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빌니우스 시기(1933~1936)

 

임무를 맡기 전

종신서원 후 아무런 소임도 받지 못한 채 크라쿠프에 남은 사람은 파우스티나 뿐이었다. 총장 수녀는 그러한 상황을 잘 참아내고 있는 파우스티나의 인내에 경탄했다. 그리고 “저는 하느님의 뜻만을 실천하고 싶습니다. 총장 수녀님께서 저를 어디로 보내시든 저에 대한 하느님의 뜻이 그곳에 있음을 압니다” 라고 말하는 파우스티나에게 총장 수녀는 “참 좋은 생각이군요” 라고 말했다. 다음날 총장 수녀는 파우스티나를 불러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싶다고 했으니 빌니우스에 가서 정원일을 하라고 했다. 준비되어있던 파우스티나는 이를 선뜻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일은 혼자서도 제 시간 내에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시작하기에 앞서 30일간의 예수회 피정에 참여하기로 결정되었다. 그 영신수련에서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통찰력을 받았다(251 참조) 떠나기 전날 파우스티나는 안드레아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받았는데 사제의 말은 파우스티나에게 확신을 주었다. “수녀님이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단순하고 순명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수녀님은 올바른 길을 걷고 있고 하느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257). 그러나 파우스티나의 마음은 어떠했는가? 저녁기도를 하면서 파우스티나는, 이곳에서는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주님께 말씀 드렸다. 빌니우스에 가면 어떻게 될까? 그곳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말까지도 낯설다. 그때 다시 주님께서 확신을 주셨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혼자 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파우스티나가 하느님께서 그 동안 안드레아 신부를 통해 내려 주신 은혜에 대해 감사하고 있을 때 그녀는 불현듯 환시를 통해서 고해소와 제대 사이에 서 있는 한 사제를 보았다. 그 사제는 파우스티나가 앞으로 만나게 될 사제였다. 그때 말씀이 생생하게 들려왔다. “그는 이 세상에서 내 뜻을 이루도록 너를 도와 줄 것이다.”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258참조). 다음날 파우스티나는 떠났다. 그런데 빌니우스에 가기 전에 처음으로 야스탸고라의 성모상을 보기 위해 체스토코바에 들려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곳에서 아침 5시에 성모상의 장막을 벗기는 의식에 참석한 후 계속 기도하고 있었다. 11시쯤 되어 한 수녀가 점심 식사하러 가자고 와서 기도는 중단되었다. 장상 수녀가 기차를 놓칠까 걱정했던 것이다. 이곳에서의 파우스티나의 체험은 특별한 것이었음에 틀림없으나 파우스티나는 이렇게만 기록하여 놓았다.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내게 많은 것을 말씀하셨다. 나는 나의 종신서원을 어머니께 맡겼다. 나는 항상 성모님의 어린이요, 성모님은 나의 어머니로 느껴졌다(260).

빌니우스의 수녀원의 일지를 보면 파우스티나는 1933년 5월 25일 목요일에 도착하였다. 빌니우스의 수녀원은 여기 저기 흩어진 조그마한 집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크라쿠프의 거대한 성 요셉 빌딩과는 대조적이었다. 그곳에는 열 여덟 명의 수녀가 살고 있었는데, 인원이 적은 만큼 친근한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모든 수녀들이 따뜻하게 파우스티나를 맞아주었고 수련 때부터 친구인 유스티나 수녀가 방까지 깨끗 히 정리해 놓았다. 그러한 일들은 파우스티나에게 용기를 주었고, 앞으로 닥치는 역경을 이길 수 있게 해 주었다(261참조). 그날 성체강복 때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취해야 할 태도에 관해서 말씀해 주셨다. 파우스티나는 기도할 때마다 예수 성심께 온 힘을 다해 매달렸다. 정원 책임자로서의 임무는 많은 평신도들과 접촉해야 했고 또 그만큼 외부의 일에 노출되어야 했다(262).    

약속된 영적 지도자

고해성사를 받는 날 파우스티나는 평온하게 미소를 머금고 고해소로 갔다. 그처럼 여유가 있었던 것은, 빌니우스의 이 사제는 이미 기도 안에서 두 번이나 본 사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파우스티나가 하느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선택한 사람으로 미카엘 소포코 신부였다. 소포코 신부는 새로 온 참회자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이 수녀의 섬세한 양심과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를 눈 여겨 보았다. 수녀가 고백한 죄는 사면 받을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파우스티나는, 처음부터 환시를 통해 소포코 신부가 주님의 계획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줄 영적 지도자임을 알고 있었다고 고백하였다. 사제는 파우스티나의 이 말이 진실인지를 시험하게 위하여, 파우스티나의 말을 무시하면서 특별히 시험해 보기로 작정하였다. 따라서 파우스티나는 마음을 털어놓기에 어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다른 고해신부를 찾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새 고해신부인 예수회 다브로프스키 신부도 여러 가지로 파우스티나를 시험했다. 파우스티나는 그로 인해 더 이상 고해성사를 받으러 갈 수가 없었다. 파우스티나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식별력을 주시도록 성체 앞에서 성시간을 가지며 고행을 했다. 그런 다음 파우스티나는 소포코 신부를 찾아가 어떤 시험이라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는 다른 고해신부를 찾아 나서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파우스티나가 자기 영혼의 상태를 사제에게 완전히 열어 보이자 하느님께서 무한한 은총을 내리셨다. 이때 소포코 신부는 파우스티나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수녀의 메시지에 깊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었다. 그 동안 빌니우스 수녀원에서의 소임이 파우스티나에게 생소하기는 했지만 그녀의 영적 생활은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파우스티나는 항상 자기 자신을 경험이 부족한 초심자로 여겼고, 배워야 할 새로운 일들이 산적해 있었기 때문에 일기에 “일과 투쟁과 고통의 날들이 시작되었다”고 기록하였다. 빌니우스에서 새로이 주어진 정원을 돌보는 소임은 파우스티나에게 하나의 도정이었다. 정원 일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느님께 순명 한다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도와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그녀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열심히 일했다. 정원 전문가인 수사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수사의 도움과 타고난 감각으로 파우스티나는 정원일을 잘 처리해 나갔고 온실까지 만들기 시작했다. 결과는 아주 좋았다. 하루는 정부의 고관 관리자가 방문하여 원장 수녀에게 “이 수녀원은 정원사를 고용하고 계시는군요” 하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허약한 “전문가”가 겪은 어려움과 수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해에는 비가 아주 많이 내려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났다. 적은 숫자의 일꾼으로는 그 많은 잡초를 뽑을 수가 없어 일꾼을 더 요청하였으나 허사였다. 어떤 곳은 잡초가 너무 많이 자라나 전부 잘라내야 했다. 그리하여 파우스티나는 일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한 수녀만이 파우스티나를 이해해 주었다. 수녀들과 함께 일하고 있던 처녀들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침착함과 유머로 대하는 파우스티나의 태도에 놀랐다. 어느 수녀는 “파우스티나는 마치 하느님께서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일했고 예수님과 함께 모든 일을 처리해 나가는 것 같았어요” 하고 말했다. 수녀원에서 일하는 한 고용인도 이렇게 말했다. “파우스티나 수녀님은 항상 겸손하며 평화로움으로 모든 이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수녀님은 장상에게 순명하고 깊은 존경으로 대했습니다. 나는 그 수녀님이 불평을 하거나 중얼거리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나는 빌니우스에서 삼 년이나 파우스티나 수년님과 같이 일을 했지만 침착하지 못한 행동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 수녀님은 평화의 천사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나쁘게 말하는 일도 없었고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점만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파우스티나가 정원 소임을 맡은 반면 친구인 유스티나 수녀는 주방 일을 하고 있었다. 유스티나 수녀는 취침 시간이 다 될 때까지 큰 그릇들을 닦고 있을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파우스티나는 자신도 기진맥진해 있으면서도 항상 그녀를 도와 주었다. 하루는 유스티나 수녀가 읍에 볼 일이 있어서 그 많은 주방 일을 파우스티나에게 맡겼다. 유스티나 수녀가 일을 끝내고 돌아와 보니 파우스티나가 벌써 그 많은 일을 다 해놓아 그녀는 무척 놀랐다. 그래서 “파우스티나 수녀님, 그 많은 일을 어떻게 벌써 다했어요? 누가 와서 도와 주었어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파우스티나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태연한 미소를 지으며 “혼자서 어떻게 그 일을 다해요? 천사가 와서 도와 주었어요” 하고 대답했다. 천사에 대한 이야기는 그때 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일기를 보면 수호천사의 이야기와 자기를 도와 준 많은 천사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다(419, 474, 630, 1217, 1676 참조). 두 달 후인 1933년 8월 5일, 자비의 성모 축일에 파우스티나는 그 자신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은총을 받았다. 그녀의 일생 동안 아니 영원히 하느님께 감사할 것이라며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의 고통스러운 수난에 대해 묵상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신 다며 그러한 묵상 중에 많은 빛을 내려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참된 겸손을 배우려는 사람은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해야 한다. 나는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면서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오, 예수님! 저는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 당하시고 수모를 당하신 당신을 닮고 싶습니다”(이사 53, 2-9참조)라고 말한 예언자처럼 고문으로 인해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까지 고통을 당하신 예수님! 당신을 넘나 사랑합니다. 오, 영원하시고 무한하신 하느님! 사랑 때문에 당신은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제가 예수님을 이토록 사랑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267).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당신의 작은 수련자를 가르치셨다. 파우스티나는 한때 고해신부를 위해 성령께 9일 기도를 바쳤는데 그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장상이 너를 그곳으로 파견하기 전부터 너에게 그를 알려 주었다. 네가 그 고해신부에게 대하는 것처럼 나도 너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네가 고해신부에게 무엇을 숨기면, 나도 너에게서 나를 숨겨 너 혼자 남게 할 것이다.” 주님의 이 말씀을 실천하자 파우스티나의 마음에 깊은 평화가 일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고해신부를 얼마나 아끼고 보호하시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269). 소포코 신부는 파우스티나에게 겸손한 마음 없이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다고 누누이 강조하면서 성 이냐시오 영신 수련에 의한 3단계의 겸손의 덕을 실천하도록 가르쳤다. 그 단계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때에도 자신을 변명하지 않으며 오히려 수모를 기쁘게 받아 들여야 한다고 가르쳤다. 더욱이 소포코 신부는 파우스티나가 하는 말들이 진실로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면 숱한 고통이 따르게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수녀님은 비난과 박해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수녀님을 미쳤다고도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은총을 아낌없이 내려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항상 반대와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은 어떤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꼭 이루어지고야 맙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수녀님의 많은 인내심이 필요합니다”(270).

현명한 영적 지도자인 소포코 신부는 이 비범한 고백자에 관해 철저히 조사했다. 먼저 파우스티나의 장상 수녀에게 파우스티나의 몸과 마음의 건강상태를 알아보게 했다.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그리고 일정한 시일을 거쳐서 경험 많은 사제들에게 자문도 구하였다. 그러나 그는 모든 정황으로 보아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은총을 받고 있음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포코 신부는 성령께서 파우스티나 안에 활동하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했고 파우스티나에게는 하느님에 관한 비범한 통찰력이 있음을 인정했다.  

