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covid-19

코로나 사태의 희생제물, 동네 성당의 sanctuary가 굳게 문을 닫았다

코로나 사태의 선물: 가족들과의 즐거운 시간이 보이게 늘어났다

 

¶  그제의 열대성 stormy day 이후에 갑자기 싸늘해진 날씨, 바람이 그렇게 싸늘할 수가 없다.  이른봄에  흔히 보는  바람이 싸늘한, 하지만 찬란한 태양이 작열하는 날, 무엇인가 빠진 듯한 느낌을 달래기 위해서 거의 한달 여 만에 동네본당 Holy Family성당으로 차를 몰았다. 차로 15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 거의 10년 가깝게 정든 이 차길, traffic은 한산하였지만 계절의 신호는 현 사태와 전혀 상관없이 뚜렷하였다.

 

8여 년 동안 거의 매일 drive하면 다니던 Robinson Road, 한 달만에 주위의 초록색이 더욱 진해졌다

 

비록 공개적 모임은 없지만 그래도 성전 내부 자체는 open한 것으로 안 우리의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신부님 차가 보이길래 반가웠지만 성당 입구는 굳게 닫혀있었다.  한 달에 한번씩 봉사단체에 food donation하려고 가지고 간 것을 들고 멍하니 서 있는데 누가 나오면서 문을 열어 주었다. 물건을 전해 주고 대성전 sanctuary에 들어갈 수 있냐고 물으니, 모두 close되었다고 알려준다.

 

14처, 십자가의 길로 들어가는 입구

 

도라빌의 한국 순교자 성당은 성전의 문은 열어놓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곳은 닫았을까… 아쉽기만 하다.  대신 성당 뒤쪽의 수풀 속에 마련된 14처, 십자가의 길 station of cross 을 오랜만에 걷고 나왔다.  돌아오면서 다시 느낀다… 이런 상태로 더 오래가는 것, social distancing 은 흔히 아는 것같이 최선의 방법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과… 사람은 역시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임에 틀림이 없다는 엄숙한 사실을.

 

Thanks, Uncle Benjamin!

 

¶  Stimulus Gift: 평상시 오늘은 일년의 Tax Return을 하는 마감날이었는데, 그것이 코로나 사태로 7월 15일로 연기가 되었다.  IRS (Internal Revenue Service)에 세금보고를 하는 대신에, 오늘 Bank account를 보니 IRS에서, 예상하던 대로 deposit한 돈이 얌전히 들어와 있었다. 결국 지난 몇 주 동안 congress에서 그렇게 토론하던 것이 현실화 된 것이다. 완전히 정지된 경제활동으로 고난을 겪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Stimulus Package, 이것은 한글로 어떻게 표현하나… 요새는 이런 것들이 나를 괴롭힌다. 고등학교 수준의 한글단어가 머리에 맴돌고 있는데 이런 전문용어는 무리다. 좌우지간 ‘경제활동 촉진을 위한’ 그런 정부지원책이 하나다. 2 Trillion Dollars, 이것은 그러니까… 2000, 000,000,000 dollars! 20조 달러인가… 이번에 완전히 all stop된 경제활동을 그야말로 구원하기 위한 단기 대응책이다. 이것이 모자라면 같은 규모의 2차 지원을 할 모양이다. Dollar는 미국 돈이니까, 하기야 찍어내는 것은 우선 큰 문제가 없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것 모두 자가적 빚이 아닌가? 누가 갚을 것인가? 아마도 우리 딸들의 세대가 아닐까…

 

¶  Plateau, 코로나19의  최악 사태를 지나가며:  비록 어제부터 코로나에 대한 ‘난잡한 뉴스, 선동적인 것들’과 완전히 인연을 끊었지만 아주 믿을 만한 단편 소식은 접하고 있다. 그 중에서 내가 정기적으로 찾아가는 블로그 source가 하나 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retire한 대학교수 출신, computer scientist, engineer  Michael Covington 박사, 그의 블로그 로부터 나는 간접적으로 이 미국과 이 조지아 지역의 코로나 확산뉴스를 접하는데, 이번의 post 에서 그는 현재의 코로나 pandemic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었다.

 

1.  What is vital is to stay in touch with reality. Coronavirus is not a piece of political ideology that somebody made up. It is a real, physical enemy. Those deaths in hospital corridors are real. Dr. Fauci really does know more about viruses than you do. And so on.

Our enemy is speculation — people who can’t distinguish “it might be” from “it certainly is,” and who promote unconfirmed possibilities as if they were confirmed truth. See also (9) and (10) below.

현실을 직시하는 것, 코로나바이러스는 사상적, 정치적이 아니고 물리적인 적이다. 병원에서 수없이 죽어가는 것도 사실, Dr. Fauci (NIH 전염병, 바이러스 책임자) 가 우리보다 이 병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음도 사실이다. 우리의 적은 근거 없이 추측하는 것, 실증되지 않은 사실을 부추기는 것들이다.

2.  Ignoring the virus was never an option. We’ve had 22,000 deaths. Would you rather have had half a million? You could easily have had that, if there had been no restrictions.

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무시하는 것, 언어도단이다. 22,000 명이 벌써 죽었다. 50만 명이 죽는 것, 사회적 제한 조처가 없었으면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다.

3.  Our restrictions have paid off. Quite possibly, hundreds of thousands of lives have been saved. The national new-case rate peaked a few days ago. State by state, some states are going to have much later and lower peaks, which is a good thing.

[Afterthought: Models may have been inaccurate, but there’s no denying that the virus spread a lot less with our lockdowns than it would have without them.]

이런 사회적 제한조치는 성과가 있었고 수십만의 생명을 보호했다. 확진자의 수가 이제 고비를 지나고, 각 주에 따라서 늦게 완만한 고비가 올 것인데 이것은 좋은 소식이다.

바이러스 확산 정도는 확실히 사회적 제한, 봉쇄조처와 비례하고 있다.

4. The virus would have damaged our economy no matter what we did (even if we had ignored it and just let a lot of people die). The reason you didn’t hear economists objecting to those stimulus payments is that knowledgable people recognized that a rise in the national debt would be better than sudden mass poverty.

어떤 조처를 취했든 간에 경제적 타격의 정도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다만 감염자, 사망자의 숫자는 상관이 있었을 것이다.  정부가 모든 시민들에게 보조금을 준 것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알만한 사람이면 모두 동의하듯이 ‘빚을 지는 것이 갑자기 모두가 가난해 지는 것보다 낫다’ 라는 논리 때문이다.

5.  Our economy can’t sustain forever what it sustained for a month. Damage to the economy itself causes deaths, not only here but (perhaps even more so) in poorer nations that rely on us for trade.

현재 몇 개월 지속되는 경제적 타격은 무기한 오래갈 수는 없다. 이런 피해는 다른 사망자를 유발하기 때문이고,  무역에 유지하는 빈곤국은 더욱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6.  We are going to have to do some kind of gradual, careful reopening of the economy, starting with businesses that don’t involve crowds of strangers.

이런 상태의 경제는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다시 가동시켜야 한다. 특히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는’ 그런 사업, 가게 부터 제한을 풀어야 한다.

7.  With the wider availability of coronavirus tests, some experts are recommending a shift to a strategy of restricting only people who are known to be infected and their immediate contacts. I hope this proves feasible.

바이러스 테스트가 광범위하게 실시될 때, 관계자들은 감염자나 그와 접촉한 사람들만 골라서 거주제한을 하여야 한다고 권하고 있고, 이런 방법의 실행이 어렵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8.  The virus will linger. For a couple of years, we are going to have to behave as if we were in a bad flu season, continuing to take some precautions.

코로나 바이러스는 질질 끌며 계속될 것이다. 몇 년 후에는 이것도 보통 독감 같이 취급을 하며 살게 될 것이고 이에 대해 조심을 하며 살게 될 것이다.

