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Tagged ‘레지오’

¶  Shane! Today becomes a Shane day. 추억의 서부영화 Shane, Alan Ladd (당시 우리들은 ‘아란 라뜨 라고 불렀다) 주연의 1953년 George Stevens의 Paramount classic western movie  주인공 이름이 바로 Shane 이다.  지난 밤에 예상했던 대로, 오늘 아침에 몸과 마음이 편치 않다는 애매모호한 이유를 내 세워, 5년 역사를 자랑하는 평일미사는 물론 근래 보기 드물게  아침식사까지 거르고, 모처럼 남아도는 아침 시간을 어떻게 ‘처리할 줄’ 몰라서 desk주위를 모처럼 자세히 살펴보니 저쪽에 SHANE이란 VHS TAPE cover에 쓰여진 빨간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별 생각 없이 그것을 old video-tape player에 넣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다. 나의 영웅, Shane이 ‘피도 눈물도 없는 비겁한 완전 순 악당 무리’를 모조리 ‘쏘아 죽인 후’ 영화가 끝나며 역시 잔잔한 감동에 휩싸인다. 역시, 역시.. 진리는 이긴다, 하느님은 선이 악을 이기도록 이끄신다…

Shane, videotape cover art

이 명화는 어렸을 때 (중학교 1학년이었나..) 가족이 서울 중앙극장에 가서 보았는데, 그 당시 느낌은 다른 서부영화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인데, 왜 그런 인상을 받았을까.. 아마도 ‘Alan Ladd 아란 라뜨’의 인상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는 암만 보아도 그렇게 총을 잘 쏘거나 주먹싸움을 잘 하게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격도 비교적 왜소한 편이고 얼굴은 여자처럼 곱게 생겼다. 그런 그가 우락부락한 놈들과 주먹싸움을 해서 모두 때려 눕히는 것은 물론 ‘총 싸움’도 거짓말처럼 놀랍게 잘했으니..  지금 가지고 있는 VHS tape은 1990년대에 산 것이고 우리 가족이 모두 보기도 했지만 내가 느꼈던 ‘감동’이 그들에게는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주 원인은 역시 ‘주먹싸움’ 정도가 당시 기준으로 보아도 조금 ‘잔인’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이렇게 다른 것인가.

 

며칠 전 본 Gary CooperHigh Noon, 2년 후에 나온 이 영화를 보며 나는 나 자신 깊숙한 곳에서 아직까지 ‘이글거리는 분노’를 삭히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주 큰 효과는 없는 듯 하다. 그저 이것을 보는 시간 동안만은 그런대로 그 이글거리는 분노를 잠시 잊는 것 뿐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이렇게 내가 오랜 기간 동안 한 ‘악’의 인간(a.k.a. 미친X)을 증오한 적이 있었을까… 그런 것, 기억에 별로 없는 것 같다.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대리적 복수’로 나의 분노를 삭히며 시간을 보내는 것 뿐이다. 별로 내가 할 수 있는 option이 거의 없는 듯한 것.. 그것이 나를 괴롭힌다.

 

 

¶  Surviving Tuesday: Crisis Mode를 가동한 우리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 ‘비상사태 선언’ 이후 첫 정규 주 회합을 가졌다. ‘미친X 난동사건’의 여파는 하루 아침에 existential crisis로 이어졌지만 우리를 이끄시는 commander 성모님의 도움으로 다시 힘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One day at a time의 정신으로 우리의 모든 energy를 모으기로 한 자세가 단원들의 얼굴과 행동에 뚜렷하게 보인다. 그 ‘미친X’은 현재도 뒤에서 5살 정도(Trump와 비슷한가) 수준의 그야말로 유치한 장난을 하는 모양인데… 참, 정말 70평생 이렇게 악랄하고, 유치한 모습은 처음 보니까.. 정말 할 말을 잊는다. 나는 결단코 이 인간을 ‘절대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다짐하고 다짐한다. 이것이 내가 성모님께 드리는 선물이기도 하다.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 총사령관, 성모님

 

현재 제일 심각한 것은, ‘실존적 위기’를 느낀다는 사실이다. 나의 존재가 밑바닥부터 흔들리는 느낌, 처음 경험하는 것이다. 나를 7년 이상 ‘진리의 바다’로 이끌어 주던 ‘레지오의 조직’, 그렇게 의지하던 ‘성모님의 인도’ 이런 것에서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에게 실존적 위기인 것이다. 하느님의 현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요사이, 정말 깜깜한 어두운 밤의 연속이다. 빛의 터널 저쪽이 안 보인다. 과연 언제까지.. 이런 모든 실존적 위기를 느끼게 한 장본인은 한마디로 ‘악의 표본’인데, 나를 하느님, 성모님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멀게 하는 것은 분명히 성서적인 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과는 사실 뻔한 것이다. 기다리자, 기다리자, 그리고 기다리자..

 

¶  New Office/Library: 지난 7월 말에 시작된 나의 home office/library의 ‘대 이동’의 첫 단계가 끝이 났다. Furniture를 위시한 stuff들이 겨우 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왜 한달 이상이 걸렸는가 하면, 물건 자체보다는 내가 적응하는데 아직도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2층에 있었던 것이 1층, 그것도 옛날 가족의 보금자리였던 family ‘gathering’ room으로 왔으니 나의 습관상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전에는 office와 small lab desk가 한 곳에 있어서 편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분산이 되었다. 2층 전 office 가 lab space전용으로 바꿀 예정이기 때문이다.  각종 hardware junk들이 그곳에 남게 되는데, 사실 공간은 넓어져도 사용하기에는 불편할 것이다. 이것 역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다른 관심사는, 1층으로 내려온 office가 겨울에는 역시 2층보다 추울 것이라는 것, 이것은 겪어 보아야만 알 듯하다. 정 불편할 정도로 추우면 이번에는 아낌없이 central heating을 가동할 것이다. 이제 얼마나 오래 산다고 그렇게 $$$을 아끼며 춥게, 덥게 살 것인가… 조금은 더 편하게 살고 싶다.

 

 

Hurricane Irma ‘덕분에’ 며칠을 ‘휴일’처럼 보냈다. 물론 즐겁지 않은 휴일이었지만.. 2005년 New Orleans에 들이닥친 Hurricane Katrina를 연상시키는 그런 심정으로 얼마 전에 Houston의 Hurricane Harvey와 함께 오랜 만에 regular news를 보며 며칠을 보냈다. 그 엄청난 규모와 피해는 물론 놀라운 것이겠지만 내가 놀라는 사실은 ‘내가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라는 새로운 사실이었다. 이제는 매년, 매월, 매일.. 새로 나오는 통계치가 new normal이 되기 때문에 신경이 아주 둔감해 진 것이다. 어제 10명이 사망한 뉴스 뒤에, 오늘 100명이 죽는 뉴스가 나왔다 해도 ‘그저 그런 느낌’이 드는 것… 나는 이런 general psyche가 너무나 너무나 싫고 무섭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가?

 

예전에 hurricane하면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깊은 내륙’에 있는 Atlanta지역은 ‘사정권 밖’에 속해서 그저 가랑비와 산들바람 정도 경험하였지만 이번 Florida로부터 올라오는 Irma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을 조금 달랐다. ‘그 놈’이 쳐들어 오는 경로가 아주 직선적으로 이곳 Atlanta를 정 방향으로 북상을 하였던 것이다.

 

수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서서히’ 올라오며 강풍과 홍수로 각종 시설들을 못쓰게 하는 것, 특히 (electric) power infrastructure가 무너지면서 초현대인들의 고통은 시작되고 하루아침에 석기시대로 변하는 것을 보며.. 인간들, 아직도 멀었다.. 라는 생각, 대 자연이 위력을 별로 실감 못하며 하루하루 사는 것,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가? Pope FrancisLaudato Si  를 통한 호소와 경고가 다시 새롭게 귓가에 쟁쟁해진다.

Irma’s soaking, drenching rain all days..

 

예상대로 South Georgia는 power system에 피해를 보았지만 우리가 사는 지역은 그런대로 견딜 정도로 작은 피해만 있었다. 새로니가 사는 mid town지역은 몇 시간 정도 전기가 나갔지만 ‘기적같이’ 우리 동네는 전깃불이 깜박거리지도 않았다. 전기가 나가는 큰 이유는 강풍에 나무가 쓰러지며 electric pole과 transmission line이 떨어지기 때문인데 우리 주변은 이미 ‘전봇대’가 하나도 없는 (underground) 곳이라 그런 걱정은 없는 것이다. 최악의 사태에 전기가 나가면 natural gas는 그런대로 나오기에 ‘굶을 염려’는 크게 없다. 잔잔한 바람과 대지를 촉촉히 적시는 비가 끊임없이 내렸다. 폭우가 계속 쏟아지던 몇 주일 전 우리 2층 bedroom엔 비가 조금씩 샜기에 이번에는 걱정이 많았지만 예상외로 잔잔히 내리는 비, 이번엔 새지를 않았다.

 

한달 이상 계속된 flooring work과 2주 이상 계속된 ‘레지오 미친X 난동 사건’ 여파 때문에 중단 되었던 YMCA workout routine이 오늘 아침부터 다시 재개 되었다. 한마디로 감개무량한 것, 우리가 다시 돌아왔구나.. 하는 감사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인간은 역경을 당해도 의외로 질기고 강함도 느끼게 되었다. 나의 routine workout은 25파운드 dumbbell 인데 의외로 쉽게 들렸다. 아하…..  몇 주일의 중단된 운동으로는 근육이 그렇게 영향을 안 받는구나..

 

저녁에 어떤 성당교우 부부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고 어떤 fast food restaurant 엘 나가서 두 부부가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얼마 전 성당에서 내가 한번 만나자고 제의를 한 것을 기억하고 바쁜 와중에 연락을 준 것이 고마웠다. 우리와 사는 여건이 비슷한 이 부부, 우리와 어떤 인연이 있을까..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무언가 더 가깝게 될 인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때 우리는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레지오 난동사건 주범의 ‘기가 막힌 과거’에 대한 것..  이제 이해가 간다.. 그런 인간들이었구나.. 그런 일들이 옛날에도 있었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간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인간이 버젓이 성당과 대로를 활보할 수 있는가.. 세상은 역시 선과 악이 항상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  지난 주에 갑작스레 선종하신 이 요셉 형제님의 연도와 장례미사가 오늘 정오 전후에 있었다. 지난 달부터 전에 받았던 허리통증,  수술의 경과가 악화되었지만 재활치료를 받으시는 것을 알고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곧 퇴원을 하실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타계하신 것이다.

요새 병으로 사망하는 대부분의 case가 불치병인 암 아니면 심장관련의 병이라서, 비록 통증의 정도가 심하다고는 하지만 허리, 척추 수술은 비록 고령의 나이라도 불치병으로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게다가 이렇게 급작스레 운명을 하시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터였다.

 이요셉 형제님은, 우리와 함께 오랜 세월 (7+ 년) 동고동락하며 자비의 모후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하셨던 아가다 자매님의 부군이시라서 비록 가깝지는 않았어도 레지오의 큰 식구(협조단원) 일원으로 알고 지냈던 터였다. 조용하시고 신심도 깊으셨지만 불치병인 듯한 ‘청각 장애’로 고통을 받으시고 따라서 사람들과 긴 대화를 피하시는 듯 했다.

개인적으로도 신앙, 인생의 대 선배로서 가까이 하려는 노력도 몇 번 해 보았지만 기본적으로 조용하고 shy하신 것과 청각의 문제 때문이었는지 의미 있는 대화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나중에 이 분이 6.25 동란 이후 대한민국 해병대에서 복무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적지 않게 놀라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신심 깊고 조용하신 분이 그 험했던 6.25 직후 ‘귀신 잡는 해병‘의 일원이었는지.. 상상이 안 가는 것이다.

연도와 장례미사는 입추의 여지없이 많은 조객들이 함께 했고 특히 해병대 군복을 입은 ‘장정’들이 운구를 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아가다 자매님은 그 특유의 모습을 하나도 잃지 않고 함께한 유족들 일행을 ‘지휘’하셨는데… 나는 그런 ‘평정한 모습’을 조금은 복잡한 심정으로 읽었다.  사실 내가 그 입장이었으면 저런 평정함을 유지 못할 것 같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날 장례미사 후에 성당 친교실에서 ‘조객을 위한 음식’이 마련 되었고 예의 줄을 서 있었는데.. lo and behold!  Serve하는 자리에 누가 서서 밥을 퍼주고 있었던가? 얼마 전에 공개석상에서 미친 난동을 부리고 레지오에서 퇴단을 (당)한 그 ‘회 칠로 도배질한 얼굴‘이 거기 ‘우아하게’ 서 있었다. 나의 입맛, 소화효소 분비가 즉시 멈추고 내 깊은 속에 잠재해 있던 무서운 demon 이 나의 머리 위로 그대로 올라옴을 느꼈다. 그것을 억지로 막으려고 나는 엉뚱한 농담을 하며 시간을 지체하고 있었다. 세상에 어떻게 저런 파렴치한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It’s not fair, not fair, not fair…

 

 

¶  영적신부란 무엇인가? 신부는 사실 영적 인데.. 영적이 아닌 신부도 있단 말인가? 하지만, 여기서 영적신부는 사실 어떤 역할, 직함으로 레지오 마리애 조직에서 평신도가 아닌 사제단이 개입된 것을 의미한다. 레지오 마리애는 본당에 소속이 되었고 따라서 본당 신부 밑에서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런 영적신부의 존재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현 주임신부님은 ‘자동적으로’ 레지오 조직의 영적 지도자가 된다. 본인이 좋건 싫건 상관이 없이 ‘지정’이 되는 이런 제도는 사실 함정이 있다. 만약 그 본당 신부님이 레지오 조직을 싫어하거나 잘 이해를 못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것은 충분히 가능한 scenario인 것이다.

