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레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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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teryear…  요새는 가끔 지나간 해의 달력일지를 훔쳐본다. 지난해 이즈음에는 과연 나에게 무슨 일들이 있었는가… 이런 것도 요새처럼 시간이 넘칠 때는 time killer로 으뜸가는 것 중에 하나다.

이것들을 보며 예상보다 훨씬 격심한 변화가 있었음을 절감하며 한숨을 쉰다. 올해의 대부분이 너무나도 개인적이나 사회적, 국가적으로 변해버린 것, 물론 어두운 쪽으로 변해버린 것. 비록 현재의 시간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지만 조금 더 위에서 바라보니 조금은 겁이 나기도 한다.

 

작년 이맘때의 일상을 보니, 비록 거의 고정적인 일상 routine이었지만 엄청 바쁜 세월들을 보냈음을 알게 된다. 일주일을 너무나 짧게, 바쁘게, 보람 있게 살았던 것, 그때가 그리워진다.

주일인 일요일에는 우리의 한국본당 순교자성당에서 ‘진짜 미사’를 보고, 우리들의  성당 친목 모임 ‘등대회’에서 동년배 형제, 자매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가끔 [레지오]특강도 있었고 모든 주일일정이 끝나면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성당근처의 단골 집들, ‘동네방네 [한식점]’ 나 운동장처럼 널찍하고 시원한 Mozart Bakery에서 향기로운  coffee로  평화로운 일요일을 마감하기도 했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거의 완벽하게 고정된 스케줄이 있었다. 매일 아침 9시 동네성당 Holy Family CC의 아침미사, 일주일에 최소한 두 번은 Sonata CafeYMCA gym workout이 있었고, 화요일은 절대로 예외 없이 도라빌 순교자 성당으로 30분 드라이브, 레지오 주회합이 있었고 그날 정오에는 그곳에서 정오미사. 그 후에는 자주 채 형제님, 신 자매님댁, 손 형제님댁으로 봉성체 봉사를 했었다.  또한 시간이 나는 대로 Rosewell Nursing Center 방문을 해서 Parkinson 병으로 고생하시는 두 자매님들을 만나기도 했고.  하지만 이런 것들이 이제는 거의 꿈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시계처럼 돌아가는, 거의 정해진 ‘과제’들을 끝내고 집에 들어오는 것, 그 순간이 바로 내가 원하는 바로 그 ‘은총의 시간’이다. 보람 있다고 생각되는 ‘봉사, 선교, 친교’의 시간들은 현재 우리 주임, 이영석 신부님이 주장하는 ‘가장 행복한 순간들’ 인 것이다. 이것도 ‘중독성’이 있는데, 물론 세속적 의미의 중독과는 정 반대쪽의, 사실은 은총이다.

그것들이 지금 거의 5개월간 완전히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이다. 처음 3개월 정도는 ‘우리도 이 참에 좀 쉬자’ 라는 자세로, 심지어 즐기는 기분으로 지났지만 그 이후부터는 조금씩 신경질이 나기 시작하고, 현재는 약간 우울감까지 느낄 정도가 되었다. 제일 관심사는, 내가 게을러졌다.. 라는 자책감이 과연 정확한 진단인가 하는 것이다. 제일 괴로운 것은, ‘언제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는가’ 하는 불확실성이다.  기도와 묵상, 의도적으로 규칙적인 일상생활, 그것 이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참, 어쩌다가…

 

The Persistence of Memory – Salvador Dali

 

오늘까지도, 며칠 전에 선종하신 윤 요안나 자매님의 성당 장례미사, 밤에 있는 장의사 연도,  참석할까 말까 하는 것,  계속 우리들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결국은 ‘교과서적, 안전한 쪽’으로  모두 불참하는 쪽으로 결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10년 차 레지오 단원으로써 계속 찜찜하고, 지난 간 세월들,  ‘코로나 前’ 세월이 그립기도 하다. 이런 연령행사 때, 우리는 ‘두 번 생각’을 안 하고 그들과 함께 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두 번이 아니라 세 번, 네 번이고 생각하고 생각을 해야 하니까, 한마디로 ‘부조리 absurd 不條理적, 말도 안 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어제 도라빌 H-Mart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이 마리아 자매님, 한국인 집단, 공동체, 단체 등에도 서서히 감염자가 생기고 있다고 경고한다. 당분간은 성당 공적 미사에는 안 나가는 게 좋겠다는 강한 의견을 보이신다. 그래… 7월 말까지 미사참례의무가 없다고 하니까, 그것을 따르는 것이 현명한, 이성적인 판단일 듯하다.  ‘싸가지 없는 젊은 애들이 겁 없이 마스크도 안 쓰고 설쳐대는’ 이때다. 너희들은 걸려도 무감할 수 있지만 우리들은 ‘그대로 간다’.  마스크가 정치적 쟁점으로 둔갑한 이 ‘말도 안 되는, 빌어먹을’ 정치판도에서, 역시 우리들에게는 나이가 ‘웬수’인가… 나이가.. [너희들은 나이를 안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3월 24일부터 거의 3개월 반 동안 우리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례해 오고 있는  대한민국 CPBC 평화방송의 매일미사, 현재까지도 없으면 난감할 정도로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우리들의 본당 주일미사가 온라인으로 재개 된 후부터는 평일미사만 평화방송에 의지하고 있다. 이 매일미사에 참례하면서 느끼는 것 중에는:  참으로 다양한 신부님들의  언행, 특히’말투’가 있다.  장소가 바뀌고 신부님이 바뀌는 것, 처음에는 조금 불편했지만 이제는 익숙해 졌지만,  문제는 ‘일상적인 말투’를 벗어난 그런 것들이 분심을 일으키는 그것에 있다. 어떤 때는 정말 괴롭기도 하다. 우리 둘이 똑같이 느끼는 것을 보면 우리가  지나치게 민감한 것은 아닌 듯 하다. 그래서 요새는 과연 오늘은 어떤 ‘이상한 말투’의  신부님을 보게 되는 것인지 은근히 걱정까지 될 정도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때면 우리가 그 동안 겪어온 ‘이상하지 않는 말투’의 신부님 복은 과분하게 받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어제 치과 방문에서는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까 궁금했지만, 치아가 없어도 우려한 만큼  ‘치명적’인 것이 아님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먹을 때 조금 불편한 것과 많은 사람들 대하는 것, 그것 뿐이다. 대신 음식준비의 연숙이 좀 더 신경은 쓰겠지만… 이번 방문에서는 조금 서로 느긋하게 relax를 하며 토니 씨와 신변, 배경, 주위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다행히 Ohio State [University] connection 이 그 중에 하나였고,  뜻밖으로 ‘경복고 景福高 connection’으로 그들의 동창회 임 형의 이름까지 나왔다.  하여튼 앞으로 2~3주 더 가면 모든 dental work 일 이 끝나겠지… 이렇게 일주일 일주일의 여름을 징검다리 건너듯 넘어간다.

 

오늘은 오랜만에 한 시간 이상 마늘을 까주며 연숙을 도왔다. 맛있고 부드러운 음식에 신경을 써주는 연숙을 보면 흡사 엄마나 누나의 느낌이 든다. 그런 때가 참 많았다. 나를 거의 동생 돌보듯, 아들 보살피듯.. 참 재미있다. 그런 것을 나는 많은 경우에 무시하거나 귀찮아 할 때가 있었다. 오늘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대로 나를 도와주며 인정해주는 여성이 나에게 가장 가까이서 살고 있다는 사실, 왜 나는 그렇게 잊고 사는 것일까? 미안해… 미안해…  앞으로도 역시 또 귀찮아 하고 무시할 때가 있겠지만 정말 결사적으로 노력을 하게… 정말…

 

7월 들어서 첫 주일, 연중 제14주간 온라인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 봉헌을 하였다.  오늘은 지난 주 보다 더 많은 교우들의 모습이 보였다.  예고된 대로 한달 반 동안 계실 임시로 오신 신부님이 소개되었다.  예수회 신부 서품이 된지 2년 밖에 안 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를 듯한’ 그런 장래를 위한 목자.  

앞으로 2달 반 공석일 주임신부님의 ‘철학’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오늘의 강론에서도 조금씩 드러난다. ‘신학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 영성’에 더 치중하는 것을 본다. 특히 개개인 적인 소명, 식별, 파견의식, 행복 등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임기 중에 가급적 많은 교우들이 ‘신앙의 기쁨’을 느끼게 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나는 비록 신학적 지식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더 중요할 것이라 믿는다.

 

 

오늘 신부님 강론, ‘파견 론’에 대한 것인데 의외로 나도 느낀 바가 하나 있었다. 그것이 오늘의 큰 수확이다. 나의 ‘칼국수’는 무엇이었던가?  기어코 가져야 행복할 수 있다는 ‘그것 (일명, 칼국수)’에 대한 집착,  그것을 버려야 행복하다고… 나의 칼국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젊음,  아련하고 행복했던 지나간 세월,  바꿀 수 없는 지나간 과오,  그런 신기루를  내가 붙잡고 있었다는 깨달음, 그것을 나는 이제 놓아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 신 구역장 소개가 있었는데,  우리가 전에 있었던 구역에서는 ‘별로 호감이 안 가는’ 사람이 소개되어서 기분이 엇갈리고 착잡하였다. 나쁜 기억들에 파묻혀서 나는 아직도 지난 날의 정리를 깨끗이 못하고 있지만, 이제 즐겁지 않은 과거는 흘려 보내야 할 듯하다.

미사 중에 신부님으로부터 뜻밖의 발표가 있었다. 진희네 부부의 이름이 나오고, 아프리카 수녀님 후원 장학금으로 거금  $10,000 이상이 진희네로부터 봉헌이 되었다고…  그렇다. 돈이 많은 것이 문제가 아기고 , 쓸 줄 모르는 것이 문제다. 돈을 현명하게 쓰는 것, 돈의 노예가 아니고 돈을 쓸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우리는 어떤가?  돈도 없지만 현명하게 쓰고는 있는가? 그들이 부럽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면서 갑자기 병으로 입원했던 윤 요안나 레지오 간부 (부단장) 자매님이 있었다. 하필이면 지금 같은 사태에 입원을 하게 되었는지 안타까웠고, 그 동안도 계속 기도 요청이 있어왔다. 그러던 것이 그제 갑자기 선종기도 요청이 들어와서 병세가 아주 심각함을 알게 되었다. 자세한 병명을 모르지만 암 같은 것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선종기도를 한 지 불과 하루 만에 life support system을 떼어낸다는 슬픈 소식이 왔다.  그러니까, 그 동안 coma상태였던 것이다. 결국 오늘 아침에 숨을 거두었다고 레지오에서 연락이 왔다. 그 동안 큰 관심과 우려로 기도를 바쳤던 이 자매님, 애 띠고 밝은 얼굴로 가냘픈 몸으로 레지오 활동을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예상은 했던 것이지만 어찌도 이렇게 가슴이 저려 오는 것인지? 항상 미소를 머금은 눈과 얼굴이 이렇게도 선 한데…

건강한 모습으로 마지막으로 본 것이 아마도 올해 초 (아니면, 지난해 말) 에 레지오 방문을 갔었을 때, 단장 부재로 대신 주회합을 주재했던 그 모습이었다. 항상 어딘가 아픈 듯, 약한 듯한 모습이었지만 끝까지 레지오의 간부로 있었던 것이 나에게는 인상적이었다. 무슨 사연으로 그렇게 몸이 아팠던 지는 잘 모르지만, 너무나 안타깝다. 더욱이 이런 코로나 사태 때에…  우리는 장례미사도 못 갈 듯하고 레지오 장 葬 도 못하고, 이 얼마나 모두가 쓸쓸한가?  코로나 사태의 최악의 결과 중에는, 장례미사에 갈 수가 없다는 기막힌 사실이 있다. 세상을 떠난 영혼들과 제대로 고별식을 못하는 것이 이렇게 안타까울지 예전에는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Independence Day, 비록 barbecue와 beer는 못했어도 연숙이 정성 드려서 만들어준 아주 부드러운 갈비찜으로 점심을 포식을 했다. 모든 음식을 부드럽게 해야 하는 것, 얼마나 신경이 쓰일까…. 내가 이런 것에 약하다, 너무나 그런 정성들을 간과하는 것이다.

지금 읽고 있는 Barron의 ‘하얀 책’에서 Barron & Trump란 section을 보게 되었다. 흥미가 인다. 나는 이런 사람의 의견이 필요하다. 유명한 신부님을 넘어서 새로 된 주교의 입장으로 쓴 이 글, 어떻게 그는 balance를 찾고 있을까? 신자의 입장에서 이런 각도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된다.  

엄청 흉하게 자란 앞쪽 yard의 잔디를 깎았다. 이것은 최소한 2시간이 걸리는 지루한 job이지만 오늘은 지루한 것 보다는 무섭게 쏟아지는 UV radiation으로 더욱 피곤을 느꼈다. 하지만, 이런 힘든 일 뒤에 찾아오는 즐거움, ice cold Yuengling 맥주, 모밀국수, 사라진 입안의 통증,  Tubi movie, Charlie Chan old movie등이 있는 것에 감사.

 

오랜만에 예전에 Tobey와 같이 누웠던 playground엘 갔다

 

Online Vigil Mass, Holy Family CC.  May 16, 2020

 

며칠 전부터 간간히 들려오던 아틀란타 대교구의 ‘공식미사재개’ 소문이 현실화 되었다.  소문이라고 할 것도 없이 사실은 5월 말까지 대교구의 모든 성당 미사를 정지되었기에 6월 초까지는 무슨 결정을 내려야 할 예정이었다.

만약 이 지역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피해가 심해서 모든 사회적 기능이 정지된 상태가 지속되었으면 문제는 아주 간단했을 것이다. 미사 정지를 무기한 연기를 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의외로 예상만큼 피해가 심하지 않았고, 경제적 피해를 의식한 조지아 주지사는 미국에서 제일 먼저 경제활동 제한 조치를 풀어가기 시작했기에, 대교구도 이제는 중대한 선택을 할 순간이 온 것이었다.

지난 월요일 5월 18일에, 예상한 대로 대교구는 5월 31일 ‘그리스도교회가 탄생한’ 성령강림대축일 Pentecost Sunday를 기해서 일단 공적인 미사재개를  결정을 했고,  각 본당은 그런 방침에 따른 ‘자세한 행동수칙’을 정하여서 공고를 하게 되었다.

문제는, 어떤 절차와 과정으로 문을 여는 가, 어느 정도 여는가.. 이것은 ‘본당차원 단체’의 골칫거리일 듯하다. 위에서 내리는 결정이야  어떻게 보면 간단하지만 진짜 문제는 ‘자세한 행동 수칙 결정 사항’에 있지 않은가?

오늘 ‘갑자기’ 받은 아틀란타 순교자 (우리 한국본당) 성당의 공지사항에 의하면 대교구의 결정사항을 충실히 따른 것으로 보이는데 역시 자세한 절차나 과정은 본당 차원의 문제니까, 그것으로 주임 신부님을 비롯한 사목회에서 ‘골머리’ 를 썩었을 듯하다.

이 미사재개의 세부 수칙을 읽으면서, 우리는 당분간 이곳에 ‘물리적 참여’는 힘들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100명으로 제한 된 것 등을 비롯한 많은 수칙으로, 미사에 참여하는 자체가 거의 특권처럼 느껴진다. 정말로 영성체를 원하거나 교우들과 친교를 원한다면 위험부담을 무릅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현명하고 숙고된 결정일까?

우리가 코로나 Pandemic 전까지 평일에 가는 동네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website에 가보니 역시 이곳에서도 대교구의 방침에 따라 ‘제한적’으로 미사재개를 한다고 공지가 나와있다.  이곳에서도 한국본당처럼 대교구의 미사재개 절차가 공지가 되어있는데 물론 두 곳이 거의 비슷한 제한절차, 조건들이 자세히 나와있다.

이번 조치는 Phase One, 그러니까 제1단계인데, 제한 조건 중에 우리에게 ‘치명적’인 것이 65세 이상은 당분간 ‘쉬시라’는 것, 참… 그렇구나.. 우리도 65세가 넘었지.. 한마디로 6월까지는 ‘푹 쉬시라’는 말이었다. 전에는 store나 restaurant에 가면 senior discount등으로 우대를 하더니, 이번엔 쉬시라는 우대(?) 를 받게 되니, 참 기분이 묘하다.

 

 

제일 나의 큰 관심사는 다름이 아닌 레지오 활동 재개 여부였다. 은근히 미사 재개와 함께 성당 중요 신심 소단체들은 모임이 가능할까 하는 희망이 없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 미사재개 방침에는 아주 확실하게, 미사 이외의 모든 활동은 계속해서 6월 말까지 정지, 라는 방침이었다. 미사도 중요하지만 나에게는 레지오 ‘봉사활동’도 중요한 것이었다. 이 활동은 사실 ‘주임신부님의 강론 말씀’처럼 나에게 살아있다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선물이었기에 더욱 그런 것이다.

