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종교

예기치 않은 작은 일 하나로 어제 오후의 기분은 평상적인 평화로운 화요일의 그것과 다른 것이었다. 오랜 만에 마음의 평정이 공략을 받는 듯한 위기감까지 느낀 고요한 화요일 오후, 오랜 만에 openculture website를 들렸다. 이곳이 언제부터 나의 favorite site list에 있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최소한 3년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 이곳은 주로 ‘인류 문화적 유산’에 큰 가치를 두고 그 가치를 유지 발전 보급하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그 일환으로 무료나 저렴한 비용으로 online course를 제공하는 information을 싣곤 한다. 이곳의 소개로 내가 ‘들었던’ course도 이제는 몇 개가 된다.

오늘 쳐지는 기분 속에 나의 눈에 들어온 글자가 바로 Kierkegaard란 이름이었다. 한글로는 ‘키에르케고르’ 로 번역되는 이 19세기 덴마크의 국보급 철학자에 관한 course가 그곳에 소개되고 있었다. 게다가 course가 어제인 6월 4일에 시작이 되니, 알맞은 timing이 아닌가?

오늘 쳐지는 기분 속에 나의 눈에 들어온 글자가 바로 Kierkegaard란 이름이었다. 한글로는 ‘키에르케고르’ 로 번역되는 이 19세기 덴마크의 국보급 철학자에 관한 course “Søren Kierkegaard – Subjectivity, Irony and the Crisis of Modernity”가 그곳에 소개되고 있었다. 게다가 course가 어제인 6월 4일에 시작이 되니, timing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 아닌가? 8주간 계속되는 이 course는 19세기 덴마크 실존주의 신학,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의 성장 배경과 그의 주 관심인 그리스도교적 실존철학, 주관론, 소크라테스의 Irony개념, 그리고 급변하는 세상에서 느끼는 ‘절망감’ 같은 것들을 공부한다.

 

 

 

문제는 왜 내가 이 course에 관심이 가는가 하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보아온 이름 ‘키에르케고르’, 그는 과연 누구인가, 왜 많은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이 사람에 관심을 두는가.. 알고 싶다. 피상적으로 이 철학자의 profile을 보면, 우선 그의 철학은 완전히 그리스도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바로 이것이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특히 ‘죽음에 이르는 병, The Sickness Unto Death‘이라는 후기작의 제목은 바로 ‘요한복음 11장 4절1‘ 에서 나온 것을 알고 나서 나는 이번 여름 8주를 coursera 제공, ‘open & free2‘ course를 통해서 이 덴마크 신학철학자에 대해 알아 보기로 결심했다.  

이런 과정에서 기억 속을 헤치고 나온 것이 하나 있다. 1984년 신동아 잡지의 별책 부록, ‘역사를 움직인 100권의 철학책’이란 것, 분명히 ‘키에르케고르’는 그 곳에 소개 되고 있었다. 특히 위에 소개한 ‘죽음에 이르는 병’에 관한 저자의 소개가 그곳에 있었다. 그것을 이곳에 전재를 하여 기억력을 살린다.

이러다 보니.. 온종일 쳐지고 우울한 머리가 한결 가벼워짐을 느끼며,  한결 살맛이 난다. 이래서, 우울할 때 그대로 쳐지고 있으면 하나도 해결되는 것이 없다는 나의 경험철학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키에르케고르(덴마크 Sø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

죽음에 이르는 病 (1849)

 

표재명 表在明 (고려대 문과대학교수 서양철학)

역사를 움직인 100권의 철학책3

 

 

<1>

‘쇠얀 키에르케고르’는 1813년 5월 5일 북 유럽의 작은 나라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부유하고 경건한 모직상의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부친에게서 풍부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변증력을 훈련 받았고 깊은 시름을 물려 받았다. 코펜하겐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배우고 부친의 뜻에 따라 신학 국가시험에 합격, 왕립전도학교에서 목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한편, ‘소크라테스’를 언제나 염두에 두고 쓴 ‘아이러니의 개념’으로 철학 학위를 받았다. 한때 베를린대학에 가서 ‘헤겔’의 뒤를 이은 만년의 ‘셸링’의 강의를 듣기도 했다.

1838~39년에 그는 부친의 소년시절에 관련된 비밀을 알게 되어 ‘큰 지진’을 체험하고 죄의식에 눈을 떴다. 이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 ‘레기네 올센’과의 결혼도 포기하고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지냈다.

1846년 진보적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악덕 풍자신문 ‘코르사르'(해적)와 충돌하면서 그는 사회와 대중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종교적 저작가로서의 사명에 살 것을 결심했다. 1854년부터는 팜플렛으로 된 ‘순간’으로 덴마크국교회와의 싸움에 나서 순교자의 길을 택했는데, 1855년 가을에 길에서 쓰러져 병원에 옮겨졌으나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11월 11일 42세의 한창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현대실존사상의 선구적 사상가 철학자라고 한다. 그러나 그 자신은 ‘종교적 저작가’ 또는 ‘그리스도교적 저작가’로 자처했다. 그의 저작활동의 목적은 ‘사람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는가’라는 것을 기술하는 것이며, 낱낱의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있는 곳에서 그 자신의 책임으로 이 문제와 씨름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각 사람에게 ‘단독자 單獨者’의 범주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단독자의 범주는 그의 모든 저작활동이 그것을 축으로 전개된 그의 모든 저작활동이 그것을 축으로 전개된 근본 이념이며, 그리스도교의 결정적 범주였다. 그에게 있어 단독자는 하느님 앞에서 자기 자신에게 무한한 관심을 가지는 믿음으로 홀로 서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 모두가 나면서부터 그리스도인인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에 이토록 힘을 써야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 물음의 뜻은 ‘그리스도교 세계는 터무니없는 착각이다’, ‘그리스도교 세계는 저도 모르게 그리스도교를 말살시켜 버렸다’는 그의 놀라운 단언에서 밝혀진다.

그가 볼 때 당시의 그리스도교 세계는 ‘데카르트’ 이래의 근대적 합리주의사상이라든가 낭만주의 사상, 특히 그리스도교와 국가를 합리화하고 종교와 국가를 융합시킨 헤겔철학의 영향 아래 그리스도교 본래의 신앙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미 신앙이 아니라 한갓된 교리와 사상으로 변질된 겉치레만의 것이었다. 그리하여 “신약성서’의 그리스도교, 사도 使徒 들의 그리스도교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 행복을 좇아 ‘미적인 것’의 범주에서 사는 것이며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 행세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착각이요 기만이었다. 여기에 ‘그리스도교 세계에 그리스도교를 이끌어 들이는 일’을 위한 그의 저작활동의 의의와 저작가로서의 사명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또한 그의 정치-사회적 인식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가 자기의 사명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던 1848년에 ‘마르크스’는 <공산당선언>을 냈고 파리혁명을 기폭제로 유럽 전역에서는 혁명의 폭풍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덴마크에도 혁명의 여파가 밀려와 절대군주제가 폐지되고 입헌군주제로 바뀌면서 시민의 자유와 평등이 널리 보장받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는 시대의 유행이 된 사회주의의 이념이나 국민 사회운동이 시대의 구원이 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 같은 것은 낱낱의 단독자를 대중이라든가 그 밖의 유개념의 추상물 속에 묻어버리는 대중화, 평균화의 위험을 촉구하는 것일 뿐이었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은 민중을 집단의 힘 에로 결속시키는 일이 아니라 거꾸로 그것을 붕괴의 시대의 유일한 고정점으로서 하느님 앞의 단독자로 해체시키는 일이었다. 곧 이 시대의 구원은 각 사람이 ‘자기의 원시성 原始性’에 눈뜨고 ‘1800년을 그것이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뛰어 넘어’ 예수와 함께 하는 삶, 곧 신약성서의 그리스도교로 돌아가는 데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각 사람에게 ‘감히 자기 자신이 될 것’ 곧 ‘감히 하느님 앞에서 오직 홀로서는 단독자가 될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 거대한 노력과 이 엄청난 책임을 지고 오직 홀로 서는 특정한 단독자’가 스스로 되려고 했으며 또 다른 사람도 그러기를 원했다. 그는 이것을 ‘그리스도교적인 영웅주의’라고 불렀으며 이러한 그리스도교적 영웅주의를 위해 ‘교화와 각성을 위한 그리스도교적이고 심리학적 論述’로서 <죽음에 이르는 병>(1849)을 썼던 것이다.

 

<2>

<죽음에 이르는 병>의 본문은 ‘인간은 정신이다. 그러나 정신은 무엇인가? 정신은 자기다’ 라고 하는 유명한 말로 시작한다. 인간은 ‘정신’으로, 그리고 이 정신을 ‘자기’로 파악한 데 ‘키에르케고르’의 독특한 인간이해가 있다.

‘헤겔’은 정신의 본질을 주관과 객관, 사고와 존재, 이성과 감성, 논리와 자연을 의식적으로 종합하는 ‘절대정신’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에게 있어서는 이 같은 절대정신은 유한한 인간에게는 당치도 않은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유한한 인간의 실존재하는 정신은 영원자의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현실로는 그렇지 못한 자기이며, 영원자가 되는 일을 과제로 안고 있는 자였다. 본래 그렇게 되어야 할 자기가 되려는 자기생성의 무한한 노력 중에 있는 것이 인간 실존의 진실이요, 인간으로서 실존재하는 정신이란 이러한 과제를 자신의 과제로 자각하는 자기, 이 과제를 지금을 사는 이 단독의 자기의 삶을 통해서 실현하려는 자기였다. 자기가 이러한 의미에서의 실존이 되어 있지 못한 상태, 자기의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상실의 상태에 있는 것, 이것이 곧 절망인 것이다.

이러한 절망이 바로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 곧 구제를 위한 첫째 계기가 된다는 변증법적인 성질의 것이다.

인간적으로 말해서 죽음은 일체의 것의 마지막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으로는 죽음조차도 일체의 것의 마지막이 아니다. 죽음이 최대의 위험일 때, 인간은 삶을 희망한다. 그러나 죽기를 바랄 만큼 위험이 클 때, 그리고 죽음조차도 희망이 될 수 없을 때 이것이 절망이다.

절망의 진행과정은 절망의 현상학이 된다. 절망의 강도는 인간의 자기의식의 도 度 에 따라서 높아진다. 곧 ‘자기가 절망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절망’ (영원한 자기를 가지는 일에 대한 무지)에서 ‘자기가 절망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는 절망'(어떤 영원한 것을 가진 자기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것)에로 높아진다. 이것은 인생행로의 여러 단계에 있어서 정신성의 미적 실존의 단계에 해당되는 ‘재미’를 찾아 헤매는 직접적인 대상의식의 절망에서 윤리적-종교적 실존의 단계까지 이르는 자기의식의 절망이 된다.

윤리적 실존에 눈을 뜬 인간의 절망은 ‘절망하여 자기자신 이려고 하지 않는’ 약한 여성적 절망이 되든지 ‘절망하여 자기자신 이려고 하는’ 반항적인 남성적 절망이 된다. 이 반항적 절망은 자기의식의 강도에 따라 악마적인 반항, 절망적 광포에까지 이른다. ‘키에르케고르’는 이것이 현대의 윤리적 상황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은 소크라테스 적인 윤리적 교정이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주지주의적 윤리는 시대의 구원이 되지 못한다. 인간은 알면서 선을 행하지 않고 부정을 행하기 때문이다. 이 반항하는 인간의지가 죄를 자각하고 그 마음을 돌이킬 때 구제의 길이 있다. 여기에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의 계시와 원죄의 가르침의 의미가 있다.

그리하여 <죽음에 이르는 병>의 제2부에서 절망은 ‘하느님 앞에서의 절망’ 곧 죄로 규정되면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들어서는 일, 곧 믿음에 의한 절망의 근절을 말하고 있다.

이 <죽음에 이르는 병>은 그 다음해에 나온 <그리스도교 안에서의 훈련>과 함께 ‘파스칼’의 <팡세>에 비겨지는 그리스도교 변증론의 명저가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구명된 그의 인간이해는 그 후의 수많은 사상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현대의 실존주의 현상학 해석학 변증법적 신학은 물론 교육학 심리학 문학예술사상의 형성과 전개에 크게 이바지했다.             

 

주요저서

  • Either-Or <이것이냐, 저것이냐>, 1843.
  • Fear and Trembling <공포와 전율>, 1843.
  • Repetition <반복>, 1843.
  • Philosophical Fragments <철학적 단편>, 1844.
  • The Concept of Dread <불안의 개념>, 1844.
  • Stages on Life’s Way <인생행로의 여러 단계>, 1845.
  • Concluding Unscientific Postscript <철학적 단편에 대한 後書>, 1846.
  • The Present Age <현대비판>, 1846.
  • Work of Love <사랑의 역사 役事>, 1847.
  • Christian Discourse <그리스도교 講話>, 1848.
  • Training in Christianity <그리스도교 안에서의 훈련>, 1850.
  • Attack upon Christendom <순간>, 1855.
  • The Point of View for my Work as an Author <관점>, 1848.
  1.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2. 이 course는 100% 무료로 audit 청강이 가능하다.
  3. 신동아 1984년 1월호 별책부록

올해 5월은 조금 특이하다. 왜 ‘갑자기’ 1980년의 5월이 자꾸만 생각이 났을까? 이제까지 나에게 추억의 5월은 주로 꿈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어린 시절, 철없던 젊은 시절들의 그것이었다. 그때의 5월들은 언제나 나에게 아련하고 짜릿한 기쁨을 주는 그런 시절들이었다. 하지만 올해의 5월은 5월 18일의 그 ‘비극적 사건’ 으로 거의 고정이 되었다. 5.18 광주사태, 나의 기억에 남았던 단어, 광주사태였다. 나의 나이를 감안해서도 더 이상 외면, 미룰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머리를 모래 속에 파묻고 외면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 조금 더 알아보자.. 내가 외면하고 살았던 그것을 하나 하나씩 다시 뒤져보자.. 나의 눈에 1989년 5월호  천주교 잡지 ‘생활성서’가 눈에 들어왔다. 정치적인 시각이 아닌 신앙적, 교리적인 눈으로 본 광주는 과연 어떤 것인가? 최소한 그들은 양심적 진실을 말하고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것을 ‘전재’하기로 하며, 내가 잊은 역사를 다시 들쳐내 보기로 한다. 첫 번째 기사가 당시 연세대 부총장 김찬국 교수의 ‘광주의거의 성서적 조명’, 여기에 전재를 한다.

 

 


 

5월이 오면, 우리의 분노와 미움과 원망을 승화시켜 하느님의 심판에 맡기고 그의 구원을 확신하는 신앙의 길을 따라 삶의 새로운 포용력을 키워 나가야 할 것이다.

김찬국

 

 

민족적 수치이자 비극인 광주학살

 

9년 전인 1980년 5월 18일 비상계엄령 전국확대조치에 항거한 광주 학생들의 평화적 시위가 도화선이 되어 피비린내 나는 광주시민 학살사건이 일어난 민족적 수치이자 비극인 당시를 기억할 때 우리 모두 무어라고 해야 할지 할 말을 잃고 만다. 공수부대의 과잉진압으로 무죄한 학생과 시민들이 비참하게 죽어갔던 것이다. 실로 천인공노할 민족적 대참사였지만 한편 한국인의 민중항쟁역사에 뿌려진 거룩한 의거의 희생이었던 것이다.

이 광주의거로 인한 민족전체의 분노와 탄식의 소리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었지만 군사독재정치를 자행하던 집권자들은 폭동진압이란 명목으로 학살사건을 정당화했고, 시민들의 무죄한 희생에 대한 보상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광주시민들의 명예회복을 해주지 않고 지내온 지 9년이 된 것이다. 더욱이나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사건진상을 밝히는 국회청문회가 열렸었지만 비무장의 학생과 시민에게 발포하여 끔찍스런 사상자를 내게 한 군 작전 책임을 가리는 데 있어서 책임을 회피하고 은폐하고 있는 부끄러운 오늘의 역사의 현장에서 국민들은 또다시 분노와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광주에 5월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것을 갈망한다면

왜 우리는 죽는가?

