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마리에타

Tobey가 잠자고 있는 낙엽에 덥힌 뒷마당에 늦가을비가 세차게..

 

¶  비 쏟아지는 월요일:  하루 종일 어두운 하늘에서 싸늘한 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비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물론 반가운 선물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flood warning이 나올 정도가 되면 선물의 정도를 넘은 것이다. 게다가 가끔 물이 새는 2층 지붕도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조금 불편한 것이 있어도 이것은 역시 ‘가을비’가 아닌가? 각가지 감상적 생각들이 머리를 꽉 채운다. 물론 대부분 추억에 얽힌 생각들이다. 게다가 이런 을씨년스러운 가을비에 나의 영원한 친구 Tobey가 내 옆에 없다는 새로운 사실이 가슴에 걸린다. 이런 때면 나의 무릎에서 편하게, 평화스럽게 코를 골며 자던 그 녀석.. 비록 육신은 뒤뜰 땅속에 묻혔어도 녀석의 느낌은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나를 따라다닐 듯하다.

 

Saybrook Court에 아직도 남은 가을 낙엽들, 과연 언제까지 버틸까..

 

월요일에 내리는 비, 70년대 초 (1971년) The Carpenters의 classic oldie, Rainy Days and Mondays가 문득 떠오른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다시 없는  목소리’ Karen Carpenter의 잔잔하지만 깊은 목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그렇다.. 1970년 초.. 미지의 세계를 향한 꿈을 꾸던 멋진 시절에 들었던 ‘비 오는 월요일’은 큰 의미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노래의 가사처럼 ‘모조리 우울한 것’들이었다. 그런 감정이 반세기 뒤에 완전히 뒤바뀌어 이제는 반대로 즐기는 ‘선물’이 된 것이다. 세월의 조화가 아닐까?

 

이렇게 세차게, 힘차게 쏟아지는 비는 나의 혼탁한 머리 속을 씻어주는데..

이런 때면 문지방에 편하게 엎드려 하염 없이 비를 바라보던 Tobey는 이제..

 

요새 갑자기 ‘기분과 몸’이 훨씬 나아진 연숙 덕분에 다시 규칙적인 정상적 생활을 찾기 시작해서 오늘 아침도 예의 daily morning mass, adoration chapel, Sonata cafe, 그리고 YMCA workout의 routine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역시 예외는 예외다. 갑자기 연숙에게 ‘감기 기운’이 덮친 모양, 열이 나고 목이 잠기고 기운이 빠지고.. 나 같으면 그런 것 참거나 숨기거나 하겠지만 사람은 다 다르니까.. 이럴 때 제일 중요한 것이 Bishop Robert Barron이 즐겨 강조하는 prudence 란 것이다. 나도 그의 말에 동감이다. 때와 장소에 따른 각가지 ‘덕목’들이 항상 같지 않고, 지혜롭게 ‘조절’을 해야 한다는 wisdom. 그저 참고 해야 할 것을 다 끝내느냐, 아니면 내일을 생각해서 할 것을 포기하느냐.. 결국은 내일을 생각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은 일주일에 제일 중요한 레지오 주회합이 있는 화요일 ‘Legio’ Tuesday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날인 것이다.

 

 

Rainy Days and Mondays – The Carpenter – 1971

 

¶  ‘기타귀재’ 심재흥, 50년 전:  어제 중앙고, 연세대, 연호회 친구, 이윤기와 뜻밖으로 KakaoTalk 에 연결이 되어서 감회 깊은 이야기(texting)를 나누었다. 본지가 50년도 넘은 사람과 어제 헤어진 듯한 느낌으로 대화하는 것, 솔직히 이것이 바로 surreal 한 느낌이 아닌지.. surreal, surreal..  한마디로 실감이 안 나는 것이다.

얼마 전 같은 그룹친구 양건주의 주도로 우리들 4명 (나, 양건주, 이윤기, 윤인송)이 기적적으로 단체 카톡방에서 몇 마디나마 서로의 숨결을 느끼게 되었다. 언제고 이 친구들의 최소한의 안부 정도는 알 수 있겠다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모두 친한 친구들이었고 특히 윤기는 헤어진 이후 거의 연락을 못하고 살아서 궁금한 것들이 더 많았지만 ‘거리와 세월의 횡포’ 의 희생자로 일생을 보낸 셈이다.

이 친구가 video하나를 올렸는데.. 1960년대 일본에서 활약했던 그 유명한 The Ventures를 ‘흉내’낸 electric guitar group의 공연이었다.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심재흥‘이란 이름을 떠 올렸다. 50년 전의 그 이름이 이윤기란 친구의 기억과 겹치며 떠오른 것이다. 연세대 전기과 동문들.. 그 중에 ‘기타귀재’라고 불리던 친구, 그가 심재흥이었다. 1969년의 회고담을 쓰려고 하던 참이라서 참 timing이 절묘하다고 할까..

 

그 당시 일제 electric guitar, 심재흥의 도움으로 샀고 역시 그의 도움으로 팔았던 기억..

 

그 당시 나는 이 ‘귀재’로부터 기타(특히 electric guitar)의 매력을 배웠다. 자세한 테크닉을 배운 것은 아니었어도 그가 연주하는 것을 보며 넋을 잃고 바라보기도 한 것, 나중에, 아니 지금까지 (통)기타를 손에서 떨어지지 않게 했던, 엄청난 영향을 준 것,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심재흥’이란 이름을 언급하니 놀랍게도 이번에 보낸 ‘벤쳐스’ 동영상’이 바로 그 친구가 보낸 것이라는 것이 아닌가? 얼마 후에 연세대 전기과 동문들이 모이는데 그 친구도 만난다는 얘기에 나는 솔직히 꿈을 꾸는 듯한 느낌조차 들었다. ‘세월과 거리의 횡포’.. 도 이렇게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구나…

 

 

The VenturesWipeout live in Japan 1966

 

¶  사랑의 기다림:  지난 토요일 모처럼 우리는 ‘자매 성당’인 둘루스 Duluth, GA  에 있는 김대건 성당엘 갔다. 이날 그곳에서 ‘추계 일일 침묵피정’이 거의 하루 종일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집에서 거의 30마일이나 떨어진 곳을 아침 8시에 집을 떠나야 하는 것 물론 귀찮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나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가라, 가라, 무조건 참석해라’ 라는 무언가를 거역할 수 없었다. 가만히 보니 근래 나는 이 ‘가슴 속 깊은 곳의 무엇’을 조금씩 느끼며 사는 듯하다. 그것이 거창하게 ‘성령’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유행하는 과학적 표현으로 아마도 quantum message 정도는 아닐까?

4년 전에 이곳으로 같은 피정에 온 기억이 남아있지만 매번 지도신부가 다르니까 피정의 결과는 매번 다를 것이다. 아침 점심 식사를 포함해서 각각 두 번의 신부님 강의와 침묵 묵상이 번갈아 가며 오후까지 계속되고 마지막에 미사로 끝을 맺는다. 이번의 지도 신부님은 우리의 도라빌 본당 보좌신부인 ‘김형철 시메온’ 신부님으로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비교적 젊은 신부다.  ‘사랑의 기다림’이란 포근한 주제로 ‘전혀 지루하지 않고, 졸리지 않는’ presentation을 했다.

요사이 신부님들의 강론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은 이분들 ‘과학적인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요새 신학교가 지나간 반세기 동안 급변하고 있는 과학문명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갈릴레오 사건’으로 체면이 완전히 구겨진 가톨릭 전통을 상기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이날 김 시메온 신부님의 강론 서두가 이것을 말해준다. ‘거시적 우주론, Cosmology’ 으로 주제를 이끌었던 것이다. 아마도 더 기다리면 아마도 상대성이론, Quantum MechanicsString Theory 까지도 거론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런 추세를 절대적으로 환영하는 입장이지만 ‘철학적, 신화적’ 접근을 좋아하는 일반 신자, 대부분 여성들에게 이것이 크게 appeal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  Running ‘C’ wire Smart Home, Smartphone (now one word), Smart TV, 그리고 Smart ‘Stat (thermostat) ..

덧없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나를 스쳐 지나는 이런 단어들,   이것들 중에서 나와 역사적으로 제일 오래된 것이 smart home일 것이고,  다음이 Smartphone, 그리고 지금 나의 코앞에 다가온 것이 바로 Smart Thermostat 이다. 얼마 전에 두 ‘아이’들이 우리에게 준 2대의  ‘dumb’ 40+” TV는 Roku, ChromeCast gadget 덕분에 곧바로 Internet streaming를 하는 smart tv의 기능을 갖추게 되어서 그런대로 우리 집도 ‘현대화’의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우연히 큰딸 boyfriend Richard가 최신형으로 upgrade 한다고 2개의 smart thermostat를  우리에게 주었다.  그것이 EcoBee 라는 ‘웃기지 않게’ 비싼 사치품 thermostat였다. 집안의 heating & cooling system(HVAC) 을 control 하는 것이 thermostat인데 이것의 내부 구조는 간단한 electrical switch에 불과해서 예전까지 이것은 비쌀 수가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것이 복잡한, 그러니까 smart하게 보이는 기능을 잔뜩 넣어서 멋진 fashion을 만들어 고가로 파는 것, 나에게는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 추세다. 수백 년 전통의 coffee를 Starbucks로 비싸게 파는 것이나 맹물을 bottle에 넣어서 파는 것과 다를 것 하나도 없다. 하지만 비싼 것은 비싼 이유가 있을 것이다.

2 ‘given’ Ecobee smart thermostats

 

현재 우리 집에 있는 것은 기본적인 programmable thermostat로서 하루에 네 번 정도 시간에 따라 온도를 조절하는 model로서 사실 그렇게 불편한 것은 없다.  바쁜 생활을 하는 집에서는 더 복잡한 timing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retire한 상태에서는 복잡한 것이 더 골치가 아프다.  하지만 이것을 program 하는 것이 그렇게 편하지 않다. 대부분 어두운 복도에 설치된 이것을 서있는 상태에서 그 작은 글씨를 보며 program하는 것 거의 torture에 가깝다. 그래서 한번 program해 놓으면 거의 바꾸지도 않고 그러기도 싫은 것이다.  그런 것이 지금은  Smartphone이나 PC의 보기 좋은 screen을 편한 곳에 누워서 program을 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것 하나만으로 나는 족하다.

이것을 나에게 주면서 Richard는 현재 우리 집 thermostat에  ‘C’ wire가 연결되어 있냐고 물어서..  속으로 이것이 무슨 말인가 궁금했지만 우선 ‘있다’고 대답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없는 extra wire, 24V transformer의 ‘common’ (power return) 임을 알게 되었다.

왜 이 ‘놈’이 필요한가 보니, smart ‘stat(thermostat)는 Smartphone과 같이 하나의 독립된 small computer라서 power, 본격적인 전원이 필요해서 그런 것이었다.  작은 computer라고 했지만 기능적으로 보면 웬만한 예전의 desktop PC의 그것이고, 특히 WiFi 가 필요한 것이라 생각보다 energy를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것과 다르게, 오래 전에 쓰던 mechanical ‘stat는 전혀 power가 필요 없었고 요새 많이 쓰고 있는 programmable ‘stat는 거의 모두 battery를 쓰기에 따로 power supply wire가 필요 없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4 wires가 필요한데 (1) 24V hot side, (2) fan on, (3) heat request, (4) cool request 가 그것들이다. 예를 들면 heat가 필요하면 (1)과 (3)을 연결하면 된다.  그러니까 24V hot side가 return되는 ‘common’ 이 사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새로 나오는 smart ‘stat들을 ‘팔아 먹으려면’ 이 extra wire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해결책은 이 wire를 furnace control board로부터  thermostat가 있는 곳까지 끌어내야 한다. 이 작업을 과연 몇 명이나 ‘감히’ 할 수 있을까.. 물론 handy한 공돌이를 제외하고. 

