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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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인호형의 email을 받았다. 예의 ‘김인호 컬럼’이 아닐까 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한양대 명예교수 정기인 교수‘에 관한 것이었다. ‘국제무역 특히 상사(商事) 중재 분야의 국내전문가’라고 소개 된 이 정교수가 ‘대변신’을 해서 어떤 책을 출간한 것에 관한 소식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전공인 경제와 다른 분야인 역사를 접목하고 거기다 ‘문학’ 장르를 감싼 그야말로 대 변신이었다는 것이다. 이름하여 ‘경제 역사소설’이라고 한다. 어떤 역사를 경제인의 눈으로 본 것이라고 하면 큰 무리가 없을까 생각을 했다.

소개된 글에 의하면 정 교수는 아마도 조선기에도 ‘경제통’이 있었을까 연구를 한 후에 그 사람이 바로 조선 19대 왕 숙종이었고, 수많은 사화를 통해 피를 뿌린 정치 뒤에는 ‘거대한 새로운 화폐 경제‘의 창출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가 바로 조선 전역에서 화폐가 보편된 때라고 한다. 화폐가 있어야 가치가 나오고 경제적 발전이 온다고 한다. 또한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그런 ‘정책’에 장희빈의 역할이 컸다고 했다.

 

 

정기인 명예교수 시사 talk 대담

 

나는 역사통도 아니고 경제통도 아니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이런 사실은 가능하다고 추측은 한다. 한가지 사건을 여러 쪽의 각도에서 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의 사극에서 본 것처럼 장희빈과 숙종의 이야기는 분명 흥미위주의 가느다란 각도로 본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의문은 이 ‘소설’이 몇 percent가 fiction인가 하는 것인데 거기에 대한 명쾌한 답은 찾을 수가 없다. 그가 출연한 TV Talk Show에서도 그것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에 그저 나는 아마도 ‘거의가’ 다 사실적, 역사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보았다.

 저자인 정기인 교수는 “과거역사에서 음모술수와 권력투쟁, 전쟁으로만 묘사된 불건전하고 부끄러웠던 역사를 완전히 씻어냈다’고 자부를 했고, “전문가”로부터 “재미: 95점, 신지식: 100점,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치: 90점“을 받았다고 했다.

 

신간: 정기인 저, 경제대왕 숙종

신간: 정기인 저, 경제대왕 숙종

이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부끄러웠던 역사를 씻어냈다”고 하는 것은 어떤 뜻일지 조금 의아해진다. 역사를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일지. 만약에 fiction으로 쓰여진 것이라면 그런 표현을 해도 되는 것인지.. 숙종의 “경제업적”을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성과와 비교하는 표현도 흥미롭기만 하다. 

 


세계 최초의 『경제 역사 대하소설』

 

경제 대왕 숙종

숙종,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멸망한 조선을 경제대국으로 만들다

 

매일경제신문사 발행

 

노벨문학상에 도전하는 세계 최초의 ‘경제역사’소설!

-이제까지 역사소설은 음모술수, 권력투쟁, 전쟁뿐이었다-

-이제까지 노벨문학상작품들은 암울한 인권만 묘사했다-

-진정한 인권은 먹는 것과 전쟁예방이다-

 

숙종은 백성의 진정한 인권은 ‘먹는 것’과 ‘전쟁예방’이라 생각했다!

왜, 역사소설들은 음모술수, 권력투쟁, 전쟁 등 불건전한 주제만 다루었을까? 이 소설은 진정한 인권은 먹고 사는 것임을 확신하고 쓴 ‘경제역사소설’이다. 소설은 숙종이 화폐경제로 저축과 투자, 생산, 고용, 외상거래라는 초기자본주의 거시경제운용을 해서 불과 30년 만에 단축성장으로 경제대국을 이뤄냈음을 발견했다.

숙종은 박정희대통령에 300년 앞서 조국근대화와 경제개발에 성공한 경제대왕이었다. 왜란과 호란으로 멸망한 조선을 거시경제운용으로 성장동력을 일으켜 영조와 정조의 부강한 왕조를 열어주었다. 박대통령이 한국에 세계10대 경제대국의 길을 열어준 것과 비슷했다. 숙종 뒤에는 무역 장사꾼이었던 장옥정의 내조가 있었다. 이 소설에는 그 과정이 매우 재미있고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추천사>

“이 책은 경제역사대하소설이다. 300년 전에도 배곯는 백성을 위해 경제개발에 성공한 임금이 있었음을 알고 자긍심이 생겼다. 나는 한국경제의 개발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한 사람으로서 이 어려운 시기에 대학생과 직장인, 공무원, 군인, 정치가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서강대학교 전 총장 손병두

 

 

줄거리 요약

이제까지의 역사소설들은 권력투쟁, 음모술수, 전쟁 등 불건전한 주제만 다루었다. 과거의 국가통치자들도 富國强兵을 첫째로 삼았었을 텐데도 ‘富國’은 전혀 다룬 소설이 없었다. 저자는 300년 전에 숙종이 화폐경제로 저축과 투자, 생산, 고용, 외상거래라는 초기자본주의 거시경제운용을 해서 경제대국을 이뤄냈음을 발견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대국을 이룬 것보다 더 처절하고 리얼하다.

 

숙종 당시의 사회경제상황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의 폐해는 숙종 때까지 전해졌다.

선조실록에 의하면 “기근이 극심하여 사람고기를 먹기에 이르렀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 괴이함을 알지 못하더라. 길바닥에 굶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메어 먹어 완전히 살이 붙어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산사람을 도살하여 장과 위, 뇌의 골도 함께 씹어 먹는다”고 씌어 있고, “백성들은 굶다 못해 부모와 자식, 형제간에도 잡아먹었다”고 전하고 있다.

농토는 양란으로 170만결이 40만 결로 축소되었고 경상도는 6분지 1로 축소되어 충청도에 전세를 대신 내도록 명령하자 충청도 농민들은 야반도주했다.

그럼에도 사대부과 아문들은 권력을 이용해 농민과 상인들을 다시 수탈하기 위해 고문과 횡포를 자행한 지옥 같은 상이었다.

숙종은 자본과 교통, 통신, 항만 등 산업인프라와 학교, 병원 등 생활 인프라가 제로인 상태에서 경제적 성공을 이룩한 것이다.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다.

 

숙종의 거시경제운용과 단축성장 성공

저자는 과거 왕조들의 경제문제를 파고들다가 조선시대에 뛰어난 경제대왕이 있었음을 발견하였다. 조선 제19대 왕 숙종은 화폐경제와 거시경제운용으로 조국근대화에 착수해 국토개발과 과학기술개발, 자주국방의 시대를 이룩했다.

숙종의 화폐경제 정립은 경제학적으로 큰 업적이었다. 국가경제는 부가가치창출이 핵심으로 저축(투자)과 소득(소비·고용)에서 나온다. 저축은 화폐가 유통돼야 한다. 위대한 세종대왕이 경제대왕이 못된 것은 저축이 없었기 때문이다.

①화폐(상평통보)유통으로 저축과 투자, 교환, 손익계산, 대부 및 외상거래가 가능한 상업시대를 열었다. ②이로 인해 노동의 상품화가 이뤄지고 인신의 지배예속이라는 중세적 신분제도는 서서히 변화되었다. ③민간부문이 살아나고 공공부문도 숨쉬기 시작했다. 공사의 구분 및 기업과 가계의 분리가 이뤄지며 성장동력이 생겼다.

 

장희빈의 경제적 역할과 성과

숙종 뒤에는 칠패시장(현 남대문시장)에서 무역업을 한 장사꾼 장옥정(장희빈)이 있었다는 우리가 몰랐던 사실이 밝혀졌다.

장옥정은 장현의 조카로 칠패시장(현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와 무역을 했다. 장현은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심양에 볼모로 있을 때 6년을 모신 역관이었다.

장현은 효종의 비호아래 칠패시장에서 인삼무역, 비단무역, 무기무역으로 국중거부가 되었다. 장옥정은 외국어를 잘 해서 무역과 장사를 총괄했다.

장옥정은 1680년 22세의 늦은 나이에 장현의 권력야욕으로 궁녀가 되었으나 그녀의 뇌는 시장마인드와 정글법칙에 염색돼 성리학의 사대부들과 충돌한다.

성리학은 송시열을 필두로 선비는 장사나 농사를 해선 안 되며 오직 학문에 정진해야 한다고 주장해 인적자원 낭비의 주범이었다.

