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loween, 2011

작은 딸, Vonnie(나라니)의 pumpkin art, 2011
작은 딸, Vonnie(나라니)의 pumpkin art, 2011

날자는 흘러 흘러 어느덧 그날이 되었다. 벌써 10월의 마지막 날.. 할로윈, 사실 이날이 이곳에선 ‘진짜 가을’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본격적으로 모든 ‘식물’들이 진한 색깔로 ‘갑자기’ 변하기 때문이다. 할로윈의 상징은 pumpkin(황금색 동그란 호박) 색갈이고 가을을 대표하는 색이고, 이맘 때면 이곳, 저곳 할 것 없이 모두 이 색으로 뒤 덥힌다. 그 옛날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사실 이날은 완전히 ‘아이들’의 날이었다. 옛날 대한민국의 어린이날 같다고나 할까.. 그것이 천천히 상업화 되어가더니 지금은 어른들이 더 즐기는 듯 하다. 그래서 이날에 쓰는 돈의 액수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우리 집은 아이들이 아이들이었을 때는 신경을 써서 준비를 해서 조금이라도 재미있는 추억을 남기려고 애를 썼는데, 아이들이 집을 떠나고 나니 이제는 남들이 즐기는 것을 보는 것이 거의 전부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trick-or-treating하러 오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어서 candy종류를 올해도 준비해 놓고 기다린다. 이 동네는 그런대로 꾸준히 아이들 있는 ‘정상적인 가정’이 아직도 꽤 많이 살고 있어서 어찌 보면 이렇게 찾아주는 아이들이 고맙게도 느껴진다. 옆집의 David (Rhodes)은 40대의 비교적 젊은 아빠여서 완전히 아이들과 어울려서 집 문 앞에 진을 치고 앉아서 아이들을 기다리는데, 올해는 어쩔까 모르겠다. 이제는 고국의 추석보다 이것에 더 정이 들었음을 느끼고, 참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실감한다.

내 생애의 가을

 

인간은 역사가 없다면 인간일 수 없을 것이다칼 야스퍼스

 

오랜 전, 50세가 넘어서 부터 사람의 일생을 일년의 사계절에 비교하는 것도 그럴 듯하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추운 봄으로 시작을 해서 추운 겨울로 끝이 나는 그런 일년이다. 초봄에 태어나고, 따뜻한 여름에 무럭무럭 자라며 가을에 인생의 수확을 하고 겨울이면 눈 속에서 잠자듯 조용해지는 그런 사계절의 인생.. 멋진 비유가 아닐까?

 가을이면 수확이 한창일 것이고 그것이 끝나면서 낙엽도 다 떨어지고, 모든 것이 조용해 진다. 60이 넘은 내 나이면 이 때쯤에 왔을까? 아마도 수확은 다 끝났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맘 때면 여름 동안의 일은 다 끝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자식들이 다 출가를 해야 수확이 끝나는 것이라면, 나는 아직도 수확을 기다리는 것이 된다. 아니, 이 수확은 겨울에나 올지도, 아니면 숫제 안 올지도 모른다. 을씨년스러운 계절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것은 아직도 초조함으로 남아서 잔잔한 stress를 준다.

 가을의 맛은 오래 전 팔방미인 이진섭씨의 말씀대로, 잔잔하게 저물어 가는 석양을 바라보듯이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지난 날을 생각하며 내가 세상에 왔다 가는 의미를 조금씩 생각해 볼 계절이 아닐까? 아무리 인생은 60부터 라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전에 비해서 육체적인 건강이 많이 나아졌다는 얘기일 것이고, 그것이 정신적으로 젊게나 유치하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나이에 따라 점점 빨리 지나가는 시간과의 싸움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인생의 가을인 이 시점에서 사람들은 세상이 알건 모르건 간에, 어떻게 ‘자기의 역사’가 남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고, 나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실수한, 잘못된’ 자기의 역사를 고치려고 할까? 후회가 되는 것들, 못 다한 꿈들.. 이런 것들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어떤 사람은 전혀 후회도 없고, 꿈도 다 이루었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자만한 평가를 절대로 믿지 않는다. 그것은 한마디로 인간으로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역사 자체를 고칠 수는 없지만 다른 역사를 만듦으로써 멋진 조화, 균형을 이루면 안 될까? 나는 그것은 ‘절대로’ 가능하다고 믿고, 그것을 만드는 방법이 무엇인지 찾고, 행하는 것이 나의 현재, 인생의 가을을 살면서 해야 할 것들이다. 아~~ 가을이여 천천히 흐르거라~~

 

 

Autumn of My Life – Bobby Goldsboro 1968

Bobby Goldsboro의 classic oldie, 인생의 봄에 들었던 추억의 노래지만, 그 당시에도 인생의 계절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사랑을 인생의 흐름에 맞추어 노래했지만 지금 들어도 역시 계절과 인생의 흐름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었다.

 

Catholic Sunday

오늘 아침은 3주 만에 미국본당 Holy Family CC(Catholic Church) 에서 8시반 주일미사를 보았다. 그러니까 2주 계속 주일미사를 거른 셈이다. 레지오 화요일 주중 미사는 절대로 거르지 않아서 조금은 변명 감 있긴 해도 역시 주중의 ‘약식’ 미사와 주일의 ‘정식’ 미사는 느낌이 많이 다른 것이라서 역시 ‘손해’를 본 것은 우리들이다. 10월 초에 걸맞은 계절의 맛을 마음껏 내듯 아침 바깥 기온이 45도(섭씨 7도) 로 떨어져서 이건 완전히 춘추복의 날씨로 오랜만에 “넥타이만 없는 정장”으로 갈아 입었다.

