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처음에 나는 그의 손밖에 보지 못했다.  반지 낀 손이었다. 백금 반지에 박힌 깊은 청남색 돌이 ‘아콰마 린’이라는 걸 단박 알아보았다. 비싼 건 아니지만 흔한 돌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네가 보석 보는 눈이 밝은 건  전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지금은 그만두었지만  한때 무궁화 다섯 개짜리 호텔 지하상가에서 보석상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말재주에 반해 거기 자주 놀러 다닌 일은 있지만 그때 얻어들은 이야기도 보석의 질 이나 진짜  가짜를 감식하는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쓰잘데없는 것 들이었다.  미인이 자기도 모르게 인물 값을 하듯이 보석도 그 아름다움에 홀린 인간의 운명을 간섭하게 돼 있다는 뜻이었을까? 주로 보석에 따라다니는 슬프거나 신비스러운 전설, 아니면 명품을 에워싼  인간의 제어할 수 없는 욕망에 대해 친구는 많이도  알고 있었고, 어찌나 화려한 요설로  그걸 풀어내는지 듣고 있으면 꼼짝없이 넋이 빠졌다. 친구는 돈을 벌기 위해서나 보석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런 이야기에 씌어 그 장사를 하는 것 같았다. 

  ‘아콰마린’에 관해 얻어들은 이야기는 그러나 그런 흥미진진한 전설하곤 좀 달랐다. 깊은 바다 빛깔이 나는 게 양질의 ‘아콰마린’ 이지만, 그런 건 아주 드물다면서 드문 까닭을 이렇게 말했다. 극진히 사랑하던 애인을  바다에서 잃은 청년이 있었다나 그가  남은 생애 동안 돈을 버는 대로 오로지 뛰어난 아콰마린만 사 모은 게 늙어 죽을 때는 드디어 커다란 마대자루 하나 가득하더라는 것이었다. 깊은  바다에 애인을 빼앗긴 청년이 따라  죽는 대신 바다 빛깔 결정체에다 자신의 혼을 수없이 던진 이야기를 친구는 왠지 심드렁하고 간략하게 말했다. 그런 무기교야말로 극상의 기교였을까. 나 역시 무심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얘기를 듣고 나서 다시 본 그 돌의 청남빛은 면도날처럼 예리하고 차갑게 가슴살을 저미면서 내 안으로 들어오는 듯하여 오싹 소름이 돋았다. 

  마지막 기차를 놓치고 헐레벌떡 당도한 터미널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고 역시 막차까지 매진이었다. 막차까지는 아직 두 시간도 넘게 남아 있었고  서울행은 십분 간격으로 출발하는데도 매진이라니. 토요일 오후였다. 역에서 놓친 것도 기차가 아니라 표 살 시간 이었다.

  친정조카 결혼식에 왔다 가는 길이었다. 명색이 집안의 어른인데 결혼식에 청첩만 해놓고 돌아갈 표 하나 마련해놓지 않은  조카네의 야박한 소갈머리가 괘씸하고  얄미웠다. 서울서 왕복표를 끊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지만 실은 당일로 돌아오게 될 줄을 미처 몰랐었다. 직장 관계로 그 도시에 자리잡고 산 지가 오 년째  되는 장조카는 네가 전화를 넣을 때마다 한번 다녀가시라는 인사를 잊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제 동생 결혼식을 보러 내려온 고모를 으레 하루 이틀 묵어가게 할 줄 알았다.  친정은 서울 토박이였지만 큰 오라버니  내외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상 뜬 후 넷이나 되는 조카들은  제각기 직장 따라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다. 유일하게 서울에 직장을 얻은 막내조카마저 대구 색시와 연이 닿아 예식까지 그 고장에서 치르게 된 게 처가가 그 고장 유지인 때문만이라면 조금은 심사가 꼬였으련만 장조카네가 거기 살기에 한결 참아줄 만 했다. 특별히 고르는  것도 아닌데 혼인이 안되던 막내를 몇 번씩 선을 뵈고 드디어 성사를 시킨 게 큰형수였으니까 신부가 그 고장 사람인 건 당연했다.

  예식장은 온통 그쪽 사투리로 시끌벅적했다. 어른 대접을 할  줄 모르는 조카며느리 때문에 가뜩이나 울적한 마음이 더욱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폐백  받을 때 체면을 차리려고 한복까지 뻗쳐 입고 갔는데 폐백은 생략해도 좋다고 사돈집에다  일렀노라고 했다. 섭섭해 할 어른도 안 계신걸요. 폐백을 생략하도록  한 자신의 처사를 조카며느리는  이렇게 간략하게 변명했다. 어른이 없다니, 시고모는 어른이 아니란 말인가.  사람을 면전에서 그렇게 무시할 수 있는 조카며느리에 질려 나는 나도 모르게 내 편을 찾느라고 두리번거렸다. 

  세상에, 폐백도 안 드릴 거면 면사포는 뭣 하러 쓴답니까, 그냥 살고 말지. 정말 이런 일은 내 생전에 처음이네요. 그래도 법도 있는 집안에서 이럴 수가, 암 이런 법은 없구 말구요. 누가 보면 콩가루 집안인 줄 알겠어요. 하지 말란다 구 안 한 그쪽 집안이야말로 알만하잖아요? 이게 어디 집안 흉이나 보고 말 문젭니까.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인걸요.

  이렇게 조카며느리의 눈꼴사나운 선심을 주거니 받거니 입술 끝으로 짓씹고 같이  흥분할 만한 나잇살이나 먹은 얼굴을 찾았으나  눈에 띄지 않았다. 다들  낯설었다. 시고모란 뭔가. 법도로 따져도 출가외인에 불과하지 않은가. 어른에게 합당한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고 줄창 겉돌게 만드는 것은 조카며느리의 계산된 출가외인 대접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안간 자신이 없어지니까 시부모가 안  계신데도 폐백을 하는 게 옳은  건지, 안 해도 그만인 건지도 알 수가 없어졌다. 내가 자신 있게 아는 건 뭘까? 내년이 환갑이란 나이가 늙은이 대접을 제대로 못 받으니까 스산하고 흉흉하기까지 했다.

