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nostalgia, 노스탤지어1, 향수(鄕愁).. 사전2을 보면 이것의 뜻은 ‘고향을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또는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 정도가 된다. 그렇게 힘든 뜻이 절대로 아닌 것이 누구나 이런 감정을 느꼈을 것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내가 ‘애독’하는 New York Times, the 신문에 ‘향수, nostalgia에도 과연 바람직한 것이 있는가?‘ 란 제목의 기사가 나의 눈을 끌었다. 이 제목을 보면 우선 향수란 것은 원래 ‘바람직하지 않은 것’ 으로 암시가 되어있고 그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향수, nostalgia란 용어는 의학적인 것도 있어서, 이것은 분명히 disorder (장애 障碍) 에 속하고 따라서 그에 따르는 ‘고통’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의 어원은 ‘망향심 望鄕心’의 그리스어 nostos와 고통이라는 뜻의 algos가 합성된 말로서 17세기 어떤 스위스 의사가 ‘전쟁 중에 떠나온 고향을 그리는 군인들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의 병’ 을 뜻하는 말로 시작이 되었다고 했고, 이후로 이 ‘병’은 부정적인 뜻으로 이해되고 쓰이고 있다.

향수(병) 연구 Constantine Sedikides

향수(병) 연구
Constantine Sedikides

이 기사의 ‘주인공’은 영국에 사는 그리스(희랍)계 (사회)심리학 교수 콘스탄틴 세디키데스 (Constantine Sedikides, University of Southampton, U.K., Ph.D Ohio State University, 1988) 인데, 그리스에서 대학을 졸업, 곧바로 미국 유학으로 사회심리학으로 연구를 계속, 현재는 영국의 University of Southampton에 재직하고 있는 사회심리학계의 권위자이다. 이런 배경이면 젊었던 시절을 포함해서 고향을 두 번씩이나 떠난 셈이고, 고향의 그리움을 분명히 느꼈을 것이고, 그것을 사회심리학적으로 파헤쳐보고 싶었을 것이다. 어느 날 고향 생각에 빠진 그를 보고 주위에서는 ‘우울증’으로 우려를 했지만, 그는 사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고 그가 느낀 것은 ‘고통적, 병적’인 것이 아닌 ‘포근함, 심지어 즐거움’에 가까운 것들이었고, 과연 고향과 지나온 과거가 앞으로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향수(병)이라 것은 꼭 부정적인 것인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과연 향수(병)이 과거에 짓눌려 살아야 하는 고통인가 아니면 현재와 미래를 사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주인공 자신의 느낌으로 출발된 이 문제는 본격적으로 ‘학문적, 통계적’으로 10년 이상 연구가 되어서 그 결실을 맺고 있다고 한다. 처음에 그가 이런 향수(병)에 걸렸을 때, 그가 느낀 것은 ‘이런 향수적 감정은 내 존재의 뿌리와 연속성을 느끼게 해 주고, 내 자신과 주변과의 관계도 긍정적으로 보게 해 주었으며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 였는데.. 과연 나만 그런 것일까.. 하는 선에서 출발을 했다고 한다. 연구의 결과는 그가 느낀 그대로였다. 그 골자는:

향수적 감정은 고독과 지루함, 불안함과 맞서 싸우는 힘이 된다는 것이고 나아가서 자신을 더 관대하고, 포용적이고 더욱 참게하며 특히 부부들은 공통된 향수, 기억 감정을 나누며 더욱 가까움을 느끼게 한다. 특히 춥고 을씨년스러운 날, 이 감정은 글자 그대로 우리를 훈훈하게 해 준다. 물론 고통스럽던 기억도 동반하겠지만 전체적으로 봐서 이 향수감정은 우리의 인생을 더 의미 있게 보게 하고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죽음도 덜 무섭게 느끼게 한다.

 이 향수(병)이란 것은 지역적, 연령적 차이가 거의 없이 또한 생각보다 더욱 자주 겪게 된다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다. 예전, 특히 19, 20세기에는 이 감정(‘병’)이 실향민, 이민자들이 특히 많이 겪는 ‘이상 증세’라고 분류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결과로는 이것은 ‘누구나’ 겪는 훨씬 보편성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친구, 가족, 명절 휴일들, 결혼, 노래, 석양, 호수.. 등등의 추억으로 더욱 나타나고 특히 그것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은 항상 ‘좋은 주인공’의 역할을 했다고 기억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 이상 이런 경험을 하고, 거의 반수 이상이 일주일에 3~4번 겪는다고 한다. 특히 고독을 겪는 사람이 더 자주 겪는데, ‘향수 감정’이 그런 고독과 우울의 고통을 덜어 주며 그런 데서 빨리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이 연구 결과로 향수가 그렇게 ‘좋은 면’도 있다면, 이것을 의도적으로,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는 없을까? 가장 빠른 방법 중에는 추억의 음악을 듣는 것이 있고 이것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고 하며 정말로 이 ‘추억의 음악’ 효과는 대단해서 실제로 몸 자체가 따뜻해 진다고 한다. 간혹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하게 되면 ‘인생의 연속성’이 끊어지는 위험도 없지 않지만 거의 대부분 오히려 과거와 현재,미래를 더욱 더 연결시켜주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연구 팀의 일원인 Dr. Routledge는 “향수 감정은 우리의 ‘실존 감’에 탁월한 도움을 준다. 내가 아끼는 귀중한 추억을 불러 일으키며 그것이 우리가 의미 있는 생을 보내는 값진 한 사람 임도 일깨워 준다. 또한 많은 향수 감정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감정도 잘 처리한다.” 고 보고를 했다.