숙종 당시 인구는 680만 명인데 선비가 대략 10만 명인 경우 1인당 연간 생산액(GNP)을 30냥(쌀 30석)이라고 어림잡아도 연간 3백만냥의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는 셈이었다.

장옥정은 숙종에게 사농공상의 신분차별을 타파하고 선비들도 장사와 농사를 하도록 하여 국가의 인적 낭비를 없애도록 권고하였다.

장옥정은 화초처럼 자란 숙종에게 경제마인드를 심어주었으며, 화폐유통 등 경제혁신을 반대하는 노론의 지주인 송시열을 사사하도록 하는 등으로 방해자를 제거해 경제개발에 성공을 이뤄냈다.

그 결과 1,000여개의 장시가 생기고 3백만 명이라는 놀라운 고용이 창출돼 숙종은 불과 30년 만에 단축성장을 이뤄내 영조와 정조에게 부강한 문예부흥시대를 열어주었다.

 

숙종과 장희빈의 자주국방 노력

숙종은 자주국방을 위해 강소대국의 국방전략을 세웠다. 군인의 숫자보다 강력한 폭탄을 개발해서 국방을 강화하려 했다. 요즘으로 치면 핵을 보유해 국방을 강화하려는 것과 유사했다.

장옥정은 숙종의 자주국방에 대한 염원을 이루기 위해 화란의 폭탄전문가를 초청해 비밀리에 폭탄개발에 성공했다.

폭탄개발의 성공을 알게 된 청국은 병자호란 항복강화조약(기축약정) 제8항의 위반이라고 폭탄을 해체할 것을 강력히 압박함(요즘 핵개발을 금지하는 것과 유사)

청국은 이 폭탄이 청국에 대한 공격용인 동시에 외몽골과 위구르에 전달돼 위협이 된다며 폭탄의 해체와 숙종과 장희빈을 북경으로 입조하라고 압박한다.

이 기회를 이용해 노론은 청국과 힘을 합쳐 장희빈을 사사하도록 해서 숙종은 압력에 못 이겨 그녀를 사사한다.

 

장희빈에 대한 노론의 저주와 악담조작

장희빈은 노론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만 그들에 의해 지금까지도 악의적으로 비하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인현왕후전』과 『수문록』, 『숙종실록』(편집책임자: 인현왕후 오빠 민진원), 『사씨남정기(노론 김만중)』등이 노론의 대표적 허위기록들이다. 한 예로, 수문록은 노론의 사림학자들이 썼다고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저급하다.

“장희빈은 사약을 먹지 않기 위해 발악했고, 아들의 하초를 잡아당겨 고자로 만드는 패악을 부리다 억지로 사약이 부어졌다. 드디어 장녀가 죽으니 하늘의 천벌을 받아 시체가 순식간에 썩어 냄새가 궐내를 진동하는지라 즉시 궁밖에 내다버렸다.”

 

숙종 사후 조선의 몰락

경제대왕 숙종의 경제적 업적 역시 폄훼된 것은 정조가 독살 된 후 정순왕후와 노론의 세도 정치가들이 상인들의 재산을 탈취하고 경제행위를 억압함으로써 성장동력을 말살한 때문이다.

그 결과 경제적 쇠퇴와 자주국방이 불가능해져 일본에게 나라를 바친 것이다.

 

¶  CROSSING THE THRESHOLD OF HOPE

Scan10105-1 몇 개월 전이던가.. 확실치 않다.. 하지만 6개월은 넘지 않았을 것 같은 느낌. 우리가 다니는 미국 본당 Holy Family CC (Catholic Church)의 성체조배실 (adoration chapel) 에서 비교적 낡은 책 하나를 읽게 되었다. 조그만 책자였는데, 눈에 익은 이름이 보였다. HIS HOLINESS JOHN PAUL II.. 그러니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저자인 책이었다. 제목이 바로 ‘CROSSING THE THRESHOLD OF HOPE” 였다. 직역을 하면 ‘희망의 문턱을 넘어서..’ 정도가 될까. 나 나름대로의 의역은 ‘희망으로 넘어 가며’  조금은 어색한가.. 희망이 없던 사람이 그것을 찾으려 노력하다가 비로소 조금씩 그것을 찾아간다 정도가 아닐까?

성체조배실에서는 주로 성체를 앞에 두고 명상이나 묵상 나가가서 관상까지도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무엇을 하던 사실 제한은 없는 것 같다. 연숙과 그곳을 거의 정기적으로 가게 된 것은 우리가 ‘평일 미사’를 시작하면서였고 평일 미사가 끝난 후에, 필수적으로 일주일에 몇 번을 하는 것은 정하지 않고, ‘가고 싶으면’ 가는 것으로 했는데 의외로 정기적인 것이 되었다. 이 본당의 성체조배 활동은 참으로 활발해서, 우리의 한국본당 순교자 성당에 비하면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할만 하다. 왜냐하면 순교자 성당에는 ‘성체조배실’이란 것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항상 비어있는 듯한 컴컴하고 춥고, 더운  순교자 성당의 분위기1와 이곳의 24시간 쾌적하게 돌아가는 성체조배실이 있는 미국본당의 ‘눈에 안 보이는 차이’는 아마도 상상을 초월할 듯 하다. 어떤 자매님은 경험적으로 성체조배 활동이 있는 모든 본당의 신심 수준2은 ‘거의 자동적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성체조배 Eucharistic Adoration  란 것이 처음에 너무나 생소했지만 의외로 좋은 ‘선배’들을 만나서 큰 무리 없이 합류가 되었고 이제는 ‘좋은 시간’ 중에 하나가 되었다. 레지오 덕분에 처음에는 ‘기본’ 묵주기도 의무를 채우려 이곳에서 그것을 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만의 ‘묵상, 생각’의 시간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다른 것 중에는 그곳에 비치된 ‘좋은 책’들을 ‘난독’하는 것이다. 거기서 정독을 할 수는 없기에 눈에 ‘꽂히는’ 것을 읽는다. 이런 것들이 우연일 수도 있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지 않게 되었다. 그 중에 하나가 여기에 언급하는 이제는 ‘성인’이신 요한 바오로 2세의 책인 것이다.

 처음에 이 책을 접했을 때 직감적으로 ‘괜히 어려운 책을 골랐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교황님이 쓰신 글들은 ‘무조건 어렵다’ 는 선입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교황 회칙이 어쩌구.. 교회 헌장이 어쩌구..’ 하는 글들이 태반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원인이었을까.. 이 책을 조금 읽으며 나는 너무나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았다. 웬만한 교구신부님3들이 일반 본당에서 하시는 수준의 글들.. 주제 들은 ‘항상 궁금했지만 창피해서 물어보지 못하던 것’들로 꽉 차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우연이었을까.. 내가 이 책을 고르게 된 것이.. 아닐 듯 하다.

그렇게 성체조배실에서 ‘가끔’ 즐기던 이 책이 어느 날 보니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누가 ‘빌려간’ 모양인지..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포기를 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다시 그 책이 돌아왔기에 이번에는 never again의 심정으로 그 책의 제목을 적어와서 Amazon.com에서 찾았다. 1994년 발행된 책으로 그러니까 20년이 된 책이었다. 역시 이것도 contemporary classic 영역으로 들어가는가.. 왜 이렇게 세월이 빨리 가는가. 아직도 ‘출판’이 되는 책인 것을 보니 역시 popular classic이 된 듯하다. 거의 free로 사게 된 (shipping & handling + nothing!)이 책.. 나와는 우연이 아닌 인연으로 성체조배실 보다 더 쾌적한 나의 서재에서  ‘정독’을 하게 되었다.  읽으며 ‘남기는’ 방법.. Reading by Typing..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에 있을까? ‘성경필사‘를 하는 이유와는 다른 것이지만 아마도 그 다음으로 좋은 방법이 아닐까? 읽은 후에 다른 ‘영혼’들과 이 생각과 글을 나눈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레지오의 사명‘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 책이 나오게 된 연유, 과정이 머리글에 자세히 적혀있다. 그것을 읽어보니 ‘왜 이 책이 그렇게 읽기 쉽던가?’ 하는 의문이 저절로 풀린다. 1993년 가을 이탈리아의 TV 방송국에서 ‘교황청 역사상 유례없는’ 기획을 했는데.. 교황과 TV인터뷰를 하는 idea였다. 그것도 ‘전세계로 방영이 되는’ 것으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그 당시에도 거의 ‘의외적’인 교황으로 ‘예상을 불허하는’ 교황직을 수행하고 있었기에 이런 제안을 ‘수락’한 것도 전혀 예상 밖은 아니었다고 한다. 교황과 인터뷰를 하려면 아마도 미리 ‘예상적인 질문’ 이 있었을 것이지만 그것, 대답, 반응도 예측 불허였을 것이다.