100년이 가까워 오는 오랜 역사의 레지오는 경험상으로 레지오 조직에 hostile한 사제들이 많았고 그것은 한마디로 그 단체의 불행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본당 신부가 교체될 때마다 레지오는 기도를 더 할 수 밖에 없다. 조금 더 우리 단체를 이해하고 협조적인 분이 오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 본당은 독특하게도 대한민국의 예수회소속 사제들이 사목을 하시는데 글쎄 예수회와 레지오는 어떤 특별한 관련이 있는지 확실치는 않기에 속으로 제발 우리 단체에 조금 더 협조적이기만 희망하는 정도다. 예수회의 성 이냐시오 영성체계와 레지오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성모신심체계는 사실 직접적인 관계는 찾기 힘이 든다.

7년 여의 레지오 경험에서 나의 중요한 관심사는 바로 이것이다. 본당내의 실질적 ‘지휘본부’인 꾸리아를 누가 지도, 감독할 것인가.. 하는 절박하고 실제적인 문제 때문이다.

오늘 장례미사 후에 나는 이 문제를 의식하며 나의 요청으로 본당 이신부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물론 시급한 당면한 문제는 이미 일어난 ‘난동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목격한 것을 가급적 객관적으로 보고를 드리고 나의 견해를 말씀 드렸다. 끝으로 ‘영적인 지도’를 부탁 드렸다. 이럴 때 신부님의 입장은 참 난처할 것이다. 누구의 편을 들어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듣고 이해하고 ‘높은 해답’을 줄 수 있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기대도 안 한다. 다만 신부님의 간단한 대답은: 지금 hurricane Irma가  코앞으로 돌진해 오고 있는데 ‘우선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하셨고, ‘개개인의 안전이 본당 단체의 존망보다 우선한다’.. 는 의미 있는, 그것이 ‘영적 해답’이었다.

하지만 내가 강조한 것은 ‘본당의 의무’에 관한 것이었는데.. 만에 일이라도 본당 건물 내에서 ‘(언어, 물리적)폭력사태’가 발생한다면 본당은 법적 책임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아주 암담한 조금은 가상적인 scenario..  이에 대한 반응은 “그 때는 ‘구조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였는데, 이 구조적인 조치가 무엇인지는 상상에서나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으로 신부님은 그런대로 내가 기대했던 레지오 영적신부의 역할을 하신 셈이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것은 조금 더 proactive한 ‘영적지도’인데.. 이것은 아마도 현재 여러 가지 여건상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님을 나도 인정을 하게 되었다.

 

Getting out of ‘Legio’.. get out, get out, run away, run away: 이 것이 지난 일주일 동안 나의 머리 속을 맴도는 ‘terrible’ idea가 되었다. 뒤를 안 보고 7년여 동안 앞만 보며 신명 나게 나를 이끌어준 성모님의 이끄심을 기억하며 나만의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어떻게 나에게서 이런 엄청난 생각까지 들게 되었을까?

지난 주 회합 후 단원들의 회식 중에 벌어진 엄청난 광경은 나로 하여금 한 동안 성모님을 ‘완전히’ 잊게 하는 놀랍고 슬픈 재발견의 기회가 되었다. 한 사람 속에는 언제나 선과 악이 엄연히 실존하고 있다는 등골이 써늘해지는 사실에 그저 놀라고, 놀라고, 또 놀라기만 했다.

 

지난 3월 달의 꾸리아 간부라는 어떤 인간에 의한 Kafkaesque happening도 당시에 나에게는 슬프고도 놀라운 것이었지만 이번 것은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것이 되었다. 왜냐하면 예상을 전혀 못했던 devil-coming-out-of-disguise moment였기 때문에 그 놀라움은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혀 1%도 줄어들지 않고 있는 정도다.

암만 흥분한 상태여도 1주일 뒤에도 전혀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이것이다. 이 사태는 전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갔다는 심각한 현실이다. 회복이 100% 불가능하다는 냉혹한 현실이고, 이 문제의 인간은 나에게는 완전히 존재가 사라진 투명인간이 되었다.

 

치졸하고 비열하고 유치한 방법으로 pre-emptive attack을 감행한 이 인간에게 어떤 pricey consequence가 앞으로 필요한지 알려줄 필요는 있지만, 사실 그런 것에 필요한 나의 energy가 한마디로 아까운 불쌍한 영혼 임도 안다.

나의 바로 코 앞에 다가온 대 명제는: 7년 동안 나에게 진정한 평화와 진리를 깨우쳐 준 Frank Duff의 이 ‘용감한’ 단체 레지오와 나의 관계를 더 이상 어떻게 유지하느냐 하는 나에게는 처절하고 실존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이다. 물론 현재는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 dark night이지만 모든 것에는 시간이라는 해답이 있기에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린다. Frank Duff형제님, 제가 가야 할 길을 가르쳐 주세요, 부탁합니다!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을 한지 벌써 7년에 가까워 오면서 한번도 퇴단이나 전입 같은 것은 물론이고 제명이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말처럼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7년이란 세월의 횡포는 별수 없이 나도 처음으로 관심을 갖고 자세히 알아보게 되었다.

 

퇴단은 그 동안 많이 보아왔던 것들이고 그것은 물론 ‘자진 퇴단’이었다. 개인적인 사유로 quit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퇴단은 무엇인가? 강제 퇴단도 있었던가? 레지오 교본에서 명시하는 퇴단은 분명히 단장의 직권으로 본인이 원하건 말건 퇴단을 시키는 case였다. 게다가 퇴단을 시킬 때 ‘설명도 필요 없다’고 나와 있다. 조금 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강제 퇴단과 제명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제명.. 이것은 알고 보면 최악의 case가 되는데, 퇴단의 경우 ‘사유가 없어지면’ 다시 입단이 가능한 반면 제명의 case에는 재 입단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교회법의 ‘파문, excommunication’인 셈이다.

 

최근에 일어난 한 단원의 ‘상상을 초월한’ 불미스러운, 해괴한 폭력적 난동사태를 보면서 이것은 어떤 case가 될까 생각을 한다. 현재로는 ‘자진퇴단’으로 처리가 되고 있지만 내 생각에는 이것은 절대로 제명, 파문의 case라고 굳게 믿는다. 그 정도로 그 단원의 죄는 심각한 것이었고 후유증은 아마도 꽤 오래 갈 것이기 때문에 레지오가 입은 피해는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다.

좋은 것이 좋은 것, 심지어는 ‘보복이 무서워서’ 쉬쉬하며 조용히 처리하려는 것, 한마디로 관련 간부들의 직무유기에 가깝다. 다시는 조직 근처에 못 오게 하려면 제명을 하여야 하는데 그 절차는 어떤 것인가? 아무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그런 case, 전례가 거의 없기 때문인가? 레지오 교본에 그 절차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고, 다른 행동지침 같은 곳에도 없다. 아마도 정부관리의 탄핵 같은 절차가 아닐까? 그만큼 심각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한다.. 이 문제의 단원을 제명시키려는 case를 만들려면 어떤 ‘자원 resources’이 필요한가? 나의 결심을 점점 굳어지고 있다. 이 탄핵, 제명 case를 내가 한번 시도해 보겠다는 생각이다. 절대로 이 case는 쉬쉬하며 덮어둘 것이 아님을 성모님께 맹세하고 싶기 때문이다.

 

서울 ‘무염시태’ Senatus의 website에 다음과 같은 ‘강제’ 퇴단, 제명에 관한 규정이 있고 아마도 그것이 case를 만드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제명의 사유는 내 생각에: 제명대상 3번과 5번일 듯하다.

 

 

퇴단:

  1. 쁘레시디움 단장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다른 간부들과 의논하여 단원을 퇴단 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그러나 그와 같은 자신의 결정에 대하여 쁘레시디움에 설명할 필요는 없다. (교본 138쪽)

이 말은 쁘레시디움에 피해를 끼치는 단원의 거취를 결정하는 단장의 권한이 그만큼 확실하게 유효함을 드러내는 말로 이해해야 하며 결코 단장 독단으로 쁘레시디움을 이끌어 가라는 가르침은 아니다.

 

  1. 퇴단의 경우에는, 퇴단의 사유가 소멸되고 본인이 원할 때 다시 입단할 수 있다. 다만, 3개월의 수련 기간과 선서 과정은 반드시 다시 거쳐야 한다.

 

제명:

  1. 단원 제명의 결정권은 쁘레시디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꾸리아(직속 상급 평의회)에 있다. 제명된 단원은 레지오 단원으로서의 모든 자격을 잃게 되며, 차후 어떠한 경우라도 레지오에 다시 입단할 수 없다. 그러므로 꾸리아(직속 상급 평의회) 단장은 제명 결정을 내릴 때 다른 간부들과의 사전 협의는 물론, 반드시 영적 지도자와 의논하여 결정을 내려야 한다.

 

  1. 일단 제명을 통보 받은 단원은 해당 꾸리아(직속 상급 평의회) 바로 위의 상급 평의회에 제소할 수 있으며, 그 상급 평의회의 결정은 최종적인 것이 된다.(교본 138쪽)

 

 

제명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1. 레지오 조직을 분열시키는 단원
  2. 개인적인 목적을 위하여 레지오 조직을 이용하는 단원(선거 운동이나 상행위에 단원들을 이용하거나 단원들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
  3. 레지오 조직에 상처를 입히는 단원
  4. 교본에 명시된 규율·규칙을 존중하지 않고, 편의대로 변칙 운영을 일삼는 단원
  5.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동료 단원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과도하게 표출하는 단원(이러한 사람은 다른 훌륭한 단원들이 레지오를 떠나게 만든다.)
  6. 조직이나 동료 단원에게 의도적으로 금전상의 손해를 끼친 단원

 

A dark day afternoon.. 대신, dog day afternoon 으로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탄식이 나오는 날의 오후가 되었다. 물은 이미 엎질러진 것이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훨씬 넘어선 것을 보며 7년에 가까운 짧지 않았던 세월을 회상한다.

 

이런 꼴 다시 보지 않으려면 떠나자, 떠나자.. 란 말만 나온다. 어제는 한 마디로 darkest day 였다. Solar eclipse도 아닌 날에 태양이 사라진 것이다. 며칠 전까지 존댓말을 쓰던 ‘불쌍한 영혼’ 한 레지오 단원이, 식당 회식자리에서 ‘청천벽력’ 으로 단장 (a.k.a my wife)에게 반말로  삿대질을 하며 큰 소리로 각종 욕설을 퍼붓는 광경에 나는 외계인처럼 한 마디 말도 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불과 몇 분도 안 되는 시간이 수십 년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그 당시 나에게는 어떤 option이 있는가? 별로 많지 않았다. 식당에서 많은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같이 맞서서 싸우는 것은 나에게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왜냐하면 갑자기 monster로 돌변한 이 ‘인간’은 이미 상식적, 통상적인 차원을 훨씬 넘어 섰기 때문이었다. 비이성적이고 미친 듯한 인간을 대하는 방법은 그런 상황을 빨리 피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나의 머리 속은 sick & tired, sick & tired, sick & tired of …’Legion of Mary’  로 가득 차고, 서서히 demonic rage가 나의 머리를 사로 잡았다. 이제는 내가 demon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사로잡은 demon은 나도 겁이 날 만한 무서운 욕설로 그 인간을 괴롭히고 있었다. 지옥의 끝까지 쫓아가리라.. 그리고, Nuclear Option이란  생각까지 다다르자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이것은 분명히 생시였다. 일어난 일, 엎질러진 물, 다시 되돌일 수, 담을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처음으로 Love to Hate (a human being) 란 말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아주 오랜만에 겪는 darkest day를 나는 지금 맞고 있는 것이다. 이때, 평소 나를 인자하신 눈으로 내려보시던 성모님의 존재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떠난 것인가?

 

2017년 8월 15일, 나를 낳아준 조국 대한민국은 치욕적인 36년간의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날, 광복절이지만 오늘 나에게는 다른 의미로 ‘빛을 다시 보는’ 그런 날이 되었다. 33일 간의 ‘성모 마리아께 봉헌’하는 여정이 끝나고 그 봉헌식이 오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정오 미사 중에 있었고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작년 이맘때에도 나는 그 더웠던 삼복더위 중에 33일간의 긴 여정과 함께 했지만, 33일에서 3일 모자란 30일째 포기하는 불상사를 겪었다. 물론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믿는다. 무언가 나를 유혹한 것임을 알기에 올해 광복절을 향한 여정은 각별히 신경을 쓰고 조심을 하였다.  하지만 거짓말같이 올해도 3일 정도를 앞두고 다른 형태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지만 결사적으로 나는 빠져 나왔다. 이것은 아주 감미로운 경험이 되었다.

작년에 경험했던 것을 journal로 남겼기에 나는 그것을 기억하며 다시 journal을 남겨 두어서 이곳에 남기기로 하였다. 아직은 기억이 생생한 편이지만 아마도 수년 후에 다시 보면 감회가 새롭고 내가 그 동안 어떤 변화를 했는지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록이 되리라 믿는다.

 

나에게는 금메달 같이 소중한 스카풀라와 봉헌초


매일 드리는 기도문

 

성령송가

 

오소서 성령님, 당신의 빛살을 하늘에서 내리소서.

