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고지 전투에서 살아 남은 전우들과 함께. 앞에서 둘째 줄 가운데 흰 머플러를 하고 앉아 있는 사람이 작자. (1951년 10월)

동부전선에서의 음주당 시절, 동료들과 함께. (1952년 1월)

동부전선 해병 묘지에서 (1952년 3월)

진섭이와 함께 (1952년 5월)

휴전 후 야전 미사를 마치고. 첫 중앙이 작자. (1953년)

고아원에서 (1955년)

 

 

돌아가신 양친과 내 친구 숙과 한국 전쟁에 희생된 모든 이에게, 그리고 우리 조국의 분단을 괴로와하며 그들의 의견 차이를 초월하여 서로 이해하고 존경하는 가운데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려고 애쓰는 남한과 북한의 모든 동포에게 이 책을 바친다.

 

지은이

카나다 몽레알 르아로 750

St. Louis de France 사제관

 

 

 

머리말

 

멀리 카나다에서 우리 교포들의 사목(司牧)을 담당하고 계신 고종옥(高宗玉) 신부께서 프랑스어로 소설을 쓰셔 널리 읽히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듣고 있었다.

바로 그 작품(佛語版 原題: 모든 길은 신에게로)이 안응렬(安應烈) 선생의 원숙한 필치에 의해 한국어판으로 나오게 된 것은 크게 반가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원저자인 고신부님이 다시 한국어판으로 이 소설을 재판(再版)하게 되면서 내용과 문장이 더욱 충실해졌다고 본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여기다 소개하면 저 6.25 동란에 몸소 참전한 한 가톨릭 청년이 가열한 전쟁의 마당 속에서 겪고 보고 느끼는 인간의 삶의 부조리와 참혹, 한편 그 속에서도 피고 지는 인간애와 연애 등의 체험을 통해 마침내는 신에게 대한 완전 헌신(完全獻身)을 결심하기에 이른다는 이야기다.

일종의 수기체(手記體)의 내용과 구성으로서 소위 예술적 형상성(形象性)으로 따진다면 평면적인 서술이라 말하겠으나 그 체험의 생동성(生動性)과 핍진력(逼眞力)1이 저절로 극적인 전개와 긴장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살육과 증오의 마당에서 주인공이 적의 포로와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인간적 대화를 가지는 장면 등 이 작품에 깔린 강렬한 휴매니티가 우리의 감동을 자아낸다.

우리 겨레 뿐 아니라 인류사의 초점이었던 6.25 동란을 소재로 하여 인간과 역사의 비극적 맹점(盲點)을 파헤치고 나아가서는 궁극의 진리에 눈을 돌리게 한 이 소설이 널리 읽히고 우리 문단에서도 주목되기를 바라마 지 않는다.

 

1979년 늦가을에

具 常 적음

 

 

 

 

차례

 

안녕

부활절 전야제

이 피는 누구를 위해 흐르나

선과 악의 변두리

전쟁 속의 두 여인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 죽음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형선이의 조국을 위하여

숙에게

누구의 탓이랴

귀로(歸路)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으면

목마르다

죽음을 넘어

갈림길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제1장

안녕

 

그날 저녁 공식적인 나의 제대식이 끝난 후 나는 친구 이영민으로부터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다. 물론 그런 친절한 초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의 아내는 내가 특히 좋아하는 음식들을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 차려내었다.

영민의 아내는 아름답고 나무랄 데 없는 여자였다. 그녀는 늘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어서 언제 보아도 우아하고 행복해 보였지만 그날은 특히 더욱 그렇게 보였다.

그들의 집은 자그마했으나 항상 깨끗했고, 모든 가구들이 잘 정돈되어 있어 짜임새 있는 아담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자세히 관찰하지 않더라도 집안 어디에서나 행복의 자취와 사랑의 흔적을 쉽게 엿볼 수 있었다. 그 자그마한 집은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둘도 없는 삶의 안식처요, 사랑의 성(城)이었다. 그곳은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돌아와 고달프고 지친 그들의 심신(心身)을 쉬게 할 수 있는 곳이었고, 삶의 역경을 견디고 극복해 나갈 희망과 용기를 얻어내는 곳이었으며, 또한 삶의 조그마한 보람과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나는 이 행복한 가정에서 그들이 누리는 삶의 기쁨을 그들과 함께 호흡해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은 내가 며칠 후 신학교에 들어간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풍기는 그 아늑함을 한층 더 많이 느꼈던 것 같았다.

결혼 전에는 영민은 게으르고 우울했으며 옷매무시조차 별로 돌보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결혼 후로는 아주 딴 사람이 되어 버렸다. 명랑해졌고 옷도 깨끗이 자려 입고 다녔으며 매사에 관심을 갖고 정성을 다하는 것 같았다. 아내를 매우 사랑하고 존경하는 그가 하루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여자는 헌신적인 그의 사랑 속에 창조력을 갖고 있지요.”

그의 경우에 있어서 이 말은 자신의 실질적인 체험을 통하여 얻어진 확신이었다. 또한 이 찬사는 교황 비오 12세의 말씀을 확증하는 것이었으니, 그분은 이렇게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모든 것에 혼(魂)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은 아내로 하여금 가정의 구석 구석을 매력 있게 만들 수 있도록 해 주는 여자의 손과 재간이다. 이런 일은 관심과 주의와 질서와 청결로써, 그리고 힘을 재생시키기 위한 저녁 식사나 휴식을 위한 침대 준비 같은, 모든 일을 알맞게 하겠다는 정성만으로서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천주님은 남자에게보다는 여자에게 우아함과 미적 감각과 또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사랑스럽고 친밀하게 만드는 재주를 주셨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여자가 남자와 닮게 창조되었기 때문이여, 또한 여자는 남편과 가정에 대해 매력과 기쁨을 풍김으로써 두 사람의 풍요하고 행복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영민의 두 어린 자녀들은 무척 예뻤다. 아들인 맏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고 몇 달 밖에  안된 딸은 평온히 잠들어 있었다. 잠든 어린애야말로 우리들의 눈에 가장 아름답고 정답게 비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 어린애들을 쓰다듬고 안아 주고 싶은 충동을 강렬히 느꼈다. 그래서 나는 두 팔을 벌리고 사재 아이더러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 애는 “싫어!” 하고 소리치며 자기 아버지 품으로 달려갔다. 그때 나는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왜냐하면 이 거절은 나의 부성(父性)을 전적으로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내 가슴에 가득 차 있는 애정을 몰라 주고 부성애를 한 번 느껴 보려던 내 순진한 사랑을 거절했던 것이다. 나는 스물여섯 살이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예쁜 애들을 보면 본능적으로 부성애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은 껴안고 귀여워해 주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어나곤 했다. 뽈 끌로델 은 자끄 리비에르 에게 인간적 행복의 가장 위대한 순간 중의 하나가 바로 자기 자식을 품에 안는 순간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사람들은 신부(神父)의 독신생활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들의 고독한 생활을 상기하고 그것을 희생의 생활이라고 말한다. 그럴 때 사람들은 단지 육체적 쾌락을 단념한다는 한 가지 면만을 고려한다. 물론 신부들의 생활을 순수 히 인간적인 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사실 고독과 희생의 생활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신부들에게 있어서 제일 큰 희생은 한 인간으로서의 자기 존재의 연장을 뜻하는 부성을 단념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제 신학교에 들어갈 테니까 뽈 끌로델 이 말한 인간적 행복의 가장 위대한 순간도, 또한 여인의 달콤한 사랑도 평생 주려 보지 못하겠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영민의 가정은 조촐했지만 거기에는 재화(재화)로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랑이 있었다. 나는 그들 집에서 삼위일체적인 사랑의 모습이라고까지 감히 말할 수 있을 완전히 일치된 사랑의 모습을 보았다.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들의 가정에는 모자이크처럼 수 놓인 조화되고 아름다운 앙상블(전체적 조화)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행복과 사랑을 풍기고 있는데도 영민의 가정에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어 보였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현존(現存)이었다. 그들은 아직 그리스도교인이 아니어서 창조주이시며 오직 한 분이신 천주님을 믿는 내 신앙과,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내 기쁨, 그리고 그분의 제자라는 내 보람과 행복을 나와 함께 맛보고 있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행복의 원천이오, 구원 자체이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이들에게 더 많은 진정한 기쁨을 안겨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가고자 한다’ 고 도 생각했다.

저녁 식사 후 나는 행인들로 곽 들어찬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수 없는 얼굴들과 나는 마주쳤다. 천주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얼굴들, 인류를 구언하기 위하여 인간이 되신 예수님께서 취하셨던 이 모습들, 이것은 바로 부활하여 복된 견신(見神)을 누리기 위해 창조된 얼굴들이 아닌가! 그러나 천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영원한 영광을 누리기 위해 창조된 인간이 천주님에 대한 신앙 없이 참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슬프게도 한국 인구의 98 퍼센트 (1956년 통계)는 아직도 우리 천주교가 가르치는 대로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지금 스쳐 지나가고 있는 이 사람들, 각 개인들을 위해 죽으셨다. 그런데 이들은 그분을 알고자 하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을까 우리의 구원이신 그리스도에 관하여 아무런 이야기도 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그분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누가 이들에게 그분의 말씀을 들려 줄 것인가? 누가 그분을 사랑할 수 있도록 이들을 깨우쳐 줄 것인가?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이들에게 예수님을 알리고 또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기 위하여 나의 온 삶을 걸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바로 사흘 후 신학교에 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영화관 앞을 지나갔다. 영화가 막 끝났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조명이 잘 되어 있는 커다란 간판을 흘긋 쳐다보니 외국 미녀의 선정적인 모습과 두 남녀의 키스하는 장면과 ‘미성년자 입장 금지’라는 게시판이 눈에 띄었다.

<경이적인 최대의 프로! 전재미문의 영화! 더할 나위 없는 저녁 시간을 즐기시라!>

영화를 선전하는 마이크 소리가 간간이 들려 왔다. 그리고 군중은 술집으로 식당으로 다방으로 빨려 들어갔다. 극장 주변에는 늘 이런 집들이 많다. <저것들이 20세기의 신전(神殿)들이야. 현대인들이 하느님 없는 기쁨에 예배 드리는 신전들이지.> 친구인 한 개신교 목사가 어느 날 극장과 술집을 가리키면서 내게 한 말이다. 나는 생각했다. ‘기쁨을 찾고 누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인간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기쁨이 없는 그저 긴장되고 딱딱하고 엄격하기만 한 삶을 우리는 거의 용인할 수가 없다. 향락과 오락은 무수한 고통에 시달리는 우리 인간들에게 위안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일상 양식에 필요한 양념처럼 고달픈 우리 일상생활의 활력적인 요소가 아니겠는가? 다만 질서와 근로와 오락을 적당히 가미해서 말이다. 쾌락을 인간화하고 기독교화해야 한다. 만약에 천주님이 20세기 인간들의 이 신전에 계시지 않으시다면 내가 그분을 그리로 모셔야 한다. 극장과 술집은 나의 장래 사도직의 활동 무대가 될 것이다.’

하숙집으로 돌아오니 어느 이름을 밝히려 하지 않는 여자분이 꽤 큰 꾸러미를 놓고 갔다고 하숙집 아주머니가 일러 주었다. 그것은 바로 꽃다발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선 나는 그 향기에 취해서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내 방바닥의 지저분함마저 잊을 지경이었다. 꾸러미 옆에는 다음과 같은 짤막한 구절이 적혀 있는 작은 봉투가 놓여 있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나는 감격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나는 이 말을 여러 번 되뇌임으로써 간단한 내 저녁 기도를 대신했다.

나는 8년 동안이나 걸치고 다닌 그야말로 내 온 청춘의 증인인 군복을 벗었다. ‘이제부터 다시는 너를 입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소 서글픈 기분으로 오랫동안 군복을 내려다보며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군대는 나의 인격을 도야시키고 인간 교육을 시켜 준 선생이요, 벗이 아니었던가! 나는 거기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인격 수련을 배웠고 나의 동포들과 공동 책임을 지는 것과 불행한 자들과 공감하는 것을 배웠다. 나는 군복을 차곡차곡 개어서 경건하게 껴안으며 중얼거렸다. “사랑스럽고 충실한 내 인생의 벗이여, 안녕!” 그리고 내 군복 상의에 달려 있는 훈장들을 내려다보았다. 그것들은 내게 영광도 자존심도 불러일으키지 않고 오히려 괴로운 추억들만을 환기시켜 주었다. 전장(전장)에서 쓰러진 그 많은 내 동료들, 황폐해진 도시와 촌락, 그리고 수백만 동포의 희생과 고통 따위 등등을…

설합에서 사진첩을 꺼내 한 장 한 장 들춰 나갔다. 얼마나 많은 추억들이 거기에 담겨 있었던가! 나의 지난 생애의 충실한 증인인, 몹시 사랑하는 얼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특히 유별난 추억을 되살려 주는 여자 사진 몇 장은 태워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일생에는 그 이유를 모두 저울질해 보지 않고서 행동하는 순간들이 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열두어 장 되는 사진들을 불태웠는데 그 사진들의 얼굴들은 불길 속에서 뒤틀리면서도 내게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한때 내 젊음을 감격시키고 내 삶에 기쁨을 주며 행복을 속삭여 주던 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얼굴들…. 눈시울이 뜨거워옴을 느끼며 나는 사진 한 장 한 장이 불꽃 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질 때마다 간단한 기도와 다정한 이별의 말을 중얼거렸다.

내 방으로 돌아와 천천히 담배를 피우며 그 동안 규칙적으로 적어 근 30 권이나 되는 일기장을 꺼냈다. 거기에는 내게 참으로 친밀한 추억들이 간직되어 있었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고독과 반항, 자랑거리와 수치 그리고 뉘우침, 내 성실과 비겁함, 내 선행(善行)과 죄, 이 모든 것들이 거짓 없이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애초에 이 공책들을 모두 불태워 없애려 하였다. 그리하여 지난 날의 내 생활의 증인을 망각 속에 파묻고 싶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또한 천주님의 자비로우신 사랑과 섭리의 손길이 얼룩져 있었다. 나는 마음을 고쳐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삶의 과정에서 숱한 육체적 정신적 위기를 거쳐 신학교의 문턱에까지 나를 인도해 주신 천주님의 은총의 자취를 회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받은 은혜를 회상함으로써 주님께 감사 드리는 것이 마땅하리라 여겼다. 그럼, ‘사랑의 지도’ 사건 이후로 되돌아가기로 하자.

 

 

 

 

 

제2장

부활절 전야제

 

1950년 12월 초순, 함흥 전선은 몹시 추웠다. 시베리아 바람을 타고 날아온 눈송이들도 얼어붙은 채 모진 바람에 쫓겨 교통호를 타고 달음질치다가 벙커 안으로 휘몰려 들어왔다. 그때 초 심지에 불을 붙이려던 라이터가 꺼졌다. 몸으로 바람을 막으며 초 심지에 다시 라이터 불을 들이대자 겨드랑 사이로 빠져 나온 바람이 사정 없이 엄습해 들어와 불을 또 꺼버렸다. 초를 품에 안고 라이터 불을 다시 켜 대었다. 그러자 연한 초 냄새를 풍기며 불이 초 심지에 붙었고 따끈한 촛불이 손등으로 흘러내렸다. 한 번 붙은 촛불은 무덤 같은 벙커의 암흑을 그래도 조금씩 밀어내었다. 그러나 계속 휘몰려 들어오는 눈바람에 꺼질 듯 꺼질 듯 심하게 요동쳤다. 그러면서도 그 촛불은 끈질기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것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내 가슴 속에 이 촛불은 인간의 가냘프고도 약한, 그러나 강하고도 끈질긴 생명력과 삶에 대한 그 어떤 비밀스러운 희망을 속삭이고 있는 듯 느껴졌다.

적의 포탄이 또 벙커 지붕 위로 떨어졌고 천정에서는 흙 가루가 우수수 날렸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우리들은 몹시 침울했다. 마치 죽음이라는 절망 앞에 삶을 체념한 사형수 같은 기분이었다. 적의 포격 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떨어지는 포탄 수도 늘어만 갔다. 늦어도 40시간 이내에 대대적인 적의 공격이 있으리라고 누구나가 다 예측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때 우리의 운명은….

우리 민족이 그처럼이나 갈망하던 조국 통일도 시간 문제라고 기뻐하던 1950년 11월 하순, 한국 전쟁에 개입한 중공군은 태풍처럼 전 전선을 휩쓸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때 한만(한만) 국경선까지 진격했던 유엔군과 우리 국군은 비분(비분)을 억누르며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중공군의 공제 앞에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북한 전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유엔군과 아군은 도처에서 포위당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로 보급로가 차단되고, 곳곳에서 패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우리 해병대도 <죽음의 후퇴>를 계속해 끝내는 함흥을 중심으로 적의 총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며칠 전 우리 전초중대는 중공군과 인민군의 합동 공격을 받았다. 그 후 아군의 지원을 받지 못한 우리는 완전히 포위당한 채 부족한 실탄에다 식량마저 떨어진 채로 이미 이틀을 보냈다. 게다가 무선통신기는 고장이 나 연대본부와의 연락이 일체 끊어진 상태였으므로 우리는 그야말로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겨울용 장비 보급을 충분히 받지 못한 우리의 발은 동상으로 시달리기 시작했고, 몇 주일째 세수를 하지 못한 우리의 손등엔 때가 앉아 급기야는 터져 피가 흐르기도 했다.

적의 포탄이 또 벙커 지붕 위에 떨어졌다. 바로 그때였다. 중대장 전령병이 피투성이가 되어 벙커 안으로 굴러 들다시피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는 거의 실신하여 꺼져가는 듯한 신음소리로 중대장의 명령을 전달했다.

“선임 하사관님, 오늘 밤 12시를 기하여 아군은 <0>지점으로 철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중대장님으로부터 각 소대장의 긴급 소집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바로 하나의 명백한 삶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는 보고를 마치자 곧 쓰러져 숨지고 말았다. 당시 나는 소대장이 전사한 후라 3소대장 직책을 떠맡고 있었다.

중대장으로부터 연대 본부와의 일체의 연락이 두절된 상황 아래 후퇴를 결심했다는 설명을 들은 다음 우리는 세밀하게 후퇴 작전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살 수 있다>는 생에 대한 한 줄기 희망으로 기뻐했으나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즉 그 당시 내 벙커 안에는 세 명의 인민군 포로가 있었는데 이들 포로의 처치 문제였다. 우리가 처해 있는 당시의 전황으로는 이 포로를 이끌고 철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0>지점으로 철수하는 경로에는 적의 대대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고 따라서 교전도 각오해야만 했던 우리의 입장이었다. 논의 끝에 우리는 이 포로들을 총살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이 포로들을 심문하고 감시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던 탓으로 총살 집행권을 부여 받았다.

그 포로 중 한 명은 상위(상위)였고 나머지 두 명은 하사관급 사병이었다. 이 장교의 성은 <김>씨였고 오른쪽 다리에 가벼운 상처를 입고 있었으며 두 사병은 각각 복부와 왼쪽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 있었다. 이들  사병의 운명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 같았다. 그 중에서도 복부의 상처 때문에 창자가 터져 나와 심한 악취를 풍기고 있는 한 인민군은 가장 지독한 놈이었다. 죽음의 순간에까지 우리 국군을 민족의 반역자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욕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상위는 조용하고 위엄이 있어 보였으며 장교다운 품위와 위신을 지켰다. 그는 부상당한 자기 부하 둘을 구출하려다가 오히려 자기도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되어 있었다.

철수 준비를 완료하고 이 세 명의 포로들을 대했을 때 나는 별안간 이들에게 무엇인가 해 주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세 시간 후면 총살당할 이들의 운명을 생각하니, 적이란 개념을 초월한 인간적인 동정심이 내 마음 속에서 자비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그들도 나처럼 20대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여인이 나에게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들을 사랑하며 기다리고 있을 여인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얼마 후 총살당할 그들의 운명은 또한 앞으로 있을 수 있는 나 자신의 운명을 예감시켜 주는 듯 했다. 그럼으로써 내 가슴 속에는 같은 운명의 길을 걷는다는 <동지 의식>이 강하게 용솟음쳐 올랐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내 민족이며 내 형제들이 아닌가! 그들도 우리들처럼 <김, 박, 노>라는 같은 겨레의 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이런 심정으로 나는 그들에게 진정 무엇인가 베풀어 주고 싶었다.

그날 저녁 나에게 남아 있는 먹을 것이라곤 깡통에 말라 붙어 있는 된장 가루 한 숟갈 뿐이었다. 이 된장 가루로 나는 <숭늉> 비슷한 된장 차를 철모에 끓여 그들과 함께 마시기로 했다. 잠시 후 우리는 된장 차를 나눠 마셨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시베리아의 사나운 바람은 여전히 눈보라를 벙커 안으로 휘몰아 보내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촛불도 쉴새 없이 깜박거렸다. 가끔 포탄이 가까이서 작열하면 벙커 천정에서 흙 가루가 쏟아져 된장 차가 든 철모 속으로 날아 들어왔다. 추운 탓인지 김상위의 얼굴에는 잔 소름이 번져 있었고 잔 솜털까지 오똑 오똑 서 있는 것이 희미한 촛불에도 뚜렷이 보였다. 그의 두 눈은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촛불을 켰을 때부터 무엇인가 깊이 상념 하는 시선으로 촛불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얼마 후 그는 입을 열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 초가 다 타 없어져 불이 꺼지기 전에 내 생명이 먼저 소멸하겠지…”

“무엇이라고?”

나는 놀란 듯이 그에게 반문했다. 너무도 조용했던 순간이라 나는 그의 말을 똑똑히 들었고, 나머지 포로들을 포함한 우리의 시선은 일제히 그의 얼굴에 못처럼 박혔다.

“이 사나운 바람에 떨며 춤추고 있는 이 가냘픈 촛불은 내가 죽음에 임박했음을 상징하고 있소. 이 초가 다 타 없어지기 전에 내 생명은 이 세상에서 존속하기를 그칠 것이오. 우리 3천만 모든 동포에게 행복을 보장하는 새로운 사회제도를 건설하고 통일된 조국 안에 평화를 심어, 불의와 부정, 착취와 굴욕, 빈곤과 비참을 몰아내기 위하여 나는 투쟁해 왔소. 그런데 얼마 후 동무들은 후퇴할 것이며, 우리 셋은 총살당할 것임을 잘 알고 있소.”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별안간 그의 성실하고 선량한 표정과 도 그의 말 속에 숨기고 있는 강렬한 조국애 앞에 저항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러자 감상위에 대한 동지적 이해와 동정과 공감이 뜨겁게 용솟음침을 막을 길 없었다. 내 가슴 속에서는 그는 이미 나의 적이 아니었다. 나는 그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싶었다. 그리고 천주교 신자로서의 내 신앙적 양심은 죽음 앞에 선 한 불쌍한 영혼으로 하여금 두려움 없이 죽음을 준비시키고 싶었다. 아니, 죽음의 뜻만이라도 알려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죽음의 종교적 신비성과 천상적 삶의 실제와 그 존엄성을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니오, 죽음은 인간 존재의 만사를 종식시키는 것이 아니오. 죽음은 당신의 육신을 파괴하나 당신이 조국을 위해 지녀 온 이상과 실천해온 사랑을 파괴할 순 없을 것이오. 이 시간까지 당신이 지녀온 정치적 이념이 어떻든 간에 당신이 우리 조국과 민족을 진정 사랑했다면 당신은 그 사랑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이오. 사랑 자체는 영원한 것이며, 이 사랑은 곧 천주님을 뜻하오. 그러므로 순수한 목적과 동기에 바탕을 둔 사람은 그 사랑을 행하는 사람의 정치적 이념이나 이상을 초월해 천주님의 영원한 사랑에 귀착하는 법이오. 따라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쳐온 당신의 사랑은 천주님의 자비를 얻게 해 줄 것이며, 이 자비를 통해 당신의 영혼은 구제받을 것이오.”

“천주의 자비와 내 영혼의 구제?…. 나는 그와 같은 나 하나만의 개인적인 구제를 단연코 거부하오. 우리 온 민족은 이 전란 속에 헐벗고 굶주리고 상처입고 똑 죽어가고 있소. 이 판국에 어찌 나 하나만의 구원에 만족할 수 있겠소? 빈곤과 고통과 불행 속에 신음하는 내 민족과 함께 이 지상에서 살며 그들의 불행을 덜어 주고 싶은 맘 뿐이오. 나는 천주의 존재나 또는 영혼이나 영원 따위의 존재성을 믿지 않소. 그래서 나는 내 민족에 대한 사랑도 조국에 대한 이상도 죽음과 함께 파괴되고 말 것이라 생각하니 죽기가 억울하고 우리를 죽일 당신이 한 없이 저주스러울 뿐이오.”

그때 김상위의 얼굴은 다소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으나 그것은 나에 대한  증오의 감정은 아닌 것 같았다. 다만 자기가 지녀온 이상의 실현을 방해하는 그 어떤 환경에 대한 분노처럼 보였다.

“당신의 그와 같은 주관적 고집을 초월해 천주님은 엄연히 존재하고 계시며, 또한 그분의 공의(公義)하심에 따라 새롭고 영원한 생명이 당신 안에 탄생되고 있소. 인간을 단지 자연 현상의 우연적인 존재의 하나로 보고, 이 시간성 안에서만 삶의 가치와 존재성을 인정하려는 당신들, 유물론적 공산주의자들은 보상할 수 없는 과오를 범했소. 우리 인간의 삶은 이 자연계의 시간적 개념을 초월해 천주님을 아버지로 또 천국을 본 고향으로 삼고 있는 영적 존재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오.”

“인간이 무엇을 알고 믿는다고 그것이 반드시 존재한다고는 단언할 수 없소. 인간의 주지적 사고(主知的 思考)로 추리한 것이라고 하여도 그것이 <이런 것이다>라고 만인의 의심 없이 믿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증명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그러한 존재를 믿을 필요는 없다고 보오. 사실 그런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까…”

“아니오. 만인이 공감할 수 있는 증거가 없으니 믿을 수 없다고 단언하는 것은 일종의 경솔이오. 우리가 사랑이나 우정이나 존경 등을 눈으로 볼 수는 없어도 그것을 마음으로 느끼고 또 그것의 존재를 믿고 있는 것과 같이 모든 인간은 시간성을 초월한 행복과 평화에 대한 영원한 보장을 마음 속에 바라고 있소.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영원의 존재성을 증명해 주고 있고. 그리고 이러한 보장은 영원 자체이신 천주님 안에서만 가능하며 천주님이란 이 영원성을 우리 가슴 속에 받아들일 때까지 인간은 초조와 불안과 고통 속에 방황하는 것이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영원을 향한 하나의 질서이며, 또 인간 심저에 내재하고 있는 영원에 대한 향수는 이 질서를 향한 우리의 고달픈 발걸음에 힘을 더해 주고 있는 법이오.”

“동무가 말하는 것처럼, 비록 인간 심저에는 영원에 대한 향수가 내재하고 있고, 이 향수를 통하여 인간은 영원성에 도달하는 영적 존재라 합시다. 그래도 나는 나 혼자만의 개인적인 행복과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그러한 천국이나 영원을 단연코 거부하겠소.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상부상조하며, 또 같은 민족으로서 동고동락하는 공동체의 의식으로 하나의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더 나아가 같이 일하고 살다 같이 고생하며 죽는 이 지상 이외에 그 어떤 것도 나는 바라지 않소. 좀더 내가 더 살 수만 있다면… 조국을 위해 할 일을 다하지 못하고 죽자니 그것이 억울할 뿐이오. 정말 살고 싶소. 조국과 민족을 위해 정말 사고 싶은 맘 뿐이오.”

그리고 그는 그 어떤 숭고한 이상적 목표 앞에 다다랐다가 순간적으로 패배한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분노와 애석함과 슬픔을 띤 표정으로, 바람에 여전히 한들거리며 허덕이고 있는 촛불을 주시했다. 촛불에 반사되어 번쩍이는 그의 두 시선은 무섭도록 살아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어느 새 땀방울이 구슬처럼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이러한 표정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신비로움과 진실함으로 조화되어 있었고 내 마음 속에 누를 길 없는 친밀감과 존경심을 끓어 오르게 했다. 그때 나는 더 이상 말을 계속할 수 없었다. 천주님과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그의 고집이 미웠으나 조국에 대한 그의 거룩한 뜻과 사랑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사랑이신 천주님과 그분 안에 약속된 영원한 행복을 거부하며 조국과 민족에 대한 현세의 사랑만을 고집하는 그를 바라보며 쓸쓸하고 슬퍼졌다.

한참 후 나는 그 포로들에게 양담배 한 개피씩을 나누어 주었다. 김상위는 아무 말 없이 내가 주는 담배를 받아 들었다. 그러나 그 외 사병들은 주는 담배를 거절하며 마치 합창이나 하듯이 소리질렀다.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는 미제국주의자들의 담배를 단연코 피우지 않으련다.”

그러자 김상위는 그들을 조용히 타이르며 말했다.

“박동무, 노동무, 그 담배를 받으시오. 비록 이 담배는 미제국주의자들의 것이라 해도 이 담배를 주는 손은 우리와 같은 동족의 손이오. 우리가 사랑해야 할 형제의 손이오.”

“죽음 앞에 변질되어 가는 김상위 동무의 사상이 한스럽습니다. 위대한 인민군 장교로서 또 조국을 통일하고 민족을 해방시키는 이 성전(성전)에 나선 전사로서 어찌 그런 반동적인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김상위 동무는 냉정히 자아비판을 해야 할 것이며 동무들의 비판을 엄중히 받아야만 합니다. 하여튼 우리는 결코 이 미제 담배를 피우지 않겠습니다. 한 조국의 겨레며 동족이라는 이 감상적 유혹을 극복하고 위대하신 김일성 동무가 가르쳐 주신 공산주의 이념이 주는 혁명 사상에 배치되는 여하한 것과의 타협도 일체 거부합니다.”

상처의 고통으로 신음하면서도 그들은 악을 썼다. 김상위는 아무 말 없이 동정 어린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무리 이상과 사상과 이념이 위대하다 하더라도 그것에 맹목적으로 노예화되어 인간적 감정마서 말살시키려는 그들의 태도를 나는 한없이 증오했다. 그리고 인간성이 결핍된 사상적 독선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나는 새삼 깨달았다. 또한 그로 인하여 인류는 얼마나 많은 상처와 피해를 받아 왔을까 상상하며 이런 독선이 바로 이 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김상위는 내가 내미는 촛불에 담배를 붙여 물며 무언가를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담배 한 모금을 한껏 안으로 빨아 들이켰다가 벙커 천정에 내뱉으며 나에게 말했다.

“동무, 지금 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주는 환상 속에 잠기느라 잠시 이 현실을 떠나 있었소. 역시 추억이란 아름다운 모양이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추억은 감동적이군요. 동무가 내미는 촛불을 받아 들고 그 순간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있었소.”

“어린 시절에 촛불과 관련된 그 어떤 추억이라도 있었소?”

나는 <촛불>과 <어린 시절>이라는 말에 이상한 예감을 갖고 호기심 있게 그에게 물었다.

“있고 말고요… 망부활 밤미사 생각이 별안간 떠오르는군요.”

“무엇이라고! 망부활 밤미사?….”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피우던 담배를 땅바닥에 비벼 끄며 그를 향해 마주 앉았다.

“뭐, 그렇게 놀랄 건 없소. 망부활 밤미사 때 촛불을 켜 들고 ‘할렐루야’ 노래를 부르며 미사 참례하던 추억이 새삼 떠올라와 내 마음을 흥분시키고 있소.”

“그럼, 김상위 동지는 천주교 신자였단 말이오?”

나는 그때 동지라고 불렀다. 같은 천주교 신자라는 교우의식(敎友意識)이 나를 사로 잡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동정심이 내 감정을 자극시켰다.

“그렇소. 나는 <바울로>라는 영세명까지 가진 천주교 신자였고 견진성사도 받은 바 있소.”

“김상위 동지는 천주교 신자였었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신앙을 포기하고 교회를 떠난 지 오래오. 동무가 보는 바와 같이 지금 나는 무신론적 공산주의를 국시(國是)로 신봉하는 인민군 장교요.”

“왜 신앙을 버리고 교회를 떠났소? 그리고 어떻게 공산주의자가 되었소?”

“동무 자신도 부정할 수 없을 이 인간 세상과 이 사회의 허다한 모순 때문이오. 즉 <선>보다 <악>이 득세하는 이 부조리한 현실 속에 날뛰는 불의와 그에 의해 희생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눈 앞에 보며 천주의 존재를 믿을 수가 없었소. 그래서 나는 교회를 떠나고 말았소. 보는 바와 같이 나는 무신론자가 되었소. 그리하여 인간의 행복과 평화를 천국이 아닌 이 지상에서 실현하고, 인간의 존엄을 좀먹는 이 불의한 사회제도를 혁신하며 평등과 사랑 속에 인류의 진보를 위해 투쟁하는 공산주의의 대열에 참가했소. 그리고 나는 천상적 행복이란 이름 아래 온갖 빈곤과 굴욕과 불의와 희생을 감수하는 종전의 안이하고 노예적인 종교적 인생관을 버리고 고통을 결핍이라는 인간의 숙명적 조건과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기 위해 공산주의자가 되었소.”

김상위의 이 같은 말은 또 한 번 나를 감동시켰다. 그의 이론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그의 말 속에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그의 신념이 나를 흥분시켰던 것이다. 천주님에 대한 그의 자세를 내가 받아들일 수는 없었으나 그의 자기 신념에 대한 확신과 그 신념을 일상적 삶 속에서 실천하려는 그의 인간적 성실성이 그의 말 속에 생명처럼 살아 있었다. 그의 이러한 표정과 태도는 마치 단두대에 오른 한 순교자의 그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이 현실에서 천주님의 존재를 생각하고 그 분의 전능과 절대적인 사랑을 묵상할 때마다 내 어린 신앙에 잔물결을 일으키곤 하던 한 줄기 <회의>의 정체를 김상위가 똑바로 보게 해 주는 듯하여 일종의 공감마저 느꼈다. 그리고 천주님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공산주의자가 된 이면에는 내가 아직 모르는 상당한 사연과 그 어떤 고뇌의 과정이 있었으리라 나는 감히 짐작했다. 그러나 나는 김상위의 무신론 앞에 내 신앙을 변호해야만 했다.

“김상위 동지! 당신의 말과 신념이 나를 감동시키고 있음을 숨기진 않겠소. 그러나 방금 동지가 열거한 그 모든 이유는 천주님에 대한 신앙을 포기할 만한 하등의 원인도 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하오. 물론 이 인간 사회에는 숱한 부조리와 악과 모순이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겠소. 그러나 일일이 열거할 수 없으리 만큼 많은 이 모순들을 당신들 공산주의자들이 처음으로 발견한 것도 아니며 또한 경험한 것도 아닐 것이오. 이 모든 것은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했고 또 인류와 함께 존속할 것이오. 이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역시 이 인간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구실삼아 천주의 존재를 부정하고 혹은 반항해 왔소. 그러나 또 반면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바로 동지가 거부하는 천주를 믿어 왔고 오늘도 그분께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드리고 있소. 그들 중에는 위대한 사상가와 성인 군자도 있었고, 세속적 부귀영화와 한 번 밖에 없는 청춘을 내던지고 수도자가 된 분도 있었소. 심지어는 죽음을 신앙상의 진리를 증언한 많은 순교자도 있었소. 지금 동지가 말한 그런 허무맹랑한 종교와 천주를 위해 그분들이 그러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거기에는 아직 동지가 이해 못하는 신앙의 신비와 진리가 반드시 있을 것이오. 하여튼 우리는 하루의 나쁜 날씨 때문에 일 주일 간 계속된 좋은 날씨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오. 다시 말하면 잠시의 불행을 구실삼아 지난날의 오랜 행복을 잊고 현실을 원망함도 하나의 억설이며 모순일 것이오. 선과 악,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이 숨바꼭질 하는 이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인간 삶의 목적을 아라야 하오. 그리고 우리의 모든 행위는 이 목적에 합당해야 하며, 이 목적에 도달하는 인생 과정에서 천주님의 섭리를 찾아야만 하오. 그리고 <사랑하라>는 천주님의 계명을 따라 이웃을 사랑하며 보다 살기 좋은 사회 건설에 너도 나도 손잡고 일하는 협조자가 되어야 하오.”

