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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랑의 지도 – 고 마태오

또 우연히 (사실 근래 들어서 우연이란 말을 피하려고 하지만)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에 갔다가 성물방/도서실 (성물 판매와 도서를 같은 방에서 service하는) 을 기웃거렸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그곳에 있는 ‘고서’ 같은 냄새를 풍기는 진열된 책들의 제목들.. 또 우연인가.. 몇 년 전에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  서울 재동학교 동창, 김정훈 부제의 유고집을 찾았을 때처럼 이번에는 사랑의 地圖 – 고 마태오 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우연인지 아닌지는 현 시점에서 알 길이 없다.

 

 고 마태오, 실제 이름은 고종옥 신부님.. 오래 전의 가물거리는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난다. 오래 전, 그러니까 1982년 경이었던가.. 우리 부부가 콜럼버스(오하이오) 한인성당(공동체)에서 왕영수(프란치스코) 신부님으로부터 세례를 받던 해, 그 무렵이다. 그 해 부활절에 세례(그 당시는 영세라고 했다)를 받았는데 그 한달 전쯤인가, 세례를 받기도 전에 연숙 홀로 ‘용감하게도’ 신시내티 에서 열리는 성령세미나엘 갔었는데 그 때 왕 신부님은 물론이고 캐나다에서 내려오셨다는 고 마태오 라는 ‘건강하고 풍채가 좋았던’ 신부님도 하셨다. 물론 나는 나중에 연숙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지만 단체사진에서 그 분의 모습을 보았다.

 

서부 전선 ‘사천강 전투’ 때, 신부 되기를 결정한 직후, 1952

그러면서 이 ‘전설적인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를 책을 돌려보며 듣게 되었다. 아마도 그때 돌려서 본 책이 바로 오늘 내가 찾고 빌려온 ‘사랑의 지도’가 아니었을까.. 100% 확신은 없지만 거의 분명하게 나는 책 뒤 표지의 사진, ‘멋진 sunglass를 끼고 호탕한 미소를 짓는 군인‘의 모습을 기억한다. 당시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지만 연숙으로부터 들었던 것들, ‘6.25 동란을 겪는 영화 같이 파란만장한 과거, 사랑하던 여성, 기적같이 신부가 되었던 이야기’ 모든 것들이 그야말로 어떤 영화를 보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들.. 그러고 나서 이 고 마태오란 이름은 30여 년의 긴 인생역마차 바퀴에 치어 나의 관심권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잊혀졌다가 홀연히 나의 눈앞에 나타났다.

 

Googling으로 본 고 마태오 신부님, 이미 돌아가신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확실하게 2004년 12월 31일에 선종하셨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풍채 좋았던 몸집’에 걸맞게 역시 고혈압과 당뇨병으로 고생하시고 75세란 ‘길지 않은’ 생을 마치신 것, 타국 땅 캐나다의 어떤 양로원에서 가셨다는 사실이 그렇게 가슴을 아프게 한다. 유명인사 라고 해도 생각보다는 쓸쓸히 가신 것 같아 더욱 가슴이 저려온다. 은퇴사제들의 은퇴 후의 option이란 사실 거의 이런 것인가? 그래도 긴 세월 불치병으로 고생하신 것이 아닌 것 같아 그나마 위안이라고 할까?

 

고 신부님의 저서를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기에 나는 조금 가슴이 설렌다. 하나, 하나, 하나.. 내가 겪지 못했던 조국의 근대사를 신부님의 눈으로 다시 겪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평화통일을 원하셨다는 것은 이미 가끔 짧은 소식을 통해서 들을 기억이 있다. 그런 노력과 현재 모국의 돌아가는 ‘꼴’을 비교해서 생각하면 정말 한숨만 나온다.고 마태오 신부님의 하느님은 도대체 현재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인가?

 

이제 이 책을 typing (keyboarding)으로 읽기 시작하며, 일제시대와 6.25동란에 얽혔던 생생한 증언을 소설 같은 이야기로 내가 상상하던 당시의 상황과 비교할 것이다. 그러면서, 나의 1950년대 조국의 모습과, 1980년 초 우리가 세례를 받으며 하느님을 찾고 있었던 시절을 회상할 것이다. Reading by Typing 은 난독, 정독, 완독에 비해서도 훨씬 시간이 더 든다. 그래도 나의 정신건강 상태에 따라 2달 정도 걸릴 것으로 희망을 한다. 이 ‘고생’이 끝나면 그래도 online, softcopy가 ‘영구히’ 남기에 더욱 분발할 것이다.

 

1982년 3월경 신시내티에서 열린 성령세미나, 고마태오, 왕영수 신부님 그리고 최옥진 데레사 모두 한 자리에.. 왼쪽 제일 뒷쪽에 연숙, 고완석씨 등의 얼굴도 반갑다.

수녀님 옆에 있는 연숙, 이 수녀님은 양수녀로 나중에 아틀란타 성당에서 신부파, 수녀파로 싸우던 그 장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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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주일 2016

¶  오늘은 Catechism, 천주교 교리교육, 교리반, 교리교사 등에 관련이 된 Catechetical Sunday, 한국어로는 교리주일 정도가 될 듯하다. 오늘 주보를 보고 오늘이 바로 교리주일임을 알았다. 2주 만에 우리의 ‘동네 본당’ Holy Family에서 주일 미사 참례를 하였다. 10시 미사에서 낯익은 반가운 얼굴들이 이곳 저곳에 보이고 인사를 나눈다. 세월이 무언지.. 이들 전혀 얼굴, 문화, 나이 다른 교우들, 특히 Irish쪽의 푸른 눈의 수려한 모습의 ‘아줌마, 아저씨, 할머님’들, 어쩌면 그렇게 정이 들었을까? 이름도 성도 잘 모르지만 이웃 친척처럼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잠시 안 보이면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근래 평일미사에서 너무나 자주 만나는 Father Joseph Morris, 예의 극적인 언어로 마이크 필요 없는 우렁찬 목소리가 일요일 아침을 압도한다. 이 신부님은 모습 자체가 liberal 한 분이지만 60을 훨씬 넘는 나이에 그런 성향은 드물지 않을까? 모습자체가 나이에 비해서 훨씬 젊은 이 신부님, 아마도 ’60년대의 아이들 baby boomer‘ 일지도 모른다. 오늘 강론은 생각할 기회를 많이 준 주제다. ‘하느님을 사기 칠 수 있는가?’ 하기야 오늘의 복음말씀(Luke 16:1-13, 루까복음)은 처음에 이해가 전혀 되지를 않았다. ‘사기치는’ 시종이 주인으로부터 ‘사기 쳤다고’ 칭찬을 받는 모습… 신부님 말씀이 이 대목은 성서학자들도 골머리를 썩는다고 했다. 예의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 반대가 되는 이 색다른 논리를 어떻게? 이 liberal한 사제 Joseph의 해석이 뒤따랐는데, 나는 그 뜻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의 제1독서는 Amos예언자가 ‘사기꾼’들을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복음말씀에서는 사기꾼 시종이 칭찬을 받는 내용이 나왔을까? 이것이 신비가 아닐까? 인간의 논리와 하느님의 논리는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 것인가? Joseph신부는 여기 나오는 시종이 예수님이고 주인이 하느님이라고 하는 묵상주제를 제시하였다. 처음에는 너무나 혼란스러웠지만 조금씩 정리가 되는 듯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대조적으로 매일 인터넷으로 받아보는 복음 묵상 글에서 신부 기경호 프란치스코 라는 분은 아예 이 사기치는 행위를 평하기를  ‘하느님의 빚을 받는 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에 슬기롭게 대처하듯이 슬기롭고 민첩하며 능동적으로 주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고 해석을 하고 있다. 분명히 ‘사기치는 것’이 ‘치열하게 세상을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동감이 안 간다. 글쎄요.. 더욱 혼란스럽습니다.

미사가 끝날 무렵 본당의 모든 교리반 staff들(주로 catechist 교사들)이 불려나가서 신부님의 강복을 받았다. 연숙은 현재 한국본당 순교자 성당 교리반 director를 맡고 있어서 느낌이 아주 달랐을 것이다. 어째서 같은 대교구 소속인 이곳에서는 교리반 교사들이 공적으로 강복을 받고 한국 순교자 성당에서는 아예 교리반 주일이란 말조차 없으니.. 일을 맡은 이상 헌신적으로 일하는 그녀지만 가끔 맥 빠지게 하는 일들이 있는 모양이다.  이곳 미사가 끝나자마자 그곳 본당 교리반 때문에 부리나케 혼자 순교자 성당으로 떠난 연숙의 뒷모습이 조금은 쳐져 보인다.

 

¶  오랜 만에 guitar를 손에 잡았다. 아니 3주 만에 case에서 꺼내본 셈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이렇게 몇 주 동안이나 기타 코드를 안 잡았던 것이 처음이었나.. 손가락 끝의 굳은 살이 벌써 얇아졌나.. 어찌나 손가락이 아프던지 불편하고 불쾌하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3주 정도면 암만 굳었던 손끝 살갗도 다시 원상복구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것으로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3주 이상 기타 치는 것을 쉰 적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기억에 이 정도로 손가락이 아팠던 기억이 없으니까..  요새 느낌으로 3주란 것은 시간이란 축에도 끼지 못하는 찰라 같은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나의 육신의 일부인 왼손가락 끝은 짧지 않은 시간을 느낀 것인가?

이 시점에서 지난 3개월 정도 group coaching을 하며 관계를 맺게 된 Six String Friends 기타 동호회를 다시 생각한다. 내가 guitar coaching을 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주었고, 덕분에 오랜 역사를 가진 내 ‘알량한’ guitar ‘실력’을 재점검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7번 정도 lesson과 coaching을 하면서 느낀 것은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의 커다란 차이’ 였다. 나의 현재 기타실력은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남과 비교를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엄청난 세월 동안 그런대로 꾸준히 기타가 나의 옆에 있었다는 사실, 때에 따라 꾸준히 즐겼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시도한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아는 것 가르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렵게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어휴~’ 소리만 나온다. 우선 배우는 사람들의 실력이 각양각색으로 3/4, 4/4 조차 구별할 수가 없는가 하면 4/4 는 숫제 5/4, 6/4로 리듬 감각, tempo감각이 예외적으로 둔한 사람도 있었다.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리 노래’ 실력들에도 각양각색이고.. 50~60대이므로 70/80 style의 곡들에는 큰 무리가 없었지만 문제는 어린 학생들이 아니어서 배우는 과정이 느리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몇 주나 몇 달을 예정하고 시작한 것이 아니고 open end로 ‘무작정’ 진행된다는 사실도 문제로, 그렇게 조급하게 배우려는 자세도 결여가 된 듯 보였다. 그래서 일단 지금이 중간 정도의 단계 mid-term정도로 보고 지금까지의 정도를 더 coaching을 하고 일단 phase out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래야 조금은 조급하게 열심히 노력을 할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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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ain Shower, rare sight: 이것이 무엇이냐?: 오늘 아침에 새벽에 일어나서 backyard의 deck로 어둠을 헤치고 맨발로 걸어나가 보니 느낌이 이상했다. 그 동안 완전히 잊고 살았던 그 느낌.. deck 바닥이 질척거리는 것.. 그것은 ‘물’이었다. 마르고 말라 수축을 거듭하던 deck floor가 아마도 놀랐을 것이다. 그것은 ‘잔잔히 내리는’ 이슬비였다. 한마디로 ‘이것이 웬 떡이냐!’ moment가 되었지만 오후에는 숫제 정말 오랜만에 보고 듣게 된 ‘소나기’가 쏟아졌다. 올 여름의 그 모든 더위가 한 순간에 싹~ 사라지는 순간이 되었다.

살인적인 맹더위도 놀랍지만 올해의 여름은 그야말로 double whammy였다. 맹더위에 겹친 가뭄, 아마도 기록을 깼을지도 모를 일이다. 9월 중순이 지나가는 이 시점의 느낌이 ‘이것은 가을이 아니다’ 라는 것.. 올해 이 지역 농작물들 모르긴 몰라도 피해가 컸을 듯 하고 우리 집도 마찬가지.. 연숙의 희망에 찼던 edible garden (victory garden), 정말 수확이 초라하기만 했고 나중에는 거의 포기한 상태.. 지나간 몇 해는 참 Mother Nature가 그렇게 인자롭기만 했는데 어찌 올해는 그렇게 심술궂은 모양을 했을까? Mother (Nature)를 인간들이 너무나 괴롭힌 것에 대한 보복이었을까?

우선 소음덩어리 에어컨 소리가 안 나는 것만도 날라갈 듯한 기분이다. 올해 에어컨 compressor fan을 교체하면서 소음의 강도가 높아져서 언제라도 에어컨이 꺼지는 아침에 손을 보려고 벼르던 것이 이제는 여름이 완전히 가고 있다. 그렇게 잔인하던 올 여름, 혹시 ‘평균기온을 채우려’ 올 겨울은 또 다른 살인적인 추위가 오는 것은 아닐지.. 올 여름의 electric bill은 보기도 무섭지만 그래도 이제는 ‘거의’ 끝이 나고 있음을 느끼기에 오늘 아침의 가랑비는 나에게는 너무나 달콤한 자연의 선물이 되었다.