정의를 위해 싸우다가 쓰러지는 자들의

죽음에 무슨 남는 게 있는가?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고 일어섰다가

권력자에게 살해당하고 만 자들,

이들 이름 없는 자들이 흘린 피에

누가 있어 과연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 빛고을출판사가 펴낸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1988)에 실린 ‘오월의 묵상’에서 인용

 

이런 기도는 한국인의 탄원시이다. 5월이 오면 김준태의 시 ‘아아,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여’란 탄원시로 한 맺힌 분노를 삭이면서 절망 속에서도 피어나는 새 희망과 새 힘을 키우는 다짐을 하게 된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 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

아아, 광주여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무등산을 넘어

골고타 언덕을 넘어가는

아아, 온몸에 상처뿐인

죽음뿐인 하느님의 아들이여…”

 

구약성서의 시편에는 탄식시 또는 탄원시들이 많이 있다. 민족적 수난과 역경에서 하느님께 한을 풀면서 도와달라고 부르짖는 신앙의 시편들이다.

 

“야훼여! 언제까지 나를 잊으시렵니까?

영영 잊으시렵니까?

언제까지 나를 외면하시렵니까?

밤낮없이 쓰라린 이 마음, 이 아픔을,

언제까지 견뎌야 합니까?

언제까지 원수들의 우쭐대는 꼴을 봐야 합니까?”

– 시편 13편

 

원수로 인해서 박해와 피해를 입고 있는 탄식자의 한풀이 시다. 이 시인은 ‘언제까지’ 란 표현을 네 번이나 쓰면서 하느님의 구원을 호소하고 하느님께 의지하는 신앙의 힘을 키워가고 있다. 이런 탄원시들은 개인작품이지만, 이스라엘인들에게는 민족의 탄원을 대변하면서 신앙의 힘을 키워나가는 기도문이 되고 있다.

오월 그날이 오면 우리 광주시민 뿐만 아니라 온 국민들이 다 이런 시로써 한을 풀면서 새로운 다짐을 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예언자들도 시적인 표현으로 자기들 당대 국민의 소리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대변하였다.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는 심판예언자였다. 권력형 구조악으로 피해를 입은 약자들의 인권을 대변할 때 분노를 터뜨리며 욕하는 저주의 말로 시작하였다.

 

“저주 받아라!

너희 공평을 뒤덮어 소태같이 쓰게 만들고 정의를 땅에 떨어뜨리는 자들아,

성문 앞에서 시비를 올바로 가리는 사람을 미워하고 바른 말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자들아 너희가 힘없는 자를 마구 짓밟으며 그들이 지은 곡식을 거둬 가는구나

– 아모 5,7-11

 

아모스는 하느님의 심판을 우선으로 하는 사회정의를 강조하였다. (아모 5,18-20).

 

폭군으로서 11년간 남쪽 유다를 통치한 여호야킴(609-598) 왕 때 하바꾹 이란 예언자가 등장하여

 

“야훼여,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이 소리

언제 들어 주시렵니까?

호소하는 이 억울한 일,

언제 풀어주시렵니까?

……

보이느니 약탈과 억압뿐이요,

터지느니 시비와 말다툼뿐입니다.

법은 땅에 떨어지고

정의는 끝내 무너졌습니다.

못된 자들이 착한 사람을 등쳐 먹는 세상,

정의가 짓밟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 하바 1,2-4

 

이런 탄원의 말로 당시 시대상을 대변하면서 “화를 입으리라”라는 저주의 심판선언을 하고 있다. (2,12-20).

 

 

최고 책임자까지도 마땅히 심판 받아야 한다

 

이스라엘 왕정역사에서 제일가는 폭군으로 유다 왕 므나쎄(687-642)가 있었다. 12살 때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45년간 다스렸는데 우상을 만들어 야훼 하느님께 불충성한 신앙적 배신과 폭력정치를 저질렀는데 후세 역사가인 신명기적 편집자는 므나
쎄 왕을 고발하고 “그가 저지른 죄는 유다 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2 열왕 21,17)고 적어 놓았다.

 

“그는 우상을 만들어 유다를 죄에 빠뜨렸다… 므나쎄는 나의 눈에 거슬리는 그 못할 짓을 하도록 이끌어 유다 백성을 죄에 빠뜨린 데다가 무죄한 사람의 피마저 흘려 예루살렘을 피바다로 만들었다.”

– 2 열왕 21,11-16

 

이 말을 예언자의 말이라고 하면서 쓴 글이지만 후대 역사비평가인 신명기적 편집자의 정확한 역사서술과 평가가 담겨져 있음을 본다. 므나쎄 왕의 폭력정치시대에는 백성들이 입을 다물어버렸기 때문에 반체제인사로서 저항한 예언자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솔로몬 왕도 실은 자기가 왕이 될 때에 찬성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왕이 된 다음에 피의 숙청을 하고 궁전과 성전을 짓는 데에 강제로 국민노동력을 동원하고 세금을 강제로 징수한 죄와 또 이방종교의 신을 예루살렘에 허용한 죄 때문에 후세사가에 의해서 고발이 되었었다. 솔로몬이 죽은 다음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이 되어 (기원전 922) 남 유다의 왕으로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922-915)이 왕위에 올랐다. 르호보암은 원로정치인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젊은 후견자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선왕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웠다. 그렇지만 나는 그보다 더 무거운 멍에를 메우리라. 선왕께서는 너희를 가죽채찍으로 치셨으나 나는 쇠채찍으로 다스리리라”(1 열왕 12,12-15)라고 했다는 것이다.

후세사가는 르호보암 왕이 끝내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12,15)고 지적하고 있다. 선조들보다도 더 큰 죄를 범하여 ‘야훼께 미움을 샀다’ (1열왕 14,22)고 평가되어 있다.

구약 역사에서 왕정정치가 시작되고 남북분열이 된 다음 북왕국 이스라엘에는 군사 쿠데타가 수없이 일어나 선왕을 죽이고 정권을 잡는 일이 일곱 차례나 있었다. 이런 혼돈이 200년이나 계속되다가 북 이스라엘은 강대국인 아시리아에게 멸망 당하고 말았다. 신명기사가는 왕들의 업적을 평가할 때마다 북 이스라엘의 최초의 왕인 여로보암 왕(922-901)이 저지른 종교죄 (우상신을 섬긴 죄)의 전철을 밟아 죄를 지었다고 명기하고 있다. 폭력정치죄나 우상종교를 허용한 죄는 역사적으로 두고두고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되어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과 자료로 알려지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남 유다의 여호야킴 왕 (기원전 609-598)과 예언자 예레미야와의 관계가 예레미야 서에 가끔 나온다. 즉 폭군과 대결한 예언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예레미야는 성전설교에서 당시 사회상을 고발하였다.

 

“너희의 생활태도를 깨끗이 고쳐라. 너희 사이에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여라. 유랑인과 고아와 과부를 억누르지 말라. 이곳에서 죄 없는 사람을 죽여 피를 흘리지 말라…. 너희는 훔치고 죽이고 간음하고 위증하고 바알에게 분향하고 있다…. 이 땅 위에 나의 맹렬한 진노를 쏟으리라, 아무도 나의 타오르는 분노를 끄지 못하리라” (예레 7,.5-20).

 

하느님은 분노하시는 분으로서 여호야킴 왕의 폭력적 탄압정치와 우상숭배를 심판하신다는 점을 예언자 예레미야 가 대변하고 있다.

 

“그날이 오면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야훼의 손에 죽은 시체들이 너저분하게 굴러 다니리라…. 백성의 목자, 민중의 우두머리들아, 너희가 도망쳐도 난을 피하지 못하리라…”

– 예레 25,33-38

 

혹독한 심판의 예언이다.

 

폭군인 여호야킴 이 새로운 강대국인 바빌론의 침략을 받아 굴복했었다가 3년 후에 바빌론에게 반기를 들자 다시 침략을 받아 유다 전국이 침략군에게 짓밟히고 말았다.(기원전 598). 신명기적 역사가는 이런 평가를 남겼다.

 

“이런 일이 유다에서 일어난 것은 므나쎄가 온갖 못할 짓을 하는 것을 보시고 야훼께서 유다 백성을 내쫓으시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이루어진 것일 따름이다. 그런데다가 그는 무죄한 피마저 흘려 예루살렘을 피바다로 만들었으므로 야훼께서는 용서하실 마음이 없으셨던 것이다”

– 2 열왕 24,3-4

 

우리가 이런 성서적인 조명으로 광주 민중항쟁을 보면 참으로 하느님은, 무죄한 사람들의 피를 흘려 도시를 피바다로 만든 폭력적 진압을 한 군관계 책임자 뿐만 아니라 이에 관련한 최고 책임자까지도 국민과 역사 앞에서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며 마땅히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보시는 것이다. 그 해 5월 광주에서 무참히 희생당한 사람들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대열에 나섰다가 총칼로 인한 폭력으로 생명을 잃거나 부상을 당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 가족들의 한을 풀어주고 그들의 정당한 인권이 회복되어 역사에서 그들의 희생 정신이 바르게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광주시민의 희생은 민주화운동의 길잡이

 

“광주에 5월이 찾아오면 들려오는 이 회피할 수 없는 질문에 대답해주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

새 생명의 눈부신 빛 줄기가 이제 세상 구석구석을 비춥니다.

우리는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의 동이 트는 첫 창조를 봅니다. 아멘”

– ‘5월의 묵상’ 중에서

 

 

인간의 비극은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비극자체는 비참한 종말이지만 비극을 극복하고 넘어서는 새로운 삶의 약동과 희망을 만들어 나가야 할 책임이 살아남은 우리 사람뿐만 아니라 온 겨레에게 지워져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이 예수께서 기득권을 가진 종교인들이 힘을 가진 로마 총독 빌라도를 업고 무죄한 예수를 잡아갔을 때 도피하거나 모른다고 했었고 십자가에 달렸을 때에도 멀리 피해 있었었다. 그러나 예수가 부활하신 다음에 흩어졌던 제자들이 예수의 수난과 부활의 의미를 새롭게 받아들여 예수의 교훈과 복음을 널리 펼치는 데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순교까지 하면서 예수의 삶과 그의 교훈을 따라 실천하는 데에 자신들의 삶을 투신했던 것이다.

김준태 시인은 ‘아아, 광주여 이 나라의 십자가여’ 란 시를 이렇게 끝맺고 있다.

 

“광주여, 무등산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꿈이여 십자가여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젊어져 가는 청춘의 도시여

지금 우리들은 확실히

굳게 뭉쳐있다 확실히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자기 희생이며 그의 부활사건은 그의 삶만 아니라 그 자신인 진리의 부활과 희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5월이 다시 오면 우리는 광주의 희생과 새로운 약동을 불러 일으키고 그 수난과 희생을 새롭게 의미화하여 한국 민주주의의 부활과 정의사회의 건설을 위한 기회로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구약의 시편 작가들도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는 신앙에 의한 삶의 길을 보여 주고 있다.

 

“악한 자가 잘 된다고 불평하지 말며 불의한 자가 잘 산다고 부러워 말아라. 풀처럼 삽시간에 그들은 시들고 푸성귀처럼 금방 스러지리니 야훼만 믿고 살아라.”

– 시편 37,1-2

 

“야훼께서는 정의를 사랑하시고 당신께 충성하는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신다. 그러나 악하게 사는 자는 영원히 멸망하며 악인들은 그 자손이 끊기리라.”

– 시편 37,27-28

 

 

탄원시들은 억울한 일들을 고발하면서 하느님께 분노를 터드리고 구원을 호소하고 마지막에는 하느님께 감사찬송을 드리는 내용으로 끝나고 있다. 시편 13편을 보면 원망하는 소리로 원수를 고발하다가 (1-2절), 다음에는 구원을 호소한다.

 

“야훼 나의 하느님

굽어 살피시고 대답해주소서.

죽음의 잠 자지 않도록

이 눈에 빛을 주소서.

……….

이 몸은 주의 사랑만을 믿사옵니다.

이 몸 건져주실 줄 믿고 기뻐합니다.

온갖 은혜 베푸셨으니

야훼께 찬미드리리이다”

– 시편 13,3-6

 

이런 하느님께 의지하는 신앙을 가지게 되면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이 들어주셨음을 확신하고 끝에 가서는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감사찬송을 하게 된다. 미움과 원망에서부터 시작했다가 정의의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을 믿고 신뢰할 때 그 원망이 희생으로 바뀌어져서 찬양으로 끝나는 그런 전환을 보게 된다.

5월이 오면, 우리의 분노와 미움과 원망을 승화시켜 하느님의 심판에 맡기고 그의 구원을 확신하는 신앙의 길을 따라 삶의 새로운 포용력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광주에서 무참히 희생당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 가족들의 한을 풀어주고 그들의 정당한 인권이 회복되어 역사에 길이 남아 그들의 희생정신이 바르게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찬양 시편에서 우리가 배우는 바가 또 있다. 시편 33편을 요약해본다.

 

“의인들아 야훼께 감사하며 기뻐 뛰어라.

………….

옳은 사람들의 찬양이라야 기뻐 받으신다.

………….

야훼의 말씀은 언제나 옳은 말씀.

그 하시는 일 모두 다 진실이다.

………….

왕들아 너희가 대군을 거느렸다고 이길 성 싶으냐?

힘 좀 있다 해서 궁지에서 살아날 성싶으냐?

군마만 믿다가는 살아나기 어렵고 대군을 거느렸다 해서 사지에서 벗어나지는 못 하리라.

야훼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자들은, 그 사랑을 바라는 자들을 자켜보시며…………

우리가 이렇게 당신만을 기다리오니 야훼여, 한결같은 당신 사랑 베푸소서.”

 

여기에서 의인들이 하느님을 찬양하고 하느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힘을 키워나가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의인들이 자기교만에 빠져서 하느님의 역사의 심판과 구원을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고 남을 정죄만 하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오심’을 기다리게 하는 신앙을 키워주려 하고 있다. 하느님의 오심을 이 5월의 광주와 함께 생각해 볼 때 하느님의 정의로운 심판을 기초로 하느님의 승리를 의심치 않고 믿고 기다리는 확신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바빌론 군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기 직전인 위기상황 속에서 하느님의 심판을 받게 될 유다 나라의 최후를 앞에 두고서도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여주었다.

 

“나 야훼가 선언한다. 나 비록 이 백성에게 이토록 큰 재앙을 내린다 마는 그만큼 약속한 행복도 모두 베풀 것이다…….. 이 땅에서 다시 밭을 사고 팔게 되리라……….. 이렇게 나는 이 백성의 운명을 회복시켜주리라. 이는 내 말이다. 어김이 없다.”

– 예레 32,42-44

 

 

멸망 후의 회복을 예언한 것이고 약속한 것이다. 예언자의 이런 꿈이 그냥 꿈으로서가 아니라 실현될 약속으로서 이스라엘의 회복과 해방과 재출발을 전망한 것이다.

1989년 5월이 다시 온다. 광주의 5월은 우리 온 국민이 겸허한 마음으로 희생의 피를 기억해야 한다. 군부 독재가 몰고 온 광주시민의 희생은 우리의 의로운 민주화로의 길을 바르게 보여주는 역사의식의 기초가 되고 민주화 운동의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광주의거를 이렇게 성서적으로 조명해볼 때 하느님께서 정의와 자비로써 희생당한 광주시민의 명예의 회복만 아니라 한국 국민 전체의 자유와 정의의 회복을 보여주시리라고 믿는다.