나는 마치 기도라도 드리듯이 진심으로 내가 믿는 진리를 김상위에게 이해시키려 애썼다.

“동무, 동무의 우직한 신앙을 동정하오. 아니, 존경하오. 나도 한때는 그렇게 믿고 있었소. 그러나 천주라는 신은 기실 존재치 않소.”

그는 깊은 동정심을 갖고 나직한 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내 진심이 다소 무시당한 듯 여겨져 항의조로 음성을 높여 그에게 반문했다.

“그러면 김상위 동지는 천주의 부재(不在)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오?”

“만일 천주가 존재한다면 그 천주는 전지전능(全知全能)하고 전선(全善)인 동시에 사랑 자체여야만 했을 것이오. 그러면 그러한 천주가 어떻게 이 모순덩어리의 세상을 창조할 수 있었겠소? 만일 그가 사랑 자체이며 전선했다면 자기 피조물들을 완전히 행복하게 만들었어야만 했을 것이고, 만일 그가 전능했다면 우리 인간이 원하는 선과 행복을 충족시켜 주었어야만 했을 것이오. 그러나 동무도 알다시피 사실은 그와는 정반대요. 인간은 동무도 나도 예외 없이 고통과 불의와 악의 희생자일 뿐이오. 전지전능하고 전선 하다는 천주는 실로 존재치 않으며 신의 존재란 부조리한 인간 삶을 합리화시키는 일종의 가설적인 존재에 불과하오.”

“김동지는 원인과 결과를 혼돈하고 있는 것 같소. <모든 존재는 그렇게 존재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말하자면 존재는 하나의 결과이며, 이 결과는 자기를 있게 한 원인을 전제한다> 라는 철학적 진리가 있듯이 우리들 인간을 포함한 이 자연은 결과이며, 결과인 이 현실은 자기를 있게 한 원인을 필연적으로 전제하고 있소. 이 원인을 우리는 천주님이라고 부르며 그분은 스스로 존재하는 절대자이시며, 따라서 무엇으로부터도 원인이 된지 않는 <제일원인(第一原因)>이라고 부르오. 그리고…”

“잠깐만, 동무”

그는 내 말을 가로막았다.

“그렇다면 현존하는 이 악도 하나의 결과일진대, 이 악도 동무가 말하는 그 제일원인으로부터 기인됐단 말이군요?”

그는 다소의 비웃음을 입가에 띠우고 나에게 반문했다.

“아니오. 동지는 또 오해하고 있소. 물론 현존하는 이 악은 하나의 결과인 것만은 사실이오. 그러나 이 결과가 있기까지엔 상당한 연유가 있었소. 여기 완전히 파괴되어 버려진 한 채의 집이 있다고 가정합니다. 지붕은 낡아 무너졌고, 벽돌은 사방이 허물어지고 대문짝은 떨어져 나가 썩어가고 있고, 또 가구들은 부서진 채 흩어져 있고, 마당에는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어 사람의 집이라곤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되어 있다고 합시다. 그렇지만 그 어느 누구도 이 집을 설계한 건축가나 집을 지은 목수나 미장이나, 또는 이 집을 짓는 데 협력한 일꾼들의 존재를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오. 그리고 우리는 그 집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상상해 볼 수도 있고, 또한 왜 그 집이 그렇게 폐허가 됐을까 하는 원인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오. 그 집을 지은 목수나 미장이나 일꾼들이 그 집을 황폐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오? 이와 마찬가지로 비록 이 세상이 악으로 가득 차 있고 인간의 삶이 부조리하더라도, 그리고 고통과 죽음이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 하더라도 그 원인은 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한 천주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교만과 잘못 탓이었소. 천주님은 자기 피조물들이 죄악도 죽음도 없는 다만 사랑과 행복만으로 가득 찬 영원한 낙원에서 살 수 있도록 하셨으나, 천주님과 같이 되려던 인류의 원조(元祖)인 아담의 교만이 그분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그 결과로 우리는 인간의 숙명적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소. 우리는 이것을, 즉 모든 악의 원인을 원죄라고 부르며 이 원죄는 온갖 가치질서를 전도시켰소. 그 결과로 선과 악이, 사랑과 미움이, 진리와 허위가, 미와 추함이 대립되었고, 따라서 인간은 가치 판단의 기준이 혼란된 상태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게 되었소. 그리고 우리는 죽음이라는 숙명을 지녀야만 했소. 그러나 천주님께서는 원죄를 짓기 이전에 아담과 이브가 누렸던 평화와 사랑과 행복을 인간으로부터 영원히 뺏으시지는 않으시고 그에 대한 향수를 우리에게 선사하셨소. 그 뿐만 아니라 천주님은 당신의 독생성자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과 제물로 인간의 죄를 갚게 하셨고 또한 그분의 부활을 통해 원죄 이전의 인간 조건의 회복과 가치관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치셨소. 이와 같이 우리는 이 현실을 원죄의 결과로 인식하며 예수님의 부활을 원죄 이전 인간 조건의 완전한 회복이라고 말하오.”

“아, 저주스러운 이 원죄…. 동무, 그만 말합시다.”

별안간 그의 얼굴에 심한 분노의 구름이 덮여 오더니 그는 성난 음성으로 말문은 닫으며 두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나는 그의 말과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나는 그저 단순히 물었다.

“김상위 동지, 내 말이 동지의 기분을 상하게 했소? 원죄라는 이 말이 혹시 당신을 모욕하는 것처럼 들렸소?”

“기분을 상했느냐는 동무의 말과 모욕을 받았느냐는 동무의 마음 씀이 화를 내기에는 너무나 순진스럽소. 그리고 동무의 진실한 신앙을 험 내고 싶지는 않소. 그러나 한 마디만은 해야 하겠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과 인간의 불행과 고통을 합리화시키는 바로 이 원죄라는 교리적 모순 때문에 나는 천주의 존재를 믿기를 거부했소. 그리고 원죄를 통하여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어놓고는, 나중에는 인간을 사랑한 나머지 자기 아들 예수를 보내 인간의 죄값으로 죽게 했다는 그런 천주의 사랑이 가소로울 뿐만 아니라, 우리 전인간을 모욕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 천주를 거스려 싸우기로 결심했소. 즉 존재치도 않는 신을 존재케 하고, 인간의 비극과 불행을 합리화시키며, 원죄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인류를 기만해온 교회에 대항해서 말이오.”

“김상위 동지, 종교적 토론은 그만 둡시다. 우리 인간의 긍정, 부정에 따라 천주의 존재, 부재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니 만큼, 우리들의 주장은 한 점에 귀결될 수 없는 영원한 평행선만을 그을 것이오. 다시 말해서 천주의 존재는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될 수도 없으며 또 인간의 지적 능력으로 증명할 수도 없는 오직 신앙상의 진리이니 만큼, 인간의 자유는 자신의 지적 한계를 초월하는 이 초자연적 진리를 긍정이나 부정도 할 수 있을 거요. 그리하여 인류는 유신론과 무신론으로 대립하여 서로 투쟁하여 왔고 그리고 그 논쟁은 앞으로 계속될 거요. 그러나 우리 인간이 반드시 지켜야 할 일은 자기 신념에 충실하되 또한 남의 신념도 존중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오. 그런데 동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며 어떠한 종교적 과거를 가지고 있소?”

나는 그때 그의 공산주의적 신념을 반박하고 내 신앙상의 진리를 변호하려는 노력은 결국은 그이 감정을 자극하는 결과 밖에 초래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뿐만 아니라 나의 교리적 지식은 그의 무신론적 그것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얕은 것이라 느꼈다.

그리하여 그와의 이론적 토론은 내 입장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 것 임도 분명했다. 그는 내가 주는 또 하나의 담배를 아무 말 없이 반 이상이나 피우고 난 다음 감동적으로 자신의 지난 날을 말하기 시작했다.

“동무, 나는 나에게 삶을 준 분들이 누구인지 영원히 알 수 없는 운명을 타고 이 세상에 태어났소. 내가 철이 든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지 하루 만에 광주리 안에 눕혀져 성당 문 앞에 버려져 있었다고 합디다. 그날이 바로 성 토요일 밤, 그러니까 망부활 밤미사를 지내던 날이었소.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성 금요일이었을 거요. 그래서 내 생일잔치는 망부활 축하 자정미사 후 지내곤 했소. 그날 밤 나는 성당에 온 첫 사람에게 발견되었고, 행인지 불행인지 그분들은 결혼한 지 5년이 지났어도 아직 자녀를 갖지 못한 젊은 부부였었소. 그리고 그날 망부활 미사 때에 바울로라는 이름으로 영세를 받게 했소. 그 후 그분들은 내 출생의 비밀을 보장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내가 그 후에 성장한 도시로 이사했다고 합디다.

이분들은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없었고 성품도 어질었으며 또 열심한 천주교 신자였다고 했소.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느끼고 깨닫기에는 너무나 어린 세 살 때에 어머니는 어떤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하오. 그 후 아버지는 어린 아이 하나를 데리고 있던 어느 젊은 과부와 재혼하셨고 또 동생 셋을 더 낳았소. 재혼하시자 아버지는 나를 시골 에 살고 계시는 할아버지 댁으로 보냈고 거기서 나는 소학교에 입학 할 때까지 자랐소.

아버지는 상인이셨고 이 시장 저 시장으로 행상을 다니셨소. 소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극진한 사랑을 떠나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소. 아버지는 일 년의 거의 반을 사업차 타향에서 보내셨고, 새 어머니는 나를 음으로 양으로 구박하기 시작했소. 집안의 잔일은 형이란 구실 아래 다 나에게 맡겨졌고, 새 옷이나 혹은 맛있는 과자, 음식들은 또 형이란 이름으로 동생들에게 양보해야만 했소.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인간에 대한 증오를 갖기 시작했고, 사랑에서 소외된 인간의 고독과 불행, 그리고 싫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고통을 체험했소.

사업에 바쁜 아버지는 이러한 내 형편을 전혀 알 길이 없었으며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시기만 하면 어머니는 나를 제일 사랑하는 척했고 나를 극진히 대해 주었소. 인간의 위선이 얼마나 저주스러웠는지…. 당연히 아버지는 이런 어머니의 꾸밈에 만족하셨소. 동정심에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는 여러 동생들보다 나를 더 사랑해 주시는 것이 확실했고, 내 생일잔치는 잊지 않고 베풀어 주시기도 했소. 촛불을 켜 들고 미사에 참례한 모든 사람들이 생일을 축하해 주는 듯 보였으며, 또 나는 나만이 부활절의 주인공이고, 부활의 기쁨은 나 혼자만의 것인 듯 생각했소. 그리하여 나는 부활날에 나에게 생을 준 천주를 찬미하여 감사하기도 했소.

학교에서 나는 늘 일등을 했으나 내 동생들은 공부를 잘하는 편이 못되었소. 이것이 어머니의 질투를 일으키게 했고, 나를 더욱 미워하게 만든 결과를 가져다 주었소. 어머니의 학대를 복수하는 뜻에서 나는 더욱 더 공부를 열심히 했고, 따라서 내 가슴 속에서는 반항심과 증오가 하루 하루 자라고 있었소.

이와 같이 어머니는 나를 구박했으나 이웃 사람들과 특히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는 착한 사람으로 통하고 있었소. 어머니는 주일미사를 한 번도 빠진 일이 없으며 매 주일마다 영성체를 했고 고해성사도 자주 하는 것을 보았소. 그리고 그 외에도 아동들의 교리반을 지도하던 모범 신자였으며 또한 본당 신부의 두터운 신임도 받고 있었소. 어느 날 나는 어머니로부터 이유 없이 얻어 맞고 억울하여 처음으로 대항했소. 그리고 그 후 본당 신부께 고해성사를 보았소. 그때 본당 신부는 어머니에 대한 내 고백을 조금도 믿으려 하지 않았고 도리어 착한 어머니의 말씀을 잘 듣고 효도해야 한다는 엄중한 훈계만 했소. 천주의 대지자라고 믿어왔던 본당 신부야말로 어머니의 악한 습성과 나의 딱한 사정을 잘 알고 이해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결국은 그이 왜곡된 꾸지람 앞에서 나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소. 그 후 나는 고해성사 보던 습관도, 주일날 미사참례하던 기쁨도, 교리책을 읽던 열심도, 그리고 심지어는 천주께 기구 드리던 흥미도 차츰차츰 잃어가기 시작했소. 그리고 어머니는 물론 본당 신부를 비롯한 모든 신자들을 위선시 했고 내 어머니와 친한 모든 사람들을 적대시했고 미워했소.

내가 15세 되던 어느 날, 그러니까 중학교 2학년 때에 <길거리에서 주워온 애비 없는 갈보년의 자식>이라는 노기 찬 어머니의 말을 듣고 나는 비로소 내 비밀을 알았소.  그러나 나는 놀라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소. 진실을 발견했다는 일종의 기쁨마저 느꼈소. 그리고 어머니가 왜 나만을 못 살게 구박했었나 하는 이유도 깨달았으며, 나도 이젠 어머니를 정면으로 공격하고 또 대항할 수 있다는 정당성을 가졌다고 생각했소. 그 후부터 나는 모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머니를 최대한으로 괴롭혔고 어머니가 나 때문에 괴로워할 때마다 복수의 쾌감을 느끼기도 했소.

이 모든 일은 우리 집안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고 나를 친자식처럼 사랑해 주시던 아버지를 괴롭히는 결과가 되었소. 집에 돌아오시기만 하면 아버지는 나 때문에 어머니와 늘 언쟁을 하셨으며 또 이웃 사람의 화제의 대상이 되는 등의 심적 고통을 받아야만 했소. 그러자 나는 내 자신이 아버지가 사랑하는 이 집안의 평화를 파괴하는 위험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고 또 어머니를 백만 번 미워해도 아버지만은 절대로 괴롭혀 드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소. 그래서 나는 곰곰이 생각한 결과 그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소. 어느 날 어머니와 한바탕 싸우고 동생들을 속 시원하게 때려 준 다음 나는 아버지에게 집을 떠나는 이유와 감사의 뜻을 전하는 몇 마디의 글을 남기고 새벽녘에 돈 한푼 없이 방랑의 길을 떠났소. 그때 내 나이 16세 였소.

 이 집 저 집 그야말로 문전에서 걸식을 하며 나는 평양에 도착했소. 어느 날 굶주리고 지친 끝에 길 한 모퉁이에 쓰러져 낮잠을 자고 있었소.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워서 눈을 떠 보니 그분은 40세 전후로 보이는 인상 좋은 아주머니였소. 그분은 과부로서 천석군의 지주집에서 식모로 일하고 있었소. 나는 그 아주머니의 소개로 그날부터 그 집의 머슴이 되어 집안의 잔일을 맡아 일하게 되었소. 내 주인은 이름 있는 친일파의 아들이었으며 일본 정부의 보호와 혜택을 단단히 받고 있었소. 그의 집은 대궐같이 화려했고 30대의 젊은 나이에 첩을 벌써 몇 명씩이나 거느리고 사치와 방탕 속에 살고 있었소. 그는 소작인 촌에 자그마한 소학교를 세워 주었다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존경도 받고 있는 듯했소. 그 집에 살면서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소. 여태껏 나 자신만을 위해 어머니와 싸워온 조그만 세계의 범주를 떠나 계급으로 구분된 사회와 사회간의 투쟁의 세계도 발견했소. 그리고 이 계급 사회의 모순은 인간이 제정한 사회제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그리고 이 사회제도는 강한 자를 위해 약한 자를 억누르고 희생시키는 도구로 이용되어 왔음도 깨닫게 되었소.

내 주인은 매연 가을이 되면 추수를 감시하기 위해 촌에 내려가 소작인들과 함께 지내기도 했소. 주인은 지주 제도로 보아 소작인들은 전 수확량의 반을 지주에게 바쳐야만 했소. 어느 해에 주인을 따라 나도 촌에 내려가 본 일이 있었소. 그때 나는 소작인들의 빈곤한 생활을 처음으로 목격하게 되었소. 한 마디로 내 주인의 사치와 방탕의 값이 이 불쌍한 농민들의 피땀 나는 노력과 고통의 대가라고 생각하니 이 주인이 증오스러워지기 시작했소. 그리고 지주와 소작인이라는 이런 사회제도의 모순을 하루 빨리 시정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소. <땅은 농민에게!>라는 정당한 토지개혁 없이는 농민들은 일평생 노예처럼 일만 하다가 보람 없이 죽어갈 것이라 믿게 되었소.

눈 내리던 겨울 어느 날 난데 없이 한 젊은 여인이 갓난아기를 안고 주인집에 뛰어들어 왔고, 주인과 한바탕 싸움을 하더니 그 여인은 대문 밖에서 자살하고 말았소. 사람들은 마치 자동차에 치어 죽은 강아지 새끼처럼 거적대기에 아무렇게나 둘둘 말아 어디론지 갖다 매장해 버렸다고 합디다. 유린당한 한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이 존엄성을 보장해 줄 수 없는 사회제도… 나에게 삶을 준 어머니도 이 여인처럼 지주들의 희롱 끝에 인생의 허무를 비관하고 자살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견디기 힘들었소. 그날 대문 밖에 얼어붙은 여인의 붉은 피를 바라보며 나는 그 집을 떠나기로 했소. 그리고 그때 나는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사명을 얻어 받은 듯한 기분을 느꼈소. 즉 착취가 없는 새로운 사회, 정의와 평등과 형제적 사랑으로 조화된 사회, 이런 평화롭게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는 일꾼이 되기로 나는 결심하게 되었소.

그 당시 나는 18세였소. 나는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학교에 다니며 부지런히 공부했소. 그 무렵 나는 한 선생님으로부터 마르크스 사상을 배웠고 공산주의와의 접촉을 시작했소. 그분은 마르크스를 신봉하는 철저한 공산주의자였소. 그 선생님의 지도 아래 마르크스를 공부하며 그의 사살을 파고 들어갔을 때 나는 그 안에서 내가 얼마 전부터 생각해 오던 <새로운 사회상>의 실현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소. 그때 마르크스는 나에게 태양과도 같은 존재였소. 그 외에도 소련 공산주의 혁명사도 탐독하고 레닌의 위대한 혁명적 업적을 우리 조국 안에 재현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소. 그러자 공산주의는 나에게 새로운 <인간 사회> 건설을 위한 일종의 <복음>처럼 보이기 시작했소 비약이 심하지만, 예컨대 예수 그리스도가 추상적이며 종교적인 죄악의 노예상태에서 인류를 구제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면, 마르크스는 사회제도의 모순 속에서 물질적인 결핍과 비참으로 신음하는 인류를 구제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소. 예수는 천국이라는 가상적인 인간의 구원의 방향을 제시하고 이것에 도달하는 방법으로 희생이라는 굴욕적인 사랑을 요구했으나, 마르크스는 인간 자체의 구제를 이 현실 제도의 혁신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인류의 스승이었소. 당신네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인간의 고통과 죽음을 합리화시키며, 이 사회의 모순을 정당화시키는 원죄라는 교리 앞에 삶의 일체를 체념하고 각 개인의 영혼 구원을 위해 현실을 무시한 채 전지전능하다는 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나, 우리들, 공산주의자들은, 현실적인 인간조건을 외면함이 없이 혁명이라는 깃발 아래 사회제도를 개혁하고, 건설을 통해 빈곤을 내쫓으며, 평등 안에 형제애를 확립하고 계급의식 아래 유린된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아 주며, 내일이라는 내세가 아닌 오늘이라는 현실 속에서 삶의 향상을 위해 투쟁하고 있소. 그리고…”

“잠깐만!”

나는 갑자기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동지는 지금 가난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나 사회정의 구현과 인간 삶의 향상을 위한 투쟁을 마치 공산주의자들의 독점물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군요. 마르크스보다 훨씬 이전에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병들고 약하고 버림받고 무시당한 뭇 사람들의 벗이었고 은인이었으며 보호자였었소. 그분은 또한 그들에게 무한한 힘과 위안과 희망을 주셨소. 물론 예수님께서는 마르크스처럼 경제 원리를 내세우거나 사회 혁명을 주장하시지는 않았으나 우리 인간들에게 인간의 목적과 삶의 참된 의의를 가르쳐 주셨소. 그리고 이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사랑하라>는, 즉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들도 서로 사랑하십시오> 하신, 이 사랑의 계명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하셨소.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천주님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동일시하셨소. 그는 또한 <가장 미소한 이 형제들 중의 한 사람에게 선이나 악을 행할 때마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 한 것이나 다름없다>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신격화(神格化)시켰소.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이같이 절대시한 사랑만큼 위대하고 강한 사랑이 어디 있겠소? 그뿐만 아니라 천주님을 아버지로 모신 인간은 그분의 같은 자녀들이며, 따라서 모든 인간은 예수님의 뒤를 이어 그분께서 가르치신 사랑을 받들고 인류를 위한 복지사업과 사회정의의 구현과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분투해 왔소. 그리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계속할 것이오. 인류 역사를 통해 볼 때 그리스도교만큼 인류의 선과 행복을 위해 투쟁한 종교도 따로 없을 거요.”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확고한 자신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김상위의 이론에 말려드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두려움까지 생겼다.

“모르는 소리 마오. 예수께서 복음을 선포한지 20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에 부합되고 또 그것이 실현되었던 시대는 한 번도 없었소. 약자들에 대한 착취, 강자들의 야만적 횡포, 사회제도의 온갖 모순과 불의, 사랑에 등을 돌리는 개인주의, 살인과 증오, 그리고 전쟁 등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소. 특히 그리스도교와 되었다는 서구와 미국에 그런 현상이 더욱 범람하고 있소. 동무는 그리스도를 받들면서 약소민족을 침략하고 약탈한 영국을 포함한 서구제국과 미국의 식민정책을 잊고 있군요!”

“동지는 그리스도교인 종교 자체와 이 종교를 믿고 있는 신자들을 혼동하고 있소. 그럼 동지는 공산주의자가 곧 공산주의 자체라고 말할 수 있겠소?”

“………………”

그는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묵묵히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동지가 방금 열거한 그런 사실을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오.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실천하지 않은 일부 그릇된 신자들의 소행이었지, 종교 자체의 잘못 때문은 아니오. 그들을 기준으로 해서 그리스도교를 비판하고 예수님의 복음이 그르다고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나는 생각하오.”

“동무의 말이 옳소. 물론 그것을 분명히 구분해야겠지요. 그러나 예수가 천국복락(天國福樂)을 전제로 내세운 사랑이라는 복음은 20세기 동안 흘러온 인류 사회 발전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었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인류 사회에서 동무는 얼마만큼의 복음정신을 찾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오.”

“김상위 동지, 예수님의 복음이 아직 이 세상에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은 그분의 가르치심이 비현실적이거나 망상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차원을 달리했기 때문이오. 그분이 가르치신 복음은 전인류의 이상이며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이오. 우리는 이 이상과 목적을 이 지상에서 <질>과 <양>적으로 완전히 완성시킬 수는 없으나 최선을 다해 노력할 따름이며, 이 노력을 통해 우리는 이 다음 천상에서 이 이상의 결실과 목적의 완성을 보게 될 것이오. 왜냐하면 본래 이상이라고 하는 것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조건 속에서 우리들 인간들에게 끝없이 희망과 용기를 부여하는 <최고의 완전>이기 때문에 완성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향한 꾸준한 추진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오.”

“동무, 바로 여기에 당신들과 우리들의 차이가 있소. 당신네들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으나, 우리는 실현 가능성을 목전(目前)에 두고 오늘이라는 현실을 창조하고 있소.”

“천만의 말씀, 동지가 내세우는 공산주의도 당신네들의 우주관과 인생관에 대한 일종의 이상인데, 이 이상이 이 지상 위에서 완성되리라고 동지는 생각하고 있소? 그것은 하나의 망상이오. 공산주의 경제체제와 사회제도를 제아무리 완벽하게 이 세상에 실현시켰다 하더라도, 사실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증오와 질투와 교만과 탐욕 등에서 파생되는 갖가지 인간적인 갈등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오? 따라서 거기에도 불안과 모순과 부조리와 굴욕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 사회가 존속할 것이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동지는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가 실현되리라 기대할 수 있겠소?”

“…………………”

이번에도 그는 묵묵히 그 빛나는 눈길로 촛불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이제 당황한 기색이 없이 몹시 침착했다.

 “김상위 동지,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 지상에 세워져 있소. 그분의 인류 구속사업의 완성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우리들이 책망하는 이 악한 인간들, 부조리한 이 사회, 증오, 불의, 부정, 그리고 생명과 재산을 파괴하는 저주스러운 이 전쟁 등등은 변함없이 인류와 함께 이 지상에 존속할 것이오. 그래서 예수님의 구속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교회는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소. 말하자면 예수께서 가르치신 사랑과 용서와 평화와 평등과 상호협조정신에 입각하여 교회는 전인류를 끊임없이 자기 품으로 부르고 있소.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이웃 형제들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일해 오고 있으며, 또한 그들의 고통과 슬픔과 불행을 함께 나누며 살고 있소. 지금 이 지상에는 수없이 많은 주교, 신부, 수사와 수녀들이 인류애와 인간 개개인의 복지를 위해 청춘을 불사르며 몸과 마음을 고스란히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하오.”

“나는 그런 사람들의 헌신적인 자선사업과 희생을 모르는 바 아니오. 나는 그런 분들을 깊이 존경하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예수가 설교한 소위 복음적 사랑은, 인간 사회에 현존하는 이 사회적 부조리의 참된 원인인 봉건적이며 자본주의적인 계급사회체제를 절대로 변혁시키지는 못할 것이오. 천상적 행복에 삶의 목적을 두고 현세의 악과 불행을 피동적으로 참아가는 당신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생의 태도는 어쩌면 이 사회악의 조장(助長)과 발전을 고무하는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오. 다시 말해서 <왼뺨을 때린 사람에게 오른뺨을 내어 주고,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게 속옷까지 벗어 주며,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이런 사랑이, 결국은 약자를 착취하는 강자를 위한 오늘의 이 부패한 사회제도를 존속시켜 왔다고 나는 생각하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사회를 개혁하는 혁명을 시작했고 계속하고 있소.”

“동지의 주장은 내 가슴을 찌르고 있소. 남달리 심한 인생의 시련과 고뇌를 겪어온 동지의 진술이 지나치게 인간적이라 해도 나는 그 말의 숨은 뜻만은 이해할 수 있소. 그러나 제도상의 개혁만이 인간의 고뇌와 비참과 불행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하오. 개혁이나 혁명 이진에 인간 개체를 존중하는 마음의 태도가 선행되어야 하리라고 확신하오. 즉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실천하신 사랑이었소.”

“물론 그렇소. 그러나 사회제도상의 개혁이 급선무라는 것을 강조했을 뿐이오. 예를 들어 말해봅시다. 여기에 위생적으로 불결하고 보기에도 비참한 한 채의 집이 있다고 합시다. 그리고 그 집에 살고 있는 가족은 가난에 쪼들리고 더군다나 병으로 신음하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당신네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왜 이 집이 이렇게 불결하고 처참한 양상을 띠고 있으며 그들의 병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어 제거하려 하지 않고 병든 그들에게 위문품과 식량을 갖다 주며, 우리는 예수의 말대로 불쌍한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오. 그러나 우리들 공산주의자들은 우선 그 집에 살고 있는 병든 사람들에게는 다소 해(害)가 된다 하더라도 그들의 병의 원인이 되고 있는 그 불결한 집을 헐어 버리고 그들의 병을 치료하며 상처를 수술하는 한편, 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생활 환경을 마련해 주려고 노력할 것이오. 이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교적 사랑은 잠시 그 대상의 고통이나 불행을 덜어 줄 수는 있어도 그에게 내일이라는 미래를 보장할 행복의 터전은 마련해 줄 수 없는 것이오. 사람을 구제하는 진정한 방법은 인간 개인의 불행이나 비참에 대한 일시적 동정이나 자선적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자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 있다고 우리들 공산주의자들은 믿고 있소. 그래서 우리들은 본래의 사회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혁명이라 불리는 <수술>부터 시작하고 있소.”

“동지의 말은 아름답소. 그러나 동지는 인간의 존엄을 좀먹는 악의 근원을 사회제도나 경제체제 안에서 찾고 있군요. 물론 동지의 이론에 일리가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으나 사실 악의 참된 원인은 우리들 마음 안에 있는 것이오. 즉 원죄로 말미암은 진실과 허위, 미와 추, 사랑과 미움, 선과 악이 인간의 내면 속에서 공존하고 있소. 다시 말해서 진을 허위로, 미를 추로, 사랑을 미움으로, 선을 악으로 이용하는 인간의 마음 안에 악의 원인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오.”

“동무는 원죄라는 이름 아래 악의 존재를 영원시하고 있군요. 그리고 이 사회제도의 모순을 합리화시키고 있군요. 그것은 굴종이며 인간의 이성과 의지에 대한 모독이오. 원죄론을 앞세우는 동무의 이론대로 한 번 말해 봅시다. 예컨대 태고적부터 영원히 흐려 있는 하나의 저수지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당신네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천주의 나라에서 복된 맑은 물을 마실 것을 기다리며 체념 상태에서 그 흙탕물을 마시는데 만족하는 생의 태도를 가질 것이오. 그러나 천국이라는 내세를 믿지 않는 우리들 공산주의자들은 동무들과는 반대로 이 저수지에다 제방을 구축하고 정수기계(淨水機械)를 설치하여 물을 소독하고 말게 한 다음 각처에 수로를 만들어 누구나가 다 마실 수 있도록 조처할 거요. 바로 여기에 동무들과 우리들 간의 현실 참여와 내일을 위한 보다 밝은 사회건설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오. 이것이 또한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건설하자는 우리의 이상이며 의지요, 또한 노력인 것이오.”

“동지의 말은 감동적이오. 그리고 동지들의 그러한 노력 앞에 경의를 표하오. 그러나 동지가 꿈꾸는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상징하는 그 제방과 저수지, 그리고 그 정수기계와 배수로가 제아무리 완전하게 설비되어 있다손 치더라도 이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교만하고 올바르지 못하다면 그 시설은 정당하게 운영되지 못할 것이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마음 속에 질투와 교만과 탐욕과 시기심 등이 존재하는 한 사람은 주어진 권리를 남용할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강자는 약자를 해칠 것이고, 이에 따라 봉건적이며 자본주의적인 부르조아의 착취에 못지 않는 프롤레타이라의 폭정이 생겨날 것이오. 모든 사회적 혁명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각 개인의 선(善)으로의 개심을 통한 내적 혁명으로부터 시작해야 된다고 나는 생각하오. 그렇지 않고서는 모든 혁명은 정치적 이념만이 다를 수 있는 일종의 제도상의 개혁에 귀착할 것이오. 그리고 거기에는 여전히 <구악(舊惡)을 조롱하는 신악(新惡)의 횡포가 횡행할 것이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양심상의 혁명을 제도상의 개혁보다 앞세우고 <회개하라>는 하느님에로의 귀의(歸依)와 <사랑하라>는 사랑의 혁명을 인간 개개인의 영혼에 호소하셨던 것이오.”

“동무, 우리의 토론은 또 결론에 도달했소. 동무의 말대로 우리의 이념적인 토론은 영원한 평행선을 그을 뿐인 것 같소. 다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다름이 아니라 인류복지와 인간의 생활 조건 향상을 위해 각자 자기 이상에 따라 충실히 살아갈 뿐이겠지요. 동무는 동무의 이념대로,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신념대로… 이런 과정에서 하나인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선의의 경쟁을 치르어 나가는 성실한 마음의 자세가 우리 서로에게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오. 단지 죽음을 앞둔 이 시점에서 내가 인간으로서 후회한다면 그것은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내 고집과 집념 때문에 나를 사랑한 한 여인을 괴롭혔던 사실일 뿐이오. 나는 천주를 버리고 교회를 떠났음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소. 그리고 영원한 공산주의자로서 동무의 손에 총살당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오. 그러나 내가 신봉하는 공산주의 때문에 나를 그처럼이나 사랑하던 한 여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과거의 내가 후회스럽소.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을 원망하게 되는군요…”

“애인이 있었군요… 김동지에게도….”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해 화제의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그에게 애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고맙게 여겼다. 왜냐하면 나는 딱딱한 이념상의 토론을 떠나서 좀 더 부드러운 인간적 대화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있었소. 그녀는 내 어린 시절의 소꿉동무였었고, 또 동무처럼 철두철미한 천주교 신자였소.”

“그럼, 그녀는 지금 어디 있소?”

“평양에 있었소. 그러나 지금은 종군 간호원으로 일하고 있소.”

“요즘은 서로 소식을 전하고 있소?”

“만주에 있는 야전병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가 벌써 한 달이 넘었소.”

“그녀가 동지의 어린 시절의 친구였었다고 말했는데, 그럼 동지가 집을 떠난 후 다시 만났소?”

“그러니까 내가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6년 전이군요. 조국이 해방되기 전 해 가을, 평양 거리에서 우연히 그녀와 만났소. 그때 그녀는 여학교 교복 차림이었소. 어릴 적 우리 둘은 같은 소학교에 다녔고 오빠 동생처럼 친한 사이였소. 내가 말 없이 고향을 떠난 후 그녀는 나를 위해 천주께 기구도 많이 했다고 말했소. 그리고 매일 밤 나를 위해 묵주신공도 바쳐 왔다고 했소. 특히 부활 밤미사에서는 잊지 않고 촛불 두 개를 들고, 나를 만나게 해 달라고 영성체하며 기구했다고 합디다. 그날 나는 그녀에게 내 생의 비밀로부터 시작해서 무신론적 공산주의자가 되기까지의 숨은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들려 주었소. 나의 긴 고백을 들으며 그녀는 눈물을 흘렸고 나도 그녀의 순진함과 동정에 울 수 밖에 없었소. 그녀는 당시 아저씨 댁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소.

그 후 우리는 자주 만나게 되었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소. 그러나 그녀는 나의 공산주의 이념 때문에 감정이 상했고, 나는 천주의 섭리 안에 인생 만사를 해결하려는 그녀의 무사태평하고 맹목적인 신앙과 단순한 인생관 때문에 자주 화를 내기도 했소. 우리는 서로 만나는 것을 진정 바랐으나 만나면 상반된 사상 때문에 심한 토론과 때로는 언쟁까지 하기도 했소. 서로 양보하고 타협할 수 없는 우리의 태도는 우리에게 청춘의 고민과 고독만을 더욱 안겨 주었소.

조국이 해방된 지 2년 후, 그러니까 1947년 가을, 그녀의 가족은 자유를 찾는다는 구실 아래 남조선으로 떠났소. 그때 그녀는 자기 가족과 함께 남하하는 것을 거절했고 자유보다는 차라리 사랑을 선택하겠노라고 자기 부모님들께 말하고 계속 평양에 남아 있었소. 물론 난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나를 그 정도로 사랑하고 있었소. 가족과 함께 월남하기를 강요하는 자기 부모들에게 그녀는 무신론의 포로가 된 내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선교사적인 사명을 갖고 나를 사랑하는 것이 자기의 의무라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그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천주를 추방한 붉어진 이 땅 위에서 사랑을 통해 천주의 존재를 증명하는 사도(使徒)가 되겠다고 말하기도 했소. 그 후 나는 당의 지시에 따라 인민군 사관학교에 입교하고 그녀는 간호원이 되어 병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소.

전쟁이 발발할 무렵 나는 인민군 사령부에 근무하고 있었소. 그리고 지난 8월 중순 낙동강 지구 전선에 출전하라는 명령을 받고 일선으로 출동하였소. 출동 전날 밤 나는 숙소로 그녀를 방문하고 우리 둘은 결혼을 했소. 하룻밤의 결혼생활이 주는 그 강렬한 기쁨 속에 우리 둘은 과거의 사상적 대립 때문에 사랑을 의식적으로 멀리한 서로의 고집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그리고 우리를 헤어지게 하는 이 전쟁이 정말로 원망스러웠소. 미군 항공기의 공습 아래 방공호에서 보낸 두 시간은 그처럼 길었으나, 애인과 함께 보낸 그 하룻밤은 야속하리 만큼 짧았소. 그녀는 내 품에 안겨 사랑하고 행복하다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소. 그리고 나는 우리에게 주어진 하룻밤의 여유를 최대한으로 즐겁게 보내려고 애썼소. 그녀는 나를 위해 천주의 가호를 빌었고 나는 그녀에게 다시 돌아와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살 것을 약속했소. 그러나 그녀의 사랑도, 기구도, 천주의 보호도,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의 약속도 동무의 몇 발의 총소리 앞에 영원한 종식을 고하고 말 것이오. 그리고 죽음과 함께 내 사랑하는 조국도, 민족도, 내 이상인 공산주의도, 내 사랑하는 여인도 회복될 수 없는 영원한 망각 속에 사라지고 말겠지요.”

