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dge Over Troubled Water

이 불후의 명곡, 1969년 truly classic oldie가 오늘 아침부터 내 가슴에 와 닿는  하루의 주제곡이 되었다. 대학 3~4학년에 걸쳐서 조잡한 big box stereo LP player 를 통해서 속 시원하게 큰 소리로 듣고 들었던 것, 당시 나에게 troubled water는 지금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지만 나름대로 느끼는 고통은 별 차이가 없었을 듯하다.

당시의 세계관이 기껏해야 발전적 공해 속, 최루탄 냄새의 서울거리에 불과했지만 머리 속은 항상 Life, Time magazine으로 보이는 세계, 특히 미국의 모습으로 살았기에 그곳으로부터 신기루 같은 희망으로,  20대에 갓 들어선 젊은 머리 속은 최소한 겉으로는 ‘언제나 행복하고 신나는’ 때였다. 그러니까…  보일 듯 말 듯한 희망으로 살았던 시절인데, 문제가 있다면 점점 코앞에 다가오는 졸업 후의  막막하고 깜깜한 허공이라고 할까… 그것이 당시의 troubled water라면 요새는 어떤가. 졸업은 몇 번이나 반복하며 했고, 심지어 지금은 인생의 졸업이 점점 다가오는 시점이 아닌가? 그렇다면 현재의 troubled water는 아마도 세상을 떠나는 과정, 고통 정도일 것이다. 여기에서 나의 Bridge와 Friend는 과연 무엇이고 누구인가?

수난의 시간들 묵상기도 마지막 시간 24시,  십자가에서 숨진 후 묻히신 아들 예수를 보는 어머니 마리아의 비탄…  이것과  현재 진행중인  나의 고통스런 생각들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생각하는 지난 밤… 무엇이 나를 이렇게도 괴롭히는 것일까, 왜 그럴까,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왜 이렇게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착각 속에 이즈음을 살아가는 것일까? 무슨 큰 죄를 지었는가, 아니면 나의 정신 건강에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어제 저녁 C형 그룹과 만난 이후 나는 다시 예의 상상적, 비관적 상념에 빠진 것인가?  이들과의 만남은 왜 가끔 나에게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추억하게끔 하는 것일까?

Cancel & Cancel… 오늘도 또 다른 cancel day가 되었다. 도대체 이것이 몇 번째인가? 오늘로 연기된 가족 성탄모임이 또 무산이 된 것이다. 이번에는 나라니가 감기에 걸려서 누워버린 것이다.  음식준비를 시작하려는 때에 이런 소식을 듣고 다시 손을 놓게 된 것인데, 이제는 이런 ‘행사 취소’에 익숙해져서 크게 이상할 것이 없고 다른 쪽으로는 ‘편한 시간’을 갖게 된 것 나쁘지 않다.

이런 연유로, 아직도 우리들은 가족 성탄 선물을 교환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 하게 될 것인지 이제 자신은 없지만 아마도 내일은 할 수 있지 않을까…

Three’s Company… 오늘 정오에 5년 역사의 ‘목요 그룹’ 3명이 간신히 해가 가기 전에 모일 수 있게 되었다. 작년 이즈음에 한일관에서 모였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오늘은 그 전처럼 저녁의 쓸쓸한 시간의 한일관이 아니고 L형의 store에서 모인 것이 이채롭다. 이렇게 낮에 이곳에서 모이면 전처럼 밤에 drive할 필요도 없고, 비싼 식당에 갈 필요도 없으니까 좋은 점도 있다.

오늘도 역시 우리의 막내,  S형제가 수고를 했는데…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에 잠깐 나와서 우리들 점심을 Chinese food 로 takeout 하고 게다가 선물이라고 Irish cream liqueur까지 우리에게 주었으니… 오늘 보니 점점 다른 모습을 보며 그에 대한 나의 오랜 생각이 조금씩 흔들림을 느낀다.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지만 혹시 이 친구와의 관계가 의외로 멋지게 끝을 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까지… 또한 현재 그의 사는 모습이 부러운 것도 없지 않은 것이니… 참 사람을 오래 살고 볼 일이다. 

McCORMICK IRISH CREAM LIQUEUR 의 맛이 의외로 포근하고 달콤하게 좋다.  작년에는 Canadian Mist 위스키를 준 것으로 즐거운 성탄을 보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오늘 의외로 또 이런 달콤한 ‘약한 술’을 우리에게 준 S형제, 솔직히, 진심으로 고마웠다. 이렇게 속이 따뜻한 사람인 것을 오늘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이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를 인정을 못하고 살았던 것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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