  얼음으로 봉황까지 조각한 피로연 석상에선 발 밑에서 안개가 피어 오르는 가운데 신랑  신부가 케이크를 자르고 샴페인이 터지고 박수와 환호성이 진동했다.  축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피로연장에서도 들리느니 온통 그쪽 사투리였다.  조카네한테 무시당했다는 느낌은 그쪽 사투리가 패거리를 져서 나를  따돌리고 있는 것 같은 참담한  고독감으로 이어졌다. 딸 시집 보낼 때 입었던 분홍색 한복은 치마폭이 도대체 몇 폭이나 되는지 감당할 수 없이 퍼지지 않으면 끌리는 것도 주책스럽다 못해 을씨년스러워 보일  터였다. 중요한 손님도 아니면서 남들이 한 번 볼 거 두 번 볼 요란한 옷을 입고  있다는 게 얼마나 못할 노릇인지, 벌을 서듯이 시시각각 의식하느라 음식은 맛도 모르고 건성으로 먹고 있었다. “참, 고모님은 몇 시 표로 끊으셨어요?” 내 옆에서 나는 무시한 채 제 자식 걷어 먹이기만 바쁘던  둘째 조카며느리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나에게 보인 최초의 관심을 이해하지 못했다. “표? 무슨 표?” “올라가실 표 말 예요. 어머, 예매도 안하고 내려오셨나 봐. 오늘 토요일인데.”  나는 대답  대신 아직도 손님 사이를 누비며  인사치레하기에 바쁜 장조카며느리를 눈으로 찾았다. 그러나 나보다 훨씬 잽싸게  큰 동서를 찾아낸 둘째는 큰일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올라갈 걱정도 안하고 바보처럼  느릿느릿 답답한 동작으로 비프스테이크를 썰고 있는 내 걱정을 했다. “아직은 늦지 않았을 거야. 지금부터라도 서두르면‥ ” 장조카며느리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그제서야 그날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대접성으로라도 자고 가랄 줄 알았던 기대가 무너진 게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다.  하마터면 눈물이 다 핑 돌 것 같아 대강 썰어놓은 고기조각을 꾸역꾸역 처넣었다. “천천히 잡수셔요. 아직은 시간이 좀  있으니까요.” “그렇지도 않아. 여기서  역까지 가는 시간이 있잖아.” “저희가 가는 길에 모셔다 드릴게요. 형님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하지만  저희가 조금 일찍 떠나죠 뭐.” “그래 줄래? 잘 생각했어. 남아 있어도  할 일도 없어. 고모님 모셔다 드리는 게 크게 도와주는 거야. 그럼 부탁할게.”  나를 옆에 놓고 장조카며느리와 울산 사는 둘째 네가 주고받은 말이었다. 울산서는 아마 제 차로 온 모양이었다. 좀 낡은 엑셀이었다. 신랑 신부만 빼고 조카들이 안식구하고 쌍쌍이 차 타는 데까지  배웅을 해주었다. 조카며느리는 남매를 데리고 뒤에 앉고 나는 운전석 옆에 앉아 조카 얼굴을 곰곰이 쳐다보았다. “뭘 그렇게 보셔요?” “네가 느이 아버지를 제일 많이 닮은 것 같아서‥” “어려선 외탁했단 소리 들은 것 같은데요.” “아냐, 야아” 나는 아무런 확신도 없이 강하게 부인을 했다. “형석이 본  지 오래돼요. 이번에 고모님 뫼시고 내려올 줄 알았는데‥”  “마침 해외 출장 중이잖니? 개 처도 직장이 있구.” “자긴 언제 해외 출장 갈 거야?” 뒷자리에서 방자 하도록 영롱한 목소리가 끼여 들었다. “왜 독수공방하고 싶어?” “나도 이런 행사에 슬쩍슬쩍 빠져보고  싶어서.” “야아, 친형제하고 사촌하고 같냐? 말을 해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조카의  입가에는 귀여워서 못 견디겠다는 미소가 맴돌았다. “다를 건 또 뭐야? 예단도 못 받았는데. 형님이  예단 생략하라고 했다나 봐. 나 시집올 때는 기를 쓰고 챙기드니만. 자기 나 좀 봐봐, 어디 미운 털 박혔나.” “됐네 됐어, 여보게. 내 눈에만 미운 털 안 박혔으면 그만이지 무슨 강환이야.”

  역까지 즈희들끼리 이렇게 찧고 까부느라 더는 나한테 끼어들  새를 주지 않았다. 대구역에서 주차장이 만원이라고 획획 호루라기를 불며 진입을 막는 것을 기화로 그들은 나를 짐짝처럼 내려놓기만 하고 가버렸다.  부창부수해서 얼씨구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표를 살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걱정보다는 우선 그  눈꼴 사나운 수작에서 놓여난 것만 해도 시원해서 살 것 같았다. 형국이 형석이  내외는 내 앞에서 저러지는 않는다고, 내 자식들 두둔하고 싶은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새마을호는 매진이고 남아 있는 무궁화호도 입석표뿐이었다. 나는 만약 바닥에 퍼더버리고 앉으면 능히  대여섯 명은 흙 고물 하나 안 묻히고 앉힐 수 있을 것  같은 여섯 폭 비단치마를 거머쥐고 고속버스터미널 쪽으로 씩씩하게 달음질쳤다. 다행히 고속터미널은 기차역에서 그닥 멀지 않았다. 그러나  버스표까지 매진된 걸 보자 더는 씩씩할 수가 없었다.

  빽빽이 들어선 사람들, 매캐한 공기, 온통 그쪽 사투리끼리로만 어우러진 이해할 수  없는 아우성, 그런 것들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것은 나의 분홍 한복이었다. 그 터무니없이  현란한 옷으로부터 놓여나기 위해서라도 나는 오늘 안으로 내 집에 가야만 했다. 내가 얼마나 낙담하고 있는지 내 얼굴에 씌어  있었나 보다. 누가 혼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러면 매표구 앞에 헛되게 서 있을 것이 아니라  승차장에서 기다려보라고 했다. 혼잣몸이면 예매를 해놓고 미처 시간을 못 댄  승객의 자리를 출발 직전에 얻어 타기가 수월하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아주 죽으라는 법은 없다더니 이 아비규환  속에서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나는 이 낯선 고장에서 그런 귀한 정보를 준 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승차장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나 약은 사람이 나 혼자일 리가 없었다.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빈자리를 얻어 타려는 사람이 따로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눈치 보거나 서로 다투면서 운 좋게 얻어 타는 게 아니라 순서 껏 타게 되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초조한 마음에 십분 간격이 더디기는 해도 버스가 떠날 때마다 대기 줄에서도 한두 사람씩 얻어 타는 사람이 생겼다. 그런데도 오늘 안으로 이 바닥을 뜰 수 있으리라는 가망은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었다. 표도 못 끊고 기다리는 사람보다는 예매를 해놓고 버스 시간에 못 대온 승객에게 우선권을 주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가냘프고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진득하니 붙어 있을 만한  참을성이 나에겐 없었다. 그 놈의 비단 치마저고리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예전 비단은 몸에 따습게 감겼는데 요새 비단은 어떻게 된 게 계절도 없이 얇기만 한 게 미풍에도  부풀어오르려고 만 들었다. 더군다나 승차장은 한데였다. 가을해가 설핏해지면서 기온이 떨어지는 걸 살갗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내 뒤에 줄 선 아가씨에게 화장실이  급한 몸짓을 하면서 자리 좀 봐 달리고 부탁을 했다. 대합실 안으로 들어가봐야 무슨 수가 생겨도 생길 것 같았다. 회사측도 양심이 있다면 토요일 오훈데 상행 버스를 몇 대  늘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하고  비슷한 사람들 끼리 목소리를 합쳐 회사측에다 그렇게 하도록  촉구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별안간 힘이 솟아 비단 치맛자락을 깃발처럼 펄럭이며 대합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거짓말 같은 행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대편 출입구 쪽에서 꿈에도 그리던 승차권 두 장을 높이 쳐들고 뛰어드는 노인을 보자 즉시 노인이  차표를 무르러 온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노인이 매표구로 가기 전에 잽싸게 가로막으면서 어디  가는 푠가 알아보았다. 서울 가는  표고 삼십 분 후면 탈 수 있는 표였다. “할아버지 그 표 저한테 파셔요. 얼마면 돼죠?”  “산 데 가서 물러도 제 값은 준다던데…” 지갑 먼저 열면서 말하는 내 표정이  얼마나 영악해 보였던지 좀 더 얹어드려도 된다는 뜻으로 말한 거였는데 노인은 제 값도 못 받을까 봐 경계하는 투로 표를 움켜쥐었다. 제 값을 드리기로 하니까 이번에는 두  장을 다 사야만 팔겠다고 했다. 한 장은  팔고, 나머지 한 장은 매표구에서 물러야 하는 게 귀찮은 눈치였다. 다 사는 건 어려울  게 없었다. 불필요한 한 장은 내가 물러도 되니까. 그러나 미처 그런 의사표시를 할 새도 없이 저하고 한 장씩 나누시죠, 하면서 나타난 손이 있었다. 아콰마린 반지를 낀 바로 그 손이었다. 그의 얼굴까지는 미처 보지 못했다. 그럴 겨를이 없었지만 궁금할 것도 없었다. 한 장의  고속버스표를 확실하게 손에 넣은 감격이 행운을 보장받은 복권을 거머쥔 것만치나  뿌듯하고 가슴 울렁거렸다.

