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1

 

차문경 車聞慶 은 남자를 배웅하지 않았다. 노여움과 수치심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그걸 참기 위해 애꿎은 잠옷깃만 잔뜩 움켜쥐고 있었다. 그 남자, 김혁주 또한 옷을 꿰고 넥타이까지 반듯하게 매는 동안 그 여자에게 한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으쓱하게 추스른 어깨와 머리카락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은 잘생긴 뒤통수는 얼굴보다 훨씬 풍부한 표정을 지니고 있어 그가 지금 얼마나 성이 나 있다는 걸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혁주는 끝내 문경에게 등을 돌린 채 방을 나갔다. 그의 침착한 발자국 소리가 철커덕 하는 현관문의 금속성을 끝으로 아주 안 들리게 되자 그 여자는 비로소 한 움큼 움켜쥐고 있던 잠옷깃을 놓았다. 빈약한 가슴이 드러났다. 그 여자는 서른다섯이었다. 현재 독신이었지만 한 번 결혼한 적이 있는 이혼녀였다. 자신에 관한 그 두 가지 기정사실이 별안간 손거스라미처럼 예민하게 그 여자의 의식을 불편하게 했다.

“별꼴이야.”

그 여자는 전혀 예기치 못한 자신의 마음의 이런 변화를 남의 일처럼 비웃으려고 했다. 그러나 까닭이 분명치 않은 쓸쓸한 낭패감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그 여자는 혁주와의 첫날밤을 은근히 기대하며 장만해 두었던 야하고 하늘하늘한 잠옷을 벗고 몸을 대강 씻은 다음 평상시의 검소한 잠옷으로 갈아입는 동안 아까 혁주가 그 여자를 외면했던 것만치나 철저하게 거울을 외면했다. 더는 불쾌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 여자가 정말 피하고 싶은 건 남자하고 자고 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능욕당한 것처럼 참담한 치욕감인지도 몰랐다.

혁주 역시 그 여자와 동갑인 서른다섯이었고 아내하고 사별한 홀아비였다. 대학동창인 그들이 오다가다 우연히 다신 만난 건 3년 전, 각각 비슷한 시기에 외로운 신세가 되고 난 지 얼마 안 돼서였다. 그 우연의 일치 때문에 그들은 그 만남에 우연 이상의 운명적인 걸 느꼈고 필요 이상 허둥댔던 것 같다. 심지어는 대학시절에 품었던 막연한 호감까지도 첫사랑이었다고 착각하고 싶어했다. 그들이 각각 다른 짝을 만났을 때 어렴풋이나마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아쉬워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랑한다고 먼저 말한 건 혁주였던가. 다시 만난 지 석 달도 안 돼서였다. 그러나 첫사랑이었다는 착각 때문에 말한 쪽에서도 받아들이는 쪽에서도 조금도 조급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결혼에 대해 먼저 말한 건 문경이였다. 예식 따위가 아니었다. 피차 한번씩 예식장에서 치르는 결혼식의 경험이 있는 몸이어서 그런지 두 번째 예식에 대해선 묘한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었다.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다. 그 여자가 분명히 해두고자 한 건 그런 형식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합치는 데 따른 적지 않은 구체적인 문제였다. 혁주는 홀어머니를 모신 장남이었고 죽은 아내와의 사이에 어린 딸을 두고 있었다. 혁주의 아내가 된다는 건 동시에 낳지 않은 딸의 어머니가 된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에 그 문제에 있어선 문경이 심각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혁주는 그 여자가 딸에 대해 시시콜콜 알고 싶어하는 걸 별고 달가와 하지 않았다. 어떻게 생긴 아이인가, 죽은 엄마를 어느만큼 기억하고 있나, 성질은 온순한가 활발한가, 명랑한가 우울한가, 체질은 건강한가 약질인가, 그 정도는 장차 엄마 노릇을 조금이라도 덜 서툴게 하기 위해 알아두고 싶었지만 혁주의 생각은 그게 아닌 듯했다. 그 여자가 그 애에 대해 알고 싶어할 적마다 눈살을 찌푸렸다.

“전실 자식 하나 있는 게 그렇게 마음에 걸려.”

이런 퉁명스러운 말로 핀잔을 줄 적도 있었다. 마치 문경이가 그 애를 눈엣가지로 여기고 있다는 말투였다. 문경이도 남자의 그런 오해에 관대하려고  애썼다. 콩쥐팥쥐, 장화홍련의 문화를 몸소 극복해야 하는 건 자신의 몫이고, 거기 대한 혁주의 두려움은 당연한 부정 父情으로 차라리 따습게 여기고 싶었다. 딸 문제 말고는 서로 거리낄 게 없었다. 시어머니도 모실 각오가 되어 있고 특히 각자 가지고 있는 집의 처리 문제에 이르러서는 둘 다 눈이 빛나고 신바람이 났다. 아아 서른 다섯에 다시 결혼을 한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혁주도 자수성가한 몸이었고 문경이도 지금 가지고 있는 작은 아파트를 위해 아이 낳기까지 미루어야 했던 고달픈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결혼과 동시에 집이 두 채가 돈다고 생각만 해도 갑자기 갑부가 된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양쪽 집을 한꺼번에 처분해서 더 큰 집을 장만한다고 생각해도 즐겁고, 문경이네 아파트를 세를 주어 그 돈을 알토란같이 불린다고 생각해도 더욱 고소했다. 시어머니가 정정하시고 또 살림을 주장하는 걸 큰 보람으로 아시니 문경이는 직장생활을 그대로 계속하는 게 좋을 거라는 건 이미 합의를 본 지 오래였다. 만사형통이었다. 이심전심으로 두 사람이 다 결혼식이란 절차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 않다는 것까지 안 이상 망설일 게 없었다.

거듭 말해두거니와 두 사람 다 건강했고 독신이었고 서른다섯이었다. 만난 지 석 달 만에 사랑한다고 말하고 곧이어 결혼 얘기를 서두른 조급한 갈망은 자연스러울지언정 나무랄 게 못 됐다. 실제적인 생활을 합치기 위한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서른다섯의 건강한 허기증을 위해서도 진작 두 사람은 합쳐져야 했다. 그럴 수 있는 기회를 3년씩이나 미룬 건 순전히 그 여자의 일방적인 속셈에 의해서였다. 사별이란 이혼을 당한 것과는 달라서 부부간의 정이 손상당하지 않고 남아있을 것 같았다. 남아 있는 정을 지우거나 밀어내는 역할보다는 희미해질 동안을 기다리고 싶었다. 상처한 지 1년도 안 돼 새 장가드는 남자도 없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런 남자는 생각만 해도 정이 떨어졌다. 그 여자는 혁주를 그렇게 정 떨어지는 남자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3년은 기다리는 게 망처에 대한 의리가 아닐까. 그 여자는 속으로 3년의 시한을 정해놓고 마치 결혼식 올리기 전엔 절대로 안 돼요 라고 죽자구나 순결을 고집하는 처녀처럼 철석같이 완고하게, 때로는 요령껏 부드럽게 남자의 안타까운 욕망을 거절하기도 하고 다독거리기도 했다. 그 여자 나름으로는 그렇게 하는 게 결혼식 못지 않은 의식이었고 최소한의 도덕이었다. 그러나 그런 속내를 혁주에게 말한 적은 없기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거부만 당하는 혁주는 몹시 언짢아했다. 때로는

“분수를 알고 비싸게 굴라구.”

하는 말로 빈정대기도 했다. 뒤집으면 곧바로 ‘네까짓 게 무슨 숫처녀라고…’하는 뜻이 되는지라 토라지고도 싶었지만 서른다섯의 이혼녀의 비위가 서른다섯의 건강한 홀아비의 참을성의 한계를 헤아려주지 못하면 누가 알아주나 싶어 어물쩡 흘려 듣곤 했다.

그 동안 그렇게 힘들게 서로의 갈망을 절제해 왔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더할 수 없이 만족스럽게 합칠 수가 있었다. 처음에 그 여자는 남자가 침대에 익숙지 못해 하는 것 같아 약간 신경이 쓰였지만 곧 이거야말로 내가 바라고 꿈꾼 행복이라는 거로구나 싶어 놓치고 싶지 않은 탐욕스런 기분이 되고 말았다. 너무 게걸스럽게 군 것 같아 일이 끝나자 그 여자는 심한 부끄러움을 탔다. 그리고 의당 남자에 의해 그 부끄러움이 위로 받기를 바랐다. 그러나 몸을 섞고 나서 남자의 입에서 떨어진 첫마디는 그게 아니었다.

“이런 무신경하고 뻔뻔스런 여자가 있나.”

무엇에 놀랐는지 남자는 질겁을 하면서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남자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침대머리 쪽 천정 밑에 늘어져 있는 작은 목제 십자고상이었다. 그 여자의 어머니의 유물이었다. 금가락지, 십팔금 목걸이, 자수정 브로치, 밍크 목도리 등 쏠쏠한 것들은 다 언니 올케들이 나누어 갖고 막내인 그 여자에게 돌아온 게 그거였다. 돌아왔다기보다는 아무도 안 갖길래 그 여자가 거두어 가졌고 어머니가 임종의 순간까지 경건한 기두를 바치던 거라 함부로 못하고 가장 높은 곳에 걸어 놓고 있었다. 어머니는 생전에 꽤 신심이 돈독한 가톨릭 신자였지만 자녀들에게 말로 영세를 권한 적은 없었다. 저절로 따른 자녀도 있고, 문경이처럼 끝내 모른 척한 자녀도 있었다. 어머니 같은 신심은 없었지만, 신심이 돈독한 동기간도 미처 거두지 않는 성물을 홀로 소중하게 지니고 있다는 걸로 어머니한테 은근히 뽐내고 싶은 유치한 자부심 같은 걸 가지고 있는 터였다. 그런 연유있는 십자고상을 혁주가 험악하게 노려보는 까닭을 그 여자가 알 리가 없었다.

“왜 그래요?”

“뭐? 왜 그래요라구? 여자가 남자를 침대에 끌어들이려면 저런 건 좀 미리 감춰 놓아야 하는 거 아냐.”

“뭐라구요. 누가 누굴 침대에 끌어들였다구요?”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난 신앙은 없지만 저런 걸 보면 경건해지는 정도의 양심은 있는 사람이라고. 저런 것이 내려다보는 데서 태연히 정사를 벌일 수 있는 당신만큼 뻔뻔스럽기가 못해.”

두 번째로 듣는 뻔뻔스럽다는 소리가 그 여자의 남은 기운을 입술도 달싹할 수 없게 빼버렸다. 그 여자가 고작 할 수 있는 저항은 무참히 흐트러진 잠옷깃을 황급히 수습해 잔뜩 움켜쥐고 있는 정도였다. 그것도 남자가 떠나기 전에 마음을 돌려 그 고약한 말버릇에 대해 사과를 하고 마지막으로 한번 부드럽게 다독거려줄 것을 전제로 한 몸짓에 불과했다. 그러나 남자는 일방적으로 노기등등함만을 과신한 채 떠나갔다.

전화소리가 났다. 혁주로부터였다.

“이제 막 집에 왔어. 아깐 미안했어. 너그럽게 봐주라. 그렇지만 그 정도는 센스의 문제 아냐. 지금 생각하니 사소한 문제 같지만 그땐 정말 기분 나빴어. 좋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기분이 망쳐진 게 더 화가 났던 거야. 안녕 잘 자.”

그 정도로 충분히 화해가 된 걸로 여긴 듯 혁주의 말꼬리는 한결 부드럽게 느슨해졌다. 그러나 그 여자에게 그 문제는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다. 혁주의 고약한 말버릇쯤은 사소한 문제로 돌릴 수 도 있었다. 본질적인 건 그게 아니지 않는가. 그 여자는 남자와 몸을 섞기 전에 십자고상이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도 못했지만 설사 의식했다고 해도 떼어서 안 보는 데다 감추고 그 짓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신의 눈길이 두렵기는커녕 신이 증인을 서주기를 바랄 만큼 그 여자는 그 짓에 떳떳했다. 그러나 혁주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그걸 치우지 않았다는 트집은 간단히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그의 무의식적인 죄책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여자는 두 사람 사이의 이런 중대한 착오에 모서리를 쳤다. 그리고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고 마침내 능욕당한 여자처럼 가냘프고 참담하게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그렇게 참고 바라고 꿈꾸던 행복이 능욕으로 변질해버린 게 억울했고 예기치 않게 말려든 착오의 중대성이 무서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곧 달콤하고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꿈도 없는 숙면이었다. 아무리 걱정스러운 일이 있어도 잠 하나는 잘 자는 건 그 여자의 버릇이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복이었다. 깊고 편안한 잠에서 깨어났을 때의 행복감을 만끽하기 위해 그 여자는 한껏 기지개를 켰다. 그 여자 스스로 한물 갔다고 생각한 몸 마디마디에 간밤에 혁주와 나눈 즐거움의 여운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다시는 외로움과 갈증에 허덕이지 않아도 된다. 이제 남은 것은 따뜻하고 오붓한 생활의 기쁨뿐이었다. 근심 없었던 어린 날에나 그랬을 것 같은, 무턱대고 행복한 예감을 주체 못해 그 여자는 두어 번 체중으로 침대의 탄력을 즐기고 나서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아직도 침대머리 높은 곳에 걸려 있는 십자고상이 얼핏 눈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젯밤 잠들기 전까지 그 여자를 괴롭힌 중대한 착오, 견디기 어려웠던 굴욕감이 아릿하게 되살아났다. 그러나 어젯밤만큼 심각하거나 절박하지는 않았다.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의 동통처럼 가물가물 견딜 만했다. 그 여자는 이미 혁주와 자신과의 사이의 중대한 착오를 규명하고 풀어 나가려는 노력보다는 혁주를 이해하고 관대하게 넘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혁주도 그 여자처럼 종교가 없으니 십자고상에 특별한 의미를 둘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사람이란 특정한 종교가 없이도 얼마든지 하나님이나 천지신명 등 초월적인 힘, 엄정한 시선을 의식할 계기는 있고, 혁주가 거기 걸린 성물을 처음 보고 나타낸 반응도 그럴 때 반사적으로 느끼는 두려움이나 겸손과 같은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어젯밤에도 거기까지는 양보를 할 수 있었던 같다. 실상 착오의 시작은 그 후부터였다.

어째서 나는 그 남자와의 사랑의 행위를 하나님이건 천지신명이건 그 밖의 어떤 절대적인 도덕성 앞에서도 떳떳한 걸로 여겼거늘 그 남자는 그다지도 죄의식을 느꼈을까. 자기만 죄의식을 느끼는 데 그치지 않고 내가 죄의식을 안 느끼는 걸 마치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문란한 여자 경멸하듯 몰아붙이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아아, 그만 그만…. 그 여자는 다시 어제의 착오점으로 돌아가려는 자신을 황급히 제어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행복감, 충족감을 그런 식으로 망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하기 나름으로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성행위에 수치심이 따르는 건 도덕 이전에 인간의 본능에 연유하고 있을 뿐이거늘, 윤리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데 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여자 쪽에서 필요 이상 당당하게 군 게 남자 눈에는 뻔뻔스럽게 비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 여자는 슬그머니 풀이 죽으면서 혁주가 정상이고 자기가 약한 비정상인 쪽으로 두 사람 사이의 착오의 심각성을 무마하려 들었다.

아침이 아닌가. 더구나 화창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중학교 가정 선생인 그 여자에게 일요일의 나태의 자유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여북해야 혁주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된 후에도 일요일날의 데이트는 피해 왔었다. 물론 혁주도 동의해서였지만 그가 일요일날 집에 붙어있어야 하는 까닭은 그 여자보다 실질적이고 눈물겨운 것이었다.

에미없는 어린 딸과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온종일 같이 있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홀아비의 그런 부성애가 그 여자의 가슴에 전에 없이 애달프게 사무쳐와서 혼자 먹는 아침 밥맛을 뜨악하게 했다.

창밖의 녹지대에선 벚꽃이 분분하게 지고, 그 여자의 아파트를 그런대로 살맛나게 하던 멀리 남한산까지 트인 전망은 심한 황사현상이 부옇게 가로막고 있었다.

혁주의 딸 이름은 시내라고 했던가. 혁주는 그 아이를 쫄쫄이라고도 불렀다.

“시냇물 흐르는 소린가요.”

그 여자는 한번도 보지 못한 그 아이의 별명을 재미있어 하면서 그렇게 물은 적이 있다.

“그러면 좋게요. 늘 쫄쫄 짜서요.”

편안한 아이는 아닌 것 같다. 혁주는 그 쫄쫄 짜는 아이를 온종일 무슨 수로 달래고 있는 것일까. 저녁때까지 전화가 다섯 번쯤 온 것 같았다. 한 통화만 친구한테서고 나머지는 다 올케하고 언니들로부터였다. 친정 동기간들은 늘 통화 중 아니면 수업중인 학교 전화를 피해 이렇게 일요일 날 안부전화를 넣는 것으로 혼자 사는 동생에 대한 우애와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으려 들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일요일 날 언니 집에라도 좀 오면 어디가 덧나냐?”

대뜸 이렇게 핀잔부터 주는 건 사위까지 본 큰 언니였다. 문득 혁주와의 일을 큰언니한테만은 말하고 싶어 목구멍이 근지러운 걸 억지로 참았다. 큰언니한테 뿐 아니라 전화가 올 때마다 그 여자는 너무 허둥대고 있었다. 그 여자는 이번 일요일은 딴 일요일과 다르길 바라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혁주일 것 같아서 가슴이 울렁거리곤 했다.

“나 좀 도와줘요. 우리 쫄쫄이하고 같이 놀아주지 않을래요?”

이런 식으로 그 여자가 완벽하게 비워놓은 일요일의 공백을 그들 부녀가 은근슬쩍 넘본다면 그 여자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런 만한 시기가 무르익었는데도 그러지 않는다는 건 갑갑한 노릇이었다.

일요일이 헛되게 저물고, 잘 울 것처럼 연약해 보이되 귀염성스러운 아이와 그 아이의 손목을 단단히 잡은 약간 낯설고 계면쩍어 뵈는 혁주와 공원이나 빵집 같은 데서 만날 수 있기를 체념해 버리자 역시 혁주가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룻밤 자고 나서 조급하게 변화를 바라는 자신에 비해 일상의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혁주가 보다 점잖고 믿음직스럽게 여겨졌다.

실상은 혁주나 그의 어린 딸이 보고 싶어 그 여자가 온종일 그렇게 조바심한 것은 아니었다. 어젯밤 십자고상에서 비롯된 그 개운치 못한 착오 때문에 품게 된 혁주의 인격에 대한 의혹과 불신을 두 사람이 합심해서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게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그 여자 일방적으로라도 혁주를 두둔하려 들었다. 하여튼 무가 뭐래도 그 여자가 내심 조바심하고 있다는 건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일주일 내내 어찌나 그 여자 혼자서 혁주를 두둔했던지 다시 토요일이 돌아왔을 때는 잘못은 그 여자에게만 있고 혁주에겐 아무 잘못도 없는 것으로 돼 있었다.

토요일 날 그 여자는 퇴근길에 꽃시장에 들러 서른다섯 송이의 장미꽃을 샀다. 진홍빛 장미였다.

“에라 모르겠다. 까짓거, 덤입니다.”

꽃 파는 아저씨는 몇 송이 장미를 더 얹어 주면서 이렇게 호기있게 외쳤다. 아마 한 푼의 에누리도 안 당하고 여러 송이의 장미를 팔고 나서 기분이 좋은 김에 선심을 쓰고 싶었던가 보다.

“아, 아니예요. 싫어요. 그만 두세요.”

그 여자는 어쩔 줄을 모르면서 아저씨의 선심을 거절했다. ‘나는 서른다섯 살 밖에 안 될 걸요’ 하마터면 그런 소리까지 나올 뻔하지 않았나 싶다. 덤을 받게 될까 봐 겁나서 종종걸음 치는 그 여자의 뒷모습을 꽃장수 아저씨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며 “뭐 저런 여자가 다 있어” 혀를 찼다.

집안 정리, 음식 준비는 금요일에 벌써 끝났는데도 그 여자의 마음은 괜히 부산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런 침착 치 못한 마음상태가 싫지 않았다. 이런 사람 사는 맛은 실로 얼마만인가.

그 여자는 둥근 백자 항아리에다 듬뿍 서른다섯 송이의 장미를 꽂아 침대머리 탁자에 장식했다. 서른다섯 송이의 장미는 서른다섯 살의 황홀과 참으로 잘 어울렸다. 그 여자는 눈을 사르르 감고 화려하고 달콤한 장미 향기를 깊이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 마침내 침대에 올라서서 발돋움하고 십자고상을 떼어냈다. 십자고상이라서가 아니라 어머니의 유물이어서 가슴이 찐했다. 그대로 서랍 속 깊숙이 간직하려다 말고 그 여자는 거기 매달린 사내의 발끝에 입술을 대었다. 그 여자보다 어린 서른세 살 나이에 죽은 사내의 발끝은 먼지 묻고 차가웠다. 그 여자는 나직하게 속삭였다.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제발 제발 이 행복을 놓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다시는 외로워지게 마옵소서.”

너희 어머니도 너를 위해 비슷한 기도를 수없이 바쳤느니라. 원망도 많이 했더랬지. 그렇지만 난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단다. 불쌍히 여기는 것밖에는. 못박힌 사내의 슬픈 얼굴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에, 우리 막내가 소박을 맞다니 내가 어떻게 기른 딸인데 소박떼기 신세가 되다니.”

크게 잘되거나 이름을 떨친 자식은 없어도 여러 자식들을 고스란히 길렀고 제각기 밥 걱정은 안하고 살 만하니 복 좋다는 소리도 듣던 어머니였다.  그러다가 막내가 덜컥 이혼을 당하니까 가슴을 치며 하던 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했다. 이혼당한 걸 하필이면 소박 맞았다고 하는 어머니의 푸념이 그때는 그렇게 듣기 싫더니만 지금은 뭉클하니 그리웠다.

혁주의 방문은 마치 아침에 출근했던 남편이 돌아오듯이 예사롭고 자연스러웠다.

“아이 배고파. 찌개 냄새가 구수한데.”

그러면서 식탁에 먼저 앉으려는 걸 그 여자 역시 몇 년 산 호랑이 마누라처럼 약간 눈을 부라리며 씻고 오라고 욕실로 쫓았다. 혁주는 그 여자의 음식솜씨를 적당히 칭찬해 주었고, 그 여자는 연방 생선가시를 발려서 혁주의 접시에 맛있는 살만 옮겨주었다. 배부르고 화기애애하게 저녁을 먹고 난 다음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았고 차를 마셨고 잠자리에 들었다. 저번 토요일날 밤에도 같은 순서로 일을 치루었지만 그때보다 모든 게 쉽고 편안했다. 같이 자기 전까지 서로 꼬박꼬박 존대말을 했었는데 같이 자고 난 직후부터 남자의 말이 일방적으로 반말로 바뀐 게 좀 껄끄럽게 드리던 것까지 오늘은 참아줄 만했다.

혁주의 널찍한 등은 달착지근한 피곤을 기대기에는 참으로 맞춤 했는데 그는 오래 누워 있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더니 양말짝부터 찾아 꿰었다.

“내일도 집에서 애나 볼 거예요?”

그 여자도 일어나 앉으면서 물었다.

“당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남자가 벌컥 화를 냈다.

“왜 그래요? 내가 뭘 잘못했어요?”

“몰라서 물어? 그 불쌍한 어린 것한테 샘을 내다니 당신은 그런 여잔줄 몰랐어.”

“내가 샘을 냈다고요?”

“그럼 그냥 비양거린 건가?”

“난 그냥, 나도 그 아이하고 일요일을 같이 보낼 수 있으면 해서 물어본 것뿐이데.”

그 여자의 말꼬리가 떨렸다. 물처럼 순종하던 몸도 빳빳하게 경직됐다.

또다시 참담한 심정으로 헤어지게 될 것 같은 예감 때문에 문경이의 표정은 차라리 비굴했다. 정말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일주일 내내 남자에 대해서보다는 아이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했건만 이 무슨 해괴한 트집이란 말인가. 야속한 생각으로 눈물이 그렁해진 그 여자를 보고 혁주도 주춤했다. 달래듯이 말했다.

“너무 서둘 거 없어.”

“내 딴에 마음속으로 그 아이를 오랫동안 길들여 왔기 때문에 서둔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드네요. 그것도 제 잘못인가요?”

“너무 따지지 마, 가뜩이나 복잡해 죽겠는데.”

“혹시 뭐 언짢은 일이라도 생겼나요?”

“언짢은 일 생길 거가 뭐 있어.”

혁주는 침대 곁을 떠나 창가에 놓인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담배갑을 꺼냈다.

“아니 혁주씨 담배 끊었다더니?”

“지금 처음 피는 거야. 오죽 답답해서 그렇겠어.”

“지금 처음 피는 사람이 담배갑을 넣고 다녀요?”

“따지지 마. 여자가 좀 대강 넘어가는 게 있어야지.”

그 여자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참아내기 위해, 대강 넘어가기 위해. 혁주는 맛있게 담배를 피우고 그 여자는 부엌으로 가서 작은 접시를 가져다 남자 곁에 대령했다. 다음 토요일쯤엔 어쩌면 이 남자의 발을 씻기게 될지도 몰라. 그래도 할 수 없지 뭐.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따지지 않을 테니 고민이 있으면 얘기해 줘요. 부부가 좋다는 게 뭐예요.”

“참 이렇게 뭘 모르는 사람 봤나. 바로 당신의 그 속 편한 게 내 고민거리란 말요.”

혁주가 두 손을 크게 벌리며 낭패스럽다는 뜻을 과장했다.

“모르면 가르쳐 줘야죠. 부부 간에, 뭘.”

“또 부부간, 당신은 부부가 된다는 걸 남자하고 자는 것만치나 쉽게 생각하는군.”

혁주가 씹어뱉듯이 말했다. 그 여자는 치욕감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또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결혼의 실패를 어머니나 동기간 친척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여자의 참을성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지 않았던가. 참아야지, 여자가 여자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그 소리가 낡은 유성기 판처럼 어지러운 잡음과 함께 그 여자의 귓전에서 반복해서 울렸다.

“그러니까 우린 아직 부부가 아니라는 얘기가 되겠군요.”

“현실이 증명하잖아. 나는 곧  돌아가서 쓸쓸한 홀아비 노릇을 하면서 다음 토요일이나 목 빠지게 기다릴 테지. 세상에 이렇게 사는 부부가 어디 있겠어?”

“그러니까 같이 살 준비를 하자는 거 아녜요. 시내하고 만나는 것을 서두르는 것도 그런 준비 중의 하난데 혁주씨는 어쩌면 그런 심한 말로…”

“미안 미안…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골치 아픈 일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그만 고약을 떨게 된다니까.”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해 줘요. 우리 사이의 골칫거리가 뭔지, 빙빙 돌리지만 말고요.”

“당신이 우리 시내한테 신경을 써주는 건 좋은데 노인네에 대해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그렇게 말하고 그 여자의 눈길을 슬쩍 피하는 혁주의 눈빛에 얼핏 교활한 게 스쳤다. 그러나 그 여자는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그걸 부정하려 들었다. 될 수 있는 대로 온화한 표정으로 혁주의 근심을 달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 시내 할머님에 대해서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분이야.”

“홀시어머님의 외며느리 노릇이 그럼 쉽겠어요. 어려울 건 각오하고 있어요.”

“그런 뜻이 아니라 우리가 정식으로 부부가 됐다는 걸 어머니에게 납득시키기가 어렵다는 뜻이요.”

“결혼식 때문인가요. 그런 의식은 생략하자고 한 건 당신이 먼저였고 나도 다시 면사포 쓰는 건 쑥스러워 동의했지만, 그 어른이 원하신다면 해도 나는 상관없어요.”

“그게 아니라 어머니가 한 번 결혼했던 여자를 당신 며느리나, 시내 새엄마로 받아들이시도록 설득한 자신이 나에겐 도무지 없단 말이요. 알아듣겠소?”

혁주가 천천히 다가와 그 여자 옆에 앉더니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말했다. 어려운 말을 해버린 안도감으로 혁주의 표정이 무책임하고 편안해졌다.

“못 알아듣겠어요.”

그 여자는 도리질을 하면서 바보처럼 말했고 혁주는 “쯧쯧 바보같이…” 하면서 더욱 다정하게 여자를 보듬어 안았다.

“왜 그런 말을 이제야 하는 거죠? 그런 중대한 사실을…”

그 여자의 얼굴이 생전 처음 보는 난감한 시험문제를 받아 든 국민학교 아이처럼 천진한 울상이 되었다.

“내가 말 안 해도 그 정도는 당신도 짐작할 수 있었던 거 아뇨.”

“나는 한번도 그분을 뵌 적이 없고 혁주씨도 그렇게 어려운 분이란 걸 말해준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런 짐작을 해요? 말도 안 돼요.”

“당신은 마치 우리 어머니를 특별히 무서운 분처럼 말하는데 보통 분이야. 왜 있잖아. 가장 한국적인 어머니. 아들이 상처하고 3년씩이나 혼자 사는 것도 열부 烈夫 났다고 비꼬셨는데 한번 결혼했던 여자한테 장가를 든다면 얼마나 노발대발하시겠어. 아마 그렇게 귀여워하시던 손녀딸도 알뜰하게 주장하던 살림도 다 내팽개치고 당장 집을 나가시겠다고 소동을 부리실 분이야. 내 나이 겨우 서른다섯이야. 처녀장가들이고 싶어하는 건 보통 어머니의 인지상정이야.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다 된 결혼인 줄 알고 태평으로 있으니 그 동안 새중간에서 내 속이 얼마나 탔겠어.”

“어미니 핑계 대지 말아요.”

그 여자는 혁주로부터 떨어져 앉으면서 메마른 소리로 말했다.

“그건 오해야.”

“오해가 아녜요. 이제 보니 당신은 어머니하고 상의를 하고 나서 반대에 부딪힌 게 아니라, 어머니가 반대하리라는 걸 미리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분의 반대는 움직일 수 없는 기정사실이고 혁주씨는 처음부터 자신의 결혼 문제에 대한 독자적인 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혁주씨는 정식 결혼생활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에게 남은 문제는 실질적인 결혼밖에 없는 것처럼 말해왔어요. 당신이야말로 여자하고 자는 걸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네요.”

“그런 문제에 보다 신중해야 하는 건 남자보다 여자쪽 아닌가? 뭐니뭐니해도…”

혁주쪽에서 점점 더 능청스럽게 굴었다. 어려운 말을 꺼내기 전까지가 힘들었지 꺼내고 나서부터는 자신감마저 넘쳐 보였다.

“혁주씨가 안 그래도 내가 얼마나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 것 같아요. 더 분명한 잘못은 남자의 서른다섯을 자신의 배우자에 대해 독자적인 결정권쯤 가질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한 거죠.”

“제발 세상이 다 끝장난 것 같은 얼굴 하지 말아요. 갈수록 태산인 내 입장도 좀 이해해 달라 이거지. 아직도 희망은 있으니까.”

혁주는 이런 아리숭한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 여자는 현관문 밖까지 배웅하면서 좀더 희망적인 말을 기대했고 그냥 가버린 후에는 전화 걸어주기를 기다리느라 자정이 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여자는 결혼식 올리기 전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신랑감에게 몸을 주는 게 아니라는 진부한 금과옥조가 처녀도 아닌 서른다섯의 이혼녀에게도 영락없이 들어맞은 것에 그 여자는 굴욕감을 느꼈다. 그러나 결코 혁주가 악의적으로 계획해서 일이 그렇게 된 건 아니었다. 혁주도 그렇게 나쁜 남자는 아니었다. 다만 일이 공교롭게 되느라 혁주가 그 여자하고 결혼하는 걸 크게 손해 보는 것처럼 느낄 만한 사건이 지난 일주일 동안에 연달아 일어났을 뿐이다.

혁주의 어머니 황여사 또한 남보다 더 괴팍하지도 특별히 욕심이 많지도 않은 보통의 갓 환갑을 지난 노인이었다. 아직은 노인 소리가 가당치 않게 모양도 낼 줄 알았고, 지병 持病도 없었지만 외아들이 상처하는 꼴 보랴, 그 뒤 여지껏 에미 없는 손녀딸 뒷바라지 하랴, 홀아비 를 수발하랴,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그래도 온 집안이 번들번들하게 살림을 해내는 걸 보고 친구나 친척들은 한결같이 그의 건강을 치하했고, 그때마다 “속으로는 골병 다 들은 걸”하고 대답하곤 했었다. 물론 어서 아들 장가 들이지 않고 왜 그 고생을 하느냐는 소리를 더 많이 들었고, 그런 소리를 들을 적마다 마치 자기가 살림이 놓기 싫어 일부러 홀아비 아들을 붙들고 잇는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한 황여사였다. 그러나 3년이나 지나거든 재혼 생각을 하겠다고 혁주가 하도 딱 부러지게 말하는 바람에 꾹 참고 있었다. 아들이 상처한 지 석 달도 안 돼서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혼처를 3년씩이나 거절하기도 하고 미루기도 하고 놓치기도 하고 기다렸다면 황여사도 어지간히 참을성 있고 무던한 편이었다.

황여사가 그렇게 쌓인 혼처 중에서 아직도 유효한 혼처 몇 군데를 한꺼번에 아들 앞에 펼쳐놓은 게 지난주였던 것이다. 죽은 며느리의 세 번째 제사를 절에 가서 지내고 온 지 며칠 안 돼서였다. 하필이면 혁주가 문경이하고 처음으로 하룻밤을 지내고 나서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통고하고 문경이를 집으로 데려오는 절차를 의논하고 싶어 어머니 눈치를 볼 무렵이었다. 운수 나쁘게도 특히 문경에게 운수 나쁘게도 재혼 말을 먼저 꺼낸 게 황여사였다. 어머니쪽에서 먼저 재혼 말이 나왔더라도 신부감이 뉘집 자식이고 몇 살에다 어느 대학을 나오고 하는 식의 구체적인 인적 사항에 곁들인 사진까지 나오기 전에 문경이 얘기를 꺼낼 짬은 얼마든지 있었다. 어머니가 먼저 재혼얘기를 꺼낸 김에 되레 쉽게 벌써 정해놓은 여자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었으련만 혁주는 그만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 여자들이 다 처녀들일까요? 정말 처녀들이 후처자리로 오겠단데요?”

그때까지만 해도 다만 호기심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럼 가짜 처녈까. 네 나이 겨우 서른다섯이야. 처녀장가 드는 게 당연해. 시내만 안 딸렸으면 더 어린 혼처도 들어올 텐데 전실애가 있다고 맨 올드미스만 들어와서 에민 좀 섭섭하다.”

이렇게 되니 동갑나기 이혼녀 얘기를 꺼내기가 난처해졌고, 마음속으로도 점점 이혼녀가 뜨악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됐던 것뿐이지 혁주가 처음부터 문경이를 재미나 보고 차버릴 수 있는 여자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십자고상을 보고 놀란 첫날밤까지도 문경이하고 재혼하려는 혁주의 마음에 손톱만한 거짓도 없었다.

서른다섯 송이 붉은 장미의 수명은 일주일도 못 갔다. 도매상에서 산 싱싱한 거라 오래갈 줄 알았는데 사흘 만에 활짝 피더니 곧 고개를 꺾고 남루해지기 시작했다.

갖다 버리기 위해 항아리에서 꺼낸 장미 다발이 문경이의 걷어 부친 팔뚝을 사정없이 찔렀다. 탐할 만한 요염한 자태를 잃은 후까지도 가시는 예리하고 도전적이었다. 불구덩이에 던져진다 해도 가장 늦게 탈 것 같은 오만한 가시 … 아아 그 부질없는 적의 敵意 여 …

문경이는 팔목보다는 가슴이 찔리는 듯한 아픔에 탄식하며 장미다발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분분하고 산란하게 천지를 어지럽히던 벚꽃도 이제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창 밖의 봄은 어느새 총총히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럴 리는 없어, 그 남자는 그렇게 신의 없는 남자일 리는 없어. 혁주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여자는 그 생각을 지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안 만나는 동안도 하루나 이틀에 한번씩은 전화가 왔다. 그 여자는 그럴 때마다 울렁거리는 마음으로 중요한 얘기를 기대했지만 간단한 안부 아니면 봉급생활자의 반복되는 따분한 일상에 대해 안 하던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울렁거리던 기대와는 얼토당토않은 한탄을 듣고 나도 그 여자는 그닥 실망하진 않았다. 되레 안도의 가벼운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 여자가 기대한 중대성 속에는 파탄의 예고도 어느 만큼은 포함돼 있었다.내가 왜 이러지. 방정맞게 끝장을 예감하고 있다가 아직 끝장은 아닌 것만 감지덕지해 하는 자신에 대해 그 여자도 속수무책이었다.

