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레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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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tter Korean Festival?  별로 기다리지도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고, 근래 나의 관심사에서 제일 멀리 있던 것이 나에게 왔다가 갔다. 연숙의 문인화 전시가 올해의 한인축제, Korean Festival와 함께 열린 것이고 이것은 이제 우리 가족의 작은 가을행사도 되었다.  이 전시를 계기로 가족이 모여서 전시회, 한인축제 공연, 그리고 넓은 주차장에서 각종 booth를 구경하는 것인데, 나는 사실 큰 관심이 있다고 할 수 없지만 ‘가족의 일원’이기에 피곤해도 와야 하는 그런 종류의 시간이다.

한인축제는 몇 년 전(2~3년?)에 가족과 왔었는데, 그 당시 ‘아이들’의 논평이 ‘재미없고, 촌스럽다’ 라는 것이고 나도 사실 동감이었다. 그런데 올해의 것은 ‘조용한 놀라움’을 주는 것이었고 ‘아이들’도 동감인 표정들이었다. 우선 ‘아마추어 같은 촌스러움’이 많이 걷힌 것이다. 각종 공연들도 그런 느낌을 주었다. 무엇이 변한 것일까? 자신은 없지만 ‘event pro’ 그러니까 행사를 주관하는데 각종 프로 들이 등장한 듯 했다. 큰딸 새로니는 몇 년 전에 Greek Festival을 보고 우리의 축제와 비교를 하곤 했는데,  아마도 우리도 그런 것을 보고 더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논평을 했다.

 

 

각종 공연들, 특히 Big Orchestra가 등장한 것, 비록 한인 오케스트라라고 했지만 많은 연주자들은 ‘외국인’들이었다. 그러니까 무엇인가 축제자체가 community에  open된 것이다. 거대한 남성합창단의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이들과 같이 ‘나의 살던 고향은..’, ‘사랑으로..’ 등을 관객들과 열창한 것도 가슴이 저미는 뭉클한 순간들이었다. 이런 모든 것들, 이제는 ‘초 국제화’가 되어서 아마도 바다건너의 대한민국의 재력과 K-POP을 중심의 최첨단 pop culture가 이곳에서도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이날 한인문화회관에서 있었던 동양화, ‘문인화’ 전시에서 나는 처음으로 정성과 시간을 써서 관람을 하게 되었다. 연숙이 이것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이제는 꽤 되었지만 나는 아무리 보아도.. 그것이 그것이라는 느낌뿐이었다. 동양화, 묵향화, 문인화.. 조금씩 성격이 다른 것 임도 이제야 알게 되었고, 어떤 그림이 더 좋은 것인가 하는 것이 이제는 조금씩 느껴지기도 했다. 우선 시간을 더 써서 자세히 묵상, 기도하는 심정으로 응시를 하였다. 이날 처음 그렇게 비슷하게 보이던 것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것도 알았다. 연숙의 ‘거대한 국화들’도 자세히 보게 되었고 왜 입선이 되었고 관람객으로부터 좋은 평을 받았는지 알려고 노력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대상물’은 ‘생물들’ 그러니까 새들, 다람쥐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찌나 느낌들이 좋았는지, 연숙에게도 꽃, 식물 다음에 그렇게 ‘살아 움직이는’ 대상을 그려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  레지오 사업보고:  나의 ‘정든’ 레지오 전초분대(Praesidium, Pr.) ‘자비의 모후’의 연례 사업보고가 일요일 꾸리아 월례회의 때 있었다. 단장이 된 이후 처음 하는 것이라 물론 내가 평의원들 앞에서 발표를 했지만 이번 발표에는 ‘고발성’ 글귀가 실려있어서 나는 그것을 가급적 dramatic하게 만들려고 노력을 했다. 이 ‘고발’을 할 때 평의원들의 얼굴은 대부분 blank 였다.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른다는 뜻이라고 나는 해석했지만 다른 쪽으로는 ‘너무나 심각한 어조와 내용’이라 그런 표정을 지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솔직히 나는 그들, unmotivated, uninterested 한 모습들을 보며 우리 꾸리아, 레지오의 앞날이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주 관심사는 ‘고발 당한 2명’이 이런 글을 읽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것에 계속 머물고 있었다. 그 중 한 인간은 그 회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모두 알게 된 비밀이 공식화 되었기에 나는 그 두 ‘피고들’ 의 공식징계를 위한 다음 단계로 마침내 나아가게 되었다. 앞으로의 추이가 너무나 흥미롭게만 하다.  Watch out, you two’s!  Here I’m coming after you!

 

¶  BIG flat-screen TV Envy? 우리 집에는 누구나 모두 ‘자랑’ 하고 싶어하는 monster size flat-screen TV가 없다. 그러니까.. home theater 가 없는 것이다. Desk에서나 쓸 수 있는 아주 작은 digital TV가 있을 뿐이다. 가족들이 family room에 모여서 old tube analog  TV로 주로 VHS video를 보던 때가 지금은 그리운 추억이 되었지만, 아이들이 커서 모두 집을 떠나면서 그 ‘고물’ TV는 완전히 방에서 물러나고 집에 남은 우리 둘은 거의 broadcast network TV를 안 보고 살게 되었다. Movie같은 Video를 보는 것은 인터넷의 출현으로 거의 각자의 desktop PC로 해결이 되었다. 문제는 home theater같은 느낌의 즐거움이 없다는 것인데 사실 그것도 거의 모든 시간을 desk앞에 앉아 있는 우리에게 큰 문제가 안 되었다. 하지만 다른 집에 가보면 우리같이 사는 사람이 거의 없고 ‘경쟁적’으로 엄청난 큰 screen TV가 있었다. 물론 극장 같은 경험을 집에서 즐기는 것, 누가 마다하랴.. 문제는 그만큼 $$$를 투자할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인데.. 돈도 돈이지만, 우리 둘에게 아직까지도 그것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 아닌 사치품에 속했다.

 

 

하지만 trickledown 현상이라고나 할까 결국은 caveman처럼 살려고 하던 우리에게 ‘공짜’ big screen TV가 흘러 왔다. 두 딸들이 쓰던 것, 새것을 산다면서 우리보고 가지라는 것.. 크기를 보니 사실 요새 기준으로는 큰 것이 아니지만 우리 집같이 traditional house에는 정말  적당한 size가 아닌가? 하나는 40″, 다른 것은 42″ 정도.. 40″는 kitchen area에 맞고 42″는 아마도 bedroom에 맞을 듯하다. 한가지 연구해야 할 것은 이것들은 1st generation TV로 한마디로 smart TV가 아니다. 그러니까 Internet streaming이 자동적으로 되지를 않는다. 하지만 RokuChromeCast를 쓰면 간단히 해결 될 듯하다. 이렇게 해서 우리 집도 HDMI digital TV 시대의 막이 올랐다.

 

¶  가을비를 보며:  오늘 아침, 10월 중순을 향하는 길목에서 나는 아직도 열대성 공기를 느끼며 깨어나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바지를 찾는다. 어제부터 처음으로 ‘긴 바지, 긴 셔츠’를 입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덥다기 보다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을 느끼니.. 아 ‘긴 팔, 긴 바지’의 진정한 가을이 코 앞에 다가오고 있구나 하는 잔잔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습기 없는’ 시퍼런 하늘을 유난히도 올해는 내가 기다렸는데 야속하게도 이제는 지겨운 ‘열대성 대기’는 쉽게 물러가지 않았다. 설상가상 이제는 갑자기 나타난 Michael이란  남자 이름을 받은 허리케인 hurricane이 열대성 습기와 강한 바람을 몰고 FloridaPanama City Beach 쪽을 강타하고 무서운 속도로 이 지역을 스치고 지나가고 있다. 다행히 메트로 아틀란타 지역은 ‘반가운 비’를 제외하고는 거의 영향이 없는 듯 하다.

 

아틀란타 주변을 스쳐 지나가고 있는 tropical storm Michael

 

몇 주간 뜨겁게 마르고 있던 대지들이 오랜만에 단비의 맛을 보았던 어제 밤과 오늘 아침의 주변은 그야말로 축복을 받는 느낌. 이번의 비와 바람이 올해 ‘마지막 여름’을 장식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진정한 O. HenryThe Last Leaf 의 느낌을 한껏 주는 추위 속의 낙엽과 Halloween의 찬란한 가을을 보게 될 것이다. 아직도 어두운 밖에는 정말 오랜만에 듣는 소리가 나의 귀를 의심케 한다. 바로 ‘피해 없이 내려오는’ 잔잔히 빗소리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the last leaf clings to the bough, just one leaf..

 

¶  19차 레지오 사업보고:  레지오 단원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업보고 business report’, 일년에 한번씩 지나간 일년간 레지오 단원으로 했던 활동 실적을 총집계해서 꾸리아 월례회의 때 발표를 하는 것으로 지나간 일년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료이며 계기가 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많은 단원들이나 평의원들에게 별로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관행대로 하는 routine, 그저 해야 되는 것, 심지어는 귀찮은 것 정도로 생각되던 것이다.

이것이 올해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우선 내가 발표를 하여야 하는 단장이 되었고, 어떻게 이것을 발표할 것인가 하는 것이 ‘나의 책임 소관’이 되었기에 생각을 더 하게 된 것이다.

지난 일년 동안 ‘우리들’이 ‘뛰었던’ 모습들이 서기회의록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것을 근거로 ‘정해진 form’에 주로 ‘숫자’들을 적어 넣는다. 그리고 이것을 단장이 꾸리아 평의회에서 ‘보고 읽는’ 것이다. 읽은 후에는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면 끝이 난다. 이런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과정을 매월 겪는데, 어떨 때는 너무나 형식적으로 들려서 지루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올해의 사업보고서 작성을 끝내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전 해의 것과 비교해 보면 단원의 숫자가 반으로 감소했으니까 활동도 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우려를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 보고에는 글로 쓰게 되어있는 ‘운영 상황’ 난을 통해 지난번 꾸리아 단장과 면담을 했던 ‘자비의 모후 명예회복을 위한 특단 조치’에 관한 우리의 결심을 공적으로 알리기로 했다. 실명을 쓸 수가 없지만 아마도 당사자 (2명의 미친X들) 들은 아마도 짐작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흥미롭기까지 하다.

 

바로 전에 print된 ‘따끈따끈’한 레지오 사업보고서, 일요일에 발표될 예정.

 

이렇게 올해의 사업보고 작성을 매듭지으며 나에게 도대체 레지오란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새삼스럽게 생각을 해 보았다. 거의 8년 동안 뒤를 안 보고 달려왔던 것, 암만 생각해 보아도 나에게 이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기에 나는 나에게 매일 놀란다. 이것이 바로 나에게 있어서 레지오의 의미다. 다른 설명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 달릴 수 있을까… 오직 그분만이, 성모님만이 아실 것이다.

 

일요일에 제출, 발표할 레지오 연례 사업보고서를 작성하며 도움이 될만한 자료가 있는지 googling을 하던 중에 ‘보물’을 찾았다. 얼마 전 자비의 모후 Pr. 단장이 되면서 훈화를 준비하며 도움을 받고 있는 ‘레지오 훈화집’의 저자 ‘레지오 박사’ 최경용 신부님의 글을 발견한 것이다. 비록 2003년도에 발표된 것이지만 현재 나에게는 거의 모두 유효한 기사, 글이었다.

이 최신부가 쓴 ‘레지오 영성’이란 책도 언젠가 잠깐 읽은 기억이 난다. 그 책을 보고 이분이 로마에서 레지오 마리애 영성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레지오 마리애 박사 신부님인 것이다.

2003년이 한국에 레지오 마리애가 처음 창설된 50주년을 즈음하여 당시의 대한민국 레지오의 현황을 예리하게 분석한 것으로 지나친 신학적 전문용어를 쓰지 않고 설명한 것이 매우 인상적인데 이것을 읽으며 거의 모든 분석이 현재 내가 있는 ‘아틀란타 레지오’에 모두 적용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형식적이고 소극적인 활동 때문에 사업보고서의 특기사항이 거의 비어있다.”

올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고 이 점을 보면 동감이 간다. 별로 ‘특기할 만한’ 활동이 없는 것이다.

 

 **  “간부직이 부담스러워 서로 맡지 않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솔직히 간부는 고사하고 평단원들조차 입단 시키기 어려운 실정, 이것은 레지오 전체의 이미지나 단원들이 보여주는 ‘자질’에 문제가 있을 것이다.

 

**  “레지오 마리애가 지도신부의 관심과 사랑 없이 그냥 두어도 잘 되는 단체는 결코 아니다.”

특정 지도 신부님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것은 제도적 문제가 아닐까? 너무나 바쁜 사제들에게 레지오에 우선권을 두라고 강요할 사람이 없다. 다만 꾸리아 차원에서 지도사제의 관심을 유도시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  “소 공동체와 레지오의 마찰”

대표적인 소 공동체는 ‘구역 모임’이 있는데 이들과 활동이 중복되는 것이 있을까?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특성을 활용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  “레지오 마리애는 창설자의 정신에 따라 간부와 단원들의 질적 향상을 위해 공부와 교육에도 정성을 쏟는다.”

주회합에서 하는 영적독서, 훈화, 교본공부가 거의 전부인 현재의 우리들의 실정으로는 간부, 단원을 고사하고 신단원이 레지오의 정신을 배울 기회는 거의 없다. 현재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꾸리아 차원에서 ‘시간과 돈’을 지속적, 제도적으로 투자하는 수 밖에 없다.

 

**  “규칙과 규율이 무시되면 군인정신이 해이해져 힘을 쓰지 못하는 군대가 되고 만다.”

이런 ‘군대의 특성’이 무시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나는 일년 전부터 내 눈으로 보았고 그 여파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법에는 항상 예외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법이 어겨지면 그 처리 결과가 있어야 한다. 이것을 할 수 있는 곳은 현재 영적지도자, 꾸리아 밖에 없다.

 

**  “단원들이 신심과 활동보다 친교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되면 레지오 마리애는 무너지고 침체될 수밖에 없다.”

신 단원 교육에서 제일 강조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레지오의 조직과 정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나는 수없이 이런 사례를 목격했고 결과는 거의 예외 없이 이런 ‘무너지고, 침체될’ 그런 것이었다. 현재도 나는 ‘주 회합 후 외식하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을 매주 본다.

 

** “레지오 행동단원이 받는 혜택과 은총”

1. 개인 성화로 자신이 구원을 받고,

2. 주간 활동을 통하여 보람 있는 생애를 보내며,

3. 활동 대상자들에게 크나큰 위로와 용기를 주며,

4. 기도, 공부, 활동을 통하여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대인관계의 폭도 넓어 지고,

5. 군인정신과 프로 정신으로 역경을 극복할 수 있으며,

6. 따라서 기쁨과 감사의 삶, 구원의 삶을 살게 되고,

7. 성모, 성령신심을 통해 열매를 맺는 생활이 되고,

8. 활동을 통해서 신체적인 건강을 유지하게 되고,

9. 수많은 레지오 장례와 위령미사의 혜택과 은총을 받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위의 거의 모든 것들은 내가 받았던 것들이고 또한 창설자(프랭크 더프)가 몸소 실천한 삶이다.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을 맞이하여

최경용 (부산교구 신선본당 주임신부)

 

 

1. 시작하는 글

한국의 레지오 마리애는 1953년 5월 31일에 아일랜드로부터 도입되어 올해(2003년) 50주년을 맞았다. 레지오 마리애는 외국에서 도입한 한국의 첫 평신도 사도직 단체로서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 발전하였다.

레지오 마리애가 쌓은 공로와 업적은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레지오 마리애가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말이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장래가 심히 우려된다. 왜냐하면 레지오 마리애의 알맹이인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의 정신은 쇠퇴하고, 껍데기인 친목과 친교에 치중하는 현상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레지오 마리애 정신이 얼마나 해이해졌으면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을 맞아 레지오 마리애 정신 회복에 지향을 두고 묵주기도 5억 단 봉헌운동을 펼쳤겠는가? 간부들과 단원들이 얼마나 레지오 마리애 창설자의 정신에서 벗어나 있었으면 한국 레지오 마리애 협의회가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 회복’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까지 개최했겠는가?