환시의 형상화

파우스티나는 잦은 고백을 통해 소포코 신부에게 자기가 본 환시와 메시지를 전했다.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예수님과의 대화를 그에게 상세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환시를 통해 보여 주신 모습을 그리라고 요구하신다는 것과, 이는 앓고 있는 세상에 은총을 내릴 도구가 될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부활 후 첫째 주일을 자비의 축일로 정하라는 예수님의 요구를 전하였다. 소포코 신부는 예수님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알지는 못했지만 그곳 가까이에 살고 있는 화가 에우제네 카지미에로프스키에게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 줄 것을 부탁하였다. 사실 파우스티나는 어떻게 상본을 그려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시까지 받았다. 1934년 1월 2일부터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고 장상 수녀는 파우스티나가 화가와 함께 일하도록 허락하여 주었다. 소포코 신부는, 파우스티나가 이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지시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파우스티나는 이것을 상세하게 기록하여 두었다. 다음은 영적지도 신부의 요청에 따라 파우스티나가 상(상)에 나타난 빛의 의미를 주님께 물었을 때 파우스티나가 들은 예수님의 말씀이다.   “두 빛 줄기는 피와 물을 상징한다. 엷은 빛 줄기는 영혼을 의롭게 하는 물을 가리키고, 붉은 빛 줄기는 영혼의 생명인 피를 가리킨다. ….. 이 두 빛 줄기는 십자가에서 창에 의해 내 심장이 열렸을 때 내 깊은 자비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이 빛 줄기는 영혼들을 하느님의 분노로부터 보호할 것이다. 이 보호 속에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정의의 손길도 여기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부활 후 첫 주일을 자비의 축일로 삼기 바란다. 내 충실한 종 소포코 신부에게 전하여라. 그는 온 세상에 내 위대한 자비를 전할 것이다. 이날, 생명의 샘으로 오는 자는 모든 죄와 벌을 용서받을 것이다. 내 자비를 신뢰하지 않는 한, 인류는 평화를 누리지 못할 것이다. 오, 사람들의 불신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고 있는지! 그러한 영혼은 내가 거룩하고 의롭다고는 말하면서 내가 자비롭다는 사실은 믿지 않고 내 선함도 믿지 않는다. 악마들까지도 내 정의에 영광을 돌리지만 그들은 나의 선함을 믿지 않는다. 내 마음은 자비라는 칭호에 기쁨을 느낀다. 하느님의 가장 뛰어난 특징은 자비라고 선포하여라. 내 손이 하는 모든 일은 자비로 넘쳐 있다”(299).    

지식의 은혜

연 피정 때 파우스티나는 계속해서 영적 통찰의 은혜를 받았다. 주요한 것들을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하느님께 대한 진실한 사랑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다. 우리가 하는 일에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드러내려면, 아무리 미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모든 행동이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 “내 딸아, 너는 네 고통을 통해 나를 가장 기쁘게 하고 있다. 내 딸아,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당해도 피조물에게서 동정을 찾지 말아라. 나는 네 고통의 향기가 순수하기를 바란다. 나는 네가 피조물에게서 뿐만 아니라 네 자신에게서도 초탈되기를 바란다. 내 딸아,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네 사랑에 나는 즐거움을 느낀다. 내 딸아, 네가 고통을 사랑할수록 나에게 대한 네 사랑도 더욱 순수해질 것이다….”(279). “수녀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나를 사랑하듯이 사랑하여라. 네가 그들을 위해 하는 일은 바로 나를 위해 하는 일이다”(285)

파우스티나는 폴란드를 위해 기도한 후 심한 고통을 느꼈는데 마음에서 이렇나 기도가 우러나왔다. 이 기도는 나중에 기록한 것이다.

지극히 자비로운 예수님, 모든 성인들과 특히 예수님을 길러 주신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통해 비오니, 제 조국을 축복해 주십시오. 예수님, 저희 조를 보지 마시고, 어린이들의 눈물, 그들이 겪는 고통과 추위와 배고픔을 보십시오. 이 순진한 영혼들을 위해 비오니, 제 조국에 은혜를 내려 주십시오. 그때 나는 예수님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았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딸아, 나는 그들에게 얼마나 깊은 동정심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라는 사실을 알아라”(286).

하느님께서는 계속해서 파우스티나의 마음 안에 수많은 열망을 불러 일으키셨다. 파우스티나는 실망에 젖어 있는 죄 많은 영혼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깨우쳐 주는 사제가 되고 싶었고, 선교사가 되어 미개지의 백성들에게 신앙의 빛을 비추어 하느님을 알리고 싶었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해 죽으셨듯이 자신도 온전히 비우고 순교하고 싶었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오 예수님! 당신을 위한 사제, 선교사, 설교자가 되고 싶습니다. 예수님과 영혼들을 위하여 자신을 비우고 부정함으로써 순교자의 죽음을 맞고 싶습니다. 위대한 사랑은 작은 일도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의 행동을 가치롭게 하는 것은 사랑뿐이다. 사랑이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우리 안의 고통의 불길도 사그라져 더 이상 고통이 아닌 기쁨이 되게 할 것이다. 지극히 사랑하는 예수님을 위해 고통을 받을 때면 내 마음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더없이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303).

어느 날 파우스티나는 일을 하면서 너무나도 심한 고통을 느껴 성당으로 달려가 예수님께 힘을 다라고 기도하였다 잠시 후 정열과 기쁨으로 가득 차 일터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를 본 한 수녀가 이렇게 빈정댔다. “오늘은 위로를 많이 받은 모양이지요. 얼굴이 그렇게 빛나는 것을 보니 하느님께서는 고통을 주시지 않고 위로만 주시는가 봐요?” 파우스티나가 대답했다. “수녀님, 그것은 오해입니다. 오히려 저는 고통이 심할 때면 더 큰 기쁨을 느낍니다. 고통이 적으면 기쁨도 줄어 들어요.” 그 수녀가 의아해하자 파우스티나는 “고통을 당할 때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줄 좋은 기회를 갖게 됩니다. 우리에게 고통이 적으면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보여 줄 수도 없지요. 그리고 우리가 전혀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사랑은 위대할 수도, 순수할 수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는 고통도 기쁨으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순수한 영혼 안에서는 사랑이 이러한 위업을 이루어내기 때문입니다”(303참조).  

봉헌기도

파우스티나에게 이러한 통찰력을 주신 예수님께서는 성 목요일에 죄인들, 특히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기를 바라셨다. 파우스티나는 예수님의 뜻에 따라 다음과 같이 자신을 봉헌하였다.

봉헌기도 하느님과 영혼들, 하늘과 땅, 모든 천사들,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 하늘의 모든 천신들 앞에서 저는 영혼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죄인들의 회개, 특히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서 제 자신을 오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이 봉헌을 통해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승복하고, 죄인들이 겪는 고통과 공포와 불안을 받아들이겠나이다. 그리고 제 영혼이 하느님과의 일치에서 얻는 모든 위로를 그들을 위해 바칩니다. 죄인들을 위해 미사, 영성체, 참회, 고행, 기도 등 모든 것을 바칩니다. 저는 예수님과 일치되어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정의의 심판도 두렵지 않습니다. 오, 하느님! 이로써 하느님의 선하심을 믿지 않는 영혼들을 대신하여 보속하겠나이다. 저는 당신 자비의 바다에 저의 모든 희망을 두겠습니다. 주 하느님, 제가 제 힘을 믿고서 이 봉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힘에 의지하여 이 봉헌을 하나이다. 예수님, 저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바침으로써 매일 이 봉헌을 새롭게 하고자 합니다. 저희들을 위한 자비의 샘이신 예수님의 성심에서 흘러 나오는 피와 물이시여,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1932년 3월 29일 성 목요일 미사 중에 성체성사의 S. M. 파우스티나(309)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파우스티나의 봉헌을 받아 들이셨다. “나는 너로 하여금 인류의 구원에 참여하게 하겠다. 너는 내 죽음의 순간에 위로가 된다.” 이와 같이 파우스티나의 자기 희생은 고해신부의 허락을 받아 이루어졌다. 파우스티나는 주님과 일치하는 특권을 누려 기쁨으로 가득 찼지만, 그 희생으로 말미암아 가혹함을 곧 깨달았다. 즉 파우스티나의 마음은 돌과 같이 건조해지고 고통과 불안으로 가득 찼다. 여러 가지 독설과 저주의 말을 들었고 마음은 불신과 절망으로 채워졌다. 파우스티나는 이것이 바로 불쌍한 죄인들이 겪고 있는 상태라는 사실을 알았다. 처음에는 이러한 무서운 감정들에 대해서 놀랐으나 고해신부의 말을 듣고 난 후 평정을 다시 되찾았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 첫 주일을 자비심의 축일로 지내라고 요청하셨다. 1934년 4월 8일 첫 주일에 파우스티나는 세 시간 동안 허리에 고행의 띠를 매고 극기하면서 죄인들과 이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가 내리도록 기도했다. “나는 오늘 기쁜 마음으로 이 집을 내려다 보고 있다” 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다음 파우스티나는 이러한 기록을 남겼다.

나는 나의 사명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이제 시작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나는 의혹에 찬 영혼들에게 천국의 신비를 알도록 하느님의 선하심을 보이고, 성심께 대한 불신으로 예수님께서 더 이상 상처를 입지 않도록 하겠다. 하느님은 사랑이요, 자비이시다(281).

파우스티나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되었다. “예수님의 눈에 먼지가 되어” 이 세상의 끔찍한 죄악을 못 보시도록 하고 싶었다. 예수님께 대한 이 세상의 무관심이 파우스티나로 하여금 눈물짓게 하였고, 수도자들의 굳은 마음은 파우스티나로 하여금 피를 흘리게 하였다. 예수님과 일치는 일상생활 안에서 더욱 돈독해졌다. 봄이 되사 정원일은 더욱 바빠졌고 예수님의 자비심 상본 을 만드는 일도 추진해 나갔는데 그림으로 그려진 예수님의 모습이 환시에서 본 그 아름다운 모습에 너무도 못 미쳐 당황하였다. 그래서 성당으로 가서 울면서 예수님께 말씀 드렸다. “예수님, 주님의 모습을 실제만큼 아름답게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누굽니까?” 그때 이러한 말씀이 들렸다. “내 상의 위대함은 색깔이나 수염의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자비에 있다.” 이 말씀을 듣고 위안을 얻었다. 그림은 1934년 6월에 완성되었는데, 소포코 신부가 사목했던 성 미카엘 성당 부근의 베르나딘 수녀원의 복도에 걸어 두었다.    

예언된 병

파우스티나로 하여금 앞으로 일어날 일을 위해 미리 준비하도록 배려하신 분은 무한히 선하신 주님이셨다. 그 여름, 하느님의 어머니께서는 파우스티나에게 어떤 질병으로 시험을 받게 될 것이며 여러 의사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님 상본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을 것이나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곧 파우스티나가 병에 걸렸는데 ‘단순함 감기’라는 진단만 내려졌다. 그러나 감기 진단을 받기 전부터 파우스티나는 ‘고통은 내 생활의 동반자’라는 평소 그녀의 말처럼 고통은 그녀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316). 몸이 건강한 수녀는 성체 대전에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한 시간 가량 기도를 바치는 것이 관례였다. 이 성시간은 보통 매주 목요일 밤 9시부터 10시 사이에 가졌는데 첫 금요일 전날에는 한 시간씩 돌아가면서 성시간을 가졌다. 파우스티나의 기록에 의하면 1934년 8월에 파우스티나에게 배정된 시간은 11시에서 12시까지였다. 그는 죄인들, 특히 하느님의 자비에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다. 영혼들의 배은망덕을 보속하면서 하늘의 모든 성인들도 이에 참여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날 밤,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의 보속의 기도에 기쁨을 표현하셨다. “겸손하고 사랑스러운 영혼의 기도에 성부께서는 분노를 풀으시고 바다와 같은 축복을 내리신다”(320). 기도를 끝내고 침실로 가는 길에 커다란 검은 개와 같은 무리들이 파우스티나를 에워싸며 물듯이 달려드는 것이었다. 파우스티나는 그 즉시 그것이 개가 아니라 사탄임을 깨달았는데 그 중 하나는 몹시 화가 나서 부르르 떨며 말했다. “너는 우리에게서 얼마나 많은 영혼들을 앗아 갔느냐? 너를 찢어 죽일 테다”라고 말했다. 그때 파우스티나가 대답했다. “그것이 지극히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뜻이라면 나를 물어 뜯어라. 나는 그래도 마땅하다. 왜냐하면 나는 모든 죄인들 중에 가장 비참한 죄인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무한히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사탄들은 이 말을 듣고 하나같이 말했다. “자, 도망가자. 저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전능하신 분과 함께 있다.” 사탄들은 마치 먼지나 거리의 소음처럼 사라졌다. 파우스티나는 다시 평온한 마음으로 자기 침실로 걸어갔다(320). 사흘 후인 8월 12일, 파우스티나는 갑자기 몸이 허약해지면서 죽음이 다가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의 고통을 미리 맛보고 있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 이야기는 실로 놀랍다. 파우스티나는 갑작스런 병으로 인해 숨이 가빠졌다. 눈이 캄캄해지고 사지에 마비가 왔다. 질식할 것 같은 무서움을 느꼈다. 시간이 너무 더디게 느껴졌다. 또한 하느님을 신뢰함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공포를 느꼈다. 파우스티나는 자기 경험을 이렇게 기술했다.