“내일은 우리 어디로 여행이나 갈까? 땨분한데……”

금요일날 밤 늦게 걸려온 혁주의 전화는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따분하다는 말이 몸서리처지게 실감되는 자포자기한 목소리였다. 빈말로라도 여행을 가자고 하려면 좀더 밝고 들뜬 소리를 냈으면 좋으련만. 아쉬워할 새도 없이 그 여자는 허둥거리며 대답했다.

“아녜요. 그럴 거 없어요.”

혁주도 더는 여행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재미도 없는 잡담만 늘어놓다가 하품소리를 크게 내고 전화를 끊었다. 여행이 전화를 건 목적은 아닌 게 분명했다. 그래도 그 여자는 그 여행제안을 거절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파탄을 통고하기 위한, 어쩌면 파탄을 전제로 한 시혜 施惠 같은 여행계획일 거라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그 여자는 느낌으로 확실하게 파탄을 예감하면서도 그 시기를 최대한으로 연장시키고 싶었다.

세상없이 철석 같은 맹서를 한 남녀라도 한번 같이 자고 나면 영락없이 남자 쪽에서 변심하게 돼 있다는 식의 통속적인 공식을 수정 없이 자신에게 적용시키기엔 그 여자는 나이도 지긋했고 자존심도 있었다. 끝장을 낼 때 내더라도 자기도 남자에게 충분히 실망할 시간쯤은 벌고 싶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절절한 그 여자의 희망은 파탄만은 피하는 거였다. 자존심하고 바꿀 수만 있다면 바꾸어도 좋았다.

아리송하게 여행 얘기를 비친 다음날이 주말이었으나 혁주는 예고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홉 시가 지나자 그 여자는 혁주를 위해 장만한 새우튀김, 생선구이, 청포묵 무침 등을 혼자서 꾸역구역 먹었다. 이상한 허기증으로 포식을 한 여자가 나른하고 맹한 기분으로 주말 연속극을 보고 있는데 혁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예기치 않은 회식이 있어서. 미안해.”

그는 이렇게 제 용건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그 다음주 내내 전화 한번이 없었다. 이번 주말에는 올 것인지 말 것인지 여자 쪽에서 전화를 못 걸 것도 없었다. 서로 거의 같은 횟수로 전화질을 했었건만 그게 갑자기 치사스럽게 느껴진 게 그 여자가 남자하고 같이 잔 후의 변화라면 변화였다. 혁주와의 먼 미래는커녕 당장 오늘 밤 만날 수 있을 것인지조차 불확실한 채 잔뜩 음식장만을 하면서 그 여자는 “내 입은 입이 아닌가 뭐” 하는 불필요한 소리를 간간히 뇌까렸다.

다행히 그 여자 혼자서 저녁을 먹어 치우기 전에 혁주가 나타났다. 그럴싸해서 그런지 지치고 꺼실해 보였다. 평화롭고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 보려고 그 여자가 노력하는 것만큼 혁주는 따라와 주지 않았다. 처음부터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겉돌았고 묻는 말에도 딴청을 부리기 일쑤였다.

“저번엔 중대한 회식이었나요?”

지난 토요일에 안 온 것에 대해 따질 요량으로 물어본 것이 아니라 화제가 궁해서 한마디 한 것뿐인데도 짜증부터 냈다.

“피곤하고 따지지 좀 마.”

전해 핀트가 안 맞는 신경질이었다. 그래도 그 여자는 잠자리에 들자 그 어느 때보다도 정성과 기교를 다했다. 거의 절망적인 기분으로 혹시나 성적인 매력으로라도 남자가 안 떠나게 할 수 있기를 바랬다. 그렇다고 그 여자가 그 방면에 소질이나 관심이 있었던 것 아니다. 담담하게 독신생활을 유지해 온 여자답게 그 여자는 보통사람보다 더 그 방면에 맹무니였다. 특별한 여자의 특별한 성적인 매력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남자들 세계의 터무니없는 미신이거나 풍문이겠거니 별로 깊이 귀 담아 듣지 않던 그 여자였다. 느닷없이 매력인지 요기 妖氣 인지가 생겨날 리 만무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잇는 것만은 충분히 전달된 듯했다.

부자연스러우리만치 굼뜨게 옷을 입고 말없이 떠나가는 혁주를 그 여자는 다급한 목소리로 불러 세우고 물었다.

“아직도 우리 사이에 희망이 있을까요?”

전번에 혁주가 던지고 간 아직도 희망은 있다는 말을 상기시키고 싶었다. 혁주의 얼굴에 짙은 연민이 어렸다. 수상쩍은 연민이기도 했다. 그런 표정이 어떤 말보다도 명확하고 가혹하게 그 여자의 희망을 뭉개버렸다. 가망 없는 걸 가망 없다고 받아들이자 분노보다 먼저 그에게 다한 정성과 기교에 대한 수치심이 끓어올랐다.

그 여자가 느낀 건 정확했다. 주말마다 만나기로 한 걸 한번 거르고 나서  지난 주일 동안 두 사람이 합칠 수 있는 가망은 더욱 희박해졌다. 물론 그건 혁주네 집안 사정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뿐 그 여자가 손쓸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혁주는 혁주 나름으로 최선을 다 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만 끙끙 앓으면서 결정적인 말을 할 기회를 놓치는 사이에 어머니 황여사가 그보다 한 발짝 앞서가고 있었을 뿐 그가 실제로 노력한 건 실상 아무것도 없었다.

중매가 들어온 색시감들에 비해 문경이가 나이로나 조건으로나 좀 기울더라도 혁주 마음만 문경이 아니면 안 된다 였다면, 또 문경이와의 언약을 중히 여겼다면 어머니에게 말했을 것이다. 말도 해보기 전에 어머니가 노발대발할 것부터 두려워한 건 사랑 없이 문경이의 조건만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조건만으로 만 비교할 때 확실히 문경이가 제일 불리했다. 어느 틈에 혁주는 그런 냉정한 관찰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시도해 본 건 문경이가 맞벌이할 수 있는 교사라는 걸 어머니에게 말한다면 혹시 솔깃하게 듣지 않을까 해서 이제나 저제나 기회를 엿본 것뿐이었다. 황여사는 살림을 좋아해서 시내 엄마가 살았을 때도 살림의 주도권 때문에 고부간의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 또 잘살고 싶다는 의욕도 젊은이 못지 않게 왕성해서 요즘 세상에 남 부럽지 않게 살려면 그저 안팎이 같이 버는 게 수라는 소리를 말버릇처럼 해 왔었다. 여교사라면 제 아무리 완고한 노인네의 눈에도 험 잡을 데 없는 건실한 직업이니 혁주가 하기 따라서는 사태를 역전시킬 수 잇는 마지막 카드로 남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 혁주가 한 일이란 고민과 낙관 사이에서 갈등하느라 그 시기를 놓친 게 전부였다.

 

 

 

2

 

황여사가 어느 날 희색이 만면해서 혁주에게 내보인 새로 들어온 색시감은 나이는 그 중 많은 서른하나였지만 재색을 겸비하고 이재 이재에도 뛰어나, 자기 자본의 유명 브랜드 기성복 매장을 호텔 지하상가에 하나, 번화가에 하나 두 군데씩이나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돼서 혁주는 어머니에게 문경이를 소개할 기회를 아깝게 놓치고 말았으니 누구 잘못이라기 보다는 그 여자 복이 지지리도 없다고 할 밖에 없었다. 새로운 혼처와 비교해서 문경이가 재고할 여지도 없이 초라하고 불리하게 보인 혁주의 마음상태를 접어둘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 여자는 일주일 내내 혁주의 섬칫한 연민의 시선을 자주자주 떠올렸고 찔리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전화를 기다리지는 않았고 주말에도 그를 위해 특별히 음식 장만을 하지 않았다. 그러려니 했던 대로 그는 오지 않았다. 서로 소식을 끊고 지내는 날짜가 길어질수록 배신감도 확실해졌지만 그까짓 거 이혼녀가 재미 본 셈만 치지, 하는 식의 가장 저속하고 값싼 처방을 상처에 너덕너덕 붙이는 짓에도 익숙해졌다.

그러나 처음부터 쾌락을 목적으로 한 짓이 아니라 사랑과 신뢰감으로 새로운 출발과 행복을 꿈꾸며 합의하고 계획한 일인 이상 그냥 흐지부지 넘길 수는 없었다. 한때 사랑의 눈이 어두워 잘못 본 것의 정체를 똑똑히 봐주고 미련 없이 정을 떼기 위해서라도 혁주를 마지막으로 한번 만나는 일은 불가피했다. 다만 분노도 사랑 못지않게 뜨거웠으므로 다시 눈멀까 봐 냉정해지길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를 믿음직스럽게 여기고 사랑에 빠진 건 피할 수 없었지만 그를 사갈처럼 여기고 일생 동안 진저리치며 살게 될지도 모를 기회는 피하고 싶었다. 혁주에게도 그 정도의 돌파구는 주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사랑이 조금이라도 추악한 결말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그럴 수 있을 만큼 마음이 가라앉기도 전에 그 여자는 몸에 이상을 느꼈다. 임신한 것 같았다.

첫 번째 결혼에서도 그 여자는 임신한 적이 없었다. 저절로 임신이 안 된 게 아니라 피임의 결과였다. 집장만할 때까지 아이를 갖지 말자는 남편의 말에 그 여자는 고분고분 순종했고 피임의 실제적인 문제에 있어도 남편이 더 유식하고 능동적이었기 때문에 그 여자는 따로 애쓰지 않아도 됐다. 맞벌이로 열심히 작은 아파트를 장만하자 남편은 공부를 더 하겠다고 미국으로 떠났고, 공부를 포기하고 취직을 했다고 할 때까지 계속되던 편지가 뚝 그치고 얼마 안 돼서 좋은 여자가 생겼으니 이혼을 해달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고를 받게 되었다. 미국시민권이 있는 그쪽 여자는 임신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그게 문경이가 이혼을 당하게 된 경위였으니 미처 임신할 새도 없었다. 그렇건만 도 국내에서 이혼에 따른 호적정리, 위자료문제 등에 발 벗고 나선 시집식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애만 하나 있어도 이런 일을 왜 당하겠노. 여자는 그저 뭐니뭐니해도 아들을 낳아놔야 시집 귀신 될 자격이 생기는 건데…”

하는 동정도 같고 변명도 같은 말을 했다. 그 여자가 생각해도 그건 맞는 말이었다.  남편도 시집 식구도 그 정도로 모진 사람들은 아니었고 남편과의 금슬도 비록 집장만을 위해 아둥바둥 살기는 했어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기가 책임질 성질의 것이 아닌 잘못까지 뒤집어쓰고 물러나야 하는 그 여자의 가슴은 참으로 아렸다.

그 여자가 임신에 대한 기대도 공포도 없이 편한 마음으로 혁주하고 잘 수 있었던 것도 그 억울한 경험이 그 여자의 무의식에 영영 임신할 수 없을 것 같은 암시가 되어 남아 있었기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병원에서 임신임을 확인하고 나서 그 여자는 숨겨둔 욕망이 들킨 것 같은 계면쩍은 가벼운 흥분에 사로잡혔다. 바깥 날은 현기증이 나도록 밝게 빛나는 초여름이었다. 30대 중반에 첫 임신이라서 인지 늙수그레한 여의사는 이것저것 주의하고 지킬 점들을 자세하게 일러주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여자는 하나고 기억나지 않았고 그런 것이 그닥 걱정되지도 않았다.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흐뭇한 미소가 되어 여자의 입가에 비죽비죽 넘쳤다.

6월은 좋은 계절이었다. 푸른색 트레이닝 바지에 주황색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아이를 무등 태우고 저만치서 걸어오고 있었다. 아이는 남자 어깨 위에서 깔깔대며 자꾸 엉덩방아를 찧었다. 남자는 힘겹기도 하고 위태롭기도 해서 얼굴을 심하게 구기고 있었지만 가까워질수록 즐거워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이의 몸무게 때문에 티셔츠자락이 두로 밀리면서 앞은 들리고 바지는 흘러내려 남자의 배가 럭비공 모양으로 드러났다. 정확하게 그 한가운데 뚫린 움푹한 배꼽을 보자 그 여자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남자도 눈길이 마주치자 따라서 웃었다. 어깨 위의 아이는 남자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움켜쥐고 “우리 아빠 최고”라고 씩씩하게 외치고 있었다. 무등을 잘 태워줘서 최고라는 걸까? 다음 일요일엔 어린이 대공원이나 자연 농원에 데리고 가마는 약속을 함으로써 얻어낸 찬사일까? 아무려면 어떠랴, 젊은 아빠는 아이의 찬사에 더욱 의기양양해서 어깨를 으쓱으쓱, 올라탄 아이의 엉덩방아에 장단을 맞춰주면서 멀어져 갔다. 그 여자는 아쉬운 듯 그들 부자 모습이 길을 따라 꺾여 보이지 않을 때가지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평범한 남자의 평범한 아빠 노릇에 몸이 깊이 떨리는 듯한 감동을 맛보았다.

뱃속에서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있건만 그 여자는 아무것도 느낄 수강 없었다. 입덧 같은 것도 없이 소화도 잘되고 편안했다. 그 여자는 그게 고마우면서도 조금은 아쉬워했다. 그래서 자주자주 멍하니 방심한 채 뱃속에서 생명이 움트는 소리를 엿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정말 임신한 건지 긴가민가할 수밖에 없어 찰싹 달라붙었던 아랫배에서 마침내 주먹만한 실체를 감지하고부터 여름은 걷잡을 수 없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학기말 시험 성적처리, 납입금 재촉, 단체 캠핑 신청접수 등 교사가 바쁠 때이기도 했지만 그 여자는 전에 없이 허덕이고 헉헉댔다. 늘 일에 쫓기는 기분이었고 더위 때문에도 짜증스러웠다. 그렇다고 그 고비만 넘기면 즐길 수 있는 여름방학이 달갑게 여겨지는 것도 아니었다. 산 넘어 또 산이라고 여름방학도 결국은 헉헉대며 넘어야 하는 태산처럼 그 여자를 위협할 뿐이었다. 문경이답지 않았다. 그 여자는 수업 능력이 우수할 뿐 아니라 사무능력도 신속하고 정확해서 담임을 맡은 교사직에 따르는 잡무를 별로 부담스러워 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교육적이라기 보다는 관료적인 잡무나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것과는 무관한 다만 교사들을 들볶기 위해 용의주도하게 창출한 듯한 잡무에 아무런 불평이나 회의 없이 순종만 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 여자의 능력은 오히려 그런 교육 외적인 일들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대강대강 넘기는 데서 더욱 돋보였다. 이번 학기라고 그 여자의 그런 능력이 별안간 저하된 건 아니었다. 남보다 먼저 남보다 수월하게 해나가고 있건만 허둥지둥 쫓기고 있는 기분에서 도무지 헤어나질 못했다. 내가 왜 이러지? 때로는 이렇게 자신을 돌이켜 보아도 쫓기고 있다는 것만 확실할 뿐 무엇에 쫓기고 있다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었다.

처음에 갔던 병원에서 두 번째로 진찰을 받던 날 여의사는 산모도 태아도 정상이라고 말했다. 처음들은 태아라는 말은 임신이라는 말보다 훨씬 듣기가 좋았다.

“태야요?”

그 여자는 높고 들뜬 소리로 반문했다. 그리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혼자서 깔깔댔다.

“무척 즐거워 보이는군요. 하긴 서른다섯에 초임이니 그 동안 얼마나 기다렸겠어요.”

중년 여의사의 지친 듯한 직업적인 눈길에 잠깐 친정어머니처럼 너그러운 자애가 스쳤다.

그 길로 그 여자는 택시를 잡아타고 혁주네 회사 앞까지 왔다. 퇴근 시간까지는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근무 시간에 불러낼 뜻은 없었는데 괜히 서둘렀나 보다. 역시 쫓기는 기분 때문이었다. 혁주네 회사가 있는 빌딩의 지하다방은 처음이 아니었다. 둘이 연애할 때도 지금처럼 두 시간쯤 먼저 와서 기다린 적이 자주는 아니었지만 간혹 있었건만 괜히 쭈볏쭈볏했다. 그 여자는 두리번거리다가 출입문쪽에서 보면 기둥에 가려서 잘 안 보이는 자리에 가사 앉았다. 기다리다가 아는 얼굴을 만나기가 싫었다. 혁주는 한번도 그의 회사동료를 그 여자에게 정식으로 인사시켜 준 적이 없었다. 따라서 아는 사람을 만날 염려는 안 해도 되련만 그 여자는 혁주 또래의 남자들이 다 안면이 있는 것 같아 얼굴을 들지 못했다. 한 시간쯤 그러고 있다가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전산실의 김계장님 좀 바꿔주세요.”

계장님 전화예요. 여자분인데요. 그렇게 말하는 소리가 멀지만 똑똑하게 들렸다. 그 여자는 그제서야 무슨 말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전화부터 걸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각본 없이 그냥 부딪히기엔 그 여자의 용건은 너무 중요했다. 이제부터라도 각본을 짜기 위해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전화 바꿨습니다.”

혁주의 목소리였다.

“저예요. 문경이…….”

얼떨결에 그렇게 말해 놓고 혁주가 어떤 말투로 나올까 기다리는 동안 그 여자는 간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혁주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 동안이 그렇게 오랜 걸린 것도 아닌데 그 여자는 참지 못하고 조급한 소리로 용건을 말했다.

“지금 지하다방에 와 있어요. 혁주씨 회사 지하…. 만나고 싶어요. 기다리겠어요. 퇴근시간까지. 한 시간 있으면 퇴근하죠?”

“글쎄…, 회사라는 데가 그렇게 딱딱 제 시간에 끝나는 게 아니라서…”

혁주의 목소리는 전화 바꿨습니다 할 때의 그 사근사근하고 기대감에 부푼 소리가 아니었다. 그 정도의 예의도 사무실 안의 이목을 의식하고 가까스로 지키고 있다는 것쯤 쉽사리 눈치챌 수 있을 만큼 뜨악하고 화난 소리였다.

“기다리겠어요. 천천히 일 보고 내려오셔도 상관없어요.”

그 여자는 더는 울먹한 소리로 말하지 않았다. 넉넉잡고 두 시간은 더 기다릴 요량으로 아예 기둥하고 어항이 ㄱ 자로 만난 모퉁이 속으로 숨어 앉아 마음을 느긋이 가다듬었다. 그의 표정 여하에 다라 첫인사의 말투 여하에 따라 각기 다른 적어도 서너 가지의 각본은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가지의 각본도 미쳐 완성하기 전에 그가 말없이 앞자리에 와 앉았다. 30분도 채 안 돼서였다.

“그렇게 일찍 퇴근해도 되는 거예요?”

그 여자는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 고맙기도 해서 반쯤 몸을 일으켜 보이며 말했다.

“퇴근 후엔 약속이 있어서 조금 일찍 나왔어요.”

혁주가 깍듯하게 말했다. 퇴근 후의 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 여자에겐 30분 이상은 짬을 낼 수 없다는 단호한 뜻이 담긴 말투였다.

“중요한 약속인가 봐요.”

그 여자는 눈을 내려깔고 엽차잔을 돌리면서 말했다. 혁주는 너 따위한테 그런 것까지 일일이 고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듯 묵살하고 유유히 담배를 한 가치 피워 물었다.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가 기를 쓰듯이 시끄러운 실내 한가운데 있으면서 독립된 정적의 세계처럼 보이는 어항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그 여자가 불쑥 말했다.

“딴 데로 자리를 옮길까요? 어디 조용한 데로.”

“그럴 시간이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혁주는 그렇게 잘라 말하고는 아가씨한테 손짓으로 음악소리를 좀 낮춰달라고 부탁했다.

“왜 그렇게 정중해요? 나한테.”

“정중한 것도 트집이요.”

“트집이 아니라 우리가 부부처럼 지낸 적이 없었던 것처럼 구시니 말예요.”

“여긴 바로 회사 밑이요. 용건만 말해줬으면 좋겠소.”

혁주가 불에 덴 것처럼 조급하게 담배를 눌러 끄며 말했다. 두어 모금이나 빨았을까 말까 한 긴 담배였다. 그가 뜨끔한 건 부부라는 말이었을 거라고 짐작한 그 여자는 생생하게 치미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또박또박 말했다.

“용건만 말하죠. 나는 아이를 가졌어요. 당신 아이를. 이래도 우리 일을 없었던 것처럼 시침을 뗄 작정인가요?”

그 여자가 듣기에도 자신의 목소리같이 않게 목소리가 악에 받쳐 있었다. 혁주는 처음엔 못 알아들은 것처럼 바보 같은 얼굴을 하다가 차츰 심각해지더니 깍지 낀 손으로 두어 번 자기 이마를 짓찧고 나서 그 여자를 똑바로 노려 보았다.

“고등교육을 받고 교육자인 여자가 생각해낸 게 고작 그거요. 기껏 그 따위 저속하고 흔해빠진 방법으로 나를 골탕을 먹이려고…. 어림도 없는 수작이요.”

혁주의 반응은 그 여자기 예상했던 것보다 더 격렬했다.

“당신은 믿고 싶지 않군요?”

“그럼 내가 호락호락 믿을 줄 알았소?”

“암만 믿고 싶지 않아도 그 사실이 달라지진 않아요.”

그 여자는 울먹였다. 극도의 분노가 그 여자를 슬프게 했다.

“그 동안 통 연락이 없길래 역시 배운 여자답게 뒤끝이 깨끗하다 싶었더니 이런 졸렬한 계략을 꾸미고 있었을 줄이야.”

어쩌면 사람이 사람을 그런 냉혹하고 미움만이 가득찬 시선으로 노려 볼 수가 있는지, 문경이는 처음 보는 혁주의 너무도 비인간적인 태도에 질려서 작은 소리로 빠르게 대꾸했다.

“계략이 아니라 사실이래두요. 나도 이제야 당신 같은 사람 아이를 가진 게 싫고 후회가 되지만 엄연한 사실을 어쩌겠어요?”

“흥, 난 안 믿어요. 교육자가 창피하지도 않아, 겨우 그 따위 케케묵은 방법으로 남자를 붙잡아 둘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제발 고등교육이니 교육자 소리 좀 그만 할 수 없어요? 고등교육 받은 교육자는 아이 만드는 방법도 무식쟁이들 아이 만드는 방법하고 달라야 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바에야 그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세요. 책임을 지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겁부터 내고 그래요.”

그 여자는 남의 눈만 없다면 침이라도 뱉아 주고 싶은 걸 힘겹게 자제하고 나직하게 말했다.

“어렵쇼.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시는군. 처음엔 공갈협박 다음엔 설교라. 누가 선생질 안 해먹었댈까 봐.”

그 여자는 벌떡 일어서면서 소리쳤다.

“나가요. 어지 빨리 내 앞에서 꺼지지 못해요. 한바탕 소동을 부리고 망신을 당하기 전에…..”

그 여자의 핏발 선 눈을 보자 혁주도 비로소 그 자리가 자기에게 매우 불리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침저녁 대하는 마담의 호기심 가득한 얼굴이 얼른 딴전을 피우는 걸 보면서 그는 어쩔 수 없이 문경이의 명령대로 움직였다.

그 여자를 결정적으로 견딜 수 없게 한 것은 인간적인 모욕보다는 직업에 대한 모욕이었다. 그 여자는 자신의 직업을 존중하고 사랑했다. 직업은 여지껏 그 여자의 떳떳한 자립을 보장해줬을 뿐 아니라 자존심의 근거가 돼 주었다. 그건 남이 알아주고 안 알아주고를 떠난 그 여자 스스로의 가치관의 문제였다. 알아주기는커녕 인심이나 세태가 날로 교사직을 얕잡고 능멸하는 쪽으로 기우는 가운데 홀로 긍지를 지키기란 힘들고 외로운 일이었지만 그거야말로 자기만의 놀라운 능력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집의 현관문을 따기가 무섭게 울음을 터뜨렸다. 고약한 아빠를 만난 태아가 불쌍해서 슬프디슬프게 흐느껴 울었다. 아아, 그 아이는 배꼽을 내놓은 아빠의 어깨 위에서 엉덩방아를 찧는 유아기의 행복을 모르고 자라리라. 불쌍한 우리 아이.

같은 무렵 혁주도 그이 집을 들어서고 있었다. 황여사가 문을 열어주고 나서 뒤따라 들어오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애비야, 회사에서 언짢은 일이라도 있었냐? 안색이 안 좋다.”

“아닙니다 어머니.”

“그럼 왜 벌써 들어왔어. 오늘 미스 정하고 데이트 하기로 한 날인데.”

혁주가 문경이하고 발을 끊고 나서 맞선을 보고 약혼 날짜까지 잡은 여자가 정애숙이었다. 미모에다 사업수완까지 있는 노처녀라기에 활발하고 사교적이고 콧대도 세려니 했는데 뜻밖에도 부끄럼을 잘 타고 순종적이었다. 같이 식사를 할 때도 자기 식성에 맞게 따로 주문하는 법이 없었다. 혁주씨 먼저 시키세요, 그러고 나서 저도 같은 걸로요. 라고 조그맣게 말할 때는 영락 없이 시골서 갓 상경한 숫보기였다. 사업가라는 선입관 때문에 긴장했던 혁주는 약간은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수비게 편안해질 수가 있었다. 혁주보다 어머니쪽에서 더 관심이 많은 사업에 대해서도 정애숙은 매우 겸손했다.

“어차피 생전 해먹을 건 아닌데 결혼하면 그만두죠 뭐.”

마치 심심풀이로 다니던 1, 20만 원짜리 월급자리 말하듯 시들하게 말했다.

“가게가 둘 다 그렇게 잘 된다면서요. 부럽습니다. 사업가적 소질을 타고난 분 같은데 월급만 가지고 빠듯하게 살림이나 하면서 살 수 있겠어요?”

이렇게 혁주쪽에서 정애숙의 사업에 미련을 보일 적에도 대답은 간단했다.

“살림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경제력이 행복의 첫째 조건이라고들 하잖아요. 난 애숙씨가 한 푼을 쪼개 쓰다 지쳐서 바가지 긁는 꼴을 보느니 살림은 어머니께 맡기고 하고 싶은 일 하게 내버려 두고도 싶은데요.”

이렇게 노골적으로 정애숙의 경제력을 부추겨 보기도 했다.

“보시다시피 전 사업할 체질이 아녜요. 그렇지만 돈은 따르는 것 같아요. 우리집에서도 그러세요. 쟨 돈이 따르니까 뭘 해도 실패가 없다구. 이것저것 정리하면 부모님이 대주신 거 갚고도 제 몫으로 얼마간 떨어질 텐데 살림만 한다고 설마 그 돈 놀리겠어요. 저한테 돈이 따른다는 것만 믿고 슬슬 굴려보죠 뭐.”

저절로 돈이 따른다는 정애숙의 자신감은 혁주에겐 놀랍고도 눈부셨다. 미모와 순종적인 성격 등 여러가지 장점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한 달 내내 큰 액수도 미지 未知의 액수도 아닌 빤한 일정한 액수를 죽자구나 쫓아야 하는 월급장이 신세가 보기에 돈이 저절로 따라오는 팔자란 생각만 해도 황홀한 꿈의 팔자가 아닐 수 없었다.

혁주가 정애숙을 놓치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힐 때 문경이 생각을 아주 안 한 건 아니었다.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문경이와 결혼을 약속하고 세 반이나 같이 잔 게 생각할수록 꺼림칙했다. 후환이 없도록 깨끗이 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았지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정애숙한테 고백을 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일 듯도 싶었지만 정애숙의 성격으로 봐서 아주 쉽게 용서를 할 수도 아주 쉽게 그만두자고 할 수도 있었다.  반의 확률이 큰 모험처럼 두려워질 만큼 혁주는 정애숙에게 기이 빠져 있었다. 고만 끝에 어머니한테 먼지 의논을 하기로 했다. 문경이를 아내로 맞아드리겠다는 말을 어머니에게 꺼내기는 그리고 어려워 결국은 못하고 말았건만, 그 여자를 버리기 위한 의논은 술술 잘도 나왔다. 어머니는 생각보다 안 놀랐다.

“거봐라. 에미 말 안 듣고 3년씩아 홀아비 생활을 고집하더니 하필 소박 맞은 여자에게 걸려 들었구나. 그 여자도 제 주제를 알 테니 뒤탈은 없을 게다. 그러고 나서 달포가 넘게 발길을 끊었는데도 그 쪽에서도 전화 한번이 없었다면서? 그러면 된 거야. 그러면 제 주제를 안 거라니까. 만나서 해결하다니 뭘 해결해? 계약서라도 썼어? 내 말대로 가만히 있으라니까. 그럼, 미스 정한테도 말 안 해야지 무슨 소리야.”

일은 어머니 말대로 되어가는 듯했다. 안 만난 지가 넉 달째로 접어드는 데도 문경이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으니 깨끗이 끝장 난 걸로 봐도 무방하리라 싶었다. 그 동안 마음 놓고 정애숙과 가까워졌고 약혼날을 보름 쯤 남겨 놓고 있었다.

쪼르르 따라 들어와 아빠의 애무를 기다리는 시내를 혁주는 건성으로 한번 안아주고 나서 할머니한테 가보라고 내보내고 거칠게 방문을 닫았다. 혁주는 혼자 있고 싶었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 장차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보다도 재수 더럽게 없다는 자탄과 원망쪽으로만 생각이 기울고 있었다. 똑똑, 어머니가 밖에서 안 하던 노크까지 하면서 들어가도 좋으냐고 물었다. 어머니도 무너가 심상치 않은 걸 눈치챈 모양이다.

“안 좋은 일이 있냐? 미스 정하고…”

어머니는 그저 정애숙 걱정이었다.

“만나지도 않았다니까요.”

“그럼 바람을 맞힌 게여. 그럼 쓰냐.”

“전화 걸었어요. 오늘 급한 일이 생겨서 못 나간다고.”

“도대체 그 급한 일이 뭔데 이렇게 허둥지둥 집으로 들어왔냐니까. 에미도 좀 알자.”

“결국은 골치 아픈 일이 생기고 말았어요.”

“결국은 이라니? 그럼 그 소박 맞은 여자가?”

“어머니도, 소박 맞은 여자가 뭐예요?”

“얘 좀 봐. 에마 앞에서 그 계집 역성을 드는 걸 보니 너 아직도 정을 못 뗀 거로구나, 세상에…”

“어머니.”

혁주가 언성을 높였다. 일이 이렇게 꼬인 게 다 어머니 탓인 것만 같아 화가 지글지글 끓어올랐다.

“그래 그래 알았다. 그 여자가 이제 와서 뭐라던?”

“아이를 가졌답니다. 제 아이를요.”

혁주가 짓찧듯이 말했다.

“세상에 맙소사.”

어머니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어지러운 시늉을 했다. 독한 세제 때문에 많이 거칠어진 손끝의 분홍색 메니큐어가 서글퍼 혁주는 외면하고 말았다.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미스 정하고 잘돼가는 게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꼭 살얼음 밟고 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가슴이 조이더니만…”

“그럼 어머니도 마음이 편하셨던 건 아니로군요?”

“안 들었으면 모를까 듣고 나서 편할 리가 있냐. 늘 께적지근 하더라니…”

“그러니까 제가 뭐랬습니까. 해결을 해야 한다고 하잖았어요. 어머니 때문이에요. 가만 놔두면 저절로 없었던 게 도리 것처럼 말씀하신 건 어머니였단 말예요.”

 황여사는 아들이 마음놓고 탓을 하도록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 노릇을 어쩐답니까?”

혁주쪽에서 먼저 애걸하는 소리로 물었다.

“아무래도 네가 고약한 여자한테 걸린 것 같다.”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 착실하고 참한 여자예요.”

“또 역성이냐?”

“역성이 아니라요 고약한 여자만 아이를 배는 건 아니잖아요.”

“아이 밴 걸 뭐래는 게 아냐. 그걸 빌미로 너한테 덤테기를 씌우고 네 앞길을 망쳐 놓기로 작심을 했으니까 하는 말이지.”

“그것도 어머니 오해십니다. 그런 여자는 아니래두요. 그저 애를 가졌다고만 했지 그걸로 저한테 책임을 지라거나 협박하는 소리는 한마디도 안 했어요.”

혁주는 한번 만나본 적도 제대로 알아본 적도 없는 여자에 대해 지나치게 악의적인 단정을 내리는 어머니에게 울컥 혐오감을 느꼈다.

황여사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혁주가 어려서부터 익숙한, 아들의 작은 실수에 너그럽기로 작정한 그러나 이만저만해서 그리 되었다고 일단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그런 미소였다.

황여사는 그런 미소를 띤 채 조용히 혁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혁주는 그런 어머니가 싫으면서도 의지가 되었다.

“나도 물론 그 여자가 고약한 여자가 아니길 바란다. 그러나 이 에미의 짐작도 아주 근거 없는 거가 아니니까 무시하지 말도록 해라. 생각해 보렴. 네가 그 여자하고 상관한 게 4월달이었다며? 그렇다면 아이가 들어선 걸 안 건 5월이나 넉넉잡고도 6월경엔 확실히 알았을 텐데 왜 이제야 너한테 알려 알리길. 무슨 뜻인지 좀 알겠냐? 아이를 낳겠다는 심보야. 석 달만 넘기면 중절이 힘든 걸 계산에 넣고 쭉 참고 있다가 이제야 나타난 거라구. 그래도 그 여자가 우리에게 덤테기를 씌울 여자가 아니라고 할 수가 있겠느냐. 어쩌면, 우리집 속사정까지 어데서 다 망을 보고 있다가 나타난 것모양 요렇게 아차고비에 나타날 게 뭐람.”

황여사의 짐작은 확신에 차 있을 뿐 아니라 일일이 다 이치에 들어 맞기도 했다. 그것도 모르고 그 동안에 그 여자로부터 아무런 기별이 없는 것만 고마워하며 마음 편히 새로운 미래를 설계한 생각을 하니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것처럼 얼얼하고 화가 났다. 

“어머니 말씀대로라면 정말 끔찍한 여자로군요. 그러니 이 노릇을 어떡하면 좋지요, 어머니.”

“저녁 아직 안 먹었냐.”

황여사는 딴청을 부리면서 아들의 방을 나갔다. 서로 생각할 시간을 갖기 위한 배려인 듯했다. 그만큼 해결책일 간단하지 않다는 얘기도 됐다. 도마 소리, 밥 뜸드는 냄새, 찌개 냄새, 아이 칭얼대는 소리, 오랴 오냐 달래는 소리,  그런 것들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평범하고 구수한 가족적인 분위기는 주부가 빠져 있어서 암만해도 쓸쓸하고 허전했었다. 그러나 곧 주부가 들어와 생기를 불어넣을 생각을 하며 위안을 받던 그런 것들이 생급스러운 소음처럼 혁주의 신경을 갉죽거렸다. 그는 부엌 쪽으로 나가 할머니 치마꼬리에 매달려 칭얼대는 시내를 안아 올리며 말했다.

“어머니 아무거나 해서 산 술 뜰 테니 제발 아무것도 차리지 마세요.”

“입맛 없을 것 같다. 그까짓 걸 가지고.” 황여사는 조림냄비에 깔린 생선토막 위에다 양념장을 찔금찔금 끼얹으면서 말했다. 이미 안전한 대책이 서 잇는 듯한 어머니가 혁주는 싫으면서도 기대가 됐다. 혁주는 식탁 의자에 앉아서 시내를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깨끗이 거둔 아이의 머리칼에선 어렴풋이 과일 냄새가 났다. 외제 어린이 샴푸냄새일까. 손녀가 에미 없는 애처럼 보일까 봐 황여사는 시내에 관한 거라면 유별나게 외제나 최고를 밝혔다.

어머니가 능숙하고 신속하게 차려 놓은 밥상을 보고도 혁주는 식욕보다는 언제나 나도 이런 것들을 마음 놓고 즐기게 되나 하는 심란한 생각부터 들었다. 이 정도의 저녁상에 처자식과 둘러앉는 행복은 밑바닥 필부 匹夫에게도 구태여 행복이랄 것도 없는 반복되는 일상이련만 나는 그런 복도 없을 게 뭐람. 이런 한탄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훼방꾼에 대한 새로운 적의, 새로운 미움일 수도 있었다.