9. I know you’ve heard that some people say the virus escaped from a lab in China. Please be assured that many governments around the world are looking at this, and that they know more about it than you do, and are going to pay attention. In the meantime, it doesn’t affect what we need to do going forward.

[Afterthought: The lab thing is a red herring. Even if it was just bad sanitation, it was an international hazard that came from China. Flu epidemics have been coming from China with some regularity. This can’t go on.

사람들은 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의 어떤 연구소에서 새어 나온 것으로 많이들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보다는 이미 세계의 많은 정부기관들이 이것을 조사하고 있고, 그들이 우리들 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알려질 때가지 우리들은 현재 하고 있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비록 이 중국 연구소 이야기는 확실한 것은 아니더라도, 중국으로 부터 출발한 많은 위험들, 특히 독감 역병 같은 것은 거의 정기적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이렇게 계속 갈 수는 없는 것이다.

10. There is research on hydroxychloroquine and other drugs that might kill the virus. Please let medical research proceed, and don’t spend your time trumpeting one success story without knowing whether others have gotten the same results.

[빠가 또라이] 트럼프가 ‘자기의 직감으로’ 코로나 특효약처럼 볼 때마다 언급하던 이것 [읽기도 힘든 화학용어]은 그야말로 먹을 때 기도를 잘 하면 낫게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인데… ‘과학적’으로 확인이나 증명이 되기 전에는 선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 먹고 5년 후에 ‘확실히’ 사망에 이르면…  [이것은 나의 철저한 상상적 의역에 불과함]

 

동네를 걷다가 하늘을 보니.. 지난 밤의 폭우성 구름이 걷히며 청명한 하늘이…

 

봄바람이 시속 10+ 마일 정도로 불며,  갑자기 파래진 나무 이파리들이 계속 살랑거린다. 꽃, 나무, 송학가루가 진해지기 시작하기만 하면 시원한 바람과 빗물로 씻어 진다. 이것이야말로 천혜 天惠 라고 하던가… 거의 완벽한 날씨가…

2020년 부활절 바로 다음날, 그러니까 부활주일 월요일인 셈이다. 가톨릭 전례용어로,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영어로는 ‘Monday within the Octave of Easter‘ 인 셈이다. ‘그 망할 놈’의 pandemic 코로나 바이러스만 빼면 near perfect,  gorgeous day 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날, 지나간 한 주일, 특히 성주간, 성삼일 을 되돌아본다.

 

성목요일 온라인 미사, 이날은 각자의 가정에서 ‘세족례, 발씻김’ 의식을 했다

 

제일 큰 관심사였던 성삼일 Triduum  미사와 부활절 낮 미사는 예정된 대로 online live YouTube stream 으로 각자 집에서 참례할 수 있었다. 매일 미사를 이미 online으로 하고 있어서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모두 live라서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TV/Monitor앞에 있어야 한다. 매일미사 (대부분 cpbc, 평화방송) 는 사실 on demand format이라 우리에게 편한 시간에 했지만 Live Format은 모든 신자들이 같은 시간에 참례하는 것이라 더욱 큰 의미와 무게를 가진다.

이번에 아틀란타(나는 ‘애틀랜타’라는 ‘괴상한’ 이름을 지독히 싫어함, 언제 누가 왜 바꾸었나?)  도라빌 순교자 성당은 주임신부님 (이영석 세례자요한 신부)을 비롯한 봉사자들이 4일 동안 정말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은 듯 보인다. 아마도 주임신부님의 의지였을 듯 하다. 또한 부활절 낮 미사의 강론은 정말 근래에 보기 드문,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한 명 강론으로 꼽고 싶다.

안방 TV screen 위로 4일 동안 계속 마주보게 되는 주임신부님의 얼굴은 ‘교우 여러분들, 그립습니다…’ 그 자체였고 그것을 느낄 때마다 우리는 눈물이 날 정도였다. 어려운 시기에 어떤 목자가 진정한 목자인가는 이런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코로나 사태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미사 자체는 순교자성당의 대성전에서 평소에 하던 그대로 집전이 되었지만 일반 신자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으로, 그저 ‘쓸쓸한’ 그런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신부님을 보좌하는 사람들과 성가대의 보조를 최소한 인원으로라도 참여시켰으면 어땠을까 아쉽기만 하다.

 

현재의 Shelter In Place (Stay Home, 칩거?) life style도 거의 한 달에 가까워 온다. 지난 주일 날, 성지주일 Palm Sunday에는 ‘용단을 내려’,  새로 태어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손자를 보러 20 마일 떨어진 곳까지 외출한 것을 제외하면 사실 그야말로 ‘칩거생활’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Social Distancing 같은 New Normal에 아주 적당하게 적응을 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너무나 평화스럽고 건강한 나날들이 된 듯하다. 

한때 ‘난무하는’ YouTube의 함정에 빠져 우울하기도 하고 기운도 빠지곤 했었다.  그곳에 잘못 빠져서 하루 종일 코로나19 뉴스를 보게 되면 정말 정신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오늘부터는 ‘완전히’ 그곳에서 빠져 나오니, 정말 세상이 다르게 보이며 살 맛도 제자리로 오는 듯 하다. 그래… choice다, choice… 이제는 지긋지긋한 또라이 트럼프가 10대 깡패의 얼굴로 기자들을 위협하는 희귀하고 희한한 광경을 안 보게 될 희망이 생긴다.

 

우리 subdivision의 30분 walking course ‘trail’ roadway, Guilford Circle

 

이제는 연숙과 30분 걸리는 우리 동네 Hanover Wood trail (사실은 roadway)를 걷기 시작한지 한 달도 넘는다. 이번에 느낀 사실은 이 walking trail course가 정말로 우리 나이에 알맞은 코스 [거리나 경사] 라는 사실이다. 이것으로 나는 물론이고 연숙에게 나타나는 ‘건강의 신호’는 정말 놀랍기만 하다. 고질적인 불면증도 아주 안정이 되어 혈압수치도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걷는 그 자체보다 그것에서 얻는 평화의 느낌 때문일 것이라고 우리는 진단한다. 게다가 그 동안 각종의 외출로 힘들었던 뒤뜰의 텃밭을 가꾸는 일은 이럴 때 정말 완벽한 소일거리가 되었다.  이런 것도 어떻게 보면 코로나19가 준 good side effect가 아닐까? 하지만 이런 모든 예상치 못했던 ‘좋은 점’들에도 불구하고 우울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아무 잘못도 없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다.

 

remote class 준비 중에 Ozzie가 학생 역할을…

 

Work from Home:  이번 코로나 사태로 말미암아 이제까지 niche technology에 속했던 remote commuting이 하루아침에 신경제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다행인 것은 data network infrastructure 역할을 하는  세계적 Internet backbone이 큰 무리 없이 견디고 있다는 사실이다.  확실한 data는 모르지만 아마도 full-capacity를 testing 할 만한 엄청난 data traffic이 현재 전세계를 흐르고 있을 것이다.

한 국가별로 보면 인터넷 기술을 발명하고 발전시켰던 미국은 비교적 작은 나라들에 비해서 뒤쳐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게다가 연방차원의 기술보급의 주도가 없었기에 여기서도 역시 빈부의 차이가 확실하다. 이런 것들을 보면 비록 현재 출마를 포기했지만 혁신적인 ‘사회주의 적 발상’을 선거 이슈로 떠올린 Bernie Sanders의 아이디어는 큰 설득력이 있다. 건강보험과 인터넷 이용을 특권이 아닌 기본권리, 혜택으로 보는 것, 이것은 사실 다수가 선택을 해야 하는, 간단하게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일 듯하다. 

요새 주변을 보면 사실 코로나 사태로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들은 전 보다 더 ‘편한 생활방식’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적으로 사람들과 접촉, 접근만 못한다 뿐이지 그 이외는 사실 더 편할 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몸을 때우는’ 사람들, 그들의 정 반대의 불편함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 아무래도 무언가 불공평한 것 같지 않은가? 사실 그렇다.

