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진의 동정호 용궁 나들이
- 돌다리 위의 팔선녀
- 성진과 팔선녀와의 만남
- 세상 생각에 잠긴 성진
- 양씨 가문에 환생한 성진
- 신선이 된 양소유의 부친
- 화음현에서 규수를 만나다
- 진채봉이 편지를 보내다
- 남전산에서 도사를 만나다.
- 거문고와 퉁소와 방서를 받다
- 진소저에 대한 그리움
- 낙양기생 계섬월과의 만남
- 계섬월과 운우지락을 나누다.
- 두련사의 정소저 천거
- 정소저의 뛰어난 지혜
- 과거장에서 사위감을 고르는 정사도
- 장원 급제한 양한림
- 정소저의 묘계
- 양한림과 선녀 상봉
- 선녀가 변하여 귀신이 되다
- 두진인이 관상을 보다
- 한림 앞에 모습을 드러낸 춘랑
- 양한림이 낙양을 지나가다
- 천진교에서 계섬월과 상면하다
- 객관에서 적경홍과 상면하다
- 진채봉과 양랑의 쓰라린 해후
- 양소유의 혼인에 대한 상소
- 자객으로 온 심요연
- 양원수가 남해 태자를 물리치다
- 태후와 공주가 정경패의 발원서를 보시다
- 난양공주가 정소저와 궁궐로 들어가다
- 태후궁에서 칠보시를 짓다
- 양승상이 정사도 집으로 돌아오다
- 두 공주와 양승상의 계교
- 양승상이 대부인을 모셔다가 잔치하다
- 월왕이 양승상에게 놀이를 청하다
- 심요연과 백능파
- 벌주를 마시다
- 양승상의 사직상소
- 성진과 팔선녀가 꿈을 깨다
머리말
우리 국문학사상 영원히 빛날 명작이다. 한국 고대 소설문학의 발전 과정에 있어 김시습, 허균, 김만중의 공헌은 지대하다. 숙종시대의 거봉 서포 김만중의 현전하는 그의 소설작품 “구운몽”은 “사씨 남정기”와 더불어 한글소설을 대성시킨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구운몽”은 그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숙종 때 한글로 집필하여 숙종 때 소설문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보다 앞서 그가 남해 귀향지에서 숙종을 참회시키기 위하여 지은 소설 “사씨남정기” 도 국문학사상 손꼽히는 작품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정소설’이며, 숙종이 인형왕후를 폐출하고 장희빈을 왕비로 삼은 역사적 사실을 원형으로 삼은 작품이다. 당시의 일화를 보면, 어느 날 숙종이 궁녀로 하여금 얘기 책을 읽어달라고 하자 궁녀가 이 소설을 읽어 주었는데, 주인공 유한림이 무죄한 아내 사씨를 내쫓고 간교한 첩 교씨를 아내 맞아들이는 대목에서는 숙종이 유한림을 천하에 고약한 놈이라고 흥분하기까지 했다 한다.
어머니의 평소 행적을 글로 써서 남기었다. 그것이 정경부인 “윤씨 행방”이란 작품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있는 그대로 솔직히 결정체라고 볼 수 있다.
1994년 2월 12일 봄
구운몽 – 김만중
김만중:1637(인조 15)__1692(숙종 18) 조선시대 문신, 소설가. 자는 중숙, 호는 서포. 아버지 익겸이 병자호란 때 강화에서 순절하여 유복자로 태어났다.
1665년(현종 6) 정시문과에 장원, 벼슬은 대제학, 대사헌 등을 지냈다. 서인의 지반 위에서 벼슬길에 오른 것으로 인해 당쟁에 휘말려 탄핵과 유배를 여러 번 받았으며 유배되어 간 곳에서 병사했다.
효성이 지극하여 귀양갈 때 외에는 노모 곁을 떠난 일이 없었고 “구운몽”도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쓴 것으로서 전문을 한글로 집필하여 당시 소설 문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보다 앞서 배소에서 숙종을 참회시키기 위해 지은 “사씨남정기”도 국문학상 손꼽히는 작품이다.
또한 한글로 쓴 문학이라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는 문학관을 피력하였고, 평소 송강 정철의 가사 작품을 높이 평가하였으며 국문학의 수립을 주창하기도 하였다. 1698년 관직이 복구되었고, 1706년(숙종 32) 효행에 대해 정표가 내려졌다. 저서로는 “서포만필”, “서포집” 등이 있다.
구운몽의 이해와 감상
교과서 -> ‘교학’ ‘지학’
주제:
현세의 부귀공명은 일장춘몽, 인생무상. 불교에의 귀의.
시점:전지적 작가 시점.
해설
조선조 숙종 때 폐비를 반대하다 남해로 유배되어 가서 한양에 있는 노모를 위로하기 위해 썼다는 김만중의 작품이다. 작품에 비현실적인 요소가 많지만, 구성이나 문체에 있어서는 흠잡을 데 없는 고대 소설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구운몽”은 몽자류 소설의 효시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유교적인 현실적 공리주의와 불교적 정관인 공의 사상, 그리고 도교의 향락주의가 융합되어 당시의 정신 생활을 총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즉 현세의 부귀 공명은 일장춘몽임을 유, 불, 선 사상으로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내용은 일부다처주의 애정생활을 미화한 것이 중심이며, 대부분의 국문 구소설들이 단순한 전기적 이야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비하여, 이 글은 본격적인 인생문제를 다루고 있어 작가의식이 분명한 소설로 평가된다.
유학자인 김만중이 불교적인 주제와 시각에서 인간의 문제를 형상화한 점과 조리 있는 구성과 간결한 문체로 인간의 욕망을 어떤 구속도 받지 않고 대담하게 표현한 것은 주목할 만 하다.
구성은 일종의 몽환 구조로 현실인 선계와 꿈인 인간계라는 이중 공간에다, 다시 꿈 속에서 현실 세계와 선계 또는 용왕계라는 복합구조를 가지고 있다.
성진의 동정호 나들이
천하에는 명산이 다섯이나 있는데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에 각기 자리잡고 있었다.
동쪽에 있는 산은 동악이니 그 이름은 태산이라 하였고, 서쪽에 있는 산은 서악이니 그 이름을 화산이라 하였고, 남쪽에 있는 산은 남악이니 형산이라 이름하고, 북쪽에 있는 산은 북악이니 항산이라 이름하였으며,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산은 중악으로 숭산이라 이름하니 이들을 통틀어 오악이라 하였다.
이 명산들 중에서 형산만이 중원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다. 형산 남쪽에는 구의산이 있고 북쪽에는 동정호가 흐르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소상강이 돌아 나가고, 서쪽으로는 마치 조상을 모시고 서 있는 자손들처럼 일흔 두 개의 봉우리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가 수려하고 웅장하여 누구든지 그 광경을 한번 보면 언제까지나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축융, 자개, 천주, 석름, 연화의 다섯 봉우리가 가장 높았는데, 그 형세가 매우 높고 가파르기 이를 데 없었다. 봉우리들이 얼마나 높은지 그 모습이 구름에 가려 있고, 봉우리마다 중턱에는 항상 안개가 자욱해서 맑은 날씨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그 참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옛날에 대우라는 사람이 홍수를 다스리고 나서는 이산에 올라가 그 공덕을 기록한 비석을 세웠는데, 그것이 만 년이나 지난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다고 한다.
옛날 진나라가 천하를 다스리고 있을 때에 선녀인 위부인(진나라 위서의 딸)께서 열심히 도를 닦아 매우 영검한 신이 되었다.
이에 옥황상제께서 위부인에게 형산을 지키라고 분부하자, 위부인은 옥황상제의 뜻을 받들어 선동과 선녀를 거느리고 형산에 이르러 이 산을 지켰는데, 그 신기한 자취는 일일이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당나라 시대에는 서역 천축국을 다녀온 고승 한 분이 형산의 아름다움과 연화봉의 수려함을 잊지 못해 그곳에다 암자를 짓고 대승불법으로써 중생을 인도하였다. 또한 스님께서는 귀신이 발호하는 것을 잘 막아내어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부처님께서 다시 세상에 나셨다고 하며 공경해 마지않았다.
그리하여 재산이 있는 사람들은 동을 시주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부역으로 대신하여 언덕을 깎고 골짜기에 다리를 놓았으며, 목공들을 독려하여 숲 속에 커다란 법당을 건축했다.
이에 공부에서 시를 지어 비를 세웠다.
절문은 동정의 들판을 향해 높이 열리고
전각 기둥은 적사호 물가에 박혀 있으니
오월의 찬바람이 부처님 뼈를 차게 하고
여섯 때에 천악을 즐기고 아침에 향을 피우더라
이 한 수의 시를 읽어보면 그 법당의 웅장함을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형산의 빼어남과 도량의 웅대함은 남녘에서 으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고승은 한 권의 금강경을 지니고 있었다. 육여화상이라 불리는 그 화상은 오륙백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삼십 여명만이 불법에 통달해 있었다.
그는 약관 이십에 삼장경문을 다 익혔으니 그의 총명함과 지혜로움은 모든 제자들 중에서 으뜸이었다. 육관대사는 성진의 지혜를 지극히 사랑하여 마침내는 성진을 후계자로 지명하여 자기의 대를 잇도록 하기에 이르렀다.
하루는 대사가 모든 제자 앞에서 불경을 설법하고 있는데, 동정호의 용왕이 백발 노인으로 변신을 하고 그 자리에 이르러 강론을 듣고 돌아간 일이 있었다.
이에 대사가 제자들을 모아 놓고 일렀다.
“내가 너무 나이 많고 거동이 불편하여 산문밖에 나가지 아니한 지가 어언 십여 년이나 지났느니라. 헌데 동정호 용왕께서 이곳까지 설법을 들으러 오셨은즉 너희들 가운데 누가 나를 대신하여 용궁에 들어가 사례하고 오겠느냐?”
그러자 성진이 읍하며 아뢰기를,
“대사님, 소자가 비록 불민하오나 용궁에 다녀오겠나이다.”
“그래 주겠느냐?”
대사가 크게 기뻐하며 성진에게 다녀오라고 분부했다.
성진은 대사의 분부를 받고는 칠근기사를 걸친 뒤 육환장을 끌면서 동정호를 향해 떠났다.
돌다리 위의 팔선녀
육관대사가 제자들과 더불어 한가로이 앉아 있는데 문을 지키는 도사가 들어왔다.
“남악의 위부인께서 여덟 명의 선녀를 보내셨사옵니다.”
“곧 이리로 안내하도록 하라.”
“예.”
팔선녀가 나란히 대사 앞으로 와 절하고 꿇어앉아 위부인의 말씀을 전했다.
“저희 위부인께옵서 대사 님께 다음과 같이 전언하라고 하시었나이다. ‘대사께서는 산의 서쪽에 계시고 나는 산의 동쪽에 있어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처지도 아닌데 자연 일이 많다 보니 한 번도 불석에 나아가 경문을 듣지 못하였나이다. 이는 사람을 대하는 지혜가 없고 이웃과 사귀는 도리를 어긴 것이라.’ 이제 시비들을 보내어 대사의 안부를 묻고 천화와 선과와 칠보문금으로써 조그마한 정성을 표하셨나이다.”
이어서 팔선녀는 각기 지니고 온 천화와 칠보문금을 눈 위로 받들어 대사께 바쳤다.
대사는 몸소 이 보물들을 받아서 제자들에게 건네주며 부처님께 공양하라고 분부한 뒤에 팔선녀에게 합장 사례했다.
“이 노승에게는 아무런 공덕도 없는데 이러한 보물을 받았으니 어찌하면 좋을꼬?”
하고 팔선녀를 후히 대접했다.
팔선녀가 대사께 하직하고 문 밖으로 나왔는데 한 선녀가 입을 열었다.
“이 남악천산은 흙 한 줌, 나무 뿌리 하나도 모두가 우리 궁의 세상이더니 육관대사께서 거처를 정하신 후에는 연화봉의 빼어난 경치를 지척에 두고도 구경하지 못하게 되었지 않사옵니까? 이제 부인의 명을 받들어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은 좋은 기회일 것 같사옵니다. 또한 때는 바야흐로 봄철이라 온갖 꽃이 활짝 피어 있으니 연화봉에 올라가 풍경을 구경하고 궁으로 돌아가 동료들에게 자랑함이 어떻겠나이까?”
칠 선녀는 그 말에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팔선녀가 서로 손을 잡고서 이끌면서 서서히 걸어나가니 앞에 폭포가 나서고 그 물줄기 위에 돌다리가 있어 그들 모두가 그 위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때가 춘삼월이라 돌다리 주위에는 백화가 만발하고 운무가 자욱하며 새소리까지 청아하게 들려 춘홍이 더욱 무르익고 물색이 선녀들의 발걸음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자연에 도취되어 돌다리에 걸터앉은 팔선녀는 물 위에 비친 자신들의 미인도에 다시 한번 도취되었다. 팔선녀는 스스로의 그림자를 사랑하여 은은하게 울리는 작은 소리로 봄날의 시름을 풀다가 보니 이내 해가 저무는 줄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성진과 팔선녀의 만남
한편 성진의 동정호에 이르러 물결을 헤치고 수정궁에 들어가니 용왕은 벌써 육관대사의 제자가 온다는 것을 알고서 문무백관과 함께 몸소 궁 밖에까지 마중나와 있었다.
성진은 용왕의 안내로 궁궐로 들어가 자리를 잡은 후에 엎드려 육관대사의 말씀을 상주했다. 용왕은 크게 공경하는 자세로 그 말씀을 들은 뒤에 잔치를 베풀어 성진을 극진히 대접했다.
성진이 상 위의 음식을 보니 모두가 인간 세상의 것이 아니오, 선과와 진채뿐이었다.
용왕이 친히 잔을 들어 성진에게 권하면서 말했다.
“술을 금함이 다섯 가지 계율(일불살생, 이불유도, 삼불사음, 사불망어, 오불음주식육) 가운데 들어 있음을 내 어찌 모르리오마는 과인이 주는 술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인간 세상의 술과는 자못 다르니 한 잔 들어봄이 어떠할꼬? 이 술은 사람의 기운을 북돋아 주고 마음을 쇠락하게 하니 스님은 사양하지 말지어다.”
성진이 용왕의 후위를 감히 거절할 수가 없어 연달아 석 잔을 얻어 마신 뒤에 용왕께 하직하고 수정궁을 나섰다.
성진은 바람을 타고 연화봉으로 돌아오다가 산 밑에 이르렀다. 이때에 수궁에서 마신 술 때문에 눈앞이 어른거리고 어지러워서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스승께서 내가 취한 것을 아시면 얼마나 꾸짖으시리오?’
하고 생각하니 성진은 몹시 난감해졌다.
성진은 맑은 물에 목욕하고자 냇가로 내려가 모래 위에 옷을 벗어 놓고 낯을 씻는데 문득 향기로운 냄새가 바람에 실려 코를 찔렀다.
성진은 마음이 호탕해진 터라 혼자 중얼거렸다.
“이 위에 어떤 꽃이 피어 있기에 이리도 신기한 향내가 풍길꼬? 내 상류도 올라가 그 꽃을 찾으리라.”
성진은 다시 의관을 정제한 후에 상류로 올라갔다. 돌다리 위에 앉아 있던 팔선녀는 향기를 따라 올라오는 성진과 마주쳤다.
성진이 급히 육환장을 내려 놓은 뒤에 합장하며 팔선녀에게 공손히 말했다.
“보살 님들께서는 천승의 말을 들어보소서 소승은 연화봉 도승 육관대사의 제자로소이다. 오늘 대사님의 분부로 수긍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이 온데 보살 님들께서 이 좁은 다리에 앉아 계시니 천승은 지나갈 길이 막연하옵니다.
죄송하오나 잠시 길을 비켜 주시면 감사하겠나이다.”
그러자 팔선녀가 대답했다.
“첩들은 남악 위부인의 시녀들이옵니다. 부인의 명을 받자와 육관대사께 문안 여쭙고 가던 길에 잠시 이곳에서 쉬고 있는 중이옵니다. 옛날부터 예법에 이르기를 길을 가는 데는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이라 하였사옵니다. 헌데 이 다리가 좁은데다 첩들이 먼저 앉았으니 부디 화상께서는 다른 길로 가시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성진이 다시 부탁했다.
“이 냇물은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고 또 다른 길도 없는데 어디로 가라 하시나이까? 그러치 말고 길을 잠깐 열어 주소서.”
이에 팔선녀가 답례하며 말했다.
“옛날에 달마존자(선종 동토의 시조로 천축향지왕의 셋째 아들)께서는 갈잎을 타고 물을 건넜다 하옵는데 화상께서 진실로 육관대사의 제자라 하시면 도를 깨치셨을 터인데, 어찌 이까짓 냇물을 건너는 제 무슨 어려움이 있다고 아녀자와 더불어 길을 다투시나이까?”
성진이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소승이 보살 님들의 뜻을 헤아려 보건대 필연코 길 값을 받으려고 함인즉 소승에게 다른 보화는 없고 여덟 개의 구슬이 있으니 이것으로 길 값을 대신하겠나이다.”
성진이 말을 마치고 복사꽃 한 가지를 꺾어 팔선녀에게로 던지니 그 꽃이 여덟 개의 구슬이 되어 찬란하게 빛을 내며 그윽한 향기를 풍겼다.
팔선녀가 각기 구슬 하 개씩을 받아 쥐고는 성진에게 미소를 보내었다. 그런 후에 즉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더니 고운 구름이 되어 사라졌다. 성진이 돌다리 위로 하늘로 올라가더니 고운 구름이 되어 사라졌다. 성진이 돌다리 위로 나아가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팔선녀의 자태는 간 곳이 없고 고운 구름이 흩어지며 향기로운 향내도 사라진 후였다.
세상 생각에 잠긴 성진
성진이 팔선녀의 고운 자태를 생각하며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대사께 용궁에 다녀온 일만을 아뢴즉 대사는 그가 늦게 돌아왔음을 꾸짖었다.
“용왕께서는 극진히 대접하시오며 박절히 사양할 수가 없어 자연 늦게 돌아왔나이다.”
성진이 간곡하게 아뢰자, 대사는 더 이상 책망하지 않고 물러가 쉬도록 했다. 성진이 처소로 돌아가 홀로 앉아 있으려니 팔선녀의 고운 목소리가 귀에 생생하고 아름다운 자태가 눈앞에 어른거려 잠시도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그 밤을 번뇌와 망상으로 밝히던 성진은 이내 한숨을 쉬었다.
“세상에 남아로 태어나 어려서는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읽고, 자라서는 성군을 섬겨 용맹한 삼군의 장수가 되고 현명한 재상이 되어 몸에는 금의를 걸치고 허리에는 금인을 차는 것이 으뜸이라. 눈으로는 고운 것을 보고 귀로는 신묘한 소리를 들으며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과 공명의 자취를 후세에 남김이 대장부의 떳떳한 일이 아니겠는가. 아아, 슬프다! 우리 불가의 도는 한 그릇 밥과 한 잔의 정화수뿐이라. 그 도가 아무리 높고 깊다 한들 적막하기 이를 데 없다. 설령 최고의 교리를 깨달아 부처님이 된다 할지라도 삼혼칠백이 한번 불꽃 속에서 흩어지면 그 누가 성진이 이 세상에 태어났던 것을 알리오?”
성진은 이렇듯 심란하여 잠을 청하지 못하고 몸을 뒤척였다. 눈을 감으면 팔선녀가 미소를 지으며 앞에 와 앉았고, 눈을 뜨면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다가 성진은 자신을 책망하며 말했다.
“불가의 법도는 마음에 한줌 티끌도 없이 맑게 함이 제일인데 이게 무슨 짓인가. 내가 중이 된 지도 벌써 십 년인데 그 동안 조그마한 허물도 저지른 적이 없지 않은가. 이제 올바르지 못하고 그릇된 생각이 자심(점점 더 심함)하니 내 앞날에 해로운 것이다.”
성진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향을 피우고 꿇어앉았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뒤, 목에 건 염주를 세면서 일천불을 생각하는데, 창 밖에서 동자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사형(한 스승으로부터 불법을 받은 형), 사형, 주무시나이까?”
“아직 안 자니 어서 들어오너라.”
“아니옵니다. 지금 대사께서 부르시니 속히 가 보시옵소서.”
성진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밤중에 나를 부르심은 반드시 깊은 연고가 있을 것이다.’
양씨 가문에 환생한 성진
성진은 동자와 함께 법당에 이르러 홀로 육관대사의 방으로 나아갔다. 대사는 모든 제자들을 불러 놓고 법연에 앉아 계셨는데 그 모습이 엄정하였다.
“성진아, 네 죄를 알고 있느냐?”
대사가 엄격한 표정을 허물지 않고 물었다.
성진이 몹시 놀라 그 자리에 꿇어앉으며 대답했다.
“미천한 소자가 사부를 섬긴 지 이미 십여 년이 지났으나 그 동안 불공불손한 일이 없었사온데 이처럼 꾸짖으시니 영문을 알지 못하겠나이다. 사부께 무엇을 감추오리까마는 진실로 소자의 죄를 알지 못하겠나이다.”
이에 대사가 더욱 노하여 꾸짖었다.
“네가 사실을 말하지 아니하니 내가 네 죄를 깨우쳐 주리라. 첫째 행실을 닦는 중이 용궁에 들어가 술을 마셨으니 그 죄 막중하고, 둘째 이곳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돌다리 위에서 팔선녀와 더불어 수작이 장황하고 꽃가지를 꺾어 던져 구슬로 희롱하였으며, 셋째 돌아온 후에도 잘못을 뉘우칠 생각은 않고 세상의 부귀를 꿈꾸며 호탕한 마음으로 열반의 경지를 꺼리고 있으니 이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니라. 이제 너는 더 이상 여기에 머물지 못하리로다.”
성진이 머리를 바닥에 두드리며 울면서 대사에게 하소연했다.
“사부님, 실로 소자가 막중한 죄를 저질렀나이다. 그러하오나 용궁에서 술을 먹은 것은 용왕께옵서 간곡히 권함을 이기지 못해서였고, 돌다리에서 선녀들과 이야기한 것은 길을 빌기 위해서였나이다. 또한 소자의 지은 죄가 막중하오나 사부님께서는 벌로써 다스리시어 교훈 하시는 게 마땅하거늘 어찌 박절하게 소인을 내치시어 뉘우치는 마음을 모른 체 하시나이까? 소자가 열두 살에 부모와 하직하고 사부님께로 들어와 불자가 되었사오니 친부모의 은혜를 입음과 같사옵고 또한 의로 말할지라도 사제지간이란 인연이 중하온데 연화도량을 버리고 어디로 가라 하시나이까?”
그러자 성진의 읍소에 대사는 준절히 나무랐다.
“네가 원하는 곳으로 나가게 함이니 어찌 더 머물기를 바라겠느냐? 또 네가 어디로 가리이까 하고 물었는데 네가 돌아가고 싶은 곳이 바로 네가 돌아갈 곳이니라.”
하고 나서 소리 높여 황건역사(염라대왕의 사자)를 불렀다.
“이 죄인을 끌고 풍도옥(지옥)으로 가서 염라대왕께 넘겨주도록 하라.”
이 말을 들은 성진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눈물을 비오듯 흘리면서 사부에게 애걸했다.
“사부님은 소자의 말씀을 들으소서. 석가여래께서는 아난존자가 창녀와 동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벌을 내리셨을 뿐 죄는 주지 않으셨나이다. 소자가 비록 죄를 지었으나 아난존자에 비하면 오히려 가볍사온데 어찌 연화도량을 버리고 풍도지옥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그러자 더욱 화가 난 대사는 매우 엄하게 나무랐다.
“아난존자가 비록 동침했을지라도 그 마음은 변치 않았느니라. 하지만 너는 단번에 계집들을 보고 본심을 잃었으니 한 번 윤회하는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니라.”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느낀 성진은 부처님과 대사께 하직 인사를 드리고, 사형사제와 이별한 후에 황건역사를 따라 나섰다.
그러자 대사가 성진을 불러 위로의 말씀을 하되,
“산중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맑지 아니하면 도를 이루지 못할 것이요, 열 길 티끌 속에 떨어져 있더라도 근본을 잊지 아니하면 필경 돌아올 날이 있을 것이니라. 네가 이곳으로 돌아오려 하면 내 친히 데려올 것인즉 너는 의심치 말고 다녀오도록 하여라.”
성진이 황건역사를 따라 지옥으로 들어가 망향대(저승에 있는 대, 귀신이 여기에 올라서 양계, 가내의 정상을 살핀다고 한다)를 지나 풍도성 밖에 이르니, 문을 지키는 귀졸이 어디서 왔는지를 물었다.
“육관대사의 명을 받들어 죄인을 데리러 왔노라.”
역사가 대답했다.
귀졸이 성분을 열고 두 사람을 들여보내 주었다. 염라대왕 전에 이르러 역사가 성진을 잡아온 연유를 말하니, 염라대왕이 성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대의 몸이 비록 연화봉에 매여 있으나 이름은 지장왕(지장보살, 늘 지옥 중에 현신함) 향안에 있었으니 신통한 술수로써 천하의 중생을 구제할 것으로 믿고 있었는데 무슨 일로 이곳에 오게 되었는가?”
성진이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고 간신히 아뢰었다.
“소승이 불민하여 스승께 죄를 지어 이곳에 왔으니 처분대로 하시옵소서.”
성진이 대답하는 사이에 팔선녀가 황건역사에게 잡혀 들어왔다.
“남악 선녀들은 어찌하여 이 땅에 오게 된 것이냐?”
염라대왕이 호통치자 선녀들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첩들은 위부인의 명을 받자와 육관대사께 문안하고 돌아오는 길에 돌다리 위에서 성진과 더불어 화합하는 일이 있었나이다. 그런 일로 대사께옵서 위부인께 글월을 보내어 첩들을 잡아 대왕께 보내라 하셨기로 이렇게 왔나이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자비를 베푸사 첩들을 좋은 땅에 태어나도록 해 주시옵소서.”
팔선녀의 말이 끝나자 염라대왕은 아홉 명의 사자를 불렀다.
“너희들은 이 아홉 인을 데리고 인간계로 나가도록 하라.”
염라대왕이 말을 마치자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전각 앞을 스치더니 아홉 사람을 공중으로 휘몰아 올려 사면팔방으로 흩어지게 했다. 바람에 휘날리며 사자를 따라 지향없이 가다가 한 곳에 이르니 비로소 바람 소리가 잦아졌다. 성진은 두 발이 땅에 닿으므로 정신을 차리고 두 눈을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사면에 푸른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맑은 시냇물이 여러 갈래로 흐르고 있는데 수목 사이로 서너 채의 초가 지붕이 보였다. 그때, 두어 사람이 울타리 밖에서 한가롭게 지껄이는 소리가 들려 왔다.
“양처사 부인이 오십이 넘어 태기가 있으니 얼마나 희한한 일인가. 헌데 해산할 기미가 있은 지 오래인데 아직도 아기 소리가 나지 않으니 걱정일세 그려.”
이에 성진이 속으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이제 내가 세상에 환생하는가 보구나. 헌데 지금의 신세로서는 다만 혼백뿐이오. 골육은 연화봉 위에서 태워 버렸을 것인즉 슬프도다. 내가 아직 연소하여 제자를 두지 못했으니 그 뉘라서 내 사리(불골)를 거두어 보관하였겠는가.”
이렇듯 성진이 서글픈 생각에 잠겨 있는데, 사자가 손짓해 불렀다.
“이곳은 대당국 회남도의 수주현이니라. 네가 태어날 집은 양처사의 집이니 처사는 너의 부친이요, 유씨는 너의 모친이니 곧 네 부모가 되느니라. 네가 전생에 이들 부부와 인연이 있어서 아들로 태어나는 것이니 어서 들어가 때를 놓치지 않도록 할지어다.”
성진이 집안으로 들어가 보니, 양처사가 갈건 야복 차림으로 대청에 앉아서 한약을 달이고 있었다. 처사의 옷에는 향기가 배어 있고 안방에서는 부인의 신음소리가 애절하게 들려 왔다.
성진은 사자의 재촉에 안방으로 들어가려 하였으나 마음이 비감하여 주저하고 있으려니 사자가 등을 탁 밀어붙였다. 성진이 앞으로 푹 고꾸라지며 정신이 아득하여 사람 살리라고 크게 소리치자 그 소리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로 화해 나왔다.
신선이 된 양소유의 부친
이때에 양처사는 순산하는 약을 달이고 있다가 문득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놀라고도 기쁜 마음에 급히 안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서는 부인이 아들을 순산하여 기쁜 마음으로 양처사를 맞아들였다. 양처사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연방 싱글벙글하며 아기를 향수에 씻겨 강보에 싸서 눕힌 뒤에 부인에게 치하했다.
성진이 양처사 내외의 극진한 사랑으로 젖을 배불리 먹으며 무럭무럭 자랄 때는 연화봉 일이 매양 마음을 사로잡고 있더니 차차 자라면서 전생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처사는 생김생김이 수려하고 골격이 청수한 아기를 어루만지며 부인에게 말했다.
“여보 부인, 이 아이는 필시 선계의 사람이 인간 세계로 내려온 모양이오.”
“그런데 영감! 이제 이 아이에게도 이름을 지어 주셔야지요.”
“아암, 지어 줘야지. 소유가 어떻겠소? 선인이 잠시 속세로 놀러 왔다는 뜻이오.”
“참 좋은 이름입니다. 영감.”
이리하여 성진의 이름은 소유가 되었다.
어느덧 소유가 열 살이 되자 살결은 백옥 같고 눈은 샛별 같으며 총명하기 이를 데 없어 가히 대인 군자의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루는 처사가 부인 유씨를 불러 조용히 말했다.
“부인, 나는 원래 속세 사람이 아니오. 부인과의 인연을 끊을 수가 없어 그 동안 티끌 속에 살아왔는데 그 사이 봉래산(동해 가운데 있는 선산으로 신선이 산다고 함)에 있는 친구 신선이 수차 글월을 보내어 나에게 돌아오라고 하였으나 부인의 외로움을 생각해서 차마 떠나지 못하였소. 하지만 하늘의 도움을 입어 총명하고 어진 아들을 얻었으니 부인께서는 그 아이와 더불어 외롭지 않게 사실 소다 있을 것이오. 또한 늘그막에 반드시 부귀와 영화를 누리게 될 것인즉 내가 떠났다 하여 슬퍼하지 않도록 하시오.”처사는 말을 마치자마자 푸른 하늘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한 마리의 백학이 날아와 처사를 태우더니 하늘 높이 표연히 사라졌다. 미처 한마디 말도 못한 부인은 어린 아들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서러워하였으나 처사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간혹 바람결에 안부를 묻는 글월을 보내 오기는 하였으나 양처사는 영영 소유 모자 곁을 떠나 벼렸던 것이다.
화음현에 규수를 만나다
양처사가 신선이 되어 선계로 돌아간 뒤에 소유 모자는 서로 의지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 고을 태수는 양소유의 재주와 총명함에 탄복하여 조정에 신동이라고 천거했다. 그러나 소유는 늙은 어머니의 외로움을 생각하여 출사할 것을 사양했다.
소유가 열 다섯 살이 되자 풍채는 반악(중국 진나라의 미남)과도 같고, 문장은 이태백에 비견할 만하며 필법은 왕희지(진나라 서예가)와 같고, 지략이 뛰어나서 손빈, 오기를 따를 만했다.
또한 천문, 지리, 육도삼략(중국의 병서. 문도, 무도, 용도, 호도, 표도, 견도, 상략, 중략, 하략)과 칼 쓰고 창 쓰는 수법이 마치 귀신같았다. 이는 소유가 전생에 행실을 닦고 있던 사람으로서 마음이 맑고 생각이 시원스러워 이치에 통달해 있었기 때문으로 속세의 선비로서는 가히 흉내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하루는 소유가 모친 앞에 무릎을 꿇고 말씀드렸다.
“어머님, 아버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에 가문의 지체를 높이고 귀하게 되라고 소자에게 당부하셨습니다. 하온데 가세가 빈한하여 어머님께서 늙도록 고생하시니 소자의 괴로움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옵니다. 만약 소자가 세상에 나아가 공명을 구하여 가문을 빛내지 않으면 어머님을 위로할 길이 없사옵니다.
이는 아버님의 뜻을 어기는 게 되는 것이옵니다. 지금 나라에서는 과거를 베풀어 널리 인재를 구한다 하오니, 소자도 잠시 어머님 슬하를 떠나 과것길에 오를까 하옵니다.”
유씨는 아들의 목소리에서 이미 뜻이 굳음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소년의 몸으로 먼 길을 떠나 보내려니 마음이 안타깝고 또한 이별이 길어질까 걱정이 되었다.
유씨는 행장을 꾸려 주면서 아들에게 주의할 것들을 자상하게 일러주며 경계함을 잊지 않았다.
“네 나이 아직 어려 경험이 적은데다 먼 길 떠나는 게 처음이 아니냐. 부디 몸가짐을 항상 조심하고 속히 돌아와 어미의 시름을 길게 하지 말아라.”
양소유는 모친의 뜻을 받든 뒤에 하직 인사를 올리고 길을 떠났다.
나이 어린 동자가 이끄는 나귀에 타고 며칠 동안 걸어가니 화주땅 화음현이 나타났다.
화음현에서 장안까지는 지척 지간이라 소유의 마음은 어느 정도 느긋했다.
더구나 과거 날짜까지는 아직도 멀었기 때문에 화음현의 산천 경개에 마음을 빼앗겼다. 매일 수십 리씩 가면서 이름난 산에 오르고 고적을 답사하니 여행길이 즐겁기만 하여 소유에게는 객지에서의 생활이 그다지 쓸쓸하지 않았다.
화음현을 지나려니 문득 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주위에는 보기 좋게 수풀이 우거져 있고 수양버들이 휘휘 늘어져 있는데 그 위에 서린 연기가 휘황찬란하고 정취가 그윽하여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았다.
이에 소유는 채찍을 끌며 천천히 다락 곁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가보니 수양버들의 긴 가지와 짧은 가지가 서로 얽혀 하늘거리고 있는 모양이 꽃다운 처녀가 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빗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소유는 한 손으로 버들가지를 잡고 탄식하며 말했다.
“우리 시골초 중에도 아름다운 나무가 많이 있으나 내 일찍이 이처럼 아름다운 버들을 보기는 처음이구나.”
버드나무에 취해서 무료히 서 있던 소유는 양류사를 지어 낭랑하게 읊었다.
수양버들은 푸르며 베를 짜는 듯하니
늘어진 가지가 꽃 같은 다락에 떨치더라
알세라 그대 부지런히 심은 뜻은
이 나무가 가장 풍류 있음이리라.
수양버들은 어이하여 이렇듯 푸르른가
늘어진 가지가 단청 기둥에 떨치누나.
원하건대 그대는 휘어잡아서 꺾지 말라
이 나무에 많은 정이 있음이로다.
소유가 한 번 더 소리 높여 읊조리니, 그 소리가 쇠를 치고 돌을 치는 듯 구름이 머무르고 산간에 울려 펴져 다락 위에까지 들렸다.
다락 위에는 마침 묘령의 소저가 낮잠에 취해 있다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나 수놓은 비단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규수는 단청이 그윽한 난간에 의지하여 소리가 나 방향을 찾다가 양소유와 두 눈이 마주쳤다.
구름 같은 머리는 풍성하게 흩어져 있고 옥비녀는 비스듬히 걸려 있는데 잠이 덜 깬 눈이 몽롱하여 졸음이 아직도 눈썹에 맺혀 있는 모습이 가냘프게 보이는 미녀였다. 뺨에는 연지가 반쯤 지워져 있었는데 본래의 자색과 아름다운 몸맵시는 말로써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고 그림으로서도 그려내지 못할 것 같았다.
두 청춘 남녀는 서로를 마주 쳐다볼 뿐 한 마디 말도 건네지 못하였다.
소유는 동자를 먼저 객사로 보내어 저녁상을 차리라고 시켰다.
양소유가 넋을 잃고 다락 위의 미녀를 쳐다보고 있는데 동자가 돌아와서 저녁 준비가 다 되었음을 알렸다.
그러자 다락 위의 미녀는 비단 창문을 닫고 자취를 감추었다. 다만 그 자리에는 그윽한 향기만이 맴돌 뿐이었다. 동자가 너무 일찍 돌아왔음을 원망스러이 생각하며 소유는 객사를 향하였다. 한 걸음 한 걸음 떼어놓을 때마다 뒤를 돌아보았으나 창문은 닫힘 채 미녀의 모습은 다시 나타날 줄 몰랐다.
소유가 객사로 돌아와 한숨지으며 앉았으되 그 미녀 생각으로 정신이 혼미했다.
진채봉이 편지를 보내다
다락 위에서 양소유와 두 눈이 마주친 미녀는 성이 진이요, 이름은 채봉이라 하는 진어사의 딸이었다.
일찍이 모친을 여의고 무남독녀로 부친 손에서 자랐고, 바야흐로 비녀를 꽃을 때가 되었으나 아직 혼처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터였다.
부친 진어사는 서울에 올라가 벼슬을 살고 있었으므로 소저(미혼 여자의 통칭)가 비복들을 거느리고 집을 지키고 있다가 뜻밖에도 비범하게 생긴 사나이가 읊는 그 글을 듣고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 남자를 따르는 것은 평생의 큰일이다. 일생 동안의 영욕과 생사 고락이 모두 낭군 손에 달린 것인즉 배필을 잘 만나야 하는 것이다. 탁문군(한나라 여류 문학가)은 과부의 몸으로도 사마상여(한나라 문학가. 자는 장경)를 따랐지 않은가. 나는 규중 처자의 몸으로 스스로 만나게 된 부끄러움은 있을지라도 저 도련님의 성명과 주소를 묻지 아니하였다가는 후일에 부친께 말씀 올려 매파를 보내려 한들 어느 곳으로 보내겠는가. 옛말에 신하도 임금을 가려 섬긴다 하였으니 내 용기를 내어 저 도련님의 주소를 물어야겠다.’
진소저는 이렇듯 생각을 굳힌 뒤에 시전지를 펴놓고 한 수의 시를 적고 나서 유모를 불렀다.
“유모는 이것을 가지고 저 객사로 가서 저녁 나절에 작은 나귀를 타고 이 누각 아래에 와서 양류사를 읊던 도련님을 찾아 이 편지를 전해 주시오. 그런데 내가 꽃다운 인연을 맺어 이 몸을 의탁하려 한다는 뜻을 군계일학이니 유모도 첫눈에 알아볼 것이니 어서 이 편지를 전하도록 하시오.”
유모가 소저의 말을 듣고 놀라서 물었다.
“삼가 소저께서 분부하시는 대로하겠사옵니다만 후일 어사 나으리께서 아시면 무어라 대답 하오며, 그 도련님께서 이미 취지를 하셨거나 청혼할 처자가 있다고 하시면 어떻게 하오리까?”
소저가 이 말을 듣더니 낭랑하게 대꾸했다.
“부친께서 하문하시면 내 스스로 말씀드릴 것이니 그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또한 그 도련님께서 이미 혼인을 하셨다면 부실로 들어갈 작정이어요.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아직 이팔청춘이라 혼인한 사람 같지 않으니 안심하고 다녀오세요.”
유모가 소저에게 인사드리고 객사로 가서 양류사를 읊은 손님을 찾았다.
곧 소유가 밖으로 나서며,
“소생이 양류사를 지었는데 무슨 일로 찾으시오?”
하고 물었다.
유모는 소유의 수려한 용모와 낭랑한 목소리를 듣더니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에서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사옵니다.”
소유는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곧 객사로 들어가 조용히 찾아온 뜻을 물어 보았다.
“상공께서는 양류사를 읊을 적에 어떤 규수와 상면하신 적이 있으시나이까?”
소유가 막연히 창 밖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소생이 수양버들에 취해 어떤 누각 아래서 양류사를 읊었는데 다락 위를 보니 일위 선녀가 있었소. 지금도 그 선녀의 고운 자태가 눈에 삼삼하고 신기한 향내가 아직도 내 옷에 배어 있소이다.”
그 말을 듣고 유모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면 이 늙은 것이 바로 말씀드리오리다. 그 누각이 있는 집은 곧 우리 주인 진어사 댁이며, 아까 보신 그 소저는 우리 댁 아가씨이옵니다. 이 늙은 것은 소저의 젖어미로 오늘까지 시중을 들고 있사옵니다. 우리 소저께서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착하고 영민하여 사람을 알아보는 바 있었사옵는데 오늘 상공을 첫눈에 알아보고 평생을 의탁하려 하시나이다. 하온데 지금 진어사께옵서는 서울에 계시는 데다 상공께서는 곧 이곳을 떠나실 것 같은지라 대사를 정하려 해도 누가 주선할 수 있겠사옵니까? 그리하여 삼생의 연분의 중하고, 한때의 혐의는 가벼운지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늙은 것을 시켜 상공의 성함과 주소를 여쭤 본 것이며, 부인이 계신가도 알아 오라고 하셨나이다.”
이 말을 듣는 소유의 얼굴에는 웃음이 함박꽃처럼 번졌다.
“소생은 초나라에 사는 양소유라 하오. 아직 나이가 어려 장가들지 아니하였사오니 양가 부모님께 아뢰고 꽃다운 인연을 맺는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으리요? 화산의 길이 푸르고 위수가 마르지 않는 것으로 맹세를 드리겠소.”
유모가 몹시 기뻐하며 소유의 늠름한 자태를 한 번 더 눈여겨본 뒤에 소매 자락 속에서 편지를 꺼내었다.
소유가 받아 보니 그 또한 양류사라 쓰여 있었다.
누각 위에 수양버들을 심은 것은
낭군의 말을 매어 머루르게 함이어늘
어찌하여 버들가지로 채찍을 만들어
서울길을 재촉하여 달리는고
소유가 시를 읽더니 그 글귀가 맑음을 사랑하여 왕우승과 이학사(이학사:이백, 한림학사)라도 이보다 더할 수 없을 것이라고 칭찬하였다. 이어서 시전지를 펴놓고 글 한 수를 적어 유모에게 건네주었다.
“소저께서는 진나라 땅에서 살고 소생은 초나라 땅에 살고 있으니 한 번 헤어지면 소식을 전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오. 또한 오늘의 이 약속도 확실한 중매자가 없어 신빙성이 희박한지라 오늘밤 달빛 아래에서 다시 한 번 소저를 만나 보았으면 하오. 그대는 지금 곧 소저께로 가서 내 뜻을 전해 주기 바라오.
소조 또한 글귀에 그러한 뜻을 비쳤은즉 즉시 회보해 주기 바라오.”
유모는 응락하고 나서 진소저에게로 돌아가 아뢰었다.
“도령님께서는 소저와 꽃다운 인연을 맺음에 있어 화산과 위수로서 맹세했나이다. 또한 소저께서 지은 글을 칭찬하시며 회답하는 시를 지어 주시더이다.”
유모가 소매에서 편지를 꺼내 바치자 소저는 얼굴을 붉히며 읽었다.
수양버들 휘늘어진 천만 갈래 실에
올올이 애틋한 심정 담겨 있더라
바라건대 달 아래 놋줄을 꼬아
좋이 봄소식을 맺으리로다
글을 다 읽고 난 소저의 얼굴에는 기쁜 빛이 가득했다.
그것을 본 유모도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아뢰었다.
“양공께서는 오늘밤에 소저와 조용히 만나 서로 시를 주고받음이 어떻겠느냐고 물으시더이다.”
이내 소저가 얼굴을 붉히며 유모에게 말했다.
“혼인도 하기 전에 남녀가 만나는 것은 예절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이미 양공에게 내 평생을 의탁코자 작정했으니 어찌 어길 수 있으리요? 하오나 야밤에 달빛을 의지하여 만났다가는 이웃의 눈도 두렵거니와 후일 부친께서 아시면 필연 중죄로 다스릴 것이라 하니 유모는 양공께로 다시 가서 내 뜻을 전하고 내일 아침 대청에 모여서 언약을 굳게 함이 옳을 것이라고 아뢰어 주오.”
유모는 곧 객사로 양소유를 찾아가서 진소저의 뜻을 전했다. 이 말을 들은 소유는 새삼 탄복해 마지않으며 진소저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소생의 생각이 짧아 소저의 마음을 번거롭게 해 드린 것 같소. 내 소저의 영민하신 생각과 올바르신 말씀에 따르고자 하니 내 뜻을 가서 말씀드려 주기 바라오.”
소유는 유모에게 내일은 꼭 만나게 해 줄 것을 재삼 재사 다짐하면서 간청하니 유모가 쾌하게 응낙하고 돌아갔다.
진채봉이 편지를 보내다
다락 위에서 양소유와 두 눈이 마주친 미녀는 성이 진이요, 이름은 채봉이라 하는 진어사의 딸이었다.
일찍이 모친을 여의고 무남독녀로 부친 손에서 자랐고, 바야흐로 비녀를 꽃을 때가 되었으나 아직 혼처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터였다.
부친 진어사는 서울에 올라가 벼슬을 살고 있었으므로 소저(미혼 여자의 통칭)가 비복들을 거느리고 집을 지키고 있다가 뜻밖에도 비범하게 생긴 사나이가 읊는 그 글을 듣고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 남자를 따르는 것은 평생의 큰일이다. 일생 동안의 영욕과 생사 고락이 모두 낭군 손에 달린 것인즉 배필을 잘 만나야 하는 것이다. 탁문군(한나라 여류 문학가)은 과부의 몸으로도 사마상여(한나라 문학가. 자는 장경)를 따랐지 않은가. 나는 규중 처자의 몸으로 스스로 만나게 된 부끄러움은 있을지라도 저 도련님의 성명과 주소를 묻지 아니하였다가는 후일에 부친께 말씀 올려 매파를 보내려 한들 어느 곳으로 보내겠는가. 옛말에 신하도 임금을 가려 섬긴다 하였으니 내 용기를 내어 저 도련님의 주소를 물어야겠다.’
진소저는 이렇듯 생각을 굳힌 뒤에 시전지를 펴놓고 한 수의 시를 적고 나서 유모를 불렀다.
“유모는 이것을 가지고 저 객사로 가서 저녁 나절에 작은 나귀를 타고 이 누각 아래에 와서 양류사를 읊던 도련님을 찾아 이 편지를 전해 주시오. 그런데 내가 꽃다운 인연을 맺어 이 몸을 의탁하려 한다는 뜻을 군계일학이니 유모도 첫눈에 알아볼 것이니 어서 이 편지를 전하도록 하시오.”
유모가 소저의 말을 듣고 놀라서 물었다.
“삼가 소저께서 분부하시는 대로하겠사옵니다만 후일 어사 나으리께서 아시면 무어라 대답 하오며, 그 도련님께서 이미 취지를 하셨거나 청혼할 처자가 있다고 하시면 어떻게 하오리까?”
소저가 이 말을 듣더니 낭랑하게 대꾸했다.
“부친께서 하문하시면 내 스스로 말씀드릴 것이니 그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또한 그 도련님께서 이미 혼인을 하셨다면 부실로 들어갈 작정이어요.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아직 이팔청춘이라 혼인한 사람 같지 않으니 안심하고 다녀오세요.”
유모가 소저에게 인사드리고 객사로 가서 양류사를 읊은 손님을 찾았다.
곧 소유가 밖으로 나서며,
“소생이 양류사를 지었는데 무슨 일로 찾으시오?”
하고 물었다.
유모는 소유의 수려한 용모와 낭랑한 목소리를 듣더니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에서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사옵니다.”
소유는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곧 객사로 들어가 조용히 찾아온 뜻을 물어 보았다.
“상공께서는 양류사를 읊을 적에 어떤 규수와 상면하신 적이 있으시나이까?”
소유가 막연히 창 밖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소생이 수양버들에 취해 어떤 누각 아래서 양류사를 읊었는데 다락 위를 보니 일위 선녀가 있었소. 지금도 그 선녀의 고운 자태가 눈에 삼삼하고 신기한 향내가 아직도 내 옷에 배어 있소이다.”
그 말을 듣고 유모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면 이 늙은 것이 바로 말씀드리오리다. 그 누각이 있는 집은 곧 우리 주인 진어사 댁이며, 아까 보신 그 소저는 우리 댁 아가씨이옵니다. 이 늙은 것은 소저의 젖어미로 오늘까지 시중을 들고 있사옵니다. 우리 소저께서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착하고 영민하여 사람을 알아보는 바 있었사옵는데 오늘 상공을 첫눈에 알아보고 평생을 의탁하려 하시나이다. 하온데 지금 진어사께옵서는 서울에 계시는 데다 상공께서는 곧 이곳을 떠나실 것 같은지라 대사를 정하려 해도 누가 주선할 수 있겠사옵니까? 그리하여 삼생의 연분의 중하고, 한때의 혐의는 가벼운지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늙은 것을 시켜 상공의 성함과 주소를 여쭤 본 것이며, 부인이 계신가도 알아 오라고 하셨나이다.”
이 말을 듣는 소유의 얼굴에는 웃음이 함박꽃처럼 번졌다.
“소생은 초나라에 사는 양소유라 하오. 아직 나이가 어려 장가들지 아니하였사오니 양가 부모님께 아뢰고 꽃다운 인연을 맺는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으리요? 화산의 길이 푸르고 위수가 마르지 않는 것으로 맹세를 드리겠소.”
유모가 몹시 기뻐하며 소유의 늠름한 자태를 한 번 더 눈여겨본 뒤에 소매 자락 속에서 편지를 꺼내었다.
소유가 받아 보니 그 또한 양류사라 쓰여 있었다.
누각 위에 수양버들을 심은 것은
낭군의 말을 매어 머루르게 함이어늘
어찌하여 버들가지로 채찍을 만들어
서울길을 재촉하여 달리는고
소유가 시를 읽더니 그 글귀가 맑음을 사랑하여 왕우승과 이학사(이학사:이백, 한림학사)라도 이보다 더할 수 없을 것이라고 칭찬하였다. 이어서 시전지를 펴놓고 글 한 수를 적어 유모에게 건네주었다.
“소저께서는 진나라 땅에서 살고 소생은 초나라 땅에 살고 있으니 한 번 헤어지면 소식을 전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오. 또한 오늘의 이 약속도 확실한 중매자가 없어 신빙성이 희박한지라 오늘밤 달빛 아래에서 다시 한 번 소저를 만나 보았으면 하오. 그대는 지금 곧 소저께로 가서 내 뜻을 전해 주기 바라오. 소조 또한 글귀에 그러한 뜻을 비쳤은즉 즉시 회보해 주기 바라오.”
유모는 응락하고 나서 진소저에게로 돌아가 아뢰었다.
“도령님께서는 소저와 꽃다운 인연을 맺음에 있어 화산과 위수로서 맹세했나이다. 또한 소저께서 지은 글을 칭찬하시며 회답하는 시를 지어 주시더이다.”
유모가 소매에서 편지를 꺼내 바치자 소저는 얼굴을 붉히며 읽었다.
수양버들 휘늘어진 천만 갈래 실에
올올이 애틋한 심정 담겨 있더라
바라건대 달 아래 놋줄을 꼬아
좋이 봄소식을 맺으리로다
글을 다 읽고 난 소저의 얼굴에는 기쁜 빛이 가득했다.
그것을 본 유모도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아뢰었다.
“양공께서는 오늘밤에 소저와 조용히 만나 서로 시를 주고받음이 어떻겠느냐고 물으시더이다.”
이내 소저가 얼굴을 붉히며 유모에게 말했다.
“혼인도 하기 전에 남녀가 만나는 것은 예절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이미 양공에게 내 평생을 의탁코자 작정했으니 어찌 어길 수 있으리요? 하오나 야밤에 달빛을 의지하여 만났다가는 이웃의 눈도 두렵거니와 후일 부친께서 아시면 필연 중죄로 다스릴 것이라 하니 유모는 양공께로 다시 가서 내 뜻을 전하고 내일 아침 대청에 모여서 언약을 굳게 함이 옳을 것이라고 아뢰어 주오.”
유모는 곧 객사로 양소유를 찾아가서 진소저의 뜻을 전했다. 이 말을 들은 소유는 새삼 탄복해 마지않으며 진소저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소생의 생각이 짧아 소저의 마음을 번거롭게 해 드린 것 같소. 내 소저의 영민하신 생각과 올바르신 말씀에 따르고자 하니 내 뜻을 가서 말씀드려 주기 바라오.”
소유는 유모에게 내일은 꼭 만나게 해 줄 것을 재삼 재사 다짐하면서 간청하니 유모가 쾌하게 응낙하고 돌아갔다.
남전산에 도사를 만나다
유모가 돌아간 후에 소유는 자리를 펴고 누웠으나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진소저의 맵시를 그리고 닭이 울기만을 기다리며 있으려니 봄밤이 도리어 지루하기만 했다.
이윽고 여명이 밝아 오는지라 소유는 조급한 생각에 동자를 깨워 나귀에게 먹이를 주라고 일렀다.
그 때, 북소리가 둥둥둥 들리더니 갑자기 천병만마의 들끓는 소리가 문 밖에서 요란하게 들렸다.
소유가 대경실색하여 급히 의관을 정제하고 밖으로 뛰어나가니 서쪽으로부터 군사들이 피난 가는 백성들로 소란스러움이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군사들이 달려나가며 지르는 소리는 풍우 같고, 백성들의 곡성이 하늘에까지 닿는지라, 소유는 황급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어 옆사람에게 영문을 물어 보았다.
“신책장군(당나라 금군의 하나인 신책군의 원수) 구사량이 스스로 황제가 되어 군사를 일으켜 모반하였소. 그래서 천자께오서 양주로 나아가 순행하고 계시는데 관중(성서성의 지명)이 요란하고 적병들이 흩어져서 백성의 집을 노략질하고 있다 하오.”
소유가 놀라서 입을 딱 벌리고 있자, 그 사람이 더 무서운 말을 들려주었다.
“지금 함곡관을 닫고 길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을 마구 잡아가다 군대로 집어넣는다는 풍문이 나돌고 있소.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잡아간다는 것이오.”
소유는 너무나도 놀라서 급히 동자를 불러 나귀를 타고 남전산으로 향하였다.
산 위에 올라가 적병의 눈에 띄지 않도록 바위 틈에 숨으려고 하는데 산 위에 조그마한 초가가 소유의 눈에 들어왔다. 그 주위에는 오색 구름이 떠 있고 학의 맑은 울음소리가 은은히 들려오자 소유는 인가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소유는 동자에게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으라 이르고 바위 틈 길을 더듬어 올라가니 백발의 도사 한 분이 책상에 의지하여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대는 피난하는 사람인가?”
“예, 그러하옵니다.”
“필시 회남 땅의 양처사 아들 같은데 틀림없느냐?”
소유가 놀라서 더욱 공손히 예를 올린 뒤에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예. 소생은 양처사의 아들 소유이옵니다. 가친께서 신선이 되어 떠나신 후에 노모님을 의지해서 살다가 비록 아는 것은 없사오나 마음 속에 품은 뜻이 있어 과거를 보러 가던 길이었사옵니다. 미침 회음 땅에 이르러 산천 경개를 구경하던 중에 뜻밖에도 난리를 만나 산속으로 피난하다가 이곳으로 와서 신선을 만나게 된 것이옵니다. 이는 하늘이 도우사 선경을 밝게 한 것인 줄로 아옵니다.”
소유는 다시 일어나 절하고 나서 간곡하게 물었다.
“소생은 오랫동안 선친의 소식을 듣지 못해 그리운 정이 간절하였사온데 지금 신선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은즉 선친의 소식을 알고 계신 듯하니 신선께서는 부디 소생의 궁금증을 풀어 주시옵소서. 소생의 선친은 지금 신선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은즉 선친의 소식을 알고 계신 듯하니 신선께서는 부디 소생의 궁금증을 풀어 주시옵소서. 소생의 선친은 지금 어느 산에 계시오며 기체 무량하시옵니까?”
박발도사가 웃으며 말했다.
“그대의 부친과 내가 자각봉에서 바둑을 두다가 헤어진 지 며칠 안되노라. 그러나 어느 곳으로 가셨는지는 알 길이 없구나. 하지만 안색도 옛날과 같으며 가셨는지는 알 길이 없구나. 하지만 안색도 옛날과 같으며 머리도 희어지지 않았으니 그대는 과히 걱정하지 말라.”
소유는 부친의 안부를 듣자 더욱 부정이 그리워져 눈물을 흘리면서 아뢰었다.
“혹시 신선께서 주선해 주시면 가친을 만날 수 없지 않겠나이까?”
“그대를 위하여 주선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느니라. 또한 삼신산이 멀고 십주(서왕모가 한 무제에게 소개한 선계)가 하도 넓어서 그대의 부친을 찾아내기도 힘이 드느니라. 이왕 그대가 이곳에 왔으니 길이 트일 때까지 이곳에 머물다 돌아감이 좋을 것 같도다.”
도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소유는 비록 부친의 안부를 듣기는 하였으나 만날 길이 아득하므로 심회가 처량하여 눈물을 흘리며 앉아 있었다.
“회자정리는 인생의 상정이니 그만 눈물을 거두도록 하여라.”
소유가 도사의 권유대로 눈물을 거두니 세상에 대한 모든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 소유는 산문 밖에서 동자가 나귀를 끌고 기다리고 있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자리를 고쳐 앉으며 도사에게 사례했다.
거문고와 퉁소와 방서를 받다
“그대는 이것을 탈 수 있겠느냐?”
도사가 벽에 걸려 있는 거문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소생은 어려서부터 거문고를 즐겨 타곤 했사오나 스승을 만나지 못해 신묘한 곡조는 알지 못하나이다.”
소유가 겸손하게 대답했다.
도인이 동자를 시켜 소유에게 거문고를 갖다 주라고 지시했다. 소유가 이를 받아 무릎 위에 놓은 뒤에 풍입송 한 곡조를 탔다.
“그대의 손 놀리는 양이 가볍고 빠르니 내가 몇 곡 가르쳐 주리라.”
