃다발과 선물 꾸러미에 묻히다시피 해서 바보처럼 싱글거리고 있었다. 식장에서 바깥사돈이 포장을 요란하게 한 선물 꾸러미를 들고 있는 걸  보고, 집에 데리고 있으면 집에서  주면되지 뭣하러 식장까지 가지고 왔나 다소 아니꼽게 여겼었는데 다른 친척들도 다들  선물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자식한테도 빈손을 부끄러워해야 되나? 아무리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해도 부끄럽게 만들고 있었다. 어쩌면 아까 건네준 흰 봉투는 아무것도 준비 안한  우리들의 빈손에 대한 일종의 야유나 동정이 아니었을까. 아들은 그들하고 단체로 또는 삼삼오오  끼리끼리 사진도 찍고 인사치레도 하느라 아직도 정신이 없고, 이쪽의 찍사를 자처하고  나선 채정이까지도 그 사진찍기 좋아하는 족속한테는 손을 들었는지 중심에서 밀려나 관망을 하고 있었다.

  채정이 졸업식 때도 그랬다. 상견례를 겸한 최초의 만남이었는데도 이쪽은 제쳐놓고 저희끼리 채정이를 끼고 돌면서 사진도 찍고, 요리 보고 조리 보면서 귀여움도 표시하고 넌지시 위엄도 보이느라 이쪽은 완전히 찬밥 신세였다. 그래도 그땐 별로 분한 줄을 몰랐다. 딸  쪽이니까 으레 그러려니 했고, 그 밑에 아들이 있으니 아들  가진 쪽은 어떻게 세도를 부려야 되는지를 보고 배울 기회다 싶은 생각도 있었다. 이를테면 마음만 먹으면 몇곱으로 갚을 수도 있는 복수의 기회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닥 굴욕스럽지  않았다. 또 재학중에 애인이 생겨 졸업식에 벌써 시집식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걸 부러워하는 눈길을 의식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랬건만 이게 무슨 꼴이람. 누구누구 나무라  무엇하랴, 내 아들이 저 꼴이니. 그녀는 강력한 권리 주장처럼 눈을 부릅뜨고 아들을 주시 했다.

  채훈이가 마침내 엄마의 시선을 느낀 것 같았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아들의 눈길을 그녀는 잽싸게 낚아챘다. 마치 잡아끌리듯이 채훈이는 곧장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약간 계면쩍은 듯이 웃는 채훈이는 아무리 내 아들이라도 바보 같았다. 아들은 엄마를 버려 둔 걸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이 얼른 학사모를 벗어서 그녀의 머리 위에 씌워주려고 했다. 채정이도 이제야 자기가 나설 차례가 왔다는 듯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러나 그녀는 온몸으로 강력하게 반발하며 학사모에서 벗어났다. 엄마를 뭘로 보니? 그러나 그런  말이 미처 나오기 진에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그래 임자 좋으면 좋다고 그럴 것이지, 괜시리 암상은 부리고 그래, 이 좋은 날 훈아, 느이  엄만 싫단다. 나나좀 써보자. 그 뭣이다냐,  학사몬가 뭣인가… 머쓱해 있던 채훈이가 구원받은 듯 아버지  머리 위에 학사모를 올려놔주고 정답게  팔짱을 꼈다. 채정이뿐 아니라 사돈네 식구 중 카메라 가진 이는 몽땅 무슨 살판이나 난 것처럼 일제히 효자 아들과 장한 아버지를 겨냥해 초점을 맞추었다. 졸지에 남편은 스타가 되었다. 남편은 마치 소 팔고 땅 팔아 대학 졸업시킨 70년대 농사꾼처럼 멍청하고도 순진하게 사진을 찍히고 또 찍혔다. 저렇게 좋아하시는 걸 보니, 정서방이 하루빨리 미국서 석사도 따고 박사도 따서 아버님을 초청해야 한다는 덕담도 흐드러졌다. 다시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고 시간은 야비다리를 피우며 흘러갔다.