“의학이 좀 발달했어야 말이지.”

시재의 밥숟갈에다 소시지를 얹어 주면서 황여사가 무심히 말했다. 혁주는 영문을 몰라 쳐다보기만 했다.

“넉 달은 약과지, 예닐곱 달 된 애도 지우는 걸 봤다.”

“설마요.”

“마음 약하게 먹으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아무리 독하게 먹어도 그렇죠. 남의 뱃속에 든 아이가 제 맘대로 죕니까.”

“네 아이라며?”

“그렇다니까요, 그것까지 의심하시는 건 싫습니다.”

혁주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 아이라면 네가 원치 않을 권리도 있으니까 원치 않는다는 의사 표시를 분명히 하거라. 우물쭈물할수록 손해니까 하루빨리. 요새 세상에 애비가 원치 않는 자식을 낳으려는 여자는 없는 법이니까, 두고 보렴.”

“그럴 것 같지 않은데요. 그 여자의 경우엔.”

“말을 안 들을 것 같단 소리냐.”

“예, 좀 그런 여자예요. 말발도 세구요.”

혁주는 어머니가 저녁을 지으며 궁리한 대책에 실망한 빛을 감추지 않았다.

“제가 정말 똑똑하다면 애비 없는 자식을 낳지는 않을 게다. 그렇다고 너무 야박하게 굴진 말자. 저질러 놓은 일의 책임이라는 게 있으니까 안전하게 수술을 받고 몸조리 잘할 수 있도록 비용은 넉넉히 내놓는 게 좋을 게다.”

“글쎄 그런 여자가 아니라니까요. 아마 따귀라도 때릴 걸요.”

“그 여자가 그렇게 나오면 그건 네 애가 아닌 게야.”

황여사는 차갑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네?”

“네가 반대하는데도 낳겠다면 그건 네 애가 아니라는 증거 아니겠느냐. 제 입으로 실토를 안 하면 우리쪽에서 뉘 앤지 알게 뭐냐고 시침 뗄 수도 있는 문제구.”

그제서야 혁주는 어머니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같은 여자끼리 어쩌면 그럴 수가 있을까 싶었지만 지금 그에겐 어머니처럼 모진 마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는 또 한번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그 여자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니까요, 정말.”

“그래 그래, 그 여자 역성은 나중에 들어도 늦지 않을 테니 에미가 말한 순서대로 서둘러 해결하도록 해라. 약혼 날짜가 보름밖에 안 남았어. 우린 한번 해본 장단이지만 미스 정은 처음이니 행여 섭섭지 않도록 신경을 써 줘라.”

바쁘게 됐네요, 이 정도는 비꼬고 싶은 걸 참고 혁주는 입맛 없는 식사를 했다. 전화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모자가 동시에 흠찟할 만큼 시끄러운 소리였다. 어머니의 눈빛이 사뭇 명령조로 혁주가 받기를 촉구하는 걸 보면 어머니 또한 문경이 전화일 거라고 꺼리는 눈치였다.

“혁주씨? 시내 좀 어때요. 걱정이 돼서 죽겠어요.” 문경이가 아니고 정애숙인 것은 반가웠지만 무슨 소리인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했다. 곧 오늘 만나는 걸 취소하면서 둘러댄 핑계가 시내가 별안간 아프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거였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 네. 미안해요, 괜한 걱정을 끼쳐서요. 애가 종종 그래요. 할머니가 응석을 너무 받아주셔서 그런지, 떼도 잘 쓰고 신경질도 잘 부리고. 오늘은 그게 좀 심했던가 봐요. 노인이 혼자 감당을 못하시고 회사로 전화를 거신 걸 난 또 혼비백산 해가지고…”

처음에 꾸며댈 때 좀 더듬던 말이 아귀를 맞춰가며 청산유수로 잘도 나왔다.

“정말 지금은 괜찮은 거죠?”

“그럼요. 제 무릎에서 밥 한 그릇 다 먹고 지금 텔레비전 보고 있어요. 자식이 뭔지 지레 놀래가지고… 미안해요.”

“아녜요. 미안한 건 저예요. 제가 먼저 시내에게 신경을 써야 하는 건데…. 앞으로는 우리 만날 때 시내하고 같이 만나요. 왜 그 생각을 진작 못했나 몰라. 시재가 신경질도 낼 만해요. 아빠 사랑을 빼앗긴 게 좀 억울하겠어요. 아이들은 보기보다 예민하대요.”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여잔가. 곁에 있다면 왈칵 안아주고 싶었다. 정애숙은 좋은 일은 서두르는 게 좋다고 당장 내일 시내도 함께 데이트를 하자고 했고 역주는 모든 시름을 잊고 그러자고 했다.

어린이 정식을 따로 해 파는 양식집에서 만난 애숙은 서툴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성의를 다해 새엄마 흉내를 내려 들었다. 혁주는 그게 고맙고도 애처로웠다. 뭐든지 혁주가 시키는 대로 따라 시키던 애숙이가 처음으로 혁주와 다른 걸 시켰는데 그건 어린이 정식이었다.

“우리 시내는 어린이 정식, 나도 같은 걸로…”

애숙이 이렇게 말하는 걸 보고 혁주는 마음에도 없는 핀잔을 주었다.

“무슨 여자가 먹는 데 그렇게 개성이 없어요.”

“입는 데 하도 개성을 찾다 보니 질렸나 봐요. 특별히 맛있는 음식도 맛없는 음식도 잘 모르겠어요.”

“쳇, 맛난 거 얻어먹긴 다 틀렸군.”

“노력할께요.”

이렇게 고분고분하니 더 할 말이 없었다. 차 속에서 시내가 잠든 사이에 혁주는 애숙이 귓전에다 대고 은밀히 속삭였다.

“미안해요 애숙씨한테도 또 애숙씨 부모님한테도 면목이 없어요. 이런 혹을 달고 데이트를 하게 돼서…. 요다음엔 우리끼리만 만나도록 해요.”

“그런 소리 말아요. 오늘 얼마나 재미 있었다구요. 결혼할 때까지 쭉 같이 만나도록 해요. 우리 부모님도 대찬성이세요. 글쎄 일거양득이라나요. 시내를 끼워 넣고 데이트하는 게 말예요.”

“일거양득이라뇨?”

“결혼하기 전에 시내하고 충분히 친해 놓을 수가 있을 테니 좋고 또 하나는요, 제가 과년하고 혁주씨는 경험 있는 홀아비이고 그러니까 혼전에 행여나 무슨 사고를 칠까 봐 부모님은 은근히 걱정을 하시다가 시내가 끼게 되니 안전보장이 된다 이건가 봐요.”

애숙의 그런 솔직함뿐 아니라 딸 가진 부모의 평범한 걱정까지 문경이에게는 없는 미덕으로 돋보였다. 혁주가 애숙과 이런 고상한 재미를 보게 됐다고 해서 문경이 문제를 잊고 있거나 도리 대로 되라는 심정인건 아니었다.

처음엔 혐오감 없이는 들을 수 없었던 어머니가 가르쳐 준 방법이 결국은 최상의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시간을 지체할수록 이쪽이 불리해진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하루빨리 애숙을 내 사람 만들고 싶은 욕심으로는 일각이 여삼추 같다가도 여자의 태중에서 아이가 자라는 정확한 속도를 생각하면 아찔하도록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혁주는 일부러 문경이네 학교 아이들이 잘 가는 학교 앞 빵집에서 그 여자를 불러냈다. 교사의 퇴근시간은 학생들의 하학시간 보다 늦은 편이어서 혁주가 기대했던 것처럼 학생들이 많지는 않았다. 또 저희들끼리 알아서 선생님 근처는 피했으므로 두 사람은 다방같은 데보다 훨씬 호젓하게 마주 앉게 되었다.

문경이는 성적에 치사한 극성스러운 학부모를 대할 때 곧잘 쓰는, 무슨 말이든지 다 들어줄 용의가 있되 교육의 권한과 자존심에 관한 영역만은 한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외유내강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몰라 입가를 헛되게 실룩거리고 있는 혁주를 보다 못해 문경이가 먼지 말을 걸었다.

“우리 너무 자주 만나는 거 아녜요?”

“빨리 해결하는 게 피차 좋을 것 같아서…..”

“뭘 말인가요?”

“우리 이러지 맙시다. 이걸로 깨끗이 해결해요.”

혁주가 준비해 가지고 온 돈봉투를 일부러 탁 수리를 내면서 그 여자 앞에 놓았다.

“흥, 끝내 나를 공갈범 취급 하는군요?”

“그게 아니라….”

“아니면 뭐예요. 그저께는 나더러 공갈협박 말라고 호통을 치더니 이렇게 돈을 싸가지고 나타난 걸 보니 죄가 있긴 있군요.”

“여긴 당신 제자들 이목이 번다한 자리요. 조용히 점잖게 해결합시다.”

“이미 때가 늦었어요.”

“때가 좀 늦었다는 건 나도 알고 있고. 그 대신 비용도 충분히 챙기느라 챙겼소.”

“그런 뜻으로 늦었다고 말한 건 아니었는데…. 우린 참 말이 안 통하는군요. 왜 이렇게 됐죠?”

“그런 걸 따질 계제가 아니요. 지금 나는. 그럼 그렇게 알고 가겠소.”

“뭘 어떻게 아셨나요?”

“해결이 된 걸로 믿겠소.”

“해결 소리 구역질 나요. 어서 이 봉투 집어넣지 못해요?”

“좋소, 정 안 받겠다면 당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큰소리로 망신을 주어서라도 받게 하고 말 테니, 그래도 좋소?”

“안 좋아요, 무서워요. 당신은 능히 큰소리로 이 돈으로 빨리 아이를 떼란 말야, 이 화냥년아, 이럴 수 있는 사라이에요. 여긴 학교 앞이고 나는 그런 망신을 당하기 전에 빨리 이 봉투를 챙겨야겠군요. 그렇지만 내일은 아마 내가 당신을 회사 사무실까지 찾아가서 이 돈을 얼굴에다 뿌리며 고래고래 고함을 치게 될 걸요. 그래도 좋다면 놓고 가요.”

당신이 이렇게까지 악질인 줄은 몰랐다고 뇌까리며 혁주가 봉투를 거두어 가지고 가버린 후에도 한동안 그 여자는 거기 멍하니 앉아 있었다. 누가 누구한테 한 소린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닥 노엽지는 않았다. 멍했다. 일이 왜 이렇게까지 엉망으로 돼버린 걸까. 혁주를 찾아갈 때 바란 게 뭐였던가. 아직 태어나진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하기는 존재하는 아이가 극적으로 두 사람의 재결합을 도와주길 바라기라도 했단 말인가. 알 수 없는 거 천지였다. 하지만 알리지 말 것을 하고 후회하는 마음은 없었다. 자기가 저지른 일의 결과에 대해 무책임할 수 있는 건 동 오줌 가릴 때까지면 족하지 않겠는가.

다음날은 혁주의 어머니가 문경이 아파트로 같은 돈봉투를 가지고 와서 ‘해결’을 보려고 했다. 황여사는 경험과 실적이 풍부한 해결사처럼 등 치고 배 만지는 식으로 위협과 협박을 적절하게 반복했다. 그 다음엔 혁주가 오고 또 그 다음날은 황여사가 오는 식으로 모자가 겪음내기로 드나들면서 문경이를 지치게 했다. 만나는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세 사람은 점점 극단적인 언어를 쓰기 시작했고 보통사람 같으면 일생에 한번 들어낼까말까 한 정신의 가장 더러운 똥창까지 들어내 깃발처럼 흔들게 되었다. 그 여자의 남은 소망은 이제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들로부터 자기로부터 놓여 나는 거였다. 나를 좀 내버려둬 줘, 제발. 그 여자는 자다가도 잠꼬대를 하면서 벌떡 일어나곤 했다. 그리고 놓여날 수 있는 방법이, 자신도 태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세상 없이 결백한 사람도 반복해서 고문을 당하면 죄목이 생각나듯이.

실상 그건 저지른 죄도 생각해낸 죄도 아니고, 고문자가 쉴새없이 암시한 죄였다. 그 여자도 결국은 그 암시에 걸려들고 말았다.

“제발 날 좀 내버려두세요. 이 아이는 댁들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아이니까요. 김혁주 아이가 아니란 말예요. 아니고 말고요.”

만약 혁주쪽에서 먼저 내 아이가 아니라고 발뺌을 했더라면 그 여자는 아마 없는 은장도라도 빼 들고 비장하게 결백을 주장했을 지도 모른다.

그 여자의 이 거짓말 한마디는 그야말로 거짓말처럼 쌍방간에 휴식과 평화를 가져 왔다. 악몽에서 깨어난 기분도 쌍방이 비슷했다.

혁주 모자는 그 자리에서 당신 그 수많은 고문의 언어들을 잊고 고상한 얼굴로 그러면 그렇지, 감히 누구한테 그 더러운 덤테기를 씌우려고…, 허면서 떠나갔고 그 여자도 내가 어쩌다가 저런 사람들과 내 자식을 나누려고 했었을까. 아아 이제야 비로소 나만의 자식을 가지게 되었구나, 나만의 아이를, 하면서 독점의 기쁨과 평화로운 외로움에 잠겼다.

그러나 허위자백 끝에 사흘 밤 사흘 낮의 꿈없는 긴 잠을 얻어냈다고 해도 그게 진정한 휴식일 수가 있을까.

방학식 날이었다. 아침부터 쨍쨍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서 교장선생님의 길고 긴 훈시를 듣는 건 정말 고역이었다. 전통 깊은 사립중학이라지만 중학입시가 없어진 지 오래니 아직도 남아 있는 영광은 늙은 교사들이 많다는 정도였다. 교장도 정년에 구애받지 않고 이사회의 승인으로 임명되기 때문에 일흔이 다 된 분이었다. 효도의 으뜸은 집을 들고 날 때 부모님한테 고하는 것이다 부터 시작해서, 길에서 차조심, 외출할 때 너무 몸이 많이 들어나는 옷 안 입기, 특히 여학생은 친구들하고만 캠핑 안 가기, 부득이 친구들하고만 갔을 경우에도 절대로 텐트에선 안 자기 등등 손자들을 앞에 놓고 타이르는 할아버지의 잔소리처럼 귀 담아 들으면 버릴 말은 하나도 없지만 들떠 있는 학생들에겐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와아 하고 웃었다.

“왜들 저래?”

멍하니 딴 생각을 하며 그늘진 쪽에 피해 섰던 문경이가 어느 틈에 옆에 와 서 있는 국어의 임현자 선생한테 물었다.

“할아버지가 여학생을 날고기에 비유했잖아?”

“또?”

“그래. 그러니까 남자 애들이 저 입맛 다시는 소리 내는 것 좀 봐.”

“노인네도 주책이야.”

“단상에서 연설은 하고 싶고 맨날 할 소리가 뭐 있겠어.”

“그래도 맨날 날고기는 좀 너무 하잖아 요샛세상에…
 

“요샛세상이면 옛날의 날고기가 익은 고기 밖에 더 됐겠어. 저런 소리 들을 수 있는 것도 우리애들의 복이야. 요즈음 애들이 저런 소리를 어디 가서 들을 수 있겠어. 저런 어른이 저런 구닥다리 잔소리를 저렇게 당당하게 하실 수 있다는 게 난 웬지 보기 좋더라.”

“하긴 그래. 노인네를 모시는 집도 많지 않고, 계시는 집에서도 손자 손녀들에게 저런 말씀을 함부로 해도 아들 며느리가 가만히 있을 만큼 대우받은 노인들은 더군다나 드물고, 부모들이라야 내남없이 오직 공부 잘하는 게 사람 노릇의 전부인 양 자식을 다락같이 위해 받치는 데만 급급하니….”

“성교육까지 학교에서 시켜주길 바라지만 그게 어디 제대로 되니? 배운 쪽보다 가르치는 쪽에서 먼저 얼굴이 빨개져가지고서야.”

“아유 말도 마. 그 얘기라면.”

남녀공학이지만 가정이나 가사시간은 여학생만 듣고 남학생은 실업이나 공업을 선택하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이 학교에선 교장 재량으로 한 달에 한번씩은 가정시간도 분반을 하지 않고 같이 배우도록 하고 있었는데 주로 성교육, 남녀간에 지켜야 할 에티켓 등을 가르치도록  돼 있었다. 자연히 가정선생인 문경이가 서투른 대로 그 방면의 전문가 노릇을 해야 했고, 임현자 선생이 완곡하게 지적한 대로 그 여자는 그 시간을 제대로 활용한 것 같지 않았다. 수업에는 완벽주의자인 그 여자지만 그 시간만은 어물쩡 시간이나 메꾸고도 별로 가책을 받거나 좀더 잘해볼 걸 하는 생각이 없었다. 교장선생님의 의욕 과잉 때문에 재수 나쁘게 걸려든 가회의 일이란 생각이 고작이었다. 그렇게 전연 책임을 안 느끼던 그 시간에 대해 그 여자는 느닷없이 켕기기 시작했다. 아이들한테 못할 말을 하지는 않았더라도 자신이 그 시간을 맡았다는 것 자체가 비교육적이었다는 자격지심은 참으로 고약했다.

방학식날은 으레 그렇듯이 반마다 어머니들이 꽤 와 있었다. 문경이 담임인 3학년 5반 복도에도 어머니들이 모여서 수군대고 있다가 문경이를 보자 뚝 그치면서 창 쪽으로 물러섰다. 같이 모여 있으면서도 각각 자기에게만 특별히 대해주길 바라는 어머니들의 소망을 빤히 알면서 문경이는 모개로 형식적이고 깍듯한 인사를 하고는 교실로 들어갔다. 성적표를 나누어 주고 주의사항을 간간히 말하는 동안도 곧 봉투에 시달려야 할 걸 생각하면 짜증부터 났다. 혁주의 돈봉투에 학을 뗀 뒤끝이기 때문일까 무슨 팔자로 가는 곳마다 사회의 오물통에만 코를 박아야 하나 하는 신세한탄이 절로 났다.

교사 노릇 10년이면 소위 봉투라는 학부형들의 촌지에 적당히 길들여져 있거나 단호하게 맞서 있을 법한데 아직 그 여자는 그 문제에만은 일관성이 없었다. 거기 맛을 들이거나 그걸 생활비로 계산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아직도 그 여자에게 극복해야 할 그 무엇이었다.

교사생활 초기엔 맞대놓고 단호하게 봉투를 거절했다. 아마 순진해서 그럴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곧 안 받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생활을 꾸려 나가는 데 봉투의 부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중년의 가장인 동료교사가 새파란 처녀교사의 이런 결벽성을 매우 같지 않게 아니꼽게 여긴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흥 네까짓 게 뭔데, 그들의 입장에선 문경이가 되레 물을 흐려놓고 있었다. 동료 사이에서만 발 붙일 곳이 없어진 게 아니라 학부모 사이의 소문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봉투를 주려다 뜻을 못 이룬 어머니는 십중팔구는 자기 자식이 특별한 미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려 들었고 그건 돈에 따라 편애를 한다는 소문이나 다름없이 억울하고 곤혹스러웠다.

봉투에 맛을 들이게 되면 그 수입을 최대한으로 올리기 위한 문리도 트인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만큼 연륜이 쌓이면서 문경이는 자연스럽게 그런 도를 거꾸로 써먹을 줄 알게 되었다. 학부형에게 학교에 드나들어야 할 구실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을 썼고, 특별한 문제가 생겨 또는 문제를 만들어서 담임을 면담하러 온 어머니하고도 북적대는 교실이나 교무실 등 시선이 번다한 곳 외의 호젓한 장소나 기회를 만들지 않았다. 그런 중에도 잽싸게 봉투를 남기고 가는 집요한 어머니도 없니 않아 있었지만 돌려 주려고 신경을 쓰는 대신 누구한테 얼마를 받았나를 잊으려고 노력을 했다. 기억하고 있는 한 그 아이를 대하는 데 있어서 사념이 생길 듯 해서였다. 비록 그게 편애가 아니라 단순한 주목이나 경원이라 하더라도 교사로서 지켜야 할 바 공평에 득 될 리 없는 사념은 피하는 게 수였다.

불가피하게 봉투를 받게 되더라도 그 효과가 전혀 안 나타나게 하는 방법은 원칙적인 것 외의 것에 대범한 문경이의 성격에도 맞았고 또 더디지만 효과도 있었다. 그 선생한테는 돈 쓰나마나라고 소문이 나자 애써 봉투를 내밀려는 어머니도 극소수로 줄어들게 되었다. 공립학교가 아니어서 한 학교에 오래 근무할 수 있다는 것도 돈 쓰나마나인 선생이라는 낙인을 구태어 갱신할 필요 없이 지속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비록 최소한이나마 봉투 수입이 있긴 있는 이상 그 씀씀이에 만은 신경을 안 쓸 수 없었다. 어려운 아이를 도와주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으나 자칫하면 선행으로 소문이 날 수도 있었고, 그렇게 될 경우 봉투를 표가 나게 거절했을 때보다 더 혹독하게 동료교사의 빈축을 살 우려가 있었다. 결국은 표 안 나게 흐지부지 쓰기로 했다. 단 담임 맡은 반을 위해서. 개인에게 있어서도 그렇지만 집단에 있어서도 약간의 흐지부지 쓸 수 있는 돈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었다. 윤활유처럼 생색 안 내고 운영을 부드럽게 도와주었다. 이를테면 의연금이나 무슨 무슨 성금 등 관에서 권장하든 잡부금은 반끼리 경쟁을 부추기게 돼있는데 늘 꼴찌를 못 면하던 문경이네 반이 중간 정도라도 하게 된 건 그 여자가 별안간 극성스러워져서가 아니라 서랍 속에 흐지부지 쓸 수 있는 자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밖에도 흐지부지 쓸 수 있는 용처는 쏠쏠했다. 조위금, 환경미화,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을 사서 교실에 비치해놓기 등 유용하게 쓸 욕심을 부리자면 한이 없었지만 씀씀이가 커지면 저절로 수입에도 욕심이 생길 것 같아 흐리멍텅하게 생긴 돈이니 철저하게 흐지부지 쓰리고 한계를 정해놓고 있었다.

이렇게 봉투문제는 졸업을 한 줄 알았는데 교실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어머니들을 보자 느닷없이 심사가 뒤틀렸다.

얼마나 넣으면 될까. 3만 원? 애개개 요샌 최하가 5만 원이야. 그것도 후진 동네니까 그렇지 XX동에선 최하가 10만 원이라던데. 아유 XX동 얘긴 말도 말아요. 암튼 선생 버릇은 그 동네 엄마들이 다 망쳐놓는다니까. 동네가 문제유, 선생나름이지. 그래 우리 선생은 아직 순진해서 뭘 모른 것 같더라, 정말 돈 맛을 모르는지 알게 뭐유. 누가 시험 삼아 한 백만 원만 넣어줘 봤으면 좋겠더라. 당신이 그래보지 그래. 호호호…

이렇게 자기들끼리 찧고 까불었을 게 보지 않아도 본 듯했다. 문경이는 어머니들에 대해선지 대상이 분명치 않은 싫증이 신트림처럼 고약하게 치미는 걸 느꼈다. 다행히 어머니들이 딴 반에 비해선 몇 안 되었고 보아하니, 거의 공부 잘하는 애 어머니들이었다. 문득 문경이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 여자는 종례를 끝마치기 전에 어머니들을 교실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개별면담을 통해 해야 할 말, 부탁하고 싶은 소리를 공개적으로 했다.

“영범이 어머니 잘 오셨어요. 영범이는 공부도 잘하지만 인기도 좋고 영도력도 있나봐요. 1학년 때부터 내리 반장이라 제 생각으로는 좀 갈아보고 싶었는데 그게 어디 담임 마음대로 돼야 말이죠. 압도적인 표로 당선이 된 걸요. 어머니 모신 김에 억지로라도 영범이 단점을 들추라면 글쎄요. 1등 자리를 너무 오래 독점하는 거라고나 할까요. 정상에서 밀려나보는 것도 해볼 만한 체험인데….”

“아이고 선생님 우리 영범일 그렇게 치사한 공부벌레 취급하지 마세요. 잠 실컷 자고 놀 만치 놀고 슬슬 해도 1등만 하는 걸 어쩝니까. 머리 좋은 것도 죄가 됩니까?”

영범이 어머니가 노기등등한 목소리로 항의했다.

“공부벌레란 뜻은 결코 아니구요. 줄창 1등만 하면서 받는 심리적인 압박감을 눙쳐주고 싶어서 한 소립니다. 얘들아, 느희들도 영범이에 대해 하고 싶은 칭찬이 있으면 이런 기회에 해 보렴.”

문경이는 까딱하단 옥신각신하게 될 것 같아 이렇게 슬쩍 말머리를 아이들한테로 돌렸다.

“칭찬말고 흉을 좀 보면 안 될까요.”

공부는 중간쯤 하고 두루뭉실하게 생긴 철환이가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장난스럽긴 하지만 악의는 없는 얼굴이었다.

“글쎄다. 친구의 흉을 그 친구 어머니 앞에서 본다는 건 선생님은 찬성할 수 없는데.”

“흉이 아니라 요구조건인데도 안 돼요?”

저 녀석이 무슨 소리를 하려고 저러나 엄마들한테 신경이 쓰이면서도 궁금해서 잠깐 망설이고 있는데 그 새를 못 참고 영범이 어머니가 나섰다.

“말해 봐. 흉이든 요구조건이든 불만이든 다 들어줄 테니….”

싸움을 걸듯이 도적적인 목소리였다.

“저요오, 영범이는요, 우리 반 예쁜 계집애들은  다 제 것처럼 군대요.”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부반장 혜실이 발딱 일어서더니 철환이한테 삿대질을 하면서 대들었다.

“야, 철환이 너 말 다했어. 계집앤 뭐고 제 것은 또 뭐니? 여자가 무슨 물건이니?”

혜실의 항의를 시작으로 남학생과 여학생이 패를 갈라 말다툼을 시작했다. 교실이 떠나갈 듯 시끄러웠다.

“아니 쟤들을 저렇게 그냥 놔두시면 어떡해요?”

참다 못한 엄마들이 담임의 도움을 청했다.

“재미있잖아요. 실컷 싸우게 두세요.”

아이들이 저절로 조용해지길 기다려 다음 엄마들하고도 차례차례 그런 식의 공개적인 상담을 해서 돌려보냈다. 정말 단둘이 머리를 맞대고 상담해야 할 문제아의 부모는 한 사람도 안 와 있었기 때문에 그게 성의없는 짓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학기말이나 방학식날 봉투를 완전히 면해보긴 처음이어서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그 여자는 자기도 모르게 그런 방법으로 혁주의 봉투에 대한 복수를 꾀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봉투를 완전히 면한 줄 안 건 잠시 동안의 착각이었다. 영범이 어머니가 교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와는 달리 만면에 웃음을 띄고,

“깜빡 잊을 뻔했어요.”

“뭘 말씀인가요?”

“이번 달 <샘가>가 읽을 만해서 선생님 드리려고 한 권 더 샀는데 그냥 갈 뻔했지 뭐예요.”

그러면서 작은 잡지를 내놓았다. 뻔한 수법이었다. 하얀 사각봉투의 도툼한 부피로 겉장이 약간 들려있는 잡지를 문경이는 단호하게 내밀었다.

“이걸 어쩌나, 전 <샘가> 정기구독자예요. 벌써 다 읽은 걸요. 오늘날의 사도 師道 무엇인 문제인가? 라는 특집 참 웃기던데요. 물론 읽어보셨겠지만.”

“아, 네에.”

그 방면엔 괘 도가 튼 영범이 어머니였지만 어쩔 줄을 모르다가 그 작은 잡지를 자기 백 속에 도로 넣었다. 부당하게 망신을 당했다고 여겼음인지 눈꼬리가 상큼하게 삐쳤다. 그래도 즐거운 방학 보내시라는 수인사만은 잊지 않고 휭하니 사라졌다. 문경이는 그런 수작을 여봐란 듯이 큰소리로 했기 때문에 곧 교무실 안의 껄끄러운 시선에 몸이 오그라드는 듯한 기분을 맛봐야 했다.

옆자리의 임현자 선생이 속삭이듯 나무랬다.

“아니, 차선생 무슨 일이야? 왜 그렇게 티껍게 굴어. 그렇게 고고하고 싶어?”

문경이는 나도 모르겠다는 표시로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고는 곧 눈물이 그렁해지고 말았다. 봉투라면 닭살이 돋을 것 같은 이상한 혐오감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외로움이 그 여자를 슬프게 했다.

“차 좀 얻어타도 돼?”

운동장에서 그 여자는 종종걸음으로 임선생을 따라잡으며 말했다. 변명도 할 겸 임선생에게 만은 그간에 생긴 신상의 변화를 얘기하고 싶었다. 두 사람은 그만큼 흉허물 없는 사이였다.

“그렇잖아도 모실려고 했어.”

“왜?”

“요새 좀 비정상인 것 같아서.”

“오늘만이 아니고?”

“쭈욱 이상했어. 오늘은 더 심했고.”

“그래? 안 이상하게 노력했는데.”

“뭐가 있긴 있었군.”

“응 좀.”

“좋은 일? 나쁜 일?”

“그것도 좀 알아맞추지 그래.”

“좋은 일 같지는 않지만 나쁜 일이 생길 턱도 없잖아. 이혼 당해 혼자 사는 여자한테 더 무슨 나쁜 일이 생길 건덕지가 있겠어?”

“내 처지가 그 정도로 비참했던가.”

차 가진 교사들이 주차장으로 쓸 수 잇는 공터는 교무실이 있는 구관과 ㄱ 자로 연결된 신간 끄트머리의 골목을 돌아가야 있었다. 특별 활동실을 신축할 예정지라 제법 넓었고 제 차로 출근하는 교사도 많지 않아 아직 주차난은 없었지만 골목길은 겨우 차 한 대가 빠질 만해서 웬만한 운전솜씨로는 차체가 받히거나 우그러지기에 알맞았다.  임선생은 은빛 중형차도 뒷문의 핸들 바로 밑이 쭈그러져 있었다.

“어머 임선생 운전솜씨도 별게 아니네 뭐. 결국은 박았구나.”

문경이는 으레 그 골목길을 돌다 그렇게 된 거려니 하고 조금 빈정댔다. 선생들이 가진 차 중에선 임선생 차만이 중형차건만 얼마나 유연하게 털끝 하나 안 다치고 그 좁은 커브길을 돌 수 있나를 자랑하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다.

“아냐, 보면 몰라? 여기서 박았으면 거기가 어떻게 우그러지냐? 자, 봐, 이쪽을 덜 꺾어서 저쪽 담을 들이받았대도 거기는 얼토당토 않잖아. 또 이쪽 건물 모서리에 걸린다 해도 거기가 아랑곳이야.”

경력이 몇 년 되는 오너가 으레 그렇듯이 운전솜씨 나무라는 소리만은 그냥 넘기지 못하고 문경이를 옆에 앉힌 채 요리조리 부딪는 시늉까지 해가며 변명을 했다.

“아유. 알았어. 임선생 실력 알았으니 제발 곱게 빠져 나갑시다. 요 밴댕이 창자같은 길도 미꾸라지처럼 잘 빠지는 솜씨가 실수를 했을 리는 없고…., 어데서 어떤 초보한테 받혔구먼.”

“글쎄 그 자리는 초보 아니라 장님도 받을 수 없는 자리라니까.”

차가 학교 운동장을 빠져나오자 임선생은 썬그라스를 꺼내 쓰며 심란하게 말했다.

“그럼 어떻게 된 거야.”

“우리 반 애가 일부러 그랬대. 돌로 쳐서.”

“저런 못된. 그래 그 녀석을 그냥 놔뒀어.”

“아직 생각중이야.”

임선생의 소리가 전에 없이 침통하게 들렸다. 선그라스 때문에 자세한 표정은 읽을 수 없었지만 부드럽던 뺨이 경직돼 낯설어 보였다.

문경이는 임선생이 차 좀 긁힌 것 가지고 너무 상심하는 것 같아 아니꼬운 생각이 들었다.

“뭘 그만 일을 가지고 심사숙고까지 하고 그래. 불러서 한번 따끔하게 야단치고 말 일이지. 차 가진 사람들 너무 차 가지고 애지중지하는 거 얼마나 꼴보기 싫은지 알아? 사람 나고 차 났지, 차 나고 사람 난거 아니잖아.”

“동감이야. 나도 사람에 대해서 심사숙고 하는 중이지, 차에 대해서 그러고 있는 거 아냐.”

“뭘 아냐. 고 괘씸한 녀석을 어떡하면 정신이 번쩍 나게 혼내주나 궁리하는 건 결국 차가 꼬물된 게 억울해서이면서.”

“조금도 정곡을 찌르지 못했어. 교외쪽으로 드라이브나 하면서 얘기 할래? 다방으로 갈래?”

차는 이미 문경이가 사는 아파트 단지를 지난 지 오래였다.

“기사 마음대로 해.”

야산과 꽃마을을 지나자 다시 아파트 단지가 나타났다.

“아직도 서울 특별시야?”

“벗어날려면 아직아직 멀었어.”

“고수부지로 갈 걸 그랬나.”

“이 뙈약볕에 미쳤어.”

임선생이 낯선 아파트 단지의 상가 옆에 차를 세웠다. 아래층엔 부동산 중개소가 즐비했고 위층엔 다방 간판도 몇 군데 눈에 띄었다. 우중충하고 냉방이 잘된 다방 안은 한산했다.

“그 녀석이 글쎄 친구들 앞에서 내 차에다 돌을 던지면서 이러더래. 선생 주제에 무슨 돈으로 자가용을 굴리겠느냐고, 엄마들이 팍팍 와이로 멕인 돈으로 더럽게 호강한다고. 하필 호랑이 곽선생한테 그 현장을 들켜가지고 곽선생이 그 녀석 덜미를 잡아가지고 교무실까지 데려왔더라구.”

“집이 너무 못살면 그럴 수도 있어. 우리 학교는 아파트 단지하고 재개발지역하고 한 학군인게 정말 큰 문제야. 임선생 같은 일 안 당해도 담임 맡을 때마다 빈부의 문제처럼 신경 쓰이는 일도 없더라. 그 녀석 야단 안 치기 잘했네, 뭐.”

“가난한 집 애가 아냐. 즈네는 차가 두 대야. 식구는 세 식구인데.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따로 따로 차를 굴리는 셈이지. 아빠는 우리 중등교사보다 월급이 곱절 쯤 되는 고급공무원이고 엄마는 가정부를 고용하고 있으니까 순수 무직이고 그 집에 차 두 대보다 우리 집 한대가 훨씬 더 온당한데 그 녀석의 태도는 마치 불의를 응징하고 난 정의의 사나이처럼 당당하더라니까.”

“맙소사.”

딴 선생은 몰라도 임선생이 차를 굴리게 된 경위는 문경이가 알기로는 좀 우스꽝스럽긴 해도 분수에 넘치는 건 아니었다. 임선생 남편은 대기업 기술개발부에 있다가 독립해서 차린 부품 생산업체가 탄탄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된 게 운전면허 따는 데는 칠전팔기의 곡절을 겪더니 따고 나서 차를 사고도 혼자서 몰고 나가질 못했다. 연수도 받을 만큼 받았건만 도부지 실력이 늘지 않자 차는 저절로 면허를 늦게 딴 임선생 차지가 되어 남편의 운전기사 노릇까지 겸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그 녀석의 정의감에 불타는 당돌한 눈동자를 보자 그만 섬칫해지면서 말문이 막혀버렸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상한 무력감에서 도무지 헤어나질 못하겠어. 그 애의 정의감을 통해 우리 사회의 중상류층의 일그러진 정의감의 정체를 파악한 것처럼 느꼈다고나 할까. 엄마들 참 잘났어. 존경스러워. 제 자식을 가르치는 선생은 잘살아도 멸시, 못살아도 멸시하면서 선생을 멸시할 수 있는 근거가 돼주는 자기들의 부 富나 지위는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회의는 부모 자식이 어쩌면 그렇게 똑같이 백치일 수가 있느냐말야. 가정교육이 그렇게 잘돼 있으니 선생이 학교에서 해줄 게 남아있을 게 뭐람.”

“그래도 못된 건 조상 탓이라고 아이들의 빗나간 책임은 다 학교한테 돌리려고만 하니 정말 해먹을 짓이 아냐.”

“그래도 난 교사 스스로 그렇게 자조 自嘲 하는 건 더 못 참아주겠더라.”

“자조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잖아. 임선생도 말했듯이 잘살아도 멸시, 못살아도 멸시 받은 직업이 어디 그래 흔해.”

