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Tagged ‘천주교’

¶  2017년 12월 2일:  2017년 달력이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며 12란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12월, 올해의 마지막 달.. 흠.. 그렇다면 또 일년이란 ‘장구한 세월’ 이 지나가고 있단 말인가? 1년이란 시간은 아련했던 기억 속에는 ‘장구한, 영원한’ 느낌의 긴 세월이었다. 그것이 언젠가는 거의 한 달 같은 기억으로 남았고.. 지금은 모르겠다. 아마도 한 달보다는 조금 더 짧아진 듯한데 그것을 그저 인정하기 싫을 뿐이다. 신비로운 시간, 조금이라도 시계가 늦게 가는 그런 곳, 때, 감정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어찌 나 같은 ‘죄인’에게 그런 은총이 쉽게 올까 보냐.. 그저 열심히 시간의 흐름에 순명 할 뿐이다.

작년에 시작된 Youtube의 Hallmark Holiday movie들을 보며 아늑하고 편했던 때가 생각이 나서 올해도 몇 개를 download해서 보았는데,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는… 아~ 12월이여… 라는 아늑하고 편안함이 나를 즐겁게 한다.

 

Peter Hollens – December Song  

 

¶  연총 연습, 마지막 No 5: 레지오 연차 총 친목회 stage performance 를 위한 마지막 연습 session이 주 회합 후에 있었다. 올해로 나는 일곱 번 째 연총연습을 맞지만 올해의 이 행사는 예년들에 비해서 아주 다른 느낌으로 맞게 되었다.  생사의 고비를 간신히 넘긴 후, 군살과 독성물질 (toxin) (왕마귀와 레지오 미친년)이 완전히 빠진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대신 전체적인 레지오 내에  ‘사랑이 완전히 빠진 느낌’ 은 역시 떨칠 수가 없어서, 노래와 율동을 하는데 신명이 나지를 않았다.  이런 상황이면 예전 같았으면 ‘포기하자’ 하는 말이 나올 법도 하지만 그래도 성모님 사랑의 눈길을 느끼며 ‘달릴 곳은 끝까지 달리자’ 를 되뇌며 무려 5번의 연습 session을 다 마치게 된 것, 절대로 이것도 우연이 아닌 듯 싶다.

비록 ‘실제 공연’에서 실수를 하거나 hiccup을 해도 이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갈 곳까지 다 갔기 때문이다. 2분도 채 안 되는 짧은 곡이지만 율동을 물론이고 vocal singing도 우리들에게는 small challenge였다. 반주를 Youtube video에서 무단copy해서 karaoke로 쓸까 했지만 완전히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아예 karaoke audio를 녹음을 했고 still video로 아예 YouTube video를 만들었다. 이것을 들으며 2017년 너무나 어렵던 시련의 시기에 우리들이 얼마나 ‘최선을 다했나’ 하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  목요회, 이 목사님 부부:  목요회… 허… 참 내가 멋진 이름을 붙였나? 첫 번째 만남이 우연히도 마지막 목요일이었기에 매달 마지막 목요일에 만나기로 한 것이 벌써 세 번째 모임이 되었다. 소박하게도 1990년 5월에 서로 만났던 것을 기념하는 모임이었지만 달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멋진 진화’를 시작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 모임 자체의 성격이 어떻게 진화 될는지 아무도 모른다. 깊숙이 진행된 나이에 걸 맞는, 뒤를 돌아보고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대화를 기대하기도 하지만 ‘여자가 없는 모임’의 신선, 솔직함의 진가를 나는 마음껏 즐긴다. 남자들만의 대화, 화제는 사실 너무나 오랜만이라 무엇이던지 즐겁기만 한 것이다. 비록 늦은 밤에 모이는 것이라 만날 수 있는 곳이 제한되어 있지만 이것도 색다른, 아이 같은 재미가 있는 것이다. 이 늦은 나이에, 늦은 저녁에 30마일 떨어진 곳으로 외출을 한다는 사실도 너무나 재미가 있으니..

이 (동수) 목사 부부를 해가 가기 전에 결국은 만나서 도라빌 성당 근처에 있는 ‘upscale’ 한식당 운암정에서 부부동반으로 식사를 하였다.  일년에 평균 2번 정도 만나는 이 오래된 “아틀란타 한국학교” 인연의 인생후배 부부, 나이 차이에 상관없이 이런 오래된 세월의 연륜 하나로 친척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몇 해전에 큰 수술을 받았던 이 목사, 그 동안 몸 관리를 열심히 한 덕에 이제는 많이 건강해진 모습이었고 식사하는 것도 불편한 제한이 없는 듯 보였다. 목회 사업이 사실 아직까지 희망하는 것 같이 열매를 맺은 듯 느껴지지는 않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지내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이번에 만나서는 오래 전에 흔히 하던 이목사 특유의 농담하던 버릇이 다시 나온 것을 알고 반갑기도 했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뜻일 테니까. 다음에 만나면 내가 듣고 싶어 했던 ‘더 심각한 신앙간증’을 기대해 보며,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  이 세상의 異邦人: 요새 나의 머릿속은 온~통 ‘고(종옥) 마태오’ 신부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이 하느님의 종, 진정한 애국자, 사랑의 사제, 성인에 버금가는 행적을 남기신 이 사제가 걸었던 길을 천천히 같이 걷고 있다. 소설형식의 자서전 trilogy: 1편 사랑의 지도, 2편 예수 없는 십자가, 그리고 지금 ‘쓰면서’ 읽고 있는 것이 3편인 ‘이 세상의 이방인’이다. 첫 두 편은 reading by typing덕에 온전한 2권의 soft copy가 나의 blog site에 남아서 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사제의 삶은 한마디로 너무나 dramatic한 epic drama 라고 볼 수 있기에,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주고 있다. 시간, 공간적으로도 이 사제는 나에게 큰 관심을 준다. 해방 전후의 삼팔선 부근의 묘사, 원산에서의 첫 사랑, 6.25 사변을 가장 치열한 전투중의 전투 속에서 살아남은 하느님의 인도하심.. 너무나도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고백’을 읽으며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 이 사제와 같이 울기도 했다. 솔직이.. 나의 ‘빨갱이, 흑백 논리’에 조금은 ‘회색’이 가미되고 있음을 평생 처음으로 경험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솔직한 분의 고백을 어찌 내가 ‘흑백’의 잣대로 가늠을 할 수 있는가..  책 하나로 난공불락의 ‘이념의 성’을 조금이라도 흔들어 놓았다는 사실이 나는 현재 신기하기만 한 것이다. 고 마태오 신부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등대회:   지난 주일 (그러니까.. 일요일), 나는 평소에 잘 안 하던 ‘짓’을 하였다. 60대를 주축으로 모이는 성당 친목단체인 등대회에 우리 둘이 정식으로 가입을 한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우발적인 짓은 아니었고 최근에 나의 머리에서 맴돌던 생각을 실행으로 옮긴 것이다. 최근이래 우리부부와 가까이 지내오던 스테파노 형제님 부부에게서 hint를 얻은 것이 큰 도움이 되긴 했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이유도 있긴 했다. 갑자기 ‘(성당)여자’들에게 진절머리가 난 것이다.

지난 거의 5년 간 거의 여성이 주축을 이루는 레지오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이 group과 가까워진 것인데.. 요새 내가 겪는 ‘인재 人災’는 100%가 모두 그들 group에 의한 것이고 그들 중 특정 소수 group이 보이는 행태는 정말 가관인 것으로, ‘이런 해괴한 짓들은 남자들 group에는 절대로 볼 수 없을 것’ 으로 결론을 지었다. 한마디로 나의 ‘동족’ 남성들이 그리워진 것이다. 남녀가 골고루 섞인 곳, 동류group처럼 보이는 곳, 그곳이 등대회였다. 비록 친교가 주류 활동인 곳이지만 현재 나에게는 거의 oasis같은 느낌을 주는 곳, 이곳에서 우리는 남은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현재로는 희망적이다.

 

 

¶  깜깜해진 새벽:  Autumn Equinox (추분)를 지난 지 벌써 5일째 아침으로 접어드는 날, 새벽 5시 반 경은 그야말로 깜깜.. 컴컴.. 그 자체였다. 비록 아직도 서서히 습한 공기가 밀려드는 초가을 속의 여름 같은 느낌이지만 깜깜한 새벽이 주는 느낌은 별 도리 없이 가을이다. 요새도 늦은 오후부터는 electric fan, a/c compressor noise가 들리긴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발악’을 해 보아야 시간문제다. 진정 영롱한 amber, pumpkin 의 계절, 가을의 색깔이 본격적으로 우리에게 찬란한 빛으로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  Joy of feeding: 나의 이른 새벽의 routine은 backyard  outdoor cat ‘다롱이’ feeding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다롱이는 올해 우리 집 backyard에서 무려 8마리의 kitten을 낳은 ‘젊은 엄마’ 고양이인데 언뜻 보면 조금 큰 kitten정도로 보인다.  지난 6월 초, 나의 heroic한 노력으로 TNR(trap-neuter-return)의 과정을 거쳐 이제는 더 이상 ‘임신, 출산’하는 고통에서 벗어난  바로 그 ‘엄마 고양이’이다. trap-neuter하는 과정에서 분명히 trauma가 있었을 것이고 return 후에 아마도 우리 집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결과는 정 반대였다. 우리 집 fence 를 넘나 들긴 하지만 backyard deck를 자기의 집으로 생각한 듯 하고 새벽이면 ‘meow, meow.. 요란스럽게 야옹 야옹’거리며 아침 밥을 어둠 속에서 기다리는 그 녀석, 이제는 한마디로 house cat, 우리 집의 기쁨이 되었고 만약 사라진다면.. 엄청 슬플 듯하다. 하지만 그는 indoor cat이 아니고 (soft) wild cat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lucky mother cat, 다롱이

 

¶  HP6200 WIN7 BOX: Absolutely, positively Best Buy!: HP6200/SFF Win7 box: 오랜 만에 my favorite, tech online vendor Newegg.com의 newsletter에 나의 눈에 익숙한 HP ‘business-class’ Windows 7 box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2010 model 로 거의 7년이 지난 것, refurbished 된 것이 틀림이 없지만 그것도 상관없다. $60 price-tag도 도움이 되었지만 제일 큰 매력은 64-bit Windows 7 Pro 가 pre-install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OEM version이지만 이것만 따로 사려고 해도 $70이 훨씬 넘는데, 거기다가 탱크처럼 단단한 HP-made hardware까지 있으니 이것보다 더 나은 deal이 어디 있는가? 나의 계획은 현재 쓰고 있는 Windows Vista,  virtual machine을 서서히 phase-out하고 궁극적으로 Windows 7, 10 physical machine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3일만에 도착한 이 Win7 box, 비록 최근의 gaming CPU는 아니라도 10GB ram으로 upgrade를 하고 나니 VirtualBox 로 3 virtual machine이 아주 smooth하게 running을 했다. 이 Win7 box는 당분간 나에게 virtual machine server로 쓰기에 알맞은 horsepower가 있었기에 $70 투자로 앞으로 2~3년간 나의 computing need는 거의 다 해결이 된 셈이다.

 

best buy, hp win7 box

 

¶  이빈첸시오, 이도밍고, 설아오스딩  Reunion: 3명의 중년이 지나가는 남자가 27년 만에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일주일 전에 약속이 된 모임이지만 속으로 과연 이 모임이 성사가 될까 의구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다시 한자리에 앉게 되었고 나는 속으로 성모님께 감사를 드리고 드렸다. 도라빌 소재 한국식당 ‘동네방네’에서 3명이 이렇게 모인 것은 정말로 27년 만이다. 1990년 5월 초에 도밍고 형제 댁이 Alpharetta로 대망의 ‘첫 집’으로 이사를 하던 날 우리는 같이 모여서 이삿짐을 날랐다. 도밍고 형제는 Clarkston, GA 에 있던 한인성당에서 연대동문으로 처음 만난 인연으로 가까이 지낸 편이었고 아오스딩 형제는 같은 성당 교우일 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직장, Pleasantdale Road에 있는 AmeriCom에서 같이 engineer로 근무를 했던 인연으로 이렇게 셋이 모인 것이다. 하지만 그 얼마 후 우리는 실제적으로 떨어져 다른 인생을 살았다. 따로 따로 가끔 ‘살아있다는’ 소식만 접하는 정도였다. 무언가 서로에게 공통점이 없었던가, 아니면 ‘인생관’이 달랐던가. 1990년대 말에 도밍고 형제와는 연세대 동문회에 같이 나간 적도 있지만 그것도 1회 성 만남에 불과했고 나도 그도 성당을 떠난 인생을 살다가 어떤 다른 인연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모이게 된 것이다. 나는 ‘기적적’으로 다시 ‘귀향’,  성당으로 돌아왔지만 나머지 둘은 아직도 반 냉담의 삶을 살고 있는데, 나에게 희망은 이들과 같이 매주 주일미사가 끝나고 같이 점심을 먹게 되는 그런 날이 오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에게 불가능은 없다’.

 

¶  싸늘한, 아니 아예, 이른 봄의 꽃 시샘 추위를 연상하게 하는 싱그러운 5월 달 첫 토요일 아침. 지난 밤에는 급히 ‘강제로’ 70도에 hold했던 2층 thermostat로 말미암아 central heating 이 밤새도록 ‘겨울의 소음’을 내며 돌아갔다. 웬만하면 bed blanket warmer로 견디면 되겠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2층 small bedroom 구석에서 3주 째 젖을 먹으며 자라고 있는 5마리의 kittens들이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분명히 이런 ‘추위’는 처음일 것이라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지나간 주일들, 초여름의 끈끈함을 느끼게 하는 ‘무더위’의 맛을 보여 주더니 역시 자연은 공평한 것인가.. 기억 속의 5월, 언젠가는 이렇게 unseasonable 한 음산한 추위를 꼭 보여 주었다. 역시 한치도 어김없이 싱그러운 성모성월의 벽두에 이렇게 끊임없이 쏟아지는 폭우가 하루 종일 내리며 ‘5월의 추위’ 까지 찾아온 것이다.

 

지난 주에 그렇게도 덥게 느껴지던 날 올 처음으로 아래층 마루 아래  crawlspace에 들어갔다가 central furnace의 pilot light를  아예 꺼버리고 나온 것이 조금은 후회가 되었다. 이제는 아래층의 central heating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속단을 한 것이다. 당시에는 ‘설마 다시 추위 질까?’ 하며 그렇게 한 것인데 오늘 아래층에 내려가니 이건 완전히 냉장고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kitchen에 남겨둔 toy같은 space heater 덕분에 ‘동사’는 면했다.  그러면서 생각에.. 아마도 이번의 싸늘함이 올 여름 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추위’가 아닐까.. 이제부터는 cooling system에 온통 신경이 쓰일 계절이 아닌가? 아~ 이제는 우리의 ‘고철’ a/c (air conditioner)가 올해는 무사히 견디어 줄까.. 하는,  혹시 무슨 일이.. 하는 자괴감에 젖는다.