  나는 그 기분을 좀더 느긋하게 즐기기 위해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잔 뽑았다. 남은 삼십 분은 그러기에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동안이었다. 대합실에서도 앉을 자리를 얻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었나. 그러나 구석진 벽에 기대어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기분은 그만이었다. 대합실 벽에 무심히 기댄 포즈를 취하기엔 영  안 어울리는 옷차림을 하고 있다는 것도 그닥 신경이 써지지 않았다. 커피맛이 유별나게 혀에 감겼다. 나는 커피가 아니라 슬그머니 내 안에 미끄러져 들어와 있는 ‘아콰마린’의 추억을 음미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오분 전쯤에 버스에 올라탔다. 창가에 앉았다. 그는 출발  직전에 올라탔다. 나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가 카키색 트렌치코트를 벗어서 시렁에 얹으려는  찰나 살짝 뒤집힌 옷자락에서 런던포그 상표가 드러났다. 세련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혼자 기차나 고속  버스를 탔을 때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옆에서 쉴새없이 우유나 빵, 귤  따위를 먹으면서 부득부득 먹으라고 권하는 건데 적어도 그럴 염려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내 의식 속에서 ‘아콰마린’ 반지와 런던포그는 따로따로 놀고 있었다. 차창 밖에선 어둠이 안개 빛깔에서 엷은 먹물 빛깔로 바뀌고  있었다. 버스는 대구의 안개를 뒤로  하고 마침내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그가 신문을 펼치다가 내 어깨를 살짝 스쳤다. 미안합니다. 정중하고도 싹싹한 말씨였다. 나는 그를 바로 보지 않고 괜찮다는 표시로 고개만 까딱했다. 바로 보지는 않았지만 신문을 펴든 손의 반지는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뼈대가  실하고도 든든한 남자다운 손에 잘 어울리는 단순하고 중후한 세팅이 마음에 들었다. 남의  옷차림이나 장신구에 대한 관심과 야릇한 설렘은 스스로도 좀  뜻밖이어서 그쯤 해두고 싶었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달착지근한 옅은 잠이 오락가락했다. 하루에 먼 거리를 왕복하느라 상당히 지쳐  있었음 에도 불구하고 그는 누구일까, 하는 호기심이 내 의식의 한 가닥을 계속 잠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짐짓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벌떡  상반신을 일으키면서 창 밖을 내다보려고  했지만 김이 서린 유리창은 간유리처럼 불투명했다. 커튼자락으로 그걸 닦아내려 하자 그가 옆에서 휴지를 한 뭉텅이 건네주었다. 고맙다는 인사 대신 또 고개만 까딱하고는 휴지를 받아 유리를 닦아냈다. 허허벌판을 달리고 있었다. 연도에서는 서울까지의 거리가 오백 미터 단위로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지만 그보다는 몇 시간이 남았나 가 더 알고 싶었다. 토요일 오후였다.  거리를 시간으로 환산하는 일은 무의미할  터였다. 곧 금강휴게솔 겁니다.  그가 말을 걸었다. 아, 네. 나는 짤막하게 알아들었다는 표시만 했다.

  금강휴게소에선 이십 분간 정차한다고 했다. 그가 내린 후 나는  약간 더 지체하다가 내렸다. 화장실은 더럽지는 않았지만 질척했다. 용무를 보는 동안도 밖에서는 물 뿌리는  소리가 났다. 청소한답시고 타일바닥을 한강수로 만들어놓고 있었다. 한복 치맛자락 건사하기가  너무 버거워 짜증이 났다. 밖으로  나와 내가 내린 버스를 찾으려는데  저만치 가로등 밑에서 차를 마시던 그가 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마음에 스며들 듯한 웃음이어서 얼핏 시선을 비켰다. 그렇게 서 있는 그는 전체적으로  꽤 괜찮은 영화의 라스트 씬처럼 인상적이었다.  청색 남방셔츠 위에다 포도주색 브이넥 스웨터를 걸치고 녹두색 모직 머플러를 가슴  언저리에서 아무렇게나 묶은 옷차림은 신세대 가수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야한데도 그의 은빛 머리하고 잘 어울렸다. 나는 얼른 속곳 가랑이가 무릎까지 드러나게 거미 쥐고 있던 치마를 내리고 뾰로통한 얼굴로 버스 쪽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맨땅에서도 물  건너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는 게 창피하고 화도 났다.

  버스 안에서도 밖의 그를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멋쟁이일 뿐  아니라 체중관리도 잘한 것 같았다. 배도 안 나오고 다리도 길고 걸음걸이는 여유 있고도 늠름했다. 나는 선반 위에 얌전히 개켜진 채로 있는 그의 트렌치코트를 쳐다보았다. 같은 상표는 아니지만 나도 꽤 괜찮은 바바리코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 놈의 폐백만  아니었으면 나도 그걸 입고 왔을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지금보다 적어도 십 년은 젊어 보였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와 함께 바바리 자락에 찬바람을 묻히고 그럴듯한 바에 들어가 양주를 한잔씩 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이상해지는  것은 암만해도 아콰마린과 상관이 있을 터였다. 아니면 꼭 그랬으면 싶은 바를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호텔 지하상가에 있는 친구네 보석상에 별볼일 없이  자주 드나들 때는 물론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였다. 그러나 아주 젊지는 않았었다. 아이들하고 지지고 볶으랴, 남편 뒷바라지하랴, 좋은 줄도 모르고 허위단심 넘어온 젊은 날을 돌이켜보며 어느 만큼은 대견해하고 어느 만큼은  허무해하던 때였으니 마흔은 훨씬 넘어서였을 것이다.  허무해지기 시작하면 꽤 괜찮게 자란  아이들도, 실력을 인정받는 간부사원이 된 남편도 시들해졌고, 시들해지기 시작하면 손끝 발끝이 저리도록 기운이 빠졌다. 느닷없이 돈푼깨나 있는 친구가 보석상을 차리고, 겨우 사는 내가 아무것도 안 사면서 보석상을 뻔질나게 드나든 것도 그런 허전한 심사와 무관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때 늙는 일밖에 안 남은 나이를 죽음보다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때 그 호텔 지하상가에는 보석상이 있는 거리에서 식당가 쪽으로 꺾이는 모퉁이에 카사노바라는 바가 있었다. 우리는 가끔 거기서 와인이나 칵테일을  한잔씩 마시는 일을 즐겼는데 술 맛을 알아서가 아니라 그 집 분위기가 어딘지  근사해 보여서였다. 처음엔 여자들끼리 술집에 가기를 수줍어하는 마음도 있고, 남편한테 떳떳지 못할 것도 같아 남편을 불러내 합석을 하기도 했다. 남편끼리도 동창이었다. 오늘 저녁에 나 쓸쓸한데 술 한잔 사줄래요? 하는 응석은 친구 남편에게도 내 남편에게도 통하지 않았다.  차라리 야단을 맞았더라면 다소곳이 집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다들 선약이 있으니 우리끼리 한잔 하라고 관대하게  굴었다. 남자들의 중년은 우리보다 훨씬 덜 쓸쓸해 보여서 우리의 쓸쓸함이 곱빼기로 불어 나는 것 같았다. 남편까지 우리를 챙기지 않게 됐다는 게 가뜩이나  자신 없는 나이를 더욱 보잘것없이 만들었다. 그런 기분으로 분위기가 고급스러운 바에서, 부자 친구 덕으로 양주 맛과  분위기를 즐긴다는 것은 빌린 보석으로 꾸미고 호사스런 파티에 가는 것처럼 서글프지만 거역할 수 없는 위안이었다.