가난한 아버지, 은총의 주님 오시어 마음에 빛을 주소서.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 생기 돋워주소서.

일할 때에 휴식을, 무더울 바람을, 슬플 때에 위로를.

지복 빛이시여, 우리 깊은 곳을 가득히 채우소서.

주님 도움 없으면 우리 모든 이로운 없으리.

허물을 씻어주고 마른 주시고 병든 고치소서.

굳은 풀어주고 마음 데우시고 바른길 이끄소서.

성령님을 믿으며 의지하는 이에게 칠은 베푸소서.

공덕을 쌓게 하고 구원의 문을 넘어 영복을 얻게 하소서.

 

 

 

 

묵상 기도

 

죄에 물듦이 없으신 성령의 짝이 시요, 예수님의 어머니시며

저의 어머니 시요, 주인이시며, 모후이신 마리아님,

저를 온전히 당신께 드리며

당신을 통해 예수님께 온전히 속하여 있기를 원하오니

성령으로부터 제게 영광과 힘을 간구하여 주시고

세속 정신으로부터 저를 깨끗하게 해주소서.

오소서, 성령님!

저의 마음을 당신으로 채워주시고

안에 세속적인 정신을 없애주소서.


아멘.

 

 

 

바다의

 

바다의 별이요, 하느님의 어머니시여

평생 동정이시며, 하늘의 문이시여, 하례하나이다.

죄인의 사슬 풀고, 선을 구해주소서.

기묘하신 동정녀요, 가장 양선 하신 이여.

저희를 죄에서 구해, 착하고 조찰케 하소서.

하느님 아버지께 찬양과

그리스도께 영광과

삼위이신 성령께 같은 존경 있어 지이다.

 

 

33일 매일 실천 사항

 

  1. 하느님과 성모님의 현존을 의식하면서 그날의 주어진 내용들을 주의 깊게 읽고 그날의 주제에 따라 묵상하도록 한다.
  2. 그날의 주제에 따른 자기 성찰을 철저히 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덕을 닦도록 노력하고 하느님의 도움을 청한다.
  3. 해당 주간에 매일 드릴 기도 중 ‘성령송가’와 ‘바다의 별’을 제외하고는 매일 드리지 않아도 된다.
  4. 대죄는 물론이고 아무리 사소한 잘못이라도 범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한다.
  5. 될 수 있는 한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영성체를 하도록 한다.
  6. 묵주기도를 매일 바친다.
  7. 적어도 하루에 1시간은 이 봉헌 준비에 할애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아침에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거나 텔레비전 등을 보는 시간을 줄이고 봉헌 준비에 필요한 기도와 묵상시간을 마련하는 확고한 결심을 해야 한다.
  8. 그날의 묵상 내용이나 성찰한 것들과 결심사항 등을 노트에 옮겨 적는 습관을 들이도록 한다.
  9. 자신의 영성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끊고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도록 노력한다 (TV를 비롯한 매스미디어의 절제, 흡연과 음주의 절제,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장소의 출입을 삼가 함).

 

 


 

2017년 7월 12일 저녁, 이것이 나에게 조용히 하루 전에 다가왔다. 우연 반, 필연 반.. 왜 성모님은 나에게 이것을 권하시는 것일까? 왜 이곳으로 부르시는 것일까? 성모님, 저는 이미 이 길이 하느님께 가는 최선의 방법이란 것을 배웠고 실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봉헌을 하게 되면 2번째 봉헌갱신을 하게 된다. 작년 같은 때에 시도한 것, 정말 순조로웠지만 기가 막히게도 마지막 3일을 남기고 포기를 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지금 기억을 하려고 해도 자세한 상황이 가물거린다.. 나의 자제력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사실 후회도 안 했던 기억까지 나니.. 성모님, 무슨 악이 나를 덮쳤습니까?

 

올해는 사실 별로 큰 생각을 안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이것을 해야겠다, 아니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다시 봉헌을 위한 노력을 하면 또 다른 진리를 찾을 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도 생긴다. 귀찮은 생각이 없을 리는 없지만 그래.. 이번 2017년 복더위를 이 루도비코 ‘마리아’ 성인이 찾아낸 마리아의 진리를 찾으며 이겨보자!

 

 

 


 

첫째 시기 12일: 세속 정신을 끊음

 

 

첫 12일 동안 자신 안에 있는 세속 정신을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 매일 매일 자신을 성찰하고, 세속에 대한 인식을 구하고, 세속을 지겨워 하며, 자기부정, 가난을 사랑, 침묵, 은둔, 겸손, 순결, 정직, 절제, 순명의 을 실천하도록 노력한다.

 

 

 


제 1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당신 제자로 부르심

2017년 7월 13일 (목요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가장 완전하고 빠른 길은 성모님에게 우리가 온전히 봉헌되는 것이다.

 

 

독서: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마태 16, 24)

 

  1.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제자?

예수를 따르는 누구나 를 당신의 제자라고 부른다면, 나도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십자가의 신비를 깨달아야..

용기와 결단성 있는 영웅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모든 일을 참아 받기로 결심한 사람..

이러한 결심이 없는 사람은 십자가의 벗 가운데 있을 자격이 없다

 

  1. 자기를 버리고

 

가난과 십자가의 굴욕과 고통만을 영광으로 여기고 자신을 끊어 버려야 한다.

교만, 지식과 재능, 위대한 철인, 자유사상가 모두 멀리해야 한다

거만한 신심가나 세속주의자, 모두 쫓아내야 한다.

 

 

  1. 십자가를 지고

 

나 만에게 맞추어진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

나만의 십자가에서

무게는: 매일 겪어야 하는 물질적 손해, 굴욕, 고통, 질병 정신적 고통 등이다.

길이는 중상모략에 시달리고, 병으로 눕고, 동냥할 처지가 되고 유혹과 냉담과 마음의 권태, 정신적 고통으로 신음하는 나날의 연속.

넓이는: 친구들, 가족들, 친척들로부터 받는 냉대와 괴로움.

깊이는: 주님이 주신, 누구에게도 위로를 받을 수 없는 내적 괴로움.

 

  1. 따라야 한다.”

 

십자가를 지고 그것을 정복자의 무기와 왕의 지팡이로 삼아야 한다.

십자가를 지는 것 보다 더 필수적이고 유익하면서도 감미로운 것이 없고 영광스러운 것이 없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 (요한 8, 12)

그리스도의 생활과 행실을 본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힘쓸 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묵상함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충분히 알아듣고 맛들이고자 하는 사람은 그 일생을 그리스도와 맞추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묵상과 생활실천:

 

나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고통을 따르라는 첫 날의 주제는 사실 매력적인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영광을 위한 현세의 고통, 하지만 현재도 중요하지 않을까? 세상 것을 미워하라는 말을 해석하는 것, 나는 아직도 거부감이 드는 것, 부정할 수가 없다. 세속적인 것을 전부 버리라는 것도 그렇다. 그만큼 나는 세속적이기에 그런 충격적인 느낌을 받는 것일까?

아하! 이 고통이란 바로 세속적인, 쾌락적인, 달콤한 것들을 멀리하는 데에서 오는 고통일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고통이다. 세상사 만이 고통이 아니다. 이것이 고통이다. 아니 고통처럼 보이고 느껴지는 것이다.

나를 조금이라도 세속적인 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실질적인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현재 하고 있는 일상적인 신심활동 이외에 더 활동을 늘리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대로 친교를 이루거나, 여흥을 하거나 놀러 다니거나 (그런 것이 거의 없는 우리들은?) 하는 것들을 더 줄이라는 것인가? 예수님, 성모님, 과연 무엇입니까?

 

 

 


제 2일, 양 진영

2017년 7월 14일 (금요일)

 

그리스도의 진영, 선 善 과 루치펠의 진영, 악 惡 중에서 나는 어느 진영에 서있는가?

 

 

독서:

 

구원의 문은 좁고 들어가려는 사람은 많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우리의 적은 권세, 세력의 악신들, 암흑세계의 지배자들, 하늘의 악령 들이다. 이에 진리와 정의로 무장, 복음과 믿음의 방패를 잡고, 성령의 칼을 쥐어야 하며, 언제나 기도하며 하느님의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편과 세상의 편:

나의 잔치, 천국의 월계관, 에 자리를 같이 하겠다는 벗들은 많으나 내 십자가, 고통과 굴욕, 와 함께 하겠다는 벗은 적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은 순수하여야 하며, 한번도 위안을 못 받는다고 하여도 항상 예수님을 찬미하고 항상 감사하여라.

 

 

묵상과 생활실천:

 

선과 악의 세계, 분명히 알고, 보이고 존재하는 것들.. 이런 이원론적인 생각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그 중간은 없나? 9/11 직후 Bush의 경고: Either You’re with us or against us.. 이 말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는데..

오늘도 오늘의 말씀들도 어제의 것들과 거의 같은 것인가. 쾌락적, 육감적 같은 세속적인 것들을 피하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영생의 길인 것인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면 충족한 것인가? 분위기에 휩쓸려 감상에 젖고 그것을 즐기는 것도 세속적인 것인가?

하느님의 현존을 믿고, 말씀을 믿으며 실천하고, 영생의 희망 속에 살아가는 것, 나는 이제 조금은 자신이 있다. 과학적이거나 철학적이거나 나는 모두 믿으며 아니.. 믿고 싶다. 1%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나는 하느님의 ‘물리적 현존’ 과 역사적, 신학적인 예수님의 존재를 믿으며 믿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나를 세속적인 인간으로부터 믿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 나의 최후의 노력인 것이다.

 

 


제 3일, 결단

2017년 7월 15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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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Louis Marie Grignion de Montfort

¶  루도비코 마리아의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의 정신에 따른,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2017년 8월 15일 성모승천 the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대축일에 봉헌이 되는 그 준비 33일의 첫 날이 조용히 다가왔다.

작년 이 맘 때를 기억한다. 나름대로 성실한 준비를 하다가 봉헌 3일 전에 포기를 했던, 결과적으로 쓰라린 추억을 만들었고 분명히 나의 주위에는 시기심에 가득 찬, 성모마리아를 증오하는 악마의 존재가 있었을 것이다 . 나는 왜 그에게 져야만 했을까.. 아직도 후회를 한다. 이 ’33일 봉헌’에 대해서 완전히 잊고 살다가 일 년 뒤에 나에게 조용히 나타났고, 불현듯 ‘다시 시도를 하자’ 로 정해 버린 후 마음이 홀 가분해 졌다. ‘이번만은..’ 하는 각오를 하며..

 

2012년 8월에 첫 봉헌을 했고 2014년 3월 25일에 봉헌갱신을 했었다. 이번의 봉헌은 그러니까 2번째 봉헌갱신이 되는 셈인가.. 총 3번째 루도비코 성인의 발자취를 따르게 되는데, 같은 ‘준비’를 하는 것이지만 절대로 개개인에게 같을 수는 없다. 나 자신이 그 동안 바뀌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번의 준비를 하며 나는 “매일 묵상일지 daily journal”를 Microsoft Office, OneNote format으로 남겨 두었기에 다시 그것을 보며 내가 어떤 생각을 당시에 했는지 알 수가 있기에 조금은 흥미롭기도 하다.

 

첫 시작은  12일간 계속되는 ‘세속 정신을 끊음’ 의 첫날이 된다.  이 12일 동안 묵상은 모두 현세의 표준 가치관(권력 명예, 육욕, 지성, 집단 성, 쾌락, 거짓, 위선, 무절제한 자유, 불안, 근심, 죽음 같은 것들) 이 된 모든 것들을 뒤 엎는 것이라서 조금은 거부감을 받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을 하나하나씩 분석하며 묵상을 하면 ‘신기하게’ 서서히 받아들여 지는 것.. 바로 이것이다.. 다시 해 보는 이 묵상들이 이런 작은 기적들을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은 무더운 한 여름에,  신기하고 시원한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  Dementia: 90도를 육박하는 7월 중순 전형적인, 알맞게 더운 날, 우리 자비의 모후 레지오 단원 3명 (단장, 서기, 자매 단원)은 약속이 된 대로 Roswell Nursing & Rehabilitation 시설을 방문하였다. 나와 연숙은 이미 몇 차례 방문한 곳이지만 오늘은 단원 중 집이 가까운 곳에 사는 분이 동행을 하게 된 것이다. 일종의 ‘도제제도 apprenticeship’ 를 따른 것인데 경험 단원이 경험이 덜한 단원과 같이 활동을 하며 배우게 하는 것이다.

 

이 역사가 깊은 시설은 상당히 덩치가 큰 곳인데 거주하는 많은 분들이 고령의 dementia, Alzheimer 환자나  재활치료 환자들이다. 우리가 찾는 분은 80세가 넘으신 할머님이신데 흔히 말하는 ‘중증 치매’ 환자다. 가족사진을 보면 대가족으로 참 보기가 좋지만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이런 시설로 보냈을까 한참을 생각하게 된다. 레지오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환자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을 보아 왔지만 이 자매님이 나에게는 처음 대하는 ‘중증 치매’ 인 case다.  각종 질환으로 고통을 받지만 이렇게 ‘망각증 dementia’ 까지 겹친 분들을 대하면 정말 할 말을 잊는다. 어떻게 이런 가혹한 (환자나 가족친지 들에게) 고통이 있을까?

