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마리에타

¶  Saturday at Monastery: 지난 토요일 나는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예비신자 교리반 학생, 교사들과 함께 Conyers, Georgia (east Atlanta suburb) 에 있는 Monastery of the Holy Spirit (간단히 Conyers수도원이라고 부르는) 를 방문하게 되었다. 몇 년째 (아마도 4+  년?)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 예비신자 교리반이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이제는 ‘짧은 전통’이 되었다. 전 주임신부셨던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이 교리반 예비신자들이 세례 받기 전에 꼭 수도원을 방문하도록 권고를 하셨음에 이 짧은 전통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수도원의 역사는 2차대전 무렵으로 올라가는 비교적 긴 것이지만, 그것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곳과 그 유명한 영성가 Thomas Merton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도 있다. 이 수도원을 창립한 member들이 Thomas Merton 신부가 있었던 Kentucky 주의 Gethsemane Trappist  수도원 출신들이었던 것이다.

근래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책, The Benedict Option 을 염두에 두며 생각하면, 이곳은 우리들에게 그렇게 낯선 곳이 아닌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절과 비슷한 수도원’으로 언제나 포근함과 위안을 주기도 하는 곳, 원하면 세속을 잠깐이라도 잊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2013년 겨울, 나도 교리반의 교사, staff의 일원으로 예비신자들과 함께 이곳을 방문했던 기억도 새롭고 그 외에도 레지오 피정 당시 며칠 머물렀고,  몇 년 전에는 자비의 모후 레지오 단원들과 ‘자비의 해’를 맞이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1

도라빌 순교자 성당 현재 주임신부님은 예비신자들의 수도원 방문의 의미를 잘 이해를 못하는 듯 하다고 하는데, 이렇게 신부님들마다 수도원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만 하다. 왜 그럴까? 하지만, 편한 거리에 있지는 않지만 일단 가 보면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신비스러운 곳’에서 ‘보편적이고 장구한 역사를 가진’ 천주교의 냄새를 맡게 한다는 것은 크나큰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수도자들과 피정 온 평신도가 함께 바치는 ‘낮 기도’ 에 우리 모두 경건하게 앉아서 오랜 만에 ‘평화의 신비’를 경험했고, 나중에 Abbey Store (bookstore, gift shop, small dining)에 모여서 맛있는 Publix sandwich, gourmet coffee (정말 향기 좋은 coffee였다) 를 먹으며 교사들의 ‘수도원 역사’ small talk과 각자 느낀 것을 share하기도 했다.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천주교가 주는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마음 속으로, 이들 예비신자들, 내년 부활 때 모두 세례를 받게 되기를 간구했다. 이번에 나는 100% volunteer로 ‘따라’ 간 것이지만 앞으로 이런 기회가 오면 또 가리라 마음을 먹었던, 진정으로 ‘평화스러운’ 대림 2주, 토요일 이었다.

 

 

¶  마리에타 사랑반: 나로서는 너무나 오랜만에 우리가 속한 마리에타 사랑반의 구역모임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꽤 오랜 동안 나는 이곳 참석을 못하며 살았는데 이번은 조금 예외가 되었다. 평상시 처럼 개인 집에서 모인 것이 아니고 바로 성당 내, 조그만 방에서 모인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때 거대한 monster처럼 커져버린 ‘전 마리에타 2구역’이 어려운 과정을 거치며 공식적으로 breakup이 되어서 ‘자비반, 사랑반’ 등등 같은 이름의 smaller group으로 나뉜 것도 이제는 몇 년째가 되었나? 우리에게는 조금 한 집에서 모이기에 편한 새로운 group으로 되었지만 그래도 무슨 높은, 숨은 뜻이 있었는지, 이곳엘 참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저 ‘기다리면’ 된다.. 정도의 느낌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렇게 한 없이 기다리는 것은 무리, 무리… 우리의 ‘나이’를 잊고 살았는지.. old boy의 수준에서 이제는 ‘명퇴 한 나이’의 느낌마저 들게 되었다. 나이의 신비가 이런 것인가?

두 곳의 본당[마리에타 Holy Family, 도라빌 순교자 성당]을 가진 우리에게 100% 순교자 성당의 구역 활동을 하는 것은 이제는 무리인 듯하다. 현재의 사는 방식, 그러니까 status quo의 지혜를 버리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런 우리의 자세가 남들에게는 아마도 그렇게 바람직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지만 현재로써는 어쩔 수가 없다. 당분간, 어느 정도 이 모임에 참여를 하며, 어떻게 ‘명퇴’를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이것은 나에게 결정하기가 참 힘든 문제다.

이날 성당 내에 구역모임은 우리와 자주 만나며 사는  ‘크리스’ 자매가 host를 한 것으로 총무님과 같이 맵시 있게 차려놓은 champaign 이 포함된 snack table 주위에서 담소를 즐겼다. 아마도 자택에서의 모임이 힘든 것을 이렇게 지혜롭게 해결한 것, 아주   지혜로운 idea였고,  현 총무 자매님의 의욕과 사랑으로 임무 수행하는 모습이 멋지게 보이기도 했다.

 

 

¶  Cumberland Mall: Holiday mall shopping.. 이런 글자만 보아도 머리가 벌써 복잡해지고 피곤해짐은 근래에 들어서 그렇게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아니 꽤 오래된 기억에도 사람 많은 곳에서 shopping한다는 것, 즐겁지 않고 가급적 피하고 싶은 ‘시간낭비’로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가 더 들어가며 이제는 거의 이런 것들을 잊고 사는 기분이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달랐다. 일년 동안 두 번씩이나 겪었던 ‘레지오 2명의 미친년 사건들’ 로 무언가 다른 것을 보고 싶었다. 아니 그런 kafkaesque 들을 잊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무리해서 그것도 월요일 날, 새로니와 셋이서 비교적 가깝지만 나에게는 생소한 곳, Cumberland Mall에서 아주 ‘정상적이고 전통적’인 shopping routine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렇게 함께 이런 곳에 온 것이 몇 년이나 되었을까? 이런 전통적인 shopping, 이제는 시간문제일까… 그러니까, brick & mortar shopping experience은 Amazon(online) shopping으로  해를 거듭할 수록 약세를 보이고 있으니..  이날 나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Cumberland Mall에서 먼 쪽의 중앙에 Sears라는 글자를 보았다. 가슴이 뭉클해옴을 느낄 수 있었다. 반 세기 전, 미국에 도착했을 때 나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곳, 그것 중에는 Sears라는 글자도 있었기에, 세월의 무상함을 안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참, 세상 많~이 변했구나.. 상전벽해 桑田碧海 라는 말 그대로가 아닐까? 당시 시골사람들처럼 순수하게만 보였던 ‘主流 백인’들만 보이던 미국’,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

이날 ‘해야만 했던’ holiday shopping을 하면서 이런 생각들을 하니 어찌 내가 즐겁기만 하겠는가? Good Ole Day란 말이 이래서 생겨났구나, 하지만 이런 느낌은 세대구분 없이 ‘영원히’ 계속되어 갈 것이고 progressive, conservative의 duality도 영원히 계속되어 나갈 것이다. 이래서, 영원히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 아닌, ‘절대로 안 변하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지혜중의 지혜가 아닐까?

 

 

¶  Full House, 자비의 모후:  한 때 ‘레지오 미친년 사건’ 으로 치명타를 입었던 우리의 성모님의 ‘분대’, 자비의 모후가 너무나 오랜만에 full house를 맞았다. 나는 이것을 ‘재를 털고 일어난 불사조’로 기억하고 기념하고 싶다. dirty vermin 들을 St. Michael의 용맹한 도움으로 ‘요사한 뱀의 머리를 바수는’ 업적을 남긴 것이라고 나는 해석을 한다. 형제님을 불시에 천국으로 보낸 아가다 자매님이 자식들이 주선한 극진한 효도여행을 마치고 한국에서 돌아오셔서 합류를 한 것이다.

이제는 그런대로 안정권으로 돌입한 우리 레지오, 절대로 절대로 신 단원을 ‘바보같이 받아들이는’ 실책은 피할 것이다. 단원의 숫자 그 자체가 이렇게 의미가 없게 느껴졌던 적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  연도, 장례미사, 장지동행:  아침에 예상외로 심한 폭우가 쏟아지던 날, 우리는 천수 90세를 넘기신 젬마 자매 할머님의 연도와 장례미사에 참석을 하였다. 장례미사에서 작은 딸의 생생한 조사가 조금 길기는 했지만 의미 깊은 것이었고, 우리는 궂은 날씨지만 마리에타 공원묘지까지 장지 동행을 했다.

며칠 전에 노령과 폐렴으로 선종을 하신 이 할머님,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분이 아니었다. 항상 변함없이 성당 제일 앞줄에 walker에 의지해서 힘겹게 들어오셔서 경건하게 미사를 보시던 분, 전에 거동이 덜 불편하셨을 때는 화요일 정오미사에도 오셔서 우리 바로 앞자리에 앉아 계셨고 인사도 나누었던 자매님이셨다. 그러다가 낮 미사에서는 더 이상 안 보이셨고 주일 미사에서는 꼭 뵈었고 불과 몇 주일 전에도 나오셨었는데… 역시 90세라는 나이에 폐렴은 초현대의 의학도 큰 도움이 안 되었는지.. 그래도.. 그래도.. 90세를 넘기셨으면 ‘천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어머님, 80중반 까지 사셨지만 짧은 생은 아니었으니까. 

이 자매님은 연숙과 더 깊은 인연으로 알게 되었는데, 이 할머님과 가까운 사이로 지내던   African American 자매님이 우리의 미국본당 Holy Family의 신자여서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고 이번 장례식에도 어김없이 와 주었다. 1972년 미국으로 이민을 오셔서 자식들을 다 키우신 부지런한 젬마 할머님, 각종 ‘사고’를 당하시며 고난을 겪으셨지만 그래도 굳건한 천주교 믿음을 지키시며 말년을 인근 꽃동네에서 천수를 하셨기에 자식들도 우리들도 이 영혼의 천국에서의 복락을 믿는다.