 

 

¶  레지오 피정, 성모의 밤: 2017년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레지오 주관  2일간의 ‘연’ 피정이 숨가쁘게 바쁜 스케줄로 피곤한 우리를 맞이했다. 한 동안(1~2 년간?) 피정이란 곳에 못 가보아서 생소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했지만 반갑기도 했다. 지난 4~5년 동안의 내가 가보았던 레지오 피정의 느낌들이 만족스럽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가본 것들은 대부분 ‘집을 떠난, 진짜 피정’ 들이었지만 이번은 본당에서 하는 ‘편하지만.. 느낌이 덜 한’ 그런 것이고 이틀 째 날의 스케줄은 조금은 아찔한 것. 아침부터 밤 9시를 넘어가는 숨이 찬 하루였다.

피정 둘째 날의 그 바쁜 스케줄은 사실 피정과 상관없이 본당의 다른 행사인 ‘성모의 밤’ 이 저녁 늦게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사실 그것은 꼭 참가하고 싶은 것이어서 비교적 긴 시간을 성당에서 보내야 했다.

대한민국 안동교구 정희욱 ‘원로사제’ 신부님이 주도한 피정 자체는 첫날밤의 slow start로 조금 실망감을 떨칠 수가 없었지만, 끝 마무리가 활기에 찬 것이어서 결과적으로 grade B+ 정도는 될 것이다. 내가 본 이번 피정 강론의 문제는 이것이다. 성모신심을 ‘체험’으로 강조한 것은 만족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너무나 일반적이고 깊이가 결여 되었다는 사실 이것은 성모신심이 생소하거나 거부감이 있는 일반 가톨릭 신자나 개신교인들에게는 잘 맞는 정도의 message였다. 하지만, 우리 같은 레지오 단원들은 이미 이런 정도의 신심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피곤한 긴 하루를 마감했던 ‘성모의 밤’.. 이것 때문에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올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성모의 밤.. 작년 같이 성모동산 앞 주차장에서 ‘어두운 밤을 밝히는’ 멋진 모습을 상상했지만 예상을 뒤엎고 실내인 대 성당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다행이었다. 그렇게 화창하던 날씨가 일기예보가 정확히 예고한 대로 부슬비가 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날 오랜 만에 들어보는 ‘생음악’, GounodAve Maria, violin 연주(piano와 duet) 는 성모님의 청순함을 아낌없이 느끼게 하는 그런 연주였는데 그 violin 자매님, violin연주의 ‘백미 白眉’를 들려준 것 같아서 고맙기까지 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신 이재욱 요한 본당신부님의 모습도 좋았고, 성모님께 바치는 ‘시적인 글’도 너무나 좋았다. 남녀노소가 골고루 참여하여 우렁차게 바친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는 평소에 하던 때의 느낌을 훨씬 넘는 그런 장엄했던 것. 레지오 연피정 주제인 ‘성모신심’의 절정을 보여주는 듯한 성모의 밤, 나에게 있어서 ‘특별한 피조물, 성모 마리아’는 과연 지난 7년 동안 어떤 의미였을까.. 죽을 때까지 음미하여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몇 년 전부터인가.. 내가 YouTubeVatican programming을 보기 시작한 것이.. 최소한 2~3년 정도는 되었지 않았나? 처음에는 중요한 행사, 그러니까 시복, 시성식 같은 것 아니면 가톨릭 전례력으로 아주 중요한 날들, 크리스마스, 부활절 같은 것을 high definition video로 볼 수 있었던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해외여행을 밥 먹듯이 ‘자랑 삼아(주로 Facebook-type people)’ 하는 부류들은 분명히 그런 때마다 Vatican city로 날라가서 현장의 분위기를 만끽할 것이지만 나에게는 그런 ‘$재력$’이 없기에 YouTubeVatican streaming video를 감지덕지 感之德之 하며 머리 숙여 감사할 따름이다.

 

Italy 동북부의 소도시, Carpi 본당 앞 piazza 에서 거행된 교황집전 미사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고 생소하기도 했던 교황님 집전의 Latin Mass들이 이제는 거짓말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하나도’ 짐작조차 못했지만 지금은 그냥 몇 년을 ‘계속’ 본 탓인지는 몰라도 짐작으로 ‘거의 다’ 이해를 하게 되기도 했다. 반세기 전에 그 잘 나가고, 알량한 WordPower라는 책으로 영어단어들의 역사와 어원을 따지며 공부했던 그 말들, ‘배움의 위력’을 유감없이 증명하고 있다. 배워두어서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현대 영어는 물론 Latin어에서 나온 다른(나라) 말들, 짐작으로 거의 때려 맞추게 되었으니 말이다.

 

‘거의 매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교황 Francesco

 

대부분의 Vatican video programming들 중에서 가끔 ‘생소’한 것들이 보이기도 하는데 오늘의 주제인 romantic mass가 그 중에 하나다. 교황님, 가끔 (아니면 자주?) Italy 국내의 성당들을 방문하곤 하시는데 그 중에 조그만 본당들도 있다. 2017년, 4월 2일에 방문한 곳 Carpi 라는 도시의 본당이다. 이 ‘사목적 방문’의 이유는 지진에 의한 고통을 위로하시러 가신 듯하다. 지진으로 무너진 본당의 건물이 다시 세워진 것에 맞추신 듯 한데 확실한 것은 모른다.

 

 

그 때 찍은 ‘공식’ video, 누가 찍었는지 ‘참으로 멋진 coverage’라고 감탄을 했다. 처음에는 무심코 생소한 것을 본 듯이 보았지만 두 번째 보게 되었을 때는 더 자세히 그곳의 풍경,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조그만 도시라서 그런지 그곳의 사람들, 신자들 보통 생각하는 ‘멋진 이탈리아 fashion‘ 같은 것은 거의 보이지 않았던, 평범한 소도시의 simple 가톨릭 신자들.. 어쩌면 그렇게 소박, 경건하고도 생동감 있는 미사를 드리던지.. 위로와 사랑으로 가득 찬 모습의 교황님을 중심으로 그 많은 사람들 혼연일체가 된 모습들.. 인상적이었다.

 

 

더 나아가 이 미사의 video를 계속 반복해서 보게 된 이유는 조금 우스운 것인데.. 성가대의 어떤 젊은 여성 lead singer의 모습 때문이었다. ‘서양여자’의 나이는 조금 짐작하기 쉽지 않지만 이 여성은 쉬운 case로서,  아마도 upper teen 아니면 early 20s  나 되는지.. 나이보다 더 관심을 끈 것은 요즈음 정말 오랜만에 성형왕국 대한민국의 수 많은 똑같은 복제품 같은 여성들에 비해서, ‘칼을 대지’ 않은 ‘처녀성 얼굴’이었고, K-pop 가수들처럼 100% artificial 한 화장기가 전혀 없었던 바로 그 얼굴..  거기다가.. 그 청순하고 단순한, black gospel song 냄새가 전혀 안 나는 전통 가톨릭적 음성의 정수 精粹 를 보여주었다. Romantic한 감정까지 느끼며, 이런 저런 생각의 끝에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내가 손녀 같은 나이의 이 여성에 맞는 나이였다면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런 ‘찬사’가 그대로였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것이 나이 듦의 비밀일 것이다.

 

 

심지어 ‘야릇한, romantic’한 감정을 갖고 교황님 미사를 ‘경청’하면서 이 programming을 찾고, 보고, 느끼게 되는 것, 전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긴다. 요새는 모두 그런 식이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지 않을까… 필연적인 것은 아닐까? 그러면 그 필연의 first mover는 과연 누구일까? 이래서 인생의 황혼기도 그렇게 지루하고 심심한 것이 아님을 실감하고, 또한 그저 감사, 감사한다.

 

 

책, 二十世紀 哲學 역자, 강성위.. 1978년 대한민국 왜관 분도출판사에서 발행된 철학 번역서. 강성위 는 번역한 사람의 이름이다. 지난 주일날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 레지오 꾸리아 월례회의에도 참석할 겸해서 그곳에서 주일미사엘 갔는데, 근래에 자주했던 것처럼 ‘성물방, 도서실’ 엘 들렸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의 제목이었다. 갑자기 철학에 눈이 뜬 것이라기 보다는 번역자의 이름이 나의 눈을 끌었고 곧바로 2주 대출을 하게 되었다. 강성위.. 강성위.. 1963~4년, 무려 반세기가 지난 때의 기억 속에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이름이었다. 서울 중앙고등학교 독일어 선생님의 이름.. 바로 그 강성위 선생님이 분명했다.

 

지난 해에도 이 ‘조그마한’ 도서실에서 재동국민학교 동창 김정훈 부제의 유고집 [산 바람 그리고 나]을 발견한 바가 있었는데 그런 추억이 담긴 발견의 두 번째가 된 것이다. 오래 살다 보니까 이런 식의 ‘역사 속 발견의 즐거움’을 종종 대하게 된다. 세월의 즐거움 중에 하나일 것이고 ,길지 않은 삶의 세계에서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거의 40년이 가까운 이 책은 비록 ‘소책자’의 느낌을 주지만 내용은 정 반대로 ‘거대한 주제를 압축적으로 다룬’ 만만치 않은 책이었다. 우리가 살아온 20세기를 풍미하며 우리를 직접 간접으로 지배해 온 사상, 물론 서양적인 관점에서 본 것들을 정리한 것, 지금 읽으니 우리들도 피할 수 없던 이런 ‘사상 들’ 속에서 평생을 살았구나.. 하는 감회도 든다. 때로는 ‘사상이 밥 먹여 주냐?’ 는 때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너무나 피상적인 의견일 것이다.

 

강선생님 졸업앨범 사진

강성위 독일어 선생님.. 비록 2년 여의 짧은 기억이지만 추억은 아주 너무나 또렷하게 남는다. 1963-64년..  박정희가 5.16 혁명 2년 후 군복을 벗고 대한민국 제3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던 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요란하게 선전되던 때 [주로 중화학 산업개발], 강선생님, 중앙고 1학년의 독일어 선생으로 만나게 되었다. 독일어.. 는 분명히 입시중심의 교육과정에서 별로 빛이 없었던 ‘제2외국어’에 불과했다. 하지만 당시 1960년 당시만 해도 2차대전의 강국 독일문화의 후광은 그런대로 남아있어서 대학과정에서 독일어는 거의 필수적 선택이었고 대학원엘 들어가려면 독일어 시험을 치러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독일어 같은 제2외국어는 필수과목으로 배워야 했고 그렇게 ‘되길어 [당시 우리들은 풍자적으로 그렇게 불렀다] 강성위’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고등학교와 독일어, 영어가 아닌 언어를 배우는 것은 신선하고 어깨를 으쓱하게 하는 자랑할 만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나와 독일어 자체는 악연으로 끝나고 말았다. 한마디로 독일어의 재미를 못 느끼며, 게다가 핵심을 못 배운 것이다. 그저 기억 속에는 정관사 der des 같은 것이 전부다. 이런 탓으로 나는 대학시절에도 이 ‘어려운 말’과 고전을 하게 되었고 대학원 입학에 이 독일어 시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아예 대학원은 꿈도 못 꾸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나름대로 나는 노력을 했다고 기억을 하는데 결과적으로 ‘완전 실패’였다. 나는 독일어를 잘 못 배운 것이다. 다른 애들은 어땠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열심히 해도 잘 못 배운 것’은 어쩌면 선생님 탓도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당시에는 그런 생각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곰곰이 생각하니 이 ‘강성위 되길어’ 선생님의 독일어 강의는 절대로 흥미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입식으로 그저 외우는 것 외에는 기억이 전혀 없다. 이 강선생님에 대한 다른 추억은 독일어가 아니고 ‘장난치고 이상하게 때리는’ 당시로써는 ‘전통적 선생님’이 아니었던 것. 독일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로 아이들과 장난을 치고, 수시로 아이들에게 손찌검을 했는데 그 방식이 독특하게 ‘때리는 것이 아니고 꼬집는 것’ 이었다. 이런 식으로 고교 1, 2년을 보내고 이과를 선택한 나는 독일어와는 상관이 없게 되었고 이 강선생님도 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졸업 후에 완전히 잊고 살다가 친구 정교성에게 강성위 선생님의 이야기를 잠깐 들었던 기억, 대학교수가 되었다는 것, 독일에 유학을 갔었다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은근히 속으로 놀라긴 했지만[아니.. 그 꼬집던 선생님이 독일유학?] 큰 관심은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강선생님의 이름이 들어간 책을 보게 되었고 1978년까지의 ‘약력’을 볼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과연 독일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고 국내 대학에서 가르치는 약력이 그 책에 적혀있었다. 정교성의 말이 맞은 것이다. 언제 독일유학을 갔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1966년 직후가 아니었을까? 지금이라도 googling을 하면 더 자세한 약력과 근황을 알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에서 stop을 하기로 하였다.

중앙고교 천주교반 앨범사진, 1965

중앙고교 졸업앨범을 보고 다시 당시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고 바로 그 모습을 나는 머리에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진에서는 새로운 사실을 알 수가 있었는데 바로 ‘천주교 반’ group 사진에 ‘지도 교사 격’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아하! 강선생님.. 천주교 신자였구나!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친구 정교성의 모습도 보이고.. 희미하게 기억에 남는 동창들[이태식, 김창호 등등] 의 얼굴도 보인다. 근래 나의 인생의 나침판이 된 천주교를 믿는 영혼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아직도 나의 기억에 남는 ‘꼬집는 강성위 선생님’보다는 더 친근한 천주교 교우인 ‘강성위 박사, 형제님’ 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영세 명은 과연 무엇일까? 궁금해지지만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언젠가는 알 수가 있을 것이고 어떤 본당에 나가시는지도 알게 될 테니까..

 

 

God and Science” by Fr. Robert J. Spitzer, S.J.

 

한번에 3권의 책: FINDING TRUE HAPPINESS, THE SOUL’S UPWARD YEARNING, FIVE PILLARS OF THE SPIRITUAL LIFE 그것도 동일한 저자의 책을 order한 것, 오랜 만이 아니라 처음이 아닐까? 예전에 이렇게 여러 권의 책을 샀으면 아마도 꽤 $$이 들었을 것이다. 그 때는 거의 모두 technical한  책들이라 최소한 한 권에 $30~$40 이상은 되었을 것이니까.. 하지만 요사이 나의 관심을 끄는 science & religion분야의  책 들은, 하느님이 도우사 그렇게 내가 못 살 정도로 비싼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책들은 그렇게 인기가 많은 것이 아니라는 뜻일 수도 있기에 조금은 mixed feeling일 수도 있겠지만.. 상관이 전혀 없다. 내가 필요한 내용들이고 나의 호기심에 대한 해답을 충분히 줄 수 있는 것이니까 일반 독자에게 인기가 있건 없건 ‘전혀’ 상관이 없다.

