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四行詩抄

– 예순일곱

姜 禹 植

 

마음도 텅비어 빈 절터와 같을 때

내 속셈까지라도 다 짚어 주시듯

항시 말갛게 떠 오르는 햇살을 지닌

부처님 같은 계집애를 모셔오리.

 

사람의 마음처럼 변화무쌍한 것은 다시 없습니다. 즐거운 적이 있는가 하면 슬픈 날도 있고 어두운 날이 있는가 하면 비온 뒤의 하늘처럼 말갛게 개이기도 합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이런 속담도 우리 마음의 그윽함을 이른 말이요 <하느님이 그 형상을 본 떠 인간을 만들었다>고 할 때도 그 형상은 곧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뜻이 됩니다.

이러한 우리 마음이 아주 텅 비어 버린 날 – 그것은 허망되고 쓸쓸한 마음이거나 혹은 온갖 잡된 생각이 싹 가셔 버린 마음이거나 간에 – 바로 그러한 날, 그 마음 속속드리를 다 알아주는 애인을 지니고 싶다는 시입니다. 숨긴 낱낱의 속셈까지를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주는 부처님같은 연인과 더불어서야 이심전심의 묘법으로 사랑은 절로 꽃피겠지요.

 

 

사랑 法

姜 恩 喬

 

떠나고 싶은 者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者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은 時間은

沈默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沈默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者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者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사랑을 하는 일도 결국은 신(神)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사람 그 자체가 미완성인 것처럼 항시 미흡하며 한계가 있으며 고뇌의 긴 그림자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더더구나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의 번뇌는 오랜 가물은 천지처럼 목마르고 애타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겨내는 방법은 어떤 길이 있을지… 젊고 총명한 이 여류시인은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고 하여 불변의 영원한 사랑의 원형을 두고 여타의 사소한 일은 실눈으로 보라고 하였습니다. 겸하여 속단하거나 서두르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떠나는 자는 떠나게 하고 잠드는 자는 잠들게 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르면 비록 그것이 절실한 여심(女心)의 역설이라 하더라도 도통(道通)의 길에 든 사랑법(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生命의 白書

 高 遠

 

정녕 이것이었오.

당신만의 눈동자 속에

심장 소리가 들리는 하늘이오

더운 가슴에 꽃피는 나의 자랑을

당신은 그대로 소유하십시오

 

세상이 그처럼 불안한 까닭은

실상 당신에게 드리는 노래의

순결이 보증된 의식이었다는구려

 

온갖 정렬의

한결같은 동원이오

당신만을 호흡하는 내 진실을

당신이 (당신) 이라고 부르는

생명은 정녕 이것이었오

 

현대는 실연이 없는 시대라고 합니다. 진정한 연애가 없는 시대이니 어찌 실연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합니다. 이 말을 그대로만 받아들이면 우리는 참으로 비참하고 비극적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꾸어 생각하면 이런 비극적인 시대인 연고로 사랑의 값어치는 더욱 귀하고 높습니다.

사랑, 그것이 거짓 없는 생명의 백서일 때 우리는 거기에서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사랑 그것이 모든 정열을 쏟아붓는 완전 연소일 때 자기 생명이나 존재가 확인되기도 합니다. 진실된 사랑은 무구하고 순결하므로 여리고 유연한 듯 더할 수 없이 강할 수가 있습니다. 무쇠도 녹이고 돌도 뚫습니다. <오직 당신만을 호흡하는> 그 몰두의 사랑에는 불꽃과 같은 열과 빛이 함께 있습니다.

 

 

高 銀

 

열어 주소서

닫힌 것을.

一生을 다하여

겨우 노크 몇 點

닫혀서

그 안에서 기다리는 몇 點

 

비로소 열릴지라도 그 안에서 열어 주소서.

 

우리들이 사는 집에 문이 있듯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에도 문이 있고 우리들 마음에도 마음 문이 있습니다. 문은 벽과는 달리 가로 막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열리기 위하여 있습니다.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라고 하는 이 자신 넘치는 음성은 성서의 말씀입니다만 문은 언제나 노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 때라도 열릴 채비를 하고 두드려줄 손을 기다립니다.

사람과 신과의 문제에 있어서, 혹은 사람 저 혼자의 문제에 있어서,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랑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일생 동안 과연 몇 번이나 문을 두드릴 수 있을는지… 두려운 일입니다.

일생을 다한 노크 몇 點, 그것이 그리 대단한 것이 못 된다 하더라도, 이는 피 묻은, 전심전념을 다한 절규와 같은 것입니다. 진실로 이것이 힘이 있다면 안에서 문을 열어 주소서, 이 생명의 힘을 확인케 하소서, 사랑이여…..

 

 

焦土의 詩 13

– 우리 夫婦를 銀杏에 비유함 –

具 常

 

나 여기 서 있노라.

 

나를 바라고 틀림없이

거기 서 있는

너를 우러러

나 또한 여기 서 있노라.

 

이제사 달가운 꿈자리커녕

입맞춤도 간지러움도 모르는

 

이렇듯 넉넉한 사랑의 터진 속에다

크낙한 順命의 뿌리를 박고서

나 너와 마주 서 있노라

 

日月은 우리의 年輪을 묵혀 가고

철따라 잎새마다 꿈을 익혔다.

뿌리건만

오직 너와 나와의

열매를 맺고서

 

終身토록 이렇게

마주 서 있노라.

 

<결혼은 연애의 무덤>, 이런 말들을 흔히 씁니다. 어쩌면 옳은 말일지도 모릅니다. 연애시절의 그 안타까움과 초조로움과 불면의 나날들은 어쩌면 감미로운 고통입니다. 기쁨도 슬픔도 진하고 격한 정열의 때입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 이제는 그 꿈꾸는 세계에서 차츰 벗어나서 안정을 찾게 됩니다. 나무처럼 튼튼한 뿌리를 대지에 박고 잎을 드리우고 열매를 맺고 또 그늘에 안식의 자리를 마련하게 됩니다.

은행나무처럼 쌍나란히 사이 좋게 살아가고 늙어가는 부부의 사랑은 이제 저 젊은 날의 격정과는 다른 것입니다.

친구처럼, 형제처럼 혹은 곧 자기 자신의 분신처럼 없어서는 아니 될 남편과 아내, 야야말로 넉넉하고 원숙한 부부애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雪夜愁

具 滋 雲

 

눈 내리는 밤은

여자여 잠이 드렴.

 

이끼 슬은 팔 다리의 언저리를 묻어

사랑의 눈물의 눈이 내리면

 

새로운 맑은 숨은 살아 오리.

꿈을 꾸며 노래하는

후미진 조용한 물이랑에 실리어

애달픔은 연신 희살짓는다.

 

어루만지는 아늑한 팔뚝에서

나른히 쉬는 외로운 오롯한 목숨.