 

 

¶  싸리골 점심 모임:  12월 21일, 바로 동짓날이다. 어느새 겨울의 시작이 되었는가? 이제부터는 밤의 길이가 ‘조금씩 조금씩’ 짧아질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2개월 동안은 ‘각종 일기 뉴스’가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 동짓날 아는 부부와 같이 따뜻한 김이 나는 듯한 기분의 장소, 바로 마리에타 지역에서는 희귀한 한국식당 ‘싸리골’ (Tofu Village Korean BBQ) 이란 곳이다. 왜 이 집이 싸리골인지는 모르지만 ‘주인의 취향’이 아닐까.. 아마도 옛날 고국의 시골에서 보던 싸리나무, 싸리문, 싸리로 만든 담장.. 등등이 그리워서 그렇게 이름을 진 것은 아닐까.. 이 작지 않은 식당의 주변도 아예 싸리나무로 담장을 꾸며 놓았다.

크고 작은 Korea Town들이 거의 모두 아틀란타 동북쪽 (Gwinnett, Forsyth  counties) 으로 몰리게 되면서 정 반대쪽에 있는 마리에타 지역에는 한국식당이 거의 사라지고 이곳 ‘싸리골’과 ‘일미’라는 두 곳이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다. 하지만 이 두 곳은 business model이 Korea Town의 그것과 다르게, 거의 모든 customer들이 ‘비 한국인’들이라는 사실이고 그런 이유로 아마도 이 두 곳은 큰 실책을 하지 않는 한 계속 ‘성업’을 할 지도 모른다.

이날 우리 둘은 2주일 전에 우리를 집을 초대해서 맛있는 salmon steak요리를 즐기게 해준 ‘마리에타 토박이’ 스테파노 형제 부부와 함께 이곳에서 식사를 했다. 아무래도 우리 집으로 초대하기는 마음이 바쁜 이 시점에서 무리일 듯 했기에 이렇게 외식을 한 것이다. 이곳은 몇 개월 전에 심장수술을 했던 구역 가밀로 형제를 문병(봉성체)한 후 이곳에서 구역장님과 식사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역시 같은 구역의 ‘오 안젤라’ 자매님이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관계로 그 자매님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기도 했었다.

나이가 엇비슷한 이 교우형제, 자매님 근래에 자주 보게 되고 알게도 되었지만 ‘현재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우리들의 가슴을 쓸어 내린다. 하도 해괴하고 요상한 ‘교우 인간’들이 주변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모르고 살았던 것, 불행인지.. 다행인지..  직감과 경험, 그리고 높은 곳에서 주는 지혜를 총 동원하면 앞으로 더 큰 ‘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1. 이 당시 단원 중에는 그 유명한 레지오 난동사건의 주범을 포함한 3명의 빠가 온나, three Stooges 들도 포함되어 있어서 지금은 그때를 영원히 잊고 싶다.

 

sleeting ,dusting Marietta

¶  깜깜한 이른 새벽 침실의 curtain사이로 들어오는 가물거리는 빛들, 먼 곳에 있는 집의 security light는 거의 항상 켜 있으니 익숙한 것이고 땅 쪽에서 올라오는 어두운 빛들은 무엇인가? 우리 집의 security light는 분명히 아니고.. 잠결에 생각이 났다. 아하… 오늘 이곳에 wintry mix advisory가 있었던 것. 그러면 혹시 눈, 하지만 절대로 하얀 색갈이 아니다. 거의 검은 색으로 반짝거린다. 그러면 비.. 그것도 아닌 느낌이다. 그러면… 아하.. sleeting or freezing rain?  다롱이(backyard cat)  아침밥 주러 밖엘 나가니.. 이건 sleet 도 아니고 freezing rain도 아니고 바로 그 중간이었다. 아니.. snow도 조금씩 흩날리고 있었다. 바로 올 season 첫 번째 winter storm warning…  2014년의 ‘snowmageddon‘ nightmare가 곧바로 기억이 난다.

The Mother of humanity

오늘은 Holy Day of Obligation (의무 대축일)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Immaculate Conce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의 대 축일이고 미국에서는 ‘의무 대축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날씨가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것인가? 현재의 상태 같으면 Holy Family Church로 가는 drive는 큰 문제가 없을 듯한데.. 그래도 현재의 날씨 상태로는 100% guarantee는 없다. 어쩔 것인가.. 하지만 곧 결정이 났다. 최악의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연숙이 지난 밤도 예외가 아닌 듯해서 내가 결정을 내 버렸다. 성모님… 용서하소서.. 아무래도 무리입니다.

오늘 낮에는, 도라빌 순교자 성당에서 레지오로 알게 된 데레사 자매님의 시어머니의 장례미사와 연도가 예정되어 있기에 이것도 어쩔 것인가 생각을 하고 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TAKE ZERO CHANCE..였다. 2014년 20시간 I-285에 묶여 밤을 새웠던 기억은 아마 앞으로 20년은 더 갈 듯한데 이제 고작 3년도 안 된 fresh한 것이니.. 다시는 이런 날씨에 I-285 drive는 가급적 피하기로 했다. 집에서 연도를 하는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장례미사를 참석 못하는 것이 조금은 마음에 걸린다.

 

Ave Maria – Composed by Michal Lorenc Performed by Olga Szyrowa, Moscow Symphony Orchestra (1995)  

 

¶  어제는 가까운 곳에 사시는 스테파노 형제님 댁, 점심초대를 받아서 예외적으로 격조 있고 맛있는 점심 회식을 즐겼다. 이 댁의 자매님은 알고 지낸 지 그런대로 되었지만 스테파노 형제님과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이도 나와 비슷하고 ‘인생철학’도 크게 유별난 것 아닌 듯해서 ‘안심하고’ 사귀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도 ‘해괴한 인간’들이 주위에 도사리고 있어서 사람 사귀는 것, 이제는 겁이 나기도 하지만 ‘운과 지혜’의 도움을 받아서 ‘좋은 사람들’을 사귀는 즐거움도 무시할 수가 없다. 가 보니 3명의 자매님들도 오셨는데.. 모두 낯이 익은 분들이었고 한 분은 3년 전 세례를 받으신 아녜스 자매님, 우리 둘이 교리반 봉사를 할 때 예비신자 학생이었다. 그 당시 교리반 학생들, 세례 후에 많이 못 보게 되었지만 이 자매님은 그런대로 ‘가끔’ 마주치기도 했다. 멋진 table setup에다가 주로 holiday style meal, gourmet coffee 등등.. 인상적인 모임으로 기억에 남게 되었고 우리도 이런 식으로 ‘좋은 분들’을 초대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  이 posting 은 아침에 시작된 wintry mix, sleet 를 보면서 한 것인데 몇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을 뒤엎고 major snow로 돌변을 하였다. 지상의 온도는 빙점 위에서 머물고 있었지만 하늘은 영하였던 모양이다. 일기예보는 하루 종일 rain, 그리고 저녁부터 눈으로 바뀔 것이라는 것이 조금 빗나간 것이다. 2014년 1월 말의 Atlanta snowmageddon 교통대란 때도 비슷한 예보를 해서 고생을 했는데 이번 것도 비슷하다. 이런 종류의 기후는 정말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힘들 것 같다. 오늘 우리는 ‘현명하게도’  아침에 아예 snow day를 선언하고 모든 일정을 취소했기에 이번에는 비교적 ‘멋진 함박눈’을 하루 종일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Thanksgiving Song – Mary Chapin Carpenter

 

Aromatic, cozy, toasty, teary, crispy, loving, reminiscing… 올해 ‘최고의 시즌’이 서서히 시작되는 이 즈음에 이렇게 ‘감사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 얼마나 멋진 전통인가.. 태고 적 느꼈던 고국의 추석도 비슷하겠지만 이것과는 무언가 확실히 다르다. 이곳에서 공기를 마신 세월이 저곳의 그것보다 몇 갑절이 되어나는 이 세월의 신비는 아직도 나에게 ‘안 보이는 그 무엇’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나는 역시 이곳, 이때.. ‘공간과 시간’의 피조물인 것이다. 무엇(들)이 올해 나, 우리에게 감사하고 고마움을 느끼게 한 것들인가?

 

고리타분하고 진부하고 재미 없는 표현, ‘우리들 모두 건강하게 살았다’ 라는 것, 과연 피곤한 말일까? 절대로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만끽했던 최대의 은총이었다. 크게 아픈 가족이 없었다. 비록 무섭게 나이가 들고는 있지만 그것과 맞갖은 불편함과 괴로움은 거의 없었다. 감사합니다, 어머님들.

건강했다는 것의 corollary는… 덕분에 5년의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7 seven dayer 의 전통.. 을 계속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멋모르고 듣는 사람들은 ‘그것이 뭐 그렇게..’ 할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가장 멋진 선물을 받은 것이다. ‘매일미사의 기적’은 겪어 보고 아는 사람은 충분히 안다. 이것은 우리가 5년 동안 매년 받았던 감사의 은총과 기적 중에 으뜸에 속한다.

 

Year of Cat, 올해 우리는 ‘고양이 해’를 맞았고 감사하고 뜻 깊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보냈다. 우연히 우리 집 뒤 마당을 골라서 태어난 8마리의 갓난 고양이 kitten들, 이것도 인연인가? 분명히 하늘이 주신 생명체이고 전적으로 우리에게 맡겨진 듯한 사명감으로 4여 개월을 이 아이들을 돌보고 키우던 세월도 은총의 시간들이었다. 결국은 사람의 아기나 고양이의 아기나 마찬가지였다. 우연일지, 운명일지 태어난 생명들과 정을 들였던 그 시간들, 때에 따라 너무 힘들기도 했지만 우리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모두 건강하게 adopt를 시켰다. 이 과정과 결과를 우리는 너무나 감사하고 감사..

 

우리들이 ‘복무’하는 성모님의 군대인 레지오 마리애 ‘자비의 모후’ Pr(Praesidium) ,  한때 ‘female’ vermin들의 어이없고 치사한 ‘진주만 폭격’을 당했을 때 거의 coma상태까지 갔던 우리의 전초소대, 역시 어머니의 도우심으로 ‘불사조’처럼 일어났다. 우리가 한 역할도 자랑스럽지만 역시 보이지 않은 손길의 이끄심을 항상 느낄 수 있었다. 이 쓰라렸던 경험은 아직도 잔잔하게 진동하고 있지만 이제는 역시 이것이 ‘우연일까 필연일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나는 후자 쪽을 선택했고, 그렇다면 이 사건의 의미는 무엇이며, 무엇을 내가 배울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이 년 말까지 관상해야 할 숙제가 되었다.