Holy Family Fall Festival 2011
Holy Family Fall Festival 2011

2주 동안 못 본 낯익은 얼굴들, 비록 이름도 모르고, 본당 밖에서 따로 만난 적이 없어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의 얼굴이 안 보이면 조금은 신경이 쓰이기도 하니까. 오늘의 주보를 보니, 역시 10월의 상징인 (Halloween) pumpkin의 색깔로 가득하고 돌아오는 토요일 예정인 본당주최 Fall Festival 내용으로 그득하다 . 오늘은 주임신부님, Fr. Darragh (대라, common Irish name), 오늘 복음 말씀(마태오: 21:33-43)에서, “stewardship”을 주제로 삼아, 미사 이외의 본당활동에 더 적극 참여하라고 강조하시고, 숫제 volunteer form까지 모든 좌석이 비치해 놓으셨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talent를 썩히지 말라고.. 그런 각자의 ‘재능’을 좋은데 쓰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도로 가져간다고 거듭 강조하신다. 이런 말씀 많이 들었고, 나는 안다.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면 이 정든 ‘동네’ 본당에 내가 봉사를 할 것은 적지 않다. 하지만 현재 하나도 하는 것이 없고, 이것은 항상 갈등을 느끼게 한다. 이것은 오랜 동안의 영어문화권 직장을 떠난 후에 나타난 현상 중의 하나다. 역시 우리 같은 사람은 잔뼈가 굵은 곳의 언어문화권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 본능일까? 이곳에 살면서 계속 겪던 문화적 혼동과 갈등이 결국 나중에는 이런 곳에서도 나타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조금 더 민감하게 느끼는 것일까.. 참 어려운 것이다. 아틀란타 한인 순교자 본당소속, 레지오에 입단한 이후, 조금씩 모국 문화권에 더 익숙해 지면서 이런 문화적, 언어적 갈등을 생각하게 된다. 문제는, 어떻게 나의 나머지 인생을 보내야 할까.. 너무나 멀어진 고국문화를 다시 배우며 살까, 아니면 더 영어권으로 들어가서 적극적으로 그들과 어울릴까.. 정답은 없다. 절대로 선택문제인 것이다. 어느 것이 더 나에게 보람을 느끼게 할까 에 달려있다. 

 

올 들어 처음으로 central heating system을 시험하는 날이 왔다. 아래층의 kitchen area에 앉아 있으려니 추울 정도라서 thermostat를 보니 67도.. heater로 스위치를 켰는데.. 잠잠.. 분명히 68도로 맞추었으니까 더운 바람이 잔잔하게 나와야 하는데, 아주 조용한 것이다. 직감적으로 아하! 아래층 furnace의 thermocouple을 새것으로 갈 때가 되었구나. 그러니까 thermocouple이 수명이 다 되면 pilot lamp가 꺼지고, fire(점화)가 안 되는 것이다. 요새의 furnace는 물론 거의 다 automatic firing mechanism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골치를 썩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 것은 거의 20년 전의 것이라 이런 불편이 있다. 문제는 이 thermocouple이 생각보다 자주 교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비싼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새것으로 바꾸려면… 조금은 ‘기계적’인 머리도 필요하고, 그 우중충한 ‘지하’ 공간으로 기어 들어가다시피 해야 하는 그런 ‘남자의 일’인 것이다. 그래서 여자만 사는 집이라면 99% handyman을 $$을 주고 불러야 할 듯 한데 나의 우려는, 내가 먼저 죽으면 연숙이는 어떻게 이런 것들을 ‘고치며’ 살까.. 조금은 우습지만, 사실은 실제적인 문제다. 이런 것은 기계적인 것에 한하지 않고 우리 집에 거미줄처럼 깔려있는 computer network같은 것들.. 거의 자동적으로 돌아가지만, 문제가 생기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며칠 전, 빛의 속도보다 빠른 물체를 실험으로 관측1을 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정말 오랜만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추억과 함께 생각을 하게 되었다. 추억이란 물론 내가 처음 이 ‘기가 막히게 멋진 과학 이야기’ 들을 때의 기억이다. 우리 또래들은 이런 것들을 거의 대부분 책을 통해서, 그것도 ‘만화’를 통해서 접하고 배우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교과서가 거의 유일한 지식의 원천이었다. 백과사전은 나오지도 않았고, 나왔을 때는 너무 비싸서 ‘월부’로 사기도 힘든 때였다. 라디오에서 이런 것을 가르쳐 줄 리는 만무하고, TV는 없었을 때였다. 나도 역시 만화에서, 그것도 ‘공상과학’ 만화에서 처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라고 해서 듣고 배우게 되었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과장되게 표현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 만화에서 상대성원리의 결과로 보여 준 것이 이런 것이었다. 두 형제가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빛의 속도로 나르는 로켓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 몇 년 뒤에 그는 지구로 돌아왔는데, 그 때는 이미 지구시간은 수만 년이 지난 후여서 그의 가족 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가 완전히 바뀐 뒤였다. 이것은 광속도에 접근하는 로켓(과 그 안의 사람)에서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른다는 사실에 근거를 한 것으로, 이론상으로는 문제가 없는 공상이었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는데, 중학교 2학년 가회동에 살 당시, 같은 집에서 자취를 하던 경기고교 생 양병환 형으로부터 이런 류의 이야기로 밤을 새우기도 했다. 그 중에 하나가, 우리의 과거를 볼 수 있다는 역시 조금은 소름 끼치는 이야기도 있었다. 도저히 이해는 안 갔지만 이론적으로는 역시 큰 문제가 없었다. 이 이야기의 함정은, 우리가 우리의 과거를 본다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나의 과거를 본다는데 있었다. 가령 예를 들어서 지구에서 10광년 떨어진 별에서 거대한 망원경으로 지구를 보면 10년 전의 지구가 보일 것이고, 10년 전의 우리들을 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대학 1학년 때, 드디어 흥분의 순간이 왔다. 대학 물리시간에 특수 상대성 이론이 나온 것이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그대로 다룬 것인데, 조금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이론은 전혀 ‘어렵지’ 않아 보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 이론에서 쓴 수학들이 정말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심지어 너무나 ‘간단’ 했던 것이다. 그곳에 상대성원리의 매력이 있었을 것이다. 우주의 법칙은 절대로 ‘복잡’하면 안 된다는 아인슈타인의 지론이 그것이다. ‘하느님의 법칙’ 은 의외로 간단한 것이다. 예를 들어서 에너지의 공식을 보라. E=mc2 이렇게 간단한 공식이 어디 있는가? 이런 이론들을 과학적 증명이 거의 없이 ‘발명’한 그는 한마디로 천재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후 100년 동안 그의 이론은 거의 실험으로 하나하나 ‘직접, 간접적’으로 증명이 되고 있다. Gutenberg.org의 도움으로 아인슈타인의 원래 저서 ‘상대성 원리’를 download해서 보았다. 역시 비교적 내용이 길지 않은 책이었다. 위대한 저서는 이런 식으로 의외로 간단해 보이는가? 비록 독일어를 영어로 번역을 한 것이지만 아인슈타인의 ‘냄새’가 여기저기서 나는 위대한 책이다. 시간이 나면 한번 녹슨 머리를 굴려가며 다시 한번 읽어 보리라. 어렸을 때와 다른 것은 이제는 ‘하느님의 작품인 거대한 우주’ 라는 framework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그 때와 같이 방황하지는 않으리라.

