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nic Table Torched, Hawk Sighted, 할배 Blues

늦은 오후 ‘열대성’ 비가 지나간 직후 backyard 먼 곳에 있는 birdie apartment (3 rooms) 위쪽에 반가운 모습이 보였다. 급하게 사진을 찍긴 했지만 아주 선명하지는 않았다. 가끔 찾아오는 이 손님은… 그렇구나… hawk (red tailed) 그러니까, ‘매’ 인가? 아마도 요새 급증한 토끼 냄새를 맡았는지… 노루나 사슴도 가끔 보이는 이 동네의 뒷마당들, 그렇게 나무를 자르고 잘라도 역시 아직도 다른 곳에 비하면 거의 원시림 수준인데, 솔직히 나는 이 지역의 이런 모습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구나…

지난 4월초부터 out-of-service 되었던 mini picnic table의 수리가 일단 끝났다. 15+ 년 동안 rotting으로 상傷한 부분을 새로운 lumber로 교체를 하고 paint를 하려는 순간, ‘burning wood’ technique ‘그을음’ 생각이 났다. 이렇게 torching 화염으로 그을린 나무목재의 모습이 멋지기도 하고 습기나 해충으로부터 썩는 것도 지연시키지 않던가? 과연 겉모습은 예상대로 은은한 자연의 느낌을 준다. 하지만 natural elements에 의한 피해 상태는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가봐야 알 것이고, 결국은 paint job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목재에 이런 torching, burning technique으로 수명이나 예술성을 더해주는 것, 이미 일본에서 오래 전부터 쓰이던 것이고 이름도 아예 Shou Sugi Ban [이것의 漢字는 무엇인가] 이라고 있는데 과연 그 역사적 사실이 사실일까? 일본 아해들의 옛 것들은 일단 대륙, 반도에서 건너갔을 것이 거의 분명한데, 아쉽게도 서양 아해들과 먼저 접촉이 된 것은 거의 이런 일본용어와 결부가 되어있으니 더 할말은 없다. 대원군 할배여~  서세동점 西勢東漸 위기의 시대에 어이하여 며느리와 싸우시느라~~ 그 사이 일본아해들은 명치유신으로 눈깜짝할 사이에 근대화를 이루었는데…

‘할배’ 라고 자조 自嘲하는 우리 또래들, 특히 한국의 동창들, 나는 이런 자조적인 ‘꼰대, 할배’라는 말 크게 생각을 하지 않고 듣곤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스라치게 놀랄 때도 없지 않다. 정말 우리가 할배, 꼰대들이 되었단 말인가? 그렇게 볼품없을 거라고 상상하며 살던 시절들이 다 지나갔단 말인가? 꿈이라면 깨고 싶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확실히 우리들은 심리적으로 ‘젊었던 시절과 할배 시절의 모습들’이 엄연히 동시에 현존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이 사실은 자연스러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최근에 갑자기 늘어난 ‘육체적 일들’, 일이 끝나고 느낌이 확실히 다르다. 비록 일반적인 건강상태가 아주 좋은 것은 사실이라도 작업 이후의 피로감이 회복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슬픈 사실… 전에는 실감을 못하던 현상이 아닌가? 어떤 때는 Tylenol이 그리워질 정도의 피로통증까지 몇 시간 지속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나이 탓인 거다. 쉬면서 relax하면 자연스레 사라지는 현상, 그래 나쁘지 않다. 쉬라는 ‘몸의 충고’가 아닌가.

덕분에 두어 시간 쉬는 동안 새로 단장된 ‘new’ family room의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 TV (주로 YouTube classic movies 주로 film noir)를 보는 재미를 새로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 거의 없었던 나의 모습이라고 할까… 이전까지는 거의 예외 없이 desk에 앉아서 (computer) screen앞서 시간을 보내고 쉬고 했는데…  일단 computer screen에서 떠난 것만 해도 커다란 변화요, 새 세상의 발견처럼 느껴진다. 전혀 나쁘지 않다.

오늘 늘어지게 다리를 뻗고 졸듯 말듯 ‘그래도 전부를’ 본 영화는 1965년 경 James Stewart주연의 The Flight of the Phoenix란 것, 오래 전에 (old tube) TV 에서 보았던 것으로 거의 모든 이야기 줄거리는 기억을 하는 것인데 지금은 YouTube로 ‘거의’ HD 로 보는 것이니 느낌이 정말 다르구나..  사막에 고장으로 불시착한 석유회사 운송기를 필사적으로 수리를 해서 다시 나르게[짧은 거리지만] 하는 ‘믿을 수 없이 기막힌’ 과정을 그린 것이다.  수리를 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수리라기 보다는 아예 기존 ‘철물’을 뜯어서 거의 새로 비행기를 만드는 처절한 노력이 코믹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정확히 1주일 만에 아침미사, gym엘 가는 날..  잠깐씩 ‘쉬고 싶다’라는 무서운 유혹이 넘실거린다. 안 나가는 것 자체가 편하고 행복하게 느껴지는 것, 그것이 유혹이요 공포다. 이것에 잘못 걸려들면 나는 20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성모님이시여, 저의 손을 놓지 마세요~~
7월도 20일이라고? 웃긴다 웃겨… 어떻게 벌써 7월의 2/3가 가고 있단 말이냐? 어떻게? 웃기는 건 바로 나다, 그것이 그렇게 새롭고, 놀랍냐, 병신아! 그래도 아직도 아직도 아직도… 열흘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면 어디가 덧나냐?
Sonata Cafe까지 곁들인 오늘의 아침미사와 YMCA gym 외출은 비록 오전 전부가 필요한 외출이었지만 분명히 정신적으로 큰 에너지를 재충전 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집에 오는 길에 느낌이 ‘오늘은 외식이나 Kroger에서 무엇이라도 사다 먹자’ 라는 의견을 서로 예상했는데, 의외로 그것은 오산이었다. 대신 집에서 가정주부가 만든 볶음밥 의 멋진 점심 식사가 되었다.

Ozzie Trail, Four Miler…

오늘은 다른 때와 조금 다른 route을 골라 걸었다. 동네 tennis court에서 Ozzie Trail (Azalea Spring Apt.로 가는 길), 그리고 그곳에서 Fall Apt (East Side) 로 가서 거의 떨어져가는 poop bag을 3장 얻어서, 그곳에서 거꾸로 Ozzie Trail을 거쳐 집으로 오늘 길… 이렇게 해서 오늘은 YMCA indoor track과 함께 거의 4 mile을 걷게 되었다. 나의 하체는 앞으로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하는 노력이 아닐지…  lower body, 하체, 하체… 이 나이에 넘어지면 큰일, 아니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무섭게 습하고 더운 날씨, 다행히 구름으로 대부분 덮인 덕분에 산책을 하는데 오히려 편했다. 더욱이 가끔 빗방울도 뿌렸으니… 얼마나 멋진 7월 중순을 살고 있는가?  언제나 목이 빠지게 동네 산책을 기다리는 Ozzie, 우리와 정이 들대로 들어가고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인데… 아~ 언젠가는 이별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기운이 빠진다.

Low 70s 와 low 90s 에 머무는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대표적, 전형적 7월 여름의 모습이 계속.. 습한 새벽은 까마득한 옛날 1960년대  서해 앞바다  영흥도 여름피서 민가 초가집 마룻바닥의 그때를 연상하게 한다. 모기에 밤새 뜯기며 옹기종기 모여서 새벽 잠을 자던 그 여름,, 한 여름… 아~ 이제 서서히 ‘복 날’이 시작되는 때가 되지 않았는지, 초복이 언제이던가?

새벽 6시 정각에 일어나 두 pet friends (Ozzie, Izzie)를 돌보고,  도리도리(목운동), 수난의 시간 매일기도가 끝나고, 며칠 째 고생하는 팔뚝의 가려움을 달래려 Pain Zero를 바르고… 오늘 연숙이 제대로 일어나면 ‘또 오랜만에’  우리 정든 동네성당과 운동을 하러 외출… 정말 우리 이런 하루 하루 삶, 보람이 있고 신나는 것은 아는 듯하지만, 사실은 남들도 거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상한 비교를 하는 것은 유혹에 불과하다. 모든 사람들 크게 차이가 없을 것이다. 외로운 것도, 신나는 것도, 지루한 것도, 희망과 우울이 교차하는 것도… 아마도 거의 마찬가지 현상일 것, 어찌 또 잊으려 하는가?

지나간 해의 7월 일지를 보니.. 하나도 별로 달라진 삶의 모습이 아니다. 가족들과 가끔 어울리는 것, 특히 Ozzie와 함께 산책을 하는 기록이 예외 없이 매달 보이는 것을 보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그야말로 현재 ‘정상적 삶’인 것이다.  이상한 기대를 상상하는 유혹에 빠지지 말자!

불면의 후유증을 뒤로하고 오늘은 거의 일주일 만에 아침 매일 미사엘 갈 수 있었다. 일주일 3회 정도 올 수 있으면 좋으련만, 참 이것이 옛날처럼 되지 않으니… 무엇인 문제인지.. 아침미사가 주는 활력소는 사실 대단한 것임을 아는데… 옛날, 그러니까 레지오 시절, 아침미사는 기쁨이고 보람이었다. 그것만 기억하면 된다. 그저 좋은 것, 성스러운 것, 은총인 것…

 오늘은 Sonata Cafe대신 McDonald’s 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모처럼 먹는 No. 2 menu는 아직도 맛이 있었으니… 우리의 입맛인가, 아니면 원래부터 그랬는가… 다행이 아닌가, 우리의 입맛이 이 정도인 것이… YMCA도 그런대로 할 만큼 했고, 돌아오는 길에 Kroger에서 나의 콜레스테롤 약 refill을 받았고, sushi, 과일, croissant  등등을 샀다. Izzie의 wet can food를 다른 것을 시도하려고 2통을 사왔다. 이것은 현재의 것보다 양이 많은 큰 can이라서 값이 싼 셈인데… 이것을 어떻게 먹을지 궁금하다.

Green Independence Day

새벽의 이 분꽃 ‘웅덩이’는 정말 초록 중의 초록의 향연이 아닌지… 올해는 어떻게 이렇게 분꽃들이 대성황을 이룬 것일까? 대신 수국 류는 전혀 꽃을 피우질 못해서 이것이 자연의 평형, 균형, 중용 원리인지도…

아~ the Fourth of July, Independence Day (esp. for me & us!)  나에게 미국이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과연 이곳은 나의 나라, 땅, 냄새가 느껴지는 곳이 되었는가? 고마워해야 할 하느님이 주신 은총이고 선물인가? 이곳에 나의 뼈(가루)를 묻을 준비가 되어가는가? 250년 ‘평등자유민주’의 실험대 속에서 우리와 후손들도 한 몫을 하고 있는가? 반대편에 있는 나의 고향은 이제 어떤 곳이 되어가는가? 만감이 교차하는 7월 4일… 성모님, 모든 존재들을 축복하소서… 그 모습들과 상관없이, 은총을 전구해주소서…

매년 이날은 대부분 둘이서 charcoal barbecue를 deck에서 굽고 먹으며 보냈는데, 올해는 조금 다른 것이..  ‘불고기’를 charcoal grill로 구워서 먹는다는 것인데.. 솔직히 불고기를 잊고 산 세월이 꽤 길어서 맛도 잊을 지경이 되었기에 올해는 조금 그 맛을 되찾고 싶었다. 예전의 불고기 맛에 대한 기억이 나는 대부분 그렇게 좋지 않아서 그런데, 이번에 다시 먹어본 것은 확실히 그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기회가 되었을 정도로 맛이 있었다… 연숙의 불고기 양념 솜씨, 잊고 살았지만 이번에 보니 아주 맛있는 다른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잠깐 내린 비, 이후의 모습은 역시 7월의 그것… 감사합니다…

알맞게 흐리고 비가 내린 집 주위의 모습은 그야말로 초록 중의 초록의 정수 精髓처럼 보인다. 이제 진정한 2023년 초여름이 시작된 것인가? 평화로운 것과 하루하루 그 무엇을 향해 다가가는 짜릿하고 두려운 압박감이 함께 섞여서 매일 매일 나를 일깨운다. 그날, 그날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하지만 나는 ‘승리’할 것이다, 이길 것이다, 축복을 받을 것이다!

어제는 비록 뜻밖의 나라니 식구 방문에 당황을 했지만 그런대로 오랜만에 바깥에서 공구들과 함께한 시간들의 덕분에 그 동안 원했던 일, garage side door repair, paint를 눈깜짝할 사이에 끝내고 나니 후유증으로 하체에 잔잔한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즐거운 고통’중의 하나였다. Tylenol 을 먹었으면 간단히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혈압, 혈압… 요새 우리 둘 모두 이 수치에서 힘을 얻는다. 어찌된 일인가, 우리 둘 모두 정상혈압치가 매일 혈압계에서 보이는 것이다. 특히 나의 것은 완전한 숫자 120/80 에서 머물고 있는데, 연숙이도 거의 마찬가지다. 우리들 크게 바꾼 생활습관도 없고 약을 바꾼 것도 없지 않은가?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 역시 life style 이외에 다른 것이 없지 않은가? 물론 안 보이는 손길은 100% 가능하긴 하지만, 또 그런 은총이란 말인가? 이건 과분한 것 아닐까? 이제 혈압이란 것, 많이 익숙해졌기에 이런 흐름도 알고, 느끼게 되었으니 얼마나 큰 발전인가?

하지만 역시 며칠 전의 ‘lab test 검사’ 결과에 신경이 더 쓰인다.  내일 중에는 분명히 report가 올 것인데… 과연 전에 보았던 ‘정상수치’들 이번에는 어떤 놀람이 있을까… 특히 연숙의 것… 성모님의 손길이 아직도 함께 할 것인지…

어제 손을 보았던 garage side door, 몇 십 년 만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겨우 kickboard와 paint를 한 것인데 어쩌면 이렇게도 느낌이 다를까? 이것이 지난 이틀간 노동의 보답이구나… 고맙다… 하지만 이 작업이 끝나지는 않았다….  바로 문 밑에 보이는 오랜 세월의 게으름의 결과, 이 문 앞에 수십 년간 떨어진 빗물로 썩어 문드러진 문지방.. 이제 나의 눈에 조금씩 관심을 이끈다. 이번 기회에 어떤 수를 쓰더라도 ‘고치고’ 말 것이다.