지금은 레지오 마리애의 변화와 쇄신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은 곧 창설자의 정신이다. 따라서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창설자 프랭크 더프의 정신을 새롭게 인식하고 창설자의 정신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오늘날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문제점들을 짚어보면서 창설자의 정신에 비추어 그 해결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오늘날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문제점과 해결방안

오늘날 우리나라 레지오 마리애가 당면한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크게 열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선교활동과 봉사활동 기피, 단장을 비롯한 간부들의 사명감 결여, 영적 지도자와 영적 지도 문제, 소공동체와 레지오의 마찰, 교육 문제, 규칙과 규율 문제, 지나친 친목, 물질 구제 문제와 자금 사용 문제, 노인·청소년·신학교 쁘레시디움 문제, 단원 모집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를 각각 살펴보고 해결방안을 알아보고자 한다.

 

1) 선교활동과 봉사활동 기피

한국 가톨릭 교회 공동체의 선교 실적이 낮아지고 있다. 이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주간 활동 의무를 다하지 않는 데 그 근본 원인이 있다고 본다. 

활동은 레지오 마리애의 본질이다. 레지오 마리애 주회합의 핵심은 활동보고와 활동배당이다. 주회합에서 묵주기도를 포함한 기도 시간보다 활동보고와 활동배당에 소요되는 시간이 더 길어야 한다. 

주회합의 3대 요소인 기도, 활동, 공부를 감안하여 주회합의 소요시간 기준을 한 시간 반으로 정한 것이다. 그런데 마치 쫓기듯이 주회합을 한 시간 이내에 해치우고, 곧바로 평일 미사에 참례하는 쁘레시디움이 많이 있는 것 같다. 활동보고 내용과 활동배당이 빈약하다 보니 주회합을 한 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끝내는 것이다. 

형식적이고 소극적인 활동 때문에 연중 사업 보고서의 특기사항이 빈약하기 짝이 없다. 특기사항란이 아예 공백인 쁘레시디움도 있다. 1년 동안 특기할 만한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교본은 적극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단원들이 모든 시간을 복무시간으로 여겨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의 정신으로 복음화에 앞장서는 선교단체이므로 선교와 복음화 활동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 본당마다 쉬는 교우와 거주 미상자가 수두룩하여 큰 문제가 되지만, 사실 이러한 문제는 레지오 마리애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 협의회는 이를 위한 사업을 점차적으로 연중 사업 계획에 넣어 본당과 교구 사목에 획기적인 업적을 세울 것을 제안한다.

 

2) 단장을 비롯한 간부들의 사명감 결여 

간부직이 부담스러워 서로 맡지 않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저 평단원으로서 부담 없이 레지오 마리애 단원 생활을 하겠다는 것이다. 군대생활을 하면서 장교가 되기는 싫고 사병으로만 머물겠다는 말과 똑같다. 그래서 걸핏하면 레지오 마리애를 잘 모르는 신참 단원이 간부직을 떠맡게 되는 안타까운 사례가 여기저기서 생기고 있다. 모름지기 간부직은 성모님께서 직접 맡겼다고 여겨야 하는데도 그걸 모른다. 이를 순명 으로 받아들였을 때의 은총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부들이 잘못하면 쁘레시디움 전체가 잘못된다. 특히 레지오 마리애의 운명은 단장에게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장이 주회합에 자주 결석하거나 활동 계획서를 꼼꼼히 챙기지 않아 활동배당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든지, 단장 자신이 활동을 소홀히 하고 언행도 일치하지 않으면서 단원들 위에 군림하려 한다든지, 레지오 마리애에 대한 사랑과 열성 없이 타성에 젖어있다면, 그 쁘레시디움은 얼마 안 가 존폐 위기를 맞게 된다. 단원들이 하나 둘씩 퇴단하기 때문이다. 단장의 결정적인 결함은 단원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므로 그럴 경우 단장을 교체하여 물갈이가 되도록 해야 한다.

단장을 비롯한 간부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을 땅에 묻지 말고 십분 활용해야 한다. 

 

3) 영적 지도자와 영적 지도 문제

레지오 마리애는 초창기부터 주회합에 사제를 영적 지도자로 모셨다. 레지오 마리애는 본당 사목의 협력기구이므로 대체로 영적 지도자들은 레지오 마리애를 사목적으로 적극 활용한다.

레지오 마리애의 제도와 규율에 따르면 영적 지도자도 쁘레시디움과 평의회의 당연직 간부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목자들은 자신이 간부임을 잘 모르고 있다. 이것이 문제이다. 영적 지도자가 레지오 마리애의 간부라면 당연히 상급 평의회의 지시에 순명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사목자가 상급 평의회의 지시에 따라주면 좋지만 그 지시에 순명해야 할 의무는 없다. 오히려 영적 지도자가 레지오의 지단과 평의회를 설립하고 해체할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단원들은 상급 평의회의 지시보다는, 주임신부가 직접적으로 지시한 사항이 있다면, 그것을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하고 우선적이다. 따라서 주임신부가 레지오의 간부가 되는 제도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영적 지도자는 주회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석하여 묵주기도, 영적 독서, 까떼나, 선서 후 강복, 훈화, 회합의 마침 강복을 주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레지오 마리애가 지도신부의 관심과 사랑 없이 그냥 두어도 잘 되는 단체는 결코 아니다. 

그래서 주임신부는 보좌신부, 수녀 등 대리자에게 영적 지도를 일임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참석한다. 쁘레시디움이 많은 레지오 마리애를 원활하게 관리하고 운영하려면 사목자가 꾸리아 간부 연석 월례회, 쁘레시디움 단장 연석 월례회를 개최하여 레지오의 현황과 실태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4) 소공동체와 레지오의 마찰

레지오 마리애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활기를 잃고 침체되기 시작한 와중에 소공동체 운동이 일어났다. 물론 그 전부터 교회의 기반 조직인 구역, 반모임이 있었지만 소공동체 운동을 통해 조직이 더욱 강화되었다. 소공동체 교재를 통해 성서에 맛들이게 되고 구성원 간의 친목과 유대를 돈독히 하고 본당 공동체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도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소공동체 운동은 모든 교구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소공동체가 없는 본당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전국 어느 본당이든 레지오 마리애가 존재한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소공동체를 선호하는 본당 사목자들이 레지오 마리애가 소공동체 운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 것을 보고 쁘레시디움과 평의회를 해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는 상호보완이 가능하다. 교회의 사명은 신자들의 성화와 선교활동이요, 레지오 마리애의 목적도 개인 성화와 선교활동이다. 그러므로 레지오 마리애를 해체하는 것은 교회의 사명 수행을 막는 것이며,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사목자는 본당의 소공동체 모임에 적극 참여하지 않거나 창설자의 정신에서 빗나가는 레지오 마리애를 바로잡아주고 본래의 정신을 되찾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협조를 통한 상생의 관계로 정립되어야 한다.

 

5) 교육 문제

레지오 마리애는 창설자의 정신에 따라 간부와 단원들의 질적 향상을 위해 공부와 교육에도 정성을 쏟는다. 주회합에서는 영적독서, 훈화, 교본공부가 레지오 마리애의 일상적 교육에 해당된다. 교본공부를 위한 「교본 해설집」도 필요하고, 특히 「훈화집」이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다. 아무쪼록 한국 레지오 마리애 협의회의 노력으로 하루빨리 새 훈화집이 발간되어 영적 지도자와 단장의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어야 할 것이다. 

주회합에서 하는 훈화와 짧은 교본공부만으로는 단원들의 질적 향상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레지오의 양적 팽창에 질적 수준이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나라 실정에는 반드시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특히, 레지오 마리애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단원들이 단장이나 간부직을 맡게 되는 실정에서 간부 양성교육은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1990년에 접어들어 세나뚜스나 레지아 주관으로 ‘레지오 마리애 학교’를 개설하였으며, 교육기간은 대개 매주 2시간씩 8-13주간이다(교구에 따라 명칭이나 기간이 다양함).

앞으로 세나뚜스 협의회에서 전국적인 레지오 마리애 교육 협의회를 결성하여 강사진을 폭넓게 활용한다면 레지오 교육에 획기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6) 규칙과 규율 문제

레지오 마리애는 규칙과 규율로써 군기를 확립하고 일사불란하게 운영된다. 규칙과 규율이 무시되면 군인정신이 해이해져 힘을 쓰지 못하는 군대가 되고 만다. 레지오 마리애는 규칙과 규율의 힘으로 지탱하기 때문에 모든 단원은 선서를 할 때 “레지오 규율에 온전히 복종하겠나이다.”라고 서약한다. 레지오 마리애의 규율과 규칙은 교본에 수록되어 있으며, 각 지역마다 달라서도 안 되고 임의로 바꿀 수도 없다. 그러나 교본에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규칙과 규율이 많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창설자의 의도와 관례를 감안하여 국가 평의회인 세나뚜스에서 결정을 하면 된다. 

규칙과 규율도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시대의 변천에 따라 법의 정신을 새롭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는 규율과 규칙에 집착하거나 문자에 얽매이기보다 탄력성, 융통성, 신축성을 갖고 끊임없이 변화하여 시대의 요청과 징표에 적응해야 한다. 마치 인터넷 시대에 인쇄매체에만 매달려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레지오의 규정은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항상 예외는 있기 마련이고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중요시하셨지만 결코 율법주의자는 아니셨다. 그것이 바로 레지오 마리애 창설자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7) 지나친 친목

레지오 마리애는 단원들이 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친목을 통한 단원들 간의 결속과 일치를 중요시한다. 창설자도 주회합이 끝나고 그 자리에서 잠깐 다과를 나누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단원들 간의 친목 도모를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레지오 마리애는 단원들이 ‘끼리끼리’ 사귀지 않고 ‘고루고루’ 사귀기를 바란다. 그것이 창설자의 정신이다. 그런데 오늘날 끼리끼리의 사귐이 지나친 것 같다. 단원들에게 바라는 레지오의 이상은 신심과 활동, 친교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단원들이 신심과 활동보다 친교에 더 큰 비중을 두게 되면 레지오 마리애는 무너지고 침체될 수밖에 없다. ‘회합은 짧게, 친교는 길게’라는 구호가 생길 정도로 단원들이 회합과 활동을 소홀히 하고 친교를 더 중요시한다. 저녁에 주회(週會)를 마치고 술자리를 마련한다는 뜻으로 형제들 간에 2차 주회(酒會)라는 말이 성행한 지 벌써 오래되었다. 자매들 간에도 비밀헌금 외에 친목을 위한 헌금을 별도로 갹출한다. 그리하여 레지오가 계모임처럼 끼리끼리 즐겁게 노는 친목단체로 전락하고 있다.

단원들 간의 지나치게 끈끈한 정이 오히려 레지오 마리애 정신을 좀먹고 공적인 일에 차질을 빚게 한다. 지나친 친목은 단원들이 공(公)과 사(私)를 분명하게 구별하지 못하게 만들고 순명정신을 약화시킨다. 레지오 마리애는 결코 친교 위주의 오합지졸 군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8) 물질 구제 문제와 자금 사용 문제

레지오 마리애의 물질적 구제 금지 규정은 1921년 레지오 마리애 창설 주회합에서 결의된 것이다. 그것은 물질적 자선단체인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와 부딪히는 것을 피하려는 취지였다. 프랭크 더프는 레지오 마리애가 비록 빈첸시오회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영신적 자선활동 단체임을 밝히고자 했다. 그는 물질적인 자선보다도 영신적인 자선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물론 레지오 마리애는 물질적 구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며 결코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을 외면하지 않는다. 다만 레지오 마리애의 이름으로 비밀헌금을 사용하면서까지 직접적으로 물질 구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적인 활동만 한다는 규정 때문에 단원들이 당장 물질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고 때를 놓쳐버린다면,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율법이므로 고쳐야 한다.

레지오 마리애는 모든 이에게 영신적인 유익을 가져다 준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설립되었으므로 물질적인 영리를 추구하지 못하며, 단원들이 레지오 안에서 사리사욕을 추구할 수 없다. 단원들끼리 계모임을 하거나 금전관계를 맺거나 다단계 판매 등의 상행위를 하는 것은 레지오의 순수성을 저해하므로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레지오 마리애에 필요한 모든 경비와 자금은 오로지 단원들의 의무적인 비밀헌금에만 의존하며, 레지오 마리애의 기금은 성모님의 군자금이므로 레지오의 조직과 관리 운영, 사업에만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영적 지도자인 사목자는 레지오 마리애의 재정 문제만큼은 원래의 규정과 정신을 보존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기를 바란다. 

 

9) 노인·청소년·신학교 쁘레시디움 문제

행동단원이란 사도직 활동을 행동으로 옮기는 단원을 말한다. 노인으로 구성된 쁘레시디움은 사도직 활동을 하지 못하고 기도만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전투 부대가 아니고 기도 부대, 보급 부대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활동할 수 없는 노인 행동단원은 협조단원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면 사목자와 협의하여 레지오 장례를 치르면 될 것이다. 그러나 레지오 장례도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 협의회에서 통일된 규정과 기준을 정해주어야 할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는 청소년에게도 매력이 있는 단체가 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은 미래 교회의 기둥이다. 그들의 단원생활은 공동체 의식 함양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귀중한 훈련의 기회가 될 것이다. 성인 쁘레시디움과 평의회는 청소년 쁘레시디움 운영과 육성을 조직 체계의 일부로 여겨야 하며 재정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소년 레지오 마리애는 사제와 수도 성소의 못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교본에서 창설자가 강조하듯이, 신학교에도 쁘레시디움이 있어야 한다. 한국 세나뚜스 협의회나 신학교가 있는 교구 평의회는 신학교 안에 쁘레시디움을 설립하도록 교섭하고 추진해야 한다. 과거에는 쁘레시디움이 있는 신학교도 있었다. 소년 쁘레시디움 출신 신학생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신학교 안에 레지오 마리애 지단이 있다면 훌륭한 영적 지도자의 양성소가 될 것이며, 교본공부 등의 학습활동을 통하여 레지오 마리애를 더 잘 알게 되고 기도와 봉사활동으로 성덕을 쌓고 영육의 건강도 유지하게 될 것이다. 

 

10) 단원 모집 문제

해가 갈수록 레지오 마리애 행동단원과 협조단원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신자들도 입단을 꺼려하고 부담스러워 한다. 기존 단원들이 기쁨과 긍지를 가지지 못하고 마지못해 단원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단원이 됨으로써 좋은 점이 많고 은혜롭다면 레지오 마리애를 자신 있게 홍보할 수 있고 단원들을 더 많이 모집할 수 있을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행동단원이 되면 과연 어떤 혜택과 은총을 받는지 알아보자. 

레지오 마리애 단원은 개인 성화를 통하여 먼저 자신이 구원받고, 주간활동을 통하여 타인도 구원받게 함으로써 보람 있는 생애를 보내며 활동 대상자들에게 크나큰 위로와 용기를 주게 된다. 선교활동으로 한 명이라도 영세시키면 활동 대상자에게는 영신 생명의 은인이 된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되면 기도, 공부, 활동을 통하여 굳건하고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며 대인관계의 폭도 넓어진다. 

그리고 투철한 군인 정신과 프로 정신으로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역경도 극복할 수 있으며, 기쁨과 감사의 삶, 구원의 삶을 살게 된다. 또한 성모 신심이 깊어지고 성모님의 덕성을 본받게 된다. 또한 성령 신심을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도록 인도된다. 단원으로서 열심히 활동하면 할수록 신체적인 건강도 유지하게 된다. 레지오 마리애 생활을 통하여 선종하는 은혜를 입게 되고 레지오 장례와 수없이 많은 위령미사의 혜택을 받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이며 은총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이 창설자가 몸소 실천한 삶이다. 