참, 세상이 변하긴 변했다. 그렇게 항상 당연시 되던 것들이 이제는 특별한 것이 되었으니…  3월 중순부터 시작된 이 ‘사회적 실험’기간, 사실 이제 조금은 익숙해 지긴 했다. 하지만, 가슴 속 깊이, 이것 언제까지.. 언제까지.. 하는 소리는 막을 수가 없다. 인간이 인간을 피하며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가? 보기 좋던 보기 싫던 간에,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생명의 에너지를 음양으로 받는다. 이것이 고갈되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제1단계 미사참례 행동 수칙

 

거짓말 같이 평화로운 2020년 4월의 마지막 토요일은..

 

¶  구름과 해가 오락가락하고 바람이 살살 불더니 해가 떨어지면서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눈치를 미리 채고 backyard의 picnic table의 파라솔을 접어 놓았는데 아주 현명한 판단이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심하게 바람이 분다는 일기예보를 확인한 것이다. 다행히 기온이 그렇게 낮지 않아서 밖에서 걷거나 일 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는 이런 ‘비상적’인 날씨를 무척 좋아하기에 속으로는 쾌재를 부를 정도다.

4월도 거의 저물어 간다. 벌써 마지막 토요일을 맞은 것이다. 코로나19라는 뉴스가 온통 우리의 머릿속을 맴돈 지도 2달에 가까운 것이다.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어서 이것이 new normal이 아니고 그냥 normal인 것처럼 느껴진다.

 

¶  코로나19, COVID-19, 이름도 부자연스러운 이것, 언제까지 우리의 주위에서 맴돌 것인가? 장기적인 여파는 과연 어떤 것일까? 우리 가족부터 시작해서 주위의 모든 (사회) 공동체들, 특히 신앙공동체들, 나아가 우리가 사는 이 지역, 나라 아니 나아가서 NOOSPHERE는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 우선 과학적으로 알고 싶고 다음은 영적인 눈으로…

 

나를 ‘살려준’ Tech Guy podcast, 과학적인 코로나 뉴스를…

 

이것에 관한, 요새 나의 안도감과 예기치 않은 즐거움은 바로 tech-guy style podcaster들이다. 코로나19 뉴스는 이들의 의견으로 간접적으로 듣게 되는데 이것이 (빠가, 또라이) 트럼프의 웃기는 발언들이나, major news outlet들의 조금은 과장된, dramatic한 style들보다 훨씬 믿음성이 있고 공감이 가는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tech news podcast그 자체보다는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로 코로나 사태의 모든 것을 가늠할 것이다.

 

Backyard에 있는 open shed를 tool, workshop shed로 바꾸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  어제 밖 backyard에서 일을 하며 라디오로 조지아 주의 코로나19  소식을 간간히 들었다. 이발소 같은 곳이 문을 열기시작 했다는 소식이었다. 성급한 느낌은 떨칠 수는 없지만 다른 쪽으로는 심리적으로 무엇인가 평상으로 돌아 간다는 느낌도 있었다. ‘과학적’으로 아직 business 를 열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 그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면 이것도 이해는 된다. 먹고 사는 것, 그것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런 문제를 피부로 못 느껴도 머리로는 알 수 있지 않을까?

 

¶  오늘 우리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본당 레지오의 꾸리아에서 한국 서울 세나뚜스 단장의 글을 forward 보내왔다. 레지오 마리애 잡지에 난 기사를 보낸 것인데,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레지오의 시련, 도전, 그리고 희망에 관한 메시지였다. 교회전체가 겪고 있는 시련과 도전에 못지 않게 레지오도 앞으로의 운영과 선교 방향이 미지수인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사회적 거리두기, social distancing’ 와 레지오의 (대인 선교) 활동방식을 어떻게 지혜롭게 절충하느냐 하는 것인데, ‘쫄짜’ 단장인 나도 요새 이것에 대해 생각을 하면 한숨부터 나올 지경이다. 이것이야 말로 올해 우리들의 풀어나가야 할 제일 큰 도전인 듯하다.

 

¶ 故 최인호 (연세동문선배, 작가) 의 1990년대 말 자전적 수필집 ‘작은 마음의 눈으로 사랑하라‘ , 요새 신들린 듯이 필사를 하며 읽고 있고 이제 거의 마지막으로 향하고 있다. 그 중에서 오늘 읽으며 생각하는 것, ‘젊은 날의 약속’ 이 제목인 데.. 이것을 아마 언젠가 한번 읽었고 그 기억이 남아있는 것이다. (서울)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갔던 이야기였다. 당시에 나는 ‘꿈속에서나 보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그리운 동창회 광경이었다. 한마디로 슬프기만 했던 심정이었다.  이 글은 그가 50세가 넘으며 쓴 것인데, 어쩌면 그렇게들 그 당시에 벌써 ‘늙음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을까? 나는 그것이 부러운 것이다.

 

꽃과 나무 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배우자와 오래 살아왔지만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아주 빈약하다. 한때, 태고 적 시절, 정확히 고등학교 2~3학년 때 ‘화훼 花卉’ 라는 책을 열심히 보며 메마른 콘크리트 2층 집 옥상에다 ‘포장마차’같은 화분, 화단을 만들어서 식물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공돌이’ 성향의 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한때, 그것도 공부만 해야 하는 고등학교 때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이후 나는 이 꽃과 나무에 대해서 완전히 잊고 살았다.

근래에 나이가 지긋이 들면서 조금씩 나의 눈에 이 꽃과 나무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전혀 의도를 한 것이 아니었다. 저절로 눈이 떠졌던 것이다. 노력을 한 것도 없고 생각한 적도 없는데 하나, 둘, 셋, 보이기 시작하고 그것들을 보며 흐뭇한 느낌까지 가지게 되었다. 시에서나 보던 그 초목들의 아름다움을 몸소 느끼게 된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나의 눈을 끈 것은 그렇게 추운 2월 초에 어김없이 눈 속에서도 피어나는 수선화였다. 물론 서정적인 느낌의 classic folk , seven daffodils 를 추억 속으로 연상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변함없이 추위를 견디며 backyard에서 피어나는 그 모습과 성모님의 강인하고, 변함없는 인자한 미소는 잘 어울림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속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소속, 레지오 마리애 주 회합에서는 ‘총 사령관’인 성모님 상 앞에 2개의 꽃이 든 병을 놓게 되어있는데, 매주 이것을 구입하는 것도 사소한 일이 아니다. 요새같이 단원 수가 극소화 될 때는 재정상 더욱 문제가 된다. 이럴 때 집에 꽃을 가꾸는 시절이 오면 조금은 문제가 완화가 된다. 요새가 바로 그런 시즌의 시작인 것이다. 거기다 겨울이 지나가는 때의 청초한 수선화는 성모님과 어찌나 잘 어울리는지…

 

장례식, 장례미사, 연령회 연도..  이제 나에게는 너무도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 말들은 모두 죽음에 관련되는 말들이다. 불과 10여 년 이전만 해도 나는 이런 것들을 거의 모두 피해가며 살아왔었다.  ‘죽음의 진리’를 요리조리 피하며, 모래 밑으로 얼굴을 파묻고 살았다는 표현이 바로 나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이 ‘죽음의 모습’을 눈으로 보고, 기리며 보내는 것이 거의 습관화가 될 정도로 많아졌고, 나름대로의 ‘망자 亡者와의 이별’ 하는 방법과 철학까지 생기게 되었다. 물론 기본적인 철학은 가톨릭적인 것이지만 이제는 내 생각의 일부가 되었음을 느낀다.

각양 각색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을 보내는 모습도 모두 다르겠지만 그런대로 경건함을 지키는 가톨릭 장례미사는 그 나름대로의 ‘장엄 의식’이 있고 그에 따른 조문객들의 엄숙함이 보인다. 일반 장례식은 물론이고 개신교 의식 조차도 이에 비해서 나의 눈에는 너무도 ‘사회적 모임’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한마디로 고인의 궁극적인 삶의 의미, 목적, 가는 곳, 등등에 대한 것들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은 올해 들어서 첫 장례미사에 가게 되었다. 작년에는 1월 초에 간 기억인데 올해는 조금 늦은 셈인가. 오늘의 주인공은 40여 년 전, 우리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창립멤버로 활약을 했었고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사회봉사활동을 해서 이 지역에선 잘 알려진 분이었다.  지병으로 한국의 어떤 요양원에 계시다 며칠 전, 향년 80대 중반에 선종하시고 유골함이 다시 이곳으로 왔는데, 고인의 경력을 감안하셨는지 신임주임신부님, 최대한의 예우로 장례미사를 거행하셨다. 예를 들면 부활초가 켜지고 제대의 초의 숫자 등, 모두 평소의 장례미사와는 달랐던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생전의 고인을 직접적으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 이런 분의 영결식에 참여하는 것은 레지오 단원으로서의 의무로도 생각되어서 ‘갈까 말까’하다가 온 것이었고 신부님의 고별사도 다시 기억하고 싶은 ‘신학적 깊이’를 더해 주는 그런 것이어서 ‘오길 잘 했다’하는 생각을 하였지만, 애석하게도 성당을 떠날 즈음의 느낌은 그것이 아니었다.

 작년 이맘때에 있었던 장례미사의 ‘악몽’이 떠올랐고, 그 이전에도 간혹 겪었던 좋지 않던 기억도 되살아 난 경험을 다시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지나간 두 가지의 비슷한 경험은 모두 ‘너무나 무리하게, 길고 길었던 미사’라는 것, 놀랍게도 그것이 오늘 다시 찾아온 것이다.

장례미사는 일반 장례식과 조금은 달라야 하는 것이 아닐까? 미사가 끝나기도 전에 ‘고별식’이란 것, 각종 지인들의 고인에 대한 고별사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짧지 않은 강연을 하기도 하는데 한국말을 모르는 조문객들이 거의 없는데 모든 말을 영어로 번갈아 가며 하기도 한다.  제일 괴로웠던 경험은 ‘정말 보기 언짢은 태도’로 한 없이 계속되는 ‘우리 사상 최고의 영웅’ 아빠에 대한 추억들.. 정말 끝도 한도 없었다. 내가 죽었을 때 딸들이 그렇게 하는 것, 관속에 들어가 내가 듣게 된다면 아마도 관 뚜껑을 열고 나올 정도가 아닐까..  어제도 큰 예외는 아니었는데, 이번엔 ‘반세기 추억의 영화’까지 가미가 된 것이 이채로웠다. 일반 장례식장에 가면 예식 전후에 뒤 배경으로 계속 보여주던 video를 이번엔 성당 미사 중에, 그것도 ‘끝이 안 느껴질 정도로’ 무수한 영상들을 보여주었다.  내가 앉았던 위치로 보아 도저히 탈출할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나에게 이것은 완전한 show stopper로 느껴진 셈이고 앞으로 ‘장례미사 공포증’이 생기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생긴다.

이래서 크건 작건 성당의 연령 행사는 ‘상식을 가진 책임자’가 책임을 지고 시작부터 끝까지 행사에 참여한 조문객들의 사정도 조금은 사려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애석하게도 이제까지 이런 것들에 대한 책임자의 존재여부는 정말 불확실한 것이었다.  또한 앞으로 장례미사에 올 때는 끝나는 시간을 먼저 확인 받고 싶은 간절한 심정을 뿌리칠 수가 없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세월은 흘러 흘러 어느새 겨울이 되어가는가? 올해 날씨의 특징이 있다면 일단 일기 패턴이 자리를 잡으면 별로 변하려는 기운이 없다는 것,  그렇게 익숙하던 옛날의 三寒四溫 이란 말은 완전히 사라진 듯하다. 다행히도 그 pattern이란 것이 ‘늦가을 초겨울 같은’ 그런 것이라 다행이라고 할까..

지나간 11월 초라고 기억되는 때에 벌써 요란한 Christmas carol이 흘러나온 곳은 의외로 ‘대한민국 극동방송, FEBC streaming service’이었다. 역시 대한민국의 개신교회는 이곳과는 조금 다른가..  어떻게 이렇게 일찍이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는가? 덕분에 추억의 캐럴을 편하게 즐기게는 되었지만 Thanksgiving holiday 전에는 그렇게 편한 느낌은 아니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사실 그런 세속적인 느낌의 성탄축제 보다는 ‘대림절, Advent‘의 엄숙하게 예수탄생을 기다리자는 전통이 있어서 매년 고민을 하게 된다. 어느 정도 ‘전통’과 ‘현세적 문화’를 절충하는가 하는 문제다. 전에는 젊은 시절의 추억적인 크리스마스 기분을 100% 기억, 만끽하려고 했지만 몇 년 전부터는 교회의 권고를 따르기로 결정하고 모든 holiday decoration을 성탄 10일 전 이내로 늦추고 있다. 한마디로 차분한 대림절이 되었고 대신 성탄의 기분을 1월 중순까지 지속시키려 노력을 한다. 그것이 진정한 대림-성탄시기의 뜻일 것이다.

 

12월이 되자 YMCA에서 성탄느낌의 색깔들이 하나 둘 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우리의 한국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도 본격적으로 성탄 장식은 물론 주차장에는 Nativity scene 성탄구유 까지 만들어 놓았다. 우리 성당에서 이런 건물 밖의 구유는 처음 보는 듯하다. 새로 부임하신 이영석 신부님이 이런 것을 특별히 원하셨는지 올해는 조금 모든 것들이 더 일찍, 더 ‘요란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피곤한 삶을 살아가는 교우들을 조금 더 배려한 것은 아닐지…

 

Christmas at YMCA,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 2019

 

오늘은 예년에 비해서 1주일 뒤늦게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가 열렸다. 손가락으로 계산을 해 보니 내가 이 모임에 참석한 것이 딱 10년째가 됨을 알았다. 갑자기 ‘오래 되었다..’ 라는 自照감이 ‘엄습’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그 동안, 무엇이 변했는가? 많이 변했다.. 

나에게 처음 레지오 연총 (2010년대 초 연차 총친목회)의 적극적이고, 참신했던 느낌은 많이 희석된 듯 느껴지고 이제는 조금은 ‘수수방관자’적인 입장이 된 듯해서 조금은 쓸쓸하기까지 하다.  통기타반주로 70/80노래를 목청을 돋구어 부르며 연총 에서 어울렸던 여러 형제님들도 이제는 뿔뿔이 헤어지고, 결국은 ‘별로 쓸모 없는’ 자매님들만 주위에 남은 듯하다. 이것이 레지오의 生老病死인가 아니면 보통 있는 진화과정인가..

나이로 보아도 leading edge에 있는 우리들, 이제는 조금씩 후진, 후배 단원들의 ‘양과 질’을 생각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양과 질 모두 정체, 아니 퇴보인 듯 우려되고, 어제 있었던 신부, 단장 간담회에서는 정식으로 ‘신부님의 전폭 협조’ 요청이 있었다.  협조란 것은 다름이 아닌, 조금이라도 좋으니 ‘레지오 선전’을 해 달라는 것이었고, 오늘 교중미사에서 드디어 그 효과가 나왔다. 전 신자들에게 레지오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간곡한 언급’.. 얼마나 ‘멋진 신임 신부’인가!

오늘 연총에서 우리는 예상대로 ‘공연’을 포기한 상태로 끝났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올해 초에 우리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우리의 구세주로 등장했던 ‘자매님 들’, 엄청난 실망을 안겨주고 갑자기 떠난 상태에서 나는 모든 희망을 잃은 상태가 되었기에 사실 연총 같은 ‘축제’는 관심 밖에 있었다. 그 ‘기대주 자매님’은 도대체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었는지 동정심과 실망을 넘어서 화가 날 지경인데.. 이런 ‘위기’는 어떻게 극복할지 역시 해답은 우리의 총사령관이신 성모님이 가지고 계실지…

 

¶  결국은 보고야 말았다. 우산위로 내리는 가을비를, 그것도 마음껏.. 마음껏.. 얼마나 오랜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씨의 즐거움인가.  ‘최헌’의 ‘가을비 우산 속’ 추억을 연상케 하는 날, 실제로 커다란 우산을 쓰고 가을비를 맞아 보았다. 싸늘하고 어두운 비, 그것도 거의 하루 종일. 지독히도 길었던 올 늦여름, 초가을의 잔인했던 더위와 가뭄도 거의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그런 날이었다. 어머니의 손길, Mother Nature의 투명한 자비하심은 역시 기다리는 끈기도 있어야…

지난 며칠 전부터 서서히 떨어지던 새벽기온 ‘덕분’에 그제 아침에 올 들어 첫 furnace fan의 은은한 소음을 듣게 되었고 나의 study에는 space (parabolic radiant) heater까지 꺼내 놓았다.  지난 해 선물로 받아서 쓰고 있는  ecobee Smart Thermostat에는 heat-cool auto (change) mode가 있어서 사실 cool mode (air conditioner)에서 heat mode (furnace)로 일부러 바꿀 필요는 없지만, 나는 이렇게까지 자동적인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을/겨울에도 가끔 더운 날이 있는데 그런 때는 창문을 열어 놓으면 되지만 그 때에 air conditioner가 자동적으로 나오는 것,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끈질기게 하루도 빠짐없이, 변함없는 ‘마른 뜨거움’를 유지하던 9월 말까지 사실 추위를 막는 옷, 그러니까 ‘춘추복’의 필요성은 거의 제로였는데 그것이 지난 주일부터 서서히 바뀌어서 어느 날 새벽에는 따뜻한 옷을 어둠 속에서 찾으라 애를 먹었다.  아~ 계절의 변화여..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인가… 점점 짧아지는 듯한 ‘남은 인생’이여…

 

¶  오늘은 2년 만에 다시 열린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천상은총의 모후 꾸리아>  ‘레지오 간부 피정 (정식명칭: 레지오 평의회 의원 1일 교육)’엘 연숙과 같이 참가하게 되었다. 매년 이때쯤 실시되는 것인데 작년에는 처음 시도된  ‘레지오 토론대회’으로 말미암아 한 해를 거르게 되었다.  싸늘하고 궂은 날씨였지만 비교적 많은 ‘평의원’ (간부들) 참여 하에  오전에는 보좌 신부님(Fr. 김형철 시메온)의 특별강론 , 오후에는 서 토마스 형제의 ‘가톨릭 혼인에 대한 지침’, 꾸리아 단장님의 ‘특별 (호소} 훈화’ 등으로 아주 유익한 토요일을 보냈다.

