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숙명’이라는 게 있을까.. 아니면 운명이라도.. 교향곡 ‘숙명’을 작곡하고 있는 ‘와가 에이료’라는 작곡가, 일본드라마 ‘모래그릇’ 을 보면서 나의 ‘인생’을 회상해 본다.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을까 모두가 어찌할수 없는 그런 것이 있을 것 같다. 나의 인생은 그런 ‘운명적’ 요소가 남 보다 더 많을지도. 변명일까. 레미제라 (잔발잔)을 연상 게 하는 그런 대하 성 드라마 ‘모래그릇’을 보면서 생각해 본다. 60세에 접근하면서 더 나의 ‘인생’을 생각해 보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겠지.
오늘은 7시가 훨씬 지난 뒤에 놀라서 깨었다. 6시면 눈이 떠지곤 했는데.. 어제 밤은 왜 그리 화장실에 자주 가게 되었는지.. 여기서 엄마생각을 해 본다. 화장실이 귀찮아서 누나네 집에서 자기가 싫다고 하시던 그 말씀 그때는 그렇게 실감을 못했지.. 누나 집에서 그렇게 밤에 소리를 내기가 싫었겠지요. 누가 그 심정을 알겠어요.. 이 아들도 몰랐는데.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만 했는지 항상 저를 누르는 족쇄같이 느끼며.. 속죄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려 발버둥 칩니다. 우리의 단란했던 가족이 왜 이렇게 헤어져서 이런 인생들을 살아야만 했는지.. 선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혹합니다.
최근에는 조금만 진한 커피가 들어가면 (카페인?) 심장이 무거워 짐을 느낀다. 그래서 조금 양을 줄이려고 2잔 이하로 끓이려 한다. 이것이 요새 나를 조금 ‘즐겁게’하는 것 중의 하난데.. 술은 거의 ‘정복’을 했고.. 이것도 양을 극히 조절하는 노력을 해야지. 조금은 서럽다. 그렇게 ‘즐기는’것을 무자비하게 조절을 해야 하는 게. 하지만 하느님과 부모님이 주신 내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극히 조심해야 하지. 사실 커피를 제외하고는 우리 (부부)의 식생활은 건강한 듯 하다. 외식만 조심하면. 요새는 가끔 내가 음식을 조금 더 쉽게 잘 만들수 있을까.. 생각을 해 본다. 우선 연숙을 도울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고..(취미로?) 이것도 다른 여러 가지 ‘아이디어’ 수준에서 머리 속에서만 있는 것들.. 역시 ‘행동’으로 이어지지를 않는다. 왜 이리 머릿속의 것이 실행으로 연결이 안 되는 걸까.. 순간적으로 결정을 내린다. 커피를 줄여야겠다. 좋은 방법은 전에 썼던 것.. 쉽게 줄이는 것은 혼자 서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거의 주로 연숙과 같이 마시면 된다. 밖에서도 마찬가지.. 누구와 같이 마시거나 누가 권하거나 할 때를 제외하곤 절대 혼자 마시지 않는다. 기억에 이렇게 하면 큰 ‘고통’ 없이 많이 줄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제 저녁은 예정대로 우리 한인성당 구역의 구역미사가 있었다. 예견이 되었던 광경들이겠지만 이번은 또 ‘무거운’ 심정으로 일찍 돌아왔다. 그 축복스런 성사들이 왜 이렇게 추한 심정으로 변하는 것일까.. 악마의 소행이라면 간단히 설명이 되겠지만 왜 그런지는 나도 조금 무시할 수가 없다. 나의 영혼이 그렇게나 쉽게 변하고 허물어 진다면 어떻게 앞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왜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리지를 못하는 것일까.. 왜 그렇게 초라하게만 느껴지고, 안타깝게만 느껴지고.. 화도 나고..왜 그렇게 다 좋게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 많고 많은 문제가 나에게 있는 듯 하다. 더욱 더 겸허해지고 나 자신을 더 낮추어야 하나 (준주성범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