 

  1. 아마도 이것은 quantum entanglement 실험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Come September

중학교 (서울 중앙중학교) 때 나온 미국영화, Come September의 주제곡을 수십 년 만에 들었다. 거의 분명히 타향살이를 시작하면서 처음 들었을 것이다. 중학교 때의 영화니까 분명히 ‘학생입장불가’로 볼 수 없는 그림의 떡이었을 것이고, 영화자체도 그 나이에 보기에는 너무나 ‘지겨운’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주연배우는 Rock Hudson(록 허드슨)과 이태리의 Gina Lollobrigida(지나 롤로브리지다) 등의 그 당시 최고 정상급 국제 스타들이었다. 그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그 영화의 주제곡 때문이다. 영화 내용은 모르지만 그 주제곡은 그야말로 ‘경음악’의 진수를 보여주는 정말 경쾌한 것이었다. 그것이 왜 9월과 연관이 있는지, 그러니까 그 영화의 제목이 왜 ‘9월이 오면‘ 이었는지는 아직도 이유를 모르지만, 그것은 절대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9월이 오면 생각나는 ‘음악’ 중의 하나라는 , 그것이 더 중요하니까.

 

 

Come September: 9월이 오면, 1961

어제, 9월 1일은 30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나의 인생 반려자로 살아온 아내 연숙의 생일이었다. 원래 내가 우리 둘의 아침식사를 준비한 것이 이제 몇 년째가 되어서, 이것으로 생일의 “깜짝 서비스” 를 할 수도 없고, $$$도 그렇고, 너무나 흔한 ‘생일 축하 메시지’ 를 만들기도 낯 가렵고.. 그래서 요새는 생일이 맞거나 축하해주는 것도 부담스럽지 않은 부담이 되어간다. 그저 한마디로 XX 년 전에 ‘인간으로 세상에 나온 신비’ 를 서로가 생각하면 어떨까? 그렇게 요란하게 노래를 부르며, 먹으며, 선물포장을 뜯어야만 할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고, 올해는 작은 딸 나라니 가 ‘먹는 생일’을 마련해 주었다. Cumberland Mall에 있는 커다란 Italian restaurant, Maggiano’s (Little Italy) 에서 오랜만에 ‘밀가루 음식’ 과 bottle of wine으로 포식을 시켜주었다. 이태리 사람들이 ‘많이’ 먹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엄청나게 많은 음식의 크기 (flat dish가 아니고 bowl)에 먹기도 전에 질려버렸다. 우리는 원래 저녁식사를 거의 안 하고 살아서 아마도 위장이 꽤 놀랐을 것이다. 거기다가 음식값에 carry-out 메뉴가 덤으로 포함되어 있어서 그것까지 하면 그리 비싼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박봉’에 시달리는 작은 딸의 저금 통장에 큰 변화가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이래서, 우리도 이제 오래~~ 살았구나.. 실감을 했다.

 

Try to RememberThe Lettermen

9월과 12월 사이의 감정을 보여주는 멋진 시

오래된 추억의 9월은 어떤 것들일까? 그 중에서 추석이 으뜸일까? 타향살이에서 제일 그리운 것이 ‘추석의 느낌’ 이다. 이것은 타향에서는 ‘절대적으로 느끼기 불가능’ 한 것 중에 하나다. 그러니까 추억이던가. 실제로 그 추억이 현실적인 추석보다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것들이 ‘느리기만 하던’ 시절.. 시간도 느리고, 버스도 느리고, 비행기, 기차도 느리고, 전화도 느리던 그 시절.. 그런 명절은 정말 천천히 즐기는 느린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설날과 달리 날씨가 알맞게 따뜻해서 얼마든지 밖에서 ‘딱총과 칼’로 무장을 해서 전쟁놀이로 뛰어 놀고, 뛰어 들어와서 송편, 고기 등 으로 배를 채우고 다시 골목으로 뛰어나가던 그런 추석.. 그날 밤에 재수가 좋으면 어둡기만 하던 동네를 완전히 대낮으로 바꾸어 놓았던 보름달 아래서 골목 이웃들이 몰려나와 수다를 떨던 아저씨, 아줌마들.. 세월을 따라 모든 것들이 빨리 움직이면서 그런 순진함 즐거움은 하나 둘씩 사라져갔다.

