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d Lots

  • 2011년 7월 초순이 서서히 흐른다. 비에 젖어 조금은 덜 시끄럽게 느껴진 Fourth of July의 fireworks도 다시 잠잠해지고, 찌는듯한 여름더위가 조금은 주춤해졌다. 이제부터 약 2개월의 더위를 ‘즐기면’ 다시 찬란한 단풍을 보게 되는가.. 이것이 세월의 흐름이고 계절의 순리인 것이다. 올 봄의 ‘극악한’ 날씨들도 조금씩 ‘착해지는’ 듯 별로 날씨에 대한 빅뉴스가 없어지고 있고 hurricane도 long-term forecast 는 못 보았지만 평년보다 조용하다.

     

  • Rheem 40 gallon gas water heater

    Rheem 40 gallon gas water heater

    지난 휴일을 낀 주말은 완전히 water heater(온수기?) 에 매달려 시간을 보냈다. 거의 15년을 무사고로 우리 집의 더운물을 공급해 주던 온수기(이런 말이 있던가?)에서 거의 한 달 가량 조금씩 물이 새고 있어서 이것을 새것으로 갈 때가 온 것을 알았다. 지난 번, 그러니까 거의 15년 전에는 조금씩 샌 것이 아니고 거의 폭포수처럼 새어서 고치는 사람을 불러서 새것으로 갈았던 기억인데 이번은 품질이 좋았는지 아주 조금씩 새면서 ‘경고’를 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조금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한번 모험을 하기로 하고 내가 직접 갈아보기로 해서 이번에 작업을 한 것이다. Amazon.com으로 Rheem brand중에서 아주 high efficiency model로 order를 해서 지난 주 금요일, 집에 배달이 되었는데, 전에 쓰던 것 보다 ‘덩치’가 컸다. 거의 100파운드가 넘어서 평소에 운동을 안 한 사람은 아주 힘이 들었을 것이고, 이것을 교체하려면 이런 큰 덩치의 ‘고철’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데.. 이런 것 때문에 사람을 시키면 거의 $400이 드는 모양이다. 이것을 내가 절약하는 의미도 있고 해서 직접 시도를 한 것이다.
    YouTube video를 보면 사실 아주 ‘쉽게’ 묘사가 되어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할 리가 없다. 수도관에 관련된 plumbing job이 ‘재수’가 나쁘면 정말 사람을 괴롭히는 그런 것이니까..결과부터 말하면 ‘예상 외로 운이 나빠서’, 지독히도 고생을 했다. 7월 4일은 아침부터 밤까지 Home Depot를 4번이나 왕복해야 했고, 결국 밤 늦게 더운물을 쓸 수 있었다. 속으로 $400 절약이 사실은 그만한 값어치기 있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제일 골치가 ‘묘한 위치’에서 soldering(납땜질)을 하는 것인데 이것은 역시 pro가 아니면 실패할 수 있다는 ‘교훈’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납땜을 안 하는 new technology (SharkBite)를 쓰게 되었는데.. 사실 조금은 자존심이 상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밤 늦게 ‘더운 물’이 나온 것은 정말 감격적인 경험이었다.

     

  • 복자 때 그려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상본

    1971년 당시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상본

    지난 7월 5일은 고국의 가톨릭 성인중의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자 날이었다. 그날이 주중에 있어서 당겨서 7월 3일 주일에 대개 ‘이동 경축’ 미사를 드린다. 내가 ‘소속’된 이곳의 한국 본당의 이름이 ‘아틀란타 김대건 순교자 성당‘이다. 그러니까 더 의미를 느끼게 된다. 고국의 103위 성인은 익히 들어서 익숙하다. 하지만 나는 그 동안 그렇게 관심을 일부러 가진 적은 별로 없었다. 우선 과거에 순교자 성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조금은 끔찍한 생각들 때문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순교하는 장면을 ‘생생히’도 묘사를 했는지.. 인간적으로 얼마나 고통과 비참함을 안 느낄 수 있겠는가? 이런 것들은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인상을 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그런 중에 우연히 고국의 천주교 잡지, ‘경향잡지‘ 의 1970년대 간행본들을 인터넷을 통해서 보게 되었다. 한국주교회의 website에는 1900년 초부터 현재의 것 까지 모두 이곳에서 볼 수가 있어서 정말 ‘보물 창고’와 같다. 나는 특히 내가 고국에 있었던 1970년대 초의 것들이 제일 흥미로운데.. 그 이유는 그 당시의 ‘사회 상’을 간접적으로나마 회상을 할 수 있을지 모를 기사들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1971년 크리스마스 때의 서울 대연각 호텔 화재 사건, 1972년 여름의 남북 7.4 공동성명, 그 해의 10월 유신 같은 것들이다.
    과학적인 김대건 신부 유해 조사, 1971

    과학적인 김대건 신부 유해 조사, 1971

    이 곳에서 나는 ‘복자 김대건’ 성인 탄생 150주년 특집기사를 접하게 된 것이다. 성인이 1821년 생이어서 1971년이면 150주년이 되는데 1971년 8월호에는 나에게는 거의 보물과도 같은 특집기사가 있었다. 조금은 움츠려 드는 것은 성인의 두개골을 ‘분석’하는 사진이었다. 그러니까 그 당시 복자로 부터 성인이 되게 하는 여러 노력의 일환으로 ‘철저한’ 조사를 한 셈이고 그 중에 대형 동상 제작도 있었는데 그러려면 성인의 ‘진짜 모습’에 관심이 많았던 듯 하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요새 우리가 보는 성인의 ‘상본’이 나온 것이 아닐까?

    그 당시 유해 측정의 결과가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서울) 가톨릭 대학 신학부 에서는 지난 3월 16일(1971년) 학장 신부님을 비롯하여 조각가, 안과의, 피부과의, 치과의 등 약 10여 명이 모여 125년 전의 김 신부님의 두개골을 3시간에 걸쳐서 정밀히 조사했다. 이날의 측정으로서 25세의 젊음으로 순교한 김 신부님은 신장이 약 177cm이며 미남형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제2 한강교 주변에 있는 복자 성당에 세워질 김 신부님의 석상은 높이 3m로 수단에 각모를 쓰고 오른팔에 십자가를 들고 왼손은 가슴 높이에서 성경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인데 이번 조사에 의해서 생전의 모습을 닮게 동양화가 정재석(비오)씨에 의해 3월 초부터 조각이 되고 있다.

     

    말로만 듣던 성인을 이렇게 ‘가까이’ 접하게 되니 정말 기분이 달라짐을 느낀다. 실제로 살았던 우리들의 ‘할아버지’라는 역사의식이 강하게 들게 되고 너무나 가까이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 지난 10월 3일은 고국의 개천절이었을 것이다. 아니.. 혹시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한국달력을 보니 분명히 개천절이라고 표시가 되어있다. 다만 일요일이라 빨간 숫자인지 아니면 아직도 국경일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국경일이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국경일이던 한글날이 평일로 추락을 한 사실을 오래 전에 보았기 때문이다.
    한단고기

    한단고기

    그날을 전후로 거의 우연히 10년 전의 KBS 인기 프로그램 “역사스페셜“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는 약 5년 전 고국의 clubbox라는 download site에서 150 편 모두 download를 해서 DVD disc에 copy를 해두었는데, 다시 보려면 그 많은 disc를 찾아서 DVD drive에 넣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그것을 모조리 home server에 copy를 해서 아무 때나 볼 수 있게 하였다. 요새의 hard disk가 커지고, 싸지고..해서 이제는 video file을 번거롭게 optical disc (like DVD)에 “구울(burn)”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그 중에서 “환단고기에 대한 열풍”을 다시 보게 되었고 마침 개천절을 맞은 것이다. 요새는 그 당시의 “열풍”이 어떻게 “진화”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1992년에 정말 우연히 임승국씨의 “한단고기”란 책을 사게 되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열풍”의 훨씬 이전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책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란 것은 사실이었다.

