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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종 (1938)

 

 

더 큰 고통을 받아들임

 

1938년 1월 1일에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나는 지난해를 고통 속에서 마감했다. 새해도 여전히 고통 가운데 맞고 있다. 나의 완성이 이루어질 새해여, 안녕. 오, 주님! 새해에 주실 모든 은총에 미리 감사 드리며 제가 매일 마실 고통의 잔에 대해서도 감사 드립니다. 오, 주님! 그러나 고통의 쓴맛을 줄이지 마시고 제 입술을 강하게 하시어, 고통의 쓴 잔을 마실 때마다 스승이신 주님을 위해 미소 짓게 하소서. 아침 이슬처럼 조용히 그리고 알게 모르게 주시는 주님의 위로와 은총에 감사 드립니다. 주님께서 이 잔을 내려 주실 때 제 마음은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1449)

오, 주님! 오늘 저는 저의 모든 것을 사랑의 마음으로 주님의 뜻에 온전히 맡깁니다. 때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헤아리지도 못하지만, 제게 항상 자비와 현명함을 주시는 주님의 명령에 완전히 승복합니다. 오, 나의 스승이시여! 제 영혼의 지도자이신 주님께 제 자신을 온전히 맡겨드립니다. 지극한 자비의 바다이신 주님의 성심께 온전히 저를 맡기오니 주님의 거룩한 뜻에 따라 이끌어 주십시오(1450).

 

그날 아침 파우스티나는 침실에서 겨우 봉성체를 할 수 있었다. 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간호 수녀는 이렇게 큰 대축일 미사에도 참석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면서 체온을 쟀다. 그리고 열이 없었으므로 파우스티나는 그녀의 설교를 고스란히 들어야만 했다. 파우스티나는 혼자 남게 되었을 때 반복하여 말했다. “새해여, 안녕! 고통의 쓴 잔이여, 안녕!”

저녁식사 후 이레네오 원전 수녀는 잠시 들러 파우스티나를 보고 갔다. 그런데 파우스티나는 자신의 인간적인 생각 때문에 원장 수녀를 통해 안드레아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청하지 못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고해성사를 볼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날 늦게 한 수녀가 와서 식당에 챙겨 둔 우유와 버터를 왜 먹지 않았느냐고 핀잔했다. 파우스티나는 가져다 줄 사람이 없었다고만 대답했다. 저녁이 되자 고통은 더 심해져 밤 11시까지 시달렸다. 그러나 파우스티나는 이 모든 고통의 치료제를 찾아내었다.

 

나는 영적으로 감실로 가서 성합을 열었다. 그리고 성합 가장자리에 이마를 대고, 나의 고통과 아픔을 알아 주시는 유일한 분이신 예수 성심을 향해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는 고통의 달콤함을 느꼈다. 내 영혼은 이러한 고뇌를 바랐던 것이다. 이 세상 어떤 보물과도 바꿀 수 없었다. 주님께서는 내가 이 고통을 참아 받을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셨고 내게 이러한 고통을 안겨 준 사람들을 향한 사랑도 주셨다. 오늘은 새해의 첫날이다(1454).

 

1월 2일, 파우스티나의 봉성체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록할 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기록하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이 기록들은 많은 영혼들에게 위로가 되기 때문이었다. 파우스티나는 예수님의 요청에 따라 솔직하게 모든 것을 기록하였다.

 

그 고통의 밤이 지난 다음날, 신부님께서 성체를 모시고 침실로 오셨다. 신부님께서 조금만 더 지체했더라면 성체 안의 예수님께서 직접 나에게로 뛰어오셔야 할 정도로 내 영혼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1458). 성체를 영한 후에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만일 사제가 나를 너에게 영해 주지 않았더라면 내가 직접 너에게로 갔을 것이다. 내 딸아, 지난밤에 겪은 네 고통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은총을 얻어다 주었다”(1459).

이때 예수님께서는 지난날 아침 파우스티나가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안드레아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청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마음이 언짢았다고 말씀하셨다. 파우스티나는 용서를 빌며 말씀 드렸다. “오, 스승이시여! 제 결점을 그냥 내버려두지 마시고 다시는 잘못하는 일이 없도록 도와 주십시오”(1460).

 

1월 6일, 신부님이 성체를 모시고 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에게, 여러 주교들과 평신도 한 사람이 자비의 축일을 고려하고 있다고 알려 주셨다.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일에 정열적으로 봉사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은 하느님께 큰 영광을 드리게 될 것이다(1463참조).

첫 금요일 저녁, 파우스티나는 건강이 조금 좋아져서 성시간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너무나 기뻤다. 이때 파우스티나는 이러한 소리를 들었다.

 

“너의 건강은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참회의 성사를 미루지 말고 받아라. 성사 받기를 미루는 것을 나는 원치 않는다. 주위 사람들의 말에 신경 쓰지 말아라”(1464).

 

이 말씀은 건강의 호전으로 기뻐하는 파우스티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불을 끄고 고요함 속에서 성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마음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11시 까지는 조용하게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으나 점차 고통이 심해져 옆 침실의 수녀를 깨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약을 먹은 후에야 비로소 잠이 들 수 있었다. 주님의 경고를 깨닫고 이튿날에는 어떤 신부님에게든 고해성사를 받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파우스티나가 기도하면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자신의 고통을 봉헌하고 있을 때 이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사탄이 공격을 해 왔다.”죄인들을 위해 기도하지 말고, 단죄 받기 쉬운 네 자신을 위해서나 기도하여라.” 파우스티나는 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죄인들을 위해 예전보다 두 배의 정열로 기도했다. 화가 난 사탄은 “내가 너를 마음대로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소리치고는 사라져버렸다. 그때 파우스티나는 자기의 기도와 고통이 사탄의 손아귀에서 수많은 영혼들을 구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1465참조).

다음날 아침 미사 때, 파우스티나는 고통을 받으시는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토록 심한 고통 속에서도 평화를 잃지 않으시는 데에 놀랐다. 이를 통해 파우스티나는 수많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외적으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금요일마다 그랬듯이, 손과 발과 옆구리에 통증을 느꼈다. 이번에는 통증이 오래갔다. 그때 갑자기 파우스티나는 자신의 고통을 통해 은총을 받은 어떤 죄인이 주님께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파우스티나는 “굶주린 영혼이 굶주려 죽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모든 고통을 바치겠다”고 기록하였다(1468). 그날 파우스티나는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었는데 주님의 대리자인 신부님을 통해 위로를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파우스티나는 “오, 교회의 어머니이신 나의 어머니여! 당신은 진정으로 자녀들을 이해해 주시는 참된 어머니이십니다.” 그리고 계속 기록하였다.

 

사람들의 말이나 평판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양심에 따라 판단하시는 예수님은 얼마나 선하신가. 무한히 선하신 예수님의 판단하심을 보고 나는 예수님의 무한한 선하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피로해지고 도 내 본성이 휴식을 바랐지만 이를 억제하고 사랑하는 영혼들과 영원히 함께 할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시간이 있을 때마다 기록하는 것도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1469-1471참조).

 

1월 8일 미사 때, 파우스티나는 소포코 신부의 노력과 자신이 노력이 일치되어 하느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두 사람은 떨어져 있었지만 공동의 목표로 함께 일치되어 있었다.

파우스티나의 영적 생활은 이미 성숙해 있었지만 자신이 교회의 유용하고 완전한 도구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녀의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 교회와 맺어져 있는 유대는 대단히 깊다. 한 사람이 성화되거나 죄에 빠져도 전체 교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 자신과 나와 가까운 이들의 삶을 보면서 나 자신의 삶이 다른 영혼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어떤 영웅적인 행위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손놀림이나 바라보는 시선과 같은 모든 사소한 행동을 통해서도 다른 영혼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반영되는 것이다(1475).

 

수녀들이 저녁기도 시간에 “당신 팔의 큰 힘을 떨쳐 보이시어 …”라고 마니피캇을 노래할 때 파우스티나는 깊은 관상에 빠져들어갔다. 파우스티나는 주님께서 곧 자기 안에서 주님 사업을 완성하신 것과 주님께서 모든 것을 밝혀 주지 않으시더라도 결코 놀랄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1477참조).

그날 파우스티나는 주님께 여쭈어 보았다. “예수님, 오늘은 왜 그렇게 슬퍼 보이십니까? 누가 당신을 그렇게 슬프게 해드렸는지 말씀해 주세요.”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선택된 영혼들이 나의 정신, 즉 나의 사랑의 정신에 따라 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법을 사랑 위에 세워 놓았으나 수도자들에게서도 그 사랑을 발견할 수가 없다. 이것이 내 마음을 슬픔으로 가득 채운다”(1478).

 

파우스티나는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생활을 게으르지 않았다. 영혼들이 받게 될 위로와 은총을 위해서 하느님의 자비에 관해 기록하라는 예수님의 요청과 영적 지도자들의 권고를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기록해 나갔다. 1월 8일에 서 15일 사이에는 죄 많고 절망에 빠져 고통 받는 한 영혼이 완전한 영혼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자비로우신 하느님과 대화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문은 그녀의 깊은 체험과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밝힌 감정들을 보여 주고 있으며,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과 그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소중한 가르침들을 수록하고 있다. 이 대화를 기록한 시기는 파우스티나가 중병을 앓던 때이므로 이러한 주옥 같은 영적 기록을 남기는 데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지 알 수 있다(1485-1489참조)

1월 17일에 파우스티나는 그 며칠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내 딸아, 네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네 힘에 부치는 일은 시키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내 은총의 힘을 알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1491).

 

그러나 17일 아침부터 파우스티나는 암흑에 휩싸였다. 예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같았고, 사람들에게 의존해 보아야 소용이 없었다. 저녁기도를 바치고 있는 수녀들과 마음으로나마 일치해 보려고 애썼지만 암흑만이 더욱 짙어갔다. 그녀가 모든 것에 절망감을 느끼고 있을 때 사탄의 소리가 들렸다. “예수가 너에게 주었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아라. 수녀원을 세우게 한다고 하더니 병만 주었고 자비의 축일을 세우게 한다더니 온 세상이 어디 반기기나 하느냐?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 축을 위해 기도하느냐? 너는 이미 시기를 다 놓쳤다.” 파우스티나는 이 어둠의 영과 대화하지 않았다. 잠시 후 차츰 마음이 밝아져 자신의 의지로 자기 생활을 다스려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유혹자가 다시 말했다. “내일 영성체 후에 죽음을 달라고 기도하여라. 하느님이 네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다.” 파우스티나는 사탄의 말에는 침묵을 지키며, 자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했다. 밤 11시에 겨우 잠이 들 수 있었지만 영혼은 투쟁을 계속했다.

유혹자가 계속해서 말했다. “왜 다른 사람들 때문에 고생을 하느냐? 네 자신을 위해서나 기도하여라. 죄인들은 네가 기도하지 않아도 회개할 것이다. 너는 지금도 심한 고통을 받고 있진 않느냐? 나는 네 행복이 걸려 있는 충고를 하겠다.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말은 입에 담지도 말고, 특히 죄인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신뢰하라고 부추기지 말아라. 그들은 받을 벌을 응당 받아야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네 고해신부들, 특별히 사제 한 명과 또 빌니우스에 있는 신부에게 네 영혼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하지 말아라.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잘 알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너를 보호하고 싶다 너도 다른 수녀들과 같이 착한 수녀로 살면 충분하다. 왜 어려움들을 자초하고 있느냐?”(1496-1497참조).

파우스티나는 이 말들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순수한 의지력만으로 하느님께 매달렸다. 결국 유혹자는 물러갔고 과로에 지친 파우스티나는 잠이 들었다. 다음날 옆 침실에 가서 봉성체를 한 후 자기 침실에 돌아와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도움을 청했다. 하느님의 거룩한 뜻에 모든 것을 맡긴다고 기도 드렸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의 행위를 보고 참으로 기뻤다. 이 자비의 사업에 최선을 다하면 항상 평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네 고해신부에게 항상 솔직하여라. 사탄이 아무리 너를 유혹해도 네가 그이 말에 끼어들지 않기 때문에 그는 아무런 영향력을 미칠 수 없을 것이다. 계속해서 그렇게 하여라. 너는 충실한 투쟁으로써 오늘 나에게 큰 영광을 바쳤다. 사탄과 투쟁할 때 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내가 항상 너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라”(1499)

 

파우스티나는 이 말씀을 들은 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오늘 하느님의 사랑은 나를 다른 세상으로 인도하였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에 빠져들어 그분으로부터 사랑 받고 있음을 느꼈고 확실하게 이를 체험하였다. 나는 하느님의 엄위로우심과 나의 보잘것없음을 깨달음으로써 행복감은 더해갔다. ….

내 영혼 안에서 이렇나 느낌은 생생하고 강력하며 동시에 달콤하였다(1500).

 

그 다음날부터 파우스티나는 고통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이면 마음 속으로 여러 곳의 성당을 방문하며 각 성당의 감실 안에 계신 예수님께 기도 드렸다. 마지막에는 수녀원의 성당으로 돌아와서 하느님의 자비를 알려 주는 사제들과 교황과 또 죄인들을 위한 자비를 얻기 위해 기도하였다.

1월 20일, 파우스티나는 겸손과 하느님의 뜻에 대한 충실과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생각과 영감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오, 신비로우신 하느님! 하느님 자비의 신비를 꿰뚫어 보게 하시니 제 마음은 기쁨에 넘칩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자비에서 시작하여 하느님의 자비로 끝납니다. 모든 은총이 자비에서 나오고 마지막 순간도 자비로 넘칩니다. 하느님의 선하심을 아무도 의심치 말게 하소서.

사람의 죄가 암흑처럼 어두워도 하느님의 자비는 그보다 훨씬 더 크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은 있다. 죄인이 하느님의 자비로운 은총을 얻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느님의 자비에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사람은 불쌍하다. 올리브 동산에서 주님으로 하여금 슬픔에 젖게 한 사람도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다. 하느님의 자비가 흘러나오는 곳은 하느님의 지극히 자비로우신 성심이다(1506-1507참조).