큰 딸 새로니, private elementary school teacher로 현재 역시 집에서 ‘가르치고’ 있고, 그 애는 사실 요새 ‘일하기 편한’ 부류에 속한다. 대부분의 잘 사는 집의 아이들이 대부분인 이 학교는 remote class 의 준비가 비교적 잘 되어 있는 모양이다. 올해 년 말까지 이런 식의 가르침을 대비하고 있다고 하니…  새로니 약혼자도 Verizon (communications)의 software engineer로 역시 ‘편하게’ 집에서 일을 한다.  이 친구 말이 코로나 사태로 인한 피해는 커녕 더욱더 business가 잘 된다고… 역쉬~~ 왜 안 그렇겠는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Internet service가 필요하니까. 

문득,  Aldous Huxley의 futuristic classic novel,  Brave New World 의 그림이 떠오른다.  그렇다, 인터넷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라서 이것이 어떻게 쓰이느냐는 전적으로 인류의 책임이다.

 

평소에 독서의 [특히 양서良書 의] 기쁨과 효과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즐거움에 비례할 만큼 많은 책을 끝까지 다 읽는 것은 언제나 힘들었다. 그것도 대충 읽은 것과 꼼꼼히 읽은 것, 더 나아가서 ‘공부하는 자세’로 읽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책 읽기를 시작하면 어느 정도 계획을 세우고 끈질긴 노력을 해야 끝을 내는데, 하루 하루가 뭔가 그렇게 바쁜 것인지 생각보다 힘들었다.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터득한 것 중에 하나는: ‘쓰면서 읽는 것’, 필살비법 必殺秘法은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쓴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힘들고 typing을 하는 것이다.  편히 앉아서 편하게 눈으로 읽는 것도 즐거움 중의 하나겠지만, 조금 덜 편함을 택한 이 방법의 큰 장점은 ‘끝까지 다 읽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 그리고 끝이 나면 softcopy 하나가 거뜬히 남는다는 사실이다.

눈으로 읽는 것에 비해서 시간이 더 걸린다는 문제는, 시간을 좀 더 많이 쓰면 되는 것인데, 이번 코로나 사태가 바로 그것을 대폭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시간이 갑자기 ‘엄청’ 많아진 것이다. 이것으로 ‘실업자’인 내가 그 동안 그렇게 바쁘게 살았다는 즐거운 놀라움도 경험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앞으로 얼마간 이런 ‘한없이 긴 여유시간’이 계속될 지는 모르지만, 그 동안 끝내지 못한 책들을 하나 하나 모두 읽을 야무진 계획을 세우고 이름도 웃기는, 코로나 독서목록,  Corona List를 만들었다.  현재 진행중인 shelter-in-place lifestyle 이 끝날 때까지 이것만으로도 나는 절대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1. A BURST OF CONSCIOUS LIGHT (Dr. Andrew Silverman)
  2. THE TURNING POINT (Fritzof Capra)
  3. THE TAO OF PHYSICS (Fritzof Capra)
  4. The Systems View of Life (Fritzof Capra & Pier Luigi Luisi)
  5. GENIUS (James Gleick)
  6. MY GRANDFATHER’S BLESSINGS (Rachel Naomi Remen, M.D.)
  7. TO LIGHT A FIRE ON THE EARTH (Bishop Robert Barron)
  8. 꽃삽, 이해인 글 모음 (수녀 이해인)
  9.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대표 에세이 (화가 천경자)
  10. 작은 마음의 눈으로 사랑하라, 수필집 (최인호)

 

 

¶  이른 아침에 놀랍게도 wild turkey가 우리 집 정문 앞에 서있었다. 그렇게 가까이 야생칠면조를 보는 것은 물론 처음이다. 하지만 곧바로 나는 ‘얘가 어디서 살다가 길을 잃었나..’ 하는 지나친 연민을 떨치려고 애를 쓴다.  나중에 창문 틈 사이로 살펴보니 이미 떠난 후였다. 어디로 갔을까? 얘들은 이 동네의 어느 곳에서 사는 것일까? 왜 내가 이렇게 ‘animal, bird lover’가 된 것일까? 나는 이것도 분명히 성모님이 나를 ‘질책’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내가 저지른 ‘약한 것에 대한 무관심, 학대’에 대한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성모님, 이제 그만 하셔도 됩니다. 나는 이미 그들을 나의 몸이라고 믿으니까요… 앞 집에 사는 Josh가 전화와 text로 친절히 알려 준 덕분이었다.

 

¶  이 조지아 지역도 드디어 어제부터 general lockdown 이 선포되었다. 우리에게는 물론 큰 차이는 없지만, 글쎄 이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낼 것인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조심조심 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일부러’ 밖에 나가는 것을 조심하라는 의도라고 생각하자. 아직도 직장이나 가게에 꾸준히 나가는 사람들, 꽤 주변이 있는데… 그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너무나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한다면 조금은 고개가 수그러지기도 한다. 이럴 때 재미로 나갈 사람은 없지 않을까? 설 형제와 이형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제 조금 습관이 되어가고 있는 cpbc (평화방송) online mass, 오늘 아침도 거르지 않고 둘이서 참례를 한다. 이제까지 주로 집전신부들은 거의 ‘젊디 젊은’ 모습들이어서 조금 나에게는 생소한 느낌이었지만 다른 쪽으로는 내가 그 동안 많이 못보고 살았던 ‘젊음의 피’를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매일 참례하는 신영성체, 평화방송, 목요일 미사

 

오늘 미사를 마치며 문득 현 사태의 모습이 떠나질 않고 잡념으로 들어온다. 오늘 것은 바로 New York, New York이란 것, 함께 Frank Sinatra의 classic hit 의 율동이 느껴지면서 곧바로 2001년 9/11의 치솟는 불길과 굉음이 귓전을 때린다. 역시 지금 그곳이 겪는 코로나 사태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시장의 환영을 받으며, 뉴욕 harbor에 도착한 병원선, USNS Comfort

 

미국의 얼굴, 미국의 저력, 미국의 허점, 미국의 역사… 모든 것이 똘똘 뭉쳐있는 그곳, 현재는 어떤가? 매일 매일 세상을 떠나는 불쌍한 영혼들의 숫자가 예전의 모든 사태를 완전히 넘어서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요인들은 이론적으로 설명이 될 것이지만, 나는 그 이상의, 높은 곳의 요인들을 생각하며 ‘운이 없었다’는 말은 그렇게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아침 cpbc onliine 미사가 끝나면서 그곳에서 현재 고통 속에서 사투를 벌리는 모든 New Yorker들을 생각하니 눈물까지 흐른다. 오늘 매일 미사의 결과인가… 강론 때문인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응원을 그들에게 보내고 싶다. 그야말로 fighting, fighting, 화이또, 파이팅 New York, New York!!

 

Scientist correcting & teaching… whom, Stupid!

 

¶  March Madness:    3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며 지나간 한 달을 뒤돌아 본다. 이상하게도 빨리 지난 듯 하면서도 사실은 근래에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것은, 3월 달 이전에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이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한가지 밖에 없다. 코로나, 코로나, 코로나, pandemic 그리고 pandemic …  한마디로 이것이 바로 March Madness가 된 것이다.

오늘 저녁 major network TV 로 pandemic news를 마지막으로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인재 人災 인가, 천재 天災 인가.. 그 중간인가.  생각보다 피해가 너무나 처참할 정도로 심한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몸을 추스르게 된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대비할 시간이 그런대로 충분히 있었는데, ‘빠가’, ‘또라이’ 트럼프,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red button’을 누른 결과가 되었다. 부활절 이후 경제활동을 풀겠다고? 재선 再選의 유혹이 그렇게도 달콤했던가, 아니면 자기도취의 역병 疫病에서 아직도 못 깨어난 것인가?  결과론은 둘째치고,  몇 일전의 생각과 발언을 거의 발뺌으로 넘어가며,  비위에 거슬리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거의 깡패 수준의 발언을 서슴지 않으니.. 정말 우리는 대한민국이나 미국이나 남미 나… 하나 같이 지도자 부재현상의 홍역을 겪고 있다.