 

여자여 눈 내리는 밤은

가녈프레 풀잎이 싹터오는데

안겨서 잠이 드렴.

 

내 짙은 난초 앞은

어우러져 스며들어라.

눈이 사풋 사풋

아릿한 젖 언저리에 쌓인다.

 

은은한 복스러운 밤

비어 있는 해슬픈 맑은 항아린양

스스로이 소리 이루어

벌거숭이 몸뚱아리에 어리는 설움.

 

눈 내리는 밤은

여자여 잠이 드렴.

 

사랑하는 마음의 어느 한 모서리에는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저 에덴의 동산으로부터 독사에 발꿈치를 물리고 쫓겨나오면서부터 아담과 이브가 서로 의지하면서 생긴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사람이란 그 얼마나 어처구니없게도 나약한 존재이며 외로운 존재이겠습니까. 이 망망한 천지에 여자는 남자를 의지하고 남자는 여자를 반려 삼아 서로 가엾이 여기면 살아가는 것이겠습니다.

눈이 내리는 밤 – 만상이 고요하고 정백한 밤, 품 속의 여인이여 -. 잠이 들라고 노래한 이 시심(詩心) 또한 이러한 연민(憐憫)의 마음이 승화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설화가 곱게 피는 그런 밤에는 여인은 그 사랑하는 지아비의, 혹은 연인의 품에서 온갖 서러움도 흐느낌도 모두 잠재우고 숨소리도 고르게 쉴 수 있을 것입니다.

 

 

戀歌

金 光 林

 

그만 묻어 두고 싶다.

그 말씀을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르듯이

 

바라는 것이 많아서

바램이 무엇인지도 모르듯이

 

조용히 일러 주리라

조금만 다가 오라고

 

우리가 자연경치를 구경할 때에도 너무 빼어난 절경을 대하거나 하면 말로는 다 못한다고 합니다. 또 감정이 너무 격하거나 지극할 때에도 역시 말로는 다 못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감정처럼 뜨거운 것은 있기 드뭅니다. 또 그것을 고백하는 말처럼 절실한 말도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참으로 뜨겁고 뜨거운 사랑이오, 진실되고 진실된 사랑일진대는 무어라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무어라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어리석기도 한 노릇입니다. 그것은 빛나는 보배처럼 묻어 둘 수 밖에 없습니다. 묻어두는 침묵에서 사랑은 더욱 그윽한 깊이를 가질 수 있습니다.

행여 또 사랑의 고백 말씀이 입 밖으로 표현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지극히 소박한 한 말씀 아주 조금만 다가오라는 한 말씀입니다.

 

 

가을이 서럽지 않게

金 珖 燮

 

하늘에서 하루의 빛을 거두어도

가는 길에 쳐다볼 벌이 있으니

떨어지는 잎사귀 아래 묻히기 전에

그대를 찾아 그대 내 사람이리라

 

긴 시간이 아니어도 한 세상이니

그대 손길이면 내 가슴을 만져

생명의 울림을 새롭게 하리라

 

내게 그 손을 빌리라 영원히 주라

홀로 한쪽 가슴에 그대를 지니고

한쪽 비인 가슴을 거울 삼으리니

패물 같은 사랑들이 지나간 상처에

입술을 대이라 가을이 서럽지 않게

 

계절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이 인생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유년기를 봄이라고 한다면 여름은 활기에 찬 야망의 청년기일 것이요, 가을은 결실을 수확하며 무성하였던 젊음이 조락하는 장년기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은발의 노년기는 적막한 겨울이 될 것입니다. 이 시는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나이에 새삼 눈뜨는 귀한 사랑의 마음입니다. 온갖 퇴색해 가는 것에 새로운 빛을 주고 생명의 울림까지를 새롭게 해주는 불꽃, 그것은 젊은 날 물 불을 가리지 않고 타오르던 정열과는 다릅니다. 깊숙하고 무거운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홀로 한쪽 가슴에 지녀도 기쁨이 됩니다. 그리고 미처 다 채울 수 없는 다른 한쪽 비인 가슴은 나를 비추어 보는 맑은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내 新婦

金 光 協

 

달빛 아래선 달빛으로

꽃나무 아래선 꽃 빛깔로

젖어 물들던 소녀,

내 新婦 그때엔

봄 우뢰에도 울었다.

初經 때처럼 우뢰는

내 신부의 작은 가슴을 흔들었다.

 

눈썹 아래엔 지혜,

허리 아래엔 건강으로

흘러 넘치던 소녀,

내 신부 그때엔

宇宙의 천사,

天使는 이제 내 新婦되어

내 영혼 끼어 안아

행복 안팎 기웃거린다.

 

씩씩하고 믿음직스러운 남편을 가진 아내는 행복합니다. 지혜롭고 건강한 아내를 얻은 남편은 행복합니다.

아름답되 지혜롭지 못하면 허수아비와 더불어 사는 것이 될 것이오, 지혜롭되 병약하면 이 또한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름답되 덕이 없으면 야차가 될 것이요, 덕이 있으되 건강하지 못하면 이 또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프랑스의 화가 ‘르노와르’의 그림에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여인들을 보노라면 누구라도 마음이 환히 밝아지고 즐거워집니다.

그것은 그 여자들이 하나같이 맑은 살결과 탄탄한 몸매와 함께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를 지녀 <허리 아래엔 건강, 눈썹 아래엔 지혜>를 간직한 연유 때문입니다.

 

 

그대의 마음

金 丘 庸

 

나는 눈물이 되어

노래하는 흐름이노라.

 

그대가 웃으면, 거울이 되어

붉은 입술 곱게 비치고

 

그대가 어두움 안에서 생각할 때

내 눈물은 금빛 별이었다.

 

청 너머 피는 장미가

나의 정열인지 알지 못하리

 

그대가 사랑으로 눈물짓는 날

나는 그대의 마음이노라.

 

이 시는 안타까운 사랑의 물음에 화답하는 격조 높은 사랑의 연서라고 보아도 좋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할 수가 없어요. 풀 수 없는 수수께기처럼 어렵기만 해요.

그래서 저는 때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해요.

또 깊이 깊이 생각에 잠기기도 해요.

안타까와요. 저는 어쩌면 좋은가요.>

이런 귀엽고도 어릿광스런 사랑의 고백을 받았다고 하십시다. 무어라 대답하시렵니까.

<뜨락에 타는 장미꽃은 나의 정열이요, 나의 마음은 곧 그대의 마음> 이라는 대답이라면 저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는 흡족한 대답이 될는지 요.

열 두 겹의 담장을 사이에 두고 주고 받은 우리 옛 어른들의 묵향(墨香) 그윽한 사랑의 봉서를 읽는 느낌입니다.

 

 

五月 에

金 南 祚

 

지금껏 내 정신이

방황의 한철

부끄럽고 고단했읍니다.