도사는 말하고 나서 몸소 거문고를 타기 시작했다. 그것은 천고에 전하지 못하던 곡조들로 그 소리가 맑고 단아하여서 인간 세상에서는 듣지 못하던 가락이었다. 본디 정신이 신통하고 한 번 들은 것을 잊어버리지 않는 소유인지라 도사가 너덧 곡을 타자 이내 깨우쳤다. 그것을 본 도사는 매우 기꺼워하면서 다시 백옥으로 만든 퉁소를 꺼내어 한 곡조 물었다.
“옛날 사람들도 음률을 아는 사람끼리 만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느니라. 내 너를 만나 기쁜 마음을 기념하기 위해 이 거문고와 퉁소를 너에게 줄 터이니 가져가도록 하여라. 이 악기들은 후일에 크게 쓸 곳이 있을 테니 소중히 간수하도록 하라.”
소유가 감지덕지하여 공손히 예를 하고 두 가지 물건을 받았다.
“신선께서는 소생의 가친과 친분이 두터우니 곧 가친과 다름이 없나이다.
바라옵건대 신선께서는 소생을 제자로 삼아 곁에 있도록 해 주시면 백골이 난망이겠사옵니다.”
이에 도사가 미소를 지으며 소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대는 인간이 당하는 부귀의 괴로움에서 쉬이 벗어날 수 있는 몸이 아니니라. 그러한 사람이 어찌 나를 따라 적막한 산 속에서 생활할 수 있겠느냐? 또한 이 다음에 그대가 돌아갈 곳은 나와 다르니 어찌 나의 제자가 될 수 있으리요?”
소유가 다시 한번 제자 되기를 갈망하여 절을 하자, 도사는 소유에게 책 한 권을 내밀었다.
“그대의 지성이 너무도 간절하여 이 팽조방서를 주겠노라. 이 법을 익혀 두면 비록 장생불사를 못할지라도 능히 평생을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니라.”
소유가 사례하며 공손히 책 한 권을 받았다.
“아까 신선께서는 소생에게 인간 세상의 부귀를 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외람되오나 한 가지 여쭤 볼 말씀이 있나이다. 소생은 화음현에서 진씨댁 규수와 혼약을 하던 중에 난리를 만나 이곳으로 피난왔사온데 이 혼인이 순탄하게 이루어질는지 말씀해 주시옵소서.”
“하하하하.”
도사가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혼인이란 밤길같이 어두운 것이어서 경솔하게 누설할 수는 없는 것이니라. 하지만 그대의 배필은 여러 곳에 있으니 진소저만을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
소유가 꿇어앉아서 분부를 받고 방으로 들어가 도사를 모시고 자는데 날이 밝기도 전에 도사가 소유를 불러 깨웠다.
“이미 전쟁은 끝나고 과거는 내년 봄으로 연기되었으니 그대는 어서 이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하여라. 그대 모친의 걱정이 태산같으니 속히 돌아가 위로해 드리도록 할지어다.”
이어서 도사가 노자와 행구를 마련해 주므로 소유가 백배 사례하고 거문고와 퉁소와 방서를 거두어 동구 밖으로 나갔다. 한참 가다가 슬픔을 이기지 못해 뒤를 돌아보니 그 집과 도사는 간 곳이 없고 오직 아름다운 구름만이 서려 있을 뿐이었다.
소유가 눈물을 씻고 길가를 본즉 국화국이 피어 있었다. 벌써 가을이 된 것이었다. 어제 산으로 올라갈 때에는 수양버들이 휘휘 늘어져 있었는데 국화꽃이 피어 있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럼 그 동안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었단 말인가.
화음현으로 내려온 소유는 한 사나이에게 물어 보았다.
“다섯 달 전에 일어났던 난리는 나라에서 군사를 불러 올리사 가까스로 평정되었소. 천자께서는 며칠 전에 서울로 올라가시었는데 과거는 내년 봄으로 연기되었다고 하더이다.”
진소저에 대한 그리움
소유가 전일 진소저와 만났던 누각을 찾아보니 휘휘 늘어졌던 능수버들은 가을 빛에 이미 퇴색하였고, 단청 칠한 누각은 다 재가 되어 있을 뿐이었다. 집 언저리에는 주춧돌과 깨어진 기와만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동네는 황량하여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사람의 일이 이렇게도 쉽사리 변할 수 있단 말인가.’
소유는 진소저와 이름다운 인연을 맺지 못하게 됨을 슬퍼하여 버들가지를 휘어잡고 진소저가 지은 양류사를 읊었다.
“주인장, 혹시 진어사의 가족이 어디로 갔는지 아시겠소?”
진어사 댁에 대해서 묻자, 주인은 몹시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상공은 아무것도 듣지 못하셨나이까? 전에 진어사께서는 서울에 올라가 벼슬을 하시고 오직 진소저 홀로 비복들을 거느리고 집을 지키고 있었사온데, 난리가 평정된 후에 진어사께서는 역적의 벼슬을 살았다 하여 극형에 처해지고 진소저는 서울로 잡혀 갔나이다. 그 후에 들려온 소식은 진소저가 참형을 받았다고 하고 관비로 끌려갔다고도 하더이다.”
소유는 너무도 비감하여 눈물을 줄줄 흘렸다.
“하온데 오늘 아침 관원들이 수많은 죄인의 가솔들을 호송해 가고 있기에 그 연유를 물어 보았사옵니다. 그랬더니 영남현에 노비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호송하고 가는 길이라고 하더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본즉 그 속에 진소저도 끼어 있었다고 하더이다.”
소유가 이 말을 듣고 슬퍼하며 탄식했다.
“남전도사가 진소저와의 혼인은 어두운 밤길 같다고 하시더니 필시 진소저는 유명을 달리한 모양이구나.”
진소저가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 소유는 그 날로 행장을 수습하여 수주로 떠났다.
이 무렵 유씨 부인은 아들이 서울로 향한 후에 난리가 터지자, 혹시라도 생명을 잃지나 않았나 하여 하늘을 향하여 기도를 드렸다. 그 동안 유씨 부인은 얼굴이 초췌해지고 온 몸이 쇠약해져서 곧 죽을 것만 같더니 아들이 돌아오자 금시 생기가 돌며 죽었던 아들이 다시 살아온 듯 끌어안고 기뻐했다.
이럭저럭 겨울이 가고 꽃 피는 새봄이 돌아왔다.
소유가 다시 모친 방에 들어가 과거 볼 것을 말씀드리자, 유씨가 경계하며 일러 주었다.
“작년에 네가 서울로 올라가서 위험한 고비를 겪은 것이 아직도 어미는 놀랍고 무서운데 또 가려 하느냐? 하지만 어미는 네 뜻에 따르기로 했으니 무사히 다녀오기를 빌 뿐이다.”
“어머님, 감사하옵니다.”
“아직 네 나이 연소하여 아직 공명에 뜻을 둠이 이르다고 만류할 수도 있는 것이로되 너를 보내는 것은 나에게도 뜻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지역이 좁고 궁벽해서 너의 배필될 사람을 구하기가 심히 어렵구나. 네 나이 열 여섯이 되었으니 이제 정혼해 두지 않으면 혼기를 놓치기가 십중팔구이니라. 문벌로나 재색으로나 재주로 너와 버금갈 만한 규수를 물색해 와야 하겠다.
서울 자청관(선도관의 이름)에 가면 나의 외사촌 형님께서 살고 계시느니라. 성명은 두련사라고 하는데 도사가 된 지 이미 오래이니라. 그분은 너를 친자식처럼 위하여 반드시 어진 배필을 구하여 줄 터인즉 너는 명심하도록 하라.”
하고 나서 유씨는 편지를 한 통 써 주었다.
소유는 모친이 혼담을 꺼내자 비로소 화음현에서 혼약한 진소저에게 대해서 아뢰었다.
“그 뒤에 진소저의 생사를 알 수 없어 소자는 혼자 번민하고 있던 차이옵니다.”
“진소저가 비록 선녀 같은 규수라 할지라도 너와 인연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인즉 너는 하루 빨리 잊도록 하여라. 설혹 진소저가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 할지라도 역적의 자식으로 몰렸으니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로다. 너는 하루 빨리 진소저를 잊어버리고 얌전한 규수에게 장가들어 이 어미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라.”
유씨가 탄식하며 당부했다.
소유는 모친에게 하직인사를 올리고 길을 떠났다.
낙양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줄기찬 소나기가 쏟아졌다. 소유는 남문 밖 술집으로 들어가서 비도 피할 겹 술을 시켰다.
주모가 술상을 차려 내오자 소유는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주인장, 이 술은 상품이 아니지 않소?”
소유가 주인을 향해 말했다.
“만약 상공께서 진실로 상품을 마시고자 하신다면 천진교 다릿목에서 파는 술을 잡수십시오. 그 술은 낙양춘이라 하는데 값이 천냥이옵니다.”
주인이 자세히 가르쳐 주자, 소유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낙양은 예로부터 제왕이 다스리던 옛 서울이라 번화하고 화려하기가 천하에서 으뜸이라고 하지 않는가. 지난 번에 서울로 날 때는 다른 길로 가느라 이곳에는 들르지 못 하였으니 내 잠시 머무르며 구경하고 가리라.”
낙양 기생 계섬월과의 만남
소유는 동자에게 나귀를 몰게 하여 천진교로 향했다.
성 안으로 들어가자 소유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여느 곳과 달리 풍물이 눈에 띄게 달랐다. 모든 물건이 다 고급스러웠고 누각과 정자의 화려함은 극치를 이루고 있었으며 낙수 강물은 그림을 비스듬히 펴놓은 듯했다.
천진교에는 채색 무지개가 꽂히고 붉은 누각과 단청한 정자는 공중에 솟아서 물 위에 거꾸로 아롱지고 주렴 그림자는 행길에 드리워 가히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어느 화려한 누각 앞으로 가니 은안장의 백마는 길가에 매여 있고, 마부와 하인들이 하인들이 바쁘게 드나들고 있었다. 소유가 무심히 누각 위를 본즉 풍악 소리가 자지러질 듯하고 비단옷 향기가 은은히 풍겨 왔다.
소유가 동자를 시켜 연유를 알아오라 이르니, 성안의 모든 귀공자들이 명기를 불러다가 노는 중이라고 아뢰었다. 그 말을 듣자 호기심이 일고 시흥이 도도해져서 소유는 곧장 누각 위로 올라갔다.
누각 위에는 심여 병의 귀공자들이 아름다운 기생들을 거느리고 비단 보료 위에 앉아 있는데 술상이 걸판졌다. 그들은 저마다 고담준론을 늘어놓고 있었는데 모두들 귀티가 완연한지라 소유가 허리를 굽혀 좌중에 인사를 청했다.
“생은 궁벽한 시골 선비로 이번 과시에 응시하러 가는 길인데 이곳에 이르러 풍악소리가 낭자한지라 젊은 혈기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염치를 불구하고 불청객으로 뛰어들었으니 제공은 용서해 주시기 바라고.”
누각 위에 있던 귀공자들이 일제히 소유를 쳐다보았다. 소유의 미목이 수려하고 용모가 말쑥한 것을 보자 귀공자들이 일제히 일어나 정중히 답례하며 소유를 맞아들였다.
각기 성명을 통하여 인사한 후에 자리를 나누어 앉자 두생이란 귀공자가 입을 열었다.
“양공께서는 진실로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라면 비록 불청객일지라도 오늘 놀이에 참여함이 무방하며 또 귀한 손님이 내방하였은즉 홍취가 더할 나위 없는지라 저어함이 있겠는가?”
하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이 모임을 보건대 단지 술로써 즐거움을 나누시는 게 아니라 사회를 베풀어 글을 비교하시는 듯한데 소제가 무분별하게 제공들의 연회에 참여함은 심히 분수에 넘치는 일인 듯 싶소이다.”
소유가 겸손하게 답례했다. 그러자 여러 사람이 소유의 언사가 극히 겸손하고 나이 어린 것을 얕잡아 보고 대답했다.
“양공자는 맨 나중에 온 사람이니 글을 지어도 좋고 아니 지어도 좋소이다. 하니 우리와 함께 술이나 마시며 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오.”
하고 나서 기생들을 재촉하여 술잔을 가득 채우게 하고 풍류를 즐기도록 하였다.
술기운이 오른 눈으로 소유가 기생들을 둘러보니 이십 명이 모두 뛰어난 미인들로 각기 재주를 겨루고 있었는데 오직 한 기생만은 접대도 하지 않고 단정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기생의 용모와 고운 자태는 실로 경국지색(한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게 할 만한 미인)이었다. 그 기생에게 넋을 빼앗긴 소유는 어느 새 술잔을 돌리는 것도 잊어버렸으며, 그 아름다운 기생 역시 가만히 얼굴을 들어 정다운 추파를 소유에게 보내 왔다.
소유는 그 기생 옆에 여러 폭의 시전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귀공자들을 향해 물었다.
“저 시편은 제공께서 지으신 아름다운 글인 듯한데 소생이 한 번 읽어보아도 괜찮겠소이까?”
귀공자들이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그 미인이 재빨리 일어나 시전지를 소유 앞에 갖다 놓았다.
소유가 십여 장의 글을 낱낱이 읽어 보았는데 그 가운데 우열은 있었으나 모두가 그만그만하여 수작을 뽑을 수가 없었다.
‘내 일찍이 들은 바에 의하면 낙양에는 인재가 그름 같다고 하더니 실로 거짓된 말이로다.’
라고 소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소유는 시전지를 미인 앞으로 보내고 나서 귀공자들의 시를 치하했다.
“초나라 사람이 지금까지 당나라 사람들의 글을 대하지 못했었는데, 이제 제공들의 주옥같은 글을 읽어보매 흉금이 열리고 안목이 아주 높아졌소이다.”
이즈음 귀공자들은 술이 거나하게 취하였으므로 서로 한 마디씩 하기에 바빴다.
“양공께서는 글귀가 묘한 것만을 알아냈을 뿐 그밖의 묘함은 찾아내지 못하였구료.”
“공들에서 극진한 배려를 해 주셨기로 이제는 의심 없는 친구가 되었사오니 그 밖의 묘한 것도 가르쳐 주지 않겠소이까?”
소유가 간청하자 좌중에게 왕생이란 귀공자가 박장대소하며 일러주었다.
“무엇이 어려워 말을 하지 못하겠소이까. 예로부터 우리 낙양에는 인재가 많다고 일컫는 고로 낙양 사람이 과거에 장원 급제하지 못하면 탐화랑(과거에 세째로 급제한 자)이 되었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글로써 헛된 이름을 얻었으나 그 우열과 고하를 아직까지 견주어 볼 기회가 없었소. 헌데 저 낭자가 장원을 뽑기로 했으니 이 아니 묘한 일이오? 저 낭자의 성씨는 계요, 이름은 섬월이라 하는데 자색과 가무가 출중해서 이 낙양에서는 따를 자가 없을 지경이오. 더구나 고금의 글을 모두 통달하여 모르는 게 없고 또한 글을 보는 안목이 묘하고 신통하기 이를 데 없소이다. 낙양의 모든 선비가 글을 지어 놓고 물으면 서슴없이 평론을 해 주며 조탁이 능란하여 털끝만큼도 빠짐이 없는 천재지요. 그러므로 우리들의 글을 계랑에게 넘겨 주어 계랑이 뽑은 글을 가곡에 넣고 풍류에 실어 그 고하를 매기기로 한 것이오. 한편 계랑의 성씨가 달 속에 있는 계수 나무와 같은 자이니 이번 과거에 급제할 징조가 여기에 있으매 묘하다고 말한 것이었소.”
왕생의 말을 끝나자 두생이 한 마디 덧붙였다.
“이외에는 진진한 것이 또 있소. 즉 이 글들 중에서 장원한 것을 계랑이 노래하면 그 글을 지은 사람은 오늘밤 계랑과 꽃다운 인연을 맺기로 되어 있소.
그렇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은 이를 치하하는 객이 될 것인즉 이 어찌 멋진 일이 아니겠소? 양공 역시 사내인데 홍취를 모르지는 아니할 것인즉 글을 지어서 우리와 함께 고하를 다툼이 어떻겠소?”
소유가 왕생에게 되물었다.
“하오나 제공들께서는 글을 지으신 지가 이미 오래 되었는지라 계랑이 노래를 불렀을 게 아니오?”
왕생이 웃으며 대답하기를
“계랑이 아직까지 아름다운 목소리를 아껴서 고운 입술을 꼭 다물고 있소이다. 앵두 같은 입술을 열어 맑은 노래를 들려 주지 않았은즉 이제라도 늦지는 않았소.”
하고 말했다.
“소제가 초 땅에 있으면서 더러 글을 지어 보기는 하였으나 이렇게 대처에 나와서 글을 짓는 것은 처음이라, 제공들과 재주를 겨룸은 실로 외람된 일이오이다.”
소유가 겸손하게 읍하며 사양하자 왕생이 소리쳤다.
“양공의 용모가 가히 여인네보다 섬세하니 장부의 뜻이 없고 또한 글재주도 없는 모양이구료.”
소유는 왕생의 비웃음보다도 계랑에게 마음을 두고 있던 터라 비록 겉으로는 사양하였으나 방탕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계랑의 옆에 있는 시전지를 한 폭 뽑았다. 소유가 글 세수를 단숨에 내리 쓰니 순풍을 만난 배가 재빨리 달아나고 삼 년 가뭄에 단비 내리듯 하는지라 모두들 놀라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소유가 붓을 내던지며 귀공자들을 둘러보았다.
“소생이 제공들께 마땅히 가르침을 받아야 옳으나 오늘의 시관은 계랑이라 하니 계랑에게 시전을 비치겠소이다.”
하고 나서 소유는 시전지를 계섬월에게 넘겨 주었다.
초나라 객이 서쪽에서 놀다가 진나라로 드니
주루에 와서 낙양춘에 취하였도다.
달 속에 붉은 계수나무 먼저 찍을고
오늘의 글월 속에 사람이 스스로 있도다
천진교 다리 위에 버들꽃이 날리니
구슬 발은 겹겹이 황혼에 비치었구나
귀를 기울이고 노래 한 곡조를 들으니
비단 자리에 다시 비단옷이 춤을 추더라
꽃가지가 낭자의 단장을 부끄럽게 하더니
고운 노래 아니하여 입이 이미 향기롭더라
이제 대들보에 티끌이 날아간 후를 기다려
동방 화촉을 밝혀 신랑에게 하례할지니
계섬월이 샛별 같은 눈을 들어 소유가 지은 시를 읽었다.
잠시 후, 거문고가 맑은 곡조를 일으키더니 계섬월의 입에서 꾀꼬리 같은 노래소리가 흘려나왔다.
높은 하늘에서 학이 울부짖고 봉황이 대숲에서 우는 듯하고 피리는 소리를 빼앗기고 거문고가 곡조를 잃으니 사람들의 정신을 빼앗고 황홀하게 하였다.
처음에 귀공자들은 촌뜨기라 하여 소유를 업신여기다가 필경에는 흐르는 물같이 세 수의 시를 지어 계섬월로 하여금 노래 부르게 하자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을 뿐 아무 말이 없었다. 그것은 섬월을 소유에게 내주기가 아깝거니와 그렇다고 해서 언약을 저버리자니 장부의 체면이 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소유가 그 눈치를 채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귀공자들에게 하직인사를 했다.
“소제가 우연히 제공들의 잔치에 참례하여 두터운 대접을 받고 놀이에 취하니 실로 고맙기 한량없소이다. 서울까지 가려면 아직도 길이 멀고 바쁘니 후일을 기약하고 소제는 그만 떠나겠소이다. 후일 다시 즐거운 곡강(장안 근교의 강으로, 매면 과거에 급제한 수재들이 놀이하는 곳) 큰 잔치에 끼여들어 장부의 정분을 풀기로 하겠소.”
하고 나서 조용히 누각을 내려갔다.
뒤에 남은 귀공자들은 쓴 입맛을 다실 뿐 만류하지 않았다.
계섬월과 운우지락을 나누다
소유가 누각에서 내려와 나귀를 타고 천천히 길을 나서니 계섬월이 다급하게 좇아왔다.
“상공께서는 잠시 소첩의 말씀을 듣고 가시옵소서. 이 길로 쭉 내려가시면 길가에 회칠한 집이 있사옵니다. 담을 따라 앵두꽃이 만발해 있어 찾기 쉬울 것이온즉 상공께서는 소첩의 집에 먼저 가셔서 기다려 주시옵소서. 소첩이 곧 뒤따라 가겠사옵니다.”
계섬월이 신신당부하므로 소유가 쾌히 응락하니, 계랑은 다시 누각으로 향했다.
“상공께옵서 소첩을 더럽다 내치시지 아니하고 한 곡조 노래로써 오늘밤의 꽃다운 인연을 정했사온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사옵니까?”
“지금 내려간 양공은 객이지 않느냐. 우리가 처음으로 약속한 사람이 아니니 유의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니라.”
귀공자들은 갑론을박하며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상공들께 아뢰나이다. 사람으로서 신용이 없으면 어찌 옳다고 할 수 있사오리까? 소첩은 몸이 미령하여 먼저 집으로 돌아가겠사오니 상공들께옵서는 종일토록 못다 한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옵소서.”
계섬월이 차디차게 말하고 누각에서 내려가니 귀공자들은 불쾌한 낯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처음의 약속이 있고 보니 계섬월을 붙잡고 늘어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소유는 나귀를 몰아 객주집으로 가서 잡시 쉬었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계섬월의 집으로 갔다. 계섬윌의 집에는 등불이 휘황찬란하고 안팎이 깨끗하게 소제되어 있어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소유가 앵두나무에 나귀를 매어 놓고 주인을 찾으니 계섬월이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상공께서는 소첩보다 먼저 떠나셨거늘 어이하여 이제야 오시나이까?”
“일부러 늦게 오고자 했던 것은 아니나 말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더라 하는 옛말이 있지 않느냐?”
소유가 대답하자, 계섬월은 소유의 손을 잡아끌며 방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아담하게 차린 술상이 들어와 술상을 앞에 두고 두 사람은 특히 따라 소유에게 권하며 금루의를 불렀다.
섬월의 고운 노래와 화용월태가 능히 사람의 정신을 흘려 빠져들게 하는지라 소유는 춘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술잔을 내려놓고 섬섬옥수를 끌어 금침으로 인도했다.
이윽고 운우의 정을 나누니 그 즐거움은 무산의 꿈(초나라 희왕과 양왕이 산대에서 낮잠을 자다가 신녀를 만남)과 낙포의 인연(낙수의 여신이 된 복희를 조식이 만남)에 견줄 수 없을 정도였다.
“낭군님, 오늘부터 소첩은 낭군님께 이 한 몸을 의탁코자 하옵니다. 청컨대 낭군님께서는 소첩의 심정을 들으시고 불쌍히 여겨 주소서. 소첩은 소주에서 태어났사오나 부친이 이 고을에서 아전을 살았기 때문에 이곳에 와서 살게 되었사온데 불행히도 부친께서는 일찍 세상을 떠나셨나이다. 고향은 먼데다가 살림살이가 구차하여 운구를 고향으로 모실 도리가 없었나이다. 그래서 계모가 소첩을 창기로 판 돈 백 량을 가지고 장사를 마쳤사옵니다.”
섬월이 자리 속에서 소유에게 지난 일을 이야기하며 눈물지었다.
“그날부터 소첩은 모든 굴욕과 설움을 참으며 마음을 굽혀 손님을 섬기어 왔사옵니다. 소첩은 모든 일구월심으로 훌륭한 군자를 만나 손님을 섬기어 왔사옵니다. 소첩은 일구월심으로 훌륭한 군자를 만나 다시 화락한 가정의 품에 안기기를 기구하며 살아왔나이다. 다행히 소첩의 집 누각이 장안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지라 나그네들이 이 앞에서 쉴 적마다 낭군님으로 모실 만한 분을 찾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었는데 하늘이 도우사 오늘밤 낭군님을 만나 뵙게 되었나이다. 이는 평생의 소원이라 만약 낭군님께서 소첩을 더럽다고 내치지 않으시오면 소첩은 밥을 짓는 시비가 되겠나이다. 하온데 낭군님 의향은 어떠하시나이까?”
섬월이 고운 뺨에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계랑이 내게 쏟는 정이나 내가 계랑을 아끼는 정은 조금도 다름이 없을 것이니라. 하지만 나는 가난한 선비인데다 고향에 노모께서 생존해 계시니 노모의 허락을 얻어야만 계랑과 백년해로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계랑 외에 달리 양가집 규수를 취하면 계랑이 좋아하지 않을 게 아니겠느냐. 하지만 천한에 그대와 비길만한 숙녀는 쉬이 찾아 보기 힘들 것인즉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니라.”
소유가 정답게 정답게 섬월의 어깨를 잡아끌며 위로했다.
“소첩이 보건대 낭군께서는 재주가 뛰어나 따를 사람이 없을 것이옵니다.
이번 과거에는 틀림없이 낭군께서 장원하실 것이옵니다. 또한 머지않은 장래에 정승의 인끈과 대장의 절월(수기와 부월, 생살전의 상징)이 낭군께로 돌아올 것이옵니다. 그리되면 온 천하의 재자 가인이 모두 낭군을 따르려 할 것인즉 미천한 소첩이 어찌 낭군의 사랑을 독차지하려 하겠나이까? 원하옵건대 낭군께서는 가문이 훌륭한 댁의 규수를 취하시어 모친을 봉양토록 하시되 천한 이 몸도 거두어 주소서. 이제부터 소첩은 굳게 몸을 지켜 정조를 지키겠사오니 후에 꼭 불러 주시옵소서.”
섬월이 다소곳하게 소유의 품속을 파고들며 말했다.
“작년 이맘때, 과거를 보러 서울로 가던 중에 화주 땅에 들른 적이 있었느니라. 우연히 진소저와 만나 양류사를 주고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자태와 빛나는 재질이 계랑과 쌍벽을 이룰 만하였는데 이제 소식이 끊어져 찾을 수가 없도다. 헌데 계랑과 쌍벽을 이룰 만하였는데 이제 소식이 끊어져 찾을 수가 없도다. 헌데 계랑은 어디서 훌륭한 규수를 찾으라고 하는가?”
소유가 추연한 빛으로 창 밖을 쳐다보며 말했다.
“낭군께서 말씀하시는 분은 분명 진어사 댁 소저 채봉이 아니옵니까? 일찍이 진어사께서 이 고을 원님으로 지내신 적이 있었사온데 그때 소첩은 진낭자와 친히 지냈나이다. 진소저에게는 탁문군과 같은 기상이 있으니 낭군께서 어찌 사마장경 같은 정을 일으키지 않았사오리까? 그러하오나 지금은 찾을 수가 없으니 생각해 보았자 무익한 일이 아니옵니까? 소청하거니와 낭군께서는 다른 댁의 소저를 구해 보소서.”
섬월이 단순호치로 방긋 웃으며 말했다.
“계랑아, 예로부터 같은 시대에 절색이 또 있기는 어렵다고 했거늘, 이제 계랑과 진랑이 있는데 어디에 또 재가 가인이 있으리오?”
소유가 근심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섬월이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낭군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실로 우물 안 개구리로소이다. 소첩이 잠시 저희들 창기 사회에 떠도는 공론을 낭군께 아뢰겠나이다. 천하에 있는 청루에는 삼절색이 있사온데 그 하나가 강남 땅에 있는 만옥연이요, 그 둘이 하북 땅의 창기 적경홍이요, 셋째가 낙양 땅의 천기 계섬월이라 하옵니다.
소첩은 다만 헛된 이름을 얻었을 뿐이오나 옥연과 경홍은 가히 경국지색이라 어찌 천하에 절대 가인이 없다고 탄식하시나이까?”
섬월의 삼절색론에 소유는 다만 조용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만옥연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한 번도 상면한 적은 없사오나 남방에서 오는 서방님네들의 말슴을 들으면 대단한 절색임이 분명하옵니다.
하오나 적경홍은 소첩과 친자매 같이 지내는지라 적랑에 대한 이야기를 대충 사뢰겠나이다.”
섬월이 옷깃을 바로 하고 나서 적랑에 대한 소개를 했다.
“적랑은 파주 땅에서 태어난 양가집 규수이온데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모께 의지하여 성장했사옵니다. 십여 세가 넘자 온 하북 땅에 적랑의 재색이 놀랍다는 소문이 나서 인근 사람들이 천금을 버려 첩을 삼고자 하므로 매파들의 출입이 빈번했사온데 적랑은 고모를 통해 모든 청혼을 다 물리쳤다 하옵니다.
그렇게 되자 모든 매파들이 적랑의 고모에게 성화하기를 ‘적소저가 모든 청혼을 다 거절하니 얼마나 귀한 댁으로 가고자 하여 그러는가? 도대체 대승상의 첩이 되고자 하느냐, 수재의 배필이 되고자 해서 그러느냐?’ 하고 힐난했다 하옵니다.
그러자 적랑이 고모 대신 매파들에게 대답하기를 다음과 같이했다 하오리다. ‘만약 어느 상공이든지 진나라 때 동산에서 기생을 이끌던 사안석(진나라의 정치가)과 같으면 기쁘게 대승상의 첩이 될 석이요, 저 삼국 시대에 사람들에게 곡을 가르치던 주공근(주유, 손책을 도와 강동을 평정함) 같으면 기꺼이 절도사의 측실이 될 것이요, 당 현종 때 청평사를 드리던 이태백 한림학사 같으면 기꺼이 명사에게 시집갈 것이오며, 한 무제 때 봉황곡을 들려 주던 사마상여 같은 사람이 있으면 기꺼이 수재의 배필이 될 것이옵니다. 그런 것은 이 몸이 향하는 대로 할 것인즉 어찌 미리 요량할 수가 있겠사옵니까?’ 적랑이 이같이 대답하자, 모든 매파들은 한결같이 비웃으면서 물러갔다 하옵니다.”
“듣고 보니 적랑의 기개가 예사 소저들과는 다른 점이 많구나.”
“그러하옵니다. 그러고 나서 적랑은 혼자 곰곰이 생각하기를, ‘궁벽한 시골에서 홀로 사는 처자로 이목이 밝지 못하니 어찌 천하에 뛰어난 군자를 가려 점잖은 가문의 며느리가 될 수 있겠는가. 예로부터 창기는 영웅 호걸과 자리를 같이하여 고담준론을 논하고 또 학문으로써 귀공자나 왕손을 맞아들일 수 있으니 현명함과 어리석음을 쉽게 분별할 수 있고 우열을 쉬이 판단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를테면 초안에서 대를 구하고 남전산에서 옥을 캐내는 것과 같으니 어찌 개재와 묘품 얻기를 근심할 것이리요.’하고 스스로 청루에 몸을 던졌나이다. 창기가 되어 훌륭한 군자에게 몸을 의탁하려 했으나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사나이를 만나지 못하고 몇 년 안 되어 이름을 사해에 떨치게 되었나이다. 작년 가을에 산동 하북 열두 고을의 문인과 재사가 업도에 모여 큰 잔치를 열고 놀이를 벌인 일이 있었사옵니다. 그 잔치 자리에서 적랑이 예상곡을 부르며 나비같이 춤을 추니 좌중의 놀라움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하옵니다. 편편하기가 놀란 기러기 같고 교교하기가 나는 봉 같아서 그 자리에 있었던 이름난 미인들이 모두 다 빛을 잃었다 하오니 낭군께서는 가히 적랑의 기예와 빼어난 미모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계랑의 말을 들은즉 적랑의 미모가 계랑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는 듯하도다.”
“낭군께서는 소첩의 말씀을 좀더 들어 보소서. 잔치가 파하고 난 뒤에 적랑은 동작대에 홀로 올라가 달빛을 한 몸에 받으며 옛글을 더듬다가 가슴에 와 꽂히는 글을 읊었사옵니다. 그리고 향을 나누어 준 지난날을 조상하더니 이어서 조조가 경국지색으로 이름 높은 이 교자(한나라 교현의 두 딸로 국생이녀라고 일컬어짐)를 누각에 감추지 못했음을 안타까와 했사옵니다. 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다 적랑의 재기를 사랑하고 그 뜻을 가상히 여겼다 하옵니다. 하오니 양가집 처녀에 적랑만한 규수가 또 어디 있사오리까. 지난날 소첩을 적랑과 더불어 상국사 놀이에 참석한 적이 있었사옵는데 그 때에 적랑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사옵니다. ‘우리 두 사람 중 누구라도 뜻에 합당한 군자를 만나게 되면 서로 천거하여 한 낭군을 같이 섬기는 게 어떠하뇨? 그리 되면 거의 백년 신세를 그르치지 않을 것이라.’ 하였사옵니다. 이에 소첩도 적랑의 말에 동의하였나이다. 하온데 이제 낭군 님을 모시게 되니 문득 적랑 생각이 간절하오나 적랑이 이미 산동 제후의 궁중으로 들어갔으니 너무도 분한 일이옵니다. 아무리 후궁 생활이 영화롭다 해도 적랑이 바라던 바가 아니니 심히 불편할 것이옵니다. 어떻게 하면 적랑을 만나 이 사정을 이야기할른지 안타깝기 이를 데 없사옵니다.”
계섬월이 옥같은 얼굴에 수심을 가득 담고 말했다.
“비록 청루 속에 재주 있는 미녀가 많다고 하나 어찌 양가집 규수를 따라갈 수 있겠느냐?”
소유가 반신반의하며 묻자, 계랑이 얼굴을 붉히며 다시 아뢰었다.
“이제까지 소첩이 본 규수 가운데 진소저 같은 처자는 다시없사옵니다.
진소저에 버금가는 규수가 아니라면 어찌 소첩이 낭군께 천거하오리까? 일찍이 소첩이 소문을 듣건대 장안 사람으로 정사 도의 따님을 칭찬하지 않는 자 없다고 하더이다. 정소저의 뛰어난 자색과 아름다운 덕행은 재상가 아가씨들 중 으뜸이라고 소문이 낭자하옵니다. 소첩은 정소저를 대할 기회가 없어 직접 보지는 못하였사오나 예로부터 헛된 이름을 얻기는 어렵다 하였사오니 낭군께서는 소첩의 천거를 유의하고 계시다가 서울에 당도하시거든 찾아보시기를 바라옵니다.”
섬월이 말을 마치고 소유를 그윽히 쳐다보았다. 소유는 명심하겠노라고 답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어느 새 먼동이 트고 있어 창 밖이 어슴푸레해졌다.
두 정인은 세수를 하고 몸단장을 한 뒤에 마주앉았다.
“이곳은 낭군께서 오래 머무르실 곳이 못 되오니 일찍 길을 떠나도록 하시옵소서. 어제 모였던 여러 공자들의 심중이 반드시 편하지마는 않을 것이오니 낭군께서는 미리 피하시는 게 좋을 듯 싶사옵니다. 소첩의 좁은 소견으로는 낭군님을 붙잡아 두고 싶사오나 후일 모실 날이 많을 것인즉 섭섭한 말씀은 올리지 않겠나이다.”
섬월이 추연한 얼굴로 소유를 쳐다보며 말했다.
“계랑의 말이 금석과도 같으니 내 마땅히 가슴 깊이 새겨둘 것이다.”
소유가 사례하며 말했다.
하룻밤 운우지정에 함빡 빠져 있던 두 정인은 눈물을 흘리며 하직인사를 나누었다.
두련사의 정소저 천거
계랑과 눈물로 작별한 소유가 며칠 후에 서울인 장안에 이르러 아담한 객사를 정하고 과거날을 기다리나 아직도 멀었는지라 객사주인에게 자청관에 대해서 물었다.
“자청관은 여관(여도사들만 있는 곳)으로 저 춘명둔 밖으로 나가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오.”
이에 소유는 예물을 갖추어 가지고 두련사를 찾아갔다.
두련사는 나이가 육십여 세로 계행(계율을 지켜 닦는 행위)이 아주 높아서 자청관의 우두머리였다. 소유가 두련사의 앞으로 나아가 절한 뒤에 품 속에서 모친의 편지를 꺼내어 바쳤다.
두련사가 안부를 묻고 나서 눈물을 흘려 가며 편지를 읽었다.
“자네의 자당과 못 만난 지가 어느덧 이십여 년이나 되었구나. 그 사이에 아들을 낳아 저렇듯 장성했으니 세월이 유수와 같은지고. 이제 내 몸이 너무 늙어 이렇게 번화하고 소란스러운 서울에 있기가 싫어 멀리 공동산으로 들어가 선도를 닦으며 유유자작하려 하였으나 자네 자당의 부탁이 하도 극진하니 자네를 위하여 더 머물러 있을 것이니라. 내 자당의 부탁이 하도 극진하니 자네를 위하여 더 머물러 있을 것이니라. 내 자네를 보아하니 풍채가 빼어나 마치 천상의 신선을 대하고 있는 것 같도다. 그러니 자네의 상대가 될 만한 규수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로되 힘을 기울여 찾아볼 것인즉 자네는 시간을 보아 다시 찾아오도록 하라.”
두련사가 일변 눈물을 흘리며 자상하게 소유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소질은 가세가 넉넉지 못한 데다가 어머님께서 연로하신 탓에 아직까지 마땅한 혼처를 구하지 못한 채 이십이 가깝도록 어머님을 고생시키고 매양 죄송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사옵니다. 어머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효성을 펴지 못하고 있던 중이었사온데 드릴 말씀이 없나이다.”
소유가 재삼 사례한 뒤, 곧 하직 인사를 올리고 물러나왔다.
과거 날짜가 코앞으로 닥쳐왔으나 소유는 혼처를 구하겠다는 두련사의 말에 마음이 들떠서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수일이 지난 후, 소유는 들뜬 마음을 안고 자청관으로 갔다.
“이곳저곳 수소문을 하던 중 어느 댁 규수를 보았는데 그 뛰어난 자색과 재주가 자네 배필로는 손색이 없었네. 하지만 그 댁의 문벌이 너무 높아서 그게 걱정이야. 여섯 대를 내리 공후로 있었는데 다 삼 대 째 대신을 하고 있는 집안이라 이번 과거에서 자네가 장원을 하면 혼인 가망이 있을 것이로되 그렇지 않으면 말도 꺼내지 못할 것이니라. 그러니 자네는 번거롭게 날 찾아다니지 말고 공부에 더욱 힘써 장원급제하도록 하라.”
두련사가 소유를 맞아 웃으며 말했다.
소유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두련사에게 물었다.
“그 규수는 어느 댁 처자이옵니까?”
“정사도의 따님인데, 그 댁은 붉은 대문이 한길 쪽으로 트여 있고 문 위에 창을 걸쳐 놓았느리라. 한데 그 댁 아가씨가 바로 선녀요, 속세 사람은 아니더라.”
두련사가 쾌히 일러주었다.
계섬월 역시 정도사의 여식을 천거했던 터라 소유는 내심 기이하게 여기면서 두련사에게 되물었다.
“아주머니께서는 그 댁 규수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셨나이까?”
“내가 그댁 규수와 면담해 보지 않고 어찌 천거할 수 있겠느냐? 정소저의 아름다움과 청초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니라.”
두련사가 대답했다.
“소질이 이런 말씀드리는 것은 경망스럽고 외람되오나 이번 과거에 장원하기란 여반장처럼 쉬운 일이오니 이 점은 염려를 놓으소서. 하오나 소질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나이다. 소질은 규수를 보지 않은 채 구혼할 생각은 추호도 없사오니 아주머니께서는 자비로운 마음을 베푸시어 소질로 하여금 정소저의 자태를 볼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소유의 간청에 두련사가 깜짝 놀라서 말했다.
“재상가의 규중에서 고이 자라고 있는 규수를 어찌 본단 말인가? 혹시 자네가 내 말을 믿지 못해서 그러는 게 아닌가?”
이에 소유가 황망히 자리를 고치며 말했다.
“아니옵니다. 어찌 소질이 아주머니의 말씀을 의심하오리까? 하오나 사람마다 보는 눈이 다를 것인즉 어찌 아주머니의 안목과 소질의 안목이 같을 수 있사오리까?”
“자네 뜻을 알 수 있겠노라. 하지만 어린아이들도 봉황과 기린을 말할 때에 상서롭다 이르고, 청천백일은 어리석은 사람이나 영리한 사람 모두가 보는 것이거늘 어찌 내가 정소저의 자태와 심덕을 알아보지 못하겠느냐?”
두련사의 말에 소유는 더 이상 조르지 못하고 불쾌한 마음을 품은 채 객사로 돌아갔다. 다음날 새벽, 소유는 또다시 두련사를 졸라 보고자 자청관으로 찾아왔다.
“자네가 새벽 일찍 온 것을 보니 필시 무슨 연유가 있음이로다.”
두련사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죄송한 말씀이오나 소질이 직접 정사도댁 규수를 보지 않고는 마음을 둘 수가 없사옵니다. 바라옵건대 아주머니께서는 부디 모친의 부탁하심을 생각하시어 소질의 간청을 살펴 주시옵소서. 아주머니께서는 신기한 묘책으로 한 번 만나도록 주선해 주시옵소서.”
소유가 명랑한 얼굴로 또다시 간청했다.
“그것은 심히 어려운 부탁이라 들어 줄 수가 없느니라.”
두련사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하오나 신기한 묘책이 있을 듯하니 소질의 청을 물리치지 말아주옵소서.”
두련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소유를 향해 물었다.
“내가 보기에 자네는 재주가 기이하고 총명하고 총명해서 학문하는 틈틈이 음률을 익혔을 듯한데 어떠하냐?”
소유가 대답했다.
“전일 어느 도사를 뵙게 되어 신묘한 곡조를 배웠기로 소질은 오음육률(궁, 상, 각, 치, 우, 황종, 태주, 고선, 유빈, 이칙, 무역)을 익히 알고 있나이다.”
“정사도 댁은 대대로 내려온 대재상 집이라. 담이 높고 문 또한 다섯 겹으로 화원이 넓고 무성해서 날개 없이는 감히 접근도 할 수 없느니라. 또한 정소저가 학문을 좋아해서 글을 많이 읽은 데다 예절이 밝아서 일거일동에 실행함에 없네. 지난날 우리 자청관에 와서 분향한 적도 없고, 절에 가서 재를 올린 적도 없으며, 정월 대보름날의 등불 구경도 해 본 적이 없으며, 어느 댁 규수가 정소저를 따라가겠느냐? 정소저를 볼 수 있는 한 가지 묘책이 있기는 하나 그것은 자네가 따르지 않을까 걱정이로다.”
두련사가 소유를 건네보면서 말을 끊었다.
“만약 소질이 정소저를 직접 볼 수 있다면 승천입지하고 부탕도화 할지라도 어찌 따르지 않겠나이까?”
소유가 간곡하게 대답했다.
“근래에 들어 정사도는 나이 많고 몸에 병이 든 것을 기화로 벼슬살이를 즐겨 하지 않으며 산수와 음률에서 흥을 찾고 있느니라. 정사도의 부인 최씨도 음률을 좋아하시던 터라 정소저 역시 총명하고 영민하여 모르는 게 없고 음률에 있어서도 청탁고저를 한 번 들으면 즉각 이를 분석해 내니 비록 사광(사광:춘추시대 진의 음악가)의 총명함과 종자기(춘추시대 거문고의 영수)의 신통이라도 이를 넘지는 못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최씨 부인은 언제나 새 곡조를 듣게 되면 반드시 그 연주자를 불러 면전에서 곡을 아뢰게 새 곡조를 듣게 되면 반드시 그 연주자를 불러 면전에서 곡을 아뢰게 하네. 그리하면 소저가 옆에서 뫼시고 있다가 높고 낮음을 평론하지. 최씨 부인은 탁자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노래를 듣는 것을 제일의 낙으로 삼고 있느니라. 그러니 자네가 진실로 거문고를 탈 줄 알거든 미리 한 곡조를 익혀 두고 있도록 하게.
노는 삼월 그믐날은 영부도군(오제의 하나)의 생신이라 필히 그 댁에서 계집종을 시켜 향촉을 보낼 것일세. 해마다 도관으로 계집종을 보내온즉 올해에도 틀림없이 올 것이야. 이때에 자네가 여자 옷으로 갈아입고 거문고를 뜯으면 계집종이 듣고 돌아가서 부인께 여쭐 것이야. 그러면 그 부인께서 틀림없이 자네를 부르시더라. 자네가 정사도 댁으로 가서 소저를 대면하게 되든지 못하게 되든지 그것은 모두가 자네들의 연분에 달린 것인즉 내 알 바는 아니로다. 이외에는 달리 계책이 없으니 자네는 괴이타 여기지 말고 따르도록 하라. 또한 자네의 용모가 아리따운 처녀와 같고 수염도 나지 않았으니 변장하기 쉬울 것일세.”
소유는 기뻐서 거듭 사례한 후, 객사로 돌아가서 손꼽아 그믐날이 되기를 기다렸다.
원래 정사도는 슬하에 소저 하나만을 두고 있었다. 정사도 부인이 해산기가 있던 날 언뜻 잠이 들었는데 하늘에서 아리따운 선녀가 사뿐히 내려와 구슬 한 개를 부인에게 던지고 사라졌다. 그런, 후 오래지 않아 소저를 낳았으므로 정사도 아기의 이름을 경패라고 지었다. 소저가 점점 자라나면서 아름다운 자색과 슬기로움이 아주 뛰어난지라 정사도 부처는 장중보옥 같이 여겼다. 소저 나이가 열 살이 넘자 정사도는 사위감을 널리 구하였으나 마땅한 재목이 없어 나이가 열 여섯이 되도록 아직 혼처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는 정사도 부인이 소저의 유모인 전구를 불렀다.
“오늘은 영부도군의 생신 날이니 네가 향촉을 가지고 자청관으로 나가 두련사에게 전하라. 그리고 옷감과 다과를 보내서 내가 그리워하고 있는 정을 아뢰도록 하라.”
“마님, 명심해서 분부 거행하겠나이다.”
유모는 물건을 챙긴 후에 작은 가마를 타고 자청관으로 갔다. 두련사가 유모에게 향촉을 받아 삼청전(옥청, 상청, 태청)에 공양하고, 또한 다과와 비단을 보내 주신 것에 대해 깊이 사례하며 유모를 대접하였다.
유모가 교자를 타고 돌아가려 할 때에 별당 쪽에서 거문고 소리가 들렸다.
양소유가 별당에 앉아서 거문고를 뜯고 있던 것이었다. 그 음률이 하도 맑고 새로워서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하거늘 유모가 걸음을 돌려 두련사에게 물었다.
“이 몸이 지금까지 마님을 모셔 오면서 유명한 사람들의 거문고를 들었사오나 이같은 곡조는 금시초문이옵니다. 하온데 이 곡은 어떠한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이옵니까?”
유모가 간곡히 물었다.
“일전에 초땅에서 어린 여관 한 사람이 서울 구경을 하고자 하여 올라왔는데 때때로 거문고를 타곤 하나이다. 그러나 이 몸은 음률을 알지 못하는 고로 그 청탁을 분별치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대의 칭찬 소리가 간곡한 것을 보니 필경 명수인 것 같구료.”
두련사가 시치미를 떼고 말했다.
“우리 댁 마님께서 이 말씀을 들으시면 필시 곡조를 듣기 위해 부르실 터인즉 그 여관으로 하여금 좀더 이곳에 머물러 있도록 해주시옵소서.”
이 말에 두련사가 쾌히 승락했다. 유모가 교자를 타고 떠난 뒤에 두련사는 별당으로 가서 소유에게 유모와 나눈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이에 소유가 기뻐하면서 정사도 부인의 청함을 고대하게 되었다.
정소저의 뛰어난 지혜
자청관에서 돌아온 유모는 곧장 부인의 처소로 향하였다.
“마님, 자청관에서 어떤 여관에 거문고를 타는데 그 음률이 하도 맑고 신기해서 이 세상 것 같지가 않았사옵니다.”
유모가 그 음률의 신묘함을 아뢰자, 정사도 부인이 기꺼워하며 말했다.
“내가 그 여관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자 하노라.”
다음날 아침, 부인은 보교 한 채와 계집종을 보내어 두련사에게 말을 전하였다.
“내가 젊은 여관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자 하니 아무쪼록 그 사람을 내게 오도록 권해 주셨으면 하오.”
두련사가 부르시니 전언을 듣고 소유에게 말했다.
“귀한 댁에서 부르시니 그대는 사양하지 말고 다녀오도록 하라.”
“시골에서 자안 천한 몸으로 귀부인 전에 나아가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오나, 두련사의 말씀을 어찌 거역하오리까?”
이에 소유가 여도사의 두건과 의복으로 변장을 한 뒤에 거문고를 들고 나왔다. 소유의 위부인과도 같고 사자연(당나라의 여관)과도 같은 용모와 풍채를 본 정사도 댁의 시비는 연방 탁복해 마지 않았다.
소유가 시비의 안내로 정사도 댁에 들어가니 정사도 부인이 대청에 앉아 있다가 반가이 맞아들였다. 소유가 언뜻 부인을 보매 그 몸가짐이 너무도 엄정한지라 대청 아래에서 재배를 드렸다.
“일전에 딸 아이의 유모가 도관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은 뒤에 내 그대의 거문고를 듣고 싶어 이렇게 청했노라. 이제 그대의 맑은 모습을 대하니 세속의 어지러운 생각이 일시에 가시는 것 같도다.”
부인이 말을 마치고 소유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이 몸은 초땅에서 태어난 천한 몸으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신세이온데 마님께서 부르시니 송구스럽기 그지없나이다. 이제 촌스러운 재주를 가지고 마님 앞에 나아오니 다만 황공스러울 뿐이옵니다.”
소유가 자리를 사양하며 인삿말을 했다.
이때에 정사도 부인이 거문고 보기를 청하자, 소유가 시비에게 거문고를 내밀었다.
부인이 시비가 가져온 거문고를 만져 보더니 칭찬의 말을 내렸다.
“참으로 묘한 재목으로 만든 거문고로다.”
소유가 머리를 조아리며 읍하고 대답했다.
“이 거문고의 재목은 용문산 속에서 백 년이나 묵은 오동나무이옵니다. 그리하여 성질이 굳고 탄탄하기 이를 데 없어 금석과도 같사오니 천금을 주고도 사기 힘든 것이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동안 섬돌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대청에는 소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소유는 내심 불안해졌다.
소유가 조급한 마음을 지그시 누르며 부인에게 사뢰었다.
“이 몸은 비록 곡조를 익혔으나 모두 옛날 것들로 요즘의 곡조는 타지도 못할 뿐더러 곡조도 모르옵니다. 전날 자청관 여관에서 듣사온즉 마님댁 따님의 재주가 놀라 와 음률을 알기로는 오늘의 종자기라 하오니 원하옵건대 숙덕과 재주가 천하에서 으뜸가는 아가씨의 가르침을 받고자 하나이다.”
부인이 이를 허락하고 시비를 별당으로 보내었다.
얼마 후, 수놓은 비단 창문이 열리며 신묘한 향기가 풍기더니 아름다운 규수가 사뿐사뿐 걸어와 부인 곁에 다소곳이 앉았다.
소유가 얼른 일어나 절한 다음 얼핏 소저의 용모를 살폈다. 소저의 모습은 아침 해가 찬연히 솟아오르고 연꽃이 푸른 물에 비친 것 같아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어 자세히 바라볼 수가 없었다. 소유는 소저와의 거리가 먼 것을 안타깝게 여겨 부인께 사뢰었다.
“마님, 이 몸은 소저의 자상한 가르침을 받고자 하옵는데 대청이 너무 넓어서 성음이 흩어질 것인즉 자세히 듣지 못할까 걱정이 되옵니다.”
부인이 이를 쾌히 허락하고 시비를 시켜 여관의 자리를 앞으로 옮기게 했다.
그러나 부인의 자리와는 더 가까워졌으나 소저의 오른편에 앉게 되어 서로 마주 바라볼 때보다 못하게 되었다. 소유가 두 번 다시 간청하지 못하고 시비를 시켜 화로에 향을 피우게 했다.
소유가 단정히 앉아 거문고를 당기며 소저에게 물었다.
“여섯 가지 꺼리는 것(육기)이 없겠나이까?”
“아주 차가운 것과 아주 뜨거운 것과 무섭게 바람이 부는 것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것과 우 레가 치고 눈이 오는 것을 꺼리는데 지금은 이 여섯 가지가 모두 없으니 안심하고 거문고를 타도록 하여라.”
소저가 꾀꼬리 같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러하오면 일곱 가지 타지 못하는 일이 없나이까?”
소유가 다시 물었다.
“상갓집 소식을 들은 자와 마음이 혼란한 자와 의관을 정제하지 못한 자와 향을 피우지 않은 자와 지음을 만나지 못한 자가 타지 못하는데 지금은 또한 이런 결점들이 없노라.”
소유가 마음 속으로 탄복하며 첫 곡으로 예상곡을 탔다.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곡조로구나. 태평성대의 기상이 완연하게 나타나 있어. 이 곡은 사람들이 알아듣기는 하되 도인처럼 신묘하게 곡을 탈 사람은 없을 것이야. 이는 이른바(어양비고동지래하니 경타예상우의곡이라)는 곡조가 아닌가? 이것은 음란한 곡조라 즐겨 들을 게 못되니 다른 곡조를 타도록 하라.”
소저가 총명한 눈을 들어 대답했다.
소유가 다시 한 곡조를 탔다.
“이 곡은 즐거운 가운데 음란함이 있고 슬픔 속에 너무 급한 기운이 있으니, 곧 진후주(남북조시대의 진나라 군주로 나라를 잃음)의 (옥수후정화)라. 이른바 죽은 후에 지하에서 진후주를 만나게 되면 (기의중문후정화)라 하는 곡이 아니냐? 이 또한 숭상할 바 못되니 다른 곡을 아뢰도록 하여라.”
소저의 말에 소유는 다른 곡을 아뢰었다.
“이 곡조는 흐느끼는 듯하면서도 기쁜 듯하고, 감격한 듯하면서도 생각에 잠긴 듯하구나. 이는 옛날에 채문희(중국 고대의 재원)란 미녀가 전쟁 중에 오랑캐에게 잡혀가서 아들을 둘이나 낳았는데, 그 후에 조조가 문희를 위하여 막대한 몸 값을 치르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니 문희가 아들과의 이별을 서러워하여 이 곡조를 지어 슬픈 뜻을 나타낸 것으로 (호인낙루천변초요, 한사단장대귀객이라)는 것이지. 이 곡조는 들음 직하나 절조를 잃은 사람의 것이니 어찌 즐겨 들을 수 있으리요. 다시 새 곡조를 타기 바라노라.”
소저의 평이 끝나자 소유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 곡조를 탔다.
“이는 왕소군(한 원제의 궁녀)의 출새곡이로군. 몸이 그곳에 있음을 슬퍼하고 화공이 공평하지 못하였음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마음을 곡조에 실었으니 이는 곧(수연일곡전악부하여 능사천추상기라)하는 것이라. 하지만 이것은 오랑캐 땅의 곡조요, 변방의 소리라 바른 음이라 할 수 없으니 다른 곡을 타 보기를 바라노라.”
소유가 또 다른 곡조를 타니 소저가 얼굴빛을 고치며 말했다.
“실로 도사는 예삿사람이 아니로구나. 내 이 곡을 들은 지 실로 오래되었는데 지금 들으니 감개가 무량하다. 이는 영웅이 때를 만나지 못하여 마음을 세상에 붙이지 못하고 문란한 세상에 충의의 기운이 가득하니 해숙야(해숙야:죽림칠현의 한 사람)의 광릉산이 아닌가. 급히 동시에 벨 때 해 그림자를 돌아보고 한 곡조를 타되 (원통하다! 광릉산을 배우려고 하는 자가 없기에 내 아껴서 전하지 않았더니 슬프도다, 이로써 광릉산이 끊어졌노라) 하니 이는, 곧 (독조하동남하니 광릉하처재)라는 것이지. 이 곡은 후세에 전해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정녕 도인이 해숙야의 혼령을 만나 배워 왔음이 분명하구나.”
소저의 해박한 지식은 다시 한번 소유의 마음을 탄복시켰다.
“소저의 슬기로움이 이 같으니 어느 누가 소저를 따를 수 있사오리까. 지난날 이 몸의 스승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의 소저 말씀과 똑같았나이다.”
소유가 꿇어앉아 소저를 칭송한 뒤에 또 한 곡조를 탔다.
“푸른 산은 하늘을 찌를 듯하고 푸른 바다는 한없이 넓은데 신선의 자취가 속세에 보이니 이는 백아(춘추시대의 음률인인 종자기의 벗)의 수선조가 아니냐? 이는 (종자기를 이미 만났으니 유수를 아뢰매 무엇이 부끄러우리) 곧 (조기기부 주유이하참) 하는 것이야. 도인의 지음을 만약 백아의 혼백이 안다면 종자기의 죽음을 그다지 서러워하지는 않을 것이로다.”
소저가 칭찬의 말을 내렸다.
소유는 새 곡으로 다시 한 곡조를 탔다.
“거룩하고 오 극진하구나. 성인이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온천하를 돌아다니며 천하의 백성을 구제하고자 하니 이는 공선부가 아니냐? 누가 능히 이 곡조를 지을 수 있겠는가? 필연 의란조이니 (소요구주 무유정처) 이는 곧 (구주를 떠돌아 정처가 없다) 함이 아니냐?”
소저가 다시금 옷깃을 여미고 꿇어앉아 사그러진 향을 피우고 한 곡조를 새로 아뢰었다.
“아아, 정말 아름다운 곡조로구나. 천지만물이 모두가 봄빛을 머금고, 너무도 높고 넓어서 무어라 이름지을 수가 없구나. 이는 대순(우제의 호)의 남훈곡이라. (남풍지훈혜여 해오민지온혜로다.) 진선미함이 이에 앞설 자 없으니 이제 다른 곡조가 있을지라도 더 이상 청하지 않을 것이니라.”
소저가 탄복하면서 말했다.
이에 소유가 공손히 소저를 우러러보며 대답했다.