 

하느님의 섭리로 파우스티나를 담당하게 된 진료소의 수녀는 크리소스토머 수녀였다. 그녀는 빌니우스에서 파우스티나와 함께 지낸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곳에 있을 때 파우스티나의 영성에 대해 소문을 들은 일이 있었지만 그것을 믿지 않고 오히려 나쁜 평판을 믿고 있었다. 파우스티나를 냉정하게 대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더욱이 파우스티나의 침실 청소를 담당한 수녀는 결핵균에 전염이 될까 두려워하며 때로는 일주일씩이나 방치해 두기도 했다. 다음은 자신의 고질병에 관해 관찰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1938년 1월 21일, 예수님!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이 고통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러나 항상 고통 받는 영혼들과 가까이 계시면서 힘을 주시고자 하시는 분은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이십니다. 사람들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저버릴지라도, 오, 주님! 주님께서는 항상 충실하십니다. … 구약성서에 나오는 욥과 같이 움직이며 일할 수 있을 때에는 모든 것이 좋고 멋있었지만 몸이 아플 때에는 다르다. 하느님께서 병을 보내실 때는 친구가 적어진다. 그러나 친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친구는 여전히 고통에 관심을 보이고 격려해 준다. 그러나 병을 오래 앓으면 아무리 충실했던 사람도 멀어지기 마련이다. 들여다보는 횟수도 적어지고 부르는 그 자체를 고통으로 여기고 위로하기보다 원망하는 일이 많아진다. 이러한 원망은 또 다른 고통을 주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나는 욥과 같이 혼자 남게 되지만 다행히도 혼자가 아니다. 성체 안의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 밤새도록 고통에 시달리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사제가 성체를 영해 주러 온다. “어서 오소서, 진실하고 유일한 친구시여!” 하며 울음을 참으려 안간힘을 쓴다. 성체는 내게 고통을 참고 이겨낼 힘을 준다. …내가 경험한 것을 한 가지 더 말하고 싶다. 하느님께서 죽음도 건강도 주시자 않아 이러한 상태로 여러 해를 지내다 보니 사람들은 여기에 익숙해져 나를 병자로 여기지도 않는다. 이로 인하여 말 못할 고통들이 시작됨으로써 내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루어야 하는지는 하느님만이 아신다. … 어느 날 저녁에는 몸이 너무 아파서 어떻게 침실로 갈까 걱정하고 있을 때 한 수녀님이 내 곁을 지나 맨 앞 자리에 앉아 있던 수녀에게 가서는 정문에 가서 어떤 말을 전하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보더니 부탁 받고 있던 수녀님에게 “됐어요, 수녀님. 수녀님이 갈 필요가 없어요. 밖에 비가 오니 파우스티나 수녀님에게 부탁하면 되겠네요” 하고는 나에게 부탁을 해왔다. 나는 “예”하고 대답하고 심부름을 갔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만이 아실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한 예에 불과하다. 그 수녀님도 돌로 만들어진 사람이 아니라 똑같은 인간으로서 심장과 감정을 가지고 있을 텐데 ….

이렇게 힘들 때에 종종 하느님께서는 나를 도우시러 오신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 다 기록할 수도 또 기록할 마음도 없는 그 수많은 십자가들을 나는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기록하라는 영감을 받았고 또 이처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1508-1511)

 

이러한 어려운 경우에는 수련시절부터 스승이셨던 예수님께서 지도해 주셨다. 이튿날 미사 때 파우스티나는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듯이 고통 당하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해 당한 고통을 자주 묵상하여라. 네가 나를 위해 고통 당하시는 것은 그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네가 나의 고통스러웠던 수난을 묵상할 때 가장 기쁘다. 네 작은 고통을 내 수난과 일치시켜라. 그러면 그것은 무한한 가치를 띄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상기시키셨다.

 

“너는 자주 나를 스승이라 부른다. 이 말은 나를 흡족하게 한다. 내 제자야! 너는 십자가에 못박힌 스승의 제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이 한마디로 너에게 충분할 것이다. 너는 그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1512-1513).

 

파우스티나는 너무 고통이 심해서 밤기도를 하기 위해 성당에 갈 수 없었고 도 밤에 잠을 이룰 수도 없었기 때문에 작은 감옥 같은 자신의 침실에서 예수님과 함께 보내야 했다. 예수님께서는 성목요일 밤에 겪으셨던 고통을 알려 주셨다. 파우스티나는 “심판날이 되어서야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라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메시지를 기록하였다.

 

“내 딸아, 내가 그들에게 내 자비를 방패로 준다는 사실을 전하여라. 내가 직접 그들을 위해 싸우고 있고 하느님 아버지의 의로우신 분노를 막고 있다. 내 딸아, 자비의 축일은 온 세상을 위한 깊은 위로에서 나왔다고 전하여라”(1516-1517)

 

 

하느님 자비의 신심

 

1월 23일, 영성체 전에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에게 말씀하셨다.

 

“내 딸아, 네 장상 이레네오 수녀에게 가서 나의 자비에 관해 모두 말하여라. 그는 장상들 중에서 내 자비를 선포하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1519).

 

그날 오후에 이레네오 원장 수녀가 방문하였다. 두 사람은 하느님 자비의 신심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원장 수녀가 떠난 후, 주님께서는 그를 매우 흡족히 여긴다는 사실을 말씀하시고, 자비에 관한 메시지를 계속 전해 주셨다.

 

“나는 자비의 샘인 내 마음을 활짝 열었다. 영혼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어가게 하여라. 신뢰하는 마음으로 이 자비의 바다에 올 수 있게 하여라. 죄인들은 의로움을 얻고 선한 사람들은 더욱 선해질 것이다. 누구든지 나의 자비를 신뢰하는 사람은 죽는 순간에 하느님의 평화를 누릴 것이다.

내 딸아, 지치지 말고 내 자비를 선포하여라. 그렇게 하면 죄인들에 대한 연민으로 불타고 있는 내 마음을 계속 새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무한한 자비를 전하고 내가 그들에게 가진 연민의 마음을 알리면 아무리 경직된 죄인들이라 하더라도 회개할 것이라고 사제들에게 말하여라. 내 자비를 선포하고 고양시키는 자는 경이로운 힘을 얻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1520-1521).

 

며칠 후 파우스티나는 기도 중에, 자기를 위해 주님께 중재하는 안드레아 신부를 보았다. 당시 파우스티나는 자비의 축일에 관심이 없는 듯 적극적으로 나서서 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자비의 축일이 빨리 제정되기를 끊임없이 기도는 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고 계시고, 축일을 어떻게 제정해야 할지 가르쳐 주고 계신다. 아무것도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고 파우스티나는 기록하였다(1530참조).

파우스티나는 그것을 본 후 즉시 주님께 말씀 드렸다. “주님께서 자비의 사업을 추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는데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지 아십니까? 아직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딸아, 마음을 편안히 가져라. 아무도 내 듯을 거스르지 못할 것이다. 수녀들이 불평하고 증오해도 내 뜻은 네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과 사소한 계획에 이르기까지 모두 실현될 것이다. 이 일로 슬퍼하지 말아라. 나 또한 어떤 영혼들에게는 장애물이 될 것이다”(1531).

 

그날 파우스티나는 폴란드의 운명에 관한 특별한 통찰을 하게 되었다.

 

나는 폴란드에 대한 하느님의 분노를 보았다. 만일 하느님께서 폴란드를 지금 응징하러 오신다 해도 그것은 오히려 하느님께서 큰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토록 극심한 범죄는 완전히 멸망되어도 마땅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가리워져 있던 것을 조금 보여 주시자 나는 공포로 인해 온 몸이 마비되었다. 나는 하느님의 정의의 심판을 피해 이 세상이 존속하는 것은 일부 선택된 영혼들의 노력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1533 II미카 61, 12-16참조).

 

1월 27일 목요일, 파우스티나는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성시간을 가졌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축복을 보내도 망은(忘恩)만이 돌아 오고 사랑을 보내도 망각과 무관심만 돌아온다. 내 마음은 이를 견디지 못하겠구나”(1537).

 

파우스티나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 순간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불꽃이 내 마음에 타올라 나는 은혜를 모르는 영혼들을 위해 내 자신을 바쳤고, 예수님께 완전히 빠져들었다. 내가 내 감각을 되찾았을 때, 예수님의 마음에 흐르던 감정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한 감정은 내게 오래도록 머물렀다(1538).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 여쭈었다.

“저를 언제쯤 데려가실 겁니까? 고통이 너무 심해 주님께서 데려가시기 만을 열망해왔습니다.”

 

“항상 준비되어 있다. 너를 이 유배지에 오래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 뜻이 너에게서 이루어져야 한다.”

 

“오, 주님! 제게서 주님의 뜻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오, 주님. 나의 예수님!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주님께서는 저에게 그토록 많은 비밀들을 말씀하시면서도 단 한 가지, 제가 언제 죽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제게 말씀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마음을 편안히 가져라. 너에게 알려 주겠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

 

“오, 나의 주님! 제가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죄송하오나 이것은 한시라도 빨리 주님께로 가고 싶어하는 열망 때문이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정해 놓은 때가 되기 전에는 결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어느 때에도 볼 수 없었던 친절한 표정으로 내 말을 들으셨다(1529참조).

1월 28일, 파우스티나가 기록해야 할 중대한 메시지를 내리셨다.

 

“내 딸아, 이 말을 기록하여라. 내 자비를 찬양하고 내 자비를 전파하고 내 자비를 신뢰하도록 권고하는 사람은 죽을 때에 공포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전쟁 때 내가 그의 방패가 될 것이다…….. 내 딸아, 모든 이들이 내가 가르쳐 준 자비심의 5단기도를 바치게 하여라. 이 기도를 바치면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 들어 주겠다. 그리고 죽을 때에 그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절망하는 영혼들의 유익을 위해 이를 기록하여라. 자기 죄의 중함과 자신에 빠져있는 비참한 상황에도 절망하지 않고, 어린이가 어머니의 품으로 뛰어들 듯 내 자비의 품으로 뛰어들게 하여라. 그들은 내게로 다가올 우선권을 가지고 있고 내 자비를 얻을 우선권을 가지고 있다. 내 자비에로 불림 받은 사람은 아무도 절망하거나 수치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여라. 나는 내 선함을 신뢰하는 영혼들을 특히 좋아한다. 임종하는 이들 앞에서 이 기도를 바치면, 내가 하느님 아버지와 임종하는 이들 사이에서 심판자로서가 아니라 자비로운 구세주로서 중재할 것이라고 기록하였다”(1540-1541).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에 대한 사랑을 보여 주셨다.

 

“함께 사는 수녀들 가운데서도 너는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 내가 너와 더욱 일치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아라. 나는 너의 심장 박동 한하나에 까지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네 사랑의 맥박 하나하나가 내 심장에서도 뛰고 있다. 나는 너의 사랑을 믿는다.”

 

파우스티나가 대답하였다. “오, 예수님! 저는 주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을 제게 준다고 해도 제 마음을 채울 수는 없습니다”(1542).

그날 저녁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죽는 순간에도 완전히 나에게 의탁하여라. 그러면 나는 너를 나의 신부로 내 아버지께 대려 갈 것이다. 나는 너의 행위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특별한 방법으로 나의 공적과 일치시키기를 요구한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는 그것이 마치 내 행동인 듯 사랑으로 지켜보실 것이다.

안드레아 신부를 통해 너에게 하게 한 결심, 즉 나와 함상 일치해야 한다는 결심을 바꾸지 말아라. 이를 오늘 너에게 분명히 요구한다. 내 대리자들에게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대하여라. 나는 네가 조금도 의심하지 않도록 그들의 입을 빌어 말하기 때문이다”(1543-1544).

 

1월말 경이 되자 건강이 조금 호전된 파우스티나는 식당과 성당에는 갈 수 있었으나 그래도 아직 소임을 맡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침실에 머물면서 제대 위에 놓을 것들을 뜨개질 하였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나는 이 일을 대단히 좋아했으나 가벼운 일인데도 쉽게 피로를 느낌으로써 내가 얼마나 약한지를 알게 되었다. 내 인생에 있어 대수롭지 않은 순간은 단 한 순간도 없다. 왜냐하면 한 순간 한 순간이 기도와 고통과 일로 점철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방법이 아니면 저 방법으로라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는 지칠 줄을 모른다. 하느님께서 내게 두 번째 인생을 허락하신다 해도 내가 지금보다 시간을 더 잘 이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1545).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가 얼마나 당신 마음에 드는지를 알려주셨다.

 

“네 사랑에 나는 정말 기쁘다. 네 사랑은 태양이 이슬을 거두어가기 전에 아침의 장미 꽃봉오리의 향기와도 같이 내 마음을 기쁘게 한다. 네 신선한 마음이 나를 사로잡는구나. 내가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너와 일치되기를 바라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1546).

 

파우스티나는 몸이 아파도 월피정은 빠뜨리지 않았다. 그 피정에서는 특별한 결심을 세우고 죽음에 관한 묵상을 하면서, 실제로 죽을 때에 갖는 경험을 체험할 수 있도록 청하였다. 그리고 피정 이튿날 아침, 봉성체를 할 때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너는 이 생에서 나와 일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죽을 때에도 그처럼 일치를 이룰 것이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이 말씀을 들은 내 마음은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커다란 신뢰감으로 가득 찼다. 내가 세상의 모든 죄와 단죄 받는 모든 영혼들의 죄를 모두 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하느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주저하지 않고 항상 내게 열려 있는 하느님 자비의 심연에 의탁할 것이다. 내 마음이 먼지처럼 부서져도 나는 하느님의 발 아래 몸을 던져 그분의 거룩한 뜻에 나를 온전히 맡길 것이다(1552).

 

 

 

희생의 제물

 

다음날 2월 1일, 파우스티나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러나 다른 수녀들과 함께 영신수련에 참여했고 식사 시간에도 빠지지 않았으며 공동휴식시간에도 참여했다. 그녀의 엄청난 노력은 예수님만이 아실 것이다. 사실 그날 그날의 미끼니 때마다 식사가 다 끝날 때까지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하 숟가락을 뜰 때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이레네오 원장 수녀도 이런 말을 했다. “수녀님은 병이란 병은 다 갖고 있네요. 몸이 원래 약해요? 다른 사람이 수녀님과 똑같은 그런 병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활동할 수 있겠지만 수녀님은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하니…”

파우스티나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이 말씀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처럼 아픈 사람을 그렇게 비교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뻔 했다…..

 

수녀원에서 어떻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파우스티나가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어떻게 그토록 다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의아스럽겠지만 다음 일기를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잠깐 성당에 들렀을 때, 주님께서는 선택된 영혼들 중에도 특별히 선택되는 영혼이 있고, 그에게서 보다 높은 성덕, 보다 예외적인 일치를 요구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 이러한 영혼들에게는 하느님께서 보통 사람들보다 더 큰 사랑을 요구하신다고 해서 “세라핌의 영혼”(주 하느님의 목자들을 정화시키는 세라핌 천사의 이름을 따서 이렇게 불렀다)이라고 한다. 같은 수도원에 살지만 하느님께서는 어떤 특정 사람에게는 특별한 사랑을 요구하신다. 이러한 사람은 하느님과 내적으로 통교하기 때문에 자기 소명을 이해한다. 이 소명을 따르고 따르지 않고는 자신들의 문제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든 거부하든 그것은 각자의 영혼에 달려 있는 것이다(1556참조).

 

파우스티나는 영혼들을 위한 희생의 제물, 번제물이 되기로 결심하였기에 주어진 삶 속에서 생기는 모든 고통의 기회를 다 받아 들인 것이다.