하지만 또 예상을 뒤엎고 이런 기획이 취소가 되었다. 너무나 바쁜 교황의 스케줄 때문이었다고 한다. 연기를 할만한 여유도 없었고.. 그러니까 TV 인터뷰 계획은 ‘물 건너 간 것’이 되었다. 몇 개월 후에 또 다른 surprise가 있었는데, 역시 요한 바오로 2세의 ‘예측 불허’한 행적이었을까.. TV 인터뷰 대신에 ‘서면’으로 인터뷰를 할 수 있다는 교황님의 대답이 왔고 그 결과가 이 책이 된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질문’과 ‘대답’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질문의 ‘수준’이 거의 예비자 교리공부의 것과 비슷할 정도다. 그러니까 교황님이 직접 지도하는 예비자 교리반 같은 분위기인 것이다.

이 책의 비교적 짧은 질문, 대답 을 읽는 것은 한마디로 즐겁기만 하다. 감히 교황님께 이런 질문이… 가당한가.. 하는 것들이지만 ‘기가 막힌 대답’들이 너무나 놀라운 것이다. 이분의 ‘지식’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알기 쉽게’ 설명하는 실력은 더 놀라운 것이다. 내가 제일 놀라워한 질문은 ‘예수님이 진정 하느님의 아들인가?‘ 하는 것이다. 이 정도면 우리 교리반 교사들 같으면 어떻게 대답을 했을까? ‘그것도 모르며 어떻게..’ 하지는 않았을까? 아마도 ‘그것은 ‘무조건’ 믿어야 하는 ‘공리’ 중에 하나다’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대답은 그런 것들을 모두 뛰어 넘는 ‘자상한’ 대답들이다. 현재 1/4 정도 typing을 하고 있고, 덕분에 더 빠른 pace로 모두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정독을 하며, 각 질문과 대답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전혀 다른 과제일 듯 하다.

 

 ¶  MERTON by Thomas Merton

Scan10109-1Thomas Merton, 가톨릭 교회, 특히 ‘미국 가톨릭’ 계에서는 너무나 잘 알려진 ‘트래피스트 수사님’..이기전에 bestseller author 인 것을 나는 비교적 근래에 들어서야 알게 되었고 그 분의 사후 posthumous 의 인기와 power를 실감을 하게 되었다. 우선 1968년, 그러니까 아주 오래 전에 ‘선종’한 이 Trappist Monk가  왜 아직도 그렇게 화제이며 유명할까.. 흥미롭지 않은가? 현대판 성 어거스틴, 아우구스티노 라고도 불리는 이분의 일생은 비록 50세를 조금 넘는 비교적 짧은 기간이만 너무나 색채가 진하고 강하고 다양해서 이분의 전기를 쓰는 사람들은 아주 애를 먹으리라 생각이 된다. 50세의 인생을 이렇게 강렬한 후광을 뿌리고 갔다는 것 자체가 ‘멋진’ 것이 아닐까?

The Seven Storey Mountain 칠층산 이란 제목의 ‘자서전, 참회록’이 초기 대표작이지만 그 이후 수 많은 주옥 같은 시집을 비롯한 저서를 남겼고, 사후 이분에 대한 저서는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만큼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친 ‘수도자’라 할 것이다. 일화에 위에 말한 그의 첫 자서전이 세상에 나온 뒤 1950년대에 많은 ‘건강한 젊은 남자’들이 이 책의 영향으로 가톨릭 수도회에 입회를 했다고 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뒤 주머니에 이 책을 끼고 왔다고 했다. 그 정도면 대강 짐작이 가지 않을까?

Thomas Merton

Thomas Merton

여기서 이들의 공통점은 그 책의 저자도 당시 ‘젊다’라는 것이고 영향을 받았던 이들도 젊었다는 것인데.. 지금 60대 중반을 훌쩍 넘어가는 나는 과연 이것들과 무슨 공통점이 있단 말인가? 나이에서는 전혀 공통점이 없다. 하지만 ‘진리를 찾고 싶고, 그 진리로 생을 살고 싶다.’ 라는 것은 비슷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그들처럼 수도승이 되고 싶지도 않고 사실 이제는 되고 싶어도 될 수도 없다. 그것 빼고 나머지는 나도 ‘진리’를 알고 싶은 것이다.

Thomas Merton을 가장 ‘짧게 소개한’ 글이 있을까? 대강 2~3 페이지 정도로.. 물론 내가 신뢰하는 Wikipedia를 보았지만 그곳은 ‘객관적’인 역사, 사실, 업적 들을 dry하게 기술했을 뿐이다. 그곳에는 ‘주관성’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러다가 ‘우연히’ A Thomas Merton Reader란 책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았다. 그 방대한 Merton 저서들을 모아서 500 여 페이지 한 권으로 압축한 편리한 이 책의 서두에 있는 Introduction(by M. Scott Peck) 바로 그것이다. 이 ‘소개장’을 한마디로 줄이면 “Merton은 짧은 글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사람’ .. 이것은 나도 이제 충분히 이해가 가고, 그래서 그렇게 많은 책들이 그를 모든 각도에서 조명하려고 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Merton에 대한 Introduction은 이렇게 시작이 된다. 

It is impossible to adequately “introduce” Thomas Merton. I have a sense I might almost as well attempt to introduce God. This is not because I worship Merton but because he was an extraordinarily complex and complicated man, multifaceted, diverse, and variable. He was one of those occasional people who could be described as “larger than life”.

 

500 페이지의 Reader 어떤 방식으로 읽을까 생각하니 이것이 장난이 아니다. Reading by Typing 물론이지만.. 페이지부터 읽을 것인가.. 아니면 난독random 하게 골라서, 아니면 다른 곳에서도움 받아서 읽을 것인가.. 아직은 전혀 idea 없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나는난독으로 시작할 하다. 나에게 방법이 제일효과적임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

  1. 한 여름에 순교자 성당 대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해본 사람들이면 이것이 무슨 말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2. 이것은 또한 신자 수와 헌금액수에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3. 예수회신부님들이나 수도회 수사들과 다른 일반 목회자들
A Scientist's Proof of Heaven

A Scientist’s Proof of Heaven

Eben Alexander, a neurosurgeon(신경외과전문의)의 2012년 #1 New York Times Bestseller, Proof of Heaven.. 이 책은 바쁘게도 느껴지고 피곤하기까지 한 성삼일(Paschal Triduum), 부활주일(Easter Sunday)에 걸쳐서 ‘번갯불에 콩 볶듯’ 대강 눈으로 읽은 다음, 이제 ‘정신을 가다듬으며’ 나의 보금자리 서재에 앉아 다시 자세히 읽는다.

우선, 이 책을 성삼일 전날 ‘우연히’ 사게 된 것이 절대로 ‘우연’이 아님을 이제 믿는다고 말하고 싶고, 나의 머리를 지배하는 심정은, 빠른 속도로 겉 핥기 식으로 읽는 동안 느낀 것은 복잡한 것도 있지만 간단히 말하면, 흥분, 기쁨, 그리고 안도감.. 그것이었다. 이제는 조금 흥분된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 더 이성적인 자세로 샅샅이 분석하며 천천히 다시 읽는다.

표지, 차례를 거치고, 기나긴 prologue도 빼놓지 않고 정성을 들여 자세히 계속 읽는다. 200쪽 미만의 책이지만, 35 chapters..라면 지루할 듯 보이지만 한 chapter가 불과 몇 쪽이 안 되기에 정말 소화하기 즐겁기까지 한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Prologue를 읽기 시작하며 다시 ‘왜 skydiving에 대한 설명이 이다지도 길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 처음에 읽을 때는, 혹시 이것이 filler는 아닐까 하는 의심도 했다. 그저 page만 늘리려고 한 ‘잡소리’가 아닌가 한 것이다. skydiving에 대한 경험을 2쪽이나 계속하면서, 책의 주제인 ‘천국의 증명’에 대한 hint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 설명 뒤에 간단한 몇 마디가 두 번째 읽는 나에게 납득할 만한 hint를 주긴 했다. 그러면서 조금 용기와 참을성을 더 하며 읽어 나가면, 서두의 뒷부분에는 책 전체의 결론과 맞먹을만한 ‘거창하고, 심각한’ 이 책의 결론을 조금 보여준다. 하지만 본문이 170쪽 밖에 안 되는 책에서 prologue가 10쪽이라면 서두가 길다는 느낌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 미리 보여주는 결론은 이것이다.