 

가벼운 망각증인 분도 많이 찾아 보곤 했고 비교적 대화를 하는데 조금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렇게 심한 ‘치매’인 case에는 사실 대화의 의미가 거의 없을 정도다. 그야말로 동문서답의 계속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찾는 이유는 혼자 계시게 하는 것보다는 조금 낳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이런 시설, 그것도 ‘지하층’에 계신 나이 드신 분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저려오지만, 어쩔 것인가? 우리의 희망에 사람을 조금이라도 보는 것이 그 망각의 세계에서도 위안이 되리라는 것, 그것 하나 뿐이다. 이 분들의 머리 속에 있는 세계는 과연 어떤 것인가.. 나는 그곳으로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

 

¶  2017년 (처음에는 천구백..으로 쓰기 시작을 했는데, 역시 나는 아직도 나의 잠재의식은 20세기에 머물고 있는지..) 7월 상순 上旬이 지나가는 시점에 다시 올해 아틀란타지역의 날씨에 감사를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한마디로 끈끈하지만 시원한.. 그러니까 muggy but cool.. 바로 그런 날씨인데 신기하게 magic number 90도를 넘은 적이 거의 없다. 요새 이 지역에서 90도 이하로 머물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평균 이하인 것이 거의 분명하다. 특히 오후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소낙비의 매력은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다.

우리 집에 ‘하숙’하고 있는 ‘불청객’ 3마리 너무나 귀여운 2달 된 kitten들 때문에 thermostat를 1도나 내린 덕분에 우리도 시원하게 지내지만, 이렇게 은혜로운 mother nature덕에 생각만큼 a/c 가 힘들게 돌아가지는 않고 있다.

내일이 ‘초복’이니까.. 분명히 muggy & hot으로 바뀔 수도 있지만 상관없다.. 지금까지는 받은 ‘인자한 날씨’만도 감사하기에 충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  어제는 2주일 만에 아틀란타 한국 순교자 ‘본당’엘 갔었다. 꾸리아 월례회의가 있기에 간 것이지만 2017년도 예비신자 교리반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해서 나에게는 다른 choice가 없었다. 집 근처 동네 미국본당과, 20마일 떨어진 한국본당을 번갈아 가며 가는 것, 이제는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흡사 2중 생활, 2중 국적, 겹치기 출연.. 그런 말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레지오 이외에도 이제는 낯익은 얼굴들이 이곳 저곳에 보여서 이곳 본당도 정이 든 기분이다. 7년 전쯤 다시 이곳에 나오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이지 연숙을 빼고는 ‘하나도’ 아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참 많은 발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의 시발점은 역시 성모님의 군대, 레지오 마리애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곳에 적을 두기 시작한 것, 내 인생 후반기에 대 전환점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날 꾸리아 월례회의에서는 예고한 대로, 꾸리아 회계선거가 있었다. 회계라는 직함이 별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이번 선거는 나의 촉각이 곤두서는 그런 것이었다. ‘절대로 뽑혀서는 안 되는 인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처음인가..

부정적인 상황을 안고 임한 투표는 ‘하늘이 도와서’, 전혀 이름도 들어보지도 못한 ‘새 얼굴, 새 피’가 선출이 되었다. 희망은 ‘현재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라는 논리인데.. 이것은 절대로 바람직한 꾸리아 간부들의 상황.. 절망적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희망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총사령관 commander-in-chief’ 성모님의 손길이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우리 레지오의 ‘실질적’ 최상급 평의회는 꾸리아 이기에 이것의 중요성은 강조를 아무리 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실제로 레지오의 기능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내가 진단한 현재의 상황은: uninspiring, stagnant… 더 no-nonsensical, proactive한 꾸리아 간부들과, 평의회 의원들(쁘레시디움 간부들)이 나오기만 기대하고 있다. 다음 달에는 꾸리아 부단장 선거가 예정이 되어 있어서 당분간은 조금 신경이 쓰일 듯 하지만 이것도 역시 ‘초자연적인 손길’ 성모님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  꾸리아 월례회의에 ‘희귀동물’, 중장년 남성단원이 하나 더 늘었다. 한 때 우리의 미국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daily mass regular 였던 P 카타리나 자매님 부부가 평의회 단원으로 참석한 것이다. 이 남편 형제님은 레지오에 입단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했지만 벌써 서기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우리 부부와 똑 같은 상황이어서 조금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단장인 wife ‘밑’에서 서기를 맡고 있는 것, 나는 벌써 5년째로 접어들고 있지만 이들은 이제 시작인 것이다.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부부가 같이 단원, 간부 등을 맡으면 이점이 상당한 것이었다. 제일 자명한 사실은 우선 ‘부부간의 대화’에 많은, 상상을 못할 정도로,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고, 이것의 추론은: 부부 관계, 가족 관계에도 큰 도움을 준다는 놀라운 사실. 또 한번 진부한 표현을 빌리면: ‘아~ 내가 이 사실을 10년 전에만 알았더라면..’

본당에서 오랫동안 음양으로 봉사를 해 왔던 고대출신 남편 형제님, 건장한 체격과 인상 등으로 나보다 젊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거의 2살 선배 격이었다. 3년 전 ‘구수한 인상의 돼지띠 형제님’ 전요셉 형제 이후, 오랜만에 우리 또래를 만난 것이 너무나 반가웠다. 아직도 business에 시간을 쓰고 있지만 곧 retire를 생각하는 모양으로 그 후에 할 것들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성당근처 ‘널찍한’ bakery shop Mozart에서 부부가 오랜 시간 이야기를 했는데,  알고 보니 전공이 기계공학이었고 관심이 나와 아주 비슷하였다. 쉽게 말하면.. Science & Religion 분야라고 할까.. 이 ‘상극으로 보이는’ 두 분야가 서서히 최근 30년 동안 접근을 하는 것에 ‘환호’를 하였다. 무섭게 변하고 있는 물리적 접근방식을 주목하며 역시 ‘절대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등 정말 흥미 있는 시간이었다.

 

¶  팔순 八旬: 예전에 팔순이라면 사실 제대로 실감을 못하기도 했다. 그저 아~ 오래 사셨구나.. 하는 가벼운 탄성 같은 것 정도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내가 칠순과 연관이 되려는 이 시점에서 팔순의 느낌은 그렇게 ‘오랜 인생’ 같지는 않다. 환갑이 한 물 간 이후 칠순조차 별 큰 뜻을 느끼지 못함은 역시 나이에 비해서 모두가 건강해지고 있다는 뜻일까?

우리 레지오 단원 중에 팔순 생일을 맞이하는 단원이 있었고 이번에는 그냥 단순한 생일회식에서 벗어나 생일카드와 birthday cake을 준비한 팔순 기념회식을 치렀다. 본인은 물론 기쁜 마음으로 회식에 참여했고 단원들도 축하하는 분위기를 마음껏 즐겼다. 하지만 나이가 제일 많은 이 팔순의 자매님이 다른 단원들에 비해서 훨씬 건강한 편에 속한 것, 물론 좋은 일이지만 건강은 나이와 반드시 반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낀다.

 

¶  이제 나에게 연도는 생소한 것이 절대로 아니다. 아니, 익숙해졌다고 생각을 한다. 하면 할 수록 그렇게 마음의 평화를 주는 ‘곡 哭’ 도 연도 말고 어디 있을까? 너무나 한국적인 정서가 배어있는 연도. 연옥의 영혼을 위한 기도, 가톨릭의 장례 형식이지만, 연옥을 믿지 않는 개신교에서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오늘, 우리에게 조금은 생소한 이름의 어떤 자매님의 연도가 오늘 정오 미사 후에 있었다. 고인의 향년 91세가 그렇게 특별할 것은 없지만 다른 때보다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연도를 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오래 전부터 들었던 ‘소문’, 성령운동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어떤  사제가 옷을 벗고 결혼을 한 case 였다. 그 ‘환속’의 과정과 이유는 잘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하느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오늘 연도 고인의 사위가 바로 그 ‘전 前’ 사제라고 하는데 소문에서만 듣다가 오늘 처음으로 가까이서 보게 된 것이다. 그것이 전부인데.. 지나고 보니 왜 ‘내가’ 그렇게 관심을 갖고 연도에 참석했을까 나 자신이 조금은 당황하게 되었다.

 

¶  너무나 놀라운 부음 訃音을 오늘 늦게 접하고 머리가 띵~ 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보험 전문인인 James형제, 서울 외대출신, 오랜 친분을 가진 ‘최형’의 바로 밑 동생, James (Choi) 로 알게 되었고 2004년 경부터 한 동안 그의 insurance agency의  computer system을 보아 주면서 자주 만나기도 했던 그가 오늘 ‘갑자기, 예고도 없이’ 심장마비로 타계를 한 것.. 칠순도 되지 않는 나이에 예고 없이 찾아온 죽음.

근래에는 통 만날 기회가 없어서 거의 잊고 지냈던 것도 사실이지만 간접적으로 최형을 통해서 어쩌다 소식을 듣기도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오래 전에 심장 검사에서 담배를 줄이라는 의사의 충고를 받았다고 듣기도 했지만 아마도 철저한 금연을 못 한 모양이다. 하기야 내가 그의 사무실에 찾아가면 ‘꼭’ 담배를 피러 사무실 밖으로 나오곤 했고 나도 오랜 만이라고 같이 피웠던 기억도 있으니.. 흡연으로 인해 혈관이 막혀서 생긴 불운의 결과가 아닌가 짐작을 한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한 분밖에 없는 형님네와 관계가 그렇게 원만하지 못했던 것을 우리도 알기에 이렇게 갑자기 떠난 것이 가슴이 아프다. 그런 것 다 아시는 그의 어머님의 심정을 생각하니 더욱 그렇고, 최근에 가까이 알고 지냈던 누님과는 각별한 사이였다는데 얼마나 애석할까. 어머니도 없고 형제도 없는 나로써는 최형네의 대가족이 항상 부러웠지만 그만큼 어려움도 있는 모양이다. 이제는 연도나 장례미사에서나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은 James 형제, 부디 편안히 쉬기를..

 

¶  오늘은 레지오 주 회합에 절반의 단원들이 결석을 하였다. 10명에서 5명이 되니 조금 생소한 느낌을 들었지만 다른 쪽으로 조금은 한가하고 편한 느낌도 있었다. 레지오 단원의 의무 중에 제일 으뜸이 주 회합에 출석을 하는 것이라고 모두들 알고 있지만, 완벽하게 이것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다. 문제는 이것이 습관성인가 아닌가 하는 것인데, 나는 이제 이 결석하는 pattern을 보고 거의 그 사람의 character를 짐작할 수도 있게 되었고 그 사람의 ‘다른 면에서의 성공여부’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우리 단원들의 결석 이유를 보면: 어쩔 수 없는 것, 시간 관리를 철저히 못 한 것, 단순히 심각한 생각이 없는 것 등으로 구분이 되는데 나의 옛 모습을 생각하면서 조금 더 분발을 못하는 단원들을 보면 조금 안타까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그저 뒤에서 기도나 응원을 할 정도 밖에..

 

¶  문재인, 어떤 인간인가? 거의 40년간 ‘조국의 정치’를 외면하고 살았던 내가 이번에는 왜 이것이 그렇게 신경이 쓰였는지 나도 잘 모른다. 젊은 시절 나의 정치무관심은 이해가 가지만 50-60대에 들어와서도 변치 않았던 것은 나도 놀란다. 하지만 정치와 나이는 조금 비례 관계가 있는가? 이제 조금씩 ‘ political actor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을 하는 느낌이 든다.  특히 작년 말의 미국 Trump disaster이후에 더 그런데 왜 그런가? 결론은 근래 미국과 유럽의 추세가 extreme and populism 의 전성기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우리는 이미 9/11  이후 미국 정치철학의 극단화가 시작되었음을 보아 왔고 그 결과가 monster Trump를 탄생시킨 것. 

‘우리세대의 대통령’ 박정희. 그의 딸 박근혜가 그런 모습으로 사라진 것으로 이제는 ‘우리 세대의 모든 것이 사라졌구나’ 하는 아쉬움을 남겨주었다. 요새 그곳 정치인들을 나는 전혀 모르기에 왈가왈부할 수 있는 자격이 없지만 ‘세대적인 세계관’ 을 따라 그들을 평가하는 정도. 모두들 ‘문재인이 되면 큰일’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왔다. 뭐가 큰일인지는 간단하다. 그가 빨갱이라는 것, 그것 하나였다. 빨갱이라는 말만 들어도 잠에서 깨는 나에게 그 말은 ‘올바른 판단’ 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나의 선택은 ‘정당한 선거에 의해서 뽑힌’ 그를 인정하는 수 밖에 더 있겠는가? 제발, 제발.. 북쪽에 일방적으로 ‘퍼다 주는 인상’만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뿐이다.

 

¶  싸늘한, 아니 아예, 이른 봄의 꽃 시샘 추위를 연상하게 하는 싱그러운 5월 달 첫 토요일 아침. 지난 밤에는 급히 ‘강제로’ 70도에 hold했던 2층 thermostat로 말미암아 central heating 이 밤새도록 ‘겨울의 소음’을 내며 돌아갔다. 웬만하면 bed blanket warmer로 견디면 되겠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2층 small bedroom 구석에서 3주 째 젖을 먹으며 자라고 있는 5마리의 kittens들이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분명히 이런 ‘추위’는 처음일 것이라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지나간 주일들, 초여름의 끈끈함을 느끼게 하는 ‘무더위’의 맛을 보여 주더니 역시 자연은 공평한 것인가.. 기억 속의 5월, 언젠가는 이렇게 unseasonable 한 음산한 추위를 꼭 보여 주었다. 역시 한치도 어김없이 싱그러운 성모성월의 벽두에 이렇게 끊임없이 쏟아지는 폭우가 하루 종일 내리며 ‘5월의 추위’ 까지 찾아온 것이다.