“일찍이 이 몸이 듣기로는 음률 아홉 번에 천신이 내린다 하였사옵니다. 이미 여덟 곡을 타고 한 곡조가 남아 있사오니, 나머지 곡도 타 보고자 하나이다.”
소유가 말을 마치고 거문고를 단정히 하여 음을 골라 탔다. 그 소리가 흐르는 듯 또렷하며 또한 타오르는 듯하므로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심신을 방탕하게 하였다. 뜰 앞에 백 가지 꽃이 일시에 활 짝 피어나고 제비는 쌍쌍이 날며 꾀꼬리가 서로 울부짖는 듯했다. 소저는 고운 눈길을 떨어뜨리고 잠잠히 앉아 있다가 (봉혜봉혜 귀고향하여 오유사해 구기황)이란 곡조에 이르니 아름다운 얼굴을 들어 소유의 용모를 살폈다.
소유의 기상을 본 소저의 두 뺨에 붉은 빛이 어리고 환한 기색이 눈썹으로 사라지며 갑자기 낯빛이 달라졌다. 소저가 조용히 일어나 말없이 내당으로 들어가자, 소유는 크게 놀라 거문고를 타던 손을 멈추고 망연히 앉아 있었다.
이에 부인이 소유에게 물었다.
“지금 여관이 탄 것은 무슨 곡인고?”
“이 몸이 스승에게 배워 익혔사오나 곡면은 알지 못하오니 원컨대 소저의 가르침을 받도록 해 주시옵소서. ?
부인이 시비를 시켜 소저에게 나오라고 시킨즉, 한참 수에 시비가 돌아와서 고했다.
“소저께서는 반나절 동안이나 바깥 바람을 쏘였기로 심기가 불편하시와 나오지 못하겠다고 하옵니다.”
소유는 정소저가 자신의 정체를 짐작하지 않았을까 하여 미안한 생각에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부인에게 하직 인사를 했다.
“소저께서 심기가 불편하시다 하오니 미안한 마음 그지없나이다. 이 몸이 좀 지나친 듯하옵기에 이만 물러가고자 하나이다.”
부인은 급히 시비에게 명하여 상금으로 줄 은과 비단을 내오라고 일렀다.
그러나 소유는 이를 사양하며 말했다.
“마님, 이 몸이 비록 음률을 조금 익혔사오나 스스로 즐길 뿐이온데 어찌 놀이채를 주시려 하나이까?”
이에 부인이 가상히 여기며 이별을 섭섭하게 생각했다.
과거장에서 사윗감을 고르는 정사도
부인이 소저의 칙명을 근심하여 내당으로 불러 물어 보니 소저는 다만 얼굴을 붉히고 있을 뿐이었다.
내당에서 물러나온 소저는 별당으로 돌아가서 시비를 불렀다.
“춘랑이 병이 아직도 차도가 없더냐?”
소저가 근심어린 얼굴로 물었다.
“아니옵니다. 오늘은 아가씨께서 거문고 소리를 듣는다는 말씀을 듣고 병의 차도가 없는지라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였사옵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니 다행스런 일이구나.”
소저가 병의 차도를 물어 본 춘랑이라는 처자는 성이 가씨로 서호 사람인데 부친이 서울로 올라와 승상부의 아전이 되어 함께 따라왔다. 아전 가씨는 정사도 집에 공로를 많이 세웠는데 불행히도 춘랑의 나이 열세 살 때 병으로 죽었다.
정사도 부처는 천에 고아인 춘랑의 처지를 가엾게 여겨 집안에 거두워 두고 소저와 놀게 하였다. 춘랑의 나이는 소저와 동갑이로되 한 달이 틀리지만 그 태도가 정숙하고 단정하기가 재상댁의 규수 못지 않았다.
춘랑의 존귀한 기상은 비록 정소저를 따르지 못할지라도 용모는 정소저와 또 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문필과 바느질 솜씨의 신통함이 소저와 다를 바 없으므로 소저는 춘랑을 동기간처럼 사랑하고 아꼈다. 두 처자는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으며 서로 아끼는 정이 두터워 주인 소저와 계집종의 구별은 있었으나 실로 친구지간 같았다.
춘랑의 본이름은 초운이었는데, 소저는 춘랑의 단아한 몸가짐을 사랑하여 한퇴지(당의 유학가, 문학가)의 글 중에서 다태도춘공운이라는 글귀를 떼내어서 그 이름을 춘운이라고 고쳐 주었는데, 그때부터 집안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불렀다.
소저가 안으로 들자 춘랑이 반기며 물었다.
“아가씨, 아까 모든 시녀들이 입을 모아 거문고 타던 여관의 용모가 위부인 같고 곡조가 신묘하기 이를 데 없다고 칭찬이 대단했나이다. 아가씨께서도 탄복하셨다 하옵기로 소녀도 그 여관을 보기 위해 불편함을 참고 일어났사온데 그 여관은 어찌 그리 속히 돌아갔나?”
춘랑이 말하자, 소저는 잠자코 앉아 잇더니 얼굴을 붉히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각별히 몸가짐에 조심하고 마음 가지기를 항상 청결히 하였으며 지금까지 중문 밖에 나가 보지 아니하고 나의 말이 천척에게도 미치지 않는 것을 너도 잘 알지 않느냐? 그런데도 졸지에 남한테 속아서 수치를 당하였으니 차마 얼굴을 들고 사람을 대할 수가 없을 것 같구나.”
소저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다. 춘랑이 놀라서 급히 물었다.
“아가씨,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이옵니까?”
“아까 왔던 그 여관의 용모가 이 세상 사람 같지 않고 거문고를 타는 재주 또한 신묘하기 짝이 없더라.”
정소저는 말을 끝맺지 못한 채 또다시 얼굴을 붉혔다.
“그 여관이 어떻게 했기에 아가씨의 안색이 창백하시나이까?”
춘운이 소저의 얼굴빛을 그윽한 시선으로 들여다보았다.
“그 여관이 맨 먼저 예상곡을 타고 여덟 번째에 가서 대순의 남훈곡을 타기로 내 칭찬하는 말을 내리고 이제 그만하여도 좋다고 하였느니라. 헌대 그 여관이 한 곡조가 더 있으니 들어보라고 하면서 새 곡조를 탔느니라. 그 곡조는 사마상여가 탁문군의 마음을 사로잡던 봉구황곡이었다. 그때에 퍼뜩 그 여관이 의심스러워서 세밀히 보니 얼굴 생김과 몸가짐은 품이 여자와 다른 점이 많지 않겠느냐. 필시 간사스런 남정네가 몸빛을 구경하고 싶어서 변장을 하고 들어온 것이야. 만약 네가 앓아 눕지 않았다면 함께 보고서 그 진위를 가려냈을 텐데……. 내가 규중 처자의 몸으로 아무 연고도 모르는 남자와 반 나절이나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하였으니 이 얼마나 창피스런 일이냐? 비록 모녀간이라 어머님께는 차마 이 말씀을 여쭙지 못하고 다만 네게 이야기하는 것이니라.”
소저가 조심소심 말을 끝맺었다.
그러자 춘랑이 웃으며 말했다.
“원 아가씨두, 사마상여의 봉구황곡을 규수의 몸으로 듣지 못하란 법이 어디 있사옵니까? 아가씨께서는 혹시 술잔 속의 활그림자를 보신 게 아니옵니까?”
“그렇지 않아. 그 여관이 거문고를 타는 데는 곡조의 차례가 있었어. 만약 무슨 생각이 없었다면 봉구황곡을 어째서 맨 끝에 타겠느냐? 또한 여인의 몸매라고 하기에는 그 기상이 너무 씩씩하였으며 몸 날리는 선이 아주 굵었느니라. 내 생각에는 과거 날짜가 다가오매 경향 각지의 선비들이 서울로 모여들었으니 그 선비들 중에서 내 소문을 잘못 들은 사람이 꽃구경이나 하는 심산으로 계교를 꾸민 것 같구나.”
소저가 여전히 얼굴을 붉힌 채로 대답하였다.
“아가씨 말씀처럼 그 여관이 남자가 틀림없으면, 그 용모의 청수 함이 그와 같고, 그 기상의 호탕함이 그와 같고 음률에 정통함이 그와 같으니 그의 재주와 자색이 높고 많음을 족히 알 수 잇겠나이다. 하오니 미리 사마상여처럼 되지 않으리라고 어찌 말할 수 있사오리까?”
춘랑은 말했다.
“하지만 춘랑아, 그 사람이 설혹 사마상여가 된다 할지라도 나는 결코 탁문군이 되지 않을 것이야.”
소저가 엄전한 얼굴로 일러두었다.
“탁문군은 과부의 몸이요, 아가씨께서는 처녀이오며, 탁문군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서 뒤를 따랐고 아가씨는 무심결에 들으셨는데 어찌하여 아가씨는 탁문군을 들추시나이까?”
춘랑이 이렇게 말하자, 소저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며 두 사람이 함께 희희낙락했다.
어느 날 소저가 어머니를 모시고 내당에 앉아 있노라니 까 정사도가 새로 난 과거방을 들고 들어와 부인에게 주며 말했다.
“여보, 부인. 지금까지 딸아이의 혼사를 정하지 못해 초조하던 중 이번 과거방 속에서 훌륭한 신랑감을 구하려고 유의하였던 바 과연 한사람을 찾아냈소이다.
이번 과거의 장원은 회남 사람인 양소유가 차지하였는데 그의 나이는 십육 세라 하오. 그의 과거문을 본 사람들은 모두가 칭찬을 하니 일대 문장에 틀림이 없고 또한 골격이 비범하여 풍채가 빼어났다고 하니 장차 큰 그릇이 될 것이라고 하며 아직까지 취처하지 않았다 하니 이 사람을 사위로 삼으면 좋을 것 같소이다.”
“예로부터 귀로 듣는 것이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하다 하니, 어찌 남들이 칭찬 소리를 다 믿을 수 있겠나이까? 상공께서 몸소 보신 연후에 결정하심이 좋을까 하나이다.”
부인의 진지하게 대답했다.
정사도는 부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장원 급제한 양한림
부친이 밖으로 나간 뒤에 소저 또한 별당으로 돌아갔다.
“춘랑아, 내 말 좀 들어봐.”
“아가씨 무슨 좋은 일이 있으셨나이까?”
“아무래도 괴이한 일이야. 일전에 거문고를 타던 여관이 초땅 사람으로 나이는 십육 세 가량이었는데, 이번 과거에 장원한 사람이 회남 사람이라고 하는구나. 회남은 옛날의 초땅이라 나이도 비슷하고 해서 자꾸만 의심이 가는구나. 그 장원이 수일 내로 아버님께 와서 선을 보일 것인즉 그때 네가 사랑으로 나가서 자세히 보아두도록 해라.”
“하오나 아가씨, 이 몸은 지난번에 보지 못하였사오니,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아가씨께서 몸소 문 틈으로 엿보시는 게 나을까 하옵니다.”
춘운이 대답하고 나서 방긋 웃자 소저도 따라서 웃음 지었다.
이 무렵 양소유는 계속해서 회시와 전시에 다 장원으로 뽑혀 곧 한림 벼슬에 올랐다. 그러자 공후귀족 가운데 과년한 딸이 있는 사람들은 다투어 가며 소유에게 청혼을 하였으나 소유는 이를 다 물리쳤다. 그리고 예부로 권시랑을 찾아가서 정사도 댁에 청혼하고 싶은 뜻을 아뢰고 중매해 줄 것을 청하니 권시랑이 선뜻 편지를 써 주었다.
소유가 이를 간직하고 정사도 댁으로 가서 명첩을 드리니 정사도가 반갑게 맞이하여 객실로 인도했다. 양장원이 머리에 계화를 꽂고 양옆으로는 풍악을 거느리고 들어오니 그 풍채의 아름다움과 예절의 공손함이 사람들로 하여금 칭찬해 마지않도록 하였다.
소저 한 사람만 빼놓고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며 구경하는데 춘운이 내당 시비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 대감 마님과 안방 마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은즉 양장원이 일전에 거문고 타던 여관과 친척간이라 하는데 그때 모습과 비슷한 점이 있느냐?”
그러자 시비들이 다투어 가며 대답했다.
“내외종 남매라 한들 어찌 그렇게도 닮을 수가 있으리오?”
하기에, 춘운이 소저에게로 달려갔다.
“아가씨, 과연 짐작하심에 추호도 어긋남이 없었나이다.”
소저가 춘운의 말을 듣더니 다시 분부를 내렸다.
“너는 지금 사랑으로 나가서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오너라.”
춘운이 다시 사랑으로 나아가더니 한참 후에 돌아왔다.
“대감 마님께서 아가씨를 위해 양장원께 통혼하셨나이다. 그랬더니 양장원이 사례하며 대답하기를 ‘일찍이 소생이 듣기를 소저께서 자색이 뛰어나고 그윽하시다 하였는데. 분수에 넘치는 욕망을 누를 길이 없어 오는 아침에 외람되이 통혼할 생각으로 권시랑께 찾아가 보은즉 시랑께서 편지를 써 주시며 대감 마님께 드리라고 하옵기에 간직하고 왔나이다.’ 하고 나서 양장원이 편지를 받들어 올리니 대감 마님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주안상을 재촉하기 위해 내당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보고 이리로 달려왔나이다.”
춘운의 말에 소저가 놀라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내당에서 부인의 분부를 받잡고 소저를 부르러 왔다.
소저가 내당으로 들어가니 부인이 기쁜 낯으로 소저를 맞이하였다.
“한림 양소유는 이번 과거에서 첫째가는 수재이며 너의 아버님께서 이미 정혼을 하였으니, 이제 나는 더 이상 근심할 거리가 없구나.”
부인이 소저의 손을 잡고 말하자, 소저가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시비들이 양장원을 보고 와서 하는 말을 듣자오니 양장원의 용모가 일전에 거문고를 타던 여관과 비슷하다고 하옵는데 정말로 그러하나이까?”
“네 말이 과연 옳도다. 내 그 여관의 선풍도골을 잊지 못해 매양 한 번 더 보기를 원했었는데 이제 양장원을 대하매 그 여관을 다시 보는 것과 같았느니라. 그러니 양장원의 풍채가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니라.”
부인이 아주 만족한 낯으로 말하자, 소저는 고개를 수그리고 가냘픈 음성으로 여쭈었다.
“어머님, 양장원이 비록 선풍도골과 같은 풍채를 지녔다 하더라도 소녀와 정혼하심은 불가하옵니다.”
“아니 애야, 그게 무슨 말이냐?”
“소년은 일전에 그 사람과 혐의쩍은 바가 있었사옵니다.”
“듣자 하니 괴이한 말을 다 들어보는구나. 깊은 규중에서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는 네가 회남에서 더불어 혐의쩍은 일이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부인이 크게 눈살을 찌푸리며 꾸지람을 했다.
“어머님, 이 일은 말씀드리려 하였사오나 심히 부끄럽기로 아직까지 말씀드리지 못하고 있었나이다. 전일 이곳에 와서 거문고를 타던 여관이 바로 양장원이옵니다. 양공은 여관의 복색을 하고 소녀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거문고를 타는 핑계로 온 것인즉, 그의 간계에 빠져 반나절이나 이야기를 주고 받았으니 어찌 혐의가 없다고 하오리까?”
소저가 주저주저하면서 말을 마치자 부인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자 묵묵히 앉아 있는데, 정사도가 양장원을 접대하여 보내고 내당으로 들어왔다.
정사도는 얼굴에 가득 기쁜 빛을 띠고 소저에게 말했다.
“경패야, 오늘은 네가 용을 타게 되어 매우 유쾌하구나.”
그러자 부인이 정사도에게 소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설파하니 정사도가 다시 소저에게 물었다. 소저가 봉구황곡을 타던 이야기까지 하자 정사도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양장원은 진실로 풍류를 아는 남자로구나. 옛날에 학사 왕유가 악공의 의복을 빌려 입고 태평공주(당 고종의 딸) 궁에 가서 비파를 타고 그 얼마 후에 장원급제하였다고 하더니 오늘날 양장원이 그런 일을 저질렀구나. 배필을 구하고자 여도사의 옷을 입은 것은 재주가 비상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어늘 어찌 한때 희롱한 것을 문제삼을 수 있겠느냐? 하물며 너는 여도사와 수작한 것이고 양장원을 본 것이 아니니 더 이상 마음에 두지 않음이 옳을 것이니라.”
정소저 다시 여쭙기를
“소녀가 남에게 그렇듯 속았사오니 진실로 분해서 몸둘 것을 알지 못하겠나이다.”
하니, 정사도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
“그것은 늙은 아비가 참견할 일이 아니니 후일 네가 양장원에게 물어 보도록 하라.”
그러나 잠자코 듣기만 하던 부인이 입을 열었다.
“양공은 언제 혼인하는 게 좋겠다고 하였나이까?”
이에 사도가 대답했다.
“납채(옛 혼례의 맨 처음 의식)는 속히 행하되 혼례는 가을을 기다려 저희 대부인을 모셔온 연후에 거행하고자 하였소.”
얼마 후에 정사도는 길일을 잡아 한림학사의 예물을 받고, 그를 집안으로 불러들여 후원 별당에 침소를 정해주니 한림학사 양소유는 사위의 예로서 정사도 내외를 섬기고 정사도 내외 또한 친자식 이상으로 사랑했다.
정소저의 묘계
하루는 정소저가 우연히 춘운의 방을 지나치다가 들여다보니 춘운이 비단신에 수를 놓다가 춘곤을 이기지 못하여 수틀을 베고 졸고 있었다.
소저가 방으로 들어가 비단신을 보고 그 솜씨를 칭찬하다가 수틀 밑에 글씨를 쓴 종이가 떨어져 있기로 펴 본즉 시를 써 놓은 것이었다.
훌륭한 옥인을 만나 가까이 있음을 어여삐 여기니
걸음과 걸음이 서로를 쫓아 잠시도 떨어지지 못하더라
촛불을 끄고 비단 장막 속에서 띠를 풀 때에
너로 하여금 상아 침상 아래에서 잠들게 하리라.
시를 다 읽고 나서 소저는 혼잣말로 말했다.
“춘랑의 글재주가 무척 늘었구나. 수놓은 신으로서 저를 비하고 옥인으로 나를 비하여 항상 내 곁을 떠나지 않음을 말했는데, 이제 내가 시집을 가게 되면 나와 사이가 멀어짐을 한탄한 것이니…. 춘랑이 진실로 나를 따르고 있음이로다.”
그리고 나서 소저는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보고 나서 방긋 웃었다.
“이 시 속에 춘랑이 내가 잠잘 침상 위에 오르고 싶어하였으니 이는 나와 함께 한 낭군을 섬기려 함이로구나. 이 아이의 뜻이 이러니 내 마음 또한 그럴 수밖에.”
소저가 잠든 춘운의 얼굴을 내려다본 뒤에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돌려 내당으로 들어갔다.
내당에서는 부인이 시비를 독촉하여 양한림의 저녁상을 차리느라고 분주하기에 소저가 여쭈었다.
“어머님께서는 매일같이 양한림의 음식과 의복를 염려하여 친히 돌보고 계시니 어머님 옥체 미령하실까 항상 걱정이옵니다. 어머님 대신 소녀가 그 괴로움을 받들 것이로되 예절에 어긋나는 일이어서 송구스럽기만 할 따름이옵니다. 하오니 이제 춘운이 나이가 들어 양장원의 시중들기에 넉넉할 것인즉 그 아이를 별당으로 보내어 양한림의 모든 것을 받들게 하면 늙으신 어머님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자 부인이 말했다.
“춘운의 재주가 놀라우니 무슨 일인들 못해 내랴마는 그 아이의 아비가 우리 집에 공이 많았고, 또 춘운의 자태가 요조하니 네 아버지께서는 반드시 어진 신랑을 구해 시집보내려 할 것이다. 또한 춘운이 끝까지 너를 섬기려 하느냐?”
소저가 다시 여쭈었다.
“춘운이 뜻을 알아보니 그 아이는 한평생 소녀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더이다.”
부인이 경계하며 말했다.
“시집갈 때에 비첩이 따르는 것은 예법에도 있는 일이지만 춘운을 여느 시비에 견줄 바가 아니니, 그 아이를 비첩으로 데려가는 것은 장구한 생각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구나.”
소저가 다시 여쭈었다.
“양한림이 이제 십육 세의 서생으로 여도사의 모습을 빌려 재상가의 규수를 희롱하였으니 그 기상으로 보아 어찌 아내 한 사람만을 지키고 있사오리까.
후일 승상부에서 만종록을 누리면, 그 집에 장차 몇 사람의 춘운이 있게 될는지 아시나이까?”
이때 사도가 내당으로 들어왔다. 부인이 사도를 맞아 소저의 말을 옮겨 아뢰었다.
“딸아이의 혼례식 전이기는 하나 춘운이 경패와 헤어지기를 싫어한다 하니 춘운을 먼저 보내도 괜찮을 것이야. 젊은 사나이로서 비록 춘정이 일지라도 펴 보지 못할 것인즉 하루라도 빨리 춘운을 별당으로 보내어 양공의 적막한 회포를 위로케 하는 게 좋을 것 같소. 하지만 경패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불평이 있을 듯하니 어찌하면 치우치지 않게 할 수 있을꼬? 부인이 경패의 마음을 알아보고 조처하도록 하오.”
그러자 소저가 부인께 여쭈었다.
“어머님, 소녀에게 한 가지 계교가 있나이다. 이제 춘랑의 몸을 빌려 전일에 당했던 창피를 씻도록 하겠나이다. 십삼랑을 불러다 이리이리 하오면 전일의 수치를 씻을 듯하옵니다.”
십삼랑은 정사도의 조카였다.
정사도에게는 많은 조카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십삼랑의 성품이 순하고 재질이 영민하여 언제나 농담과 장난을 잘하므로 절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소저가 내당에서 물러나와 춘운을 불렀다.
“내가 어릴 때에 너를 맞아 지금까지 한 형제 이상으로 정의가 두터워 놀면 꽃가지를 다투어 함께 갖고자 서로 울면서 싸우기도 하였거니와, 이제 내가 혼폐를 받았으니 자연 네 장래 생각을 묻지 않을 수가 없도다. 너는 장차 어떠한 사람에게 일생을 의탁코자 하느냐?”
그러자 춘운이 안존하게 대답했다.
“소녀는 외람 되게 아가씨의 따사로운 사랑을 입사와 지금까지 아무 걱정 없이 지내 왔사옵니다. 그 크나큰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 아가씨의 경대를 받드는 일 외에는 달리 없을 것으로 아옵니다.”
소저가 그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내가 너와 더불어 한 가지 계책을 의논하고자 한다. 전일 내가 양공에게 당한 수치를 네가 아니면 누가 씻어 주겠느냐? 종남산 궁벽한 곳에 우리 집 산정이 있는데 그곳은 경개가 비길 데 없이 아름다워 속세 같지 않느니라. 그 산정에다가 네가 신빙을 차리고 기다리고 있으면 십삼랑이 이리이리하여 계교를 쓰면 대략 설욕할 수 있을 것인즉 너는 잠시의 수고를 꺼리지 말길 바란다.”
춘운이 대답했다.
“소녀가 어찌 아가씨의 명을 거역하오리까만, 후일 무슨 면목으로 양한림을 대할 수 있사오리까?”
소저가 다시 방긋 웃으며 일러 주었다.
“남을 속이는 수치가 남에게 속는 수치보다 나을 게 아니냐?”
이 말에 춘운 또한 소저와 함께 미소를 지었다.
이때에 양한림은 궐내에 들어가 입직하고 공고(벼슬아치가 궁중 행사에 참여하는 일)를 치르는 일 외에는 달리 분주한 일이 없고 번들기를 마치면 한가한 날들이 많은지라 친구를 찾아가기도 하고 성밖으로 나가 꽃놀이를 하는 날이 많았는데, 하루는 정십삼랑이 찾아 왔다.
“나도 정형을 따라 교외로 나갔으면 하던 참이었소.”
하고 나서 두 사람은 주효를 장만하여 성 밖으로 나갔다. 그곳은 산이 높고 물이 맑아서 가히 별천지라 할만하였다.
기화요초는 향기를 뿜어 속세인의 코를 찔러 세상의 생각을 잊게 하였다.
한림은 정생과 더불어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 앉아 술잔을 나누며 시를 읊었다.
바야흐로 때는 이른 여름이라 백 가지 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고 실버들 가지가 물 위에 비치는데, 홀연 한 떨기 꽃이 시냇물에 떠오르거늘 한림이 춘래편시 도화수란 글귀를 외웠다.
“이 사이에 정녕 무릉도원이 있으렸다!”
이 말에 정생이 대답했다.
“이 물은 자각봉에서부터 내려오는지라 지난날 들으니까 꽃이 피고 달이 밝을 때면 간혹 신선의 풍악소리가 구름 사이에서 들려오고 있는 것을 사람이 들었다고 하나 소제는 선도와 인연이 없는 탓인지 아직까지 그 동구에도 들어가 보지 못하였소이다. 오늘은 형과 더불어 예까지 왔으니 형의 발자취를 따라 선경에 다달아 신선의 약을 먹고 옥녀의 술을 맛보고자 하오.”
이에 한림이 기꺼이 말했다.
“천하에 신선의 없으면 모르되, 만약 있다면 이 산중에서 만나보리라.”
하고 자각봉을 찾아가 구경하고자 하는데, 정생 집의 하인이 헐레벌떡 달려와 아뢰었다.
“큰일났사옵니다. 지금 아씨의 환후가 위급해졌나이다.”
이에 정생이 급히 일어나며 양공에게 일렀다.
“내 집사람의 병이 그렇듯 위중하다 하니 곧 가 봐야겠소. 아마도 나에게는 신선과 인연이 없는 모양이오.”
양한림과 선녀의 상봉
정생이 떠난 뒤, 양한림은 잠시 무료하게 앉아 있다가 아직 홍취가 다하지 않았으므로 시냇물을 따라 동구로 들어갔다. 위로 올라갈수록 물과 돌이 더욱 깨끗해져서 티끌 하나 없는지라 절로 마음이 상쾌해서 홀로 거닐고 있는데 붉은 계수나무 잎새 하나가 물 위로 떠내려왔다.
양생이 계수나무 잎사귀를 건져 보니 몇 자의 글이 쓰여져 있어 자세히 보니 한 수의 시였다.
신선 삽살개가 구름 밖에서 짖으니 알괘라,
이는 양랑의 옴이로다.
한림이 이를 괴이쩍게 여겨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 산 위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으며, 이 글은 어떤 사람이 쓴 것일까?”
이어서 양한림이 점점 산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깊이 들어 갈수록 아주 험해지며 해가 지더니 달이 환하게 떴다.
양생이 달빛을 따라 수풀을 헤치고 시내를 건너며 앞으로 나아가니 놀란 산새들이 푸드덕거릴 뿐 사위는 조용했다. 어느덧 밤이 내려 있었다.
양생이 창황 망조(다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름)하여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저만큼 앞에 보이는 냇가에서 십여 세쯤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빨래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아씨, 낭군께서 오시나이다.”
한림이 듣고 괴이하게 여기며 앞으로 수십 보를 나아가니 날아갈 듯한 정자가 눈앞에 나섰는데 가히 신선이 살 만한 곳이었다.
한 여인이 달빛을 받으며 벽도 나무 아래 그림같이 서 있다가 한림을 공손히 맞이했다.
“양랑께서는 어이하여 이다지도 오시기가 늦사옵니까?”
한림이 깜짝 놀라서 걸음을 멈추고 그 여인을 쳐다보았다. 여인이 붉은 비단옷을 입고 머리에는 비취 비녀를 꼽고 허리에 백옥패를 비꼈으며 손에는 봉미선을 들었는데 우아하고 산뜻한 품이 속세 사람은 아니었다.
양한림이 미인에게 황급히 읍을 하며 대답했다.
“소생은 어지러운 속세 사람으로 그대와 월하의 인연을 맺은 바가 없거늘 늦게 온다고 책망함은 어찌된 연고이오?”
그러자 여인이 정자에 올라가 이야기할 것을 청했다. 양생이 미인을 따라 정자 위로 올라가 좌정하자, 미인은 계집아이를 불었다.
“낭군께서 먼길을 오시느라 시장하신 듯하니 다과상을 올리도록 하라.”
미인의 분부를 받은 계집아이는 쪼르르 부엌으로 가더니 구슬 상에 진기한 음식을 베풀고 백옥잔에 자하주를 내왔다. 한림이 한 잔술을 마시니 맛이 산뜻하고 시원하여 정신이 쇄락해졌다.
“이 산이 비록 높다 할지라도 하늘 아래 있거늘 선녀는 어찌하여 옥경의 처소를 떠나 속세에서 기거하고 계시나이까?”
“옛날 일을 말씀드리오면 먼저 슬픔이 앞서나이다. 소첩은 서왕모(곤륜산의 선녀)의 시녀요, 낭군은 자미궁(옥황상제의 궁전)의 선관이었는데, 하루는 옥제께서 왕모를 초청하여 잔치를 베푸셨나이다. 그때 여러 선관이 모였는데 낭군이 우연히 소첩을 보시고 선과를 던져 희롱하셨는고로 벌을 받아 여기로 귀양와서 살고 있사옵니다. 낭군은 이미 인간세계의 티끌과 연기에 가리어 전생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계실 뿐이옵니다. 이제 소첩은 귀양이 풀릴 때가 되어 장차 요지로 돌아갈 터이온즉 한 번 낭군을 보고 옛정을 펴 보고자 하여 기다리던 참이었사옵니다. 이제 낭군이 이곳에 오실 줄 알고 기다리던 참았사옵니다. 이제 낭군이 이곳에 오실 줄 알고 기다리던 참이었사옵니다.
이제 낭군을 뵈었사오니 옛날 인연을 잇고자 하나이다.”
이때, 계수나무 그림자는 바야흐로 비끼고 은하수는 기울어졌으므로 한림은 미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는 옛날에 유신과 완조가 천태산에 이르러 선녀와 더불어 인연을 맺음과 흡사하였다.
양공은 선녀와 더불어 꿈같되 꿈이 아니오, 참일 같되 참일이 아닌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양공이 겨우 은근한 정을 풀자 산새는 벌써부터 꽃가지에서 지저귀고 동녘이 환히 밝았는지라 선녀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한림에게 말했다.
“오늘은 소첩이 하늘로 올라갈 날이옵니다. 상제의 칙교를 받들어 깃발을 갖추고 소첩을 맞으러 왔을 적에 만약 낭군께서 여기 계신 줄 알면 피차에 다 죄를 입게 될 것인즉 낭군께서는 어서 이곳을 떠나소서. 만약 낭군께서 옛정을 잊지 아니하시면 다시 만나 뵐 날이 있을 것이옵니다.”
하고, 선녀는 비단 수건에 시 한 수를 적어 한림에게 주었다.
서로 만날 때는 꽃이 하늘에 가득하더니
서로 이별할 적에는 꽃이 땅에 있더라
봄빛이 꿈 속과 같으니
약수 천리가 아득하구나
한림이 그 글을 보매 이별하는 슬픔이 슬픔이 너무도 큰지라 소매 마구리를 찢어 화답하는 글 한 수를 적어 선녀에게 주었다.
하늘나라의 바람이 옥패를 부니
흰구름이 어찌하여 그다지도 흩어지는고
무산의 비오는 밤이여
바라건대 양왕의 옷을 적시라
선녀는 두 손으로 받들어 그 글을 보고 아름다운 입술을 벌려 한림에게 말했다.
“아름다운 나무에 달이 숨고 월궁에 서리가 날리는데 구만리 밖의 모습을 그려낸 것은 아직 이 글뿐인가 하옵니다.”
하고 나서 향 주머니에 감추고 나서 거듭 재촉했다.
“이미 떠나실 때가 다 되었으니 낭군은 급히 떠나 시옵소서.”
한림은 소매자락으로 눈을 씻으면서 몸조심하라고 당부한 뒤에 선녀와 작별하였다.
한림이 수풀 밖으로 나와 정자를 돌아다보니 푸른 나무는 첩첩하고 흰 구름은 자욱하여 마치 오지의 꿈에서 깨어난 듯하기로 별당으로 돌아와 혼자 탄식했다.
‘선녀의 귀양이 풀리는 날이 오늘이라 하니 산중에서 몸을 숨기고 있다가 여러 선관들이 와서 맞이해 가는 것을 보고 돌아와도 늦지 않았을 것을……내 어찌 생각도 없이 돌아왔을꼬?’
하고 탄식했다.
한림이 잠을 잘 못 이루다가 새벽 일찍 일어나 동자를 거느리고 다시 전일에 선녀를 만났던 곳으로 갔다. 그러나 복사꽃은 어제와 같고 시냇물 또한 어제와 다름없으련만 정자는 텅 비어 있었다.
한림은 선녀의 자취를 더듬어 정자를 샅샅이 뒤져보다가 난간에 의지하여 푸른 구름을 보면서 탄식했다.
“선녀가 저 오색 구름을 타고 상제께서 가서 인사하겠거늘 내가 아무리 바라보고 있기로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하고 정자에서 내려가 복사꽃 나무를 의지하고 눈물을 뿌리면서,
“이 꽃만은 나의 한없는 설움을 알아주리라.”
한림은 힘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선녀가 변하여 귀신이 되다
하루는 정십삼랑이 양한림의 별당으로 찾아왔다.
“전날에는 내자의 신병으로 말미암아 마지막까지 형과 더불어 놀지 못하였음이 못내 서운하구려. 아직도 성 밖의 장림에 버드나무 그늘이 좋으니 나가서 한바탕 놀이를 벌이고 함께 꾀꼬리 소리를 들어 보는 게 어떻겠소?”
이에 양한림이 쾌히 응했다.
“녹음과 방초가 꽃철보다 나으리라!”
두 사람은 그 길로 성 밖으로 나아가 무성한 수풀 밑에 자리를 잡고 꽃가지로 수를 세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양한림이 술을 마시며 문득 한 곳을 보니 황폐한 무덤이 하나 있는데 쑥대는 우거지고 잡풀이 우거져서 구슬픈 바람에 나부끼고 두어 송이꽃이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게 나무 사이로 보이는지라 한림이 취흥으로 말미암아 무덤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람은 귀천과 현우를 막론하고 누구나 한 번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법이구려. 옛적에 맹상군(정치가. 전문의 봉호)의 부귀로도 당시의 옹문(제의 음악가)의 거문고 곡조에 (천년 만년 후에는 초동 목수가 무덤 위에서 뛰놀며 이것이 맹상군의 무덤이로구나)하는 소리에 눈물을 흘렸다 하니 어찌 살아 생전에 마음껏 취하지 않으리요?”
“아마도 형은 저 무덤의 유래를 알지 못할 것이오. 저것은 장여랑의 무덤이라오. 여랑의 아름다운 자색이 세상에 이름을 떨치므로 장여화(남조 진 후주의 왕비)하고 일컫더니 불행히도 꽃다운 이십 세에 죽으매 이곳에 묻어 주었지요. 그 뒤에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 무덤 앞에 꽃과 버드나무를 심어 표를 해 주고 애석한 죽음을 위로했다 하오. 하니 우리 두 사람도 또한 술 한잔씩을 부어 꽃다운 넋을 위로해 주는 게 어떻겠소?”
한림은 원래 다정다감한 사람이라 이내 응하였다.
“형의 말씀이 지극히 당연하오.”
하고, 두 사람이 나란히 무덤 앞으로 가서 술을 붓고 각기 글을 지어 외로운 넋을 조상하였다.
먼저 한림의 시를 보면
아름다운 자태가 일찍이 나라를 기울게 하더니
꽃다운 혼이 하늘로 올라갔구나.
거문고 줄은 산새가 배우고
깁과 비단은 들꽃이 전하더라.
옛 무덤에 부질없이 봄풀이요.
비어 있는 다락에 스스로 저무는 연기더라.
진천에 옛 노래는
오늘날 어느 집에 붙였는고.
정생은 또 이렇게 읊었다.
묻노라 옛날 옛적 번화한 곳에
뉘댁의 아름다운 낭자던고.
명기 소소의 집이 황량하고
설도의 별장이 또한 적막하더라.
풀은 깁치마의 빛을 닮았고
꽃은 보배 사마귀의 향기를 지녔더라.
꽃다운 넋을 불러도 얻지 못하는데
오직 저녁 까마귀만이 날아다니고 있구나.
두 사람이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한 수씩 읊조린 뒤에, 정생은 홀로 무덤 주위를 돌아보다가 사초가 떨어진 틈에서 흰 비단 헝겊에 쓴 글을 주워 읽더니 양생에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시를 지어 장랑의 무덤에 넣었을까?”
한림이 그 비단 헝겊을 받아 본즉 일전에 자기 소매 마구리를 찢어 시를 쓴 뒤에 선녀에게 준 것이었다. 양한림은 깜짝 놀라서 그 헝겊을 놓칠 뻔하였다.
‘그렇다면 지난 번에 선정에서 만났던 미인이 장여랑의 혼백이었단 말인가?’
하고 생각하자 식은 땀이 등골을 흐르며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신선도 하늘이 정한 연분이요, 귀신도 하늘이 정한 연분일진대 구태여 선녀와 귀신을 분별할 필요가 어디 있으리요’
하고 생각을 다시 하였다.
이때, 정생이 일어나서 수풀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양생은 한 잔술을 따라 무덤에 붓고 마음 속으로 축원했다.
‘비록 유명은 다를지라도 정의에는 간격이 없으니 오직 바라건대 꽃다운 혼령은 이 작은 정성을 굽어 살피사 오늘밤에 거듭 옛 인연을 이어 주도록 하오.’
양생은 축원을 마치고 나서 정생과 더불어 집으로 돌아왔다.
양생이 홀로 별당에 누어 간절히 미인을 생각하고 있노라니 쉬이 잠들 것 같지가 않았다.
이때에 달빛은 발 틈으로 비치고 나무 그림자는 창에 가득하고 사위가 고요한데, 문득 발자취 소리가 완연하기에 한림이 방문을 열고 본 즉 자각봉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선녀였다.
양한림은 한편 놀랍고 한편 기꺼운지라 방문을 활짝 열고 뛰어나가 미인의 갸날픈 손을 이끌고 들어오려 하니 미인이 손을 들어 사양했다.
“낭군께서는 이미 소첩의 근본을 알고 계시오니 아마도 기껍지만은 않으실 것이옵니다. 소첩이 낭군을 처음 만났을 적에 말씀드리려 하였사오나 혹시 낭군께서 놀라실까 두려워 선녀라 거짓말을 사뢴 뒤에 하룻밤 괴임을 입었사옵니다. 그리 하와 영광이 극진하고 저의가 이미 극진한지라 끊어진 혼이 다시 이어지고 썩은 살이 되살아나는 듯하옵더니 오늘 다시 소첩의 무덤을 찾아 술을 부어 제사를 지내시고 시를 읊어 임자 없는 고혼을 위로해 주시니 소첩은 너무도 감격하여 그 은혜에 사례하고자 조그만 정성이나마 말씀드리고자 하여 잠시 들른 것이 온데 어찌 감히 썩은 몸으로 다시 군자의 몸에 가까이할 수 있사오리까?”
그러나 양한림은 다시 미인의 옷소매를 끌어당기며 일렀다.
“세상에서 귀신을 미워하는 자는 우매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라. 모든 사람이 죽으면 필히 귀신이 되고 귀신이 변하면 사람이 되나니 사람으로서 귀신을 두려워하는 자는 못난 사람이요, 귀신으로서 사람을 피하는 자는 신령치 못한 귀신이니라. 그 근본은 결국 하나이니 어찌 유명을 가를 수 있으리요? 내 소원이 이와 같고 내 정이 또한 이러하니 낭자는 나를 배반하지 말지어다.”
그러자 미인이 말했다.
“소첩이 어찌 낭군의 은혜로운 정을 저버릴 수 있겠나이까? 소첩의 눈썹이 검고 두 뺨이 붉은 것을 보고 낭군께서는 소첩을 사랑하나 이는 모두가 헛것이요, 참 모습이 아니오니 모두가 요사한 꾀로 교묘하게 꾸며서 산 사람으로 하여금 가까이하게 함이옵니다. 만약 낭군께서 소첩의 참 모습을 보시고자 하실진대, 곧 몇 조각 백골에 푸른 이끼가 서로 얽혔을 따름이 온데 어찌 이 추하고 더러운 물건을 귀하신 몸에 가까이하려고 하시나이까?”
한림이 다시 말했다.
“부처님의 말씀에 (사람의 몸은 물거품과 바람과 헛 것으로 만든 것이니라)고하셨으니, 이는 누가 능히 참인 줄을 알며 또 거짓인 줄을 알아보리?”
하고, 미인의 손을 잡아끌고 침소를 들어왔다. 두 사람은 침상에 누워 그 밤을 즐겁게 지내니, 오가는 정이 전보다 몇 갑절 더 두터운지라 한림이 미인에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매일 밤 찾아와서 서로 그리는 정이 없도록 하오.”
이에 미인이 대답했다.
“사람과 귀신의 길이 다르기는 하나 깊은 정에 이르는 바에는 서로 다를 바가 없는지라 자연히 감응되나니, 낭군께서 첩을 사랑하심이 실로 지성에서 우러나온 것인즉 어찌 소첩의 마음이 간절하지 않겠나이까?”
운우지락으로 밤을 새운 뒤에 동녘이 밝아 오자 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꽃나무 사이로 나섰다.
한림이 난간에 의지하여 미인을 전송하며 밤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나 미인은 아무 대답도 없이 총총히 사라졌다.
진인이 관상을 보다
양한림이 장여랑 귀신과 만난 뒤로부터는 친구를 찾아가지도 않고 또한 손님을 맞이하는 일도 없이 고요히 별당에만 틀어박혀 있을 뿐이었다. 날이 밝으면 어서 밤이 와서 선녀가 찾아오기를 바라며 지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미인이 즐겨 자주 오지 않으므로 한림의 기다림은 점차로 간절하였다.
하루는 화원 협문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정십삼랑이 낯선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는 게 보였다.
정생이 그 남자를 한림 앞으로 인도하여 말했다.
“이분은 태극궁(수나라의 대흥궁)의 두진인이신데 관상보는 법과 점을 치는 술법이 원천강과 이순풍(이순풍:당대의 도술가) 같은지라, 이제 양형의 상을 보이고자 하여 모시고 왔소이다.”
양한림이 두진인을 공손히 맞아들이며 말했다.
“높으신 성화는 이미 듣고 있었사오나 이렇듯 지척에서 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선생께서는 필시 정형의 상을 보셨을 것인즉 형도 한 번 보기 바라오.”
이에 정생이 대답했다.
“두선생은 내 상을 보시고 (삼 년 안에 과거에 정원하고 또 장차 팔주자사가 되리라) 하였는데, 내 점괘는 필히 맞을 것인즉 형도 한 번 보기 바라오.”
“예로부터 어진 사람은 복을 묻지 않고 재앙을 물을 따름이니, 선생께서는 바른 대로 일러 주기 바라나이다.”
두진인은 한동안 한림의 상을 본 뒤에 입을 열었다.
“양한림의 두 눈썹이 다른 사람들과 달라서 봉의 눈이 살쩍을 향했으니 벼슬이 삼정승에 이를 것이요, 얼굴빛이 맑고 둥근 구슬과도 같으니 이름이 천하에 날릴 것이오. 용행호보하니 장차 병권을 잡아 위엄을 떨치고 공후를 만리 밖에 봉할 것이니 무슨 일이든 실패됨이 없겠으나 애석하구나. 오늘 이 마당에 횡액이 있으니 만약 나를 만나지 못하였으면 큰일 날 뻔하였소.”
이에 한림이 의아한 낯으로 말했다.
“사람의 길흉과 화복이 스스로 따라가 구하지 아니하면 모두 생기지 않는 법이나 오직 병이라 하는 것만은 피하기 어려운 바이니 나에게 중병이 들 징조가 있소이까?”
두진인이 한림에게 대답했다.
“이는 참으로 심상치 않은 재앙이로다. 푸른 빛이 천정(양미간)을 꿰뚫었고, 간사한 기운이 명당(두 눈의 밑)을 침노하였으니 한림댁에 혹시 내력이 분명치 못한 노비가 있소이까?”
한림은 속으로 장여랑에 대한 말이로구나 하고 깨달았으나 먼저 정이 앞서므로 조금도 동요하는 기생 없이 대답했다.
“그러한 일은 전혀 없나이다.”
그러나 두진인이 다시 물었다.
“그러하오면 혹시 옛날 무덤 앞을 지나치다가 마음이 섬뜩하게 흔들린 적이 있거나 귀신과 함께 꿈 속에서 논 일이 없소이까?”
한림이 대답했다.
“역시 그런 일도 없나이다.”
그러자 정생이 거들고 나섰다.
“두 선생의 말씀은 모두가 틀림이 없으니 양형은 자세히 생각해 보도록 하오.”
그래도 한림이 대답하지 않으므로 두진인이 다시 다짐을 두었다.
“사람은 양기요, 귀신은 음기 인고로, 주야가 서로 바뀌고 인신이 서로 다름이 물과 불이 서로 화합하지 못함과 같소이다. 이제 상공의 얼굴을 보매 귀신에게 흘린 기색이 확실하기로, 수일 후면 병이 골수에 박혀 목숨을 구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노니 그때에 이르러 관상 보는 자가 일러주지 않았다고 원망하지는 말기 바라오.”
한림이 마음 속으로는
‘두 선생의 말이 신기하기는 하나 장여랑이 나와 더불어 길이 즐겁도록 지낼 것을 굳게 맹세하고 서로 사랑하는 정이 날로 더하니 설마 그녀가 나를 해치겠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두진인에게 말했다.
“사람의 장수와 단명은 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법이거늘, 내게 진실로 장상과 부귀의 상이 보일진대 어찌 요사한 귀신이 나를 범하겠나이까?”
두진인이 대답했다.
“생과 사가 모두 상공의 일이요, 내게는 관계없는 일이 아니겠소?”
하고 소매를 떨치며 밖으로 나갔다. 한림 또한 만류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자 정생이 위로의 말로 한림에게 말했다.
“양형은 본디 길한 사람이라 신명께서 도우실 것인즉 어찌 귀신을 두려워 하리요? 관상 보는 사람들이 이따금 허튼 소리로 사람을 놀라게 하니 가증한 노릇이오.”
정생이 안에 연락하여 술상을 차려 오매 두 사람은 종일토록 술잔을 기울여 크게 취한 후에 각기 헤어졌다.
한림은 밤이 깊은 후에야 술이 깨어 향을 피우고 여랑을 기다렸다.
그러나 새벽별이 떠오를 때까지도 여랑의 종적은 묘연했다.
“샛별이 저리도 밝게 빛나거늘 아직도 여랑은 오지 않는구나.”
한림이 탄식하고 촛불을 끈 후에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울며 호소하는 여랑의 목소리가 들렸다.
“낭군께서 요사스런 도사의 부적을 머리 위에 감추고 계시기로 소첩은 감히 낭군 곁으로 가지 못하고 있나이다. 비록 그것이 낭군의 뜻이 아님을 소첩은 알고 있사오나 이 역시 우리들의 인연이 낭군 곁을 떠나가옵니다.”
한림이 깜짝 놀라서 창문을 열고 본즉 여랑의 모습은 간 데 없고 한 조각 글만이 돌 위에 놓여 있었다. 곧 나가서 떼어 보니 여랑이 쓴 시로 한림에게 원망의 말을 전하고 있었다.
옛날에 아름다운 인연을 찾아 오색 구름을 밟았고
다시 맑은 술잔으로 거친 무덤에 술을 부었네.
깊은 정성 다하지 못하고 은혜 먼저 끊어졌으니
낭군을 원망치 아니하고 정군을 원망하노라.
한림은 서글픈 마음을 진정하고 가만히 생각하니 괴이하고 이상한 일인지라.
가만히 머리를 만져 보니 상투 속에 무엇이 들어 있었다. 한림이 얼른 상투 속에 든 물건을 꺼내어 펴 보니 귀신을 쫓는 부적이었다.
“요괴한 사람이 나의 일을 그르치고 있구나.”
한림은 화가 나서 부적을 찢고 다시 여랑의 글을 읽어보았다. 그리고 크게 깨달은 게 있어 혼자 중얼거렸다.
“여랑이 정생을 원망하고 있으니 이는 십삼랑의 장난이 분명하구나. 이는 악한 마음에서 한 일이 아니나 남의 좋은 일을 그르쳤으니 내 반드시 욕을 보여 주리라.”
하고, 여랑의 글을 차운하여 글 한 수를 지어 주머니에 넣었다.
“글을 비록 지어 놓았으니 누구를 주어야 옳을꼬?”
냉연히 바람을 몰아 신통한 구름에 올라가니
꽃다운 혼이 외로운 무덤에 붙임을 말하지 말라.
동산에는 백 가지 꽃이 피고 밑에는 달이 있거늘
고인이 어디를 간들 그대를 생각지 않겠는가.
한림 앞에 모습을 드러낸 춘랑
양생은 다음날 일찍 정생의 집으로 갔으나 이미 출타한 뒤라서 무료히 돌아온 뒤, 연 삼일을 찾아갔으나 한 번도 만날 수가 없었다. 또한 여랑의 그림자도 묘연한지라 자각정에 가서 찾고자 하나 신과 접촉하기가 어려우니 속수무책이었다. 양생은 여랑의 대한 그리움으로 음식도 달게 먹을 수가 없고, 잠도 이룰 수가 없었다.
하루는 정사도 내외가 풀이 죽어 있는 한림을 위로하기 위해 주효를 갖춘 후에 내당으로 불렀다.
“요즘 자네의 안색이 어찌하여 좋지 않은가?”
정사도가 근심스럽게 물었다.
“십삼랑과 더불어 연일 과음을 했던 탓인가 하옵니다.”
이때에 정생이 내당으로 들어왔다. 한림이 그를 보고 눈을 흘기면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정생이 곁으로 와서 말을 걸었다.
“형이 근래에 벼슬하기에 골몰하여 심사가 불편한가? 아니면 고향 생각이 간절하여 병이 났는가? 어찌하여 안색이 그토록 파리하고 기운이 없어 보이오?”
이에 한림이 마지못하여 대답했다.
“부평초와 같은 이 몸이 어찌 그렇지 않겠소?”
이때에 정사도가 한림을 향해 말했다.
“비복들에게서 들으니 자네가 화원에서 미인과 만나 즐겁게 지내더라 하는데 그게 사실인가?”
한림이 당황해서 얼른 대답했다.
“화원은 외진 곳이라 오가는 발자취가 뜸하온데 어찌 미인이 들어올 수 있겠나이까?”
정생이 말했다.
“도량이 큰 형이 어째서 여자와 상종함을 부끄럽게 생각하는가? 일전에는 형이 크게 화를 내므로 두진인을 물리쳤지만 형의 얼굴을 보면 짐작되는 점이 있는지라. 소제가 형을 위하는 마음으로 두진인의 귀신 쫓는 부적을 형의 상투 속에 감추어도 형이 대취하여 알지 못하기로 소제가 그 밤에 동산 속에 숨어서 엿보고 있었소. 그랬더니 어떤 여귀가 형의 침실밖에 와서 울며 하직한 후에 곧 사라졌으니 이로 미루어 보더라도 두진인의 부적이 신기하고 소제의 정성이 극진하거늘 형은 어찌하여 사례할 생각은 아니하고 노여움을 품고 있는 거요?”
이러니 한림이 감추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고, 사도를 향해 사죄하며 말했다.
“십삼랑의 말대로 소서의 일이 해괴하오니 장인 어른께 자세히
아뢰겠나이다.”
하고 나서 전후 사실을 낱낱이 고한 뒤에 다시 여쭈었다.
“십삼랑 형이 소서를 위하는 정성이 극진한 것은 아오나, 그 장여랑의 귀신이 비록 귀신이기는 하나 그 기상이 씩씩하고 마음이 활달해서 요사스럽지 아니하니 결코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오리다. 또 소서가 비록 용렬하오나 귀신에게 흘리지는 않을 것이어 늘 십삼랑 형이 부적으로써 여랑의 출입을 막으니 소서의 마음에 걸리는 바가 없지 않나이다.”
이에 정사도가 박장대소하여 한림에게 말했다.
“양한림의 운치와 풍채가 옛날의 송옥(초의 문학가)과 흡사하니 귀신을 부르는 방법을 알고 있음직하도다. 내 자네를 희롱하는 것이 아니니 잘 듣게. 내가 소시에 우연히 이인을 만나 귀신을 불러들여 이 자리에서 자네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하는데 자네의 의향은 어떠한지 듣고 싶노라.”
한림이 대답했다.
“소옹(방사의 이름)이 혼백을 불렀으나 이 방법이 전해 내려오자 않고 있사오니 소서는 그 말씀을 믿지 못하겠나이다.
이에 정생이 말했다.
“양형은 여랑의 혼을 한 마디의 수고도 하지 않고 불렀고, 소제는 또 이를 부적 한 장으로 쫓아냈으니 이제 사도께서 혼령을 부르신다는데 무슨 의심을 두는가?”
사도 또한 웃으면서 말했다.
“믿지 못하거든 이곳을 보라.”
하더니, 부채를 들어 병풍을 치면서 말했다.
“장여랑은 어디에 있느뇨?”
그러자 한 여인이 병풍 뒤에서 있다가 화려한 웃음을 머금고 사뿐사뿐 걸어나와 부인 뒤에 섰다. 한림이 눈을 들어보니 분명한 장여랑인지라 심신이 황홀하여 사도와 십삼랑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장인 어른, 이게 꿈이옵니까, 생시 옵니까?”
정사도 내외는 슬며시 웃고, 정생은 허리를 잡고 유쾌하게 웃었다.
좌우에 있던 시비들 또한 박장대소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 이제부터 내가 사위를 위하여 바른 대로 말해 주리라. 이 아이는 선녀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내 집에서 일하고 있는 춘운이다. 근래에 자네가 화원 별당에 홀로 있으므로 심히 적막하겠기에 이 아이를 사위에게 보내어 객지의 무료함을 위로케 하였더니 젊은 것들이 중간에서 속임수로 사위를 희롱하였으니 어찌 우습지 않겠는가?”
정생이 웃음을 그치며 말했다.
“두 번씩이나 미인을 만난 것이 다 소제의 중매 덕이거늘, 그 은혜는 생각지 않고 도리어 원망을 품고 있으니 아마도 형은 배은망덕한 사람인가 보오.”
하고 나서, 또한 웃음을 참지 못하는지라 한림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
“장인께서 보내시는 것을 정형이 중간에서 조롱했거늘, 무슨 은덕을 베풀었다고 하시는 게요?”
정생이 이에 대답했다.
“형을 조롱한 허물은 소제에게 있으니 그 계책을 꾸며 지시한 사람이 따로
있으니 너무 소제를 책망하지 마오.”
한림이 정색하며 물었다.
“정형이 이 일을 꾸미지 않았다면 누가 이런 장난을 하였겠소?”
이에 정생 또한 정색을 하고서 대답했다.
“옛 성인의 말씀에 이런 구절이 있소. (계지계지 출호이자 반호자야) 즉, 너에게서 나간 것은 너에게로 다시 돌아오도다. 하하하, 형은 옛일을 생각해 보오. 남자가 여도사로 변할 수도 있는데 어찌 속인이 선녀가 귀신이 될 수 없겠소이까?”
그러자 한림이 크게 깨닫고 웃으며 사도에게 여쭈었다.
“소저가 일찍이 소저께 죄를 지은 적이 있삽더니, 소저가 필시 원망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는 소이인가 하옵니다.”
정사도 내외는 단지 웃을 뿐이요, 그 말에 대답하지는 않았다.
한림이 춘운을 돌아보며 말했다.
“춘랑아, 네 실로 영민하고 영특한 아이로구나. 하지만 한 사람을 섬기고자 하면서 먼저 그 사람을 속임이 부녀자의 도리라 하겠느냐?”
이에 춘운이 꿇어앉아 대답했다.
“소첩은 다만 장군의 영만 들었을 뿐, 천자의 조서는 듣지 못하였나이다.”
한림이 탄복하며 말했다.
“옛날에 양왕이 무산의 선녀를 만났을 때, 아침에 구름이 되고 저녁에 비가 됨을 분별치 못했다고 하더니 이제 나야말로 춘랑이 선녀가 되고 귀신도 됨을 분간하지 못하였구나. 참사람이 비와 구름과 더불어 의논할 수 없는 것인즉 생각컨대 천변만화의 술법이 이에서 얻어지리라. 예로부터 강한 장수에 약한 군사가 없다고 했는데 그의 비장이 이와 같으니 그 대장은 보지 않아도 족히
지략이 풍부함을 알겠노라.”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유쾌하게 웃고 다시 술상을 내다가 종일토록 마셨다.
춘운이 새 사람으로 말석에 참여하였다가 밤이 으슥해지자 촛불을 들고 한림을 화원으로 인도했다.
화원에 이르자 한림이 취흥을 이기지 못하여 춘운의 손을 잡고 희롱의 말을 했다.
“너는 참말로 선녀냐? 귀신이냐? 내 선녀도 사랑하고 귀신도 사랑하였거늘 진짜 미인인 너를 사랑하지 않을쏘냐? 그런데 너로 하여금 선녀도 되게 하고 귀신도 되게 한 사람이 장차 월궁의 항아(옛 선녀의 이름)가 되겠느냐? 남악의 진인(도교의 교리를 닦는 사람)이 되겠느냐?”
이에 춘운이 교태를 부리며 대답했다.
“천한 이 몸이 낭군께 외람된 일을 저질러 가망한 죄가 많사오니 하해 같은 은덕으로 용서해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그러자 한림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귀신으로 변장했을 때에도 깊이 사랑했거늘, 이제 무엇을 허물로 삼겠느냐?”
춘운이 일어나서 한림께 사례한 뒤에 한림과 더불어 그날 밤을 화락하게 지내었다.