 

김찬국 씨는 연희대 신학대학과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유니온 신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부총장으로 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쉽게 공감이 갈 수 있는 제목을 가진 2013년경에 출간된 이 책의 ‘필사’1가 얼마 전에 끝났다. 이 책은 두께에 비해서 쪽수는 읽기에 편할 정도인 230여 쪽 정도, 내용도 비교적 가벼운 것이라 읽는 데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았고, 저자가 살아온 경험에 따른 시대적 에피소드 중심의 글의 구성이 ‘계속’ 흥미로운 것이어서 거의 쉼이 없이 2~3주 정도 편하게 읽으며 ‘필사’를 무사히 끝내서 serony.com의 K-Gutenberg page에 ‘한정판’으로 올려 놓았다.

이 책을 읽으며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저자인 안득수 (가톨릭 세례명 마리오)  (의학) 박사님, ‘마리오 형제님2‘의 본성적 성품이 얼마 전에 읽었던 고종옥 마태오 신부님과 닮은 점이 많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간혹 듣기에 불편할 정도로’ 솔직한 성격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그렇지 못해서 그런지 나는 이런 분들의 직선적이고 솔직한 성격을 아주 좋아한다. 사실 지나치게 겸손해서 거의 ‘내숭’의 수준에 도달한 ‘겸손한 사람들’이 이제는 더 경계가 되고 피하고 싶을 지경이다.

 

안득수 (의학박사) 마리오 형제님

 

하지만 그것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가톨릭 신앙에 따르는 ‘지칠 줄 모르는 불굴의 신심’ 또한 비슷한 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머지 나의 생애에서의 role model을 찾았다는 안도감이 느낄 정도였다. 흔한 말로 ‘겸손, 순명, 부드러움, 사랑’을 알맞은 비율로 골고루 갖춘 분이 바로 이 책의 저자 마리오 형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 이외에도 ‘청빈’의 모습까지 보이고3, ‘공허한 말보다 행동’, ‘명석하지만 겸손한 박학다식함’… 이 정도면 나의 role model이 되시기에 절대로 부족함이 없다.

이런 책을 적절히 재편집해서 성당 공동체에서 ‘교과서’로 쓰면, 아니 독서클럽 같은 곳에서 ‘연구, 토론’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위에 말한 ‘모범적인 덕목’들을 이런 ‘수기’를 통해서 배우는 것, 얼마나 효과적일까? 이런 분과 같은 사람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나이 먹은 사람들’ 중에 ‘하나라도’ 있었으면 하는 ‘개꿈’을 꾼다. 솔직히, 내가 아는 ‘늙은이’들(나를 포함해서) 중에는 눈을 씻고 보아도 이런 분을 연상시키는 사람은 정말 하나도 없었고 현재도 없다. 모두 모두 실망스런 영혼들 뿐이다.

일단 읽고 필사는 끝났지만 진짜 일은 이제부터다. 다시 한번 읽으며 정리하고 ‘성경 읽듯이’ 이분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을 요약하며 다른 blog post로 남기고 싶은 것이다. 오래 전에 내가 좋아했던 ‘팔방미인 극작가,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 이진섭 선생의 책4을 그런 식으로 남겼는데, 두고 두고 다시 내가 보아도 만족스러웠기에 다시 한번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이다. 다시 한번… 안득수 마리오 형제님, 감사합니다!

 

  1.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고 computer typing으로 softcopy를 만드는 것
  2. 가톨릭 공동체에 서 평신도의 최고 존칭은 ‘형제, 자매님’ 이다.
  3. 의학박사, 약사 부인, 국립대학 병원장 등을 역임한 분의 공개된 재산을 보면 가히 짐작이 간다.
  4. 1983년 간행된 부인 박기원 여사의 ‘이진섭’ 회고록: ‘하늘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

왜 이렇게 시간은 빨리 가는가.. 벌써 사순절이 오늘로 끝나고 내일은 Palm Sunday (성지주일), 그리고 부활주일을 향한 예수님의 수난주일 Passion Week가 시작되니.. 머리 속은 갑자기 바빠지는데, 이유는 분명하다. 아직도 고해성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성탄 때 못했기에 이번에는 못할 이유가 없어졌다. 최소한 일년에 한 번은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신부님 말씀대로 일년 동안 낀 ‘죄의 때’를 벗기면 얼마나 개운할 것인가? 경험에 의해도 이것을 마치면 날라갈 듯한 거의 ‘희열’에 가까운 기분이 된다. 그것을 생각하면 매일 하고 싶겠지만, 막상 하려고 하면 ‘무조건’ 미루고 피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고해성사의 특징이다. 이번도 미루고 미루고.. 그러다가 결국은 성주간에서야 할 결심이 생긴 것이다. 

이 고해성사는 사실 그 성사 자체는 뜻밖에 짧고 싱겁게 끝나기도 하지만 관건은 이것을 위한 준비단계다. 이 준비를 통한 ‘자기 반성’의 과정이 주 목적인 것이다. 하지만 막상 자기반성을 하려면 웬만한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막막하기만 하다. 생각하면 ‘하나도 문제가 없는 듯’ 보이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온통 죄 투성이로 느껴지기도 하는.. 이 과정 절대로 간단한 것이 아니다. 경험에 의해서 오랜 동안 이 과정을 거쳐서 성사를 보면 반드시 그때 받는 ‘은총’의 정도가 다르게 느껴진다.

이 자기의 죄에 대한 관찰, 반성을 하려면 오랜 전통에 의한 ‘양심 성찰 Examination of Conscience‘ 이란 것이 도움이 된다. 나의 짐작에 이 ‘방법’은 로욜라의 아냐시오 성인에 의해서 체계화가 된 것으로 안다. 그것을 고해성사에 도움이 되도록 간단히 만든 것도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USCCB (미국주교회의) 의 confession guide brochure 다.  몇 년 전에 이것을 발견해서 자기성찰, 양심성찰 101 (입문) 을 할 때 보곤 하는데 올해는 몇 가지 조항에서 큰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역시 그것은 ‘레지오 미친년 사건‘의 결과일 것이다. 문제는 이번에 고해를 해도, 근본적 해결을 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고 하느님의 영역이다. 그야말로.. Jesus, I surrender myself to you, take care of everything!

 

 

간략한 양식의 양심성찰

지은 잘못을 기억하도록 한다. 고의적으로 의도적으로 하느님과 교회의 가르침을 거역하였는지를 기도하며 자신에게 묻는다.

 

  1. 매일 하느님께 기도를 하는가?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를 하는가?
  2. 가톨릭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들을 읽거나 타 종교에 관여하여 나의 신앙에 해가 되는 일이 없는가? 점쟁이나 손금 읽는 것 같은 미신적인 행위에 관여를 하는가?
  3. 하느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거나, 거짓 맹세를 하지 않는가?
  4. 주일 미사나 의무 축일을 이유 없이 거르거나, 미사를 건성으로 보거나 의무적인 금육, 절제를 하고 있는가?
  5. 부모님을 거역하거나 정규기관의 상급자를 거역하였는가?
  6. 누구를 증오하거나 말다툼, 복수를 했는가? 용서하기를 거부하고 무시하거나 하지 않았는가?
  7. 술에 지나치게 취하거나 마약을 복용하였는가?
  8. 낙태를 동의, 추천하거나 관여하지 않았는가?
  9. 음란매체를 의도적으로 보거나 음란한 행위에 관여하지는 않았는가? 인공피임을 하지 않았는가?
  10. 배우자에게 정직했는가? 혼외 정사를 하지 않았는가?
  11. 남의 재산을 훔치거나 피해를 입히지 않았는가? 사업 상에서 정직하고 공정했는가?
  12.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는가? 남들의 존엄성을 지켜주었는가?
  13. 거짓말을 했는가? 남을 중상모략 하거나 깎아 내리거나 하지 않았는가? 남에게 중대한 문제를 너무 경시하지 않았는가?
  14. 남들을 너무 부러워하지 않았는가?

 

Examination of Conscience

Recall your sins. Prayerfully ask yourself what you have done with full knowledge and full consent against God’s and the Church’s commandments.

  1. Do I pray to God every day? Have I thanked God for his gifts to me?
  2. Did I put my faith in danger through readings contrary to Catholic teachings or involvement in non-Catholic sects? Did I engage in superstitious practices: palm reading or fortune-telling?
  3. Did I take the name of God in vain? Did I curse or take a false oath?
  4. Did I miss Mass on Sundays or holy days of obligation through my own fault? Am I attentive at Mass? Did I keep fast and abstinence on the prescribed days?
  5. Did I disobey my parents and lawful superiors in important matters?
  6. Did I hate or quarrel with anyone, or desire revenge? Did I refuse to forgive? Was I disrespectful?
  7. Did I get drunk? Did I take illicit drugs?
  8. Did I consent to, recommend, advise, or actively take part in an abortion?
  9. Did I willfully look at pornography, entertain impure thoughts, or engage in impure conversations or actions? Did I use artificial means to prevent conception?
  10. Was I unfaithful to my spouse? Did I engage in sexual activity outside of marriage?
    Did I steal or damage another’s property? Have I been honest and just in my business relations?
  11. Have I been responsive to the needs of the poor and respected the dignity of others?
    Did I tell lies? Did I sin by calumny, or detraction, of others? Did I judge others rashly in serious matters?
  12. Have I envied other people?

 

¶ It’s Seventy, stupid! 어두운 새벽에 눈을 뜨고 멀리 있는 radio clock을 보니 6시 30분이 채 되지를 않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몸의 가벼움, 불현듯 일어나고 싶었다. 한 동안 (몇 주, 아니면 그 이상) 나는 아침에 일어날 적마다 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동반한 ‘지독한 피로감’을 느끼며 일어나기가 싫었다. 나의 기억에 이런 적이 없었기에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나는 그야말로 morning people, 이른 아침만이 주는 특유한 분위기를 만끽하는 사람인데 거의 7시가 돼서야 간신히 일어나는 것, 한마디로 보통 때의 내 모습이 아닌데.. 이유를 생각해 본다… physical? mental? psychological? 아니면 혹시 spiritual? 

Physical한 것이라면.. 생각을 해보니 혹시 YMCA에서의 weight lifting 같은 운동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은 평소 때 하던 것들이 아닌가? 왜 갑자기 그것이 문제가 된단 말인가? 적당히 자고, 적당히 먹고, 적당히 운동하며 건강하게 살고 있는데… 그 이외에 무엇이 있나? 가족들에게 물어보니.. 역시 대답은 ‘그 나이에 무거운 운동은 피하라’는 것인데.. 그 동안 문제가 없었던 것이 왜 갑자기 한참 동안 그렇게 ‘통증을 동반한 피로감’을 주었을까?

Mental한 것이라면.. 물론 있다. rage, rage.. controlled rage.. 지난 해 레지오 미친년 사건이 주었던 활화산에서 휴화산으로 잠든 잠자는 용암의 뜨거움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견딜 정도로 되었는데.. 그것이 이렇게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인가?

Psychological한 것이라면..  물론 있다. 그래서 찾은 것은 바로 70이란 숫자였다. 70세 생일을 전후로 ‘심리적 피로’를 겪은 적은 있었지만 생각보다 안전하게 나는 그 담을 넘었는데.. 하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닌가? 70이 되면 이런 통증, 피로는 당연한 것인가? 아닐 것이다. 그저 심리적으로 stress를 받는 것이다.

Spiritual 한 것이라면… 이건 너무나 거창한 것 아닌가? 자비의 하느님이 이 나이까지 살았고, 근래에는 ‘우주창조의 진리’를 믿고 싶고 믿게 된 나를 이런 방식으로 일깨워 주실 것 같지 않다. 이건 아무래도 내 진단의 비약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분명하게 몸으로, physical 하게 느끼게 된 것은 역시 70의 나이란 숫자가 나에게 친절하게 충고, 경고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얼마 전 성당 60+ 친교단체 등대회 회원의 말: ’70은 역시 70이다!’ 그 자매 말의 뜻은 새겨들을 수 있었다. 70은 역시 70인 것이고… 요새 70은 예전의 60이다 라는 유행하는 말,  조심해서 새겨 들어야 할 달콤한 유혹일지도 모른다. 우선 단기적으로 나는  YMCA workout routine에서 weight (lifting) 의 무게를 하향조정하며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다.. 70은 70이지 60이 아닌 것이다.

 

¶ 우리들의 삼일절: 2018년 3월 1일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3.1절 이란 말, 아직도 생생하게 감정을 일게 하는 말, 유관순 누나와 서울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파고다 공원, 이날이면 각종 장식을 한 ‘3.1절 전차 電車’가 종로 2가를 오고 가던 날.. 먼 곳에서 회상의 파도가 몰려오기도 하는 날이 바로 3월 1일이다.

올해는 새로 만난 동갑내기들 덕분에 3.1절 ‘정치집회’1가 아틀란타에서 열린다는 소식까지 들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아직도 젊은 애국자’들이다. 어쩌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는 대한민국을 그렇게 사랑할까… 세상 돌아가는 것 잘 모르고 사는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한다. 잊고 살았던 3.1절을 그들은 새로운 사명으로 맞이하고 있는 듯하다.

소시민인 우리부부에게 3.1절은 실질적으로 다른 기념일이다. 우리들만의 가족, 부부의 역사다. 1992년은 현재 우리가 사는 집으로 이사온 날, 2007년은 내가 레지오 협조단원이 되었고 부부가 같이 묵주기도를 시작한 때, 2012년 이때에 우리는 ‘평일미사’의 전통을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그래서 몇 년 전 부터 우리는 이 우리들만의 3.1절을 자축하기로 하고 실행(외식)하고 있고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 이목사님, Vincent Bakery & Cafe: 몇 개월 만에 이목사님 부부와  만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아틀란타 한국학교에서 만난 (staff으로) 인연으로 한때 끊어졌던 연결의 고리가 몇 년 전부터 건강하게 다시 연결이 되었고, 착실하게 거의 정기적으로 이렇게 만난다. 오래 전에는 ‘목사’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던 나였지만 지금은 같은 크리스천으로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가급적 신.구교의 편견을 버리고 공통화제를 찾는다.

H-mart옆에 있는 Stone Grille에서 점심을 먹고 이번에는 예의 ‘떡이네’ cafe 대신에 H-mart 근처에 있는 Vincent Bakery & Cafe엘 갔다. 몇 개월 전 목요회 친구들과 밤 늦게 이곳에서 coffee를 맛보고 인상이 아주 좋았던 기억으로 다시 찾은 것이다. ‘laptop으로 무장한 젊은 애들이 죽치는’ 그런 cafe가 아니고 쾌적하고, 시원하게 빈 공간이 있는 이곳, 제발 오래오래 business가 잘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야 우리 같은 oldie들도 이런 분위기를 편하게 즐길 수 있지 않은가?

이날 이목사는 최근에 ‘개인적으로 하느님을 만난‘ 사적 체험간증을 들려 주었다. 요새 이런 얘기를 잘 안 하는 이목사였기에 예상치 못한 것이라 놀라기도 했지만 결국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나도 그만큼 가슴이 열린 것이다. 몸의 건강이 제일 중요한 과제인 이 목사님, 부활절 지나고 귀국해서 건강진단을 할 예정이라고… 앞으로의 사목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는 듯 보이는 이목사, 건강상에 아무 문제가 없기를 기도하기로 했다.

 

Commonsense-Challenged Priests:  지나간 2주일(that is, two Sundays) 연속으로 가톨릭 신부라는 ‘직업 vocation, profession, job’을 다시 조명하게 되었다. 가톨릭 사제, 신부, 수사, 수녀 들도 우리들과 같은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명심하며 다시 생각을 해 본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역할, 그것이 사제들의 중요한 임무라고 하지만 그들의 행동거지는 어떤가?