 

3. 맺는 글

지금까지 레지오 마리애 창설자 프랭크 더프의 정신에 어긋나는 점을 짚어보며 해결방안을 나름대로 제시해 보았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에 대한 창설자의 소망은 첫째로, 단원들 자신이 먼저 성화하여 구원받는 삶을 사는 것이고 둘째로, 단원들이 성모님의 정신과 덕성을 본받아 선교활동과 봉사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구원받는 삶을 살도록 이끎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이 목적과 소망을 달성하려면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주회합을 통하여 기도와 공부로써 정신을 무장하고 활동을 배당받아 적극적으로 주간활동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창설자는 행동과 실천이 수반된 개인 성화와 성모 신심을 강조하였다. 그는 레지오 회합의 핵심인 사도직 활동을 중심으로 기도하고 공부하며 친교를 나누도록 하였다. 따라서 행동단원(Active Member)이란 명칭을 활동단원으로 바꾸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활동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 그런데 활동의 폭을 넓히기는커녕 오히려 단원들이 활동을 하지 않으려 하고, 먹고 즐기는 친교에 치중함으로써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창설자의 정신은 그리스도 왕국을 확장하는 데 충성을 바치는 투철한 군인 정신이며, 또한 인류 구원을 위하여 끊임없는 기도와 사랑을 실천하는 성모님의 정신이다. 창설자의 정신은 참된 성모 신심의 정신이고 봉헌의 정신이다. 참된 성모 신심은 봉헌과 사도직 활동을 요구한다. 남미의 레지오 마리애 선교사 알피 램은 ‘레지오에 산다.’는 말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이 말은 레지오 마리애의 규율도 지키면서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대로 산다는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의 정신대로 산다는 것은 창설자의 정신대로 사는 것이다. 단원들이 창설자의 정신대로 산다면 레지오 마리애는 다시 활성화되어 꾸준히 발전할 것이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을 맞아 레지오 마리애 간부들과 단원들 모두가 자성하고 심기일전한다면 전성기를 다시 누릴 수 있을 것이고, 앞으로 75주년, 100주년도 기쁘게 기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목자료 – 창설자의 정신으로 돌아가자 2003년 10월호 (제 297호)

¶  레지오 ‘연 年’ 피정:  안정호 이시도르 예수회 신부님이 지도한 2018년 레지오 연 피정이 “그리스도 내 안에 형성될 때까지 성모님과 함께!” 라는 주제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3일 동안 있었다. 처음 이틀간은 레지오 단원을 위한 것이고 마지막 날 일요일은 전 신자 대상의 강론이었다. 10여 년 전 주임신부로 계셨던 안 신부님, 이날 환영의 열기를 보니 정말 대단한 인기였음을 알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가뜩이나 지난 달부터 피곤한 나날을 보낸 우리에게 이번 3일 피정 스케줄은 사실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솔직히 말해서 피정의 ‘강론 부분’에 대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오랜 전에 경험한 안 신부님의 강론 스타일을 기억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점심식사 후에 듣는 강론은 아무리 흥미가 있어도 졸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우려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예상을 뒤엎는 결과적으로 너무나 만족스런 피정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예전의 안 신부님이 아니었다. 그 동안 이 신부님 많은 영적인 경험을 거친 더욱 성숙한 사제가 되어 있었다. 믿음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힘찬 강론에 간간히 ‘이상하지 않은’ 유머러스 한 일화들.. 어찌 일초라도 졸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레지오 단원들을 조준 겨냥한 심도 깊은 ‘경고’는 최근에 힘이 빠지는 듯한 일반적 레지오에 대한 장래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현재 아틀란타 순교자성당 소속 레지오가 겪고 있는 ‘실존위기’를 의식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timing이 아주 정확했다. “레지오 단원들이여, 깊은 잠에서 깨어나라” 는 것을 현대 사회심리학적인 각도로 재 조명한 강론은 정말 기억에 남을만한 명강론이었다.

 

¶  YMCA, YMCA!  오늘 오랜만에 YMCA gym엘 갔다. 무언가 생활이 정상 routine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느낀다. 꽤 오랜만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정확하게 얼마만인지는 전혀 idea가 없다. 달력을 보니 (요새는 달력을 안 보면 전혀 알 수가..) 지난 달 23일이 마지막이었다. 그러니까 2주가 넘게 우리는 운동을 못한 것이다.

보통 일주일에 평균 2~3 번 정도는 가는데 꽤 오래 쉰 것이다. 매년 여름이면 사실 가끔 ‘우리도 쉬자, 방학이다’ 라는 기분으로 쉬기도 하고 YMCA swimming pool을 deep cleaning한다고 해서 쉬기도 했지만 2주 이상 쉰 기억이 없어서 이번은 예외적이다. 이유는 두 가지: (1) 너무나 바빠서, (2) 너무나 피곤해서..  하기야 바쁘니까 피곤한 것이지만 이번은 조금 그 정도가 심했다.

장례식, 레지오 점심봉사 이틀 중노동, car maintenance service trip, 이목사님 부부 외식, 거기다 3일간 레지오피정, 1,000차 레지오 주회합 기념 주회.. 와~~ 이 정도면 우리 나이에서는 피곤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운동을 너무 오래 쉬는 것은 피로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  더 쌓이게 한다는 것도 이번에 깨달았다.

 

¶  자비의 모후 1,000차 주 회합: 이번 주 우리 성모님의 군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자비의 모후가 드디어 1,000차 주 회합을 맞았다. 일주일씩 모이는 주회합 1,000차.. 일년이 52주니까, 거의 20년의 세월이 아닌가? 내가 입단한 것이 8년 전쯤이니까 그 이전에도 12년 여의 역사가 있었다니 참  장구한 세월을 ‘견디어’ 온 것이다.

이 레지오의 운명은 사실 보장된 것이 없다. 언제고 문제가 있으면 하루 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다. 비록 성모 마리아를 ‘총사령관’으로 삼고 있지만 일시적 인간의 방해공작으로 깨질 수 있다. 지나간 8년 동안 내가 겪었던 ‘해체 위기’는 3번 있었지만 작년 8월 말의 ‘더러운 사건, 일명 레지오 미친년 난동사건 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그때 나는 정말 자비의 모후가 사라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자비의 모후 가장 빛나는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몰랐다. ‘악’의 치명타를 견뎌내고 일어섰고 감격적인 1,000 차 주 회합을 맞은 것이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간단하게 미사예물 정도 봉헌하는 것으로 끝낼까 했지만 생각을 바꾸어 ‘의도적 과시 誇示‘를 위해서 ‘외부인사’를 초청하고 그들과 함께 기념 주 회합을 하고, 미사가 끝나고 근처 화식집 ‘만천홍’에 가서 푸짐하게 회식하며 기념 주회를 끝냈다.  이날 초청된 ‘인사’는 자비의 모후 창단 간부단원, 내가 입단 할 때의 단장, 부단장님 등이었는데, 이때 창단 시절의 얘기들도 듣기도 했다. 꾸리아에서도 각별히 신경을 써서 축하 떡도 보내주고 1,000차 기념 banner도 제공하였다. 아마도 ‘너무나 어려운 위기를 넘긴’ 사실을 감안했던 것은 아닐까 추측을 한다.  하지만 작년에 당한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고, 최소한 나는 절대로 그 사건을 잊지 않을 것이다.

 

¶  서서히 길어지는 밤:   7월, 그것도 30일.. 허~~ 벌써 7월이 다 갔다는 말인가? 언제나 세월의 ‘가속도’에 놀라지만 이번은 그 중에서도 제일 빠른 느낌이다. 한 달이 거의 일주일도 안 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기야 이번 7월은 나의 기억에서 정말 제일 바쁜 그런 나날들이었으니까 빠른 느낌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무언가 머릿속도 정리가 잘 되지 않은 채 지나간 느낌,  점점 한가해져야 하는 이 나이에 나도 조금 이해하기가 힘 든다.

이른 아침에 밖을 쳐다보니 조금 느낌이 다르다. 확실히 아침이 전보다 조금 어두워졌다. 낮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밤과 낮이 같아지면 또 가을이 시작되는가? 또한, 그림자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인데 오랜 만에 보는 시야였던가.. 아하! 날씨가 흐렸구나. 작열하는 햇빛이 없으니 당연히 서늘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한 동안 거의 매일 code Orange같은 경고가 나올 정도로 공기가 메말랐던 나날을 보낸 것이다. 한차례 시원한 소나기가 조금 그리워지는 7월말 중복이 지나가고 말복을 향한 본격적인 늙은 여름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면 다시 계절은 바뀔 것이고..

올 여름은 비교적 시원한 편이다. 비가 자주 와서도 그렇지만 심리적으로 ‘새로 설치한’ 2대의 에어컨, 이제는 하루 아침에 고장 나는 일이 없으리라는 생각에, 두 다리 쭉 뻗고 찬 공기를 만끽하니 더욱 시원한 느낌이다.

 

¶  레지오 점심봉사:  지나간 주말(어제, 그제)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점심봉사로, 피곤하지만 보람 있는 이틀을 보냈다. 일년에 한번씩 레지오가 하는 점심식사 봉사팀에 우리가 포함되었는데 3년에 한번씩 돌아오게 되는 것이라 사실 큰 부담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의 봉사팀의 구성은 인원수가 워낙 적어서 (참가 3 쁘레시디움이 모두 최소한의 적은 단원을 가졌음) 신경이 쓰였는데 다행히 꾸리아에서 ‘전폭 지원‘을 해 주어서 무사히 성공리에 끝을 냈다. 또한 대부분이 자매님들인 레지오에서 이번의 봉사팀에는 의외로 형제님들이 그런대로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이날 점심은 지난 6월 우리 구역 점심봉사 때 했던 ‘모밀국수’를 했는데 그때의 경험을 100% 활용을 하였다. 물론 대부분의 모밀국수 menu idea는 연숙으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모두들 열심히 협조해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을 생각하기도 했다.

솔직히 이번의 일, 우리는 2일 거의 full-time으로 일을 한 셈인데, 역시 조금 무리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우선 우리들의 나이도 그렇고, 해야 할 다른 일들이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어서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버틸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Moderation, moderation을 motto로 살아왔던 우리들, 이런 것들이 시험 case인가.. 한마디로 take it to the limit이란 Eagles의 노래가 생각날 정도였다. 이날 모든 일들을 마치고 귀가해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아픈 후유증을 달랬지만 역시 나이 탓인가… 쉽게 풀리지를 않는다.

 

¶  1년이 가까워 오는 목요회:  7월의 마지막 목요일 밤 8시 반에 어김없이 우리 목요회 멤버들이 ‘궁상맞게’ 모였다. 다 늙은 남자 3명이 목요일 그것도 밤 8시 넘어서 외식을 한다는 것은 암만 그림을 예쁘게 그려보아도 예쁠 수가 없다. 하지만 모임은 계절을 몇 번 거듭하면서 조금씩 덜 궁상맞게, 더 예쁘게 탈바꿈을 하고 있다. 그것을 모두 같이 느끼는 것 또한 경이로운 사실이다.

작년 9월 마지막 목요일에 모였던 것이 시작이었고 언제까지 계속될 지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지만 무언 無言 속의 표정들은 ‘아마도’ 오래 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3명 모두 너무나 다른 사연과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고 풀어나가야 할 도전이 만만치 않다. 이런 모임에서 그런 문제들을 정면으로 풀어나가는 것,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가벼운 화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이야기로 2시간 정도를 보낸다.

살기가 너무 힘든 때에는 아무 말 못하고 듣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거의 일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서로를 많이 알게 되어가고 이 모임은 확실히 우리에게 어떤 삶의 희망을 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얼마 전부터 오랜 냉담을 풀고 귀향을 한 형제가 있었으니..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모였을 때는 이제까지 중에서 가장 즐겁고 유쾌한 그런 모임이 되었고, 1년이 되는 9월에는 모두들 ‘무언가 기념식’이라도 하자고 의견을 모으며 늦은 밤 헤어졌다. “친구들이여 우리 그날까지 열심히 삽시다!

 

¶  장례 예배:  장례, 연도 같은 연령행사가 뜸했던 요즈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부음 訃音 을 듣게 되었다. 연숙의 이대 梨大 선배 김경자씨의 남편이 타계한 것이다. 이분은 1990년대 아틀란타 부동산업계의 선두주자로 잘 알려지신 분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소식이 뜸해지고 우리도 거의 잊고 살게 되었다. 지금 사는 마리에타 우리 집은 1992년 초에 이분의 소개로 사게 되었던 사연도 가지고 있다.  그 당시 집 구경을 처음 할 때 서로 만났던 McDonald’s, 우리가 자주 가는 곳인데 갈 때마다 가끔 이분의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이분들은 개신교 배경의 집안이라서 교회에서 장례식을 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장의사 chapel에서 해서 그곳에 다녀온 것이다. 천주교 장례미사와 너무나 차원이 다른 ‘간단한 예식’이었다. 그곳에서 알게 된 사실은 고인의 막내 동생이 성당에 다닌다는 사실, 전에 교리반 교사로 연숙과 같이 일했었다는 원선시오 형제였다는 사실, 이날 얼굴을 보니 사실 고인과 얼굴이 닮긴 닮았다. 나는 이 형제님을 잘 모르지만 ‘접근하기가 어려운’ 그런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Take it to the limitThe Eagles

 

¶  Jim Beam & Charlie Chan: 근래에 ‘공적인 활동’이 늘어난 이후 느끼는 것은 바쁘고 보람된 일들 뒤에 ‘꼭’ 찾아오는 선물 같은 ‘심도 깊은 평화, 망중한의 텅 빈 머리’ 이것들 중에도 망중한 忙中閑의 기쁨 중에도 이 두 단어가 바로 그것들이다. 우리 집에서 있었던 구역미사를 위해서 liquor store까지 가서 사온 ‘양주’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Bourbon의 명품, Jim Beam이었다. 그때 ‘몰래’ 사온  세 가치의 cigar도 나의 기대를 자극하는 즐거움이었다.  물론 양주는 신부님 접대용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실제로 거의 없어지질 않아서 그 이후 cigar와 함께 망중한의 즐거움으로 쓰였다. 사실 혼자서 즐기는 것이 되었지만 이럴 때 먼 옛날의 친구들과 어울려 마실 때를 회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 지나갔다. 모든 즐거움 들은 다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또 다른 것, Charlie Chan.. 수십 년 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TV를 보면 그 당시의 nostalgic channel 역할을 하던 channel에서 이런 류의 TV drama가 있었다. 평생에 이런 Charlie Chan이란 말 조차 못 들었는데 그 옛날 (1940년대)에 어떻게 ‘짱께’가 주인공을 나오는 TV program이 있었을까 의아하기만 했다. 그것을 요사이 Youtube를 통해서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요새 기준으로 보면 비록 범죄추리극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순진한 장면들 투성이.. 그러니까.. 마음 놓고 마음 안 상하고 ‘즐길 수’있는 그런 것, 특히 편히 쉴 때 이것을 보면 마음 속 깊은 평화까지 느끼게 된다.

 

Peace and joy with Jim Beam & cigars..

Peace with Charlie Chan time

 

¶  Roller coaster week:  지금 지나가고 있는 하루하루는 글자 그대로 roller coaster week 라고 할 수 있다. 희비가 교차하는, 오르락 내리락 하는 느낌이 거의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던 주일,  때로는 정말 괴로운 순간들도 있었던 6월 초순을  보내고 있다.  주 원인은 우리 집 열네 살이 넘은 ‘나보다 늙은’  정든 개 Tobey의 건강문제 때문이었지만 우리가 바보같이 만든 ‘인재 人災’도 이럴 때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결과만 만들었다. 왜 이렇게 ‘어려운 일’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일까? 그것이 인생이다.. 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그것이 또한 사실이다.

갑자기 구토, 설사로 시작된 것, 왜 그랬는지 이유는 알 길이 없지만 문제는 먹지를 못하니 평소에 ‘관절염’으로 먹는 약까지 끊게 되어 사태는 악화일로 였다. Good Old veterinarian (수의사) 에게 데려가는 것은 원칙적으로 꺼린다. 각종, ‘불필요할지도 모르는’ test로 시간을 다 보낼 것이 분명한 것이고 그러면 더 악화가 될지도..