오늘 한 것도 별로 없는데 왜 이리도 하체가 피곤한지… family room sofa에 편하게 누웠는데… 일어나 앉을 기분이 없었다.  집 근처인 듯한 곳에서 요란한 불꽃놀이, 어찌나 요란하던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잠을 청하게 되었으니…..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드디어 유난히도 나의 머리 속을 맴돌던 6.25 바로 그날, 그것도 일요일, 오늘은 유난히 더 생각하며 보내면 어떨지… ‘오늘의 성인’ 말씀은 우연히도 ‘기억보다는 망각, 용서’의 주제가 나오고… 그래, 조금 더 적극적으로 침착하게 반성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여름철 같은 날씨로 돌아온 연중 12주 일요일이 공교롭게도 1950년 그때와 같은 일요일이 되었다. 73주년이고, 7월 27일의 정전 기념일은 70주년…  우리의 한국본당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은 한국 예수회의 관할 하에 있어서 그런지 (공식적으로 이곳은 아틀란타 대교구의 한 본당이지만) 전례는 대한민국의 그것을 따르기에 오늘은 6.25 동란과 직접 연관이 된 ‘민족화해’가 주제다. 6.25에 대한 느낌이 우리세대보다 10년 정도 차이가 나는 ‘젊은 사제들’, 가끔 색다른 각도의 조국, 이념, 역사관을 만난다. 이런 부분이 사상 이념 차이 하나로 동족을 잔인하게 죽였던 6.25 , 그것의 끝 자락을 경험한 우리들에게는 항상 예기치 못한 ‘지뢰밭’ 같은 위험한 실망과 놀라움을 주기도 한다.

올해 6.25 동란과 나의 Landing 50년이 거의 같은 시기에 맞물려 좀 더 이성적, 아니 심지어 영성적으로 느끼려고 했지만 역부족인가, 큰 깨달음은 나에게 아직도 찾아오지 않는다. 각종 이산가족들, 특히 전쟁고아들의 삶을 다시 보며 그런대로 나는 비교적 덜 비극적인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후회, 울분, 안타까움, 절망감 등과 싸우던 내 생애의 늦은 한때도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의 앙금이 아닐까 추측도 한다.

비록 Landing 50년의 짧지 않은 diaspora의 삶, 만약 6.25라는 세 숫자가 없었다면 과연 현재의 나의 이런 ‘방랑’ 인생이 과연 있었을까? 상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전쟁이 안 일어났다면 개인 역사를 제쳐두고라도 과연 대한민국, 남한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역사학자들은 이런 what if scenario에 대해서 연구해 보았을까?

오늘 아침 성당 가는 길은 예외적으로 괴로운 것이었다. 제시간에 출발했지만 성당에 도착한 시간은 미사가 시작되어 독서가 시작될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기억에 미사에 안 갔던 날은 있었지만 늦게 도착한 적은 근래에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모임도 늦게 도착하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하고 심지어 두려워하는 나에게 오늘과 같은 이런 때는 괴로운 순간들이다. 차 사고, 차 사고, 어찌 I-258 N는 그렇게 사고가 많은 것인지… 그것도 traffic이 한산한 일요일 이른 아침에.. 분명히 ‘병신XX’들의 speeding 탓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옛날 옛적 고국에서 시내 버스를 타면 운전사 옆에 붙어 있는 작은 그림글씨카드에 천사처럼 보이는 어린 소녀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 옆에 ‘오늘도 무사히’라고 쓰여있었던 기억, 그 모습이 요즈음 이런 교통 사고 현장을 지날 때마다 생각이 나곤 한다. 이런 차 사고는 우리와 그렇게 먼데 있는 것이 아님을 알면 우울해지곤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피할 수가 있겠는가, 그것이야말로  타고난 운명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지…

푸틴과 프리고진의 대결은 결국 무승부로 끝나는 모양인가… 역시 러시아는 알 수 없는 나라인가, 현재 그들은 어떤 이념으로 살아가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무엇이 그들에게 제일 중요한 삶의 기준인지 알 수가 없다. 현재 그들에게 종교 자유는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정치만 제외하고 다른 권리들은 다 보장되어 있는가?  모든 것이 법치, 합법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절대로 믿을 만한 것이 못됨은 나치 히틀러 독일을 보면 알 수가 있으니… 결국 그런 파국이 다시 세계를 못살게 굴기 전에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역시 좋으나 싫으나 현대인의 삶의 기준은 dollar나 마찬가지로 Pax Americana에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드디어 이재욱 전 주임신부님이 이곳에 오신다는 ‘예보’가 주보 공지가 되었다. 나는 물론 전에 신부님의 카톡으로 알고 있었지만 조금 더 자세한 소식인지… 7월 초에 오셔서 7월 중에 성당에서 1일 피정을 지도하신다고.. 그것이 전부가 아닐 듯하다. 우리와 이재욱 신부는 우리 성당생활에서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함께 했던 case여서 특별히 우리의 관심이 간다. 앞으로도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데, 과연 그것이 생각처럼 쉬울지…

오늘 아가다 자매님이 팔 골절 수술을 받으시고 따님 댁으로 들어가셨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치매기가 심해지는 것 같다. 기도는 하고 있지만, 직접 찾아보지 못하는 이런 상황이 불만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아픈 부모를 간병하는 자녀들의 고충, 그것은 거의 고문과 같은 것일진대.. 장래 우리가 주위의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되면 어떻게 할 것이며, 우리들의 부모들 제대로 모시지 못한 우리들의 과오, 처지는 어떻게 앞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니 어떨 때는 눈앞이 캄캄해진다… 기도, 기도밖에 해결책이 없는 것일까?

오늘 아침 식사 메뉴는 결국 Sam’s Club의 pizza로 해결이 되었다. 내가 돌아본 곳은 역시 cat wet can food를 파는 곳, 그곳에서 big can, big box 그것도 60개나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 가격도 현재 먹는 것보다 저렴하기에 앞으로는 이것도 섞어서 주면 어떨까…

밭에서 따온 고추, 오이가 곁들인 미역국 ‘동네방네’ 점심을 감사히 받는다. 유난히 많이 재잘거리는 연숙이, 무엇이 그렇게도 신나는가, 모든 생각을 다 말로 표현을 하는 그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무섭게 작열하는 태양과 더불어 치솟던 90도 이상의 더위가 한 순간에 고개를 숙였으니, 바로 이것이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곳의 ‘여름 비’가 아닌가? 깜짝하고 내리 쏟아지는 이곳 특유의 여름 비, ‘천문학적 여름’이 시작되자마자 이렇게 계절의 선을 보이니.. 하지만 앞으로 ‘무서운 더위’가 올 것 같은 예보와 느낌은 체질적으로 나를 긴장시키기는 하지만 이제는 의도적으로 이런 stress와 맞서서 싸우련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무섭고 듣고 싶지 않단 말인가? 네가 무엇이길래…

Duck Donuts Father’s Day 2023

아침 일찍 주일미사엘 갈 때 연숙의 ‘Happy Father’s Day!’ 언급이 없었으면 나는 거의 오늘이 그런 날이란 사실조차 잊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손주들이 있기에, 할아버지 입장에서,  Father란 말부터 퇴색된 느낌도 들고, 예전에 귀찮을 정도로 신경을 써 주던 ‘꼬마시절’ 딸들의 관심도 삶의 세파에 밀려서 이제는 조용하기만 하다. 우리 동네 성당에서는 Mother/Father Day 가 되면 신경을 써서 해당자 (엄마, 아빠들)을 기립시키고 Father’s Day때는 ‘신부님까지’ 대상에 포함을 해서 많은 교우들이 박수를 쳐주었던  생생한 기억도 있었다.

성당에서는 Father란 말이 자식들을 가진 아빠도 있지만 ‘영적인 아버지’ 바로 신부님도 함께 이날을 맞는데, 한국문화권에서는 아버지 날이 따로 없는 전통 때문이기도 하고 한국 문화권에서 파견된  임시거주 신부님들은 이날들에 대한 느낌 정서와 배려가 거의 없는 편이어서 이곳에 오래 산 우리들로써는 역시 조금 서운하기도 하다. 내가 강론 신부였다면 아마도 성경의 근거한 Father 의 모범상을 찾아 언급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그런 바램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현지에 맞게]정해진 듯한’  신자들의 기도[문] 속에 ‘아버지들을 위한 기도’가 포함되어 있어서 가느다란 안도감을 되찾기는 했다. 다시 드는 생각, 우리보다 월등 [현지화에] 앞서가는 베트남 순교자 성당에서는 어떻게 했을까 하는 잡념…

약간 쓸쓸하기도 했던 기분이 그래도 Father’s Day라고 새로니 부부가 유나와 함께 우리 동네 근처 Johnson Ferry Road에 있는 specialty (gourmet) donut shop에서  ‘DUCK DONUTS‘을 사들고 찾아 왔다. 내가 도넛을 좋아하는 사실을 알기에 이런 것을 고르기가 쉬웠을 듯하다. 특별 order를 한 것이라서 속으로 ‘무척 으리으리’ 할 줄 알았는데,  군침 도는 Dunkin‘, Kristy 의 그것에 비해서 오히려 맛이 없게 생겨서 미루고 있다가 ‘혹시나 해서’ 나중에 먹어보니… 와~~ 이것이야말로 special donut 임을 알게 되었다.

6.25 발발 직후 ‘빨갱이XX’들에게 납치가 되어 생사도 알 수 없이 험한 세상에서  일생을 살아온 나로써는 솔직히 닮고 싶은 ‘아버지 상’이 없다. 그저 ‘소설 같은’ 상상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도 문제가 생겼을 때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본능적으로 알 수도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며 쩔쩔매기도 했다.  세월의 덕분에 어려운 시기는 지났지만 역시 후회, 후회는 아직도 남아있지만,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모습을 보면서도 아빠, dad, daddy, appa, abba 라고 부르는 자식들이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해야지…

오늘은 평범한 주일일 뻔 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아침 미사로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기대 했던 뒷자리 마리안나 자매님은 안 보이고 뜻밖으로 언젠가 보았던 부부의 뒷모습이 보였다.  반사적으로 우선 놀라기는 했지만 생각 없이 다가가서 아는 척하고  싶은 생각이 느껴지지를 않았으니.. 이제는 이질감까지 느껴지는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나의 근본적인 생각을 조금은 바꾸는 것이 연로한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은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어제 시작한 track lighting, 오늘 test run을 해 보았는데 생각보다 ‘극적인 도움’은 느껴지질 않았다. 각도, 강도, 배치 등으로 멋지게 환하게 도움이 되는 조명이 될 가능성은 아직도 충분히 남아 있으니까, 여유를 두고 연구를 해 보자. 이것이 만족스러우면 아마도 이 ‘옮겨온 office’는 ‘죽을 때’ 까지 나의 보금자리가 될 것이다.

오늘도 deep relax를 하기 위하여 daydreaming ‘screen’ time으로 ‘맥랑시대’를 본다. 몇 편이고 random하게 골라서 보고 또 본다. 이 드라마 스토리 시대는 1990년대 초, 배경은 대한민국 고등학교 [서울이 아닌 듯]..  물론 나의 생각은 우리 때, 그러니까 1960년대 초의 모습, 배경과 회상, 비교를 하는 것으로 머무른다. 30년 세월의 차이는 과연 어떤 것이고, 그 이후 2020년대로 앞서 가면 60년의 차이는 과연 어떤 것인지, 사실 조금 아찔해진다.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세월을 살아왔던가?

아~ 고등학교, 고교시절… 교복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물론이고 머리 스타일도 따라서 완전 자유형,  완전한 남녀합반 공학, 또한 각종 학교 시설, 주변 환경 등이 경제발전에 걸맞게 깨끗하고 자유롭게 보인다. 그 아이들의 생각은 어떤 것인가? 무엇이 그 고교생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들인가? 정치적인 것은 전혀 보이지 않지만, 십대 때에 흔히 겪는 문학, 철학 소년소녀 형의 모습은 우리 때와 비슷하게 보인다.

하지만 핵심 드라마 주제는 ‘어른과 나라’가 요구하는 것들, (일류) 대학입시를 위한 극한적인 공부, 공부, 공부… 바로 그것이었다. 아~ 우리 때에도 ‘공부’는 지나치다고 생각할 만큼 강조되었지만, 이 드라마를 보니 이 공부, 공부, 공부라는 것은 아이들이 불행을 초래할 만큼 주눅이 들 정도로 압박을 주고 있었다. 우리 시절의 모습은 이것에 비하면 장난 수준으로까지 보이니… 한마디로 자기에 대한 생각 별로 할 기회가 거의 없이 사회로 진출한 것, 시험문제 풀듯 한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을 풀어나갈 자세가 되어 있었을지…  한가지 부러운 것은 역시 ‘자연스러운 남녀공학’, 어쩌면 그렇게도 진정한 친구들처럼 큰 문제없이 잘 어울릴 수 있었는지, 우리 세대로서는 조금 부럽다 못해서 상상이 잘 되지를 않는다.

오늘 나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을 준 것이 있다면 이 짧은 blog quote가 아닐까?  과학적, 지성적 그리고 지극히 이성적인 UGA [University of Georgia, Athens]   retired professor [AI, Computer, Linguistics]  Dr. M. Covington의 이 짧은 comment,  ‘역시’ 100% 공감할 수 있는 글이다. 구체적으로,  ‘잠시 귀신에 홀린 크리스천’ 들, 정신차리라는 권고, 그는 비록 나이는 우리 보다 밑이지만 진정으로 생각하는, 존경을 할 만한 지성인이 아닌지… 선거, 투표할 때마다 정신 바짝 차리라는 경고일지도 모른다.

