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 Blog: 김인호의 조갑제 컬럼 2

시대사조(時代思潮) 탁류에서 우리의 선택은..

2013.07.15

시대사조(時代思潮) 탁류에서 우리의 선택은 양자역학(量子力學)에서는 원자레벨 이하에서는 확정적 질서가 아닌 다만 하나의 패턴을 갖기 때문에 거기에서의 관계는 단지 확률로서만 얘기될 수 있다고 전한다.

 

김인호 교수
김인호 명예교수

선의의 거짓말(a good lie)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쓰이곤 한다.

사람에 따라서 거짓말은 절대적으로 나쁜 것이기에 선의의 거짓말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다수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유익을 가져오거나 적어도 불이익을 가져오지 않는 한 거짓말이라도 선한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아예 거짓과 거짓말을 전략・전술수단으로 활용하여 인간이 지닌 이해력과 판단력은 물론 양심을 마비시켜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옳음과 그름에 대한 인식을 헷갈리게 하여 공산주의 이념을 구현시키려고까지 한다.

 물론 이런 주장을 놓고,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옳은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는 상대주의(relativism)와 각자마다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다원주의(pluralism)가 현대를 풍미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상대주의와 다원주의에서의 주장과는 달리 거짓과 거짓말을 전술적・예술적으로 구사해 온 공산권은 이미 망하는 길로 접어든 북한만 남겨두고 모두 망했거나 사라진 사실을 역사는 생생하게 전해준다.

 거짓과 거짓말 이외에도 동성애, 사형제도폐지, 안락사, 낙태, 피임, 수간 등등에 대해서도 서로 상충되는 무수히 많은 주의주장들이 세상에 난무하고 있다.

 상대주의 하에서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절대적으로 그른 것도 없다며 모든 게 다 수용되게 되다 보니 서로 상충․모순 된 것들도 동시에 공존하게 된다. 그리하여 상대주의가 지향하는 상호이해(相互理解)에 의한 공존(共存)은 일시적인 것으로 그치게 되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오히려 이견(異見)과 반목(反目)과 투쟁(鬪爭)과 전쟁(戰爭)을 불가피하게 만들 수 있다.

 

상대주의와 더불어 현대를 풍미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상으로는 본능(instinct)과 무의식(the unconscious)을 강조하는 프로이트주의(Freudianism), 창조(creation)론 보다는 진화(evolution)설을 강조하는 다윈주의(Darwinism),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정신 ․ 지적노동 보다는 육체적 노동을 절대시하는 마르크스주의(Marxism) 그리고 매사를 경험에 기초한 것이 아니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실증주의(empiricism)를 들 수 있다.

본능(instinct)을 중시하며 인간의 매사를 본능 특히 섹스와 결부시켜 설명하는 프로이트주의에서는‘Sex is beautiful’ 이 라고 할 수준으로까지 인간을 타락시키는 논리를 제공해 주면서 전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은 물론 중・노년층까지도 심지어는 성직자들까지도 타락과 혼란에 빠뜨려 왔다. 이들은 인간이 지닌 숭고한 지적능력(intelligence)과 자유의지(free will)를 부정하며 오직 본능(instinct)만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펴면서 이런 입장에서 특이한 DNA 구조를 지닌 동성애자들을 애정 어린 눈으로 연민을 가지고 대해주고 이해해야 한다고 까지 항변한다.

여러 선진국에서는 대통령의 선거공약으로까지 등장할 정도이니 그 영향력이 어떠한가를 짐작할 수 있다.

진화설(evolutionary theory)에 의하면 단세포(單細胞)동물에서부터 진화하여 고등(高等)동물에까지 이르렀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화석들을 제시한다. 그런데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entropy: 흔히 무질서의 정도로 이해되며 변화능력의 역수 1/capacity to change를 말함) 법칙에 따르면 자연계 내에서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오직 고(高)수준의 질서에서 저(低)수준의 질서로 비대칭(非對稱)적으로 변해간다고 한다.

 그래서 진화설은 엔트로피법칙과 정반대(正反對)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늙으면 다시 젊어 질 수 없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는 엔트로피법칙에 대하여 그간 무수한 도전이 있었지만 이 엔트로피법칙은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반면에 그간 진화설에서 제시했던 근거들은 근거로서 불충분하다는 사실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이래 진화설을 주장한 다윈(Darwin)이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까지 추켜세우는 상황에서 진화설이 현재 우리의 사고(思考)에 얼마나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생각해 보면 끔직한 생각마저 든다.

 

무신(無信)과 물질(物質)절대주의를 표방하며 노동혁명을 통한 공산사회건설을 주장해 온 마르크스주의(Marxism)은 1980년대 후반 구 소련공산권 붕괴 이후 그 허구성과 반(反)역사성이 드러나 사라진 듯 해 보이지만 잠시 내면으로 갈아 앉아 있을 뿐 아직도 전 세계 어디서든 빈국(貧國)이나 미개발국(未開發國)에서는 물론 부국(富國)에서조차도 한(恨)을 지닌 사람들에겐 여전히 호소력 있는 사상으로 호시탐탐(虎視耽耽) 발을 붙이려 하고 있다. 특히 남북(南北)대치(對峙)관계에 있는 우리나라 국내 및 국외 여기저기에 현재 지역 (恨), 학력 한(恨), 혈연 한(恨)을 지닌 사람들이 널려있어 이로 인해 우리의 안보와 사회분위기가 대단히 불안정한 오늘이다.