레지오 활동 (거의 9년째) 초기에는 이런 것이 생소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세월의 연륜으로 아주 편해지고 나름대로의 추억, 생각, 아이디어 등이 머리를 맴돌곤 한다.  이제는 정이 든, 이곳 ‘천상은총의 모후’ 꾸리아 (평의회)가 더 발전해서 더 큰 활동을 하면 하는 바람 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들대로 든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관건은 ‘세대 교체, 신선한 물결’.. 등.. 역시 세월을 얏 잡아 보면 불현듯 많은 것을 놓친다.

꾸리아 단장의 ‘훈화, 호소’, 나는 심각하고 심지어 숙연한 심정으로 공감하며 들었다. 100% 옳을 말씀, 어쩌면 그렇게 ‘순명과 충성’의 정신을 놓은 단원들이 대다수인 느낌이 드는 것일까? 어떻게 이들에게 ‘불을 붙일 수’ 있을까?  역시, 역시, 교육, 재교육… 재재교육..’ 뿐이다.

오늘 ‘피정, 교육program’ 중에는 ‘혼인 조당’에 관한 서(재욱) 토마스 단장의  ‘보고, 강의’가 우리들의 관심을 끌었다.  아틀란타 교구청에서 수 개월에 걸쳐 ‘연수’를 마친 후 certificate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교회 내에서 생기는 결혼법적인 문제를 상담하는 첫 창구역할을 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나를 비롯해서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결혼성사’가 정말 ‘성사’ 임을 간과하며 살고 있었는데,  한마디로 교회법상에는 ‘이혼’이란 말이 없음을 왜 모르고 살았을까? 나도 최근에서야 이 ‘혼인성사’의 심각성을 실감하고 있는데,  우리 딸들의 결혼문제와 겹쳐서 고민을 안 할 수 없게 되었다. ‘세속적 쓰나미 tsunami’ 의 거대한 물결을 헤지고 나가는 우리 ‘불쌍한 교황님’, 절대로 굴복하시면 안 됩니다.  이것이 세속적으로 무너지면 다음에는? 진실은 진실이고 진리는 진리이고 일 더하기 일은 죽어도 이(2) 입니다.

 

¶  오늘 일일 교육피정이 끝나고 점심 식사 때 우연히 오늘 미사, 피정 강론신부, 김 시메온 신부님과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 ‘비교적 젊은’ 경남 산청 출신 보좌신부님, 내가 연숙에게 ‘이 신부님을 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던 분.  소년처럼 활짝 웃는 모습이 인상적, 얼마 전 마주쳤을 때 ‘불현듯’ 떼이야르 샤르댕 (예수회) 신부님에 대해서 짧은 대화를 했었다. 김 신부님, 샤르댕이 예수회출신임을 알기에 자신을 갖고 물었는데, 역시 잘 알고 있었고 ‘먼 앞날을 내다보는 선구자’라는 사실도 잊지 않고 언급. 그런데 오늘 대화에서 그것을 잊지 않고 언급하시는 것이 아닌가?  기억력인가, 아니면 신자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인가?

예수회의 역사적 ‘진보성, 개방성’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는데, 그런 사실들(예수회원 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계셨다. ‘진보적 경향’은 요새 항상 아슬아슬한 말, 특히 정치적으로 더욱 그렇다. 한걸음 조금 더 나아가서 ‘신부님의 정치적 성향’을 살짝 듣고 싶었지만 그것만은 피할 수 밖에 없었다. 결과가 뻔하지 않던가? 그런 화제를 일부러 피하시는 듯한 모습이 나에게는 커다란 플러스로 여겨졌다.  이런 것들에 비하면 ‘윗동네’의 같은 예수회 출신 신부님들의 ‘행태’가 너무나 크게 비교가 됨을 알고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Blessed Virgin Mary

 

성모승천대축일, The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매년 8월 15일, 우리의 광복절) 을 즈음해서 생각나는 것이 있다. 거의 9년 전쯤에 처음 읽다가 만  독일의 신학자 Wolfgang Beinert 볼프강 바이너르트의 <마리아 – 오늘을 위한 마리아론 입문> 이란 책,  당시 생전 처음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되면서 고조된 성모신심에 힘입어 – 일단 묵주기도를 통해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현상이지만 – 그 이후로도 가끔  생각하며, 개인 신심적으로 무심코 넘어갈 수 있는 ‘지극히 가톨릭적’인  ‘5대 마리아 교의‘를 다시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포근한 인류의 어머니’, 무엇이나 다 들어주실 듯한 나의 어머니라고 생각하려고 무척 애를 썼고 이제는 아주 편하게 나를 ‘개인적으로 대해 주시는’ 어머니가 되었다. 하지만.. 항상 비껴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왜들 그러한 포근한 어머니를 배척하는 인간들이 그렇게 많은 것일까?  심지어 그런 ‘증오심’을 자랑으로 여기는 인간들을 보면 심한 혼동에 빠진다. 어떻게 그러한 인간들이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것인지…

역시 이것도 요사이 미국 가톨릭교회의 떠오르는 희망인 LA 교구의 Bishop Robert Barron을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사랑에 의한 이성’을 통한 신심, 바로 그것이다. 학문적인 체계에 의한 것이 아니면 아무리 뜨거운 신심이라도 수명과 한계가 있는 것이다. 학문적인 체계, 논리적인 뒷받침, 그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의 6장에는 ‘마리아론의 기본원리’ 가 간결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것이야 말로 학문적인 approach인 것이다. 이것을 출발점으로 서로 논쟁을 해도 할 것이다.

 

 

마리아論의 기본원리

 

마리아에 관한 가톨릭 교의신학의 가장 중요한 정식은 다음과 같다.

 

1. 마리아는 평생 동정녀로 머물렀다.

2.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다.

3. 마리아는 원죄에 물들지 않았다.

4. 마리아는 죄 없는 삶을 영위하였다.

5. 마리아는 사망 후 ‘승천하였다.’

 

신학자들은 특수한 원천기반과 이에 상응하는 인식기준에 입각하여 계발된 모든 마리아 교리에서, 배아 胚芽에 담겨 있는 것 같은 기본원리를 발견해내려고 시도하였다. 이러한 원리가 있다면 이로부터 마리아론 전체의 단일성과 응집력은 가시적이 될 것이며, 마리아 신심은 번잡스러움과 과잉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되고 통제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에 관한 명제는 어느 것이든 그 기본원리에서부터 출발할 때 비로소 정당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명제의 정당성 여부는 이 기본원리에 입각하여 실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본명제는 하나의 일반적인 교의적 기능을 지니며, 신앙교리 전체구조의 범위 내에서 마리아론 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어떠한가를 제시할 것이다. 또한 이 기본원리는 순전히 조직적인 근거에서만 중요할 뿐 아니라, 신앙생활을 실천에 옮기는 데에도 직접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견해에 의하면 ‘신앙진리의 위계질서 位階秩序’가 있다. 이 점은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에서 단정되고 있다. 1 신앙의 진리는 모두 진리이지만 이것이 모두 동격은 아니다. 어떤 진리가 – 진리의 함축성은 손상되지 않은 채 – 가장 핵심적인 신앙의 진리이며 인생의 진리인지, 아니면 보다 주변적인 것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러한 기본원리는 마리아 신심이 그리스도인에게 필수불가결한 신심인지, 아니면 이 신심이 특별히 정당하고 모범적이긴 하지만 열심한 교회 구성원의 특수영성일 뿐 모든 신자들에게 반드시 의무를 부과하지는 않는 신심인지의 여부에 관해서도 해답을 줄 것이다.

성 알로이시오 Aloysius (1568-1591), 사도 유다 타데오 Judas Taddaus, 빠두아의 성 안토니오 Antoius (1195-1231)와 같은 성인에 대한 공경이 극히 칭송할만하고 장려할 만한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성인을 공경하는 것만으로 어느 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드러내는 척도를 삼을 수는 없다. 즉 이러한 성인공경이 신앙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어머니 마리아 공경 역시 이 범주에 해당되는지 어떤지 문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본원리는 얼핏 보아서는 발견하기 쉬운 것 같다. 마리아에 관해서 언명하고 탐색해낼 수 있는 모든 것은 결국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구세사적 사실에 기인한다. 이 사실을 도외시한다면 남는 것은 마리아가 아무리 거룩하고 존경할 만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 이상의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 알로이시오와 사도 유다나, 빠두아의 성 안토니오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 찬양 받을 만 하듯이, 마리아와 유대를 맺는 것 또한 찬양 받을 만 하다. 그러나 이렇게만 본다면 마리아론 이란 결코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알로이시오론 이나 안토니오론 을 정립하려는 생각은 어느 누구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인론을 정립하려는 이 작업은 언어상의 난점을 도외시하더라도 착수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된 인물은 교회 안의 다른 모든 거룩하고 존경할 만한 인물과는 달리 독자적인 양식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바로 이 점이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명제만을 마리아론 전체의 기본원리로 선언하는 것이 불충분하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보다는 바로 이 모성의 가장 내밀한 본질을 규명해야 한다. 이 모성이 다른 모성과 어느 점에서 구별되는가? 이 모성이 어느 점에서 마리아의 다른 기본특성의 근거가 되는가? 여기서 의견들이 분분해진다. 하느님의 모성에 대해 상이한 일련의 형식규정들이 있다. 이것을 모두 나열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것 같아 여기서는 다만 몇 가지 분석적인 고찰만을 시도하고자 한다.2

그리스도교적 계시의 기본진술은 “하느님이 인간의 구원을 이룩하신다”는 것이다. 이 진술은 바로 하느님이 인간의 절대적 완성을 원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인간의 절대완성이란 삼위일체인 하느님과의 복된 일치에서 이루어진다. 이 목표는 우리가 구세사 救世史라고 일컫는 과정 속에서 구현된다. 이를테면 인간에게 의미있는 중요한 일이란 구세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어느 한 사건이 구원을 구현하는 데 기여하는 만큼 그 사건은 그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다.

이 말은 구세사가 동일한 밀도로써 계속 진행하지 않음을 포괄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 구세사 안에는 절정이 있는가 하면, 심연이 있다.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하는가 하면 조용하게 사건이 진행되기도 한다. 이점은 세계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볼 때 세계의 역사란 다른 것이 아니라, 구세사의 한 구성요소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건이 진행되는 이 테두리 안에 하나의 중심사건이 있는가?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와 구원사업이 시간의 충만, 즉 모든 구세사건의 정점이요 핵심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출현하는 가운데 시간은 절대 중심에 이른다. 그러므로 모든 사건은 이 구세사의 사건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이 사건에 의해서 그 수준과 가치가 측정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세사의 사건에 대한 이치에 맞는 척도를 얻어내기 위해서 그리스도 사건의 본질적 면모를 찾아내어 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음의 형식적 면모를 단정할 수 있다.

 

1. 그리스도 사건은 하나의 ‘간선’이다. 육화, 즉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이 된 것은 창조에 내재하는 강박적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유로운 은총결의 恩寵決意에 서 나온 것이다. 육화, 강생이 인간의 죄 때문에 발생했는지 (일부 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아니면 인간이 범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발생했을는지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오늘날 믿고 있듯이)는 여기서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가설이든 그리스도의 육화는 하느님의 절대의지에 의한 것이며, 인류의 입장에서 볼 때 어던 이유도 있을 수 없는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 사건은 연대사건이다. 육화의 개념은 육화의 사건 전체에서 가려 뽑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실제로 우리의 형제가 되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비슷하게 되었다 (히브리서 2, 11-17 참조). 그러나 여기에 죄는 포함되지 않는다. 죄는 인간의 본질에 속하지 않고, 도착 倒錯되어 비정상적이 된 인간본성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존재란 항상 공동체로 들어가게 마련이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이중의 귀결을 낳는다.

(1) 인간이면 누구든지 그에게 주어져 있는 한 공동체에 들어가게 된다. 누구나 특정한 가정에 태어나고, 특정한 집단의 테두리 안에서 생활한다. 누구나 정치-문화적인 총체적 상황에서 생활하게 마련이다. 이 상황에 속한 구체적 집단은 각 개인의 활동보다 앞서 있는 인간의 활동을 통해 이러한 정치 문화적 총체 상황을 체험하게 된다. 창조가 이미 하느님의 구원사업의 구현을 드러냈기 때문에 사람이면 누구나 그에게 주어져 있는 특정한 구세사적 상황에 태어나기 마련이다. 이 구세사적 상황은 구체적으로 공동체 안에서 체험된다. 그리스도교적 이해에 의하면 하느님은 인간과 계약을 맺었다. 하느님은 바로 이러한 양식으로 인간역사 안에서 작용하고 있다.

(2) 인간이면 누구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만일 그 사람이 없다면 그 공동체는 달라질 것이다. 그가 그 공동체에 해독을 끼치는 사람일 경우라면 그가 없어지고 난 그 공동체는 아마 개선될 것이다. 또 유능한 한 사람의 활동이 없어진다면 그만큼 그 공동체는 가난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공동체를 지연시키고 공동체에 부담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런 활동을 통해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록 가장 보잘것없는 지체일망정 인간은 누구나 그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이 모든 것이 구원공동체에도 해당된다.

강생이란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으로서 존재하는 구원공동체 안에 그리스도가 태어남을 의미한다. 이 계약은 이스라엘로 말미암아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계약에 포함된 인간이 그리스도를 순수한 하느님의 은총 자체로 인정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계약이 파기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흘린 피로써 새 계약[신약]이 묵은 계약[구약]에서 탄생하였다. 이 새 계약의 중심은 그리스도이다. 우리가 새로운 구원공동체를 ‘교회’라고 부른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육화는 ‘첫 의인이었던 아벨로부터 유래하는 교회’3로서 애당초부터 그를 향하여 정착되어 있었으며 머리인 그에 의하여 생활하는 교회인 ‘신약의 교회’에 들어섬으로써 성취된다.4

 

3. 그리스도 사건은 ‘구세사적인 효력’을 발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느님 은총의 충만이 우리 구원을 위해 세계에 현존하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완전한 본질을 그리스도에게 기꺼이 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하늘과 땅의 만물을 당신과 화해시켜 주셨습니다” (골로 1, 19이하). 그러므로 이 은총은 강생에 입각해서 인간적으로 세계에 분배된다. 또한 이 은총은 인간적 활동에 입각하여 세계에 선사된다. 우선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에 입각해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지향하거나 또는 그로부터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자신을 봉사에 내맡기는 모든 사람들을 통하여 이 은총은 세계에 선사된다. 선교적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진다” (에페 1,23)고 성서는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 사건의 형식적 규정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그리스도 사건은 교회 안에서 완전히 효력을 발휘한다. 하느님의 자비로운 선택,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와의 연대성과 구세사적 효력은 교회 실존의 근거이며,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성취되기 위한 전제이다. 여기서 이러한 구조 자체가 하느님이 역사하신 사실적 길[道程]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우리 인식을 신학적으로 아주 간략하게 정식화하여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론은 교회론 안에서 성취된다. 그리스도론은 구세사적으로 볼 때 교회론의 전제이며 교회론은 그리스도론의 계속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구세사의 정점이요 중심은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이다. 이러한 통찰에 이르게 되면서 우리는 구세사적 사건을 평가하기 위해 모색했던 척도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척도는 한 인물이나 사건이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와 갖는 관계 속에 존속한다.

 

그러면 이 고찰이 우리의 마리아론적 기본원리를 위해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로, 마리아론의 기본원리는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에 의해 측정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단정한다. 그리스도론이나 교회론에서 분리된 진정한 마리아론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그리스도께로 더 치중시켜야 하는지, 아니면 교회에 더 치중시켜야 하는지에 관해 지금까지 전개해 온 토론은 긍정적이 아니라는 것도 아울러 드러나게 된다. 여기에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오로지 종합명제가 있을 뿐이다. 그 이유는 구원을 이룩하는 그리스도는 교회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로서만 구원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를 떠난 독자적인 마리아론이 있다면, 이 마리아론은 그리스도론과 교회론 사이에 있거나 아니면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에 각각 위치해야만 한다.