이 녀석 기운이 빠지고 아파하는 모습에서는 ‘죽음의 그림자’까지 느껴지고, 우리는 절망의 기분까지 들었다. 급할 때는 묵주를 무의식적으로 굴리고 있을 정도였지만, 성모님의 도움인지, 정성스런 간호 덕인지 다행히 설사도 멎고 서서히 먹기 시작하면서 죽음의 그림자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회복이 예전에 비해서 너무나 느린 것을 보면서 다시 생각한다. 나이 탓인가.. 아니면 무슨 큰 병이 있는 것인가? 얼마 있으면 annual medical checkup이 있어서 (동물)병원엘 가니까 그때면 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moaning & limping.. sick Tobey

 

Pet 을 집에서 키우는 사람들은 이런 것 한두 번씩은 경험을 했을 것이지만 이렇게 거의 집안 식구가 된 pet animal을 영원히 보낸다는 생각을 하면 사람이나 동물이나 큰 차이가 없음을 다시 한번 절감을 한다.  이런 것들 사실 자연의 법이기에 겸허하게 받아드리는 것이 옳은 일일 것 같다. 세상에서 변치 않는, 영원한 것은 하느님 밖에 없다는 사실만 잊지 말자.

 

Climbing in Canada:  새로니가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떠난 2주간의 Canada trip을 마치고 돌아왔다. 학교 teacher가 되면서 2개월에 가까운 ‘긴’ 여름방학을  손꼽아 기다린다. 우리 시절에는 꿈도 못 꾸던 모험적인 취미여행을 떠나곤 한다. 요새 ‘아이’들, 경제적 여유만 있으면 이런 즐거운 30대를 보낸다. 결혼과 가정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할 나이에 이렇게 놀러 다니는 것을 보며 세대가 참 많이 변했음을 실감한다.

새로니 친구들과 모두 3명이 갔던 Canada(Rockies, Vancouver)  여행 사진을 보며 나는 다른 생각에 빠진다. 나나 연숙, 이제 그런 여행들, 귀찮다는 인상을 받는다. 편한 집에 눌러 앉아 있는 것이 우리에게는 훨씬 유익하고 건강한  ‘휴가여행’인 것이다. 솔직히 돈을 주고 갔다 오라고 해도 별로 구미가 안 당기는 것이다. 단 한가지, 이번 여행 중에 찍은 사진 중에 rock-climbing하는 것, 나의 오래된 추억이 샘물처럼 흘러 나왔다. 한때 나도 저런 것에 ‘미친 때’가 있었지.. 하는 감상적인 느낌들은 즐기고 싶었다. 그때가 1970년 경, 거의 일 년을 ‘바위 타기’에 많은 시간을 ‘허송’했던 대학 4학년 시절. 비록 ‘공부’는 손해를 보았을지라도 아직까지 나에게는 이렇게 신명 나는 추억거리를 제공했으니 그깟 공부가 그렇게 대수인가.. 그것에 지금 나의 딸이 푹 빠져있으니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2주 동안 우리 집에서 다른 의미의  vacation을 가져야만 했던 새로니의 pet dog Ozzie가 새로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 우리 집은 갑자기 고요 속을 빠진 듯한 느낌. 우리 집의 Tobey가 아직도 완쾌가 되지 않은 상태라서 더욱 고요하고 우리의 느낌은 쳐진다.

 

Curia Monthly Sunday: 머리 속이 안정이 되지 않은 채로 ‘꾸리아 월례회의’가 열리는 매달 2번째 주일을 맞아 ‘조심스럽게’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을 갔다. 조심스럽게 간 이유는 꾸리아 월례회의 때문이기 보다는 주일미사를 누가 집전을 할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만약 둘루스 성당 (윗동네) 신부가 집전하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다면 미국성당으로 향하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로 나의 ‘그 신부’에 대한 ‘반감, 혐오감, 앨러지’가 특이하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별 수가 없어서 포기한 상태이기도 하다. 다행히 우리 본당 신부님 집전이 밝혀져서 ‘안심하고’ 그곳엘 가게 되었다.

이날은 오랜만에 등대회 형제님들, 특히 요한 형제와 점심을 같이할 수 있었고, 꾸리아 월례회의도 그런대로 흡족한 느낌으로 마칠 수가 있었다. 생각한다. 전에 있던 간부진들에 비해서 아주 신선한 스타일로 회의를 진행하며 ‘약해질 대로 약해진’ 레지오 조직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불과 몇 달전 前의 꾸리아  leadership을 싫지만 기억한다. 그 중에서 2명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toxic, terrible, horrible한 기억으로,  앞으로 ‘연구 대상’이 될 정도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처럼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는 case study로 삼을 정도란 뜻이다. 그 결과 현재 이 조직은 거의 limping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별것 아닌 듯 보이는 꾸리아 평의원들, leadership을  잘못 뽑으면(Trump처럼) 이런 disaster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다음부터는 공과 사를 전혀 구별 못하는 ‘아줌마 tribalism‘ 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하면 어떨까?

이렇게 결과적으로 밝은 기분으로 ‘주일 의무’가 끝났는데, 이날은 bonus까지 주어졌다. 정말 오랜만에 스테파노 형제 부부와 같이 성당근처에 있는 Mozart Bakery에 모여서 ‘수다’를 떠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작년 8월의 ‘레지오 괴물, 미친년 사건’ 덕분에 가까워진 이 부부, 나이가 비슷하고,  ‘사귈만한 부부’라는 인상을 받아서 가급적 관계를 ‘가꾸어 나가고’ 싶기도 하다. 오랜만에 ‘대한민국 style 빙수와 붕어빵’을 즐긴 이날 주일은 그야말로 ‘주님의 날’이 되었다.

¶ 5월의 어머님과 수국 水菊:  2018년 어머니의 선물, 성모성월 5월이 서서히 우리로부터 떠나고 있다. 올해, Mother Nature는 자상하게도 하늘에서 단비를 지나칠 정도로, 땅이 거의 마를 새 없이 충분히 주시어, 온갖 초록색 생명들, 꽃과 나무들은 호사를 하고 있는 5월이었다.

작년 5월을 돌아보면 그때는 거의 ‘초록색의 향연’을 잊고 살았었다. 우리 집 뒤뜰에서 태어난 8마리의 kitten들 살려내어 입양시키려고 동분서주하였던 때, 봄의 싱그러움은 거의 놓쳤지만 잊을 수 없는 그 귀중한 생명들, 귀여운 아기 고양이들 얼굴은 영원히 우리의 뇌리에 각인 刻印 이 되었고, 두고 두고 맛난 술을 조금씩 마시듯 아직도 기쁨을 느낀다. 그런 생명의 5월이었다.

올해의 5월은 조금이나마 ‘역사의 짐1‘을 덜어보려고 1980년대의 5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지냈다. 1980년 5월의 ‘광주사태’가 나와 어느 정도 관계가 되었을까 물으면 사실 많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런 것, 없던 것처럼 수십 년을 살아왔다는 것은 절대로 자랑스러운 것이 아님을 절감하게 되었고, 나에게 과연 Motherland란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더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

5월의 찬란하게 화사하고 청초한 꽃들을 매주 성모님께 ‘계속’ 바칠 수 있었던 것, 두고 두고 2018년 5월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주 회합 때마다  $4짜리 ‘상품화 된’ 꽃을 Kroger에서 사다가 성모님께 바치는 것, 돈도 돈이지만 미안하게 느껴진 것이, 화창한 5월에 우리 집에서 가꾸었던 꽃들을 바치는 것은 너무도 은총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특히 한창 멋을 내는 수국과 옥잠화를 곁들인 homemade bouquet, 5월의 어머님 성모님, 너무도 좋아하실 것 같았다. 특히 왜 매년 피었을 수국의 싱그러움이 올해 특별히 나에게 그렇게 멋지게 다가 왔을까.. 생각한다. 아마 나이 탓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이 먹음의 멋일까?

 

성모님, 레지오, 수국, 옥잠화… 그리고 5월

 

¶  선생님의 방학:  ‘teacher 새로니’의 pet dog Ozzie가 2주 정도 우리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애들처럼 여름 방학을 그렇게 목이 매이도록 기다리더니 며칠 전 Memorial Day 저녁에 식구들과 외식을 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Canada로 여행을 떠나며 Ozzie는 우리의 식구가 된 것이다. 이때마다 선생님이란 직업, 괜찮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 긴 여름, 다 큰 사람이 아이들처럼 ‘놀고 먹는다’는 것, 나는 아직도 실감을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 나이에 그런 입장이었으면 아마도 지루하기도 할 것 같고 집구석에서 독서 정도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은 나도 조금은 자신이 있다. 더 멋지게 보낼 자신.. 근래 들어서 outdoor sports: deep sea diving, hiking, climbing 같은 데 푹 빠져 있는 새로니, 지금은 공기 좋을 듯한 Canada의 wilderness를 누비고 있을 것이지만 글쎄.. 요새 ‘아이들’ 참 어리게 산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우리가 그렇게 여행을 안 하고 사니 나는 나는 2주 동안 대리 만족이나 즐길까..

 

Ah, Canada.. I wish I..

 

¶  레지오 활동 재개:  최근에 들어서 우리 레지오 Pr.2 ‘자비의 모후’, 1조 (나와 연숙)는 오랫동안 침체했던3 때를 뒤로하고 본격적인 레지오 활동을 재개하게 되었다.

그 동안은 소극적으로 기도에만 치중하는 ‘활동’이었지만 그것은 균형을 잃은,  바람직한 방법은 절대로 아니었다. 이상적으로는 신심활동(기도를 중심으로)과 corporal work (육체적 활동)의 비율이 적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 동안의 경험에 의해서도 ‘밖으로 나가 뛰는’ 활동처럼 나에게 돌아오는 보람과 활력소가 되는 것은 없었다.

나보다 덜 건강하신 ‘어르신’들을 찾아 조금이라도 사소한 도움이라도 주는 것, 그 정도도 못할까? 이분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자체만도 그분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언젠가는 우리가 이런 도움의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도 명심하며 더욱 더 뛸 수 있는 육신의 건강을 주시라고 기도한다.

 

¶  Unofficial Summer: 어제 Tobey와 Ozzie를 데리고 동네를 걸었다. 몇 년 전만해도 거의 매일 Tobey를 데리고 걸었지만 언제부터인지 거의 산책을 못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이가 많아진 Tobey를 너무 걱정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것은 좋지 않다. 모든 ‘운동’ 중에서 나의 나이에 가장 효과적인 것이 ‘빠르게 걷는’ 것이다. YMCA에서 나는 30분 정도 빠르게 indoor track을 걷기에 날씨의 영향을 받는 동네걷기에 등한했는지도 모른다. 좌우지간 오랜 만에 걷다 보니 우리 subdivision의 ‘자산’인 swimming pool과 tennis court를 지나게 되었고, swimming pool이 ‘파~란’ 색으로 변한 것을 보았다. 그렇다.. Memorial Day부터 모든 Summer facility가 open 하는 것, 잊고 살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자주 가던 ‘수영장’… 아~~ 세월이 정말 많이 흘렀다. 그 수영장 아이들이 이제 30대가 되었으니.. 그렇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여름이다. 기껏해야 3~4개월 정도일까… 땀 흘리는 여름은 반갑지 않지만 이제는 드디어 갈색 낙엽의 가을도 그렇게 멀지 않았다는 ‘희망’이 보인다. 그러면… 작년에 재 발견한 classic oldie, ‘The Last Leaf‘를 다시 들고 부르게 될 것이다.

 

Swimming pool’s open for Summer!

  1. 거의 40년 동안 조국 대한민국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에 대한 후회
  2. 쁘레시디움 Praesidium의 약자로 레지오 마리애 조직의 최전방 분대로 실제적인 선교, 봉사 활동은 이곳에서 한다.
  3. 특히 지난해 ‘레지오 미친년 난동 사건’ 이후부터

¶ 2018년 4월이 저문다. 올해 4월은 예년과 달리 옛날 옛적의 4월에 얽힌 것들을 별로 회상할 기회가 없었다. 예를 들면 ‘목련 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박목월 님의 멋진 시와 가곡, 1960년 4월 19일의 광경들, 아니면 1970년 4월 용현이, 창희와 지리산 종주등반 같은 것들.. 이런 것들은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도 많았다. 이런 저런 ‘옛날 것’들을 올해는 거의 잊고 살았던 것이다.

그 대신 나는 거의 ‘현재’를 순간순간 열심히 살았던 4월을 보낸 것 같고 그것이 나를 흐뭇하게 한다. 과거의 사나이에서 조금은 현재의 사나이로 돌아온 것인지.. 하지만 희망은 아름다운 지난날과 건강한 현재를 반 반 정도 섞어서 사는 매일이 되는 것이다. 결국 2018년의 4월은 진정한 나의 ‘부활시기 4월 달’이 되었다.

 

¶ 목요회 Blues: 4월의 목요회 멤버들이 거의 5주 만에 다시 모였다. 매월 마지막 목요일 밤에 모이는 조금은 별난 모임, 벌써 8번째다. 예상을 벗어나 한번도 거른 적 없이 성실하게 모여 지나간 ‘힘들었던’ 한 달의 이야기를 나누는 조금은 ‘청승맞게 보이는’ 우리 목요회, 어떨까, 언제까지 이 모임이 계속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지나간 7개월 동은 그런대로 서로의 지나간 이야기를 나눈 셈이지만 사실 아직도 궁금한 것들 투성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지나간 이야기가 그렇게 중요한가, 현재가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써비스가 엉망인 어떤 Chinese buffet 에서 만난 자리에서  S 형제가 모임 줄곧 침묵으로 일관을 해서 우리의 신경을 쓰게 했는데, 이런 태도는 이번이 처음이라서 아마도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인생이란 것, 특히 우리들의 삶, 결코 즐겁지만은, 쉽지만은 않은 것 알기에 이런 자리에서 서로 고민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시간이 더 걸려야 됨을 알게 되었다. 사실 S형제는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될 정도로 고민이 많은 듯하지만 현재로써는  ‘기도나 관심’ 이외에 별로 option이 없다. 다음 모임에는 조금은 웃는, 말을 다시 많이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지만, 어떨까..

 

¶ Days with Sherlock: 며칠 간 ‘탐정 미스테리’의 원조 격인 영국 코난 도일 Conan Doyle  원작의 셜록 홈즈 Sherlock Holms 영화를 찾아 (물론 Youtube) 보게 되었다. 대부분 1940년대의 흑백영화인데 download 한 결과 놀랍게도 아주 영상의 질이 요새말로 720p 정도의 ‘보물’들이었다. 어렸을 때 만화로 즐겨 보았던 탐정 미스테리 이야기는 주로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 것들 역시 거의 모두 이 셜록 홈즈 Sherlock Holms 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영국 문화의 영향인지, 모든 스토리나 scene들이 너무나 ‘고상하고 신사적’, 비록 범죄가 주제지만 눈을 감지 않아도 되는, ‘안심하고’ 볼 수 있기에 Film Noir와 더불어 요새 즐겨서 보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관심을 갖고 접하게 된 Christian Writer의 대가인 C. S. Lewis 를 통해서 1940년대 영국의 여러 모습을 보며 또 다른 유명인, Sherlock Holms, 그리고 그의 sidekick 격인 Dr. Watson을  다시 찾게 되었다.

 

Sherlock Holms & Dr. Watson

 

¶ West Bank, again?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때도 있나? 같은 달에, 그것도 2주일에 걸쳐서 같은 park로 두 번 picnic을 갔다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희귀한 happening에 속한다. 첫 번째 picnic은 성당 등대회에서 간 것이고 다음 것은 역시 같은 성당의 레지오 야외행사로 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같은 West Bank park 이었을까? 아마도 이 즈음에 이곳이 제일 경치도 좋고 가기도 좋은 곳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첫 번째 갔을 때는 날씨가 거의 비가 오락가락 하던 때였지만 두 번째는 날씨가 기가 막히게 화창해서 West Bank park의 멋진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다만, 레지오에서 간 것은 거의 ‘의무적’으로 간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이곳으로부터 마음이 떠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성모님께 드린 맹세가 있기에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out of question이지만 세상사가 어찌 그렇게 예상대로만 되랴.. 그래도 이 화창한 날, 레지오 야회행사에는 장기유고 중인 ‘크리스’ 자매가 오랜 만에 모습을 들어내어 참석을 해서 반가웠다.