 대학 다닐 때, 갈비씨(skinny people, 이런 말을 요새도 쓰나?) 인 신세로 주눅이 들었던 시절, 9월은 희망의 계절이었다. 모든 신체 부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짧은 팔에서 조금은 가려주는 긴 팔의 옷으로 천천히 바뀌던 첫 달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우습지만, 그 당시는 상당히 심각했다. 아마도 뚱뚱한 것이 마른 것보다 ‘가치가 떨어진’ 요새 사람들은 절대로 상상을 못할 듯 하다. 분명히 그 당시는 ‘살이 찐 것’이 마른 것 보다 더 멋있게 보였다. 아마도 마른 사람의 대부분이 가난했던 사람들이라 그랬나? 이래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건가? 가난하게 보이게 노력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가족이 생기고, 대부분 가장이 겪게 되는 세파에 시달리기 시작하면서 9월과 가을을 거의 잊고 살게 되었고, 그에 따르는 추억도 메말라 가게 되었다.그러다가 50대에 접어 들면서 우연히 나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시(詩)에 눈을 뜨게 되었다. 거의 완전히 메말랐던 감정들이 이 신기한 것을 통해서 조금씩 스며 나옴을 느끼게 되어서, 나이와 감정, 감상이 꼭 반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9월은 그런 찐한 감정의 보물창고인 가을과 겨울의 입구와 같은 때인 것을 매년 조금씩 실감해 가게 되었다. 올해는 과연 어떻게 그런 감정의 보고(寶庫)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가을 그림자

 

가을은 깨어질까 두려운 유리창.

흘러온 시간들 말갛게 비치는

갠 날의 연못.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 찾으러

집 나서는

황혼은

물빠진 감잎에 근심들이네.

가을날 수상한 나를 엿보는

그림자는 순간접착제.

빛 속으로 나서는 여윈 추억들 들춰내는

가을은

여름이 버린 구겨진 시간표.

 

김재진

 

 

9월의 노래

누가 처음 발표를 했는지는 몰라도 9월의 classic은 바로 곡이 아닐까? 패티킴의 version이 바로 그것인데 아깝게도 그것은 이마 유튜브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에 버금가는 ‘연숙’을 닮았던 “혜은이”의 것이 건재하니까..라고 했지만 다시 찾게 되었다. 멋진 패티김의 pose와 함께… 감사합니다~~

 

팔월이여, 안녕..

Labor Day 그렇게 더웠던, 하지만 그런대로 잘 적응하며 더위가 친구처럼 완전히 익숙해질 무렵, 갑자기 9월을 맞이하게 되었다. 9월 첫 월요일은 전통적으로 동네의 수영장들이 문을 닫는, ‘비공식적’ 여름의 마지막 날, Labor Day(미국 노동절)이다. 요새같이 실업률이 높아서야, 노동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세월이 되었다. 대부분의 육체적 노동을 하던 멕시코 사람들이 거의 사라지고, 그 다음의 ‘소수 인종’들이 조금은 경쟁이 완화되었지만 이번에는 일자리가 없는 것이다. 불필요한 전쟁을 몇 번씩 치르며 돈을 그렇게 찍어냈으니, 아무리 천하장사 미국 이라도 그것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몇 년 동안은 완전히 남의 돈으로 집과 빚을 얻어서 흥청망청 썼으니.. 과연 그 ‘없는 돈’이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이건 경제학의 ‘경’자도 모르는 중학생이 더 잘 알 것이다.

불경기는 분명히 걱정할 만하지만 그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중산층의 폭’이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돈을 가진 인간과 ‘절대로 가난한’ 인간들의 폭만 그 동안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제3세계의 문제들인데.. 이것이 현재의 상태로 나가면 미국의 문제가 될 전망이다. 깡패집단에 ‘납치가 된’ 공화당은 절대로 ‘대기업과 부자들을 보호’ 해야 하는 입장이고, ‘불쌍한’ 민주당은 절대적으로 없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고.. 미국 정치는 완전한 ‘야쿠자 난투’ 형국이 되어가고 있는데.. ‘정치를 초월한, 윈스턴 처칠’ 정도의 지도자가 발견되지 않는 한, 지난 반세기 동안 잘 나가던 ‘무적의 미국’은 동생나라 일본을 따라서 ‘천천히’ 쇠퇴의 첫 단계로 들어가지 않을까..(아니,이미 들어섰을 것일지도) 나중에 쾌재는 아무래도 ‘짱 꼴라’ 들이 부를 것 같아 정말로 우울해 진다.

 

 

Brian Hyland – Sealed with a kiss
아련한 추억의 찬란했던 여름을 보내고 다가오는 계절을

아침의 신비:  비록 당분간도 덥겠지만 하루하루가 달라질 것이다. 벌써 아침 7시 쯤에도 어둠이 가득하게 남아있다. 그렇게 해가 짧아진 것이다. 10월의 Daylight Saving Time(DST: aka, summer time)해제 쯤까지는 해 뜨는 시간이 무서운 속도로 늦어질 것이다. 이것이 가을의 맛이다. 어두운 아침..에 일어나는 맛.. 나는 ‘절대적’으로 morning person이라서 아침을 맞이하는 기분을 못 느끼면 살 맛도 없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연숙은 나와 절대로 궁합이 맞지를 않는다. 그녀는 절대적인 night person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꾸어 보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듯 하지만 아마도 힘들 듯 하다.