결국 이 ‘또라이’는 4월 말까지 ‘금족령’을 발표한 모양인데, 어떻게 며칠 새에 마음이 그렇게 변할 수가 있는가? 모든 과학적 자료를 듣거나 읽을 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까우니 아마도 밤에 자기 전에 ‘뺑뺑이’를 돌리는 것은 아닌지 우습기도 하다. 문제는 이제 정면으로 대처하기는 늦은 것 같고, 이 거대한 파도를 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이것은 인재에 가깝다. 240,000 명 이상의 희생자가 나올 것이라는 놀라운 예보는 이제 거의 실제로 다가오는 사실로 느껴진다.

 

 

 

¶  성경통독:     3월의 마지막 날,  이번 달 성경통독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요한묵시록’의 마지막 부분을 읽었다. 올 들어서 아틀란타 순교자 본당 신자 전체가 일년에 걸쳐서 성경을 전부 읽는 것을 목표로  ‘성경통독’ 계획표를 배부하여 현재 우리도 매일 읽고 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읽는 것이 이제 거의 습관이 되었다.

오늘까지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나의 기상 시간에 맞추어 이렇게 신약성경 전체를 읽고 있는 것이 나는 은근히 자랑스럽다. 조그만 습관이나마 내가 이렇게 습관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특히 더 가슴이 뿌듯한 것이다.

‘매일 성경, 묵상글’에 꽤 오랜 동안 익숙해져 있었지만 이번에 ‘통째로’ 읽는 경험은 아주 새롭고 놀라운 것이었다. 매일 말씀, 묵상의 단편 단편의 말씀들이 앞뒤로 연결되어서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살아나는 것, 흩어져 있던 수많은 점들이 하루 하루 연결이 되어서 새로운 뜻들이 너무나 편하게 이해가 되어온다.

또한 그렇게 한없이 지루하고 길게만 느껴지던 ‘성경’, 특히 신약이 어쩌면 이렇게도 짧을까 하는 오만스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인류의 정신적인 역사를 만들어 왔던 ‘예수부활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짧았단 말인가 할 정도였다.

오늘로서 신약성경 마지막 ‘요한묵시록 the Apocalypse’, 그것도 마지막 부분을 끝으로 신약을 다 읽게 되었다. 묵시록에 등장하는 상징적이고 종말론 적인 이야기 중에서도  four horsemen, 그 중에서도 첫 번째의 white horse는 아마도 역병 plague 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오늘의 코로나바이러스 Pandemic 과 연관되어서 아주 실감나게 느껴진다.

내일부터는 그러니까 구약 성경을 읽게 되는 모양인데… 매일 밤 우리집의 저녁기도에서 이미 구약을 읽기 시작한 것이 꽤 되어서 조금은 덜 생소할 것이지만 미리부터 겁이 안 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바보같이 잔인하고, 반복적으로 지루한 부분들이 많을까… 아직도 의아해 하지만, 분명히 우리는 아직도 멀었다는 느낌뿐이다. 하지만 내일부터 다시 그것을 반복하며 읽게 되니, 이번에는 또 다른 깨달음을 기대해 본다.

 

 

¶   3월도 며칠 밖에 남지 않았다. 3월, 특히 중순을 넘으면서 ‘전통적 기억의 단절감’을 절실히 실감했다. 흔하게 생각나던 나와 친숙하던 어휘, 단어 등등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기억력 감퇴일까 했지만 그것보다는 그런 것들을 모두 가리는 또 다른 것들이 머리 속에 가득했기 때문일 것, 이라고 나는 희망적인 추측을 한다. 그러니까, 일시적인 기억 상실증이라고 할까. 물론 이유는 한꺼번에 물결치듯 나를 덮친 정보의 홍수, 그것도 오랫동안 (또라이 트럼프 등장 이후) 피해오던 세속적 주류 미디어 mainstream media 로부터, 바로 그것의 위력이었다. 물론 ‘그 놈의’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것들이다.

 

 

작년 3, 4월의 일지 日誌달력을 본다. 올해의 것의 밑에 놓고 수시로 작년과 올해를 비교하는 것이 이제는 버릇이 되었다. 물론 1년 전의 일들이 궁금한 것도 있지만, 그 당시 만나거나 연락을 하며 살았던 사람들을 생각하기도 하고 그 때 만났던 장소, 날자 등을 참고로 다시 연락하는 등 편리한 것,  탁상달력의 조그마한 일지, 메모는 이제 꽤 나의 개인전통이 되어 간다.

지금 이것을 다시 보며, 작년 3,4월의 일들이 너무나 신선하고, 건강하고, 그리운 것으로 느껴진다. 왜 안 그렇겠는가? 이렇게 세상이 뒤숭숭한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Beatles의 Yesterday를 부르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이다. 작년 이 맘 때의 ‘보통, 정상, 지루한 하루하루’ 가 지금은 거의 천국처럼 느껴진다. ‘새 정상 new normal’이란 것이 작년에 비하면 거의 비상사태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바로 눈 앞에서 ‘적군이 쳐들어 오는’, 실제적인 전쟁이 난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일까?  어렸을 적에는 당장 쳐들어올 것 같던 김일성 빨갱이들의 제2의 6.25의  공포에 떨었고,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미국에서도 거의 20년 전 9/11 사태도 등골이 오싹한 공포를 주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래도 ‘먼 곳의 불’ 이라고 위로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코로나바이러스 COVID-19  Pandemic은 game의 scale이 완전히 바뀌어서 그렇게  간단하게 숨을 곳이 별로 없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공포다. 이렇게 ‘숨을 곳이 없다는’ 공포는 사실 아주 젊었을 때 한번 잠깐 느낀 적이 있었다. 1973년의 classic psychic horror movie였던 The Exorcist,  그 심령 귀신영화를 본 후 거의 일주일간 밤에 불을 끄지 못하고 잤다. 그때의 공포도 지금과 비슷하게… 숨을 곳이 없었던 그런 공포였다.

이번에 경험하게 된 이 ‘폐렴’ 류의 전염병, 나이와 크게 상관이 있다고 했고, 나의 나이는 이제 아주 위험한 쪽에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심각하게 간주하게 되어서, ‘일부러, 자진해서’ 관심을 두고 걱정을 하기로 했다. 그것이 나와 모두를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급적 밖에 안 나가는 것, 그것이 알고 보면 최선의 방법이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YouTube 주일 미사

이영석 세례자 요한, 주임 신부님

 

¶  오늘의 사순 5주 주일미사를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Youtube Channel 을 통하여 ‘참례’를 하였다.  아틀란타 대교구 내의 모든 공적인 미사전례가 정지가 된 이후 대부분의 신자들은 어쩔 수 없이 인터넷 비디오를 보며 하게 되었는데 우리 본당도 지난 주부터 시작을 해서 오늘이 두 번째가 되었다.

인터넷 기술의 발전으로 예전 같으면 아주 힘들었을 것들이 가능해지고 교회의 전례까지 이렇게 혜택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의 문제는, 개신교와 비교해서, 전례의식의 중요성이다. 쉽게 말하면 개신교는 ‘강론’만 들으면 거의 다 끝이 나지만, 가톨릭에서는 ‘전례 의식’ 자체 특히 성체성사가 절정 絶頂이기에 이런 ‘virtual mass’는 교의적 사목적으로 결함이 있을 것이다.  특히 예수님의 몸을 ‘먹는’, 영성체가 문제다.  예수님의 현존을 나타내는 것,  그것을 물리적으로 ‘영’하는 것이 빠지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것을 ‘신영성체’, Spiritual Communion이라는 기도를 통해서 보완을 하고 있지만 이것을 정식 미사라고 하기에는 신학적인 문제가 있을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 대수인가? 신부님을 big screen으로 보는 것만 해도 사실 성당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만으로도 사실 감지덕지가 아닌가?