그리고 그는 촛물을 흘리며 여전히 타고 있는 촛불을 슬픈 표정으로 바라다보았다. 얼마 후면 완전히 타 없어질 이 촛불, 이 촛불의 밝음이 암흑에 에워싸여 사라질 무렵 김상위의 생명도 몇 발의 총성과 함께 이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의 두 눈언저리에는 습기가 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망울은 여전히 빛났다. 이윽고 두 줄기의 눈물이 주르르 그의 양 뺨을 타고 흘렀다.  그 동안 짐승처럼 악을 쓰던 박, 노 두 포로도 조용히 김상위의 말을 듣고 있었다. 어쩐지 나도 슬퍼졌다. 며칠 전에 원산에서 헤어진 애인이 보고 싶고 그리웠다. 김상위의 과거가 바로 내 자신의 과거처럼 느껴졌고, 죽음 앞에 나선 그의 운명이 바로 내 운명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나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 같은 느낌에 온 몸이 오싹 추워왔다. 한 시간 반 후면 죽어야 할, 애인인 동시에 이제는 남편인, 김상위의 운명을 모르는 그녀는 지금 이 시간에도 천주님께 열심히 기구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들은 천주님의 전능하심과 사랑과 자비하심을 믿고 있을 것이며, 그래서 천주님의 가호 아래 자기들의 애인들은 결코 죽지 않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후 김상위는 천주님을 거부하는 고집 속에 죽어야만 한다. 그것도 바로 내 손에 아무리 전시(戰時)였었지만 김상위와 같은 사람을 죽인다는 것도 대죄(大罪)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 대죄를 피할 수 없는 군인의 몸, 나는 김상위를 만난 것이 후회스러웠고 총살권을 맡게 된 내 처지가 원망스러웠다.

 

벙커 입구에 적의 포탄이 또 떨어졌다. 흙가루가 먼지처럼 바람에 날려 우리를 뒤집어 씌웠으나 무사했다. 방금 떨어진 포탄으로 넓어진 벙커 입구를 통해 굴러들어온 거세진 바람을 받은 촛불은 불길을 전후 좌우로 길고 둥글게 내뿜으며 한층 격렬하게 타고 있었다. 촛불이 빨리 다 타 버리지 않기를 바랐다. 김상위의 습기 가신 두 눈은 무섭도록 빛났다. 그리고 그의 표정은 엄숙하고 장엄한 나머지 거룩해 보이기까지 했다. 신념을 위해 죽음을 당하는 한 순교자의 표정과도 같았다. 죽음이란 종교적인 것이며, 죽음을 의식하고 왜 자기가 죽는지를 알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태도는 기실 거룩한 것이다. 촛불은 쉴 새 없이 타올랐다. 내 가슴 속에도 조바심이 불현듯 솟아올랐다. 김상위에게 죽음의 뜻과 영혼의 존재를 죽기 전에 납득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또 말문을 열었다.

“사랑을 위해 살아 왔고 앞으로도 사랑을 위해 일생을 살아가겠다는 김동지, 동지의 인간으로서 삶을 받은 날이 성 금요일이라고 했지요? 그리고 망부활 밤 성당 문턱에서 구제받았다고 했지요? 전인류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그 거룩한 날에 삶을 받은 동지에게 예수님의 각별한 은혜가 곡 있을 것이오. 그리고 이 우연은 동지에게 새로운 영원한 생명을 줄지도 모르오.”

“예수님의 각별한 은혜와 새롭고 영원한 생명이라구요?”

“그렇소. 인간 본연의 삶인 영생이라는 각별한 은혜와 삶을 동지는 예수님으로부터 받을 것이오.”

“하 하 하. 동무 웃기지 마시오. 동무의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를 따르면 나는 용서받을 수 없는 대죄인이오. 당신에 교회가 악마시하는 무신론적 공산주의자가 된 나에게 예수의 은혜란 또 무슨 소리며, 영생이란 말은 무슨 뜻이오? 설사 예수가 그런 것을 나에게 선사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거부할 것이며 내 공산주의 동무들이 있는 곳을 선택하고 그들을 따라가겠소.”

“사랑이신 천주님의 자비심은 김동지의 고집을 초월해 은혜를 베풀어 줄 것이오. 비참에 빠진 인가에 대한 사랑 때문에 천주님에 대한 신앙을 버렸다는 동지의 태도는 어리석고 그릇된 것이나 동지가 조국과 민족과 가난한 사람을 사랑한 그 사랑은 사랑으로서 영원한 것이며, 이 사랑과 함께 동지는 구제받은 상태에서 영원히 살 것이오. 이 다음 세상 말에 천주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때에 동지는 다음과 같은 선언을 들을 것이오.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은 여러분! 이 세상이 시작할 때 여러분을 위해 마련한 천국에 들어와 나와 함게 기뻐하고 행복하시오. 왜냐하면 내가 배고팠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물을 주었으며,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옷을 주었고, 내가 슬플 때 위로해 주었으며, 내가 병들었을 때 치료해 주었고,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방문해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 잠자리를 준 여러분은 착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주여, 당신이 언제 굶주렸으며, 목말라하셨으며, 헐벗었고, 병들어 있었으며, 옥에 갇혀 있었고, 또 나그네 되었었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또 말씀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웃 형제들 중에서 가장 미소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 때마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 한 것이며, 그들을 미워한 것은 바로 나를 미워한 것이고, 그들을 무시하고 해친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이상의 말씀은 예수님 자신의 복음 말씀이오.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가 행한 사랑 여하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며, 따라서 영원한 구원에 참여하고 못함은 어떻게 인간을 사랑했느냐에 따라 결정되리라고 나는 생각하오.”

“동무는 참으로 순진하고 우직도 하군요. 천주와 예수를 그렇게 믿을 수 있는 동무의 마음 상태가 한편 부럽기도 하오. 그리고 인간 구원에 대한 <이단설>을 내세우는 동무의 용기에 감탄도 하오. 동무의 교회는 우리들 공산주의자를 악마시하고 지옥행으로 단죄하는데 동무는 우리에게 구원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군요. 내 애인도 그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소.”

“김동지의 무신론적 고집에도 불구하고 동지의 인간에 대한 이상과 사랑, 그리고 특히 동지를 위한 당신 애인의 사랑과 희생과 기도는 동지에게 영생이라는 최종적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오. 천주님은 그녀의 사랑과 기구를 헛되게 하시지 않으실 거요. 그녀는 참으로 동지의 영혼 구원을 위해 천주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도(使徒)요.”

“이 시간에도 그녀는 나를 위해 천주께 기구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런 기구가 무슨 소용이 있겠소? 잠시 후 총살당할 나의 운명 앞에….”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별안간 그를 살려 주어야만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강렬히 느꼈다. 우선 그와는 동족이라는 의식이 나를 옭아 매었다. 그리고 또 악을 증오하고 사랑을 위해 분투하는 동지 의식이 내 동정심을 강렬히 자극했다. 비록 그는 나와는 상반된 사상적 차이 때문에 서로 죽여야 할 적이었다 하더라도 그는 자기 나름대로 우리 조국과 민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성실히 싸워 온 애국자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내 신앙을 위해서도 그를 살려 주고 싶었다. 죽음 앞에서까지 천주님의 존재와 사랑을 부인하며 영생을 포기하겠다는 그의 고집을 나는 고쳐주고 싶었다. 그는 영신적으로 부활하여 무신론적 공산주의로부터 교회로 되돌아와 천주님의 존재와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 깨우치고 믿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특히 그를 위해 천주님께 기구하며 그를 기다리고 있을 그의 애인을 위해서 나는 그를 살려주고 싶었다. 김상위가 없는 그녀의 인생, 그것도 공산주의 치하에 홀로 살아가야 할 그녀를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며칠 전 곁을 떠나온 내 애인 <숙>을 위해서도 그를 살려 보내고 싶었다. 왜냐하면 애인을 전쟁터에 보낸 같은 처지에 놓인 그녀들을 동정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또 무슨 방법으로 김상위를 살려낼 수 있단 말인가! 그를 탈출시킨다는 것, 그것은 전시 하의 엄중한 벌을 나 스스로 받게 될 이적행위(利敵行爲)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후 나는 대원들에게 포로들을 감시케 하고 벙커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삭풍이 불어와 고뇌에 싸인, 화끈거리는 내 두 뺨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흐렸던 하늘은 어느 새 맑아졌고 달빛은 창백했다. 옆 고지에 아군의 것인지 적의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몇 발의 포탄이 떨어져 불꽃을 튀기며 작열했다.

아! 참으로 괴로운 시간이었다. 살려야 할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무능한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그리곤 김상위와의 대화를 한 마디 한 마디 마음 속으로 다시 되새겨 보았다. 그때까지 나는 공산주의자라면 종교를 말살하여 특히 우리 교회를 박해하는 용서할 수 없는 적으로 믿어 왔었다. 민족적인 면에서도 <여순반란사건(麗順反亂事件)>에서 볼 수 있었던 바와 같이 방화와 살인을 일삼는 민족 반역자라고 나는 늘 들어 왔었다. 그런데 이 김상위의 고매한 신념과 인간에 대한 사랑은?…..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님의 제자라고 자칭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인간의 부조리와 사회제도의 모순과 사회정의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감수성, 그리고 또 순교자의 태도와 같은 그의 열렬한 현실 참여의식 앞에 나는 깊은 존경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나는 루가복음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회상하며 오늘날의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을 비교해 보았다. 천주님을 독점물처럼 생각하던 유태인 사제들과 장로들, 그리고 이단자라고 멸시 받던 사마리아 사람, 그러나 사랑을 실천한 사람은 누구였으며,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과연 오늘의 누구일까를 곰곰이 숙고해 보았다.

쿠오 바디스(Quo Vadis)! 그 옛날 베드로 사도는 순교가 무서워 도망가다가 다시 죽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로마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만났다고 들었다. 과연 오늘의 우리들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잠시나마 예수님의 복음의 생명인 사랑을 외면하고 있지 않나를 생각해 보았다. 이 현실의 빈곤과 불의 앞에, 또한 인간의 비참과 고독과 희생 앞에 우리들이 무관심한 상태로 남아 있을 때 사람들은 천주님을 떠나 교회를 버릴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또 다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 언덕을 올라가야 하리라고 생각했다.

붉어져 가는 세계지도가 내 눈 앞에 아롱거렸다. 그리고 거기에는 <예수 없는 십자가>가 보였다. 십자가는 온 인류를 위한 예수님의 사랑과, 이 사랑 때문에 당하는 고난의 상징이다. 이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인간 개개인을 구제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주체이신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절반에는 <예수 없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즉 거기에도 인간 구제를 위한 사랑이 있고 이 사랑을 승화시키는 희생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계셔야 할 십자가 위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니 과연 이것은 누구의 탓일까?

참으로 괴로운 시간이었다. 생각할수록 괴로움만 더해 갔다. 적의 포탄이 또 내 가까이 떨어졌다. 나는 교통호에 엎디어 작열하는 포탄 파편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잠바 주머니 속의 내 오른손은 쉴 새 없이 묵주알을 굴리고 있었다. 성모경의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들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여,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 나는 김상위를 위하여 묵주신공을 바치기로 했다. <환희의 신비 5단>, <고통의 신비 5단> 을 거쳐 <영광의 신비 1단>을 묵상하며 성모경을 염하고 있을 때 별안간 김상위를 무사히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를 실행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용솟음쳐 올랐다. 그것은 간단하고 쉬운 일이었다.  즉 포로 총살권을 부여 받은 나이니 만큼 그를 총살시키는 척 하고 살려 놓고 철수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아무도 이 비밀을 모를 것이며 따라서 나에게 하등의 책임도 따르지 않을 일이었다. 단지 나에게 다소의 용기만 있다면 이 일은 성취될 수 있었다. 나는 기뻤다. 한 인간을 구제한다는 장엄한 생각으로 나는 들떠 있었다. 흥분이 고조되었다. 나는 벙커 안으로 되돌아갔다. 그러자 박, 노, 두 포로는 나에게 저주의 욕설을 퍼부었고 김상위는 충혈된 두 눈을 번쩍이며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동무, 죽음을 의식하고 기다린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럽소. 어차피 총살당할 우리의 운명, 차라리 빨리 죽여 주시오.”

“김상위 동지, 절망 마시오. 사람의 생명이 그처럼 가벼운 것인 줄 아시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걸어 봅시다.”

나는 그때 내 숨은 의도를 알려 줄까 했으나 끝까지 입 다물기로 했다.

“동무는 참으로 잔인하오.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데 어떻게 그런 비정한 농담을 하시오?”

“천주님의 자비로운 섭리는 동지의 운명을 변경시킬지도 모르오. 도한 그분은 동지에게 잊지 못할 은혜를 베풀어 주실지도 모르오. 왜냐하면 천주님께서 주신 우리의 생명은 우리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천주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소.”

“천주의 섭리라는 이름 아래 동무는 끝끝내 한 인간의 고통을 조롱하고 있군요. 그것이 인간에 대한 당신네들,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사랑의 행위요?”

그는 성난 음성으로 벌컥 소리를 질렀다.

“그렇소. 인간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존중하는 우리들의 태도요. 그리고 나는 천주님의 자비를 동지에게 증명시키고 싶소.”

“천주의 자비? …. 그런 것이 어디 있소? 그러지 말고 이 촛불이 다 타 이 안이 암흑에 싸이기 전에 우리를 빨리 총살시키시오. 정말 이 시간이 괴롭소.”

“시간을 기다립시다. 천주님의 자비가 동지를 구원할 것이오. 사랑을 올바르게 실천한 사람이라면 천주님은 그 사람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그를 저버리시지 않으시니까…”

밤 12시 15분 전, 우리 중대는 철수 준비를 완료하고 예정된 <0> 지점을 향해 철수하기 시작했다. 우리 중대가 고지 중턱을 철수할 무렵 포로들을 총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대원 3명을 차출해 벙커 부근에 배치시켜 놓고 나는 벙커 안으로 들어갔다.

촛불은 거의 다 타 초 심지까지 넘어지려 하고 있었다. 김상위는 앉아 있었고, 박, 노 두 포로는 저주의 욕설을 계속하고 있었다. 요동하는 촛불에 비친 김상위의 얼굴은 무섭도록 창백해 보였고 이마에서는 땀이 방울 방울 솟아 있었다. 내 얼굴에 못박은 두 시선은 전광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윽고 나는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동지들, 조국애나 민족애라는 것은 너희들과 정치적 이념을 달리 하는 동포들을 저주하고 죽이는 데 있지 않다. 너희들과 같은 조국애와 민족애를 가진 놈들은 우리 조국의 통일과 민족 단합을 위해 해로운 존재들이다. 공산주의의 순교자처럼 영웅답게 죽기를 원하는 너희들의 소원을 거절하지는 않겠다. 자, 그럼…”

 바로 그 때였다. 노 포로가 손을 들어 무엇인가를 나에게 집어 던졌다. 그 물체가 방아쇠를 쥐고 있던 내 오른손에 맞자 5, 6발의 칼빈 자동 소총알이 순간적으로 발사되었다. 박 노 두 포로는 신음하며 꿈틀거리고 있었고 김상위는 내 총성과 함께 벌떡 일어나 내 총을 가로막고 섰다. 그리고는 “안돼, 안돼, 동무! 이 동무들은 중상자들이야 이 동무들을 쏘아서는 안돼!” 하고 외치며 양팔을 마치 십자가처럼 벌렸다. 나는 소리쳤다.

“그들은 스스로의 운명을 선택하고 또 결정지었다. 그러나 나는 너를 총살하지 않겠다. 나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쳐온 너의 생애 앞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너의 인간됨에 감탄한 나다. 나는 너를 살려 주기로 결심했다. 아니, 내가 너를 살려 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천주님께서 너를 살려 주시는 것이다. 천주님의 존재를 증명하고 그분의 자비를 너로 하여금 체험케 하기 위해 나는 너를 살려 주겠다. 너는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우리 조국의 밝은 내일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너와 나는 사살을 달리한 이념상의 적이라 하더라도 하나의 조국을 사랑하고 같은 민족을 위해 성실히 일하자. 그러기 위해 우리는 살아 남아야 한다. 너는 북한 땅에서, 나는 남한 땅에서. 그리고 네가 말한 <선의의 사랑의 경재> 속에 조국을 사랑하고 민족에 봉사하자. 그 외에도 특히 나는 너의 애인을 위해서도 너를 살려 주련다. 그녀의 천주님에 대한 신앙과  기구를 헛되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와 함께 영원히 행복하길 빈다. 그러나  나는 너와 내가 다같이 증오하는, 민족상잔을 일삼는 이 저주스러운 전쟁에 너를 다시는 또 참전시키지 않기 위해 너에게 부상을 입히겠다. 용서해다오. 그리고 성 금요일에 출생했다는 너, 너의 성 금요일은 너에게 부활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일생 사랑하고 사랑을 위해 죽음을 사랑으로 맞이하신 예수님께 부활이라는 영광이 있었듯이, 사랑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너에게 부활의 은혜가 있을 것이다. 이 밤이 밝기 전에 너는 너 자신의 제2의 생명을 의식하리라. 기리고 이 밤은 너의 <부활절 전야제>다. 자, 그럼 죽음에서 부활로 나아가는 이 복된 순간과 고통을 영원히 기억하랏!”

마치 십자가에 매달려 잇는 듯이 두 팔을 벌리고 내 총 앞에 서 있는 그의 왼팔에 칼빈 자동소총 3발을 발사했다.  그리고 벙커 밖에 있는 대원들에게 총살시켰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벙커  천정에 10여 발을 계속 난사했다. 김상위는 “으악!” 소리를 지르면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때 다 타버린 촛불도 초 심지가 넘어지자 꺼져 버렸다. 그리고  10여 발의 총탄을 맞은 벙커 천정에서는 흙가루가 비처럼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벙커 안은 갑자기 캄캄해졌다. 나는 밖의 빛 때문에 환하게 턴넬처럼 보이는 벙커 입구를 향해 뛰어 나왔다. 그리고 대원들을 이끌고 이미 고지 밑까지 철수한 중대를 찾아 뛰고 또 뛰었다.

 

 

 

 

 

제3장

이 피는 누구를 위해 흐르나…

 

철수 도중, 중공군 야전 정찰대와의 접전 끝에 10여 명의 희생자를 냈으나 우리는 <0>지점으로의 철수를 성공리에 끝마쳤다. 그리고 아군의 지원을 받으며 함흥시에 도착했다. 그 당시 함흥 시내는 남한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피난민들과 일선에서 후퇴해 와서 집결한 국군과 유엔군으로 일대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시가지에는 주인을 잃은 개들은 물론 돼지새끼들마저 피난민들의 발길에 채여 이리 몰리고 저리 쫓겨 다녔다. 함흥 항구에는 수척의 군용선이 남한으로 철수하는 아군을 싣고 있었다. 그 배 주위로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얻어 타 보려고 아우성치는 군중들이 결사적으로 몰려들었다.

나는 전투 사령부로부터 급히 원산으로 귀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미군 헬리콥터 편으로 원산에 도착했다. 그때 나는 남중령으로부터 인민군 군용선이었던 목선 두 척을 인솔하고 부산으로 철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당시 해병대 장병 중에는 해군 항해학교 출신은 나 혼자 뿐이었다. 따라서 나는 해상 생활 경험은 물론 동해안의 지리와 항로에도 익숙해 있었다. 두 척의 배를 인수한 후 나는 곧장 숙의 집으로 달려갔다.

원산시가에 적의 포탄이 이미 떨어지고 있던 때였으므로 시민들의 대부분이 남한으로 혹은 시골로 피난 가 버린 시내는 한산했다.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만 같은 음산한 날씨와 바람에 쫓겨 한 아름씩 굴러다니는 낙엽소리가 유난스레 내 신경을 자극시키며 숨가쁘게 내 발길을 재촉했다. 등골과 이마에 이미 땀이 흥건했다. 그러나 나는 뛰고 또 뛰었다.

대문이 활짝 열린 채 숙의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방문짝은 떨어져 나갔고 가구들은 부서져 있었으며 여기 저기 옷가지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것을 예기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막상 숙이 없으니 텅 빈 이 집처럼 내 마음도 공허해 왔다.

내가 인솔해야 할 두 척의 보급선 옆에는 L.S.T 상륙용 수송함이 철수하는 육군의 마지막 후속부대를 싣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서인지 모여든 적잖은 피난민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 중에는 군복을 입은 젊은 여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녀들은 여군도 아니며 또 국군이 고용한 군속도 아니라 했다. 그녀들은 몸에 맞지도 않는 군복에다가 발뒤꿈치까지 내려오는 군용 오우버를 입고 있었다. 군모를 눈 아래까지 깊숙이 뒤집어 쓴 채로. 그녀들은 남하하는 육군 장교들이 데리고 가는 원산 아가씨들이라 했다.

피난민을 태우고 철수해서는 안 된다는 남중령의 엄격한 명령이 있었으나 나는 근 백여 명의 피난민을 두 척의 배에 편승시키고 원산 항구를 떠났다. 살 길을 찾아나선 그들의 살길을 막을 순 없었고, 또 원산 시민은 숙의 분신처럼 생각되어 나는 그들 피난민들을 데리고 함께 남하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밤 10시, 저 멀리 밤 하늘 아래 사라지는 원산시를 뒤로 바라보며 나는 숙의 무사한 피난과 그녀의 건강을 기원하며 십자성호를 그었다. 그리고 지난 두 달간 내 마음을 태운 숙과의 사랑을 회상하며, 서로 만나고 서로 헤어지게 우리의 운명을 마음대로 희롱하는 이 전쟁을 다시 한 번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3일 간의 항해 끝에 우리는 무사히 부산에 도착했다. 두 척의 보급선을 사령부에 인계하기 전에 나는 피난민 각자에게 쌀 한 말과 모포 한 장씩을 나누어 주었다. 재산과 가구와 식량을 다 버리고 피난길에 나선 그들을 맨손으로 피난민 수용소에 넘길 수는 없었다. 그 후 나는 제주도 주둔 해병대 파견부대에 전입발령을 받고 제주도로 떠났다.

그 당시 제주도에는 육지로부터 피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전선 전 반에서 아군의 전황이 불리해지자 한라산 밀림지대에 잠재해 있던 공비들(공산주의 빨치산 대원)이 일제히 활동을 개시할 무렵이었다. 그들은 민간 부락을 야간에 기습하여 집을 불태우고 부락민들을 살해하기도 하며 젊은 남녀들을 납치해 가기도 했다. 공비들의 이와 같은 준동(蠢動)으로 말미암아 제주도 내의 치안은 극도로 혼란해졌다. 그래서 주민과 피난민들은 심한 공포 속에 밤낮으로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도내의 치안과 질서 확립을 위해 당시 제주도 해군 기지 사령관은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 경, 민 합동 공비 토벌대를 편성했다. 해병대 20명, 기동경찰대원 10명, 정보대원 3명 그리고 한라산 밀림지대 길 안내자로 선발된 민간인 2명으로 구성된 소대 단위를 중심으로 4개 중대의 토벌대가 편성되었다.

1951년 1월 중순 우리 공비 토벌대는 많은 시민들의 격려와 환호 속에 제주시를 떠나 한라산 밀림지대로 출동했다. 한라산 공비토벌의 과거 경험을 보면 공비 한 명을 사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명 내지 3명의 아군 희생자를 내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왜냐하면 밀림지대에 숨어 있는 공비들이 그들을 찾아 다니는 우리보다 훨씬 유리하고 안전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그 무렵 한라산에 잔재하고 있던 공비들의 수는 약 75명으로 추산되었다. 그리고 대대장은 이번 제1기 공비토벌 작전에서 적어도 20명의 공비를 사살할 것을 명령했다. 따라서 아군의 희생이 적어도 40명 내지 50명이 되리라는 것을 우리들 각자는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길한 숫자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 막연히 희망하여 값싼 막걸리 몇 잔에 용기를 얻어 군가를 부르며 우리는 한라산으로 향했다.

그 당시 한라산 밀림지대에 인접한 산간부락은 부락 주위에 석성(石城)을 구출하고 공비들의 야간기습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밤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순번제로 야경을 담당해야만 했다. 그뿐만 아니라 한라산 밀림지대 바로 밑 목장으로 되어 있는 넓은 초원에는 10개의 석성을 구축하고 경찰관 30명씩 주둔하고 있었다. 이 석성이 바로 우리들 공비 토벌대의 활동기지인 동시에 야간 휴식처가 되었다.

멀리서 한라산을 바라보면 평평한 고원지대나 목장처럼 보이나 실은 낮에도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정글지대가 숨어있다. 이러한 밀림지대의 <게릴라> 전투에 전혀 경험이 없는 우리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위험과 어려움을 각오해야만 했다.

매일 새벽 6시 반에 우리는 기상했다.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점심용 주먹밥 2개를 허리에 매달고 8시에 밀림지대로 올라갔다. 저녁 해가 질 무렵 산성주둔소로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담배 한 모금 맛볼 수 없었고, 기침도 해서는 안 되며, 생리적 작용으로 어쩔 수 없는 대,소변마저도 최대한으로 절제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산 속의 맑은 공기 속에서의 흡연과 기침과, 대, 소변은 개보다 취각이 발달된 공비들에게 우리 토벌대의 행동과 위치를 알려 주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만일 우리들이 그들에게 포위되거나 유도에 빠져 버린다면 전멸될 가능성마저 없이 않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의 공비 토벌전의 과거 경험을 보면 공비들의 유도전에 빠져 아군이 막대한 희생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했다. 이러한 밀림지대 게릴라 전투에서 승리는 무기나 전투원의 수적 우세에 달려 있지 않고 십중팔구는 상대방, 즉 적의 행동 위치를 먼저 발견하는 편에 돌아오는 것이 경험상으로 나타난 진리였다. 공비 토벌전을 시작한 이래 우리는 2주간이나 쉴 새 없이 한라산을 종횡으로 이 잡듯 헤치며 공비를 수색했다. 그러나 그들이 오랜 전에 남겨 놓고 이동해버린 <아지트>(공비들의 거처로서 나뭇가지로 만든 잠자기 위한 초막집)와 눈 위에 남겨놓은 그들의 이동 행로만 몇 번 발견했을 뿐이었다.

공비 토벌전에 대한 공포도, 일종의 호기심도 사라지고 피곤하기만 하던 어느 날 한라산에 많은 눈이 내렸다. 3일 간 산성주둔소에서 술과 노름과 잡담과 잠으로 푸짐한 휴식을 취한 우리는 다시 공비 수색전을 시작했다. 한라산에 새 눈이 덮여 우리들의 토벌 행로나 공비들의 이동 반자취가 깨끗이 눈 속에 파묻혀 버렸다. 그날 오후 11시경 우리는 우리 앞을 뛰어 달아나는 산소 몇 마리를 뒤쫓고 있었다. 산소를 잡아 불고기 잔치나 벌리자는 심산이었다 (제주도 4.3사건 때  – 1947년 4월 3일 폭동사건 – 밤에는 공산 반란군에게 낮에는 국군 토벌대에게 무죄한 주민들이 살해되자 목장에서 방축하던 소와 말들이 한라산 밀림지대에 올라와 자유로이 살고 있었다. 그 당시 한라산에는 상당숙의 주인 없는 소와 말들이 있었으며, 바로 이것들이 공비들의 중요한 식량이 되고 있었다). 앞으로 달아나는 소 두 마리를 쫓아 산허리를 타고 돌았을 때 뜻밖에도 50여 명으로 추산되는 공비들이 4, 5 시간 전에 이동한 행로를 발견했다. 우리는 일제히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정세를 살폈다. 공포와 긴장 탓인지 칼빈 자동소총을 든 손 안에 땀이 고였다. 공비들은 소나 말가죽으로 된 덧신을 신고 다녔으므로 그들의 발자국 모양은 앞뒤가 꼭 같아 그들이 이동해간 방향을 감지해내기가 힘들었다. 공비 토벌전에 경험이 많은 길 안내인이 그들의 이동 행로를 이내 알아 내었다. 간단하나 용의주도한 작전 계획과 교전시의 몇 가지 주의사항을 대원들에게 시달한 후 우리는 등골에 땀이 흐르는 긴장 속에 공비들을 뒤따르기 시작했다. 당시 나의 직책은 소대 선임 하사관이었으나 치질로 고생하는 서 소대장을 대신해 소대장 직책을 맡고 있었다.

약 한 시간 가량 그들을 추적했을 때 그들이 삼삼 오오 짝을 지어 사방으로 흩어져 간 자리가 눈 위에 남아 있음을 발견했다. 우리는 공비들이 우리의 추격을 눈치채고 사방으로 흩어짐으로써 그 추적을 피하는 동시에 오히려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듯한 강한 예감을 느꼈다. 그러자 죽음의 공포가 서서히 우리를 휘감기 시작했다. 십자성호를 그으며 죽음을 각오했다. 잠시 동안 정세를 살 핀 후 4명으로 구성된 척후조(斥候組) 3개조를 선발해 적정(敵情)을 정찰케 했다. 그리고 30분 이내에 정찰 임무를 끝내고 돌아올 것을 아울러 그들에게 지시했다.

돌아온 그들은 약 2백 미터 전방에서, 흩어졌던 공비들이 다시 집결해 한 방향으로 함께 이동해 간 행로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우리는 계속 공비를 추격했다. 얼마 후 그들과 교전하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이마와 등골에는 여전히 땀이 흐르고 있었다. 앞으로 내딛는 발도 떨렸다. 목이 말라 왔다. 눈을 한 줌 쥐어 바싹 타오르는 입술과 목을 적셨다. 극도의 긴장 속에 우리는 하지마기 도로 (일정 때에 일본군이 한라산 산정에 닦아 놓은 군사 도로)에 도착했다. 은근히 바람기가 산정을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바람을 타고 모닥불과 불고기 냄새가 풍겨 왔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수십 마리의 까마귀가 요란스럽게 날며 어지럽게 지저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분명히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모닥불에 불고기를 굽고 있을 공비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나 다른 바 없었다. 공비들은 약 5백 미터 전방에 있는 것이 확실했다. 드디어 공비들과의 교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까마귀들만 우짖을 뿐 자연은 아슬아슬하게 긴장된 한 스릴 있는 장면을 구경이나 하고 있는 듯 죽음 같은 침묵 속에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우리는 몸을 굽히고 사방을 경계하며 한발 한발 공비들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배고픈 우리들의 착각에 불고기 냄새만 점점 더 짙게 풍길 뿐 그들의 동정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몸을 일으켜 적정을 살피려던 바로 그 때였다.

“탕 탕 탕!”

세발의 총소리와 함께 나는 옆에 있던 바윗돌 뒤로 뒹굴며 넘어졌다. 계속 날카로운 금속 성을 남기며 세 발의 총알이 내가 엎디어 숨어 있는 바윗돌 머리를 맞고 빗나갔다. 그러나 나는 무사했다. 공비 보초가 나의 행동을 발견하고 발사한 것이다.

“사격 개싯!”

나는 사격  명령을 내렸다. 조용하던 한라산이 별안간 총소리로 진동했다. 까마귀들은 혼비백산하여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전방을 향해 사정 없이 사격을 퍼부었다.

“돌격 앞으롯!”

그러나 대원들은 좀처럼 내 뒤를 따르려 하지 않았다. 머리를 바위 뒤에 박고 하늘을 향해 총을 쏘고 있는 대원들이 대부분이었다.

“사격 중짓! 사격 중짓!”

사격을 중지시키고 전방을 살펴보니 약 2백 미터 앞에 이불과 옷가지 등이 나뭇가지에 널려 있는 것이 보였다. 바위와 나무 기둥 사이로는 공비 몇 명이 도망치고 있었다.

“사격 개싯!”

도망가는 그들을 향해 집중 사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수없이 널려 있는 바위와 한아름씩 되는 나무들 때문에 명중시키기가 힘들었다. 다시 사격 중지를 명하고 공비의 아지트를 향해 돌격하려는 순간이었다. “1소대는 물개들의 우측을 공격하고 2소대는 후면을 습격하랏.” 등등 공비들이 사방에서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공비들은 해병대를 <물개>, 육군을 <땅개>, 그리고 경찰관을 <똥개>라 불렀다). 우리들은 공비들의 이런 공격 명령이 후퇴 명령임을 잘 알고 있었다.

“돌격 앞으롯! 돌격 앞으롯! 공비들은 지금 후퇴하고 있다. 도망하는 그들의 뒤를 쫓아랏!”

단숨에 공비들의 아지트에 뛰어들었을 때 저만치 세 명의 공비가 이 바위 저 바위를 돌며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소리치며 대원들을 재촉했다. 한 놈이 도망치면 다른 두 놈은 바위 뒤에 숨어 집중 사격을 가하며 우리의 추격을 방해했다. 용감한 놈들이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감도 이제는 사라지고 다만 저 공비를 잡아야 한다는 전투원의 본능만이 나의 행동 전부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도 추격반과 사격반 2개조를 거느리고 쉴 새 없이 그들을 쫓았다.

숨고 쫓으며 숨바꼭질하는 식의 추격전은 약 30분 간이나 계속됐다. 갑자기 공비 한 놈이 “으악” 소리를 지르며 땅에 쓰러져 딩굴었다. 그러자 다른 한 놈이 비호처럼 달려와 땅에 쓰러진 공비를 끌고 바위 뒤로 숨었다. 나머지 한 놈은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이 틈을 이용해 나는 소대원을 사방으로 배치시켜 두 놈의 공비를 포위했다. 그러나 그들이 숨어 있는 지형이 묘해서 집중 사격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나는 사격 중지를 명하고 그 공비들을 향해 고함쳤다.

“살고 싶으면 손 들고 나오랏! 그렇지 않으면 수류탄을 던져 폭살시키겠다.”

“이 물개 새끼야! 바위 뒤에 숨어 비겁하게 소리만 치지 말고 나오랏. 네 놈을 먼저 죽이겠다.”

“네 놈들은 이제 독 안에 든 쥐와 같은 운명이다. 살고 싶으면 손들고 나오랏!”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조국 해방 통일 전선에 나온 우리다. 민족과 조국을 배반하고 미국 놈들의 노예가 된 네놈들과 죽을 때까지 싸우련다.”

“네 놈들은 빨갱이놈들은 <로스케>놈들의 종들이 아니냣! 동족을 죽이는 이 전쟁을 일으킨 네 놈들이 민족 반역자들이다.”

“닥쳐랏! 죽음이 두려워 꾸물거리고 있는 시시한 물개 새끼들아. 잔소리 말고 나와 우리와 맞서자. 우리는 네 놈들의 손에 죽을지언정 조국과 민족을 사랑한 우리의 정신은 살아 남아 조국 해방의 밑거름이 되리라.”

“네 놈들이 닥쳐랏! 어서 손들고 나오랏! 네 놈들을 살려 주마.”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향한 총구를 거두지 않고 맞서고 있었다. 용감한 놈들이었다. 바로 그때 3분대장 조하사관이 “이놈들아, 항복하고 나오랏!” 하고 소리지르면 별안간 앞을 향해 뛰어 나갔다. 그 순간 “탕 탕” 두 발의 총소리는 나를 놀라게 했고, “안돼, 안돼, 조하사관, 나가지 맛!” 하는 내 고함소리가 미쳐 끝나기도 전에 그는 땅에 쓰러져 피를 토했다. 조하사관과 죽음에 분개한 대원들이 일제히 뛰어나오며 공비를 향해 무차별 집중 사격을 퍼부었고 2명의 공비들은 각각 10여 발의 총탄을 맞아 사살되고 말았다. 조하사관의 몸을 일으켜 내 품에 안았을 때 유난히 컸던 그의 두 눈에는 이미 흰자위가 넓게 펴져 있었다. 그리고 입과 총탄을 맞은 가슴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 내렸다.