 

How Trump voters should feel

If you voted for Trump, you should be disappointed and angry at him now. You didn’t vote for documents to be mishandled, lied about, and shown to unauthorized people. You voted for a conservative platform that had nothing to do with all that. Trump has betrayed you and given conservatism a bad name.

If you are unable to feel angry at Trump — if you still feel that you owe him “loyalty” — then I beseech you to look into your soul and ask what kind of spell you are under. Is it really true that he could stand in Times Square and shoot people and get away with it? That sounds like something only the devil would say.

 

Sacred Heart of Jesus, Fish Friday

The Most Sacred Heart of Jesus, Solemnity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성심 대축일 금요일, 이날은 요일이 정해져 있던가, 궁금하구나. 맞다, 유월의 금요일이지만 몇째 주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런데, 왜 이렇게 예수님의 불타는 심장과 그 상징, 의미가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역사적 이유도 있었는데… 이제는 희미해지는구나, 아 불쌍한 나의 ‘노화되는 신심’이여~~  예수회 발행 DVD 제목도 있었고, 한번 다시 Wikipedia로 찾아서 기억력에 활력을 줘야 할 때가 되었나~~ 오늘 아침 미사엘 가서 조금 도움을 받으려나~~

성심, 聖心, sacred heart.. 특히 catholic devotion으로써의 성심은 확실한 역사가 있다. 하지만 궁극적인 시발점은 무엇일까? 요사이 예수 ‘수난의 시간들’을 매일 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예수수난 사건을 통해서 보인 예수님의 고통은 십자가에 의한 것보다 인간에 대한 ‘초월적, 절대적, 무조건적인 사랑’에 의한 것,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심장, 가슴에 가해지는 고통의 상징이었던 것, 이제야 조금 알 듯하다. 인간역사적으로도 프랑스의 알라콕 성녀에게 발현한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이런 사실이 포함되어 있기에 이것은 교회에서도 인정하는 ‘신심 행위’가 되었다.

대축일 아침미사, 교우들의 평소보다 꽤 많이 모였다. 이들은 확실히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는 ‘평범한, 착한 교우’ 들일 것이다. 모든 전례를 교과서적으로 충실히 집전하는 (오래) 전 주임신부님 (Father Thein?)도 큰 도움이 되었고 Irish 거꾸리 자매의 주도로 미사 직후에 ‘예수성심 성인 호칭기도’를 함께 전 교우들이 참여한 것도 그렇게 인상적이고 감명을 주기도 했으니… 아~ 오늘 가기를 잘 했다는 생각도 함께 든다.

Pate 파테 빠떼.. paste.. 이제는 확실히 알았다, Izzie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이 wet food를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녀석의 입맛 때문인가, 아니면 소화기능에 관계가 된 것인가 정말 궁금하지만… stop 거기까지다, 우리가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이제부터는 minced된 것들을 조금씩 섞어서 주고 그것을 먹으면 dry food grind와 pate를 계속 알맞게 섞어서 주면 된다.  현재 녀석의 나이가 18살에 가까워오기에 신경이 쓰인다. 제발 제발 조금이라도 오래 살아주기를 빌고 빈다, 양양아~~~

오늘 오전 모든 일정이 끝난 후 들렀던 Kroger에서 최근 관심사였던 cat wet food section을 조금 자세히 보게 되었다. Amazon으로 보는 것과 이렇게 느낌이 다르구나. 더 확실한 각종 제품들의 종류와 그것들에 대한 느낌들, 이런 brick & mortar shopping의 혜택이 우리에게 항상, 가까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언제까지 ‘걸어서, 차를 타고’ 와서 ‘둘이서’ shopping할 수 있을까? 현재는 조금 먼 장래의 일처럼 느껴지지만 과연 그럴까? 아~ 하느님, 성모님, 저희를 인도해 주소서, 그날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며칠 전 특별한 신경을 써서 Mega Mart까지 drive를 해서 사왔던 조기, 오늘 금육재 fish Friday 금요일에 그것이 ‘동네방네1 스타일’ 점심 식사에 등장했다. 잡곡 밥, 시금치 콩나물 국, 계란 찜, 마늘 절임, 열무 김치 그리고 특별히 맛있는 조기구이… 이것이 거의 완벽한 금요일 균형식 점심 식탁의 모습, 감사합니다, 고마워…

  1. 도라빌 순교자 성당 근처에 있는 ‘주로 점심 한식점’, 이곳의 점심 메뉴 중에 각종 생선구이는 일품이었다

Vine Trellis 포도 가지 10년 Woes and…

이 ‘vine trellis, 포도가지 격자구조물1‘를 급조해서 만들었던 때가 언제였던가?  아마도 10년도 전에 새로니가 Mother’s Day선물로 사다 주었던 muscadine 종류 포도를 심기 위해서 이 ‘격자구조물’를 급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급조의 정도를 넘어선 ‘날림공사’ 급이었는데 용케도 몇 년을 버티고 있는가? 이것으로 햇수를 거듭한 후에 ‘진짜’ 포도 종류들이 자리를 잡아가서 이제는 ‘구조물’의 제 역할을 한 셈이지만 이제는 이것도 날림공사의 제 수명을 다 해가는지… 불쌍한 모습이다. 얼마 전에 거의 쓰러지려는 것을 응급 처치해서 세워놓았는데~ 문제는 이것을 완전히 없애고 새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응급 처치[현재 나의 방법]으로 몇 년을 버티어 볼 것인가~ 요새는 이런 짜증스럽게 좀스러운 일들이 나를 괴롭히니…  하지만 이런 것들은 사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의 관심권 밖에 있었지만, 그 ‘구조물’ 을 아래 위로 엉키며 뒤덮고 있는 탐스러운 포도가지, 열매들의 그 동안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꾸준히 커가고 있는 모습이 있기에…  1992년 이사올 당시 이곳은 울창한 송림언덕이었는데 30여 년 동안 완전히 flower, vegetable garden과 이런 초소형 vineyard까지… 참 세월 많이 흘렀구나~~

어제 밤에 잠깐 보았던 weather radar, 밤중에 Alabama로 부터  ‘새카만 먹구름이 몰려오는’ 모습, 예보 그대로 지난 밤은 ‘한때’ 정말 요란한 것이었다. 전깃불은 물론이고 빗소리도 대단했지만 천둥소리는 근래에 경험한 것 중에서 제일 굉장한 것이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고마운 비 정도였다가 나중에는 은근히 걱정까지 되기도 했으니까.. 결국 나중에는 Ozzie녀석도 불안했는지 우리 침대로 함께 모여서 자게 되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보니 땅만 진하게 젖었지 바람이 거의 안 불었는지 사방이 깨끗했으니~ 아,  이것이야말로 바로 ‘은혜롭고, 고마운 폭우’였구나…

어제 Amazon Prime으로 배달된 ‘고양이 밥,  17살 고양이 Izzie의 senior pate-type2 wet can food 덕분에 녀석[사실은 female]이 부지런히 dining table위를 뛰어 오르락 거리며 다시 먹기 시작했다.  그 동안 ‘맛 없는’ dry food를 먹었지만 최근부터 나이 탓인지 잘 먹지도 못하고 소화도 잘 못하는 것을 보고 wet food로 바꾸었는데, 이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하도 식성이 까다로워서 며칠 씩 안 먹기도 했다. 결국은 먹기 시작했는데, 고양이 wet food에도 종류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모른 탓에 minced type은 피하고 pate type 만  남김 없이 깨끗하게 먹어 치우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100% pate type만 order하게 되었고 그것을 오늘부터 다시 먹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양양이 먹이, 식사의 puzzle은 거의 해결이 되는 듯하다. 그러니까… 녀석이 앞으로 먹는 food formula 가 ‘밝혀진’ 것이다. 이것으로 올해 10월 한달 동안 집을 떠날 있을 때 무엇을 먹여야 하는지는 알게 되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누가 집까지 와서 ‘매일’ 먹이느냐~~이것이 ‘세기적인 문제’로 등장하고 있으니…  아~ 싫다, 싫어~~ 왜 이런 문제들까지 나를 괴롭히는가?

오늘은 이미 ‘개척했던’ 코스이긴 하지만 다른 곳으로 길을 찾아 걸었다. 처음으로 시도해 보는 방향과 장소들, 이것으로 walk distance로 2.5 마일을 기록할 수 있었으니 이것도 새로운 Ozzie Trail course가 되었다. 오늘은 우리 동네만 빼고 옆의 Azalea Spring apartment complex course를 모두 섭렵한 셈인데, 느낌이 좋았다.

지난 밤의 폭우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과연 오늘 Sope Creek의 모습이 그 결과가 아닌가? 폭우로 더 맑은 모습을 기대했지만 반대였다. 급류로 시냇물의 밑바닥이 혼란하게 파헤쳐져서 흙탕물의 색깔로 흐르는 시냇물의 모습~ 아무리 해도 이곳에서 1954년 경 비원의 담장 밑 수로입구에서 흘러나오던 원서동 개천시냇물의 느낌을 찾을 수는 없었다. 나는 이곳에서도 어릴 적 고향의 모습을 아직도 찾고 있는 것이다.

Sope Creek jungle을 나오며 옆을 보니 낯익은 모습의 정글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모습의 식물을 본다. 이것이 무엇이더라.. 물론 이름이 생각날 리가 없다. 사진에 담긴 것으로 찾아보니, 나의 짐작이 맞았다. ‘미모사’라는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잎파리~  1964년 경 서울 남영동 집 옥상에 있었던 나의 ‘식물원’ 시절 이런 것들에 심취를 했었지… 같은 종류 미모사 중에 손을 접촉을 하면 움직이며 움츠린다는 것도 있었는데, 오늘 본 것도 그런 종류였을까? 나중에 알아보니 이것은 그런 종류는 아니었다.

  1. 이 한글용어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아마도 처음 듣고 보는 한글 원예용어가 아닐까, 하지만 격자는 lattice, 구조는 structure라는 것은 짐작으로 안다. 이제는 한글도 영어도 문제가 있으니… 사실 일반적으로 trellis에는 우리 집처럼 lattice, 격자가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
  2. 이것이 불어인지도 모르고 ‘페이트’라고 읽은 후에 자세히 보니 이것은 ‘파테이’라고 읽고 paste란 뜻의 French  정도가 아닌지…

HOLY TRINITY SUNDAY 2023

오늘은 THE MOST HOLY TRINITY SUNDAY.. 지난 주에 이어 ‘3주 연속 대축일 Solemnity’ 중, 두 번째 대축일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는다. 다음 주의 ‘성체성혈 대축일’ 을 기점으로 ‘연중 ORDINARY TIME’이 시작되고… 이후의 긴 시기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대림시기 ADVENT까지 긴 ‘연중 방학’으로 이어지고… ‘사철과 책력’을 연상하게 하는 세속의 달력과 나란히 가톨릭의 전례력을 따르다 보면 손쉽게 한 해는 지나간다.

삼위일체… 삼위일체… 고등학교 시절의 영어참고서 ‘영어 삼위일체’가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보니 역시 나는 세속적 인간인 모양이다.  이것을 흉내 내려는 듯 숫제 ‘오력일체’라는 것도 있었지. 이곳의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이 아니고 ‘문법, 해석, 작문’이니…  어떻게 이 참고서의 저자는 감히 2000년에 가까운 심오한 천주교  근본교리의 용어를 그렇게도 잘 ‘베꼈는가’…

오늘 구 미카엘 주임신부님의 ‘삼위일체교리’ 해설 강론은 역시 보통 수준을 넘는 것이어서 나의 기대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다. 혹시  지난주 강론처럼 ‘신학생 답안지 수준’이었으면 나는 분명히 필요이상으로 혈압을 올렸을 것이 분명하기에, 너무나 나의 신앙적 건강에는 다행인 일이 되었다.

성경에 근거했지만 직접적인 언급이 없는 이 ‘삼위일체 교리’와 큰 갈등은 나에게 전혀 없었다. 다만 이해하는 것이 ‘답안지 정답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것들은 속된 표현으로 ‘무조건 믿어라’ 수준에 속하는 것으로 큰 문제를 삼지 않았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관심을 가지고 이 ‘기본 교리’에 대해서 역사적 자료를 찾아보다가 뜻밖의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사도시대의 사도, 교부, 신학적 성인’들이 ‘동의하고 결정했다는’교리들, 그것들은 ‘협상이 불필요,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전부인가? 그것을 ‘무조건이라도 믿어야’ 착실하고 올바른 모범적인 천주교일 터인데,  한치라도 이런 ‘협상 불가능한’ 교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 중에서도 제일 큰 문제가 바로 오늘의 주제인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것이다.

근래 Emanuel Swedenborg의 NEW HEAVEN, NEW CHURCH 에 대한 ‘새로운 교리’ 에 접하고 난 후에 다시 한번 ‘변하지 않는 교리’의 무류성 無謬性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  상징적, 관념적, 추상적으로 보이는 전통적, 주류 교회, 성경, 교리와는 달리 17세기 스웨덴 출신 과학, 철학, 신학, 신비가였던 Emanuel Swedenborg는 mystic의 입장으로,  전통적 성경에 철저히 근거는 했지만 본인의 체험의 도움으로 모든 교리들이 ‘구체적인 체험적 묘사’로 일관되어 있기에 쉽게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중에서 제일 큰 문제는 그가 이 삼위일체 교리가 가톨릭 교회의 오류라고 믿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간단히 말해서 ‘성부, 성령’의 ‘각 위 person’가 예수 자체에 모두 포함이 되었다는 것. 그러니까 하느님은  ‘삼 위’가 아니고 ‘예수 자체’인 셈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그가 몸소 ‘천국에 가서 보았다는’  쉽게 수긍할 수 없는 주장이다. 이 문제의 모든 관건은 이러한 그의 ‘천국 체험’을 어느 정도 ‘이성적’으로 받아드려야 하는데 있다. 그는 이런 ‘파격적인 체험’을 공개함으로써 이단에 가까운 취급까지 받았지만, 그의 탁월한 이성적, 학문적 배경은 그렇게 간단히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결국은 역시 이것도 또 다른  ‘믿음의 문제’로 귀착이 되는 것 아닐까?