 

Full Retirement, 우리들의 나이가 말해주듯이 올해로 우리 모두가 full retirement 로 들어갔다. 연숙의 Medicare가 시작되고 SS benefit이 kicked-in, 이제는 완전한 fixed-income age로 들어간 것이다. 이것의 의미는 거의 경제적인 것이겠지만 과연 그럴까? 한마디로 우리 둘, ‘오래 살았다’ 라는 생각이고 그저 이제는 남에게 (가족, 사회, 국가)에 더 큰 부담을 안 주고 살아야 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가 되어가고 있다. 절제 있게, 겸손하게,  하느님을 ‘두려워 하는’ 자세로 생을 마치는 것을 원하지만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올해의 Thanksgiving Day는 어떻게 지내는가? 마지막으로 네 식구 모두 모여 turkey meal을 즐겼던 것이 언제였던가? Halloween처럼 이것도 진화를 거듭하며 변한다. 아이들의 머리가 커가면서 이런 것은 자연히 변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아이들이 ‘작았을 때’가 그렇게 그립다. 왜 그럴까? 올해는 더 흩어진 모습일 뻔 했지만, 큰애는 travel [Rock climbing in Nevada, business trip 등]로 시간을 보낼 것이지만 그래도 작은 애가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해 주었다. 하지만 역시 그렇게 기쁘고 신나지 않으니.. 이것도 자연스러운 현상, 나이 때문인가… 그래도 작은 애야 불러주어서 고맙다.

 

오늘은 시월 첫 월요일인데 조금은 색다른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이유는 오늘부터 우리 집의 curbside trash collection이 월요일 아침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동안은 금요일 아침에 수거해가는 trash company, Cycleworks라는 진짜 trash같은 service를 자랑하던 곳으로 근래에 들어서는 제시간, 제날짜에 trash truck이 아예 오지를 않거나 와도 버젓이 trash를 가져 가지 않는 희한한, 해괴한 광경을 보여주었던 경험들… 이 terrible service때문에 얼마나 골치를 썩였는지 모른다. trash service를 다른 곳으로 바꾸면 되겠지만 그것도 솔직히 귀찮은 것..

그러던 것이 ‘하늘이 도와서’ 이 trash같은 trash company가 경영이 안 되었는지 (너무나 당연한 결과) ‘얌전하게’ 다른 곳으로 우리들을 service를 넘겨 주었다. 그것 하나만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제부터 우리 집 쓰레기를 가져갈 service는 우리 subdivision 대부분 이웃들을 service하던  American Disposal service인데 전통적으로 월요일 아침에 truck이 온다. 내가 목격했던 이곳은 거의 ‘틀림없이’ 한번도 miss를 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첫 월요일 아침, 역시 새벽같이 truck 의 소음이 들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쓰레기가 치워졌다. 이것이야말로 나에게는 Santa Clause같은 올 가을의 예기치 않았던 선물이 아닌가… 게다가.. 수거비도 전과 같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가끔 이런 ‘좋은 일’들이 ‘저절로’ 생긴다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My wife’s 65th birthday.. 물론 나보다 ‘언제나, 죽을 때까지’ 5년 뒤에 오는 것이라 65라는 숫자가 이제는 별 것 아닌 것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게 아니다.  옛날의 65라는 숫자였다면.. 우아~~ 오래 살았다.. 꼬부랑 할머니다, 죽을 때가 가까웠다.. 는 말들이 따라 붙었을 것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65세만 살면 ‘많이 살았다… 그러니까, 65세 만세론’에 은근히 공감을 하고 살았다. 이 65세 만세론은 오래 전 대한민국의 다재다능 했던 소설, 수필가로 명성을 날리던 이진섭선생님의 지론 이기도 했다. 그는 65세는 고사하고 60세도 못 채우고 타계를 했기에, 65세는 나에게 magic number로 남게 되었다.

9월 첫날 65세 생일을 맞는, 나와 37년을 같이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아내 연숙, 열심히 사느라고 수고가 많았다. 37년을 같이 살아온 것이 도대체 얼마나 긴 세월인지 실감이 가지를 않지만 그저 오래 같이 산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귀염둥이 막내로 자라 투정부리는 외아들을 만난 것, 큰 후회 없이 잘 살아준 것, 어찌 감사하지 않겠는가?

우리 둘 모두 하느님을 전혀 모르고 산 세월도 길었지만 이제 진정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알게 된 것, 남은 석양의 세월에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은 찾았고 이 세상을 떠나는 그날을 기다리며 살게 되었으니 이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65세 생일이 5의 배수이기에 더 특별할지도 모르지만 다른 것도 있다. 공식적으로 Medicare age가 시작된 것이고 이제는 ‘죽을 때까지’ Medicare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이런 entitlement들, 절대로 charity가 아님을 알고 정정당당한 입장으로 혜택을 누리면 된다. 덧붙여서 이번에 Social Security Benefit도 같이 신청을 해서 죽기 전까지 해야 할 paperwork을 다 끝낸 셈이 되었다. 이런 조금은 복잡한 paperwork들을 나는 이미 경험을 했기에 거의 모두를 내가 도와 주었다.

 

올해의 생일날에는 예년과 같이 아이들이 찾아 준 ‘새로운 곳’에서 외식을 하였다. 작년의 Stockyard와 비슷한 느낌의 Eclectic American style인 Camps Kitchen & Bar, East Cobb의 노른자위 Paper Mill area에 올 봄 open 한 곳이다. 군침이 도는 gourmet hamburger와 red wine으로 생일 저녁 온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another day of life라고 할까.. 이것이 인생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것이다.

 

 

일주일 여의 준비 끝에 지난 8월 17일에 시작된 This Old House의 2층 flooring renovation job 중에서 guest room 2개의 flooring & trimming job이 비오 듯 등으로 쏟아지는 땀 내음 속에 끝을 맺었다. 비록 ‘작은 방’에 속하지만 closet과 closet furniture (cloth hanger & chest)까지 포함되고 아주 복잡한 door jam 주변의 cutting geometry는 한마디로 굳어져가는 나의 머리가 마비될 정도였다. 육체적인 노동의 정도도 만만치 않았다. 무릎으로 기어 다니고, 수시로 plank cutting을 해야 하는 단조로움까지 골고루 ‘괴롭히는’ 것들과 싸우고 나면 한마디로 ‘녹초’가 된다. 이 나이에 이것과 싸우는 것,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을 많이 쓰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불쌍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나이 70에 가까운 몸으로 이런 simple labor를 한다는 것, 하지만 나는 너무나 자랑스럽다. 나는 아직도 건재하다는 의미이고 우리 집의 value는 그만큼 올라간 것.. 왜 이것이 그렇게 힘들다고만 할 것인가?

 

Old carpet 대신에 반짝반짝 ‘딱딱한’ 바닥의 느낌은 사실은 mixed feeling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2층은 조금 안락한 느낌이 필요한데, 비록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은 주지만 carpet의 포근함은 완전히 사라졌다. 문제는 오래된 carpet의 지저분함 또한 장난이 아니었기에 비록 area rug을 사더라도 hardwood flooring으로 간 것이다.

Carpet에 오랫동안 적응되었던 우리 집 pet, 특히 Torbey의 얼굴을 보니 괴롭고 신경질적인 모습이다. 재빨리 뛰어 갈 수가 없고 자꾸만 미끄러지니..  미안해 Tobey… 시간이 약이란다.

 

2층 floor를 모조리 바꾸려면 아마도 2~3주가 더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 때가 되면 가을바람이 솔솔 불 것이고, 일하는 것, 지금같이 땀으로 목욕하는 괴로움은  덜 할 듯 하다. 게다가 끝나고 나면 ‘완전히 변한 느낌’을 주는 방들은 우리에게 가을 같은 신선함을 주지 않을까?

 


AFTER

I’M SO SORRY, TOBEY…


BEFORE

PAWS-ATLANTA 입구, Van 이 보인다

 

오늘은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우리 집(가족)에게 monumental day라고 불릴 수 있는 기억에 남는 날이 되었다. 태양이 작열을 하는 전형적이고 통계적으로 아주 정상적인 뜨거운 복 伏 날씨에, 나와 연숙은 ‘마지막’으로 남아서 우리를 바쁘게 해오던 마지막 3마리의 정든 kitten들을 kitten carrier에 넣어 차의 backseat에 태우고,  ‘침울하지만 차분한’ 심정으로 PAWS ATLANTA (a NO-KILL animal shelter & pet rescue) 가 있는 metro Decatur west-end로 거의 한 시간 drive을 했다. 그리고 지난 성 목요일, 4월 13일부터 시작되었던 8마리와  kitten 들과의 하루하루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괴로웠을 때, 피곤 했을 때, 눈물이 났을 때’등을 서로 회상하였다. 한마디로: Mission Accomplished! 란 말이 저절로 나왔고 우리 둘은 big high Ten으로 자축하면서 눈언저리가 시려옴을 느끼기도 했다.

Cat’s dormitory, 이곳에서 입양을 기다리며 모여서 산다

지난 6월 초에 나 혼자서 2 마리의 feral mommy cats(8마리 kitten들의 mom & grandma)들을 fix (spaying & neutering, 불임수술) 하러 이 지역에 있는 다른 시설 (LifeLine Animal Project) 에 왔던 것 보다 더 먼 곳이었다. 왜 하필 이런 시설들이 우리 집과 정 반대 쪽에 있는 곳에 있을까.. 생각해보니 이런 곳들을 찾아 내고 ‘이용’했고 우리에게 소개해 준 것이, 이 작은 딸 나라니 였는데.. 그 애가 Decatur에 있던 Agnes Scott College에 다녔었고 이 지역의 animal shelter들에 익숙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분명히 우리가 사는 west metro의 Cobb county지역에도 이런 시설들이 있을 듯 한데 그곳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도 해서 이렇게 한 시간 drive를 해야 하는 것을 감수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던 것은 8마리의 kitten들이 모두 개인가정에 adopt되는 것이었지만 나라니의 ‘영웅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3마리는 주인을 찾을 수가 없어서 초조하던 차에 마지막 희망인 이곳 paw-atlanta를 찾은 것이다. 이곳에서는 adopt가 될 때까지 한 달이고 일 년이고 맡아서 보호해 주는 곳이고 website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3 마리, 이곳에 안착하자마자 주위를 탐색하고 있다

나머지 3마리, 우리도 놀란 것이 너무나 정이 많이 들었었다는 사실을.. 사람 못지않게 끈끈한 정이 들어서 헤어지는 것이 정말 괴로울 지경이었다. Kitten들은 물론 우리와 헤어지는 것을 실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곳에 이미 있던 다른 친구들과 즉시 어울리는 것을 목격하고 우리는 조금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하루 속히 사랑을 줄 수 있는 가정으로 입양이 되기만을 하루하루 기도하는 수 밖에 없다.