 

당신을 피해

당신 없는 따끝까지 내가 갔으나

어디서고 만나는

…….. 먼저 와 계시는 당신

 

진실은 마침내 시간이 알게 하거니

못잊을진대 이 不忘을 섬기리

어여쁘디 어여쁜 宿命이여

 

그늘을 이긴 오월

별과 풀잎들과 이 눈물

 

이제는

다시

迷惑 없으리니

 

막을 길 없이 열리는

두 영혼의

이리 환한 通路

 

사랑이란 한 기적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가슴에 샘물 흐르듯 고여오는 것, 그 무게 그 깊이 그 따사로움이 모두 기적입니다.

사랑이란 한 큰 숙명입니다. 허구 많은 세월에, 허구 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그 찰나 그 사람들끼리에 일어난 섬광이라니… 이는 거부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밤 사이 피어난 꽃처럼 경이로운 것, 느닷없이 찾아온 손님처럼 당혹스러운 것. 이를 피하느라고 이를 부인해 보느라고 땅의 끝 아니라 하늘의 끝까지 가더러도 붉은 인주로 찍은 도장처럼 선명한 사실 – 사랑만을 오히려 확인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는 방황하지 않을 것이며 잊지 않을 것이며 회의치 않을 것이며 그 숙명을 숙명으로 감수하는 지혜로운 터득을 우리는 이 시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은

金 東 鳴

 

내 마음은 湖水요

그대 저어 오오

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내 마음은 촛불이오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最後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내 마음은 나그네요

그대 피리를 불어 주오

나는 달 아래에 귀를 기울이며, 호젓이

나의 밤을 새이오리다.

 

내 마음은 落葉이오

잠깐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며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리라.

 

이 시에는 이미 가락이 붙여져서 많은 사람들이 널리 애창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들과는 퍽 친숙한 시입니다.

우리가 이 시에 자주 접하면서도 변함없는 감동을 받은 것은 이것이 사랑의 자기희생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햇빛과 같고 사랑은 빗물과 같아서 무한히 주되 거두어 들이지는 않습니다. 베풀되 값을 바라지 않는 무상(무상)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이 값진 것이고 위대한 것입니다.

뱃전을 때리는 물결로, 자기 몸을 태우는 촛불로, 나그네로, 낙엽으로 사랑은 비유되고 있으나 거기 한결같은 환희는 스스로의 연소에 있는 것이지 상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점이 우리 마음을 울리는 감동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강이 풀리면

김동환

 

강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

배가 오면은 님도 탔겠지

 

님은 안 타도 편지야 탔겠지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가 가노라

 

님이 오시면 이 설움도 풀리지

동지 섣달에 얼었던 강물도

 

제멋에 녹는데 왜 아니 풀릴까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우리 인생의 많은 부분은 기다림의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때를 기다리고 사람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시간만큼 애타는 시간도 없지만 기다리는 시간만큼 즐거운 시간도 없습니다. <욕망은 사람을 생 하게 하나 소유는 모든 것을 시들게 한다>고 <마르셀 푸루스트> 같은 이는 말하였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아직 소유하지 않은 시간입니다.

얼어붙은 강물 때문에 배가 안 옵니다. 강물이 풀리면 재가 올 것이요, 배가 오면 님도 탔으리라는 기대, 님이 못 오시면 편지라도 보냈으리란 기대는 아름답습니다. 강물이 풀리고 배가 와도 님도 편지도 안 탔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이의 꿈 속에서는 강물이 풀리고 오는 첫 배의 손님으로 님도 편지도 타고 계신 것입니다.

 

 

路傍

金相沃

 

겉으로 외면해도 속으론 조바시고

못본체 지나와도 자로 돌아 뵈는 것을

그래도 그는 모르고 마음없이 가느니…

 

어디든 걷고싶어 옷을 털로 나왔다가

스치는 사람속에 그 뉘를 보았든지

멍하니 길섶에 서서 가도 오도 못하여라

 

동양사람들의 사랑의 표현은 수줍음과 역설 逆說이 되는 수가 있습니다. 수시로 <나는 당신을 좋아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기를 잘하는 서양사람들은 아마 잘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법이 될겝니다만

이것은 한 말로 동양인이 서양인처럼 적극적이 못되고 소극적이기 때문이라고 일축해 버리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소극적인 탓만이 아니라 동양인이 타고나는 고요함과 진중함과 깊은 헤아림 탓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감정, 속으로는 조바심쳐도 겉으로는 모르는 척 외면하고, 무심히 스치는 사람 속에서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발견하고 (혹은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멈춰 서서 발길 떼 놓을 줄 모르는 동양인의 사랑이 평이한 말로 실감나게 묘사된 이장 二章 의 시조입니다.

 

 

밤 小曲

金善英

 

櫓  없어도

흐르는 배

그리움

 

한 女人과

한 녹슨 窓이

촛불을 마주 켜들고

 

앉아 가고 있는

가을

 

오래 오래 머물고프던

밤汽車 같은 사랑이

지내버린 驛

 

당신은

야윈 손으로

繡나 놓아라

 

東洋은 여인이

착해서 좋단다

 

가슴은 活火 하다

재도 다 삭은 火刑이래도

 

조용히 슬픔에도

가려 앉아라.

 

사랑이 영원하기를 우리는 바랍니다. 그 영원성에서 사랑의 진실을 가려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도 성숙하고 변모하고 마침내는 꽃이 지듯이 눈을 감기도 합니다.

<유종 有終의 미 美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랑의 유종의 미는 지나가 버린 사랑이 남긴 상처를 어떻게 아물리고 수습하느냐는 것과 연결됩니다. 인내와 극기로 이를 다스려가는 여인의 모습을 우리는 이 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노 없어도/ 흐르는 배/ 그리움>

<오래 오래 머물고프던/ 밤기차 같은 사랑이> 에서 보여주는 뛰어난 비유의 수사는 참신한 이미지를 독자의 가슴에 심어줍니다.

 

 

진달래 꽃

金素月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寧邊에 藥山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날러는 엇디 살라하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잡사와 두어리 마라난/ 선하면 아니 올셰라/ 설온님 보내압나니/ 가시난닷 도서오쇼셔>

이 고려가요 <가시리>에서 별리 別離의 한이 주제가 된 시입니다. 한 恨 이라는 것은 우리 한국사람들에게는 마치 친살붙이나처럼 친숙하고 가까운 감정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소월의 <진달래 꽃>은 어떤 개인의 시라기보담 여러 대중의 마음과 말씀이 모여 이루어진 한국의 시라는 느낌이 더 큽니다.

체념과 자기억제로 실현하는 사랑의 모습이 그러하고 또 우리 한국어의 리듬을 잘 살려 노래하듯 이어지는 그 가락이 민중으로 하여금 이 시를 애송케 하는 요인이 됩니다. 그리고 이 시를 오래 오래 잊지 않게 하는 요인도 됩니다.