The Spitzer’s Quartet

우연히 알게 된  가톨릭 예수회사제인 하와이 태생, Father Robert Spitzer, 이 신부님의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이것이 내가 오랫동안 알고 싶던 것에 대한 답이다!’ 라는 감탄과 흥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니까.. 오랫동안 나에게 의문이 되었던 것이지만 ‘물어도, 찾아도 해답을 찾기 쉽지 않았던’ 그런 것, 분야들, 그것들도 이 신부님의 주관심사였기에, 이것이야말로 ‘아다리’가 딱 맞은 기분이다. 이분은 materialistic science, scientism 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이론정연 하게, 이성적으로, ‘수리분석, 과학적으로’, 영성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에 접근을 하는데.. 바로 나를 염두에 두고 쓴 것 같은 착각을 받을 정도다. 이런 분의 책이 30년 전에 이세상에 나왔으면 나의 인생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영성적인 것은 물론이고 ‘학술적, 지성적, 과학적’인 이 신부님의 apologetics는 가히 ‘호교론’의 초 현대판 교과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수회는 전통적으로 progressive, scientific한 분위기지만 이런 ‘초현대적인 접근’은 요새같이 smartphone이 과학기술의 전부로 착각하는 ‘덜 성숙한’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이고 아마도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holy bible의 ‘글자글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개신교적 creationism의 ‘분명한 오류’를 수정하는 Francis Collins의 BioLogos 개념과 더불어 이러한 ‘깨우친 신진 영성, 과학자’들이 최근 20~30년 간 활발하게 전개하는 new apologetics는 정말 가려운 곳을 알맞게 긁어주는 효자손 같은 느낌을 받는다.

 

 

 

 

 

¶  결국 7월의 마지막 날은 이렇게 오고야 말았다. 표현이 아주 극적이지만 사실 하나도 극적인 것이 없는 2016년 7월이 ‘영원히’ 나로부터 떠나려 하고 있다. 올 여름의 특징이었던 ‘변화 없는 더운 날씨’ 바로 그것으로 기억에 남으리라. 어제가 그제고 오늘이 ‘아마도’ 내일일 것이다. 거의 변화를 못 느끼는 그런 날씨, 더위, 느낌들.. 지겹게도 느껴질 수 있겠지만 올해의 이 여름의 지겨움은 사실 그렇게 견디기 힘든 것은 아니다. 재수가 잘 맞으면 늦은 오후에 쏟아질 수도 있는 소나기의 희망도 있고, 이제는 우리의 몸도 더위에 잘 적응이 되었고, 33일 봉헌 준비를 위해 ‘질주’하는 짧지 않은 영원과의 대화 시간도 있기에 그럴지 모른다.

7월 초에 우리의 미국본당 Holy Family 성당에 ‘기혼자’이신 주임신부님이 부임해서 관심과 우려를 예상했지만 결과적으로 기우였다는 것으로 판명이 되었다. 진지하고 영성 적이고 정치, 사회에 관심이 많은, 강론이 진지하고 준비가 잘 된, 한마디로 ‘합격, 합격’ 이었다. 가정이 따로 있어서 사제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아침마다 출근을 하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나 이상했지만 이제는 모든 신자들이 잘 받아드리는 느낌이다. 우리도 마찬가지.. 전번 traditional Irish 신부님과 너무나 느낌이 다른, 너무나 ‘살아있는’ 강론, 앞으로 우리 본당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  오늘부터 우리의 일요일 routine이 조금 바뀌게 되어서 조금 더 새로운 느낌의 일요일을 맞는다. 바뀌게 된 큰 이유는 동네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10시 미사 대신에 8시 30분 미사로 바꾼 것 때문이다. 일요일의 은근한 위안이었던 ‘조금 늦게 일어나는’ 것이 없어진 것이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변화였다. 연숙이 한인본당 순교자 성당의 교리반 director가 되면서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매 주일’ 미사에 관계없이 순교자 성당엘 가야 하는 입장이 되었는데, 문제는 우리 둘이 어느 쪽에서 미사참례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제일 이상적이고 간단한 것은 우리 둘이 함께 순교자 성당에서 주일미사 참례를 하면 되는 것이다. 비록 정든 Holy Family 동네본당의 주일미사를 못 보게 되긴 하지만 그곳은 평일 미사를 거의 매일 가니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비록 순교자 성당엘 둘이 가게 되면 나는 교리반이 완전히 끝나는 시간까지 ‘할일 없이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고역도 있긴 하지만 그것도 내가 조금 불편함을 참으면 크게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런 배경으로 나는 ‘거의’ 주일 미사를 순교자 성당엘 둘이 가기로 마음을 정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가, 악마의 손길인가..

 

우리와는 어쩌다 보니 거의 운명적으로 incompatible한 것으로 판명이 된 인물들이 갑자기 우리 주위의 공동체(주로 구역과 순교자 주일 미사) 에 등장한 것이다. 한 명이라면 그런대로 참고 견디겠지만 그 이상은 감당하기가 힘들다. 멀리서라도 보이게 되면 간단히 피할 것인가, 이들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할 것인가, 극약으로 정면으로 대할 것인가.. 어느 것도 나에게는 쉽지 않은 option이라는 결론이 나왔고 결국은 구역 모임, 순교자 본당 주일미사에 가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할 수가 없는 노릇.. 다른 것은 배를 쓸고 참을 수 있어도 멀지 않은 과거에 divide & conquer를 motto로 공동체를 사정없이 분열시키고 ‘해괴한 수준의 박학다식‘을 자랑하던 그들의 위선적인 얼굴과, 진짜 속 마음을 알 수 없는 언행 등은 정말로 참기가 힘든 노릇이니 결론은 이렇게 간단한 것이 되었다.

한때 급작스럽게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오던 정들었던 구역 모임과 그곳의 착하게 열심히 살아가던 교우들, 주일 미사에 항상 앉던 자리의 주변에서 그런대로 얼굴이 친숙해지던 형제, 자매님들.. 당분간 (얼마나 오래갈지 아무도 모르는..) 잊어야 할 듯.. 이래서 이것은 운명의 장난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것은 내가 풀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전구, 보호자이신 성령과 성모님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한 문제가 아닐까? 8월에는 조금 선선하고 신선한 쪽으로 사정이 흐르기만 바라고 있다.

 

 

DASUQUIN magic: 3주 전쯤 하루아침에 갑자기 거의 신체불구가 된 듯 했던 우리 집 12살짜리 ‘강아지’ Tobey는 한때 ‘장례식’을 연상했을 정도로 암울한 며칠을 보냈었다. 속으로 나는 그 녀석을 보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설마.. 하는 심정으로 며칠을 정성껏 돌보았는데 문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나타내는 것을 옆에서 볼 수가 없었던 것.. 우리의 결론은 비록 ‘심한 신경통, 관절염’ 쪽이었지만 혹시 만에 하나라도 다른 것이라면.. 하는 우려가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급히 order했던 약을 먹은 그날부터 거의 기적과 같이 움직이며, 신음소리도 줄어들었다. 그 약의 이름이 바로 DASUQUIN 이었는데.. 나는 이때야 비로소 ‘약 장사’의 인상이 조금은 좋아짐을 느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거의 ‘생과 사’의 갈림에서 기적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경험이 되었다. 생각에 그래서.. 그래서.. 약 장사 (제약회사)들이 그렇게 돈을 버는구나 하는 자명한 사실.. 내가 원래 약을 싫어하고 안 믿는 인간이라 더욱 놀란 것이다. 어떻게 거의 죽다시피 보이던 것이 그렇게 나아질 수 있었을까? 3주가 지난 지금 Tobey는 거의 전처럼 돌아왔고 우리 집의 공기는 다시 활기가 돌아오고 있다. 7월이 준 따스한 은혜라고나 할까..

 

2016년 7월 24일, 봉헌을 위한 33일 준비기간 중 제12일째, 묵상 주제는: 생의 마지막 것들. 결국 12일 간의 ‘세속정신을 끊음’의 끝은 바로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생각과 묵상으로 끝이 난다. 오늘의 논제는 이것이다: 죽음은 한 번이고 그것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르기 항상 이것을 염두에 두고 살면 이 세상의 ‘헛된’ 것들에서 벗어난다.

 

a beautiful final sunset ..

a beautiful final sunset ..

 

이것은 우선 개인적, 사회적인 배경으로부터 시작해서 철학적으로 더 깊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영성적, 신학적으로 결론을 맺어야 하는 정말 거창한 화두요 주제다. 우리의 보이는 생의 결말이 죽음이라는 신비는 누구나 피하고 싶기에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반대로 우리 인생에서 잠재적으로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이것에 대한 걱정과 고민에서 자유스러워 질 수 없기에 아예 정면으로 도전을 하는 것은 어떨까..

 

오늘의 묵상 논제는 이렇게 시작된다.

 

자기 생의 마지막을 예견하고 준비 없이 기습을 당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때 비로소 이 세상의 헛된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늘의 말씀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가 된다.

 

하루라도 더 살 줄을 분명히 모르면서 모든 사람들이 죽음으로 끝을 맺으니, 사람의 생명은 그림자와 같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네가 죽은 다음에 누가 너를 기억하여 주며, 누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랴! 사랑하는 이여, 네가 무엇이든지 할 만한 것이 있으면 지금 하라. 이는 네가 언제 죽을지 모르고, 또한 네가 죽은 후 사정이 어떻게 될는지 모르는 까닭이다.

 

너는 이 세상을 지나는 순례자와 나그네로 여겨 세상의 모든 사정에 상관치 말아라. 네 마음은 아무것도 거리낌없이 자유스러이 보존하고 하느님께로, 위로 향하여 둘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며 산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유산 정리, 유언, 장례식의 절차 같은 것을 말하는 너무나 물질주의적 냄새가 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주위를 눈 여겨 살펴보면, 평균 수명을 채우건 못 채우건 사람들은 모두 하나 둘 씩 ‘사라져’ 간다. 이별을 겪고 난 이 세상은 한때 우리와 같이 숨을 쉬었던 그들을 일상적으로 결국 잊는다. 가끔 기도 중에 기억하기도 하고, 주기 연도 같은 것을 통해 그들을 기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물질적 요소들’은 우리의 감각에 더 이상 이세상, 즉 물리적인 세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매일 매일 세속에 파묻혀 오랜 세월을 산 사람들, 나도 포함되는, 이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어떻게 대응하는 것일까? 아마도 대부분 ‘세속의 잡음과 잡념’이 이 궁극적인 난제를 가려주고 곧 잊게 해 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세속사회에서 부지런히 활동을 할 때가 가능했지만, 칠순이 가까워 오는 그 이후는 점점 어려워지는 ‘조금씩 다가오는 공포의 그림자’ 처럼 느껴진다.

 

한마디로 물질적 세속적 사고방식에서는 ‘이제는 모든 것이 끝장이다’ 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못 다한 것이 있다면 그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올 것이고, 잘 살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더 오래, 거의 영원한 세월을 원할 것이다. 여기서 세계관의 차이가 나머지 인생을 좌우한다. 나를 제일 괴롭히던 생각은: 가족 친지들과의 ‘영원한’ 이별? 죽을 때의 육체적 고통? 어떤 방식으로 죽는 것이 편한가?  주위에 필요이상의 괴로움을 주는 것? 이런 것도 괴로운 사실이지만 사실은 ‘이 우주에서 나 라는 존재가 없어지는 것‘ 바로 그것이 제일 괴로운 사실이었다.

 

6년 전부터 ‘부지런히’ 장례, 고별, 연도 등으로 ‘내가 잘 모르는 가족들’의 슬픔에 동참하려고 무척 애를 쓴 보람이 있었는지 이제는 예전처럼 죽음이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실제로 당해보지 않은 것이기에 물론 확신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교리적, 신앙적 죽음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아가기에 조금은 더 당당하게 죽음이라는 문제와 맞대면을 할 용기도 생겼다. 아마도 이것 근래 5~6년 동안에 내가 경험한 ‘깜짝 놀랄만한 진리’ 일 것이다. 이제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아니 너무나 간단하다. ‘영원한 진리의 말씀’ 대로 살고 죽으면 되는 것이다.

 

나만의 올해 summer retreat 하계피정의 3분의 1일 지나가고 있다. 말이 좋아서 하계피정이지.. 하얀 모래사장, 시원한 바람과 바닷물이 보이는 어느 East Coasta summer place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먼 곳에서 보내는 하계피정은  별로 시원하지 않은 나의 this old house 지붕 아래에서..  그것이 벌써 3분의 1일,  11일째 날을 맞는다.

 

1장: 세속 정신을 끊음, 제11일: 삶에 대한 불안과 근심..  33일 봉헌준비기간 중 11일 째, 첫째 편인 ‘세속정신을 끊음‘  12일 중에서 11일 째, 그 동안 세속 정신에 대한 인식과 결단에 대한 ‘공부, 묵상’ 한 셈이다. 과연 얼마나 ‘피정 retreat’ 을 한 것일까?

 

Daily routine이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지만 시원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루 중 머리가 그런대로 깨끗한 시간 아침 6시~6시 30분경에 모든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며 그날의 ‘과제, 주제’를 생각하며 묵상하는 것, 처음에는 거북한 느낌도 들고 ‘잡 것들 distraction, 주로 Internet’ 같은 것과 씨름을 하기도 했지만 며칠 만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좋은 습관’을 만드는 비결을 터득했다고 자부하기에 이것도 그 중에 하나가 되었다. 비결은 간단한:  ‘just do it‘와 몇 가지 화살기도가 전부지만..

 

내일까지 과제는 ‘세속정신과의 싸움‘ 에 대한 것이다. 그 중에 오늘 것은 ‘(삶에 대한) 불안과 근심‘ 이다. 이것은 다른 것과 다르게 그렇게 형이상학적인 것이 절대 아니라서 조금 친근감을 느낀다. 삶에 대한 불안과 근심.. 왜 그렇게 익숙한 말이 되었나? 그렇다.. 그만큼 오래 살았다는 증거인 것이다.

 

오늘 주제의 서문은 다음과 같은데, 공감이 가는 글이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지극히 태연자약해 보이지만 삶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갖은 수단을 다해 갖가지 고난과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들을 보호하려 안간힘을 다하고 무엇보다도 돈과 재물을 모으기 위해 애쓴다. 그러한 것들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에 안정과 평화를 구한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그분의 뜻을 청하며 그리하여 평화와 기쁨 중에 살아간다. 하느님 안에 참 된 안전이 있기 때문이다.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면.. 삶이란 과연.. 어떻게 보면 ‘삶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의 자취‘ 가 아니었을까? 그 불안은 사실 육감적인 피부로 느끼던 불안이 아니라 나 자신의 가장 밑 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원초적인 불안’이다. 대부분 너무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어서 자주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없앨 수도 없는 것.. “나이에 따른  죽음과 점점 가까워지는 내가 사는 의미” 바로 “내가 왜 태어났고, 어디로 가는가?” 삶의 목적과 의미다. 이것을 잊고 살려고 하던 노력들은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대부분 ‘물질적 육감적 보호‘에 치중하다 보면 반드시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으로 이런 불안에 궁극적인 해답이 안 된다.

 

이것에 대한 삶의 예는 얼마든지 있고, 비교적 가까운 주변에도 있다. 삶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아무것도 못하며 가족을 괴롭히는‘ 그런 형제님.. 너무나 그런 생각에 빠져서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이것은 거의 depression에 가깝지만 알고 보면 그것도 아니다. 결국은 ‘나는 나, 너는 너, 나는 나의 소리만 듣겠다’라는 심하게 꼬인 이기심의 소산이라고 나는 본다. 어떻게 그런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결국은 ‘초자연적’인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음을 나는 경험으로 잘 안다. 초자연적인 것.. 나만의 육감에만 의존하던 과거의 경험으로 해답은 바로 이것이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Good Ole Days 의 시원한 여름에 대한 추억은 역시 어린 시절 poster로만 보았던 Troy Donahue, Sandra Dee 주연의 영화 A Summer Place 보다 더 멋진 것은 없었다. 학생입장불가 급의 poster도 화려했지만 몇 년 뒤에 취입된 Percy Faith 악단의 영화주제곡이 또한 ‘불후의 명곡’으로 남았고 아직도 그 당시 평화스러웠던 여름을 연상하게끔 한다.