다행히도 우리 집의 in-wall wiring은 home pc networking 시절부터 10base2, 그 후의 CAT5 cabling 까지 모두 내가 설치했기에 사실 이번의 ‘C’ wiring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 정도로 쉬운 job이다. 다행히 남아도는 CAT5 cable이 많아서 그것으로 위층은 해결이 되었다. 아래층 것이 끝나면 드디어 EcoBee 를 연결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요새 아이들 자랑스럽게 말하는 ‘Smartphone으로 언제 어디서나 집의 온도를 맞출 수 있다’ 라는 것, 나도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  토요일을 수도원에서:  싸늘하지만 기가 막히게 화창한 ‘영광스러운’ 가을 하늘아래 일년 만에 다시 한 시간 정도의 drive로 Conyers, GA 의 수도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곳은 사실 부끄럽지만 ‘자발적’으로 간 적은 없고 무슨 계기가 있으면 가는 그런 곳이다. 위치나 분위기를 보아서 이곳에 갔다 오면 다음에는 반드시 ‘자발적’으로 가보자, 문득 ‘평화로운 곳’ 생각이 들면 그곳을 차를 몰자.. 등등의 상상을 해 보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계기’가 생기만 거의 두 번 생각을 안 하고 OK를 하곤 했다. 올해도 그런 식으로 연숙을 포함한 교사들이 인솔하는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의 예비신자 교리반 일행을 따라서 가게 되었다.

 

a spectacular view of the pond at the monastery..

 

5~6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그렇게 생소하던 곳이 이제는 연륜이 쌓여가는지 아주 편안하고 익숙한 느낌이 든다. 제일 기억에 남던 때가 레지오 피정을 이곳에서 했을 때가 아닐까? 밤늦게 어두운 대성전에 홀로 앉아서 묵상하던 경험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아주 강렬한 것이었다. 사람은 역시 ‘주위 환경’에 철저히 지배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오감의 피조물이지만 그것을 초월하는 무엇을 이런 곳에서 느끼고 받을 수 있음을 경험한 곳이기도 하다.

교리반 학생들은 이런 곳에서 무엇을 느끼고 배울까.. 이날도 방문후의 소감들을 나누는 시간에서 간간히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 너무나 생소한 것을 보았다는 나눔, 이해가 간다. 어찌 안 그렇겠는가? 하지만 생소함과 더불어 ‘신비적 경건함’도 느꼈다는 나눔은 아주 고무적인 것이 아닌가?  이들의 앞으로의 신앙여정은 어떨까..  과연 얼마나 궁극적으로 ‘절대존재’를 알게 될까… 큰 유혹 없이 세례의 은총을 받게 되기를 속으로 기도했다.

이날 오랜 만에 gift shop에서 책을 한 권 샀다. 몇 년 전에 왔을 때 C. S. LewisThe Joyful Christian이란 책을 산 적이 있었고 그때 이곳은 Amazon.com 같은 discount가 없음을 알았다. 그러니까 list price대로 파는 것이다. 이것으로 수도원을 유지해야 함을 누가 모를까? 이날도 그것을 알고 샀는데, 메주고리예 발현에 관한 Janice T. ConnellThe Vision of the Children 이란 책으로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주 뜻밖의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 들었다.  비교적 읽기 쉬운 책으로 오자마자 거의 1/3을 읽었는데 ‘뜻밖의 보물’이란 느낌이 계속 사라지지 않았다.

 

¶  2권의 ‘반갑고 고마운’ 책들:  문밖에서 bell 소리가 들린다. 누가 온 것, 귀찮은 sales, 아니면 delivery? 조용히 밖을 보니 벌써 누가 무엇을 문 앞에 놔두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하~ FedEx van이 보이니 무엇이 배달된 것이었다. 익숙한 package이지만 나는 요새 아무것도 산 것이 없는데… 하고 shipping label을 읽으니.. 아니~ 대한민국에서 온 것, 누가?  아하~ ‘도사’ 양건주가 책을 보낸 것이었다.

 

FedEx package from Korea

 

얼마 전 오랜만에 다시 연락이 되어서 너무나 반가웠는데, 이상하게 ‘주소’를 물어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책을 보내려고 그랬던 것이다. 다시 눈가가 찡~ 해 짐을 느꼈다. 친구야, 친구야… 고맙다, 친구야.. 어쩌면 너는 그렇게 자상하고 배려심이 깊은가? 나는 아무래도 못 따라가는데.. 이 친구에게 받았던 ‘책 선물’이 꽤 되는데.. 책 값도 그렇지만 이렇게 실제로 행동으로 귀찮을 수 있는 일을 하는 ‘고물 우정’에 어떻게 응답을 한 것인가?  이해인 수녀님의 ‘기다리는 행복’ 이란 수필집과, 얼마 전에 출판된 ‘따끈따끈한’ 책 ‘글배우’라는 독특한 이름의 저자가 쓴 ‘오늘처럼 내가 싫었던 날은 없다’ 라는 제목을 가진 책, 모두 2권이었다. 책 값만큼 우송료가 대단했는데.. 그것도 FedEx로 속달이 된 것이다.

이해인 수녀님은 사실 종파를 떠나서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분이지만 연숙이 특히 좋아하는 수녀님이다. 그 책은 연숙이 먼저 보기로 하고 나는 현재 ‘글배우’라는 저자가 쓴 ‘오늘처럼…’ 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잠깐 훑어 보니 대부분이 ‘상식적 수준의 조언’들이지만 어떤 것들은 나의 생각이 맞는다는 재확인을 하게 하는 것들도 보였다. 책의 부제가 ‘무너진 자존감을 일으켜줄 글배우의 마음 수업’으로 되어있으니 아마도 대부분 ‘무너진 자존감’에 대한 조언들일 것이다. 나의 자존감은 분명히 예전 보다는 많이 오른 상태지만 그래도 이렇게 나를 생각해 주는 ‘벗’이 지구상 어디에 살고 있다는 생각은 나를 ‘하늘로 뜨게’ 만든다. 건주야.. 고맙다, 고마워. 행복하게 살아다오.

 

가라오케, Karaoke, ‘가라 오케스트라, 가짜 오케스트라’.. 참 준말의 귀재들, 일본아해들 말도 잘 만들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들이라서 작지만 유용한 것들 잘도 만들었다. 밴드나 반주하는 악단 없이 노래와 율동을 마음껏 할 수 있는 sound system, 누가 마다하겠는가?  지나간 주일에는 이것과 연관된 일들이 두 번이나 겪었다. 노래를 불렀을 것이라 즐겁고 신나는 일들이었어야 하겠지만 결과는 정 반대다.

첫 번째 case가 지난 23일 일요일에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본당의 날과 추석잔치’ 행사 중에 있었던 audio system near-disaster 였다. 이날의 행사는 내가 마리에타 사랑구역장이 된 이후 제일 진을 빼고 신경을 썼던 것으로 ‘불참하자고 징징 우는’ mere mortal, member들의 등을 떠밀며 강행했던 ‘노래와 율동’의 공연이었다.

 

 

다른 구역들의 공연내용을 보면 거의 모두 ‘가라오케’ audio 로 100% 율동을 하는 것으로 이날 이들은 목소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신나게 춤들을 추었다. 하지만 우리를 비롯한 소수의 그룹은 ‘vocal’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으로 microphone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건에 속했다. 문제는 이날 sound system 을 맡은 ‘사목회’ (내가 보기에 ‘시로도’급)는 거창한 mixer를 포함한 wifi-youtube-karaoke 에는 시간을 썼지만 무대에 놓여진 몇 개의 microphone은 모두 ‘먹통’으로 방치해 놓은 것이었다.

 

 

미리 stage rehearsal을 했으면 이런 문제를 방지할 수 있었겠지만 때는 늦었다. 공연 무대에 올라가 악을 쓰고,  기타는 줄이 끊어질 정도로 노력했지만 결과는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린다’라는 혹평, 결국 우리도 ‘율동’만 관객에게 전해진 셈이 되었다.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우리 구역 총책임자인 나도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미리 점검을 못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구역조차 같은 문제로 고생을 했으니 결국은 무대 연출 총 책임자가 그야말로 책임을 질 노릇이 아닌가?

두 번째 가라오케 disaster는 3명이 매월 마지막 목요일 밤에 모이는 ‘목요회’에서 있었다. 이것은 사실 그 정도로 놀랄 일은 못되었다. 3명 중 한 명이 노래방에 앉아서 침묵으로 일관을 한 것인데.. 정말 안타까운 노릇이 아닌가? 이날은 목요회가 모이기 시작한지 1주년이 되는 날이라 특별한 event를 만들고 싶었는데 아무리 우울하다고 해서 그 정도로 노력을 못 한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이날 비로소 나는 이 친구가 정말 심각한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고 무슨 ‘파격적인 수’를 써야겠다는 자괴감에 빠진 그런 목요회 1주년을 보냈다.

 

¶  레지오 ‘연 年’ 피정:  안정호 이시도르 예수회 신부님이 지도한 2018년 레지오 연 피정이 “그리스도 내 안에 형성될 때까지 성모님과 함께!” 라는 주제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3일 동안 있었다. 처음 이틀간은 레지오 단원을 위한 것이고 마지막 날 일요일은 전 신자 대상의 강론이었다. 10여 년 전 주임신부로 계셨던 안 신부님, 이날 환영의 열기를 보니 정말 대단한 인기였음을 알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가뜩이나 지난 달부터 피곤한 나날을 보낸 우리에게 이번 3일 피정 스케줄은 사실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솔직히 말해서 피정의 ‘강론 부분’에 대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오랜 전에 경험한 안 신부님의 강론 스타일을 기억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점심식사 후에 듣는 강론은 아무리 흥미가 있어도 졸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우려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예상을 뒤엎는 결과적으로 너무나 만족스런 피정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예전의 안 신부님이 아니었다. 그 동안 이 신부님 많은 영적인 경험을 거친 더욱 성숙한 사제가 되어 있었다. 믿음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힘찬 강론에 간간히 ‘이상하지 않은’ 유머러스 한 일화들.. 어찌 일초라도 졸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레지오 단원들을 조준 겨냥한 심도 깊은 ‘경고’는 최근에 힘이 빠지는 듯한 일반적 레지오에 대한 장래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현재 아틀란타 순교자성당 소속 레지오가 겪고 있는 ‘실존위기’를 의식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timing이 아주 정확했다. “레지오 단원들이여, 깊은 잠에서 깨어나라” 는 것을 현대 사회심리학적인 각도로 재 조명한 강론은 정말 기억에 남을만한 명강론이었다.

 

¶  YMCA, YMCA!  오늘 오랜만에 YMCA gym엘 갔다. 무언가 생활이 정상 routine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느낀다. 꽤 오랜만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정확하게 얼마만인지는 전혀 idea가 없다. 달력을 보니 (요새는 달력을 안 보면 전혀 알 수가..) 지난 달 23일이 마지막이었다. 그러니까 2주가 넘게 우리는 운동을 못한 것이다.

보통 일주일에 평균 2~3 번 정도는 가는데 꽤 오래 쉰 것이다. 매년 여름이면 사실 가끔 ‘우리도 쉬자, 방학이다’ 라는 기분으로 쉬기도 하고 YMCA swimming pool을 deep cleaning한다고 해서 쉬기도 했지만 2주 이상 쉰 기억이 없어서 이번은 예외적이다. 이유는 두 가지: (1) 너무나 바빠서, (2) 너무나 피곤해서..  하기야 바쁘니까 피곤한 것이지만 이번은 조금 그 정도가 심했다.

장례식, 레지오 점심봉사 이틀 중노동, car maintenance service trip, 이목사님 부부 외식, 거기다 3일간 레지오피정, 1,000차 레지오 주회합 기념 주회.. 와~~ 이 정도면 우리 나이에서는 피곤한 일정이었다. 하지만 운동을 너무 오래 쉬는 것은 피로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  더 쌓이게 한다는 것도 이번에 깨달았다.

 

¶  자비의 모후 1,000차 주 회합: 이번 주 우리 성모님의 군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자비의 모후가 드디어 1,000차 주 회합을 맞았다. 일주일씩 모이는 주회합 1,000차.. 일년이 52주니까, 거의 20년의 세월이 아닌가? 내가 입단한 것이 8년 전쯤이니까 그 이전에도 12년 여의 역사가 있었다니 참  장구한 세월을 ‘견디어’ 온 것이다.

