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날’을 하루 앞두고

neighborhoods 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을나무’가 찬란한 모습으로..

 

이천 십팔 년 (no pun intended) 십일월 이십일일, 2018년 11월 21일 수요일,  깊어가는 11월에 선뜻 할 정도로 시퍼렇게 깊은 가을 하늘에는 찬란한 해가 떠오르고,  급하게 Ozzie 를 데리고 subdivision을 산책하고픈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공기가 너무나 싸늘한 것이 문제다. 하지만 바람이 많이 불지 않으니 집 밖에서 나갈 때의 잠깐의 써늘함만 참으면 금세 모든 것이 따뜻하게 느껴질 것, 경험으로 안다.

오늘은 나의 기분 탓으로 별다른 이유 없이 아침미사를 쉬기로 ‘합의’를 보아 하루를  ‘작은 깜짝 휴일’로 만들어 버렸다. 내일은 이곳의 최대 명절 중의 하나인 ‘고맙고, 감사하는 날’ Thanksgiving Day holiday, 어느새 한 해가 물처럼 흘렀는가? 분명히 지지난 해보다 더 한 해가 빨리 지나 간 것, 겉으로는 ‘괜찮다. 그게 정상적인 거야’ 하며 내숭은 떨지만 속으로는 세월이 역시 조금 더 빨리 흘렀구나 하는 느낌을 떨칠 수는 없다.  종교적, 기독교적 ‘종말론 eschatology‘을 안 생각할 수가 없는 시기가 또 나에게 ‘점점 빨리’  다가옴을 느낀다.

올해의 이 ‘감사절’, 작년보다 더 조용하게 보내게 되었다. 4식구 중에서 막내는 빠지고 큰애는 여행을 갔다가(Northwest region) 저녁 때 집에 온다고 하니 그때 그 애들과(with boyfriend) 같이 조금은 ‘지지고 볶은’ 저녁이나 나눌 듯.  이것은 물론 우리 집의 ‘전통적 감사절의 모습’이 아니다. 아니.. 이 정도의 나이에서는 거의 정상일지도.. 하지만 조금은 왕년의 ‘시끌벅쩍, 지지고 볶고, 떠들고 마시고..’ 하는 모든 것이 지나간 영화처럼 주마등 지나치는 듯 느껴진다. 그래 이것이 인생의 흐림인 거야..

Rainy day and Monday..

Tobey가 잠자고 있는 낙엽에 덥힌 뒷마당에 늦가을비가 세차게..

 

¶  비 쏟아지는 월요일:  하루 종일 어두운 하늘에서 싸늘한 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비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물론 반가운 선물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flood warning이 나올 정도가 되면 선물의 정도를 넘은 것이다. 게다가 가끔 물이 새는 2층 지붕도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조금 불편한 것이 있어도 이것은 역시 ‘가을비’가 아닌가? 각가지 감상적 생각들이 머리를 꽉 채운다. 물론 대부분 추억에 얽힌 생각들이다. 게다가 이런 을씨년스러운 가을비에 나의 영원한 친구 Tobey가 내 옆에 없다는 새로운 사실이 가슴에 걸린다. 이런 때면 나의 무릎에서 편하게, 평화스럽게 코를 골며 자던 그 녀석.. 비록 육신은 뒤뜰 땅속에 묻혔어도 녀석의 느낌은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나를 따라다닐 듯하다.

 

Saybrook Court에 아직도 남은 가을 낙엽들, 과연 언제까지 버틸까..

 

월요일에 내리는 비, 70년대 초 (1971년) The Carpenters의 classic oldie, Rainy Days and Mondays가 문득 떠오른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다시 없는  목소리’ Karen Carpenter의 잔잔하지만 깊은 목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그렇다.. 1970년 초.. 미지의 세계를 향한 꿈을 꾸던 멋진 시절에 들었던 ‘비 오는 월요일’은 큰 의미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노래의 가사처럼 ‘모조리 우울한 것’들이었다. 그런 감정이 반세기 뒤에 완전히 뒤바뀌어 이제는 반대로 즐기는 ‘선물’이 된 것이다. 세월의 조화가 아닐까?

 

이렇게 세차게, 힘차게 쏟아지는 비는 나의 혼탁한 머리 속을 씻어주는데..

이런 때면 문지방에 편하게 엎드려 하염 없이 비를 바라보던 Tobey는 이제..

 

요새 갑자기 ‘기분과 몸’이 훨씬 나아진 연숙 덕분에 다시 규칙적인 정상적 생활을 찾기 시작해서 오늘 아침도 예의 daily morning mass, adoration chapel, Sonata cafe, 그리고 YMCA workout의 routine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역시 예외는 예외다. 갑자기 연숙에게 ‘감기 기운’이 덮친 모양, 열이 나고 목이 잠기고 기운이 빠지고.. 나 같으면 그런 것 참거나 숨기거나 하겠지만 사람은 다 다르니까.. 이럴 때 제일 중요한 것이 Bishop Robert Barron이 즐겨 강조하는 prudence 란 것이다. 나도 그의 말에 동감이다. 때와 장소에 따른 각가지 ‘덕목’들이 항상 같지 않고, 지혜롭게 ‘조절’을 해야 한다는 wisdom. 그저 참고 해야 할 것을 다 끝내느냐, 아니면 내일을 생각해서 할 것을 포기하느냐.. 결국은 내일을 생각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은 일주일에 제일 중요한 레지오 주회합이 있는 화요일 ‘Legio’ Tuesday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날인 것이다.

 

 

Rainy Days and Mondays – The Carpenter – 1971

 

¶  ‘기타귀재’ 심재흥, 50년 전:  어제 중앙고, 연세대, 연호회 친구, 이윤기와 뜻밖으로 KakaoTalk 에 연결이 되어서 감회 깊은 이야기(texting)를 나누었다. 본지가 50년도 넘은 사람과 어제 헤어진 듯한 느낌으로 대화하는 것, 솔직히 이것이 바로 surreal 한 느낌이 아닌지.. surreal, surreal..  한마디로 실감이 안 나는 것이다.

얼마 전 같은 그룹친구 양건주의 주도로 우리들 4명 (나, 양건주, 이윤기, 윤인송)이 기적적으로 단체 카톡방에서 몇 마디나마 서로의 숨결을 느끼게 되었다. 언제고 이 친구들의 최소한의 안부 정도는 알 수 있겠다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모두 친한 친구들이었고 특히 윤기는 헤어진 이후 거의 연락을 못하고 살아서 궁금한 것들이 더 많았지만 ‘거리와 세월의 횡포’ 의 희생자로 일생을 보낸 셈이다.

이 친구가 video하나를 올렸는데.. 1960년대 일본에서 활약했던 그 유명한 The Ventures를 ‘흉내’낸 electric guitar group의 공연이었다.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심재흥‘이란 이름을 떠 올렸다. 50년 전의 그 이름이 이윤기란 친구의 기억과 겹치며 떠오른 것이다. 연세대 전기과 동문들.. 그 중에 ‘기타귀재’라고 불리던 친구, 그가 심재흥이었다. 1969년의 회고담을 쓰려고 하던 참이라서 참 timing이 절묘하다고 할까..

 

그 당시 일제 electric guitar, 심재흥의 도움으로 샀고 역시 그의 도움으로 팔았던 기억..

 

그 당시 나는 이 ‘귀재’로부터 기타(특히 electric guitar)의 매력을 배웠다. 자세한 테크닉을 배운 것은 아니었어도 그가 연주하는 것을 보며 넋을 잃고 바라보기도 한 것, 나중에, 아니 지금까지 (통)기타를 손에서 떨어지지 않게 했던, 엄청난 영향을 준 것,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심재흥’이란 이름을 언급하니 놀랍게도 이번에 보낸 ‘벤쳐스’ 동영상’이 바로 그 친구가 보낸 것이라는 것이 아닌가? 얼마 후에 연세대 전기과 동문들이 모이는데 그 친구도 만난다는 얘기에 나는 솔직히 꿈을 꾸는 듯한 느낌조차 들었다. ‘세월과 거리의 횡포’.. 도 이렇게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구나…

 

 

The VenturesWipeout live in Japan 1966

 

¶  사랑의 기다림:  지난 토요일 모처럼 우리는 ‘자매 성당’인 둘루스 Duluth, GA  에 있는 김대건 성당엘 갔다. 이날 그곳에서 ‘추계 일일 침묵피정’이 거의 하루 종일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집에서 거의 30마일이나 떨어진 곳을 아침 8시에 집을 떠나야 하는 것 물론 귀찮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나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가라, 가라, 무조건 참석해라’ 라는 무언가를 거역할 수 없었다. 가만히 보니 근래 나는 이 ‘가슴 속 깊은 곳의 무엇’을 조금씩 느끼며 사는 듯하다. 그것이 거창하게 ‘성령’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유행하는 과학적 표현으로 아마도 quantum message 정도는 아닐까?

4년 전에 이곳으로 같은 피정에 온 기억이 남아있지만 매번 지도신부가 다르니까 피정의 결과는 매번 다를 것이다. 아침 점심 식사를 포함해서 각각 두 번의 신부님 강의와 침묵 묵상이 번갈아 가며 오후까지 계속되고 마지막에 미사로 끝을 맺는다. 이번의 지도 신부님은 우리의 도라빌 본당 보좌신부인 ‘김형철 시메온’ 신부님으로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비교적 젊은 신부다.  ‘사랑의 기다림’이란 포근한 주제로 ‘전혀 지루하지 않고, 졸리지 않는’ presentation을 했다.

요사이 신부님들의 강론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은 이분들 ‘과학적인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요새 신학교가 지나간 반세기 동안 급변하고 있는 과학문명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갈릴레오 사건’으로 체면이 완전히 구겨진 가톨릭 전통을 상기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이날 김 시메온 신부님의 강론 서두가 이것을 말해준다. ‘거시적 우주론, Cosmology’ 으로 주제를 이끌었던 것이다. 아마도 더 기다리면 아마도 상대성이론, Quantum MechanicsString Theory 까지도 거론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런 추세를 절대적으로 환영하는 입장이지만 ‘철학적, 신화적’ 접근을 좋아하는 일반 신자, 대부분 여성들에게 이것이 크게 appeal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시월의 마지막 날에..