My experience showed me that the death of the body and the brain are not the end of consciousness, that human experience continues beyond the grave. .. it continues under the gaze of a God who loves and cares about each one of us and about where the universe itself and all the beings within it are ultimately going…

This life isn’t meaningless. But we can’t see that face from here – at least most of the time… But now that I have been privileged to understand that our life does not end with the death of the body or the brain, I see it as my duty, my calling, to tell people about what I saw beyond the body and beyond this earth.

나의 경험에 의하면 육체와 뇌의 죽음이 의식의 끝이 아니고 인간적인 경험은 무덤에 묻힘의 이후로 계속되며, 우리 개개인과 우주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가호아래 영원히 계속된다. 우리의 인생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의미의 얼굴을 최소한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 대부분 못 느낀다. 하지만 지금 육체와 뇌의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알게 된 이상, 내가 나의 육체와 지구를 떠난 저쪽에서 본 것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다.

이 서두의 결론이 일반인, 비전문가, 비자연과학자, 신앙인, 신부, 수녀, 수도자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크게 놀랄 것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것은 저자: 하바드 대학, 최첨단 ‘자연’ 과학자라고 할 수 있는 화려한 이력서를 가진 뇌신경외과 전문가 의 체험적이고 이성적인 논리에 의해서 나온 것이라면 아마도 귀가 솔깃해질 것이다. 현재 ‘양쪽(과학과 신앙)’ 에 어정쩡하게 두 다리를 걸치고 있는 나로써는 한마디로, ‘당혹하지만,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안도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Dr. Eben Alexander

Dr. Eben Alexander

이런 류의 NDE(Near Death Experience) 이야기에서 제일 흔히 언급되는 것이 ‘신앙적 체험’이지만 이 저자는 철저히 그것을 뒤로 미루어 놓는 ‘참을성’을 보여준다. 그 뿐만 아니라, 이런 ‘미치게 만들 수도 있는’ 체험에서 깨어난 이후 그는 ‘지혜롭게도’ 그의 기억이 오염되는 것을 막으려 그가 겪었던 모든 체험이 글로 기록, 고정화 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비슷한’ 체험에 대한 정보를 100% 차단을 하였다. 그는 직감적으로 그런 조치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다.

저자 ‘Eben Alexander, 에븐 알렉산더‘ 는 비록 철저히 불가사의, ‘비과학적’인 며칠의 경험을 했지만 결국은 곧 바로 다시 철저히 이성적인 과학자로 돌아 왔고, 다시 과학과 이성에 염두를 두고 분석작업에 들어갔으며 그 결과 중에 하나가 이 작은 책자이고 그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동료 과학자들과 이 ‘포복절도’할 경험을 보존하고 알리려는 노력으로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저자는 최대한 기존 신앙, 교회의 가르침, 교리를 언급 안 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가끔 ‘하느님’을 언급하지만 그 하느님은 종교관점의 하느님이 아닌 그저 ‘절대자’를 의미할 듯 하다. 지금 신앙에 눈을 조금 씩 떠가며, 과연 무엇이 ‘진리’인지, 그 진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 책의 ‘과학적 접근, 경험’을 나의 체험과 연관을 시키며 공부하고 싶다.

이번의 ‘두 번째 읽기’에서 나는 이 책의 내용을 ‘분석’하고 철저히 나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나와 비슷한 배경이나 신앙적, 과학적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과정을 알리고 싶은 심정으로 이 multi-part blog을 쓰기로 했다.

Kitchen Table Wisdom in Korean

책, 그대 만난 뒤 삶에 눈떴네

Reading by Typing으로그대 만난 뒤 삶에 눈떴네‘ 라는 긴 제목의 한국 예수회 류해욱 신부님 번역서를 5일만에 ‘무사히’ 다 읽게 되었다. 제일 확실하게 끝까지 책 하나를 정독하는 방법 중에 이렇게 typing을 해서 읽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몇 년 전에 알아내고 그 이후로 꼭 읽어야 할 것이 있으면 이런 방식으로 한다. 머릿속에 남는 것 외에 부수입으로 ‘거의 완전한’ digital softcopy가 하나 생기는 매력 있는 방법이다.

이 책도 요새 읽는 다른 좋은 책들과 마찬가지로 ‘우연히 화장실’에서 발견한 책이고, 우리가 속한 레지오 마리애의 꾸리아1 에서 구입한 책 중의 하나였고 연숙이 잠시 빌려온 것이다.

이 책이 나의 눈을 끈 것은 번역자가 류해욱 예수회 신부라는 사실과, 책의 내용이 의학적 과학과 영성적 신앙을 접목시키려는 저자, 레이첼 나오미 레멘의 ‘영웅적’인 노력과 그에 따른 무시 못할 임상, 상담적 성과가 아주 읽기 좋은 분량으로 쓰여진 사실에 있었다.

Kitchen Table Wisdom, Book

Kitchen Table Wisdom

이 책은 미국에서 1997년에 처음 출판된 New York Times의 bestseller였고, 2006년에는 10th Anniversary Edition(10주년 기념 판)이 나올 정도로 오랫동안 ‘생각하며 사는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가슴이 따뜻해 지는’ 그런 책이다. 원제목은 Kitchen Table Wisdom으로 되어있다.

제목이 풍기는 것은 ‘가까운 가족, 친지들 사이에서 얘기되는 지혜들’ 인데, 시대를 앞서가는 첨단적, 과학적, 전문직에서 종사하는 저자도 그들 동료들로부터 예상되는 의심스러운 색안경 속의 눈초리를 의식 안 했을 리가 없어서 이렇게 조금은 ‘푸근하고, 덜 심각하게 느껴지는’ 제목을 택하지 않았을까?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유대인들, 그의 혈통을 지닌 저자는 비록 그의 부모는 거의 무신론자에 가깝다고 했지만, 어찌 ‘피를 속이랴’. 그를 보완이라도 하듯 그녀의 할아버지가 도맡아서 그녀 어린 시절 착실하게 ‘영성적인 세계’의 맛을 그녀에게 보여 주신 것이 아마도 현재의 그녀를 만들었을 것이라 추측을 해 본다.

그렇게 해서 저자는 자연스럽게 ‘의학, 과학’ 위에 있는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안 보이는 것’을 보이는 현실세계로 끌어 들이려 했을 것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나도 그런 것을 과학자로서 이단이라고 매도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고, 저자의 의도와 행동을 100% 이해하고 찬성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을 번역한 (요새는 옮긴다는 말을 더 많이 쓰는 듯), 류해욱 예수회 신부님은 이름도 얼굴도 낯 익은 ‘문학청년처럼 보이는’ 사제이다. 그는 내가 속한 이곳의 한국 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한국교구 파견 사제로 2000년 대에 사목을 했었고, 올 봄에 잠깐 이곳을 다녀 가셨다. 그 당시 나는 그곳 성당을 다니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사람들에게 많이 그분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시, 글, 그림 같은 것을 프로처럼 한다는 것을 그때 전해 들었다. 그래서 ‘글’ 과는 가까운 사제라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 배경을 알고 이 책을 자세히 읽어보며, 한마디로 이 책은 ‘두 박자’가 완전히 맞아 떨어진 ‘걸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원저자의 ‘솔직한 고백’같은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이 진하게 느껴지는 것 이외에, 영어를 한국어로 옮긴 류신부님의 ‘옮긴 솜씨와 기술’은 근래 보기 드문 ‘걸작’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느낌의 번역은 참 보기 힘든 것이었다. 문제는 의역과 직역의 balance를 어떻게 그렇게 멋지게 소화를 시키셨을까 하는 것인데, 아마도 류신부는 그런 쪽에 talent를 갖고 계신다고 보아야 할 듯하다.

