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Holidays

12days of

¶ 엘니뇨의 영향으로 미국 동부는 이상난동 異常暖冬에다 장마성 폭우로 사실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카드에 나오는 하~얀, 고향 같은 풍경의 기대가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그런 기후적, 감상적인 것을 빼고는 사실 예년이나 다를 기분은 하나도 없고 Christmas Season (12월 25일부터 다음해 1월 둘째 일요일까지, 이번은 1월 10일, liturgical calendar) 의 첫날, 12 Days of Christmas 중의 첫날,  First Day of Christmas 를 지낸다.

올해는 우리 집 오랜 전통을 깨고, 처음으로 성탄미사에 참례를 하게 되었다. 오랜 동안 우리는 미국 성당에서 성탄 전야 미사에 온 가족이 참례하고 정작 성탄절에는 완전히 집에서 늘어지게 쉬곤 했었다. 이것이 근래에 들어서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기에 고쳐야겠다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었던 참이었었다.

 

푸근~한 느낌의 성탄미사가 끝나고... 도라빌 순교자 성당 2015년 12월 25일

푸근~한 느낌의 성탄미사가 끝나고… 도라빌 순교자 성당 2015년 12월 25일

 

2015-12-25 13.24.41푸~근~ 하고, 잔~잔~한 미소를 띤 모습으로 성탄절미사를 집전하시는 이재욱(요한) 주임신부님, 흡사 ‘젊은’ 산타클로스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성탄의 진정한 의미, ‘고차원적인 사랑‘ 의 느낌을 강론과 몸으로 보여주신다. 오늘 이곳 도라빌 순교자 성당, 한국본당에 오게 된 계기도 우연이 아닐 듯.. 순교자 성당에서 아주 멀지 않은 apartment로 얼마 전에 이사온 작은 딸 나라니가 올해 family Christmas meal을 준비한다고 한 것.. 거기서 가족들이 모이게 된 것들.. 모두 우연이 아니었을까? 오랜만에 우리 집이 아닌 ‘다른 집’에서 나라니가 준비한 fusion Christmas luncheon 으로 성탄 오후시간을 즐겼고, 오랜만에 우리 집에 없는 big screen TV로 우리 가족들의 오래 된 classic movie였던 Bing Crosby, Ingrid Bergman 주연, 가슴을 훈훈하게 적시는 ‘The Bells of St. Mary‘를 보며 각자가 느끼는 추억이 어린 논평을 하기도 했다. 그것은 warm heart, loving heart 의 기적에 관한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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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성탄절에 집에서 나왔던 덕분에 쓸쓸하게 성탄절 낮을 보낼 듯 했던 우리의 젊은 봉성체 환자 H 보나 자매님 댁도 찾아볼 수도 있었다. 이런 날, 몸과 마음이 쓸쓸한 영혼을 찾는 것은 우리들의 heart에도 엄청난 도움을 준다. 변함없는 모습과 감사하는 태도로 우리를 맞는 자매님, 비록  holiday decoration이 하나도 없는 조용한 집이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가족들은 모두 가까운 곳에서 보살피고 있어서 그러한 쓸쓸함을 이기는데 도움을 준다. 사랑이 주제라는 성탄의 의미를 새겨볼 수 있는 거의 완전한 예들을 오늘 이렇게 경험한다.

오늘의 이런 ‘성탄절 봉성체’와 더불어 어제의 조금 다른 경험들이 나를 조금 움츠리게 한다. 지난 화요일 우리와 같이 고해성사를 했던 S 형제, 어제의 통화에서 다시금 우울한 holiday를 가족과 맞이하고 있음을 알고 나의 가슴은 주저앉는다. 오래 전의 나의 모습을 그에게서 보는 듯해서 더욱 우울해진다. 이럴 때 어떠한 말도 필요가 없음도 알기에 더욱 답답한 것이다. 어제 쏟아지는 빗속을 drive해서 올해 5월초 선종하신 배 베로니카 자매님 댁을 찾아가서 홀로 남은 두 아드님에게 작은 인사를 전하고 왔는데, 그 집도 역시 쏟아지는 빗속에서 성탄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고, 어둡게만 보였다. 쓸쓸한 모습으로 우리를 문 앞에서 맞은 그의 얼굴도 마찬가지로 쓸쓸하고 어두웠다. 밝은 빛이 탄생한다는 이런 날들에 이렇게 어두움이 있다는 것을 어찌 잊고 살 수 있을까.. 하지만 과연 어떻게 이들에게 빛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Ha.. single cup, finally!