 

지난 주에 그렇게도 덥게 느껴지던 날 올 처음으로 아래층 마루 아래  crawlspace에 들어갔다가 central furnace의 pilot light를  아예 꺼버리고 나온 것이 조금은 후회가 되었다. 이제는 아래층의 central heating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속단을 한 것이다. 당시에는 ‘설마 다시 추위 질까?’ 하며 그렇게 한 것인데 오늘 아래층에 내려가니 이건 완전히 냉장고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kitchen에 남겨둔 toy같은 space heater 덕분에 ‘동사’는 면했다.  그러면서 생각에.. 아마도 이번의 싸늘함이 올 여름 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추위’가 아닐까.. 이제부터는 cooling system에 온통 신경이 쓰일 계절이 아닌가? 아~ 이제는 우리의 ‘고철’ a/c (air conditioner)가 올해는 무사히 견디어 줄까.. 하는,  혹시 무슨 일이.. 하는 자괴감에 젖는다.

 

 

¶  레지오 피정, 성모의 밤: 2017년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레지오 주관  2일간의 ‘연’ 피정이 숨가쁘게 바쁜 스케줄로 피곤한 우리를 맞이했다. 한 동안(1~2 년간?) 피정이란 곳에 못 가보아서 생소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했지만 반갑기도 했다. 지난 4~5년 동안의 내가 가보았던 레지오 피정의 느낌들이 만족스럽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가본 것들은 대부분 ‘집을 떠난, 진짜 피정’ 들이었지만 이번은 본당에서 하는 ‘편하지만.. 느낌이 덜 한’ 그런 것이고 이틀 째 날의 스케줄은 조금은 아찔한 것. 아침부터 밤 9시를 넘어가는 숨이 찬 하루였다.

피정 둘째 날의 그 바쁜 스케줄은 사실 피정과 상관없이 본당의 다른 행사인 ‘성모의 밤’ 이 저녁 늦게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사실 그것은 꼭 참가하고 싶은 것이어서 비교적 긴 시간을 성당에서 보내야 했다.

대한민국 안동교구 정희욱 ‘원로사제’ 신부님이 주도한 피정 자체는 첫날밤의 slow start로 조금 실망감을 떨칠 수가 없었지만, 끝 마무리가 활기에 찬 것이어서 결과적으로 grade B+ 정도는 될 것이다. 내가 본 이번 피정 강론의 문제는 이것이다. 성모신심을 ‘체험’으로 강조한 것은 만족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너무나 일반적이고 깊이가 결여 되었다는 사실 이것은 성모신심이 생소하거나 거부감이 있는 일반 가톨릭 신자나 개신교인들에게는 잘 맞는 정도의 message였다. 하지만, 우리 같은 레지오 단원들은 이미 이런 정도의 신심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피곤한 긴 하루를 마감했던 ‘성모의 밤’.. 이것 때문에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올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성모의 밤.. 작년 같이 성모동산 앞 주차장에서 ‘어두운 밤을 밝히는’ 멋진 모습을 상상했지만 예상을 뒤엎고 실내인 대 성당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다행이었다. 그렇게 화창하던 날씨가 일기예보가 정확히 예고한 대로 부슬비가 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날 오랜 만에 들어보는 ‘생음악’, GounodAve Maria, violin 연주(piano와 duet) 는 성모님의 청순함을 아낌없이 느끼게 하는 그런 연주였는데 그 violin 자매님, violin연주의 ‘백미 白眉’를 들려준 것 같아서 고맙기까지 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신 이재욱 요한 본당신부님의 모습도 좋았고, 성모님께 바치는 ‘시적인 글’도 너무나 좋았다. 남녀노소가 골고루 참여하여 우렁차게 바친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는 평소에 하던 때의 느낌을 훨씬 넘는 그런 장엄했던 것. 레지오 연피정 주제인 ‘성모신심’의 절정을 보여주는 듯한 성모의 밤, 나에게 있어서 ‘특별한 피조물, 성모 마리아’는 과연 지난 7년 동안 어떤 의미였을까.. 죽을 때까지 음미하여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2017년 3월의 hump day로 힘겹게 넘어가려는 날 3월 14일, 오늘이 내가 꼽는 올해의 첫 그날, truly  bizarre kafkaesque day가 아닌가 싶다. 아주 가끔(십 년쯤에 한번 정도) 경험하는 이런 ‘괴상하고 이상한 날 Franz Kafka도 놀랄만한’, 이날은 간단히 말하면 memorably truly BAD day가 되고 말았다. 바라건대 이와 같은 날은 가능하다면 다시는 맛 보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니면 10년 이후에나 다시 경험하게 되기를 바라게 된다.

 

이날의 ‘괴상한 사건’은 timeline으로 펼치면 길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간단한 것이다. 한마디로: 레지오 주회합 시간에 방문을 온 어떤 꾸리아 간부의 ‘해괴망측한 행동’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야말로 bizarre, bizarre 그리고 또 bizarre 그것도 부족해서 이거야 말로 kafkaesque란 괴상한 단어가 100% 딱 들어 맞을 것이다. Franz Kafka의 classic ‘The Trial’의 불행한 주인공 K의 심정을 느낀다. 도대체 이 해괴한 행동에서, 나는 (아니 우리 모든 단원들은) 무엇이 문제였는지도 모르고 순식간에 attack을 당한 것인데.. 솔직히 말해서 이사건 주인공의 정신상태까지 생각해볼 정도였고, 하도 밥맛이 떨어져서 입을 딱 씻고 6개월 장기유고를 선언할 태세까지 갖추고 있는데, 참 어쩌다 우리 레지오가 이 지경까지 흘러온 것인지..

 

오늘 저녁에 우리부부는 개인연도를 하고 있었다. 이틀 전에 ‘갑자기’ 타계하신 강 마리아 자매님, 향년 90세로 하늘로 떠나셨다. 인생 90년은 비록 짧지는 않게 느껴지지만 우리에게는 결코 더 오래 사실 것, 100세는 사실 것으로 안심을 하며 지내던 터에 더욱 슬프고, 당황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복잡한 심정으로 고인의 영결행사 대신 이렇게 집에서 연도를 한 것이다. 부디 연옥의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시도록 간절히 빌었다.

 

강 마리아 자매님, 우리와 처음 만난 것 레지오 수첩을 찾아보니 아마도 2013년 11월 경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모습들을 비교적 자세히 기억한다.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 준비로 난타 연습이 진행 중이었고 지금은 귀국하고 없는 전요셉 형제와 친해지려고 하던 그 때, 레지오의 다른 단원과 친분이 있었던 ‘할머니 교우’ 였던 강 마리아 자매님이 senior home에 사시는데 ‘치매기’가 있고 성당엘 나올 수 없으니 봉성체를 부탁한다고 알려 왔다. 나는 ‘봉성체 자격증’ 이 없지만 다행히 연숙은 그것이 가능해서 나는 봉성체 동행으로 따라가기 시작한 것이 인연이 되었다.

 

알고 보니 강마리아 자매님은 전요셉 형제와도 이미 친분이 있었다. 몸이 성할 당시 성당 미사시간에 옆 자리에 앉으시곤 했다고 했다. 그래서 한번은 전요셉 형제도 함께 봉성체를 가기도 했다. 사시는 곳은 ‘비싼’축에 속하는 senior home이었는데 비록 환경은 좋다지만 외롭게 사시는 것은 별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조그만 방에서 시간을 보내시는 것.. 보기에도 쓸쓸하게 보였다. 하지만 강 마리아 자매님은 활달한 성격이고 항상 웃으시는 것이 우리 어머님 같은 느낌까지 들 정도 친하게 되었다. 비록 경미한 기억상실증dementia 같은 것은 있었어도 우리가 방문 당시에는 거의 정상인 같이 보였다. 이래서 거의 2년 여의 봉성체 인연을 맺기 시작하게 되었다.

 

치매, 그러니까 망각증상은 분명히 있었으나 특별한 질환이나 쇠약함이 별로 없는 자매님, ‘약 하나도 안 먹는다’ 고 자랑을 하시기도 하고 일제시대 부산에서 미래의 남편 되시는 분이 지나가는 자기를 ‘꼬시려고’ 할 때의 ‘기꾸꼬 짱!’ 하며 불렀던 기억, 일본 군가 같은 노래를 가사를 똑똑히 팔을 흔들며 부르시던 모습 또한 새롭다.

 

‘잘 나가는 가족들’을 두신 자매님, 어쩌다 이렇게 미국 아틀란타의 어느 조용한 양로원에 오시게 되었는가? 절대로 남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자랑스러운 아드님 부부도 가까이 살고 있지만 같이 살지는 않았다. 경험 있는 관록이 붙은 회계사였던 아드님, 경제적으로 부유했지만 어머님을 모시기에는 너무나 바빴던 모양이지만, 우리 어머님을 내가 모시지 못하고 보낸 나의 처지에서 그런 것을 comment하는 것조차 죄스럽게 느껴진다.

 

한 번은 자매님이 가출했다고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양로원 근처를 방황하다가 발견되어 큰 문제가 없었지만, 그것으로 우리는 분명히 망각증이 더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24시간 주위의 보호를 받고는 있지만 그런 사고는 날 수가 있는 모양.  한번은 가보니 무거운 장거리 여행용 가방을 챙겨두고 계셔서 어디 가시냐고 여쭈었더니 ‘나도 여행을 가야겠다’고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지만 양로원 측의 말이 자주 저러신다고 했다. 짐작에 아들네 부부가 ‘세계일주’를 갔는데 따라가시려고 한 모양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지난 몇 개월 봉성체를 거르게 되었는데, 이유는 간단하지 않았다. 우리도 바빴고 ‘치매 환자의 봉성체에 대한 이견’ 때문이었다. 신부님께서 가급적 치매환자 봉성체를 자제하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강마리아 자매님을 찾지 못하고 지나다가 이번에 정말 놀랍게도 타계하신 소식을 접했는데, 솔직히 머리가 땅! 하고 얻어 맞은 느낌이 들었다. 죄송, 죄송..죄송합니다.. 라는 말 밖에 할 말을 잊었다. 봉성체를 못해드려도 찾아라도 뵐 걸.. 하는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사실 몸이 성한 우리 같은 신자로서 봉성체 봉사는 그 분들에게 드리는 도움보다도 그로 인해 내가 받는 은혜와 은총이 더 많음을 항상 절감하곤 한다. 대부분 인생 선배님들은 그들에게서 나는 산 역사 공부를 하고, 신앙공부도 하게 되며 앞으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지도 배우는 등.. 참 알고 보면 내가 더 도움을 받으러 그 분들을 찾아 뵙는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아직도 환~하게 웃으시는 강마리아 자매님의 얼굴.. 나에게는 항상 살아서 ‘찾아 주어서 고맙데이…’ 하시면 양로원 문까지 배웅해 주시던 조그만 체구의 마리아 자매님.. 영원히 살아 계실 것이다.  성모 마리아와 모든 성인들이여, 이 자매님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기를 빌어 주소서…

 

지나간 거의 반년 이상 줄기차게 레지오 서기록 공지사항에 적혀 있었던 것이 바로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 이것이 드디어 끝이 났다. 대강 이 행사가 끝날 즈음이면 대림절 이후 늘어나는 촛불의 숫자를 필두로, 성탄절과 송년의 기분을 조금 느낄 수 있는 시기가 된다. 올해에도 예외 없이 대림초 2개가 켜지는 날 주일, 12월 4일에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천상은총의 모후 꾸리아 산하의 모든 레지오 단원들이 커다란 친교실에 모두 모여서 일년을 무사히 우리들을 지켜준 ‘총사령관’ 성모님께 감사, 전구기도를 드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로써는 올해가 벌써 6년째가 되는 이 연말 행사, 처음이 2010년 12월이었지.. 그때는 정말 햇병아리 신참, 정단원 선서를 기다리던 시절에 이 행사를 보며 ‘난생처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동료의식’을 조금은 느끼며 흥분된 기분이기도 했다. 해가 거듭할 수로 익숙해지고 있지만 매년 조금씩 다른 느낌을 받는다. 거의 대부분이 ‘자매님’들인 이 단체, 나 같은 ‘형제님’들은 이 여성들을 따라가야 한다.