 

 

Theme – A Summer Place – Percy Faith – 1960

 

¶  Tobey Scare: 12살 배기 male mixed Dachshund, Tobey, 이틀 전부터 거의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자는 시간 빼고 거의 모든 시간 나를 졸졸 따라오는 나의 그림자였지만 그날 아침부터 나를 따라오지를 않았다. 아니.. 아예 움직이지를 않았다. 거의 죽은 듯이 엎디어 있고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일순간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12살의 나이면.. 언제나 가능성이 있는 나이라고 서서히 우려를 하고 있던 차였다. 제 발로 계단을 못 내려가는 것이 뻔하기에 내가 앉고 나가서 bathroom처리를 했다. 집안의 분위기가 일순간에 변했다. 조용해진 것은 물론이고.. 거의 초상집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처음으로 우리 Tobey와 이별할 수도 있다는 현실감도 들 정도..

주위에서 정든 pet dog을 보내며 보여준 각가지 반응들에 우리는 남의 일처럼 comment를 하곤 했지만..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간다. Veterinarian을 찾으면 이상적이겠지만.. 그것도 꺼려지는 것, 이것 저것 test test.. 로 개를 잡을 것이고, $$$도 만만치 않을 것이지만 그것 보다는 증세가 최소한 internal한 것이 아니기에 며칠을 두고 보자고 결정한 것이다. 그렇다, 최소한 먹는 것과 ‘싸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으니까..

오늘 소식을 듣고 새로니가 부리나케 ‘병문안’을 왔고 이곳 저곳 연락을 해서 알아보니, 역시 ‘심한 신경통, 관절염‘ 계통의 증상인 듯 했다. 그렇게 잘 걷고 활발하던 애가 어떻게 하루 아침에 그렇게 될 수가 있을까? 부리나케 신경통증을 완화하는 약을 order하고 더 지켜 보기로 했는데,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듯 하긴 하다. 새로니의 이야기가 만약 관절염계통이면 치료가 불가능하고, 통증만 control할 정도라고.. 슬픈 이야기가 아닌가? 어떻게 그렇게 활발하던 애가.. 하지만 12살이 되는 나이를 무시할 수가 없다. 항상 이별할 준비를 하는 것은 생각하기도 괴롭지만.. 어쩔 수가 없는 것인가?

 

 

¶  2016년 ’33일 ‘대장정’ 의 첫날을 맞이했다. 이번이 3번째의 33일 봉헌이 되기에 조금은 경험이 있다고 할까.. 처음 두 번의 것보다 조금은 느긋한 심정으로 첫 날을 맞이했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서 며칠 전부터 뒤적거리던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책의 첫 장을 열고 첫 12일의 목표: ‘세속 정신을 끊음‘ 의 제1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당신 제자로 부르심‘ 을 읽고 묵상을 시도한다. 12일 동안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라’ 는 과제.. 이것이 과연 그렇게 쉬울지..

사실 이 33일 과정은 이 책으로 비교적 안전하게 guide를 받으며 독서, 묵상, 기도를 할 수 있다. 이 ‘책’을 그대로 따라가면 큰 문제없이 33일 기간을 마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실제로 독서 후에 깊은 묵상과 제시된 기도를 다 마쳐야 하는 것이다. 그것 뿐이 아니다. 33일의 기간 동안 지켜야 할 것들이 이 책에 일목요연하게 제시가 되어 있어서 그것을 ‘가급적’ 지켜야 하는 부담도 있다.

한창 더운 복더위의 여름에 이것은 무엇인가.. 시원한 beach나 산 속의 summer vacation도 아니고.. 에어컨 소음이 요란한 자기 집 방구석에 앉아서 이렇게 33일 보낸다는 것은 사실 그렇게 큰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아니.. 그렇게 ‘라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의미가 있는 멋진 summer ‘spiritual’ retreat, vacation 일 수 있는 것이다.

33일 매일의 실천 사항 이란 list를 보면: 거의 모두 ‘상식적’인 것들이다. 이 기간 동안 ‘대죄’를 짓지 말라는 것도 그렇고, 1시간 이상 조용한 시간을 할애하라는 것, TV같은 ‘잡 雜 것’들 을 피하라는 것, 아니 요새 나온 실천사항에는 분명히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피하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을 듯 하다. 아마도 제일 힘든 것이 ‘조용한 1시간 이상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정말 힘들게 된 요새세상, 참 많은 사람들 ‘로봇트’ 같은 정해진 일상을 보낸다는 사실에 경악을 한다.

이 중에는 가능하면 매일미사 참례하라는 것이 있는데 모르긴 몰라도 이것에서 ‘걸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을 것 같다. 요새 세상에 매일 미사를 한다는 것, 내가 생각해도 그렇게 인기 있는 활동이 아닐진대.. 하지만 나는 문제가 없다. 2012년 부활시기에 이 ‘인기 없는 활동’을 시작해서 아직까지 굳건한 생활의 일부가 되었으니까.. 참 오묘한 것은, 2012년 부활시기에 연숙이 33일 봉헌을 시도하면서 ‘시험 삼아’ 평일미사를 같이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모든 ‘작은 기적들’의 시작이 되었으니 말이다.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33일 봉헌은 이래서 우리에게는 거의 ‘신화적 역사’가 되었다.

 

7월 11일, 2016년 아침.. T-Minus 48 hours.. 이틀이 남았다 2016년 ‘성모승천 대축일’ ‘봉헌을 위한 33일 준비’ 기간이 시작되는 날이.. 7월 13일로 다가왔다.  2012년 8월 첫 봉헌, 2014년 3월 갱신 이라는 이력을 가진 내가 왜 다시 이 쉽지만은 않은 신심에 도전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2012, 2014, 다음은 수열 상으로 2016이라는 것은 조금 우습지만, 그런 것도 좋은 이유 중에 하나로 넣기로 했다. 하지만, 하지만 조금 깊고 심각한 이유는 그것이 아니다.

레지오 마리애의 생활을 하는 덕에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가르침으로부터 크게 멀어진 적은 없는 듯 하지만 과연 그럴까? 혹시 타성에 젖어가는 것은 아닐지, 항상 의식한다. 편한 기분이 들어가면 그것은 분명히 타성에 젖는 것이다.배우고 알고 경험이 쌓이면서 편해진 것이면 큰 문제가 없지만, 무디어지고 느낌이 없어지고, 짜증도 나고 하면 그것은 분명히 커다란 reboot, reset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2014년 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7월에 나는 reset과 reboot을 해야만 했던 경험이 있었다. 비록 비싼 vacation trip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인생 최고의 ‘free’ vacation으로 남았다. 하지만 2014년 여름의 big reboot은 spiritual, devotional한 것이 전혀 아니고, 완전히 나만의 mental exercise에 불과한 것이었다. 길고도 죽을 때까지 남는 그런 ‘비싼’ 경험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background를 가지고 나는 이번 여름 Marian Assumption Day1 에 맞춘 봉헌을 하기로 결정하고 말았다. 2013년에 시도했던 33일의 노력이 도중하차로 끝난 것을 명심하면서 이번에는 그런 과오를 범하지 않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다. 그 다음은 역시 ‘또 다른 경험’을 하는 것.. 어떤 것이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실 상관이 없다. 다른 느낌과 체험, 경험.. 그것이면 족하다.

 

이 정도의 준비각오면 (이렇게 요란하게 글로 남기는 것도 포함)  아마도 아마도 이번에는 도중하차를 할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면 8월 15일 후에 내가 ‘얻는 것’은 어떤 것에 중점을 두면 좋을까? 분명히 더 낫고 더 올바른 성모마리아 신심(이것은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가는 첩경이다) 에 다가가는 것이다. ‘오해 받지 않는 철저하고 용감한’ 성모신심을 얻는 것도 아주 중요한 과제다.

 

어제 Catholic News Agency website에 조금은 섬뜩한 기분의 기사가 실렸다. Fatima 의 visionary Lucia 루치아 수녀님의 예언이었다. 파티마 목격자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수녀님 2005년 선종 전에 증언이 그것이다. 인류 최후의 심판, 결전은 그리스도와 사탄 간의 ‘결혼과 가정’2에 대한 투쟁이라는 것, 그것을 ‘예언’하시고 선종하셨다고 보도가 된 것이다. 이것이 수녀님의 예언인지 혹시 성모님의 예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떨까.. 나도 비슷한 느낌과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참이었기에 우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Humanity의 근간 중의 근간인 ‘정상적인 가정’의 파괴와 붕괴는 사실 핵전쟁이나 다름없는 인류파멸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우매한 지식인‘들은 그렇게 stupid한 것일까? 10은 알고 11는 모르는 것.. 이런 뉴스에 접하며 나는 이번 33일에 이런 Current social problem을 같이 생각하기로 했다. 이런 뉴스와 일맥상통하는 글이 바로 33일 봉헌 Guide에 잘 나와있다. 아래 그것을 전문 발췌를 했는데, 원제는 20세기에 관한 것이지만 21세기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들이다.

 

 

20세기에 들어 성모님은 파티마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 발현하셔서 당신의 티없는 성심께 대한 봉헌을 간곡히 호소하고 계신다. 20세기의 초엽인 1917년 파티마에 발현하셨을 때에는 원죄에 물들지 않은 당신의 티없는 성심을 직접 보여주시면서 티없는 성심께 대한 신심과 봉헌을 호소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나의 티없는 성심에 대한 신심을 일으키기를 원하신다” (파티마, 19717. 6. 13).

“내 티없는 성심은 너의 피시처가 될 것이며, 너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가는 길이 될 것이다” (파티마, 19717. 6.13).

이에 따라 1942년 10월 31일 비오 12세 교황은 전 세계를 마리아의 티없는 성심께 봉헌하고, 1946년에는 파티마의 성모님을 세계의 여왕으로 대관하고 ‘여왕이신 성모 마리아 축일’을 제정하였다.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미 청년시절에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에서 큰 감화를 받고 자신을 온전히 성모님께 봉헌하였으며 이 책에서 ‘온전히 당신의 것 (Totus Tuus)‘라는 문장을 뽑아 교황 즉위 시에 모토로 삼기까지 했다. 1984년 3월 25일에는, 1917년 파티마에서 하신 성모님의 요청에 따라 전 세계의 주교들과 뜻을 합하여 소련은 물론 전 세계를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봉헌하였는데 그 이후 마침내 소련을 포함하여 여러 나라의 공산주의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 교황님들의 모범에 따라 이 봉헌을 실천하는 이들은 이 길이 틀릴 수 없는 가장 완전한 길임을 체험하는 동시에 이 봉헌으로써 이루어지는 놀라운 결과 즉 “티없는 내 성심이 승리할 것이다” (파티마 1917. 7.13)이라는 성모님의 약속의 실현을 자신들 안에서도 보게 될 것이다.

성모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이 봉헌은 하느님께 봉헌되기 위한 가장 완전한 방법인 동시에 성모님의 티없으신 성심께 대한 가장 완전한 신심행위이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봉헌을 받으셔서 당신 아드님과의 완전한 일치 안에서 그러나 그분께 종속되어 “은총의 질서 안에서 우리의 어머니의 자격으로” (교회헌장 61항)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의 생활에 모성적으로 관여하신다. 그리고 우리의 봉헌을 당신의 봉헌과 일치시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가능케 해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다. “성모님께 봉헌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 이르는 길을 통과하는 것이며 성모님은 그리스도께 이르는 길이시다” 라고. 따라서 성모님을 통하여, 성모님 안에서, 성모님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바치면 바칠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봉헌의 주된 목적이며 의의이다.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봉헌의 의미와 그 중요성” 중에서

 

 

  1. 매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 The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2. Homosexuality, Same-sex ‘marriage’, transgender, rampant divorce etc etc

더위를 먹은 머리가 갑자기 쏟아진 소낙비로 조금 식어간 후에 문득 7월 13일이 코 앞에 다가온 것을 느낀다. 레지오 주회합 때마다 회의록을 읽는 서기 書記(2012년부터)인 관계로 레지오의 공식활동의 목록을 앵무새처럼 읽는 것, 듣는 이에게는 크게 새로운 것이 없을지라도 나 자신은 은근히 세뇌 洗腦 가 되는 효과가 있다. 7월 13일.. 아하.. 올해 여름 중에 봉헌되는(정확히 8월 15일 Marian Assumption Day, 고국의 광복절)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간단한 말로 ’33일 봉헌’ 준비 기간이 시작되는 날이 바로 7월 13일이었다.

 

St. Louis Marie Grignion de Montfort

St. Louis Marie Grignion de Montfort

몇 달 동안 이 공식예고를 듣고 보며 잠깐씩 생각하곤 했다. 내가 전에 이것을 언제 했지.. 근래에 체험한 행사와 경험들이 하도 많아서 ‘레지오 수첩’을 안 펴보고는 확실히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것에 대한 자세한 기억이 조금 희미해진 것을 느끼고, 너무 오래 잊고 살았구나 하는 자괴감 自愧感 도 들었다. 우선 성모님께.. 다음은 루도비코 마리아 성인 Saint Louis of Montfort 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분명히 나는 몇 년 전에 봉헌을 했지만, 그 다음에 다시 갱신 renew 을 한 것이 100% 확실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실망이다.. 이런 것에 대한 기억력이 떨어지면 어찌할 것인가?

 

Personal blog에 나의 흔적을 남기는 것, stupid한 것도 많지만 나중에 유익한 개인역사를 남기는 것은 이럴 때 도움이 되고, 이곳을 찾아보니 역시 2012년 7월 11일 자 blog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2012년 8월 15일 즈음에 나는 ‘첫 33일 봉헌’을 한 것이다. 이 blog에 봉헌 준비 당시 나의 심정이 잘 보이고 있지만 실제로 어떻게 33일 ‘하루하루’를 보냈는지.. 그것은 어디 있는 것일까? 그것도 찾았다. 나의 OneNote1 Journal에 33일의 일기가 거의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첫 번째 봉헌, 나는 그만큼 심각하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노력을 하고 기록을 남긴 것이다.

 

그러면 나는 과연 그 후에 갱신 renew를 한 것일까? 머릿속의 잡티를 청소하고 기억을 해 보니 2013년 부활시기에 갱신 시도를 했지만 도중 하차..  다음 해 2014년 부활시기에 연숙과 같이 갱신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정도로 갱신은 첫 봉헌과 비교해서 깊이나 느낌의 정도가 다른 것일까? 그렇다면 갱신할 당시 나의 33일 준비는 첫 번에 비해서 훨씬 허술했던 것은 아닐까? 그때의 묵상기록도 OneNote Journal에 남아있지만 첫 번에 비해서 그렇게 허술한 것은 아니었다. 갱신 때는 첫 봉헌에 비해서 오히려 하루도 빠짐없이 꼼꼼히 묵상기록을 남겨 놓았다.