“이 자식아! 누구 명령으로 뛰어나갔엇? 왜 명령을 지키지 않았나, 이 자식아!”

나는 소리치며 한탄하였으나 그의 몸은 이미 싸늘히 식어 있었다.

이것이 우리 공비 토벌대대가 토벌을 시작한 이래 최초의 전투였고 승리인 동시에 최초의 희생자를 가져왔다. 그리고 공비의 시체에서 맛보는 승리감과 전우의 죽음에서 갖게 되는 허탈감이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죽은 2명의 공비는 30세 전후로 보이는 몸집이 크고 건강한 미남아였고 한 공비의 주머니 속에서는 다음과 같이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시가 첫 장에 씌어 있는 큰 수첩이 한 권 나왔다.

 

 

 

복종

만해 한용운

 

남들은 자유를 사랑하다 하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해요.

자유를 모른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 없읍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만해 선생의 이 시를 읽으며 나는 자못 엄숙해졌다. 이 시맥(詩脈)에 흐르는 만해 선생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끝까지 추호도 비겁함 없이 싸우다 우리 손에 죽은 공비의 용감성과 인품을 생각하며 나는 일종의 죄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 온 민족이 추앙해 마지않는 만해 선생의 이 애국 시를 사랑하고 살아온 동족의 한 사람을 우리는 죽였던 것이다. 죽은 이 공비도 그리고 나도, 만해 선생의 시를 사랑하고 그분의 고매한 애국적 사상과 업적을 머리 숙여 존경하건만, 우리는 서로를 민족 반역자라고 고발하고 욕하고 총질하며 죽이고 죽었던 것이다.

 

만해 선생께서 이 시를 쓰셨을 때에는 피를 같이한 같은 민족을 사랑하면서도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이 저주스러운 전장에서 이 시가 읽혀지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하셨을 것이다. 만해 선생의 <복종>의 대상은 일제의 침략 아래 자주성을 상실한 <조국> 이었으련만 죽은 이 공비가 사랑한 이 복종의 대상은 무엇이었으며, 또 내가 이 시를 통해 복종해야 할 대상은 과연 무엇일까? 양단된 조국과 민족의 번영을 위한다고는 하나 상반된 방법론과, 이 방법론을 뒷받침하고 있는 타협할 수 없는 두 개의 이념과, 이 이념에 대한 복종이라는 사명 아래 우리는 조국을 헐 벗기고 동족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만해 선생이 우리를 보시고는 <바보 같은 놈들!> 하고 그 우렁찬 목소리로 우리를 힐책하고 계시는 듯이 느껴졌다.

그날 우리는 2명의 공비 시체와 조하사관의 시체를 나뭇가지 들것에 얹어 눈 위로 끌며 산성주둔소로 내려왔다. 작전 본부에서 온 장교 한 명과 대원 몇 명이 시체를 인수해 내려갔고 만해 선생의 시가 적혀 있는 그 수첩도 가지고 가 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제주도 고구마 소주 한 항아리를 놓고 둘러앉아 전승 잔치를 벌렸다. 하여튼 승리는 승리이고, 또 나는 싸워서 승리해야 하는 일개 전투원이었다. 그날 밤 나는 술을 많이 마셨다. 술에 취하고 싶었다. 술에 취하지 않고서는 잠을 이루지 못할 것만 같았다. 혀가 꼬부라지고 몸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축 늘어질 때까지 마시고 또 마셨다. 그 이튿날 아침 쓰디쓴 노오란 액체가 창자로부터 입으로 기어나왔고 머리가 빠개질 것만 같이 아팠다. 두 다리는 또 후들후들 떨려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속이 쓰려 밥 한 술 먹을 수도 없었다. 대원들의 말에 의하면, 그날 밤 나는 다음과 같이 고래고래 소리질러 밤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했다.

“만해 선생님! 우리가 복종해야 할 대상이 무엇이며 동족상잔하는 이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에 복종해야만 합니까? 선생님, 말씀 좀 해 주세요. 말씀해 주세요!”

우리 소대가 공비와 접전한 후 공비들의 거처를 알게 된 작전 본부는 대대병력을 총집중 시켜 공비수색전을 지휘했다. 그 후 일 주일이 지났다. 그 동안 우리 토벌대대는 수차에 걸쳐 공비와 교전했으며 9명의 공비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고 아군도 4명의 전사자와 7명의 부상자를 내었다.

승리에 도취되어 공비들의 게릴라 전술을 무시하던 어느 날 우리 소대는 하지마기 도로 동족에서 얼마 전에 공비들이 이동해간 행적을 발견했다. 눈길 위에는 그들의 주식이 되고 있는 조, 콩, 말린 고구마와 쇠고기덩어리가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지난 번의 경험을 고려해 좀 대범한 자세로 공비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치질로 고생하던 서재윤 소대장이 오늘은 소대를 지휘하며 소대 선두를 걷고 있었다. 한참 후에 자그마한 잔디밭이 밀림 사이로 나왔고 그 잔디밭 한가운데로 공비들이 지나간 행로가 보였다. 일분대 대원을 앞세운 서 소대장이 그 잔디밭에 들어서는 찰라, 별안간 요란한 총소리가 나더니 서 소대장 이하 몇 명의 대원이 비명을 지르며 눈 위로 쓰러졌다. 그 순간 나는 공비들의 유도작전에 우리가 빠져들었음을 즉각 깨달았다. 소대의 후미 분대를 지휘하고 있던 나는 2분대와 3분대를 재빨리 좌우로 분산시켜 공비들의 공격에 응수케 했다. 사기충천한 공비들의 공격에 우리는 결사적으로 대항했다. 그러나 지형이 불리한 우리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내 옆에 있던 2명의 대원이 총에 맞아 또 쓰러졌다. 우리는 수류탄으로 접근해 오는 공비들을 결사적으로 막았다. 무전으로 그 부근에서 수색 전을 펴고 있는 아군에게 응원을 요청했다. 약 한 시간 동안 피비린내 나는 지옥 같은 전투가 계속되었다. 우리의 응원 연락을 받은 1소대와 3소대가 달려왔다. 얼마 후 공비들은 5명의 시체를 남겨놓은 채 도주해 버렸다. 그러나 13명의 전우가 눈 속에 얼굴을 파묻고 쓰러져 있었다. 붉은 피가 눈 위에 번져 흘렀다. 처참한 광경이었다. 나 자신이 살아 있나를 의심할 정도로 나도 넋이 빠져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전우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던 우리는 드디어 그들을 품에 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피처럼 뜨거운 눈물이었다.

13명의 전우와 5명의 공비들의 시체를 한 군데에 모아놓았다. 납처럼 창백해진 그들의 얼굴은 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들은 18세에서 30세 미만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이민족(異民族)이 아니었고 피부색과 언어와 풍습과 문화를 같이하는 동족이었다. 같은 성(姓)을 가진 같은 조상들의 후손인 형제들이었다. 그런데 우리들은 소로 총질하며 서로를 죽였다. 왜….? 누구를 위해, 도 무엇 때문에….? 18구의 시체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팔다리를 섞어 눈 위에 누워 있었다.

 거기에는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없었으며 그 무엇에 대한 복종의 결과만이 있었다. 살아서는 타협도 공존도 할 수 없었던 그들이었건만 이제 그들은 몸을 섞어 한 자리에 같이 있을 수 있는 못난 무리들… 공비들이 저주스러운 만큼 나 자신도 저주스러웠다. 슬픔이 가셔지는 내 가슴 속에는 분노가 깃들기 시작했다. 하늘 저 높은 곳에서는 피 냄새를 맡은 까마귀들이 수백 마리나 몰려와 불길한 울음을 울고 있었다.

그때 문득 남북정치협상을 하기 위해 내 고향 여현을 지나 삼팔선을 넘어가시던 김구 선생과 김규식 박사의 모습이 눈 앞에 선하게 떠올라 왔다. 삼팔선 군사 경계선 표지 말뚝을 손에 잡으시고 남북 양쪽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다보시던 그분들의 모습이. 경계선 없는 저 자유로운 조국의 하늘… 무엇이 이 땅 위에 분단의 말뚝을 박아 이 조국을 두 개로 갈라 놓았단 말이냐? 생명 없는 이 말뚝, 이것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내 조국땅을 자유로이 왔다 갔다 할 수 없는지…. 다섯 명의 공비와 영세 명의 전우의 생명을 앗아간 이 말뚝…. 그때 그분들은 아마도 오늘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예측하고 계셨는지 모른다. 빼앗긴 조국을 다시 찾기 위해 부모 처자 없는 고독한 이국 만리 타향에서 정치적 이념의 차이를 초월해 침략자 일제를 거슬려 싸웠건만 왜 우리는 자유와 해방을 찾은 조국에서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지… 이제는 슬픔이 아닌 분노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생사고락을 같이한 전우의 죽음에서 오는 슬픔만의 눈물이 아닌 그 어떤 분노와 억울함의 눈물이 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우리는 전우의 시체를 업고 공비의 시체를 끌며 한라산 밀림지대를 내려왔다. 나는 서 소대장의 시체를 어깨에 메고 미끄러운 눈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그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가 때묻고 더러운 내 군복 잠바를 물들이고 있었다. 내 앞에 끌려가는 공비의 시체에서 새어 나온 피도 흰 눈을 불게 물들었다. 이 붉은 피… 이 붉은 피는 같은 민족의 피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피는 누구를 위해 흐르고 있단 말이냐? 내 오른쪽 어깨에 얹혀 있는 서 소대장의 시체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질수록 <이 붉은 피는 누구를 위해 또 무엇 때문에 흐르고 있는가!>라는 회의가 더욱 내 가슴을 파고 들어와 나를 괴롭혔다.

이미 우리는 밀림지대를 빠져 나와 눈으로 뒤덮인 초원을 걷고 있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다만 발 밑에 밟히는 눈자국 소리만 서벅서벅 들려 왔다. 해는 제주 바다 수평선 너머로 서서히 사라져 가고 드높이 펼쳐진 끝없이 푸른 하늘엔 연분홍색 햇살이 조용히 밀려오는 해안가의 조수처럼 소리 없이 번져가고 있었다. 이윽고 저 멀리 산간 부락에서는 밥짓는 연기가 흰 꼬리를 조용히 뒤로 남기며 하늘로 피어 오르고 있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 풍경!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이 현실은!? 서 소대장의 시체가 맥 빠진 내 두 어깨를 바위처럼 내려 눌렀다. 그리고 나는 기운 없이 눈 위에 쓰러졌다. 그때 그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싸늘히 식은 붉은 피가 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쓰러진 채 눈을 한 줌 움켜쥐고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아, 진정 이 피는 누구를 위해 흐르고 있단 말이냐!….>

 

 

 

 

 

제4장

선과 악의 변두리

 

1951년 2월 말 우리 공비토벌대는 제1기 작전을 완료하고 제주시로 내려와 일 주일간의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그 무렵 제주시는 피난민으로 일대 혼란을 이루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인간의 문명 사회에서 완전히 떠나 끊임없는 죽음의 위협 아래 지내다 돌아온 우리들은 마치 죽음에서 부활한 듯한 생의 환희를 맛보았다. 텁수룩하게 자라난 턱수염과 머리를 말쑥하게 손질했다. 그리고 목욕탕의 따스한 물 속에서 발가벗은 내 몸뚱아리를 어루만졌을 때 탄력 있는 젊음과 삶의 신비가 한층 더 심한 고독을 불러 일으켰다.

한라산 밀림지대에서 공비 토벌 수색적을 펼 때는 나는 20대 내 청춘의 고독을 느낄 만한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낮에는 삶과 죽음의 분계선에서 밀림을 헤치며 공비를 찾아 헤매야만 했고, 제주 바다 수평선상에 지는 해를 등에 지고 주둔소에 돌아오면 긴장이 풀리고 피곤이 몰려와 깊은 잠에 휘말려 들어가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 주일이라는 휴식과 함께 내 생명의 안전이 보장되자 나는 내 삶의 주변이 너무나 쓸쓸함을 느꼈다. 꼭 있어야 할 그 무엇이 내 삶에서 빠져 있는 듯한 심한 공허감이 내 온 몸을 휘감았다. 3개월 전 원산에서 헤어진 숙이 보고 싶었다. 숙도 남들처럼 제주시로 피난오지나 않았을까 막연히 기대하며 피난민 수용소와 시내를 하루 종일 찾아 다니기도 했다. 해질 무렵 싸구려 막걸리 몇 잔의 위로를 받으며 부대로 돌아올 때 내 발걸음은 무거웠고 내 가슴은 알맹이 없는 조개껍질처럼 텅 비어 있었다. 이러한 공허와 고독을 달래기 위해 제주시에 있는 성당에 들러 기구도 하고 미사참례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점점 더 깊은 고독의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 당시 내 친구 하사관들은 술집에서 또는 밤거리 여인집에서 번번이 밤을 새우고 돌아왔다. <삶의 최대의 환희와 신비>라는 그 짓을 하고 돌아와서는 자랑 삼아 또 그것을 떠벌렸다. 어느 날 밤 나도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신 후 자기 위하여 술집 아가씨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짓>이 교회에서 가르치는 윤리적 악이 되기 때문에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종교적 양심에 앞서, 내 순결한 동정(童貞)에 대한 자존심과 숙을 향한 사랑이 나로 하여금 발가벗은 그 여인의 방을 뛰쳐나오게 했다.

한라산 공비토벌 제2기 작전을 위한 재 출동을 이틀 앞둔 어느 날 저녁, 세 명의 친구 하사관들과 함께 술집으로 갔다. 술 집 아가씨 셋이 동석했다. 그 중 두 명은 성숙한 애교와 능란한 말솜씨로 보아 술집 경험이 많은 것처럼 보였으나 다른 한 아가씨는 20세를 채 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수줍음과 수심과 불안이 뒤섞여 있었으나 여학생다운 순수함과 지성미를 풍기고 있었다. 그녀는 예뻤다. 내 가슴 속에서는 그녀에 대한 호기심과 물리칠 수 없는 동정심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싹트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은 <현>이었다. 벌써 술 몇 잔이 오가고 우리의 얼굴에는 불그스레한 취기(醉氣)가 돌았다. 우리의 말투도 술잔이 거듭됨에 따라 점점 더 거칠어져 갔다. 상스러운 농을 하기 좋아하는 철 하사관의 음담패설에 현은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나이 더 들어 보이는 언니 격의 아가씨가 제법 타이르는 듯이 몇 마디 했다.

“현에게만은 그런 농을 삼가세요. 아직 개는 그런 농에 익숙치 못해요. 그 애는 말하자면 아직 초년병이에요. 우리들과는 달린 싱싱한 그대로죠 만일 현의 사랑을 받으려면 얌전하고 멋있게 처신하세요.”

“술좌석에서 얌전한 놈이 어딨어!”

철 하사관이 거칠게 내뱉으면 말을 계속했다.

“난 새 것은 싫어! 헌 것이 더 좋아. 신사답고 얌전해야 현의 사랑을 방들 수 있다면 이 예수장이가 현의 사랑을 독점하겠군. 그래 이 예수장이도 새 것 중의 새 것이니까. 황소 같은 사내자식이 예수를 믿는다고 고자 생활만 하고 있거든. 오늘 밤에 예수장이와 현을 결혼시키자.”

철 하사관의 이 말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으나 현과 나만은 얼굴을 붉혔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술상 위에는 빈 접시만 쌓여갔다. 노래도 실컷 불렀다. 다들 술에 취해 있었다. 이에 따라 음탕한 논도 점점 도를 더해갔다. 친구 하사관들의 손은 아가씨들의 옷 안에서 분주히 오르락거렸다. 철 하사관이 언니격의 나이 많은 아가씨에게 옷을 벗으라고 요구했다. 현을 제외한 두 여인의 옷고름이 풀어졌다. 흰 젖가슴을 드러내고 그녀들은 킬킬거렸다. 그녀들도 술에 취해 있었다. 나는 시선 둘 곳을 몰랐다. 부대로 돌아갈 생각을 하며 방문을 열고 나오려 했다.

“하여튼 예수 믿는 자식들하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단 말이야. 여인의 육체의 아름다움과 삶의 즐거움을 외면하는 볼품없는 놈들이야. 태오 하사관, 이것 좀 보게나. 자네가 꺼려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것 좀 봐. 핫핫핫…”

철 하사관은 고함치며 한 여인의 젖가슴을 쥐고 주물러댔다.

“저 자식은 예수를 믿으면 혼자나 믿지 번번이 우리 술맛 마저 망쳐 놔. 꺼지고 싶으면 빨리 꺼졋! 여자 하나가 부족한데 다행한 일이다. 핫핫핫…”

이번엔  병 하사관이 소리쳤다. 그리고 현을 자기 앞으로 잡아당기려 하자 현은 재빨리 몸을 피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예수 믿으면 황소 같은 놈들도 저 꼴이 되니 누가 젊어서 예수를 믿겠나? 인생의 달콤한 요 맛도 모르면서 어찌 청춘이 즐겁다 할 수 있겠는가! 핫핫핫…”

훈 하사관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리고 다른 여인의 벌거벗은 젖가슴을 쓰다듬었다.

“이 개새끼보다 더러운 놈들아! 말조심 햇! 말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 게 아냐. 죄 없는 예수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죽여 버리겠어. 주둥아리를 더 이상 놀리면 이빨을 몇 개씩 부러뜨리고 묵사발 만들어 놓겠어.”

나는 한 마디 쏘듯이 던지고는 마루에 나와 앉아 군화를 신었다. 그때 현이 뜯어진 옷고름을 손으로 여며잡고 뛰어나와 내 팔을 한 손으로 잡으며 다급히 말했다.

“태오 하사관님, 저를 좀 살려 주세요. 여길 떠나지 마세요. 절 좀 오늘 밤만이라도 보호해 주세요.”

“뭐, 당신을 보호해 달라고요?”

나는 친구 하사관들과의 언쟁 끝에 성난 음성으로 거칠게 대꾸했다.

“네, 저러 좀 살려 주세요. 여기 자와 함께 계셔 주세요.”

“여기 당신과 함께?…. 여기 더 이상 있고 싶은 흥미가 없소.”

“그럼, 태오 하사관님, 저를 데리고 가 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

“당신을 데리고 가 달라고요?”

그때 병 하사관이 밖으로 쫓아나와 현의 팔을 잡더니 나에게 쏘아붙이는 듯이 말했다.

“야, 이 새끼야! 아직 여기 남아 있었구나. 가는 척하더니 남의 계집을 슬쩍 배돌려? 천하의 엉큼한 자식같으니…”

이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병 하사관에게 달려가 그의 아래턱을 주먹으로 두어 번 후려 갈겼다. 그는 벌렁 마루 위로 나자빠졌다. 그를 잡아 일으켜 또 몇 대 더 때렸다. 그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그러면서도 술 취한 그는 현의 팔을 또 잡아 끌며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현이 “이 말 놓으세요” 하고 악쓰듯 소리질렀다.

“야, 이 새끼얏! 맛이 어때? 이 정도면 알아 들을 만하지? 아직 부족하다면 내 주먹의 수고를 아끼진 않겠어!”

병 하사관의 멱살을 잡고 나는 그에게 다그쳤다. 바로 그 때 옆 방에서 술 마시고 있던 계급 불명의 젊은 육군 두 명이 방문을 나오며 우리를 향해 소리질렀다.

“남의 술집 앞마당에서 싸움하는 놈들이 누구얏!”

“해병대 아저씨들이다. 이 건방진 새끼들, 술 먹었으면 조용히 있지, 남의 일에 참견이야. 해병대 맛을 아직 보지 못한 모양이로군…”

나에게 얻어맞아 잔뜩 화가 난 병 하사관은 그들에게 고함치며 다가섰다.

“개병대 새끼들…”

그들 중의 하나가 말했다. 이 말을 듣자 병 하사관은 “무엇이 어째?” 하며 마루 위에 놓여 있던 내 철모를 집어 들어 그들을 사정 없이 구타했다. 내가 병 하사관을 정지시켰을 때는 이미 그 육군 두 명은 술집 앞마당에 뒹굴고 있었고 그들의 코에서는 피가 흘렀다. 그들은 불의의 습격을 받아 무진장 얻어맞기만 하고는 말 한 마디 못하고 있었다. 술집 주인 아주머니와 몇 명의 구경꾼들만 멍하니 둘러서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순경들이 왔으나 “자네들 돌아가게. 아무 일도 아닐세” 하는 병 하사관의 넉살에 그들은 말 없이 사라졌다. 철 하사관과 훈 하사관은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새 그들의 방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병 하사관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육군들의 코피를 닦아 주며 말했다. “철 없는 사람들 같으니… 다음부터는 해병대에게 말조심하시오. 이런 창피를 당할 것을 잘 알면서도 쓸 데 없는 만용을 부리다니…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학생 출신 장교들이군 그래…” 희미한 달빛에 비친 그들의 견장에는 소위 계급장이 반짝이고 있었다. 얼마 후 들들은 자기들 방으로 들어갔고 구경꾼들도 사라졌다. 소란했던 술집 앞마당이 다시 조용해지자 병 하사관은 나에게 다가오더니 은근히 말을 붙였다.

“태오 하사관, 현을 나에게 돌려 주게나.”

“뭐라고? 병 하사관, 현은 우리들 마음대로 흥정하고 처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닐세. 이 여인은 한 인간이며 동족이고 자맬세.”

“여보게, 그런 공자님 말씀은 그만 하게나. 오늘 밤만은 현은 우리에게 속해 있네. 이 술집 아주머니와 사전 약속이 다 되어 있었네. 만일 자네가 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녀를 내게 돌려 주게나.”

“병 하사관, 나는 이 여인을 자네가 말하는 그런 필요성으로는 대하지 않네. 자기를 보호해 달라는 이 여인의 청을 따라 사정 이야기를 한 번 듣고 싶을 따름일세. 그러니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남은 술이나 마시게나.”

“이 철 없는 사람아. 지금 방 안에서는 한창 요지경이 벌어져 있을 텐데 나 혼자 그들 옆에서 술만 마시며 그 짓을 구경만 하고 있으란 말인가?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는 공비토벌을 위한 재 출동을 앞두고 있지 않나?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우리의 운명이 아닌가? 이런 상황에 처한 찬 전우의 청을 자네는 이렇게 야박하고 잔인하게 거절하긴가?”

“바로 그런 운명을 등에 지고 있는 우리들의 입장이 나로 하여금 자네의 청을 거절하게 하네. 며칠 후 죽을지도 모르는 우리의 운명, 자라리 고독하게 깨끗이 죽세나. 우리 민족에게 더 이상의 죄악을 저지르기 전에, 그리고 또 하나의 다른 고통을 우리 형제자매에게 물려 주기 전에 깨끗하고 후회 없이 죽세. 병 하사관, 이 여인이 싫어하는 것을 요구하지 말고 나와 함께 부대로 돌아가세.”

“태오, 자네가 자네대로의 삶의 철학과 신앙을 갖고 있다면, 나도 나대로의 생의 철학을 갖고 있네. 자네가 옳다고 생각하고 믿는 것이 남에게도 반드시 그러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잘못일세. 하여튼 내 취미와 철학에 맞지 않는 자네의 그 신앙과 철학을 나에게 강요하지 말게.”

“병 하사관, 사람은 자기의 철학과 신앙이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그것에 성실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리고 인간은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자유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남이나 사회에 해악을 끼쳐서는 안 되는 법일세. 지금 자네는 이 여인을 해치려 하고 있어. 왜냐하면 이 여인이 거절하는 바로 그것을 자네는 강요하고 있으니 말일세.”

“태오, 예수님의 제자다운 자네를 나는 존경하네. 그러나 그러한 공자님이나 예수님 말씀은 요 다음 한라산에 올라가 듣기로 하세. 자네와 나와의 오랜 우정을 생각해서라도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지 않겠나? 내가 이 여인과 하룻밤을 보낸다고 그것이 자네에게 무슨 해악이 되겠는가? 그러지 말고 나에게 이 여인을 양보하게.”

“우정이란 친구 간의 선을 위해 있는 것일세. 우정이 한 친구의 죄악을 조장하는 도구나 기회가 되어서는 안 되는 법일세. 나는 이 여인에 대해 아무런 권리가 없으나 자네에게 가기를 거부하는 한 그녀를 보호해 주겠네.”

그러자 병 하사관은 현의 팔을 잡아 끌려 했고 현은 몸을 피해 내 곁으로 바싹 다가왔다.

“병 하사관, 그러지 말게. 자네도 인간이라면 버선발로 이 추위에 떨고 있는 여인을 동정해 줄 수도 있지 않겠나? 자네는 이 여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겠나?”

“자네가 인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만큼 나도 떳떳한 한 인간일세. 자네의 성자연(聖者然)하는 위선자의 눈에는 내가 동물처럼 보일지 모르나 나도 사리를 판단할 줄 아는 이성과, 인간적 비애와 불행을 이해하고 또 동정하는 마음을 가진 인간일세. 오늘 밤 내가 자네 대신 현의 사정을 들어 주고 위로해 주겠네. 현, 그러지 말고 나와 함께 빨리 방으로 돌아가지.”

그러면서 그는 현의 팔을 붙잡았다. 뿌리치는 현의 힘보다 병 하사관의 힘이 더 강했다. 그러나 현은 “이 손 놓으세요”하고 비통하게 부르짖으며 애원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병 하사관” 나는 말했다. “그 더러운 손을 그 여인의 몸에서 떼지 못하겠는가?”

“자네는 나를 이렇게도 끝끝내 무시하긴가?”

“무시는 자네 스스로가 초래하고 있네.”

“만일 내가 내 주장을 끝까지 고집한다면 자네는 어떻게 할 작정인가? 나도 자네를 무시하고 계속 내 주장을 고집한다면 말일세.”

“그럼 할 수 없지.”

“나의 <할 수 없다>란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자네에게 이 주먹으로 교훈을 주겠단 말일세. 바로 이 주먹의 맛 말일세.”

이렇게 말하며 나는 그의 왼뺨을 주먹으로 한 대 후려갈겼다. 그러자 병 하사관은 몇 발 뒤로 물러서서  군화를 손에 집어 들더니 악쓰듯 말했다.

“좋다. 나는 부대로 돌아간다. 예수나 일평생 믿다가 빌어먹어 턱이나 빠져 죽어 버려랏. 이 개새끼야!”

그리고 그는 나를 향해 침을 탁 뱉더니 군화를 손에 든 채 술집 대문 쪽으로 뛰어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가 사라지자 나는 신나는 연극의 막이 내린 듯 갑자기 쓸쓸해졌다. 그러자 그에게 좀 지나치게 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현은 버선발로 추위에 떨며 내 옆에 서 있었다. 그의 두 시선은 달빛에 슬프게 반짝이며 석 달 전 원산에서 마주 본 숙의 눈물 어린 눈망울을 내게 회상시켜 주었다.

“밤 공기가 퍽 쌀쌀하군요. 제 방에 들어가실까요?”

현이 거절할 수 없는 나직한 애원의 어감이 깃든 음성으로 내게 말했다. 아무 말 없이 현을 따라 방에 들어갔다. 방 안은 따스했다. 흥분과 추위 속에 얼어붙었던 술기운이 녹아내려 내 두 뺨은 불그스레 물들어 갔다. 현은 뜯어진 옷고름을 핀으로 고쳐 달았다. 말 없이 앉아 있는 것이 나에게 부자연스러워 담배를 피워 물며 입을 열었다.

“저희들의 싸움이 무서웠지요?”

“네…. 태오씨께서 얻어맞지나 않을까 퍽 걱정했어요. 그런데 병 하사관이 태오씨에게 어떤 복수라도 하지 않을까요?”

“그 점에 대해서는 염려 마십시오. 오늘 밤 그 친구가 매우 기분은 상했으나 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전우 중의 한 사람입니다. 본래 성품도 온순하고 품행도 단정했는데 전쟁이 그를 점점 거칠게 만들고 있군요.”

“태오씨는 오늘 밤 저 때문에 여러 성가신 일을 다하셨어요. 참 고마워요. 그 은혜는 잊지 않겠어요.”

“뭐, 은혜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으나…  그런데 내가 현씨를 어떻게 도와 드릴 수 있지요?”

“물론 나는 태오씨에게 무슨 도움이나 부탁을 드릴 만한 사람이 못 되지만…”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힘들게 말을 이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한 이 사회적 혼란 속에서나마 따뜻한 인간적 동정으로 저를 이해하고 도와 주실 수는 없을까 부탁 드리고 싶어요. 지금 저는 아무런 인간적 동정도 보호도 받지 모하는 몸이에요.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살기 위해 할 수 없이 이 직업을 택하긴 했으나…., 산다는 그 자체가 혐오스럽기만 하군요. 이런 생활을 하면서까지 인간은 살아야만 할까요?”

현의 갑작스러운 이 심각한 고백에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한참 동안의 침묵 후에 나는 그저 단순히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그럼, 왜 집에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집이 없어요. 집이 있으면 이런 생활을 하겠습니까?”

“고향이 어디죠?”

“이북 평양이에요.”

“피난민이시군요. 가족은 지금 어디 있지요?”

“네, 피난민이에요. 그런데 가족이 없어요.”

“가족이 없다구요? 부모님이 안 계십니까?”
“제 부모님요? 돌아가셨을 거예요.”

“언제?”

“피난 도중에요. 그러니까 약 3개월 전이군요.”

현은 힘 없이 대답하더니 고개를 숙인 채 옷고름으로 자기 두 눈언저리를 닦았다. 그리고 잠시 후 현은 다음과 같은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작년 12월 초순경이었습니다. 남한으로 철수하는 국군을 따라 부모님과 동생과 함께 피난길을 떠났지요. 어느 날 밤 우리 일행은 산 속에 숨이 있던 인민군 패잔병 부대와 만났습니다. 그들의 불의의 습격을 받은 국군과 우리 피난민들은 당황했고, 무서워 어둠을 이용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습니다. 등 뒤에서는 총소리가 요란했고 총에 만은 사람들의 비명소리도 들려 왔었어요. 나는 동생의 손을 잡고 정신 없이 뛰었지요. 한참이나 숨가쁘게 달아나 바위 밑에 몸을 감추고 숨을 돌렸을 때, 동생과 나는 살아난 것을 의식했으나 부모님과는 헤어진 것을 알데 되었지요. 날이 밝자 남하하는 피난민 몇 사람을 다시 만나 부모님을 찾았으나 허사였어요. 국군들에게 물어 보아도 부모님의 소식은 알 길이 없었어요. 다시 국군과 피난민을 따라 동생과 함께 서울을 지나 부산까지 내려왔어요. 부모님께서는 또 그분들대로 남하하셨으리라 생각하고 가는 곳마다 찾아보았으나 허사였어요. 피난길을 같이 떠난 고향 아저씨의 말로는 그날 밤 총에 맞아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부상당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셨을 거래요.

부산 피난민 수용소에 있을 때 나는 어느 날 심한 독감에 걸려 앓았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 몇 명의 헌병과 국군이 군용차를 갖고 와 수용소에 있던 젊은이들을 몽땅 실어갔어요. 내 동생은 17세의 어린 몸이었으나 워낙 몸집이 크고 건장해 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내 동생이 나이 어린 것을 이유로 입대를 거부하자 헌병이 내 동생의 뺨을 때리며 말했어요. ‘젊은 친구, 전시에는 누구나 다 문제가 있는 거야. 이런 경우에 처해 있는 건 너만이 아니야. 조국에 대한 의무는 가족을 돌보는 것보다 앞서야 하는 거야.’ 그때 제 동생은 미친 듯이 대꾸했어요. ‘나는 절대로 군에 입대하지 않을래요. 나는 우리 조국을 미워해요. 조국은 내게 기쁨을 준 일이 없어요. 조국은 우리 부모를 죽이고 우리 가정의 행복을 파괴했어요. 우리를 이처럼 불행하게 만든 이 조국을 위한다는 구실로 군대에 난 절대로 입대하지 않겠어요.’ 헌병은 내 동생을 발로 차고 뺨을 때리며 강제로 트럭에 싣고 갔습니다. ‘누나야, 누나야!’ 하고 날 부르는 동생의 목 메인 울음소리를 들었으나 심한 열로 꼼짝도 못하고 자리에 누워 있었어요. 동생을 실은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내 귓전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나는 의식을 잃고 ‘현만아, 현만아!’ 하고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헛소리를 하고 있었대요.

그날 밤 저항할 수 없는 힘이 내 온 몸을 누르며 나를 괴롭히는 악몽에 신음했어요. 이 악몽에서 깨어나 의식을 찾았을 때 나는 한 남자의 품 안에 안겨 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그로부터 능욕당한 것을 알았어요 이 어머나 기막힌 운명입니까? 전쟁과 함께 고향과 부모님과 동생을 잃었고 또 처녀의 생명인 정조마저 유린당하다니 말입니다.

슬픔과 분노가 극도에 달하자 독감은 나에게 떠나갔으나 절망의 신은 또 나에게 자살이라는 다른 하나의 길을 제시했어요. ‘에라, 죽어 버리자. 차라리 자살이나 하자’, 이렇게 결심하고 자살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밤 부산 영도다리에서 다리 밑으로 몸을 던지려 할 때 이상하게도 ‘누나야, 누나야!’ 하던 동생의 절규가 들려오는 듯 했어요. 그러자 나는 동생을 위해 자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어요. 자살하면 죽음과 함께 만사가 끝나 이 저주스러운 현실은 잊을 수 있으나 살아 남은 내 동생은 나로 인하여 얼마나 심한 정신적 고통을 당할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자 나는 죽을 수가 없었어요. 살기 싫어도 나는 어린 동생을 위해 살아 남아야 했지요. 부모 없는 동생에게 그분들을 대신해서 나는 사랑을 주어야 했어요.

부산 피난민 수용소에 있을 때 내가 언니라고 부르며 따르던 한 젊은 여인이 있었지요. 그 언니도 나처럼 전쟁과 함께 부모 형제와 고향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한 국군 장교에게 속아 가지고 있던 돈은 물론 몸까지 바치며 몇 달 동안 동거생활까지 했으나 결국 배신을 당했대요. 그 언니에게 내 속사정을 이야기하고 자살이라도 하겠다고 말하니 그 언니는 내게 꾸짖듯 말했어요. ‘그런 바보짓 하지 마. 자살은 왜 해? 나도 너처럼 그런 불행을 당했을 때 한때는 자살하려 했으나 마음을 고쳐 먹었어. 이 세상에 악착같이 살아남아 나를 해친 그 놈을 비롯해서 우리들 여인을 속이고 불행하게 만드는 이 사회와 남자들을 거슬러 내 힘껏 사우고 복수하기로 작정했지. 자살이란 악에 대한 일종의 굴복이야. 자기 불행을 이유 없이 참고 견디며 또 그 불행의 원인을 무조건 용서해 주는 것도 비겁한 행위야. 그리고 그런 태도는 악을 조장시켜 주는 결과를 초래해. 복수해. 그러면 우리는 이 불의 스러운 사회나 간악한 남자들에게 하나의 좋은 교훈을 줄 수 있게 돼. 자살 하지 마. 그리고 살아 남아 끝까지 복수해.’

언니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보였으나 복수한다는 것은 제 힘에 겨운 일이었어요. 20세의 어린 소녀의 몸으로 이 거대한 사회와 남자들을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또 어떻게 그들을 복수할 수 있겠습니까?….. 그 뿐만 아니라 내 정조를 유린한 그 남자는 내가 용서할 수 없는 미운 인간이었으나 자기 가족을 위해 살아 남아야 할 사람이었어요. 그이도 전쟁 때문에 고향을 등진 몸이었고 병으로 허약해진 자기 아내와 배고파 밤 낮으로 보채는 아이들의 성화에 고민하던 불쌍한 사십 대의 피난민이었어요. 만일 내가 그분을 복수해 막말로 죽여 버린다면 그분의 병든 아내와 어린 자식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여튼 복수라는 행위는 언니의 주장처럼 어떤 경우에는 사회에 대한 일종의 경종이 될지는 모르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을 없앨 수 없을 거예요. 반대로 복수하면 복수 할수록 새로운 악이 생겨날 것이며 또 개인들의 불행만 점점 증가시키는 결과만 초래하겠지요.