이 행사는 비록 Ireland 냄새가 짙게 나는 유럽에서 유래된 Legion of Mary (Legio Mariae)의 연말 행사지만 우리가 치르는 이 행사는 거의 99.9% ‘대한민국화’ 된 것이다. Universal Church를 지향하는 천주교의 전통에 따라 이것도 세계화 되었기에 전세계 곳곳에서 열릴 것이고 ‘막강한’ power를 자랑하는 한반도의 전역 본당에서도 열릴 것이고, 그들의 연총 행사는 위에 말한 것같이 ‘한국화’된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하고 있는 이곳 아틀란타의 그것은 무엇인가? 원칙적으로 우리가 숨쉬고 있는 이곳 미국 땅의 그것의 문화를 따라야 할 것이지만, ‘한국인의 근성’이 어디로 갈까? 더욱이나 ‘막강해진’ Korean Connection은 이곳 아틀란타에서는 피할 수가 없다. 레지오 조직의 법적인 차원을 떠나서 사실 우리는 별 수 없이 대한민국의 그것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를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지만 짐작에 우리가 현재 여기서 하고 있는 그것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아마도 똑 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 크게 상관이 없다. 레지오의 교본에 따라 레지오의 연차 총친목회의 정신을 따르면 문화적인 것은 2차적인 관심이다. 평소 잘 못보고 지내던 ‘레지오 동지’들과 친교를 이루면 그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니까…

 

이 행사는 동료 단원들과 친교를 이루는 한 방법으로 ‘연예 프로그램’을 긴 시간 동안 준비를 한다. 이 긴 시간을 통해서 친교를 하게 되는데 올해 우리는 비교적 잘 알고 지내던 ‘은총의 모후’와 함께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와 ‘개똥벌레’라는 두 곡을 연습하여 당일에 그 솜씨를 발표 하였다. Chorus style이었지만 그래도 조금 색다르게 rearrange를 해서 2번째 부른 ‘개똥벌레’는 자매님들이 귀엽게 율동을 해서 연속된 노래의 지루함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나간 여름부터 시작된 ‘기타 club’의 학생자매님들이 guitar로 반주를 했고, 나는 전체적인 guitar 반주를 하는 등, 보는 사람들에게도 신선한 performance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한가지 아쉬움은.. 연총 당일을 위해 지난 몇 개월간 열심히 guitar 반주 연습을 같이 했던 크리스티나 자매님 (나와 guitar duet)이 감기에 걸려 어쩔 수 없이 공연을 포기하게 된 것… 정말 아쉽기만 했다. 그 자매에게 감기는 정상인에 비해서 심각한 것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차가운 비가 하루 종일 뿌리던 12월 4일 일요일 오후의 이 행사,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아니 2016년 레지오 마리애의 굵직한 행사의 마지막이 끝난 것.. 이제부터는 성탄을 향한 본격적인 대림절로 기다리는, 편안한 12월의 휴일 기분을 만끽할게 되었다.

¶  Sick day, 3rd.. 우리는 정말 오랜 만에 편히 쉬는 기분을 느낀다. 역시 쉬는 것은 아플 때 더 그 진가 眞價 를 느끼는 것인가? 적당히 몸이 아픈 것은 마라톤 같은 기나긴 인생여정에서 필요한 윤활유역할이 되기도 한다. 며칠 째 ‘기침, 몸살감기’로 고생하는 연숙 ‘덕분’에 정말 오랜 만에 모든 ‘정상적 일정’을 쉰다. 그야말로 ‘뜻밖의 휴가’같이 되었다.

매일 아침의 rule이었던 9시 미사가 우리의 하루에서 빠지는 것 때문에 더욱 멀리 떠나온 여행 같은 느낌을 주는지도 모른다. 2012년 부활절 때부터 시작된 이것, 벌써 4년 반이 된 아침의 ritual, 우리 DNA 의 일부가 된, 하루(그리고 인생)를 건전하게 사는 활력소 (빵과 피)가 되었기에 이것이 빠진 하루는 조금 허전하기도 하다.

 

아침 9시 미사에서 매일 보게 되는 regular Irish, Hispanic ‘아줌마’들,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거의 예외 없이 같은 자리를 지키던 우리가 안 보이니.. 아마도 ‘드문 여행’ 아니면 누가 아플 것이라고 속으로 기도까지 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도 누가 안 보이면 그랬으니까..

이번 주일날에는 일년에 한번씩 있는 ‘레지오 간부교육‘이 있는 날이라 순교자 성당엘 가야 하는 날인데, 만약 그때까지 이 감기, 몸살이 깨끗이 낫지 않으면.. 조금은 골치가 아프게 될 것 같은데, 최악의 경우 빠질 수도 있겠지만 ‘공식적인 일정, 의무’가 있는 연숙은 큰 문제일 것이다. 예비신자 교리반도 그렇고, 레지오 간부교육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있는 중병이나 terminal illness로 고생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이것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위로를 해야 하는가.. 하지만 이럴 때에 비로소 ‘아픈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절감, 실감하게 되는 좋은 때가 되기도 하니까 시간 낭비만은 아닐 듯하다.

 

 

¶  2016년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줄여서 ‘연총‘)가 이제 한달 반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참 세월이 어찌도 이렇게 빠른가.. 작년, 재작년 때 연총을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벌써 또 한 해가 간단 말인가? 레지오 조직에는 참 좋은, 의미 있는 ‘단체 행사’가 있고, 대부분은 군대의 훈련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이 연총은 쉽게 말해서 한 해를 보내며 ‘즐겁게 노는’ 쪽이다.

6년 전 레지오를 시작하면서 이 행사는 나에게 제일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기억에 남는 것이 되고 있다. 매년 12월 8일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의무 대 축일이고, 그날을 전후로 연총이 열리게 되어있지만, 사실은 세속적인 분위기에 곁들여 ‘성탄’의 분위기가 조금씩 느껴지는 시점으로 이 행사는 조금 들뜬 분위기일 수밖에 없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꾸리아 소속 모든 쁘레시디움의 행동단원, 협조단원들이 참가하는 올해의 연총, 12월 4일 일요일 오후에 성당 친교실을 떠들썩하게 할 것이다. 이때에는 ‘드물게’ 모든 레지오 단원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되고 그들이 준비한 talent show를 즐기게 된다. 기억에 남는 ‘제일 신명 나던 때’는 역시 4년 전, 2013년 연총이 아니었을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때가 나의 ‘레지오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뭔가 잘 모르며 ‘레지오의 매력’을 한껏 느끼던 그런 때.. 돼지띠 동갑 전요셉 형제와 한껏 의기투합이 되던 때, 새로 배운 ‘엽전냄새가 흠뻑 밴’ 둔탁한 저음의 난타 큰북 리듬..  ‘희귀동물’ 남자 단원들과 함께 악을 쓰며 부르던 ‘통기타 노래들’.. 참, 그때가 그립다.

 

그 이후부터는 사실 나로써는 조금은 김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왜 그런지 사실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것이 ‘경험에 젖어가는 정상적인 것’이 아닐까.. 그 동안 한번도 빠지지 않았지만 작년에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고통, guess what?’으로 부득이 talent show에서는 빠지게 되었지만 조금 만 참고 참가를 할 걸 그랬나.. 하지만 무리무리 무리였다.. 그 때 해야 했던 것은 ‘탈춤’이었으니.. 몸 전체를 요란하게 움직이는 것, 절대로 무리였다.

올해는 어떨까? 항상 희귀한 남자단원, 사치스럽게 더 찾기 어려운  동갑내기 형제님, 모두 사라지고 다시 지극히 정상적인 ‘꽃밭 속’으로 들어가야 하나..  올해에는 어떤 talent를 보여주나.. 하는 것, 쉽지 않은 것인데.. 올해는 아주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었다. 레지오 옆 ‘동네’, ‘은총의 모후‘ 자매님들과 guitar lesson을 하였던 관계로 그 자매님 그룹과 다시 뭉치기로 한 것이다. Guitar를 같이 칠 수 있다는 공통점을 잘 써서 chorus를 하기로 하고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Someone is praying for you‘, 와 ‘개똥 벌레‘라는 두 곡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듯하다. 합창과 율동이 곁들여진 이것, 이제는 연습을 시작만 하면 되고.. 시간만 지나면.. 이 모든 것도 다 지나가리라..

 

nine-eleven-1¶  Nine Eleven 2016, 9/11/2016… 이제는 희미해진 느낌의 이 말들.. 세월은 무섭다. 그런 것이 이렇게 큰 충격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역시 세월의 효과일 것이다. 그저 매년 매년 이 맘 때면 아 2001년이었지.. 한 정도였지만 2011년과 2016년은 조금은 더 의미를 둔다고 할까, 5년, 10년, 15년, 20년.. 이 조금은 더 기념하기가 쉽다. 올해가 바로 15년 전.. 그날이었다.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던 것이..

나에게는 어떠했는가? 그 동안 아이들 모조리 학교 시절을 벗어나 졸업 직장인, 30대로 들어갈 정도로 변했고, 우리는 60대를 거의 지나가는 ‘신 고령’의 세대로 변했다. 나는 corporate USA 인생을 완전히 떠나서 하루 종일 거의 한국말을 쓰는 시대를 맞게 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완전한 retirement, 하지만 거꾸로 사회적으로는 예전에 비해서 훨씬 의미 있고 바쁜 생활이 되었다.

처음 십 년의 암흑의 세월 동안 나의 전부였던 어머님이 먼저 가셨다. Twin Towers의 시커먼 불 연기 속에 pure evil의 얼굴을 뒤로 하고 세상은 무섭게 변하며 나의 암흑은 더욱 어두워지고.. 아마도 이 기간을 나는 나의 암흑시기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그렇게 ‘우연의 연속’만이 아님을 잘 안다. 아니 거의 모든 세상사는 우연보다는 필연의 연속이고 모든 것에 의미가 있음도 너무나 늦게 깨닫게도 되었다. 그것이 지난 15년이 나에게 준 제일 큰 선물이 되었다.

 

2016-09-19-12-32-10

¶  Saving V3000:  작년에 아는 사람으로부터 그가 사업체와 집에서 쓰던 ‘고물’ computer들을 인계 받았다. 꽤 많은 것들.. 거의 모두 2000년대 초 중반의 desktop, laptop  PC들, 그러니까 모두 Windows XP  정도를 무리 없이 돌릴 정도의 것들이다. 하지만 거의 모두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어떤 것은 거의 dead on arrival 인 것도 있었다.  내가 이것을 인계 받은 것은 고칠 것은 고쳐서 가급적 필요한 곳에 donation을 하는 그런 목적도 있었다.

나에게는 이런 일들이 비록 시간은 들더라도 그 자체가 기쁨이다. 폐기품으로 간단히 landfill로 보내는 것이 나는 제일 싫기에 이것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큰 보람이기도 하다. 만약 재수 좋게 완전히 고치게 되면 비록 ‘고물급’이지만 최소한 Microsoft Word 정도만 쓰게 되어도 비영리단체에서는 쓸 수가 있지 않을까?

이 중에 내가 제일 심혈을 기울이고 시간을 많이 들인 것이 2006 쯤 나온 HP Compaq Presario V3000 Notebook 이다. 이것은 dead on arrival (DOA) 로 이미 죽어버린 듯 보인 것이다. 하지만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비교적 작은 screen을 가진 가볍고 예쁘고 삐가번쩍 하게 흠이 하나도 없는 거의 새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2006 년 급의 CPU (~2Ghz) 였지만  Youtube같은 Internet streaming video는 무난히 handle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가지고 씨름을 한 과정은 참 긴 고생길이었다. Hard disk에 문제가 있는 듯한 증상을 보여서 (blue screen 같은) 다른 disk로 Windows XP를 reinstall 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random하게 reset, reboot를 하는 심각한 ‘병’이었다. disk가 문제가 아니라면.. motherboard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얘기는 끝인 것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는 이것이다. motherboard에 이상이 없다면 회생의 가능성은 있지만 얼마나 $$을 들여야 하는가.. 하는 ‘경제적’인 것이다. 가령 문제점을 발견 그것이 hardware part에 있고 그것을 사는데 너무나 $$이 많이 들면 포기해야 할 것이다.

우여곡절, 희비쌍곡선 등을 골고루 거치며 결과적으로 총 $60 정도의 part (RAM, Battery, Hard Disk)의 도움으로 완전한 것으로 탈바꿈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은 분명히 science 중의 science인 ‘명확한’ 일이지만 그것에는 분명히 luck이란 것도 포함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결과는, 멀쩡한 것 쓰레기로 안 버리게 되고 앞으로 2~3년 정도 안심하고 쓸 수 있는 ‘번쩍번쩍’하고 귀여운 laptop notebook PC를 가지게 되었다.

 

¶  Curia Monthly, Hijacked : 9/11, 15주년이 되는 날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레지오 꾸리아 월례회의 때문에 그곳으로 주일미사를 가게 되었다. 한번도 빠진 적이 없었던 이 꾸리아 월례 회의를 나는 지난 달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빠지고 말았다. 나로서는 아주 예외적인 일이어서 사실 나도 기분이 계속 찜찜했던 터였다. 이런 정기모임,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절대로 ‘레지오 군대수칙’을 지키자던 나와 ‘어머니’의 약속이 지난 5년 동안 참 신통하게 효과를 발휘하였는데 이렇게 예외적이나마 깨고 보니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더욱 ‘정신 상태’에 신경을 쓰고 참석을 한 것이다.

9/11, 15주년이라 조금 기분이 쳐진 상태였고, 거의 2달 만에 순교자 성당의 주일미사를 참례를 하게 되어서 모든 것이 생소하게 느껴지고, 조금은 외로운 기분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잇몸까지 반란을 일으켜 나는 사실 집에 빨리 돌아갈 생각이 가득한 터에… 이날의 본론인  꾸리아 월례회의까지 나를 실망시키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이 회의가 hijack이 된 느낌이었다. 9/11의 hijacker들의 괴물 같은 모습과 겹쳐진 이날의 happening은 글자 그대로 happening.. 꾸리아 연례 회계감사보고, 예로 10분 정도 ‘형식적’으로 끝나는 관례를 깨고.. 이번 것은 거의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한 예행연습을 거친 듯.. 3명이 나와서 복음말씀으로 시작해서 묵상말씀이 곁들인 정말 bizarre.. bizarre.. 모든 것이 끝나고 나오면서 나는 이 월례회의, 9/11을 기념하듯 완전히 hijack 된 느낌 밖에 없었고 그저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 car key를 찾기에 바빴다.