두 가지 case를 지난 2주일에 걸쳐 보며, 비관적인 생각이 많이 들었다. 평신도가 사제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최소한의 ‘대우, 대접’은 어떤 것인가?  만약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평생 겪어본 신부, 사제 수녀들 그런대로 꽤 있었지만 요새처럼 나를 생각하게 하고 괴로움까지 느끼게 한 적도 없었다. 다행인 것은, 내가 정기적으로 보는 사제들은 거의 ‘이상적’인 분들이다. 이상적이 아니면 상식의 선을 철저히 지키시는 분들이다. 문제는 가끔 보는 분들이나 처음 갑자기 보는 분들.. 전혀 예상치 못한 case들이다.

우선 가끔 보게 되는 사제의 case다. ‘윗동네 신부’, 가끔 보는 이분 나는 어떻게 생각 해야 할지를 모른다. 한 마디로 나에게는 ‘이상한 weird 사람’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상식의 범위’를 마음대로 넘나드는 그런 류의 사제다. 이번에 또 ‘겪으면서’.. 역시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엄숙한’ 미사 시작하기도 전에 모든 신자(노인들 포함)들이 기립한 상태에서 ‘rambling‘ social  comment (아니 이것은 lecturing이다)를 5분이 넘도록 하는 것, 이것은 한마디로 비상식중의 비상식이다. situation에 하나도 안 맞는 지나친 dry joke는 물론이고, 정치, 사회적 progressive한 것 (그런 것, 私的으로 하세요..)은 나에게 도움이 하나도 안 된다. 이 밖에도 예측하기 힘든 돌발적, 지뢰가 터져나올 지 모르는 사제의 언행, 한마디로 괴롭다.

그 다음의 case은 바로 지나간 주일, 강론에 나온 방문사제, snake oil salesman을 버금가는 이 사제, 완전히 common sense를 결여한 강론에서, 최소한 시간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1시간 30분의 강론도 사실 점심 후에 괴로운 것인데 break도 없이 2시간 30분을 끊날 듯 말듯 하며 싱글거리며 끌고 나가는 것을 보고, commonsense 101을 재수강하고 오시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우아… 피곤한 이 사제들이여!

 

  1. 근본적인 목적은 문재인 탄핵을 위한 것이라고 함

 

¶  우수 雨水: 그렇게 ‘한결같이’ 추웠던 올 겨울도 이제는 서서히 물러가고 있는가? 지난 주부터 바깥 풍경들에 색깔들이 섞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기다리던 수선화들, 얼마나 반가운 모습이었던가? 그런 soft object들이 나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 아니 이제는 그것들이 무엇들인가를 알게 되고 화제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솔직히 반갑다. 나도 ‘목석’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기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나간 월요일 2월 19일, 이날의 ‘레지오 수첩‘을 보니 ‘우수‘라고 적혀 있었다.  무엇인가 푸근한 고향냄새가 풍겨 나옴을 느낀다. 우수… 우수수가 아니고 우수, 한자로는 분명히 雨水, 그러니까 빗물인가? 이날 하루 가느다란 가랑비가 왔다 갔다 하면서 ‘빗물’을 내려 주었다. 그와 동시에 어렸을 때, 원서동 시절 비원 담 옆 개천가에 같이 살았던, 재동국민학교에 같이 다니던 한완수의 형 ‘한우수‘란 이름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도 나는 이 절기 이름인 우수란 단어를 보면 이 ‘한우수'(형兄)의 이름을 떠올리곤 했다. 어린 마음의 유치함은 이런 것도 그렇게 재미가 있었고 연상을 통한 기억력에 감사하기도 했다. 재동학교 한완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고 그의 형 한우수 형은 어떤 인생들을 살았을까? 이날 하루 나는 ‘빗물의 날, 우수’ 란 단어에 의한 전설 같은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  Sick Day: hump day 하루가 갑자기 sick day로 변해 버렸다. 이런 것, 예기치 못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런 것이 a day in the life, 지극히 정상적인 인생의 한 snapshot일 지도 모른다. 하루 일과의 시작인 아침미사가 갑자기 cancel 되었다. 이유는 역시 연숙의  insomnia일 수 밖에 없다. 왜 그렇게 수면습관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병적인 불면증’인 것인지 누구도 확신할 수가 없다. 그저 죽는 병이 아니라는 것에서만 위안을 얻는다. 다행히 꼭 나가야 할 절대적인 의무가 없으니 망정이지… 만약 직장 같은 것이 있어서 ‘출근’같은 것을 해야 했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닌 심각한 병으로 간주되어야만 했지 않았을까?

그날은 그것으로 얌전히 끝나지 않았다. ‘우리식구’ Tobey(pet dog)가 갑자기 조용한 것이다. 보니… 전혀 움직이질 않는다. 눈도 거의 감고 있고, 숨소리도 약하다. 이것은 무엇인가? 짐작에 전에 겪었던 ‘신경통’이 재발된 것으로 보였다. 전에도 ‘죽음을 준비했던’ 경험이 있었다. 알고 보니 신경통으로 몹시 고통을 느끼는 것이고 전혀 움직이지를 못했다. ‘기적의 약’을 먹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경험을 갖고 있지만 이번에도 ‘죽음의 그림자’를 느낄 정도로 움직이지를 못한다.

이 녀석의 ‘인간나이’가 나와 비슷하거나 더 많을 듯해서 ‘누가 먼저 이세상을 떠날까’ 하는 방정맞은 묵상을 하기도 한다. 들은 얘기로 죽음이 임박한 동물들이 자기가 ‘누울 곳’을 찾는다고 한다. 동물들은 죽음이란 것을 어떻게 ‘생각’할지.. 물론 그들의 생각은 인간과 같은 ‘철학적’인 것은 아닐 것이지만 그들만의 본능적인 예감, 경험은 가지고 있을 것 같다.

개나 고양이와 가깝게 되면서 나는 오랜 동안 느끼지 못했던 ‘그들만의 기쁨과 고통’을 실감하게 되었고 특히 그들의 고통은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느끼는 나만의 고통이 되었다. Narnia  book 저자로 유명한 C. S. Lewis의, 1940년 간행된 The Problem of Pain의 마지막 chapter는 Animal Pain 으로 할애되어 있어서 동물들의 고통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려고 했고, 나도 Lewis와 거의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아마도 그 동안 나의 ‘동물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에 대한 질타와 교훈이 아닐까… 이 뜻밖의 sick day에 많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고 갔다.

 

Billy Graham, 1966

 

¶  R.I.P: Billy Graham (1918~2018): 표준 한글표기법으로 어떻게 쓰나… 빌리 그래함? 빌리 그레이엄? 아무래도 좋다. 이분 한마디로 개신교의 거목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우리 세상을 떠났다. 2월 21일에 돌아가셨는데, 오랜 동안 예상은 했지만 막상 이런 뉴스를 접하니 다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이분은 나에게 어떤 분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 어머님보다 한 살이 많다는 것, 우리 부모 세대의 미국인 목사, 전도사, 부흥사.. 이런 표현들 모두 부족하다. 이분은 그런 표현을 모두 초월하는 위치를 가진, 사실은 ‘미국의 생각’에  막강한 영향력을 주었던, 종교인으로서는 드물게 보는 독보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아마도 믿음이 있건 없건, 직업에 상관 없이, 거의 모든 미국들을 포함한 전세계적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인물일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으로 이분의 설교를 ‘들었던’ 것은 1950년대 서울에 있었던 ‘기독교방송국’에서 정기적으로 방송하던 Hour of Decision이란 영어 program이었을 것이다. 그때 사실 나는 그 방송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우렁차게 나오는 그 ‘영어’가 어떻게 그렇게 멋지게 들렸는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멋진 영어는 Billy Graham목사의 목소리였다. 그렇게 ‘멋진 영어’의 주인공은 각종 잡지, news매체를 통해서 익히 알게 되었고 1970년대 초에 내한, 여의도 광장에서는 거대한 집회가 열렸고, 그 이후 미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TV에서 보기도 했다. 당시 신앙이나 믿음이 없었던 관계를 그저 유명인사의 강연 정도로 들었지만 아마도 그런 설교가 전혀 나에게 영향이 없지는 않았으리라 믿고 있다. 년 전에 YouTube에서 그분의 TV crusade를 다시 보니, 이제는 그 설교의 대부분이 이해가 된다. 천주교, 개신교의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멋지고 공평한 설교들이었다. 개인적으로 거의 scandal 없는 기적을 낳기도 한 이 거목의 ‘시대를 초월한 가르침’을 이제는 들을 수 없다는 것, 무언가 허전하고 사실은 조금 불안해지기도 한다.

 

¶  Spring at Home Depot: 거의 80도의 ‘봄기운’이 예보된 날 목요일 아침, YMCA routine을 마치고 모처럼 Johnson Ferry Road쪽으로 차를 돌려서 Trader Joe’sHome Depot엘 들렸다. 나에게는 싸지만 그런대로 좋은 (white) wine 이 주목적이었고, 봄기운에 들떠있는 연숙에게는 composted cow manure 같은 ‘토양 영양제’ 가 목적이었다. 춥고 기나긴 겨울을 지낸 garden center, 이번에 가보니 완전히 봄이었다. 각종 꽃나무들, 화분 꽃들이 찬란하게 그곳에 있었다. 물론 다시 한번 빙점을 오르내리는 추위는 다시 올지라도 봄의 기운을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할 듯하다.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며 어찌 이런 것들이 우연히 생겨난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Thursday’s Friends: 매달 마지막 목요일 밤에 3명의 남자들이 모이는 우리들의 ‘목요회’ 만남이 2월에는 거의 일주일이나 빠르게 왔다. 2월이 28일인데다가 마지막 날인 28일이 수요일인 관계로 그렇게 된 것이다. 1월에 만난 것이 엊그제 같아 지난 번 모임의 기억이 그렇게 희미하지는 않지만, 이번의 새로운 만남은 나중에 어떻게 기억이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우리 3명은 실제적으로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것들이 너무도 많기에 털어 놓을 것, 나눌 것 들이 절대로 부족하지 않다. 다만, 그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상처를 건들이지 않고’ 나눌 수 있을까… 그것이 이 모임의 성패를 좌우할 관건이다.

‘정치와 종교’에 대한 의견이나 경험은 가급적 피하자는 나의 생각은 그런대로 현재까지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날의 모임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 화제인가를 보여주는 testy한 대화가 나오긴 했다. 요새 돌아가는 정국이나 세태가 양극화 polarization 되어가고 있어서 우리들도 이런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다. 그 중에 제일 심각한 쟁점은 역시 ‘대한민국의 정세’에 관한 것이다. 이것에 대한 우리 세대의 여론은 실감적으로 알고 있지만 문제는 대화가 거의 안 될 정도로 ‘비이성적’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우리 모임도 이것에 대해서는 거의 무방비 상태임을 잘 알기에 가급적 피하고 싶지만 언젠가는 허심탄회 虛心坦懷 하게 ‘자기 입장’을 나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전까지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서 부드러운 사랑의 분위기를 쌓아가는 것, 그것이 나의 희망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있으면 무엇이 문제랴… 늦은 밤 맛있는, 영양가 듬뿍한 알찌개와 소주 한 주전자가 있는 모임에서 우리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달 모임은 성목요일 문제로 한 주일 앞당겨 ‘예외적’으로 우리 집에서 모일 계획을 생각하고 있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가 된다.

 

극동방송, 평화신문.. 이 두 잘 알려진 mass media company 들, 하나는 천주교 print media인 평화신문, 그리고 개신교 쪽의 극동방송은 broadcast media service하는데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내가 현재 그들의 service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대한민국 산 産’의 매체들은 얼마 전까지 관심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정기적’으로 접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평화신문은 도라빌 순교자 성당 사무실에 archive해 놓은 것을 몇 번 훑어 본 적은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 당시의 인상은 이런 기사들로 ‘장사’가 되나.. 하는 유치한 생각 뿐이었다.

극동방송,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귀로 듣는 방송매체이고 이것도 그 동안은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정도의 관심으로 살았다. 하기야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로, 미국에 살던 어떤 유명한 한인 목사 (김장환 목사)가 대한민국으로 돌아가서 세운 개신교 선교 방송국이라는 것은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정도였다. 이것도 현재 자주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정기적으로 듣는 입장이 되었다.

이 극동방송 (FEBC) 은 분명히 ‘대한민국 발 發 생방송’이고, free version TapinRadio  (Windows, Android client apps) 를 써서 인터넷 으로 real-time  생방송을 듣게 되었는데, 사실 처음 이 ‘생’방송을 들었을 때 나는 한 동안 느껴지는 격정, 감정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Every hour on the hour, 3-2-1 count down beep!!, 오랜 전 고국의 방송들, 매 시간마다 삡삡삡..삡~ 하며 정시를 알려주던 것, 거의 반세기 동안 못 들었던 것. 그 오랜 세월 동안에도 이 service는 안 변했구나 하는 감회가 일었다.

이 극동방송 format도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하는 것들, 한마디로 그 옛날 ‘라디오’만 가지고 있는 ‘듣는 즐거움’에 맞게 그렇게 아기자기하게 program들을 꾸며 놓은 것도 이 방송에서 느끼게 하는 ‘오래~ 전’ 라디오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단 한가지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이 방송은 역시 ‘개신교, 마틴 루터’의 대변인 이라는 사실, 하지만 알고 보면 큰 문제는 없었다. 역사적 사실을 알고 들으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나와는 의견이 다른 형제들이라는 사실만 알면 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이곳에서 ‘고은정’ 성우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1950년대 KBS ‘라디오 전성시대’부터 우리의 친근한 국민 성우로 활약했던 고은정, 그 고은정이 이 방송에 ‘매일’ 나오시는 것이 아닌가? 라디오 시대의 personality들은 목소리만 들었지 ‘모습’을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여서 어딘가 신비감까지 들었던 분들이고 특히 이 고은정 씨는 더욱 그랬다. 비록 옛날의 낭랑한 목소리는 아니더라도 목소리의 기억은 아직도 뚜렷하다. 1950년대 KBS시절 참 ‘기라성’같은 성우들이 많았다. 나는 비록 코흘리개 애청자였지만 그들의 목소리 느낌 들 아직도 기억한다. 

이 두 그리스도교 매체들과 접하기 시작한 것도 이제는 어느덧 1년이 넘어가고 있고 그 동안 느꼈던 것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신문… 나는 이 신문과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고, 결론은 곧 다가오는 구독갱신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구독료에 상응하는 service를 나는 거의 못 받고 있고, 반대로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인정하고 싶은 것이다. 미주 판이라는 added service가 있는가.. 나는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타성에 젖은 듯한 편집태도도 그렇다. 예를 들어서 일년이 가깝도록 ‘매번 등장하는 백영희 칼럼’, 도대체 이 ‘백’여인이란 사람은 누구인가? 그분의 신변잡기까지는 그렇다 치고,  누구의 신변잡기란 말인가.. 왜 이 사람의 잡기를 읽어야 하는지.. 한 번도 이 분에 대한 1줄의 배경설명이 없기에.. 물론 googling을 하면 무언가를 알 수는 있겠지만.. 솔직히 그런 정도의 관심까지 두기가 싫은 것이다. 이것은 편집태도의 타성에 의한 나태에 가까운 것 아닐까?

그것만이 아니다. 이 신문을 구독하게 된 과정을 기억하면 ‘레지오 미친년 난동사건‘을 안 떠올릴 수가 없다. 그것만으로 평화신문이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감정의 동물인 나로써는 ‘아직도’ 어쩔 수가 없다. 이 신문이 배달되는 그 순간 나는 그 ‘미친년, 살모사 뱀의 얼굴’이 떠오르니 어쩔 것인가? 이래 저래 나와 평화신문은 ‘악연’에 가깝다는 결론이고.. 그 결과는 뻔한 것이 아닌가?