  누군가가, 연못가도 좋고 민주학생기념탑이 있는 노천극장 주변은 또 얼마나 좋은데 주변머리도 없지, 여기가 뭐가 좋아서 꼼짝을  못하고 같은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또  찍느냐고, 그들의 사진찍기에 제동을 걸었다. 그  말에 아무도 이의가 없었던지  대식구가 웅성거리며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 있는 경치  좋은 곳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자연히  그 집 식구는 그 집 식구끼리, 이 집 식구는 이 집 식구끼리 어울려서 걷고, 채훈이는 앙쪽 눈치를  다 보느라 엄마곁에 붙었다가 장모곁에 붙었다가 하느라고 요령껏 걸음을  조절 하고 있었다. 북새통이 더 심한 곳을 향해 걸어가는 양가 식구들은 서로 놓칠 뻔하다가도 채훈이가 이어줘서 서로 못 찾는 불상사는  안 일어났다. 장모 곁에서 뭐라고  정답게 소곤거리던 채훈이가 어느 틈에 그녀 곁으로 다가와 팔짱을 낄 때마다 그녀는 이렇게 알랑거리는 버릇을 어디서 배웠을까 징그러워서 눈을 보얗게 흘겨주며 뿌리치곤  했다. 노천극장에서는 마침 재학생들이 마당놀이 연습을 하고 있어서 기념탑 근처는 인산인해였다.  슬쩍 자리를 피하기에는 알맞은 장소다 싶었다. 안사돈은 아마 그동안에  봉투가 자리를 옮긴 줄 알 것이다.  그 동안에 그럴 수 있는 기회도 시간도 충분했으니까.

  그녀도 줄창 핸드씩 바깥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봉투를 의식 안 한 건 아니었다. 의식 안할 도리가 없었다. 그건 줄창 내복에 달라 붙은 가시처럼  그녀의 의식을 편안치 못하게 했으니까. 그녀는 사돈네 식구들과 채훈이가 함께 보이지 않는 틈을 타 남편의 소매를 힘차게 잡아끌었다. 돌연 떠오른 생각이 결정적 기회와 맞물렸다.  왜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그녀는 자신의 엉뚱한 생각에 놀라서 가슴이 두방망이질하고 다리가 후들댔다. 그러나 탈출에 성공한 걸 알자 돈을 갖고 튀는 악당  같은 스릴과 쾌감으로 온몸이 파열 직전의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그건 쾌감이 아니라 살인지도 몰랐다.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힘이 살처럼 뻗치는 걸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남을 해코지할 수 있는 이상한  힘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어찌나 좋은지, 웃음을 참을 수 없어 어금니를 물었다.

  남편은 끌려오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꾸 물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화장실이라도 찾는 줄 아는지 남편은 순순히 따라왔다. 교문이 보이는 데까지 와서야 그녀는 헛된 흥분을 가라 앉히고 덤덤히 말했다. “우리가 자리를 비켜주려고 그랬어요. 처가에서 채훈이 내외를 오늘 제주도로 여행을 보낸다는군요. 졸업축하겸 신혼여행겸이라나요. 우리가  있으면 시간도 얼마 안남았는데 길게 인사해야 하고, 떠나보낸  후엔 양가가 저녁이라도 같이 먹고 헤어져야 할 것처럼 미쩌거려야 하고, 아직 서로 친하지도 않은데 그럴거  뭐 있어요.”

