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주로 1980년대 책들, 그것도 거의 ‘대한민국’에서 출판된 책들만 꽂혀있는 bookshelf 가 우리 집에 하나 있다. 거의 ‘고서’에 가깝게 된 이 책들은 분명히 우리 주위의 어딘가에 항상 있었겠지만 나의 관심과 눈을 끈 것은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이 책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살 만한 책들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누구에게서 ‘선물’로 받은 몇 백 권인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책을 받았을까? 추억을 더듬어 보니 1990년 전후로 우리가 아틀란타에서 처음 살았던 Norcross 에 있는 Four Seasons 아파트 이웃에서 살았던 ‘선경 지상사원’의 wife가 영구귀국을 하면서 우리에게 준 것이었다. 그 집 아이들 (경윤이와 동생)과 우리 집 아이들이 어울리고, 그 집 wife는 알고 보니 나의 재동국민학교 동창 후배였고, 나의 서울 중앙고 57회 동창 박우윤의 친 동생 임도 알게 되기도 했다.

한글로 쓰인 책을 거의 잊고 살았던 시절에 이렇게 무더기로 얻은 책들, 나는 거의 못 읽고 살았지만 요새 들어서 하나 둘 씩 눈에 뜨이고 어떤 책은 나의 ‘필사’ 원본이 되기도 했다. 완전히 잊고 살았던 1980년대 이후의 조국과 그 냄새가 훈훈히 풍기는 고국문화의 정수인 책들, 이제 남은 시간에 하나 둘 씩 읽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오늘 우연히 발견한 책, 천경자 화백의 수필집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 선명하고 강렬한 색깔의 그림들과 글들, 이제는 이런 ‘여자’의 글들 나도 익숙해 졌다. 그 중에서도 ‘5월’이란 제목의 글을 읽고 ‘나에게도 5월에 얽힌 romance 가 있었지..’ 하는 아련한 추억을 찾기도 했다.

 


 

5월 – 천경자

 

라일락이 향기를 잃어 버린 밤이다. 장미가 부풀었던 가슴을 헤치고 이제 요염한 자세를 일으키는지 화사한 날개로 숨소리를 덮는 듯 짓눌러 오는 밤, 내 심장의 고동이 어둠 속에서 이따금 날개를 터는 십자매(十姉妹)의 동작과 더불어 호수의 파동처럼 주름을 잡는다.

고요하고 화려한 환상도 무너지고 시든 라일락의 영혼마저 증발하는 것 같은 쓸쓸한 5월의 밤이다.

이렇듯 식물성(植物性)의 생명들이 시들어 가고 또 새로운 생명을 노래도 하고…

5월의 생리(生理)는 슬픔과 환희를 한꺼번에 쏟아 놓는다. 이 밤도 가고픈 옛날의 논두렁 길에선 개구리들이 녹색의 소리로 울어대고 있을 것인데 덧없는 인생이 취한 내 가슴엔 이슬 같은 것이 괴고 있다.

5월은 인생에서 어떤 피하지 못할 인과(因果)를 지어 주는 것 같다. 지열(地熱)에 익은 포플라가 상기한 풋냄새를 피우고 태양의 직사(直射)를 받아 떨어뜨린 선명한 그림자에 바람이 깃들면 5월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알지 못할 5월의 회화(會話)에 귀를 기울이고 풀지 못할 인과에 마음을 태워야 한다.

나는 5월이 오면 옛날의 추억을 더듬어야 했고, 내일을 위해서 화필(畵筆)을 들어야 했다.

5월을 불러 누구나 다 아름답다고 한다. 꽃들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견주는 것도 5월이요, 신록들이 바람에 하늘거리는 것도 5월이고 보면 5월의 자연은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들은 여인들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그리고 눈물도 얼마나 괴이게 했는지 모른다.

옛날 젊은 시절 어느 5월에 나는 여인네들끼리 가족적으로 들놀이를 가는데 권함을 받아 바람을 쐬러 따라간 일이 있었다. 지금 같으면 소풍을 갔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무렵 나는 인생의 시련 같은 것을 단단히 믿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떤 인연의 줄기가 나의 운명 앞으로 뻗어왔다는 것도 알 수가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인네들 가운데는 인텔리 오뎅집 마담 형제 일행과 인생면에서 나와 비슷한 환경의 직업 여성인 Y양도 나처럼 ‘옵서버’ 격으로 얼굴을 내놓고 있었다.

나무 위로 무척이나 왕개미 떼가 올라가는 송림(松林)의 구릉(丘陵)이 목적지었던가 그들과 나는 거기에 올라가서 잡초가 무성한 어느 무덤 위에 앉았었다.

화제는 어느덧 막연한 사랑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나중엔 두 여인이 서로 제각기 자기가 사모한다는 것보다 상대의 이성(異性)이 자기를 사모하여 늘 전화가 걸려온다는 등 아베크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는 등의 이야기에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야기라기보다 자기 자랑을 하는 것으로 그들의 표정은 해당화처럼 활짝 피어 있는 것이었다. 여인들이 이야기에 꽃을 피우고 있던 상대방 주인공은 아마도 동일한 남성인 것 같았고 Y양의 것이 농도가 더 짙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뒤로 구릉을 내려와 논두렁에서 와글거리는 개구리를 수십 마리 잡아서 손수건에 싸 들었다.

그 후 그 개구리들은 나의 화재로서 희생이 되었지만 나는 지금도 그 여인네들의 대화가 잊혀지지 않고, 그때의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 얘기의 주인공은 나의 애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개구리에 대해서 나의 슬픔을 호소(呼訴)하고 싶지는 아니했지만 개구리들의 녹색의 울음 소리가 나의 심경을 한결 더 구슬프게 울려 주었다. 나는 어쩐지 5월이 오면 개구리의 울음 소리와 함께 마음이 설렌다.

그러나 나는 이 밤에 시든 라일락의 향기를 슬퍼만 할 수는 없다.

내일 아침이면 화사하게 피어났을 장미의 붉은 정열과 견주기 위해서 이 밤이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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