“이번 일을 통해 내가 제일 쇼크 먹은 건 뭐니뭐니해도 우리 남편의 반응이야.”

“남편한테 그런 일까지 고해바쳐야 되나, 난 결혼생활 별로 오래 안해 봐서 잘은 모르지만 그 정도는 혼자서 삭히지 그랬어.”

“차가 찌그러진 걸 어떻게 말을 안 해. 다 듣고 나더니 노발대발 당장 학교를 그만두라는 거야.”

“누군 든든한 남편 둬서 좋겠다. 쇼크 먹었다더니 듣고 보니 남편 자랑이네 뭐.”

“차선생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래 당장 그만 둬도 벌어 먹여줄 남편 있는 사람 정말 부럽다.”

“그이도 그랬어. 밥 안 굶길 테니 당장 그만 두라고. 박봉은 참아줘도 수모는 못 참아주겠대. 더구나 제자로부터 그런 수모를 당하고도 안 그만두는 건 자기를 무시하는 거라나.”

“그만해 둬. 지 남편이 얼마나 애처간지 자랑이 지나친 것 같다. 소박데기 앞에서.”

“놀라지 마. 난 그때처럼 내 남편한테 실망한 적이 없었어. 나는 선생 노릇을 좋아해. 그 일에 보람을 느끼기 때문에 남들이 박봉이라고 하는 보수도 크고 대견하게 받아들였고. 근데 우리 남편은 내가 내 직업을 얼마나 좋아한다는 건 조금도 모르고 있었던 거야. 자기가 버는 돈하고 내가 버는 돈하고 액수로 비교해서 내 직업을 우습게 보는 건 제자한테 당한 무시와 뭐 다르냐 말야?”

“이치가 그렇게 되나?”

문경이는 얼떨떨해서 좀 어벙한 대답을 했다.

“그래, 나는 내 일에 충분한 보람을 느꼈기 때문에 넉넉한 돈을 버는 남편의 직업에 비해 열등감을 느껴본 적도 심심풀이로 다닌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그 사람은 마치 내가 여지껏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게 자기의 크나큰 시혜 施惠였던 것처럼 굴더라고. 아니꼬와서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았어.”

“혹시 대판 사운 거 아냐.”

“속 시원히 싸워나 봤으면 뭣하러 차선생한테 이런 하소연을 하겠어. 의사소통이 될 것 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싸움도 불사하지만 상대방의 고정관념이 절벽일 때는 안 싸워. 일방적으로 다치게 돼있는 싸움을 뭣하러 해. 자기가 운전기사를 고용할 테니 차는 그만 끌고다니기로하고 화해했어. 다시는 학교에 차 안 가지고 올 거야.”

“결국 해고당한 거네 뭐.”

“글쎄말야. 자기가 변변치 못해서 내가 기사노릇까지 겸한 생각은 안하고 마치 내 허영심으로 학교까지 차 끌고 다닌 것처럼 몰아 붙이더라구.”

“부부간의 일을 뭘 그렇게 까다롭게 따져. 차에서 비롯된 분쟁 차로 일단락 봤으면 된 거 아냐?”

“인간의 문제는 어떡허구?”

“임선생 나도 얘기 좀 하자.”

문경이가 별안간 짜증을 냈다. 속사정을 털어놓고 의논하고 싶었던 건 자기가 먼전데 임선생이 먼저 하소연을 했고, 그 하소연이 자기 사정에 비해 너무 안 급하고 사치스럽다는 게 문득 화가 났던 것이다.

“그래 참, 차선생이 무슨 고민이 있다는 걸 느낀 게 어제 오늘이 아닌데 내 소리만 드립다 했네. 미안 미안.”

“미안한 정도가 아냐. 꼭 당장 오줌 쌀 사람 밀치고 화장실에 먼저 들어가 담배 한 대 피고 나오는 년처럼 밉쌀스러워.”

“어머 그 정도야. 진작 가르쳐주지.”

“나 아기를 가졌어.”

“그래서?”

“왜 그렇게 안 놀라?”

“놀라야 되는 거야?”

“그럼 독신녀가 애를 가졌다는데도 안 놀라면 어떡해.”

“그렇지만 남자 없이 혼자 애를 만들었을 리는 없잖아.”

“그야 물론이지.”

“그런데 왜 놀라?”

“그래 안 놀래도 좋아. 놀래줄려고 이런 얘기 꺼낸 건 아니니까. 아직은 아기를 낳을까 말까도 불확실해. 실은 그걸 결정하는데 임선생의 도움이 필요해서 만나자고 한거야.”

문경이는 비교적 자세하게 혁주와의 어렴풋하고도 오랜 인연과 짧은 행복과 더러운 끝장을 임선생한테 털어놓았다.

“이제야 이해가 돼. 아까 교무실에서 봉투를 가지고 왜 그렇게 이상하게 굴었는지.”

임선생이 나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임선생이라면 어떻게 하겠어. 애를 낳아야 할지 안 낳아야 할지 입장을 바꾸어서 한번 생각해 봐. 그 극성맞은 모자한테 시달리다 못해 그 사람의 애가 아니라고까지 말했지만 그게 어디 내 정신으로 한 소리겠어. 그 후 여지껏 내 정신이 아니라니까.”

“나라면 그런 사람 애 배지도 않았을 거야. 미안해. 이런 말투.”

“괜찮아, 어차피 입장이란 서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 중요한 건 차선생 생각이야. 차선생만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야.”

“내가 낳고 싶어도 애비가 원치를 않으니까 문제지. 그럴 땐 낳을까 말까가 팽팽하게 맞설 수밖에 없잖아. 오죽해야 제 3자한테 이렇게 도움을 청하겠어. 임선생이 어느 한쪽에다 머리카락만한 무게라도 더하면 그쪽으로 확 기울어버리고 말겠어.”

“사양하겠어. 난 어느 한쪽에도 내 의사를 보태지 않을거야.”

“우정도 없어. 깍쟁이 같으니라구.”

“왜 아이의 의지는 생각 안 해? 나는 생명이 잉태될 때 이미 태어나려는 강렬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거기다가 엄마의 낳고 싶은 마음을 보태봐. 어디고 기우나.”

“정말 그렇까?”

문경이가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그렇지만 차선생.”

그러나 임선생은 웃지 않고 오히려 더 근심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너무 좋아하지만 말고 차선생 자신의 마음을 냉정하게 재차 점검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게 무슨 뜻이지?”

“차선생 정말 아이가 갖고 싶어?”

“거기 대해선 더 생각할 것도 없다니까.”

“혼자서 애 길르는 게 쉬운 일 아냐. 남의 이목, 숙덕공론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도 문제고…”

문경이보다 임선생의 얼굴이 진정한 조심으로 흐려졌다.

문경이는 피식 웃었다. 임선생에 비해 자기가 너무 철딱서니 없는 것 같아서였다. 철딱서니 없이 굴면서 묘한 휴식감을 즐기고 있었다.

“남이야 뭐라든 나는 내 아이를 행복하게 기를 자신이 있어.”

문경이는 무턱대고 씩씩하게 말했다.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다시 생길 수도 있어. 또 그렇게 돼야 하고. 나도 그렇게 되길 더 바래. 아이는 그때 가서 낳아도 늦않아.”

“시집은 안 가. 두 번이나 데였어.”

“정말?”

“정말이라니까.”

문경이는 야무지게 말하고나서 아이스 커피 잔 밑에 남은 얼음조각을 입에 털어넣고 오드득 오드득 소리 내서 씹었다.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임선생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해산달이 언제야?”

“해산달? 으응, 의사는 예정일이라고 그러던데. 내년 1월 초래.”

“이왕이면 아들 낳았으면 좋겠다.”

임선생이 의례적으로 한 말에 문경이는 느닷없이 화를 냈다.

“딸 낳고 싶어. 나는 장차의 내 아이가 남자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기 싫어.”

“아이 아빠에 대한 미움 때문에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막상 낳으면 안 그래. 나는 첫딸 낳고도 울었다면 말 다했지.”

“어머, 임선생 정말이야? 뜻밖인데.”

“나 자신의 일인데도 나도 뜻밖이었는 걸. 그렇게 분하고 억울할 수가 없더라구.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일종의 모성애였겠지만 이왕이면 그런 부정적인 정서로 모성애가 비롯될 건 없다고 생각해.”

“다음에 아들 못 낳았으면 또 낳고 또 낳았겠네.”

임선생은 남매를 두고 있었다.

“그건 꼭 아들이 있어야겠다는 것과는 다른 기분이었어. 이 세상에 인간으로 입문하는 조건을 100전 만점이라고 칠 때 남자로 태어나면 기본점 50점은 따고 들어가는 거라구. 그러니까 여자로 태어난다는 건 상대적으로 50점 감점인 셈이지. 대학입시에서 만일 제 자식이 까닭없이 1, 2점만 감점을 당해도 사생결단하고 덤비지 않을 엄마 없을 걸. 50점의 불이익이 분하고 억울해서 우는 건 당연해.”

“그런 기분 난 잘 모르겠어. 앞으로도 이해하게 될 성싶지 않고, 내가 내 아이를 기다리는 심정은 엄마로서가 아닌가 봐. 나는 그 애를 친구나 동지로 삼고 싶어. 임선생보다 더 확실한 친구를 갖고 싶은 거야. 이러 내 소망에다 대면 그 남자에 대한 증오는 물거품 같아.”

문경이는 웬지 숨을 죽여가며 중얼거렸다.

임선생이 시계를 보았다. 문경이는 방학 동안의 소집일 날 결근을 할 테니 반아이들을 돌봐달라는 부탁을 하고 일어섰다. 개학할 때까지 어디 조용하고 시원한 산촌에 묻혀 있을 작정이었다. 그 동안 자신도 뱃속의 아이도 너무 시달렸단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렇게 완벽한 휴식을 취해보긴 처음이다 싶은 여름방학이었다. 한 달 남짓을 순전히 먹고 자고, 먹고 빈둥거리며 보냈더니 개학하고 만난 사람마다 몰라보게 살이 쪘다고들 했다.

‘체중이 글쎄 한 달 동안에 3킬로나 불었다니까요.”

문경이는 이렇게 태연하게 대꾸했다.

“중년살은 조심해야 돼요. 쪘다 하면 허리부터 굵어지던 걸요.”

20대의 미술선생이 충고인지 비양거림인지 모를 소리를 하면서 문경이의 허리를 유심히 보았다.

“나 아직 중년소리 들을 나이 안 됐어. 두고 보라구. 어느 날 여봐란 듯이 날씬해질 테니까.”

문경이가 이렇게 유들유들하게 굴 때마다 임선생은 괜히 옆에서 안절부절을 못했다. 허리가 걷잡을 수 없이 굵어져 마침내 가슴에 주름이 많이 잡힌 벙벙한 내리닫이를 새로 사 입고 출근한 날이었다. 문경이보다 임선생이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더니 이따 점심시간에 양호실에서 만나자는 말을 마치 결투라도 신청하듯이 날카롭게 강압적으로 했다. 옆자리라 긴 말을 속삭일 시간도 얼마든지 있고 은밀한 얘기라면 퇴근길에 같이 나가 다방 같은 데 들리 수도 있는데 그러는 걸 보면 유쾌한 용건 같지는 않았다. 문경이는 임선생이 먼저 자리를 뜬 후에도 가기가 싫어서 미적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 당해도 당할 일이란 생각 때문에 조마조마했다. 실은 임선생이 뭐라고 그래 주길 고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문경이가 겉으로 아무리 유들유들하게 굴었다지만 속속들이 무신경한 건 아니었다. 임신한 사실을 고백한 유일한 동료가 임선생이었다는 건 문경이가 그만큼 임선생을 좋아하고 믿고 있다는 표시였다. 고백 안 한 사람들한테도 임신한 사실을 숨길 수 없을 만큼 배가 불러지자 일반적인 남들의 눈에 자신의 임신이 어떻게 비칠까 알고 싶었다. 남들이 이해하고 감싸주거나 무관심해주길 바라는 건 아니었다. 자신의 입장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스캔들거리인지 각오하고 있었다. 남들이 뭐라는 소리를 상상만 해도 부르르 몸이 떨렸다. 그렇기 때문에 임선생의 온건한 도덕관과 이성을 통해 어느 만큼 걸러진 남들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아울러 남들의 비난이 너무 원색적이거나 과도할 때는 임선생이 중간에서 변호자 노릇도 좀 해주길 바랬다. 임선생이라면 능히 그렇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양호선생은 알아서 자리를 피했는지 임선생 혼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배 좀 어떻게 할 수 없어? 조마조마해 죽겠어.”

임선생이 대뜸 애걸조로 말했다. 전혀 예기치 않는 말이었기 때문에 문경이는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임신복까지 입고 도대체 어쩌자는 거야?”

문경이의 말없음을 기가 죽은 걸로 간주했는지 임선생의 언성이 한 옥타브 높아졌다.

“임신한 여자가 임신복을 입은 걸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제발.”

문경이가 임선생 옆에 헌옷처럼 구겨져 내리면서 가느다랗게 말했다. 임선생 옆에서만은 긴장하고 싶지 않았다. 터무니없이 당당하게 굴 기력도 없었다.

“아직은 허리에 뭘 좀 감든지 하면 눈가림을 할 수 있을 텐데 너무 노력을 안 하는 것 같아.”

“그런 헛된 노력을 뭣 하러 해. 쑥쑥 자라는 걸 그런 방법으로 억제할 수도 없겠지만, 억제할 마음이었으면 진작 없앨 수도 있었을 거야.”

“나는 차선생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어. 정말.”

임선생은 별안간 믿거라 하고 꿔준 돈을 떼먹힌 여자처럼 적나라한 실망과 모멸을 드러냈다.

“왜 그래? 나는 그래도 임선생만은 나를 이해하고 내 편이 돼줄 줄 알았는데.”

“미안해. 이해하고 말고.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흉보고 손가락질 하면 역성을 들어줄 각오도 하고 있었어. 그렇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알아서 조치를 취할 줄 알았어.”

“어떤 조치를?”

“휴직을 하거나, 사직을 하거나. 생각해 봐. 학부모나 이 사회가 교육자에게 요구하는 것 중의 도덕적인 것의 비중이 얼마나 막중한가를…”

“부도덕하게 생긴 아이가 아냐, 내 아이는. 알잖아?”

“알아. 아니까 이렇게 차선생을 상대하지 모르면 아마 상대도 하기 싫었을 거야.”

“상대해줘서 고마워. 나도 실은 내가 홀몸이 아니란 게 미구에 교무실 안에 그리고 학교 안에 퍼질 일만 생각하면 무서워. 임선생도 나를 위해 조마조마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 그렇지만 휴직을 하고 아이를 몰래 낳긴 싫어. 사직은 더군다나 할 수가 없구. 지금은 나만의 밥줄이지만 곧 두 입의 밥줄인 걸 어떻게 놓을 수가 있겠어.”

“맙소사, 그렇게 대책이 없는 줄은 정말 몰랐어.”

“내가 내 아이를 위해 유일한 대책은 이 아이를 감추지 않는 거야. 부끄러워하지 않는 거야. 법으로 정해진 산전산후 휴가도 당당히 따먹을 테니 두고 봐.”

임선생이 딱하다는 듯이 바라보거나 말거나 문경이는 이렇게 호언장담을 했다. 문경이 배는 사정없이 불러왔다. 처음에 임신복을 입었을 때만 해도 허리 굵어지는 걸 캄플라지하려고 그런 센스 없는 옷을 입은 줄 알고 놀려대던 동료들이 싹 입을 다물고 저희들끼리 눈짓만 하게 되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으레 공손히 허리를 굽히게 되어있는 아이들의 눈빛도 어느 틈에 스승들의 눈빛을 닮아가면서 허리를 굽히는 대신 저희들끼리 서로 허리를 꾹꾹 찌르며 피해 갔다. 새소리처럼 재잘대는 웃음 끝에 ‘얼굴에 철판’ 어쩌구 하는 소리가 문경이의 귀를 후벼 판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얼마 못 견딜 것 같은 막연한 공포와 고독감으로 그 여자의 얼굴은 형편없이 수척해지고 배만 맹꽁이처럼 불러왔다.

교장실의 부름을 받은 것은 겨울방학 얼마 안 남기고였다. 겨울방학이 고비다, 그 고비만 그야말로 얼굴에 철판깔고 넘기면 된다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겨울방학을 문경이 모르게 진행되는 사태가 기다려줄 리 만무했다.

배가 부르고 나서 일대일로 대할 기회를 용케 피해온 교장이었다. 문경이는 교장실에 들어서자마자 그 동안 자기가 교장을 피해온 게 아니라 교장이 자기를 피해줬다는 걸 깨달았다. 교장은 지금도 문경이를 바로 보지 않았다. 이마에 잔뜩 내천자를 긋고 책장 유리에 암울하게 비친 문경이 옆모습에다 대고 겨우 턱짓으로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문경이는 몸을 공처럼 오그리고 소파 한 모서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다분히 허세이긴 했지만 누구 앞에서도 부른 배를 감추려 하거나 창피해 하지 않았건만 교장선생 앞에선 그게 되지 않았다. 이건 옳지 않다. 강요된 죄의식, 강요된 수치감이다, 이렇게 반발하려 해도 노인의 정정하고 깨끗한 동안 童顔은 절로 그 여자를 주눅들게 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차선생.”

학생들 앞에서의 그의 찌렁찌렁한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으나 그 여자 귀에는 추상같이 들렸다.

“죄송합니다. 교장선생님.”

그 여자는 몸을 더욱 동그랗게 말았으므로 뱃속의 드센 발길질은 명치를 치받쳤다.

“이제라도 죄송한 걸 알았으면 됐어요.”

“뭘 말씀인가요?”

문경이는 얼떨결에 이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고 말았다.

“아니 그럼 뭔지도 모르고 사과를 했단 말예요?”

교장선생이 탁자를 쳤다. 탁자 위의 유리 재떨이가 오래도록 진동했다.

재떨이의 진동이 멎은 후에도 문경이의 놀란 가슴은 후들댔다.

“이런 꼴을 보여드리게 돼서 죄송합니다.”

“겨우 그겁니까?”

“네?”

“내가, 이 늙은이가 그 입에 담기 싫은 소리를 곡 입에 담아야 하겠습니까?”

“말씀 안 하셔도 압니다. 제가 뭘 잘못했는지.”

“알면 책임을 져야죠.”

“전 아무에게도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습니다. 힘겹지만 아무에게도 폐 안 끼치고 제 힘으로….”

문경이는 울음이 복받쳐 말끝을 잇지 못했다. 교장선생으로서가 아니라 이 세상을 자기보다 갑절을 산 노인으로 대하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그 여자를 심약하게 했다. 꾸짖음과 자애가 함께 그리워 한없이 울고 싶었다. 그러나 자애가 조금도 섞이지 않은 교장의 다음 음성 때문에 그 여자는 울음을 뚝 그칠 수밖에 없었다.

“차선생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내가 묻는 건 교육자로서의 대사회적인 책임이지, 혼자 사는 여자의 방탕한 사생활의 불미스러운 결과에 대한 사적인 책임이 아니잖소. 그걸 내가 왜 묻겠소? 나 그렇게 한가하고 저급한 사람 아녜요. 이날 이때까지 상스러운 소리 한번 입에 담지 않고 살아왔어요. 여북해야 벌써부터 말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설마 내가 말할 때까지 있을라구 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왔겠어요. 교육자가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어떻게든지 마지막 망신만은 스스로 피할 줄 알았는데….”

교장이 언성을 높이면서 처음으로 그 여자의 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교장은 그 흉한 배를 바라본 것만으로도 그의 정결한 생애가 부정 탄 것처럼 느꼈고 그 여자는 그 여자대로 그런 시선이 닿았다는 것만으로도 뱃속의 정결한 생명이 부정 탄 것처럼 느꼈다.  교장은 황급히 그의 시선을 거두었고 그 여자는 두 손으로 배를 가리는 자세로 돌아 앉았다.

“아직도 못 알아들었어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리다. 사표를 내셔야겠어요. 이왕 낼 사표 파다하게 소문이 퍼지기 전에 냈으면 좀 좋아요.”

“알겠습니다.”

가슴속 깊이로부터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오는 걸 참으려고 어금니를 지그시 문 채 겨우 그 말 한마디를 할 수가 있었다. 너무 쉽고 승복한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조리있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충격이 심한 것 같은데 나 역시 쇼크예요. 사표내는 시기를 너무 미룬다 싶긴 했어도 차선생이 자발적으로 사표 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건 정말 몰랐거든요. 어째  그럴 수가 있어요. 상식을 가진 사람의 도덕관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녜요. 교육자가 아니더라도 말예요. 차선생이 그런 사람인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도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되기 전에 내 선에서 쉬쉬 마무리를 짓는 건데…”

나중 말은 입속에서 우물거렸지만 그가 심히 낭패스러워하고 있다는 건 여실히 나타났다. 그 여자는 교장이 말하는 사태의 악화라는 게 사표를 내지 않을 수 없게 된 자신의 입장일 줄만 알고

“죄송합니다. 진작 의논을 들였어야 하는 건데….”

“의논은 무슨 놈의 의논, 나 그 따위 저속한 의논받는 사람 아녜요.”

그 여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교장실을 물러났다. 제 발로 걸어나오면서도 그 여자는 마치 비질을 당하는 검부락지처럼 어떤 난폭한 힘에 밀려나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텅 빈 교무실에 임선생 혼자 남아 있었다. 보나마나 그 여자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지만 그 여자는 본체만체 제자리에 앉아서 서랍을 있는 대로 열어제쳤다.

“차선생, 서랍 정리는 나중에 해도 늦잖아. 뭐라고 말 좀 해봐.”

“알잖아 내가 뭐라고 안 해도. 그래. 쫓겨났어. 비참해.”

“진작 사표를 낼 걸 그랬어.”

“임선생이 내라고 할 때? 임선생이 옳았다고 말하고 싶은 거지? 충고 안 듣더니 꼴 좋다고…”

“차선생 왜 그렇게 화부터 낼려고 그래.”

“내가 화부터 낸다고? 교장실에서 내가 무슨 꼴을 당했는지 당신같은 사람은 아마 상상도 못할 걸.”

“왜 못해 얼마나 심하게 구셨을까 보지 않아도 본 듯해서 나는 나대로 애절을 하고 있었어. 그렇지만 그분이 너무 한 거라고만 생각하지 마. 차선생만 모르고 있었지 제일 먼지 들고 일어난 게 어머니회였어. 어머니회에서 교장선생님한테 압력을 넣었는데 처음엔 들은 척도 안 하셨다나봐. 차선생을 봐 줄래서가 아니라 그 어른 성미로 봐서 개입하는 것조차 당신 체면에 관계된다고 생각하셨던가 봐. 그러면서 본인이 알아서 처신하기만을 기다렸는데 어머니회에서 더욱 쎄게 나오는 걸 어쩌겠어. 이사장한테도 알리고 그런 선생한테 사춘기 아이들이 배우게 하느니 집단적으로 전학을 가던지 유학을 시키고 사회적인 여론을 환기시키겠다고 법석들을 하는 바람에 교장선생님이 나서게 된 거야.”

“몰랐댔어.”

“어쩌면 그렇게 깜깜일 수가 있어.”

“아주 모른 건 아냐. 알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지. 보기 싫은 게 극도에 달하면 아무 이상 없이도 눈이 안 보이게 되는 수도 있다지 아마. 그와 비슷한 심리작용으로 눈치를 무감각하게 만들었었나봐.”

“등잔 밑이 어두워도 분수가 있지.”

임선생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회에서도 제일 앞장서서 설치고 다닌 이가 바로 차선생 반의 영범이 엄마니 하는 소리야.”

문경이는 열린 서랍들을 쾅쾅 소리나게 닫고는 책상 위에 푹 엎드렸다. 임선생은 그 여자가 울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고 잠시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잠든 것처럼 꼼짝을 안 하자 살그머니 다가가 어깨를 두 손으로 감싸안으며 말했다.

“자아 이제 퇴근합시다. 우리 어디 가서 저녁이나 먹으면서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자구.”

“임선생이 뭘 안다고 내 일을 의논해?”

그 여자는 엎드린 채 조용히 말했다.

“왜 몰라 나 차선생 마음 다 알아. 대신 아파주고 싶을 만큼.”

그 여자는 벌떡 일어나면서 헝크러진 머리를 두억시니처럼 흔들면서 말했다.

“당신이 내 마음을 안다고? 당신에게 교직은 기껏 좋아하는 일이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야. 흥 아니꼽게스리. 나에게 이 교직이 밥줄이란 말야. 앞으로는 두 사람의 밥줄인데 나는 그 밥줄을 잃었어. 밥줄을 잃은 기분이, 아직 이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아이의 밥줄까지 짤린 기분이 어떤지 당신처럼 팔자 좋은 여가자 알게 뭐야 말야. 아아, 난 밥줄을 잃었어.”

그 여자는 비로소 울음을 터뜨리며 임선생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임선생도 눈시울을 붉힌 채 그 여자의 울음이 절로 그치길 기다렸다.

 

 

 

3

 

사표를 내고 퇴직금을 받아 든 문경이는 다시 명랑해졌다. 7백만 원이 넘는 액수였다. 저축도 좀 있어서 출산비용하고도 2년은 먹고 살 수 잇는 목돈이 수중에 있었다. 생후 2년 동안은 아이도 한참 손이 갈 시기이니 목돈을 곶감 고치 빼먹듯이 빼먹으면서 온갖 시름 다 잊고 아이 기르는 링에만 전념할 작정이었다. 다 까먹고 난 후의 걱정은 그때 가서 해도 늦을 건 없다는 배짱 같은 게 생겼다. 궁하면 통하게 돼 있다던가 산 입에 거미줄 치랴는 말이 크게 힘이 되기도 했다.

예정일을 사흘쯤 지나 진통이 와서 정기진단을 받던 동네 산원에 입원한 지 다섯 시간 만에 순산을 했다. 3.8키로나 되는 충실한 사내아이였다. 임선생은 병원으로도 와주었고 퇴원할 때도 와서 도와주었다. 퇴원한 지 2주일 쯤 되어서 아기에게 필요한 걸 한 보따리나 사가지고 온 임선생은 능숙한 솜씨로 아기 목욕까지 시켜주고 나서 말했다.

“녀석 볼수록 밉게 생겼네 그려. 어쩌면 엄마는 조금도 안 닮았지. 이목구비가 또렷해질수록 더 해. 엄마가 섭섭해서 어쩐다지?”

이러면서 점검하듯이 차근차근 아기를 뜯어보는 임선생의 눈길에는 애 아버지의 모습을 찾아내려는 집요한 호기심 같은 게 엿보여 문경이는 문득 서글퍼졌다. 아기를 낳고 나서부터 그 여자는 웬지 혁주의 모습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어렴풋하고 추상적인 모습으로 생각날 뿐 구체적인 모습이 신기할 정도로 안 떠올랐다.

“아냐, 안 섭섭해. 조금도.”

“왜 딸이 아니라서 섭섭하진 않구.”

“그것도 안 섭섭하구. 난 생긴 대로의 우리 아기가 그냥 좋고 신기하고 감사하고 그래.”

“어쭈 그렇게 고상하게 굴 거 없어. 내 식으로 50점은 벌써 따가지고 세상에 나왔으니 얼마나 기특하냐고 좋아해도 괜찮아.”

“알았어. 근데 왜 이렇게 뭘 많이 사왔어. 나만 자꾸 염치없어지잖아.”

“다 산 거 아냐. 산 건 포장한 것뿐이고 다 우리 아이들 어려서 입던 헌옷들이야. 말짱해. 아직도 두셋은 더 길러도 될 걸.”

“나더러 두 셋을 더 낳으란 소리같아서 겁난다.”

“아무리. 참, 흔들의자 보행기 유모차 그런 것도 사지 마. 필요한 시기가 되면 내가 다 한꺼번에 싣고 올 테니까.”

“고마워. 나도 아직은 부자야. 예금통장에 목돈 넣어놓고 빼 쓰는 재미도 여간 아냐. 퇴직금 받아들고 무슨 생각한 줄 알아? 까치밥 생각이 나데. 시골서 감 딸 때 맨 윗가지에 몇 개 남겨놓잖아. 겨우내 까치들 먹으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그게 어디 남이 베푼 자선인가. 우리가 죽자구나 벌어서 다달이 적립한 돈에다 이자를 조금 붙여주는 건데 뭘 그렇게 감지덕지해.”

목욕하고 새근새근 잠자던 아기가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고 방긋방긋 웃기도 했다. 배냇짓이야말로 천사의 웃음이었다. 두 여자도 천사의 미소에 감염된 듯 오래간만에 뜻 없이 그러나 마음으로부터 기쁨이 우러나서 은근히 미소를 교환했다.

“그런 줄 알면서도 놀고도 살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마냥 이렇게 살 순 없지 싶어 겁이 나기도 한다니까.”

“세상 여자들은 다 그렇게 살아. 쉬는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부터 그렇게 불안해하고 그래. 꼴보기 싫게.”

임선생은 정말 꼴보기 싫은지 눈을 흘겼다.

“세상 여자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대부분의 여자들이 사는 방식이다 싶기도 해.”

“어쭈, 자기가 마치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저항을 하다가 이 꼴이 된 것처럼 굴고 있네.”

임선생이 또 한번 눈을 흘겼다. 그러나 비꼬거나 얕잡는 투가 아닌 푸근한 눈길이었다.

“그러게 말야. 내 팔자 사나운 생각은 안 하고….”

“팔자타령은 더욱 차선생답지 않아.”

“모르겠어 뭐가 뭔지. 1, 2년 놀고 먹을 수 있는 목돈만 있어도 이렇게 든든한데 다달이 빼쓰는 액수만큼 채원주는 화수분 같은 남편이 잇는 팔자란 얼마나 느긋할까 은근히 부럽다면 말 다했지. 남편 잘 만난 여자들이 콧대 높은 것도 이해가 되더라니까.”

“점점 더 차선생답지 않아지네.”

임선생이 맥빠진 웃음을 웃으며 아기를 들여다보았다.

“정말 나답지 않지?”

문경이 쓸쓸하게 말했다. 아직도 푸석한 화장기없는 얼굴에 몇가닥의 주름이 신산스러워 보였다.

“차선생답다는 게 도대체 뭐게?”

임선생이 아기를 들여다보던 눈을 들어 그 여자를 쏘아보면서 따지듯이 날카롭게 말했다.

“왜 이랬다저랬다 남 헷갈리게 해?”

“차선생답다는 게 고작 그렇게 헷갈릴 수 있는거라면 차선생답다는 걸 아주 포기하는 게 어때?”

“임선생 무슨 말을 하려고 그래? 너무 어렵게 굴지 마. 난 못 알아 듣겠다.”

“내가 차선생을 보통 여자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차선생이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는 건 더 큰 오해인지 몰라. 자신에 대한 오해를 한번 풀어 봐. 공연한 잘난 척만 안 할 수 있어도 훨씬 앞날이 편해질 수도 있어.”

“무슨 소린지 난 통 못 알아듣겠어.”

“아까 차선생이 모처럼 정직한 소리했잖아. 다달이 빼쓰는 액수만큼 채워주는 화수분 같은 남편이 있으면 얼마나 편하겠느냐고. 그런 편한 생활은 차선생과 인연이 없다는 생각을 고치란 말야.”

“애 아버지 얘기를 하고 싶은가 본데 우리 아긴 아버지가 없어. 그가 자기 자식을 부정했어. 우리 아긴 나만의 자식이야.”

“이 아이를 좀 봐. 얼마나 잘 났어. 남도 탐나. 이런 관옥같은 아이의 아버지라면 차선생한테 들은 것보다 훨씬 괜찮은 남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아니 보통 정도의 남자만 되더라도 이 아이를 보면 담박 심경의 변화가 생길 것 같아. 화내지 마 내 멋대로 한 생각이야.”

“때는 이미 늦었어. 그는 작년 가을에 결혼했어.”

“이런 걸 그저 타이밍이 안 맞았다고 하면 너무 경솔한가.”

“그는 딴 여자와 결혼하기 위해 먼저 우리 아기를 부정했어. 타이밍을 못 맞춘 건 내 쪽이고 그 남자는 착착 잘도 타이밍을 맞추었는 걸.”

“만일 애밴 여자가 딴 남자와 결혼할 생각이었으면 애가 크나큰 짐이거나 아니면 목숨 걸고 중절을 해야만 했으련만 남자는 말 한마디로 제게 뿌린 목숨을 없앨 수가 있으니…”

“내가 어떻게 그런 남자를 용서할 수 있겠어.”

“용서하라곤 안 했어. 벌을 톡톡히 주면서도 실속을 차리는 방법도 있어. 생각만 고쳐먹으면.”

임선생의 말투가 간절해졌다.

“오, 제발 나를 꼬시지 말아. 그 남자한테 화수분 노릇을 시키면서 나는 정부노릇이나 하란 말이지.”

“꼭 그렇게 최악의 말만 골라 쓸 게 뭐람. 화수분 노릇 시키기가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구. 그보다 급한 건 그 남자로 하여금 이 아이를 부정했던 걸 번복시키는 일이야. 이 아이를 제 자식으로 인지시키는 일이야.”

“왜? 뭣하러?”

“그게 사실이니까. 앞으로의 차선생의 생활력 여하게 따라서는 화수분 같은 건 전혀 필요없게 될지도 모르지만 아이를 즈이 아버지 호적에 입적시키는 문제는 그와는 별도의 문제야.”

“내 호적에다 나 혼자 낳은 아이로 입적시킬 거야. 물론 내 성을 다르게 할 테고 요샛세상에 엄마 성을 따른 아이가 불이익을 당하는 법은 없다고 생각해.”

“여자가 불이익을 당하는 게 반드시 명문화된 법조문에 의해서만은 아니잖아. 관습에 의해서지. 이 아이도 언제 어디서 관습이나 고정관념에 의해 불이익이나 수모를 당할 지 모르는 일이야.”

“나는 우리 아기를 그런 것들 때문에 상처받지 않도록 강하게 늠름하게 키울 테니 두고 봐.”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님도 세속의 족보에 올라있다는 걸 명심해 둬. 왜 그랬을까?”

문경이가 그 문제를 조금도 안 생각한 건 아니었다.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뿐이었다. 임선생은 그 문제를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빙빙 돌아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왔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심각하게 들렸다.

임선생이 다녀간 후 며칠 동안을 끙끙거리며 썼다 찢었다 썼다 찢었다 수없이 되풀이한 끝에 마침내 편지 한 통을 썼다. 혁주한테 보내는 편지였다. 집으로 보낼까 회사로 보낼까 겉봉을 고쳐 쓰느라 또 며칠을 허비했다. 혁주의 어머니와 그의 신혼 아내에 대한 배려에서라기보다는 편지 내용의 간단명료하고 사무적인 사연 때문에 회사로 보내고 싶은 쪽으로 마지막 결정을 내렸다. 아직도 남아 있는 한 조각의 자존심이 이제 와서 혁주를 곤경에 빠뜨리거나 혁주네집 식구들의 입초사에 오르내리는 일을 피하도록 했는지도 모른다.

몇 월 몇 일 사내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당신과 나의 아이라는 사실을 당신이 인정해줘서 사실대로 기록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그 여자의 편지에 대한 혁주의 답신에는 육필은 단 한 자도 들어있지 않았다. 공문조로 타이핑 된 사연은 간단했지만 충분히 야비했다.

 

차문경 여사

여사가 본인의 아이를 낳았다구요?

여사의 말귀를 못 알아듣겠음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사로부터 그와 같은 협박을 당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걸 본인이 기억하고 있음을 상기시켜드리고자 합니다. 앞으로 다신 이런 허무맹랑한 협박으로 본인의 신성한 가정에 평화가 위협을 받을 시는 여사의 정신상태를 의심할 것이며 본인도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임을 경고합니다.

X년 X월 X일 김혁주

 

끄트머리 성명삼자까지 타이핑을 했으면서도 무슨 생각에선지 이름 다음에다 인주빛깔도 선명하게 날인을 하고 있었다. 붉은색은 마치 도덕군자의 팬티에 찍힌 창녀의 연지자국처럼 우스꽝스럽고도 생경스러워 보였다. 내용을 한번 훑어보고 치가 떨린 문경이도 그 인주빛깔에 이르러서는 픽 하고 웃고 말았다.