    “환”자를 “한”자로 읽은 것부터 그렇고 또한 그 상고사의 기술자체가 그렇게 자세할 수가 없었다. 흡사 그리스 신화를 읽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KBS 프로그램을 보게 된 것이다. 왜 그 당시에 그 책이 인기를 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조금씩 거북하게 느껴지던 중국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나는 전문적인 역사학도는 절대로 아니지만 아주 심각한 아마추어 역사 mania 정도는 된다. 작은 딸애가 대학에서 역사전공인 것도 도움이 되었고, 나의 나이도 절대로 도움이 되었다. 나는 확실히 이제 진정한 역사의 의미를 느끼는 것이다.

    그런 배경에서 나의 환단고기에 대한 입장은 어떤 웹사이트에서 읽었던 저자가 알려지지 않은 “한단고기의 가치성” 이란 글의 저자 입장과 거의 비슷하다. 간단히 말해서 이 책의 알려진 여러 가지 “결함” 때문에 일괄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중도적인 입장인 것이다. 아주 조심스럽게 연구를 하자는 것이다. 역사도 과학적인 고증 기술의 발달로 어떤 새로운 발굴과 그에 따라서 현재의 정설이 하루 아침에 바뀌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니까. 완전히 위서라는 것을 증명치도 못하고 그의 반대도 증명을 못하는 마당에 조금 열린 마음으로 연구를 해 봄이 옳지 않을까?

  • 몇 년 동안 정리를 못하던 서류들을 정리하던 중에 2004년의 것들을 다시 정리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나의 본관 평창이씨에 관해서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고 고국의 관계 웹사이트에서 결국 평창이씨의 족보의 일부를 copy할 수 있었다. 그때의 감격은 사실 대단했다. 나는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으니까.
    평창이씨 족보

    평창이씨 족보

    나는 어릴 때부터 평창이씨라는 것을 잘 듣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6.25때 납북이 되신 후에 족보를 거의 잊고 살았다. 그리고 평창이씨가 다른 이씨에 비해서 조금은 희귀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저 강원도 평창에 시조가 있으려니 하는 정도로만 알 정도였다. 아버님은 두 누이동생 (나의 고모님)이 계셨지만 거의 왕래가 없이 살았다. 나도 나의 조상에 거의 관심이 없이 산 셈이었다. 족보를 따지는 시대가 이미 아니었기에 그것이 쉬웠는지도 모른다. 결혼을 할 당시에도 본관, 족보를 따지지 않는 그런 집안과 인연이 되었다.

    대학시절, 연호회라는 남녀클럽에서 정말 우연히 평창이씨 여대생(이인자씨, aka 이재임씨)을 만나게 되었다. 그 당시 별로 많지 않은 종친을 만난 것이다. 그때 우스개 소리로 우리는 인연이 없다.. 결혼을 할 수 없으니까..하면서 웃었다. 그 당시만 해도 동성동본끼리의 결혼은 위법이었다.

    우리의 아이들이 태어날 때도 우리의 본관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이 복합문화, 다민족의 미국에서 너희는 평창이씨의 후손이라도 말을 해 보았자 거의 의미가 없었으니까. 한 마디로 우리 집은, 아니 나는 족보가 없었다. 그러다가 1988년 Madison, Wisconsin에 잠깐 살 때 그곳에서 정말 우연히 평창이씨를 만났다. 이번에도 역시 남자가 아니고 여자였다. 그곳의 유지 격인 지금은 고인이 되신 강정렬 박사님의 부인이 되시는 분이 바로 평창이씨였다. 그 때 비록 나이차이는 많이 있었어도 친척을 만난 듯 서로 너무나 반가웠다. 그때 처음으로 본관, 동성동본이 아주 먼 친척이라는 것을 느낀 것이었다.

    그 뒤, 일년 후에 아틀란타로 직장이 옮겨져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인연이 이어져서 강박사님 부인의 남동생이 아틀란타에 사신다고 소개를 해 주셨다. 그래서 이곳 아틀란타에서도 평창이씨 가문을 만나게 되었다. 이주황 선생님.. 맙소사.. 이분도 고인이 되셨다. 그 집에 아들 둘(이만수, 이동수)과 따님이 하나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모두 평창이씨의 후계가 되는 것이다.

    그 이후로 또 이런 것들을 잊고 살았다. 세파라는 것이 그런 모양이다. 사실 족보가 밥을 먹여주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절대로 생각은 변하는 모양이다. 시간과 역사라는 것이 얽히고 나도 조금씩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감을 느끼게 되었고, 나의 뿌리는 과연 어떤 것인가 정말 자연스러운 의문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결정타는 어머님의 타계였다. 건강이 좋지 않은 누님을 생각하면 정말 나는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이 알고 계시는 평창이씨의 지식은 거의 전무했다. 거의 일생을 남편 없이 살아오셔서 더 그랬을 것이다. 이제는 내가 조금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그러다 2004년에 처음 나의 족보를 볼 기회가 온 것이었다. 아마도 울진이씨종친회라는 곳에서 만든 excel-format file이었을 것이다. 족보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나에게 그것은 조금 생소했지만 항열 같은 것은 조금 들어서 곧바로 아버님과 같은 항열 대를 찾았고 동명을 찾게 되었다. 분명히 이정모 라는 성함이 있었다.

    파는 익평공파(翼平公派) 였다. 27세(世)의 항열이 바로 “모” 자였다. 그곳에 정모, 준모 라는 형제가 있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나는 우리 아버지에게 형제가 있다는 말을 못 들었기 때문이었다. 고모님은 있었어도. 그래서 동명이인이 아닌가..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잊었다. 그것을 며칠 전에 다시 서류정리 끝에 찾은 것이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나에게 친삼촌이 있었을까.. 그런데 희미한 기억이 되살아 났다. 있었다. 물론 호적엔 없었다. 아버님도 호적에는 사망으로 되어있으니까. 그렇다. 민족분단의 비극이었다. 삼촌은 사실 “월북”을 하신 것이다. 6.25때가 아니었을까. 지식층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이론적인 공산주의”에 빠져서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많았다. 삼촌은 바로 그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반공이 국시였고, 연좌제의 서슬이 퍼~렀던 그 시절에 우리의 삼촌은 서류에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삼촌이 호적에 있었으면 나는 여권 같은 것은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그런 말씀을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 일년 전쯤 나에게 들려주신 기억이 되살아 난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본 족보의 “정모, 준모” 형제는 99% 나의 아버지와 삼촌일 것이다. 그 위로 그러니까 나의 친할아버지는 “경호” 로 나와있고 그 할아버지에게 “철호”, “창호”, “천호” 라는 형제가 있었다. 경호 할아버지는 4형제 중에 세 번째였다.

    이승훈, 베드로

    평창이씨, 이승훈 베드로

    족보에 의하면 아버님은 6명의 사촌들이 계셨다. 모두 “모” 자 돌림이고. 그렇다면 그 분들은 그 동안 어디에 사셨을까. 그 후손들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6명의 사촌들이 계셨으니 분명히 그 후손이 꽤 많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외로운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그들만 찾을 수 있다면..