저자는 주로 암 같은 ‘불치병’을 가진 사람들이 겪게 되는 삶에 대한 새로운 생각, 느낌들을 참 정성스럽게, 성실하게, ‘비과학적’으로 잘도 그려냈다. 내가 그런 환자라고 생각하면 그녀의 불치병으로의 접근 방식을 99.9% 찬성을 안 할 수가 없다. 인간은 한마디로 ‘느린 컴퓨터’가 아닌 그 이상, 과학이나 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모든 삶과 죽음에는 무언가 찾을 수 있는 ‘의미’가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는 것이 주제이다.

나의 주변에 알고 있는 ‘암 환자’ 들을 보면서, 이런 용감한 ‘과학자, 의사’들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심정이 든다. 거의 완전히 컴퓨터에 의지하려는 (인간보다 덜 실수를 해서 그런가?) 요새의 최첨단 의술을 신봉하는 의료인들, 그들도 사실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갈등을 하고 있을 지 모르겠고, 그들도 조금은 ‘인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제넘은 생각도 들었다.

책을 다 읽고, 이 책을 추천하며 머리글을 쓴 ‘장영희’란 서강대 교수, 사람이 궁금해 져서 연숙에게 물어보았다가, 그 분이 역시 머리글에 있듯이 ‘척추암’으로 타계를 한지 꽤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내가 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너무나 모르고 살았다는 자책감도 들었다. 장교수가 우리가 오래 전, 학교 다닐 당시 책 등으로 잘 알려진 서울대 장왕록 교수, 그분의 따님이었다는 사실도 뒤 늦게 알게 되었다. 아버지, 딸 모두 영문학자가 된 것이 아름답게 느껴졌고, 또한 이제 두 분다 이세상 사람이 아님에 숙연해 지는 마음, 한참 동안 떨칠 수가 없었다.

 

 
Dr. Rachel Naomi Remen – The Awe & Power of the Life 

 

  1. Curia, 레지오 마리애의 군대식 조직에서 제일 낮은 등급인 쁘레시디움(소대 격)을 관할하는 상급 평의회 (중대 급)

¶  Daylight Saving Time  이곳에 살면 일년이 두 번씩 조금 귀찮은 날을 거쳐야 한다. 봄과 가을에 한번씩, 시계를 바꾸어 주어야 하는 날이다.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이승만 대통령시절에 한국에도 그것이 있었고, 그때의 이름은 Summer Time이라고 했다. 간단히 말해서 봄,여름,가을에 아침보다 저녁시간을 조금이라도 햇빛으로 밝게 쓰자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전기 에너지’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정설이 없는 것이다. 한국에선 오래 전 그것이 없어졌지만 미국과 유럽은 줄기차게 이것을 계속하고 있는데, 사실 귀찮기 말할 수가 없다.

집안에 시계가 이제는 10개1가 넘고 어떤 것들은 digital이라 바꾸는 방법도 다양하다. 다행히 Internet과 연결된 computer나 phone network에 연결된 cellular phone같은 것은 시간이 자동으로 바뀌어서 다행이다. 이것에 얽힌 추억이 하나 있는데, 내가 이곳에서 학교를 다닐 때, 한번 시계 바꾸는 것을 잊고 (이것을 잊기가 참 힘들지만) 아침 강의를 갔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한 시간 늦게 강의실에 간 것이었다.

시간이 바뀐 것을 전혀 눈치도 못 채고 강의실을 들어가려니, 낯익은 얼굴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것이 아닌가? 당황한 것도 잠깐이었지만 이유를 알고 나서 더 당황을 했다. 비록 예정된 시험은 없었지만, 누가 알겠는가.. 가끔 pop quiz라고 해서 예정에 없던 시험도 보곤 했으니까, 그것을 놓쳤으면 낭패가 아닌가? 그 당시 나는 미친 듯 ‘공부에 몰두2를 하던 시절이어서 뉴스 매체 (radio, TV etc)와 완전히 인연을 끊고 살던 때여서 summer time이 시작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이것이 기억에 ‘판각’이 되어서 그 이후에는 봄에 한 시간을 앞으로 바꾸냐, 뒤로 바꾸냐 하는 아리송한 의문은 완전히 없어지게 되었다. 그때가 봄이었고, 9시 강의시간이 10시가 되었으니까 한 시간이 빨라진 것이다. (9시가 10시가 된 것이 빨라졌다고 하는 이것부터 황당한 것이 아닐까?)

 

미움이 그친 바로 그 순간, 책¶  미움이 그친 바로 그 순간3  몇 주전에 연숙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소속 레지오 마리애 꾸리아 에서 책 한 권을 빌려왔다. 저자는 예수회 신부이며 서강대 신학 대 교수(신약)인 송봉모 신부님이고 그 책의 제목이 ‘미움이 그친 바로 그 순간’ 이다.

이 송신부님은 신부로서는 아주 많은 책을 저술한 것과, 활발한 강론으로 유명하다. 몇 년 전에 나도 이분의 강론을 audio tape으로 들은 적이 있었는데, 박학다식한 것은 전적으로 인정을 했지만, 무언가 나하고는 ‘주파수나 파장(chemistry4)’이 맞지 않는 것을 느끼고 그 이후로 더 이상 듣거나 읽지 않았다. 그 때 나의 피상적인 느낌이 ‘너무도 잘난 체‘ (김용옥5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죄송합니다) 한다는 조금은 나의 과격한 반응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신앙적으로 유치하고, 가슴을 넓게 열고 있지 않았을 때였다.

지난 성탄 season에 송 신부님이 이곳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 오셔서 며칠간 강론을 하셨는데, 남들은 거의 ‘열광적’으로 가서 들었지만, 나는 예전에 느낀, 그 ‘별로 였던 첫 인상’ 때문이었을까, 기회를 흘려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그분의 비교적 신간 (2010년 판) 저서가 가까이 온 것이었다. 송신부님의 저서라고 해서 우선은 읽지 않다가 우연히 화장실에서 잠깐 보게 되었는데, 그 것이 시작이었다. 읽기 쉬운 글자체와 문단 배치 같은 책의 외관상 구성 같은 것이 도움이 되었고, 내용도 나에게 비교적 거부감 느끼지 않는 것들이어서 이번에 처음으로 송신부님의 책한 권을 전부(cover-to-cover) 읽게 되는 첫 case가 된 것이다.

책 한 권을 정독하는 제일 확실한 방법이 manual typing임을 안 이상, 이것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니까, Reading-by-Typing인 것이다. 이것을 읽는 며칠 동안에 나는 꿈을 하나 꾸었다. 미움과 용서가 주제인 만큼, 나의 잠재의식 밑바닥에 있던 어떤 ‘원수’를 꿈에서 만난 것이다. 이곳의 한 직장 (Scientific-Atlanta6, a Cisco company)의 나의 악질 boss, Blake Causey7란 놈이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고통을 당한 것이 두고두고 용서 못할 놈 제일인자가 되었는데, 그 놈이 꿈속에서 ‘너무나 친절하고, 인정 있는 따뜻한 인간으로’ 나를 반긴 것이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잊고 싶은 놈이었는데, 어쩌자고 다시 나타난 것일까? 하지만 역시 이 인간도 송 신부님의 책이 말하듯이 ‘나를 위해서 용서’를 해야 할 인간임을 느낀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1. 벽시계, 손목시계, 전화시계, cooking ware etc
  2. 거의 도서관에서 살았다.
  3. 2010년 서울 바오로딸 발행 송봉모 지음, 1판 6쇄
  4. 영어권에서는 무언가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것을 ‘화학적’으로 생각한다.
  5. 도올, 내가 이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중의 하나
  6. 아틀란타에 있는, cable TV set-top box 만드는 큰 회사
  7. 악명 높은 South Carolina의 사립 사관학교 출신 엔지니어, 덜 성숙한 외골수 공명심의 화신

9월 15일, 1950년 9월 15일에 있었던 역사적인 육이오 당시,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된 날이다. 거의 ‘비상식적’으로 적의 후방을 찌르는 거대한 맥아더 장군의 작품이 현실화 되던 날이었다. 그 후방이란 곳이 인천인 것이 그 당시는 상당한 모험이었을 것이라서 비상식적인 발상이었고, 그런 것이 맥아더장군 특유의 발상이기도 했고, 그것은 사실 아슬아슬한 모험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인천에 건 도박은 예상을 훨씬 웃도는 성공담이 되었다. 그러니까 가끔 계산이 깔린 도박은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도박이라는 것은 그 뒤에 같은 운들이 따라주지를 않았기 때문에 분명히 들어난다. 그 이후 맥아더의 운은 사라지고, ‘악운’이 따르게 된 것이다. 그 당시 맥아더가 조금만 속도를 늦추고, 적군에 대한 정보에 신경을 더 썼더라면 사태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제일 큰 도박이 중공군의 개입 가능성을 ‘억지로’ 무시했다는 실수였다. 수많은 정보들이 그것을 말해주었지만, 그에게는 듣기 싫었던 정보였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정보들의 신빙성이었을 것인데, 아마도 정보수집에 더 신경을 썼어야 했지 않았을까?