이 레지오의 운명은 사실 보장된 것이 없다. 언제고 문제가 있으면 하루 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다. 비록 성모 마리아를 ‘총사령관’으로 삼고 있지만 일시적 인간의 방해공작으로 깨질 수 있다. 지나간 8년 동안 내가 겪었던 ‘해체 위기’는 3번 있었지만 작년 8월 말의 ‘더러운 사건, 일명 레지오 미친년 난동사건 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그때 나는 정말 자비의 모후가 사라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자비의 모후 가장 빛나는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몰랐다. ‘악’의 치명타를 견뎌내고 일어섰고 감격적인 1,000 차 주 회합을 맞은 것이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간단하게 미사예물 정도 봉헌하는 것으로 끝낼까 했지만 생각을 바꾸어 ‘의도적 과시 誇示‘를 위해서 ‘외부인사’를 초청하고 그들과 함께 기념 주 회합을 하고, 미사가 끝나고 근처 화식집 ‘만천홍’에 가서 푸짐하게 회식하며 기념 주회를 끝냈다.  이날 초청된 ‘인사’는 자비의 모후 창단 간부단원, 내가 입단 할 때의 단장, 부단장님 등이었는데, 이때 창단 시절의 얘기들도 듣기도 했다. 꾸리아에서도 각별히 신경을 써서 축하 떡도 보내주고 1,000차 기념 banner도 제공하였다. 아마도 ‘너무나 어려운 위기를 넘긴’ 사실을 감안했던 것은 아닐까 추측을 한다.  하지만 작년에 당한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고, 최소한 나는 절대로 그 사건을 잊지 않을 것이다.

 

  ‘사상 史上 첫’ 구역미사, 지나간 2주일에 가까운 동안 나의 머리는 온통 한가지 생각으로 꽉 차있었다. 구역미사… 오랫동안 별 큰 느낌이나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체험했던 구역미사라는 것, 그것이 이번에는 완전히 개인적인, 가족적인 ‘큰’ 행사로 우리 집에서 집전되는 구역미사가 나의 코 앞에 다가 왔던 것이다.

우선 제일 큰 의미는,  우리 집에서 봉헌된 미사라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 집에 ‘사상 처음’으로 사제가 방문을 했다는 것에 있었다. ‘자기 집에서 신부, 사제 모시고 식사를 같이 했다’ 라는 주변의 말 많이 들었지만 사실 그때는 그런 것 솔직히 그렇게 부럽지는 않았다. 그저 그런 ‘올바른 생활의 사나이’들과 같이 앉아서 식사가 편히 될까.. 하는 유치한 생각으로 살았던 때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런 유치한 생각은 몇 년 전부터 서서히 사라지고 한번 모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 라는 쪽을 나의 가슴이 열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몇 년 전부터는 한번 모시자.. 라는 희망사항으로 바뀌었다. 신부, 사제가 어떤 직분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제는 ‘열린 가슴으로 정확히, 올바르게’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 첫 case가 바로 전 주임신부님,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이었다. 결과적으로 모시는 계획은 유산되었지만 그 이후 나는 활짝 열린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된 ‘새로운 세계관’의 소유자로 살수 있게 되었다.

 

구역미사를 기다리는 우리 집의 living room view, 협소한 공간이지만 just right size..

 

이번 우리 집에서 집전된 구역 미사는 내가 마리에타 사랑구역장을 7월 초부터 인수하고 난 후 처음의 ‘큰 구역 행사’가 되었는데 이런 사실이 우리 집에는 기쁘긴 하지만, 그만큼 나와 연숙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준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아직도 생소한 우리 구역식구들에게 미사참례를 독려하는 중요한 책임으로, 연숙은 hostess로 신부, 구역식구들의 음식준비로 정신이 거의 없었다. 구역식구의 반 이상이 오면 나는 우선 성공한 것이라 미리 점을 치기도 했다.

어려움은 이런 정신적, 심리적 스트레스 뿐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최소한 20여 년) 별로 ‘찾아온 손님’이 거의 없었던 우리 집은 이런 ‘큰 행사’를 치르기에 너무나 피곤하고 깨끗하지 못함을 알기에 생각보다 힘든 ‘육체적 노동’을 피할 수가 없었다. 지난 5월 말에 일단 구역모임을 한 번 경험했고 그 당시에 일단 ‘대강의 청소’는 했지만 이번에는 신부님과 총구역장까지 오게 되어서 가급적 ‘때 빼고, 광 내는’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 이것이 아무래도 나의 나이에 무리였을 것이다. 비록 기쁜 마음으로 노동은 했지만 후유증은 상당했다.

 

  현 주임 이재욱 요한 신부님은 부임초기부터 병자성사에 동행을 하면서 가깝게 느꼈고, 온화함, 배려심 등으로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본당신부님으로, 이임하기 전에 한번 집에 모시고 싶었던 참이었는데 이날 다른 계기로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된 것이고,  우연일까, 아주 우연만은 아닌 듯한 생각도 들었다. 

미사참례 출석률이 예상을 넘는 2/3 정도가 되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이번의 우리 집 구역미사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집은 이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mainstream parishioner가 되었다는 것, 그것이 아닐까? 부차적으로 나의 첫 구역장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는 사실, 우리 구역식구들과의 mutual chemistry의 ‘냄새’를 조금은 맡을 수 있었다는 것도 앞으로 2년간 약속된 나의 구역장 임기를 무사히 마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 그런 것 아닐까…

 

구역미사의 bonus, 찬란한 수국의 향기와 자태.. 어떤 자매님의 선물이었다

 

2018년의 6개월, 그러니까 정확히 절반을 벗어난 7월의 첫 주가 또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어쩌면 시간과 세월은 그렇게도 정직한 것일까? 어김이 없다. 절대로.. 절대로 시간과 세월을 가지고 ‘놀면’ 안 된다는 교훈을 다시금 일깨우는 요즈음, 나는 경미 輕微한 우울감 憂鬱感을 떨치지 못하며 살고 있다. 그와 비례해서 마음속 깊은 곳 평화의 깊이도 함께 얕아진 것을 느낀다. 주원인은 물론 나의 분신 Tobey1가 거의 ‘갑자기’ 나에게서 영원히 떠나간 것, ‘실존적 부재 不在’가 주는 공허, 고통이 어쩌면 그렇게도 괴로운 것인지.. 이렇게 세월은 공평한 것, 사람의 삶의 나날은 높을 때도 있고 낮을 때도 있다.

그제부터 새로니의 pet dog Ozzie가 우리와 일주일간 머물게 되었다. 물론 새로니가 vacation차2 집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었지만, 갑자기 조용해진 우리 집에 다시 개의 소리가 들리게 된 것, timing이 나쁘지 않았다. Tobey와 너무나 personality가 다른 Ozzie, 같이 머무는 것 나의 생각을 한 곳만 머물지 못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를 바라지만 어떨까? 오늘도 한여름다운 여름 날씨에 그 녀석을 데리고 동네를 걸었다. 거의 10여 년간 Tobey와 같이 걷던 이 course를 이 녀석과 둘이 만 걸으니 다시 ‘없는’ Tobey가 그리워진다. 한 여름 날씨를 가슴으로 느끼며 불현듯, 갑자기.. 거의 20년 전 쯤 온 가족이 여름마다 갔었던 Florida Gulf coast,  Panama City Beach의 백사장이 떠오르고 며칠 동안 그곳이나 다녀올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역시 ‘귀찮다’는 생각이 모든 것을 덮쳐버린다.

 

나의 study에 언제나 앉아 있던 Tobey가 없어진 자리에 Ozzie가 졸고..

Tobey 없는 dog walk, 대신 Ozzie와 같이 걷고 playground에 눕기도..

 

어제는 Fourth of July, Independence Day holiday.. just another holiday일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지냈다. 과연 미국이란 어떤 나라일까 새삼스러운 것은 무슨 조화일까? 거의 45년 가까운 동안 살면서 별로 그런 생각을 못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이 없지 않다. 그저 하늘아래 그것도 대한민국과 반대편 쪽 바다에 걸친 거대한 대륙에 250년에 가까운 ‘자유 민주주의’ 전통.. 과연 이런 역사 기록을 가진 나라가 다른 곳에 있을까 하는 의문도 가진다. 각종 문제와 싸우고는 있지만 그래도 이곳은 이들이 금과옥조 金科玉條로 여기는 ‘헌법 constitution’에 목숨을 건, 용맹스러운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이날 동네 본당인 Holy Family 성당 아침 미사에서는 Father Dan (Ketter)은 평상적인 homily대신 Declaration of Independence 전문 全文 을 읽었는데, 250년 전의 그 문장은 그리 옛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특히 첫 부분의 두 번째 문장은 정말 인상적이 아닐 수 없다. truth, equal, endowed, Creator, Rights, Life, Liberty, Happiness… 그 중에서도 Creator란 단어는 그저 장식용으로 쓴 것은 절대로 아닐 듯하다.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that they are endowed by their Creator with certain unalienable Rights, that among these are Life, Liberty and the pursuit of Happiness.

 

 

무언가 허전한 기분을 달래려 계획에 없는 barbecue 생각이 났고 거의 일년 만에 charcoal grille의 cover를 꺼내고 마지막으로 남은 wood charcoal에 불을 부쳐서 barbecue보다 더 맛있는 ‘불고기’를 구웠다. 그래도 이렇게 7월 4일의 오후를 연숙, Ozzie와 같이 맥주, grille 로 보낸 것, 조금은 추억에 남지 않을까..

 

 

 

이날 밤은 다행히 비가 올 chance가 많지 않아서 불꽃놀이의 소음을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 동네 subdivision는 ‘전통적’으로 불꽃놀이 firework이 없었고 먼 곳에서 하는 것들의 소리만 듣곤 했지만 이번에는 우리 앞집의 비교적 젊은 Josh가 주동해서 우리 집 바로 앞의 cul-de-sac 에서 firework을 했는데 비록 개인적으로 한 것이지만 어찌나 요란스럽던지 우리 집의 개와 고양이들이 모두 겁에 질려 숨을 곳을 찾기도 했다. 매년 별 감흥 없이 이런 소리를 듣고 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의미가 실린 ‘자유의 외침’ 같은 것으로 들린 것이, 나 역시 나이가 깊이 들었구나 실감을 한다. 앞으로 이런 ‘자유의 소음’을 몇 번이나 듣게 될까..

 지나간 주일(일요일)날은 예전 같았으면 한국성당에 아무 business가 없었기에 조금은 편한 일요일이었지만 이번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7월부터 2년간 아틀란타 한국 순교자 성당의 (마리에타 사랑)구역장을 맡게 되었고 첫 주일날에는 구역장회의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 직책이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 맡겨진 직분, 최선을 다하자는 각오는 변함이 없다. 아마도 내가 ‘봉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려는 노력을 하면 된다. 내 인생의 후반에 더욱 깨닫는 것 중에 ‘결과보다는 과정’에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이 있는데, 젊었을 때와는 사실 완전히 반대인 것이 재미있다. 2년 뒤 나의 임기가 무사히 끝나게 되면 나는 어떤 구역장으로 기록이나 기억에 남게 될 것이지 궁금하다. 

 

The United States Declaration of Independence

  1. 우리와 14년 평생을 살아온 pet dog
  2. 이번에는 Mexico로 deep sea diving이라고… 허.. 듣기만 해도 으스스..

달력을 멍하니 보니 오늘은  6월 30일이다. 그러니까 2018년 6월의 마지막 날이 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나간 6월의 나날을 생각하니 무언가 머리가  정리되지 못한 혼란스러움이 떠나질 않는다. Father’s Day가 있는 예년의 6월 추억은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작년에는 온 가족이 gourmet hamburger 외식을 했던 기억도 있었다. 올해의 6월 달, 그것도 Father’s Day 전후는 아마도 최악이 아니었을까.. 올해의 이날은 나나 가족들이 거의 잊고 지나간 정도로 정신이 빠진 듯한 그런 것이었다. 물론 큰 이유는 가족같이 14년 가까이 우리와 살아온  Tobey가 거의 갑자기 우리를 영원히 떠났기 때문이다.   6월 달,  그것도 Father’s Day 후 며칠은 정말 잊고 싶기만 하다. 