  그때 우리가 위스키나 와인 맛보다 더 좋아한 것은 그 집 분위기였고, 그 집 분위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 집 단골인 늙은 한 쌍이었다. 점잖고 우아하고 여유 있어 보이는 노신사와 노부인은 늘 바텐더를 마주보는 스탠드에 앉았다. 등받이 없이 다리만 긴 의자가 그들에겐 고가의 액세서리처럼 잘 어울린다. 연인들을 위한 어둑시근하고 은밀한 자리도 많은데 그들이 단골로 앉는 스탠드는 밝고 도드라져서 도리어 은밀하게 보였다. 그들이 먼저 차지하면 늘 거기 앉던 사람도 그 근처를 피했다. 그들이 풍기는 은밀함에는 보장해주고 싶은 평화스러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노부부라고 여기지 않고 늙은 연인들이라고 여기고 싶어했다. 그건 순전히 우리의 바람일 뿐 그들 사이의 진짜 관계에 대해서는 끝내 모르고 말았다. 우리는 어두운 구석에서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기를 즐겼다. 미남 바텐더가 그들에게 치즈나 피 클 같은 간단한 안주를 서브하거나 크리스털잔 속의 호박빛 위스키에다 얼음을 넣어주는 걸 우리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황홀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표정이 어떤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늙어서도 그 정도로 멋있다는 건 우리에겐 선망이고 위안이었다. 그 노인들은 아주 천천히 거의 핥듯이 술을 마셨지만 자주 서로의 술잔을 부딪쳤다. 그들이 술잔을 가볍게 부딪치는  걸 보고 있으면 저 나이나 돼야 비로소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안 하던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때 나는 생활은 어느 정도 안정됐다고는 하나 부부간의, 친척 간의, 모자간의 관계가  삐그덕거리고 있다는 것을 마치 일찍 찾아  온 류머티즘처럼 생급스럽고 불행하게 느낄  때였다. 지내놓고 보니 아무런 근거도 없는 거였지만 그때는 꽤 심각했더랬다. 친구도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자주 했다. 나는 깊은 한숨으로 공감을 나타냈다. 그 노인들을 우리가 극도로 미화해 바라보는 것도 우리의  이런 허망감, 미구에 닥칠 노추의  공포를 달래기 위한 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친구네 보석상이 망함으로써 그 시절은 졸지에 막을 내렸다. 막은 원래 서서히 아쉽게 내리게 돼 있지만,부자가 망하는 것은 믿지 않을 만큼 순식간이었다. 친구의 남편이 부도를 내고 해외로 도피하고, 혼자 남은 친구는 빛 잔치로 보석상을  빼앗기고 알거지 시늉을 내다가 어느 날 나한테까지 온다 간다 말없이 남편 따라 이민을 떠나버렸다. 나는 허둥지둥 내 생활로 돌아와서, 내가 정신을 딴데다 팔고 있는 동안도 내  가정이 건재하고 있다는 걸 감지덕지 고마워하며 예전과 다름없는 살림꾼이 되었다.

  그 호텔에 드나들지 않게 된 지가 몇 년쯤 됐을까? 아득한 옛날 같기도 하고 바로 엊그저께 같기도 했다. 카사노바는 아직도 거기 남아 있을까. 카사노바도 늙은 연인들도 세월과 함께 사라졌다 해도 환상은 남아 있는 것, 나는 그와  함께 어느 고급스럽고도 이국적인 술집에서 아름다운 크리스털 잔을 부딪치기를 꿈꾸고 있었다. 옛날의 추억 때문에 마치 오랫동안 그러기를 꿈꿔왔으나 다만 파트너가 없어서 못해본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 종이컵을 건네주었다. 율무차였다. 비로소  그를 가까이서 쳐다보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수려한 골상에 군살이 붙지 않아 강직해 보였고, 눈빛은 따뜻했다. 가슴이 소리 내어  울렁거렸다. 이 나이에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걸 누가 믿을까.

  금강휴게소를 지나면서부터 버스가 조금씩 더 밀리기 시작했다. 기사는 승객의 양해를 구하는 절차 같은 건 생략하고 제멋대로 고속도로를 벗어났기 때문에 서울이 몇 킬로 남았다는 표지판도 사라졌다 국도인지, 기사만 아는 어떤 지름길인지  버스는 줄창 어둠 속을 달리다가도 작은 읍이나 면소재지인 듯 상점의 불빛이 있는 곳을 지나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거기가 어디라는 단서를 얻으려고 창 밖을 살펴보려 들었고 그는 나에게 유리창을 닦을 휴지를 건네주었다. 시골의 상점 거리도 서울미장원, 명동양복점, 독일빵집, 의정부 섞어찌개, 영재독서실 따위 간판을 달고 있으니 현재의 위치를 미루어 짐작하기는 불가능했다. 벌판이나 외진 산길만 가다가 어쩌다 나타난 그런 상점  거리도 반갑기보다는 비현실적이었다. 앞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니라 마냥 헤매고 있는 것처럼 느낀 지 오랜만에 벌써 서울인가  싶게 번화한 도시로 접어들었다. 차들의 번호판으로 대전이라는 걸 알아보았고, 열 시 가까운 시간이었다 “대전이네요. 그래도 이 버스가 서울로 가긴 가고 있나 봐요.” 이번엔 내가 먼저 수작을 걸었다.  “그럼 딴 데로 가고 있는 줄 아셨나요?” “고속도로를 벗어나니까 괜히 불안했어요. 밤새도록 가도 아무 데도 당도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지 뭐예요.” “아무데도 당도하지 못하는 버스라… 재미있어요. 제  상상력 보다 시적이고.”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는데요?” “저는 이 버스에 아주 중요한 사명을  띤 인물이나 거액을 가진 이가 타고  있어서 죄 없는 사람까지 어디론지 납치를 당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답니다.” “만약 저 기사가 우리가 하는 얘길 들으면 별 고약한 승객도 다  있다 하겠죠. 자기 딴엔 조금이라도 일찍 가보려고 낯선 길을 헤매는데.” “깨어 있다는  게 고약한 거 아니겠어요. 보셔요, 다들 얼마나 곤히들 자고 있나. 저 사람들처럼 기사가 어련히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랴 믿고 잠들었으면 그런 실없는 생각을 했을 리가 없죠.”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다들 곤히 잠들어 있고 깨어 있는 승객은 우리 두 사람밖에 없었다. 나는 왠지 그게 짜릿할 만큼 즐거웠다. “댁이 서울이십니까? 대구십니까?” 그가 물었다.  “친정조카가 대구에서 결혼식을 올려서 다녀가는 길이랍니다.” “그래서 그렇게 곱게 차려 입으셨군요.” “네, 폐백도 받고 이것저것 어른 된 도리를 하려면 암만해도 한복이 편할 것 같아서요.” 폐백도  못 받았단 소리는 일부러 안 했다. 그래도 버스여행하기에는 주책스러워 보일 게 분명한 한복에 대해 변명을 할 수가 있어서 속이 다 시원했다.

  대전을 지나고부터 버스는 본격적으로 밀려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서울에 도착했다. 승객들은 그 동안 계속 잘도 잤고, 우리 두 사람은 계속  깨어서, 계속 젊은 애들처럼 굴었다. 육이오 때 몇 살이었고, 얼마나 고생했고, 어디로 피난 갔었나 따위 진부한 얘기는 하나도  안하고, 흘러간 영화, 좋아하는 배우나 음악, 맛  좋고 분위기 좋은 음식점, 세상 돌아가는  얘기 따위를 두서없이 주고받으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수다스럽고,  명랑하고, 박식하고, 재기가 넘치는 사람인가를 처음 알았고 만족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모든 문제에  의견이 일치했던 건 아니다. 우리는 유신 시대나 군사정권 시대를 살아내기가 얼마나 치욕스러웠는가에 대해서는 정열적으로 동의했지만, 그가 식구처럼 아낀다는 진돗개 얘기를 하자 나는 마치 개 소리만 들어도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처럼  요란스럽게 질색을 했다. 그  모든 짓거리들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여북해야 자정이 넘었는데도 벌써 서울인가 싶었을까.