    현재 평창이씨는 본관의 시조를 고려왕건을 도와 개국공신이 된 이윤장(李潤張) 어른으로 하는 파와 그의 8세손인 이광(李匡) 어른을 시조로 모시는 파로 갈려있는 상태이다. 이윤장 어른이 시조라면 평창이씨는 경주이씨의 분파가 된다. 물론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공부를 더 하기 전에는 할 말이 없다. 다만 내가 속한 (내가 본 족보가 맞는다면) 익평공파(翼平公派)의 종친회는 이광(李匡) 어른 을 모시는 파로 되어있었다.

    우리가 속한 익평공파는 파의 시조이신 이계남(李季男) 이신데, 연산조때 이조판서였고, 중종반정의 공신으로 익평공의 시호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후대에는 조선최초의 천주교 세례신자인 베드로 이승훈이 계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승훈 “할아버지”가 더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그 분의 앞 뒤로 4대가 모조리 신앙을 지키다 참수를 당한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몇 번 배교를 선언한 탓에 성인 품열에 못 들어간 사실이다. 정말 안타깝다.

    이상이 간략한 최근 며칠 동안의 평창이씨 족보여행의 결과지만 문제는 이제 부터가 아닌가 한다. 어떻게 나의 뿌리를 찾을 것인가….나의 족보를 과연 어떻게 구할 것인가? 그리고 나의 먼 친척들을 어떻게 찾아 볼 것인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노력을 해 볼 것이다.

  • 오늘은 “구이 팔”, 9.28, 9/28/1950: 서울수복 60주년 기념일이다. 60년의 강산이 변했고 “역사수정주의자” 들이 판을 치는 고국은 아마도 대부분이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를 것이다. 예외는 물론 우리같이 조금은 알고, 기억하는 세대들일 것이다. Mafia 집단으로 변한 김씨 일당들은 “미제의 앞잡이”들이 퍼다 준 밥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김씨 세습을 강행하려 한다고.. 참, 이건 완전히 희극중의 희극이다.
  • LA area, 그러니까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 지역이다. 기온이 120도가, 물론 화씨로, 넘었다고 한다. 올해는 참 기후에 관한 얘기가 끝이 없더니 이것도 한 몫을 한다. 올해는 동부,남부가 완전히 더위로 거의 “익어가는” 과정을 겪었다.  Weather Channel 에서는 올해 “최악의 여름” 상은 Washington DC로 정했다. 여러 가지 최고 기록이 있었겠지만 최고,최장의 무더위와 더불어 폭풍 같은 것도 곁들어서 그런 “불명예’를 차지한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사는 이지역도 내 기억에 정말 오랫동안 “쉬지 않고” 더웠다. 하지만 오늘은 6월 이후 처음으로  “긴팔, 긴바지” 에다 양말 까지 신고 Tobey와 집 주변을 산책을 했다. 그러니까 가을이 마침내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급속도로 단풍이 들 것이고, 첫 얼음이 얼고, 시베리아의 바람이 부는 날이 올 것이다. 특히 을씨년스러운 가을비가 기다려진다.
  • 아주 오랜만에 서울의 처남형님(연숙의 큰오빠)과 email로 연락이 되었다. 2002년에 이곳에서 만나고 그 후에도 조금씩 연락은 하며 살았지만 언젠가부터 거의 연락두절로 살았다. 이건 100% 우리부부의 책임이다. 마음만 먹으면 거의 “공짜”로 연락을 할 수 있었는데.. Skype은 물론이고 Google Voice같은 것을 쓰면 일반전화로도 분당 2 cent 정도로 전화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 동안 조카들은 무럭무럭 장성을 해서 둘 다 결혼을 하고 이제는 손주들까지.. 형님말씀대로,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은 오래 전 전화요금이 비싸던 때의 말이었던 것 있음을 실감한다.
  • To be or not to be, that’s the question: 연숙이 이곳의 한인천주교회에서 활동하는 것 중에 레지오(마리애:Legio Marie, 마리아의 군단)가 있다. 성모님을 통한 봉사,기도단체다. 우리가 오랜 전에 영세를 받은 후에 이 단체의 이름이 제일 먼저 들어왔고, 다음이 꾸르실료..하는 “해괴” 한 이름이었다. 오랜 기간 그런 단체에 무관심으로 지냈다. 하지만 현재 연숙은 이것 두 신심단체에서 활동을 한다. 그렇게 된 것이 이제는 몇 년이 되어서 나에게도 그 단체들의 활동에 조금 익숙해진 것이다. 이것이 이제 나에게도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결국은 “결정”을 할 단계가 되었다. 나는 무언가 “큰” 변화가 필요함을 느낀다.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아마도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다. 일단 가입을 하게 되면 3개월의 “대기 기간”이 주어진다. 그 기간이 무사히 끝나면 정식으로 단원이 되는 것이다.
  • 오랜만에 google earth에 몸을 싣고 “무전여행”을 해 보았다. 우선 우리 집 주변을 선회하며 그 동안 얼마나 변했나 보았다. 내가 만든 green roof shed와 Tobey fence가 뚜렷이 보이고 정문 앞으로 진달래가 만발한 것이 보인다. 그러니까 아마도 2009년 아니면 올해 봄의 모습이다. 그리고 parking garage 앞에는 나라니가 타는 Hyundai Elantra가 보인다. 그런데 그 차의 위치가 조금 이상하다. 이것은 나라니가 이사를 나간 후에 집에 잠깐 들렸을 때의 위치인 듯하다. 그러면 이것은 작년이 아니고 올해인 듯하다. 한마디로 거의 최근의 항공사진인 것이다. 조금만 더 가까이 찍었으면 roof에 무슨 damage같은 것도 보일 지경이다. 참 좋은 건지, 으시시한 건지.. 그런 세상이 되어간다. 이제는 personal privacy란 말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일까.
    Ohio Stadium near Dreese Lab

    Ohio Stadium near Dreese Lab

    내친김에 mouse cursor를 Columbus, Ohio로 흘려보았다. 너무나 오랜만이라 많이 잊었다. 목적지는 Ohio State University campus주변이다. 처음 Columbus downtown에서 출발을 하여  I-71를 따라서 올라갔다. 그저 Ohio Stadium만 찾으면 되니까.. 역시 왼쪽 편으로 말굽모양의 football stadium이 보인다. 처음에는campus  바른 쪽의 High Street를 찾았다. Long Bookstore와  McDonalds를 찾는다. 그리고.. 잠깐 살았던 “rooming house” Frambes Avenue, Harrison House, Jones Tower.. 제일 마지막에 나의 Department (of Electrical Engineering)가 있던 Dreese Lab, Caldwell Lab을 찾았다. 그런 건물들이 쉽게 변할 리는 없다. 100% virtual bird’s eye tour였지만 그와 함께 time machine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 어제 오랜만에 죽마고우 안명성이 추석안부의 너무나 짧게 쓴 나의 email에 대한 회신을 보내왔다. 이 친구는 내가 이름만 들어도 이제는 조금 찡~~한 느낌을 주는 그런 “진짜” 죽마고우다. 자기가 만든 섬유관련사업체를 오랫동안 열심히 경영을 해 오더니 이제는 아주 retire를 한 모양이다. 자기는 백수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백수치고는 그 이전보다 더 활기차고 즐거운 느낌.. 부럽다, 명성아!
    “죽마고우”란 말의 어원을 내가 잘 기억은 못하지만 한자를 생각해 보면, 대나무로 만든 말을 같이 타고 놀던 오랜 친구..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는 비록 그런 말을 타고 놀지는 않았어도 “고우”란 말은 맞는다. 정말 오래되었으니까. 원서동시절을 온통 같이 보낸 친구.. 국민학교 3~4학년 때부터 알게 된 친구.. 자주 보았다가, 오랫동안 못 보았다가 를 반복한 인생, 결국은 나의 미국 행으로 인생의 황금기 우정을 끝없이 미루어야 했던 친구.. 이제 우리에게 그 우정의 공백을 채워 줄 시간은 그렇게 많은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이런 헤어진 죽마고우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련하게, 찡~~ 해 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간 백두 대간 종주를 마치고, 영월서부터 춘천까지 가는 영춘 지맥을 끝내고, 금강 북쪽 논산북쪽에서 금강 하구까지 가는 금북 정맥을 마치고, 금강 남쪽을 달리는 금남 정맥을 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할지는 모르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천천히 하려고 한다.