 

 

겸손의 교훈

 

주님께서는 이 선택된 영혼에게 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셨다. 2월 2일 주님의 봉헌 축일에 파우스티나의 영혼은 암흑에 빠졌다. 그녀 자신도, 말을 거는 주위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신앙에 대한 무서운 유혹이 엄습해 왔다. 파우스티나는 자신의 기록을 읽는 사람에게 악영향을 줄지 몰라 세세하게 기록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오, 폭풍이여! 내 마음의 배를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고 외쳤다. 폭풍은 밤낮 하루 내내 계속되었다. 안드레아 신부가 성사를 주러 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원장 수녀가 파우스티나에게 고해성사를 받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파우스티나는 신부님도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거절하였다. 다음 일기를 보면 신비가 들이 겪는 고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게쎄마니의 예수님과 밤을 세웠다. 내 가슴에서는 한가지 신음만 계속 새어 나왔다. 차라리 보통사람들이 죽어가듯 죽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리라. 고통을 느끼다가 죽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통을 당하면서도 죽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오, 예수님! 이러한 고통이 있을 수 있는지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허무, 그것은 현실입니다. 오, 예수님! 이 고통에서 구해 주소서. 제 마음을 다해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의 빛난 얼굴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어디 계십니까? 주님, 저는 주님을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이신 주님을 믿고 또 믿습니다. 성교회가 믿으라고 한 모든 것을 진리로 믿습니다. …. 그러나 어둠은 물러나지 않고 나를 더욱 깊은 고뇌 속으로 빠뜨렸다. 순간 그 무서운 고문으로도 숨을 거두지 않고 있는 내 자신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었다. 그때 나는 예수님을 보았다. 성심에서 두 줄기의 빛이 나와 나를 감쌌다. 그때 모든 고통이 일시에 사라졌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딸아, 네가 걸어 온 길은 참으로 의롭다. 너를 영원한 생명에 참여케 하고 너에게 아낌없이 선물을 내리는 것은 내 은혜 때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라.”

 

나는 주님의 이 말씀을 듣고서 내 자신의 참모습을 알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깊은 겸손의 교훈을 주셨고 동시에 주님께 대한 완전한 신뢰를 가르쳐 주셨다. 내가 먼지와 재로 변하고 모든 사람이 나를 짓밟는다고 해도 나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실제로 그렇다. 진정한 겸손이야말로 나의 새로운 힘이다(1558-1559).

 

다음날 영성체 후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련자인 파우스티나를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계속 가르치셨다.

 

“첫째, 유혹을 받더라도 혼자 싸우려 하지 말고 네 고해신부에게 즉시 털어놓아라. 그러면 유혹이 힘을 잃을 것이다. 둘째, 시련 가운데서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말아라. 내 안에 머물고 성모님과 성인들에게 도움을 구하여라. 셋째, 내가 항상 지켜보며 도와 주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라. 넷째, 내가 도와 주고 있으니 투쟁이나 유혹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것과 싸우고 싶다면 승리가 네 편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라. 다섯째, 네가 용감하게 싸우는 것은 나에게 영광이 되고 너에게는 공로를 쌓는 기회라는 사실을 알아라. 유혹은 나에게 대한 충실을 드러낼 기회이다. 이제 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겠다. 네 영적 지도자에게 성실하여라. 네가 내 지시를 따른 이 은총을 이용하지 않으면 네게는 영적 지도자가 없어지고 너 혼자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에게는 고통이 따를 것이다. 네가 영적 지도자와 만나 말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이용하지 않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한 영혼에게 영적 지도자를 보내는 것은 나의 큰 은혜라는 사실을 알아라.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은혜를 구하지만 모두에게 이를 허락하는 것은 아니다. 네 영적 지도자에게 새로운 빛을 내렸으니 너를 잘 이해해 줄 것이다….” (1560-1561).

 

파우스티나는 이러한 권고를 듣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오, 나의 자비이신 예수님! 저와 화해하셨다는 표시로 만족해 하시는 주님의 얼굴을 보게 하소서. 주님의 심각한 모습은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잠시라도 더 계속된다면 제 마음은 슬픔으로 터질 것입니다. 너는 이미 먼지와 같이 부서지지 않았습니까?(1562).

바로 그 순간 나는 어떤 궁전에 가 있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나를 당신 옆에 앉게 하신 후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내 신부여, 네 겸손이 항상 나를 흡족하게 한다. 네가 아무리 비참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그것이 너와 나의 일치를 막을 순 없다. 신부가 있는 곳에 신랑이 있지 않느냐?”(1563).

 

파우스티나는 자기 마음 속에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서, 하느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과 자비에 감사 드렸다. 그녀는 겸손에 대한 깊은 이해로 다음과 같은 기도를 바쳤다.

 

예수님, 당신께서 하얀 면병 속에 숨어 계시듯 저도 숨겨 주십시오. 사람들의 눈에서 저를 숨기시고, 특히 주님께서 주신 선물을 숨겨 주십시오. 주님께서 제 영혼 안에 이루어 놓으신 것을 배신하지 않게 하십시오. 오, 사제이신 예수님! 저를 당신께 봉헌하오니, 제 안에 변화가 일어나도록 해 주십시오. 매일 매일 주님 대전에 면병과 같이 서 있사오니, 이 세상에 자비를 내려 주십시오. 들리지 않고 보이지는 않지만 주님 대전에서 저는 제 자신을 비웁니다. 순수하고 온전한 제 사랑이 당신께 번제물로 타오르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 사랑의 향기가 주님 어전에까지 오르게 해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주인 중의 주인이시지만 순수하고 겸손한 영혼들을 좋아하십니다(1564).

 

이 일이 있은 직후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에게 청하셨다.

 

“내 딸아, 죽어가는 한 사람을 도와다오. 그를 위해 내가 가르쳐 준 자비심의 5단기도를 바쳐라.”

 

파우스티나는 그때 일어난 일을 기록하여 놓았다.

 

내가 자비심의 5단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자 고통과 투쟁 속에 죽어가는 한 사람이 보였다. 그의 수호천사가 그를 도우려고 무척 애썼으나 그의 엄청난 불행 앞에서 그것은 허사로 끝났다. 그러나 자비심의 5단기도를 바치는 동안 나는 상본에 그려진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예수님의 성심에서 흘러나온 빛이 죄인을 감싸니 어둠의 세력이 공포를 느끼며 물러났다. 그 죄인은 평온한 모습으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내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자비심의 5단기도가 죽어가는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다. 이 자비심의 기도는 하느님의 분노를 풀어드렸다(1565).

 

 

 

“거룩한 비서”에 대한 축복

 

2월 첫째 주, 파우스티나는 손에 펜을 들고 “예수님, 이 펜을 축복하시어 하느님께 영광이 될 글을 쓰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였다.

그때 이러한 말씀이 들렸다.

 

“그래, 그것을 축복한다. 이 글은 네 장상과 네 고해신부에 대한 네 순명의 증거가 될 것이요. 그 사실로 인해 이미 나에게는 영광이 되었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은총을 입게 될 것이다. 내 딸아, 시간이 날 때마다 내 선함과 내 자비심에 대해 기록하여라. 내 자비를 알리고 내 무한한 자비를 신뢰하도록 권고하는 것이 네 일생의 임무요 과제이다”(1567).

 

그 얼마 전에도 이레네오 원장 수녀는 파우스티나에게 하느님의 자비에 관해 더 많이 기록하라고 부탁했었다. 파우스티나는 원장 수녀의 이 말을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으로 확신했다.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원하실 때 장상에게도 그에 필요한 허락을 하도록 부추기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파우스티나는 “…. 그것은 가끔 있는 일이고 대부분은 즉시 허락을 얻지 못하고 인내를 시험 받기도 한다.” 고 기록하였다(1568).

파우스티나는 인류에게 하느님의 자비가 내리도록 바친 자신의 기도를 기록하였다.

 

무한히 선하시고 지극히 자비로우신 하느님, 당신의 자비와 연민으로 오늘 모든 인류를 비참한 심연에서 불러 내소서. 은혜로우신 하느님, 이 세상 유배지에서 부르짖는 기도를 거부하지 마시고 들어 주소서. 오, 무한히 선하신 주님! 주님께서 우리의 불행을 속속들이 알고 계시듯 저희의 힘만으로는 주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저희에게 은총을 내리시고 자비를 베푸시어 살아 있을 때나 죽을 때에 주님의 거룩한 뜻을 충실히 따르게 하여 주소서. 당신의 전능하신 자비로 저희의 구원을 방해하는 적들이 던지는 창을 막아 주소서. 저희는 주님만이 알고 계시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는 불쌍한 처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약속이 실현될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저희의 희망이오니, 자비로운 성심의 열린 문을 통해 천국에 들어가고자 합니다(1570).

 

파우스티나는 자신이 수녀원이 입회할 때부터 끊임없이 품었던 생각이 “성인”이 되는 것이었음을 상기하였다. 이 말 때문에 다른 이들로부터 빈정거리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마음도 많이 상했었다. 그러나 차츰 이를 이겨낼 수 있었고 또 이 말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도 했기 때문에 괴로웠다. 예수님께 이를 불평했을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그 일 때문에 슬픔을 느끼느냐? 물론 너는 성인이다. 곧 내가 드러나도록 할 것이다. 그들이 ‘성인’이라는 말을 선포하게 될 것이다.”

 

 

위대한 자비의 시간

 

2월 3일 이후부터 파우스티나는 일기에 날짜를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2월 10일 전에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에게 1937년 10월 20일에 말씀하신 성심께 대한 신심을 다시 상기시키셨다(1320참조).

 

“내 딸아, 3시를 알리는 시계소리를 듣거든 자주 내 자비를 생각하며 찬미하고 영광을 바쳐라. 온 세상을 위한 자비의 전능함을 생각하고 특히 죄인들을 위해 자비를 청하여라. 그 순간에는 모든 영혼들을 위해 자비의 문이 활짝 열릴 것이다. 그 시간에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얻을 것이다. 그 시간은 온 세상을 위한 은혜의 시간이며 나의 자비가 정의에 우선할 것이다.

내 딸아, 시간이 허락하는 한 그 시간에 십자가의 길을 바쳐라. 십자가의 길을 바칠 시간이 없거든 잠깐 성당에 들러 성체 대전에 나아가 자비로 기득 찬 내 성심을 찬양하여라. 성당에 갈 시간이 없거든 네가 있는 곳에서 잠깐 동안이라도 기도하여라. 나는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네가 내 자비를 찬미해 주기 바란다. 왜냐하면 이 신비를 가장 깊이 이해한 사람이 너이기 때문이다”(1572).

 

파우스티나는 이 메시지를 가슴 깊이 간직하였다. 몇 해 후, 여러 수녀들과 학생들이 오후 3시가 되면 파우스티나가 성당이나 다른 장소에서 엎드려 기도를 드리는 장면을 목격하였다고 증언하였다. 파우스티나는 다음과 같은 기도로 예수님께서 부여하신 과업, 즉 영혼의 구원을 달성하려고 했다.

 

오, 나의 예수님! 저로 하여금 이 유배지에서의 제 남은 삶을 당신 거룩한 뜻에 따라 살게 하소서. 저의 고통과 불행과 마지막 고뇌를 주님의 거룩하신 수난과 함께 바칩니다. 온 세상을 위해 저를 바치오니, 모든 영혼, 특히 저와 함께 사는 영혼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1574참조).

 

주님께서 당신 자비를 더욱 깊이 보여 주시자 주님의 충실한 비서인 파우스티나는 계속해서 기록하였다.

 

“나의 자비를 얻는 데 마음 속에 장애물을 설치하지 말라고 일러라. 나는 그들 안에서 활동하고 싶다. 나는 내게 마음의 문을 연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자비를 베풀 것이다. 죄인이나 의로운 사람이나 다 나의 자비가 필요하다. 성덕에 나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회개도 내 자비가 내리는 은총이다.

완덕을 바라는 사람이면 먼저 내 자비를 찬양케 하여라. 풍성한 은총은 내 자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내 자비를 무한히 신뢰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성덕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며 그들이 성덕을 얻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줄 것이다. 그리고 내 자비의 은총은 하나의 그릇, 즉 신뢰에 의해서만 전달될 수 있다. 신뢰할수록 더 많은 은혜를 얻을 것이다. 나의 자비를 무한히 신뢰하는 사람은 나에게도 위로가 된다. 왜냐하면 나는 은총의 보물들을 그들에게 부어주기 때문이다. 나는 될수록 많이 주고 싶기 때문에, 은총을 많이 청할수록 기쁘다. 그러나 적게 청할 때에는 그가 자신의 마음을 위축시키는 것이기에 슬픔을 느낀다”(1577-1578).

 

 

갈바리아에서 예수님과 함께

 

어느 날 파우스티나는 자신의 아동기와 청년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소명과 사도적 활동, 타볼 산, 올리브 동산 등에서의 예수님을 따라 살아온 자기 인생 여정을 모두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는 예수님과 함께 갈바리아 산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 말씀 드렸다.

“저는 기꺼이 십자가에 못박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되었습니다. 지금 조금은 걸을 수 있지만 십자가에 달린 느낌입니다. 제 힘은 십자가에서 나오고, 주님만이 유일한 버팀목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유혹을 받고 있지만 하느님의 힘이 저를 붙들어 주고 있습니다. 고독과 암흑과 온갖 종류의 고통이 마음을 내리치지만 하느님의 신비스러운 힘이 저를 받쳐 주고 강화시켜 줍니다. 저는 제 잔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마시고 싶습니다. 올리브 동산에 있을 때 저를 지탱시켜 준 주님의 그 은총이 또한 지금 갈바리아에 서 있는 저를 지탱시켜 주시리라 굳게 믿습니다”(1580).

이제 파우스티나는 마치 마지막 유언을 남기듯 자신의 은밀한 소망을 토로했다.

 

오, 나의 스승이신 예수님! 제 소망을 십자가 위에서 가지셨던 주님의 소망에 일치시키고 싶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죄인들이 회개하고 주님의 자비를 찬미하고 교회의 승리가 앞당겨지기를 바랍니다. 전 세계에서 자비의 축일이 거행되고 사제들이 거룩해지며 우리 수도회에서 성인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수도회의 모든 회원들이 하느님의 영광과 영혼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정열을 불태우고, 하느님께서 저희 부모님들과 모든 가정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 영적 지도자들, 안드레아 신부님과 소포코 신부님께 특별한 빛을 내려 주십시오. 제가 몸담고 있는 수녀원의 여러 장상들 그리고 총장 수녀님과 이레네오 원장 수녀님, 요셉 선생 수녀님께도 축복을 내려 주십시오(1581).

오, 나의 예수님! 이제 온 세상을 제 품에 안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합니다. 오, 하느님! 하느님의 거룩한 뜻이 모두 이루어져 충분하다고 말씀하실 그때 저는 주님의 무한한 자비를 신뢰하며 제 영혼을 하느님 아버지의 손에 맡기고 싶습니다. 주님의 어좌 밑에 서게 될 때 제가 가장 먼저 부를 노래는 주님의 자비를 찬미하는 노래일 것입니다.

불쌍한 세상이여! 나는 너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행복의 바다인 하느님께로 빠져 들어도, 주님의 자비를 신뢰하도록 도와 주기 위해 이 세상에 돌아오는 데 있어 내게는 아무런 장애도 없을 것이다. 하느님의 품 안에 들어가면 오히려 제한 없는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파우스티나가 글을 쓰고 있을 때, 곁에 서 있던 사탄은 하느님의 자비를 견뎌낼 수 없었기에 방안의 물건들을 두드려댔다. 파우스티나는 원수가 광분하는 소란에 개의치 않고 하느님의 자비를 기록해 나가면 찬양했다.

그 주에 파우스티나는 왼팔에 아기 예수님을 안고 계신 성모님을 환시로 보았다. 성모님은 파우스티나를 친절한 표정으로 바라 보시며 “나는 하느님의 어머니, 사제들의 어머니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을 땅에 내려 놓으신 뒤 오른손을 하늘로 들어 올리시며 “하느님, 폴란드와 사제들을 축복하소서”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파우스티나에게는 “네가 본 대로 사제들에게 전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파우스티나는 이러한 환시를 본 일이 없었기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먼저 안드레아 신부에게 말씀 드려야겠다고 생각하였다(1585참조).