 

 

¶  동갑내기, 동갑님네: 말만 들어도 가슴이 찌릿해온다. 최근 몇 주일 동안  YouTube로 간간히 즐겨 보아왔던 고국의 80년대 장수 長壽 농촌드라마였던 ‘전원일기 田園日記’의 한 episode에 ‘동갑님네’란 것이 나왔다. 어떨까.. 왜 나의 가슴이 찌릿한 것이었나? 동갑, 동갑이란 말, 요새도 쓰기나 하나.. 우리 때는 참 정겹던 말이었다. 특히 음력으로 계산한 띠 동갑은 더 정이 가는 말이었고 나와 같은 ‘돼지띠 동갑‘은 그 중에서 제일 나를 즐겁게 한다. 나를 이렇게까지 제일 반갑고 즐겁게 하던 이 말 동갑, 이국생활에서 이것은 사치중의 사치스런 말이 되었다. 이것을 별로 크게 신경 안 쓰고 모르는 척하며 하도 오래 살아서 그렇지.. 조그만 이렇게 생각을 하면 너무나 쓸쓸하고 심지어 괴롭기까지 하다.

고국에서 살았으면 동갑내기가 동창을 비롯해서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그렇게까지 동갑내기의 값어치가 높지 않을지도 모른다. 동갑이란 것, 무엇인가.. 같은 해 태어나서 같은 때 학교를 다니고 거의 같은 역사를 산 동류가 아닌가? 그러니까 거의 같은 시대관을 가진 값진 ‘친구’들이 아닐까? 특히 이곳에서는 동갑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 같이 어려워서 아주 가끔 돼지띠 동갑을 찾으면 그렇게 뛸 듯이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것도 근래에 나는 2명을 찾은 경험이 있었고 한 명인 현재도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행운을 맛보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돼지띠는 여성이라서 조금 거리감이 있다. 다른 남자 돼지띠는 나와 큰 인연이 없는지 몇 년 전에 영구 귀국을 해버려서 그 쓸쓸함은 생각보다 컸다. 70을 곧 바라보는 돼지띠 동갑들.. 6.25 민족비극은 직접 겪지 못했지만 그 여파의 피해를 톡톡히 보며 앞만 보고 달렸던 세대… 참 파란만장한 ‘인생 십자가’를 진 세대였다.

초복, 대서 가 멀찌감치 지나가고 드디어 중복을 갓 넘어간다.  이렇게 고국적인 냄새가 흠뻑 묻은 절기의 이름들: 소서, 초복, 중복, 대서, 입추 같은 것들.. 언제나 들어도 부드럽던 고국의 계절, 절기의 느낌이 그렇게 살아날까?  정작 옛날에는 ‘비과학적’이라고 거들떠도 안 보던 그 이름들을 지금은 아련한 기억의 선물로 즐긴다.

 

이런 이름들이 그런대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달력들에는 그런 것들이 거의 안 나오기에 완전히 잊을 수 있지만 다행히도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필수적인 지참 ‘활동수첩’에 그것이 고스란히 나오는 것이다. 하기야 레지오 마리애의 초 강대국인 대한민국의 단원수첩을 거의 그대로 베꼈으니.. 빠질 수도 없긴 하다. 처음에는 안 보이던 그런 절기 이름들이 이제는 나의 눈이 들어오니.. 무언가 나의 ‘가슴’이 많이 열린 모양이다.

 

중복이 지나가면 한국형 dog days들이 한창 지나가는 때이다. 그래서 보신탕을 이때 먹는지도 모르지만.. 지금 생각하니 참 ‘야만적’인 전통이 남았고, 먹을 것이 지천으로 쌓인 땅에서 아직도 이것을 먹는 것은 그것을 100% 증명하는 셈이다. 문화적이 차이라고 위선을 떨지만 그것이 그렇게 설득력이 있을까?

 

중복이 지나고 마지막 말복이 2주 쯤 남은 이 시점, 무척 덥다. 처음보다는 덜 덥지만 그것은 우리의 몸이 적당히 적응이 된 덕분이고 ‘과학적인 더위’는 거의 같은 정도로 매일 덥다. 이때를 어떻게 더위를 잊으며 빨리 보내나..  올해 피서 여행은 일찌감치 포기를 했기에 죽어도 집에서 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문득 생각나는 아련~한 단어: 납량.. 이란 말.. 한자로 쓰면 納凉 이다.

 

받을 納, 서늘한 凉. 입시지옥 속에서 달달 외웠던 한자 1000자 덕분에 아직도 기억이 난다. 글자 그대로 시원함을 주는(or 받는) 것들을 뜻 한다. 하지만 납량이란 말은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고 당시의 여름철 Radio, TV program에서 배운 것이다. 여름 이 맘 때쯤 되면 예외 없이 納凉物 이란 것을 내 보낸다. 그 시절엔 그 말의 뜻을 몰랐다. 하필이면 지독한 여름에 쓰는 말이 ‘별로 시원한 느낌이 없는’  납량일까.. 한 정도다. 납 이면 금속의 납 lead을 먼저 생각했으니까… 이제 알고 보면 이 걸맞지 않은 단어도 분명히 일제의 유물일 것이다.  일본 TV 프로그램 중에 이런 말이 자주 나온 것을 보았으니까…

 

방송계에서 납량물 이라는 것은 물론 ‘보고 들으면 몸이 서늘해 지는’, 그런 것들.. 거의 귀신에 관한 drama가 아닐까? 무서운 것을 듣거나 보면 상식적으로 더위를 잊을 수 있을까? 심리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이곳에 살면서 그 일본, 한국의 전통적인 귀신 납량물은 찾을 도리가 없지만 실제로 그런 것들을 보아도 이제는 하나도 무섭지 않으니 크게 시원함을 느낄 수도 없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솔직이 이제는 귀신이나 ‘보이는’ 영혼들, 하나도 안 무섭다. 그들의 ‘정체’를 이제는 대강 알게 되었고 한 방에 그들을 물리칠 계책도 가지고 있으니까.

 

몇 년 전부터 나의 납량물은 역시 ‘시원한’ 책이나 귀신이 안 나오는 무섭지 않은 비 전통적인 납량물이다. 책들은 물론 읽어서 시원해야 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의 평정감과 만족감을 주어야 한다. 시끄러운 피서지가 아니고 사람들을 피해서 찾아간 심심산중의 느낌을 주어야 한다. 올해 나의 여름 납량물은 2권의 책과 home server archive에 거의 십 년 이상 건재 해온, 두 가지 video 다. video는 오랜 전에 보았고, 불현듯 가끔 보기도 하는 대한민국 KBS의 걸작 documentary ‘역사 歷史 스페셜‘ series, 그리고 고전중의 고전, 중국의 대하 역사 drama ‘삼국지 三國志’. 그러니까 video는 모두 역사에 관한 것이다. 2권의 책은 몇 주전에 산, 과학자출신 신부 Fr. Robert Spitzer의 저서로 제목은: (1) New Proofs for the Existence of God, (2) God so Loved the world.  이 것들은, 조금씩 더위의 한 풀이 꺾이는 이 시점에서 시작해서 이번 여름이 다 가기 전까지 나에게 ‘시원함을 보내주는’ 즐거움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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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두 권의 책, 참 마음에 드는 cover design과 종이의 촉감 등도 그렇지만, 사실은 내용들이 너무나 기대가 된다. 근래에 나의 모든 관심을 끄는 분야가 바로 science & religion 인데 이 저자 신부님, 완전히 이 분야의 ‘뜨는 별’이라고 할까.. 물론 충분한 자격을 갖춘 ‘박학다식’하고 영성적인 사제(예수회)라 benefit of the doubt는 충분히 줄만 하다.

 

The New Proofs for the Existence of God  제목이 거창하지만 사실은 이 분야 apologetics의 전통적인 것에다가 최근 25년 사이에 밝혀진 (우주) 물리학, 철학 적 ‘발견’을 덧붙인 것이다. 특히 물리학 쪽인 Cosmology분야에는 원래의 Big Bang theory의 최 현대판인 contemporary Big Bang Cosmology를 비교적 기술적으로 다루었다. 예를 들면 bouncing universe, space-time geometry, quantum cosmology, The Borde-Vilenkin-Guth Theorem’s boundary to Past Time, Inflationary Cosmology, String Multiverse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또 다른 책, The God so Loved the World 이 책은 물론 이 신부님의 전공인 Science와는 큰 상관이 없는 영성적인 책이다.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도 왜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서 나타나셨나.. 하는 문제를 다룬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하느님이요 인간이신 예수, 특히 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다룬 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의 주제는 ‘사랑’이다. 왜 하느님이 사랑이신가 하는 것을 참으로 조직적으로 파 헤친 것이다. 무조건 믿을 것인가, 아니면 심각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고 믿을 것인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무조건 믿는 것보다 생각해 보고 믿는 것이 건강한 믿음이라고 생각하지만..

 

2016년 7월 24일, 봉헌을 위한 33일 준비기간 중 제12일째, 묵상 주제는: 생의 마지막 것들. 결국 12일 간의 ‘세속정신을 끊음’의 끝은 바로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생각과 묵상으로 끝이 난다. 오늘의 논제는 이것이다: 죽음은 한 번이고 그것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르기 항상 이것을 염두에 두고 살면 이 세상의 ‘헛된’ 것들에서 벗어난다.

 

a beautiful final sunset ..

a beautiful final sunset ..

 

이것은 우선 개인적, 사회적인 배경으로부터 시작해서 철학적으로 더 깊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영성적, 신학적으로 결론을 맺어야 하는 정말 거창한 화두요 주제다. 우리의 보이는 생의 결말이 죽음이라는 신비는 누구나 피하고 싶기에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반대로 우리 인생에서 잠재적으로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이것에 대한 걱정과 고민에서 자유스러워 질 수 없기에 아예 정면으로 도전을 하는 것은 어떨까..

 

오늘의 묵상 논제는 이렇게 시작된다.

 

자기 생의 마지막을 예견하고 준비 없이 기습을 당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때 비로소 이 세상의 헛된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늘의 말씀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가 된다.

 

하루라도 더 살 줄을 분명히 모르면서 모든 사람들이 죽음으로 끝을 맺으니, 사람의 생명은 그림자와 같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네가 죽은 다음에 누가 너를 기억하여 주며, 누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랴! 사랑하는 이여, 네가 무엇이든지 할 만한 것이 있으면 지금 하라. 이는 네가 언제 죽을지 모르고, 또한 네가 죽은 후 사정이 어떻게 될는지 모르는 까닭이다.

 

너는 이 세상을 지나는 순례자와 나그네로 여겨 세상의 모든 사정에 상관치 말아라. 네 마음은 아무것도 거리낌없이 자유스러이 보존하고 하느님께로, 위로 향하여 둘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며 산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유산 정리, 유언, 장례식의 절차 같은 것을 말하는 너무나 물질주의적 냄새가 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주위를 눈 여겨 살펴보면, 평균 수명을 채우건 못 채우건 사람들은 모두 하나 둘 씩 ‘사라져’ 간다. 이별을 겪고 난 이 세상은 한때 우리와 같이 숨을 쉬었던 그들을 일상적으로 결국 잊는다. 가끔 기도 중에 기억하기도 하고, 주기 연도 같은 것을 통해 그들을 기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물질적 요소들’은 우리의 감각에 더 이상 이세상, 즉 물리적인 세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매일 매일 세속에 파묻혀 오랜 세월을 산 사람들, 나도 포함되는, 이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어떻게 대응하는 것일까? 아마도 대부분 ‘세속의 잡음과 잡념’이 이 궁극적인 난제를 가려주고 곧 잊게 해 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세속사회에서 부지런히 활동을 할 때가 가능했지만, 칠순이 가까워 오는 그 이후는 점점 어려워지는 ‘조금씩 다가오는 공포의 그림자’ 처럼 느껴진다.

 

한마디로 물질적 세속적 사고방식에서는 ‘이제는 모든 것이 끝장이다’ 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못 다한 것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올 것이고, 잘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더 오래, 거의 영원한 세월을 원할 것이다. 여기서 세계관의 차이가 나머지 인생을 좌우한다. 나를 제일 괴롭히던 생각은: 가족 친지들과의 ‘영원한’ 이별? 죽을 때의 육체적 고통? 어떤 방식으로 죽는 것이 편한가?  주위에 필요이상의 괴로움을 주는 것? 이런 것도 괴로운 사실이지만 사실은 ‘이 우주에서 나 라는 존재가 없어지는 것‘ 바로 그것이 제일 괴로운 사실이었다.

 

6년 전부터 ‘부지런히’ 장례, 고별, 연도 등으로 ‘내가 잘 모르는 가족들’의 슬픔에 동참하려고 무척 애를 쓴 보람이 있었는지 이제는 예전처럼 죽음이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실제로 당해보지 않은 것이기에 물론 확신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교리적, 신앙적 죽음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아가기에 조금은 더 당당하게 죽음이라는 문제와 맞대면을 할 용기도 생겼다. 아마도 이것 근래 5~6년 동안에 내가 경험한 ‘깜짝 놀랄만한 진리’ 일 것이다. 이제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아니 너무나 간단하다. ‘영원한 진리의 말씀’ 대로 살고 죽으면 되는 것이다.