Ha.. single cup, finally!

¶ 요사이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면 예외 없이 추위에 떨며 coffee를 ‘내려서’ 마시는 즐거움을 맞이하지만 문제는 그 ‘추위에 떠는’ 시간이 짧지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 그것을 해결해 주는 perfect present를 ‘아이들’로부터 받았다. Single cup coffeemaker 이것이 바로 해답이었다. 현재 우리 집 drip coffeemaker는 10 cups 이상을 만들어야 제 맛이 나는 monster급이고, pour-over coffee maker는 ‘내리는데’ 시간이 걸린다. 비록 ‘고급’은 아니더라도 이제는 power switch만 올리면 자동으로 personal single cup coffee가 만들어지니.. 추운 새벽의 괴로운 dark morning routine이 다가오는 1월 달의 ‘강추위’를 조금은 덜 괴로울 듯하고, 차가울 수 있는 가슴을 훈훈하게 느끼게 한다. Thank you, Kids!

 

The Twelve Days of Christmas – John Denver & the Muppets

Thanksgiving SongMary Chapin Carpenter

 

Thanksgiving Holiday 2015, 올해에 나는 우리는 어떻게 누구에게 giving thanks를 해야 할 것인가? 연일 뼈가 시려오게 내리는 가랑비의 하늘은 다시 ‘기가 막히게’ 멋진 낙엽을 바라보는 드높은 가을 하늘로 변했다. 지금 seasonal holiday의 상징인 pumpkin color로 온통 주변이 덮인 이곳에서 조용히 생각한다. 올해는 어떤 감사를 어떻게 드려야 하나..

상투적인 관례로.. 가족 친지들이 모두 건강했던 것.. 물론 제일 먼저 감사를 드려야 하지만 그것들 이외에도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있음을 안다. 아하…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는 어떤 ‘사건’ 이, 사실은 올해를 the best year of my life, our lives로 만들었다. 어떨까.. 그것이 우리의 노력이나 그저 행운의 chance로 말미암은 것이었을까? 분명히 아니다. 어떤 ‘안 보이는 손’이 우리 뒤에 있었음을 절대로 확신을 한다.  안 보이는 그것은 우리의 어머니요 하느님의 어머니였다는 사실도 거리낌없이 밝히고 싶다.

2011년부터 올해 6월까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주임신부로 계시던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 어찌 잊을 수 있습니까? 내가 한국어미사 공동체인 그곳으로 서서히 복귀를 하며 이 ‘날카로운 지성’을 가진 예수회 사제로부터 무척 깊은 것을 배우고 소화를 시키려 했다. 그와의 3년은 나에게 무척 깊은 묵상자료가 주워졌던 시기였고, 오래 잊고 살았던 것, 안 믿었던 것, 확실치 않았던 것들에 서서히 빛이 비추어졌던 시기이기도 했다. 깐깐한 성격을 감안한다 해도 이 사제는 나에게는 ‘은인, 구원자’임에 틀림이 없고, 이곳을 이미 떠난 사실이 나를 허전하게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나는 이 예리한 사제에게 감사, 감사 감사를 드리고 싶다.