나는 마지막 병자성사를 받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원한 일이었는데도 고백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그때 나는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이 말을 했다 저 말을 했다 하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오, 하느님! 모든 영혼들로 하여금 마지막 순간까지 고백을 망설이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나는 병든 사람의 영혼에게 주는 사제의 말씀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영적지도 신부님에게 내가 하느님 대전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지, 마음의 평온을 가질 수 있을지 여쭈어 보았을 때, 신부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번 고백 이후뿐만 아니라 매주 고백 이후마다 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것입니다.” 사제의 이 말씀대로 고해성사에 뒤따라 오는 하느님의 은총은 실로 헤아릴 길이 없어 내 영혼은 전투를 위한 힘과 용기를 얻는다(321).

소포코 신부로부터 병자성사를 받자마자 파우스티나의 건강은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 그러나 30분 후 다른 증세로 고생하게 되었지만 의학적인 도움으로 그 통증을 조금은 감소시킬 수 있었다. 언제가 한 번은 파우스티나가 자기가 받는 고통을 자기 자신과 하느님의 선하심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회개를 위해 예수님의 고통과 합하였을 때 갑자기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찬 검은 모습의 사탄들이 파우스티나의 방을 에워쌌다. 그 중 하나가 말했다. “너와 네 안에 함께 있는 이에게 저주가 있어라. 너는 우리에게 지독한 고통을 심어주고 있다.” 그러나 파우스티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신다.” 그러자 검은 사탄들의 모습은 휙 사라졌다(323). 다음날 파우스티나는 몹시 피로했지만 고통이 조금 가셔서 미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영성체를 한 후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 저를 데려가시는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아직 내 뜻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너는 이 세상에 더 머물 것이나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네 신뢰에 기뻐하고 있다. 그러나 네 사랑은 더욱 열렬해져야 할 것이다. 순수한 사랑은 죽음의 순간에도 영혼에게 힘을 더해 준다. 내가 십자가 위에서 죽어갈 때, 나는 내 자신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불쌍한 죄인들을 생각하였고, 그들을 위해 성부께 기도하였다. 너의 마지막 순간이 십자가 위에서 내가 보였던 모습과 같기를 바란다. 영혼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각자가 받는 고통을 내 십자가상의 고통과 일치시키는 것이다. 순수한 사랑은 이 말을 이해할 것이나 세속적인 사랑은 이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325).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파우스티나는 미사에 참석하지 말라는 의사의 지시를 받고 침실에서 혼자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성모님의 모습을 보았다. 성모님께서는 “내 딸아, 내가 이 세상을 위해서 특히 네 조국을 위해서 너에게 요구하는 것은 기도, 기도뿐이다. 9일 동안 속죄하는 마음으로 영성체를 하고, 미사에 열심히 참례하여라. 이 9일 동안 하느님 앞의 제물이 되어라. 항상 언제 어디서나, 밤이나 낮이나 깨어 있을 때마다 늘 마음으로 기도하여라. 마음으로는 언제나 기도할 수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325). 이 시기에 소포코 신부는 성지순례를 떠나고 없었다. 그래서 파우스티나는 전에 빌니우스에 도착한 직후 자신에게 몇 가지 시험을 했었던 예수회 사제, 다브로프스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그는 파우스티나의 영적 상태를 인식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파우스티나에게 현재의 생활에 충실 하라고 타일러 주는 것이었다. “수녀님, 현재 수녀님의 영혼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을 부숴 뜨려서는 안 됩니다. 수녀님처럼 깊은 내적 생활의 아름다운 은총은 편하게만 살려는 영혼에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이러한 큰 은총을 헛되이 낭비하지 마십시오”(271). 파우스티나는 온갖 종류의 박해를 끊임없이 받았는데, 수치는 매일의 양식이 되었다. 만일 영성체를 하지 않았었더라면, 하느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을 걸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파우스티나는 영성체를 할 수 없는 날을 두려워했다. 다음 기록을 보면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통이 심할 때, 나는 그것을 숨기기 위해 애쓴다. 그러한 순간 혀는 스스로 말하려는 경향이 있어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 혀의 임무는 내게 주신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을 찬양하는 일이다. 나는 성체를 모실 때, 내 혀를 치유하여 하느님과 이웃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간절히 빈다. 내 혀가 끊임없이 하느님을 찬미했으면 한다. 혀가 저지르는 범죄는 실로 크다. 혀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성덕을 쌓을 수 없다(92).

 

숨길 수 없었던 발현

1934년 10월 26일 금요일 저녁 6시 10분, 파우스티나와 몇몇 학생들이 저녁 식사하러 정원을 지나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성당 위에 나타나셨다. 파우스티나가 처음 그분을 뵈었을 때와 같은 모습, 즉 상본의 모습과 같았다. 예수님의 가슴에서 두 줄기의 빛이 발했는데, 성당과 부속건물뿐 아니라 도시 전체를 다 비추고 있었다. 그 발현은 4분 가량 계속되었다. 파우스티나와 조금 떨어져서 걸어가고 있는 이멜다 수녀도 그 빛을 보았다. 그러나 그 수녀는 예수님의 모습은 보지 못했다. 따라서 이멜다 수녀는 그 빛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알지 못했지만 그 빛에 압도되어 주위 사람들에게 그 신기한 빛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그것을 곧이 듣지 않고 웃으면서 그녀의 상상이거나 비행기가 지나가는 빛이었을 것이라고 말했고 이멜다 수녀는 전에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빛이었다고 우겨댔다. 몇몇 사람이 서치라이트였는지도 모른다고 말하자, 서치라이트 불빛을 모를 리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한 번도 몬 일이 없는 빛이었다고 주장했다. 저녁 식사 후, 그녀는 파우스티나에게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렸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파우스티나는 당황하여 이멜다 수녀에게 예수님의 발현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이멜다 수녀가 그 빛에 관해 끊임없이 이야기 했기 때문에, 1934년 11월 28일 파우스티나는 장상 수녀에게 이 발현에 대해 진상을 밝힐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타이타 수녀가 파우스티나가 말한 바를 기록했고 파우스티나, 타이타 수녀 및 이멜다 수녀가 서명을 한 뒤 빌니우스 수녀원의 원장 이레네오 크쥐자노프스카 수녀가 이를 확인했다. 파우스티나는 남에게 드러나지 않고 살기를 원했지만 그 사건이 관심의 초점이 되자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이 사건이 내게 곤혹감을 주었지만, 예수님께서 먼저 나서서 당신을 알려 주시니 기뻤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견딜 수 있다(87).

 

자비심 축일

11월 5일 파우스티나는 하루의 결심을 새로이 하기 위해 성당으로 갔다.  

“예수님, 교황님께서 자비의 축일을 인정하도록 오늘 저의 모든 고통과 희생과 기도를 주님께 바칩니다. 그러나 예수님, 예수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비의 축일을 제정하라고 하셨는데, 사람들은 그러한 축일이 임 있지 않느냐고 말하는데 왜 제가 그 말씀을 전해야 합니까? “누가 그런 축일을 알고 있다 더냐? 아무도 모르고 있다. 내 자비에 관해 선포하고 가르치는 사람까지도 나의 자비에 관해 모르는 사람이 많다. 부활 후 첫 주일에 자비심의 성화를 엄숙하게 축성하기를 바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모든 사람이 이를 알 수 있도록 공적으로 공경 받기를 원한다. 교황의 의향을 위해 9일기도를 바쳐라. 이 기도 때 내가 가르쳐 준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화살기도를 반복해서 바쳐라”(341).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도는 “저희를 위한 자비의 샘인 예수님의 성심에서 흘러 나오는 피와 물이여, 저는 당신께 의탁하나이다”이다(309).

 

1934년의 대림절과 성탄

다시 대림절이 왔다. 이 해에는 예수님께서 영적 지도자를 통해 파우스티나에게 단순함이 갖는 덕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위대함이 이해를 초월하고 있지만, 나는 작은 사람들과만 대화한다. 너도 어린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라.” 2주 전에도 영적지도 신부는 파우스티나에게 영적 유아기에 대해 묵상해 보라고 권유했다(332). 언젠가는 파우스티나가 예수님께 이렇게 여쭈었다. “예수님, 예수님께서 저와 대화하실 때 왜 어린이의 모습을 취하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나타나셔도 저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무한하신 하느님, 주님이요 창조주이신 당신의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네가 단순함과 겸손함을 배울 때까지 나는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너와 대화할 것이다”(335참조). 대림절 동안 파우스티나는 하느님과 무척 가까이 있음을 느꼈고 환시를 통해 아기 예수님을 여러 번 보았다. 이 기간 동안 파우스티나는 내적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하느님께 감사 드렸고, 사랑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영혼의 고통스러운 상태 즉, 무미건조함, 두려움, 암울한 마음, 유혹과 여러 가지 시련에 대해서도 말씀 드렸다. 다음은 1934년 12월 20일, 파우스티나로 하여금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봉헌행위를 계속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 환시에 관한 기록이다.

어느 날 저녁, 침실에 들어갔을 때 하늘 위에 성광이 있었고 그 안에서 주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다. 예수님의 발 아래에는 나의 고해신부가 있었고, 그 뒤에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옷을 입은 많은 고위 성직자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뒤에 여러 수도회의 수도자들도 보였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많은 군중들도 보였다. 예수님께서는 자비심의 성화에서와 같이 두 줄기의 빛을 발했는데 하나로 붙어 있었지만 섞여 있지는 않았다. 그 빛은 나의 고해신부와 또 성직자들의 손을 거쳐 군중들의 손으로 뻗쳤다가 다시 성체를 향해 되돌아가고 있었다. …… 그 순간 나는 침실로 막 들어와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344).

성탄 전날 하루 종일 파우스티나는 일을 하면서도 마음은 하느님께 잠겨 있었다. 성탄 전야에 다른 수녀들과 서로 축하 인사를 하면서 과자를 나누며 즐거움으로 들뜬 분위기 속에서도 그녀는 한 순간도 하느님의 현존을 잃지 않았다. 자정 미사 때까지 성당에 있어도 좋다는 허락이 있어 서둘러 일을 끝내고 9시 전에 성당으로 갔다. 파우스티나는 한 시간 동안은 자기 부모와 가족을 위해서 기도했고, 10시부터 11시까지는 영적지도 신부를 위해서, 그리고 또 한 시간은 성교회와 성직자, 죄인들, 수녀원을 위해 기도하였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받은 은사를 연옥 영혼들을 위해 바쳤다. 자정미사 때 파우스티나는 기쁨으로 가득 찼다. 봉헌 때에는 제대 위에 나타나신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예수님을 보았다. 손을 펼친 아기 예수님은 줄곧 모든 사람들을 내려다 보고 계셨는데 이 발현은 성탄 미사 때 세 번, 그리고 그 다음 이틀 동안 계속되었다(346참조). 파우스티나는 성탄 때의 감격으로 성탄 다음의 목요일에 해야 할 성시간을 빠뜨렸다. 저녁 아홉 시경, 다른 수녀들과 함께 침실로 갔으나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무엇을 빠뜨린 것이 아닐까 하고 자기 임무를 하나하나 생각해 보았으나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열 시쯤에 슬픈 얼굴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고통을 너보다 더 잘 이해해 줄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느냐? 내 고통을 너와 나누기 위해 지금까지 나는 나를 기다렸다.”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 사죄하고 자신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이 쓰신 가시관의 가시 하나를 뽑아 달라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이튿날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뒤 사라지셨다(348참조). 이튿날 아침, 묵상 중에 파우스티나는 왼쪽 머리에 가시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 통증은 하루 종일 갔다.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서는 그 많은 가시로 인한 고통을 어떻게 견디실까’ 하고 생각하며 자신의 고통을 예수님의 고통과 합쳐 죄인들을 위해 바쳤다. 그날 오후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오후 네 시에 기도하러 갔을 때, 수용소에 있는 한 사람이 불순한 생각을 하여 하느님의 마음을 크게 상해드린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 죄를 지은 사람을 보았다. 내 영혼은 두려움을 느껴 하느님께 예수님의 고통을 보아서라도 이 무서운 불행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빌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나의 기도 때문에 호의를 베푸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일을 통해 나는 죄인을 위한 기도의 필요성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349-350).