  시내버스가 드문드문 다니고 있었고, 지하철은 이미 끊긴 시간이었다. 고속버스에서  내린 승객은 거의 택시 승차장에 줄을 섰다.  밤공기가 냉랭했다. 그가 코트를 벗어 내 어깨에 걸쳐주었다. 나는 마다하지 않고 순순히 그 안에서 몸을 작게 웅숭그렸다. 나이 같은 건  잊은 지 오랬다.

  댁이 어디시죠? 그가 물었다. 고덕 쪽이라고 대답했다. 이럴 수가,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동네였다. 그러나 그가 살고 있는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을까? 가슴이 소녀처럼 발랑발랑 뛰었다. 아직도 동네 외곽에  많이 남아 있는 아름다운 숲과 꽤 괜찮은 산책로가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같은 택시를 탔다. 같은 동네라지만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내가 살고 있는 주택가하고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그는 나를 먼저 내려주면서 명함을 한 장 건네주었다.

  고교생이 있는 이층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게 반가웠다. 그러나  나는 그 학생의 얼굴도 잘 모른다. 싹싹해 보여서 세금이나 공과금 등 은행에 갈 일을 스스럼없이 부탁해온 이층집 여자가 우리 전기 값을 자기네와 비교하면서 고3이 있어서…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몇 번인가 들은 적이 있을 뿐이다.

  우리 집은 처음부터 세를 놓아 먹도록  지은 삼층 집이었다. 집주인인 나는 삼층에  살았고, 다른 층이 두 가구씩 살도록 설계된 것과는 달리 삼층만은 한 가구만 쓰게 돼 있어서  서른 평이 넘는 넓이였다. 혼자 살기엔 휘한 집이었지만, 온종일 비어 있던 집에 한 밤중에  문을 따고 들어오는 일이 조금도 을씨년스럽지 않고 감미롭게 느껴졌다.  비록 혼자 살고 있지만 거실엔 열네 식구나 되는 대가족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큰아들이 미국 지사로 나가기 전에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 대문짝 반절 크기였다. 우리 부부와 각각 네 식구씩인 두 아들과 딸네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열네 식구 중 남편이 먼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됐지만 비슷한 시기에 손자가 하나 더 생겨 내게 계산하고 있는 식구는  여전히 열넷이었다. 새로 생긴 손자는 미국서 낳아서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큰아들은  전화 값 안 아까워하고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전화를 하고 어떤 때는 어린것이 옹알이하는 소리를 들려주려고 꽤 오래 통화를 끌기도 한다. 멀지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딸과 분당에 살고 있는  아들도 매일 한번도 안 거르고 꼬박꼬박 문안전화를 한다. 내 집은 그렇게 전화선으로 내 핏줄들과 긴밀히 그리고 규칙적으로 연결돼 있어 내가  살아내는 데 힘이 돼주고 있다.  현관 불은 현관문을 열면 켜지게 돼있다. 다시 저절로 꺼지기 전에 얼른 마루 불을 켜고 버릇처럼 가족 사진한테 눈인사를 건넨다. 벗어놓았던 옷처럼 익숙하고도 눅눅한 내 집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그의 명함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런 직함 없이 이름 석자하고 집과 사무실 전화번호만 들어 있는 간결한 명함이었다. 내가 그에 대해 뭘 안다고 나는 그답다고 여겨져 더욱 호감이 간다.  뭐 하는 사무실인지는 그닥 궁금하지 않다.

  며칠 사이에 가을이 깊어지면서 삼층에서 바라보이는 숲의 단풍도 바야흐로 절정이다. 설악산 쪽은 이미 한물갔다고 한다.  그가 잘생긴 진돗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시간은 하루 중 어느 때쯤일까. 아파트에서 몰래 기르기엔  너무 덩치가 커서 단독에  사는 둘째 아들네하고 번갈아 데리고 있다고 하면서, 좋은 법이고 나쁜 법이고 그  나이까지 법을 어기는 짓은 못 해봤는데 그 녀석 때문에 위법행위 하느라 이웃 아주머니한테 기를  못 펴고 산다고 했다. 그는 살 만하고 선량한 사람일 것이다. 그만하면 알아야 할 것은 다 알고 있는 셈이다. 그가 준 명함은 전화기 옆에  얌전히 놓여 있다. 그에게 우리 집  전화번호를 가르쳐준 적이 없건만 전화벨이 울릴 때 그를 생각하며 받을 적이 종종 있다. 전화는 의당 번호를 알고 있는 쪽에서 걸어야 하건만 나는 그가 우리 집을 알고 있다는  건, 왠지 그를 또 만났으면 하는 바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가 우리 집을 불쑥  찾아온다는 것은 신사다움과 너무도 안 어울리기 때문이다. 천생 내 쪽에서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사돈 상을 당했다. 혼자 남아 고향을 지키고 살던 둘째 며느리의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식구들이 아이들까지 다 내려가면서 나한테 손자들이 기르던 조막만한 개를 맡기고 떠났다. 푸들이라던가, 어찌나 조막만한지 꼭 손안에 드는 봉제완구 같았다. 꼼지락거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동물 같지도 않은 느낌 때문에 싫어하고 말고도 없이 떠맡게 되었고,  맡기는 쪽에서도 무얼 먹지 어디서 싸는지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한마디도 일러주지 않고 덮어놓고 떠밀기만 하고 떠났다. 졸지에 당한 일이라 황망하여 그리 되었을 것이다. 행여나 해서 화장실 문을 열어놓았더니 그 안에서 용무를 보는 게 신기하고 깜찍했다. 그러나 누기만 하고 통 먹지를 않았다. 우유도 죽도 카스텔라도 냄새도 안 맡고 도망부터 쳤다.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굶겨 죽였단 소리 들을 것 같았다. 혼자자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보다가 안돼서, 이층 고3 엄마한테 의논을 했더니 아마 여지껏 길들여진 사료가 따로 있을 거라고 했다. 내일 시내 나갈 일이  있으니 그런 것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집에 들러서 의논해보고 한두 가지 사와 보겠느라고 한 날 저녁이었다. 나는 허설쑤로  한데 모은 음식 찌꺼기에다가 국 국물을 부은 것을 고 녀석 입에다 갖다 대보았다. 또 고개를 외로 꼴 줄 알았는데 앙칼지게 달려들더니 붉은 혀를 맹렬하게 날름대며 국물부터 핥기 시작했다. 그래, 만물의  영장도 배고픈 설움엔 무릎을 끓게 돼 있는데,  네까짓 게 찬밥 더운밥 가려봤댔자야 요것아,  알았지? 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띠려는데 별안간 째지는 소리로 캥캥대며 죽을 둥 살 둥 몸부림을 치는 게 아닌가.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차근차근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당장 숨  넘어가는 꼴을 볼 것만 같아 더럭 겁부터 났다. 아들 내외 볼 낯도 없지만, 그  강아지한테 영락없이 엄마처럼 굴던 손녀의 모습이 아른거리니까 더 미칠 거 같았다. 그때 도움을 청하고 싶은 사람으로 제일 먼저 떠오른  게 그였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전화번호를 돌렸고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울음이 복받쳐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알아듣고 차까지 가지고 즉각 달려와주었기 때문에 가까운 수의사한테까지는 가는 동안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달려와준 그를 보자 나는 다시 울음이 복받쳤다. 왜 그렇게  눈물이 잘 나는지 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한  손으로는 내 어깨를 토닥거리며 위로를 했다. 수의사의 처치를 받는 동안 강아지는 더욱 애처로운 소리를  냈고 나는 숫제 그의 품에 안겨서 귀를 막고 흐느꼈다. 내가 생각해도 요사스럽기 짝이 없는 짓거리였지만 나는 그 감미로운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수의사는 강아지 목구멍에서 집어낸 생선가시를 보여주면서 개 아픈 데 같이 우는 아이는 많이 봤어도 같이 우는 할머니는 처음 봤다고 했다.