 

 

웨딩 마아치

金松姬

 

흐뭇한 꿈이 서리네

조용한 마음속

물결은 금빛나네—-

 

살푸시 내딛는 발길이

幸福의 구슬을 굴리네

은방울을 굴리네.

 

오늘은 네 가까이서 다수운

신부.

 

하이얀 너울속에

곱게 웃음이 번지네—

사랑의 봉우리가 이제 피어나는

처음 時間.

 

꿈들이 맴돌아

나풀거린 江을 이루네

그 안에서 엔만큼 황홀스런 탓이여!

 

훌륭한 눈에 소리 나는 고동과

영원처럼 기대이고 싶은

시방이네.

 

한 신랑과 신부가 사랑을 약속하여 출범하는 날, 온갖 기쁨과 슬픔과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나눌 것을 서약하며 하늘과 사람의 축복 속에 듣는 음악, 그것이 웨딩 마아치입니다. 그것은 행복의 보금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행진곡이며 일생을 함께 살아갈 반려자를이 나란히 발맞추는 화음 和音입니다.

저 먼 항로 이에 혹 두려운 폭풍우와 눈보라와 거센 파도가 기다라고 있다 하여도 출발의 시간은 감격의 시간이며 가슴 벅찬 자리입니다. 거기 무수한 꽃떨기처럼, 혹은 부서지는 별가루처럼 내리는 음악 – 웨딩 마아치. 사람이 평생을 통하여 듣는 음악 중에서도 웨딩 마아치의 선률처럼 감미롭고 복되고 감격스런 음악은 드물 것입니다.

화사롭고 행복한 혼례식장에서 곱게 흐르는 웨딩 마아치가 시인의 손을 통하여 여기 또 한번 잔잔히 연주됩니다.

 

 

사랑

金洙暎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종신징역형을 받고 수감 중인 한 죄수가 있었습니다. 실의와 고통의 나날은 그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난폭하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이 죄수는 볕 하나 들지 않는 감방의 돌바닥 틈새에서 가녀린 풀 한 포기가 싹튼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 앞에 죄수는 새로운 생에의 의지를 살리고 자기의 처지를 극복해 나갔다고 합니다.

<너>는 어떠면 이 죄수의 이름없는 풀포기처럼 하잘 것 없는 것, 아누 것도 아인 것, 가녀린 것일 수 있습니다. 찰나적인 것, 불안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하여 불변의 영원한 사랑의 진수를 알았다면 <너>는 나에게 얼마나 큰 위력을 행사하는 존재이겠습니까.

 

 

家庭

金淑子

 

싱그럽게 검은 포도알 송이 송이

白瓷 항아리에 차근히 담겨

五臟을 발효한다.

 

비 지나간 뒤 햇빛도 있고

떠 가던 구름

다리 쉬며 흘리는

눈물도 더러 있다.

 

풍상이 잦아도

넓은 소매자락

있는대로 힘써 펴

사랑으로 세월을 익히는.

 

당신은 술빚은 항아리로

나는 영혼을 삭힐

포도주 한 잔을 기다려서,

 

어둡고 밝은 날을

帝室의 主日이듯

촛불이 탄다.

 

깃들일 보금자리를 잃은 새는 밖에서 떱니다. 가정이 없는 사람은 밖에서 떠는 새처럼 춥습니다.

가정은 각기 개성이 다른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모여 이해와 사랑으로 협동생활을 해가는 곳입니다. 온갖 다친 상처를 치료하고 고단한 몸과 마음을 휴식시키는 곳입니다.

가정에는 튼튼한 지주와 같은 가장이 있고 그를 살뜰히 보필하는 주부가 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부모와 자녀와 형제, 친척, 친구들이 모입니다. 때문에 우리 생활의 중심이 되고 핵이 되는 것이 가정입니다.

기쁘고 즐겁고 아름다운 일 뿐 아니라 슬프고 괴롭고 아픈 일에서도 항상 그 생사종망 生死存亡을 함께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오롯한 가정은 帝室의 불빛인양 은은하고 다사롭습니다.

 

 

봄바람

金億

 

하늘하늘

잎사귀와 춤을 춥니다.

 

하늘하늘

꽃송이와 입 맞춥니다.

 

하늘나라

어디론지 떠나갑니다.

 

하늘하늘

떠서 도는 하늘바람은

 

그대 잃은

이내 몸의 넋들이외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은 사랑하다 임을 잃은 사람입니다. 견딜 수 없이 괴롭고 아픈 마음을 어디에다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임을 잃은 나의 마음은 의지 가지 없는 바람처럼 허공중을 떠다닙니다. 때로는 잎사귀와 춤을 춰보고 때로는 꽃송이와 입을 맞추어도 보지만 그 모두는 부질없는 짓들입니다. 그것은 아무 위로도 치유도 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때문에 나의 마음은 또 어디로인가 향방없이 떠나갑니다. 다시 임을 찾을 때까지 끝없는 이 마음의 방황은 계속될 것입니다.

김억(金億) 시인은 김소월의 스승이었습니다. 시어의 선택이라든가 음악적인 요소 등에서, 또 그 서정의 세계에서 그는 소월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면서 제자를 더욱 탁월히 길러내었다는 점에서 그는 축복받은 스승이었습니다.

 

 

그대 꿈꾸는 동안

金汝貞

 

그대 꿈꾸는 동안

밤새 비 내리고

꿈깨고 나면

빛나는 아침

 

꿈길로만 오는

달빛같은 그대

청청백일 대낮보다야

긴 밤을 기두리며 살아온 날

 

한번쯤

참말 한번쯤

새벽 첫 두레박 속 샘물같은

淨한 그대 앞에 앉아 보곺은 마음

 

봄버들에 매끄러이 물내리듯

칠칠한 검은 머리채 풀로 앉아

깊은 하늘 흔들어 보고 싶은 마음

 

그대 꿈꾸는 동안

밤새 개구리 울고

꿈 깨고 나면

나팔꽃 둔덕에 밝은 아침.

 

꿈길 밖에 길이 없는 그런 애달픈 사랑이 있다면 이 또한 무슨 업보이며 형벌이겠습니까.

그것이 은밀한 사랑이든 일방적인 사랑이든 가엾고 가슴저리는 사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상사병 相思病>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간절히 간절히 사모하는 끝에, 말도 못하고 홀로 그리워만 한 끝에 마침내 혼을 잃고 몸져눕고 마는 병, 이를테면 이런 병이지요.

<칠칠한 검은 머리채 풀고 앉아 깊은 하늘 흔들어 보고 싶은 마음>을 싸서 감추고 긴 밤만을 기다리며 꿈꾸는 사랑, 그 사랑이 서러움이야 어떤 말로 다 풀어낼 수 있겠으며 어떤 빛깔로 다 색칠할 수 있겠습니까.