이런 황량한 6월의 느낌은 오래 오래 나의 머리 속에 남아서 나를 우울하게 할 것이지만 그런 와중에도 순간순간의 보람과 기쁨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것이 삶의 본질, 기본이 아닐까? 슬픔이 있으면 기쁨도 반드시 찾을 수 있는 것..

드디어 임명장을 받았다. 그것도 성당 미사 중에 받은 것, 형식적인 것이라도 나는 이제 신부님이 임명하는 20명 내외의 마리에타 사랑구역의 구역장이 된 것이다. 그렇게 도망 다니며 살아오더니 칠순의 나이에  많은 사람들이 피하려고 하는 이 직무, 어떤 것일까? 그래.. 한번 해 보자.. 못할 것 하나도 없다.

비록 Father’s Day는 망쳤지만 의외로 6월 달 등대회 모임(60~70대 성당 친목회)은 안도의 숨을 쉬게 하는 잔잔한 기쁨도 있었다. 새로 사귄 교동학교 동갑내기가 회장으로 뽑혔는데 알고 보니 이곳에 나와 나이가 엇비슷한 형제,자매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란 그것이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또한 작은 보람이 있었다면 복잡한 머리를 싸매며 목요회 모임이 우리 집에서 모인 것이다. 전에 약속을 했었던 것이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매달 식당에서 모이던 것을 집에서 모이는 것은 사실 큰 변화를 주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별다른 ‘사고’없이 모임을 마쳤다. 내가 스파케티를 해 준다고 했지만 결국은 연숙이 모든 것을 준비해 주었다. 나의 서재에서 편하게 wine을 마시며 시간을 보낸 것, 그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나의 의도는 그들의 집에도 돌아가며 가보는 것인데…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그들의 얼굴을 읽는다. 시간이 걸리면 이것도 다 해결되리라..

미국태생 영국 시인 T. S. Eliot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그의 대표적인 시 詩 ‘황무지 荒蕪地, The Waste Land ‘에서 읊었던가.. 아~ 나에게 4월은 ‘목련꽃 피는.. 항구에서.. 배를 타는’ 너무나 낭만적인 달인데 어쩌다 처참한 심정을 갖게 하는 ‘잔인한 6월’을 맞게 되었는가? 그러니까 나에게는 ‘6월은 잔인한 달’이 된 것이다.

머리가 띵~ 하고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저 ‘작용, 반작용’을 되풀이하는 단세포 생물이 된 느낌이다. 어쩌다 이런 잔인한 일들이 한꺼번에 나에게 다가 온 것일까? 가슴 속 깊이에서는 계속, ‘이것이 정상적인 인생의 한 단면이다’라고 외치고 싶지만 ‘왜? 왜?’ 라는 반론을 억누를 수가 없다.

 

나와 Tobey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바로 이때..  올해 3월 경..

 

나의 손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던 Tobey, 죽기 전 2주일 동안 어쩌면 그렇게 급속히 몸이 노쇠해질 줄은 몰랐다. 속으로 ‘설마 설마’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짧았던 고통의 시간들, 눈이 안 보이고 거의 걷지를 못하고 먹는 것도 힘들고..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몸이 망가져 가고 있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죽음을 예견을 못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빨리 그 순간을 맞았다.

 

Tobey가 죽기 하루 전, 이때는 거의 죽은 듯이 잠만 잘 때였다. 고통이 없는 모습이 너무나 고맙고 고마워..

나의 손에서 마지막 숨을 쉰 후, 녀석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잘가라.. 잘 가~~또 보자~

 

뒤뜰에 묻으며 정성을 다했지만 그런 것 하나도 위로가 될 수가 없었다. 마지막 숨을 몰아 쉬던 그 순간, 나는 그 녀석의 귀에 입을 대고 수없이 속삭였다. ‘가가구구, 가가구구, 가가구구, 가가구구…’ 이것은 우리들 만의 ‘암호’였다. 사랑해 Tobey야.. 라는 암호였다. 믿고 싶다.. 녀석의 ‘아버지, 주인’이 너를 그렇게 사랑했으니 이제는 편히 쉬어라.. 하는 말을 들었을 것이라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잡으며 나는 관을 만들었다. 녀석의 덩치에 편히 맞는..

Tobey 야, 이제는 편히 쉬거라.. 창밖으로 너를 매일 볼게…

너의 덩치에 맞는 십자가, 너에게도 우리처럼 영생이란 것이 있기를..

 

땅 속으로 묻힌 후, 나는 무서운 허전함을 달래야 했다. 아무 것도 나를 위로할 수 없었다. 몇 일간 서재의 불을 거의 꺼버리고 어둠을 응시하며 몇 시간이고 앉아 있었다. 연숙에게 이런 나의 모습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였다. 딴 일을 하며 그 허전한, 슬픈 순간들을 잊을 수도 있었다. 좋아하는 영화나 drama video를 보며 그 순간들 잊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회용 반창고나 다름이 없다.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인 것이다. 정식으로 슬픈 시간을 고스란히 경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애도의 시간을 무한정 갖고 싶었지만 어찌 그것이 가능할까? 근래 들어 갑자기 많아진 ‘공적인’ 일들, 정식으로 신부님으로부터 구역장 임명장까지 받고, 곧 시작될 구역장의 임무들.. 이런 것들이 무섭게 머리 속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며 조금씩 애도의 기간은 짧아지고..

제일 싫고 무서운 때가, 집에 들어올 때의 느낌이다. 녀석이 있었을 때, 우리의 차가 garage로 들어서면 Tobey는 무섭게 짖곤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 녀석 미친 듯이 나의 입술과 뺨을 핥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집에 들어설 때 나는 piercing sound of silence 를 견뎌야 했고, 당분간 그럴 것이다. 이때가 제일 괴로운 순간이다. 무언가 없는 것,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것…

설상가상… 와~ 왜 하필 이때에 30년 된 에어컨 system이 망가질 것이 무엇인가? 매년마다 올해는 이 고물이 돌아갈까.. 점을 치곤 했는데 그것이 하필이면 제일 내가 어려운 바로 그 순간에 ‘죽어버린’ 것이다. 왜.. 왜.. 지금.. Tobey의 죽음과 에어컨의 죽음이 거의 같은 시간에 일어난 것, 우연일까? 결과적으로 우리 집의 아래 위층의 에어컨, heating system이 하루 만에 새것으로 바뀌었다. Carrier  system, $$$$ 은 예상보다 많이 들었지만 이제는 두 다리를 쭉 뻗고 시원함을 즐기게 되었다. 힘든 때에 우리를 도와준 2명의 에어컨 월남기술자들, 아직도 감사를 드리는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 더운 날 거의 ‘순식간’에 아래 위층의 전체 시스템을 교체하는 것, 놀라운 노력과 기술이었다. 젊은 ‘사장’ 기술자는 완전히 ‘장인’에 가까울 정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보조하는 나이 든 분도 묵묵히 도왔다. Big name contractor가 왔으면 아마도 며칠 걸리며 엄청난 비용을 요구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재수가 좋았던 경험이 되었다. 

 

수십 년만에 최신형 에어컨 Carrier 의 잔잔한 소음소리가 애도하는 느낌으로..

 

2018년의 6월은 정말로 잔인한 달이 되었다. 하지만 나와 우리 식구들을 굳게 믿는다. Tobey, 정말로 사랑을 받았고 행복한 생을 우리 집에서 보냈다고.. 죽음을 앞둔 고통을 누가 피할 수 있으랴.. 나는 정말 후회가 없다고 자신할 수 있다.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저 세상에서 만날 수 있을지도..’ 라는 것,  영화 What Dreams May Come에서 Robin Williams 도 사랑하는 pet dog을 저 세상에서 반갑게 만났지 않았는가? 하느님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평생을 다니던 동물병원에서 애도의 조화를 보내 주었다.. 감사합니다~~

 

 

Freedom, Never Free

 

¶  현충 顯忠 단상 斷想:  며칠 전 Gulf coast로부터 북상하는 Tropical storm Alberto 의 영향인지 시원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고요한 휴일 아침이다. 대기는 이제 완전히 여름의 냄새가 가득한 그런 것으로 바뀌었지만 대신 기온만은 늦봄의 그것, 이런 모습의 Memorial Day 를 우리는 ‘이곳’에 살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맞았던가…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람들, 대부분 군인들, 이들을 추모하는 날답게 고요한 느낌을 주어야 하는 날이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교과적인 삶을 사는가.. 그 많은 사람들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반세기 전, ‘부선망 父先亡 단대독자 單代獨子’1라는 구세대적 병역조항으로 군대의 의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지 못한 나로서는 더욱 그렇다. 당시에는 날듯이 기뻤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의 작은 trauma로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과거지사 過去之事로 잊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특히 요즈음 빈번히 주위에 등장하는 ‘월남전 veteran’ 들을 마주하면 사실 할말이 하나도 없다. 솔직히 말해서 ‘미안하다’라는 심정 바로 그것이다.

자유, 인간의 자유를 유지, 보전하기 위한 악 惡 과의 투쟁, 공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자유, 이런 것들이 무료로 주어진 것인가? 우리 신앙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환경, 상황도 마찬가지다. 당장 김일성 세습왕조의 역사상 유례없는 잔학성과 현재 서서히 몰락하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며, 사필귀정 事必歸正 이란 말을 새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 절대로 공짜로 얻은 것이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 인 것이다.

한 나라의 모든 것, 그들만의 문화,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군대조직의 역할을 너무도 간과하며 살았던 것도 깊숙이 진행되는 나이의 혜택으로 하나 하나씩 그 의미를 깨닫게 되며 놀랄 정도로 후회도 한다. 전쟁에 관한 책이나 영화들, 그 모든 것의 배경에는 ‘정말로 잔인하게 희생된 살과 피가 실제로 있었다’는 간단한 사실들이 ‘재미에 의해서 간과’가 되고 있었다는 것… 이것이 오늘 내가 느끼는 역사의 관성적 慣性的 교훈이다.

 

¶  Double Whammy! 구역모임:  2018년 비공식적 여름철의 시작을 알리는 Memorial Day weekend 우리는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조용히 단출한 식구들 오랜만에 모여서 barbecue 와 beer로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이 연상되는 때이지만 올해는 완전히 storyline이 바뀌어 버렸다. 거의 10년 만에 우리 집에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구역 마리에타 사랑반의 월례모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10년 이상.. 그러니까 그 동안 우리는 너무도 소극적인 구역활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성당공동체가 덩치가 커지면 사실 구역의 역할을 그와 비례해서 중요해진다. 한 곳에서 모두 친교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는 두 곳에 본당을2  가진, 사실상 ‘두 집 살림’을 이유로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

 비록 꽤 오랫동안 비교적 소극적인 태도로 구역을 대했지만 나 자신으로써는 ‘내 신앙 reversion 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외골수적인 생각으로 일부러 피한 것도 있었다. 경험적으로 보기에 즐겁지 않은 사람을 피하는 과정에서 많은 ‘냉담자’가 생기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소한의 관계를 위한 노력은 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방관적 작은 역사도 나의 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갑자기, 청천벽력의 느낌’으로 내가 이 작은 구역의 ‘장 長’이 되어야 하는 운명이 온 것이다. 자발적으로 이 자리를 맡는 어려움 때문인지 거의 ‘강제적, 임명하는 방식’으로 나에게 이 의무가 맡겨진 것이다. 이때 생각에, ‘결국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느낌뿐이었고, 본능적으로 ‘도망가자’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번에는 ‘반사적 반응’이 아닌 진지한 묵상을 하게 되었다.