Book, Operation Broken Reed

Book, Operation Broken Reed

며칠 전에 Reading-by-Tying으로 읽고 있었던 한국전쟁(육이오 동란)에 관한 책, Operation Broken Reed (꺾인 갈대 작전)을 간신히 다 읽게 되었다. 이 책도 산지 몇 년째 된 것인데 올 여름, “육체적인 노동 대신 여름독서를”, 이란 목표로 골랐던 도서목록중의 하나였다. 이 책을 읽은 때가 육이오(6.25: 동란 발발)와 구이팔(9.28: 서울 수복) 을 사이에 둔 계절이어서 더 61년 전을 상상하게 되며 읽으니 실감이 더 했다. 이 책은 시간이 나면 자세히 나의 blog에서 소개할 예정인데, 한마디로 이 책의 내용이 ‘진실, 사실’ 이라면 이 ‘믿기 힘든’ 작전은 육이오 동란 중, 가장 비밀에 쌓인 역사였을 것이다. 이 책을 읽었던 사람들 중에는 이것이 거의 ‘허구’라고 단정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믿는 쪽에 가깝다. 나도 읽고 나서 생각이, 이것은 사실 일 것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이 작전은 육이오 동란이 휴전회담과 격전을 거듭하기 시작하던 1952년 1월 초에 38선 북쪽, ‘적진’ 속에서 일어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1주일에 걸친 미군, 자유중국 군의 합동작전이었고, 비록 결과는 성공이었지만 그에 따른 희생은 실로 충격적이고 슬픈 것이었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휴전회담은 가속화 되었고, 확전, 3차 세계대전(심지어, 핵전쟁)은 방지가 되었다.

 오늘 내가 생각하는 것은 구이팔을 가능케 한 구일오 인천상륙작전이다. 너무나 많이 알려져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번에는 예전과는 조금 다른 각도로 이 역사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07년, New York Times best seller였던 David Halberstram의 책, The Coldest Winter, The America and The Korean War라는 책 덕분이었다. 700 페이지가 넘는 이 책은 육이오 동란을 미국과, 한국 주변국과의 정치적인 각도로 다룬 것이어서 이제까지의 군사적인 각도로만 다룬 책과 다른 맛을 보여준다. 역사를 다룬 책이지만 역시 저자의 정치적 색깔도 여기저기 보여주고 있어서 흠이라기 보다는 조금 더 인간적인 역사철학도 보여준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맥아더 장군에 대한 저자의 거의 ‘혐오’ 적인 인상이다. 물론 충분한 역사적 자료에 의한 저자의 의견이겠지만, 조금은 정도가 지나치다고나 할까? 맥아더를 영웅시하는 사람들은 이 책의 이 부분들을 읽는 것이 괴로울 것이다. 나는 솔직히 중립적인 입장일 수 밖에 없다. 내가 맥아더를 옆에서 본 것도 아니고, 이 저자와 같이 충분히 사료를 공부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어떠한 영웅도 보여주기 싫은 면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진리’는 안다.

David Halberstam's Korean War book

David Halberstam’s Korean War book

 이 책의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서 맥아더를 일방적으로 몰아 부치기는 했지만 솔직하게 맥아더의 천재적인 ‘용기와, 지혜’를 인정한 유일한 부분이 바로 인천상륙작전이었다. 거의 부산 교두보 (Pusan Perimeter)에서 바다로 밀려날 뻔 했던 시기에 이 작전이 성공을 한 것이고 보면 그 절묘한 timing의 진가도 역사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사실, 이 작전이 조금만 더 늦게 있었다면 김일성 개XX의 호언장담대로 부산은 괴뢰군 수중에 들어갔을지도 모르고, 대한민국은 역사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해진다.

 맥아더의 인천 상륙작전의 구상은 이미 지상전에서 유엔군의 압도적인 열세를 만회하는 방법으로 시작이 되었다. 유엔군의 해군, 공군을 포함한 기술적인 면의 압도적인 우세함을 활용하는 방법은 해상으로 적진 깊숙이 대거 병력을 빨리 상륙시키는 방법임은 사실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맥아더는 그의 과거 전투경험으로도 생명을 아끼지 않는 무자비한 적군과의 정면 대결보다는 우회 작전을 더 좋아했다. 이러한 적진 뒤의 상륙작전의 구상은 서울함락 직후 공산군이 노도와 같이 남진하기 시작하던 7월 초에 이미 결정이 되었다.

 맨 처음 이 작전은 Operation Blueheart 라고 이름이 되었고, 예정 날짜는 7월 22일이었지만 지상전에서 너무나 일방적으로 밀리는 바람에 이 예정은 무기로 연기가 되고 말았다. 그러는 중 맥아더는 그 동안 별로 작전이 없었던 해병대에 이 작전을 맡아주도록 주선을 하며, 본격적으로 목표를 인천으로 굳히기 시작했다. 문제는 목표가 인천이라는 사실이었는데, 사실 표면적으로 인천은 작전하기에 ‘최악’의 자연적 조건만 갖추고 있었다. 조수 간만의 차이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심한 곳이었다. 이 조수 시간을 잘못 맞추는 날이면 해병대가 기나긴 개펄에서 허우적거리는 최악의 상태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상륙하기에 알맞은 ‘해변’ 이 없고 모두 방파제 같은 시설물로 그득하고, 수뢰와 같은 방어시설이 있으면 더욱 힘들 것이다. 항구에 거의 붙어있는 월미도는 공산군 수비대에게 부두를 방비하는데 좋은 시설을 줄 수도 있다.

 이런 불리한 조건들은 물론 해병대를 전함으로 운반해 줄 해군 측에서 강조가 되었다. 해군 함정들이 인천 해안에 충분히 접근할 수 있는 날짜는 밀물의 주기에 따라 거의 제한이 되었는데, 빠른 날이 밀물의 깊이가 31 feet인 9월 15일 이고 그 다음이 10월 11일이었다. 9월 15일의 아침 밀물의 시간은 오전 6시 59분, 저녁 밀물은 오후 7시 19분이었다. 이래서, 맥아더는 상륙시기를 아침밀물에 맞추는 작전으로 결정을 한다. 이런 결정은 그에게는 사실 간단했지만 해군에게는 상당히 힘들고 복잡한 요구였을 것이다. 이런 결정들은 거의 한결같은 반대에 부딪쳤지만 이것은 맥아더가 충분히 예상한 바여서 그렇게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인천상륙작전이 도박을 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 것이다. 전략적인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은 거의 모두 인정을 했지만 문제는 상륙 지점이었다. 왜~~ 그렇게 불리한 조건만 갖춘 인천인가? 그보다 훨씬 남쪽에 있었던 군산이 훨씬 (해군에게, 해병대가 상륙하기에) 안전한 곳이 아닌가? 그런 것들은 사실 맥아더가 설득하는데 거꾸로 이용이 되었다. 그렇게 어려운 곳이라 적들도 그곳을 충분히 방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인천의 가치는 사실 지리적으로 서울과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에도 있었다. 서울을 점령하면 그 상징적인 효과는 대단할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동쪽으로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면 낙동강 쪽에 몰려있는 공산군들을 완전히 포위 섬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맥아더의 뚜렷한 구상은 예상보다 쉽게 반대자들을 설득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인천 D-day는 이렇게 공식적으로 정해졌고, 공격준비가 시작이 되었다. 맥아더의 짐작대로, 김일성은 인천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모택동은 달랐다. 맥아더를 알았고, 일본에 깔려있던 공산스파이들이 이미 이상한 낌새를 보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후방 깊숙한 곳으로 대거 병력이 쳐들어 올 가능성에 대해서 중공과 소련은 김일성에게 경고를 했지만, 역시 맥아더에게 운이 좋았는지 그는 듣지 않았다. 그 정도로 김일성은 빠른 승리를 장담했던 모양이다. 이런 사실로 보면 김일성은 소련이나 중공의 지시에 의해서 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니고 순전히 그의 독자적인 결정으로 밀어부친 것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를 보면 이런 미친 정도로 ‘낙관적’인 사고방식이 이해가 간다. 그는 사실 거의 ‘깡패 개XX’ 의 수준이었던 것이다.