또한 경험만을 강조하는 실증주의(empiricism)에서는 인간 오관의 한계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이 오직 경험만을 강조하는 입장인 듯하다. 예컨대 30만 헬츠(hertz)인 극초단파의 박쥐소리나 14 헬츠 미만의 태아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인간의 가청(可聽)영역, 자외선과 적외선을 감지 못하는 인간의 시각(視覺)영역, 냄새에 쉽게 중독되는 인간의 후각(嗅覺), 자극(puncture)인 매운(hot) 것을 맛(taste)으로 받아들이는 인간 미각(味覺)의 한계, 아주 찬 것을 뜨거운 것으로 느끼는 인간 촉각(觸覺)의 한계를 지니고 있는 오관을 통해 감지되고 인지된 것이라면 오관의 한계는 생각도 않고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실증주의가 아직도 현대과학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형상이다. 과학제일주의 세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의외로 엄청나다는 얘기다.

 

한편 르네상스(renaissance) 이래 인본주의(man-centered)에 의해 점진적으로 약화되어 오던 신본주의(God-centered)는 바야흐로 21세기 초에 이르러 고도화된 자본주의(capital-centered)앞에서는 완전히 죽어버린 듯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아무도 하느님과 재물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No one can serve two masters You cannot serve both God and money)’는 성서의 말씀을 생명으로 삼아야 하는 교회주변에서조차도 돈의 위력으로 인해 참다운 교회를 갈구하는 이들을 당황케 하며 실망과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그리고 그 수준은 지금 극에 달한 느낌이며 이러한 현상은 선 ․ 후발국을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듯하다.

 

절대의지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신본(神本)주의가 사라진 듯한 시대에는, 각 사람마다마다가 다르듯이 별별 다양한 많은 주의 ․ 주장들이 난무할 것임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당 한 구석에 서있는 감나무가 꽃이 피는가 했더니 어느새 때가 되어 누런 감을 선사하고 겨울을 맞았다가 다시 새로 감꽃이 피는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또 오갈 데 없는 고양이 한 마리가 먹을 것을 챙겨주자 정착한지 얼마 지나 주어진 질서대로 새끼를 낳는 것을 보면서, 또 내년 이맘때 태양계에서 지구의 위치가 어디일 것이며 일식과 월식의 정확한 날짜와 시간이 언제라는 천문학에서의 예측을 미리 접하면서 우주의 온 만물이 오직 인간만을 제외하곤 모두가 각기 그 안에 투영되어 있는 절대자의 절대의지(絶對意志)를 한 치 한 획의 오차도 없이 철저하게 따르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단순 시스템(simple system)이 내보이는 비반복적(a-periodic), 비선형(non-linear)행동에 관심을 두는 카오스이론(chaos theory)과 불안정한 역동적 상황에서 복잡시스템(complex system)이 내보이는 단순한 행동패턴에 관심을 두는 복잡성과학(complexity sciences)이 등장한 20세기 중・후반 이후에도 자연계내의 질서는 뉴턴(Newton)이 이야기하듯이 기계적 메커니즘처럼 확정적(deterministic)인 것이 아니고 무질서한 것도 내포하고 있는 듯한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대형 컴퓨터의 도움으로 우리에게 무질서해 보이는 현상에도 엄존하는 확정적 질서가 존재함을 알게 해주었다. 다만 뉴턴 세계에서의 선형(線形)의 질서가 아니고 비선형(非線型)의 확정적 질서임을 전해주면서 말이다.

 

한편 양자역학(量子力學)에서는 원자레벨 이하에서는 확정적 질서가 아닌 다만 하나의 패턴을 갖기 때문에 거기에서의 관계는 단지 확률로서만 얘기될 수 있다고 전한다. 뿐만 아니라 어떤 현상을 측정하려 할 때 원자레벨 이하에서는 위치(position)와 질량(mass)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한 측정을 전제로 이론화를 지향하는 실증주의(empiricism)는 한계를 맞게 되었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21c 들어 양자역학의 가설이 부정되는 실험이 나오면서 자연계 내에는 확정적 질서로 이루어져있음을 믿게 해주고 있다.

또 한편에선 양성(兩性)에 의한 생명탄생의 절대적 질서대신에 DNA복제에 의한 단성(單性)생명탄생을 이룬 최근의 쾌거를 들어 과학주의(科學主義)의 승리를 예견하는 메시지도 전해준다. 그런데 보다 더 최근의 정보에 따르면 그렇게 복제된 생명체에는 노화(老化)를 늦추는 물질만은 절대로 통제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 동안 생겨난 모든 복제생명체는 노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얼마 동안밖에 살지 못하고 다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2005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배아세포줄기의 조작논란은 차치하더라도 하나의 맞춤형 배아줄기를 얻으려면 최선의 경우일지라도 최소한 8명 이상의 난자가 요구될 뿐만 아니라 배아줄기세포의 분열을 제어하는 방법과 기술이 아직은 전혀 없기 때문에 어떤 부작용과 반대급부를 치러야 할지 모른다는 메시지가 경종을 울린다.

지력(intelligence)의 소유자이며 자유의지(free will)의 주체인 인간이 자연의 순리에 반하는 타락한 존재로 영원히 살까 봐, 생명나무(tree of life)에 이르는 길을 막기 위해 앞뒤로 번쩍거리는 불 칼을 하느님께서 세워 놓으셨다는 창세기(Genesis 3:24)의 말씀이 이토록 강하게 절감되어 온 적이 과거에 과연 언제 있었던가?

 

글 / 김인호 한양대 명예교수. 다이나믹 매니지먼트 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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