또한 이렇게 YouTube Live로 주일미사를 가능하게 한 성당의 ‘전산팀’이 있었을 듯 한데 그들에게 뜨거운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들도 현재 진행중인 코로나 사태에서 발견하게 되는 많은 ‘착한 영혼’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  결국은 올 것이 왔다. 예상했던 공식적인 발표, 아틀란타 대교구의 모든 공식적, 공적, 사목적인 미사, 성사 활동이 일단 3주간 중단된 것이다. 다른 때도 아니고 일년 중 제일 중요한 사순절, 부활절을 기다리며 보내는 시기에 이것이 중단됨은 역시 (Inter) national emergency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하루 하루가 조금씩 늦게 흐르는 기분은 왜 그럴까? 쉽게 말해서 요새 내가 보고 듣는 경험들이 전혀 일상적인,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흡사 기상변화에 따른 비상사태, 그러니까 worst snow days 같은 사태를 겪을 때의 심정이다. 걱정, 불안은 물론이고 심지어 조마조마한 suspense, thrill,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조용했던 머리 속을 맴돈다. 무섭고 흥미로운 소설을 읽은 듯한 기분도 없지 않다.

우리가 이 ‘사태’를 잘 대처하고 있는지가 우리의 큰 관심사인데, 정말 이것은 자신이 없다. 지나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너무나 조심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이다. 하지만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음은 자신이 없지 않다.

 

¶  Pray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My Jesus, I believe that You are present in the Most Holy Sacrament. I love You above all things, and I desire to receive You

Into my soul. Since I cannot at this moment receive You sacramentally, come at least spiritually into my heart. I embrace You as if You were already there and unite myself wholly to You. Never permit me to be separated from You. Amen.

 

Let nothing disturb you,

Let nothing frighten you,

All things are passing away:

God never changes.

Patience obtains all things

Whoever has God lacks nothing;

God alone suffices.

 

St. Teresa of Ávila

 

I know that it too shall pass—and in its wake shall rise the vastness of God’s love, mercy, and recovery.  – Tod Worner

 

본격적으로 시작된 ‘온라인 미사’, 이것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실행할 것인가? 현재 우리의 영적생활에서 미사의 의미는 중차대한 것이어서 조금 생각을 한다. 주일의 미사는 ‘생방송’이니까 성당에 가는 것처럼 준비를 하고 참례하면 되는데, 평일 미사는 recording 된 미사에 참례하는 것이라 우리가 하고 싶은 시간에 하면 된다. 평소의 평일미사 시간이 아침 9시이기에 가급적 그 시간에 고정적으로 하면 좋을 듯하다.

제일 큰 관심사는 역시 가톨릭 미사의 절정인 ‘성체성사, 영성체’인데 spiritual communion이라는 traditional 한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평화방송의 매일미사에서는 이미 ‘신령성체’ 라는 기도문을 보여 주고 있다. 물질적인 예수님의 몸 대신 마음으로 받아 모시는 것이다.

 

¶  머릿속에 완전히 ‘코로나바이러스’로 가득 찬 하루였다. 왜 안 그렇겠는가? 불안, 공포는 물론이고 나의 신앙을 시험하는 불행한 기회임을 느끼게 되는 등, 각종 혼잡한 생각이 나의 머리를 때린다.

특히 미사가 완전히 정지되는 것, 그에 따라서 레지오 주회합 ‘출근’이 없어진 첫날은 조금 감상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2010년 10월 처음 ‘출근’하기 시작한 것, 이제까지 ‘신 神 들린 듯이’  앞만 보고 달린 것, 나는 성바오로의 말씀으로 위로를 받는다. 그래 경우야, 성모님, 열심히 뛰었습니다. 앞으로는요? 결과적으로 큰 변화가 없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특별한 날, 레지오 주회합과 그에 따른 활동[봉성체, 양로원]이 없어진 첫날 밤, 무슨 휴가라도 온 기분으로 밤 늦게까지 앉아서 online delight를 만끽하는 나, 나로서는 거의 taboo였던 10시 지난 밤 늦은 때의  2개의 doughnut과 stick coffee.. 와~~, 정말 이것은 희귀한 즐거움이다. 이런 때도 가끔은 있어야지.. 그래..

 

¶  정말 오랜만에 the TV를 본다. 테레비, 테레비.. good ole (analog) TV: ABC, NBC, CBS 바로 그것이 진짜 나에게는 미국의 믿을만한 fake news가 없는 테레비 뉴스였다. 그것만 보면 나에게 필요한 세상의 뉴스는 거의 다 보는 것이다. 믿을 만 했던, 아니 그것은 거의 다 정성을 다한 진실된 뉴스란 것을 의심치 않던 그런 시절들이었다.

세상이 그 동안, 최소한 5~10년 정도의 긴 세월, 얼마나 변했나? 오랜만에 시끄럽게 느껴지던 광고들을 다시 보니 조금은 반가움도 느낀다. 살아있는 사람들.. 시끄러운 사람들, 피곤한 사람들이 이곳에 모두 보인다. 그래 이것이 세상이었지, 잊고 참 오래 살았다.

우리의 일상 생활 일과  daily routine이 ‘공식적’으로 바뀐 이후, 현실을 실감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며 지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별것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사실 큰 변화로 느껴진다. 혹시 이것을 계기로 내가 찾았고, 매달리는 믿음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우려를 하기도 한다. 나의 성격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옛날처럼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는 않을 자신이 있다.

앞으로 이 시련의 기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집에 머무는 것, 나에게는 사실 통상적인 것이라, 웃기지만 특별하게 변하는 것은 없다. 매일 평일 미사, 레지오 활동하는 것, gym에서 운동하는 것, 그것을 대신하는 더 유익, 중요한 것을 더 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짧지 않은 동네 산책길을 걷는 것, 또한 몇 가지 완독하려던 책들이 있으니 시간을 보내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 그리고 그 동안 한눈 팔던 것들, garage, hardware tools,  yard work, sparky-fun (electronics) 같은 것을 하면 더욱 좋을 듯하다.

 

 

 

¶  Social Distancing? Huh….  ‘社會적 距離 두기’? 하루 종일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새로운 시사 時事용어, 이것 한글 용어 로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괴롭다.

사람들과 사이를 두라는 쉬운 그림은 그려지는데… 간단한 것이 아닌가?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갔을 때 어떻게 그들과 ‘거리를 두고 떨어져서’ 어울리는 것, 그것일 것이다.

이유는 물론 공기로 전염되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다. 몇 feet 사이를 두면 안전한 것인가? 말을 크게 하면 안 되는 것인가?  이런 것들이 귀찮으면 아예 사람들 근처에 가지 않으면 되지 않는가?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도 역시 ‘사회적 거리’를 두는 지혜다. 당장 우리가 쌓아온 오랜 전통, 주일과 매일미사, 레지오 주회합, 봉성체, 양로원 봉사, 그리고 YMCA  gym 운동..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오랜 세월 동안 믿었는데, 이것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정말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당분간 아니면 꽤 오랜 동안 이런 활동을 못할 듯한 예감인 것이다. 아틀란타 대교구의 본당을 위시한 한국성당의 평일, 주일미사와 레지오 주회합, 활동도 거의 마찬가지 위치에 있다. 어떻게 결정을 할 것인가? 어떻게?

신중하고 사려 깊고 지혜로운 결정의 순간들이 계속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 아마 이런 사회적 곤란함은 계속될 듯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제일 올바른 길인가? 내가 안 움직이고 안 나가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임을 알면서도 그것의 ‘정도’가 문제인 것이다. 관건은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데 있다. 100명 이상인가? 10명 이상인가? 오늘 주일미사도 100명 이상일 것으로 예상하고 모처럼 online mass를 보고 가능하면 참례의식을 지키도록 노력했지만 그것이 실제 진정한 성당미사의 근처에나 갈 것인가?