시월의 마지막 날들이 서서히 저물어가고 결국은 그 바로 마지막 날 31일도 찬란한 석양을 등지고 나를 떠나려 하고 있다. 서재 work desk위에서 24시간 나를 응시하고 있는 life journal, monthly calendar를 본다. 9월에 못지 않게 무언가 많은 깨알 같은 작은 글씨로 가득 차있다. 시월의 31일 동안 과연 나는 무엇을 생각하며 살았는가?

 

 

오늘은 10월 31일, Halloween.. 조금 후 해가 떨어지면 어둠 속에서 동네의 아이들이 하나 둘씩 올 것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이날은 우리에게도 조금은 의미가 있던 ‘미국의 명절’이었지만 아이들이 머리가 커져서 집을 다 떠난 후 모든 것이 빛을 잃었다. 문 앞에 pumpkin light를 켜 놓고 각종 candy를 준비하는 행사가 사라지고 이제는 불을 다 꺼놓고 ‘숨을 죽이며’ trick or treat 행렬이 사라지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참, 세월이란 이런 것이지.. 조금은 쓸쓸해지는 감정을 누를 수가 없다. 그것이 요새의 10월 31일이다.

 

¶  건주의 ‘잊혀진 계절’:  며칠 전에 정말 예기치도 않게 ‘그리운 벗’ 양건주에게서 email이 날라왔다. 어떻게 나의 email을 기억했는지.. 마지막으로 연락이 된 것이 아마도 10여 년 이상이 되었을 듯하다. 하지만 다른 ‘사라진 친구들’과 달리 이 친구 건주만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연락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상한 예감은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 친구의 매력이다. 생일이 불과 나보다 며칠을 앞서고 있지만 건주의 ‘정신연령’은 나의 형 같이 편안하고 성숙하게 느껴진다.

거의 반세기 전 헤어진 이후 아마도 처음으로 ‘음성통화’가 kakaotalk voice call로  너무나 쉽게 해결이 되었다.  글자와 음성의 차이는 무엇인가? 전화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내가 기억하고 있던 건주의 목소리와 아주 다르지 않았다. 목소리의 느낌은 반세기 전의 바로 그것이었다. 나의 목소리는 아마도 건주의 기억과 아주 다른 듯한 반응이어서 조금은 실망했지만 그것이 세월의 횡포가 아니겠는가? online 활동으로 아주 바쁘고 건강하게 사는 듯한 그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 그렇게 어렵지 않다. Internet의 덕분으로 곧바로 우리 클럽, 연호회의 멤버들 중에 윤기와 인송이 곧바로 kakaotalk  으로 연결이 되었다.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상상의 나래를 편다. 건주와 달리 ‘표현력’이 떨어지는 그들과 얘기하는 것 크게 기대는 안 하지만 ‘죽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있음을 계속 알게 된다는 사실은 나를 기쁘게 한다.

어제는 건주가 kakaotalk으로 music video를 하나 보내왔다. 이런 곳으로 날라오는 video를 나는 ‘원칙적으로’ open을 안 한다. 우리 나이에 이런 것들 내용을 짐작하는 것 그렇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보낸 사람이 ‘도사 양건주’ 였으니까.. 설마 또 ‘극우파 선전’ 같은 것은 아닐 듯 하고.. 의외로 잔잔하고 감미로운 노래였다. 물론 내가 알 수 없는 곡이었지만 곡조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하기도 하였다. 알고 보니 ‘이용’이란 사람이 1980년대에 불렀다는 ‘잊혀진 계절’이란 classic oldie였다.  건주가 이런 노래를 아직도 기억하며 좋아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설마 우리들 30대에 나온 노래를 나에게 보낸 것, 조금 의아하긴 했다. 그 비밀이 오늘 아침에 풀렸다. 연숙에게 지나가는 말로 이 노래에 대해서 물어보니… 그 노래는 10월 31일에 부르는 노래라는 ‘웃기는’ 사연이었다. 왜? 가사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는 것이었고… 아하! 그래서 10월 말경에 나에게 이런 노래를 보냈구나.. 역시… ‘도사 건주’로구나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건주야 고맙다!

 

 

 

The Exorcist: 아 늦은 나이에도 아직도 무서운 것이 나에게 있다. 특히 Halloween이 다가오면 이것이 나를 더 자극하며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다. 1973년 12월에 미국을 경악하게 했던 것, 영화 The Exorcist… 이 글자만 봐도 나는 아직도 무서운 것이다. 이것은 내가 이즈음이며 매년 겪는 이상한 현상이다. 올해는 이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아야지… 하지만 매번 이 영화를 20분 정도 보다가 포기하는 것이다. 20분의 대부분은 영화의 첫 부분, Iraq의 유적발굴에 관한 것이고 미국의 Washington D.C.의  Georgetown scene 이 시작될 무렵이다. 그러니까 진짜 무서운 것들이 시작되기 훨씬 전이다.

 

 

물론 강제로 나머지 부분을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서운 ‘악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옛날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이 살아나는 바로 그것이다. 그 당시 영화를 보고1 한 동안은 ‘진짜로 무서운’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어두운 곳에서는 괴물로 변한 ‘아이 Regan‘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한마디로 도망갈 수가 없었다. 그 괴로운 추억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을 보면 얼마나 그 당시의 충격이 심했던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이 영화로 부터 ‘가톨릭’ 신앙을 접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음에 감사를 하고 있다.

  1. 나는 이것을 Chicago에서 처음 보았다.

Big Canoe, 구역장 단상 斷想

¶  Overnight at Big Canoe:  일년 만에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진희네 그룹’,  윤형 ‘별장’ 이 있는 Big Canoe로 단풍여행을 갔다.  아직 본격적인 단풍철이 아니지만 이 별장은 고도가 1000m를 넘는 높은 산 정상에 있기에 그곳은 이미 단풍이 서서히 들기 시작하였다.  Gate까지 있는 이곳은 높은 산 곳곳에 ‘별장들이 몰려있는’ 조그만 별천지다. 메트로 아틀란타에서 차로 2시간도 안 떨어진 이곳은 사실 ‘아틀란타 부유한 사람들의 투자용 부동산’들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그런 첩첩산중 산등성이 곳곳,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같은 곳에 그렇게 큰 luxury house들을 지었는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경관이 좋은 집들 중에도 제일 높은 정상부근에 위친한 윤형의 별장에서, 작년과 달리 이번에는 하룻밤을 그곳에서 묵게 되었다. 

 

이곳은 벌써 단풍이 들기 시작하고 낙엽이 쌓였다

갑자기 산등성이로 구름이 몰려와 운해로 변하고 있다

별장은 완전히 구름에 덮혔다

 

이곳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경치가 너무나 영화처럼 강렬해서 거의 꿈 속을 거니는 기분이지만 다른 한편 이런 시야를 며칠 계속 보고 있으면.. 글쎄, 당장 ‘초라하지만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는’ 나의 집으로 오고 싶을 것이라는 ‘조금은 시기심’이 스며드는 생각에 당황하기도 한다. 이곳의 집들이 별장인 사람도 있지만 아예 이곳에서 항시 살고 있는 집도 많다고 하는데, 부럽기도 하지만 과연 매일같이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 항상 아름답게 보일까 의구심이 든다.

산꼭대기에 있는 집이 어떻게 우리 집보다 엄청 큰 것일까?  어떻게 그런 큰 집을 거의 비워두고 살 수 있는 것일까? 속으로 나는 항상 불편한 생각이 든다. 돈의 위력을 실감하기도 하고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느낌, 자본주의의 downside, 끝이 없는 인간의 ‘편해지려는 욕망’,  이런 것들 즉 과잉 된 편안함…  교차로에서 만나는 ‘구걸인’들, 집 없이 길거리에서 자는 사람들.. 모든  장면이 겹치는 듯한 환상.. 

 

¶  (마리에타) 사랑구역 斷想:  지난 7월부터 시작된 마리에타 사랑구역 구역장 임무,  몇 달이 총알처럼 날라간 기분으로 가끔은 내가 그 동안 무엇하며 살았나 하는 혼미 속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 7월부터 9월 말까지는 솔직히 다른 세계로 가서 사는 기분도 들었다. 그만큼 나에게는 너무나 다른 세상을 경험한 것이다.

군대의 분대장은커녕 학창시절 반장, 그룹의 장 長 같은 것 한번도 못하고(아니 안 하고, 피하고)  살았던 나에게 이런 일은 사실 저물어가는 나이에도 어색하기만 한 것이다.  하지만 나이 듦의 혜택도 없지 않은 것이 소싯적 보다는 ‘겁, 우려’ 같은 것이 훨씬 덜하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늦은 깡’이라고나 할까.. ‘배 째라’ 하는 유행어가 실감이 나는 것이다.

이 구역장 일을 하는데 문제는, 어떻게 하면 ‘나도 좋고 구역그룹도 좋은’ 그런 ‘황금법칙’을 찾느냐 하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9월초부터는 자비의 모후 레지오의 단장까지 떠맡게 되었으니 timing이 어쩌면 이렇게도 재미있을까? 아마도 성모님이 ‘이제까지 피하며 살던 빚을 갚아라’ 고 호통을 치시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오래 연체된 빚을 갚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느님과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게 나를 잡아준  이 성당 구역에서 나는 한번도 봉사를 못할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기회’가 온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 듯해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의미’를 생각하며 임무를 맡고 있는데.. 글쎄, 의미를 두고 심각하게 일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나의 ‘갈등, 실망, 심지어 놀람’은 부터 평화는 커녕 숨어 있던 분노심까지 들추고 있으니..  이 일이 어려운 임무라는 희미한 예측은 항상 있었지만 실제로 겪는 ‘어려움’은 상상 밖 중의 밖이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문득 문득,  ‘다 집어 치우자!’라는 ‘악마적’ 생각도 들 정도다.    

 구역을 이끄는 ‘일 자체’라고 하면 모호하지만 힘을 쓰는, 몸이 힘든 일보다 ‘사람으로부터 받는 실망감’ 은 정말 평화의 적 중의 적이라는 ‘주위로부터 많이 듣던’ 사실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구역 총무님 댁의 private marina, 개인 boat도 있다

 

구역 야유회를 가려고 한 것이 공원예약차질 문제로 호수 변에 있는 그림처럼 아담한 별장 같은 총무님 댁으로 옮겨서 했는데, 한마디로 near-disaster였다. 예약 담당자의 실수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총책임은 내가 져야 함을 절감했다. 마지막 확인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이 모임에서 나는 정말 ugly 한 장면을 목격했다. 내가 이제까지 우호적으로 생각해 왔던 어떤 사람들의 모습이 사실은 허상이었다는 사실, 그 장면은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있다. 이제까지 모였던 모습과 이번에 드러난 실제의 인간성이 어쩌면 그렇게 다른지, 나는 놀라고 또 놀란다.  이런 사실들로부터 나는 ‘정치적’이라는 말의 뜻을 이 나이에야 어렴풋이 실감하게 되었고, 이것은 내가 이런 임무들을 맡은 결정에 대한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어렴풋이 이론적으로만 알던 사실을 체험하는 것, 나에게는 커다란 수확으로 남기려 한다.