양한림이 낙양을 지나가다
양소유가 과거에 장원한 후에 정사도집 사위가 되기로 작정하였을 때, 그해 가을에 고향으로 내려가 모친을 모시고 올라와 성례하기로 하고, 또 한원에 들어가 벼슬에 매어 아직 근친을 못하였다가 여가를 내어 시골로 내려가려 할 때에 때마침 나라에 많은 일이 일어났다.
토번(티벳족)은 자주 변방을 침노하고 하북지방의 세 절도사는 혹은 연왕이니 혹은 조왕이니 자칭하고 강한 이웃과 연락하여 군사를 일으켜 장난하므로, 천자께서 근심하시고 장차 군사를 내어 치려고 하니 문무 제신을 모으시고 하순하시는데 의견이 분분했다.
이에 한림학사 양소유가 상주하기를,
“옛날 한무제가 남월왕을 불러 효유하던 일과 같이 급히 조서를 내리시어 화와 북으로써 효유하시옵시고, 마침내 귀순치 아니하거든 군사를 내어치는 것이 좋은 책인 줄로 아뢰오.”
천자가 그 말을 좇아 소유로 하여금 어전에서 조서를 초해 내도록 하시니, 소유가 엎드려 명을 받고 즉시 지어 올린즉 천자가 크게 기꺼워하며 하교하시되
“전중엄절한 은덕과 위엄을 두루 말하여 효유하는 뜻이니, 미친 도적이 스스로 감동하리라.”
하고, 삼진 절도사에게 곧 조서를 내리시니, 조나라와 위나라는 임금의 칭호를 버리고 조정의 명을 받들어 글을 올려 죄를 청하고 사신을 보내어 말 일만 필과 비단 일만 필을 공물로 바쳤으되, 오직 연왕만은 땅이 멀고 군사가 강함을 믿고 귀순치 않았다.
그러자 천자께서 양진의 절도사가 항복함은 오로지 양소유의 공이라 하시며, 이에 조서를 내려 포상하시며 말씀하셨다.
“하북땅 세 절도사가 각각 한 모퉁이씩 웅거하여 강함을 믿고 이웃과 손을 잡은 지 거의 백년이라, 덕종황제께오서 십만 대군을 발하사 장수로 하여금 치시되 마침내 능히 그 강함을 꺾지 못하고 그 마음을 항복받지 못하였거늘, 이제 양소유가 한 장 글로써 두 진을 항복 받았으니, 군사 한 명도 수고치 아니하고 또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인군의 위엄을 널리 만리 밖에 떨친 지라, 짐이 심히 가상히 여겨 비단 삼백 필과 말 오천 필을 주어 포상하는 뜻을 보이노라.”
하시고, 이어서 벼슬을 높이고자 했다.
그러나 소유가 어전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받지 아니하며 상주했다.
“조서를 대신 초하는 것은 신자된 자의 직분이옵고, 두 진이 귀순함은 성상의 위엄이오니, 신이 무슨 공으로써 이 중한 포상을 받자오며, 하물며 한 진이 아직도 항거하여 변방을 요란케 하옵거늘, 신은 칼을 들고 창을 잡아 나라의 수치를 능히 다 씻지 못함을 한탄하오니 승탁하시는 명을 어찌 따르오리까? 신자의 충성을 다함은 직품이 높아지는 데 간격이 없삽고, 싸움에 이기고 패함은 군사의 다과에 있지 아니하오니, 신은 바라옵건대 한 무리의 군사를 얻어 조정의 위엄을 의지하여 나아가 연나라의 도적들과 더불어 죽기로써 결단하고, 힘써 싸워 천은의 만분지 일이라도 갚고자 하는 줄로 아뢰오.”
천자가 그 뜻을 장하게 여기시어 대신들에게 하문하니, 모두 엎드려 상주했다.
“세 진이 정족시세(세 개의 솔발처럼 세력이 맞서 있음)이더니 이제 두 진이 이미 항복하였으므로, 조그마한 역적의 형세는 곧 솥에 든 고기의 형세요, 구멍에 든 개미와 같사오니,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오면 반드시 마른 것을 꺾고 썩은 것을 꺾는 것과 같사오며, 또 천자의 군사는 먼저 꾀를 쓰고 뒤에 치나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양소유를 보내어 이해로써 효유하다가 끝내 항복치 아니하거든 곧 이어 군사를 냄이 좋을 줄로 아뢰오.”
천자께서도 옳게 여기어 양소유에게 절월(살생의 권한)을 내리시며
“연나라에 가서 효유하라.”
하시니, 소유는 명을 받잡고 절월을 가지고 떠날 때에 정사도에게 하직하니, 사도가 일렀다.
“변방은 인심이 모질고 억세어서 조령을 거역함이 한두 번이 아니거늘, 양한림이 한낱 선비의 몸으로 위험한 땅에 들어가니, 만일에 뜻하지 않은 변이 생기면 이 늙은 것의 불행만이 아니라, 한 나라의 수치가 될 것인즉 내 몸 늙어 조정 공론에 참여치 못했으나 마땅히 한 장 글을 올려 간행코자 하노라.”
한림이 장인을 만류하면서 말했다.
“장인은 너무 염려를 마옵소서. 변방 백성이 조정의 안정치 못함을 틈타서 잠시 소란한 일을 일으킨 것이니, 천자께서 신무하시고 조정이 청명하여 조나라와 위나라의 두 강한 나라가 이미 귀순하였으니, 작은 연나라 쯤을 어찌 근심하겠나이까?”
사도가 다시 말했다.
“성상의 명이 이미 내리시고 그대의 뜻이 또한 이미 정해졌으니 이 늙은 것이 다시 할 말이 없겠거니와, 오직 바라건대 모든 일에 조심하여 몸을 보중하고, 군명을 욕되게 하지 말도록 유념하라.”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작별했다.
“현명한 선비를 얻은 후로는 적이 늙은 마음을 위로할 수 있더니, 양공이 이에 먼 길을 떠나니 내 가슴 속이 어떠하겠소? 다만 바라는 것은 먼 길을 빨리 돌아오도록 하오.”
양한림이 물러가 화원 별당에 이르러 행장을 갖추어 곧 떠나려고 할 때, 춘운이 양한림의 옷을 잡고 여쭈었다.
“상공이 한원에 입직하실 때에 첩이 일찍 일어나 침구를 싸고 조복을 만들어 입혀 드리면 상공께서는 곁눈으로 첩을 보시고 항상 안타까이 여기사 떠나기를 싫어하심이 많사옵는데, 이제 만리 길의 이별을 당하여 무어라 한 마디 쓰라린 말씀이 없나이까?”
한림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대장부가 나라일을 당하여 중임을 받았으니 생사를 또한 돌아보지 못하겠거늘, 구구한 사정을 마음대로 의논하랴? 춘랑이 부질없이 슬퍼하여 꽃 같은 얼굴을 상치 말고, 삼가 소저를 받들어 얼마 동안 잘 있으면, 내 성공한 후에 허리에 금인을 차고 호기있게 돌아올 터이니, 기다리도록 하라.”
하고, 곧 문에 나아가 수레를 타고 이윽고 낙양에 다달으니, 옛날에 지나던 자취가 아직도 변치 아니하였다.
과거에는 십육 세의 한낱 서생의 몸으로 작은 나귀를 타고 행색이 심히 초조하였는데 수년이 가지 않아 절월을 세우고 사마를 타고 이르니, 낙양의 현령이 분주히 길을 닦고 하남부윤은 공손히 길을 인도하니, 오가는 행인들은 우러러보며 부러워하니 이 어찌 장관이 아니겠는가?
한림이 먼저 동자를 시켜 계섬월의 소식을 알아 오도록 하기에, 동자가 섬월의 집을 찾으니 대문은 겹겹이 잠기고 청루도 열지 않은 채요, 오직 앵두꽃만이 피어 있을 뿐이므로 이웃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섬월이 작년 봄에 먼 고장의 상공과 더불어 하룻밤 인연을 맺은 후로는 병이라 핑계하고 오는 손님을 사절하며 관가 잔치에도 들어가지 아니하더니, 얼마 안 가서 미친 체하며 패물 놀이를 다 떼어버리고, 여관의 의복으로 바꿔 입고는 사방으로 두루 다니면서 산수를 구경하는데, 아직 돌아오지 아니하였으니 지금 어느 산에 있는지 알지 못하오.”
동자가 돌아와 이 연유를 아뢰니 한림이 실망하여 섬월의 집을 지나칠 때, 옛 자취와 옛 정을 그리며 눈물을 머금고 객사에 돌아와도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자 부윤이 기생 수십 명을 보내어 즐거이 해 주려는데 모두가 훌륭한 명기였다.
붉은 단장과 화려한 의복으로 고운 것을 다투고 아리따움을 자랑하며 한 번 눈여겨보기를 바라되, 한림은 아무런 홍취가 없어 한 사람도 가까이함이 없어 이튿날 아침 떠남에 앞서 글을 지어 벽상에 썼다.
비가 천진을 지나매 버들빛이 새로우니
풍광이 지난날의 봄과 완연히 같구나.
가히 어여쁘다 옥절이 돌아오는 땅에
술자리에 술 권하는 이 어이해 안 보이는고.
붓을 던지고 수레에 올라 앞길로 나아가니 모든 기생들이 멀리가는 거동을 보고 다만 부끄러울 뿐이라, 다투어 그 글을 베껴 부윤께 바치니, 부윤이 기녀들을 꾸짖되 “만일 양한림의 한 번 눈여겨봄을 입었던 덜 이름이 틀림없이 백 배나 더할 것을, 한림의 눈에 들지 못하니, 낙양 땅이 무색하도다.”
이에 한림이 유의하는 사람의 이름을 알아서 사면에 방을 붙여 섬월의 거처를 찾았다.
천진교에서 계섬월과 해후하다
양한림이 연나라에 다다르니, 아득한 변방 사람들이 일찍이 황성의 위엄있는 거동을 보지 못하였다가 한림의 몸차림을 보니, 땅위의 기린 같고 구름 속의 봉황 같은지라, 다투어 수레를 둘러싸고 길을 막으며 한 번 보기를 원치 않는 자가 없었다.
양한림이 연왕과 서로 만나 보려 할 때에 한림의 위엄은 빠른 우레같고 은혜는 봄비 같아서, 변방 백성들이 모두 춤추고 노래하며 혀를 차고 서로 말했다.
“성천자께서 장차 우리를 살리실 것이로다.”
한림이 연왕과 서로 만날 적에, 천자의 위엄과 처분을 자주 일컬으면서 (순역과 향배의 도리)를 역설하니, 도도함이 바닷물이 일 듯하고, 늠름함이 추상같아서 감복치 아니하지는 못하는지라.
연왕이 황연히 놀라며 깨닫고 땅에 꿇어앉아 사죄하되 “변방이 멀고 외진 곳이라 왕화(임금이 끼치는 덕화)가 미치지 못하는 고로 방자스러이 조정의 명을 거역하고, 밝은 곳을 향하여 귀순할 줄을 알지 못하였는데, 이제 명교를 듣사오니 전죄를 스스로 깨닫겠소이다. 이제부터는 미친 마음을 길이 정제하고 신자의 직분을 부지런히 힘써 지키오리니, 엎드려 바라건대 천자는 돌아가 조정에 아뢰어, 속국으로 하여금 위태로움으로 말미암아 편안함을 얻게 하고, 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하소서.”
뒤이어 벽루궁의 잔치를 베풀고 전송하면서, 황금 백 근과 준마 열 필을 선물로 주거늘, 한림이 일단 이를 물리치고 연땅을 떠났다.
돌아올 때, 길을 행한 지 십여 일 만에 한단 땅에 이르니, 묘하게 생긴 한 소년이 말을 타고 앞길에 있다가 벽제(귀인의 행차에 행로인을 피하게 하는 소리) 소리를 듣고 말에서 내려 길가에 섰기에, 양한림이 바라보고 물었다.
“저 서생이 탄 말은 팔준마의 하나가 아니냐?”
이어서, 점차 소년과의 거리가 가까이되자 소년을 자세히 보니 소년이 피어나는 꽃과도 같고 솟아오르는 달과도 같아서, 미묘한 태도와 청순한 광채가 사람의 눈을 쏘아 가히 바라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양한림이 말하기를
“내 일찍이 경향각지의 소년들을 많이 보았으되, 저 같은 소년은 금시초견이라.”
하고, 추종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소년을 불러 오라.”
하고는 객사에 돌아와서 잠시 쉬고 있는데, 소년이 이미 다다랐기에 한림이 사람을 시켜서 맞아들이자 소년이 이미 다다랐기에 한림이 사람을 시켜서 맞아들이자 소년이 들어가 엎드려 절하니, 한림이 소년을 사랑하여 말했다.
“내 길에서 그대의 풍채를 사랑하였는데, 이제 왕림하여 합석하게 되니 다행함은 이루 말로는 다할 수 없소. 그대의 성명을 알고 싶소.”
소년이 이에 대답하되,
“소년은 북방 태생으로 적백란이라 부르오며 궁벽한 시골에서 성장한 탓으로 훌륭한 스승과 어진 벗을 만나지 못하여 학업이 매우 얕아 글이나 칼을 깨우치지는 못하였으되 그래도 한 조각 정성된 마음은 지기지우를 위하여 죽고자 하옵니다. 이에 상공께서 하북땅을 지나실 때 위엄과 은덕이 아울러 떨치어 모든 사람들이 감동하오니,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이 무궁하온지라, 소생의 천루함과 잔졸함을 생각지 아니하고, 이 몸을 귀몸에 의탁하여 계명 구도의 천한 재주를 일깨워 보고자 하옵는데, 상공께서 몸을 굽혀 선비를 기다리시는 성덕을 베푸시니 황송무지로소이다.”
한림이 소년의 말을 듣고서 더욱 기뻐하여 말했다.
“바로 옛말에 이르길 (동성상옹하고 동기상통이라. 이제 두 뜻이 서로 합하니 장히 쾌한 일이로다! 일후부터는 적생과 더불어 말고삐를 나란히 행하면서, 밥상을 같이하여 먹고 경치가 좋은 곳을 지나면서 산수를 담론하고, 밝은 밤을 만나면 풍월을 읊조리면서 먼 길의 괴로움을 잊어버리리라.”
하고는, 이어서 떠날 준비를 마치고 낙양땅에 이르렀다.
천진교를 지날 때, 지난날 섬월을 만나던 생각에 눈에 선하여 한림은 주루를 바라보며 구슬프게 홀로 탄식한다.
“계랑이 만일 지난 번에 내가 헛되이 지나간 줄을 알면 필연 여기 와서 기다릴 것이로다. 여관이 되었다 하니 생각컨대 그 종적이 도관에 있지 아니하면 필연 이원(승방)에 있을지니 그 소식을 어찌 들으리요? 슬프다. 이번 길에 서로 보지 못하면 어느 세월에 다시 만날 수 있을꼬?”
하면서, 얼핏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본즉 한 미녀가 홀로 누각 위에 서서 주렴을 높이 거둬 올리고 가마가 오는 것을 유심히 보고 있으니 이는 곧 계섬월이었다.
한림이 골똘히 생각하던 차에 낯익은 얼굴을 보게 되니 그 아리따움을 넉넉히 잡을 듯한지라, 수레를 풍우같이 몰아 누각 앞을 지날 즈음, 두 사람이 서로 보고 반기는 정은 말로써 이루 나타날 수가 없었다.
이윽고 객사에 이르니 섬월이 먼저 지름길로 달려와 이미 객사 안에 들어가 옷깃을 여미고 반기니 기쁜 마음이 아울러 서려 올라 눈물이 말보다 앞서 흐르는지라, 이에 몸을 굽혀 하례 했다.
“황명을 받자와 원로에 말을 달리시되 기체 안강하시오니 사모하는 이내 마음에 족히 위로가 되겠나이다. 천첩의 일은 들어 아실 듯하니 다시 말씀드릴 것이 없사오며 지난 봄에 상공의 소식을 듣자온즉 조서를 받들고 이 길을 이 길을 지나셨다 하거늘 길이 멀어 전송을 못하옵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더니 현령이 상공을 위하여 몸소 이 몸을 찾아 객관 벽에 써 놓으신 글을 보이고 지나치게 공경하는 대접을 하며 스스로 전일에 난처했던 일을 사죄하고 (성중으로 들어가 상공이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라) 간청하옵기로, 기꺼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옛집에 돌아오매, 천첩도 스스로 이 몸이 소중한 줄을 깨답삽고 홀로 천진루에 서서 상공의 행차를 기다리니 성내에 가득한 시녀와 오가는 행인들이 그 뉘 소첩의 귀히 돔을 부러워하지 않았겠나이까? 천첩이 아직 모르거니와 상공이 영귀하셨는데 살림을 맡으실 부인을 이미 맞이하셨나이까? 쾌히 말씀하옵소서.”
한림이 이르기를
“이미 정사도 집과 정혼하고 사례는 아직 아니하였으나 그 규수의 현숙함이 계랑의 말과 조금도 틀리지 아니하니 좋은 중매의 은혜가 태산 같도다.”
하고, 다시 옛 정을 이르니, 차마 즉시 떠나지 못하고 잇따라 수일을 머물고 있었는데 계랑이 침방에 있는 고로 오랫동안 적생을 청치 아니하였는데, 동자가 급히 와서 아뢰었다.
“소인이 보오매 적생은 좋지 못한 사람이더이다. 사람들이 많은데서 계낭자와 더불어 희롱하더이다.”
한림이 일러두기를,
“적생이 그렇게 무례할 리가 있겠느냐? 더욱이 계랑은 의심할 바 없으니 네 필시 잘못 본듯하다.”
동자가 흡족치 못한 마음으로 물러가더니, 이윽고 다시 와 아뢰었다.
“상공께서 소인의 말을 그릇되었다 하시니, 그들의 희학질하는 것을 친히 보소서.”
하고, 서편 행랑을 가리켜 보이기에 한림이 나아가 바라본즉, 두 사람이 낮은 담 사이에 두고 서서 혹은 웃으며 지껄이고 혹은 손목을 끌어당기며 희롱하는데 이에 그들이 조용히 하는 말을 들어볼까 하여 차차 가까이 가니 적생은 신을 끄는 소리에 놀라 달아나고 섬월은 돌아보고 자못 수삽한 태도가 있는지라, 한림이 의아하게 여겨 묻기를
“전에 적생과 더불어 연분이 있었느냐?”
섬월이 이에 대답하되,
“소첩은 적생과는 연분이 없삽고 다만 그의 누이와 정분이 있는 고로 그 안부를 묻는데 본디 이 몸이 천한 터이라, 자연히 이목에 젖어 남자를 피할 줄 모르고서, 손을 잡고 희롱도 하고 입을 대고 가만히 말도 하여 상공의 의심을 사게 하였은즉 그 죄 죽어도 아까움이 없을 줄로 아뢰나이다.”
한림이 다시 이르기를,
“내 너를 의심하는 일이 없으니 너는 조금도 꺼리지 말도록 하라.”
이어서 그는 생각하기를
‘적생은 아직도 소년이라 내 눈에 띄었으니 꺼려함이 없지 않을 터이매, 내 마땅히 불러 위로하리라.’
하고 동자를 시켜 적생을 불러 오라 하니, 적생은 이미 간 곳이 없었다.
한림이 크게 후회하되,
“옛날의 초장왕은 갓끈을 끊어 모든 신하의 마음을 편케하였거늘 이제 나는 모호한 일을 살피지 못하여 아름다운 선비를 잃었으니 지금에 와서 부끄럽게 여기고 탄식한들 무엇하리요.”
곧 추종들로 하여금 두루 찾게 하였다.
그날 밤 한림이 섬월을 데리고 옛일을 말하며 새로운 정을 두터이 하고 술자리를 벌여 즐겁게 놀다가 밤이 으슥해지자 촛불을 물리치고 자리에 주웠더니 이내 동녘이 밝았다. 비로소 잠을 깨니 섬월이 거울과 마주 앉아 단장을 새로 하거늘 정을 쏟아 눈여겨보다가 깜짝 놀라 다시 본즉, 가는 눈썹과 밝은 눈이며 구름 같은 살쩍과 꽃 같은 뺨이며 가는 허리와 눈빛같이 흰 살이 자세히 본즉 섬월 같으나 아니었다. 놀랍고도 한편 의심이 나거늘 한참이나 감히 묻지 못할 뿐이었다.
객관에서 적경홍과 상면하다
한림이 미인을 향하여 이윽고 물었다.
“낭자는 대체 누구뇨?”
미인이 대답하되
“소첩은 본디 파주사람이오며, 성명은 적경홍이옵니다. 어렸을 적에 계섬월과 의형제를 정하였삽더니, 어젯밤에 계랑이 마침 병이 있어 상공을 모시지 못하겠다 하옵고 첩더러 대신 모시라 청하여 외람히 자리에 있삽나이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섬월이 문을 열고 들어와, 덧붙여 말했다.
“상공이 또 새 사람을 얻었으나 소첩은 상관하지 아니하나이다. 소첩이 일찍이 하북땅 적경홍을 상공께 천거했사온데 과연 어떠하나이까?”
한림이 대답했다.
“이름만을 듣던 것보다는 그 낯이 더욱 아름답도다!”
하고, 경홍의 모습을 다시 살펴본즉 적생과 티끌만큼도 다르지 않았다.
“적백한 소년은 적랑의 오라비인가? 내 어제 적생에게 허물을 씌워 안 되었거늘 지금 적생은 어디 있느뇨?”
경홍이 더욱 웃으며 대답했다.
“천첩은 본래 형제 자매가 없나이다.”
한림이 이에 다시 한 번 자세히 보매, 훤히 깨달아 웃고 말했다.
“한단 길가에서 나를 따라온 자 본래 적랑이요, 어제 담모통이에서 계랑과 더불어 말하던 자 또한 적랑일진대, 그러나 남북으로 나를 속였음은 무슨 까닭인고?”
경홍이 대답했다.
“천첩이 어찌 감히 상공을 기만하리이까? 소첩이 비록 아리땁지 못하고 재주가 없사와 평생에 대인 군자를 따르고자 하였삽더니 연왕이 소첩의 이름을 듣고 구슬 한 섬으로 첩을 사서 궁중에 드니 비록 입에는 진수성찬이요, 몸에는 능라주의이나 원하는 바 아니옵고 금롱에 갇힌 앵무새 같이 마음대로 나오지 못함을 한스럽게 여기고 있삽는데, 전일에 연왕이 상공을 청하여 잔치를 배설할 적에 소첩이 창 틈으로 보온즉 평생 소원하던 상공이었나이다. 그러나 궁문이 아홉 곁이니 어찌 넘을 수 있으며, 길이 만리이니 어찌 뛰어갈 수 있겠나이까?
오만 가지로 생각하며 겨우 한가지 계책을 얻었으나 상공이 떠나시는 날, 몸을 빼어 뒤를 따르오면 연왕이 필시 사람을 보내어 뒤를 쫓을 터인고로 상공이 떠나신 지수일 후에 연왕의 천리마를 가만히 끌어 타고, 이틀만에 한단 땅에 쫓아 아르니 마침 상공께서 부르시었나이다. 그때에 이 사실을 아뢸 것이로되 이목이 번다하와 덮어 둔 죄가 있사오나 전일 남복한 것은 뒤쫓는 자를 피하려 함이옵고 어젯밤에 당희의 옛 일을 본받음은 계랑의 간청을 따른 것이오니, 전후의 죄를 비록 다 용서하실지라도 황송함은 오래도록 잊지 못하겠나이다.
상공이 그 허물을 괘념치 않으시며 그 비루함을 꺼리지 않으시고 높은 나무의 그늘을 빌리시와 한 가지 깃들임을 허용하여 주시오면 첩이 마땅이 계랑과 더불어 거취를 같이 하여 상공이 현숙한 부인을 맞으신 후에 계랑과 더불어 문하에 나아가 하례 하겠나이다.”
한림이 칭찬하였다.
“적랑의 높은 의기는 양가(중국 정사에 나오는 양소수의 집불 기생(양소수의 객인 이정을 한 번 보고 따라감)이라도 가히 따르지 못하겠거늘 내 이위공 같은 장상)의 재주 없음이 부끄러울 따름이라. 이미 서로 좋아 지내자 하였으니 무엇을 견주어 볼 것이랴?”
“정랑이 이미 소첩의 몸을 대신하여 상공을 보셨으니, 소첩이 또한 마땅히 적랑을 대신하여 상공께 사례하겠나이다.”
이어 일어나 절을 거듭했다.
이 날 두 여인과 더불어 밤을 지내고, 아침이 밝아 오자 한림은 두 여인에게 일러두기를
“원로에 남의 이목이 동행치 못하나, 내 혼례를 지내면 곧 맞아들이겠노라.”
하였다.
그날로 한림은 다시 서울을 향하여 따라나갔다.
이리하여 양한림이 서울에 돌아와 예궐하여 복명할 즈음 연왕의 표문과 공물을 바치는 금은 비단이 때맞춰 이른지라, 천자는 크게 기꺼워하며 그 노고를 위로하고, 그 공훈을 표창하여 장차 후를 봉하려 했다. 한림이 크게 놀라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고 굳이 사양하자, 성상은 더욱 그 뜻을 가상히 여겨 그 소청을 들어 다시 예부상서 겸 한림학사를 삼고, 상급을 후히 내리고 예우도 융숭하시니 그 영광이 고금에 견줄 바 없었다.
천자께서 양소유의 글재주를 매우 사랑하여 자주 편전으로 불러들여 경서와 사기를 토론하시니, 양상서가 예궐하는 날이 잦아졌다.
하루는 밤들도록 입시하였다가 직소에 돌아오니 월색이 명랑하여 그윽한 홍취를 일게 하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홀로 높은 누각에 올라 난간을 의지하고 앉아 달을 대하여 글을 읊조리는데, 문득 바람결에 들은즉 퉁소 소리가 멀리 구름 사이를 따라 점점 내려왔다.
그 곡조는 자세치 아니하나 그 음색은 이 세상에서 듣지 못하던 바라, 상서가 아전을 불러 물어 보았다.
“이 퉁소 소리가 대궐 밖에서 나는 것이냐? 혹은 궁중 사람 가운데 이런 곡조를 능히 부는 자가 있는 것이냐?”
아전이 대답하되,
“알지 못하겠나이다.”
상서도 이어서 옥통소를 내어 두어 곡조를 불자, 그 소리 또한 하늘에 흐르는 구름을 머무르게 하더니, 홀연 청학 한 쌍이 대궐 안으로 날아 들어와 곡조에 맞추어 춤을 추니 한림원의 모든 아전들이 묘하고도 신기하게 여기며 왕자진(주나라 여왕의 태자)이 우리 마음에 있다 하였다.
이 때 황태후에게 두 아들과 딸이 있으니, 성상과 월왕과 난양공주 등 셋이었다. 난양공주가 탄생하실 적에 태후 꿈에, 선녀가 구슬을 받들어 태후의 품 속에다 넣어 주더니, 공주가 장성하시매 지혜와 자질이 모두 예법과 맞아 조금도 속된 버릇이 없고, 문필과 침선이 또한 신기하고 절묘하므로 태후가 매우 사랑하시는데 서역 태진국에서 백옥퉁소를 조공으로 바치는데 그 꾸밈새가
극히 묘하므로 악공으로 하여금 불어 보게 하난 소리가 나지 아니하였다.
이 무렵 공주가 어느 날 꿈에 선녀를 만나서 곡조를 배워 그 신묘함을 익혔는데, 꿈을 깬 후에 태진국의 옥퉁소를 시험하여 보니, 소리가 맑으며 음률이 저절로 맞기에 태후와 천자께서 다 기이하게 여겨 칭찬하시되 다른 사람은 아무도 부는 법을 몰랐다. 매양 공주가 한 곡조를 불면, 모든 학이 스스로 전각 앞에 모여들어 마주 춤을 추었다.
태후가 이를 보시고 성상께 읍하면서 이르시기를,
“옛날에 진목공(서융의 패왕)의 딸 농옥이 옥퉁소를 잘 물었다 하더니, 이제 공주의 한 곡조가 농옥에게 지지 아니할지니, 반드시 소사 같은 사람이 있는 연후에야 가히 공주를 하가(공주, 옹주가 귀족이나 신하에게 시집가는 것)시키겠나이다.”
이리하므로 난양공주는 이미 장성하였으되 부마를 간택하지 못하였다.
이날 밤에 난양공주가 마침 달을 바라보며 퉁소를 불어 학의 춤을 끝냈는데, 곡조를 마치자 청학이 한림을 향해 날아가 그 동산에서 춤을 추니, 사람들이 서로 전하여 일컫기를 양성서의 옥퉁소 소리에 학이 춤을 춘다고 했다.
천자가 이 말을 들으시고 신기하게 여기며 생각하시기를
“공주의 인연이 필연 이 사람에게 있으렸다!”
하고, 태후께 아뢰시되
“양소유의 연기가 공주와 서로 맞사옵고, 그 풍채와 재주는 만조에 무쌍하오니 간택하시기 바라나이다.”
태후가 웃고 이르시기를,
“소화의 배필이 아직 없어 항상 염려이더니, 이제 그 말씀을 들으니 양소유는 곧 난양공주의 천생배필이오. 그러나 이 몸이 친히 보고 정하겠으니, 상은 그리 아시오.”
성상이 대답하시되,
“어렵지 않은 일이오니 일간 양소유를 별전으로 불러보고 글을 강론하오리니 그 사람됨을 어람하소서.”
하셨다.
난양공주의 이름이 곧 소화이니, 바로 이는 그 옥퉁소에 소화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으므로 이에 따른 것이었다.
천자께서 봉래전에 정좌하시고 내시를 보내시어 양소유를 부르시니, 내시가 명을 받잡고 한림원에 나아가 보니 이미 양소유는 퇴청하였다. 정사도 집에 가 물어 본즉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하기로, 내시가 황망히 두루 찾기 시작했다.
이때 양상서는 정십삼랑과 더불어 장안 주루에서 주랑이라는 명기를 데리고 이미 대취하여 노래를 부르고 취흥이 도도하여 의기양양한지라, 내시가 급히 달려가 입시하라시는 어명을 전하니 정십삼은 기겁을 하여 뛰어나가고 상서는 취안이 몽롱하여 내시가 벌써 누각에 오른 줄을 알지 못하였다.
내시가 성화같이 재촉하니 상서는 기녀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 조복을 입고 내시를 따라 대궐을 들어가 뵈온즉 성상이 앉으라 명하시고 역대 제왕의 치란흥망을 논의하시는데 그 대답이 명백한지라, 상이 매우 기꺼워하시며 다시 묻기를,
“글을 잘 짓는 것이 비록 제왕의 할 일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 조종이 진작부터 마음을 썼기로 어제 하신 시문이 더러는 전파되어 오늘에 이르니 경은 시험삼아 성제명왕들의 문장을 논의하라. 남의 시편이라 꺼리지 말고 논평하여 그 우열을 정하되 위로 제왕의 글은 누가 으뜸이며 아래로 신하의 글은 누가 가장 나으냐?”
“군신이 글로써 서로 부르고 화답함은 요순에서부터 비롯하니 아직 이를 논의할 계제는 아니오나 한고조(유방)의 대풍가와 위태조(조조)의 월명성회는 제왕의 시사중 으뜸이옵고, 서경의 이릉(한나라의 명장. 군사 5천을 거느리고 흉노족을 치다가 패해 항복함), 업도의 조자건(조조의 세째 아들)과 남조의 도연명(진의 문학가. 선비), 사영운(진의 문학가. 서화, 시문에 뛰어남)의 네 사람이 가장 드러난 자들이옵나이다. 예로부터 문장의 성함이 우리 국조만한 시대가 없사오며, 국조 중에서도 개원, 천보 연간 같이 많은 재사가 속출한 때는 없사온데, 제왕의 문장으로서는 현종황제가 천고에 빛나시며 신하의 재주로서는 천하에 이태백을 당할 사람이 없나이다.”
“경의 뜻이 실로 짐의 생각과 맞는도다. 짐이 매양 이태백의 청평사와 행락사를 보매 그와 한때에 있지 못했음을 한스럽게 여겼더니 이제 경을 얻었으니 어찌 이태백을 부러워하리요? 짐이 옛 법을 좇아 궁녀 십여 인으로 하여금 학문을 맡게 하니 여중서라. 글에 자못 재주가 있고 또 볼 만한 자가 있는지라, 짐이 이백의 취중 글 짓던 모양을 다시 보고자 하나니, 경은 궁녀들의 바라는 정성을 저버리지 말도록 하라.”
이에 궁녀를 시켜 어전에 유리 벼룻집과 백옥 필상과 황옥 연적을 옮겨 놓고, 모든 궁녀가 이미 글을 받으랍시는 어명을 들었으므로 각기 비단수건과 비단부채를 펴들고 상서 앞에 나왔다.
상서가 취홍이 도도하고 글 생각이 저절로 솟아나므로 고 운 붓을 들어 차례로 쓰자 풍운이 일고 번개같이 날렵해 그림자가 옮기지 아니하여 앞에 그득한 부채 등이 이미 다하고 말았다.
궁녀들이 차례로 꿇어앉아 상께 드린즉 상께서 낱낱이 들추어보시니 모두가 주옥같은 글이라 칭찬하시길 마지않으며, 궁녀를 불러 이르시되 “오늘밤 한림이 수고하였으니 각별히 좋은 술을 가져오라.”
하시니, 모든 궁녀가 황금 쟁반을 받들고 앵무 술잔을 잡아 맑은술을 가득히 내오는데 혹은 잠깐 꿇어앉았다 잠 깐 서면서 다투어 절하고 다투어 권하므로 상서가 어전에서 좌우 두 손으로 잡아 차례로 마시니 십여 배에 얼굴이 몸빛을 띠며 눈에 안개가 들려 있기로 상이 명하시어 술을 물리고 이르시되
“한림의 글 한 구가 천금으로도 싸니 가위 무가지보이거늘 너희는 무엇으로써 예폐를 주려 하느냐?”
궁녀들 중에서 혹은 금비녀를 빼거나 혹은 옥패도 떼어 어지러이 던지니 금이 소리하고 옥이 떨쳤다.
상께서 내관에서 명하시어 상서가 쓰던 지필연묵 등과 궁녀들의 예폐를 거두어 가지고 한림을 따라가 그 집에 전하라 하시니 상서는 사은하고 일어나다가 다시 자리에 쓰러지는지라. 내관이 부축하여 남문에 이르니 뒤를 보살피는 종들이 옹위하여 말에 올리었다.
양상서가 돌아와 화원에 이르니 춘운이 붙들어 올리고 조복을 벗기고 묻기를
“상공께서는 뉘집에서 이토록 취하셨나이까?”
상서는 치기가 심하여 머리만 끄덕이는데 하인이 어사하신 필연과 비녀 팔찌, 가락지 등등의 패물을 받들어 마루에 쌓아 놓으니, 상서가 희롱하여 이르기를 “이 물건이 다 천자께서 춘랑에게 상급 하신 것이니 내 소득이 동방삭(전한의 문학가, 풍자가)과 비교해 어떠할꼬?”
춘운이 다시 물으려 하나, 상서가 이미 정신없이 쓰러져서 자는데 코고는 소리가 마치 우레와도 같았다.
진채봉과 양랑의 쓰라린 해후
이튿날 상서가 늦게 일어나 세수하는데, 문지기가 와서 급히 아뢰었다.
“월왕께서 오시었나이다.”
상서가 놀라 말하기를,
“월왕이 왕가하시니 무슨 일이 있도다.”
급히 나아가 맞아 상좌에 뫼시고 공손히 하례 하니, 나이는 대략 이십 세요, 풍채가 청수 하여 한 점의 속태도 없다.
상서가 꿇어앉아 묻되,
“대왕이 누추한 곳에 오시니, 무슨 가르치심이 있나이까?”
왕이 대답하기를,
“과인이 그윽히 경의 성화를 사모하나 출입 길이 달라 한 번도 맑은 말을 듣지 못하다가, 이제 황상의 명을 받들고 와서 칙교를 전하노라. 난양공주 꽃다운 연기를 당하여 바야흐로 부마를 정하려 하시더니, 황상이 상서의 재주와 덕을 매우 사랑하사 이미 간택을 정하시고 과인으로 하여금 먼저 이 일을 통기하라 하시니 장차 조칙을 내리시리라.”
이 말에 상서가 놀라며 엎드려 아뢰기를,
“천은이 소신에게 내리시니 복이 과하면 재앙이 생긴다 함은 이미 말할 나위 없는 바이오며, 신은 이미 정사도의 여아와 청혼하여 납채한 지 벌써 해를 거듭했사오니 엎드려 바라거니와 대왕은 이 뜻을 화상께 아뢰어 주옵소서.”
왕이 대답하기를,
“과인이 돌아가 그대로 품달하려니와 아깝도다. 황상께서 미덥게 여기시던 뜻이 허사로 돌아갔노라.”
양상서가 다시 여쭙기를,
“이는 인륜대사이오니 가히 소홀히 못할 일이오며, 신도 마땅히 궐문 밖에 엎드려 죄를 청하겠나이다.”
왕이 곧 작별하고 돌아가기에 상서는 들어가 정사도를 보고 월왕이 말한 바를 아뢴즉, 춘운이 이미 부인에게 고하였기에 온 집안이 어찌할 바를 모르며, 사도는 근심 구름이 눈썹 위에 가득하여 능히 말도 못하고 있었다.
“장인은 염려치 마시옵소서. 천자께서 성총이 밝으사 법과 예를 중히 여기시니 필경에는 신하의 윤기를 어지럽게 아니하실 것이오니 소서 비록 불민하오나 맹세코 송홍의 죄인은 되지 아니하오리다.”
상서가 정사도에게 이렇게 말한 후에 후원으로 물러갔다.
이 일은 태후가 봉래전에 친림하시어 주렴 사이로 양소유를 보시고 마음에 미덥게 여겨 황상께 이르기를, “상서는 실로 난양의 배필될 자라 무슨 별 의논이 없는 줄로 아뢰오.”
이에 월왕을 보내시고 천자도 상서를 불러 친히 이르고자 하셨다. 그리고 상이 별전에 계시다가 어제 양소유의 글을 다시 보시려고 내관으로 하여금 여중서 등이 받아 가진 글을 거둬들이게 하나 모든 궁녀들이 다 깊이 감추었으되 오직 한 궁녀가 글쓴 부채를 가지고 홀로 처소에 돌아가 품 속에 넣어 두고 밤새도록 슬피 울며 침식을 전폐하였는데, 이 궁녀는 곧 진채봉이니 화주땅 진어사의 딸이었다.
진어사가 비명으로 참사를 당하고, 채봉은 잡혀 서울로 올라와 대궐 안으로 박히니 부르시고 첩여(한나라 여관의 이름)를 봉하고자 하시자 황후께서 꺼리시어 상께 간하되,
“진녀는 가히 총애하실 만하오니, 폐하께서 그 아비를 죽이시고 그 딸을 가까이하심은 옛날의 밝은 인군이 색을 멀리하고 형벌을 세우던 바에 어긋날까 염려되나이다.”
상이 그 말을 옳게 여겨 받아들이시고는. 이에 채봉을 불러 불으셨다.
“네 혹 글을 아느냐?”
채봉이 대답하여 아뢰되,
“약간 글자를 알고 있나이다.”
상이 이에 명하여 여중서를 삼아 글을 맡게 하여 황태후궁으로 나아가 난양공주를 모시고 글도 읽고 글씨도 익히게 하시니 공주가 진녀를 지극히 사랑하여 잠시도 서로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이 날, 태후를 모시고 봉래전에 나아가 황상의 명을 받자와 여중서들과 더불어 양상서의 글을 받을 때에 상서는 곧 자나깨나 잊지 못하던 옛날의 양생이라. 지척에 있으니 어찌 알지 못하리요?
채봉은 상서를 보자마자 마음이 타는 듯 살이 녹는 듯 설음을 감추고 쓰라림을 숨겨 다른 사람이 혹시 수상히 여길까 두려워하며 옛정이 통치 못함을 서러워하고, 옛 인연을 잇기 어렵게 되었음을 못내 탄식하며 안타까워하고, 예 인연을 잇기 어렵게 되었음을 못내 탄식하며 안타까워하더니 조용한 틈을 타서 부채를 들고 읊으며 차마 놓지 못했다.
깁부채가 둥글둥글 밝은 달 같아서
가인의 옥수로 밝고 맑음을 다투었네.
오현금 속에 훈풍이 다사롭게 일어나니
품속으로 드나들며 쉴 새가 없구나.
깁부채가 둥글둥글 달덩이 같으니
가인의 옥수가 정히 서로 따르더라.
길이 없어 꽃 같은 낯 가리어 물리치니
봄빛이 인간세상을 도무지 알지 못하겠구나.
진녀가 글을 읊조리며 탄식하기를,
“양공은 내 마음을 알지 못하는 도다. 비록 궁중에 있으나, 어찌 황상을 모실 리 있으리요?”
둘째 글을 읊조리며 탄식하기를,
“내 얼굴을 자기가 보지 못하나 양랑은 필연 맘에 있지 아니하겠거늘 글 뜻이 이 같으니 실로 지척이 천리로다.”
이어서 예전 집에서 양류사로 화답하던 일을 생각하고 슬픔을 억제치 못하였는데 문득 들으니 내관이 사의 명으로 글 쓴 부채를 찾는지라, 깜짝 놀라 벌벌 떨면서 이르기를
“어찌할꼬? 이제 나는 죽었노라. 이제 나는 죽었노라.”
하며 당황해 하였다.
내관이 진씨에게
“황상께서 부채에 쓴 양상서의 글을 다시 보시려 하오.”
하거늘, 진녀가 울면서 할을 한다.
“기박한 사람이 우연히 화답하여 그 아래 써서 스스로 죽을 죄를 범하였는지라. 황상께서 보시면 필시 죽이라 명하실 터이니 법에 걸리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결함이 나을 듯하오니 내 손으로 자결하겠은즉, 이 몸이 죽은 다음의 엄토(겨우 흙이나 덮어서 지내는 초라한 장사)는 그대를 믿겠으니 바라건대 그대는 이 몸을 까마귀밥이 되지 않게 해 주오.”
내관이 이에 대답하기를,
“여중서는 어찌 이런 말씀을 하는고? 황상께서는 인자하시고 관후 하시니 큰 죄는 아니 주실 것이요, 설혹 진노하실 지라도 내 마땅히 힘써 구할 터이니 여중서는 나를 따라오오.”
진녀가 내관을 따라가니 문 밖에 세우고 홀로 들어가 모든 글을 상께 바치니 상이 차례로 어람하시다가 진씨 부채에 이르러 양상서의 글 아래에 또 다른 글이 있으므로 상이 의아하게 여겨 내관에게 하문하시니, 내관이 아뢰되
“진씨가 신에게 이르옵기를 황상이 다시 찾지 아니하시리라 여겨 외람히 글을 지어 그 아래에 썼으니 필연 죄를 면치 못하겠다고 하고, 이어 자결하려 하옵기에 신이 효유하여 데리고 왔나이다.”
상께서 그 글을 읊어 보시니 거기 쓰였으되
깁부채가 둥글기가 가을달 둥근 것과 같으니
일찍이 고락에서 부끄러운 얼굴 대함을 생각하겠네.
처음에 지척에서 서로 알지 못할 줄 알았던들
문득 그대로 하여금 자세히 봄을 뉘우치리로다.
상이 다 보시고 이르시되,
“진씨 필연 사정이 있도다. 어느 곳에서 어느 사람과 서로 만났기로 그 뜻이 이 같으뇨? 그 재주가 가히 아깝고 또한 권장할 지로고.”
하시고, 내관에게 명하여 진녀를 부르시니 진씨가 뜰에 엎드려서 죄를 청하였다.
“사실을 그대로 아뢰면 네 죄를 사하리라. 네 어느 사람과 더불어 사사로운 정분이 있느냐?”
진씨가 머리를 조아리며 여쭌다.
“신첩이 어찌 감히 은위하겠나이까? 신첩의 집이 패망하기 전이었나이다. 양소유가 과거 보러 가는 길에 마침 눈앞을 홀로 지나다가 우연히 서로 보고 양류사를 화답하였으며, 신첩의 유모를 보내어 정혼 언약을 맺었삽는데, 일전 봉래전에 입시 하였을 적에 신첩은 구면임을 능히 알되 양소유는 알지 못하옵는고로 옛일을 슬피 느껴 난잡히 글자를 그렸삽는데 황상께서 보셨으니, 그 죄 마땅히 죽어도 아깝지 않나이다.”
상이 그 뜻을 불쌍히 여기어 이르시되,
“그러면 양류사로 정혼하던 일을 능히 기억하겠느냐?”
진씨가 즉시 양류사를 써 올리니 상이 윤허하시되,
“네 죄 중하나 네 재주가 가히 아깝고, 또 난양공주가 심히 너를
사랑하는고로 특히 용서하노니, 네 정성을 다하여 공주를 섬기고 네 본심을 저버리지 말지어다.”
즉시 부채를 내리시니, 진씨는 황공하여 사은하고 물러갔다.
월왕이 정도사 집에서 돌아와 양소유가 이미 납채한 사실을 황태후께 아뢴즉, 태후가 낯을 찌푸리며 이르시기를
“양소유가 벼슬이 상서에 이르렀으니 마땅히 조정 사체를 일지어늘 그 고집이 어찌 이 같은고?”
상이 대답하시되
“납채는 성례함과는 다르니 친히 유효 하오면 아니 듣지는 못하리다.”
하시고, 이튿날 양소유를 불러들여 이르시기를,
“집에게 누이 하나 있으니 자태가 비범하여 경이 아니면 배필될 자가 없기로, 짐이 월왕으로 하여금 뜻을 일렀거늘 경이 납채함을 칭탁하더라 하니 경은 생각지 않음이 심하도다. 옛적 인군들이 부마를 간택할 적에 혹은 정처를 내쫓는 고로 왕헌지(진의 서예)는 종신토록 뉘우치고 오직 송홍은 임금의 명을 받지 아니하였으되, 짐의 뜻인즉 그렇지 아니하니 어찌 예의에 어긋남이 남보다 더하리요? 이제 경이 정씨와의 혼인을 물릴지라도 정녀는 갈 곳이 있고, 경은 또한 상례한 일이 없거늘 무슨 윤기를 해침이 있으리요?”
상서가 머리를 조아리고 아뢰되,
“성상께옵소서 죄를 주지 않으실 뿐 아니라 도리어 순순히 효유하사 부자지간같이 하시오니 감축 하와 다시 아뢰올 말씀이 없나이다. 그러하오나 신의 정상은 타인과 다르오니 신이 하방서생으로서 서울에 오던 날에 의탁할 곳이 없삽더니 정사도의 후대로 그 소저에게 이미 납채할 뿐이 아니오라 사도와 옹서지분을 정하였삽고 또 이미 서로 낯을 보아 완연히 부처의 의가 있사오나
아직 성례치 못하옴은 국사가 다사하와 모친을 데려 올 겨를이 없사옵더니 이제 다행히 변방이 귀화하고 변경에 또한 근심이 없사오니 바야흐로 여가를 얻어 시골집에 돌아가 노모를 데려온 후에 택일하여 성례코자 하옵는데, 뜻밖에 황상께서 명을 소신에게 내리시니 황공무지하와 어찌할 바를 모르겠나이다.
신이 만일 죄를 두려워하여 명을 순수하온즉 정소저는 죽기로써 다른 데로 가지 아니하오리니 어찌한 지어미의 길을 잃으면 왕화에 흠이 되지 아니하오리이까?”
상이 이르시되,
“경의 정리는 비록 민망하나, 경은 국가의 주석지신이요, 동량지재라, 짐의 뜻에 가합할 뿐만 아니라, 황태후께서 이미 경의 용모와 덕기를 사모 하사 친히 혼례를 주장하시니 굳이 사양치 못하리라. 그러나 혼인은 인륜대사라, 가히 경솔히 못할진대 잠시 짐은 경과 더불어 바둑을 두어 소일하겠노라.”
하고, 내관에게 명하여 바둑판을 들이게 하고, 군신 사이에 서로 승부를 겨루시다가 날이 저물어서야 물리시므로 양상서가 돌아가니, 정도사가 만면에 비창한 빛을 띠고, 눈물을 씻으며 이르기를
“오늘 황태후께서 조칙을 내리 사 양랑의 예폐를 물리라 하시는 고로, 내 이미 춘운에게 내게 하여 화원 별당에 두었거니와, 여아의 신세를 생각하건대 우리 내외의 심회가 어떠하겠는고? 나는 겨우 부지하나 노처는 과념한 탓으로 방금 혼몽하여 인사불성이로다.”
하기에, 상서가 대경실색하여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아뢰기를
“이 일의 불가함을 들어 소서가 상소하여 다투오면 조정이 또한 공론이 없지 않겠나이까?”
사도가 손을 두드리며 만류하되,
“양랑이 황명을 거역함이 여러 번이라, 이제 상소하면 어찌 황송치 아니할꼬? 반드시 중한 죄책이 있을 터이니 준수함만 같지 못하고, 한편 내 집 환원에서 일후에도 거처하는 것은 체면에 대단 불안하니 창졸간에 서로 헤어짐은 심히 서운하나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 합당하리로다.”
상서는 이에 대답지 아니하고 화원에 들어가니, 춘운이 흐느껴 울다가 예폐를 받들면서 말하기를,
“천첩이 소저의 명을 받아 상공을 모신 지 오래 온데, 각별히 은애를 입사와 항상 감격하옵더니 귀신이 시기하고 사람이 투기하여 대사가 그릇되니, 소저의 혼사는 여망이 없사온즉 천첩도 또한 상공께 영이별하고 돌아가 소저를 모시겠나이다. 오호라! 천지신명이시어, 너무도 가혹하나이다.”
춘운의 흐느껴 우는 소리를 차마 들을 수 없기에, 상서가 입을 열었다.
“바야흐로 상소극간하려 하며, 또 여자가 한번 몸을 남에게 허락하였은즉 지아비를 따르는 것이 예법에 맞거늘, 춘랑이 어찌하여 나를 배반하려 하는고?”
춘랑이 의연히 이에 대답하되,
“천첩이 비록 불민하오나 삼종의 도리를 아옵고, 또한 사정이 남과 다른 것은 첩이 어릴 적부터 소저와 더불어 자라나면서 귀천의 분을 끊고 사생을 같이하기로 맹세하였삽기로, 길흉과 영욕을 들음이 없게 하여야 되겠기에 이 몸은 소저께 마치 그림자가 몸을 따르듯 하는 고로, 몸이 이미 같은즉 어찌 그림자만 홀로 남아 있사오리까?”
상서가 다시 타이르기를,
“네 주인을 위하는 정성은 극진하다 하겠으나, 너는 소저와는 다르니라. 소저는 동서남북에 뜻대로 가려니와 너는 소저의 뜻을 좇아 타인을 섬기는 것이 여자의 예정에 아무런 방해가 없으리라.”
춘운이 다시 대답하되,
“상공의 말씀은 소저와 천첩의 마음을 알지 못하신다 하겠나이다. 소저는 결심하기를 길이 부모님의 슬하에 계시다가, 두분 백년해로하신 후에 소저는 절간으로 들어가서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부처님께 발원하여 후생에는 절대로 여자의 몸이 되지 않기를 굳게 맹세하실 것이고 천첩도 처신을 그와 같이할 따름이오니, 상공이 만일 춘운을 다시 보려 하시오면 상공의 예폐가 다시금 소저의 방안으로 들어간 다음이라야 논의할 터이요, 그렇지 않으면 오늘이 곧 생리사별이오니 다만 바라옵건대 후세에 상공의 집 개와 말이 되어서 주인을 위하는 정성을 본받으려 하오니 부디 옥체를 보증하옵소서.”
하고는 돌아앉아서 울기를 반나절이나 하다가 몸을 일으켜 뜰에 내려가 재배하고는 내당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양소유의 혼인에 대한 상소
양상서가 화원에서 춘운을 보낸 후에는 오장이 타는 듯하여 무슨 일에나 마음이 내치지 않아서, 푸른 하늘을 우러러 길이 한숨 쉬며 손을 어루만지며 자주 탄식하였다.
“내 마땅히 상소극간하리라.”
하고, 이에 붓을 드니 언사가 심히 격절하더라. 그 상소문에 쓰였으되 예부상서 신 양소유는 돈수백배하옵고, 황상 폐하께 말씀을 오리나이다.
엎드려 아뢰옵건대, 윤기는 왕정의 근본이요, 혼인은 인륜의 시초이니, 그 근본을 한 번 잃은즉 덕화는 크게 무너져 그 나라가 어지럽고, 그 비롯함을 삼가지 아니한즉 그 끝도 이루지 못하고 그 집이 망하느니 가문과 국가의 흥망과 성쇠를 어찌 현저치 아니하리이까?
성인군자와 인군명주는 미상불 이에 유의하여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매 반드시 그 기강을 바로잡고 그 집을 바로잡고자 함에는 혼인을 바르게 함으로써 으뜸을 삼는지라, 신이 이미 예폐를 정녀에게 보내고 또 거처를 정가에 의탁하였사온즉 신이 이미 정한 것이거늘, 뜻밖에 이제 부마로 간택하시는 은명을 합당치 못한 천신에게 내리시니 황송무지하와 성상의 하교와 조정의 처분이 과연 예의에 맞아드는 줄을 알지 못하겠나이다.
신이 설령 정혼치 아니하였을지라도 문벌이 미천하고 재주가 짧고 학식이 옅은 몸이 온즉 부마 간택이 합당치 못하옵거든, 하물며 정녀와 짝이 되고 정사도와 더불어 장인과 사위가 되기로 정하였거늘 아직도 육례(납채, 문명, 납길, 납폐, 청기, 친영 등의 총칭)를 끝내지 못하였다 하여 거론치는 못할 것이옵니다.
이러하온대 어찌 귀한 몸이신 공주로 하여금 필부나 다름없는 천신 에게 허가케 하시려 하시나이까? 어찌 예법에 합불함을 묻지 아니하시고, 구차한 기록을 무릅써 예 아니 예를 행코자 하시나이까?
이에 밀지를 내리사 이미 행한 예를 파기케 하시니 신은 예부의 책임을 맡고 있으므로 그윽히 위하여 취하지 않았나이다. 신은 두려워하건대 왕정이 신으로 말미암아 어지럽고 인륜이 신으로 말미암아 무너져서 성상의 덕을 손상하옵고 아래로 가도를 무너뜨려 마침내 큰 화를 면치 못할까 우려하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성상은 예의 근본을 중히 하옵시고 풍화의 비롯함을 바르게 빨리 조명을 거두시어 그로 하여금 천분을 편안케 하소서.
상이 다 앍으시고, 태후께 아뢰시니 태후는 대노하여 양소유를 옥에 가두라 하시기에 대신들이 일시에 힘써 간하니, 상이 이르시기를
“집도 그 벌이 과한 줄 아나 태후께서 방금 진노하시니 짐도 감히 사하기 어렵도다.”
하고 하옥하라 명하시니, 이에 양소유는 옥에 갇히고, 정사도는 또한 송구한 마음에서 스스로 문을 닫고 객을 물리쳤다.
이 무렵에 토번이 강성하여 십만 대군을 거느려 변방 고을을 잇따라 함락시키고 그 선봉이 위교에 이르니 황성이 소란해지기에 상이 만조 백관을 모으고 논의하시니 모든 신하들이 상주하기를
“황성에 이끈 군사는 불과 수만에 지나지 못하고 외방 구원병은 미처 오지 모사인 상서께서는 잠시 황성을 떠나 관동에 나아가 순행하시고 각도의 군사를 불러 그로써 회복하심이 옳은 줄 아뢰오.”
상이 머뭇거리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다가 이르시되,
“제신 중에 오직 양소유가 지모와 방략이 뛰어나고 결단을 잘하기로 짐이 그를 그릇이라 여겼으며 전일 삼진을 항복 받은 것이 다 양소유의 공이로다.”
하고, 양소유를 불러 올려 계교를 물으시니, 양소유가 아뢰기를
“황성은 종묘를 모셨고 궁궐이 있는 곳이어 늘 이제 만일 떠나시오면 천하의 인심이 말라서 요동할 거시요, 또 강한 도적이 웅거하면 졸렬히 회복하기란 어려운 줄로 아뢰오. 전자에 대종(당의 황제) 때에 토번이 회홀(터키계의 고대 국가)과 더불어 힘을 합하여 백만 대군을 몰고 서울을 범할 사이에 그때 군사의 힘이 지금보다 약화되어 분양왕에 봉한 곽자의가 필마로써 물리쳤사오니, 신의 재주와 방략이 비록 곽자의(당나라의 명장)의 만분지 일도 미치지 못하오나 바라건대 수천 명의 군사를 얻으면 이 도적을 토평하여서 신의 재생지은을 갚을까 하나이다.”
상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양소유를 대장군에 삼으시고 경영문의 군사 삼만 명을 거느리고 토번을 치라 명하시니, 상서는 하직하고 물러나와 군사를 지휘하여 위교에 진을 치고 도적의 선봉을 쳐서 토번의 좌현왕을 사로잡으니 도적의 군세가 크게 꺾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상서가 쫓아가 세 번 싸워 이기고 군사 삼만을 베어 죽이며 말 팔천 필을 얻어서 승전한 첩서를 올리니, 상이 크게 기꺼워하여 군사를 돌이키라 하시고 모든 장수의 공을 논의하여 차례로 상을 내리셨다. 이에 상서가 군진에 있으며 상소하였으되
신이 듣자 온즉 왕자의 군사는 만전함이 귀하니 앉아서 기회를 잃으면 공을 가히 이루지 못할지라 하고, 또 듣사오니 항상 이기는 군사는 대적으로 더불어 염려하기에 어렵고 주리고 약한 때를 타서 치지 아니하면 도적을 가히 피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이 도적의 형세가 강하지 못하다고 말할 수 없삽고 그 계략이 이롭지 않다고 할 수 없겠사오니 이는 소인의 적은 공을 세운 바이고, 도적의 형세 날로 줄고 군사는 날로 약한 바이옵니다. 병법에 일렀으되 용전분투하되 이기지 못하는 자는 양식이 뒤따르지 못하고 지형이 편치 못함에 말미암음이라 하옵니다.