성당 미사 이후 pandemic으로 사라졌던 모든 활동들이 재개가 된 것이 제일 큰 여건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친교실에 남아  있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고, 따라서 예전의 ‘비싼 cafe coffee & bakery’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어울리던 사람들도 사라지거나 바뀌며 조금 허전하고 쓸쓸하기도 하다. 미사와 친교가 적당히 조화를 이루어야 바람직하기에 아무리 경건하고 성스러운 미사를 했다 하더라도 인간적인 교류가 부족한 것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으니…

오늘도 미사 후 한가한 친교실에서 모처럼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따리 아가다 자매의 모습은 예외적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었다. 문제는 이런 상태가 지속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기에 기도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온몸이 쑤신다. 하지만 못 참을 정도는 물론 아니다. 나는 육체적 고통을 참는 데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통을 예측하는 고통은 잘 관리를 못하는 편이다. 왜 그럴까? 예전에는 이것도 자신이 있었는데( 특히 2010년 대에) 그것들이 점점 약화, 악화되고 있음이 분명하고, 그런 사실이 나를 근래에 많이 슬프고 괴롭게 한다. 내 딴에는 기를 쓰고 노력을 한다고 하는데 왜 결실과 결과가 이 모양일까, 왜?

‘집 밖으로 나가기 싫다’는 유혹, 거의 매주 일요일 새벽마다 끊임없이 받지만 그래도 가상하게 이것을 이기고 나, 우리는 ‘나아간다’. 아마도 혼자 살았으면 이런 것들,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렇게 둘이 함께 여정을 간다는 사실에 그저 그저 감사하고, 감사하자!  오늘 조금 도움을 받았다면, 어제 저녁에 가까스로 끝을 낸 ‘지겨운 일’, 그것이었을 거라고 나는 충분히 짐작한다. 나는 이렇게 요사이 ‘의지력의 약화’를 절감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의지력, 희망’을 어떻게 나는 다시 전의 수준으로 회복시킬 것인가, 그것이 현재 나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인 것이다. 성모님이시여~ 저를 잊지 마소서, 아직도 어머님의 손길이 필요한 한심한 자식입니다~~~

주일미사를 다녀온 지금, 나는 예상한 만큼 머리도, 마음도, 몸도 가볍다. 날씨의 은총인가, 아~ 은총이다, 은총.. 어쩌면 이렇게 시원한 6월 초를 가는가? 어제의 뜨겁게 작열을 하던 태양은 어디로 숨었나. 이렇게 짙은 구름이 고맙게 보이는 ‘삼위일체 주일’의 낮, 온몸이 쑤시고, 피곤하고, 가라앉는 듯한 기분을 가볍게 들뜨게 하는 ‘주일의 은총’을 맛보고 있다. 물론 이런 기분이 몇 시간이나 지속될지는 물론 자신이 없지만,  후에 오는 일을 미리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금, 현재가 더 중요한 것이니까…

오늘 점심 식사는 날씨에 걸맞은 먹음직스러운 ‘나마우동’… 그것도 선택의 여지가 없이 ‘곱배기’로 먹게 되었다.  감사, 감사…

이것이 웬 떡이냐? 감사합니다. 점점 더워지는 오후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니… 그 동안 잔뜩 마르기 시작했던 대지와 초목들이 갑자기 힘을 얻는 것이 보인다. 감사합니다, 감사…

Last of May, Billy Graham 1973

오늘, 아니 요새 나에게 제일 중요한, 필요한 ‘성인의 오늘 말씀’, 바로  Padre Pio 성인의 말씀이 아닐지…

“Pray, hope, and don’t worry. Worry is useless. God is merciful and will hear your prayers.”  – St. Padre Pio

내가 제일 갈망하는 것은 이 중에서도 바로 hope일 것이다. 이것의 결여, 사라진 듯한 우려, 그것이 나를 제일 괴롭히는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 내일, 모레 이후에 대한 희망… 왜 그것이 나에게서 부족, 아니 사라지고 있다고 나는 ‘우려’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2010년 대를 살 무렵 나는 바로 이 희망에 의지하며 의미 있게, 힘차게, 기쁘게 살지 않았던가? 왜 바로 그것이 사라진 것, 사라지고 있다고 나는 절망을 하는 것일까?

아~ 어찌 이렇게 자주 잊는단 말인가? 1973년 6월 1일, 아니면 6월초..  정든 대한민국의 땅과 하늘을 난생 처음으로 떠나던 날… 1973년 6월 초, 어떻게 이 날짜를 잊고 살았을까? 괴로운 추억이 되지는 않았을까? 나에게는 ‘Landing 반세기’라는 이름으로 몇 년 전부터 나를 기억과 추억의 세계로 이끌 던 날, 그날이 ‘중앙학교 개교기념일’과 맞물려서 나의 기억을 자극하곤 했는데.. 결국 이날을 맞게 되었으니~~ 나에게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을 마무리 하는 첫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또 너무나 감상적, 관념적, 생각 속으로 빠져드는 지나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지.. 정말 이제는 모든 것에 자신이 없다.  어떻게 이 시기, 즈음을 기억하고 넘어갈 것인가? 1973년, 1973년 6월 김포공항… 분에 넘치게 많이 환송을 해 주었던 가족, 친지들 어떻게 그들을 기리며 감사하며 추억을 해야 마땅할 것인지 정말 감이 잡히질 않는구나~ 어머니, 어머니, 엄마, 누나, 누나~~ 만 외칠 것인지…

1973년 6월 1일 금요일 전후의 고국 신문을 훑어본다. 나의 기억과 차이가 나는 것으로 시작한 머나먼 추억여행인가… 우선 Billy Graham 여의도 집회에 대한 것, 그것은 5월 31일 목요일에 시작이 된 것이었다. 나는 내가 떠난 후였던 것으로 잘못 기억을 한 것이니.. 얼마나 많은 기억의 착오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지만 요일에 의한 추적에 희망을 걸었지만 역시 난감하기만 하구나… 출국하던 날 아침에 연세대를 찾았는데 혹시 그날이 6월 2일 토요일일 가능성은 없을까? 토요일에 학교 문을 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거의 확실히 가능성도…

출국하던 날 연세대 campus에서 찍은 사진 등을 살펴보며 내린 결론은 6월 2일 토요일 오후에 출국을 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100% 확신은 없지만 가능성은 아주 높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1973년 빌리그레함 전도대회가 한창이던 때에 고국을 떠난 셈인데… 왜 그렇게 그 대집회의 기억이 선명하지 않은 것인가 생각을 해보니 역시 나는 그 당시에 무신론을 넘어서 아주 종교에 부정적인 편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참 50년, 반세기의 세월이 나의 종교세계관을 이렇게 바꾸어 놓을 줄이야~~

오늘 하루 종일 머릿속은 역시 1973년 6월 초 전후에 머물고 있었다. 당시의 신문들을 유심히 읽기도 했다. 5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당시의 삶과 주변 모습들을 그려보고 상상도 하며 time machine을 탄 시간을 보냈다. 당시의 사진들도 보며, 모두들 어떻게 살았을까~ 거의 한숨을 쉬는 나 자신이 불쌍하기도 하고… 과연 이것이 인생인가,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인가~ 결론은: 모른다, 모른다, 정말 모르겠다~~~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 나의 고향? 이곳의 제2의 고향은 무엇인가? 나는 과연 어디에 속한 삶인가?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은 지금이 아닌 옛날의 것들이고, 지금의 집과 삶은 아무리 해도 뿌리를 내릴 자신이 없는 곳이면, 도대체 나는 어디에 속한 삶을 살고 있느냐 말이다~~ 성모님, 모두들 어디에 갔습니까? 나를 빼놓고 모두들 어디로 갔느냐 말입니다~~~

어제 중앙고 졸업앨범을 보다가 우연히 이상한 사실을 보았다. ‘윤석원’의 사진이 다른 반에 실려있는 것 아닌가? 분명히 우리 반 3학년 8반인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살펴보니 역시 윤석원은 8반의 그룹사진에 모습이 보였다. 익숙한 얼굴이라서 곰곰이 생각하니 아~ 이 친구, 나와 같은 재동국민학교 6학년 1반에 있지 않은가?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동창과 나는 개인적으로 얽힌 추억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얼굴만 익숙한 정도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조금 궁금한 동창의 모습을 되돌아 보았는데, 역시 궁금하다, 이 친구는 어떤 삶과 인생을 살아왔을지~~

오늘이 5월의 마지막 날, 한 일도 많았지만 아쉽고 미안하고 후회스러운 것이 왜 없으랴? 아~ 성모님의 달, 5월 성모성월~~ 이것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나는 거의 소홀하게, 아니 거의 실패작으로 끝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올해는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어머님들’을 생각하며 지내려 했는데… 결과는 엉뚱하게 흘러간 것이다. 특히 성모의 밤에 못 간 것, 아니 안 간 것이 제일 마음에 걸린다. 내년을 기약할 수 밖에…

어쩌면 날씨가 이렇게도 나의 마음에 꼭 드는 것일까? 한마디로 나를 행복하게, 기쁘게까지 하는 그런 자연환경조건의 나날이 오늘까지도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과학적 여름’은 아직도 3주 이상 남았지만 여름의 맛을 이미 보았기에 다시 봄이나 가을이 된 착각에 빠지는 지난 나날들,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방을 옮기는 작업을 쉽게 만들어준 것이다.

지난 밤 꿈 속에서 또 그것을 보았다. 그것, 우리 집이 손을 잘 못보고 방치하며 살아서 이곳 저곳이 무너지고 떨어져 나가고 빗물이 들어오고… 이런 종류의 꿈의 역사는 꽤 깊고도 긴 것이다. 어젯밤의 광경들은 더욱 구체적인 것으로 아예 그 ‘공포’에 잠에서 깨어나고, 결과적으로 나는 ‘만세!’를 부르는 혜택을 만끽하기도 했으니.. 왜 집이 처참하게 주저앉는 광경, 그 공포가 나에게 왔을까? 우리 집에 그런 일들이 생긴 일도, 경험도 없는데… 영화에서나 본 광경들이 왜 나에게…  집을 제대로 관리, 청소, 유지, 재투자를 잊고 못하고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이런 꿈과 무슨 연관은 없는 것일까?

비록 나의 office/study는 완전하게 ‘이사’를 했지만 그 이사 짐들, 특히 책과 서류의 진정한 처리는 아직도 나의 등 뒤에서 나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왜 이럴까? 하기야 제일 골치 아픈 일일 수밖에 없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책들이 분류가 되었고 garage로 물러나거나 쫓겨나가는 일을 단행하기는 했다. 하지만 ‘진짜 분류’는 아직도 나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얼마만한 책과 서류를 나의 옆에 항상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의 남은 인생에서 그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들일까? 완전한 digitizing, clouding은 실용적이 아닌 것일까? 조금 더 아니 많이 많이 간소화하게 사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추억이 얽힌 많은 stuff들, 얼마큼이나 나의 주변에 놓아두고 사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80대, 90대를 사시는 ‘선배님들’의 경험론적 고견은 없는 것일까?

방을 바꾸는 작업이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런 기회에 다시 tool time을 되찾아야겠다는 은근한 압박감을 피할 수가 없다. 우선 dining room의 dish cabinet의 배치를 원상태로 돌려 놓았다. 의외로 그것들은 laminate floor에서 거의 힘을 들이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또한 거의 반년 이상 중지된 작업, kitchen under sink repair 작업인데 이것이 은근히 ‘목공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보니 자신이 별로 없어서 방치된 상태였다. 일단 시작을 하면 결과가 나오지 않을지…

Pentecost! Birth of Church…

큰 기대 할 것이 없는 평범한 ‘주일, 일요일’이 아닌, 의미가 엄청난,  커다란 날을 맞는다. 그리스도 교회가 탄생하는 날, 성령이 내려온 날… 오순절 Pentecost… 성령이 예수님 죽음 이후 공포에 떨며 다락방에 모여있는 성모님을 비롯한 모든 사도, 제자들에게 내려온 날… 모두 신학적, 아니 사실적으로도 큰 문제가 없다. 우선 ‘진실 중의 진실’인 성경에 분명히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나 자신은 어떤가? 아~ 그래, 모두 다 알고 알고 듣고 배우고 해서 문제없이 이해한다. 하지만 나에게 성령이 오셨을까 하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그저 어린아이 처럼 이유 없이 믿는 것, 그것이 나의 입장이다.  이 ‘사건의 결과’로 2,000여 년 역사의 그리스도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엄청난 사건이고 축일 중의 축일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오늘 ‘대축일’ 미사, 오랜만에 아직도 신학생처럼 보이는, 보좌신부님 김성현 라파엘 (맞나?) 신부님 집전으로,  반갑기는 했지만 솔직히 성령강림의 중후한 신학적 의미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일면 우리의 ‘긴 인생 여정 후’의 나이도 있었겠지만 다른 면으로 신부님의 사제연륜도 큰 관계가 있었을 듯하다. 흡사 신학교 세미나의 주제를 다루듯 관심이 온통 big screen의 동영상과 text로 오가고, 성령의 의미가 너무나 세속적 기복신앙 차원으로 강등되는 듯한 느낌에 나는 솔직히 강론내용을 피하기에 바빴으니… 내 탓이요 인가, 누구 탓인가?

미사 직후 친교실에서 ‘제대회’에서 마련, 판매한 음식으로 아침식사를 하며 자리를 함께 했던 H가브리엘 형제님과 인사와 담소를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최고 연령층 그룹 요셉회의 소식도 궁금했는데 대답은 ‘역쉬~’ 내가 우려한, 예상한 대로였다. 회장형제님이 몸도 아프고 해서 요셉회 기능이 거의 정지된 상태라고 한숨을 쉬시며 하시는 말씀 ‘신부님이 별로 신경을 안 쓰시는 것’ 같다는 말씀. 조금 놀랍기도 했지만 역시 그 동안 예상했던 대로였다. 특히 전임 요한 신부님과 ‘사목방침이 다르다’라는 말씀을 듣고 보니 그것은 내가 생각해도 사실이었다. 나도 그 동안 우려한 것을 재확인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신임 사제들로부터 시작된 새로운 사목방침 중에는 아마도 ‘새 세대, 다음 세대를 위한 총력전’ 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런 사실을 나는 처음부터 의심하고 있었고 주위에도 의견을 말하기도 했지만 모두들 반신반의하는 표정들이었다. 거의 모든 공지사항, 사목행정 노력에서 ‘중노년층’은 거의 제외된 듯한 느낌이 이제는 사실로 드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베트남 성당의 case처럼 이런 차세대를 향한 교회의 변신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리보다 조금 늦은 이민 교회였지만 지금은 우리가 ‘절대로 따를 수 없는’ 무서운 속도로 교회의 현지화 차세대 화에 질주를 하며 눈부신 결과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 ‘새로운 사목 방침’에  silver bullet은 없을까?