 

“… we are called to announce the Good News to everyone, but not everyone will listen. Once we’ve done our work, we should move on and not obsess about those who won’t listen. Why do some respond and some don’t? We don’t know, but that’s ultimately up to God.”Bishop Barron

 

오늘의 복음말씀에 대한 Bishop Barron의 짧은 강론 중에 나오는 ‘결론’이다. 복음, 기쁜 소식, 즉 ‘인류에게는 희망이 있다’ 라는 이 소식은 물론 부활 예수님의 message지만, 결국 이런 ‘말’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복’을 하는가? 결국 이것은 개개인의 선택과 운명에 달린 것이고 너무 이 안타까운 사실에 얽매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요지.. 참 간단한 결론이지만 어떤 시점에서 이들에 대한 ‘설복, 전교’을 중단해야 하는가, 그것이 문제일 것이다.

나 자신이 ‘저쪽에 속했던’ 부류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서 (불과 몇 년)  그 당시의 나 자신을 생각해도 이 어려운 ‘선교’문제는 너무나 실감나게 느껴진다. 왜 그들이 그렇게 ‘초월적 이성 transcendental reasoning’을 무시하는 것 (stuffed self) 일까?  하지만 Barron 주교의 ‘not obsess’란 말씀, 결국 그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능력은 하느님만이 알 수 있는 영역임을 인정하고, 너무 완고한 부류에 실망, 집착하지 말고, 다음 목표로 향하는 것이 현명할 듯 하다.

Obsess Not… 이 말을 묵상해본다. 언젠가 Francis교황의 말씀을 떠올린다. 낙태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겨냥해서 한마디로 obsess not이란 뜻을 풍기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의 진의는 무엇이었을까? 암만 동기가 좋고 고귀한 목표를 향한다고 해도 ‘정도껏 하라’는 말이었다고 나는 해석했다. 사실 그들 (소위 말하는 pro life group)의 열의는 대단해서 머리가 숙여질 정도지만 어떨 때는 너무나 격렬하고 전투적이어서 동기는 좋지만 결과가 어떨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이 세상에 풀어가야 할 문제가 그것 뿐만 아닌데 너무나 그것에 빠져서 다른 문제들을 간과하지 말라는 것이 아마도 교황님의 뜻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마찬 가지로 나는 다른 곳에서 obsess not 의 예를 본다. 바로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의 정치적 극단적 양극화가 그것이다. 진보, 보수라는 이름은 오랜 세월 존재했지만 과연 요새 같을까? 더욱 슬프게 하는 사실은 이것이 세대적인 차이에서 더욱 극렬하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나도 한때 ‘꼰대 세대’를 그렇게 싫어 했지만 결국은 그 세대의 일원이 되었기에 더욱 놀라운 것이다. 왜 그렇게 늙으면 극단적 보수가 되느냐 말이다. 왜? 고정관념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임은 알지만 왜 조금 더 균형 있는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 그러니까.. 극단을 피하란 말이다.

나도 6.25 사변으로 가정이 풍지박산, 애비 없는 후레자식으로 컸기에 김일성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판이지만, 그래도 정도 껏, obsess NOT이 아닌가? Get a life 란 말이 실감이 나도록 ‘하루 종일 YouTube를 보며’ 진보, 보수로 모든 것 편을 갈라 놓고 도매금으로 처리를 하니.. 세상이 그렇게 black & white가 아닌 것을 모르는가? 나의 주변에도 나이 비슷한 사람들 이 obsess not의 함정에 빠져 있는데 제일 놀라운 사실은 그들 자신들은 그것을 절대로 인정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obsession 아니 심지어 disorder라고 까지 할 정도인 것이다. YouTuberelated video함정에 빠진 것을 그들은 그렇게 모르는가?

 

책, 사랑의 지도 – 고 마태오

또 우연히 (사실 근래 들어서 우연이란 말을 피하려고 하지만)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에 갔다가 성물방/도서실 (성물 판매와 도서를 같은 방에서 service하는) 을 기웃거렸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그곳에 있는 ‘고서’ 같은 냄새를 풍기는 진열된 책들의 제목들.. 또 우연인가.. 몇 년 전에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  서울 재동학교 동창, 김정훈 부제의 유고집을 찾았을 때처럼 이번에는 사랑의 地圖 – 고 마태오 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우연인지 아닌지는 현 시점에서 알 길이 없다.

고 마태오, 실제 이름은 고종옥 신부님.. 오래 전의 가물거리는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난다. 오래 전, 그러니까 1982년 경이었던가.. 우리 부부가 콜럼버스(오하이오) 한인성당(공동체)에서 왕영수(프란치스코) 신부님으로부터 세례를 받던 해, 그 무렵이다. 그 해 부활절에 세례(그 당시는 영세라고 했다)를 받았는데 그 한달 전쯤인가, 세례를 받기도 전에 연숙 홀로 ‘용감하게도’ 신시내티 에서 열리는 성령세미나엘 갔었는데 그 때 왕 신부님은 물론이고 캐나다에서 내려오셨다는 고 마태오 라는 ‘건강하고 풍채가 좋았던’ 신부님도 하셨다. 물론 나는 나중에 연숙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지만 단체사진에서 그 분의 모습을 보았다.

 

서부 전선 ‘사천강 전투’ 때, 신부 되기를 결정한 직후, 1952

 

그러면서 이 ‘전설적인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를 책을 돌려보며 듣게 되었다. 아마도 그때 돌려서 본 책이 바로 오늘 내가 찾고 빌려온 ‘사랑의 지도’가 아니었을까.. 100% 확신은 없지만 거의 분명하게 나는 책 뒤 표지의 사진, ‘멋진 sunglass를 끼고 호탕한 미소를 짓는 군인‘의 모습을 기억한다. 당시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지만 연숙으로부터 들었던 것들, ‘6.25 동란을 겪는 영화 같이 파란만장한 과거, 사랑하던 여성, 기적같이 신부가 되었던 이야기’ 모든 것들이 그야말로 어떤 영화를 보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들.. 그러고 나서 이 고 마태오란 이름은 30여 년의 긴 인생역마차 바퀴에 치어 나의 관심권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잊혀졌다가 홀연히 나의 눈앞에 나타났다.

Googling으로 본 고 마태오 신부님, 이미 돌아가신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확실하게 2004년 12월 31일에 선종하셨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풍채 좋았던 몸집’에 걸맞게 역시 고혈압과 당뇨병으로 고생하시고 75세란 ‘길지 않은’ 생을 마치신 것, 타국 땅 캐나다의 어떤 양로원에서 가셨다는 사실이 그렇게 가슴을 아프게 한다. 유명인사 라고 해도 생각보다는 쓸쓸히 가신 것 같아 더욱 가슴이 저려온다. 은퇴사제들의 은퇴 후의 option이란 사실 거의 이런 것인가? 그래도 긴 세월 불치병으로 고생하신 것이 아닌 것 같아 그나마 위안이라고 할까?

고 신부님의 저서를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기에 나는 조금 가슴이 설렌다. 하나, 하나, 하나.. 내가 겪지 못했던 조국의 근대사를 신부님의 눈으로 다시 겪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평화통일을 원하셨다는 것은 이미 가끔 짧은 소식을 통해서 들을 기억이 있다. 그런 노력과 현재 모국의 돌아가는 ‘꼴’을 비교해서 생각하면 정말 한숨만 나온다.고 마태오 신부님의 하느님은 도대체 현재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인가?

이제 이 책을 typing (keyboarding)으로 읽기 시작하며, 일제시대와 6.25동란에 얽혔던 생생한 증언을 소설 같은 이야기로 내가 상상하던 당시의 상황과 비교할 것이다. 그러면서, 나의 1950년대 조국의 모습과, 1980년 초 우리가 세례를 받으며 하느님을 찾고 있었던 시절을 회상할 것이다. Reading by Typing 은 난독, 정독, 완독에 비해서도 훨씬 시간이 더 든다. 그래도 나의 정신건강 상태에 따라 2달 정도 걸릴 것으로 희망을 한다. 이 ‘고생’이 끝나면 그래도 online, softcopy가 ‘영구히’ 남기에 더욱 분발할 것이다.

 

1982년 3월경 신시내티에서 열린 성령세미나, 고마태오, 왕영수 신부님 그리고 최옥진 데레사 모두 한 자리에.. 왼쪽 제일 뒷쪽에 연숙, 고완석씨 등의 얼굴도 반갑다.

수녀님 옆에 있는 연숙, 이 수녀님은 양수녀로 나중에 아틀란타 성당에서 신부파, 수녀파로 싸우던 그 장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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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주일 2016

¶  오늘은 Catechism, 천주교 교리교육, 교리반, 교리교사 등에 관련이 된 Catechetical Sunday, 한국어로는 교리주일 정도가 될 듯하다. 오늘 주보를 보고 오늘이 바로 교리주일임을 알았다. 2주 만에 우리의 ‘동네 본당’ Holy Family에서 주일 미사 참례를 하였다. 10시 미사에서 낯익은 반가운 얼굴들이 이곳 저곳에 보이고 인사를 나눈다. 세월이 무언지.. 이들 전혀 얼굴, 문화, 나이 다른 교우들, 특히 Irish쪽의 푸른 눈의 수려한 모습의 ‘아줌마, 아저씨, 할머님’들, 어쩌면 그렇게 정이 들었을까? 이름도 성도 잘 모르지만 이웃 친척처럼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잠시 안 보이면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근래 평일미사에서 너무나 자주 만나는 Father Joseph Morris, 예의 극적인 언어로 마이크 필요 없는 우렁찬 목소리가 일요일 아침을 압도한다. 이 신부님은 모습 자체가 liberal 한 분이지만 60을 훨씬 넘는 나이에 그런 성향은 드물지 않을까? 모습자체가 나이에 비해서 훨씬 젊은 이 신부님, 아마도 ’60년대의 아이들 baby boomer‘ 일지도 모른다. 오늘 강론은 생각할 기회를 많이 준 주제다. ‘하느님을 사기 칠 수 있는가?’ 하기야 오늘의 복음말씀(Luke 16:1-13, 루까복음)은 처음에 이해가 전혀 되지를 않았다. ‘사기치는’ 시종이 주인으로부터 ‘사기 쳤다고’ 칭찬을 받는 모습… 신부님 말씀이 이 대목은 성서학자들도 골머리를 썩는다고 했다. 예의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 반대가 되는 이 색다른 논리를 어떻게? 이 liberal한 사제 Joseph의 해석이 뒤따랐는데, 나는 그 뜻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의 제1독서는 Amos예언자가 ‘사기꾼’들을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복음말씀에서는 사기꾼 시종이 칭찬을 받는 내용이 나왔을까? 이것이 신비가 아닐까? 인간의 논리와 하느님의 논리는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 것인가? Joseph신부는 여기 나오는 시종이 예수님이고 주인이 하느님이라고 하는 묵상주제를 제시하였다. 처음에는 너무나 혼란스러웠지만 조금씩 정리가 되는 듯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대조적으로 매일 인터넷으로 받아보는 복음 묵상 글에서 신부 기경호 프란치스코 라는 분은 아예 이 사기치는 행위를 평하기를  ‘하느님의 빚을 받는 이들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에 슬기롭게 대처하듯이 슬기롭고 민첩하며 능동적으로 주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고 해석을 하고 있다. 분명히 ‘사기치는 것’이 ‘치열하게 세상을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동감이 안 간다. 글쎄요.. 더욱 혼란스럽습니다.

미사가 끝날 무렵 본당의 모든 교리반 staff들(주로 catechist 교사들)이 불려나가서 신부님의 강복을 받았다. 연숙은 현재 한국본당 순교자 성당 교리반 director를 맡고 있어서 느낌이 아주 달랐을 것이다. 어째서 같은 대교구 소속인 이곳에서는 교리반 교사들이 공적으로 강복을 받고 한국 순교자 성당에서는 아예 교리반 주일이란 말조차 없으니.. 일을 맡은 이상 헌신적으로 일하는 그녀지만 가끔 맥 빠지게 하는 일들이 있는 모양이다.  이곳 미사가 끝나자마자 그곳 본당 교리반 때문에 부리나케 혼자 순교자 성당으로 떠난 연숙의 뒷모습이 조금은 쳐져 보인다.

 

¶  오랜 만에 guitar를 손에 잡았다. 아니 3주 만에 case에서 꺼내본 셈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이렇게 몇 주 동안이나 기타 코드를 안 잡았던 것이 처음이었나.. 손가락 끝의 굳은 살이 벌써 얇아졌나.. 어찌나 손가락이 아프던지 불편하고 불쾌하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3주 정도면 암만 굳었던 손끝 살갗도 다시 원상복구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것으로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3주 이상 기타 치는 것을 쉰 적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기억에 이 정도로 손가락이 아팠던 기억이 없으니까..  요새 느낌으로 3주란 것은 시간이란 축에도 끼지 못하는 찰라 같은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나의 육신의 일부인 왼손가락 끝은 짧지 않은 시간을 느낀 것인가?

이 시점에서 지난 3개월 정도 group coaching을 하며 관계를 맺게 된 Six String Friends 기타 동호회를 다시 생각한다. 내가 guitar coaching을 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주었고, 덕분에 오랜 역사를 가진 내 ‘알량한’ guitar ‘실력’을 재점검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7번 정도 lesson과 coaching을 하면서 느낀 것은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의 커다란 차이’ 였다. 나의 현재 기타실력은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남과 비교를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엄청난 세월 동안 그런대로 꾸준히 기타가 나의 옆에 있었다는 사실, 때에 따라 꾸준히 즐겼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시도한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아는 것 가르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렵게 보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어휴~’ 소리만 나온다. 우선 배우는 사람들의 실력이 각양각색으로 3/4, 4/4 조차 구별할 수가 없는가 하면 4/4 는 숫제 5/4, 6/4로 리듬 감각, tempo감각이 예외적으로 둔한 사람도 있었다.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리 노래’ 실력들에도 각양각색이고.. 50~60대이므로 70/80 style의 곡들에는 큰 무리가 없었지만 문제는 어린 학생들이 아니어서 배우는 과정이 느리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몇 주나 몇 달을 예정하고 시작한 것이 아니고 open end로 ‘무작정’ 진행된다는 사실도 문제로, 그렇게 조급하게 배우려는 자세도 결여가 된 듯 보였다. 그래서 일단 지금이 중간 정도의 단계 mid-term정도로 보고 지금까지의 정도를 더 coaching을 하고 일단 phase out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래야 조금은 조급하게 열심히 노력을 할 듯 보인다.

 

2016-09-18-16-22-19-1

 

¶  Rain Shower, rare sight: 이것이 무엇이냐?: 오늘 아침에 새벽에 일어나서 backyard의 deck로 어둠을 헤치고 맨발로 걸어나가 보니 느낌이 이상했다. 그 동안 완전히 잊고 살았던 그 느낌.. deck 바닥이 질척거리는 것.. 그것은 ‘물’이었다. 마르고 말라 수축을 거듭하던 deck floor가 아마도 놀랐을 것이다. 그것은 ‘잔잔히 내리는’ 이슬비였다. 한마디로 ‘이것이 웬 떡이냐!’ moment가 되었지만 오후에는 숫제 정말 오랜만에 보고 듣게 된 ‘소나기’가 쏟아졌다. 올 여름의 그 모든 더위가 한 순간에 싹~ 사라지는 순간이 되었다.

살인적인 맹더위도 놀랍지만 올해의 여름은 그야말로 double whammy였다. 맹더위에 겹친 가뭄, 아마도 기록을 깼을지도 모를 일이다. 9월 중순이 지나가는 이 시점의 느낌이 ‘이것은 가을이 아니다’ 라는 것.. 올해 이 지역 농작물들 모르긴 몰라도 피해가 컸을 듯 하고 우리 집도 마찬가지.. 연숙의 희망에 찼던 edible garden (victory garden), 정말 수확이 초라하기만 했고 나중에는 거의 포기한 상태.. 지나간 몇 해는 참 Mother Nature가 그렇게 인자롭기만 했는데 어찌 올해는 그렇게 심술궂은 모양을 했을까? Mother (Nature)를 인간들이 너무나 괴롭힌 것에 대한 보복이었을까?