나도 한 때, 대부분은 학교 다닐 때, 정말 밤늦게 자는 올빼미 스타일이었고, 한때는 정말 그것을 즐겼다. 그러던 것이 서서히 아침으로 돌아오게 되고 이른 아침 공기와 분위기를 느끼고 즐기게 되었다. 특히 이것은 직장생활에서 받은 영향도 있는데, 이른 아침 아련히 진동하는 잠을 깨는 커피향기만 기억을 해도 아침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직장분위기가 다 끝난 지금에도 그것이 완전히 몸에 배어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침에 하는 1시간의 ‘일’은 다른 때에 하는 것과는 ‘양과 질’로 절대로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가을, 겨울과 같이 밝지 않은 아침의 시간은 정말 보석과도 같이 값지고, 심지어 ‘신비스러운’ 시간인 것이다. 그런 어둡고 긴 아침의 계절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으니 어찌 이것 하나만으로도 가을이 기다려지지 않겠는가?

 

느긋함과 늙음,  젊었던 시절 항상 그렇게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을 느긋하게, 시간을 두고, 회상을 하며, 생각하며, 천천히 관용적으로, 이해를 하는.. 그런 ‘신사중의 신사 같은 나이 듦’ 등을 그리곤 했다. 싫어하는 사람보다는 그런대로 싫지만 이해하게 되는 그런 너그러움.. 이 나이가 들었다는 ‘보람’이 아닐까..하는 조금은 희망적인 희망을 해 본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느긋함 보다는 점점 굳어져가는 ‘나만의 생각’에 집착하는 것을 느끼고 적지 않게 실망을 하곤 한다.

왜 그럴까? 오히려 젊었을 때에 더 ‘관용과 용서’가 많았던 것을 기억한다. 나만의 ‘사상과 주관’이 나이에 비례해서 뚜렷해져서 그런지 모른다. 그러니까, 더 타협을 하기가 힘든 것이다. 나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해서 그럴지도.. 이 얼마나 무서운 함정인가? 이런 것에서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노력을 해야 하는가? 개개인 마다 다를 것이고, 정답도 없을 것이다. 이래서 인생은 재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가장 추악한 정치인, 딕 체이니
미국에서 가장 추악한 정치인, 딕 체이니

CheneyPowell, 정말로 극과 극의 인상을 주는 이름들이다. 그러니까 전자는 Dick Cheney, 부시, 미국을 말아먹은 인간의 꼬붕 격 이었고, Colin Powell은 같은 꼬붕 자리에 있었지만 정 반대로 그 나름대로 의 피해를 가급적 줄이려고 노력을 하려고 한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부시를 전쟁으로 몰아넣게 한 장본인들 중의 오야붕 격이 바로 Cheney인데, 이 인물은 알면 알수록 ‘무섭게’ 느껴지는 ‘전쟁 광’ 에 가깝다. 마키아벨리를 뺨치는 ‘수단과 방법에 문제 없는’ 그런 전근대적 과격주의 신봉자이기도 하다. 공공연히 고문 사용을 지지하는 만용도 가졌고,심지어 ‘전범’으로 국제재판소에 기소되는 것을 우려할 정도다.

부시의 ‘비극’은 바로 그 같은 인물을 직속 ‘상관’으로 기용을 했다는 실수였다. 같은 체제 내에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직책을 걸고 제동을 걸려던 사람이 Colin Powell이다. 그 두 사람이 지금 완전히 전투태세를 갖추고 제 2의 대결을 할 모양이다. ‘철면피 같은 더러운 늙은 여우’ 같은 Cheney, 그런대로 명분과 이름을 살리려고 자서전을 발행할 모양인데, 완전히 자기만의 역사를 다시 쓴 모양인데, 그것이 그렇게 쉬울까? 지금 미국은 이런 ‘과격파’가 아니면 행세를 못할 지경에 이르고 있고, 이것은 정말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다.

 

Thanksgiving Day eve

비가 오락가락하고 포근한 깊은 가을.. Thanksgiving Day가 내일로 다가왔다. 작년 이맘때도 지금처럼 아주 포근한 날이었다. 우리의 조촐한 가족만이 모였던 휴일이었고 모두 조금씩 요리를 하는 것을 거들었던 기억이다. 그때는 새로니가 Washington DC에서 일을 할 때여서 급하게 왔다가 급하게 떠났는데 올해는 다시 학생이 되어서 거리와 시간 모두 여유를 가지고 집으로 왔다. 하지만 대신 작은 딸 나라니가 처음으로 밖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첫 해가 되었다. 올해 4월에 따로 나가서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끔 집에 오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고 있는데 그런 사실을 본인도 즐기는 듯 하다.

올해의 Thanksgiving Day는 오랜만에 guest와 같이 보내게 되었다. 새로니의 Emory friend인 Galina가 뉴욕에서 현재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 우리 집에 놀러 온 것이다. 식사만 같이 하는 것이 아니고 며칠 동안 우리 집에 머물게 되어서 조금은 신경이 쓰이지만 예년과 조금 다른 휴일이 되어서 흥미롭다. 애들이 어렸을 적에는 이런 때면 한방에 모여서 재미있는 movie같은 것을 보는 것이 즐거움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시절이 거의 먼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사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인생이 아니겠는가.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집은 이곳의 전통인 turkey요리를 해 왔다. 아마도 그때가 1980년대 초, 그러니까 우리가 Columbus, Ohio에서 살 때였을 것이다. 연숙이 그곳 성당의 원로로 계시던 이봉모 선생님(지금은 고인이 되셨음)의 부인으로부터 recipe를 받아서 첫 turkey 요리를 했던 때가 그때쯤이었고 그 이후로 거의 한해도 빠짐없이 turkey 요리를 했다. 그래서 이제는 추석이나 설날의 한식 전통요리보다 이 turkey 요리에 대한 추억과 애착 같은 것도 생기게 되었다. 가끔 한국 손님들이 참석을 하면 별로 그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본다. 특히 김치를 꼭 같이 찾는 사람들도 있어서 조금 당황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김치와 먹어도 사실 맛이 있었다)내가 개인적으로 turkey 요리를 제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은 사실 결혼 훨씬 전의 일이었다. 1974년 가을의 Thanksgiving Day였나.. 그 당시 알고 지내던 서울사범대 지학과 출신 성성모씨가 Indiana주 Purdue University에 다닐 당시, 그곳에 놀러 갔는데 , 같은 대학의 한국인 유학생 부부의 집에 초대되어 가서 turkey 요리를 푸짐하게 대접을 받았다. 특히 여러 가지 side dish들이 굉장했는데 그 유학생 부인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미국요리를 배웠는지 모두들 혀를 찰 정도였다. 처음 먹어본 것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요리가 잘 되었는지.. 아마도 둘 다였을 것이다.