파우스티나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은 것은 2월 9일이었다.

 

“구약시대에 나는 내 예언자들로 하여금 내 백성에게 천둥 번개를 휘두르게 했다. 그러나 오늘은 너를 통해 모든 인류에게 내 자비를 보낸다. 나는 인류를 벌하지 않고 치유하고 내 성심 가까이로 데려오고 싶다. 나는 벌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만 벌을 사용한다. 내 손은 정의의 칼을 들기를 원하지 않는다. 정의의 날이 이르기 전에 자비의 날을 나는 먼저 보낼 것이다.”

 

파우스티나는 “오, 예수님! 제 말은 정말 보잘것없사오니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직접 말씀하십시오”하고 말씀 드렸다(1588).

 

 

유예기간

 

일부 몇몇 수녀들은 결국 파우스티나의 영성이 특별하고 도 하느님과 일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파우스티나를 찾아와 영적 문제들을 의논하고 도움을 구하면 파우스티나는 친절히 조언해 주었다. 파우스티나는 2월 10일자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한 수녀님이 내 방에 찾아왔다. 순명에 관해 잠깐 대화한 후 그녀가 말했다. “성인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제 이해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수녀님, 제 영혼이 많은 빛을 받았습니다. 큰 도움이 됐어요”(1594).

오, 예수님!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입니다. 그 영혼에게 말씀하신 분은 바로 당신이십니다. 그 수녀님이 들어올 때 저는 하느님께 완전히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 예수님! 영혼들에게 유용한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영원한 사랑이신 주님과 가능한 가장 가깝게 일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느님과 일치한 사람의 한 마디 말이 불완전한 사람의 장황한 설교보다 낫습니다(1595).

 

또 어느 때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에게, 선택된 영혼들이 완전해지기를 당신이 얼마나 바라고 계시는지를 말씀하셨다.

 

“선택된 영혼들은 내가 암흑의 세계로 보내어 그곳을 밝히려는 빛이다. 밤을 비추는 별들처럼 선택된 그 영혼들은 세상을 비추어야 한다. 한 영혼이 완전해지면 완전해질수록 더 멀리 더 강하게 비출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조차 알려지지 않고 숨어 있어도 이 세상 가장 먼 곳의 영혼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1601).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에게 말씀하셨다.

 

“내 딸아, 내 자비의 샘인 고해성사를 받을 때, 내 성심에서 흘러 나오는 피와 물이 네 영혼을 채우고 너를 고귀하게 만들 것이다. 고해성사 때마다 신뢰하는 마음으로 내 자비에 빠져들어라. 네 영혼에게 무한한 은혜를 내릴 것이다. 고해소 가까이 가거든 내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라. 사제 뒤에 감추어져 있지만 고백자의 영혼 안에서 내가 직접 활동한다. 불쌍한 영혼은 이곳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만날 것이다. 이 자비의 샘에서 자비를 퍼 올릴 수 있는 그릇은 신뢰밖에 없다는 사실을 전하여라. 신뢰하는 마음이 클수록 내 관용에는 한계가 없을 것이며 겸손한 영혼에게는 은총의 급류가 흐를 것이다. 교만한 영혼에게는 가난과 비참함만이 남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은총은 교만한 사람을 피해 겸손한 사람들을 향해 흐르기 때문이다”(1602).

 

2월 14일 기도 때, 파우스티나는 “거룩하신 하느님,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느님,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학 반복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천국의 하느님 대전으로 올라가, 천사와 성인들이 어떻게 하느님께 영광을 바치는지 체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파우스티나는 자신이 본 것을 표현할 수 없었으며 또한 표현할 말을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이나 다 기록하였다는 생각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자기 나름대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방법을 생각하며 이렇게 외쳤을 뿐이다.

 

“오,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천국에서 하느님께 바쳐지는 완전한 영광에 비하면 이 세상에서 바치는 영광은 작은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오, 하느님! 저의 찬미도 받아 주시고 친절하게 제게로 얼굴을 돌리소서. 저희의 기도가 마음에 드신다니. 하느님의 선하심을 어디에 비유하겠습니까?(1604)

 

하루는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선함을 네가 체험한 대로 기록하였다.”

 

그러나 파우스티나는 “주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그것을 어떻게 다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딸아, 네가 모든 사람들과 모든 천사들의 혀를 다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너는 다 말하지 못할 것이고, 내 선함과 내 자비에 관해 지극히 보잘것 없는 찬미의 노래밖에 부르지 못할 것이다.”

 

“오, 예수님! 제게 주님께 합당하게 찬미할 수 있는 말을 가르쳐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딸아,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네가 하던 대로 하면 된다. 네 생각은 내 생각과 일치하고 있으니 네 생각대로 기록하면 된다. 너는 내 자비의 비서이다. 너는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바로 이 일을 위해 선택되었다. 내 선택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1605)

 

그때 파우스티나는 아주 겸손한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겸손하면 겸손할수록 하느님의 현존을 더 생생히 느끼게 되는 것을 알았다.

2월 20일, 주님께서 파우스티나에게 말씀하셨다.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네 고통이 필요하다.”

 

파우스티나는 “오, 예수님!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더 심한 고통을 청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난 밤에도 고통이 너무 심해 더 이상의 고통을 주신다면 견뎌내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밤새 고통이 너무도 격렬하여 오장육부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먹었던 약까지 모두 토해냈다. 머리를 땅으로 굽혔을 때 정신을 잃었다. 한동안 그렇게 머리를 땅에 쳐 박고 있었던 것 같다. 의식을 되찾았을 때 온 몸이 땅에 박고 있는 머리를 누르고, 얼굴은 토한 음식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이제 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고통을 요구하시지만 죽음은 주시지 않으신다. 이레네오 원장 수녀님과 타르치시아 수녀님이 나를 일으키려 애를 썼다. 오, 예수님! 당신 뜻대로 하십시오. 주님의 힘이 저를 지탱하시니 어떤 일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오, 영혼들이여! 내가 그대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1612-1613)

 

진료소의 수녀들은 다른 방문객들과 마찬가지로 파우스티나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고 느꼈다. 이때 파우스티나를 도우러 온 친구 아멜리아 수녀는 척추 결핵을 앓고 있었다. 그 수녀는 공동체에 짐이 되는 것이 싫어 예수님께 일찍 죽게 해 달라고 파우스티나에게 부탁하였다. 파우스티나는 그녀가 자기가 죽고 난 1년 뒤에나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 일은 파우스티나 말과 같이 이루어졌다).

2월에는 많은 수녀들이 독감에 걸렸다. 파우스티나는 병든 수녀들을 방문하였다. 그 중 한 수녀가 말했다. “수녀님이 세상을 떠나셔도 저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겁니다. 돌아가신 다음에도 찾아 오세요. 제 영혼에 대한 비밀을 털어놓고 싶고 예수님께 중재를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그 수녀는 공공연히 말했기 때문에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수님은 신중한 분이십니다. 한 영혼과의 비밀은 아무에게나 털어놓지 않으실 것입니다”(1615).

곳곳에 있는 각 분원에서 파우스티나에게 그녀가 죽고 난 뒤에 중재를 청하는 편지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파우스티나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토록 심한 고통 속에서도 그녀가 자기들에게 보여 주는 평화와 기쁜 미소를 보고 놀랐다. 파우스티나는 기도하였다.

 

“오, 주님! 주님과 같이 희생을 치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땅의 그릇은 무너져가기 시작합니다. 곧 아버지의 집에 가게 되어 기쁩니다”(1616).

 

안드레아 신부는 2월 27일 파우스티나에게 고해성사를 주었다. 예수님께서 원하셨듯이 그녀는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였다. 그녀는 고해성사를 받은 뒤 마음이 밝아졌고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너는 어린이와 같기 때문에 내 성심 곁에 머물게 될 것이다. 너의 단순함은 네가 치른 희생보다 더 값진 것이다”(1617).

 

 

 

고통의 학교

 

재의 수요일 전 이틀간의 축제 때, 파우스티나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다. 파우스티나는 악에 물든 이 세상에 자비를 청하면서 고통 당하셨던 구세주와 더욱 일치하였다. 가시관에 찔린 듯한 고통이 하루 종일 가시지 않았다. 잠을 자려고 베개에 머리를 얹을 수도 없었다. 밤 10시경이 되어서야 그 고통은 사라졌고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은 몸이 완전히 탈진 상태에 빠졌다. 파우스티나는 힘의 원천을 이렇게 밝혔다.

 

성체 안의 예수님, 당신께서 지탱시켜 주지 않으셨더라면 저는 이 십자가를 질 수 없었습니다. 그토록 심한 고통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은총의 힘으로 말미암아 저는 그 고통을 공로로 만들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완덕에 정진하도록 해 주셨고 미움과 경멸을 보내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할 힘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은총으로는 못할 일이 없습니다(1620).

 

재의 수요일 전날인 3월 2일, 파우스티나는 월피정을 가졌다. 사순절 동안 예수님 손 안에 면병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저를 죄인들에게 들어가실 도구로 사용하십시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하십시오. 영혼들이 처한 상태를 생각하며 어떤 희생이라도 아기지 않겠습니다”하고 기도하였다. 또한 안드레아 신부를 위해 3월 한달 동안의 모든 미사와 영성체를 바치겠다고 결심하면서, 그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도록 은총을 청하였다(1622-1623).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느님의 거룩한 뜻에 의존하고 모든 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였다. 파우스티나는 “나는 몸이 너무나 쇠약해져서 더 큰 희생을 바칠 수 없다. 오랜 투병생활이 나의 힘을 모두 앗아갔다. 나는 이 고통을 통해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는데 예수님의 고통스러웠던 수난을 생각하면 내 고통이 경감된다”고 기록하였다(1625).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사순절 동안 너를 고통의 학교로 데려 가겠다. 그리고 어떻게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가르치고 싶다.”

 

파우스티나가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마시던 잔을 마시게 될 것이다. 나는 오늘 너에게 특전을 준다.”

 

파우스티나는 그날 주님께서 수난 당하실 때 겪으셨던 아픔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방법도 가르쳐 주셨다(1626-1627). 그 가르침은 미사 때 시작되었는데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제자야, 너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을 사랑하여라. 너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선을 베풀어라.”

 

“오, 스승이시여! 그들에게 아무런 사랑도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그것이 너무나 괴롭습니다.”

 

“네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너의 힘만으로 안 될 대가 많을 것이다. 네가 괴로움을 당한 뒤에도 평정을 잃지 않으면 네 안에 사랑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너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잘 대하여라”(1628).

 

이 시기에 파우스티나는 자신을 희생제물로 봉헌한다는 것을 상기하기 위해 “나는 주님 손 안의 면병” 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시를 썼다. 이 기간에 쓴 다른 시에서는 자기 열망의 심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그 심연의 열망을 표현했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이를 채워 줄 사랑을 찾고 있다(1629, 1632참조).

3월 10일에도 파우스티나는 고통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기록하였다.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있었다. 그 얼마 전 원장 수녀가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수녀님, 음식을 먹고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며 다른 사람의 밤잠을 설치게 하는 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의 부족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듣고는 아픔도 몰래 숨기고 주위의 도움을 청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 고통은 음식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은 알고 있었다. 이를 실버그 의사가 확인하였다. 그것은 하느님의 활동이었던 것이다. 어떤 때에는 그 고통이 그녀를 의식불명 상태에 놓이게도 했는데 식은 땀을 흠뻑 흘린 후에야 고통이 사라졌다. 그녀는 “내가 주위를 망각할 정도로 기쁨과 환희를 받아들인다면, 나를 실신시키기까지 하는 이 고통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하고 생각하였다(1633참조).

의사가 와서 면회실에서 병든 수녀들을 진찰했다. 파우스티나는 그곳까지 갈 수가 없어서 의사에게 내방해 주도록 청했다. 의사가 진찰한 후 “모든 것을 진료 담당 수녀에게 말하겠습니다”하고 나가자 잠시 후 진료소 수녀가 들어와 불쾌한 표정을 역력히 드러내었다.

“수녀님,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하고 파우스티나가 물었다. 그러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요. 의사는 아무 병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그 다음 주에는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고통은 더욱 심해졌고 자기 생의 마지막 진통으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장상들은 프라드닉 요양소에서 파우스티나를 치료했던 아담 실버그 의사에게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 의사는 그녀의 상태가 중태라는 것을 알고는 이같이 말했다. “건강을 회복시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분적인 치료는 가능하겠지요. 그러나 회복은 불가능합니다.” 의사가 처방해준 약은 심한 통증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 주었지만 장상들은 여전히 요양소로 보내고 싶어했다(1634참조).

파우스티나가 치료 받으러 간 일 때문에 몇 가지 불쾌한 일이 발생했다.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서 이와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이 모든 것을 다 기록하라고 명령하셨다”고 하며 이 일에 대해서 간략하나마 기록으로 남겼다. 간단히 말해, 치료받으러 갈 때 동행했던 수녀는 짜증을 부리며 퉁명스럽게 대했다. 파우스티나는 자신의 평화스럽기까지 한 태도가 동행한 수녀의 신경을 건드렸다는 것을 알고 그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불쌍한 죄인들에게 자비를 얻어 주기 위해 자신의 모든 고통을 다 바쳤다. 수녀원에 돌아와서는 영적 지도자에게 도움을 구하기 위해 고해성사를 받을 필요를 느꼈다. 고해성사는 대개 수련자들 부터 먼저 받았다 따라서 그들보다 먼저 고해성사를 받으려면 수련자들의 선생 수녀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선생 수녀를 찾아 다닐 힘이 없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차례가 되어 고백소에 들어갔지만 기력이 없어 겨우 고백을 하 수 있었다.

그날 또 원장 수녀와의 사이에 어떤 오해가 있었다. 말 한 마디로 진실을 밝힐 수 있었지만 그것은 비밀로 지켜져야 하는 문제였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며칠 동안 고통은 밤낮으로 계속되었다. 파우스티나는 이 고통을 절망 속에서 죽어가는 죄인과 불쌍한 죄인들에게 자비를 얻어 주기 위해 바쳤다.

3월 25일 금요일, 파우스티나는 “내 딸아, 죄인들을 구하려는 나를 도와라.” 하며 속삭이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그때 그녀는 무아지경에 빠지면서 죄인들을 구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타올랐다. 그리고 의식을 되찾았을 때 그녀는 죄인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심한 고통을 참아 받는 것이었으므로 더 심한 고통을 받을 준비를 했다. 더 심해지는 고통과 더불어 손과 발과 옆구리의 통증도 심했는데 그것을 잘 참아낼 수 있었다.

4월 1일 금요일, 파우스티나는 열이 심했다. 마른 음식은 먹을 수 없어 마실 것이 있었으면 했다. 그러나 주전자에 물이 조금도 없었다. 그때 즉시 생각을 바꾸어 “오, 예수님! 영혼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하고 기도했는데, 마침 한 수련자가 수련자들의 선생 수녀인 칼리스타 수녀가 보내는 것이라며 큰 오렌지 하나를 들고 왔다.