이 시인은 밤새 비 내리고, 밤새 개구리 운다는 함축있는 묘사로 그 가이 없는 오열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을 아실 이

金永郞

 

내 마음을 아실 이

내혼자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내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밤 고히 맺는 이슬같은 보람을

보밴듯 감추었다 내여드리지

 

아! 그립다

내혼자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맑은 옥돌에 불이 달어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혼자 마음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다는 갈망은 어쩌면 자기를 실현하고 자기를 이해받고자 하는 욕구일지도 모릅니다. 이기적 利己的 사고라고만 볼 수 없는 사랑의 한 속성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 유려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한껏 만끽하여 기쁨을 느끼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의 한계성을 느끼게 되어 한 줄기 비감 悲感 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참말 사랑의 힘에도 한계는 있는 것일까요. <향맑은 옥돌에 불이 달어/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 사랑도 모르리 내혼자 마음은> 이 귀절을 읽으면 사랑의 힘으로도 녹일 수 없는 얼음같이 차갑고 여문 인간의 고독을 느끼게 됩니다. 이 바단같이 고운 서정시에서도 이 귀절은 특별히 빛나는 백미 白眉 이며 상식을 뛰어넘는 시인의 심안 心眼과 번뜩이는 자의식 自意識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운 이

金永鎭

 

바람이 건 듯해도

그 바람에 싸인 듯

구름만 둥실 떠도

저 구름에 타셨을 듯

 

여보오 소리 질러서

불러 보고 싶구려.

 

범신론자들은 신 神 은 만상에 깃들이어 무소부재 無所不在 하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범신론자들처럼 임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곳 속에도, 잎 속에도, 구름 속에서도 심지어는 바람 속에서도 임은 나타납니다. 그리워 하는 마음, 보고 싶어 하는 마음, 기다리는 마음이 지어내는 무수한 환상 幻像 과 환청 幻聽 은 사랑의 마술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다섯 줄의 단시 속에도 바로 이러한 사랑의 마술성이 풀어내어 쓴다면 다섯 권의 긴 이야기책으로도 쓸 수 있는 그런 마술성이 압축 묘사되어 있습니다.

 

 

花甁

金耀燮

 

그이를 향해 열린 채

비어 있는 마음

 

무거운 뉘우침이 고여 간다

 

마리아

가난한 화병 속에

그대의 눈물이라도 채워 주시오

 

환한 아침이 넘칠 듯 고여가는 화병

향기로운 이름은

기쁨처럼 활짝 피어난다

 

그이에게 바치는

숱한 이슬내 풍기는 울음

 

그이를 향하여 열린 채 그이가 와서 가득 채워 주기를 기다리며 비어있는 마음, 그것은 흡사 맑은 물을 가득 붓고 아름다운 꽃을 한 아름 꽂아주기를 기다리는 빈 화병과 같습니다.

비록 지금은 비어있다 하더라도 지금은 고독하고 쓸쓸하다 하더라도 언제인가는 꽃이 꽂힐 그릇, 그 이름도 향기로운 화병.

화병에는 아무 것이나 담지를 않습니다. 오직 꽃만을 꽂는 그릇입니다. 역시 이처럼 나의 마음은 아무나 사랑하거나 그리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꽃처럼 향기롭고 어여쁜 그대만을 사랑하고 그대만을 기다리며 지금은 비어 있습니다.

옛 사람들의 사랑의 표현에는 일편단심 一片丹心 이라는 말이 쓰였었습니다. 시 <화병>은 이러한 일편단심의 현대적 표현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습니다.

 

 

메아리

金榕八

 

天地에

나를 지켜주는

넋이 하나

 

언제고 餘韻만을 되울리면서

저만치서 사랑하는

啓示

 

눈짓이나

느껴움

따위가 아닌…

 

어느 맑은 날

저 푸른 餘韻 향하여

鶴 같은 울음을 터뜨리고파

 

나는 이 좁다란 길을

올라야만 하는 것이다.

 

비록 가까이 살지 않는다 할지라도, 날마다 얼굴을 마주하거나 손길 잡아볼 수는 없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에 있다는 것은 크나큰 위안이 됩니다.

더욱이나 그 사람이 이쪽의 일거수 일투족 一擧手 一投足 을 관심과 애정으로 지켜보아 준다면 이쪽은 참으로 아무렇게나 인생을 살아버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이쪽을 버리지 않는 사람, 그림자처럼 따르는 사람, 그러면서도 메아리처럼 숨어 있는 사람, 그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며 배반하지 않는 길은 이쪽이 가일층 이쪽의 삶을 충실히 사는 것입니다. 오직 그 한 사람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하여서라도 가파롭고 험난한 길을 용감히 헤쳐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깨끗한 한 마리의 학처럼 맑게 고고하게 비상하여야 하겠습니다.

 

 

뚝섬에서

金容浩

 

江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마주 설

空簡이 流失된 地域

 

어쩌면 이처럼 싱싱히 돋아나는

아픔입니까

變貌없이 파아랗게 살고 있는

거울 속

거기, 포프라 한 그루 있고

주고 받은 會話가 자라

이제 新綠으로 紋彩한 江邊

 

산 너머 절에선가

鐘이 波紋하는 이 黃昏에

祈禱보다도 더 切實한

당신에의 追憶은

어느 또 하나 다른 거울 속에

소보옥히 담아 두어야만 합니까.

 

여름날 뚝섬엘 가면 푸른 강물이 흐르고 키 큰 포플라 나무들이 강변에 줄지어 서 있습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뚝섬의 강물은 한강 상류의 강물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이 시인의 눈에는 당신과 마주설 공간이 유실된 지역인 것입니다. 이별의 이미지를 이 한 마디 말로 조형 造形 한 시인의 상상력과 솜씨는 놀라운 것입니다.

강물은 이렇게 해후의 공간이 유실된 지역일 뿐만 아니라 또 변함없이 맑은 거울로 됩니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 들이비치고 있는 푸른 녹음은 단순한 나무잎새들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와 주고 받은 이야기들이 자란 것입니다.

사랑을 간직한 이의 마음과 감각은 이처럼 사물의 뜻을 놀랍게 파악할 수도 있는 법인가 봅니다.

 

 

哀歌

金潤成

 

당신과 나는 외나무다리를 건넜다.

넓은 냇가 햇살 속

우리들의 그림자가 물 속에 비치고 있었다.

나는 팔을 내밀어 당신을 붙잡아 주려하고

당신은 잡힐듯 잡힐듯 끝내 잡히지 않는 채

혼자서 다리를 건넜다.

 

우리들은 미류나무의 숲속에 누워

무수한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저 미류나무 잎사귀의 수효는 대체 얼마나 될까”

“사람들 수효만큼이나 많겠지요.”