하 신부님 뒤를 이어 새로 부임하신 주임신부 예수회 사제 이재욱 세례자 요한 신부님도 빼놓을 수 없는 감사의 대상이다. 개인적으로 사제를 사귀는 것은 나와는 거리가 먼 ‘취미’이지만, 본당 사목 차원의 사귐은 나에게 그렇게 이상할 것 없다. 이신부님은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친숙하게 다가온다. 우선 개인적인 친근감이 사제적인 후광에 앞 서서 느껴진다. 오시자 마자 쉴 틈도 없이 ‘봉성체 환자’를 찾아 나신 것.. 그것이 우리와 같은 차를 타게 만들었고 아주 가까운 입김을 느끼게 되고 이 젊은 사제의 사사로운 따뜻한 손길도 느낄 수 있었다. 예리한 지성의 하 신부님을 대신해서 따뜻한 온정의 손길이 우리 성당을 3년간 감싸 주시리라 생각하며 감사를 드리고 싶다.

친지 중에 이동수 목사님을 빼놓을 수가 있을까? 일년에 한두 번 정도 잊지 않을 정도로 우리 부부들끼리 만나지만, 만나면 농도가 짙고, 심도가 있는 이야기를 나눈다. 개신교와 천주교의 거리를 전혀 느끼지 않는 허심탄회한 자세로 말하고 듣는데, 나에게 큰 영향을 주는 이야기들의 깊이는 사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의 체험적인 신앙, 영성은 하나도 빼놓을 수가 없이 진실하고 공감이 가는 것들이었다. 그리 건강하지 못한 것이 조금 신경이 쓰이지만 그래도 항상 밝게 살아가는 이 ‘아틀란타 한국학교’ 선생님 (한때 우리 부부는 같이 그곳에서 주말에 일을 한 적이 있다), 올해도 감사 드리고.. 부디 몸이 더 건강해 지기를 기도한다.

아차 하면 빼놓을 수 있는 우리의 ‘보금자리’가 있다. 그것은 내가 만 5년 째 몸담고 있는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레지오 이다. 5년 전에 입단한 것, 엊그제 같은데 올해로 5년이 지났다. 소박한 동기로 입단 활동을 시작했고, 99%가 자매님들인 이곳에서 내가 과연 몇 달을 버틸까 생각도 했지만 나의 부질없는 걱정은 완전한 걱정으로 나타나.. 이제 5년을 넘게 되었고, 이곳은 내가 몸이 불편하거나 ‘강제로’ 퇴단을 당하기 전까지는 큰 무리, 저항 없이 몸을 담고 싶은 ‘신비로운 단체’가 되고 있다. 신비라는 표현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누가 알랴? 보이지 않는 부드러운 손길로 성당 공동체 구석구석을 위해 봉사하는 이 ‘생활 전선에서도’ 바쁘기만 한 자매님, 형제님들은 가히 배울 것의 표본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신심봉사 단체를 만들어 주신 Irish gentleman, Frank Duff 형제께 감사를 빼놓을 수가 없다.

My first ever, 12 days of Christmas.. 제목은 거창하지만 글자 그대로 나는 인생 처음 12일간의 2013년도 성탄 시즌을 보낸 경험을 하였다. 여기서 12일은 성탄절부터 시작되어 1월 5일 경까지 계속되는 기간으로 세속적이건 종교적이건 전통적인 의미를 가지는 기간이기도 하다. 더욱이 12일 째인1월 5일은 우리 큰 딸 새로니의 생일이 있어서 더욱 이 성탄 12일에 의미가 실린다.

‘상업적 소비자 문화’ 가 뿌리를 잡기 훨씬 전에는 이런 성탄 이후 12일 간의 기간이 더 의미가 있던 기간이었다. 그것이 ‘성탄 기분을 이용한 상업주의’ 가 성탄 훨씬 전부터 ‘북을 치기’ 시작해서 성탄절 그날 모든 것이 끝을 내는 괴상한 유행이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런 것들이 올해는 견디기 힘들게 괴로웠다.   이번 성탄시즌은 글자 그대로 ‘탈 세속적’으로 보내려고 노력을 했던 기간이었다. 이렇게 보낸 것은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의도적인 측면이 많았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다는 ‘차분한, 의미 있는’ 크리스마스를 나는 그 동안 갈망했는지도 모른다.