ANY CHARACTER HERE

요새 며칠 사이 내린 비로 그나마 남아서 안간힘을 쓰며 가을을 지키던 아름답던 황금색 나뭇잎들이 무더기로 떨어져 글자 그대로 “낙엽의 장관”을 이루었다. 특히 우리 집 차고로 들어오는 길은 길이 하나도 안 보일 정도로 낙엽으로 덥혔다. 이들은 해가 다시 나오면 완전히 마르면서 바람에 휘날려 다 없어질 것이다. 그러면 완전한 겨울로 향하는 12월의 입구..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절의 시작이다. 천주교 달력에서는 이날이 새해의 시작이 된다. 11월 28일이다.

낙엽, 낙엽, 낙엽...

낙엽, 낙엽, 낙엽…

12월로 들어설 즈음이면 가끔 그리운 곡이 생각난다. 1960년대 말, 대학시절.. 멋진 가사에 매료되어 guitar로 따라 부르곤 하던 Duo Simon & Garfunkel의 rock version “I am a rock”이 그것이다. 그 대학시절, 가끔 지독한 고독 같은 것을 느끼곤 하면 이 노래를 자장가 삼아 들었다. 이 가사의 주인공이 내가 된 듯한 기분으로..특히 친구 유지호와 같이 부르던 것도 즐거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별명 “우중충” 유지호..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까..

 

I am a rock – Simon & Garfunkel

 

천안함 도발사건 이후 다시 이번에는 연평도 포격.. 정말 끝이 없다. 김정일이 “개XX”는 그 괴상하게 생긴 머리”통”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나중에 해부를 해서 히틀러와 비교해 볼 만하다. 촌스러운 북쪽 사투리로 “영쩜 영 미리메타라도 조국을 침범하는 원쑤들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북괴왕조의 방송을 들으면 이런 Shakespeare 희극이 역사상 더 있었으랴..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것들과 버금가게 웃기고 한심한 친구들이 바로 대한민국에도 “수두룩 닥상” 으로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금메달 깜은 소위 말하는 “친북 기독교 단체” 들이다. 이 사람들 과연 머리 속이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미국의 이간을 배격하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동족 형제”인 김정일을 사랑하라“고.. 허..여보세요.. 정신 좀 차리십시오.

11월도 어느덧 중순으로..

IKEA Tundra on living room
IKEA Tundra on living room

한달 넘어 질질 끌어오던 living room의 laminate flooring 일이 오늘 드디어 일단 끝이 났다. 7월 달에 처음 dining room으로 시작된 올해 home renovation project중의 하나다. 그 무덥던 7월 달에 처음 시작된 일이 오늘 우여곡절 끝에 두 번째 목표가 달성되었다. 이 clink-and-snap floor는 글자 그대로 아무런 fastener가 필요 없는 정말로 쉬운 것인데, 문제는 그것이 일단 말썽을 부리면 잘 들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 그런 문제점을 알게 되었지만 이번에 다시 알게 된 것은 그것은 나에게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IKEA Tundra 제품자체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이번에 다시 정성을 들여서 잘 맞추어 보니 신기하게도 다 잘 들어 맞았다. 힘든 일은 역시 boundary condition, transition같은 것이다. 정확히 치수를 재고 정확히 corner strip을 자르고..하는 것들.. 역시 나는 pro가 아니라 정말 힘든 작업이다. 거의 20년이 되어가는 퇴색해가던 carpet이 이렇게 반짝이는 hardwood floor로 바뀌니 우선 너무나 신선하고 깨끗한 느낌인데, 우리 집의 강아지 Tobey가 앞으로는 바닥이 미끄러워서 고양이 Izzie를 갑자기 ‘공격’하기가 조금 힘들어질 듯 하다.

Glorious neighborhood Fall color
Glorious neighborhood Fall color

빙점까지 내려갔던 날씨가 다시 평균기온으로 돌아왔고, 매일같이 아주 거의 정확하게 가을 평균기온을 유지하고, 나무들도 순조롭게 ‘가을 색’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곳에서 fall color라는 것을 한국에서는 그냥 단풍이 진다고 할 듯하다. 사실 단풍이란 것은 특별한 나무의 이름이 아닌가? 그러니까 fall color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오늘은 너무나 오랜만에 연숙과 같이 subdivision neighbor(동네)를 Tobey와 같이 산책을 하였다. 우리 subdivision은 언덕이 알맞게 있는 산책도로가 있는데 천천히 걸으면 20분 정도 걸린다. 차의 왕래도 아주 적어서 개를 산책시키기에는 정말 알맞은 코스인 것이다. 1992년 부터 이곳에 살았지만 사실 정기적인 산책을 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였다. 친구 명성이가 이곳에 잠깐 들렸을 때, 나에게 걷기를 거의 완강하게 권했다. 자기는 거의 매일 걷는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걷기는 했지만 습관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2007년부터는 거의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걷고 있다. 일주일에 두세 번 YMCA에 따로 가서 하는 운동과 이 걷기는 나에게는 유일한 건강보험인 것이다. 연숙은 언덕이 있는 것 때문에 걷기를 꺼려하는 편인데 앞으로는 자주 걷겠다고 한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그렇게 믿지는 못한다. 과거에도 그런 적이 있었으니까. 오늘 본 나무의 색깔은 너무나 찬란했다. 얼마 안 있으면 바람과 비로 인해서 다 떨어질 것이다. 아.. 찬란한 가을이여.. 조금만 더 머물다 가거라.