 

West Bank park under Spring Sun

 

 

또 하나의 연도와 장례미사:  지난 26일에 선종하신 ‘어떤’ 형제님을 위한 성당연도와 장례미사가 28일 토요일에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있었다. 몇 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선종하신 ‘야고보 James’ 형제님, 요새 세상에서는 ‘young’ senior에 속하는 60대 중반도 채 안 된 분이셔서 내내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우리 성당 공동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이어서 그런지 이날 조문객 弔問客 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그에 비해서 정성이 더 실린 조용한 연도와 장례미사를 치를 수 있었다.

성당 사무실로부터 이런 ‘연령’ 행사가 ‘공지 公知’가 되면 우리는 생각을 많이 한다. 우리의 기본적인 자세는, 순교자 성당의 ‘연도와 장례미사’는 ‘가는 것을 원칙 原則’으로 했고, 또한 ‘쓸쓸한 영혼’일 수록 더 노력을 해서 참례하기로 했다. 물론 예외도 꽤 있었지만, 지나간 8년간1 우리의 이 원칙은 그런대로 잘 지켜졌고, 현재도 이런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제 와서 생각을 다시 해 보면, 이런 우리의 이 작은  봉사 service, 활동, 그러니까 사적인 연령활동이 우리의 신앙여정 중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높고 값진 활동임을 계속 깨닫고, 실제로 우리의 조그만 노력에 비해서 되돌려 받는 안 보이는 ‘그 무엇’은 글로 표현하기 힘들다.

야고보 형제님, 비록 조문객은 많지 않았어도 신부님의 ‘각별한 관심’을 듬뿍 받으시며 편안히 귀천하셨으리라 믿는다. 이 형제님이 5년 전 교리반의 인연으로 알게 된 자매님의 아버님임을 알아서 더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에 상관없이 레지오 단원의 제 역할을 했다는 것, 현재 더 많은 성모님의 관심이 필요한 우리 레지오 ‘자비의 모후’에도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믿고 싶다.

 

  1. 2010년 말, 우리가 레지오 활동을 같이 시작했던 때부터

Roswell Nursing & Rehab Center

 

도대체 얼마 만인가? 지난 해 ‘레지오 미친년 사건’ 이후 거의 잊고 지냈던 Roswell Nursing (& Rehab) Center에 계시는 박안나 자매님. 중증 치매를 앓고 계시는 ‘할머니’ 자매님을 정말 오랜 만에 방문했다. 식구들은 많지만 집에서 간병하는 것,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일까.. 그래서 이런 ‘시설’들이 필요하고 생긴 것이고 프로 간호인들의 간병을 받는 것인데 문제는 시설마다 service의 질이 다르고 어찌 가족이 있는 집과 그 환경이 같을 수 있을까.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나의 머리 속의 혼란한 생각은 이런 것이다. 전혀 현실을 인식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기의 주변, 환경을 어떻게 인식을 할까.. 분명한 것은 현실과 전혀 다른 세계로 보고 대응을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 ‘젊은 할머님’, 이날 본 모습은 더욱 나빠진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방문할 때는 그런대로 우리를 알아 보시는 듯 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이날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전에 같이 방을 쓰셨던 2명의 할머님들 그 동안 모두 타계를 하셨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 이곳은 그 정도로 중환자들이 계셨던 곳이었다. 모두 ‘치매성’ 환자들이었지만 신체상으로 큰 병은 없었던 분들이었는데 퇴보하는 두뇌도 생각보다 더 치명적인 것이었다.

이 안나 자매님, 전에 뵈었을 때는 활발하게 주위를 돌아다니셨는데 지금은 거동이 완전히 어려워져서 어둠침침하게만 보이는 방 안의 침대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가족들이 할머니, 어머니의 이런 모습을 모를 리가 없겠고, 그렇다고 다른 방법도 없으니.. 침울한 심정으로 그곳을 나올 때, ‘저 자매님이 만약 나의 어머님, 누님이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하는 괴로운 생각이 나의 머리 속을 하루 종일 맴돌았다.

Jesus, into Passion Week

 

올해, 2018년의 성지주일(聖枝主日), 종려주일(棕櫚主日), Palm Sunday 는 blog 제목 그대로, 비에 젖고 싸늘하고 온통 쫓기는 듯한 그런 날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아침, 기온마저 싸늘한 것이 오래 전 같았으면 따뜻한 방 책상 앞에서 향기 짙은 coffee를 한없이 마시며 백일몽을 꾸고 싶었을, 바로 그런 느낌이 드는 날이기도 했다.

이날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죽으러’ 들어가시는 날인데, 인간적으로 생각을 해 보면 어떻게 참혹한 죽음을 알면서도 사명을 완수하러 죽음의 행군을 하셨을까.. 인간적으로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호산나를 외치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죽이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을까.. 이제는 이해가 간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이날은 2018년 가톨릭 신앙 의미의 최 정점인 부활주일을 향한 성주간의 첫날이기도 하지만 다른 일, 행사 등등이 ‘모조리’ 겹쳐서 도저히 그런 ‘도피 심리’는 꿈을 꿀 수도 없었다. 우리 구역이 성당 점심봉사 차례였고, 본당청소의 날, 레지오 아치에서 행사 등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년 같으면 구역 점심봉사나 본당 청소는 pass할 만도 했지만 올해는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나 미안해서였을까.. 

하지만 이날 제일 중요한 행사는 역시 레지오 아치에스 행사였다. 올해로 20차를 맞는 큰 의미 있는 행사다. 레지오는 로마 군대의 조직을 본 딴 것이고 성모님께 충성을 서약, 맹세하는 엄숙한 행사로서 보통의 신심단체에서는 찾기 힘든 행사다. 이것을 빼먹는 것은 한마디로 충성이 결여된 군인과 같은 것인데 나는 작년에 그런 일생일대의 실수를 했다. 이유는 레지오의 ‘왕마귀‘라는 인간이 벌린 해괴한 행동에 너무나 놀라고 실망을 해서 레지오를 떠나려고 마음을 먹었기에 그런 경솔한 실수를 한 것이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올해는 ‘절대로’ 그런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고 결심을 하였고 결국 오늘은 큰 문제없이 참석을 하게 되었다.

이제 성주간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고, 성삼일, 수난감실 성체조배 같은 heavy급 행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끝나면서 우리는 ‘초자연적 중의 초자연적 기적,  인간 부활’을 다시 경험하게 될 것이다.

 

Spring at Saybrook Court

 

¶ Spring finally comes: 유난히도 추웠고 (아직도 싸늘한) 길게 느껴졌던 겨울이 공식적으로 끝이 났고 봄이 시작되는 ‘춘분’이 3월 20일1이었다.

봄의 시작이라고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이때 내가 할 일이 하나 있다. 나의 blog site의 header art picture를 ‘봄’의 그것으로 바꾸는 일이다. 이 site는 이런 식으로 일년에 네 번을 바꾸는데, 사실 조금 귀찮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것으로 세월의 흐름이 그렇게 ugly 하지 않다는 느낌을 주고 받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거저 받은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 이런 때 다시 한번 행복한 마음으로 새기는 것, 그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받고 싶은 것이다.

이 header art에 담긴 ‘봄의 모습’은 우리가 사는 집, cul-du-sac 에 있는 neighbor house들 초봄의 모습과, 비가 내린 후 blacktop에 물빛이 반사되어 흡사 커다란 ‘연못’을 연상시키는 그런 것이 잘 어울려서 나에게는 익숙한 것이다. 이런 모습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하지까지 봄은 무르익어갈 것이다.

 

 

¶  Kafkaesque March day: 지나간 화요일 주회합에는 일년 만에 꾸리아 순방이 있었다. 이날 꾸리아 간부들의 방문을 맞으며 일년 전 같은 때를 기억하는 고통을 겪었다. 그 당시 blog post를 기억하면서 Kafka를 연상시키는 ‘해괴한 사건’2을 다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3월의 악몽’ 으로 뇌세포에 단단히 자리를 잡은 이 해괴한 사건, 그 사건의 장본인은 작년 8월의 ‘레지오 미친년 사건’과 더불어 ‘2명의 레지오 미친년들’ 로 내 개인 역사에 당당히 남게 되었다.

꾸리아의 위상을 완전히 진흙탕 속으로 떨어뜨린 그 사건의 여파로 나는 심각하게 레지오를 포기할 생각을 했었고 결과적으로 레지오 아치에스 acies 행사까지 포기하는 실수도 범했다. 지금은 조금 감정적이었던 그 당시를 후회하기도 하지만 그 ‘장본인 왕마귀’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절대로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누구건 간에 레지오를 분열시키거나 떠나게 만드는 것은 ‘성모님 정신을 거역하는 심각한 죄’ 라는 것을 나는 굳게 믿는다.

이런 사건들의 원인을 쉽게 찾을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단원 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우리 레지오는 모두를 저질단원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악몽을 떠올리며 이날 다시 맞은 꾸리아 간부들, 특별한 문제없이 방문은 끝났고,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사실 이번에 작년 같은 사태가 재발하게 되면 즉시 video로 기록을 남겨 Youtube로 공개할 것을 밝힌 후,폭력으로 쫓아낼 각오‘까지 다질 정도로 나는 ‘아직도’ 감정이 격해 있었다. 이제는 이런 일들,  나에게 조그마한 피해망상증 paranoia 이 생겼는지, 정말 싫고 피하고 싶은 일들이 되었고 나를 조금씩 성모님의 군대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음도 느낀다.

 

 

 

¶ 목요회 친구들: 6개월이나 된 ‘장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 목요회 모임이 이번 달에는 마지막 목요일이 아니고 세 번째 목요일에 모였다. 마지막 목요일인 ‘성 목요일’에 떨어졌기 때문에 한 주를 앞당긴 것이다. 원래의 계획은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도밍고 형제가 난색을 표명해서 예전 대로 밖 (식당)에서 모였다. 몇 개월 전에 밤에 차 사고를 당했던 경험 때문인지 깜깜한 늦은 저녁시간에 마리에타로 drive하는 것이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는 거의 20년 전에 온 적이 있겠지만 아무리 요새의 technology, GPS와 Google Map이 있어도 밤에 이곳의 불규칙적인 residential area를 drive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했을 것이다.

칠십의 나이는 확실히 ‘밤중의 운전’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서서히 실감한다. 나만의 느낌이 아니고 주위의 동년배들도 거의 같은 의견이다. 그래서 점점 mobility는 떨어지게 되지만 대신 virtual mobility (Internet)는 점점 발달할 것이므로 예전의 ‘노인’들이 겪던 ‘소외감’의 문제는 그렇게 크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집에서 모였으면 spaghetti 와 wine으로 배와 기분을 채우려고 했고, 아오스딩 형제에게는 (60/70 style) guitar 101 정도를 보여 주려고 했지만,  아마도 6월 달 정도에나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하고 밤 늦은 저녁식사 모임을 끝냈다.

 

  1. ‘한국산’ 레지오 수첩을 보면 3월 19일이 춘분인데.. 갑자기 혼동스럽다. 이것은 국제표준 ‘절대’ 시간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2. 꾸리아 간부로 방문 온, 정서가 불안해 보이는 인간이 갑자기 괴물로 돌변, 순명 하라고 길길이 뛰던, 이직도 그 광경이 믿기지 않는 사건

¶  싸늘한 2월의 마지막 날:  28일이 되었고, 결국은 2018년 2월도 서서히 저물어간다. 을씨년스럽게 싸늘한 가랑비가 하루 종일 오락가락 하던 날, 지난 며칠 동안은 이른 봄의 기분을 한껏 느끼게 해 주더니 ‘아직 진정한 봄이 온 것이 아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라고 mother nature 는 일깨워 준다. 그래도, 그 동안 ‘갑자기’ 주위가 봄소식을 알리는 각종 식물들의 색깔로 채워져 가고 있었는데, 얼어 붓는 추위가 없는 한 그것들은 우리 둘에게 즐거운 화제가 될 것이고,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할 것이다.

얼마 전 이마위로 ‘재의 십자가’가 그어졌던 Ash Wednesday가 어느새  2주 전으로 멀어지고 있는가? 왜 이렇게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는가? 지나간 2주 간의 사순절은 나에게 어떤 시간들이었는가? 새로 태어나는 삶을 향한 어렵고 고통스러워야 할 ‘광야의 40일’ 간의 시간을 나는 과연 올바르게 보내고 있는가? 나의 daily journal을 살펴보면 별로 큰 변화가 없는 비교적 ‘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듯… 싫다, 그런 나날들.. 하루하루 새로운 하루를 보내고 싶다.

 

¶  Cramming… 오래 전 학교에 다닐 때 심심치 않게 겪었던 습관들, 그야말로 ‘당일치기’ 비슷한 것.. 학교를 떠나며 이런 괴로운 ‘시험 보는 것과 당일치기’ 가 없어지는 줄로 알고 쾌재를 불렀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학교시험과 비슷한 인생시험의 연속, 그곳에도 당일치기가 수없이 많았다. 당일치기 cramming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동시에 괴로운 것이다.

요사이 나는 잊고 살던 ‘당일치기’를 하고 있다. 2월 초에 우연히 찾아간 Coursera, 그곳에 나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피난처’를 찾았고 곧 ‘공부’가 시작 되었지만… 역시 제대로 매일의 study schedule을 따르지 않았기에 밀리기 시작하고, 오랜 만에 당일치기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A Stanford online course,  ‘Understanding Einstein: The Special Theory of Relativity‘ 였다. 두 달 정도 (8주) 계속되는 ‘미적분 이상의 수학이 필요 없는 특수 상대성 이론’, 목표는 다음과 같다.

Our goal will be to go behind the myth-making and beyond the popularized presentations of relativity in order to gain a deeper understanding of both Einstein the person and the concepts, predictions, and strange paradoxes of his theory.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 [미적분 이전의]이 필요한 이 course, 처음으로 특수상대성이론의 ‘배경, 구조, 그리고 의미’를 파악하게 되었다. 일 평생 거의 ‘만화, 상상과학 수준’ 정도의 매력에 빠지곤 했지만 (4차원의 신비), 이번에 그것의 ‘실체’를 접하게 된 것이다. 몇 년 전 Harvard online course에서는 수학을 거의 쓰지 않았기에 편하기는 했지만 사실 특수 상대성 이론의 ‘실체’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Stanford대학의  top-class Instructor Dr. Lagerstrom, 지나친 전문학술용어를 최대한 간결하게 사용하며,  ‘피부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이론’으로 서서히 우리를 인도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어려운’ 과학이론을 가르치는 모범 case가 아닐까 나는 계속 놀라며 박수를 친다.

 

 

이 course를 통해서 내가 얻으려는 것은, 요사이 절제 없이 좁아진 인간관계를 보는 관점으로부터 벗어나, 내가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닌 것이라는 ‘실체적 진리’, 바로 그것이다.

 

¶  레지오 간부교육:  지난 주말에 도라빌 순교자 성당, KMCC 꾸리아 주관 레지오 간부교육이 있었다. 내가 레지오 간부[서기]가 된 것이 2012년 정도였으니 이제는 꽤 익숙한 경험이다. 모든 신심단체는 그런대로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사람들로 특정한 신심 조직에 대해서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것은 기본일 것이지만, 실제로 그런가? 물론 그것은 거의 이상에 불과하다.

그 동안 간부를 맡으며 지내온 동안 계속 느끼는 것은 나도 정말 부족하지만 어떻게 저런 자세로 단원 선서를 했을까.. 하는 놀라움이다. (성모님께 바치는) 선서란 것이 그렇게 형식적이었던 것일까? 실제로 하는 활동의 양도 중요하지만 단원으로써의 자세는 더욱 중요한데.. 암만 레지오 조직의 rule에 대해서 열을 올리며 토의를 해도, 왜 우리가 이런 것을 하고 있는지는 거의 잊고 사는 듯 하다.