1934년 그 해의 마지막 날 저녁을 파우스티나는 성당에서 보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처음 한 시간은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어느 수녀를 위해 보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파우스티나의 행동이 당신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다음은 죄인들의 회개와 하느님께 대한 보속, 특히 현대에 하느님께 행해지는 모욕에 대한 보속을 하였고 세 번째로는 자기 영적 지도자를 위해 기도했다. 그러자 시계가 열두 시를 알렸다. 그와 같이 한 해의 마지막을 성삼위의 이름으로 보냈고 1934년 새해 첫 시작도 성삼위의 이름으로 맞았다. 파우스티나는 성삼위께 축복해 주시길 간청하였고 고통으로 가득할 새해를 커다란 의탁의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파우스티나는 진지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성체께 대한 긴 호칭기도를 하였는데 이를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356참조).

“거룩한 성체여, 당신은 어둠과 실패와 절망 중에도 저희의 유일한 희망이요, 신뢰이십니다.”

 

주님의 비서, 주님의 사도

  1934년 12월에 빌니우스 수녀원의 원장이 보르지아 수녀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새 원장 수녀는 1935년 1월 4일에 회의를 열었다. 모든 수녀들이 모인 가운데 원장 수녀의 짧은 훈화가 있었고 수녀원 규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를 연구하였다. 원장 수녀는 훈화에서 작은 일에도 성실히 임하는 신앙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수녀들이 모두 나가고 파우스티나만 남아서 회의실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이 시대의 모든 수녀들이 장상을 신앙의 정신으로 대하며 살 것을 내가 요구하고 있다고 모든 수녀들에게 말하여라.” 파우스티나는 고해신부를 찾아가 이 일만은 면대 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서 시키신 대로 한 것 같다(352-353참조). 같은 달,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의 자비에 관해 기록해 놓은 내용에 대해 의혹이 일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성시간 때에도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이 모든 말씀들이 환상이나 착각이 아닐까?” 하는 상념에 빠져 있는데 자기 내부에서 강하고도 분명한 소리가 들렸다. “내 자비에 관한 너의 말은 모두 진실이다. 내 자비를 찬양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적한 언어는 없을 것이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이 말씀은 내 마음에 너무나 강하고도 분명하게 다가왔다.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이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내 일생을 보낼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는, 이 말씀을 들었을 때의 평화로운 마음으로 나는 이 말씀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평화는 어떤 곤경이나 역경이나 고통, 심지어 죽음까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준다. 이 빛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전하는 일이 하느님께 기쁨이 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하였다. 여기서 나온 기쁨이 너무도 커서 ‘천국이 기쁨이 이보다 더 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양심의 소리를, 성령의 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비록 ‘조금이라도’. 왜냐하면 일단 성령의 감도에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성령께서는 부족한 우리를 가득 채워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359).

파우스티나는 성령의 감도에 마음의 문을 연 이후 예수 성심의 내밀한 감정을 드러내는 메시지와 예수님의 크신 사랑과 또는 실의에 찬 메시지를 계속해서 받았다. 다음은 파우스티나가 충실하게 기록한 내용이다.

언젠가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려 해도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 주셨다. “내 성심은 사람들, 특히 불쌍한 영혼들을 위한 자비로 넘치고 있다. 내가 그들의 가장 좋은 아버지요, 내 자비에 넘친 성심에서 흘러 나오는 피와 물이 그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깨닫기만 한다면…., 나는 그들을 위해 자비의 왕으로서 감실 안에 있다. 나는 은총을 베풀고 싶으나, 그들은 받으려 하지 않는다. 적어도 너만이라도 자주 찾아와서 그들이 원치 않는 내 자비를 받아 가거라. 그것이 내 성심에 위로가 될 것이다. 오, 사람들은 그 숱한 내 사랑의 증거에 얼마나 무관심한가. 내 성심은 이 세상에 머물면서 배은망덕만 당하고 있다. 그들이 다른 일을 하는 데에는 시간이 많아도 내 은혜를 받는 데에는 시간이 없다. 그래서 선택된 너희에게 눈길을 돌리는데 너희까지도 내 성심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겠느냐? 내 마음에는 실망이 인다. 왜냐하면 나의 사랑에 완전히 승복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조건이 많고 불신이 많고 조심이 많다. 그러나 너무 슬퍼 말아라. 이 세상에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도 있으며,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들 안에서 산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너무도 적다. 어떤 가정에는 내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는 사람들이 있다. 성부께서는 각별한 정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계신다. 그들은 천사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던져 줄 것이다. 그들은 수는 적지만 천상 성부의 정의에 방패가 되고, 세상에 자비를 얻어 주는 도구가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사랑과 희생으로 인하여 세상이 멸망하지 않고 견디고 있다. 내가 특별히 선택한 영혼이 불성실할 때, 내 마음에는 가장 고통스러운 상처가 남는다. 그러한 불충은 내 마음을 꿰뚫는 화살이 된다”(367).

  이와 같이 하느님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파우스티나의 내적 지식은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영적 선물 중의 하나였다. 1935년 1월 29일, 파우스티나는 다음과 같은 내적인 환시를 기록하였다.

이번 목요일 아침 묵상 때, 미사를 바치고 있는 교황님의 환시를 보았다. 주님의 기도가 끝난 다음 교황님은 전에 예수님께서 내게 교황님께 말하라고 하셨던 내용에 관해서 예수님께 말씀을 드리고 있었다. 내가 교황님께 직접 말씀 드린 일은 없지만, 그 문제는 다른 분 (소포코 신부)을 통해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그때 교황님도 예수님의 소원에 따라 이루어지게 될 그 문제를 심사숙고하고 계시다는 것을 내적 지식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386).

이 일은 2년 후 소포코 신부가 파우스티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혀졌다. 그것은 소포코 신부가 교황대사였던 코르테심 대주교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기념하는 축일을 건의하면서 교황님께 말씀 드려 달라고 부탁했었다는 내용이다.    

1935년의 8일 피정

파우스티나는 연피정에 들어가기 전에 영적지도 신부를 찾아가 피정 동안 고행을 해도 좋은지를 물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소포코 신부는 그녀의 요구를 일부만 들어 주었다. 파우스티나는 수녀원으로 돌아와 잠시 성당에 들렀는데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었다. “일 년 내내 피 흘리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보다, 한 시간 동안 내 고통스러웠던 수난을 묵상하는 것이 더 값진 일이다. 내 고통스러웠던 상처에 대한 묵상은 나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준다. 나는 아직도 네가 네 의지를 완전히 포기하지 못한 것이 놀랍게 여겨진다. 그러나 이번 피정 중에 네게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사실에 난 기쁘다”(369). 피정은 1935년 2월 4일에 시작되었다. 피정 지도신부는 예수회의 마체비흐 신부였다. 첫 강론이 있은 뒤, 파우스티나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었다. “나는 너와 함께 있다. 이번 피정 동안 나는 너를 평화와 용기로 무장시켜 내 계획을 수행해 나가는 데 실패하지 않게 하겠다. 따라서 너는 이번 피정 동안 네 의지를 완전히 포기하여 내 뜻이 네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여라. 이렇가 한다는 것이 너에게 큰 희생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흰 종이에 ‘오늘부터 내 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적고 십자가 표시를 하여라. 그리고 그 뒷면에 ‘오늘부터 나는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이든지 하느님의 뜻대로 할 것이다’ 라고 적어라.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 사랑이 너에게 힘을 불어 넣어 이 일이 쉽게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372).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서 시키는 대로 했다. 자기부정(자기부정)이 일상생활의 습관이 되었다. 파우스티나는 구체적인 결심을 기록하였다(375참조). 이 피정 때, 성체 대전에서 기도할 때 그녀는 많은 은총을 받았다. 피정 중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중대한 약속을 하셨다. “나의 자비에 의지하는 사람, 나의 큰 자비에 감사하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사람은 죽는 순간에 나의 무한한 자비를 얻을 것이다”(379). 주님께서는 특히 하느님께 불림을 받은 사람이 배은망덕할 때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시는지 파우스티나로 하여금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하셨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크신 자비와 사람들의 배은망덕을 생각할 때마다, 칼로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껴 예수님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파우스티나는 부라는 마음으로 죄인들을 위한 자기 봉헌을 갱신했다. 이때 하느님께서는 파우스티나에게 환시를 통해 정의의 저울을 보여 주셨다. 저울 한 쪽에는 정의의 칼이 얹혀 있었고, 다른 쪽에는 천사들이 수녀들의 희생을 담아 놓았다. 이로써 파우스티나는 수녀들의 희생이 하느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여 세상을 향해 떨어질 벌의 칼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394참조).  

13년만의 가족 방문

피정이 끝난 후 파우스티나는 집에서 온 편지를 받았다. 어머니가 위독하니 집에 다녀가라는 내용이었다. 고향을 떠나 온 지 13년, 그러니까 1922년이었다. 편지를 받고 가슴이 뭉클했다. 그 동안 얼마나 보고 싶었던 어머니인가! 그러나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승복하기로 한 이상 모든 것은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었다. 파우스티나의 본명 축일인 2월 15일에 장상 수녀가 두 번째 편지를 전해 주면서, 집에 가서 임종을 앞둔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 주라고 허락하였다. 파우스티나는 그날 저녁 빌니우스를 떠났다. 위독한 어머니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어 어머니의 고통이 헛되지 않게 해 달라고 밤새 기도했다. 이튿날 저녁 여덟 시에 글로고비에츠에 도착하였다. 파우스티나는 습관대로 “어머니, 곧 일어나시게 될 거예요.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어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 순간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난로에 불을 지피느라 바삐 움직이던 여동생이 이 사실을 보고 “어머니, 이제 괜찮아요?” 하고 소리치자, “그래, 파우스티나를 보자마자 괜찮구나” 하고 대답했다. 의사는 수술을 받기 전에는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선언했었지만 그때부터 어머니의 건강은 차츰 좋아졌다. 모녀가 나눈 기쁨과 반가움은 무척 컸고 파우스티나는 무릎을 꿇고서 다시 만나도록 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몇 년 후의 일이지만, 파우스티나는 그때 기도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누구도 아버지만큼 그렇게 성실하고 열렬히 기도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처럼 훌륭한 부모님을 주신 하느님께 항상 감사 드렸다. 파우스티나는 일기에 가족을 방문한 이 일을 다음과 같이 단순하고 솔직하게 기록했다.  