    명성이의 이 말이 나를 또 역사,지리학도로 만든다. 백두 대간은 지리적인 명칭이겠지만 역시 한민족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영월부터 춘천까지의 “영춘 지맥”, 논산에서 금강하구까지의  “금북 정맥”, 금강 남쪽의 “금남 정맥”.. 와~~ 이런 말은 솔직히 처음 들어보았다. 하지만 그 곳을 달리는 듯한 한반도 산맥의 “정기”가 화악~~하며 나를 덮는다.

    안명성과 설악산 울산암에서, 1968년

    안명성과 설악산 울산암에서, 1968년

    이곳에도 산이 많이 있다. 하지만 고국의 산과 같을 수는 없다. 백두 대간의 “줄기”를 따진다면 이곳의 Appalachian Trail과 그 의미가 비슷하지 않을까? 이 Trail은 미국에서 제일 긴 것으로 아팔라치아 산맥의 시작과 끝을 종주하는 길고도 긴 등산로다. 남쪽의 시작은 이곳 조지아 주에서 시작이 되어 북쪽은 뉴욕을 훨씬 지나서 Maine 주에서 끝이 난다.
    명성이와 나는 사실 학생시절 산에 얽힌 이야기기 꽤 많은 편이다. 둘 다 그 당시 산을 좋아했으니까. 하기야 그 당시 일반적인 수준으로 보아서 산 만큼 “값 싸게” 즐길 수 있는 곳도 드물었다. 군용장비와 최소한의 식량, 그리고 시간만 있으면 갈 수 있는 곳이 국토의 거의 전부를 차지한 주변의 산들이었으니까. 명성이와 같이 “등산”을 처음 한 것이 국민학교시절 “남산”이었다. 또 다른 죽마고우 “동만이“와 셋이서 서울 시내를 가로질러 남산을 보면서 그대로 걸어간 것이다. 물론 가는 길을 알 턱이 없었다. 하지만 그 산은 계속 우리에게 보였기 때문에 헤맬 필요가 없었다. 그때 동만이의 괴성은 “오~~ 감격!” 이란 말이었다. 우리가 수시로 오르던 삼청동 뒷산에서 본 서울의 모습과 남산에서 본 것은 물론 달랐다. 뿐만 아니라 남쪽으로는 한강과 관악산이 보였기 때문이다.
    다음에 기억이 나는 때는 고1이 끝날 때 쯤, 진짜 등산이었다. 나의 오래된 가정교사였던 김용기 형이 나와 명성이 둘을 데리고 아주 추운 겨울에 백운대로 간 것이었다. 그 때 등산의 어려움을 처음 체험 하였다. 숨이 목까지 차는 괴로움을 겪은 것이다. 하지만 첫 진짜 산의 위용과 느낌을 두고 두고 느끼게 한 산행이었다. 그 때도 명성이가 산을 좋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우리는 (최소한 나는) 처음으로 야외에서 밥을 해 먹는 경험을 하였다. 내려 올 때는 올라간 길의 반대쪽으로 내려와서 더 첫 등산의 추억을 멋있게 장식하였다.

    The Tremeloes – Silence Is Golden
    1967-1968

    제일 추억에 남는 명성이와 의 등산은 역시 1968년 여름방학 때 내가 대학 2학년 때 둘이서 갔던 설악산 등산이었다.  둘 다 처음 가는 설악산이었고 이렇게 먼 곳을 둘이서 간 것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둘이서 간 등산의 마지막도 되었다. 그때는 비교적 초보적인 수준이어서 내설악이 아니고 외설악으로 갔다. 이것이 추억에 남는 이유는 그곳에서 내가 사고로 화상을 입고 일찍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때 혼자서 남게 된 명성이는 꽤 고생을 했다고 들었다. 물론 발에 심하게 화상을 입은 내가 고생은 더 했겠지만 나중에 생각을 하니 명성이도 꽤 고생을 한 것을 알고 내가 너무나 무심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어쩐지 명성이와 어울릴 기회가 별로 없었다. 서로 다른 대학을 다니고 연락도 별로 안 되고 거의 잊고 살게 되었다. 무언가 그때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달랐나.. 기억이 잘 나지를 않는다. 그는 그의 대학친구들과 어울리고 나는 나대로 나의 그룹과 어울리는 그런 식이었다. 그것이 지금 생각해도 조금 아쉬운 것이다. 더 죽마고우의 정을 살릴 수도 있었을 터인데.. 하지만 내가 결혼을 할 때 그는 옛정을 발휘해서 결혼식 사회를 보아주었다. 그리고 어릴 때 별로 보이지 않던 기업가적 자질을 발휘해서 멋있게 자기의 사업을 키워나갔고 모범적인 가정을 이끌며 현재까지 왔다. 비록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는 왔지만 그게 그렇게 느껴지지를 않는 것은 역시 “죽마고우” 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이 나이에 백두 대간을 종주하는 명성아… (한마디로)부럽다!

  • Farhad Darya in Kabul

    Farhad Darya in Kabul

    MSNBC website에서 아주 감동적인 사진을 보게 되었다. 열광하는 “회교도” 아프가니스탄의 젊은 여성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Farhad Darya인데 그는 가수이자 작곡가라고 한다. 또한 그는 UN의 아프가니스탄 “친선과 평화의 대사“라고 한다. 9월 22일 (오늘)  열린 이 공연은 International Peace Day를 기념하기 위해서 수도인 “카불“에서 열렸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우려한 대로 공연 후에는 폭발사고가 있었지만 사망자는 없었던 듯..
    아무리 전쟁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하지만 어느 곳에나 사람은 사람이 아니던가? 음악은 사람의 기본적인 예술에 속하고 그것을 억압하려는 무리(Taliban)이 그곳에 아직도 득실거리는 것을 알면 더 그 의미가 깊어진다. 한마디로 용감한 행사고, 용감한 청중들인 것 같다. 정말 흐뭇한 광경이다.