그 중의 가장 싱싱하고 잘 생긴 잎사귀를 눈으로 찾아

나는 곳으로 그것을 당신이라 여겼다

 

캄캄한 어둠 속을 돌아오는 차속에서

“부디 행복하게 사세요”

당신이 하던 말

아니, 내가 찾아낸 그 미류나무 잎처럼

눈부시게 바르르 떨며 속삭이던 말이다.

 

훤한 하늘을 배경으로 지금도

바람에 흔들리는 내 머리 속의 미류나무 숲,

그 숲속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하나의 미류나무 잎.

 

어렵고 고단한 우리의 삶이면서도 그것이 지나고나면 지난것은 늘 아쉽고 그리운 것이 됩니다. 하물며 그러한 추억이 사랑의 일일진데 얼마나 아름다운 회상이 되겠습니까. 그것이 설사 슬픈 애가가 되다손 치더라도 사랑의 추억만큼 보배로운 이야기는 없습니다.

무사히 산다는 것은 분별있는 삶이며 온건한 삶임에는 틀림없으니다만 그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은 생 生 의 무미 無味 함을 나타내는 말이 될 수 있지도 않을까요. 괴롭고 못견딜 일일지라도 사랑이 있는 삶이 진정한 삶이 되지 않을까요.

“부디 행복하게 사세요”

이런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밖에 없는 처지의 사람, 현실적으로는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사람, 그러나 그 사람이 저 미류나무 잎새처럼 총총한 생명 가운데 가장 빛나는 반짝임으로 살아 있다면 이는 한 큰 축복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대의 찬 손

金閏喜

 

無情한 겨울

날 저문 거리를

홀로 가지 않으면 안되는

말할 수 없는 苦惱

간직한 뜨거운 가슴의 囚人

 

말 못할 다만

한 마디 言語에

형벌받아

零下의 터널속을

英雄처럼 뚫고가는

靑裸의 두 손

 

아무도 열어 볼 수 없게

닫은 絶望의 가슴을

이 겨울

푸른 두 손에 옮겨

寒空에 몸 뺏기는

찬 손의 그대

 

그대 찬 손의

愛人이 되어

不遇의 이 겨울을

한 송이 불꽃으로

뚫어 건너리.

 

추운 겨울 날, 온 천지가 다 얼어 붙어 숨쉬는 공기조차도 고체 固體로 느껴지는 그러한 날은 우리의 육체 뿐 아니라 정신마저도 얼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삼십 육도의 체온을 가까스로 유지해 가며 혹은 냉한 냉한에 빼앗겨 가며 그 추위를 헤치고 나아가는 푸르게 언 두 손은 영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대나 사회가 꼭 이 겨울과 같은 때도 있습니다. 정치가 잘못되거나 사회가 부패하거나 혹은 천지 사람들이 금수 禽獸처럼 속물화 俗物化 하였을 때가 바로 이런 사방이 얼음벽으로 꽉 막힌 겨울철일 것입니다. 이러한 겨울철을 뚫고 가는 청라의 두 손길은 말한 것도 없이 선지자나 선구자가 아니겠습니까. 또한 그의 정의와 그의 고독을 이해하는 이가 바로 곧 그의 애인일 것이며 이러한 뭉친 힘은 불의부당하고 어두운 시대나 사회를 힐책하고 개조하는 뜨거운 불꽃이 되지 않겠습니까.

 

 

作品 V

金宗文

 

女子의 손바닥은 넓적한 나무잎

 

바람을 일으킨다, 무더운 날에,

 

女子의 손바닥은 두터운 벽

 

열을 보태어 준다, 차거운 날에,

 

어둠 속에서도 더듬어 딛고 서는 女子의 손바닥은

 

男子가 태어나고, 자라고, 살고 있는 男子의 점령지대

 

女子의 넋이 번지며, 고이는 哀歡, 움켜주며 이루는

 

人指 끝에, 걸리는 것은 항시 虛空 뿐이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후천적인 교육의 구별, 혹은 인습의 편견에 의하여 생겨난다고 보는 이론이 있습니다. 그러한 주장에는 분명히 그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데 여자와 남자는 선천적으로도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체의 생김새부터가 서로 틀리며 따라서 제각기 틀리는 기능을 발휘합니다.

이로 미루어 만약에 여자와 남자의 영혼도 육체처럼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져볼 수 있다면 서로 다른 차이점이 있으리라고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여인이 가진 영혼의 가장 큰 힘은 모성애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결과적으로는 허공중을 집는 것 같은 허망만이 돌아 온다 하여도 여인은 사랑하고 기다리고 봉사하는 일을 그만 두지 않습니다. 여인의 손은 남자를 낳고 기르고 나아가서는 온 세계를 창조하는 터전입니다.

 

 

出血

金芝鄕

 

한 거짓 盟誓에서

나의 눈은

첫 눈물을 흘리고

 

어느 忘却地帶에서

긴 세월을 나의 眞實은

땀 흘리어

허황한 지점에 왔을 때

놀라 깬 나의 生涯는

무너졌네

 

그리고도 사랑은 마르지 않아,

왜 아직 自失期는 끝도 없이

가슴을 피 흘리게 하나

 

뼈속을 내리는 비를 보아도

오직 참이라 믿을 건

사람의 거짓 盟誓일 뿐.

 

우리의 첫사랑은 흔히 추상적이며 관념적이기 일쑤입니다. 세상에는 존재하지도 않을 이상적인 애인을 꿈꾸고 자칫 사람을 잘못 보아, 아니 스스로 지나치게 미화하여 또 스스로 배신 당하기 일쑤입니다. 청춘의 맹세나 고백은 순간적인 진실에 지날 적이 많습니다. 뜨겁고 격렬하나 은근한 끈기와 영속성 없는 헛맹세이기 쉽습니다.

자기관념, 혹은 믿을 수 없는 거짓맹세에 속아 괴로워 하며 그러나 점차 성숙해 가는 한 여인의 모습을 우리는 이 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처참한 출혈, 뼈 속까지 우는 슬픔을 겪어도 또다시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이 시의 끝 구절은 어떠한 궁지나 절망상태에서도 생을 긍정하는 따스한 인간애와 불사조처럼 되살아나는 의지와 다함 없는 사랑의 샘물을 그 가슴에 간직한 아름다운 여성상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金春洙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 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우리가 눈을 들어 산을 보면 산은 산입니다. 하늘은 하늘, 바다는 바다, 나무, 꽃, 돌멩이들은 모두 나무, 꽃, 돌멩이입니다.

한데 우리의 눈에 마술이 걸리면, 다시 말하여 우리가 사랑하는 마음, 사랑하는 눈으로 만물을 다시 한 번 보면 이들은 새로운 의미를 안고 다가섭니다. 저것들이 때로 수근대며 때로 몸짓하며 신비한 생명을 가지고 새로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며 <미켈란젤로> 가 대리석 속에서 비너스를 탄생시켰듯이 미지, 미명의 것에 생명을 부여하고 이름을 붙이는 일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삶의 족적이, 또 그 죽음까지가 모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싶다는 큰 욕망은 바꾸어 말하면 사랑 받는 그 무엇이 되고 싶다는 뜨거운 몸부림입니다.