 다른 흥미로운 것은 이 ‘향수 감정’의 빈도나 심도는 젊은이에게 크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떨어지다가 다시 올라간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젊은이들의 경우, 새로운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그 이전의 시절을 회상, 음미하며 건강한 변화를 추구하며, 가족과 보냈던 크리스마스, 애완 동물과 학교 친구들을 그리워한다. 이럴 때 바람직한 것은 좋은 추억거리가 많을 수록 좋고, 이것은 거꾸로 살아가며 좋은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런 향수 감정을 잘 ‘이용’하려면, 가급적 기억 속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를 하며, ‘그때가 좋았지.. ‘하는 ‘함정’을 피해야 한다고 한다. 그 대신, ‘존재적인 방법’으로 그 때의 일들이 나의 현재에 어떤 의미를 주었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곳에서도 극단적인 것만 피하면 ‘추억 향수의 감정’을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무슨 병적인 노이로제나 극단적 성향만 없다면 이런 향수적 감정은 ‘적극적’으로 즐기는 것, 일주일에 2~3번 정도 빠지는 것도 좋고, 이것을 우리가 경험으로 번 값진 상품이라는 것도 기억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이다.

 이런 기사를 읽으며 나는 또 한번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몇 년 전에 이런 ‘we didn’t know then..‘ 류의 ‘연구 보고기사’ 중에 ‘내성적인 사람들의 시대’ 란 조금 걸맞지 않은 제목도 있었고 나는 ‘신나게, 열심히’ 읽었다. 내가 내성적인 사람 중의 ‘대표’이기에 그랬을까? 생각보다 더 많았던 ‘동료 내성적 인간’들을 알고 흐뭇해 하기도 했지만, 진정한 내성의 장점도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사회 심리학’적인 것들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지역간에도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그런 변화는 큰 것이 못 된다. 한마디로 인간은 대개 ‘공평’하다고 할까.. 그런 보편적 경험적 진리를 확인하는 계기도 되었다.

그러면 지금 이 기사를 읽으며 나는 무엇을 생각할까? 이것도 ‘안도감’이었다. 일방적인 사회적 압박에 못 이겨 ‘나는 향수 감정 같은 것 별로 없다’ 하며 살고 싶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다. 과거에 매달리는 ‘현재가 불행한 한심한 인간’이란 딱지를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솔직이 말하면, 나는 위의 연구 결과에 있듯이 일 주일에 몇 번씩이고 그런 감정을 느끼고, 어떨 때는 즐기고 산다. 그렇다고 나의 현재가 과거에 비해서 덜 행복하거나 심지어 비참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연구 보고와 같이 나는 조금 우울해지면 ‘일부러, 자연적으로’ 향수 감정을 이용하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 자신 성격의 일부가 된 것 같다. 그런 ‘추억적 행복’도 없다면 아마도 위의 연구결과에도 있듯이 괴로운 감정을 더 느끼며 살았는지 누가 알랴?

 그러면서 나의 blog을 찬찬히 뒤돌아 보면, 역시 나는 ‘과거의 좋은 추억’들을 적극적으로 총동원한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현재를 더 의미 있게 ‘견디는’ 영양제가 된 것일까? 주변의 어떤 ‘골프를 미치도록 좋아하는’ 친지에게 물어보면 대답은 ‘왜 과거에 집착을 하느냐?‘ 라는 간단한 반응이다. 과연 그는 그의 ‘아름다운 추억’을 즐기지 않는 것일까? 그런 맥락에서 보면 나는 조금 평균이상으로 ‘향수 감정’을 겪고 있고, 그것으로 나의 ‘아픔’을 잊으며, 그것이 현재를 더 건강하게 살고 미래를 준비하는 원천이 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1. 어차피 원어 발음이 힘들면 간단하게 그냥 노스탈자 하면 더 좋지 않을까?
  2. 네이버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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