 

 

¶  오늘 우리는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주일미사를 빠지게 되었다. 점점 느낌이 안 좋은 이 시국의 그림자가 나의 머리를 짓누르는 가운데  싸늘하고 잔뜩 찌푸린 날씨와 연숙의 ‘급성 불면증’을 핑계로 그렇게 했는데, 솔직히 크게 후회는 안 한다.  대신 급히 찾은 online (English) mass [from USA] 에 혼자서 참례해서 조금은 위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오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주일 교중미사에  평상의 1/3 정도가 참례했다고 조시몬 형제 용감하게도 보고를 해 주었다. 그 형제의 ‘올바른 신심’은 우리도 감탄하고 있지만 우리와 조금은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60대와 나의 70대의 차이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문제는 다음 주부터일 듯하다. 매일미사, 주일미사, gym, 레지오… 등이 관건이다.  아틀란타 대교구에서 공식 결정을 내리면 간단한 것을 어떻게 이렇게 꾸물거리는 것인가?

코로나, 코로나, 코로나, 그것이 그 옛날 우리에게 익숙했던 일제 자동차의 이름이 아니고 바이러스 이름이 되어서 며칠 째 머릿속을 맴돈다. 결국은 이곳도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아무도 몰랐던가? 나도 마찬가지지만… 전문가 병신들은 어떻게 그렇게 무식한 것인가? 이제는 공식적으로 COVID-19 Pandemic 이란 괴상한 이름을 가지고 우리의 일생생활까지 흔들고 있으니…

 

서울 시내를 가득메운 ‘일제’ 코로나 택시들, 1968년

 

결국 요점은 이것이다. 우리 몸에게 주어진 ‘방어능력’, 바로 면역력, immune system에 달려있는 것, 그것이 건강의 실체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신종의 전염병에서도 그것이 약한 사람부터 피해를 보는 것… 새삼 깨닫는다.

나는 어떤가? 자신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연숙은, 아무래도 나보다는 못하다. 앨러지의 반응을 보면 정확한가? 아이들은? 걔들은 나이 때문에 문제가 없다. 그러면?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관건인데 우리는 사실 이것을 control할 수 있는 혜택이 있기에 크게 걱정은 안 한다.

우리의 성사聖事생활이 제일 나에게는 관심사다. 이것에 문제가 생기면, 나는 오래 전의 나쁜 습관들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uncharted territory가 아닌가? 하지만 절대로 절대로 옛날의 나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당장,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생활방식은… 우선 사태를 관망하기 위해서 일주일 정도, 자제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YMCA를 쉬고, 다른 모임도 취소하는 것 등등이 있다. 기도를 더욱 더 강화해야 할 것이다. 성모님을 더욱 의지하면서 기다려보자.

우리의 재정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지만, 당장 돈을 빼야 할 처지는 아니기에 이것도 시간이 우리에게는 도움이 된다. 매일 매일 집안에서 사는 것, 아직까지 큰 지장이 없지 않은가? 우리보다 더 나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자.

 

1969년부터 신진자동차에서 코로나를 시판하기 시작

 

 

지난 해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신 주임, 이재욱 요한 신부님께 안부, 특히 코로나바이러스를 어떻게 극복하며 지내시는지 알아보고자 연락을 드렸더니, ‘기도문’을 보내 주셨다.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너무 말초신경만 건드리는 값싼 뉴스에 정신이 팔려서, 사실 기도라는 것을 거의 잊을 정도였는데 이렇게 ‘공식인준 기도문’을 받고 보니 생각이 많이 정리되는 듯 느낀다. 맞다, 역시 이럴 때 기도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와 가까이 계시는 성모 마리아께 의지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역시 교황님께서도 우리들과 같은 생각이었는지 특별히 성모님께 드리는 청원기도를 발표하셨다.

 

 

코로나19 극복을 청하는 기도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기도문

천주교 서울대교구청 인준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

‘코로나 19’ 확산으로 혼란과 불안 속에 있는

저희와 함께하여 주십시오.

어려움 속에서도 내적 평화를 잃지 않고

기도하도록 지켜주시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십시오.

 

‘코로나19’ 감염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치유의 은총을 내려주시고,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고 있는

의료진들과 가족들을 축복하여 주십시오.

또한 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분들의 영혼을 받아주시고,

유족들의 슬픔을 위로하여 주십시오.

 

국가 지도자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더해주시고,

현장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투신하고 있는 관계자들을 보호해주십시오.

특별히 이런 상황에서 더 큰 위험에 노출되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을

저희가 더 잘 돌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어려운 시기를 이겨서고자 애쓰는 저희 모두가

생명과 이웃의 존엄,

사랑과 연대의 중요성을 더 깊이 깨닫게 하시고

배려와 돌봄으로 희망을 나누는 공동체로

거듭나는 은총 내려주시길 간구합니다.

 

우리의 도움이신 성모님과 함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우리와 가까이 계시는 성모 마리아께 의지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역시 교황님께서도 우리들과 같은 생각이었는지 특별히 성모님께 드리는 청원기도를 발표하셨다.

 

 

O Mary,

you always shine on our path

as a sign of salvation and of hope.

We entrust ourselves to you, Health of the Sick,

who at the cross took part in Jesus’ pain, keeping your faith firm.

You, Salvation of the Roman People,

know what we need,

and we are sure you will provide

so that, as in Cana of Galilee,

we may return to joy and to feasting

after this time of trial.

Help us, Mother of Divine Love,

to conform to the will of the Father

and to do as we are told by Jesus,

who has taken upon himself our sufferings

and carried our sorrows

to lead us, through the cross,

to the joy of the resurrection. Amen.

 

Under your protection, we seek refuge, Holy Mother of God. Do not disdain the entreaties of we who are in trial, but deliver us from every danger, O glorious and blessed Virgin.

 

 

拙譯

 

언제나 구원과 희망의 표징으로

우리의 앞길을 밝혀주시는 성모 마리아님.

굳건한 믿음으로 예수님 십자가의 고통을

함께하신, 병자들의 건강이신 당신께 의탁하나이다.

로마인들의 구원이신 당신은

카나의 기적 처럼 이 모든 시련이 끝날 때까지

저희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심을 아나이다.

천상의 사랑이신 어머님,  저희가 하느님아버지와

우리의 고통과 슬픔을 지고 가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며,

십자가를 향해 부활의 기쁨으로 이끌어 주소서.

 

거룩하신 하느님의 어머니, 당신 아래

피난처를 찾나이다.

영광스러운,  복되신 동정녀시여.

시련 속에 있는 저희의 간청을 물리치지 마시고

저희를 위험에서 보호해 주소서.

 

 

Where else? from CHINA, stupid!

 

Pandemic!!!!   먼데서 난 불구경을 하듯이 몇 주일이 지나면서 오늘은 드디어 한 나라, 바티칸이 있는 이태리, 가 완전히 비상사태에 들어갔음을 보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치사율은 그리 높지 않지만 감염률이 장난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폐렴의 일종이기에, 우리들 senior 부류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인터넷, 특히 YouTube를 통해서 피할 수 없게 들어오는 ‘가짜, 과장 뉴스’들은 심리적으로 더욱 몸을 도사리게 한다. 설상가상, ‘비과학적 또라이’ 트럼프는 연상, 걱정 없는 표정으로 일관한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pandemic의 양상이 아닐까…

대도시의 밀집구역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직장에 나가야 하는 것도 아닌데도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우리의 ‘직업’인 레지오 활동에 지장이 오는 것, 또한 밖으로 나가며 사회적인 접촉을 못하게 되는 우려, 이유가 너무나 사치스러운가 미안하긴 하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큰딸 새로니는 학교 근무를 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아픈 아이들’이 생길까 봐 신경을 많이 쓰는 모양인데, 아직도 휴교의 뉴스가 없는 모양이다. 나라니와 Luke는 다행히 장기 출산휴가 덕분에 집에 있으니 큰 문제는 없는 듯.  어쩌다 세상이 이러게 돌아가는 것일까, 생각하면 할 수록 ‘중국 공산당’에 대한 증오심을 누를 길이 없다. 내가 이제까지 생각해온 그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이 적나라 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 갑자기 오래 오래 전, 1665년 영국 런던을 휩쓸던 Great Plague를 피해서 시골로 도망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Isaac Newton의 얼굴이 떠오르니…

 

현재 진행중인 정말 ‘거짓말’ 같은 소설, 연극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이야기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거의 피부로 조금씩 느끼면서, 오랜 세월 동안 나의 잠재의식 속에 쌓이고 쌓였던 숨은, 부정적 감정들과 나의 숨은 치부 恥部가 잠재의식의 보호벽을 뚫고 나온다.

