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Max Planck, father of Quantum Physics

 

요새 나는 온통 이 흔해빠진 단어, ‘consciousness,  의식 意識’의 홍수에서 헤매며 사는 느낌이다.  어쩌면 이곳, 저곳, 그곳.. 나의 눈이 가는 곳마다 이 consciousness란 말이 보이는 것일까? 하기야 이것은 우문현답 愚問賢答 식으로 말하면 ‘나의 눈이 가는 곳마다 (대부분 책들) 그것이 보이니까, 아니 내가 그런 것을 내가 의식적으로 읽거나, 보거나 생각하고 있으니까’  정도가 아닐까?

무슨 큰 진리나 발견한 듯한 쾌감이 따라오는 이 최근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나는 ‘절망 뒤에는 반드시 다시 태양이 떠오르는’ 그런 ‘작은 은총’을 느낀다. 죽으란 법은 없는가.. 요사이 나의 ‘독서 관심’을 이쪽으로 이끌어주는 것, 나의 의식적 의지만은 아님을 어찌 내가 모르랴..

과학과 종교, 인간과 하느님, 보이는 현실과 초자연 세계를 연결해 주는 고리, 그것이 바로 consciousness라는 놀랍지만 생소한 idea가 이제는 ‘말이 된다’라는 경지까지 온 것, 그것이 나는 아직도 놀랍기만 하다.

20세기 초의 Quantum theory부터 시작해서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한 string theory, multiverse등이나 NDE (Near-Death Experiences)를 통해서 지나간 반세기 동안 그 동안 taboo처럼 취급되던 것들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드디어 big convergence (science & religion) 가 시작된 것인지는 몰라도 가히 흥미로운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끈질긴 materialistic mindset을 가지고 자란 나에게 종교적 신비적인 경험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영역이었지만 근래에 들어서 ‘가슴을 열고’ 본 ‘새로운 현실’은 아주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다.  온 우주가 의식적, 의식으로 가득 찬, 사랑의 시공간이라는 놀라움. 우리의 두뇌에 갇혀있는 포로로 알던 ‘의식’은 그 자체가 자체라는 사실 등등은 아무리 ‘영혼의 밤’ 속에서도 밝은 빛으로 나를 살려준다.

이런 모든 것들은 가히 ‘복음적’이 아닐 수 없다. 태어나면 죽어서 잊혀져야 하는 존재가 실제로는 ‘영원한 존재’라는 조심스러운 나의 희망적 염원이 서서히 실감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한 예수님의 복음 중 제일 큰 복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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