그 후 정부 당국의 지시에 따라 우리들은 제주도로 이동해 왔지요. 부산에 있을 때는 피난민 구호소의 도움과 동생의 담배장사로 그럭저럭 살 수 있었으나 이곳에서는 각자 능력껏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 그래서 나는 일자리를 찾아 보았으나 본 도민보다 피난민의 수가 더 많은 이 전란 속에 그것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처음에 이 술집의 식모로 소개받아 일하기 시작했었죠. 그러나 술집 아줌마는 식모보다는 접대부로 일할 것을 권유했고,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살기 위해 이 직업을 시작했습니다.

접대부라도 자기 할 탓이겠지 생각했으나 역시 분위기가 문제였었고 또 나는 하나의 약한 여자였습니다. 이 생활에서 빠져나가 보려고 안간힘도 써 보았습니다만 여기를 떠나면 어디서 잠을 자고 밥을 얻어먹을 수 있겠습니까? 도리대로 되라는 자포자기 속에 돈만 벌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신병 훈련소에서 고행하는 동생에게 넉넉히 보낼 수 있는 돈만 벌고자 했지요. 이왕에 망쳐진 몸, 동생을 위할 수만 있다면 무언들 못하겠느냐고 마음먹고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돈은 고사하고 몸만 마쳐 가고 있습니다. 왜 나의 운명은 이렇게도 기구할까요? 왜 나는 이처럼 불행할까요?”

현은 더 이상 말을 계속하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옷고름으로 두 눈언저리를 닦고만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담배만 피웠다. 술기운도 점차 가시고 나는 맑은 정신으로 되돌아 왔다. 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막을 길 없는 동정심이 솟구쳐 올랐다. 그러나 그녀를 당장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한참 후 드디어 나는 입을 열었다.

“현씨, 당신의 사정을 깊이 동정합니다. 최선을 다해 도와 드리죠. 그런데 현씨가 아는 사람이 이 제주시에 있습니까? 예컨대 현씨를 자기 집에 데려다 보호해 줄 만한 사람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내가 현씨의 생활비를 도와 드리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모두 피난민 뿐일걸요.”

“그럼 내가 내일 사람을 찾아 보죠. 혼자 사는 할머니나 아주머니나 늙은 부부를 한번 찾아 봅시다. 내가 현씨의 생활비를 부담하죠. 그리고 현씨는 이런 생활을 한시바삐 청산해야 합니다.”

“태오씨는 참으로 착한 분이시군요. 만일 가능하시다면 아무 데도 좋으니 저를 데리고 가 주세요. 저를 어떻게 대우하고 취급하시든 상관 없어요. 그리고 아무런 책임감도 가지실 필요 없구요.”

현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얼굴을 붉혔다. 나는 현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나도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그녀의 제안이 내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기분을 거슬리지는 않았다. 다만 걱정스러웠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만 하나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나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 후 나는 다소 냉정한 어조로 대답했다. 나는 그 때 내 목소리가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이 시내에 당신을 데리고 나갈 만한 집이나 적당한 장소가 없습니다. 설혹 그런 게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는 몸입니다. 고향에는 사랑하는 약혼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태오씨의 결혼을 방해하지는 않을겝니다. 다만 이러한 천한 생활 환경 속에서 애정 없는 동물적 욕정의 이용물이 될 바엔 차라리 인정 어린 마음으로 저를 이해해 주고 동정해 주시는 분에게 다소나마 마음과 몸으로 봉사해 드리고 싶을 따름입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도 꿈도 이미 바랄 수 없는 이 시점에서 저는 다만 인간다운 따뜻한 동정 속에서 잠시나마 이 피곤한 인생을 쉬고 싶은 맘 뿐이에요. 태오씨, 이 불쌍한 여인을 이해해 주시고 넓으신 동정을 베풀어 주실 수는 없으실는지 요? 태오씨께서는 저를 어떻게 하셔도 좋아요. 태오씨에게 큰 부담만 안 된다면 저를 데리고 마음대로 어디든지 가 주세요.”

정말이지 난처했다. 현과 함께 이 술집을 나간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하는 것은 명백했다. 숙에 대한 사랑에 흠집이 생길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현의 말이 추하게 들리지도 않았고, 또 내 기분을 언짢게 만들지도 않았던 일이었다. 현의 지금의 기분이나 심정은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인간다운 이해와 애정 없이는 이 불행의 바다에서 고독이라는 쪽배를 타고 인생 항로를 가고 있는 이 불쌍한 여인을 구제할 수는 없었다. 숙은 나의 유일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나는 이 사랑을 희생시킬 수는 없었다. 인간의 삶에 우리의 힘으로만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운명의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운명적이라 부르는 것은 인간이 자기 행위를 합리화시켜 저지르는 실수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으며 따라서 선을 위한 일에도 질서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사실 악이란 질서의 파괴에서 비롯하니까. 그러나 나는 현의 이 불행을 외면하고 이 술집을 떠날 수는 없었다. 적어도 그녀에게 무엇인가 삶의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 줄 만한 것을 해 주어야만 했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역시 악의 유혹을 받지 않고서는 선을 행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의 선에는 이에 상응된 악의 위험이 따르는 법이다. 결국 선을 행하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며 거기에는 항상 악의 유혹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앞으로 예상되는 악의 유혹이 두려워 선의 실행을 외면하고 포기한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비굴함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경솔한 판단과 행동을 항상 경계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성과 양심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그렇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전망이 섰다. 현을 도와 주고 구원해 내기로 결심했다.

“현씨,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나에게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당한 돈이 있습니다. 그 돈으로 현씨 혼자서는 몇 개월 간 충분히 살 수 있을 겝니다. 내일 아침 그 돈을 갖고 다시 오겠습니다. 가난한 늙은 부부나 홀로 살고 있는 과부를 찾아봅시다. 이 길만이 현씨를 도울 수 있는 가장 놓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오씨의 그런 호의를 무조건 받아도 될까요?”

현의 표정은 감사의 기분으로 다소 밝았으나, 그녀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서운한 기색을 아련히 풍기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하얀 버선등을 손으로 매만지고 있었다.

“이런 전란 속에서 우리는 서로 올바르게 도와 주며 살아야 되겠지요. 그러나 선을 베풀고 남에게 도움을 줄 때 거기에는 조건이 따르면 안 되겠지요. 나는 이제 부대로 돌아가겠습니다. 내일 아침 다시 만납시다.”

나는 마루에 나와 앉아 군화끈을 매었다. 현이 뒤따라 나왔다. 내 철모를 두 손으로 바쳐 들고 그녀는 말했다.

“지금은 통행금지 시간인데…”

“우리 군인은 통행금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바깥 날씨가 춥군요…. 아, 참, 약주 한잔 대접해 드릴 걸 잊었네요. 날씨가 추운데 약주 한 잔 하시고 가세요.”

“술 한 잔요? 그럴까요. 곧 가져올 수 있다면 이 자리에서 한 잔 하지요.”

“그럼 잠깐만 앉아 계세요.”

현은 정종 반 병을 따끈히 데워 왔다. 간단한 안주도 곁들여 있었다. 현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는 앞에서 나는 술병을 한 손에 든 채 정종 반 병을 단숨에 다 마셔 버렸다. 빈 병을 쟁반 위에 얹자 현이 말했다.

“어머니, 그 술을 단숨에 마셔요?”

“술 맛이 참 좋습니다. 나는 술을 무척 즐기나 폭주가는, 더구나 광주가는 아닙니다.”

“그런 뜻에서 말씀 드린 것이 아니라…. 술을 좀 더 가져올까요?”

“오늘 밤은 그만 하죠. 그런데 앞으로는 간단히 현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아무럼요.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현, 고독해?”

나는 이 느닷없는 질문에 스스로 놀랐다. 어째서 갑자기 이런 말을 서슴지 않고 하게 되었는지 나 자신도 의아스러울 지경이었다. 나도 고독했다. 그런 만큼 현도 고독할 것이라고 미리 짐작해 버린 탓일까? 어쨌든 이 고독이라는 말은 현과 나의 감정을 더 가깝게 밀착시키는 지남철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임을 나는 이내 알았다. 그뿐만 아니라 고독이라는 말로써 현에 대한 내 내심의 비밀을 고백이라도 한 듯한 기분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꼈다. 사실 현은 내 고독한 감정을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또한 현의 곁을 떠나는 것이 서운하기도 했다. 현도 사랑스러운 여인이었다. 이런 생각은 내가 뿌리칠 겨를도 없이 마음 속으로 점점 더 깊숙이 파고 들었다.

“네, 고독해요. 고향을 떠나온 이후 태오씨의 인정 어린 동정 속에 지금처럼 마음 든든하고 행복하다고 느낀 때가 별로 없었고 또 지금처럼 고독을 느껴 본일도 없었어요. 행복이라는 감정은 늘 고독이라는 여운을 가져오는가 보죠?”

고독하다는 현의 대답이 정면으로 내 가슴을 헤치고 들어와 외로움에 젖어 있던 나를 마취시키고 있었다. 현의 얼굴이 달빛에 반사되어 유난히 희게 보였다. 그녀의 모습이 영화 장면처럼 내 시야에 한아름 안겨 들어왔다. 현도 역시 숙처럼 아름다웠다. 점점 흐트러지는 정신을 바로 가다듬으려고 그녀에게 냉수 한 그릇을 청했다. 그것을 단숨에 또 들이켰다. 번쩍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철모를 받아 쓰며 현에게 말했다.

“현, 사람은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할 때 흔히 고독을 느끼는가 봐. 진리라든가 선이라는 것은 본래가 고독한 노력을 인간에게 요구하고 있으니까….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저 적당히 살려고 할 때는 별 고독을 느끼지 않겠지. 그러나, 현, 오늘의 고독은 내일의 행복을 창조하기 위한 활력소가 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 우리는 이 고독을 극복해야만 해. 자, 그럼 내일 아침까지 안녕히.”

나는 말을 마치자 술집 대문을 향해 똑바로 걸어 나왔다. 뒤를 돌아다보지도 않았다. 현은 아무 말 없이 그곳에 오랫동안 서 있을 것이다.

계엄령 하의 통금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조용했다. 거리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움직이는 물체라고는 무엇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늘하고 죽은 듯이 고요한 밤거리를 거닐며 나는 현과의 대화를 하나 하나 회상해 보았다. 그리고 숙을 생각했다. 숙도 피난을 나와 혹시 현처럼 그런 불행한 처지에 빠지지나 않았을까 하는 데 생각이 접어들자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팠다. 상상마저 하기 싫었다. 그러자 갑자기 숙이 어느 술집에서 남자들에게 희롱 당하고 있는 장면이 불현듯 머리 속에 떠올랐다. “안돼, 안돼!” 하며 나는 거의 고함을 질렀다. 이 방정맞은 상상을 없애려고 인적 없는 밤거리를 뛰고 또 뛰었다. 그날 밤 부대에 무사히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좀처럼 오지 않았다. 숙에 대한 염려와 그리움 때문에….

아침 여섯 시 삼십 분, 총 기상과 함께 일어나 나는 내 배낭 속에 넣어둔 돈을 찾았다. 그러나 돈뭉치가 없었다. 원산 상륙 작전 이래 한 푼도 쓰지 않고 고스란히 모아 두었던 그 돈 전부가 없어졌다. 나는 즉시 내 돈이 도둑맞은 것을 알았고 또 그 놈들이 누구인지도 짐작이 갔다. 이틀 전부터 돈이 없다던, 철, 병, 훈 하사관이 수상했다. 철, 훈 하사관은 침실에 없었고 병 하사관은 침대에 누워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병 하사관의 멱살을 잡고 따귀를 몇 대 세게 내지른 다음 돈 내놓으라고 고함쳤다. 그는 아무 반항 없이 죄상을 순순히 자백했다. 그리고 철 하사관이 나머지 돈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알려 주었다. 아침 아홉 시경 어슬렁어슬렁 부대로 돌아오는 철, 훈 하사관을 병사 뒤로 끌고 가 주먹으로 발로 사정 없이 후려갈겼다. 나도 그들로부터 몇 대 얻어맞기는 했으나 술집에서 여자들과 밤을 새우고 돌아온 그들은 성난 내 주먹 앞에 급기야는 굴복하고 말았다. 나머지 돈을 돌려 받았다. 즉시 나는 현에게로 달려갔다.

오전 중의 술집은 한산했다. 몇 명의 아가씨들이 밤자리에서 흐트러진 머리를 빗지도 않은 채 마루에 나와 무언가 종알거리며 잡담하고 있었다. 그 모습들이 구역질 날 정도로 추해 보였다. 현은 자기 방 안에 있었다. 단정한 옷차림에 예쁘게 화장까지 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은 나를 보자 반가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험상궂어진 내 표정에 몹시 놀라는 것 같았다.

“어머니, 아니 태오씨, 무슨 일이 있었어요? 오른 쪽 귀 밑에 피가 흐르고 있어요. 혹시 어젯밤 일로 병 하사관과…”

“응, 철 하사관과 병 하사관을 죽도록 때려 주었지. 글쎄, 어젯밤 그 세 놈들이 내 돈을 훔쳐 나에게 인심을 썼지 뭐야. 아침에 일어나 돈을 찾아 보니 돈이 있어야지 그래서 잠자리에 누워 있는 병 하사관을 몇 대 때리니까 순순히 고백하더군. 그래서 부대로 돌아오는 그 두 놈을 때려 눕히고 나머지 돈을 빼앗았지.”

“가만히 앉아 계세요. 제가 상처를 닦아 드릴께요.”

현은 세숫대야에 따스한 물을 담아 왔다. 깨끗한 손수건을 물에 적셔 귀 밑에 흐르는 피를 닦아 주었다. 그녀의 불그스레 상기된 얼굴이 내 얼굴 가까이 다가왔고 따스한 입김이 내 오른 뺨을 스쳤다. 향긋한 화장 냄새와 함께 야릇한 현의 체취가 진하게 밀려 왔다. 그것은 자극적이었다. 그녀의 보드라운 손길이 내 오른쪽 귀 밑을 매만지고 있을 때 나는 속으로 거의 헐떡이고 있었다. 현의 이러한 어루만짐은 어머니의 애정과 누나의 친절과 숙의 사랑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좀 갸름한 얼굴, 넓고 시원한 이마에 새까만 눈썹을 가진 맑은 눈, 오똑한 코, 불그스레한 뺨에 장미빛 꽃잎 같은 입술, 현도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현은 이미 어젯밤의 자기 불행과 생의 비애를 한탄하며 울던 약하고 가련하고 절망에 빠진 여인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희망이 있었다. 어쩌면 자신이 사랑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한 남자의 사소한 상처까지 마음 아파하는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변모한 것처럼 보였다. 세숫대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와 내 앞에 마주앉았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현, 고마 와. 공연히 걱정만 끼쳤지?”

“아니에요. 오히려 저 때문에 태오씨만 피해를 입으셨군요. 앞으로 혹시 그들이 복수하지나 않을까요?”

“염려 마. 한라산에 올라가면 우리는 다시 친해질 테니까. 죽음에 직면하면 아무리 악인이라 해도 착해져. 그런데 돈이 조금 밖에 안되니 어떻게 하지? 이것만이라도 받아 둬.”

“아니에요. 그 돈은 태오씨께서 가지고 계시다가 쓰세요. 저에겐 돈보다 태오씨 보호가 더 필요해요. 태오씨의 우정과 정신적인 보호만 있다면 이젠 어디에 있어도 자신 있어요.”

“너무 쉽게만 생각하지 말고 이 돈을 받아 두었다가 좋은 기회가 생기면 이 술집을 나가 살도록 해. 그리고 동생에게도 좀 보내 주고. 자, 그럼 나는 부대로 돌아가야겠어.”

“점심식사라도 들고 가세요.”

“그럴 시간이 없어. 내일 출동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아. 그리고 마음이 약해지거나 고독할 때는 이것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천주님과 예수님과 성모께 기구해.” 하고는 현에게 내 묵주를 주었다.

“아니, 이것이 무엇이에요?”

현이 의아해하며 내게 물었다.

“이 염주는 무엇에다 쓰나요?”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염주가 아니고 묵주라는 거야. 묵주는 천주교 신자들의 일종의 염주이기도 하지.  우리는 이 묵주알을 세어 가며 우리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의 생애와 그분의 생애에 숨어 있는 성모 마리아의 사랑을 묵상하며 찬미하는 거야. 이 묵주는 부적(符籍)이나 신부(神符)같은 미신적인 물건이 아니라 거룩한 성물(聖物)이야. 이 묵주는 현에게 삶에 대한 용기와 밝은 내일을 기약해 줄 테니까?”

“그런 거룩한 성물을 저같이 천한 사람이 지니고 있어도 되나요?”

“예수님은 회개하는 죄인을 더 사랑하시니까… 예수님은 자기 죄를 반성하며 지은 죄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을 더 사랑하시지. 예수님의 거룩하심은 바로 우리와 같은 죄인을 위해 있는 것이니까. 예수님의 선은 우리들 인간의 악을 위해 있고, 우리의 악은 그분의 선 안에서 치유 받아야만 해.”

“태오씨는 그럼 이 묵주가 필요 없나요? 내일 한라산으로 출동하신다면서….”

“나는 또 딴 게 하나 있어. 염려 말고 곡 지니고 있어. 그 묵주는 원산상륙작전 때와 함흥 전선에서 나를 보호해 준 묵주였어. 앞날을 위해 현을 잘 지켜 줄 거야.”

“그런 귀한 것을 저한테 주세요?’

“나에게 귀한 것이니까 현에게 주지. 내 생명을 보호해 준 이 묵주는 현도 틀림없이 잘 지켜 줄 거야. 자, 그럼 잘 있어. 항상 용기를 잃지 말고.”

그 다음날 우리는 제2 공비 토벌작전을 수행키 위해 한라산으로 올라왔다. 그 동안 한 번의 교전이 있었으나 아무런 전과도 없었고 다만 한 명의 아군 부상자만 있었다. 현으로부터 잘 있다는 문안 편지도 받았다.

2월 하순경 한라산 산정에 많은 눈이 내렸다. 쌓인 눈 덕택에 눈 위에 남겨진 공비들의 이동 행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거처를 찾아내고 또 연이어 공격을 가했다. 그날 전투에서 공비 3명을 사살했으나 아군 측에도 2명의 전사자와 3명의 부상자를 내었다. 이 전투에서 병 하사관이 전사했다. 바로 내 옆에서 싸우다 그는 죽었다. 가슴 한복판에 관통상을 입고 쓰러져 피를 토하고 있는 ㄱ를 내 무릎에 안았을 때 그는 날더러 “개새끼!” 하고 한마디 내뱉듯이 말했다. 지난 날의 나를 용서해 달라고 말하자 그는 거친 숨결로 몇 마디 힘들게 중얼거렸다.

“태오 하사관, 그래, 자네 말이 옳아. 깨끗이 죽자던 자네 말 말이야. 자네의 하느님이신 예수님께 나를 위해 기도나 해 주게나.”

그리고 그는 내 품 안에서 숨졌다.

다음날 나는 박 중대장와 함께 제주시에 있는 공비토벌 사령부에 전우의 시체를 인계하기 위해 한라산을 내려갔다. 중대장이 사령부 장교들과 점심식사나 하자고 원유했으나 사양하고 나는 현을 찾아갔다. 현은 예기친 않았던 내 방문을 반겨 주었다. 우리 둘은 그 동안 지내온 얘기를 서로 나눴으나 나는 병 하사관의 전사는 알리지 않았다. 현은 군에 입대한 동생이 보낸 편지를 내게 보여 주었다. 동생은 대구시에 있는 육군부대에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동생의 소개로 이중령님 댁에 식모 겸 아이들을 돌봐 주는 일을 하러 가게 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뜻밖의 좋은 소식이군. 그럼 빨리 동생한테 가야지.”

현이 떠난다는 말에 갑자기 쓸쓸해졌으나 나는 내 감정을 억누르며 기쁜 듯이 이렇게 말했다. 현도 무언가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태오씨를 만나 인사 드리고 이곳을 떠나려고 했어요.”

“간단한 편지 한 장으로 이별 인사를 대신해도 좋았을 것을.”

“아니에요. 그 동안 짧은 시간이었으나 저를 도와준 태오씨의 은혜를 생각하며 편지 한 장으로 그냥 훌쩍 떠날 수는 없었어요.”

“……….”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보다도 이 곳을 떠나기 전에 태오씨를 뵈옵고, 태오씨의 너그럽고 평화로운 모습을 한 번 더 내 가슴 속에, 내 추억 속에 조각해 두고 싶었어요.”

“내 얼굴은 아름다운 여인의 추억의 대상이 될 만큼 잘 생기지 못했어. 항상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얼굴 중의 하나지…”

“아니에요. 남성적인 태오씨의 모습은 퍽 인상적이고, 또 내 마음에 무한한 신뢰심을 주고 있어요. 그리고 그 어떤 행복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해 줘요.”

그러면서 현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마치 예술품이라도 감상하듯 내 얼굴을 정면으로 빠안히 바라보았다. 잠시 후 현이 조용하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얼굴 전면에 띠었을 때 나는 가슴 속에서 강한 애정의 충동이 솟구치고 있음을 직감했다. 담배는 이런 기분의 부자연스러움을 잘 조절해 준다. 담배 한 모금을 한껏 빨아들여 한 아름의 짙은 연기를 현에게 내뿜었다. 현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연기 속에 멀어져 갔고, 현은 손으로 연기를 내저으며 몇 번 기침을 했다. 그리고 “장난이 심하군요” 하고 말하며 여전히 알 수 없는 신비스러운 미소로 나를 바라다 보고만 있었다.

“현, 부산 가는 연락선을 알아 보았나?”

“네, 오는 금요일 오후에 있대요.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에 있나 봐요.”

“그럼 그 선편으로 동생한테 가도록 하지. 나를 소원대로 보았으니까.”

“그럼 그렇게 하겠어요. 그런데 오늘 밤에 시내에서 쉬세요?”

“아니, 오후 네 시에  박 중대장과 함께 서귀포 주둔소로 돌아가야만 해.”

“시간이 없군요. 그럼 저와 함께 점심 식사나 하실 수 있겠어요? 이별의 점심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어요.”

“하고말고…. 현을 송별하는 뜻에서 내가 술 한 잔 사지.”

얼마 후 우리 둘은 밥상을 사이에 놓고 마주 앉았다. 현은 화장도 단정했고 옷차림도 깨끗했다. 현이 권하는 대로 사양 않고 술을 들이켰다. 현도 내가 권하는 술 두 잔을 받아 마셨다. 우리는 겉으로는 유쾌한 듯 서로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웃고 했으나, 두 사람의 표정에는 은연 중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곤 했다. 아무도 곧 헤어진다는 적막감이 순간순간 우리를 무겁게 내려 누르는 것 같았다.

점심 식사가 끝났다. 아직 오후 한 시 반이었다. 그러니까 두 시간 반 후면 나는 현을 떠나 한라산으로 올라갈 것이고, 현은 며칠 후 제주도를 떠나, 일생 영원히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더 쓸쓸해졌다. 벽에 걸려 있는 시계 판의 열두 개의 숫자가 열두 개의 눈이 되어 우리를 지켜 보는 듯했다. 그리고 똑딱거리는 초침소리는 무엇인가를 재촉하며 우리를 어느 한 곳으로 몰아놓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시계의 초침소리만 유난히 더 크게 조용한 방안에 울려 퍼졌다. 팔목 시계를 들여다보며 “시간이 참 빠르기도 하군…”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현은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바라보며 초조한 듯 물었다.

“태오씨를 볼 수 있는 시간도 이젠 두 시 간 밖에 남지 않았군요…. 오늘 꼭 산성 주둔소로 올라가셔야만 되나요?”

“그럼, 박 중대장님이 네 시경에 나를 데리러 차를 가지고 이곳으로 올 거야.”

우리 둘은 또 말이 없었다. 잠시 후 현은 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물었다.

“태오씨, 태오씨의 애인인 숙씨 예뻐요? 물론 굉장한 미인이겠죠?”

“사랑할 땐 누구나가 다 애인은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법이야. 숙은 물론 아름다운 여인이고 현도 아름다워.”

“지금 숙씨는 어디 있어요?”

“작년 12월에 원산에서 헤어진 후 아직 소식을 못 듣고 있어. 아마 남한으로 피난 왔을 거야.”

“태오씨도 이 전쟁의 희생자시군요?”

“전쟁하는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 치고 희생자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을라고….”

“제가 숙씨의 거처를 알아보죠.”

“………………..”

나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현의 이 제의가 한편으로는 고마우면서도 또 어쩐 일인지 섭섭하기도 했다. 숙을 다시 만나게 되는 날 현과는 영원히 헤어져야만 하리라는 생각이 나의 이 모순된 감정을 부채질했는지 모른다. 다만 현이 내 곁에 오래오래 있어 주기만 을 바라는 고독한 희망이 전신을 전류처럼 감싸 돌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현은 몸과 마음이 다 아름다운 여자였다. 침묵 속에서 시간은 또 날카롭게 흘렀다. 벽시계의 초침소리만 조용한 방 안에 충만했다. 현이 얼굴을 물들이며 무언가를 결심한 듯이 빛나는 시선을 내게 보내며 수줍게 입을 열었다.

“태오씨, 태오씨를 만나게 된 것을 나는 행복하게 생각해요. 그 동안 여러가지로 저를 도와 주신 그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겠어요.”

“나도 현을 만난 석을 기뻐해. 더군다나 전쟁 중의 이 비참한 현실과 고독 속에서 마음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아름다운 현을 만난 것을 나도 행복스럽게 생각해. 그리고 내가 현에게 도움을 주었다면 현을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은 즐거울 거야.”

“나도 태오씨 곁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었어요. 그러나 이곳을 떠나야만 한다니 슬퍼지는군요.”

“………………..”

나는 말 없이 현을 바라보기만 했다. 현은 말을 계속했다.

“태오씨는 내가 바랄 수 잇는 행복의 상징이십니다. 태오씨의 인정 어린 보살핌은 삶에 대한 용기와 희망을 나에게 주었어요. 그러나 이 용기도, 이 희망도, 이 사랑의 모습도 실현할 수 없는 꿈의 향기로만 내 가슴 속에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태오씨, 저는 이 끓어오르는 애정의 샘을 막을 길 없군요. 내 이성의 방파제를 넘어 밀려오는 이 사랑의 조수(潮水)에 나의 온 몸과 마음은 휘말려 들고 있어요. 태오씨, 내가 태오씨를 사랑한다면…”

 나는 여전히 묵묵히 앉아 있었다. 언젠가는 현의 이러한 사랑의 고백을 듣게 될 것이라고 나는 예감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이러한 고백을 속으로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떨리는 목소리로 사랑을 고백하는 현을 바라보며 나는 기다리고 찾고 있던 바로 그것을 획득한 듯한 만족감을 뿌듯이 느꼈다. 사실 현에 대한 나의 태도와 자세는 순수한 동정의 범위를 벗어나 애정의 형태를 띠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의 이러한 내적 변모를 물리치고 싶은 생강은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몸과 마음을 나만이 완전히 독점하고 싶었다. “현, 나도 너를 사랑해!” 하는 이 말이 가슴 속에서 끊임없이 출렁거리고 있었으나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현이 말을 계속했다.

“태오씨,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글쎄, 잘 모르겠어…. 그런데 현은 날 사랑해?”

“네, 태오씨를 진정 사랑해요.”

“사랑이 도대체 무어라고 생각해? 현이 나를 진정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도 널 사랑해” 하는 내 내면의 본심과는 달리 내 이성은 엉뚱하게도 현이 고백한 사랑의 이치를 따지고 있었다.

“나는 사랑이라는 철리(哲理)에 말마디를 붙일 만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해요. 그리고 태오씨에 대한 제 애정을 분석할 만한 능력도 제겐 없어요. 그러나 태오씨에 대한 제 사랑을 말로 표현하라면 태오씨 곁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은 이 소망이라 할까요? 태오씨는 저에게 무한한 신뢰와 기쁨을 주고 계세요. 태오씨 곁에서 태오씨를 도와 드리고 또 봉사하며, 제 나름대로 태오씨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 뿐이에요. 이런 것들이 제 사랑의 모습들이라고 말씀 드려도 좋을는지요?”

현의 꾸밈없는 고백을 들으며 나도 역시 현을 사랑하고 있음을 숨길 수 없었다. 현과 함께, 과거도 미래도, 그리고 일체를 망각한 상태에서, 오직 <사랑의 진실>만을 공유하고 싶었다. 종교가 가르치는 윤리적 기준을 벗어나 오직 <삶의 기쁨이며 진리>인 이 사랑 속에 나 자신을 집어 던지고 싶었다. 사랑은 사랑만을 위해 있으며 사랑하는 거기에는 악이 존재할 수 없다고 믿었다. 사랑에는 사랑만이 있을 뿐이며, 사랑은 진리요, 선이니까… 나는 점점 더 대담해졌다. 이윽고 나는 현을 내 앞으로 와락 끌어당겼다.

“그래, 현, 나도 현을 사랑하고 있어…. 우리 둘 사이의 사랑에는 거짓과 악이 있을 수 없어.”

시간이 흘렀다. 나는 현을 포옹했고 그녀는 내 품에 안겨 거친 숨소리를 가다듬으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태오씨, 저는 지금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해요. 태오씨가 제 첫사랑이에요. 이성(異性)에 대한 철이 들기 시작한 이래 내 마음 속에서만 자라온 님의 본체를 태오씨한테서 발견했어요. 그러나 이 행복도, 마음의 님도 흐르는 시간 속에 하나의 추억으로만 남아 있겠지요. 우리 둘이 사랑하는데, 같이 살 수만 있다면…”

“현, 현이 나를 사랑하는 그만큼 나도 현을 사랑해. 동생한테 가지 말고 여기서 나와 같이 살아. 방 하나 구해 놓고 우리 같이 살면 되잖아?”

땅으로 끈끈해진 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나는 말했다. 보드라운 촉감이 손바닥에 맴돌았다. 야릇한 현의 체취가 뿌듯이 향기롭게 밀려 왔다. 현을 영원히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불처럼 끓어 올랐다. “현!” 하고 부르며 내 가슴에 파묻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일으켜 두 손으로 감쌌다.

“태오씨는 참으로 너그러우세요. 태오씨의 그 친절과 사랑이 저를 더욱 슬프게 하는군요. <너 같은 계집년하고 같이 살아?> 하며 내 뺨이라도 한 대 갈기면 차라리 그것을 고맙게 여기겠어요. 그러나 당신의 사랑은 저를 한없이 울리기만 하는군요.”

현의 두 뺨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내 뺨을 현의 뺨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현, 사랑이란 결합이야. 따라서 결합이 없는 사랑은 이니 사랑이 아니고 허위야. 둘이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데 같이 산다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 아냐?”

“정말이지 둘이 이렇게 같이 살 수만 있다면…. 만일 당신과 함께 살 수만 있다면 저는 더 바랄 게 없을 거에요. 그러나 태오씨는 저 때문에 불행해질 거에요. 숙씨에 대한 사랑과 이 사랑에 대한 추억이 당신을 평생 괴롭힐 거에요. 저는 당신을 위해 이곳을 떠나야 해요.”

“아니야, 현. 사람은 사랑하고 있을 때 행복한 법이야. 우리 둘이 사랑하면, 아니 진정 사랑하고 있는데, 무엇이 두려워 여길 떠나겠다고 그래?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나는 현을, 그리고 현은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거야. 나는 현과의 행복에 대해 자신 있어!”

“전 지금 비록 천한 접대부지만 여인이라는 이 운명을 망각할 순 없어요. 남편으로부터 배신 받은 아내들의 고통과 받아야 할 정당한 사랑을 딴 여자에게 빼앗긴 그녀들의 슬픔을 저는 잘 이해하고 동정해요. 그리고….”

“현, 잠깐만!”

나는 현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런 마음 약하고 쓸 데 없는 소리 하지 마.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법이야. 그리고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어.”

“아니에요. 사랑 자체는 무한하나, 사랑을 하는 인간은 유한한 운명을 지니고 있어요. 그래서 인간은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없고, 또 거기에 비극이 있게 되는 법이죠. 그래서 저는 당신을 떠나려 하며, 제가 사랑하는 남자의 애인이나 아내의 행복을 해치지 않으려 해요.”

“아니야, 현. 현이 잘못 생각하고 있어. 물론 사랑한다고 만사가 다 순조롭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나 할 수 있는 성실과 노력을 다 바칠 때 우리의 행복이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나는 현을 사랑해. 진정 사랑해!”

“말씀만이라도 감사해요. 당신의 성실을 저는 충분히 이해해요. 그러나 저는 떠나야만 해요. 당신을 떠난다는 것, 그리고 태오씨가 영원히 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어쨌든 슬프고 괴로운 일이에요. 태오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저를 애인처럼, 아니 아내처럼 사랑해 주세요. 당신의 아내처럼 이 현을 한 번만이라도 안아 주세요.”

현은 눈물로 축축히 젖어 있는 얼굴을 바로 내 눈 아래로 치켜들었다. 나는 현을 두 팔로 강하게 끌어안았다. 바고 그때였다. 방문이 열리며 아가씨 한 사람이 들어오면서 소리쳤다.

“아, 미안해요. 용서하세요. 그렇지만 중대장님이 문 밖에서 손님을 기다리신다고 이르라고 저를 보내셨어요. 중대장님은 긴급한 일로 손님하고 같이 곧 부대로 돌아가셔야 한대요.”

시계를 보았더니 두 시 반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거의 군인의 본능적 동작으로 철모를 집어 들고 방에서 나갈 채비를 차렸다. 현은 얼굴을 숙이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현, 동생한테 가지 마. 다시 올게, 나를 기다려 줘. 방 하나 구해 놓고 우리 같이 살면 되잖아?”

방문을 나서며 나는 다짐하듯이 덧붙였다. 역시 현은 아무 말이 없었다.

과연 박중대장은 지이프차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 움직이자 중대장은 나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태오 하사관, 자네 용무 다 끝났나? 그런데 자네 표정이 왜 그 모양인가? 예정보다 출발을 앞당겨 하여간 미안하네. 내가 새로운 작전을 구상했는데 그것을 오늘 저녁으로 각 소대장들과 검토해야겠네. 그래서 출발을 앞당긴 거네. 하여튼  젊은 애인들을 위해 전쟁이 하루 빨리 끝나야 할 텐데…”

현이 제주시를 떠난 바로 그날 우리는 한라산에서 공비들과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두 주일 후 현으로부터 대구 우편 소인이 찍힌 주소 없는 펴지 한 통을 받았다. 현은 감사한다는 말과 무사히 도착했으며 자기 생활에 만족한다는 말 등을 써 보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로 편지의 말미를 짓고 있었다.

<이제 다시는 태오씨한테 펴지 하지 않겠어요. 태오씨의 친절과 우정을 결코 잊지 않을 거에요. 태오씨! 숙씨와 함께 살아가시는 동안 내내 행복하시기 만을 기원해요. 태오씨, 안녕히 계세요.>

 

 

 

 

 

제5장

전쟁 속의 두 여인

 

3월 말경이 되자 한라산 산정을 덮고 있던 눈도 다 녹았고, 나뭇가지에는 파릇파릇 새싹이 돋기 시작했다. 눈이 녹으면 한라산에서의 공비 토벌전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공비들의 이동 행적을 발견할 수 없는데도 맹목적으로 그들을 찾아 다닐 수 는 없기 때문이다. 눈은 공비들의 거처를 안내해 주는 좋은 길잡이였다. 그뿐만 아니라 나뭇잎들이 새로 돋기 시작한 밀림지대에서 30여 명의 소대 병력이 행동한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었다. 5 미터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밀림지대에서 공비들과 접전한다면 도리어 아군의 총에 맞아 아군이 죽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35명의 공비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고 일단 군.경.민. 합동 공비 토벌작전을 끝맺었다. 포로가 된 공비들의 진술에 의하면 많은 공비들이 이미 일본으로 도주했거나 밀항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군은 27명의 전사자와 13명의 부상자를 냈다. 우리는 아군 전사자를 위한 합동위령제를 지냈다. 군.경.민을 대표하는 많은 고관들이 참석하여 말자랑이나 하듯 애국적인 조사(弔詞)를 수 없이 되풀이 했다. 그날 나는 병 하사관의 유골 상자를 안고 식전에 참석했다. 지난 날 현을 사이에 두고 다투던 모습들이 영화 장면처럼 화안히 떠올라 왔다. 그에게 미안했다. 그가 섲사하던 날 내 무릎 위에 누워 나를 향하여 <개새끼!> 하고 부르짖던 그 외침이 메아리 되어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병 하사관, 용서해 주게. 지난 날의 나쁜 감정을 풀고 편안히 쉬게. 자네 부탁대로 자네를 위해 천주님께 기구하는 것을 잊지 않겠네. 그리고 이 다음 나도 자네처럼 저승의 사람이 될 때 다시는 그런 짓 않겠네. 용서해 주게.”