 

레지오 간부교육 전 기도와 미사봉헌

 

기도와 활동이 균형적으로 적절히 강조되는 것에 대해서 레지오 간부들 조차 ‘해괴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왜 (묵주)기도하는 것을 발표를 하느냐.. (뛰는)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못해서 아예 레지오 교본을 완전히 잊고 열을 올리니.. 그런 사람들은 아마도 사회봉사단체인 ‘한인봉사센터’에 가지 왜 레지오에 들어와 고생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미국 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주임신부 Fr. Miguel이 제일 강조하는 것이 바로: 기도하지 않는 봉사활동의 허구성인데 바로 이런 꼴을 이곳에서 목격을 하니.. 이런 교본적인 것에 대한 교육이 거의 없는 곳, 이제는 거의 “무명무실 무감한 님‘의  노래 가사가 떠오르게 되었다.

 

¶  Cursing! 마귀 성토 聲討:   아녜스 자매님 부부와 오랜 만에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한때 자주 보며 지냈던 이 부부, 이즈음 들어서 자주 못 보았기에 아주 반가운 모임이 되었다. 아녜스 자매님은 레지오를 통해서도 알았지만 형제님은  몇 년 전 내가 교리반 staff으로 있을 때 교리 공부하고 세례를 받았던 인연이 있었다. 하지만 자매님이 레지오를 떠나면서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근래에 어떤 ‘성당 마귀’에게 잘못 걸려 지독히 고생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동병상련 同病相憐’ 의 심정으로 이날 ‘마귀성토’를 속 시원히 하게 되었다.

예전에 우리 눈에 별로 안 띄던 ‘진짜 여자 마귀’들의 존재를 실제로 ‘당하고, 보고, 듣고’ 하면서… 이 세상은 역시 ‘불완전한, 악이 상존하는’ 그런 곳임을 절감하게 된다. 우리가 겪었던 ‘레지오 미친년 마귀’나 이 자매님이 겪었던 다른 ‘마귀’나 근본적으로 같은 부류의 불쌍한 인간들임을 실감할 때, 분노 이전에 슬픈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이 두 case모두 진정한 용서는 out of question이다. 하지만 형식적, 휴전적인 용서는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한마디로 그것은 tall order…. 힘들겠지만 그저 잊고 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  등대회, Computer/Tech Talks: 매달 마지막 주일에 모이는 60+대 성당친교단체 등대회, 이곳에 참석한 것이 이제 몇 달째가 되어가나.. 지난 해 9월 무렵에 가입을 했지만 아직도 나는 ‘신입’에 속하는 느낌을 금할 수가 없다. Regular 들(자주 참석하는) 대부분은 이제야 조금 익숙해진 듯하지만 ‘안 보이는’ 사람들은 내가 알 길이 없다. 이 모임의 성격은 알듯 하기도 하고 확실치 않을 때도 없지 않다. 100% 친교? 그러면 교회 밖의 모임과는 무엇이 다른가? 설립목적, 아니면 mission statement같은 것을 본 적이 없지만 보통의 생각으로도 몇 가지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할 ‘사명과 목적’은 있을 것인데.. 그 중에 ‘간단한 봉사’ 같은 것도 있음직도 해서 어렵사리 제안을 했지만 ‘그런 것 이곳에서는 안 맞는다’ 라는 여론이다.

그러면 다음은 무엇인가? 성당 공동체 다음으로 모든 회원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서로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누자는 idea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무엇을 할 지는 문제일 것이다. 예전에 보험, 의학 정보 presentation  같은 것이 있었다고 해서 그렇게 ‘배우는 program’ 을 계속하자는 idea가 나왔고 스테파노 형제가 일반적인 computer technology 에 대한 것을 나에게 제안을 해서… 큰 생각 없이 ok 를 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이것도 생각만큼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Computer technology라면 덩치가 너무나 큰 것이라 접근하기에 따라 무척 복잡한 것 아닌가? 한 달이라는 시간은 있지만 아무래도 다음 달 말이면 ‘성주간’인데… 약간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해 보자!’, Don’t think twice, it’s alright!

 

¶  Home Wi-Fi Infra Upgrade, Finally!

 

TP-Link AC1200 Wireless Wi-Fi Access Point – Supports 802.3AF PoE, Dual Band, 802.11AC, Ceiling Mount, 2×2 MIMO Technology (EAP225)

1200Mbps Wireless USB Wifi Adapter, FayTun USB Wifi Adapter,
AC1200 Dual Band 2.4GHz/300Mbps+5GHz/867Mbps,
802.11 ac/a/b/g/n High Gain Antenna

Wi-Fi, 아마도 이 말은 반세기전 home audio system의 표준이었던 HiFi (High Fidelity) audio  에서 유래되었을 듯 하다. 이제 이 말은 wireless Ethernet standard로서 ‘wired Ethernet’ 의 extension을 뜻하게 되었다. 처음  device들이 나왔을 때는 사실 거의 실용 불가능에 가까운, 느리고 연결이 끊어지곤 하던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임시’로나 쓸 수 있을 정도였다.

벽 속으로 Ethernet wire (CAT5,6 cabling)를 설치하는 것, 아마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괴로운 작업일 것이지만 우리 집은 1990년대 말에 이미 coax cabling (before CAT5 cabling standard)을 설치해서 쓰고 있었고 나중에는 모두 CAT5/6 로 바꾸었다. 그러니까 3000 sf (square feet)크기의 우리 집은 아래 위층에 있는 desktop computer들이 모두 network이 되었던 셈이고 Wi-Fi infra의 필요성이 거의 없었다.

그 이후에 Wi-Fi device들이 필요한 때가 도래했다. 바로 mobile device (laptop, mobile, Smartphone같은)들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1st generation Wi-Fi  (access point, router)를 설치해서 간간히 쓰고 있었는데… 문제는 mobile device들이 network speed가 점점 빨라지면서 (특히 요새 나오는 Smartphone들) 우리 집의 Wi-Fi system이 따라가지를 못했던 것,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는 Smartphone에서 streaming video가 거의 필수가 되었지 않은가?

우리는 집에서 smartphone으로 video를 안 보기에 몰랐는데… 큰딸 새로니가 가끔 집에 놀러 오면 불평이 대단했다. 자기의 iPhone에서 Internet video를 볼 수가 없다는 것… 그래서 생각해 보니 우리 집에서 마지막으로 Wi-Fi router를 설치한 것이 아마도 거의 7~8년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예전의 Wi-Fi system, 느리고 문제가 많았기에 거들떠도 안 보았는데…

할 수 없이 요새의 system을 찾고 샀고 설치를 했고… 결과는… shocked! 완전히 놀람의 연속이었다. 그 동안 wireless technology는 경이적인 발전.. 특히 MIMO (multiple antenna) technology의 효과는 놀랄 정도.. 우리 집의 모든 mobile device들 완벽하게 network에 연결되고 안정되고 표시된 최대의 speed, 게다가 device들의 값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reasonable 했다. 그 중에서 내가 제일 놀란 것은 우리 wired network (file server, Internet access) 에 연결된 내가 매일 쓰고 있는 workhorse desktop pc (Windows 10 box)가 이제는 100% Wi-Fi로 쓰고 있는데, ‘한번도’ hiccup 조차 한 적이 없다는 사실.. 놀라고 놀라고 있다.

 

¶  마리에타 사랑반 모임:  지난 17일 봄처럼 푸근한 토요일에 모처럼 (도라빌 순교자 성당) 사랑반 구역모임엘 갔다. 이번에는 도미나 구역장님 댁에서 모였는데, 무엇인가 나로써는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이유는 이 댁을 처음 가보는 것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이렇게 가정집에서 모이는 구역모임에 마지막으로 가본 것이 몇 년 전이었기 때문이다. 안 나간 이유는 물론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지만 그저 게으름 때문만은 절대로 아니었다.

확실한 이유를 가지고 ‘일부러’ 안 나간 것인데 이제는 그 이유들이 없어지거나 ‘타협’이 되어서 다시 한번 ‘세월과 성모님의 도우심’을 떠올린다. 어떨 때는 ‘그저 기다리면’ 된다는 세월과 시간의 은총이 분명히 있다. 나에게는 비교적 젊은 형제, 자매님들과 어울리는 것, 비록 내가 제일 연장자의 위치로 밀려 오르긴 했지만, 약간의 술 기운과 더불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완전한 OB (old boy)의 위치에서 말 조심을 하려고 애를 쓰지만, 그저 common sense만 지키면 큰 문제가 없으리라.. 

 

¶  고 마태오 신부님:  일요일에 오랜만에 성당 도서실에 들렸다. 빌렸던 고 마태오 신부님의 ‘이세상의 이방인‘을 반환하고 다른 책들을 둘러 보았다. 이곳의 진열된 책은 거의 random하게 배치가 되어 있어서 조직적으로 특정한 책을 고를 길이 없다. 그저 random browsing 을 하다가 ‘재수가 좋으면’ 원하는 것을 찾는 정도다.

그 동안 고 마태오 신부님의 책을 3권이나 다 보았기에 혹시 그 이후에 나온  고 신부님의 책이 과연 있을까 하며 어떤 책을 훑어 보다가 그 책의 ‘추천사’ 끝의 이름이 ‘이경우‘라는 글자가 보였다. 그것도 놀랄 지경인데 그 이름의 끝에는 ‘신부’라고 되어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이경우’란 신부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옛날 옛적에는 ‘이경우 농구선수’가 있었고 재동학교 시절, 나보다 5년 아래의 ‘이경우’란 여자 학생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 이름이 그렇게 희귀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 책의 바로 옆을 가만히 보니… 이것도 우연일까.. ‘영원의 방랑객, 고 마태오 지음‘이란 글자가 있는 책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바로 내가 읽었던 3권의 책 후에 나온 것이고 캐나다로 오신 후에 그곳에서의 이야기기 실린 바로 그 책이었다. 이번에는 기다리지 않고 이곳, 저곳을 난독하며 전체의 줄거리를 짐작하게 되었다. ‘쟌느 수녀, 숙과의 재회‘ 같은 것이 있었는데, 고 신부님과 여성들과의 인연들을 보며 부러운 질투 같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 책은 깨알 같은 글자로 거의 500페이지가 되어서 완독(필사 포함)을 하려면 아마도 수개월은 필요할 듯하다.

 

¶  Pay-as-you-go: 내가 쓰는 mobile phone의 plan에 큰 변화가 있었다. 우리 집 모두가 T-mobile의 family plan을 쓴 지가 몇 년째인가.. 그러다가 얼마 전에 새로니가 iPhone을 등산을 하다가 잃어 버린 후에 새로운 plan을 찾게 되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사실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지금 우리 family plan이 너무나 비싸다는 사실. 문제는 바로 나였다. 내가 너무나 ‘조금 쓴다는’ 사실이고 억울하다는 것이다. 한 달에 30분도 못 쓴다는 사실이 나는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그것이 아닌 모양이다.

나는 주로 가끔 전화를 받는 것 이외에는 이것을 쓸 이유가 없었다. 집 landline 이 Internet voip으로 바뀌고 나서 사실 전화비용은 거의 zero에 가까운데 유독 나만, 거의 쓰지도 않는 데에 $30 이상을 쓴다는 것은 낭비였다. 궁리를 한 끝에 나만 따로 새 plan으로 바꾸었는데 그것이 바로 pay-as-you-go 였고 알고 보니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안성맞춤 plan이었다. 한 달에 $3/30 분, 물론 mobile data는 없다.

Call Minute는 그런대로 문제가 없는데, No Mobile Data는 조금 신경이 쓰이는데… Wifi 가 없는 곳에서 Internet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gmail, map, streaming media같은 것들인데… 알고 보면 이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듯 하다. 내가 언제 애들처럼 ‘밖에 나가서’ 그런 Internet service가 필요한 것인가? 정 필요하면 Wifi가 있는 hotspot을 찾으면 될 것이다. 이런 저런 사연으로 한 달에 $30이상 save가 될 것을 예상해서 한 달에 한번 ‘외식’을 한번 더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웃었다.

 

 

¶  Tuesday’s Flower: 지난 해 ‘레지오 미친년 사건’ 이후 계속 느끼는 ‘Tuesday stress’,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 정도로 나의 ‘야수처럼 이글거리는 분노’는 꺼지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레지오 주회합에서 우리를 지켜보시는 성모님의 모습이 더욱 어머니처럼 느껴진다. 이분만은 우리를 지켜주시리라는 염원, 이날 주회합의 성모님 옆에는 우리 집에 봄소식을 전해준 수선화를 꽂아 놓았다. 봄소식과 함께 우리를 더욱 인자로 히 지켜 주시라는 간절한 전구를 잊지 않았다.

 

거의 반년이 넘도록 한 달에 한번씩 있는 이날이 이제는 지겹다 못해서 꾀병으로라도 피하고 싶은 그런 날이 되어가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이제는 한숨조차 나오질 않는다. 어떤 때는 왜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는가 나에게 물을 때도 있고 그에 대한 뾰족하고 명쾌한 답이 없다. 그것이 나를 괴롭게 한다. 그래서, 심지어는 슬프기도 한 그날은..  다름이 아닌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천상은총의 모후) 꾸리아 월례회의.. 한 마디로 밥맛, 입맛이 떨어지는, bad taste  monthly 가 되어가고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내가 이곳엘 나가기 시작한 것이 거의 6년이 넘어가고 있는데 암만 생각해도 처음엔 그렇지 않았고, 세월이 지나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썩어 들어가는 그런 식이 아니었을까? 하루 아침에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라서 아마도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감지 感知 를 못했을 듯하다. 천천히 뜨거워지는 물 속에 잠긴 개구리, 바로 우리가 그런 꼴이 아닐까.

나의 밥맛을 완전히 떨어뜨리는 두 인간이 그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내가 너무도 잘 알기에 오늘도 병이 날 정도로 가기가 싫었다. 그저 그 두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조금만 조용히 얌전히 앉아 있어 주기만 기대하며 그곳엘 들어갔지만, 역시 어디를 가나.. 돼지 멱따는 소리로 말도 안 되는 소리만 지껄이는 인간과 뱀 같은 얼굴로 자기도취에 빠진, 언제라도 monster로 돌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인간 (아!  이 역시, 모두 ugly한 아줌마, 여자들이다)…  가뜩이나 쳐지는 몸이 더 쳐지는 오늘, 지독히도 맛 없는 ‘설날 떡국’ 과 함께 잊고 싶은 ‘주일’이 되었다. 최후의 희망은, 영적 신부님이라도 제발 조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그것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큰 기대는 할 수가 없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남은 것들은 unthinkable 한 option 들 뿐이다.

 

¶  성탄 12일: 성탄을 기다리는 동안 느끼는 포근함과 설렘의 느낌들이 막상 성탄 season 을 맞으면 약간 피곤함이 느껴지는 바쁨을 느끼는 우리 집 yearly routine을 맞이한다. 오랜 만에 모이는 4명의 가족들이 ‘너무나 자주 만나게 되는 stress’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머리들이 클 대로 커버린 2딸들과 debating, arguing (even fighting) 하는 것도 피곤하고, 그저 늘어지고 편해야만 할 듯한 때,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집을 들락 날락 하는 것, seventy years의 여파인지 귀찮지 않을 수가 없다. 그저.. 나의 천국인 ‘connected desk’ 에 앉아, 편히 쉬고 싶다라는 ‘Screwtape Letters (Screwtape & Wormwood)’ 의 대화만 나의 귀에 속삭인다. 하지만, 하지만 나도 smarter해 져서 절대로 그런 유혹에 질 수가 없다. 오늘 할 것은 오늘, 지금, 아니 더 빨리 하고.. ‘나에게 내일 아침이 없을 수도 있다’, ‘가슴 속 저~ 깊은 곳에 진리가 있다’ 라는 근래 나의 좌우명을 잊지 말자.