성탄시즌이 오면 나는 사실 기분이 쳐지는 것을 많이 경험하였고, 이것이 바로 ‘세속병’일 것이라는 의심도 많이 해왔다. 그저 가족적 선물교환이나 휘황찬란한 shopping mall, 일년의 나라 경제를 좌우하게 된 미친듯한 상업성.. 한마디로 지겨웠다. 그 중에서도 나를 제일 괴롭힌 것은: 점점 이른 ‘성탄 경기’의 시작과 12월 25일이 지나자 마자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일 순간에 모든 ‘성탄 열기’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런 것들 때문에 나는 12월 달이 점점 싫어지기도 했다. 나이를 먹음을 느끼게 되는 연말연시의 냄새까지 곁들여서 더욱 싫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무언가 너무나 잘 못 되었음을 절감하게 되고, 그것을 올해 성탄시즌은 ‘계획적’으로 바꾸려고 노력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까지 holiday season을 심각하게 보내려는 것은 조금 지나친 것 같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심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올해 나의 목표는 ’12일간의 성탄절’.. 성탄절 거의 2달 전부터 떠들어대는 모든 잡음을 ‘절대로 무시’하고, 성탄은 성탄의 의미로 12월 24일 밤 미사로 부터 시작해서 12일 정도 더 축하하며 지내기로 했다. 이것은 거의 ‘반 세속적’인 것으로 힘들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100% 성공을 거두었고 이제는 no turning back의 각오로 앞으로도 계속할 것을 다짐하게 되었다.

성탄절 불과 며칠 전에야 Christmas tree가..

성탄절 불과 며칠 전에야 Christmas tree가..

이런 나의 의도를 처음에는 가족들이 의아해 했지만 나중에는 체념을 하고 이해를 하는 듯 했다. 제일 큰 문제가 Christmas tree를 언제 장식하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평소에는 12월도 되기 전에 했지만 올해는 아슬아슬하게, 의도적으로 성탄 3일 전에야 세워 놓았다. 그것도 아주 조그만 것으로.. 이런 장식물들은 또한 의도적으로 거의 1월 중순까지 유지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새해가 되기도 전에 쓰레기 버리듯 치워버렸지만 나는 그것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성탄절 이전의 축제분위기를 거의 없앤 대신에 교회력 ‘대림절’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를 썼는데.. 주변의 분위기가 변한 만큼 효과가 적지 않았다. 감상적인 carol을 가급적 피하였고, 대신 성탄 주제의 가족적인 movie들을 보기도 했다. 인간은 역시 오감에 너무나 좌우됨을 이번에 실감하게 되었다.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의외로 간단했다. ‘사랑’이었다. 그것을 왜 그 동안 그렇게 모르고 살았을까? 의외로 의미 있는 성탄 영화들이 꽤 있었고, 거의 모두 Youtube에서 찾았다. 그 중에 3편은 이번 성탄시즌에서 최소한 10번 이상을 공부하듯이 보았다.

모두 대주제는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천상적인 사랑.. agape‘임을 보여 주는 것으로 아마도 내년에도 같은 식으로 10번 이상 다시 보게 되지 않을까? 세파에 휩쓸리고, 깊은 생각 없이 남들을 쫓아가고, 주위의 인정을 받으려고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아온 지난 날들을 생각한다. 왜 그렇게 살았는지도 사실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것이 올해 나는 무슨 ‘신들린 듯’ 진리를 찾게 된 것이다. 이런 나의 노력이나 변화가 그저 우연일까.. 아마도 아닐 것 같다. 두드리면 열리는, 찾으면 찾아지는 그런 진리일지도 모른다.

 

성탄 12일에 즐기며, 공부하며 보았던 Christmas 영화들

 

The Christmas Box

Richard Thomas, Maureen O’hara 주연의 이 family movie는 1980년대의 비교적 오래된 영화이지만 주제는 불변의 진리인 ‘성탄은 사랑’이라는 것을 주인공인 Thomas가 빌려 사는 으리으리한 저택의 여주인인 O’hara로부터 배우게 되는 과정이다. ‘성탄이란 과연 무엇이냐?’ 라는 간단하고 바보스러운 질문에 곤혹을 치르지만 결과적으로 딸을 가진 가장으로서 이 성탄의 진리를 찾아내는 감동적인 storyline.. 6번 정도 볼 때에 나도 그 수수께끼를 찾게 되었다.