  • 어제는 파란 하늘의 아침으로 시작되었지만 오후부터는 갑자기 습해지고 찌는 듯이 더워졌다. 남쪽으로부터 열대성 구름이 갑자기 몰려 온 것이었다. Airport쪽은 결국 이날의 최고기온 기록을 세우고 (96F), 우리가 사는 쪽은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몰려왔다. 우선은 시원해서 아주 반가웠으나 강풍과 번개가 조금 신경이 쓰였다. 쓰러질 만한 키가 큰 나무들은 몇 년 전에 다 잘라서 그 걱정은 이제 없으나 번개는 별 수가 없다. 전기가 나가면 조금 골치가 아프니까. 그런데 어제는 결국 조그마한 번개의 피해를 입고 말았다.
    나의 kitchen office에 있는 pc의 network connection이 번개로 인해서 spark를 보이더니 network이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 Home server로부터 받아보는 video가 끊어지고 물론 Internet도 끊어지고.. 처음에는 pc의 Ethernet card만 zap이 된 것으로 희망을 하고 그것부터 바꾸었지만 역시 no network, Internet. 다음은 server까지 연결된 모든 wiring을 check, OK. 그 connection에는 두 대의 network switches가 연결되어 있는데 알고 보니 모두 zap이 된 것이었다. 나의 추측에, pc쪽에 있는 network switch의 power adapter (small wall transformer)로 big spike가 들어온 듯 하였다. 거기는 사실 surge protected power strip이 있었지만 그것이 제대로 보호를 못 해준 모양이었다. 이것을 다시 바로 잡는데 오늘 성당에 다녀와서부터 거의 2시간이나 걸렸다. 벼락의 직접적인 피해는 이번이 사실 처음이었다. 이 정도인 것 만도 다행으로 생각해야겠다.
  • 오늘 주일도 큰 일이 없이 연숙이와 둘이서 근처에 있는 우리의 미국 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8시반 미사를 다녀왔다. 예외가 없는 한 우리는 미사 후에 Panera Bread에 들려서 Bagel과 coffee로 아침을 때운다. 요새는 이것이 우리부부의 유일한 social outing역할을 하고 있다. 본당에서 받아 온 주보를 보니, 표제에 Grandparents Day란 글이 들어왔다. 별로 ‘유명한’ 기념일이 아니지만 본 기억은 있다. 이게 나이가 이정도 되니까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알고 보니 바로 오늘이 그 날이었다. 부리나케, googling 을 해보니 아래와 같은 구절로 설명이 되어있었다.

    National Grandparents Day originated in the United States in 1978. President Jimmy Carter signed the proclamation on August 3, 1978 after Congress passed the legislation proclaiming the first Sunday after Labor Day as National Grandparents Day.

    The official statute cites the day’s purpose of Grandparents Day as: “…to honor grandparents, to give grandparents an opportunity to show love for their children’s children, and to help children become aware of strength, information, and guidance older people can offer”.

    아하, 역사가 그런대로 된 기념일이었구나.. 우리는 아직도 grandparents가 덜 된 상태고 우리의 grandparents는 전혀 안 계시고 하다 보니 이지경이 되었구나. 우리 아이들에게는 우리 부모님들이 grandparents일 텐데.. 하며 생각하니 갑자기 슬퍼진다. 손녀들의 재롱도 거의 못 받아보신 것을 생각하면 더욱 우울해진다.

  • Barack Obama, 지독히도 재수가 없는 미국 대통령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정말 놀랍기만 하다. 물론 그에 대한 기대가 너무도 컸다. 거의 실현 불가능한 그런 기대들 말이다. 꿈과 현실은 그 골이 너무나 깊었던 것일까. 그의 능력도 생각보다 일반적인 기대치를 밑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의 2년에 가깝게 유심히 관찰하면서 느낀 것은 그는 절대적으로 ‘성공’을 할 수가 없는 조건이 너무나 많았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야당이 되어버린 Republican(공화당)의 ‘작태’는 정말 역사적인 최저, 최악이었다.
    옛날, 고국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의 야당은 비교도 되지를 않는다. 이것은 정말 이조 시대 장 희빈이 중전마마를 해하기 위해서 구중궁궐의 뒤에 숨어서 저주의 화살을 쏘는 정도였다. 한 마디로 Obama가 ‘절대로 성공하는 것을 막는다’ 라는 것을 비공식 당 정책으로 쓴 셈이다. 이것은 정말 이곳에 오래 살면서 처음 보는 거의 추태에 가까웠다. 한마디로 이곳, 이 나라, 이상과 희망이 조금씩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다.
  • 산호의 라이파이 2003년 복간본

    산호의 라이파이 2003년 복간본

    6월초에 home office를 옮기면서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것들을 거의 3 개월 넘어서 조금씩 보고 있는데,대부분이 책이나 서류 같은 ‘종이’ 류이다. 그러다가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 복간 본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운 동창 친구 양건주가 2003년에 김산호 화백의 친필 사인까지 받아서 보내준 것이었다. 그때 어머님을 잃고 정신적으로 심한 우울증으로 방황을 하던 나를 구해준 건주의 우정에 정말 깊은 감동을 받았고,사실 어떻게 갚아야 할지 난감한 심정이었다.
    우리또래 남자들이라면 사실 라이파이를 모른다면 아마도 깊은 산골에서 살았던 친구들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유명했던 대작, 걸작, 산호의 라이파이..를 살아 생전에 다시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질 않았다. 그 지옥 같았던 국민학교 6 학년, 입시공부의 고통에서 조금이나마 웃고, 기뻐했던 순간들은 아마도 ‘산호의 라이파이의 다음 편 들이 나오던 날들’ 이 아니었을까? 너무 감동적이라 산호선생께(나중에 알고 보니 대학생 정도의 나이) 편지까지 보내고 했었다. 그것이 정확히 반세기 전이었다.

  • 세상은 조금 더 오래 살고 볼 것이다. 최고의 악당 소련이 없어지고, 공산당도 크게 무서울 것이 없게 된 세상을 우리는 어렸을 때 ‘절대로’ 기대를 못하던 것이 아니었는가? 그런 류의 작은 사건들 다른 것들도 참 많아서, 빨리 죽는 것이 조금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예외는 진빨갱이,마피아괴수, 김일성일가..겠지만. 하지만 Cuba의 카스트로(Fidel Castro)의 말을 들어보자. 이란의 ‘과대망상증‘ 대통령, Ahmadinejad의 계속된 반 유태계 (anti-Semitic) 적인 태도와 정책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을 했는가? “유태인들은 우리들 보다 훨씬 어려운 존재위협 속에서 살았다. 2 차대전 때 독일의 유태인 학살 (Holocaust)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참, 세상 많이 변했다. 조금이라도 오래 살고 볼 것이다.
  • 오늘 같은 날, 갑자기 듣고 싶은 노래는.. 역시 oldies.. 아마도 1975년 경이 아니었을까? 멋있게 생긴 Barry Manilow가 멋있게 불렀던 “I Write the Songs“, 밝았던 그 시절을 추억하고 싶어진다.