우선 현실적으로 ‘이제는 할 사람이 없다’라는 체념적인 것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이야 말로 다른 선택은 없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도망가면 해결되는’ 경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도망가는 것 만은 피하고 싶었다.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편할 것도 아니고 도리도 아님을 절감을 하게 되었다.

이 ‘임명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얼마 전에 ‘완독 完讀’ 한 책,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의 저자 안득수 형제님이 생각났다. 그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그날의 ‘성경말씀’을 보곤 했는데 그것이 결정에 많은 도움을 준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온 말씀 그 날의 제1독서는 ‘배반한 유다의 자리에 마티아 사도가 뽑힌‘ 것에 관한 것 (사도행전 1, 25-26) 이었다.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나의 사정과 비슷한 것인가.. 

이러한 배경에 이번 달의 구역모임까지 우리 집에서 있었으니.. 무언가 double whammy 라고 할까.. 최선을 다하자 라는 motto로 오랜 동안 손님이 별로 없었던 우리 집, 덕분에 며칠 동안 ‘중노동’의 결과로 무사히 많지는 않지만 ‘손님들’을 맞을 수가 있었다. 맞기에 편한 정도의 사람들이 왔기에 ‘작은 우리 집’도 앞으로 ‘작은 모임’ 을 하기에 크게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까지 생겼던 Memorial weekend.. ‘근육통이 만발하는 즐거운 고통과 기쁨’이 교차되는 순간들이었다.

 

  1. 외아들이 아닌 아버지가 사망한 집안의 외아들에게 주어지는 제한적 병역면제 규정.
  2. 집 근처의 미국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와 20+ mile 떨어진 도라빌 Doraville 소재 한국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  Stop! Smell the Roses!:  갑자기 포근한 봄 날씨로 돌아온 지난 며칠이었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는 기분도 상쾌하고, 침대에서 ‘기어 나와’ 옷을 입는 느낌이 훨씬 편해진 것을 보니 정녕 봄 같은 봄이 온 것을 실감한다. 지나간 부활절 이후 4월은 사실 예년에 비해서 싸늘한 그것이었다. 새벽에 central heating이 필요할 정도였는데 지난 며칠을 겪고 드디어 2층 thermostat를 OFF 로 바꾸었다. 이제부터는 crossover 기간이 시작되고 아마도 얼마 후에는 a/c 의 humming 소리를 간간히 듣기 시작할 것이고, 결국은 서서히 여름의 끈끈하고 텁텁한 냄새를 맡게 될 것이고, 이렇게 인생, 세월, 시간은 흐른다.

오늘 아침 YMCA gym으로 걸어 들어가며 문득 생각이 스친다. 왜, 이렇게 빨리 걸어가는 것일까? 주위도 돌아보지 않고 무언가 쫓기듯 달려 들어가는 듯한 나의 모습에 갑자기 의문이 든 것이다. 칠십의 나이로 보아도 쫓기는 듯한 걸음, 갑자기 흉하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내가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려는 것인가, 할 일이 산더미처럼 밀렸다는 것인가, 주위의 things (사람 포함)들이 보기도 싫다는 것인가?

나의 걸음에 비해 거의 거북이처럼 늦게 걷는 연숙을 본다. 물론 약해진 하체 下體 탓이라고는 하지만, 꼭 그것이 전부일까? 그것도 조금은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녀는 주위를 자세히 보기도 하고,  얘기하기도 하며 걷는다. 나에 비해서 ‘여유’가 있는 것이다. 특히 요새 같은 계절에는 더욱 그렇다. 온갖 만물이 다 화려하게 변하는 주위를 그냥 갈 리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저 ‘목적지’만 생각하며 주위에는 눈도 안 돌릴 때가 많기에 그저 빨리 걷는다.

오늘 유난히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 우연일까? 근래에 들어서 나는 ‘우연’보다는 ‘필연, 이유’를 더 믿게 되었기에 이것도 나를 일깨우는 무슨 higher message라고 믿는다.

그러면서 오래~ 전 정확히 1974년 경 Mac Davis의 ‘기가 막힌 가사’의 ‘crossover’ oldie, ‘Stop and Smell the Roses‘ 가 생각난다. 당시의 나이에 ‘가사’를 알고 들었을 리가 없었지만 나이가 먹으며 계속 들으니 정말 ‘교훈 같은 가사’였다. 그 가사를 생각하니… 맞는 얘기다. 무엇이 그렇게 바쁜가.. 생각 좀 하고 만발한 꽃들의 향기를 사랑하며 하느님의 스치는 손길을 느끼면 누가 때리나..  바쁜 것들에도 불구하고 이런 ‘만든 여유’를 즐기는 것은 정말 ‘지혜서’ 급의 ‘유행가 가사’였다.

 

 

Stop and Smell the RosesMac Davis – 1974

 

¶  베로니카 3주기:  3년 전 이즈음 (정확히 5월 2일)을 되돌아 본다. 우연히 만났고 알게 되었던 나와 돼지띠 동갑 베로니카 자매님, 남편 타계 일 년 만에 두 젊은 아들 형제들을 뒤에 남기고 선종했던 그 해 찬란한 5월의 토요일 이른 아침, 큰아들의 새벽 전화로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 없이 hospice로 달려갔고, 싸늘한 엄마 옆에서 흐느끼는 다 큰 두 아들과 우리 둘은 연도 밖에는 위로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옛 유행어로 ‘아, 무정 無情’ 이라고 했던가? 불과 2년 사이에 사랑하는 부모님을 모두 잃고 흐느끼는 모습은 내가 그들 대신 나의 부모님을 보내는 그런 슬픔이었다. 온 정성을 다해서 베로니카 자매님 세례를 받게 하여 떠나 보낸 것은 두고두고 보람을 느낀다. 연옥의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게 연도라도 자주 바쳤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매년 가는 묘소, 올해는 큰 아들과 점심을 한 후에 갈 수가 있었다. 집에서 정성스레 꺾어간 예쁜 꽃다발, 바로 전에 레지오 주회합에서 성모님께 바쳤던 것을 자매님 묘소에 꽂아 주었다. 역시, 그 때와 같이 ‘찬란한 5월 2일의 태양’이 전 보다 더 커진 듯한 Winters Chapel cemetery 를 내려 쬐고 있었다.

 

베로니카 자매님, 올해도 저희들 다녀갑니다..

 

¶  Big Mac, Paraclete: Paraclete ‘파라클리토’ 라고 불리는 이 말은 그리스 어로 advocate, helper라는 뜻을 가진 말로서 가톨릭 교의에서는 Holy Spirit, 성령을 지칭하는 말이다. 2013/4년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교리반에서 내가 맡았던 강의의 주제가 바로 이것이어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성령이라고 하면 성삼위 성부 성자 성령 holy trinity 중의 하나다. 이것이 왜 McDonald hamburger 중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Big Mac과 연관이 되었나?

성령 세미나, 대회 같은 곳에서 흔히 보는 성령의 움직임을 나는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성삼위의 교의적인 것은 좋아하지만 사람의 움직임에서 보이는 성령은 때에 따라서 거부감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 느낌이 달라지고 있다. ‘분명히’ 나도, 내 안에서도 성령이 움직이고 있으리라는 확신인 것이다. 나의 느낌과는 상관이 없이..

하지만 뒤를 돌아보니 그 ‘움직임’은 내가 확신이 없었을 뿐이지 많은 때에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나의 변화다. 그것을 감지하기 시작한 바로 그것이.. 이번이 바로 그런 때였다. 습관적으로 우리 둘은 아침미사가 끝나고 YMCA gym에 가기 전에 Sonata Cafe breakfast를 먹다가 아주 사소한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조금은 심각하게 발전을 하고 말았다. 지나고 보면 이런 일들, 참 사소한 것으로 판명이 되곤 하지만 그 당시는 사실 괴로운 시간이 아닌가? 오늘 하루 또 망쳤구나.. 하는 자괴감 뿐이었다.

그러다가 gym workout이 끝나가면서 불현듯, 정말 나도 상상, 예상치도 못한 때에 Big Mac의 모습이 떠올랐다. 때가 점심때니까 배가 조금 고파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웃기는 일이 아닌가? 결국은 Big Mac을 먹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잊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것도 무언가 paraclete, helper의 도움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이래서 신앙, 신심은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  돌나물 비빔밥:  화창한 봄 날씨가 계속되면서 봄의 냄새가 나는 음식이 등장했다. 우리는 점심을 제일 ‘크게’ 먹기에 제일 중요한 음식은 점심때 등장하곤 한다. 아침은 거의 내가 ‘고정식’으로 준비하지만 점심만은 ‘주부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기에, 예외는 있지만 연숙이 준비한다. 요새 한창 backyard에서 살다시피 하며 장차 ‘길러 먹을’ vegetable들에 온통 시간을 보내더니 오늘은 ‘돌나물’이란 것을 backyard에서 따왔다. 따온 것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기가 막히게’ 멋있고 맛있는 ‘돌나물 비빔밥’을 만들었다. 이것이야 말로 ‘자연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맛도 아주 좋았다. 비록 Traders Joe brand이지만 wine까지 곁들이니… 이것이야 말로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면..’ 이 아닌가?

 

Homemade 돌나물 비빔밥

 

¶  Ladder, gutter, roof:  정말 오랜만에, (extension) ladder 사다리를 움직이고, 오르내리게 되었다. 지난 해 여름부터는 일을 해도 주로 집안에서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에서 제일 큰 일이 2층의 laminate flooring job 이었다.

이후 기나긴 동면이 끝나고 날씨에 이끌려 밖으로 나오니 주위에 만발한 화초들은 즐겁지만 우리 집을 밖에서 바라보는 것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한마디로 집 자체가  tired, tired 한 느낌뿐이니… 주기적, 정기적으로 닦을 것은 닦고, 고칠 것은 고치고… 하면 문제가 없지만 우리 집은 ‘가훈 家訓’ 이 가급적 ‘남의 노동을 사지 말자’.. 비슷한 전통으로 있어 왔기에 원칙적으로 우선 내가 손을 보아야 했고, 사실 그렇게 수십 년을 버티어 왔다.

내 자신이 그런대로 weekend handy person이라고 생각하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앞으로는 문제가 있겠다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바로 나의 ‘나이’다. 칠순이 지난 나이에 예전처럼 들고 뛸 수가 있을까?

2층 높이에 있는 roof rain gutter, 경치는 좋지만 수 많은 나무 잎들이 가을부터 떨어져 gutter가 완전히 막힐 정도, 올라가보니 완전히 ‘화분’이 되어 있었다. 이것을 청소하려면 사다리를 계속 옮기는 근육도 필요하지만 2층 꼭대기에서 절대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것 때문에 난 ‘치명적 사고’,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암만 Medicare가 있다고 해도 남들이 보면 바보짓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2층 사다리를 오르내리면서, 아직 나의 몸에 문제가 없다는 조심스런 진단을 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warming up을 계속하면 더 안전하게 roof/siding work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들었고, 아마도 siding 정도는 나 혼자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가을부터 떨어진 나뭇잎들로 gutter가 화분처럼 변한 모습

아무리 청소를 해도 비가 내리기 전까지는 별 수 없이 이정도의 모습일 듯

Garage 위의 roof는 경사가 아주 완만해서 안심하고 주위를 볼 수 있다

집의 정면 쪽을 향한 garage 위의 roof는 아주 급한 경사로 protective gear 없이는 접근 불가능

Main roof는 그런대로 보호 장비 없이 접근이 가능하다

 

 

 

Peace’s flowing like a river: 지나간 2주간은 한마디로 이 오래된 추억의 성가 가사와 같은 느낌이었다. 

 

Peace is flowing like a river,

flowing out through you and me,

flowing out into the desert,

setting all the captives free…

 

오래 전 우리가 가톨릭 세례(당시에는 영세라고 했음)를 받았던, 1980년대 초 Columbus, Ohio (오하이오, 콜럼버스) 한인 가톨릭 공동체, 이곳에서의 추억에서 이 곡이 빠질 수 없다. 성령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 채 성령대회, 성령 세미나 등엘 가면 이 곡은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그때 느낌에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분’이 성령 이시라는 것 이었다.