 상륙작전은 예상대로 공산군의 저항이 미미한 상태로 진행되었다. 13,000명의 해병대가 투입이 되어서 첫날의 전사자는 20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드디어 서울을 향한 진격이 시작되었고, 결국 그것은 9월 28일까지 계속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울까지 30마일 정도 진격하는데 무려 13일이 걸린 것이다. 이것은 9월 15일 이후 놀란 김일성이 대거 병력, 2만 이상을 이 지역으로 투입한 까닭이었다. 문제는 사실 서울을 그렇게 빨리 점령할 이유에 있었다. 군사적으로 보면 저항이 치열한 서울을 우회해서 빨리 낙동강으로부터 후퇴하는 공산군을 포위 섬멸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것은 후에 ‘맥아더 개인의 영광’을 위한 작전이 아니었던가 하는 비난을 받게 되기도 한다. 서울 탈환의 정치적인 중요성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서울 탈환에 소모된 귀중한 시간에, 후퇴하는 공산군이 북으로 탈출할 여유를 준 셈이고, 그것은 두고두고 전쟁을 길게 끈 원인도 되었다. 원래의 계획은 6.25 남침의 3개월이 되던 9월 25일 이전에 서울을 탈환할 예정이었는데, 그 날에는 서울 근교까지 진격을 한 상태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시가전이 거의 3일 걸린 셈이다. 이렇게 해서 맥아더가 거의 혼자 밀어부친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한 셈이고, 이로 인해서 파죽지세로 부산을 포위했던 공산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후퇴를 시작하게 되고, 전쟁은 완전히 양상이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작전 성공 이후로 ‘기세가 등등’ 해진 그의 독자적이고, 독재적인 작전은 실패의 연속이 된다.

 시기적으로 61년 전에 일어났던 일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이 당시 2살 정도여서 직접 보고 들은 적이 없지만 그래도 이것들은 나의 생전에 일어났던 살아있는 역사였다. 이 당시에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이 당시 이미 아버지가 끌려 가신 이후였고, 원서동의 어떤 무당집에 숨어 살았다고 했다. 그 동네는 비원 바로 옆에 있었는데, 미군의 비행기가 폭격하는 것도 다 보셨다고 들었다. 그러면 비록 기억은 안 나지만 나도 그런 장면을 다 보고 들었을 것 같다. 다만 기억을 못하는 것 뿐이다. 생각을 한다. 과연 민족 반역자, 역적, 김일성 개XX는 어떤 생각으로 전쟁을 일으켰나? 이 미친놈을 어떻게 역사는 능지처참을 할 것인가? 괴롭다. 괴롭다.

 

부조리 박사, Franz Kafka, 카프카

부조리 박사, Franz Kafka, 카프카

60대에 읽는 카프카.. 이것이야 말로 조금 웃긴다. 카프카.. Franz Kafka의 이름은 많이도 들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구체적인 것은 하나도 모른다. 그저 감수성이 많던 시절, 그러니까 10~20대 정도에서나 관심이 있을 그런 소설가가 아니었을까? 삶의 거대한 수레바퀴가 이제 조금 느리게 가는 시기에 우연히 그를 드디어 접하게 되었다.이번 여름의 독서목록에서 아주 중요한 책이 카프카의 ‘심판‘[The Trial]이란 책이 가장 의미 있는 것이 되었다.

이것도 그러니까 모르고 죽으면 조금 아까운 것 중에 하나라고나 할까. 한가지 아쉬운 것은 내가 카프카의 글을 아주 젊었을 때 읽었었더라면 그때의 느낀 것과 비교를 할 수가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왜 실존주의자였던 그가 근대 서구 문학사에서 그렇게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까.. 그것이 나는 알고 싶었다. 왜 그는 그렇게 “인간 삶의 부조리(absurdity)” 라는 것을 그리고자 했을까? 그는 왜 삶 자체를 ‘부조리, 무의미’로 보았을까? 그 젊었던 나이에 그가 얼마나 인생을 살아 보았다고 그런 것들을 묘사할 수 있었을까? 현재 이 책의 삼분의 일 정도 읽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왜 그렇게 그가 그렇게나 유명했는지 모르겠다. 1990년대 영화 Congo 에서 나온 대사, pure Kafka 란 말이 아직도 나의 귀를 울리는데, 그때의 의미도 역시 ‘상황의 부조리,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등이었다. 그 정도로 그의 ‘부조리’는 유명했을까?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나도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느덧 2011년 7월과 작별을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덥긴 했지만 의외로 다른 지역 (특히 Texas, Oklahoma, midwest, & northeast)들이 이곳보다 ‘더’ 더워서 상대적으로, 심리적으로 조금 ‘덜 덥게’ 느껴진, 아니 그렇게 느끼려고 했던 그런 더위였고, 거기다가 다행히 늦은 늦은 오후에 한바탕 쏟아지는 시원한 소낙비가 가끔 우리들을 즐겁게도 했던 그런 올해의 7월 달이 간다. 7월의 초순에 ‘일단’ 끝냈던 water heater project 에서 하도 의외의 고생을 해서, 나의 몸과 마음이 완전히 knockout이 되어 그 이후로는 ‘일부러’ 그것들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이 project는 아직 완전한 끝마무리를 못 지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끝이 나서 현재 우리 집의 더운 물을 쓰는 데는 지장이 없다. 7월이 가기 전에 100% 끝을 내려고 했지만, 사실 아직도 다시 손을 대고 싶지 않을 정도다. 그 푹~ 쉬는 동안에는 summer reading 에 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갑자기’ 읽어야 할 must-read-list가 늘어나고 있어서 더 시간이 걸리고 있는 것이다. 올 여름은 아직도 한달 이상이나 남아 있어서 당분간 이 ‘게으른 독서’는 계속이 될 것이다. 
 

1980년대 에스페란토 교본

1980년대 에스페란토 교본

이번에 전에 읽었던 책을 반납을 하러 도서관엘 가서 아주 우연히 에스페란토(Esperanto)에 관한 책을 보고 빌려오게 되었다. 나는 이 에스페란토란 말 자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꽤 친숙한 것이었다. 물론 중학교 때 세계사 시간에 잠깐 그 말을 본 것을 기억한다. 그러니까 세계사에서 잠깐 언급할 정도인 그렇게 중요한 ‘사건’은 절대로 아닌 것이다. 왜, 그것이 친숙하게 느껴지는가 하면, 생전 보지도 못한 나의 아버지(이정모, 평창이씨 익평공파 27세손)께서 육이오 동란 전까지 ‘조선 에스페란토 ‘의 회원이셨기 때문이다. 그 당시 아버지의 나이로 보아서 중요 멤버였을 것이다. 회원들이 모여서 찍은 단체사진을 본 것도 또렷이 기억을 한다. 그 이외에도 아버님께서 쓰시던 책들 속에서 에스페란토에 관한 것이 꽤 많이 있었다. 물론 어린 나이에 나는 그것들이 무엇인지 몰랐다. 나중에 세계사 시간에 잠깐 배우게 되어서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추억과 더불어, 150년 전에 폴란드의 자멘호프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 ‘세계평화를 위한 인공 언어’가 과연 어떻게 ‘생겼는지’ 갑자기 궁금해 진 것이다. 빌려온 책은 1980년대에 발행이 된 그런대로 오래된 책인데, 잠깐 훑어보니 나의 예상과 달리 꽤 잘 보존되고 살아 있었다. 문제는 이것이 아직도 희망한 만큼 널리 알려진 언어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아직도 ‘동호회’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다.