“그래? 참 사돈댁에서 신경을 많이 쓰는구먼. 그래도  그렇지 잠깐이라도 인사를 하고 오는게 도리지, 우리가 길 잃어버린 줄 알고  찾으면 어떡하라고.” “걱정 말아요. 아까부터 내가 눈치줬으니까 채훈이는 아마 짐작했을 거예요. 적당히 둘러대겠죠  뭐.” “우리가 용돈이라도 줘보네야 하는 거 아닌가? 당신이 어련히 알아서 잘했겠소만” 남편의 나중 말엔  다소 빈정거리는 투가 섞여 있었다. 어차피 손발이 맞아서 저지른 일도 아니건만 그녀는 울컥 야속했다. 그리고 아들 며느리의 즐거움을 잠시 훼방놓거나 하루쯤  유예하는데 불과한 일을 위해 혼신의 힘을 소모한 좀전의 자신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으로부터도 밀려난  것 같은 느낌은 여지껏 겪어본 어떤 외로움하고도 닮지 않은  이상한 외로움이었다.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지만 하는데까지 해볼 작정이었다. 몸을 달구던 정열은 환각처럼 온데간데 없었지만 훼방놓고 싶은 심술은  아직도 충분히 남아 있었다 “우리끼리지만  저녁이라도 먹고 헤어집시다.”  남편의 제안은 전혀 은근하지 않고 사무적이었다.  “이렇게 해가 높다란데요?”  살핏한 해는 어쩌자고 아직도 지칠 줄 모르고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입추 처서 다 지났다고는 믿기 어려운 더위였다.  “그래도  한끼 때우고 들어가는게 안 낫겠소?  혼자 밥 해먹는게 얼마나 을씨년스럽다고…”  어쩌자고 이 남자는 이렇게 정직한 걸까. 그녀는 남편의 촌스러움, 초라함, 변변치 못함이 다 겉에다 주렁주렁 달고 있는 흔자서 밥 해먹은  티만 같이 여겨져 바로 보기가 싫었다. “오늘은 당신 따라서 바라니나 한번 가볼래요.  왜 그렇게 늘라요? 내가 어디 못갈데 가본다고 했어요?”  바라니란  낭편이 자리잡은 동네이름이었다. 채정이한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채정이는  동네이름이 참 예쁘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때 기분이 안 좋았었다. 행여나 누가 찾아 오나 고개를 길게 빼고 동구 밖만 바라보고 있는 늙은이들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남편은 잠시 놀란 듯하다가 금방 덤덤해지더니 전철을 타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말없이 남편 뒤를 따랐다. 상실감을 메우려고 너무 허둥거리고 있는  자신이 딱했지만 어차피 오늘은 빗나가기 시작한거, 가는 데까지 가볼 작정이었다. 개통된 지 얼마 안된 전철 노선은  오래된 노선보다 한결 시원하고 정결했다.  왕십리에서 국철로 갈아타고 종점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고 남편은 양해를 구하듯이 앞으로 이용할  교통편에 대해 설명했다. 그녀는 듣는 척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는게  없었다. 남편보다 더 서울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어렵게 확보해 놓은 단골을 잃게  될까봐 처음 자리잡은 가게를 한번도  옮긴 적이 없었다. 주로 아파트에 사는 단골들은 물론 자주 바뀌었다. 잃은 만큼 얻어지는 게 단골이었으니 단골이 꾸준히 있다는 게 중요아지 단골이 누구냐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녀가 세상사를 빠삭하게 꿰뚫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도 단골들 덕이었다. 그녀는 좁은  가게 안을 요령껏 편안하게 꾸미고 단골들이 필요한 것 없이도 들러서 수다를 떨고 싶은 곳으로 만들었다. 근처에 대형 백화점이 들어서고 나서 그녀의 가게 앞은  백화점 비스정류장으로 변했다. 처음에는 가게에 들어와서 구경하는 척하다가 백화점 버스가 오면 냉큼 나가 타던 단골들이 이제는 탈때도 내릴 때도 그녀의 가게를 못 본 척하게 됐다. 마치 거기 가게가 없는 것처럼.

  국철로 갈아타기 위해 계단을 여러번 올라가야 했다. 마지막으로 지상으로 통하는 계단은 좁고 숨어 있듯이 외진 데 있었다.  지상은 아직도 해가 지기 전이었다. 고층건물  모서리에 걸려 있는 석양은 강한 숯불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어쩌라고 국철을  기다리는 정류장은 해가리개 하나 없는 노천이었다. 차를 태워주기 위해 서가 아니라, 벌을 세우기 위해 마련한 정류장이다 싶었다. 그러나 햇볕이 온종일 달군 시멘트 바닥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당하건 전혀 개의치 않겠다는 듯 방기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남편의 대머리가 둔탁하게 빛나면서 다시 땀이 배어나기 시작했다. 만지면 송진처럼 찐득할 것 같은 땀이었다. 생각만 해도 싫어서 절로 진저리가 쳐졌다. 국철은 전철처럼  자주오는게 아닌 모양이었다. 시멘트 기둥에 열차시간표가 써 있었다. 이십분에 한번씩 오기로 돼  있었다. 그녀는 이건 더위를 견디는게 아니라 굴욕을 견디는 거라고 생각했다.