 

나는 그것을 통해 주님의 손길을 느꼈다. 이러한 일이 몇 번 더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고통스러운 동안에 내가 원하는 바를 알리고 때로는 청하기도 했지만 마실 것을 얻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러한 때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고통과 희생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이처럼 필요한 것들을 거절당한 것들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는 미묘한 문제요, 믿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희생도 요구하신다는 점이다(1647).

 

그날 원장 수녀가 찾아왔을 때, 파우스티나는 갈증이 심해 마실 것을 청하려는데 먼저 원장 수녀가 말했다. “수녀님,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이제 병을 고쳐야겠어요. 정기적인 치료를 받을 생각을 하세요. 더 이상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요.”

원장 수녀가 나가자 파우스티나는 무릎을 꿇고 “주님의 거룩한 뜻대로 하십시오. 예수님!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그때 파우스티나는 외로움을 느꼈고 갖가지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열렬한 기도 덕분으로 가까스로 평온과 빛을 얻었다. 그리고 이는 원장 수녀가 자신을 시험해 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1648참조)

그날 늦게 성 안드레아 보볼라의 시성 소식을 듣고 파우스티나는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자기 공동체에 성인이 없었는데 이제 처음으로 성인이 탄생되었기 때문이었다. 파우스티나는 주님께 말씀 드렸다. “저는 주님의 관대하심을 잘 알고 있지만 저희들에게는 그렇게 관대하신 것 같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울지 말아라. 너도 성인이다.”

 

파우스티나는 영혼은 빛으로 가득 차서 앞으로 자신이 얼마가 더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주님께 여쭈어 보았다. “그 일이 언제 이루어지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다른 수도회를 창설하라는 말씀을 해 오시지 않았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은 네가 알 일이 아니다. 네가 할 일은 받은 은총에 충실하고 네 힘이 닿는 데까지 하면 되는 것이다. 순명 하기만 하면 네 할 일을 다하는 것이다”(1650).

 

파우스티나의 마음 안에 일어나는 이러한 감정은 일기장 위에도 넘쳐 흘렀다. 구절구절 하느님의 자비를 찬미하였고,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한 사랑과 천상에 계신 하느님을 만날 기쁨을 드러냈다. 파우스티나는 자신의 일기에서, 천국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지만 모든 인류를 기억하고, 특히 가까운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 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어느 한 구절에서는 이렇게 예언했다.

 

내 영혼 안에 이루어 놓으신 하느님의 일을 모두가 이해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임을 압니다. 그대로 이루어지소서(1653).

 

또 어떤 구절에서는 자기 혼자 힘으로는 투쟁과 고통을 이겨낼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오, 그리스도님! 저는 당신 없이는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저 혼자서는 적에게 맞설 수가 없습니다. 저 혼자서는 주님이 내리시는 잔을 마실 용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는 저와 함께 계시면서 신비스러운 길로 저를 인도하십니다(1654).

 

그녀는 덧붙였다.

 

오, 그리스도님! 제가 일생 동안 겪을 고통을 그 처음부터 모두 알았더라면 그 즉시 까무러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통의 잔에 입술도 대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방울씩 마시다 보니 잔이 거의 다 비워져 갑니다. 오, 그리스도님! 주님께서 돕지 않으셨다면 저 혼자 어떻게 가능했겠습니까! 저희는 강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힘 때문입니다. 저희는 거룩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거룩함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희 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655).

 

 

 

성주간과 부활

 

4월 10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파우스티나는 미사에는 겨우 참여했으나 성지를 받으러 나갈 힘이 없었다. 열이 나고 한기가 들어 미사에도 겨우 참여하고 있었다. 미사 중 사람들이 “호산나” 하고 외칠 때 예수님께서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말씀하시자, 파우스티나는 사람들이 “호산나” 하고 외칠 때마다 예수님과 똑같은 아픔을 느꼈다.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딸아, 내게 대한 네 연민이 내 마음을 새롭게 한다. 내 수난을 묵상하면 네 영혼이 더욱 아름다움을 띄게 될 것이다”(1657).

 

다음날 파우스티나는 이층에 있는 다른 환자 수녀들과 함께 봉성체를 했다. 미사를 집전하러 왔던 사제가 성체를 모시고 와서 먼저 세 명의 수녀들에게 성체를 영해 준 후, 파우스티나에게도 성체를 주었다. 사제는 파우스티나가 마지막인 줄 알고 남은 성체 두 개를 줌으로써 옆방에 있던 수련가가 영성체를 하지 못했다. 사제가 성체를 가지로 간 사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그의 마음에 들어가기가 내키지 않는다. 네가 두 개의 성체를 영 했는데, 그것은 내 은총을 거부하는 영혼에 들어가기를 내가 지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혼을 방문하는 일은 유쾌하지 못하다.”

 

그 즉시 파우스티나는 예수님의 현존에 빠져들어가, 하느님 자비의 계획에 대한 깊은 빛을 얻었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마치 번개와 같은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내 육신의 눈으로 여러 시간을 지켜본 것보다 나는 더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1658참조).

 

파우스티나는 자기 영혼에 일어난 기쁨을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 하느님의 자비를 증오하는 사탄과 적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영광이 울려 퍼진다. 하느님의 자비는 사탄의 손아귀에서 수많은 영혼들을 구출해 낼 것이다. 암흑의 영이 선한 사람들을 격렬하게 유혹하고 자비의 사업을 방해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의 뜻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음을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 하나하나 성취 될 것이다. 사탄이 아무리 노력해도 주님이 계획하신 일을 티끌 하나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그 일이 언뜻 보기에는 중지된 것 같아도 오히려 더 두드러지게 선포되고 있는 것이다(1659).

 

성 목요일에 파우스티나는 예식에 참여할 수 있을 정도로 원기를 되찾았다. 미사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마음을 보아라. 그리고 인류, 특히 죄인들에 대한 내 사랑과 자비를 보아라. 내 수난을 보고 그것에 동참하여라.”

 

그 순간 갑작스럽게도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서 당하신 수난을 마음 속으로 똑같이 체험했고 “이토록 심한 고문을 당하고도 생명을 잃지 않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고 기록하였다(1663참조).

그날 저녁 성시간 때 파우스티나는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너는 죄인들을 위한 내 자비를 보고 있다. 이 순간에 내 자비는 있는 그대로 다 열려 있다. 그러나 네가 기록한 것은 이 엄청난 자비에 비하면 얼마나 보잘것없느냐?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는다. 죄인들이 내 자비를 알도록 힘껏 전하여라”(1665).

 

성 금요일에, 고문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마음이다. 죄인들에게 내 자비를 전하여라.”

 

그리고 영혼들을 위한 하느님의 심오한 자비심을 보았을 때, 자신이 기록한 것은 그야말로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음을 실감하였다(1666참조).

성 토요일의 예절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평화가 너와 함께 있기를! 내 딸아, 이 자비의 사업은 나의 사업이다. 내가 명한 일을 하나도 빼거나 더하지 않고 그대로 수행하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이 기쁘구나.”

 

파우스티나는 자신이 하는 한 마디의 말도 자기의 말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 그 숱한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항상 주님의 뜻을 실천해 왔다(1667참조).

 

 

다음날 아침 부활 대축일 미사에 기력이 없어 도저히 행렬에 참여할 수 없을 것 같아 주님께 말씀 드렸다. “예수님, 제 기도가 마음에 드시거든 잠깐이라도 힘을 주시어 행렬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바로 그 순간 그녀는 힘이 생겨 다른 수녀들과 함께 행렬에 참여할 수 있었다(1668참조).

행렬 때 예수님께서는 태양보다 더 밝은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내 마음의 기쁨이 마음에 가득하여라.”

 

그 순간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 마음을 빼앗겼다. 잠시 후 자기 의식을 되찾았을 때 그녀는 자신이 여전히 행렬을 따라 걷고 있는 것을 알았다(1669참조).

파우스티나가 구원과 사랑의 선물에 대해서, 즉 예수님께서 성체를 통해 당신 자신을 주신 선물에 대해 감사를 드리고 있을 때 파우스티나는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의 가슴 속에, 즉 성부, 성자, 성령의 사랑 속에 빠져들었다. 파우스티나는 “이 순간은 말로 형언하기 어렵다.” 고 기록하였다(1670참조).

다음날 휴식 시간에 한 수녀가 말했다. “파우스티나 수녀님, 이제 걷기도 힘드시죠? 그러나 이제 곧 죽어서 성녀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때 다른 수녀가 반박하며 말했다. “우리는 수녀님이 곧 죽으시리라는 것을 알지만 성녀가 되고 안 되고는 별개의 문제지요.” 이러한 비웃음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파우스티나는 끝까지 조용히 들었다(1672참조).

그 동안 파우스티나는 수련 시절의 동료 수녀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많은 편지들을 받아 읽으면서 즐거운 웃음을 짓기도 했다.

“파우스티나 수녀님, 그렇게 심하게 앓고 있다니 안 됐습니다. 주님께서 수녀님을 데리고 가시면 수녀님은 주님께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어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실 것이니 다행입니다.”

한 수녀가 이렇게 말했다. “수녀님께서 돌아가시면 특별히 저를 좀 보살펴 주십시오. 그렇게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한 수녀는 또 이런 내용의 편지를 썼다. “주님께서 수녀님을 데려가실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녀님이 돌아가시기를 기다립니다.” 파우스티나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으냐고 묻고 싶은 유혹을 참으면서 말했다. “하느님의 자비가 나를 지켜 주시지 않으신다면, 모든 죄인들에게 일어나는 똑같은 일이 죄인인 내게도 일어날 것입니다”(1673참조).

 

 

요양원의 재입원

 

4월 21일 목요일, 파우스티나는 프라드닉 요양소로 다시 보내질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곳에서 두세 달 머물게 될 것 같았다. 떠나기 전날, 요양소에 들어가면 많은 불쾌한 일을 경험하게 될 것 같아 근심이 되었다. 그날 저녁 성당에서 예수님과 긴 대화를 나누며 자기 근심과 걱정을 털어놓았다. 예수님께서는 다 들으신 뒤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내 딸아, 마음을 편안히 가져라. 내가 항상 너와 함께 있다. 네가 독방을 주도록 내가 특별한 방법으로 명해 놓았다.”

 

파우스티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물러나왔다(1674참조).

펠리치아 수녀가 파우스티나를 요양소로 데리고 갔다. 도착하니 벌써 독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파우스티나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 병실에 들어가니 모든 것이 아름답게 정리되어 있어서 놀랐다. 모든 것이 깨끗하였고 책상도 덮개가 덮여 있었고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수녀님들이 책상 위에 부활초까지 갖다 놓았다. 요양소에서 일하는 낯익은 세 수녀님이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펠리치아 수녀님도 이를 보고 놀랐다. 그녀는 작별인사를 한 뒤 떠나갔고 혼자가 되었을 때 나는 주님께 이러한 은혜를 베풀어 주신 데 대한 감사를 드렸다(1675참조).

 

그날 저녁 파우스티나를 담당한 간호 수녀가 와서 “수녀님은 너무 피곤하셔서 내일 영성체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파우스티나는 마음이 상했지만 하느님 뜻에 맡기고 잠자려고 애썼다. 이튿날 아침, 영성체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묵상 후에 성체를 모실 준비를 했다. 파우스티나는 그때 일어난 일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 나의 사랑과 소망이 절정에 달했을 때 나는 내 옆에 있는 세라핌을 발견했다. 그는 성체를 내밀며 “보라, 천사들의 주님”하고 말했다. 내가 주님을 영하자 내 영혼은 하느님의 사랑과 놀라움에 잠겼다. 나는 그가 다음날에도 성체를 모셔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14일간이나 계속되었다. 물론 하느님의 선하심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계속 영성체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세라핌은 큰 빛에 둘러싸여 있었고 하느님의 사랑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금빛 찬란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위에 투명한 중백의와 영대를 걸치고 있었다. 성작은 수정으로 만든 것이었고 투명한 베일이 씌워져 있었다. 그는 성체를 영해 주고는 바로 사라졌다(1676참조).

 

한번은 파우스티나가 의혹을 품고 그 세라핌 천사에게 “저의 고백을 들어 줄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천국의 영은 그런 능력이 없어요”하고 말하면서 즉시 그녀의 입에다 성체를 영해 주었다(1667참조).

주일에 신부님의 성체를 영해 주기 위해 병실로 찾아왔다. 2주 동안 파우스티나는 병실 바깥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는데 이때부터 미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성당에서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아담 실버그 의사는 파우스티나의 상태가 중함을 알고 “전능하신 하느님만이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우스티나는 평화롭고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서 일생 동안 자신에게 내려 주신 은혜에 대해 감사를 드렸다. 파우스티나는 그날 이렇게 기록했다.

 

지금 당장 죽음이 찾아온다 해도 ‘주님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 할 일이 있습니다’ 하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죽음을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를 신뢰한 그 순간부터 자비와 연민으로 충만하신 하느님의 거룩한 뜻에 나를 완전히 맡겼기 때문이다…(1679참조).

 

예수님께서 자비의 축일로 삼기 바라시는 부활 후 첫 주일, 파우스티나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 저는 죄인들을 위한 번제물 로 저를 다시 주님께 봉헌합니다. 제 삶의 종말이 이미 다가왔다면, 주님, 겸허한 마음으로 간청하오니, 저의 죽음을 주님과 일치시켜 번제물로 받아 주십시오. 아직 제가 힘이 있고 의식이 있을 때 다음 세 가지의 지향으로 저를 주님께 바칩니다.

첫째, 주님 자비심의 사업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하느님 자비심의 축일이 엄숙하게 거행되게 하소서.

둘째, 죄인들, 특히 임종을 앞둔 죄인들이 주님의 자비에 의존하여 형언할 수 없는 주님 자비심의 은총을 입게 하소서.

셋째, 주님 자비심의 사업이 주님 뜻에 따라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리고 이 일을 맡은 사람들을 위해 …. 지극히 자비로우신 예수님, 저는 보잘것없으나 오늘 하늘과 땅 앞에서 바치는 이 희생을 받아 주소서. 자비 가득한 지극히 거룩하신 성심이시여, 제 봉헌에 부족함이 많사오나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주님께서 저를 하느님 아버지께 바쳐주소서. 오, 그리스도님! 영혼들의 구원을 간절히 원합니다(1680).

 

이때 파우스티나는 자기 자신이 완전히 하느님의 소유가 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에도 느낄 수 없었던 영신의 자유로움을 느꼈다. 또 이때 하느님 자비의 영광을 보았고, 수많은 군중이 하느님의 선하심을 찬미하는 장면을 보았다.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의 현존에 잠겨 있으면서 “나는 내 사랑하는 딸을 보았다.” 하는 말씀을 들었다. 파우스티나는 이날 하루 종일 하느님의 현존을 생생하게 느꼈다.

5월 1일 저녁,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에게 “내 딸아, 필요한 것이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파우스티나는 “오, 사랑하는 주님! 주님을 모시고 있으면 모든 것을 다 가진 것과 다름없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자기 영혼을 나에게 맡긴다면 내가 그를 정화시키는 책임을 맡아 아낌없이 은총을 내릴 것이다. 나의 노력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그들을 단념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에게로 얼굴을 돌리면, 나는 서둘러 그들을 돕고 내 자비로 보호한다. 그리고 연민으로 가득 찬 내 성심의 가장 윗자리에 놓는다.