그 여자는 아무하고도 상의하지 않고 혼자서 아기 이름을 문혁이라고 지었다 순 우리말 이름도 몇 개 생각해 놓은 게 있고 또 뜻과 음이 좋은 한자이름도 사전을 보며 맞춰놓은 게 있었지만 혁주와 문경이 두 사람의 이름자 중에서 한 자식 떼어다 아들의 이름을 만들기로 했다. 아마 임선생한테 그런 뜻을 의논했더라면 담박에 치사하다느니 집요하다느니 하는 평을 들을 게 뻔했다. 그러나 문경이는 그렇게라도 해서 그 아이의 출생의 진실을 남겨놓고 싶었다. 가끔 그 탐스럽고 잘생긴 아기 아버지가 혁주라는 생각을 하면 뜨악해진 적도 있었지만 사실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뜯어고치거나 없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편리한 거짓말쟁이가 못 되었다.

아기는 백날을 지나면서 어렴풋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점점 더 확실해지기 시작했다. 보행기를 올라타게 되자 영감님처럼 약간 구부정하게 걷는 혁주의 걸음걸이까지 빼 닮을 조짐이 보였다. 그 여자는 신기하고 한편 낭패스럽기도 했다.

문득 문득 아기를 안고 회사 앞에서 혁주의 퇴근길을 지켜 서있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다. 만약 자기가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혁주는 두말도 못하고 그의 아들을 인지할 것 같았다. 어떤 때는 아기를 잘 씻기고 입히고 자신도 곱게 몸단장을 하고 나서 아기를 안고 회사 앞으로 가기 일보직전까지 이르른 적도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공문투의 편지끝의 시뻘건 날인 생각만 하면 아무리 고조된 용기도 맥없이 꺽이고 말았다. 처음 보았을 때는 우스꽝스럽고 생급스럽게만 보이던 날인이 날이 갈수록 그 여자가 도저히 대적하거나 돌파할 수 없는 철옹성같은 기득권처럼 여겨졌다. 혁주가 의도한 것 이상의 효과를 거두었다고나 할까.

혁주가 회사로 배달된 문경이의 편지를 받았을 때는 옥시글옥시글한 신혼재미에 아내의 임신까지 확실해져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때였다. 그는 편지를 받았을 때도 그러하였고 다 일고 나서도 호사다마라는 생각밖에는 별로 충격을 받지 않았다. 문경이로부터 뱃속의 아이가 그의 아이가 아니란 자백을 얻어냈을 때 어렵사리 불쾌한 책임을 벗어 났다는 안도감은 느꼈을진 몰라도, 물론 그걸 믿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 후에 획득한 꿈같은 행복을 확실하게 해두고 싶은 욕심은 차차 그걸 믿는 쪽으로 자신을 몰고 갔다. 그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문경이로부터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느꼈으며 그 더러운 협박으로부터 그의 신성한 가정을 지켜야 할 사명감에 불탔다. 그는 자신이 조금도 인정에 약해져선 안 된다는 단호한 결의를 나타내고자 의도적으로 육필을 피하고 회사 마크가 들은 타이프 용지에다 타자를 찍어 답장을 썼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노여움과 확고한 결심을 나타내기엔 어딘지 좀 미흡한 것 같아 쾅 하고 도장을 찍고 나니 분도 좀 풀린 것 같고 말로 미처 다 나타내지 못한 게 보충된 것도 같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말에 권위가 붙은 것 같아서 흡족했다.

약간의 치기랄까 허세 때문에 찍은 도장에 문경이는 필요 이상 주눅이 들고 있었다. 어떠면 단순히 도장 때문이 아닌지도 몰랐다. 문경이는 외롭고 불안하고 조금씩 곤궁해지고 있었지만 혁주는 행복하고 자신있고 날로 윤택해지고 있었다. 열등감은 피해의식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우월감이 까딱하던 무모한 가해의 충동이 되는 것처럼.

혁주는 문경이가 그의 첫아들을 낳았다는 데 대해서도 매우 냉담했다. 그는 오직 그의 행복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아아, 아름답고 여자다울 뿐 아니라 경제력까지 있는 아내처럼 사랑스러운 게 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그 사랑스러운 아내는 목하 임신중이었다. 그는 그이 행복에 도취해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났다.

아이는 건강하고 사랑스럽게 자라주었다. 우리 나이로 네 살이 된 문혁이는 어찌나 숙성한지 벌써 세발 자전거는 마다하고 보조바퀴가 달린 두발 자전거를 탔다. 약간 긴 듯한 결 좋은 머리칼을 나부끼며 속도감을 즐기는 아이를 베란다에서 내다보는 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여자의 기쁨이자 뿌듯한 자랑이었다. 암만해도 나이가 있는지라 다리의 길이가 페달까지 닿기에 넉넉지 않은지 뒤에서 보면 아이의 궁둥이가 몹시 씰룩댔다. 그 여자는 그게 우습고도 신통해 환하게 웃으면서 아이가 커브를 돌기를 기다렸다. 어린이 놀이터를 가운데다 둔 타원형의 아스팔트 길은 아직도 차도나 주차장으로 쓰이지 않는 단지내의 유일한 안전지대여서 부부가 배드민튼을 치거나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기에 알맞았다. 커브를 돈 아이는 엄마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이쪽을 보면서 한 손을 들어보였다. 그럴 땐 아이가 아니라 소년처럼 보였다. 그 여자는 짜릿한 행복감을 느꼈다. 신나게 몇 바퀴 돌고 난 아이는 곧 싱그러운 땀냄새를 풍기며 엄마를 부를 것이다. 그리고 먹을 것을 찾을 것이다. 건강한 아이답게 문혁이는 잘 놀고 잘 먹었다. 아이의 탐스러운 먹성을 생각하면서 그 여자는 부엌쪽으로 갔다. 감자, 삶은 계란, 사과, 우유 등 아이의 간식거리를 궁리하다 말고 그 여자의 얼굴엔 점점 그늘이 졌다. 다섯자리 숫자밖에 안 남은 은행의 잔고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퇴직금 말고도 그 여자는 어느 정도 여축을 가지고 있었다. 이혼하고 혼자 살고부터 교사월급으로도 다달이 저축이 가능했다. 그러나 혼자 산다고 해서 안 먹고 안 쓰고 안 입고 오로지 돈모으는 재미 하나로 살 만큼 그 여자는 악착같지가 못했다. 행여 메마르고 악착같아질까 봐 늘 자신을 돌보았다. 돌보고 걱정해줄 가족이 없으니까 스스로 그 일을 해야만 했다. 혼자 먹는 식사도 손님대접처럼 갖출 거 갖춰놓고 분위기까지 신경을 쓰며 했다. 나를 나 이상 잘 대접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열심히 대접했다. 옷도 사치할 형편은 못 돼도 남들한테 꽤 잘입는다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옷 한번 장만하려면 값싸고 그럴듯한 걸 고르려고 돈보다 시간을 많이 들이는 편이었다. 낭비나 사치를 모르는 집안에서 자라서 절제가 몸에 배있긴 해도 체질적으로 궁상스러운 건 질색이었다. 결국 쓸 만큼 쓰고 저축을 했단 얘기니까 그렇게 많을 리는 없었다. 그래도 거기다가 퇴직금을 합치니까 그 여자로서는 평생 처음 쥐어보는 거금이더니 고작 3년 남짓 파먹고 나서 바닥이 나다니.

혼자 살 때도 아무렇게나 입거나 아무거나 먹지 않도록 노력한 그 여자가 아이가 생겼으니 씀씀이가 갑절로 늘어나는 건 당연했다. 직업도 없이 식구까지 늘었는데도 한 푼을 쪼개쓰려는 안달을 안 했던 것도 천성이 낙천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여자가 노력한 결과였다. 그 여자는 아이에게 심리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아빠가 아정도니 직업을 가진 가정 분위기를 보장해주고 싶었다. 복 많은 여자들은 임신중 태교에 힘쓰기도 한다는데 그 여자는 태아의 목숨을 지키기도 벅찼었다는 걸 그렇게라도 해서 보상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 동안 내일 어떻게 될까 근심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넉넉하게 먹고, 생활에 즐거움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만 절약하면서 살았다.

그 여자가 넘치지 않을 정도로 윤택하게 살면서도 그 몫돈이 3년이나 넘어 유지됐던 건 물론 주위의 따뜻한 도움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 아이가 타고 잇는 자전거도 임선생 아들이 타던 걸 물려준 거였다. 요새 갑자기 생활들이 넉넉해지기 시작한 언니 오빠들의 도움도 컸다. 동기간들은 도와줄 때마다 설교를 하면서 도와줘서 아니꼬울 적도 있었지만 만약 나에게 나 같은 동생이 있어도 그럴 수밖에 없으려니,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참아줄 만했다. 그러나 그 여자가 너무 오랫동안 동기간의 물심양면의 도움을 감지덕지하지도, 감사하는 기색도 없이 예사롭고 떳떳하게 받은 건 잘못이었나 보다. 이제 너도 뭘 해야지, 사생아 낳은 게 무슨 벼슬이라고 마냥 놀고 먹느냐는 투의 비양거림을 큰언니가 먼저 비추더니 차례차례 약속이나 한 듯이 베풀던 동정이 식어갔다.

하긴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지 않나. 언니 오빠들이 나에게 홀로서기 연습을 시키려는 게야. 그 여자는 도움을 받을 때 비굴하기 않았던 것처럼 그게 끊어졌을 때 원망도 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특별히 잘났거나 무감각해서가 아니라 아이의 유아기와 유년기만은 에미로서 정서적인 안정을 누리고 싶었다. 그게 아이에겐 태중에서 못 받은 태교의 대신이 되길 바랬고 자신에겐 고된 앞날을 위한 충전이 되길 바랬다. 편안하고 무심하게 산 거야말로 저절로 된 게 아니라 그 여자가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인 결과였다.

그러나 더 이상 편안하고 무심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손가락질이나 비웃음에는 무심할 수 있었지만 잔고가 달랑달랑한 예금통장에 어떻게 무심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이가 문밖에서 연속적으로 시끄럽게 벨을 눌러댔다. 놀다가 배고플 때 하는 버릇이었다. 그 여자는 급히 현관문을 열었고 아이는 치마폭으로 덥썩 안겨왔다. 그 여자는 아이를 번쩍 안아 올렸지만 어깨높이 이상으로 들어 올리진 못했다. 그 여자는 자기 힘에 부치는 아이의 몸무게를 대견해 하며 아이를 힘주어 안았다. 결렬한 운동을 하고 난 아이는 끈끈하고도 시척지근했다. 아아 얼마나 좋은 냄새인가. 그 여자는 거의 황홀한 기분으로 아기를 보듬어 안았다. 안긴 아이의 튼실한 어깨너머로 저만치 복도 끝집 앞에서 이쪽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젊은 남자와 시선이 맞부딪혔다. 그 남자도 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문혁이하고도 논 적이 있는 동갑내기 여자아이였다. 늘 예쁜 핀을 꼽고 예쁘게 빗고 있던 그 아이의 머리는 헝크러져 있었고 얼굴도 꾀죄죄했다. 이쪽과 눈이 마주치자 얼른 눈길을 피해 먼 산을 바라보는 남자도 초조해 보였다. 못 볼 것을 본 것 같아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계집애가 문혁이 한테로 오고 싶은 시늉을 하면서 몸을 뒤틀었다. 남자가 “안 돼” 하자 앙 하고 울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들어가려다 말고 이끌리듯이 그들 부녀 곁으로 다가갔다.

“우리 문혁이하고 놀래? 엄마가 어디 가셨나 보구나.”

그러면서 문혁이를 내려놓고 그 여자 아이를 안았다. 나이는 문혁이만큼 뵈는데 안스럽도록 가쁜하고 가냘픈 아이였다.

“우리 아이한테 엄마 소리 하지 마십시요. 애 엄마는 죽었습니다.”

남자가 눈길을 허공에 둔 채 말했다.

“그럴 리가요. 얼마 전에도 애 데리고 슈퍼에 온 걸 봤는데..”

그 여자는 처녀처럼 앳돼 보이던 아기 엄마를 생각하며, 이 철없이 젊은 아빠가 부부싸움 끝에 이렇게 못되게 구는구나 싶어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남자가 하도 슬픈 눈으로 쳐다보자 그 여자는 움찔하고 말았다.

“그 사람은 애 고모였습니다. 며칠 전에 시집을 갔죠.”

“그럼 얘 엄마가 그렇게 됐다는 게 정말이란 말씀인가요?”

“그런 농담도 합니까?”

남자가 버럭 역정을 내면서 딸을 빼앗으려고 했다. 계집애가 싫다고 앙탈을 하면서 그 여자의 목을 얼싸안았다. 남자가 낭패스러운 얼굴로 바지 호주머니를 뒤졌다. 담배를 찾는 눈치였지만 몸짓으로만 그쳤다.

“미안합니다.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아파트 이웃이라는 게 워낙 그렇지 않습니까.”

“피차 마찬가지죠 뭐.”

“아이 돌볼 사람은 있습니까? 고모가 참 잘 거두었었는데…”

“파출부한테 맡겼었는데 그 아줌마가 글쎄 오늘 아무 연락도 없이 안 오지 뭡니까. 자기 아니면 내가 출근도 못하리라는 걸 뻔히 알면서…”

“세상에 아이 맡길 데가 없어서 회사도 못 나갔단 말입니까. 할머니도 안 계신가요?”

“친할머니는 안 계시고 외할머니는 시골에 사세요. 오셔서 봐주실 순 없지만 맡길려면 갖다 맡기라곤 하지만 그러긴 싫어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제 자식은 제가 길러 볼랍니다.”

남자가 제 딴에 당당하게 굴려는 것 같았지만 자포자기하게 말했다.

“그런 말이 어딨어요. 아이는 사람을 만들어야지 죽을 쑤면 되나요.”

그 여자는 남자가 열 살은 손아래로 보이는지라 이렇게 의젓하게 타이르면서 불현듯 선생 티를 낸 것처럼 느꼈다. 그리고 가슴이 아릿하게 잃어버린 직업에 대한 향수에 사로잡혔다. 남자의 팔목시계가 정오에 육박하고 있었다.

“지금 출근해도 되는 거라면 서둘러서 준비를 해요. 이 아이는 저녁때까지 내가 봐 줄게요. 너 이름 뭐야?”

그 여자는 막내 남동생 대하듯이 스스럼없이 그러나 조금 무뚝뚝하게 말했다.

“정말 그래 주시겠습니까? 회사에는 아이가 아파서 조금 늦겠다고 전화 걸어놨습니다. 이름은 하나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꽁지가 빠지게 집으로 들어갔다. 그 여자는 하나는 안고 문혁이는 걸리고 집으로 들어와 두 아이 몫의 간식을 차렸다. 어떤 가능성이 그 여자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겉으로는 낙천적인 것처럼 굴었지만 예금통장의 잔액이 여섯째 자리로 떨어졌을 때부터 그 여자는 곧 빈털털이가 되는 두려움에 떨렸고, 그 전에 뭔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쫓기고 있었다. 일을 가진 엄마의 아이를 온종일 돌봐주는 일도 그 여자가 머릿속으로 타진해본 돈을 벌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였다. 하나는 문혁이 하고 잘 놀았다. 낮잠을 재우고 나서 씻기고 머리를 가뜬하게 빗기고 나니까 단 아이처럼 고와졌다. 반나절 동안에 뺨에 핏기까지 살아난 것 같았다. 아주 시들어버리기 직전에 물을 준 화초처럼 그 빠른 소생력이 그 여자를 기쁘게도 보람있게도 했다.

하나 아빠의 퇴근은 그 여자가 예상했던 것보다 한 시간 가량 늦었지만 서둘러 달려온 티가 역력했다. 남자가 하나가 달라진 게 놀라운 모양이었다. 껴안고 볼을 부비며 처량하게 넋두리를 했다.

“하나야, 너 이 아줌마가 좋은 모양이구나. 녀석은 그저 여자만 좋아하면서 파출부 아줌마하곤 왜 그렇게 잘 못 사귀냐. 그럼 못써 이 녀석아. 네 분수를 알아야지. 그렇게 귀여워하던 고모도 널 버리고 가버렸잖아.”

이 남자 철나려면 아직 아직 멀었네. 그 여자는 남자의 이슬맺힌 눈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아이한테 그렇게 불안감을 줄 거 뭐 있어요.”

그 여자는 점점 자신있게 큰누님처럼 굴었다.

“고모가 오늘 회사로 전화했더군요. 하나 보고 싶어 죽겠다고 울더군요. 이 오래비 때문에 시집도 가기 전에 엄마 노릇만 실컷 해 본 생각을 하면 어찌나 측은한지 나도 울고 싶은 걸 참고 하나 잘 있으니 걱정 말고 시집살이나 잘 하라고 타일렀죠. 파출부 아줌마 때문에 낭패 본 얘기도 안 했어요. 쭈루루 달려올까 봐서요. 잘했죠?”

남자가 붙임성 있게 말했다. 그 여자는 잘했다는 표시로 고기만 크게 끄덕여 주었다. 그러고 나서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붙들어 앉혔다. 향기가 괜찮은 잎차를 한 잔씩 앞에 놓고 자연스럽게 용건을 꺼냈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하나를 맡아 돌봐주면 어떻겠어요. 물론 출근했다 퇴근할 때까지만이고 일요일도 빼고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나도 아들 하나 데리고 혼자 살거든요. 지금까지는 별 어려움 없이 살았는데 앞으로는 나도 돈벌이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거저 애보기를 하겠다는 건 물론 아니고요, 도 댁의 아이만 전적으로 봐주겠다는 것도 아니지요. 하나를 시작으로 이 일을 키우게 되길 바래요. 한 다섯 아기까지는 돌볼 자신이 있고 또 그 정도는 돼야 생계가 해결되니까요.”

“그게 정말이십니까. 꿈만 같군요. 이렇게 좋은 일이 있을 줄 몰랐습니다. 갑자기 날아갈 것처럼 행복해지네요.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남자가 이게 꿈인가 생신가하는 얼굴로 탄성을 질렀다.

“안 되지요. 아빠가 날아가면 하나는 어떡하라구요.”

“우리 하나 때문에 그런 거창한 계획을 세우셨단 말씀이십니까? 오늘 하룻동안에…”

“천만에요. 돈벌이의 방법으로 무슨 생각은 안 해 봤겠어요. 애보기도 그 중의 하나였는데 오늘 하나 때문에 마침내 결정을 보게 된 거죠. 하나가 나 취직시켜 줬지 뭡니까.”

그 여자는 아빠 무릎에 앉은 하나의 볼을 찔러주며 말했다. 수고비는 한 달에 10만 원 정도면 어떻겠느냐고 문경이쪽에서 먼저 제안을 하고 아직도 이게 꿈인가 생신가 너무 쉽게 곤경에서 벗어난 걸 감지덕지해 하는데 여념이 없는 남자는 더 많아도 좋다고 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와 유사한 일을 하는 데를 통해 좀더 알아보아서 앞으로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있다는 정도의 융통성을 두는 걸로 그 문제를 마무리했다. 아내의 일이 아이 기르는 일만이 아니므로 그 남자는 아이 문제가 해결된 후에도 식사나 청소 빨래를 위해 다시 파출부를 고용하게 될 테고 그때 비로소 10만 원도 벅차다는 걸 알게 될 것을 생각하고 그 여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며칠 후 그 남자는 하나 또래의 여자아이를 또 한 명 소개해주었다. 같은 단지에 사는 친구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서 딸을 외할머니한테 맡겼었는데 하나 얘기를 듣더니 애 엄마가 특히 솔깃해하더라는 거였다. 만나본 애 엄마는 이 기회에 친정 의존에서 벗어나 독립된 가정을 이루어보고 싶다고 했다.

두 아이를 확보하게 된 그 여자는 어느 만큼 자신도 생기고 꼭 필요한 일이라는 보람도 가지게 되어 선전을 해볼까 하는 용기가 생겼다. 먼저 그의 집 현관문에다 예쁜 그림으로 장식한 <할미새 둥지>라는 포스터를 써 붙였다. 같은 포스터를 상가 게시판이나 진입로의 전주, 각 동의 현관마다 있는 게시판 등에 붙였다. 외부에 붙이는 포스터에는 따로 돌 지나서부터 유치원 가기 전까지의 아기들을 엄마가 원하는 시간에 맡겼다가 원하는 시간에 찾아갈 수 있다는 것과 전직교사가 정성을 다해 돌본다는 걸 명시했다. 그 여자가 첫 사업에 <할미새 둥지>라는 좀 별난 이름을 붙인 건 아기들이나 엄마들이 할머니에 대해 가질 법한 그리움과 편안한 느낌을 이용해보자는 속셈도 있었다. 또 뻐꾸기는 따로 둥지를 짓지 않고 할미새 둥지에다 알을 낳아놓으면 할미새가 제 알고 다름없이 품어 부화시킨다는 걸 엄마들이 연상해주어도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름을 잘 지었는지 시기를 잘 탔는지 한 달에 두 명꼴로 되게 새로 맡아달라는 아기가 늘어나 반 년도 안 돼서 그 여자의 둥지는 포화상태가 되고 말았다. 소형 아파트 단지라 젊은 맞벌이부부가 많다는 것도 잘되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것도 사업인지라 잘된다는 소문이 나자 경쟁자가 나타났다. 같은 단지에 놀이방이라는 유사한 집이 또 하나 생겨났다. 남이 자리잡은 사업에 파고들려니까 그 나름의 작전이 필요하긴 했겠지만 그 여자가 사생아를 낳아 교직에서 쫓겨났단 소문을 낸 모양이었다. 겨우 돌 지난 아들을 맡겼던 국민학교 선생인 엄마가 어느 날 노기등등해서 그 여자의 과거를 들춰내 치사한 언사로 모욕을 주더니 아기를 데려갔다. 놀이방으로 데려간다고 했다. 그 선생처럼 노골적인 모욕을 주지는 않았지만 마치 자기 애가 부정을 탄 양 억울하고 꺼림칙한 얼굴로 아기를 빼가는 엄마가 그 후에도 늘어나 한 달 새에 아기 수효는 반으로 줄었다. 분하고 김빠지는 일이었지만 그 후 다시 맡겨오는 아이도 생겨나 결국은 그 여자가 돌보기 알맞은 선에서 들쭉날쭉 했으므로 더 열심히 그 일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일은 두 모자의 밥줄이었고 또 적성에도 맞는 일이었으므로 놓치고 싶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발전도 시키고 싶었다.  경쟁자가 생겼다는 것도 좋은 사업의 확산이었으므로 모략보다는 선의의 경쟁 쪽으로 유도하는 게 개척자다운 도리이다 싶었다. 그 여자는 자기가 돌볼 수 있는 한계인 6, 7명을 넘게 되면 놀이방을 소개해줄 정도로 여유를 갖고 보다 유익한 놀이, 보다 쾌적한 환경을 꾸밀 공부와 연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가까운 이웃인 하나 아빠도 그런 일에 좋은 의견을 내주기도 했고 또는 직접 도와주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특히 그 여자가 20대의 엄마선생한테 모욕 당하고 깊은 실의에 빠졌을 때, 그가 적절히 위로해주고 용기를 북돋아준 건 그 여자가 재기하는데 무엇보다도 큰 힘이 돼 주었다. 문혁이를 정규과정의 유치원에 보낸 후에도 하나는 계속해서 <할미새 둥지>에 다녔다. 유치원에 갔다 온 후에 돌볼 사람이 없는 가정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이래저래 하나한테는 엄마노릇까지 해왔고 하나 역시 너무 따라서 딴 이이들한테 편애나 텃세로 보이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했다.

그 밖에는 아무런 문제 없이 그 여자의 둥지가 아기를 맡길 만한 집으로 소문이 나고 신용을 얻기까지는 그 사건 이후 다시 1년이 걸렸다.

어느 날 평소보다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닌데 하나를 데리러 온 하나 아빠는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 이었다. 올라오란 말도 안 했는데 현관에서 아이를 데려가던 이가 성큼성큼 올라오더니 찬 한 잔 얻어 마시자고 했다.

 “좋은 일이 있나보죠.”

“있다마다요.”

“승진?”

“그보다 훨씬 좋은 일이예요.”

“뭘까? 하나한테 엄마라도 생겼나.”

“맞았어요. 벌써부터 점 찍어뒀던 올드미스한테 지난주에 청혼을 했거든요. 부모님만 승낙한다면 어쩌구 하면서 며칠 애를 먹이더니 오늘 마침내 부모님 뵙고 승낙은 물론 날짜까지 받아냈답니다. 장인 장모 성미가 저보다 더 급하던걸요. 쇠뿔도 단김에 빼야한다나요.”

“그랬어요? 정말 잘됐네요. 축하해요.”

그의 착한 심성을 잘 아는지라 그가 행복하게 된 게 그렇게 기쁘고 대견할 수가 없었다.

“문혁이 엄마가 제일 기뻐해주실 줄 알았어요. 그 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아아 나의 큰 누님같은 문혁이 엄마!”

술김에 잔뜩 기분이 고조된 남자가 연극 대사를 외듯이 읊조리면서 한를 안고 있는 그 여자를 하나와 함께 얼싸안았다.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몸에 중심을 잃은 그 여자는 휘청하면서 소파쪽으로 엉덩방아를 찧었고, 남자가 그 위로 덮치는 꼴이 되었다. 잠시지만 두 사람의 꼴이 우습게 되었다. 그때 마침 딴 날보다 좀 늦게 퇴근한 철우 엄마가 철우를 데려가려고 허둥지둥 들어서다 말고 에그머니나 하고 비명을 질렀다. 잘못한 것도 없이 얼굴이 빨개진 그 여자가 뭐라고 변명의 말을 할 대도 없이 철우 엄마는 아이의 손목을 잡아 끌고 가버렸다. 그 뒤통수가 어쩐지 심상치 않아 보였다. 그렇다고 나쁜 짓을 할 의도가 없었던 게 뻔한 하나 아빠에게 뭐랄 수도 없고, 그 여자는 잠시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고약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 여자의 예감은 적중했다. 그 밤이 다 가기도 전에 그 소문은 그 여자에게 아기를 맡긴 가정으로 쫙 퍼졌다.

그 선생이 글쎄 아기들도 보는 앞에서 연하의 남자하고 어쩌구 저쩌구, 연하의 남자 기만하면 또 좋게, 그 남자 딸도 맡았으니까 학부형도 되는데 어쩜 그럴 수가… 혹시 당신 남편이 아이 찾으러 간 적 없었어? 왜 그 늙은 여자하고 뽀뽀했을까 봐. 지금 남편이 문제 유. 우리 아이들을 그런 문란한 여자한테 맡겼던 게 문제지. 아무리 남자한테 걸신이 났기로서니 순진한 아이들 앞에서 어쩜 그럴 수가 있을까.  이번이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치 떨리나. 그러게 내 뭐랬어. 사생아를 배서 쫓겨난 여자를 그래도 전직교사라고 믿거라 한 게 우리들의 불찰이지 누구 탓할 게 뭐 있어.

이렇게 전화통에다 대고 또는 일부러 만나서 찧고 까부는 소리가 귀에 찡해서 그 여자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여자의 추측은 과히 틀리지 않았다. 더 지독하고 음탕한 소리들도 했다. 그리고 일제히 아이들을 보내지 않았다. 그 여자는 서럽고 억울했지만 엄마들이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아아, 그 남자가 다시 나를 빈털터리로 만들어 버렸어. 그 여자는 실로 오래간만에 혁주를 원망하며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안 하나 아빠가 백배사죄를 하면서 재기할 용기를 가지라고 했지만 그 여자는 그럴 마음이 나지 않았다. 엄마들을 원망할 마음은 아니었지만 정이 떨어졌다. 아파트 단지의 생리에도 정이 떨어졌고 다시는 그런 식으로 엄마들과 상종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시는 혁주에 의해 빈털터리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체면이나 교양 도덕을 코에 걸어야 하는 직업을 가지려고 하는 이상 혁주와의 지난 관계 때문에 빈털터리가 되는 위험을 벗어날 순 없으리라.

그 여자는 복덕방에 집을 내놓았다.

집을 복덕방에 내놓았다는 것만으로도 허전하고 허전해서 그 여자는 안 하던 짓을 하고 싶어졌다. 안 하던 짓이란 신세한탄이었다. 그 여자가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도 변함없는 우정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동료교사인 임선생한테 전화를 걸었다.

“어머, 웬일이야, 차선생이 나한테 전화 걸 적이 다 있으니.”

“우린 일주일이 멀다 하고 만나지 않으면 전화질 했었는데 놀라긴.”

‘죄다 내가 걸었지 차선생이 건 적 있는 줄 알아?”

“임선생은 출근하고 난 집에만 있으니까 전화 걸려면 얼마나 신경 써지는 줄 알아. 아침시간은 아예 생각도 못하고 퇴근 후 시간도 지금은 가장 피곤한 시간인데, 지금은 아이들하고 놀아줄 시간인데, 지금은 서방님이 퇴근해서 깨가 쏟아질 시간인데, 하고 망설이게 된단 말야. 한마디로 무직자의 열등감이지 뭐.”

“아이고 알았어, 알았으니 어서 용건이나 말하슈.”

“용건은 따로 없고 신세한탄이 하고 싶어서…”

이렇게 어렵게 시작해서 털어놓은 그간의 사정을 다 듣고 난 임선생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걸 수긍해 주었지만 아파트를 파는 건 펄쩍 뒤면서 반대했다.

“미쳤어. 지금 거기가 금싸라기 땅이야. 들어온 복을 내쳐도 분수가 있지. 그 좋은 아파트를 팔아서 어쩌겠다는 거야.”

“나 이 아파트에서 되는 일 없는 건 임선생도 알잖아. 동네도 정 떨어지고.”

“이 바보야. 그건 차선생 개인사정이고 거긴 지금 8학군이야. 단 집같아 봐 제 아이가 문혁이만 할 때면 8학군으로 전입하려고 혈안이 돼 있을거야. 문혁이 생각도 해야지.”

“제발 그 팔자 좋은 소리 좀 그만해. 난 지금 빈털터리래두. 이 열여덟 평을 밑천으로 뭔가를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굶어 죽게 돼 있단 말야. 단지 두 식구의 생계가 그렇게 심각하다는 걸 임선생 같은 부르조아가 이해해 주길 바라는 내가 바보지만 말야.”

“부르조아 좋아하네.”

“내 처지에 배해선 그런 걸 어떡해.”

“상대적으로 차선생 처지가 그렇게 비칠 수 있다는 걸 명심해 두라고.”

“설마.”

“설마가 아냐. 그 아파트 값이 지금 얼만줄 알기나 알고 내놓았나 모르겠네.”

“나를 너무 숙맥이 취급하지 말아. 너무 많이 올라서 나도 좀 놀랐어. 8학군만 면하면 그 돈으로 조그만 독채 전세 얻고도 상당한 몫돈이 떨어질 것 같아. 이제 문혁이도 아린애가 아니니까 그 돈을 곶감 꼬치 빼먹듯 빼먹고 살진 않을 테지 뭐. 천천히 생각해가며 내가 할 수 있는 장사를 궁리해 볼 거야.”

“구태여 8학군에 집착하지 않는 차선생 생각엔 나도 찬성이야. 그렇지만 아파트를 팔지는 마. 지금 그 아파트 전세값이나 알아 봐. 또 놀랄걸. 아마 집값의 3분의 2도 넘을 테니까.”

“그것도 알고 있어.”

“근데 왜 팔아.”

“이 동네가 정 떨어졌다고 했잖아.”

“혼자서 외아들 키우는 주제에 그렇게 감정적으로 굴면 어떡해. 전세 줘도 얼마든지 딴 동네로 갈 수 있잖아. 두고 봐. 그 정 떨어진 집이 해마다 황금알을 낳을 테니. 전세값은 해마다 오르거든. 단동네 집갑이나 전세값의 상승률은 8학군보다 훨씬 둔하니까 잘하면 몇 번 올려 받은 전세값을 보내서 집을 또 한 채 장말 할 수 있을 거야. 단 그 동안 차선생이 장사를 하든 취직을 하든 해서 생활비를 벌 수만 있다면 말야.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덧들이거나 놓치지만 않으면 차선생도 부르조아가 되는 건 시간문제일 테니 두고 봐.”

임선생이 점점 더 수다스러졌다. 그 여자가 울적하거나 기가 죽어있을 때의 임선생의 버릇이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임선생의 수다가 가슴이 짠하도록 고마웠다.

“8학군이 그 정도라니까 어째 좀 놓치기가 아깝네. 내년이면 학교에 갈 문혁이한테 미안한 것 같고.”

그 여자는 가슴이 짠해진 김에 응석도 부리고 싶어 그렇게 말했다.

“이왕 정 떨어졌으면 정 떨어진 동네에다 철저히 복수를 해보는 거야. 황금알은 황금알대로 챙기고 8학군 아닌 동네에서도 문혁이를 공부 잘 시켜 좋은 학교 보내면 될 거 아냐.”

임선생한테 그 여자는 결국은 설득을 당하고 말았다. 설득을 안 당할 수가 없는 게 말만 그럴듯하게 한 게 아니라 바쁜 시간을 내서 앞장서서 다니면서 실지로 보여준 현상이 거의 말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임선생 말대로 아파트를 전세 놓은 돈으로 강북에 새로 개발된 주택단지의 다세대주택 중의 한 세대를 전세로 얻고도 몫돈을 쥘 수가 있었다. 처음부터 여러 세대가 살도록 설계된 주택이라 아파트처럼 독립되어 있었고 시설도 불편함이 없이 갖추어져 있었다. 가용면적은 오히려 전에 살던 아파트보다 넓어서 숨통이 트였다. 마침 바로 길 건너엔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입주 중이었고 상가는 분양신청 중이었다. 그것도 임선생이 앞장서서 알아본 결과 길목이 좋은 데는 이미 다 분양이 끝나 있었고 장사가 될성부르지 않은 데만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아쉬운 대로 그거라도 잡자고 임선생이 서둘렀다. 집으로부터의 거리도 가깝고 남아있는 돈도 겨우 그런 자투리 매장이나 분양 받을 수 있을 만큼이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케잌가게, 떡집, 치킨센타, 수입상품, 건강식품상 등이 이미 들어서서 성업중인 1층 매장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가려서 정문 쪽에선 잘 안 보이는 삼각형 매장을 그 여자는 마음에 들어 했고 임선생은 아직은 반듯한 게 남아있는 2층이나 3층 쪽을 권했다. 그러나 그 여자 생각으로는 2층과 3층은 의류와 악세사리 실내장식품이 주여서 밑천이 없이 덤벼들 자신이 없었다.

“밑천이 없으면 내가 좀 꾸어줄게 이자 없이.”

“이자가 없으면 없는 것만큼 더 부담이 된다는 거 알잖아.”

“하여튼 그 놈의 고약한 성미 가지고 장사나 할 수 있으려나 몰라.”

“내가 얼마나 질기게 밥줄에 매달릴 수 있다는 건 임선생도 알잖아.”

그 여자는 문혁이를 뱄을 때의 일을 임선생한테 상기시키면서 스스로의 가오도 새롭게 했다.

“그렇지만 장소가 너무 후미져서… 밑천도 넉넉잖은데 좁은 건 탓할 수는 없지만 안 보인다는 건 치명적인 문제 아니겠어?”

“출입문 쪽에서만 잘 안 보인다 뿐이지 매장 전체에선 그래도 한가운데야. 잘하면 황금알을 낳게 할 수도 있어.”

“어~쭈 이 여자 황금알에 맛들였네. 장사는 가혹한 현실이야.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해.”

“잘 안 보이는 대신 냄새는 피울 거야.”

“냄새를? 어떻게?”

“임선생이 내 음식솜씨 칭찬해준 거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 아니지?”

“그래 나 입술에 붙은 소리 못하는 거 알잖아? 그렇지만 내가 차선생네서 얻어먹은 건 고작 김치 깍두기, 나물밖에 더 있어?”

“그 정도의 메뉴만 임선생이 솜씨를 보장해줘도 난 만족이야.”

그 여자가 그 모서리 매장을 보고 영감처럼 떠올린 장사 종목은 반찬가게였다. 나물이나 밑반찬 등 아파트에 사는 주부들이 하기 싫어 하는 반찬을 맛갈스럽게 만들어 팔면 가장 밑천이 적게 들고도 회전이 빠른 장사가 되리라는 그 여자의 전망은 다행히 적중했다. 오전 중에도 가게를 비워놓고 집에서 준비를 해도 됐고 오후에 시작한 장사를 저녁 시간에 끝내고 일찌거니 집에 돌아올 수 있어서 문혁이를 돌보는데 지장이 없다는 것도 반찬장사의 매력이었다. 임선생이 보장해준 대로 그 여자의 반찬솜씨는 깔끔하고도 구수해서 한번 맛을 들이면 도 찾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손님의 눈길을 끌게 한 데는 임선생의 공로도 적지 않았다. 임선생은 반찬가게 이름을 <장모님 솜씨>라고 붙여 주었을 뿐 아니라 출입문으로부터 <장모님 솜씨>라는 표지판이 가게를 인도하도록 머리를 써 주었다.