 

¶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간단히 “33일 봉헌 기도” 라고 불리는 이 한 달을 넘는 준비기간이 7월 13일 시작되어서 이제 6일이 지나고 있다. 33일 중, 첫 12일간을 ‘첫째 시기 12일: 세속 정신을 끊음‘ 이라고 하는 ‘준비 전의 준비기간‘에 속하고, 나머지 3주가 사실 본론에 속한다. 첫 12일 ‘준비 전의 준비기간’ 에는 ‘세속에서 떠나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2년 만에 다시 이 ‘‘을 보며 ‘묵상’을 하는 것, 새롭기도 하고 조금은 귀찮기도 하지만 이것이 나의 올해 ‘개인피정 personal retreat’ 라고 여기고 조금은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현재까지 느낌은 전 보다 조금은 더 높고 넓게 주제를 받아들이는 그런 것.. 이것은 분명히 발전이다. 과연 우리가 세속이라는 것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가 있을까? 우리가 현재 보내고 있는 초 현대는 99.99%가 세속세계가 아닌가? 깊은 산속의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마도 2중 적인 삶(생각과 행동이 같지 않은) 을 살아야 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노력은 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조금씩 이 세상을 탈 세속 사회로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초자연적인 도움이 있다면…

 

 

¶  Tobey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누워버린 지 일주일이 지나간다. 그 애나 우리나 어떻게 보면 참 긴 시간이었다. 집안에 환자가 생기는 것이 이런 기분이겠구나.. 그렇게 주위에 아픈 사람을 많이 보았지만 집안의 개가 아픈 것을 보는 것은 전혀 색다른 경험이 되었다.

급하게 order한 약, 신경 관절염 치료 보조제 supplement를 기다리는 동안 증세가 조금은 호전된 듯 보이기도 했지만 그렇게나 아픈 신음소리를 내는,  말 못하는 ‘식구’를 보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이틀 전에 도착한 ‘기적의 약’에 모든 희망을 걸긴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혹시 이렇게 아픈 이유가 우리가 생각한 그런 것이 아니라면?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그 약을 먹은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Tobey는 다시 서서히 천천히 일어나 걷기 시작한 것이다!  고통스러운 초점을 잃었던 눈이 원래대로 ‘뱅글뱅글’ 돌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본 대로 이것은 arthritis계통의 ‘노인병’일 것이다. 이것의 고통은 사람들에게 들어서 익히 알지만 그들은 말이라도 하지만 말 못하는 동물들은 그 심정이 어떨까.. 다시 한번 언젠가 다가올 ‘이별의 순간’에 대한 생각을 물리치며, 이제는 animal pain, animal theology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 듯하다.

 

 

¶  와~~ 쳐진다.. 오랜만에 기분이 무척이나 쳐진다. 우울할 정도로 쳐지는 느낌 아주 오랜만인가? 예전에는 하루를 멀다 하고 우울한 감정과 싸우던 기억인데 이제 그것도 조금씩 추억으로 변하고 있으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왜 그렇게 ‘나아진 것’인지 그 이유는 나에게 너무나 자명하다. 바로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마음의 평화’일 것이다. 이것이 예전에 비해서 그렇게 외부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것이 힘들어진 것이다. 왜 그럴까? 그런 중에도 가끔 이렇게 우울한 날이 오긴 한다. 얼마를 못 가지만 그래도 이것은 괴롭다. 어찌해서든지 몸을 바쁘게 해서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이유를 생각하면 몇 가지가 분명히 있지만 나로써는 어떻게 해결할 수도, 그럴 가지도 없는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기에 그저 시간만 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7월 11일, 2016년 아침.. T-Minus 48 hours.. 이틀이 남았다 2016년 ‘성모승천 대축일’ ‘봉헌을 위한 33일 준비’ 기간이 시작되는 날이.. 7월 13일로 다가왔다.  2012년 8월 첫 봉헌, 2014년 3월 갱신 이라는 이력을 가진 내가 왜 다시 이 쉽지만은 않은 신심에 도전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2012, 2014, 다음은 수열 상으로 2016이라는 것은 조금 우습지만, 그런 것도 좋은 이유 중에 하나로 넣기로 했다. 하지만, 하지만 조금 깊고 심각한 이유는 그것이 아니다.

레지오 마리애의 생활을 하는 덕에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가르침으로부터 크게 멀어진 적은 없는 듯 하지만 과연 그럴까? 혹시 타성에 젖어가는 것은 아닐지, 항상 의식한다. 편한 기분이 들어가면 그것은 분명히 타성에 젖는 것이다.배우고 알고 경험이 쌓이면서 편해진 것이면 큰 문제가 없지만, 무디어지고 느낌이 없어지고, 짜증도 나고 하면 그것은 분명히 커다란 reboot, reset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2014년 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7월에 나는 reset과 reboot을 해야만 했던 경험이 있었다. 비록 비싼 vacation trip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인생 최고의 ‘free’ vacation으로 남았다. 하지만 2014년 여름의 big reboot은 spiritual, devotional한 것이 전혀 아니고, 완전히 나만의 mental exercise에 불과한 것이었다. 길고도 죽을 때까지 남는 그런 ‘비싼’ 경험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background를 가지고 나는 이번 여름 Marian Assumption Day1 에 맞춘 봉헌을 하기로 결정하고 말았다. 2013년에 시도했던 33일의 노력이 도중하차로 끝난 것을 명심하면서 이번에는 그런 과오를 범하지 않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다. 그 다음은 역시 ‘또 다른 경험’을 하는 것.. 어떤 것이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실 상관이 없다. 다른 느낌과 체험, 경험.. 그것이면 족하다.

 

이 정도의 준비각오면 (이렇게 요란하게 글로 남기는 것도 포함)  아마도 아마도 이번에는 도중하차를 할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면 8월 15일 후에 내가 ‘얻는 것’은 어떤 것에 중점을 두면 좋을까? 분명히 더 낫고 더 올바른 성모마리아 신심(이것은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가는 첩경이다) 에 다가가는 것이다. ‘오해 받지 않는 철저하고 용감한’ 성모신심을 얻는 것도 아주 중요한 과제다.

 

어제 Catholic News Agency website에 조금은 섬뜩한 기분의 기사가 실렸다. Fatima 의 visionary Lucia 루치아 수녀님의 예언이었다. 파티마 목격자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수녀님 2005년 선종 전에 증언이 그것이다. 인류 최후의 심판, 결전은 그리스도와 사탄 간의 ‘결혼과 가정’2에 대한 투쟁이라는 것, 그것을 ‘예언’하시고 선종하셨다고 보도가 된 것이다. 이것이 수녀님의 예언인지 혹시 성모님의 예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떨까.. 나도 비슷한 느낌과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참이었기에 우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Humanity의 근간 중의 근간인 ‘정상적인 가정’의 파괴와 붕괴는 사실 핵전쟁이나 다름없는 인류파멸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우매한 지식인‘들은 그렇게 stupid한 것일까? 10은 알고 11는 모르는 것.. 이런 뉴스에 접하며 나는 이번 33일에 이런 Current social problem을 같이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 뉴스와 일맥상통하는 글이 바로 33일 봉헌 Guide에 잘 나와있다. 아래 그것을 전문 발췌를 했는데, 원제는 20세기에 관한 것이지만 21세기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들이다.

 

 

20세기에 들어 성모님은 파티마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 발현하셔서 당신의 티없는 성심께 대한 봉헌을 간곡히 호소하고 계신다. 20세기의 초엽인 1917년 파티마에 발현하셨을 때에는 원죄에 물들지 않은 당신의 티없는 성심을 직접 보여주시면서 티없는 성심께 대한 신심과 봉헌을 호소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나의 티없는 성심에 대한 신심을 일으키기를 원하신다” (파티마, 19717. 6. 13).

“내 티없는 성심은 너의 피시처가 될 것이며, 너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가는 길이 될 것이다” (파티마, 19717. 6.13).

이에 따라 1942년 10월 31일 비오 12세 교황은 전 세계를 마리아의 티없는 성심께 봉헌하고, 1946년에는 파티마의 성모님을 세계의 여왕으로 대관하고 ‘여왕이신 성모 마리아 축일’을 제정하였다.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미 청년시절에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에서 큰 감화를 받고 자신을 온전히 성모님께 봉헌하였으며 이 책에서 ‘온전히 당신의 것 (Totus Tuus)‘라는 문장을 뽑아 교황 즉위 시에 모토로 삼기까지 했다. 1984년 3월 25일에는, 1917년 파티마에서 하신 성모님의 요청에 따라 전 세계의 주교들과 뜻을 합하여 소련은 물론 전 세계를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봉헌하였는데 그 이후 마침내 소련을 포함하여 여러 나라의 공산주의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 교황님들의 모범에 따라 이 봉헌을 실천하는 이들은 이 길이 틀릴 수 없는 가장 완전한 길임을 체험하는 동시에 이 봉헌으로써 이루어지는 놀라운 결과 즉 “티없는 내 성심이 승리할 것이다” (파티마 1917. 7.13)이라는 성모님의 약속의 실현을 자신들 안에서도 보게 될 것이다.

성모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이 봉헌은 하느님께 봉헌되기 위한 가장 완전한 방법인 동시에 성모님의 티없으신 성심께 대한 가장 완전한 신심행위이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봉헌을 받으셔서 당신 아드님과의 완전한 일치 안에서 그러나 그분께 종속되어 “은총의 질서 안에서 우리의 어머니의 자격으로” (교회헌장 61항)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의 생활에 모성적으로 관여하신다. 그리고 우리의 봉헌을 당신의 봉헌과 일치시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가능케 해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다. “성모님께 봉헌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 이르는 길을 통과하는 것이며 성모님은 그리스도께 이르는 길이시다” 라고. 따라서 성모님을 통하여, 성모님 안에서, 성모님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바치면 바칠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봉헌의 주된 목적이며 의의이다.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봉헌의 의미와 그 중요성” 중에서

 

 

  1. 매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 The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2. Homosexuality, Same-sex ‘marriage’, transgender, rampant divorce etc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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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개월 동안 나의 e-mailbox에 아침마다 배달이 되는 newsletter 중에 The Catholic Thing 이란 것이 있다. 우연히 찾은 이곳 website는 시각적, 내용적 balance가  잘 맞아서 나의 favorite site 중에 하나가 되었고  곧 이어서 daily newsletter를 받아보기 시작하였다.  ‘지속적으로 매일 받아 읽는 글’의 영향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것은 습관적으로 읽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그날의 생각에 첫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2008년 6월에 시작된 이 site는, 주로 대학 교수급, 지식층, 다양한 저자들이 교대로 글을 써서 ‘매일’ 이곳에 발표를 한다. 그러니까, 내용은 우선 pro 레벨, fresh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글의 내용이 일반인에게 크게 무리 없이 읽힐 정도로 아주 자상하게, 조심스럽게 쓰여져 있다. 그러니까 나 같은 ‘일반인’ 도 큰 무리 없이 읽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내용들도 박사학위 논문 같은 것, 아주 현실과 동 떨어진 것, 자기자랑을 하려는 것 같은 것보다는  대중적 가톨릭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현재’에 필요한 ‘모든’ Issue를 다루고 있다. 이 모든 것이란 예를 들면: “politics, economics, culture & warfare, the temporal and the eternal, children and careers, and many other contemporary questions” 라고 처음에 밝히고 있다. 영어를 큰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가톨릭 신앙인에게 생각을 할 수 있는 근거와 이유 그리고 “내가 믿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의문에 대답을 줄 수 있는 곳이다.

 

WHO IS GOD? 오늘 아침에 본 것이 바로 이것이다. 거창하게: WHO IS GOD? 평범한 질문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런 것을 하루 동안 기억하며 살면 그래도 조금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역시 지식적인 출발로 하느님은, 기하학의 공리 같은 출발로 정의가 된다. 이것이 바로 가톨릭 핵심교리에 선언된 것이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하느님:

“that there is one true and living God, creator and lord of heaven and earth, almighty, eternal, immeasurable, incomprehensible, infinite in will, understanding and every perfection.”

 

Self-Existence: 육감적으로 전혀 느낄 수 없는 존재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그런 것이 이 표현에 전부 들어가 있다. 아니 느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를 만든 ‘것’이 하느님이다. 존재를 만든 것이 하느님이지만 하느님의 존재가 필요한 ‘분’이 아니다. 모세에게 하느님은: “I am who I am” 이라고 선언을 하신 것이 그와 비슷한 뜻이 아닐까?

 

The First Cause: 시공간의 연속은 인과관계의 무한한 연속이다. 원인이 결과를 낳고 그 결과가 결과를 낳고.. 그 중에 바로 ‘the first cause, 첫 원인’이 바로 하느님이란 ‘분’이다. 모든 결과는 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인 접근으로, 모든 존재의 그 모든 것(생명체나 물체)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것, 이것을 조금 더 생각하면: 사람은 이 물체들 중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것일까.. 특별한 은총을 받은 존재인가, 아니면..물리적인 위치로 상상할 수 없이 크고 무한한 시공간 속, 거의 보이지 않는 존재 ‘지구’ 위에서 복닥거리는 인간의 존재는 성경의 표현대로 특별한 존재일 수가 있을까? 창조의 근원이 ‘하느님’이라는 성경을 믿고 그 다음에 나오는 것도 믿는다면..하느님의 존재와 그가 ‘특별히’ 보내셨다는 ‘예수님’을 안 믿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철학적인 접근으로는 보통 사람 특히 육감을 사랑하는 요새 세속적인 존재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나도 그 중에 하나였으니까..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물리적’인 육감을 믿기에 물리적인 접근으로도 풀어서 설명을 해야 한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그런 접근은 상상 이외로 빠르게 시도되고 현재도 시도되고 있다. 그런 설명은 나에게 훨씬 더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이렇게 ‘물리적, 철학적’인 접근을 왔다 갔다 하면 확실히 무언가 보인다. 절대로 절대로 불가능했던 것들이 하나 둘 씩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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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Lewis.. Clive Staples Lewis or Jack Lewis.. 불과 1년 전만 해도 내 관심의 radar ‘위’에는 없었던 이름이었지만 사실은 ‘radar의 밑’ 에서 전부터 분명히 있었던 이름이다. 2005년에 나온 children’s fantasy movie였고 우리들이 ‘아이들’ 에게 ‘억지로 끌려가서’ 보았던 big screen blockbuster move.. 바로 The Chronicle of Narnia1, 의 첫 편,  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 가 C. S. Lewis의 1950년대 초 작품이었던 것.. 이 영화를 볼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이 C. S. Lewis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었다. 그저.. ‘영국계통’의 ‘영감, 꼰대2 같이 생긴 영문학 교수, 문필, 소설가’ 정도로만 알고 지나갔었다. 이 영화를 같이 볼 당시, 큰 딸 새로니의 설명에 의하면 학교 elementary school  다닐 당시 이 책은 ‘필독’의 대상이었다고 했는데 나의 귀에 남았던 것은  ‘아마도 이 책의 발상은 기독교 성경이 아닐까’ 하는 뜻밖의 말이었다. 그 예로 lion king이었던 Aslan이 예수의 전형 model이었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 전부였다, 최소한 그 당시에는..