 

7월 11일, 2016년 아침.. T-Minus 48 hours.. 이틀이 남았다 2016년 ‘성모승천 대축일’ ‘봉헌을 위한 33일 준비’ 기간이 시작되는 날이.. 7월 13일로 다가왔다.  2012년 8월 첫 봉헌, 2014년 3월 갱신 이라는 이력을 가진 내가 왜 다시 이 쉽지만은 않은 신심에 도전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2012, 2014, 다음은 수열 상으로 2016이라는 것은 조금 우습지만, 그런 것도 좋은 이유 중에 하나로 넣기로 했다. 하지만, 하지만 조금 깊고 심각한 이유는 그것이 아니다.

레지오 마리애의 생활을 하는 덕에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가르침으로부터 크게 멀어진 적은 없는 듯 하지만 과연 그럴까? 혹시 타성에 젖어가는 것은 아닐지, 항상 의식한다. 편한 기분이 들어가면 그것은 분명히 타성에 젖는 것이다.배우고 알고 경험이 쌓이면서 편해진 것이면 큰 문제가 없지만, 무디어지고 느낌이 없어지고, 짜증도 나고 하면 그것은 분명히 커다란 reboot, reset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2014년 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7월에 나는 reset과 reboot을 해야만 했던 경험이 있었다. 비록 비싼 vacation trip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인생 최고의 ‘free’ vacation으로 남았다. 하지만 2014년 여름의 big reboot은 spiritual, devotional한 것이 전혀 아니고, 완전히 나만의 mental exercise에 불과한 것이었다. 길고도 죽을 때까지 남는 그런 ‘비싼’ 경험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background를 가지고 나는 이번 여름 Marian Assumption Day1 에 맞춘 봉헌을 하기로 결정하고 말았다. 2013년에 시도했던 33일의 노력이 도중하차로 끝난 것을 명심하면서 이번에는 그런 과오를 범하지 않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다. 그 다음은 역시 ‘또 다른 경험’을 하는 것.. 어떤 것이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실 상관이 없다. 다른 느낌과 체험, 경험.. 그것이면 족하다.

 

이 정도의 준비각오면 (이렇게 요란하게 글로 남기는 것도 포함)  아마도 아마도 이번에는 도중하차를 할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면 8월 15일 후에 내가 ‘얻는 것’은 어떤 것에 중점을 두면 좋을까? 분명히 더 낫고 더 올바른 성모마리아 신심(이것은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가는 첩경이다) 에 다가가는 것이다. ‘오해 받지 않는 철저하고 용감한’ 성모신심을 얻는 것도 아주 중요한 과제다.

 

어제 Catholic News Agency website에 조금은 섬뜩한 기분의 기사가 실렸다. Fatima 의 visionary Lucia 루치아 수녀님의 예언이었다. 파티마 목격자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수녀님 2005년 선종 전에 증언이 그것이다. 인류 최후의 심판, 결전은 그리스도와 사탄 간의 ‘결혼과 가정’2에 대한 투쟁이라는 것, 그것을 ‘예언’하시고 선종하셨다고 보도가 된 것이다. 이것이 수녀님의 예언인지 혹시 성모님의 예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떨까.. 나도 비슷한 느낌과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참이었기에 우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Humanity의 근간 중의 근간인 ‘정상적인 가정’의 파괴와 붕괴는 사실 핵전쟁이나 다름없는 인류파멸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우매한 지식인‘들은 그렇게 stupid한 것일까? 10은 알고 11는 모르는 것.. 이런 뉴스에 접하며 나는 이번 33일에 이런 Current social problem을 같이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 뉴스와 일맥상통하는 글이 바로 33일 봉헌 Guide에 잘 나와있다. 아래 그것을 전문 발췌를 했는데, 원제는 20세기에 관한 것이지만 21세기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들이다.

 

 

20세기에 들어 성모님은 파티마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 발현하셔서 당신의 티없는 성심께 대한 봉헌을 간곡히 호소하고 계신다. 20세기의 초엽인 1917년 파티마에 발현하셨을 때에는 원죄에 물들지 않은 당신의 티없는 성심을 직접 보여주시면서 티없는 성심께 대한 신심과 봉헌을 호소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나의 티없는 성심에 대한 신심을 일으키기를 원하신다” (파티마, 19717. 6. 13).

“내 티없는 성심은 너의 피시처가 될 것이며, 너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가는 길이 될 것이다” (파티마, 19717. 6.13).

이에 따라 1942년 10월 31일 비오 12세 교황은 전 세계를 마리아의 티없는 성심께 봉헌하고, 1946년에는 파티마의 성모님을 세계의 여왕으로 대관하고 ‘여왕이신 성모 마리아 축일’을 제정하였다.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미 청년시절에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에서 큰 감화를 받고 자신을 온전히 성모님께 봉헌하였으며 이 책에서 ‘온전히 당신의 것 (Totus Tuus)‘라는 문장을 뽑아 교황 즉위 시에 모토로 삼기까지 했다. 1984년 3월 25일에는, 1917년 파티마에서 하신 성모님의 요청에 따라 전 세계의 주교들과 뜻을 합하여 소련은 물론 전 세계를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봉헌하였는데 그 이후 마침내 소련을 포함하여 여러 나라의 공산주의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 교황님들의 모범에 따라 이 봉헌을 실천하는 이들은 이 길이 틀릴 수 없는 가장 완전한 길임을 체험하는 동시에 이 봉헌으로써 이루어지는 놀라운 결과 즉 “티없는 내 성심이 승리할 것이다” (파티마 1917. 7.13)이라는 성모님의 약속의 실현을 자신들 안에서도 보게 될 것이다.

성모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이 봉헌은 하느님께 봉헌되기 위한 가장 완전한 방법인 동시에 성모님의 티없으신 성심께 대한 가장 완전한 신심행위이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봉헌을 받으셔서 당신 아드님과의 완전한 일치 안에서 그러나 그분께 종속되어 “은총의 질서 안에서 우리의 어머니의 자격으로” (교회헌장 61항)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의 생활에 모성적으로 관여하신다. 그리고 우리의 봉헌을 당신의 봉헌과 일치시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가능케 해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다. “성모님께 봉헌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 이르는 길을 통과하는 것이며 성모님은 그리스도께 이르는 길이시다” 라고. 따라서 성모님을 통하여, 성모님 안에서, 성모님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바치면 바칠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봉헌의 주된 목적이며 의의이다.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봉헌의 의미와 그 중요성” 중에서

 

 

  1. 매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 The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2. Homosexuality, Same-sex ‘marriage’, transgender, rampant divorce etc etc

¶  휴우~ 덥다 더워.. 6월 24일!  이렇게 쓰고 보니 조금은 웃긴다.. 임마 (이런 말 아직도 쓰나?) 6월도 24일이면 한창 여름이 무르익어가는데 그것이 정상이지, ‘빠가야로‘! 하는 등뒤의 속삭임에 내가 웃는다. 그렇지, 지금은 더운 것이 정상이지.. 그런데.. 92도 라면.. 어떨까? 아마도 옛날 옛적의 대구더위에 비길 수 있겠지. 며칠 계속된 더위지만 극적으로 때맞추어 ‘내가 고친’ 에어컨 바람이 더 나에게는 시원하게 느껴진다. 이럴 때는 물론 오후에 때맞추어 쏟아지는 시원한 소낙비.. 하지만 느낌에 그런 chance는 거의 zero 인가 보다. 아니면 Johnny Rivers 의 60’s classic oldie, Summer Rain을 연상케 하는 그런 추억의 비는.. 어떨까.. 하지만 이것은 거의 꿈같은 이야기다.

 

 

1968년 여름의 추억, Summer Rain – Johnny Rivers 

 

오랜만에 그 동안 바깥 구경을 못하고 살았던 우리 집 두 마리의 ‘재미있는 개’ Tobey & Ozzie, 오늘은 내가 더 쳐지기 전에 용감하게 끌고 동네를 돌았다. 거의 할아버지 나이가 된 우리의 개 Tobey가 언덕을 ‘새로니의 개’ Ozzie를 앞지르며 나를 끌고 올라간다. 얘는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이 동네 언덕을 나와 걸었기에 단련이 되어서 그런지 모른다. 공을 던지면 총알처럼 뛰어가는 다리가 긴 ‘젊은’ Ozzie, 2주째 우리 집에 머물며 자기 엄마 ‘새로니‘를 거의 잊은 듯 잘 지내고 있지만 그래도 밤에 ‘혼자’ 자야만 하는 그 녀석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얼마 전에 이곳을 걸었을 때 내가 열을 받았던 것, TRUMP FOR PRESIDENT, MAKE AMERICA GREAT AGAIN..이란 SIGN이 두 곳에서 나를 자극했던 것.. 오늘도 어김없이 그곳에서 ‘빠가’ 트럼프의 ‘쌍통’을 연상시킨다. 이 두 집이 바로 우리동네의 idiots, white trash인 셈이다. 이곳 East Cobb county는 물론 very conservative한 지역이고 전통적으로 ‘인정머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런 ‘잘 사는 Republican white trash’들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이런 쓰레기 같은 SIGN을 본 것이 당연한 일이건만.. 나는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정도니.. 이건 분명히 내가 over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야말로.. I CANNOT HELP IT.. 어쩔 수가 없다. 도대체 이 덩치 큰, ‘젊은’ 나라는 어떤 쪽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것인가? 덥기만 한 날씨에 더 열을 받고 있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지만.. 그래.. 이래 저래해도..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가리라..

 

 

¶  6월 24일 세례자 성 요한 탄생 대축일:  오늘 평일미사를 가면서 6월 24일이 세례자 성 요한 탄생 대축일 (Solemnity of the Nativity of Saint John the Baptist) 임을 매일 복음묵상 ‘newsletter’에서 보고 알았지만, 사실 그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 ‘사건’으로부터 였다. 바로 이날 6월 24일에 발현을 하신 메주고리예 성모님을 이 ‘대축일’ 때문에 집에서 쉬던 (놀던) 그 ‘애’들이 본 것이다. 그 당시 이 발현 과정에서 이날이 ‘세례자 성 요한 탄생 대축일’임을 누누이 밝히고 있었지만 그 때 나는 그 말의 의미조차 잘 몰랐다. 이런 생각을 하니, 금요일 평일 미사엘 가면 분명히 세례자 성 요한과 예수님을 비교하는 짧은 강론을 듣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요새 거의 본당신부님 역할을 하시는 방문 신부님 Fr. Joseph, 뜻 밖에도 새로 부임하실 본당 신부님에 관한 얘기를 하며.. 우리의 ‘이해’를 구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사연은 물론 본당 Holy Family 성당에 7월 초에 새로 부임할 주임신부님이, ‘부인이 있고 가정이 있는 남자’ 라는 우리에게는 ‘폭탄’ 같이 느껴지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 방문 신부님의 설명과 ‘양해’는 나도 아는 사실이다. 바티칸에 소속된 모든 가톨릭 ‘종파’들이 모두 다른 Rite를 가지고 있는데 현재 우리의 ‘보편 된’ 것이 Latin Rite, 이곳에서는 신부님들이 결혼을 안 하지만 다른 극소수의 종파에서는 성공회같이 결혼을 한다고.. 듣던 얘기다. 이번의 새로 부임할 신부님은 Melkite 에 속한 신부님이라서 신부님들이 결혼을 한다고.. 하지만 우리들의 느낌은.. 그래도.. 하필이면.. 왜 그런 ‘소수 종파’의 신부님을 ‘주임신부’로 보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본당 Holy Family는 지역적으로도 보수적이고 Irish Catholic의 전통이 농후한 곳인데.. 아마도 그들 대부분은 불만이 적지 않을 듯하다. 그 중에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상상을 하니 아찔하다. 가족을 주렁주렁 데리고 사제관에서 생활을 하며 가족들과 같이 미사에 들어 온다는 광경은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도라빌 순교자 성당에서는 구역문제로 우리는 고민에 빠지고 있는 마당에 이번에는 우리의 피난처 같은 미국본당에 부인, 가족을 동반한 주임신부가 온다는 사실.. 참.. 오래 살다 보니..

 

 

¶  성모님, 좀 봐주세요..  근래 우리부부와 자주 보게 되고, 예전 보다 조금 더 가깝게 지내는 C 자매님,  순교자 성당에 레지오 member를 중심으로 새로 생긴 Guitar Friends 그룹에도 참여 열심히 guitar도 연습하고, Holy Family 미국본당에서는 거의 매일 미사에 보게 된 멀게도 느껴지고 가깝게도 느껴지는 자매님, stress받는 것이 제일 싫어서 많은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피하며 조용히 살지만 할 것은 다 하며 열심히 사는 자매님.. 왜 하느님은 어떻게 그런 병고를 주셨을까. 병고라면 이미 오래 전에 가족을 통해서 겪을 만큼 겪지 않았을까, 공평하지 않은가? 모든 아픔이 아물어가며 어떻게 다시 이런 고통을 보냈을까? 오늘 아침 미사가 끝나며 어제 doctor visit의 결과가 조금 짐작이 되었다. 우리 부부, 너무나 안쓰럽고, 미안하며, 어쩔 수가 없어진다. 그저 할 수 있는 말은 ‘기도를 더 열심해 해야겠군요’ 정도였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 이외에 무엇일까.. 늦은 아침을 먹으며 우리는 생각하고 생각한다. 성모님, 좀 봐주세요…

 

 

¶  육이오 6.25, 66년:  66년, 허~ 66년이라.. 여기다 6 하나를 덧붙이면 666가 되는구나. ‘악+악+악’, triple ‘악’ 인가? 그래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단어가 육이오, 유기오, 융요 (박정희 대통령의 발음).. 그래, 의식이 살아있는 한 이 단어는 나를 ‘움찔’하게 만들 것이다.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이제는 ‘사학자’들도 총대를 멜 때가 되지 않았나? 미국의 역사 교과서는 현직 대통령도 역사의 심판대에 올려 놓는데.. 우리나라의 ‘병신 사학자님’들은 어떠신가? 아직도, 아직도 빨갱이 운동권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가?