공비 토벌전은 끝났으나 전우의 유골 상자를 안은 내 가슴은 평온할 수 없었다. 머지않아 나도 이런 나무상자 속에 한 줌의 재가 되어 어느 전우의 품에 안기리라 생각하니 그의 죽음은 바로 나의 죽음을 예고해 주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죽음이란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 해도 이 전쟁터에서 20대의 젊은 나이로 죽기는 차마 싫었다.

아군 전사자를 위한 위령제가 끝난 다음 날 공비토벌 대대는 해산되고 나는 27개의 유골 상자를 당시 진해에 있던 해병대 사령부에 이송하라는 출장 명령의 받았다. 나는 제주도-부산 간의 정기 화물 여객선 선실에 유골 안치소를 마련하고 대원 3명과 함께 진해를 향하여 출발했다.

여객선이라지만 본래가 화물선이었기 때문에 선실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객들은 갑판상에 적재된 화물 위에 적당히 자리를 마련해 앉았다. 3월 말의 바닷바람은 쌀쌀했고, 여객들은 모포로 혹은 이불로 몸을 두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여객들은 거의가 다 가족이나 친척을 찾아 부산으로, 대구로 정처 없이 떠나는 피난민들이었다.

제주 항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늘에는 먹구름이 덮이기 시작했고 이윽고 해상에도 거친 파도가 너울거리기 시작했다. 뱃머리에 부딪치는 파도는 부서져 물보라가 되어 갑판 위를 덮치곤 했다. 배는 파도에 쉴 새 없이 요동했다. 나는 바람을 쏘이러 선실에서 나와 조타실로 올라갔다. 거만치 수녀님 두 분이 파도 물에 옷을 적신 채 오돌오돌 떨면서도 손에 묵주를 쥐고 열심히 기구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수녀님들께로 쫓아갔다. 내가 천주교 신자라는 것을 밝히고 나의 출장 이유를 설명한 다음 선실에 들어가 쉴 것을 권유했으나 수녀님들은 나의 호의를 거절했다. 도리어 나를 경계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갑판으로 되돌아와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바다생활을 좋아한다. 바다의 고독과 낭만을 사랑한다. 소금기가 있는 바다 바람은 또 얼마나 상쾌한 것인가? 숨가쁘게 헐떡거리는 뱃머리에 서서 뱃전에 부서지는 파도를 온 몸에 받을 때 나는 그 어떤 쾌감까지 느낀다. 지난 날의 해군 생활이 그리웠다. 이런 감상에 젖어 지난 날을 회상하고 있을 때였다. 갑판 위에 모포로 몸을 덮고 있던 한 젊은 여인이 벌떡 일어나 비틀거리며 기어가더니 파도가 쉴새 없이 휩쓸고 있는 난간을 잡고 토하기 시작했다.

“안돼! 위험해!”

내가 그녀를 붙잡았을 때 파도가 우리 둘을 덮쳤다. 그녀를 안고 선실까지 무사히 돌아왔으나 그녀는 배 멀미에 취해 거의 정신이 없었다. “나 좀 살려 줘! 나 죽겠어!” 하고 연방 헛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젖은 그녀의 겉옷을 벗기고 모포로 그녀의 몸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내 호의를 무시한 수녀님들이 밉기는 했으나 그들이 고생하는 것이 보기 딱해 거의 강제로 선실로 모시고 와 그 여인과 함께 쉬게 했다.

선장은 점점 심해지는 폭풍을 피해 항로를 변경하고 욕지도에 우선 기항했다. 나는 경찰들의 도움을 받아 대부분의 선객들을 여관이나 개인 집에 배당해서 쉬게 했다. 나는 유골이 안치된 선실에서 수녀님들과 또 그 연인과 함께 밤을 지내기로 했다. 수녀님은 잠시도 쉬지 않고 허리에 매달린 묵주알을 굴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선원이 갖다 주는 저녁밥을 먹은 다음 수녀님들은 나에 대한 경계심을 버리고 나오 친해졌다.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우리는 화투놀이를 하며 피난생활, 고향 이야기, 전쟁에 얽힌 화제 등을 서로 나누었다. 아까 난간을 잡고 토하던 그 여인도 이젠 정신을 차리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내가 원산 상륙작전과 함흥 전투와 공비 토벌 등의 전쟁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있을 때 그 여인은 갑자기 나를 보고 “태오씨가 아니세요?” 하고 물었다. 놀란 표정으로 그렇다고 대답하자 자기는 나를 원산 성당과 숙의 집에서 몇 번 본 일이 있는 숙의 친구, 옥이라고 했다. 자세히 그녀를 들여다보니 안면이 있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알아볼 수 없게 변한 그녀의 모습에 나도 놀랐다. 피난생활에 무척 시달린 탓인지 여학생 시절이었던 불과 5개월 전의 그녀의 모습을 찾을 길이 없었다. 30대의 고생 많은 부인의 모습이었다. 하여튼 숙의 친구를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 수녀님들 앞에서 숙의 소식을 묻는다는 것이 어쩐지 쑥스러워 나는 옥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밤공기는 좀 싸늘했으나 우리는 부둣가를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옥씨는 용케 피난하셨군요?”

“네 국군이 원산에서 철수할 때 원산 부두에서 만난 국군 장교를 따라 나 혼자 남하했어요.”

“혹 숙의 소식을 알고 계십니까?”

“네. 그러나 주소는 몰라요.”

“숙도 어머니랑 함께 남하했나요?”

“나보다 사흘 앞서 미군 종군 신부님이 마련한 피난선을 타고 내려왔어요. 그 후 부산에서 다시 만났고 같이 제주도로 피난해 와 성산포에서 함께 살았어요. 그러다가 약 일 주일 전에 어머니랑 대구로 오빠를 찾아갔어요.”

“몇 년 전에 남하했다는 그 오빠기 대구에 살고 있었군요.”

“육군 대위로 일선에서 싸우다가 부상당하여, 지금 대구 육군병원에 입원 중이란 소식을 듣고 그리로 갔지요.”

숙도 역시 제주도에 있었다는 말을 듣자 이유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성산포라면 공비 토벌작전 중 우리 중대가 여러 번 지나다닌 곳이 아니었던가! 조그만 섬 안에, 그것도 같은 읍 내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도 숙을 만나지 못했다니 그 얼마나 분한 일인가! 이런 것을 두고 운명이라 부르는 것인지…. 그러나 나는 숙이 남하해서 무사히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다. 더구나 혼란을 피해 가족과 함께 몸 성히 지내고 있으려니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고, 역시 천주님께 감사 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숙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축축히 습기 찬 부둣가의 밤공기는 차가웠다. 인적이 없는 밤거리에 우리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일정한 리듬을 타고 조용히 번져갔다. 잠시 후 옥이 춥다고 했다. 나도 등이 차가워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부둣가 어느 술집에 들어가 조그만 방 하나를 차지하고 간단한 음식과 술을 청했다. 옥은 내가 권하는 술을 한 잔 사양 없이 받아 마시며 그 동안의 숙과의 피난생활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숙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우리는 할 말이 없어진 사람들처럼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것이 쑥스러워 이제는 옥의 피난 생활을 묻기 시작했다.

“지금 옥씨는 어떻게 생활하고 있습니까?”

“생활이란 말이 나에게는 과분한 것이나… 그저 이렇게 피난살이에 쫓겨 그럭저럭 살고 있지요.”

옥은 입가에 쓸쓸한 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지금 어디로 가는 중입니까?”

“부산으로요.”

“부산에는 혹시 친척이라도 계십니까?”

“아뇨, 이남에는 친척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어요. 나를 데리고 온 국군 장교님으로부터 부산으로 오라는 통지를 받고 찾아가는 중이에요.”

“그럼, 두 분은 결혼하셨나요?”

“결혼이라고요? 이 전란 중에 결혼이란 것이 따로 있나요? 같이 살면 그것이 결혼이지요, 뭐….”

“아니 그래도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왜 그럴 수가 없겠어요? 요즘 사람들은 거의가 다 그렇게 살고 있는걸요.”

“그럼 옥씨는 그 장교를 사랑하고 계십니까?”

“사랑이라고요? 사랑 이전에 내 생활에 필요하기 때문에 그저 살고 있지요. 다시 말하면 살기 위해 사랑한다고 할까요.”

“사랑이 생활의 도구가 되고 있군요…”

나는 쓸쓸한 기분을 억누르며 말했다. 정말 허전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그 당시 나의 인생관에 비추어 본다면 사랑 없는 결혼생활은 상상할 수 없었다. 설사 창녀와 하룻밤을 지낸다 해도 사랑의 감정이 없는 이성행위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할 때였다. 살기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같이 살고 있다는 옥의 말은 나에게 놀라움을 갖다 주었다. 옥은 나의 이러한 내심의 경악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기분으로 말을 계속했다.

‘그럼 어떡합니까? 할 수 없죠. 서로가 필요해서 서로를 이용하는 것이죠.”

“그게 무슨 말이죠?”

“그 장교는 부인이 있는 사람이고 아이들까지 있어요. 그리고 그분은 본부인과 이혼하고 저랑 결혼할 만한 사람도 아니어요. 나 자신도 그것을 바라고 있지 않고요. 그러나 나는 그분을 이용하죠.”

“그럼 언젠가는 그 장교가 옥씨를 배신하리라고 상상해 본 일이 있습니까?”

“우리 둘 사이에는 배신이 없어요. 사랑이 없는 곳에 무슨 배신 따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분이 언젠가는 나를 버릴 것을 대비해서 그분에게 마음껏 봉사해 주고 기쁘게 해 주는 반면 그분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있는 중이지요. 나 같은 입장에서 살기 위해 밤거리 여인이 되어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몸을 파는 것보다는, 한 남자에게 마음껏 봉사하고 받은 보수가 더 낫지 않겠어요?”

“삶의 터전이란 무슨 의민가요?”

“돈을 뜻해요. 나는 지금 돈이 필요해요.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요즈음 내 입장이에요.”

“돈이 그렇게도 필요하십니까?”

“그러믄요. 나에게 있어서 돈이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 없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없으면 죽게 되는 절대적인 것이에요.”

“그래요?….”

“제 말을 태오씨는 믿기 힘든가 보죠?”

“믿는다는 것은 체험에서 오는 일종의 확신이기 때문에… 나는 아직 옥씨가 말하는 그 정도로 돈의 필요성을 절감해 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돈이란 나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말하자면 의,식.주의 현실적 생활을 완전히 지배하는 신(神)과 같은 존재죠.”

“옥씨는 살아야 한다는 구실 아래 돈을 신격화시키고 있군요.”

“살아야 한다는 이 엄숙한 진리 앞에 돈은 하나의 수단이겠으나 살다 보면 수단이 목적 그 자체로 변질될 때도 흔히 있죠.”

우리는 술집을 나와 배로 돌아왔다. 수녀님 두 분은 주무시지도 않고 열심히 묵주신공을 하고 계셨다. 나는 선원실을 하나 빌렸다. 그러나 옥과의 대화가 마음을 무겁게 짓눌러 잠이 좀처럼 오지 않았다. 숙의 신변까지 염려스러웠다. 숙은 지금 어머니, 오빠와 함께 살고 있어서 무사하리라고는 생각되지만, 이 전란 속에서 숙도 현이나 옥과 같은 비참한 생활환경을 운명처럼 물려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이 전쟁이 한없이 저주스러웠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생명을 잃고, 가족은 헤어지게 되었으며, 또 수 없는 고아를 만들어내고, 젊은 여인들을 밤거리로 내쫓는 이 전쟁, 생각할수록 울분이 솟구쳤다.

그 다음날 아침 닻을 올려 부산으로 향했다. 날씨는 어제와는 달리 청명했고, 바다도 고요했다. 어제의 배 멀미를 잊은 듯 피난민 선객들은 갑판 우에서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수녀님들은 묵주신공을 올리기에 바빴고, 옥은 선객 송에 섞이어 무엇인가 열심히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부산에 도착하자 옥은 아무런 인사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두 수녀님들은 나에게 예수님의 성심상본 한 장을 주시며 나를 위해 기구해 주겠노라는 말씀과 함께 옥을 조심하라고 귀띔을 해 주고 가셨다.

우리 일행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진해 해군병원 앰블런스에 27개의 유골상자를 싣고 진해로 향했다. 무엇인가 잃어버린 듯 어쩐지 허전한 기분이 들어 군복 잠바 윗주머니를 만져보았더니 그 안에 들어 있던 돈이 몽땅 없어졌다. 어젯밤 옥의 잠자리가 변변치 않아 내 잠바를 주어 덮고 자게 했었다. 그때 <지금 나는 돈이 필요해요. 돈을 위해서는 무엇이나 할 수 있어요> 하던 옥의 말이 바람을 타고 자꾸자꾸 내 귀를 스쳐가는 듯했다. 출장 공금이 아닌 내 개인 돈이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했으나 기분은 좋지 않았다. 특히 옥이 숙의 친구라는 점에 더 불쾌해졌다. 그러나 전쟁만 없었더라면 옥도 가정에서 사랑을 받고 살고 있는 귀여운 아가씨였을 텐데, 무엇이 그 여인을 타락하게 만들었을까 하고 생각하니 전쟁에 대한 증오를 더욱더 물리칠 수 없었다. 옥에게는 차라리 동정이 갔다. 그리고 전시하의 이 비정상적인 생활에서 옥의 말대로 서로를 필요로 해서 서로를 이용하는 삶 안에 사랑이 있을 리 없고 사랑 없는 삶이란 바로 타락 그 자체임을 한 번 더 절실히 깨달았다.

진해 해병대 사령부에서 유골 인계식이 끝나자 27개의 유골 상자는 사령부 뒷산에 있는 절에 안치되었다. 출장 임무가 끝나자 나는 해군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친구를 찾아보고 싶었다. 약 10개월 전 내가 입원하고 있을 때와는 병원 분위기가 무척 달라져 있었다. 입원 환자들은 그때 보다 수적으로 훨씬 많았으나 병원의 의료시설을 비롯해 군의관과 간호원의 수도 들어났고, 병원 구석구석도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애국부인회에서 동원된 부인들과 여학생들이 친절한 미소로 정성껏 봉사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나는 친구 영민을 찾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영민은 지뢰폭발로 인하여 오른쪽 다리가 절단되어 비관 끝에 자살을 기도했었다고 했다. 그는 병원 안뜰의 분수대가 있는 연못가에 앉아 금붕어들이 꼬리 치며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나는 반가워 “영민이!” 하고 부르며 그에게 뛰어갔으나 그는 나를 한 번 흘끗 쳐다볼 뿐 그냥 계속 금붕어만 바라다 보고 있었다. 그는 나의 방문에 아무런 관심도 흥미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의 이런 무표정한 태도에 몹시 놀랐다. 그이 옆에 앉아 다시 한 번 더 불러 보았으나 그는 마치 석고상처럼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앉아만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과 손톱은 자랄 대로 자라 때까지 기어 있었다. 얼굴도 몇 달 동안이나 세수를 하지 않은 사람처럼 꾀죄죄했다. 이윽고 나는 그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소리치듯이 말했다.

“영민이 나야 날세. 태오 하사관일세. 원산 상륙작전 때 배 안에서 만났던 태오 하사관이네. 그래, 나를 잊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자네를 만나러 일부러 왔는데…”

그는 정말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한 번 흘끗 보더니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나를 더 이상 성가시게 만들지 말라니까요.”

나도 기분이 상한 듯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이 사람아, 그래 내가 자네를 성가시게 하고 있단 말인가?”

“왜 나를 자꾸만 귀찮게 만들어요?”

그도 마치 성난 사람처럼 음성을 높였다. 나는 더 이상 말을 계속할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이러한 태도를 예기치 못했었고 그의 변한 모습과 특히 그러한 심리적 변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귀찮은 듯이 오른쪽 다리가 없는 자기 몸을 나무 의족에 의지하고 절뚝거리며 병실로 들어갔다. 그이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져옴을 느꼈다. 눈물이 글썽거리는 내 시야에는 또 영민이가 부상당하던 장면이 화안히 떠올랐다. 그가 한없이 불쌍했다. 나도 영민이를 따라 병실로 들어갔다.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여전히 정신 나간 사람처럼 창 밖의 푸른 하늘만 멍하니 바라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옆에 앉으며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영민이, 자네가 보고 싶어 왔네. 원산으로 향하던 상륙함에서 우리가 서로 만난 것은 세 시간도 채 못 되는 짧은 시간이었으나, 나는 늘 자네를 생각해 왔네. 부상당해 후송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네와 언젠가 다시 만나 우리의 청춘과 인생을 한 번 더 얘기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반드시 올 것이라 믿고 기다려 왔네. 나는 자네를 보고 반가운데 자네는 웬일인가?”

“아무 일도 아닙니다. 그저 이렇게 있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그래서야 되겠는가?”

“성한 사람들은 위로라는 미명 아래 나를 왜 이다지도 괴롭히는지 모르겠습니다. 두 다리가 멀쩡해 걸어 다니며, 웃고, 말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을 이젠 보기조차 피곤할 따름입니다. 나를 동정하는 ㄱ 얼굴이 이젠 싫어졌습니다.”

“영민이, 자네의 그 심정을 나도 이해하네. 약 10개월 전 나도 자네처럼…”

그때 영민은 내 말을 갑자기 가로채며 “제발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십시오!” 하고 고함을 지르며 침대에 쓰러졌다. 더 이상 그와 이야기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영민에게 그 어떤 용기와 기쁨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말해 주어야만 했다. 한참 동안의 침묵이 흐른 다음 나는 서울 탈환 때 영민의 총에 맞았다는 그 처녀를 생각해 내고 그녀의 소식을 묻기로 했다. 그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끄집어내기 위해 그날 밤차로 나는 서울로 올라갈 것이라고 말하며 은근히 그녀의 안부를 물었다. <서울>이라는 말을 듣자 그는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 나를 한동안 빛나는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마침내 말을 하기 시작했다.

“태오 하사관님! 정말 오늘 밤 서울로 올라가십니까?”

“응, 대구에 잠깐 들러 용무를 마친 후 서울로 올라가 이모님댁을 방문할까 하고 있네. 그런데 참 그 처녀의 소식은 듣고 있나?”

“그 일에 관해서….,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그 일에 관한 것이라면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주겠네. 무엇이든지 들어 줌세.”

“정말이지 그녀의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그녀에 대한 죄책감이 항상 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녀가 무사히 살아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나는 편안히 죽을 수 있을 텐데요…”

“이 사람아, 왜 죽는다는 이야기를 하나? 서울 가면 그녀를 찾아봄세. 그리고 자네에게 소식을 전해 주지.”

옥을 만나기 이전에는 서울 이모님이나 방문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숙의 소식을 듣자 우선 대구로 먼저 가 그녀의 거처를 수소문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감돌기 시작하는 일종의 희망과 기쁨의 빛을 보고는 그녀로부터 그 어떤 구원의 손길이 영민에게 올지도 모른다는 예감으로 대구에서 보내는 시간을 절약해서라도 서울에 꼭 다녀오기로 결심했다.

그날 늦은 오후 대구에 도착하여 육군병원을 찾았으나 막연했다. 수천 명의 부상병 중에 이름도 모르는 숙의 오빠를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고향이 원산이요. 성이 김씨란 것 외에는 전혀 아는 게 없는 사람을 찾아 달라는 나를 오히려 정신병자 취급을 했다. 병원 접수실에서 한 시간 이상이나 통사정을 했으나 애타는 내 심정을 이해해 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위병 사령이 와서 나를 병원에서 내쫓았다. 이 하늘 아래, 그것도 대구라는 이 좁은 땅 안에서, 어딘가에 살고 있을 숙을 찾을 길 없다니.. 분하기도 하고 숙의 오빠의 이름조차도 모르고 있는 자신이 바보스럽고 저주스럽기만 했다. 혹시나 숙을 길거리에서라도 만날 수 있을까 하고 무작정 밤거리를 헤매었으나 실망 속에 고독감만 더해가고 피곤하기만 했다.

대구라 하면 또 현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현으로부터 단 한번 받은 편지는 한라산 공비 토벌작전 중 분실하고 말았다. 그 후 현의 편지를 기다렸으나 다시는 오지 않았다. 술에 만취되어 대구역 대합실에서 몇 시간을 보낸 다음 그날 밤 군용 열차로 서울을 향해 떠났다.

그 다음 날 아침 서울에 도착하지 이모님 댁부터 찾았다. 큰 집안은 한쪽 추녀가 포탄에 맞아 허물어져 있을 뿐 텅 비어 있었다. 이모님은 병환으로 누워 계셨다. 큰 형님은 전쟁 중 행방불명이 되었고, 둘째는 국군으로 동부전선에 출전 중이고, 그 밑으로 두 형제는 인민군 의용군으로 끌려가 전혀 소식이 없다고 했다. 이모님은 내 손을 잡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태오야,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이 고생이란 말이냐? 아들 녀석들이 국군과 인민군으로 갈려 서로 총질하며 죽고 죽이고 있으니…”

철저한 불교 신자이신 이모님은 염주를 굴리며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만 비셨다.

이모님 댁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 잠시 휴식한 다음 나는 영민의 부탁대로 그 처녀의 집을 찾아 나섰다. 1.4 후퇴 이후의 서울거리라 쓸쓸할 만큼 사람이 드물었다. 혹시 그 처녀의 가족이 피난 갔으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다행히 그의 온 가족이 그대로 집에 남아있었다. 이북에 납치된 아버지를 기다리며 1.4 후퇴 때에도 그들은 집에 남아 있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 처녀는 완전히 회복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그녀의 어머니와 어린 두 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나는 영민의 친구이며, 서울 탈환 시에 있었던 그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영민이며, 그의 부탁을 받고 문안 인사하러 왔다고 나의 소개를 했다. 처음에는 나의 방문을 의아하게 여기더니 내 소개를 들은 후에는 나를 반가이 맞으며 방 안으로 안내하였다.

“영민이는 댁의 따님이 받은 상처에 대해 늘 걱정하고 있습니다. 따님의 건강한 모습을 대하니 저도 기쁩니다.”

얼굴을 붉히는 그 처녀를 바라보며 나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인사 겸 말을 건넸다.

“지금 영민씨는 어디에 계십니까? 몸 성히 잘 있나요?”

그녀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잘 있습니다. 그런데 다리에 상처를 입고 진해 해군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고요?”

그 처녀는 몹시 놀란 표정으로 어머니 곁으로 다가앉으며 물었다.

“네, 작년 10월 원산 상륙전 당시 지뢰 파편으로 오른쪽 다리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상처가 심한가요?”

그녀는 또 다급하게 물었다.

“아뇨…., 이젠 다 완치되어 병원 요양실에서 쉬고 있는 중입니다.”

나는 사실대로 말할 수 가 없었다. 그래서 어름어름 적당히 대답하고 말았다.

“진해 해군병원 요양실에 계시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어제 이곳에 오기 전에 영민이를 만나, 댁을 방문해 문한 인사를 드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온 길입니다.”

“영민씨가 진해에 계신다니…. 그분을 방문하고 위로해 드리고 싶군요. 그렇지 않아도 진해 해군기지 사령부에 근무하는 삼촌께서, 몸이 약한 작은엄마를 도와 집안 살림을 보살펴 달라는 편지를 보내 와서, 진해에 내려갈까 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진해에 친척이 계시는군요….”

진해에 친척이 있다는 말이 반갑게 들렸다. 왜냐하면 이런 인연으로 영민이가 이 서울 처녀를 만나볼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네, 장교로 근무하는 삼촌이 그곳에 살고 계세요. 그런데 태오 하사관님께서는 영민씨를 또 만나실 예정인가요?”

“네, 지금 저는 공부 출장 중이며, 오늘 밤차로 다시 진해에 내려갈 작정입니다.”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영민이 주소와 내 이름을 다시 알려 주었다. 나는 그 집을 나와 서울에 살고 있던 몇몇 고향 분들을 찾아보았으나 서울에 남아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모님께 작별 인사를 하고 선술집에서 술 한 잔으로 요기를 한 다음 나는 부산 행 밤열차에 몸을 실었다. 하여튼 영민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줄 수 있게 되어서 즐거웠다. 그리고 대구에 잠시 다시 들러 숙의 거처를 자세히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열차가 영등포를 지나 한참 달리는 중이었다. 나는 피로와 술기운 때문인지 온 몸이 노곤해져 시름시름 졸고 있을 때였다. 바로 그때 젊은 여인이 내 곁으로 다가오며 내 옆자리에 앉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자리를 비켜주자 “감사합니다. 태오 하사관님” 하며 앉는 그 여인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바로 오늘 낮에 만나고 온 영민의 <서울처녀> 였다.

“아니?…..  이 기차를 어떻게…”

“저 선희에요. 오늘 집에서 뵈었었죠.”

“그런데 이 열차에서 또 만나다니…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진해 삼촌댁에 내려가는 거에요.”

“열차 안에서 나를 찾으셨나요?”

“네, 삼촌 친구인 헌병 장교 한 분의 도움으로 부랴부랴 <도강증> (그 당시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이 한강을 건널 때는 관계 당국의 도강증이 필요했다)을 얻어 여행준비를 하고 역에 나와 이 열차를 겨우 탔어요. 태오 하사관님을 만나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고 무척 걱정도 했지요.”

“그럼, 진해에 가시면 영민이를 방문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믄요! 영민씨에게 감사하고 싶어요. 태오 하사관님도 물론 잘 아시겠지만 총에 맞아 죽게 된 저를 살려 주신 분이 영민씨 아녜요? 오늘 제가 이처럼 살고 있는 것도 다 그분의 은혜지요.”

“은혜에 감사하시는 선희씨의 마음씨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영민씨는 제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일 뿐만 아니라 조국과 우리들 국민을 위해 피를 흘리신 분이 아니겠어요? 부상당해 고생을 해 보고 나서, 부상 장병들을 방문하고 위로해 주고 싶은 생각을 늘 하고는 있었어요. 오랜 병원생활을 통해 환자에게 고독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인가를 제 자신이 절실히 경험했어요.”

“부상당한 보든 전우들의 이름으로 선희씨의 그런 갸륵한 마음씨와 애국심에 감사 드립니다..”

“너무나 제 분수에 지나친 감사에 도리어 죄스럽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게 당연한 국민의 의무가 아니겠어요?”

“물론 그렇지요. 그러나 국민의 의무와 질서를 파괴하고 나만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이 전시하에 국민 된 도리를 다하려고 노력하는 선희씨의 자세는 참으로 훌륭합니다. 틀림없이 일선에 나선 우리들에게 용기를 샘솟게 해 줄 것입니다.”

“이런 전시하에 남자의 의무가 조국을 적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라면 우리 여자들의 의무는 일선에서 싸우는 우리 국군 용사들에게 격려와 위로를 보내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때 나는 갑자기 선희에게 영민의 신상을 진실하게 알려 줄 의무가 있다고 느꼈다. 선희가 지니고 있는 이 정도의 정신상태라면 영민의 불행을 능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드디어 나는 결단을 내렸다.

“선희씨의 숭고한 애국정신 앞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런데 나는 선희씨가 곡 알아야 할 한가지 사실을 숨겨 왔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죠?”

선희는 예기치 않았던 나의 고백에 불안과 호기심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다그쳐 물었다. 나는 이미 결심한 대로 진실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사실은 원산 상륙작전 때 밟은 지뢰폭발로 영민이의 오른쪽 다리가 절단되어 없어졌습니다.”

“뭐라고요? 다리 하나를 잃으셨다고요?”

선희는 돌아 앉으며 내 팔을 붙들고 거의 소스라치듯이 큰 소리로 다급히 물었다. 주위 사람들까지 놀라서 우리를 흘끔 바라다보았다. 내 음성도 떨려 왔으나 나직이 다시 입을 열었다.

“불행한 노릇이나, 그것이 사실입니다. 오른쪽 다리가 무릎 위에서 끊겼습니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이 되어 말 없이 한동안 앉아 있었다. 내 팔을 잡은 그녀의 손도 떨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내 솔직한 고백을 후회도 해 보았다. 그러나 이 사실을 끝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선희씨!” 하고 부르며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그녀의 뺨에는 어느새 두 줄기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져 왔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위로할 말부터 찾아야 했다.

“살아야 할 사람을 죽이고, 성한 사람을 불구자로 만들고, 수 없는 고아와 전쟁 과부를 낳게 하고, 뭇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이 전쟁이 정말이지 저주스럽습니다. 그러나 선희씨의 착한 마음씨와 사랑의 힘은 이 전쟁의 불행을 충분히 극복할 만큼 강하다고 확신합니다. 선과 사랑은 이 전쟁이 초래한 온갖 악과 불행과 고통 속에 허덕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고 용기의 샘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는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이 되겠죠. 들리는 말에 의하면 영민이는 얼마 전에 자기 운명을 비관하고 자살을 시도했었다고 하더군요. 그는 지금 심각한 절망 속을 헤매고 있으며, 우리의 폭 넓고 진실한 우정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선희씨도 잘 알고 계시다시피 영민이는 남자다운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 저주스러운 전쟁의 무가치한 희생물이 도어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영민이는 항상 선희씨를 생각해 왔으며, 당신의 상처를 늘 걱정해 왔습니다.”

“제 힘껏 영민씨를 위로해 주고 격려하겠어요. 영민씨께서 제 생명을 살려 주셨듯이 저도 그분을 절망에서 구해내겠어요. 그리고 저도 영민씨를 늘 생각하면서 언젠가는 만나 감사할 수 있는 기회가오리라 믿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녀는 그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눈물이 가신 두 눈은 그 어떤 의지와 희망으로 반짝였고, 그의 얼굴은 자비로운 어머니의 모습처럼 장엄하게 빛났다. 저 멀리 농촌 집 창문에 비친 불빛이 흔들리는 열차의 율동에 따라 마치 반딧불처럼 춤추고 있었다. 피난살이에 시달린 여객들도 피곤한 탓인지 벌써 잠들었고, 간혹 앞뒤에서 들려오는 코고는 소리만 조용한 분위기를 해집는 듯했다. 나는 시장기를 느꼈다. 싸구려 막걸리 몇 잔과 김치 안주로 하루를 보낸 내 텅 빈 창자에서는 쪼르르 쪼르르 하는 소리가 연신 들려 왔다. 열차으이 덜커덕거리는 소리조차 배고픈 나에게는 <한 그릇, 두 그릇, 짜장면, 만두국, 매운탕, 비빔밥>으로 들렸다. 선희는 기침을 했다. 3월 말의 열차 안은 아직도 추웠다. 나는 군복 잠바를 벗어 어깨에 걸쳐 주었다. 선희는 아무 말 없이 감사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는 다시 눈을 감고 무엇인가 상념 하는 듯 했다. 그녀의 의지에 찬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그녀의 앞날을 염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운명에 대해 일종의 책임감을 느꼈다. 영민을 위해 사랑의 공동 전선을 형성하자는 내 제안은 그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 될 수도 있었다. 또한 선희의 운명을 전화시킬 소지도 없지 않아 있었다. 얼굴에 나타난 그녀의 확고한 마음의 태도를 눈 여겨 보면서, 평생 불구자가 된 한 사나이를 위해 어떤 사라의 십자가를 선희가 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예감에 내 마음도 무거워졌다.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해 있으며 무엇보다고 강한 것이라고 방금 선희에게 말하긴 했으나 일평생 지고 가야 할 십자가의 무게와 우리들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비교해 보았을 때 선희의 앞날이 염려스럽기만 했다.

열차는 어둠을 뚫고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선희는 머리를 의자에 기댄 채 잠자는 것인지 눈을 감고 무엇을 상념 하는 것인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작년 원산 상륙작전을 위해 동해 바다를 헤치고 있던 상륙함 안에서 영민이가 들려 준 선희와의 이야기를 회상했다.

1950년 9월 28일 결정적으로 서울을 탈환한 우리 해병대는 모종의 임무를 새로이 띠고 10월 초순에 진해로 내려와 상륙전 훈련을 반복하며 병력을 보충하고 있었다. 10월 중순 우리는 상륙함의 거대한 선실에 탑승한 다음 미해군 함대의 호위를 받으며 동해를 횡단하며 북상했다. 목적지는 일체 비밀이었으나 북한의 지리적 조건으로 보아 원산이 아니면 함흥 부근 해안에 상륙할 것이라는 것은 우리들 사병들도 다 짐작하고 있었다. 상륙함 안에는 거의 1개 대대 병력에 가까운 인원이 타고 있었으며 그들은 출항 전 사 가지고 온 화랑위스키를 마시며 내일의 운명을 잊기 위하여 웃고 떠들고 잡담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도 그들과 어울려 잡담하며 술을 마셨다. 그런데 이런 우리들을 무시하는 듯한 표정으로 주는 술도 안 마시고 다소 분개한 사람처럼 앉아 있는 한 사병을 발견했다. 그의 침울한 표정이 이상하게 나를 자극시켰다. 나는 그를 데리고 상갑판으로 올라갔다. 바닷바람은 좀 차가웠다. 뱃머리에 부딪친 파도는 안개가 되어 우리 뺨을 축축히 적셨다. 5척의 상륙함과 20여 척의 미해군 호위 군함들은 마치 한 무리의 고래 떼처럼 파도 속을 넘실거리며 항진을 계속했다. 우리들은 아무 말 없이 상갑판으로 올라왔다. 나는 그에게 담배를 권하며 물었다.

“자네 이름이 무언가?”

“이영민이라 합니다. 선임 하사관님!”

“나이는 몇인가?”

“22세 입니다.”

“학교는?”

“대학 2학년 다니다가 전쟁과 함께 입대하였습니다.”

“자네 표정이 상당히 침울한데 혹시 가족이 이 전쟁에 무슨 화라도 입었는가?”

“아뇨. 피난 중이지만 우리 가족은 무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이 시작된 이래 나는 너무나도 슬픈 우리 민족의 비극과 인간의 비참함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도 체험해 왔습니다.”

“그게 무언지 물어 봐도 좋겠는가?”

“네. 서울 탈환작전 때, 내 한 친구는 후퇴하는 공산군에 의해 사살된 아버지의 시체를 우물 안에서 발견하고, 그 복수로 인민군에 복역한 사람들을 5명이나 직결 사살한 일도 있었습니다. 또 한 전우는 유엔군의 항공 폭격으로 온 가족이 불에 타 죽은 것을 보고 실신한 일도 있고,  점령하에 누군가로부터 유린당해 임신 중인 자기 아내를 보고 자살을 시도한 친구도 있었지요. 그런가 하면 또 한 친구는 부산 영도 사창가에서 자기 친누이동생을 만난 기막힌 일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빼앗아간 이 전쟁 중에 늙으신 부모님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자기 젊은 육체 하나가 전 자본이었더랍니다. 그리고 나도 한 사랑스러운 여인을 내 손으로 어쩌면 죽일 뻔했습니다.”

“무엇이라고? 한 사랑하는 여인을 죽일 뻔했다고?”

나는 놀란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네, 선임 하사관님. 그녀는 내 총에 맞았어요.”

“그럴 수가 있겠는가?”

“그럴 수가 없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불행히도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선임 하사관님, 술이라도 좀 갖고 계십니까?”