 

그 후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 우습게도 나도 ‘꼰대’가 된 이 시점에서, 이 ‘꼰대, 영감’에게 완전히 매료가 된 상태가 되었다. 그런 이유 중에 제일 돋보이는 것이 바로 그의 1950년대의 classic , Mere Christianity라고 할 수 있다. 그는 Oxford 대학의 대표적 영문학교수였지만 그의 관심은 이것을 뛰어넘어 (Christian) apologetics 에 후대에 더 그의 명성을 날리게 하는 영향력 있는 글을 남겼다. 쉽게 말하면… 좀 ‘배운 사람’에게 종교 (주로 그리스도교)를 알리는데 논리적으로 설명하는데 타의 주종을 불허하는 설득력을 가진 그 자신이 지식인 중의 지식인인 그런 사람이랄까.. 다른 말로.. 대부분 전통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안 믿어지면 ‘무조건 믿어라’ 라는 식의 전교를 큰 효과가 없으니까, 그들의 수준에 맞게 ‘논리, 이성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 그것이 그가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의 apologetics에 남긴 빛나는 유산인 것이다.

 

  1. C. S. Lewis가 1949년부터 1954년 까지 발표한 children’s fantasy series: 41가지 언어로 전 세계적으로 1억을 넘는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저자의 가장 인기 있던 작품
  2. 아주 옛날에 유행하던 비어, 그저 별볼일 없이 보이는 영감탱이를 뜻했다.

André RieuNearer, My God, to Thee (live in Amsterdam)  

 

지나가는 2주 동안 2명의 ‘자매님’들이 일주일 간격으로 하느님의 품으로 갔다. 한 자매님은 지난 주 일요일에 2시간 drive해서 간, 어떤 funeral home의 chapel에서 ‘개신교’의식으로 치러진 예배에 그 자매님의 ‘고이 잠든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25년 전 이곳으로 이사했을 당시부터 연숙이 알고 지내던 K 자매님.. 나와는 직접 상관이 없다곤 해도 간접적으로 그녀의 삶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연숙보다 몇 살 밑인 나이에 어떻게 벌써 귀천 歸天을 했을까? 우리가 알기에 지난 몇 년 동안 앓아온 당뇨병과 신장  kidney의 기능악화로 투석 dialysis 을 받았지만 근래에는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투석을 받는 것은 일시적인 방편이고 결국은 신장 이식을 해야만 살 수 있는데 그녀는 그 투석조차 못 받았던 모양이었다. 나의 어머님도 이런 처지였지만 신장이식을 하기에 너무나 고령이어서 결국은 운명을 하셔서 이런 처지를 뼈저리게 나는 실감한다. 하지만 이 K 자매님은 충분히 나아질 여지가 있었을 텐데.. 장례예배에서 목사님의 말씀이 그녀는 아마도 투석을 제대로 못 받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번지르르한’ 목사의 조사에서 밝히지 못하는 사정을 더 많이 알고 있기에 관에 누워있는 그녀를 보며 깊은 슬픔에 잠겼다. 형제, 자매가 그렇게 많은 그녀가 ‘시골’에 묻혀서 별로 도움을 주지 않는 남편과 살려고 노력을 했던 것을 알기에.. 아마도 주위의 도움은 거의 받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은 모든 것을 포기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의 우려는 아마도 맞을 것이다. 이럴 때 다시 생각한다. 과연 가족이란 무엇인가? 문제가 없는 가족, 가정은 없겠지만 그래도 위기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는 것이 가족들이 아닐까? 사랑하는 방식이 달랐다고 ‘사탕발림’같은 조사 弔詞 eulogy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우습게 들렸고 2시간 집으로 오는 drive길이 너무나 우리에게는 무거운 시간이 되었다. K 자매님, 아마도 이제는 그런 모든 고통을 훨훨 벗고 저 세상에서 힘차게 비상하는 새, 유유히 춤추는 나비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또 다른 자매님, 돼지띠 동갑 P 자매님.. 지난해 11월에 우리와 ‘묘한’ 인연이 되어 알게 된 분.  어제아침, ‘격심한’ 고통에서 벗어나 근래에 새로 ‘사귄’ 성모님의 품에 안겼다. 병 간호에 지친 두 아들, 특히 큰 아들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온다. 우리 부부는 이 자매님을 천주교로 인도하면서, ‘기적’까지는 안 바랐어도 그래도 평화를 충분히 맛 보시는 충분한 시간을 바랬는데.. 그것이 아무래도 부족한 시간이 되었다. 지난 5개월 우리는 이 분이 하느님을 알게 하려고 레지오의 조직을 통해서 지속적인 노력을 해 왔다. 비록 육체적인 죽음은 맞았어도 영혼은 건강하게 살아 가시리라 우리는 굳게 믿는다. 이 자매님도 알고 보면 참으로 ‘사연’이 많은 인생이 아니었을까.. 오래 전, 소설가 박경리 여사의 대하소설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의 복잡하고 운명적인 인생, 결국 운명은 바꿀 수가 없었던가? 나도 운명이란 것을 어느 정도 믿긴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결말이 더 나아지는 노력은 어땠을까? 더욱 더 슬픈 것은 작년 이맘때 남편이 거의 ‘같은 병’으로 운명하신 사실..남아 있는 두 아들에게 이런 가혹한 고통이 어디 또 있을까? 그래도, 세상 모든 것을 등지고 마음의 문을 걸어 닫았던 P 자매님, 3월에 하느님께 모든 것을 열고 병원에서 세례를 받았고, ‘베로니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형언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새로 알게 된 천주교 기도문을 열심히 읽고,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천천히 귀천을 하였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시작” 이라는 위령기도문을 믿으며 우리는 이 자매님 먼저 가신 부모님들과 재회를 했으리라 굳게 믿는다.

 

봉성체 봉사자를 구하는 Holy Family 성당의 brochure

봉성체 봉사자를 구하는 마리에타 Holy Family Catholic Church 의 brochure

봉성체 奉聖體, home Eucharistic communion service, ministry 성체를 집으로 모시고 가서 영성체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봉성체 라고 하는데 이것은 Extraordinary Minister of the Holy Communion 라는 평신도 중에서 특별히 선발되고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서류상으로도 본당, 교구, 대교구에 등록을 하여야 하고 대강 3년 정도 유효하다고 한다. 이만큼 사제가 아닌 평신도가 성체를 성당 밖으로 모시고 나가서 영성체 봉사service를 하는 것은 조심스럽고 신중하다고 할까.

4년 전쯤, 말기 암으로 투병을 하던 우리 레지오 단원 은 요안나 자매님이 거동이 불편해져 집에만 있게 되었을 때, 그 자매님에게 성체를 모시게 해 주고 싶다는 일념 으로 연숙이 ‘두말없이’ 봉성체 교육을 받고 교구청에 등록을 했는데.. 좀 늦었던가.. 안타깝게도 한번도 봉성체를 해 주지 못하고 그 자매님은 운명을 하게 되었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 이후로는 ‘가능하면’ 늑장을 부리지 않고 성체를 원하는 거동이 불편한 신자들을 찾게 되었고 필요한 곳은 찾아가게 되었다.

 

5년 전쯤만 해도 나는 ‘성체의 심각한 의미’를 잘 몰랐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성체와 성혈은 100% 예수님의 몸과 피라는 교리상식은 물론 ‘머리’에서는 알지만.. 그래서..어쨌다는 말인가 라는 선에서 멈추곤 하였다. 미사에서 성체, 성혈을 받을(모실) 때에도 ‘의미 있는 묵상’이 별로 쉽지 않았다. 그것은 물론 내가 별로 깊이 생각과 묵상을 안 해서 그런 것이다. 최후의 만찬에서 비롯된 성체,성혈의 신학적, 역사적 의미를 조금 더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한 순간 ‘점들이 연결되는 순간부터’ 나는 거의 무조건 성체의 신비를 믿게 되었다. 의외로 간단한 과정이었을까?

그런 배경으로 봉성체 봉사자인 연숙을 따라다니며 ‘봉성체 동행’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레지오 활동의 일환으로 봉성체 봉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집이나 병원에서 성체를 모시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일년이 넘은,  작년 2월경 부터 우리는 정기적인 ‘화요일 봉성체’ routine을 시작하게 되었다. 실제적으로 우리는 레지오 주회합이 있는 화요일에 정기적인 봉성체 활동을 하고 가끔 비정기적인, 예외적인 봉사를 한다.

 

이 봉성체 활동을 하며 느끼는 것은 한마디로 가톨릭 신앙에서 얼마나 성체신심이 중요한 가 하는 때늦은 놀라움이다. 1982년 영세를 받고 나서 수십 년이 흐른 인생의 황혼기에 나는 이것을 정말 늦게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성당의 미사를 못 보며 느끼는 이들 봉성체 대상 교우들의 성체에 대한 갈증, 갈망을 느끼고 보며 나는 너무나 많은 은총을 받는 듯 하다. 이 우리의 봉사는 사실 우리가 봉사를 받는 다는 쪽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 정도다. 고령의 봉성체 대상 자매님, 기억력과 씨름을 하시지만 우리들이 가면 ‘일제 시대(요새는 일제 강점기라고 하던가)’에 남편 형제님을 만나게 된 경위를 일본말을 섞어가며 설명하시던 모습을 보며, 이 분들에게 성체 이외에 ‘인간적 대화’가 필요함도 절실히 느낀다. 성체의 ‘기적’까지는 기대 못하더라도 이런 활동이 외로울 수도 있는 그분들에게 다른 기적을 가져다 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우리는 ‘자동차와 다리가 성한 한’ 이 활동을 계속할 것이다.

st-john-paul-2며칠 전이던가.. 우리의 미국본당의 달력을 보니 10월 22일에 Bl. John Paul II라고 적혀 있었다. 이 달력은 교회달력이라서 일년 열두 달 거의 매일 성인의 feast day가 적혀있다. 매일 미사를 다닌 이후 나는 이렇게 매일 성인의 축일이 있던 사실에 새삼 놀랐고 얼마나 내가 ‘무식한 천주교 신자’였던가 부끄럽기도 하였다. 매일 미사를 다니다 보면 ‘부수입’으로 이렇게 성인열전을 가볍게라도 공부하게 되어서 아주 유익하다.

그런데 오늘 10월 22일 수요일 미사엘 가니 바로 요한 바오로 2세의 ‘첫 축일’ 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며칠 전에 잠깐 본 Bl. John Paul II가 생각났다. Blessed John Paul Second 그러니까 ‘복되신 요한 바오로 2세’의 축일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inaugural feast day, 시성 후 첫 축일이라서 나는 무슨 ‘역사적인 사건’을 겪는 듯 가벼운 흥분이 스며들었다. 올해 부활절 때 시성이 되신 후 첫 축일.. 역시 역사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살아 생전에 ‘살아 계셨던’ 교황님이었고 나의 살아 생전에 돌아 가셨으며, 또한 살아 생전에 성인이 되신 것은 나로써는 조금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이다.

 

무척 많은 ‘일반 인’들이 이 성인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나도 그들에 못지 않게 이분을 좋아한다. 아니 존경, 아니 공경을 한다. 내가 꿈에도 꿀 수 없는 role model로 삼고 살아간다고 하면 조금 over일까? 2005년 선종을 하실 때, 나는 처음으로 이분에 대해 깊이 공부를 하고 묵상을 하게 되었고 그 당시 나는 이분이야 말로 나의 남은 평생 role model로 삼아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 100% 확신을 하였다. 그 이후 나는 얼음처럼 차갑게 얼었었던 나의 신앙심을 조금씩 녹여 나가기 시작해서 현재까지 계속 그 여파로 녹아가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어떠한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 그리고 세속적인 변화에도 이분만은 변함없이 ‘진실’을 밝히고 선포하실 것이라 나는 믿게 된 것이다. Do not be afraid라는 간단한 명언을 나는 얼마나 좋아했던가?

처음에는 약간 감상적인 기분으로 이분을 존경하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더 이 성인을 알아가며 인간 요한 바오로 을 ‘절대적’으로 믿고 존경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나를 매료시켰던 면은 이분의 ‘찬란한 지적 은총’이었다. 철저한 신앙적 믿음에 못지 않는 지성의 깊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듯 하다. 한 마디로 ‘공부 잘하는’ 교황인 것이다. 후계 교황인 베네딕트 16세가 아마도 지적으로 이분을 능가할 지도 모르지만 베네딕트 16세는 요한 바오로 2세에 비해서 다른 면이 떨어지는 듯 느껴진다. 절대로 굽힐 수 없는 지켜야 할 ‘진리, 교리’를 지켰고, 세계 정치를 신앙적인 눈으로 설득시켜는 힘은 아마도 이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을 따를 수가 없을 것이다.