  • 휴~~~ 지난 밤에 예기치 않게 전기가 나가버렸다. 맑고 써늘한 밤에 전기가 나간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그것도 거의 2시간이 지난 다음에 돌아왔다. 날씨에 의해서 벼락같은 것이 치면 사실 몇 초 동안 깜빡 거리는 것이 보통이니까, 이것은 분명히 그런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99% 짐작에 바로 옆의 Roswell Road 확장 공사에 의한 것일 것이다. 4차선을 거의 8차선으로 확장하는 소위 말하는 Obama’s Economic Stimulus Project의 하나다. 그러니까 ‘공짜’로 연방정부에서 받아서 하는 것이니까 우리의 local tax 는 거의 쓰이지 않는 것이다. 그 정도의 큰 공사라서 분명히 지하로 뻗어있는 고압선을 옮겨야 하고.. 그러다가 앗차! 했을 것이다. 우리 집의 computer network system은 매우 ‘약한’ battery backup (UPS)으로 단전으로부터 보호되어 있다. 주로 잠깐 동안만(최대 10분 정도) 정전을 막아주는 것인데 2시간은 무리, 무리다. 아침에 보니까 network system이 엉망이 되어 있었고 복구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난 몇 달처럼 무더위였으면 아마도 초저녁 잠을 설쳤을 것이지만 다행히 시원한 밤이었다.
  • 9월 1일은 나의 아내 연숙의 생일이다. 나이를 세기는 이제 조금 재미가 없고 그저 우리 집 식구 4명 중 2명은 모두 1월 달에, 나머지 2명은 9월 달에 생일이 있다는 정도지만, 조금 재미있는 사실은 그 같은 달의 두 사람 생일의 날자 사이가 정확히 16일 이라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정말 우연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집에 있었을 때는 조금 시끄럽게 보내야 했다. 아이들이 그렇게 생일이란 것을 즐기는 줄 몰랐다. 너희도 나이가 조금 들어 봐라.. 하면서 세월이 흐르고 지금은 전에 비해서 조금 조용해진 편이고, 사실 조금 편한 기분이다. 그래도 서울에 계시는 처형께서는 꼭 전화를 주신다. 처형 댁도 모두 건강한 나날을 보내시기를 기도해 본다.
  • 얼마 전에 IKEA 에 가서 Tundra Laminate floor package 15개를 사왔다. 일층의 나머지를 모두 나무 마루로 끝내려는 계획이다. 물론 dining room으로 경험이 생겨서 조금 자신은 있지만 반대로 어떤 surprise가 나를 기다리는지 그것도 조금 걱정이 된다. 이런 일들은 언제나 꼭 예상치 않은 ‘복병’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제일 걱정이 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방과 방으로 연결되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transition handling인데, 내가 pro가 아닌 이상 언제고 나를 괴롭힐 듯 하다.
  • 9월은 식구 두 명의 생일도 있지만, 그 악몽의 9/11 terrorist attack 기념일이 버티고 있다. 정말 괴로운 기념일이다. 그렇다고 피하거나 생각을 안 할 수도 없고,사실 그래서는 안될 것이다. 세월이 아직도 그것을 잊을 만큼 흐르지 않았다. 그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의 영혼들을 기억한다. 그 surreal한 느낌을 어떻게 말로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또한 회교도들을 어떻게 보고 생각할 것인가.. 참, 정말 괴롭고 어려운 문제다.
  • 9월 하면 생각나는 노래는 역시 Come September란 노래가 있다. 하지만 가슴에 더 와서 닿는 듯한 9월의 기분은 역시 패티 김의 “구월의 노래” 가 아닐까. 같은 노래를 혜은이도 불렀는데 역시 참 듣기 좋다. 아내 연숙이 대학시절 대학교 정문의 수위아저씨가 당신은 꼭 혜은이를 닮았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나와 직접적으로 노래에 대한 추억은 없지만 간접적인 인연으로 들어 보았다.

  • 지긋지긋한 8월이 드디어 간다. 벌써 어제 아침부터 시원한 바람이 산들거리는 듯 느껴지고 실제로 아침의 바깥 기온도 화씨 70도 밑으로 떨어졌다. 지난 세달 동안 계속 70도를 넘었으니까 이것도 조그만 뉴스 꺼리다. 그러니까 지구는 변함없이 태양을 돌고 있다는 것이 간접적으로 증명도 되는 것이 아닐까?
  • 얼마 전에 중앙 57회 동기 회에서 교우 유정원의 모친상 소식이 왔다. 이제는 세월이 그렇게 된 모양인지 부모님 타계 소식 아니면 자녀들의 결혼식 소식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모친상의 소식은 나에게 더 진한 슬픔을 준다. 내가 7년 전에 이미 겪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불현듯 email로 나마 위로를 하고 싶어서 보냈다. 답장은 기대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누구라는 것을 모를 수도 있을 것 같고, 또 애도기간이라 바빠서 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정원이는 곧바로 회신을 주었는데, 내가 놀란 것은 내 이름(이경우)의 “경”자가 한자로 “빛날 炅”이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유정원의 “밝을 晶” 자를 기억하고 있다. 아득하게 무슨 time machine를 탄 기분이었다. 45년 이상 완전한 연락의 단절이 이렇게 쉽게 연결이 되는 것은 참 경험하기 힘든 일이 아닐까. 참 좋은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 나의 중앙고교 추억 시리즈 마지막 편인 고3 편을 오늘 천신만고 끝에 ‘탈고’를 해서 올려 놓았다. 이미 예상은 한 것이었다. 기억력을 더듬는 것이 이번에는 그렇게 힘이 들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노력을 하니까, 그 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이 하나 둘씩 살아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잊을세라 부리나케 쓴 것이다. 나의 가장 큰 희망은 우리 교우 친구들이 이것을 보고 그들의 기억도 같이 합세를 했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큰 기대는 못 한다. 우리세대는 알려진 대로 digital generation은 절대로 아니니까.
  • Hurricane Katrina: 허리케인 카트리나..5주년이 되었다. 정말 지독한 것이었다. 아마도 카테고리 3급 이었을 것이다. 5년 전 그날(2005년 8월 29일), 미국의 큰 도시 하나가 자연재해로 완전히 물에 잠겼다. 공상과학 영화 같은 데나 나올듯한 각본이 현실화 된 것이다. 예측하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재해라서 사실 대비하기는 불가능 했을 듯 하다. 1800여명이 죽고, 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이 행방불명이 되었다. 문제는 그곳의 피해자들이 대부분 흑인들이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사망률은 이런 것에서도 다른 집단과 비교가 되지를 않는다. 흑인 대통령은 나왔지만 아직도 그들이 갈 길은 먼 것인가.
  • 8월 달, 지독한 더위였지만 그런대로 집 일을 한 결과도 있었다. 나는 현재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것을 전적으로 맡고 있고, 나머지 식사의 dish wash또한 나의 담당이다. 처음에는 시간도 걸리고 기분도 찜찜한 것도 있었지만 습관이 되고 나니 사실 기분이 좋을 때도 있다. 나도 무언가 도움이 되었다는 만족감일지도 모른다. 집안 일이란 주로 handyman(일당목수일) 들이 하는 일들이다. 나의 carpentry실력은 조금 초보를 면할 정도다. 하지만 시간에 별로 쫓기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는 큰 이점도 있다. 올 여름의 major project는 역시 아래층에 laminate floor를 까는 일이다. 보기에 그렇게 쉬운 것이 손을 대고 보니 완전한 monster였다. 8월 중순까지 dining room이 끝이 났다. 그 다음을 계속해야 했는데 floor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손을 보아야만 했다. 결국 subfloor를 뚫고 들어가는 대공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며칠 전에 끝이 나고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마루공사를 계속하게 되었다. 사실 언제 끝이 날지는 모른다.
  • 오늘 아침 New York Times에 기고된 한 논평을 보았다. 저자의 이름이 곧바로 눈에 들어왔다. Paul Wolfowitz 였다. 그는 소위 말하는 neo conservative그룹에 속하는 ‘매파‘ 라고 할 수 있다. 이 논평은 이락 전쟁이 일단 끝나면서 한국전쟁과 비교를 한 것이다. 결론 부터 말하면 철수를 하되 상당수의 전투병력을 남기라는 것이고, 한국전쟁이 휴전이 되면서 미군이 상당히 남아서 전쟁의 재발을 막고 결과적으로 현재 한국의 정치, 경제 발전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말은 되는 이야기다. 문제는 60년 전의 전쟁이란 것과, 전혀 다른 지정학적, 문화적인 조건 등을 어떻게 감안할 것인가.