우리를 울리게 했던 녀석, 꼬마.. 어디에 가던지 잘 살아다오..

세 마리 중에 우리의 가슴을 쓰리게 했던 ‘놈’이 ‘꼬마’인데, 태어났을 때 너무나 작아서 과연 살아날 수 있을까 신경을 쓰던 녀석이었다. 매일 매일 젖과 먹이를 먹일 때마다 그 녀석의 유난히 가느다란 뒷다리를 주시하기도 했는데, 정성을 드린 것이 효과를 보아서 나중에는 거의 정상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아주 활발한 kitten으로 자랐다. 그 애를 마지막으로 보내며 연숙은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좋은 곳으로 입양만 되기를 기도하며 기도한다. 

희망적인 news는 이런 어린 kitten들은 비교적 빨리 adopt가 된다고 한다. 모두들, 특히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원하기에 그런 모양이라고 해서 희망을 갖고 기다리기로 했다.

 

정든 kitten들이 떠난 그들의 보금자리, 몇 개월 동안 이곳에서 뛰어 놀았다

마지막 남은 3 마리의 super cute kitten들과 작별인사를 할 순간이 갑자기,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No-Kill Animal Shelter: PAWS-ATLANTA에 일단 가서 입양을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사실 나도 놀랄 정도로 슬픈 감정이 밀려들었다. 나도 놀란 것이, 불원간 이별할 것을 알고 같이 살고 있었지만 막상 그 순간이 온 것이 사실을 그저 잊고 싶었다. 이것이 바로 그것, 잊고 살았던 끈끈한 ‘정 情’ 이란 것이다. 70평생 살면서 그것도 잊고 살았단 말인가?

8마리 모두가 함께 딩굴며 행복했던 시절..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우리의 손에서 자란 8 마리 (3 마리는 낳아준 엄마 품에서 한 달을 보낸 후에 우리가 길렀다) 각자 모두 특징이 있는 8마리 형제 자매들 중에서 5마리는 이미 나라니의 ‘영웅적인 노력’으로 모두 ‘좋은 가정’으로 adopt 가 되었다. 8마리에서 5마리가 빠진 3마리, 처음에는 그렇게 쓸쓸하기까지 보이더니 우리도 애들도 잘 적응해서 전에 비해서 훨씬 ‘편하게’ 2층 독방에서 잘 놀며 자라고 있지만.. 사실 언젠가는 이별을 예상은 안 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3마리를 잘 기르는 것은 사실 무리 (이미 1 dog, 1 cat이 우리 집에 있기에) 였고, 애들도 모두 반대를 하곤 했다.

 

요새는 동물, 특히 pet animal 들과 정이 든다는 것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가끔 생각하곤 한다. 이제는 그곳에 가서 하루 빨리 좋은 가정에 입양되기만 기도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어제는 a/c (에어컨)의 소음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던 정말 믿기 힘든 시원한 가을 같은 평화스러운 일요일이었다. 시원한 자연의 공기를 만끽하려고 밤에 잘 때 창문을 모두 활짝 열어놓았는데 아침에 어둠 속의 공기는.. 그야말로 싸늘한 50도 대의 기온이 아닌가? 어제 일기예보를 안 보았기에 놀란 것이지만 이것은 나에게는 자연의 은총 중에 으뜸가는 은총에 속한다.

 

오늘의 예보를 보니.. 이제는 ‘물기’는 하늘에서 완전히 사라진 모양으로 UV 치수가 아주 높은, 그러니까 건조한 공기를 예고하고 있다. 최고가 82도, 건조한 날씨.. 나는 자동적으로 창문을 닫고 a/c  switch를 킬 것인가, 그대로 창문을 열어놓고 오후를 맞이할 것이나 계산하기에 바쁘다. 이것은 이제 습관이 되어서 그렇게 힘든 작업은 아니다. 이제는 ‘감’으로 우리 집안의 공기를 control할 수가 있는 것인데..  예전에 비하면 이것도 ‘나이 듦’에서 나오는 자연적 지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집 small animal kingdom에는 10 마리의 ‘동물’들이 머물고 있기에 아침에 일어나면 챙길 것 투성이다. 지난 4월 성목요일에 뒤뜰에서 ‘아슬아슬’하게 태어난 8마리 baby kittens들 중에서 한 마리 Velvet은 좋은 주인을 만나서 얼마 전에 adopt가 되어 이별을 했고, 현재 7마리의  2개월을 훨씬 넘은 건강한 kitten들은 비록 foster-care지만 이제는 정이 들어서 완전히 우리의 ‘자식’ 처럼 되어서 가능하면 adopt 되기를 기다리고 있고, 오래 된(10+ 년) 우리의 고양이 Izzie, 개 Tobey가 있고 새로니가 해외 휴가여행을 가면서 2주 이상 머물기 시작한 개, Ozzie.. 그러니까 이건 완전히 우리 집은 summer animal kingdom이 된 것이 틀림이 없다. 이것들을  care하는 것은 이제 익숙하게 되어서 크게 힘이 들지는 않지만 솔직히 이것..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연숙과 함께 실감을 한다. 덕분에 ‘절대로 지루한’ 그런 시간은 ‘절대로’ 없다는 것.. 역시 좋은 것이다.

 

Thanksgiving Song – Mary Chapin Carpenter

 

서기, 주후 主後 2016년 11월 24일.. 11월 24일이란 말의 느낌은 확실히 미국의 ‘추수감사절’임을 느끼게 하는 것.. 그렇다. 죽을 때까지 타향일 수밖에 없는 이곳 미국에서 숨을 쉬면 산 세월, 연륜이 결코 만만치 않은 45년에 가까워짐을 실감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착잡 錯雜 한 바로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 비’ 구경 한지가 2달이 가까워 오는,  매일 매일이 화창한 깊고 푸른 하늘의 가을, 기온은 빙점까지 떨어지는 것, 비만 빼고는 지극히 보통, 정상적인 2016년의 가을의 끝 자락에서 지나간 일년을 감사하는 날 ‘추수감사절’, 바로 오늘이다. 며칠 싸늘하던 날씨가 포근하게 바뀌고 굳게 닫혀 있던 창문을 모조리 열고 신선한 공기를 느끼며 오랜 만에 편한 오후를 맞이한다.

 

지난 일주일의 대부분을 조금은 심하게 우울한 기분에 시달리다 timing 좋게 그 수렁에서 빠르게 벗어남을 느낀다. 왜 그런 less-than-mild depression에 빠졌고 왜 재빨리 빠져 나오지 못했나 아직도 ‘분석’ 중이다. 앞으로 이런 푹~ 쳐지는 감정에 다시 빠져도 별 도리 없이 이번처럼 그대로 시간만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정말 싫지만, 아직도 뾰족한 대책을 찾지를 못한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4명 가족이 다 모이지 못해서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만든다. 오직 4명의 식구가 똘똘 뭉쳐 살던 시절들이 이제는 다 지나갔는가? 한 가족의 궁극적인 진화라고는 하지만 쓸쓸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 올해는 작은 딸이 빠졌다. 새로 사귄 boyfriend 의 ‘저택’에 초청을 받았다고 하지만 우리로써는 섭섭한 마음, 많지도 않은 가족인데.. 그래도 남은 3명이 turkey를 제외한 풍성한 음식을 즐겼다.

 

올해는 어떤 Thanks를 give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서 조금 이것이 힘든 것을 보면 아마도 그렇게 spectacular 하게 감사할 것이 없는지.. 하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그것이 절대로 아님을 알게 되었다. 오늘 Thanksgiving day Mass에서 Father Miguel의 강론이 그것을 일깨워 주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지 우리는 모르고 지낸다고..

 

작년에 우리가 받았던 메가톤 급의 ‘은총’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그대로 4식구가 건강한 삶을 살았다는 것, 감사를 드린다. 비록 나이는 더 먹어가지만 나이에 비해서 건강함을 유지했던 덕분에 그런대로 매일 미사, 충실히 참례했던 사실, 장기간 봉성체를 하며 돌보았던 ‘보나’ 자매님을 ‘안전하게’ 하느님 품으로 보낼 수 있었던 때, 우리가 속한 자비의 모후 레지오, 위기를 넘기며 탄탄하게 견디며 현재 아주 건강한 힘으로 활동을 하게 된 사실, 우리의 미국본당에 ‘결혼사제’가 부임을 해서 걱정도 많이 했지만 의외로 좋은 결과를 낳게 된 것, 예산에도 없던 에어컨 고장을 brute-force로 고쳤던 사실, 수십 년간 녹슬었던 나의 guitar 실력을 guitar club에 관여하여 되 살릴 수 있었던 기회, 레지오 전 단원 바울라 자매의 부군 조 이시도르 형제님을 안전하게 하느님 품에 안기게 했던 은총, Atlanta History Center에서 즐겁지 않은 직장생활을 했던 작은 딸 Vonnie, 더 좋은 장래성이 있는 곳으로 옮겨간 사실, Science & Religion 분야 중 최근에 개발된 이론들을 총 망라한 저서와 저자, Father Robert Spitzer를 찾고 알게 된 사실: 별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것들 모두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들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Vivid Virgin's imprint

Vivid Virgin’s imprint

Guadalupe, 과달루페 성모님, Mexico City에 있는 그 성모님 (영상)이 내가 사는 마리에타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물론 그 성모님의 ‘상본’은 나의 main desk옆 벽에도 걸려있어서 커다랗게 잘 보인다. 하지만 이건 완전히 다른 것이다. 지난 7월 초 내가 속한 레지오는 과달루페로 ‘피정’순례를 간 바 있지만 우리는 가지를 못했기에 (lousy timing)  이번의 과달루페 성모님 소식은 참으로 새로운 것이었다. 그런데 조금 웃기는 것은 이번에 우리가 ‘발견’한 성모님은 사실 지난 해 2015년 12월 12일에 나타난 것이라는 사실.. 우리는 무척 늦게 알게 된 것이다. 주위에 물어보니 거의 모두 그 소식을 알고 있는 듯 했다.