우선 소음덩어리 에어컨 소리가 안 나는 것만도 날라갈 듯한 기분이다. 올해 에어컨 compressor fan을 교체하면서 소음의 강도가 높아져서 언제라도 에어컨이 꺼지는 아침에 손을 보려고 벼르던 것이 이제는 여름이 완전히 가고 있다. 그렇게 잔인하던 올 여름, 혹시 ‘평균기온을 채우려’ 올 겨울은 또 다른 살인적인 추위가 오는 것은 아닐지.. 올 여름의 electric bill은 보기도 무섭지만 그래도 이제는 ‘거의’ 끝이 나고 있음을 느끼기에 오늘 아침의 가랑비는 나에게는 너무나 달콤한 자연의 선물이 되었다.

 

¶  동갑내기, 동갑님네: 말만 들어도 가슴이 찌릿해온다. 최근 몇 주일 동안  YouTube로 간간히 즐겨 보아왔던 고국의 80년대 장수 長壽 농촌드라마였던 ‘전원일기 田園日記’의 한 episode에 ‘동갑님네’란 것이 나왔다. 어떨까.. 왜 나의 가슴이 찌릿한 것이었나? 동갑, 동갑이란 말, 요새도 쓰기나 하나.. 우리 때는 참 정겹던 말이었다. 특히 음력으로 계산한 띠 동갑은 더 정이 가는 말이었고 나와 같은 ‘돼지띠 동갑‘은 그 중에서 제일 나를 즐겁게 한다. 나를 이렇게까지 제일 반갑고 즐겁게 하던 이 말 동갑, 이국생활에서 이것은 사치중의 사치스런 말이 되었다. 이것을 별로 크게 신경 안 쓰고 모르는 척하며 하도 오래 살아서 그렇지.. 조그만 이렇게 생각을 하면 너무나 쓸쓸하고 심지어 괴롭기까지 하다.

고국에서 살았으면 동갑내기가 동창을 비롯해서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그렇게까지 동갑내기의 값어치가 높지 않을지도 모른다. 동갑이란 것, 무엇인가.. 같은 해 태어나서 같은 때 학교를 다니고 거의 같은 역사를 산 동류가 아닌가? 그러니까 거의 같은 시대관을 가진 값진 ‘친구’들이 아닐까? 특히 이곳에서는 동갑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 같이 어려워서 아주 가끔 돼지띠 동갑을 찾으면 그렇게 뛸 듯이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것도 근래에 나는 2명을 찾은 경험이 있었고 한 명인 현재도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는 행운을 맛보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돼지띠는 여성이라서 조금 거리감이 있다. 다른 남자 돼지띠는 나와 큰 인연이 없는지 몇 년 전에 영구 귀국을 해버려서 그 쓸쓸함은 생각보다 컸다. 70을 곧 바라보는 돼지띠 동갑들.. 6.25 민족비극은 직접 겪지 못했지만 그 여파의 피해를 톡톡히 보며 앞만 보고 달렸던 세대… 참 파란만장한 ‘인생 십자가’를 진 세대였다.

 

초복, 대서 가 멀찌감치 지나가고 드디어 중복을 갓 넘어간다.  이렇게 고국적인 냄새가 흠뻑 묻은 절기의 이름들: 소서, 초복, 중복, 대서, 입추 같은 것들.. 언제나 들어도 부드럽던 고국의 계절, 절기의 느낌이 그렇게 살아날까?  정작 옛날에는 ‘비과학적’이라고 거들떠도 안 보던 그 이름들을 지금은 아련한 기억의 선물로 즐긴다.

이런 이름들이 그런대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달력들에는 그런 것들이 거의 안 나오기에 완전히 잊을 수 있지만 다행히도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필수적인 지참 ‘활동수첩’에 그것이 고스란히 나오는 것이다. 하기야 레지오 마리애의 초 강대국인 대한민국의 단원수첩을 거의 그대로 베꼈으니.. 빠질 수도 없긴 하다. 처음에는 안 보이던 그런 절기 이름들이 이제는 나의 눈이 들어오니.. 무언가 나의 ‘가슴’이 많이 열린 모양이다.

중복이 지나가면 한국형 dog days들이 한창 지나가는 때이다. 그래서 보신탕을 이때 먹는지도 모르지만.. 지금 생각하니 참 ‘야만적’인 전통이 남았고, 먹을 것이 지천으로 쌓인 땅에서 아직도 이것을 먹는 것은 그것을 100% 증명하는 셈이다. 문화적이 차이라고 위선을 떨지만 그것이 그렇게 설득력이 있을까?

중복이 지나고 마지막 말복이 2주 쯤 남은 이 시점, 무척 덥다. 처음보다는 덜 덥지만 그것은 우리의 몸이 적당히 적응이 된 덕분이고 ‘과학적인 더위’는 거의 같은 정도로 매일 덥다. 이때를 어떻게 더위를 잊으며 빨리 보내나..  올해 피서 여행은 일찌감치 포기를 했기에 죽어도 집에서 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문득 생각나는 아련~한 단어: 납량.. 이란 말.. 한자로 쓰면 納凉 이다.

받을 納, 서늘한 凉. 입시지옥 속에서 달달 외웠던 한자 1000자 덕분에 아직도 기억이 난다. 글자 그대로 시원함을 주는(or 받는) 것들을 뜻 한다. 하지만 납량이란 말은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고 당시의 여름철 Radio, TV program에서 배운 것이다. 여름 이 맘 때쯤 되면 예외 없이 納凉物 이란 것을 내 보낸다. 그 시절엔 그 말의 뜻을 몰랐다. 하필이면 지독한 여름에 쓰는 말이 ‘별로 시원한 느낌이 없는’  납량일까.. 한 정도다. 납 이면 금속의 납 lead을 먼저 생각했으니까… 이제 알고 보면 이 걸맞지 않은 단어도 분명히 일제의 유물일 것이다.  일본 TV 프로그램 중에 이런 말이 자주 나온 것을 보았으니까…

방송계에서 납량물 이라는 것은 물론 ‘보고 들으면 몸이 서늘해 지는’, 그런 것들.. 거의 귀신에 관한 drama가 아닐까? 무서운 것을 듣거나 보면 상식적으로 더위를 잊을 수 있을까? 심리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이곳에 살면서 그 일본, 한국의 전통적인 귀신 납량물은 찾을 도리가 없지만 실제로 그런 것들을 보아도 이제는 하나도 무섭지 않으니 크게 시원함을 느낄 수도 없다. 나이 탓도 있겠지만 솔직이 이제는 귀신이나 ‘보이는’ 영혼들, 하나도 안 무섭다. 그들의 ‘정체’를 이제는 대강 알게 되었고 한 방에 그들을 물리칠 계책도 가지고 있으니까.

몇 년 전부터 나의 납량물은 역시 ‘시원한’ 책이나 귀신이 안 나오는 무섭지 않은 비 전통적인 납량물이다. 책들은 물론 읽어서 시원해야 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의 평정감과 만족감을 주어야 한다. 시끄러운 피서지가 아니고 사람들을 피해서 찾아간 심심산중의 느낌을 주어야 한다. 올해 나의 여름 납량물은 2권의 책과 home server archive에 거의 십 년 이상 건재 해온, 두 가지 video 다. video는 오랜 전에 보았고, 불현듯 가끔 보기도 하는 대한민국 KBS의 걸작 documentary ‘역사 歷史 스페셜‘ series, 그리고 고전중의 고전, 중국의 대하 역사 drama ‘삼국지 三國志’. 그러니까 video는 모두 역사에 관한 것이다. 2권의 책은 몇 주전에 산, 과학자출신 신부 Fr. Robert Spitzer의 저서로 제목은: (1) New Proofs for the Existence of God, (2) God so Loved the world.  이 것들은, 조금씩 더위의 한 풀이 꺾이는 이 시점에서 시작해서 이번 여름이 다 가기 전까지 나에게 ‘시원함을 보내주는’ 즐거움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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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두 권의 책, 참 마음에 드는 cover design과 종이의 촉감 등도 그렇지만, 사실은 내용들이 너무나 기대가 된다. 근래에 나의 모든 관심을 끄는 분야가 바로 science & religion 인데 이 저자 신부님, 완전히 이 분야의 ‘뜨는 별’이라고 할까.. 물론 충분한 자격을 갖춘 ‘박학다식’하고 영성적인 사제(예수회)라 benefit of the doubt는 충분히 줄만 하다.

The New Proofs for the Existence of God  제목이 거창하지만 사실은 이 분야 apologetics의 전통적인 것에다가 최근 25년 사이에 밝혀진 (우주) 물리학, 철학 적 ‘발견’을 덧붙인 것이다. 특히 물리학 쪽인 Cosmology분야에는 원래의 Big Bang theory의 최 현대판인 contemporary Big Bang Cosmology를 비교적 기술적으로 다루었다. 예를 들면 bouncing universe, space-time geometry, quantum cosmology, The Borde-Vilenkin-Guth Theorem’s boundary to Past Time, Inflationary Cosmology, String Multiverse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

또 다른 책, The God so Loved the World 이 책은 물론 이 신부님의 전공인 Science와는 큰 상관이 없는 영성적인 책이다.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도 왜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서 나타나셨나.. 하는 문제를 다룬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하느님이요 인간이신 예수, 특히 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다룬 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의 주제는 ‘사랑’이다. 왜 하느님이 사랑이신가 하는 것을 참으로 조직적으로 파 헤친 것이다. 무조건 믿을 것인가, 아니면 심각하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고 믿을 것인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무조건 믿는 것보다 생각해 보고 믿는 것이 건강한 믿음이라고 생각하지만..

 

2016년 7월 24일, 봉헌을 위한 33일 준비기간 중 제12일째, 묵상 주제는: 생의 마지막 것들. 결국 12일 간의 ‘세속정신을 끊음’의 끝은 바로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생각과 묵상으로 끝이 난다. 오늘의 논제는 이것이다: 죽음은 한 번이고 그것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르기 항상 이것을 염두에 두고 살면 이 세상의 ‘헛된’ 것들에서 벗어난다.

 

a beautiful final sunset ..

a beautiful final sunset ..

 

이것은 우선 개인적, 사회적인 배경으로부터 시작해서 철학적으로 더 깊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영성적, 신학적으로 결론을 맺어야 하는 정말 거창한 화두요 주제다. 우리의 보이는 생의 결말이 죽음이라는 신비는 누구나 피하고 싶기에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반대로 우리 인생에서 잠재적으로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이것에 대한 걱정과 고민에서 자유스러워 질 수 없기에 아예 정면으로 도전을 하는 것은 어떨까..

오늘의 묵상 논제는 이렇게 시작된다.

자기 생의 마지막을 예견하고 준비 없이 기습을 당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때 비로소 이 세상의 헛된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늘의 말씀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가 된다.

하루라도 더 살 줄을 분명히 모르면서 모든 사람들이 죽음으로 끝을 맺으니, 사람의 생명은 그림자와 같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네가 죽은 다음에 누가 너를 기억하여 주며, 누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랴! 사랑하는 이여, 네가 무엇이든지 할 만한 것이 있으면 지금 하라. 이는 네가 언제 죽을지 모르고, 또한 네가 죽은 후 사정이 어떻게 될는지 모르는 까닭이다.

너는 이 세상을 지나는 순례자와 나그네로 여겨 세상의 모든 사정에 상관치 말아라. 네 마음은 아무것도 거리낌없이 자유스러이 보존하고 하느님께로, 위로 향하여 둘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며 산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유산 정리, 유언, 장례식의 절차 같은 것을 말하는 너무나 물질주의적 냄새가 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주위를 눈 여겨 살펴보면, 평균 수명을 채우건 못 채우건 사람들은 모두 하나 둘 씩 ‘사라져’ 간다. 이별을 겪고 난 이 세상은 한때 우리와 같이 숨을 쉬었던 그들을 일상적으로 결국 잊는다. 가끔 기도 중에 기억하기도 하고, 주기 연도 같은 것을 통해 그들을 기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물질적 요소들’은 우리의 감각에 더 이상 이세상, 즉 물리적인 세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매일 매일 세속에 파묻혀 오랜 세월을 산 사람들, 나도 포함되는, 이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어떻게 대응하는 것일까? 아마도 대부분 ‘세속의 잡음과 잡념’이 이 궁극적인 난제를 가려주고 곧 잊게 해 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세속사회에서 부지런히 활동을 할 때가 가능했지만, 칠순이 가까워 오는 그 이후는 점점 어려워지는 ‘조금씩 다가오는 공포의 그림자’ 처럼 느껴진다.

한마디로 물질적 세속적 사고방식에서는 ‘이제는 모든 것이 끝장이다’ 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못 다한 것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올 것이고, 잘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더 오래, 거의 영원한 세월을 원할 것이다. 여기서 세계관의 차이가 나머지 인생을 좌우한다. 나를 제일 괴롭히던 생각은: 가족 친지들과의 ‘영원한’ 이별? 죽을 때의 육체적 고통? 어떤 방식으로 죽는 것이 편한가?  주위에 필요이상의 괴로움을 주는 것? 이런 것도 괴로운 사실이지만 사실은 ‘이 우주에서 나 라는 존재가 없어지는 것‘ 바로 그것이 제일 괴로운 사실이었다.

6년 전부터 ‘부지런히’ 장례, 고별, 연도 등으로 ‘내가 잘 모르는 가족들’의 슬픔에 동참하려고 무척 애를 쓴 보람이 있었는지 이제는 예전처럼 죽음이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실제로 당해보지 않은 것이기에 물론 확신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교리적, 신앙적 죽음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아가기에 조금은 더 당당하게 죽음이라는 문제와 맞대면을 할 용기도 생겼다. 아마도 이것 근래 5~6년 동안에 내가 경험한 ‘깜짝 놀랄만한 진리’ 일 것이다. 이제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아니 너무나 간단하다. ‘영원한 진리의 말씀’ 대로 살고 죽으면 되는 것이다.

 

¶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간단히 “33일 봉헌 기도” 라고 불리는 이 한 달을 넘는 준비기간이 7월 13일 시작되어서 이제 6일이 지나고 있다. 33일 중, 첫 12일간을 ‘첫째 시기 12일: 세속 정신을 끊음‘ 이라고 하는 ‘준비 전의 준비기간‘에 속하고, 나머지 3주가 사실 본론에 속한다. 첫 12일 ‘준비 전의 준비기간’ 에는 ‘세속에서 떠나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2년 만에 다시 이 ‘‘을 보며 ‘묵상’을 하는 것, 새롭기도 하고 조금은 귀찮기도 하지만 이것이 나의 올해 ‘개인피정 personal retreat’ 라고 여기고 조금은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현재까지 느낌은 전 보다 조금은 더 높고 넓게 주제를 받아들이는 그런 것.. 이것은 분명히 발전이다. 과연 우리가 세속이라는 것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가 있을까? 우리가 현재 보내고 있는 초 현대는 99.99%가 세속세계가 아닌가? 깊은 산속의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마도 2중 적인 삶(생각과 행동이 같지 않은) 을 살아야 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노력은 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조금씩 이 세상을 탈 세속 사회로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초자연적인 도움이 있다면…

 

¶  Tobey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누워버린 지 일주일이 지나간다. 그 애나 우리나 어떻게 보면 참 긴 시간이었다. 집안에 환자가 생기는 것이 이런 기분이겠구나.. 그렇게 주위에 아픈 사람을 많이 보았지만 집안의 개가 아픈 것을 보는 것은 전혀 색다른 경험이 되었다.