 

 

한 여름의 무더위가 한창이다. 고국은 아마도 이맘때 쯤이면 장마가 한창이지 않을까.. 하지만 전혀 감이 없다. 그저 수십 년 전의 서울의 모습을 회상을 하면서 떠 오른 이맘때면 아마도 매일 ‘구질구질’하게 내렸던 비, 그것이 장마가 아니었을까 하는 정도다. 이제는 해변가의 하~얀 모래 백사장을 본 것도 아주 오래되어간다. 그 찬란한 여름의 햇살아래 펼쳐진 푸른 파도와 하얀 백사장.. 그것이 여름의 맛일 것이다. 그곳에 못 갈 것도 없건만 다른 한편, 그렇게까지 가고 싶지도 않다. 한마디로 귀찮은 것이다. 이럴 때, 최고의 낙은 역시 게으르게 뒹굴며 읽는 책들이 아닐까?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summer reading이란 말 조차 있지 않던가? 오래 오래 전, 서울 용산구 남영동에 살던 중앙고 2학년 시절이 그랬다. 입시준비의 압력이 오기 전해 여름방학 때, 그야말로 시원한 마루바닥에서 누워서 읽던 책들.. 이것이 바로 ‘독서의 즐거움’의 진수일 것이다.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그야말로 ‘재미로서의 독서’, 그것이다. 그때 제일 재미있게 보았던 것은 그 흔하던 ‘삼국지‘였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삼국지..하면 1964년 여름의 남영동 집 마루가 생각나는 것이다.

올해 나는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몇 권의 책을 준비하고 읽고 있는데, 현재까지 거의 2권을 읽었다. ‘피서의 효과’가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 옛날에 느꼈던 ‘게으름’은 조금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영어 판 Dan Brown의 <The Da Vinci Code>와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의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의 한역 본이 그것인데, 두 권 다 ‘재미’ 있기는 하였으나, 끝 맛은 개운치를 않았다.

우선 2003년에 나와서 “시끌벅쩍” 하게 화제를 뿌리고 그에 따라 돈을 ‘억수’로 벌었던 다빈치 코드.. 몇 년 후에는 영화까지 나왔던 그 책이다. 왜 시끄러웠냐 하는 것은 나도 안다. 문제는 그 당시에 나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주 마음이 상한 것이다.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것은 좋은데, 그 것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을 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을까?

거의 사실을 가장해서 쓴 ‘허구’ 이지만, 자칫하면 소설이라는 것을 잊을 수 있을 정도이다. 이것이 만약 이슬람교회를 주제로 했다면, 그들의 이제까지의 경험을 보아서 아마도 암살단이 곧바로 이 저자의 저택으로 쳐들어 갔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이 가톨릭을 이렇게 비하한 것은 기독교의 기본 사상인 ‘원수를 사랑하라’ 라는 사상을 역 이용했을 지도 모르겠다. 피해를 보았자 그저 흔한 ‘법정소송’ 정도였을 것이다. 이래서 나는 이 저자를 개인적으로 ‘증오’ 하기로 했다. 아무로 $$$가 좋기로 서니.. 이렇게 악랄할 수가 있을까?

시오노 나나미,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

70대의 일본인 여성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의 한역 본은 우선 번역이 아주 산뜻하게 잘 되어있어서 읽는데 쾌적하였다. 아마도 일본 글과 한글의 유사성이 번역이란 거창한 과정을 아주 쉽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글이라도 원저자의 ‘문필 체’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배경을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우선 저자가 역사학자인줄로 잘 못 알았다. 그런 시각에서 보니 아주 부자연스러운 점이 너무도 많았다. 암만 ‘이야기 체’로 썼다고 하지만 ‘객관적’인 역사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저자의 정치,역사 철학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야기 체로 그 긴 역사를 풀어 쓴 ‘솜씨’는 가상하지만 거의 맹목적일 정도로 ‘로마인을 찬양’ 하는 것은 조금 다시 저자의 의도를 생각하게 하였다. 역사와 문학을 거의 의도적으로 접목을 시키고 상업적인 흥미를 유발하는 듯한 냄새, 거기다 저자의 은근한 feminism까지 곁들여, ‘매력적인 로마의 남자’들을 부각시킨 것들을 보면서 참, 너무나 상업화된 출판계 현실도 거슬린다.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저자는 ‘이 남자, 저 남자’를 거론했는가. 왜 그들이 남자임을 그렇게 밝혀야만 하는가? 그것은 심지어 번역자까지도 합세해서 ‘멋진 남자’들을 강조한다. 저자가 결론으로 내놓은 것에 나는 아연실색을 하게 되었는데.. 골자는 이것이다. 현재까지의 로마 역사가 기독교의 영향으로 필요이상으로 ‘악하게’ 그려졌다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공산주의적 유물론적 탈 신앙적인 저자의 발상인 듯 싶다. 그것과 더불어 로마사의 대가들을 ‘비판, 의심’하는 것은 아무리 저자가 1970년부터 이탈리아에 살면서 로마를 느꼈다고 하지만 너무한 것이 아닐까.. 저자는 역사’과학’자가 아님을 자꾸 잊는 것이 아닐까?

 

알피 램 생애, 전설적인 레지오 선교사

알피 램 생애, 전설적인 레지오 선교사

지난 6월 28일부터 읽기 시작한 <알피 램 생애> 란 소책자 (136쪽)를 이제 거의 다 읽어 간다. 마지막 20쪽이 남았다. 이것도 RbT: Reading by Typing 의 방법으로 읽고 있어서 사실 눈으로만 읽는 것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리는 셈이지만 대신 아주 자세히 읽게 되는 이점이 있다.

이 책은 연숙이 2009년 12월 6일, 아틀란타 본당소속 꾸리아 연말 모임에서 꾸리아로부터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물론 그 당시는 나의 관심 밖이어서 이런 책이 있었는지도 몰랐지만, 알았다고 해도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지난해 말에 내가 레지오에 입단을 하면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이렇게 꼼꼼히 읽을 정도로 관심이 생긴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알피 램이란 사람이고, 알피 램(Alfie Lambe) 의 알피(alfie)는 알퐁소(Alfonsus) 의 애칭(nickname) 이다. 알피 램은 간단히 말해서 레지오에서는 거의 신화적인 존재라고 한다.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로 라틴 아메리카에 레지오의 ‘돌풍’을 일으킨 사람인 것이다. 다른 말로 그는 더블린에 있는 세계 레지오 본부에서 파견된 레지오 선교사라고 하면 쉽게 이해가 갈 듯하다. 특히 6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영웅적’으로 활동을 하다가 역시 젊은 26세의 나이에 선종을 해서 레지오에서는 거의 ‘어린 성인’ 같은 존재로 남은 것이고, 이로 인해서 성인으로 가는 ‘복자 추대’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알피 램이 활동한 시기가 1953년부터 선종한 때인 1958년까지였다. 그러니까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해 부터 국민학교 5학년 때까지가 된다. 그렇게 오랜 전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 책이 나온 배경은 아직 자세히 ‘연구’를 못해서 잘 모르지만 원래 ‘힐데 퍼텔’이란 저자가 영어로 쓴 것을 북미주 레지오 교육협의회장 ‘조, 율리오’ 란 사람이 한글로 번역을 해서 대한민국 광주에 있는 ‘새날출판사’란 곳에서 간행을 한 136쪽의 소책자인데, 내용은 그런대로 ‘이해’를 했지만 거의 다 읽고 난 감상은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었다.

이 책의 내용은 나중에 간추려서 blog으로 소개하겠지만, 여기서 감상이 좋지 않다는 것은 내용이 아니라 이 책의 기본적인 ‘자격’에 관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번역자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독자를 거의 우롱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정도로 ‘조잡한 번역‘으로 일관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출판사의 실수, 잘못인지 번역자의 잘못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예 이 상태로서 출판이 되어서는 안 될 정도인 것이다.

그래서 조금 생각한 것이, 머리말에 ‘번역 봉사’란 말이 나오는데.. 이것이 무슨 뜻인가.. 번역자가 번역을 한 것이 아니고 이 봉사자들 여러 명이 함께 했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수준 이하의 ‘직역 체’ 번역에다가 각 단원의 문체, 용어, 문단의 구성도 다른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발행 년도가 2003년이면 초고, 원고를 분명히 computer의 word processor로 편집을 했을 것이고, 그러면 거의 자동적으로 spelling checker가 틀린 것을 지적했을 터인데 아예 그런 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인쇄소로 넘긴 듯하다.

읽는데 하도 신경이 쓰이고 해서, 아예 모두 ‘내가 고친’ 것으로 다시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떻게 이런 글이 ‘출판사’의 ‘검열’을 통과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레지오에 ‘누’를 끼치는 것 밖에 되지 않을까? 위에 언급한 조잡한 번역, 일관성 없는 구성, 오자 등등 것들의 예를 나는 나중에 모두 열거를 해서 ‘발표’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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