“차라리 엄마 솜씨나 어머니 솜씨가 낫지 않을까. 장모님 솜씨는 어째 좀 야시롭다.”

그 여자의 불안을 임선생은 가볍게 일축했다.

“주부들이 나물이나 밑반찬을 장만하는 건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대개 옛날 입맛을 못 잊어 하는 남편 때문인데, 남편이 시어머니 솜씨를 그리워 하는 건 또 못 참아 주는 게 요즈음 젊은 주부들의 심뽀라구. 반면 우리 장모님 솜씨가 최고라고 하면 듣기 좋아하는 주부들의 속셈을 넘겨짚은 작명이니까 잘 될 거야.”

작명과 음식솜씨가 서로 궁합이 잘 맞았는지 그 여자의 반찬가게는 날로 소문이 나고 매상이 올라서 품목도 김치, 찌개거리, 김밥 등을 추가하게 되었다. 그 중에도 김밥의 인기는 대단해서 김밥 전문점이 지하에 서너군데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요일날은 예약을 받지 않으면 미처 해낼 수가 없을 정도로 번창했다. 그 여자는 먹고 사는 문제에 비로소 자신이 생겼고 일을 거들어 줄 아주머니도 한 사람 고용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교양이나 체면을 코에 걸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게 그 여자를 자유롭게 행복하게 했다.

 

 

 

4

 

돌아누워서 울기만 하는 아내를 위로하다가 지친 혁주는 문득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허둥지둥 병실 밖으로 나오다 말고 복도에 지켜서 있는 어머니와 마주치자 입안에서 ‘앗’소리를 삼킬 만큼 놀라고 풀이 죽었다.

“어머니 언제 오셨어요. 오셨으면 들어오시잖구 여기서 뭘 하세요.”

“널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한 대로 황여사의 말투는 싸늘했고 도전적이었다.

“슬기가 밤새 많이 보챘죠.”

혁주는 짐짓 딴청을 부렸다. 슬기는 애숙과 결혼하고 얻은 딸이었다.

“슬기가 어린애냐 보채게. 내일 모레면 학교에 갈 년이.”

슬기가 어린애가 아니란 소리는 돌 지나고부터 황여사가 글강 외듯 왼 소리였다. 죽은 며느리가 남긴 유일한 혈육이 손자가 아닌 손녀였기 때문에 혁주가 애숙이를 후처로 맞아들이자마자 태기가 있었을 때 황여사는 이번만은 아들 손주 보기를 얼마나 열망했던가. 그러나 또 손녀였기에 어서어서 사내동생 보기를 축원할 수밖에 없었다. 남들은 백일 안에도 아우가 들어선다는데 돌이 지나도 아우를 안 보더니 세 살 네 살을 속절없이 넘기니 며느리의 나이에 신경이 써지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더욱 애꿎은 손녀 나이만 들먹였다.

애숙이 미모와 경제력과 여자다움을 겸비했다는 조건 때문에 나이가 좀 많다는 걸 거의 신경 안 쓰고 며느리로 맞았다는 걸 황여사가 슬슬 후회하기 시작할 무렵 그 일이 생겼다. 애숙도 겉으로는 전실 딸 시내와 제 속으로 낳은 딸 슬기만으로 만족한 척했지만 아들 손주를 고대하는 시어머니로부터 받는 압박감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슬기를 낳고 나서 한두 해는 딸을 낳았으니까 아들도 낳겠지 하고 기다릴 수 있었지만 슬기가 다섯 살이 넘도록 아우가 없자 자신의 가임기간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떡하든 마음이 넘기 전에 한번 더 임신을 하고 싶다는 갈망이 하도 절실하다 보니 생리현상도 들쑥 날쑥 불규칙해져서 몇 번인가 헛된 희망에 가슴을 조린 적도 있었다. 이래선 안 되겠지 싶어 임신을 위한 정밀검사를 받던 중 불행중 다행으로 자궁내 악성종양을 조기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수술은 잘됐답니다. 좀 전에 의식도 회복했구요.”

 황여사가 며느리의 수술경과에 대해 묻지 않자 혁주가 먼저 이렇게 말했다.

“수술이 잘됐다면 혹만 떼어내고 아기집은 놔뒀다더냐?”

“네가 억지 안 부리게 됐냐. 아기집을 떼낸 것도 게집이라고 역성을 들긴…”

“어머니 우리에겐 시내하고 슬기가 있잖습니까. 딸도 없이 잘사는 부부도 많아요.”

“흥, 이 늙은이만 없으면 느희도 그럴 텐데, 하고 에미가 눈엣가시 같겠구나.”

“어머니 정말 왜 이러세요.”

“몰라서 묻냐? 우리 집안은 대가 끊어지게 됐다. 이게 이만저만한 일이냐. 그까짓 계집애 둘 아니라 열이 있으면 뭘 하냐. 대를 못 잇는 걸.”

“어머니, 대를 잇는다는 게 도대체 뭡니까?”

혁주는 어머니를 보지 않고 허공을 보면서 침통하게 말했다. 어머니 입에서 그 말이 나오기 훨씬 전, 아내가 아시는 임신할 수 없으리라는 게 확실해지자마자 자신에게 최초로 던진 질문도 그거였고 지금까지 수없이 되풀이해온 질문도 같은 거였다.

“뭔 뭐냐. 자식 된 도리지.”

질문의 심각성에 비해 어머니의 대답은 너무도 간단했다. 혁주는 울컥 치미는 혐오감을 얼버무리기 위해 돌아서서 담배를 피워물었다. 차멀미 할 때 미식미식하다거 별안간 토악질이 치미는 것처럼 걷잡을 수 없는 혐오감이었다. 그는 어머니를 외면한 채 간신히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슬기에미 한테도 그렇게 심한 말 하시려거든 그냥 가시는 게 낫겠어요. 모셔다 드리죠.”

“못난 것, 그저 계집만 기고 돌 생각이라니까. 아범 무서워서 까딱하단 고부간에 의절할라.”

무슨 생각에선지 황여사의 말투에 심통이 가시고 농담조로 누그러졌다.

“끼고 돌래서가 아니라요 지금 그 사람 기분도 생각해 주셔야죠. 누가 뭐래기도 전에 자꾸 울기만 하는 사람한테 언짢은 말씀하실 게 뻔하니까 하는 소리죠.”

“에미가 울디?”

“네.”

“쯧쯧 거봐라. 지가 내집 들어와 전실 애 귀애해, 재산 불려, 시에미 공경 잘해, 뭐 하나 잘못한 게 없건만도 아들하나 못 난 죄가 그리도 무섭구나.”

황여사는 아들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연방 고개를 주억거리며 알았다는 시늉을 했다. 혁주는 문득 어머니가 아내를 미워하고 있는지 동정하고 있는데 헷갈리기 시작했다.

“아범아.”

황여사가 혁주의 발끝을 보면서 감길 듯이 은근하고 간곡한 소리로 불렀다.

“네 어머니.”

혁주는 까닭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여자가 놓은 애는 잘 자라겠지?”

“그 여자라뇨?”

“시침떼지 말아라. 우리가 모른 척한 여자 말이다.”

“어머니 제발.”

“가만있자. 그 여자가 배 불른 걸 본 게 아범이 새장가 들기 바로 전이었으니까 우리 슬기보다도 크겠구나. 그 아이가.”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혁주가 쓰디쓰게 말했다.

“아들이냐? 딸이냐? 그 아이는.”

황여사는 눈빛이 번쩍 빛나면서 혁주를 바라보았다. 혁주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몰린 것처럼 체념하고 말했다.

“아들을 낳았다고 하더군요.”

“아들?”

황여사의 얼굴에 환한 화색이 도는 걸 보고 혁주는 비로소 안 할 말을 한 것처럼 느꼈다. 황여사의 화색은 점점 황홀한 미소로 번졌다.

“어머니 왜 이러세요.”

“내가 뭘 어쨌다고….. .”

“지금 그 애가 무슨 소용이랍니까? 우리 입으로 우리 자식이 아니라고 수없이 잡아뗀 자식인 걸요.”

“우리가 벌을 받고 있는 게야. 요샌 당대에 죄값이 내린다더니, 그 여자에게 우리가 못할 노릇 한 벌을 이렇게 당장 받을 줄은 미처 몰랐구나.”

그러나 황여사는 죄값을 하며 뉘우치는 사람과는 얼토당토 않은 환한 미소를 아직도 짓고 있었다.

“됐어요 어머니, 그 아이에 대해서 그쯤 생각하신다면 저도 안심입니다. 그 이상은 미련을 갖지 마세요.”

“미련을 갖지 말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아닙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고마운 노릇이다.”

황여사가 두 손을 앞으로 모으며 기도하는 자세로 머리를 조아렸다.

“왜 이러세요?”

“우리 가문에 대가 끊이지 않게 해주신 천지신명의 뜻이 이 아니 고마우냐.”

“어머니 그 아이는…”

“아이고 내 정신 좀 보게나. 며늘아기 문병 와서 마냥 딴청만 부리고 있었네.”

황여사는 혁주가 하려는 말을 이렇게 가로막더니 서둘러 병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어머니 제발.”

“알았다. 알았어. 행여나 네 댁 마음 상하게 할 소리 할까 봐 그러지. 이제 심통부릴 까닭이 하나도 없는데 뭣하러 심통을 부리겠느냐. 며늘애기한테 무슨 잘못이 있다고… . 나 그렇게 못된 시에미 아니다.”

그러면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혁주는 한동안 그 자리에 더 서있었다. 애숙이를 후처로 맞고 나서 행복했던 나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남자들끼리 여자를 평할 때 쓰는 이분법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로 섹시한가, 못한가, 또 하나는 재수가 있나, 없나인데 두 가지를 다 겸비한 여자는 꿈에나 그럴까 현실적으로는 한 가지만 갖춘 여자를 만나도 행운인데 애숙이는 두 가지를 겸비하고 있었다. 섹시한 아내가 주는 만족도는 혁주의 독점사항이었지만 애숙이 재수좋은 아내라는 건 황여사도 인정하고 있었고 친척 친지 간에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애숙은 결혼 전에도 자기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거니와 결혼하고 나서는 표면적으로는 사회활동에서 손을 뗀 것처럼 굴면서 실질적인 이재의 솜씨는 쉬지 않고 발휘해 왔었다. 현재 혁주는 해마다 착실한 신장세를 보이고 있는 기성품 수출업체의 유능한 사장이고, 그의 가정은 경제적 부유와 문화적으로 세련된 감각과 가족적 화목이 적절히 조화된 모범적인 상류가정이었지만 그와 그의 가정을 그렇게 만든 건 애숙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혁주가 잘 알고 있다. 애숙은 결혼 전까지 키워온 자기 사업에서 표면적으로는 손을 뗐지만 뒤에 숨어서 직접 활동할 때 이상의 수완을 발휘하고 있었다. 애숙의 수완의 가장 큰 미덕은 혁주로 하여금 조금도 아내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걸 못 느끼게 하면서 성취감을 만끽하는 거였다. 혁주는 모든 남자들이 부러워하는 것들인 성공한 사업, 아름답고 순종적인 아내, 화목한 가정을 겸비한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처복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로구나 하는 정도로 아내의 공을 인정한 건 사실이나 복이란 굴러들어온 거지 노력이나 실력하곤 상관없는 거였다. 결국 그는 그가 성취한 모든 것을 그 자신의 노력과 실력의 결과로 삼을 수가 있었다. 외적으로는 누구나 선망하는 성공의 조건을 빠짐없이 갖추었고 내적인 성취감 또한 의심할 나위가 없었으니 그의 행복감은 완벽하달 수 있었다.

다만 황여사처럼 심각한 건 아니었다 해도 아들만 하나 있었으면 더 바랄 게 없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옥에도 티가 있듯이 아무리 행복한 사람에게도 한 가지 걱정은 있어야 될 것 같고, 그 정도의 걱정이라면 걱정 중에선 가장 경미한 걱정일 듯 싶어 도리 수 있는 대로 의식을 안 하려고 해왔다. 혁주는 홀로 또 한 가치의 담배를 피워 물면서 의식할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해온 가장 경미한 걱정에 의해 그의 가정이 뿌리 채 흔들리려는 위기의식을 달래려 들었다. 그러면서 오래간만에, 실로 오래간만에 차문경이 낳았다는 그의 아들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의 어릴 적의 사진을 닮은 건강하고 귀염성스러운 소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황여사가 그 아이가 아들이라는 걸 확인하고 나서 지은 미소를 닮은 황홀한 미소였다. 그는 미소 지으며 생각했다. 그 동안 애숙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못 본 걸 그닥 크게 걱정하지 않은 건 딸자식도 아들만 못지 않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어디선가 자라고 있을 아들을 의식해서가 아니었을까. 순간 혁주는 자신의 속셈에 섬칫했지만 행복하고 음흉한 미소를 지울 만하진 않았다. 그가 허둥지둥 점잖고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되돌아온 것은 복도 끝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장인 장모를 보고 나서였다.

수술하는 동안 줄창 지켜 있다가 회복실에서 실려나오는 딸을 확인하고 나서 집도한 의사를 만나러 갔다가 오는 길이었다. 평소 그리도 당당하고 품위있던 장인 장모도 딴사람처럼 초췌해 보였다. 고개를 숙이고 장인 뒤에 숨다시피한 장모와는 달리 장인은 그래도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심하게나. 수술은 성공적이었다네. 딴 장기가 말짱하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러면서 혁주의 어깨를 토닥거렸지만 어찌나 비굴해 보이는지 되레 혁주쪽에서 위로의 말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장인 뒤에 숨은 장모가 흑, 하는 소리를 내며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는 게 보였다.

장인이 어린애 다루듯이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한사코 몸을 숨기려는 장모를 그의 등뒤에서 떼어내어 앞으로 내세웠다.

“원 사람도,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딸 자식 하나 죽는 꼴 볼까 봐 벌벌 떨더니 생명엔 지장없다는 소리 듣자마자 자궁 떼어낸 게 아깝고 자네 볼 낯이 없어서 이런다네. 사람 욕심이 이렇다니까.”

장인 역시 면목없다는 듯이 쓸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평소 장인 장모가 다 자애롭고 살뜰한 편은 못 됐다. 성격 탓도 있겠지만 뭐 하나 꿀릴 게 없다는 우월감 때문인지 장인은 과묵하고 무뚝뚝했고 장모는 사교적이고 콧대가 높은 편이었다. 혁주는 이렇듯 그에게 만만하지 안던 장인 장모가 자기 앞에서 쩔쩔매는 보습을 묘한 쾌감을 느끼며 지켜보았다.

“저네 볼 낯이 없네.”

장모의 벌겋게 충혈된 눈에 다시 하나 가득 눈물이 고였다.

“글쎄 고정하래도….”

장인이 정색을 하고 장모를 나무랬다. 그러나 장인의 표정도 거의 울상이었다.

“딸 가진 죄인이라더니…
장모는 자신의 저자세를 딸 둔 부모 공통의 것으로 보편화시키며 한숨을 쉬었다. 일종의 자위책이리라.

“그래서 자고로 딸은 애물이라고 하지 않았소.”

장인도 맞장구를 쳤다.

혁주는 장인 장모의 이렇듯 적나라한 딸 가지 죄인노릇을 지켜보면서 새삼스럽고도 힘차게 아들은 있고 볼일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지금 나에게 숨겨놓은 아들이 없었다면 얼마나 비참했을까. 혁주는 자신이 장인 장모에게 턱없이 거만하게 화풀이를 할 필요도, 장인 장모와 더불어 비통과 절망을 나눌 필요도 없이 홀로 의연할 수 있게 해준 숨겨놓은 아들이 대견하고 기특했다. 애숙이하고 재혼해 행복하게 사는 동안 까맣게 잊고 지낸 아들이 그의 무의식 밑바닥에서 힘차게 자맥질을 하며 솟구쳐 오르자마자 그가 기대고 내세울 수 있은 언덕과 체면이 돼주고 있었다. 아들이란 얼마나 좋은가. 혁주는 아들을 가졌다는 기쁨과 함께 아들을 떳떳하게 표면화시키는 데 있어서 아내나 처가쪽의 반발을 그닥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안도감을 느꼈다.

“들어가 보시죠. 에미는 아까아까 깨어났습니다. 지금 어머니도 와 게십니다.”

혁주는 장인 장모를 따뜻한 연민의 시선으로 감싸며 말했다.

“사부인께서 벌써?”

장인 장모가 동시에 부르짖으며 병실 앞에 멈춰섰다. 송구스러워 몸둘 바를 모르는 눈치가 역력했다. 마침 황여사가 병실에서 나오다 그들과 마추쳤다. 황여사의 표정이 거만하고 비통하게 굳어졌다.

“뵐 낯이 없습니다. 사돈마님.”

얼떨결에 사돈과 맞닥뜨린 장모는 다시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며 울음을 삼켰고 이번엔 장인이 장모 뒤로 고개를 떨구고 물러났다.

“별말씀을. 다 우리 가운인 걸요.”

황여사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애숙이가 깨어난 지가 몇 시간이나 됐다고 친정식구나 시집식구가 약속이나 한 듯이 애숙이의 용태에 대한 근심은 저리 가라, 오로지 애숙이가 떼어낸 자궁에만 연연하며 그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비통해 하고 있었다. 특히 황여사의 망연자실은 사돈 내외의 몸 둘 바를 모르게 했다. 당장 꺼질 수 있다면 깜쪽같이 꺼지고 싶은 눈치였다. 평소 며느리한테 더할 나위 없이 자애로운 시어머니 노릇을 하면서도 기회만 있으면 아들에게 며느리 흉을 보지 못해 하는 황여사의 이중성을 잘 아는 혁주가 보기에는 그런 과장된 비탄이 계산된 연기로 보였다. 감추어 놓은 아들 손주를 드러낼 때 예상되는 며느리와 사돈의 놀라움과 반발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어머니의 계산된 연기를 혁주는 간파했을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동조했다. 그도 땅이 거지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어머니는 집에 가 계셔요. 여기 일은 장모님한테 맡기시고요. 그 사람 심정도 그게 편할 테니까요.”

“알았다. 나더러 병구완을 하래도 맥이 빠져서 할 것 같지도 않다만 어째 사부인 뵙기에 미안쿠나.”

“별말씀을 요. 이렇게 와주신 것만도 얼마나 고맙고 힘이 된다구요. 여기 염려는 마시고 댁에 가서 편히 쉬십시요.”

장모가 죄인처럼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쉬는 것도 편해야지요. 이 판에 쉬는 게 다 뭡니까?”

“어머니, 그만해 두시고 어서 가세요.”

혁주는 황여사가 더 싫은 소리를 할까 봐, 장인 장모를 생각하는 척 서둘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까지만 배웅해도 될 것을 아래층 현관까지 모시고 나가 자판기에서 커피를 빼서 마시면서 시간을 끌다가 병실로 돌아왔다. 그런 대수롭지 않은 행동도 장인 장모에겐 편가름처럼 신경이 쓰였다. 아닌게 아니라 그건 편가름의 시작이었다. 황여사는 그날 이후 병원엔 신경 안 쓰고 집에서 편안하고 당당하게 상심을 달랬고, 장인 장모는 딸의 간병을 도맡아 하면서 하루 한번씩 들리는 혁주에게 저자세로 쩔쩔맸다. 퇴원할 때도 친정에서 좀더 조리를 시키고 보약이라도 먹여서 보내겠다는 장모의 제안을 혁주는 두말 않고 선선히 받아들임으로써 아내와 처가식구로 하여금 석연친 않은 소외감을 느끼게 했다. 애숙이 친정에서 요양하는 동안도 혁주는 빨리 집으로 돌아와야지 집안 꼴이 말이 아니라는 정도의 아쉬운 소리도 안 했다. 기다리다 못해 애숙이쪽에서 아이들 보고 싶어 못살겠다고 애틋한 눈물을 보인 끝에 겨우 시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뭐하나 꿀릴게 없을 뿐 아니라 후취로 오기에는 과람한 조건을 갖췄다는 우월감 때문에 처음부터 눈치 보거나 기죽지 않고 시집살이를 해 온 애숙이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여간 굴욕스럽지가 않았다. 그러나 애숙의 굴욕은 그것만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집안 분위기가 전 같지 않았다. 남편은 자주 한숨을 쉬었고 시어머니는 자주 눈물을 보였고, 시내와 슬기는 그 새중간에서 구박만 받은 아이들처럼 날로 불쌍해지고 있었다. 식구간의 화복도 자연스럽지 못했고 자연스러운 건 오직 근시밖에 없었다. 다시는 아이를 낳을 수가 없고 따라서 아들을 가질 가망도 없다는 데 따르는 근심은 돈이나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근시이라기보다는 절망이었다. 곱게 자라 사랑사랑을 많이 받고 하고 싶은 일마다 뜻대로 풀려 불행에 대한 대비도 이해심도 없이 살아온 애숙에게는 실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친정에서 정성껏 달여 먹인 보약도 그녀가 그 생소한 불행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진 못했다. 애숙은 하루하루 수척하고 멍해졌다. 남들 다 가진 아들을 영영 가질 수 없다는 열등감과 한 가문의 대를 끊어놓았다는 죄의식이 그녀의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허약하게 만들었다. 애숙은 매사가 시들해서 기쁨도 슬픔도 선명하게 느끼질 못했고 뒤에서 조종하던 사업에 대해서도 의욕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가끔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맹렬한 의욕을 느낄 적이 있는데 그건 어디 가서 남의 아들을 훔쳐오고 싶다던가, 잃어버린 자신의 자궁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이 꼭 있을 것 같아 몸이 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것이어서 의욕이라기 보다는 광기였다. 애숙은 여지껏 외모와 물질에 대해 충분한 우월감을 누려온 만큼 남 다 가진 걸 자기만 못 가진 걸 참을 수가 없었고 그 열등감에도 약했다. 남 보기에도 그랬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사람이 다 변한 것 같았다. 자궁이 자신의 전부였던 것처럼 자궁을 상실하고 나서는 본래의 인간성까지 점점 달라져가고 있었다.

이런 애숙이를 대하는 혁주나 황여사의 태도는 나무랄 데 없었다. 보약도 한 제를 더 먹도록 강요하다시피했고 아들 욕심을 들어내지 않으려고 대화할 때마다 세심한 주의를 했다. 하다못해 일가친척 중에서 누가 아이를 뱃다거나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이 와도 애숙의 마음을 언짢게 하거나 열등감을 건드릴 짓도 하지 않으려는 시어머니나 남편의 세심한 배려가 되레 애숙이를 괴롭혔다. 그런 배려에서 따뜻한 애정을 느끼기보다는 불쌍해하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게 고작이었다. 애숙의 자존심은 연민보다는 차라리 미움을 받고 싶었다.

애숙의 우울증과 피해의식이 극도에 달했을 때 혁주는 그 일을 터뜨렸다. 슬기보다는 반 년이나 먼저 낳은 아들이 혁주에게 있었다는 사실은 애숙에겐 청천벽력이었지만 한차례 소동을 부리고 난 그녀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 아이가 애숙을 만나기 전에 생겨났다는 계산 때문에도 그럴 수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시어머니의 능란한 구변이 큰 위로가 되었다.

“너하고 선도 보기 전의 일을 가지고 네가 섭섭해할 거 없지 않겠는냐.  상대방 여자는 처녀도 아니고 애비하곤 나이도 동갑인 소박데기란다. 그때 애비는 상처하고 3년씩이나 혼자 지낸 후라는 것도 생각해줘야 한다. 고적한 홀애비가 이혼하고 혼자 지내는 대학동창을 우연히 만나서 상관을 한 걸 지금 와서 나무래서 무든 이득이 돌아오겠느냐. 그보다는 그런 여자 속에서라도 아들이 태어난 걸 감지덕지 해야 하는 게 네 입장이라는 걸 명심해야 하느니 우리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너하고 혼인식 올리기 전에 아이를 떼라고 몇 번이나 그 여자를 타일렀건만 그 여자도 제 팔아가 장차 정식결혼 해서 자식 낳고 살 팔자가 못 된다는 것쯤은 알았는데, 아이를 낳겠다고 고집을 부리더구나. 이 집 자식도 아니니 상관 말라는 게야. 아무리 제 몸을 함부로 굴렸기로서니 그런 말버릇이 어디 있겠느냐. 그 말 한마디에 오만정이 떨어져서 아이를 떼건 낳아 길르건 상관 않기로 작정하고 너하고 혼사를 치루었고, 너도 알다시피 그 후 이날 이때까지 겉으로나 마음속으로나 그쪽과 연통을 하거나 궁금해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네가 아들만 낳았다면 아마 영원히 그렇게 됐을 것을, 지금 그 아들이나마 되찾으려는 애비나 내 심정인들 오죽하겠느냐. 그걸 네가 이해 못하고 이 집안에 불화를 일으킨다면 나도 그 꼴을 못 본다.”

“그 여자가 그 아이를 호락호락 내놓을까요?”

“자식 하나 얻어가지려고 어수룩한 애비를 꼬신 여잔데 쉽게 뺏기기야 하겠느냐. 또 강제로 뺏는다는 것도 사람 할 짓이 아니고, 그렇지만 우리 호적에 입적시키는 거야 그 여자도 마다고는 못할 줄 안다. 입적시켜달라고 애걸한 적도 있다니까. 이 세상 어미치고 지 자식을 사생아로 키우고 싶은 어미가 어디 있겠느냐. 나도 입적 이상은 안 바란다. 우선 대나 안 끊자는 거고 그러면 너도 다리 벋고 살 게 아니냐.”

심한 말도 서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황여사의 말이 애숙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은 아들을 낳았다는 그 미지의 여자를 이쪽에서 마음대로 짓밟고 이용할 수 있는 여자로 취급하는 그 특이한 말투 때문이었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그 여자를 쓰면 뱉고 달면 삼켜도 되는 만만한 여자로 가정할 수 있다는 건 애숙에게 있어서 참으로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녀는 귀염만 받고 자라 떼만 쓰면 무엇이든지 가능했던 경험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번 일도 스페아 아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아들을 못 낳게 된 절망에서 구원해준 것처럼 느꼈다. 그러면 그렇지, 고통에 약한 나에게 구원의 여지가 전혀 없는 절망이 주어질 리가 없지. 이렇게 자신의 좋은 팔자만 믿고 응석부리듯 매달렸다.

그런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니 몰랐을 때보다 좋아진 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애숙은 날로 건강하고 명랑해졌고 예전처럼 자유롭게 혁주를 지배하고 조종할 수 있게 되었고 혁주는 아무 걱정없이 사업에만 전념하게 되었고, 집에서나 밖에서나 다시 공처가 노릇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일이 가져온 무엇보다도 큰 복은 식구들이 더욱 화목해진 거였다. 이제 가족간의 편가름 같은 건 없었다. 그 아이는 어떻게 생긴 아이일까? 그 아이를 입적시키는 일은 뜻대로 잘될까? 잘 안될 땐 돈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데 그 아이가 가난하게 살고 있었으면 좋으련만 입적을 시키고 나면은 조금씩 조금씩 그 아이를 빼앗아 오고 싶을 텐데. 그럴 수 있기 위해서라도 그 아이의 엄마는 곤궁하고 무력한 입장에 처해있기를… 이런 공동의 관심사와 가장의 적을 겨냥한 투지로 가족간의 똘똘 뭉친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물샐 틈이 없었다.

 

 

 

5

 

유난히 바쁜 날이었다. 반찬가게에다 김밥을 한 종목 더 추가하고 나서 처음 맞는 소풍 철이기 때문인지 아침부터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김밥은 예약 받은 것만 해주기로 하고 있건만 도 그랬다.

“아줌마 먼저 들어가요, 뒷정리는 내가 할게요.”

아줌마를 고용하고 나서 장사가 더 잘되는 게 다행스럽기도 하고 한편 미안하기도 했다. 고용할 때만 해도 일손이 딸리는 건 오후 서너 시경부터 저녁 시간까지라고 말했는데 온종일 부려먹게 되니 괜히 악덕기업주라도 된 기분이었다.

“지가 할께요. 선생님이나 쉬셔요.”

아줌마는 문경이가 한때 교사였다는 걸 어디서 들었는지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그 여자도 그게 듣기 싫지 않았다.

“고단하지 않아요?”

“그만큼도 안 고단하고 입에 밥이 들어가면 미안해서 어쩌게요.”

“그러게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요샌 맨날 아침부터 볶아치니까 내가 곡 아줌마를 속인 것 같아 속으로 얼마나 불안하지 몰라요.”

“선생님도, 장사를 하시려면 장사꾼답게 구셔야죠. 장사꾼이 장사 잘되는 걸 미안해 하시면 어떻게 돈을 버시려고 그러세요.”

“아줌마 같은 사람 만난 것도 내 복이지 뭐유. 아줌마 오고나서 장사 잘되는 것만큼은 나도 섭섭지 않게 생각할게요.”

“저야말로 선생님같은 장사꾼 만난 게 큰 복이네요.”

“그래요, 우리 복 좋은 사람끼리 신나게 빨리 치웁시다. 우리 문혁이가 또 기다리다 못해 마중 오겠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마, 하는 씩씩한 소리가 나면서 문혁이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 여자도 마주 달려가 아이를 얼싸 안았다. 아이의 몸은 튼실하고 가슴의 고동은 약간 빠른 듯하면서도 힘찼다. 그 여자도 웃고 아이도 웃었다. 모자는 매일 저녁 그렇게 만났다. 만약 아이가 마중 나오지 않았어도 집 현관에서 같은 모양으로 만났을 것이다. 그 여자는 안아 올린 아이가 힘에 겨워 내려놓을려고 했지만 아이는 좀더 오래 엄마의 품에 늘어붙어 있으려고 했다. 아이가 눈을 가느스름 하게 뜨고 엄마의 어깨로부터 젖가슴까지 얼굴을 훑어내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황홀한 표정으로 하고 있는 짓은 엄마의 냄새맡기였다. 끈끈한 땀냄새에다 온갖 반찬냄새가 혼합된 엄마의 냄새를 아이는 그렇게 좋아했다. 그 여자는 반찬장사로 밥을 먹기 시작한 후로 거의 자신의 체취가 되다시피한 온갖 양념냄새를 깔끔하고 점잖은 자리에선 더러 부끄러워한 적도 있었으나 아이가 좋아한다는 걸 알고부터는 스스로 거리끼지 않게 되었다. 그 여자는 아들과 함께 자기 장사까지도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가슴이 충만하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여자의 하루의 하이라이트였다.

“또 오셨어요? 아까 잔뜩 사가지고선…. 다 팔렸는데.”

가게 앞에서 우두커니 모자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노부인에게 아줌마가 말을 시켰다. 노부인은 아줌마가 낮에 왔던 자기를 알아보는 게 뜻밖이었는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들고 있던 비닐주머니를 얼른 뒤로 감추었다. 그 쇼핑센타 매장에서 공동으로 쓰는 것으로 담박 표시가 났고 더군다나 낮에 판 나물과 마른 반찬 젖갈류가 희미하게 비쳤다. 아줌마가 수상쩍은 얼굴로 재차 물었다.

“혹시 낮에 사가신 게 입맛에 안 맞으셨는지요? 입맛에 안 맞으시는 것까지는 책임질 수 없습니다만 만의 하나라도 변질이 됐다면 물러드리겠습니다.”

아줌마는 문경이로부터 교육받은 대로 공손하게 말했고 노부인은 점점 더 곤혹스러운 얼굴로 어쩔 줄을 몰랐다. 그제서야 문경이도 그 점잖고 곱게 늙은 부인을 어디서 본 듯하여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그럴 리가, 설마…. 문경이는 그 귀부인의 모습에 겹쳐지는 6년 전의 그악스러운 황여사의 모습을 떨어내려고 도리질을 하며 우선 문혁이 먼저 뒤로 감추었다. 거의 본능적인 방어태세였다.

“나를 알아보겠소?”

황여사의 목소리도 가늘게 떨렸다. 순간 문경이는 치가 떨렸지만 문경이 뒤에서 남실대는 아이의 머리를 바라보는 황여사의 입가엔 어느새 보통 할머니와 다름없는 자애로운 미소가 번졌다.

“뭣하러 오셨습니까? 제가 여기 있다는 걸 어찌 아시고.”

“만나보고 싶어 수소문 했다오. 시간 좀 내주겠소?”

“저는 만나 뵐 일 없는데요. 한가한 몸도 아니구요.”

“잠깐이면 돼요. 괴롭히거나 해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안심해요.”

“사람 어떻게 보고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저를 아무한테나 호락호락 해를 입거나 괴로움을 당한 사람처럼 보셨다면 잘못 보셨습니다.”

문경이는 말을 그렇게 했지만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떨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 때문에 눈물까지 글썽해지려고 했다. 그 여자에 비해 황여사가 훨씬 여유가 있었다. 적반하장도 분수가 있지. 그 여자는 그것도 억울했다.

“거봐요. 우리는 암만해도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지 않소. 어디 조용한 데로 가는 게 좋을 듯 싶은데.”

“좋습니다. 아줌마, 우리 문혁이 좀 집에 데려다 줄래요. 그리고 좀 같이 있어줘요. 잠깐이면 될 테니까.”

그 여자가 아줌마에게 아이를 맡기려 하자 황여사가 가로막았다.

“걔도 데리고 가면 안 되겠소. 잠깐 동안만이라도 같이 있고 싶은데.”

그러면서 아이의 손목을 잡았다. 워낙 붙임성있는 아이라 다른 한 손으로는 자연스럽게 엄마의 손을 잡고 가운데서 깡충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도 있고하니 케잌   집이 좋을 것 같소만…, 난 이 근처 지리를 잘 몰라서.”

상가를 나오자 황여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더니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경탄, 환희, 회한 그런 것들이 차례차례 스치며 노부인의 얼굴을 처참하게 구겨놓았다. 문경이는 동정심과 함께 불확실하고도 엄청난 위험을 감지하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고정하시죠. 아이 앞에서 이러시면 어쩝니까.”

그리고 서둘러 근처에 보이는 케잌집으로 들어갔다. 다방보다 한결 조용하고 한산했다. 따라 들어온 황여사는 다시는 감정이 격해져선 안 되겠다 싶었던지 아이한테만 말을 시켰다.

“잘도 생겼네. 이름이 뭐랬지?”

“문혁이요, 차문혁.”

“좋은 이름이구나. 나이는.”

“여섯 살…”

“저런 똑똑도 하지. 내년엔 학교 가겠네. 자아 우리 문혁이 뭐 먹고 싶은가.”

그러면서 아이의 손목을 잡고 진열장으로 가서 먹고 싶은 케잌을 스스로 고르게 했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를 홀린 듯이 지켜보는 황여사의 눈빛은 곧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릴 듯이 따뜻하고 감미로와졌다. 문경이 또한 여지껏 혼자 손으로 아이를 기르면서 살아오는데 적지 않은 힘도 되었지만, 타고난 인간성을 척박하게 하는데도 기여했던 황여사에 대한 증오와 원한이 맥없이 무너지려는 걸 느꼈다. 황여사의 보통 할머니다움은 문경이에게 그만큼 놀랍고 감동스러운 것이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문경이가 마음을 도사려 먹으면서 일어서려고 할 때도 황여사는 붙들지 않고 고맙다는 말만 연발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이것저것 값비싼 걸로만 골라서 케잌을 한 보따리 사주고 나서 힘주어 안아보더니 아쉬운 듯 작별인사를 했다.

황여사의 쓸쓸한 뒷모습이 저만치 가고 나서야 문경이는 내 아들은 당신네와 아무 상관없는 나만의 아들이다, 당신 입으로 그렇게 부정하지 않았느냐고 면박을 주지 못한 걸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깨끗이 씻긴 아이와 식탁에 마주앉아서는 면박을 준 것보다도 훨씬 효과적인 복수를 했다고 자위했다. 오늘따라 문혁이는 유난히 혁주를 닮아보이면서도 탐나게 잘생겨 보였다.

며칠 있다가는 혁주가 비슷한 시간에 나타났다. 문경이는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그닥 놀라지 않았다. 마침 아이가 거기 나와있지 않은 것도 그 여자가 격앙하지 않고 차분하게 구는데 도움이 되었다.