십여 년 동안 우리 집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정원은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작았고 아직도 어릴 것이라고 여겼던 형제자매들은 모두 장성하였다. 지난날 우리가 헤어질 때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고 정말 놀라웠다(주 파우스티나는 이튿날, 주일 전날까지만 해도 위독했던 어머니와 함께 모두 성당에 간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399). 집에서 지내는 동안 사람들에게 묻혀 지냈다. 모두들 나와 이야기하려고 했다. 어떤 때에는 스물 네 명이나 모였었다. 그들은 내가 들려 주는 성인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우리 집은 정말 하느님의 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마다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밖에는 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지친 나는 혼자 침묵을 지키고 싶어 슬며시 정원으로 빠져 나왔다. 한적한 곳에서 하느님과 대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도 여러 번 실패했다. 왜냐하면 형제자매들이 그곳까지 따라와 나와 함께 이야기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음성이 좋은 내 동생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그러면 한 사람은 바이올린을 켜고 한 사람은 만도린을 켰다. 이때 나는 잠시 그들의 시선을 피해 하느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또 하나 나의 희생이 요구되었던 것은 어린이들에게 일일이 입맞춤을 해 주는 일이었다. 나를 알고 있는 부인들이 자기 집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잠시라도 안고 입맞추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들은 이것을 큰 호의로 생각했지만 나에게는 희생이었다. 더구나 대부분의 아이들이 더러웠기 때문에 나는 내 감정을 극복하고 이를 내색하지 않기 위해 더러운 이이일수록 두 번씩 입맞추었다. 이들 중 한 아이는 눈병에 걸렸는지 눈에 고름이 끼었는데도 “수녀님, 이 아이를 잠시 안아 주세요” 하고 말했다. 반사적으로 뒷걸음이 쳐졌지만 내색하지 않고서 아이를 안고는 눈에 입맞춤하며 하느님께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그 외에도 덕을 실천할 기회는 많았다. 사람들이 쏟아내는 불만을 들어야 했고, 아무런 기쁨도 없는 이들의 모습을 보아야 했다. 그것은 하느님을 진실히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기쁨도 없는 그러한 것이었다. 그리고 내 두 여동생이 보이지 않아 나는 참으로 슬펐다. 직감으로 두 영혼이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알았다. 나는 주님께 그들에게 은총을 내려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주님께서는 “나는 그들에게 필요한 은총뿐 아니라 특별한 은총까지 베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천국으로 부르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크신 사랑으로 우리 가족들을 보살피신다는 사실이 무천 기뻤다. 남동생 스타니슬라우스는 나를 따라 매일 성당에 갔다. 나는 그가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있음을 알았다. 휴가 마지막 날, 나는 사람들이 성당에서 모두 나가고 없을 때 그와 함께 감실 앞에 나아가 “떼데움’ (성 암브로시오의 사은 찬미가)을 같이 노래했다. 그리고는 잠시 침묵 중에 그의 영혼을 예수 성심께 바쳤다. 이렇게 작은 성당에서 기도하는 것은 얼마나 좋은가. 나는 이때, 이곳에서 많은 은총을 받고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소홀히 했던 지난날의 일들을 생각했다. 어쩌면 그토록 분별이 없었던지…… 내가 분별 없었던 지난 날을 후회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이루 형언할 수없이 아름다우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나에게 간택된 네가 영원히 나의 무한한 자비의 증거자가 되도록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은총을 내리겠다.” 내가 부모님 곁을 떠나면서 그들을 축복해 주시라고 주님께 요청했을 때 나는 주님께서 내 영혼 안에 쏟아 부어주시는 은총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님과 할머니께서는 눈물을 머금으시면서 하느님의 은총에 충실하고 수도자로 부르신 은총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그리고 당신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달라고 말씀하시며 작별 인사를 하셨다. 모두들 울었지만 나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나는 용감해지려고 애썼고, 천국에 가면 이별이 없을 것이라고 위로하였다. 스타니슬라우스가 나를 차 타는 곳까지 바래다 주었다. 나는 하느님께서는 순수한 영혼을 사랑하시며, 하느님께서 그를 기꺼이 여기신다고 말해 주었다. 내가 그 말을 하는 동안 그는 어린 아이처럼 울었다. 그래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영혼은 순수했고 하느님을 깊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에 오르자 내 마음은 훨훨 날아 갈 것 같았다. 하느님께서 우리 가정에 내리신 은총에 기뻐하며 아이처럼 울었다. 그리고 깊은 기도에 빠져들었다(주 그 후 파우스티나는 부모를 다시 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90세까지 그리고 아버지는 78세까지 살았다. 양친 모두 딸보다 오래 산 것이다).

저녁 때에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먼저 집안의 주인(성체 안의 예수님)께 인사를 드리고 수녀들에게 인사를 했다. 파우스티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성당에 가서 주님께 밤 인사를 드리면서 집에 가 있는 동안 예수님께 소홀히 했던 것에 대해서 용서를 빌었다. 그때, 마음 속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이 들렸다. “네가 나와 대화를 많이 못했다고 하지만, 나의 선함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나를 사랑하도록 일깨웠으니 내 마음이 흡족하다”(400-404). 아침에 파우스티나는 마리아 요셉 원장 수녀와 함께 미카엘 총장 수녀에게 인사를 드리려고 유제피넥으로 갔다. 파우스티나는 총장 수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빌니우스로 다시 돌아와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수녀원에 돌아오니 얼마나 행복한지 마치 수녀원에 다시 입회한 것 같다. 방해하는 이 하나도 없는 침묵과 평화 속에서 쉽게 하느님께 빠져들 수 있는 끝없는 기쁨을 누렸다(407).

 

1935년 사순절과 부활절

사순절은 파우스티나에게 주님과 더욱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파우스티나는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 죄인들 때문에 받으신 고통을 더욱 뚜렷하고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주님의 수난을 묵상할 때, 주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일이 많았다. 매를 맞으시고 고문에 의해 옷이 찢겨나가면서 말라붙었던 상처가 다시 터졌다. 병사들은 더럽고 낡은 주홍색 외투로 신선한 피가 흐르는 주님의 상처를 덮어 씌웠다. 옷은 무릎까지 닿았는데 그들은 주님을 나무 그루터기에 앉히고 가시나무로 관을 만들어 머리에 씌웠다. 그들은 주님의 손에 갈대를 쥐어 주고 놀리면서 왕에게 하듯이 절을 하였다.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주님을 때리고 어떤 사람은 갈대를 빼앗아 주님을 때렸다. 어떤 사람들은 손으로 쳐서 고통을 주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수건으로 주님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쳤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고통을 양순하게 받아들이셨다. 누가 그분을, 그분의 고통을 이해하겠는가? 예수님께서는 눈을 내리 감고 계셨다. 그 순간 나는 예수님의 성심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들은 서로 경쟁이나 하듯 주님을 모독하였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인간의 이러한 사악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원인은 죄에 있다. 사랑과 죄악이 만난 것이다(408).

파우스티나의 하느님과의 일치는 더욱 깊고 더욱 지속적으로 성장하였다. 성당에 들어설 때마다 하느님의 위대함과 엄위로우심 을 느꼈다. 파우스티나는 하느님께 대한 이러한 경외심으로 말미암아 “성당 안에 어떤 분이 계시는지 사람들이 알기만 한다면, 이 거룩한 장소에서 자행되는 그토록 심한 능욕과 불경은 없을 텐데”(409) 하고 기록하였다. 파우스티나는 미사 중에 자기 영혼 안에 오신 하느님을 보았고 그분의 현존을 깊이 느꼈다. 말없이 그분과 긴 대화를 나누었다. 파우스티나는 그분을 미칠 듯이 사랑하였고 또 하느님으로부터 사랑 받았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은 짧았다. 왜냐하면 사람은 오랜 시간 동안 황홀경에 빠져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서 받은 영향은 오래 갔다. 별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미사 중에 깊은 관상에 잠기었고 남과 이야기하거나 일상적인 일을 하면서도 관상은 방해 받지 않았다. 파우스티나는 “물방울이 끝없는 대양에 떨어져 스며들 듯 나는 하느님과 가깝게 일치되어 있다.”고 기록하였다(411). 하루는 그녀가 잠깐 성당에 들렀을 때, 은총의 힘이 자기 마음을 감싸옴을 느끼며 관상에 잠겨 있는데 사탄이 꽃병을 집어 들더니 있는 힘을 다해 바닥으로 내던지는 것이었다. 파우스티나는 그 사탄의 분노와 질투를 모두 지켜보았다. 파우스티나가 깨어진 꽃병을 집어 꽃을 꽂기 전에 원장 수녀, 제의방 수녀 그리고 몇 명의 수녀들이 들어왔다. 수녀들은 모두 파우스티나가 꽃병을 깨뜨린 줄 알고 놀랐다. 제의방 수녀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으나 파우스티나는 변명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파우스티나는 피로에 지쳐 성시간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원장 수녀에게 일찍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침대에 눕자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러나 열한시경 침대가 흔들리는 것을 느껴 즉시 일어나 평화로운 마음으로 수호천사에게 기도했다. 그때 연옥에서 보속을 하고 있는 영혼들이 보였다. 그들은 마치 그림자처럼 보였고 그 가운데 많은 사탄들이 있는 것도 보였다. 그 중에 고양이의 모습을 한 사탄이 파우스티나를 괴롭히려 했다. 그 사탄은 무게가 1톤 정도 될 것 같았는데 파우스티나를 들어 내 동댕이 치려 했다. 파우스티나는 묵주기도를 계속했다. 새벽녘이 되자 사탄들이 사라져 잠을 조금 잘 수 있었다. 아침에 성당에 들어가자 마음 속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들렸다. “너는 나와 일치되어 있으니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사탄은 너를 미워한다. 사탄은 모든 사람들을 다 미워하지만 특히 너에게 대한 증오가 심하다. 왜냐하면 네가 많은 사람들을 그의 손아귀에서 풀어 주었기 때문이다”(412). 4월 18일 성 목요일,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에게 부활미사 때까지 당신의 현존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셨다. 그러자 즉시 파우스티나의 영혼은 예수님께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찼다. 사랑하는 예수님으로부터의 분리는 견디기 힘들었다. 영성체 때 성합 속에 담겨 있는 성체에서 슬픔에 찬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 성금요일 3시에 성당에 들어갔을 때 다음 말씀을 들었다. “나는 내 상본 이 널리 공경 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파우스티나는 십자가 위에서 심한 고통을 받으며 숨을 거두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는데 상본 에서 본 것과 같이 그분의 성심에서는 두 줄기의 빛이 흘러 나왔다(414참조).  

자비심의 성화 첫 전시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것들을 가능한 한 빨리 영적지도 신부에게 알렸다. 파우스티나는 영적지도 신부에게 세상의 구원을 위한 성년의 폐막을 기념하는 사흘간의 축제 때 오스트라 브라마(빌니우스 시의 동쪽 문)에 예수님의 자비심의 성화를 걸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은 부활 후 첫 주일로서 주님께서 자비의 축일로 제정하도록 요구하신 날이었다. 소포코 신부는 ‘성모 성당에서, 그것도 다른 행사까지 어떻게 같이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며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요구는 허락될 리도 없고 파우스티나의 말대로 사흘간의 축제가 있게 될지도 의문이었다. 그러나 소포코 신부는, 4월 26일에서 28일까지 오스트라트브라마에서 사흘간의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고 동시에 카논 스타니슬라우스 자바츠키 신부로부터 강론을 부탁 받게 되었다. 소포코 신부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파우스티나가 말한 메시지를 믿게 되었다. 소포코 신부는 그날 성모상 옆의 성당 창문에 예수님의 자비심의 성화를 거는 조건으로 강론을 하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이 요청이 거절되었으나 결국 대주교가 이를 허락하였고, 파우스티나는 그 성화를 걸 때 참석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다음 기록은 사흘간의 축제에 관해 파우스티나가 기록한 것이다.

자비심의 성화를 거는 날 저녁, 나는 원장 수녀님과 함께 나의 고해신부인 소포코 신부님을 만나러 갔다. 고해신부님은 그 성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한 수녀를 시켜 화환을 만들라고 하였다. 원장 수녀님은 “파우스티나가 하도록 하지요” 하고 대답하셨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너무나 기뻤다. 그래서 수녀원에 오자마자 한 자매의 도움을 받아 화환을 만들었는데 성당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도 이를 도와 주었다. 저녁 일곱 시경에 준비를 끝내고 갔을 때 이미 성화는 걸려 있었다. 주위에 서 있는 나를 본 일부 자매들이 다음날 수녀들에게 이 아름다운 성화에 대해서 또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수녀들은 자기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하면서도 모두들 구경하고 싶어했고, 즉각 나를 의심하면서 “파우스티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수녀들이 나에게 물었을 때, 나는 진실을 밝힐 수가 없어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더욱 호기심을 드러냈지만, 나는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었고 거짓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에 대해서 말할 허락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나에게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바깥 사람들도 다 아는데, 우리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며 드러나게 비난하였다. 나는 3일 동안 심한 고통을 느꼈지만 특별한 힘이 내 영혼을 지켜 주었다. 그러나 이 3일 도안 나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자비를 받는 사람들을 위해 고통 당하는 것을 행복으로 여겼다. 수많은 영혼들이 하느님의 자비를 받는 것을 보니 세상 끝날 때까지 고통을 겪는다 하더라도 문제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사람들이 행복의 원천인 하느님의 자비심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큰 기쁨을 느꼈다(421).