 

‘test’ fires up, 가을비는 언제..

어제 이 지역으로 내려온 찬 공기의 영향으로 오늘 아침에는 드디어 얇은 스웨터를 찾아 입을 정도가 되었다. 사흘 전까지만 해도 이곳까지 쳐들어 온 열대성 폭우 ‘마이클’로 대기는 온통 습기로 가득 차 있었고 가끔 에어컨이 필요할 정도였는데, 하루 아침에 습기가 완전히 사라진 ‘추운 느낌’의 진짜 가을이 된 것이다. 올해의 환절과정을 보면서 ‘조금은 이상하다’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정상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혹시 이것도.. 그것.. global warming의 영향은 아닐까..

 

Time to ‘test’ fire up central heating..

 

오늘 아침에는 조금 마음을 졸이는 ‘첫 추위와 난방’ switch-over 과정을 거쳐야 했다. 난방 furnace system ‘점화’ 때문이었다. 올 여름에 모든 heating & air system 을 새것으로 바꾸었을 때, 에어컨은 물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실 그 더운 여름에 난방 system은 테스트 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었기에 항상 그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드디어 그것을 test할 순간이 온 것이다. 예전에는 위층은 electronic, 아래층은 pilot lamp system이라서 아래 층은 그 ‘어두운 지하’로 들어가서 손으로 점화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래층도 electronic으로 바뀌어서, 예전 같은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문제는 한번도 내 눈으로 test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위층의 furnace는 test에서 문제없이 fire가 되어서 한숨을 놓았고 아래층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Best time to reminisce, rainy autumn with hot coffee

 

며칠 간 계속되는 ‘추운 쪽의 가을’ 을 맞으며 겨울도 아주 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부지런히 가을/겨울 옷들을 찾아야 하는 귀찮음을 느낀다. 비록 황금색의 낙엽과 하얀색 눈의 자연은 나를 즐겁게 하겠지만 머리 속이 예년의 그것과 너무나 다른 ‘처음 경험하는 일’들로 가득 찬 요즈음, 과연 나는 예전처럼 ‘감상적 사치’ 를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도 기대는 있다. 차가운 가을 비 내리는 바람 부는 한가한 오후에 편한 의자에 기대어 향기로운 coffee를 마시는 기대.. 한번 기대해 보자…

가을비, 19차 사업보고..

¶  가을비를 보며:  오늘 아침, 10월 중순을 향하는 길목에서 나는 아직도 열대성 공기를 느끼며 깨어나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바지를 찾는다. 어제부터 처음으로 ‘긴 바지, 긴 셔츠’를 입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덥다기 보다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을 느끼니.. 아 ‘긴 팔, 긴 바지’의 진정한 가을이 코 앞에 다가오고 있구나 하는 잔잔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습기 없는’ 시퍼런 하늘을 유난히도 올해는 내가 기다렸는데 야속하게도 이제는 지겨운 ‘열대성 대기’는 쉽게 물러가지 않았다. 설상가상 이제는 갑자기 나타난 Michael이란  남자 이름을 받은 허리케인 hurricane이 열대성 습기와 강한 바람을 몰고 FloridaPanama City Beach 쪽을 강타하고 무서운 속도로 이 지역을 스치고 지나가고 있다. 다행히 메트로 아틀란타 지역은 ‘반가운 비’를 제외하고는 거의 영향이 없는 듯 하다.

 

아틀란타 주변을 스쳐 지나가고 있는 tropical storm Michael

 

몇 주간 뜨겁게 마르고 있던 대지들이 오랜만에 단비의 맛을 보았던 어제 밤과 오늘 아침의 주변은 그야말로 축복을 받는 느낌. 이번의 비와 바람이 올해 ‘마지막 여름’을 장식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진정한 O. HenryThe Last Leaf 의 느낌을 한껏 주는 추위 속의 낙엽과 Halloween의 찬란한 가을을 보게 될 것이다. 아직도 어두운 밖에는 정말 오랜만에 듣는 소리가 나의 귀를 의심케 한다. 바로 ‘피해 없이 내려오는’ 잔잔히 빗소리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the last leaf clings to the bough, just one leaf..

 

¶  19차 레지오 사업보고:  레지오 단원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업보고 business report’, 일년에 한번씩 지나간 일년간 레지오 단원으로 했던 활동 실적을 총집계해서 꾸리아 월례회의 때 발표를 하는 것으로 지나간 일년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료이며 계기가 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많은 단원들이나 평의원들에게 별로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관행대로 하는 routine, 그저 해야 되는 것, 심지어는 귀찮은 것 정도로 생각되던 것이다.

이것이 올해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우선 내가 발표를 하여야 하는 단장이 되었고, 어떻게 이것을 발표할 것인가 하는 것이 ‘나의 책임 소관’이 되었기에 생각을 더 하게 된 것이다.

지난 일년 동안 ‘우리들’이 ‘뛰었던’ 모습들이 서기회의록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것을 근거로 ‘정해진 form’에 주로 ‘숫자’들을 적어 넣는다. 그리고 이것을 단장이 꾸리아 평의회에서 ‘보고 읽는’ 것이다. 읽은 후에는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면 끝이 난다. 이런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과정을 매월 겪는데, 어떨 때는 너무나 형식적으로 들려서 지루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올해의 사업보고서 작성을 끝내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전 해의 것과 비교해 보면 단원의 숫자가 반으로 감소했으니까 활동도 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우려를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 보고에는 글로 쓰게 되어있는 ‘운영 상황’ 난을 통해 지난번 꾸리아 단장과 면담을 했던 ‘자비의 모후 명예회복을 위한 특단 조치’에 관한 우리의 결심을 공적으로 알리기로 했다. 실명을 쓸 수가 없지만 아마도 당사자 (2명의 미친X들) 들은 아마도 짐작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흥미롭기까지 하다.

 

바로 전에 print된 ‘따끈따끈’한 레지오 사업보고서, 일요일에 발표될 예정.

 

이렇게 올해의 사업보고 작성을 매듭지으며 나에게 도대체 레지오란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새삼스럽게 생각을 해 보았다. 거의 8년 동안 뒤를 안 보고 달려왔던 것, 암만 생각해 보아도 나에게 이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기에 나는 나에게 매일 놀란다. 이것이 바로 나에게 있어서 레지오의 의미다. 다른 설명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 달릴 수 있을까… 오직 그분만이, 성모님만이 아실 것이다.

 

글 글, 글의 精粹

 

“이번에 글을 쓰면서 나는 이런 것을 생각해 봤읍니다. 즉 하나의 글은 한 인간을 이루고 있는 인격과 비슷하다는 것 말입니다. 나는 글의 내용을 글의 생명으로 보았고, 그 내용을 이루고 있는 사건들을 글의 몸에 비교해 보았읍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을 문장화하는 표현을 한 인간의 옷에 비유했었고, 또 그 표현의 테크닉을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삶의 멋이라고 말할 수 없을까를 생각해 봤읍니다. 남에게 호감을 주고 또 존경 받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훌륭한 인격과 좋은 몸매와 단정한 옷차림과 명랑하되 고상한 삶의 멋을 적절하게 가져야만 하듯이, 글이란 것도 그래야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고마태오 신부, ‘영원의 방랑객’ 312쪽

 

어젯밤 거의 우연히 나의 손에 ‘잡힌’ 책, ‘존경하는’ 고 마태오 신부님의 장편 서사시적 실화소설 ‘영원의 방랑객’ 을 ‘난독’하며 나의 눈에 들어온 ‘글에 대한’ 글이다.

 

“트렁블레 신부가 술잔을 들자 나도 술잔을 들어 축배를 나누었다. 그리고 우리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날 밤 나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나는 감격해 있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학교라고는 왜정 시대 소학교밖에 다니지 못한 내가 프랑스어로 글을 쓰고, 그것이 곧 책으로 출판된다니 도무지 꿈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실감하고 있을 때 내 마음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고마태오 신부, ‘영원의 방랑객’, 313쪽

 

국민학교 출신, 문학적 수업은 물론 국어교육조차 제대로 못 받았던 이 ‘전설적’인 고 (종옥)마태오 신부님이 한국어도 아닌 프랑스어로 책을 쓰시고 출판1하기 전에 밝힌 ‘글이란 무엇인가?’, 한 문단으로 집약된 신부님의 ‘글의 정수 精粹’ 론 論이다.

‘진짜 글’은 ‘한 인간의 인격’이다. 내용은 생명이고, 내용 중의 사건들은 몸, 문장화 된 표현은 옷, 표현의 기교는 삶의 멋..  이것이 신부님이 생각한 글의 모습이다. 간단히 말해서 글이 글다운 멋을 지니려면 그 저자도 함께 멋이 있어야 한다는 그런 것이 아닐까? ‘못된 인간’이 쓴 글은 어쩔 수 없이 ‘못된 글’이라는 비교적 자명한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는데, 이 고 마태오 신부님의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자세는 그가 쓴 글에도 100% 그대로 남아있어서 가끔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이것을 읽고 생각하며, ‘나의 글’을 되돌아 보게 된다. 지나간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사적, 공적인 나의 글 (개인 일기 diary 와 블로그 public blog)을 가끔 읽게 되는데, 어떨 때는 ‘내가 어떻게 이런 글을 썼을까?’ 하고 부끄러운 감탄을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좀 더 솔직히, 자세히..’ 라는 아쉬움도 많다. 특히 ‘자기 도취, 자기 연민’이 대부분인데, 한마디로 ‘삶의 사연들, 그것도 감동적인..’ 이 절대로 결여되어 있다. 이래서 글의 본질에 내용을 이루는 ‘사건’들을 잘 창조하고 이끌어 나가는 저자의 삶이 절대로 중요함을 느끼고, 위의 고 마태오 신부님은 그런 면에서 거의 신화에 가까운 ‘감동적 삶의 연속’을 경험하셨기에 ‘글의 정수’의 표본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이 아닐까?