 

 

秋收가 끝난

金夏林

 

살의 냄새, 살의 맛

 

살의 빛깔, 살의 무게

 

秋收가 끝난 땅 위에

 

환히 드러난 영혼의 구멍

 

無 의 언저리

 

그 가없는 하늘 한 끝으로부터

 

짖어대며 나타나는 한 떼의 까마귀

 

十二月 의 나비들.

 

사람은 육체와 영혼을 함께 지닌 존재입니다. 수성 獸性 과 신성 神性 이 공존하여 때로 갈등을 일으키며 때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미묘한 존재입니다.

사랑은 육체적인 욕구를 다 충족시키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으며 반대로 영혼적인 일에만 몰두하고 육체를 무시하거나 할 수가 없습니다. 육체와 영혼을 잘 조화시키는 데에서 아름다운 인격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사랑에서도 영육 靈肉이 함께 투영될 때에 그 사랑은 완성된다고 하겠습니다. 어느 한족으로만 편중된다면 그것은 기형적인 사랑입니다.

이 시에서는 육체에 기운 사랑의 종말을 비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허무와 비극성을 <추수가 끝난 땅>, <한 떼의 까마귀> 등으로 은유하여 생생한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사랑을 말함

金顯承

 

그것이 비록 병들어 죽고 썩어 버릴

肉體의 꽃일지언정,

 

主여, 우리가 당신을 향하여 때로는 對決의 姿勢를

지을 수도 있는, 우리가 가진 最善의 작은 武器는

사랑이외다!

 

그밖에 무엇으로서 人間을 노래하리이까?

彼岸 위에 터를 닦는 저를 富貴와 榮華이오리이까.

瞬間에 安息하는 英雄들의 城 이오리까.

 

그밖에 다른 恩惠는 아무런 하염도

당신은 우릴 위하여 아직 創造하지 않으셨나이다!

그러나 당신은 우리들의 사랑조차 可變의 저를 가리켜

아침에 맺혔다 스러지는 이슬을 보라 하시리이다.

 

그런데 主여, 나는 다시 대답하여

이렇게 당신을 향해 노래하리이까!

처음은 이슬이요, 나머지는 曠野 니이다.

우리의 짧은 하루는….

 

인간이 가진 가장 소중한 재산은 무엇입니까. 부귀입니까, 영화입니까, 권력입니까.

이들은 모두 <파편 위에 티를 닦고> <순간에 안식하는> 부질없는 것들이라고 이 시인은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신은 인간을 위하여 무슨 보배로운 은혜를 베푸셨을까요. 인간이 가진 것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아무래도 사랑 뿐입니다. 비록 그것이 가변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못 된다 하더라도 인간이 가진 최선의 능력은 사랑입니다.

인간이 그 생명의 보람을 찾고 운명을 개척해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가난한 인간들이, 불쌍한 인간들이 다만 한 순간만을 빛나게 하는 불빛이라 하더라도 사랑이 있으므로 하여 우리는 희망을 가지며 사랑 안에서 인간은 승리자가 됩니다.

 

 

바람

金惠淑

 

머뭇거리며

처음엔 내 눈치만 살피더니

저만치서 조심스레

내 귀밑머리 날려 보더니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더니

날 사랑한다고

마침내 제 마음 풀어헤쳐

얼굴을 붉히더니

긴 사연의 이야기

내 귀에 속삭이더니

 

가슴 치며

내 무심을 발버둥치더니

여전한 내 무심을

더욱 더 발버둥치더니

오늘은

종일토록 사나운 바람으로

비까지 몰아다

온통 나를 때리네.

 

사랑의 처음 모습은 수줍은 머뭇거림입니다. 여인의 귀밑머리를 가만히 날려보는 가벼운 바람 같은 것입니다.

나무 잎새가 바람에 흔들리 듯이 사랑의 부름에는 응답이 있어야 하겠거늘 짐짓 목석 木石 인양 무심한 님 앞에서라며 사랑은 발버둥치며 통곡을 터뜨릴 것이 분명합니다.

얼굴 붉혀 부끄럽다가, 한량없이 조르다가 마침내 사랑은 거센 폭풍우로 변해버릴 것입니다.

점진적으로 강렬해지는 사랑의 정열을 점층적 수사법으로 이 시인은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정복당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번개치고 우뢰 울며 내려 쏟아 붓는 폭풍우 같은 사랑의 거센 힘 앞에 사로잡힌다면 일견 가련한 듯, 그러나 거기 피정복자의 야릇한 쾌감이 또한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근심

金后蘭

 

지금 그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그리운 情 쌓여서

근심 되오니

새벽녘 고요가

눈물을 줌에

아, 그때 그대에게 남기고 싶은 말

이토록 간절히 남기고 싶은 말

나에게 은혜로운

銀빛 날개 있다면

이 아침 맑은 눈으로

그대 찾아 나서리

그리운 情 쌓여서 근심되오니

나에게 빛 부신 날개를 주오.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보아라, 드디어 고백을 하고 나며는 말에는 거짓이 깃드는 것을…>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이런 시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드려야 할 마지막 한 마디, 그러나 말씀드리지 아니한 마지막 한 마디 <사랑합니다>라는 한 마디.

말씀 못 드렸기에 아쉽고 원통하고 그러나 말씀드리지 않았기에 영원히 빛나는 말.

그분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그립고 그리운 마음은 마침내 그분의 안위를 근심하는 마음으로 변하였습니다. 빛나는 날개가 있다면 그대를 찾아 한 마디 말씀, 아껴둔 그 한마디 말씀을 드리고픕니다.

이 시에 쓰인 <근심>이라는 낱말 하나는 <사랑한다>는 말 열마디보다 더 무겁고 큰 사랑의 표현이 되며 어떤 화사한 언어로도 못 나타내는 진실되고 정성스런 마음을 우리는 거기서 알아내게 됩니다.

 

 

薔薇

盧天命

 

맘속 붉은 薔薇를 우지직끈 꺾어 보내놓고

그날부터 내 안에선 煩惱가 자라다

늬 水晶 같은 맘에

나.

 

한 點 티되어 무겁게 자리하면 어찌하랴

차라리 얼음같이 얼어 버리련다

 

하늘 보며 나무모양 우뚝 서버리련다

아니

落葉처럼 섧게 날러가 버리련다.