이제 주의 어머니의 인물 자체를 살펴보기로 하자. 마리아는 결국 자유로운 하느님의 은총행위를 통해서 주의 어머니가 되는 품위에로 불림받은 것이다. 그녀의 모성은 적어도 일차적으로는 조물계에서 통용되는 인과율의 결과가 아니다. 이 단계에서 동정녀 출산의 신비에 대해 신학적으로 본질적인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 말씀이 육화하는데 ‘예’를 발함으로써 마리아는 하느님의 사실적 구원계획을 수락한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인간적으로 온전히 수락되고 수용된다. 하느님의 인류와의 연대성은 이런 의미에서 사실상 마리아를 통하여 작용한다. 마리아는 사람의 아들 [인자 = 그리스도]에게 그를 인류와 연결시키는 육신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와 사람의 아들을 인격적으로 연결 지어주는 지체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교회와 관련된 개념의 의미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는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통하여 교회 안에 탄생하였으나 동시에 교회의 머리요 생명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나아가 그리스도가 마리아로부터 그의 육신을 취하는 가운데 마리아  안에서 신약의 교회를 세웠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 때문에 마리아는 자신의 모성을 통하여 구세사적 작용능력도 아울러 받게 된다. 마리아는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과 그리스도 안에서 맺는 하느님과의 연대감으로 인해 세계를 위한 구원의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론이 교회론에서 성취되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리고 한 인물의 구세사적 가치가 교회 안에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관계 속에서 측정되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됨으로써 교회 안의 그리스도와도 가장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가장 밀접한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교회를 가장 완전하게 구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자가 마리아에게 해당된다면 후자 역시 그러하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정체가 마리아에게서 가장 완전하고 가장 순수하게 표현된다.5

이렇게 정식화함으로써 우리는 마리아의 모성의 규정을 넘어서 마리아론의 기본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마리아론의 기본원리를 다음과 같이 정립할 수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모친으로서 교회의 예형 또는 원형이다.”

이 원리로부터 다른 모든 마리아론적 신앙진술이 유도되어 나와야 할 것이다. 마리아에 관한 다른 모든 신앙진술은 이 원리와 부합되어야 한다.

 

<마리아오늘을 위한 마리아론 입문> 중에서

볼프강 바이터르트

심상태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 Unitatis Redintegratio 11항: “가톨릭 교회의 여러 진리와 그리스도교적 신앙의 기초와의 관계는 서로 다른 것이므로 여러 교리를 비교할 때에는 그 진리들 사이에 질서와 순서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2. 전체적으로 A. Mueller, Marias Stellung und Mitwirkungim Christusereignis 참조.
  3. 교부시대 이래 활발하였던 ‘아벨로부터의 교회 표상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재차 포착하였다.
  4. 이 표상은 성바오로의 ‘그리스도의 몸 신학’과 ‘그리스도의 몸 신비학’에 그 성서적 기초를 두고 있다. 에페 4,15 참조.
  5. 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적 교서 Marialis cultus 16-22, 32, 57항

그래, 우리는 피정을 드디어 갔다. 그것도 집을 완전히 떠난 ‘봉쇄, 침묵’ 피정, 우리 둘은 같이 간 것이다. 일단 축하해야 할 성취감을 느낀다. 결론적으로 기분이 좋은 것이다. 오래 잊고 살았던, 색다른 경험을 했다고도 말하고 싶다. 특히 이재욱 요한 신부님의 영성적 깊이의 진면목을 다시 보고 느꼈던 시간들이었고,  얼마 후 임기를 마치고 떠나게 될 이 좋은 목자가,  나의 신앙에는 어떤 의미를 남기게 될 것인가 생각을 한다. 올해의 ‘마지막’ 피정은 나의 개인 역사, 특히 2010년대 초에 시작된 나의 레지오 활동단원의 전체 역사에 비추어서 회고하며 색다른 의미를 찾고 싶다.

 

2019년, 연 年 피정 避靜, annual ‘spiritual’ retreat… 이것이 우리에게 몇 년만인가 며칠 전부터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간 것이 2014년, Coyners Monastery 였고 그 전해인 2013년엔 Carmel Retreat Center였다. 그러니까 지나간 5년간 우리는 ‘집을 떠난 피정’엔 못간 것이다. 거의 매년 한번 정도는 경험해야 할 이 ‘영신적 휴가’를 왜 못했던 것일까?

우리의 연례 피정은 100% ‘레지오’ 주관일 수밖에 없는데, 한마디로 우리의 레지오 (그러니까 꾸리아)에서 그 동안 주선을 못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Leadership, leadership & leadership의 부재라고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요새 대통령 같이 않은 인간들처럼 사람 잘못 뽑으면 어떤 결과, 특히 장기적인 여파가 생기는지..  두고두고 후세가 짊어질 폐해들, 무능력한 것뿐만 아니라, 숫제 퇴보하는 leadership, 요새 뉴스를 보아도 이제는 우리 눈에 익숙한 것이 아닐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현 leadership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이고 결과적으로 이번에는 ‘심각한 피정’을 주선한 듯하다. 더욱 반가운 사실은 이번에 가는 곳이 6년 전에 갔었던 곳,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고 아직도 신선한 느낌이다. 솔직히 나는 참 많이 듣고 배운 곳이었다. 아직도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은 것은 나만이 아닐 듯하다.

이제 몇 시간, 3시간 있으면 ‘짐을 싸 들고’ 60여 마일 떨어진 곳으로 출발을 하는데, 이번 피정은 현 주임신부님이신 ‘이재욱 요한’ 신부님 주관이라서 미리부터 기대가 적지 않다. 이 신부님의 영성적, 신학적 깊이에 대해서 익히 들어서 알지만 이번에 그것을 내가 경험하게 된 것이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신부님의 마지막 피정지도가 되지 않을까…

Fort Yargo State Park picnic area

 

¶  지난 주일에는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우리 60~70대 성당모임인 등대회의 야유회 picnic 엘 갔었다. 2017년 가을에 입회한 이후 몇 번 이런 행사엘 갔기에 이제는 조금 익숙한 편이지만 나로써는 감회가 새로운 것이, 이런 ‘사람들 모임’ 그것도 ‘놀러 가는’ 것에 나는 거의 가질 않고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나도 많이 변했구나 하는 ‘흐뭇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런 삶이 ‘정상적인 삶이 아닐까..

이번의 야유회가 조금 더 색다른 것은 우리 부부가 같이 참가했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는 각종 임무로 너무나 바쁜 스케쥴에 얽매인 연숙이 마음 놓고 참여하기가 힘들었었는데 최근에 하나 둘 씩 ‘책임’을 내려 놓기 시작해서 가능하게 된 것이다. 나도 지난 해에 맡았던 구역장 임무를 내려놓고 얼마나 홀가분한 기분이었는지 모른다.

이번에 간 곳은 나도 한번 간 적이 있었던 Fort Yargo State Park으로 작년에 구역장 연수회를 그곳에서 한 관계로 나는 한번 간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 당시는 cottage에서 하루를 묵었지만 이번에는 picnic area로 가서 몇 시간을 먹고 즐기다 돌아왔는데, 여행을 별로 즐기지 않는 우리들에게는 적당한 하루의 휴식, 여행을 한 셈이 되었다.

이 등대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우리와 나이가 아주 엇비슷한 사람들이 꽤 있고, 그 중에서도 나와 동갑인 형제, 자매들도 꽤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에 오랜 세월을 살면서 이렇게 ‘동류의식’을 느껴본 적은 아마도 없었을 듯 하다.  나이가 비슷한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어떤 사람들은 상관을 안 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정 반대다.  그들이 거의 친구처럼 느끼며 ‘좋아하는 것’을 연숙은 조금 이상하다고 보는 모양이지만 나는 사실 그렇다.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는 사실이 어찌 큰 의미가 없겠는가? 이 그룹은 한마디로 ‘자연스럽게 편한’ 느낌을 주기에 ‘큰 사고’가 없는 한 열심히 참여하고 싶다.

 

¶  오늘 우리는 레지오 주회합 후에 배해숙 (베로니카) 자매님 선종 4주기 (5월 2일)를 맞아 성당 근처에 있는 Winters Chapel  memorial park 엘  갔었다. 돌아 가신지 벌써 4년이 되었나.. 2014년 가을에 말기암 환자로 처음 만났고 2015년 5월 2일에 선종한 어떻게 보면 참 ‘불쌍한’, 나와 동갑내기 자매님이었다. 남편 형제님은 그 전해에 먼저 타계를 하고 ‘철없이 보이는’  장성한 두 아들을 댕 그러니 남겨놓고 간 자매님이었다.  다행히 친 오빠, 친 여동생이 있어서 장례식 이후 가끔 소식을 주고 받지만, 이제는 4년의 세월 탓인지 당시의 강렬했던 느낌들도 조금씩 빛을 잃어가는 듯 하다.

당시, 우리 둘은 ‘레지오 활동’을 염두에 두고 열심히 배 자매님을 천주교인으로 입교시키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고 성공을 한 셈이지만, 과연 자매님 우리가 배운 대로, 희망하는 대로 ‘좋은 곳’에 가셔서 평화로운 다른 삶을 ‘남편 형제님’과 같이 사시는 지는 확신이 없다. 하지만 믿는다. 그것이 신앙이고 희망이니까.. 자매님, 짧은 기간이었지만 보람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히 쉬시고 남아있는 두 사랑하는 아들들 그곳에서 잘 보호해 주소서…

올 들어 처음으로 느껴본 ‘후덕지근’ 한 어제 밤을 보낸 후 결국은 자연의 섭리는 다시 ‘통계적 평균’을 찾아 제자리로 돌아오긴 했지만 조금 심했나… 극과 극의 맛을 자랑이라도 하듯 오늘 새벽은 완전한 겨울 같은 느낌이다. 3월 31일은 역시 이른 봄이라기 보다는 늦은 겨울이기도 한 것이다. 차가운 비와 더불어 시베리아 같은 느낌의 세찬 바람소리가 들리는 뒤 뜰에 잠깐 나가보니 어제 입던 옷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그런 날씨로 변해 있었다. 지나간 해 이맘때쯤 남긴 ‘세찬바람 불어오면…’ 을 읊조린 글과 그림이 생각이 나는 아침이 되었다.

이런 날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 광경은 역시 ‘포근하고 따뜻한 늦잠’을 즐기는 나의 모습이지만 오늘은 그런 가능성이 제로이기에 아쉽기만 하다.  오늘은 ‘주일’이기도 하고, 한가하게 쉴 수 있는 여건도 아닌 것이 아쉽기만 하다. ‘주일은 쉬어라’.. 십계명.. 흠…. ‘노동’은 쉬겠지만 나의 七十 老軀 를 끌고 밖으로 차를 몰고 나가야 하는데..

주일 아침의 ‘십계명의 부담’ 넋두리의 유혹을 제치고 나머지 일요일 하루를 보낸 후에 느낌은 역시.. 이것이다. ‘할 것은 해야 하고, 뛸 데가 있으면 끝까지 뛰는..’ 바오로 성인의 가르침, 아니면 레지오 교본이 강조하는 ‘부지런함과 절제되고, 훈련된 삶 disciplined life’가 주는 기쁨,  기본적으로 ‘게으름의 죄악’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도 죄악임을 가끔 완전히 잊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은가? ‘무상으로 받은’ 자유의 시간들, 정말 공짜가 아님을 잊으며 ‘나는 절대로 죄가 없다’고 코웃음을 치는 사람들.. 가끔 나도 그 중에 하나다. 오늘도 그런 유혹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완전히 그것을 물리친 안식일이 되었다.

 

3월의 마지막 주일날 (다섯째)에는 21차 레지오 아치에스 Acies1 행사가 열렸고 우리 ‘자비의 모후’, 연숙이 사회를 진행하게 되어서 한 명이 빠진 상태였지만, 다행스럽게 협조단원 2명, 그것도 모두 ‘형제님들’ 이 참석을 해서 ‘기본적인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 2년 전 ‘레지오 미친년들 사건‘ 이후부터 이런 행사가 오면 단원의 숫자에 무척 신경이 쓰였다.  워낙 신입단원 모집이 어려운 요새의 실정에서 기도 이외에는 크게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독을 뿜는 독사들’ 한두 명만 있어도 이렇게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피해를 보며… 역시 ‘뱀의 머리를 바수는 어머니’의 역할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군대 같은 질서로 우리들 모두 성모님께 충성을 서약하며 의미 있고 보람된 ‘안식일’ 인 3월 마지막 날이 되었다.

  1. 총사령관이신 성모님께 대한 개인 및 단체 봉헌식, 3월 25일을 전후로 개최한다. 아치에스는 라틴어로 전투대형을 갖춘 군대’라는 뜻이다.

R. 스콧 허드 지음, 신현숙 옮김: ‘용서가 어려울 때’, 가볍고 쉽게 보이는 작은 책, 이미 예고 된 대로 아틀란타(도라빌) 순교자 성당을 방문하신 ‘바오로딸 수녀회’의 발랄한 수녀님들로부터 직접 ‘현찰’을 주고 산 책이다. 이런 식으로 내가 직접 수녀님들로 부터 산 책은 아마도 ‘사상 처음’일 듯해서 그것에서 나는 작은 보람을 느낀다.

원서의 제목은 ‘Forgiveness: A Catholic Approach’ 로 되어있고 원저자의 이름은 R. Scott Hurd 로 나와있다.  Copyright는 2011년의 원저자의 것이다. 한국어 번역판의 Copyright는 2015년, 최근 1판 10쇄 는 2018년, 그러니까 비교적 근래에 읽혀지는 ‘따끈따끈한’ 책인 듯 하다.

머리말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 워싱턴대교구의 대주교, 추기경 (Cardinal) Donald Wuerl 이 썼기에, 책은 비록 가볍게 보였어도, 내용은 비교적 신학적으로도  serious, heavyweight의 느낌을 준다.

내가 이 책에 ‘불현듯’ 손이 간 것은 몇 년 전에 겪었던  불미스러운 사건들’로 비롯되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두 ‘여자’들로부터 충격적으로 폭력성까지 느낀 일들, 그것도 ‘사랑의 집단, 성당’내에서 겪고 보니 그야말로 ‘망연자실 茫然自失’ 의 참담한 심정이었다. 한마디로 ‘어떻게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라는 것인데, 한편으로는 우리도 ‘보통 사람’이 된 느낌도 없지 않았다. 이런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주변에서 수 없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가 ‘온실’속에서 산 기분까지 들었다.

사건 초기의 충격이 사그라지면서 이제는 다른 문제가 우리를 괴롭혔다. 일단 깊이 남은  (psychological) trauma는 세월이 해결할 듯하지만, 그 ‘두 인간들’을 앞으로 성당 공동체내에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은? 정신을 차리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니, 제대로 처리를 못하면 필요이상으로 후유증이 오래 갈 듯 보였다.  이 ‘작은 책’을 사서 읽기 전까지 나는 “(1) 이성적인 정의 正義와 심판 (2) 이후 완전히 잊자! “라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정의나 심판이란 말이 거창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간단하다. 두 ‘가해자’가 모두 ‘레지오 간부, 단원’들이기에 그들은 분명히 레지오의 선서규율 하에 놓인 상태였고 그것에 따라 심판을 하는 것, 이론적으로 결코 무리는 아니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잘잘못을 가린’후에야 의미 있는 화해나 용서가 가능한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하지만 이런 ‘심판’과정은 레지오 평의회의 ‘겁쟁이 심리’로 무산되었는데 나는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 충분히 그들은 그런 용기가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귀찮아서, 무서워서, 소용이 없어서’ 라는 반응, 이것이 현재 레지오의 수준임을 누가 몰랐으랴?

다음 단계, ‘화해와 용서’는 글자를 보기도 무서울 정도로 몇 광년 떨어진 별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사건 이후 그 두 ‘가해자’들의 ‘전혀 부끄럼 없는 활보’를 가끔 보면서 가장 실용적인 대안은 ‘그저 잊자’ 라는 것 뿐이었다.

성경에 너무나도 자주 나오는 ‘용서’란 말이 어떻게 그렇게 ‘파렴치하게’ 느껴질까? 그들이 용서를 청하면 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절대로 실현가능성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 나름대로 일방적으로? 하!!!  그런데 이 ‘작은 책’에는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치명적인 상처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용서를 하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지만 역시 어렵고도 어려운 주문을 받고 있기에 즐거운 독서는 절대로 아니다.

C. S. Lewis 는 “용서는 아름다운 일이라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이는 자신에게 용서할 일이 생기기 전까지일 뿐이다” 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진실인 모양이다.  아직도 아주 가끔 불현듯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복수’하고 싶은 심정이 드는 것을 보면 2년이 지나간 지금도 나는 고통을 느끼는 듯하다.

 

“우리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상처받으며 산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은 고통을 준 상대를 용서하라고 한다. 그가 무슨 짓을 했든, 얼마나 여러 번 같은 짓을 반복했든, 사과를 하기는커녕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다시 만날 사람은 물론,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용서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과 고통을 준 당사자를 위해 용서해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께 영광 드리고 이 세상에 그분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용서해야 한다.”

 

이런 표현을 읽으면, 결국 이런 문제는 ‘하느님’ 까지 올라간다. 하느님을 위해서 용서를 하라고.. 그분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서.. 참, 괴로운 권고가 아닌가? 하지만 이런 표현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라는 뜻이 아닐까?

 

“용서가 치유의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최근 과학적으로도 밝혀지고 있다. 용서하는 사람이 더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는 것이다.”

용서라는 것은 ‘나에게도 이롭다’… 이 말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주변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작은 용서’를 한 후 느끼는 ‘치유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큰 용서’에는 더 큰 편안함과 치유의 혜택이 있음은 짐작이 간다.