목요일 저녁 자비심 성화가 처음으로 공개될 때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서 손을 들어 크게 십자가를 그으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을 때, 그물이 쳐져 있는 듯한 도시 위로 그 성화에 그려진 모습과 똑같은 모습의 예수님께서 걸으시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시자 그물이 끊어졌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그으시며 사라지셨다. 그 다음 파우스티나는 증오에 불타는 사탄들을 보았다. 그들은 온갖 위협을 다 퍼부었으나 가까이 접근하지는 못했다. 잠시 후 그러한 환상은 사라졌으나 파우스티나는 오랫동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416참조). 4월 26일 금요일, 파우스티나는 축제에 참여하여 자기 고해신부가 하는 하느님의 자비심에 관한 강론을 들었다. 오래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첫 요구가 이루어진 셈이다. 소포코 신부가 주님의 위대한 자비심에 대해 이야기할 때, 파우스티나는 그 성화가 살아 움직이면서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에 빛을 비추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그 빛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양으로 비추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약하게, 어떤 사람에게는 강하게 비쳤다. 파우스티나의 마음에는 기쁨이 일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이 들렸다. “너는 내 자비의 증인이다. 너는 내 자비의 증거자로서 영원히 내 어좌 옆에 서 있게 될 것이다”(417) 강론이 끝나자 파우스티나는 즉시 수녀원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걸음을 옮기자 사탄들이 떼를 지어 막아 섰다. 사탄들이 무섭게 위협하였다. 그리고 “너는 우리가 여러 해 동안 이루어 놓은 업적을 한꺼번에 앗아갔다”고 소리쳤다. 파우스티나가 “어디서 이렇게 많이 몰려 왔느냐?” 고 묻자 사탄들은 “사람들의 영혼에서 왔다. 이제 우리를 그만 괴롭혀라”고 대답했다. 파우스티나는 그들의 증오를 보고서 수호천사의 도움을 구했다. 그러자 즉시 밝고 빛나는 모습의 수호천사가 나타나서 “주님의 배필이여, 두려워하지 말아라. 주님의 허락 없이는 어떤 악령도 해를 입히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악령들은 즉시 사라졌다. 현관 계단까지 파우스티나를 동반한 수호천사는 겸손하고 평화로운 모습이었으며 이마에서도 빛이 발하였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오 주님! 제가 주님의 영광과 수많은 영혼들을 위한 자비를 목격한 그 한 순간을 위해서도, 저는 제 일생 동안 지독한 고통을 받아도 좋습니다”(419).

1935년 4월 28일 주일, 파우스티나는 이러한 일기를 남겼다.

구원의 성년이 끝나는 날인 동시에 하느님의 자비심의 축일인 오늘, 우리가 행사에 참여하러 갔을 때 내 마음은 두 축일이 동시에 거행되는 것을 보고 기쁨에 넘쳤다. 나는 죄인들의 영혼에 자비를 베푸시기를 하느님께 기도하였다. 미사가 끝날 즈음 신부님이 성체강복을 하실 때 자비심 성화 안에 계신 주님을 나는 보았다. 주님께서는 축복을 내리셨고 빛이 세상 끝까지 비쳤다. …….. 나는 다음과 같은 목소리를 들었다. “이 축일은 나의 깊은 자비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 축일은 나의 자비가 얼마나 큰지 확인해 줄 것이다. 내 자비를 믿고 신뢰하는 사람은 그 자비를 얻게 될 것이다.” 나는 하느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에 감탄하였다(420).

소포코 신부 역시 그 기간 동안 기쁨과 고통을 겪었다. 파우스티나는 소포코 신부가 예수님의 요구에 따르기 위해 겪은 수고를 보고 그의 인내와 겸손함에 감탄하였다. 더구나 그 일은 고통과 슬픔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많은 경비가 들었는데 그것을 모두 소포코 신부 혼자서 다 감당하였던 것이다. 파우스티나는 소포코 신부가 하느님의 일을 잘 수행할 수 있게 되도록 자신이 기도 드리기 전부터 그는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 하느님의 자비심의 일을 수행하도록 예정된 분이라고 생각했다(422참조). 파우스티나의 마음에서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찬양이 우러나왔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라. 그분의 자비에 영광을 돌려라. 주님의 자비는 끝이 없도다. 만사는 끝이 있어도 주님의 자비는 끝이 없도다. 악은 측량할 수 있어도 주님의 자비는 측량할 수 없도다. 오, 하느님! 이 세상에 벌을 내리시는 가운데에도 당신 자비의 심오함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우리를 벌하심으로써 우리를 영벌에서 구원코자 하심입니다. 모든 피조물아, 기뻐하라. 아기가 어머니 곁에 있는 것보다 너희는 하느님의 자비에 더 가까이 있으니, 오 하느님! 진정으로 참회하는 자에게 당신은 연민 그 자체이십니다. 죄가 클수록 하느님의 자비 또한 더욱 큽니다”(423).

축제가 끝난 후 하느님 자비심의 성화는 다시 베르나딘 수녀원의 어두운 복도로 모셔졌다.  

급박하고 분명한 장해

파우스티나는 많은 은총과 계시를 받았지만 자신이 극복해야 할 내적 갈등은 여전히 많았다. 하느님으로부터 크나큰 계획을 계시 받고 그 엄청난 사실에 놀라며 그것을 성취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느끼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한 때는 예수님과의 대호를 피하고 염경기도에만 열중하려 하였었다. 파우스티나는 그때 겸손한 뜻으로 그렇게 하려 했으나 그것이 사탄의 유혹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날, 묵상을 하는 대신 기도문을 읽기로 마음먹고 있을 때, 다음과 같은 강하고도 분명한 말씀이 들렸다. “너는 이 세상으로 하여금 나의 재림을 주비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파우스티나는 이 말씀을 모르는 척했다. 의미를 알았다 해도 그랬을 것이다. 파우스티나가 소포코 신부에게 자기 영혼의 상태와 특히 하느님과의 대화를 기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자 소포코 신부는 하느님께서 내적으로 내리시는 말씀을 잘 경청하라고 권고하였다. 그런 후 주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파우스티나는 발 아래 엎드려 슬픔에 찬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를 땅에서 일으켜 당신 가슴에 기대게 하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딸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항상 함께 있겠다. 네 적들이 너에게 해를 입히려 해도 내가 허락한 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다. 너는 내가 거하는 곳이 내 변함없는 휴식처이다. 너 때문에 나는 벌하려는 손을 거두고 대신 세상에 축복을 내리고 있다”(429-431). 바로 그 순간 파우스티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황홀경에 빠져 들어갔다

……내 마음에 어떤 불이 붙는 것 같았다. 내 모든 감각이 멈춰졌고 주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함께 이상한 고통이 내 영혼 속에 스며들어왔다. 하느님의 포옹으로 나는 하느님 안에 잠겨 무력한 사람이 되었다 물방울이 대양에 떨어져 종적을 감추듯이 나도 하느님 안에서 없어지는 것 같았다. 이러한 내적 기도 후…. 나는 아무리 어려운 덕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세상이 중히 여기는 것들이 하찮게 여겨졌다. 나는 마음을 다하여 침묵과 고독만을 원했다(432).

주님과의 일치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 그러한 상태는 오래 지속되었다. 미사 때 영성체 후 자주 보았던 아기 예수님을 또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마음 속에 예수님께서 계심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 깊은 관상은 어떤 사람과도 무의식적으로는 한마디의 말도 나누지 않는 상태에 이르게 했다. 파우스티나는 가능한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면서 자신의 소명에 관해 계속 물음을 던졌는데 결국 주님께서는 파우스티나에게 새로운 임무를 준비시키고 계셨다.  

새로운 수도회

1935년 6월 9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파우스티나는 무언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암시가 담긴 메시지를 처음으로 받았다. 그날 저녁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 다음의 말씀을 들었다. “너의 간청으로 너와 네 동료들은 자신과 세상을 위한 자비를 얻게 될 것이다.” 어떻든 파우스티나는 현 수도회에 머물지 못할 것이며, 그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새로운 일을 벌인다는 것은 그녀에게 압박감을 주었으며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에는 자신의 무능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네게 부족한 것을 모두 채워 줄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이 가슴 깊이 사무쳤으나 더욱 더 자신의 비참함을 느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더욱 완전한 삶을 요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무능함 같은 것을 생각하는 것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435참조). 한 달 후, 파우스티나는 영적지도 신부에게 주님께서 자기를 통해 이루려고 하시는 여러 가지 일들에 관해 고백하였다. 파우스티나는, 주님께서는 자기와 같이 미천한 사람들을 통해 일하시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싶었으나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흔히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통해 이루신다는 대답을 들었다. 더욱이 파우스티나는 누구에게 말한 적이 없는 비밀까지도 소포코 신부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놀랐다. 소포코 신부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비심을 선포할 새로운 수도회의 창설을 계획하고 계시며 그 수도회 회원들의 기도를 통해 세상에 자비를 내리려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파우스티나가 새 수도회를 설립하라는 명령을 받은 일이 없다고 말하자 자비심 성화에 그려진 모습의 예수님께서 현관 앞에 서서 “나는 그러한 수도회를 원한다”고 말씀하셨다. 파우스티나는 이때 본 환시를 지도신부에게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급히 수녀원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서둘러 돌아오면서 반복해서 되뇌었다. “주님, 저는 주님의 요구를 들어 드릴 능력이 없습니다. 저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437). 다음날 미사가 시작될 무렵에 파우스티나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예수님을 보았다. 빠른 시일 내에 수도회가 설립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 그리고 너는 내 동료들과 그 수녀원에 살게 될 것이다. 나의 성령께서 너희의 생활규칙이 되실 것이다. 구유에서 십자가 죽음을 당했을 때까지의 내 삶이 너희 생활의 모델이 될 것이다. 나의 신비를 꿰뚫어 보아라. 그러면 피조물을 향한 내 자비의 심오함과 무한한 나의 선함을 보게 될 것이다. 너는 이것을 세상에 알려라. 너는 너의 기도를 통해 땅과 하늘의 중개자가 될 것이다”(438). 예수님께서 사라지신 다음, 밝은 광명을 본 것은 성체를 모신 후였다. “우리는 너에게 축복을 보낸다” 하는 말씀을 들었다. 그런 다음 빛 줄기가 뻗어 나왔는데 그 빛은 마음을 뚫었다. 그 빛은 영호에 불을 놓는 것 같았다. 기쁨과 행복에 겨워 호흡이 멈춰지는 것만 같았고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먼지가 무한한 공간에 빨려 들어가듯이 전능하신 분께 붙잡혀 완전히 하느님 안에 소멸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다시 현재 상태로 돌아왔을 때 파우스티나는 자기 안에 하느님의 뜻을 실현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겼음을 느꼈다. 이제 아무것도 어려운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 드렸다. “무엇이든지 주님께서 하라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파우스티나는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을 내적으로 미리 겪었다(439). 6월 30일, 수녀원의 수호성인인 성 이냐시오의 축일에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의 계획을 실현할 수 있게 도와 주시라고 뜨겁고도 열렬히 이 성인에게 기도했다. 미사 때 파우스티나는 큰 책을 들고 제대 왼쪽에 서 있는 이냐시오 성인을 보았다. 그가 “내 딸아, 나는 네게 무관심한 것이 아니란다. 이것이 너희 수도회의 규칙이 될 것이다” 하며 손으로 그 큰 책을 가리키면서 사라졌다. 파우스티나는 그때 성인들이 우리들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그들과 우리가 얼마나 가까이 일치되어 있는지 알게 되었다. “오, 착하신 하느님! 벌써 이미 이 세상에서부터 성인들과 대화하고 있는 이 영적 세계는 얼마나 아름다움가요!” 하고 기록하였다. 그날은 하루 종일 이 수호성인의 현존을 느낄 수 있었다(448). 정들었던 수녀원을 떠나 하느님의 명령대로 새 수녀원을 일으켜야 한다는 내적 갈등은, 파우스티나가 죽기 몇 달 전까지 계속되었다. 1935년 8월 5일 자비의 성모 축일에도 이러한 갈등 속에서 묵상과 미사를 하였다. 둘째 미사 때, 그 동안 특별한 보살핌을 받아왔던 이 수녀원에서 새 수녀원을 세우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성모님께 말씀 드렸다. 그때 파우스티나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거룩한 동정녀를 보았다. 성모님께서는 제대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있는 파우스티나에게 가까이 다가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 모두의 어머니이다.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감사 드려라.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란다.” 파우스티나는 성모님께서도 하느님의 뜻에 충실히 순종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은총을 입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용기를 가져라. 어려움이 있어도 두려워 말아라. 내 아들 예수의 수난에 눈을 돌려라. 그러면 승리를 거둘 것이다”(449).  