 

첫 빙점, 슬픈 하루, 501 Must-Read Books

아틀란타 지역에 올 들어 첫 영하의 날씨가 들이 닥쳤다. 평년보다 일주일이 빠르다고 한다. 하도 ‘요상’한 기후가 올해를 기록으로 올려 놓더니 이것 조차 그 중의 하나가 되려나. 오늘 낮에는 잠깐 눈 싸라기까지 내려서 계절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단풍도 깊이 들지 않았는데 이렇게 겨울의 맛을 보여 주는 것이다. 밖에서 한여름을 지낸 화분의 화초들을 부리나케 집안으로 옮겨 놓았다. 분명히 날씨는 다시 따듯해 질 것이지만 언제 다시 추워질지 모르는 계절이 아닌가? 작년의 겨울은 정말 추웠는데 올 겨울은 어떨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어제는 연숙이와 같이 하루 종일 우울한 날을 지냈다. 연숙과 가까이 지내던 성당 교우 최희상씨의 대학생 작은 아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청천벽력이라고 하던가? 사고가 난 것이 아니고, 급성 뇌막염이었다. 이병은 가끔 대학교 기숙사의 학생들에게 걸리는 고약한 것이고, 치사율이 정말 믿지 못할 정도로 높다. 거의 아주 급성으로 손을 쓰기도 전에 이런 날벼락을 맞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나 우리에게 가까운 곳까지 온 것이다. 아들을 잃은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우리는 그저 기도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성모님과 함께 슬픔에 잠겨있는 부모님을 위로해 주시라고 하느님께 기도를 할 수 밖에.. 인간은 이렇게 나약한 것일까..

501 Must
501 Must

우연히 Costco에서 501 MUST-READ BOOKSdiscount book을 하나 샀다. 나에겐 거의 보물같이 느껴지는 횡재였다. 이런 류의 책이 한국에서 나온 것은 그런대로 많이 기억이 나고, 아직도 몇 권은 아직도 가지고 있다. 이제는 거의 “고서”가 되어가고 있을 정도로 오래 된 것이지만.. 예를 들면 “역사를 움직인 100권의 철학책”, “오늘의 사상: 100인의 100권”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번의 책은 영어권에서 500권이 넘게 각 분야별로 뽑은 것인데, 영국에서 출간된 책이라는 것이 독특하다. 그러니까 조금은 “미국의 입장과 영향”에서 벗어난 것이다. 나의 희망은 이 책의 목록에서 내가 얼마나 ‘무식’하게 살았나 하는 것을 빨리 발견하고, 조금이나마 더 유식하게 살다 갔으면 하는 것이다.

도종환의 한 가을

깊은 가을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멈추어 있는 가을을 한 잎 두 잎 뽑아내며
저도 고요히 떨고 있는 바람의 손길을 보았어요

생명이 있는 것들은 꼭 한 번 이렇게 아름답게 불타는 날이
있다는 걸 알려 주며 천천히 고로쇠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만추의 불꽃을 보았어요

억새의 머릿결에 볼을 부비다 강물로 내려와 몸을 담그고는
무엇이 그리 좋은 지 깔깔댈 때마다 튀어 오르는 햇살의
비늘을 만져 보았어요

알곡을 다 내주고 편안히 서로 몸을 베고 누운 볏짚과
그루터기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향기로운 목소리를 들었어요

가장 많은 것들과 헤어지면서 헤어질 때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살며시 돌아눕는 산의 쿨럭이는 구릿빛 등을 보았어요

어쩌면 이런 가을 날 다시 오지 않으리란 예감에 까치발을 띠며
종종대는 저녁노을의 복숭아빛 볼을 보았어요

깊은 가을,

마애불의 흔적을 좇아 휘어져 내려가다 바위 속으로
스미는 가을 햇살을 따라가며 그대는 어느 산기슭
어느 벼랑에서 또 혼자 깊어가고 있는지요

- 도 종 환 -

늦가을

가을엔 모두들 제 빛깔로 깊어갑니다
가을엔 모두들 제 빛깔로 아름답습니다

지금 푸른 나무들은 겨울 지나 봄 여름 사철 푸르고
가장 짙은 빛깔로 자기 자리 지키고 선 나무들도

모두들 당당한 모습으로 산을 이루며 있습니다
목숨을 풀어 빛을 밝히는 억새풀 있어
들판도 비로소 가을입니다

피고 지고 피고 져도 또다시 태어날 살아야 할 이 땅
이토록 아름다운 강산 차마 이대로 두고 갈 수 없어
갈라진 이대로 둔 채 낙엽 한 장의 모습으로 사라져 갈 순 없어
몸이 타는 늦가을입니다.
- 도 종 환 -

 

한가을의 찬란함을..
한가을의 찬란함을..

도종환의 가을 시는 어찌 이리 아름다울까? 나의 가슴을 아련하게 가을의 추억과 전설로 물들이는 이 시들은 어쩌면 내가 감당하기 힘든 것들이다. 올해의 가을은 너무도 늦게 도착하고 느릿느릿하게 가고 있지만 그 빛깔들은 정말 한 해를 마음껏 정리라도 하듯 몸부림 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나의 집에서 나가는 길목에 있는 나무 하나는 밤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거의 야광에 가까운 색깔로 어두움을 밝힌다. 아~~ 전설과 추억의 가을이여.. 한껏 나에게 그 이야기를 남기고 가라. 영원히 사라질 2010년의 한가을이여..