  강아지는 무사했고 며칠 안돼 제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물론 하나도 안 섭섭했다. 나는 강아지를 사랑한 적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 강아지가 집에 있는 동안 강아지 안부를 주고받는 것으로 시작된 그와 나의 전화질은 강아지를 보낸 후에는 차 한잔 하자는 만남으로 발전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아침 산책을 나가기도 했고, 첫 눈이 오는 날은 마침내  카사노바하고 비슷하게 분위기가 고급스러운 바에서 괜히 잔을 부딪치며 위스키를 마시기도 했다. 그때는 내가 샀고, 다음엔 그가 답례로 토속적인 목로술집에서 막걸리를 샀다. 서양식 술집  못지않게 근사한 집이었다. 내가 한식을 사면 그는 양식을 샀고, 내가 싼 걸 산 다음 그는  비싼 걸 샀지만 서로 부담을 안 느끼기 위한 어떤 규칙이 있는 건 아니었다.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그때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그의 잘생긴 진돗개하고도  낯을 익혔고, 그의 차에다 진돗개를 태우고 드라이브를 가기도 했다. 서울 근교에 그렇게 좋은 곳이 많다는 걸 처음 안 것처럼 느꼈다. 강아지를 핑계로 눈물을 흘릴 수도 있을 만큼 간사스러워진  후였다. 곳곳이 새로워 함부로 탄성을 지르지를 않나, 열여섯 살 먹은 계집애처럼 깡총거리지를 않나, 요즈음 신세대 탤런트의 연기를 톡톡 튄다고들 하는데 내 안에서도 뭔가가 핑퐁 알처럼 경박하고 예민한 탄력을 지니게 되었다는 걸 느꼈다. 뿐만 아니라 연기를 하고 있다는 혐의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자신 속에서 느끼는 경박한  즐거움은 유희의 기쁨 깐은 것이었으니까, 어차피 현실감이 있는 건 아니었다. 뭐든지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는 건 꿈속과 다를 바 없었다.

  여북해야 이런 일까지 있었겠는가. 하루는  목욕을 하는데 전화벨 소리가 났다.  전화기는 마루에 하나 안방에 하나 두 대였지만 아직 무선전화기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럴 때 벌거벗은 채 당당히 걸어나가 전화를 받아도 된다는  것도 혼자 살아서 좋은 일 중의 하나였다. 욕실은 안방에 붙어 있고 안방 전화는 경대 옆 문갑 위에 놓여 있다. 몸에서 물이 떨어져 발 밑에 타월을 깔고 뻣뻣이 서서 전화를 받다 말고 나는 하마터면 아니 저 할망구가  누구야! 하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문갑 옆 경대는  시집올 때 해가지고 온 구식 경대여서 거울이 크지 않았다. 거기에 하반신만이 적나라하게 비쳤다. 나는 세 번 임신했고  삼 남매를 두었지만 실은 네 아이를 낳아 셋을  기른 거였다. 세 번째 임신이 쌍둥이였다. 그 중  아우를 낳아 돌 안에 잃었다. 쌍둥이까지 밴 적이 있는 배꼽 아래는 참담했다. 볼록 나온  아랫배가 치골을 향해 급경사를 이루면서 비틀어 따 말린 명주빨래 같은 주름살이 늘쩍지근하게 처져 있었다. 어제오늘 사이에 그렇게 된 게 아니련만 그 추악함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욕실 안의 김 서린 거울에다 상반신만 비춰보면 내 몸도 꽤 괜찮았기 때문이다. 또한 욕조에 잠겨나서 나와서나 내 몸 중에서 보고 싶은 곳만 보고 즐기려는 마음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나는 급히 바닥에 깔고 있던 타월로 추한 부분을 가리면서  죽는 날까지 그곳만은, 거울 너에게도 보이나 봐라, 하고 다짐했다.

  크리스마스에 나는 머플러를 선물로 준비했는데  그는 나에게 스카프를 선물했다.  둘 다 야한 것이었다. 실용보다는 주고받을 때  어떡하면 상대방을 놀래키고 즐겁게  해주나를 더 염두에 두고 골랐다는 걸로도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닮은꼴이었다. 그러나  닮지 않은 점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여자에게 선물을 해본 지 오랜만이라고 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삼 년 만이라고 했고, 삼 년 전에 상처한 것을 자나가는 말처럼 비쳤다. 서로 그만큼 친해지는 동안 우리가 과부 홀아비끼리라는 걸 내비칠 기회는 많았다.  그러나 정식으로 그 시기까지 말하긴 처음이었다. 나는 관심 없다는 투로 화제를 바꾸었다. 머플러와 스카프를 교환하는 것처럼 그런 신상염세까지 교환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해가 바뀌니 환갑 해였다. 낳은 해의 육갑이 한 바퀴를 돌아온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육갑을 한다’는 게 결코 칭찬이 아닐 텐데 너도나도 내 앞에서  육갑을 하려 들었다. 설날 아침 큰아들도 전화로 세배를 대신한다며 그 얘기부터 했다. 나더러 회갑잔치 대신 미국 구경을 오라는 거였다. 나만 좋다면 잔치는 칠순으로 미루고  그렇게 하기로 저희들 삼 남매끼리는 벌써 합의를 본 모양이었다. “글쎄다. 너희들 신경 쓸 거 없어, 야아.  나 잔치 안 해줘도 조금도 섭섭해하지 않을 거니까, 대신 뭐 해줘야 된다고  생각하덜 말어. 어느새 회갑은, 심란허게…”. 나는  시들하고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사양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그러했다.

“그러니까 심란해하시지 말고 대신 여행을 하시자 는 거 아녜요.  휴가 넉넉히 잡아놓을 테니까 그까짓 거 유럽 구경까지 하시자 구요.  저희도 여기 있을 날이 일년밖에 안  남았어요. 이런 좋은 기회 놓치면 평생 후회하셔요.”

  아들은 숫제 협박조였다. 협박할 만했다. 그 애는 미국 지사로 나가던 해부터 구경  오라고 졸랐으니까. 그러나 나는 회갑잔치만큼이나 안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자식이 외국 나가 있다고 늙은이들이 처가에서 한때, 친가에서  한때, 세상 만난 듯이  비행기를 타는 거였다. 나는 가타부타 언질을 안 주고  전화를 끊었다. 국제 전화일 때는 으레  내가 먼저 조바심을 하며 끊게 돼 있었다.

  회갑이란 본인에게만 고약한 게 아니라 자식들에게 더 고약하게  돼 있나 보다. 순순히 여행을 가고 싶어하지 않자 그럼 잔치를 하고 싶은가 알고 싶어했고 그도 저도 아니라는 걸 알자 속마음을 알고 싶어 안달을 했다. 나도 모르는 속마음을 저희들이 무슨 수로 알겠다는 건지, 속으로 우습기도 하고 조금은 기분이 좋기도 했다. 남하는 대로 열심히 효도를 해보려는 자식들이 대견하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나를 떠보는 안테나 노릇은 딸의  차지였다. 맏이여서 에미하고 나이 차이도 자식 중에서 가장  덜 나고 또 동성이기 때문에 편한 것도 있었다. 타고나기도 속 깊어 내가 어려서부터 친구처럼 대했고  제 동생들도 누나를 어려워 하면서도 뭐든지 의논해 버릇해서 그런지 친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가 모르고 있는 걸 못 참아 했다.