급하게 order한 약, 신경 관절염 치료 보조제 supplement를 기다리는 동안 증세가 조금은 호전된 듯 보이기도 했지만 그렇게나 아픈 신음소리를 내는,  말 못하는 ‘식구’를 보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이틀 전에 도착한 ‘기적의 약’에 모든 희망을 걸긴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혹시 이렇게 아픈 이유가 우리가 생각한 그런 것이 아니라면?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그 약을 먹은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Tobey는 다시 서서히 천천히 일어나 걷기 시작한 것이다!  고통스러운 초점을 잃었던 눈이 원래대로 ‘뱅글뱅글’ 돌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본 대로 이것은 arthritis계통의 ‘노인병’일 것이다. 이것의 고통은 사람들에게 들어서 익히 알지만 그들은 말이라도 하지만 말 못하는 동물들은 그 심정이 어떨까.. 다시 한번 언젠가 다가올 ‘이별의 순간’에 대한 생각을 물리치며, 이제는 animal pain, animal theology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 듯하다.

 

¶  와~~ 쳐진다.. 오랜만에 기분이 무척이나 쳐진다. 우울할 정도로 쳐지는 느낌 아주 오랜만인가? 예전에는 하루를 멀다 하고 우울한 감정과 싸우던 기억인데 이제 그것도 조금씩 추억으로 변하고 있으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왜 그렇게 ‘나아진 것’인지 그 이유는 나에게 너무나 자명하다. 바로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마음의 평화’일 것이다. 이것이 예전에 비해서 그렇게 외부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것이 힘들어진 것이다. 왜 그럴까? 그런 중에도 가끔 이렇게 우울한 날이 오긴 한다. 얼마를 못 가지만 그래도 이것은 괴롭다. 어찌해서든지 몸을 바쁘게 해서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이유를 생각하면 몇 가지가 분명히 있지만 나로써는 어떻게 해결할 수도, 그럴 가지도 없는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기에 그저 시간만 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7월 11일, 2016년 아침.. T-Minus 48 hours.. 이틀이 남았다 2016년 ‘성모승천 대축일’ ‘봉헌을 위한 33일 준비’ 기간이 시작되는 날이.. 7월 13일로 다가왔다.  2012년 8월 첫 봉헌, 2014년 3월 갱신 이라는 이력을 가진 내가 왜 다시 이 쉽지만은 않은 신심에 도전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2012, 2014, 다음은 수열 상으로 2016이라는 것은 조금 우습지만, 그런 것도 좋은 이유 중에 하나로 넣기로 했다. 하지만, 하지만 조금 깊고 심각한 이유는 그것이 아니다.

레지오 마리애의 생활을 하는 덕에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가르침으로부터 크게 멀어진 적은 없는 듯 하지만 과연 그럴까? 혹시 타성에 젖어가는 것은 아닐지, 항상 의식한다. 편한 기분이 들어가면 그것은 분명히 타성에 젖는 것이다.배우고 알고 경험이 쌓이면서 편해진 것이면 큰 문제가 없지만, 무디어지고 느낌이 없어지고, 짜증도 나고 하면 그것은 분명히 커다란 reboot, reset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2014년 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7월에 나는 reset과 reboot을 해야만 했던 경험이 있었다. 비록 비싼 vacation trip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인생 최고의 ‘free’ vacation으로 남았다. 하지만 2014년 여름의 big reboot은 spiritual, devotional한 것이 전혀 아니고, 완전히 나만의 mental exercise에 불과한 것이었다. 길고도 죽을 때까지 남는 그런 ‘비싼’ 경험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background를 가지고 나는 이번 여름 Marian Assumption Day1 에 맞춘 봉헌을 하기로 결정하고 말았다. 2013년에 시도했던 33일의 노력이 도중하차로 끝난 것을 명심하면서 이번에는 그런 과오를 범하지 않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다. 그 다음은 역시 ‘또 다른 경험’을 하는 것.. 어떤 것이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실 상관이 없다. 다른 느낌과 체험, 경험.. 그것이면 족하다.

이 정도의 준비각오면 (이렇게 요란하게 글로 남기는 것도 포함)  아마도 아마도 이번에는 도중하차를 할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면 8월 15일 후에 내가 ‘얻는 것’은 어떤 것에 중점을 두면 좋을까? 분명히 더 낫고 더 올바른 성모마리아 신심(이것은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가는 첩경이다) 에 다가가는 것이다. ‘오해 받지 않는 철저하고 용감한’ 성모신심을 얻는 것도 아주 중요한 과제다.

어제 Catholic News Agency website에 조금은 섬뜩한 기분의 기사가 실렸다. Fatima 의 visionary Lucia 루치아 수녀님의 예언이었다. 파티마 목격자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수녀님 2005년 선종 전에 증언이 그것이다. 인류 최후의 심판, 결전은 그리스도와 사탄 간의 ‘결혼과 가정’2에 대한 투쟁이라는 것, 그것을 ‘예언’하시고 선종하셨다고 보도가 된 것이다. 이것이 수녀님의 예언인지 혹시 성모님의 예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떨까.. 나도 비슷한 느낌과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참이었기에 우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Humanity의 근간 중의 근간인 ‘정상적인 가정’의 파괴와 붕괴는 사실 핵전쟁이나 다름없는 인류파멸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우매한 지식인‘들은 그렇게 stupid한 것일까? 10은 알고 11는 모르는 것.. 이런 뉴스에 접하며 나는 이번 33일에 이런 Current social problem을 같이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 뉴스와 일맥상통하는 글이 바로 33일 봉헌 Guide에 잘 나와있다. 아래 그것을 전문 발췌를 했는데, 원제는 20세기에 관한 것이지만 21세기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들이다.

 

20세기에 들어 성모님은 파티마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 발현하셔서 당신의 티없는 성심께 대한 봉헌을 간곡히 호소하고 계신다. 20세기의 초엽인 1917년 파티마에 발현하셨을 때에는 원죄에 물들지 않은 당신의 티없는 성심을 직접 보여주시면서 티없는 성심께 대한 신심과 봉헌을 호소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나의 티없는 성심에 대한 신심을 일으키기를 원하신다” (파티마, 19717. 6. 13).

“내 티없는 성심은 너의 피시처가 될 것이며, 너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가는 길이 될 것이다” (파티마, 19717. 6.13).

이에 따라 1942년 10월 31일 비오 12세 교황은 전 세계를 마리아의 티없는 성심께 봉헌하고, 1946년에는 파티마의 성모님을 세계의 여왕으로 대관하고 ‘여왕이신 성모 마리아 축일’을 제정하였다.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미 청년시절에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에서 큰 감화를 받고 자신을 온전히 성모님께 봉헌하였으며 이 책에서 ‘온전히 당신의 것 (Totus Tuus)‘라는 문장을 뽑아 교황 즉위 시에 모토로 삼기까지 했다. 1984년 3월 25일에는, 1917년 파티마에서 하신 성모님의 요청에 따라 전 세계의 주교들과 뜻을 합하여 소련은 물론 전 세계를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봉헌하였는데 그 이후 마침내 소련을 포함하여 여러 나라의 공산주의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 교황님들의 모범에 따라 이 봉헌을 실천하는 이들은 이 길이 틀릴 수 없는 가장 완전한 길임을 체험하는 동시에 이 봉헌으로써 이루어지는 놀라운 결과 즉 “티없는 내 성심이 승리할 것이다” (파티마 1917. 7.13)이라는 성모님의 약속의 실현을 자신들 안에서도 보게 될 것이다.

성모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이 봉헌은 하느님께 봉헌되기 위한 가장 완전한 방법인 동시에 성모님의 티없으신 성심께 대한 가장 완전한 신심행위이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봉헌을 받으셔서 당신 아드님과의 완전한 일치 안에서 그러나 그분께 종속되어 “은총의 질서 안에서 우리의 어머니의 자격으로” (교회헌장 61항)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의 생활에 모성적으로 관여하신다. 그리고 우리의 봉헌을 당신의 봉헌과 일치시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가능케 해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다. “성모님께 봉헌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 이르는 길을 통과하는 것이며 성모님은 그리스도께 이르는 길이시다” 라고. 따라서 성모님을 통하여, 성모님 안에서, 성모님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바치면 바칠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봉헌의 주된 목적이며 의의이다.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봉헌의 의미와 그 중요성” 중에서

 

  1. 매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 The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2. Homosexuality, Same-sex ‘marriage’, transgender, rampant divorce etc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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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개월 동안 나의 e-mailbox에 아침마다 배달이 되는 newsletter 중에 The Catholic Thing 이란 것이 있다. 우연히 찾은 이곳 website는 시각적, 내용적 balance가  잘 맞아서 나의 favorite site 중에 하나가 되었고  곧 이어서 daily newsletter를 받아보기 시작하였다.  ‘지속적으로 매일 받아 읽는 글’의 영향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것은 습관적으로 읽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그날의 생각에 첫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2008년 6월에 시작된 이 site는, 주로 대학 교수급, 지식층, 다양한 저자들이 교대로 글을 써서 ‘매일’ 이곳에 발표를 한다. 그러니까, 내용은 우선 pro 레벨, fresh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글의 내용이 일반인에게 크게 무리 없이 읽힐 정도로 아주 자상하게, 조심스럽게 쓰여져 있다. 그러니까 나 같은 ‘일반인’ 도 큰 무리 없이 읽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내용들도 박사학위 논문 같은 것, 아주 현실과 동 떨어진 것, 자기자랑을 하려는 것 같은 것보다는  대중적 가톨릭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현재’에 필요한 ‘모든’ Issue를 다루고 있다. 이 모든 것이란 예를 들면: “politics, economics, culture & warfare, the temporal and the eternal, children and careers, and many other contemporary questions” 라고 처음에 밝히고 있다. 영어를 큰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가톨릭 신앙인에게 생각을 할 수 있는 근거와 이유 그리고 “내가 믿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의문에 대답을 줄 수 있는 곳이다.

 

WHO IS GOD? 오늘 아침에 본 것이 바로 이것이다. 거창하게: WHO IS GOD? 평범한 질문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런 것을 하루 동안 기억하며 살면 그래도 조금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역시 지식적인 출발로 하느님은, 기하학의 공리 같은 출발로 정의가 된다. 이것이 바로 가톨릭 핵심교리에 선언된 것이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하느님:

“that there is one true and living God, creator and lord of heaven and earth, almighty, eternal, immeasurable, incomprehensible, infinite in will, understanding and every perfection.”

 

Self-Existence: 육감적으로 전혀 느낄 수 없는 존재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그런 것이 이 표현에 전부 들어가 있다. 아니 느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를 만든 ‘것’이 하느님이다. 존재를 만든 것이 하느님이지만 하느님의 존재가 필요한 ‘분’이 아니다. 모세에게 하느님은: “I am who I am” 이라고 선언을 하신 것이 그와 비슷한 뜻이 아닐까?

The First Cause: 시공간의 연속은 인과관계의 무한한 연속이다. 원인이 결과를 낳고 그 결과가 결과를 낳고.. 그 중에 바로 ‘the first cause, 첫 원인’이 바로 하느님이란 ‘분’이다. 모든 결과는 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인 접근으로, 모든 존재의 그 모든 것(생명체나 물체)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것, 이것을 조금 더 생각하면: 사람은 이 물체들 중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것일까.. 특별한 은총을 받은 존재인가, 아니면..물리적인 위치로 상상할 수 없이 크고 무한한 시공간 속, 거의 보이지 않는 존재 ‘지구’ 위에서 복닥거리는 인간의 존재는 성경의 표현대로 특별한 존재일 수가 있을까? 창조의 근원이 ‘하느님’이라는 성경을 믿고 그 다음에 나오는 것도 믿는다면..하느님의 존재와 그가 ‘특별히’ 보내셨다는 ‘예수님’을 안 믿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철학적인 접근으로는 보통 사람 특히 육감을 사랑하는 요새 세속적인 존재들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나도 그 중에 하나였으니까..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는 ‘물리적’인 육감을 믿기에 물리적인 접근으로도 풀어서 설명을 해야 한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그런 접근은 상상 이외로 빠르게 시도되고 현재도 시도되고 있다. 그런 설명은 나에게 훨씬 더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이렇게 ‘물리적, 철학적’인 접근을 왔다 갔다 하면 확실히 무언가 보인다. 절대로 절대로 불가능했던 것들이 하나 둘 씩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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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Lewis.. Clive Staples Lewis or Jack Lewis.. 불과 1년 전만 해도 내 관심의 radar ‘위’에는 없었던 이름이었지만 사실은 ‘radar의 밑’ 에서 전부터 분명히 있었던 이름이다. 2005년에 나온 children’s fantasy movie였고 우리들이 ‘아이들’ 에게 ‘억지로 끌려가서’ 보았던 big screen blockbuster move.. 바로 The Chronicle of Narnia1, 의 첫 편,  The Lion, the Witch and the Wardrobe 가 C. S. Lewis의 1950년대 초 작품이었던 것.. 이 영화를 볼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이 C. S. Lewis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었다. 그저.. ‘영국계통’의 ‘영감, 꼰대2 같이 생긴 영문학 교수, 문필, 소설가’ 정도로만 알고 지나갔었다. 이 영화를 같이 볼 당시, 큰 딸 새로니의 설명에 의하면 학교 elementary school  다닐 당시 이 책은 ‘필독’의 대상이었다고 했는데 나의 귀에 남았던 것은  ‘아마도 이 책의 발상은 기독교 성경이 아닐까’ 하는 뜻밖의 말이었다. 그 예로 lion king이었던 Aslan이 예수의 전형 model이었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 전부였다, 최소한 그 당시에는..

그 후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 우습게도 나도 ‘꼰대’가 된 이 시점에서, 이 ‘꼰대, 영감’에게 완전히 매료가 된 상태가 되었다. 그런 이유 중에 제일 돋보이는 것이 바로 그의 1950년대의 classic , Mere Christianity라고 할 수 있다. 그는 Oxford 대학의 대표적 영문학교수였지만 그의 관심은 이것을 뛰어넘어 (Christian) apologetics 에 후대에 더 그의 명성을 날리게 하는 영향력 있는 글을 남겼다. 쉽게 말하면… 좀 ‘배운 사람’에게 종교 (주로 그리스도교)를 알리는데 논리적으로 설명하는데 타의 주종을 불허하는 설득력을 가진 그 자신이 지식인 중의 지식인인 그런 사람이랄까.. 다른 말로.. 대부분 전통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안 믿어지면 ‘무조건 믿어라’ 라는 식의 전교를 큰 효과가 없으니까, 그들의 수준에 맞게 ‘논리, 이성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 그것이 그가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의 apologetics에 남긴 빛나는 유산인 것이다.

  1. C. S. Lewis가 1949년부터 1954년 까지 발표한 children’s fantasy series: 41가지 언어로 전 세계적으로 1억을 넘는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저자의 가장 인기 있던 작품
  2. 아주 옛날에 유행하던 비어, 그저 별볼일 없이 보이는 영감탱이를 뜻했다.