수도자들을 위해 기록하여라. 나는 영성체를 통해 그들 마음에 들어가기를 기뻐한다. 그러나 그들 마음에 다른 것이 차 있으면 나는 그를 위해 준비한 은혜들을 가지고 얼른 나와 버린다. 어떤 영혼은 내가 들어가는 것을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 얼마 후 그의 영혼에는 공허감과 불만이 쌓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로 눈길을 돌리면 내가 그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모든 것을 성취하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바라거나 동의하지 않는 한 나는 그 영혼의 스승이 될 수 없다”(1683).

 

묵상과 성시간 때에도 계속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련자를 교육시켰다.

 

“내 딸아, 내가 네게 한 말을 성실히 지켜라. 외부의 일은 네게 아무리 소중하다 하더라도 높이 평가하지 말아라. 항상 나와 함께 머물러라. 무든 것을 나에게 맡기고 너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 그러면 영신의 자유를 누릴 것이다. 어떤 상황이나 사건도 너를 당화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하는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말아라. 사람들이 자기 편한 대로 판단하도록 내버려 두어라. 그리고 변명하려고 노력하지 말아라. 네게 아무런 해도 없을 것이다. 네게 아무리 필요한 것이라 하더라도 요구하지 날아라. 네게 관계되는 것, 네 자존심, 네 명성은 그들이 어떻게 하든 내버려 두고 초연하여라. 모든 것을 초월하고 내 성심 곁에 머물러라. 그 어떤 것에도 네 평온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여라. 나의 제자야, 내가 한 말을 명심하여라”(1685).

 

파우스티나는 5월 8일에 상징적인 환시를 통해 거대한 두 개의 기둥을 보았는데, 이것은 파우스티나와 S.M.이 온갖 노력과 수고를 다해 땅에 세운 것이다. 이 S.M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파우스티나가 ‘어떻게 이 큰 기둥을 세울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위에서부터 내려온 힘을 통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두 기둥 위에는 하느님 자비의 상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이 두 기둥 위에 그 즉시 거대한 성전이 건립되었다. 이 성전이 지어질 때 파우스티나는 사람의 손이 아닌 손을 보았다. 성전 안팎에는 수많은 군중이 운집하였고, 예수 성심에서 흘러 나오는 빛이 모든 사람들을 비추고 있었다(1689참조).

그날 영성체 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딸아, 나에게 영혼들을 바쳐라. 네 기도와 희생으로 영혼들을 구하고 또 내 자비를 신뢰케 하는 것이 네 사명이다”(1690).

 

하루는 파우스티나가 성체 안에 감추어져 계신 예수님과 그분이 보여 주시는 친밀에 대해 정열적으로 기록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내 딸아, 무엇을 적고 있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파우스티나는 “예수님께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체 안에 숨어 계신 예수님, 그리고 인류에게 보여 주시는 지극한 사랑과 자비에 관해 적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심원한 자비의 비서인 내 딸아, 너의 임무는 내가 내 자비에 관해 알려주는 모든 것을 기록하는 일이다. 그 기록을 읽는 사람은 위로를 얻을 것이며 나에게 다가 올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따라서 네가 시간이 있는 한 많이 기록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주님, 저에게 기록할 시간이 잠깐이라도 주어지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그것은 네가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 나는 네가 내 요구를 잘 이룰 수 있도록 조처할 것이다”(1693).

 

파우스티나는 그때부터 일기에 날짜를 기록하지 않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대로 기록한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에 순명하여, 예수님께서 당신 자비에 관해 알려 주시는 대로 기록하였다.

어느 목요일에 파우스티나는 건강이 나아져 성시간에 참여하자마자 고통이 심해져서 더 이상 기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성시간이 끝나자 고통도 멎었다. 고통이 심해 주님의 수난을 깊이 묵상하는 데 방해가 되었다고 불평을 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딸아, 네가 내 수난을 감지하고 도 그것에 대해 보다 깊은 지식을 가지게 된 것은 모두 내 은총 때문이다. 나의 수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또 나를 가장 닮을 수 있는 때는 네 마음이 어둡고 고통이 심할 때이다. 그러한 때에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너의 임무이다”(1697).

 

파우스티나는 수녀원에 입회하기 전부터 임종 환자를 찾아가 기도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얻게 하는 일을 즐겨 하였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파우스티나는 요양소에서도 이 일을 계속했다. 처음에는 환자 곁에서 지냈으나 장상으로부터 금지를 당한 후에는 기도를 통해 임종환자를 도왔다. 파우스티나는 죽어가는 환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 하느님의 자비는 놀랍고도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마지막 순간에 죄인들의 마음을 움직이신다. 겉으로 보기에 희망이 전혀 없어 보이는 사람도 그러지 않은 경우가 있다. 어떤 영혼은 임종 직전이라 어떤 행위도 할 수 없고 겉으로 보기에 회개도 참회도 하지 않을 것 같지만 하느님의 강력한 마지막 은총의 빛을 받고 자신의 죄와 벌을 용서받는 경우가 있다. 오, 하느님의 자비는 얼마나 신비로운가!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를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임종 직전까지 자비의 손길을 펼치시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하느님께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너무나 완고하여 의식적으로 지옥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들은 하느님께 바치는 다른 사람들이 기도와 나아가 하느님의 노력까지도 수포로 돌아가게 한다….(1698).

 

하루는 파우스티나가 내적 생활에 대해 가르침을 청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나는 너의 스승이었고 현재도 스승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겸손하고 온유한 내 마음을 닮도록 해라. 네 권리를 주장하지 말아라. 어떤 일이 있든지 평온하고 인내하는 마음을 가져라. 네게 잘못이 없더라도 변명하려 애쓰지 말아라. 다른 사람이 승리하게 하여라. 네 선함이 지나치다 여겨지더라도 선행을 그치지 말아라. 네게 필요한 때에는 내가 나서서 말해 주겠다. 나의 조그마한 은혜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감사하는 네 마음 때문에 내가 새로운 은총을 내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1701).

 

하루는 파우스티나가 십자가의 길을 끝낼 쯤, 선택된 영혼들에게 사랑이 결여되어 있다는 예수님의 불평을 들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도원과 교회가 무너지도록 내버려 두어야겠다.”

 

“예수님, 수도원에서 주님을 찬미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하고 파우스티나가 말씀 드리자 주님께서는 “그 찬미가 오히려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수도원에서는 사랑이 사라져버렸다. ….. 위선은 세상에서 큰 죄이다. 선택된 영혼들의 죄가 내 마음을 찌르고 또 찌른다”(1702) 라고 말씀 하셨다.

 

파우스티나는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몰라 울었다. 주님께서는 자비로운 눈으로 바라보시며 그녀를 위로하였다.

 

“울지 말아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내 사랑이 크기에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고하고 벌하려는 것이다”(1702).

 

언젠가 파우스티나가 성당에 잠깐 들려 기도 중에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를 찬미하였다. 이때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네가 지금 나를 찬미한 것처럼 나는 그러한 존재요,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너는 이미 이 생에서 나의 선함을 경험하였고 천국에 가서는 더욱 더 경험하게 될 것이다”(1707).

 

파우스티나가 대답하였다. “오, 그리스도님! 주님께서 사랑 받고 주님께 대한 찬미와 영광의 소리가 울려 퍼질 때 저는 제일 기쁩니다. 오, 그리스도님! 제 생이 끝날 때까지 그치지 않고 주님의 선하심과 자비를 찬미하겠습니다. 제 피 한 방울 한 방울, 제 심장의 고동소리 하나하나가 주님의 영광을 노래합니다. 제 자신이 주님을 찬미하는 노래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임종을 맞을 때, 제 심장의 마지막 고동소리가 주님의 무한한 자비를 찬미하는 노래가 되게 하소서”(1708).

5월 26일, 파우스티나는 주님의 승천을 묵상하고 있었다. 하느님의 어머니와 함께 예수님의 제자들, 사도들 가운데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온 세상에 나가서 당신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손을 드신 후 축복을 내리시며 구름 속으로 사라지셨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그리움을 느꼈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 외에는 전혀 마음의 동요를 느끼지 않는 평화로운 모습이셨다. 파우스티나가 성모님과 함께 있을 때, 성모님께서는 내적 생활에 관해 말씀하셨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자기 자신을 잊고 또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길 때 그의 영혼은 참으로 위대해진다. 주님께서는 위대한 분이면서도 겸손한 사람들 가운데 머무시는 것을 모아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주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항상 물리치신다”(1711).

 

 

 

하느님과의 일치에서 얻는 힘

 

어느 날 영성체 후 파우스티나는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말씀 드렸다. “나의 사랑이시여, 제 마음 깊은 곳까지 다스리소서. 이곳은 비밀스러운 생각이 숨어 있는 곳, 주님만이 자유로이 드나드실 뿐, 이 깊은 성소에는 인간의 생각이 침투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곳에 머무르시고, 이곳에 계신 주님으로부터 저의 모든 행동이 나오게 하소서. 주님, 간절히 바라오니, 제 있는 힘을 다해 주님께서 머무르시기에 편안한 거처로 만들겠습니다”(1721).

이때 파우스티나는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네가 내 손을 잡지 않았다면, 나는 이 세상에 많은 벌을 내렸을 것이다. 내 딸아, 너를 보면 화가 가라앉는다. 네 입술은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천국을 움직일 정도로 나를 흔든다. 멀리 있는 것이 아닌 바로 네 마음 속에 있는 나에게 그토록 매달리니 네 요구를 피할 수가 없구나”(1722).

 

예수 승천 대축일 지난 며칠 후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에게 말씀하셨다.

 

“기록하여라. 나는 거룩하기에 아주 미소한 죄까지도 미워한다. 죄에 물든 영혼은 사랑할 수 없다. 그러나 참회하면 나의 관용에 한계가 없어진다. 나의 은총이 그를 감싸 의롭게 한다. 내 자비는 죄인들이 가는 길을 끝까지 따라가며, 그들이 내게 돌아올 때 내 마음은 기쁨에 넘친다. 그들이 내 마음에 던져 주던 고통은 잊고 그들이 돌아 온 것만을 기뻐한다.

아무도 내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죄인들에게 말하여라. 그들이 내 자비로운 마음에서 벗어나게 되면 내 정의의 손안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죄인들에게 전하여라. 내가 항상 그들을 지켜보고 있고, 내가 그들의 심장 고동소리를 들으며 나를 위해 고동치게 될 때를 지켜보고 있다고 기록하여라. 나는 그들에게 양심의 가책, 실패와 고통, 천둥과 벼락, 교회의 목소리를 통해 항상 말을 건네고 있다. 그들이 내 은총을 헛되이 내버리면 나는 그들에게 화를 내고 혼자 있게 내버려 둘 것이며,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줄 것이다”(1728).

 

파우스티나는 장상들의 끊임없는 보살핌과 의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건강이 악화되어 가고 있음을 알았다. “나의 사랑, 나의 하느님, 하느님의 부르심에 저의 마음은 기쁨으로 넘칩니다. 죽는 순간에 제 사명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1729).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믿음을 재확인하였다.

 

….. 제가 비천한 처지에 있고 잘못 또한 많사오나 주님의 자비를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자비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믿는 사람이 멸망한다는 말은 들어본 일이 없고 하늘과 땅도 이를 알지 못합니다. 오, 자비의 하느님! 하느님께서만 저를 의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아무리 중한 죄인이라도 한 번도 거절하신 일이 없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성심께로 회개하여 다가가면 물리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173).

 

5월 어느 날 밤, 파우스티나는 폭풍 소리에 잠을 깼다. 이날 밤에 일어난 사건을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심한 폭풍에 잠을 깼다. 바람이 몹시 불고 세찬 비가 내리며 천둥 소리가 요란하였다. 이 폭풍에 피해가 없기를 기도하였다 . 이때 “내가 가르쳐 준 자비심의 5단기도를 바쳐라. 폭풍이 멎을 것이다.”하는 말씀을 들었다. 즉시 나는 자비심의 5단기도를 바쳤다.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폭풍이 멎었다. 그리고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자비심의 5단기도를 바칠 때, 내 뜻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든 얻을 것이다”(1731).

 

이 폭풍은 사랑하는 조국을 강타할 더 큰 폭풍의 징조가 아니었던가. 파우스티나는 곧 길고도 무서운 전쟁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폴란드를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를 하였다. 하루는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나는 폴란드를 각별히 사랑한다. 내 뜻에 순종하면 힘차고 거룩한 나라로 만들 것이다. 이 나라에서 나의 마지막 재림을 준비할 불꽃이 일 것이다”(1732).

 

요양소에 있을 때에도 파우스티나는 게으르지 않았다. 항상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살았으며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방문하는 환자들에게 조언을 하고 임종환자와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였다. 그리고 창조와 구원의 계획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자비를 찬미하기 위해 기존의 기도와 시를 포함한 자기 묵상 내용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내용들은 그녀의 일기 안에 기록되어 있다(1751참조).

6월 2일, 파우스티나는 예수님을 피정 지도자로 모시고 사흘간의 피정을 시작하였다. 이번 피정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라고 지시 하셨으며 성령강림 전 사흘간의 날짜까지 지정해 주셨다. 파우스티나는 장상이 허락하면 하겠다고 대답했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피정을 지도하시면서 매일 그날의 피정 주제를 선정해 주시고 강론도 매일 하셨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에서 묵상 주제를 지적해 주셨다. 첫날은 15장을 천천히 읽으라고 하셨고 둘째 날은 19장을 입으로 읽지 말고 마음으로 읽으라고 하셨다. 셋째 날은 머리로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21장을 경험하라고 하셨다. 피정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강론을 하셨는데, 파우스티나는 이를 ‘자비의 계약’ 이라고 불렀다.

 

“내 딸아, 내 마음은 자비, 그 자체라는 것을 알아라. 이 자비의 바다로부터 온 세상에 은총이 흘러나간다. 내게 다가온 영혼치고 위로를 받지 아니한 자 없다. 모든 불행은 내 자비의 바다에 묻히고, 이 생에서 구원과 성화의 은총이 흐를 것이다. 내 딸아, 네 마음이 내 자비의 거처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네 마음을 통해 온 세상에 내 자비가 흘러가기를 바란다. 네게 가까이 오는 영혼이 내 자비에 대한 신뢰를 깨닫지 않고서는 떠나지 않게 하여라.

죽어가는 환자를 위해 가능한 한 많이 기도하여라. 죽어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내 자비에 신뢰를 느끼도록 하여라. 그들은 신뢰를 가장 필요로 하지만 신뢰를 가지는 자가 드물다. 어떤 영혼들에게는 마지막 순간 영원한 구원의 은총이 오로지 네 기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여라. 너는 내 자비의 깊이를 알고 있으니, 네 자신과 특히 죄인들을 위해 자비의 샘에서 자비를 퍼 올려라”(1752-1779참조).

 

파우스티나는 이 특별한 피정을 마친 후 한 가지 결심을 했는데, 여러 해 전부터 해온 결심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자비하신 그리스도와의 일치였다. 피정이 끝날 때 예수님께 “영원한 사랑이시여, 저의 성화에 전념하시는 주님의 무한하신 친절에 감사 드립니다” 하고 말씀 드렸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딸아, 겸손,순수한 의향, 사랑 이 세 가지 덕을 지켜라. 내가 너에게 요구하는 것 이상의 것은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은 모두 받아들여라.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관상생활을 하여라. 내 목소리는 약해서 관상하는 사람이라야 들을 수 있다. ….”(1779).