 

노천명은 칠십 년 한국현대시사에 빛나는 무수한 성좌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영채로운 별입니다. 세속적인 의미에서 그는 불행하고 고독하였지만 그의 영혼의 꽃밭은 순열, 영롱하여서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불보다 뜨거운 정열을 안으로만 감추고 살던 여인, 펼쳐 쏟아놓기보다 가슴 속에 담아 참고 인내하던 이 시인의 면모가 <薔薇>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맘 속 붉은 薔薇를 우지직끈 꺾어 보내놓고…>, 다시 말하여 장미처럼 붉은 사랑은 바치고도 행여나 그 사랑이 그대에게 부담스런 짐이 된다면 어찌하나, 그 댁에서 괴로움을 드리면 어찌하나, 그렇게 되느니보다는 차라리 얼음인 양 목석인 양 내 그리움을 감춰버리리. 멀리 떠나가 버리리라고 자기를 채찍질하는 여심 女心이 담겨 있습니다.

 

 

이 生命을

毛允淑

 

임이 부르시면 달려가지요.

금띠로 장식한 치마가 없어도

진주로 꿰맨 목도리가 없어도

임이 오시라면 나는 가지요.

 

임이 살라시면 사오리다.

먹을 것 메말라 창고가 비었어도

빚더미로 옘집 채찍 맞으면서도

임이 살라시면 나는 살아요.

 

죽음으로 갚을 길이 있다면 죽지요.

빈 손으로 임의 앞을 지나다니요

내 님의 원이라며 이 생명을 아끼오리

이 심장의 온 피를 다 빼어 바치리.

 

무엔들 사양하리 무엔들 안 바치리

창백한 수족에 힘 나실 일이라면

파리한 임의 손을 버리고 가다니요

힘 잃은 그 무릎을 버리고 가다니요?

 

굴종 屈從은 비굴하지만 순종 順從은 미덕 美德입니다. 더우기나 그것이 사랑에의 순명 順命일 때에는 더할 수 없이 고귀한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드는 일일지라도 님께서 원하시고 바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으며 생명마저도 달라시면 드리겠다는 결의, 어떠한 경우 어떠한 처지에서도 결코 님을 배반치 않겠다는 결의, 이것은 보통으로는 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랑의 큰 힘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강물처럼 도도히 넘치는 정열, 불꽃처럼 훨훨 타오르는 정열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시입니다.

사랑은 남의 눈치를 안 봅니다. 인습의 높은 담도 뛰어 넘습니다. 무얼 계산하거나 따지거나 하는 일이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의 윤리입니다. 이 시는 이러한 사랑의 윤리를 증언하는 직언 直言입니다.

 

 

실바람 같이

文德守

 

매달릴

상신의 빈 가지 枝를 찾아

 

헤매는

허공 속,

 

오직 당신에게만 올릴

내 영혼의

 

그 먼

 흐느낌…….

 

우리의 가슴 속에 숨기인 사랑, 이 사랑을 바칠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에 계시는 것입니까. 억겁의 시간을 흘러 드디어 한 섬광 閃光으로 마주치는 그런 기적은 어느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사랑하올 님을 찾아 헤매이는 길은 끝없는 보헤미안의 유랑입니다. 그것은 드디어 님을 찾고 나서라야만 그쳐질 여정 旅程입니다. 매달릴 가지를 찾아 허공중을 나는 실바람은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직 당신이라는 나뭇가지를 찾아 그 가지에만 깃들이며 매달리며 당신에게만 모든 것을 바칠 것입니다.

숨겨온 온갖 비밀도 다 당신께는 보여드릴 것입니다. 가장 큰 진실이며 약점인 내 영혼의 흐느낌마저 도 오직 당신께는 바치겠습니다. 저 가느다란 실바람은 바로 이러한 나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바람의 아내

文貞 姬

 

‘먼지도 빛나게 하는 햇빛’ 한 줄기 잡아다

내 목에 눈물로 걸어 주려고

언 땅을 헤매이던 그대.

 

밤이 깊자 뜨락에 돌아와

순한 눈썹으로 잠이 들었네.

 

잠 속의 잠 속에도

무지개는 끝끝내 아름다워

날개의 파득임에

깊은 궁 宮에서는

또 싹이 트고

 

끈이 무거운 어깨로

울부짖는 소리를 하며 그대는

저 봄 언덕을 서성인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큰 사랑입니다. 남성이 여성을 이해하고 여성이 남성을 이해하며 남편이 아내를 알아주고 아내가 남편을 아는 데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 화평한 가정이 이루어집니다.

이 시에서는 남편을 바람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할일 없이 그냥 돌아다니는 바람이 아니라 먼지도 빛나게 하는 햇빛을 얻어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주고자 애쓰고 다니는 남성의 모습을 바람에 비유한 것입니다.  무서운 생존경쟁의 전장 속을 분주히 움직이며 수고하는 남성, 그 이마에 맺히는 소중한 땀방울을 이해하는 아내의 사려 깊은 마음이 가득 실린 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를 읽으면 우리는 거기서 조그마하나마 알찬 행복감과 안식을 느끼게 됩니다.

 

 

아내를 위한 자장가

閔映

 

아내가 몸져 누운 머리맡에는

알루미늄 주전자가 끓고 있었다.

 

아내 아내 아내여, 가엾은 아내

나흘 밤 나흘 맞을 꼬박 새워서

나흘 낮 나흘 밤을 열에 들떠서

아파서 할딱이는 너의 숨결은

쉬임없이 끓어 넘는 주전자 같구나.

 

하지만 이 밤에는 잠이 들거라.

꽃밭 아닌 내 가슴에 머릴 묻고서

옛날도 그 옛날 먼 숲 속에

난쟁이 일곱이 사는 집에서

어붓어미 시샘에 꽃처럼 져 간

눈부시게 어여쁜 공주님처럼!

그러다 따뜻한 봄이 오거든

나뭇가지 가지마다 꽃이 피거든

아내여 아내 아내, 어여쁜 아내

꿈속에서 깨어나듯 피어나거라.

 

시가 얼마나 아름다운 예술인가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감동적인 시입니다.

조개껍질처럼 조그마한 시인의 방 안에 알미늄 물주전자가 팔팔 끓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 주전자의 물처럼 끓는 몸둥아리로 시인의 귀여운 아내가 밤낮 나흘 동안을 앓고 있습니다. 시인은 앓는 아내를 의사처럼 치료할 줄은 모릅니다. 시인은 그가 가진 능력을 다하여 앓는 아내를 가슴에 안고 자장가를 부릅니다.

한데 이 자장가의 마력은 어떠합니까. 우리들을 꿈과 동화의 나라로 이끌고 가서 행복한 공주님과 왕자님의 모습을 상면케 하는 것이 아닙니까.

세상에 어떤 금만가 金滿家의 아내나 제왕 帝王의 아내라 한들 이런 귀한 선물을 받아본 이가 있겠습니까. 이런 사랑의 자장가를 들으며 잠이 드는 아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부유한 여인이 아니겠습니까.

 

 

** 지금도 ‘필사 筆寫’ 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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