오늘 이날을 맞아 ncregister.com에 관련 기사가 실렸는데 Catholics Remember St. John Paul II’s Personal Impact on Inaugural Feast란 제목으로 몇 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이날을 맞아 이 성인에 대해 회고를 하는 기사였다. 평범한 젊은 신자에서 신부님까지 포함 된 이런 개인적 경험 일화를 보면서 1978년부터 2005년까지 이 성인이 세계적으로 미친 영향, 거의 한 세대에 걸친 범세계적인 불굴의 선교는 앞으로 상당한 기간에 걸쳐서 험난하고 어지러운 세상의 등대역할을 하리라 확신한다.

Triduum..트리듐, the Three Days: 부활 일요일을 향하는 목,금,토요일 3일을 뜻한다. 다른 말로 Easter Triduum, Paschal Triduum이라고도 한다. 우리말로는 그저 ‘성삼일’ 정도가 될까? 그 첫째 날 목요일이 바로 오늘이다. 그러니까 2014년 Easter season의 절정 문턱에 있는 첫 날이 되는 것이다. 참.. 세월도 빠르지 엊그제 주님 성탄을 향한 대림절을 지낸 기억인데 눈 깜짝할 사이에 그리스도 교의 결정체인 주님의 수난, 묻힘, 부활을 기리는 바로 그날이 코 앞에 온 것이다.

가톨릭 전례에서 성삼일은 성 목요일, Maundy Thursday, 성금요일, Good Friday 그리고 성 토요일 Easter Vigil 로서 정확한 시작은 목요일 저녁 미사로 시작되어 토요일 미사로 끝난다. 인상적인 것은 시작점인 목요일 마사로 전통적으로 이날 신부가 신자 12명을 뽑아서 발을 씻기는 것이 있고 (세족례) 대영광송이 끝남을 시작으로 오르간과 종 소리가 금지되고 부활아침까지 결혼예식도 금지가 된다. 성 목요일 미사의 마침을 기해서 성전 내부 제단 주변의 모든 ‘장식물’이 모두 철거가 된다 (움직일 수 있는 것들만). 처음에 이런 광경을 목격하며 나는 이런 상징적인 의식들이 하나하나가 모두 성서적, 신학적, 전통적인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하기도 했고, 너무나 인상적이고 충격적이기도 했다. 예수의 수난 passion의 의미를 너무나 극명하게 나타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성금요일 Good Friday는 실제로 예수님이 ‘죽는’ 날로서 전례적인 행사는 거의 없는 것인데 (정확하게 미사는 없는 것이다) 전날 축성이 된 성체를 분배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하며 특히 십자가 경배 veneration of cross라는 것을 통해서 십자가 죽음을 애도하며 부활을 기다리게 된다. 성토요일 밤의 미사는 부활을 기다리는 주제로 깜깜한 밤, 성전의 밖에서 만들어진 ‘촛불’이 성전으로 들어오면 촛불 미사가 진행이 된다. 이런 광경도 너무나 인상적인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원칙적’으로 성삼일을 체험적으로 기리는 것으로 정하고 ‘절대로 빠지지’ 않고 3일 ‘행사, 미사’에 참가를 하였다. 물론 처음에는 큰 부담도 느꼈지만 시간이 가면서 이제는 은근히 기다리게 될 정도가 되었다. 그만큼 우리는 분명히 이 부활의 의미를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내가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되면서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 생각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름을 절감하게 되었다.

작년 2013년의 성목요일은 나의 첫 체험 시도로 성삼일 시작인 저녁 미사 후부터 시작되는 “감실성체조배”에 참가를 하였다. 목요일 저녁부터 금요일 아침까지 ‘계속’되는 성체조배, Eucharistic Adoration이었는데 한 사람이 계속하기가 쉽지 않아서 1시간 정도로 시간을 정해서 대부분 레지오 단원들이 책임지고 감실을 지키며 성체조배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정 후 1시부터 한 시간 참가했는데.. 그때 내가 받았던 느낌은 글로 쓸 수없이 강해서 오늘까지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는다. 그 이후 나는 내년에도 ‘꼭 참가’하리라 각오를 했다. 그 ‘내년’이 오늘 밤으로 다가온 것이다.

작년 성목요일 감실 성체조배 때에는 그 당시 발견한 Dr Eben Alexander의 The Proof of Heaven이란 신간 NewYork Times bestseller를 읽으며 묵상도하고 했는데, 그때 나는 거의 확신을 하게 되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처럼 ‘이성과 신앙’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사실을 재삼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신경외과의 그러니까 자연과학자인 저자의 ‘간증’이 그렇게 나에게 실감 있게 다가온 사실은 정말 나에게도 뜻밖이었는데 아마도 그 때의 성체조배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 나는 굳게 믿는다. 그 이후 나는 이성과 신앙만이 아닌 ‘과학과 믿음’의 접근 분야에 대해서 거의 일년 동안 공부를 하게 되어서 현재까지 이르렀다. 이것의 출발 점이 바로 작년 성목요일이라서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올해는 ‘첫 성삼일’이라고 이름을 부쳤다. 자세히 말하면 우리의 첫 ‘한인 순교자 성당’ 성삼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한국 순교자 성당에서 부활절을 보내게 된 것이다. 이것도 우리에게는 두고두고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해 본다. 암만 동네의 미국본당에서 긴 세월을 보냈지만 어찌 우리말이 울려 퍼지는 고향 같은 다른 본당과 비교가 되겠는가? 아직도 반반 정도 미국본당과 순교자 성당 본당을 번갈아 가지만 조금씩 순교자 성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감을 느낀다. 앞날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더욱 더 한국본당으로 가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추측도 해 본다. 워낙 미국본당에 정이 든 탓에 한국전례문화가 너무나도 생소한 우리 두 딸들을 설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져서 우리의 큰 과제로 남게 되었다.

 

메주고리예.. 비공식 성모님 발현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계속, 아직도 정기적으로 발현이 되는 곳이다. 1981년 6월 26일 첫 발현 후 현재까지 계속 이곳에 성모님이 발현을 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믿기 힘들 정도며 놀랍기만 하다.

내가 처음으로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을 안 것은 1989년 6월 인디애나 주 노틀담 대학(Notre Dame University, South bend, Indiana) 에서 열린 성령대회에 가족이 참가했을 당시 그곳 전시장에서 정말 우연히 보고, 구입하게 된 책, 메주고리예 발현 화보였다.

메주고리예 발현 화보, 1989

메주고리예 발현 화보, 1989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천주교 영세를 받은 지 7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모르는 것 투성이였던 시절.. 하지만 자세히 생각을 하니 1981년 경 뉴스를 통해서 들은 기억은 정말 희미하게 나는 듯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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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발현 당시 6 visionaries 들 모습

메주고리예의 위치가 공산권이었던 유고슬라비아 였기에 소련 연방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그곳의 소식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련이 무너지면서 순례자들이 그곳을 방문하면서 점점 자세한 소식들이 나오게 되었는데.. 나는 사실 그런 놀라운 발현 소식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성모발현’이란 것을 심각하게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3~4년 전부터 나의 신심적 르네상스를 거치며 비로소 나는 이 ‘믿기 힘든’ 성모발현을 믿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 과정은 조금 복잡했지만 간단히 말해서 지금은 이 성모님 발현이 나의 신심을 굳건히 지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나에게 사도 토마 같은 ‘의심’이 조금이라도 들면 나는 메주고리예 성모님을 생각하며 나를 달래곤 한다.

역사상 성모님 발현은 ‘수 없이’ 많지만 ‘공식화’ 된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과달루페, 루르드, 파티마 같은 classic한 것은 교회에서 정식으로 인정된 곳이지만 그 외에도 ‘수 없이’ 많이 있고, 대부분 신빙성이 아주 높은 case들이다. University of Dayton에서 설치된 세계 마리아 학회의 website (Mary Page)를 보면 아주 매일 일기예보를 하듯이 전세계에서 보고되는 발현 소식을 ‘모조리’ 기록해 두고 있다.

 

medju-3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은 한마디로 놀랍기만 하다. 1981년부터 현재 까지 33년 동안 ‘계속’ 발현을 하기 때문이다. 성모님이 전하는 얘기는 한결같이 간단하고 성서적이다. 발현 목격자 중에 Mirjana 에게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매달 2일에 발현을 하는데 이 발현은 비록 사적인 것이지만 미리 예고가 되었기에 많은 순례자들이 성모님을 못 보지만 같이 참석하고 있다. 이런 광경이 이제는 인터넷의 힘으로 편안히 집에서 같이 볼 수가 있지만.. 과연 어떨까.. 믿고 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일 것이다.

천주교 교리에 의하면 성모님은 비록 인간이지만 인간 중에서 아주 독특한 위치와 지위를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하면 성인 중에서 으뜸가는 성인이라고 할까.. 성모님의 그런 위치는 ‘전구자(우리의 기도를 예수님께 전하는)’의 역할을 하는데, 왜 그렇게 33년 동안 특별한 목격자들에게 계속 나타나는 것일까? 정식으로 인정이 보류된 상태에서 교회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사실 그 이유(발현하는)를 나는 조금씩 깨닫게 되어가고 있다. 근래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그것이 아주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에 보이는 비디오는 2014년, 주로  Mirjana에게 발현하는 성모님에 관한 것이다. 이런 비디오는 대부분 메주고리예와 가까운 이태리 순례자들이 주관해서 만드는 듯하고 여기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이태리에서 온 듯하다. 발현이 끝나면 곧 이어서 성모님의 message를 각국어로 번역을 해서 발표를 하곤 한다.

 


 


2014년 12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Mirjana,미르야나’에게 발현

 


2014년 11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Mirjana,미르야나’에게 발현

 

 

2014년 10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Mirjana,미르야나’에게 발현

 

“Dear children, with motherly love I implore you, love one another. May there be in your hearts, as my Son desired from the very beginning, love for the Heavenly Father and for your neighbour in the first place — above everything of this world. My dear children, do you not recognise the signs of the times? Do you not recognise that all of this that is around you, all that is happening, is because there is no love? Comprehend that salvation is in true values. Accept the might of the Heavenly Father, love him and honour him. Walk in the footsteps of my Son. You, my children, my dear apostles, you are always gathering around me anew, because you are thirsty. You thirst for peace, love and happiness. Drink out of my hands. My hands are offering to you my Son who is the spring of clear water. He will bring your faith back to life and purify your hearts, because my Son loves pure hearts and pure hearts love my Son. Only pure hearts are humble and have firm faith. I ask for such hearts of you, my children. My Son told me that I am the mother of the entire world. I ask of those of you who accept me as such to help me, with your life, prayer and sacrifice, for all of my children to accept me as a mother—so that I may lead them to the spring of the clear water. Thank you. My dear children, as your shepherds offer you the Body of my Son with their blessed hands, always in your hearts give thanks to my Son for the Sacrifice and for the shepherds that he always gives you anew. ”

 

2014년 9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Mirjana,미르야나’에게 발현

 

2014년 8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Mirjana,미르야나’에게 발현

 

2014년 7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Mirjana,미르야나’에게 발현

 

2014년 6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Mirjana,미르야나’에게 발현

 

2014년 6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Mirjana,미르야나’에게 발현

 

2014년 6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의 message

 

2014년 5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Mirjana,미르야나’에게 발현

 

2014년 4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Mirjana,미르야나’에게 발현

 

2014년 3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Mirjana,미르야나’에게 발현

 

2014년 2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Mirjana,미르야나’에게 발현
근래에 보기 드물게 ‘실내’에서 발현 하신 것이 특이하다

 

 

2014년 1월 2일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

들어가며

Apologetics.. 아폴로제틱스..흠.. 이 단어를 보면 연관되어 생각나는 것은 apology 아폴로지.. 가 아닐까? apology 하면 우선 사과, 사죄, 변명, 변론 정도의 뜻이다. 여기의 apologetics는 마지막 것인 변론에 가까운 것으로 거의 99% 이것은 ‘자기 믿음, 신앙의 방어, 변론’을 뜻 한다. 이 blog에서는 내가 현재 믿고 있는 가톨릭, 천주교 신앙에 대한 변론을 말한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개신교에서는 이 말조차 ‘구교, 천주교’ 냄새가 난다고 오래 전에 팽개쳤을 지도1 모른다. 이 ‘변론’을 통해서 나는 내가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된 당대의 다른 apologist 변론가 들을 언급하고 나 나름대로 형성을 하게 된 것 (이것도 사실 지금도, 매일 변화, 발전을 해나가고 있다) 을 남기고자 한다.2

 

가까이 온 죽음과 신앙

처음 이 ‘신앙 변론 분야’에 관심을 가졌을 때는 내가 오랫동안 잃어버리고 살았던 가톨릭 신앙을 되찾고자 시도를 할 때였다. 나의 유일한 등대, 나의 분신이셨던 어머님의 타계와 더불어 나는 죽음이란 것을 인생 처음으로 피부로 느끼며 나의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50이 훨씬 넘은 후에야 죽음에 대한 생각을 시작했던 나는 한마디로 철부지였다. ‘죽음’의 ‘죽’자만 보면 나는 외면하고 그런 것은 나의 사전에 없다고 피하고 살았고, 죽음에 관련된 어떤 것, 장례식 같은 것도 나에게는 없었다. 죽음은 한마디로 ‘수백 년 뒤에 있을’, 나에게는 그저 ‘추상 명사‘였다.