이것은 간단히 말하면, 나의 부정적인 중국관 中國觀 에 관한 것이고, 특히 ‘공산당 중국’을 너무나 혐오하기에 감정적 bigotry trap 함정에 쉽게 빠지곤 한다. 한마디로 이 중공의  ‘해괴한 공산당 체제’는 인류사의 관점에서 보아도 ‘필요 없는, 아니 해로운’ 존재라고 굳게 믿는다.

20세기 세계적 골치거리, 우리에게는 영구분단, 자기 ‘인민’ 수백만을 굶어 죽이는 정권욕의 괴수, 이런 ‘해로운 존재’의 문제를 크게 못 느끼고 살았지만 문제는 이들에게 ‘돈’이라는 무기를 가지게 되면서다. 그들의 무신론적 유물론과 인류보편 도덕성이 결여된 비인간적 집단에서 이런 이상한 병균이 이제까지 안 나온 것도 기적이다. 시간문제였던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사태에 책임을 질 것인가?  한가지 생각나는 것, 이들에게 일말의 책임감을 느낄 ‘도덕의식’ 이 있다면 이 ‘인재, 人災’에 대한 구체적인 국제적 보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안 되면 피해에 대한 법적 소송은 어떤가? 아마도 ‘법의 정신’이 전혀 없는 그들에겐 ‘소牛 귀耳에 경經 읽기’ 정도밖에는 안 될 것이다.

 

¶  Spring Forward!   지나가는 주중에 줄기차게 내리던 비, 그친 지 며칠 째이지만 하도 많이 내려서 마르는데 시간이 꽤 걸렸지만 오늘로서 완전히 빠삭빠삭한 땅과 하늘의 느낌을 맞게 되었다.

어느새 그 귀찮은 일, 집안의 모든 시계들을 한 시간 앞 forward 으로 돌리는 날이 되었다. 왜 이렇게 귀찮은 법을 만들었지 어떨 때는 은근히 화가 나기도 하지만 나의 힘으로 이것을 바꿀 능력은 전혀 없다. 하기야 이 법에도 의도하는 이로운 목적이 있으니까. 갑자기 저녁 시간이 밝아 진 것 daylight saving 은 사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bonus일 것이기도 하니까.  이것을 ‘정상’의 시간으로 바꾸는 fall back,  늦가을.. 이제는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세월은 점점 빨라지고 있으니까. 다만, 다음 시계를 바꾸는 그날까지 우리는 어떤 ‘모양새’의 세월을 보낼 까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  주일미사, 고해성사 깜:  지난 주일 미사에 이어서 이번 주일미사도 사정상 거르게 되었다. 비록 매일미사 참례를 한다고 해도 주일미사는 미사중의 꽃인데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가 우리도 한심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이 탓’을 안 할 수 없는 그런 처지에 우리가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다. ‘그 날’까지 마라톤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상식에 의거한 현명한 판단을 우리는 매일 아침에 해야 하는 것이다. 요즈음 문제의 주범은 연숙의 불면증이지만 그것 외에도 앞으로 나이에 따른 문제가 없을 리가 없다. 이제 우리의 사회생활은 물론, 모든 신심활동이나 신앙생활도 거의 우리의 건강상태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기도 한다. 우리들의 비교적 건강함도 무한정 지속될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평화롭게 이성적, 상식적으로 하루하루를 감사하게 보내는 것, 그것이 관건이다.

 

이 사진과 신천지는 무슨 관계?

¶  개신교와 신천지:  요새는 우리 집의 ‘한국소식통’인 연숙을 통해서 그쪽의 소식을 가끔 듣곤 한다. 내가 워낙 그쪽에서 오는 소식을 피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알기에 별로 자세한 소식은 모르지만 요새는 조금 예외에 속한다.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다. 왜 하필이면 그곳이 뉴스의 가운데에 나온 것인가? 그런데 알고 보니 참 기기 막히는 소식은 나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 바로 ‘신천지’인지 구천지인지 하는 걸맞지 않은 이름을 가진 ‘개신교’ [가톨릭이 아니면 일단 개신교라고 생각하고] 사교집단에 관한 것이다.

자세히는 잘 모르지만 그 집단 신도들에 의해서 그 바이러스가 퍼졌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러니 갑자기 뉴스에 나온 것이다.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이번 한국 바이러스 유포의 일등 ‘공범’이 된 셈이다. 하필이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런 나쁜 뉴스에 연루가 되었는지 한심하기도 하지만, 역시 ‘사필귀정 事必歸正’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신천지, 이름도 촌스러운 이것에 대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2013년 경이 아닐까?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 하태수 미카엘 주임신부님 재직시절 예비신자 교리반의 [teaching] staff으로 ‘레지오 활동’을 할 때였다. 부활절을 향한 교리반이 과정의 끝머리 즈음에 하 신부님이 특별강의 시간 하나를 추가해서 강론을 하셨는데 그 주제가 바로 ‘사교집단 신천지의 정체’ 였다.

그러니까 이 집단은 새로 등장한 것이 아니었고 꽤 역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예비신자들에게 이들의 정체를 알게 하고 경계심을 일깨워주려는 것이 신부님의 목적이었다.  이들의 특징 중에는 대부분 ‘잘 나가는, 지식적이고 말쑥한’ 젊은이들이 이곳으로 흡수가 되며 이들의 포섭공작이 아주 조직적이라는 것도 있었다. 특히 ‘성경공부’ 같이 하자면서 접근하는 젊은이들은 십중팔구 그들이라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우리 같이 ‘한 물 간 부류’는 사실 그들의 안중에도 없기에 걱정이 전혀 없다. 하지만 교리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문제다. 그들의 언변과 성경지식은 절대로 못 따라가니까. 그렇다. 이것이 바로 개신교의 고민일 것이다. 거의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를 하는 그들, 이제 조금은 자체적으로  ‘교통정리’를 해야 할 때가 안 되었나?  전통과 초대교계를 완전히 버리고 그저 ‘성경유일’로 ‘자기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  문제없는 교황님: 오늘 지난 주일에 이어 다시 교황청 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일요일에 정오에 있는 교황님 주도의 삼종기도의 모습을 보려는 것이다. 이곳에서 교황의 모습을 보고 느낄 수 있고, 그 바티칸 주변에 모인 순례객들의 동정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지난 주일보다 순례자들의 수는 훨씬 줄어들었지만 아무도 마스크를 착용하지는 않아 보였다. 아마도 바티칸 주변 로마는 그렇게 바이러스가 심하지 않은 모양인가?

하지만 교황의 동정은 지난 주와 달랐다. 삼종기도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video를 통해서 밖으로 방송을 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평상적으로 교황이 군중들을 내려다 보는 것, 바이러스와 큰 상관이 있을까? 하지만 모든 메시지 방송이 끝난 후에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창문으로 나와서 군중들을 축복하는 짧은 시간이 있어서 크게 아쉬움은 없었다.

문제는 이제부터가 아닐까? 분명히 로마 주변에도 감염자 숫자가 늘어날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바티칸의 모든 ‘성사’는 취소가 되는 것은 아닐까? 수요일의 교황님 주재 일반군중과의 만남 시간도 취소가 되었으니, 나머지 행사도 축소가 될 듯..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St. Peter’s Square에서 교황님의 삼종기도를 기다리며 운집한 die-hard 순례자들..