내가 보기에 이런 ‘새로운’ 사목 방침은 zero sum mentality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는데, 현재 사목회의 주류가 이런 mentality를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사제들의 발상인지, 이제는 소외된 듯한 우리 70+ 세대로써는 알 길이 없으니, 조금은 더 외로워지는 성령강림주일이 되었다.

지나간 3일은 ‘날씨의 은총’의 연속이라고 할까… 요새 예보를 볼 틈이 없어서 더욱 놀랍기만 하다. 하루 종일 육체노동에 가까운 책, 잡동사니, 방 정리를 하기에 당연히 시원한 복장을 택했지만 그것은 오판 誤判, 긴 팔, 바지가 필요할 정도였으니… 완전한 ‘한 가을’ 정도의 날씨였으니… 이것도 이상기후에 속하는 것인지, 예보분석을 전혀 못보고 사는 것도 이런 놀람의 즐거움을 준다는 사실, 나 혼자만 알고 지내는 ‘생의 기쁨’에 속한다는 사실 누가 짐작이나 하랴? 급기야, 오늘 아침은 아예 얇디 얇은 스웨터를 걸치고 주일미사엘 가게 되었으니,조금 신경이 쓰이는 날씨이긴 하지만 어찌 이런 날씨를 마다하랴?

오래 전 1990년대의 family room의 추억을 되살리려 노력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지, 까물까물 거리기만 한다. 온 가족이 편하게 저녁 시간을 보내던 ‘특별한 것 없는’ 그런 시절들… 각종 VHS video로 classic movie들 [Abbot & Costello, Student Prince, Journey to the Center of the Earth, 등등] 보며 연기 흉내를 내던 아이들의 모습들, 근처에 있던 중식 Formosa에서 take-out을 해다가 맛있게 먹던… 아~ 30여 년 전이구나… 30여 년 전…  30년의 감각을 실감 있게 느껴보려 애를 쓰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으니… 나의 50년, 30년… 20년 그리고 10년의 이정표들을 어떻게 다시 되돌아 볼 수 있는가? 나의 50년, America Landing 50년이 코 앞에 다가오는데, 나는 전혀 심적인 준비가 안 되어있다, 그것이 나를 조금 초조하게 하고… 아~ 나는 너무 생각이 많은 속물인 것이다~

1990년대로 복원 되는 family room

집에 오자마자 거의 가까스로 정리가 끝나가는 family room 복원에 끝마무리를 하며 새로니 식구들을 맞아 맛있는 갈비 barbecue로 휴일 기분을 가질 수가 있었다. 며칠 만에 다시 보는 Ozzie녀석, 이제는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갑게 되었으니… 녀석이 찾아준 새 trail 로 산책을 할 수도 있었다. 나라니 식구가 빠진 것이 조금 섭섭했지만 이렇게 반쪽이라도 모일 수 있었던 것, 역시 연숙의 억척 덕분임은 말할 나위도 없고, 나도 따라서 방을 옮기는 힘든 작업도 했으니 보람도 있는 휴일주말을 맞는다.

특히 아직도 조금은 서먹서먹한 사위와도 모처럼 대화도 할 수 있었고, 반갑고 놀라운 사실도 있었는데~ 10월 달에 한달 간 집을 비울 때, 우리 집 ‘양양이 Izzie‘를 돌보아주려 우리 집에 와서 일을 하겠다고 제안을 했다는 사실, 우리 둘은 놀라기만 했으니~~ 이 친구, 참 사람이 진국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행복한 순간이 되었다. 새로니가 남편을 잘 만났다는 사실, 너무나 반가운 것이다.  이렇게 우리 외로운 식구들이 각자 살길을 찾아서 가정을 꾸몄다는 사실,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할 것 아닌가? 감사합니다, 성모님, 어머님들이시여~~

 

멋진 날씨, 지나간 가을, 다가올 가을

아~ Echinopsis! 우연히 뒤뜰을 훔쳐보니… 그 동안 못 보던 것이 눈에 뜨인다. 아~ ‘네가 또 찾아 왔구나!’, 또 일년이 지나갔다는 뜻,  전에 바울라 자매님이 이사를 하면서 우리 집에 온 이것, 선인장의 꽃, 올해도 작년에 이어서 평소보다 일찍 핀 것이 새롭기만 하다. 자세히 가까이서 보니, 이 선인장 꽃 몽우리가 4~5개나 올라오고 있고… 올해는 작년에 비해서~ 조금 일찍 핀 것인가, 작년의 기록을 찾아보면… 작년에도 6월 2일에 피어나기 시작했고,  8월 초에 일찍 동면으로 들어갔구나.  2020년에는 7월 말에 처음 피기 시작했던 이것,  그 전에는 거의 못 보았던 여름의 상징이었다.  이제 이 모습으로  ‘감각적’ 여름이 시작된다는 신호탄인가…

Near Perfect! 지나간 가을이 되돌아 오거나 앞으로 다가올 ‘먼 가을’이 이미 온 것 같은 멋진 날씨가 며칠 째 계속된다. 이런 모습은 예전에 경험했던 Memorial Day weekend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 새벽에는 아예 싸늘하기까지 했다. 각종 세계적, 아니 미국 내에도, 기후관련 재해 소식들이 머리 속에 남아있기에 ‘날씨의 은총’은 강조하고 자랑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일 것이다. 분명히 ‘멕시코 만’에 도사리고 있는 습한 열대성 공기가 이곳을 덮는 그런 시기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미 5월 초에 경험을 했던 것들이라서 이제는 하나도 이상할 것은 없다. 이렇게 세월은 흐르고 흐르는 것이니까…

오늘도 ‘방을 옮기는 작업’이 계속된다. 거의 7년 간 나의 office/study 역할을 했던 예전의 family room, 100% deep cleaning 작업은 7년이 지난 이 나이에 조금 더 힘들어진 것 같다. 하지만 이 정도의 pace면 문제 없다, 앞으로 최소한 5년 이상은.  머리를 쓰지 않고 근육만 쓰는 일은 사실 그렇게 괴롭지 않다. 문제는 ‘정리, 분류, 최종 처리’하는 바로 그 머리를 쓰는 작업인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미루던 작업이어서 더 미룰 수는 없고… 이곳이 바로 오랜 세월 우리 집의 family room구실을 톡톡히 했던 곳이어서 더 감상적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전통적 가옥의 특징, ‘작은 부엌’ 덕분에 우리는 바로 옆의 이 커다란 방에 모여서 저녁 시간을 보내곤 했기에 가족의 추억은 사실 거의 모두 이곳에 남아 있어서 그런지 내가 이곳을 office로 쓰기 시작한 결정은 그렇게 결과적으로 환영을 못 받은 셈인데, 늦게 나마 이렇게 다시 new family room으로 변모하는 것으로 조금은 위안을 받게 되었다. 문제는 이방에 ‘매일’ 모일 가족이 하나도 없다는 웃기는 사실…

거의 하루 종일 family room 정리에 신경과 시간을 쓴 날이어서 그런지. 비록 평소에 하던 ‘잡스러운 짓거리’들이 머리 속에서 깨끗이 사라지긴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원하고 개운하게도 느껴지니… 내가 그 동안 너무 ‘외골수’ 같은 모습으로 살았던 것은 아니었는지… 아~ 나는 왜 조금 더 다양하게, 쉽게, 덜 생각하며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더 단순하게, 덜 열심으로, 가급적 웃고 즐기며, 즐겁고 행복한 모습으로 살 수는 없는가…. 농담까지는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아량과 여유는 왜 나에게 그렇게 부족한 것일까? 덜 심각하게 살 수는… 성모님, 어떻게 하며 좋겠습니까?

오늘의 작업으로 우선 fireplace가 제 모습을 오랜만에 선을 보였다. 이곳을 중심으로 가족들이 모였기에 이것이 그 동안 나의 office 로 쓰일 때 모습을 감추었었기에 오늘 이 모습으로 과거의 추억을 되찾게 된 것이다. 앞으로는 온 가족들이 가끔 holiday때마다 모일 때 이곳이 다시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될 것을 희망하는데… 그런 세월이 과연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것이다.

Pentecost Novena 성령강림 9일기도

오늘 아침미사에 가니 반갑게도 devout Irish couple,  ‘거꾸리, 장다리’부부가 비로소 제자리로 복귀를 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한동안 불규칙한 미사참례로 걱정을 했는데, 아마도 몸이 정상으로 회복이 된 것 같다. 그 거꾸리[키가 작은] 자매님, 특유의 미소를 지며 반갑게 우리에게 다가와서 printout된 기도문을 주며 기도하라고 한다. 처음 보는 것, 그것이 ‘성령강림 전 9일기도’ 영어로 된 것이었다. 아하~ 이런 것도 있구나~  가톨릭 문화가 한국 공동체와 조금 다른 것 중에 이들은 9일기도 Novena라는 것을 때가 되면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 있다. 예의상 받기는 했지만 의외로 연숙이 적극적으로 그 어려운 ‘영어기도문’을 심각하게 9일 동안 하겠다고… 나는 당연히 영어로 된 것이라 기대를 안 했는데…

집에 와서 website를 찾아보니 물론 ‘한글 version’도 없을 리가 없다. 하지만 영어판과 맞먹는 printout version을 아직 찾지를 못해서 그대로 영어로 된 것으로 시작을 하게 되었다.  요즈음 머리가 하도 복잡하고 바빠서 이런 쪽을 잊고 살았는데… 아마도 성모님이 이렇게 우리를 일깨워주시는 지도 모른다… 그래, 할 수 있는 대로 노력, 최선을 다해서 성령님께 관심을 더 갖도록 하면… 이렇게 해서 9일 뒤로 다가온, 교회가 탄생하는 날, Pentecost 성령강림 대축일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주말이 벌써 Memorial Day weekend라고? 믿을 수가 없다. 믿을 수가 없다… 5월이 또 저물어 간다는 말이냐? 그럴 수는 없다, 없어… 이제는 더 미룰 수가 없다. 어질러질 대로 엉망인 주변의 모습들, 나의 책, 서류, 잡동사니, 가구, 환경… 아~ 어쩌다 이렇게까지 게으르게 놔 두며 살고 있을까? Mea Culpa, 내 탓이요~~ 바로 내 탓이다. 누구의 탓도 아닌 내 탓인 것이다. 내 탓, 남의 탓을 절대로 하지 말라, 모두 모두 다 내 탓이라니까~~~

지난 며칠간의 Ozzie와의 산책은 아주 흥미롭고 신기하기까지 한 것이다. 무슨 비밀 통로라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Ozzie덕분에 발견한 ‘커다란 개구멍’ 덕분이라서 더 재미있기도 하다. 이렇게 새로 발견한 Azalea Spring course와 다른 곳을 연결시키면 재미있는 trail route를 만들며 걸을 수가 있게 되었으니…  최소한 1 mile의 bonus까지 얻게 되어서 더욱 유익한 코스가 되었다. 오늘은 두 apartment complex를 모두 ‘섭렵涉獵’을 한 ‘대장정’을 하는 날이 되었다.

A Busy Sunday In Late Life

거북이처럼 조금씩 조금씩 기온이 오르는 5월 초, 이제는 새벽도 그렇게 싸늘하지 않고 낮 기온도 가벼운 옷이면 알맞을 그런 나날, 그야말로 성모성월, 어머니, 가족들의 계절의 모습이다.

오늘 ‘주일’도 일어나며 조금씩 나를 유혹하는 생각들과 싸운다. 아~ 오늘 일요일 아침시간 집에서 편하게 보냈으면~~ 이것이 유혹이라는 것, 어찌 내가 모르랴~ 하지만 이런 유혹 자체가 이렇게 쉽게 자주 나에게 왔다는 그 사실이 실망스럽고, 나의 행복을 빼앗는 듯 해서 싫구나. 왜 이렇게 약해진 것인지, 아니면 나의 지나친 자학일까?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앞날에 대한 희망 등등.. 그런 것들이 요새는 그렇게 멀게 느껴지고 그리운 것일까? 하지만 ‘일거’에 유혹을 뿌리친다, 나는 그래야 산다… 나가자, 나가자, 일어나자…

아침에 잠깐 우려했던 것만큼 오늘의 외출이 외롭거나 재미없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니 사실은 정 반대의 결과라고나 할까. 이래서 삶은 예측불허, 아니 재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3~4시간 이후조차 이렇게 예상을 못할 수 있을까?

오늘부터 성모성월을 맞아 미사 직전에 묵주기도가 시작되었고, 미사 자체는 언제나 값진 것이라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부님들, 특히 주임 구 미카엘 신부님의 일관성 있는, 복음의 핵심에 근거한 메시지 덕분이라고 할까. 강론자체가 ‘재미 있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생각하게 만드는’ 자료, 시간을 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신부님의 강론은 우리 동네 Holy Family 성당 주임 Father Miguel 신부님과 비슷한 스타일이다. 이런 모든 것, 우리에게는 얼마나 큰 은총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미사 직후 ‘이제는 활기찬’  친교실을 지나게 되면서 그곳에서 가끔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는 것, 성당 미사에 온 보람을 느끼는 기쁜 순간이 아닐까? 요즈음은 아가다 자매님의 밝고 명랑한 얼굴을 보는 것을 기다리는데 오늘은 모습이 안 보인다. 함께 성당버스를 타고 오시는 어르신들 [사실은 내 또래일 듯 하지만] 에게 물으니, 오늘은 전화연락 자체가 안 되었다고… 하지만 지나친 걱정은 안 한다. 가끔 이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때면 점점 치매 증상이 악화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을 떨칠 수는 없구나… 그저, 그저 이 증상이 천천히 진행되거나 초자연적, 기적적으로 치유가 되기를 기도한다.