“혹시 아이가 나와 있으면 먼발치에서 한번만 보고 가려고 했소.”

“될 수 있으면 이런 데 안 나오도록 한답니다. 어쩌다가 나오죠.”

“그럼 어머니가 운이 좋으셨군.”

혁주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순간 그 여자는 마음이 약해지려고 해서 그들 모자가 번갈아가며 나타나 괴롭히고 협박하던 6년 전 일을 생각하려고 애썼다.

“한번만 보고 싶었는데…”

혁주는 그 여자의 냉담한 태도에도 굴하지 않고 슬슬 그 근처를 몇 바퀴 돌고 와서 애걸했다. 온 몸에 부티가 절절 흐르는 사람이 비굴하게 구는 건 더 못 봐줄 노릇이었다. 아줌마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신경써졌다.

“어머니가 그러시더군. 꼭 나를 빼닮았다고… 차선생 보기에도 그렇소?”

“전해 안 그래요. 그럴 리도 없구요.”

“역시 차갑군.”

“도대체 지금 와서 나한테 뭘 바라는 거죠?”

그 여자는 정말로 견딜 수 없이 화가 나서 소리 질렀다. 그럴수록 혁주는 죽여 줍쇼 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더도 안 바래요. 꼭 한번만 보고 싶소.”

“그 약속 지킬 수 있겠어요?”

“지키다마다 그렇게 날 못 믿겠소?”

그 소리엔 그 여자도 가만히 있질 못했다.

“당신네들 내가 믿기를 정말 바라고 하는 소리예요? 기가 막혀서, 당신네처럼 편리하게 생겨먹은 사람들은 벌써 잊었는지 모르지만 당신 어머니하고 당신하고 짜고 번갈아가며 나한테 못할 노릇한 걸 내가 어떻게 잊겠어요. 죽는 날까지 그걸 못 잊을 텐데 당신을 믿어요?”

숫제 말을 안 할걸  그랬나 보다. 다리가 벌벌 떨리면서 언성이 높아졌다.

 “이러지 말고 우리 잠깐 어디로 갑시다.”

혁주는 놀랐는지 잡아 끌다시피 앞장섰다. 하필 황여사하고 만났던 제과점이었다.

 그 지긋지긋한 모자한테 6년 만에 다시 번갈아 당하고 있다는 의혹과 억울한 생각이 지글지글 피어올랐다. 오히려 혁주쪽에서 먼저 평정을 회복하고 침울한 소리로 말했다.

“잘못했소. 죽을 죄를 졌소. 그러나 당신은 이미 복수를 했잖소.”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에겐 아들이 없소. 그때 결혼한 아내는 딸 하나를 낳고 단산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 더 낳을 가망도 없고….”

이제 모든 게 확실해졌다. 궁금한 게 풀려서 속도 시원하거니와 뜨겁고 뭉클한 기쁨같은 게 솟구치는 걸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짐짓 냉담하게 비고는 투로 물었다.

“그래서요?”

“당신이 이겼소.”

“그럼 우리 사이는 이제 깨끗이 끝난 게 아닌가요? 당신이 역전을 시킬 음모라도 꾸미고 있는 게 아니라면.”

“나를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소. 아이를 봐서라도.”

“내 아이를 들먹이지 말아요. 당신 입술에 오르내리는 것도 싫어요.”

“어떤 저주든지 달게 받겠소.”

“다신 오지 말아요. 꼴도 보기 싫으니까.”

“한번만 보여주면 다시 또 보자고는 않겠다고 약속하겠소. 그렇지만 당신하고 볼일은 좀더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소.”

“무슨 뜻이죠?”

“당신이 이기고, 내가 벌 받은 건 저절로 그렇게 된 거지 누가 시켜서 된 건 아니잖소. 억지로 꽈다붙이면 하늘이 뜻이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할 도리가 남아 잇는 것까지 모르는 척 할 수 없는 거 아니겠소.”

“에지 와서 당신 입에서 인간의 도리 어쩌구 하는 소릴 듣게 되다니.”

“개도 고양이도 웃을 소리라고 하고 싶겠지만 당신의 협조 없인 그 나마의 인간 노릇도 못하고 말 테니 도와주오. 부탁이요.”

“아이는 한번만이라면 보여 줄 수도 있어요. 그밖에 또 뭘 도와 달라고 싶은거죠?”

“아이를 내 아들로 입적시키고 싶소.”

“안 돼요. 당신네 모자가 어떻게 해서 내 입에서 그 아이가 당신의 자식이 아니란 소리가 나오게 됐는지 벌써 잊었어요. 세상에, 그건 고문이었어요. 이제 와서 뭐라고? 그래도 애비라고 권리를 주장하려고….”

그 여자는 속이 떨리고 입에 침이 말라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혁주가 오히려 여유 있어졌다.

“권리를 주장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그 아이가 장차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싶을 뿐이지. 그 아이는 나에겐 단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란 말요. 당신이 정 싫다면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면 알 것이요. 어엿한 아버지를 없는 것처럼 하는 것도 아이에게 할 짓이 아니라는 걸.”

“난 이제 그런 감언이설에 넘어갈 만큼 순진하지 않아요. 나도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가 되고 말았어요. 다 당신네들 덕이죠.”

“그 아이를 내 호적에 올린다고 해서 지금하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 아이가 당연히 권리를 누리게 되는 것도 한참 앞날의 이야기로, 또 전적으로 그 아이의 자유의사에 달린 문제이니까.”

“여기서 잠시 기다릴래요? 아이를 데려오겠어요. 한번만이라는 거 명심해요.”

“오늘은 당신이 너무 피곤해뵈고 또 흥분한 거 같으니 나중에 봐도 상관없겠는데.”

혁주가 뭘 믿고 그러는지 점점 더 느긋해졌다. 그럴수록 그 여자는 알 수 없는 조바심을 마음이 옥조였다.

“아아뇨. 오늘 보고 가요. 그런 핑계로 당신을 또 보게 되는 건 정말 싫으니까.”

그 여자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집으로 달음질쳤다. 알 수 없는 분노를 화통처럼 뿜으며.

“인사해 엄마 친구분이야.”

아이를 앞세우고 온 그 여자는 혁주가 미처 뭐라고 말하기 전에 헐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이 아저씨도 선생님이야?”

아이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 여자를 집까지 찾아오는 친구는 대개 교사시절의 동료여서 아이도 선생님의 분위기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아이 보기에도 혁주가 선생님 같지가 않아선지 막연히 심상치 않은 걸 느껴선지 앞으로 선뜻 나서지 않고 엄마의 눈치만 봤다.

“안녕.”

혁주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 아이가 미적미적 손을 내밀자 혁주는 두 손으로 받아 감싸고 한참을 있다고 아이의 손등에다 정중히 뽀뽀를 했다. 그 여자는 혁주가 심각하고 축축한 쪽으로 유도하려는 분위기를 개기 위해 짐짓 명랑한 소리로 말했다.

“우리 문혁이 뭐 먹을까. 삼색 아이스크림하고 파이 어때?”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먹는 걸 말없이 지켜보던 혁주가 거진 다 먹어갈 무렵 가져온 상자를 끌렀다. 원격조정할 수 있는 날씬하게 생긴 자동차였다. 산뜻한 색상하며 견고하고도 쏙 빠진 자태며 외제상표하며 10만 원도 넘어 호가할 것 같은 장난감이었다.

“당신의 어머니도 그러더니 당신도 마찬가지군요.”

“뭐가 말이요?”

“아이한테까지 물질공세 취하려는 거 말예요. 6년 전 저 아이를 없애라고 둘이서 번갈아가며 돈봉투를 날 협박할 때하고 어쩌면 그렇게 안 달라졌죠?”

그 여자는 아이를 의식해서 혁주의 귓전에다 대고 속삭이듯 오금을 박았다.

“말 삼가요. 이건 내가 외국출장 길에 막연히 이 아이를 그리워하며 산 거였소. 이렇게 되리라는 건 꿈에도 모르고 순수한 마음으로 산걸 모독하지 말아요”

그러면서 조종기에다 따로 가져온 건전지를 집어넣자 안테나를 촉각처럼 곤두세운 스포츠카는 테이블과 의자의 다리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제과점의 모노륨 바닥을 순식간에 통과해 길바닥으로 나가버렸다. 혁주가 아이에게 의미있는 일별을 하고 밖으로 따라나가지 아이도 환성을 지르며 따라나갔다. 바깥과는 기껏해야 잘 닦인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네 활개를 치며 뛰노는 혁주와 아이의 모습이 잘 보였지만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 여자는 그게 안타까웠다.조종기는 혁주의 손에서 아이한테로 넘어갔다. 혁주가 무어라고 주의할 점을 가르쳐주는 것 같았다. 아이가 조종을 하자 차도로 내려갔다. 혁주가 허풍스럽게 놀라며 조종기를 빼앗으려고 하자 아이가 안 내놓으려는 것 같았다. 혁주가 웃으면서 아이를 안아 올려 둘이서 함께 조종을 하기 시작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아이가 깔깔대며 한 팔로 혁주의 목을 감는 게 보였다.

외국출장 갔다 오는 아빠가 선물로 사온 원격조정할 수 있는 자동차는 아이가 속으로 얼마나 부러워한 꿈의 장난감인지 그 여자는 알고 있었다. 아이가 지금 누리고 있을 황홀경이 그 여자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두 사람의 놀이는 거의 무아지경이었다. 워낙 성품이 밝고 잘 노는 아이였지만 그렇게 행복해 보이긴 처음이었다. 혁주의 개구쟁이 짓도 일품이었다. 전에 깊이 사귈 동안도 미처 알아보지 못한 그의 감추어진 일면을 본 것처럼 느꼈다.

어느 순간 혁주가 먼저 딱 놀이를 그만두더니 장난감을 수습하고 아쉬워하는 아이를 앞세우고 제과점 안으로 들어왔다.

“자아, 자아, 그만 놀자. 너무 오래 놀면 엄마가 다시는 우리끼리 못 놀게 할지도 모르니까.”

일부러 크게 말하는 게 그 여자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았다. 그날은 더 이상 입적에 대한 말은 없이 서운할 정도로 미적거리지 않고 떠나갔다. 그러나 아이를 한번만 보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 여자도 구태여 그걸 탄하지 않았다. 아이가 몹시 기다리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다음에 올 때도 혁주는 비싼 장난감을 사왔고 미리 그 여자의 허락을 받고 단둘이만 나가서 외식을 하고 돌아왔다. 그 동안 아이를 어떻게 포섭을 했는지 아이는 혁주를 자연스럽게 아빠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 여자도 아이에게 혁주가 아빠라는 걸 어떻게 혼란이나 충격을 주지 않고 가르쳐줄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에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혁주가 돌아간 후 은근히 아이의 마음을 떠봐도 아이가 갈등을 느끼고 있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의 마음이란 어른의 마음의 잣대로 잴 수 없는 특이한 유연성을 가지고 있나 보다. 도 천륜도 무시 못한다고 생각됐다. 혁주는 미웠지만 부자가 금세 친해진 게 천륜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그 여자는 쉽게 편안해질 수가 있었다. 되레 올 때마다 드립다 비싼 장난감을 사가지고 와서 아이의 환심을 사려는 혁주가 딱해 보였다.  저렇게 조바심 안 해도 아빠는 아빠인 것을 하고.

그 여자의 그런 연민은 혁주를 애 아버지로 인정한 거나 다름없는 생각이었다.

혁주가 드나드는 사이사이 황여사는 황여사대로 고기나 과일 케잌 등 비싼 먹을 것을 사가지고 와 그 여자의 눈치를 살펴가면서 아이의 환심을 사려고 애썼다. 입적을 핑계로 만나기 시작한 게 핏줄의 정에 이끌리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여자는 두려움과 함께 묘한 승리감 같은 걸 맛보고 있었다. 혁주의 말대로 그 여자는 복수를 한 것인지도 몰랐다.

혁주와 황여사는 비싼 물건을 잔뜩 사가지고 와서도 비실비실 비굴하게 행동했고 그 여자가 아이를 보여주면 감지덕지했고 안 보여줘도 싫은 소리 한마디 못했다. 그 여자는 자기도 모르게 그런 관계를 즐기고 있는 사이에 아이는 아무런 갈등없이 새로운 아버지와 할머니의 존재를 받아들였고 쉽사리 고급의 장난감과 비싼 물건에 길들여졌다. 그들이 친해지는 걸 천륜이라고만 생각해 오던 그 여자도 차츰 지나친 물질공세로부터 아이를 보호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혁주의 당초의 약속도 입적문제만 허락해 주면 자주 드나들지 않겠다고 했고, 그들의 물질공세도 목적을 빨리 달성하고픈 일종의 정서불안 증세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입적문제를 마무리 짓고 싶은 것도 그 여자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성이 달라지는 일이라 아이의 혼란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면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문혁이를 김혁주의 아들로 입적시키는 일은 문혁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 여자가 바라던 바였고 그렇게 바라던 걸 시뜩하게 미룬 건 그게 거부 당했을 때의 원한 때문이지 사실대로 기록되길 바라는 마음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그 동안 자신의 성을 따르게 하면서 지녀온 나만의 자식이라는 강한 오기와 소유욕을 양보하게 된 게 서운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속한 사회가 부계 혈통 사회니 만치 홀로 모계 혈통으로 기르는 외로움과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부계혈통사회에선 아버지의 호적에 입적시키는 게 원칙이고 내 자식도 이제부터 원칙대로 키우게 됐다는 안도감이 비로소 어미의 도리를 다한 것 같은 만족감과도 비슷한 게 그 여자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 여자가 문혁이를 낳고 나서 한때나마 입적을 시켜주길 애걸하다가 거절당하자 사생아로 키우되 강한 아이로 키우기로 결심한 것도 인습적인 편견에 의해 불이익이나 상처를 안 받을 강한 아이지, 자기가 속한 사회의 법질서를 일부러 무시하고 사는 비상식적인 인간을 뜻한 건 아닐 터였다.

그 여자는 아이하고 놀고 싶어 왔다는 혁주한테 아이는 보여주지 않고 조용한 다방으로 데리고 가서 용건부터 말했다.

“입적을 시키되 사실대로 기록하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문혁이가 당신과 내 아이라는 게 사실이니까 그렇게 기록되길 바라는 거지 행여 당신네가 잘나고 유력해 보여서 내가 양보하는 줄 알면 곤란하단 말예요. 될 일도 아니고요.”

“그게 무슨 뜻인지 난 못 알아듣겠는걸.”

혁주의 안색이 경직됐다. 저게 바로 저 남자의 본색이다라는 생각이 불길한 예감처럼 선뜩하게 그 여자를 스쳤다.

“나도 문혁이의 생모로 기재되길 바란단 말예요. 그게 사실이니까.”

“뭐라고? 그럼 나더러 이혼을 하란 소리가 아뇨. 당신 참 대단한 여자군 아들 하나를 미끼로 너무 큰 걸 노리고 있었구만. 기가 막혀서…”

“기가 막힌 건 나예요. 난 내가 말한 대로 사실대로 기록되길 바랄 뿐이예요. 난 지금 당신의 아내가 아니고, 또 당신 같은 사람의 아내가 돼 달래도 10리는 도망갈 사람이란 말예요. 사람이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요. 지금의 당신네들 부부관계에 법적인 도전을 할 생각은 꿈에도 없으니 안심하고 문혁이를 당신 호적에 올리되 모(母) 난에 나를 생모로 기록해야 돼요. 너무 강조하는 것 같지만 나는 사실이 사실대로 기재되길 바랄 뿐이예요.”

“내가 만일 내 임의로 문혁이를 아내와의 사이의 아이로 신고한다면 어쩔테요”

“당신 아내와 내 아들 사이가 친생자관계가 아니라는 걸 확인해 달라고 법원에다 청구할 거예요.”

“당신은 순진한 척 사실, 사실, 하지만 뒤로는 여차즉하면 법에 호소할 궁리까지 하고 있었군. 그렇게까지 영악한 여잔 줄 몰랐소.”

“당신처럼 자기 이익에 따라 마음대로 사실을 왜곡하는 사람과 상대해야 할 때 사실을 사실로 인정해 줄 법이라는 빽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녜요?”

“그래서 법을 얼마나 연구했는지는 모르지만 문혁이가 혼인 외의 자식이 될 대 장차 받을 불이익까지는 왜 못 생각했소? 우리는 내 재산보다 아내 명의의 재산이 훨씬 더 많은데 아내는 아마 제가 낳은 딸한테 다 상속을 시키면 시켰지 문혁이한테는 한 푼도 상속을 안 시킬지도 모르는데.”

“그건 당연하잖아요. 자가기 불린 재산 자기 핏줄한테 주고 싶은 건. 나 그 재산 탐나서 문혁이 인지해 달라는 거 아녜요.”

“문혁이 장래를 생각하면 그럴 수는 없을 텐데…..”

“당신이야말로 문혁이 장래를 생각한다는 게 고작 그거였어요. 여지껏 받은 장난감이나 먹을 것이나 다 구역질이 나요. 그걸로 우릴 매수할 줄 알고 있었을 거 아녜요. 사실이고 나발이고 다 일없으니 10년이 걸리든 백 년이 걸리든 돈으로 안 되는 것도 이 세상에 쌔고 샜다는 걸 깨닫기 전엔 내 앞에 얼씬도 할 생각 말아요.”

이렇게 해서 문혁이의 인지를 둘러싼 첫 담판은 어이없이 끝났다. 그러나 모욕을 당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혁주는 며칠 안 돼 속죄하는 죄인처럼 풀 죽고 면목없는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다.

차문경을 생모로 해서라도 입적을 시키겠다는 거였다.

그 여자는 혁주의 비굴한 저자세와 불안 초조를 지켜보면서 그만하면 지난날 문혁이를 입적시켜 달라고 애걸할 때 당산 모욕과 배신을 어느 정도 갚아준 것처럼 느꼈기 때문에 더는 군소리 안하고 승낙을 했다. 그러나 김혁주의 장남으로 기재된 호적등본을 떼본 그 여자는 착잡한 감회로 울음이 복받쳤다. 오랜 소원을 성취한 것도 같았지만 그 동안 자신을 지탱해 준 받침대를 잃은 것처럼 휘청거렸고, 아무리 가난할 때도 충만하게 해주던 보물을 잃은 것처럼 허전하기도 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어, 문혁이는 내 아들이고, 김혁주의 호적에 사실대로 기재되길 바란 건 내 오랜 소원이었지 않나.

이렇게 자위했지만 현실은 야금야금 달라지고 있었다. 문혁이를 보고 싶다는 핑계로 뻔질나게 드나들던 아버지와 할머니의 발길이 뜸해진 대신 조금씩 당당해진 그들은 문혁이가 어른을 뵈러 오길 요구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윗사람의 권위를 내세워 문혁이의 의무를 강요한 건 아니고 처음엔 할머니 생신날 문혁이를 초대하는 형식이었다. 이왕 그 집안의 호주상속자가 된 마당에 절손될까 봐 온갖 굴욕을 무릅쓴 그 집안의 웃어른 생신을 구디 외면할 만큼 그 여자는 옹졸하거나 원한이 맺혀있지 않았다. 정성껏 마련한 선물까지 안동해서 데리러 온 운전기사한테 아이를 내주었다. 돌려보내기로 약속한 시간보다 한 시간쯤 늦게 돌아왔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되레 물건도 아닌 아이를 시간약속까지 하고 빌려주듯이 내둔 건 너무 옹졸한 처사가 아니었던가 뉘우치는 마음까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던가. 그렇게 한번 길을 트기 시작하자 툭하면 아이를 불러가지 못해했다. 집안 식구 생일마다 불러가는 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는지 할머니가 보고 싶어 한다고, 누이들이 놀고 싶어한다고도 차를 보냈다. 외롭게 자랐으면서도 붙임성이 좋은 문혁이는 누이들과 쉽게 친해진 모양이었다. 누이들 얘기를 자주 했고 어떤 때는 문혁이 쪽에서 먼저 누이들하고 놀고 싶어하기도 했다. 동기간이 생겼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문혁이가 무슨 말끝에 ‘큰엄마’는 참 예쁘고 엄마보다 훨씬 멋쟁이라는 소리를 했을 때는 그 여자도 충격을 받았다. 예쁜 멋쟁이보다 ‘큰엄마’가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그쪽 여자가 ‘큰엄마’라면 나는 무언가? 작은엄마? 소실? 첩? 그 정도로 자신을 비하시키고 나서도 역시 그까짓 호칭에 신경 쓸 거 없다고 자신의 옹졸함을 나무랬다. ‘큰엄마’ ‘작은엄마’는 백모 숙모에게도 해당되는 호칭이 아닌가. 그 여자도 그 무렵엔 부르기 편한 대로 아이한테 그쪽 집을 말할 땐 ‘할먼네’ 아니면 ‘큰집’이라고 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도 문혁이는 큰 집에 초대되었다. 문혁이한테는 벌써부터 바람을 넣은 듯 며칠 전부터 선물받을 기대로 아이는 잔뜩 들떠 있었다. 선물은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주기도 해야 된다는 걸 가르쳐 주려고 그 여자는 아이의 손목을 잡고 같이 선물을 사러 다녔다. 그리고 그 동안 아이의 눈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몸소 느끼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이는 몇 백 원짜리 장난감이나 학용품을 거들떠도 안 보고 비싸고 반질반질한 수입상품이나 어른들의 사치품 쪽으로만 눈길을 주고 있었다. 억지로 달래고 야단을 쳐도 아이의 분수에 맞는 걸 사도록 했지만 아이는 끝내 시뜩하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풀지 않았다.

큰 집에선 크리스마스 이브에 데려간 아이를 그날 밤 돌려 보내지 않았다. 처음 잇는 일이었지만 특별한 날인 걸 감안해서 탓할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다음날 오후에나 돌려보내면서 아이에게 딸려 보낸 어머어마한 선물은 그 여자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할머니로부터 한 살 터울의 어른 누이동생에 이르기까지 식구들마다 각각 포장을 달리한 선물은 누가 선물했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고가품 아니면 사치품이었다. 자기의 키보다 더 큰 선물상자에 가린 운전기사가 아마 도련님이 학교에 갈 때 필요한 일습을 장만해 보내신 것 같다고 변명을 할 만치 그 선물은 우선 부피로부터 비위에 거슬렸다. 내용물도 기사의 말과 틀리지 않았지만 옷도 몇 벌씩이나 되는게 하나같이 기가 질리게 비싼 것들이었고 학용품은 값도 알 수 없는 외제품들이었다. 이건 어른들한테는 천 원짜리, 누나들한테는 5백 원짜리 정도의 선물을 사 보낸 그 여자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요 모욕이었다. 특히 책가방을 비롯해서 도시락통 지우개에 이르기까지 학용품 일습이 단 한 개의 국산품도 안 섞인 일제일 뿐더러 그 생김새와 씀씀이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의 눈도 능히 홀리게 할 만큼 아름답고, 간사하리만치 정교한데 이르러서는 분노마저 금할 수가 없었다.

그 여자는 단호하게 아이로부터 그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했고 아이는 몸부림을 치며 그 모든 것을 차지하려고 했다.

그 여자는 처음으로 아이를 몹시 때렸다.

매맞고 잠든 아이의  종아리를 쓰다듬으며 그 여자는 문득 아이의 다리가 풍족한 물질의 늪에 깊숙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위기의식이 차가운 칼날처럼 무섭고 섬뜩하게 그 여자를 스쳤다. 아이를 꼭 껴안고 잠이 들어서도 사정없이 빨아들이는 깊이 모를 진흙탕에서 아이를 구하려고 몸부림치는 꿈을 꾸다가 깨어났다. 악몽이었다. 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불안했다.

저녁때 엄마를 상가까지 마중 나온 아이는 쇼윈도의 어린이 마네킹이 입고 있는 스키복을 보고 발길을 멈추더니 말했다.

“엄마 나도 저런 거 큰엄마가 사주었어. 설 쇠고 스키 타러 가는데 같이 가지고 엄마 나 가도 되지? 시내 누나도 아빠도 다 같이 간댔어. 할머니만 집 보시고.”

“아이는 엄마의 눈치를 몹시 보면서 말했다. 한번도 그런 적이 없던 아이였다. 그 여자는 비정상적인 가족관계가 아이의 성격에 혹시라도 나쁜 영향을 끼칠까 봐 아이가 그쪽 식구들과 어울리는 일에 스트레스를 안 받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썼었다. 그 집 가면 어찌 어찌 하라고 특별한 예절을 강요하지도 않았거니와 그 여자 자신도 특별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눈치를 안 보이고 예사롭게 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처음 든 매질에 아이는 벌써 어른들의 싸고 싼 비밀을 다 알아버렸다는 듯 순진치 못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동안 겪은 신상의 변화가 아이에겐 과중했었나 보다. 너무 그쪽에서 하자는 대로 아이를 내맡겼었다는 후회도 되었다. 그 여자는 다만 아이가 부자 아버지를 포함해서 갑자기 생겨난 새로운 가족과 환경의 변화를 사실대로 받아들이길 바랬을 뿐이었다.

그 여자는 안 된다고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가 상심할 게 미리 염려되었다. 아이는 이미 전에는 상상도 못할 것들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여자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괴로웠다. 그러나 그걸 내색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로 하여금 줄줄이 일어나는 변화를 무사히 넘기게 하려면 자기가 먼저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겨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 여자가 그렇게 망설이는 동안 아이가 초조한 듯 쳐다보았다. 너무 오래 생각했나? 그까짓 일을 가지고 너무 오래 생각하는 것도 아이에겐 부담이 될 것도 같아 냉큼 “괜찮고 말고”라고 말해 버렸다. 그리고 이내 낭패감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다른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여자는 울고 싶었다. 무엇인가 납덩이 같은 게 그 여자의 마음을 짓눌렀다. 그 여자는 괜히 아이를 보고 미소 지었다. 그러나 아이는 미소 짓지 않았다. 아이는 정직하니까. 아이도 무언가에 짓눌리고 있었다.

아이가 신년 연휴를 용평 스키장에서 보내는 동안 그 여자도 반찬가게 문을 닫고 집에서 오래간만에 푹 쉬도록 했다. 자연히 텔레비전이 유일한 벗이었고 텔레비전은 고맙게도 뉴스시간에도 오락시간에도 자주 용평 소실을 전해 주었다. 날이 포근해 서울에선 아직 눈다운 눈을 못 보았는데 용평과 설악산쪽엔 간밤에도 50센티가 넘는 폭설이 내렸다고 했다. 뉴스시간엔 대관령의 제설작업과 거북이 걸음을 하는 차량, 아예 주인없이 세워진 빈 차들의 모습과 함께 풍성한 눈에 환호하면서 즐기는 스키어들의 모습을 비춰 주었다. 쇼도 용평에서 찍은 거였다. 멋진 스키복을 입은 인기 연예인들이 유연한 활강 폼으로 노래를 부리기도 하고, 일부러 어푸러지며 고꾸라지며 사람을 웃기기도 했다. 북구의 아이들을 방불케 할 만큼 눈 장비를 완벽하게 갖춘 아이들이 천진하게 웃기도 하고 손으로 브이 자를 그려보이기도 하면서 화면에 비치고 싶어 연예인 근처를 얼씬대는 모습이 한층 현장감을 살리고 있었다. 그 동안 고달프고 억척스럽게만 살아온 그 여자에겐 눈부신 별천지였다. 그러나 문혁이가 그 별천지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 이상 그 별천지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구경거리일 수많은 없었다. 그 여자는 역경을 살아오면서 웬만한 어려움이나 근심에 동요 안 할 배짱 하나는 두둑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어렵게 쌓아올린 생활에 별천지로 통하는 출구가 생겨났다는 건 여지껏 경험한 어떤 어려움이나 근심하고도 달랐다. 그 여자는 두려웠다. 거의 눈물을 흘릴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이는 돌아온다는 날에 돌아왔고 매우 건강하고 행복해 보였다. 3박 4일이나 아이가 엄마 곁을 떠나있던 적은 처음이었다. 겨우 그 동안에 또 한번 북구라파 아이들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여자가 북구라파 아이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뭘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눈이 많은 지방, 따뜻하고 원색적인 털옷, 해맑은 피부, 순진한 표정 등 다분히 동화적인 상상력이 고작이었다. 어쩌면 그 여자는 이런 약간 유치한 상상력으로 보다 심각한 변화를 모르는 척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여자가 정말 알고 싶은 건 아이의 내적 변화였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와 떨어져서 보낸 3박 4일 동안을 어떻게 지냈는지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문혁이는 원래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유치원에서 배운 거, 친구집이나 길가다 새롭게 보고 들은 거, 외갓집이나 이모네서 사촌들하고 놀다가 생긴 일 등을 엄마가 묻지 않아도 자세하고 생생하게 들려주던 아이였다. 그러 아이가 분명히 여지껏의 경험 중 최고의 획기적인 경험이 되었을 지난 3박 4일에 대해선 없었던 것처럼 굴었다. 아이의 그런 능청스러움이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것인지. 궁금하면 그 여자 쪽에서 먼저 물어볼 수도 있으련만 그 여자도 그러지 않았다. 아이와 어른이 무슨 꿍꿍이속인지 마음을 합해 그 동안을 구태여 여백으로 남겨놓으려고 했다. 그러나 아이는 친구들하고 놀 때는 곧잘 스키 타러 갔다 온 걸 자랑 삼았고 그 여자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걸 엿들었다.

그렇게 그 여자의 심사가 편치 않을 때 혁주쪽에서 새로운 제안을 해 왔다. 아이의 주민등록을 그의 집으로 옮겼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거였다. 전화로 조심스럽게 물어온 걸 그 여자는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다. 거절을 하고 나서도 안 들으니 만 못하고 생각할수록 치가 떨렸다. 괘씸한 생각 같아선 당장 달려가서 따귀라도 대리고 싶었다. 입적을 시켜달라고 할 때 고분고분 협조했던 게 후회가 됐다. 바로 그게 만만하게 보인 시초가 된 것 같아 분하고 억울했다.

그 여자가 달려갈 것도 없이 혁주가 먼저 달려왔다.

“남의 얘기를 끝까지 듣기도 전에 전화를 그렇게 끊는 법이 어딨어요?”

혁주는 즉시 달려온 사람답지 않게 흥분한 기색없이 차분하게 말했다.

“끝까지 듣는다고 해서 내 대답이 달라질 리 만무하니까요.”

“사람이 말을 그렇게 무쪽 짤르듯이 딱 잘라 말하는 게 아녜요.”

혁주의 훈계조의 온화한 말투가 털벌레처럼 징그러워서 그 여자는 언성을 높였다.

“당신 지금 얻다 대고 제 마누라 훈계하듯 수작부리는 거예요?”

그의 마누라를 입에 담았다는 것만으로도 아차, 싶었지만 한번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그럴싸해서 그런지 그의 얼굴에 얕잡는 듯한 미소가 스친 것 같았다.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하오. 나는 다만 당신이 좀 더 협조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요. 딴 일과 달라서 문혁이를 위한 일이 아니오.”

“그 애 주민등록증을 옮기는 일이 말인가요?”

“화부터 내지 말고 생각해 봐요. 우리 집은 8학군에 있고, 국민학교도 부자동네라 시설 좋고 잘 가르치기로 소문난 학교에 보낼 수 있소. 딸들은 다 그런 학교에 보내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이런 후진 동네에 있는 학교에 보내려니 어찌 걸리지가 않겠고. 나보다는 어머니하고 집사람이 더 극성이지만 말요. 여자들의 교육열은 알아주는 거 아뇨. 그래서 당신도 기꺼이 협조할 줄 알았던 거요. 주민등록만 옮기자는 게지 아이의 몸까지 옮기자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과민하게 반응할 게 뭐 있소?”

“몸이 안 옮기면, 그럼 1학년 짜리가 이 동네서 그 동네까지 매일 한강을 건너서 통학을 할 수 있단 소리예요 뭐예요. 그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작작 하시우.”

“당신은 마치 우리쪽은 사람도 아닌 것처럼 여기는 모양인데 애비도 사람이요. 왜 그 생각을 안 했겠소. 회사차 말고 집사람 차가 따로 있는데 이번 기회에 운전수를 고용해서 아이의 수송을 전담시키고 나머지 시간만 집에서 쓰기로 했소. 그래도 안 되겠소?”

“네, 안 되고말고요. 그리고 그런 눈으로 날 바라보지 말아요. 당신 눈엔 내가 자식의 교육문제는 안중에도 없는 한심한 에미로  보이는 모양이지만 내 눈엔 당신네들이 그렇게 보여요. 알아듣겠어요? 내 말뜻.”

“모르겠소 전혀.”

“당연하죠. 그게 당신네들과 나의 사람의 차이니까요. 그렇다고 나의 교육관을 … 조금 우습네요. 교육관이라고 말해 놓고나니. 그냥 자식 기르는 도리라고 해둡시다. 그 문제를 놓고 당신하고 긴 말 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네 같은 벽창호가 알아듣게 할 재간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성도 없으니까요.”

‘당신이 뭐라고 변명해도 당신은 지금 동물적인 애정 때문에 중요한 걸 놓치려 하고 있소. 후회할거요.”

혁주가 냉혹하고 거만하게 말했다. 그 여자는 속속들이 떨려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당신은 뭘 너무 몰라.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문혁이를 당신한테서 빼앗아갈 수도 있어.”

그런 무서운 말을 혁주가 남기고 가버리자 그 여자가 발을 동동 구르며 제일 먼저 한 짓은 겨우 문혁이를 찾아나서는 거였다. 아이는 놀이터에서 동네 아이들하고 섞여서 잘 놀고 있었다. 그 여자가 힘주어 껴안고 놓아주지 않자 참고 있다가 곧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 그 다음엔 생각한 게 집을 옮기는 거였고 전세집이기 때문에 곧 실행에 옮길 수가 있었지만 물론 8학군을 염두에 두어서가 아니었다. 아직은 성업중인 반찬가게가 있는 있는 동네를 벗어날 형편이 아니었다. 결국은 그 동네에서 문혁이가 갈 국민학교하고 좀더 가까운 집으로 옮긴 데 불과했다. 도둑맞은 집이 정 떨어지듯이 도둑을 맞을 것 같아 미리 정이 떨어졌다고나 할까. 이사하고 나서야 너무 허둥댔다고 쓴웃음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이사해서 한동안이라도 혁주네를 피할 수 있으리라고 여긴 건 아니었다. 무서웠기 때문에 외로웠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고 학교 운동장이 내 집 마당처럼 바라보이는 집이라는 게 심리적으로 위안도 되었다.

문경이가 단 몇 달이라도 정말 큰집과의 관계를 끊고 싶었다면 전세집을 옮기는 것과 동시에 반찬집도 폐업을 하든지 멀찌거니 떠나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러지 않았다. 그래볼까 하는 생각 조차 스친 적이 없었다. 남에겐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반찬집은 그들 모자의 밥줄이었다. 밥줄은 남으로부터도 침해받을 수 없지만 본인 또한 함부로 경시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그 여자는 투철했다. 밥줄을 놓쳤을 대의 막막하고 참담한 체험은 밥줄을 빼앗은 사람들에 대한 분노보다도 그렇게 호락호락 빼앗긴 자신에 대한 분노로 더 많이 남아 있었다. 그만큼 자기라 잡인 반찬가게만은 악착같이 지키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이사는 괜한 짓이었다. 문경이의 생활의 근거가 반찬가게에 있는 이상 큰집과의 관계는 그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아이를 빼앗아갈 수도 있다는 말은 혁주가 홧김에 한번 그래 본 것일 뿐 다시는 그런 협박조의 말을 입데 담지도 않았거니와 그럴 의심을 받을만한 짓도 하지 않았다. 8학군에 대한 얘기도 다시는 거론하지 않아 아이는 이웃 학교에 입학해 잘 다녔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 한다고, 도는 누나 생일이라고, 피크닉 간다고 가끔 문혁이를 데려가거나 값비싼 선물을 보내오는 일도 전화 다름 없었다. 그러나 그걸 청할 때 정중했고 약소한 시간을 어기지 않고 돌려보냈기 때문에 이사까지 하느라 법석을 떤 게 스스로 창피하고 무안해질 지경이었다. 그 여자는 다시 마음을 놓고 생업에 종사할 수가 있었다. 다만 아이가 터무니없이 비싼 옷이나 물건에 길들여지면서 예상되는 넉넉지 못한 친구가 대부분인 학교생활과의 갈등에 대해선 혁주하고 한번 진지하게 상의해 볼 참이었다. 혁주가 아이를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에 거짓이 없다면 그 방법의 차이나 잘못은 쉽게 고쳐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런 상의할 시간을 갖기 전에 여름방학이 왔고, 혁주가 처음으로 약속을 안 지키는 일을 저질렀다. 저녁 먹여서 보내마 고 데려간 아이를 그날 밤 돌려 보내지 않았다. 방학이라 어른 아이가 다 느긋해져서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그런 버릇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 다음날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문혁이가 뱃속에 있고 혁주가 전산실 김계장일 때 걸어보고 처음 걸어보는 전화였다. 지금 혁주는 남의 회사 계장이 아니라 자기 회사를 가진 사장이었다. 전화도 쉽게 연결되지 않았고 여비서인 듯한 상냥한 목소리는 회의중이신데 누구시라고 전할까요 하고 이쪽의 신분을 알고 싶어했다.  괜히 이름만 대선 안 바꿔줄 것 같았다. 차문경이가 영자, 미자, 정숙, 영숙과 무엇이 다를까. 그쪽에서 요구하는 건 사회적인 지위나 가족적 관계일 터였다. 얼떨결에 그 여자는 “문혁이 엄마라고 전해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이름이 김씨집 호적에 문혁이의 모 母 로 올라있음을 무슨 큰 빽이나 되는 것처럼 상기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여비서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바꿔주려고 물어본 것도 아닌데 괜히 신분을 밝힌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왜 그렇게 떳떳지 못해야 하는지 분하고 억울했다.