 

2016년 연중시기 중의 제일 ‘한가한’ 시기인 8월 봉헌 시기가 다가오면서.. 이번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한마디로 나의 성모신심 Marian devotion 의 나사가 조금 씩 풀어지기 시작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일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고, 행여라도 풀어지지 않기 위한 안간힘일지도 모른다. 지난 두 번의 봉헌에 빠졌거나 못했던 것을 이번에 더 노력을 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이번에 더 할 것이 있다면 성 루도비코 마리아와 그의 불후의 명저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을 더 자세히 읽어 보는 것도 포함이 되어 있다. 8월 16일로 예정이 되어있는 봉헌, 갱신식에 과연 내가 서있을 것인가.. 아니면..

  1. Microsoft Office note app

2주일 대출기한이 수개월을 지나가면서 이 책을 우선 반납하여야 한다는 stress를 느끼며 이제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 저곳을 훑어보고, 비교적 가볍게 접한 이 책에서 나의 재동 齋洞 동창, 김정훈 부제에 대해서 알게 되고 느낀 것을 정리한다.

 

신학생 김정훈

신학생 김정훈

이 책을 처음으로 접하면서 제일 궁금했던 사실은 정훈이가 어떻게 그렇게 일찍 타계 他界 를 했던가 하는 것보다는 그가 생전에 어떻게 살았는가, 그의 집안, 가족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신앙, 성소를 가지게 되었는지..그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가 20대를 훨씬 넘은 시절부터 쓰여진 일기 형식이기도 하고 자기의 생각이 정성스럽게 담겨진 ‘문학적 냄새’가 나는 글로써,  꼼꼼히 ‘정독’을 하지 않는 한 그러한 나의 궁금증에 대한 답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처음 대강 책을 훑으며 느꼈던 감정은 의외로 반갑지 않는 나의 반응이었다. “좋은 집안, 머리가 좋은 덕으로 선택된 선망의 대상으로 어려움과 고민 같은 것 별로 없이 유럽 유학 중, 좋아하는 등산을 하다가 조난사고로 운명”.. 비록 너무나 이른 인생의 비극적인 마감이지만 이러한 피상적인 이력서적인 눈에 쉽게 뜨이는 사실들 만으로는 정훈이 이야기가 왜 이렇게 ‘김수환 추기경의 서문’이 실릴 정도로 큰 화제나 영원히 남을 만한 책으로의 가치가 될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물론 이 책을 계속 읽으며 이것은 나의 ‘너무나 성급한’, 생각임을 알게 된다.

 

 

¶ “산, 바람, 하느님 그리고 나.. “ 김정훈 유고집의 제목인데.. 과연 이것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이 궁금증은 19 쪽을 보면 간단한 설명이 나온다. 이 대목은 김정훈의 신학교 영적 지도 신부인 Stefan Hofer신부의 추모의 글에 있는데 그 신부님은 김정훈이 조난을 당한 사고 현장에 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별이 총총한 밤에 세르레스(Serles)에 등반하였던 적도 있었다. (중략) 베텔풀프(Bettel Wurf) 정상 정복자가 된 우리는 그 곳의 방명록에 우리들의 이름도 기록하였다. 베드로(김정훈)는 이름뿐만 아니라 한국 말로 무엇인가 썼다. 내가 무엇을 썼는지 그에게 묻자 그는 독일어로 그 밑에 주를 달았다.

산, 바람, 하느님과 나, 김 베드로.”

이처럼 베드로는 단순한 산에의 낭만주의뿐만 아니라 그때 그때의 깊은 종교적 느낌 속에서 산을 찾고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회고’를 보며 생각한다. 정훈이는 진정으로 산을 사랑하고 등반을 했지만 단순히 산이 좋아서, 산이 그곳이 보이고 있어서라기 보다는 깊은 종교적 체험을 통한 등반을 더 사랑하였던 듯 싶다. 나도 대학시절 참 산을 많이 찾아 다녔지만.. 어떨까, 종교적인 체험을 하였던 기억이 거의 없음에 정훈이의 나이에 비해 ‘성숙한’ 인생체험은 더욱 돋보인다.

 

 

¶ 정훈이의 가족관계는 어떤가? 이것은 사실 기본적인 호기심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재동 동창생이지만 ‘공부를 잘 해서 경기중학교에 갔다’는 사실 이외는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재동학교 졸업 후 중학교 시절, 파고다공원 수영장에서 그가 아이(아마도 동생)를 데리고 가는 것을 보았던 기억.. 그것이 전부다. 그러니까 남자 동생은 있었을 듯 하다. 이 책에 가족에 관한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간단히 이곳 저곳에 나오기에 한 눈에, 명확하게 알기는 힘이 들었다. 우선 자신이 묘사한 가정은 204쪽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사직동 김판사네 가정도 한국에서는 신앙으로 가꾸어진 훌륭한 이상적인 가정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일이 잘 풀려 나가지 않는 면들도 보인다. 아이들이 제 발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자기가 사리를 스스로 옳게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는 부모가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들의 인생관과 신앙에 근거해서. 그런데 압도적으로 비중이 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만 손보기가 어려워져 버린 난맥상이 드러나고 있다. (중략) 곧 아버님 돌아가신 지 10년째가 된다. 벌써 그렇게. 강산이 정말로 크게 변했다. 아버지의 그 보화를 캐내어 나눠 줘야 할 큰 책임은 바로 나에게 있는 것이 이 순간 확연해진다. (1975년 3월 10일)

 

이 글은 1975년 3월 10일 일기에 나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친구 클레멘스의 가정을 부러워하는 글 뒤에 나온 것이다. 그 친구의 가정이 부러운 이유 중에는 ‘아버지가 높은 지위에 있고 건강한 아이들, 높은 교육을 받은 것, 3남 2녀라는 것.. 이런 것과 더불어 잘 화합된 부모의 교육, 그것도 참된 신앙에 의한 것.. 이라는 사실. 아마도 김정훈의 가정도 이에 뒤지지 않았던 이상적인 가정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10년 전에 돌아가신 ‘김판사’ 아버님의 비중이 너무나 컸기에 가정은 ‘난맥상’이 드러났다는 판단이다. 그러니까.. 1965년 경에 아버님이 타계를 하셨으니까, 정훈이 경기고 3학년 때였을 것이다. 혹시 그런 충격이 정훈이에게 깊은 성소의 뜻을 남긴 것은 아니었을까? 사회적 지위가 높고, 신앙심이 깊고, 가정을 사랑하는 아버님을 가진 정훈이었다. 아버지 없이 자란 나로써는 부럽지 않을 수가 없다. 분명히 천주교 가정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천주교인이었을 정훈이네 가정, 혹시 대대로 내려온 ‘박해 받았던 가문’은 아니었을까? ‘비중에 컸던 아버지’에 대한 회고는 이곳 저곳에 나온다.

 

나가이 다카시의 ‘만리무영’에서 여러 대목을 읽었는데 느끼는 점이 많다. 우선 그 글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차분하고, 원만하고, 노력을 기막히게 많이 한 신앙인인 것을 알게 해 준다. 내게 특히 좋게 여겨지는 것은 그 글의 분위기와 저자가 바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진지하고 신념에 찬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그러하고, 어투며 그 상황까지 어쩌면 그렇게 흡사할까. 공감 가는 점이 정말 많다. 자식에 대한 배려, 아내 생각 등도 아버지 경우와 같다. 동시에 그 사람의 아들들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부쩍 동하는데, 많은 사람이 우리 집안이나 나에게 대해 갖는 기대와 주시도 그런 종류일 것이다. 불쌍하신 아버지, 죽음을 앞두고 아내를, 자녀들을 그대로 놔두고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무슨 생각에 젖으셨을까? 얼마나 우심 憂心 이 크셨을까? (1972년 6월 11일)

 

위의 일기에서, 아버지가 권해준 책을 읽으며 그 책의 저자가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좋은 점’들을 열거한다. 여기서 보아도 그 아버지는 정말로 존경 받을 만한 가장이었음이 짐작이 된다. 일찍 운명을 하신 아버지, 아마도 불치의 병으로 돌아가신 듯하다. 장남일 것 같은 정훈이, 이때부터 아마도 가장으로써의 기대를 받으며 성장하지 않았을까?

 

 

 

¶ 20대를 꽉 차게 살아오던 정훈이의 모습, 언행, 성품 등은 어땠을까? 이것은 친구들이 본 것이 아마도 제일 정확한 것이 아닐까? 일찍 타계한 친구를 보내며 친구 대표 ‘기헌’의 ‘조사’에 잘 묘사되어 있다.

 

너는 너의 가족들이 기도하며 바랐던 대로, 평소에 너를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과 친구들이 기대했던 대로, 너의 훌륭한 재능과 착하고 인간미 넘치는 성품이 더욱 닦아지고 완성되어 이 한국 교회를 위해서 많은 일을 했어야 하는데.. 이제 겨우 서른 해를 넘기고 가다니.. (중략)

너는 순진하고 단순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사람이었어. 너의 신심 생활의 진보는 언제나 앞서 있었고, 너의 정신적인 사고력은 언제나 예리하게 우리를 압도했었지.

책 읽기를 그렇게나 좋아하고, 깊은 명상과 기도의 생활을 너는 얼마나 사랑했었니? 그러면서도 네 마음은 언제나 뜨거운 인정이 넘치고 있었다. 친구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낀 너였는지 우리는 잘 안다. 모든 친구들에게 한결같이 잘 해 주었어. 특히 괴로운 일을 당하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어떻게 해서라도 도와 주고 싶어하던 너였지. 너의 특징인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두 눈을 껌벅거리던 너. 어떻게 해서라도 그 괴로움을 나누고 싶어 너는 애썼지.  (중략) 그러기에 친구이면서도 우리는 너를 존경하였고, 우리를 대신해서 큰 일을 해 주리라 믿었다. (중략) 착하고 아름답게 산 너의 영혼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백 배의 보상을 틀림없이 천국에서 받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너와 영결하는 이 마지막 순간을 기쁘게 받아들이겠다. (1977년 6월 7일, 정훈이를 보내며.. 친구대표 기헌이가)

 

비록 고인을 기리는 조사이긴 하지만 이 글에서 정훈이의 이목구비, 면모, 표정, 성격 들이 직접 간접적으로 다 보인다. 나로써는 이것이 ‘성인’ 정훈이를 상상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친구들에게 그렇게 기대를 받았던 ‘장래가 촉망되던 큰 재목’ 이었다는 인상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 가톨릭 신부와 여성, 신부 지망생 그러니까 신학생이었던 김정훈은 어떤 여성관, 여성 경험을 가졌을까.. 20대 중반의 혈기왕성한 ‘멋진 남자’에게 여성과의 교제가 없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 된다. 나와 동갑(돼지띠) 이기에 1970년대 중반의 나를 생각하면 너무나 쉽게 상상이 가는 것이다. 다만 나의 background와 그 이외 많은 것들이 아마도 나와는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있었음을 생각한다.

우선 절대자 하느님, 예수님을 자연스레 알고 믿는 그, 완벽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유복한 가정.. 등을 생각하면 정말 ‘자격을 갖춘 멋진 여성’이 그의 주변이 있었을 듯 하다. 다만 이 유고집에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여성, J 라는 여성만이 눈에 뜨인다. 과연 J란 여성은 누구일까? 거의 한 chapter “J와 인생” 이 J 라는 여성에 관한 일기인 것을 보면 ‘신부와 결혼’에 대한 그의 결심에서 가장 심각한 인물이었음 에는 틀림이 없다.

 

J에 대한 나이, 출신배경, 알게 된 경위 같은 것은 알 수가 없다. 다만 집 식구들에게는 알려진 사람, 공개된 데이트였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신부를 지망하는 신학생과 데이트를 하는 여성은 어떤 여성들일까? 결혼을 전제로 할 수가 없는 100% 순수한 지적인 만남이었을까? 계속되는 깊어지는 만남에 자신에게 제동을 거는 자신의 결심도 보인다.

 

J와의 문제에 단안을 내려야 하고, 내렸으면 확실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그래야 하는 까닭’

1. 실험적인 사귐은 있을 수 없다.

2. 그렇지 않으면 내 자신이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하게 됨.

3. 그녀를 위해서도 더 깊어지지 않는 것이 좋다. 실제로 나의 결론은 지어졌는데, 실행은 빠를수록 좋다.

4. 언젠가 끝에 가선 내가 당황하게 될 것이다.

이 문제는 내 햄, 내 의지만으로 될 수 없는 것이니 주님, 빛과 길을 주소서. 이럴 때 주님을 찾는다고 나무라지 마소서. 이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일기에서 그는 ‘조직적’으로 차근차근하게 문제의 본질과 방향을 찾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문제의 심각함과, 어려움을 알고 그는 결국 ‘절대자’의 힘을 기대하고 있다. 그 당시, 나의 모습을 여기에 비추며 돌아본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나는 절대로 혼자였다. 절대자가 절대로 나에게는 없었다. 혼자였던 나는 모든 것을 ‘나침반’이 없이 헤매며 허우적거린 세월들이었다. 나와 정훈이의 20대 중반은 이렇게 하늘과 땅만큼 멀리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한마디로 ‘은총을 일찍 받았던’ 영혼이었다.

 

곧바로 그는 J에게 쓴 ‘헤어짐의 편지’를 쓴다. ;7월 23일자 일기에 편지가 실려있다. 분명하지 않은 것이.. 이 편지는 일기인가 아니면 실제로 J에게 보내진 편지인가 하는 것이다. 이별의 편지, 참 balance와 courtesy, essence가 모두 있는 편지가 아닐까?

 

J씨 귀하,

 

이 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있어야 할 순간이고 또 그 때는 빠를수록 좋기 때문입니다. 이런 책이며 글 같은 것이 부질없는 것이고 오히려 없느니만 못한 것이라고도 생각됩니다만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역시 글로 써야 제 뜻을 그래도 명확히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 동안 받은 것에 대해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주로 받기만 하고 드린 것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제가 주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줄 것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의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기존의 길이란 있는 것이 아니라 해도 자기가 뜻을 정하고 온 가능성을 모으고 있는 터에 이와 상치되는 사상 (事象)을 지닌다는 것은 일을 이루지 않겠노라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목표가 확실한데 이런 상태를 계속한다는 것은 저로써 더 이상 용납 못 할 일입니다. 그것은 제 자신과 J씨를 크게 속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면 길수록 쓰라림만 커질 것입니다. 여기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항상 이것을 알면서도 갈팡질팡하며 생각을 모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을 기다린 거지요.

지금 이 글월을 쓰면서 저는 이 글의 의미가 엄청난 데 스스로 놀랍니다. 이는 우리의 사귐에 대한 결단일 뿐 아니라 저로서는 제 삶의 의미를 향해 다시 한 번 크게 내딛는 순간이기도 한 때문입니다. 이런 결정이 일방적이고, 제게 있어서는 쉬운 일이고 또 회피가 아니냐고 하지 마십시오. 또 이 일이 그런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고, 단안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이냐고 도 하지 마십시오. 제가 얼마나 힘들게 이 글을 쓰고 있는지 또 그런 만큼 얼마나 정확하게 그 의미를 파악하려 하고 있는지를  J씨라면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일생에 몇 번은 결정을 내려야 할 때를 만나고, 또 한 번 내린 결정은 단호히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J씨는 제게 너무도 과분하고 소중한 분이었습니다. ‘두 번 다시 그런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지금의 제 심정도 몹시 단호함으로 차 있습니다. 아니, 단호하려고 애써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교 주소도 아시고 또 9월에 학관에도 나가겠지만 제게 소식 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언젠가 고등학교 때 학생회장이 말했다고 한 것처럼 저도 J씨가 그 근본을 향한 고귀하고 투철한 노력을 조금도 흩뜨리지 않고, 그 동안 얘기했던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으며, 용맹스럽게 전진하시기를 진정으로 빕니다.