The Christmas Wish

역시 1980년대 holiday family movie로 뉴욕에 거주하는 어떤 일류대학 출신 앞날이 밝기만 한 청년이 성탄 즈음에 조그만 고장 고향을 찾았을 때 자기의 할머니 성탄절 소망에 대한 얘기를 받아들여 서서히 자기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며 성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가히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역시 ‘성탄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The Christmas Hope

비교적 최근 영화, 10여 년이 조금 넘은 것이지만 역시 ‘성탄은 사랑’이라는 주제다. 비극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알게 되는 눈물을 자아내는 사랑을 향한 이야기들.. waitress로 일을 하며 singer가 되려고 애를 쓰는 어떤 single mom, 성탄 며칠 전에 교통사고로 죽고 홀로 남은 ‘밝기만 한’ 어린 딸.. 아동보호 시설 담당자 여자가 임시로 맡게 되지만 그녀 역시 얼마 전 교통사고로 10대 아들을 잃은 고통으로 시달리는 입장이다. 그런 고통으로 거의 이혼 직전까지 갔던 그 부부는 기적적으로 그 엄마를 잃은 어린 딸을 자기집으로 입양하기로 비장한 결정을 하며 성탄전야를 맞는다. 사랑을 잃었지만 결국은 더 큰 사랑을 찾는 것.. 이것도 ‘성탄은 사랑’이라는 진리를 보여준다.

A Christmas Without Snow

이 영화는 1980년대 초에 나온 것으로 나는 아주 오래 전에 이미 TV에서 본 적이 있었고, 그 이후 다시 보고 싶었지만 잊고 살았다. 이번에 우연히 Youtube에 나온 것을 보게 되었고 이제야 ‘확실한 줄거리’를 알게 되었다. 그 옛날에 잠깐 보았을 때의 기억은, 교회 성가대를 지휘하는 ‘고약한 성질’의 할아버지와 성가대 대원간의 갈등 정도였다. 제목부터가 요상해서 ‘눈이 없는 성탄’.. 이것은 무슨 의미를 주는 것일까? 간단히 말해서 주인공인 이혼녀가 눈이 강산처럼 싸이는 Nebraska주에서 눈이 전혀 없는 San Francisco로 이사를 와서 맞게 되는 성탄절 풍경을 그린 것이다. 사실 눈 보여야 성탄절 영화..라는 공식을 완전히 깨어버린 영화가 되었고, 특이하게 교회(신앙)를 배경으로 ‘성가대’가 주제가 된 것도 특이했다. 성가대 지휘자인 John Houseman은 당시 The Paper Chase란 영화로 인기가 있던 원로급 배우로서 나도 참 좋아했다. 또한 여기 성가대원으로 나오는 ‘동양 여자’는 각본에 한국인으로 나오는데.. 배우 이름도 Kim이었다. 문제는 first name인 Daisietta였다. 한국출신 여배우라면 이런 이름은 너무나 생소하다. 과연 이 배우는 한국출신일까.. 이 영화에서 그것이 나의 주 관심사가 되었다.

 

 

¶  이산가족의 외로움:  크리스마스 이른 아침, 연례 ‘가족 선물포장 풀어보기 의식’ 을 무슨 엄숙하고 의무적인 행사처럼 치른다. 이런 행사는 이제 거의 자동적으로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습관화 되었다. 이곳에서 오래 살게 되면 모이는 가족이 한 명 이상이면 (그래야 모임이 되는 것이지만) 이날 아침에는 무언가 ‘교환’을 해야 제대로 된 사람 대우를 받게 된다. 이것을 소홀히 하게 되면 그야말로 ‘왕따’를 당할 정도가 아닐까?