넉넉잡고 회의가 끝났을 것 같은 무렵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까 전화를 걸었던 문혁이 엄마입니다만 김사장님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

그 여자는 신분은 물론 교양까지 과시하려고 애썼다.

“네,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그 여자는 여직원의 사무적인 말투에서도 무언가를 짐작해내려고 잔뜩 신경을 곤두세웠다.

“전화 바꿨소.”

혁주 목소리였다.

“문혁이 때문에 걸었어요.”

“잘 있소.”

“오늘은 보내주세요.”

‘알았소.”

전혀 감정이 섞이지 않은 짧은 대꾸는 찰까닥 하는 기계적인 음향과 함께 끝났다. 문경이는 마치 불의에 떠다 밀린 것처럼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그날도 문혁이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돌려보내주지 않을 줄 뻔히 알면서도 그 여자는 목마르게 문혁이를 기다렸고 밤새 잠을 못 이뤘다.

다음날은 한결 성난 목소리로 다시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곧 연결이 됐지만 그쪽 목소리도 잔뜩 성이 나 있었다.

“아이는 잘 있다고 했잖소.”

“안부를 묻는 거 아녜요. 약속이 틀리잖아요. 오늘 안으로 꼭 돌려보내 주셔야 해요. 안 그러면…”

“안 그러면?”

비꼬고 경멸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그랬을까. 딴 사람의 목소리처럼 한껏 고이고 가시 돋친 목소리였다.

“화낼 일이 아니잖아요.”

“아이는 물건이 아니란 말요.”

“누가 물건이랬어요?”

“난 그 애 애비요.”

혁주의 말투가 별안간 선언투로 변했다. 짐은 국가라고 선언하는 제와의 목소리도 아마 그보다 더 오만불손하진 않았으리라. 그 여자는 공구 恐懼 했다. 혁주의 부권 父權에 대해서라기보다는 별안간 당면하게 된 새로운 국면에 자신이 너무 무방시 상태라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요?”

그 여자의 목소리는 형편없이 떨렸다.

“문혁이가 어디 못 올 데 온 거 아니니 성화 좀 작작 하란말요.”

그리고 나서 또 “찰까닥”이었다. 설사 그기 대답을 기다려줬다고 해도 그 여자는 암말도 못했으리라. 괘 오랫동안 수화기를 쥔 채 말문이 막혀있었다.

이윽고 떠오른 생각은 더 늦기 전에 아이를 빼앗아와야 한다는 거였다. 더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그 여자는 “더 늦기 전에” 에 끊임없이 쫓기면서도 늦도록 장사를 해야만 했다.

대강 머리를 매만지고 옷을 갈아입었다고는 하나 마음이 급해서 멋에까지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혁주가 사는 아파트 진입로의 휘황한 상가와 산책 나온 그곳 주민들이 세련되고 대답한 옷차림은 이국의 휴양지를 방불케했다. 한여름이었다. 특히 여자들의 옷차림은 여름 꽃밭 같았다. 그 여자는 자신의 옷차림이 수수한 정도가 아니라 궁상맞게 보일 것 같아 그만 주눅이 들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문혁이가 보고 싶은 열정도 목구멍까지 차 올랐다. 그 여자는 화차처럼 뜨겁게 헐떡이며 혁주네 아파트에 당도했다. 문혁이가 드나드는 동나 동 호수만 알아놓았을 뿐 가보긴 처음이었다.

문을 열어준 가정부의 어깨 너머로 서늘한 바람이 머리카락 한줌이 땀에 함부로 엉겨붙은 그 여자의 이마에 상쾌하게 와 닿았다. 복중으로 치닫고 있는 날씨와 좋지 못한 예감과 분노로 뜨겁게 달구워 진 그 여자에게 냉방이 잘된 아파트의 실내 온도는 매우 생똥스러웠다. 그 여자는 갑작스러운 이질감 때문에 문혁을 찾으러 온 걸 잠깐 잊어먹고 별세상 같은 분위기를 멍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저녁식사 후인 듯 감미로운 고기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지만 넓은 거실 한가운데 차려진 건 색색가지 과일이었다. 은빛 쟁반 위에 소담하고 모양있게 썰어 담은 과일, 둘러앉아 담소하는 사람들의 나른하고 근심없는 표정, 그것들을 비추는 샹드리에에서 요염하게 하늘대는 크리스탈 조각들…. 그 여자의 눈길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엄마!” 하면서 문혁이가 뛰어나왔다. 아이는 엄마에게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 여자는 품속에서 흐느끼는 아이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 동안 앙상해진 것처럼 느꼈다. 사흘만인데도 그 여자는 아주 오랫동안 아이에게 무심했던 것처럼 느꼈고, 엄마가 무관심한 동안 앙상해진 건 아이의 어깨뿐 아니라 마음도 함께라는 걸 깨달았다.

 혁주의 아내인 듯싶은 우아한 여자가 앞장서고 그 뒤로 놀란 식구들이 우루루 몰려 나왔다. 그들이 놀란 건 갑작스러운 엄마의 출현보다도 아이의 울음인 듯했다. 왜 우냐고 한마디씩 했다.

“어머머 쟤 좀 봐. 온 집안 식구가 상전처럼 떠받들었는데도 뭐가 부족해서. 아이 분해. 즈이 엄만 우리가 짜고 구박이라도 한 줄 알겠네.”

큰 엄마가 이렇게 푸념을 하면서 서로 뒤엉킨 모자를 노려보았다. 어떡하든 빼앗아 가지고 싶은 호시탐탐한 눈빛이었다. 문경이는 큰 엄마의 그런 눈빛에 전율하면서 아이의 몸과 마음이 그 동안 황폐해진 건 저 눈독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여자가 어렸을 적 저녁나절이면 한꺼번에 피어나는 분꽃이 신기해서 어떻게 오무렸던 게 벌어지나 그 신비를 잡으려고 꽃봉오리 하나를 지목해서 지키고 있으면 딴 꽃은 다 피는데 지키고 있는 꽃만 안 필 적이 있었다.

“그건 꽃을 예뻐하는 게 아니란다. 눈독이지. 꽃은 눈독 손독을 싫어 하니까 네가 꽃을 정말 예뻐하려거든 잠시 눈을 떼고 딴 데를 보렴.”

어머니 말대로 했더니 신기하게도 그 동안에 꽃이 활짝 벌어졌던 기억이 왜 그렇게 생생한지, 그 여자는 오직 아이를 눈독으로부터 보호해야겠다는 생각만 하면서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아이를 데리고 나와 버렸다. 그리고 쫓아오지도 않는데 쫓기듯이 허둥거렸다. 아이는 밖에 나와서도 울음 끝을 길게 끌었고 “엄마 나 다신 그 집에 보내지 마”. 하고 응석을 부리기도 했다.

그 여자는 그래 그래 다신 안 보낼께. 엄마가 잘못했다고 사과겸 약속을 했지만 그 집에서 아이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묻지 않았고 아이도 고자질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아이에게 고자질할 건덕지가 있을 만큼 언짢은 일을 당했다고 여기진 않았다. 그쪽 여자 말짝으로 상전처럼 떠받들었을 게 틀림없건만 애정 없는 소유욕, 지나친 비위맞춤에 아이는 스스로 넌더리를 내고 있었다.

그쪽에서도 아이의 태도가 여간 섭섭하지 않았나 보다. 한동안 소식과 연락이 딱 끊겼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지만, 다시는 보고 싶다는 소리없이 방학을 넘기자 토라져도 단단히 토라졌구나 조금은 안됐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가을까지도 단절과 침묵이 계속되자 슬그머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런 날벼락이 떨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10월 초 차문경은 가정법원으로부터 출두하라는 통지서를 받고 비로소 자신이 김혁주가 제기한 자(子)인도 청구권 소소의 피신청인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피신청인이라니, 그 여자에겐 피고나 다름없는 어감으로 들려서 우선 가슴이 떨렸다. “빚보증 서기나 송사질 좋아하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는 식의 가정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그 여자였다. 식구 중에 누가 재판소는 물론 파출소에 불려가는 골도 본 적이 없었다. 그게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 후 산전수전 겪을 만큼 겪었건만도 법원으로부터 날아오는 문서는 죄 없이도 겁나고 위협적이었다.

다행히 출두해야 하기까지는 충분한 시일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출두해야할 장소도 법정이 아니라 가사조정실로 돼 있었다. 조금씩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법적인 맹무니에서 벗어나보고자 하는 의욕도 생겼다. 법적인 무지 때문에 당한 억울한 일은 수없이 들어와서 거의 상식에 가까웠다. 재판소가 덮어놓고 싫고 무서운 것도 실은 그런 상식에 근거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싸움에 있어서도 미리 얕보이면 불리하다는 것 또한 그 여자가 살아오면서 터득한 상식이었다. 얕보이지 않으려면 뭘 알아야 한다는 것, 무지하면 얕보여 싸다고까지 생각한 건 그 동안 까맣게 잊어버린 줄 알았던 고등교육을 받은 성깔인지도 몰랐다.

가사선생 시절 졸업반 아이들한테 더리 여자이기 때문에 당해야 하는 법률상의 불이익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다. 연합고사를 치르고 나면 시험점수에 구애받지 않고 교사 재량껏 세상물정이나 남녀간의 애정문제 등 그 또래의 아이들이 솔깃해할 만한 얘기를 해줄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법이다. 그런 여백의 시간일망정 유용하게 보낼려고  제법 공부를 해가며 가르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상식의 차원을 못 벗어난 얘기였고 그 상식도 벅찰 만큼 그 여자의 제자들은 그때 철부지들이었다. 그 여자는 아쉬운 대로 그때 큰소리치며 아는 척 한 법률상식을 생각해내려 했지만, 생각나지도 않았거니와 지금까지 유용한가도 긴가민가했다. 벌써 그때가 언젠가. 법이란 끊임없이 새로 생겨나기도 하고 개정되기도 하지만, 묵은 법이 저절로 사문화되거나 폐지되기도 하니까.

그러면서도 그 여자의 의식에 집요하게 달라붙어 그때나 이때나 한결같은 유효한 상식이 있었으니 그건 민법 중에서도 가족생활관계를 규정지은 소위 가족법은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돼 있다는 일종의 피해의식이었다.

그 여자는 육법전서를 비롯해서 몇 가지의 법률서적을 사들였다. 육법전서는 너무 활자가 작아 시력이 많이 약해졌다고 처음으로 자신의 노쇠현상을 깨달은 것 외엔 별 소득이 없었지만 상식적으로 해설해 놓은 친족법에 관한 책들은 도움도 되고 위안도 되었다. 그 여자는 마치 호랑이에게 쫓겨 뒤란 나무 위로 올라가 하나님 하나님 저를 살리시려거든 성한 동앗줄을 내려주시고, 저를 죽이시려거든 썩은 동앗줄을 내려달라고 기도하는 옛날 이야기 속의 어린 오누이 같은 심정으로 가족법 사이를 헤맸다. 어떡하든지 문혁이와 더불어 움켜잡을 수 있는 성한 동앗줄을 찾아내야만 했다.

심판에 회부되기 전에 조정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조정은 어디까지나 쌍방의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졌을 때 법적 효력이 생기는 거지 강제력은 전혀 없다고 했다. 그 정도만 알고 나도 좀 마음이 놓였다. 조정절차에 기대를 걸어서가 아니었다. 혁주가 걸어온 싸움을 끝까지 싸워보지도 않고 손들 사람들도 아니거니와 그 여자 또한 아이의 양육권을 내놓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조정위원 중에 솔로몬이 있다고 해도 합의점을 찾을 가망은 없었다. 그렇지만 심판에 회부되기 전에 조정의 과정이 있다는 건 시간을 벌기 위해서도 자신에게 유리한 건수를 찾아내기 위해서도 고마운 일이었다. 특히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불의에 당한 피신청인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하필 출두해야 하는 날은 김밥의 예약이 여늬 때의 몇 곱 몰린 날이었다. 아줌마하고 새벽부터 김밥을 말다말고 시간이 되자 옷도 못 갈아 입고 입은 채로 가정법원으로 달려갔다. 법원 3층 조정실 앞 긴 나무의자에서 기다리는 동안 그 여자는 비로소 자기가 너무 초라하다는 걸 깨달았다.

조정절차를 심판보다도 가볍게 보았기 때문에 옷차림에 신경을 안 썼는지도 모른다. 그건 중대한 실수였다. 그 여자는 목둘레가 늘어난 보라빛 티셔츠에 말아올린 소매를 내려서 판판히 쓰다듬다 말고 검정바지에 밥풀자국이 버짐처럼 얼룩진 걸 발견하고 어쩔 줄을 몰랐다. 지독한 낭패감 때문에 울음이 복받치려고 하는 걸 간신히 참고 그 여자는 손수건에 침을 묻혀가며 그 밥풀자국을 열심히 문질렀다. 그러다가 한쪽 뺨이 따갑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휘둘러보니 저만치 혁주 부부가 물끄러미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쪽도 출두하리라는 당연한 사실을 왜 좀더 미리 의식하지 못했을까.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만 먹고 사는 일을 모든 일에 우선한 자기꼴이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도록 참담하게 느껴졌다. 부티와 교양이 철철 넘치게 차려 입은 그들 부부의 시선에 적의는 없었다. 그러나 적의보다 연민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밥풀자국 문지르는 일을 계속하려도 침이 말라버려 뜻대로 안 됐다. 곧 그들 차례가 되어서 안으로 같이 불려 들어갔다.

정면에 부장판사가 앉고 양쪽에 두 사람씩 사회저명인사로 구성된 조정위원이 앉았다. 네 사람 중엔 여자도 한 사람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인데 여성지에다 청소년 문제를 다룬 글을 많이 써 문경이도 이름을 아는 소위 여류 명사였다.

문경이는 싫든 좋든 혁주부부와 나란히 앉아야 했다. 반찬냄새가 그들에게 풍길 것 같아 떨어져 앉고 싶었지만 양쪽에 배석한 서기 때문에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조정위원들이 참고서류를 팔랑팔랑 넘겨 해당되는 사건번호를 찾아 신청인과 피신청인의 교육정도 직업 등을 유심히 살펴보고 나서 그 뒷장에 간략하게 요약된 신청취지와 신청원인을 훑어내렸다. 그들이 흥미있어 하는 건 신청원인보다 첫눈에 현격하게 들어나는 양측의 신분의 차이인 것 같았다.

“지금 현재 아드님은 생모가 양육하고 있겠군요?”

판사가 먼지 이렇게 말문을 열자 혁주가 그 말을 받아 생모는 새벽부터 시장바닥에서 일하고 아이는 셋방을 지키다가 혼자 책가방을 챙겨서 등교해야 하는 경제적 궁핍과 열악한 교육환경을 더는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뜻을 명백히 했다. 혁주는 이렇게 가진 자의 느긋한 우월감과 부권을 유감없이 과시하고 본처와 생모는 양쪽에서 말 한마디 없이 겉모양만 가지고도 능히 그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조정위원들은 입을 모아 아이의 장래와 행복을 위해 양육권을 법률상의 친권자에게 넘기라고 문경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아이의 행복에 대해서 당신네들이 도대체 뭘 안단 말이냐고 대들고 싶은 걸 힘겹게 참고 그럴 순 없다는 짤막한 대답으로 일관했다. 여의사는 혁주에게 좀 색다른 질문을 했다.

“생모로부터 아이를 빼앗을 생각만 하지 말고 생모 밑에서도 윤택한 교육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아버지가 배려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혁주는 소송까지 제기랄 때는 그 전에 왜 그런 생각을 안해봤겠느냐고, 벌써 골백번도 넘게 시도해 봤지만 생모가 말을 안 들었다고 받아 넘겼다. 줘도 안 받을 거라는 건 사실이지만 무엇보다도 억울한 건 만장일치로 모든 사람이 자신을 도와줘야 할 극빈자로 보고 있다는 거였다. 그 여자는 그런 비참한 취급을 당하고 있는 동안도 본처는 부덕과 교양을 겸비한 조용하고 사려깊은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그 온화한 눈빛 속에서 아흔아홉 냥 가진 이가 한 냥 가진이의 모든 것인 한 냥을 기어코 뺏고 말겠다는 비정한 소유욕을 역력히 읽어냈다.

결국 조정은 성립되지 않았고 판사는 심판에 회부한다고 말했다. 문경이는 혁주부부와 함께 그 방을 물러났지만 잠시라도 같이 걷기가 싫고 거부해서 뒤로 쳐져서 자동판매기를 찾는 것처럼 서성거렸다. 그들이 마지막 차례였는지 조정위원들도 곧 뒤따라 나왔다. 여의사 방주혜 박사가 혼자 서있는 문경이를 보고 친근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단 조정위원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더니 문경이 곁으로 다가왔다.

“볼일이 남아 있나요?”

“아뇨. 그 사람들 하고 같이 가기 싫어서…..”

“그럴 거예요. 안에서 일껏 화해를 시켜 놓았는데도 나오자마자 사우는 사람도 봤어요.”

“재미있는 구경 많이 하시겠네요. 차 한 잔 대접해도 되겠어요?”

방박사는 거절하지 않았다.

“선생님 보시기에 재판하면 제가 이길 가망이 있을까요?”

다방에 앉자마자 문경이는 다급하게 물었다.

“글쎄요 내가 뭘 알아야죠?”

“조정위원이신데두요?”

“집안내나 혈육 간의 분쟁이라는 게 법조문으로만 규정할 수 없는 인정적인 게 대부분 아녜요. 그래서 나잇살이나 먹고 경험도 풍부한 소위 명사한테 위촉해서 좋은 말로 타일러서 해결할 수 있는 여지를 찾아보자고 있는 제도니까 별거 아녜요. 설사 조정이 성립된다 해도 얼마나 그 화해가 진실하고 오래 갈런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구요.”

“인정이라는 게 편견과 다를 거 하나 없더군요.”

“불쾌했었나 보죠?”

 “돈푼이나 있어 보이는 사람의 주장에 덮어놓고 동조하는 게 고작 저명인사가 할 짓인가요? 시정잡배와 뭬 다르죠?”

“단단히 화가 났군요. 그렇지만 우린 누가 옳고 그른 걸 판결한 건 아니잖아요. 아이의 장래와 행복을 아주 상식적인 시각으로 판단해서 보다 유리한 쪽에서 책임지게 하고 싶었을 뿐이예요. 물론 어디까지나 권고지 강제할 권한은 없었고, 댁에선 우리 권고를 받아드리지 않았어요.”
“뜻하지 않게 내 아들을 인도하라는 청구권소송을 당하고 나서 가슴이 떨리기도 하고 겁도 났어요. 가족법에 대해 뭘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어 생전 처음 법률책을 다 읽어 봤죠. 워낙 생소한 분야라 제대로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자 子에게 의사능력이 없을 때에만 친권자의 인도청구권을 인정한다는 게 흥미롭더군요. 우리 아이는 분명한 의사능력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렇지만 겨우 일곱 살짜릴 법정에 세워 그걸 묻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 나이의 의사능력이라는 건 실상 얼마든지 외부적인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구요.  그 보다는 <자 에게 의사능력이 없는 경우라도 친권자의 인도청구권은 언제나 인정되어서는 안 되며 자 의 복리를 위한 것인가를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한다. 특히 자 의 부모가 이혼하고 모 가 자 를 양육하고 있을 때, 부 가 친권자로서 모 에 대하여 인도청구를 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제반사정에 비추어 자 의 복리를 특히 고려해야 한다>는 대목이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몰라요. 이거야말로 내가 찾던 성한 동앗줄이라고 무릎을 쳤죠.”

“성한 동앗줄이라뇨?”

방박사가 말귀를 못 알아듣고 물었다. 문경이는 거기에 대한 설명대신 서글프게 웃었다. 어떻게든 지난 며칠간의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면 안 된단 생각이 얼핏 스쳤다.

“어머니가 아이를 뺏기지 않을 굉장한 법적 근거라고 생각했단 얘기죠. 그렇지만 오늘 조정위원들한테 당하고 나니까 그런 희망이 터무니 없는 거란 생각이 들어 맥이 쭉 빠져요.”

문경이는 어깨를 축 처뜨리는 시늉을 과장해서 보여주면서 말했다.

“우리 조정위원들이 댁을 미처 이해하지 못했다는 건 인정해요.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큰 잘못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재판 때 판사도 자의 복리는 가진 자가 더 잘 보장해 주리라고 쉽게 판단해 버릴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조정위원들의 태도를 보아하니 그랬어요.”

“물론 아이한테 복리가 되는 게 돈이 다는 아니겠죠. 그렇지만 복리에서 돈이 차지하는 비율을 너무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댁은 아이에게 복리는 모성이면 다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방박사는 그러면서 새삼스럽게 문경이의 초라하고 구질스러운 옷차림을 훑어보는 것이었다.

“선생님 보시기엔 제가 아이의 복리에 위배될 만큼 그렇게 가난해 보입니까.”

“외모로 주머니 사정까지 단정할 수 야 있나요.”

“전 돈은 얼마 없지만 아이 하나쯤 넉넉히 입히고 먹이고 공부시킬 만한 경제력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 아이를 사랑하구요. 그러나 애 아빠나 그쪽 여자는 그 아이를 필요로 할 뿐입니다. 구색으로서 아들이 필요한 겁니다. 나는 그 아이가 딸이었더라도 똑같이 사랑했을 테고 똑같이 안 뺏길려고 최선을 다했을 겁니다. 그들은 아닙니다. 다시는 임신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고부터 그 애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엔 그 애가 즈이집 자식이 아니라는 강제자백까지 나한테 받아낸 사람들이 말입니다. 그들에겐 딸이 둘이나 있습니다. 게다가 부유하기까지 해서 아들만 하나 있으면 세상에 그릴 게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아시죠? 선생님도 아흔아홉 냥 가진 자가 한 냥 가진 걸 빼앗아 채우고자 할 때 얼마나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잔혹해질 수 있는지. 나는 그 애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애에 대해 많은 꿈이 있지만 그들은 계획이 있을 뿐이에요. 어떻게든 그 애를 그들의 구색을 완벽하게 할 도구로 삼아야겠다는 철저한 계획 말입니다. 아까 선생님도 보셨죠? 그들이 아이의 행복에 대해 얼마나 쉽게 생각하는지를요. 나는 돈은 얼마 없지만 돈만 있으면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는 건 문제가 없다는 생각은 구역질나요. 가소롭구요. 돈이 얼마 없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그들이 내세우는 돈의 위력은 물론 혜택으로부터도 아이를 보호해야 할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내 이런 생각을 판사가 이해해 줄까요? 돈이 얼마 없다는 게 결코 자식을 빼앗길 만큼 비참한 악조건은 아니라는 것도 아울러 이해받고 싶어요.”

방박사가 이를 드러내고 방실방실 웃었다. 우스운 얘기를 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비웃거나 얕잡는 웃음은 아니었다. 푸근한 친근감이  가는 웃음이었다.

“돈이 얼마 없다는 소실 시방 몇 번이나 한 줄 알아요?”

웃고나서 이런 엉뚱한 질문을 했다.

“왜요. 그 소리가 마음에 안 드셨나요.”

“아뇨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돈이 얼마 없는 상태가 얼마나 좋아요. 난 그걸 알거든요.”

“저를 놀리실 셈이군요.”

“천만에요. 내가 자랄 때 우리 어머니한테 가장 많이 듣던 소리가 그 소리였어요. 얘야 우린 돈이 얼마 없단다. 그러면서 교복도 내리 입히고, 내복도 기워 입히고 용돈도 조금밖에 안 주셨죠. 그렇지만 학비를 제때에 못 내거나 밥을 실컷 목 먹거나 할 정도로 궁색한 형편은 아니었어요. 얼마 없다는 건 아주 없는 것보다는 여유가 있으니까요.  아버지가 교육자셨는데 6남매나 되었으니 어머니가 언제나 돈이 얼마 없을 수 밖에요. 돈이 얼마 없는 상태는 형제 간에 우애 절제 근면을 배우기에 아주 적절한 상태였나 봐요. 6남매가 다 쓸만하게 되었거든요. 지금 난 남매밖에 안 낳았어요. 남편도 의사니까 아이들은 아쉬운 것 모르고 유복하게 자라죠. 돈이면 다라고 하지만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해줄 수 없는 게 딱 한 가지 있잖아요. 돈이 얼마 없을 때의 활력 말예요. 그게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아쉬운 것이 없이 해주면서도 미안한 생각이 드는 거 있죠?”

“선생님이 돈이 얼마 없는 상태가 뭐라는 걸 정확하게 이해해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앞으로 잘될 거예요. 잘되길 빌겠어요.”

“그래도 재판 받을 생각하면 떨려요. 어려서부터 빚보증 서기나 소송 좋아하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는 식의 가정교육을 받아온 탓인지 웬만한 손해라면 당하고 말지 경찰이나 법원 신세 안 지자 주의였는데.”

그 여자가 한숨을 쉬자

“팔자 한탄이라면 안 듣겠어요.”

방박사의 말투는 농담 같으면서도 단호한 데가 있었다.

“안 그럴게요.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은 재판 받을 생각을 하면 떨리거든요. 떨린 나머지 선생님을 상대로 재판의 예행연습을 하고 싶었나 봐요.”

“나도 재판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시방 나하고 얘기한 것처럼 긴 얘길 늘어놓을 새도 아마 없을 걸요. 심판 때보다 소상하게 자초지정을 늘어놓을 수 있으라고 조정과정을 미리 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심판 전에 아까 나한테 얘기한 요지를 서면으로 작성해서 제출하세요. 저쪽에선 변호사에게 위임할 경우도 염두에 두고 조리 있게 쓰셔야 돼요. 가족법에서 자의 복리를 특히 고려해야 한다는 대목이 가장 마음에 들고 힘이 되더라고 말했죠?  그럼 그걸 믿고 매달리는 거예요. 그걸 믿고 그걸 근거로 해서 주장을 펴나가란 말예요.”

“고맙습니다.”

“어떻게 생긴 아이인지 언제고 한번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

“그 애에게 거는 저의 가장 찬란한 꿈이 뭔 줄 아세요? 남자로 태어났으면 마땅히 여자를 이용하고 짓밟고 능멸해도 된다는 그 천부의 권리로부터 자유로운 신종 남자로 키우는 거죠. 그 꿈을 위해서도 그 애는 제가 키우고 싶어요.”

그러나 법원에 준비 서면을 제출해야 하는 기한이 임박해질 때까지 그 여자는 한 자도 쓰지 못했다. 잘 써야겠다는 강박관념과 지난 일을 돌이켜볼수록 괘씸해지는 혁주에 대한 감정 때문에 붓끝이 헛되게 떨기만 하고 나가질 않았다. 고독감이 뼈에 사무쳤다. 자신이 살아온 방법을 지켜보고 따뜻하게 이해해줄 너그러운 친구, 공정한 증인은 없는 것일까. 동기간도 생각해 보았고 임선생도 생각해 보았다. 그들이 그 동안 많이 힘이 돼준 건 사실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기존 도덕의 편이었다. 동기간이니까 친구니까 동정은 해주었는지 몰라도 이해해주신 않았다.

어디서부터 혁주와의 잘못이 비롯된 걸까. 첫날부터였다. 처음 혁주하고 자고 난 다음 그가 벽에 걸린 십자고상을 보고 버럭 화를 내던 생각이 났다. 그 여자는 혁주하고 자기 전에 십자고상이 내려다 보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도 못했지만 설사 의식했다고 해도 그걸 안 보이게 감추고 그 짓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신의 눈길이 두렵기는커녕 신이 증인을 서 주길 바랄 만큼 그 여자는 그 짓에 떳떳했었다. 그러나 혁주는 정반대였다. 그때부터 벌써 두 사람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이사할 때 짐 속에다 챙기긴 했지만 다시 벽에 걸진 못한 십자고상을 창고 속에서 힘들여서 찾아냈다. 그리고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잘 몰랐기 때문에 사람 대하듯 스스럼없이 말했다.

“주님. 당신은 다 보셨으니까 다 아시죠. 제 마음도 다 아시죠. 전 지금 그 사람과의 관계를 진술해야 하는데 미움에 사로잡혀 정직할 수 없을까 두렵습니다. 주님 제가 정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제가 앞으로 받을 심판이 주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되게 하소서.”

기도 덕분인지 신청인쪽을 헐뜯지 않고도 진술서를 쓸 수가 있었다. 신청인이 아이의 복리에 얼마나 어긋나는 심성을 가졌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문혁이를 낳고 나서 마지막으로 보낸 애절한 편지에 대한 혁주의 답신을 그 여자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다.

그 당시 김혁주가 다니던 회사 마크가 들어있는 타이프 용지는 그 동안 누리끼하게 변색돼 있었지만 타이핑 된 사연은 육필보다 훨씬 더 개성적이었다. 그건 어쩌면 육성에 가까웠다. 그 여자는 그 비인간적인 사연을 눈으로 읽은 게 아니라 혁주의 목소리로 들으면서 새삼스럽게 몸서리를 쳤다.

 

 

차문경 여사

여사가 본인의 아이를 낳았다구요? 여사의 말귀를 못 알아듣겠음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사로부터 그와 같은 협박을 당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걸 본인이 기억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드리고자 합니다. 앞으로 다시 이런 허무맹랑한 협박으로 본인의 신성한 가정의 평화가 위협을 받을 시는 여사의 정신상태를 의심할 것이며 본인도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임을 경고합니다.

X 년 X 월 X일 김혁주

 

 

그 다음이 네모반듯하고 시뻘건 도장자국이었다. 편지를 받았을 당시는 하고 기가 막혀서 웃고 말았건만 지금은 사연보다 맨 끝의 도장자국이 왜 그렇게 가슴이 아린지 몰랐다. 그 편지를 찢어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는 지가 7년이 넘었건만 꺼내보긴 처음이었다. 생각하기도 싫었다. 마치 아물지 않는 상처 딱지를 뜯어보는 것처럼 혐오스러웠던 것이다. 혁주도 아마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고 있으리라. 그는 도장을 찍은 게 아니라 비수를 꽂은 거였다. 가슴속이 깊숙이 욱신거렸다. 그 여자는 그 후 다시는 남자를 사랑한 일도 남자와 더불어 사는 생활을 꿈꾼 적도 없었다. 정조관념 때문이 아니라 일종의 불능 不能이었다.

그 여자는 분노나 원한을 원색적으로 들어냄이 없이도 혁주가 아버지 자격 없음을 조리있게 주장하는 서면을 작성할 수 있었다. 복사한 혁주의 편지를 첨부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말을 절약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 여자는 오히려 자신의 어머니 자격을 증명하는데 더 많이 고심했다. 방박사가 호감과 관심을 보여서인지 돈이 얼마 없다는 것도 숨기고 싶지 않았다. 떳떳하게 자랑하고 싶기조차 했다. 그러나 돈이 얼마 없다는 것이 아주 없다는 것하곤 다르다는 것만은 말하고 싶어 비록 전세를 준 거긴 하지만 자신의 명의로 된 아파트의 등기부 등본과 반찬가게의 납세증명까지 떼어다 붙였다.

재판날은 조정 때 미리 주눅들었던 생각을 하고 옷차림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화장도 야하지 않을 정도로 공들여서 처발랐다. 초라하기 않고 생기 있고 당당하게 보이고 싶었다. 그 동안 얼마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 먹고 사는데 만 골몰했었나를 돌이켜보며 콧날이 시큰했다. 그러나 감상에 젖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다. 그 여자는 마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소년처럼 무작정 씩씩하게 법원으로 향했다.

그 여자는 자기 차례가 될 때까지 남들이 재판 받는 걸 구경하면서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사건을 재판하다니, 과연 판사가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여자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공들여 작성한 서면이 판사 눈에 띄지도 않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기가 잘못이었다. 정말 그랬을 것 같아서 판사의 그런 안일과 무성의를 사생결단 따지고 싶은 미친년 같은 열정이 치받쳤다.

다행이 그들의 차례가 되었다. 공식적인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나서 판사가 그 편지를 읽었다. 전혀 감정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여서 문경이도 처음 듣는 것처럼 귀를 기울였다. 그런 지독한 사연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읽을 수도 있구나. 그 여자는 아득한 낭패감에 사로잡혔다.

“신성인이 X년 X월 X일 이런 편지를 피신성인에게 한 게 사실입니까?”

판사는 역시 감정도 억양도 섞이지 않은 소리로 물었다.

문경이는 여지껏 눈길을 마주치는 걸 피해왔던 혁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혁주가 아니라고 대답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입에서 그 소리를 듣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났다고까지 생각했다. 그가 그 사실을 부정한다고 해도 다시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또 그 사실을 감쪽같이 부정한다고 해서 그가 승소할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걸 예측할 수 있는 단서를 판사의 태도나 재판의 진행과정에서 찾으려 해 봤댔자 헛수고였다. 실상 지금 그 여자는 결과에 대해선 거의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시방 그 여자는 겁이 나서 간이 오그라붙는 것 같았지만 그가 부정하며 자신에게 불리해질 까봐 그렇게 겁이 나는 게 아니었다.

만일 그가 그 사실을 부정하면 그런 남자와 한때 살을 섞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치욕스러울 것 같았다. 또한 아무리 소중한 아들이라지만 그 생명의 비롯됨에 있어서 반의 책임은 그런 남자에게 있다는 걸로 아들까지 뜨악해질 것 같았다. 그 여자는 그게 싫고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제발 정직하라고 마음으로부터 그 못난 남자를 격려하고 있었다. 문경이의 강렬하던 시선이 슬프고 따뜻하게 풀렸다. 혁주가 내려깔고 있던 눈을 잠깐 치떴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그 여자는 두 가닥의 한없이 가냘프고 초라한 떨림이 문득 서로 스친 것처럼 느꼈다.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사실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후 몇 마디 더 묻고 대답했지만 그 여자는 건성으로 들어서 아무것도 못 알아들었다.

보름 후 언도 공판이 있기 전에 그 여자는 혁주가 고소를 취하했다는 걸 알았다.

 

 

박완서 朴婉緖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출생

1950년 서울대 국문과 입학

1970년 장편 ‘裸木’이 ‘여성동아’에 당선

1976년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출간

1977년 장편 ‘휘청거리는 오후’, 수필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출간

1979년 장편 ‘살아있는 날의 시작’ 출간.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80년 ‘도둑맞은 가난’ 출간, ‘엄마의 말뚝’으로 제5회 ‘이상문학상’ 수상

1982년 ‘엄마의 말뚝’, ‘오만과 몽상’, 수필집 ‘살아 있는 날의 소망’ 출간

1983년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출간.

 

 

박완서

소설가.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출생. 숙명여고를 거쳐 1950년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6.25 전쟁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했다.

1970년 <여성동아>에 장편 소설 ‘裸木’이 당선되어 데뷔한 이래 중산층의 소시민적 삶의 방식과 풍속에 대한 예리한 비판과 뛰어난 현실감각을 보여주는 작품을 써왔다.

작품집으로 장편 <裸木> <휘청거리는 오후> <도시의 흉년> <서있는 여자> <오만과 몽상>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목마른 계절> 등이 있고 단편집으로 <도둑맞은 가난> <엄마의 말뚝>

수필집에 <살아있는 날의 소망> <남자와 여자가 있는 풍경>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등이 있다.

1980년에 한국문학작가상, 1981년에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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