다시 보는 삼국지

거의 50년 만에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읽은 때가 아마도 1964년 고2때였을 것이다. 그 해 여름방학 때 시원한 마루에 누워서 3권으로 된 삼국지를 읽었던 생각이 난다. 물론 책으로 읽어서 나 나름대로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즐겼다. 하지만 지금 보는 것은 정말로 그림을 보는 것이다. 언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에서 나온 영화, 아니면 made for TV series 쯤 되지 않을까? 총 83회로 되어있는 정말 대하 drama였다. 이것을 보면서 놀란 사실이 한둘이 아니었다.

중국 대하드라마  삼국지

중국 대하드라마 삼국지 주요 등장인물

○ 어떻게 그 많은 등장인물의 casting을 시도했고 성공했을까? 이것 하나 만으로도 이것은 기록적인 영화다.

○ 유비, 관우, 장비의 casting은 입에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잘 되었다. 사실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묘사를 거의 그대로 따랐다고나 할까? 더욱 놀라는 것은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3형제의 인상착의가 99.9% 들어 맞는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중국인 배우들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그렇게 넓은가?

○ 나의 짐작일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는 나관중 삼국지를 거의 100% 충실하게, 그러니까 거의 ‘기록영화’에 가깝게 재현을 한 것 같다.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 각본가가 마음대로 이야기를 바꾸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것도 참 놀라운 일이다.

○ 중국어와 한국어의 발음이 비슷한 것이 참 많았다. 예를 들면: “만세,만세,만만세(먄쉐)”, “승상(슝샹)”, “유비(요베이)” 등이 있었다. 일본어에서도 그렇게 비슷한 말이 많음을 느꼈는데 여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한자어를 우리나 일본이 받아서 흉내를 낸 것들이 많으니까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실제로 발음을 들어보니 한국,중국,일본의 오래된 역사적 관계가 조금 실감이 갔다.

○ 주요 인물들의 연기나, 영화 set는 수준급이었다. 특히 유비 삼형제들이 그랬고, 조조, 주유 모두 수준급의 casting이었다. 또한 조조나 주유의 “춤(군무) 솜씨” 도 일품이었다. 그에 비해서 뒤를 바쳐주는 extra급들은 실망적이었다. 너무나 표정들이 심각하지를 않고, 너무나 나이들이 어려 보였다. 하지만 special effect나 computer animation같은 잔재주는 거의 보이지를 않는다. 적벽대전의 scene을 보아도 아주 실전처럼 보인다.

○ 제갈량으로 분한 배우의 연기솜씨도 인상적인데 그 중에서도 주유의 장례식에서 통곡하는 연기는 가히 걸작이었다. 소설을 읽을 때 제갈량이 “도사 급” 정도로 상상이 되어서 나이가 많고 하얀 수염의 할아버지로 잘못 알았다. 여기서 알고 보니 나이가 겨우 27세의 ‘청년’ 이었다. 그런 나이에 그만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조금 믿어지지를 않는다.

IKEA Tundra Blues

어제 드디어 dining room의 flooring job이 끝이 났다. Swedish IKEA에서 한달 전에 산 Tundra 라는 laminate floor였다. 값에 비해서 보기가 좋았다. 하지만 기록적인 더위 속에서 거의 일주일이나 걸렸다. 날씨가 조금만 시원했다면 2~3일이면 될 듯했다. 하지만 첫 번째 작업이라 실수가 꽤 많았다. 고칠 수 있는 실수와 거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 다 있었다. 문제는 거의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한듯한 ‘그림’ 설명서였다. 문제는 그 설명서가 틀린 것이 아니라 “100% 그대로 안 하면 ‘망친다’는 사실”을 경고하지 않은 것이다. 나의 짐작은 “실제로 실수를 하면서 배우라”는 의미였다. 이제 다른 곳에 flooring을 할 때는 훨씬 전보다 실수가 적을 것이다. 다음에 할 곳은 바로 옆에 붙어있는 hallway 인데, 이곳은 정말 challenging geometry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도형’이 간단치 않은 것이다. 이곳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이것이 현재 우리가족의 관심사가 되었다.

flooring during

flooring during


flooring after

flooring after

Thank you, Harbor Freight Tools!

지금의 집에 이사온 지간 거의 18년이 되어가는데 그 동안 대부분의 수리는 내가 맡아서 했다. 나는 그런 것을 천성적으로 좋아하고,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또 다른 이유는 그 handyman, contractor들 중에는 상당히 질이 나쁜 축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하면 엉터리로 고쳐놓고 더 비싸게 돈을 받는다는 것이다.

나의 handyman 기술수준은 사실 초보를 벗어날 정도다. 진짜 pro들은 시간이 돈이기 때문에 빠른 시간에 해야 하지만 나는 그런 제한이 없으니까 더 천천히 하면 크게 문제가 될 것도 없다.. 이제까지 그런 식으로 버티어와서 꽤 많은 project를 끝낼 수 있었다. 크고 작은 sheds (간이창고)를 두 개 지었고, 각종 내부 전기배선, basic plumbing, 지붕수리, 내외 부 페인트, gutter, 높은 소나무 자르기..등등 참 그 동안 많이도 했다. 그 때마다 필요한 것이 tools, 주로 power tools (electric or pneumatic) 이 제일 많이 쓰이고 필요하다. 문제는 월급쟁이에다 아마추어수준으로써 좋은 tool을 사는 것이 무리라는 것이다. Home Depot같은 곳에 가 보면 tool들이 너무 좋은 것, 온통 미제 들이다.

과연 그것들을 pro도 아닌 내가 필요할까?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나의 수준에 과분하지만 또한 안 살 수도 없고..그러다가.. China가 나를 도와주러 왔다. 그들이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싸게, 나의 수준에 맞는 그런 것들을 수출하기 시작하고.. 그 덕분에 나는 꿈에도 못 써볼 만한 tool들을 비교적 쉽게 사서 쓰게 되었다. Harbor Freight Tools란 회사가 바로 그 수입업체로써 그것을 사서 쓴 지도 이제 5년이 넘었다. 문제는 최근에 중국의 인건비가 오르기 시작하면서 싼 수출가격의 이점이 언제까지 버티나 하는 것이다.

• 중앙고 동창 친구 우진규와 email로 연락이 되었다. 이 친구의 소식은 아마도 간접적으로 캐나다에 사는 정교성을 통해서 듣곤 했다. 하지만 직접 연락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앙고 57회 교우회의 신동훈 총무가 부지런히 소식과 연락처를 전해준 덕택이었다. 모습은 어떻게 변했는지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그 철없고 순진한 때의 추억을 서로 간직했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아들, 딸의 나이를 보니 오래 전에 이미 할아버지가 된 듯하다. 이 친구는 아직도 사회복지분야에서 일을 한다고.. 부럽다. 그 반대로 연락이 끊어진 친구도 있다. 중앙고 57회 교우회장을 역임한 서울 한성과학고 교장 목창수..의 email이 no good으로 돌아왔다. 어찌된 일 일까? 이것은 이 주소가 바뀌었다는 뜻인데.. 어디로 이사라도 갔나 궁금해진다. 몇 년 전에 우리 작은딸이 그곳에 갔을 때, 너무 잘해 주어서 아직도 고마운 마음 뿐이고 언제 그 빚을 갚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다.