그 당시 나는 수통을 두 개씩 갖고 다니던 습관이 있었다. 하나는 그야말로 수통이었으며, 다른 하나에는 술을 넣어 다녔다. 영민이는 내가 주는 수통을 받아 들고 몇 모금 마신 다음 손끝에 불이 닿는 담배꽁초를 구두 뒤꿈치에 비벼 끄고 길고 애처로운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리에 마친 며칠 후, 서울을 향해 쫓기는 인민군을 추격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인민군 패잔병들은 평복으로 갈아 입고 도주 중이었기 때문에 시민과의 식별이 용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중대는 여기 저기서 산발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인민군을 소탕하며 서울시가로 들어갔습니다. 그 당시 나는 부상당하여 후송된 분대장을 대신하여 분대장 직책을 맡고 있었습니다. 분대원을 이끌고 조심스레 집을 하나하나 수색하고 있을 때 별안간 옆집에서 두 명의 평복 차림의 인민군이 뛰어나와 수류탄을 던졌으나 우리는 무사했지요. 우리도 지체 없이 그들을 뒤쫓아 일제히 사격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재빨리 옆집 모퉁이를 돌더니 그 집안으로 사라졌습니다. 나도 몇 명의 대원을 뒤에 세워놓고 그들을 놓칠세라 따라가서는 닫혀진 그 집의 대문을 발로 차 열고 앞 마당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내 행동이 대담했다기보다 전투 경험이 별로 없었던 탓이었겠지요. 바로 그때 “분대장님!” 하고 외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뒹굴며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갔고 칼빈 자동소총의 요란한 총성 속에 장총을 든 평복차림의 한 청년이 피투성이가 되어 마루에 굴러 떨어졌습니다. 참으로 아슬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건넌방 쪽에서 총성이 몇 번 나더니 우리 중의 하나가 쓰러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방으로 수류탄 두 개를 던지고 마루 밑으로부터 기어 나오는 순간, 맞은편 방문이 열리며 누군가 무어라고 소리치며 뛰어 나왔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하는 것을 식별해 볼 겨를도 없이 나는 본능적으로 칼빈 자동소총을 10여 발 발사했습니다. 그리고 집 밖으로 뛰어 나갔지요. 그때 등 뒤에서 한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집안의 동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을 때 이번에는 20세 정도로 보이는 한 처녀가 피투성이가 되어 마루 위에 뒹굴고 있었고 40여 세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어린 두 아이들과 함께 울며 부상당한 그 처녀를 안고 몸부림치고 있었어요. 그 참경 앞에서 나는 전투 중이라는 의식도 잃은 채 그쪽으로 달려가 그 처녀의 상처를 살펴보았어요. 대검으로 그녀의 옷을 찢어 상처를 살펴 보니 겨드랑이와 하복부에 관통상을 입고 있었습니다. 우선 휴대용 약대에서 소독약과 솜을 꺼내 간단히 치료한 다음 나는 야전용 압박붕대로 그녀의 상처를 싸매어 흐르는 피를 막았습니다. 20세의 젊디젊은 처녀의 탄력 있고 성숙한 젖가슴을 물들인 붉은 피를 닦아내며 나는 처음으로 생에 대한 그 어떤 형언키 어려운 신비와, 봐서는 안될 그 무엇을 훔쳐 본 듯한 죄의식을 한꺼번에 느꼈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창백한 죽음의 그늘이 서려 있었으나, 그녀의 젖가슴은 삶의 신비와 젊음과 부드러움으로 충만 되어 있었습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과 막 피어 오른 꽃봉오리 같은 그녀의 젖가슴을 바라보며 나는 그녀를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중대를 따라서 쫓기는 인민군을 추격해야만 했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그 부근에서 밤을 새우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날 다른 대대에 작전 임무를 인계하고, 우리 대대는 예비대대로 후방의 경비를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참전 이래 최초로 이 전쟁을 죄악시했고 같이 사우는 나 자신을 악의 곰범자로 인정했습니다. 침략당한 조국을 보호하고 민족의 평화와 행복을 위한다는 이 전쟁을 나는 거절할 수 없고 또 애국애족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이 전쟁을 계속해야 되겠지요. 그러나 내 총에 맞은 그 처녀의 입장에서 보면 이 전쟁은 확실히 일종의 악이 아니겠습니까? 애국애족을 위해서 싸우는 우리들의 행위는 사랑을 위한 하나의 선이겠으나, 바로 이 선은 그녀에게 회복할 수 없는 결정적인 악을 안겨 주었습니다.

선임 하사관님, 물론 내가 그 악을 원한 것도 아니고 조작한 것도 아닙니다만, 그 처녀가 받은 고통과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악의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나였습니다. 그날 밤 나는 그 처녀가 당한 그 몹쓸 운명에 대한 심한 죄의식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위생 하사관의 약가방을 훔쳐 필요한 약을 빼내서는 그녀의 집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물론 나는 중대장님의 허가 없이 전선을 떠난 셈이며, 또 전시하의 무단 전선 이탈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도 잊은 채, 다만 그녀를 살릴 수 있을 때까지 살려 보자는 마음 하나 뿐이었습니다. 전시하의 불빛 하나 없는 밤거리는 무시무시할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그녀의 집을 어둠 속에서 찾아낼 수 있었고 대문을 수없이 두들기자 그녀의 어머니가 나와 문을 열어 주었어요. 내가 누구라고 말하고 약을 가져왔다고 하자, 그분은 다소 안심하며 나를 자기 딸 곁으로 안내했습니다.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이마에 흐르는 땀에 젖어 있었고 입술은 새까맣게 타 있었습니다. 그런 애처로운 모습으로 그녀는 죽기 전의 사람처럼 의식이 거의 없는 시선으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진통제 한 알을 먹인 다음 한참 있다가 그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가며 그녀의 상처를 다시 소독하고 마이싱을 발라 주었습니다.

얼마 후 그녀의 얼굴에서 고통의 그림자가 사라졌고 다소 밝은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불그스레 생기가 도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정말이지 나는 신에게 감사 했습니다. 그때 그녀의 어머니는 나에게 따스한 물이 담긴 세숫대야를 갖다 주며, 딸을 향하여, 내가 낮에도 치료해 주었고 또 이 한 밤중에도 약을 가져온 고마운 군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고통스러우셨죠?”

피묻은 손을 씻으며 나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너무 아파 죽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살 것 같아요. 군인 아저씨 감사해요.”

그녀는 가냘픈 미소를 눈언저리와 입가에 띠우고 진정 감사하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러는 그녀의 그 사랑스러운 표정과 마음씨는 나를 한층 더 괴롭혔고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때 그녀의 그런 모습에서, 그녀를 오랜 전부터 알고 지내온 것 같은 착각과 함께 어떤 사랑 같은 것을 강렬히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어느덧 이미 내 마음 속의 애인이 되었지요. 나도 그녀에게 말 없이 미소를 보내며 열로 뜨거워진 그녀의 손을 잡았습니다.

“아, 참 무서웠어요.”

무엇인가 공포에 쫓기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조금 나에게로 돌리고 무심코 말했습니다. 그때 내 손 안에 잡힌 그녀의 손은 떨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무서웠어요? 이젠 안심하세요. 제가 지켜 드리고 보호해 드리죠.”

나는 그저 막연히 이렇게 말하며 그녀의 손을 더 힘주어 잡았습니다.

“죽음이 무서웠어요. 아까만 해도 암흑 속에 갇혀 그곳을 벗어나려고 무진 애를 썼어요. 상처의 고통도 참을 수 없이 괴로웠고 무서웠으나 죽음이라는 그 암흑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어요.”

“아가씨는 죽지 않습니다. 내일 아침 아가씨를 야전병원에 입원시켜 치료해 드리도록 알선해 보겠습니다. 치료하면 나을 수 있는 상처니 안심하십시오.”

“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죽음이 무서워요. 살고 싶어요. 제 나이 19세에 죽는다니…. 행복과 기쁨으로 충만 된 천국이 있다 하더라도, 또 일체의 고통이 없는 내세가 있다 하더라도 나는 이 세상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군인 아저씨, 상처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몸이지만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이 사실만도 참으로 다행하게 느껴져요.”

“아가씨, 더 이상 말씀 마시고 주무세요. 이 밤의 암흑이 지나면 밝은 새 아침이 오듯이 내일 아침 아가씨를 입원시켜 삶에 대한 희망의 새 아침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그녀와 함께 죽음과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나로서는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잠을 권했고, 잠시 후 그녀가 잠이 들자, 나는 중대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이 사실을 중대장님께 그대로 보고 드렸습니다. 나는 기합이나 어떤 징계를 예상하고 있었으나 중대장님은 오히려 나를 동정하면서 야전병원에 연락하여 그녀를 입원시켜 주었습니다. 그녀는 병원에서 긴급 수술을 받았고, 마취에서 깨어나는 그녀의 손을 잡자 ‘감사해요’ 하며 나에게 미소를 보낸 것이 우리의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그녀의 소식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 후부터 나는 총 쏘기가 무서워졌고 적을 향해 사격을 할 때마다 피를 토하며 쓰러지던 그녀의 모습이 불현듯 나타나곤 하여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얼마 후 우리는 또 북한에 상륙하고 그러한 비극을 되풀이하겠지요. 사우는 우리가 죽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왜 죄 없는 여인들이 상처받고 또 죽어야 할까요? 이런 기분으로는 남들처럼 떠들고 술 마시고 음탕한 잡담을 할 수가 없어 우울하게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선임 하사관님, 애국 애족한다는 이 전쟁이 싫어졌고 저주스럽기만 합니다. 그리고 이 조국을 떠나 어디론지 멀리 떠나고만 싶습니다. 그러나 내 총에 맞아 부상당한 그 처녀는 곡 살려 주고 싶군요. 그리고 그녀를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해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신이 무엇인지 모르나 이 자연계를 초월해 있는 그 어떤 절대자에게 그 처녀의 생명을 보호해 줄 것을 간절히 기도 드리고 있습니다. 선임 하사관님, 몸 성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군요….”

말을 마치자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수평선을 지그시 바라다보았다. 그의 두 눈은 어느새 눈물에 젖어 흐려 있었다. 해는 잔잔한 파도 위로 수없이 번져가는 은빛 밭고랑을 남기며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푸른 하늘에서 우리를 호위해주던 10여 대의 미군 전투기도 이미 기지로 돌아간 지 오래였고, 동쪽 하늘에는 검은 밤 기운이 서서히 덮이기 시작했다. 얼마 후 해는 완전히 사라졌다. 군함 뱃머리에 갈라지는 물결이 더욱 더 싱싱한 은빛으로 보였다. 찬바람이 끊임없이 우리의 두 뺨을 스쳐 지나갔다. 군함 내의 저녁 식사 종이 울리자 우리 둘은 아무 말 없이 식당으로 내려왔다.

선희는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선희의 가슴 속은 여러 어지러운 감회들로 충만 해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

그 다음날 늦은 아침 우리는 진해에 도착했다. 선희의 작은어머니가 역에 나와 우리를 맞아 주었다. 선희가 나를 소개하자 그분은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선희와 함께 조반 겸 점심을 같이한 다음 우리는 병원으로 영민이를 찾아갔다. 그는 자기 병실에 있었고 그의 어머니가 오셔서 곁에서 간호하고 계셨다. 영민이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병실 천정만 바라보고 있었고 어머니는 자기 아들의 절단된 다리를 어루만지며 눈물을 몰래 흘리고 계셨다. 병실에 들어서며 선희와 함께 왔다고 그에게 전하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그녀를 맞이하려는 듯 마치 두 다리가 성한 사람처럼 침대에서 내려섰다. 그 순간 그는 병실 바닥에 넘어져 뒹굴었다. 그의 어머니와 선희는 영민을 일으키며 다 같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침대에 다시 누워 불게 상기된 얼굴로 슬프게 중얼거렸다.

“다리 하나가 없다는 것을 있었었군….”

“영민아! 다친 데는 없느냐? 그래, 아프지는 않니?”

어머니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선희는 연방 눈물을 훔쳤다.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옴을 느꼈다.

“어머니, 울지 마셔요. 아무데도 아프지 않아요.”

영민이가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고통의 빛이 뚜렷이 나타났다.

“영민아, 그래, 괜찮으냐? 이것이 다 네 어미의 잘못이다. 전생에 내가 너무 죄를 많이 지었기에 네가 이 고생을 하는구나.”

“이것이 어찌 어머니의 잘못입니까? 같이 조국을 사랑하며, 서로 양보하고, 협조하고, 이해하기를 거부한, 우매한 우리 민족의 탓입니다. 그리고 피할 수 없이 받아야 할 내 운명의 탓이지요.”

“운명이고 무엇이고…. 부처님도 무심하시지…”

“살생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계명을 어긴 우리들에게 부처님의 자비가 있겠습니까?”

영민이는 선희를 바라보며 냉소적으로 어머니에게 대꾸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눈에 서린 눈물을 닦고 있었다.

“선희씨가 부당 당한 그 날부터 나는 선희씨의 빠른 회복만을 빌어왔습니다. 지금 선희씨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지난 날의 내 죄를 다소나마 용서받는 기분입니다. 반갑습니다.”

“영민씨의 행위가 어찌 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전시하의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다 보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사실 따지고 보면 나에게 상처를 입힌 것은 이 전쟁이지 영민씨가 아닙니다. 영민씨는 제 생명의 은인이며, 이 은혜를 감사 드리려고 태오 하사관님을 따라 진해에 내려왔습니다.”

둘 만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나는 영민이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 앞뜰로 나왔다. 나는 그분에게 선희에 대해 아는 대로 이야기를 다해 드렸다. 어머니도 감격한 표정이었다. 한참 후 우리가 병실로 되돌아왔을 때 영민이와 선희는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영민이 어머니는 선희의 작은 두 손을 잡고 “아가씨, 고맙소. 아가씨, 고맙소!” 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병실을 나왔다. 그리고 해병대 사령부에 들러, 내일 아침 연락선 편으로 제주 부대로 귀대할 것을 신고했다.

다음 날 아침 배를 타기 전에 영민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갔다. 그러나 그는 자기 병실에 없었다. 한 간호장교가 영민이는 지금 긴급수술실에 있으며 명회를 일체 사절한다고 알려 주었다. 나는 궁금해서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영민이는 새벽녘에 팔목의 동맥을 끊고 자살을 시도했었다고 했다. 잠시 후 영민이 어머니와 선희가 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즉시 눈치채고  어머니는 다급히 사유를 물었다. 간호장교가 간단한 진상을 알리고 영민이가 유서처럼 써 놓은 종이 한 장을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다시 선희에게 넘겼다. 선희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아 들고, 눈을 점점 크게 뜨고 읽어 내려가다가 실신한 사람처럼 병실 바닥에 쓰러졌다. 선희는 영민의 침대에 뉘어 주사를 맞았다. 얼마 후 선희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영민씨, 왜 자살하셨어요? 왜 죽으셨어요? 나는 영민씨를 찾아 여기까지 내려왔는데, 왜 자살하셨어요?” 하고 헛소리처럼 중얼거리며 영민이를 찾았다. 그때 한 군의관이 수술실에서 나오며 영민이는 위기를 모면했다고 우리에게 알린 다음 영민이 어머니를 모시고 옆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병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영민의 유서를 주어 들었다.

 

 

어머니께,

어머니, 저를 용서하세요.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십시오. 어머니께서 이 작별을 글을 읽으실 때는 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얼마나 괴로워하시고, 받으실 고통이 또 얼마나 클 것인지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저는 자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왜냐하면 다리 하나 없는 병신의 몸으로 어머니 마음을 평생 아프게 해 드리는 불효자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제 생명을 스스로 끊어 큰 아픔 한 번만을 드리고 어머니 곁을 떠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 죽음을 아시고 어머니께서 통곡하시겠지요. 그러나 어머니의 이 슬픔도 시간과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잊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존경하는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 추운 날 꽁꽁 언 내 두 손을 품 속에 넣어 녹여 주시던 어머니의 사랑이 그립고 그 시절이 부럽습니다. 저승에 가더라도 저는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할 것이며, 따라서 어머니를 영원히 제 가슴에 모시겠습니다. 어머니보다 먼저 떠나는 이 불효를 용서하시고 내내 건강하신 몸으로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아버지와 온 가족에게 인사 드리며, 저는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거라고 전해 주십시오.

 – 불효 자식 영민 올림

 

 

같은 종이 뒷면에 이번에는 선희에게 쓴 글이 있었다. 글씨 모양이 흐트러져 있고 여기저기 삭제된 문장들이 있는 걸로 보아 선희에 대한 영민의 어지러운 사랑의 감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수없이 고민하며 떨리는 손으로 씌어진 것임이 분명했다.

 

 

선희씨에게

서울에서 나를 찾아 여기까지 내려오신 선희씨의 친절과 호의에 대해 무엇이라고 감사의 말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완전히 회복되어 건강을 되찾은 선희씨를 뵈옵고 나는 정말이지 기뻤습니다. 당신을 부상시킨 그날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선희씨의 완치와 건강을 위해 한시도 잊지 않고 기도 드려 왔습니다. 지금, 나의 간절한 기도의 성취를 목전에 보고, 속죄 받은 기쁨으로 지금까지 나의 의무처럼 느껴온 자살을 단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평생 불구가 된 이 몸, 누구를 기쁘게 해 줄 수 있으며 또 누구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습니까? 나는 나를 아껴 주고 사랑해 주는 이들에게,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갖게 되는 마음의 부담과 육신의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일체를 체념한 채, 나 스스로의 엄숙한 결단을 내리려 합니다. 죽기 전에 이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미련이 있다면 그것은 한 남자로서 꿈에 그리던 한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을 체험해 보지 못한 채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 훗날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에 다시 몸 성히 태어나서, 선희씨와 같은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아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선희씨,

그 동안 상처로 고생이 많으셨지요?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좋은 분 만나시어 행복하게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선희씨 어머니께 인사 드립니다.

– 영민 합장

 

 

군용 연락선의 출항 시간이 가까웠다. 영민의 어머니와 선희에게 인사말을 전할 겨를도 없이 나는 병실은 나와 부두를 향해 뛰었다. 배에 올라타자 연락선은 닻을 올리고 뛰~~ 하는 구슬픈 기적소리를 길게 뒤로 남기고 진해 항에서 멀어져 갔다. 잠시 후 진해 앞바다에 있는 섬 허리를 돌자 병원 건물은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멀리까지 우리 연락선을 따라온 갈매기 떼가 하늘을 자유로이 날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영민이와 선희가 다시 떠올랐고 가슴은 이내 막막한 슬픔으로 가득 찼다. 어느새 나는 수녀님이 주신 예수님의 성심상본을 손에 들고 영민과 선희를 위해 오래오래 기도 드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제6장

피는 물보다 진하다

 

1951년 4월 초순, 우리 제주 부대는 전원 중동부 전선에 있는 해병 제1연대에 편입하라는 출동 명령을 받았다. 그 무렵 우리는 처음으로 중공군의 인해전술(人海戰術)이라는 말을 들었다. 막중한 병력을 포탄 삼아 밀물처럼 공격해 오는 것이 인해전술이라고 했다. 3.8선을 다시 넘어 북진하는 국군과 유엔군의 공격을 막을 길 없었던 중공군은 인명(人命)으로 이에 대처했던 것이다.

중동부 전선에 배치되어 잇던 우리 해병대는 그 동안 안동지구 전투, 영월지구 전투, 녹전리지구 전투를 거쳐 저 유명한 가리산 전투를 성공시키고 화천(화천)을 점령하고 있을 때였다. 거기에서 중공군의 춘계 대 공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제주 부대는 해병대 사령부가 있는 진해에 도착했다. 며칠 후 우리 전후 7백여 명은 장비를 공급받고 일선으로 떠났다. 이틀 간의 트럭 행군 끝에 해병대 제1연대 연대본부가 있는 홍천에 도착했다.

당시 해병대는 화천에서 5일 간 계속되었던 중공군의 인해전술 공격에 전력(戰力)을 상실하고 부득이 후퇴하여 홍천강을 배수진으로 적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이 화천 전투는 중공군의 인해전술과 국군과 유엔군의 화력전술(火力戰術)과의 대결이었다. 그러나 아군의 엄청난 화력도 중공군의 인해전술 앞에 견디어내지 못했다. 화력이 제아무리 우수해도 그것을 사용할 병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죽고 죽어도 밀물처럼 몰려오는 중공군의 인해전술 앞에 기관총의 총열이 달아 녹아 버렸다는 것이다.  그때 중공군과 인민군은 5월 1일 노동절을 서울에서 거행하겠다고 장담하며 전선 전면에서 일대 공격을 감행해 왔다. 이 공격을 저지하지 못한 우리 해병대와 육군은 3.8선 이남으로 또 다시 후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무렵이었다.

4월 말경 중동부 전선의 날씨는 맑았으나 가끔 내리는 봄비에 우리는 적지 않게 고생하며 지내야만 했다. 나는 3대대 9중대에 배속되었다. 당시 대대장은 김윤근 소령이었고 중대장은 강복구 중위였다. 나는 경기소대 제1반장(경기관총 2개 분대를 지휘하는 직책)으로 임명되었고 소대장은 오정근 소위였다.

화천 전투에서 승리한 중공군도 막대한 인명 손실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공격을 멈추고 병력을 재정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인원 보충으로 병력을 강화하고 적의 공격에 대비하는 진지를 공고히 구축했다. 전쟁을 시작한 이래 우리는 처음으로 교통로다운 교통로를 파놓았으며 땅굴인 벙커도 구축했다. 사격호도 화망구성(火網構成)이 잘될 수 있는 지형을 이용했다. 그리고 진지 앞에는 이중으로 철조망을 치고 지뢰도 수백 개 매설해 놓았다. 전쟁이래 지금까지의 전투는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한 거점점령(據點占領)에 치중한 일종의 마라톤 전투였었다. 그래서 철조망을 치거나 지뢰를 매설해 놓을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말하자면 이제서야 전투다운 전투를 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셈이었다. 가끔 중공군은 포격을 가해 왔으나 야간 기습이라든가 공격은 없었다. 우리 해병대도 방어태세만 취하고 있었고 정기적으로 소대 수색전이나 중대 정찰전 정도로 그날 그날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 우리 해병대의 보급 사정은 지극히 나빴다. 화천에서 패배하고 후퇴해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보급 행정이 아직 확립되어 있지 못했다. 1인당 하루 식량은 군용 수통컵으로 싹 긁어낸 한 컵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으로 밥을 지으면 농부들이 먹는 밥 한 사발 정도의 분량이었다. 부식으로는 약간의 된장에다 소금 한 주먹 뿐이었다. 노란 무우 한 쪽을 받으면 그것은 예외적인 선물로 여기고 기뻐했다. 매일같이 진지구축 보수공사가 아니면 수색전을 해야 하는 우리들 중노동자들에게는 형편 없이 부족한 식량이었다. 다행히 5월 초순이라 산에는 나뭇잎과 풀들이 돋고 있어 우리는 그것을 뜯어다가 삶아 말린 후 풀죽을 끓여 먹을 수 있었다. 풀죽을 먹으면 얼굴이 푸석푸석 부어 올랐다.

이 무렵에는 고의적인 오발사건도 가끔 일어났다. 그것은 말하자면 이런 전선을 피해 후방으로 후송 당하려는 생각으로 자기 총으로 자기 몸의 일부를 부상시키는 오발 행위였다. 안개 낀 야간을 이용해 아군 진지 전방에 수류탄 몇 개를 던져 폭발시키고 적의 야간 기습을 가장한 후 고의적으로 자기 몸에 부상을 입혔다. 그들은 화천 전투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경험했었고 도 먹지 못해 거의 굶주리다시피 하는 이 전선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의적 부상과 전투로 인한 상처는 누구나 쉽게 이를 가려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런 고의적 부상을 막기 위해 이런 부상자 몇 명을 공개 총살한 적도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내가 인솔하는 경기반을 이끌고 소대 수색전에 나갔다. 중공군 진지 가까이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십여 호의 산간 부락을 발견했다. 부락이라고는 하나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움막 같은 초가집 울타리에는 노란 개나리꽃잎들이 덤벅덤벅 떨어져 있었고 뒷뜰에는 앵두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부락의 동정을 살핀 후 우리 수색대는 조심스레 동네로 접근했다. 그리고 집들을 차례로 수색하기 시작했다. 우선 집안에 사람이 있나를 확인하고 사람이 없으면 식량이 있나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사람 한 사람, 식량 한 톨 발견할 수 없었다. 마지막 집을 수색하기 위해 그 집 방문을 내가 열었을 때 나는 기절해 뒤로 넘어질 뻔했다.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방 안에는 다섯 명의 가족이 이불을 덮은 채 고스란히 죽어 누워 있었던 것이다. 죽은 지 벌써 수일이 지난 듯 눈들은 움푹 꺼져 들어갔고 두 뺨의 살은 말라붙어 있었다. 흰 이빨이 몇 개씩 드러나 있어 보기에 매우 끔찍스러웠다. 나는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들은 왜 죽었을까? 집단 자살일까, 혹은 타살일까? 그들의 죽음의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굶어서 죽었을까, 혹은 전염병으로 죽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전쟁 중 내일에 대한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막다른 삶을 단념하고 가족 전체가 자살한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 집 마당에 서 있을 때 대원 하나고 내게 소리질렀다.

“반장 하사관님! 여기 외양간에 황소 한 마리가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정말 거기에는 황소 한 마리가 시력마저 읽은 듯한 큰 두 눈을 껌벅거리며 누워 있었다. 기운이 없어 일어서지도 못했다. 풀죽을 매일 끓여 먹던 우리들에게 황소 한 마리는 엄청난 보물이었다. 방 안에 죽어 있는 그 가족들에 대한 생각도 까맣게 잊었다. 저 황소를 어떻게 잡아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것만 궁리하고 있었다. 나는 즉시 수색 대장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여럿이서 그 황소를 마당에 끌어내어 도끼로 때려 잡았다. 가죽을 벗겨 쇠고기를 따로 쌌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 황소 한 마리를 우리 수색 대원만 먹느냐, 그렇지 않으면 중대로 가지고 가서 중대 대원이 다 같이 나눠 먹느냐 하는 문제였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이 황소를 중대 전원과 함께 나눠 먹기를 원하지 않았다. 말이 황소지 며칠을 굶어 말라빠져 뼈만 앙상한 황소였다.  그 집 장독을 뒤져 보니 간장독 밑바닥에 소주 한 병 정도의 간장이 들어 있었는데 쥐가 한 마리 빠져 죽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간장을 퍼내서는 그 집의 솥과 밥그릇 등을 가지고 불고기를 해 먹기 좋은 지대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불 피우는 것이 또 문제였다. 불 피운 연기는 우리의 위치를 적에게 알려 주는 일종의 신호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그 부락에 대원 몇 명을 파견해 숯을 찾아 오도록 했다. 강원도의 산간 부락이라 숯은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숯불을 피우고 우선 갈비와 뼈에 붙어 있는 고기를 구워 먹었다. 아, 그때의 그 불고기 맛이란! 양념은 물론 되지 않았으나 내 일생 잊을 수 없는 불고기 맛이었다. 뜯어 먹다 남은 갈비나 뼈는 솥에 넣어 끓였다. 그리고 쥐가 빠져 죽은 그 간장을 부어 황소 뼈와 함께 삶았다. 그리곤 그 뜨거운 고기국물을 퍼 마셨다. 무선통신기로는 물론 <수색 중 이상 없음>이라고 본부에 연락했다. 이렇게 한 시간을 먹고 나니 황소 한 마리가 뼈다귀 몇 개만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그날 늦은 오후 만족하게 기름기 있는 트림을 하며 우리는 진지로 돌아왔다. 몇몇 대원들의 입에서는 노래 소리와 휘파람소리도 들려왔다.

5월 중순이 되자 제반 보급이 정상화 되었다. 식량도 풍부해졌고 군장비도 새로 보충 되었다. 곧 공격 명령이 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5월 하순이 되자 화천 저수지 일대를 재탈환하라는 명령이 하달되고 우리는 곧 홍천 진지를 떠났다.

한달 전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고배를 마신 아군의 화력은 전보다 몇 배나 강화되었다. 매일같이 미군 전투기가 우리가 전진할 전방에 수백 개의 폭탄을 퍼부어 주었다. 아군의 지상포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지원 사격을 아낌 없이 해 주었다. 그야말로 화력전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었다.

어느 날 송정리라는 마을을 거쳐 우리 9중대는 작전 계획에 따라 916고지로 진격 중이었다. 갑자기 대대 본부로부터 현 지점에서 진격을 멈추고 대기하라는 명령이 무선통신을 통해 날아들었다. 우리는 그 지점에서 전투 배치를 하고 대기 태세를 취했다. 잠시 후 미군 폭격기 10여 대가 30분 간격으로 두 번을 날아와 약 한 시간 동안 916고지 골짜기를 맹타했다. 이번 폭격에는 휘발유 폭탄이 많았다. 916고지 골짜기는 물론  그 산봉우리까지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그 폭격 광경은 재미있기까지 했다. 아군 폭격기 한대가 적의 고사포에 맞아 불꼬리를 뽑으며 적진지 너머로 떨어지는 것도 보였다.

그 폭격이 끝나자 우리는 곧 진격 명령을 받았다. 약 한 시간 후 우리가 그 폭격 지점에 도달했을 때, 거기서 본 광경이란…! 그것은 지옥의 화장터였다. 수백을 넘을 아니 천 명을 넘을 중공군이 휘발유 폭탄에 그을려 타 죽어가고 있었다. 말(馬)들이 타 죽어 있는 것은 더 끔찍스러웠다. 말들과 사람들은 따로 불에 타 잿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머리는 머리대로,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몸통에서 떨어져나가 땅 위에 널려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이었다. 이것은 또한 전쟁의 모습이었다. 온 몸이 오싹하더니 등골에서는 식은 땀이 흘렀다. 내 생전 처음 보는 처참한 광경이었다.

중공군은 2개 대대가 이 산골짜기에 숨어 그곳을 통해 진격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이들의 동정이 아군 정찰기에 탐지되었고 그들은 즉각 폭격을 당하게 되었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모르는 채 그 쪽으로 진격했더라면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참경(慘景)은 바로 우리들 자신의 것이 되었으리라… 또 각자는 이 참경 앞에서 저마다의 운명을 한번 더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도 말이 없었다.

화천 지구 재탈환 전투를 시작한 지 10여 일이 지났어도 우리는 이렇다 할 전투를 중공군과 나눠 보지 못했다. 매일같이 우리는 진격에 진격을 거듭했다. 간단한 소규모의 전투만 이따금씩 있었을 뿐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대한 공포도 차차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주간에는 아군의 항공기가, 야간에는 지상포가 화천강과 소양강 일대를, 중공군 진지로 예측되는 곳이면 모두 폭격했으며 또한 그들의 보급로를 차단했다. 그러나 인해전술을 자랑하던 중공군도 아군의 화력 전술 앞에 완전히 제압되어 전의를 상실하고 북상 도주하고 있었다. 밀물처럼 밀려오던 중공군은 이번에는 밀물처럼 빠져 나갔다. 소양강을 넘어서 도주한 중공군을 대신하여 이번에는 인민군이 대진(對陣)하고 있다는 정보를 우리는 포로를 통해서 입수했다.

어느 날 아침 우리 9중대는 소양강까지 진격했고 그날 밤 소양강을 도강하라는 작전 명령을 받았다. 도가에 필요한 고무 보우트와 개인용 구명자켓을 보급받고 우리는 밤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오후 적정(적정)을 살피던 아군 정찰기 한 대가 적의 고사포에 맞아 소양강 너머로 추락했다. 비행사는 낙하산을 타고 적지인 강 저쪽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비행사를 구출하라는 명령에 따라 즉시 25명으로 구성된 특공대가 편성되었다 당시 경기 반장이었던 나도 2개 분대를 인솔하고 이 작전에 참가했다. 우리 특공대는 구명자켓을 입고, 비행사를 구출해 데리고 올 고무 보우트 두 개를 어깨에 메고 뛰었다.

아군 지상포의 지원을 받으며 우리 특공대 전원은 무사히 강을 건넜다. (소양강 상류는 그리 폭이 넣지는 않다). 지형은 우리가 유리했다. 강둑 너머로는 황량한 벌판이었고 우리 앞 약 2백 미터 전방에 큰 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다. 바로 그 나무 밑에 낙하산이 바람에 물결치듯 펄럭이고 있었다. 비행사는 보이지 않았으나 그 나무 밑에 숨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 저쪽에서 약 50 명쯤 되는 인민군들이 그 비행사를 잡으려고 고지에서 내려와 벌판을 달려왔다. 나는 경기관총 2정을 강둑에 배치하고 인민군들이 사정거리선 안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들은 무어라 고함을 지르며 쉬지 않고 달려 왔다. 그 인민군들이 사정거리선 안에 들어서자 나는 사격 명령을 내렸다. 빗발치듯 쏟아지는 총탄 속에 순간적으로 수 명의 인민군들이 쓰러졌다. 그러자 그들은 분산 작전을 써 가며 응전했다. 우리 경기관총도 쉴 새 없이 불을 뿜었다. 다른 특공대원들은 이 틈을 이용해 일제히 나무를 향해 돌격 했다. 약 15분 간의 교전 끝에 우리는 적을 완전히 격퇴시켰다. 도망치는 적은 아군의 지상포가 뒤따랐다. 우리는 이 전투에서 한 명의 전사자와 두 명의 부상자를 냈다.

우리는 비행사를 구출해 냈다. 그는 나무 밑 우물처럼 움푹 패인 웅덩이에 몸을 감추고 있었다. 그는 이미 비행기가 추락할 때 부상당해 있었고 얼굴에는 심한 화상까지 입고 있었다.

땅에 뒹굴고 있는 10여 명의 인민군 시체와 부상병 중에서 우리는 부상당한 장교 한 명을 발견했고 정보수집을 위해 그를 포로로 하기로 했다. 우리는 서둘러 강둑으로 철수했다. 바로 그때 도망가던 적은 되돌아서며 다시 우리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전우의 시체 하나와 부상병 두 명을 대형 고무 보우트에 태웠다. 그리고 부상당한 미군과 인민군 장교를 소형 고무 보우트에 실었다. 그때 나는 경기 2개 분대를 지휘하며 접근해 오는 적에게 사격을 가하면서 아군의 철수를 지원해 주고 있었다. 적은 분산 작전을 써 가며 용감히 전진해 왔다. 그 동안 우리 특공대는 강으로 뛰어들어 헤엄쳐 건너가기 시작했다. 나도 경기 2개 분대를 인솔하고 강으로 뛰어 들었다. 나는 우리 특공대 후미에서 낙오자를 감시하며 전력을 다해 헤엄쳤다.

우리는 결사적으로 헤엄쳐 강을 이미 반 이상이나 넘어서고 있었다. 그때 인민군은 강둑에 도착했고 우리를 향해 맹사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부상당한 미군과 인민군 장교를 태운 고무 보우트가 내 앞 약 10미터 지점에서 떠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앗!” 소리를 지르면 그 고무 보우트를 끌며 헤엄치던 대원이 물 속으로 파묻혀 버렸다. 그는 총에 맞았던 것이다. 그리고 계속 쏟아지는 총탄에 맞아 그 고무 보우트에 구멍이 생기자 공기가 빠져 버렸다. 그러자 그 두 부상자는 물결에 휘말려 떠내려 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 자신마저 살아나기 어려운 판국에 두 부상자를 다 같이 살려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 비행사는 “헬프 미, 헬프 미!” 하며 물 속에서 소리를 질렀다. 또 인민군 장교는 머리를 물 송에 박았다 들었다 하며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누구를 살려야 하나? 망설이거나 생각할 여유조차 없는 절박한 순간이었다 마치 고문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한 사람은 영어로 또 다른 한 사람은 국어로 구원을 부르짖고 있었다. 괴로웠다. 차라리 나까지 총에라도 맞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윽고 한 사람을 붙잡았다. 그것은 인민군 장교였다. 내 동족을 살리고자 결심했던 것이다. 아니, 내 결심보다 손이 빨랐던 것 같았다. 등 뒤에서는 요란한 총성과 함께 “헬프 미, 헬 미!”하는, 나의 구원을 바라는 미군 비행사의 절망적인 외침이 들려왔다. 그러나 내가 우리 특공대 후미에 있었던 탓으로 내 뒤에는 한 사람도 없었고 따라서 그 미군을 살려내 수도 없었다.