문제는 너무 이런 ‘세속적 의식’에 빠져서 왜 그렇게 해야 되는지 거의 잊을 정도가 된데 있다. 이래서 바티칸의 교황님도 크리스마스 season이 되면 계속 우려를 하시는 것이다. 선물을 사려고 store밖에서 새벽부터 문 열기를 기다리는 군중들에 대한 뉴스를 보면 이건 완전히 ‘정신이 나간’ 군상처럼 보일 정도다. 사랑하는 가족, 친지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선물’을 주려고 발버둥치는 의도는 충분히 짐작은 하나.. 한마디로 완전히 지나친 모습들이다.

그와 다른 면으로, 이날이 되면 어찌 그렇게 쥐 죽은 듯한 고요와 평화의 기분이 느껴질까.. 분명히 99%의 ‘군상’들이 가족, 친지들과 함께 모여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이 피부로 느껴진다. 길거리와 심지어 동네의 산책길도 텅텅 비어버리니까.. 이것은 가족간의 사랑을 보여주는 부러운 전통일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맘때가 되면 ‘대가족’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제일 부럽고, 질투가 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조금 더 고통스럽기까지 한 것은 현재 우리가 알고 비교적 가까이 지내는 분들이 대부분.. 대가족 환경이라는 것이고, 그래서 더 상대적으로 우리는 ‘작은 가족’의 외로움을 더 느끼게 된다. 그들이 부럽다 못해서 질투가 날 정도니까..

딸 둘 대신, 아들 딸 구별 없이 5명 정도를 낳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우습고 쓸데없는 상상도 해본다. 현재 5명의 자녀는 사실 ‘촌스럽게’ 까지 느껴지기는 하고 그들의 키우는 것 장난이 아닐 테지만, 그래도 덜 외로울 것을 생각하면 감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면 extended family라고 할 수 있는 친척들은 어떨까? 직계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까운 가족들이다. 문제는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고 할 정도로 멀리 사는 친척들이 이럴 때 느끼는 외로움에 큰 도움을 줄 수는 없는 것이다. 골치 아픈 친척들 때문에 골치를 썩는 사람들도 보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것도 사실 응석받이처럼 들린다. 그들은 작은 가족들의 ‘외로움’을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의 친척들은 비록 Internet등으로 옛날에 비해서 조금은 가깝게 느낄 수도 있지만, 역시 그것은 virtual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의 관계는 절대로 virtual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입김을 느껴야 그것이 진정한 relationship인 것이다. 그래서 타향살이란 것은 보기보다 힘든가 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찌하랴.. 이것이 운명이란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을..

 

¶  내가 받은 선물은:  올해는 비록 모든 경제활동이 쪼들리는 때였지만 그것에 큰 상관 없이 풍성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없는 것이 거의 없이사는 요새, 무슨 선물이 필요할까, 그래서 더 고르기 어려운 것이 선물이다. 한마디로 없어도 되는 ‘사치품’에 가까운 선물들.. 하지만 가끔 뜻밖의 것도 있다. 그 예로 하모니카.. 오랜 세월 잊고 살았던 하모니카, 그것도 아주 작은 하모니카를 받았다.

어렸을 때 그것을 얼마나 갖고 싶어했던가? 아직도 잊지 않은 곡이 하나 있어서 즉석에서 ‘연주’를 했는데, 정말 하나도 틀리지 않고 불 수 있었다. 완전히 전자화 된 picture frame 을 받았는데, 편리한 것이 많은 것은 알지만 글쎄, 나는 이것이 ‘사치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멋진 얇은 스웨터, 이곳의 날씨에 딱 맞는 것이라 아주 실용적인 선물, 그것과 더불어 나이가 들면서 신경을 쓰게 되는 ‘목 주위’의 추위를 해결해 주는 스카프.. 이것도 실용적이다.

사학 전공의 나라니가 ‘조지아 시골의 뒷얘기’ 에 관한 책, The Georgia Rambler를 선물했는데, 이곳 조지아의 시골은 남북전쟁에 관련된 시골의 숨어있는 ‘전설’들이 많이 있어서 아주 흥미로운 책일 듯 하다. 그 중에 코카콜라의 성분에 관한 비법이 적혀있는 책도 있어서 더 기대가 된다.