하느님과 영혼들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의 어머니로부터 이 말씀을 듣고서 1935년 8월 1일 목요일에 성체 대전에서 기도하면서 보았던 ;환시를 상기하였다.  

기도하고 있는 나는 갑자기 내적인 환시의 세계에 빠져 들어갔다. 예수님께서는 옷을 벗기 운 채 기둥에 묶여 있었고 매질이 시작되었는데, 네 명이 돌아가며 매질을 하였다. 예수님께서 고문 받으시는 것을 보니 내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보고 있는 것보다 나는 더 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매질과 고문을 가하는 것과 똑같은 고통을 주는 죄악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은 음란의 죄였다. 오, 매질을 당할 때에 받으신 예수님의 고통은 얼마나 끔찍했던가! 예수님께서 “인류가 처해 있는 현재의 상태를 보라.” 고 말씀하시자 갑자기 무서운 광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때까지 박해자들이 예수님을 떠나고 또 다른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예수님을 매질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로 신부, 남녀 수도자, 고위 성직자들이었는데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양한 연령, 다양한 직업의 평신도들도 있었다. 그들 모두 무죄한 예수님께 고문을 가했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심한 고통을 받았다. 이전에 박해자들이 당신께 매질할 때 예수님께서는 침묵을 지키시며 그냥 바라보고 계셨었는데 앞서 말한 신부, 수도자, 고위 성직자들이 매질할 때는 눈을 감으시고서 무척이나 고통스러우신 듯한 신음소리를 내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배은망덕한 사람들의 악을 상세히 일어 주셨다. “네가 보다시피 이 고문은 죽음보다 더 심한 것이다.” 그때 나는 망연자실하여 할 말을 잃었고 죽음과 같은 고통을 느꼈다. 나를 그러한 고통에 빠뜨리신 분 외에는 아무도 나를 그 고통에서 구출하거나 위로해 주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진실한 마음의 고통을 보고 큰 위로를 받았다. 나에게서 위로를 받으려므나.” 그리고 나서 십자가 위에 못박히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그때 수많은 영혼들이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 다음으로 십자가에 못박히는 두 번째, 세 번째 집단을 보았는데 두 번째 집단은 십자가에 못박히지는 않았으나 손이 묶였고, 세 번째 집단은 십자가에 못박히거나 묶이지는 않았지만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영혼들이 보이느냐? 나처럼 고통과 경멸을 당하는 이들은 또한 나처럼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나만큼 고통과 경멸이 심하지 않은 영혼은 그만큼 영광도 덜할 것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영혼들 중에는 사제들이 가장 많았다. 그들 중에는 내가 아는 분들도 있었는데 대단히 반가웠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일 너는 오늘 본 것에 대해 묵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갑자기 예수님께서 모습을 감추셨다(445-446).

이튿날 아침 파우스티나는 몸이 아파 미사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신비롭게도 미사 시간 동안 파우스티나는 침대에서 성 미카엘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는 고해신부를 볼 수 있었다. 그때 아기 예수님도 보았고 미사가 끝날 즈음에는 환시도 사라졌다. 그리고 침실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내 마음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일었다. 미사에 갈 수 없었는데도 나는 성당에서와 똑같이 미사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해 주신다”(447참조).

1주일 후에도 파우스티나는 몸이 아파 침대에 누웠다.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면서 아픔을 견디었다. 그리고 목요일 저녁에 기도하려고 성당으로 들어갔다. 그때 그녀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착한 행동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려는 성실한 소망만 가져도 큰 보상을 내리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하느님의 얼마나 큰 은총인가!” 하고 생각하며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하느님과 영혼들을 위해 수고하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는 이 전투에서 휴식을 바라지 않고, 목숨을 다할 때까지 나의 왕이신 주님을 위해 싸울 것이다. 나는 하느님께서 당신 어좌로 부르시기 전까지는 칼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내 피난처시니 나는 어떤 재앙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사탄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존재가 사탄을 두렵게 한다. 사탄은 소심하고 교만한 자에게서만 승리를 거둔다. 겸손한 영혼은 그 어떤 것에도 혼란을 당하거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겸손은 강하기 때문이다. 나는 태양의 열기 속가지 날아갈 것이다. 아무도 나를 막지 못할 것이다. 사랑은 수인(수인)으로 남지 않는다. 사랑은 여왕과 같이 자유롭다. 사랑만이 하느님을 얻게 할 것이다(450).

 

특별한 은총

어느 날 성체를 모신 후 파우스티나는 “너는 우리가 거하는 곳이다” 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 순간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께서 자기 영혼 속에 현존하심을 느꼈다. 말로서는 이를 설명할 길이 없지만 그 영혼은 이를 느꼈다.

“오, 무한히 선하진 하느님! 이 비참한 피조물에게 얼마나 더 낮게 굽히시렵니까? 만일 사람들이 바라기만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즉시 말씀하실 텐데, 방탕이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451-452).

파우스티나는 삼위일체와 일치를 이루는 일이 더욱 잦아졌고 하느님의 은총에 잘 협조하였다. 한 번은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딸아, 사람들이 거부하는 이 은총들을 받아라. 가능한 많이 받아 가거라.” 그 순간 그녀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충만해졌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내 안에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것 외에 그 어떤 행복도 나는 찾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내 안에 거하시니 나는 한없이 기쁘고, 여기서 나는 하느님과 영원히 함께 살 것이다.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곳은 바로 이곳이다. 나는 여기서 하느님과 안전하게 거하고 있다. 이곳은 인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장소이다(454).

복된 동정녀께서도 파우스티나가 이러한 방법으로 하느님과 일치되기를 원하셨다. 파우스티나는 마음 속에 행복이 충만하여 어떠한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도 큰 위로를 느꼈다. 평화와 평정이 그녀의 삶의 특징이 되었다. 1935년 8월 12일에서 16일까지의 사흘간의 피정이 시작될 때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를 격려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피정을 지도한 이는 예수회의 신부였다. “…. 이번 피정 동안 나는 너를 강하게 하고 또 내가 너의 마음에 한 말을 확인시키기 위해, 이 사제의 입을 통해 말할 것이다. 이 피정은 모든 수녀들을 위해 마련된 것이지만 나는 너를 특별히 염두에 두었다. 왜냐하면 너를 강인하게 하고, 앞에 놓인 네 적들에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사제의 말을 명심해서 듣고 마음 속에 곰곰 히 새겨 보아라”(456). 사제가 하느님과의 일치에 대해서, 또 이 일치에 장해가 되는 요소에 관해 강론한 내용은 놀랍게도 파우스티나가 직접 경험했거나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내용들이었다. 그가 하느님의 자비와 선하심에 관해 말한 내용은 예수님께서 자비의 축일에 관해 말씀하신 내용과 똑같았다. 따라서 파우스티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었고, 그 어떤 것에도 의혹을 품지 않게 되었다. 파우스티나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묵상 중에 흰 옷을 입으신 예수님이 줄곧 제대 위에 서 계셨다. 주님께서는 내가 지금 기록하고 있는 이 노트를 들고 계셨는데 그 묵상 동안 계속 그 노트의 장을 넘기면서 침묵을 지키고 계셨다. 나는 내 영혼을 태우는 듯한 불길을 감내하느라 자신을 통제하기가 힘들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묵상이 끝날 무렵 나는 내 자신을 조절할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인류에 대한 나의 선함을 이 노트에 다 받아 적지 못했구나. 나는 네가 그 어떤 것도 빠뜨리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너의 마음에 완전히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459).

파우스티나에게는 그 피정이 특별한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성실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의혹 속에 버려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았다. 그리고 하느님과 가장 일치를 이룰 수 있는 길은 자기부정(자기부정), 즉 자신의 뜻을 일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이 길만이 영혼을 진실로 자유롭게 하고, 깊은 관상에 잠기게 하며, 삶의 짐을 가볍게 하여 나아가 죽음까지 기꺼이 맞이할 수 있게 한다. 8월 15일 허원을 갱신하던 날,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서 수녀들을 축복하신 후 감실 안으로 들어가시는 장면을 보았다. 그때 흰옷을 입으시고 머리 위에서부터 푸른 망토를 걸치신 하느님의 어머니께서도 제대에서 내려 오셔서 망토를 파우스티나에게 씌우시며 “폴란드를 위하여 이 갱신을 바쳐라. 폴란드를 위해 기도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468). 파우스티나는 피정 동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주님과 일치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피정이 끝나고 난 다음에는 육신의 눈으로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하느님께 대한 갈망이 더 커졌다. 그녀는 그때 자신의 마음이 영원한 사랑과 얼마자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깨달았다. 어느 날 기도할 때, 파우스티나는 예수님이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때 지극히 아름다운 어떤 영(영)을 보았는데 그가 “울지 말아라. 주님께서 말씀하시는구나” 하고 말했다. 파우스티나가 “누구십니까?” 라고 묻자 “나는 하느님의 어좌 아래에서 밤낮 끊임없이 하느님을 찬미하는 일곱 영 중에 하나이다”라고 대답했다. 그 영은 하느님께 대한 갈망을 해소시켜 주기는 커녕 오히려 더 열렬한 갈망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 뒤 그 영은 얼마 동안 떠나지 않고 그녀가 어디를 가든지 동행하였다. 다음날 아침 미사 때 거양성체 순간에 그 영은 수천 명이 합창하는 듯한 소리로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하고 외쳤다. 그것은 도저히 모사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파우스티나의 영혼은 하느님과 일치되어 하느님의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성스러움을 보았다. 동시에 그녀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가를 깨달았다. 또한 감각에 의하지 않은 순수 내적인 방법으로 삼위일체에 대한 위대한 지식을 계시 받았다. 그 후 그러한 계시는 성당에서 뿐만 아니라, 그녀가 일하고 있을 때나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을 때에도 이때보다 더 깊이 자주 내렸다(471-472참조).  