2017년 성탄절 12일은 새로니 생일인 1월 5일까지이며 (이 사실은 절대로 안 변함), 교회 전례력으로 성탄 시기는 1월 8일 ‘주님 세례축일”에 (이것은 매년 조금씩 변함) 끝난다. 그러니까 1월 9일부터 Ordinary Time 연중시기가 시작된다. 휴~~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 하지만 2월이 되면 전례력의 절정인 부활절을 향한 long march, lent 사순절이 시작되고..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 역정이었다. 이렇게 일년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이런 전례 시기, 지금 생각해보면 흥미롭기도 하고, 오랜 세월 이 전례력의 의미조차 잊고 살았다. 지금이라도 깨닫고, 의미를 두며 살게 된 것은 한마디로 은총이다.

올해의 성탄12일 전후를 나는 어떻게 보냈는가.. good, bad & ugly 골고루 있었겠지만 그래도 GOOD 부터 시작하고 싶다…

 

GOOD #1: Mother Nature!

성탄, 연말, 연시.. 이런 때의 날씨는 나의 psyche 에 꽤 큰 영향을 미친다. 다른 말로, 이 때는 cold & nasty한 것이 ‘정상’이라고 믿기에 더욱 그렇다. 이번 season이 바로 right on! Average보다 밑도는 추운 날씨의 연속..  하지만 nasty하지는 않아서 drive하는 데는 no problem! 자주 볼 수 없었던 coat, overcoat, sweater, muffler가 모조리 선을 보인 perfect season이 되었다.

GOOD #2: Family Mass, 3-2-1 Happy New Year!

최근 들어서 ‘가족’이 함께하는 곳에는 ‘절대로’ 빠지지 말자.. 라는 결심에 알맞게 노력을 한 것, 조금은 결실이 보이는지.. 만족스러운 표정들을 느낀다. 나도 좋고 그들도 좋고.. 이것이야 말로 perfect win-win이 아닐까? Organized religion이 귀찮다는 아이들, 이것도 ‘유행’이 되었나..  이번에도 without fail.. 둘이서 Champaign toasting Time Square 3-2-1로 New Year를 맞이 했다. 나는 밤 10시면 꼭 잠을 들기에.. 이렇게 밤 늦게 눈을 뜨고 있는 것 자체가 고역일 수 있지만 가끔 이런 예외도 알고 보면 보람 있는 것이었다.

GOOD #3(or BAD?): 새로니가 35번째 생일을 맞았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생일을 맞는다는 것은 사실 축복이요 은총이다. 외식을 즐기던 ‘아이’가 언젠가 부터는 우리 집에서 ‘미역국’ 포함한 한식으로 생일을 맞고 있고 엄마도 기꺼이 수고를 한다. 35년이란 세월은.. 사실 미혼임을 알면 ‘우아~ ‘ 할만 하지만 다른 쪽을 생각하면 변한 세상, post-modern culture 의 trend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한 세대가 지나면서.. 이런 변화를 바로 우리 집 식구에서 보게 된 것.. 한마디로 mixed feeling일 수 밖에. 35살이면 새로니가 태어날 때 나의 나이가 아닌가? Natural Law란 것을 생각하면…

BAD #1: Freak Accident! 새해 들어서 반갑지 않은 손님, (small) freak accident는 예기치 않는 것 (하기야 accident란 것은 그런 것이지만) 하도 기가 막혀서 생각하기도, 쓰기도 싫지만 분명히 꿈이 아닌 현실이기에 기록에 남길 수밖에 없다. Handyman 기술 영역에 속하는 fixing garage door, 약해진 spring을 replace하려다가 나는 과히 높지 않은 step ladder에서 떨어지고 door와 wall사이에 pin-down (actually hung) 되어서 최악의 사태는.. 상상하기도 싫은 그런 사고를 당한 새해 벽두.. 100% 나의 실수로 생긴 것이니 100% 반성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UGLY #1: Limping Group: 내 시간과 노력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레지오 마리애 단원 활동임을 부인할 수 없고 나는 이것이 제일 ‘자랑스러운’ 나의 일부라고 자부하고 살았다. 그것이 2017년 일 년 동안 ‘치명적, 비극적’인 상처를 연속으로 받았고 아직도 나는 ‘anger, rage‘의 단계를 못 벗어나고 있다. 내가 ‘살아있는 인간들 (2명의 출발해서 지금은 4명으로 증가)’을 ‘죽이고 싶다’는 상상을 그렇게 오래, 심하게 했던 기억이 없었다. 그것이 ‘아직도’ 성탄과 새해를 넘어서면서도 조금도 차이가 없다. 이것은 정말 perfectly ugly, uglier, ugliest 한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small) group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가.. 그것이 2018년 내가 생각해야 할 최대의 과제가 되었다.

 

¶  Christmas Hallmark Movies: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도 예외 없이 ‘건강하고 건전한’, ‘가급적 의미와 message가 있는’ 영화를 ‘집에서’ 보게 되었다. Merry Christmas란 말조차 ‘인정없이 내 쫓는 인간들’도 이런 영화는 큰 무리, 생각 없이 즐기는 모양인지 Youtube에 가보면 Hallmark moves들이 적지 않게 모습을 보인다. 누가 이런 것들을 upload하는 것인지, 고맙기만 하다. 분명히 이들은 집에서 TV (cable, streaming)로 record를 해서 upload하는 수고를 하는 것인데.. 나에게는 그야말로 ‘God bless them all!’.  올해는 본 것 중에 두 가지를 기억에 남기기로 했다. 최소한 3번 이상 보았던 것, Christmas Solo,  Sound of Christmas 가 그것이다.

 

Christmas Solo: 어느 작은 고장에 사는 single dad, single mom과 그들의 두 teenager딸들이 그 지역 크리스마스 festival의 singing solo 에 뽑히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십대 특유의 갈등, 특히 ‘이혼한 가정’의 십대가 겪는 고민을 크리스마스 spirit으로 승화시키는 그야말로 멋진 classic, common sense finale 의 영화였다. 이 십대들의 고민과 우정이 그녀들 보호자들의 사랑과 이해에 융합이 되는 모습들은 한마디로 성탄절의 의미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Sound of Christmas: 작년 이맘때 보았던 Hallmark 다른 영화, The Twelve Trees of Christmas에 출연했던 2명의 main actor들이 다른 역할로 나온 이 영화는 작년 것과 거의 비슷한 plot과 background를 가지고 있다. 비슷한 plot: 작년 것은 New York city의 전통적인 도서관이 없어지는 것을 ‘영웅적’인 여성의 노력으로 save한 것, 올해의 것은 역시 유서 깊은 음악학원을, 역시 용감한 여성의 노력으로 부동산 업자로 부터 구하는 내용이다. community의 전통적인 유산을 급변하는 상업적이거나 이기적인 단체로부터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성탄의 정신이었다. 여기 출연한 두 main character들, 연기도 좋았고, 아주 깨끗한 인상의 배우들이었다. 내년에도 이 두 사람이 출연하는 Hallmark Christmas movie가 미리 기다려진다.

 

 

¶  Saturday at Monastery: 지난 토요일 나는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예비신자 교리반 학생, 교사들과 함께 Conyers, Georgia (east Atlanta suburb) 에 있는 Monastery of the Holy Spirit (간단히 Conyers수도원이라고 부르는) 를 방문하게 되었다. 몇 년째 (아마도 4+  년?)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 예비신자 교리반이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이제는 ‘짧은 전통’이 되었다. 전 주임신부셨던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이 교리반 예비신자들이 세례 받기 전에 꼭 수도원을 방문하도록 권고를 하셨음에 이 짧은 전통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수도원의 역사는 2차대전 무렵으로 올라가는 비교적 긴 것이지만, 그것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곳과 그 유명한 영성가 Thomas Merton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도 있다. 이 수도원을 창립한 member들이 Thomas Merton 신부가 있었던 Kentucky 주의 Gethsemane Trappist  수도원 출신들이었던 것이다.

근래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책, The Benedict Option 을 염두에 두며 생각하면, 이곳은 우리들에게 그렇게 낯선 곳이 아닌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절과 비슷한 수도원’으로 언제나 포근함과 위안을 주기도 하는 곳, 원하면 세속을 잠깐이라도 잊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2013년 겨울, 나도 교리반의 교사, staff의 일원으로 예비신자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던 기억도 새롭고 그 외에도 레지오 피정 당시 며칠 머물렀고,  몇 년 전에는 자비의 모후 레지오 단원들과 ‘자비의 해’를 맞이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1

도라빌 순교자 성당 현재 주임신부님은 예비신자들의 수도원 방문의 의미를 잘 이해를 못하는 듯 하다고 하는데, 이렇게 신부님들마다 수도원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만 하다. 왜 그럴까? 하지만, 편한 거리에 있지는 않지만 일단 가 보면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신비스러운 곳’에서 ‘보편적이고 장구한 역사를 가진’ 천주교의 냄새를 맡게 한다는 것은 크나큰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수도자들과 피정 온 평신도가 함께 바치는 ‘낮 기도’ 에 우리 모두 경건하게 앉아서 오랜 만에 ‘평화의 신비’를 경험했고, 나중에 Abbey Store (bookstore, gift shop, small dining)에 모여서 맛있는 Publix sandwich, gourmet coffee (정말 향기 좋은 coffee였다) 를 먹으며 교사들의 ‘수도원 역사’ small talk과 각자 느낀 것을 share하기도 했다.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천주교가 주는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마음 속으로, 이들 예비신자들, 내년 부활 때 모두 세례를 받게 되기를 간구했다. 이번에 나는 100% volunteer로 ‘따라’ 간 것이지만 앞으로 이런 기회가 오면 또 가리라 마음을 먹었던, 진정으로 ‘평화스러운’ 대림 2주, 토요일 이었다.

 

 

¶  마리에타 사랑반: 나로서는 너무나 오랜만에 우리가 속한 마리에타 사랑반의 구역모임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꽤 오랜 동안 나는 이곳 참석을 못하며 살았는데 이번은 조금 예외가 되었다. 평상시 처럼 개인 집에서 모인 것이 아니고 바로 성당 내, 조그만 방에서 모인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때 거대한 monster처럼 커져버린 ‘전 마리에타 2구역’이 어려운 과정을 거치며 공식적으로 breakup이 되어서 ‘자비반, 사랑반’ 등등 같은 이름의 smaller group으로 나뉜 것도 이제는 몇 년째가 되었나? 우리에게는 조금 한 집에서 모이기에 편한 새로운 group으로 되었지만 그래도 무슨 높은, 숨은 뜻이 있었는지, 이곳엘 참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저 ‘기다리면’ 된다.. 정도의 느낌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렇게 한 없이 기다리는 것은 무리, 무리… 우리의 ‘나이’를 잊고 살았는지.. old boy의 수준에서 이제는 ‘명퇴 한 나이’의 느낌마저 들게 되었다. 나이의 신비가 이런 것인가?

두 곳의 본당[마리에타 Holy Family, 도라빌 순교자 성당]을 가진 우리에게 100% 순교자 성당의 구역 활동을 하는 것은 이제는 무리인 듯하다. 현재의 사는 방식, 그러니까 status quo의 지혜를 버리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런 우리의 자세가 남들에게는 아마도 그렇게 바람직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지만 현재로써는 어쩔 수가 없다. 당분간, 어느 정도 이 모임에 참여를 하며, 어떻게 ‘명퇴’를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이것은 나에게 결정하기가 참 힘든 문제다.

이날 성당 내에 구역모임은 우리와 자주 만나며 사는  ‘크리스’ 자매가 host를 한 것으로 총무님과 같이 맵시 있게 차려놓은 champaign 이 포함된 snack table 주위에서 담소를 즐겼다. 아마도 자택에서의 모임이 힘든 것을 이렇게 지혜롭게 해결한 것, 아주   지혜로운 idea였고,  현 총무 자매님의 의욕과 사랑으로 임무 수행하는 모습이 멋지게 보이기도 했다.

 

¶  Cumberland Mall: Holiday mall shopping.. 이런 글자만 보아도 머리가 벌써 복잡해지고 피곤해짐은 근래에 들어서 그렇게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아니 꽤 오래된 기억에도 사람 많은 곳에서 shopping한다는 것, 즐겁지 않고 가급적 피하고 싶은 ‘시간낭비’로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가 더 들어가며 이제는 거의 이런 것들을 잊고 사는 기분이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달랐다. 일년 동안 두 번씩이나 겪었던 ‘레지오 2명의 미친년 사건들’ 로 무언가 다른 것을 보고 싶었다. 아니 그런 kafkaesque 들을 잊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무리해서 그것도 월요일 날, 새로니와 셋이서 비교적 가깝지만 나에게는 생소한 곳, Cumberland Mall에서 아주 ‘정상적이고 전통적’인 shopping routine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렇게 함께 이런 곳에 온 것이 몇 년이나 되었을까? 이런 전통적인 shopping, 이제는 시간문제일까… 그러니까, brick & mortar shopping experience은 Amazon(online) shopping으로  해를 거듭할 수록 약세를 보이고 있으니..  이날 나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Cumberland Mall에서 먼 쪽의 중앙에 Sears라는 글자를 보았다. 가슴이 뭉클해옴을 느낄 수 있었다. 반 세기 전, 미국에 도착했을 때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곳, 그것 중에는 Sears라는 글자도 있었기에, 세월의 무상함을 안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참, 세상 많~이 변했구나.. 상전벽해 桑田碧海 라는 말 그대로가 아닐까? 당시 시골사람들처럼 순수하게만 보였던 ‘主流 백인’들만 보이던 미국’,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

이날 ‘해야만 했던’ holiday shopping을 하면서 이런 생각들을 하니 어찌 내가 즐겁기만 하겠는가? Good Ole Day란 말이 이래서 생겨났구나, 하지만 이런 느낌은 세대구분 없이 ‘영원히’ 계속되어 갈 것이고 progressive, conservative의 duality도 영원히 계속되어 나갈 것이다. 이래서, 영원히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 아닌, ‘절대로 안 변하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지혜중의 지혜가 아닐까?

 

¶  Full House, 자비의 모후:  한 때 ‘레지오 미친년 사건’ 으로 치명타를 입었던 우리의 성모님의 ‘분대’, 자비의 모후가 너무나 오랜만에 full house를 맞았다. 나는 이것을 ‘재를 털고 일어난 불사조’로 기억하고 기념하고 싶다. dirty vermin 들을 St. Michael의 용맹한 도움으로 ‘요사한 뱀의 머리를 바수는’ 업적을 남긴 것이라고 나는 해석을 한다. 형제님을 불시에 천국으로 보낸 아가다 자매님이 자식들이 주선한 극진한 효도여행을 마치고 한국에서 돌아오셔서 합류를 한 것이다.

이제는 그런대로 안정권으로 돌입한 우리 레지오, 절대로 절대로 신 단원을 ‘바보같이 받아들이는’ 실책은 피할 것이다. 단원의 숫자 그 자체가 이렇게 의미가 없게 느껴졌던 적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  연도, 장례미사, 장지동행:  아침에 예상외로 심한 폭우가 쏟아지던 날, 우리는 천수 90세를 넘기신 젬마 자매 할머님의 연도와 장례미사에 참석을 하였다. 장례미사에서 작은 딸의 생생한 조사가 조금 길기는 했지만 의미 깊은 것이었고, 우리는 궂은 날씨지만 마리에타 공원묘지까지 장지 동행을 했다.

며칠 전에 노령과 폐렴으로 선종을 하신 이 할머님,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분이 아니었다. 항상 변함없이 성당 제일 앞줄에 walker에 의지해서 힘겹게 들어오셔서 경건하게 미사를 보시던 분, 전에 거동이 덜 불편하셨을 때는 화요일 정오미사에도 오셔서 우리 바로 앞자리에 앉아 계셨고 인사도 나누었던 자매님이셨다. 그러다가 낮 미사에서는 더 이상 안 보이셨고 주일 미사에서는 꼭 뵈었고 불과 몇 주일 전에도 나오셨었는데… 역시 90세라는 나이에 폐렴은 초현대의 의학도 큰 도움이 안 되었는지.. 그래도.. 그래도.. 90세를 넘기셨으면 ‘천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어머님, 80중반 까지 사셨지만 짧은 생은 아니었으니까. 