 

Transfiguration Catholic Church

Transfiguration Catholic Church

이번의 Guadalupe story는 이렇게 진행이 되었다. 최근 우리와 자주 보게 되는 Holy Family CC near-regular Chris 자매님, 아침 daily mass가 끝나고 coffee break시간에 우연히 우리에게 ‘마리에타 성모님’ 이 찍힌 사진을 보여주었다. 마리에타의 ‘어떤’ 성당 Transfiguration CC(Catholic Church) (The Catholic Church of Transfiguration) 의 ‘창’에 성모님 모습이 보였고 그것은 과달루페 성모님과 비슷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 모습은 video로 찍혔는데 정말 가까이 찍은 것을 보니 아닌 게 아니라 그것은 ‘성모님’의 자태에 분명했다. 언제 이 ‘창문의 성모님’이 나타나셨냐고 물으니 ‘꽤 지나간 일’ 이라고, 아마도 지난 5월 쯤이 아닌가.. 하였다. 집에 와서 부지런히 googling을 해 보며 우리는 놀라기만 했다. 나타난 때가 지난 해 12월 12일.. 그것은 바로 멕시코 과달루페 성모님이 발현하신 바로 그날이었다. 주임신부님이 Facebook에 ‘공표’를 하고 ‘세상’에 이미 알려진 지가 거의 9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우리는 알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창문에 image가 새겨졌다.

바로 이 창문에 image가 새겨졌다.

그러면.. 왜 그 성당에 과달루페 성모님이? 그 성당은 ‘아마도’ Hispanic community가 상당히 있었을 듯 하고 주임신부도 Columbia출신이기에.. 요새 ‘빠가 중의 빠가, 양아치 중의 양아치, Trump의 주둥이 으름장’ 때문에 고생하는’ 그들을 위로하시려 나타나신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It’s not too late, it’s now or never를 되뇌며 우리 (3명)은 이틀 뒤, 오늘 아침 미사 후 McDonald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곧바로 그곳을 찾아갔다.  그 성당이 있는 동네는 사실 typical Hispanic의 인상과는 거리가 있는 깨끗한 전형적인 Northeast Cobb County, middle-class neighborhood, 성당도 우리 Holy Family CC 보다 더 깨끗하고 웅장하였다. 그 문제의 창문은 parish center로 쓰이는 커다란 강당 같은 곳에 있었고 밖에서는 어렴풋이 ‘흑백의 그림자’같은 것만 보였는데, 들어가보니.. 와~~~ ‘총천연색’이 분명한 ‘아직도’ 뚜렷이 과달루페 성모님의 자태가 남아있었다. 나는 살아 생전이 이런 supernatural한 원인으로 남아있는 것을 처음 육안으로 목격하는 셈이 된다. 

 

이번에 나는 매일 묵주기도로 가까운 성모님이 생각보다 우리와 더 가까이 계심을 느끼게 되었다. 비록 메주고리예처럼 살아있는 모습의 발현이 아니더라도 이런 간접적인 ‘계시’라도 그 의미와 목적을 생각하면 깊은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던 ‘깊은 감명’을 숨길 수 없는 뜻있는 하루가 되었다.

 


 

2016-09-23-11-48-04

성모님 모습이 새겨진 곳이 가운데 창문이다. 이곳은 multi-purpose parish center 중 제일 큰 ‘강당’ 인 듯하다.

창문 밑에 마련 된 mini shrine, 성모님께 드리는 note들도 있다

창문 밑에 마련 된 mini shrine, 성모님께 드리는 message note들도 있다

 

The Beatles – When I’m Sixty-Four

 

휴~ 이제 다 끝이 난 모양이다.  연숙의 생일 ‘먹기’. 1월 달에는 나와 큰 딸, 9월 달엔 엄마와 작은 딸의 생일이 같은 날짜 차이로 있다. 그래서 1월도 조금 바쁘고 9월 달도 마찬가지다. 올해 연숙의 생일은 조금 지나치게 보낸 것은 아닐까? 생일 전날에 Thai restaurant Lemongrass에서 ‘간단히’ 둘이 ‘먹었고’, 생일 날엔 아이들이 와서 Marietta Square에 있는 gourmet hamburger restaurant Stockyard 란 곳에서 ‘무지막지’하게 큰 hamburger와 local microbrewery 산 draft beer sampler로 배가 터지게 먹었고, 마지막으로는 우리 레지오 단원들과 같이 한 생일회식이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그러니까.. 무려 3번 생일축하를 한 셈이다. 조금 지나친 감도 없지 않았으나.. 생각을 해 보니 올해 생일이 육십사세 란 것이 귀에 익은 숫자였다. 내가 4년 전에 1월에 친구 양건주와 나의 생일을 자축한 Beatles classic, When I’m sixty four..  생각이 나는 것이다.  4~5 년 뒤로 나를 따라오는 연숙이 64세라는 것이 조금은 실감이 안 간다. 부모세대의 64세를 생각하며, 손주들이 주렁주렁한 할머니의 모습들.. 암만 봐도 그 때의 그 모습들이 없다. 한 세대가 흐른 시점에서 세대 차를 느끼지만 그것은 모두 ‘겉 모습’에 관한 것 들이다. 아마도 세월에 의한 경험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그 옛날 60년대.. 이 Beatles의 When I’m sixty four를 들었을 당시.. 기억에, 와~ 그 나이까지 살면 어떻게 하나.. 하고 은근히 기분이 쳐지는 느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 부부는 ‘완전히’ 그 magic number를 모두 넘어선 것이다. 참 정직하다, 세월은.. 어김없이 일초 일초..흐른다.

 

 

¶  결국 7월의 마지막 날은 이렇게 오고야 말았다. 표현이 아주 극적이지만 사실 하나도 극적인 것이 없는 2016년 7월이 ‘영원히’ 나로부터 떠나려 하고 있다. 올 여름의 특징이었던 ‘변화 없는 더운 날씨’ 바로 그것으로 기억에 남으리라. 어제가 그제고 오늘이 ‘아마도’ 내일일 것이다. 거의 변화를 못 느끼는 그런 날씨, 더위, 느낌들.. 지겹게도 느껴질 수 있겠지만 올해의 이 여름의 지겨움은 사실 그렇게 견디기 힘든 것은 아니다. 재수가 잘 맞으면 늦은 오후에 쏟아질 수도 있는 소나기의 희망도 있고, 이제는 우리의 몸도 더위에 잘 적응이 되었고, 33일 봉헌 준비를 위해 ‘질주’하는 짧지 않은 영원과의 대화 시간도 있기에 그럴지 모른다.

7월 초에 우리의 미국본당 Holy Family 성당에 ‘기혼자’이신 주임신부님이 부임해서 관심과 우려를 예상했지만 결과적으로 기우였다는 것으로 판명이 되었다. 진지하고 영성 적이고 정치, 사회에 관심이 많은, 강론이 진지하고 준비가 잘 된, 한마디로 ‘합격, 합격’ 이었다. 가정이 따로 있어서 사제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아침마다 출근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나 이상했지만 이제는 모든 신자들이 잘 받아드리는 느낌이다. 우리도 마찬가지.. 전번 traditional Irish 신부님과 너무나 느낌이 다른, 너무나 ‘살아있는’ 강론, 앞으로 우리 본당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  오늘부터 우리의 일요일 routine이 조금 바뀌게 되어서 조금 더 새로운 느낌의 일요일을 맞는다. 바뀌게 된 큰 이유는 동네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10시 미사 대신에 8시 30분 미사로 바꾼 것 때문이다. 일요일의 은근한 위안이었던 ‘조금 늦게 일어나는’ 것이 없어진 것이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변화였다. 연숙이 한인본당 순교자 성당의 교리반 director가 되면서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매 주일’ 미사에 관계없이 순교자 성당엘 가야 하는 입장이 되었는데, 문제는 우리 둘이 어느 쪽에서 미사참례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제일 이상적이고 간단한 것은 우리 둘이 함께 순교자 성당에서 주일미사 참례를 하면 되는 것이다. 비록 정든 Holy Family 동네본당의 주일미사를 못 보게 되긴 하지만 그곳은 평일 미사를 거의 매일 가니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비록 순교자 성당엘 둘이 가게 되면 나는 교리반이 완전히 끝나는 시간까지 ‘할일 없이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고역도 있긴 하지만 그것도 내가 조금 불편함을 참으면 크게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런 배경으로 나는 ‘거의’ 주일 미사를 순교자 성당엘 둘이 가기로 마음을 정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가, 악마의 손길인가..

 

우리와는 어쩌다 보니 거의 운명적으로 incompatible한 것으로 판명이 된 인물들이 갑자기 우리 주위의 공동체(주로 구역과 순교자 주일 미사) 에 등장한 것이다. 한 명이라면 그런대로 참고 견디겠지만 그 이상은 감당하기가 힘들다. 멀리서라도 보이게 되면 간단히 피할 것인가, 이들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할 것인가, 극약으로 정면으로 대할 것인가.. 어느 것도 나에게는 쉽지 않은 option이라는 결론이 나왔고 결국은 구역 모임, 순교자 본당 주일미사에 가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할 수가 없는 노릇.. 다른 것은 배를 쓸고 참을 수 있어도 멀지 않은 과거에 divide & conquer를 motto로 공동체를 사정없이 분열시키고 ‘해괴한 수준의 박학다식‘을 자랑하던 그들의 위선적인 얼굴과, 진짜 속 마음을 알 수 없는 언행 등은 정말로 참기가 힘든 노릇이니 결론은 이렇게 간단한 것이 되었다.

한때 급작스럽게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오던 정들었던 구역 모임과 그곳의 착하게 열심히 살아가던 교우들, 주일 미사에 항상 앉던 자리의 주변에서 그런대로 얼굴이 친숙해지던 형제, 자매님들.. 당분간 (얼마나 오래갈지 아무도 모르는..) 잊어야 할 듯.. 이래서 이것은 운명의 장난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것은 내가 풀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전구, 보호자이신 성령과 성모님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한 문제가 아닐까? 8월에는 조금 선선하고 신선한 쪽으로 사정이 흐르기만 바라고 있다.