열대성 기후가 아직도 섞여있는 2018년 초가을, 날씨 탓도 있지만 이렇게 나의 머리가 정리되지 못한 혼탁한 상태에서 우연히 다시 손에 ‘걸린’ 이 책 속의 ‘인간애의 표본’ 고 마태오 신부님.. 아직도 살아 계셨으면 당장 비행기라도 타고 가서 뵙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간단하지만 어려운 말을 그대로 일생을 통해 실천하신 고 마태오 신부님, 영원히 사랑합니다. ‘글로 표현이 되지 못한 생각은 진정한 생각이 아니다’ 라는 명언을 생각하며, 나도 좀 더 솔직하고 꾸밈없고 용기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을 기다리며, 습기가 사라진 진정한 가을하늘을 기다려본다.

  1. 프랑스어 제목: ‘모든 길을 신에게로’, 후에 출판된 한국어판 제목: ‘예수 없는 십자가

Autumn too far..

¶  가을은 도대체 언제, 어디에? 올해의 9월 초순은 유별나게 더운 느낌이고 사실 실제로도 그렇다. 하지만 나의 불평은 햇살 따가운 그런 것이 아니라 장마 뒤의 끈끈한 그런 날씨의 연속이라는 사실이다. 거의 매년 날씨의 느낌을 개인 일기로 남긴 탓에 나는 계속 작년 이맘때와 일일이 비교를 하는 ‘함정’에 빠진다. 작년의 9월은 Nine-Eleven (2001년 9월 11일)의 그때와 거의 비슷하게 바짝 마른 시퍼런 하늘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런 9월 초순을 기대하였는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정 반대가 되었다.

이런 때, 즉 여름 같은 느낌의 9월을 느끼게 되면, 빠지지 않고 잊지 않고 떠오르는 9월의 날씨는 1968년의 9월 서울에 살 때의 기억이다.  연세대 2학년 2학기가 시작 되었던 때, 그렇게 재미있던 학교공부가 갑자기 시시하게 느껴지고 연세대 입구에 즐비한 다방에 앉아서 pop song에 심취되고, 그 당시에 시작된 어떤 학생 클럽(남과 여)에 거의 모든 시간을 ‘낭비’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철없는 듯 하지만 절대로 후회를 할 수 없다. 그 때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없는 가장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는 때’ 였으니까.. 신촌 로터리에서 이대 쪽으로 가는 언덕길에서 ‘클럽 뉴스’를 등사 service 하는 집에 부탁하고 시내버스를 기다리던 때, 9월 중순 무렵, 엄청 더웠다. 바로 지금 내가 겪는 그런 날씨였다. 그 이후 나는 ‘더운 9월’을 맞이하면 그때 그 길에 있었던 ‘등사 service’1하던 집을 회상하곤 한다. 아마도 지금 같았으면 집에서 Microsoft Word로 편집을 해서 집에서 print하거나 email로 회원들에게 보냈을 것이지만.. 50년 전에는 이렇게 모든 것이 ‘느리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그런 시절이었다.

오랜 만에 들어보는 단어 hurricane, 이것도 꽤 기억에서 희미해 진 것이다. Global warming 과 함께 익숙했던 이것, 이것이 올해는 생각보다 가까이 왔다. 바로 옆에 위치한 Carolina (주로 North)로 들이 닥친 것이다. Hurricane Florence.. 여자의 이름, 줄여서 Flo라고 했던가. Carolina 사람들은 무섭고 귀찮겠지만 안전한 거리에 있는 이곳 (Metro Atlanta) 에서는 그저 ‘시원한 북쪽의 공기’를 이곳으로 보내주고 시원하고 잔잔한 비나 좀 많이 뿌려주기를 바랄 정도다.

 

¶  2018년 9월 8일, 끈끈한 구름 속으로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가 대단한 9월 초, 올해의 9월은 작년의 그것과 이렇게 다른가… 작년의 daily (personal)  journal을 보면 습기가 완전히 빠져나간 파란 초가을의 풍경이 생각이 나는데.. 비까지 그친 날씨 아래 흙먼지가 뽀얗게 일어나는 올해의 backyard는 그렇게 예쁜 모습이 아니다.

오늘은 사실 교회력으로 ‘성모님의 탄생축일’인데도 불구하고 아침미사를 거르게 되었다. 큰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귀중한 아침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싶다는 유혹을 이기지 못했던 것 뿐이다. 사실 이런 아주 작은 유혹들에게 넘어가면 결과는 예측불허다. 경험을 통해서 어찌 모르랴… 관건은 이 작은 유혹에서 더 이상 후퇴를 안 하는 것이다.

달력을 앞뒤로 보니 내주 화요일이 9월 11일… 2001년 9월 11일… 나인원원… 갑자기 몸이 움츠려 든다. 기분이 갑자기 나빠지고 쳐진다. 어느 누군가 안 그럴까? ‘그 당시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라는 질문이 나에게 떨어질 듯한 기분을 느낀다. ‘악의 실재’를 처음으로 체험한 날을 어찌 누가 잊겠는가? 기분이 또 쳐진다.

  1. 당시에 print물을 copy하려면 거의 등사란 것을 해야 했다. 복사기(copier) 가 없거나 너무나 비쌌기 때문이다.

Last Leaves, leaf & O Henry

 

어제 우리 집 Saybrook court driveway로 들어오는 cul-de-sac  에서 집 쪽을 바라보니 눈에 익은 듯한 광경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아~ 올해 우리 집, ‘마지막 잎새 들’이 로구나..  하며 ‘마지막 잎새’란 생각이 들고, 재빨리 스쳐 지나가는 슬픔을 느꼈다. 결국은 다~ 떠나는구나.. 보통 12월 초 이맘때가 되면 이렇게 ‘마지막 추수’ 가 수북이 쌓임을 이제 경험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보다 훨씬 젊은 앞집의 Josh는 아마도 올 가을에 걸쳐서 수십 번은 power blower로 낙엽들을 치우고 있는데.. 도대체 그 wasted time & energy aching muscle등등은 둘째치고 그는 ‘낙엽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그렇게 없다는 사실에 솔직히 ‘비웃음’이 나온다.

세월은 흐르고 올해도 한 달도 채 남지 않고, 깊은 겨울로 들어가며 새해 2018년을 맞는다. 칠십 70이란 숫자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나의 처지는 감정을 달랜다… 그래도, 그래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게’,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 70년의 세월은 나에게 과분하게 느껴진다. 솔직히 ‘여한이 없다’ 라고 위로를 받는다.

 

pen name O Henry

마지막 잎새,  명작 단편의 제목이었다. 필명 O Henry라는 미국 단편 작가가 20세기 초에 발표한 그야말로 ‘짧은’ 단편 그것이 바로 The Last leaf 였다. 낙엽 중에서도 제일 마지막에 떨어지는 ‘놈’이 있을 것이다. 바로 그 마지막 잎.. 그러면 세상은 갈색에서 하얀 색으로 변하고 겨울잠을 자야 하는 때, 이 소설의 주인공 여성, 폐렴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 하나 하나 떨어지는 낙엽을 자기의 운명과 연관이 있음을 느낀다. 결국 마지막 잎이 떨어지면 자기도 ‘따라 떨어진다’ 믿는다. 하지만 그 마지막 잎새는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도 안 떨어졌다. 대신 그 마지막 잎새를 ‘살려준’ 아름다운 마음씨의 친구 화가 할아버지가 대신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다.. 얼마나 아름답고 운명적인 단편이었던가..

 

 

왜 이 단편이 나의 기억에 그렇게도 남았는가. 1960년 57년 전 서울 중앙중학교 1학년 때 국어 담당 ‘소재영‘ 선생님 때문이었다. 소재영 소재영 선생님… 그 어린 나이의 눈에도 이 선생님의 ‘학자적 겸손, 능력, 품위’가 그렇게 인상적이었다. 한마디로… 나에게는 멋진 선생님이셨다. 교실에 들어오실 때는 책을 한 꾸러미를 들고 오셨는데, 그 두꺼운 국어사전으로부터 시작해서 각종 참고자료들을 가지고 국어시간에 가르치신 것이다. 그 때가 고작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입시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던 때) 그 선생님은 완전히 우리에게 국어라는 학문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그 중에 바로 이 ‘마지막 잎새‘에 관한 공부도 들어있었고 그것이 반세기 뒤에도 뚜렷이 남아 있게 되었다.

 

The Gift of the Magi

크리스마스 ‘사랑의 마음’을 적절히 묘사한 O Henry의 다른 단편 The Gift of the Magi, (한글제목은 생각이 안 난다) 도 기억에 남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젊은 ‘신혼’부부 Jim과 Della의 크리스마스 선물교환 이야기.. 서로를 위해서 Della는 머리를 팔아서 Jim의 watch chain을 샀고, Jim은 watch를 팔아서 머리 빗을 샀다는 슬프지만 너무나 사랑스런 이야기였다. 이것이 바로 the Magi(동방박사)의 아기예수에게 드리는 선물과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해서 O Henry라는 이름을 어린 나이에 알게 되었지만 인생의 항해를 하며 모든 것을 잊고 살다가 우리 집 앞에 쌓인 마지막 잎새들을 보며 회상을 하게 되었다. 그 동안 이 작가에 대해서 자세히 알 길이 없었지만 알고 보니 사실은 그렇게 ‘존경할 만한’ 인물이 아님을 알고는 조금 실망을 했다. 많은 유명한 단편은 남겼지만, 그의 비교적 짧았던 생(47세)은 각종 색깔의 행적을 남겼다. 그 중에는 우리가 살았던 Columbus, Ohio의 감옥에 죄수로 수감되었던 것도 있다. 물론 폭력적인 범죄는 아니었고 비교적 가벼운 ‘사기 횡령죄’로 복역을 한 것이다.  말년에 마음과 행동을 가다듬고 쓰기 시작한 단편들, 바로 그것이 그에게 커다란 이름을 남겨주게 되었다. 한마디로 ‘역량, 잠재성’이 있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알콜 중독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타계한 것을 보면 말년이 고통스러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O Henry라는 이름을 사랑한다. 나도 그 중에 하나고, 그것은 중학교 1학년 국어, 소재영 선생님의 고귀한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다.

 

 

The Last LeafThe Cascades – 1963

 

Falling, at Big Canoe..