André RieuNearer, My God, to Thee (live in Amsterdam)  

 

지나가는 2주 동안 2명의 ‘자매님’들이 일주일 간격으로 하느님의 품으로 갔다. 한 자매님은 지난 주 일요일에 2시간 drive해서 간, 어떤 funeral home의 chapel에서 ‘개신교’의식으로 치러진 예배에 그 자매님의 ‘고이 잠든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25년 전 이곳으로 이사했을 당시부터 연숙이 알고 지내던 K 자매님.. 나와는 직접 상관이 없다곤 해도 간접적으로 그녀의 삶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연숙보다 몇 살 밑인 나이에 어떻게 벌써 귀천 歸天을 했을까? 우리가 알기에 지난 몇 년 동안 앓아온 당뇨병과 신장  kidney의 기능악화로 투석 dialysis 을 받았지만 근래에는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투석을 받는 것은 일시적인 방편이고 결국은 신장 이식을 해야만 살 수 있는데 그녀는 그 투석조차 못 받았던 모양이었다. 나의 어머님도 이런 처지였지만 신장이식을 하기에 너무나 고령이어서 결국은 운명을 하셔서 이런 처지를 뼈저리게 나는 실감한다. 하지만 이 K 자매님은 충분히 나아질 여지가 있었을 텐데.. 장례예배에서 목사님의 말씀이 그녀는 아마도 투석을 제대로 못 받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번지르르한’ 목사의 조사에서 밝히지 못하는 사정을 더 많이 알고 있기에 관에 누워있는 그녀를 보며 깊은 슬픔에 잠겼다. 형제, 자매가 그렇게 많은 그녀가 ‘시골’에 묻혀서 별로 도움을 주지 않는 남편과 살려고 노력을 했던 것을 알기에.. 아마도 주위의 도움은 거의 받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은 모든 것을 포기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의 우려는 아마도 맞을 것이다. 이럴 때 다시 생각한다. 과연 가족이란 무엇인가? 문제가 없는 가족, 가정은 없겠지만 그래도 위기에 처했을 때 도움을 주는 것이 가족들이 아닐까? 사랑하는 방식이 달랐다고 ‘사탕발림’같은 조사 弔詞 eulogy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우습게 들렸고 2시간 집으로 오는 drive길이 너무나 우리에게는 무거운 시간이 되었다. K 자매님, 아마도 이제는 그런 모든 고통을 훨훨 벗고 저 세상에서 힘차게 비상하는 새, 유유히 춤추는 나비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또 다른 자매님, 돼지띠 동갑 P 자매님.. 지난해 11월에 우리와 ‘묘한’ 인연이 되어 알게 된 분.  어제아침, ‘격심한’ 고통에서 벗어나 근래에 새로 ‘사귄’ 성모님의 품에 안겼다. 병 간호에 지친 두 아들, 특히 큰 아들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았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온다. 우리 부부는 이 자매님을 천주교로 인도하면서, ‘기적’까지는 안 바랐어도 그래도 평화를 충분히 맛 보시는 충분한 시간을 바랬는데.. 그것이 아무래도 부족한 시간이 되었다. 지난 5개월 우리는 이 분이 하느님을 알게 하려고 레지오의 조직을 통해서 지속적인 노력을 해 왔다. 비록 육체적인 죽음은 맞았어도 영혼은 건강하게 살아 가시리라 우리는 굳게 믿는다. 이 자매님도 알고 보면 참으로 ‘사연’이 많은 인생이 아니었을까.. 오래 전, 소설가 박경리 여사의 대하소설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의 복잡하고 운명적인 인생, 결국 운명은 바꿀 수가 없었던가? 나도 운명이란 것을 어느 정도 믿긴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결말이 더 나아지는 노력은 어땠을까? 더욱 더 슬픈 것은 작년 이맘때 남편이 거의 ‘같은 병’으로 운명하신 사실..남아 있는 두 아들에게 이런 가혹한 고통이 어디 또 있을까? 그래도, 세상 모든 것을 등지고 마음의 문을 걸어 닫았던 P 자매님, 3월에 하느님께 모든 것을 열고 병원에서 세례를 받았고, ‘베로니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형언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새로 알게 된 천주교 기도문을 열심히 읽고,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천천히 귀천을 하였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시작” 이라는 위령기도문을 믿으며 우리는 이 자매님 먼저 가신 부모님들과 재회를 했으리라 굳게 믿는다.

봉성체 봉사자를 구하는 Holy Family 성당의 brochure

봉성체 봉사자를 구하는 마리에타 Holy Family Catholic Church 의 brochure

봉성체 奉聖體, home Eucharistic communion service, ministry 성체를 집으로 모시고 가서 영성체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봉성체 라고 하는데 이것은 Extraordinary Minister of the Holy Communion 라는 평신도 중에서 특별히 선발되고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서류상으로도 본당, 교구, 대교구에 등록을 하여야 하고 대강 3년 정도 유효하다고 한다. 이만큼 사제가 아닌 평신도가 성체를 성당 밖으로 모시고 나가서 영성체 봉사service를 하는 것은 조심스럽고 신중하다고 할까.

4년 전쯤, 말기 암으로 투병을 하던 우리 레지오 단원 은 요안나 자매님이 거동이 불편해져 집에만 있게 되었을 때, 그 자매님에게 성체를 모시게 해 주고 싶다는 일념 으로 연숙이 ‘두말없이’ 봉성체 교육을 받고 교구청에 등록을 했는데.. 좀 늦었던가.. 안타깝게도 한번도 봉성체를 해 주지 못하고 그 자매님은 운명을 하게 되었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 이후로는 ‘가능하면’ 늑장을 부리지 않고 성체를 원하는 거동이 불편한 신자들을 찾게 되었고 필요한 곳은 찾아가게 되었다.

5년 전쯤만 해도 나는 ‘성체의 심각한 의미’를 잘 몰랐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성체와 성혈은 100% 예수님의 몸과 피라는 교리상식은 물론 ‘머리’에서는 알지만.. 그래서..어쨌다는 말인가 라는 선에서 멈추곤 하였다. 미사에서 성체, 성혈을 받을(모실) 때에도 ‘의미 있는 묵상’이 별로 쉽지 않았다. 그것은 물론 내가 별로 깊이 생각과 묵상을 안 해서 그런 것이다. 최후의 만찬에서 비롯된 성체,성혈의 신학적, 역사적 의미를 조금 더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다가, 한 순간 ‘점들이 연결되는 순간부터’ 나는 거의 무조건 성체의 신비를 믿게 되었다. 의외로 간단한 과정이었을까?

그런 배경으로 봉성체 봉사자인 연숙을 따라다니며 ‘봉성체 동행’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레지오 활동의 일환으로 봉성체 봉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집이나 병원에서 성체를 모시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일년이 넘은,  작년 2월경 부터 우리는 정기적인 ‘화요일 봉성체’ routine을 시작하게 되었다. 실제적으로 우리는 레지오 주회합이 있는 화요일에 정기적인 봉성체 활동을 하고 가끔 비정기적인, 예외적인 봉사를 한다.

이 봉성체 활동을 하며 느끼는 것은 한마디로 가톨릭 신앙에서 얼마나 성체신심이 중요한 가 하는 때늦은 놀라움이다. 1982년 영세를 받고 나서 수십 년이 흐른 인생의 황혼기에 나는 이것을 정말 늦게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성당의 미사를 못 보며 느끼는 이들 봉성체 대상 교우들의 성체에 대한 갈증, 갈망을 느끼고 보며 나는 너무나 많은 은총을 받는 듯 하다. 이 우리의 봉사는 사실 우리가 봉사를 받는 다는 쪽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 정도다. 고령의 봉성체 대상 자매님, 기억력과 씨름을 하시지만 우리들이 가면 ‘일제 시대(요새는 일제 강점기라고 하던가)’에 남편 형제님을 만나게 된 경위를 일본말을 섞어가며 설명하시던 모습을 보며, 이 분들에게 성체 이외에 ‘인간적 대화’가 필요함도 절실히 느낀다. 성체의 ‘기적’까지는 기대 못하더라도 이런 활동이 외로울 수도 있는 그분들에게 다른 기적을 가져다 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우리는 ‘자동차와 다리가 성한 한’ 이 활동을 계속할 것이다.

st-john-paul-2며칠 전이던가.. 우리의 미국본당의 달력을 보니 10월 22일에 Bl. John Paul II라고 적혀 있었다. 이 달력은 교회달력이라서 일년 열두 달 거의 매일 성인의 feast day가 적혀있다. 매일 미사를 다닌 이후 나는 이렇게 매일 성인의 축일이 있던 사실에 새삼 놀랐고 얼마나 내가 ‘무식한 천주교 신자’였던가 부끄럽기도 하였다. 매일 미사를 다니다 보면 ‘부수입’으로 이렇게 성인열전을 가볍게라도 공부하게 되어서 아주 유익하다.

그런데 오늘 10월 22일 수요일 미사엘 가니 바로 요한 바오로 2세의 ‘첫 축일’ 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며칠 전에 잠깐 본 Bl. John Paul II가 생각났다. Blessed John Paul Second 그러니까 ‘복되신 요한 바오로 2세’의 축일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inaugural feast day, 시성 후 첫 축일이라서 나는 무슨 ‘역사적인 사건’을 겪는 듯 가벼운 흥분이 스며들었다. 올해 부활절 때 시성이 되신 후 첫 축일.. 역시 역사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살아 생전에 ‘살아 계셨던’ 교황님이었고 나의 살아 생전에 돌아 가셨으며, 또한 살아 생전에 성인이 되신 것은 나로써는 조금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이다.

무척 많은 ‘일반 인’들이 이 성인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나도 그들에 못지 않게 이분을 좋아한다. 아니 존경, 아니 공경을 한다. 내가 꿈에도 꿀 수 없는 role model로 삼고 살아간다고 하면 조금 over일까? 2005년 선종을 하실 때, 나는 처음으로 이분에 대해 깊이 공부를 하고 묵상을 하게 되었고 그 당시 나는 이분이야 말로 나의 남은 평생 role model로 삼아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 100% 확신을 하였다. 그 이후 나는 얼음처럼 차갑게 얼었었던 나의 신앙심을 조금씩 녹여 나가기 시작해서 현재까지 계속 그 여파로 녹아가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어떠한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 그리고 세속적인 변화에도 이분만은 변함없이 ‘진실’을 밝히고 선포하실 것이라 나는 믿게 된 것이다. Do not be afraid라는 간단한 명언을 나는 얼마나 좋아했던가?

처음에는 약간 감상적인 기분으로 이분을 존경하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더 이 성인을 알아가며 인간 요한 바오로 을 ‘절대적’으로 믿고 존경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나를 매료시켰던 면은 이분의 ‘찬란한 지적 은총’이었다. 철저한 신앙적 믿음에 못지 않는 지성의 깊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듯 하다. 한 마디로 ‘공부 잘하는’ 교황인 것이다. 후계 교황인 베네딕트 16세가 아마도 지적으로 이분을 능가할 지도 모르지만 베네딕트 16세는 요한 바오로 2세에 비해서 다른 면이 떨어지는 듯 느껴진다. 절대로 굽힐 수 없는 지켜야 할 ‘진리, 교리’를 지켰고, 세계 정치를 신앙적인 눈으로 설득시켜는 힘은 아마도 이 요한 바오로 2세 성인을 따를 수가 없을 것이다.

오늘 이날을 맞아 ncregister.com에 관련 기사가 실렸는데 Catholics Remember St. John Paul II’s Personal Impact on Inaugural Feast란 제목으로 몇 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이날을 맞아 이 성인에 대해 회고를 하는 기사였다. 평범한 젊은 신자에서 신부님까지 포함 된 이런 개인적 경험 일화를 보면서 1978년부터 2005년까지 이 성인이 세계적으로 미친 영향, 거의 한 세대에 걸친 범세계적인 불굴의 선교는 앞으로 상당한 기간에 걸쳐서 험난하고 어지러운 세상의 등대역할을 하리라 확신한다.

Triduum..트리듐, the Three Days: 부활 일요일을 향하는 목,금,토요일 3일을 뜻한다. 다른 말로 Easter Triduum, Paschal Triduum이라고도 한다. 우리말로는 그저 ‘성삼일’ 정도가 될까? 그 첫째 날 목요일이 바로 오늘이다. 그러니까 2014년 Easter season의 절정 문턱에 있는 첫 날이 되는 것이다. 참.. 세월도 빠르지 엊그제 주님 성탄을 향한 대림절을 지낸 기억인데 눈 깜짝할 사이에 그리스도 교의 결정체인 주님의 수난, 묻힘, 부활을 기리는 바로 그날이 코 앞에 온 것이다.

가톨릭 전례에서 성삼일은 성 목요일, Maundy Thursday, 성금요일, Good Friday 그리고 성 토요일 Easter Vigil 로서 정확한 시작은 목요일 저녁 미사로 시작되어 토요일 미사로 끝난다. 인상적인 것은 시작점인 목요일 마사로 전통적으로 이날 신부가 신자 12명을 뽑아서 발을 씻기는 것이 있고 (세족례) 대영광송이 끝남을 시작으로 오르간과 종 소리가 금지되고 부활아침까지 결혼예식도 금지가 된다. 성 목요일 미사의 마침을 기해서 성전 내부 제단 주변의 모든 ‘장식물’이 모두 철거가 된다 (움직일 수 있는 것들만). 처음에 이런 광경을 목격하며 나는 이런 상징적인 의식들이 하나하나가 모두 성서적, 신학적, 전통적인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하기도 했고, 너무나 인상적이고 충격적이기도 했다. 예수의 수난 passion의 의미를 너무나 극명하게 나타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성금요일 Good Friday는 실제로 예수님이 ‘죽는’ 날로서 전례적인 행사는 거의 없는 것인데 (정확하게 미사는 없는 것이다) 전날 축성이 된 성체를 분배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하며 특히 십자가 경배 veneration of cross라는 것을 통해서 십자가 죽음을 애도하며 부활을 기다리게 된다. 성토요일 밤의 미사는 부활을 기다리는 주제로 깜깜한 밤, 성전의 밖에서 만들어진 ‘촛불’이 성전으로 들어오면 촛불 미사가 진행이 된다. 이런 광경도 너무나 인상적인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원칙적’으로 성삼일을 체험적으로 기리는 것으로 정하고 ‘절대로 빠지지’ 않고 3일 ‘행사, 미사’에 참가를 하였다. 물론 처음에는 큰 부담도 느꼈지만 시간이 가면서 이제는 은근히 기다리게 될 정도가 되었다. 그만큼 우리는 분명히 이 부활의 의미를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내가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되면서 ‘몸으로 체험’하는 것이 생각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름을 절감하게 되었다.

작년 2013년의 성목요일은 나의 첫 체험 시도로 성삼일 시작인 저녁 미사 후부터 시작되는 “감실성체조배”에 참가를 하였다. 목요일 저녁부터 금요일 아침까지 ‘계속’되는 성체조배, Eucharistic Adoration이었는데 한 사람이 계속하기가 쉽지 않아서 1시간 정도로 시간을 정해서 대부분 레지오 단원들이 책임지고 감실을 지키며 성체조배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정 후 1시부터 한 시간 참가했는데.. 그때 내가 받았던 느낌은 글로 쓸 수없이 강해서 오늘까지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는다. 그 이후 나는 내년에도 ‘꼭 참가’하리라 각오를 했다. 그 ‘내년’이 오늘 밤으로 다가온 것이다.

작년 성목요일 감실 성체조배 때에는 그 당시 발견한 Dr Eben Alexander의 The Proof of Heaven이란 신간 NewYork Times bestseller를 읽으며 묵상도하고 했는데, 그때 나는 거의 확신을 하게 되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처럼 ‘이성과 신앙’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사실을 재삼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신경외과의 그러니까 자연과학자인 저자의 ‘간증’이 그렇게 나에게 실감 있게 다가온 사실은 정말 나에게도 뜻밖이었는데 아마도 그 때의 성체조배가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 나는 굳게 믿는다. 그 이후 나는 이성과 신앙만이 아닌 ‘과학과 믿음’의 접근 분야에 대해서 거의 일년 동안 공부를 하게 되어서 현재까지 이르렀다. 이것의 출발 점이 바로 작년 성목요일이라서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올해는 ‘첫 성삼일’이라고 이름을 부쳤다. 자세히 말하면 우리의 첫 ‘한인 순교자 성당’ 성삼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한국 순교자 성당에서 부활절을 보내게 된 것이다. 이것도 우리에게는 두고두고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해 본다. 암만 동네의 미국본당에서 긴 세월을 보냈지만 어찌 우리말이 울려 퍼지는 고향 같은 다른 본당과 비교가 되겠는가? 아직도 반반 정도 미국본당과 순교자 성당 본당을 번갈아 가지만 조금씩 순교자 성당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감을 느낀다. 앞날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더욱 더 한국본당으로 가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추측도 해 본다. 워낙 미국본당에 정이 든 탓에 한국전례문화가 너무나도 생소한 우리 두 딸들을 설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져서 우리의 큰 과제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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