  참고 기다린 보람은 있어서 국철 안도 지하철 안과 다름없이 서늘했다. 그러나 국철 구간의 풍경은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는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낯설었다. 시골 같지도 않고,  도시 같지도 않은, 단지 버려진 것 같은 들판으로는 걸쭉하게 썩은 샛강이 흐르기도 하고,  어디로 가는지 모를 굽은 다리를 받쳐주기 위한 육중한 시멘트 기둥들이 질척한 늪지대에 괴기스럽게 뿌리내리고 있기도 했다. 녹슨  쇠붙이, 썩은 널빤지가 함부로 버려진  쓰레기더미 사이를 비집고 기승스럽게 자라는 풀들은 독초처럼 잔뜩 약이 올라 저 만치 폐가처럼 설렁한 집들을 위협하는가하면, 갑자기 네모난 단층집 동네가 철로에  닿을 듯이 가까이 다가오기도 했다. 빨래가 널린 옥상과 백일홍, 맨드라미가 빨갛게 핀 마당이 사람사는 동네다우나, 서운케도 열차를 향해 주먹질을 하는 동네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무슨 깨달음처럼 국철 구간하고 남편이  어쩌면 그렇게 닮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거기 타고 있는 사람들이 지하철  승객하고는 인종이 다른 것처럼 이상해 보였다. 남은 자는지, 자는 척하는지 편안히 눈을 감고 있었다. 지금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그녀에게 아들을 빼앗긴 상실감은 마치 허방을 밟은 것처럼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순탄한 길을 걷다가도 휘청거릴 나이에 이런 허방이 숨어 있을 줄이야.  허방치고는 너무도 깊은 허방이었다. 그녀는 한없이 추락중인 삶의  허방에서 움켜진 한가닥의 지푸라기를 바라보듯이 어이없어하며 자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역에서 그녀는 뭔가 참을 수 없는 기분으로 남편을 흔들었다. 얼떨결에 밖으로 따라나온 남편은 한  정거장 더 가야 종점이라면서 다시  타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을 층층다리 쪽으로 거세게 잡아끌며 말했다. “갈 데가 있어서 그래요 ” “어딜? 별안간.”  “그애들은 오늘 신혼여행 가서 마냥  재미볼 거 아뉴? 우리도 기분 좀  내봅시다. 바라니에 가봤댔자 모기밖에 누가 우릴 반겨주겠어요.”  채정이가 바라니 갈 때마다 모기약을 사 나르던 생각을 하며 말했다. “바라니로 가잔 것은 당신이었소.” 남편이 침착하게 타이르듯이 말했다. 그리고는 휭하니 앞장을 서더니 돼지갈비집으로 들어갔다. 에어컨 대신 천장에서 옛날 비행기 프로펠러처럼 생긴 선풍기가 돌아가는 집이었다. 식탁마다 지글대는 불갈비 위로 후드가 바싹 내려와 있건만도 넓은 홀이 연기로 매캐했다. 마침 저녁시간이기 때문인지, 혹시 잘하기로 소문난 집인지, 거의 빈자리  없이 시끌시끌하고 활기차보였다. 남편이 어리어리하지 않고 익숙하게 굽는 것도  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재미  좀 보자는 걸 겨우 돼지갈비 정도로 이해한 남편을 속으로는 한심해하면서도 수굿이 따른 것은 별안간 의식하게된 심한 허기증 때문이었다. 근수로 주문한 돼지갈비와,  숯불이 이글대는 풍로와, 밑반찬만 갖다줄 뿐 나머지 일은  다 셀프서비스였다. 남편은 알맞게 익은  갈비를 먹기 좋게 잘라서 접시에 옳겨주는 일에서부터 석쇠를 새걸로 가는 일까지 하나도 그녀에게 안 시키고 척척 혼자서 잘했다. 가끔 영양 보충하러 오는 싸고 잘하는 집이란 설명도 했다.