 

¶  Fall’s falling:  갑자기 ‘다시’ 춥고 을씨년스런 날씨에 어깨를 움츠리며 back yard를 응시하니.. 와~~~ 파란 색이 완전히 없어지고, 모조리 노랗고 빨간.. 색으로 변했고 땅은 온통 낙엽으로 뒤 덮인 모습들, driveway도  길과 잔디의 경계가 완전히 가려진 ‘낙엽이 뒹구는’ 길로 변했다. 그러니까 우리 집은 바로 지금이 fall peak가 지나간 것이다. 이제부터는 계속 떨어지기만 하고, 또 떨어질 것이다. 낙엽을 치우는 것은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그런 때가 되었다. 왜 나, 우리는 이렇게 가을이 ‘갑자기’ 온 것으로 느끼게 된 것인지.. 생각해보니 지난 2개월 동안 주변을 잘 못보고 산 것은 아닌지.. 그럴만한 이유는 자명한 것이지만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이런 자연의 변화까지 잊고 산 날들이 그저 쓸데없이 허송한 것이 아님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이제부터 년 말까지의 ‘멋진 나날들’을 조금 더 멋지게 보내면 된다.

 

 

 

Big Canoe:  며칠 전에 Y형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속으로 아하.. 오랜만에 그 집에서 모이는구나 하는 짐작을 했지만 의외로 Big Canoe (North Georgia) 의 주소를 알려주며 그곳에서 ‘전원 全員’이 모인다는 짧은 대화를 했다. 전원 이란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친지’들 그룹을 말한다. 예전보다 조금 뜸하게 모이기는 하지만 20년의 역사가 말해주듯 4쌍의 부부들, 스스럼이 없고 편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비교적 중년에 가까운 나이들에 형성이 되었기에 지나친 기대는 물론이고 현실적인 관계,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는 성숙함이 있었기에 이런 오랜 역사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 나이 또래들의 이상적인 우정을 유지하는 비결이었다.

Big Canoe는 North Georgia mountain에 있는 ‘Mountain Community’의 이름이다. Golf Course를 비롯해서 vacation home들이 높고 깊은 산 속에 ‘즐비’한 이곳, ‘자연적인지 인공적인지’는 잘 몰라도 경치가 기가 막힌 곳이다. 특히 가을 이맘때의 ‘단풍의 풍경’은 일품인데 지금은 단풍잎들이 거의 다 떨어진 후였다. 그러니까 peak season이 지난 것이다. 거의 10년 전에 이 그룹이 한번 같이 이곳에 놀러 간 적이 있어서 대강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Y형 부부가 이곳에 주위 경관이 기가 막힌 property를 지난 올해 초에 아예 사버린 것이다.

거의 3000 feet가 넘는 Georgia에서 4번째로 높은 곳에 있는 집, 차도가 잘 되어있었지만 급경사, 급커브 등등이 편안하게 drive할 곳은 아니었다. Y형의 건강상 문제로 공기가 좋은 이곳을 ‘준비’했다는 말이 쉽게 이해되는 것이, ‘차갑고 해맑은’  주변 공기는 아마도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이 없을 듯 했다. 하지만 ‘건강상’ 문제가 100% 해결이 된 지금은 vacation home으로 쓰일 듯한 이곳, 혼자 쓰기에는 너무 커서 group이 모여 party같은 것을 하면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지난 주에는 West Bank park엘 갔고 한 주 뒤에는 Big Canoe, 올해는 비록 peak season이 다 지나갔지만 야외로 나갈 기회를 자주 주시는 것을 보니… 그 이유가 어찌 짐작이 가지 않겠는가?

 

all saints & souls, west bank

¶  10월의 마지막 날,  온통 ghost, evil spirit으로 가득한 Halloween 을 지내자 마자 11월은 그와 정 반대로 온통 good, holy spirit이 가득한 며칠을 보내는 날들이 되었다. 가톨릭 전례력으로 11월 1일은 All Saints’ Day (모든 성인의 대축일), 2일은 All Souls’ Day(위령의 날)이었다. 올해 미국에서 1일은 의무 대축일 (Holy Day of Obligation)이라서 ‘양심 있는 교인’은 의무적으로 미사참례를 해야 한다. 그 다음날 2일은 세상을 떠난 이들의 날, 그러니까 위령미사가 있는 날로서 이렇게 11월은 이렇게 우리에게 바쁜 날들로 시작 되었다.

Parish(본당)가 한국과 미국 성당 두 곳인 관계로 양쪽의 미사 schedule을 절충하며 따라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한국 쪽 도라빌 순교자 성당은 성인의 날 대축일 미사는 아예 없고 위령미사는 원래의 11월 2일이 아니고 4일 토요일에 Marietta Memorial Park에서 위령미사가 있어서, 우리는 결과적으로 조금은 피로하기도 했지만 3일 모두 참례할 수 있는 ‘특전’을 누리게 되었다.

 

 

성인들.. 영혼들.. 모두가 언뜻 듣기에 정말 어렵고 무거운 느낌을 주는 말들이다. 성인들, 그들은 나로써는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위대한 ‘하느님의 일’들을 한 ‘사람’들이다. 어디선가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라는 ‘웃기게’ 멋진 말을 들은 적이 있지만,  ‘내가 성인이?’ 하는 물음에는 잠잠해진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성인들의 배경과 과정을 보면 사실 모두들 ‘정상적인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을 보면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간다. 그야말로 ‘누구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그러면 나는? 허… 과연 이 나이에.. 어떻게 살다 죽으면 성인이 될 수 있을까?  더 이상 해괴한 질문이 아닌 듯 싶다.

 

 

11월은 ‘죽은 이들의 달’이다. 죽은 사람들이 주인공인 것이다. 내가  최근의 본격적인 ‘신앙의 르네상스’를 맞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죽음의 의미’를 전혀 믿지 않았다. 허구적 신앙 속에서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나의 과학적 의미’만 고집하며 살았다. 그런 나의 허구가 서서히 무너지면서 그리스도교적인 내세관이 자리를 잡게 되고 이제는 이것을 믿는다. 죽음의 세계도 ‘볼 수 있는 과학적 세계’와 전혀 다른 것이 없는 다른 세계임을 믿게 된 것이다. 이것이 나의 모든 것의 시작이 되었다. 예전처럼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 하지 않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단계가 죽음임을 내 생애의 끝 무렵에 겨우 알게 된 것이다. 나아가 ‘죽지 않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를 한다는 행위가 얼마나 그 영혼들에게 위로가 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연도, 위령기도 등에 우리 mere mortal 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커다란 의미가 있음을 이제야 조금 깨닫게 되었으니.. 참 모든 것이 늦은 인생이 아닌가?

 

¶  Old Clock Time’s Back! 올 초 정확히 3월 12일에 잃어버렸던 1시간을 되찾는 날이 오늘 드디어 왔다. 10개 (거의 13)도 넘는 시계(벽시계 이외도 많다) 들을 온통 1시간 되돌려 놓는 것은 비록 귀찮은 일이지만 그래도 한 시간을 되 찾은 것으로 위로를 삼고 다시 계절은 저녁이 훨씬 깜깜해짐을 상상한다. 그것이 바로 겨울의 느낌을 미리 주는 듯해서 어깨가 벌써부터 움츠려진다. 벽시계를 비롯해 gas range, microwave oven등의 시계들 모두 dumb clock이라 손수 바꾸어야 하지만 smartphone, desktop PC 등은 (Internet이 있건 없건) 물론 알아서 시간이 바뀐다.

하지만, 그 중에서 오늘 내가 제일 ‘감탄’했던 것은 우리 집의 오랜 역사 (20+ 년)를 자랑하는 ActiveHome, X10  (house light) controller가 제대로 시간 바뀐 것을 알고 저녁 때 제시간에 불을 켜 주었던 것인데, 몇 년 전만해도 computer로 일일이 manual mode로 시간을 바꾸어 주어야만 했던 것이 작년에 update한 firmware에서 이것을 해결했던 모양이다. 비록 cutting-edge technology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old technology 가 건재한 것을 보면 기분이 너무나 좋다. 새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역사와 track record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  West Bank Park: 오래~ 전 아틀란타로 이사 온 후 말로만 듣던 Buford Dam이란 곳을 이번 일요일 늦은 아침에 처음으로 가보았다. Lake Lanier 의 서쪽에 위치한 그곳에서도 West Bank park란 곳엘 갔는데, 알고 보니 Lake Lanier는 1991년 경 직장(AmeriCom)에서 여름에 놀러 갔었던 바로 그 Lake였다. 거의 25년 만에 다시 온 것이다.

 

 

 밖으로 놀러 가는 것이 흔치 않은 우리에게는 이례적인 날이 되었다. 가을이라 모두들 단풍구경 drive를 하는 모양인데 우리는 집을 떠나는 것을 귀찮게 여기기에 올해도 그렇게 넘어가나 보다 했는데 이런 예외가 생겼다. 지난 달에 ‘가입’한 아틀란타 도라빌 순교자 성당 60+ 대 친목단체 ‘어둠을 밝히는’ 등대회에서 가을 picnic을 가는데 합류를 한 것이다.  ‘레지오 미친년 사건’ 으로 거의 2개월을 허비하고 보니 진정한 단풍 낙엽의 멋진 가을의 진수를 놓친 것이 아깝기도 하고 해서 이번에는 ‘무조건’ 참가를 하였다.

결과는 resounding success였다. 가길 너무나 잘 했던 것이다. 적당히 색깔이 저며 든 가을의 정취로 기분전환도 적절히 되었고 새로운 교우들을 사귀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더욱이 즐거웠던 것은 나와 나이가 엇비슷한 형제, 자매들이 대거 그곳에 모여있었다는 사실. 돼지띠, 쥐띠 교우들이 그곳에 생각보다 많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동년배를 보게 되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모른다. 연숙까지도 이런 나를 조금 이상한 눈을 볼 정도다. 하지만 나는 ‘같은 시기에 세상에 나온 사람들’ 이라는 역사적인 사실 하나 만으로 큰 의미를 느끼는 것 뿐이다. 처음 참가한 관계로 ‘입만 가지고’ 가서 먹고 마셨지만 다음 부터는 우리도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있을 때는 돕기로 하였다.

 

10월의 시작, flu shot etc…

10월이 되었나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1주일이 지났다. 8월 말 ‘사건’ 이후 세월과 시간 감각이 조금 느려진 듯하더니 다시 원래대로 69마일의 속도로 돌아감은 좋은 느낌인가.. 모든 것은 다 지나가리라..