하느님 자비심의 5단기도

1935년 9월 13일 금요일, 주님께서는 파우스티나에게 이 세상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얻을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저녁 무렵 침실에서 나는 하느님의 정의를 집행하는 천사를 보았다. 천사는 눈부신 옷을 입고 빛나는 얼굴로 구름을 딛고 서 있었다. 그 천사가 천둥과 번개로 세상을 치자 세상이 뒤 흔들렸다. 하느님의 분노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지역을 내리치려는 것을 본 나는, 그 지역은 회개할 것이라며 천사에게 애원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의 분노 앞에서 나의 애원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또 그때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를 보았는데 삼위일체의 엄위 하심이 나의 폐부를 찔렀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나는 애원하였다. 바로 그때, 내 영혼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위력을 생각하며 하느님께 매달렸다. 오,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을 어찌 측량할 수 있을까? 언젠가 우리는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니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내적으로 들리는 말로 이 세상을 위해 하느님께 애원했다. 내가 이렇게 기도했을 때 천사의 위력이 없어지고 그는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응당 받아야 할 벌을 내릴 수 없었다. 나는 그때까지 이처럼 커다란 내적 힘을 가진 기도를 결코 해 본일이 없었다….. 이튿날 성당에 들어갔을 때 나는 내적으로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성당에 들어올 때마다, 그 즉시 어제 내가 가르쳐 준 기도를 바쳐라.” 내가 그 기도를 바칠 때 마음 속으로 다음 말씀을 들었다. “이 기도는 나의 분노를 달랠 것이다. 9일 동안 묵주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기도하여라. 먼저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과 사도신경을 바쳐라. 그 다음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구슬에서는 ‘영원하신 아버지, 저희가 지은 죄와 온 세상의 죄를 보속하는 마음으로, 지극히 사랑하시는 당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 영혼과 신성을 바치나이다’ 하고 기도하여라. 그리고 성모송을 바치는 곳에서는 ‘예수님의 수난을 보시고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하고 기도하고 마지막에는 다음의 기도를 세 번 바쳐라. ‘거룩하신 하느님,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분이시여,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474-476).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에게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시고 그 수녀원과 세상에 이 기도를 알리라고 하셨다. 미카엘 소포코 신부는 크라쿠르 체불스키 출판사에 이 기도문을 인쇄케 하고, 그 뒷면에 빌니우스에서 에우게네 카지미에로프스키가 그린 예수님 자비심의 성화를 실었다. 9월의 마지막 날, 파우스티나는 자신의 사명을 확고히 인식하게 되었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오, 하느님! 성교회 안에서 저의 사명은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하느님께 자비를 간청하는 것임을 저는 이제 깨달았습니다. 저는 예수님과 일치하여 세상의 조를 대신 보속하는 속죄양으로서 그분 앞에 있습니다. 제가 성자와 함께 간청할 때 하느님께서는 거절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제 희생 그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합쳐서 바칠 때 하느님의 분노를 달랠 만큼 강한 힘을 띠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자를 통하여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는 성자의 고통스러웠던 수난으로 인하여 항상 하느님의 분노를 면할 수 있습니다. 오, 하느님!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 당신을 알게 되고, 엄청난 사랑 때문에 당신이 그들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길 원합니다. 오, 창조주이신 주님! 천국의 신비함을 드러내어 세상이 하느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게 하고 싶습니다. 예수님, 저로 하여금 성부 대전에 깨끗하고 흡족한 제물이 되도록 해주소서. 예수님, 당신은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니 비참하고 죄 많은 저를 예수님처럼 되도록 변화시켜 주시고, 영원하신 당신 성부께 저를 바쳐 주십시오. 제 희생의 향기가 예수님께만 알려지기 바랍니다. 오, 하느님! 제 마음은 하느님의 자비를 간원하는 불길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승에서 저의 영원한 사명임을 저는 압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주님의 위대한 자비와 선하심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482-483).

 

8일 피정과 새 수도회

파우스티나는 8일간의 피정과 소포코 신부의 요구를 실천하기 위해 크라쿠프로 떠날 준비를 하였다. 소포코 신부는 새 수도회를 세워야 한다는 파우스티나의 영감을 확신할 수 없어서 다른 사제에게 그 문제를 의논해 보고자 했다. 그래서 파우스티나에게 이전의 고해신부인 예수회의 요셉 안드레아 신부에게로 가서 예수님께서 내리신 말씀을 모두 이야기하라고 권하였다. 10월 19일, 파우스티나는 안토니아 수녀와 함께 빌니우스로 갔다. 첫 반째로 도착한 곳은 바르샤바의 수녀원이었다. 수호천사가 그들을 동행했는데 파우스티나만이 볼 수 있었다. 수녀원 정문에 도착하자 천사는 모습을 감추었다. 크라쿠프로 가기 위해 기차에 오르자 다시 천사는 모습을 나타냈다. 파우스티나는 자기 옆에 앉아 기도와 관상에 잠겨 있는 천사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그대로 따라 했다. 다시 수녀원에 이르렀을 때 또다시 천사의 모습은 사라졌다. 피정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마음이 약해졌을 때는 유혹과 번민도 없지 않았다. 불안을 느낀 두 가지 이유는, 첫째 자기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둘째는 새로운 수도회를 세우기 위해서 그 동안 정들었던 수녀원을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피정 둘째 날, 장상은 면회실에서 안드레아 신부님과 면담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하느님께서는 파우스티나에게 완전한 신뢰의 은총을 베푸시어 그 면담 후에는 그 문제를 평화와 빛으로 대하도록 해 주셨다. 안드레아 신부는 그녀에게 장상의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그는 파우스티나가 이 수녀원에서 종신서원을 했기 때문에 이곳에 머무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했고, 파우스티나가 단순한 마음과 하느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오류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안드레아 신부는 이 세상을 위해서 하느님께 간원하는 수도 단체도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파우스티나는 그 충고에 따라 피정을 하면서 결심했다(489-506참조). 10월 마지막 주일인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파우스티나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마음의 왕이 되시고 모든 영혼에게서 하느님의 은총이 빛나기를 열심히 기도하였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딸아, 너는 내 소망을 충실히 지켜 나에게 가장 큰 영광을 안겨다 주었다”(500). 피정 마지막 날 미사 중에 예수님을 보았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큰 기쁨이다. 너의 사랑과 겸손으로 나는 하늘의 어좌에서 내려와 너와 일치를 이룬다. 사랑은 나의 위대함과 너의 보잘것없음 가운데 놓인 심연을 채운다”(512).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대양에 빠져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잊지 않았다.

“예수님, 제 마음을 예수님 마음처럼 만들어 주십시오. 차라리 제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과 바꾸어 다른 사람들, 특히 슬픔과 고통에 놓인 사람들의 요구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십시오”(514).

피정을 마치고 빌니우스에 돌아온 파우스티나는 새 수도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고 마음은 조급했다. 밤 기도를 하는 것조차 힘겨웠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죄를 보속하는 지향으로 천상 성부께 지극히 고통스러웠던 예수님의 수난을 바쳤다. 기도 후 일어나, 장궤틀 사이를 걸어가고 있을 때 옆에 와 계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주님은 수난 당하실 때의 모습이셨다. 손에는 흰 옷과 띠를 들고 계셨는데, 파우스티나에게 그 옷을 입혀 주셨고 띠를 매어 주셨다. 그 다음 수난 받으실 때 걸치셨던 것과 같은 붉은 옷을 걸쳐 주셨고, 같은 색의 수건을 머리에 씌우시며 말씀하셨다. “이것이 너와 네 동료들이 입을 옷이다. 탄생에서 십자가상의 죽음에까지의 내 생활이 너희들의 규칙이 될 것이다. 너희들은 나를 바라보고 너희가 본 그대로 살아라. 나의 정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양순하고 겸손한 내 마음을 이해하기 바란다”(526). 파우스티나는 빨리 일을 추진하여 주심이 요구하시는 대로 일루고 싶었다. 거의 한 달간 새 공동체의 규칙과 규율을 위한 작업을 하였다. 하루는 자기 방에서 그 일을 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은 말이 들려왔다. “이 수녀원을 떠나지 말아라. 네 자신을 측은히 여겨라. 네 앞에 얼마나 많은 고통이 가로놓여 있는지 아느냐?” 말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하던 일을 계속하려 할 때 갑자기 말 소리가 또 다시 시끄럽게 들렸다. “그런데도 네가 떠나면 우리는 너를 멸망시킬 것이다. 우리를 괴롭히지 말아라” 주위를 둘러보니 추하게 생긴 괴물들이 보였다. 그러나 파우스티나가 십자성호를 그으니 그 모습들은 사라졌다. 파우스티나는, 사탄이 얼마나 추한지를 모르고 사탄이 따라 다니도록 만드는 불쌍한 영혼들이 그 모습을 본다면 지옥에서 느끼는 것보다 더 심한 고통을 느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 한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새로운 용기가 솟아났다.(540참조). 한 번은 파우스티나가 성당에서 환시를 통해 부서져 있는 건물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 ‘이곳은 수도회가 들어설 곳이다’ 하는 말씀이 들렸다. 파우스티나는 무너진 집이 수녀원이 될 것이라는 말씀에 다소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12월 중순 예수님께서 온실에서 일하고 있는 파우스티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내가 하는 이 말을 기록하여라. 나의 기쁨은 너와 일치하는 것이다. 나는 네 수도원에 내 거처를 마련하기를 큰 기쁨으로 기다린다. 나는 그 수도원에 머물면서 이웃을 각별한 방법으로 축복하겠다. 너희들에게 대한 사랑으로 성부의 정의에서 볼 때 응당 내리셔야 할 벌을 거두시도록 하겠다. 내 딸아, 내 마음은 너의 청에 기울어졌다. 네가 세상에서 할 일은 전 세계를 위해 자비를 구하는 일이다. 그러나 내 자비에 신뢰하는 마음으로 다가오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다. 부활 후 첫 주일을 자비의 축일로 삼으라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날 사제들은 나의 위대한 자비, 측량할 길이 없는 자비에 대해 말할 것이다. 나는 너를 내 자비의 관리자로 삼을 것이다. 사제에게 가서 상(상)을 수도원에 숨겨 두지 말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성당에 두라고 말하여라.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은총을 받고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570). 12월 21일, 소포코 신부는 파우스티나에게 환시에서 본 것과 같은 집을 발견할 수 있는지 찾아보라고 말하였다. 파우스티나는 소포코 신부와 함께 폐허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러한 집을 찾아 나섰는데, 곧바로 그와 같은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소포코 신부는 내부 설계에 대해 자기 의견을 말하기도 하였는데 파우스티나는 그 집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집과 너무도 똑같은 것을 새삼 발견했다. 수녀원에 돌아오자마자 잠시 성당에 들렸는데 갑자기 마음 속에서 이러한 말씀이 들렸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모든 일이 내 손에 달려 있고, 내 자비에 따라 결실을 맺을 것이다. 아무도 내 뜻을 거스르지 못할 것이다”(573).  

1935년 성탄

1935년 성탄은 파우스티나에게 큰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을 다해 성탄을 준비하면서 내적인 기쁨과 행복에 젖어 있었다. 성탄 전날 아침부터 마음은 하느님께 온통 쏠려 있었고 하느님의 현존을 깊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탄 미사에서 성체를 모신 후에는 이러한 말씀이 들렸다. “나는 항상 네 마음 속에 있다. 네가 영성체할 때뿐만 아니라 항상!” 이때의 그녀의 기록을 보면 새로운 단계의 신비적 일치를 엿볼 수가 있다.

“오, 거룩하신 삼위일체, 영원하신 하느님! 제 영혼은 하느님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눈에는 나이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은 한결같으십니다. 오, 하느님의 엄위로우심이여!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왜 이토록 엄위로우심을 숨기시고 계십니까? 왜 천상 어좌에 아니 계시고 우리 가운데 와 계십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딸아, 사랑이 나를 끌어내렸다. 사랑이 나를 여기 머물게 한다. 내 딸아, 내게 대한 순수한 사랑의 행위가 어떤 은총과 보상을 주는지를 안다면 기쁨에 겨워 죽게 될 것이다. 나는 네가 항상 사랑을 통해 나와 일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 말을 한다. 사랑을 통한 일치는 바로 네 삶의 목표이다. 이러한 행위는 의지의 행위이다. 순수한 영혼은 겸손하다는 사실을 알아라. 나의 엄위로움 앞에서 네 자신을 낮추고 비울수록, 나는 은총으로 너를 채우고 너를 높이기 위해 나의 전능을 행할 것이다”(575-576). 내 영혼은 하느님과 내가 사는 광활하고 화려한 세계이다. 하느님 외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 하느님과의 생활이 처음 시작될 때 내 영혼은 눈부신 경외심으로 넘쳤다. 하느님의 광휘에 나는 눈이 멀어 하느님께서 내 안에 아니 계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때는 하느님께서 내 안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순간들이었다. 사랑은 점점 순수하고 강해져 갔고 주님께서는 나의 의지를 당신 의지와 더욱 가깝게 일치 시키셨다. 사랑하는 하느님과 항상 함께하는 이 아름다운 세계의 체험을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그 어떤 것도 하느님과의 이 일치를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582).

또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에게 이런 말씀도 하셨다.

“내가 네 영혼 깊은 곳에서 한 말들을 되새기는 것이 수많은 책들을 읽는 것보다 더 나을 것이다. 내가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하는 말들을 그들이 듣기만 한다면, 그들은 단시일 내에 높은 성덕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 텐데”(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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