망치회 [성당 시설관리 봉사자 그룹]에서 꽈배기 도넛 판매를 하는 것을 보고 하얀풍차로 가는 대신에 돈도 절약하는 셈치고 친교실에 머무르며 ‘공짜’ coffee와 [이 coffee맛, 이 성당 역사상 최고인 듯] 함께 간단히 요기를 했는데, 오늘은 그곳에서 오랜만에 C가밀로 형제를 만나서 그 동안 지난 이야기를 나누었다. 놀랍게도 몇 개월 전에 stroke을 두 번이나 당했고 병원신세를 졌다고 한다. 한때 [사실은 지금도] 같은 구역 교우였는데 이렇게 모든 것을 모른 채로 사는 것, 역시 나에게는 그림자 중에서 제일 어두운 것이 되었으니….  또한 우연히 옆자리에 앉아있던 낯 익은 얼굴, H그레고리오 형제, 나이는 한참 밑이지만 10여 년 전에 우연히 레지오 행사를 통해서 만난 인연으로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나이가 한참 위인 내가 먼저 악수를 청하니 그도 같은 예의를 표하는 표정으로 나는 오늘 얻을 수 있는 모든 ‘성당의 혜택’을 본 것이다.

이런 만남을 통한 교훈이 있다면 좋건 싫건 ‘이웃들’,  ‘사람들을 만나는 것’ 그런 노력이 필요한 것. 어쩔 수가 없음을 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간단한 복음의 가르침은 이런 것들로 시작되는 것 아닐지… 복잡한 것이 아닐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나는 더 그 사실을 민감하게 느끼는 모양이다. 옛날에는 혼자서라도 오래 오래 살 수 있다고 자신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정 반대가 되었으니… 문제는 연숙이, 나와 방향이 거꾸로 된 듯, 나이가 들면서 홀로 있고 싶어하는 듯 보이니… 이것으로 나는 우리의 궁합이 잘 안 맞는다는 의심을 하는 거다. 어쩔 수가 없다, 이 문제는, 그대로 서로 인정하며 살 수밖에…

오늘 새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갑자기 ‘잠수’한 C베로니카 자매가 놀랍게도 사다리에서 떨어져서 큰 상처를 입었다고… 그 집은 듣기에 단층집이어서 아마도 큰 상처는 아닐 듯 했다. 하지만 어떻게 연락은 두절하는 중에 다른 사람과는 연락이 되었을까? 또 나는 그 자매로부터 ‘점수를 대폭 깎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솔직히 동정심보다는 실망감만 느끼게 되니… 괴로운 사실이 아닌가?

이렇게 갑자기 들뜬 마음으로 다시 보는 반가운 얼굴,  10여 년 전 레지오 ‘전우’ C실비아 자매를 성당 문 앞에서 만났으니… 오늘은 왜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반갑고 사랑스럽게 보이는지… 이 자매도 역사가 오래되었는데… 너무나 반가워하는 모습에 속으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것으로 오늘 성당 외출은 끝났지만 아주 행복한 발걸음이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새로운 주일 행사가 된, 주차장 야채판매, 아마도 안식교인들, 싱싱한 야채를 그곳에서 사는 것도 즐거움이 되었는데 오늘은 30분 늦게 갔더니 거의 모든 것이 팔린 상태… 나는 요새 그 곳에서 산 풋배추로 만든 ‘겉절이’ 너무나 입맛을 돋구는 것을 알기에 관심이 그곳에 많이 간다. 다음 주에는 더 일찍 오기로…

모든 ‘만남들’이 끝난 후, 가볍고 들뜬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P해숙 베로니카 자매 부부의 성당근처 부부 묘소를 방문했다. 5월 2일이 기일인데 올해는 조금 늦었구나… 2015년 5월 2일 선종, 5월 5일 장례미사… 아 꽤 세월이 흘렀구나…  우연한 인연으로 이 자매님의 병자성사, 세례, 선종, 마지막으로 장례식까지 성심껏 봉사를 했던 참 보람을 주었던 경험, 추억이 되었다. 일 년 만에 이곳엘 오니, 비교적 한산했던 Winters Chapel Cemetery가 이제는 ‘망자’들로 점점 만원이 되는 듯 보인다. 많은 Asian들의 이름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어느 곳에 안주, 안치가 될 것인가, 전혀 실감이 안 가지만 그렇게 긴 세월을 요할 것 같지 않음은 최소한 머리로 계산을 하기도 한다.

오늘도 편한 자세로 computer scientist, philosopher Bernardo Kastrup의 ANALYTIC IDEALISM COURSE를 열심히, 몰입하듯이 ‘청강’을 한다. 벌써 전 COURSE를 두 번 반복을 하는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고 심지어 황홀하기도 하다. 왜? 이 새로운 세계관과 실재관이야 말로 예수님을 향하는 궁극적인 인간의 노력일 수도 있다는 나만의 극단적 해석 때문이다. 이것이 하느님을 향한 ‘마지막 접점’일 수도 있다는 생각, 재미도 있고 공상만화 같기도 하고… 최근 50여 년 동안의 ‘문명의 진화’의 결과일지도 모르지 않을까? 정말 철학, 아니 모든 인간의 학문의 총 합성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3번 째 ‘청강’에 도전을 할 것이다.

The First of May, 우리들의 약속

원서동 죽마고우들, 또 일 년이 흘렀구나..

우리들의 First of May 어떻게 이렇게 한 해가 빠르게 흘러갔단 말인가? 해마다 이날이 점점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 같구나.  50년대의 오월은 원서동 개천가에서, 70년대의 오월은 담배연기 자욱한 퇴계로의 어떤 지하다방과 높고 맑은 도봉산, 치악산, 지리산 능선과 골짜기에서..

이 원서동 삼총사들과 헤어진 것도 거의 60년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이제는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기억들의 모습들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구나… 1977년 미국에서 서로 만나자고 했던 전설적 약속, 1988년, 1999년, 2000, 2011, 2022, 2033… 등으로 햇수의 숫자를 굴리며 만나자고 하며 살았던 것이 60 여 년… 아마도 이 두 명 ‘총사’들, 현재 모두 미국 어디엔가 살고 있을 텐데… 무정하기 그지없는 ‘창희’,  연기처럼 사라진 ‘용현’이.. 어떻게 세월이 그렇게 친구들을 무심, 무정하게 만들 수 있을까? 최소한 나는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다고 자부하고 싶은데.. 이제는 남은 시간이 별로 많지 않고, 이승에서의 의미 있는 재회의 가능성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으니, 제일 확실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은 다음 세상, 저승? 아~ 싫지만, 어쩔 수가 없는가?

싸늘한 아침으로 5월의 첫날을 맞이한다. 아래층은 아직도 central heating이 나올 정도니, 이런 이유로 겨울 옷을 아직도 정리를 못하는 핑계를 찾는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도 시간문제겠지.. 하루 아침에 ‘깊은 봄’ 날씨가 자리를 잡을 테니까..  아마도 1~2주 안에 겨울 내내 잠자고 있는 a/c 를 test-run을 할 때가 오지 않을까? 부디 a/c에 아무런 문제가 없기를 ‘습관적’으로 빌어본다.
Ozzie도 신나게 뛰어내려와서 볼일을 끝난 후 ‘자진해서’ 들어오고, Izzie는 아예 식탁 위에 올라가 맛있는 pate wet food를  기다리는 모습들, 아~ 정말 사랑스럽구나. 얘들과의 시간들, 나에게는 은총이고 기쁨이 아닐까? 같이 있는 동안 사랑으로 이들을 돌보아 주고 싶은데… 특히 Izzie가 현재까지 wet food에 잘 적응을 하는 모습이 너무나 고맙고, 반갑다. 아마도 그것의 높은 영양분들이 그 동안 잘 못 먹었던 고통을 덜어줄 것이라 희망을 한다.

5월 1일, First of May, Mother’s Month, 성모 성월… 싱그러운 5월의 꽃들의 향연… 이제야 그런 멋진 모습들이 마음과 눈에 들어온다. 너무나 지나간 수 개월을 생각해서 그런 모양인데… 어떻게 이 ‘지나간 수 개월’의 정리가 끝날 것인가? 또한 나의 office 를 옆 방으로 옮기는 작업부터 시작해서 나의 녹슬어가는 듯한 몸에 활력을 주어야 하지 않을지…

어제 K 세례자 요한 형제님 병세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이번 화요일로 예정된 ‘정기 봉성체’ 가 취소가 된 것. 일단 이런 소식은 우리에게 불길한 예감을 주는 것으로 다가온다. 병세가 복잡, 악화되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복잡한 가족간의 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caregiver들이 겪는 극심한 어려움으로 보아서 그 집 베로니카 자매님이 얼마나 물심양면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조금 더 자세한 것을 알 수 있으면 좋을 테지만, 그것이 지금 문제가 아니고 그저 이 어려운 시간을 잘 견디기만 기도할 수밖에 없으니… 아무런 큰 문제 없이 지내는 우리의 현재 시간들이 미안해질 뿐이다.

겨울을 지내고 처음으로 driveway hedge trimming 을 했는데, 이제까지 했던 것 중에서 오늘 것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왜 그랬을까.. driveway 외에도 집 앞에 있는 bush도 손을 보았는데 그곳의 job은 driveway에 비해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다, 괜찮아~~

Ozzie가 온지도 일주일이 지나며 이제 Izzie와 Ozzie사이는 큰 문제가 없이 보인다. 서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싸우지도 않으니까… 전에는 먼 곳에서 노려보기만 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가까이서 서로 응시하는 사이가 되었다.

오늘 오후에는 새로니와 유나가 잠깐 놀러 왔다. Richard가 친구 결혼식 참석차 out of town (Las Vegas)를 해서 유나와 우리가 조금 더 가까워지게 하려고 온 것이다. 전처럼 유나를 우리 집에 놓고 가는 것에서 함께 왔다가 가는 것을 유나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녀석이 처음 오면 그렇게 서럽게 울 수가 없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까맣게 먼 옛날 나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녀석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엄마와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무슨 짓을 못하겠는가? 이렇게 요즈음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다시 찾아보는 노력을 할 기회가 생긴다.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모르고 살았던 것이 적지 않을지도 모르지 않을까?

Neil Sedaka’s Greatest Hits Album 1963

 

얼마 전에 추억의 LP album jacket을 생각하다가 찾은 Gordon Lightfoot album이 있었는데 오늘은 거의 우연히 1960년대 초, ‘오 캐롤, 아앰 빠다빵’을 따라 부르던 추억으로부터 Neil Sedaka와 그의 hit album jacket까지 기억을 해서 결국은 YouTube에서 그 album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다.  1963년 나온 이 LP  album에 수록된 모든 곡들도 함께 찾았는데, 이것은 개별적으로 되어 있어서 귀찮지만 내 자신이 ‘전체 곡들’을 직접 PC에서 record한 후에 mp3로 만드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판’의 모습, 어찌 잊으랴~  1963~4년(고1, 2) 무렵 우리가 살던 남영동 집에서 수없이 많이 듣고 듣고 했었다. 제일 유명한 곡은 물론 Oh Carol이지만 내가 좋아했던 곡은 LP SIDE-A에서 첫 곡 ‘Next Door to an Angel‘, 이 곡을 당시 유행했던 LIVING STEREO 의 효과를 만점으로 살리는 곡이어서 인상적이었던 기억이다.

오늘 아침 깨어나면서부터 다시 나 자신의 ‘太古 기억’을 더듬는다. 과연 어떤 기억들이 제일 오래 된 것인가, 그것은 역사적, 특히 대한민국 역사, 으로 어느 때, 어느 곳의 것들인가… 이제 완전히 망각의 세계로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 노력을 하고 싶구나, 과연 어떤 상황에서 우리 아버지는 북으로 끌려가셨던가, 당시의 모습들은 어떤 것이었고 어떻게 역사 속에 조명되고 있는가… 왜 이런 괴로운 그림들이 갑자기 이런 것들이 나에게 갑자기 다가온 것일까?

현재는 1953년 휴전 전후를 중심으로 당시의 신문들을 자세히 살피며,  우리가 그 당시에 살았다는 집과 동네를 기억해 내면서 추리를 하고 있다. 이제까지 나는 1953년, 그러니까 나의 나이 5살 때까지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더 알고 나는 그 이전 그러니까 1952년, 아니 1951년까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물론 100% 확실할 수는 없겠지만… 가장 확실한 기억은 물론 휴전 전후지만, 분명히, 거의 확실히 어느 집 골방에 숨어 살았던 어두운 모습들이 꿈꾸듯이 떠오르는 것을 무시할 수가 없다. 그 골방이란 것이 이제 보니 원서동 무당집의 뒷방인 듯한데 그렇다면 그때는 1951년 1.4후퇴 이후부터 그 해 5월경 서울 재수복 전 무렵이 아닐까… 그러니까 나의 기억력은 이제 거의1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나의 기억력을 무시하면서 일생을 살았다는 것이 후회스럽구나…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NO-MEAT-DAY 금요일 아침 고정식’ pancake으로 아침을 먹었다. 이제는 그야말로 눈을 감고도 만들 수 있게 되어서 손쉬운 요리가 되었다. 하지만 색다른 아침메뉴를 더 개발을 못하며 사는 것이 항상 불만이긴 하다. 그래도 이 정도라도 할 수 있는 ‘노인 남편’이 그렇게 많을지는 의문이다.

