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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군사혁명, 1961년 5월

 

박정희와 광주, 5월 16일과 5월 18일.. 이번 주 desktop 달력에서 유난히 나의 눈에 들어오는 이 숫자들을 보며 과연 나에게 이 숫자들은 어떤 것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간단히 결론부터 말하면, 현시점에서 5.16이란 것, 역사 교과서적인 의미가 거의 사라진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나의 개인 역사에서 5.16 ‘군사혁명’ 은 심각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 비해서 5.18이란 숫자는 미안하게도 ‘아직까지’  footnote정도로만 느껴지고 있다.

1960년 4.19 학생혁명에 뒤이어, 1961년 당시 중학교 2학년 생의 눈과 생각으로 보고 겪었던 5.16 군사혁명의 사건은 그런대로 생생히, 뇌리에 정확히 남아 있지만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 평가는 반세기가 지난 이 시점까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진행형으로 남아있다. 학생시절과 비교적 유치한 청년시절에는 독재적, 군사적인 것들을 싫어했지만 그 이후 나이가 들면서 ‘무조건 싫어하는 것’을 서서히 싫어하게 되었다.

현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5.16은 달력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5.18은 ‘거창한 이름으로’ 보인다는 격세지감 隔世之感 뿐이다. 역사란 것이 ‘승자’의 기록이라면 분명히 5.16은 승자로부터 완전히 탈락하고,  패배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국사교과서를 보기 전에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이런 나의 판단은 크게 틀린 것이 아닐까?

나는 솔직히 5.18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나의 젊었던 신혼 시절 30대 초에 일어난 5.18 ‘광주사태’가 ‘민주항쟁’이란 말로 바뀐 것 조차 생소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잊고 살았던 것, 솔직히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광주사태가 일어났던 1980년 5월 18일 이전에 고국을 완전히 떠난 상태로 이 ‘비극적 사태’를 TV 뉴스로 접했던 것이 전부, 그것이 또한 내 변명의  전부다. 그 이후 오랜 세월 동안은 대한민국 정권이 바뀔 때마다 5.18이란 말이 간혹 뉴스로 등장하는 것 정도를 들었을 뿐, 세월은 강물처럼 흘렀다.

 1979년 10월 ‘대통령 유고 有故’ 이후 잠깐 맞았던 1980년 초 ‘서울의 봄’,  나는 그 해 1월에 서울에서 연숙과 결혼을 하고 곧 바로 먼저 미국으로 돌아와서 Ohio State University (Columbus, Ohio)에서 post graduate course 를 계속하고 있던 중,  ‘광주사태’ 뉴스를 듣게 되었다. 이곳 뉴스는 여과, 통제 없이 그대로 보도가 되어서 광주 시민이 죽는 ‘처참한 광경’을 모두 TV에서 보게 되었고 주위의 미국학생들도 ‘광주 광주’하면서 대한민국 정부의 ‘잔혹성’을  비난하는 comment를 하는 것도 들었다.

같은 과에서 친하게 지내던 육사출신 소령 유근호 형은 당시 다른 학생들로부터 군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무조건’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사실 그 형도 그 처참한 광경에 당황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역 소령의 입장으로 누구의 편도 들지 못했던 것, 나는 충분히 이해했고 심지어 가볍게 변호까지 하기도 했다. 사태의 ‘진상 眞像’을 자세히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편을 들 수는 없었지만 군사정권이 계속되는 것은 정말 싫었다.

억울하게 죽거나 다친 ‘학생, 시민들’의 목소리는 사실 그 동안 들을 기회가 없었고, 정권이 바뀌어 ‘공정한 신상 파악’을 하기 전까지는 그 ‘사건’은 그저 잊고 싶은 악몽이었다. 역사적 지역감정에 군사정권의 계속 존속은 사실 광주사태의 진상을 정확하게 밝히는 것, 희망적이 아니었고 세월이 흐르며 점차 잊고 살게 되었다.

문민정부의 등장, 특히 김대중, 노무현 등 급진 진보적 정권이 사건진상을 밝히며 역사를 바로 잡는 과정에서 민족여론의 화합 점 和合点 을 완전히 놓쳤고, 세월의 흐름으로 한때 군사정권을 혐오하던 세대들이 보수성향으로 진화를 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역적으로 갈린 데다가 세대적으로 완전히 분열이 된 것은 어떻게 보면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 어느 나라나 그런 성향은 있기 때문이고, 서로 의견이 다른 것을 인정하면 된다.

오랫동안 나는 광주사태에 김일성 살인 집단이 개입되었다는 ‘뜬 소문’ 을 못 들은 척하며 살았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나의 ‘안이하지만 이성적’ 인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듯한 ‘과격파’들, 끊임없이 할 일없는 장,노년층을 가르친다. 세대별로 완전히 갈라진 듯한 국론, 의견, 사상.. 도대체 ‘온건, 중간’이 없다. 그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빨갱이, 주사파, 김일성 이 모든 것, 진절머리가 나도록 증오하지만 그것이 문제의 전부가 아닐진대.. 어찌 그렇게들 열을 올리는가? 조금 ‘높은 곳’에서 보는 눈과 생각은 어디로 갔는가? 이래서 5.16과 5.18 사이에서 나는 아직도 고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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