성령이건 아니건 그것은 현재 상관이 없다. 나는, 아니 우리는 ‘강물처럼 흐르는 평화’ 를 최소한 지난 2주 이상 경험하고 있다. 물론 예전에도 ‘가끔’ 이것과 비슷한 때를 경험했겠지만 이번은 아주 다른 것이다. 간단하게 나는 이것을 ‘초월적 평화 transcendental peace’ 라고 부르고 싶다. 평화를 주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물론 이것 저것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가 힘들기에 이것은 ‘초월적’인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높은 곳’에 그 원인이 있음을 안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면, 날라갈 듯한 느낌을 주는 나의 몸, 5 파운드나 빠졌던 체중이 원상 복귀가 된 것, ‘지난 해 겪었던 레지오 미친년 사건’의 기억이 조금은 희미해지고 있는 것, 얘기가 통하는 사람들과 가끔 어울리게 된 것, 1970/80년대 TV drama ‘Paper Chase‘ video를 찾은 것,  연숙이 대한민국 문인화 대전에서 두 점이나 입선을 한 것 등등이 있지만 역시 이것만으로는 현재 느끼는 ‘평화의 강물’을 설명하기가 힘들다.

이런 것, 한 마디로 unsustainable 한 것으로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가 없지만 상관없다. 이런 것 오래오래 기억하며 사는 것도 다른 종류의 평화다.

 

꿈이냐 생시냐? 요새도 이런 ‘관용구’ 쓸까? 하도 한국산 ‘드라마’를 안보고 사니 ‘현대 한국어’ 중에는 내가 모르는 것도 있을 것이고 1973년 경의 한국어를 아직도 쓰고 있는 나에게 당시에 쓰던 말 중에 없어진 것도 있을 것을 짐작하는 것 어렵지 않다. 어제 내가 경험한 case가 바로 ‘꿈이냐 생시냐’ 바로 그것이었다. 기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나로서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것이라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다.

이미 전에 나의 blog post에서 ‘언급, 불평’을 했듯이, 70세 생일이 지나면서  ‘갑자기’ 몸에 모든 힘이 빠지고, 쑤시고, 한마디로 평소에 하던 일들을 하는 것이 갑자기 힘이 들었다. 그 중에서 제일 고역이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때, 거의 침실을 기어나올 정도로 기운이 빠지고 몸 전체가 통증으로 쑤시곤 했다. 자연히 기분도 쳐지고.. 그 때의 결론이 ‘아하… 이것이 70세가 넘으면 나타나는 증상’이로구나 하는 좌절감이었다.

며칠 전부터 날씨가 갑자기 화창해지면서 드디어 ‘의무적’으로 육체적 노동을 해야 할 때가 왔다. 겨울 내내 쌓였던 낙엽이 그대로 있고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bush, hedge trimming이 나의 육체를 절실히 기다리고 있었으나 사실 내일 아침 못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화창한 날씨에 취해서 모든 일을 다 끝내고 다음 날 아침에 못 일어날 것을 예상했다.

 

back-breaking hedge trimming

 

놀랍게도 다음날 아침,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완전하게 산뜻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너무 놀라서 그날은 전날보다 더 많은 일을 했는데 그 다음날에도 마찬가지.. 완전히 나의 몸은 몇 달 전, 70세 이전의 condition으로 돌아와 있었다. 왜 그랬을까? 이것은 작은 기적이 아닌가? 모든 피로감이 지치도록 일을 한 후에 깨끗이 가셨다는 것, 한마디로 mystery에 가깝다. 과학적으로 보아도 정 반대 현상이 난 것이다.

이때 생각난 것이 homeopathy란 ‘비과학적 의학용어’ 였다. 어떤 책에서 본 듯한데, 간단히 말하면 ‘독은 독으로 치료’한다는 식이다. 비록 비과학적인 idea이지만, 이번 내가 경험한 것이 정확하게 그런 case가 아닐까? 온몸의 피로감과 통증을 ‘통증을 유발하는’ 그런 노동으로 치료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claim은 나도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우연일까, 아니면 혹시 며칠간 따스한 햇빛, 햇볕과 청명한 공기를 마음껏 마신 것 때문일까? 연숙의 지론에 의하면 햇빛과 맑은 공기가 나를 낫게 했을 것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상관이 없다. 나의 칠순의 몸은 완전히 예전 같은, 정상으로 돌아왔으니까..

 

¶  5th Sunday of Lent, 사순절 5주째를 맞는 주일, 다시 완연한 봄기운이 대기를 감싸기 시작한 따뜻한, ‘이틀 앞으로 다가온 춘분’ 전 일요일을 맞았고, 이제 어느덧 사순절이 1주일밖에 안 남았다. 돌아오는 일요일은 Palm Sunday (성지주일), 이날부터 Passion Week (수난주간)이 시작되고 우리 가톨릭(그리스도교) 신앙의 절정을 향한 일주일을 맞는다.  다가오는 성삼일 Triduum  을 생각하면 사실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끝나는 날, 찬란한 부활주일을 맞이하는 생각하며 위로를 삼는다.

이날 아침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정든 ‘동네 neighborhood 미국 성당’, Holy Family  성당엘 갔다. 생각을 미처 못했지만 우리가 거의 두 달 동안이나 한국 순교자 성당으로 주일미사를 갔다는 사실에 은근히 놀랐다. 우리 신앙의 고향 같은 이 동네 neighborhood  미국성당에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주일 헌금을 거른 것도 미안하고 큰 은혜 받고 있는 것 (6 days 평일미사 포함)을 못 갚는 듯한 죄송함도 느낀다. 사실 우리는 이곳에 조금은 시간과 힘을 바쳐야 할 ‘위치’에 있는데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틀란타 대교구의 Annual Appeal donation 도 작년부터 순교자성당을 통해서 하게 되었기에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난 두 달 연속으로 주일미사를 도라빌 순교자 성당으로 가게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곳 공동체가 예전보다 좀 더 가까워져서 그런가, 익숙해져서 그런가, 확실히 전 보다 익숙해진 것도 도움이 되긴 했다. 오래 전처럼, ‘아는 사람이 없어서 불편하다’ 라는 변명을 하기가 힘이 들게 되었다. 얼굴이 그런대로 익숙한 형제,자매님들이 이곳 저곳에 눈에 뜨이는 것, ‘한국말’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 나이가 엇비슷한 형제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았다. 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혹시라도 그 두 명의 레지오 미친년들 (성모님, 죄송합니다), 두 괴물들 monsters’ 의 얼굴을 멀리서라도 보게라도 되는 것, 즉시로 밥맛이 거의 제로로 떨어지는 경험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특효약이 없다. 있다면 ‘세월의 흐름’ 그것 밖에 없다.

이날 순교자 성당 주일 미사에 안 간 이유는 또 있었다. 이날 집전 신부가 주임신부님이 아니고 ‘윗동네’ 신부라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상식의 선을 언제 또 벗어날지 모르는 돌출적 행동을 나는 정말 진절머리 나게 싫어한다. 게다가 ‘정구사, 주사파, 신 진보‘로 무장하고 세속에 찌들은 듯한 신부.. 진정으로 피하고 싶은 것이다.

이 주일 날, 순교자 성당에서는 전 주임신부 예수회 류해욱 신부의 사순 특강이 있었는데 물론 나는 참석을 못했다. 류신부의 특강을 못 들은 것, 사실 그렇게 아쉽지 않았다. 지난 주에 다른 신부 (가톨릭 신문)의 특강에서 하도 ‘진을 빼서’, 다시는 이런 식의 특강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아는 형제님들(등대회 회원)에게 권유를 해 보았지만 YES 대답이 없어서 그냥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그 중에 한 형제님은 부부가 같이 특강에 참석을 했었기에 ‘특강권유 활동’ 이 성공으로 check mark가 되는 흐뭇함을 느꼈다.

이날, 일요일 연숙은 미국성당 미사가 끝난 후에 교리반 때문에 순교자 성당을 갔었지만, 가는데 무려 3시간 이상이 걸렸다. 일요일 아침에 한가해야 할 I-285 (Eastbound near Roswell Rd Exit) 에 car accident로 all-lane이 막히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다. 나는 집에서 편하게 coffee를 즐기고 있었고… 문뜩 ‘악몽’이 떠올랐다. 2014년 1월 말의 Atlanta snowmageddon, 19시간 얼어붙은 freeway에서 밤을 지새웠던 경험.. 잊고 싶은 추억인데 그것이 다시 눈앞에 그려지는 것.. 이것도 세월이 더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  Pray for me, St. Joseph, Solemnity of..:  성 요셉 대축일, 원명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이 대축일은 3월 셋째 월요일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올해는 3월 19일 월요일이었다. 아침미사엘 가며 ‘어렴풋이’ 이날이 성 요셉 축일 정도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Holy Family 성당 아침 미사엘 가니, 대성당에 불이 꺼져있었고 작은 note가 붙어있었다. 오늘 미사는 별관인 Parish Center에서 한다고 적혀 있었다. 왜 미사 장소를 바꾸었을까, 궁금증은 그곳에 도착해서 풀렸다.

의자들이 놓인 것은 그렇고 벽 쪽으로 멋지게 꾸며진’제단, alter’ 이 설치 되어 있었다. 아하! 성 요셉 대축일을 더욱 의미 있게 ‘축하’하려는 본당 신부(Father Miguel)의 노력이었다. 그러니까 이 신부님은 성 요셉 신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흔히 성모 신심은 잘 알려져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배필인 성 요셉 신심은 조금 생소한 것이 아닌가? Not So!

요즘 가톨릭 인터넷 site엘 가보면 한마디로 이것은 devotion trending 중의 하나다. 얼마 전에는  그 유명한 야쿠자 신부님 Father Donald Calloway 의 ‘St. Joseph Gem: Daily Wisdom on our Spiritual Father‘  란 책이 나오기도 했다. 개신교의 ‘성경유일주의’에 의하면 이 요셉 성인은 성경에서 ‘한 마디’도 하신 말씀이 없기에 그들에게는 별볼일 없는 인물인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성령의 감도를 받은 수많은 성인,성녀, 교부들이 남긴 기록들은 그들에게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일까? 이런 것 만으로도 나는 마틴 루터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미 성 요셉 신심의 불길을 뜨거워지고 있고, 아마도 critical mass에 도달하면 마리아 신심에 버금가는 은총 전구의 원천이 될 것을 기대하며 이날 ‘성 요셉 대축일’ 미사를 참례하였다.

 

Solemnity of St. Joseph, Holy Family Catholic Church

 

영원히 떠나기 직전의 Elantra

 

오늘 갔다, 나의 old friend, Elantra가 오늘 영원히 떠났다. 아마도 곧 ‘죽을’ 지도 모른다. 슬픔과 안도의 마음이 하루 종일 교차하던 오늘이었다.

2000 Hyundai Elantra는 오래 전 2000년 경부터 내가 혼자 쓰던 승용차였다. 그 당시 주로 출퇴근할 때 쓰던 2000년 가을에 샀던 그 차가 오늘 영원히 떠난 것이다.

그 당시에 출퇴근 할 때 쓰던 1999  minivan Plymouth Voyager가 편하고 안전하고 family car로는 적격이었지만 commute하기에는 경제적인 차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small personal car는 아닌 것이다.

매일 직장 (Rockwell Automation, Duluth)으로 60 마일 정도를 drive해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gas(gasoline) 도 만만치 않았기에 통근하기에 알맞은 SMALL personal car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나의 눈에 들어온 차가 하나 있었다. ‘조국의 자랑1Hyundai 차 중에 Tiburon이란 ‘SEXY’ sports car였다. 총각시절부터 sports car를 타보고 싶었던 추억이 발동했는지.. 하지만 중년의 나이에 이런 차를 산다는 것, 내가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긴 했다. 역시, 식구들이 모조리 반대를 하고 나섰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고’, ‘차 사고 accident  나면 큰일난다’.. 등등이 이유였다.