  옷서부터 머리카락까지 돼지갈비 냄새에 푹 절 만큼 포식을 하고 나오면서 남편은 이렇게 먹어도 계산은 얼마 안 나온다고 또 한번 싼 타령을 했다. 그런 남편을 돌아보지도 않고 앞서 나온 그녀는 마침 갈비집 앞에서 손님을 내려놓은 택시를 잡고는 남편을 손짓해 불러 먼저 밀어넣었다. 얼떨결에 올라탄 남편  곁에 앉자 어디 경치 좋은  러브호텔로 가자고 외눈 하나 까닥 안하고 말했다. 러브에다 유난히  힘을 주어 말하고 나서, “당신 그런  데 처음이죠?” 했다.  “당신은 처음이 아닌 것처럼 구는구려.” “그래요? 저도 처음이에요.”  그녀는 오금을 박듯이 힘주어 말했다. 그런 데  한번도 못 가봤다는 걸 서로 믿을  뿐만 아니라 설사 어느 한쪽이 거기 들어가는 걸 목격했다고 해도 바람 피우러 들어간다는 의심도 안할 위인들이었다. 그래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래서 좋은 부부란  말인가. 왜 이 지경까지 되고 만 것일까. 스산한 낭패감으로 잔뜩 추슬렀던 그녀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다행히  택시를 한강이 바라보이는 별장풍의 삼층집 앞에 대준 운전기사의 태도만은 노골적으로 그들을  늙은 잡것들 대하듯 했다. 마냥 끌고 다닌 끝이었다.

 그래도 앞장서서 택시값도 치르고 프런트로  간 것은 남편이었다. 잠시  쉬었다 가시게요? 아니오, 하룻밤 묵어갔으면 하오, 하는 소리에 고개를 붉히며 그녀는 돌아서서 복도 끝 창밖으로 그제서야 해가 지고 말간 맨얼굴을 드러낸 하늘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돈도 많구려 .”  키를 받아든 남편을 쭐레쭐레 따라가다가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꺾이는 곳에서 멈춰선 그녀는 약간 시비조로 말했다. 세상에 없는 구두쇠로만 알아온 남편이 저녁값은 물론 호텔비까지 선선히 지불한 걸 두고 하는 말이었다. 여유 돈이 있을 턱이 없는 남편이었으므로 구두쇠 노릇을 민망하게 여길지언정 미워한  적은 없었다. 서로 의심할  건더기가 아무것도 안 참은 무관심한 부부 사이건만 돈문제에 대한 의혹은 아직도 민감하다는 데 그녀는 스스로도 놀라고 한편 부끄러웠다.  “채훈이 졸업식 아닌감. 사돈댁하고 식사라도 같이하게 되면 내가 낼려고 벌써 얼마 전부터 여축해온 돈이라오.” 남편의  쓸쓸한 듯 담팜한 대답에 그터는 할말을 잃었다. 실내는 어둑시근하고 쾌적할 뿐 상상한 것처럼 야하진 않았다. 한강과 대안의 언덕에 산재한 별장인지 호텔인지 모를 아름다운 집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잔디가 곱게 다듬어진 이 집 정원도 그 끄트머리에서면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있을 것처럼 한강하고

가까웠다. 그녀는 오래도록 창가에 서서 남편의 샤워하는 소리를 들으며 바깥을 내다보았다. 

“아이고 시인하다” 욕실에서 나오는 남편을 돌아보다가 그녀는 에구머니, 소리를 끼를 뻔하게 놀라면서 얼굴을 돌렸다. 팬티만 입은 남편의 하체가 보기 흉했다. 넓적다리에 약간 남은 살은 물주머니처럼 축 처져 있고, 툭 불거진 무릎 아래 털이 듬성듬성한 정강이는 몽둥이처럼 깡말라 보였다. 순간적으로 닭살이  돋을 것처럼 혐오스러웠다. 징그러운 것하고는  달랐다. 징그럽다는 느낌에는 그래도 약간의 윤기가 있게 마련인데, 이건 군더더기 없는 혐오 그 자체였다. 살을 대고 산 적이 있는 부부 사이에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같이 살 때도 살가운 부부는 아니었다. 남편은 그때도 여름이면 집에 들어와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길 잘했다. 이 다음에 며느리 얻어도 당신 때문에 같이 살긴 틀렸다고, 남편의 그런 버릇을  걱정한 적은 있어도 보기 싫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렇다고 매력있어한 것은 아니고 그냥 집에 있는 구닥다리 장롱이나 책상 밥상 보듯, 있을 게 있을 자리에 있을 때 아무런 느낌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낭 무심했다.