– 김정훈

이 책은 그 동안의 우정에 대한 저의 기념의 선물입니다. 기꺼이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 작별편지를 보면, 그의 확고한 결심을 J에게 전하며 다시는 연락을 하지 말라는 부탁을 한다. 이 정도만 아주 단호한 결심이 아니었을까? 이런 것으로 보아서 J라는 여성은 ‘적극적’으로 정훈이를 만나는 사람으로 느껴지고, 아주 나이에 비해서 성숙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9월에 학관에도 나간’다는 구절을 보아서 이들은 아마도 같은 ‘학관’에 다녔던 것은 아닐까? 학관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대강 그 당시에는 ‘학원’이라는 말을 썼는데.. 학관은 종류가 다른 것이었을까? 마지막 구절에 ‘근본을 향한 고귀하고 투철한 노력을 … 용맹스럽게 전진하시기를..’ 이것으로 J라는 여성도 무슨 뚜렷한 목표를 향한 ‘지식층’ 여성이었을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이 ‘편지 일기’ 이후에도 그는 사실 J를 잊은 것이 아닌 것 같다. 계속 J를 만나며 그녀에 대한 글이 나오니까.. 아마도 서로가 ‘가벼운 마음’으로 ‘결혼의 가능성을 배제한’, ‘진정한 친구’로써 만난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 8월 21일의 일기는 J에 대한 끈질긴 미련과 자신의 필연적인 결심에 대한 분석이 나온다.

 

J를 본 지 열흘이 지났다. 지난 금요일과 월요일에도 만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하면서도 보고 싶다.

그냥 당겨지는 이 마음은 무엇인가? 왠가? 누가 무엇이라 한다 해도 이런 마음은 참 순수한 것이다. 그리고 자연적 현상이다.

간단한 기록으로 끝나려 했는데 또 길어진다. 내심에 잠겨 있는 것이 들고 일어나는 까닭이다. 파헤쳐 본다는 것도 힘에 겨웁다.  문제는 결단만이 해결의 관건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또한 결단을 내렸으면 책임지고 수행해야 하고, 끝까지 충실해야 한다.

그런데 결혼도 포기하고, J와 같은 사람과의 사귐도 금기(禁忌)인 신부가 되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신부행(神父行)을 결심한다는 것은 그만한 의미가 있어서일 터인데 과연 그런가? 어째서 내 단 하나뿐인 인생을 사제에다 걸었는가? 사제가 무엇인가? 그 본질을 분명히 보고 결단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은 비교적 분명하게 문제점들이 드러난다.

내가 보는 신부에 대한 정의, 그 신원(身元)은? 고전적 정의로서는 내게 그 의미가 약하다.

 

위의 일기로 나는 그가 아직 신부가 되려는 결정을 하지 못한 것을 안다. 하지만 계속 내면적으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자연적으로 생리적으로 끌리는 사랑을 느끼는 이성, 그것도 20대 중반의 나이에.. 어찌 간단히 결단을 내릴 수가 있단 말인가? 이 과정에서 김정훈의 ‘결단의 힘’을 볼 수 있다. 한 인간인 여성에 대한 사랑, 관심, 끌림 등과 신부가 되려는 성소의식이 치열하게 싸우는 듯한 몇 개월로 1973년의 마지막을 보내는 김정훈, 드디어 무서운 결단을 내리며 편지를 쓴다. 신부가 된다는 확고한 결심이다.

 

J씨 귀하.

이 시각을 위해 사귐을 해 왔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는 초조하리만치 이 순간을 기다려 왔습니다. 뜻밖의 이 글월을 받고 놀라시리라 믿습니다만 끝까지 읽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이 가능한 근거는 우리가 하느님을 지고(至高)로 모시고 있고, 그 동안 J씨나 저나 거짓 한 점 없이 서로 성실하였다는 사실 자체에 있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벌써 짐작을 하실지 모르나 정말 그렇습니다. 결단을 지금 내려야 합니다. 일찍이 저는 신부행(神父行)을 결단했습니다. 설령 각 사람에게 이미 정해진 길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해도 저의 그 선택에는 후회나 변함이 없습니다. J씨는 제게 너무나도 소중한 분이었습니다. 지난 번에 J씨가 말한 뜻대로 그 동안 우리는 분명 서로에게 성실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는 것 자체가 피치 못할 불성실의 시작입니다. 반드시 그렇습니다. 제가 J씨를 아끼는 그만큼 이 문제는 절실합니다. 이 문제는 누가 무어라 해도, 어떤 식으로 가설을 세운다 해도 사실입니다. 이 점을 항상 의식한 저는 두려워하면서도 이 시각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껏 회피하려 했으나 결단은 있어야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빠를수록 좋을 것입니다. 비참하고 단호한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는 이 글을 쓰기가 쉬웠고, J씨는 어렵다고 믿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의 만남, 사귐이 그렇게 순수했던 것처럼 이 시작도 서로에게 순수해야 하고, 전적인 동의로써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J씨는 J씨의 길을 힘차고 명랑하게 가십시오. 저도 제 길을 용기 있게 웃으면서 가렵니다. 이상이 제가 쓰고 싶은 전부입니다. 사실 J씨는 이 글의 진의(眞意)를 잘 알고 계십니다. 저의 집 전화번호도 알고 또 찾을 수도 있지만 저를 찾지 마십시오. 이별은 엄청난 사건이지만 한 순간에 이루어집니다. 저도 결코 J씨를 찾지 않겠습니다.

1973년 12월 26일 김정훈

 

정중하고 진심이 우러나오는 글이지만, ‘영원히’ 남녀로써 헤어져야 한다는 냉혹한 진실 또한 외면하지 않았다. 미련을 0%도 남기지 않고 그는 ‘결코 J씨를 찾지 않겠습니다.’라는 작별인사로 끝을 내는 그.. 얼마나 괴로웠을 결단이었을까? 그 나이에 나라면 ‘절대로 절대로’ 못하였을 것이고 그렇게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해 1974년 봄 무렵 유럽 유학을 떠나는 그는 아마도 그 때서야 J씨를 조금은 더 쉽게 잊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남녀관계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니까..  (Part 2로 계속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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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na nobis pacem.. Grant us peace..  요새 평일미사에서 더 자주 듣고 말하는 ‘멋진  라틴 말’.. ‘평화를 주소서’..  왜 ‘이것’을 달라고 기도하는지 이해가 조금 간다.

 

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 miserere nobis.

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 miserere nobis.

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 dona nobis pacem

 

아뉴 데이, 퀴 톨리(스) 페카타 문디, 미세레레 노비(스).

아뉴 데이, 퀴 톨리(스) 페카타 문디, 미세레레 노비(스).

아뉴 데이, 퀴 톨리(스) 페카타 문디, 도나 노비스 파쳄.

 

Lamb of God, you take away the sins of the world, have mercy on us.

Lamb of God, you take away the sins of the world, have mercy on us.

Lamb of God, you take away the sins of the world, grant us peace.

 

 

천주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천주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천주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미국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 주임 신부님이 교체되는 6월에 들어서 평일미사에 방문신부님들이 더 자주 오신다. 그 중에 ’40대’같이 보이는 ‘은퇴신부’님, Father Joseph, 나이에 비해서 너무나 젊고 패기가 만만해 보여서 왜 벌써 retire를 하셨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이분의 Mass를 ‘들으면’ 우리들도 같이 ‘뛰어야’ 할 정도로 모든 것이 빠르고, 미사가 끝나고 나가시면 거의 뛰다시피 (실제로 jogging하신다)나가신다.

이분이 오시면 영성체 전에 하는 ‘Agnus Dei, 천주의 어린양, Lamb of God..’을 꼭 라틴어로 하시는데, 솔직히 나는 이 라틴기도를 듣기는 했지만 따라 하기에는 자신이 없다. 오늘, 이제야 Wikipedia의 도움으로 ‘정확한’ 라틴어로 알게 되었다. 그 중에 Dona nobis pacem.. 평화를 주소서.. 란 말, 미사가 끝나가며 진정으로 마음 속으로 바라는 매일 ‘청원 기도’가 되었다.

신앙이란, 믿음이란, 종교란 것에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는 것인가.. ‘궁극적인, 흔들리지 않는 평화’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겉으로의 평온함, 잔잔한 기쁨과 차원이 다른 저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믿음에서 자연히 흘러나오는 ‘걱정을 없애주는’ 느낌.. 그것이 진정한 평화일 것이다. 그러니까, 세속적, 환경적, 물리적인 요건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요지부동 搖之不動’ 적인 안전한 느낌.. 그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하지만 그것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들은 비교적 어렵지 않은가.. 근래에 가끔 느낀다. 아~ 이것이 바로 ‘신앙선배, 교부’들이 그렇게 말하는 peace is flowing like a river (강물처럼 흐르는 평화).. 가 아니었을까? 진정한 평화는 (죽기 전에는) 이 세상에서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비슷한 것은 어떤가?

지나가는 6월의 두 번째 주, 비록 ‘살갗이 타는듯한 바깥 일’ 로 육체적인 고통은 다른 때에 비해서 컸지만, 머리 속 깊은 곳의 평화는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러니까.. dona nobis pacem을 계속 기억하며 지낸 것이다. 아마도 그만큼 나는 peaceful했을 것이다. 비록 나의 얼굴과 언동은 주위에서 보기에 불쾌했을지 몰라도.. 짜증나기 시작하는 90+ 더위도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것도 하느님이 주신, 자연적 순리임을 잊지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Under $100 deckover renovation 2016

Under $100 deckover renovation 2016

¶  Deck (Paint) surprise:  우리 집 손바닥만한 backyard (attached) deck, 무엇이 그렇게도 말썽이었던가? 언뜻 보기에, 일주일이면 ‘깨끗하게’ renovation을 할 것처럼 보였던 ‘손바닥’만한 것, 결국은 한 달이 걸렸다. 나는 결국 이번 job의 어려움을 너무나 underestimate한 잘못을 한 것이다. 반대로 overestimate했으면, 아마도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며 ‘즐기며’ 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제일 크게 실수한 곳은 deck floor자체가 아니고 deck railing, step등의 ‘복잡한, 골머리 썩이는’ miter cutting job이었다. 그 동안 너무나 오랫동안 cutting tool들을 쓰지 않아서 더욱 힘이 들었다.  이런 것과 더불어 ‘더 이상 cash’를 쓰는 것을 자제하며 cash와 time을 trade하는 기분으로 한 것이 역시 칠순이 다가오는 육체에 무리를 주었을지도 모르며, 피곤한 기분은 아무래도 나의 평온 감에 타격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 surprise가 있었다. 바로 painting, 전에는 ‘자연스러운 나무색깔’을 고집하며 waterproofing정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floor lumber가 rotting하는 고역을 치른 것을 잊지 않으며 이번에는 ‘진짜 paint’를 하기로 하고 $10 discount sale을 하는 Memorial holiday 에 Home Depot에서 Deckover® deck paint 2 gallon으로 paint를 해 보니.. 이것이 보통 때 보던 그런 paint가 아닌 special paint로 거의 ‘죽’ 같은 정도로 끈적거리는 그런 것, 그래야 floor traffic을 견딘다고 하니.. 이런 것을 나는 그 동안 모르고 지낸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paint는 2nd coating이 ‘필수’라고 하는 사실.. 그러니까 보통 paint의 2배가 드는 것이다. roller가 아닌 brush를 쓰는 것도 고역이었고, railing, steps등을 estimate에 뺀 것도 잘못이었고.. 역시 나는 weekend ‘amateur’ 였던 것이다. 2nd coating 은 고사하고 한번도 ‘겨우’ 덮을 수 있었던 마지막 작업은 참 기분이 씁쓸한 그런 것.. 즐기며 일하겠다는 결심에 도전하는 잡스러운 surprise들.. 결국 나는 슬기롭게 manage를 못했다. 이것도 이번에 배운 것, 언제나 surprise에 대비하며, worst case를 항상 염두에 두라는 진리,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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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까지, 끝까지 나를 따라오며 유혹하던 Screwtape1을 당당히 물리치고 ‘하루 종일’을 Atlanta International Convention Center에서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보냈다. 그곳은, 이제는 완전히 classic이 된, 연례 Atlanta Eucharistic Congress (EC) 가 열린 곳이다.

8:30 AM general procession starts..

8:30 AM general procession starts..

2011년부터 줄곧 ‘도장’을 찍었던 ‘초여름의 향연’, 아틀란타 성체대회, 작년에 나의 ‘게으름’으로 우리 둘 모두 참가를 못했었다. 못 갔던 이유는 있었지만 암만 생각해도 그것은 그럴듯한 유혹에 굴복 당한,  ‘핑계’에 불과했던 것, 나 자신은 속일 수가 없다. 그것이 화근인가. 올해에도 그런 ‘약점’을 이용한 각가지 유혹들.. 요란하고, 간교하고, 그럴 듯한 핑계거리가 줄줄이 나를 괴롭혔고, 거의 그것은 성공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senior devil은 나의 어머니에게 굴복한 셈이 되었고, 그것이 나를 그렇게 행복하게, 뿌듯하게, 기쁘게 할 수가 없다.

 

작년에 나를 유혹했던 screwtape의 point는 “유명하고 멋지고, 잘나가는 speaker가 없는 것.. 무엇 때문에 하루 종일 고생을 하냐?” 정도가 될 듯하다. 너무나 나의 기대가 커서 생긴 유혹이었다. 그러니까 재탕을 방지하려면 그 expectation을 ‘하향 조정’하면 된다.  더 간단한 것은 아예 ‘기대도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런 무기로 올해의 유혹에 대비했지만, 역시 senior devil Screwtape은 경험이 많은 악마인가.. 다른 쪽을 공격을 한다. 성체대회가 열리는 날 이후에 나의 신경을 많이 쓰게 하는 schedule들이 몇 달 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나를 괴롭힌 것이다. 한마디로 가벼운 마음으로 성체대회에 참가할 기분이 안 나는 것이다.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대회 전날 밤까지 나를 유혹했는데.. 이번에는 나도 조금 ‘조직적’으로 대비를 했는지, 굳세게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고 하루 종일을 일 만 여명의 신앙 동료 catholic들과 보낼 수 있었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banner procession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banner procession

이번에는 순교자 성당 주임 이재욱 요한 신부님도 참가하셨다.

이번에는 순교자 성당 주임 이재욱 요한 신부님도 참가하셨다.

