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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Sawyer Ave 중앙교회 옆 Chicago, 1974

Sawyer Ave 중앙교회 옆 Chicago, 1974

박현식, 왕진한, 채 영세, 문경삼…

정말 오랜만에 써보는 이름들이다. 이들에게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모두 한국 남자들이다. 분명히. 그 다음은.. 내가 한때 알았던 사람들, 나와 나이들이 엇비슷한 사람들, 마지막으로 1974년 시카고 중앙(한인)교회의 기숙사에서 잠깐 같이 살았던 분들이다.

박현식 형은 나의 중앙고등학교 1년 선배다. 그러니까 중앙고 56회 졸업생이다. 왕진한씨 (형이라고 하기는 나이차이가 난다)는 출신 학교에 관한 기억은 거의 없다. 다만 Ohio주의 University of Dayton의 graduate school로 한국의 어떤 회사에서 유학을 보낸 정도만 기억이 난다.

채 영세 씨는 어떤가.. 나이가 나보다 아마도 두~세 살 정도 위가 아니었을까? University of Texas, Austin에서 Master’s degree를 받고 시카고로 왔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경삼씨, 나이가 아마도 채 영세 씨보다 조금 더 위였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이렇게 지난 다음 생각해 보면 거의 같은 나이였다고 보는데 맞을 것이다.

그 당시 70년대 유학생들은 요새 기준으로 보면 거의가 ‘고학생’ 수준일 것이다. 여름방학 때는 거의 예외 없이 대도시로 나와서 일 (그러니까 아르바이트)을 해야만 했다. 물론 예외도 적지 않았다. 그 당시 한국의 경제수준으로는 $$를 편하게 쓸 처지가 못되었다. 그래서 시카고 같은 대도시로 나오게 되면 거처가 제일 큰 문제였을 것이다.

나는 그 당시 Lincoln AvenueNorth Clark Street(at Montrose St.)에 있었던 서울식당에서 dishwasher를 했다. 거처는 Cornelia Ave에 있었던 조그만 한인교회의 지하실을 이용했다. 그곳은 정말 암굴을 연상시킬 정도로 습하고 어두운 곳이었다. 넓은 지하실을 칸막이를 하고 살았는데 거기에는 유학생은 한 명도 없었고 대부분 혈혈단신 초기이민을 온 청년들과 여자도 한 명이 있었다. 물론 그곳은 어떤 선배들이 가르쳐 주어서 가게 된 것인데 예상외로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서울식당 주인 분이 다니시는 시카고 중앙교회에 비슷한 기숙사가 있다고 소개를 시켜 주셨다.

중앙교회 유학생 기숙사 Chicago, 1974

중앙교회 유학생 기숙사 Chicago, 1974

West side에 Lawrence AvenueSawyer Ave가 만나는 곳에 있었는데 이 교회가 전번 것 보다 우선 밝고 넓었다. 그리고 지하실이 아니고 이층에 위치해 있었다. 아마도 여름방학마다 몰려드는 유학생들을 이곳에서 자취를 시켰던 듯 싶었다.

서울식당 주인 분의 ‘빽’으로 그곳으로 이사를 갔는데 거기에는 작은 규모이지만 resident manager까지 있었다. 알고 보니 중앙고 1년 선배 박현식 형이었다. 그래서 이런 조그만 ‘인복’으로 아주 재미있고 편한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

박현식 형은 알고 보니 이영재 목사님과 친척벌이 되었다. 항상 웃고 성실한 타입의 선배였다. 그 형은 그 당시 시카고 downtown 바로 남쪽에 있었던 역사 깊은 Chicago Tech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방이 비교적 커서 한방에 여러 명이 살았다. 나의 방에도 여러 명이 살았는데 그 중에 한 분이 바로 왕진한 씨였다. 한국의 회사에서 유학을 보내준 아주 행운아였다. 아마도 그때 공부가 University of Dayton에서 끝이 나서 (학위를 위한 공부는 아니었던 느낌), 일단 시카고로 온 듯 싶었다.

그리고 곧 바로 채 영세 씨와 문경삼 씨를 그곳에서 만났다. 둘 다 아주 clean-cut & smart한 사람들이었다. 채 영세 씨는 University of Texas, Austin에서 Electrical Engineering Master’s degree를 받고 일단 온 것이고 문경삼 씨는 확실 치는 않지만 어디선가 undergraduate course를 마치고 Iowa State University graduate school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문경삼씨의 전공이 무엇인지 잊어 버렸지만 이공계는 아니었던 듯 싶었다. 왜냐하면 Iowa State University에는 최소한 engineering course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 기억이 난다.. 아마도 정치학이 아니었나 싶다. 이 형은 인물이 아 주 좋아서 같은 곳에 살던 여자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1974년 여름은 그곳에서 심심치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나는 6일 동안 거의 12시간을 서울식당 부엌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릴만한 시간이 별로 없었다. 밤 11시 경에야 기숙사로 파김치가 돼서 가곤 해서 가끔 맥주를 마시며 잠깐 어울릴 정도였다.

그 해 여름에 아마도 8.15 광복절 날, 육영수여사 저격사건이 있어서 모두 모여서 같이 TV를 보기도 했다. 그 당시 고국의 소식은 이런 식으로 아주 나쁘고 커다란 사건이 터져야 볼 수가 있었다. 그 외에는 한국은 이곳에서 뉴스 감이 되지를 못했다.

채영세씨 with Dodge Duster, Chicago 1974

채영세씨 with Dodge Duster, Chicago 1974

채 영세 씨는 아주 부잣집 아들이라서 사실 일을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 당시 유학생으로 ‘새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는데 채 영세 씨가 Dodge Duster란 새 차를 몰았다.그런데도 일을 했다. 나는 그게 참 보기가 좋았다. 큰돈은 집에서 받았겠지만 그렇게 푼돈이라도 벌어서 쓰는 것을 보면 그 사람 됨됨이가 짐작이 됐다.

그 이듬해 여름에 잠깐 한국에 갔을 때 다시 만났는데 알고 보니 나의 절친한 친구 박창희와 같은 산악회 (요델 산악회) 회원이었다. 그래서 더 반가웠다. 그 이후론 소식이 끊어졌는데 박사학위를 계속하지 않았던 듯 싶다. 아버님이 커다란 공장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이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아마도 경영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을 까 하는 생각이다.

박현식 형은 같은 곳에 잠깐 살았던 여성을 만나서 곧바로 결혼을 했다. 참 일찍도 결혼을 한 셈이다. 아이도 낳고 재미있게 사는 사진을 한번 받아 보고는 연락이 끊어졌다. Iowa주로 이사를 갔다고 했다. 나중에 동창회를 통해서 알아 보아도 그 형의 정보는 거의 없었다.

왕진한 씨도 그 후에 한국에 갔을 때 인천에서 어떤 여성과 결혼을 한 것이 마지막 뉴스가 되었다. 문경삼 씨는 그보다 훨씬 전에 소식이 끊어져서 학위를 받았는지, 귀국을 했는지 전혀 idea가 없다. 가끔 1974년의 시카고 Sawyer Avenue를 회상해 본다. 서울식당의 부엌, 그곳에서 하루 종일 이야기 꽃을 피우던 Mrs. 안, 식당주인 아저씨와 무용가 출신의 wife 세란이 엄마, 참.. 잊고 싶지 않은 추억들이다. 이 좋은 InternetGoogle의 시대에 한번 연락 이라도 돼서 어떻게들 살았는지 궁금증을 조금 푸는 것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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