 이 책은 분명히 ‘용서는 공평하지 않다, 그것은 사랑과 자비의 표현이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더 힘이 드는 것이다. 이 불공평함과 일방적인 자비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결국은 ‘기도’ 밖에, 그것도 ‘끝까지 기도’, 로 귀착이 됨을 어찌 잊으랴? 문제는 어떻게 어떠한 기도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용서하게 해 달라고, 잊어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되는 것인가? 그러면 초자연적인 힘으로 ‘그들이’ 먼저 용서를 청하며 다가온단 말인가?

 

이 책은 성서적, 신앙적, 영성적으로 용서와 화해를 비교적 깊숙이 분석하고 해결책을 나누고 있지만 결국은 내가 ‘행동’으로 나서야 모든 것이 가능하다. 생각만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첫 걸음’을 띄는 것, 그것은 초자연적인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Roswell Nursing center, 비록 review는 별로지만 나름대로,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의 service를 주는 곳

 

Roswell Nursing (& Rehabilitation Center), 우리는 줄여서 Roswell nursing home, 아니면 그저 Roswell 양로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제 레지오 주회합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곳에 들렸다. 이것은 이번 주에 우리 ‘조’ 에게 배당된 최소한 2 시간의 레지오 활동이기도 했다. 몇 년째 되는 이곳에서의  우리의 레지오 ‘봉사’ 활동은, 보통 몇 분의 ‘장기 체류, 중증 치매 환자’인  형제 자매님들을 뵙고, 의사 소통이 가능한 분과는 얘기를 나누고, 그렇지 않은 분들과는 그저 무언의 대화를 하다가 돌아오는 정도다.

처음 이곳을 방문하기 시작했을 때 ‘아래층’ 에 있는 ‘치매환자 병동’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느꼈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적은 숫자의 치매증 환자를 이제까지 못 본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많은 환자들을 한꺼번에 목격한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환경적으로 이곳은 큰 병원 같은 ‘시설’의 느낌으로 긴 복도에 무질서하게 방황하거나 심지어 엎드려서 기어 다니는 광경은 비록 ‘봉사’하는 마음을 갖고 갔지만 충격적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들의 비교적 어두운 ‘아래 층, 거의 지하’에 집단적으로 모여있는 것은 분명히 ‘안전’을 위한 것이지만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방문회수가 늘어나면서 물론 이런 광경들은 차츰 익숙해지긴 했고, 어떤 때의 광경은 비교적 안정되고 깨끗하게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을 떠나서 일단 치매환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면 각종 혼란한 생각이 나의 머리를 스친다. 가벼운 망각증부터 심한 중증 치매환자들, 그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어떤  ‘봉사’한단 말인가?

 

 

완전히 자기를 잊고 산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내가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 보아도 ‘실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것들을 보고,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인가? 조금이라도 실감이 되면 무슨 가능한 시늉과 통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치매의 ‘진행 정도’에 따라서 어떤 분은 우선 대화가 가능하고, 심한 분들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내가 이런 분들의 머리 속으로 들어가면 어떤 것들이 보일까, 각종 추측을 해 보지만 사실 아무도 모른다. 오직 그 고통중의 환자만 아는 것이다. 가족들도 전혀 모른다고 하니 그 가족들의 심정은 어떨까?  가끔 가족들이 온다고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별 차이 없을 것 같다. 저 분들이 나의 어머니, 삼촌 같은 분들이었다면… 솔직히 이런 ‘시설’에 놓아두고 싶지 않을 것 같은 ‘사치스런’ 생각까지 든다. 그들도 오죽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이런 곳에 맡기셨을까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런 치매 환자들과 다른 분들 즉, 거동이 불편한 분들은 그래도 대화가 되기에 좀 낫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거동의 불편함도 정도가 있어서 ‘말기성 치료 terminal care’ 환자처럼,  나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분들은 정말 이곳이 지옥같이 느껴질 듯하다.  정신은 말짱한데  불편한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하거나, 다시 퇴원할 가능성이 없음을 알고 이곳에 머무는 것, 그것은 다른 종류의 고통이요 형벌이 아닌가? 게다가 말도 거의 통하지 않는 환경에서 어떻게 오랜 세월을 보낼 수 있을까? 가족들도 그런 사정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방문하는 한 ‘개신교 자매님’도 그런 분이다. 처음 이곳에서 알게 된지 1년도 훨씬 넘는 이 자매님, Parkinson’s 병 환자라 거동이 아주 불편하다. 문제는 이 병이 ‘퇴행성 degenerative’이라 점점 나빠지는 것이고 치료방법이 현재로는 없다고 한다. 그 동안은 그런대로 움직이며 단체활동 (bingo나 auction game같은) 도 언어소통에 상관없이 열심히 하셨는데 이날 보니 아주 상태가 좋지 않았다. 병세 (근육마비)가 점점 중요 장기들에 영향을 미치는 듯 싶었다.  불길한 느낌에 오래 가실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설을 나왔다.

이곳에 왔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는 반드시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가 더 나이가 들거나 건강이 나빠지면 어떤 모습으로 살 것인가.. 하는 ‘당연하지만 방정맞은’ 그런 생각, 안 할 수가 없다. 우리의 나이를 의식하고, 세월의 빠름을 감안하면 거의 실감이 안 날 수가 없다. 하지만, 재빨리 ‘내일 일은 내일이 알아서 한다’라는 말씀을 상기하며 부지런히 차를 Roswell 에서 Marietta쪽으로, 집으로 집으로..

¶  물 건너 간 것, ‘첫눈’: 2019년 2월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28일 밖에 되지 않아서 더 빨리 지나가는 듯 하다. 목을 빼고 애처럼 기다리던 올 겨울  ‘첫, 하얀 시루떡, 눈 雪’,  은 결국 물 건너가는 듯 느껴진다.  왜 올해 내가 그렇게 ‘첫 눈’을 기다렸는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지나간 몇 년간 매년 보고 즐기기도 했던 것이라 습관이 되었는가, 아니면 그저 나이답지 않게 ‘감상적 感傷的’ 인 기분에 빠졌는가.  비록 눈 구경은 못 했지만 대신 비 구경은 실컷 즐기며 살았던 주일을 보냈으니 그렇게까지 실망할 것은 아니다. 대신 YouTube의 video를 통해서 눈보라 치는 모습과 곁들인 멋진 영상음악은 Google ChromeCast의 도움으로 big screen TV를 통해서 실컷 보고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역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뒤뜰로 흩날리는 몇 송이의 눈발과 어떻게 비교를 할 수가 있겠는가?

 

¶  규칙적인 대장 운동:  지난 주에는 뜻하지 않게 regularity 문제로 며칠간 고생을 했다.  평소에 큰 신경을 안 쓰고 살았는데 가끔은 이것이 찾아온다. ‘변비, constipation’이라고 하면 당장 ‘냄새’가 나는 듯해서 조금 부드러운 표현이 ‘규칙적인 대장 大腸 운동, regularity’ 지만 이것 역시 기분은 마찬가지다.  왜 이런 ‘불규칙 증상’이 찾아왔나 생각해 보니 주범은 역시 ‘달콤하고 편리한 stick instant coffee 중독’인 듯하다. 그것 말고는 혐의를 둘 것이 별로 없으니 말이다.  예방은 물론 이런 ‘편리,달콤함’에서 벗어나면 되는데 ‘처방, 치료’가 문제다.

Toilet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불편함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나도 잘 몰랐으니까..  이 regularity문제 자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로 인해서 ‘Prep-H, hemorrhoid’ moment 까지 나가면 정말 골치를 썩게 된다.  나도 경미하게 Prep-H 증상을 몇 번 겪었지만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것만은 피하고 싶지만 항상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이번에도 이틀 정도 이것으로 고생을 했지만, 증상자체도 신경을 심하게 건들이지만 그것보다 이것으로 기분이 축 쳐지고 우울감까지 느끼게 되는 것도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이런 며칠 간 고생의 경험으로 이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을 조심하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Kroger drug counter에서 찾은 ‘stool softener’ 란 pill을 정기적으로 복용하기 시작했고, 최악의 경우에도 대비를 하기로 했다. 이것도 ‘앞서가는 나이’와 상관이 있는 불편함인가…

 

¶  2월 마지막 주일:  거의 매일 비가 온 듯한 느낌을 주는 2월, 마지막 주일 미사는 도라빌 순교자 성당으로 가게 되었다. ‘절대적인 이유’가 아니면 앞으로 주일미사는 동네 미국본당으로 가기로 달 전에 결심을 했지만 예외는 항상 예상 해야 한다.  이날이 바로 그런 날이 되었다. 이유는 도라빌 성당 60~70대 친교모임인 등대회 회식 때문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찬란하게 떠오른 태양으로,  미사 시작을 ‘쨍~하고 해 뜰 날’ 이란 말로 시작한 주임신부님도 주일에 보게 된 것도 반가웠고, 한달 만에 다시 만난 등대회원들도 새롭고 즐겁게 느껴진 것을 느끼고, 이곳도 조금은 정이 들었나..하는 포근함까지 느끼는 등, 이날, ‘주일’은 그야말로 ‘주님이 주신 안식일’이 되었다.

오늘 ‘레지오 화요일’,  오늘도 우리 집 뒤뜰에서 계속 초봄의 소식을 전해주는 수선화를 꺾어가지고 가서 레지오 성모상 옆에 꽂았다.  성모님 (상)을 보면서, 현재 조금씩 안정되어가고 있는 우리의 ‘자비의 모후’를 쉽게 포기하지 않으시는 듯한 모습을 그린다. 몇 주 전부터 ‘방문자’로 참관을 하는 ‘예비신자’ 자매를 보며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어쩌면 이 자매도 ‘성모님 job’이었나 할 정도다. 또한 얼마 전 퇴단한 실망스런 자매들과 이 예비신자 자매와 비교를 하며, 어떻게 세상에 이렇게 사람들이 다를 수가 있는가..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대체적으로 올해 2월은 우리로 하여금 지나간 6개월 여 ‘구역모임’으로 인한 ‘고통의 기억’들로부터 더욱 멀게 해 주는 그런 시기가 되었다. 이제는 우리는 다시 제 정신을 차린 듯한 산뜻한 기분을 느끼며 ‘우리들의 3.1절’을 기다리게 되었다.  ‘우리들의 3.1절’, 1919년의 기미년이 아니고, 우리 둘에게 3월 1일을 즈음해서 일어났던 각종 ‘좋은 추억’들, 예를 들면: ‘1992년 현재의 집으로 이사 왔던 날’, 부터 시작해서 2012년의 ‘매일 미사’ 전통의 시작까지 3.1절은 우리에게 소중한 날이 되었고 올해도 예외 없이 이날이 되면 추억과 더불어 ‘때려 먹는’ 즐거움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올들어 처음 피어나는 수선화 꽃망울

 

¶  돌아온 수선화여, 주일 전부터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모습, 올해 처음으로 피기 시작한 수선화,  일주일 동안 거의 매일 아침미사 15분 drive하는 동안 우리는 오늘은 어떤 모습의 봄 소식을 찾을 수 있나 차창밖에 온통 신경을 쓴다. 이것은 우리 같은 ‘젊은 노인’ 부부에게는 논쟁의 여지를 줄 수 없는 거의 완벽한 대화 소재가 아닌가 생각한다.

꽃 망울이 겨우 눈을 뜨기 시작한 수선화가 작년에 하늘로 간 Tobey1의 무덤 주위에서 그 녀석의 영혼을 감싸듯이 정렬을 하고 있음을 매일 본다.  추위를 견디는 수선화의 안쓰러운 모습과 나의 손에 머리를 안겨 마지막 숨을 쉬던 그 녀석의 얼굴이 겹치며 나를 순간적으로 우울하게 한다. 역시 봄과는 거리가 있는 싸늘함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올해의 겨울과 봄의 사이는 유난스럽게 이상한 것이, 겨울이 정말 춥지를 않았다. 영하로 내려갔던 날이 며칠이나 될까? 덕분에 에너지는 많이 절약했겠지만 이런 상태로는 올 겨울 ‘눈 구경’은 물 건너 가고 있다.  대신 장마철을 연상하게 하는 ‘싸늘한 비’의 연속을 겪고 있다. 아마도 봄을 준비하는 초목들은 땅 속에서 잔치를 벌리고 있을 듯 하다.

 

기다리던 눈 대신 싸늘하게 내리는 줄기찬 비

 

거의 ‘악몽’ 처럼 느껴졌던 작년 후반기 6개월의, ‘구역’에 대한 기억, 이제는 그런 것들을 뒤로하고  2019년의 봄은 우리에게 조금 더 다른 의미를 주는 기회를 주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다. 청순한 수선화여, 피어있는 동안 우리에게 모든 괴로웠던 기억들을 말끔히 씻어 가게 해주길..

 

¶  수선화의 성모님:  모처럼, 나와 우리의 ‘등대’, ‘자비의 모후’  주회합 성모님 제대의 주위가 ‘꽉 찬듯한 느낌’을 주었다. 지난 몇 개월간 생존의 위기를 거듭했던 ‘자비의 모후’,  몇 주 전에는 결국  ‘파산선고’ 까지 우려했지만 역시 성모님의 도움이신가.. 최소한의 간부구성이 갑자기 이루어졌다.

 

수선화의 성모님, ‘자비의 모후’를 도와주소서,,

 

게다가 신단원 모집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비신자 자매님이 부활 세례직후에 입단이 거의 확실하게 되는 듯하니, 어찌 수선화의 축복을 받는 성모님이 더욱 더 아름답게 보이지 않겠는가? 지나치게 큰 기대는 안 하지만, ‘독물 毒物 이 전부 빠져나간 듯한 ‘ 우리 ‘자비의 모후’가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새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것, 올 봄에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1. 작년 6월에 14살 천수를 다하고 떠난 나의 ‘영혼의 벗’ 개 Dachshund 의 이름

¶  Better Korean Festival?  별로 기다리지도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고, 근래 나의 관심사에서 제일 멀리 있던 것이 나에게 왔다가 갔다. 연숙의 문인화 전시가 올해의 한인축제, Korean Festival와 함께 열린 것이고 이것은 이제 우리 가족의 작은 가을행사도 되었다.  이 전시를 계기로 가족이 모여서 전시회, 한인축제 공연, 그리고 넓은 주차장에서 각종 booth를 구경하는 것인데, 나는 사실 큰 관심이 있다고 할 수 없지만 ‘가족의 일원’이기에 피곤해도 와야 하는 그런 종류의 시간이다.

한인축제는 몇 년 전(2~3년?)에 가족과 왔었는데, 그 당시 ‘아이들’의 논평이 ‘재미없고, 촌스럽다’ 라는 것이고 나도 사실 동감이었다. 그런데 올해의 것은 ‘조용한 놀라움’을 주는 것이었고 ‘아이들’도 동감인 표정들이었다. 우선 ‘아마추어 같은 촌스러움’이 많이 걷힌 것이다. 각종 공연들도 그런 느낌을 주었다. 무엇이 변한 것일까? 자신은 없지만 ‘event pro’ 그러니까 행사를 주관하는데 각종 프로 들이 등장한 듯 했다. 큰딸 새로니는 몇 년 전에 Greek Festival을 보고 우리의 축제와 비교를 하곤 했는데,  아마도 우리도 그런 것을 보고 더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논평을 했다.

 

 

각종 공연들, 특히 Big Orchestra가 등장한 것, 비록 한인 오케스트라라고 했지만 많은 연주자들은 ‘외국인’들이었다. 그러니까 무엇인가 축제자체가 community에  open된 것이다. 거대한 남성합창단의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이들과 같이 ‘나의 살던 고향은..’, ‘사랑으로..’ 등을 관객들과 열창한 것도 가슴이 저미는 뭉클한 순간들이었다. 이런 모든 것들, 이제는 ‘초 국제화’가 되어서 아마도 바다건너의 대한민국의 재력과 K-POP을 중심의 최첨단 pop culture가 이곳에서도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이날 한인문화회관에서 있었던 동양화, ‘문인화’ 전시에서 나는 처음으로 정성과 시간을 써서 관람을 하게 되었다. 연숙이 이것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이제는 꽤 되었지만 나는 아무리 보아도.. 그것이 그것이라는 느낌뿐이었다. 동양화, 묵향화, 문인화.. 조금씩 성격이 다른 것 임도 이제야 알게 되었고, 어떤 그림이 더 좋은 것인가 하는 것이 이제는 조금씩 느껴지기도 했다. 우선 시간을 더 써서 자세히 묵상, 기도하는 심정으로 응시를 하였다. 이날 처음 그렇게 비슷하게 보이던 것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것도 알았다. 연숙의 ‘거대한 국화들’도 자세히 보게 되었고 왜 입선이 되었고 관람객으로부터 좋은 평을 받았는지 알려고 노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대상물’은 ‘생물들’ 그러니까 새들, 다람쥐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찌나 느낌들이 좋았는지, 연숙에게도 꽃, 식물 다음에 그렇게 ‘살아 움직이는’ 대상을 그려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  레지오 사업보고:  나의 ‘정든’ 레지오 전초분대(Praesidium, Pr.) ‘자비의 모후’의 연례 사업보고가 일요일 꾸리아 월례회의 때 있었다. 단장이 된 이후 처음 하는 것이라 물론 내가 평의원들 앞에서 발표를 했지만 이번 발표에는 ‘고발성’ 글귀가 실려있어서 나는 그것을 가급적 dramatic하게 만들려고 노력을 했다. 이 ‘고발’을 할 때 평의원들의 얼굴은 대부분 blank 였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른다는 뜻이라고 나는 해석했지만 다른 쪽으로는 ‘너무나 심각한 어조와 내용’이라 그런 표정을 지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솔직히 나는 그들, unmotivated, uninterested 한 모습들을 보며 우리 꾸리아, 레지오의 앞날이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주 관심사는 ‘고발 당한 2명’이 이런 글을 읽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것에 계속 머물고 있었다. 그 중 한 인간은 그 회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모두 알게 된 비밀이 공식화 되었기에 나는 그 두 ‘피고들’ 의 공식징계를 위한 다음 단계로 마침내 나아가게 되었다. 앞으로의 추이가 너무나 흥미롭게만 하다.  Watch out, you two’s!  Here I’m coming after you!