 인간의 수명을 생각해보니 기껏해야 70~80세 정도였고 그것은 나에게 불과 20~30년 정도의 여유를 주었지만, 20~30년 정도의 세월은 전에 생각하던 것 보다 ‘훨씬’ 짧다는 것도 50년 이상 살아본 경험에 의해서 쉽게 짐작이 갔다. 나의 20~30년 정도 전의 ‘개인 적 역사’를 생각해 보면, 그것은 바로 엊그제 같이 느껴지니, 사실 나의 수명은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음은 암만 죽음의 죽 자를 피하려 해도 그것은 너무나 자명한 진리였다. 한마디로 죽음의 그림자는 나를 덮치기 시작하는 것이고, 아니 이제부터는 내일의 태양을 못 볼지도 모른다는, 몇 안 되는 가족들도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그렇게 과장된 표현이 아닌 듯 싶었다. 이런 것이 지나친 우려처럼 들렸으면 하고 바라고 살았지만, 이제는 그것, 죽음이 진리이고 사실임을 부정할 도리가 없었다.

 

철학적 실존과 죽음

이제는 죽음을 의도적으로 가까이 보려고 노력을 하고, 그 동안 꽤 보아왔기에3 조금은 그 보이는 모습과 배경도 생각하게 되었다. 천차만별의 모습을 한 죽음의 과정, 여정도 알게 되었고, 남아있던 사람들의 모습과 반응도 보게 되고, 그것을 보는 나 자신도 보게 되었다. 이런 노력을 통해서 나는 조금은 냉정하게 죽음을 대하게 되었고, 무조건 피할 때보다 훨씬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죽음의 제일 큰 명제는 이것이다. 죽음은 과연 그 죽음의 주체에게 모든 것의 끝일까? 그 당시까지 신앙심이 거의 사라진 나에게 대답은 ‘죽음은 모든 것의 끝, 깜깜한 암흑‘이란 것이 대답이었다. 모든 것의 끝.. 모든 것의 끝.. 이 거대한 우주 안에 유일한 존재였던 나, 이경우란 생물, 인간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 그러니까 실존이 허무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사실이 나를 괴롭고 슬프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고통은 사실 젊었을 적, 대부분 10대에 잠깐 찾아오긴 하지만, 사회란 거대한 보호 막 속에서 자연스레 잊게 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것일 뿐이다. 나란 사람의 의미는 무엇이고 내가 왜 실존이 되었다가 허무로 사라지는 것인가? 철학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과연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이 대답을 주었을까? 모두 ‘말의 장난‘에 지나지 않았었을까?: 절대로 철학이 이것에 대답을 주지 못함, 그것이 바로 ‘유한한 인간’의 슬픔일 것이다. 이런 ‘안 보일 수 있는 것에 대한 생각들’을 잊고 살 수도 있겠지만, 중년이 훌쩍 넘었던 나에게 그것은 사치였다. 죽음이 striking distance에 왔음을 알기 때문이다. 결정의 순간은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고 있었다.

 

파스칼의 내기, Pascal’s Wager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신앙적 변론들이 있다. 그 중에서 제일 쉽고 그런대로 수긍이 가는 것으로 Pascal(파스칼)의 Wager 란 것이 있다. 여기서 wager라면 ‘도박이나 내기’ 정도의 뜻이 아닐까? Pascal 하면 누구에게나 친근한 이름일 것이다. 그는 신이 있다 와 없다 중에서 어떤 것이 맞는지 ‘내기’를 한다. 내기에 참가를 안 하면 ‘신은 없다’로 간주가 된다. 만약 내가 ‘신이 있다’를 고르고 그런 믿음으로 살다가, 그것이 틀렸더라도, 그러니까 하느님이 없었더라도.. 아무런 ‘손해’보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는 사실 ‘거룩한’ 삶을 살았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실제로 신이 있었다면? 나는 이긴 것이고 내가 가고 싶었던 천국이 나의 것이다. 내가 신이 없다는 것을 선택했고, 없는 것처럼 일생을 살았고 실제로 하느님이 없었다고 해도 내가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만약, 틀렸다면, 그러니까 하느님이 계셨다면.. 나는 하느님을 안 믿는 ‘죄’를 지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간단히 말해서.. 하느님을 믿는 것이 ‘현명’ 한 것이고, 믿어서 손해를 볼 것이 ‘하나도’ 없다는 논리다. 나도 이런 식의 ‘논리’를 혼자서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렇게 ‘현자와 성인’들이 하느님이 있다는데, 그것 믿어 보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것.. 만약 믿었다가 사실이 아니더라도 사실 손해 보는 것은 극소적이 아닐까 하는 지독히 타산적인 생각을 해 본 것이다. 하지만 역시 이 논리는 너무나 ‘타산적’인 것으로, 가슴으로 하느님이 믿어지지 않을 때나 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그 외의 훨씬 더 이성적이고 수긍이 가는 변론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주적 이성으로, Cosmological Reasoning

파스칼의 조금은 타산적인 이유보다도 훨씬 이성적이고 심지어 과학적인 논증이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다. 바로 깜깜한 밤에 찬란히 떠오른 달과 별들로 가득 찬 하늘, 막막한 우주인 것이다. 이 ‘우주적 논증’이 내가 얼마 전까지 ‘사랑’하던 것이었다. 종교적 믿음에 회의가 들면 나는 ‘무조건’ 하늘과 우주를 생각했다. 그러면 십 중 팔구 회의감을 무마할 수 있었다. 우주적 논증은 우주 과학 같은 것과 상관이 없는 사람도 쉽게 이해는 할 수 있다.

이 논증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명백한 ‘공리’로부터 출발한다. ‘원인과 결과’, 모든 현상이나 결과는 분명히 원인 제공이 필요하다는 너무도 명백한 이론인 것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를 생각해 보면 인간이 알 수 있는 크기는 무한대에 가깝다.. 무한대가 아니고 가까운 것은 사실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그 한계를 알 수가 없고, 실증적으로 관념적으로도 알 수가 없다. 언제 시작이 되었는지, 어디까지가 우주의 끝인지 ‘모른다.’ 그것이 현대인이 종교처럼 신봉하는 기술적 과학의 끝이다. 그러니까 그 끝을 이어 받아 해답을 주는 것이 종교적 신앙인 것이다. 최첨단 기술과학이 밝힌 것은 우주에 시작이 있었다는 것, Big Bang 이론이 있다. 태초에 ‘꽝!’ 하고 gas가 터지고 그곳에서 현재의 모든 우주의 물질들이 생겨났고 그것들이 움직이는 것이 ‘천문학’이 되었고, 생물이 나오며 생물학이 되었다. 그러면 당연한 의문이 생긴다. 그 ‘태초의 꽝!’ 전에는 무엇이 있었나? 그것은 과학이 아니란다. 과학의 영역 밖이란다. 그리고 우주의 크기까지 계산을 해낸 천문과학자들, 크기가 있으면 그 변두리도 있을 것인데.. 그 변두리 밖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것도 과학 영역의 밖이란다. 이런 근본적인 과학의 한계를 알면, 사실 누구나 ‘겸허’해 지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의 머리는 아직도 멀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 ‘모르는 것 투성이’에 대한 ‘명쾌한 대답’이 바로 ‘하느님의 만드신 우주와 피조물인 인간’ 설, 바로 종교인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 실험으로 알려진 기술적 과학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고 과학적 사실보다 엄청 커다란 진리의 일부가 과학인 것이다. 그 진리가 바로 ‘하느님의 세계’를 말하는 종교 신학이 아닐까? 여기까지 모든 것인 ‘과학적 실험’에서 벗어나지만 완벽한 이론과 이성에 부합되는 것 들이다.

 

역사적인 접근, Historical Signs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는 하느님, 그것도 유대교-기독교적인 생각에서 보는 하느님은 어떻게 설명이 될 수 있을까? 하느님을 말하는 ‘믿음 체계, 종교’는 지구상에 얼마든지 많이 있지 않은가? 그 중에서 왜 나는 그리스도교 적인 하느님을 믿어야 하는가? 왜 그것이 나에게 유일한 하느님에 대한 해답이라고 생각하는가? 왜 불교는 아니고, 왜 일본 신도나 이슬람은 아닌가? 이것은 비교적 길지 않은 인간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역사’는 다름아닌 유대-기독교에서 모두 사용하는 ‘구약성경’을 말한다. 이 구약성경은 신앙적인 bible이지만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서’이기에 그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창세기에서 시작되는 이것은 현대적 세속적 과학적인 ‘보이는 것’을 찾는 관점으로 보면 ‘설화’에 가깝지만 그 속에서 ‘안 보이는 것’을 찾는 것 또한 의미가 크다. 제일 큰 의미는 바로 하느님의 존재와 ‘우주 창조’에 있는데, 모든 것의 시작인 절대 유일 존재, singularity, 시 공간 이전의 창조의 모든 근원이 하느님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계시 받은 것이라면, 그 절대존재, 야훼라고 불리는 그것이 하느님이 아닐까? 물론 이런 접근 방식은 어느 정도 ‘믿음의 문’을 열고 있어야 이해가 가능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그 ‘마음의 문’이 열릴 수 있는 것도 ‘은총’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나가며

기독교에는 ‘믿음은 은총‘ 이라는 말이 있다. 은총이란 하느님이 주시는 ‘공짜의 선물’이란 뜻이다. 이 말은 누구나 받는 선물이란 뜻이지만, 인간 고유의 특성인 ‘자유의지’에 따라서 이 선물을 받고, 안 받고 한다. 애써서 거부만 안 하면 받는 선물이 바로 ‘자연스럽게 하느님을 믿는’ 능력인 것이다.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고 또한 하느님이 주신 ‘이성’이라는 인간의 능력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이성이란 것은 신앙적 차원에 못 미치는 불완전한 것일 수 있다. 위에 나열한 여러 가지의 ‘변론, 이유’들은 개개인 마다 다른 의미로 비쳐지기도 하고 이런 이유가 전부가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믿음이란 것이 ‘이성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더 나아가서 믿음의 부정이 오히려 비이성적임도 보여주기에, 파스칼의 말 대로 ‘믿어서 손해 보는 것이 없다’는 것만 인정해도 어떤 무신론자에게는 거의 천지개벽 같은 변화를 주지 않을까..

 


 

  1. 추측에 그들은 주로 신앙간증이란 형식으로 이것을 대신하고 있는지도..
  2. 나의 유일한 희망은 이것이 어떤 한 사람에게라도 ‘이 험한 세상이 알고 보면 생각보다 희망적’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고 싶은 것, 그것뿐이다.
  3. 주로 장례행사: 장례미사, 연도 등을 통해서.
생전의 구상 시인

생전의 구상 시인

얼마 전에 시작된 아틀란타 순교자성당 2014년 부활영세자 교리반, 수녀님을 돕는 봉사자 역할을 시작하면서 주 교재인 ‘여기에 물이 있다1를 영세 예비자들과 같이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다. 천주교 ‘교리’ 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게 참 ‘부드럽고, 친절하게‘ 잘 꾸며진 책이었다. 어제 교리반에서 공부 한 제2과의 서두에 오랜만에 보는 ‘구상’ 이란 이름이 보였다. 구상(具常) 님은 시인이자 천주교인으로 내가 젊었을 때 그에 관한 기사(글과 사진)들을 여러 잡지에서 많이 보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물론 내가 천주교의 ‘천’ 자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잡지에서 보았던 시인의 얼굴모습도 떠 오르고, 천주교 신앙을 깊은 묵상으로 고백하는 듯한 시와 글도 기억난다. 그것이 전부였는데, 이번에 다시 그 시인의 이름을 본 것이다.

불현듯 그 시인의 근황과 그의 시의 세계2 등이 궁금해 졌다. Quick googling으로 시인이 우리 어머님과 같이 1919년 생이시고, 어린 시절을 역시 우리 어머님 고향인 함경남도 원산 임을 알게 되어 너무나 반갑고, 어렸을 때 아마도 어머님 집안과도 장날에 만났을 수 있다고 상상하기도 했다.3 시인은 우리 어머님 보다 일년을 더 사셔서 2004년에 선종을 하신 것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한글 Wikipedia로 가보니 아주 실망스럽게 한 페이지도 안 되는 성의 없이 쓰여진 듯 보이는 글이 뎅그라니 보였다. 누가 이 기사의 저자인지 나는 알 길이 없지만 그의 배경이나 학식, 진솔함 등에 관한 추측은 가능했다. 한마디로 빠가.. 그것도 악질 빠기급에 속한다. 빠가. 빠가.. ‘해방 후 1946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산4..’ 어쩌구 하는 글 하나로 이 빠가, 젖먹이 같이 유치한 듯 느껴지는 이 편집자가 현재 ‘한글 Wikipedia’의 대표적인 수준이라면 아뿔사.. 이곳도 역시 ‘주사파, 빨갱이’들이 득실 거리는 구나.. 하는 한숨만 나온다. 아마도 이 기사의 저자는 구상 시인이 ‘악질, 반동 천주교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생각한다.. 시인의 형님 신부님과 어머님이 빨갱이들에게 ‘처형’이 된 것을 이 빠가는 아는가? 어떻게 이런 ‘역사 수정주의 빠가’들을 한글 Wikipedia에서 몰아 낼 것인가? 으이구~~ X가 갈린다.