 

 

DASUQUIN magic: 3주 전쯤 하루아침에 갑자기 거의 신체불구가 된 듯 했던 우리 집 12살짜리 ‘강아지’ Tobey는 한때 ‘장례식’을 연상했을 정도로 암울한 며칠을 보냈었다. 속으로 나는 그 녀석을 보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설마.. 하는 심정으로 며칠을 정성껏 돌보았는데 문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나타내는 것을 옆에서 볼 수가 없었던 것.. 우리의 결론은 비록 ‘심한 신경통, 관절염’ 쪽이었지만 혹시 만에 하나라도 다른 것이라면.. 하는 우려가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급히 order했던 약을 먹은 그날부터 거의 기적과 같이 움직이며, 신음소리도 줄어들었다. 그 약의 이름이 바로 DASUQUIN 이었는데.. 나는 이때야 비로소 ‘약 장사’의 인상이 조금은 좋아짐을 느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거의 ‘생과 사’의 갈림에서 기적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경험이 되었다. 생각에 그래서.. 그래서.. 약 장사 (제약회사)들이 그렇게 돈을 버는구나 하는 자명한 사실.. 내가 원래 약을 싫어하고 안 믿는 인간이라 더욱 놀란 것이다. 어떻게 거의 죽다시피 보이던 것이 그렇게 나아질 수 있었을까? 3주가 지난 지금 Tobey는 거의 전처럼 돌아왔고 우리 집의 공기는 다시 활기가 돌아오고 있다. 7월이 준 따스한 은혜라고나 할까..

 

지난 2주 동안 계속되던 폭염, 95도 (섭씨 36도쯤 되나..)의 나날들.. 가뭄까지 겹친 매일매일은 서서히 피곤하게만 느껴지기 시작.. 거의 매일이 그야말로 dog days of summer. Backyard의 찬란하던greenery 들이 서서히 시들 거리는 모습은 절대로 올해 여름에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자연과 싸우려는 city water 의 무력함을 거의 매일 느끼는 것도 고통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낮에 일 순간에 쏟아진 ‘멋진’ 폭우는 일 순간에 이런 고통을 편안 함으로 순식간에 바꾸어 주었다. 이럴 때 Mother Nature의 여성형은 오늘 오후에 더욱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은 준다. 역시 Nature는 fair한 것이다. 감사, 감사..

 

2016-07-06 12.27.19

 

2016-07-06 12.27.01

 

Fr. Miguel, new pastor

Fr. Miguel, new pastor

¶ Mercy or Conspiracy? wife와  family가  있는 주임신부 부임: 드디어 그날이 오늘 아침에 갑자기 왔다. 결혼한, 부인과 자식 그러니까 자기만의 ‘단란한’ 가정이 있는 주임 신부님의 첫 주일미사가 있었던 날.. Father Miguel.. Spanish full name이 너무 길어서 가급적 first name 이자 영세명인 Miguel로 불러달라는 50대의 건강하게 보이는 새로 부임한 주임신부님.. 제일 염려했던 Spanish accent문제는 완전한 기우.. native, full American accent로 주일 첫 부임 미사를 자유자재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설득력 있게 끝냈다. 그러니까.. 첫 인상은 완전한 pass였다. 몇 년이나 계실지는 모르지만 그런대로 안심을 한 것이다.

그것까지는 문제가 없지만 제일 우리의 관심사요 염려는 역시 ‘기혼 신부‘라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다. 아주 ‘자신 있게’ 30년 역사의 wife와의 결혼생활을 언급을 하는데.. 성실한 것을 강조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런 기정사실을 받아 들이라는 호소인가? 모르긴 몰라도 ‘인상은 좋았어도’ 이 wife와 가정이 있는 Roman Catholic priest를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일 듯하다. 최소한 얼마 동안은.. 우리는 이미 한달 이전에 이 신부님에 대해서 다 알아보고 심리적인 대비를 하긴 했지만, 이런 것을 잘 모르고 오늘 처음 알게 된 교우들은 아마도 크게 놀랐을 것이다.

오늘 우리 둘이 같이 느끼는 것, 분명한 것은 이것이다… 세상이 변하고 있고 그것도 빠르게 변하고 있고.. 항상 깨어서 대비하라는 말씀을 잊지 말라는 것 바로 그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이 교황 Francis의 big Mercy agenda중에 하나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니까 계획적으로 ‘밀어 부치는’ 바티칸의 주도에서 우리 대주교도 그것에 따른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mercy를 너무나 강조하다 보면 신앙 교리와 교의 敎義의 경계선에 자칫하면 실수를 하거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도 있기에 항상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심지어 교황이 homosexual 들에게 ‘사과’를 했다는 ‘억측과 conspiracy theory’도 나도는 이때.. 이번에는 결혼신부가 ‘전통 보수’의 아성인 East Cobb에 부임.. 우리들이 심려는 전혀 불가능한 추측은 아닐 듯 하다. 모든 ‘교회를 떠난 무리’들을 다시 불러 들이는 현 교황의 염원이 이런 식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람직한 부류가 아니더라고 교회만은 당신을 사랑한다.. 그것 아닐까? 그것이 mercy의 정신이라면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생각도 서서히 그것에 맞추어가야 할 듯 하다. 덥기만 한 Independence Day 전날, 조금은 가라앉는 듯한 심정이다.

 

 

피하고 싶은 사람들:  Persona Non Grata, 피하고 싶은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이것은 그야말로 case by case인 case이지만.. 그래도 일반론 一般論은 있을 듯하다. 정도의 차이도 중요하다. 얼마나 피하고 싶은 가 하는 것.. 우리도 인간이기에 예외는 아니고.. 피하고 싶은 ‘인간’들이 있고, 그것에 슬기롭게 처신하는 것, 생각하고 노력한다고 자부하지만 한마디로 괴롭다. 생각만해도 싫은 것이다. 이것도 mercy mercy하면 할 말이 없지만 억지로 mercy 를 베풀고 싶지 않은 것이 문제다. 그들을 미워하는 것인가.. 하면 반드시 그것도 아니다. 다만 안 보고 살면 너무나 행복하다는 것 뿐이다.

우리에게 그들의 이름은 persona non grata.. 그러니까.. 기피인물 인 것이다. 지난 수 년 동안 이들이 ‘사라진 것’은 정말 우리에게는 기적과 같은 ‘성모님의 손길’이었다. 우리가 손끝 하나 들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기적적으로 ‘자멸의 길’로 들어가고 사라진 것일까?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가.. 시간은 흐르고 그들이 다시 꿈틀거리며 나타나기 시작하고 심지어 우리 앞에 나타나 스스로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고 요새 본당 ‘weekly bulletin’ 사진에도 그들의 모습들이 보인다. 어쩔 것인가? 이런 것들이 현재 우리들의 가장 심각한 challenge가 되고 있다. Mercy? Ignore? Shun? 어쩔 것인가?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이 뻔뻔할 수가 있을까? 크지 않은 ‘교회 공동체’이고 보니.. 아마도 안 보려 피하는 것은 조금 stupid한 것일 듯하고.. 연극을 하며 마주서서 웃는 것은 더더욱 싫고.. 우리의 희망은 역시 BVM1 밖에 없는 듯.. 몇 년 전에 보여 주신 기적을 다시 보여 주소서…

 

 

  1. Blessed Virgin Mary, 복되신 동정 마리아
Father's Day with a daughter

Father’s Day with a daughter

Father’s Day 2016… 어김없이 왔고 어김없이 간다. 별로 기다리지도 않았고 생각도 안 했던 올해의 ‘아버지 날’, Father’s Day.. 왜 그랬을까? 그저 불과 며칠 전부터 아하.. 이번 일요일이 그날이었지.. 한 정도였다. 손톱을 깎을 때마다 선물로 받았던 ‘손톱깎기 set‘, case에 적혀있는 희미해진 글자들: ‘Father’s Day 2001 FROM KIDS‘ 를 볼 때 마다 조금은 젊었던 나의 모습도 추억으로 간직한다. 아이들에게 기억이 되었던 나의 아빠 모습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당연히 있어야 했던 가족의 하나, 자기들을 낳아준 협조자, 어렸을 적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었고, 낮 시간 동안 집을 비우며 돈을 벌어오고, 여행을 갈 때면 운전을 주로 하고, 무거운 것들을 들어주고.. 그 정도였을까? 지금은 그런 것들 보다는 조금 더 ‘멋진’ 것들이 기억에 남아있어 주기를 바라지만.. 글쎄..

나에게 Father란 말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올해는 그날이 되어서야 Father의 진정한 의미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올해는 그것도 조금 특이하다. 내가 나의 Father를 본 적이 없으니 내가 어떻게 Father로써 처신을 해야 하는지도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그저 김일성 공산당이 아버지를 끌고 갔다는 것과, 남아있는 바랜 사진 들.. 그것으로 ‘아버지 상’을 상상을 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엄마를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우리를 다정하게 들어 올리는 그런 아버지를 본 적이 없이 그저 영화나 다른 집을 통해서 상상하는 것, 왜 집에 아버지가 필요한 지도 잘 모르던 나, 지금 생각하면 참 불쌍하게 컸다는 자기연민에 빠지기도 하지만 불운한 시대의 소산이라고 생각의 끝을 접는다.

어떤 ‘아빠’의 추억을 아이들에게, 배우자에게 남기고 갈 것인가.. 그것이 이제는 나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우리 부모들 세대처럼 불운한 시대의 고생만 하며 일방적으로 사랑을 베풀어 주었던 ‘절대적인 존재’.. 는 이제는 나도 바라지 않는다.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의 아빠 상을 남겨주고 싶다. 아니 만족하며 사는 모습을 가급적 더 많이.. 남기는 것.. 훗날 자기 아빠를 생각하면 그저 “아빠는 우리를 즐겁게 해 준 것보다 아빠 자신이 더 행복했었다” 라고 생각하기를 원한다. 궁극적으로 ‘왜 아빠는 그렇게 훗날 행복한 모습으로 변했을까” 하는 이유를 생각하게 되기를 바라며..