올해는 이제까지 우리의 format을 조금 바꾸어서 순교자 성당bus를 안 타고 우리 차로, 대신 아침 더 일찍 출발을 해서 비교적 쉽게 parking도 할 수 있었다. 필요할 때 우리의 돌아오는 시간을  바꿀 수 있는 것은 편하지만 bus를 타고 오고 가며 순교자 성당 교우들과 어울리는 기회가 없는 것은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예상보다 적은 사람들이 bus를 탔다고 했고 김밥 점심을 같이 먹을 때 보니, 자기 차를 타고 온 사람들도 꽤 있었다. 비교적 일찍 도착했기에 우리는 ‘처음으로’ 대교구 소속 각 교회 공동체의 banner procession하는 것을 보았고 우리 순교자 성당 팀 banner group에는 주임 이재욱 요한 신부님과 같이 우리 부부도 낄 수도 있었다. 이것이 올해에 우리에게 신선한 경험으로 남게 되었다.

 

'Yakuza' Father Donald Calloway

‘Yakuza’ Father Donald Calloway

올해 성체대회 Atlanta Eucharistic Congress 2016은 어떤 쪽으로 기억에 남을까.. 소위 말하는 superstar급 speaker는 없었지만 (2년 전처럼),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한 신부님의 ‘인생역정’은 가히 올해 성체대회의 백미 白眉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그 surfer, rockstar같은 인상을 주는 젊은 신부님, Father Donald Calloway, MIC 란 분이다. Donald란 말만 들어도 신경이 곤두서는데.. 하필이면 Donald일까..

 

알고 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 신부님의 ‘개인 신앙 여정’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정말 처음 알게 된 분이다. 아직도 신부가 되기 전의 ‘말 습관’들이 뚜렷이 남아있었기에 그의 ‘간증’은 더욱 더 믿게 되는 그런 것이었다. 바람직하지 못한 가정환경으로 완전히 ‘패륜, 반항’ 적으로 자랐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는 ‘근본적으로’ 아주 smart한 영혼이었음을 안다. 인상적인 것이.. 잠깐 일본에서 ‘전통적인 일본 조폭’ 야쿠자 생활을 했었다는 사실.. 물론 ‘백인 야쿠자’이었지만.. 각종 비행으로 ‘시설을 들락날락’ 했던 그에게 큰 변화는 부모가 ‘갑자기’ (그의 말에 의하면 하루 아침에) ‘매일 미사 가톨릭 신자’가 된 이후였다. 물론 그가 그런 사실을 세상에서 제일 경멸하던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가 ‘서서히’ 변화하는 과정 중에는 ‘성모님’의 역할이 중심적인 것인데 그에게는 거의 기적과 같은 ‘만남’이었다고.. 그는 그렇게 포근한 성모님의 이끄심으로 기적 같은 변화를 체험하게 되고 결국은 신학공부로 시작을 해서 사제로까지 변한다. 이것으로 그는 ‘머리가 좋은 불량소년’이었음을 알게 된다. 공부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끝에는 그 유명한 Mariology의 세계 권위인 University of Dayton에서 ‘성모신심학’ 학위까지 받고 그의 체험, 경험을 토대로 ‘묵주기도의 기적’에 관한 책을 간행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성모신심의 대부 代父 인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에 버금가는 것이라고 장담을 한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일어났을까? 물론 거대한 보이지 않는 손과 힘이 뒤에서 작용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 제일 큰 역할은 역시 그의 어머니의 기도였다. 그는 자기 어머니를 성 모니카 (St. Monica, 성 어거스틴 St. Augustine, 아오스딩의 어머니)에 비유를 한다. 뒤에서 끊임없이 기도를 하신 것이다. 한때 마약과 rock music에 심취, 찌들어 자살이 다음이라고 장담한 그가 어떻게  Marian Fathers of Immaculate Conception (MIC) 신부님이 되었을까.. 이런 것이 바로 기적이 아닐까? 그는 과연 제 2의 몽포르의 루도비코 마리아를 꿈꾸고 있을까? 자신의 ‘기적 같은’ 개인 체험이 그런 꿈을 가능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다른 speaker 들도 나름대로 독특한 style과 주제로 힘을 썼지만 Fr. Calloway의 ‘체험에 저린 웃음’과는 비교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분의 차례를 제일 마지막에 넣었을까? 비교적 지루하고 졸린 오후 였으니까.. 그 분의 책과 성지순례 안내서는 날개 돋치듯 없어졌고 나는 집에 와서 그 신부님을 더 알아보려는 googling을 기대하고 있다.  그래도 인상에 남는 사람은 power country singer Collin Raye와 함께 출연한 Andrea Thomas라는 젊은 여성, 가창력이 정말로 뛰어났고, 흡사 오랜 전의 Celine Dion같은 느낌을 주었다. Collin Raye의 독특한 power country는 물론 좋긴 하지만 나는 솔직히 말해서 크게 호감은 안 간다. 그의 style은 country와 Italian Tenor를 합친 것 같은 그런 것인데, 성체대회의 분위기에는 어떨까?

 

우리는 ‘전통적’으로 closing ‘vigil’ mass를 하고 오기에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많은 UN총회를 방불케 하는 각양각색의 교우들과 ‘장엄 미사’를 하는 것 독특한 체험이 되기 때문이다. 집전 대주교님의 우렁찬 목소리도 좋고, 각종 언어로 행하는 ‘지향기도’도 색다르다. 하지만 몇 번이고 경험하는 것.. ‘한국어 기도’다. 기도하는 ‘자매님’들.. 기도 끝에 ‘we pray to the lord.’ 를 싹둑 빼버리고 하단을 하니.. 그 말이 나와야 끝난 줄 알고, ‘Lord, hear our prayer‘ 를 하려고 준비했던 모두들 그저 어리둥절.. 당황을 하니..  이것이 누구의 실수인가, 잘못인가.. 왜 꼭 한국 자매님들만 그런 것인가? 한 때는 어떤 수녀님까지 그런 실수를 해서.. 뒤에서 coach하는 staff들, 한국 자매님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 정도다.

 

Convention center의 엄청난 내부 시설과 크기에 버금가는 수많은 사람들, UN 총회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참 이곳에 각종 인종, 나라에서 온 사람들 많기도 하다. 하지만 뚜렷한 것은 역시 Hispanic의 막강한 power다. 물론 수 數적인 것이지만 그들은 모두 family 단위로 참가를 해서 더욱 인상적이다. 그에 못지 않게 Vietnamese power는 더욱 놀랍기만 하다. 한국 community에 비해 이민역사가 그렇게 길지도 않건만 특히 가톨릭 power는 인상적으로 크게 성장을 해서 벌써 커다란 성당이 2개일 뿐 아니라 성소자들도 속출, 신부, 사제, 수도자, 수녀들이 거의 없는 우리들에 비해 그들은 우리들 보다 훨씬 많다. 대교구가 그것을 모를까.. 그들을 위한 따로 program을 마련하고 그들만이 옆에 있는 건물에서 따로 모인다. 물론 closing mass에는 함께 하지만. 왜 월남과 우리는 그렇게 차이가 난 것일까?

 

이 closing mass에서는 다음 해 성체대회의 주제가 발표된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어서, video를 통해서 보여졌는데, 내년 주제 성경구절은 조금은 생소한 것: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 구약, 여호수아기 24장 15절에서 나온 것이다. 2005년 ‘가톨릭 공용 성경’ 에 의하면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인데 문맥을 보면: “전에 살던 이집트의 신을 버리고, 만일 주님을 섬기는 것이 눈에 거슬리면 오늘 누구를 섬길 것인지 선택을 하라” 라는 것에 대한 대답으로 나온 말이다. 한 분이신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우리의 하느님이라는 뜻 같다. 이렇게 2016년 성체대회가 막을 내리고 우리는 traffic 이 비교적 한산한 I-285 North를 질주, ‘유혹을 물리친’ 멋진 결과를 만끽하며 긴 하루의 피로를 푼다.

 

  1. the senior devil in the Screwtape Letter by C. S. Lewis

 

¶  5월 13일.. 2016년 5월 13일 Friday.. 아하 ‘또’ Friday the 13th 인가.. 하였지만 곧 바로 생각이 바뀌었다. 금요일 13일은 맞았지만 문제는 5월 13일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이다. 맞다 바로 Fatima.. Fatima.. Portugal, 1917년 5월 13일인 것이다. ‘묵주의 성모님’으로 일컬어지는 파티마 성모님 정확히 99년 전 5월 13일에 3명의 어린이들에게 발현하셨다. 그리고 확고한 역사로도 자리를 잡았다. 당시 Lisbon의 유력 정부기관지였던 the Seculo에 보도가 되었을 정도로 큰 ‘사건’에 속했다.

기록(그러니까 역사)에 근거한 영화나 책들이 많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흥행성’을 의식한 영화들은 너무나 ‘색깔’들이 끼어있다. 근래에 발견한 ‘고서’ 중에 The True Story of Fatima 가 있는데 이 책은 주로 목격자 중 제일 오래 생존했던 Lucia수녀님의 증언에 의한 것이고 발현 당시 다른 일반인들의 증언에 의한 교회의 치밀한 발현승인 과정을 거친 것이라 거의 정확한 역사서라고도 볼 수 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역사적인 발현이었지만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 의미를 주는 것일까? 발현 성모님의 모든 예언들이 역사적으로 다 실현이 된 것을 보면 ‘등골이 써늘해 짐’을 느낄 때도 있다. 일관되게 비교적 간단한 요구사항을 요구하시는 성모님의 message들, 과연 쉽게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그 message 의 중심에서 초 현대의 세속세계는 내가 보아도 ‘너무나 너무나’ 멀어져 있고 무섭게 멀어져 간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그래도 성모님은 희망의 상징이다. 희망은 원하면 언제나 자비와 함께 우리가 받는 하느님의 선물이 아닌가?

 

 

¶  마리에타 2구역 점심봉사:  바로 며칠 전에 있었던 구역미사에 이어서 곧바로 구역이 담당하는 ‘의무적’인 순교자 천주교회 본당 점심봉사 날이 다가왔다. 이것이 주는 stress로 구역장을 못하겠다는 의견도 많이 있을 정도로 사실 이것은 큰 일이다. 200여 개 이상의 serving을 예상하는 것으로 음식을 준비한다는 것, 한마디로 장난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서 각가지 knowhow가 축적이 되었을 것이고 어느 정도 ‘공식’같은 것도 있음 직하다.

우리는 advanced age라는 이유로 봉사의 의무에서 excuse가 되고 있었지만(우리가 희망하기에), 이번에는 조금 사태가 다르게 되었다. 구역이 둘로 나뉘고 우리가 속한 ‘반’은 숫자가 그렇게 많지도 않고 특히 형제님의 숫자가 안심할 정도가 못되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이번에는 봉사하기로 하고 준비하는 날, 점심 봉사하는 날 full-time으로 일을 하였다. 솔직히, 기분 좋게 일을 해서 그런지 일은 비록 많았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 동안 못 했던 미안한 심정도 어느 정도 위안을 받게 되고,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하지만 ‘호사다마 好事多魔’라고 하던가.. 모든 것이 끝나고 하얀풍차에 몇 명이 모여서 뒷풀이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즐겁지 않은 뉴스, persona-non-grata 를 접하면서 조금은 흥이 깨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었고 main event자체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끝이 나서, 이틀간의 service는 우리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  감사합니다, 예수님! 메주고리예:  매달 2일에 메주고리예에서 visionary Mirjana에게 ‘공개적으로 publicly’ 발현하시는 성모님, 이제는 게으르지만 않으면 Youtube를 통해서 주로 Italian pilgrim들과 함께하는 group이 찍은 video를 볼 수 있게 되었다. 5월 달은 초부터 무언가 바빠서 깜빡 하고 이것을 check하는 것을 잊었다. 이제야 보니.. 무언가 귀에 익은 노래가 들렸다. 바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하는 우리말 노래가 아니었던가. 비록 영어 accent가 섞였지만 아주 정확한 우리말 노래, 그것도 통역을 전담하는 형제가 유창하게도 불렀다. 어떻게 이렇게 우리말 노래가 불려지도록 주선이 되었을까? 추측에 대한민국도 ‘메주고리예 신심’이 상당해서 이곳 메주고리예에서도 인정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완전한 나의 상상, 추측에 불과하지만.. 가능성은 상당히 높을 듯하다.

 

 
성모님 발현 – 메주고리예 2016년 5월 2일

 

¶  The Seekers: I’ll Never Find Another You 1967,  우연히 우연히 이 노래 video를 보게 되었다. 요새 비교적 잊고 살았단 나의 지난날의 추억이 나를 아득~하게 만든다. 나에게도 그런 꿈같던 시절이 있었지.. 하는 조금은 만족스럽고 자랑스러운 나만의 추억들.. 추억의 얼굴들.. 이런 것들이 다 그 당시에 유행했던 것, 특히 ‘유행가’와 연관이 되어서,  뇌세포 깊숙한 곳에서 꺼떡없이 안전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옛 유행가를 그렇게 아직도 좋아하나 보다.

오늘 본 것은 Australian vocal group, The Seekers의 경쾌한 country style ballad ‘I’ll Never Find Another You‘. 가사야 큰 의미가 없지만 이 노래의 lead singer의 목소리가 이 노래의 tone과 style을 그렇게 classic으로 만들었나 보다. Judith Durham, 바로 이 그룹의 간판 격 ‘청순한 tone’.. 몇 년 뒤에 미국의 The Carpenters의 Karen Carpenter 가 바로 이런 독특한 음성의 소유자였고 역시 그녀의 모든 노래들, 주옥같이 역사에 남는다.

이 모두 1960년대 말 경이었다. 그 시절, 그 시절, 어떻게 time travel을 꿈 속에서라도 할 수 있을까? The Seekers의 경우, 그 lead singer, Judith Durham의 얼굴과 자태가 내가 한때 ‘좋아했던’ 어떤 아가씨와 그렇게 닮았다. 키도 그렇고, 얼굴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그 때의 그 노래가 그래서 그렇게 그리운가 보다.

 

 
The SeekersI’ll Never Find Another You – 1967

 

 

 

 

 

eucharist-1

지난 4월 17일, 폴란드 Poland 에서 2년 전에 발생한 성체기적 Eucharistic Miracle 이 공식적인 교회(현지 교구, bishop Zbigniew Kiernikowski 주교) 의 승인을 받았다는 뉴스가 catholic blogger, Philip Koloski 의 보도로 알려지게 되었다. 내가 이 소식을 접한 것은 National Catholic Register newsletter 를 통해서였고, 따라서 그것의 source인 website를 통해서 뉴스의 전부를 읽게 된 것이다.

 

이 성체기적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이 비교적 간단히 보도되었다.

 

2년 전, Poland의 Legnica 교구 본당에서의 일이다. 성체 분배과정에서 축성된 성체가 실수로 바닥에 떨어졌고, 곧바로 다시 집어 올려서 물이 들어있는 그릇에 다시 담겨졌다. 곧바로 성체에서 빨간 흔적들이 나타났다. 법의학 전문가들이 이 성체를 과학적으로 분석을 하니: 그 성체 부스러기 fragments 들은 사람 심장 근육의 조직과 비슷한 것 cross striated muscle로 판명이 되었다. 이 분석은 또한 이 조직, 조각은 사람, 인간의 것이고, 아주 고통을 느낀 그런 것이었다.