 

 

아직도 귀에 생생한, 육이오의 노래

 

요사이 재동 동창 김정훈 부제의 유고집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 를 읽고 읽고 읽으며.. 다시 느끼는 것, 나도 나도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아니 육이오가 없었으면, 아니 김일성 개XX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나의 인생은 아마도 김정훈 부제의 ‘사직동 김판사댁‘  못지않게 ‘원서동 이정모 교수댁‘ 이란 ‘선망의 눈초리’를 받으며 컸을 지 누가 알랴? 어떻게 육이오의 몇 개월 사이에 한 가정, 한 가족의 운명이 그렇게 뒤집어 질 수가 있을까? 물론 우리보다 더 ‘처참한’ 인생의 역전을 겪었던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죄 없는 동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아니고 우리가 아니다. 우리 집은.. 우리 집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이 끝나고 저 세상에 가면 나는 반드시 ‘김일성’을 찾아내리라.. 그 개XX를 찾아 내리라.. 아마도 그 아들 김정일 개XX도 같이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을 찾기가 힘들 것이 분명히 그들은 지옥에 있기 때문이다.

 

 

¶  다른젊은엄마의 장례미사: 오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는 ‘뜻밖의, 급작스러운’ 연도와 장례미사가 있었다. 모든 죽음이 어떤 면에서는 뜻밖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의 죽음은 내 주위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젊은 느낌’을 주는 Camilla 자매님의 죽음이었다. 지난 3월 사순절 막바지에 오랜 투병을 끝내고 선종을 한 다른 ‘젊은 엄마’ 보나 자매님의 기억이 생생한 이 마당에 또 한 명 자매님의 선종은 예기치 않았던 글자 그대로 ‘급작스런’ 죽음인 것 같아서 가족들에게는 큰 고통이었을 것 같았다.

한창나이 쉰 을 갓 넘은 ‘젊은 엄마’의 죽음.. 불과 3일 전, Mother’s Day 하루 전에 급작스러운 엄마의 타계.. 그 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나로써는 도저히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특히 학생나이의 두 따님의 심정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사연은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고향’같을 수도 있는(견진성사를 이곳에서 받았다기 에) 순교자 성당에서, ‘해맑은’ 한 토마스 신부님의 ‘젊지 않게 깊이 있고, 자상한’ 고별강론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유족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었으리라..

 

비교적 앞 자리에 앉아서 고별미사 내내 나는 고인의 사진을 응시하며 생각을 한다. 60/70년대 통기타 folk singer였던 박인희씨를 연상시키는 그런 ‘청초’한 모습, 저렇게 ‘예고 없이’ 급작스럽게 떠나는 것.. 본인은 알지도 모르겠지만 가족들과 지인들의 놀라움과 슬픔을 한동안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우리 부부가 그런 처지를 당하면.. 상상을 한다. 그런 제로가 아닌 가능성을 매 순간 생각하며 살면 비록 피곤은 하겠지만 조금이라도 ‘사랑스런 말이나 표정’으로 서로를 대할 것 같지 않을까?

고인의 큰 따님(순교자 성당 종교학교 교사였다고 함)이 사실 불과 일 주일 전 마지막 고인을 보았을 때 별로 좋은 않은 감정으로 헤어졌다고 후회를 했다는 신부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어찌 안 그렇겠는가, 아마도 두고두고 후회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떠난 날 다음날이 Mother’s Day임을 생각할 때,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래서, 매일 매일이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으로 살라는 말이 바로 그런 뜻이 아니겠는가? 비록 평소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교우 자매의 고별식이었지만 뜻 밖에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 ‘레지오 화요일’ 오후가 되었고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며 가족들끼리 틈이 날 때마다 ‘We love you’라는 message를 교환하자고 하기도 하였다.

 

 

¶  돼지띠 프란체스카: 장례미사가 끝나고 ‘실로’ 오랜만에 가보는 ‘본가 설렁탕’이란 순교자 성당에서 아주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뜻 밖에도 20년 지기 知己, 최형 (a.k.a.진희 아빠)의 누님인 프란체스카 자매님를 만나게 되어서 합석을 하게 되었다. 참 이곳에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때도 오는가.. 최형은 비록 ‘전통적’인 가톨릭 교우이지만 Sunday Catholic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비해 누님인 프란체스카 자매는 매주 화요일 레지오 주회합 우리 바로 옆 방에서 모이는 다른 레지오의 부단장을 하는 비교적 활동적인 교우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는 최형의 집에서 모임이 있을 때 가끔 볼 정도로 잘 알지 못했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주일 마다 얼굴을 보게 되기도 하고 꾸리아 월례회의에서도 우리의 바로 옆자리에 앉는 등 가까워진 느낌까지 들게 되었다. 그래서 알게 된 사실은.. 이 자매님, 비록 ‘누님’ 격으로 통했지만 나와 띠가 같은 ‘돼지띠’였다. 최소한 나와 동갑인 셈이 아닌가? 깎듯이 누님으로 대하던 것이 조금은 어색해지기도 하고, 이렇게 가까이 앉아서 식사까지 하게 되니 이제는 동갑친구 같은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돼지띠를 만나거나 보게 되면 나는 이상할 정도로 정이 가는 것은 왜 그럴까? 2년 전까지만 해도 ‘전요셉’ 형제가 돼지띠 동갑으로 사귀게 되어서 나를 기쁘게 했지만 사귀자 마자 ‘영구귀국’을 해 버려서 얼마나 섭섭했는지 모른다. 그러던 차에 돼지띠 ‘누님’이 나의 앞에 등장한 것이다. 친구누님으로 대할 것인가 돼지띠 동갑친구로 대할 것인가.. 조금은 혼란스럽기까지 하지만 이날 동석으로 식사를 하면서 ‘말이 통하고, 재미있는 자매’임을 느끼고 안심을 하였다. 동생 최형과 같이 서울 덕수국민학교 출신 임도 알게 되었는데, 나와 정확히 같은 해에 같은 서울 하늘아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만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으니..

이날 같이 합석을 한 ‘자매님’들은 같은 레지오 단원들인데 우연히 이들 group이 몇 년 전 최형과 같이 기타 강습을 받았던 것을 알았는데, 다시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하더니 나보고 가르쳐달라는 요청까지 받았다. 글쎄.. 내가 얼마나 할 수 있는지 잘 모를 텐데, 꼭 배우고 싶은 열망이 있다는 것으로 짐작을 하였다. 우선 생각을 해 보자고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의 guitar솜씨로 남을 가르칠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나의 기타 솜씨는 완전히 ‘등 넘어 배운’ 정도인데 어떻게 남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렇게 무언가 배우며 살고 싶은 건강하고 멋진 자매님들이 레지오에 있다는 사실이 신선하고 기쁘기까지 했던 명랑했던 장례미사 후의 식사시간이 되었다.

 

 
교황님 2016년 5월 지향기도

 

¶  성모성월:   Vatican Youtube에는 이제 매달마다 교황님의 ‘매달 지향기도 monthly prayer intention‘ video가 실린다. 보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개월 밖에 안 되었지만 이제는 은근히 기다려지기도 한다. 짧지만 아주 심도 있고 호소력이 있는 교황님의 ‘구수한’ Italian comment는 영어자막이 곁들여져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난 달에는 ‘제대로 대우를 못 받는 농부들’ 에 관한 것이고 이달은 ‘별로 인정 못 받고 고생하는 세계의 여성들’에 대한 기도이다. 참 계절적으로 알 맞는 기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5월과 여성, 특히 성모님은 어쩌면 그렇게 느낌이 일치하는 것일까? 그래서 Mother’s Day, 가톨릭 전례력으로 성모성월, 성모의 밤.. 등등이 모두 5월에 함께 모여있는 것일까?우리 어머님의 기일도 5월에 있음이 한동안 나를 슬프게 했지만 다른 편으로 생각하니 이런 포근한 기분의 5월에 있음이 조금은 나를 위로하는 셈이 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사람을 노곤하게 만드는 첫 한가로운 느낌의 더위가 여름의 시작을 알리고, 재수가 좋으면 (나쁘면?) space heater를 켜야 할 정도의 싸늘한 아침도 이때에 꼭 있다. 지난 주말 경에 사실 아침에 central heating 이 요란하게 나온 적이 있었으니까.. 아마도 그것이 올 여름 전에 ‘마지막’ 난방의 소음소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첫 A/C (air conditioner)의 소음 소리를 들을 때가 가까워졌을지도 모른다. 이미 나의 office에는 ‘돗자리’가 자리를 잡았고 80도 이상을 웃도는 늦은 오후에는 pet dog, Tobey 와 함께 ‘오수 午睡’를 즐길 때가 되었다. 이런 5월의 모습들이 나를 즐겁게 한다.

 

 

 

¶  성모의 밤:  올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성모의 밤 행사는 우리에게는 조금 느낌이 다른 경험이 되었다. 내가 우리가 몇 년 동안 보았던 성모의 밤은 대개 5월 말 쯤에 있어서  거의 여름 기분으로 바뀐 시점으로 조금은 싱그러운 5월의 향기가 희미해진 느낌이었고, 본당 대성전 안에서 ‘경직된 행사’를 하는 느낌으로 했었는데, 올해는 ‘정식으로’ 본당 성모 동산 앞, 그러니까 야외, outdoor에서 ‘진짜 성모의 밤’을 보게 된 것이다. 커다란 가정집 mansion 뒤뜰에서 결혼식을 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거기다 시간적으로 어두움이 잔잔히 가라앉기 시작하고, 향기로운 5월의 공기까지 성모동산을 신비롭게 감싸는 것, 정말 느낌이 새로웠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자랑스런 유산, 성모동산이 촛불 행렬을 기다리며..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자랑스런 유산, 성모동산이 촛불 행렬을 기다리며..

어두움이 깔린 성모동산, 인자로운 눈이 어둠을 밝힌다

어두움이 깔린 성모동산, 인자로운 눈이 어둠을 밝힌다

 

열을 지어서 행진하는 장미꽃, 촛불들의 행렬의 위에 인자로운 미소로 내려다 보시는 성모님.. 머리 속으로 ‘분명히’ 성모님께서 지금 이 시간 시공간을 초월해서 우리 앞에 계신다는 것을 그리며 그린다. 비록 본당주최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성모신심의 본향인 레지오 단원들의 정다운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되고, 특히 예년에 비해서 더 레지오에 관심을 보이시는 본당신부님들의 모습도 다정한 어머님의 눈길과 더불어 더 5월 초의 향기로운 저녁 하늘을 포근하게 느끼게 했다. Never too late라고 이제나마 ‘진짜 성모의 밤‘을 보게 해 주신 성모님께 다시 한번…

 

¶  나의 어머니 날:  2016년 5월 8일, Mother’s Day, 어떻게 올해는 오래~전 어머니 날과 날짜가 같을까? 5월 8일.. 나의 시절에는 어머니 날이었지 어버이 날은 기억에 없었다. 이날은 여러 가지가 겹친 날이기도 했다. 2번째 일요일, 레지오 꾸리아 월례회의 날이라 오랜만에 주일미사를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하게 되어서 비록 몇 주만이지만 새로운 기분으로 본당을 둘러보고 성물방의 도서실도 기웃거리고, 이제는 낯익은 담당 자매님에게 레지오 행동단원 입단도 권유해 보는 등, 기분을 새로이 하는 날이 되었다. 이제는 예의 낯익은 얼굴이 분명히 몇 분이 꼭 있어서 예전에 비해서 마음이 덜 불편하게도 되었다.옆 동네, 마리에타 1구역 담당의 $3 점심도 비록 한 그릇이었지만 맛은 아주 감칠맛나게 좋았다.

날씨도 기가 막히게 화창한 날 예전 같으면 ‘아이들의 강요’에 못 이겨 ‘끌려서라도’ 주인공인 ‘돼지 엄마’를 ‘모시고’ classy한 곳에서 외식을 하기도 했겠지만.. 글쎄.. 이제 모두들 ‘늙었나..’ 움직이는 것 귀찮다는데 거의 동의한 단계가 되었다. 올해는 idea가 바닥이 난 아이들을 ‘구제’하려 내가 volunteer를 해서 집에서 나의 ‘특기 요리’로 이날 오후를 보내게 되었다. 나의 특기요리는 평소에 ‘돼지 엄마’가 좋아하는 ‘lots of, lots of vegetable & ground beef stir fry‘ 라고 내가 이름을 붙인 이제는 거의 classic이 된 나만의 요리이다. 그저 ‘재료만 많으면’ 눈을 감고도 만들 수 있는 요리.. 오늘의 main dish가 되었다. 아이들은 red wine, 손수 만든 chicken wing을 밖에서 grill하고, Doraville H-mart에 있는 ‘빵집’에서 사온 ‘덜 달고, 덜 큰, 알맞은’ cake등으로, 그런대로 ‘초 간단 超 簡單, 초 저가 超 低價’ 였지만 만족스런, 즐거운 Mother’s Day late luncheon이 되었다. 주인공은 아이들의 엄마인 ‘돼지 엄마’겠지만 나의 머리 깊숙한 곳에는 나의 heroine, 나의 어머니가 더 크게 자리를 잡고 있는 화창한 5월 8일 어머니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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