나는 시체나 다름없는 그 부상당한 인민군 장교를 끌며 결사적으로 헤엄쳤다. 적의 총탄도 이미 우리 뒤를 따르지 못했다. 아군의 지상포가 강 너머 인민군을 맹타하고 있었다. 그 인민군 장교를 끌고 강둑을 넘어섰을 때 나는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그 이상 더 기운이 없었다.

잠시 후 우리 두 사람 주위에는 몇 명의 미 고문단 장교들을 대동한 연대본부의 고급 장교들과 중대 전우들이 달려와 우리를 둘러쌌다. 그들은 나와 이 인민군을 마치 처음 보는 이방인들처럼 이상야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목이 말라서 나는 옆에 있던 한 대원의 수통을 받아 물을 마신 다음 그 물을 다시 인민군 장교에게 건네 주었다.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겁먹은 표정으로 물을 마셨다. 이윽고 작전 장교가 나에게 말을 건네 왔다.

“태오 하사관, 미군 비행사는 어디 있는가?”

“저 강물 속에 있을 겁니다.”

그때 나는 나와 이 인민군 장교를 둘러싼 전우들의 시선과 표정이 뭐라고 분석해서 말할 수 없는 이상한 반발의식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앉은 채로 담담히 대답했다.

“뭣? 이게 어찌된 일인가?”

“작전 장교님, 괴롭습니다. 지금 나는 울고 싶은 심정입니다.”

“묻는 말에나 대답했! 미 비행사가 아닌 이 괴뢰군이 웬일인가?”

“난들 왜 그 미군 비행사를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우리는 그를 구출하려다 여러 명의 전우까지 희생시켰습니다. 우리 전우들의 고귀한 희생의 대가라고 볼 수 있는 그 미 비행사를 왜 내가 구출하지 않으려 했겠습니까?…………. 그러나 작전 장교님, 내 힘이 미약했습니다. 나에게는 부상당한 두 사람을 모두 살려낼 만한 그런 힘이 없었습니다.”

“그럼 태오 하사관은 어떻게 이 괴뢰군은 살려낼 수 있었는가?”

“그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던 순간적인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참말로 괴로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내 손엔 이 인민군 장교가 먼저 붙잡혔습니다. 그때 나는 결심했습니다. 내 동족을 살려 주자고….”

“전우보다 적을 살려내자는 그 의도는 무엇인가?”

“작전 장교님! 그 미 비행사는 틀림없이 우리 전우요, 또 우리 조국의 은인입니다. 나는 내 등 뒤에서 ‘헬프 미, 헬프 미!’ 하며 소리치던 그 절망적인 목소리를 내 일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작전 장교님, 그는 우리와 피를 달리한 이국민 이었습니다. 물론 이 인민군은 우리의 적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장교의 총에 우리 전우가 쓰러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우리의 적도 괴뢰군도 아니었습니다. 우리한테 붙들려 온 우리와 피를 같이 나눈 동족이었습니다.”

“그럼 동족이라는 감상(感傷)이 이 괴뢰군을 살려냈단 말인가?”

“작전 장교님! 그것은 감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피 속에 흐르고 있는 내 민족에 대한 양심이었습니다. 전우인 이국민에 대한 의리와 적인 내 민족에 대한 양심 사이에서 순간적이나마 고민했습니다. 결국 나는 의리보다 양심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괴로웠습니다. 정말이지 고민했습니다. 그 고민은 지옥의 고통보다 더 컸을 것입니다. 참말이지 괴로운 순간이었습니다. 작전 장교님!”

말을 마치자마자 웬일인지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그만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정말 울고도 싶었다. 작전 장교는 또 내게 물었다.

“태오 하사관, 지금 우리는 누구와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나?”

“네, 물론 우리는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 조국이 그들의 지배 아래 통일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상당한 미 비행사와 이 인민군, 둘을 다 살려낼 수 없었던 그 절박한 상황 아래 나는 사상의 동지며 조국의 은인인 그 비행사보다는, 적이나마 우리와 피를 같이 한 동족을 선택했습니다. 이 인민군은 우리와 같은 조상과 언어와 문화를 갖고 있는 동족이며, 우리가 통일시켜야 할 조국의 아들인 동시에 또한 우리의 형제입니다. 작전 장교님!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상은 변할 수 있어도 그 몸에 흐르고 있는 피는 영원한 것 아니겠습니까?”

나의 이 말에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작전 장교도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다만 통역 장교를 통해 내 말을 듣고 있던 미군 고문관 장교가 “아이 씨, 아이 언더스탠드” 하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러자 나는 별안간 외로움을 느꼈다. 내 주위에 있는 전우들이 이방인처럼 보였다. 아니 내가 그들에게 다른 나라 사람처럼 보였기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와 그 인민군을 뒤에 두고 돌아서 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어쩐지 냉혹하게 보였다. 그들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자 나는 격심한 고독에 몸부림쳤다. 그러자 그 인민군 장교는 나에게 둘도 없는 동지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니, 우리 둘은 마치 어느 고도(孤島)에 표류해 온 사람들 같았다. 그리하여 서로 아끼고 협조하며 살지 않으면 안 될 사람들처럼 강한 밀착감을 갑자기 갖게 만들었다. 이 인민군은 한 시간 전만 해도 나의 적이었다. 그것도 가상적인 적이 아니라 실지로 내 생명을 위협하던 실제적인 적이었다. 나는 그의 이름도 모른다. 그와는 말 한 마디도 나눠 본 적이 없다. 다만 그는 내 동족이라는 것만 나는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는 나에게 형제처럼 느껴졌다. 왜 그랬을까? 이것이 피의 인과(因果)라는 것일까? 돌아서서 가는 대원을 불러 담배를 가져오게 해서는 그 인민군 장교와 나눠 피웠다.

얼마 후 대대 야전병원 앰블런스가 왔다. 나는 부상당한 인민군을 부축하여 앰블런스까지 데려다 주었다. 자동차의 엔진이 걸렸다. 그때 그는 나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말했다.

“국군 동무, 감사하오.”

나는 말 없이 그 손을 잡고 있었다.

“국군 동무, 오늘 동무한테서 받은 감격과 동무의 동족애를 내 일생 잊지 않으려오. 동무의 고상한 인격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의 과거를 후회했소. 그리고 동무와 같은 동족이라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이 나라에 태어난 보람과 긍지를 갖게 해 주었소. 나도 동무처럼 정치적 이념을 초월해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구제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내 양심에 새겼소. 동무, 오늘의 이 사건을 난 일생 잊지 않겠소.”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손을 힘주어 잡아 주었다. 엠블런스가 떠나려 하자 그는 나에게 소리쳤다.

“동무, 내 이름은 권철민이라고 하오. 동무의 이름이라도 기억해 두고 싶소. 동무의 이름을 나에게 말해 줄 수 없겠소?”

“내 이름은 마태오라고 하오.”

“알겠소. 마태오 동무! 우리 서로의 이름을 잊지 맙시다.”

엠블런스 뒷문이 닫히며 그의 얼굴이 사라졌다. 그때 그의 두 눈에 서린 물리가 서산에 지는 햇빛에 번쩍였다. 자동차는 먼지를 뿜으며 달렸다. 이윽고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서 있었다.

 

 

 

 

 

 

제7장

이 죽음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6월 초순, 화천강지구 전투와 소양강지구 전투를 성공리에 끝마친 우리는 전사(戰史)에 빛나는 저 유명한 토솔산 지구 전투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인민군 지상 부대에서 최강을 자랑하는 정예부대와 대전하게 되었다.

이 토솔산 지대는 태백산맥 중 가장 험준한 산악 지대로서 천 미터를 전후한 암석으로 된 24개의 고지가 겹겹이 서 있는 곳이었으며, 자주 내리는 비와 짙은 안개로 인해 항상 시야가 극히 불명했었다. 당시 인민군은 이런 천연적인 장애물을 이용하여 견고무비한 진지를 구축하고 난공불락을 호언장담하고 있었다. 이러한 자연적인 지형의 이점을 제외하고도 그들은 이미 수만 개의 지뢰를 매설해 놓고 우리의 공격을 기다렸다. 우리 해병대가 이 토솔산 지구 전투를 성공리에 끝내야만이 계속 북상 중인 우측의 미 해병대와 좌측의 한국 육군에게 진로를 터 줄 수 있었다.

이 토솔산 지구는 전쟁이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우리 국군이나 유엔군이 공격해 들어가 본 적이 없는 험준한 지대였다. 토솔산을 중심으로 한 24개의 고지 탈환전을 이름하여 토솔산 지구 전투라고 한다.

공격을 개시한지 일 주일 만에 우리는 3대대는 목표 3, 5, 6 고지를 비교적 힘 안 들이고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2대대는 목표 7, 8, 9 고지 전투에서 인민군의 완강한 저항을 받아 연 5일 간의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한 끝에 그 목표를 점령했다. 1대대도 목표 1, 2, 4 고지를 난전 끝에 드디어 점령했다. 이 제1기 토솔산 지구 전투에서 우리 해병대는 막강한 인명을 희생시켰으나 인민군의 제1방어선을 분쇄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토솔산 전투는 이제부터였다. 목표 13고지에서 목표 24고지 탈환 전투까지를 이름하여 토솔산 제2기 작전이라고 한다.

우리 9중대는 6고지에서 이틀 간의 휴식과 병력을 보충 받고 목표 13고지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목표 13고지는 인민군의 주저항 진지에서 전략상 가장 중요한 고지 중의 하나였다. 우리 10주대, 11중대가 계속 사흘 간이나 공격했으나 실패한 진지였다. 그 무렵 일기는 매우 불순했고 비가 늘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음료수에 조심하지 않았던 탓인지 우리 중대원들 중에는 이질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우리 9중대는 보슬비를 맞으며 13고지 바로 앞산 능선에 포진(布陣)하고 있는 11중대와 교대했다. 다행히 비가 멎자 짙은 안개와 구름이 산정을 덮고 있어 교대 행동을 무난히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날 밤 우리는 적의 박격포 사격으로 수명의 희생자를 냈다.

그 다음날 새벽 5시 우리는 공격 준비를 완료했다. 예외적으로 날씨가 맑았다. 우리 9중대는 미군 폭격기와 아군 야포의 지원 사격을 받으며 서서히 지정된 공격로를 따라 진격했다. 벌써 우리 중의 여러 명이 지뢰폭발로 쓰러졌다. 13고지 산정에는 아군 폭격기가 투하한 휘발유 폭탄으로 온통 불바다를 이루었다. 아군 야포는 우리 공격 부대를 앞지르며 인민군이 매설해 좋은 지뢰를 폭발시켰다. 그러나 인민군은 바위 틈에 구축해 놓은 땅굴을 이용해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총 사격을 가하며 용감히 응전했다. 우리는 그야말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으며 공격을 계속했다. 드디어 한 화염방사기 사수가 용감하게도 우리의 공격로를 막고 있는 적의 땅굴에 접근하여 그 무서운 불길로 적을 소탕했다. 이 기회를 이용해 우리 공격 부대는 일제히 13고지를 향해 돌격했으며 고지 일각을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이제부터는 그 무서운 육박전이 시작되는 때였다. 왜냐하면 살아 남은 대부분의 적은 아직도 땅굴 속에 남아 있으며 사격구를 통해 우리에게 저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화염방사기를 앞세우고 적의 땅굴을 하나하나 차례로 소탕해 나갔다. 인민군은 급기야 여기 저기 땅굴에서 기어 나와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저만치서 이 바위 저 바위를 돌고 돌며 전력을 다해 달아나는 인민군 세 명을 발견했다. 나는 즉시 20여 발의 칼빈 자동소총을 발사했다. 그들은 땅에 고꾸라졌다.

13고지를 완전히 점령하자 나는 내 총에 맞아 쓰러진 세 명의 인민군에게로 갔다. 그 중 한 명은 장교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몸에서 전략상의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내가 그의 손을 건드리니 그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한 마디의 말을 했다. 다른 두 명의 인민군은 벌써 죽어 있었으나 그는 아직도 살아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방금 뭐라고 말했나?”

그는 처음에는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너무나 고통이 심하오. 동무, 날 좀 일으켜 주시오.”

나는 그를 일으키고 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고통으로 일그러지긴 했으나 거기에는 고상하고 점잖은 기품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었다. 그 얼굴은 다정한 친구의 그것과도 같이 신뢰감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그는 말을 계속했다.

“나는 죽음이 이렇게도 고통스러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소. 아내가 몹시 보고 싶군요….”

“당신 결혼했나?”

“그렇소.”

“아들도 있나?”

“아직 없소. 동무, 왜 우리가 전쟁을 하는지 말해 주시오. 나는 전쟁이 지긋지긋하게 싫소. 전쟁은 우리 조국을 헐 벗기고 가정을 파괴하고 우리 민족을 죽이는 결과 밖에 초래하는 게 없소. 이 전쟁을 하는 우리들이나 동무들이나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가 다 바보들이오.”

나는 그때 별안간 형언할 길 없는 분노가 솟구쳐 일어나 그를 때릴 듯 그이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아니, 그래, 조국의 구석구석을 헐 벗기고 동족을 죽이는 이 전쟁을 일으킨 네놈들, 공산주의자들이 이 전쟁을 미워한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어? 너의 이 고통과 고독 속에서의 죽음, 이것이 바로 너희들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전쟁의 대가야. 그리고…”

“잠깐만.”

나직하나 위엄 있는 목소리로 그는 내 말을 중지시키고 증오와 살기(살기) 등등한 표정으로 자기 얼굴 바로 위에 있는 내 얼굴을 잔잔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기 멱살을 움켜쥔 내 두 손을 천천히 풀어놓으며 눈을 감았다. 그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잠시 후 그는 평화스러운 얼굴 모습으로 되돌아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동무, 말이라고 그렇게 함부로 하는 게 아니오. 동무는 바로 내게 한 그 말을 후회하게 될 거요. 나는 얼마 후 죽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소. 죽음 앞에 나선 나는 원한 없이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평화로이 죽고 싶소. 아마 동무들 눈에는 우리들, 공산주의자들이 극악의 죄인으로 보일 거요. 그러나 나는 조국의 배반자도 민족의 반역자도 아니오. 다만 동무들의 적이며 또 포로라는 것 외에 나는 아무 것도 아니오. 정말이지 나는 화평하게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죽고 싶소. 그런데 동무가 내게 한 말과 행동은 내 마음 속에 증오와 분노와 조소와 경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군요.”

그는 또 다시 눈을 감았고 그 감은 눈에서는 또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내 격한 감정을 누그러뜨리며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응답했다.

“하지만 이 증오할 전쟁을 도발시킨 것은 당신들,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소? 이 전쟁으로 말미암은 파괴와 살상(殺傷) 앞에 당신의 그런 말을 들으니 화가 났던 거요.”

“동무, 이 전쟁의 원인을 따지자면 끝없는 논쟁이 될 거요. 지금 동부들도 조국의 통일과 평화와 민족의 행복을 위해 이 전쟁을 한다고 자부하고 있을 테니까요. 우리들 인민군도 마찬가지요. 동무들, 국군이나 우리 인민군이나, 우리들 각자는 자기 양심대로 조국과 인민을 위해 일하는 거요. 나는 우리 조국을 다시 통일시키기 위해 자원해서 이 전쟁에 나왔소. 나는 그것이 이 나라의 인민 된 내 의무라고 생각했소. 그러나 얼마 전부터 나는 전쟁을 미워하기 시작했소. 그렇소. 당신들이나 우리나 이 전쟁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바보요.”

상처에서 오는 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조용하고 부드럽게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를 난폭하게 다루었던 것을 어느 정도 부끄럽게 여겼다. 그의 입에서 왜 전쟁을 미워한다는 말이 나오는지 궁금하여 나는 그에게 물어 보았다. 그는 대답했다.

“전쟁을 하면서 나는 전쟁이 우리 조국에 가져다 주는 온갖 만행과 불행을 체험했소. 우리가 서울을 탈환하고 남으로 남으로 승리의 진격을 계속하며, 그처럼이나 염원하던 조국의 통일을 목전에 두었을 때의 우리의 기쁨이 다른 우리 동족에게는 보상할 수 없는 슬픔이 되고 있음을 나는 발견했소. 우리가 부락이나 도시를 점령할 때마다 남조선 인민들은 우리를 열렬히 환영해 주었으나, 그들 중의 많은 부녀자와 노인들의 우울한 표정에서 나는 그들의 불안과 공포를 똑똑히 관찰할 수 있었소. 국군이 되어 전선에 나간 남편과 아들을 생각하는 그들의 심정은 필경 어두웠을 것이오.

상부의 지시에 따라 점령지에는 지체 없이 인민위원회와 자치회 등이 조직되었고, 인민재판을 통한, 소위 말하는 민족반역자 숙청 선풍이 또한 휩쓸었소. 이승만 정권하에 오랫동안 행동의 자유를 잃고 박해를 받아온 남조선 공산당원들의 정치적 보복은, 양심적인 민족애를 이탈한 극단으로 흘러 아까운 동포들이 무수히 희생되는 것을 나는 보았소. 물론 그러한 희생 없이 조국 통일을 얻을 수는 없겠으나 지나치게 무분별한 희생을 나는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소.

마찬가지로 북조선을 점령한 국군 동무들이 저지른 죄악상도 내가 일일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동무 자신이 더 잘 알 거요. 그저 죽는 것은 불쌍한 우리 동포였소. 전쟁이 휩쓸고 지나가는 곳마다 정치적 보복 행위가 계속되었고, 이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낳고 해서 희생자 수만 늘어가고 있었소. 그래서 나는 조국통일을 위해서라는 이 전쟁에 무수한 회의를 품었소. 하지만 이 전쟁을 저지하기 위해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업는 몸이오. 나는 동무와 마찬가지로 받은 명령을 어김없이 시행해야 하는 일개 말단 장교에 지나지 않소. 하여튼 이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동무들이나 우리들이나 모두가 바보요.”

나는 그이 말에 공감을 느꼈다. 그의 죽음을 앞둔 꾸밈없는 진술에 나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이 상처를 살펴보았다. 그는 가슴과 배와 옆구리, 이렇게 세 발의 총탄을 맞았다. 몸 안의 피가 몽땅 밖으로 흘러나온 것 같았다. 그는 참혹하게 신음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용서해 주시오.”

“동무는 무엇을 용서해 달라는 거요?”

“내가 당신을 쏘았소.”

한동안 그는 나를 조용히 바라보더니 이윽고 눈을 감으며 말을 시작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동무로 인해서 죽는 게 아니오. 이 전쟁이 바로 나를 서서히 죽이고 있소. 동무는 동무의 의무를 다했을 뿐이오. 내게 용서를 빌 필요는 없소. 나도 동무의 동료를 여럿이 죽였소. 이번에는, 그러나 내가 맞았소. 이것이 전쟁의 법칙이고 우리들 전투원의 공통된 운명이 아니겠소?….. 언젠가는 동무도 나처럼 피살될 거요. 나는 정말이지 이 전쟁을 증오하오! 아아, 아내가 보고 싶소.”

바로 그때 도주하던 적은 또 다시 포격을 시작했다. 나는 그를 즉시 벙커로 옮겨 놓고 대원들을 보살피러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그날 밤 예상되는 적의 반격에 대비하기 위해 새로운 진지를 구축해야만 했다. 교통호를 파고 벙커를 보수했다. 약 한 시간 후에 나는 부상당한 인민군 장교에게 다시 갔다. 그는 이미 죽음의 문턱에까지 와 있었다. 그러나 극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게 말을 하고 싶어했다.

“동무 목이 마르오. 물을 좀 줄 수 있겠소?”

나는 내 수통의 물을 몇 모금 먹여 주었다. 그는 감사를 표시하려는 듯이 가냘픈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동지, 우리 중대장에게 당신을 후방으로 옮기게 해달라고 청했소. 거기서 당신은 치료를 받게 될 거요.”

“나를 병원으로 옮기는 것은 아무 소용 없는 일이오. 나에게는 죽음을 면할 희망이 조금도 없소.”

“그래도 당신을 치료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취해 봐야지요. 헬리콥터로 우리 부상자를 모두 옮기고 나면 당신을 병원으로 데리고 갈 거요.”

“나는 여기를 결코 떠나지 않겠소. 나는 내 일선생활 중에서 가장 훌륭한 전투를 한 이 고지에 내 몸을 묻고 싶소. 조국을 위해 쓰러져,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훌륭한 여러 동무들과 함께 나는 이 고지에 묻히기를 원하오.”

“동지가 진실로 그것을 원한다면 당신의 소원을 존중하겠소. 약속하오.”

“또 한가지 더 동무에게 부탁해도 좋소?”

“무슨 부탁이오?”

“동무가 직접 내 무덤 위에 <나는 내 조국과 인민을 사랑했노라. 그러나 우리는 왜 전쟁을 했는가? 이 죽음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렇게 써 주었으면 하오.”

“약속하오. 또 다른 부탁은 없소?”

“없긴요. 동무에게 참 할 말이 많소.”

“말하시오, 동지. 당신의 말을 듣고 있소.”

“이 전쟁은 아무 의미도 없소. 이 전쟁을 빨리 중지시키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조국은 잿더미가 되고 말 거요. 우리는 서로 조국의 통일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전쟁을 한다고 말하고 있소. 그러나 이 전쟁은 거짓이오. 동족상잔의 전쟁일 뿐이오. 왜냐하면 어느 편도 승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오. 특히 연합군은 남조선을 공산주의자들 손에 결코 넘겨 주려 하지 않을 것이고, 소련과 중공도 사회주의 불럭의 패전을 뜻할 조선 전쟁에서의 패배를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오. 우리 조국은 지금 세계의 두 세력, 즉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국가들의 세력과 사회주의 국가들이 세력이 결투를 벌이는 각축장이 되고 있소. 조만간 이 전쟁은 휴전 조약을 맺는 것으로 끝이 날 거요. 하지만 그렇다고 조국의 분단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오. 우리가 참으로 조국과 인민을 사랑한다면 즉시 이 더러운 전쟁을 중지시켜야 하오. 서로의 정치이념이 다르고 의견이 일치할 수 없어 완전한 화해 속에 우리가 살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평화적 통일을 기다리면서 분단된 양쪽에 각각 평화를 이룩해 놓아야 하오. 처음에는 나도 두 쪽을 갈라진 우리 조국을 통일시키기 위해서는 전쟁 이외에는 유효한 방법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소.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오산이었소. 전쟁을 계급투쟁의 가장 높은 차원으로, 그리고 폭력을 행동의 가장 객관적이고 근본적인 필요성으로 간주하는 공산주의자들의 혁명 방식이 얼마나 그릇되고 비난 받아야 할 것인지를 나는 이제 깨달았소. 불이 불을 끌 수 없고, 물이 물을 막을 수 없는 것과 같이 결코 악이 악을 없앨 수는 없을 거요. 마찬가지로 평화를 전쟁으로 획득할 수 없으리라 확신하오. 우리 조국의 통일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보장해 주는 사람들에 의해 언젠가는 실현될 거요. 우리 인민의 대부분은 가난하오. 그러므로 최후의 승리는 군대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 가난하고 불쌍한 농민과 노동자들을 참으로 사랑하는 편에 돌아갈 것이오. 우리 인민에게는 사랑이 필요하지 대포가 필요하지 않소. 그들은 오늘 빵을 주는 사람을 믿지 내일의 행복을 약속하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을 거요. 동무, 우리에게는 우리 인민을 조직적으로 학살하는 이 전쟁을 중단시키는 것 이외의 다른 의무가 없고, 또 서로 사랑해야 하는 자유 말고는 다른 자유가 없소.”

말을 마치자 그는 기진해서 눈을 감았다. 나는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대원들에게로 다시 돌아갔다. 적은 신경질 날 정도로 드문드문 포격을 해 왔으나 진지구축공사는 많이 진척되고 있었다. 잠시 후 나는 그 인민군 장교에게로 다시 돌아갔다. 그는 숨을 가쁘게 몰아 쉬며 어떤 편지 한 장을 읽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내가 벙커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자 그는 내게 말했다.

“동무, 이 내 아내의 편지를 좀 읽어 줄 수 있겠소? 받은 지가 벌써 며칠이나 지났는데 읽을 시간이 없었소. 그리고 지금은 그을 읽을 만한 기력조차 없군요.”

나는 편지를 받아 들고 읽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당신에게

당신이 아빠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 드리려고 급히 몇 자 적어요. 어제 새벽에 우리 아이가 장엄하게 이 세상에 태어났어요. 이마는 넓고 눈은 까맣게 반짝이는 아주 잘 생긴 사내 아이에요. 당신을 꼭 닮았어요. 저는 이 아이가 아주 자랑스러워요. 우리 어린 예쁜 왕자도 저도 모두 건강하니 안심하세요. 내일 더 긴 편지를 써 보내겠어요. 오늘은 자리에 누워서 이 편지를 쓰고 있어요. 우리 아기의 탄생을 기뻐하세요. 곧 다시 글 올리겠어요. 몸조심하시고 안녕을 빌며….

 

 

그는 눈을 감은 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서서히 흘러내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뚝 그쳤다. 그가 숨을 거둔 것이었다. 그때 위생 하사관 두 명이 내게 뛰어와서 부상당한 그 인민군 장교를 운반할 헬리콥터 준비가  다 되었다고 알렸다.

몇몇 대원이 내 주위로 몰렸다. 그 중 누군가가 죽은 인민군 장교의 호주머니를 뒤져 보았다. 지갑 하나와 진중기사를 기록한 작은 개인 수첩과 그의 아내 편지 몇 장이 나왔다. 지갑에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한 쌍의 젊은 부부 사진이 들어 있었다. 이 사진을 보자 내 가슴은 뭉클해졌다. 나는 사진의 얼굴과 시체의 그것 과를 비교해 보았다. 나는 계속 피로 얼룩진 그의 수첩 몇 장을 뒤적였다. 그 글들은 그의 고상한 인격과 높은 교양과 충실한 부부생활을 그리고 있었다. 이 장교의 아내의 편지들도 남편의 글만큼이나 감격적이고 진실했다. 그녀는 평화와 전쟁과 또 종교에 대해서까지 철학적으로 훌륭히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높은 문학적 교양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자기 남편에 대해 크나큰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위라도 울릴 만한 여러 감동적인 글을 발견했다. 그 중 몇 줄을 나는 내 진중일기에 기록했다.

 

여보, 당신이 전쟁터에 나가기 며칠 전, 제 품 안에 남기고 가신 당신의 크나큰 사랑의 초고의 선물이 싹이 터서 커지고, 지금은 햇빛을 볼 날만 기다리고 있어요. 아기는 벌써 제 자그마한 우주 안에서 체조를 한답니다. 제가 그것을 느낄 때마다 우리 아기의 장래를 걱정하면서도 웃음을 짓게 돼요. 아기를 제 눈으로 보고 품에 안게 되는 날, 제 행복은 그지 없을 거예요. 그러나 아아, 그 날 저는 정말이지 쓸쓸해질 거예요. 당신이 제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고 또 제 행복을 같이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날이 가까워질수록 저는 당신을 더욱 더 생각해요. 당신이 제 곁에 계신다면 저는 얼마나 기쁘겠어요? 우리 아기의 탄생을 당신과 함께 기다리는 것이 말이에요….

 

 

나는 그 고귀한 무신론적 인도주의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그와 그의 훌륭한 아내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나는 그의 시체를 묻어 주기로 결심했다. 내가 그의 무덤을 파고 있는 동안에도 인민군은 줄곧 포격을 가해 왔다. 동료들은 나를 미친 놈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의무라고 생각한 것 앞에서 결코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끝내 그 일을 마쳤다. 그리고 그의 소원대로 내 흰 와이셔츠를 찢어 거기에다 붉은 옥도정기 로 <나는 내 조국과 인민을 사랑했노라. 그러나 우리는 왜 이 전쟁을 했는가? 이 죽음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라고 써서 묘비까지 세워 주었다.

그날 저녁이 되자 갑자기 날씨가 변해 비가 억수같이 퍼붓기 시작했다. 우리는 실탄 보급도 병력 보충도 받지 못한 채 적의 반격에 대비해야만 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밥을 지어먹을 시간적 여유가 없어 굶은 채였다. 밤 12시쯤 비가 멈추자 이번에는 5미터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짙은 안개가 우리를 덮고 있었다.

우리는 허기와 추위와 긴장에 떨며 아침 6시까지 적의 반격을 기다렸으나 적의 공격 기세는 보이지 않았다. 6시 30분경, 이제는 적의 공격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몇 명의 전선 보초만 남겨 두고 벙커로 들어와 쉬기 시작했다. 밤새 한 잠도 자지 못한 우리들이라 금세 잠에 곯아 떨어졌다. 안개는 여전히 짙게 깔려있었다. 항공력을 갖고 있지 못한 인민군은 주로 야간 공격만 해 왔다. 그래서 아침이 되자 우리는 안심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짙은 안개 속에서 공격로를 잃고 이리저리 방황하며 돌아다니던 인민군 공격 부대가 우연히 우리 진지 앞에 나타났고 그러자 그들은 일제히 우리 진지 좌측에서 공격을 시작했다. 좌측 진지를 지키고 있던 1소대와 2소대는 이미 적에게 완전히 포위당하여 상대방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에서 백병전을 벌이고 있었다. 강복구 중대장은 즉시 상황을 판단하고 우측 능선에 있던 3소대를 중대 본부가 있는 산마루로 철수시켜 적의 공격에 대비시켰다. 그러나 중대 병력 반 이상을 이미 상실한 우리로서는 절망 속에 죽음만을 기다리며 최후의 방어전을 시도했다. 우리 병력은 겨우 3소대와 박격포 소대와 내가 인솔하는 경기 2개 분대와 중대 본부 요원 몇 명 뿐이었다. 거기다가 짙은 안개 속에 아군과 인민군이 육박전을 벌이고 있어 마음대로 사격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신호탄으로 1소대와 2소대 대원들에게 철수를 알렸으나 그 신호탄 불빛은 안개 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휴대용 확성기를 통해 벙커와 교통호로 피신하라고 수차 명령한 다음 우리는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다.

사기충천한 인민군들의 “돌격 앞으롯!” 하는 구령소리와 함게 나팔소리가 바로 우리 발 아래서 들려 왔다. 우리는 맹렬한 사격으로 적의 접근을 저지시켰다. 박격포 포통과 기관총 총열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사격을 퍼부었다. 이 요란한 총성 속에 쓰러지는 적의 비명소리도 들려 왔다. 얼마 후 누가 사격 중지 명령을 내린 것도 아닌데 우리는 일제히 사격을 중지했다. 실탄이 떨어졌던 것이다. 단 한 발의 실탄도 남아 있지 않았다.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실탄 조사를 해 보니 각자가 소지하고 있는 수류탄 두 개씩만 겨우 남아 있었다. 대대본부에 실탄 보급과 병력 보충을 요청했으나 한두 시간 내에 이곳까지 도착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특히 이 안개 속에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었으랴!

그때 적도 일단 공격을 멈추고 있었다. 다행한 일이었다. 적이 만약 다시 공격해 온다면 우리는 실탄 부족으로 더 이상 전투를 계속할 수  없었다. 우리 모두는 다 죽음을 각오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밀려오는 적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육박전을 하게 될 경우를 생각하며 대검을 총에 꽂았다. 최후의 순간까지 이 13고지를 사수해야 한다는 강중대장의 명령이 시달되었다.  그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대원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그는 참으로 침착하고 용감한 사나이였다. 그의 두 눈에는 불길이 이글거렸다. 그는 나를 찾아와 얼굴에 미소까지 지으며 담배 한 대를 권하는 마음의 여유까지도 보였다. 나는 왼손으로 그 담배를 받아 피우고 오른손으로는 손바닥에 땀이 나도록 묵주알을 굴리며 기도 드렸다.

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오며 홀연히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그러자 구름과 안개 속에 잠겨 있던 산봉우리들이 삐죽삐죽 자태를 나타내었다. 우리 모두는 <안개가 걷힌다!> 하고 합창이나 하듯이 외쳤다. 우리는 살 길이 생긴 것이다. 왜냐하면 항공력을 소유하지 못한 인민군은 언제나 맑은 날씨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비 오는 날이 아니면 야간을 이용해서 공격을 가해 왔던 것이다. 안개가 걷힘에 따라 그들의 후퇴는 명약관화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일제히 공격을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돌격 앞으롯! 돌격 앞으롯!” 하는 구령과 함께 사방에서 나팔소리가 또 들려왔다.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삶이 죽음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이 빨갱이 새끼들아! 올 테면 빨리 와랏! 네놈들을 우리 눈 앞에서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 하는 강중대장의 외침을 따라 우리 대원들도 일제히 고함을 쳤다. 수류탄을 쥔 손에서는 땀이 흘러내렸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살아야 한다는 본능적인 충동 이외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안개는 이미 산허리로 내려앉고 있었고 아침의 맑은 햇살이 눈부시게 산마루에 번져 왔다. 우리는 수류탄을 땀이 맺히도록 손에 쥐고 적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은 걷히는 안개와 함게 일제히 후퇴해 버렸다. “돌격 앞으롯!”의 구령은 후퇴 명령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살아났다. 서로 악수하고 얼싸 안으며 우리 모두는 기뻐 울었다. 내 두 눈에서도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왜 눈물이 흘러 내렸을까?….. 죽음에서 살아난 기쁨의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내 총에 맞아 죽은 그 인민군 장교의 말처럼 의미 없는 이 더러운 전쟁에 대한 분노의 눈물이었을까?….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안개와 구름은 우리가 있는 산허리까지 완전히 걷혀 있었다. 아침의 맑은 햇빛이 끝없이 펼쳐진 이 구름바다 위에 눈부시게 넘쳐 흘렀다. 여기 저기 솟아 있는 산봉우리들은 천상(天上)의 섬처럼 아름답고 위엄 있게 서 있었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연이냐!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전쟁하는 이 추악한 세상을 벗어나 평화와 아름다움만이 있는 천상의 고도에 와 있는 듯한 황홀한 행복감을 맛보았다. 그러나 내 발 아래 쓰러져 있는 전우들의 시체는 다시 전쟁의 이 가혹한 현실로 되돌아오게 했다. 얼마나 전쟁이 저주스러웠는지….

나는 그 인민군 장교의 무덤을 찾아갔다. 이 전쟁의 비극과 우리 민족의 우매함을 나는 그와 함께 울고 싶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덤 위에는 내 친구 김봉남 선임 하사관이 죽어 있지 않은가! 그것도 두 쪽으로 갈라진 우리 조국의 비극을 상징하듯 허리가 끊겨진 채로… “김하사관! 이제 웬일이야! 김하사관!” 생명 없는 그의 몸은 이미 돌덩이처럼 굳어져 있었고 그를 부르는 내 절규만이 산골짜기로 메아리 쳐 흘러갈 뿐이었다.

김봉남 선임 하사관은 해군 선배였으나 친구처럼 지내던 다정한 벗이었다. 그는 당시 소대 선임 하사관이었다. 아마도 인민군의 기습을 받고 분전하다가 중대 본부로 철수하라는 중대장의 확성기 지시를 듣고 철수하던 중 포탄에 맞아 쓰러졌으리라… 그것도 공교롭게 인민군 장교의 무덤 위에서…. 그는 그 전날 우리 둘이서 세워 놓은 묘비 말뚝을 오른손으로 움켜 쥐고 죽어 있었다. 그 묘비에 씌어진 글은 사실은 내가 아니라 김 하사관 자신이 쓴 글이었다. 원래 글 솜씨가 좋지 않은 나였으며 또 그 자신이 그 묘비를 쓰겠다 하여 그가 쓰게 되었던 것이다.

그날 낮에 그는 묘비를 쓰면서 “태오 하사관, 글쎄 말이야, 이 죽음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말이야?….” 하고 여러 번 중얼거렸었다. 그는 이 묘비 말뚝을 움켜쥐고 죽어가며 분명코 <이 죽음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하고 목메어 부르짖었을 것이다.

정말이지 이 죽음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냐?

 

 

 

** 예수 없는 십자가 (하)편으로 계속됩니다. (하)편은 이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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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핍진: 실물과 다름 없을 정도로 몹시 비슷함, 사정이나 표현이 진실하여 거짓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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