 

파우스티나는 지난 밤 허원을 갱신해야겠다는 생각에 설레어 자정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성령강림 대축일인 이날 평상시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성당에 가서 하느님의 사랑에 빠져들었다. 영성체 하기 전, 파우스티나는 개인적으로 자기 허원을 갱신하였다. 영성체 후 그녀의 마음은 하느님께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넘쳤다. 파우스티나는 이를 이렇게 기록했다.

 

내 영혼은 성부와 성자와 똑같은 주님이신 성령과 일치를 이루었다. 그분의 숨결로 인해 기쁨의 물결로 채워진 내 마음의 상태를 표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소용없는 일이다(1781).

 

며칠 후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와 오랜 대화를 하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영혼의 구원을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모른다. 내 사랑하는 비서야, 내 은총을 원하기만 한다면 내 생명을 인간의 영혼에 쏟아 부어 그를 성화시키고 싶어한다고 기록하여라. 내 자비를 신뢰하기만 한다면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높은 성덕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자비가 넘쳐, 내가 창조한 모든 피조물에게로 넘쳐 흐른다. 내가 영혼을 내 자비로 채우고 의롭게 하는 것은 내 기쁨이다. 이 지상에서의 내 왕국은 인간의 영혼 안에서의 삶이다. 내 비서야, 기록하여라. 나는 사제들을 통해 영혼들을 간접적으로 인도하고, 나만이 알고 있는 방법으로 각자를 성덕의 길로 안내한다”(1784).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음날인 6월 17일 금요일, 파우스티나는 너무나 고통이 심해 그토록 기다려 왔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 것 같았다. 파우스티나는 지난 밤에 열이 심했고 많은 피를 쏟았다. 영성체하러 갈 수는 있었지만 미사 시간 내내 참석할 수는 없었다. 오후가 되자 열이 떨어지고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 그러나 깊은 기도에 젖은 후, “이 세상을 떠날 시간이 아니라 신랑의 부름이 가까이 다가왔을 뿐”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1786).

파우스티나는 주님과 만나자 이렇게 말씀 드렸다. “예수님, 저를 속이시는군요. 당신은 천국문을 보여 주시고는 저를 다시 이 땅에 버려 두셨어요.”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네가 천국에서 현재의 네 나날들을 보게 된다면 기뻐하며 더 많이 보고 싶어할 것이다. 내 딸아, 지금 네 마음은 고통과 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으니 네가 지금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네가 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으니 기쁘다. 내 말로 충분할 것이다. 네가 떠날 날은 지금이 아니다.”

 

다시 그녀의 영혼은 유배지에 머물게 되었다(1787).

6월, 이레네오 원장 수녀가 요양소를 잠깐 방문하였다. 원장 수녀는 방을 둘러보고 “모두 깨끗하군요” 하고 말했다. 파우스티나도 동의했지만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사실이다. 수녀들은 내가 요양소에서 쾌적하게 보내도록 도와 준다. 그러나 환경이 아무리 깨끗해도 하느님만이 알고 계시는 내 희생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 희생은 내 심장이 멎어야 끝날 것이다. 온 세상의 아름다움, 천국의 아름다움까지도 내 영혼의 고문을 약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내 고통의 창조자이신 주님께서 “충분하다”고 말씀하실 때에야 끝날 것이다. 내 희생을 경감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1785).

 

6월에는 총장 수녀인 미카엘 수녀도 파우스티나를 방문하였다. 총장 수녀는 병원생활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 준 파우스티나를 잘 방문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총장 수녀가 떠나기 전 파우스티나가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총장 수녀님,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리고 노트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다음에 저것을 읽으시게 될 것입니다.”

8월, 총장 수녀는 파우스티나의 건강이 계속 악화되어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파우스티나를 항상 동정하고 또 기억하고 있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소포코 신부가 체스토호바에서 열리는 시노드에 참석했다가 파우스티나를 방문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 주었다. 파우스티나는 이 편지를 받고 대단히 기뻤다. 8월 말 파우스티나는 총장 수녀에게 편지를 띄웠다.

사랑하는 총장 수녀님, 이것이 수녀님과 저와의 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대화가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몸이 너무나 약해져서 떨리는 손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힘에 겨운 일을 시키시지는 않습니다. 저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거룩한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으며 하느님께 대한 동경이 더욱 열렬하게 일어납니다. 죽음은 두렵지 않습니다. 제 영혼은 깊은 평화에 잠겨 있고 아직도 영성생활을 모두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미사에도 참여합니다. 그러나 미사가 끝날 때까지 참아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교회에 남겨 놓으신 은총은 모두 다 받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총장 수녀님, 수녀원에 들어오면서부터 지금까지 입은 모든 혜택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특히 저에 대한 연민과 어려울 때의 지도에 마음 깊이 감사 드리며 하느님께서 풍성히 보답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총장 수녀님, 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점과 다른 수녀님들에게 보인 나쁜 표양들, 그리고 수도생활에 대한 정열의 결여와 저도 모르게 끼쳐드린 고통에 대해 겸손한 마음으로 용서를 청합니다.

사랑하는 총장 수녀님, 수녀님의 선하심은 제가 힘겹고 어려울 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지극히 비천하고 보잘것없는

파우스티나 수녀 드림

 

주님께서는 파우스티나를 위로할 양으로 미래를 어렴풋이 볼 수 있게 해 주셨다. 이를 파우스티나는 정확한 날짜를 기입하지 않고 기록하였다.

 

나는 오늘 상본에서 비쳐 나오는 하느님의 영광을 보았다. 드러나게 말하지는 않지만 많은 영혼들이 은혜를 받는다. 변화는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 사탄과 악한 사람들의 노력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사탄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자비는 온 세상에서 승리할 것이며 모든 영혼들로부터 찬미를 받으실 것이다(1789).

 

파우스티나는 스승이신 주님을 통해 지극히 가치 있는 교훈을 얻었다.

 

하느님께서 영혼 안에서 활동하실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의 행동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펼칠 수 없을 것이다.

 

파우스티나는 하느님 자비심의 5단기도의 위력을 강조하는 두 가지의 사건을 기록하였다.

 

심한 폭풍이 시작될 때 나는 자비심 5단기도를 바치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천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빛이 저 폭풍을 밀어내기 때문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을 향한 천사의 불평이었다. 그때 나는 천사가 그 폭풍으로 얼마나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러나 또한 이 자비심의 5단기도가 하느님의 마음에 들고 또 가장 힘 있는 기도라는 사실도 알았다(1791).

오늘 주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셨다.

 

“내 딸아, 영혼을 구하는 일을 도와라. 너는 죽어가는 환자에게 가서 자비심의 5단기도를 바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임종환자는 나의 자비에 대한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그는 이미 절망 상태에 놓여있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심한 고통 속에 죽어가는 늙은이가 사는 오두막집에 가 있었다. 침상 곁에는 울고 있는 가족들과 또 많은 사탄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기도를 시작하자 암흑의 영들은 나를 위협하다가 “쉿” 소리를 내며 도망갔다 그 영혼은 조용해지더니 신뢰에 가득 찬 마음으로 주님 안에서 안식을 취하였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내 방에 와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 나도 알 수 없다(1797-1798).

 

파우스티나는 또 다른 환시를 기록하였다.

 

나는 오늘 하늘에서 빛이 찬란한 예수 성심을 보았다. 그 빛은 예수님 옆구리의 상처에서 나와 온 세상을 비추었다(1796).

 

파우스티나는 병원에 있을 때, 병원 직원들에 대한 존경과 순명 뿐 아니라 친절과 겸손과 질서에 대한 존중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파우스티나와 접촉한 사람이면 모두 다 그를 좋아하였다. 말은 별로 없었지만 그녀의 인격이 웅변과 같은 영향을 주었다. 병원장인 아담 실버그는 자주 파우스티나를 찾아 와 영성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는 갓 세례를 받은 사람으로서 이 비범한 환자에게 많은 질문을 하였다.

 

 

마지막 나날들

 

8월 24일, 이레네오 원장 수녀는 파우스티나의 건강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요양소에 왔다. 이튿날 파우스티나의 생일인 8월 25일에 차푸타 신부가 병자성사를 주었는데 파우스티나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8월 28일, 소포코 신부가 방문하였고 9월 2일에도 방문하여 파우스티나 곁에 머물다가 떠났다. 그리고 새로 인쇄한 상본 을 잊어 버리고 두고 온 것을 알고 파우스티나에게 되돌아 왔는데 그때 파우스티나는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그는 파우스티나를 방해하지 않았다.

크라쿠프에서 진료소를 새로 담당한 알프레다 수녀는 파우스티나가 중태인 것을 알고 수녀원에 돌아가서 임종을 맞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파우스티나의 대답은 밝은 미소뿐이었다. 그러다 조금 후에 말했다.

“수녀님, 자는 죽지 않아요. 여기 머물게 해 주세요. 수녀원에 가면 한 수녀님이 제게 계속 붙어 있어야 하니까 짐이 될 뿐입니다. …. 그러나 좋으실 대로 하세요. 장상 수녀님들이 바라시는 대로.”

2주일 후인 9월 17일, 파우스티나를 데려가기 위해 알프레다 수녀가 요양소로 왔다. 실버그 의사가 파우스티나의 침상 곁에 있던 성녀 데레사의 상본을 달라고 하면서 그것을 여섯 달 된 자기 아들의 방에 걸어놓고 싶어했다. 알프레다 수녀는 걱정이 되어 소독을 하라고 말했다. 그러니 의사는 “전염될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파우스티나 수녀님은 성녀니까요. 성녀는 전염을 시키지 않습니다”하고 말했다.

파우스티나에게는 요양소를 떠나 수녀원으로 돌아가는 일이 매우 힘들었다. 알프레다 수녀는 파우스티나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놀랐다. 파우스티나는 “수녀님, 놀라지 마세요. 길거리에서 죽지는 않을 거예요”하고 안심시켰다.

라기에브니키에 있는 성요셉의 집에 돌아온 파우스티나는 아멜리아 수녀로부터 친절한 간호를 받았다. 몸이 허약해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기력은 점점 약해졌다. 수녀원의 관습에 따라 파우스티나는 9월 22일, 전 공동체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저지른 모든 허물에 대해 용서를 청하였다. 그리고 신랑이 찾아올 시간을 조용히 기다렸다.

9월 26일, 소포코 신부가 파우스티나를 방문했는데 이는 마지막 방문이 되었다. 소포코 신부는 파우스티나와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파우스티나는 천상의 하느님 아버지와의 일치 속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비망록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이 지상의 존재가 아니라는 인상을 주었다. 천사가 성체를 영해 주었다는 수녀의 일기에 나는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파우스티나가 소포코 신부에게, 주님께서 자신의 죽을 날을 가르쳐 주실 것이라고 말한 것도 바로 이 날이었다.

파우스티나가 아직 살아있을 때 가드너 수녀가 파우스티나를 방문하여 “수녀님은 죽음이 두렵지 않으세요?” 하고 묻자 파우스티나는 “무엇이 두려워요? 나의 모든 죄와 결점들이 하느님의 자비의 불 속에서 마치 지푸라기처럼 타버릴 텐데요”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화는 전쟁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는데 가드너 수녀는 전쟁이 일어나도 곧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파우스티나는 “그렇지 않아요. 전쟁은 너무나도 오래 계속될 것이고 엄청난 불행을 몰고 올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에게 무서운 고통이 덮칠 것입니다”하고 대답했다.

“폴란드는 살아 남을까요?”하는 물음에 파우스티나는 “살아 남기야 하겠지요. 그러나 살아 남을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거예요. 그들은 서로을 매우 사랑하게 될 것이고 보고 싶어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파우스티나가 전쟁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전부터 그녀는 동료 수녀들에게 곧 길고 무서운 전쟁이 일어날 터이니 폴란드를 위해 기도하라고 자주 말해왔다. 사람들이 곧이 듣지 않아도 굽히지 않고 길고 참혹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소포코 신부도, 파우스티나가 평소에 폴란드의 운명에 대해 매우 우려했지만 파우스티나의 말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소포코 신부는 그럴 때 더 이상 상세한 것을 묻지 않고 파우스티나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지만, 파우스티나가 무서운 광경을 보지 않으려는 것 같은 몸짓을 하고 얼굴을 가리는 장면을 보았었다고 말했다.

수녀들도 전쟁이 다가온다는 파우스티나의 끊임없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파우스티나가 자신을 친절히 돌보아 주던 선배 안나 수녀에게 “무서운 전쟁이 곧 일어나겠지만 수녀님들은 이곳을 떠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하고 말했을 때 안나 수녀도 죽어가는 사람이 미래의 전쟁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자기 영혼이나 걱정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파우스티나가 죽은 지 1년 뒤에 일어난 긴 전쟁 동안, 수녀들은 나찌의 침공으로 세 반이나 위협을 받았다. 그때마다 파우스티나의 말을 생각했다. 그리고 위기가 닥칠 때마다 파우스티나의 무덤을 찾아가 하느님의 자비로 무사히 살아 남을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청하였다. 수녀들은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파우스티나의 말대로 라기에브니키에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파우스티나는 사랑하는 분을 평화로이 기다리면서 끝까지 동료 수녀들에게 감화를 주었다. 파우스티나를 적대하던 사람들은 이 마지막 순간들을 비춘 은혜들을 나누지 못한 것에 대해 크게 후회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녀들은 파우스티나의 영성에 감화되었고, 많은 것이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그들과 함께 나눈 파우스티나의 마지막 말들이 가슴 깊이 새겨졌다. 파우스티나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던 어느 수녀는 파우스티나의 해골처럼 된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오, 가엾은 수녀님!” 하며 울었다. 그러자 파우스티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예요?”하고 말했다.

이레네오 원장 수녀는 임종을 앞두고 있는 파우스티나를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원장 수녀는 이렇게 회상했다. “병자가 어떻게 그토록 평화롭고 매력적이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그렇게 변했는지! 하느님 자비심의 사업으로 인해 좌절과 동요에 빠져 있더니, 그때는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맡기고 모든 것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루는 원장 수녀가 방문했을 때 파우스티나가 “자비심의 축일이 제정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압니다. 저는 하느님의 뜻만 원합니다”하고 말했다. 또 하루는 원장 수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녀님께서는 저 때문에 우리 수녀원이 경사를 맞는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수녀원에서 죽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느냐고 묻자 파우스티나는 “예, 제가 새 수도회를 설립하는 일로 겪은 그 모든 고통과 시련 때문에, 원장 수녀님께서는 이미 이 세상에서부터 큰 기쁨을 갖게 될 것입니다”하고 대답했다.

이레네오 원장 수녀가 파우스티나의 임종 직전에 방문했을 때, 파우스티나는 겨우 몸을 일으키며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하면서 말했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저를 들어올려 성인으로 만들고 싶어 하십니다.”

원장 수녀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녀가 하도 진지하게 말하므로 하느님 자비의 선물로 확약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파우스티나 수녀의 곁을 떠나올 때 그 말에 이상한 감동을 받았지만, 그 말의 중대성을 완전히 깨닫지 못했었다.”