  전혀 예기치 못한느낌에 놀란 김에 그녀가 황황히 생각해낸 게 안사돈한테 받은 하얀 봉투였다. 바로 눈앞에 전화기가 보였다. 오늘 안에 전화는  해야 된다는 것은, 그녀가 미리부터 생각하고 있던 각본이었지만 당장 떠오른 생각처럼 가슴이  울렁거렸다. 전화를 받은 것은 안사돈이었다. 그녀는 인사말 제쳐놓고 호들갑부터  떨었다. “이를 거쩝니까? 사부인, 아이들한테 그걸 전하는 걸 그만 깜박 잊어버렸지 뭡니까? 우리집 어른이 어찌나 서두르시는지요. 오늘 같은 날 글쎄  아들을 처가댁에서 독점할 수 있도록  우리는 피하는게 예의라고 그러시지 뮙니까? 우리가 끼면 거북해하실 거라나요. 워낙 신식이 지나치신 어른이시거든요. 그 어른은 그 어른대로 계획이 있으셨나봐요. 저 지금 청평에  있는 그 어른 친구분 별장에 와 있어요. 혼자서 농장에서 지네실 때가 많아서 서울만  오시면 저한테 잘해주시려고 이렇게 주책을 부리시지 뭡니까. 어머 이를  어쩌나, 급한 진화 걸고 또  딴소리네. 우리 아이들 지금 어떡허고 있나요? 제가 이걸 갖고 있으니 여행도  못 떠났을 테고…내일도 유효하겠지요? 이 비행기표랑 쿠폰이랑. 내일 일찍 서울로 갈 테니 우리 가게로 채훈이를 보내세요. 아무리 빠져나오기 급급했어도 이걸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었는지,  제가 생각해도 한심해 죽겠어요. 그나저나 아이들 일을 망쳐놓았으니 이를 어쩌죠?” “아이고  사부인도 참, 망처놓으신것 아무것도 없으십니다. 예정대로 여행들 떠났습니다. 표 없다고 예약된게 어디로 가나요. 염려놓으시고 즐거운 시간 보네셔요.”

  안사돈은 야죽거리지도 않고 간결하게 말했다. 간단했지만  무시하는 투는 충분하게 여운이 되어 남아 있었다. 흉보면 닮는다고 오래도록 야죽거린 것은 오히려 이쪽이었다. 이럴 수가. 그들이 꾸민 자글자글한 행복을 조금 훼방놓거나 약간의  차질이라도 빛게 하려는 그동안의 노력이 이렇게 허사가 될  줄이야. 음모를 꾸밀 때의 야릇한  쾌감은 간단한 비웃음이 되어 되돌아왔을 뿐이다. 허망감에다 열등감까지 엎친 데 덮친다는 건 못 견딜  노릇이었다.남념의 금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 사돈댁한테 무슨  실수한 거 아니오? 변변치 못하게스리.” “내가 뭘 변변치 못하게 굴어다고 그래요? 알지도  못하면서.” 그녀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톡 소았다. “당신  똑똑하지. 무지무지하게. 그런 줄만  알았는데 채훈이 장모한테 비하니까 변변치 못해 보입디다.”

 그녀는 무슨 말이든 대꾸를 하려면 울음이 섞일 것 같아서 잠자쿄 있었다. 다시 사뭇 의논성스러운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채훈이 전공한  학과각 유학이라도 하고 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밥벌이하기도 어렵다고 해서 내 말리지는 못했소마는 학비를 보탤일이 큰  걱정이구려. 나는 돈 안 쓰는 재주밖에 없고, 당신 고생이 언제 끝날지 앞이 안 보이는 게 미안할 뿐이오.” “미안할 것 업어요. 걔들을 우리가 왜 보태줘요? 그만큼 해줬으면 됐지.”  “우리가 걔들한테 물 해줬다는 거요?” “며느리 시집올 때  혼수고 예단이고 다 접으라고 했잖아요. 요 혼수랑 예단이랑 제대로 하려면  얼마나 드는지 알기나 아시우?  왜 그만두라고 했는지, 그 집에서 당장 알아듣고 그만큼 딸라로 바꿔 보내겠다고 합디다. 제가 꼬셔서 가는 유학인데 그만한 각오도 없이 가겠어요?”  “그래도 그러면 쓰나. 우리가 애끼고 줄여서 다만 얼마라도 다달이 보내도록 노력을 합시다.” “노력 좋아하시네. 난 더 아낄 수 없어요. 가게도 장사가 안돼서 조만간 정리하려고 하니까 내가 벌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마시구요. 정 그러고 싶으시면 당신이나 아껴서 송금을 하든지 미국 구경을 하든지 마음대로 하시구랴.” “나야말로 얼마나 최소한도로 쓰고 산다는 걸 당신 정말 모르겠소?”  그 소리의 슬픈 울림에  퉁기듯이 그녀는 발딱 일어났다. “쉬고 계셔요. 잠간 바람  쐬고 올게요.”  침대에 벌렁 누운 남편을 외면하고 도망치듯 방을 나왔다.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에, 도망칠 수 없게끔  핸드백은 둔 채로 나왔다. 이층 복도는 빈집처럼 조용했다. 복도  끝에 있는 비상구는 가볍게 열렸고, 그 밖에는 잠시 담배라도 피울 수 있는 공간과, 정원으로  통하는 나선형 철제 계단이 설치돼 있었다. 내려와 본 정원은 작은 연못까지 있고, 나무 그늘에는 강을 향해 벤치도  알맞게 배치돼 있었지만 거니는 사람 없이 괴괴했다.