이제 도적의 형세는 이미 꺾이어 도망하였으니 도적의 피폐함이 극심하고 이제 연도의 각읍이 다 군량과 마초를 산같이 쌓아 우리는 주리는 근심이 없삽고 평원광야에 지형을 얻었은즉 저들의 복병이 없으니 만약에 날쌘 군사로 하여금 그 뒤를 쫓으면 거의 온전한 공을 이루겠삽거늘, 이제 적은 승리를 다행으로 여겨 만전지책을 버리고 지레 짐작으로 회군하여 토평을 아니하시니, 이는 그 바른 계교인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엎드려 바라건대 폐하는 조정의 공론을 널리 캐어 보시고 결단을 내리시어 신으로 하여금 군사를 몰아 멀리 엄습하여 굴혈을 소탕케 하옵시면, 신은 맹세코 도적들이 돌아가지 못하고 한번의 저항도 못하게 하여서 성상의 진념을 덜게 하겠나이다.
상께서 그 상소의 참 뜻을 장하게 여기시고 벼슬을 돋우어 어사대부(주로 탄핵을 맡음)겸 병부상서(군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관청) 정서대원수를 삼으시고, 상방참마검과 동궁과 적전과 통천어대와 백모황월을 주시고, 이에 조서를 내리시어 삭방과 하동과 농서 등 각도 병마를 발하여 군사의 기세를 도우라 하셨다.
양소유가 조서를 받자와 대궐을 바라보며 사은하고, 이에 택일하여 독(군기. 출병할 때 이 독에 제사함)에 제사하고 떠나니 그 병법은 육도의 신기한 꾀요,
그 진세는 팔괘(주역)에서 자연계와 인사계의 모든 현상을 음양을 겹치시어서 8가지의 상으로 나타낸 것)의 변하는 법이라. 행오를 정제하고 호령이 엄숙하니 병의 물 쏟듯 대나무를 짜르듯 공을 이루어 수월 사이에 잃었던 오십여 고을을 회복하더라.
대군을 몰아 적설산 아래에 이르니 까마귀가 울면서 진중을 뚫고 지나가기에 상서가 점을 쳐보니, 적병의 필연 우리 진을 기습하겠으니 나중에 길할 징조라, 산 밑에다 진을 치고 녹각(나무를 베어 널려 놓고 적병의 행군을 막는 방법)과 질려 “통행 방해물”를 사면에 벌여 계획 있고 가지런하게 설비하고 기다렸다.
자객으로 온 심요연
원수가 장막 가운데 앉아 촛불을 밝히고 병서를 보는데 순라꾼이 이미 삼경을 알리거늘, 홀연 음산한 바람이 일어나 촛불을 끄고, 한 여인이 공중으로부터 내려와 몸을 숨기듯 장막 가운데에 섰는데 손에 서릿발같은 비수를 들었는지라.
원수는 자객인 줄 알되 낯빛을 변치 아니하고 위의를 더욱 늠름하게 하면서 물었다.
“네 어떤 여자이기로 밤에 군중에 들어왔느냐? 대체 무슨 연고가 있느냐?”
여인이 대답하되,
“첩이 토번국 찬보(토번국의 군장)의 명을 받아, 원수의 머리를 얻고자 하여 왔나이다.”
양원수가 웃으며 말했다.
“대장부가 어찌 죽기를 두려워하리요? 속히 하수하라.”
여인이 칼을 던지고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하기를,
“귀인은 염려 마옵소서. 첩이 어찌 감히 경거망동할 수 있겠나이까?”
원수가 친히 다가서서 잡아 일으키면서 이르되,
“그대가 이미 비수를 품고 군중에 들어왔거늘 도리어 나를 해치지 않음은 어찌함이뇨?”
여인이 대답하기를,
“첩은 전후 내력을 말씀드리고자 하오나, 이렇듯이 서서 하는 말로는 이루 다할 수 없나이다.”
원수가 자리를 내 주면서 앉기를 권했다.
“낭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찾아와 만나니 장차 무슨 가르침이 있겠는고?”
여인이 대답하기를,
“첩이 비록 자객의 신분으로 이곳에 왔사오나 사람을 해칠 마음은 추호도 없으므로, 속마음을 떳떳이 귀인께 토설하겠나이다.”
여인은 일어나 다시 촛불을 켜고 원수 앞에 나아와 앉기에 원수가 다시 보니 구름 같은 머리에 금비녀를 높이 꽂고, 몸에는 소매가 좁은 갑옷을 두르고 그 겉에 석죽화를 그렸으며, 봉미목화를 신고 허리에는 용천검을 비껴 찼는데 얼굴빛이 천연히 이슬에 젖은 해당화 같았다.
여인이 앵두 같은 입술을 천천히 열어 꾀꼬리 울음 같은 목소리로 말을 시작한다.
“첩은 본디 양주 고을 사람이 오라 여러 대에 걸쳐 당나라 백성이었습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한 계집이 스승을 따라 제자가 되었더니 그 스승이 검술에 신묘하여 제자 세 사람을 가르쳤는데 삼인의 성격인즉 진해월, 김채홍, 심요연이며 첩이 곧 심요연이옵니다. 검술을 배운 지 삼 년에 능히 변화하는 법을 터득하여 바람을 타고 번개를 따라 순식간에 천여 리를 달리며 세 사람이 검술에 별로 우열이 없사온데, 스승이 원수를 갚으라 하거나 혹은 악한 사람을 없이하라 하면 반드시 채홍과 해월 두 제자만 보내며 첩은 한 번도 보내지 아니하기로 첩이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스승께 묻자 오되,
‘우리 세 사람이 함께 스승의 가르치심을 받았으나 첩은 홀로 스승의 은혜를 갚지 못하였사오니 모르기는 하오나 첩의 재주가 용렬하여 한 번도 부리지 아니하시나이까?’
하온즉, 스승이 이르기를
‘너는 우리들과 다르니라. 후일에 마땅히 바른 도를 얻어 마침내 뜻을 펴게 되겠거늘 너도 저 두 사람과 같이 인명을 살해하면 해로울 터인바 이러하므로 너를 부리지 아니하노라.’
하기에, 첩이 또 묻자 오되
‘만일 그러하오면 첩의 검술은 장차 어디에 쓰게 되오리까?’
한즉, 스승이 또 타이르시기를
‘네 전생의 연분이 당나라에 있고, 그는 큰 귀인으로 너는 타국에 있는지라. 그리하여 네가 만날 도리가 없으니 내 너를 위하여 검술을 가르침은 너로 하여금 재주를 인연으로서 귀인과 만나게 하려 함이니, 네 후 일에 마땅히 백만 군중에 들어가 검극 사이에 좋은 인연을 이루리라.’
하였습니다. 다시 금년 봄에 첩더러 이르기를
‘천자가 대장군으로 하여금 토번을 치시매, 찬보가 방을 붙여 자객을 불러 당나라 장군을 해치려 할 터이니, 너는 이 기회를 잃지 말고 산에서 내려가 토번국에 가서 모든 자객들과 더불어 검술을 겨루어 일변 당장의 급한 화를 면하고 또한 전생의 좋은 연분을 맺으라.’
하기로, 토번국에 가서 몸소 성문에 붙은 방을 떼어 가지고 들어가 분즉 찬보가 첩을 불러 먼저 온 여러 자객으로 더불어 재주를 견주게 하기에 첩이 검술을 부려 으뜸이 되니, 찬보가 크게 기꺼워하여 첩을 보내면서 말하되
‘네 당나라 장수의 머리를 베어 온다면 후에 내 너를 귀비로 삼겠노라.’
하더이다.
이제 장군을 만나 뵈오니 과연 스승의 말씀과 같은지라. 바라옵건대 첩은 시비의 반열에 참여하여 좌우에 모시려 하오나 장군께옵서는 과연 허락하시겠나이까?”
원수가 여인의 자초지종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대답한다.
“낭자가 이미 죽게 된 목숨을 구하고 또 몸으로써 섬기고자 하니 이 은혜를 어찌 다 갚으리요? 백년해로하는 것이 실로 내 뜻이라.”
하고, 이어서 동침하니 창검의 빛으로 화촉을 대신하고 칼소리로 거문고를 대신하니 바로 군막 속일지언정 호탕한 정이 산과 같고 또한 바다와 같았다.
“이로부터 원수는 거처할 곳이 아닐 뿐더러 군병의 사기가 발양치 못할까 두렵나이다.”
하고 이어 심요연이 돌아가려 할 때, 원수가 이르기를
“낭자는 범상 여자에 견줄 바가 아니기로, 나에게 기모와 비계를 가르쳐 도적에게 써 보기를 바라오.”
심랑이 이에 대답하기를,
“첩의 이 일은 스승의 명으로 말미암아 나왔사오나, 스승께 길이 하직은 아니하온지라 돌아가 잠시 스승을 모시고 있다가 장군께서 군사를 돌이킴을 기다려 서서히 황성으로 나아가 뵈옵나이다. 또한 토번의 자객이 많으나 첩의 적수가 없으니 첩이 귀순한 줄 알면 생심을 돋울 자 없을 터이니 아무 염려마옵소서.”
하더니 손으로 허리춤을 만져 구슬 한 개를 꺼내어 주면서 이르기를,
“이 구슬의 이름은 묘아완이니 찬보의 머리에 꽂았던 것이 오라, 장군은 사자를 보내어 이 구슬로 하여금 첩이 다시 돌아갈 뜻이 없는 줄 안게 하소서.
앞길에 반사곡(뱀같이 긴 골짜기)이 있는데 장군께서 반드시 그 길로 지날 것이옵고, 또 먹을 물이 없사오니 장군께서는 안심하시고 우물을 파서 군사를 먹이심이 좋을까 하나이다.”
하고, 이어서 구슬을 던지기에 원수가 또 계교를 묻고자 하였더니, 심랑이 한 번 뛰어 공중으로 오르자 그 거처를 알 수 없었다.
원수가 모든 장졸들을 모아 놓고 심랑의 일을 말하니, 제 장군과 장졸들이 대원수의 행복과 위엄이 도적으로 하여금 두렵게 함이니 필연 신이 와서 도운 것이라 하였다.
양원수는 즉시 사람을 적진으로 보내어 묘아완 구슬을 찬보에게 보내고 드디어 행군하여 태산 밑에 이르렀다. 그러나 산골길일 매우 좁아 겨우 말한 필이 지나갈 형편이기에 석벽을 붙잡고 시냇가를 따라서 나아가 수백 리를 지나자 비로소 넓은 평지가 있어 유진 하고 군사를 쉬게 했다. 군사들이 피곤하고 목이 타서 물을 찾으나 얻지 못하다가 산 밑에 큰 연못이 있는 것을 보고 다투어 마셨다. 그러나 잠시 후에 물을 마신 모든 병사들이 온몸이 푸른 빛을 띠고 벙어리가 되어 숨소리가 멀어지며 죽으려 했다.
원수가 괴이하게 여겨 몸소 살펴보니 물빛이 심히 푸르고 깊이를 측량치 못하겠고 냉기가 마치 가을 서리 같은지라, 비로소 깨달으며 이르기를
“필연 심요연이 말하던 반사곡이로다.”
하고, 병에 걸리지 않은 남은 군사들을 재촉하여 우물을 파게 하나 모든 군사가 수백여 곳에 십여 길씩이나 파 보아도 물이 솟는 곳이 하나도 없기에 원수가 매우 민망히 여겨 진을 다른 곳으로 옮겨 치려 하는데, 홀연 산 뒤로부터 북소리가 나며 진동하는 듯이 산과 골짜기에 울리니 이는 적병이 험한 곳에 몰려 있다가 원수의 군사가 돌아갈 길을 끊으려 함이었다.
군사들은 목마른데 앞뒤 길이 막힌 지라 바로 곤경에 빠져들었기에 원수는 장차 도적을 물리칠 계교를 생각하기 위해 장막 안에 앉았다. 몸이 피곤하여 졸고 있는데 홀연 기이한 향내가 장막에 가득 차며 계집아이 둘이 원수 앞으로 나아와 서는데 그 용모가 신선 같기도 하고 귀신같기도 했다.
계집아이들이 원수에게 아뢰되,
“우리 낭자의 말씀으로 귀인께 아뢰고자 하오니, 바라옵거니와 귀인은 누추한 곳에 한 번 들르시기를 아끼지 마옵소서.”
원수가 물었다.
“낭자는 누구이며 어느 곳에서 왔느냐?”
계집아이가 대답하되,
“우리 낭자는 곧 동정용왕의 작은 따님이온데 요즘 잠시 궁중을 떠나 이곳에 와 머무르시나이다.”
“용왕이 사는 곳은 수부요, 나는 인간계의 사람이니 대체 무슨 술법으로 내 몸을 용궁으로 가게 하겠는고?”
“신마를 이미 문 밖에 매어 놓았사오니, 귀인이 타시면 자연 그곳에 이르게 되시오리다.”
원수가 계집아이들을 따라 진문 밖에 나아가니 추종들의 옷차림이 다 이상하였다. 그들이 원수를 거들어 말에 올리니 말의 걸음이 흐르는 것 같고 말굽에서 먼지가 일어나지 아니하더니, 이윽고 수부에 다다르자 호화롭게 꾸민 궁궐이 화려하게 임금이 계심 곳 같았다. 문을 지키는 군사가 모두 물고기 머리에 새우 수염이었다.
계집아이가 수명이 안으로부터 나와 문을 열고 원수를 인도하여 당상에 오르니, 전각 가운데 백옥의 교의를 남향으로 놓았는데 시녀가 원수에게 청하여 그 위에 앉게 하고 비단 자리를 깔아 놓고서 곧 내전으로 들어가더니 얼마 아니되어 시녀 십여 인이 낭자한 사람을 인도하여 왼편 월랑으로부터 전각 앞에 이르렀는데 그 자태가 아름답고 의복이 산뜻함은 가히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시녀 하나가 앞으로 나아와 청하되,
“동정 용왕의 공주께서 원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원수가 놀라며 피하고자 하나 시녀가 만류하여 자리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하고, 그 용녀가 앞을 향하여 네 번 절하는데 패옥소리는 맑고 꽃다운 향기가 코를 찌르는 듯했다. 원수도 답례하고 전상에 오르기를 청하니 향기가 코를 찌르는 듯했다. 원수도 답례하고 전상에 오르기를 청하니 청하니 용녀는 사양하며 작은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원수가 말하기를,
“소유는 인간계의 천한 몸이요, 낭자는 수부의 용녀이시거늘 어찌 예모가 이토록 지나치게 공손하시나이까?”
용녀가 대답하기를,
“소녀는 동정용왕의 막내 딸 백능파이온데, 갓났을 적에 부왕이 옥황상제께 뵈올 때 장진인(장정상, 장도릉의 42대 손으로 공무 때 정일개교진인의 호를 받음)이 소녀의 사주 점괘를 뽑아 보고 이르기를, ‘공주께서는 전신이 선녀로서 죄를 범하고 귀양을 와서 왕의 딸이 되었으나 영화를 뉠꼬 마침내 부처님께로 돌아가서 큰 중이 되리라.’
하였으니, 우리용의 무리는 수족의 조종으로서, 사람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이 큰 영광으로 알고 신선과 부처님에 이르러서는 더욱 앙망하는 바이옵니다.
소녀의 맏형은 처음에 경수용궁의 며느리가 되었더니 내외가 화합치 못하여 두 집 사이는 틀어졌고, 유진군(유의)에게 개가하자 친척들이 높이고 온 집안 사람이 공경하나 첩인즉 아버님은 바른 인연을 찾아서 일신의 영귀함이 필시 맏형보다 나을 것이라는 진인의 말씀을 들으신 후로는 소녀를 각별히 사랑하시고, 궁중의 대소 시녀 들고 하늘 위의 신성같이 대접하였나이다. 차츰 자라나매 남해용왕의 아들 오현이 소녀에게 다소 자색이 있다는 말을 듣고 부왕께 통혼하오니, 우리 동정은 남해용왕의 아랫관원인 까닭에 부친은 감히 앉아서 거절치 못하고, 몸소 남해로 가서 장진인의 사주 이야기를 아뢰고 즐겨 따르지 아니하였으나 혼담이 급하기로, 소녀가 스스로 헤아리되 ‘만일 부모 슬하에 있으면 필연 몸에 욕이 미치리라.’
하고, 슬하를 떠나 몸을 빼어 도망을 하고 가시덤불을 헤치며 집을 짓고, 홀로 변방에 숨어서 구차로이 세월을 보내오나, 남해의 핍박이 더욱 심하기에 부모께서 참다 못해 말하기를
‘딸아이는 사람 따르기를 원치 아니하고 멀리 도망하여 깊이 홀로 세월을 보냈나이다.’
하였더니, 남해 왕자가 소녀의 외로운 신세를 업신여겨 몸소 군사를 이끌고 와서 소녀를 핍박코자 하였나이다. 다행히 소녀의 간절한 소원에 천지 신명이 감동 하사 깊은 못의 물이 갑자기 변하여 차기가 얼음 같고 어둡기가 지옥 같아서 타국의 군사는 능히 쉽게 들어오지 못하였나이다. 이에 힘을 입어 소녀는 이렇듯 온전하고 지금에 이르도록 위태로운 목숨을 보존하고 있사옵니다. 소녀가 오늘 당돌하게 귀인을 청하여 누추한 곳에 왕림하시게 함은 다만 소녀의 정경을 아뢰고자 할 따름만이 아니옵나이다. 이제 천자의 군사가 구차하옴이 이미 오래고 우물에 물이 나지 아니하여, 흙을 파고 땅을 뚫는 것이 또한 수고스럽거늘, 물을 얻지 못하면 군사의 힘을 지탱하지 못할 것이 또한 수고스럽거늘, 물을 얻지 못하면 군사의 힘을 지탱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이 물은 본디 청수담이더니 소녀가 와서 거처함으로부터는 물맛이 심히 흉악하여 마시는 자는 병이 나기 때문에 이름을 고쳐 백룡담이라 부르나이다. 이제 귀인이 오시어 소녀가 의지할 곳을 얻었사오니 귀인이 오시어 소녀가 의지할 곳을 얻었사오니 귀인의 근심이 곧 소녀의 근심이 오라, 감히 미력한 소견이나마 의를 다하여 군공을 돕지 아니하리이까? 이제로부터는 물 맛이 예전과 같이 달 것이니 군사들로 하여금 마셔도 해가 없고, 병난 군사들도 또한 쾌차할 것이옵니다.”
원수가 이르기를,
“이제 낭자의 말을 들으니 우리는 하늘이 정한 연분이라, 월로(월하노인. 남녀의 인연을 주관한다고 함)의 언약을 어지간히 맞출 수 있음직한 데, 공주의 뜻이 또한 나와 같으뇨?”
용녀가 이에 대답하되,
“소녀가 몸은 비록 낭군께 허락키로 하였사오나, 지레 낭군을 모시고 인연을 맺음에 가당치 않은 것이 세 가지옵니다. 그 첫째는 부모를 돌아보지 않음이요,
둘째는 환골탈태(환골은 범골이 선골로 바뀜이요, 탈퇴는 옛제도를 새로운 것으로 개조함)한 후에야 가히 귀인을 모실 것이거늘, 이제 비늘 껍질에 비린 지느러미와 갈기를 지닌 누추한 몸으로 귀인의 자리를 더럽히지 못할 것이요.
셋째로 남해 왕자가 나졸을 시켜 이 근처를 가만히 더듬어 살피니 만일 그가 알게 되면 필연 한바탕 풍파를 일으킬 터이온즉, 그 노여움을 격동시킴은 해로울까 두려워함이옵니다. 그러니 원수께서는 모름지기 속히 진으로 돌아가 군사를 바로잡고 도적을 멸하사 큰 공을 이뤄 개가를 부르고 상경하시면 소녀가 마땅히 치마를 걷고 물을 건너 귀인의 장안댁으로 따라가오리다.”
원수가 말하되
“공주의 말이 이처럼 가상하나 내가 생각하매 공주가 이곳에 와 있는 것이 다만 끗을 지킬 뿐 아니라, 또한 용왕이 공주로 하여금 여기에 머물러 소유가 오기를 기다려 곧 따르게 하라 함이니, 오늘부터 서로 짝이 됨이 어찌 부모의 뜻이 아니겠느뇨? 또한 공주는 신명한 후신이요, 신명한 성품이라 사람과 귀신 사이를 넘나들매 간 데마다 옳지 아니함이 없은즉, 어찌 비늘과 지느러미와 갈기로써 그대를 꺼려하리요? 소유가 비록 재주 없으나, 천자의 명을 받자 와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비렴(풍신)으로 길잡이를 삼고 해약(해신)으로 후진을 삼으니, 저 남해 왕자를 모기나 개미 같이 볼 따름이라. 이제 그가 만일 스스로 헤아리지 못하고 망령되어 항거코자 하면 내 칼이 더럽힐 따름이렸다! 오늘밤 다행히 서로 만났으니, 좋은 때를 어찌 헛되이 지내며 아름다운 기약을 어찌 쉽사리 저버릴 수 있으리요?”
하고는, 용녀를 이끌고 자리에 드니 그 즐거움은 꿈이냐 생시냐 하는 것이었다.
양원수가 남해 태자를 물리치다
이튿날 새벽녘에 우레 같은 수리가 잇따라 일어나 수정궁으로 공주가 깜짝 놀라 일어나니, 궁녀가 급히 아뢰되
“남해 태자가 무수한 군병을 거느려 산 밑에 진을 치고 양원수와 승부 겨루기를 청하나이다.”
원수가 대노하여 이르기를
“미친 아이가 어찌 감히 이러느뇨?”
하고, 소매를 떨치며 일어서서 물가로 걸어 나아가니, 남해 군사는 이미 백룡담을 에워싸고 떠드는 소리가 크게 진동하여 살기가 사면에 뻗치며, 이른다
태자라는 자는 말을 달려 진두에 나아와 원수를 향해 크게 꾸짖기를, “너는 어떠한 사람이기로 남의 아내를 빼앗아 가느냐? 맹세코 너와 더불어 이 천지간에 살지 아니하리라.”
하기에, 원수가 말을 세우고 태자를 크게 비웃었다.
“동정 용녀가 나와 더불어 맺은 연분은 천궁에 다 기록한 바요, 진인이 아는 바이다. 나는 천명을 준수할 뿐이거늘, 요망한 고기 새끼가 무뢰함이 어찌 이 같을꼬?”
이어서 군사를 지휘하여 싸움을 재촉하니, 태자가 대노하여 천만 가지의 물고기들에게 영을 내리니, 이제독과 별참군(제독은 무직의 최고관, 참군은 참모 군무의 준침)이 기운을 돋우고 용맹을 내어 걸어나오기에 원수가 한 번 지휘하여 다 목을 베고, 백옥 채찍을 들어 한 번 휘두르니 백만 군병이 짓밟히며 삽시간에 부스러진 비늘과 껍질이 너저분했다.
태자는 몸에 수개 처를 창에 찔려 능히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마침내 원수의 군사에게 잡힌 꼴이 되니, 이를 결박하여 원수의 말 앞에 대령한즉, 원수는 크게 기꺼워하며 징을 쳐서 군사를 돌리니 수문군이 아뢰기를,
“백룡담 공주가 몸소 진 앞에 나아가 원수께 치하를 드리고 군사를 호궤(술과 음식을 내어 군사를 위로함)코자 하시나이다.”
원수가 사람을 시켜 맞아들이고, 용녀는 원수가 승전함을 치하하고 술 백 석과 소 백 필로써 군사를 위로하였다. 모든 군사들이 배불리 먹고 즐거워하여 춤추고 노래하니, 사기의 용맹함이 전보다 백배나 더하였다.
원수가 용녀와 더불어 한자리에 앉아서 남해 왕자를 잡아들여 소리를 높여 꾸짖되,
“내 천자의 명을 받아서 사방의 도적을 치매 일만 귀신도 감히 내면을 거역하는 자 없거늘, 네 한낱 조그마한 아이가 천명을 알지 못하고 감히 대군을 거역하니 이는 스스로 죽기를 재촉함이렸다. 여기 한 자루 보검이 있는데, 이는 위정(당의 정치가) 승상이 경하의 용을 베던 아주 잘 드는 칼이라, 내 마땅히 네 머리를 베어 우리 군사의 위엄을 떨칠 것이로되, 너의 집이 남해를 진정하여 인간계에 비를 내려 만인에게 공이 있는 고로 각별히 용서하노니, 지금부터 전의 행실을 고쳐 다시는 공주께 죄를 짓지 말렸다!”
하고는 끌어 내치니, 남해 용자는 크게 숨도 못 쉬고 쥐 숨듯 돌아갔다.
홀연 서기가 동남으로부터 일더니 붉은 노을이 영롱하고 산구름이 찬란하며, 기치와 절월이 공중으로 내려오며, 붉은 옷 입은 사자가 종종걸음으로 나아 와 이르기를,
“동정 용왕이 양원수께서 남해군을 격파하고 공주의 위급을 구하심을 아시고, 친히 진문 앞에 나아와 치하코자 하시나 몸이 정사에 매여 감히 마음대로 처단치 못하시는 고로, 바야흐로 대연을 별전에다 베풀고 원수께 앙천하오니 원수는 잠시 왕림하소서. 대왕이 또한 소신으로 하여금 공주를 모시고 한가지로 돌아 오라 하시더이다.”
원수가 이에 답례하여 이르되,
“적군이 비록 물러갔으나 진 친 것이 아직 남아 있고, 또한 동정호가 만리밖에 있으니 오고 가는 사이에 날짜가 오래 걸릴 터인즉, 군사를 거느리는 자가 어찌 감히 멀리 나가리요. ?”
사자가 다시 말하기를,
“이미 여덟 마리용으로 수레에 멍에를 갖추었으니, 반나절이면 족히 다녀오리이다.”
양원수가 용녀와 더불어 용거에 오르니 이상한 바람이 바퀴를 굴려 공중으로 올라가자, 자못 흰 구름이 일산같이 세계를 덮을 따름이더니, 차츰 내려가 동정호에 이르니 용왕이 멀리 마중 나아 와 맞았다. 주객의 예의를 차리고 장인과 사위의 정을 펴며 허리 굽혀 절하고 위층 전각에 오른 다음, 잔치를 베풀어 정성껏 대접했다.
용왕이 친히 원수에게 술잔을 전하면서 사례하여 마지않는다.
“과인이 덕이 없어 한낱 딸자식으로 하여금 능히 그 곳을 편하게 해주지 못했는데, 이제 원수의 엄숙한 위세로써 남해의 미친 아이를 사로잡고 딸아이를 구하니, 그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땅보다 두텁도다.”
원수가 답사하되
“이는 다 대왕의 위령이 미친 바이니 소유에게 무슨 공이 있사오리까?”
하고 술에 취하니, 용왕이 분부를 내려 여러 가지 풍악을 들려주었다.
그 음률이 융융하여 들어보니 절조가 있으나 시속의 풍악과 다름이 있었다.
장사 천 명이 전각 좌우로 늘어서서 각기 칼과 창을 벌리고 큰 북을 울리며 나오는데, 여섯 쌍의 미인들이 부용의를 입고 명월패를 차고 한삼 소매를 가볍게 날리며, 쌍쌍이 마주 보며 춤을 추니 보니 참으로 장관이었다.
양원수가 수부의 풍악을 듣다가 묻되,
“이는 무슨 곡조오니이까?”
용왕이 이에 대답하기를,
“옛날에는 수부에 이 곡조가 없었는데, 과인의 맏딸이 경하왕의 세자비가 되자 유생이 전하는 글로 말미암아 그 목양의 곤함을 만날 줄 알고, 과인의 아우 전당군이 경하왕과 더불어 크게 싸워 무찌르고 딸아이를 데려오니, 궁중 삶들이 이 풍악을 짓고 춤을 붙여 이름하여 부르되 (전당군 파진악)이니 (귀주 환궁악)이라 일컬었는데, 궁중 잔치에서 때때로 아뢰더니 이제 원수가 남해 용왕을 격파하고 우리 부녀도 서로 만나게 하니 전당군의 옛일과 흡사한 고로, 그 이름을 고쳐 원수 파군악이라 하노라.”
원수가 다시 물어 보되,
“유생이 이제는 영주의 선관이 되어 그 마을에 있으니 어찌 소생이 감히 만날 수 있으리요?”
술이 아홉 순배에 원수가 하직하되,
“군중이 다사하여 오래 머무르지 못하오니, 바라건대 대왕은 만수무강 하소서.”
또 용녀를 돌아보며 일러두기를
“공주는 뒷기약을 잊지 마오.”
하니, 용왕이 대신 대답하되
“그것은 염려를 말라. 마땅히 언약대로 하리라.”
하고, 궁문밖에 나아가 전송할 때에 원수가 얼핏 보니 앞에 산악이 우뚝 높은데 다섯 봉우리가 구름 사이로 솟아올라 유람한 경개에 있는지라, 이에 용왕께 묻기를
“이 산은 무슨 산이오리까? 소유가 천하 명산을 두루 구경하였으나, 오직 형산과 파산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용왕이 이르기를,
“원수는 이 산의 이름을 알지 못하느뇨? 곧 남악 형산이니 신기하고도 이상한 산이거늘 어찌 알아보지 못하는가?”
원수가 이에 간청하되,
“어찌 하오면 이 산에 오를 수 있겠나이까?”
용왕이 대답하되,
“오늘 해가 아직 늦지 아니하였으니 잠깐 구경하고 돌아가도 또한 저물지 않으리로다.”
원수가 사례하고 오르니 벌써 형산 아래였다. 한 길을 찾아 한 언덕을 넘고 한 골짜기를 건너니, 산이 더욱 높고 지형이 점점 그윽하며 일만 가지 경개가 널려 있어 산의 구석구석을 이루 다 구경할 수 없으니, 이른바 (일천의 높은 봉우리가 다투어 솟아 있고, 일만의 깊은 골짜기가 다투어 흘러가는 도다)의 경치였다.
원수가 사면을 둘러보자 그윽한 생각이 저절로 떠오르기에 탄식하며 홀로 뇌이기를,
“진중에서 오래 몸이 시달리고 정신이 고달프니, 이 몸의 속세 인연이 어찌 그리 중할꼬? 공을 이루고 물러가 초연하게 만물 밖의 사람이 되리로다.”
문득 들으니, 경종 소리가 수목 사이로 울려오기에 원수가 한마디하였다.
“필시 절간이 멀지 않으리라.”
하고, 언덕에 올라 보니 한 절이 있거늘, 전각이 깊숙하여 그윽히 보이고 여러 중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 노승 한 사람이 높이 앉아 바야흐로 경문을 외우며 설법하는데, 눈썹이 길고 희며 골격이 맑고 파리하여 그 연세가 많음을 가히 알겠더라.
노승은 원수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제자들을 거느리고 당에서 내려와 맞으려 이르되,
“산 속 사람이 듣는 바 없어 대원수께서 행차하심을 전혀 알지 못하여 문 밖에 나아가 영접치 못하였소이다. 청컨대 원수는 이를 용서하소서 그러나 이번은 아주 오시는 것이 아니오니, 모름지기 전각에 올라 불전에 합장 배례하고 돌아가소서.”
원수는 곧 부처님 앞에 나아가 분향 재배하고 전각에 내려오다가 갑자기 발을 헛딛고 말아다. 이에 놀라 깨니 몸은 진중에 있으며 책상을 의지하고 앉았는데 동녘이 이미 밝았는지라, 원수는 꿈을 이상히 여겨 여러 장수를 불러들여 묻기를
“제공들도 역시 꿈을 꾸었느뇨?”
장수들이 일제히 대답하되,
“소장들도 꿈에 원수를 따라 신병귀졸과 더불어 크게 싸워서 이를 격파하고, 그 대장을 사로잡아 돌아왔으니, 이는 실로 도적을 격파하고 수괴를 사로잡는 길조로소이다.”
원수가 꿈에서 겪은 일을 낱낱이 말하고 제장들과 더불어 백룡담에 가 보니, 부스러진 비늘과 깨어진 껍질이 땅에 가득 깔리고 흐르는 피가 내를 이루었다.
또한 원수가 몸소 표주박을 들고 물을 떠서 먼저 맛보고서 뒤이어 병든 군사들을 먹이니, 그 병이 깨끗이 낫는지라, 도적이 이 말을 듣고 몹시 두려워하여 곧 항복하고자 했다.
태후와 공주가 정경패의 발원서를 보시다
양원수는 출전한 이후 첩보를 잇따라 올리니 천자가 매우 기뻐하시고 하루는 태후께 문안드릴 적에, 양소유의 공을 칭찬하시되
“옛날의 곽분양(곽자의)이 곧 오늘의 양소유로소이다. 그가 돌아옴을 기다려 즉시 승상의 벼슬을 내려 세상에 드문 공을 갚을까 하옵니다. 그러하오나 공주의 혼사를 확정하지 못했사오니, 양소유가 마음을 돌려 명을 순수하면 다행하옵거니와, 만일 또 고집하면 공신을 아무래도 죄 주지 못할 것이요, 또한 그 뜻을 아무래도 빼앗지 못할 터이오니, 조처할 도리가 실로 알맞기 어려워 극히 민망하옵니다.”
태후가 이르시기를
“정사도의 딸아이가 실로 아름답고 또한 소유와 더불어 기왕에 서로 보았다 하니, 소유가 어찌 즐겨 정녀를 버리겠소? 소유가 변방에 나아간 틈을 타서 조서를 내려 그 아이로 하여금 타인과 성혼케 하면 소유도 소망이 끊어진 터이니, 군명을 어찌 가히 따르지 않으리요?”
상은 오래도록 대답하지 아니하시더니 이윽고 말없이 나가셨다.
이때에 난양공주가 태후 곁에 있다가 태후께 여쭈되,
“태후마마의 하교는 사리에 크게 어긋나나이다. 정녀의 혼인 여부는 곧 그 집의 일이요, 어찌 조정에서 간여할 바이겠나이까?”
태후가 이르기를,
“이 일은 너에게는 중하고도 어려운 일이요, 나라의 큰 예절이니, 내 너와 더불어 의논코자 하노라. 병부상서 양소유는 풍채와 문장이 만조제신 중에서 가장 뛰어날 뿐 아니라, 지난날 퉁소 한 곡조로써 너와 천정연분임을 알았으니, 결코 양소유를 버리고 타인을 구하지 못할지라. 이럼으로써 이 일은 극히 난처하니, 소유가 돌아오거든 혼례를 먼저 치르고서 소유로 하여금 정녀에게 다시 장가들어 첩을 삼게 하면 소유도 감히 사양치 못할 듯하나 너의 의향을 알지 못하는지라 이렇듯 주저하느니라.”
이에 공주가 다시 여쭈되,
“소녀는 평생 투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오니, 정녀를 어찌 꺼려하오리까 마는, 다만 양상서가 처음에 납채하였으니 이후에 다시 첩으로 삼는 것은 예의가 아니오며, 정사도는 또한 누대의 재상이요 명문 귀족이니, 그의 여식으로 하여금 남의 첩이 되게 함도 역시 억울하지 아니하오리까? 이 또한 옳지 않나이다.”
태후가 물으시되,
“그러면 네 뜻이 어떠하냐?”
공주가 대답하기를,
“국법에 정하기를 제후는 부인이 셋이 온데, 양상서가 공을 세우고 돌아오니 크면 왕이요, 적어도 공후가 될 것이오니, 두 부인을 두는 것이 분수에 넘치는 바 결코 아니올지라. 이 때를 맞이하여 정녀에게 정실로 장가들게 하심이 어떠하나이까?”
태후가 말씀하시되,
“그것은 실로 불가하니라. 너는 선제께서 사랑하시던 딸이요, 금상이 위하는 누이이니 몸이 실로 귀중하고 지위가 또한 높거늘 어찌 가당치 않게 여염집 여자와 더불어 어깨를 견주며 한 사람을 섬길꼬?”
공주가 이에 대답했다.
“옛날의 성주나 명군들도 어진 사람을 높이고 선비를 공경하여 스스로 몸의 존귀함을 잊고, 오직 그 덕을 사랑하여 만승(1만 대의 병거)천자의 몸으로서 필부를 벗삼으셨으니 어찌 귀천을 가릴 수 있겠나이까? 소녀가 들으매 정녀의 용모와 절행이 비록 고금의 손꼽는 열녀라도 이보다 낫지 못하리라 하오니, 과연 사실이 이 말 같을진대 저와 같이 어깨를 견주는 것은 역시 소녀에게 다행할 따름이요, 욕은 아니로소이다. 그러하오나 남의 말이란 틀리기 쉬워서 허실을 믿기 어렵사오니, 소녀는 될 수 있으면 모소 정녀를 보고 그 용모와 재덕이 소녀보다 과연 나으면 우러러 섬길 것이요, 만일 그렇지가 못하면 첩을 삼게 하거나 종을 삼게 하거나 개의치 아니하오리이다.”
태후가 탄식하되,
“재주를 시기하고 아리따움을 질투함은 여자의 상정이거늘, 내 딸아이는 남의 재주를 사랑하기에 제 몸에 있는 것 같이 하고, 남의 덕행을 공경하기를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하니 그 어미 된 자가 어찌 기쁜 마음이 없으리요. 또한 공주의 뜻이 정녀를 한 번 보고 싶어하니 내일 마땅히 조서를 정사도에게 내리게 하리라.”
하자, 공주가 여쭈되
“비록 마마의 명이 있사와도 정녀는 필연 칭병하고 들어오지 아니하오리니, 그렇다고 재상가의 처자를 함부로 협박하여 부르시지 못할 터이온즉, 혹시 도관과 이원에 분부를 내리시와, 미리 정녀의 분향하는 날을 알아두면 그날에 정녀를 한 번 만나 보기란 어렵지 않을 듯하나이다.”
하였다.
태후가 이를 옳게 여겨 내관을 시켜 도관에 두루 알아보시니, 정해원의 여승이 아뢰기를
“정사도댁에서 불공을 우리 절에서 올리되, 그 소저는 본디 절간에 왕래하지 아니하옵고, 다만 삼일 전에 소저의 시비 가춘운이 소저의 명을 받고 그 발원하는 글을 부처님께 바치고 갔사오니, 바라건대 내관은 이 글을 가지고 태후낭랑께 복명함이 어떠하시나이까?”
하였다.
내시는 이를 응락하고 궁궐로 돌아와 그 연유를 태후에게 아뢰면서 정소저의 발원서를 올리니, 태후가 이르시되
“진실로 이 같을진대 정녀의 얼굴을 보기는 어려우리라.”
하시고, 공주와 더불어 그 발원서를 보셨다.
제자 정경패는 삼가 백배하고 비자 춘운을 목욕재계하여 보내면서 여러 부처님 앞에 비나이다. 제자 죄악이 매우 무겁고 업장이 미진하여 세상에 나매 납채를 받았기로 장차 몸을 양씨 문중에 바치고자 하였삽는데, 양랑이 부마 간택에 뽑히매 군명이 지엄하시니 제자는 양씨와 더불어 장차 어찌하오리까?
다만 하늘의 뜻과 사람의 일이 서로 어긋남을 한탄하옵고 기박한 몸이 여망이 없사오며, 몸이 비록 허락지 아니하였으나 마음은 이미 붙였사온즉 아직은 부모 슬하에 의지함으로써 미진한 세월을 보내고자 하옵는데, 이 몹시 궁박한 신세로 말미암아 다행히 일신에 한가함을 얻은 고로 이에 감히 정성을 부처님 앞에 올려 제자의 심정을 아뢰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여러 부처님께서는 이를 통촉하시옵소서. 자비지심을 드리우셔 제자의 늙은 부모로 하여금 상수를 누리게 하옵시고, 제자의 몸으로 하여금 질병과 재앙이 없이 부모 앞에서 고운 색옷을 입고, 새 새끼를 길러 희롱하는 즐거움을 다하게 하옵소서.
부모가 백년해로를 하시고 돌아가신 다음에는 맹세코 부처님께로 돌아와 세속 인연을 끊고, 경계하는 말씀을 복종하여 마음에 재계하고 경문을 외우며 몸을 정결히 하여 부처님 앞에 예배하여 부처님의 두터운 은혜를 갚으오리다.
춘운이 본래 경패와 더불어 크게 인연이 있사와 이름은 비록 종과 상전이오나 정의는 형제와 같사오니 그가 일찍이 주인의 명으로 양씨의 소실이 되었삽는데, 일이 마음과는 어긋나 아름다운 인연을 보존치 못하옵고 길이 양씨를 하직하고 다시 주인에게 돌아왔사옵니다.
저희들은 아무래도 사생 고락을 같이 하올 지라, 여러 부처님께 제자 두 사람의 가슴을 굽어살피시고 세세생생에 다시 여자 몸이 되는 것을 벗어나게 하시와 전생의 죄를 소멸하고 후세의 복을 주시며 좋은 땅에 환생하여 유쾌한 환락을 길이 누리게 하옵소서.
공주는 정소저의 발원서를 보고 나서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한 사람의 혼사로 말미암아 두 사람의 신세를 그르치게 하니, 이는 크게 음덕에 해로 우리로소이다.”
이 말을 들으신 태후는 아무런 대꾸가 없으셨다.
이 무렵 정소저는 부모를 모시고저 화기가 넘쳐흘러 조금도 신세를 원망함이 없는 듯했다. 그러나 최부인이 매양 소저를 보면서 슬프고도 섭섭함을 이기지 못하였고, 춘운이 소저를 모시고 문필과 기예를 힘써 익히며 수심을 억제하고 세월을 보내나 저절로 마음이 타고 간장이 녹아서 점점 초조해지기에, 소저는 위로 부모를 생각하고 아래로 춘운을 불쌍히 여겨 자못 심회가 산란하여 스스로 편안치 못하되 남들은 알지 못하더라.
소저가 모친의 답답한 마음을 위로할 때, 풍악과 모든 구경거리를 구하여 때때로 받들어 노모를 즐겁게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한 계집아이다 찾아와 수놓은 족자를 팔려고 하기에, 춘운이 그 족자를 펴 보니 한 폭은 꽃 사이에 공작새요, 다른 하나는 대숲에 자고 새더라. 춘운이 그 수놓은 솜씨를 흠모하여 그 계집아이를 기다리게 하고, 족자를 부인과 소저께 보여 드리고 여쭈기를,
“아가씨는 매양 춘운이 수놓은 것을 칭찬하는데, 시험삼아 이 족자를 한 번 보소서. 이는 선녀의 틀 위에서 나오지 않았으면 필연 귀신의 손으로 된 것이겠나이다.”
하자 소저가 부인 앞에서 족자를 펴 보고 놀라서 하는 말이,
“이즈음 사람은 이토록 공교한 솜씨가 없겠거늘 염색과 꾸밈새가 더욱 산뜻하여 옛것이 아니니 이상하도다.”
하였다. 이에 춘운을 시켜 계집아이에게 출처를 물으니, 계집아이가 대답하되
“우리 집 아가씨께서 수놓은 것인데 요즈음 객지에 계시므로 급한 용처가 생겨서 값의 과다는 따지지 아니하고 팔려 하나이다.”
춘운이 다시 묻기를,
“너의 아가씨는 뉘댁 아가씨며, 또 무슨 일로 객지에 머물러 계시느냐?”
계집아이가 대답하되,
“우리 아가씨는 이통판(통판은 관직명)의 매씨이신데, 통판 어른이 대부인을 모시고 절동 고을에 가 벼슬 사시오나, 아가씨는 병환이 있어 따라가지 못하옵고 외숙인 장별가(별가는 관직명) 댁에 머무셨는데 별가댁에 근일 사소한 연고 있기로 길 건너 연지점 사삼랑 집을 빌려 임시 거처하시면서 절동 고을에서 맞으러 오기를 고대하고 계시나이다.”
춘운이 들어가 그 말대로 아뢰니, 소저는 비녀와 가락지와 그 밖의 패물 등으로 값을 넉넉히 주고 족자를 샀다. 그리고 대청에 높이 걸어 놓고는 날이 저물도록 바라보며 칭찬해 마지 않더라.
이로부터 그 계집아이는 족자를 판 것으로 인연이 되어 정사도의 자택에 출입하여 비복들과도 사귀게 된지라, 그 소저가 춘운에게 이르되
“이씨 여자가 수놓는 재주가 이같이 뛰어나니 필연 비범한 사람일 터이니, 내가 시녀를 시켜 계집아이를 따라가서 그 소저의 용모를 보고 오라 하리라.”
이어서 영리한 비자를 가려뽑아 보내니, 비자가 계집아이를 따라가 본 즉, 여염집이라 몹시 협소하여 아예 내외하는 법이 없었다.
이소저는 정씨댁 비자임을 알고 음식을 먹여 보내니, 비자가 돌아와 아뢰기를
“그 아가씨의 고운 자태와 아리따운 용모는 우리 아가씨와 흡사하더이다.”
춘운은 이 말을 믿지 아니하고 비자를 나무라되,
“그 수놓은 솜씨를 보건대 결코 노둔한 재질은 아니겠거니와 어찌 그렇듯 지나친 말을 하느뇨? 이 세상에 우리 아가씨와 흡사한 분이 있다 함은 내 실로 믿지 못하겠노라.”
비자가 대답하기를,
“가 유인이 실로 내 말을 의심할진대, 곧 사람을 보내 보시면 내 말의 진실함을 알 것이옵니다.”
춘운이 이에 사사로이 한 사람을 보내었더니, 그가 돌아와 춘운에게 말하되
“괴이하다, 괴이하다! 그 아가씨는 곧 천상천녀요, 어제들은 말이 과연 옳으니 가 유인이 내 말을 의심하거든 몸소 가 보심이 좋을 듯하오이다.”
하고 아뢰었다.
춘운이 이르기를
“전후 말이 다 허망하도다. 어찌 두 눈이 없느뇨?”
하고, 서로 소리내어 웃어 제쳤다.
수일이 지나자 연지점에 사는 사삼랑이 정씨댁에 와서 부인께 아뢰되
“요즈음 이통판댁 소저가 이 늙은 것의 집을 빌려 거쳐 하는데, 그 소저의 고운 용모와 묘한 재주는 실로 처음 보는 바이옵니다. 하온데 그 소저가 정소저의 현숙한 절행을 깊이 사모 하와 한 번 서로 만나 맑은 말씀을 듣고자 하되 부끄러우며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 오라, 선뜻 말씀을 못하옵더니 이 늙은 것이 부인께 자주 나와 뵙는 줄을 알고는 부인께 사뢰어 보라 하시옵기에 이렇듯 와서 아뢰나이다.”
부인이 즉시 소저를 불러 이 뜻을 말하니, 소저가 여쭈기를
“소녀의 몸이 타인과는 다른 바 있사와 얼굴을 들고남과 대면코자 아니하오나, 듣자 하니 이소저의 위인과 범절이 모두 그 수놓은 솜씨와 같다 하오니, 소녀 역시 이소저를 꼭한 번 만나 보고자 하나이다.”
사삼랑 노파가 소저의 승낙을 듣고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이튿날 이소저가 비자를 보내어 내왕한다는 말을 먼저 알렸다. 느직하여 이소저는 휘장을 드리운 소옥교를 타고 시비 몇 사람을 거느리고 정사도 저택에 이르렀다. 이소저를 기다리고 있던 정소저가 침방으로 맞아들였다. 주객이 동서로 마주 앉으니 광채가 서로 빛나 방안이 찬란하므로 서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소저가 먼저 말하기를,
“지난번에 시비들이 인연으로 이 근처에 계시다고 말씀들었사오나, 이 몸은 신세가 기구한 사람이라 인사를 전폐하고 있기에 문후치 못하였삽더니, 이제 소저께서 욕되이 왕림하시니 감격하고 죄송 하와 사례할 바를 알지 못하겠나이다.”
이소저가 대답하되,
“소매는 우둔한 사람이오라, 부친을 일찍 여의고 모친이 편벽 되게 사랑하여 평생에 배운 일이 없고 아무런 재주도 가려낼 것이 없사와 스스로 한탄하기를,
‘남자는 뜻을 사방에 두어서 어진 벗을 사귀어 서로 배우고 서로 타일러 주는 일고 있거니와, 여자는 집안 식구와 비복 외에는 다시 대하는 사람이 없으니 규중이 막혔도다.’ 하였나이다. 공손히 듣사온즉 저저(여형)께서는 반소(동한의 여류문학가)의 문장에다 맹광(동한의 여인)의 덕행을 겸하여 몸을 중문 밖에 나지 아니하시고, 이름은 이미 구중궁궐에 들리시니 소매는 이러함으로써 스스로 비루함을 헤아리지 못하고 성덕의 광채를 접하고자 원하였더니, 이제 소저의 비리지 않음을 입사와 족히 소매의 평생에 소원을 이루게 되었나이다.”
정소저가 답사하되,
“저저 말씀이 바로 소매의 마음속에 있던 바옵나이다. 규중에 매인 몸이라 출입에 걸림이 있고, 이목에 가리움이 많으므로 본디 창해의 물과 무산의 구름을 알지 못하오니 이 또한 옅고 짧은 지식의 탓이라, 어찌 족히 이를 괴이하다 하오리까? 이는 바로 형산의 옥이 광채를 묻고 자랑하기를 부끄러워하며, 늙은 조개 속의 구슬이 고운 빛을 감추어 스스로 보배가 되는 것과 같나이다. 그러나 소매 같은 사람은 고루하오니 어찌 감히 과분하신 칭찬을 받으오리까?”
이어서 정소저가 다과를 내어놓고 환담을 주고받다가, 이소저가 말하기를
“소문에 듣사온즉 댁내에 가 유인(타인의 아내의 통칭)이란 사람이 있다 하오니, 어떻게 한 번 볼 수 없겠나이까?”
정소저가 이에 대답하되,
“소매도 역시 저저께 하려 했나이다.”
이에 춘운을 불러 뵙게 하니, 이소저가 일어나 맞을 적에 춘운이 놀라며 마음 속으로 탄복하기를
“전일 두 사람의 말이 과연 옳도다! 하늘이 이미 우리 소저를 내시고 다시 이소저를 내시니, 참으로 하늘의 뜻을 측량할 수 없도다.”
이소저도 또한 마음 속으로 헤아리되
‘가녀의 소문을 익히 들었거니와 그 사람됨이 소문보다 월등하니, 양상서가 어찌 아끼며 사랑치 않으리요? 마땅히 진중서와 더불어 어깨를 견줄 만하니, 만일에 가녀로 하여금 진녀를 본받게 하면 어찌 윤부인의 울음을 본받지 않을 수 있으리요? 대저 상전과 종의 자색이 이렇듯 빼어나고 또 재주가 있으니, 양상서가 어찌 놓을 수 있으리요?’
이에 춘운과 더불어 가슴 속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니, 그 정다워짐이 정소저나 다를 바 없었다.
이소저가 작별 인사로 말하되,
“날이 이미 늦었으매 더 앉아 이야기를 못하니 매우 안타깝사오나, 소매가 들어 있는 집이 다만 한길을 사이에 두었을 뿐이오니, 마땅히 한가한 틈을 타서 다시 찾아와 나머지 말씀을 들으려 하나이다.”
정소저가 이에 답사하되,
“외람히 왕림하심을 받잡고 이어서 좋은 말씀을 듣사오니 마땅히 당 아래로 내려가 사례 하올 것이나, 소매의 처신이 남과 다른 고로 감히 한 걸음도 문 밖에 나지 못하오니 바라건대 저저께서는 그 허물을 용서하시고 그 정을 받아 주소서.”
두 사람이 작별할 적에 오직 섭섭함을 이기지 못하여 차마 서로 손을 놓지 못했다.
정소저가 춘운한테 이르기를,
“보검이 비록 칼집 속에 감춰져 있어도 그 광채는 두우(정숙 중의 두성과 우성)를 쏘고, 늙은 조개가 비록 바다에 잠기나 기운이 누대를 이루거늘, 우리가 다 같이한 성안에 살면서 진작 듣지 못하였으니 심히 괴이하도다.”
춘운이 여쭈되,
“천첩의 마음에 한 가지 의심이 있사온데, 양상서가 매양 말씀하시기를 화주 진어사의 딸과 더불어 누각 위에서 보고 그를 객사에서 얻어 아름다운 언약을 맺었으나, 진어사 집의 환란으로 말미암아 일이 어긋났다 하시고서 절세의 미인이라 칭찬하시기에 첩이 또한 양류사를 보온즉 진실로 재주 있는 여자이오니, 혹시 그 여자가 성명을 감추고 아가씨를 사귐으로써 전일의 인연을 이루고자 함이 아닐까 하나이다.”
정소저가 말하기를
“진씨의 아리따움을 나도 또한 다른 길로 들었는데, 이 여자와 비슷한 점이 있으나 진녀의 집이 환란을 만나 궁녀가 되었다 하니, 어찌 능히 이곳에 올 수 있으리요?”
하고, 부인께 들어가 뵈옵고 이소저를 칭찬하며 마지않았다.
그러자 부인이 이르기를,
“나도 역시 한 번 청하여 보고자 하노라.”
하고, 수일 후에 시비를 시켜서 이소저의 왕림을 청하니 소저는 홀연히 응낙하고 정사도 저택에 이르기에 부인이 섬돌에 내려가 맞아들이니, 이소저는 자질의 예로서 뵙는지라, 부인이 매우 사랑하여 이르기를
“일전에 소저가 오로지 딸아이를 찾아 두터운 정을 드리우니 이 늙은 몸이 진심으로 감사하나 그 때는 신병이 있어 제대로 접대치 못하였으니 지금까지 부끄럽고 한탄하는 바로다.”
이소저가 엎드려 대답하되,
“이 몸이 저저께서 천상의 선녀 같사옴을 사모하되, 오직 멀리 내치실가 두렵더니, 저저께서 한번 만나매 형제의 의로써 이 몸을 대접하시고, 부인께서 또 자질의 예로 기르시니 이 몸의 소망에 과하온지라, 이 몸이 다하도록 문하에 출입하여 친어머님 같이 섬기려 하나이다.”
부인이 두번 세번 거듭하여
“나에게는 정말 과분한 말이로다.”
하더라.
정소저가 이소저와 더불어 반나절이나 부인을 모시고 앉아 있다가, 뒤이어 침방으로 청하여 춘운과도 한가지로 솔밭가에 세 사람이 마주 앉아, 은은하게 울리는 목소리로 기꺼이 주고받으니, 마음이 서로 통하고 정이 또한 친밀하여지는지라. 고금의 문장을 평론하고 부녀자의 덕행을 논의할 즈음 햇볕이 이미 서창에 비끼는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난양공주가 정소저와 궁궐로 들어가다
이소저가 돌아간 다음에 부인이 소저와 춘운에게 이르기를,
“내 친정과 시댁의 친척이 매우 많아 거의 천 사람에 이르는지라, 내 어려서부터 아름다운 자색을 많이 보았으되 다 이소저를 따르지 못하니, 이소저는 실로 우리 아이와 한 가지로 비등하매 의형제를 맞으면 실로 좋으리로다.”
소저가 춘운이 말하던 바의 진씨녀의 이야기로써 아뢰기를,
“춘운은 아무래도 의심이 없지 못하다 하나, 소저의 소견은 춘운의 생각과도 다르오니, 이소저는 자색 외에도 기상의 표일함과 몸차림의 단정함이 여염집이나 사대부집 부녀자들과는 각별히 다르오니, 진씨 같단 말로써 어찌 비기겠나이까? 소녀가 듣사온즉 난양공주가 용모와 마음씨가 아름답다 하오니, 혹 두려운 말씀이오나 이소저의 기상이 곧 난양공주인 듯하오이다.”
부인이 이르기를,
“공주를 나도 역시 보지 못하였으니 함부로 억측하지 못하려니와 비록 공주가 높은 자리에 있어 빛나는 이름을 얻었으나, 어찌 이소저와 서로 같을 수 있으리요?”
소저가 다시 여쭈기를,
“이소저의 종적이 다소 의심나오니, 후일 마땅히 춘운을 시켜 가서 그 동정을 살펴보라 하겠나이다.”
이튿날 정소저가 춘운과 더불어 바야흐로 이 일을 의논할 때, 이소저의 계집종이 정사도 댁에 이르러 말을 전하되
“우리 아가씨께서는 마침 절동으로 되돌아가는 배편을 얻어 내일 떠나려 하시는고로, 오늘 댁으로 들어와 부인과 소저께 작별 인사를 드리려 하시나이다.”
정소저가 중당을 청소하고 기다리니 이윽고 이소저가 당도하여 부인과 정소저를 뵈니, 이별하는 정이 아득하고 연연하여 어진 형이 사랑하는 아우와 이별함과 같고 방탕한 남자가 미녀를 보냄과 같더라.
이소저가 갑자기 일어나 재배하고 아뢰되,
“소질이 모친 슬하를 떠나고 오라버님과 이별한지 이미 한돌이 되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화살 같사와 아무래도 더 머무르지 못하오나 다만 부인의 은덕과 저저의 정의로서 마음이 실 같사와 풀고자 하오나 다시 맺혀지나이다. 소질이 이에 한 말씀이 있사와 저저께 간청코자 하오나 들어주지 않으실 까 두려워 먼저 부인께 여쭈나이다.”
하고는, 주저하며 말을 하지 아니하기에 부인이 묻기를
“낭자가 간청코자 하는 바는 무슨 일이뇨?”
이소저가 대답하되,
“소질이 선친을 위하여 바야흐로 남해대사(관음보살)의 화상을 수놓아 겨우 마치오매 오라버니가 절동 고을에 있고 소질은 여자의 몸이온고로, 아직 글하는 사람의 화상찬(화상에 쓰는 글)을 받지 못하와 장차 수놓은 것이 허사가 되게 되오니 매우 아까운 고로 소저의 두 어귀 글과 두어 줄 글씨를 받으려 하옵는데, 수폭이 매우 넓어서 펴고 접기에 어렵삽고 또 더럽힐까 염려되어 가히 가져오지 못하고, 부득이 잠깐 저저를 모셔다가 글과 글씨를 얻어 그로써 소녀의 어버이를 위하는 효성을 완전케 하고 그것으로써 원로에 서로 이별하는 회포를 위로케 하심을 바라오니 , 저저의 의향을 알지 못하와 감히 바로 청하지 못하옵고 부인께 우러러 사뢰나이다.”