이 자매님은 연숙과 더 깊은 인연으로 알게 되었는데, 이 할머님과 가까운 사이로 지내던   African American 자매님이 우리의 미국본당 Holy Family의 신자여서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고 이번 장례식에도 어김없이 와 주었다. 1972년 미국으로 이민을 오셔서 자식들을 다 키우신 부지런한 젬마 할머님, 각종 ‘사고’를 당하시며 고난을 겪으셨지만 그래도 굳건한 천주교 믿음을 지키시며 말년을 인근 꽃동네에서 천수를 하셨기에 자식들도 우리들도 이 영혼의 천국에서의 복락을 믿는다.

 

¶  싸리골 점심 모임:  12월 21일, 바로 동짓날이다. 어느새 겨울의 시작이 되었는가? 이제부터는 밤의 길이가 ‘조금씩 조금씩’ 짧아질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2개월 동안은 ‘각종 일기 뉴스’가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 동짓날 아는 부부와 같이 따뜻한 김이 나는 듯한 기분의 장소, 바로 마리에타 지역에서는 희귀한 한국식당 ‘싸리골’ (Tofu Village Korean BBQ) 이란 곳이다. 왜 이 집이 싸리골인지는 모르지만 ‘주인의 취향’이 아닐까.. 아마도 옛날 고국의 시골에서 보던 싸리나무, 싸리문, 싸리로 만든 담장.. 등등이 그리워서 그렇게 이름을 진 것은 아닐까.. 이 작지 않은 식당의 주변도 아예 싸리나무로 담장을 꾸며 놓았다.

크고 작은 Korea Town들이 거의 모두 아틀란타 동북쪽 (Gwinnett, Forsyth  counties) 으로 몰리게 되면서 정 반대쪽에 있는 마리에타 지역에는 한국식당이 거의 사라지고 이곳 ‘싸리골’과 ‘일미’라는 두 곳이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다. 하지만 이 두 곳은 business model이 Korea Town의 그것과 다르게, 거의 모든 customer들이 ‘비 한국인’들이라는 사실이고 그런 이유로 아마도 이 두 곳은 큰 실책을 하지 않는 한 계속 ‘성업’을 할 지도 모른다.

이날 우리 둘은 2주일 전에 우리를 집을 초대해서 맛있는 salmon steak요리를 즐기게 해준 ‘마리에타 토박이’ 스테파노 형제 부부와 함께 이곳에서 식사를 했다. 아무래도 우리 집으로 초대하기는 마음이 바쁜 이 시점에서 무리일 듯 했기에 이렇게 외식을 한 것이다. 이곳은 몇 개월 전에 심장수술을 했던 구역 가밀로 형제를 문병(봉성체)한 후 이곳에서 구역장님과 식사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역시 같은 구역의 ‘오 안젤라’ 자매님이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관계로 그 자매님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기도 했었다.

나이가 엇비슷한 이 교우형제, 자매님 근래에 자주 보게 되고 알게도 되었지만 ‘현재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우리들의 가슴을 쓸어 내린다. 하도 해괴하고 요상한 ‘교우 인간’들이 주변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모르고 살았던 것, 불행인지.. 다행인지..  직감과 경험, 그리고 높은 곳에서 주는 지혜를 총 동원하면 앞으로 더 큰 ‘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1. 이 당시 단원 중에는 그 유명한 레지오 난동사건의 주범을 포함한 3명의 빠가 온나, three Stooges 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지금은 그때를 영원히 잊고 싶다.

Monday Monday..   7 일마다 찾아오는 월요일은.. 예전에 그렇게 싫기만 했던 요일이기도 했다. 이런 느낌은 나 만의 전유물은 절대로 아닐 듯 하다. 특히 Monday morning 이란 것, disease라고까지 표현을 했으니 상당히 stressful한 날인 것임은 틀림 없는 모양이다. 오랜 직장 생활에서 나도 상당히 이 날 아침에 sick call을 남용했던 기억이 남고,  남은 여생 두고 두고 후회를 하고 있다. 그런 dreadful Monday가 인생후반기인 현재에 와서는 golden day로 바뀌어가고 있으니 내가 변한 것인지 환경이 변한 것인지, 나이가 변해서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아마도 이런 것들 모두가 나의 느낌을 바꾸어 놓고 있을 것 같다.  Monday Monday.. 하면 같은 제목의 1966년 Oldie 가 생각나고, 그 곡을 처음 들었던 연세대 앞 신촌 로타리에 있었던 ‘왕자다방‘이 생각나곤 한다. 그 때가 1967년 봄이었으니.. 정확히 50년, 반세기 전이었다. 정말 50년의 세월이란… 그 느낌을 글로는 묘사할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The Mamas & the PapasMonday Monday – 1966  

 

Strange but refreshing Monday feeling… ahhha..  it’s over finally!  왜 이렇게 이번 월요일 ‘우리’의 어깨가 가볍게 느껴진 것인가? 2주 만에 처음으로 YMCA gym에 가서 모든 것들이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이상한 느낌도 도움이 되었고, 어제 일요일에 일어난 (아니, 안 일어난?) 일들도 무척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어제 일요일은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가 있는 중요한 날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무대공연’은 cancel이 되었고 아예 그곳에 가지도 않았다.

6년 동안 빠짐없이 참가했던 이 행사가 우리로부터 떠난 것은 아마도 두고두고 우리의 앞날을 예측해주는 omen 처럼 느껴지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너무나 시원한’ 느낌을 받아서.. 솔직히 아직도 머리가 정리되지를 않았다. 아마도 이런 것은 아닐까… ‘이제 레지오가 지겹다…’하는 것은 아닐까? 연총 불참의 직접적인 이유는 한 두 단원이 갑자기 아팠던 것이었지만 행사 자체를 불참한 것은 더 심각한 이유가 있었음을 우리는 다 안다. 그것이 현재 우리가 속한 ‘꾸리아 조직’의 암적인 문제인 것이다.

 

 

¶  2017년 12월 2일:  2017년 달력이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며 12란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12월, 올해의 마지막 달.. 흠.. 그렇다면 또 일년이란 ‘장구한 세월’ 이 지나가고 있단 말인가? 1년이란 시간은 아련했던 기억 속에는 ‘장구한, 영원한’ 느낌의 긴 세월이었다. 그것이 언젠가는 거의 한 달 같은 기억으로 남았고.. 지금은 모르겠다. 아마도 한 달보다는 조금 더 짧아진 듯한데 그것을 그저 인정하기 싫을 뿐이다. 신비로운 시간, 조금이라도 시계가 늦게 가는 그런 곳, 때, 감정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어찌 나 같은 ‘죄인’에게 그런 은총이 쉽게 올까 보냐.. 그저 열심히 시간의 흐름에 순명 할 뿐이다.

작년에 시작된 Youtube의 Hallmark Holiday movie들을 보며 아늑하고 편했던 때가 생각이 나서 올해도 몇 개를 download해서 보았는데,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는… 아~ 12월이여… 라는 아늑하고 편안함이 나를 즐겁게 한다.

 

Peter Hollens – December Song  

 

¶  연총 연습, 마지막 No 5: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 stage performance 를 위한 마지막 연습 session이 주 회합 후에 있었다. 올해로 나는 일곱 번 째 연총연습을 맞지만 올해의 이 행사는 예년들에 비해서 아주 다른 느낌으로 맞게 되었다.  생사의 고비를 간신히 넘긴 후, 군살과 독성물질 (toxin) (왕마귀와 레지오 미친년)이 완전히 빠진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대신 전체적인 레지오 내에  ‘사랑이 완전히 빠진 느낌’ 은 역시 떨칠 수가 없어서, 노래와 율동을 하는데 신명이 나지를 않았다.  이런 상황이면 예전 같았으면 ‘포기하자’ 하는 말이 나올 법도 하지만 그래도 성모님 사랑의 눈길을 느끼며 ‘달릴 곳은 끝까지 달리자’ 를 되뇌며 무려 5번의 연습 session을 다 마치게 된 것, 절대로 이것도 우연이 아닌 듯 싶다.

비록 ‘실제 공연’에서 실수를 하거나 hiccup을 해도 이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갈 곳까지 다 갔기 때문이다. 2분도 채 안 되는 짧은 곡이지만 율동을 물론이고 vocal singing도 우리들에게는 small challenge였다. 반주를 Youtube video에서 무단copy해서 karaoke로 쓸까 했지만 완전히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아예 karaoke audio를 녹음을 했고 still video로 아예 YouTube video를 만들었다. 이것을 들으며 2017년 너무나 어렵던 시련의 시기에 우리들이 얼마나 ‘최선을 다했나’ 하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  목요회, 이 목사님 부부:  목요회… 허… 참 내가 멋진 이름을 붙였나? 첫 번째 만남이 우연히도 마지막 목요일이었기에 매달 마지막 목요일에 만나기로 한 것이 벌써 세 번째 모임이 되었다. 소박하게도 1990년 5월에 서로 만났던 것을 기념하는 모임이었지만 달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멋진 진화’를 시작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 모임 자체의 성격이 어떻게 진화 될는지 아무도 모른다. 깊숙이 진행된 나이에 걸 맞는, 뒤를 돌아보고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대화를 기대하기도 하지만 ‘여자가 없는 모임’의 신선, 솔직함의 진가를 나는 마음껏 즐긴다. 남자들만의 대화, 화제는 사실 너무나 오랜만이라 무엇이던지 즐겁기만 한 것이다. 비록 늦은 밤에 모이는 것이라 만날 수 있는 곳이 제한되어 있지만 이것도 색다른, 아이 같은 재미가 있는 것이다. 이 늦은 나이에, 늦은 저녁에 30마일 떨어진 곳으로 외출을 한다는 사실도 너무나 재미가 있으니..

이 (동수) 목사 부부를 해가 가기 전에 결국은 만나서 도라빌 성당 근처에 있는 ‘upscale’ 한식당 운암정에서 부부동반으로 식사를 하였다.  일년에 평균 2번 정도 만나는 이 오래된 “아틀란타 한국학교” 인연의 인생후배 부부, 나이 차이에 상관없이 이런 오래된 세월의 연륜 하나로 친척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몇 해전에 큰 수술을 받았던 이 목사, 그 동안 몸 관리를 열심히 한 덕에 이제는 많이 건강해진 모습이었고 식사하는 것도 불편한 제한이 없는 듯 보였다. 목회 사업이 사실 아직까지 희망하는 것 같이 열매를 맺은 듯 느껴지지는 않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지내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번에 만나서는 오래 전에 흔히 하던 이목사 특유의 농담하던 버릇이 다시 나온 것을 알고 반갑기도 했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뜻일 테니까. 다음에 만나면 내가 듣고 싶어 했던 ‘더 심각한 신앙간증’을 기대해 보며,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  이 세상의 異邦人: 요새 나의 머릿속은 온~통 ‘고(종옥) 마태오’ 신부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이 하느님의 종, 진정한 애국자, 사랑의 사제, 성인에 버금가는 행적을 남기신 이 사제가 걸었던 길을 천천히 같이 걷고 있다. 소설형식의 자서전 trilogy: 1편 사랑의 지도, 2편 예수 없는 십자가, 그리고 지금 ‘쓰면서’ 읽고 있는 것이 3편인 ‘이 세상의 이방인’이다. 첫 두 편은 reading by typing덕에 온전한 2권의 soft copy가 나의 blog site에 남아서 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사제의 삶은 한마디로 너무나 dramatic한 epic drama 라고 볼 수 있기에,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주고 있다. 시간, 공간적으로도 이 사제는 나에게 큰 관심을 준다. 해방 전후의 삼팔선 부근의 묘사, 원산에서의 첫 사랑, 6.25 사변을 가장 치열한 전투중의 전투 속에서 살아남은 하느님의 인도하심.. 너무나도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고백’을 읽으며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 이 사제와 같이 울기도 했다. 솔직이.. 나의 ‘빨갱이, 흑백 논리’에 조금은 ‘회색’이 가미되고 있음을 평생 처음으로 경험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솔직한 분의 고백을 어찌 내가 ‘흑백’의 잣대로 가늠을 할 수 있는가..  책 하나로 난공불락의 ‘이념의 성’을 조금이라도 흔들어 놓았다는 사실이 나는 현재 신기하기만 한 것이다. 고 마태오 신부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Advent 대림절 시작.. 동창회, 파티, 친지들의 각종 모임들.. 구세주 탄생, another turkey meal, 망년회.. 송년 countdown.. 등등 ‘즐거운 것들만’이 연상되는 12월, 2017년 마지막 달력을 앞에 두고 나는 내 자신이 깊은 시름의 늪으로 빠지고 있음을 느낀다. 왜 그럴까..  일생일대의 biggest  challenge가 나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Forgive or Forget?

올해 들어서 최소한 나로서는 처음 인생공부를 한 계기들이 2건 있었고 모두 ‘나쁜 것’들이어서 정말 해가 가기 전이라도 잊고 싶은 것들이 되었다. 잊는 것, 나는 그런대로 자신 있다고 했지만 이번의 것은 종류가 아주 다른 모양이다. 잊는 것은 고사하고 꿈속에서도 생각이 날 정도가 되었다. 문제는 내가 생각해도 지나칠 정도로 분노의 감정이 전혀 줄어들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분노라는 말이 사실은 고상한 것이다. 그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나는, ‘치가 떨리는’ 그런 것이다.

올해 일어난 왕마귀 사건과  미친년 사건,   모두 레지오와 직접 관계가 되어있고 또한 ‘상상을 초월한 해괴한’ 사건들이며 모두 주범(a.k.a 조폭)들이 ‘여자’ 였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문제는 이것이다. 내가 7년 전에 사실상 냉담을 풀고 교회로 귀향한 직접적인 동기가 레지오 입단에 있었고 나는 성모님께 ‘충성을 맹세’한 몸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육적으로 문제가 없는 한 ‘죽을 때까지’ 이 약속을 지키기로 마음을 먹기도 했다. 그러니까 원자탄이 아틀란타에 떨어지지 않는 한 나는 이곳 ‘자비의 모후’ 에 머물 각오가 되어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사건들이 일어난 후유증은 무엇인가?  이 두 인간들이 바로 내가 속한 레지오 조직을 뒤흔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단원들이 떠나게 만들고, 밖에서는 요란하게 방해공작을 하는 등.. 정말 신부님(영적지도자)에게 조차 말하는 것이 창피할 정도의 유치한 짓들을 나는 모두 듣고, 목격을 하였다. 과연 이것들의 나이가 몇 살이며, 정신적으로 정상적인 인간들인가?

예전의 나였으면 거의 100%, ‘더러운 인간들이 보기 싫어서’ 교회를 즉시 떠났을 것이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 인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 그 인간들에게 lesson을 주기 위해서도 나는 절대로 떠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였다. 또한 이런 사건이 다시 일어난다면 이제는 체면이고 뭐고 다 잊을 각오(teeth to teeth)가 되어있다. 이것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나도 예측하지 못했던 문제는 딴 곳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이글거리는 분노’가 절대로 잠잠해 지지 않는다는 것, 아니 생각만 하면 ‘목을 조르는’ 상상을 하고 있으니.. 과연 성모님이 이것을 참아 내실까.. 아닐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죄’일 것이다. 우선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성경을 비롯한 많은 ‘영적 독서’에서 권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 ‘용서하거나 잊거나’ 하라는 것인데.. 문제는 그것이 절대로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다음은 시간,세월의 효과를 이용하는 것이다. 우선, 용서하라는 것은 한마디로 현재로는 HELL NO!에 가깝다. 불가능이다. 잊는 것은 어떤가? 이것이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인간들을 전혀 안 볼 수 있으면 그런대로 잊을 수도 있는데 성당만 가면 이 ‘회벽칠 얼굴’들이 왜 그리 자주도 보이는가?  이것도 쉽지 않다. 마지막은 길은 오랜 세월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뇌세포의 노화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수동적’인 idea다.  좀 더 proactive한 방법은 없을까? 기도? 그들에게는 솔직히 이 시간조차 아깝다.  다가오는 판공성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현재 나의 일생일대의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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