 

가을비 우산 속에..

오늘은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하루 종일 에어컨이 한번도 들어오지 않은 그런 날이 되었다. 결국은 가을이 온 것이었다. 기온도 거의 화씨 15도나 떨어지고, 하루 종일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린 그런 날이었다. 1970 년대의 가수 최헌이 부른  “가을비 우산 속에” 를 생각하고, 부르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지나간 해들을 기억해 보면 아마도 2주 내에 central heating이 가동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본격적으로 “여름의 것”들을 치워야 하고 winterizing을 하여야 한다. 아~~ 세월의 흐름이여~~

오늘은 매월마다 돌아오는 이곳 한국천주교회의 “마리에타 2구역” 구역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돌아가며 각 구역 신자들의 가정에서 저녁을 같이 먹으며 친교를 하는 날인 것이다. 우리 부부는 비록 주일미사를 한국천주교회에서 하지는 않지만 이 구역모임에는 거의 정기적으로 참여를 하고 있다. 참여를 한지 아마도 벌써 5년 정도 되지 않았을까? 아주 큰 그룹이 아니지만 활동적인 비교적 착실한 구역에 속한다. 성서공부를 한지도 꽤 오래되었다. 나 개인으로 보면 이 구역모임에 나가면서 더 신앙적으로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최근 몇 번을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못나가게 되었지만, 역시 사람이 모인 곳이라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사랑”의 마음으로 극복을 해야겠지만 항상 쉬운 것은 아니다.

home office at the latest
home office at the latest

이제 드디어 나의 home office가 최소한 제 자리들을 잡았다. 역시 main desk는 다른 것들과 평행으로 놓아야 심리적으로 편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정말 해야 할 것은 다 끝나지 않았다. 서류와 computer 같은 hardware part를 정리하는 일이 남았다. 사실 이것이 골치 아픈 일이라, 계속 미루고 있지만 이제는 핑계가 없다. 하지만 일단 시작을 하면 생각보다는 쉬울지도 모른다. 모든 일들이 대개 이런 식이니까..

시간은 거침없이..

시간은 거침없이 흐른다.. 멀게만 느껴지던 Thanksgiving이 바로 일주일 후로 왔으니..  하지만 이번의 휴일은 정말 처음으로 가족 전부가 모이지 않은 휴일로는 처음이다.  다른 가족들 보다는 늦게 이런 날이 온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조금은 느낌이 많이 든다.  역시 ‘시간’이 흘렀구나.. 하는 그런 기분.  무엇을 하며 휴일을 맞고 보내야 할지는 정말 정말 생각이 안 선다.  사실 요새는 일요일 성당 가는 것을 제외하곤 요일 감각이 많이 많이 둔해졌다.  월요일은 조금 긴장이 되는 정도.. 그래도 토요일은 그 중에서 조금 편안하다고 할까.. 이런 것들이 벌써 몇 년이 되어가는 stay-home status 때문일 거다.  처음 보다는 많이 ‘편안’해 졌다고 할까.. 하지만 느낌은 절대로 편안하진 않다.

아주 따뜻한 기온에서 거의 빙점으로 떨어지면서 바람이 부는 그런 날씨.. 나는 참 좋아한다.  무언가 집안이 그렇게 평화롭게 느껴질 수가 없다.  그렇게 기록적으로 덥던 날씨를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지금부터는 ‘최고’의 계절.. Tobey 토비와 매일 동네를 걸으며 자연을 변화를 스쳐가며 하느님을 느끼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새는 많이 하느님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드는 기분이다.  조금 조금씩 자연스럽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오늘은 연숙이 그 동안 말해 왔던.. (car) drive를 할 예정이다.  올해는 그렇게 단풍 드라이브를 언급하던 그녀.. 나는 유난히 무심하게 듣기만 했는데.. 이번에도 무심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단풍이 훨씬 더 좋고 편안하게 느껴지지만.. 오늘은 한번 가야 할 듯 하다.

묵주기도로 시작된 ‘평화로의 여정’.. 길고 긴 여정이지만 그런대로 ‘평화’를 조금씩 느껴간다.  이게 진짜 평화인가..  정말 해야 할 할 일은 계속 미루고 있지만 최소한 노력은 하고 있다.  슬픔과 기쁨이 교차될 정도로 ‘작은 기쁨’도 얻어가고 있다.  성모님이 보아주시나.. 엄마가 보아 주시나..나는 확실히 묵주기도의 사랑을 느끼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긴 여정이 큰 시련이 없이 계속되기를 원죄 없으신 성모님과 엄마에게 기도를 한다.  이런 ‘작은’기쁨이 쌓이면 큰 기쁨이 되지 않을까..

아직도 X10 stuff에서 헤매고 있다.  간신히 간신히 연숙의 간단한 목공일들은 끝이 난 상태지만 그 많은 짐들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모든 게 차고로 가야하고.. 차고는 다시 차오르고.. 결국은 organize를 더 해야 하고 밖에 무언가 storage structure가 있어야 한다.  그게 해답이다.  그걸 못하고 있다.  조잡하나마 무언가 shelter structure를 지어야 한다.  그걸 거의 1년째 못하고 있다.. 해야 한다.  해야 한다.. 해야 한다..  차고만 잘 정리가 되면 무언가 달라질 것이다.  차가 들어오고.. 나의 ‘cold’ lab이 생기고.. 모든 server들이 그곳에서 돌며..  와..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좋을까.. 무겁고 버릴수 없는 책과 서류들은 보이는 열린 서가에 진열하고.. 잡동사니들은 모두 깨끗한 container에 넣어 진열하고.. 그게 그게 나의 소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