당시(2000년 경)에 우리 집에는 연숙이 애들과 쓰던 1996 Honda Accord EX와 내가 commute용으로 쓰던 1999 Plymouth Voyager ‘minivan’ 이 있어서, 사실 차가 더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름을 무섭게 들이키는’ minivan을 매일 쓴다는 것도 싫었고, 일년 후 대학에 갈 새로니가 곧 차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배경으로 마리에타의 Cobb Parkway에 있는 Hyundai dealer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생각지도 않게 Tiburon이 아닌 ‘값이 저렴하지만 아주 sporty한’ Elantra 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내가 본 floor model은 그 중에서도 더 sporty한 것으로 test drive를 해본 후에, 별 생각도 없이 그것을 그 자리에서 사 버렸다.

이것으로 ‘기름값’도 그렇지만 ‘혼자 타는 차’의 기쁨에 온통 빠졌고, 매일 drive를 하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차가 가벼운데 비해서 power가 상당해서 정말 기분은 motorway에서 race car를 타는 바로 그것이었다. 어디론가 그저 ‘몰고 가는’ 환상에 빠지기도 했다.

물론 그 때는 9/11/2001, Nine-Eleven 전의 일이었지만 그 이후부터 나의 모든 것이 downhill 을 향하는 느낌으로 depressed decade를 맞이 하면서, 사실 Elantra 의 즐거움을 거의 잊고 살게 되었고 나중에는 나라니가 대학엘 가면서 물려주고 말았다.

그 이후 그 차는 ‘차를 전혀 care할 줄 모르던’ 새 주인 탓에 빠르게 ‘고물’로 변해 갔다. 그래도 120,000 마일까지 견디던 그 차는 결국 거의 쓸 수가 없게 되어서 나라니가 새 차를 사자마자 우리 집 driveway에서 운명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어떻게 이 차를 처리할 까 생각하던 차에, nonprofit 단체에서 donation을 하라는 광고를 보게 되었는데 나보다 먼저 나라니가 NPR (National Public Radio) 에 주기로 하였고 거의 일년이 넘어서 오늘 우리 집 driveway에서 towing truck에 실려 떠났다.

차 하나 이렇게 없어지는 것, 무엇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하겠지만, 나에게는 나이도 나이인지 이번에는 그렇게 예사롭지를 않았다. 무언가 나의 baby가 ‘죽으러 팔려가는’ 그런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처음에 나의 사랑을 온통 독차지 했던 차, 나중에 거의 abused 정도의 대접을 받았던 것이 그렇게 신경이 쓰였다. 내가 나라니에게 ‘차를 care하는 교육’을 안 시켰던 것이 나의 치명적 실수였지만 그래도 그 정도가 될 줄은 몰랐다.

그 차의 초기 역사를 생각하면 나의 마지막 직장 Rockwell Automation, 그리고 ‘처절했던 Nine Eleven의 악몽‘, 그리고 사랑하는 어머님의 타계 등등의 ‘depression decade’가 줄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제는 그래도 그때를 조금 밝은 생각으로 그것들을 보려고 하지만, 일어난 일들은 바꿀 수 없는 개인 역사임에는 틀림이 없다. 잘 가거라… 나의 baby Elantra 여…  I will miss you…

 

  1. 내 살아 생전에 미국에서 대한민국 차를 탈 수 있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봄의 소식, 다시 돌아온 수선화.. 황폐한 겨울의 낙엽 속에서

 

¶  아.. 수선화… 며칠 동안  backyard에서 갑자기 포근한 날씨를 맞아 부지런히 지난 겨울에 남은 낙엽을 치우며, 땅을 어루만지던 연숙, 나에게 올해 첫 수선화 daffodils 가 피었다고 알려주었다. 옆집 담장을 따라 조그맣게 줄을 서서 어렵사리 고개를 든 진한 노란 색의 꽃, 사순절 lent 의 백합 lily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수선화의 청초한 모습으로.. 사순절은 본격적으로 진행 될 수 있게 되었다. 2주 전 groundhog day에서 아주 추운 겨울이 계속될 것이라는 예고를 받았던 올 2월의 남은 겨울, 결국은 mother nature에게는 순순히 고개를 숙이는 것인가.. 아니다. 오랜 세월의 기억에 의하면 20여 년 전, 3월 중순에 피부로 경험했던 (WINTER) storm of the century를 잊을 수 있으랴… 그래도.. 가끔 이렇게 진정한 봄을 느끼게 해 주는 자연의 자비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Welcome (back), daffodils!

 

동네를 걸으며 playground의 bench에 누워 보이는 하늘은..

 

¶  Walk around neighborhood:  얼마만인가? 이렇게 우리동네를 Tobey를 데리고 걷는 것이.. 지나가고 있는 겨울이 걷기에는 너무나 추웠고 얼마 전 13살이 된 pet dog Tobey도 예전과 같이 ‘신나게’ 걷는 것 같지 않은 것 같아서 그 동안 거의 걷지 못했다. 우리 neighborhood는 아주 커다란 circle 처럼 되어 있고 경치도 괜찮아서 걷기에 안전하고 적당한 운동도 된다.

2007년부터 거의 정기적으로 Tobey와 걷기는 했지만 사실 나는 YMCA의 indoor track에서 운동으로 거의 45분간 걷기에 이것은 어디까지나 extra라고 볼 수 있다. 거기다가 따로 lower body workout(주로 weight training) 도 하기에 하체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 문제는 연숙이다. 하체 운동을 따로 하지도 않고 나와 같이 동네를 걷지도 않고 유일한 운동인 수영 만으로는 하체 운동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주위로 부터 나이가 진행되면 하체근육의 중요성이 심각하다고 들었다. 주로 ‘넘어지면서’ 생기는 사고에 관한 것인데, 이것은 결국 따로 하체운동을 하는 것이 거의 ‘필수’라는 것을 뜻할 것이다. 유별나게 앉고 일어나는 것이 불편하게 보이는 연숙에게 하체운동을 권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나와 같이 동네를 걷기로 약속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 너무너무 오랜만에 Tobey와 우리 둘, 동네를 걸었다.

이제 문제는 이것을 ‘습관’으로 만드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나의 경험으로 이것은 충분히 가능할 듯 하다. 본격적으로 봄이 오기 시작하면 동네 주변의 ‘앗찔한’ 경치를 마다할 리가 없을 것이다.

 

이른 아침에 가느다란 빗소리에 깨어 오랜만에 7시 전에 일어났다. 요사이 들어서 나는 아침 일찍, 그러니까 6시 대 帶 에 일어나는 것이 갑자기 버겁고 힘듦을 느끼며, ‘억세게’ 싸늘한 공기에 질려서 따뜻한 곳에서 나오기가 싫었다. 이것도 70세가 된 증후군의 한 가지인가? 이러한 잠재의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 오늘은 용감하게 6시 대에 일어났다. 느껴지는 공기가 예전과 조금 다른데.. 아하.. 그렇게 싸늘한 느낌이 아닌 포근한 것, mild한 공기의 느낌.. 올 들어 자주 못 느끼는 그런 따뜻함이 나를 침대에서 나오게 한 것을 도와 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올 겨울은 삼한사온 三寒四溫 의 자연스러운 날씨의 묘미가 거의 없었다. 강추위도 가끔 있었지만 그것보다 나를 은근히 놀라게 한 것은… 거의 매일 추웠다는 느낌.. 아마도 기후통계도 나의 느낌과 거의 일치할 것이다. 변함없이 거의 매일 ‘춥다’ 라는 것, 이것이 이번 겨울의 ‘이상 異常’ 일지도 모른다. 비록 global cooling까지는 아니더라도 뉴스에 의하면 이것도 global한 것이다. global warming 이 덜 느껴지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무언가 ‘수상’한 느낌은 떨칠 수 없다.

 

올 겨울 몇 년 전처럼 Midwest에 살 때 입었던 각종 ‘겨울 옷’들이 대거 등장하였고,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sweater들, 거의 매일 입게 되었다. coat류가 거의 필요 없던 이곳에서 이제는 필수품이 되었다. 춥고, 음산하고, 젖은 듯한 날씨를 좋아하는 나였지만.. 이제는 조금은 포근한 (하지만 덥지 않은) 그런 느낌을 찾는 나를 보면 역시… 역시.. 70이라는 숫자가 다시 한번 나의 현주소를 일깨운다.

포근한 공기를 몰고 온 폭풍우가 아침 우리 집을 온통 때린다. 겨울 내내 쌓였던 roof gutter의 낙엽들 덕분에 빗물이 폭포수처럼 창문으로 흘러 내린다. 올 겨울에 나는 ‘정신적 피곤함’을 핑계로 gutter cleaning을 거른 탓에 정직한 빗물은 gutter를 넘치며 벽을 타고 흘러 내린 것,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로소이다..  하지만 그 물들, 덕분에 우리 집 벽돌담을 깨끗이 씻어주고 먼지 낀 창문들도 따라서 깨끗이 청소해 주고 있다. 언제나 모든 것은 양면성이 있기에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다.

 

Thundering shower, Saybrook style

 

어젯밤 chronic insomnia로 고생하는,  또 잠을 설쳤을 연숙, 아침 제 시간에 아침 미사에 맞추어 일어나긴 했지만 거의 ‘인사불성 人事不省’의 얼굴이다. 우리는 sprinter가 아니고 marathoner라는 motto를 다시 한번 일깨우며 오늘 미사는 쉬기로 결정한다. 음산한 날씨와 불면증은 거의 toxic mix 이기에 이것이 현명한 결정인 것이다. 이런 ‘지혜’ 덕분에 우리는 지난 6 년 동안 ‘매일미사’의 전통을 이어가게 된 것, 역시 advance 한 (지긋한) 나이 탓일 것이다. 아마도 (car) drive를 할 수 있는 한 이런 전통은 지속될 것이고 그렇게 희망하고 있다.

2nd cup (of coffee)가 끝나니 새카만 하늘에서는 드디어 천둥소리가 요란하다. Electrical energy가 가득한 하늘은 기온이 그 만큼 포근해 졌다는 뜻이다. 2월 초, 아주 짧은 (하기야 입춘이 지났으니..) 순간에 느끼는 봄기운이 상상되는 뒷마당.. 비록 모습은 아직도 황량하지만 거의 매일 연숙은 그곳을 거닐고 땅을 들추어내며 올해의 ‘텃밭’ 계획을 상상하는 모습을 요새 며칠 본다. 형체가 사라지고 있는 vegetable garden의 fence를 올해는 반드시 새로 만들려고 나도 생각을 하는데.. house work project가 너무나 많이 밀려 있어서 어떤 것부터 시작할지 난감하다.

우선 해야 할 것은 (income) tax return, 우리의 income structure가 조금씩 변하고 있어서 그 동안 ‘무미건조’했던 이 yearly paperwork이 조금씩 흥미로워 지고 ‘공부’해야 할 것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런 것들도 ‘치매, 망각증’ 방지에 큰 도움이 될 것이고, 우리의 financial 에도 도움이 될 것이니.. 이것도 win-win 한 것이 아닐까? 아마도 오늘 오후 편한 시간에 우리를 몇 년 동안 도와주던 (tax site) freetaxusa 를 찾아 매년 느려져 가는 머리를 굴려볼까…

 

2018년 1월 21일, 오늘은 나의 나이가 정확하게 70세가 되는 날이다. 우리 부모 세대에만 해도 환갑, 60세의 의미가 훨씬 컸겠지만 그 동안 세상이 많이 바뀌어 칠순이란 말에 더욱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 그러니까 한 세대를 거치며 ‘한국산 남자’의 평균수명이 10년이나 길어졌다는 뜻인지.. 이유나 생명과학 같은 것 상관없다. 그저 오늘로써 나는 현세와 ,이 지구상에서 70년 동안 숨을 쉬고 있었다는 것만 알면 된다.

‘숫자 놀음’을 떠나서, 70년이란 세월 동안 나는 어떻게 살았던가.. regret, 스치는 생각은 과연 무엇인가.. old..  올해는 다른 해에 비해서 유난하게 anxious 함을 느끼는 것,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사실이다. 비록, anxious하긴 하지만 꼭 ‘부정적’인 것 만은 아니다. 무언가 settle되지 않은 듯한 뒤섞임, 꼬리를 물고 묻고 묻지만 결국은 이것, 내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라는 것에 귀착된다.