 

 

¶ 첫 구역 ‘반’ 모임 shocker: 예외적으로 시원했던, Father’s Day 저녁에 구역이 2개의 ‘반’으로 나뉘어 진 후 첫 ‘반’ 모임이 있었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본당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된 ‘공식적인 구역조정’의 결과였다. 본당 구역체제는 변함이 없이 ‘마리에타 2구역’이지만 실제적으로 둘로 나뉘어 2개의 반으로 갈라진 것이다. 반의 이름이 재미있는데, Zip Code의 마지막 2 digits를 따와서 (300)62반, (300)68반이 되었다. 흔히 1, 2반 하면 쉽겠지만 조금 더 지역적인 특성을 살렸다는 점에서 이것도 나쁜 idea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한 구역에 ‘장’이 3명이나 된다.

모든 것이 신부님의 ‘승인’하에 이루어진 만큼 이 결과의 여파는 아마도 다른 구역에서 주시하게 될 지도 모른다. 너무 커다란 덩치 (너무 많은 구역가정) 라서 이것이 제일 쉽고 직접적인 해결책이었다. 우리가 속한 ‘반’은 62반이지만, 사실 우리는 68반으로 가는 것이 원칙이었다. 첫 번 예외를 명시한 조치에 우리는 예외적으로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62반으로 간 것이다. 2 반의 규모를 조금 더 비슷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사실 여기에는 잘 안 보이는 politic이 없을 수는 없지 않을까?

우리가 은근히 기대했던 것은 사실.. 62반에는 소위 말하는 trouble-maker가 안 보였다는 것.. 이곳에 나가서까지 일부러 싫은 사람들을 봐야 한다는 것, 생각만 해도 싫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나의 의도를 완전히 비켜가시고.. 그곳에서 ‘다시’ 안 보아야 할 인물들을 한 명도 아니고 2명 이상 이나 만나게 되었으니.. 아마도 나는 이곳에 가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눔의 시간’ 담당이 된 연숙의 입장을 고려하니.. 나는 정말로 난처하게도 되었다. 부단한 생각과 기도 밖에 없다는 생각 뿐이다.

 

¶ 아~~ 시원하다 언제부터 시작된 ‘여름 전의 한여름 더위’ 였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만큼 갑자기 ‘당한’ 열대성 무더위에 머리조차 멍~ 해진 기분이다. 특히 새벽에 느끼던 찜찜하고 끈적거리는 듯한 머리 속.. 그것이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마도 열흘 이상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된’ 그런 것.. 하지를 며칠 안 남겨두고 한차례 한여름을 치른 것이다. 그러던 것이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조금 느낌이 달랐다. 시계를 보니 6시가 조금 넘었다. 부리나케 창문을 열고 공기를 마셔보니.. 와~~ 이것이 웬 떡이냐.. 습기가 완전히 빠지고 산들바람까지 불어대는 초가을의 아침이 아닌가? 이것이야 말로 웬 떡이냐..란 탄성이 나온다. 띵~~ 하던 머리가 갑자기 맑아지는 듯한 날라가는 느낌.. 아~~ Mother Nature여.. 이래서 살게 되어 있나 보다.

지겨운 일기예보를 안 보고 산 것이 몇 주가 되었나? “Donald  Duck쌍통”을 비롯한 또 다른 해괴한 뉴스들, 같은 식으로 이런 것도 안 보는 이상한 세월을 보낸다. News TV, outlet을 거의 피하며 나의 sanity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몇 개월째 그런대로 효과를 보고 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살다가는 나야 말로 cavemen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하지만 결론은, 요새 세상은 cavemen 쪽이 더 낫다는 것이라.. 문제가 없다.

6월도 훌쩍 반을 넘어간다. 새로니는 오랜만에 지루한 학교생활을 떠나  유럽여행으로 집을 완전히 잊은듯한 기분으로 3주 여행 중 2주째를 맞고 있다. 우리는 언제 온 가족이 여행을 같이 가보나.. 하는 바램이 항상 머리를 떠나지 않지만.. 그래.. 다 때가 있는 거다.. 지긋이 기다리면 된다. 특히 ‘조직신앙’을 떠난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돌아오는 그날을 기다리며, 그 때가 우리가족 여행의 적기 適期 라는 생각도 한다. 과연 그날이 올까? 기다리자.. 기다리자..

Vatican St. Peter's Square 에서

Vatican St. Peter’s Square 에서

 

¶ Ozzie Grounded 새로니의 ‘아들’ Ozzie, 3주간 여행 중 우리가 맡고 있다. Midtown condo에서 살던 기운이 왕성한 덩치가 큰 강아지, 다리가 유난히도 길어서 우리 집의 3′ 짜리 Tobey fence를 임시로 3′ 높여서 6′ Ozzie fence ‘사고로 뛰어 나가는 것’에 대비하는 등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Condo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mansion처럼 크게 느껴지는 우리 집에서 얼마나 뛰고 싶을까.. 오는 날부터 지겹게도 더운 바깥으로 나가자고 하루 종일 졸라대며 우리를 괴롭히더니.. 결국은 사고를 냈다. 우리가 없는 동안, Publix fried chicken, 먹고 버린 것, 쓰레기 통을 열고 모조리 먹은 것이다. 뼈 투성이의 그것을 흔적도 없이 다 먹은 것이다. 작은 뼈들을 잘못 먹으면 큰일이 난다고 들었기에 우리는 혼비백산, 걱정을 했지만..  큰 문제가 없는 듯 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국은 strict하게 하는 것으로 정하고 완전히 하루 종일 ground를 시켜 버렸는데 이것이 아주 큰 효과를 내서 이제는 아주 얌전하게 우리 집 분위기에 적응을 하고 있다. 하기야 그 동안은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왔기에 너무나 ‘풀어 주었던’ 것이 문제였다. 그런 것 말고는 2주를 우리 집 개처럼 Tobey와도 잘 지내고 고양이 Izzie의 territory도 잘 지켜주고.. 문제가 거의 없다. 날씨가 시원해져서 이제는 grooming도 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새로니가 돌아오면 이 녀석이 자기 엄마도 몰라보고, 혹시 누군가.. 하는 것이 아닐까, 재미있는 상상도 해 본다.

guest인 Ozzie와 나란히 누워 있는 Tobey.. 모습이 너무 좋다

guest인 Ozzie와 나란히 누워 있는 Tobey.. 모습이 너무 좋다

 

Happy Note, Central A/C humming again! 올 들어서 제일 더운 거의 5일간 아래층 에어컨이 없이 살았다. 아래층은 낮에 잠깐 에어컨이 나올 정도지만 그래도 음식을 하거나 하면 83F 까지 올라가고 그 여파로 위층의 에어컨이 overworking 을 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며칠을 살고 보니 예상보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급하게 order했던 condenser fan motor, run capacitors, 그리고 제일 필수적인 tool, Fan Blade Puller가 하나하나 씩 도착을 했고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땀을 폭포처럼 쏟으며 repair mode로 돌입, 천신 만고 끝에 결국은 다시 에어컨이 돌아가게 되었다.

이것은 사실 ‘이론적인 것이 거의 없는’ 거의 mechanical work에 불과했지만 그 과정에는 정말 surprise 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서 성공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였기에 나는 더욱 stress를 받았다. 제일 나를 괴롭혔던 것은 망가진 fan motor에 완전히 녹으로 붙어버렸던 fan blade를 빼 내는 일이었다. 그것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그 fan blade가 망가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만 ‘전문적’으로 빼 내는 tool이 ‘발명’이 되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써야 했는데.. 그것 역시 automatic이 아니고 완전히 ‘완력 腕力’이 필요한 것, 평소에 운동을 안 했으면 아마도 거의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천신만고 끝에 결국 그것이 빠져 나오고 새 motor에 끼운  후에는 간단하지 않은 electrical wiring까지.. 휴~~~ Power Switch를 킨 후, 다시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와 찬 바람이 느껴질 무렵에는 나는 거의 완전히 쓰러지는 느낌이었는데, 피곤함 보다는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만약 pro service를 받았으면 얼마나 charge를 했을까? 아마도 최소$700~$800 정도였을 것이다. 나의 이 job의 total expense는 $100 정도였으니까.. 최소한 $600 정도는 save한 셈이다.  비록 두 식구가 사는 집의 가장이지만, 집안의 환경에 대한 책임감은 정말 무거운 것이었고 그것이 주는 stress역시 상당한 것.. 하지만 기대했던 결과는 언제나 모든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는 것.. 그것을 바라며 땀을 흘렸던 지난 주의 한가지 happy note가 되었다.

 

Brand new condenser fan motor

Brand new condenser fan motor

Magic tool, blade puller: 드디어 fan blade가 빠졌다

Magic tool, blade puller: 드디어 fan blade가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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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침,  ‘소리 없이’ 사라졌다!  우리 집 backyard shed 에서 출산 후에 계속 우리 집 backyard에서  살던 feral shed cat family (1 mom + 4 kittens)…  그날 하루 종일 섭섭하고 우리를 우울하게까지 했던 ‘그 귀여운 녀석들’..

하지만, 그 다음날 아침 새벽에 쓸쓸한 심정으로 shed에 가보니.. ‘모두’ 돌아와 있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일까? 암만 추측을 해도.. 그들이 어디에 ‘하루 종일’ 갔다 왔는지 알 수가 없다. pet 특히 cat behavior의 ‘전문가’ 인 나라니에게 물어보니, 아마도 주변을 explore를 하려고, kitten들을 ‘훈련 시키려’ 외출을 했을 것이라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떻게 거의 24시간을 밖에서 보냈을까.. 먹이는 어떻게 해결했을까?

 

하지만 그런 궁금증 상관없다. 돌아온 것만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우리 집 식구가 돌아온 듯한 기분인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안 떠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 우리 집을 완전히 떠났다가.. 마음이 바뀌어서 완전히 돌아온 것이 아닐까? ‘공짜’ 먹이가 ‘보장’이 된 곳을 쉽게 떠날 수가 없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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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이들이 밖에서 ‘활발하게 노는’ 모습을 back porch 안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것이 즐거움이 되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들, 4마리의 모습이 다 다르고, 크기도 차이가 나기 시작하고, 활발한 정도도 다 다르다. 제일 활발한 녀석은 이제 shed옆에 붙어있는 높은 나무를 기어올라 shed roof까지 올라가 그곳에서 놀기도 한다. 제일 작은 두 녀석은 자기의 모습이 비슷함을 알았는지 서로 껴안고 누워있기도 하는데.. 그들의 모습은 정말 너무나 귀엽다.