 

¶  BIG flat-screen TV Envy? 우리 집에는 누구나 모두 ‘자랑’ 하고 싶어하는 monster size flat-screen TV가 없다. 그러니까.. home theater 가 없는 것이다. Desk에서나 쓸 수 있는 아주 작은 digital TV가 있을 뿐이다. 가족들이 family room에 모여서 old tube analog  TV로 주로 VHS video를 보던 때가 지금은 그리운 추억이 되었지만, 아이들이 커서 모두 집을 떠나면서 그 ‘고물’ TV는 완전히 방에서 물러나고 집에 남은 우리 둘은 거의 broadcast network TV를 안 보고 살게 되었다. Movie같은 Video를 보는 것은 인터넷의 출현으로 거의 각자의 desktop PC로 해결이 되었다. 문제는 home theater같은 느낌의 즐거움이 없다는 것인데 사실 그것도 거의 모든 시간을 desk앞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 큰 문제가 안 되었다. 하지만 다른 집에 가보면 우리같이 사는 사람이 거의 없고 ‘경쟁적’으로 엄청난 큰 screen TV가 있었다. 물론 극장 같은 경험을 집에서 즐기는 것, 누가 마다하랴.. 문제는 그만큼 $$$를 투자할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인데.. 돈도 돈이지만, 우리 둘에게 아직까지도 그것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 아닌 사치품에 속했다.

 

 

하지만 trickledown 현상이라고나 할까 결국은 caveman처럼 살려고 하던 우리에게 ‘공짜’ big screen TV가 흘러 왔다. 두 딸들이 쓰던 것, 새것을 산다면서 우리보고 가지라는 것.. 크기를 보니 사실 요새 기준으로는 큰 것이 아니지만 우리 집같이 traditional house에는 정말  적당한 size가 아닌가? 하나는 40″, 다른 것은 42″ 정도.. 40″는 kitchen area에 맞고 42″는 아마도 bedroom에 맞을 듯하다. 한가지 연구해야 할 것은 이것들은 1st generation TV로 한마디로 smart TV가 아니다. 그러니까 Internet streaming이 자동적으로 되지를 않는다. 하지만 RokuChromeCast를 쓰면 간단히 해결 될 듯하다. 이렇게 해서 우리 집도 HDMI digital TV 시대의 막이 올랐다.

 

¶  가을비를 보며:  오늘 아침, 10월 중순을 향하는 길목에서 나는 아직도 열대성 공기를 느끼며 깨어나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바지를 찾는다. 어제부터 처음으로 ‘긴 바지, 긴 셔츠’를 입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덥다기 보다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을 느끼니.. 아 ‘긴 팔, 긴 바지’의 진정한 가을이 코 앞에 다가오고 있구나 하는 잔잔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습기 없는’ 시퍼런 하늘을 유난히도 올해는 내가 기다렸는데 야속하게도 이제는 지겨운 ‘열대성 대기’는 쉽게 물러가지 않았다. 설상가상 이제는 갑자기 나타난 Michael이란  남자 이름을 받은 허리케인 hurricane이 열대성 습기와 강한 바람을 몰고 FloridaPanama City Beach 쪽을 강타하고 무서운 속도로 이 지역을 스치고 지나가고 있다. 다행히 메트로 아틀란타 지역은 ‘반가운 비’를 제외하고는 거의 영향이 없는 듯 하다.

 

아틀란타 주변을 스쳐 지나가고 있는 tropical storm Michael

 

몇 주간 뜨겁게 마르고 있던 대지들이 오랜만에 단비의 맛을 보았던 어제 밤과 오늘 아침의 주변은 그야말로 축복을 받는 느낌. 이번의 비와 바람이 올해 ‘마지막 여름’을 장식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진정한 O. HenryThe Last Leaf 의 느낌을 한껏 주는 추위 속의 낙엽과 Halloween의 찬란한 가을을 보게 될 것이다. 아직도 어두운 밖에는 정말 오랜만에 듣는 소리가 나의 귀를 의심케 한다. 바로 ‘피해 없이 내려오는’ 잔잔히 빗소리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the last leaf clings to the bough, just one leaf..

 

¶  19차 레지오 사업보고:  레지오 단원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업보고 business report’, 일년에 한번씩 지나간 일년간 레지오 단원으로 했던 활동 실적을 총집계해서 꾸리아 월례회의 때 발표를 하는 것으로 지나간 일년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료이며 계기가 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많은 단원들이나 평의원들에게 별로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관행대로 하는 routine, 그저 해야 되는 것, 심지어는 귀찮은 것 정도로 생각되던 것이다.

이것이 올해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우선 내가 발표를 하여야 하는 단장이 되었고, 어떻게 이것을 발표할 것인가 하는 것이 ‘나의 책임 소관’이 되었기에 생각을 더 하게 된 것이다.

지난 일년 동안 ‘우리들’이 ‘뛰었던’ 모습들이 서기회의록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것을 근거로 ‘정해진 form’에 주로 ‘숫자’들을 적어 넣는다. 그리고 이것을 단장이 꾸리아 평의회에서 ‘보고 읽는’ 것이다. 읽은 후에는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면 끝이 난다. 이런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과정을 매월 겪는데, 어떨 때는 너무나 형식적으로 들려서 지루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올해의 사업보고서 작성을 끝내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전 해의 것과 비교해 보면 단원의 숫자가 반으로 감소했으니까 활동도 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우려를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 보고에는 글로 쓰게 되어있는 ‘운영 상황’ 난을 통해 지난번 꾸리아 단장과 면담을 했던 ‘자비의 모후 명예회복을 위한 특단 조치’에 관한 우리의 결심을 공적으로 알리기로 했다. 실명을 쓸 수가 없지만 아마도 당사자 (2명의 미친X들) 들은 아마도 짐작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흥미롭기까지 하다.

 

바로 전에 print된 ‘따끈따끈’한 레지오 사업보고서, 일요일에 발표될 예정.

 

이렇게 올해의 사업보고 작성을 매듭지으며 나에게 도대체 레지오란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새삼스럽게 생각을 해 보았다. 거의 8년 동안 뒤를 안 보고 달려왔던 것, 암만 생각해 보아도 나에게 이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기에 나는 나에게 매일 놀란다. 이것이 바로 나에게 있어서 레지오의 의미다. 다른 설명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 달릴 수 있을까… 오직 그분만이, 성모님만이 아실 것이다.

 

일요일에 제출, 발표할 레지오 연례 사업보고서를 작성하며 도움이 될만한 자료가 있는지 googling을 하던 중에 ‘보물’을 찾았다. 얼마 전 자비의 모후 Pr. 단장이 되면서 훈화를 준비하며 도움을 받고 있는 ‘레지오 훈화집’의 저자 ‘레지오 박사’ 최경용 신부님의 글을 발견한 것이다. 비록 2003년도에 발표된 것이지만 현재 나에게는 거의 모두 유효한 기사, 글이었다.

이 최신부가 쓴 ‘레지오 영성’이란 책도 언젠가 잠깐 읽은 기억이 난다. 그 책을 보고 이분이 로마에서 레지오 마리애 영성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레지오 마리애 박사 신부님인 것이다.

2003년이 한국에 레지오 마리애가 처음 창설된 50주년을 즈음하여 당시의 대한민국 레지오의 현황을 예리하게 분석한 것으로 지나친 신학적 전문용어를 쓰지 않고 설명한 것이 매우 인상적인데 이것을 읽으며 거의 모든 분석이 현재 내가 있는 ‘아틀란타 레지오’에 모두 적용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형식적이고 소극적인 활동 때문에 사업보고서의 특기사항이 거의 비어있다.”

올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이 점을 보면 동감이 간다. 별로 ‘특기할 만한’ 활동이 없는 것이다.

 

 **  “간부직이 부담스러워 서로 맡지 않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솔직히 간부는 고사하고 평단원들조차 입단 시키기 어려운 실정, 이것은 레지오 전체의 이미지나 단원들이 보여주는 ‘자질’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  “레지오 마리애가 지도신부의 관심과 사랑 없이 그냥 두어도 잘 되는 단체는 결코 아니다.”

특정 지도 신부님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것은 제도적 문제가 아닐까? 너무나 바쁜 사제들에게 레지오에 우선권을 두라고 강요할 사람이 없다. 다만 꾸리아 차원에서 지도사제의 관심을 유도시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  “소 공동체와 레지오의 마찰”

대표적인 소 공동체는 ‘구역 모임’이 있는데 이들과 활동이 중복되는 것이 있을까?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특성을 활용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  “레지오 마리애는 창설자의 정신에 따라 간부와 단원들의 질적 향상을 위해 공부와 교육에도 정성을 쏟는다.”

주회합에서 하는 영적독서, 훈화, 교본공부가 거의 전부인 현재의 우리들의 실정으로는 간부, 단원을 고사하고 신단원이 레지오의 정신을 배울 기회는 거의 없다. 현재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꾸리아 차원에서 ‘시간과 돈’을 지속적, 제도적으로 투자하는 수 밖에 없다.

 

**  “규칙과 규율이 무시되면 군인정신이 해이해져 힘을 쓰지 못하는 군대가 되고 만다.”

이런 ‘군대의 특성’이 무시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나는 일년 전부터 내 눈으로 보았고 그 여파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법에는 항상 예외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법이 어겨지면 그 처리 결과가 있어야 한다. 이것을 할 수 있는 곳은 현재 영적지도자, 꾸리아 밖에 없다.

 

**  “단원들이 신심과 활동보다 친교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되면 레지오 마리애는 무너지고 침체될 수밖에 없다.”

신 단원 교육에서 제일 강조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레지오의 조직과 정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나는 수없이 이런 사례를 목격했고 결과는 거의 예외 없이 이런 ‘무너지고, 침체될’ 그런 것이었다. 현재도 나는 ‘주 회합 후 외식하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을 매주 본다.

 

** “레지오 행동단원이 받는 혜택과 은총”

1. 개인 성화로 자신이 구원을 받고,

2. 주간 활동을 통하여 보람 있는 생애를 보내며,

3. 활동 대상자들에게 크나큰 위로와 용기를 주며,

4. 기도, 공부, 활동을 통하여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대인관계의 폭도 넓어 지고,

5. 군인정신과 프로 정신으로 역경을 극복할 수 있으며,

6. 따라서 기쁨과 감사의 삶, 구원의 삶을 살게 되고,

7. 성모, 성령신심을 통해 열매를 맺는 생활이 되고,

8. 활동을 통해서 신체적인 건강을 유지하게 되고,

9. 수많은 레지오 장례와 위령미사의 혜택과 은총을 받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위의 거의 모든 것들은 내가 받았던 것들이고 또한 창설자(프랭크 더프)가 몸소 실천한 삶이다.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을 맞이하여

최경용 (부산교구 신선본당 주임신부)

 

 

1. 시작하는 글

한국의 레지오 마리애는 1953년 5월 31일에 아일랜드로부터 도입되어 올해(2003년) 50주년을 맞았다. 레지오 마리애는 외국에서 도입한 한국의 첫 평신도 사도직 단체로서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 발전하였다.

레지오 마리애가 쌓은 공로와 업적은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레지오 마리애가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말이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장래가 심히 우려된다. 왜냐하면 레지오 마리애의 알맹이인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의 정신은 쇠퇴하고, 껍데기인 친목과 친교에 치중하는 현상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레지오 마리애 정신이 얼마나 해이해졌으면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을 맞아 레지오 마리애 정신 회복에 지향을 두고 묵주기도 5억 단 봉헌운동을 펼쳤겠는가? 간부들과 단원들이 얼마나 레지오 마리애 창설자의 정신에서 벗어나 있었으면 한국 레지오 마리애 협의회가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 회복’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까지 개최했겠는가?

지금은 레지오 마리애의 변화와 쇄신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은 곧 창설자의 정신이다. 따라서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창설자 프랭크 더프의 정신을 새롭게 인식하고 창설자의 정신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오늘날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문제점들을 짚어보면서 창설자의 정신에 비추어 그 해결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오늘날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오늘날 우리나라 레지오 마리애가 당면한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크게 열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선교활동과 봉사활동 기피, 단장을 비롯한 간부들의 사명감 결여, 영적 지도자와 영적 지도 문제, 소공동체와 레지오의 마찰, 교육 문제, 규칙과 규율 문제, 지나친 친목, 물질 구제 문제와 자금 사용 문제, 노인·청소년·신학교 쁘레시디움 문제, 단원 모집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를 각각 살펴보고 해결방안을 알아보고자 한다.

 

1) 선교활동과 봉사활동 기피

한국 가톨릭 교회 공동체의 선교 실적이 낮아지고 있다. 이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주간 활동 의무를 다하지 않는 데 그 근본 원인이 있다고 본다. 

활동은 레지오 마리애의 본질이다. 레지오 마리애 주회합의 핵심은 활동보고와 활동배당이다. 주회합에서 묵주기도를 포함한 기도 시간보다 활동보고와 활동배당에 소요되는 시간이 더 길어야 한다. 

주회합의 3대 요소인 기도, 활동, 공부를 감안하여 주회합의 소요시간 기준을 한 시간 반으로 정한 것이다. 그런데 마치 쫓기듯이 주회합을 한 시간 이내에 해치우고, 곧바로 평일 미사에 참례하는 쁘레시디움이 많이 있는 것 같다. 활동보고 내용과 활동배당이 빈약하다 보니 주회합을 한 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끝내는 것이다. 

형식적이고 소극적인 활동 때문에 연중 사업 보고서의 특기사항이 빈약하기 짝이 없다. 특기사항란이 아예 공백인 쁘레시디움도 있다. 1년 동안 특기할 만한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교본은 적극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단원들이 모든 시간을 복무시간으로 여겨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의 정신으로 복음화에 앞장서는 선교단체이므로 선교와 복음화 활동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 본당마다 쉬는 교우와 거주 미상자가 수두룩하여 큰 문제가 되지만, 사실 이러한 문제는 레지오 마리애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 협의회는 이를 위한 사업을 점차적으로 연중 사업 계획에 넣어 본당과 교구 사목에 획기적인 업적을 세울 것을 제안한다.

 

2) 단장을 비롯한 간부들의 사명감 결여 

간부직이 부담스러워 서로 맡지 않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저 평단원으로서 부담 없이 레지오 마리애 단원 생활을 하겠다는 것이다. 군대생활을 하면서 장교가 되기는 싫고 사병으로만 머물겠다는 말과 똑같다. 그래서 걸핏하면 레지오 마리애를 잘 모르는 신참 단원이 간부직을 떠맡게 되는 안타까운 사례가 여기저기서 생기고 있다. 모름지기 간부직은 성모님께서 직접 맡겼다고 여겨야 하는데도 그걸 모른다. 이를 순명 으로 받아들였을 때의 은총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부들이 잘못하면 쁘레시디움 전체가 잘못된다. 특히 레지오 마리애의 운명은 단장에게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장이 주회합에 자주 결석하거나 활동 계획서를 꼼꼼히 챙기지 않아 활동배당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든지, 단장 자신이 활동을 소홀히 하고 언행도 일치하지 않으면서 단원들 위에 군림하려 한다든지, 레지오 마리애에 대한 사랑과 열성 없이 타성에 젖어있다면, 그 쁘레시디움은 얼마 안 가 존폐 위기를 맞게 된다. 단원들이 하나 둘씩 퇴단하기 때문이다. 단장의 결정적인 결함은 단원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므로 그럴 경우 단장을 교체하여 물갈이가 되도록 해야 한다.

단장을 비롯한 간부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을 땅에 묻지 말고 십분 활용해야 한다. 

 

3) 영적 지도자와 영적 지도 문제

레지오 마리애는 초창기부터 주회합에 사제를 영적 지도자로 모셨다. 레지오 마리애는 본당 사목의 협력기구이므로 대체로 영적 지도자들은 레지오 마리애를 사목적으로 적극 활용한다.