사람이 (physical) body와 soul 을 모두 가진 존재라면 (which I truly believe), 그 중에 나의 body는 대체로 건강, 건전한 편이다. 나를 아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는 얘기지만 나 자신도 70의 나이에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은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의 soul 은 어떤 상태인가? 그것이 나의 여생에서 더 ‘건강’하게 해야 할 제일 큰 과제라고 나는 믿는다.

약간 down된 기분으로 맞을 듯했던 나의 70세 생일은 저녁때부터 조금씩 up up & away.. 로 바뀌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사랑하는 작은 가족들이 ‘모두’ 모였기 때문이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나라니 boy friend (Luke)까지 함께 작년 Father’s Day 에 찾았던 Marietta Square에 있는 Stockyard (BURGERS & BONES) 에서 beer sampler와 함께 나의 favorite인 gourmet burger,  “JANES’ NOT SO PLAIN” 로 ‘포식’을 하였다. 아무리 sampler beer 이지만 그 양도 만만치 않았고 burger 또한 작은 size가 아니어서 정말 오랜만에 배부른 저녁을 먹은 셈이다.

 

My favorite burger, Janes Not So Plain

Beer Sampler

 

모두들 집에 다시 모여서 candle blowing, unwrapping etc etc.. 솔직히 오랜 세월 동안 ‘받아온’ 이런 ‘사랑의 표현’들, 조금은 피곤할 때도 많았고 지금도 솔직히 그렇다. 그저 이런 것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그런 것, 남들(이런 상황에 처한)은 그렇게 즐겁기만 한 모양인데 어째서 나는 좀 다른가? 이것은 나에게도, 신비에 속한, 수수께끼다 (나도 모르니까..). 이번에 내가 받은 선물 중에는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었다. 내가 태어나던 날 서울 하늘의 하늘, 별자리 picture frame이 그것이다. 누구의 idea인지 참 재미있지 않은가? 지난 1월 5일 새로니 가 받았던 것도 이런 것이었다. 그 때는 Columbus, Ohio 에서 본 별자리였다. 작은 딸 나라니는 이런 재미있는 gifting idea를 가지고 있다.

 

Night Sky View on January 21st, 1948 over Seoul, Korea

 

올해 들어서 나의 동년배들, 동기들, 띠 동갑들.. 하나 둘씩 모두 70고개를 넘으며 70대를 살아갈 것이고 80을 향한 고난의 행군을 시작할 것이다. 우리를 낳아준 조국 대한민국 건국 당시에 태어나 ‘재수 좋게’ 6.25 참상의 기억을 갖지는 못했지만.. 대신 그 여파로 ‘찢어지게 가난한’ 1950~1960년대 시절을 고스란히 겪었고, 이후 우리들은 희망의 등대였던 ‘해외로 해외로’ 하나 둘씩 떠났고, 그곳에 남은 친구들 초인적인 노력으로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가는 초석을 만들어 놓았다. 아직도 ‘빨갱이‘란 말만 들어도 긴장하는 우리 세대들,  이제는 조금 relax하면 어떨까? 우리에게 익숙하던 ‘흑백논리 세계’는 많이 회색논리의 세계로 변하고 있는 것,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할 것이 아닌가?  아마도 그것이 높은 곳의 뜻일 것이라 나는 믿는다.

내가 언제까지 살 것인가.. 우리 둘은 심심하면 ‘누가 먼저 죽을까’ 하는 웃기지도 않는 화제를 즐긴다. 남자가 홀로 남는 것, 그것은 한마디로 horror scenario라는 것, 통상적인 상식에 속하지만 솔직히 그것을 누가 알겠는가? 누가 먼저 죽을지.. 언제 죽을지.. 암만 science어쩌구 저쩌구 해도, 그것만은 모를 것이다. 그런 ‘지식’은 하느님의 영역이다. 하지만 ‘그날’ 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그런 생을 살고 싶다. 문제는, 어떻게, 무엇을 하며 남은 시간을 보내느냐 하는 것이다. 70고개가 가까워 오면서 수시로 이런 물음에 대한 묵상, 기도를 하지만 ‘아직도’ 나는 답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아직도 참을성 있게 그 답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 집 back porch에서 하루 두 끼를 먹고 backyard를 playground 삼아 평화스럽게 살고 있었던 feral ‘mother’ cat  다롱이가 하루 아침에 사라진 지 거의 2주 동안 ‘기척’이 느껴지질 않는다. 우리의 직감에 다롱이는 ‘완전히’ 사라진 것 같다.  고양이 behavior에 관해서 ‘pro’ 를 자처하는 작은 딸, 나라니 말에 의하면, 나중에 돌아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하지만 우리는 일단 포기한 상태다.

 

feral ‘backyard’ mother cat, 다롱이

 

아침 저녁 거의 정확한 시간에 배고프다고 요란하게 야~옹 거리고, 우리가 backyard에 나가 있으면 어디에 있던 간에 달려오던 다롱이가 없어진 뒤뜰은 며칠 동안 우리를 초조하게 했다. 무엇인가 이상한 것이다.  하지만 다롱이는 역시 feral cat이기에 한 번도 안아 주거나 쓰다듬어 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향해서 달려 와도 역시 wild cat 이기에 사람을 경계하는 자기 방어 본능은 어쩔 수가 없었기에 우리도 아쉽지만 이해하고 지냈다.

지난 해 2017년 우리에게 year of cat를 만들어준 것이 바로 다롱이였다. 1살이 갓 넘었을 때 kitten 8마리를 우리 backyard에 낳은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우리는 그 8 마리를 모두 손으로 키웠고 (우유를 먹이며) 모두 adopt를 시키는 쾌거를 이뤘다. 엄마였던 다롱이도 ‘불임수술’까지 시켜 주어서 다시는 ‘불필요한 kitten’을 낳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2017년 거의 반년을 우리에게 kitten story를 선사해 준 ‘다롱이’… 희망은, 우리 집 근처 동네의 어떤 마음 좋은 노부부의 집 마당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서 편안하게 살리라는… 상상 뿐이다. 그러면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월동준비를 갖추었던 다롱이의 backyard shelter, 이제는…

 

Frozen land, Saybrook court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어두운 집 주변이 비교적 환하게 느껴진다. 잠결 속에서도 어제부터 예보된 대로 집 주변이 모두 눈으로 하얗게 변해 있었다. 일기예보의 timing은 거의 정확한 듯 보인다. 늦은 저녁에 차가운 비로 시작된 것이 시간이 가면서 눈으로 변했지만 그것이 진짜 news는 아니었다. 바로 wind chill 화씨 제로.. 기온이 수십 도 가 떨어지면서 불어오는 바람..

아침에 Tobey 를 밖으로 잠깐 내 보냈더니 pee pee 만 잠깐하고 곧바로 들어온다. 시베리아를 연상시키는, 햇빛은 찬란한.. 땅을 보니 이것이 바로 어떤 시인이 말했던, 凍土란 느낌이 들었다. 이런 정도면 오늘은 100% hunker-down day 일 것이다. 왜냐하면 언덕 길이 완전히 빙판이기 때문에 drive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 밤에 이 빙판이 해결되지 않으면 내일 아침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결국 오늘은.. 올 겨울 들어 2nd snow day가 된 셈이다.  비교적 따뜻하게 무장한 나의 보금자리에서 coffee를 마시며 relax하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직업상, 사정상 꼭 나가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relax할 것 만은 아닐지 모른다.

 

한 마디로 stupid me… 100% 나의 실수로 나는 ‘아슬아슬한’ 사고를 새해 벽두에 맞았다. 사고니까 물론 예상치 못했던 것이지만 생각해 보니 한마디로 stupid 한 느낌만 든다. 결과적으로 ‘목숨과 상관 없는’ 상처를 입게 되었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새해 들어 강추위가 닥치면서 우리 집 (a.k.a this old house) 의 2-car garage door에 문제가 생겼다. 열릴 때 (그러니까, 문이 올라갈 때), 문이 너무 천천히 움직이다가 중간에서 stop해 버리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우선 생각에, ‘아하~ electric motor가 피곤하거나 죽어가고 있구나’ 하는 최악의 case였다. 이것 replace하려면 아마도 $300~$400  이상 들지 않을까? 30년도 넘은 이것, exact replacement는 없을 것이고 요새 나오는 ‘빗가 번쩍’한 garage door opener 은 우리 집의 style과는 안 맞겠고, 과분하다는 생각도 들고… 추운 날씨에 매번 손으로 이 무거운 door를 올리는 것, 상상만 해도 아찔한 모습이었다.

만약에 motor가 아니라면.. 100% kinematical/mechanical  일 것이다. 그러면.. 내가 손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부지런히 살펴보고 test해보고 공부해 보니.. 제일 유력한 용의범 culprit은 아마도 ‘피곤하게 축~  늘어진’ extension spring일 듯 보였다. 이것이 늘어지거나, 약해지면 motor가 암만 좋아도 그 무거운 문이 제대로 올라가지 않는다. 즉시 spring을 새 것으로 바꾸려는 작업에 들어갔는데… 오래 전에 한쪽 문은 내가 직접 spring을 갈았던 기억이 있지만 그 과정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거의 새로운 job을 하게 된 것이다.

 

You need a correct spring!

 

첫째 (작은) 실수는… garage door의 weight에 맞는 spring이 필요한데, 내가 산 것은 너무나 strong한 것이었다. 우리 집 garage door 의 무게는 대강 140 파운드(7′ 높이) 정도인 듯 한데 내가 산 spring은 180 파운드 급이었으니.. 정말 내가 몰라도 너무나 몰랐다. Amazon에서 산 이것은 return을 하기로 하고 부리나케 Home Depot에 가서 알맞은 것을 구해서 교체를 하는데.. 진짜 ‘대형’ 사고가 난 것이다.

나는 이 무시무시한 경고를 철저히 무시했다

한마디로 이번의 사고는 거의 치명적일 수도 있었다. 내가 ‘범’한 최대의 실수는… 교체 과정에서 그 무거운 garage door 를 screw-drive  gear에 engage (lock)을 하고 spring 빼 내어야 하는데 너무 춥고 바람이 불던 날씨라 정신이 없던 차에 그것을 잊고 말았던 것이다.

Spring을 빼 내는 순간 그 무거운 door가 서서히 나의 정면으로 굴러 떨어지며 .. step ladder에 올라서 있던 나는 너무 놀라서 떨어지는데.. worst thing to come! 나의 몸이 천천히 굴러 내려오는 garage door와 벽 사이에 얼굴 아래쪽(바로 나의 목!) 에 걸린 것이다. Spring이 빠져나간 door는 엄청 무거웠고 나는 ‘살려고’ 두 손으로 그것을 밀어내며 아래도 빠져 나오는데… 이것은 한 순간의 악몽이었다.

결국 나의 두 팔로 그 문을 밀쳐내었지만, 몸이 빠져 나와서 garage concrete 바닥에 왼쪽 어깨로 떨어지고 말았다. 어깨에 깊은 타박상은 입었지만 다행히 골격에는 문제가 없었다. 재수가 없었으면 아마도 어깨뼈를 다칠 수도 있었다. 다시 생각을 해 보니.. 내가 그 무거운 door를 두 팔로 밀어내지 못했으면.. 내 목 아래로 door가 밀었을 것이고, 그 다음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결과적으로 신년 벽두에 ‘액땜’을 한 셈이지만 어떻게 그런 실수를 했는지…  평소에 weight lifting같은 muscle exercise를 안 했었으면 나는 ‘죽기보다’ 싫지만 Medicare와 병원 신세를 졌을 것이 분명하다. 이 사고로 일주일 동안 어깨가 아프긴 했지만 생각보다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의 목을 서서히 누르는 그 ‘거대한’ garage door는 앞으로 자주 꿈에서 ‘악몽으로’ 나타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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