부인이 돌아보며 이르기를,
“네가 비록 친척의 집이라 도 본래 왕래치 아니하였는데 이제 이소저의 청하는 바라 대체로 어버이를 위하는 지성에서 나옴이요, 하물며 소저의 우거하는 집이 지척이니 잠시 갔다 옴이 어려운 일이 아닐 듯하도다.”
소저가 처음에는 어려운 기색이 있더니 돌려 생각하고 속으로 깨닫기를,
‘이 소저의 행색이 바쁘니 아무래도 춘운을 보내지 못하겠기로 내 이 기회를 타서 그 종적을 탐지하리라.’
하고 , 이에 모친께 아뢰기를
“이소저의 청하는 바가 만일 등장한 일이면 실로 하기 어렵사오나 어버이를 위하는 효성은 사람마다 감동하는 바이니 어찌 따르지 아니하오리까? 그러나 날이 어둡거든 가볼까 하나이다.”
이소저가 매우 기뻐하며 사례하되,
“날이 저물면 글씨 쓰기가 어려울 듯하오이 저저께서 만일 길이 번거로움을 꺼리실진대 소매의 탄 바 교자가 비록 추하나 족히 두 사람의 몸을 용납할 터이오니 함께 가셨다가 저녁에 돌아오심이 또한 어떠하나이까?”
정소저가 대답하기를
“저저의 말씀이 매우 합당하오이다.”
하기에, 이소저는 부인께 엎드려 작별 인사를 드리고 춘운의 손을 잡아 이별의 인사를 나누고서 정소저와 더불어 한 교자를 타고 사도 댁의 시비 몇 사람이 뒤를 따랐다.
정소자가 이소저의 침방에 와 보니 벌여 놓은 것이 그다지 번잡하지는 아니하되 모두 훌륭한 물건들이요, 나오는 음식도 비록 간략하나 맛이 비길 데 없이 좋은지라, 유의하여 보자 다 의심되는데, 이소저는 오래도록 글 받을 말을 꺼내지 아니하고 날이 점점 저물어 가자 정소저가 이에 묻기를, “대사의 화상은 어느 곳에 봉안하였나이까? 소매는 급히 물러가고자 하나이다.”
이소저가 대답하되,
“마땅히 저저로 하여금 구경케 하리이다.”
말을 겨우 마치자마자 홀연 가마 소리가 문 밖에 들렸다. 기치가 길 위에 널려 있거늘 사도댁 시비들이 황망히 아뢰되,
“군병의 한 무리가 이 집을 에워싸니 낭자, 낭자여 어찌하겠나이까?”
정소저가 이미 기미를 알고 태연히 앉아 있는데, 이소저가 말하기를
“저저께서는 안심하소서. 소매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난양공주 소화이온데, 저저를 이리로 맞아 옴은, 곧 황태후의 명이나이다.”
정소저가 자리를 피하며 대담하되,
“여염에 사는 미천한 소녀가 비록 지식이 없으되, 하늘이 내시는 귀골은 우리와는 다른 줄을 아오니 공주께서 강림하심은 천만뜻밖의 일이로소이다. 이미 존경하는 예를 잃었삽고, 또 무례히 행동한 죄 많사와 엎드려 비옵나니, 공주께서는 빨리 죄벌을 내리소서.”
공주가 미처 대답하지 못하는데 시녀가 이뢰기를,
“태후마마께서 설상궁과 왕상궁과 화상궁을 명하여 보내시와 공주께 문안케 하시나이다.”
공주가 정소저한테 이르기를,
“소저는 여기 잠깐 머물러 있으라.”
하고 이에 나아가 당상에 앉으니, 세 상궁이 차례로 들어와 예로 뵈옵기를 마치고 엎드려 아뢰되
“공주께서 대내를 떠나신 지 이미 여러 날이오니 태후 마마께서 뵙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옵시며, 황상 폐하 또한 소녀들로 하여금 문후하옵시고, 오늘이 곧 공주께서 환궁하실 날인고로 거마와 의장이 이미 다 밖에 대령하옵고 황상께옵서 조태감을 명하사 배행케 하시나이다.”
하고, 세 상궁이 또 아뢰되
“태후마마께서 하교하시기를, 공주께서 소저와 더불어 연을 같이 타고 들어오라 하시더이다.”
공주는 세 상궁을 밖에 머무르게 하고 들어와 정소저한테 이르기를,
“여러 말은 조용한 때에 자세히 하려니와 태후마마께서 보고자 하시와 바야흐로 마루에 납시와 기다리신다 하오니, 소저는 사양 말고 소매와 더불어 함께 들어가 뵈옴이 옳으렸다.”
정소저는 아무래도 모면치 못할 줄을 알아차리고 대답하기를,
“소녀가 이미 공주께서 사랑하심을 아오나 여염의 여자가 일찍이 지존께 뵙지 못하였사오니, 예모에 어긋남이 있을까 두려워하나이다.”
공주가 말하되,
“소저를 보고자 하시는 마음이 어찌 소매가 소저를 보고자 하는 마음과 다르시리오? 소저는 조금도 의심을 마오.”
정소저가 말하기를,
“공주께서 먼저 행차하시면 소매는 마땅히 집에 돌아가 이 사연을 노모께 말하옵고 곧 뒤따라 들어가려 하나이다.”
공주가 말하되,
“태후마마가 이미 하교하사 하여금 연을 같이 타라 하시매 말씀하시는 뜻이 극히 정중하시니, 소저는 더 사양하지 마오.”
그러나 정소저는 사양하였다.
“소저는 미천한 신자이니 어찌 감히 공주와 같은 연을 탈 수 있사오리까?”
공주가 이에 대답하기를,
“강태공(여상. 주의 정치가. 문왕이 그를 낚시의 스승으로 삼고 무왕은 그를 높여 사상부라 하였음)은 위수의 어부로되 주나라 문왕의 수레를 한가지로 탔고, 후영(위전국시대의 위의 왕자)이 말 고삐를 잡았으니, 진실로 어진 이를 높이고자 할진대 어찌 감히 귀함을 가리리요? 소저는 후백의 대가요, 대신 집안의 딸이니, 어찌 소매와 더불어 같이 타기를 어렵게 생각하리요?”
하고 드디어 손을 끌어 연을 같이 타기에, 정소저는 시비 한 사람을 시켜서 돌아가 부인께 아뢰게 하고, 시비 한 사람은 뒤를 따라 궁중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태후궁에서 칠보시를 짓다
공주는 정소저와 연에 동승하여 동화문으로 들어가 겹겹이 싸인 아홉 문을 지니 협문 밖에 이르러 연에서 내려 왕상궁한테 고했다.
“상궁은 소저를 모시고 잠깐 여기서 기다리라.”
왕상궁이 여쭈되,
“태후마마의 명을 받들어 이미 정소저의 막차(임시로 막을 임금이나 귀족, 고관들이 머물던 곳)를 배설하였나이다.”
공주가 기뻐하며 정소저를 머물러 있게 하고는 자신은 들어가 태후를 뵈었다.
태후는 본디 정씨에게 좋은 뜻이 없었으나, 공주가 미복으로 정사도 집근처에 임시 거처하면서 한폭 수족차로 인연이 되어 정씨와 사귐을 맺어 그 자색과 덕행을 공경하고 사모하여 뒤이어 정의가 또한 친밀하여진데가, 양상서도 정씨를 버리지 않을 줄을 알고, 서로 사랑하며 서로 언약하여 형제의 의를 맺고, 장차 한 집에서 한 사람을 섬기고자 하였다.
공주는 자주 글을 올려 태후께 극간 함으로써 태후가 마음을 돌리시게 하였다. 그러나 태후가 이에 크게 깨닫고 공주와 정녀가 양소유의 두 부인이 되기를 허락하였다. 그리고 친히 그 용모를 보고자 하시어, 공주를 시켜 계책을 내어 데려오게 하심이었다.
정소저가 막차에서 잠깐 쉬는데, 궁녀 두 사람이 내전으로부터 의기를 받들고 나아 와, 태후의 명을 전하였다.
“정소저가 대신의 딸로서 재상의 예폐를 받았는데 아직도 처자의 옷을 입었으니, 아무래도 평복으로는 내게 조회치 못할 터이므로 각별히 일품명부(일품 벼슬의 아내)의 장복을 주노니 입고 입시 하라.”
정소저가 재배하고 대답한다.
“소녀가 처자의 몸으로서 어찌 감히 명부의 복장을 갖출 수 있사오리까? 지금 입은 옷은 비록 간단하고 단정치 못하오나 또한 부모 앞에서 입는 옷이 오며, 태후마마는 곧 만민의 어버이가 되시니 엎드려 비옵건대 부모를 만나는 의복으로서 들어가 조회하고 싶나이다.”
궁녀가 그대로 아뢴즉 태후가 매우 기특하게 여기시고, 곧 정씨를 불러들여 보시니, 좌우의 궁녀들이 다투어 보고 흠모하여 감탄한다.
“내 마음으로 아름답고 고운 이는 우리 공주님뿐이라 하였더니, 어찌 다시 정씨가 있을 줄을 알았으리오?”
하였다. 소저가 절을 마치자 궁녀가 정소저를 인도하여 전상에 오르니, 태후가 명하여 앉으라 하고 하교하시되
“지난번 공주의 혼사로 말미암아 조칙으로 양상서의 예폐를 도로 거두어들이게 함은 나라법을 좇아 공사를 분별함이요, 과인이 비롯한 바 아니겠거늘, 공주가 간하되 ‘새 혼사로 말미암아 옛 언약을 저버리게 함은 인군으로서 인륜을 바르게 하는 도리가 아니라.’ 하고, 또 너와 더불어 한가지로 양소유의 부인되기를 원하기에, 내 이미 황상께 상의하고 공주의 뜻을 따른지라, 장차 양소유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다시 예폐를 전대로 보내게 하고, 너로 하여금 한가지로 부인이 되게 하려 하니,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런 은전은 전무후무하기로 이제 이를 너에게 알려 두노라.”
정소저가 엎드려 태후에게 사은했다.
“은덕이 융중하사 신자로서는 감히 바라지 못하는 바이오니 소녀의 우매한 천질로는 도저히 보답지 못하올듯하나이다. 그러하오나 소녀는 신하의 딸이오니 어찌 감히 공주와 더불어 반열을 같이하고 그 위를 가지런히 할 수 있겠나이까?
소녀는 설혹 명을 따르고자 하올 지라도 부모가 필연 죽기로서 조칙을 받지 아니하오리이다.”
태후가 정소저에게 이르기를,
“너의 겸손함이 비록 가상하나, 너의 집이 대를 거듭한 후백이요, 너의 부친 사도는 선조의 노신이라 나라에서의 예우가 남과 다르니, 신자의 도리를 굳이 지키지 않더라도 되느니라.”
하였다. 소저가 이에 대답하여 여쭈되,
“신자의 도리는 군명을 순수하는 것이 만물이 스스로 때를 따르는 것과 같사오니, 끌어올려 시녀를 삼으시든지 내려서 비복을 삼으시든지 간에 어찌 천명을 거역할 수 있사오리까마는, 양소유 또한 어찌 마음이 평온할 수 있겠나이까? 필시 따르지 아니하오리이다. 소녀가 본래 형제가 없삽고 또한 부모가 노쇠하였사오니, 소녀의 간절한 소원은 오직 정성을 다하여 부모를 공양 하와 그로써 남은 세월을 마치려 할 따름이로소이다.”
태후가 정소저를 타이르시기를,
“너의 부모를 위하는 효성과 처신하는 도리는 가히 지극하다 하려니와, 어찌 감히 한 물건이라도 그곳을 얻지 못하게 하리요? 하물며 너는 백 가지가 아름답고 흠도 찾기 어려우니, 어찌 양소유가 마음에 즐겨 너를 버릴 것이랴.
또한 공주가 양소유와 더불어 퉁소 한 곡조로써 백년 연분을 증험하였으니, 하늘이 정하는 바를 가히 폐하지 못할 것이요, 또 양소유는 일대 호걸이요, 만고에 다시없는 재사이니 두 부인에게 장가듦이 무슨 불가함이 있으리요?
과인에게 본래 두 딸이 있다가 난양공주의 형이 열 살에 요절하매 난양의 외로움을 염려하였는데, 이제 너를 보매 죽은 내 딸을 본듯한지라 내 너를 양녀로 삼고, 황상께 말씀드려 너의 위호를 정하고자 하니 첫째는 내 딸을 사랑하는 정을 표하고, 둘째는 난양이 너를 사귀어 가까이하는 뜻을 이루게 하고, 셋째는 너로 하여금 난양과 더불어 한가지로 소유께로 돌아가는 난처한 일이 없게 하려 함이니 네 뜻에는 어떠하뇨?”
정소저가 태후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사양하였다.
“처분이 이에 이르시니 소녀가 복에 겨워 죽지 아니할까 염려되나이다. 오직 바라옵건대 곧 처분을 도로 거두시고 그로써 소녀를 편케 하옵소서.”
태후가 정소저의 거듭되는 사양에 대해
“내 황상께 조달하여 곧 결정을 대를 터이니 너는 과히 고집하지 말라.”
하시고, 공주를 불러들여 정소저를 보게 하시니, 공주는 장복을 갖추고 위의를 베풀며 정소저와 더불어 자리한 모습을 보고 태후가 웃으시며 말씀하시기를,
“공주가 정소저와 형제 되기를 원하더니 이제 참 형제가 되었으니, 위가 형인지 뉘가 아우인지 분별치 못하겠도다. 공주는 마음에 다시 한이 없느뇨?”
하시고, 공주에게 물으셨다.
태후께서는 뒤이어 정소저를 얻어 양녀로 삼을 뜻을 밝히시고 공주에게 이를 말씀하시니 태후의 뜻을 알게 된 공주가 매우 기뻐하며 일어나 사례하되,
“마마의 처분이 지극하신 바로소이다. 자나 깨나 바라던 소원을
성취하였사오니 이제 즐거움을 어찌 가히 다 아뢰올 수 있겠나이까?”
태후가 정소저를 대접함을 간곡히 하시고, 옛날 문장을 논의하시다가 이에 이르시되,
“내 일찍이 공주에게 들으매 네가 음풍농월하는 재주가 있다고 하는지라, 이제 궁중이 무사하고 봄 경치가 좋으니 한번 읊어 봄을 아끼지 말고 그로써 즐거움을 도우라. 옛 사람에 칠보시(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짓는 시)를 지은 자가 있었으니, 네 또한 능히 하겠느뇨?”
소저가 엎드려 사뢰기를,
“이미 명을 듣자 왔으니 재주를 다하여 한 번 웃으심을 자아내고자 하나이다.”
태후가 궁중에서 걸음 빠른 사람을 골라 전각 앞에 세우고 글제를 내어 시험코자 하시니 공주가 아뢰되,
“소저로 하여금 홀로 짓게 하심이 소녀의 마음에 미안하오니, 소녀 또한 정녀와 더불어 한가지로 시험코자 하나이다.”
태후가 더욱 기꺼워하시며,
“공주의 뜻이 또한 묘하도다. 그러나 맑고 새로운 글제를 얻은 연후에야 글 생각이 스스로 나리라.”
하시고 옛글을 생각하셨다.
이때는 늦은 봄이라, 벽도화가 난간 밖에 만발하였다.
태후께서 말씀하시되
“내 바야흐로 너희들의 혼인을 접하매 저 까치가 가지 위에서 기쁨을 알리니 이는 길조렸다. 벽도화 위에 기쁜 까치 소리를 들은 것으로 글제를 삼고 각기 칠언절구 한 수를 짓되 글속에 반드시 정혼하는 뜻을 넣으라.”
하고, 궁녀에게 명하사 각각 문방 제구를 별여 놓으니 공주와 정소저가 붓을 잡자 서 있던 궁녀가 이미 발걸음을 옮기면서 마음에 일곱 걸음 안에 혹시 미처 글을 짓지 못할까 두 사람의 붓놀리는 것을 돌아보면서 발 들기를 다소 더디게 하였지만, 두 사람이 모두 붓의 빠르기가 바람과 소낙비 같아서 동시에 써 바치니, 궁녀는 겨우 다섯 걸음을 걸었을 뿐이었다.
태후는 먼저 정소저의 글을 보셨다.
궁궐의 봄빛이 벽도에 취하였으니
어디서 온 좋은 새의 말이 교교한가
다락머리에서 어기가 새 곡조를 전하니
남국의 하늘꽃이 까치로 더불어 깃들이네.
다시 공주의 글을 보시며 읊으시되
봄이 액정(궁중)에 깊으매 백화가 번성하고
신령스러운 까치가 날아와 기꺼운 말을 아뢰도다.
은하수에 다리를 놓으매 모름지기 노력하여
일시에 나란히 두 척손이 건너가리라.
태후가 읊어 보며 감탄하시되,
“내 두 딸 아이는 곧 여자 가운데 청련(이태백을 칭함)과 조자건이로다.
조정에서 만약 이 여자 진사를 취할진대, 마땅히 감시 장원과 탐화(삼등 급제)를 차지하리라.”
하시고, 두 글을 바꾸어 공주와 정소저에게 보이니, 두 사람이 각기 상대의 글 솜씨를 공경하여 탄복하였다.
공주가 태후께 아뢰되,
“소녀가 비록 한 수를 채웠으나 그 글 뜻이야 뉘 능히 생각지 못하리이까마는, 저저의 글이 정묘 하여 소녀의 미칠 바 아니겠나이다.”
태후도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다. 그러나 공주의 글도 적이 영민함이 사랑스럽도다.”
하시더라.
이때에 천자가 태후께 나아와 문안하시니, 태후가 공주와 정소저를 협방으로 피하게 하고 이르시기를,
“내 공주의 혼사를 위하여 양소유의 예폐를 도로 보내게 하였는데, 마침내 덕화에 손상함이 있는지라 정녀와 더불어 함께 부인께 말씀하면 정사도 집에서 감히 따르지 못하겠다 할 것이요, 정녀로 하여금 첩이 되게 한즉 또한 강박한 처사이기로 오늘 내 정녀를 불러보매 아름답고 또 재주가 있어 족히 공주와 형제가 될 만한지라, 이러므로 내 정녀와 더불어 모녀지의를 맺고서 공주와 한가지로 양소유에게 돌아가게 하고자 하니 이 일이 과연 어떠하오?”
상이 매우 기뻐하며 말씀하신다.
“이는 성덕이 천지와 같사옴이니, 자고로 두터운 혜택이 태후께 견줄 사람이 없소이다.”
태후가 곧 정소저를 불러 황상께 뵙게 하시니, 상이 명하사 전상에 오리게 하고 태후께 말씀하시기를
“정씨 이미 황제의 누이가 되었거늘 아직도 평복을 입음이 어찌됨이오니까?”
태후가 이르시되,
“황상의 조칙이 내리지 아니하였으므로 장복을 굳이 사양하오.”
상이 여중서에게 명하시어 난봉문(난조와 봉황 무늬. 군자 혹은 뜻이 같은 친구, 또는 의좋은 부부를 비유)의 홍금지 한축을 가져오라 하시니, 진채봉이 받들어 올리기에 상이 붓을 들어 쓰려 하시다가 태후께 물으시되,
“정씨를 이미 공주로 봉하였으니 나라 성을 줄까 하나이다.”
태후가 말하기를, “나도 또한 이 뜻이 있으나, 들으니 정사도 내외의 나이 이미 노쇠하고 다른 자녀가 없다 한즉 내 노신의 성을 전할 사람이 없음을 민망히 여기니, 그 본성대로 둠이 역시 진념하는 뜻이로다.”
상이 친필로 크게 써 이르시되,
“짐이 태후의 성지를 받들어 양녀 정씨를 봉하여 영양공주로 삼노라.”
쓰기를 마치시자 황제와 황후 양전궁이 어보를 찍어 정소저에게 주시고, 궁녀를 시켜서 관복을 받들어 정소저에게 입히시니 정소저는 전상에게 내려와 사은하고, 상이 난양공주로 하여금 좌차를 정하게 하실 적에 영양이 난양보다 한 해 위가 되나 감히 위에 앉지 못하기에 태후가 이르시되,
“영양공주가 이제는 내 딸이라. 형이 위에 있고 아우가 아래에 있음이 예의거늘 형제지간에 어찌 가히 겸양하겠느냐?”
영양이 머리를 조아리며 사양하되,
“오늘의 좌차는 곧 후일의 항렬이오니 어찌 가히 처음에 삼가지 아니하겠나이까?”
난양공주가 말하기를,
“춘추시대에 조쇠(진의 정치가. 문공을 도와 패자가 됨)의 아내가 곧 진문공의 딸이로되, 위를 그 전취한 적실에게 사양하였거늘, 하물며 저저는 소내의 형이니 다시 무슨 의심이 있을 수 있겠나이까?”
정소저의 사양함이 자못 오래더니, 태후가 명하여 나이를 따라 정하시매, 이후로 궁중이 다 영양공주라 일컫더라.
태후가 두 공주의 글 지은 것을 상공께 보이시니, 상이 또한 칭찬하시되,
“두 글이 다 같이 묘미가 있으니 영양의 글이 주시의 뜻을 이끌어 덕을 후비에게로 돌려보냈으니 매우 체례를 얻었나이다.”
태후가 또한 이르시되,
“상의 말씀이 옳도다.”
상이 다시 이르시되,
“태후께서 영양을 사랑하심이 이에 이르렀으니 실로 전에 없는 바이오라, 신이 또한 우러러 청할 일이 있삽나이다.”
하고, 이에 진중서의 전후 사실을 들어 아뢰었다.
“진채봉의 아비가 비록 죄를 짓고 죽었사오나 그 조상이 다 조정의 신자이오니 그 정상을 진념하여 공주를 좇아 시집을 가게 하여 잉첩(귀인의 시중을 드는 첩)을 삼고자 하오니, 이를 태후께서는 긍측히 여기시고 허락하옵소서.”
태후가 두 공주를 돌아보시자, 난양이 아뢰기를
“진씨가 일찍이 이 일을 소녀에게 말하더이다. 소녀는 이미 정의가 친밀하고 서로 떨어지고자 아니하오니 마마의 처분이 아니 계실지라도 이 마음이 있었나이다.”
태후가 진채봉을 불러 하교하시되,
“공주가 너와 더불어 생사를 같이할 뜻이 있는 고로 특별히 너로 하여금 양상서의 잉첩을 삼으니 이후로 더욱 정성을 다하여 공주의 은의를 갚도록 하라.”
진씨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사은한 후에 태후가 또 하교하시되,
“두 공주의 혼사를 쾌히 정하매 홀연 기쁜 까치가 와서 길조를 알리기에 두 공주의 글을 내 이미 보았는지라, 너도 또한 글을 지어 그 경사를 같이하라.”
진씨가 명을 받고 즉시 글을 지어 드렸다.
기쁜 까치가 재잘거리며 궁궐에 들었으니
봉선화 위에 춘풍이 일도다.
보금자리를 편케 하여 남으로 날아감을 기다리지 않는데
삼오성이 드문드문 바로 동녘에 있구나.
태후가 황상과 함께 어람하시고 매우 기꺼워하며 이르시기를,
“옛날에 설경을 읊던 사녀(사도온)도 이를 따르지 못하리로다. 이 글 속에 또한 주시를 이끌어 정실과 소실의 분의를 잘 지키는 이것이 더욱 가상하도다.”
난양공주가 아뢰되,
“이 글제의 글재료가 본래 많지 아니하옵고 또한 우리 형제가 이미 글을 지었사오니 떼어 올 글이 없나이다. 조맹덕의 이른바 (나무로 세겹을 둘렀으되 가히 의지할 가지가 없다)는 것이 본디 길한 말이 아니오니 그 말을 끌어쓰기가 어렵거늘 이 글이 맹덕과 두자미(두보)와 주시를 섞어 쓸어 한 구름 지었으나 조금도 험할 데가 없사오니, 실로 옛사람들이 진씨를 위하여 먼저 글을 지은 것이 아닌가 하나이다.”
태후가 이르시되,
“예로부터 여자로서 능히 글짓는 자는 오직 반희(한무제의 시녀, 여류문학가)와 채녀와 탁문군과 사도온의 넷뿐이더니 이제 절재의 여자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였으니 가히 보기 드문 일이라 하겠노라.”
난양공주가 말하기를,
“영양공주의 시비 가춘운의 글재주가 또한 신기하더이다.”
할 즈음, 날이 점점 저물게 되었으므로 상은 외전으로 환어하시고 공주고 또한 물러가 침전에서 작, 이튿날 새벽에 닭이 첫 홰를 치매 영양이 태후께 들어가 문후하고 집에 돌아감을 주청하되,
“소녀가 궁중으로 들어 올 때에 부모가 필연 놀라고 황송하였을 것이오니, 오늘 돌아가 부모를 보고 태후마마의 은덕과 소녀의 영광을 일문 친척에게 자랑코자 하오니 엎드려 비옵건대 마마는 허락하옵소서.”
태후가
“딸아기야, 어찌 공주된 몸으로 번거롭게 대내를 떠나겠느냐? 내 너의 친모와 상의할 일이 있도다.”
하고 대답하였다.
태후께서는 즉시 전교를 내려 최부인으로 하여금 입조하라 하셨다.
이때에 정사도 내외는 하루 아침에 딸아이의 비자가 전하는 말을 듣고 놀란 마음이 바야흐로 놓이며 감축하여 마지않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태후의 부르심을 받고 급히 내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태후가 정사도 내외를 접견하고 이르시기를,
“내 부인의 여아를 데려옴은 대체로 난양공주의 혼사를 위함이니라. 경패의 얼굴을 한 번 보매 사랑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양녀를 삼아 난양공주의 형이 되었으니, 필시 과인의 전생딸이 이 세상에서 부인 집에 탄생함인가 하노라. 영양이 이미 공주가 되었으니 마땅히 나라성을 줄 것이로되, 내 부인에게 자식이 없음을 진념하여 성을 고치지 아니하였으니 부인은 오직 지극한 정으로 받들지어다.”
이에 최부인이 태후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기를,
“신첩이 늦게서야 여기 하나를 낳아 사랑하였삽더니, 필경에는 혼사가 한 번 그릇되와 예폐를 돌려보내게 되어 죽고 싶기만 하옵더니, 난양공주께서 여러 번 누추한 제집에 왕림 하사 천한 딸아이를 사귀시고 뒤이어 함께 궁중으로 들어와 세상에 다시없는 은전을 입게 하시니, 마땅히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와 천은의 만분지 일이라도 갚고자 하옵니다. 또한 신첩의 지아비는 나이 늙고 병들어 이미 벼슬을 하직하옵고, 신첩도 또한 늙어서 궁녀를 뒤따라 액정의 때를 지우는 일을 하올 길이 없사오니, 천지와도 같사온 은덕을 장차 무엇으로써 갚사오리까? 오직 감격하여 눈물만 흘릴 뿐이옵니다.”
이에 최부인은 일어나 태후께 절하고 엎드려 우니 옷 소매가 젖는지라, 태후가 측은히 여기어 말씀하시기를,
“영양은 이미 내 딸이 되었으니 다시 데려가지는 못하리라.”
최부인이 엎드려 아뢰되,
“모녀가 단란하게 모여서 하늘 같사온 은덕을 칭송치 못하오니 이것이 한이 되겠나이다.”
태후가 미소를 지으면서 이르시기를,
“성혼한 후에는 난양도 또한 부인에게 부탁할 터이니 내가 영양을 보듯하라.”
이어서 난양공주를 불러 서로 만나게 하시니 최부인이 누누이 천일의 무례한 허물을 사죄하였다.
태후가 말씀하시기를,
“내 들으니 부인 곁에 가춘운이 있다 하니 내 한 번 봄을 청하노라.”
최부인이 곧 춘운을 불러오도록 힘을 써서 춘운이 전각 아래에서 태후를 만나 뵙게 되었다. 태후는 춘운의 그 아름다움을 칭찬하며 앞으로 나오라 한 다음 하교하시되,
“난양의 말을 들으니 네가 그 재주가 있다던데, 이제 글을 지어 보겠느냐?”
춘운이 엎드려 사뢰되,
“신첩이 감히 지존 앞에서 당돌하게 글을 지을 수 있사오리까? 그러하오나 시험 삼아 글제를 듣삽고자 하나이다.”
태후가 지난번에 지은 세 사람의 글을 내리며 이르시기를,
“네 능히 이 글 뜻에 알맞게 짓겠느냐?”
춘운은 그 자리에서 붓을 잡아 글을 지어 올렸다.
기꺼움을 알리는 작은 정성을 오로지 스스로 알지니
우정에서 다행히 봉황의 의를 따를러라.
진루(봉대)의 봄빛이 천나무에 꽃으로 피어
세 겹이 둘렀는데 어찌 한가지를 빌림이 없을손가.
태후가 다 읽으시고, 두 공주에게 춘운의 글을 보이며 말씀하신다.
“가녀의 글재주가 이럴 줄은 짐작치 못한 바로다.”
난양공주가 아뢴다.
“이 글은 까치로서 그 몸을 견주고, 봉황으로서 저저를 견주었사오니, 체례가 분명하옵고 끝 구에는 소녀가 서로 허락지 아니할까 의심하여 한 가지의 깃들임을 빌리고자 하여, 옛사람의 글을 모으고 시전의 뜻을 캐어 한 구절로 합하여 이루었사오니 진실로 뜻이 정묘하고 수완이 민활하나이다. 나는 새가 사람에 의지하매 사람이 스스로 불쌍히 여긴다는 옛말이 가녀에게 합당한 격언이옵니다.”
이어서 춘운에게 명하여 물러가 진씨와 더불어 상면케 할 때에 난양공주가 소개하기를,
“이 여중서는 곧 화음현 진씨 여자인데, 춘운과 더불어 해로할 사람이로다.”
춘운이 놀라면서도 반갑게 묻되,
“그러하오면 이 양류사를 지은 낭자이옵니까?”
이 말에 놀라 진씨가 되묻기를,
“춘랑은 어떠한 사람으로부터 양류사를 들었느뇨?”
춘운이 대답하되,
“양상서께서 매양 낭자를 생각하시고 그 글을 외우시기도 얻어 들었소이다.”
진씨가 그 말을 듣고 양상서를 그리워하며 슬피 외치기를,
“양상서께서는 아직도 소녀를 잊지 아니하셨구나!”
춘랑이 말하기를,
“낭자는 어찌 그러한 말을 하시오? 상서께서 양류사를 몸에 지니시고 계시면서 자주 그 글을 눈물을 흘리고 읊은즉 탄식하시더이다.”
진씨가 대답하되,
“상서께서 만일 옛정이 남아 계신다면 내가 비록 상서를 다시 못뵈고 죽어도 한할 바 없소이다.”
하고, 이어서 비단 부채에 상서의 글 받은 일을 말하니, 춘랑이 또한 이르기를
“나의 몸에 지닌 보배가 다 상서께서 아는 바로소이다.”
하면서 다시 말을 이으려 할 때, 궁인이 알리기를 정사도 부인이 곧 나가신다고 전갈하기에 두 공주가 들어가 모시고 앉으니, 태후가 부인에게 하교하시되
“양소유가 미구에 돌아올 터이니 전일의 예폐가 스스로 부인집 문에 다시 들어가겠으나 이제 영양은 내 딸인즉 두 딸 아이의 혼례를 함께 거행코자 하노니 허락하겠느뇨?”
최부인이 엎드려 사뢰기를,
“신첩은 오직 태후마마의 처분만 기다리겠나이다.”
태수가 웃으며 이르시기를,
“양상서가 영양을 위하여 나라의 처분을 세 번 항거하였으니, 내 또한 한 번 속여 보고자 하느니라. 상말에 ‘흉죽길이라’ 하였으니, 상서가 돌아온 후에 말하되 ‘정소저 우연히 병을 얻어 불행히도 세상을 떠났다’ 하라. 또 전일 상서가 그 모습을 아나 모르나 시험코자 하노라.”
최부인의 분부를 받고 하직하고 돌아 나설 때, 영양이 전문밖에 나와 절하여 보내며 춘운을 불러 양상서를 속일 계교를 조용히 일러주거늘, 춘운이 여쭈기를 “첩이 신선도 되고 귀신도 되어 상서를 속인 일도 마음에 걸리거늘 또 다시 계교를 거행함은 너무 무례하고 단정치 못한 짓이 아니오리까?”
영양공주가 말하되,
“이는 우리가 하는 짓이 아니라, 태후마마께서 명하시는 바로다.”
춘운이 웃음을 머금고 물러가더라.
양승상이 정사도 집으로 돌아오다
이 무렵 양원수는 백록담의 물로 군사를 먹이매, 군사의 사기가 전일과 같아진지라. 모두들 한 번 싸우기를 원하므로 원수는 모든 장수를 불러 군략을 정하고 한 북소리로 곧 진군하니, 찬보가 바야흐로 심요연이 보내는 구슬을 받았기에 양원수의 군사 이미 반사곡을 지난 줄로 알고서 크게 놀라 겁을 내어 나아가 항복하기를 논의할 적에 모든 장수들이 찬보를 사로잡아 결박하여 양원수의 진에 이르러 항복하는 것이었다. 싸움은 싱겁게 끝난 것이다.
원수가 다시 군사의 행오를 가지런히 하고 적의 도성으로 노략질을 금하고 백성을 보살펴 위로하고, 곤륜산(중국의 최대 산맥)에 올라가 돌비를 세워 당나라의 위엄과 덕망을 기록하고 군사를 돌려 개가를 부르며 바야흐로 서둘러 돌아올 즈음, 진주 땅에 이르니 이미 가을이라 산천이 황량하고 천지가 쓸쓸하며 싸늘한 꽃잎이 애달음을 빚어내고 날아가는 기러기가 슬픔을 자아내어 사람으로 하여금 객창의 외로움을 더욱 간절케 하였다.
원수가 밤에 객사로 드니 회포는 침울하고 기나긴 밤은 괴괴할 따름이라, 능히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마음에 스스로 생각하되,
‘고향을 떠난 지 이미 삼 년이라, 어머님의 근력이 전일과 같지 아니하실 터이니 병구완은 뉘에게 부탁하며 조석 문안은 어느 때에 하게 될꼬. 난리를 평정하여 오늘 뜻을 이루었으되 노모를 봉양할 마음은 아직도 펴지 못하였으니 사람의 자식된 도리가 아니로다. 하물며 수년간 국사에 분주하여 아직도 아내를 두지 못하였으며 또한 정씨와의 혼인을 반드시 기약하기는 어려우리라. 이제 내가 오천 리 땅을 회복하고 백만 적병을 진압하였으니 천자께서는 필연코 이에 큰 벼슬을 상전으로 내리 사 싸움터를 달렸던 이 몸의 수고를 갚으실 터이니, 내 그 벼슬을 도로 바치고 이 사정을 자세히 아뢰어 정씨와의 혼인을 허락하시도록 간청하면 혹 허락하심이 있으리라.’
생각이 이에 이르며 마음이 적이 풀려 베개를 베고 잠시 조는데 꿈속에서 몸이 날아 하늘에 오르자 칠보 궁궐의 단청이 찬란하고 오색 구름이 영롱하더니, 시녀 두 사람이 원수에게 아뢰기를
“정소저께서 원수를 청하나이다.”
양원수가 시녀를 따라 넓은 뜰에 꽃이 만발하였는데, 선녀 세 사람이 백옥루 위에 모여 앉아서 그 복색이 후비 같으며 주옥같은 광채가 눈을 쏘고 바야흐로 난간에 의지하여 꽃가지를 희롱하다가 원수의 들어감을 보고 자리를 떠나 맞아들이며 좌정한 다음 윗자리의 선녀가 먼저 묻되,
“원수께서는 이별한 후에 무탈하시나이까?”
원수가 자세히 보니 지난날에 거문고의 곡조를 논의하던 정소저인지라, 놀랍고 기꺼워 말을 건네고자 하다가 도리어 할 말을 못하니 선녀가 이르거늘,
“이제는 내 이미 인간관계를 이별하고 천상에 와 놀매 옛일을 생각하니 슬프고 소첩의 부모를 보시더라도 소첩의 소식을 듣지 못하시리라.”
하고, 곁에 있는 두 선녀를 가리키며 이르기를
“이분은 곧 직녀선군이요, 저분은 대향옥녀라, 원수와 더불어 먼저 좋은 언약을 맺으시면 소첩이 또 의탁할 바 있으리다.”
하거늘, 원수가 두 선녀를 바라보니 말석에 앉은 이는 낯이 비록 익으나 능히 기억치 못하였다.
이윽고 북소리에 놀라 깨니 이는 바로 일장춘몽이어서 꿈 속의 일을 생각하자 모두 길조가 아니었다.
양원수가 이에 스스로 탄식하되,
“정낭자는 필연 죽었도다. 계섬월의 천거와 두련사의 중매가 다 월로의 지시함이 아니오, 가약을 이루지 못하고 이미 유명을 달리하였으니 명이냐, 하늘이냐? (흉한 것도 도로 길하다)하니 혹시 내 꿈을 이른 말인가?”
하였다.
이 일이 오래 되자 선진이 이미 서울에 이르렀다. 천자께서 위교에 몸소 납시어 맞으실 때에 양원수는 봉계자금 투구를 쓰고 황금 쇄자 갑옷을 입고서 천리 대완마를 타고 황제께서 내리신 백모황월과 용봉을 그린 깃발로 전후 좌우를 호위하고, 찬보를 죄인 수레에 가두어 진 앞에 세우고 토번 삼십 육군의 임금들이 각기 진공하는 물건을 가지고 진 뒤에 따르니 그 위가 굉장함이 천고에 드문 일이었다.
원수가 말에서 내려 상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뵈온즉 상이 친히 양원수의 손을 붙잡아 일으키고 그 군공을 이루었음을 권장하시고, 곧 조정에 조서를 내리셨다.
곽분양의 옛일에 의거하여 땅을 떼어 주고 왕으로 봉하여 상전을 후히 하였다.
양원수는 정성을 드러내어 힘써 사양하며 받지 아니하니, 상이 양원수의 그 충성된 뜻을 좇아 다시금 칙지를 내려 양소유로 대승상을 삼고, 위국공을 봉하면서 식읍 삼만 호를 주시고 그밖의 상급은 낱낱이 여기에 기록지 못할 정도였다.
양승상이 황제가 타신 수레를 따라 궁궐 내로 들어가 사은하니 상이 곧 명하여 태평연을 베풀어 예로 대접하는 은전을 보이시고, 또 양승상 화상을 기린각(한나라 선제가 지은 누각. 공신 11명의 화상을 그려 이 누상에 걸었음)에 그리라고 명하시었다.
승상이 대궐에서 물러나 와 정사도 집에 이르니, 정씨 친척들이 모두들 의당에 모여서 승상을 맞아 절을 올렸다. 그리고 각기 치하하기에 승상이 먼저 사도와 부인의 안부를 물으니 정십삼이 대답하기를,
“숙부와 숙모가 비록 목숨은 부지하시나 누이의 상변을 당하신 후로는 너무 애통하여 병이 나시니 기력이 노쇠하여 능히 의당에 나와 승상을 대하지 못하기로 바라건대 승상은 소생과 더불어 내당으로 들어가심이 어떠하시오?”
승상이 갑작스러운 이야기를 듣자, 술에 취한 것도 같고 미친 것도 같아서 도저히 급히 묻지도 못하고 한동안 생각에 잠기었다가 묻기를,
“장인이 언제 따님의 상변을 당하였소?”
정생이 대답하되,
“숙부가 무남독녀이옵는데 천도가 무심하여 이 슬픈 지경에 이르시니 어찌 비통치 않겠소이까? 승상은 들어가 보실 때 삼가서 슬픈 기색을 내지 마옵소서.”
승상이 애통하여 슬피우는데 눈물을 비같이 쏟아 옷깃을 적시니 정생이 위로하되,
“승상의 혼약이 비록 금석 갖으나 집안의 운수가 불행하여 대사를 이미 그릇치니, 바라건대 승상은 오직 정리를 생각하여 힘써 위로하소서.”
승상이 눈물을 뿌려 정생에게 사례하며 정생과 더불어 내당으로 들어가 사도 내외에게 뵈오니 오직 기뻐 치하할 따름이요, 말이 소저가 요절한 이야기에는 미치지 아니하므로 승상이 이르기를,
“소저가 다행히 나라의 위엄을 힘입어 외람되이 공을 보하는 상전을 받으매 사은하옵고 또 사사를 상달하여 황상의 의향을 돌리시게 함으로써 전일의 언약을 이루고자 하였더니, 아침 이슬이 이미 먼저 마르고 봄빛이 이미 저물었으니 어찌 생사에 대한 감회가 없사오리까?”
정사도가 눈썹을 한 번 찡그리며 정색한 후에 말을 하되
“오늘은 온 집안이 모여서 경사를 치하하는 날이니 비창한 이야기는 그만 두도록 하오.”
하면서, 정생이 아주 승상께 눈짓을 하기에 승상이 말을 끝맺고 나아가 화원으로 들어가니 춘운이 섬돌 아래로 내려와 반가이 맞아 들인다. 승상이 춘운을 보자마자 정소저를 만나는 것 같아서 슬픈 회포가 더욱 간절하고 눈물이 멎지 아니하였다.
그러자 춘운이 꿇어앉아 승상을 위로하기를,
“상공, 상공! 오늘이 어찌 상공께서 서러워하실 날일 수 있겠나이까? 엎드려 바라오니 상공은 마음을 돌려 눈물을 거두시고 굽혀 첩의 말씀을 들으소서.
우리 낭자는 본래 하늘의 신선으로서 인간계에 귀양살이로 오신 고로, 하늘에 오르시던 날 천첩에게 이르기를
‘너도 몸소 양상서와 인연을 끊고 다시 나를 따르라. 내가 이미 인간계를 버렸거늘 네가 다시 양상서께로 돌아가면 어찌 가히 너와 더불어 서로 떠나리요. 상서께서 조만간 돌아와 만일 나를 생각하고 슬퍼하시거든 모름지기 내 말을 전하여 이르기를 예폐를 이미 물렀은즉 노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다름이 없으며 황차 전일 거문고를 들은 혐의가 있다 하여 지나치게 생각하고 너무 슬퍼하면 황상의 명을 거역하고 사사로운 정을 따르는 것이니 이는 죽은 사람에게까지 누를 끼침이라 어찌 민망치 아니하리요? 또한 내 무덤에 제사를 지내거나 혹은 궤연(신주를 보신 곳)에서 곡을 하시면 이는 나를 행실 나쁜 여자로 대접하심이니 지하에서나마 어찌 섭섭한 마음이 없으리요? 그리고 황상이 상서의 돌아옴을 기다려 다시 공주와의 혼사를 의논하신다 하는데 내 들은즉 관저(관관저구 재하지주의 준말. 즉, 임금의 금슬이 좋으면 그 덕이 저절로 아랫사람에게 미침을 일컬음)의 위엄과 덕망이 군자의 배필되기에 합당하다 하니 국명을 준수하여 죄에 빠지지 아니심이 나의 바라는 바이다.’
고 하시었나이다.”
승상이 춘운의 말을 듣자 더욱 서러움이 복받쳐 이르기를,
“소저의 유언이 비록 이 같으나 어찌 슬픔을 참을 수 있으리요. 열 번 죽어도 그 은덕을 갚기 어렵도다.”
하며, 이어서 승상이 진중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니 춘운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다가 정승이 말을 마치자 말하기를,
“소저는 반드시 옥경에 계실지니 승상께서 천추만세 후에 어찌 서로 만나실 기약이 없사오리까? 너무 서러워하시다가 기체를 상치 마옵소서.”
승상이 다시 물어 보되,
“이밖에 소저는 다른 말씀이 없었느냐?”
“비록 혼자 하신 말씀이 있사오나 아무래도 춘운이 입으로는 말씀드리기 어렵나이다.”
승상이 정색을 하며 이르되,
“네 들은 바를 감추지 말고 낱낱이 아뢰렸다!”
춘운이 여쭙기를.
“소저께서 또한 천첩한테 이르시기를.
‘내 춘운과 더불어 한 몸이니 상석께서 만일 나를 잊지 못하시고 춘운 보기를 나같이 하여 마침내 버리지 아니하시면 내 몸은 비록 땅속으로 들어가되 친히 상서의 은덕을 받는 것 같으리라.’
하셨나이다.”
승상이 춘운이 전하는 말을 듣고는 더욱 슬퍼하며 말하되,
“내 어찌 춘랑을 버릴 수 있으리요? 하물며 소저의 부탁이 있으니 비록 직녀로 아내를 삼고 복비(낙수의 여신)로 첩을 삼을지라도 내 맹세코 춘랑을 저버리지는 않으리라.”
하고 맹세를 하였다.
이튿날 천자는 양승상을 불러들여 보시고 하교하시기를,
“지난번에 공주의 혼사로 말미암아 태후께서 특히 엄한 처분을 내리사 짐의 마음이 또한 불안하였는데, 이제는 다른 생각이 없게 되었기로 경의 돌아옴을 기다려 공주의 혼례를 겨행하려 하였노라. 다만 경은 아직도 소년이요, 당상에는 대부인이 있은 즉 제반의식을 어찌 스스로 분별하며 황차 대승상 관부에 여군이 가히 없지 못할 지며, 위국공의 가묘에 아헌(제사를 행할 때 주부의 제2차 헌작을 이름)을 궐하지 못할지라 짐이 이미 승상부 공주궁을 짓고 성례할 날을 기다릴 다름이거늘, 경은 지금도 또한 허락하지 아니하겠느뇨?”
승상이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되,
“신이 여러 차례 거역한 죄는 일만 번 죽어도 아까움이 없삽거늘 칙교를 거듭 내리시어 말씀이 온후하시니 신은 진실로 황감하와 죽고자 하여도 죽을 데가 없나이다. 신은 진실로 아무런 기에도 없사오며 문벌이 미천하옵고 재주가 옅사와 부마의 자리에는 합당치 못하옵나이다.”
상이 매우 기뻐하며, 곧 조서를 흠천감(관서 이름. 천문 역수, 점후, 추보의 일을 맡았음)에 내리시어 길을 가려 잡아 올리라 하시니, 태사가 구월 십오일로 길일을 잡아 상에게 아뢰니 다만 수십 일이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상이 승상에게 다시 하교하시기를,
“전일에는 혼사를 완정치 못한 고로 경에게 미처 말하지 못하였노라. 실은 짐의 누이 두 사람이 있으니 다 혈순함이 비범하며, 비록 다시 경 같은 사람을 구하고자 하나 어느 곳에 가히 있으리요? 이러므로 짐이 태후의 명을 받들어 두 누이를 경에게 하가 시키고자 하노라.”
승상이 문득 진주 객사에서의 꿈을 생각하고 마음에 매우 괴이쩍게 여겨 엎드려 사뢰기를,
“신이 부마 간택을 입사온 후로는 황송무지하옵는데, 이제 페하께서 두 공주로 하여금 한 사람 몸에 허가코자 하옵시니 이는 나라가 있은 이후로 듣지 못한 바이온즉 신이 어찌 당할 수 있사오리까?”
상이 타이르시되
“경의 공업이 족히 나라에 제일이 되거늘 그 공로를 갚을 도리가 없는 고로 두 누이에게 섬기게 함이요, 도 두 누이의 우애가 다 천성에서 나왔으므로 서면 서로 따르고 앉으면 서로 의지하며 매양 늙어도 서로 떨어지지 않기를 원하는 고로 한 삶에게 하가함이 또 태후마마의 의향이시니 경은 가히 사양치 말지어다. 또한 궁녀 진씨는 대를 거듭한 사환가(벼슬하는 집)의 딸로서 자색이 있고 글을 잘하매 공주가 수족같이 사랑하므로 허가할 때에 잉첩을 삼고자 하니 아울러 경에게 알려 두노라.”
하시니, 승상이 상의 배려에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며 사은하고서는 대궐에서 물어 났다.
이 무렵은 영양공주가 궁중에 머무른 지 이미 여러 달이라 태후를 섬김에 충성을 다 하고 또 난양공주와 진씨와 더불어 저의가 동기 같기에, 이로써 태후는 더욱 사랑하시는데, 혼사 날짜가 임박함에 조용히 태후께 아뢰기를,
“당초에 난양과 더불어 좌차를 정하던 날 상좌에 있사옵기 극히 참람하와 끝까지 사양하오면 태후마마의 자애하시는 온정을 거역할 듯 싶사와 억지로 따르옴이 본의가 아니옵더니 이제 양승상께로 돌아가 난양이 제일좌를 사양하오면 이 역시 옳지 않사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태후마마와 황상페하께옵서는 그 정례를 짐작하시고 그 위치를 바르게 하시와 사분이 편안케 하시고 가법이 문란치 않게 하옵소서.”
난양공주가 태후 곁에 있다가 이르기를,
“저저의 덕행과 재주가 다 소녀의 스승이 되오니 저저가 비록 정씨 문중에 있을지라도 소녀가 마땅히 조녀가 위를 사양함과 같이할 터이거늘 이미 형제되온 후에 어찌 조비의 분별이 있을 수 있겠나이까? 소녀가 비록 제이 부인이 될지라도 스스로 인군의 딸로서의 존귀함을 잃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제일 위에 있게 되오면 태후마마께서 저저를 기르시는 본의가 과연 어디 있겠나이까?”
태후가 황상께 의논하시기를,
“이 일을 어찌 조처하면 좋을꼬?”
상이 대답하시되,
“난양의 사양함이 진정에서 나오나 예로부터 국가 공주에 이런 일이 있음을 듣지 못하였사오니, 원컨대 마마께서는 그 겸양하는 덕을 아름답게 여기사 이 일에 그 아름다운 뜻을 이루도록 하소서.”
태후가 말씀하시기를
“상의 말씀이 옳으시오.”
하셨다.
이에 상께서는 전교를 내리시어 영양공주를 좌부인을 삼으시고, 난양공주를 우부인을 봉하시고, 진씨는 사부가의 딸이므로 봉하여 숙인으로 삼으셨다.
전례로는 공주의 혼례를 궐문 밖에서 거행하였으나 이번에는 태후가 특별히 대내에서 행례하라고 하교하시기에 길일이 이르자 양승상이 인포옥대(기린의 수를 놓은 도포와 옥으로 안든 띠)로 두 공 공주와 더불어 성례하였다.
몸차림의 화려함과 예모의 장함은 이르지도 말 것이고, 예식이 끝나 자리를 잡은 다음에 진숙인이 또한 예를 뵙고 이어서 공주 곁에 시립 하거늘 승상이 자리를 주니 마치 세 사람의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온 듯 휘황찬란하여 승상이 꿈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다.
이 밤에 승상은 영양공주와 더불어 베개를 같이하였다. 이튿날에 일찍 태후께 문안드리니 태후가 그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어주시는데 황상과 황후가 또한 태후 좌우로 시립하시고 종일토록 즐겨 하시었다. 승상이 이날 밤에는 다시 난양공주와 더불어 이불을 한가지로 하고 제삼일에는 진숙인 방으로 가니 숙인이 문득 눈물을 흘리기에 승상이 놀라 물어 보기를,
“오늘 웃는 것은 옳거니와 우는 것은 옳니 못하렸다! 그러나 무슨 까닭이 있음직 하니 사실대로 말하라.”
진숙인이 대답하되,
“소첩을 기억 못하시니 승상께서는 이미 잊어버림이겠나이다.”
이때, 승상이 자세히 보더니 이윽고 숙인의 가냘픈 손을 잡고 말하기를,
“그대 하음현의 진씨 아니오? 오매불망하던 그대로다.”
채봉이 목이 메러 소리가 입에서 나지 못하므로 승상이 이르되,
“낭자는 이미 지하로 돌아간 줄로 알았는데 궁중에 고이 있었으니 천만다행이오. 그때 화주에서 헤어지매 낭자의 집이 참혹한 화란을 겪음은 다시 말할 길 없거니와 객사에서 피난한 후로 어디 하루라도 그대를 생각지 아니하였으리오? 오늘 옛 언약을 이루게 됨은 실로 내 생각을 미처 못한 바요, 낭자 역시 반드시 기약치는 못하였으리라.”
하고, 드디어 주머니 속에서 진씨의 글을 내어놓으니 진씨 또한 승상의 글을 받들어 돌리자 두 사람의 양류사가 의연히 서로 화답하던 날 같은지라, 진씨를 말하기를
“승상께서는 오직 양류사로 옛 언약을 맺은 줄만 아시고, 비단부채로 오늘의 연분이 이루어짐을 알지 못하시나이다.”
하고, 이에 상자를 열어 그림 부채를 꺼내어 승상에게 보이고 이엉서 그 연유를 자세히 말하니, 승상이 이르되
“그 때 남전산으로 피난 갔다가 돌아와 객점 주인한테 물어 본즉 혹은 낭자가 액정에 박혔다 하며 혹은 먼 고을에 관비가 되어 갔다 하며 혹은 흉화를 면치 못하였다 하여 적실한 소실을 알지 모사형 다시 가망이 없는 고로 부득이 다른 집에 혼처를 구하나 매양 화산과 위수 사이를 지나매 몸은 짝 잃은 기러기 같고 마음은 낚시에 꿰인 고기 같더니 천은이 융숭 하사 비록 새로 함께 모였으되 마음에 불안한 일이 있으니 이는 다름이 아니요, 바로 객점에서 정한 언약이 어찌 부실로서 서약하였으리오? 마침내 난자로 하여금 이 위에 굽히게 하였으니 어찌 아깝지 아니하며 부끄럽지 아니하겠소?”
진씨가 이에 대답하기를,
“소첩이 기박한 신수는 소첩이 스스로 알고 그때 유모를 객점으로 보낼 때에 낭군이 만일 아내가 있는 몸이라면 스스로 부실 되기를 원하였거늘 이제 공주 다음 가는 자리에 있사오니 소첩의 영광이요, 다행이온즉 소첩이 만일 원망하고 한탄하면 하늘이 미워하시리이다.”
이러므로 이 밤에는 옛정이 새로워 전일의 두 밤에 견주어 더욱 친밀하였다.
두 공주와 양승상의 계교
이튿날에는 승상이 난양공주와 더불어 영양공주 방에 모여 같이 앉아서 술을 마실 때, 영양공주가 소리를 낮추어 시녀를 불러 진숙인을 청하였다. 승상이 그 목소리를 듣고 스스로 구슬픈 감회가 서려 낯에 오르니, 이는 전일에 양생이 여복을 입고 정사도 집에 들어가 소저를 대하여 거문고를 탈 적에, 이 날의 영양공주의 음성이 또한 정소저의 그것이요, 자세히 본즉 모습이 또한 정소저라, 승상이 이에 이르러 곰곰 생각하되
‘세상에 흡사한 사람도 있도다! 내 정씨와 혼인을 언약할 적에, 사생을 한가지로 하고자 하였더니, 이제 나는 금실의 즐거움을 맺었거니와 정씨의 외로운 넋은 어느 곳에 의탁하였을꼬? 내 허물을 피하고자 하여 무덤 앞에 한 잔 술과 궤연에서 곡 한 번 아니하였으니, 내 정씨를 저버림이 심하도다!’
하고, 두 눈에 눈물이 고이니, 영양공주의 거울 같은 마음으로 승상의 가슴 속을 어찌 알지 못하리오. 이에 옷깃을 바로잡고 묻기를,
“이제 상공께서 잔을 잡으시매 갑자기 슬픈 빛이 엿보이오니, 감히 그 연고를 알고자 하나이다.”
승상이 사례하며,
“소유의 마음 속 일을 어찌 귀주께 감추리요. 소유가 지난날 정사도 집에 가서 그 여자를 보았거니와, 귀주는 음성과 용모가 정씨 여자와 흡사한 고로 눈에 어른거리고 마음에 살아나기에 아마도 비창한가 하오니, 귀주의 괴이하게 여기지 마옵소서.”
영양공주가 이 말을 듣고나자 볼에 붉은 빛을 띠며, 홀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전으로 들어가서는 오랫동안 나오지 아니하므로, 승상이 시녀를 시켜 영양공주를 청하나 시녀 또한 나오지 아니하기에 난양공주가 이르기를,
“저저는 태후마마의 극진한 사랑을 받은 고로 성품이 굽힐 줄을 몰라 소첩의 잔망함과는 같지 않으시더니, 아마도 상공께서 정녀와 비교하시매 매우 미흡한 마음이 있는가 보옵니다.”
승상이 다시 진씨를 보내어 영양공주에게 사죄하기를,
“소유가 취중에 망발하였으니, 귀주가 곧 나오시면 소유는 마땅히 진문공과 같이 가두기를 청하리이다.”
하였더니, 이윽한 후에 진씨가 돌아오나 전하는 말이 없으므로 승상이 물어보니,
“귀주가 무슨 말씀하더뇨?”
진씨는 대답하기를,
“귀주께서 노여움이 크사와 말씀이 과하시기에 감히 전치 못하겠나이다.”
승상이 정색을 하며 이르되,
“귀주의 과하신 말씀이 숙인에게는 허물 되지 않을 터이니 모름지기 자세히 전하렸다!”