 


  1. 글 차동엽, 그림 김정자, 미래사목연구소 간, 예비신자 교리 & 소공동체 나눔용
  2. 이제는 나에게 시의 세계는 옛날처럼 먼 곳이 아니다.
  3. 그 당시 원산에 살던 사람들은 그런대로 서로 얼굴이 낯 설지 않을 정도로 지냈다고 들었다.
  4. 야 이 빠가야, 어째서 1946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어쩌구란 걸래 같은 말이 관계가 되냐? 구상 시인에 대한 글에, 조선민주주의인민이란 쓰레기 같은 말이 걸 맞냐?

Faith and reason are like two wings on which the human spirit rises to the contemplation of truth;Blessed John Paul II, 1998.

 

Jim Jones CREDIT: wikipedia

Jim Jones, CREDIT: wikipedia

‘이성(理性, reason)이 결여된 신앙’ 의 결과는 정말 끔찍할 수 있다. Jim Jones, Tom Jones처럼 흔한 이름이지만 이 J.J. 는 사실 이렇게 끔찍한 이름이다. 나의 뇌리에 ‘아직도’ 생생한 그 지옥과도 같던 사진과 TV의 광경들, 1978년 11월 늦가을이었을까? People’s Temple이라고 하는 교회의 교주가 바로 Jim Jones인데, 이 교회는 흔히 말하는 ‘예수’를 믿는 교회는 절대로 아니고 그저 ‘사회에서 소외 당하는 돈과 힘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사는 집단이었다. 그러니까 ‘사교’, 어떤 신을 믿는 집단이 아니었는데, 우리들은 그저 ‘예수님’은 믿지만 교주도 믿는다는 그 옛날 ‘박태선 장로’ 교회와 비슷한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이 Jim Jones의 ‘집단’은 기실은 ‘공산, 사회주의’를 믿는 실로 해괴한 집단이었지만 그 자신은 이 해괴한 집단의 ‘하느님’역할을 했다. 그 자신은 거의 ‘정신병자’의 영역에 속하는 사람이었지만, 불쌍하고 배고픈 ‘대부분이 흑인’들은 그를 신처럼 따랐다. 하도 해괴한 집단이고, ‘공산주의’에 관련이 되다 보니 미국정부에서 가만있을 리가 없고 국회 차원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들은 ‘박해’를 받는다며 남미의 Guyana라는 곳에 집단으로 이주를 했고 그곳에서 그들의 ‘해괴한’ 집단 생활을 계속했다.

1978년 11월, 미 연방국회 조사단 일행이 그 집단을 방문하고, 그 집단을 떠나고 싶은 ‘신도’를 풀어주라고 요구하자 그들은 그 조사단 일행을 모조리 사살을 하고 그날 저녁 Jim Jones를 위시해서 그 집단 900여명, 300명의 아이들을 포함해서 집단 자살을 해 버렸다. 2001년의 9/11 사태 이전에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민간인 피해자를 낸 ‘역사적 사고’였다. 공중에서 찍은 그날의 비극적인 장면을 보면, 정말 입이 벌어져 다물 수가 없게 된다. ‘멀쩡하게 생긴 가족들’이 무슨 유태인 수용소 처럼 모두 모여서 ‘독약’을 먹고 자살한 것이다. 비록 종교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고 하지만 이 집단의 행동을 보면 종교적 사교집단과 구별을 할 수가 없다. 거의 같은 수법인 것이다. 이들 집단의 특징에는 ‘이성’을 철저히 배제한 무언가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란 것이 있다. 믿음과 이성은 같이 간다고 하는 비교적 쉬운 진리를 잊은 것일까?

 

이 밥맛 떨어지는 옛 기억을 오늘 다시 찾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어제 연숙과 같이 우리는 드디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신 영세자 교리반의 봉사자 팀의 모임에 참가를 했고, 교리교사 수녀님1 의 지시와 설명을 들었다. 작년까지는 교리반 system에 봉사자란 것이 없고 그저 교리교사 몇 명이 예비자들을 가르쳤는데, 새로 수녀님이 오셔서 ‘완전히’ system을 바꾸어 수녀님 자신이 ‘유일한’ 교사가 되고 나머지는 평신도 ‘봉사자’들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왜 그렇게 바꾸셨는지 우리는 이유를 잘 모르지만 새로운 ‘공기’를 불어넣어 주려는 의도로 해석을 했다. 또한 왜 우리부부가 그 봉사자 팀에 ‘불려 갔는지’ 그 이유도 사실 모른다. 그저 우리는 ‘순명’을 한 셈이다. 나이에 비해서 너무나 건강하고 팔팔하신 수녀님, 조금 성급한 성미가 신경이 쓰였지만 나는 그런 모습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야말로 ‘새로운 공기’를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주임신부님이 수녀님께 교리교육 책임을 100% 주신 것을 보면 조금은 신부님의 수녀님께 대한 신뢰도를 짐작할 수도 있었다. 우리 봉사자들이 할 일은 주로 group discussion을 돕는 것인데, 그에 따른 ‘공부’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그 중에는 ‘이단 신천지 알기’ 에 대한 공부도 있었는데, 물론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idea가 없었다. 그래서 소개 받은 ‘신현욱 전도사의 신천지 폭로 youtube video’를 보며 이것에 대해 알게 되었고 나는 곧바로 1978년의 끔찍한 ‘살인사건’ Jim JonesPeople’s Temple을 기억해 내고, 결국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 ‘집단’은 거의 모두 같은 ‘거짓의 원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점에서 거의 같다고 보았다.

 

왜 수녀님께서 그 ‘신현욱의 신천지 폭로 video‘를 보라고 했는지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예비자 중에 그런 것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우리들의 ‘사교에 대한 무식’을 피하게 하려고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정도로 추측을 했다. 그런 생각의 전개는 사실 다음과 같은 엄연한 ‘현실’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 ‘개신교 형제’들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도망 나간 형제’들이고 사실 최근의 교황들도 그렇게 가르친다. 언젠가 ‘돌아올 수 있는’ 형제들인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진실을 알기’ 까지 겪어야 할 위와 같은 끔찍한 비극들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교계’로부터 자유를 찾아 나갔지만 그 자유의 값은 잠정적으로 너무나 비극적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개신교라고 자처하는 형제 교회들의 분파가 도대체 몇인가, 그대들은 현실을 아는가? 이런 현실에 그들을 과연 하느님의 직접 개입을 기대할 수 있을까? ‘현재까지 알려진 성경의 말씀들’에 ‘100% 모든 것을 의존하는’ 개신교는 ‘언제, 어디서나’ 어떻게 그 말씀을 해석하는가 하는 어려울 수 있는 문제를 숙명적으로 안고 산다. 그 중에 ‘분명한 사교’ 집단이 도대체 얼마인지 누가 아는가? mainstream개신교 형제들, 대부분 reasonable 한 형제 자매들도 많지만 정말 ‘무식한 목회자’들도 수두룩 닥상.. 어떻게 그런 ‘목회자’가 나왔는지 나는 모르지만 진실로 불쌍한 것은 그 밑에서 그를 따르는 양들임을 알 때 정말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다. 믿음과 이성은 신앙의 두 날개임을 그들은 쉽게 잊는다.

 

  1. 별 생각없이 이름을 썼다가 본인의 요청으로 삭제를 하며 생각을 했다. 아마도 소속 수녀원의 privacy policy에 저촉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참 수녀원도 luddite가 되어 가는지는 모르지만, 현 교황님도 twitter애용자임을 알면.. my right is as important as yours is

지난 주에 멕시코에서 ‘성체기적(Eucharistic Miracle)’이 일어났다고 보도가 되었다. 성모발현 같은 것은 귀에 익지만 성체기적은 상당히 생소하게 들린다. 물론 ‘옛날’에 그런 ‘현상, 기적’이 일어났다고 알려졌고, 기록도 자세히 남아있지만 근래에 그런 것이 있었을까? 성체기적은 간단히 말해서 가톨릭 전례 중의 ‘성찬의 전례’ 때 성체(얇은 조각 빵)가 실제로 물리적으로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상징적으로만 대부분 생각을 하며 성체와 성혈을 먹고 마시지만, 가톨릭 교리는 분명히 그 ‘빵과 포도주’가 ‘살과 피’로 변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니 가톨릭 신자들은 최소한 그런 현상을 ‘상상’이라도 하며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이다.

이번에 멕시코의 ‘사건’은 발생한지 불과 며칠이 되지 않아서 진실 여부는 고사하고 자세한 것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 ‘사건’의 대강 줄거리는 다음과 같이 보도 되었다.

 

지난 7월 24일, 멕시코의 과달라하라(Guadalajara) 대교구 소속 성모마리아 성당의 호세 구디노(Fr. Jose Dolores Castellanos Gudino) 주임신부가 성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할 때, 번쩍이는 빛과 함께 말소리를 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모이게 종을 쳐라”, “모인 사람들에게 하루 종일 강복을 하겠다. 성체를 모신 작은 감실을 본당 제대 위에 놓아 모든 사람들이 성체조배를 하도록 하라. 커다란 성광(monstrance)을 그 조그만 감실 옆에 놓아라. 감실을 3시까지는 열지 않도록 하라.” “성찬의 전례 때 내가 기적을 보여주겠다.” “이번에 일어날 기적은 ‘동정 마리아가 나타나는 성체의 기적’ 이라고 불릴 것이다. 지금 보여줄 광경을 복사해서 사람들에게 보여라.”

 그 목소리는 계속해서, “사람들이 하느님을 알게 하는데 이 기적의 소식을 알려주도록 모든 사제들과 이 소식을 나누어라.”

이 소리를 듣고 난 구디노 신부는 “주여, 나는 종입니다.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오후 3시에 사람들이 모였을 때, 그 신부가 감실을 열어 보았을 때 그 성체는 피로 덮여 있었다. 신부님에 따르면, 그 목소리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성체 조배 chapel을 만들고, 과학적 조사를 허용하라고 했다. 이 ‘기적’이 알려지고 나서 곧 대교구 차원에서 조사가 시작되었다.

 

이 기사를 읽고 나서, 나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예전에는 믿지 않았거나, 중립적이거나,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충분히’ 사실적이고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 나의 ‘신앙의 정도’라고 하며 조금 이상한가?

 

천주교 예비자 교리교과서 여기에 물이 있다

천주교 예비자 교리교과서
여기에 물이 있다

‘여기에 물이 있다’.. 표지가 노~란 촉감이 아주 부드러운 책의 제목인데, 이 책은 천주교 영세를 원하는 ‘예비자’들을 위한 교리 반 학생용 ‘교과서’이고 내가 가진 것은 ‘교사용’이란 말이 더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학생용 책에다가 교사에게 도움이 되는 것(cheat sheet,해답) 덧붙인 책이다. 잠깐 훑어보면 교과서치고는 정말 부드럽고 읽기 쉽고, 읽고 싶어지는 그런 느낌을 준다. 이것을 어제 연숙과 같이 성당에서 받아가지고 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교리교사의 역할을 ‘조금’ 맡게 된 것이다. 정식으로 는 예비자 교리반의 ‘교리반 봉사자’ 가 되는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교리반은 교리교사 여럿이서 책임지고 가르쳤지만 올해부터는 ‘완전히’ 체제가 바뀌어서 새로 부임하신 수녀님이 교리반의 ‘유일한 책임 교사’가 되고 나머지는 모두 ‘봉사자’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우리 부부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교리반 봉사자가 되었는지 아직도 우리는 모른다. 아니 확실치 않다. 어느 날 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신부님(하태수 미카엘)께서 연숙에게 ‘제안’을 했다고만 들었고, 기왕이면 부부가 같이 ‘봉사’를 하라고 하셨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사실 ‘청천벽력’ 같이 느끼기도 했지만, 우리가 속한 레지오(마리애)의 으뜸 사명인 봉사(service), 순명(obedience)을 염두에 두고 생각을 곰곰이 해보니 거절할 명분도 느낌도 없음을 알고 비교적 쉽게 OK를 하였다. 드디어 예비자 교리반이 8월 초에 시작하게 되어서 어제 수녀님을 중심으로 봉사자 모임에 참석하여, 이 책을 받아오게 된 것이다.

우리는 어제 수녀님께 분명히 ‘우리는 왕초보’라고 말씀을 드렸다. 하지만 왕초보라는 말에는 별로 신경을 크게 쓰지는 않으심을 알았고 ‘교리 실력’ 이 전부가 아니라는 느낌도 받았다. 보살핌과 가르치는 방법, 그리고 ‘간단한 정통교리’가 더 중요한 것을 알았고, 자칫하면 쉽게 범할 수 있는 ‘은밀한 개인적 밀착’의 위험성을 수없이 강조함을 듣기도 했다. 모두 이해가 가고, 수긍이 가는 말씀들이었다.