 

¶  Upstairs Renovation continues:  위층 hardwood flooring, wall painting 계속되고 있지만 이제는 70에 가까운 몸을 보아가며 ‘천천히’ 진행하는 지혜를 얻게 되었다. 시간이 반드시 돈이 아닌 우리에게는 ‘천천히’하는 것이 모든 것의 해결책인 것임을 알아가고 있다. 처음 예정에 whole job이 3개월 정도로 잡았지만 벌써 3개월이 지나가고 아직도 제일 큰 방 bonus bed room이 나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click-and-lock flooring의 technique도 많이 손에 잡히고 있지만 그래도 아주 tricky한 곳, door jamb, closet boundary 등은 아직도 case-by-case로 골치를 썩히며 시간을 잡아먹고 있다. 전에 있던 하얀 색의 carpet에서 갑자기 어두운 색의 shiny floor는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특히 새벽 어두울 때는 마루가 하나도 안 보이는 것이다. 비록 expense가 만만치 않지만 totally free labor cost의 위안을 받으며 모든 job이 끝났을 때의 새로 태어난 우리 집 2층의 모습을 상상하면 기쁨과 보람이 넘친다.

 

the last small room getting floored

 

¶  First-ever Flu Shot: 지나간 (레지오)화요일에 우리는 난생 처음으로 flu shot을 맞으러 Duluth Steve Reynolds Blvd에 있는 Kaiser-Permanente medical complex 를 찾았다. 정말 이런 것, voluntary basis로 ‘주사를 맞으러’ 간 것은 우리의 기억에 없는 것이다. 연숙의 Medicare가 얼마 전부터 cover가 되고, 작년에 연숙이 지독한 감기로 고생한 기억이 생생해서 올해는 우리도 한번 따끔한 flu shot을 맞기로 용기를 낸 것이다. 

우리 둘의 health insurance가 모두 Kaiser인 관계로 이럴 때는 편리하다. 같이 같은 곳으로 가면 되니까. 남들은 이런 것들, 잘도 benefit을 찾아서 ‘예방차원으로’ 잘도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것과는 인연이 먼 듯하다. 아무리 ‘공짜에 가깝더라도’ 이런 시설을 가는 것 자체도 꺼리게 되니까.. 아직도 우리는 그만큼 건강하다는 뜻으로 알고 자위를 한다.

 

¶  Dual PC Monitor: 나의 office가 아래 층으로 이사를 내려 오면서 아직도 전에 쓰던 ‘편리한 것’들이 다 setup이 되지를 않았지만 아주 거북이 걸음으로 하나 둘 씩 원상복구를 하고 있다. 그 중에 내가 제일 편리하게 쓰고 있던 것은 pc dual-monitor setup이다.  하지만 아래 층 나의 desk 는 벽에 기댄 모습이 아니고 ‘사장실’ 같이 open setup이라서 사실 desk위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제일 멋지다. 하지만 21세기 office desktop에 pc monitor가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인데, 문제는 1 대가 놓인 모습이 제일 안정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일단 2대가 놓이면 흡사 무슨 warehouse office처럼 보이기도 하기에 이번부터 single monitor로 살아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왼쪽 monitor에서 거의 항상 보이던 video (mostly movie, streaming media etc)가 없어진 것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러면 One Big Widescreen monitor는 어떤가? 물론 새로 $$$이 필요한 것도 있지만 실제 widescreen monitor로 test를 해 보니 역시 따로 떨어진 2대의 것과 다르고 불편하기만 했다. 결과는 이제까지 위층에서 쓰던 대로 조금 보기는 그렇지만 conventional dual monitor desktop을 쓰기로 하니.. 사실 보기에도 그렇게 ‘흉하지’ 않았다. 당장 left monitor에는 즐겨보던 video(from home file server) 들 (쿠로베의 태양, 공중을 나르는 타이어 등등)이 나를 즐겁게 하기 시작했다.

 

 

¶  예랑씨 부부와 점심 외식: 연숙의 문인화 buddy 예랑씨 (문인화 예명) 부부와 같이 토요일 도라빌 순교자 성당 성모신심미사 후에 Duluth H-Mart plaza 내에 있는 Stone Grill Korean BBQ & Grill restaurant에서 편안한 점심 식사를 즐겼다. 정말 오랜만에 ‘마음이 편한 부부’와 함께 맛있는 음식과 시간을 즐긴 것, 아주 좋은 idea였다. $$$만 많으면 지나치게 자주라도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 피곤이 풀리는 느낌… 세상에는 이렇게 서로를 편안하고 즐겁게 해 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는 사실이 나의 지친 심신을 어루만져준다.

새로 생긴 정말 깨끗하고 정갈한 fusion style 도 괜찮아서 나중에 우리 식구들을 데리고 와도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이가 나보다 2살 밑인 바오로 형제님, 말이 적은 편이지만 시간을 들여서 사귀어보고 싶은 사람이고 부부임을 느낀다. 편하고 서로에게 유익한 관계가 지속되기를 바라지만.. 다음에는 예랑씨 쪽에서 우리를 treat한다고 해서 쾌히 ok를 했는데, 그때가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다.

 

Korean BBQ & Grill

 

¶  Sonata Battery at CarConnex:  월요일 아침, YMCA workout이 있는 날이다. 우선 아침 미사엘 가려고 나서는데.. 차의 시동을 거는 소리가 조금은 ‘게으르게’ 느껴진다. 다른 말로, engine starter motor의 cranking 하는 소리가 평소보다 느린 것이다. 결국 시동은 걸렸지만.. 문제는 아하~~ car battery에 문제가 있고.. 결국은 분명히 replace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 달려서 charge가 되더라도 일단 engine이 돌지 않으면 금새 discharge가 될 운명이다.

하지만 성당을 빠질 수는 없어서 조그만 gamble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미사 참례가 끝나고 다시 시동이 걸릴 수만 있다면 그대로 우리의 hope Mr. Won (차 박사)의 CarConnex 로 달리면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gamble은 성공해서 다시 시동이 걸리고 곧 바로 CarConnex로 가서 battery를 갈았다. 50,000 mile에서 한번 replace를 했는데 거의 100,000 에 가까운 시점에서 또 갈아야 하는 것, 오래 전 나의 경험으로는 요새 battery들이 전 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Mr. Won에게 말했더니 그도 동감이다. 요새 차들이 예전 차에 비해서 standby battery power를 많이 쓰고 있어서 그런다고 분석했다. 아마도 heavily computerized 되어서 그럴 것이라고 더 분석도 했다.

우리 집 조카 수경이(연숙 언니의 딸)를 통해서 우리와 인연이 있는 Mr. Won, 나이도 젊은데 정말 성실함의 본보기 청년으로 역시 사업도 잘하고 가정도 잘 이끌고 얼마 전에는 Lower Roswell Road근처의 $600,000 집도 샀다고 자랑을 하며 picture도 보여준다. 이 청년을 보면서.. 이 사람이야 말로 ‘근본, character’가 건전, 건강하다는 것을 느낀다. 비록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도 그가 믿는 것, 올바르게 믿으면 족하지 않을까? 앞으로 이 청년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기도 하다.

 

가을비를 기다리며..

가을, 가을, 이제야 조금씩 가을의 느낌이 나에게 느껴지고 보이기 시작한다. 8월 말부터 시작된 surreal한 깜깜한 밤, 폭발할 듯한 절제할 수 없는 분노의 나날들에도 계절의 변함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은 솔직히 좋은 느낌이다. ‘과학적’ 가을은 이미 2주전에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나에게 어떤 다른 느낌을 주질 못했다. 그저.. 아하.. 이제부터 이른 아침이 더욱 깜깜해지겠구나.. 새벽에 1층으로 내려올 때 조금 불편하겠구나.. 하는 정도랄까..

비가 내린 지 꽤 오랜 듯한 느낌인데 곧 바로 내릴 비를 다시 기대하게 되었다. 올해 가을은 ‘평범한 비’가 아니고 남쪽에서 올라오는 hurricane에 의한 비를 계속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본 지난 비는 거의 한달 전의 ‘진짜 hurricane’,  Irma 때였고 이번은 ‘조금 작고 얌전한’ tropical storm Nate의 영향이다. 큰 피해 없이 잔잔하게 비만 내려주기만 바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가을비 우산 속’의 가을비 느낌이 아니고 ‘열대성 폭우’라서 조금은 아쉽다. 꿈에 그리는 ‘진짜 가을비’는 과연 언제나 올지..

오늘의 Bishop Robert Barron의 ‘복음묵상’ 글에는 다음의 글이 눈에 뜨인다. ‘자신을 버려야.. 자신을 잊어야.. ‘ 어떻게 나를 잊고 살 것인가, 오늘 내자신의 묵상 제목이 되었다.

The best moments in life occur when we lose the ego, lose ourselves in the world and just are as God wants us to be. – Bishop Robert Barron

 

등대회, 깜깜한 새벽..

¶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등대회:   지난 주일 (그러니까.. 일요일), 나는 평소에 잘 안 하던 ‘짓’을 하였다. 60대를 주축으로 모이는 성당 친목단체인 등대회에 우리 둘이 정식으로 가입을 한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우발적인 짓은 아니었고 최근에 나의 머리에서 맴돌던 생각을 실행으로 옮긴 것이다. 최근이래 우리부부와 가까이 지내오던 스테파노 형제님 부부에게서 hint를 얻은 것이 큰 도움이 되긴 했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이유도 있긴 했다. 갑자기 ‘(성당)여자’들에게 진절머리가 난 것이다.

지난 거의 5년 간 거의 여성이 주축을 이루는 레지오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 이 group과 가까워진 것인데.. 요새 내가 겪는 ‘인재 人災’는 100%가 모두 그들 group에 의한 것이고 그들 중 특정 소수 group이 보이는 행태는 정말 가관인 것으로, ‘이런 해괴한 짓들은 남자들 group에는 절대로 볼 수 없을 것’ 으로 결론을 지었다. 한마디로 나의 ‘동족’ 남성들이 그리워진 것이다. 남녀가 골고루 섞인 곳, 동류group처럼 보이는 곳, 그곳이 등대회였다. 비록 친교가 주류 활동인 곳이지만 현재 나에게는 거의 oasis같은 느낌을 주는 곳, 이곳에서 우리는 남은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현재로는 희망적이다.