레지오 마리애의 제도와 규율에 따르면 영적 지도자도 쁘레시디움과 평의회의 당연직 간부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목자들은 자신이 간부임을 잘 모르고 있다. 이것이 문제이다. 영적 지도자가 레지오 마리애의 간부라면 당연히 상급 평의회의 지시에 순명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사목자가 상급 평의회의 지시에 따라주면 좋지만 그 지시에 순명해야 할 의무는 없다. 오히려 영적 지도자가 레지오의 지단과 평의회를 설립하고 해체할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단원들은 상급 평의회의 지시보다는, 주임신부가 직접적으로 지시한 사항이 있다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하고 우선적이다. 따라서 주임신부가 레지오의 간부가 되는 제도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영적 지도자는 주회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석하여 묵주기도, 영적 독서, 까떼나, 선서 후 강복, 훈화, 회합의 마침 강복을 주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레지오 마리애가 지도신부의 관심과 사랑 없이 그냥 두어도 잘 되는 단체는 결코 아니다. 

그래서 주임신부는 보좌신부, 수녀 등 대리자에게 영적 지도를 일임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참석한다. 쁘레시디움이 많은 레지오 마리애를 원활하게 관리하고 운영하려면 사목자가 꾸리아 간부 연석 월례회, 쁘레시디움 단장 연석 월례회를 개최하여 레지오의 현황과 실태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4) 소공동체와 레지오의 마찰

레지오 마리애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활기를 잃고 침체되기 시작한 와중에 소공동체 운동이 일어났다. 물론 그 전부터 교회의 기반 조직인 구역, 반모임이 있었지만 소공동체 운동을 통해 조직이 더욱 강화되었다. 소공동체 교재를 통해 성서에 맛들이게 되고 구성원 간의 친목과 유대를 돈독히 하고 본당 공동체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도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소공동체 운동은 모든 교구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소공동체가 없는 본당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전국 어느 본당이든 레지오 마리애가 존재한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소공동체를 선호하는 본당 사목자들이 레지오 마리애가 소공동체 운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 것을 보고 쁘레시디움과 평의회를 해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는 상호보완이 가능하다. 교회의 사명은 신자들의 성화와 선교활동이요, 레지오 마리애의 목적도 개인 성화와 선교활동이다. 그러므로 레지오 마리애를 해체하는 것은 교회의 사명 수행을 막는 것이며,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사목자는 본당의 소공동체 모임에 적극 참여하지 않거나 창설자의 정신에서 빗나가는 레지오 마리애를 바로잡아주고 본래의 정신을 되찾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협조를 통한 상생의 관계로 정립되어야 한다.

 

5) 교육 문제

레지오 마리애는 창설자의 정신에 따라 간부와 단원들의 질적 향상을 위해 공부와 교육에도 정성을 쏟는다. 주회합에서는 영적독서, 훈화, 교본공부가 레지오 마리애의 일상적 교육에 해당된다. 교본공부를 위한 「교본 해설집」도 필요하고, 특히 「훈화집」이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다. 아무쪼록 한국 레지오 마리애 협의회의 노력으로 하루빨리 새 훈화집이 발간되어 영적 지도자와 단장의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어야 할 것이다. 

주회합에서 하는 훈화와 짧은 교본공부만으로는 단원들의 질적 향상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레지오의 양적 팽창에 질적 수준이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나라 실정에는 반드시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특히, 레지오 마리애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단원들이 단장이나 간부직을 맡게 되는 실정에서 간부 양성교육은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1990년에 접어들어 세나뚜스나 레지아 주관으로 ‘레지오 마리애 학교’를 개설하였으며, 교육기간은 대개 매주 2시간씩 8-13주간이다(교구에 따라 명칭이나 기간이 다양함).

앞으로 세나뚜스 협의회에서 전국적인 레지오 마리애 교육 협의회를 결성하여 강사진을 폭넓게 활용한다면 레지오 교육에 획기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6) 규칙과 규율 문제

레지오 마리애는 규칙과 규율로써 군기를 확립하고 일사불란하게 운영된다. 규칙과 규율이 무시되면 군인정신이 해이해져 힘을 쓰지 못하는 군대가 되고 만다. 레지오 마리애는 규칙과 규율의 힘으로 지탱하기 때문에 모든 단원은 선서를 할 때 “레지오 규율에 온전히 복종하겠나이다.”라고 서약한다. 레지오 마리애의 규율과 규칙은 교본에 수록되어 있으며, 각 지역마다 달라서도 안 되고 임의로 바꿀 수도 없다. 그러나 교본에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규칙과 규율이 많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창설자의 의도와 관례를 감안하여 국가 평의회인 세나뚜스에서 결정을 하면 된다. 

규칙과 규율도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시대의 변천에 따라 법의 정신을 새롭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는 규율과 규칙에 집착하거나 문자에 얽매이기보다 탄력성, 융통성, 신축성을 갖고 끊임없이 변화하여 시대의 요청과 징표에 적응해야 한다. 마치 인터넷 시대에 인쇄매체에만 매달려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레지오의 규정은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항상 예외는 있기 마련이고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중요시하셨지만 결코 율법주의자는 아니셨다. 그것이 바로 레지오 마리애 창설자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7) 지나친 친목

레지오 마리애는 단원들이 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친목을 통한 단원들 간의 결속과 일치를 중요시한다. 창설자도 주회합이 끝나고 그 자리에서 잠깐 다과를 나누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단원들 간의 친목 도모를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레지오 마리애는 단원들이 ‘끼리끼리’ 사귀지 않고 ‘고루고루’ 사귀기를 바란다. 그것이 창설자의 정신이다. 그런데 오늘날 끼리끼리의 사귐이 지나친 것 같다. 단원들에게 바라는 레지오의 이상은 신심과 활동, 친교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단원들이 신심과 활동보다 친교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되면 레지오 마리애는 무너지고 침체될 수밖에 없다. ‘회합은 짧게, 친교는 길게’라는 구호가 생길 정도로 단원들이 회합과 활동을 소홀히 하고 친교를 더 중요시한다. 저녁에 주회(週會)를 마치고 술자리를 마련한다는 뜻으로 형제들 간에 2차 주회(酒會)라는 말이 성행한 지 벌써 오래되었다. 자매들 간에도 비밀헌금 외에 친목을 위한 헌금을 별도로 갹출한다. 그리하여 레지오가 계모임처럼 끼리끼리 즐겁게 노는 친목단체로 전락하고 있다.

단원들 간의 지나치게 끈끈한 정이 오히려 레지오 마리애 정신을 좀먹고 공적인 일에 차질을 빚게 한다. 지나친 친목은 단원들이 공(公)과 사(私)를 분명하게 구별하지 못하게 만들고 순명정신을 약화시킨다. 레지오 마리애는 결코 친교 위주의 오합지졸 군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8) 물질 구제 문제와 자금 사용 문제

레지오 마리애의 물질적 구제 금지 규정은 1921년 레지오 마리애 창설 주회합에서 결의된 것이다. 그것은 물질적 자선단체인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와 부딪히는 것을 피하려는 취지였다. 프랭크 더프는 레지오 마리애가 비록 빈첸시오회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영신적 자선활동 단체임을 밝히고자 했다. 그는 물질적인 자선보다도 영신적인 자선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물론 레지오 마리애는 물질적 구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며 결코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외면하지 않는다. 다만 레지오 마리애의 이름으로 비밀헌금을 사용하면서까지 직접적으로 물질 구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적인 활동만 한다는 규정 때문에 단원들이 당장 물질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때를 놓쳐버린다면,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율법이므로 고쳐야 한다.

레지오 마리애는 모든 이에게 영신적인 유익을 가져다 준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설립되었으므로 물질적인 영리를 추구하지 못하며, 단원들이 레지오 안에서 사리사욕을 추구할 수 없다. 단원들끼리 계모임을 하거나 금전관계를 맺거나 다단계 판매 등의 상행위를 하는 것은 레지오의 순수성을 저해하므로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레지오 마리애에 필요한 모든 경비와 자금은 오로지 단원들의 의무적인 비밀헌금에만 의존하며, 레지오 마리애의 기금은 성모님의 군자금이므로 레지오의 조직과 관리 운영, 사업에만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영적 지도자인 사목자는 레지오 마리애의 재정 문제만큼은 원래의 규정과 정신을 보존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기를 바란다. 

 

9) 노인·청소년·신학교 쁘레시디움 문제

행동단원이란 사도직 활동을 행동으로 옮기는 단원을 말한다. 노인으로 구성된 쁘레시디움은 사도직 활동을 하지 못하고 기도만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전투 부대가 아니고 기도 부대, 보급 부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활동할 수 없는 노인 행동단원은 협조단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면 사목자와 협의하여 레지오 장례를 치르면 될 것이다. 그러나 레지오 장례도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 협의회에서 통일된 규정과 기준을 정해주어야 할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는 청소년에게도 매력이 있는 단체가 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은 미래 교회의 기둥이다. 그들의 단원생활은 공동체 의식 함양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귀중한 훈련의 기회가 될 것이다. 성인 쁘레시디움과 평의회는 청소년 쁘레시디움 운영과 육성을 조직 체계의 일부로 여겨야 하며 재정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소년 레지오 마리애는 사제와 수도 성소의 못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교본에서 창설자가 강조하듯이, 신학교에도 쁘레시디움이 있어야 한다. 한국 세나뚜스 협의회나 신학교가 있는 교구 평의회는 신학교 안에 쁘레시디움을 설립하도록 교섭하고 추진해야 한다. 과거에는 쁘레시디움이 있는 신학교도 있었다. 소년 쁘레시디움 출신 신학생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신학교 안에 레지오 마리애 지단이 있다면 훌륭한 영적 지도자의 양성소가 될 것이며, 교본공부 등의 학습활동을 통하여 레지오 마리애를 더 잘 알게 되고 기도와 봉사활동으로 성덕을 쌓고 영육의 건강도 유지하게 될 것이다. 

 

10) 단원 모집 문제

해가 갈수록 레지오 마리애 행동단원과 협조단원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신자들도 입단을 꺼려하고 부담스러워 한다. 기존 단원들이 기쁨과 긍지를 가지지 못하고 마지못해 단원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단원이 됨으로써 좋은 점이 많고 은혜롭다면 레지오 마리애를 자신 있게 홍보할 수 있고 단원들을 더 많이 모집할 수 있을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행동단원이 되면 과연 어떤 혜택과 은총을 받는지 알아보자. 

레지오 마리애 단원은 개인 성화를 통하여 먼저 자신이 구원받고, 주간활동을 통하여 타인도 구원받게 함으로써 보람 있는 생애를 보내며 활동 대상자들에게 크나큰 위로와 용기를 주게 된다. 선교활동으로 한 명이라도 영세시키면 활동 대상자에게는 영신 생명의 은인이 된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되면 기도, 공부, 활동을 통하여 굳건하고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며 대인관계의 폭도 넓어진다. 

그리고 투철한 군인 정신과 프로 정신으로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역경도 극복할 수 있으며, 기쁨과 감사의 삶, 구원의 삶을 살게 된다. 또한 성모 신심이 깊어지고 성모님의 덕성을 본받게 된다. 또한 성령 신심을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도록 인도된다. 단원으로서 열심히 활동하면 할수록 신체적인 건강도 유지하게 된다. 레지오 마리애 생활을 통하여 선종하는 은혜를 입게 되고 레지오 장례와 수없이 많은 위령미사의 혜택을 받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이며 은총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이 창설자가 몸소 실천한 삶이다. 

 

3. 맺는 글

지금까지 레지오 마리애 창설자 프랭크 더프의 정신에 어긋나는 점을 짚어보며 해결방안을 나름대로 제시해 보았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에 대한 창설자의 소망은 첫째로, 단원들 자신이 먼저 성화하여 구원받는 삶을 사는 것이고 둘째로, 단원들이 성모님의 정신과 덕성을 본받아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구원받는 삶을 살도록 이끎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이 목적과 소망을 달성하려면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주회합을 통하여 기도와 공부로써 정신을 무장하고 활동을 배당받아 적극적으로 주간활동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창설자는 행동과 실천이 수반된 개인 성화와 성모 신심을 강조하였다. 그는 레지오 회합의 핵심인 사도직 활동을 중심으로 기도하고 공부하며 친교를 나누도록 하였다. 따라서 행동단원(Active Member)이란 명칭을 활동단원으로 바꾸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활동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 그런데 활동의 폭을 넓히기는커녕 오히려 단원들이 활동을 하지 않으려 하고, 먹고 즐기는 친교에 치중함으로써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창설자의 정신은 그리스도 왕국을 확장하는 데 충성을 바치는 투철한 군인 정신이며, 또한 인류 구원을 위하여 끊임없는 기도와 사랑을 실천하는 성모님의 정신이다. 창설자의 정신은 참된 성모 신심의 정신이고 봉헌의 정신이다. 참된 성모 신심은 봉헌과 사도직 활동을 요구한다. 남미의 레지오 마리애 선교사 알피 램은 ‘레지오에 산다.’는 말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이 말은 레지오 마리애의 규율도 지키면서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대로 산다는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대로 산다는 것은 창설자의 정신대로 사는 것이다. 단원들이 창설자의 정신대로 산다면 레지오 마리애는 다시 활성화되어 꾸준히 발전할 것이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을 맞아 레지오 마리애 간부들과 단원들 모두가 자성하고 심기일전한다면 전성기를 다시 누릴 수 있을 것이고, 앞으로 75주년, 100주년도 기쁘게 기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목자료 – 창설자의 정신으로 돌아가자 2003년 10월호 (제 297호)

9월 4일, 내가 8년 동안 몸담고, 나름대로는 헌신적으로 봉사했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소속 레지오 쁘레시디움1 ‘자비의 모후’ 의 단장이 되었다. 2011년 초 입단선서 이후 거의 8년 동안 회계 2년, 서기 6년을 맡았는데 그것들의 임기가 모두 다 끝난 것이다. 그 동안 세월이 그렇게 흐른 것에 놀랐다.

물론 나의 다음 일은 ‘피할 수 없는 운명’, 단장직이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고, 지난 8년 동안 ‘그저 하라는 것은 묻지도 말고 따르자’ 하는 순명의 자세로 임하면 된다고 생각을 하며 이 시점을 맞았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묘한 timing’ 이 아주 신경이 쓰였다. 예상치도 않게 지난 7월부터 성당 구역장이 된 것, 생각보다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거의 모두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그 동안 조용하게 살았던 생활방식이 송두리 채 바뀌고 있는 바로 그런 시점에 또 다른 ‘장 長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어떤 장 長 자리가 더 중요한 것인가? 왜 칠순이 넘은 나이에 이런 일들이 나에게 온 것인가? 하지만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 정도로 몸과 마음이 바빠진 것이다.

단장의 임무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레지오의 운명, 발전과 성패는 단장에게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는 말로 임무의 중요성은 알겠지만 문제는 이런 중차대한 임무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닐까? 서기직을 6년 동안 하면서 대강 단장의 일을 옆에서 보아 왔기에 익숙해 졌다고 생각은 하지만 일단 맡고 시작을 해보니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일단 ‘성모님의 부탁’을 받았으니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3년을 마칠 각오는 되어있지만 우선 처리해야 할 중차대한 안건이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 동안 우리를 괴롭히고 분열시키려고 했던 ‘두 명의 독소 毒素 적 현, 전 단원’을 징계하고 탄핵하는 일, 바로 그것이다.

  1. 레지오 마리애 조직, 군대의 분대 격

¶  레지오 ‘연 年’ 피정:  안정호 이시도르 예수회 신부님이 지도한 2018년 레지오 연 피정이 “그리스도 내 안에 형성될 때까지 성모님과 함께!” 라는 주제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3일 동안 있었다. 처음 이틀간은 레지오 단원을 위한 것이고 마지막 날 일요일은 전 신자 대상의 강론이었다. 10여 년 전 주임신부로 계셨던 안 신부님, 이날 환영의 열기를 보니 정말 대단한 인기였음을 알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가뜩이나 지난 달부터 피곤한 나날을 보낸 우리에게 이번 3일 피정 스케줄은 사실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솔직히 말해서 피정의 ‘강론 부분’에 대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오랜 전에 경험한 안 신부님의 강론 스타일을 기억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점심식사 후에 듣는 강론은 아무리 흥미가 있어도 졸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우려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예상을 뒤엎는 결과적으로 너무나 만족스런 피정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예전의 안 신부님이 아니었다. 그 동안 이 신부님 많은 영적인 경험을 거친 더욱 성숙한 사제가 되어 있었다. 믿음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힘찬 강론에 간간히 ‘이상하지 않은’ 유머러스 한 일화들.. 어찌 일초라도 졸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레지오 단원들을 조준 겨냥한 심도 깊은 ‘경고’는 최근에 힘이 빠지는 듯한 일반적 레지오에 대한 장래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현재 아틀란타 순교자성당 소속 레지오가 겪고 있는 ‘실존위기’를 의식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timing이 아주 정확했다. “레지오 단원들이여, 깊은 잠에서 깨어나라” 는 것을 현대 사회심리학적인 각도로 재 조명한 강론은 정말 기억에 남을만한 명강론이었다.

 

¶  YMCA, YMCA!  오늘 오랜만에 YMCA gym엘 갔다. 무언가 생활이 정상 routine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느낀다. 꽤 오랜만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정확하게 얼마만인지는 전혀 idea가 없다. 달력을 보니 (요새는 달력을 안 보면 전혀 알 수가..) 지난 달 23일이 마지막이었다. 그러니까 2주가 넘게 우리는 운동을 못한 것이다.