비록 봉사, 순명의 정신으로 (봉사자 역할을) OK를 했고, 이 ‘교리반 봉사’의 과제와 책임이 우리 둘의 신앙생활, 여정에 어떤 의미와 결과를 남길지는 미지수 이지만, 신부님께서 친히 부탁(지시)을 하신 것을 보면 조금은 자신감을 가지고 노력을 해야 하고,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 Florida Keys

    Florida Keys

    7월도 tipping point를 지나간다. 이제는 서서히 8월을 향해서 ‘쓰러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요새의 한 달의 느낌은 예전의 일 주일 정도라고나 할까.. 어찌 그렇게 세월의 느낌은 나이의 느낌과 비슷할까.. Mother Nature의 축복을 흠뻑 받으며 올해의 여름은 기가 막히게도 시원하고 시원하다. 몇 년간의 갈증을 완전히 복수라도 하듯이 엄청 많은 ‘물’을 쏟아 주셨고,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다. 나머지 여름, 기껏해야 한달 반.. 암만 더워도 달게 받으리라. 그러다 생각하니 그렇게 많이들 가는 여름휴가.. 이제는 ‘휴가’라는 말 조차 잊은 것일까. 연숙도 다 잊은 모양으로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우리 집 자체가 summer house같이 느끼는 것일까? 집에 있는 자체가 summer vacation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편하게 느끼면 되지 않을까? 올해는 잠시 잠시, 미국의 ‘최남단’ Florida Key West와, Hemingway의 소설이야기를 향해서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그대로 차를 몰고 집을 떠날까 하는 충동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의 대표작, 중학교 때 영화로 보았던 ‘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ms)’ 그리고 킬리만자로의 눈 (The Snows of Kilimanjaro)등을 최근에 다시 보게 되면서 더 그곳을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그것은 어디까지나 머리 속에서만 머문 것이 되나 보다.. 그렇게 올해의 여름도 끝날 것인가?

     

  •  이동수 목사.. 이동수 선생, 어떨 때는 형제와 같이도 느껴지는 사람.. 하지만 꿈속에서나 보는 느낌으로 오랜 세월을 못 보고 지낸 그런 사람, 어제는 우리 부부가 정말 오랜만에 꿈에서 깨듯이 그 집을 방문해서 부인, 이미섭 선생이 정성스레 마련한 ‘일식’ 점심을 같이 하며 해후를 풀었다. 한마디로 ‘은혜로운’ 몇 시간을 우리들은 만끽하였다. 골방에서 거미줄을 치우며 조금씩 빛을 향해 개미행진을 시작한 지 2년여가 되어가지만 아직도 나는 그 개미행군을 계속하는 느낌이다. 1990년 초, 우리가 아틀란타에 이사온 후 시작한 아틀란타 한국학교에서 우리부부와 그 집 부부는 같은 선생님으로 만났고 그것이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져서 우리들은 ‘인연’이 생기게 되었는데 교장문제 같은 하찮은 ‘정치싸움’에 우리는 본의 아니게 휘말리고 결과적으로 다 그곳을 떠났는데, 그 이후로 사실 우리 들은 헤어지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그야말로 생사 여부나 간신히 알 정도로 지내게 되었는데 얼마 전 연숙이 정말 우연히 이동수 목사를 보게 되었고 어제는 집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1990년대의 ‘지인’에 속하는 이동수 목사.. 이렇게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은 이제는 절대로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세상에는 100% 우연이란 없다는 것을..

     

  • 몇 년 전 우리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얻어온 선교용 CD를 조심스레 rip해서 youtube에 올려 놓았다. youtube 를 배우려 한 목적도 있었지만 내가 들어 본 그 CD는 한국 천주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만든 것이라 아주 professional한 것이라 나도 다시 들은 것도 많은 수준 급이어서 혹시 천주교를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큰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것이 ‘인기’가 있을 것은 절대로 기대하지 않았고, 사실 그랬다. 불과 200 views도 채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찌 문제가 되는가.. 단 한 명이라도 ‘무언가’ 느끼면 되지 않겠는가?
    문제는 toxic comments에 있음을 오늘까지 몰랐다.. stupid, toxic, absurd, destructive comments..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의 ‘시간을 죽이는 한가한 인간들’의 넋두리를 그대로 방치한 것이다. comment review & approval을 해야 하는데..하는 후회가 있었지만 늦었다. 어떤 ‘불쌍한 자매님’이 불쌍한 comment를 달아놓았다. ‘교황은 지옥에 있다’라고 시작된 이 Kafka-ish한 느낌은 정말 어찌 처리하는가.. 속으로는 ‘지옥은 당신들… 당신이나 잘하시오..’ 하는 감정도 잠시 치솟지만 그래도 나는 레지오(마리애)의 정신에 조금은 익숙해졌는지 곧바로 평정을 가다듬고 이 불쌍한 영혼을 위한 기도가 생각나면서 ‘아하.. 이래서 우리 레지오가 세상에 필요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아.. 세상에는 참으로 불쌍하고 무식한 영혼들이 많이 있구나.. 하지만 무식해도 바르고 깨끗한 영혼들도 많이 있는데..

     

  • Coursera: 약 6주전에 성당교우 설재규씨가 이곳, online university course website, coursera.org를 소개해 주었다. 이곳은 전 세계(주로 미국)의 여러 대학 online course들을 online student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비교적 새로운 academic course provider이다. 인터넷을 이용해서 computer로 강의를 듣게 하는 idea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이렇게 다양하고 세계 굴지의 교육기관 (주로 미국의 대학들)의 course들을 ‘한 곳’에서 제공하는 것은 새로운 것이다. 각 대학들은 이미 자체 방식대로 그 동안 credit course들을 ‘유료’로 제공을 해 왔지만 이 coursera.org는 ‘기본적으로’ ‘무료’인 것이다. course를 제공하는 학교들과 이것을 한 곳에서 제공하는 coursera 는 어떻게 무료를 가능케 한 것일까? 특별한 ‘광고’들이 보이지 않기에 광고수입은 관계가 되지 않는데,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이 course들의 학생 숫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고, 이것 자체가 각 대학들을 ‘선전’하는 금전적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닐까? Open & Free가 새로운 문화로 정착하는 이즈음, 이것도 그런 맥락에서 절대로 이해가 가는 시대를 앞서가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주간 나는 University of Rochester에서 제공하는 Fundamentals of Audio & Music Engineering : Part 1 Musical Sound & Electronics란 ‘거창한’ 제목의 course를 ‘경청’하려고 노력을 해 보았다. 학교 강의실이 아니고 편한 집의 cushy한 환경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사실 oxymoronic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나에게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이 course로 나의 성적표 기록이 남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잘 보이려는 것도, 이제 취직을 하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재미와 보람’만 있으면 되지 않겠는가?

    특별히 이 sound & music course를 택한 것은 내가 이곳을 처음 찾던 날 ‘개강’을 한 것이 제일 큰 이유였지만, course description에 final project로 guitar amplifier를 설계, 조립을 한다는 것이 귀가 솔깃해진 것도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요사이 나는 야마하 ‘통(acoustic)기타’를 guitar pickup과 Beringer amplifier, buzz pedal을 연결해서 쓰는 중이어서 이런 분야에 관심을 둔 것도 또한 이유가 되었다.

    이것을 공부하면서 느낀 것 중에는, calculus를 포함한 대학 level 수학을 정말로 많이 잊어 버렸다는 것.. 학교를 떠난 후 이 ‘이론적 수학’을 써볼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는 변명만 찾기에 나는 급급하고 있을 정도로 사실 당황을 하였다. 세월이 그만큼 흐른 것 때문일 것이다. 전기공학과 2학년 수준의 AC circuit analysis도 많이 잊어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생애 전공’이 거의 digital, microcontroller, embedded software였으니, 그 쪽은 정말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편으로는 너무나 ‘향수’를 느끼게 하는 그리움 같은 것도 느껴서 그렇게까지 괴롭지는 않았다.

    My current & upcoming courses from Cours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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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뒤에는 다음 course, Introduction to Guitar가 시작이 되는데, 사실 이것을 ‘청강’해 보려는 것은 과연 진짜 pro들은 어떻게 guitar를 치는가 하는 것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course의 설명을 읽어보면 ‘아마도’ 기타를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사람들을 위한 것 같아서 시간 낭비가 되지 않을까 우려도 되지만 무슨 상관.. Free & Open이 아닌가? 3주 뒤에는 올해 나의 진짜 관심사, 이스라엘의 대학에서 제공하는 A Brief History of Humankind인데, 소개 video를 보면 정말 어떤 각도로 ‘인간역사’를 조명하는가가 궁금해진다. 나의 다른 희망은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지만 어떨지 모른다.

     

     


 

 
A Day in the Life, Beatles, 1967

 

 

김민호 프란치스코, 17세의 소년.. 어떻게 그런 100% 희망의 나이에 우리들의 곁을 떠날 수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우리의 머리 속을 완전히 지배하던 어제였다. 3일 전, 요사이 뜸하던 ‘위중한 환자기도’의 소식에 우리들은 ‘서서히’ 환자기도를 시작했지만 너무나 빠른 ‘병의 진행’으로 그제에는 신부님의 병자성사가 필요할 정도로 위독한 상태가 되었고 어제 아침에 그 17세의 소년은 고요히 눈을 감았다. 병명은 역시 ‘암’의 일종인 ‘투명세포육종’이라는 희귀한 것이었다.

레지오 입단 3년이 다가오는 나는 그 동안 많은 죽음을 보았고 연도, 장례미사를 하였지만, 이렇게 ‘누구나’ 100% ‘언젠가’ 거쳐야 하는 ‘과정’은 정말 100% 모두 다른 사연과 과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평균’ 수명을 다 채우시고 떠나는 분들은 비록 다행인 case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편으로는 그 수명 동안 겪은 수많은 사람들, 경험들과 이별을 하는 고통이 따르고, 반대로 이번의 17세 소년의 case는 평균적인 인연과 경험을 못 보고 떠나 보내야 하는 슬픔의 고통이 따른다. 역시 이것도 공평하다고 할까.

이럴 때는 어떤 말로 유족들을 위로해야 할까.. 그저 간단하게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는 너무나 형식적인 것일까? ‘더 좋은 곳으로 갔을 겁니다.’ 는 사실 맞는 말인지도 모르지만 조금 오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그래도 나는 그 애가 내 옆에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하는 반응이 나온다면 분명히 그 말은 그 부모를 더 슬프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조용히 hug이나 눈의 맞춤으로 슬픔을 같이 나누는 것이 제일 ‘안전’하고 좋지 않을까. 또한 이럴 때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는 것이 바로 우리 가톨릭 장례의식 중, ‘연도’임을 어제 또 절감하게 되었다. 우리들 전에 이미 떠난 그 수많은 성인의 이름을 열창하며 17세 소년을 받아 주시라는 기도는 듣거나 참가해본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그 의미나 느낌을 모를 것이다.

 


 장례미사를 다녀와서..

 

모처럼 하늘의 습기가 가신 후, 청명한 날씨가 된 오늘 정오에 고인 김군의 부모가 속한 본당 ‘아틀란타 한국 순교자 성당’ 에서 장례미사가 입추의 여지없이 대성당을 꽉 채운 가운데 치러졌다. 부모님이 성당 공동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여서 어떤 조문객이 올지 나에게는 미지수였지만, 어제 viewing에 온 상당한 숫자의 ‘미국 친구’들을 보고 아마도 반 수 이상이 ‘영어권’ 일 것이라 짐작을 하긴 했다. 나의 짐작은 맞았지만 결과적으로 ‘영어권’ 조객이 압도적으로 많이 참석을 했다.

성당 parking lot에 아틀란타의 ABC-TV affiliate(계열방송사)인 Channel-2의 crew van이 있었고 camera까지 준비하는 것을 보고, 대강 이 김민호군의 됨됨이를 짐작하게 되었다. 이태리 계통인 우리 본당 주임신부님은 아직도 영어권 문화가 서먹하신지 전례해설자에게 모든 ‘영어 소통’을 의뢰하신 모양으로 대부분의 ‘영어권 친구 친지’들은 소수의 ‘한국어’ 권 신자들을 따라서 그들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는 로마 가톨릭 식의 미사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 이런 조금 다른 식의 미사도 사실 큰 무리가 없음을 이번에 나는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가톨릭 전례는 한마디로 universal한 것으로 같이 동참하여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미사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고인을 하느님께 의탁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지만 우리들은 과연 김민호 프란치스코 군이 어떤 인물인가에 더 관심이 많았다. 성전을 꽉 메운 그들을 보면 그것을 짐작하기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의 성품, 추억, 행적을 간접적으로 그들의 얼굴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사(eulogy)가 그것을 직접적으로 알게 해 주었다. 김민호, Nicklaus, Francis군, 그는 한마디로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던 17세였다. 한국적인 예절이 몸에 배인 것도 그렇고, 모든 일을 착실히 최선을 다하던 그였고, 그렇다고 해서 ‘지루한 공부벌레’도 아닌 유머감각이 있던 정말 크게 인생을 살 수 있을, 무언가 큰 업적이라도 낼 듯한 잠재력을 지녔던 고교생 이었던 것을 우리들은 그 조사를 통해서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다. 안타까운 심정은, 주위의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그가 지금 ‘육체적, 물리적’으로 우리들을 떠났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그는 운명 직전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I love you all..이란 말을 남겼다는 것으로 그는 사랑이 충만한 한 고귀한 젊은 영혼이었음도 알게 해 주었다.

김군을 일찍 하늘나라로 데려가게 한 직접적인 원인, ‘투명세포육종(Clear Cell Sarcoma)’ 이라고 불리는 특이한 암, 이 비교적 희귀한 병은 그렇게 치유 율이 높은 것은 아니었다. 왜 이병에 걸렸으며 왜 그렇게 1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게 했는지 누가 알겠는가? 이것이야 말로 하느님 영역에 속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만 절감하게 된다.

생각한다. 아니 이제는 믿는다. 김민호 군의 ‘불멸의 영혼’은 지금 괴로웠던 육신을 떠나 (미사 후 곧바로 화장이 되었다) ‘훨훨’ 하느님의 영역에 돌아갔거나 돌아가고 있고 아마도 장례미사를 하는 우리들을 미소 머금은 모습과 마음으로 보고 있으며, 괴로워 할 가족들을 보며 위로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이제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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