 

¶  깜깜해진 새벽:  Autumn Equinox (추분)를 지난 지 벌써 5일째 아침으로 접어드는 날, 새벽 5시 반 경은 그야말로 깜깜.. 컴컴.. 그 자체였다. 비록 아직도 서서히 습한 공기가 밀려드는 초가을 속의 여름 같은 느낌이지만 깜깜한 새벽이 주는 느낌은 별 도리 없이 가을이다. 요새도 늦은 오후부터는 electric fan, a/c compressor noise가 들리긴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발악’을 해 보아야 시간문제다. 진정 영롱한 amber, pumpkin 의 계절, 가을의 색깔이 본격적으로 우리에게 찬란한 빛으로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  Joy of feeding: 나의 이른 새벽의 routine은 backyard  outdoor cat ‘다롱이’ feeding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다롱이는 올해 우리 집 backyard에서 무려 8마리의 kitten을 낳은 ‘젊은 엄마’ 고양이인데 언뜻 보면 조금 큰 kitten정도로 보인다.  지난 6월 초, 나의 heroic한 노력으로 TNR(trap-neuter-return)의 과정을 거쳐 이제는 더 이상 ‘임신, 출산’하는 고통에서 벗어난  바로 그 ‘엄마 고양이’이다. trap-neuter하는 과정에서 분명히 trauma가 있었을 것이고 return 후에 아마도 우리 집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결과는 정 반대였다. 우리 집 fence 를 넘나 들긴 하지만 backyard deck를 자기의 집으로 생각한 듯 하고 새벽이면 ‘meow, meow.. 요란스럽게 야옹 야옹’거리며 아침 밥을 어둠 속에서 기다리는 그 녀석, 이제는 한마디로 house cat, 우리 집의 기쁨이 되었고 만약 사라진다면.. 엄청 슬플 듯하다. 하지만 그는 indoor cat이 아니고 (soft) wild cat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lucky mother cat, 다롱이

 

¶  HP6200 WIN7 BOX: Absolutely, positively Best Buy!: HP6200/SFF Win7 box: 오랜 만에 my favorite, tech online vendor Newegg.com의 newsletter에 나의 눈에 익숙한 HP ‘business-class’ Windows 7 box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2010 model 로 거의 7년이 지난 것, refurbished 된 것이 틀림이 없지만 그것도 상관없다. $60 price-tag도 도움이 되었지만 제일 큰 매력은 64-bit Windows 7 Pro 가 pre-install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OEM version이지만 이것만 따로 사려고 해도 $70이 훨씬 넘는데, 거기다가 탱크처럼 단단한 HP-made hardware까지 있으니 이것보다 더 나은 deal이 어디 있는가? 나의 계획은 현재 쓰고 있는 Windows Vista,  virtual machine을 서서히 phase-out하고 궁극적으로 Windows 7, 10 physical machine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3일만에 도착한 이 Win7 box, 비록 최근의 gaming CPU는 아니라도 10GB ram으로 upgrade를 하고 나니 VirtualBox 로 3 virtual machine이 아주 smooth하게 running을 했다. 이 Win7 box는 당분간 나에게 virtual machine server로 쓰기에 알맞은 horsepower가 있었기에 $70 투자로 앞으로 2~3년간 나의 computing need는 거의 다 해결이 된 셈이다.

best buy, hp win7 box

 

¶  이빈첸시오, 이도밍고, 설아오스딩  Reunion: 3명의 중년이 지나가는 남자가 27년 만에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일주일 전에 약속이 된 모임이지만 속으로 과연 이 모임이 성사가 될까 의구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다시 한자리에 앉게 되었고 나는 속으로 성모님께 감사를 드리고 드렸다.

도라빌 소재 한국식당 ‘동네방네’에서 3명이 이렇게 모인 것은 정말로 27년 만이다. 1990년 5월 초에 도밍고 형제 댁이 Alpharetta로 대망의 ‘첫 집’으로 이사를 하던 날 우리는 같이 모여서 이삿짐을 날랐다. 도밍고 형제는 Clarkston, GA 에 있던 한인성당에서 연대동문으로 처음 만난 인연으로 가까이 지낸 편이었고 아오스딩 형제는 같은 성당 교우일 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직장, Pleasantdale Road에 있는 AmeriCom에서 같이 engineer로 근무를 했던 인연으로 이렇게 셋이 모인 것이다.

하지만 그 얼마 후 우리는 실제적으로 떨어져 다른 인생을 살았다. 따로 따로 가끔 ‘살아있다는’ 소식만 접하는 정도였다. 무언가 서로에게 공통점이 없었던가, 아니면 ‘인생관’이 달랐던가. 1990년대 말에 도밍고 형제와는 연세대 동문회에 같이 나간 적도 있지만 그것도 1회 성 만남에 불과했고 나도 그도 성당을 떠난 인생을 살다가 어떤 다른 인연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모이게 된 것이다.

나는 ‘기적적’으로 다시 ‘귀향’,  성당으로 돌아왔지만 나머지 둘은 아직도 반 냉담의 삶을 살고 있는데, 나에게 희망은 이들과 같이 매주 주일미사가 끝나고 같이 점심을 먹게 되는 그런 날이 오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에게 불가능은 없다’.

 

마르고, 따가운 가을 하늘..

 

2017년 가을이 조용히 시작되었다. 매년 이즈음이면 은근히 기다리던 ‘낙엽’의 가을의 시작이 올해는 별로 가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늦은 오후에는 a/c의 소음이 들린다. 새로운 것이 있다면 하늘의 물기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 하지만 햇볕의 느낌은 그야말로 toasty한 그런 것, 한마디로 늦더위가 계속되는 2017년 가을의 시작, Autumn Equinox (추분: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이다.

요새 자주 듣게 되는 NPR New York City (streaming radio)를 들으니 그곳의 기온이 89도..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이곳보다 더 더운 것이다. Hurricane Maria의 영향일지도 모르지만 그곳의 날씨 별로 매력적이 아니다. 그곳에 비해서 Seattle, Washington의 그것은 한마디로 죽여주는 매력적인 숫자들, upper 60’s .. lower 40’s.. 어쩌면 그렇게 다른 곳이 있을까? ‘언젠가 한번 그곳에서 살아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9월 22일부터 바로 전 이틀간의 small break를 끝내고 다시 regular daily routine이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100%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지 않다. 내가 일방적으로 선언한 total break(from daily routine)이었지만 이번에는 연숙도 쌍수를 들어 환영을 해서 그야말로 아주 편~한 break를 즐겼다. Daily mass와 nightly prayer가 빠지면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큰 break라고 할 수 있다.

다음에는 physical work도 가급적 피하고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interruptions들 피한다. 한마디로 ‘밥만 먹으며 사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매일 매일 살라면 며칠 못 가서 ‘죽고 싶을’ 것이지만, 이틀 정도는 꿀맛보다 값진 시간이 되었다.

지난 8월 말, 하루아침에 갑자기 사라진 평화로운 나날들, 조금씩 평온은 되돌아 오고 있기는 하지만 아쉽기만 하다. 그렇게 오랜 시간들, 풍성했던 은총의 시간들이 거짓말처럼 나에게 느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의 어머니, 성모님’이 같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은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실존적 위기’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 아직까지 나의 시간을 낭비시키고 있는 것, 하지만 이런 일들이 조금씩 ‘우연이 아닌 필연’일 수도 있다는 쪽으로 모아지면서 평화의 강물이 조금씩 모아들어지고 있다.

인간에게 완전한 악도, 완전한 선도 없다는 (신부님) 말씀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이 시점,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완전한 계명은 한 마디로 불가능한 주문이다. 불완전한 악에게는 가능하겠지만 완전한 악’에게는 어림이 없는 소리다.

추상적으로만 느끼고 알고 들었던 ‘완전한 악’의 존재가 실제로 나의 주변에서 ‘숨어 있었다’고 하는 놀라움은 아마도 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잊기 힘든 사건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나의 머리에서 그 ‘완전한 악’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것이 나의 길지 않은 여생의 과제가 되었다. 사라진 성모님, 다시 저에게 오소서..

 

드디어.. (늦) 가을비가..

Finally, it came, finally!  이번에는 일기 예보를 하기가 조금은 쉬웠던 모양이다 내가 느끼고 보아도 이번에는 비가 올 듯하였다. 역시 역시 기다리고 기다리던 하늘의 물방울들이 제법 세차게 밤새 창문과 뒤 뜰이 깊고 깊이, 마르고 마른 낙엽들에 사정없이 쏟아졌다. 잠결에 연숙의 ‘비가 온다..’라는 comment를 들었다. 얼마나 기다렸으면.. 하는 탄성이 나의 머리 속에도 맴돌며 편안한 잠을 계속한 밤, 이건 가을비는 가을비인데 아주 늦가을비가 아닌가? ‘가을비 우산 속에’ 같은 감상적 기대감이 거의 희미하게 된 이 시점 가을비의 느낌은 어떤 것인가? 역시… 좋~ 구나, 좋~ 다~..

 

깊은 가을비가 지난 밤부터 촉촉히 나리는 backyard

 

괴롭기만 했던 11월의 나날들.. 기억 속으로 넘겨버리고 싶지만 아주 진한 고통의 느낌은 아마도 오래 남을 듯하다. 어두운 밤을 보낸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아마도 지금은 조금 먼 동이 트이는 새벽의 빛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이 ‘복음성가’의 가사가 어쩌면 그렇게 나의 귓전을 맴도는 것인가. 벌써 4년 전이 되었나? 태양처럼 떠오르던 ‘새롭고 신기하던 느낌들’에 도취되어서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에서 어떤 형제님과 악을 쓰며 불렀던 이 복음성가.. 누가 곡을 쓰고 가사를 썼는지.. 참 기가 막힌 노래임을 새삼 느낀다. 그 때의 그 떠오르던 태양의 느낌을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연숙이 ‘고만고만하게’ 기침감기로 고생한 거의 한 달 반 동안 ‘거의’ 쉬었던 YMCA workout이 서서히 다시 시작이 되었다. 연숙은 swimming, 나는 weight lifting을 주로 하는데, 수영은 잘 모르지만 ‘역기’는 조금만 쉬어도 문제가 생긴다. 전에 고통 없이 오르내리던 120 파운드가 지금은 200 파운드로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 알면 된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리라.. 태양은 다시 뜨고, 내일은 오늘과 다른 새로운 날이라는 사실을..