  그런 버릇이 이번 일에도 쓸데없는 오지랖을 넓게 한 듯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에미의 남자친구에 대해 조금씩 미심쩍어하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종자가 아닌 이상 친인척 빼고도 학연지연 등의 그물망을 피할 수 없는 게 우리  사회니까, 딸이 알아보려고 나선 이상 이미 내가 다 알고 있는 것은 물론  나에게 가려져 있던 부분까지 드러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작년에 정년 퇴임한 지방대학 교수라는 것, 한국사를 가르치던 퇴직교수끼리  공동으로 조그만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  상처한 지 삼 년 됐다는 것 등은  나도 대강 알고 있었지만 부부 금실이 유별났다던가, 아들네 말고도 집 한 채와  시골에 땅도 가지고 있다는 것, 모시고 있는 맏며느리가 부잣집 딸이고 미인이고 머리도 좋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맏며느리에 대한 정보가 풍부한 것은 딸하고 동갑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같은 학교인 적은 한번도 없다고 해도 넓고도 좁은 서울 바닥에서만 국민하교부터 대학까지 나왔으면 어차피 어떤 연줄을 통해서든 걸려들게 돼 있었다. 그쯤 알아보고 난 딸의 정색을 하고 도대체 그 늙은이하고 어쩔 셈이냐고 물었다. 이건 마치 바람난 딸을 잡도리하려는 에미의 태도였다.“그 늙은이라니.”“그럼 우리 엄마를 꼬셨는데  고운 말이 나와?”딸의 눈에  눈물까지 그렁 한 걸 보자 당장 그의 역성부터 들려고  한 내 태도가 슬그머니 뉘우쳐졌다. 실상   그하고 나 사이는 자식들한테 발각이 됐다고 해서 달라질 어떤 건더기가  있는 사이가 아니지 않은가.

“꼬시긴 누가 누굴 꼬셔? 누구 들을라. 숭 하다.” “형국이 형석이는 아직 몰라요?” “알면 또 어떠냐.” “엄만, 알아서 좋을 건 또 뭐요.  더 늙으면 구박받고 무시당할 빌미나 될 텐데.” “네가 입 다물고 있으면 걔들이 어떻게 아나?”“알았어요. 전 입 봉하고 있을 테니까 엄마나 조심하세요. 자식들 체면이라는 것도 있지 않수.”

  딸애는 또 같잖게끔 바람난 딸에게 아버지한테 이르지 않을 테니 정신차리라고 쉬쉬  당조짐하는 에미 시늉을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딸의 간섭은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우리 사이가 더 조심을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고 종전과 달라지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아마 그의 집안에서  딸한테로 직접 정보가 흘러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며느리는 딸하고 단짝이던 고등학교 친구하고 대학동창이 되었다. 게다가 그쪽  며느리와 내 딸은 같은 단지에 살고 있었다. 한번 연줄을  트자 마치 겹사돈처럼 알려고만 들면 모를게 없을 정도로 서로 비밀의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말았다. 중간 역할을 하고 있는, 양쪽을 다 안다는 딸의 친구에  의해 정보가 다소 굴절되거나 과장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속속 드러난 그쪽의 조건은 잔뜩 적의를 곤두세우고 있는 딸의 구미에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실실 웃으며 엄마 실력 다시 봐줘야겠다는 무엄한 농담을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어느 날 아주 정색을 하고 물었다. “엄마, 조박사님 사랑해?” 그때 나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하마터면 델 뻔했다. 폭소가 치받쳐 사레가 들리면서  들고 있던 잔까지 엎질러버렸기 때문이다. ‘그 늙은’가 ‘조박사님’으로  변한 것도 우스웠고 그가  그렇게 부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언제가 우연히 만난 중년의 제자하고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나서였다. 옛날 제자들은 선생님, 하면서 아는 척을 해서 좋은데 요새 제자들은 교수님 아니면 박사님이라고 불러서 도무지 정이 안 든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좀 괴팍한 데가 있었다. “뭐가 그렇게 우스워요?”

“그 늙은이가 박사님이 됐는데 그럼 안 우습냐?” “엄마가 좋아하는 걸 보니까, 사랑하는 거 맞죠?”

  그러면서 입을 조금 비죽댔는데 혐오스러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러나 딸이 쓸쓸해하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만으로도 조만간 나의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상태를 더는 즐기지 않을 각오를 한다는 것은 딸이 지금 쓸쓸해하는 것 몇 배 더 쓸쓸한 일이  되겠지만 마냥 피할 수는 일이었다.

  그 늙은이가 조박사님으로 변하고 난 지 얼마 후였다. 딸이 마침내 그의 며느리하고 인사를 하고 지내게 되었노라고 했다. 중간에선 친구가 자리를 마련했는데  만나고 보니 슈퍼 같은 데서 종종 마주친 일이 있는 얼굴이더라는 것이었다. 중간에서 개입하던 제삼자가 없어지고 나서 딸이 더욱 그 집에 대해 호의적으로 돼간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그쪽 입장이 돼가는 딸을 보고 있으면 하염없이 서글퍼지기도 했다.“엄마, 혹시 형국이 형석이 눈치가 보여 마음을 못 저하시는 거면 염려 말아요. 내가 엄마 위신 조금도 안 떨어지게 걔들을 이해시킬게.” 저희끼리 무슨 꿍꿍이속이 있었기에  이렇게 겁 없이 구체적으로 나오는 걸까. 보나마나 그쪽 며느리가 구는 것 같아 그가 안쓰러웠다. “요는 네 에밀  시집을 보내겠다는 게냐, 시방.” “사랑하시잖아요? 살기가 어렵거나 모시겠다는 자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해서 하는 재혼, 얼마나  근사해 누가 뭐래도 난 엄마를  변호하고 자랑스러워할 거야.”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사랑 타령을 하는 딸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녹으로는 제까짓 게 사랑에 대해 뭘 안 다구,사랑이 별거라던? 인생 그 자체일 뿐인 것을, 이렇게 가볍게 만들려고 할수록 짓눌리는 듯한 기분이 들긴 했다.

  그의 며느리는 어느 틈에 그하고 나하고 사이에도 자연스럽게  화제에 오르게 되었다. 어머, 그 파카 못 보던 거네요, 너무  야하나. 그러면 그는 며느리가 사주었노라고, 요새  걔가 나를 젊게 꾸며주려고 부쩍 애를 쓰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노라고 수줍은 듯이 머리를 긁적거리기도 했다 아직 본 적이 없는 그의 며느리가 중요 인물로 떠오를수록 짓눌리는 듯한 느낌은 더해갔다. 그후  며느리가 나를 집에 초대하고 싶어하는데 언제쯤이 좋을지 나한테 정하라고 했다는 소리를 그가 했을 때는 며느리 소리 좀 작작 하라고 화를 내고 싶은 걸 참느라고 혼났다. 그는 대답을 회피하는 나에게 당장 무슨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는  않았지만, 싱그러운 로션 냄새를  풍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비해 보였다. 딸을 통해서도 그 집 며느리는 같은 전갈을 해왔다. 딸은 내 의중은  떠보지도 않고 나한테 무슨 옷을 입혀야 그 멋쟁이 며느리한테 꿀리지 않을까, 그 걱정부터 했다.