 

 Philip Koloski의 성체기적에 대한 논평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번의 ‘기적’이 예전의 것과 다른 것은 예전 것들 (예를 들면 Miracle of Lanciano)은 성체가 축성이 되는 과정에서 피로 변하거나, 축성을 하는 신부사제의 믿음이 부족할 때 변하는 것 들이었다. 이번의 case는 성체가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생긴 것이니.. 이것은 ‘취급 부주의’에 의한 것이다. 이번의 기적은 우리가 성체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정말로 성체가 예수님의 몸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하며, 그에 맞게 조심해서 모셔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교훈이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성체가 예수님의 ‘고통 받았던 몸’이라는 사실을 잊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에 의한 예수님의 message는 아니었을까?

 

나는 이 news를 접하며 또 생각하게 된다. 물론 ‘교리적’으로 분명히 성체는 성체, 그러니까 예수님의 몸과 피라는 것을 안다. 최소한 머리로는 배웠고 인정하고 믿고 안다. 하지만 가슴으로는 자신이 없는 것이다. 고해성사와 더불어 이 가톨릭 전통 교리는 나를 항상 더 고민하게 하고 더 생각하게 한다. 영성체를 할 때마다 겪는 고민과 갈등을 나는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 집중적인 묵상을 하며 준비한 영성체에는 어렴풋이 강한 느낌이 온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은총인가? 일단 믿는다고 ‘선택’을 한 이상 믿고 싶고, 일단 믿음의 문지방을 넘으니 이런 ‘성체기적’을 믿고 싶고 믿는 것이다. 그것이 근래에 나에게는 작은 기적이다.

 

Divine Mercy.. 하느님의 자비.. 작년 말 교황 프란치스코 Pope Francis께서 자비의 희년, Divine Mercy Jubilee year를 선포한 이후 ‘하느님의 자비’라는 말을 참 많이 듣게 되었고, 급기야는 ‘자비의 주일’이 내일로 다가왔다. 사실 자비의 주일 Divine Mercy Sunday는 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 St. John Paul II께서 2000년 부활절에 ‘공식적’으로 선포하신 것이다. 이것은 그 당시 폴란드 출신으로 성인 품에 오른 성녀 파우스티나 께서 생전 1930년대 에 개인적으로 발현하신 예수에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주위의 의심과 질시를 견딘 그녀가 남긴 일기 ‘자비는 나의 사명’에 그 예수발현과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오지만 그녀 생전에 교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진실은 언제고 살아 남는가.. 그녀의 ‘동족’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끈질긴 노력으로 모든 것이 공식적으로 인정이 되었고 세월이 갈 수록 이 ‘자비의 신심’ 열기는 높아만 가고 있고 현 교황은 급기야 ‘자비의 해’까지 선포를 한 것이다.

오늘 Vatican YouTube를 보니 자비주일의 ‘전야’라고 할 수 있는 성대한 기도집회가 베드로 광장에서 열리는 것을 본다. 엄청난 군중이 그곳에서 성녀 파우스티나를 기리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생각을 한다. 하느님의 자비란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하면 ‘사랑’이란 말이 먼저 떠오르고, 그것에 비한 것일까.. 하느님은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낸 자비심을 보여주신 것일까? ‘자비는 나의 사명’이란 성녀 파우스티나의 일기를 보면 하느님의 자비는 원하기만 하면 주신다고 한다. 이것도 은총의 하나일까, 아니면 그것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일까? 그러면 예수님 부활이란 것도 어떻게 보면 하느님의 자비의 극치일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구약시대, 유다인들에게 그렇게 무섭던 하느님이 어떻게 예수시대에 와서 자비의 하느님으로 변하셨을까..

 

¶  오늘 아침에 벼르고 벼르던 shopping을 ‘혼자서’ 하였다. 오랜 동안 Internet으로 shopping을 했던 tool retailer, Harbor Freight Tools, 몇 년 전에 서서히 이곳에 하나 둘씩 retail store가 생기더니 요새는 엄청난 기세로 이곳 저곳에 생기고 있는 ridiculously ‘low’ price tool retailer, 이곳은 사실 나를 ‘살려준’ 곳이다. 이곳이 없었으면 나는 pro들이 쓰는 tool들 하나도 못 샀을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짐작에.. 어떤 Asian immigrant가 Chinese source와 ‘결탁’해서 직수입한 junk tool들을 파는 곳으로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물론 99.9999% Made in China는 분명히 맞지만, 우려한 대로 직수입해서 그대로 파는 방식이 아니고 이곳에 따로 Quality control 을 책임지는 lab을 만들어서 나름대로 품질을 보증하고 있는 것이다. Owner도 white 미국인이지만, Home Depot와 같은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싼 것이 좋은 것‘이란 철학으로 밀어 부치는 경영철학.. 싸지만 그런대로 쓸 만한 것.. good enough.. 철학이다. 사실 Home Depot에가서 쓸만한 tool들을 보면 눈이 나올 정도로 비싸기만 한다. 전통적인 미제 품질을 고수하기에 그럴 것이다. 문제는 그런 것들.. pro들 에게 좋지만 weekend handyman같은 사람에게는 overkill인 것이 태반이다. 그러니까.. 나와 같은 weekender 나 조금 돈이 없는 pro들을 겨냥한 것이다. 얼마 전에 드디어 고장인 난 (바람이 새는) 4-galllon air compressor를 대신한 것을 찾던 차에 오늘 가서 직접 만져 보기도 하니 참 감개무량하기도 했다. Internet으로 order하면 그럴 수가 없지 않은가? 이곳의 위치가 사실은 편한 곳이 아닌 north Cobb, Kennesaw 라서 조금은 불편하지만 오늘 가서 본 인상이 괜찮아서 급하고 덩치가 큰 것들은 이곳에 와서 ‘만져보고’ 살 생각도 했다.

 

보나 자매님과의 ‘생각하기 싫었던’ 작별시간은 시계처럼 어김없이 왔고 사랑하던 가족, 열심히 보살피던 레지오 도우미 자매님들과 아쉬운 이별을 해야만 했던 연도, 장례미사, 운구, 장지동행 등이 모두 큰 차질 없이 끝났다. 허탈감, 피로감, 아쉬움, 슬픔 등이 뒤섞였던 며칠이 오늘로 다 막을 내렸다. 끈질긴 기도와 몇 개월에 걸친 레지오 ‘도우미’ 자매님들의 정성스런 방문도, 끊임없는 카톡의 chatter도 오늘로 다 끝이 났다. 또 한 명의 영혼이 저 세상, 하느님의 영역 domain 으로 간 것이다.

 

언제였나.. 약 1년 반 전 한참 찌듯이 덥던 한여름이었나.. 그 보나 자매님을 처음 만났던 것이.. 하 미카엘 본당신부님과 연숙이 보나 자매님 댁 병자성사 주러 처음 방문했었고 그 때부터 우리 둘의 비 非 규칙적인 봉성체 방문이 시작되었다. 병자같이 않게 항상 재잘거리고 명랑하고 지나치게 순진하게만 보이는 ‘젊은’ 자매님이었다. 그 나이에 어떻게 그런 ‘치명적’인 두 가지 병고를 10년도 훨씬 넘게 짊어지고 살았는지 솔직히 상상하기가 힘이 들 정도였다. 본인은 물론이지만 가족들의 견디기 어렵게만 보이는 간병 노고도 너무나 안타깝게만 느껴지는 그런 상황, 운명이라고 하기에는 어떨까? 자매의 남동생까지 몇 년 전에 병으로 타계를 했다고 들어서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굳건한 믿음을 가진 어머님이 계시지만 가까이 살지를 못해서 그저 전화만 하시는 정도였다. 그러니까 모든 간병은 남편 형제님과 남매 자녀가 운명처럼 여기며 하고 있는 것이었다. 욥기가 생각이 날 정도로.. 왜 이 영혼들에게 이런 고통이 왔을까..

 

이 요한 본당신부님의 push로 레지오에게 정기 환자 방문 ‘도우미’ group이 3개월 전에 구성된 이후 운명하던 날까지 매주일 2~3회 ‘도우미 자매님’들이 정기적으로 방문, 말동무와 간단한 식사 등을 보살펴 주었다. 금전적인 도움이 금지된 레지오의 봉사는 아무래도 ‘신앙대화’, 그러니까 영혼을 간호하며 돌보는 일인데, 그것이 좀처럼 쉽지 않았다. 이 자매님.. 절대로 죽음을 정면으로 대하지를 못했다. 그러니까.. 끝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에 대한 언급이나, 대화를 못했던 것이다. 조금은 예외적인 case라고도 생각이 되었지만, 생각을 해 보니.. 왜 안 그렇겠는가? 쉰 살도 안 된 나이에 쉽게 죽음을 대할 용기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가급적 ‘저 세상, 하느님의 세상’에 대한 대화를 하려 했지만 그런 approach가 쉽지 않다는 것을 배운 기회가 되기도 했다.

거의 단장 급의 간부 자매님들로 구성된 팀이었지만 모두 다른 인생, 다른 기술, 다른 성격을 가진 관계로 항상 매끄러운 teamwork은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참 ‘멋진 노력’을 했다고 나는 보았다. 운명 시에 신부님도 재빨리 모셔와서 보나 자매님 정식으로 사제의 전대사를 받으며 평화스럽게 임종을 했다 (우리는 traffic jam에 길이 막혀서 2시간 뒤에나 도착을 하였지만.) 관심을 많이 쏟으신 관계로 신부님의 ‘다정스런’ 장례미사도 잘 끝날 수 있었다.

 

오랜 기간을 예상할 수 없는 중병이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느끼는 것..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놀라움.. 암만 짐작을 해도 누가 운명의 정확한 순간을 알 수 있겠는가? 하느님만이 아신다고 하니까..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은 표정으로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 노력은 참 눈물이 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 그 형언할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주위의 가족들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안도감도 어쩔 수 없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 동안 정이 들었던 자매님.. 숨겨놓은 눈물을 더 이상 감출 용기가 나지를 않았다. 자매님의 영혼, 평화로이 받아주소서..

 


 

 

Nearer, My God, to Thee – André Rieu

 

 

(Extraordinary) Jubilee of Mercy, (특별)자비의 희년 喜年 2016년 (2015년 12월 8일 부터 2016년 11월 20일까지) .. 작년 말에 교황 프란치스코  Pope Francis 께서 발표했던 것, 올 들어 가톨릭 교회와 신자들의 ‘화두 話頭 talking point’ 가 되었다. 처음에 이 ‘뉴스’에 접했을 때 나는 그저 덤덤하기만 했다. 그렇게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자비의 희년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그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고 나와는 어떤 상관이 있는 것일까?

 

솔직히.. 몇 년 동안 ‘혼신을 다해서’ 나는 ‘한때 거의 버렸던’ 가톨릭 믿음을 찾아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고 이제는 자신까지 얻었다고 조심스런 안심까지 했지만, ‘이런 생소한 말’들에 접하며 다시 ‘나는 역시 아직도 무식하구나1‘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옴을 느낀다.

 

어디선가 들어보았는지 확실치 않은 이런 ‘희년’이란 말도 그렇고 게다가 ‘자비의 희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거기다 ‘전대사 全大赦 indulgence’를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모두 들어보았던 단어들이지만 확실한, 자세한 의미는 사실 나는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언젠가 어떤 글, 사진에서 고 김수환추기경 사진의 설명에, ‘2000년, 대희년 great jubilee 의 추기경’이란 말을 기억한다. 이 ‘대희년’이란 또 무슨 말인가? ‘큰 희년’이란 말인데..

 

이러한 나의 ‘교리, 전승, 가톨릭 신심 문화에 무식한 배경’ 속에서 올해 ‘진짜’ 희년의 소식을 코 앞에서 접한 것이다. 어쩔 것인가? 예전처럼.. 속으로 ‘아~ 그렇구나..이런 것이 있었구나~’ 정도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이것들이 무엇인가, 더 늦기 전에 한번 알고나 죽자’하고 ‘무조건’ 덤빌 것인가? 결과적으로 근래2 나의 mottos가 된 ‘It’s now or never, don’t think twice, don’t look back‘를 다시 한번 발동해서 나는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알아보는 (study) 노력을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그 노력의 백미 白眉 는 3월 14일, 화창하고 써늘했던 조용한 월요일 우리 “자비의 모후” 레지오 단원님들(2쌍 부부 포함)과 함께 방문했던 아틀란타 교외 Conyers에 있는 Holy Spirit Monastery ‘자비의 문 doors of mercy‘ 통과에서 이루어졌다.

 

Conyers 수도원 '자비의 문'

Conyers 수도원 ‘자비의 문’

 

이번 우리들의 ‘Conyers trip 쾌거’는 사실 우리 자비의 모후 레지오 쁘레시디움차원 ‘공식 활동’의 이름으로 이루어졌지만 대다수의 찬성에도 힘을 입은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새롭다. 또한, 이번 기회에 나는 지금 우리에게 다가온 자비의 희년, jubilee of mercy의 반포배경과 그 이전에 있었던 크고 작은 희년 들의 역사적 배경도 자세히 알게 되었다. 또 하나의 ‘무식 ignorance stupid point’가 사라지는 기회가 되었다.

 

평화스러운 수도원

평화스러운 수도원

 

이번의 자비의 희년은 Extraordinary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그 이유는 정기적으로 25년마다 찾아오는 희년과 달리 특별하게 제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특별 자비의 희년은 로마 바티칸 만이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각 교구마다 지정된 성전, 역사 깊은 성당에 ‘자비의 문’이 설정이 되었다. 이 자비의 문을 통과하면 전대사 全大赦를 받을 수 있는데 부수 조건은: (1)  교황님의 지향기도, (2) 고해성사, (3) 영성체, (4) 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함, 등이다.

 

나는 이제까지 이런 ‘교황이 선포하는’ 전대사 같은 것에 큰 의미나 흥미를 느낀 적이 사실 없었다. 솔직히 핵심 교리적인 것 빼놓고는 믿어지지도 않았던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교리의 한가지는 믿고 다른 것은 안 믿는다는 것 cafeteria Catholic 은 어불성설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믿으려면 다 믿고 안 믿으려면 차라리 믿는다고 ‘까불지 말라’는 뜻이다. 이것이야 말로 ‘무조건’ 믿는다. 전대사를 받는다면 그야말로 이제까지 ‘쌓였거나, 남아있는’ 나의 죄는 모두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간단하다.

 

생애 처음으로 전대사를 받은 우리들, 반응은 확실치 않았지만 우리는 조금 남들과 다른 ‘양도’를 하였다. 전대사를 남에게 주어도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이번에 알게 되었다. 나는 돌아가신 어머님께 양도를 하였고 연숙은 작년에 선종하신 배 베로니카 자매님께 양도를 하였다. 결과적으로 나와 연숙은 우리 자신이 전대사를 못 받은 셈이 되었나.. 하지만 상관이 없다. 이것이 우리를 더 기쁘게 한 것이니까…

 

3월의 어느 평화스러운 월요일, 신앙과 사명감으로 뭉친 레지오 단원 그룹이 이렇게 자비의 해에 선포된 자비의 문을 ‘통과’ 하려고 유서 깊은 Conyers의 수도원을 방문한 것,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정오에 있는 수도자들의 기도의식에도 참여를 했고, 준비해 간 음식으로 한적한 곳에서 점심식사를 즐긴 월요일 하루, 너무나 좋았다.

 

 

 

  1. 나 말고도, 이런 가톨릭 전통, 신심들에 무식한 교우들 참 많이 있을 것이다.
  2. 최소한 6년 전부터, 특히 레지오를 시작하면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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