 

deep November, film noir time..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다리고기다리’) 11월 그것도 중순을 지나가는 그야말로 ‘멋져야 할’ 깊어가는 가을, deep November 가 되었다. 하지만, 올 가을의 최고의 놀라움,  big surprise는 ‘가을비 우산 속’ moment가 ‘전혀’ 없었다는 비극적인 사실이다. 최근의 기억 속에 이렇게 ‘맑은 하늘의 연속’은 처음인 듯 하다. 간단히 말해서 ‘지독한 가뭄’인 것이다. 그렇게 가을 비가 잦았던 지난 해들이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숫제 ‘비가 올 때의 느낌’까지 잊어버릴 정도다. 마지막으로 비가 온 것이 그러니까.. 9월 중순 경.. 와.. 2개월 이상 한번도 비는커녕 흐린 날도 별로 없었으니.. 기록적인 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한 여름에 그래도 곧 다가올 ‘가을 비’만 연상해도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고 romantic 한 기분까지 예상을 했었는데.

지나간 몇 년간 unthinkable becomes realities.. 경험을 꽤 했고 그런 것을 경험하는 이유 중에는 나의 나이 탓도 있으리라 나를 위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살고 있기에 이런 ‘희귀한 일들’을 경험한다는 것이 조금은 납득이 가지를 않고 조금은 겁이 나는 것을 숨길 수가 없다. Eschatology (종말론) 를 들먹이지 않고 싶지만, 꽤 많은 ‘이성적인 사람들’도 이런 것을 언급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조금 누그러진 기분이 되었지만 Park(GH) & Trump shock는  이 ‘연속적 종말론’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하게 되었다. 이제는 다 끝난 것인가? Impact는 완화되고 있지만 여파는 아마도 아마도 생각보다 오래 갈 것이다. Praying Rosary가 더욱 더 필요한 ‘더러운 세상’을 살고 있는 나, 우리들.. 풍요로운 시대를 사는 것인지, 지나간 ‘good ole days’가 다 지나가고 있는 것인지..

오랜 동안 기침감기로 고생을 하던 연숙, 이제 ‘지독한 기침’은 거의 끝났다고 생각되지만.. 정말 이렇게 오래 가는 것 처음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이 flu shot을 맞으라고 그렇게 보챘지만 우리는 그 shot의 효과를 기본적으로 과신하지 않기에 거절했지만 혹시 그것을 맞았으면 덜 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이럴 때 우연히 ‘재발견’ 한 것, 바로 film noir.. 1940년 후반부터 1950년 후반까지 미국 영화계를 주름잡던 B급 영화들.. 오래 전 누나와 서울에서 AFKN을 통해서 보았던 미국영화들.. 대부분이 이 class에 속한다. 한마디로 극장까지 가서 볼 만한 영화는 아니고, 비 오는 음산한 날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서 ‘조그만 흑백 TV’로 보는 것이 제격인 ‘유치찬란’한 영화들이다. 그것들을 YouTube에서 ‘왕창’ 발견한 것이다. 올해 11월에는 이것들이나 왕창 copy해서 두고두고 볼까나..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든다.

 

another day in the life

인생의 황혼기에 아주 길지 않을 것 같은 이 시간들은 초록빛이 하늘을 덮었던 지나간 시절들에 비해서 일초 일초가 너무나 귀중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과연 이 귀중한 시간을 귀중하게 아끼고 있는 것일까? 어제, 오늘 찬물을 뒤집어 쓴 기분으로 일초 일초의 의미를 되 찾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무슨 깊은 함정에 빠졌다는 기분은 떨칠 수가 없다. 이것도 그저 며칠이 지나면 또 a day in the life가 될 것이지만 그래도 아깝기만 한 일초일초.. 시간은 거침없이 지나간다.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의 기복과 인간관계에 의한 놀라움, 잘잘못을 떠나서 전혀 예측할 수도 없고 방지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함정 중의 함정, 예방책이 그렇게 효과적이 아님으로 사후 대책에 안간힘을 쓰지만, 이것은 최소한의 냉각기 같은 시간이 필요함을, 오랜 인생의 경험에서 체득한 바다. 그저 .. let it be, let it pass, let’s wait and see.. 같은 값싼 말만 되 뇌일 뿐이다. 청명하고 빠삭.. 한 깊은 가을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지나가라.. 지나가라..

Sudden death, black day, blow-up day 같은 간단한 단어들이 나의 journal 에 적힐 뿐 다른 활동은 거의 없는 이런 며칠을 어떻게 보낼까.. 이런 지혜는 성경의 어느 구절에 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어떤 inspirational books같은 것은 없는 것인가? 결국 며칠 동안 실감하는 것은 이것이다. 인간은 비록 사회적 동물일 수 밖에 없지만 때에 따라서는 절대적으로 고독한 ‘홀로 존재’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결국은 인간은 혼자인 것이다. 그래도 여기에 위로는 있다. 절대로 혼자인 인간은  놀라운 transcendent nature 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오감과 경험에 의한 것들에서 초월한 것들, 감성적이 아닌 이성적인 믿음을 향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결국은 나는 ‘며칠 동안’ 이곳으로 몸과 마음을 의탁하며 Robert Spitzer의 글1을 다시 묵상해 본다.

 

The dark side of life can sometimes be quite daunting, but the love of Christ, prayer, the Church Community, the Holy Spirit, the Holy Eucharist, and the Word of God can bring light into the darkness. This gives rise to a great mystery that most people of faith will well recognize – that challenge oftentimes turns into opportunity, suffering into new viewpoints and ways of life, dejection into strengthened hope, fear into trust in God, weakness into spiritual strength, temptation into strengthened virtue, and confrontation with evil into the triumph of love.

 

  1. Robert Spitzer, S.J., Ph.D. 2016.  God So Loved The World.  San Francisco: Ignatius Press, p. 340

세찬 바람 부는 새벽

깜깜한 이른 새벽 녘, 5시가 조금 넘었을까…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깨버렸다. 바람 부는 소리가 분명했다. 잠재적으로 바람에 날라갈 만한 것이 집 주변에 없을까, 아니면 혹시 ‘거대한’ 나무 같은 것이 쓰러지지는 않을까..  이런 바람소리로 나는 반드시 the end of the world, the bad moon rising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도 있다. 세상의 종말, 과연 그것은 어떤 것인가? another eschatological fantasy..

 

Autumn of my life, Chilly & gloomy..

 

Bobby GoldsboroAutumn of My Life – 1968  

 

¶  3번째 계절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3/4분기 계절로 접어들었다. 4계절이 뚜렷한 이곳의 날씨, 비록 여름에 조금 길고 덥지만.. 나는 이 four seasons의 고마움을 항상 느끼며 산다.

 blog-front-1오늘 blog site의 front page의 그림이 가을 것으로 바뀌었다. Tobey와 깊은 가을 산책길에 떨어지는 낙엽을 올려다 보면 찍은 사진.. 오래 전 OhioWisconsin의 기나긴 겨울과 아주 짧은 봄, 가을의 날씨들에 비해서 이곳은 4계절이 너무나 뚜렷하다. 특히 봄과 가을이 북쪽에 비해서 긴 편이다.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올해의 가을은 어떻게 보면 ‘가을의 진수’를 한껏 맛볼 것 같은 희망도 든다. 파랗다 못해 검푸른 깊고 높은 하늘, 주변이 하늘처럼 높은 고목들에 둘러 쌓인 그 멋진 모습이 사진에도 많이 담겼다. 비록 ‘가을비 우산 속‘ 의 낭만은 없지만 이것은 다른 맛의 낭만이 아닐까? 언제까지 이 모습을 유지할 것인가?

아~~ 앞으로 최소한 두 달 정도는 깊어가는 진한 색깔의 고엽, 낙엽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감상에 젖게 하는 싸늘한 가을 비가 덜 와도 상관이 없다. 낙엽이 타는 냄새 같은 진한 coffee와 Tobey와 즐기는 늦은 오후의 낮잠은 나에게는 바랄 수 없는 보약이요 영양제가 되니까… 어머니시여, 자연의 의미와 비밀을 이렇게 계속 보여주소서… 우리는 아마도.. 아마도.. 지금 인생의 가을, 그것도 깊은 가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남은 것은 이제 겨울밖에 없는가.. 

 

¶  이른 새벽, 요란한  연숙의 고통스런 기침소리에 잠을 깼다. 며칠 동안 기침감기, 아니면 독감 증상에도 불구하고 normal daily routine은 고집하며 낫기만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번 것은 아마도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은 자괴감에 젖는다. 어제의 레지오 주 회합에서는 드물게 서기인 나보고 묵주기도 주송을 시키며 목청을 아끼고, 오후에는 Tylenol덕분에 많이  좋아졌다고 했지만,  열이 없는 ‘악질성 기침’이 유별난 것이 특이한 이번 감기,  별일 없듯이 목청을 아끼지 않고 전화까지 하며 지내더니 결국은 이렇게 시간을 끄는 것은 아닌가.. 목소리를 쓰는 전화를 거의 안 쓰는 나에 비해서 장시간 전화로 목소리를 쓰는 것, 이런 기침감기에는 아주 치명타가 아닌가..

하지만 오늘 새벽의 기침은 이유가 다른 데도 있었다. 조금씩 떨어지던 새벽 기온.. 결국은 빙점 가까이.. 40도 대로 떨어진 것이다. 아마도 다른 집 같았으면 central heating의 더운 바람 소리가 들렸을 것이지만 68도에 맞추어놓은 우리 집, 온도가 내려갈 대로 내려간 것이고 몸의 allergy성 반응으로 지독한 기침이 난 것이 아닐까.. 그래도 이틀 전에 아래층 gas furnace의 pilot light 를 다시 켜 놓았기에 오늘 ‘강제로’ 70도 manual setting으로  central heating을 가동 시켜 보았다. 너무나 오랜 만에 듣는 그 잔잔하고 둔탁한 gas flame나오는 소리가 반갑고, ‘휴~’ 하는 안도감, ‘아직 이 고물이 돌긴 도는구나..’하는.. 

2주 전까지만 해도 heating 같은 것은 상상도 못했는데 그 동안 어쩌면 그렇게 추위가 느껴지게 날씨가 변했던가.. 매년 10월 중순 경에 첫 central heating 의 blower motor 소리가 들리던 것, 결국은 올해도 평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거시적으로 보면 거의 변화가 없는 자연의 섭리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오늘 아침의 경험은 글자 그대로 chilly & gloomy.. 오늘의 normal daily routine을 완전히 쉬기로 결정을 해 버렸다. 지나가는 주간에는 내가 아픈 잇몸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가 조금 나아지는 때에 이제는 다른 편이 아프니.. 이럴 때, ‘부부’가 같이 사는 ‘편리함’ 다시금 느낀다. 그저.. 이 늦은 나이에, 둘이 아프더라도 같은 때에 아프지 않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