오늘 Ozzie와 산책은 Sope Creek 의 ‘양쪽’을 모두 섭렵하는 거의 full course가 되어서 정확히 1시간을 걷게 되었다. 알맞은 시원한 봄 날씨 덕분에 하나도 피곤하지 않게 구경을 하며 걸었다.  오늘의 mileage는 어는 정도가 되려나.. .하고 Phone을 보니.. 5,500보 2 마일 가량… 예상했던 대로인데.. 생각보다 거리가 짧은 것 같아서 생각해보니 역시 Ozzie녀석이 가는 곳마다 한눈을 팔며 늦게 걸어서 그런 것이다. YMCA indoor track에서도 거의 2 마일 가량 걷는 셈인데, 그곳에서는 35분이 걸리는 것과 비교가 된다.

Bernardo Kastrup 의 ‘논문 급 essay’ Bigelow Prize paper를 모두 읽게 되었다. 명제는 간단한 것: 육체적인 죽음이 의식의 소멸을 뜻하는 것인가? 그의 해답은 물론 ‘절대로 아니다!’.. 이 얼마나 흥미롭고 행복한 결론인가?

Izzie, 양양이의 먹이가 wet food로 바뀌면서 걱정 반 희망 반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현재까지 녀석은 잘 적응을 하고 있다. 또한 토하는 것도 조금 줄었고 피가 섞여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로 감소하는데 이상한 것은 배설물의 양이 엄청 줄었다는 사실. 이것 좋은 것인지, 아니면… 체중이 분명히 최근에 많이 줄었던 것이 걱정인데… 아~ 좀 봐주세요!

아~ 이승만 대통령 할아버지~

1951년 9월 24일자 시사화보 잡지 LIFE Magazine에 실린 이 사진, 이승만 대통령의 유쾌하고 긍정적인 모습이다. 이때의 육이오 전쟁의 상황에 상관이 없이 이렇게 트럼펫을 부는 미군 장성에 맞추어 드럼을 치는 모습…  참 여유가 있어 보인다. 사진 설명에 의하면 대통령이 타고 가던 비행기가 미군 해병기지에 ‘불시착’, 그를 위로하려는 미군측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여서 이렇게 드럼을 치며 흥을 돋구었다고…  1951년 가을이면 한국전쟁은 어떤 때였는가…  UN 연합군이 서울을 재탈환하고 3.8선 부근까지 북진, 그리고 그곳에서 교착상태,  각종 고지에서 혈투.. 또한 개성에서 휴전을 위한 예비협상이 시작 되던 때.. 라고 같은 LIFE 誌는 보도한다.

그 당시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이미 수복이 되고 피난민들이 부산 등지에서 모두 돌아온 이후였던 그때, 아마도 원서동 ‘무당집, 병세네 집’ 골방에서 이미 납치되어 사라진 아버지 없이 누나와 함께 세 식구가 숨어 살았을 것이지만 3살이 조금 지난 나이에 그때의 기억은 거의 꿈같은 환상적인 것들이다. 이후부터의 각종 추억들, 북진통일 북진통일.. 포로 석방.. 이승만 대통령은 한마디로 구세주 미국에 못지않은 우리들의 모든 것, 할아버지였다.

 

오래 전에 읽었던 것이었는지, 제일 추웠던 느낌을 San Francisco의 한 여름에 경험을 했다는 요지의 말이었다. 이후 오랜 세월을 살면서 나도 비슷한 경험을 꽤 많이 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 되었다. 4월 27일, 5월을 코 앞에 둔 오늘, 하루 종일 흐리고 비가 온 탓이었는지 집안은 거의 냉장고 처럼 느껴지고, 급기야 space heater까지 가동, 그래도 추워서 담요까지, 나중에는 겨울 옷을 찾기까지 했으니… 이것 분명히 나이와도 관계가 있을 것 같다. 이런 날을 보내는 제일 좋은 방법은 ‘침대 속으로 들어가는 것’,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했다.

이런 ‘샌프란시스코의 한여름’ 같이 을씨년스러운 날 점심 메뉴가 날씨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homemade ‘수제비’와 ‘너무나 감칠맛이 나는’ 겉절이 [사전으로 겉저리가 아니고 겉절이임을 확인] ,  원래는 fast food 정도로 해결하려 했던 오늘은 이렇게 날씨의 ‘역혜택’으로 나답지 않게 거의 ‘식도락, 먹보, gluttony’ 의 ‘소죄’를 범하게 되었다. 요즈음 너무나 입맛, 밥맛이 좋은 것은 내가 생각해도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매해 봄마다 겪는 ‘식욕부진’의 고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것도 2월 초의 ‘과달루페 은총’의 여운 중의 하나인가… 그저 감사합니다, 과달루페 성모님!

Cloudy, Cool, Rainy & Wednesday

생각보다 비구름이 잔뜩 낀 오전, 비가 조금씩 뿌리는 것을 보고 ‘둘이서’ 산책을 나중에 가려고 했지만 생각을 바꾸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우산을 가지고 일찍 나갔는데… 결국 비는 더 많이 내리고 나는 우산을 쓰고 걸었다. Ozzie는 그런대로 비를 맞고 걸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 그저 밖에서 걷는 것이 그렇게도 기쁜 모양…  오늘의 비는 아주 싸늘하게 내리는 것, 포근하고 가벼운 봄비라기보다는  추위를 예상하는 가을비의 느낌을 주어서, 아련한 감상에 젖기에 거의 완벽한 날처럼 느껴진다.

더 비가 오기 전에 산책을 시작했지만 이때부터 비는 더 많이 내리기 시작, 나는 우산이 있어서 괜찮았지만 녀석은 조금씩 비에 젖으며 걷기 시작, 털이 워낙 길어서 그런지 문제가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비는 고만고만한 정도여서 큰 문제 없이 산책이 끝났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온통 초록색이 짙어지는 동네의 모습을 보는 것, 나쁘지 않구나~~

모처럼 잔뜩 흐린 새벽, 반갑다. 다시 포근한 봄기운이 느껴지는 것 좋다. 오늘 아침 무렵에는 가랑비까지 예상되는데 혹시 꿈 속의 April Shower 는 아닐지… 그래 오늘 새벽 잠결에서 연숙이 ‘미사 쉬자’고 말하는 것, 나도 솔직히 반가워했다. 일단 가려는 노력은 한 거니까. 아마도 밭일을 생각하는 모양인데 만약 비가 예상보다 많이 내리면.. 그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내가 Ozzie와 알맞은 시간에 산책을 할 수만 있는 그런 비라면 쌍수로 환영한다.

이제 4월도 5일도 채 남지 않았는데… 일단 ‘큰 작업’은 마무리가 되고 있으니까 조금은 안심이 되는데, 다음 것, 거의 2달 이상 밀리고 있는 것, 이것에 변화를 남겨야 하지 않을까? 솔직히 요즈음 ‘자신감’ 이 현저히 저하된 나의 불쌍한 모습을 본다. 꼭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쩔쩔매고, 미루고, 포기하는 악순환을 계속 경험하는 것이다. JUST DO IT, IT’S NOW OR NEVER 등등이 100% 사라진 것, 이것 어찌된 일인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차근차근 하나 둘, 한걸음 두 걸음… 이것들 다 어디로 갔는가? 어디로?

비록 나의 처음 목표였던 PHP8.x compatible WordPress Theme을 찾고 setup과 install까지 끝냈지만 생각처럼 이 작업의 여운은 강한 것인지, 서서히 WordPress Theme ‘internal’ 자체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겉에서  보는 것에서 아예 development쪽으로 감히 관심이 upgrade가 된 것인데… 어쩔 것인가? 이것은 예상치도 못한 ‘시간의 도둑’이 될 터인데…  아~ 하지만 됐다, 됐어… 이제는 이런 ‘작디 작은 것들’에 관심을 더 쓸 인생의 여유가 없지 않은가? 더 크고 높고 안 보이는 것에 관심을 두고 싶다.

어제 저녁부터 download를 시작했던 YouTube 한국어 해설 일본 드라마 비디오들, 대부분 YouTube에서 잠깐씩들 본 것들이지만, 이제는 그 지겨운 광고 없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놈의 ‘레본 무비톡’ 이라는 곳에서 일찍 나왔던 것들을 잠시 제목들을 보게 되었는데… 아~ 대부분의 erotic, sexual 한 것들이 아닌가? 나는 이런 것들에 약한 것을 잘 알기에 일찍 피했는데.. 왜 나는 이렇게 약한 놈일까? 나 자신의 깊은 속을 내가 무서워할 정도이니 말이다. 이런 쪽은 ‘무조건 시각적으로 피하는 것’ 밖에 나에게는 방법이 없는데… 나의 숨은 악마는 이쪽 분야에서 나를 ‘아직도’ 넘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나는 ‘도움의 은총’으로 문제가 없을 것이다.

오늘 날씨는 예상을 뒤엎고 하루 종일 음산하고 싸늘하고 축축한 그런 날이 되었다. 이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더 맛있는 커피 준비를 할 수 도 있었을 것 아닌가?  특별한 한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위도식한 것도 아니다. 앞쪽 잔디를 말끔히 trim 을 했으니까… 

또 조심스럽게 나를 안심시키는 것이 있다면 17살 ‘할머니’ 양양이가 wet food를 점점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점점 양도 늘어나고 있는 듯 보인다.  그 동안 마르기 시작했던 몸집이 조금 전처럼 정상으로 돌아오기만 눈 빠지게 기다리는데… 어떻게 될 것인지..

이런 어둡고, 뼈 속이 시리듯 하게 을씨년스러운 날에는 배속까지 따뜻해지는 점심이 최고가 아닐까, 역쉬 이런 날에는 연숙의 전통적 homemade 짬뽕이 최고다. 각종 해물과 상당히 매운 국물의 조화…  이후 배가 너무 불러서 하기 싫은 것, 설거지도 간단하고…

이제는 더 미룰 수, 도망갈 수, 피할 수, 아니 그럴만한 낯짝이 없지 않은가? 1월 말부터 나의 인생살이, 어떻게 이렇게 매사를 미루며, 피하며, 못하며 사는 것인가 말이다. 유일한 이유를 찾자면 역시 과달루페의 ‘깊은 신앙적 체험’을 아직도 글로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면 왜? 아~ 역시 사진들을 정리할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닌가? 아~ 정말 나는 왜 이렇게 소심한 인간인가? 얼마나 더 오래 살겠다고 이렇게 세월을 좀먹으며 사는가 말이다! 지금이 기회다. 하나라도 일단 시작을 하면 이후는 유기적, 자생적으로 혼자서 굴러가는  ‘일사천리’ 나의 특유의 에너지가 폭발할 것, 너도 잘 알지 않느냐?

부활 3주 일요일, 동년배들과 함께…

Old Fort Yargo

일요일 하루가 다 지나가는 지금, 아~ 뻑쩍지근~ 피곤은 하지만 머리는 반대로 맑고 조금은 들떠있는 느낌.. 어떻게? 간단하다, 모처럼 많은 사람들, 그것도 같은 가톨릭을 믿는, 그 중에서도 나이가 거의 엇비슷한 동년배들 과 일상의 주변 환경에서 멀리 떠나 시원하고 멋진 호숫가에서 신나게 떠들며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틀란타 메트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Fort Yargo State Park, 이곳은 Pandemic 직전 2019년에 4월과 10월 두 번이나 갔던 곳,  그때와 같은 shelter로 다시 갔던 것도 그렇고 알맞게 포근하고 맑은 날씨에 써늘한 호수의 정경들.. 우리 같은 동년배 Senior들에게는 거의 치명적이었던 Pandemic을 모두들 견뎌내고, 4년 만에 거의 같은 교우 회원들과 같은 야외에서 어울린 것, 이제는 이들과도 정이 들었는지 하나도 어색함이 없고 농담도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 한마디로 기쁘고 감사할 일 아닌가?

우리의 성당 장년 그룹의 단체, 등대회의 모임으로 60~7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2017년 가을에 묘한 인연으로 알게 된 곳, 출신성분이 각각이지만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소속 장년층 그룹이라는 한가지 공통점은 의외로 끈끈하게 이끄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큰 재미라고는 별로 없지만 꾸준히 세월을 견디어 내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더 멋진 그룹’이 될 여건을 가진 것에 비하면 현실은 거의 반대인 듯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동년배를 만나면 왜 그렇게 여건에 상관없이 마음이 편한 것일까? 정치적 성향, 출신 성분, 성격의 다양함, 살아온 인생의 색깔들 비슷한 점보다는 다른 것이 더 많지만 제일 중요한 ‘세계관을 좌우하는 신앙’이 이 모든 다양함을 평준화하는 힘을 주는 것 같다. 또한 같은 역사적 시대를 살아왔다는 사실 하나로 수많은 거리감을 좁혀 주기도 한다.

이런 사실로 사실 이런 단체는 성당 사목적이 차원에서 ‘공식적인 지원’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실은 거의 정반대로 흐르는 듯해서 나는 근래에 ‘맥아더의 고별사, old soldier never…’를 되뇌며 살게 되었다.

Ozzie‘s Coming for 3 weeks!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새로니 집에 들러서 Ozzie를 데리고 왔다. 이번에는 Izzie로 인한 걱정, 근심과 더불어 Ozzie까지 3주 동안이나 봐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하지만 일단 이렇게 데리고 와서 편히 쉬게 되니 그런 것들은 슬그머니 다 사라진다. 쓸데없이 미리 겁을 먹은 것인지도..  Izzie와 Ozzie가 사이가 좋지도 않는 것, Izzie의 건강문제 등등이 모두 신경을 쓰게 할 것이지만, 그래… 이런 것들 다 큰 문제 없이 지나가리라~~

오늘 아침 미사엘 가니 즐거운 놀람이라고나 할까… 매주마다 우리 바로 뒷자리에 홀로 앉는 마리안나 자매님이 우리 두 자리를 ‘예약’을 해 놓은 것, 우리 자리에 성가집과 주보를 미리 놓았던 것이다. 지난 주에 우리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았던 것을 보고 그 자매님이 신경을 써 준 것이다. 이런 작은 일이 얼마나 고맙게 느껴지는지… 이래서 삶은 그렇게 각박한 것만은 아니구나~~ 고마워요, 마리안나 자매님!