  올려다본 삼층집의 방방은 불이 켜진 데도  있고, 깜깜한 데도 있었다. 켜진 방의  불빛도 밝지 않고 은은했다. 오늘 하루 쓰잘데없이  애만 썼다는 사소한 허전함이, 일생을 헛산  것 같은 거대한 허전함이 되어 그녀를 한없이 미소하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이럴 줄 알고 뭔가로 메우려고 너무 허둥댔음일까. 검부러기라도 움켜잡듯이  마지막으로 움켜잡은 확실한 게 펴보니 고작 남편의 정강이였다. 그건 그와는  도저히 다시 살을 대고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절망감의 생생한 실체이기도 했다.

  오늘 남편을 여기까지 유인한 것은 섹스에 대한 기대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이제 그럴 나이도 아니었지만 한창 나이일 때도 둘 다 그런 쾌락을  밝히는 부부는 아니었다. 겨우 관행적인 섹스를 유지하다가 별거로 들어가고는 누가 먼저 그러자고 한 바도 없이 그들은 서로의 몸을 원하거나 그리워하는 일을 안하게 되었다. 하다 못해 스킨십조차 없는  남남이었다. 스킨십이라도 있었다면 남편의 정강이가 그렇게 꼴보기 싫지는 않았을 것이다. 몸을 비비는 행동이 끊긴 것과 그의 몸이 그렇게도 보기 싫었던 것이 무관하지 않다면 비비는 행동이란 그닥 얕볼 일도 아니다 싶었다. 그녀가 오늘 느낀 것은 결코 구체적인 욕망이 아니었다.  흔히 등을  긁어 준다는 식의 스킨십 정도였다고  해도 그것으로 이 거대한 허전함을 메우고 싶어했다면 그건 욕망보다 크고 아름다운  꿈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가망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그동안 완전히 단절됐던 몸의 만남을 후회하는 마음으로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렇게도 돌이킬 수 없는 실수라고는 미처 몰랐었다.

  그녀는 남편이 잠들기에 충분한 시간을 흐르는 강물을 망연히 바라보는 것으로  보내다가 방으로 되돌아왔다. 방안은 강바람 부는 강변보다 더 시원하고 남편은 침대 덮게도 안 걷어내고 그 위에서 헐렁하게 낡아빠진 팬티만 입은 채 코를 골고 있었다. 보기 싫은 것은 둘째치고 감기가 들 것 같아 덮어주려고 꽃무늬 덮개 자락을 들추다 말고 어쩔 수 없이 벗은 하체를 가까이 보게 되었다. 모기 물린 자국이 시뻘겋게 한창 약이 오른 것도 있고,  무르스름 가라앉은 것도 있고, 무수했다. 이 말라빠진 정강이에서 피를 빨다니, 아무리 미물이라도 어떻게 그렇게 잔혹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떡하고 살기에 제 몸을 저렇게 만들었을까? 때가 낀 손톱과 함께 그의 지나치게 초라하고 고달픈 살림살이가 눈에 선했다. 그렇게까지 안 살아도 될 만한 연금을 받고  있는 남편이었다. 스스로 원해서 가부장의  고단한 의무에 마냥 얽매여 있으려는 남편에 대한 연민이 목구멍으로 뜨겁게 치받쳤다.  그녀는 세월의 때가 낀 고가구를 어루만지듯이 남편 정강이의 모기 물린 자국을 가만가만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문학동네 1997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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