10월 5일, 파우스티나는 펠리치아 수녀에게 “주님께서는 오늘 나를 데려가실 것입니다”하고 속삭이는 소리로 말했다. 오후 4시에 안드레아 신부가 고해성사를 주러 왔다. 파우스티나는 고통이 심했다 고통을 경감시킬 주사를 청했다가 하느님의 마지막 뜻을 이루기 위해 주사를 거부했다.

9시에 지도신부인 치푸타 신부와 함께 수녀들이 침상 곁으로 모여 죽어가는 수녀를 위해 기도했다. 파우스티나는 모여 온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고 특히 자신의 환시의 증거자인 원장 수녀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러나 임종이 다가온 것 같지 않다는 생각으로 수녀들이 모두 흩어졌는데, 리고리아 수녀만이 침상을 지키고 있었다. 밤 10시 45분, 리고리아 수녀가 원장 수녀에게 달려갔을 때 파우스티나 수녀는 마치 무아지경에 잠기듯이 눈을 하늘로 향한 채 천국으로 떠났다.

파우스티나의 여윈 몸은 즉시 천상적인 아름다움을 띠었다. 이 일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제 모든 행실이 주님의 마음에 들도록 저를 거룩하게 하소서. 제가 매일 하는 영성체를 통해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기도가 실현된 것이다.후일에 ‘영성체 준비’라는 제목이 쓰여진 파우스티나 수녀의 노트가 발견되었는데 서문에 이러한 글이 실려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엄숙한 순간은 영성체를 하는 순간이다. 나는 매일 영성체하기를 갈망하고, 영성체를 한 후에는 매번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께 감사를 드린다. 천사들이 우리를 부러워하는 점이 있다면 다음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영성체를 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고통을 당하는 일일 것이다(1804).

 

이 노트의 서문을 보면, 파우스티나가 왕이신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할 때 그녀는 그 예수님을 보통의 왕이 아니라 권품천사와 주품천사도 그분 앞에서 떠는 왕들의 왕이요, 주인들의 주인이신 분으로 그분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파우스티나가 예수님을 초대하고 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의 마음을 거처로 삼고 오실 때, 파우스티나는 온전히 경외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두려움에 떨었다.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미시어 파우스티나를 곁에 앉히시고 진정시키며 말씀하셨다.

 

“보아라. 너를 위해 내 천상 어좌를 남겨놓았다. 네가 보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미 네 영혼은 사랑의 환희를 맛보고 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은 이미 이 지상에서 영성체를 통해 시작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너는 영성체를 할 때마다 더욱 더 하느님과 친교를 나눌 수 있다”(1810-1811)

 

썩어 없어질 몸도 이처럼 변모되는데, 성체를 열렬히 사랑한 이 영혼이 천국에 들 때 얼마나 영광스러운 환영을 받았겠는가!

파우스티나의 장례식은 로사리오의 모후 축일이요, 그 달의 첫 금요일인 1938년 10월 7일에 거행되었다. 수녀원 지도 신부였던 치푸타 신부외에 세 명의 예수회 신부도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오전 8시 30분, 아침기도를 바친 후 예수회 보이튼 신부가 중앙 제대에서 장례미사를 집전하였고, 예수회 샤브로브스키 신부는 하느님 자비심의 성화가 모셔진 성심 제대에서 흰 장백의를 입고 집전하였다. 파우스티나는 생전에 가족들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을 줄까 염려하여 자신의 병과 죽음을 알리지 말아 달라고 했기에 가족은 아무도 참석하지 못했다. 미사 후 동료 수녀들과 자매들은 파우스티나를 라기에브니키의 수녀원 묘지에 안장하였다.

 

 

 


맺음말

 

파우스티나 수녀의 신비적 체험을 알고 있는 수녀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파우스티나 수녀가 선종한 후 2년 동안은 파우스티나 수녀에 관해서 거의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심에 대한 신심은 서서히 전파되기 시작했고 이와 연관하여 파우스티나 수녀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이 소식은 여러 곳의 수녀들에게까지 전달되었으며, 파우스티나 수녀에 대한 물음을 갖기 시작했다. 따라서 1941년까지 이 수도회의 총장이었던 미카엘 모라체프스카 수녀는 파우스티나 수녀의 사명을 다른 모든 수녀들에게 알릴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하고 당시 나찌가 점령한 폴란드 내에서 자신이 갈 수 있는 수녀원은 모두 방문하여 이를 전했다.

수녀들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수녀가 말했다. “아주 단순한 심성의 수녀님이었고 우리들 가운데서 두드러지게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덕이 있고 생각이 깊고 하느님과 깊은 일치를 이루고 있었다니…. 그 수녀님이 죽고 난 뒤에도 하느님께서 그녀 안에서 또 그녀를 통해 큰 위업을 이루셨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믿을 수 없었는데….” 그러나 그들은 자기 수도회의 수호자이신 자비의 성모님께서 파우스티나 수녀를 통해 불쌍하고 죄 많은 이 세상에 하느님의 자비를 일깨워 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하였다.

이 신심은 파우스티나가 속해 있던 수녀원의 수녀들과 그곳에 수용되어 있던 보호 여성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9일기도, 호칭기도, 5단기도 등이 수록된 소포코 신부가 만든 소책자가 그 당시 거의 2년 동안 사용되어져 왔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보면서도 이 모든 것이 파우스티나 수녀에 의해서 된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또한 뒷면에 자비심의 5단기도를 인쇄해 놓은 상본 역시 잘 알려져 있었는데 이것도 이레네오 원장 수녀가 수녀들에게 보급했기 때문이다.

이레네오 원장 수녀는 하느님 자비심에 관한 신심을 전파하는데 신중을 기하면서 크라쿠프의 원장으로 있을 때인 1937년 9월에는 작은 하느님 자비심의 상본을 구해 성요셉의 집 제대 위에 걸어 놓았었다. 수녀들과 자매들이 특별히 그 상본에 큰 존경심을 가지고 기도 드리는 것을 보고 큰 것으로 바꿀 것을 결심했다. 그리고 1938년, 예수님께서 자비의 축일로 제정되기를 원하신 부활 다음 주일에는 성심 제대 위에 이 하느님의 자비심의 상본을 모셨다. 그리고는 그날 그 제대 위에서 미사가 봉헌되었고 하느님의 자비심에 대한 특별 강론도 있었다. 당시 요양소에 있던 파우스티나 수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알았더라면 이토록 중요한 사건을 일기에 기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파우스티나 수녀도 말했듯이, 파우스티나 수녀의 사명은 그녀가 죽은 후에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전쟁 동안 수녀원 성당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는데 이때부터 여러 각 지역의 사람들이 파우스티나의 중재를 희망했고 받은 은혜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게 되었다. 또 단순히 기도하기 위해 끊임없이 파우스티나의 무덤을 참배하러 왔다. 라기에브니키에서 널리 전파 된 하느님 자비심에 대한 신심은 파우스티나 수녀와 밀접히 관련되어 수녀원 성당의 자비의 성화 앞으로 기도하러 오는 이들은 빠짐없이 파우스티나 수녀의 무덤을 참배했다. 이 신심은 자연적으로 폴란드 전 지역으로 퍼지게 되었으며 파우스티나 수녀의 메시지는 당시의 시대적 요청에 매우 부합했다. 수녀들과 수녀원의 시설에 수용된 자매들은 폴란드에 대해 각별한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있던 파우스티나 수녀를 기억했다. 그리고 파우스티나의 무덤과 성당을 방문하러 온 사람들에게, 파우스티나 수녀는 전쟁에 관해 생전에 이미 예언했었다고 말하였고 방문객들은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했다.

라기에브니키 수녀원은 하느님 자비심 신심의 중심지가 되었다. 신자들은 상본, 9일기도, 5단기도, 호칭기도를 하기 위해 수녀원까지 오곤 했다. 그리고 교회 당국의 허락을 받아 매달 셋째 주일에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특별한 신심행사를 마련하였고, 부활 다음 주일을 자비심의 축일로 지냈다. 그리고 하느님 자비심의 상본과 기도문을 교회로부터 인가 받게 되었다. 1951년에는 이 신심을 거행하는 곳이 폴란드 내에서만 해도 130여 곳으로 확장되었다.

1940년부터 더욱 본격화된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심은 많은 사람들, 특히 폴란드 내 수많은 강제 수용소의 사람들에게 힘과 희망의 무기가 되었으며 폴란드 국경 너머로까지 전파되게 되었다. 이 신심이 가장 활기를 띤 곳은 프랑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이었다.

1950년대 중반에 이 신심이 널리 전파된 것은 1935년 파우스티나 수녀의 일기에 기록된 예언과는 모순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영적지도 신부님과 대화를 할 때 나는 고통 속에 놓인 그의 영혼에 대해서 번갯불보다 더 짧은 순간에 내적 환시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는 하느님께서 극히 소수의 영혼에게만 내리시는 심한 고뇌에 빠져 있었다. 그 고통은 바로 하느님 자비심의 사업 때문이었다. 하느님께서 그토록 요구하시던 이 사업이 좌절될 날이 올 것이고 그러면 하느님께서 큰 능력을 발휘하시어 그것이 하느님께서 이루신 활동이라는 증거를 보여 주실 것이다. 오래 전부터 잠재되어 온 것이기는 하지만 이 증거는 교회에 새로운 광채가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 무한히 자비로우시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정의의 심판관으로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이 정의를 깨닫기를 바라고 계신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을 무엇보다도 자비의 왕으로 알기를 바라고 계신다. 이 승리가 도래할 즈음이면 우리는 이미 고통이 없는 새로운 생명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이 영적 지도자의 영혼은 자신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알고 엄청난 고통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외견상 그렇게 보일 뿐 하느님의 계획은 예정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좌절이 일시적인 것이라 해도 여기서 느끼는 고통은 클 것이다. 언제 그러한 일이 일어날 지 그것은 모른다. 그리고 얼마 동안 계속될 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는 사람에게 큰 은총을 내리겠다고 약속하셨다.

 

“나는 그들이 죽을 때에 보호할 것이다. 죄인들이 범한 죄가 암흑과 같이 어둡다고 하더라도 내 자비에 의존해 오면 나에게는 큰 찬미가 되고 내 수난에 영광이 될 것이다. 한 영혼이 내 선함을 찬미하면 사탄은 그 앞에서 떨며 지옥 끝까지 도망갈 것이다”(378).

 

이 예언의 첫 부분은 문자 그대로 적중하였다. 교황청에서는 이를 부정확하고 불충분한 자료라는 근거로 1959년 3월 6일자로 파우스티나 수녀가 제안한 하느님 자비심에 대한 신심행사를 금지시켰다. 그리고 이미 신자들로부터 공경되고 있던 하느님 자비의 성화를 주교 재량으로 성당에서 철거하라고 하였다. 그 결과 많은 성당에서 자비의 성화가 치워졌고 일부 사제들도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강론을 중지하였다. 소포코 신부는 교황청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았고 이 신심을 전파한 일로 많은 시련을 겪었다. 자비의 성모 수녀회 역시 이 신심의 전파를 금지 당했으며 그 결과하느님 자비심의 상본, 자비심의 5단기도, 9일기도, 이 신심과 관계된 모든 것이 시들해졌다. 주님께서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그토록 요구하신 자비심의 사업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았다.

교황청의 금지령을 받은 라기에브니키의 자비의 성모회 수녀원에서는 크라쿠프의 대주교에게 편지를 보내 제대 옆에 건 자비심의 성화와 많은 봉헌물,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를 찬미하기 위한 신심 행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문의하였다. 대주교는 성화는 그대로 두고, 신자들이 은혜를 얻기 위해 기도하는 것을 허용하며, 기존의 신심행사는 계속해도 좋다고 답하였다. 이렇게 하여 파우스티나 수녀가 묻힌 크라쿠프의 조그마한 공동체에서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신심이 존속할 수 있었다.

1963년 교황청의 옷타비아니 추기경이 파우스티나 수녀의 사명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카롤 보이티야 대주교에게 증거자 들이 사망하기 전에 파우스티나 수녀의 시복을 위한 조사에 착수하라고 말하였다. 따라서 파우스티나 수녀가 사망한 지 27년이 지난 1965년 10월 21일에 보이티야 대주교에 의해 특별 위임을 받은 유리안 그로브리츠키 주교는 그때 ‘하느님의 종’이라는 호칭을 얻고 있던 파우스티나 수녀의 생애와 성덕을 조사할 시복 준비 조사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 조사의 일환으로 파우스티나 수녀의 유해가 무덤에서 수녀원 성당으로 옮겨졌다. 새로 추기경으로 선출 된 카롤 보이티야 추기경은 1967년 9월 20일 조사위원회의 조사에 결론을 내리고 그 보고서를 1968년 1월 26일 교황청 시복시성성으로 보냈다. 따라서 1968년 1월 31일 시복시상성에서는 ‘하느님의 종’ 파우스티나 코발스카의 시복을 위한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1978년 4월 15일, 교황청에서는 하느님 자비심 신심에 대한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 후 1959년에 금지했던 것을 해제했다. 따라서 20여 년 동안 금지되었던 하느님 자비심 신심이 파우스티나 수녀가 생전에 제안한 대로 전파하게 되었다. 이 금지가 풀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당시 크라쿠프의 대주교였던 카롤 보이티야 추기경이었는데 그가 바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이다. 이렇게 하여 파우스티나가 한 예언의 둘째 부분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1938년 5월에 파우스티나 수녀는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폴란드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때 나는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나는 폴란드를 특별히 사랑한다. 그리고 이 나라가 내 뜻대로 순명 한다면 힘과 성덕이 뛰어난 나라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온 세상으로 하여금 나의 재림을 준비하게 할 불꽃이 일게 할 것이다”(1732).

 

하느님의 자비심에 대한 신심이 “오랫동안 잠자고 있었지만 교회를 위한 새로운 광채가 될 것인가?” 폴란드에서 불붙게 된 이 신심은 온 세상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게 할 것인가? 그렇다면 주님께서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열네 번이나 요구하신 그 부탁이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요청은 교회가 공식적으로 부활 다음 주일을 자비심의 축일로 삼고, 그날 하느님의 자비심 성화를 공적으로 기리고 찬미하라는 것이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이 축일의 제정에 절박함을 알았고, 또 이것의 실현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였었다. 1937년 4월 10일, 소포코 신부가 빌니우스에서 출판하여 보낸 주간지에서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글을 보자 파우스티나 수녀의 영혼은 사랑의 화살로 찔리는 것 같았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이때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 “네가 간절히 바랬기 때문에 나는 자비심의 축일이 빨리 제정되도록 하겠다”(1082).

이 세상을 위한 예수님의 이 약속이 빨리 실현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마라나타(Marna Tha)! 주 예수님,오소서! 하느님의 자비를 우리 위에 내리소서!”

 

주: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는 1993년 4월 18일 시복 된 후 7년만인 2000년 4월 30일 교황 요한 바로오 2세에 의해 시성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를 통해 부활 대축일 다음 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고 온 세상이 하느님의 자비를 공경하도록 요청 하셨는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파우스티나 수녀의 시성식에서 부활 대축일 다음 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낼 것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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