보통 일주일에 평균 2~3 번 정도는 가는데 꽤 오래 쉰 것이다. 매년 여름이면 사실 가끔 ‘우리도 쉬자, 방학이다’ 라는 기분으로 쉬기도 하고 YMCA swimming pool을 deep cleaning한다고 해서 쉬기도 했지만 2주 이상 쉰 기억이 없어서 이번은 예외적이다. 이유는 두 가지: (1) 너무나 바빠서, (2) 너무나 피곤해서..  하기야 바쁘니까 피곤한 것이지만 이번은 조금 그 정도가 심했다.

장례식, 레지오 점심봉사 이틀 중노동, car maintenance service trip, 이목사님 부부 외식, 거기다 3일간 레지오피정, 1,000차 레지오 주회합 기념 주회.. 와~~ 이 정도면 우리 나이에서는 피곤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운동을 너무 오래 쉬는 것은 피로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  더 쌓이게 한다는 것도 이번에 깨달았다.

 

¶  자비의 모후 1,000차 주 회합: 이번 주 우리 성모님의 군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자비의 모후가 드디어 1,000차 주 회합을 맞았다. 일주일씩 모이는 주회합 1,000차.. 일년이 52주니까, 거의 20년의 세월이 아닌가? 내가 입단한 것이 8년 전쯤이니까 그 이전에도 12년 여의 역사가 있었다니 참  장구한 세월을 ‘견디어’ 온 것이다.

이 레지오의 운명은 사실 보장된 것이 없다. 언제고 문제가 있으면 하루 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다. 비록 성모 마리아를 ‘총사령관’으로 삼고 있지만 일시적 인간의 방해공작으로 깨질 수 있다. 지나간 8년 동안 내가 겪었던 ‘해체 위기’는 3번 있었지만 작년 8월 말의 ‘더러운 사건, 일명 레지오 미친년 난동사건 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그때 나는 정말 자비의 모후가 사라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자비의 모후 가장 빛나는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몰랐다. ‘악’의 치명타를 견뎌내고 일어섰고 감격적인 1,000 차 주 회합을 맞은 것이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간단하게 미사예물 정도 봉헌하는 것으로 끝낼까 했지만 생각을 바꾸어 ‘의도적 과시 誇示‘를 위해서 ‘외부인사’를 초청하고 그들과 함께 기념 주 회합을 하고, 미사가 끝나고 근처 화식집 ‘만천홍’에 가서 푸짐하게 회식하며 기념 주회를 끝냈다.  이날 초청된 ‘인사’는 자비의 모후 창단 간부단원, 내가 입단 할 때의 단장, 부단장님 등이었는데, 이때 창단 시절의 얘기들도 듣기도 했다. 꾸리아에서도 각별히 신경을 써서 축하 떡도 보내주고 1,000차 기념 banner도 제공하였다. 아마도 ‘너무나 어려운 위기를 넘긴’ 사실을 감안했던 것은 아닐까 추측을 한다.  하지만 작년에 당한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고, 최소한 나는 절대로 그 사건을 잊지 않을 것이다.

 

¶  서서히 길어지는 밤:   7월, 그것도 30일.. 허~~ 벌써 7월이 다 갔다는 말인가? 언제나 세월의 ‘가속도’에 놀라지만 이번은 그 중에서도 제일 빠른 느낌이다. 한 달이 거의 일주일도 안 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기야 이번 7월은 나의 기억에서 정말 제일 바쁜 그런 나날들이었으니까 빠른 느낌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무언가 머릿속도 정리가 잘 되지 않은 채 지나간 느낌,  점점 한가해져야 하는 이 나이에 나도 조금 이해하기가 힘 든다.

이른 아침에 밖을 쳐다보니 조금 느낌이 다르다. 확실히 아침이 전보다 조금 어두워졌다. 낮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밤과 낮이 같아지면 또 가을이 시작되는가? 또한, 그림자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인데 오랜 만에 보는 시야였던가.. 아하! 날씨가 흐렸구나. 작열하는 햇빛이 없으니 당연히 서늘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한 동안 거의 매일 code Orange같은 경고가 나올 정도로 공기가 메말랐던 나날을 보낸 것이다. 한차례 시원한 소나기가 조금 그리워지는 7월말 중복이 지나가고 말복을 향한 본격적인 늙은 여름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면 다시 계절은 바뀔 것이고..

올 여름은 비교적 시원한 편이다. 비가 자주 와서도 그렇지만 심리적으로 ‘새로 설치한’ 2대의 에어컨, 이제는 하루 아침에 고장 나는 일이 없으리라는 생각에, 두 다리 쭉 뻗고 찬 공기를 만끽하니 더욱 시원한 느낌이다.

 

¶  레지오 점심봉사:  지나간 주말(어제, 그제)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점심봉사로, 피곤하지만 보람 있는 이틀을 보냈다. 일년에 한번씩 레지오가 하는 점심식사 봉사팀에 우리가 포함되었는데 3년에 한번씩 돌아오게 되는 것이라 사실 큰 부담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의 봉사팀의 구성은 인원수가 워낙 적어서 (참가 3 쁘레시디움이 모두 최소한의 적은 단원을 가졌음) 신경이 쓰였는데 다행히 꾸리아에서 ‘전폭 지원‘을 해 주어서 무사히 성공리에 끝을 냈다. 또한 대부분이 자매님들인 레지오에서 이번의 봉사팀에는 의외로 형제님들이 그런대로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이날 점심은 지난 6월 우리 구역 점심봉사 때 했던 ‘모밀국수’를 했는데 그때의 경험을 100% 활용을 하였다. 물론 대부분의 모밀국수 menu idea는 연숙으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모두들 열심히 협조해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을 생각하기도 했다.

솔직히 이번의 일, 우리는 2일 거의 full-time으로 일을 한 셈인데, 역시 조금 무리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우선 우리들의 나이도 그렇고, 해야 할 다른 일들이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어서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버틸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Moderation, moderation을 motto로 살아왔던 우리들, 이런 것들이 시험 case인가.. 한마디로 take it to the limit이란 Eagles의 노래가 생각날 정도였다. 이날 모든 일들을 마치고 귀가해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아픈 후유증을 달랬지만 역시 나이 탓인가… 쉽게 풀리지를 않는다.

 

¶  1년이 가까워 오는 목요회:  7월의 마지막 목요일 밤 8시 반에 어김없이 우리 목요회 멤버들이 ‘궁상맞게’ 모였다. 다 늙은 남자 3명이 목요일 그것도 밤 8시 넘어서 외식을 한다는 것은 암만 그림을 예쁘게 그려보아도 예쁠 수가 없다. 하지만 모임은 계절을 몇 번 거듭하면서 조금씩 덜 궁상맞게, 더 예쁘게 탈바꿈을 하고 있다. 그것을 모두 같이 느끼는 것 또한 경이로운 사실이다.

작년 9월 마지막 목요일에 모였던 것이 시작이었고 언제까지 계속될 지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지만 무언 無言 속의 표정들은 ‘아마도’ 오래 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3명 모두 너무나 다른 사연과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고 풀어나가야 할 도전이 만만치 않다. 이런 모임에서 그런 문제들을 정면으로 풀어나가는 것,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가벼운 화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이야기로 2시간 정도를 보낸다.

살기가 너무 힘든 때에는 아무 말 못하고 듣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거의 일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서로를 많이 알게 되어가고 이 모임은 확실히 우리에게 어떤 삶의 희망을 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얼마 전부터 오랜 냉담을 풀고 귀향을 한 형제가 있었으니..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모였을 때는 이제까지 중에서 가장 즐겁고 유쾌한 그런 모임이 되었고, 1년이 되는 9월에는 모두들 ‘무언가 기념식’이라도 하자고 의견을 모으며 늦은 밤 헤어졌다. “친구들이여 우리 그날까지 열심히 삽시다!

 

¶  장례 예배:  장례, 연도 같은 연령행사가 뜸했던 요즈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부음 訃音 을 듣게 되었다. 연숙의 이대 梨大 선배 김경자씨의 남편이 타계한 것이다. 이분은 1990년대 아틀란타 부동산업계의 선두주자로 잘 알려지신 분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소식이 뜸해지고 우리도 거의 잊고 살게 되었다. 지금 사는 마리에타 우리 집은 1992년 초에 이분의 소개로 사게 되었던 사연도 가지고 있다.  그 당시 집 구경을 처음 할 때 서로 만났던 McDonald’s, 우리가 자주 가는 곳인데 갈 때마다 가끔 이분의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이분들은 개신교 배경의 집안이라서 교회에서 장례식을 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장의사 chapel에서 해서 그곳에 다녀온 것이다. 천주교 장례미사와 너무나 차원이 다른 ‘간단한 예식’이었다. 그곳에서 알게 된 사실은 고인의 막내 동생이 성당에 다닌다는 사실, 전에 교리반 교사로 연숙과 같이 일했었다는 원선시오 형제였다는 사실, 이날 얼굴을 보니 사실 고인과 얼굴이 닮긴 닮았다. 나는 이 형제님을 잘 모르지만 ‘접근하기가 어려운’ 그런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Take it to the limitThe Eagles

 

  Jim Beam & Charlie Chan: 근래에 ‘공적인 활동’이 늘어난 이후 느끼는 것은 바쁘고 보람된 일들 뒤에 ‘꼭’ 찾아오는 선물 같은 ‘심도 깊은 평화, 망중한의 텅 빈 머리’ 이것들 중에도 망중한 忙中閑의 기쁨 중에도 이 두 단어가 바로 그것들이다. 우리 집에서 있었던 구역미사를 위해서 liquor store까지 가서 사온 ‘양주’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Bourbon의 명품, Jim Beam이었다. 그때 ‘몰래’ 사온  세 가치의 cigar도 나의 기대를 자극하는 즐거움이었다.  물론 양주는 신부님 접대용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실제로 거의 없어지질 않아서 그 이후 cigar와 함께 망중한의 즐거움으로 쓰였다. 사실 혼자서 즐기는 것이 되었지만 이럴 때 먼 옛날의 친구들과 어울려 마실 때를 회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 지나갔다. 모든 즐거움 들은 다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또 다른 것, Charlie Chan.. 수십 년 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TV를 보면 그 당시의 nostalgic channel 역할을 하던 channel에서 이런 류의 TV drama가 있었다. 평생에 이런 Charlie Chan이란 말 조차 못 들었는데 그 옛날 (1940년대)에 어떻게 ‘짱께’가 주인공을 나오는 TV program이 있었을까 의아하기만 했다. 그것을 요사이 Youtube를 통해서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요새 기준으로 보면 비록 범죄추리극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순진한 장면들 투성이.. 그러니까.. 마음 놓고 마음 안 상하고 ‘즐길 수’있는 그런 것, 특히 편히 쉴 때 이것을 보면 마음 속 깊은 평화까지 느끼게 된다.

 

Peace and joy with Jim Beam & cigars..

Peace with Charlie Chan time

 

¶  Roller coaster week:  지금 지나가고 있는 하루하루는 글자 그대로 roller coaster week 라고 할 수 있다. 희비가 교차하는, 오르락 내리락 하는 느낌이 거의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던 주일,  때로는 정말 괴로운 순간들도 있었던 6월 초순을  보내고 있다.  주 원인은 우리 집 열네 살이 넘은 ‘나보다 늙은’  정든 개 Tobey의 건강문제 때문이었지만 우리가 바보같이 만든 ‘인재 人災’도 이럴 때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결과만 만들었다. 왜 이렇게 ‘어려운 일’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일까? 그것이 인생이다.. 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그것이 또한 사실이다.

갑자기 구토, 설사로 시작된 것, 왜 그랬는지 이유는 알 길이 없지만 문제는 먹지를 못하니 평소에 ‘관절염’으로 먹는 약까지 끊게 되어 사태는 악화일로 였다. Good Old veterinarian (수의사) 에게 데려가는 것은 원칙적으로 꺼린다. 각종, ‘불필요할지도 모르는’ test로 시간을 다 보낼 것이 분명한 것이고 그러면 더 악화가 될지도..

이 녀석 기운이 빠지고 아파하는 모습에서는 ‘죽음의 그림자’까지 느껴지고, 우리는 절망의 기분까지 들었다. 급할 때는 묵주를 무의식적으로 굴리고 있을 정도였지만, 성모님의 도움인지, 정성스런 간호 덕인지 다행히 설사도 멎고 서서히 먹기 시작하면서 죽음의 그림자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회복이 예전에 비해서 너무나 느린 것을 보면서 다시 생각한다. 나이 탓인가.. 아니면 무슨 큰 병이 있는 것인가? 얼마 있으면 annual medical checkup이 있어서 (동물)병원엘 가니까 그때면 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moaning & limping.. sick Tobey

 

Pet 을 집에서 키우는 사람들은 이런 것 한두 번씩은 경험을 했을 것이지만 이렇게 거의 집안 식구가 된 pet animal을 영원히 보낸다는 생각을 하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큰 차이가 없음을 다시 한번 절감을 한다.  이런 것들 사실 자연의 법이기에 겸허하게 받아드리는 것이 옳은 일일 것 같다. 세상에서 변치 않는, 영원한 것은 하느님 밖에 없다는 사실만 잊지 말자.

 

Climbing in Canada:  새로니가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떠난 2주간의 Canada trip을 마치고 돌아왔다. 학교 teacher가 되면서 2개월에 가까운 ‘긴’ 여름방학을  손꼽아 기다린다. 우리 시절에는 꿈도 못 꾸던 모험적인 취미여행을 떠나곤 한다. 요새 ‘아이’들, 경제적 여유만 있으면 이런 즐거운 30대를 보낸다. 결혼과 가정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할 나이에 이렇게 놀러 다니는 것을 보며 세대가 참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새로니 친구들과 모두 3명이 갔던 Canada(Rockies, Vancouver)  여행 사진을 보며 나는 다른 생각에 빠진다. 나나 연숙, 이제 그런 여행들, 귀찮다는 인상을 받는다. 편한 집에 눌러 앉아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훨씬 유익하고 건강한  ‘휴가여행’인 것이다. 솔직히 돈을 주고 갔다 오라고 해도 별로 구미가 안 당기는 것이다. 단 한가지, 이번 여행 중에 찍은 사진 중에 rock-climbing하는 것, 나의 오래된 추억이 샘물처럼 흘러 나왔다. 한때 나도 저런 것에 ‘미친 때’가 있었지.. 하는 감상적인 느낌들은 즐기고 싶었다. 그때가 1970년 경, 거의 일 년을 ‘바위 타기’에 많은 시간을 ‘허송’했던 대학 4학년 시절. 비록 ‘공부’는 손해를 보았을지라도 아직까지 나에게는 이렇게 신명 나는 추억거리를 제공했으니 그깟 공부가 그렇게 대수인가.. 그것에 지금 나의 딸이 푹 빠져있으니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2주 동안 우리 집에서 다른 의미의  vacation을 가져야만 했던 새로니의 pet dog Ozzie가 새로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 우리 집은 갑자기 고요 속을 빠진 듯한 느낌. 우리 집의 Tobey가 아직도 완쾌가 되지 않은 상태라서 더욱 고요하고 우리의 느낌은 쳐진다.

 

Curia Monthly Sunday: 머리 속이 안정이 되지 않은 채로 ‘꾸리아 월례회의’가 열리는 매달 2번째 주일을 맞아 ‘조심스럽게’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을 갔다. 조심스럽게 간 이유는 꾸리아 월례회의 때문이기 보다는 주일미사를 누가 집전을 할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만약 둘루스 성당 (윗동네) 신부가 집전하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다면 미국성당으로 향하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로 나의 ‘그 신부’에 대한 ‘반감, 혐오감, 앨러지’가 특이하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별 수가 없어서 포기한 상태이기도 하다. 다행히 우리 본당 신부님 집전이 밝혀져서 ‘안심하고’ 그곳엘 가게 되었다.

이날은 오랜만에 등대회 형제님들, 특히 요한 형제와 점심을 같이할 수 있었고, 꾸리아 월례회의도 그런대로 흡족한 느낌으로 마칠 수가 있었다. 생각한다. 전에 있던 간부진들에 비해서 아주 신선한 스타일로 회의를 진행하며 ‘약해질 대로 약해진’ 레지오 조직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불과 몇 달전 前의 꾸리아  leadership을 싫지만 기억한다. 그 중에서 2명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toxic, terrible, horrible한 기억으로,  앞으로 ‘연구 대상’이 될 정도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처럼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는 case study로 삼을 정도란 뜻이다. 그 결과 현재 이 조직은 거의 limping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별것 아닌 듯 보이는 꾸리아 평의원들, leadership을  잘못 뽑으면(Trump처럼) 이런 disaster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다음부터는 공과 사를 전혀 구별 못하는 ‘아줌마 tribalism‘ 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하면 어떨까?

이렇게 결과적으로 밝은 기분으로 ‘주일 의무’가 끝났는데, 이날은 bonus까지 주어졌다. 정말 오랜만에 스테파노 형제 부부와 같이 성당근처에 있는 Mozart Bakery에 모여서 ‘수다’를 떠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작년 8월의 ‘레지오 괴물, 미친년 사건’ 덕분에 가까워진 이 부부, 나이가 비슷하고,  ‘사귈만한 부부’라는 인상을 받아서 가급적 관계를 ‘가꾸어 나가고’ 싶기도 하다. 오랜만에 ‘대한민국 style 빙수와 붕어빵’을 즐긴 이날 주일은 그야말로 ‘주님의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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