마지못하여 진씨가 대답하기를,
“영양공주의 말씀이
‘소첩은 비록 잔졸하나 태후마마의 총애하는 딸이요, 정녀가 비록 요조하나 여염의 미천한 집 여아라. 예법에 이르기를 길말(임금이 타는 말)에 허리를 굽힌다 하였으니 말은 공경함이 아니라, 인군의 타신 바를 공경함이거늘, 하물며 인군이 사랑하시는 누이에 있어서랴? 정녀가 일찍이 체모를 생각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 자색을 자랑하여 상공과 더불어 말을 건네며 거문고 곡조를 논난하였은 즉, 아무래도 몸가짐이 옳지 못할지라. 또 스스로 혼사가 지체됨을 한탄하여 조울병을 일으켜 청춘을 재촉하였으니 그 산수 가장 기박하거늘, 상공이 어찌 여기에 견주시나뇨? 옛말에 노나라 추호(열녀전에 나오는 인물)가 황금으로 뽕따는 계집을 희롱하매 그 계집이 스스로 물에 빠져 죽었다 하거늘 첩이 어찌 부끄러운 낯으로 오랜 뒤에 알아 들으니, 이는 바로 탁녀(탁문군)가 외당에서 거문고를 타면서 가씨 진서(가충전에 나오는 인물) 집에서 향을 도둑질함과 같으매, 첩은 일로부터 맹세코 문 밖에 나지 아니하고 몸을 마칠지라. 난양은 성품이 유순하여 나와 같지 아니하니 바라건대 상공은 난양과 백년해로 하소서’ 하시더이다.”
승상이 마음에 대노하여 이르기를,
“천하에 여자로 세를 믿음이 이 영양 같은 자 또 있으리오? 과연 부마의 괴로움을 알겠도다.”
이에 난양에게 이르되,
“내 정녀와 더불어 상봉함이 곡절이 있거늘, 이에 영양이 도리어 음행으로 내게 씌우고자 하는데 이는 상관없거니와 용이 이미 죽은 사람에게 미치니 이 실로 한탄할 바로다.”
난양이 이르기를,
“소첩이 마땅히 들어가 저저에게 깨닫도록 말씀하겠나이다.”
하고, 난양공주가 곧 몸을 돌이켜 방을 나가더니 날이 저물도록 또한 영양공주의 거처에서 나오자 아니하였다. 이미 방안에 등촉을 벌여 놓았으나 난양이 시비를 시켜서 말을 전하되,
“소첩이 여러 가지로 타일러도 저저는 마침내 마음을 돌리지 아니하시나이다. 소첩이 당초에 저저와 더불어 사생고락을 같이 하자 언약하여 천지신명께 언약하였기로, 만일 저저가 깊은 궁에 홀로 늙으면 소첩도 또한 깊은 궁에서 늙고자 하오니, 바라건대 승상은 숙인방에 나아가서 오늘 밤을 안녕히 지내소서.”
하니, 승상은 노기가 치밀어 오르나 마음을 억제하여 얼굴과 말에 그러내지 아니하였다. 승상은 빈방장과 친 병풍이 또한 무료하므로 침상에 비스듬히 의지하여 진씨를 바라보니, 진씨가 곧 촛불을 들고 승상을 인도하여 침방으로 돌아가 금화로 용향을 피우며 상아평상에 비단 금침을 펴고서 승상께 아뢰기를,
“소첩이 비록 불만하오나 일찍이 군자의 풍도를 듣사오니, 예법에 (정처가 없으면 첩이 어찌 감히 저녁을 당할쏘냐)하니, 이제 두 공주마마께서 다 내전에 드신지라, 소첩이 어찌 감히 상공을 모시고 이 밤을 지낼 수 있사오리까? 승상은 안녕히 취침하소서.”
하고 조용히 침소에서 걸어나가기에, 승상이 비록 만류치 아니하였다.
그러나 이 밤의 경색이 자못 쓸쓸한지라 드디어 방장을 드리우고 베개를 베고 드러누우매 엎치락뒤치락 잠을 이루지 못하고 홀로 말하기를,
‘이 무리들이 떼를 짓고 꾀를 내어 장부를 조롱하니, 내 어찌 저들에게 애걸할 것이냐. 내 전일 정사도 집 화원에 있으매, 낮이면 정십삼과 더불어 주루에게 취하고 밤이면 춘랑과 더불어 촛불을 대하여 술을 마시니 하루도 불쾌감이 없었거니와, 이제 부마된 지 삼일에 마음이 매우 괴롭도다.’
하고 손을 들어 사창을 여니, 은하수는 하늘에 비끼고 월색은 뜰에 가득하기에 신을 끌고 나아가 거닐다가, 멀리 영양공주의 방쪽을 바라보니 촛불이 휘황하여 사창이 영롱하기에 승상이 마음 속으로 뇌이되 ‘밤이 이미 깊었거늘 궁인이 어찌 지금껏 자지 않을꼬? 영양이 내게 노하여 나를 이리로 보내더니, 이미 침실로 돌아갔는가?’
승상이 마음을 다지고서 발자욱 소리를 죽이며 고이 걸어 가만히 창밖에 나아간즉, 두 공주의 말소리와 웃는 소리와 주사위 쌍륙 소리가 창 밖으로 새어 나오자 이를 이상히 여긴 승상은 가만히 창틈으로 엿보았다. 그 여자가 몸을 돌려 촛불을 돋우는데 자세히 보니 가춘운이다. 원래 춘운은 공주들이 대례를 올리던 날 궁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 날은 춘운이 몸을 감추어 승상을 보지 아니한고로 승상은 춘운이 있을 줄을 어찌 알았으리오? 승상이 놀라 괴이쩍게 여기며 홀로 지껄이기를,
‘필연 공주가 춘운의 자색을 보고자 불러들였구나.’
하는데 진씨가 갑자기 주사위판을 다시 벌리며 말하기를,
“내기를 아니하므로 재미가 없으니, 내 마땅히 춘랑과 더불어 내기를 하리로다.”
춘운이 이에 대답하되,
“춘운은 본래 빈한하여 한 그릇 주훈도 다행으로 알거니와, 진숙인은 공주마마의 곁에 있었기로 능라 금수와 경거옥패가 풍족하실 터이니 춘운한테 무슨 물건을 내기하라 하시오?”
진씨가 대답하기를,
“내 이기지 못하면 허리에 찬 노리개와 머리에 꽃은 비녀 중에 춘랑이 구하는 대로 줄 것이요, 낭자가 이기지 못하면 내 청을 들을지니, 이 일은 실로 낭자에게는 허비할 바 없을 것이오.”
춘운이 이에 묻되,
“청코자 하는 바는 무슨 일이며, 듣고자 하는 바는 무슨 말이오?”
진씨가 대답하기를,
“지난번에 두 공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매, 춘랑이 선녀도 되고 귀신도 되어 승상을 속이었다 하는데, 내 그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으니, 낭자가 지거든 이 일을 고담삼아 내게 들리라.”
춘운이 이에 주사위판을 밀고 영양공주를 향하여 여쭈기를,
“아가씨, 아가씨! 아가씨는 평일에 춘운을 사랑하심이 지극하시더니 이런 이야기를 공주님께 들리사 숙인이 이미 들었다 하오니, 궁중에 귀 있는 사람이야 뉘 알지 못하였사오리까? 이제 춘운이 무슨 면목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사오리까?”
진씨가 말하기를,
“이 몸이 춘랑에게 팩할 말이 있소. 우리 공주가 어찌 춘랑의 아가씨가 되리요? 영양공주는 곧 대승상의 부인이요, 위국공의 여군이이오. 연세는 비록 젊으시나 지위는 이미 높으시니 어찌 감히 아가씨라 부리리요?”
춘운이 사과하되,
“십 년이나 익은 입을 하루 아침에 고치기 어렵고, 꽃을 다투고 가지를 가지고자 싸우던 일이 완연히 어제 같으니 공주를 내가 두려워하지 않은 데서 실언함이니 용서하소서.”
하고, 이어서 소리내어 크게 웃거늘, 난양공주가 영양공주에게 물었다.
“춘운의 이야기 끝을 소매도 미처 듣지 못하였는데, 과연 승상께서 춘운에게 속았나이까?”
영양이 비로소 말하기를,
“승상께서 춘운에게 속은 일이 많으니, 불 아니 땐 굴뚝에 어찌 연기가 날 수 잇겠나이까? 다만 그 겁내는 형상을 보고자 하였더니 너무 미혹하여 귀신을 미워할 줄 알지 못하니, 예에 이르기를 (호색하는 사람은 계집의 아귀라)하는 말이 과연 거짓말이 아니니, 귀신에 주린 자가 어찌 귀신을 미워할 줄 알겠나이까?”
하니, 모두가 크게 웃었다.
승상이 정녕 영양공주가 정소저인 둘을 알아차리고 또한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여 창을 열고 돌입하고자 하다가 도로 멈추며 홀로 지껄였다.
‘저들이나를 속이고자 하니 내 꼭 저들을 속이리라.’
하고 이에 가만히 진씨방으로 돌아가 잘 자고 나니, 이튿날 일찍 진씨가 나아와 시녀에게 묻되
“승상께서 이미 기침하셨느냐?”
시녀가 대답하기를,
“아직 기침하지 아니하셨나이다.”
진씨가 창 밖에 오래 서 있으니, 어느덧 아침 햇살이 창문에 가득하고 조반상이 곧 들어가겠으되, 승상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이따금 신음하는 소리가 새어나오기에, 진씨가 나아가 물어 보되
“승상께서 미녕하시나이까?”
승상이 눈을 떠 직시하되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 같고 간간이 잠꼬대를 하니, 진씨가 다시 묻기를
“승상께서 어찌 잠꼬대를 하시나이까?”
승상이 어지러운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갑자기 되묻되
“네 누구냐?”
진씨가 대답하기를,
“소첩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소첩은 진숙인이옵나이다.”
승상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요, 눈을 도로 감으며 목안엣 소리로
“진숙인? 진숙인이 누구냐?”
하기에, 진씨가 놀라며 손을 들어 승상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이르기를
“이마가 자못 더우니 승상께서 환후가 계심을 가히 알겠으나 하룻밤 사이에 무슨 병이 이렇듯 위중하시나이까?”
승상이 다시 눈을 떠 정신을 가다듬으며 이르기를
“이상하도다! 정녀가 밤새도록 나를 괴롭히니 내 어찌 알꼬?”
하기로, 진씨가 그 자세한 이야기를 물은즉 승상이 다시금 어지러운 듯 대답지 아니하고 몸을 옮겨 돌아눕기에, 진씨는 매우 걱정이 되므로 시녀를 보내어 공주에게 아뢰기를,
“승상께서 환후가 계시니 속히 나와 뵈옵소서.”
영양공주가 이르되
“어제 술 마시던 상공이 무슨 병이 있으리요? 아무래도 이는 우리들로 하여금 나아가 보게 함이리라.”
하는데, 진씨가 급히 들어와 아뢰되
“상공이 정신이 혼미하사 사람을 보아도 알지 못하시고 오히려 어두운 데를 향하여 잠꼬대를 자주 하시니, 황상께 아뢰옵고 의관을 불러 치료하심이 어떠하오리까?”
하니, 태후가 들으시고 공주를 불러 나무라시되
“너희들이 승상을 지나치게 속였거늘, 그 병이 중함을 듣고도 나아가 보지 않으니, 이 무슨 도리냐? 급히 문병하고 만일 증세가 중하거든 의관 중에 의술이 신묘한 자를 불러 진찰하고 치료케 하렸다!”
영양이 난양과 더불어 승상 침방으로 나아가 마루에 머무르고, 먼저 난양공주가 진씨와 더불어 들어가 보게 하였더니, 승상이 혹은 두 손을 휘두르고 혹은 두 눈을 부릅뜨면서, 처음에는 난양이 묻는 말을 듣지 못하는 듯하더니 비로소 목안엣 소리로 말하기를,
“내 명이 장차 다하겠기로 영양과 더불어 영걸하려 하는데 영양은 보지 못하겠소이다.”
난양이 말하되,
“승상께서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나이까?”
승상이 처량한 말로 덧붙이기를,
“간밤에 비몽사몽간에 정녀가 내게 와서 말하되
‘상공은 어찌 언약을 저버리시나이까?’
하고 노여움이 추상같으며, 진주 한 움큼을 내려 주기에 그것을 받아 삼켰으니 이는 실로 흉한 징조요, 눈을 감은즉 정녀가 내 몸을 누르고 눈을 뜬즉 정녀가 내 앞에 섰으니 어찌 능히 살리오?”
말을 마치지 못하여 또한 기진 하는 시늉을 지으며 낯을 돌려 벽을 향하더니 다시 횡설수설하기에, 난양이 그 동정을 살펴보매 놀랍고 염려되므로, 밖으로 나와 영양에게 이르기를
“승상의 병인즉 아무래도 의질(의심증 질환)이오니 저저 아니면 능히 고칠 자가 없나이다.”
하고 이어서 병의 증세를 말하니, 영양이 반신반의로 주저하므로 난양이 손을 끌고 들어가니, 승상이 아직도 잠꼬대를 하는데 모두가 정씨를 향한 말이라, 난양이 소리를 높여 말하되
“승상, 승상! 저저가 이에 나섰으니 눈을 떠보소서.”
승상이 잠깐 머리를 들고 자주 눈을 희번덕거리며 일어나고자 하는 시늉을 하기에 부축하여 일으켜 평상 위에 앉히니, 승상이 공주들을 대하여 하는 말이,
“소유가 편벽 되게 천은을 입어 두 분 귀주와 더불어 성혼하매 백년해로하자 했더니, 나를 잡아가려는 듯한 자가 있기로 세상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겠으니 이를 서러워하나이다.”
영양이 말하기를,
“승상은 이치를 아는 군자이거늘 어찌 허망한 말씀을 하시나이까? 정씨의 흩어진 넋이 남아 있을지라도 백령이 호위하는 구중궁궐에 어떻게 들어오며, 또 어찌 대승상의 귀중한 몸을 침노할 수 있사오리까?”
승상이 소리 높여 외치며,
“정녀가 지금 당장 내 곁에 있거늘 어찌 들어오지 못한다 이르시오?”
난양이 말하기를,
“옛 사람이 (술잔의 뱀을 마시고 의질을 얻더니, 벽에 걸린 활그림자가 뱀 모양임을 안 후로는 병이 쾌차하더라) 하는데, 승상의 병이 또한 그 같고 쾌차하실 방법도 그와 비슷한 줄로 아뢰나이다.”
승상이 눈을 감고 대답지 아니하며 다만 손만 놀릴 따름이기에, 영양이 병세가 점차 위중한 줄로 보고 다가앉으며 하는 말이
“승상께서는 다만 죽은 정녀만을 생각하시고, 산 정녀는 보고자
아니하시나이까? 승상이 정녀를 보고자 하실진대 소첩이 바로 정녀 경패로소이다.”
승상은 거짓으로 믿지 못하는 체하면서 이르기를,
“무슨 말이뇨? 정사도에게 한 딸이 있다가 죽은 지 이미 오래도다. 죽은 정녀는 이미 내 몸 안에 있은즉 그밖에 어찌 산 정녀가 있으리요? 죽지 않은즉 살고, 살지 않은즉 죽은 것이 사람의 정한 일이요,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나지 못하니라) 하니, 귀주의 말씀을 내 믿지 못하겠소이다.”
이에 난양이 덧붙여 말하되,
“우리 태후마마께서 정씨를 양녀로 삼으시고 영양공주로 봉하사 소첩과 한가지로 승상을 섬기게 하였으니, 영양 저저가 곧 전일의 거문고를 듣던 정소저이니다. 그렇지 않사오면 어찌 정녀가 더불어 털끝만치도 틀림이 없을 수 있사오리까?”
승상이 이 말에는 대답지 아니하고 적이 신음하는 소리를 내더니, 홀연히 머리를 쳐들고 숨을 크게 쉬며 말하되
“내 정씨 집에 있을 적에 정소저의 비자 가춘운이 내게 와 사환 노릇을 하였는데, 이제 춘운한테 할 말을 묻고자 하니 그는 어디 있느뇨? 보고자 하나 그 역시 어렵도다. 슬프다! 한스럽기 그지없도다!”
난양이 이에 밝히기를,
“춘운이 영양 저저께 뵈옵고자 궁중에 들어왔다가 또한 승상의 병환을 근심하여 이제 밖에서 문후하나이다.”
하더니, 춘운이 들어와 여쭈되
“승상께서는 기체 어떠하시나이까?”
승상이 하는 말이
“춘운만 머무르고 그 밖의 사람은 다 나가기 바라오.”
하니, 두 공주와 숙인이 밖으로 나와 난간을 의지하여 섰다.
승상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소세하고 의관을 정제한 다음, 춘운을 시켜 세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니, 춘운이 웃음을 머금고 나와 두 공주와 숙인한테 말하기를,
“승상께서 청하시나이다.”
하기에 네 여인이 함께 들어가니, 승상이 화양건을 쓰고 관금포(비단 수를 놓아 만든 도포)를 입고 백옥여의를 잡고 안석에 의지하여 앉았으니, 기상이 화장한 봄날씨 같아 조금도 병들었다가 일어난 사람 같은 기색이 없으므로 영양공주는 비로소 속은 줄을 알고 웃으며, 머리를 숙이고 다시 문병치 아니하나, 난양공주는 물어 보기를
“승상의 기후 지금은 어떠하시나이까?”
양승상이 정중한 태도로 정대히 대답하기를,
“소유가 근래의 풍속이 괴이함을 보니 미인계로 장부를 속이는지라. 유한하고 정정한 부덕을 장차 어디로 좇아 볼 수 있으리요? 소유가 대신의 반렬에 있기로 이에 교정할 대책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병이 되었으되 이제 쾌차하니 귀주는 염려를 마옵소서.”
하니, 난양과 숙인은 웃으며 대답지 아니하고, 영양이 말하기를
“이 일이온즉 첩들이 알 바 아니오며, 승상의 병근을 알고자 하실 진대는 스스로 돌이켜 보시고 남 속이던 일을 뉘우칠 것이요, 한편 태후마마께 품달하여 보소서.”
승상이 마음에 가려움을 이기지 못하여 이에 소리내어 웃으며 하는 말이
“양소유의 신출귀몰한 계교로 전후 미인계의 실상을 알았으니, (부인은 사람의 아래에 엎드린다)는 말이 옳도다. 그러나 소유가 오직 공경하고 감복함은 태후마마께서 자식 같이 보시는 은덕과 황상폐하의 친신하시는 어념과 귀주의 우애하시는 덕행이오나, 소유 정성을 다하여 금실의 즐거움을 오래오래 누리리이다.”
두 공주와 숙이 부끄러운 빛을 띠며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양승상이 대부인을 모셔다가 잔치하다
이때에 태후가 궁녀로부터 승상이 병을 칭탁한 사유를 아시고 크게 웃고 이르기를,
“내 진실로 의심하였느니라.”
하고, 이에 승상을 불러 보실 적에 두 공주가 또한 모시고 앉았거늘 태후가 하문하시되,
“승상이 이미 죽은 정녀와 더불어 끊어진 인연을 다시 이었다 하니 정녕인고?”
승상은 이에 엎드려 아뢰기를,
“은덕이 조화로 더불어 한결같이 크시니, 신이 분골쇄신할지라도 갚기 어려울 줄로 아뢰나이다.”
태후가 이르기를
“좀 희롱한 것을 어찌 은덕이라 하리요?”
하시었다.
이날 천자께서 정전에 납시어 모든 신하들의 조회를 받으실 때, 신하들이 아뢰기를
“근자에 밝은 별이 높이 뜨며 단이슬이 내리고, 황하의 물이 맑고 곡식이 풍성하고, 세진의 절도사가 땅을 들어 조회하며 강한 토번이 항복하였으니, 이는 다 성덕으로서 이룬 바라 아뢰오.”
상이 겸양하시며 공을 모든 신하들께 돌리시므로, 모든 신하가 한가지로 아뢰기를,
“양소유가 근일 궁중에 오래 머물러 있음으로 정부의 공사가 많이 지체되온 줄로 아뢰오.”
상이 크게 웃고 이르기를,
“태후께서 연일 불러 보시는 고로 승상이 감히 나오지 못함이니, 짐이 친히 효유하여 공사를 보게 하리라.”
하시더니, 이튿날 양상서가 정부에 나아가 공사를 처리하고 드디어 소를 올려 그 모친을 모셔 오려 하였다.
승상 위국공 부마도위 신 양소유는 돈수백배하옵고 황상폐하께 삼가 아뢰나이다.
신은 본디 초땅의 미천한 백성이오라, 노모를 공궤함에 넉넉지 못하므로 두초 같은 작은 재주(두초지재:곧 그릇이 작음을 일컬음)로 외람히 국록으로써 노모를 봉양코자 하여 분수를 헤아리지 않고 향공을 입사와, 과거에 뽑히고 조정에 들어선지 수년에 조서를 받들어 강적을 치매 절도는 무릎을 굽히옵고, 또 명을 받자와 서쪽으로 치매 흉한 토번이 꼼짝 못하고 나아와 항복하오니 어찌 신의 한 계책이라 하리이까?
이는 다 황상폐하의 위덕이 미친 바요, 모든 장수가 죽기로써 싸웠음이거늘, 폐하께옵서는 도리어 이에 작은 수고를 권장하시고 중한 벼슬로서 포양하옵시니 신의 마음에 그지없이 황송하오이다. 또 부마 간택에 하교가 간절하옵고 천은이 깊사오매, 신의 미천함으로 능히 도망치 못하여 받들어 따랐사오니 또한 황송하오이다.
노모가 신에게 바라던 바는 얼마 되지 않는 국록이옵고 신이 원하던 바도 미관 말직에 지나지 아니하옵더니, 이제 신이 장상의 자리에 있사옵고 공후의 작에 있사와 국사에 견마의 충성을 다하려 하기로, 노모를 데려 올 겨를을 내지 못하니, 거처와 음식이 신의 노모와는 판이하온지라 이는 부귀로써 몸을 처하고 빈천으로써 어미를 대접하옴이니 자식된 도리에서 크게 벗어남이 아니겠나이까?
하물며 신의 어미 나이가 높고 신병이 무거우나 다른 자녀가 없사와 가히 구호치 못하오며, 산천이 아득하여 소식이 또한 자주 통치 못하와 노모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옵는데, 이제 국가의 무사함으로 관부가 한가하오니 엎드려 비옵건대 폐하께서는 신의 다급한 형편을 살피시어 신의 봉양코자 하는 소원을 돌아 보시와 각별히 두어 달 겨를 을 허락하시오면, 그 사이에 돌아가 선영에 성묘하고 노모를 데려와 모자와 함께 성덕을 기리며 그로써 반포(까마귀 새끼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줌)의 정성을 다하게 하옵시면, 신은 마땅히 충성을 다하여 천은을 갚사오리니, 성상은 이를 딱하게 여기시와 윤허하옵소서.
상이 상소문을 다 보시고 감탄하시며
“효재라, 소유여!”
하시고, 특별히 황금 일천 근과 비단 팔백 필을 하사하여 그 노모를 헌수케 하고 또 노모를 만나 속히 데리고 돌아오라 하교하시었다. 승상이 대궐로 들어가 사은하고, 두 공주와 진숙인, 가유인과 더불어 작별하였다.
서울을 떠나서 천진교에 다달으니 계섬월, 적경홍의 두 기생이 부윤의 기별을 받고 이미 객관에 와 등대하였기에 승상이 웃으며 두 기생에게 이르기를,
“이 길은 사사로운 길이요, 군병이 아니거늘, 그대들이 어찌 내가 오는 줄을 알았느냐?”
경홍과 섬월이 대답하되,
“승상 위국공 부마도위의 행차를 깊은 산 험한 골짜기에서도 다들 알고 떠들썩하게 들려오는데, 첩들이 비록 두메에 사오나 어찌 귀와 눈이 없사오리까? 하물며 부윤이 첩들을 대접하기를 상공의 다음으로 치니 어찌 기별하지 않으오리까? 상년에 상공께서 여기를 거치시매 첩들이 오히려 생색이 만길이나 높았사온데, 이제 상공의 지위 더 높고 공명이 더 크시니 첩들의 영광이 또한 백배나 더하나이다. 듣자오니 상공께서 두 공주의 부마가 되셨다
하옵는데, 두 분 공주가 능히 첩들을 용납하실는지 알고자 하나이다.”
승상이 대답하기를,
“공주의 한 본은 황상폐하의 매씨요, 또 한 분은 정사도 여식으로 황태후의 양녀가 되었으매, 이는 곧 계랑이 천거한 바이니 정씨가 어찌 계랑이 천거한 은혜를 잊어버리리요? 또한 공주와 더불어 사람을 사랑하고 물건을 용납하는 덕행이 있으니 어찌 두 낭자의 복이라 하지 아니하리요?”
경홍과 섬월이 서로 돌아보며 하례하였다.
승상이 두 사람과 더불어 방을 지내고 다시 길을 떠나 고향에 다달으니, 지난날 십오 세 서생으로 모친 슬하를 하직하고 멀리 갔다가 이제 돌아와 근친하매, 승상의 거마를 타고 위국공의 장복을 입고 아울러 부마의 구함을 겸하니, 사 년 동안 성취함이 과연 장한 일이로다.
들어가 모부인께 뵈온즉, 모부인이 아들의 손을 잡고 그 등을 어루만지며 이르기를
“네가 참말로 우리 아들 소유냐? 내가 아무래도 믿지 못하겠도다. 전일에 육갑을 외우며 글자 모으기를 할 적에 어찌 오늘의 영광이 있을 줄을 뜻하였겠느냐?”
하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눈물을 흘리므로, 소유가 공명을 이룬 일과 장가들고 첩들을 가려잡게 된 사연을 자세히 아뢴즉, 모부인이 탄식하며 말했다.
“너의 부친이 매양 너더러 우리 집을 빛나게 할 자라 하셨는데, 이제 너의 부친과 영화를 함께 누리지 못함이 한이로다.”
승상이 선산에 치제하여 몸이 영화와 부귀를 누리게 됨을 아뢰고, 천자가 내리신 금과 비단으로 대부인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어 오래 삶을 기리고, 일가친척과 친구들을 청하여 열흘 동안이나 손님치례를 하고서 대부인을 모시고 길을 떠나니, 연도의 백성들과 여러 고을의 수령들이 분주하게 호행하니 광채가 한길에 빛났다.
승상이 낙양을 지날 때에 본 고을에 분부하여 경홍과 섬월을 부르라 하였더니, 돌아와 아뢰기를
“두 낭자가 이미 동행하여 서울로 떠난 지 여러 날이 되었소이다.”
승상이 길이 어긋남을 섭섭히 여기고 황성에 이르러 대부인을 승상부로 모시고, 대궐로 들어가 황상을 뵈오니 양궁에서 불러 보시고 금은과 채단 열 수레를 나누어 하사하시니 이로써 대부인께 헌수하고, 만조 백관을 청하여 삼일 잔치를 크게 즐기었다.
승상은 다시 날을 가려잡아 대부인을 모시고 황상께서 내리신 새 집으로 옮겨 드니 누각과 정자, 동산과 연못이 어마어마하였다.
영양공주와 난양공주가 신부례를 행했고, 진숙인과 가유인이 역시 예를 갖추어 뵈오니 대부인은 화기가 흐뭇하며 마음 속으로부터 기꺼워하였다.
승상이 이미 (대부인의 장수를 기리라)하는 명을 받은 고로, 위에서 내리신 물건으로 다시 삼일간 대연을 베풀매 양궁에서 궐내의 악공들을 내보내시며 상께서 잡수시는 음식을 내리시고, 조정의 고관들이 모두 모인지라, 소유가 채색옷을 입고 두 공주와 더불어 옥잔을 높이 들어 차례로 대부인께 올려 장수함을 기리며 매우 즐겁게 노닐 때, 잔치가 아직 파하지 아니하였는데 문 지키는 자가 들어와 아뢰기를
“문 밖에 두 낭자가 와서 대부인과 승상께 명첩(명함)을 드리나이다.”
하기에 받아 보니 섬월과 경홍이니라. 이에 대부인께 이 뜻을 사뢰고 곧 불러들이매, 두 기생이 섬돌 아래에서 절하고 뵈오니, 모든 손님이 한가지로 칭찬했다.
“낙양땅의 계섬월과 하북땅의 적경홍이 이름난 지가 오랬거니와 과연 절세의 미인으로다! 양승상의 풍류가 아니면 어찌 능히 여기 오게 할 수 있으리요?”
승상이 두 기생에게 명하여 그 가진 바 재주를 보이게 하매, 경홍과 섬월이 동시에 일어나 구슬신을 끌고 구슬 자리에 올라 가벼운 소매를 날리며 예상우의곡에 맞추어 춤을 추니, 떨어지는 꽃과 나부끼는 가지는 봄바람에 떠다니며 구름 그림자와 눈비는 비단 장막에 비치니, 한궁의 조비연(한무제의 시첩)이 다시 부마궁에 나타났고, 금곡의 녹주(석숭의 애첩)가 다시 위국공수의 당상에 섰기에 , 대부인과 두 공주가 능라와 금수로 두 기녀에게 상급을 내리고, 진숙인은 본디 섬월과 더불어 아는 고로 옛일을 말하며 쌓였던 회포를 풀 즈음, 영양공주가 몸소 술잔을 잡아 따로이 계랑한테 권하여 그로써 천거하여 준 은혜를 갚는지라, 유부인(소유의 모친)이 승상에게 이르기를,
“너희들이 섬월에게는 사례하면서, 내 외사촌은 잊었느냐?”
승상은 이에 대답하되
“소자의 오늘의 즐거움이 모두 두련사의 덕이요, 또 모친께서 이미 서울에 오셨으니, 비록 모친의 말씀이 없으실 지라도 진실로 받들어 청코자 하나이다.”
하고, 즉시 사람을 자청관으로 보내니, 모든 여관이 말하기를
“두련사께서는 촉 땅으로 가신 지 이미 삼 년이옵니다.”
하니, 유부인이 매우 섭섭히 여기셨다.
월왕이 양승상에게 놀이를 청하다
양승상이 부중에 각각 거처를 정할 때, 정당은 경복당이니 대부인이 살고, 경복당 앞은 연희당이니 좌부인 영양공주가 머무르고, 경복당 서쪽은 봉소궁이니 우부인 난양공주의 처소였다.
연희당 앞의 응향각과 청화루는 승상이 거처하며 때때로 거기서 잔치를 베풀고, 그 앞의 연현당은 승상이 손을 응접하는 집이요, 봉소궁 남쪽의 심흥원은 진숙인 채봉의 방이요, 연희당 동쪽의 영춘각은 가유인 춘운의 방이요,
청화루 동과 서에는 각각 작은 누가 날렸으니 푸른 창과 붉은 난간이 서로 비추며 행랑이 돌아 청화루를 접하였다.
응향각 동쪽은 상화루요, 서쪽은 망월루이니 계섬월과 적경홍이 각각 한 누씩 차지하고서 궁중기악 팔십 인이 다 천하에 자색이 드러나고 재주 있는 사람들인데 이를 동, 서부로 나누었다. 동부 사십 인은 계랑이 주장하고, 서부 사십 인은 경홍이 맡아 가무를 치며 풍악을 공부시키고, 매월 청화루에 모여서 동, 서양부의 재주를 비교하였다. 승상이 대부인을 모시고 두 공주를 거느리며 누각에서 관상할 때, 이기는 자는 석 잔 술로서 상을 주고 머리에다 꽃 한가지씩을 꽂아서 영광을 빛내고, 지는 자에게는 한 잔 냉수를 벌로 먹이고 먹붓으로 이마에 한 점을 찍어서 그 마음을 부끄럽게 하는 고로, 모든 기생들의 재주가 날로 점점 성숙하니 위공부와 월왕궁의 여악이 천하에 이름이 드날리어, 비록 이원(당현종 때 영인들을 가르치던 곳)의 악공이라 할지라도 이 두 악공을 따르지 못할 정도였다.
하루는 두 공주가 모든 낭자들과 더불어 대부인을 찬아 모시고 있는데 승상이 한 봉 글을 가지고 들어와 난양공주에게 내주며 이르기를,
“이는 곧 월왕 전하의 글월이외다.”
공주가 펴 보니 다음과 같았다.
봄날이 아주 화창하온데 승상궁 댁내가 고루 만복하시나이까? 지난 적에는 나라에 일이 많고 공사에 겨를이 없어 낙유원에 말을 머무르게 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곤명지 머리에 다시 배를 대는 즐거움이 없으니 마침내 가무를 즐기는 곳에다 어느덧 잡풀이 마당을 이룬지라 장안의 노인네들이 매양 열성조의 성덕으로 시절이 번화하던 옛일을 그리며 때로는 눈물을 흘리는 자가 있으니, 이는 자못 태평한 기상이 아니외다.
이제 황제 폐하의 은덕과 승상의 큰 공을 입어 사해가 태평하고 백성이 안락하며 다시 개원과 천보(개원, 천보 모두 당현종 때의 연호)때와 같이 즐거운 일을 치르는 것이 곧 이때요, 또 봄빛이 저물지 아니하고 날씨가 화창하여, 고운 꽃과 부드러운 버들이 능히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기쁘고 평안케 하니 아름다운 경치와 좋은 구경이 또한 이때에 잇는 지라, 승상과 더불어 아름다운 경치와 좋은 구경이 또한 이때에 있는 지라, 승상과 더불어 낙유원 위에 모이어 혹은 사냥하는 것을 보며 혹은 풍악을 들어 태평한 기상을 돋우고자 하오니, 승상의 마음이 이에 있거든 곧 일자를 정하여 회답을 주어 과인으로 하여금 따르게 하시면 다행이겠소이다.
글월을 보고 난 공주가 승상께 여쭈기를,
“상공께서는 이 월왕의 뜻을 아시나이까?”
승상이 대답하기를,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으나 , 소유의 생각으로는 꽃놀이에 불과할 듯하니 실로 귀공자다운 풍류가 아니겠소?”
“상공께서는 아직도 다 알지 못하시리이다. 월왕 오라버니가 좋아하는 바는 오직 미녀와 풍악이오라, 그 궁녀에 절세의 미녀가 한둘이 아니었는데, 요즈음 새로운 총첩으로는 무창의 명기로 꼽히는 만옥연이니, 월왕궁의 미인들이 옥연을 한번 보매 정신이 없어 스스로 무염(극히 추한 여자를 뜻함. 제나라 선제의 왕비)과 모모(추부, 황제의 네째 왕비)같이 아리땁지 못한 여자로 자처한다 하오니 옥연의 자색과 용모가 세상에 견줄 바 없음을 가히 짐작하옵는데, 오라버니가 우리 궁전에 미인이 많다고 하는 말을 듣고, 아마 왕개(진대의 장군, 대부호)와 석숭의 서로 비교함을 본받고자 함이로소이다.”
승상이 웃으며 이르기를,
“나는 범연히 보았는데 공주가 먼저 월왕의 뜻을 알았소이다.”
영양공주가 이에 곁들어 말하기를,
“이것이 비록 한때의 놀이기는 하되, 남에게 져서는 아니될 것이렸다.”
하고, 경홍과 섬월에게 눈짓하여 일러두되
“군사를 비록 십 년 기르나 쓰기는 하루 아침에 있는 법이라, 이번 놀이의 승부는 오직 두 교사의 수중에 달렸으니 모름지기 힘쓰기를 바라노라.”
섬월이 대답하기를,
“천첩은 아무래도 대적할 재주가 없음을 염려하나이다. 월왕궁의 풍악은 천 명의 악공이 일제히 나서고, 옥연은 구주에 그 이름이 떨쳤는데, 월왕 전하께서 이미 이렇듯 풍악을 거느리고 또 이렇듯 미인을 두시니 이는 천하에 대적할 자 없겠고, 첩들은 이를테면 재주는 적은 군사로서 규율도 밝지 못하며 기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함과 같사오니, 첩들의 가소로움은 족히 괘념할 것이 없사오나 다만 승상부의 수치가 되올까 두렵나이다.”
승상이 말하되,
“내 계랑과 더불어 처음으로 낙양에서 만났을 적에 (청루의 절세 미녀가 셋이 있다)고 일컫는데, 옥연의 이름이 그 가운데 있더니 필시 이 사람이렸다. 그러나 청루의 절색이 세 사람뿐일진대 내 이제 항우(초패왕)와 한가지와 장량(장자방)과 진평(한고조의 모신)을 얻었던 어찌한 범증(항우의 모신)을 두려워하리요?”
섬월이 말하기를,
“월왕궁의 미녀들은 (팔공산의 초목 아닌 것이 없다)하리 만큼 제들은 겉치장이 화려한지라, 군사들이 지레 겁을 내어 달아날 터이니, 우리가 어찌 감히 대적할 수 있사오리까? 바라옵건대 공주마마께서는 계책을 적랑에게 물어 보소서. 첩은 담약하여 이 말씀을 들으매 문득 목이 잠겨 제대로 노래를 부르지 못하겠나이다.”
경홍이 분연히 나무라기를
“계낭자의 그 말이 참말인가? 우리 두 사람이 관동 칠십여 고을을 돌아다니며, 이름을 홀로 드날리던 기약이 어찌 가히 옥연에게 첫자리를 물려주리요? 세상에 나라를 쓰러뜨리며 성을 무러뜨리던 한궁 부인과,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던 초대신녀(무산의 여인)가 있으면 적이 부끄러운 마음이 서리려니와, 그렇지 아니한즉 저 옥연 따위를 어찌 족히 꺼리리요?”
섬월이 다시 말하기를,
“적랑의 말이 어찌 그리 용한가? 우리들이 일찍이 관동에 있으면서 크면 태수의 방백이요, 적으면 호기로운 선비와 협기 있는 풍류랑 잔치뿐이요, 강한 대적을 만나지 못하였기로 남에게 첫째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거니와, 이제 월왕 전하는 대내의 귀하신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나신지라 안목이 매우 높고 평론함이 날카로우시니, 마치 적랑의 말은 (주먹돌을 보고 태산을 업신여긴다)는 옛말과도 같도다. 하물며 옥연은 지략이 월왕 궁중에서도 장자방이라, 장막 가운데 앉아 천리 밖에서 승리를 거두는 책략이 있거늘, 이제 조괄(호언장담하던 진군에 패배하여 살해된 사람. 조나라의 장수)과 같이 큰소리를 치니 아무래도 패배를 당하리로다.”
하고, 이어서 승상께 아뢰기를
“적랑이 우쭐거리는 마음이 있사오니 천첩이 그 흠처를 말씀드리겠나이다. 적랑이 처음으로 상공을 따를 적에 연왕의 천리마를 도적질한 하북 소년이라 자칭하고, 상공을 한단 길가에서 속였으니 그 용모가 곱고 태도가 유미한들 상공께서 어찌 남자로 속았사오리까? 또한 적랑이 상공을 처음으로 모시던 날 밤에 어둠을 타 천첩의 몸을 대신하였으니 이는 바로 남의 힘으로 소원을 이루었음이거늘, 이제 천첩을 대하여 이러한 자랑을 내놓으니 역시 우습지 않겠나이까?”
경홍이 웃으며 이에 응답하였다.
“진실로 사람의 마음이란 측량치 못하겠나이다. 천첩이 상공을 따르기 전에는 하늘 위에 항아 같이 칭찬을 하더니, 이제 와 괄시하니 상공의 은총을 홀로 차질하고자 하여 질투하는 기미가 잇나이다.”
섬월과 모든 낭자들이 다 소리내어 웃기에, 영양공주가 이르되
“적랑이 가냘픔이 저 같거늘 남자로 보았음은 승상께서 한 쌍 눈동자가 아마도 총명치 아니하리라. 그러나 계랑의 말하는 바 과연 옳도다. 여자가 남복으로 사람을 속이는 자는 필시 여자로서의 고운 태도가 없음이요, 또 남자가 여복으로 사람을 속이는 자는 필시 장부로서의 기골이 없음이니, 다 그 부족한 곳을 따라서 그 거짓 것을 꾸밈이로다.”
승상이 소리내어 웃으며 이르기를,
“공주의 말씀이 과연 옳도다! 한 쌍의 눈동자가 총명치 못하여 능히 거문고의 곡조를 분별하되 여복을 입은 남자는 분별치 못하였으니, 이는 바로 귀는 가졌으되 눈은 없음이라, 면상의 일곱 구멍 중에 하나가 없음인즉 어찌 가히 온전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으리요? 공주는 비록 소유의 잔졸함을 비웃으나 기린각에 양원수의 화상을 보는 자는 다 외모의 웅장함과 위풍이 당당함을 칭찬하더이다.”
모인 사람들이 다시 한바탕 크게 웃으니 섬월이 말하되,
“이제 강한 대적을 상대로 진을 칠 터이온즉, 어찌 그다지도 한가지로 희롱의 말씀만 할 수 있겠나이까? 우리 두 사람만 믿기는 어렵사오니 역시 가유인이 동행함이 어떠하오며, 월왕이 또한 모르는 분이 아니니 진숙인도 동행한들 무슨 거리낌이 있겠나이까?”
이에 진씨가 대답하기를,
“계랑, 적랑의 두 낭자가 만일에 여자의 과거장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면 내 마땅히 한 팔의 힘이라도 도우려니와 가무하는 마당에서 나를 어디다 쓰겠소?
이는 이른바 시정잡배를 몰아가 싸우는 것이나 다를 바 없음이, 성공치 못할까 두려울 따름이오.”
또한 춘운이 이르기를,
“천첩의 한 몸이 남에게 비웃음을 받으며 재치 없는 가무로 수치를 당할 뿐이라면 이러한 큰 놀이에 어찌 구경할 마음이 없으리오마는, 천첩이 만일 따라가면 사람들이 필연 손가락질을 하며 ‘저는 대승상 위국공의 첩이요, 영양공주의 잉첩이라.’ 하며 웃을 터이니, 이는 상공께 비웃음을 끼치고 두 정실부인께 근심을 남김이니, 춘운은 결단코 가지 않을 것이오.”
영양공주가 이에 되묻기를,
“어찌하여 춘운이 가는 것으로 상공께서 비웃음을 받으며, 또 우리가 그대로 말미암아 근심이 있으리요?”
춘운이 대답하되
“비단요를 널리 펼치고 구름 차일을 높이 걷으면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양승상의 첩 가유인이 온다’ 하며 어깨를 부비고 발꿈치를 돋우며 구경하거늘, 마침내 걸음을 옮겨 자리에 오르면 이 몸은 숙대강이에 더러운 얼굴이라, 사람들이 모두 크게 놀라 하는 말이 ‘양승상이 등도자(중국 시대 호색한)와 같은 호색하는 병이 있도다.’ 하리니, 이 어찌 상공께서 욕을 당하심이 아니며, 월왕 전하는 일찍이 누추한 물건을 보지 못하였기로 천첩을 보시면 필연 구역이 나서 미령하실 터이니 이 역시 마마께 근심이 아닐 수 있사오리까?”
난양공주가 춘운의 지나친 겸손의 말을 듣고 나무라되,
“가씨의 겸사는 너무 심하렸다! 전자에는 사람으로 귀신이 되더니 이제는 서시(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미인계로 바쳤던 월의 미녀) 같은 미녀로서 무염 같은 추부가 되고자 하니 그 말을 아무래도 믿지 못하겠도다.”
하고, 승상에게 물어 보되
“어느 날로 기약하셨나이까?”
승상이 대답하되,
“내일로 언약하였소이다.”
경홍과 섬월이 이에 이르러 말하기를,
“동, 서 양부의 교방(음악, 기생 지도원)에 아직도 영을 내리지 못하였으니, 일이 이미 늦었나이다.”
하고, 곧이어 우두머리 기생을 불러 명을 내리되,
“내일 승상께서 월왕과 더불어 낙유원에 모이기로 언약하셨으니, 양부의 모든 기생들은 모름지기 새 단장으로 꾸미고서, 악기를 가지고 내일 새벽에 승상을 모셔 따라가도록 하라.”
팔십 명의 기생이 일시에 명을 받고 얼굴 치장을 하며 눈썹을 그리고 악기를 잡아 풍류를 익히며 준비에 한참 동안 분주했다.
이튿날 새벽에 승상은 일찍 군복을 입고 활과 살을 차고자 눈빛같이 흰 천리 융산마를 타고, 사냥꾼 삼백 명을 불러 호위케 하여 성문 밖 남쪽으로 향하였다.
경홍과 섬월은 금과 옥을 아로새기고 꽃을 수놓아 잎새를 그렸으며, 각기 기생을 거느리고 화초말 금인장에 걸터앉아 산호편을 들어 구슬 고삐를 느직이 잡고, 승상의 뒤를 가까이 따르며, 팔십 명의 기생들은 각기 빠른 말을 잡아타고 적경홍과 계섬월의 좌우를 호위하여 나아가다가, 중로에서 월왕을 만나니 월왕의 사냥꾼과 기악이 족히 승상의 편과 더불어 맞먹겠더라.
월왕이 승상과 더불어 말머리를 가지런히 하여 나아가더니, 월왕이 승상에게
“승상이 타신 말은 어느 나라의 종자이니까?”
승상이 대답하되,
“대완국(지금의 아프가니스탄)에서 났나이다. 대왕께서 타신 말도 완종인 듯하나이다.”
월왕이 이에 대답하기를,
“그러하외다. 이 말의 이름은 부운총인데 상년 가을에 천자를 모시고 상림원에서 사냥할 때에 나라 마굿간에 만여 필의 말이 모두 바람같이 빠르되 이 말을 능히 따르는 것이 없고, 장부마의 도화총과 이장군의 오추마가 다 용마라 일컫되 이 말에 견주면 매우 둔하외다.”
승상이 말하기를
“연전에 토번을 칠 때에 깊고 험한 물과 높고 가파른 석벽에 사람은 도저히 발을 붙이지 못하거늘 이 말은 그곳을 평지 밟듯하여 한번도 실족함이 없었으니 소유의 공을 이룬 것이 실로 말의 힘을 입은 것인즉, 두자미의 이른바 (사람과 더불어 한마음이 되어 큰 공을 이루다) 함이 곧 이것인가 하나이다. 소유가 군사를 돌이킨 후에 작품이 높아지고 벼슬이 한가하여 편히 평교자를 타고 평탄한 대로를 서서히 다니는 고로 사람과 말이 한가지로 병이 나려 하니 청컨대 대왕과 더불어 채찍을 둘러 한 번 준총의 빠른 걸음을 견주며 옛 장수의 나머지 용맹을 다투어 보심이 어떠하나이까?”
월왕이 승상의 제안을 매우 기껍게 응낙하되
“그 역시 나의 생각이로다!”
하였다.
드디어 모시는 자에게 분부를 내려 두 집의 손과 기녀들을 군막에서 기다리게 한 다음, 채찍을 들어 말을 치려 할 즈음 때마침, 큰 사슴 한 마리가 사냥꾼에게 쫓겨 월왕의 앞을 지나치기에 왕이 말 앞의 장사를 시켜 쏘라 하니 여러 장사들이 일시에 활을 당기되 맞추지 못하므로 왕이 노하여 말을 제쳐 나아가며 한 살로 그 옆구리를 맞추어 죽이니 모든 군사가 일제히 천세를 불렀다.
이에 승상이 축하하기를,
“대왕의 신통한 화살은 여양왕(당의 왕자로 활을 잘 쏨)과 다름이 없나이다.”
월왕은 이에 겸양하여 이르기를,
“작은 재주를 어찌 그토록 칭찬하리요? 내 승상의 활 쏘는 법을 보고자 하나이다.”
말을 마치지 못하여 때마침 고니 한 쌍이 구름 사이로 날아오니 모든 군사를 말하기를,
“이 새는 가장 쏘기 어려운지라, 마땅히 송골매를 쏘아야 되겠나이다.”
승상이 다급히 이르기를
“너희는 아직 쏘지 말렸다!”
하고, 살을 들어 고니를 쏘아 눈을 맞추어 말 앞에 떨어지게 하니 이를 본 월왕이 크게 칭찬하되,
“승상의 묘한 수단은 이제 양유기(춘추시대의 초대부. 활의 명수)와 같도다!”
하고, 두 사람이 채찍을 한 번 휘두르매 두 말이 일제히 같이 날아 번개같이 달리며 귀신같이 번뜩이어 순식간에 넓은 벌판을 가로질러 높은 산에 오르더니, 두 사람이 고삐를 당겨 나란히 섰다.
산천의 경개를 둘러보며 양승상과 월왕이 활 쏘는 법과 검술을 논의하는데, 추종들이 비로소 따라와 사슴과 고니를 은반에 담아 바치니 두 사람이 말에서 내려와 풀밭에 앉아서 허리에 찬 칼을 빼어 고기를 베어 구워 먹으며 서로 술을 권할 때, 멀리 보매 홍포를 입은 두관원이 급히 오고 그 뒤에 사람의 한 무리가 따르니 이는 성중으로부터 나오는 자들이었다.
삽시간에 한 사람이 달려와 아뢰되,
“양전궁에서 술을 내리셨나이다.”
한다.
월왕이 군막에서 등대하니 두 내관이 어사하신 술을 따라 두 사람에게 권하고 이어서 용봉의 무늬가 든 시전지 한 봉을 주기에, 두 사람이 세수하고 꿇어앉아 펴 보니 산에서 크게 사냥함을 글제로 글을 지어 드리라 하셨더라.
월왕이 머리를 조아려 네 번을 절하고 각기 글을 지어 내관에게 주었다.
양소유는 다음과 같이 읊었다.
새벽에 장사를 몰아 들로 나아가니
칼은 가을 연꽃 같고 화살은 별 같구나
장막 속 뭇계집은 천하백이요
말 앞에 쌍날개는 송골매이더라
어사하신 술 나누어 마시매 다투어 감동함을 머금고
취하여 금칼을 빼니 스스로 비린 것을 베었어라
뒤이어 지난해의 서새(서쪽 변방)밖을 생각하니
대황산 풍설을 맞으며 왕정에게 사냥하였네
월왕은 글에 읊었으되,
접섭히 나는 용마가 번쩍하는 번개 같이 지나치니
안장을 어거하고 북을 울리며 평탄한 언덕에 섰더라
흐르는 별은 기세가 빨라 푸른 사슴을 죽이고
밝은 달은 형상을 열러 흰 거위를 떨구었더라.
살기는 능히 호기로운 홍취를 가르쳐 일게 하고
성은은 머물러 취한 얼굴을 더욱 붉게 하더라
여양왕의 신통히 쏘는 것을 그대는 말하지 말라
다투어 오늘 아침에 살진 고기 얻은 것이 많도다.
내관이 두 글을 받아 가지고 돌아갔다.
이에 두 집의 손들이 차례대로 늘어앉아 하례 하매, 술도감이 주안상을 드리는데, 낙타의 신기한 맛과 성성(원숭이류 짐승 이름)의 연한 입술은 은가마에서 나오고, 월나라의 여지(박과에 딸린 일년생 초)와 영가고을의 귤은 옥소반에 가득하니 서왕모의 요지연이 아니면 한무제 백량회(한무제가 백량대라는 누각을 세우가 여기서 시외를 열었음) 같았다.
수백 명의 기녀들이 촘촘히 모여들어 갑옷으로 장막을 이루고 패물 소리는 우레와도 같으며 한 줌 밖에 아니되는 가는 허리는 마치 버들가지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얼굴은 꽃빛처럼 곱고 풍악 소리는 곡강의 무릎 끓어 오리게 하며 노래 소리는 종남산을 움직거리게 하니, 술이 거나하여진 월왕이 승상한테 이르기를,
“승상의 두터운 정을 입었기로 구구한 정성을 드릴 것은, 들고 온 첩 수인으로 하여금 한 번 승상의 즐거움을 돕고자 하니 청컨대 앞에 불러 노래하며 춤추게 해 주소서.”
승상이 사례하되,
“소유가 어찌 감히 대왕의 총첩과 더불어 대면할 수 있겠소이까마는 온전히 남매의 정의만을 믿고 감히 참람한 생각이 있사온즉 소유의 첩 수명 이 역시 구경코자 따라왔으니 또한 불러들여 대왕의 첩과 더불어 각기 잘하는 기예에 따라서 흥을 돕고자 하나이다.”
월왕이 하는 말이,
“승상의 말씀 또한 좋소이다!”
하기에, 이에 섬월과 경홍과 월왕궁의 네 미녀가 분부를 받고 일어나 장막 앞에서 절을 드리니, 승상이 말하기를,
“옛날에 영왕이 한 미인을 두었으니 그 이름은 부용이라, 이태백이 영왕께 간청하여 겨우 미인의 목소리만 듣고 그 낯을 보지 못하였는데, 이제 소유는 마음껏 너희들의 낯을 보니 그 얻는 바가 이태백보다 갑절이나 낫도다. 네 미인의 성명은 무엇이뇨?”
네 미인이 일어나 대답하기를,
“첩들은 금릉에서 온 두운선과 진류에서 온 소채아와 무창에서 온 만옥연과 장안의 호영영이옵나이다.”
승상이 월왕을 보고 칭송하기를,
“소유가 지난날 선비의 몸으로 떠돌며 놀 적에 옥연 낭자의 이름을 들었는데 이제 비로소 그 낯을 보니 그 이름보다도 아리땁소이다.”
월왕도 또한 섬월과 경홍의 이름을 들어 알고 있는지라.
“두 미임을 온 천하가 추앙하더니 이제 승상부로 들어왔음은 주인을 잘 만났도다. 승상은 언제 이 미인들을 얻었나이까?”
승상이 대답하되,
“계씨는 소유가 과거 보러 올 적에 낙양에 다다르니 자기가 스스로 따랐고, 적씨는 일찍이 연왕궁에 들어갔다가, 소유가 사신으로 연나라에 가매 스스로 빠져나와 소유를 따랐나이다.”
왕이 이 말을 듣자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며,
“적랑의 호방한 기상은 양가의 집불기생에 견줄 바 아니로다! 그러나 양한림이 귀한 사람임을 알고서 따랐거니와, 계낭자는 한낱 서생을 따랐음은 능히 오늘의 부귀를 앎이니 더욱 기이하도다!”
다시 이어서 월왕이 묻기를,
“어찌 하였기로 승상이 먼길 도중에서 만났나이까?”
이에 승상이 천진교 주루에서 섬월을 만났을 적에 글을 지었던 전후 경위를 낱낱이 아뢰니, 왕이 소리내어 웃으며 말하기를
“승상이 지난날 과거에서 장원함에 쾌한 일이라 하였더니 이 이야기는 더욱 상쾌한 일이오니 그 글이 필연 오묘한 터인즉 가히 들을 수 있겠소이까?”
승상이 대답하되,
“취중에 무심히 지은 것을 어찌 기억할 수 있겠소이까?”
그러자 월왕이 섬월한테 묻기를,
“승상이 비록 잊었으되 낭자는 혹시 기억할 수 있겠느뇨?”
섬월이 여쭈되,
“천첩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나이다마는 종이에 써서 드리오리까, 혹은 노래로 아뢰오리까?”
월왕이 더욱 기꺼워하며,
“노래를 아울러 들으면 더욱 기쁘리로다.”
하고 일렀다.
섬월이 앞으로 나아가 노래를 부르니 가득히 모인 사람들이 모두 놀라는지라, 왕이 대단히 공경하며 칭찬하되
“승상의 글 재주와 섬월의 맑은 노래는 세상에 으뜸이요, 그 글 가운데 (꽃가지가 미인의 단장을 부끄러워하니 가는 노래가 나오기도 전에 입은 이미 향기롭더라) 하는 구절이 족히 섬월의 자색을 그려냈은즉 마땅히 이태백으로 하여금 물러서게 할 터이니 감히 한 마디로는 칭찬하지 못하리로다!”
하고, 술을 금잔에 가득 부어 섬월과 경홍에게 상으로 내리더라.
이어서 월왕궁의 네 미인을 시켜 춤추며 노래 불러 헌수케 하니 주객이 알맞는 호적수이었다.
월왕이 스스로 즐거움을 이기지 못하여 모든 손들과 더불어 장막 밖으로 나아가 무사의 칼을 쓰며 서로 충돌하는 형상을 보고 승상을 향하여 이르기를,
“미인의 말 타고 활쏘는 것이 또한 볼 만하기로 우리 궁중에 활과 말에 익숙한 수십 인이 있는지라, 승상부중의 미인들에 또한 북방으로부터 온 자가 있으니 영을 내려 불러내어 꿩을 쏘고 토기를 쫓아 한바탕 웃음을 돕게 함이 어떠하나이까?”
승상은 매우 기뻐하며 분부를 내려 미인 수십 인을 골라 월왕궁의 미인들과 더불어 내기를 하게 하니 경홍이 일어나 아뢰기를,
“소첩이 비록 활과 칼에 능치 못하오나 오늘 시험코자 하나이다.”
승상이 기꺼워하며 즉시 몸에 찬 활을 끌러 주니, 경홍이 활을 잡고 서서, 모인 미인들에게 다짐하기를
“비록 맞지 못할지라도 모든 낭자는 웃지 마옵소서.”
말을 마치자 경홍은 준마를 잡아 나는 듯이 올라타고 장막 앞을 달리는데 마침 꿩 한 마리가 풀섶에서 날아오거늘 경홍이 잠깐 허리를 젖히고 활시위를 당겨 올리매 꿩은 오색 깃을 펼친 채로 말 앞에 떨어지니 승상과 월왕이 한가지로 손뼉을 티며 즐거워하였다. 장막 밖에서 몸을 굴려 말에서 내린 경홍이 서서히 걸어 장막에 나아가니 모든 미인들이 각기 하례 하되
“우리들은 십 년 공부를 헛하였도다.”
하기에, 섬월이 생각하되
“우리 두 사람은 비록 월왕궁 기생들에게 첫째를 빼앗기지는 아니하였으되 저들은 네 사람이요, 우리는 한 쌍이라 심히 외로우니 춘랑을 끌고 오지 못함이 매우 한스럽도다. 노래와 춤이 춘운의 장기는 아니나 그 고운 용모와 아름다운 말씨가 어찌 두운선의 머리를 누르지 못하리요?”
하며 안타까이 한숨짓는데, 문득 멀리 바라보니 들 너머로 두 미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심요연과 백능파
이때에 두 미인이 유벽거(수레의 벽을 유식한 것. 꽃수레의 일종)를 몰아 이윽고 장막밖에 이르자, 문을 지키던 자가 묻기를
“월궁으로부터 오시는가?”
마부가 대답하되,
“이 차에 타신 두 낭자는 양승상의 소실이신데, 마침 일이 있어 처음에 함께 오시지 못하였노라.”