예전같이 평상적인 모습으로 기다리는 순례자, face mask가 하나도 안 보인다.

 

Vatican Angelus, 바티칸 삼종기도:   지나간 주에 일어난 딸애의 출산 같은 큰 일들을 때문인지, 모처럼 주일미사를 빠지기로 결정한 ‘우리들의 삼일절’ 일요일 오후에 Vatican Youtube 를 보니까 오랜만에 보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삼종기도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얼마 전에 ‘교황님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 이라며 기도를 하자는 text message를 본 직후에,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까지 알게 되었기에 사실 여부가 궁금하기도 했다. 매주 일요일의 바티칸 삼종기도에 교황님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과연 그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과연 삼종기도 시간에 맞추어 교황님이 창문으로 나타나셨고,  close-up 된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조금 피곤한 것 이외에는 전혀 병색이 없었다. 또한 성베드로 광장에 운집한 순례객은 숫자는 비록 적었어도 얼굴 마스크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태리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율이 아주 높다고 들었는데, 그 지역이 다른 쪽인 모양이다. 하지만 로마나 바티칸도 시간 문제가 아닐까 하는 우려는 떨칠 수 없었다.

 

평소와 같이 창문으로 등장하신 교황님, 코로나 바이러스는 헛소문..

역쉬… fake rumor 전혀 병색이 없는 교황님, 평소처럼 삼종기도, 메시지를 바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사율은 생각보다 크지 않은 듯하다. 그러니까.. 과장해서 말하면 심한 flu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문제는 (1) 이 바이러스의 정체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점, (2) 감염률이 높은 듯한 점, (3) 경제, 사회적, 심지어 정치적인 파급적인 불안감, (4) 결국은 사회적인 약자에게 미칠 지나친 피해… 등등을 생각하면 조금은 미리 피곤해진다. 왜 하필이면 성스럽기만 한 사순절에 이런 ‘중국발 대형사고’가 났을까? 

¶  Grandparents at last:   드디어 우리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지난 해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느낌을 생생히 기억하기에 이번에 결국 손자가 태어났을 때는 당연한 것으로 느낄 것으로 예상을 했지만 세상사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또 다른 느낌들을 정리하고 처리하느라 사실은 꼭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일들이 작은 딸애의 급작스런 ‘속도위반’성 결혼의 결과임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도 정리를 못하는 정말 ‘모든 것이 늦은’ 인생을 사는 한심한 늙은이라는 생각 뿐이다. 주위의 대강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찾아오는 ‘손주들의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어느 분들은 지나칠 정도로 흥분을 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미안할 정도로 묵묵히 응답을 했던 기억이다.

우리 부부의 출산경험은 사실 거의 40년 전에 가까운 태고 太古 적 때의 일이었고, 이번에 다시 가까이 이 출산과정을 지켜보면서, 거의 새로운 것을 보는 듯했다. 오래 전, 두 애 모두 (제왕절개)수술 경험이 있어서 이번의 예정된 수술은 크게 생소한 것은 아니었지만,모든 기억이 사라진 후여서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이 탓인지 정말 필요 없는 것들이 걱정거리로 둔갑을 하는 모양이다.

그 긴 세대차를 통해서 의학도 발전을 했을 것이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이 있을까? 걱정을 일부러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을 통한 나름대로의 근심은 떨쳐 버릴 수가 없어서 주위에 기도를 청하기도 했다.  한가지 다른 것은 그 옛날 우리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는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는 기억, 그래서 충분히 즐길 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처럼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것은 비교적 생각을 할 여유가 있어서 그렇게들 즐겁고 기쁜 것이라 내 나름대로 해석을 하기도 했다.

아기엄마(작은 딸) 는 이미 내가 할아버지가 되었음을 강조하느라 지난 성탄 때에는 MY GRANDFATHER’S BLESSINGS이란  DR. RACHEL REMEN의 Bestseller 책까지 선물로 주었으니, 별다른 거창한 생각을 안 하며 기다렸던 나도 이제는 조금 ‘책임감’을 느끼게 되기도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역할은 무엇일까? 나에게 할아버지, 할머니 상은 거의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없다.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숙에게는 그런대로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는 모양이었지만… 6.25 발발초기 때 납북되셔서 기억에 남는 아버지가 없었기에 내가 아빠 노릇 하는 것도 그렇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할아버지 노릇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난감하기만 하다.

태어난 파란 눈을 가진 건강한 남자아기를 계속해서 보니 시간이 가면서 나의 마음에도 평화와 기쁨이 찾아온다.  또한 주위의 친지들에게 태어난 아기의 사진을 보내주니 그렇게 함께 기뻐할 수가 없었다. 특히 반세기 떨어져 살아왔던 고국의 친구들도 제일 마지막으로 할아버지가 된 것을 축하해 주었다. 그들은 ‘정상적, 모범적 인생’을 살았는지 벌써 중학생까지 된 손주들이 몇 명이나 있었다.

이번에 겪는 ‘인생사’는 지나간 오랜 세월 동안 내가 예상하며 살았던,  ‘인생에서 거쳐야 할 큰 사건들’ 중에서 거의 마지막에 속할 것이라 생각이 되어서 조금은 의미를 두고 싶지만, 완전히 ‘세계화’된 여건에서 파란눈의 손자, 사돈들과 어울리는 새로운 모험이 시작됨은 우리 평창이씨 족보에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  Yellow Perils:  Corona Virus, 코로나 바이러스로 주위가 시끄럽다. 이것이 시끄럽게 된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야 별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는 많지 않지만 시간이 갈수록 우리도 피할 수 없게 관심을 안 둘 수가 없게 되었다. 당면 문제는 우리가 일 주일에 한두 번은 가야만 하는 ‘도라빌 한국 순교자 성당’이 ‘한국인들의 공동체’라는 사실에 있다.  그러니까… 우리도 다른 한국사람들과 잠시나마 어울리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암만 생각해도 조금 overacting이 아닌가. 본당에서 공식적으로 ‘자발적 모임 자제’는 물론이고 봉사활동의 첨단위치에 있는 레지오 (마리애)의 활동모임도 단장재량으로 취소, 연기한다고.. 꾸리아 월례회의, 사순특강 취소… 사순절인데 어쩔 것인가?  이곳 아틀란타에 위치한 CDC에서도 별로 크게 공포감을 주는 발언이 없고, 다른 미국본당들은 전혀 개의치 않음을 알기에 성급한 한국인의 성질이 이곳에서도 역시.. 하는 생각이 든다.

제일 웃기는 것은 역시 그 문제의 다른 쪽 한국인사제, 미사 때 신자들에게 ‘대꾸도 하지’ 말고, ‘기도도 말로 하지 말고’, ‘성가도 부르지 말고’.. 등등 예의 일장 훈시를 한 모양이다. 역시 그 신부의 해괴한 인상 그대로인 듯.

이번 ‘사건’을 통해서 생각나는 것이 있다. Yellow Peril이란 말을 정말 오랜 만에 떠올렸다. 서양문화가 보는 황화론 黃禍論, 아마도 영국의 역사학 거장 universal historian,  Arnold J. Toynbee가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1 황화론의 현대적 해석은 다음 세계전쟁은 서방과 중국의 종말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20세기 중반의 일이었고 당시의 중국은 정말 전 인민이 굶어 죽어가는 한심한 공산독재의 표본이어서 쉽게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배가 고픈 상태에서 서방에 도전을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50여 년 후에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이제는 이 말이 장난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기본 도덕관념(서구적인)이 거의 ‘의도적’으로 결여된 ‘비정상적 공산주의자’들이 억수로 돈을 벌어서 어떻게 쓰고 있는가. 이런 배경에서 이번의 코로나 전염병을 결과적으로, ‘비밀리에’ 퍼뜨리게 한 짱깨(정부 주도로)들의 행태를 다시 보면서 그들과 함께 춤추는 대한민국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1. 1960년대 말 한국 시사영어주해 잡지, 월간 ‘시사영어연구’에서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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