 

Christmas presents, 2011

스웨터, 스카프, 하모니카, electronic picture frame, book, candy..

 

¶  염라대왕과 김정일: 지금 쯤 염라대왕 앞에서 김정일 개XX는 어떤 모습을 하고 변명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염라대왕 동무.. 조금만 봐 주시라요” 하고 말을 시작할 듯 하고, 염라대왕은 이미 아바이 동무 김일성 개XX가 먼저 와 자리를 잡고있다고 알려줄 듯 하다. 김정일 개XX 장례식에 ‘남조선’의 조문객이 간다고?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것이다. 이 미친 놈들은 과연 어떤 인간들인가?

역사 박물관에서나 찾을만한 현대판 세습제로 인민들을 굶어 죽인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서른 살도 안 된 젖먹이 김정운 개XX를 차기의 ‘왕’으로 만든다고.. 참.. 북조선 닌민 동포 동무들이여.. 어쩌면 그렇게도 참을 성이 많습네까? 지렁이 보다 못한 이 한심한 동무들아.. 죽을 때가 되면 그래도 소리라도 내고 죽으라우요!!

 

12월 26일 아침, 크리스마스 두 번째 날이다. 이번의 성탄은 의외와 예외가 계속되는 그런 휴일이 되고 있다. 우선 성탄절 당일에 밖으로 나갔다는 사실이 우리 집의 전통을 완전히 무시한 결과가 되었고, 그것이 계속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 가족만의 푸근한 그런 날이었는데.. 하지만 이런 것으로 남을 탓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 내가, 우리가 결정하고 행한 일이 아닌가? 올해의 성탄과 같은 추억이 반복되지 않기만 바랄 정도로 나는 기분이 아주 쳐진 상태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일기예보대로 정확한 시간에 눈도 내려서 온 세상이 하얗게 되었는데도 그것이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못 만든다. 나의 마음을 적당히 자제를 못한 순간의 ‘실수’가 나의 가족을 아주 슬프게 만든 결과가 되었다. 나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왜 그것도 성탄 아침에 자제를 못 했을까? 큰딸 새로니에 대한 나의 미안함을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까? 그저 이유가 없었다. 아니 화를 낼 정도의 심각한 이유는 없었다. 정말 미안하다.. 왜 이 나이가 되도록 절제와 자제를 못했을까?

성탄절에 남의 집에 모여서 식사를 하고 노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침부터 눈이 예보된 상태에서 간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내가 바라던 대로 가지를 않았다. 두 가지 마음.. 고래등 같은 ‘사치스러운’ 집에서 white Christmas movie를 연상시키는 광경을 감상하는 것,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type은 절대로 아니었다. 암만 호화스러운 음식이 있어도 오가는 얘기가 그것을 못 따라 가거나, 심지어는 (아니, 거의 매번) 남의 심사를 완전히 뒤틀어 놓을 그런 utterly stupid comment를 들으면서, 내가 왜 이런 곳에 와 있을까 하는 극단적이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이가 먹을 수록 주로 겉멋에 집착하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난감하다. 새해에는 이런 자리를 가급적 피하며 살고 싶은 마음도 없는 것은 아니다.