문지기 군사가 들어와 아뢰니, 승상이 말하기를,
“필시 춘운이 구경코자 옴이니 너무 경망하도다.”
곧 사람을 시켜 불러들이게 하니 두 낭자가 수레에서 내리는데 앞에는 심요연이, 그 뒤에는 진중에서 꿈 속에 만났던 동정용녀 백능파였다.
두 사람이 승상의 자리 앞에 나아가 절하고 뵈니, 승상이 월왕을 가리키며 이르기를,
“월전하이시니 너희는 예로서 뵙도록 하라.”
이에 두 미인이 예로서 뵈오매, 승상이 자리를 주어 경홍도 섬월도 같이 앉게 하고, 월왕께 이르되
“저 두 여인은 토번을 칠 적에 얻은 바이나 근래 다사하여 미처 데려오지 못하였는데 저들이 스스로 따라오다가 필시 소유가 대왕과 더불어 놀이함을 듣고 구경코자 이에 이름인 듯하외다.”
월왕이 다시 두 미인을 보니 그 용모가 경홍과 섬월과 더불어 형제 같으면서 그 태도는 한결 빼어나니 마음에 이상히 여기고 월왕궁 미인들도 또한 부끄러워 얼굴이 잿빛 같은지라, 왕이 다시 묻되
“낭자의 성명은 무엇이며 어디서 살았는가?”
먼저 심녀가
“소첩은 심요연이라 하오며, 서량(진대 16국의 하나) 사람이옵나이다.”
대답하자, 이어서 백녀가 대답하되,
“소첩은 백능파라 하오며, 일찍이 소상강 사이에 거처하옵다가 불행히 변을 만나 부득이 서방을 피하였삽고, 이제 양상공을 쫓아 나왔나이다.”
“두 낭자는 특히 인간 세계 사람이 아닌 듯 신기하려니와 능히 풍류를 짐작하느뇨?”
심요연이 대답하되,
“소첩은 변방 사람이노라, 일찍부터 풍류를 듣지 못하였으니 장차 무슨 재주로 대왕 전하를 즐겁게 하올 수 있겠나이까? 다만 어렸을 적부터 검무를 배웠으나 이는 군중에서의 장난이요, 귀인이 보실 바 아닐까 하나이다.”
월왕이 크게 기뻐하며 승상에게 말하되,
“현종조의 공손대랑(당 개원 년간의 교방에 있던 기생 이름)의 검무가 천하에 이름을 떨치다가 그 후로 그 술법이 세상에 전하여지지 못하매 내가 한번 보지 못함을 한스러이 여겼는데 이제 이 낭자가 검무를 안다 하니 매우 유쾌하나이다.”
월왕이 승상과 더불어 각기 허리에 찬 칼을 끌어 내어 주니, 요연이 소매를 걷어올리고 띠를 풀어놓고는 몸을 날려 춤을 추매 상하로 번득하고 좌우로 뛰놀아 밝은 단장과 흰 칼날이 한 빛이 되어 삼월달에 날리는 눈송이가 복사꽃 떨기 위해 뿌려지는 것 같았다.
이윽고 춤추는 소리 더욱 급하여 칼이 더욱 빨라지더니 눈서리 날리는 기색이 홀연 장막 속에 가득하여 심요연의 몸이 아주 보이지 아니하더니 별안간 한 가닥 무지개가 하늘로 뻗치며 바람이 배반 사이로 스치니, 좌중이 다 뼈가 저리며 머리털이 으쓱했다.
요연이 배운 술법을 다하고자 하나 월왕이 너무 놀랄까 염려하여 이에 춤을 파하고 칼을 던지며 재배하고 물러가니, 왕은 오랜 후에야 비로소 정신을 가다듬고 요연을 보고하는 말이,
“인간 사람의 검무가 어찌 능히 이토록 신묘한 지경에 이를 수 있으리요. 내 들으매 신선 가운데 검술이 능한 자 많다 하던데, 낭자가 바로 그 사람이 아니뇨?”
요연이 대답하되,
“서방 풍속에 병기를 희롱함을 좋아하는 고로 어렸을 적에 배운 바오니 어찌 신선의 기이한 술법을 따를 수 있사오리까?”
월왕이 일러두기를,
“내가 궁으로 돌아가면 마땅히 희첩 중에서 춤 장 추는 자를 가려 뽑아 보낼 터이니 바라건대 낭자는 가르치는 수고를 아끼지 말도록 하라.”
요연이 절하며 분부를 받으니, 왕이 다시 백능파한테 물어 보되 능파가 대답하기를,
“소첩의 집이 소상강 위에 있사오니 바로 황릉묘(순제의 둘째 왕비의 묘)의 아황과 여영(아황, 여영 둘 다 순제의 비)이 노니는 곳이 오라 밤이 고요하고 바람이 맑고 달이 밝은 즉, 비파 소리가 아직도 구름 사이로 흐르는고로 소첩이 어려서부터 그 아름다운 음률을 모방하여 몸소 비파를 타며 스스로 즐겼을 따름이오나, 귀인의 귀를 더럽힐까 송구하나이다.”
월왕이 이에 대꾸하기를,
“비록 옛 사람의 글로 말미암아 아황과 여영이 비파를 낸 줄은 아나 그 곡조가 세상 사람에게 전함을 듣지 못하였는데 이제 낭자가 그 곡조를 알고 있음이 사실이면 어찌 시속의 풍악에 견줄 바이겠느뇨?”
백능파가 소매에게 비파를 꺼내어 한 곡조를 타니 그 소리가 맑고 또렷하여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하매 물이 산꼴짜기에 떨어지며 기러기가 추운 하늘가에서 우는 것 같기에 모든 사람들이 어느덧 마음이 처량하여 눈물을 흘리는데, 이윽고 초목이 저절로 움직이며 가을 소리가 잠깐 나더니 마른 잎새가 분분히 떨어졌다.
월왕이 이상히 여기며 물어 보되,
“인간의 음률이 천지 조화를 부릴 수 있다는 말을 내 믿지 아니하였는데, 낭자가 어찌 능히 봄으로 하여금 가을이 되게 하며 또한 나뭇잎이 저절로 떨어지게 하느뇨? 범인이 능히 그 곡조를 배울 수 있겠느뇨?”
백능파가 대답하되,
“소첩은 오직 옛 곡조의 찌꺼기를 전할 따름이온즉 무슨 신효한 술법이 있삽기로 남이 배우지 못하오리까?”
이때 만옥연이 월왕께 아뢰기를
“소첩이 비록 재주는 없사오나 평일에 익힌 바 풍악으로써 백련곡을 시험삼아 아뢰겠나이다.”
하고는, 진나라의 비파를 안고 자리 앞에 나아가 줄을 고르고는 능히 스물 다섯 가지의 소리를 내며 손 놀리는 법이 또한 아담하고 높아서 가히 들음 직하기에 양승상을 비롯하여 섬월과 경홍이 극찬하니 월왕 또한 매우 기꺼워하였다.
월왕과 양승상은 낙유원의 잔치가 즐겁고 아직 흥이 남았으나 날이 저물려 하므로 이에 잔치를 파하고 각기 금은과 채단으로 상급을 주고서 왕과 승상이 달빛을 받으며 돌아와 성문으로 들어가는데 종소리가 들렸다. 두 집 기악이 길을 다투어 앞을 서려 할 때 패물 소리가 요란하여 향기가 거리에 가득하고, 흐르는 비녀와 떨어지는 구슬이 모두 말굽 아래 밟히어 소낙비 같은 소리가 티끌 밖으로 들렸다.
장안 백성들이 다 같이 둘러싸며 구경하는데 백 살 먹은 늙은이들은 도리어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이,
“우리가 어렸을 적에 현종 황제가 화청궁에 거동하시는 것을 보았는데, 그 위의가 바로 이같더니 뜻밖에도 오래 살아 남아 다기 태평성대의 기상을 보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이 무렵 두 공주는 진씨와 가씨의 두 낭자와 더불어 대부인을 모시고서 승상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데, 승상이 심요인과 백능파를 이끌어 대부인과 두 공주께 뵙게 하니 두 사람이 섬돌 아래 나아가 뵈이므로, 영양공주가 이르되 “승상께서 매양 말씀하시기를 두 낭자의 힘을 입어 수천 리 땅을 회복하는 공을 이루었다 하시기로 나도 매양 보지 못함을 한스럽게 여겼거늘 두 낭자의 찾아옴이 어찌 이다지도 늦었느뇨?”
요연과 능파가 한가지로 대답하기를,
“첩들은 먼 시골의 천한 몸이 오라, 비록 승상의 한 번 돌아보심을 입었으되 오직 두 부인께서 한 자리를 비어 주지 아니 하실 까 염려되기로 빨리 문전에 이르지 못하였삽거니와 듣자온즉 사람들이 일컫기를 ‘두 공주 마마의 관저와 규목(소나무)의 덕이 첩들에게 이르고 상하에 고루 미친다.’ 하옵기로 외람되이 나아 와 뵙고자 생각할 즈음에 마침 승상께서 낙유원에 사냥하시는 계제를 만나 성대한 놀이에 참석하왔거늘 다시 이리로 데리고 오사 부인의 가르치심을 받잡게 뵈오니 첩들은 천만다행으로 아뢰나이다.”
공주는 웃으며 승상께 아뢰기를,
“오늘은 궁중에 꽃빛이 가득하니 승상께서는 필연 오늘의 풍류를 자랑하실 터이오나 이는 다 우리 형제들이 세운 공이온즉 상공께서는 이를 알고 계시나이까?”
승상이 크게 웃으며,
“저 두 사람이 새로 이 궁중에 들어와 공주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아첨하는 말을 하였거늘 공주는 이를 공으로 삼고자 하시느뇨?”
이 말에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더라.
진씨와 가씨의 두 여인이 섬월을 향하여 묻되,
“오늘 놀이에서 승부가 어찌되었는가?”
경홍이 이에 대답하기를,
“계랑이 소첩의 큰 소리함을 웃었으되 소첩이 한 말로써 월왕궁편으로 하여금 놀라 자빠지게 하였으니, 이는 제갈공명이 조그마한 배 한 척으로 강동으로 들어가 세치 혀를 흔들어 이해를 들어 말한즉 주공근 노자경(노숙(삼국시대 호의 정치가)의 무리가 다만 입을 벌리고 의기가 눌리어 감히 한말도 토하지 못함과 같사오며, 또 평원군(전국시대 조의 정치가. 조승의 봉호)이 초나라에
들어가 합종을 협상할 때에 따라간 십구 인은 모두 보잘것이 없었으되, 능히 조나라로 하여금 태산과 반석같이 편안케 한 자는 모수(평원군의 식객) 한 사람의 공이온즉, 첩의 마음이 큰 고로 또한 말이 크온대, 이 큰 말에 반드시 실속이 있을지라, 계랑에게 물으시오면 첩의 말이 허망치 않음을 족히 아시게 되오리이다.”
섬월이 이에 다짐을 놓되,
“적랑의 활쏘기와 말달리는 재주가 참으로 신묘하다 일컫겠으되, 풍류 마당에 쓰면 혹시 칭찬을 받으려니와 화살과 돌이 비오듯하는 싸움터에 내어놓으면 어찌 능히 한 걸음을 달리며 한 살을 쏠 수 있으리요? 월왕궁편에서 기세를 잃었음은 새로 들어선 두 낭자의 신선 같은 모습과 천신 같은 재주를 탄복한 바이니 어찌 적랑의 공이 되리요?… 소첩의 한 말이 생각나니 마땅히 적랑을 향하여 털어놓으리라! 춘추시대에 가대부의 외모가 매우 누추하므로 장가든 진 삼 년이 되어도 그 아내가 한 번도 웃지 아니하더니, 그가 아내와 더불어 들에 나아갈 때에 마침 꿩 한 마리를 쏘아 떨어 드리매 아내가 비로소 웃었다
하거늘, 오늘 놀이에서 적랑이 꿩을 쏘아 얻음이 또한 이와 같을지니라.”
경홍이 이에 대꾸하기를,
“가대부는 누추한 외모로도 활과 말의 재주로 말미암아 그 아내의 웃음을 자아냈거늘, 만약에 그의 용모가 수려하고 능히 활로 꿩을 쏘아 얻었던 들 어찌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사랑하며 공경케하지 않았으리요?”
섬월이 비웃고 하는 말이,
“적랑의 자랑이 갈수록 불어나니 이는 오로지 승상께서 너무 총애하시매 그 마음이 교만한 탓이렸다!”
승상이 웃으며 이르기를,
“계랑의 재주가 많음은 익히 알고 있으나 경서에 능통한 줄은 전혀 몰랐으되, 이제 들으니 춘추의 고사를 즐겨 말하는 버릇이 있음을 가히 알겠노라.”
섬월이 승상께 여쭈기를,
“한가할 적에 경서와 사기를 훑어보오나 어찌 능통타 할 수 있사오리까?”
이튿날 양승상이 예궐하여 황상께 조회하니, 태후가 월왕께 이르시기를 “월왕이 어제 승상과 더불어 봄빛을 서로 겨루더니 뉘 이기고 뉘 졌느뇨?”
월왕이 대답하여 사뢰되,
“양승상의 온전한 복은 사람이 다투지 못할 바이오나, 그 복이 여자에게도 복이 될는지 의아하오니 태후마마께옵서 승상께 하문하여 보소서.”
승상이 아뢰기를,
“월왕이 신보다 낫지 못하다 함은 이태백이 최호(당의 진사, 문학가 유문무행하며 포박과 주색을 좋아하여 45명의 미인인 부인을 얻었음)의 글을 보고 놀라 기세가 꺾이었다 함과 같사온지라, 공주에게 복되고 아니됨은 신이 공주가 아니오니 어찌 능히 아뢸 수 있사오리까? 직접 공주에게 하문하소서.”
태후가 웃으며 두 공주를 돌아보시니, 난양공주가 대답하기를
“부부는 한 몸이라 하오니 영욕과 고락에 어찌 같고 다름이 있사오리까?
장부에게 복이 없으면 여자 또한 복이 없을 터이오니, 승상이 즐기는 바를 소녀가 함께 즐길 따름이옵니다.”
월왕이 다시 태후께 여쭈기를,
“공주 누이의 말은 사실이 아니옵니다! 예로부터 부마가 된 사람들에는 승상 같이 방탕한 자가 있지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지 못한 탓인온즉, 바라옵건대 마마께서는 소유를 법사에 내리 사 조정을 업신여기고 국법을 멸시하는 죄를 다스리소서.”
태후는 이 말에 크게 웃으며 이르기를,
“양부마는 진실로 죄가 있도다! 만일 이를 법으로 다스리고자 한즉 이 늙은 몸과 딸아이들에게 근심이 되는 고로, 부득이 국법을 굽히고 사사로운 정을 따르겠노라.”
월왕이 다시 아뢰되,
“비록 정상은 그러하오나 승상이 죄를 가벼이 풀어 주시지는 못하올지니, 청하옵건대 어전에서 문죄하사 그 공술 하는 바에 따라 처결하심이 옳을 줄로 아뢰나이다.”
태후는 크게 웃으실 뿐이고 월왕이 태후를 대신하여, 하나하나 조목을 들어 죄를 묻는 글을 황상께 바치니 그 글에 쓰였으되
예로부터 부마된 자는 감히 희첩을 거느리지 못함은 풍류를 몰라서가 아니요, 먹을 것이 넉넉지 못함이 아니라, 모두 인군을 공경하며 나라를 높이는 바이라.
하물며 영양과 난양의 두 공주는 지위인즉 황제의 딸이요, 행실인즉 임사(태임과 태사의 줄임말. 태임은 주문왕의 모친 태사는 주문왕의 비)의 덕이 있거늘, 양소유는 이를 공경치 아니하고 방탕하여 비색을 몰아들임이 목마른 자보다 심하며, 눈에는 연조의 미색(한무제가 광명궁을 이룩하고 연주의 미녀 2천 명을 끌어들임)이 오히려 부족하고, 귀에는 정위의 소리만이 들려서 저저의 전각 댓돌의 개미같이, 방마루에 벌떼같이 지껄이니 공주가 비록 규목의 덕으로써 질투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나, 소유의 공경하고 삼가는 도리가 어찌 감히 이러하리요. 교만하고 태만한 죄를 불가불 징계할지니 숨김없이 사실을 바른 대로 아뢰어 그로써 처분을 기다리라.
승상은 전각에서 내려와 땅에 엎드려 관을 벗고 대죄하니, 월왕이 난간 밖으로 나서서 소리를 높여 문초하는 것을 다 들은 후에, 승상이 공사에 말하였으되
소신 양소유가 외람되이 두 전궁의 성은을 입사와 뛰어넘어 승상이라는 높은 벼슬을 차지한 즉 영광이 이미 극진하며, 또한 공주가 사려 깊고 실속 있는 덕을 베풀어 금실의 즐거움이 무궁하온즉 소원이 이미 족하거늘, 어리석은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고 사치스러운 기세가 줄지 아니 하와 가무 하는 계집을 많이 모았사오니, 이는 소신이 적이 부귀에 눌리고 성상폐하의 은덕이 넘치와 스스로 단속함을 깨닫지 못한 죄이오나, 신이 국법을 곰곰이 살펴보건대 부마가 된 자가 설혹 비첩을 가졌을지라도 혼인 전에 얻은 것은 분간하는 도리가 있사온지라, 소신이 비록 회첩을 가졌사오나 숙인 진씨로 말할진대는 신이 일찍이 정사도 집 화원 별당에 머무를 무렵에 시중 들던 자이옵고, 소첩 계시, 적씨, 백씨 등 네 계집은 혹은 선비 시절에, 혹은 외국으로 산으로 갔을 저에, 혹은 출전하였을 적에 따라 온 자들이니 이 모두가 역시 성례 전의 일이옵고, 부중에 한가지로 있게 하옴은 공주의 명을 따름이옵고 소신이 감히 독단으로 하였음이 없사온즉, 나라의 체례에 그 무엇이 손상되오며 신자의 도리에 그 무엇이 죄가 되겠나이까?
그러하옵거늘 전교를 내리심이 이렇듯 엄하시니 오직 송구할 따름이옵니다.
태후가 승상의 공사를 다 읽고는 크게 웃으며 하시는 말씀이,
“희첩을 많이 기르는 것은 장부된 풍도에 해로움이 없겠기로 가히 용서하려니와, 술을 과음하는 것은 아무래도 염려되는 바라, 차후에 삼감이 가하렸다!”
월왕이 다시 태후를 향하여 아뢰기를,
“부마의 부중에서 희첩을 기르는 것을 소유는 공주한테 미루오나, 그 조처하는 도리에 매우 가당치 아니한 바 있사온즉 다시 한번 문처하심이 옳을 줄로 아뢰나이다.”
이 말에 두려워 겁이 난 양승상이 머리를 두드려 사죄하니, 태후가 다시 웃으며 이르시기를
“양공은 진실로 사직을 지키는 중신이니 내 어찌 사위로서만 대접하리요?”
하고, 이제 명을 내리시어
“관을 정제하고 전상에 오르라.”
하시는데, 또다시 월왕이 아뢰기를
“소유가 큰 공이 있으므로 죄를 주기는 어렵사오나 국법이 또한 엄하와 그대로 놓아 줄 수는 없사오니, 마땅히 술로써 벌을 주려 하나이다.”
태후가 웃고 허락하시니, 궁녀가 백옥잔을 내오기에 월왕이 말하기를,
“승상의 주량이 고래 같고 죄명이 또한 무겁거늘 어찌 작은 잔을 쓰리오?”
하면서, 월왕이 친히 한 말들이 금굴치(어연에서 쓰는 술잔)에다 진한 술을 가득히 부어 주니, 승상이 비록 주량이 적이 크나 잇따라 두어 말을 마시매 어찌 취하지 아니하리요.
이에 승상이 머리를 두드리며 아뢰되
“견우가 직녀를 지나치게 사랑하다가 장인에게서 꾸지람을 들었다 하더니, 이제 소유가 집에서 희첩을 기름으로써 장모로부터 벌주를 받아 먹으니, 인군의 사위되기는 진실로 어려운 노릇입니다. 신이 이제는 대취하였으니 물러감을 소청하였나이다.”
하고, 이어서 일어나려 하다가 고꾸라지기에 태후가 크게 웃으며 궁녀를 시켜 전문 밖으로 내어 보내며 공주에게 이르기를,
“승상이 대취하여 신기가 불편할 터이니, 너희들은 곧 뒤따라가도록 하라.”
두 공주가 분부를 받잡고 곧 승상을 따라나섰다.
벌주를 마시다
이즈음 유부인은 촛불을 켜 놓고서 승상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승상이 대취함을 보고 묻되
“전일에는 비록 술을 내리실 지라도 취하는 일이 없더니, 오늘은 어찌 이토록 과취하였느냐?”
승상이 대답하기를
“소자의 잘못이옵나이다.”
하고, 이어서 취한 눈에 노기를 띠고, 이윽고 공주를 바라보다가 모친을 향해 하는 말이
“공주의 오라비 월왕이 태후께 참소하여 소유의 죄를 억지로 만들어 내매 소유가 비록 말을 잘하여 벌을 모면하기는 하였사오나, 월왕이 기어이 죄를 씌우고자 태후께 터무니없는 말을 사뢰어 독주로써 벌을 내렸거니와, 만일 주량이 적었던들 거의 죽었겠나이다. 이는 필시 월왕이 어제 낙유원 놀이에서 진 것을 분하게 여겨 보복코자 함이오나, 난양공주가 소자에게 희첩이 너무 많음을 시기하여 그 오라비와 더불어 계교를 꾸며 소자를 괴롭히게 함이오니, 평일의 인자한 말이 아무래도 믿지 못하겠기로, 엎드려 바라오니 모친께서는 난양공주에게 벌 주 한 잔을 내리사 소자를 위하여 설분하여 주소서.”
유뷰인이 타이르기를,
“공주의 죄목이 분명치 아니하며 또 능히 한 잔 술을 마시지 못할진대, 네가 나를 시켜 벌을 주고자 하니 차로써 술을 대신함이 옳으리라.”
승상이 다시 아뢰되,
“소자는 기어이 술로써 벌하려 하나이다.”
유부인이 웃으며 마지못해 이르기를,
“공주가 만일 술을 마시지 아니하면 취객의 마음이 풀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시녀를 불러 난양공주에게 벌주를 보내었다.
공주가 이를 받아 마시려 할 즈음 승상이 문득 의심 내어 그 잔을 빼앗아 맛보고자 하기에, 난양이 급히 빈 잔을 자리 위에 던졌다. 승상이 손가락으로 잔 밑에 남은 것을 맛보니 이는 꿀물이라, 승상이 말하되
“태후마마께서 만일 꿀물로써 소유를 벌하셨던들 모친이 또한 꿀물로 벌하심이 마땅하겠사오나, 소자가 마신 바는 술이거늘 난양이 어찌 홀로 꿀물을 마실 수 있겠나이까?”
하며, 다시 시녀를 불러 술잔을 가져오게 하여 스스로 술 한 진을 가득히 부어 주므로, 난양공주가 부득불 이를 다 마시니, 승상이 다시 유부인께 아뢰기를
“태후께 권하여 벌한 자가 바로 난양공주이기는 하오나 영양공주, 즉 정경패가 또한 계책에 참여한 연고로 태후 앞에 앉아서 소자의 괴로워함을 보고 난양께 눈짓하며 서로 웃었으니, 소자는 그 속마음을 도저히 헤아리지 못하겠나이다. 그러하매 다시 바라오니 모친께서는 정씨를 또한 벌하여 주소서.”
이 말에 유부인은 소리내어 웃고 잔을 보내니, 정씨가 자리를 옮겨 이를 다 마셨다. 부인이 말하기를,
“태후마마께서 소유를 벌하심은 그 희첩들을 벌하심이므로, 이제 두 공주가 다 벌주를 마셨으니 희첩들이 어찌 안연할 수 있겠느냐?”
승상이 이에 덧붙이되,
“월왕의 낙유원 놀음이 대체로 미색을 다툼이거늘, 경홍, 섬월, 요연, 능파 등이 소로서 대를 맞아 한 싸움에 먼저 승리를 아뢰매, 월왕이 분심을 이기지 못하여 소자로 하여금 벌을 받게 하였은즉, 이 네 사람은 마땅히 벌을 주셔야 하겠나이다.”
부인이 묻기를,
“싸움에 이긴 자에게 한가지로 벌을 주다니, 취객의 말이 가히 우습도다.”
하고는 곧 네 희첩을 불러 각각 한 잔 술로 벌로 내렸다.
네 사람이 마시기를 마치매, 경홍과 섬월 두 사람이 꿇어앉으며 부인께 사뢰기를,
“태후마마께서 승상을 벌하심은 희첩이 많음을 나무람이요, 결코 낙유원에서 이긴 때문이 아니온데, 심요연과 백능파의 두 사람은 아직도 승상의 금침을 받들지 아니하였거늘 첩들과 한가지로 벌주를 마시니 또한 억울치 아니하겠나이까? 또한 가유인으로 말씀드리오면, 승상을 모심이 저렇듯 오래며 승상의 사랑을 받음이 저렇듯 편벽되오나, 낙유원 모임에 참여치 아니 하와 이 벌을 면하오니, 저희들 마음에 다 분함을 참기 어렵겠나이다.”
부인이 대꾸하기를,
“너희 말이 가장 옳도다!”
결국 큰 잔으로 춘운을 벌하니, 춘운이 웃음을 머금고 마시는지라, 이로써 모든 사람이 다 벌주를 마셨기에 좌중에 부산하며 어지러운 가운데, 난양공주는 술이 취하여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되, 오직 진숙인은 한구석에 단정히 앉아 말도 아니하며 웃지도 아니하기에, 승상이 물어 본다.
“진씨가 홀로 취하지 아니하여 취객들의 미친 모양을 비웃으니, 다시 한 번 벌하지 아니치 못하렸다!”
하고 한 잔을 가득 부어 전하니, 진씨는 오히려 웃으며 이를 마시는 지라, 유부인이 공주에게 묻기를,
“본디 마시지 못하는 술을 이제 마셨으니 신기가 어떠하오?”
공주가 대답하되
“매우 괴롭소이다.”
하기에, 유부인은 진씨를 시켜 공주를 부축하여 침방으로 돌아가게 하고, 이어서 춘운을 시켜 술을 가져오게 하여 잔을 잡으며 하는 말이
“우리 두 자부는 여자 가운데 성인이라, 내가 매양 혹시 복을 해칠까 두려워하였는데, 이제 네가 주정이 심하여 공주로 하여금 술이 취하게 하니, 태후마마께서 들으시면 몹시 염려하실지라, 내가 올바로 아들 교훈을 못하여 이런 망거를 빚어내기로, 내 또한 죄없다 못할지니 이 잔을 들어 스스로 벌을 받겠노라.”
하고 잔을 비우니, 승상이 황송하여 꿇어앉아 아뢰되
“어머님께서 소자의 못된 소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벌하시니, 소자의 허물이 어찌 종아리채쯤으로 마땅하겠나이까?”
하고는, 경홍을 시켜 술을 큰 잔에 가득 붓게 하고, 꿇어앉아 다시 아뢰되
“소저가 어머님의 교훈을 받들어 따르지 못하옵고, 도리어 어머님께 근심 걱정만 끼치오니 사죄할 도리 없사와 삼가 이 벌주를 받겠나이다.”
하고 다 마시매, 승상이 대취하여 능히 기동을 못하고 응향각을 손으로 가리키기에 유부인이 춘운을 시켜 부축하고 가게 하자, 춘운이 아뢰기를 “천첩은 감히 모시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계낭자가 소첩에게 승상의 은청이 있음을 질투하는 것 같나이다.”
하기에 유부인은 다시 섬월에게도 당부하여 두 낭자가 부축하도록 명하니, 섬월이 뇌이기를
“춘운이 내 말을 트집잡아 가지 아니하니 소첩은 더욱 마음에 거리끼도다.”
이에 경홍이 웃고 일어나며 승상을 부축하여 응향각으로 가자 모든 사람이 다 흩어졌다. 양승상은 이미 심요연과 백능파가 산수를 사랑하는 버릇을 알고 있었으므로 부중의 화원 속에 있는 연못이 맑기가 호수 같고, 그 못 가운데 정자가 있으니 이름을 영아루라 하고 능파로 하여금 거기에 거처케 하고, 또한 연못 남쪽에 가산(영롱한 돌을 포개어 작은 산을 만든 것)이 있으니 뾰족한 봉우리는 옥을 깎아 세운 듯하고, 겹겹이 쌓인 석벽은 쇠를 깎아 세운 듯하며, 늙은 소나무는 그늘이 그윽하고 파리한 대나무는 그림자를 그리는데, 그 속에 한 정자가 있으니 이름은 빙설헌이라 하였다. 요연으로 하여금 여기에 거처케 하니, 모든 부인과 여러 낭자들이 화원에 노닐 때에는 요연과 두 사람이 산중의 주인이 되었다.
모든 사람이 조용히 능파에게 물어 보되,
“낭자의 신통한 변화를 한 번 볼 수 있겠는가?”
능파가 이에 대답하기를,
“그것은 천첩의 전생 일이겠으며, 이제는 첩이 천지의 기운을 타고 조화의 힘을 빌려 전신을 다 벗고 사람의 모습으로 변했으매 벗은 껍질과 비늘이 산같이 쌓였으니, 이를테면 참새가 변하여 조개가 된 후에 어찌 두 날개가 있어 날아다니리요?”
모든 여인들이 말하기를
“이치가 그러하도다.”
하였다.
심요연이 비록 때때로 유부인과 승상과 두 공주 앞에서 칼춤을 추어 한때의 흥을 돋우자, 자주 춤추기를 즐기지 아니하며 하는 말이,
“당시에 비록 칼춤으로 인연되어 승상을 만났으나, 살기 있는 놀이이므로 항상 볼 바는 못되나이다.”
이후로 두 공주를 비롯하여 여섯 낭자들이 서로가 뜻이 맞는 즐거움이란, 마치 고기가 물에서 헤엄치며 새가 구름을 따라 다니는 듯하여 서로 따르고 서로 의지하여 형 같고 아우 같은데, 또한 승상의 애정이 피차에 균일하니 이는 비록 모든 부인의 덕이 능히 온 집안에 화목한 기운을 이룸이려나 와, 한편으로는 이들 아홉 사람이 전생으로부터 인연이 있음이라.
하루는 공주가 서로 의논하되,
“두 아내와 여섯 첩들의 친숙함이 골육 같고, 정은 형제 같으니 이 어찌 하늘이 명하신 바 아니리요? 그러하므로 마땅히 귀천을 가리지 말고 호형호제로 지내리라.”
이 뜻을 여섯 낭자에게 밝히니 다들 사양하는 중에서도 춘운과 경홍과 섬월이 더욱 응하지 아니하기에, 영양공주가 타이르는 말이 “유현덕과 관운장과 장익덕의 세 사람은 군신 시이로되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었거늘, 나는 춘운과 더불어 본디 군신 사이로되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었거늘, 나는 춘운과 더불어 본디 규중에서부터 좋은 벗이니 형제됨에 무슨 불가함이 있으리요. 석가 세존의 아내와 마등가(아난존자를 고행케 한 음녀)의 계집과는 그 높고 천함이 아주 다르며 또 그 음행이 다르거늘, 오히려 대사의 제자가 되어 마침내 바로 연분을 얻었으니, 처음 미천함이 나중 뜻을 이루는데 무슨 관계가 있으리요?”
하고, 두 공주는 드디어 여섯 낭자와 더불어 궁중으로 나아가 깊이 모신 관음보살의 화상 앞에 분향 재배하고 서약문을 지어 아뢰었다.
유세차 모년 모월 모일에 부처님의 제자인 이소화, 정경패, 진채봉, 가춘운, 계섬월, 적경홍, 심요연, 백능파 등 목욕재계하고서 관음보살님 앞에 아뢰나이다. 불경에 일렀으되 (사해안에 사는 사람은 모두 형제가 되니라)하였으니 이는 다름이 아니 오라 그 지기와 뜻이 서로 통하는 연고이오며, 천륜의 친함을 들어 길가는 나그네와 같다고 보는 사람이 있으니, 이는 다름이 아니 오라 그 정과 뜻이 서로 다른 연고이옵니다.
부처님의 제자인 저희들이 처음에는 비록 남북으로 갈리어 제각기 태어나서, 다시 동서로 흩어졌다가 한 사람의 낭군을 함께 섬기게 되었삽고, 또 같은 집에서 거처하오매 어느덧 지기상합하며 정의 상통하오니, 물건으로 비유 하오면 한 가지의 꽃이 비바람에 흔들려서, 혹은 규중에 날리며, 혹은 언덕 위에 떨어지며, 혹은 산속 시냇물에 떨어지오나 그 근본을 살펴보면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옵나이다.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는 한 형제는 한 기운을 타고났을 따름이온즉, 흩어졌다가도 어찌 한 곳으로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오리까?
예와 지금이 비록 멀고 너르오나 한때에 같이 있삽고, 사해가 비록 넓고 크오나 한집에서 같이 살고 있사오니, 이는 실로 전생으로부터의 연분이요, 인생에 있어 좋은 기회라 하겠나이다. 이러므로 부처님의 제자인 저희들은 이에 함께 맹세하여 형제를 맺삽고 길흉 생사를 같이하려 하오니, 이 가운데 혹시 다른 마음을 지니고서 맹세한 말을 저버리는 사람이 있으면 하늘이 반드시 죽이시고 신명이 반드시 꺼리시려니와, 엎드려 바라옵건대 관음보살님께서는 복을 이끌어 주시며 재앙을 없이하여 주시며, 그로써 저희들을 도우사 백년해로한 연후에 함께 극락세계로 돌아가게 하옵소서.
이로부터 두 공주가 희첩을 아우로 부르니, 여섯 낭자는 스스로 명분을 지키어 감히 형제로 부르지는 못하나 정의는 더욱 친밀하여 졌다. 여덟 사람이 각기 아이를 낳으매, 두 부인과 춘운, 섬월, 요연, 경홍은 아들을 낳고, 채봉과 능파는 딸을 낳아 다 잘 길러 내어, 한번도 자녀의 참경을 겪지 아니하니 이 또한 여느 사람들과는 다르더라.
양승상의 사직상소
이 무렵 천하가 태평하여 사방 변경에 일이 없고 백성들은 안락히 살며 곡식이 잘되어, 승상이 나아간즉 천자를 모시고 상림원에 사냥하며, 들어온즉 대부인을 받들어 당상에서 잔치를 베풀어 노래와 춤 속에서 세월을 보내는데, 홍진비래라 함은 예나 오늘날이나 으레 있는 일이라, 유부인이 우연히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니 연세가 아흔 아홉 살이었다. 승상이 비통하며 예를 갖추어 안장할 때, 두 전궁에서 내시를 보내어 초문하시고 왕후의 예로서 예관을 보내어 장사를 치르셨다.
정사도 내외가 영화를 누림은 말할 나위도 없겠거니와, 오래 살다 별세하매 승상이 슬퍼하는 정경은 정부인에 못지 아니하였다.
양승상의 여섯 아들과 두 딸이 다 부모의 모습을 닮아서 사내아이는 용호 같고 계집아이는 항아와도 같은지라, 맏아들 대경은 정부인의 소생인데 이부상서에 오르고, 둘째아들 차경은 적경홍의 소생인데 경조윤의 벼슬을 살고, 셋째 아들 숙경은 가춘운의 소생인데 어사중승의 벼슬을 살고, 넷째 아들 계경은 난양공주의 소생인데 병부시랑의 벼슬을 살고, 다섯째 아들 오경은 계섬월의 소생인데 한림학사의 벼슬을 살고, 여섯째 아들 치경은 심요연의 소생인데 힘이 남달리 뛰어나고 지략이 귀신같은 지라, 천자께서 매우 사랑하시어 금오상장군을 삼아 군사 십만 명을 거느려 대궐을 호위케 하시고, 맏딸 부단은 진채봉의 소생인데 월왕의 아들 낭야왕의 왕비가 되고, 둘째 딸 영락은 백능파의 소생인데 황태자의 첩여가 되었다.
하루는 양승상이 비유로서 말하기를
“너무 성하면 쇠하고, 너무 가득하면 넘치기 쉽다.”
하고, 상소하여 벼슬에서 물러가기를 빌었다.
승상 신 양소유는 돈수백배하옵고 황제폐하께 말씀드리나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소원이 장상공후를 지니지 못하며, 벼슬이 장상공후에 다다르면 나머지 소원이 없사옵고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공명 부귀를 축원하나 몸이 공명 부귀를 이루면 나머지 소망이 없사옵니다.
그러하온즉 장상공후의 영화와 공명 부귀의 즐거움이 어찌 인심의 흠모하는 바와 시속이 다투는 바가 아닐 수 있겠나이까?
세상의 영화와 부귀가 어찌 흡족함을 알며 화를 스스로 만드는 줄을 헤아릴 수 있겠나이까? 신이 재주가 적고 능력이 부족하되 높은 벼슬을 차지하고 있으며, 공이 없고 명망이 낮되 한 자리에 오래도록 머무르니, 귀함이 신에게 이미 극진 하오며 영화가 부모에게 이미 미치었나이다. 신의 처음 소원이 이의 만분의 일이옵더니 외람 되어 부마가 되어 예로 대접하심이 모든 산하와는 다르고, 은혜로 상을 주심이 격외로 각별하시어 채소를 먹고 자라난 몸이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삽고, 미천한 신분으로 감히 궁중에 출입하여 위로는 성군께 욕되며 아래로는 신의 분수에 어긋나오니 어찌 감히 스스로 마음 편할 수 있사오리까? 일찍이 자취를 거두고 영화를 피하며 문을 닫고 은덕을 사양 하와 그로써 참람하고 몰염치한 죄를 들어 스스로 천지신명께 사죄코자 하오나, 워낙 베푸시는 은택이 융숭하시매 갚을 길이 아득하옵고, 또한 신의 근력이 아직도 말을 타고 달리 만하옵기로 부득이 도로 주저앉아, 다못 만분의 일이라도 우러러 천은을 갚사옵고, 곧 물러가 선영을 지키며 나머지 세월을 마치고자 하였삽는데, 이제 각별하신 은덕을 갚지 못하고 천한 나이 이미 높으며, 또한 정성을 펴지 못하고 모발이 먼저 쇠하오매, 비록 이제 다시 견마의 충성을 다하여 태산 같은 은덕을 갚고자 하오나 사세는 이미 글러 어찌할 도리가 없나이다.
이제 천자의 신명하심을 힘입어 변방이 항복하매 병권을 쓰지 아니 하오며, 만백성이 편안하매 북채와 북이 놀라지 아니 하오며 하늘의 성서가 더 이르매 삼대(하, 은 , 주의 3대)의 화락한 다스림을 이루게 되올지라, 비록 신으로 하여금 조정에 머무르게 하실 지라도 녹봉만 허비하고 격양가만 들으실 뿐이요, 신기한 계교를 낼 일이 없겠나이다.
예로부터 인군과 신하는 부자 같다 하오니 부모의 마음에 비록 미흡한 자식이라도 슬하에 있은즉 기꺼워하고 밖에 나간즉 염려하는 법이오니, 신이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황상폐하께서 필연 신을 가리켜 늙은 몸이고 옛 물건이라 불쌍히 여기시어 차마 하루 아침에 물러가지는 못하게 하시겠사오나, 사람의 자식으로서 부모를 생각함이 어찌 그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과 다를 수 있사오리까? 신이 폐하의 은덕을 입음이 이미 깊사오니, 신이 어찌 멀리 하직하고 산 속에 엎드려서 요순 같은 인군을 영결하올 수 있겠나이까?
이미 물이 가득찬 그릇은 아무래도 넘치게 하지 못할 것이며, 이미 엎어진 멍에는 아무래도 다시 타지를 못하오니, 엎드려 바라옵나니, 신이 많은 일에 견디어 내지 못할 것을 헤아리시고 또한 신이 높은 자리에 있기를 바라지 않음을 살피시어, 특별히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여 남은 세월을 마치도록 허락하시고, 신으로 하여금 성덕을 노래하며 은덕을 감격케 하옵소서.
화상께서 이 상소를 보시고 친히 붓을 들어 비답(군주가 백관의 장수에 대해 가부의 화답을 하는 것)을 내리셨다.
경의 큰 업적은 조정에 우뚝 높고 덕택은 백성들에게 두터이 대하니, 곧 국가의 주석이요, 짐의 팔다리로다. 옛날의 강태공과 소공(주문왕의 서자)은 나이가 거의 백세로되 오히려 주나라를 도와 능히 치적을 이루었는데 경은 아직도 예경에 이른바 벼슬을 돌려보낼 나이가 아닌즉, 경은 비록 일을 사례하고 지레 물러가려 하나 짐은 아무래도 허락지 않을 것이요, 경의 풍채가 요즈음은 오히려 새로워서 옥당(한림원)에서 조서를 내던 알에 견주어 손색이 없으며, 정력도 여전히 왕성하여 위교에서 도적의 무리를 섬멸할 때나 다름이 없으매 비록 늙었다 일컬으나 짐은 이를 진실로 믿지 아니하니, 모름지기 가산의 높은 절개를 돌이켜 그로써 당우(요와 순의 시대)의 선정을 베풀도록 도움이 짐의 바라는 바로다.
승상의 연세는 비록 많으나 그 육체는 아직도 쇠하지 아니하여 사람들이 다 신선에 비기는 고로, 비답에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승상이 다시 상소하여 물러가기를 바람이 매우 간절하니, 상이 불러들여 만나 보시고 전교를 내리시기를,
“경이 사양함이 이에 이르니 짐이 어찌 힘써 경의 뜻을 이루게 하지 않을 수 있사오리마는, 경이 만약에 봉한 나라로 나아가면 국가 대사를 가히 상의할 자 없을 뿐 아니라, 하물며 이미 태후가 승하하셨으니 짐이 어찌 차마 영양과 난양의 두 공주와 멀리 떨어져 있으리오? 남문 밖 사십 리에 이궁이 있으니, 곧 취미궁으로 옛날에 현종황제께서 피서하시던 곳이오. 이궁이 고요하고 깊으며, 외져서 그윽하고 넓으니 가히 늙어서 소일할 만한 곳이므로 특별히 경에게 주노라.”
하시고, 곧 조칙을 내려 승상 위국공에 태사(삼공의 최존자) 벼슬을 더 봉사하시고, 다시 상급으로 오천 호를 더 내리시면서 아직은 승상의 인수를 지니고 있으라 하시었다.
양태사는 더욱 성은이 감격하여 머리를 조아려 사은하고, 가솔을 거느려 미궁으로 거처를 옮기었다. 이궁은 종남산 산속에 있으며 누각과 정자가 장려하고 경치가 아주 기이하여 마치 삼신산의 선경 같았다. 태사가 상께서 내리신 조칙과 어제하신 글을 봉하여 받들어 모셔 두고, 그밖의 누각을 두 공주와 모든 낭자에게 나누어 거처를 정하였다.
태사는 날마다 물가에 나아가 달빛을 즐기며 골짜기로 들어가 매화를 찾고, 석벽을 지난즉 글을 지어 쓰며 소나무 그늘에 앉은즉 거문고를 안고 타니, 늘그막의 조촐한 복이 더욱 사람들로 하여금 부러워하게 하고, 승상이 한가함을 즐겨 손을 맞지 아니함이 또한 여러 해가 되었다.
팔월 열 엿새가 태사의 생일이라 모든 자녀들이 잔치를 베풀고 오래 삶을 기릴 적에, 잔치가 십여 일에 이르니 그 번화한 광경은 도저히 형언치 못할 정도였다. 잔치를 파하매 모든 자녀들은 각기 집으로 돌아갔다.
어언 구월이 되니 국화는 꽃봉오리가 벌어지고 수유는 검붉은 열매를 드리우매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을 맞은지라, 취미궁 서쪽에 높은 봉이 있으니, 그 위에 오르면 팔백 리 진천이 손바닥 같이 보이기에 태사가 가장 그곳을 즐기는데 이날은 두 부인을 비롯하여 여섯 소실들과 더불어 그 대에 올라, 머리에 국화 한 송이씩을 꽂고 가을 풍경을 바라보며 서로 마주앉아 술을 마시니, 이윽하여 지는 해는 높은 산봉우리를 넘어가고 흐르는 구름은 그늘을 넓은 들에 드리우니 가을빛이 한결 찬란하여 마치 그림 폭을 펼친 듯하였다.
태사가 옥퉁소를 꺼내어 한 곡조를 부니 그 소리가 매우 처량하여, 마디마다 원망하는 듯, 사모하는 듯, 흐느끼는 듯, 하소연하는 듯하여 모든 미인들이 서러운 생각으로 가슴이 꽉 막히는 듯하기에 먼저 두 부인이 물어 보았다.
“상공께서는 일찍 공명을 이루어 부귀를 오래 누리시옴은 세상 사람이 한가지로 일컫는 바요, 또한 옛날에도 보기 드문 사실이오며, 좋은 계절의 좋은 날을 당하여 경개를 정히 쫓아, 국화 꽃잎을 술잔에 띄우고 미인이 자리에 가득하오니 이 역시 인생에 즐거운 일이거늘, 퉁소 소리 너무도 처량하여 첩들로 하여금 눈물을 참을 수 없게 하오니 오늘의 퉁소 소리가 지난날의 곡조와 다르옴은 어찌된 일이오니까?”
이 말에 태사는 불현듯 퉁소를 던지고, 자리를 옮겨 앉으면서 하는 말이
“북으로 바라온즉 평탄한 들은 사방으로 펼쳐져 있고, 나무 없는 고갯마루는 외로이 섰는데, 쇠잔한 석양볕이 거친 수풀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는 것은 진시황의 아방궁이요, 서쪽을 바라본즉 바람은 수풀을 스치고 저무는 구름 송이가 산을 둘러싸니 이는 곧 한무제의 무릉도원이요, 동으로 바라본즉 회칠한 담장은 청산에 비치고 붉은 용마루는 하늘로 치솟으며, 또한 밝은 달이 스스로 찾아 들고 스스로 물러가매 옥난간 머리에 다시 기댈 사람이 없는 곳은 바로 현종황제가 양귀비와 더불어 노니시던 화청궁이니, 슬프다 이 세 인군이 모두 다 만고의 영웅이시거늘 이제는 어디 계시는고? 소유가 초땅의 미천한 선비로서 은덕을 성군께 입고 벼슬이 장상에 이르며, 또 부인과 낭자들과 더불어 만나 두텁고 깊은 정이 늙도록 친밀하니, 만일 전생에 기약하지 않은 연분이면 능히 이에 이르지 못하리라. 우리 무리가 한 번 돌아간 후면 높은 대는 스스로 무너지고 깊은 연못은 스스로 메워지며, 노래와 춤을 추던 집이 변하여 메마른 풀과 싸늘한 연기를 이루면, 필연 나무라는 아이와 더불어 노니 던 곳이라.
대승상의 부귀, 풍류와 모든 낭자들의 아리따운 용모와 고운 태도가 이미 적막하도다 하리니, 이들 초동 목수가 우리가 노니 던 곳을 보는 것은, 바로 내가 저세 인군의 궁과 능을 보는 것과 같을지라. 이로 보건대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은 순식간이 아니리요? 천하에 세 가지의 도가 있으니 유도와 불교와 선술이라. 이 세 가지 중에 오직 불교가 높고 유도는 윤기를 밝히며 사업을 귀히 하여 이름을 후세에 전할 따름이요, 선술은 허망한 것에 가까워 예로부터 하는 자는 많으나 마침내 영험을 얻지 못하니, 진시황과 한무제와 현종황제의 사적을 보면 가히 알리로다. 소유는 벼슬을 바친 후로 밤마다 꿈 속에서 부처님께 배례하니, 이는 필연 불가와 연분이 있음이라. 내 장차 장자방이 적송자(중국 상고의 선인)를 따르는 소원을 이루고, 남해에 가서 관세음보살을 찾으며, 오대산에 올라 문수보살을 만나 불사불멸의 도를 얻어 인간관계의 괴로움을 벗고자 하나, 다만 그대들과 더불어 반평생을 상종하다가 장차 멀리 이별하겠기로 비참한 마음이 자연 퉁소 속에 나왔노라.”
모든 낭자들이 스스로 감동하여 말하되,
“상공께서 번화한 가운데 그런 마음을 가지시니 어찌 하늘이 정하신 바 아니오리까? 첩들 형제 팔 인은 마땅히 깊은 규중에 한 가지로 거처하여 조석으로 부처님을 뵈옵고, 상공께서 이번에 가시면 반드시 밝은 스승을 만나고, 어진 벗을 만나 큰 도를 이루실 터이오니, 엎드려 바라옴은 상공께서 도를 터득하신 후에는 먼저 첩들을 가르쳐 주옵소서.”
성진과 팔선녀가 꿈을 깨다
양태사가 매우 기꺼워하며 이르기를,
“우리 아홉 사람의 마음이 서로 합쳤으니 무슨 염려할 일이 있겠소? 내 마땅히 내일 떠날 것이니, 오늘은 모든 낭자와 더불어 취하도록 술을 마시리라.”
모든 낭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첩들도 마땅히 각기 한 잔 씩 받들어 상공을 전별하오리다.”
바야흐로 시녀를 불러 다시 술을 내어 오게 할 즈음, 홀연 지팡이 소리가 돌길에 나이게 모든 사람들이 의아해 여기며 말했다.
“어떠한 사람이 이 곳에 올라오는고?”
이윽고 노승 한 분이 자리 앞에 다가오는데, 눈썹은 자막대 만큼이나 길고 눈은 물결처럼 맑고 몸놀림이 매우 이상하며, 대에 올라 태사를 보고는 절하며 이르기를,
“산중 사람이 대승상을 뵈옵니다.”
태사는 이미 그가 여느 중이 아님을 알아보고 황망히 일어나 답례하며 물어 보되,
“대사는 어느 곳으로부터 오셨나이까?”
노승이 웃으며 답하기를,
“승상은 평생 친구를 알지 못하십니까? 일찍이 들으니 (귀인은 잊기를 잘하더라) 하던데, 과연 그러하오이다.”
양태사가 자세히 보니 낯이 익은 듯도 하나 아리송하더니, 문득 깨달으며 모든 낭자를 훑어보고 다시 노승을 향하여 하는 말이,
“내가 지난날 토번국을 칠 때, 꿈에 동정 용왕의 잔치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남악에 올라 늙은 대사가 자리를 갖추고 앉아 모든 제자들과 더불어 불경을 강론함을 보았거늘, 스님은 바로 그 꿈에서 만나던 대사가 아니시나이까?”
노승은 박장대소하며 이르기를,
“옳도다, 옳도다. 비록 그 말이 옳거니와 다만 꿈 속에서 한 번 본 것만을 기억하고, 십 년 동안 같이 살던 일은 기억하지 못하니 뉘 양승상을 총명타 하리요!”
태사는 망연자실하여 말하되,
“소유는 십오륙 세 이전에는 부모의 슬하를 떠나지 않았으며, 십륙 세에 급제하여 이어서 직명을 받았으니, 동으로 연나라 사신으로 가고, 서로 토번을 정벌한 밖에는 일찍이 경사(서울)를 떠나지 아니하였거늘, 언제 스님과 더불어 십 년을 상종하였겠나이까?”
조승은 여전히 웃으며 하는 말이,
“상공은 아직도 춘몽을 못하였도다!”
양태사가 묻되,
“스님은 어찌하면 소유의 춘몽을 깨게 하실 수 있나이까?”
노승이 이르기를,
“그는 어렵지 않소이다!”
하고, 손에 잡고 있던 적장으로 돌난간을 두어 차례 두드리니, 갑자기 네 골짜기에서 구름이 일어나 놀이터를 뒤덮는지라, 지척을 분별치 못하니 양태자가 정신이 아득하여 마침 꿈을 꾸고 있는 듯하기에 한참 후에야 소리를 질러 외치기를
“스님은 어찌하여 정도로 소유를 인도치 아니하고 환술로써 희롱하시나이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름이 걷히는데 노승은 간 곳이 없고, 좌우를 돌아보니 팔 낭자 또한 간 곳이 없는지라 매우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다시 누대와 많은 집들이 일시에 없어지고 자기의 몸뚱이는 한 작은 암자 속의 포단 위에 앉았으되, 향로의 불은 이미 꺼지고 지는 달이 겨우 창가에 비치고 있었다.
스스로 몸을 돌아보니 백팔염주가 손목에 걸려 있고, 머리를 손으로 만져 보니 머리털이 깎이어 까칠까칠하니 틀림없이 소화상의 모양이요, 다시는 대승상의 위엄 있는 차림새가 되지 아니하였다. 정신이 황홀하더니 오랜 후에야 제 몸이 남악 연화봉 도량의 성진행자(수행불도자를 일컬음)임을 깨닫고 생각하였다.
“처음에 육관대사께 책망을 듣고 풍도옥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인간계에 환생하여 양씨 문중의 아들이 되었었지. 자라나 과거를 보아 장원으로 뽑히어 한림학사가 되고, 나아가서는 장수가 되고 들어오면 재상이 되어 공훈을 세우고서 벼슬에서 물러나, 두 공주와 여섯 낭자와 더불어 여생을 즐기던 것이 다 하룻밤의 꿈이로다. 짐작컨대 필연 스승이 나의 생각이 그릇됨을 알고, 나로 하여금 이런 꿈을 꾸게 하여 인간의 부귀와 남녀의 사귐이 다 허무한 일임을 알게 함이었구나!”
성진은 서둘러 세수하고 옷차림을 정제한 뒤에 법당으로 나아가니 다른 제자들이 이미 다 모여 있었다.
대사가 소리를 높여 묻기를,
“성진아, 성진아! 인간계의 재미가 과연 좋더냐?”
성진이 눈을 번쩍 뜨고 쳐다보니 육관대사가 엄연하게 서 있는지라, 성진이 머리를 두드리고 눈물을 흘리며 뉘우쳐 하는 말이,
“제자 성진은 행실이 부정하오니, 스스로 저지를 죄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겠나이까? 마땅히 재앙을 받을 것이어 늘, 스승께서 하룻밤의 허망한 꿈을 불러 깨우시어 성진의 마음을 깨닫게 하여 주시니, 스승의 깊은 은혜를 천만 겁을 지나도 가히 갚지 못할 줄로 아나이다.”
육관대사가 경계하여 말하기를,
“네가 흥을 타고 갔다가 흥이 진하여 돌아오니 내 새삼 무슨 간여할 바 있겠느냐? 또 네 말을 들은즉 (꿈과 세상을 나누어 둘이라) 하니, 이는 아직도 네가 꿈을 깨지 못하였느니라. 옛날에 장주(장자)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가, 다시 나비가 장주로 화하니 어떤 것이 허망한 꿈이뇨?”
성진이 이에 대답하되,
“제자 성진은 이제 모든 것이 아득하여 꿈과 참을 분별치 못하겠사오니, 바라옵건대 스승은 법을 베풀어 이 몸으로 하여금 그것을 깨닫게 하소서.”
육관대사가 쾌히 응낙하여 이르기를,
“내 마땅히 금강경의 큰 법을 베풀어 그로써 네 마음을 깨닫게 하려니와, 잠시 후에 새로 올 제자들이 있으니 너는 기다리렸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지기 도인이 손들이 왔음을 아뢰었다. 뒤이어 위부인의 시녀 팔선녀가 대사 앞에 나아와 합장 배례하고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제자들이 비록 위부인을 모시고는 있으되 배운 바 없사와, 망령된 생각을 억누르지 못하여 욕심이 잠시 고개를 쳐들매, 무거운 죄악이 뒤따라 이르러 인간계의 헛된 꿈을 꾸되 깨워 주는 사람이 없삽더니, 대자대비하옵신 스승께서 저희를 깨워 다시 데려오시니 감격하였나이다. 어제는 위부인의 궁중에 가서 하직하고 이제 돌아왔으니, 스승께서는 저희들의 묵은 죄를 사하시와 각별히 밝은 가르치심을 드리우소서.”
육관대사가 경계하여 말하되,
“여선들의 뜻이 비록 아름다우나, 불법은 깊고도 머니 큰 역량과 큰 발원이 없을진대는 능히 이르지 못하나니, 그대들은 모름지기 스스로 헤아려 하도록 힘쓰라.”
팔선녀가 물러나와 낯에 칠한 연지와 분을 씻어 버리고 각기 사매의 인연을 맺고, 금가위를 내어 구름 같은 머리를 깎아 버리고, 다시 들어와 대사께 사뢰기를
“저희들 제자 팔 인이 이미 얼굴의 모습을 고쳤사오니, 이제부터 맹세코 스승의 가르침과 분부를 게을리 하지 않겠나이다.”
육관대사는 매우 기꺼워하며 이르되,
“좋도다! 너희 팔 인이 이렇듯 달라질 수 있으니 어찌 감동치 아니하겠느냐.”
하고 나서 자리에 올라 경문을 강론하니,
“백호 빛이 세계에 쏘이고, 하늘 꽃이 비같이 내리더라.”
경문의 강론이 끝나자 성진과 여덟 사람의 여승은 일시에 불법을 깨닫고, 생겨나지도 않고 죽어 없어지지도 않을 정과를 얻으니, 육관대사는 성진의 계율을 지킴이 착실하고 순숙함을 보고 이에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내 불법의 전도를 바라고 중국으로 들어왔는데, 이제 비로소 정법을 전할 사람을 얻었으니 이제 나는 돌아가리라.” 하고는, 염주와 바리와 정병과 석장과 금강경 한 권을 정진에게 주고 서녘 하늘을 향해 떠나갔다.
이 후로 성진이 연화도량의 대중을 거느려 크게 교화를 베푸니, 신선과 용신과 사람이 한가지로 존경하기를 육관대사와 같게 하고, 여덟 사람의 여승들도 성진을 스승으로 섬기어 깊이 보살의 대도를 터득하고 아홉 사람이 함께 극락세계로 가게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