사일구 사일구 63년…

4.19 사일구, Life Magazine이 사설화 社說化 했던 Student Phenomenon의 주역들…  장장 63년 전인 1960년, 무참하게도 엄청 흐른 세월의 잔해처럼, 머리 속에 조금 생소하게 느껴지는 오늘 4.19의 느낌… 참 세월이 많이도 흘렀구나….  피를 흘리며 쓰러졌던 형님, 누님들 이제는 80대를 상회하는 세대로 진화, 그들의 사상적, 군사정권 치하의 운명과 함께 ‘죽어도 지기 싫은’ 숙적 일본아해들을 따라 잡으려 모든 체면을 깎아 내리고 싸워서 만든 번영조국 위로, 이제는 세대적 갈등으로 ‘해괴하게’ 돌아가는 조국의 장래를 아직도 걱정을 하고… 하기야 그 뒤를 바짝 뒤로 이은 우리 세대 역사 오십보백보 격이니..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카빈 총소리가 효자동 전차 종점으로부터 생생하게 들려오던 가회동 골목 입구에서,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사태를 예감해서 조회가 끝나자마자 조퇴를 당했던 우리들에게는 어리고 어린 순진한 즐거움과,  만화의 즐거움, 철인 28호, 라이파이 ‘과학적 영웅들’의 도움으로  형, 어른들의 고통을 모르며 살았던 그날의 느낌들… 나에게는 영원한 역사적 추억의 보금자리로 자리를 잡았고… 기억이 되는 한 나는 절대로 희미해질 수가 없는 그 4월의 시절들.. 사일구, 사일구… 쓰러진 형님, 누님들을 언젠가는 다시 ‘어데선가’ 볼 것도 이제는 초월적인 확신으로 다가온다.

벌써 code orange? 왜 벌써 이런 일기 예보가?  싱그러운 5월도 되지 않았는데… 이제 조금씩 계절, 날씨가 ‘더운 영역’으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싸늘한 밤, 뜨거운 낮이 교차되는 전형적인 4월의 모습인가.. 아니다, 벌써 4월도 하순으로 접근… 아~ 시간이여, 세월이여 봐주라, 조금만 천천히 가거라, 여유를 좀 주라~~

거의 한달 이상 나의 future website theme을 찾으려는 결과인지, 현재 나의 정든 Artisteer  WordPress Theme의 모습이 조금 ‘왜소하게, 고물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곳에 더 시간과 정력을 쓰는 것이 조금 어색하기까지 하니…  조금 더 신선하고 넓게 보이는 것에 익숙해지는 나의 모습으로… 역시 바꾸기는 바꾸어야겠다는 심증이 굳어진다.

오늘은 유난히도 우리 둘의 분위기가 밝기만 했다. 이런 상호간 느낌은 왜 이다지도 매일 매일 그렇게 바뀌는 것일까? 나는 알 수가 없다. 근본적인 장애나 문제가 없는 우리 부부, 왜 그렇게 가끔이지만 갑자기 어두워지는 것일까?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이것이 제일 확실한 처방약이라는 경험적 진리를 왜 나는 일초도 되지 않아서 잊게 되는 것일까? 그래도 오늘 같은 날, 이런 밝은 가능성을 앞으로 나의 희망으로 알고 조금이라도 기쁘게, 즐겁게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무조건 내 탓임을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 그것이 삶의 처방책이요, 지혜임을 잊지 말자.

정확하게 2주 만에 Holy Family 동네성당 아침 미사엘 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성금요일 전 수요일에 갔던 것이 마지막… 하지만 나는 참으로 오래 전으로 느껴진다. 나는 항상 이런 식이다. 왜 그렇게 어색하기만 하고… 연숙이와 같이 가지 않는다면 거의 피하고 싶은 그런 것, 그것이 나의 성격이니 어찌하겠는가?

썰렁한 성당 내의 모습, 이곳도 세월이 우리에게는 많이도 흘렀구나~ 2012년부터 아침미사엘 가기 시작했으니까… 그 동안 교우들의 모습도 사제들과 함께 나이와 Pandemic를 거치며  변하고…  요새는 아침 rosary group leader격인  ‘거꾸리와 장다리’ 부부의 동정을 유심히 살피게 되는데 오늘은 숫제 두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질 않는다. 장다리 형제님이 아프다고 했기에 아마도 그것이 이유일 것이다. 세월엔 약이 없구나, 언젠가도 우리들도 같은 운명이 되겠지만…

바짝 마른 식빵으로 만든 우리의 classic Sonata Cafe, 이것도 모처럼 다시 오늘부터 시작이 되었다. McDonald’s에 가는 것도 이제는 조금 자제를 해야지..  이어진 YMCA gym, 이곳도 2주 만에 간 것이고 보니 조금 새롭게 보인다. 특히 걷는 것도 2주 만이니… 그렇게 운동을 못하고 살았는가… 연숙이는 오늘 수영은 빼고 걷기만 했고 나도 살살 얌전하게 모든 machine을 할 수 있었다. 그래~ 얌전하게, 적당히, 부드럽게, 무리하지 말고~~

이어서 Sam’s Club엘 들러서 점심용 sushi를 사가지고 와서 아주 맛있게 점심을 집에서 먹었다.  하루의 거의 절반이 소요되는 이 regular, fixed routine,  크게 신나는 듯 보이지는 않지만 사실은 이것이 우리의 70대 삶을 지탱시켜주는 원동력이 아닐지…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오후의 혈압이 나를 놀라게 한다.  120~30란 숫자가 눈에 익은 것인데 오늘은 115/65? 이것이 정상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조금 낮은 것인데, 조금 어지럽기도 하다. 이 정도면 조금 현기증을 느끼게 되는 것 아닐까? 하지만 큰 문제가 없으니 상관은 없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근육 운동까지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낮아졌을까? 혹시 이것이 정신적, 심리적, 심지어 영성적인 긍정적인 factor는 없는 것일까? 무엇이 이렇게 혈압을 올리고 내리게 하는 것인가? 나는 그것이 알고 싶다!

NYT에 Dominion Voting scandal에 관련된 Fox News 상대의 ‘명예훼손’ 소송 결과가 보인다. 예상은 조금 했지만 거짓말로 일관하고, 그것을 뉴스라고 우겼던 또 다른 SOB들, Fox News의 소위 말하는celebrity journalists들, 그들은 한 마디로 쓰레기 중의 쓰레기… 사상초유의 엄청난 손해배상으로 소송은 취하게 되었지만 그들의 행태는 완전히 천하에 증명이 된 셈이니… 아~ 정말 시원하구나~~  하지만 이 엄청난 손해배상으로 그들의 ‘거짓말 자백’을 들을 수 없었던 것은 아쉽기만 하다. 말도 안 되는 ‘부정선거’ 거짓말로 돈을 벌고 살아가는 이 바퀴벌레급 언론인[제일 악질은 역시 Tucker Carlson이란 준 정신병자]들을 퇴출시킨 무기는 역시 미국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  legal system인 것, 왜 그것을 그들은 간과했을까?  하지만 모든 문제 원인의 핵심은 역시 이들의 미친 괴수두목인 ‘진짜 SOB’ DONALD이기에 또 다른 더욱 강력한 legal system의 위력을 학수고대하고 싶다…

맥랑 麥浪,  ‘보리, 밀’ 麥, ‘물결, 파도’ 浪  허~ 이런 단어, 말도 있었나? 이것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한번 찾아보니…  ‘보리나 밀이 바람을 받아서 물결치듯 흔들리는 모양’ 아~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간다. YouTube에서 우연히 본 1990년대 초 KBS ‘청소년 드라마’ 연속극이의 제목이 이것이었는데… 왜 맥랑이라고 했는지? 그러니까 이것이 ‘사춘기’를 뜻하는 것인 모양이다. 이제야 궁금증도 풀리고, 이 드라마를 시대, 세대 배경을 의식하며 볼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청소년 드라마, ‘KBS 청소년 문학관’ 을 나의 시절을 함께 회상하며 보았기에 이 ‘맥랑시대’도 조금 기대가 된다.

오늘은 ‘용하게도’ [이 말은 100% 구어체인가] WP dream theme quest를 오후 8시가 되도록 손도 대지를 않았다. 이 theme quest work, 묘하게도 이것과 씨름하며 싸우는 시간 그 자체는 재미있고 신나는 것이지만, 일단 일이 끝나면 솔직히 끝 맛이 ‘더럽다.’ 항상 결과가 ‘미완성’ 상태이기 때문인지… 그래서 요새는 시작하는 것 조차 무섭게 되었으니… 왜 이렇게 나는 만사에 민감하기만 한 것일까? 도대체 이 ‘쪼잔한 것’이 무엇이길래, 나를 조금 덜 행복하게 느끼게 하느냐 말이다!!!!!!

Yesterday, Let It Be

하~ 잊고 싶은, 보기 싫은 나의 모습이 난무하던 어제, 그야말로 잊고 싶은 날이 되었다. 건전하게 시작된 새로운 하루가 어떻게 그렇게 허망하게 나의 self-control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난동을 부리듯 끝나고 말았는가? 하지만 이런  하루는 전에도 적지 않게 보았고, 경험했기에 놀라지는 않는다. 다만~ 싫다, 싫어~ 하며 실망할 뿐이다.

앞으로 이런 ‘사태 진행’이 또 올 것인데,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나의 관심사인데, 솔직히 묘책이 없다. 그저 ‘믿습니다’ 라는 것 밖에 없는지… 왜 이런 나의 심리상태에 나는 쉽게 항복을 하며 포기하는 것일까? 이제는 ‘전설처럼’ 느껴지는 지나간 십여 년 간 나의 변신, 깨달음, 해탈 등 등은 어디로 도망간 것일까? 하지만,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 이런 ‘위기’를 조금 더 현명하게, 용기를 가지고 대처하고 싶을 뿐이다.

어제의 ‘시작, 사태, 진행’ 은 복잡한 것은 없었지만 나의 심리적 상태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것을 조금 분석하고 넘어갈 것인지, 아니면 그럴 필요가 없을까?

간단하게, 내가 싫어하는 말투, 버릇에 화가 났던 것으로 시작, 각종 ‘쪼잔한’ insurance expense의 stress 로 이어지고… 마지막 모습이 안 보이는 나의 WordPress Theme quest, 현재 5일간 계속된 우리들의 Easter Break의 단조로움 등등… 전혀 나에게 활기를 주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저 YesterdayLet It Be 로 만족할 것인가? 아~ 나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일까? 조금 단순하게 생각하며 살 수는 없을까? ‘어머님, 성모님’ 저의 부족함을 채워주소서~~~

정상으로 돌아오려 기를 쓰는 ‘증거’로 오늘 아침을 오랜만에 ‘야채볶음밥’ 으로 푸짐하게 만들어 먹었다. 어제의 일들을 조금이라도 잊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노력은 한다.  어제의 ‘불쾌한 일’들을 앞으로 어떻게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까 종종 생각은 하지만 이런 것,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그저 상식적으로 노력, 노력 밖에 더 있겠는가? 깊이 생각하는 나의 습관, 간단히 생각하고 넘어가면 되지 않겠는가?

갑자기 주변의 모습이 진초록으로 바뀌는 이때, 날씨로 인한 큰 사고 없이 올해는 계절이 제대로 순리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좋은데, 조금 심심하지 않은가?  하늘이 도와서 이 지역은 자연적 사고가 별로 없고, 심지어 tornado같은 것도 사람이 별로 안 사는 곳으로.. 등등.. 한마디로 날씨에 관한 big news가 없다. 물론 이것은 나의 응석받이에 불과한 심심한 넋두리에 불과하다. 대신 봄을 기다리며 화초, 야채 텃밭의 꿈을 꾸는 사람, 특히 연숙이, 이들에게는 요새가 꿈같은 시간이 되고 있을 것 같다. 나도 서서히 움직여야 하는데 아직도 시동, 발동이 걸리지 않았으니… 하지만 이제는 이것도 시간문제다..

WP Theme에 매달려 머리 속이 거의 ‘새로운 것으로 흥분된 상태’여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지만, 그래도 조금 바깥의 공기를 느끼기 위한 시늉으로 거북이처럼 시작된 picnic table repair작업 그 자체가 아니고 ‘준비 작업’을 했는데.. .tool shed 근처에 가면 한숨부터 나오니… 이 ‘고물상’의 각종 잡동사니들.. 어떻게 정리, 처리, 청소를 한단 말인가? 꿈같은 얘기지만 이것들 90%는 모두 처리를 하고 싶은데~~

오늘은 아침도 나의 볶음밥으로 푸짐히 먹었는데 점심도 마찬가지로 내가 좋아하는 chicken vegetable pasta를 extra, 아니 거의 곱빼기로 먹었다. 식탐일 정도로 먹는 우리들, 과히 아름답지 않은데…  요새 나의 입맛이 최상인 듯 느껴지는데 혹시 이것도 과달루페 성지순례의 은총 중에 하나인지…

오늘로서 나는 7일째 차를 타는 외출을 안 한 셈이다. 이것도 거의 기록이 되는 것 아닐까? 외출뿐만 아니라 그 동안 Easter Break이랍시고 수난의 시간들을 제외한 모든 신심일정까지 중단을 하였기에 서서히 그 ‘좋지 않은’ 후유증이 걱정이 된다. 너무 지나치게 쉰 것은 아닐지… 아니야~ 이런 때도 나에게는 필요한 것 아닐까? 성모님, 그렇지요, 100% 잊은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내일부터 자연히 우리의 break는 풀어집니다. 내일 주일미사로 우리의 부활휴가가 자연스레 끝이 납니다.

아~ WP ‘dream theme’ quest… 이제 나는 이것에 대해서 꽤 많은 정보, 지식을 축적하게 되었다. 거의 한달 이상 나의 머리 속은 이것으로 차있었으니까… 현재로서는 OceanWP theme으로 결정이 날 듯한데… 솔직히 그것을 아직도 모르겠다. 이러다가 우연히 순식간에 더 좋은 것을 찾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의 최근의 website design 특히 WordPress trend를 보는 관점도 덕분에 많이 새로워질 수 있어서… 이제는 전의 것에 그렇게 목매는 않을 자신도 서서히 생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