“그 며느리 요새 세상에 드문 효분가보다. ” “그럼, 엄마.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 그래도 홀시아버지 모시기가 보통 힘들겠수.  힘들 때마다 자원봉사하는 셈  친대요.” 가슴이 뭉클했다. 그러나 순간적인 분노와 인민으로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딸에게 분명하게 말했다. “얘야, 평숙아, 잘 들어라. 이 에미는 아버지 곁에 묻히고 싶다 “

  딸아이도 그 말에는 머쓱해서 더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비록 선산은 아니었지만 공원묘지의 남편 묘는 나하고 합장하도록 곁에 가묘까지 만들어져 있었고, 묘비명에도 내 이름이 남편과 나란히 새겨져 있었다. 나는 이미 묘와 묘비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태어난 연월일 밑에 들어갈 죽은 날짜만이 아직 새겨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는 성묘하기를  좋아했다 그하고 사귀는 동안도 남편한테 미안한 마음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나의 일상적인 행동 중 거기 가고 싶다는 것처럼 완전에 가까운 자유의사는 없었다. 거기서  느끼는 깊은 평화에다 대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아무리 큰 기쁨이자 슬픔도 그 위를 스치는 잔물결에 지나지 않았다. 결코 죽은 평화가 아니었다. 거기 가면 풀도 예쁘고 풀 사이에 서식하는 개미, 메뚜기, 굼벵이도 예뻤다. 그의 육신이 저것들을 키우고 있구나, 나 또한 어느 날부터인가 그와 함께 저것들을 키우게 되겠지, 생각하면 영혼에 대한 확신이 없어도 죽음이 겁나지 않았고,  미물까지도 유정했다. 진이 빠지게 풀들과 곤충들을 키우고 난 찌꺼기는  화장하여 훨훨 산하를 주유하도록 해주기를 자식들에게 부탁할 작정이다. 그 보장된 평화와  자유로부터 일탈할 어떤 유혹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날은 그쯤 하고 물러난 딸이 다시 또  무슨 얘기를 그쪽에서 들었는지 이런 소리를 한다. “엄마, 엄마가 재혼해도 돌아가시면 아버지하고  합장해드릴게 염려 마세요. 생각해보니까 그쪽도 마누라 곁으로 갈 거 아뉴 ” 내가 원하는 평화는 그렇게 구차스러운 것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설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만 해두거라 망측하다. 그게 딸년이 에미한테 할 소리냐?” “뭐가 망측해요.  재클린이 케네디 옆에 묻히는 것도 못 봤수. 친척들이나 동생들이 뭐래도 내가 우기면 그 정도는 문제없을 거야.  아버질 외롭게 놔둘 권리는 아무한테도 없을걸,” “글쎄 듣기 싫대두. 너 정말 왜 이러니?” “엄마야말로 왜 그러세요. 엄마가 정열적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왕년의 정열 가지면 그까짓 거 뛰어넘는 건 문제없잖우.” 듣자 듣자 하니 정말 딸년한테 별소릴 다 듣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이해 못할 소리는 아니었다. 딸의 노골적인 말투를 통해 나도 그간의  내 마음의 행적을 돌이켜보는 걸 피할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딸애는  맏이답게 내 젊은 날에 대해 들은 게 많았다 그 애는 또 식구만 많고 변변한 집 한 칸 없을 때 태어나서  여고시절까지도 납입금 한번 독촉 안 받고 내본 적이 없을 만큼 쪼들리는 집안 형편을 보아왔다. 내가 고생을 못 면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면서도 한편 자업자득이라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밝히기를 잊지 않는 외할머니의 푸념을 가장 많이 들은 것도  그 애였다. 지금은 양가의 형편이 엇비슷해졌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친정 쪽은 젊잖은 중류 집안인데  비해, 시집은 남편 빼고는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들이 없어서 그랬는지 가난하기만 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거칠고 상스러웠다. 한창 민감한 딸이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을 리가 없고, 외할머니의 푸념은 딸의 의문에 적절한 회답도 되었으리라.

  남편하고 열렬히 연애할 적에 어머니도 사윗감 하나는 마음에  들어 했다. 여북해야 개천에서 용 났다고까지 추켜 세웠을까. 그러나 내가 그 용한테로 시집가는 것만은 단호히 반대했다. 개천에서 난 용한테 시집가는 건 용한테 가는 게 아니라 개천에 빠지는 거라고  했다. 어머니가 아무리 울고불고 말려도 나한테는 개천이 보이지 않고  용만 보였다. 어머니의 예언은 적중했고 나의 개천과의 악전고투는 막내시누이를  시집 보낼 때까지 계속됐다. 남들에게는 개천으로 보이는 것이 나한테는  사는 보람이요, 씩씩할 수 있는  원천이었다 그 시절 내 눈을 가리고 오로지 한 남자만 보이게 한 그 맹목의 힘을 딸은 지금 정열이라 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정열이라 해도 좋고 정욕이라 해도 좋았다.

  지금 조박사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그게  없었다. 연애감정은 주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데 정욕이 비어 있었다. 정서로 충족되는 연애는 겉멋에 불과했다. 나는 그와  그럴듯한 겉멋을 부려본 데 지나지 않았나 보다. 정욕이 눈을 가리지 않으니까 너무도 빠안히 모든 것이 보였다. 아무리 멋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닥칠 늙음의 속성들이 그렇게 투명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내복을 갈아 입을 때마다 드러날 기름기  없이 처진 속살과 거기서 우수수 떨굴 비듬, 태산 준령을 넘는 것처럼  버겁고 자지러지는 코곪, 아무데나 함부로 터는  담뱃재, 카악 기를 쓰듯이 목을 빼고 끌어올린 진한가래, 일부러 엉덩이를 들고 뀌는 줄방귀, 제아무리 거드름을 피워 봤댔자 위액 냄새만 나는 트림, 제 입밖에 모르는 게걸스러운 식욕, 의처증과 건망증이 범벅이 된 끝없는 잔소리, 백 살도 넘어 살 것 같은 인색함, 그런 것들이  너무도 빤히 보였다. 그런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딘다는 것은 사랑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같이 아이를 만들고, 낳고, 기르는 그 짐승스러운 시간을 같이한 사이가 아니면 안되리라 겉멋에 비해 정욕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재고할 여지는 조금도 없었다. 불가능을 꿈꿀 나이는 더군다나 아니었다. 딸이 안 해도 될 군소리를 덧붙였다. “엄마가 이 청혼 받아들이지 않으면 조박사님 불쌍해서 어떡허지.  며느리가 글쎄 더는 수발들 수 없대 이왕이면 시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시켜드리고 싶지만 안되면 아무나 하고 시킬 모양이야. 밥걱정 노후걱정 안 하려고 시집오려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대 그렇지만 너무 젊은 여자는 며느리가 싫은가 봐. 당장 지내기 거북한 것 말고도 나중에 책임질 기간이 길까 봐 그렇겠지 뭐. 기껏 어디서 배고픈 할머니나 한 분 모셔 올 모양이야. 엄만 사랑하던 사람이 그렇게 불쌍해져도 좋아?” 친구한테 농담하듯이 버릇없는 말투였다. 나는 발끈했다. “배고픈 게 왜 나빠? 무시하지 마, 너 . 자원봉사보다 훨씬 거룩한 거다, 그거 “

  겉멋보다는 더욱 거룩한 거였다. 나는 한번도 본 적 없는  그의 며느리를 딸의 얼굴과 겹쳐 보면서 속 시원히 내뱉었다. 더는 며느리나 딸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날, 곧 미국 갈 수속 중인데 될 수 있으면 오래 머물  거란 얘기를 하고 나서 그의 반지 낀 손 위에다 내 손을 정성스럽게 포개면서 한 번 과부 된 것도  억울한데 두 번씩 과부 될지도 모르는 일은 저지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완곡하게 말한다는 게 심하게 들리지나 않았을까, 눈치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문학사상 1995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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