  • 히로시마 65년 전.. 눈 깜짝할 사이에 인간들이 ‘증발, 소각’ 되고 날라가 버렸다. 현재의 기준으로는 거의 장난감같이 작은 것이었지만 그 심리적 효과는 아직까지도 다른 핵무기 사용을 저지해 오고 있다. 불쌍한 것은 아무 죄 없이 증발해 버린 ‘재수없이 그곳에 살던’ 민간인 들이다. 물론 그 당시 군사시설에 관련된 민간인도 많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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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며칠 전에 오랫동안 우리와 같이 산 어항속의 물고기가 죽었다. 두 마리 중의 한 마리였다. 나라니가 학교기숙사에서 기르던 것이니까 최소한 3년은 되었을 것이다. 다른 것들은 훨씬 오래 전에 사라졌는데 이 두 마리는 나와 같이 몇 년을 산 것이다. 그래서 더 정이 갔다. 나머지 한 마리를 가만히 보니 그 녀석도 조금 움직임이 느려졌다. 혹시 이 녀석도 곧 따라서? 새로니가 부리나케 같은 종류의 것으로 팔팔한 2마리를 사 왔다. 아.. 그 젊음이여.. 젊은이 둘과 할아버지를 보는 것 같다. 이것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인가..태어나고, 사라지고.. 젊음이 늙음으로..그게 자연과 신의 섭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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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 총학생회 친구들과, 아래 왼쪽이 김선욱씨, 1980년

    이대 총학생회 친구들과, 아래 왼쪽이 김선욱씨, 1980년

    연숙의 대학시절 buddy가 이화여대 총장으로 선출이 되었다. 아.. 세월이여.. 어느새 그런 나이들이 되었는가. 연숙은 총학생회에 단과대학회장이고 그 김선욱 총장 선출자는 총 학생 회장이었다고 한다. 우리 결혼식에도 왔었다. 나도 그 당시 조금은 기억을 하고 있다. 결혼식에 온 그녀 친구들 중에 한 팀이 총학생회 임원그룹이라고 들었던 기억, 와~~ 그것이 1980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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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들.. 이질적인 두 문화의 틈바구니에서 필요이상의 고민 거리를 짊어지고 stress받는 어깨들을 보며 미안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솔직히 우리자식들을 포함해서  ‘마음에 드는’ 녀석들을 이제까지 살면서 거의  본 기억이 없다. 아마도 대부분 공개적으로 말은 못하지만 가슴 속 깊이 나의 말에 동감을 할 것이다. 최소한 우리세대는 그렇다는 말이다. 반대로 그들도 마찬가지로 마음에 드는 부모를 많이 못 보았을 듯 하다. 구체적으로 열거를 하기 시작하면 뜨거운 화제가 될 가능성이 많다.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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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의 heat wave 를 보면서 조금 우려가 생긴다. 다른 곳이 더운 것은 조금 이해를 할 수 있는데, 그곳은.. 러시아.. 이건 조금 생각을 하게 된다. 지독하게 stupid 한 conspiracy, contrarian buffs들과 그와 버금가는 republican gang들, 조금은 과학을 정치에서 떼어놓고 생각하는 최소한의 양심이 없는가. 너희들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더 그렇다. 그렇게 pro-life라면 더 그렇게 노력을 할 이유가 있고 장기적으로도 너희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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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한 명의 U.S. supreme justice가 탄생을 했다. ‘역시’ 또, 여자다. 크게 놀랄 것도 없다. 이제 여성의 관심을 대변할 최고의 법관이 한 명 더 늘어난 것이다.  우리 식구들은 기뻐할 것이다. 모두 여자들이니까. 나는 어떠한가. 이제는 거의 중립적인 입장이 되어버렸다. 언젠가는 아마도 여자의 세상이 오지 않을까..
A Day in the life – The Beatles

대학시절 한때 Beatles의 이 노래.. 참 많이도 들었다. 꼭 좋아했었다고 말을 할 수는 없는 곡이었다. 그 당시의 짧은 영어실력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그랬을까? 그 보다는 이 노래가사의 배경을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문제랴? 그 당시에는 가사보다는 ‘겉 멋’이 더 중요하니까.. 이 곡에서 John Lennon특유의 목소리를 맛볼 수 있었다.

  • 그렇게 포근하고 푸른 하늘의 날씨도 역시 다시 며칠 못 가서 하루 종일 비와 싸늘함의 날씨로 변했다. 기분에 이곳의 가뭄은 100% 완전히 사라졌다고 해도 틀림이 없을 듯 하다. 나는 비를 참 좋아하는데 바깥에서 일을 할 때는 조금 성가신 점도 있다. 이번 기회에 조그만 storage shelter를 몇 개 지으려고 생각 중이다. 그러면 비를 맞아서 문제가 되는 yard tool들 보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제값을 주고 산 책 WordPress Plugin Development 를 어제부터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Amazon Review가 비교적 좋았다. 저자의 이름이 아무래도 Slavic 해서 이것 또 broken English로 쓰여진 것이나 아닐까 우려를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거의 American English로 손색이 없는 듯 하다. 하지만 몇 군데는 별 수 없이 bad grammar가 눈에 뜨인다. 이 책의 제일 특징은 ‘잔소리’가 별로 없고 거의 곧바로 본론으로 시작을 하고 ‘결과’를 확실히 보여주는 아주 작은 project 5개로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다 읽고 이해를 하면 아마도 몇 개의 practical plugin을 design할 수 있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진다.

    WordPress Plugin Development book cover

    WordPress Plugin Development book cover

  • 현재 우리 집에는 Tobey라는 개와 Izzie라는 고양이가 같이 살고 있다. Tobey는 2006년에 baby때부터 키운 mixed Dachshund 인데 이제는 사실 정이 너무나 들어서 식구와 같다. 전에 키우다가 2003년에 타계한 Lucky (Cocker Spaniel)는 밖에서 키워서 그런 맛은 몰랐다. 한가지 문제는 그 녀석이 너무나 hyper-active한 것이다. 감정표현이 너무나 요란하다 보니까 문제가 있는 것이다. Izzie는 2006년 여름에 우리 집 앞에서 baby때 주운 고양이다. 누가 버리고 간 듯 싶었다. 몇 년간 Washington DC에 사는 새로니가 데리고 있다가 지난 크리스마스 때 다시 데리고 와서 우리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 동안 서로 적응하느라 힘들었지만 요새는 그런대로 적응이 되어서 살만하다. 처음에는 고양이가 개를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정 반대였다. 고양이가 어찌나 defensive한지 개가 그 옆으로 가는 것을 꺼릴 정도니까..
    Izzie, the cat

    Izzie, the cat

    Tobey, the dog

    Tobey, the dog

  • 내가 사는 곳의 library는 Cobb County Library system인데 내가 자주 가는 곳은 그 중에 제일 큰 Central Library다. 그곳에는 외국어로 된 책들도 꽤 있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한국어로 된 책들도 많은 편이다. 공식적인 것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도 거의 300권 정도가 되지 않을까? 대부분이 2000년 말에 출판된 것을 보면 구입한지 몇 년이 안된 것들일 것이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한국어로 된 책들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catalog system에서 한글을 처리를 못해서 거의 한글발음을 그대로 영어로 옮겨 적은 관계로 그걸로 한글을 만들려면 정말 애를 먹는다. 어떤 것은 거의 불가능할 때도 있다.이때는 일본어의 발음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그들의 발음은 영어로 적어도 100% 다시 일본발음으로 바꿀 수 있으니까.

    Korean titles at Cobb Central

    Korean titles at Cobb Cent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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