문제는 이들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하숙’을 하는 셈인가.. 아니면 우리 집을 결국 떠날 것인가?

 

결국, 의견들을 종합하면 아마도 시간이 되면 엄마가 떠날 것이라고, kitten들을 뒤로 두고.. 그런 모습을 상상하는 것 그렇게 어렵지 않다. 동물들은 거의 모두 그렇게 살지 않는가? 자식들이 자립할 때까지 보아주고 떠나는 것.. 인간도 거의 마찬가지니까. 아니면.. 이 가족이 모두 이사를 갈 수도 있다. 그러니까, 하루 아침에 또 없어져서 안 돌아오는 것이다. Case마다 다르니까 자신은 없지만, ‘아마도 당분간’, 식량이 풍부한 이곳에 계속 머무를 수도 있고..

 

우리가 해 주어야 할, 제일 중요한 일은: 이들의 ‘불임수술: neutering, spaying‘이다. 다시는 이들이 kitten을 더 못 낳게 하는 일, 이것이 불필요하게, 비 인간적으로 이들을 ‘죽일 필요 euthanasia’가 없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Internet을 찾아보니.. 이것도 하나의 ‘사회적 정의 운동’으로 되어서.. 정말 많은 사람들, 특히 cat lover 들이 참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작은 딸 나라니도 그런 쪽에서 한 몫을 하고 있었다. Kitten들은 최소한 6개월이 되어야 불임수술을 할 수 있다고 하니까 시간이 조금은 있는 편이지만, 문제는 mommy cat이다. 그 녀석, 또 임신을 하면 문제가 아닌가? 그 녀석은 원래 밖에서 살던 녀석이라 trap하는 것도 큰 일이라.. 우리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이 kitten들에게 adopt family를 찾아 주는 것이다. 특히 제일 귀여운 이 때에 이들의 입양 chance가 높을 것 같다. 그래도 주위에 만나는 사람마다 알리고 있지만, 글쎄.. 예상보다 이 것이 쉽지 않다. 모두들 그렇게 바쁜지.. 특히 한국사람들은 그렇게 미국에 오래 살았어도.. 전통적인 고양이에 대한 allergy가 있는 모양이다. 개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 이곳의 추세도 모르는가? 먹이와 litter box만 있으면 거의 ‘공짜’로 키울 수 있는 것인데..

 

 

¶  Kitten family gone: Backyard shed에서 태어난 4마리 kitten과 엄마 가 갑자기 오늘 아침부터 보이질 않았고, 하루 종일 밥과 물을 살펴보아도 없어지질 않고.. 나의 느낌이 이 5가족이 사라진 듯 하다. 우리 집에서 낳은 4마리 아기 고양이들과 엄마가 모두 귀신같이 사라진 것이다. 그 동안 밥을 엄청 먹기에 거의 바닥이 난 고양이 밥을 사러 내일 Costco에 가기로 계획까지 세웠는데.. 어떻게 이렇게 우리 집을 버리고 ‘이사’를 갔단 말인가?

너무나 화창하고 가을같이 서늘한 일요일, 비가 그친 후 다시 backyard에 나가서 deck, grape trellis 등 일을 하였지만 계속 이 5 고양이 가족이 돌아오나 shed쪽에 신경을 썼지만.. 그렇게 뒹굴며 놀았던 shed 옆 마당은 고요하기만 하다. 너무나 기분이 이상한 나 자신에 내가 놀란다. 몇 주 동안 그 애들 밥을 부지런히 주며 보살폈던 하루하루가 선하게 머리에 떠오른다.

왜 갔을까? 왜? 이것이 출산 후의 고양이 일가의 습성일까? 일단 kitten들이 건강하게 크면 이렇게 낳은 곳을 떠나는 것일까? 알 수가 없다. 우리의 추측에는 어제 새로니의 pet dog, Ozzie가 들려서 backyard에서 짖어대며 떠들어 댄 것이 화근이었을까?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한 mom이 용단을 내려서 떠난 것일까? 너무나 서운한 마음, 괴롭기까지 하지만, 다른 편으로 생각하면 그래도 정성스레 먹이와 shelter를 제공한 우리에게 ‘감사’하며 떠났을 것이라는 ‘억지 희망’을 갖는다. 언제라도, 먹이가 떨어지면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  New pastor shock: 오늘 모처럼 동네 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 주일 미사를 보러 갔다. 우리의 지정석이 있고 그 주위의 교우들 이제는 거의 고정적으로 아는 사람들이다. 아는 얼굴이 안 보이면 그래도 관심을 가져줄 정도가 되어, 그야말로 정든 ‘미국 본당’의 역할을 유감없이 하는 곳이다. 3주 전에 Irish pastor Father Darragh Griffith 가 본당을 떠난다고 발표를 해서 모두 깜짝 놀랐다. 하지만 10년이 넘게 주임신부로 계셨으니 (50세가 넘은 젊은 신부) 사실 크게 놀랄 것은 없다. 하지만 10년 이상 있었으니 고운 정 미운 정이 다 든 것이 문제다. 6월 초에 떠나게 되고 Norcross (Peachtree Corners) 에 있는 본당으로 가신다고 했다. 먼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서 사실 조금은 덜 섭섭하기도 했고, 새로 오시는 주임신부는 누구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오늘 주보를 보니 드디어 새로 오는 주임신부가 소개되어 있었다. 사진과 간단한 약력을 암만 보고 읽어도 시원스럽지 않은 점들이 있었다. ‘전통적인 신부님의 약력’이 아닌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나? Atlanta Metro에서 가장 conservative한 ‘동네’인 이곳 East Cobb에 Cuba 출신인 Father Miguel.. 정말 이제 Irish power는 사라지고 있는가? 가장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얼굴이나 Hispanic 등이 아니고 Greek Orthodox Melkite background란 것이다. 기억에 Melkite 쪽은 celibacy (독신) 제도가 없는.. 그러니까 성공회처럼 결혼을 하고 가정이 있는 신부라고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집에 와서 부리나케 googling을 해 보니..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이 새 주임신부님.. 정말 colorful한 인생, 신앙 여정의 소유자였다. Cuba 에서 온 망명인사의 가정에서 자라고, 개신교 (침례교) 출신에다가, 다음에는 Episcopal Church (성공회)의 신부가 되더니, 이제는 Melkite로 변신, 결국은 Roman Catholic으로 오긴 했지만 Melkite의 신분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우리 둘은 이 ‘난감한 소식’에 아연실색.. 어쩔 것인가? Wife가 있고 가정이 있는 천주교신부.. 라니.. 암만 생각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신부님이 아닌 것이다. 대주교가 미쳤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가 우려하는 것들이 다 이유 있게 설명이 될 것이라는 희망은 가지고 있다.

 

 

이번 주 수요일 저녁, 초여름 같이 덥던 날 저녁에 오랜만에 마리에타 2구역 미사엘 갔다. 너무나 오랜만에 구역미사엘 가는 기분이 들어서 기록을 찾아보니 마지막으로 갔던 때가 작년 10월 달 C 마르코 형제 댁에서였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그 이후에 구역미사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랬다면 우리는 가지를 않았던 것이다.

이번에는 가급적 구역 미사에 가리라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 이유 중에는 (1) ‘비정상적으로, 미친 듯이’ 비대해진 구역이 재 조정되는 사실(2반으로 나누임)이 신부님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발표가 되는 중요한 자리라는 점, (2) 평소에 친근하게 느껴지는 돈보스코 형제 댁에서 열린다는 점, 이 포함되어 있었다.

 

몇 년 전부터 거대, 비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나간 그야말로 sprawling suburb 처럼, 온갖 예상치 못한 문제들을 안고 있었던 이곳을 나는 멀리서, 가끔은 가까이에서  ‘인과응보 因果應報, 자업자득 自業自得‘의 간단한 진리를 터득하고 터득한 터였다. 이것들은 모두 사람이 만든 재해였다. 저절로 생긴 재해가 아닌 것이다. 그 문제의 핵에는 몇몇 안 되는 사람이 항상 있었고, 그렇게도 우리는 멀리서 ‘무언 無言의 경고’를 했지만 self-correction할 시기를 놓치고, 결국은 갈 때까지 간 것이다. 뒤에 생각해 보니 역시 ‘진정한 기도’가 빠진 group의 말로가 아니었던가?  문제 핵심의 장본인은 결국은 피해자로 (a.k.a, persona-non-grata) 전락을 하고 한 동안 떨어져 나간 듯이 보였고 그 결과 겉으로 보기에는 불안한 평화, 잠잠해진 듯 했다. 하지만 그 문제의 핵은 요사이 다시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하고, 다시 이 group 앞날은 불투명해질 수도 있는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는 ‘불어난 덩치’에 의한 문제는 비교적 직접적인 조직적인 방법으로 풀릴 수 있겠지만, ‘문제의 핵’에 의한 문제는 그 핵의 중심 인간들이 바뀌지 않는 한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결론이다.

 

구역의 비정상적인 덩치에 의한 문제는 이날의 미사에서 신부님의 sanction 비슷한 조치로 공식화 되었고, 거의 순간적으로 기본적인 모임에 관한 문제 logistics 는 풀린 셈이 되었다. 훨씬 전에 이런 조치로 문제를 풀 용단을 내리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지만, 이제라도 단계적으로 풀어나간 새 구역장단들, 의미 있고, 큰 일을 했다고 본다. 

이제부터는 bubble-era mansion같이’엄청 커다란’ 집들에 비해서 depression-era 를 연상시키는 작은 우리 집에서도 구역모임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감회와 감개무량한 심정까지 들 정도가 되었고, 조금 더 오붓하고, 조용하고, 차분하게 신앙중심적인 소 공동체를 상상하는 것, 작은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이날 한가지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이날 host, 돈보스코 형제가 연세대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새카만’ 후배 동문이었지만 반가웠다. 어떻게 내가 연세대 출신임을 알았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궁금할 것은 하나도 없다. 알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니까.

p.s., 이 모임에서 우리 둘은 jumbo-size 양주 공급 덕분에 어쩔 수 없이 외도를 한 셈이 되었고 다음 날, 하루 종일 nasty hangover로 고생을 해서 쓰라린 교훈을 얻은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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