Our cul-de-sac under snow

Our cul-de-sac under Christmas day snow

White Christmas, 2010

White Christmas, 2010

지금 이맘때에 크리스마스 캐롤이 절정을 이룬다. 듣기에도 제일 편안하고 추억까지 곁들이면 더욱 따뜻하게도 느껴진다. 캐롤의 추억에 대해서는 역시 고국에서 맞았던 중 고교 시절의 순진했던 크리스마스 때로 거슬러 올라갈 수 밖에 없다. 나는 그 당시 교회나 성당에 다니지를 않았고 집에서도 전혀 신앙적인 환경을 주지 못해서, 그저 성탄절은 유럽이나 미국 것이라는 인상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국민학교 시절에는 성탄절에 대한 따뜻한 추억이 있었다. 그것은 크리스마스 카드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그리는 것, 바로 그것이 그렇게 좋았다. 그 당시 고국의 품질 좋은 인쇄산업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으므로 주로 주한 미8군에서 흘러나온, 이미 사용된 카드를 잘라서 다시 우리의 카드로 만들곤 했다. 그런 것을 아예 가게에서 팔았던 것이다. 우리들은 그걸 ‘재생’이라고 불렀다. 지금 생각에 이것도 일본사람들이 먼저 시작을 해서 그곳에서 ‘재생’이라는 이름을 썼을 것이다. 우리 같은 국민학생들은 그 ‘진짜 재생’ 카드의 그림을 보고 비슷하게 그리곤 했는데, 성탄 무렵이 되면 누나와 누나친구들 까지 한 방에 모여서 같이 그리곤 했다. 그 이후로는 내내 그때의 기억이 너무도 아름답게 남아서 지금 까지도 그때의 추억을 즐기곤 한다.

그 당시에는 캐롤은 거의 들을 기회가 없었다. 그것을 들으려면 ‘전축’이란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 당시 경제사정이 그것은 대부분에게 무리였다. 군사혁명(1961년) 후에 조금씩 전축이 보급되면서 레코드 ‘판’ (거의 다 LP)이 대량으로 복사되어서 팔리기 시작했는데 그때 본격적으로 외국의 캐롤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처음 산 것이 Pat Boone의 Christmas album이었고 그것이 아주 뚜렷하고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YouTube를 보니 그때의 앨범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몇 곡만은 다른 앨범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때가 1964년 (중앙고 2년 때) 경이었는데, 성탄 전야에 보통 밤 12시부터 4시까지 있었던 통행금지가 해제 되었고.. 고요한 밤이 완전히 ‘시끄러운 밤’ 으로 변해버렸는데, 재미있던 사실은 이런 비슷한 현상이 일본 도쿄에서도 있었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생각을 한다. 그들은 사실 우리 같은 통금해제 같은 해방감도 없었을 것인데..그날 후 언론에서도 모두 반성을 하는 논설을 폈다. 성탄의 본고장에서는 그날이 제일 조용한 날이라는데.. 어찌 이곳은 이렇게 시끄러우냐 하는 논조였다. 물론 이런 추억은 종교적인 것에 대한 것이 아니고 ‘세속적’인 성탄에 관한 것이다.

대학시절에는 외국의 캐롤이 많이 정착이 되기 시작했고, 우리 또래의 젊은 가수들이 편곡을 해서 토착화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 제일 추억에 남는 것이 송창식, 윤형주 Vocal Duo Twin Folio가 불렀던 Silver Bells라는 곡, 이것이 그들의 목소리에 가장 잘 맞았던 곡이었다. 그 후에 미국에 와서는 본고장, 본토박이 캐롤을 듣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본격적인 ‘찬송가’ 스타일의 classic carol들을 듣게 되었다. 그 이후 매년 이맘때면 거의 같은 것들을 반복적으로 듣게 되었다. 1979년 성탄을 고국에서 결혼을 앞두고 맞게 되었는데 그때에 거의 우연히 세종로 네거리, 교육회관 옆의 어떤 서점에서 Paul Mauriat (폴 모리 악단)의 1967년 크리스마스 앨범 카세트 tape을 사게 되었다. 어찌나 편곡과 연주를 감미롭게 잘 했던지.. 그 중에서도 White Christmas와 Trois anges sont venus ce soir.는 “편곡,연주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이 앨범은 그 이후로 우리 집의 classic Christmas favorite 로 남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아마도 1990년대 중반 쯤이었을까.. 출퇴근을 하면서 나는 주로 PBS 를 듣는데, 거기에서 The Roche라는 여성그룹의 carol CD가 소개 되었다. 세 자매인 듯 한데.. 모든 classic carol들을 정말 신선하게 arrange를 하고 티없이 깨끗한 화음으로 불렀다. 어렸던 우리 아이들도 듣기에 좋았던 모양으로 이것도 역시 family favorite가 되었다.

The Roches – Star of Wo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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